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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5-70

65화

자리가 사람을 만드는 것인가.

아니면 그 자리에 어울리는 사람이, 결국 제자리를 찾아가게 되는 것인가.

거기에 대해서는 사람마다 의견이 분분한 편이지만, 적어도 이 문제에 대한 내 생각은 간단한 편이었다.

내가 생각하기에 나는 '폭군'과는 거리가 먼 인물이었다.

그러니까 내 말은, 내가 이런 식으로 사람을 무력으로 굴복시키는걸 좋아하는 유형은 아니라는 이야기였다.

특히나 그 대상이 같은 헌터라면 더더욱 그러했다.

"······."

S급 게이트, 버려진 영물들의 낙원.

그곳에서 나는 엉망진창이 되어 목숨을 구걸하는 이지성을 마주하는 중이었다.

어쩌다가 상황이 이렇게 되었는가 하면, 내 나름대로 이 난해한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 노력한 결과물이었다.

나는 이지성에게 반지와 영물들의 존재를 들켰고, 어떻게든 이지성의 입을 막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

그리고 그 결과가 지금 내 눈앞에 떠올라있는 반투명한 창과, 내 앞에서 주저앉아 구역질을 하고 있는 이지성인 셈이었다.

- [압제] 상태에 도달했습니다!

- 대상이 [폭군]을 향한 극심한 공포에 직면해있거나, 이성이 마비된 경우 [압제] 상태가 활성화됩니다.

- [압제] 상태에서 이루어지는 모든 맹세는 강제효과를 가지게 됩니다.

- 맹세가 성립되었습니다!

- 더 이상 어떠한 수단으로도 해당 맹세를 무효화할 수 없습니다.

내가 가지고 있는 유일한 이명.

—폭군(暴君).

그 폭력적인 이명이 이제서야 본성을 드러낸 것이다.

공포를 통해 만들어낸 상황 자체에 강제성을 부여하는 것.

그것이 '폭군'의 이름이 가지는 진정한 힘이었던 것이다.

'공포에 걸린 상태에서 하는 맹세에 강제효과를 부여한다고?'

나는 해당 메세지를 마주하고서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내가 가진 이명에 그런 효과가 숨어있을거라고는 전혀 짐작조차 못하고 있었던 까닭이다.

내가 해당 이명을 얻은 것은, 독왕 구성현을 만나서 그에게 겁을 주고 난 이후였다.

그러니 지금까지는 폭군의 이명이 제 힘을 드러낼 기회가 없었던 것이다.

'그래서 공포에 대한 증폭옵션이 붙어있었던건가.'

더군다나 어째서 모든 종류의 공포효과에 대한 증폭옵션이 달려있었는지도 이해하게 되었다.

더 강한 공포를 안겨줄수록 이득을 보게되는 능력.

'폭군'의 길을 선택한 이상 공포와는 땔래야 땔 수 없는 관계가 되는 셈이었다.

그렇게 이지성이 처한 상황에 대해 판단을 마친 이후.

나는 다소 당황스러운 기색을 숨기기 위해 노력하면서, 눈앞에 있는 이지성을 향해 조용히 이야기했다.

"이지성씨."

"······."

"오늘 일은 두 사람만의 비밀로 남아야만 할겁니다."

이지성이 나에게 바친 맹세.

그가 맹세를 지킬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면, 그것을 이용해 이지성의 입을 막는 것도 가능할 터였다.

물론 상황에 따라서는 그 이상의 효과를 볼 수 있을지도 모르겠지만, 일단은 내 비밀을 발견한 이지성의 입을 막는게 우선이었다.

'일단은 명령을 이용해서 이지성의 입을 틀어막는다.'

그러니 나는 우선 이지성에게 한가지 요구를 전달했다.

오늘 벌어진 일을 철저하게 비밀로 감추는 것.

그것이 내가 이지성에게 내리는 첫번째 명령이었다.

그리고 그러한 명령에 뒤를 잇듯이, 간단한 말을 끝자락에 덧붙였다.

"그렇지 않으면 서로에게 곤란한 문제가 생길테니-."

그를 향한 짧은 협박의 말은 끝까지 이어지지 않았다.

허나, 그럼에도 이지성에게 의미를 전달하기에는 충분한 편이었다.

내 명령을 들은 이지성은 자신의 입을 굳게 다물었다.

"······."

끄덕-.

그 대신, 이지성은 고개를 움직여 명령에 수긍해보였다.

이지성이 나에게 바친 맹세가 그 효력을 발휘하고 있다는 의미였다.

'강제효과가 어느 정도 수준인지는 모르겠지만, 이지성이 당분간 입을 여는 일은 없겠지.'

내가 그에게 명령을 내린 이상, 이지성이 내가 가진 비밀들을 폭로하는 일은 벌어지지 않을 터였다.

커뮤니티의 회원이자 단체 대화방의 동료, 이지성을 죽이지 않고 돌려보낼 수 있게 된 것이다.

결과적으로 나에게 있어서도 썩 만족스러운 마무리였다.

주선호의 의심을 사게되는 것도, 커뮤니티의 구성원이 줄어드는 것도 그리 바람직하지 않은 결과였으니 말이다.

반쯤 넋이 나가버린 이지성의 상태를 확인한 이후.

나는 가볍게 손을 털었다.

"그럼 필요한 일이 생길때까지는 서로 평소처럼 지내는걸로 하고······."

이지성이 중간에 개입하면서 흐름이 끊기기는 했지만, 나에게는 여전히 해야하는 일이 남아있었다.

그러니 이지성과의 일은 여기에서 끝맺어야만 했다.

그것이 서로에게 있어서 좋은 결말일테니까 말이다.

나는 마지막으로 이지성을 향해 강제효과의 강도를 확인하기 위한 명령을 내렸다.

"오늘은 이만 집에 가서 쉬고있어."

내 명령이 떨어진 직후.

비틀, 비틀-.

이지성은 균형조차 제대로 잡지 못한 채, 자리에서 일어나는 모습이었다.

그렇게 일어난 이지성은 필드의 한쪽에 열려있는 게이트를 향해 걸어갔다.

저 게이트를 빠져나간 이후, 이지성은 두 번 다시 오늘의 일을 타인에게 전하지 못할 것이다.

이지성에게 있어서는 악몽같은 기억이 되겠지만, 그럼에도 나에게 있어서는 최선의 결과였다.

"앞으로 두 번 다시, 이런식으로 동료를 만나는 일은 없었으면 좋겠네."

"······."

"그렇지, 형제?"

낙원을 떠나는 이지성의 등을 바라보며.

나는 그에게 짧은 작별인사를 전해주었다.

그가 나에게 그토록 강조하던, '형제'라는 호칭과 함께 말이다.

* * * * * *

이지성을 낙원 밖으로 떠나보낸 이후.

나는 작업실을 빠져나와 집에 있는 은신처로 되돌아왔다.

아무래도 작업실의 위치를 이지성에게 들켰다보니, 그곳에서 아이템을 확인하기에는 다소 찝찝한 느낌이 있었던 것이다.

그렇게 은신처의 깊숙한 곳에 들어오기 무섭게, 나는 긴장을 풀고 의자에 기대어 한숨을 푹 내쉬었다.

"후··· 이것도 도저히 못해먹을 짓이네."

깊은 한숨을 내쉰 내 입에서 흘러나온 지독한 푸념.

그것은 방금 전에 이지성과 만나 보여주었던 연기에 대한 것이었다.

흔히들 허장성세라고 하던가.

사람이 뒤가 없다보니 자신도 모르게 강하게 나가게 되는 법이었다.

성군이라고 불리기에 마땅한 나 자신과는 지극히 어울리지 않는 행동이었다.

내가 가지고 있는 썩 나쁜 버릇들 중에 하나라고 할 수 있었다.

"뭐, 그렇다고 진짜 '폭군'에 그런 효과가 있을줄은 몰랐는데."

그것과는 별개로 내가 가진 이명에 대해 알아낸 것은 커다란 수확이었다.

[압제]를 통해 받아낼 수 있는 맹세.

그 효과는 가히 폭군이라고 불리기에 부족함이 없는 수준이었으니까 말이다.

적어도 폭군의 앞에서 상황을 모면하기 위해 거짓말을 하는 것은 불가능한 셈이었다.

"점점 내 이미지가 이상하게 변해가고 있는 기분이란 말이지."

폭군. 성좌. 관리자.

자세히 따지고보면 하나같이 고압적인 위치에 있는 것들이었다.

그런만큼 내 정체를 들으면 기겁할만한 사람도 많을 것이다.

당장 동료 유튜버인 '헌터사전' 최우현만 하더라도 그랬다.

110만 유튜버의 정체가 성좌이자 관리자이자 A급 헌터라고 한다면, 최우현은 기겁하다못해 뒷목을 잡고 쓰러질테니까 말이다.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대단한 무언가가 되어가고 있는 것만큼은 틀림없었다.

"그럼 이제 슬슬··· 아이템의 내용물을 한 번 확인해볼까."

그렇게 어느새 수상해져가는 자신의 입지를 생각하던 나는, 머릿속의 상념을 가볍게 털어버리며 가방을 들어올렸다.

이지성에게 받은 기타가방.

이 안에는 내가 그토록 고생해가며 손에 넣으려고 했던 물건이 들어있었다.

사용조건으로 잊혀진 신의 인정을 요구하는 아이템.

이제부터 그 내용물을 확인해볼 시간이었다.

나는 가방의 지퍼를 향해 손을 뻗어서는, 그것을 붙잡아 아래로 쭉 내렸다.

지익-.

기다란 지퍼가 벗겨지고 난 이후에는, 그 안에 세워져있던 새하얀 나뭇가지가 모습을 드러내었다.

"오······."

아름다운 녹색 보석이 박혀있는 백색의 나뭇가지.

그것은 영롱한 빛을 품은 채로 빛나고 있는 모습이었다.

스윽.

나는 가방의 안쪽에 손을 집어넣어 새하얀 나뭇가지를 붙잡고 들어올렸다.

그 직후, 내 눈앞에 수많은 메세지가 연달아 출력되었다.

- <텔리오스의 손길(S+)>을 성공적으로 회수했습니다!

- [폐쇄형 커뮤니티 : 자격 시험 1]이 종료됩니다.

- [재생의 텔리오스]가 시험을 통과한 당신의 능력에 찬사를 보냅니다.

- 회복 능력치가 다음과 같이 변화합니다.

- 회복 : E → B

- 신성 능력치가 다음과 같이 변화합니다.

- 신성 : E → E+

띠링, 띠링-.

눈앞을 지나가는 무수한 메세지의 향연.

그것은 하나같이 내가 성좌의 시험을 통과했음을 알려오고 있었다.

S+급의 헌터장비, <텔리오스의 손길(S+)>.

해당 장비를 회수하는데 성공하는 것으로, 이번 시험의 보상을 획득한 것이다.

"역시나··· 이게 그 장비였던건가."

성좌로부터의 메세지를 확인한 나는 쓴웃음을 지었다.

혹시나 했더니 역시나 이 아이템이 시험을 통과하는 열쇠였던 것이다.

성좌의 시험이 종료되면서 결과적으로 두개의 능력치가 성장하게 되었다.

회복 능력치가 B등급에 도달했으며, 신성 능력치 역시 미약하게나마 상승했다.

이제야 비로소 A급 헌터 언저리쯤까지 성장한 셈이었다.

"하긴, A급 헌터 능력치가 그렇게 낮은게 말이 안되는거지."

여태까지 D급 헌터만도 못한 능력치로 살아오면서, 얼마나 많은 수모를 감내해야만 했던가.

그런 내 능력치 중 하나가 B급에 다다랐으니, 나로서는 감격의 순간이 아닐 수 없었다.

후우-.

능력치의 성장에 대한 감회를 늘어놓은 이후, 나는 눈앞에 떠올라있던 창을 완전히 닫아버렸다.

"패널티가 걸린 시험도 통과했고, 당분간은 시간에 쫓길일은 없겠네."

시험에 통과했으니 한동안은 타임어택에 시달릴 걱정을 하지않아도 될 터.

그러니 이제는 아이템의 옵션을 확인해볼 차례였다.

"어디보자. 이번에 손에 넣은 S+급 장비의 옵션이······."

신에게 인정받은 성직자만이 사용할 수 있는 아이템, <텔리오스의 손길(S+)>.

내 시선이 그것을 지긋이 바라보았다.

그렇게 내가 장비 아이템을 바라보고 있으니, 내 눈앞에 아이템 정보가 떠오르는 모습이었다.

< 텔리오스의 손길 (S+) >

[ 아이템 설명 ]

- 잊혀진 신 텔리오스가 자신의 신도에게 하사한 성물입니다.

- 텔리오스의 인정을 받은 성직자만이 사용할 수 있습니다.

[ 아이템 효과 ]

- 뿌리내린 신앙 : 성물이 자신의 진정한 모습을 외부에 드러내며, 주변 반경에 적용되는 신성효과의 출력이 187% 증가합니다.

- 신성재생 : 주기적으로 신성력의 파동을 방출하며, 파동에 맞은 모든 대상이 미약한 신성력을 회복합니다.

나는 눈앞에 떠오른 아이템의 효과를 천천히 읽어보았다.

<텔리오스의 손길(S+)>이 가지고 있는 효과는 크게 두가지였다.

첫번째 효과의 이름은 '뿌리내린 신앙'.

해당 아이템을 이용해 주변 반경에 적용되는 신성효과의 출력을 올려주는 능력이었다.

"187퍼센트··· 성직자들에게 적용되는 광역 버프인건가?"

성직자. 혹은 신수들에게 적용되는 일종의 광역버프인 셈이었다.

아무래도 낙원의 신수들을 풀어놓고서 아이템을 사용하면 효율이 괜찮을 것 같았다.

효과가 적용되는 동안은 신성주문이나 신수들의 권능이 한층 더 강력해질테니 말이다.

내 입장에서는 상당히 만족스러운 효과였다.

"그리고 두번째 효과의 경우에는··· 아무래도 신성력을 충전해주는 효과인 모양인데."

그리고 <텔리오스의 손길(S+)>이 가진 두번째 효과의 경우, '신성재생'이라는 이름이 붙어있는 효과였다.

그 능력은 주변 반경에 있는 모든 생명체의 신성력을 조금 회복시켜주는 것.

이른바 신성력 충전효과인 셈이었다.

전투중에 지속적으로 신성력을 충전할 수 있게 된 것이다.

"하나같이 보조적인 성향이 강한 효과들이네."

두가지 효과 모두 직접적인 전투보다는, 성직자들을 보조하기 위한 것에 가까워보였다.

그렇게 두가지 효과를 모두 확인한 뒤에, 내가 이 아이템에 대해서 내린 평가는 간단했다.

"이거 그냥 신성력 토템같은데?"

신성력 토템.

그게 내가 <텔리오스의 손길(S+)>을 보고 내린 결론이었다.

나에게 있어서 나쁠 것은 없지만, 성직자가 아니라면 하등 쓸모없는 물건인 셈이었다.

괜히 이지성이 쓰레기라고 칭하며 버리려고 했던게 아니었다.

흐음-.

손에 쥐어진 새하얀 나뭇가지를 보며 고민하는 것도 잠시.

나는 머지않아 해당 아이템에 대한 짧은 결론을 내렸다.

"그냥 낙원에 꽂아두고서 필요할때만 가져다 써야겠다."

적어도 반지나 목걸이처럼 평소에 들고다닐만한 물건은 아니었다.

그러니 평소에는 낙원에 보관하다가, 필요할때만 안에서 꺼내는 편이 나을 것 같았다.

그렇게 세번째 S+급 아이템에 대한 결론을 내린 이후.

나는 의자에서 일어나 게이트를 열어젖혔다.

- 왈왈, 왈왈왈!

"백구야. 이건 먹으면 안된다."

- 왈?

게이트 너머에서 백구가 나뭇가지를 보며 눈을 반짝였지만, 나는 녀석에게 주의를 주는 것을 잊지 않았다.

물론 주의라고 해봤자 간단한 명령에 불과한 것이었다.

백구는 성자인 내 자비로운 지시에 순순히 꼬리를 말고 구석에 틀어박혔다.

"그런데··· 성자랑 폭군은 좀 안어울리는 조합아닌가."

성자. 그리고 폭군.

조금은 이상한 자신의 처지를 생각하며, 나는 신전의 안에 성물을 올려두었다.

내가 백구를 불러내 싸우는 일이 생기기 전까지, 당분간은 저 성물이 밖으로 나오는 일은 없을 터였다.

* * * * * *

다음날 아침.

잠에서 깨어난 내가 가장 먼저 마주한 것은, 유튜브 알고리즘에 걸린 헌터마스터의 영상이었다.

300만 유튜버, 헌터마스터.

그 거대한 채널규모와 알고리즘이 겹쳐져 폭발적인 조회수를 뽑아내고 있는 모습이었다.

툭-.

해당 영상의 썸네일을 바라보던 나는, 결국 참지 못하고 헌터마스터의 조회수를 올려주고야 말았다.

"······."

그렇게 마주한 영상의 제목은 '이지성 태업논란'.

그리고 그 내용은 S급 헌터 이지성이 무단으로 토벌작전에 불참했다는 것이다.

그것도 하루종일 집에 틀어박혀버린 채로 말이다.

그 내용을 확인한 직후, 나는 당황한 얼굴로 스마트폰을 바라보는 수밖에 없었다.

"······설마 내가 집에서 쉬라고 명령했다고, 하루종일 집안에만 틀어박혀 있었던거야?"

아무래도 명령의 효과가 상당히 강력했던 모양이다.

그것도 내 생각보다 말이다.

66화

'키다리아저씨'라는 말이 있다.

오래된 동화에서부터 파생된 이 말은, 흔히 정체를 숨기며 누군가를 지원하는 인물을 가리키는 말이었다.

그리고 그런 의미에서 나는 지금 키다리아저씨라고 볼 수 있을 터였다.

그도 그럴 것이, 최근 들어서 내가 후원하는 헌터가 엄청 잘나가고 있었으니까 말이다.

S급 헌터, 휘광(徽光)— 오지아.

내가 성좌 '인피니튜드'로서 후원하는 헌터에 대한 이야기였다.

"그러니까, 오지아가 올해의 신인헌터 후보에 올랐다고?"

역앞에 위치한 프랜차이즈 카페.

나는 현재 그곳에서 최우현과 마주하고 있는 중이었다.

100만 구독자를 가지고 있는 유튜버 '헌터사전'.

그에게 올해의 신인헌터에 대한 이야기를 듣게 된 것이다.

내가 그에게 자신이 들은 이야기가 사실인지에 대해 물으면, 최우현은 고개를 끄덕이며 손에 든 빵을 찢는 모습이었다.

"그렇다니까? 국제헌터협회의 인맥을 통해 들은 내용이니까 확실해."

찌이익-.

부드러운 빵을 찢은 최우현은 그렇게 이야기하고서는 빵을 입에 넣었다.

최우현이 먹고 있는 빵은 퍽 맛있어보였지만, 그보다는 오지아에 대한 이야기가 우선이었다.

국제헌터협회 선정, 올해의 신인헌터.

그것은 말이 좋아서 상이지, 사실 초신성 헌터에게 주어지는 일종의 지원프로그램이나 다름없었다.

상으로서의 권위는 '헌잘알'의 헌터랭킹 TOP10보다 부족하지만, 선정을 통해 주어지는 보상만큼은 진짜였다.

등급에 상관없이 헌터들에게 있어서는 상당히 좋은 일인 셈이었다.

다만, 오지아에 한해서는 다소 애매한 측면이 없지는 않았다.

'그동안 포인트를 그렇게 받아먹었는데, 거기서 해주는 지원 조금 받는다고 성에 차기는 할까.'

그 이유는 당연하게도 내가 그동안 오지아에게 쏟아부은 투자금액에 있었다.

그녀 혼자서 대체 얼마만큼의 포인트를 소모했던가.

필요하다 싶으면 [경매장]과 [리워드] 상점을 쓸어담았던 그녀다.

그런 오지아에게 있어서 협회의 아이템 지원이 만족스러울지는 다소 의문이 들었던 것이다.

물론, 그와는 별개로 그동안 오지아에게 투자한 보람이 느껴지는 부분도 있기는 했다.

오지아에 대한 사람들의 평가가 슬슬 바뀌기 시작한 것이다.

"휘광정도면 충분히 받을만하지. 성장세만 보면 조만간 그림자사냥꾼도 따라잡을 것 같던데."

"오지아가 벌써 그 정도야?"

"그럼, 당연하지. 나는 유호 너도 그렇게 생각할줄 알았는데?"

지금 내 눈앞에 있는 유튜버만 하더라도, 오지아를 벌써 이지성과 비교하고 있지 않던가.

객관적인 시선으로도 오지아의 성장세가 도드라져보인다는 이야기였다.

내가 키운 S급 헌터가 예사롭지 않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니.

키다리아저씨의 입장에서는 심히 만족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었다.

흠, 흠-.

간단하게 목을 가다듬은 나는 최우현을 향해 웃음기가 섞인 목소리로 이야기를 전했다.

"나도 뭐··· 조만간 더 올라갈거라고 생각하고 있기야 했지. 형까지 그렇게 생각할줄은 몰라서 그런거지."

"야, 내가 막눈도 아니고 헌터들 수준도 모르겠냐? 이만큼 경력이 쌓이면 눈으로 쓱 보기만 해도 견적이 나와."

이제는 도가 튼 나머지, 눈으로 보기만 해도 견적이 나온다는 최우현의 이야기.

나는 그런 최우현을 향해 농담삼아 한마디를 던져보았다.

"정말이야? 그럼 나는 어떤데?"

짧은 농담 한마디.

그것을 들은 최우현은 내 장단에 맞춰주려는 생각이었는지, 진지한 얼굴로 나를 위아래로 스윽 훑어보기 시작했다.

흠-.

안경을 치켜올리며 고민하던 최우현은 머지않아 고개를 위아래로 끄덕이며 말했다.

"유호야 너는··· 당연히 E급이지."

"E급?"

"그래, E급. 너는 임마, 나랑 같이 죽을때까지 유튜버나 해먹고 살아야해. 헌터는 무슨 얼어죽을 헌터야."

훠이, 훠이-.

허공에 손을 내저으며 웃어보이는 최우현의 모습.

나 역시도 그런 최우현을 마주보며 피식 웃었다.

최우현의 겉보기 등급으로 E급이라.

확실히 헌터보는 눈이 없는게 틀림없었다.

아이템은 나보다 잘 알고 있을지 몰라도, 헌터들 보는 눈에 대해서는 내가 한수 위였다.

"E급이라··· 차라리 S급 유튜버라고 불러줘."

이것이 바로 구독자 111만 유튜버 '헌잘알'과 구독자 100만 유튜버 '헌터사전'의 차이인 것이다.

하늘과 땅같은 수준의 차이.

그 차이는 이미 구독자 숫자에서부터 나타나고 있는 중이었다.

"유호야. 우리가 S급이면 구독자 1억명 이런 사람들은 대체 어떻게 되는거냐?"

"어차피 100만명이 100번보면 1억뷰 아니야?"

"오늘 집에가서 100번씩 봐달라고 하던가."

그렇게 내가 최우현과 실없는 농담을 나누며, 커피를 마시고 있던 도중.

스윽-.

갑작스럽게 최우현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유호야. 나 화장실 좀 다녀온다."

"어. 다녀와."

자리에서 일어난 최우현은 화장실로 향하는 모습이었다.

내가 그런 최우현의 뒷모습을 바라보는 것도 잠시.

지이이이잉-.

머지않아 자리에 앉아있던 내 스마트폰에 진동이 울리는 모습이었다.

나는 스마트폰에 걸려온 전화의 발신인을 바라보았다.

발신자 이름, 강석구.

더스트 길드를 이끌고 있는 길드장으로부터의 전화였다.

'강석구가 나한테 먼저 전화를 걸어왔다고?'

강석구의 전화에 나는 고민에 잠기지 않을 수 없었다.

A급 헌터, 철권 강석구는 이미 나와 한차례 문제가 있던 사이.

아무리 생각해도 그쪽에서 먼저 나에게 전화를 걸어올 이유가 없어보였던 까닭이다.

"나가서 받아야겠네."

아무래도 카페에서 통화할만한 내용은 아닐 확률이 높아보였다.

그렇기에 나는 스마트폰을 쥐고서 카페 밖으로 나섰다.

툭-.

적당히 조용하고 구석진 곳에서 전화를 받아보면, 스마트폰의 너머에서 강석구의 목소리가 울려퍼졌다.

- "더스트 길드장 강석구입니다."

"예, 길드장님. 무슨 일이시죠? 먼저 이렇게 전화주실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는데."

나는 그런 강석구를 향해 웃으면서 답변을 돌려주었다.

지금의 강석구는 나를 주선호의 동료 정도로 알고 있는 상황.

그러니 이정도만 하더라도 적당히 말을 고를거라는 판단에서였다.

강석구는 그런 내 이야기를 듣더니, 이내 조금은 난감해보이는 목소리로 이야기했다.

- "유튜버··· '헌잘알'님. 혹시 길드를 대표하는 기자로서, 오지아 헌터의 시상식에 동행하실 생각이 있으십니까?"

"예?"

- "이런 분야에 관심이 있으신 것 같아서··· 저희 길드와의 협력관계··· 우호증진목적으로 이야기를 드리는겁니다."

길드를 대표하는 기자.

오지아의 시상식.

그리고 협력관계.

이 세가지 키워드로부터 나는 돌아가는 상황을 이해할 수 있었다.

그리고 강석구가 어떤 목적으로 나에게 이런 이야기를 꺼냈는지도 유추할 수 있었다.

"더스트 길드의 S급 헌터가 참여하는 수상식이라··· 무조건 가야죠."

길드장 강석구의 제안.

그것은 그가 나에게 가져다바치는 선물이었다.

나로서는 거절할 이유가 없는 셈이었다.

그런 내 의사를 확인한 이후, 강석구는 미묘한 목소리로 나에게 이야기를 전했다.

- "그럼··· 받아들인걸로 알고 처리하겠습니다."

"예, 그러시죠. 좋은 기회에 감사드립니다."

길드장과의 통화는 그걸로 끝이었다.

뚝-.

전화가 끊어진 이후.

나는 화면이 꺼진 스마트폰의 액정을 통해, 자신도 모르게 올라가버린 입꼬리를 확인할 수 있었다.

"시상식이라··· 헌터협회에 기자 자격으로 들어가보는건 처음인데."

이지성이 만들어준 의외의 선물.

나는 예상외의 소득에 만족하면서, 카페의 입구를 향해 몸을 돌렸다.

* * * * * * 

강석구에게 제안을 받은날의 저녁.

나는 은신처에서 입에 오징어 다리를 문채 낭만을 만끽하고 있었다.

그런 내 앞에는 시원한 캔맥주 하나가 놓여있었다.

마른 오징어에 캔맥주.

특별한 날에만 먹을 수 있는 사나이의 조합이었다.

조만간 찾아올 이벤트에 기대하면서, 조촐하게나마 혼자만의 파티를 벌인 것이다.

"이 돈이면 그냥 다른거 먹을걸 그랬나?"

질겅. 질겅.

입에 들어온 오징어를 씹은 채 앉아있는 내 시선은 눈앞에 떠올라있는 반투명한 창을 향하고 있었다.

"괜히 오징어 트럭보고 홀려서 구매한 것 같은데."

S급 헌터 커뮤니티.

내가 운영하고 있는 최상위 헌터들의 비밀 커뮤니티였다.

이제는 한명이 EX급이 되어버린 탓에 그림이 조금 이상해졌지만, 원래부터 S급이 아닌 사람도 끼어있었던 만큼 뭐가 대수인가 싶기도 했다.

그렇게 커뮤니티의 이름에 대해 고민하기를 잠시.

나는 머지않아 커뮤니티의 게시판에 올라온 게시물들을 눈으로 훑기 시작했다.

- frz0777 보십시오. [5] (xkingx)

- 진짜 매번 느끼는건데 [1] (frz0777)

- 미국 최고 헌터가 알려주는 배터리 없이 캠핑하는 법 [9] (thundershock)

- 오늘.야식.메뉴입니다. ^^ (마산사나이 최두식)

- 한국에 뭐가 유명한지 아는사람? [2] (yamazaki)

- 오늘. 요거트 아이스크림. 머것서용 ^ O ^ (swordmaster)

사람이 똑같은걸 자주보면 어느 순간 무덤덤해진다는 말이 있다.

나 역시 크게 다르지는 않은 것인지, 이제는 'frz0777'이 싸우는걸 봐도 당연하다 느껴질 정도였다.

매번 그 상대가 바뀌어갈뿐, 항상 누군가와 싸우고 있었으니까 말이다.

그리고 오늘은 우연히도 그 대상이 'xkingx', 나선창 첸다오인 모양이고 말이다.

그렇게 'frz0777'의 싸움글을 지나치던 내 시야에, 문득 'yamazaki'의 게시글이 눈에 들어왔다.

"뭐야. 무슨 일로 야마자키가 한국에 대한 글을 다 올렸지?"

커뮤니티 이용자명, 'yamazaki'.

일본의 S급 헌터 귀령이 한국에 대해 묻는 게시글을 올린 것이다.

S급 헌터들은 그 특수성때문에 해외에 나가는 것도 자유롭지 않은 상황.

그러니 내 입장에서는 이런 'yamazaki'의 글이 다소 의외인 셈이었다.

"어차피 S급이라서 여행도 마음대로 못올텐데."

나는 그런 생각을 하며 'yamazaki'의 게시글을 클릭해보았다.

툭-.

게시글 목록에서 글을 누르자, 머지않아 게시글 내용이 눈앞에 나타나는 모습이었다.

[ 제목 ] 한국에 뭐가 유명한지 아는사람?

[ 작성자 ] yamazaki

[ 이용자 정보 ] 야마자키 아오 (34) / S급 / 귀령

이건 사실 나도 잘 모르고 있었던 이야기인데 말이지.

내가 이번에 서울에서 열리는 시상식에 관계자로 참석하게 됐어.

아무래도 내가 세계헌터협회에 적당한 직함을 가지고 있었던 모양이야.

빌어먹을 길드가 나한테 고지도 안하고 이상한걸 수락해버린 셈이지!

(」°ロ°)」

그런 이유로 이번에 서울에 가게 되었는데 말이야.

너희도 알겠지만 우리 S급 헌터들은 해외여행도 마음대로 못가잖아?

심지어 나는 빌어먹을 방위대신 녀석때문에 국내여행도 제대로 못가봤어!

그러니 서울에선 뭐가 유명한지 알고 싶단 말이지.

( •̀ω•́ )✧

그러니 나한테 서울에서 뭐가 유명한지 추천하도록!

[ 댓글 2개 ]

- ronaldo_7 :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ㄴ yamazaki : ?

[ 공지사항 / 수정 / 삭제 ]

이용자명 'yamazaki'가 업로드한 게시글의 내용.

나는 그것을 보기 무섭게 당황하지 않을 수 없었다.

나에게 커다란 당혹감을 안겨준건 'yamazaki'가 서울에 대한 게시글을 쓴 이유였다.

"일본의 귀령이 이번에 한국에 들어온다고?"

일본 최강의 헌터라고 불리는 귀령(鬼靈), 야마자키 아오.

그가 서울에서 열리는 행사에 참석하기 위해 한국에 들어오게 된 것이다.

그 사실은 한국에 있는 헌터 유튜버라면 누구라도 충격을 받기에 마땅한 것이었다.

물론 귀령이 영국의 검성이나 한국의 신창에 비해, 입지나 임팩트가 상당히 낮은 편이기는 하다.

심지어는 검귀에 비해서도 입지가 낮은 편이기는 했다.

허나 그럼에도 그는 '헌잘알'의 헌터랭킹에서 무려 9위에 해당하는 헌터.

헌터랭킹 9위라고 하면 결코 우습게 볼 랭킹이 아닌 것이다.

"잠깐만. 한국에서 하는 시상식에 찾아온다는건······."

그렇게 'yamazaki'의 방한일정을 들은 내 머릿속에서 한가지 계산이 스쳐지나갔다.

때마침 이번 시상식에는 나 역시 기자로서 참석하게 되는 상황.

상황에 따라서는 일본의 귀령과 컨텐츠를 찍을 기회가 될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

돌아가는 상황을 보고 있던 나는 자신도 모르게 입꼬리가 꿈틀거리는 것을 느꼈다.

어쩐 일로 강석구가 선물을 줬나 했더니, 그것도 보통 선물이 아니었던 것이다.

강석구가 아니었다면 쉽게 손에 넣기 어려운 기회였을 터.

그러니 나는 지금 이 상황에 만족하며, 야마자키 아오가 들어온 이후의 계획을 머릿속으로 철저히 세워나갔다.

"컨텐츠··· 저주전문 헌터를 데려와서 무슨 컨텐츠를 진행해야 조회수가 잘나오지?"

흉가탐험. 교회 데려가기.

무수한 아이디어가 내 머릿속을 스쳐지나갔다.

그러한 아이디어속에서 내가 어떤 방법으로 그를 섭외할까 고민하고 있던 도중.

띠링-.

그런 내 귓가에 갑작스럽게 알림음이 울려퍼지는 모습이었다.

"메세지? 누가 보낸 메세지야?"

스윽.

시선을 돌려 메세지의 주인을 확인해보면, 상단에 적힌 'yamazaki'의 닉네임이 보였다.

때마침 내가 고민하고 있던 섭외대상이 나에게 대화를 걸어온 것이다.

"······야마자키?"

아무래도 오래 고민할 필요는 없어보였다.

나는 곧장 'yamazaki'와의 1:1 대화창을 열어서는, 그가 나에게 보낸 메세지의 내용을 확인해보았다.

- yamazaki : 어이, 유튜버.

- yamazaki : 탈모, 치질, 발기부전의 삼단 저주가 어때?

- yamazaki : 슬슬 무시무시하지?

- yamazaki : (╭☞•́⍛•̀)╭☞

- yamazaki : 내가 저주를 없애주기위한 제안을 하나 할건데 어때?

나에게 1:1 대화를 걸어온 'yamazaki'의 용건.

그것은 이전에 'yamazaki'가 헌터마스터에게 걸었던 저주에 대한 것이었다.

아무래도 한국에 오기에 앞서, 저주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려는 모양이었다.

그 나름대로 신경을 쓴 모양이지만, 솔직히 말하면 나에게 있어서는 민폐였다.

"아니. 아직 풀면 안되지."

어차피 나는 저주에 면역인데다가, 헌터마스터는 조금 더 저주를 받아도 괜찮았다.

그러니 나로서는 저주를 해주할 이유가 없는 것이다.

나는 곧장 'yamazaki'를 향해 답장을 보냈다.

- 거품판독기 : 앗;; 풀지마세요 ㅜㅜ

- yamazaki : ?

- 거품판독기 : 그냥 더 걸어

- yamazaki : (╬●∀●)

- 거품판독기 : 그거말고 더 쎈거는 없냐? 머리카락 많아서 티가 안나네?

그에 대한 'yamazaki'의 반응은 즉각적이었다.

그는 내 답장에 격노한 나머지 다급하게 채팅을 치는 모습이었다.

띠링, 띠링.

띠링-.

무수한 채팅이 빠른 속도로 1:1 대화방에 올라왔다.

- yamazaki : 너 어디살아?

- yamazaki : 이번에 한국 가면 찾아갈테니까 주소 말해.

- 거품판독기 : ㅋㅋ

- yamazaki : 주소 빨리 말해.

격노한 'yamazaki'의 채팅은 그로부터 한참동안이나 더 이어졌다.

두 사람의 기나긴 1:1 대화가 끝을 맺은 이후.

그렇게 난 일본의 S급 헌터와 직접적인 만남의 약속을 잡게 되었다.

이용자명 'yamazaki'와의 1:1 저주버티기 대결.

내기에서 진 사람이 이긴 사람의 소원을 들어주는 대결이었다.

"······이거 컨텐츠 성사된거 맞냐?"

아무래도 일본의 귀령이 한국에 찾아오면 한동안 좀 바빠질 것 같았다.

그게 좋은 방향일지, 안좋은 방향일지는 지켜봐야 알겠지만 말이다.

67화

폭군이란 무엇인가.

그것은 공포와 권력을 앞세워 민중에게 압제를 가하는 이들을 칭하는 말이다.

그렇다면 폭군다운 모습이란 대체 무엇인가.

그에 대해서 고민하고 있던 내 머릿속에, 어느 순간 한가지 아이디어가 스쳐지나갔다.

"이지성한테 매일 최신영상에 좋아요 누르라고 명령하면 먹히나?"

- 왈? 왈왈!

S급 게이트 너머에 위치하고 있는 신수들의 낙원.

그곳에 서서 홀로 조용히 고민하고 있던 나를 향해, 내 옆자리에 있던 백구가 울부짖는 모습이었다.

백구가 보기에는 그리 썩 좋은 생각은 아니었던 모양이다.

물론 폭군의 무게감을 깎아먹는 일이니, 나로서도 자제하는 편이 좋은 이야기이기도 했다.

"농담이야, 농담. 명색이 성자인데 어떻게 폭군같은 일을 하겠냐."

- 왈?

"뭐? 성자면 성자답게 신성력 좀 뿌려달라고?"

드넓은 초원의 위쪽.

그곳에서 두툼한 털뭉치가 짖는 소리가 연달아 울려퍼졌다.

나는 어느덧 살이 오른 백구의 털을 쓰다듬어주면서, 녀석과 함께 신전의 한가운데를 향해서 움직였다.

어쩌다보니 조금은 포악한 생각을 하기는 했지만, 나는 누가 보더라도 잊혀진 신들을 섬기는 성자였다.

그러니 오늘은 낙원과 신수들을 위해서 필요한 일을 진행하기 위해 찾아온 것이다.

"여기 잘 보관되고 있었네."

이끼가 끼어있는 신전의 한가운데.

그곳에는 돌로 된 받침대와 함께, 새하얀 나뭇가지 하나가 놓여있는 모습이었다.

해당 나뭇가지의 이름은 <텔리오스의 손길(S+)>.

내가 비교적 최근에 손에 넣은 S+급 아이템이었다.

그리고 내가 가지고 있는 신성 관련 아이템들 중에서는, 비교적 간접적인 영향력을 끼치는 물건이기도 했다.

- 왈! 왈왈왈!

- [자동번역 기능]이 활성화됩니다.

- "성자님. 오늘 이걸로 뭘 하시나요?"

내가 받침대에서 나뭇가지를 들어올리자, 그런 내 모습에 호기심이 생겼는지 백구가 나를 바라보며 물었다.

처음 만났을 때와는 다르게 공손해진 백구의 모습에, 나는 만족스러운 얼굴로 녀석의 털을 헤집어놓았다.

내가 성자로서의 모범을 보여 권위를 세운 덕분에 생긴 변화였다.

나는 그런 백구의 변화에 만족하면서, 내가 생각하고 있던 계획을 백구에게 말해주었다.

"방금 전에 새로운 성자 자리에 대해서 합의하고 왔거든."

- 왈?

"그래서 확인할게 있어서 찾아온거야."

나는 그렇게 말하면서 새로운 성물을 유심히 바라보았다.

성좌 텔리오스.

나에게 시험을 내려주었던 텔리오스의 물건을 회수했지만, 안타깝게도 시험과 인정은 별개인 모양이었다.

그렇기에 나는 '재생의 텔리오스'에게 인정받기 위해 나름대로의 협상을 진행해야만 했던 것이다.

물론 그 협상의 대부분은 포인트에 대한 내용이었지만 말이다.

어쨌든 덕분에 3명의 신을 모시는 성자가 되었으니 만족스러운 결과이기는 했다.

누군가는 나에게 신을 세명이나 모시는건 불경한게 아니냐고 물어볼 수도 있겠지만, 이건 대학교로 따지면 단순히 복수전공같은 일에 불과했다.

나는 그들 모두에게 똑같은 믿음을 바치고 있는 것이다.

어떻게 보면 내가 [커스텀 네트워크]를 각성한 순간부터 마주해야할 숙명인 셈이기도 했다.

그렇기에 나는 자신을 선택해준 모든 신에 대한 존중을 표하며, 새하얀 나뭇가지를 들고 신전의 밖으로 나섰다.

"햇빛도 강하고, 주변도 평평하고··· 이정도면 충분히 양지바른 장소같은데?"

스윽-.

나는 손에 쥔 나뭇가지를 들고 바른 토양의 앞에 섰다.

세번째 신, 재생의 텔리오스.

이제는 그가 내려준 성물의 진정한 모습을 선보일 차례였다.

짧은 심호흡.

그 직후에 나는 나뭇가지를 수직으로 들어올려서, 그 진정한 형태를 끌어내기 위한 시동어를 이야기했다.

"—[뿌리깊은 신앙]."

파아아아앗-!

손에 쥔 백색의 나뭇가지를 중심으로 환한 광채가 터져나오기 시작했다.

시야를 가득 채우는 백광.

그와 동시에 무언가 뒤틀리는 소리가 퍼져나갔다.

투둑, 투두둑-.

사방으로 터져나가는 나무껍질.

빠른 속도로 성장하던 자그마한 나뭇가지는, 이내 그 무게를 견디지 못하고 땅에 내려꽂혔다.

"아니··· 진짜 뿌리내리는 기능이었네······."

콰앙!

내 손에 들려있던 나뭇가지가 떨어져내린 이후에도, 나뭇가지에 일어난 변화는 멈추지 않는 모습이었다.

아래로 뻗어나가는 수많은 나무뿌리들.

그것들은 지면을 꿰뚫고 진정으로 이 낙원에 뿌리내리기 시작했다.

나무줄기는 점점 두꺼워지기 시작했으며, 더군다나 그 위에서는 가지가 뻗고 무수한 풀잎들이 피어올랐다.

우득, 우드드드득-.

뒤틀리며 확장해가는 거대한 나무.

<텔리오스의 손길(S+)>은 끊임없이 그 크기를 늘려가더니, 어느 순간 거대한 나무의 모습을 갖추고서 성장을 멈추었다.

"이건······."

- 왈! 왈왈왈왈!

은은한 빛을 머금고 있는 나무.

그것은 가히 거목이라고 부르기에 부족함이 없는 크기였다.

반짝이는 나뭇잎의 아래에는 열매를 대신해 푸른 보석들이 맺혀있었다.

사방으로 뻗어나가는 새하얀 빛무리.

무수한 세월을 간직하고 있는 듯한 나무의 아래로, 수많은 신수들이 재빠르게 몰려들었다.

거목이 뿌리는 신비한 기운이 신수들을 홀리기 시작한 것이다.

내 눈앞에 있는 거대한 나무를 표현할만한 말은, 아무리 보아도 하나밖에는 존재하지 않는 것 같았다.

"······신목(神木)."

재생의 신이 지상에 하사한 신목.

그것은 장엄함을 갖춘 채로, 낙원의 모든 존재에게 신성한 힘을 나누어주고 있었다.

나뭇가지가 흔들리며 반짝임을 흩뿌릴때마다 신성력이 차올랐으며, 거대한 나무의 그늘에 서있는 것만으로도 포근함이 나를 뒤덮었다.

단 하나의 아이템으로 필드효과에 필적하는 현상을 만들어내는 물건.

그것이 바로 <텔리오스의 손길(S+)>이었던 것이다.

- [자동번역 기능]이 활성화됩니다.

- "참으로 좋은 향기로구나."

은은하게 퍼져나오는 나무의 향기.

그것은 하늘을 거닐던 용조차도 홀리게 만들 정도였다.

순백의 용은 그 향기를 맡고자 지상으로 내려왔으며, 그 육중한 거체의 크기만큼이나 커다란 그림자가 지상에 드리워졌다.

헥헥-.

그 덤덤한 백구조차도 눈이 뒤집힌 채 혓바닥으로 나무를 핥고 있었으니, 이 아이템이 얼마나 강력한 물건인지 짐작하게 만들 정도였다.

나는 그렇게 신수들의 사랑을 받는 거목을 바라보며, 해당 아이템에 대한 평가를 내리게 되었다.

"이건 무슨··· 캣닢도 아니고 다들 왜 이렇게까지 좋아하지?"

낙원에 꽂힌 나무와 그에 달라붙은 무수한 신수들.

나무에 달라붙은 신수들의 모습을 지켜보던 나는, 카메라 기능을 실행시킨 스마트폰을 들어올렸다.

찰칵-.

신목과 신수들의 만남이 내 스마트폰에 저장되었다.

- 왈! 왈왈왈!

사진이 찍힌 백구는 기쁘다는 듯이 짖기 시작했다.

다른 신수들의 반응 역시 백구와 크게 다르지 않은 편이었다.

어쩌면 당분간은 저것만으로도 신성력 보급이 충분할지도 모르겠다.

그런 생각이 머릿속에 들 정도였다.

"아무래도 당분간은 성수를 가져올 필요는 없으려나."

아이템의 성능에 대한 대략적인 판단을 마친 직후.

내가 그런 생각을 입밖으로 자연스럽게 꺼내자, 갑작스럽게 나무 주위에 머물던 신수들의 이목이 나에게 쏠렸다.

휘익-.

짧은 침묵.

그 속에서 모두의 시선이 나를 빤히 바라보았다.

"······."

- ······.

나와 신수들의 시선이 어색하게 마주친 이후.

빠안히-.

낙원에 찾아온 침묵의 시간은 계속해서 이어졌다.

"······."

- ······.

"······."

- ······.

"······?"

- ······.

끝나지 않는 시선.

내려앉은 정적속에서 서로의 시선만이 그 의지를 알려오고 있었다.

그렇게 나와 신수들의 기나긴 아이컨택트는 한참동안이나 계속되었다.

내가 성수의 제공을 다시 약속할 때까지, 안타깝게도 그 눈싸움이 끝나는 일은 없었다.

* * * * * *

시간이란건 생각보다도 빠르게 흘러가는 법이다.

특히나 특별한 행사가 예고되어있다면 더더욱 그러한 편이었다.

일본의 S급 헌터, 야마자키 아오가 한국에 오기까지 어느덧 5일만을 남겨둔 상황.

나는 빠르게 흘러가는 시간속에서도 분주하게 자신의 일을 이어가고 있었다.

"흐음······."

이지성과의 사건이 벌어졌던 나만의 작은 작업실.

나 혼자만이 차지하고 있는 공간에서는 자연스럽게 마우스를 클릭하는 소리가 울려퍼졌다.

딸깍. 딸깍-.

그동안 촬영했던 유튜브 영상을 편집하기 위한 소리였다.

물론 내가 유튜브 편집작업을 이어가는 도중에도, 내 시선은 영상과 커뮤니티를 번갈아보고 있었다.

편집을 하는 틈틈히 커뮤니티에 올라온 게시글들을 살펴보는 것이다.

아무래도 영상 편집이라는게 촬영한 길이보다도 긴 시간을 쓰는 작업이다보니, 작업을 하는동안 어느 정도 지루한 측면이 없지 않았다.

그 지루함을 덜어내기 위해 내가 선택한 것이 바로 커뮤니티 구경인 셈이었다.

"아까도 이런 댓글 본 것 같은데. 작성자 이름이··· 뭐야, 아서 테브란트가 쓴 댓글이네."

다만, 지금 내 눈에 들어오는 커뮤니티의 상태는 썩 정상적인 편은 아니었다.

그도 그럴 것이, 똑같은 댓글을 지금 5번째 보고 있는 상황이니까 말이다.

흐음-.

나는 난감한 표정으로 커뮤니티를 바라보며 지금의 상황에 대한 감상을 정리했다.

"뭐··· 가끔씩 사람이 이상해질때가 있는 법이긴 하지."

누구나 가끔씩 상태가 이상해지는 시기가 존재하는 법이다.

그것은 유명한 헌터라고 해서 크게 다르지 않았다.

그리고 오늘은 검성 아서의 계정, 'ronaldo_7'이 그런 날을 맞이한 모양이었다.

며칠 전부터 그는 계속해서 댓글로 기행을 보이는 중이었으니까 말이다.

대표적인게 지금 내 눈앞에 보이는 게시글의 댓글이었다.

[ 제목 ] 횐님들.오늘.저녁추천. 부탁드립니다.^^

[ 작성자 ] 마산사나이 최두식

[ 이용자 정보 ] 최두식(61) / S급 / 불사기사

오랜만에.후배를.만나는데.

어떤.메뉴가.좋을까요~^^

[ 댓글 2개 ]

- ronaldo_7 :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ㄴ 마산사나이 최두식 : 주문이.안되잖아~

[ 공지사항 / 수정 / 삭제 ]

불사기사 최두식이 남긴 게시글.

저녁 메뉴를 추천해달라는 게시글에 자신이 응원하는 축구팀 이름을 적어놓은 것이다.

더군다나 'ronaldo_7'의 만행은 거기에서 그치지 않았다.

그는 다른 종류의 게시글에도 비슷한 유형의 댓글을 달아놓았다.

[ 제목 ] 할리우드에 그 유명한 배우 누구였죠?

[ 작성자 ] artea

[ 이용자 정보 ] 에두아르 베르제(39) / S급 / 성휘

스파이물 전문적으로 찍는 배우.

이름이 잘 기억이 안나네요.

[ 댓글 2개 ]

- ronaldo_7 :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ㄴ artea : ....

[ 공지사항 / 수정 / 삭제 ]

할리우드의 유명한 배우를 묻는 질문.

거기에도 'ronaldo_7'은 동일한 댓글을 달아놓은 것이다.

질문의 유형이 맞지 않음에도 똑같은 댓글을 다는 모습이었다.

처음부터 질문에 상관없이 꺼낼 대답을 정해놨다는 이야기였다.

"진짜 가지가지 하는구나."

나는 'ronaldo_7'의 댓글에 경악하며 계속해서 스크롤을 위로 올렸다.

스크롤을 올릴수록 새로운 게시글과 새로운 질문들이 나타났다.

그리고 새로운 질문이라고 해서 'ronaldo_7'의 이상한 대답을 피해갈 수는 없었다.

[ 제목 ] 여러분은 정치적 압박이 들어올때 어떻게 대응하는 편입니까?

[ 작성자 ] thundershock

[ 이용자 정보 ] 알렉스 오브라이어(29) / S급 / 뇌제

현재 미국의 대선이 가까워지고 있는 상황입니다.

그런만큼 양쪽 진영의 대선캠프에서도 저와 같은 헌터들에게 은근한 압박을 넣고 있습니다.

최근에는 부통령이 저와 사적인 면담을 청해오기도 했습니다.

여러분은 이런 부탁을 받았을때 어떻게 대답하는 편입니까?

[ 댓글 4개 ]

- ronaldo_7 :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ㄴ thundershock : 그러지 말아주셨으면 합니다.

- nineblade : 확실히 정치적인 문제는 헌터들에게 난해한 편이지.

- yamazaki : 나는 방위대신한테 저주부터 날렸어.

[ 공지사항 / 수정 / 삭제 ]

정치적인 문제에 대한 대답을 요구하는 'thundershock'의 게시글.

미국의 뇌제가 작성한 게시글마저도 똑같은 답변을 남겨놓은 것이다.

누가 보면 자동으로 댓글을 다는 매크로라도 이용하는 것처럼, 검성은 말도 안되는 대답을 반복적으로 남기는 중이었다.

사실상의 댓글 도배에 가까운 셈이었다.

"얘가 대체 왜 이러지?"

커뮤니티가 검성을 망친 것인가.

그게 아니라면 축구라는 스포츠가 검성을 망친 것인가.

어느 것이 가장 큰 문제인지는 모를 일이었다.

다만 한가지 확실한게 있다면, 커뮤니티 관리자로서 이 상황을 두고봐서는 안된다는 점이었다.

나는 활개치는 검성의 모습으로부터 관리자로서의 사명감을 느꼈다.

"아무리 상대가 검성이라고 해도 계속 도배하게 놔둘 수는 없지."

아무리 대단한 헌터라고 해도, 커뮤니티는 모두가 이용하는 장소였다.

신창이나 검성같은 이들이 문제를 일으킨다고 해서, 가만히 두고봐서는 안된다는 이야기였다.

결국 나는 마지막으로 게시글 하나만 작성하고서, 검성의 댓글 기능을 차단하기로 마음먹었다.

툭-.

허공에 반투명한 키보드를 띄운 나는, 커뮤니티에 간단한 내용의 게시글을 작성했다.

"······."

타닥, 타다닥-.

내 키보드가 빠른 속도로 게시글을 업로드했다.

'ronaldo_7'이 똑같은 댓글을 달거라는 판단하에 유도 질문을 작성한 것이다.

내가 커뮤니티에 게시글을 작성한 직후.

띠링-.

그런 내 예상을 증명하듯이, 곧장 게시글에 댓글이 달리는 모습이었다.

"어디, 뭐라고 적었는지 한 번 확인해볼까."

나는 게시글에 달린 검성의 댓글을 확인해보았다.

[ 제목 ] 세계에서 가장 축구를 못하는 클럽은?

[ 작성자 ] 거품판독기

어디가 제일 축구 못함?

[ 댓글 1개 ]

- ronaldo_7 : 리버풀

[ 공지사항 / 수정 / 삭제 ]

내 시선이 잠시동안 게시글을 바라보았다.

스윽-.

당황한 표정으로 멍하니 게시글을 바라보기를 잠시.

정신을 차린 나는 손가락을 움직여 'ronaldo_7'의 댓글기능을 제한했다.

게시판을 도배하던 'ronaldo_7'에게 정의의 철퇴를 날린 것이다.

- [이용자 : ronaldo_7]의 댓글 작성 권한을 박탈하시겠습니까?

- [이용자 : ronaldo_7]의 댓글 작성 권한이 박탈되었습니다.

- 해당 조치는 7일간 적용됩니다.

7일간의 댓글 작성 제한.

그것이 내가 'ronaldo_7'에게 내린 조치였다.

어떻게 보면 상당히 오랜만에 사용한 관리자 권한이었다.

그동안은 비교적 게시판에 대한 직접적인 간섭을 자제해온 편이었으니까 말이다.

나름대로 포청천에 버금가는 공명정대하고 자비로운 심판을 내리고 있는 것이다.

"······다시 돌아올때는 멀쩡해져서 돌아와라."

나는 악성 이용자로 변모한 'ronaldo_7'에게 작별인사를 전하고는, 다시금 편집용 모니터로 시선을 돌렸다.

관리자로서 가혹한 징벌을 내렸으니 이제 자신의 할일을 이어나갈 차례였다.

딸깍. 딸깍.

정적이 찾아온 방에 울려퍼지는 마우스 소리.

나는 마우스 포인터를 움직여 화면 속 영상을 자르기 시작했다.

그렇게 내가 계속해서 편집 작업을 이어가려던 순간이었다.

"음? 메세지······?"

띠링-.

모니터를 바라보던 내 귓가에 다시금 알림음이 울려퍼졌다.

누군가 나에게 메세지를 보내왔다는 이야기였다.

해당 알림을 들은 나는 곧장 커뮤니티의 대화 탭으로 이동했다.

나에게 메세지를 보내온 사람의 이름을 찾아보니, 단체 대화방에 새로운 채팅 3건이 올라와있는 모습이었다.

S급 헌터 주선호로부터의 메세지였다.

"망원동불주먹? 갑자기 무슨 일이지?"

나를 포함한 단체 대화방의 멤버들에게 보내온 메세지.

아무래도 최근에 내가 저지른 일이 있다보니, 주선호가 어떤 메세지를 올렸을지 조금은 걱정이 되기도 했다.

툭.

나는 그렇게 찝찝함을 품은 채로 단체 대화방을 클릭했고, 머지않아 주선호가 우리에게 보낸 메세지의 내용을 확인해볼 수 있었다.

- 망원동불주먹 : 지금으로부터 한달 뒤에 EX급 게이트를 공략할 생각이다.

- 망원동불주먹 : 다들 충분히 준비해두는게 좋을거야.

- 망원동불주먹 : 언론이나 길드에는 정보가 새어나가지 않게 하도록.

주선호가 단체 대화방에 보낸 메세지.

그 내용을 확인한 나는 당황하지 않을 수 없었다.

단체 대화방에 올라온 메세지는 상당히 충격적인 내용이었으니까 말이다.

"······EX급 게이트를 공략하겠다고?"

세계 최초의 EX급 헌터, 신창 주선호.

그가 EX급 게이트의 공략을 선언해온 순간이었다.

68화

EX급 게이트.

그것은 인류가 머지않아 직면하게될 거대한 재해의 일부였다.

아직까지는 완전히 가시화되지 않은 미증유의 재해.

허나, 헌터들의 정점에 위치한 이들만큼은 그 존재를 명확하게 인지하고 있었다.

내가 가진 고유특성, [커스텀 네트워크]가 A급에 도달한 이후.

나를 포함한 S급 헌터들은 아직 완성되지 않은 게이트에 진입할 권한을 얻게 된 것이다.

"EX급 게이트··· 주선호는 벌써부터 그걸 공략하려고 하는건가."

나는 고민에 잠긴 얼굴로 주선호의 메세지를 바라보았다.

S급 헌터라면 모두가 EX급 게이트의 존재에 대해서 알고 있다.

허나, 그들 모두가 공략에 대한 이야기를 꺼내지 않는 이유는 하나였다.

EX급 게이트를 공략하기에는, 아직 헌터들의 수준이 그에 미치지 않는 까닭이었다.

S급 헌터들 모두가 해당 게이트를 처리하기에는 너무 이르다고 판단한 것이다.

그럼에도 주선호는 EX급 게이트의 공략을 강행하기로 결정했다.

주선호 나름대로 그러한 결단을 내린 이유가 있다는 뜻이었다.

"대체 무슨 생각인거지? 직접 게이트에 들어가서 어느 정도 계산을 끝마친건가?"

크게 짐작가는 원인은 두가지 정도였다.

주선호 본인이 EX급 게이트에 대해 어느 정도 감을 잡았던가.

그게 아니라면, 주선호를 급하게 만들만한 요인이 있었거나.

어느쪽이든 내 입장에서는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드는 것들이었다.

"······."

그렇게 내가 주선호의 게이트 공략선언을 보며 고민하는 것도 잠시.

머지않아 그런 내 고민을 끊어내려는 듯이, 내 눈앞에 반투명한 창이 떠오르는 모습이었다.

띠링-.

나는 시야에 떠오른 화면에 자연스럽게 시선을 향했다.

"아, 이런······."

그리고는 자신도 모르게 이마를 부여잡았다.

눈앞에 떠오른 시스템창이 이때를 노렸다는 듯이 위험천만한 내용을 담고 있었던 까닭이다.

< 별자리 시험 : 이끄는 자의 자격 >

* [ 폐쇄형 커뮤니티 : 자격 시험 2 ]

- 당신은 84명의 커뮤니티 구성원을 이끄는 자로서, 그 자격을 증명해야할 필요가 있습니다.

- 멸망에 대비할 자격을 갖춘 이들만이 [????]를 허락받을 수 있습니다.

- 성좌 : [황금의 라스테리오]가 당신에게 걸맞은 시험을 개방했습니다.

- 시험에 통과하는 경우, 근력 능력치가 다음과 같이 변경됩니다.

- 근력 : D → B+

- 시험에 실패하는 경우, [커스텀 네트워크]의 모든 기능이 정지합니다.

- 시험 내용 : S급 헌터, <신창(神槍) >을 도와 EX급 게이트 하나를 폐쇄하십시오.

- 제한시간 : 39일 23시간 59분

눈앞에 떠오른 반투명한 창의 내용.

그것은 신창의 발언을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이, 나에게 EX급 게이트를 공략하라는 과제를 던져온 것이다.

더군다나 나한테 해당 시험을 제시한 성좌가 하필이면 '황금의 라스테리오'였다.

라스테리오가 나에게 직접 EX급 게이트의 공략을 재촉하는 듯한 시험을 제시한 것이다.

"······라스테리오님?"

나는 어딘가에서 자신을 지켜보고 있을 성좌의 이름을 애타게 불렀다.

허나, 라스테리오는 그런 내 부름을 무시한 채 나타나지 않는 모습이었다.

인생은 시험의 연속이라고 했던가.

시험 하나가 끝나고 나니, 또 하나의 시험이 자신을 찾아온 상황이었다.

"아니, 이게··· 근력 능력치를 주는건 좋긴 한데··· 갑자기 EX급 게이트를 공략하라고 하면 상당히 난감한데요······?"

그나마 위안이 되는 것은 이번 시험으로 근력 능력치를 B+ 등급까지 올릴 수 있다는 점이었을까.

그동안 얻은 능력치들중에 가장 직관적인 보상이 걸린 셈이었다.

해당 시험을 통과하면 비로소 헌터다운 능력치를 얻게되는 것이다.

내가 그렇게 시험지를 보며 고민하는 것도 잠시.

나는 자신의 앞머리를 쓸어넘기며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하··· 그래도 주선호가 있으니 괜찮으려나."

EX급 게이트의 공략 일정.

나는 그것에 대한 고민을 품은 채 의자에 기대어 앉았다.

그리고 그날 저녁.

나는 신창 주선호와 상당히 긴 대화를 나누어야만 했다.

* * * * * *

주선호의 야심찬 게이트 공략선언으로부터 어느덧 닷새라는 시간이 흘렀다.

그동안 나는 온갖 고민을 가진 채, 제법 바쁜 일상을 보내야만 했다.

오지아와 스케줄을 맞추기도 했으며, 오지후와 직접 만나 그의 고민을 들어보기도 했다.

더군다나 틈틈이 영상을 편집해 다가올 일정에 대비했다.

그렇게 바쁜 시간을 보낸 끝에 찾아온 것이, 바로 지금 내 눈앞에 있는 풍경이었다.

"유호야. 검성 입국당시랑 상당히 비교되지 않냐?"

인천공항에 위치한 입국장.

그곳에서 나와 최우현은 카메라를 들고서 대기하고 있었다.

헌터 유튜버로서 랭킹 9위의 S급 헌터를 맞이하기 위함이었다.

허나, 입국장의 분위기는 예전과 다르게 한산한 편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아서 테브란트 때와는 달리 비교적 적은 숫자가 공항에 찾아온 까닭이었다.

"아니, 뭐··· 아서 테브란트는 딱 봐도 여자들한테 인기가 많을거같이 생겼잖아?"

"그거야 그렇긴 한데······."

"솔직히 야마자키 아오는 그거랑은 거리가 좀 먼 편이지."

나는 그렇게 이야기하며 눈앞의 인파들을 둘러보았다.

솔직히 말해서 영국의 검성이 인기가 많은건 당연한 일이었다.

그는 누가 보더라도 기사같이 생긴데다가, 신창 주선호의 유일한 라이벌이었으니 말이다.

하지만 일본의 귀령같은 경우에는 다소 이야기가 다른 편이었다.

그는 누가 보더라도 상당히 거칠고 음침한 얼굴이었다.

담배 한개비 입에 물고서 덤덤하게 시체를 치워도 어울릴 것 같은 외견을 가진 것이다.

"그래서 이번에는 입국장에 여자들도 거의 안보이는거겠지."

그런 이유로 야마자키 아오의 입국현장은 상당히 조용한 편이었다.

금발의 기사단장과 음침한 주물 수집가의 차이인 셈이었다.

"그거 굉장히 가슴아픈 발언인데."

"그래도 S급 헌터라 돈은 많이 벌잖아."

다만, 그렇다고 해도 그가 헌터계에서 주목받는 인물들 중 하나라는 것만큼은 확실했다.

수많은 카메라와 마이크들이 여전히 입국장을 철저하게 지키고 있는 이유였다.

나와 최우현 역시 야마자키의 입국현장을 포착하기 위해 노력중이었고 말이다.

'입국절차가 오래걸리고 있는건가? 비행기가 도착한지는 꽤 된 것 같은데.'

그렇게 내가 최우현과 함께 귀령의 입국을 기다리기를 한참.

나는 결국 지루함을 참지못하고 커뮤니티를 실행했다.

툭-.

허공에 떠오른 반투명한 게시판의 모습.

그곳에서 은밀하게 스크롤을 내리던 내 시야에, 우연히 'yamazaki'의 게시글이 스쳐지나갔다.

내가 이곳에서 기다리고 있는 S급 헌터가 새롭게 작성한 게시글이었다.

'한국까지 날아오는동안 커뮤니티에 글이라도 적은건가.'

아무래도 비행기의 지루함을 이기지 못하고 커뮤니티에 게시글을 올린 모양이었다.

나는 'yamazaki'가 작성한 게시글의 내용을 확인해보았다.

[ 제목 ] 공항에서 출국심사할때 주물 다 뺏겼어!!!!!

[ 작성자 ] yamazaki

[ 이용자 정보 ] 야마자키 아오 (34) / S급 / 귀령

빌어먹을. 대체 왜 주물을 반출할 수 없다는거냐.

내 주물 다 빼앗겼어!

(」°ロ°)」

[ 댓글 2개 ]

- tex11 : 대체 그걸 왜 챙김? ㅋㅋ

- firefox : 저주걸린 비행기를 누가 타고 싶어하겠어요....

[ 공지사항 / 수정 / 삭제 ]

그리고 그 내용을 확인한 직후.

푸흡-.

내 입가에서 절로 웃음이 터져나왔다.

공항의 보안검사대에서 주물을 다 빼앗긴 S급 헌터라니.

한국까지 주물을 가져오려고 했다는 그 판단에 웃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유호야. 갑자기 왜 그러냐?"

그런 내 행동이 수상하게 느껴졌던 것이었을까.

내 웃음소리를 들은 최우현이 나를 향해 시선을 돌리며 물었다.

나는 그런 최우현에게 손을 내저으며 이야기했다.

"아니, 아무것도 아니야. 잠깐 어제 본 영상이 떠올라서."

"대체 뭘 봤길래 그래?"

흐음-.

수상하다는 듯한 시선으로 나를 바라보는 최우현이 그 내용을 추궁했다.

나는 그런 최우현의 질문을 애써 무난하게 넘기려고 했다.

"그게 말이지··· 아. 저거 야마자키 아니야?"

"뭐? 야마자키?"

허나, 그런 내 노력보다도 빠르게, 입국장의 문 너머로 그토록 기다리던 상대가 들어오는 모습이었다.

그 모습에 나와 최우현을 포함한 이들의 시선이 동시에 같은 방향으로 향했다.

한쪽 눈을 절반가까이 덮고 있는 정리되지 않은 머리카락.

다크서클이 내려앉은 채로 퀭한 눈동자를 내보이고 있는 눈가.

그리고 아침에 면도를 하지 않은 것인지, 듬성듬성 자라있는 거친 수염까지.

기다란 가을 코트를 입고 있는 채로, 일본에서 가장 유명한 헌터가 입국장에 들어선 것이다.

"······."

S급 헌터, 귀령.

오랫동안 커뮤니티에서 대화를 나누었던 헌터가 한국에 들어온 순간이었다.

입국장의 문을 열고 들어온 이후, 야마자키 아오의 시선이 주변을 슥 훑었다.

찰칵, 찰칵-.

주변에서는 카메라의 플래시라이트가 터져나오는 모습이었다.

야마자키는 무심한 눈으로 공항의 입국장을 보더니, 이내 통제선을 따라 조용히 걸어가기 시작했다.

"유호야. 제대로 찍고 있는거지?"

"이번에는 가리는 사람도 없잖아. 제대로 찍을테니까 걱정마."

"이번에 촬영 끝나고 찍은 영상 좀 같이 비교해보자."

나와 최우현 역시 카메라를 들고 그런 야마자키를 분주하게 뒤쫓았다.

S급 헌터의 모습을 조금이라도 카메라에 오래 담기 위함이었다.

터벅, 터벅.

선을 따라 야마자키의 느긋한 발걸음이 움직이기를 한참.

그렇게 앞을 향해 걸어가던 야마자키의 발걸음이, 갑작스럽게 카메라를 들고 있던 내 앞에서 멈추어섰다.

"흠."

공항에 있는 다른 사람들도 아니고, 정확히 나와 최우현이 서있는 자리의 바로 앞쪽.

그곳에서 야마자키가 다리를 멈춰세운 것이다.

야마자키의 시선이 나와 최우현을 번갈아 바라보았다.

그런 야마자키의 돌발행동에 최우현은 격한 반응을 보이는 모습이었다.

"이, 이거··· 우리한테 관심이 있는거 맞나?"

"······."

나름대로 외국어에 능통한 최우현이 당황하는 사이.

나를 슥 훑어보던 야마자키가 자신의 턱을 어루만지며 고민하는 모습이었다.

나는 그런 야마자키의 모습에 심히 당황하지 않을 수 없었다.

'뭐지? 나한테서 수상한 무언가를 감지한건가?'

야마자키는 다른 헌터들과 다르게 저주와 사령술에 능한 포지션이었다.

그런만큼 남들에게는 보이지 않는 무언가를 확인할 수 있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설마 야마자키가 나에게서 고결한 성자의 분위기를 느낀 것인가.

내가 그 사실을 두고 고민하던 사이, 야마자키가 먼저 나를 향해 입을 열었다.

"액운이 짙어. 아무래도 평소에 지독하게 운이 없는 편이겠군."

야마자키가 나를 보며 꺼낸 한마디.

그것은 [자동번역 기능]을 통해 내 귓가에 선명하게 전해져왔다.

액운.

야마자키가 나를 보며 내 운세에 대한 이야기를 꺼낸 것이다.

그 이야기를 듣던 최우현이 황급히 정신을 차리더니, 다급하게 나를 향해 그에 대한 통역을 전해주었다.

"유, 유호야··· 야마자키 헌터가 너한테 액운이 많다는데?"

"······액운?"

액운이 짙고 지독하게 운이 없다.

야마자키가 한 이야기에 내 머릿속에 그동안 겪어왔던 온갖 사건사고들이 스쳐지나갔다.

그동안 얼마나 많은 게이트 사고가 발생했던가.

평소에는 미신같은걸 잘 안믿는 편이었지만, 저주의 전문가가 직접 이야기하니 왠지 모르게 신뢰가 가는 기분이었다.

야마자키가 나에게서 특별한 무언가를 발견했다면, 그런 흐름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는 방법도 알고 있지 않을까.

내가 그런 생각으로 야마자키를 바라보고 있으니, 머지않아 야마자키가 품속에서 수첩 하나를 꺼내들었다.

"지독한 운명이군. 위험한 존재들이 너를 계속해서 지켜볼거다. 조금이나마 너에게 도움이 될만한 물건을 하나 주지."

지이익-.

수첩을 한장 뜯어낸 야마자키는 펜을 들어 그곳에 무언가를 적는 모습이었다.

야마자키의 펜이 종이 위를 분주하게 움직였다.

설마 액운을 몰아내기 위한 부적이라도 만드는 것일까.

꿀꺽.

침을 삼킨 나와 최우현의 시선이 야마자키의 기묘한 행동을 계속해서 지켜보았다.

샤샥. 샤샤샥-.

그는 재빠르게 무언가를 그린 종이를 고이 접어서는, 머지않아 내 셔츠의 주머니에 넣어주는 모습이었다.

"잘 챙겨가지고 다니도록."

툭, 툭-.

주머니에 종이를 넣은 야마자키는 내 어깨를 가볍게 두드렸다.

그리고는 별거 아니었다는 듯이, 다시금 발걸음을 옮기는 모습이었다.

"야마자키가··· 지금 너한테 선물을 준거같은데······?"

발걸음을 옮기며 공항을 빠져나가는 야마자키의 뒷모습.

그 모습을 보던 최우현이 뒤늦게 야마자키가 한 행동을 이야기해주었다.

사실 통역이 없어도 자동번역을 통해 이해할 수 있는 내용이었지만, 나는 구태여 고개를 끄덕여가며 최우현의 이야기에 호응했다.

그렇게 야마자키가 두 사람의 시야에서 사라진 직후.

떠나가는 야마자키의 뒷모습을 촬영하던 최우현이 나를 바라보며 물어보았다.

"유호야. 너 대체 뭘 받은거냐? 설마 야마자키가 직접 그려준 부적아니야?"

"부적? 귀령이 나한테 부적을 주고 간건가?"

"야마자키가 실력으로 일본의 무속인들을 전부 찍어누른건 유명한 일화잖아. 저렇게 보여도 저주나 운세에 대한 전문가야."

"그렇겠지. 일단은 저주의 전문가니까······."

"궁금한데 여기서 한 번 확인해보자. 야마자키가 어떤 물건을 주고 간거야?"

내가 야마자키에게 받은 물건을 보자며 재촉하는 최우현의 모습.

그런 그의 태도에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셔츠의 주머니에서 종이를 꺼냈다.

여러 차례 곱게 접어놓은 종이의 모습.

내가 손가락을 움직여 그것을 펼쳐보면, 머지않아 전혀 예상치 못했던 내용물을 확인할 수 있었다.

"이건··· 설마 그림인가?"

"······."

야마자키가 나에게 전해준 종이의 내용물.

그것은 나에게 있어 무척이나 익숙한 것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인터넷에 야마자키 아오를 치면 곧장 나오는 내용이었으니까 말이다.

"이거 그냥 사인인데?"

S급 헌터, 야마자키 아오.

그는 나에게 사인을 해주고 사라졌다.

* * * * * *

야마자키에게 액막이 사인을 받은 그날 저녁.

작업실에서 편집을 이어가고 있던 나는, 야마자키에게서 섬뜩한 사진이 붙어있는 메세지를 전송받았다.

띠링-.

커뮤니티의 1:1 대화 기능.

그것을 통해서 이용자명 'yamazaki'가 나에게 흉흉한 메세지를 보내온 것이다.

- yamazaki : (사진)

- yamazaki : 방금 엄청난 주물 하나 주웠다.

- yamazaki : 지금 너한테 가고 있어.

- yamazaki : 후회하지마.

야마자키가 나에게 보내온 사진.

그것은 쓰레기장에서 주웠는지 의심되는 더러운 아기인형의 사진이었다.

다만 그 눈동자만큼은 무척이나 섬뜩하게 생긴 탓에, 야마자키가 이야기한대로 정말 저주받은 물건이 아닌가 의심될 정도였다.

야마자키가 나에게 저주를 걸기 위해 기어이 주물을 찾아낸 것이다.

"저건 뭐야. 근처 쓰레기장이라도 뒤져봤냐?"

나는 야마자키가 보낸 인형 사진을 보면서 상당히 미묘한 기분이 되었다.

더군다나 야마자키가 보낸 메세지는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그가 나에게 지난번에 받았던 주소.

내가 사용하는 이 작업실을 향해서 움직이고 있다는 이야기가 적혀있었으니까 말이다.

"게다가 지금 저걸 들고서 여기로 오고 있다고?"

주물을 들고 있는 야마자키가 이곳으로 찾아오고 있다.

그 사실을 확인한 나는 멍하니 현관문을 바라보았다.

피로에 젖은 눈동자가 굳게 닫힌 현관문에 꽂히고서 잠시 후.

띵동-. 띵동-.

작업실의 현관문으로부터 벨소리가 울려퍼졌다.

아무래도 누군가 내 작업실에 찾아온 모양이었다.

"설마··· 벌써 여기에 도착한건 아니겠지."

나는 작업실에 찾아온 사람에게 문을 열어주기 위해 현관으로 향했다.

철컥. 끼이익-.

잠금장치를 해제한 내가 두터운 현관문을 완전히 열어젖히면, 그 너머에서는 공항에서 보았던 익숙한 얼굴이 기다리고 있었다.

기다란 코트를 입고 있는 음침한 인상의 남자.

그가 한손에 인형의 머리통을 쥔 채 나를 바라보고 있었던 것이다.

야마자키는 내가 문을 열기 무섭게, 당당한 목소리로 나를 향해 이야기했다.

"내가 분명 말했을텐데. 저주에 몸서리치게 해주겠다고."

스윽-.

야마자키의 그윽한 시선이 나를 올려다보았다.

피와 저주.

그리고 죽은 것들에 가까이 맞닿아있는 시선.

그러한 시선을 나에게 향하던 야마자키의 눈이, 머지않아 당황스러운 기색으로 변했다.

"······어."

깜빡, 깜빡-.

다크서클에 뒤덮힌 야마자키의 눈이 수차례 깜빡였다.

그는 눈앞에 보이는 현실을 믿을 수 없다는 듯이, 눈을 감았다 뜨면서 내 모습을 다시 한 번 확인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나는 야마자키가 그토록 찾아헤매던 헌터마스터가 아니었다.

"······뭐야. 그 얼굴이 아니었던거냐?"

내 귓가에 울려퍼지는 번역된 목소리.

당황에 젖은 야마자키의 얼굴이 계속해서 나를 바라보았다.

하지만 야마자키를 당황하게 만드는 것은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슥-.

당황한 야마자키를 마주한 내가, 셔츠의 주머니에서 종이 하나를 꺼내든 것이다.

"······."

그리고는 그것을 펼쳐 야마자키를 향해 보여주었다.

펄럭-.

접혀있던 종이가 펼쳐지며 야마자키에게 그 내용물을 드러내었다.

아까 공항에서 손에 넣은 특별한 물건이었다.

"······."

"······."

저주를 막아주는 영험한 싸인.

그것을 마주한 야마자키의 얼굴이 크게 일그러졌다.

"빌어먹을."

싸인을 발견한 야마자키가 들고 있던 인형을 계단에 집어던졌다.

쿵. 데구르르-.

계단을 나뒹굴던 인형은 처참하게 박살난 채로 흩어졌다.

영험한 싸인의 효과는 확실했다.

69화

누구나가 항상 기대하던 결과를 마주할 수는 없다.

그리고 그것은 지금 내 눈앞에 있는 S급 헌터, 귀령— 야마자키 아오 역시 마찬가지였다.

커뮤니티의 유저, '거품판독기'에게 강력한 저주를 내리겠다는 그의 꿈은 물거품이 되고 말았던 것이다.

그리고 그 결과물이 지금 내 옆자리에서 맥주를 마시고 있는 음침한 남자의 모습이었다.

"빌어먹을 녀석. 저주가 안통하는 인간이 한국에 있었을 줄이야."

콸콸콸-.

비어있는 자신의 잔에 잔뜩 맥주를 따른 야마자키가, 복잡해보이는 시선으로 나를 바라보며 이야기했다.

기껏 쓰레기장을 뒤져 찾아낸 주물은 폐기되었으며, 내가 가진 저주 내성탓에 내기에서 이기는 것에도 실패했다.

그런 야마자키가 나에게 할 수 있는 것이라고는, 기껏해야 저주 내성에 대한 불만을 토로하는 것밖에 없었던 것이다.

'아무래도 오늘 하루동안 어지간히도 충격을 많이 받았겠지.'

더군다나 야마자키에게 충격을 안겨준건 내가 가진 저주 내성뿐만이 아니었다.

그가 헌터마스터라고 착각하고 있었던 '거품판독기'의 정체.

처음 만난 S급 헌터와도 대화가 가능하게 만들어주는 [자동번역 기능]의 존재.

거기에다가 공항에서 나와 마주했던 짧은 기억에 이르기까지.

무엇 하나 야마자키의 정신을 흔들어놓지 못한 것이 없었던 것이다.

S급 헌터, 귀령의 인생에 있어서 최대의 굴욕이라고 부를 수 있을만한 하루인 셈이었다.

"전부 다 끝난김에 하나만 물어보자. 그러면 대체 그놈은 뭐였던거냐."

계속해서 언쟁을 벌이다보니, 이제는 슬슬 [자동번역 기능]에 적응을 하기 시작한 것이었을까.

야마자키는 나를 향해 자연스럽게 일본어로 질문해왔다.

내기에서 패배한 야마자키가 지칭하는 '그놈'이라고 해봐야 당연히 하나밖에 없었다.

구독자 300만의 인기 유튜버, 헌터마스터에 대한 이야기였다.

벌컥, 벌컥-.

시원하게 맥주를 들이킨 야마자키는 손가락으로 나를 가리키며 이야기했다.

"설마 네가 그놈에게 이상한 정보를 준건 아니겠지?"

헌터마스터의 정체가 S급 헌터가 아니란걸 깨달았으니, 왜곡된 정보의 출처를 추궁하는 질문이었다.

나는 그런 야마자키의 질문을 듣고서, 고개를 가볍게 저어 그 사실을 부정했다.

"내가 헌터마스터에게 정보를 준건 아니야."

야마자키는 내가 헌터마스터에게 정보를 줬다고 생각하는 모양이지만, 실상은 야마자키가 생각하는 것과는 전혀 반대였다.

야마자키에 대한 루머를 만들어 외부에 공표한 것.

그것은 헌터마스터 최우현이 벌인 만행었으니까 말이다.

나는 야마자키의 오해를 풀어주기 위해, 그동안 그가 저주해왔던 헌터마스터의 진실을 알려주었다.

"1:1대화를 통해서 나한테 보냈던 영상에 나오는 헌터마스터··· 박우성은 사실 한국에서 제법 유명한 유튜버야."

"제법 유명한 유튜버라고?"

"가지고 있는 돈도 많고, 인기도 그만큼이나 많은 편이지. 그리고 유튜브를 통해 온갖 괴상한 루머를 퍼뜨리는 사람이기도 하고."

유명 헌터들에 대한 온갖 가짜정보를 유포하는 300만 유튜버.

추악한 헌터마스터의 실체를 들은 야마자키가 눈살을 찌푸렸다.

"그렇다면 지금 네 말은, 그 유튜버라는 놈이 나에 대한 허위사실을 퍼뜨렸다는거냐?"

헌터마스터에 대한 진실을 알게된 이후.

맥주잔을 쥐고 있던 야마자키의 시선이 한층 날카롭게 변했다.

끄덕-.

나는 야마자키의 물음에 그 사실을 순순히 긍정했다.

"그 말 그대로야. 나도 박우성에게 직접 듣고나서 너한테 물어본거거든."

"그렇다면··· 내가 그 녀석에게 저주를 걸었던건, 나름대로 의미가 있는 일이었던 모양이군."

야마자키는 그렇게 말하면서 눈앞에 있는 치킨을 가져가는 모습이었다.

분노한 야마자키가 헌터마스터에게 걸 새로운 저주.

그에 고통받을 헌터마스터를 생각하니 절로 입가에 미소가 피어올랐다.

그런 내 모습을 쓰윽 보던 야마자키는, 챙겨간 치킨과 맥주를 번갈아 먹는 모습이었다.

치킨이 제법 취향에 맞았던 것일까.

그는 순식간에 닭다리 하나를 해치우고서는, 다시금 비어버린 잔에 맥주를 채워넣었다.

"일본에 돌아가면 그 녀석에게 사마귀와 티눈이 생기는 저주를 내려야겠어."

"······그거 듣기만 해도 참 끔찍하네."

"유튜버가 말한 터무니없는 낭설에 대한 이야기는 그렇다고 치고, 너는 나한테 대체 뭘 요구하려고 내기를 받아들인거냐."

자신의 잔에 맥주를 가득 채운 야마자키가, 바닥을 드러낸 내 맥주잔에도 술을 채우며 질문을 꺼냈다.

내기에서 이겼으니 내가 야마자키에게 자신의 요구사항을 전할 수 있는 상황.

아무래도 내가 그에게 요구하려는 내용이 어지간히도 궁금했던 모양이었다.

내가 야마자키에게 무리한 부탁을 해올거라고 생각했던 것인지, 야마자키는 맥주를 따르면서도 내 눈치를 보는 모습이었다.

"괜찮아. 그리 대단한걸 요구할 생각은 없으니까 말이야."

"······."

"내가 일본의 귀령한테 요구하고 싶은건 딱 두가지 말고는 없거든."

나는 야마자키가 채워놓은 맥주잔을 들어올리면서, 그를 향해 내 요구조건을 하나씩 이야기했다.

그것도 야마자키가 이행하기에 그다지 어렵지 않은 부탁들을 말이다.

"첫째. 내 정체는 다른 사람들한테 비밀로 해둬."

"뭐? 정체를 비밀로······?"

"그리고 둘째. 나와 유튜브 영상 하나를 함께 촬영할 것. 여기까지가 내 요구 사항이야."

내가 요구한 두가지의 항목.

그 내용을 확인한 야마자키의 눈동자가 의문을 품었다.

"두번째야 네놈의 취미가 유튜브라고 치더라도, 정체를 비밀로 해달라는건 무슨 이유에서지?"

야마자키 아오.

그는 내가 정체를 숨겨달라고 부탁한 이유가 가늠이 가지 않는 모양이었다.

그야 당연히 그럴 것이다.

일반적인 상식으로는 S급 헌터가 정체를 숨길만한 이유는 별로 없을테니까 말이다.

"개인적인 이유로 헌터로서의 정체를 숨기고 활동하고 있어."

"······미등록 헌터였나. 그럼 좀 이해가 되는군."

"뭐, 그런 셈이지."

"하지만 커뮤니티에 들어올만한 실력을 가지고서 정체를 숨기는게 쉽지는 않을텐데."

야마자키가 다시금 맥주잔을 들어올려 나에게 물었다.

그가 이야기한 것처럼, 나라고 해서 정체를 숨기고 싶어서 이러고 있는건 아니었다.

단지 상황이 꼬여서 이렇게 되었을 뿐.

그리고 서서히 다가오는 종말을 고려해봤을때, 이제는 이게 더 합리적인 방법이기도 했다.

"혼자서 해야만 하는 일이 있어."

"······그래. 그런거였나."

"내가 직접 해야만 하는 일이야. 그리고 그 일이 원활하게 돌아가려면, 협회에 묶여서는 한계가 있는 편이야."

흐음-.

내 이야기를 듣던 야마자키의 손이 다시금 치킨으로 향했다.

내 간단한 요구를 쉽게 납득한 것이었을까.

닭다리 하나를 챙겨간 그는 치킨을 해체하며 내 요구사항에 대한 평가를 남겼다.

"사정이 있다면 어쩔 수 없지. 어렵지 않은 부탁이다. 나만 하더라도 '어떤 존재'들을 보고 싶어서 보는게 아니니까 말이야."

"문제가 없다니 다행이네."

"커뮤니티에 있는 녀석들은 전부 내 친구라고 생각하고 있으니까, 친구와 했던 내기의 내용정도는 얼마든지 지켜주마."

음침한 외견과는 다르게 따스한 마음을 품고 있는 것이었을까.

야마자키는 덤덤한 태도로 그런 말을 꺼내오는 모습이었다.

커뮤니티의 이용자들 전부를 친구처럼 생각하고 있었을 줄이야.

나는 야마자키의 인간적인 이야기에 조금은 감동을 받았다.

'친구라··· 나를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던건가.'

야마자키의 진정한 의도를 듣고서 가슴이 뭉클해지는 것도 잠시.

따뜻한 이야기를 들은 내가 야마자키를 향해 꺼낼 말을 고르려고 하던 순간이었다.

"······뭐야. 닭다리가 왜 하나도 안남아있어?"

"······."

스윽-.

치킨을 향해 나아가던 내 손이 닭다리가 없는 치킨상자에 닿았다.

허나, 내 눈앞에 놓여있는 치킨상자에는 닭다리가 하나도 남아있지 않은 모습이었다.

분명 내가 닭다리를 하나도 집어먹지 않았는데도 불구하고 말이다.

그에 내가 야마자키를 바라보면, 다크서클이 얹혀있는 눈동자가 무심하게 나를 마주했다.

"내가 두개를 먹었다."

"······."

S급 헌터, 귀령.

그는 실로 비인간적인 헌터였다.

* * * * * *

차가운 마음을 가진 야마자키 아오와 맥주를 마신 다음 날.

나는 서울에서 진행되는 시상식을 촬영하기 위해 협회에서 대관한 행사장으로 향했다.

나름대로 규모가 큰 행사이기 때문이었을까.

카메라를 들고 행사장에 들어온 나는, 그곳에서 다양한 헌터들의 모습을 발견할 수 있었다.

"이지성 길드장님. 역시나 이번에도 시상식에 참여하셨군요."

"······각국의 협회분들을 초청한 행사이니만큼, 헌터협회의 임원된 입장에서 나오지 않을 수는 없겠죠."

내가 행사장에서 가장 먼저 발견한 것은, 한국의 S급 헌터들 중 하나인 이지성이었다.

그림자사냥꾼, 이지성.

비교적 최근에 나에게 호되게 당했던 그는, 행사에 참여한 이들과 악수를 나누며 애써 내 시선을 피하는 모습이었다.

그가 내 앞에서 했던 맹세에 따라, 내가 이지성에게 내리는 명령에 거역하는 것이 불가능한 상황.

그러니 가능한 나와 직접 마주하는 일만큼은 피하고자 하는 모양이었다.

'대놓고 나를 피하는 모습을 보일줄이야.'

내 시선이 닿을 때마다 헛기침을 하며 눈을 돌리는 이지성의 모습.

나는 그러한 이지성의 노력을 가상하게 여겨, 특별히 간절해보이는 무언의 부탁을 들어주기로 했다.

내가 이지성에게서 관심을 끄고 다른 방향으로 시선을 돌리자, 머지않아 낯이 익은 헌터를 또 하나 찾아낼 수 있었다.

내 눈에 포착된 헌터는 분주하게 다른 이들과 인사를 나누는 모습이었다.

"아이고, 이게 누구야. 구성현 팀장님, 상당히 오랜만에 뵙습니다."

"크흠, 흠··· 오랜만입니다."

독왕, 구성현.

이지성과 마찬가지로 나와 안좋은 추억을 쌓은 인물이었다.

그는 협회의 임원들과 인사를 나누는 도중에도, 틈틈히 내 눈치를 살피는 것을 잊지 않는 모습이었다.

"······."

그러다가 가끔씩 나와 시선을 마주치면, 대놓고 몸을 움찔대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짧은 만남이 구성현의 머릿속에 인상깊게 남았던 것이었을까.

구성현 역시 내 시선을 굉장히 부담스러워 하고 있는 것이다.

찰칵-.

나는 그런 구성현의 모습을 친절하게 카메라로 촬영했다.

이번 행사와 관련된 영상을 올릴 때, 괜찮은 자료가 되어줄거라는 판단에서였다.

"오지아 헌터! 소식 들었습니다!"

"······네."

"축하드립니다! 우리 대한민국 헌터계를 이끌어갈 좋은 인재가 될거라 믿고 있습니다!"

물론 그런 두 헌터보다도 가장 격렬한 인사세례에 시달린 것은, 당연하게도 오늘의 주인공인 오지아였다.

그녀는 시상식이라는 자리에 어울리지 않게 펑퍼짐한 후드티를 입고 들어온 모습이었다.

평소에 오지아가 얼굴을 가리기 위해 자주 챙겨입는 복장이었다.

출발하기전에 한차례 강석구로부터 이야기가 있었던 모양이지만, 오늘의 주인공께서는 그런 이야기를 깔끔히 무시하고 출발했던 것이다.

오지아의 옷은 행사 복장과는 거리가 백만광년쯤 떨어져보이는 옷이었으니 말이다.

"······저 사람, 시상식에 뭘 입고 온거야?"

"······내버려둬. S급 헌터인데 오히려 저게 더 나을수도 있지."

한쪽에서는 그런 오지아의 복장을 두고서 수근거리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허나, 그녀가 가지고 있는 헌터라는 배경 때문인지, 그런 태도를 보이는 것은 비교적 소수에 불과했다.

더군다나 멀찍이 떨어진 곳에는 그런 오지아를 능가하는 패션의 소유자도 존재하고 있었던 것이다.

일본에서 날아온 S급 헌터.

귀령, 야마자키 아오였다.

"야마자키 헌터. 한국까지 먼 길 오시느라 고생이 많으셨습니다."

"······."

"저는 한국의 헌터협회를 책임지고 있는 회장 최구선입니다."

중요 인물들이 모여있는 자리.

야마자키는 그곳에 협회장과 나란히 앉아있는 모습이었다.

그는 처음부터 복장을 갖출 생각이 없었다는 듯이, 어제와 비슷한 복장을 입고 행사장에 나타난 것이다.

야마자키는 갈색 가을 코트를 걸친 채, 협회장의 악수를 조용히 받아들이는 모습이었다.

스윽-.

두 사람의 손이 만나 허공에서 수차례 악수를 하고선 멀어졌다.

그렇게 야마자키와 악수를 나눈 협회장은, 악수가 끝난 뒤에도 야마자키에게 계속 이야기를 전하는 모습이었다.

"야마자키 헌터. 통역은 제대로 작동하고 있습니까?"

"흠······."

야마자키 본인은 별로 달갑지 않은 모양이었지만 말이다.

이렇게 누구나 다 알법한 S급 헌터들을 제외하고도, 행사장에는 다양한 헌터들이 방문한 모습이었다.

평소라면 한곳에 모이기도 어려울만한 인물들이 전부 한자리에 모인 것이다.

물론 오지아를 제외하고도 다른 상을 받는 하위헌터가 여럿 있는만큼 당연한 일이기도 했다.

나는 그런 참석자들을 보며 이번 시상식에 대한 감상을 정리했다.

'이번 행사는 유명인들이 상당히 많이 찾아온 것 같은데. 썸네일만 괜찮게 만들면 조회수가 제법 나올지도 모르겠어.'

무려 네명이나 되는 S급 헌터가 참여한 행사였다.

더군다나 그들과 함께 행사장을 채워준 거물들도 많이 있었다.

영상만 잘 만든다면 스포트라이트를 받기에는 충분해보이는 컨텐츠였다.

시상식에 참여한 수많은 저명인사들.

그들은 저마다의 자리에 앉아서는, 한참동안이나 통성명과 인사를 나누는 모습이었다.

"······."

그렇게 기나긴 인사의 시간이 이어지고난 이후.

그리 오래 지나지 않아서, 모두가 그토록 기다려왔던 시상식의 시작시간이 다가왔다.

터벅, 터벅-.

마이크를 든 사회자가 단상 위로 올라서더니, 이내 주변을 둘러보며 행사를 진행하기 시작했다.

마이크를 잡은 사회자의 목소리가 스피커를 통해 행사장에 쩌렁쩌렁 울려퍼졌다.

- "아, 아. 다들 오래 기다리셨습니다. 그럼 지금부터 세계헌터협회가 주최하는······."

허나, 그런 사회자의 이야기는 끝까지 이어지지 못했다.

콰앙!

사회자가 이야기를 꺼내는 것과 동시에, 행사장의 천장에 커다란 균열이 생겨난 것이다.

갑작스럽게 벌어진 소란에 사회자의 입이 다물어졌다.

- "······."

쩌적, 쩌저적-.

화려한 빛을 퍼트리며 십자모양으로 갈라지기 시작한 균열.

그것은 행사장의 천장을 전부 뒤덮은 채, 신비로운 빛을 흩뿌리고 있었다.

예사롭지 않은 균열의 등장에 단상에 서있던 사회자가 당황에 젖은 목소리를 내뱉었다.

- "어, 어··· 이게 무슨······."

"저건 설마······!"

행사장에 참석한 헌터들 사이에서도 소란스러운 목소리가 터져나왔다.

쩌저저적-!

행사장의 천장에서 터져나오는 찬란한 광채의 향연.

그것은 이곳에 있는 헌터라면 모두가 알고 있을만한 형태를 가지고 있었다.

"게이트······."

다른 차원의 필드에 접근하기 위한 통로.

그것이 이 자리에 있는 참가자들의 머리 위에 펼쳐진 것이다.

더군다나 행사장에 벌어진 이변은 거기에서 그치지 않았다.

치직, 치지직!

천장에 생성된 게이트가 크게 뒤틀리더니, 이윽고 지상을 향해 진득한 액체를 흘리기 시작했다.

툭. 투둑-.

지상을 향해 흘러내리는 액체.

오랜 기억을 되살리는 이상현상은 바닥을 진득하게 물들이더니, 강대한 기운을 순식간에 사방으로 퍼뜨렸다.

- [게이트 : 아고스토고르의 불길한 제단]에 진입했습니다.

- 통신 효과 및 탐지 효과가 해당 공간에서 금지됩니다.

- 모든 종류의 신성효과가 해당 공간에서 반감됩니다.

- 부정적인 효과가 해당 공간에서 더욱 강력해집니다.

게이트가 무너져내리며 필드와 몬스터가 사방으로 역류하는 현상.

—게이트 브레이크.

행사장 전체가 한순간에 게이트 너머에 있던 필드의 필드효과로 뒤덮혔다.

필드효과가 역류하며 주변을 뒤덮는 가운데, 착석해있던 두 사람의 헌터가 다급하게 시선을 돌렸다.

그림자사냥꾼, 이지성.

독왕, 구성현.

나와 안면이 있는 두명의 S급 헌터들은 경악스러운 시선으로 나를 바라보는 중이었다.

휘익-.

그리고 그들의 시선은 하나같이 내 손가락에 끼워진 반지를 향하고 있는 모습이었다.

내가 오래 전에 그들 앞에서 힘을 내보였던 특별한 반지를 말이다.

"······."

"······."

소란속에서 나와 두 사람 사이에 내려앉은 무거운 침묵.

그러한 풍경속에서 나는 그들이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 직감했다.

"······이러면 곤란한데."

나에게 당황한 시선을 향하는 두명의 S급 헌터.

아무래도 나는 두 사람에게 커다란 오해를 받고 있는 모양이었다.

그것도 내가 이 자리에서 의도적으로 게이트 브레이크를 일으켰다는 오해를 말이다.

S급 헌터 커뮤니티의 흑막이 되었다 70화

70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