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화
누구나가 각성의 꿈을 꾼다.
S급의 각성자가 되어 헌터라는 이름 아래 전세계의 위험을 타파하고 영웅이 되는 꿈.
적어도 게이트 발생 이후의 시대를 살아가는 이들이라면 누구 하나 바라지 않는 이가 없는 꿈.
—S급 헌터로의 각성.
그러한 꿈을 꾸는 것에 있어서는 나 자신도 예외가 아니었다.
그리고 그 결과는 처참했다.
- 헌터 등급 : E
- [커스텀 네트워크(E)]
"······아무리 그래도 E등급은 좀 아니지 않나?"
헌터 등급 E.
그것이 각성자로서의 내 첫걸음이었다.
* * * * * *
현대사회를 살아가는 이들이라면 누구나 헌터의 꿈을 꾸기 마련이다.
특별한 힘을 가지고 이야기 속의 영웅이 되어 일확천금할 수 있는 기회.
그러한 기회를 마다할 수 있는 인물은 어디에도 없을테니까 말이다.
더군다나 S급 헌터들에게는 그들을 위한 인기마저 뒤따르기 마련이다.
수많은 팬덤들이 생기고,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을 받는다.
매일같이 수많은 매체들에 의해 그들의 멋진 모습이 다루어지고, 게이트 너머의 괴물을 토벌할 때마다 그들의 영웅담이 하나씩 늘어난다.
일개 개인이 가지기에는 분에 넘치는 힘과 명예.
그 모든 것들을 가지고 있는게 헌터라는 직업이었다.
그리고 나는 그런 S급 헌터들의 열렬한 추종자들 중 하나였다.
"어제 올렸던 영상에 유독 댓글이 많이 달렸네. 댓글창에서 싸움이라도 났나?"
정확히는 한국의 상위등급 헌터들을 다루는 유튜버였다.
기회가 될때마다 상위등급 헌터들의 레이드를 따라가며, 그들의 영상을 찍어 유튜브에 편집해 업로드한다.
기본적으로는 S급들의 전투를 보며 그들을 분석하는 편이지만, S급으로 올라갈 가능성이 있는 유망주들의 분석 역시 병행하는 편이었다.
일부 헌터 길드는 유망주 발굴을 위해 내 영상을 참고한다는 소문이 있을 정도였다.
"얘네는 하루가 48시간인가. 고작 두명이서 무슨 댓글을 500개씩이나 적어놨냐?"
헌터관련 채널들 중 최상위권이라고 할 수는 없겠지만, 그래도 상위권이라고 자칭하기에는 부족함이 없는 채널.
유튜브 채널명 '헌잘알'의 주인.
그것이 바로 나, 58만 유튜버 신유호였다.
타닥, 타다닥-.
오늘도 나는 그런 유튜브 채널을 관리하면서, 댓글창을 지배하는 시간 빌게이츠들을 억압하는 중이었다.
헌터들의 강함을 다루는 채널의 특성상, 자신의 박식함을 알리고 싶어하는 이들이 많은 편이었다.
다만 그들은 헌잘알인 나 신유호에 비해 헌터에 대한 이해도가 얕은 편이었다.
그렇기에 나는 부정확한 지식을 퍼뜨리며 내 권위에 도전하는 댓글들을 가차없이 쳐내고 있었던 것이다.
"얘는 뭔데 잘 알지도 못하면서 길게 적어놨어. 너는 무조건 삭제다."
딸깍, 딸깍-.
나는 자신의 영상에 반박하는 내용을 게재한 댓글들을 삭제했다.
버튼 하나로 헌잘알인 내 권위를 내보일 수 있다니, 무척이나 훌륭한 기능이 아닐 수 없었다.
그렇게 오늘도 클린한 유튜브를 만드는데 일조한 나는, 적당히 관리를 끝내고 점심을 먹기 위해 자리에서 일어났다.
오후에는 컨텐츠 촬영일정이 있기때문에, 오늘은 평소보다도 점심을 조금 일찍 먹을 생각이었다.
"이만하면 됐다. 밥이나 먹고 촬영나갈 준비나 해야지."
자리에서 일어난 나는 냉장고에 쌓아둔 즉석식품들을 꺼내먹기 위해 발걸음을 내딛었다.
오늘은 적당히 꼬리곰탕이나 데워먹고 나가면 되겠다는 생각이었다.
그렇게 내가 냉장고에 있는 꼬리곰탕을 꺼내기 위해 움직이려던 순간.
띠링-.
낯선 소리와 함께 눈앞에 반투명한 창이 떠오르는 모습이었다.
- 새로운 능력을 개화했습니다.
- [특수 기능 : 상태창]이 해금되었습니다.
갑작스럽게 내 눈앞에 떠오른 메세지의 내용.
그것은 나에게 각성자들만이 가질 수 있는 특수 기능, '상태창'이 해금되었다는 내용이었다.
다시 말해서 내가 헌터들과 마찬가지로 각성자가 되었다는 이야기였다.
"내가··· 헌터로 각성했다고······?"
꿀꺽-.
나는 자신이 헌터가 되었다는 사실을 깨닫고서 침을 삼켰다.
지금부터 오픈하는 상태창이 앞으로의 내 인생을 완전히 뒤바꿔놓으리라는 것을 직감한 까닭이었다.
상태창에 적혀있는 헌터 등급이 각성자로서의 내 운명을 결정할 터였다.
"S급? 아니, 그건 너무 욕심이 많은가. A급 정도만 나와도 충분해."
S급. 그게 아니면 A급.
나는 두가지 등급을 목표로 하며 허공을 향해 손을 뻗었다.
그리고 허공에 떠오른 반투명한 창을 터치하며 낯선 단어를 입밖으로 내뱉었다.
"[상태창]."
띠링-.
그런 내 눈앞에 거대한 창이 떠오르는 모습이었다.
< 플레이어 정보 >
- 이름 : 신유호
- 이명 : 없음
- 헌터 등급 : E
- 근력 : E
- 체력 : D
- 민첩 : E
- 지능 : D
- 마력 : E
- 회복 : E
< 고유 특성 >
- [커스텀 네트워크(E)]
눈앞에 떠오른 상태창을 마주한 나는 곧바로 좌절했다.
"······아무리 그래도 E등급은 좀 아니지 않나?"
헌터 등급 E.
그것이 각성자로서의 자신에게 주어진 운명이었다.
아무리 발버둥쳐도 S급에 도달할 수 없는 둔재중의 둔재.
그게 바로 나 신유호였던 것이다.
나는 눈앞의 상태창을 보자마자 머리가 지끈거리는 것을 느꼈다.
"[커스텀 네트워크(E)]? 이건 또 뭐하는 특성이야."
더군다나 상태창에 적혀있는 특성은 처음보는 낯선 종류의 것이었다.
적어도 일반적인 각성자들이 가지는 특성과는 거리가 있어보였다.
낯선 이름의 특성을 본 나는 혹시 모를 기대감을 가슴에 품었다.
비록 내 헌터 등급이 E급이기는 하지만, 해당 특성만큼은 말도 안되는 사기 특성인 것이 아닐까.
그런 생각이 머릿속에 떠오른 것이다.
"하··· 설마 지나치게 저평가당한 숨어있는 사기 특성은 아니겠지?"
나는 미약한 기대감을 가진 채 눈앞에 보이는 특성을 터치했다.
툭-.
해당 특성을 터치하기 무섭게 관련 정보가 내 눈앞에 떠오르는 모습이었다.
- [커스텀 네트워크]
- 다른 사람을 초대해 자신만의 커뮤니티를 구성해보세요!
- 해당 특성은 다른 플레이어의 [상태창]에 부착할 수 있으며, 초대받은 플레이어에게는 [특수 기능 : 네트워크 접속]이 해금됩니다.
- 현재 등급 : E
- 수용 가능 인원 : 1 / 100
특성명, [커스텀 네트워크].
그리고 그 기능은 무려——.
다른 사람을 초대해 커뮤니티를 만드는 기능이었다.
누가 보더라도 말도 안되는 사기 능력이 틀림없었다.
다시 말해 내가 사기를 당했다는 뜻이었다.
"아니, 방구석에서 커뮤니티만 관리하고 있는게 어딜봐서 헌터냐고······!"
하루종일 커뮤니티만 관리하는 헌터가 세상 어디에 있단 말인가.
그것도 고작 100명밖에 초대할 수 없는 조그마한 규모의 커뮤니티를 말이다.
이딴걸 들고서는 게이트 너머의 괴물이랑 싸우기는 커녕, 지나가던 동네 아저씨랑 싸워서 승패를 장담하기도 힘들었다.
장점이라고는 스마트폰 없이 접속가능하다는 점 하나밖에는 없는 것이다.
내가 눈앞에 보이는 상태창의 내용에 경악하며 머리를 감싸쥐려던 찰나.
의미없이 켜놓았던 TV에서 흘러나오는 소리가 내 귓가에 파고들었다.
- "지난 밤, S급 헌터로 유명한 최두식씨가 음주운전 혐의로 적발되었습니다."
- "최두식씨는 '내가 S급 헌터인데 음주따위가 어떻게 운전에 방해가 되냐'며 주장했지만, 경찰은 이를 받아들이지 않는 모습으로······."
TV에서 흘러나오는 뉴스에서는 S급 헌터의 음주운전 소식을 알려오고 있었다.
깜빡, 깜빡-.
나는 눈앞에 보이는 TV 화면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십여초에 가까운 시간이 지난 후에는, 다시금 자신의 앞에 떠오른 상태창에 시선을 향했다.
"잠깐만··· 상태창에 부착가능한 커뮤니티······."
타인의 상태창에 부착가능한 [커스텀 네트워크(E)].
그리고 S급 헌터.
전혀 어울리지 않아보이는 둘을 번갈아보던 내 머릿속에 번뜩이는 아이디어가 한가지 스쳐지나갔다.
비범한 두뇌를 가진 나 신유호가 아니라면 감히 떠올리지도 못할 어마어마한 아이디어가 말이다.
"아무래도 오늘 일정은 취소해야겠어."
나는 오후에 잡혀있던 컨텐츠 제작일정을 취소하기로 결정했다.
* * * * * *
—S급 헌터, 불사기사 최두식.
그는 헌터 업계에서도 나름 원로라고 불릴만한 인물이었다.
게이트가 생겨난 초창기부터 최전선에서 일해왔으며, 꾸준한 단련과 노력을 통해 S급에 도달한 것이다.
그런 최두식의 일화 덕분에 후배 헌터들중에는 그를 동경하는 이들도 많이 있었다.
대한민국 내에서 최두식의 이미지는 상당히 좋은 편이라는 이야기였다.
적어도 어제까지는 말이다.
"최두식씨, 뭔가 할말은 없으신겁니까!"
"이번 일로 <불사기사 >라는 이명의 명성에 큰 타격을 입었는데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타인의 모범이 되어야할 S급 헌터가 그런 죄를 저질렀다는 것에 대해······."
지금 최두식의 눈앞에는 카메라를 들고 서있는 기자들이 잔뜩 늘어서 있었다.
간밤에 있었던 음주운전때문에 논란이 된 최두식을 취재하기 위함이었다.
그들을 마주한 최두식의 입장에서는 미쳐버릴 노릇이었다.
S급 헌터인 그는 술을 마셔도 신체적인 영향이 거의 없는 수준이었다.
적어도 최두식 자신은 정상적인 운전을 했다는 자각이 있는 것이다.
허나, 그렇다고 해서 그 사실이 면죄부가 되어주지는 않는 모양이었다.
최두식은 자신의 눈앞에 선 기자들을 보며 그들을 향해 외쳤다.
"내가 S급 헌터인데! 술 좀 몇잔 마셨다고 대체 뭐가 문제입니까!"
"최두식씨, 다른 음주운전자들도 전부 그렇게 말한다는 사실 알고 계십니까?"
"아니, 이 사람아! 내가 회복 능력치가 S+랭크야! 나 불사기사 최두식이라고!"
"최두식씨! 방금 전의 발언에 대해 국민 여러분에게 사과하실 의향이 있으신지······!"
허나 최두식이 자신의 의견을 개진한다고 해서, 기자들이 그것을 들어주는 일은 존재하지 않았다.
지금까지 그들이 겪어온 다른 음주운전자와 크게 다르지 않은 레퍼토리인 까닭이었다.
결국 치밀어오르는 분노를 참지 못한 최두식의 얼굴이 붉게 달아오르려던 찰나.
띠링-.
최두식은 익숙한 알림음이 자신의 귓가에 들려오는 것을 느꼈다.
'뭐지? 상태창에 알림이 새로 들어온건가?'
새로운 메세지가 추가되었음을 알려오는 소리.
그와 함께 최두식의 눈앞에 반투명한 메세지가 떠오른 것이다.
- [특수 기능 : 네트워크 접속]이 해금되었습니다.
최두식의 앞에 나타난 메세지의 내용은 간단했다.
특수 기능 해금.
그가 오랜 헌터 인생을 살아오는 동안 몇차례 마주하지 못했던 메세지였다.
헌터들에게 있어서는 무척이나 특별한 메세지인 셈이었다.
"이거 뭐야. 새로운 기능 해금······?"
대부분의 헌터는 최초각성 이후에는 만날일이 없는 메세지이기도 했다.
눈앞에 나타난 메세지를 본 최두식은 일말의 고민도 없이 바로 새로운 기능을 활성화했다.
"[네트워크 접속]."
'네트워크 접속'이라는 간단한 시동어 한마디로 새로운 기능을 사용한 것이다.
그렇게 최두식이 곧바로 새 기능을 호출한 직후.
최두식의 눈앞에는 반투명한 창이 커다랗게 떠올랐다.
- [커뮤니티]에 진입할 자격을 새롭게 획득했습니다.
- [커뮤니티]는 헌터 등급 S에 도달한 플레이어들만이 접근할 수 있는 신규기능입니다.
- 현재 헌터 등급 : S (조건 충족)
- 대기 시간이 지난 이후 [커뮤니티] 기능이 개방됩니다.
- 남은 대기 시간 : 479시간 59분 59초
눈앞에 떠오른 메세지를 확인한 최두식은 그제서야 상황을 이해할 수 있었다.
헌터들 중에서도 최상위권의 강자들만이 도달할 수 있는 S급 헌터.
그들만을 위한 소통창구가 상태창에 업데이트되는 모양이었다.
새롭게 업데이트되는 기능을 마주한 최두식은 찌푸려져있던 입가가 조금은 펴지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쯧. 이제부터는 그나마 급이 되는 녀석들과 대화가 되겠군.'
오직 최강의 헌터들만을 위한 특별한 정보교류의 장.
자격있는 자에게만 열리는 신규 기능.
최두식의 눈앞에 있는 녀석들은 얼마나 많은 시간이 흘러도 결코 마주하지 못할 풍경이었다.
2화
새로운 특성, [커스텀 네트워크(E)]를 살펴보던 내가 내린 결정은 하나였다.
전세계의 S급 헌터들을 전부 내가 만든 커뮤니티에 집어넣는다.
아무나 받아들이는 커뮤니티가 아닌, 오로지 S급 헌터만이 접속가능한 상류층의 커뮤니티를 만드는 것이다.
이른바 고급화 전략을 구사하는 것이었다.
물론 내가 그러한 결단을 내린데에는 몇가지 이유가 존재하고 있었다.
"생각보다 지원하는 기능이 많은데?"
내가 가지고 있는 특성, [커스텀 네트워크(E)]에는 특별한 기능들이 내장되어있는 까닭이었다.
지금 내 눈앞에 띄워져있는 화면이 그 사실을 증명하고 있었다.
< 커뮤니티 관리 도구 >
- [자동 번역 기능]을 활성화하면 모든 사용자가 언어에 상관없이 동일하게 커뮤니티를 이용할 수 있습니다.
- [커스터마이징 기능]을 이용해 [커스텀 네트워크]의 출력 결과를 제어할 수 있습니다.
- [포인트 기능]을 이용해 커뮤니티 내부에서 통용되는 포인트를 발행할 수 있으며, 사용자간에 제한없이 포인트를 주고 받을 수 있습니다.
- [리워드 기능]을 이용해 커뮤니티 내부에서 획득한 포인트를 소모하기 위한 상점을 제공할 수 있습니다.
- 커뮤니티의 활성화 수준에 따라 [커스텀 네트워크]에 새로운 기능이 추가될 수 있습니다.
한눈에 보기에도 범상치 않은 기능들이 내가 가진 [커스텀 네트워크(E)]에 내장되어있는 것이다.
첫째로 [커스텀 네트워크(E)]에는 자동번역 기능이 탑재되어있었다.
사용자가 외국인이라고 하더라도 문제없이 소통이 가능하다는 말이었다.
이건 내가 전세계의 S급 헌터들을 초대하기로 결정한 가장 직접적인 이유이기도 했다.
"자동 번역 기능이 있다면 외국의 헌터들을 초대해도 상관없겠지."
가능한 많은 S급 헌터를 수용할 수 있다는 점은 엄청난 장점이었다.
내가 가지고 있는 언어와 지역에 대한 한계를 없애주는 것이었으니 말이다.
한국에 있는 S급들의 숫자에는 한계가 있으니, 전세계의 S급들을 대상으로 글로벌하게 진출할 수 있는 것이다.
"커스터마이징 기능도 충분히 만족스러운 기능이고 말이야."
두번째로 중요한 것은 커스터마이징 기능이었다.
상태창을 통해 출력되는 커뮤니티의 내용물을 내 마음대로 수정할 수 있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내가 원하는 화면을 상대에게 보여줄 수 있었다.
내가 아무리 S급들을 커뮤니티에 초대한다고 해도, 그들이 커뮤니티에 정착하지 않으면 의미가 없는 일이었다.
적어도 상태창이 그들에게만 혜택을 제공하는 분위기를 풍긴다면, S급 헌터들도 아무런 거리낌 없이 커뮤니티에 들어올 터였다.
"커뮤니티를 만들어도 이용자가 없으면 의미없는 일이니 어쩔 수 없겠지."
물론 그외에도 커뮤니티에서는 다양한 기능들을 지원하고 있었다.
커뮤니티 활동에 따라 지급하는 포인트 제도라던가.
그렇게 획득한 포인트를 사용할 수 있는 리워드 제도라던가.
하나같이 실제 커뮤니티에서 사용할법한 기능들이었던 것이다.
상태창에 부착된다는 점만 제외하면 정말 본격적으로 커뮤니티를 운영하게 되는 셈이었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건 역시······."
[커스텀 네트워크(E)]가 제공하는 강력한 기능들을 살펴보던 내 시선이 화면의 가장 아래쪽으로 향했다.
기나긴 안내 메세지의 최하단.
그곳에는 나에게 있어서 가장 중요한 내용이 적혀있었다.
—커뮤니티의 활성화 수준에 따라 [커스텀 네트워크(E)]에 새로운 기능이 추가될 수 있다.
다시 말해서 내가 가진 특성 자체에 성장할 여지가 남아있다는 이야기였다.
내가 커뮤니티를 운영하기에 따라서 [커스텀 네트워크(E)]의 등급이 변화하는 셈이었다.
"아니, 근데 이걸 진화시켜면 대체 뭐가 좋은거야?"
나는 눈앞에 보이는 상태창을 보며 언젠가 다가올 미래에 대해 상상해보았다.
[커스텀 네트워크(E)]가 계속해서 성장하고 진화해, 어느 순간 [커스텀 네트워크(S)]에 도달하게 되는 미래.
내가 어느 누구도 가지지 못한 S급 커뮤니티 관리자가 되는 미래.
그리고 그 강력한 특성을 가지고 게이트 너머의 괴물과 맞서는 미래.
그 엄청난 미래를 상상하던 내 얼굴이 일그러지는건 당연한 결과였다.
"······."
아무래도 커뮤니티 관리자의 힘을 가지고 괴물과 맞서싸우는건 포기하는게 좋을 것 같았다.
무용담을 늘어놓기에는 이미 한참 전에 글러먹은 것 같으니 말이다.
차라리 S급 헌터들을 데려와서 그들이 가진 정보를 어떻게 이용해먹을지 고민하는게 더 합리적이었다.
S급 헌터들의 활동은 그 자체로 써먹을 요소가 많을테니까 말이다.
내 유튜브 채널에 있어서도 긍정적인 방향으로 다가올 터였다.
"에휴. 내 주제에 게이트는 무슨 게이트냐."
그렇게 결론을 내린 나는 헛웃음을 지으며 분주하게 손가락을 움직였다.
커뮤니티에 새로운 손님들을 받기 위해서는 부지런히 움직여야만 했다.
툭-.
바쁘게 움직이는 손가락이 화면 너머에 새로운 레이아웃을 그려나갔다.
다양한 창이 실시간으로 눈앞에 떠올랐으며, 닉네임 설정이나 출석체크와도 같은 기능이 새롭게 추가되었다.
출석체크를 통해 회원들에게 지급할 포인트 역시 단계별로 설정되었다.
정적이 내려앉은 작업실에서 내 손가락만이 계속해서 빠르게 움직였다.
"······후우, 드디어 끝났네."
분주하게 움직이던 손가락이 멈춘 것은, 내가 커뮤니티를 구성하기 시작하고서 몇시간이 지난 이후였다.
* * * * * *
S급 헌터.
세계 각지의 헌터를 통틀어 최정상에 오른 이들만이 들어설 수 있는 경지.
그러한 경지에 오른 이들은 대한민국 전체를 통틀어도 열명이 안되는 편이었다.
그리고 지금 게이트를 빠져나오는 검귀, 천시예 역시 그러한 S급 헌터들 중에 하나였다.
그녀는 대한민국 헌터들 중 최연소로 S랭크에 도달한 인물이었다.
비록 강력한 힘의 여파로 머리카락의 일부가 새하얗게 질려버렸지만, 그럼에도 그녀가 스스로 천재라 칭하기에 부족함이 없는 인물이라는 것만큼은 틀림없는 사실이었다.
'앞으로 5분밖에 안남았어.'
게이트를 빠져나온 천시예는 가지고 있던 장비를 길드의 직원에게 맡기며 조급하게 발걸음을 옮겼다.
최근에 들어서 검귀의 관심사는 오직 한곳에 쏠려있었다.
그녀의 시야 한구석에 자리하고 있는 반투명한 창.
천시예가 갑작스럽게 획득한 상태창의 특수 기능에 대한 것이었다.
[네트워크 접속].
모종의 계기로 얻은 이 특수 기능을 사용하면 오직 S급 헌터들에게만 허용된 특별한 페이지에 접속할 수 있었다.
- 남은 대기 시간 : 0시간 4분 41초
해당 페이지에는 대기시간에 대한 내용이 적혀있었는데, 원래는 480시간이나 남아있던 것이 이제는 5분도 채 남아있지 않은 상황이었다.
해당 페이지를 처음 마주한 순간부터 카운트다운이 끝나고 마주할 페이지를 궁금해하던 천시예였다.
업데이트가 5분도 남지 않은 지금 시점에서는 그 조급함이 한계에 다다라있었다.
오죽하면 자신에게 말을 걸어오는 직원의 이야기도 제대로 들리지 않을 정도였다.
"천시예 헌터님. 길드건물로 돌아가실 예정이십니까?"
"오늘은 바로 집에 들어갈거야. 오후 일정은 전부 취소해둬."
천시예는 자신에게 다가온 직원에게 오늘의 일정을 이야기했다.
그 직후, 그녀는 준비되어있던 세단의 뒷문을 열어 자리에 탑승했다.
차량의 뒷좌석에 앉은 천시예의 눈이 반투명한 화면을 바라보았다.
그녀가 필요한 절차를 마치고 자리에 앉으면, 어느새인가 타이머의 앞자리는 3분으로 바뀌어있었다.
앞으로 3분 후에 새로운 기능이 해금된다는 이야기였다.
'지금까지 열린 특수 기능들은 예외없이 강력한 성장효과들이 포함되어있었어.'
천시예는 헌터들 중에서도 최고 수준에 다다른 S급 헌터였다.
그런만큼 특수 기능의 해금에 대해서도 다른 헌터들보다 자세하게 알고 있었다.
상태창을 통해 특수 기능이 해금되는 경우, 대부분은 새로운 성장 시스템과 관련이 있는 편이었다.
이번에 생기는 [커뮤니티] 역시 새로운 성장 시스템과 관련이 있을 가능성이 높다는 이야기였다.
'S급에 다다르고서 일년. 이제는 슬슬 성장에 한계가 느껴지고 있어.'
S급 헌터들끼리 소통이 가능한 기능이 생긴다는건 흥미로웠지만, 다른 사람들과의 소통은 천시예에게 있어서 그리 큰 관심사가 아니었다.
비록 그녀가 어린 시절부터 헌터생활을 이어오느라 또래 친구가 없는 삶을 살아왔다고 하더라도 말이다.
천시예에게 있어서 가장 중요한 요소는 어디까지나 성장이었다.
이번에 추가될 시스템이 그녀에게 있어서 막힌 벽을 뚫어줄 돌파구가 되어야만 했다.
그렇게 제 손톱을 곱씹으며 천시예가 화면을 노려보기를 한참.
기나긴 카운트다운은 어느덧 바닥을 보이기 시작하고, 그녀의 시선은 줄어드는 숫자를 쫓았다.
5초. 4초. 3초. 2초. 1초.
인고의 시간이 끝을 고하며 카운트다운이 모두 줄어든 직후.
S급 헌터, 검귀 천시예의 앞에 새로운 창이 떠올랐다.
- [커뮤니티]에서 사용하실 닉네임을 입력해주세요.
"······닉네임?"
화면을 노려보던 천시예의 얼굴이 당혹으로 물들었다.
사용할 닉네임을 적어달라니.
천시예로서는 전혀 예상하지 못한 메세지를 마주하게 된 것이다.
그녀는 화면을 응시하며 잠시 고민했다.
예전부터 작명은 그녀에게 있어서 가장 큰 난관들 중에 하나였다.
"어떤걸로 지어야하지······."
닉네임을 고민하던 천시예의 눈이 안절부절하지 못하고 좌우로 움직였다.
뭘로 지어야 예쁜 닉네임이 될까.
닉네임 입력란을 앞에 두고 고민하던 그녀의 입에서 한숨이 흘러나왔다.
짙은 한숨을 내뱉은 천시예가 손가락을 움직여 닉네임을 입력했다.
—swordmaster.
천시예 나름대로 고민끝에 결정한 닉네임이었다.
- 닉네임을 [swordmaster]로 설정하시겠습니까?
- 설정한 닉네임은 포인트를 사용해 변경이 가능합니다.
- 예 / 아니오
닉네임을 입력하자 이번에는 확정하겠냐는 메세지가 떠오르는 모습이었다.
더 고민할 필요도 없었기에 천시예는 곧장 '예'를 터치했다.
꾸욱-.
가느다란 손가락이 화면을 터치한 뒤에는 닉네임을 묻는 창이 사라졌다.
그 뒤를 이어 나타난 것은, '출석보상'이라는 이름이 달린 낯선 화면이었다.
< 일일 출석 보상 >
- 오늘의 첫 접속 보상으로 100 포인트를 획득했습니다.
- 획득한 포인트는 [리워드] 페이지에서 사용하실 수 있습니다.
눈앞에 나타난 페이지를 보던 천시예의 고개가 기울어졌다.
천시예가 마주한 화면에는 접속 보상으로 100 포인트를 획득했다는 내용이 적혀있었다.
"일일 출석 보상······?"
[커뮤니티]에 접속한 보상으로 포인트라는 것을 획득했다.
아무래도 커뮤니티 내부에서 사용할 수 있는 재화인 모양이었다.
[리워드] 페이지에 가면 재화를 소모할 수 있는 모양이니, 곧장 해당 페이지로 이동해 확인하면 될 것 같았다.
천시예는 손가락을 움직여 출석 보상이 적혀있는 페이지를 닫았다.
해당 페이지가 닫히고 나자, 그제서야 [커뮤니티]의 진면목이 드러나는 모습이었다.
"······."
정적속에서 천시예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그녀가 바라보는 페이지에는 어느새인가 몇개의 게시글이 적혀있었다.
- 안녕하십니까. 헌터님들. ^^ (마산사나이 최두식)
- 1등 (thundershock)
- 내가 처음으로 글쓴거야? (tex11)
- 글작성테스트 (망원동불주먹)
벌써 [커뮤니티]에 올라와있는 글이 네개나 되는 모습이었다.
천시예가 닉네임으로 고민하는 사이에, 다른 사람들은 어느덧 게시글마저 작성한 모양이었다.
닉네임에 대한 천시예의 고민이 상당히 길었다는 이야기였다.
나름대로 평소보다 빨리 지었다고 생각했는데, 그런데도 다른 사람들에 비해서는 느렸던 것이다.
아쉬운 표정을 짓던 천시예는 반투명한 창의 좌측에 있는 메뉴를 바라보았다.
목록에 진열되어있는 메뉴를 살펴보면, 그 한가운데에 [리워드]라는 메뉴가 보이고 있었다.
"리워드. 분명 접속 보상으로 얻은 포인트를 사용할 수 있는 곳이라고 했지?"
그녀가 기억하기로 분명 포인트를 사용할 수 있는 메뉴였다.
화면의 좌측에는 그 이외에도 다양한 메뉴들이 있었지만, 천시예의 관심을 끄는 것은 아무래도 [리워드] 메뉴 쪽이었다.
메뉴들을 살펴보던 천시예의 손가락이 화면을 터치했다.
툭-.
그녀의 손가락이 화면을 두드리자, 이내 리워드 페이지로 화면이 전환되었다.
포인트를 이용해 상품을 구매하는 페이지였다.
그렇게 새로운 페이지를 마주한 천시예의 눈이 경악으로 물들기까지는 그리 오랜 시간이 필요하지 않았다.
"이, 이런걸 여기서 포인트로 살 수 있다고······?"
천시예는 눈앞에 떠오른 화면으로부터, 그녀가 마주한 벽을 탈출할 '특별한 상품'을 발견했다.
그녀가 처음으로 매일 [커뮤니티]에 접속해야겠다고 결심한 순간이었다.
3화
[커스텀 네트워크]를 기반으로 새롭게 커뮤니티를 개설한지 어느덧 며칠이 흘렀다.
그동안 나는 커뮤니티 내부의 디자인을 몇차례 손보며 이용자들의 반응을 확인했다.
한국을 포함해 전세계의 모든 S급 헌터들을 끌어모은 커뮤니티다.
저마다 자부심이 강한 인물들인만큼 쉽게 정착시킬 수 있을까 고민했지만, 의외로 내 계획은 순조롭게 흘러가는 모양새였다.
지금 내 눈앞에 보이는 <커뮤니티 관리 도구>는 순항하는 커뮤니티의 지표를 나에게 보여주고 있었으니까 말이다.
< 커뮤니티 관리 도구 >
- 현재 인원 : 83 / 100
- 24시간 게시글 수 : 127개
화면에 보이는 커뮤니티의 현재 수용인원은 83명.
나를 포함한 82명의 S급 헌터들이 커뮤니티에 가입한 덕분이었다.
더군다나 하루에 작성되는 게시글의 숫자가 무려 100개가 넘어서는 상황이었다.
수용하고 있는 인원의 숫자보다도 많은 게시글이 올라오고 있다는 의미였다.
다국적 커뮤니티인만큼 게시글의 작성 빈도에 대해서도 많이 고민했지만, 내 예상보다도 만족스러운 주기로 게시글이 올라오고 있는 중이었다.
"한 사람당 게시글 하나 정도는 올라오는건가? 물론 실제로는 혼자서 여러개 올리는 사람이 더 많겠다만."
게시글이 올라오지 않는 커뮤니티는 죽은 커뮤니티다.
매일 작성되는 글이 선순환이 되는 커뮤니티야말로 활성화된 커뮤니티라고 부를 수 있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S급 헌터 커뮤니티의 시작은 매우 긍정적인 편이었다.
이대로 지금의 활동량이 안정화되기만 하더라도 활성화 상태에 도달할 터였다.
"간밤에 올라온 게시글들이나 확인해볼까."
<커뮤니티 관리 도구>를 바라보던 나는 이내 손가락을 뻗어 그것을 닫아버렸다.
스윽-.
그리고는 손을 움직여 커뮤니티의 메인 게시판을 불러왔다.
그러자 하루동안 커뮤니티에 작성된 수많은 게시글들이 눈에 들어오는 모습이었다.
나는 눈앞에 떠오른 게시글의 제목들을 하나씩 살펴보았다.
- 제가 키우는. 화분들입니다.^^ (마산사나이 최두식)
- 이거 리워드 진짜 효과 있는거야? 직접 해본 사람 있어? [1] (tex11)
- 포인트 획득할 수 있는 방법이 출석체크 이외에는 존재하지 않습니까? [7] (thundershock)
- 오늘. 점심인데용.^^ [2] (swordmaster)
- 포인트 이거 다른 사람이랑 주고받을 수도 있는 것 같은데? XD [17] (xkingx)
게시판을 불러오자 수많은 게시글들이 눈에 들어왔다.
커뮤니티에 들어온 헌터들이 저마다의 이야기를 작성한 것이다.
그중에서도 대부분의 헌터들이 관심을 가지고 있는 주제는 [리워드]에 대한 것이었다.
<커뮤니티 관리 도구>에 귀속되어있는 기능들 중 하나, [리워드].
해당 기능은 커뮤니티 내부에서 획득한 포인트를 바탕으로 사용자에게 강력한 혜택을 주는 기능이었다.
"역시나 다들 리워드에 대한 얘기가 대부분인가."
아무래도 커뮤니티 내부의 활동을 장려하기 위해 [커스텀 네트워크]가 안배해놓은 기능으로 보였다.
다만, [리워드] 페이지 내부에서 파는 상품의 경우 사람마다 제각각이었다.
일정 주기로 포인트 상점 안에있는 내용물이 변경되는 것이다.
내가 그 사실을 알게 된 것은 커뮤니티 공개 첫날에 올라온 게시글들 덕분이었다.
커뮤니티 내부에 존재하는 촬영 기능을 이용해 상점의 내용물을 찍어올린 유저들이 있었던 것이다.
[리워드] 메뉴가 제공하는 상점의 내용물은 사람마다 다른 편이었다.
"······나야 해당 메뉴의 내용물을 볼 수 없으니 잘 모르겠는데 말이야."
다만, 안타깝게도 나 자신만큼은 상점 내부의 상품에 접근할 수 있는 권한이 없었다.
내가 [리워드] 기능에 간섭할 수 있는거라고 해봤자, 상품 갱신 주기나 내부의 가격 배율 정도뿐.
내가 해당 메뉴에 들어가도 나에게만큼은 아무런 상품도 판매하지 않는 모습이었다.
포인트를 무제한으로 발행가능한 나에게는 아무 것도 팔지 않겠다는 의지로 보였다.
"오늘 올라온 게시물들이나 확인해볼까."
난감한 고민을 안고서 화면을 바라보던 나는, 이내 고개를 저으며 화면을 향해 손가락을 뻗었다.
툭-.
내 손가락이 화면에 닿자 해당 게시글의 내용이 출력되었다.
나는 눈앞에 떠오른 게시글의 내용을 흥미로운 눈으로 바라보았다.
당연하지만 나한테 보이는 게시글의 내용물은 다른 사람들과는 조금 달랐다.
나에게 보이는 화면은 관리자를 위한 게시글 페이지였으니까 말이다.
[ 제목 ] 제가 키우는. 화분들입니다.^^
[ 작성자 ] 마산사나이 최두식
[ 이용자 정보 ] 최두식(61) / S급 / 불사기사
(사진)
요즘. 화분들 보는. 취미에 빠졌습니다.^^~~
저희 예쁜. 식물들. 보고가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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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내 눈앞에 보이는 화면만 해도 그러했다.
게시글을 작성한 이용자의 개인정보와 함께, 해당 게시글에 대한 권한마저 보이고 있었다.
커뮤니티 이용자명 '마산사나이 최두식'의 정체는 S급 헌터 최두식.
닉네임과 이름이 동일한 모습이었다.
그는 자신의 실명을 당당하게 커뮤니티에서 사용하는 이 시대의 진정한 사나이였던 것이다.
"닉네임에 실명을 그대로 사용했구나. 역시 불사기사 최두식 다운 결정인가."
나는 눈앞에 보이는 최두식의 게시글을 보며 신선함을 느꼈다.
S급들만 모여있다고 해도 자신의 신분을 노출하는데에는 나름대로 거부감이 있을거라고 생각했다.
허나 불사기사 최두식만큼은 자신의 실명을 사용하는데 거리낌이 없는 모습이었다.
그런 최두식의 게시글을 바라보던 나는, 다시금 게시글의 목록으로 돌아가 다른 게시글을 클릭해보았다.
"이번에는 다른 글을 한 번 확인해볼까."
이번에 클릭할 글은 'thundershock'라는 닉네임을 사용하는 작성자였다.
툭-.
내가 게시글의 제목을 누르자 'thundershock'가 작성한 게시글의 내용이 눈앞에 나타났다.
[ 제목 ] 포인트 획득할 수 있는 방법이 출석체크 이외에는 존재하지 않습니까?
[ 작성자 ] thundershock
[ 이용자 정보 ] 알렉스 오브라이어(29) / S급 / 뇌제
나는 3일 전부터 이 커뮤니티를 이용하였지만 출석체크 이외에는 포인트를 획득할 수 없었습니다.
커뮤니티에서 포인트를 획득할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이 있습니까?
어떠한 활동이 포인트 획득을 가능하게 합니까?
나는 리워드 상점이 바뀌기 전에 상품을 구매할 필요가 있습니다.
[ 댓글 7개 ]
[ 공지사항 / 수정 / 삭제 ]
번역기를 돌린 내용처럼 보이는 해당 게시글의 작성자는 뇌제 알렉스.
미국에서 유명한 헌터들 중 하나였다.
내 마음속 파워랭킹에서 나름대로 상위권을 차지하고 있는 인물이기도 했다.
내 눈앞에 보이는 게시글의 주인은 아무래도 당장 포인트를 획득하고 싶어서 조급한 모양이었다.
커뮤니티 활동 자체보다는 그 떡고물에 더 관심이 있어보이는 케이스였다.
"뇌제 얘는 무슨 활동도 제대로 안하면서 보상을 타가려고 하냐?"
[리워드]의 내용물이 내 예상보다도 더 파격적인 것처럼 보였다.
이런 상황이라면 조금의 계기만 있어도 S급 헌터들이 성실하게 움직일게 분명했다.
다만, 며칠동안 올린 글이 질문글 이외에는 없는 뇌제의 행적이 조금 괘씸하게 보이기는 했다.
"와··· 사흘동안 적은 글이 열개인데 죄다 포인트 빨리버는 법밖에 없어? 대단하네."
나는 이용자 'thundershock', 그러니까 뇌제 알렉스의 커뮤니티 이용방식이 조금 더 정상화되기를 바랬다.
그가 커뮤니티의 부가효과보다는 커뮤니티 본연의 기능에 충실하기를 바라는 것이다.
그렇기에 나는 뇌제 알렉스의 닉네임을 터치해, 관리자에게만 허용된 기능 하나를 활성화시켰다.
- [이용자 : thundershock]의 [리워드]를 갱신하시겠습니까?
- [이용자 : thundershock]의 [리워드]가 갱신되었습니다.
나는 뇌제 알렉스의 [리워드] 페이지를 갱신해버렸다.
이것으로 그는 당분간 조급한 마음을 가지지 않고 포인트를 모을 수 있을터였다.
"다음부턴 활동 열심히 하자고. 유익한 게시글도 좀 많이 써주고. 어?"
뇌제 알렉스를 향한 들리지 않는 경고와 함께, 나는 의자를 뒤로 밀고서 자리에서 일어섰다.
한동안 커뮤니티를 관리하다보니 유튜브 채널을 소홀히 하고 있던 부분이 있었다.
그러니 오늘부터는 다시 본업에 집중할 생각이었다.
"후우. 이제 슬슬 촬영하러 나가봐야지."
구독자 58만2천명의 전설적인 유튜버 '헌잘알'.
그 메인 컨텐츠를 촬영하러 나갈 시간이었다.
* * * * * *
전세계에 활동하는 헌터들은 대부분 소속사를 가지고 있기 마련이었다.
매니지먼트 내지 에이전시라고 여겨지는 회사, 정확히는 현대 사회에서 '길드'라고 부르는 존재들이었다.
그런 길드들 중에서도 S급 헌터들이 속해있는 길드는 무척이나 콧대가 높은 편이었다.
전국의 모든 방송사와 유튜버들이 어떻게든 S급 헌터의 영상 하나 따보겠다고 노력하고 있었으니까 말이다.
그런 의미에서 나와 내 유튜버 동료, 채널명 '헌터사전'은 행운아인 셈이었다.
대한민국의 최연소 S급 헌터 천시예가 속해있는 길드— 셀레스티아 길드로부터 촬영허가를 받았으니까 말이다.
"유호야. 이거 얼마나 대단한 기회인지 알지? 어? 내가 이거 받아내려고 엄청 노력했다, 임마."
"알았어, 알았어. 형. 엄청난 일인거 잘 알고 있다니까? 그러니까 조금 옆으로 떨어져."
나는 그런 셀레스티아 길드의 게이트 토벌에 동행할 기회를 얻어낸 '헌터사전' 채널의 주인, 최우현을 밀어내며 이야기했다.
그의 대단한 업적은 잘 알겠다만, 같은 말도 50번 넘게 들으면 피곤한 까닭이었다.
가뜩이나 더운 여름에 계속해서 달라붙는 최우현을 밀어낸 나는, 토벌을 준비하는 셀레스티아 길드의 헌터들을 바라보았다.
나름대로 대한민국 수위에 위치한 길드이기 때문이었을까.
헌터들은 저마다 값비싼 장비로 무장한 채 게이트 너머로의 진입을 기다리는 중이었다.
"확실히 셀레스티아 길드정도 되면 수준이 다르긴 하네."
나는 그런 헌터들의 모습을 카메라로 담으며 그들에 대한 감상을 이야기했다.
헌터사전 채널을 운영하는 최우현 역시 그런 내 태도를 보고 빠르게 깨달았는지, 곧장 카메라를 켜고서 헌터들의 모습을 촬영하기 시작했다.
우리는 단순히 헌터들을 구경하러 온게 아니라, 그들이 싸우는 모습을 팔아먹어 돈을 벌기 위해 찾아온 것이었다.
"확실히 셀레스티아는 셀레스티아란 말이지."
"······."
"이러다가 S급 헌터 하나만 포착하면··· 어, 뭐야? 저거 천시예 아니야?"
그렇게 카메라를 움직이며 주변을 살펴보던 최우현은, 어느새인가 S급 헌터를 발견했는지 흥분한 목소리로 외쳤다.
나는 그런 최우현의 카메라를 따라 그가 바라보는 방향으로 시선을 옮겼다.
게이트로부터 멀리 떨어져있는 차량의 앞.
파라솔과 함께 구비되어있는 의자에 앉아있는 익숙한 얼굴이 보였다.
검은 머리카락의 일부가 새하얗게 빛이 바래있는 헌터의 모습.
대한민국의 최연소 S급 헌터인 천시예가 그곳에 있었다.
"상태창을 보고 있는건가? 계속해서 허공에 손가락을 움직이고 있는데?"
우리와 천시예 사이의 거리가 먼 탓에 자세히 보이지는 않았지만, 최우현의 말대로 천시예의 손가락이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는 것처럼 보이고 있었다.
보통 상태창을 조작한다면 단순히 몇초정도 조작하고서 꺼버리고 말지, 저런식으로 허공에 손가락을 빠르게 움직이며 조작하는 경우는 거의 없었다.
다시 말해 천시예가 상태창이 아닌 다른 무언가를 보고있다는 이야기였다.
아마도 내가 추정하기로는 커뮤니티를 보고 있는 것이 분명했다.
그녀는 내가 가진 [커스텀 네트워크]에 접근이 가능한 S급 헌터들 중 하나였으니 말이다.
"유호야. S급 헌터쯤 되면 상태창에 뭐 대단한 내용이라도 나오는거냐? 어지간한 헌터들은 보통 10초정도 보고서 꺼버리던데 말이야."
"······."
"유호야?"
아직 커뮤니티의 존재에 대해 모르는 최우현이 나를 바라보았다.
S급 헌터가 아닌 그는 커뮤니티에 대한 접근조차 허락받지 못한 까닭이었다.
나는 그런 최우현의 물음을 뒤로 한 채, 커뮤니티에 등록된 게시글의 제목들을 훑어보았다.
스윽-.
게시글 목록을 쭉 보고있다보면, 그중에서 가장 최근에 올라온 게시글 하나가 눈에 띄었다.
- 게이트 진입 대기중. 더워서 힘들어용. ㅜOㅜ [1] (swordmaster)
해당 게시글의 작성자 닉네임은 'swordmaster'.
상당히 특이한 컨셉으로 게시글을 올리는 이용자였다.
더군다나 해당 게시글의 제목은 우리가 현재 마주하고 있는 상황과 비슷해보였다.
게시글을 눌러보면 작성자의 신상을 알 수 있겠지만, 아무래도 해당 이용자의 정체가 천시예일 가능성이 높아보였다.
천시예의 닉네임을 바라보던 나는 영어로 되어있는 닉네임을 자그맣게 소리내어 읽어보았다.
"······소드마스터?"
그리고 그 직후.
힐끔-.
말소리조차 들리지 않을만큼 멀찍이 떨어져있던 천시예의 시선이 카메라를 응시했다.
4화
단순한 우연이었는지, 아니면 검귀 천시예의 변덕이었는지는 모른다.
카메라를 힐끔거리던 그녀의 시선이 토벌이 끝나기전까지 다시금 나를 바라보는 일은 없었다.
그 대신 그녀는 게이트 내부의 괴물들을 토벌하는 일에 열중하는 모습이었다.
그 덕분에 나와 최우현은 그토록 갈망하던 S급 헌터의 전투장면을 촬영할 수 있었고 말이다.
나는 천시예의 전투를 지켜보는 동안에도, 틈틈히 그녀의 전투 패턴을 분석하는 일을 멈추지 않았다.
'확실히 S급들 중에서도 화력보다는 속도에 특화되어있는 편이야.'
평소에도 S급들의 전투영상은 남김없이 찾아보며 분석하는 편이었다.
그런 의미에서 천시예의 전투는 다수보다는 일대일에 특화되어있는 것처럼 보였다.
그 속도가 워낙 빠른 탓에 얼핏 보기에는 괴물들을 쓸어넘기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말이다.
전세계의 S급 헌터들을 종합해 평가하자면, 적어도 내 입장에서는 8위정도는 줄만한 실력이었다.
'아무리 그래도 7위부터는 힘들지.'
하지만 아무리 그녀가 천재라고는 해도, 결국은 경험이 얕은 신예에 불과했다.
지금보다 더 노력하더라도 그 위를 노리기에는 힘들어보였다.
그렇게 천시예를 포함한 셀레스티아 길드의 토벌작전은 순식간에 끝을 맺었다.
게이트의 내부에 반입한 장비를 정리하는 길드의 모습에, 나와 최우현 역시 가져온 카메라를 정리하기 시작했다.
"유호야. 오늘 영상 잘나왔냐?"
"글쎄, 내가 보기에는 괜찮게 나온 것 같은데. 일단 돌아가서 편집해봐야지."
"천시예 인터뷰라도 하나 따면 대박일텐데. 아무래도 거기까진 안되겠지?"
최우현은 그의 분신과도 같은 값비싼 카메라를 집어넣으며 말했다.
아무리 그가 토벌작전의 촬영허가를 받아냈다고 해서, S급 헌터와의 인터뷰 허가까지 받아내는건 쉽지 않은 일이었다.
그 아래급 헌터들 중에 시간이 남는 이들을 섭외한다면 모를까 말이다.
나는 그런 최우현의 이야기에 가볍게 고개를 저으며 이야기했다.
"촬영허가를 내줄리가 없지. S급 헌터들이 얼마나 바쁜 몸인데."
"어, 어······?"
"뭐야? 갑자기 왜그래?"
허나, 내 이야기를 듣던 최우현의 얼굴이 갑자기 딱딱하게 굳는 모습이었다.
마치 예상치 못한걸 마주했다는 듯한 얼굴이었다.
더군다나 그런 최우현의 시선은 내 등뒤를 바라보고 있었다.
굳어버린 최우현의 모습에 내가 뒤를 돌아보면, 그곳에는 예상치 못한 인물이 서있는 모습이었다.
"······천시예?"
"······."
S급 헌터, 검귀 천시예.
그녀가 검집을 쥔 채 내 뒤에 서있었던 것이다.
게다가 그녀의 시선은 나에게 단단히 못박힌 채 떨어지지 않는 모습이었다.
헌터 유튜브의 전설, 58만 구독자의 '헌잘알'에게 무언가 용건이라도 있는 것일까.
내가 의문에 섞인 눈으로 그녀를 바라보자, 천시예는 손가락으로 나를 가리키며 이야기했다.
"잠깐 하고싶은 이야기가 있어. 조용한 곳으로 따라왔으면 해."
"그거, 저한테 하는 말입니까?"
"좋은말로 할때 순순히 따라왔으면 좋겠어. 당신도 비밀이 밝혀지고 싶지는 않을거 아니야?"
그녀는 나를 향해 잠깐 시간을 내달라고 하는 모습이었다.
더군다나 내가 그녀를 따라가지 않는 경우, 내 비밀을 폭로해버리겠다고 하는 모습이었다.
나와 천시예의 대화를 지켜보던 최우현은 경악한 얼굴로 두 사람을 번갈아보았다.
"유호야, 너 설마 S급 헌터랑······!"
나는 최우현의 이야기를 무시한 채로 고민에 빠져들었다.
내가 가진 추악한 비밀.
천시예의 말을 들은 나는 잠시 고민하지 않을 수 없었다.
지금으로서 짐작가는 은밀한 비밀은 단 두가지뿐이었다.
하나는 내가 다른 계정 서른개로 자신의 영상에 좋아요를 누르고 내 평가에 동조하는 댓글을 다는 것.
다른 하나는 내가 S급 헌터 커뮤니티의 관리자라는 것.
그것들이 나에게 있어 가장 중요한 비밀들이었던 것이다.
설마 내 그러한 비밀을 천시예가 눈치챈 것인가.
나는 긴장한 얼굴로 그녀를 향해 고개를 끄덕였다.
"조용히 나눌 이야기가 있다면 그렇게 하시죠."
"좋아. 저쪽으로 따라와줘."
천시예는 그렇게 말하며 멀리 떨어진 건물의 뒷편을 손으로 가리켰다.
나는 그런 천시예의 뒤를 따라 걸어갔다.
터벅, 터벅-.
인적이 드문 장소로 향하는 내 발걸음이 왠지 모르게 무거웠다.
* * * * * *
사람이 없는 건물의 뒷편.
그곳에서 천시예는 차가운 시선으로 나를 노려보았다.
대체 어떤 이야기를 꺼내려고 나를 이곳까지 불러낸 것인가.
내가 의문을 표하며 그녀의 이야기를 기다리고 있으면, 천시예는 나를 향해 진지한 목소리로 이야기했다.
"한국에 있는 S급 헌터는 모두 여덟명이야. 그리고 나는 그 헌터들의 얼굴을 모두 알고 있어."
"······."
"그 사람들을 포함해서 모든 S급 헌터들에게는 예외없이 [커뮤니티]라고 불리는 신규 기능이 해금되어 있는거 알아?"
천시예의 눈이 내 손끝을 바라보았다.
그런 천시예의 시선에 나는 그녀가 내 비밀들 중 하나에 맞닿았음을 직감했다.
그녀 자신의 입으로 커뮤니티에 대해 언급한 이상, 나에게서 그와 관련된 몇가지 단서를 찾아낸게 분명했다.
꿀꺽-.
나는 긴장한 눈으로 천시예를 바라보았다.
"커뮤니티라면······."
"작전이 진행되는동안 계속 지켜봐왔어. 이해할 수 없는 상태창 조작이 115회. 그중에서 일부는 특정 문자를 입력하는 듯한 행동······."
"아니, 그건······."
"그리고 당신의 입에서 흘러나왔던 내 닉네임, 'swordmaster'··· 내가 적은 글을 본게 아니라면 나올 수 없는 반응이었어. 아마 당신도 나처럼 [커뮤니티] 기능이 해금된 헌터인거겠지."
나를 바라보던 천시예의 오른손이 느릿하게 움직인다.
그 손이 향하는 곳은 왼손으로 붙잡고 있는 검집이 있는 방향.
검집을 향해 손을 움직이는 천시예의 눈이 번뜩였다.
어마무시한 통찰력을 가진 것처럼 보이는 눈이 나를 훑고 지나갔다.
"그렇다는건 말이야, 당신······."
설마 S급이 아니여도 커뮤니티에 들어갈 수 있다는 사실을 들킨 것인가.
그렇다면 커뮤니티의 자체의 신뢰도에 치명적인 타격을 입히는 커다란 문제로 비화될 수 있었다.
내가 당황한 채 대응을 위한 말을 찾고 있으면, 나를 마주하고 있던 천시예의 입에서 한가지 질문이 흘러나왔다.
"당신. 사실 국내에 존재하는 미등록 S급 헌터들 중에 하나지?"
"······예?"
미등록 S급 헌터.
이해할 수 없는 질문에 사고가 따라가지 못한 나는 한차례 눈을 깜빡였다.
그 직후, 강렬한 바람이 터져나오면서 천시예의 검이 사라졌다.
후우웅-.
머리카락을 뒤흔드는 짙은 풍압.
그와 함께 사라진 천시예의 검은, 어느새인가 내 목에 겨누어져있는 모습이었다.
"······."
눈에 보이지도 않는 속도로 움직여 찾아온 칼날.
그 속도가 얼마나 빠른지 제대로 된 반응조차 할 수 없을 지경이었다.
빛줄기와도 같이 뻗어나온 검격에 내가 가만히 서있으면, 천시예는 코웃음을 치면서 나에게 이야기했다.
"역시나 반응하지 않는구나? 내 검에 살의가 담겨있지 않은걸 눈치챈거겠지."
살의는 커녕 검을 뽑은 것조차 눈치채지 못한 상황이었다.
허나, 천시예는 예상했다는 듯이 자신만만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내 숨겨진 비밀을 파헤쳤다는 사실에 만족하고 있다는 듯한 태도였다.
"일부러 미약한 수준까지 마력을 억누르고 있는 것도 그래. 원래 실력을 다른 사람에게 들키고 싶지 않은거구나?"
"······."
"유튜버 '헌잘알'에 대해서는 나도 잘 알고 있어. 온갖 위험한 마경에 따라가 목숨을 걸고 취재한다고 말이야. 어떻게든 살아서 빠져나올 자신이 없으면 보통은 하지 않을만한 일이지 않아?"
더군다나 잘난듯이 이야기하는 천시예의 이야기는 거기서 그치지 않았다.
내가 일부러 스스로가 가진 마력을 억누르고 있다고 주장해온 것이다.
E급 헌터라 조악한 마력을 가진 것에 불과한데도, 그조차 내가 의도적으로 마력을 숨긴거라고 여기는 모양이었다.
아무래도 나에 대해서 단단히 착각하고 있는 모양이었다.
'그냥 조회수에 미쳐서 위험한 게이트들 공략에 따라다닌건데?'
그동안 내가 올린 상위헌터들의 무용담들 역시, 그런 내 비밀을 뒷받침하는 근거가 되어있었다.
그녀는 손에 쥔 검을 거두어들이며, 내 치부를 드러냈다는 것처럼 구는 모습이었다.
자신의 추리에 나름대로 확신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나는 제 잘난맛에 서있는 천시예를 바라보았다.
'내가 어떤 목적을 가지고서 헌터 등급을 숨기고 있다고 생각하는건가?'
헌터 시대가 도래한 이후에 제정된 '헌터관리법'에 따르면, C급 이상의 헌터들은 국가에 의무적으로 자진신고를 해야만 했다.
S급 헌터가 등록을 하지 않은 경우 법률에 따라 막대한 벌금을 부과받을 수밖에 없는 것이다.
더군다나 S급 헌터가 정체를 숨기고 다녔을 경우, 그 사실이 언론에 의해 밝혀졌을때 어마어마한 파장이 생길 터였다.
그녀는 해당 사실을 염두해두고서 내 약점을 틀어쥐고 있다고 생각하는 모양이었다.
"뭐, 당신도 나름대로 정체를 숨기고 있는 이유가 있을테니 존중은 해줄게."
하지만 마냥 그것을 외부에 발설하고 싶은 생각은 없는 것처럼 보였다.
이제와서는 뭐라고 대답하기에도 곤란한 상황이 되어버린 것이다.
천시예의 이야기를 긍정하는 것도, 부정하는 것도 쉽지 않아보였으니까 말이다.
적어도 나는 내가 운영하는 커뮤니티의 신뢰도를 떨어뜨리고 싶은 마음은 없었다.
나는 어쩔 수 없이 난감한 미소를 지으며 그녀를 바라보았다.
"내 비밀을 지켜주겠다고?"
"물론 맨입으로 비밀을 지켜주겠다는건 아니야. 그에 걸맞은 대가가 있어야겠지."
그러면 그렇지, 먼저 비밀에 대해 운운한 이유가 있던 모양이다.
내 비밀을 토대로 제 요구를 내세우려는 것이 분명했다.
나는 긴장한 얼굴로 그녀의 다음 이야기를 기다렸다.
대체 S급 헌터가 58만 유튜버에게 요구하려는 것이 무엇일까.
그녀의 다음 이야기를 기다리고 있으면, 검집에 검을 되돌린 천시예가 입을 열었다.
"닉네임 알려줘."
"······뭐?"
"[커뮤니티]에서 사용하는 닉네임 알려달라고. 혼자서만 내 정체를 알고있는건 불공평하잖아."
철컥-.
금속의 마찰음과 함께 조금은 불만이 있어보이는 시선이 나를 보았다.
"그러니까 빨리 알려줘. [커뮤니티] 안에서는 내 정체 절대 모르는 척하고."
나는 한동안 멍한 얼굴로 천시예를 바라보았다.
얼마나 대단한 요구를 하나 했더니, 퍽 대단한 요구를 해오는 천시예였다.
더군다나 눈앞에 보이는 얼굴을 보건데, 농담삼아서 하는 이야기는 아닌 것처럼 보였다.
천시예는 나에게 진심으로 커뮤니티에서의 닉네임을 요구하고 있는 것이다.
'나보고 커뮤니티에서 사용하는 닉네임을 알려달라고?'
엄밀히 말하면 관리자인 나도 별도의 닉네임을 가지고 있기는 했다.
아직까지는 해당 닉네임으로 게시글을 작성한 적은 없었지만 말이다.
허나, 그런 닉네임을 이런 방식으로 이 세상에 처음으로 공개하게 될줄은 몰랐다.
천시예의 요구에 나는 허탈한 목소리로 대답을 돌려주었다.
"거품판독기."
"······."
헌터유튜브의 전설, '헌잘알' 신유호.
나에게 처음으로 S급 헌터 지인이 생긴 날이었다.
5화
천시예와의 비밀스러운 대화 이후로 며칠이 흘렀다.
그동안 나는 유튜브 채널을 관리하거나, 커뮤니티 내부의 게시글을 보며 시간을 보냈다.
매일같이 커뮤니티가 정상적으로 돌아가고 있는지 확인한 것이다.
물론 S급들이 나누는 비밀스러운 대화를 지켜보는 맛도 있었다.
다른 곳에서도 가끔씩 나올법한 대화주제였지만, 이 분야 최고의 전문가들이 나오면 그 내용이 다르게 보이는 법이었다.
예를 들자면 지금 내 눈앞에 보이는 게시글 하나가 그러했다.
[ 제목 ] 전세계의 S급 헌터들 중에 가장 강한 사람은 누구라고 생각합니까?
[ 작성자 ] thundershock
[ 이용자 정보 ] 알렉스 오브라이어(29) / S급 / 뇌제
현재 이 커뮤니티에는 S급 헌터들만이 활동이 가능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여러 가지 의견이 나올만한 주제이기는 하지만, 당신들이 보기에는 S급들 중에 누가 가장 강한 사람이라고 생각합니까?
개인적으로는 미국의 '뇌제'가 가장 강하지 않을까 짐작하고 있습니다.
'뇌제'의 고유특성 '영구기관' 은 출력면에서 타에 추종을 불허하는 성능을 가지고 있습니다.
화력이나 전투 지속 능력면에서 비교해도 '뇌제'보다 강한 헌터는 그리 많지 않을 것 같군요.
그나마 비교될만한 사람을 꼽아보자면, 한국의 '신창'정도가 뇌제와 비슷할 겁니다.
다른 여러분들의 의견이 궁금합니다.
[ 댓글 5개 ]
[ 공지사항 / 수정 / 삭제 ]
나는 눈앞에 떠오른 게시글을 흥미진진한 눈으로 읽었다.
내 시선이 게시글의 마지막까지 내려갔을 즈음에는, 그런 내 입가에 옅은 미소가 걸려있을 정도였다.
게시글의 내용은 S급들 중에서 가장 강한 사람을 뽑아보자는 것이었다.
유명한 헌터들에 대해 다루는 유튜버인 내 입장에서는 매우 흥미로운 주제가 아닐 수 없었다.
해당 게시글을 작성한 작성자의 정체를 알지 못했더라면 말이다.
"자기 얼굴에 스스로 금칠을 하는구나."
나는 기가 찬 얼굴로 게시글을 바라보았다.
게시글을 작성한 작성자의 닉네임은 'thundershock'.
뇌제, 알렉스 오브라이어 본인이었다.
다시 말해서 뇌제 스스로 자기가 제일 강하다고 이야기한 셈이었다.
그것도 한국의 신창(神槍), 주선호와 스스로를 비교해가면서 말이다.
오만으로 가득차있는 뇌제의 게시글을 바라보던 나는, 그 자신감에 감탄하며 스크롤을 아래로 쭉 내렸다.
"뭐라고 적혀있는지 댓글이나 확인해볼까."
뇌제의 게시글에 달린 댓글들을 확인하기 위함이었다.
게시글의 하단으로 스크롤을 내리자, 뇌제의 게시글에 달려있는 댓글의 내용이 드러났다.
나는 뇌제에게 달린 댓글들을 하나씩 흥미롭게 읽어나갔다.
[ 댓글 5개 ]
- xkingx : ?
- 망원동불주먹 : 뇌제 어서오고
ㄴthundershock : 죄송하지만 저는 뇌제 본인이 아닙니다
- 마산사나이 최두식 : 저는. 한국의 불사기사. 최두식 헌터님이요.^^
- frz0777 : 신창이랑 뇌제가 절대 같은 급은 아닌데...
뇌제에게 달린 댓글은 총 다섯개.
그들 대부분이 뇌제의 이야기에 부정적인 반응을 표하고 있었다.
뇌제가 가장 강하다는 말에 동의하기 어렵다는 이야기였다.
그건 나 역시도 마찬가지였기에, 댓글들이 이런 반응을 보이는 것도 이해가 갔다.
중간에 신경쓰이는 댓글이 하나 있기는 하지만, 그걸 제외하고는 대부분이 비슷한 내용이었다.
"어떻게 뇌제를 신창한테 가져다붙여? 뇌제가 최상위권은 맞다지만 둘 수준이 엄청나게 차이나는데."
미국의 뇌제가 가진 강함에 대해서는 나도 충분히 이해하고 있다.
나 역시 그의 전력을 분석하기 위해 수많은 영상과 자료들을 확인해왔으니까 말이다.
허나, '헌잘알'인 내가 보기에 뇌제 알렉스의 랭킹은 정확히 5위정도였다.
그는 헌터계의 사천왕이 되기에는 많이 부족한 편이었다.
적어도 그가 자신의 얼굴에 최강이라고 금칠할만한 수준은 아니라는 이야기였다.
"아무리 그래도 신창급은 아니지. 댓글이라도 하나 달아둬야겠네."
나는 뇌제의 추악한 게시글을 바라보다가, 이내 손가락을 움직여 댓글창을 활성화했다.
그리고는 뇌제에게 달 댓글을 적어나갔다.
타닥, 타다닥-.
분주하게 움직이는 손가락이 허공에 나타난 키보드를 두드렸다.
그렇게 뇌제에게 전할 이야기를 전부 입력하고 나면, 내 닉네임으로 작성한 첫 댓글이 커뮤니티에 게시되었다.
"······뭐야? 답글이 바로 달렸네."
게시글을 작성한 뇌제 본인이 계속해서 게시글을 지켜보고 있었던 것일까.
댓글을 올리고서 머지않아 내 댓글에 답글이 달리는 모습이었다.
- 거품판독기 : 삐빅
ㄴ thundershock : 당신은 현재 어디에 거주하고 있습니까?
내 훌륭한 댓글에서 느껴지는 식견을 감지한 것이었을까.
뇌제는 곧바로 내 주소를 물어보는 모습이었다.
허나, 나는 그런 뇌제와의 팬미팅을 거절했다.
헌잘알인 나와 만나고 싶어하는 사람은 많은 편이었다.
안타깝게도 그런 사람들 모두와 만나기에는 내 일정이 너무나도 복잡했던 것이다.
나는 눈물을 머금고 뇌제와의 만남을 포기하는 수밖에 없었다.
"뇌제정도면 과대평가된 측면이 없지는 않지. 그렇다고 해서 그 강함이 어디가는건 아니겠지만."
다행히 나에게는 그동안의 빅데이터를 통해 쌓아올린 '전세계 헌터랭킹 TOP 10'이 존재하고 있었다.
그 누구보다도 헌터들의 강함에 대한 객관적인 자료를 가지고 있는 것이다.
조만간 유튜브 채널을 통해 공개할 예정이었는데, 아무래도 주기적으로 커뮤니티에 올리는 것도 괜찮을 것 같았다.
커뮤니티에 있는 사람들 역시 이 주제에 대해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는 것 같았으니까 말이다.
그렇게 내가 뇌제의 게시글을 빠져나와 다른 게시글을 탐색하고 있으면, 이내 내 귓가에 익숙한 소리가 울려퍼지는 모습이었다.
띠링-.
익숙한 알림음과 함께 내 눈앞에 새로운 메세지 하나가 출력되었다.
- 커뮤니티의 누적 활동치가 1000을 돌파했습니다!
- 새로운 기능, [부산물 매각]이 활성화됩니다.
내 눈앞에 나타난 메세지의 내용.
그것은 커뮤니티의 누적 활동치가 일정 수치를 넘어서, <커뮤니티 관리 기능>에 새로운 기능이 추가되었다는 내용이었다.
"[부산물 매각]?"
나는 화면에 출력된 메세지에 의아해하지 않을 수 없었다.
[커스텀 네트워크]에 성장의 여지가 있다는 사실이야 짐작하고 있었다만, 누적 활동치라는 보이지 않는 개념으로 집계되고 있는줄은 예상하지 못한 까닭이었다.
더군다나 [부산물 매각]이라는 기능은 그 이름만으로는 존재 의의를 짐작하기 힘들었다.
적어도 정상적인 커뮤니티에 어울릴만한 기능은 아니었던 것이다.
"이건 대체 뭐하는 기능이지?"
툭-.
내가 의문을 가지고 [부산물 매각] 기능에 대한 설명을 호출하면, 눈앞을 가득채우는 커다란 화면이 출력되는 모습이었다.
- [부산물 매각] 기능은 2등급 이상의 몬스터 부산물을 커뮤니티에 매각할 수 있는 기능입니다.
- 커뮤니티 이용자가 [부산물 매각] 기능을 사용하는 경우, 해당 부산물의 가치에 해당하는 포인트를 당사자에게 지급하고 부산물을 에너지로 환원합니다.
- 해당 절차를 통해 취득한 에너지는 [커스텀 네트워크]의 기능 유지를 위한 동력으로서 소모됩니다.
- [부산물 매각] 기능을 통해 획득한 에너지가 저장상한을 초과하는 경우, [커스텀 네트워크]의 등급을 상향조정하기 위해 잔여 에너지를 소모합니다.
- 에너지의 저장상한은 [커스텀 네트워크]의 등급에 비례해 증가합니다.
나는 눈앞에 떠오른 일련의 메세지들을 주의깊게 쭉 읽어나갔다.
괴물들의 부산물을 상태창에 매각하고서, 그 대가로 포인트를 받는다.
매각한 부산물은 에너지로 환원해 커뮤니티 유지와 특성의 등급 상향에 쓰인다.
다시 말해서 커뮤니티 내부에 포인트를 유통시키는 것과 동시에, 내 특성을 위한 경험치를 먹일 수 있다는 이야기이기도 했다.
한마디로 [커스텀 네트워크]의 성장을 위한 기능인 것이다.
"······이걸 통해서 내가 가진 특성을 성장시킬 수 있는건가?"
커뮤니티 유저들의 활동량에 따라 내 특성의 성장속도가 달라진다.
일종의 자동사냥에 가까운 기능인 셈이었다.
[커스텀 네트워크]를 성장시키기 위한 수단이 있다는 것은 만족스러운 일이지만, 그게 이런 방식의 자동사냥 형태로 나오게 될줄은 전혀 짐작하지 못했다.
"결국 내 활동보다는 다른 헌터들의 활동이 중요한거겠네. S급들만 커뮤니티에 초대한게 나름대로 정답이었나."
툭-.
나는 새로운 성장체계를 바라보며 씁쓸함을 머금은 채 화면을 닫았다.
그토록 고대하는 헌터가 되었건만, 점점 수렁에 발을 내딛는 기분이었다.
정상적인 헌터의 모습에서 서서히 멀어져가고 있는 것이다.
"아니, 그런데 방구석에서 커뮤니티만 관리하는게 대체 무슨 헌터야."
하루종일 커뮤니티만 주구장창 보고 있는 헌터.
적어도 내가 기대하던 헌터의 모습은 아니었다.
* * * * * *
중국 저장성에 위치한 게이트 안.
그곳에서는 현란하게 창을 휘두르는 남자 하나가 자리하고 있었다.
남자의 이름은 나선창 첸다오.
중국의 S급 헌터들 중 하나이면서, 저장성에서 영웅으로 추앙받는 인물이었다.
길게 늘어뜨린 검은 머리를 휘날리며 창을 휘두르는 그는 사방에 존재하는 괴물들을 짓이기고 있었다.
콰앙! 콰아아앙-!
첸다오의 창이 움직일 때마다 풍압이 터져나오며 몬스터들이 쓸려나간 것이다.
"후우, 후······!"
커다란 기술을 쏟아내고서 거칠게 숨을 몰아쉬는 첸다오.
나선창 첸다오의 공격이 주변을 초토화시킨 자리에는, 뼈와 살점이 드러난 괴물들의 사체만이 남아있었다.
쿵-.
한바탕 괴물들을 정리한 첸다오는 바닥에 창을 꽂아넣고서, 쓰러뜨린 몬스터의 사체를 깔고 자리에 앉았다.
거칠어진 첸다오의 호흡은 아직까지 쉽게 돌아오지 않는 상황이었다.
S급 헌터의 육체를 가지고도, 그것을 한계까지 몰아붙일만큼 전투를 이어나간 까닭이었다.
"신창··· 그를 따라잡기 위해서는 역시 이 방법밖에는 없다."
흐트러진 호흡을 내뱉는 첸다오의 눈에는 강력한 기세가 깃들어있었다.
그가 지금 늦은 시간에 이렇게까지 분주하게 사냥을 이어나가는 이유는 하나.
첸다오 자신이 오래전부터 등을 쫓아왔던 창의 달인을 따라잡기 위함이었다.
신창, 주선호.
한국에 있는 헌터들 중 최강이자, 전세계의 헌터들 중 최강이라고 여겨지는 남자.
그런 신창과 첸다오의 거리는 그가 S급 헌터에 다다랐음에도 아직까지 좁혀질 기미가 보이지 않았던 것이다.
"[부산물 매각]··· 이걸 이용한다면 대량의 포인트를 벌어들일 수 있겠지."
하지만 최근에 이르러서 그는 하나의 돌파구를 찾아내었다.
그것은 바로 첸다오가 'xkingx'라는 닉네임으로 활동하는 [커뮤니티]의 새로운 기능이었다.
새로운 기능의 이름은 [부산물 매각].
괴물들의 부산물을 팔아 포인트를 지급받을 수 있는 기능이었다.
더군다나 그렇게 획득한 포인트로는 [리워드] 메뉴에서 기간한정으로 판매하는 '랜덤 능력치 보정 티켓(B)'을 구매할 수 있었다.
첸다오는 그것을 위해 이른 새벽에 홀로 게이트에 나오는 위험한 행동을 감행한 것이었다.
"자그마치 레드 드레이크의 뿔이다. 헌터 장비를 만드는 회사에서도 구하지 못해 안달난 소재··· 이걸 매각한다면 못해도 하나당 천포인트는 받을 수 있을게 틀림없다."
첸다오가 매각할 것은 1등급 몬스터인 레드 드레이크의 부산물.
헌터 부산물을 취급하는 회사에서도 대량으로 구하지 못해 아쉬워하는 물건이었다.
이러한 물건이라면 제아무리 [커뮤니티]라고 하더라도 분명 후하게 포인트를 줄 터.
적어도 하나당 천포인트는 받을거라는게 첸다오의 계산이었다.
후우-.
그렇게 심호흡을 마친 첸다오는 눈앞의 매각화면을 향해 소재를 내밀었다.
그가 자신의 창을 이용해 잘라낸 드레이크의 뿔이었다.
첸다오의 소재가 화면에 닿은 직후, 강한 빛이 터져나오며 첸다오의 시야가 하얗게 물들었다.
- [레드 드레이크의 뿔]을 매각합니다.
- 58포인트가 정산되었습니다.
새하얗게 물들었던 시야가 다시금 돌아왔을 때.
첸다오는 자신의 손에 들려있던 비늘이 사라졌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것을 대신해 첸다오에게 지급된 포인트는 고작해야 58포인트.
그가 잡은 레드드레이크 19마리의 뿔을 전부 잘라와야, 첸다오가 예상하던 1000포인트를 간신히 넘어서는 수치였다.
"······."
눈앞에 떠오른 정산화면을 멍하니 바라보던 첸다오는, 아무것도 남지 않은 자신의 손을 조용히 바라보았다.
58포인트.
그 숫자를 보던 첸다오는 처음으로 출석체크 보상에 감사하는 마음을 가지게 되었다.
6화
[커스텀 네트워크]에 새로운 기능이 추가되고서 어느덧 일주일이 흘렀다.
그동안 나는 커뮤니티를 관리하면서, 틈틈히 영상편집 작업을 이어나갔다.
그중에서도 가장 마음에 드는 수확을 이야기해보자면, 단언컨데 최근에 올린 천시예의 전투 영상이었다.
셀레스티아 길드의 허가를 맡아 촬영한 천시예의 영상은 뜻밖에도 많은 이들에게 상당한 호응을 얻었다.
한국 헌터의 미래로 불리는 검귀 천시예의 영상이기 때문일까.
그게 아니면 내 뛰어난 식견이 포함된 분석영상인 까닭이었을까.
천시예의 전투분석영상은 순식간에 100만 조회수를 넘어 200만을 노리고 있었던 것이다.
"역시 S급들 영상이 확실히 조회수가 잘나오긴 해."
나는 천시예가 출연하는 영상의 조회수를 보며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었다.
지금은 바야흐로 대헌터시대라고 부르기에 부족함이 없는 시대였다.
그중에서도 S급 헌터들은 각 국가의 얼굴이라고 부를만한 존재들이었다.
그렇기에 국적을 불문하고 사람들은 자국의 S급 헌터가 타국 헌터들보다 뛰어나다는 사실에 기뻐하고는 했다.
다시 말해서 S급 헌터들의 영상은 흔히 말하는 애국심— 속된 말로 국뽕이라 부르는 감성과도 결부된다는 의미였다.
적어도 유튜브 알고리즘 측면에서의 확장성이 조금 더 크다는 것만은 분명해보였다.
"댓글도 비교적 클린한 편이고··· 이정도면 충분히 괜찮은 것 같은데."
나는 영상의 조회수를 확인하던 시선을 내려 그 아래의 댓글창을 바라보았다.
사람이 모이면 그 숫자만큼 논쟁이 생기는 것도 당연한 일.
댓글창에서는 헌터들의 강함에 대한 논쟁이 벌어지고 있었지만, 평소에 달리는 댓글들과 비교하면 충분히 정상적인 모습이었다.
물론 그마저도 얼마 지나지 않아서 정리될 것이 분명했다.
오늘 안으로 헌잘알인 내가 만든 '전세계 S급 헌터 랭킹 TOP 10' 영상이 업로드되는 까닭이었다.
"뭐, 헌터들 랭킹에 대한 논쟁도 오늘부로 완전히 끝이지."
내가 그동안 수많은 S급 헌터들의 전투를 보며 분석해온 정보들.
그것들을 바탕으로 무척이나 공정하게 매긴 랭킹이었다.
헌터 유튜브계의 최고 권위자인 내가 매긴 랭킹이라면 대부분의 사람들도 인정하고 납득할 수밖에 없을 터.
물론 그 내용에 반박하는 녀석이 있다고 하더라도 문제는 없었다.
단순히 댓글을 삭제하면 되는 일이었으니까 말이다.
그렇게 유튜브 댓글을 몇가지 더 살펴보던 나는, 이내 인터넷 브라우저를 종료하고 커뮤니티를 확인해보기로 했다.
"[네트워크 연결]."
띠링-.
내가 커뮤니티를 호출하자 눈앞에 반투명한 창이 떠오르는 모습이었다.
나는 눈앞에 떠오른 게시글들을 하나씩 유심히 살펴보았다.
- 아니 부산물 가치가 이게 맞는거냐? [3] (tex11)
- 포인트 일괄 구매합니다. 엔화 및 달러 가능합니다. [1] (yamazaki)
- 오늘의.점심.한식뷔페.^^ (마산사나이 최두식)
- 어제 하루동안 3천 포인트 벌었습니다. XD [7] (thundershock)
- 최두식 저 사람은 하루종일 커뮤니티만 하는거야? [3] (frz0777)
- 저. 오늘도. 포인트 벌었어요 ^O^ [1] (swordmaster)
며칠 전부터 새로운 기능이 해금된 까닭이었을까.
커뮤니티의 게시판은 대부분 한가지 주제로 흘러가는 모양새였다.
포인트 획득.
새로 생긴 포인트 수급처를 이용해, 얼마만큼의 포인트를 벌어들였는지 이야기하고 있는 것이다.
그중에서는 자신이 3천 포인트를 하루만에 벌어들였다고 주장하는 뇌제 알렉스같은 인물도 있었다.
"이제서야 포인트가 좀 제대로 돌기 시작하는 느낌이네."
포인트 수급처가 생기니까 커뮤니티 내부에 본격적으로 포인트가 풀리는 모습이었다.
이 사실은 나에게 있어서도 어느 정도 긍정적인 부분이 있었다.
기존처럼 출석체크를 통해서만 포인트가 수급가능한 상황에서는, 나 역시도 포인트 발행 기능을 제대로 이용할 수 없었으니까 말이다.
아직 시중에 충분한 포인트가 풀리지 않은 마당에, 내가 막대한 포인트를 가져봐야 이상한 모양새가 되는 까닭이었다.
이는 커뮤니티 내부의 신뢰도를 훼손할 수 있는 요소인 것이다.
"조금 더 시간이 지나면 포인트 발행도 고민해봐야 하려나."
커뮤니티에 대한 이용자들의 신뢰도는 지금의 나에게 있어서 가장 중요한 요소였다.
시간이 지나면서 더욱 다양한 기능들이 커뮤니티에 추가되어 갈 것이다.
다만, 그 전까지 이용자들을 충분히 붙잡아놓는 것은 커뮤니티에 대한 충분한 신뢰뿐이었다.
그를 위해서 검귀 천시예의 앞에서 S급 헌터 행세를 한 것이기도 하고 말이다.
그 덕분에 앞으로도 S급 헌터 행세를 해야겠지만 말이다.
"······."
생각해보니 조금 막막한 부분도 있기는 했지만, 그렇다고 해서 마냥 단점만 있는건 아니었다.
나름대로 S급 헌터 지인이 생긴 상황이 아니던가.
천시예의 인맥을 이용해서 S급 헌터들의 전투영상이라도 하나 촬영할 수 있으면 이득이었다.
내가 그런 생각을 하면서 앞으로의 미래를 고민하고 있던 도중.
지이잉-.
커뮤니티 게시판을 바라보던 내 스마트폰이 갑작스럽게 울리는 모습이었다.
나는 진동이 울리는 스마트폰을 주워들어 잠금을 해제했다.
"······뭐야?"
손가락을 내려 스마트폰의 알림 메세지를 확인해보면, 낯선 프로필 사진으로부터 도착한 메세지 한통이 있었다.
다만, 그 옆에 적혀있는 것은 나에게 있어서 다소 눈에 익는 이름이었다.
S급 헌터, 천시예.
그녀로부터 나에게 보내져온 메세지였으니까 말이다.
더군다나 메세지의 내용은 그보다 한층 더 예상치못한 것이었다.
"나보고 잠깐 얼굴 좀 보자고?"
아무래도 천시예가 나에게 무언가 용건이 있는 모양이었다.
그 용건이 같은 S급 헌터를 겨냥한 것인지, 58만 유튜버를 겨냥한 것인지는 직접 만나봐야 알테지만 말이다.
* * * * * *
역근처에 위치한 프랜차이즈 카페.
그곳에서 나는 불만이 가득해보이는 표정을 하고 있는 누군가를 바라보았다.
검은 머리카락 사이로 드문드문 보이는 새하얀 머리카락.
그리고 그런 머리카락을 조금이나마 가리려는듯이 눌러쓴 모자와, 눈을 가리고 있는 커다란 선글라스까지.
중증의 연예인병을 연상시키는 복장을 하고 있는건 당연하게도 나를 호출한 검귀 천시예였다.
그녀는 제 앞에 놓인 달콤한 버블티를 먹으면서도, 불만에 젖은 목소리로 자신의 스마트폰을 손가락으로 가리키는 모습이었다.
"여기에 오는동안 우연히 보게됐는데 말이야. 이건 대체 뭐야?"
그런 천시예의 스마트폰에는 내 채널, '헌잘알'의 영상 하나가 띄워져있었다.
내가 이곳에 오기 직전에 업로드한 영상이었다.
영상의 제목은 '전세계 S급 헌터랭킹 TOP 10'.
내가 한참 전부터 야심차게 준비해왔던 회심의 역작이었다.
"뭐긴 뭐야. 유튜브 영상이지."
"그걸 말하려는게 아니잖아. 여기! 내가 나오는 부분말이야!"
영상의 재생시간을 조작한 천시예의 손가락이 그녀 자신이 나오는 장면을 가리켰다.
랭킹 8위. 검귀 천시예.
깔끔한 폰트로 적혀있는 글자가 보이는 모습이었다.
내가 보기에도 훌륭하게 편집한 영상이었다.
"랭킹 8위?"
"그래, 그거 말이야! 왜 내가 랭킹 8위밖에 안되는건데?"
그녀는 8위라고 적혀있는 부분을 강조하면서 나를 노려보았다.
대체 뭐가 그리 불만인가 싶었더니, 내가 그녀를 랭킹 8위로 선정한게 불만이었던 모양이다.
그런 천시예의 모습에 나는 허탈한 미소를 지으며 이야기했다.
"설마 본인이 랭킹 1위일거라고 생각한건 아니지?"
"그건··· 1위까지는 아니더라도 3위정도는 줄 수 있었잖아."
"거기 나와있는 랭킹 8위도 최근 활약상을 보고서 올려준거야. 나도 나름대로 너를 고평가해서 8위에 넣은거라고."
하루종일 헌터들 분석하는게 내 생업 아니던가.
나름대로 냉철한 분석끝에 매긴 랭킹이었다.
천시예에게 8위를 매겨준 것도 내 입장에서는 나름대로 후한 결정이었다.
허나, 그녀는 그마저도 불만이었는지, 가늘게 뜬 눈으로 나를 바라보며 말했다.
"물론, 당신도 S급 헌터니까 나름대로 보는 눈이 있겠지만······."
"보는 눈이 있겠지만?"
"그래도 너무 저평가가 심하잖아. 아무래도 안되겠어. 밖에 나가서 나랑 직접 붙어."
여전히 나를 S급 헌터라고 생각하고 있는 까닭이었을까.
헌터 랭킹에 대해 운운하던 천시예는 하다못해 나보고 한판 붙자고 이야기하는 모습이었다.
애석하게도 나는 S급 헌터가 아니라 그녀의 요청에 응해줄 수 없었지만 말이다.
'E급 헌터가 S급 헌터랑 붙어봤자 1초도 지나기 전에 끝나겠지.'
애초에 내가 가진 특성은 전투쪽 계통조차도 아니었다.
나는 고작해야 에어컨 틀어놓고 커뮤니티 관리하는게 전부인 사람이었으니 말이다.
나는 천시예의 요구를 칼같이 거절했다.
"말도 안되는 요구야. 애초에 그런걸 부탁하려고 날 여기까지 불러낸건 아니겠지?"
"아니, 그런건 아니지만······."
"그럼 이상한 방향으로 돌아가지 말고 용건부터 이야기하고 보자고."
난감해하던 얼굴의 천시예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알았어."
그런 내 이야기에 그제서야 머리가 조금 식은 것이었을까.
천시예는 제 앞에 놓여있는 버블티를 쭉 들이키는 모습이었다.
두꺼운 빨대로 내용물을 한차례 빨아들인 이후.
천시예는 버블티를 내려놓은 채로, 나를 향해 시선을 보내며 물었다.
"당신도 [커뮤니티]에 속해있으니까 출석체크 포인트는 계속 받고 있는 중이지?"
버블티를 마신 천시예가 꺼낸 질문.
그것은 커뮤니티의 출석체크 기능을 통해 얻는 포인트에 대한 것이었다.
커뮤니티가 개방된 이후 2주가 넘는 시간이 흘렀으니, 대부분의 이용자가 네자리를 넘어서는 포인트를 보유하고 있는 상황이었다.
커뮤니티 내부에서는 나도 S급 헌터 행세를 하고 있는 상황이기에, 나는 천시예의 질문에 어느 정도 장단을 맞춰주었다.
"물론 매일 [커뮤니티]에 접속해서 포인트를 수령하고 있지."
"출석으로 획득가능한 포인트는 전부 다 가지고 있는거야?"
"하나도 안썼으니 그대로 남아있다고 봐도 무방할거야."
툭, 툭-.
내 이야기를 들은 천시예가 손가락 끝으로 테이블을 두드리며 고민하는 모습을 보였다.
머릿속으로 무언가 계산이라도 하고 있었던 것일까.
한참동안 고민에 잠겨있던 그녀는 이내 결심에 찬 눈으로 나를 보며 이야기했다.
"그럼 그 포인트 전부 나한테 팔아줘."
"뭐······?"
"당신이 가지고 있는 포인트, 전부 다 나한테 판매해달라고."
천시예는 진지한 표정으로 나에게 그렇게 이야기하고 있었다.
내가 가진 커뮤니티 포인트를 전부 그녀가 매입하겠다는 이야기였다.
더군다나 천시예의 이야기는 거기에서 그치지 않았다.
그녀는 오른손으로 손가락 두개를 펴서 나에게 내보였다.
그리고는 나를 향해 이야기했다.
"20억. 당신이 가진 포인트를 전부 20억에 매입할게."
현금으로 20억.
그것이 천시예가 나에게 제안한 금액이었다.
2천조차 안되는 포인트에 그녀가 내건 금액이 무려 20억.
그 어마어마한 액수를 조용히 곱씹어보던 나는, 어쩌면 이것이 자신에게 모종의 기회가 될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20억이라."
E급 특성, [커스텀 네트워크].
그것이 처음으로 자신의 진가를 발휘하는 순간이었다.
7화
다른 이용자와 포인트를 거래할 수 있을 가능성.
거기에 대해서는 이미 진작부터 예측하고 있었다.
<커뮤니티 관리 도구>에서 오래전부터 포인트의 양도가 가능하다는 사실을 고지해온 까닭이었다.
그런 포인트를 이런식으로 양도하게 될줄은 몰랐지만 말이다.
현금 20억.
무한히 발행할 수 있는 포인트를 넘기는 조건치고는 상당히 괜찮은 제안이었다.
내가 아무리 구독자 58만 8천명의 전설적인 유튜버라고는 해도, 20억을 무난히 벌어들일 수 있는 수준에는 미치지 못했다.
그런 의미에서 천시예의 제안은 나에게 있어 무척이나 매력적인 것이었다.
그만한 금액이 있으면 한동안은 영상을 업로드하지 않아도 먹고살 수 있을테니까 말이다.
"나쁘지 않은 제안이긴 하네."
"그렇지?"
"파는 것 자체에는 문제가 없어. 다만 거기에 몇가지 조건을 붙이고 싶은데."
20억을 받고 포인트를 파는 것 자체에는 문제가 없었다.
허나 나는 거기에 조건을 덧붙이기로 했다.
눈앞의 S급 헌터에게만 가능한 일이 있으리라는 판단에서였다.
"무슨 조건인데?"
그런 내 이야기를 들은 천시예가 의문을 표하면, 나는 천시예를 향해 내가 바라는 조건을 이야기했다.
정확히는 내가 처음 그녀와 안면을 텄을때부터 원하고 있던 조건을 말이다.
"천시예. 너 정도 되는 헌터라면 다른 S급 헌터들과도 친한 편이지?"
"으음··· 전부는 아니지만 몇명정도는 주기적으로 연락을 주고받기는 해."
"20억에 더해서 다른 S급 헌터의 컨텐츠 촬영, 거기에 내 유튜브에 나와서 인터뷰 하는 것까지. 이 조건이면 내가 가진 포인트를 전부 넘겨줄게."
내가 천시예에게 제시한 조건은 다른 S급 헌터의 촬영허락을 받아오는 일이었다.
물론 거기에 천시예의 개인 인터뷰 역시 덧붙였다.
갑작스럽게 20억이 생겼다고는 하지만, 나는 내 유튜브 채널 '헌잘알'을 그만둘 생각이 없었다.
빌게이츠나 호날두조차도 자신만의 유튜브 채널을 가지는 시대다.
명예욕과 권위주의의 화신과도 같은 내가 돈이 생겼다고 유튜브 활동을 중단하는 일은 없다는 이야기였다.
"내 인터뷰야 괜찮긴한데··· 다른 헌터의 토벌영상을 촬영하고 싶다는거지?"
"어려운 부탁이야? 들어주기 어렵다면 아쉽지만······."
"아니, 들어줄 것 같은 사람이 하나 있기는 해. 너도 [커뮤니티]에서 이미 많이 봤을 것 같은 사람이지만."
선글라스를 들어올린 천시예는 난감해보이는 얼굴로 나를 향해 이야기했다.
천시예가 부탁하면 쉽게 들어줄 것 같은 사람.
그리고 커뮤니티에서 자주 볼 수 있는 사람.
그 이야기를 듣던 내 머릿속에 불현듯 떠오르는 사람이 있었다.
나는 머릿속에 떠오른 인물의 이름을 천시예에게 이야기했다.
"······마산사나이 최두식."
"응. 최두식 아저씨라면 흔쾌히 부탁을 들어줄거야."
S급 헌터, 불사기사 최두식.
현재로서는 커뮤니티 지박령에 가까운 활동빈도를 보여주는 인물이었다.
천시예는 그런 최두식에 대한 이야기를 하면서도, 그를 불러내는게 그리 썩 내키지는 않는 표정이었다.
아무래도 최두식정도 되는 원로를 불러내는건 그녀 입장에서도 조금 부담스러운 모양이다.
'불사기사 최두식 정도면 그리 나쁘지 않은 조건이야.'
불사기사 최두식은 내 머릿속에 있는 객관적인 헌터 랭킹에서 11위정도는 차지할 수 있는 역량을 가진 인물이다.
그 정도의 퍼포먼스를 가진 인물이라면 그리 나쁘지 않은 컨텐츠 촬영이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무엇보다도 내 채널의 구독자들에게도 좋은 인상을 심어줄 기회가 될 것이다.
떠오르는 초신성의 인터뷰를 단독으로 따오고, 거기에 S급 헌터 최두식마저 섭외해 촬영할 수 있는 유튜버.
적어도 구독자들의 머릿속에선 내가 S급 헌터들을 인맥으로 데리고 있는 거물급 유튜버로 여겨질게 분명했다.
"좋아. 그렇게 거래하자."
"정말이지? 무르기 없기야?"
내가 제안을 수락하는 모습을 보이자, 곧장 반색하는 얼굴을 보여주는 천시예였다.
그런 천시예의 이야기에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이야기했다.
"나야 당장 포인트가 급한게 아니니까 상관없어."
어차피 나는 <커뮤니티 관리 도구>를 통해 포인트를 무한히 발행할 수 있는 사람이었다.
[리워드] 상점에서 상품을 구매하는 것만큼은 불가능하지만 말이다.
내 이야기를 들은 천시예는 환호하면서 손가락을 들어올렸다.
나 역시 그런 그녀의 행동에 응해 [커스텀 네트워크]로 구성한 커뮤니티를 호출했다.
"[네트워크 접속]."
"[네트워크 접속]."
띠링-.
익숙한 화면이 떠오르며 커뮤니티의 게시판이 눈앞에 드러났다.
그 이후의 일은 간단했다.
나는 [포인트] 메뉴로 들어가서 닉네임 'swordmaster'를 입력하고는, 1800 포인트를 생성해 그녀에게 선물했다.
"고마워. 덕분에 상점이 갱신되기 전에 물건을 구매할 수 있겠어."
20억짜리 포인트 거래.
처음으로 막대한 돈을 손에 쥔 순간이었다.
* * * * * *
천시예와의 거래를 끝마치고서 집에 돌아온 이후.
나는 집에 돌아오기까지 떠올린 몇가지 아이디어를 정리했다.
천시예와 대화를 나누면서 포인트의 가치에 대해 재고하게 된 까닭이었다.
기존까지는 커뮤니티에 풀린 포인트가 적어, 포인트의 정확한 가치를 가늠하기 힘든 상황이었다.
허나 지금은 [부산물 매각] 기능이 개방되며 대량의 포인트가 쏟아져나오기 시작한 상황이었다.
이건 조만간 커뮤니티를 기반으로 한 포인트 경제가 활성화 될 수 있다는 이야기이기도 했다.
"내가 생각한 것보다 포인트의 효용이 높은 편인 것 같은데. 이러면 S급 헌터들 사이에서는 현금보다 포인트 쪽이 선호도가 높아질지도 모르겠어."
나는 오늘 카페에서 마주했던 천시예의 모습을 떠올렸다.
천시예를 포함한 S급 헌터들은 기본적으로 스포츠 스타들의 연봉에 필적하는 금액을 수령했다.
적어도 그들이 헌터 장비를 구매하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돈이 부족하다고 느낄만한 상황은 거의 없다는 이야기였다.
하지만 포인트의 경우에는 이야기가 달랐다.
포인트는 현재 커뮤니티에 속해있는 S급 헌터 82명이 전부 간절히 원하고 있는 재화였다.
현금 20억을 지불해서라도 나에게 포인트를 구매하려고 했던 천시예가 대표적인 예시였다.
"사실상 [리워드]에서 소모하는 것 이외에도, 이용자들 사이에서 포인트가 돌게될거라는 이야기인데······."
그리고 이건 나에게 있어서 무척이나 커다란 기회였다.
S급 헌터들을 이용해 막대한 부를 챙길 수 있다는 이야기였으니 말이다.
처음부터 그런 목적으로 커뮤니티를 개설하기는 했지만 말이다.
막상 20억을 손에 쥐자 막연하게 느껴졌던 미래가 가까이 다가온 기분이었다.
더군다나 커뮤니티를 조금 더 적극적으로 이용한다면, 상태창 행세를 하면서 S급 헌터들을 내 목적대로 유도할 수 있을지도 몰랐다.
"앞으로 어떻게 커뮤니티를 운영해야 나한테 이득이 되려나."
그렇게 내가 다가올 미래를 떠올리며 고민에 빠져있던 도중.
띠링-.
나는 귓가에 울려퍼지는 상태창의 알림메세지에 시선을 돌렸다.
아무래도 무언가 새로운 메세지가 도착한 모양이었다.
내가 허공에 떠오른 메세지를 살펴보면, 거기에는 처음보는 유형의 메세지가 적혀있는 모습이었다.
- [커스텀 네트워크(E)]에 충분한 에너지가 축적되었습니다.
- [커스텀 네트워크(E)]의 등급이 다음과 같이 조정됩니다.
- 특성 등급 : E → D
- [커스텀 네트워크(D)]의 성장에 따른 새로운 기능들이 추가되었습니다.
내 눈앞에 떠오른 메세지의 내용.
그것은 커뮤니티에서 충분한 에너지를 수급해, [커스텀 네트워크]의 등급이 올랐다는 것이었다.
이제는 E등급의 특성이 아니라 D등급의 특성이 되었다는 이야기였다.
아무래도 [부산물 매각] 기능이 내 예상보다도 높은 이용률을 보이는 모양이었다.
더군다나 내 눈앞에 떠오른 메세지는 그것이 전부가 아니었다.
"새로운 기능이 추가됐다고?"
[커스텀 네트워크] 특성의 등급이 상승한 것에 따라, 새로운 기능들이 추가된 모양이었으니까 말이다.
나는 곧장 스크롤을 내려 새로운 기능들에 대한 정보를 살펴보았다.
- [신규 기능 : 경매장]이 추가되었습니다.
- [경매장]은 게이트로부터 파생된 물건을 위탁해 판매할 수 있는 공간입니다.
- [경매장]에 올라온 물건은 포인트를 통해서만 거래가 가능합니다.
- [경매장]에서 발생하는 거래에 수수료를 부과해 포인트를 회수할 수 있습니다.
- [신규 기능 : 긴급보호]가 추가되었습니다.
- [긴급보호]는 [커스텀 네트워크]의 잔여에너지를 소모해 관리자를 보호하는 방어막을 형성하는 기능입니다.
- [긴급보호]는 하루에 한 번 활성화가 가능하며, 잔여 에너지가 부족한 경우 사용이 취소될 수 있습니다.
나는 자신의 눈앞에 떠오른 신규 기능들에 대한 내용을 흥미로운 시선으로 읽어나갔다.
내가 가진 특성이 진화하며 새롭게 추가된 기능들은 실로 파격적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새로운 기능들이 하나같이 나에게 필요한 기능들인 까닭이었다.
"······[경매장] 기능이 커뮤니티에 추가된다니."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오는 것은 당연하게도 [경매장] 기능에 대한 것이었다.
커뮤니티 내부에 [경매장]을 개설해, 포인트를 바탕으로 물건을 거래할 수 있게 된 것이다.
더군다나 경매가 진행되는 동안 해당 물건이 [커뮤니티]에 수납되는 모양이었다.
사실상 경매가 진행되는 중에는 일종의 아공간이나 다름없어지는 셈이었다.
"게이트와 관련된 아이템만 이용이 가능하다고는 하지만, 그런 제약을 감안해도 엄청난 기능인데."
물론 [경매장]을 이용하기 위해서는 게이트로부터 파생된 물건이어야만 한다는 제약이 있었다.
허나 그런 부분을 감안해도 엄청난 기능임에는 틀림없었다.
헌터 장비와 같은 물건들을 장소나 거리의 제약없이 거래할 수 있다는 의미였으니 말이다.
수수료를 통해 포인트를 소각할 수 있다는 것도 커다란 장점이었다.
"그리고 그 다음은··· [긴급보호] 기능인가."
[경매장]과 함께 추가된 새로운 기능 역시 훌륭한 편이었다.
기존에 가지고 있던 특성에 추가된 세부기능의 이름은 [긴급보호].
말 그대로 특성의 보유자인 나를 보호하는 기능이었다.
외부로부터의 공격에서 최소한의 생존을 담보하는 능력인 셈이다.
"이건 그나마 헌터다운 기능이기는 한데, 대체 왜 [커스텀 네트워크]에 붙어있는지를 모르겠네."
내가 가지고 있는 능력들 중에서는 가장 헌터다운 능력이기도 했다.
[커스텀 네트워크]에 내장된 에너지를 이용해 보호막을 생성하는 능력이었으니까 말이다.
'긴급'이라는 말이 붙어있는만큼 제약이 적지 않은 편이기는 하지만 말이다.
대체 이게 왜 [커스텀 네트워크]에 달려있는 기능인지에 대한 의문을 제외하면 만족스러운 편이었다.
적어도 앞으로의 컨텐츠 촬영에서 최소한의 안전을 담보해줄거라는 사실만큼은 분명해보였다.
"새로 추가된 경매장 기능이나 한번 살펴봐야겠다."
그렇게 새로운 기능들에 대한 확인을 마친 나는, 손가락을 움직여 눈앞에 나타난 창을 닫았다.
그리고는 커뮤니티에 접속해 새롭게 추가된 [경매장] 메뉴를 터치했다.
내가 새로운 기능에 대한 설명을 확인하느라 제법 시간을 소모한 까닭이었을까.
[경매장]에는 이미 물건 하나가 등록되어있는 상황이었다.
나는 경매장에 추가된 첫번째 상품을 유심히 살펴보았다.
< 커뮤니티 경매장 >
* [오크 생식기]
- 판매가 : 99,999 포인트
- 남은 시간 : 47시간 59분
- 상품 설명 : 정력에.무척.좋습니다.^^
툭.
나는 곧바로 [경매장] 메뉴를 닫아버렸다.
8화
게이트 너머에 위치한 드넓은 평원 한가운데.
그곳에는 커다란 활을 들고 있는 남자 하나가 자리하고 있었다.
남자의 정체는 대한민국의 S급 헌터들 중 하나, 파천궁(破天弓)— 오지후.
한국의 S급 헌터들 중에서는 최약체로 평가받는 인물이기도 했다.
그는 지금 아무도 없는 게이트에서 혼자 괴물들의 부속물을 수집하는 중이었다.
"[경매장] 기능이라······."
오지후는 눈앞에 떠오른 반투명한 창을 바라보며 홀로 중얼거렸다.
지금 그의 눈앞에 떠올라있는 창의 정체는, 오지후가 'tex11'이라는 닉네임으로 활동하고 있는 [커뮤니티]였다.
그가 매일 밤마다 무단으로 게이트에 찾아와 사냥을 이어가는건 [커뮤니티]의 영향 때문이었다.
[커뮤니티]에 그가 사냥한 몬스터의 부속물을 판매하면 포인트로 정산해주는 까닭이었다.
물론 오지후 본인의 실력때문에 혼자서 잡을 수 있는 몬스터의 수준에는 한계가 있었다.
그 탓에 그가 지금까지 모은 포인트를 정리하더라도, 고작해야 3812포인트밖에 되지 못하는 상황이었다.
"포인트를 받고 물건을 판매하는게 적어도 이 지긋지긋한 사냥보다는 효율적이겠지."
서걱, 서걱-.
오지후의 시선이 제 앞에 놓여있는 괴물을 바라보았다.
처참한 몰골로 쓰러진 몬스터가 오지후의 손길에 의해 부위별로 해체되는 중이었다.
원래같았으면 길드의 직원이 처리했을 작업이었지만, 허가없이 게이트에 입장한 지금은 오로지 오지후 본인의 몫이었다.
그는 자신의 손으로 괴물들을 도축해야하는 이 상황 자체가 불쾌하기 짝이 없었다.
허가없이 게이트에 들어와야하는 상황만 아니었다면 결코 자신의 손으로 이런 작업을 하지는 않았을 터였다.
"후우··· 빌어먹을 해체 작업······."
퉤엣-.
정리가 끝난 괴물들을 바라보던 오지후는 바닥에 침을 뱉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불쾌함이 가득한 표정으로 코를 틀어막은 그는, 이내 손에 쥐고 있던 해체용 칼을 바닥에 내던졌다.
그리고는 정리한 부산물을 모조리 [커뮤니티]에 때려박았다.
- 186포인트가 정산되었습니다.
띠링-.
정겨운 소리가 나며 오지후의 눈앞에 메세지가 떠오르는 모습이었다.
그가 야밤의 해체작업을 이어나가며 획득한 포인트가 186 포인트.
매일 출석체크 보상으로 지급되는 100포인트와 비교해도 얼마 차이나지 않는 액수였다.
수백억 자산가인 그가 기울인 노력에 비해 초라한 보상이었던 것이다.
"고작 186포인트? 대체 뭐 얼마나 대단한 몬스터를 잡아오라는건지, 참······."
초라한 정산창을 바라보던 그는 피묻은 장갑을 벗어 바닥에 집어던졌다.
아무리 그에게 포인트가 필요하다고는 하지만, 이런식으로 늦은 밤에 나와서 작업하는건 비효율적이었다.
적어도 S급의 말단에 위치한 오지후의 수준에서는 충분한 사냥 효율이 나오지 않았던 것이다.
이럴바에는 그냥 [경매장]에 아이템을 처분하는 편이 더 효율적일 것 같다는게 오지후의 생각이었다.
툭-.
바닥에 떨어진 해체용 장갑을 짓밟던 그의 시선이, 이내 제 허리춤에 매여있던 부적으로 향했다.
"······."
오지후의 허리춤에 매달려있는 화려한 디자인의 부적.
그것은 그가 일찍이 게이트에서 습득한 S급 장비중에 하나였다.
<오르타의 은총(S)>.
소모성 아이템의 효과를 100% 증가시켜주는 장신구.
여태껏 오지후의 여정을 함께해온 물건들 중 하나였지만, 최근에 들어서는 소모성 아이템의 사용빈도가 크게 줄어든 상황이었다.
더군다나 최상위 등급의 몬스터에게 통할만한 수준의 소모성 아이템은 터무니없는 가격을 자랑했다.
그런만큼 오지후에게 있어서는 계륵같은 존재였던 것이다.
"아무래도 이걸 판다면 포인트를 꽤 수급할 수 있을 것 같은데."
그럼에도 소모성 아이템을 애용하는 헌터들에게 있어서는 여전히 훌륭한 장비이기도 했다.
[커뮤니티]에 속한 S급 헌터라면 이 장비의 진가를 알아보고 구매하는 이들이 나올 수도 있을 터.
후우-.
한숨을 내쉬며 고민하던 오지후의 손이 허리춤에 있는 부적을 붙잡았다.
그리고는 손가락을 움직여 [커뮤니티]의 메뉴를 조작하기 시작했다.
- 판매하실 물건을 올려주세요.
오지후는 <오르타의 은총(S)>을 반투명한 창에 올려놓았다.
그러자 그 아래에 가격을 입력하기 위한 창이 떠올랐다.
경매를 붙여 입찰을 받을 것인지, 지정한 가격으로만 판매를 받을 것인지 설정하는 창이었다.
입찰이 들어오는 경우 지정한 가격보다 더 높은 가격으로 판매할 수 있는 셈이었다.
"경매는 무슨 얼어죽을 경매야. 이게 대체 얼마에 팔릴줄 알고."
오지후는 잠시동안 입찰을 받을지 고민했지만, 이내 경매를 포기하고 즉시판매가를 선택했다.
판매가 10,000포인트.
1만 포인트를 지불하면 <오르타의 은총(S)>을 팔겠다는 이야기였다.
해당 가격 밑으로는 절대 팔지 않겠다는 이야기이기도 했다.
그렇게 판매가를 결정한 오지후는 착잡한 마음으로 등록버튼을 눌렀다.
"후우··· 이번 [리워드]가 갱신되기 전에 팔려야할텐데."
긴장한 얼굴의 오지후가 눈앞의 화면을 바라보았다.
커뮤니티의 [경매장]에 올려놓은 아이템을 미련이 담긴 눈으로 지켜보는 것이다.
오지후가 <오르타의 은총(S)>을 올려놓고서 1분여 후.
띠링-.
그의 눈앞에 있던 아이템이 순식간에 모습을 감췄다.
- <오르타의 은총(S)>이 10,000포인트에 판매되었습니다.
- 수수료 10%를 제외한 9,000포인트가 지급됩니다.
오지후가 올렸던 장비 아이템이 올린지 1분만에 팔려나갔다.
무려 1만 포인트나 되는 고가에 아이템을 올렸는데도 빠르게 팔려나간 것이다.
순식간에 팔린 아이템을 바라보던 오지후는 당황한 눈으로 [경매장]의 화면을 조작했다.
허나 사라진 아이템은 시간이 지나도 돌아오지 않는 모습이었다.
"뭐야? 이게 어떻게 1분만에 팔려?"
파천궁 오지후가 자신의 애착 아이템을 판매한 날이었다.
* * * * * *
천시예와의 약속 이후로 어느덧 며칠이 흘렀다.
그와 함께 내가 그녀와 나누었던 약속의 순간도 빠르게 찾아왔다.
해가 저물어가는 저녁.
천시예가 나를 고급 일식집에 불러들인 것이다.
그것도 대화를 위한 프라이빗 룸을 예약해서 말이다.
평소라면 나도 아주 큰 마음을 먹었을 때나 찾아갈 수 있을만한 가게였다.
허나, 1년에 수백억을 벌어들이는 S급 헌터쯤 되면 씀씀이부터가 다른 것일까.
그녀는 자신이 저녁을 사겠다며 나를 식사자리에 초대하는 모습이었다.
"비싼 곳이라 그런가, 가게 분위기가 좋아보이네."
"아무리 나라고 해도 가볍게 부를 수 있는 사람은 아니라서 괜찮은 곳으로 예약했어."
천시예는 그렇게 말하며 제 앞에 놓여있는 젓가락을 만지작거렸다.
가격대가 제법 있는 곳이라 그런지는 몰라도, 도자기 받침대에 정갈하게 수저가 놓여있는 모습이었다.
나는 그런 천시예를 바라보면서, 안주머니에 넣어둔 든든한 물건의 존재감을 느꼈다.
S급의 장비 아이템, <오르타의 은총(S)>.
[경매장]에 올라온 물건을 내가 포인트를 생성해 구매한 물건이었다.
'다른 물건들보다도 이쪽이 더 나한테 적합하다.'
물론 경매장에는 <오르타의 은총(S)> 이외에도 다양한 물건이 올라와있었다.
최두식이 올린 쓸모없어보이는 물건들을 포함해, 각양각색의 헌터장비가 올라오기 시작한 것이다.
그중에는 어마무시한 가격에 올라온 S급의 무기 역시 존재하고 있었다.
지나치게 눈에 띄는 액수였기에 대놓고 구매하지는 못했지만 말이다.
다만, <오르타의 은총(S)>의 경우 적당한 가격에 올라왔기에 바로 구매했다.
내가 아무리 헌터라고는 하지만, 나 개인의 능력보다는 소모성 아이템의 위력쪽이 더 강한 편이었다.
그런 의미에서 <오르타의 은총(S)>은 나에게 무척이나 잘 어울리는 물건이기도 했다.
'아무래도 [경매장]에 올라오는 소모성 아이템을 주기적으로 사들여야겠어.'
소모성 아이템을 구비해두는 것만으로도, 헌터 비스무리한 흉내정도는 낼 수 있을 것이다.
언제 어디서 게이트가 열릴지 모르는 세상이었다.
제 한몸 건사할만한 능력은 갖추고 있는 편이 좋을 터였다.
"크흠, 흠······."
그렇게 내가 자리에 앉은 채로 테이블 위의 내용물을 살펴보고 있으면, 이내 이 자리의 주인공이 문을 열고 들어오는 모습이었다.
미닫이 문을 열고 들어오는 거대한 체격의 중년.
일찍이 TV에서 수차례 보아왔던 S급 헌터가 방에 들어와 착석했다.
불사기사, 최두식.
커뮤니티 닉네임 '마산사나이 최두식'과 처음으로 대면하는 순간이었다.
"막내야, 뭘 이렇게 비싼 곳으로 잡았냐."
자리에 앉은 최두식은 내 옆자리에 있던 천시예를 향해 이야기했다.
천시예가 일찍이 이야기했던 것처럼, 어느 정도 친분이 있는 모양이었다.
그 사실을 증명하듯이 천시예는 제 앞에 놓인 물컵을 들어올리며 이야기했다.
"늘 이야기하지만 내가 아저씨 입맛이랑 못맞춘다니까."
"하여간 요즘 것들은 입만만 까다로워서는, 쯧."
"아저씨도 돈만 쌓아두지말고 좀 쓰고다녀. 헌터 생활 그렇게 오래했으면 돈이야 많이 있을거 아냐."
"아서라. 비싼데 다녀봤자 입맛만 버린다. 오마카세니 뭐니 하는 곳들 다닐바에야, 돈 덜내고 실비집이나 찾아가고 말지."
나는 마산사나이를 표방하면서도 서울말이 능숙해보이는 최두식을 바라보았다.
헌터계의 원로이자 거두인 최두식이지만 천시예를 상대로는 손녀 대하듯이 구는 모습이었다.
천시예 역시 허물없는 태도를 보이는 것을 보건데, 그녀가 왜 촬영허가를 받아낼 수 있다고 자신했는지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렇게 천시예와 짧은 대화를 나눈 최두식은, 머지않아 나를 향해 시선을 보내며 물었다.
"그런데 이쪽은 처음 보는 얼굴인데 누구신지?"
"처음 뵙겠습니다. 헌잘알 채널을 운영하는 신유호라고 합니다."
"그래, 헌잘알··· 잠깐만, 헌잘알 채널이라고 했나?"
내 유튜브 채널명, 헌잘알.
그것을 들은 최두식은 놀란 눈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구독자 59만 1천명의 월드클래스 유튜버, 헌잘알에 대해 이미 알고 있었던 것일까.
나는 눈이 휘둥그래진 최두식을 향해 물었다.
"혹시 저를 알고 계신겁니까?"
"헌잘알··· 잘 알고 챙겨보기도 하지. 옛날부터 구독도 했어."
역시나 뛰어난 식견을 가진 S급 헌터이기 때문이었을까.
그는 내가 운영하는 헌잘알 채널의 구독자이기까지 했다.
다시 말해서 그가 알림설정만 한다면 매일같이 내 프리미엄 분석영상을 시청할 수 있을거라는 이야기였다.
최두식은 유튜버 헌잘알인 나를 향해 악수를 청했고, 나는 그런 최두식의 악수를 공손하게 받아들였다.
"유명한 유튜버를 이렇게 실제로 만나니 반갑구만."
"저야말로 이런식으로 구독자를 뵙게될줄은 몰랐습니다. 만나서 영광입니다, 최두식 헌터님."
아무래도 불사기사 최두식과는 말이 잘 통할 것 같았다.
내가 그런 생각을 하며 손을 거두어들이면, 최두식이 시선을 돌려 천시예에게 묻는 모습이었다.
"그런데 막내야. 유튜버는 갑자기 왜 데려온거냐?"
"이 사람이랑 내가 아저씨한테 부탁하고 싶은게 있어서."
"약속? 갑자기 무슨 약속? 그것도 천하의 검귀가 다른 사람의 약속을 들어준다고?"
천시예의 이야기를 들은 최두식은 의아한 눈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평소에 인터뷰조차 받아주지 않던 검귀 천시예가 나를 위해 부탁한다는 사실이 이해가 가지 않는 모양이었다.
하기야, 당연히 그럴만도 했다.
S급 헌터쯤 되면 평범한 사람은 쉽게 만날 수 없는 슈퍼스타였으니까 말이다.
최두식의 시선을 받은 천시예는 한쪽 손으로 입가를 가리며, 나를 향해 소리없이 입모양으로 이야기를 전했다.
'정체 말해도 돼?'
진지한 표정으로 물어오는 천시예.
아무래도 복잡한 이야기를 대신해 내가 S급 헌터라고 설명하고 싶은 모양이었다.
솔직히 말하자면 곤란한 이야기이기는 했지만, 결국 포인트를 적극적으로 사용하려면 몇명에게는 정체를 털어놓을 필요가 있었다.
눈앞의 최두식같은 S급 헌터들을 내 고객으로 만들기 위해서라도 말이다.
그에 나는 고개를 끄덕여 수긍했다.
내 허락을 받은 천시예는 최두식을 향해 시선을 돌렸다.
"아저씨. 지금부터 말하는 이야기는 절대 밖에서 꺼내면 안돼. 알겠지?"
"알았으니까 빨리 말해봐라. 내가 입 무거운 사람인거 막내는 잘 알지?"
천시예의 이야기에 최두식은 알겠다며 물컵을 들어올렸다.
그리고는 컵에 담긴 냉수를 들이키는 모습이었다.
그런 최두식을 향해 천시예의 진지한 목소리가 울려퍼졌다.
"이 사람 말이야··· 사실 실력을 숨기고 다니는 S급 헌터야."
"푸흡······!"
최두식의 입에서 냉수가 쏟아져나왔다.
9화
콜록, 콜록-.
방 안에 거친 기침소리가 터져나왔다.
냉수를 마시던 최두식이 천시예의 이야기를 듣고서 물을 뿜어낸 까닭이었다.
천시예가 꺼낸 이야기가 최두식의 상상 이상으로 충격적이었던 것일까.
최두식은 놀란 눈으로 천시예를 바라보며 물었다.
"그거, 정말이냐?"
"아저씨는 내가 농담하는거 한번이라도 본적 있어?"
"······아예 없었지. 막내 네가 그런 성격은 아니니까 말이다."
"그런데도 내가 지금 농담하는거라고 생각하는거야?"
그런 천시예의 이야기에 무언가를 느꼈는지, 최두식이 나를 향해 시선을 돌렸다.
나를 바라보는 최두식의 시선은 사람을 분석하는 눈빛이었다.
내가 S급 헌터라고 사기를 치며, 불온한 목적으로 천시예에게 접근했는지 고민중인 모양이었다.
물론 사기를 치고 있는 것도 맞고, 불온한 목적으로 접근한 것도 사실이기는 했다.
"흐음······."
최두식의 중후한 시선이 나를 가만히 응시하기를 잠시.
쿵-.
머지않아 최두식은 물컵을 테이블에 내려놓으며 나를 향해 물어보았다.
"S급 헌터라면 [커뮤니티]에 대해서도 이미 알고 있겠지?"
"예. 알고 있습니다."
"S급 헌터가 아니라면 [커뮤니티]에 접속하는건 불가능하지. 혹시 지금 올라온 글들중에 아무거나 읽어줄 수 있나?"
최두식이 나를 테스트하기 위해 꺼낸 질문.
그것은 나로 하여금 커뮤니티에 있는 게시글 하나를 읽어달라는 부탁이었다.
나에게 있어서는 그리 어렵지 않은 일이었다.
내가 비록 S급 헌터는 아니지만, 그들과 같은 커뮤니티를 이용하고 있었으니까 말이다.
나는 곧장 커뮤니티를 실행해, 메인 페이지에 떠올라있는 게시글들을 살펴보았다.
- ◆◇ 포인트 무한매입 ◇◆ (yamazaki)
- '마산사나이 최두식' 이 사람 맨날 이상한 글만 쓰던데 [10] (frz0777)
- 경매장에 몬스터 생식기로 도배해놓은 사람 누구인가요? [5] (thundershock)
- 중국이 장차 세계 1위 경제대국이 될 수밖에 없는 이유 [3] (xkingx)
- 오늘.저희 막내가.비싼밥 사준다네요.^^ [1] (마산사나이 최두식)
미닫이 문을 열기 전에 게시글을 작성하기라도 했던 것일까.
글 목록의 하단에 최두식의 게시글이 보이는 모습이었다.
허나, 이러한 게시글 목록에서 가장 이목을 끄는 것은 단연코 하나였다.
이용자명 'frz0777'.
무려 10개나 되는 댓글이 달려있는 게시글이었다.
나는 최두식이 가장 궁금해할만한 게시글의 제목을 알려주었다.
"마산사나이 최두식 이 사람 맨날 이상한 글만 쓰던데."
"뭐? 어떤 개자식이야! [네트워크 접속]!"
내 이야기를 들은 최두식은 곧장 커뮤니티에 접속하는 모습이었다.
그리고는 허공에 손가락을 움직여 분주하게 상태창을 조작하기 시작했다.
자신을 비난하는 글에 격노의 감정이라도 들끓어오른 것이었을까.
최두식의 손가락은 무척이나 빠르게 타자를 이어나가는 모습이었다.
툭. 투둑-.
그런 최두식의 모습을 지켜보던 천시예는, 난감한 얼굴로 눈썹을 꿈틀거리며 나에게 물었다.
"정말 그런 글이 올라온거야?"
"댓글도 많이 달려있더라고."
"그래? 나도 잠깐 보고 와야겠네."
아직 코스가 시작되지 않은 고급 일식집의 안.
그곳에는 커뮤니티에 몰두하는 세 사람의 모습만이 남아있었다.
이러한 풍경은 음식을 가져온 점원이 들어오기 전까지 계속해서 이어졌다.
* * * * * *
코스요리가 들어온 이후부터는 세 사람의 대화가 본격적으로 이어졌다.
커뮤니티 중독이 아닌가 의심되는 두 사람의 태도는 코스가 시작되자 언제 그랬냐는듯이 사라진 것이다.
그렇게 나는 비싼 코스요리를 먹으면서 비즈니스에 대한 대화를 나누었다.
다행히 최두식은 나와 천시예의 요구를 흔쾌히 수락하는 모습이었다.
별 고민조차 하지 않은 채로 내 촬영요청을 받아들인 것이다.
"우리 막내가 부탁하는데 안될 것도 없지. 다음주 수요일에 토벌 일정이 있으니 따라오면 될거다."
"감사합니다. 그 유명한 불사기사의 전투를 직접 제 카메라에 담을 수 있어서 영광이군요."
"크흠··· 뭐, 영광이랄 것 까지야 있나. 대신 조건이 하나 있는데 말이지······."
그 대신에 최두식은 한가지 조건을 내걸었다.
무척이나 간단한 조건이었다.
"내가 이렇게 큰맘먹고 촬영을 허락해줬는데, 막상 그렇게 찍은 자료를 가지고 안좋은 말을 꺼내던 녀석들이 있어서 말이다."
"걱정하지 않으셔도 괜찮습니다. 저는 불사기사 정도면 대한민국 뿐만이 아니라 전세계를 통틀어서 최고의 탱커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빈말이 아니라 진심으로 하는 이야기였다.
탱커 직군은 헌터들 중에서도 숫자가 많은 편이었다.
화력이 안나오는 인간들이 죄다 방어구로 떡칠해놓고 자신이 탱커라고 주장하는 것이다.
불사기사 최두식은 그런 탱커 직군의 소금과도 같은 존재였다.
그런 내 이야기가 마음에 들었는지, 최두식은 만족스러운 미소를 머금으며 말했다.
"이거, 가만보니까 젊은 친구가 아주 보는 눈이 있구만."
"제가 밥먹고 해온 일이 헌터들 전투 지켜보는거라서, 나름대로 보는 눈에는 일가견이 있다고 자부합니다."
"S급이면서 겸손하기까지 하다니. 좋아, 아주 마음에 들어!"
최두식은 호통한 웃음소리를 터뜨리며 소주를 한 잔 들이켰다.
그리고는 손가락으로 나를 가리키며 천시예에게 이야기했다.
"막내야. 이런 각박한 세상에서도 우리같은 S급들은 좀 알고 지내야하지 않겠냐."
"······아저씨?"
"다음부터는 이 유튜버분도 불러서 자주 식사하자고. 내 말 무슨 소리인지 알지?"
더군다나 천시예에게 S급 헌터들의 모임을 만들자 주장하는 모습이었다.
급격하게 줄어든 거리감이 눈에 보일 정도였다.
그렇게 수많은 코스요리속에서 우리는 여러가지 대화를 나누었다.
한참동안 이어지던 코스가 중반이 넘어서고, 슬슬 식사시간이 길어지던 즈음.
최두식은 자리에서 일어서며 나를 향해 이야기했다.
"혹시 담배 피우나?"
"예. 같이 나가겠습니다."
"그래. 잠깐 불 좀 빌리자고."
아무래도 밖에 나가서 담배를 피우려는 모양이었다.
나는 그런 최두식과 동행해 밖으로 나갔다.
그와 함께 인적이 드문 곳으로 나가면, 그는 담배를 피우며 이전과는 다른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후우-.
여러 가지 감정이 뒤엉킨 복잡한 시선이 내 모습을 비추고 있었다.
"뭐, 사람마다 이유가 있지 않겠나? 그러니 S급이라도 하나정도는 제 실력을 숨겨도 이상할게 없겠지."
"······."
"내가 우리 막내를 참 예전부터 봐왔어. 예전에는 같은 길드에 있었는데, 그때부터 두각을 드러내던 천재였지. 그때는 참 귀여웠는데 말이야."
바깥에서 나와 대화를 나누기 시작한 최두식의 목소리는 무척이나 진지했다.
안에서 들려오던 호탕한 목소리와는 다르게 다소 무게가 느껴지는 목소리였다.
그가 나에게 무언가 의미심장한 메세지를 전하려고 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 내 예상을 증명하듯이, 최두식은 잿빛 연기를 내뿜으며 말을 이어나갔다.
"어린 시절부터 게이트를 돌아다녔는데, 그런 아이가 인간관계라고 멀쩡하겠나? 그래도 아는 사람이라고 숨어있는 S급 헌터를 데려왔으니, 이제는 그 노력을 조금은 인정해줘야겠지."
"······그렇습니까."
"자네도 헌터들 일을 아는 사람일테니, 주선호 그놈에 대해서도 잘 알고 있겠지?"
S급 헌터, 신창(神槍) 주선호.
내 머릿속 객관적인 헌터 랭킹에서 당당하게 1위를 차지하고 있는 인물이었다.
나는 고개를 끄덕여 최두식의 질문에 긍정했다.
"한국에 신창을 모르는 사람이 어딨겠습니까. 헌터로 밥벌어먹고 사는 사람이면 당연히 알아야겠죠."
"그놈을 조심해. 주선호 그놈 위험한 놈이야."
허나, 그런 내 대답에 돌아온 말은 뜻밖의 이야기였다.
세계 최강의 헌터, 신창 주선호에 대한 경고의 말.
최두식은 진심으로 나에게 그런 이야기를 전해온 것이다.
내가 거기에 대한 물음을 던지기도 전에, 최두식의 이야기가 계속해서 이어졌다.
"자네도 S급이니 제 한몸 건사는 하겠지만, 그래도 그놈은 만만하게 볼 녀석이 아니지."
"최두식 헌터님."
"적어도 막내랑 다니는 동안에는 조심하는게 좋을거야. 그놈이 그렇게 보여도 막내와 불구대천의 원수니까 말이야."
검귀가 사실은 신창에게 원한을 가지고 있다는 정보.
나로서는 유튜버 생활을 해오며 단 한번도 접하지 못했던 내용이었다.
그러한 사실을 알려준 최두식은 어느새 짧게 줄어든 담배를 바닥에 집어던져 발로 밟았다.
무겁고 진지한 대화를 나눈 까닭이었을까.
어느새 내 손에 들려있던 담배도 끝을 드러낸 모습이었다.
"막내가 기다릴테니 슬슬 돌아가야겠구만."
일식집을 향해 몸을 돌린 최두식이 이야기했다.
천시예가 혼자 기다리고 있으니 빨리 안으로 들어가자는 말이었다.
나는 그런 최두식을 바라보다가, 손에 들려있는 꽁초를 정리했다.
내 모습을 힐끔 보던 최두식이 몇마디를 더 얹었다.
"앞으로는 형님이라고 편하게 불러. 돌아가기전에 자네 전화번호도 좀 주고."
"······예."
불사기사 최두식.
새로운 S급 헌터 인맥이 생긴 순간이었다.
* * * * * *
헌터들의 이명은 무척이나 다양한 편이지만, 그 이름에 신(神)이라는 말이 붙은 헌터는 하나밖에 없었다.
—신창(神槍).
그것은 모든 헌터들의 우상과도 같은 한 남자에게 붙은 이명이었다.
S급 헌터, 주선호.
대한민국 헌터의 정점이자 최강이라고 불리는 인물은 언제나 수많은 기자들을 달고 다녔다.
그 현장이 피가 튀고 생사가 오가는 게이트 앞이라고 해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헌터의 상징과도 같은 남자가 나오기를 기다리며, 게이트 앞에 수많은 기자들이 문전성시를 이루는 것이다.
그리고 그런 기자들을 상대로 매번 인터뷰를 벌이는 것은 주선호에게 있어서 피할 수 없는 운명이었다.
"이상입니다. 마치겠습니다."
오늘도 게이트 공략을 마친 주선호는 앞에 놓여있던 수많은 마이크를 향해 이야기했다.
그와 동시에 사방에서 카메라 플래시가 터져나오는 모습이었다.
날카로운 기자들의 목소리가 주선호의 귓가에 파고들었다.
"제 질문까지만 받아주세요!"
"주선호씨! 대한민국 헌터계의 미래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미국의 뇌제가 신창을 넘었다고 주장하는데, 그에 대해서는······!"
"한마디만 질문드리겠습니다! 10년 전의 그 사고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주선호는 귓가에 들려오는 목소리에 눈살을 찌푸리며 현장을 빠져나갔다.
그런 주선호에게 들려온 질문중에는 그의 심기를 거스르는 질문 역시 존재하고 있었다.
치솟는 짜증을 억누르며 게이트 근처에서 벗어난 그는, 자신을 위해 대기하고 있던 차량 안에 탑승했다.
콰앙-!
신경질적인 손길로 차문을 닫고 나면, 그는 그제서야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후우··· 지긋지긋한 놈들."
차량에 탑승한 주선호는 한손으로 제 머리를 쓸어넘겼다.
격렬한 전투를 벌이느라 땀에 젖은 머리카락이 엉망이 되어있었다.
망가진 머리카락을 만지던 그는, 이내 그러한 행동을 그만두고서는 시트에 등을 기대었다.
그리고는 허공을 향해 손가락을 들어올렸다.
"[네트워크 접속]."
띠링-.
경쾌한 소리와 함께 주선호의 눈앞에 반투명한 창이 나타나는 모습이었다.
S급 헌터들에게만 개방되는 특수 기능, [커뮤니티]였다.
최근 들어서 주선호는 틈만나면 [커뮤니티]에 접속해, 그곳에 올라온 게시글들을 보며 휴식을 취하고는 했다.
오늘도 그는 집에 돌아가기 전까지 [커뮤니티]를 보며 힐링을 즐기려는 생각이었다.
"음······?"
그런 주선호의 눈에 보이는 단 하나의 게시물만 아니었다면 분명 그러했을 터였다.
- 주선호 ← 이 사람 인터뷰. 매번 볼때마다. 너무 가식적이네용 ^ O ^ [1] (swordmaster)
주선호의 눈에 들어온 글.
그것은 바로 주선호가 방금 전에 진행한 인터뷰에 대한 내용이었다.
깜빡. 깜빡.
당황한 얼굴로 화면을 바라보던 그는, 이내 제 앞에 보이는 게시글을 향해 중얼거렸다.
"대체 누구야? 설마 오지후 그놈인가?"
짜증에 젖은 주선호의 목소리가 차안에 울려퍼졌다.
어느 여름날의 일이었다.
10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