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화
대한민국의 헌터업계에는 많은 부류의 헌터들이 존재하고 있지만, 그림자사냥꾼이라고 불리는 이지성은 그중에서도 유독 특별한 역사를 가지고 있었다.
아무런 피해도 입지 않은 채로 적의 이목을 끌어들이는 근거리 딜러.
이른바 회피형 탱커의 시대를 열어젖혔던 장본인이었으니까 말이다.
이지성은 회피형 탱커로서 대한민국 헌터계에 가장 큰 족적을 남겼던 인물이었다.
물론 회피탱의 시대가 저물어버린 이후에는, 본인도 현실에 순응하고서 척후 겸 근거리 딜러로 전향했지만 말이다.
"설마 나 찾고 있었던거야?"
그런 뼈아픈 역사를 가지고 있음에도, 눈앞의 남자는 항상 웃음을 달고 사는 편이었다.
휘릭-.
묵빛의 단검을 가볍게 돌려잡은 이지성은 웃는 얼굴로 나를 바라보았다.
나를 보는 이지성의 눈빛은 짙은 흥미로 가득차있는 모습이었다.
위험한 현장에서 홀로 카메라를 들고 다니는 상황이었으니, 흥미를 가지지 않는다면 그 편이 더 이상할 터였다.
'어디로 사라졌나 싶었더니, 하필이면 내 옆에 숨어있었다고?'
어쩐지 카메라에 모습이 안보인다 싶었더니, 기척을 숨기고서 나에게 접근해온 모양이었다.
나는 그런 이지성을 바라보며 어떤 반응을 보여야할지 고민하지 않을 수 없었다.
신창 주선호가 이끄는 단체 대화방의 멤버들 중 하나.
나름대로 국내에서 유명한 S급 헌터라고는 하지만, 암습의 전문가와 얼굴을 맞대고 있는건 상당히 껄끄러운 일이었다.
'그런 이유때문에 정부에서도 이지성을 경계하는 편이기도 하고.'
그는 헌터로서도 무수한 가치를 창출하는 인물이지만, 비정상적인 방법으로도 악용될 여지가 충분한 인물이기도 했다.
그런만큼 정치권에서도 나름 주의깊게 지켜보는 헌터들 중 하나였다.
주선호와는 다른 형태로 경계해야하는 인물인 셈이었다.
주선호도 그 사실을 잘 알고있기에, 그를 자신의 계획에 써먹으려고 하는 상황이었으니 말이다.
내가 이지성을 향한 대응을 고민하고 있으면, 그런 나를 바라보던 이지성의 입에서 가라앉은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전투보조원 완장을 차고 있네? 아무래도 누가 편법으로 통제구역에 집어넣어준 모양이야?"
씨익-.
입꼬리를 틀어올린 이지성이 나에게 이야기했다.
웃음기가 가득하던 얼굴에 한층 더 짙은 미소가 드리워진 것이다.
그 미소는 어째서인지 꺼림칙한 느낌이 들 정도였다.
"일단 나나 풍랑은 아닌게 확실하고. 그렇다면 대체 누가 당신을 집어넣었을까. 신창? 아니면 불사기사?"
"그러니까, 이건······."
이지성의 추궁방식은 나에게 있어 썩 마음에 드는 것은 아니었다.
내가 눈앞의 이지성에게 무언가 이야기하려던 찰나.
나를 바라보던 이지성의 시선이 갑작스럽게 허공으로 이끌렸다.
"아, 이런······."
짧은 시선처리.
그 직후, 이지성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어버린 모습이었다.
"아무래도 더 이상 농땡이는 못피우겠네."
"예?"
"기회가 되면 나중에 다시보자고."
허공에 있는 무언가를 확인한 이지성이 눈살을 찌푸리며 모습을 감추었다.
순식간에 사라져버린 이지성의 모습에 나는 그 흔적을 눈으로 쫓으려고 시도했다.
허나, 이전에도 그러했듯이 여전히 이지성의 모습을 쫓는건 불가능했다.
이지성을 놓친 내가 허망하게 카메라를 들고 있으면, 머지않아 내 눈앞에 다시금 메세지가 떠오르는 모습이었다.
- 망원동불주먹 : 다른 동료들을 신경쓸 필요는 없어.
- 망원동불주먹 : 방해가 되지 않게 배려해줄테니까.
주선호가 보내온 메세지였다.
아무래도 나와 이지성의 만남을 지켜보고 있던 모양이었다.
내가 조용히 촬영하고 싶어하는 것처럼 보였으니, 나름대로 나를 배려한다고 정리해준거겠지.
이런걸 보면 역시 인맥을 쌓아놓고 사는게 중요했다.
촬영에 방해가 된다면 S급 헌터도 눈앞에서 치워줄 정도였으니 말이다.
'신창 나름대로 후원자에 대한 배려를 보여준셈인가.'
주선호 나름대로 어느 정도 편의를 봐줄 생각은 있었던 모양이었다.
나는 카메라를 다시금 들어올리고서는, 주선호가 있는 방향을 향해 움직였다.
멀찍이 떨어져있는 건물의 옥상 위.
그곳에서는 C등급의 창을 붙잡은 주선호가 숨을 고르는 모습이었다.
"······."
내 카메라가 자세를 잡는 주선호의 모습을 포착한 이후.
쩌적, 쩌저적-.
이내 게이트가 있는 방향에서부터 커다란 파열음이 울리기 시작했다.
왜곡현상탓에 가까이 접근할 수 없었던 게이트에서 무언가 이변이 발생하기 시작한 것이다.
파직! 파지직-!
난잡하게 갈라지기 시작한 균열.
그 너머에서부터 짙은 어둠이 바깥을 향해 일제히 쏟아져나왔다.
"저건······."
게이트에서 벌어지기 시작한 이변에 내가 의아함을 품고 바라보는 것도 잠시.
콰아앙!
머지않아 무너져내리는 어둠을 뚫고서 선명한 목소리가 사방에 울려퍼졌다.
- 강력한 죽음의 기운이 퍼져나가며 [필드 보스]가 등장합니다.
- [보스 : 사령왕 아틀로스]가 출현했습니다.
필드 보스.
게이트 너머의 몬스터들 중에서도 최상위 카테고리에 해당하는 존재.
그런 존재가 게이트의 제약을 뚫고서 바깥에 모습을 드러내었다.
파아아아앗-!
게이트를 중심으로 확산하는 어둠이 수십갈래로 갈라져 뻗어나갔다.
"······사령왕? 언데드 계열인건가?"
게이트 바깥에 있던 도시가 순식간에 사령왕을 위한 무대로 변모하기 시작한다.
하늘을 뒤덮은 어둠의 새장.
스테인드글라스와 같이 불규칙하게 드리워진 결계가 빛을 굴절시켰다.
툭, 투둑-.
결계로부터 흘러내리던 진득한 마력이 결합하더니, 이내 그 형체를 바로잡으며 온전한 육신을 구성하는 모습이었다.
- 아아··· 아아아아······!
짙은 어둠을 빚어내 만들어낸 로브 아래에서, 섬뜩한 얼굴을 가진 무언가가 바깥으로 머리를 내밀었다.
인간의 심미관을 완전히 거스르는 듯한 흉측한 외관.
사령왕이라는 거창한 이명을 달고 있는 필드보스가, 지옥에서 올라온 악귀와도 같은 얼굴로 도시에 강림한 것이다.
사령왕 아틀로스.
녀석은 중력을 거스른 채 허공에 중심을 잡고 있는 모습이었다.
거뭇한 육신을 움직이던 아틀로스는, 허공을 향해 검은 기운을 흩뿌리면서 외쳤다.
- 아··· 아··· 아아······!
철퍽-.
아틀로스의 검은 손아귀로부터 뻗어나온 진득한 점액들이 바닥을 가득 메웠다.
타르를 연상시키는 검은 액체가 바닥에 잔뜩 늘어붙는 모습이었다.
제 육신을 찢어 점액을 흩뿌린 아틀로스가 손을 들어올리자, 머지않아 그곳으로부터 육신을 갖춘 영체들이 기어올라오기 시작했다.
스스스슥-.
뒤틀린 그림자의 너머에서 새어나오기 시작한 것은 어둠을 휘감은 스펙터들이었다.
- 그아아아아······!
- 그아아······.
사령왕 아틀로스를 필두로 하는 언데드 군단의 습격.
그것이야말로 게이트 브레이크로 역류해버린 이번 게이트의 테마였던 것이다.
"언데드 계열 필드인가. 그것도 까다로운 영체형 테마 필드네."
바깥 세상으로 쏟아져나온 몬스터들의 정체를 파악한 나는, 그것을 상대할 S급 헌터들의 모습을 카메라로 뒤쫓았다.
게이트 너머의 필드 보스와 몬스터들이 전부 모습을 드러낸 이후.
헌터들은 저마다 영체형 몬스터에 대응할 방법을 준비하는 모습이었다.
콰직-!
유리병을 깨부숴 방패에 성수를 바르는 최두식이 대표적이었다.
"이놈들! 이쪽을 봐라-!"
방패에 성수를 바른 최두식은 그것을 들어올리며 커다란 목소리로 외쳤다.
쩌렁쩌렁 울리는 목소리에 언데드들의 시선이 이끌리는 모습이었다.
그 풍경을 지켜보던 S급 헌터, 신창 주선호 역시 움직임을 취하기 시작했다.
게이트 밖으로 기어나온 스펙터들을 보던 주선호는, 손에 쥐고 있던 창을 이용해 투창자세를 취했다.
"—[오러 부스트]."
우우우우웅-.
사방으로 퍼져나가는 공명음.
그와 동시에 주선호의 손에 들려있던 <파르센트의 강철창(C)>이 선명한 광채를 머금었다.
주선호의 손아귀에서 뻗어나오는 찬란한 광채는, 창의 형상을 덮어버릴만큼 강렬하고 거대한 것이었다.
그러한 빛을 움켜쥔 주선호가 허리를 뒤틀며 창끝을 겨누었다.
장거리 투창을 위한 자세.
매서운 기세를 품은 창을 겨눈 주선호의 손이, 머지않아 그것을 밖으로 강하게 집어던졌다.
파아앙-!
손끝에서 터져나오는 파공성.
그 직후, 선명한 푸른 빛이 하늘에 궤적을 그려나갔다.
"······!"
대기를 찢어발기며 날아가던 창이 노리는 곳은, 사령왕과 그를 따르는 스펙터들이 머무르는 자리.
쏘아져나간 창끝은 어느새 붉게 달아오른 채로 그 열기를 발하고 있었다.
투창이라고 부르기에는 너무나도 위협적인 공격이 몬스터들을 표적으로 삼아 내려꽂혔다.
콰과과과광!
주선호의 투창이 내려꽂힌 장소를 중심으로, 묵직한 진동이 한차례 땅을 뒤흔들었다.
거센 진동과 함께 피어오른 짙은 먼지구름이 표적이 된 장소를 가리는 모습이었다.
흔들리는 지면속에서도 균형을 잡은 최두식의 방패가 투창의 여파를 막아내는 모습이었다.
콰앙! 투두두둑-.
쏟아져나오는 잔해를 막아낸 최두식의 뒤에서는, 서유화가 손에 든 부채를 큼직하게 휘둘렀다.
"–[휘몰아치는 폭풍]."
부채로부터 퍼져나가던 작은 바람이 증폭되더니, 이내 짙게 피어오른 먼지를 빠르게 밀어내었다.
휘이이잉!
서유화의 바람이 먼지구름을 걷어낸 자리에서는, 주선호의 투창이 만들어낸 풍경이 고스란히 드러나는 모습이었다.
투창보다는 미사일 폭격에 가까워보이는 규모의 참상.
창이 꿰뚫고 지나간 자리에서는 한쪽 팔이 날아간 사령왕이 울분을 토하는 모습이었다.
- 그아아··· 그아아아아······!
S급 헌터들의 정점, 신창 주선호.
그의 공격이 쏟아진 자리를 중심으로 원형에 해당하는 공간이 패여나간 모습이었다.
해당 위치에 남아있는 것이라고는 사령왕 아틀로스 하나뿐.
그를 제외한 언데드들은 투창 한방에 전부 쓸려나간 것이다.
그 장엄한 광경을 촬영하던 나는 대박의 조짐을 느끼고 입꼬리를 틀어올렸다.
"······이게 신창 주선호의 투창인가. 내 눈으로 직접보니까 상당히 살벌한데."
필드효과를 적용받는 필드보스가 바깥으로 빠져나왔음에도, 주선호는 단 한방에 그것의 팔을 날려버렸다.
그것도 멀리서 창을 집어던지는 투창이라는 방식으로 말이다.
내가 주선호의 투창에 대한 감상을 늘어놓고 있으면, 주변에 있던 다른 헌터들 역시 전투에 가세하기 시작했다.
"–[승천]."
"–[그림자의 칼날]."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S급 헌터들이 전력으로 쏟아내는 스킬들.
그들의 일격이 쏟아지자 전장의 흐름은 일방적으로 변하는 모습이었다.
콰앙! 카가가가각!
터져나오는 강풍과 번져나오는 그림자.
무수한 흐름이 전장을 뒤엎는 가운데, 불사기사 최두식만이 자리에 굳게 버티고 서있는 모습이었다.
콰앙-! 쾅! 쾅! 쾅!
그는 사령왕의 공격을 전신으로 막아내면서, 전투의 양상을 제 손으로 조율하는 모습이었다.
"저놈이 또 뒤에서 새끼까기 시작했잖아! 빨리 처리해!"
"선배님도 참, 성격도 급하셔라."
서유화의 격풍이 사령왕을 후려쳤다.
콰앙! 투두둑-.
검은 어둠을 짓이긴 자리에서 액체가 쏟아져나왔다.
"이지성 이 음습한 놈아! 작은 놈들 시선 좀 돌려놔라!"
"예. 선배님. 그렇게 하죠."
이지성의 그림자가 사방으로 번져나가며 스펙터들을 가로질렀다.
울려퍼지는 고함과 터져나오는 괴성.
그 속에서 수많은 목소리가 교차하는 모습이었다.
카가가가각-!
벗어날 틈새없이 조여드는 헌터들의 포위망은 필드보스를 끊임없이 압박했다.
순환하는 공격이 이동반경을 제약했으며, 주기적으로 날아드는 투창이 사령왕의 신체부위를 날려버렸다.
빈틈이 생길때마다 주선호의 창이 녀석을 무자비하게 헤집은 것이다.
바람을 타고 흩어지는 검은 액체.
대치상황이 길어질수록 사령왕의 크기가 서서히 줄어들어가는 모습이었다.
- 그아아··· 그아아아아······!
끝없이 쏟아져나오는 짙은 어둠.
사지를 잃고 추레해져가는 사령왕이 끊임없이 스펙터를 쏟아부었지만, 그마저도 서유화의 늑대와 이지성의 그림자에 짓이겨져갔다.
콰과과광-!
언데드를 쏟아내고 나서 만들어지는 빈틈에는 어김없이 투창이 날아들었다.
4명의 S급들이 일방적으로 벌여나가는 사냥의 시간.
그러한 사냥의 흐름속에서 공격당하던 사냥감이 수없이 울부짖었다.
그리고 그 지독한 고문의 끝을 고한것이, 바로 신창 주선호의 직접적인 일격이었다.
"이지성. 뒤로 물러서라."
"알았어. 대장."
짧은 경고.
그 직후 주선호의 몸이 옥상을 박차고 날아들었다.
그런 주선호의 손에는 그의 애병, <마창 아드리오트(S)>가 들려있었다.
이지성의 몸이 그림자로 흩어져 사라졌으며, 그렇게 비어버린 자리에 주선호 자신이 파고들었다.
반월을 그리며 크게 휘둘러지는 마창.
서걱-!
날카로운 절삭음과 함께 움직인 마창의 창날이 사령왕의 머리를 잘라내었다.
거대한 괴물의 흉측한 머리가 순식간에 베여나가며, 참격의 충격을 견디지 못하고 멀찍이 날아가는 모습이었다.
검은 머리가 절삭면에서 안개를 흩뿌리며 떨어진 이후.
"······음?"
그것은 이내 멀리서 전투를 촬영하던 내 머리위에 그림자를 드리웠다.
퉁-.
경쾌한 소리와 함께 내 머리위에 떨어지던 괴물의 머리가 허공에 멈추어섰다.
- [긴급보호]가 활성화됩니다.
- 오늘은 더 이상 [긴급보호]를 활성화할 수 없습니다.
허공에 드리워진 반투명한 보호막.
그 위로 사령왕 아틀라스의 머리가 바짝 달라붙은 것이다.
끼기기긱-.
나는 자신의 머리위에서 나를 노려보는 흉측한 얼굴을 마주했다.
"아."
머리밖에 남지 않은 얼굴이 나와 눈을 마주쳤다.
심히 부담스러운 시선에 난감해진 내가 녀석의 추악한 얼굴을 시야에서 치우려던 찰나.
끼기기긱.
나를 바라보던 녀석의 입이 갑작스럽게 움직였다.
- [자동번역 기능]이 활성화됩니다.
- "운이 좋구나."
- "신들을 연결하기 위한 힘을 타고났는가."
귓가에 들려오는 기이하고도 음산한 목소리.
허나 그 의미만큼은 내 귀에 선명하게 전해져왔다.
이질적인 목소리를 한차례 퍼뜨린 직후.
파스스스-.
의미를 알 수 없는 말을 내뱉은 필드보스의 몸이 연기가 되어 흩어졌다.
"······뭐?"
그렇게 사령왕이 사라진 자리에 남은 것은, 내 가슴속을 채우기 시작한 한가지 의문뿐이었다.
31화
나에게 이해할 수 없는 말을 남기고서 사라진 사령왕 아틀라스가 더 이상 재생하는 일은 없었다.
오러가 맺힌 창날에 베여버린 탓에 재생능력을 일시적으로 상실한 것이다.
4명의 S급 헌터들이 모였던 게이트 브레이크 진압은, 그렇게 터무니없는 결말만을 남긴 채로 끝을 맺게 되었다.
"아직 여기에 있었구나?"
사령왕 아틀로스의 토벌이 끝난 이후에는, 나에게 사령왕의 머리가 날아오는 것을 지켜보았던 이지성이 다시금 찾아왔다.
나와 사령왕의 대면을 보며 무언가 머릿속에 떠오른 생각이 있었던 것일까.
그는 나를 향해 자신의 명함을 대뜸 던져주었다.
스윽-.
내가 이지성의 명함을 낚아채서 확인해보면, 그곳에는 길드의 이름과 함께 '사장 이지성'이라는 내용이 적혀있었다.
"실력이 가늠이 안돼서 전혀 모르고 있었는데, 알고보니까 사실 헌터였을 줄이야."
"······."
"이런곳에서 제 한몸 건사할만한 실력으로 토벌대신 영상이나 찍고 있다니 신기한데? 나중에 영상 찍고 싶으면 연락해. 한번은 어울려줄게."
이지성은 그런 이야기를 남기고서는 금세 떠나가버리는 모습이었다.
무엇이 그림자사냥꾼을 저렇게까지 만족시켰는지는 모른다.
다만, 그가 여태껏 마주했던 헌터들과 그리 크게 다르지 않은 오해를 품은 것만큼은 분명해보였다.
그렇게 내가 그림자사냥꾼을 현장에서 떠나보낸 이후.
나는 '망원동불주먹'으로부터 짧은 메세지를 받을 수 있었다.
- 망원동불주먹 : 먼저 게이트를 떠날 생각이다.
- 망원동불주먹 : 나중에 기회가 되면 다시 보자고. 형제.
게이트가 붕괴한 현장을 떠나는 신창 주선호가 나에게 짧은 작별인사를 보내온 것이다.
주선호는 대한민국의 S급 헌터들 중에서도 가장 많은 이목이 쏠리는 인물이었다.
가능한 문제가 생기지 않도록 서둘러 현장을 떠나려는 모양이었다.
나는 다른 S급 헌터들과는 다르게, 주선호와 공식적으로는 안면이 없는 사람이었으니 말이다.
작별인사를 전하는 주선호를 향해서, 나는 짧은 답장을 보내두었다.
- 거품판독기 : 다음에 보자. 형제.
평소에 주선호가 메세지를 보낼때 쓰는 말투를 흉내낸 것이었다.
사실 겉으로만 형제니 뭐니 주고받을 뿐이지, 속으로는 제발 나를 해치지만 않았으면 하는 마음이지만 말이다.
적어도 주선호 일행을 속이려면 어떻게든 끝까지 속여야만 했다.
'진실을 들키면 어떤 꼴을 당할지 모른다.'
내 정체에 대해서 오해하고 있는 S급은 많지만, 대부분은 들키더라도 커뮤니티 신뢰도가 떨어지는 선에서 끝날 수준이었다.
커뮤니티가 궤도에 오른 지금에서는 알게 된다고 해도 쉽게 이탈할 수 없는 상황일테고 말이다.
하지만 무력을 통한 집권을 계획중인 주선호만큼은 그들과 달랐다.
주선호와 그 일행들에게 진실을 들킨다면 여러모로 곤란한 상황이 될 터였다.
그러니 끝까지 S급 헌터 행세를 하는게, 내 나름대로는 생존을 위한 최선의 선택인 셈이었다.
"여기 있었구만. 영상은 잘 찍었나?"
내가 주선호의 메세지를 보며 짧은 고민에 잠겨있으면, 머지않아 호쾌한 목소리의 중년인이 나에게 다가왔다.
광택이 나는 금속갑옷으로 무장한 S급 헌터, 불사기사 최두식이었다.
최두식은 앞서 벌인 전투의 여파때문인지, 머리카락이 땀에 잔뜩 젖어있는 모습이었다.
툭, 툭-.
건틀릿을 낀 손으로 내 어깨를 두드리던 최두식은, 내 주변에서 사라진 이지성을 찾으려는 듯이 고개를 움직였다.
"지성이 그놈도 참 음침한 놈이야. 작정하고 숨으면 나도 찾을수가 없단 말이지."
"형님도 못찾으십니까?"
"못찾지. 그놈은 애초에 그런 놈이야."
내가 손에 들린 카메라를 정리하면서 최두식에게 묻자, 최두식은 고개를 끄덕이며 수긍하는 모습이었다.
천하의 최두식조차 작정하고 은신한 이지성을 찾아내기는 힘들다는 것이다.
이지성의 은신능력이 얼마나 뛰어난지 알 수 있는 부분이었다.
내가 그런 이지성의 은신능력에 감탄하고 있으면, 최두식은 고민하는 듯한 얼굴로 이야기했다.
"자네는 그놈을 찾아낼 수 있나?"
"솔직히··· 쉽진 않습니다."
"그래, 그렇겠지. 오지후나 우리 막내정도는 되어야 찾을 수 있을거야."
최두식은 작정하고 숨은 이지성을 찾아내기 위해서는, 파천궁 오지후나 검귀 천시예정도는 되어야한다고 이야기했다.
오지후야 이지성을 찾더라도 제대로 버티질 못할테니, 그를 막으려면 천시예정도는 호위로 데리고 다녀야한다는 의미였다.
말이 안되는 가정이니만큼 큰 의미는 없겠지만 말이다.
그림자사냥꾼 이지성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던 최두식은 머지않아 커다란 웃음소리를 터뜨렸다.
"뭐, 이런 고민을 해서 무슨 의미가 있나? 자네나 나나 그놈이 쫓아다닐 일도 없을텐데 말이야!"
"뭐, 그렇죠."
"여기 있는 재수없는 녀석들에 대한 이야기는 이쯤하고, 오랜만에 막내나 불러서 셋이 술이나 한잔하자고!"
쓸모없는 고민은 그만하고 토벌이 끝났으니 이제 술이나 마시러 가자는 이야기였다.
토벌의 당사자들을 빼놓고 가는 기이한 뒤풀이 파티를 주장하는 셈이었다.
최두식 본인은 그가 이야기하는 '재수없는 후배들'과 그리 오래 마주하고 싶지 않은 모양이었다.
그가 말한 것처럼 셋이서 얼굴을 마주하는건 상당히 오랜만이었기에, 나는 최두식이 원하는대로 천시예를 불러 자리를 잡았다.
"금방 오겠다네요."
"아무래도 해물찜에 소주 한잔하면 딱이겠어."
천시예가 호출에 응한 이후.
최두식의 메뉴선정은 늦게 도착한 천시예에 의해 기각되었다.
결국 최두식이 아끼는 '막내'의 행패에 의해서, 마지막에 식사장소로 선택된 곳은 고급 갈비집이었다.
"계산은 아저씨가 하는거지?"
"······막내야."
"안돼?"
그날 최두식은 150만원을 자신의 카드로 결제했다.
* * * * * *
강력한 고유특성일수록 등급이 높게 책정된다.
이것은 세간에서 흔히 잘못 알려져있는 오해들 중 하나였다.
헌터에 대해서 자세히 알고 있는 이들이라면, 누구라도 이 말이 절대적인 명제가 아니라는 것을 깨닫기 마련이었다.
고유특성의 등급은 해당 특성의 위력에 의해 결정되는 것이 아니다.
정확히는 '해당 특성이 얼마나 완성되어있는가'를 중심으로 결정된다.
아무리 E급밖에 안되는 고유특성이라고 하더라도, 상황에 따라서는 C급의 고유특성보다 좋을 수도 있다는 이야기였다.
물론 대부분의 경우에는 완성도가 높은 특성이 성능마저도 더 좋은 편이지만 말이다.
"흐음······."
그런 이유로 나는 현재 자신이 가지고 있는 특성에 대한 고민을 이어나가는 중이었다.
내가 보유하고 있는 고유특성, [커스텀 네트워크(C)].
상태창에 부착가능한 커뮤니티를 개설하는 이 특성은 헌터로서의 전투기능에 대해 말하자면 낙제점에 가까웠다.
내가 휘두를 수 있는 힘이라고 해봤자 고작해야 게시글 삭제가 최대치였다.
적어도 정상적인 헌터생활을 가능하게 하는 유형의 특성은 아니라는 이야기였다.
"분명 나보고 신들을 연결할 수 있는 능력이라고 이야기했지."
허나 그런 내 능력을 두고서 사령왕 아틀라스는 '신들을 연결하는 힘'이라고 이야기했다.
필드보스와 대화가 된다는 상황부터가 심상치않은데, 하물며 내가 가진 특성에 대한 이야기까지 꺼낸 것이다.
단순한 환청으로 치부하기에는 너무나도 생생한 경험이었다.
그렇기에 나는 작업실의 의자에 홀로 앉아있는 채로, 자신이 숨기고 있을지도 모를 또 다른 가능성을 고민하기 시작한 것이다.
"혹시 이게 끝까지 성장하면 엄청난 특성인가? 그게 아니면 대단한 능력을 가지고 있는데 내가 못찾고 있는건가?"
고작해야 C급에 불과한 특성이지만, 기대감이란 때때로 눈앞에 보이는 글자의 해석마저 바꿔놓기 마련이다.
표기만 C급이지 사실 S급에 준하는 능력이라거나.
S급까지 성장시키면 엄청난 힘이 깨어난다거나.
그것도 아니면 커뮤니티에 대단한 기능이 숨겨져있고, 내가 그걸 찾아내지 못하고 있다거나.
여러 가지 가능성들을 계속해서 머릿속으로 떠올리게 되는 것이다.
"–[네트워크 접속]."
결국 고민에 잠겨있던 내가 선택한 것은, 커뮤니티에 접속해 숨겨진 기능을 찾아보는 일이었다.
혹시라도 내가 모르는 기능이 숨겨져있는 걸지도 모를 일이니까 말이다.
물론 매일같이 똑같은 화면을 보는 마당에, 내가 안눌러본 메뉴가 있을 확률은 낮겠지만 말이다.
그럼에도 희박한 확률에 걸어보는 것이 사람의 마음인 법이었다.
내가 혹시 모를 기대를 가지고서 커뮤니티에 접속하면, 내 눈앞에 익숙한 게시판이 떠오르는 모습이었다.
- frz0777 집주소 산다 [3] (yamazaki)
- yamazaki가 지능이 부족한 이유 [4] (frz0777)
- 오늘도.좋은.아침.^^ (마산사나이 최두식)
- frz0777 너 어디 살아? [1] (yamazaki)
- 아니 이게 왜 내 잘못이야 [27] (yamazaki)
- yamazaki 딱 봐도 s급 턱걸이에 출석보상 받아먹으면서 연명중인데? [12] (frz0777)
그렇게 커뮤니티에 접속한 내 눈에 가장 먼저 보인 것은, [커스텀 네트워크]를 통해 연결중인 두명의 등신들이었다.
신들을 연결한다더니 확실히 뭔가 연결하긴 연결한 모양이었다.
나는 그 모습에 감탄하며 게시판에서 친숙한 두 사람이 다투는 광경을 바라보았다.
커뮤니티 최고의 문제아인 'yamazaki'.
그리고 커뮤니티 최고의 전투광인 'frz0777'.
두 사람이 만나 운명적인 대결을 벌이고 있는 것이다.
"얘들은 왜 싸우고 있어?"
나는 게시판을 빠른 속도로 갱신해가며 다투는 두 사람의 게시글을 순차적으로 확인해보았다.
누가 먼저 사고를 쳤어도 이상하지 않은 두사람답게, 저마다의 방식으로 문제에 대한 지분을 확보하고 있는 모습이었다.
손뼉도 마주쳐야 제대로 소리가 난다고 했던가.
저마다 분쟁을 일으키기위해 열심히 노력한 흔적들이 보였다.
"에휴, 무식한 인간들. 결국 내가 나서서 중재하는 수밖에 없는건가."
서로 다투는 두 사람을 보자 절로 가슴이 아파오는 모습이었다.
자고로 이웃간에는 서로 사랑하고 도와야 도리에 맞지 않겠는가.
그렇기에 나는 두 사람을 돕고자 하는 마음으로 중재 게시글을 작성했다.
[ 제목 ] 두분 서로 싸우지마세요 ㅜㅜ 화해하고 사이좋게 지내요
[ 작성자 ] 거품판독기
두분 다 훌륭하신 S급 헌터이십니다.
서로 화해하고 사이좋게 지내는게 모두에게 있어서 좋은 방향이 아닐까요?
저는 커뮤니티의 모든 분들이 S급 헌터의 품격에 어울리는 모습을 보여주실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두분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우리의 손으로 건전한 커뮤니티 문화를 만들어갑시다!
[ 공지사항 / 수정 / 삭제 ]
타닥, 타다닥-.
내가 키보드를 두드려 중재를 위한 게시글을 작성한 이후.
머지않아 그런 내 게시글에 순식간에 댓글이 달렸다.
나는 시야에 떠오르는 알림을 확인하며 기분 좋은 마음으로 게시글을 열어보았다.
[ 댓글 3개 ]
yamazaki : 대머리가 뭐래 ( •̀ω•́ )
yamazaki : 매복사랑니 다섯개 더 자라는 저주 걸어버리기 전에 조용히해
frz0777 : 죽어
댓글의 내용을 확인한 나는 순식간에 험악한 얼굴이 되었다.
방금전까지 치고 받던 녀석들이 갑자기 의견을 합쳐 나를 헐뜯는 모습이었다.
"하. "
두 사람의 분쟁을 이제 세 사람의 전쟁으로 바꿔야만 하는 것인가.
나는 잠시동안 위험한 생각을 머릿속에 떠올렸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뿐.
결국 나는 다시금 본연의 목적으로 되돌아가는 것을 선택했다.
싸움을 중재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지금은 숨겨진 기능을 찾아보는게 우선이었다.
그렇기에 싸움에 끼어드는 것을 포기하고서, 커뮤니티의 모든 메뉴를 처음부터 샅샅히 뒤져보기 시작한 것이다.
"······."
그렇게 메뉴를 뒤져보기 시작한지 십여분정도가 지났을까.
이미 봤던 곳을 반복해서 열어보며 같은 화면을 다시금 바라보기를 수십차례.
냉정한 현실에 절망하고 있던 내 귓가에 예상치못한 알림음이 갑작스럽게 울려퍼졌다.
띠링-.
귓가에 울린 알림음은 나에게 도착한 메세지의 존재를 알려오고 있었다.
"누가 보낸거지?"
메세지의 존재를 확인한 나는 곧장 해당 메세지를 열어보았다.
메세지를 보낸 이용자의 닉네임은 'tex11'.
파천궁 오지후에게서 보내져온 메세지였다.
- tex11 : 오랜만이야 브로
- tex11 : 혹시 새로운 S급 헌터를 만드는 일에 관심있어?
오랜만에 날아온 오지후의 메세지는 상당히 의외의 내용을 담고 있었다.
새로운 S급 헌터의 탄생—.
누구라도 전혀 예상하지 못했을만한 무척이나 특별한 내용이었다.
32화 (수정)
오지후가 나에게 수상쩍은 메세지를 보낸 다음날.
나는 오지후의 집에서 그와 직접 대면하는 시간을 갖게 되었다.
그 이유는 당연하게도 오지후가 나에게 보냈던 메세지의 내용 때문이었다.
"새로운 S급이라는게 대체 무슨 소리야?"
나는 오지후가 내린 커피를 마시면서 그에게 직설적으로 물어보았다.
오지후가 대체 어떤 이유로 나에게 그런 메세지를 보낸 것인지에 대한 질문이었다.
내 질문을 받은 오지후는 손에 쥔 커피잔을 기울여 커피를 한모금 들이켰다.
커피 냄새가 은은하게 퍼지는 가운데, 나를 마주하고 있던 오지후가 옅은 미소를 지으며 이야기했다.
"헌터들이 가지고 있는 특성중에는 성능에 비해 등급이 저평가된 특성이 있다는거, 알고 있지?"
"그거야 당연히 알고 있지. 설마 나를 부른 이유가 그거랑 관련된거야?"
"비슷해. 아마 크게 다르지 않을거야."
그런 오지후의 이야기에 나는 한가지 가능성이 머릿속을 스쳐가는 것을 느꼈다.
포텐만큼은 S급에 가깝지만, 아직 완전히 제 능력을 개화하지 못한 헌터.
오지후가 아는 헌터중에 그런 헌터가 있다고 한다면, 그가 나를 이곳으로 부른 이유도 짐작이 됐다.
그를 증명하듯이, 오지후는 야망에 가득찬 눈빛을 보내며 나에게 이야기했다.
"커다란 갈림길을 눈앞에 두고 있는 A급 헌터 하나가 있어. 그리고 그런 헌터에게 도움이 되어줄 수 있는건, 나나 다른 사람들이 아니라 너같은 유형이라고 생각했어."
"커다란 갈림길이라······."
"수많은 헌터들에 대한 데이터를 가지고 있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지. 특히나 그 유명한 분석 유튜버 '헌잘알'같은 사람은 더더욱 그렇고."
후우-.
짙은 한숨을 내뱉은 오지후가 스스로의 턱을 어루만졌다.
다음 이야기를 꺼내기까지 상당한 고민이 되는 모양이었다.
나는 눈앞에 놓인 커피를 마시면서, 오지후의 이야기를 천천히 기다렸다.
따뜻한 커피를 음미하고 있으면, 그리 오래 지나지 않아 오지후가 이야기를 이어나갔다.
"내가 옛날부터 구독 좋아요 알림설정 다 누르고 다닌거 알지? 그런 의미에서 70만 유튜버한테 부탁 좀 해보자."
"······무슨 부탁인데 그래?"
"헌잘알··· 아니, 신유호."
비장한 얼굴로 나를 바라보는 오지후.
그런 그의 입에서 나온 이야기는, 내 예상과는 조금은 다른 이야기였다.
"내 여동생 좀 도와줘라."
"케헥, 켁······."
나는 오지후의 여동생에 대한 이야기를 듣자마자, 마시던 커피가 목에 걸리는 것을 느꼈다.
콜록, 콜록-.
내가 커피를 마시던 채로 사레에 들리자, 오지후는 티슈곽 하나를 내 앞에 가져다 놓으면서 이야기했다.
"뭐야, 왜 그래? 괜찮냐?"
"아니··· 천하의 파천궁한테 여동생이 있었어?"
"음, 뭐··· 막둥이가 하나 있지. 그리 사이가 좋은 편은 아니긴 하지만."
파천궁 오지후.
그에게는 헌터 생활을 하는 여동생이 하나 있던 모양이었다.
현역으로 활동하는 헌터들에 대해서는 어느 정도 꿰고 있던 나였지만, 그 유명한 파천궁에게 여동생이 있을 줄은 모르고 있었다.
내가 의아해하는 반응을 보이자, 오지후가 멋쩍은 얼굴로 커피잔을 들어올렸다.
"걔가 내 여동생인건 길드 사람들 제외하고는 잘 모르거든."
"하, 어쩐지··· 다른 사람들은 다 아는걸 나 혼자만 모르는 줄 알았네."
"너가 모르는 것도 당연할거야. 솔직히 말해서 딱히 닮은 구석도 없으니까."
헌터 유튜버로서 다른 유튜버들이 아는걸 혼자만 모르는건 커다란 중대사였다.
그런 의미에서 오지후의 해명은 나에게 상당한 안심이 되는 요소이기도 했다.
적어도 나 혼자서 정보에 뒤쳐진 것은 아닌 모양이었으니까 말이다.
그렇게 오지후의 해명을 들은 나는, 눈앞의 오지후를 향해 물어보았다.
"여동생 이름이 뭔데?"
"오지아. 나랑 같은 길드야."
"아······."
A급 헌터 오지아.
오지후의 이야기를 듣자 대략적인 정보가 머리를 스쳐지나갔다.
헌터로서 활동해온 기록은 그렇게 많지 않지만, 전투 스타일이 인상적이어서 기억에 남는 인물이었다.
그런 인물이 오지후의 여동생이었을 줄이야.
같은 오씨라고는 해도 공통점은 없어보이게 생긴만큼, 상당히 의외의 이야기였음은 틀림없었다.
"더스트 길드에서는 지금 상황을 알고 있어?"
"길드에서는 스카우팅 리포트를 보내주겠다고 이야기하는데, 솔직히 길드에서 원하는 방향성은 정해져있단 말이지."
"······."
"그러니까 차라리 너한테 맡기는게 낫다고 판단했어. 적어도 한국에서 너보다 헌터에 대해 잘 알고 있는 사람은 많지 않을테니까 말이야."
A급 헌터의 인생설계.
어지간한 신뢰를 가지고 있는 사람이 아니라면 결코 할 수 없는 부탁이었다.
그런 거대한 의뢰를 나에게 제안한 오지후가 진지한 눈으로 나를 보았다.
"내가 믿고 맡길 수 있는 유튜버이자, 같은 커뮤니티 동료한테 하는 부탁이야."
"믿고 맡길 수 있는 유튜버······."
"내 부탁, 들어줄 수 있겠냐?"
오지후는 그렇게 말하면서 나를 향해 주먹을 내밀었다.
커뮤니티 동료에게 하는 중요한 부탁.
그리고 가장 믿을 수 있는 유튜버.
필살기란 필살기는 전부 꺼냈는데, 그런 오지후의 부탁을 들어주지 않을 수 있을리가 없었다.
무엇보다도 새로운 S급 헌터와 인연을 쌓는다면, 앞으로의 내 유튜브 컨텐츠에도 커다란 도움이 될 터였다.
나는 그런 오지후를 향해 주먹을 내밀며 맞부딪혔다.
"물론, 커뮤니티 동료이자 구독자의 부탁이라면 들어줄 수 있지."
"역시 커뮤니티의 자랑 거품판독기야. Come on, Bro."
툭-.
한차례 부딪힌 주먹을 거두어들인 오지후가 만족스러운 얼굴로 웃으며 손가락으로 방문을 가리켰다.
"아. 참고로 미리 얘기는 안했는데, 얘가 낯을 좀 많이 가리거든."
"······뭐?"
"은둔형외톨이로 오랫동안 지내다가 몇년전에 끌려나온 케이스라서 그래. 너가 좀 이해해줘라."
내가 제안을 받아들인 이후.
뒤늦게서야 가장 중요한 이야기를 꺼내오는 오지후였다.
* * * * * *
헌터들은 게이트 너머의 몬스터 토벌을 업으로 삼는 이들이지만, 스포츠 스타들과 비슷하게 미디어 매체에도 많이 나오는 편이었다.
S급이나 A급 헌터들 정도 되면 TV나 CF에 나오는 일도 적지 않다는 이야기였다.
그리고 그런 의미에서 볼 때, 더스트 길드의 A급 헌터 오지아는 이상하리만치 방송촬영이 없는 편이었다.
그녀가 가지고 있는 A급 헌터라는 타이틀에 비해, 인플루언서로서의 인지도가 지나치게 낮다는 이야기였다.
나는 실제로 오지아를 마주하고 나서야 그 이유를 깨달을 수 있었다.
"실내에서 왜 후드를 뒤집어쓰고 있는거지?"
오지후의 집에 위치한 작은 방.
그곳에는 후드를 뒤집어쓴 사람 하나가 웅크려있는 모습이었다.
커다란 후드를 한껏 눌러쓴 탓에, 그 얼굴이 제대로 보이지 않을 정도였다.
A급 헌터, 오지아.
파천궁의 여동생이 방안에 쭈그리고 있었던 것이다.
그런 그녀를 대신해 나에게 대답을 전해준 것은, 내 뒤에서 난감한 표정으로 방문을 붙잡고 있던 오지후였다.
"얘가 낯을 좀 가려서 그래."
"아, 그러냐······?"
"그래도 생각보다 말은 잘 할거야. 그럼 잘 부탁한다!"
짧은 조언을 끝마친 이후.
쿵-.
오지후는 방문을 닫고 밖으로 빠져나갔다.
이 다음의 일은 나에게 맡기겠다는 의미였다.
나는 오지후가 사라진 방문을 바라보다가, 다시금 방안에 있는 오지아에게 시선을 옮겼다.
최대한 눌러쓴 후드의 너머에서 낯선 시선이 나를 응시하는 모습이었다.
"······안녕하세요."
상당히 가라앉은 목소리가 적막한 방안에 울려퍼졌다.
낯을 가리는 것과는 별개로, 최소한의 대화 정도는 가능한 모양이었다.
오지후의 이야기대로 '생각보다는' 말을 잘 하는 상황인 것이다.
나는 근처에 있던 의자를 끌어다놓고선, 그런 오지아의 맞은편에 자리를 잡았다.
"A급 헌터, 오지아씨 본인 맞죠?"
"······네."
"70만 유튜브 채널 '헌잘알'을 운영하고 있는 신유호입니다. 오늘은 지아씨에게 도움을 드리기 위해 찾아왔는데······."
오지아와 본격적인 대화를 나누기에 앞서, 나는 오지아에게 간단한 심리테스트를 시도했다.
오지아가 얼마나 지적이고 교양있는 사람인지 확인하기 위한 테스트였다.
"혹시 제 채널 구독하셨나요?"
"······아니요."
"그렇군요. 잘 알겠습니다."
나는 오지아의 대답에 고개를 끄덕이며 스마트폰을 꺼내들었다.
아무래도 외부와 단절된 시간이 길어서 그런지, 생각보다 교양이 부족한 것으로 보였다.
그런 오지아의 상태에 다소 안타까움을 느끼면서, 나는 눈앞의 오지아를 향해 본격적인 이야기를 꺼냈다.
"일단 조금 더 자세한 이야기로 들어가기 전에, 상태창에 대한 정보를 잠깐 확인해보려고 합니다."
오지아의 미래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기 전에, 그녀의 현재 상태를 체크해보기 위함이었다.
그런 내 이야기를 들은 오지아가 곧장 주머니에 손을 집어넣었다.
"······잠시만요."
무언가 생각해두었던 방법이 있었던 것이었을까.
오지아는 자신의 주머니에서 종이 한장을 꺼내서 내미는 모습이었다.
오지아가 내민 것은 고이 접혀있는 한장의 종이였다.
스윽-.
그녀에게서 받은 종이를 활짝 펼쳐보면, 나는 그 위에서 전혀 예상치 못한 글자를 확인할 수 있었다.
—<플레이어 정보>.
헌터라면 누구나 한번쯤 마주해봤을 상태창 문구가 적혀있었던 것이다.
"설마 상태창을 전부 베껴적어서 가져온겁니까?"
"······네."
설마했더니 상태창을 전부 베껴서 가져온 모양이었다.
내 예상보다도 철저하게 준비를 해온 것이다.
나는 그런 오지아의 준비태도에 만족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준비성이 철저하네요. 그럼 한 번 확인해보겠습니다."
상태창의 내용을 적어왔다면 구태여 입아프게 문답을 나눌 필요는 없을 터.
나는 오지아가 가져온 상태창의 데이터를 확인해보았다.
< 플레이어 정보 >
- 이름 : 오지아
- 이명 : 휘광
- 헌터 등급 : A
- 근력 : A+
- 체력 : B
- 민첩 : A+
- 지능 : C
- 마력 : A+
- 회복 : B
< 고유 특성 >
- [빛의 장막(A)]
- 빛을 이용해 잔상을 남기거나 자신의 모습을 가릴 수 있습니다.
- 빛 계통 마법의 궤적에 간섭할 수 있습니다.
- [선명화(A)]
- 다음과 같은 효과들 중 하나를 적용할 수 있습니다.
- 마력 능력치의 일부를 회복 능력치로 전환합니다.
- 회복 능력치의 일부를 민첩 능력치로 전환합니다.
- 근력 능력치의 일부를 마력 능력치로 전환합니다.
- [아프리오스의 천칭(A)]
- 성좌 <아프리오스 >가 현재 상황에 어울리는 기아스를 선택지로 제공합니다.
- 해당 선택을 무력화하는 행위를 저지르는 경우, 제약은 유지되지만 보상의 효력이 만료됩니다.
오지아가 건네준 상태창의 정보를 확인한 이후.
나는 그녀가 어떤 이유로 앞으로의 미래를 고민하고 있는지 깨달았다.
그녀에게는 아직 수많은 가능성이 남아있었던 것이다.
너무나 많은 선택지가 주어져있는 탓에 아직까지 제대로 결정을 내리지 못한 모양이었다.
눈앞에 있는 헌터가 어떤 방식으로 S급에 도달하려고 하는지에 대해서도 역시 마찬가지였다.
손에 들려있는 종이에 기록된 정보를 확인하던 나는, 자신의 의심을 확신으로 바꾸기 위해 그녀에게 물었다.
"지금 자신에게 기아스를 걸어서 벽을 넘어서려고 하고 있는거 맞죠?"
"······네. 맞아요."
"[아프리오스의 천칭(A)]······."
오지아가 가지고 있는 능력치나 특성은 대부분 그 수준이 애매한 편이었다.
다만, 오지아가 가지고 있는 특성중에서 다소 신경이 쓰이는 특성이 하나 존재하고 있었다.
고유특성, [아프리오스의 천칭(A)].
'성좌'에게서 선택지를 제안받는다는 해당 특성의 내용은 나로 하여금 많은 고민을 하게 만드는 것이었다.
'성좌라··· 사령왕 아틀로스가 했던 이야기가 생각나는데.'
게이트 브레이크에서 머리만 남은 채로 나와 대화했던 사령왕 아틀로스.
녀석은 내 [커스텀 네트워크]가 신들을 연결하는 가능성을 가지고 있다고 이야기했다.
그리고 오지아가 가지고 있는 특성의 설명에는, '성좌'라는 정체불명의 존재에게서 기아스를 받는다는 내용이 적혀있었다.
헌터들에게 기아스를 내려줄만한 힘을 가지고 있는 정체불명의 존재.
우리에게 간섭할 수 있는 초월적인 무언가가 존재한다면, 그것은 신이라고 부를 수 있는 것일까.
그런 고민이 잠시 머릿속을 스쳐지나갔다.
"······유튜버님?"
"지금도 지아씨는 성좌로부터 선택지를 받고 있는겁니까?"
짧은 고민에서 벗어난 이후.
나는 오지아를 향해 그녀가 가지고 있는 고유특성— [아프리오스의 천칭(A)]에 대한 자세한 내용을 질문했다.
그것이 어떤 매커니즘으로 동작하는지, 또 어떤 방식의 선택지가 주어지는지 물어본 것이다.
"······네. 세가지 기아스에 대한 내용이 눈앞에 띄워져있어요."
"아무래도 상태창과 비슷한 느낌인 것 같네요. 세가지의 기아스 선택지들 중에서, 단 하나만 지아씨의 의지대로 선택할 수 있는거겠죠?"
"······맞아요. 단 하나만 고를 수 있어요."
작게 가라앉은 목소리가 계속해서 자신이 직면한 상황을 설명했다.
세가지의 선택지.
그리고 단 하나의 선택.
그러한 대화로부터 나는 성좌가 오지아에게 어떤 방식으로 제안을 건네는 것인지 이해할 수 있었다.
'가지고 있는 능력들 중에 일부를 포기해야하는 구조인건가.'
오지아가 가지고 있는 특성 이외에도, 기아스와 관련된 고유특성은 여럿 존재하고 있다.
그리고 그러한 기아스들은 하나같이 정형화된 구조를 가지고 있다.
기아스의 '제약'과 그에 따른 '보상'.
무언가 하나를 취하기 위해서는, 그에 따른 무언가를 버려야만 하는 것이다.
'오지아에게 주어진 가능성중에 하나를 선택해야만 하는거겠지.'
그녀가 가지고 있는 특성도 다른 기아스들과 마찬가지라면, 결국 내가 해야하는 일은 하나밖에 없었다.
"지금 고를 수 있는 선택지가 어떤 것들이 있는지 한 번 확인해보도록 하죠."
나는 오지아를 향해 그녀가 마주하고 있는 몇가지 선택지를 요청했다.
오지아가 어떤 가능성을 직면하고 있으며,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야할지 정리하기 위함이었다.
내가 이런 요청을 하는 의미를 이해한 까닭이었을까.
오지아는 빠른 속도로 종이에 펜을 끄적이더니, 머지않아 그녀가 마주한 선택지를 정리한 종이를 내밀어왔다.
- [선명화(A)]와 [아프리오스의 천칭(A)]의 등급이 B로 하락하며, [빛의 장막(A)] 특성과 민첩 능력치가 S로 상승한다.
- 민첩 능력치와 마력 능력치가 B로 하락하며, [선명화(A)] 특성과 근력 능력치가 S로 상승한다.
- 근력 능력치가 C로 하락하며, 마력 능력치가 S+로 상승한다.
오지아에게 주어진 세가지 선택지.
그것은 오지아가 어떤 특성을 중심으로 S급에 도달할지에 대한 내용이었다.
첫번째 제안을 고른다면 그림자사냥꾼처럼 은신과 속도에 치중한 유형의 헌터가 될 것이다.
그리고 두번째 제안을 고르는 경우, 불사기사와 비슷한 유형의 재생형 탱커를 지향하게 될 터였다.
마지막 선택지는 메이지형 헌터를 위한 것에 가까웠지만, 고유특성의 보조를 받기가 애매한 편이었다.
오지아가 마주한 선택지의 정보를 바라보던 나는 그녀에게 어떤 선택지가 어울릴지 고민했다.
'더스트 길드에서는 아무래도 오지아가 탱커쪽으로 전향하기를 바라고 있겠지.'
어떤 길드라도 훌륭한 탱커를 구하는건 어려운 일이다.
하물며 S급의 탱커라면 더 말할 것도 없었다.
더스트 길드의 입장에서는 원거리 딜러인 오지후와 시너지를 낼만한 S급 탱커를 원할 터였다.
전방의 안정성이 확보된다면 대부분의 게이트가 해당 파티로 해결이 가능해질테니까 말이다.
툭-.
나는 오지아에 대한 내용이 적혀있는 메모장을 열어 그 내용을 확인해보았다.
그동안 분석해온 스카우팅 리포트를 읽어보자, 오지아가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야할지 명확히 보이는 느낌이었다.
'적어도 능력치에 의지해 전위를 맡길만한 수준의 헌터는 아니야.'
오지아를 탱커로 기용하는 경우, [선명화(A)] 특성을 기반으로 하는 능력치 기반 탱커가 될 것이다.
다만 오지아의 전체적인 기량을 생각해봤을때, 특성 하나의 메리트를 버려가면서까지 탱커로 세울만한 수준은 아니었다.
적어도 탱커로서의 기교적인 부분은 전부 다 포기해야만 했다.
그것이 오지아라는 A급 헌터를 지켜봐왔던 유튜버 '헌잘알'로서의 평가였다.
'길드에 필요한 포지션에 맞추는 것보다 본인을 더 살려줄 수 있는 방향으로 가는게 낫겠지.'
어차피 오지아가 갈 수 있는 파티는 더스트 길드에만 있는게 아니었다.
그러니 여기서는 오지아의 장래를 위해서라도 그녀를 위한 선택지를 골라주는게 맞았다.
오지아가 가진 판단능력이나 종합적인 전투센스를 고려해봤을때, 내가 내릴만한 결론은 하나밖에 존재하지 않았다.
오지아는 이지성과 같은 근거리 딜러가 되어야만 했다.
"오지아씨. 당신은 도적이 더 어울려요."
"······네?"
나는 오지아의 팔을 붙잡아 첫번째 선택지 쪽으로 유도했다.
민첩 능력치와 [빛의 장막] 특성을 강화하는 선택지였다.
"······진짜 눌러요?"
"저 못믿습니까?"
"······아, 아, 아니요!"
깜빡, 깜빡-.
눈앞의 선택지를 보며 고민하던 오지아가 눈을 질끈 감으며 선택지를 향해 손가락을 뻗었다.
"당분간 장비 세팅 도와줄테니까 열심히 해봅시다."
"······."
"그리고 내 유튜브 구독하는 것도 잊지 마시고."
파앗!
선택지를 고른 오지아의 주변에서 환한 광채가 터져나왔다.
사방으로 뻗어나가는 광채를 확인한 직후, 나는 오지아를 커뮤니티에 초대했다.
- 대상을 초대하시겠습니까?
- 해당 대상에게 [특수 기능 : 네트워크 접속]이 해금되었습니다.
- 현재 인원 : 84 / 100
성좌와 연결된 고유특성을 가지고 있는 S급 헌터.
커뮤니티의 84번째 회원이 탄생하는 순간이었다.
33화
그레이트브리튼에서 가장 유명한 헌터를 꼽으라면, 전세계의 모두가 당연히 단 한명의 인물을 꼽을 것이다.
S급 헌터, 아서 테브란트.
검성이라는 칭호를 가진 사상 최강의 기사.
한국의 신창과 비견되는 유일한 인물.
그런 아서 테브란트를 상징하는 수식어는 무수히 많은 편이지만, 그는 최근에 이르러서 한가지 수식어를 더 얻게 되었다.
[커뮤니티] 이용자명, 'ronaldo_7'.
누구보다도 축구를 사랑하는 영국인인 그에게 가장 어울리는 수식어였다.
"그래서 말입니다, 아서 경."
그리고 지금 아서 테브란트는 버킹엄 궁의 응접실에서 영국 여왕과 대면하고 있는 중이었다.
그것도 시야 한쪽에 [커뮤니티]의 화면을 띄워놓은 채로 말이다.
그가 지금 눈앞에 [커뮤니티] 화면을 열어놓은 이유는 하나.
지금 이 순간에도 경기가 진행되고 있을 챔피언스 리그의 경기결과를 빠르게 확인하기 위해서였다.
[커뮤니티] 내부에는 영국인인 아서 이외에도 축구를 사랑하는 이들이 잔뜩 있었다.
아무리 아서라도 영국 여왕 앞에서 스마트폰을 만지고 있을 수는 없었으니, 그를 대신에 여왕의 눈에 보이지 않는 [커뮤니티]를 선택한 것이다.
'슬슬 지겨운데 빨리 좀 끝내주면 안되나?'
물론 여왕은 그런 아서의 마음을 전혀 모르는 채로, 여전히 제 할말만 하고 있는 중이었지만 말이다.
아서는 자신이 달고 있는 기사작위를 생각하며 지겨운 시간을 애써 참아내었다.
그가 아무리 축구를 좋아한다지만, 자신의 체면을 깎아먹는건 [커뮤니티] 내부에서의 일만으로도 충분했다.
적어도 외부에서는 검성으로서의 체면치례정도는 해야만 하는 것이다.
그렇게 아서가 지난경기의 명장면을 떠올리며, 초인적인 인내심으로 시간을 보내고 있던 도중.
반투명한 화면을 노려보던 아서와 마주하고 있던 여왕이 그를 향해 이야기했다.
"이번에 총리와 내가 한국에 방문할때, 아서 경이 함께 동행하면 좋을 것 같군요."
"······."
짧은 침묵.
여왕의 이야기를 곱씹던 아서의 얼굴에 의문이 깃들었다.
"······예?
아서는 잘못들었다는 듯한 태도로 여왕을 향해 되물었다.
허나, 여왕은 그런 아서를 배려해 다시 한 번 이야기를 전해주었다.
그것도 아서가 결코 못알아들을 수 없도록 정확하고 깔끔하며 사무적인 발음으로 말이다.
"이번 한국 방문에 영국의 자랑인 아서 경이 함께 동행했으면 하는군요."
"한국에··· 말입니까."
"예. 검성이라는 칭호를 가지고 있는 아서 경이라면, 한국의 국민들도 분명 좋아할겁니다."
한국.
아서 테브란트가 검을 든 이래, 단 한번도 방문해본 적이 없던 국가였다.
물론 아서 자신의 나이가 그리 많은 편은 아니었지만 말이다.
적어도 아서에게 있어서 친숙한 나라는 아니라는 이야기였다.
당황한 아서가 무어라 이야기하기도 전에, 아서의 뒤에 있던 개인비서 멜리사가 입을 열었다.
"아서. 그럼 한국에 가는걸로 알고 일정을 조율해둘게."
"······메, 멜리사?"
"이번에 있는 노스웨스트 더비 관람일정을 취소하고 가면 될 것 같아. 어차피 이번에도 아서가 응원하는 팀이 질거잖아?"
검성, 아서 테브란트.
그는 얼떨결에 총리와 여왕의 한국행에 합류하게 되었다.
* * * * * *
내가 운영하는 S급 헌터 커뮤니티에 새로운 멤버가 추가되었다.
오지후의 동생, 오지아가 S급에 도달하며 새롭게 커뮤니티에 합류한 것이다.
적어도 내가 커뮤니티를 운영하기 시작한 이래, 전례없는 일이 벌어진 것만큼은 틀림없었다.
새로운 S급 헌터의 탄생.
이 사실은 대한민국을 포함해, 전세계에 막대한 충격을 가져올만한 소식이었으니까 말이다.
"이런 어마어마한 특종을 가장 먼저 공개한게 내 채널이란 말이지······."
그리고 그 소식을 누구보다도 가장 빠르게 전달한 채널이 바로 내가 운영하는 '헌잘알' 채널이었다.
내가 대한민국의 아홉번째 S급 헌터 탄생에 대한 영상을 업로드한 이후.
내 영상이 유튜브에서 열렬한 반응을 얻기 시작했으니까 말이다.
"이번에는 무난하게 인기 급상승 동영상에 올라가겠어."
그 폭발적인 조회수 덕분에 어느덧 해당 동영상이 차트 진입을 앞두고 있는 상황이었다.
아홉번째 S급 탄생 소식이 얼마나 강한 영향력을 가지고 있는지 보여주는 부분이었다.
물론 몇몇 S급 헌터들의 경우, 오지아를 한국의 10번째 S급 헌터라고 알고 있는 모양이지만 말이다.
대표적으로는 내 유튜브 채널을 구독하고 있는 S급 헌터, 불사기사 최두식이 그러한 상황이었다.
- 마산사나이 최두식 : 아우.오늘영상.잘봤네.^^
- 마산사나이 최두식 : 벌써.한국에.S급이.10명이나 됐나.^^~
- 마산사나이 최두식 : 기회가.되면.신입이랑.술한잔하지.
원래부터 구독과 알람설정을 철저히 해놓았던 까닭이었을까.
최두식은 영상을 올린지 반나절도 되지 않아서 나에게 연락을 보내왔다.
한국에 10명이나 되는 S급 헌터가 탄생했다는 사실이 만족스럽다는 내용이었다.
실제로는 10명이 아니고 9명에 불과했지만 말이다.
그 사실을 감안하더라도, S급 헌터 83명중에 9명이 한국인이라는 사실은 대단한 일이 맞기는 했다.
적어도 헌터계에 있어서 대한민국이 높은 위상을 차지하고 있다는 것은 틀림없었으니까 말이다.
- 거품판독기 : 예 형님
- 거품판독기 : 언제 기회가 닿으면 연락하겠습니다
- 마산사나이 최두식 : 그래.
나는 그런 최두식을 향해 2줄이나 되는 장문의 답장을 전송했다.
언젠가 기회가 되면 커뮤니티의 신입회원 오지아와의 만남을 주선해보겠다는 내용이었다.
물론 낯을 심하게 가리는 오지아의 특성상, 그런 자리가 마련될 수 있을지는 의문이 있었지만 말이다.
그래도 원로헌터인 최두식과의 식사자리라면 조금은 고민을 해볼 터였다.
그렇게 내가 최두식에게 장문의 답장을 보낸 이후.
나는 만족스러운 얼굴로 유튜브가 켜져있는 책상에 자리를 잡았다.
"······."
최근에 올린 영상의 페이지가 띄워져있는 유튜브 화면.
나는 해당 화면을 바라보며 키보드의 F5 버튼에 손가락을 가져갔다.
딸깍. 딸깍-.
새로고침 버튼을 누를때마다 막대한 숫자의 조회수가 올라갔다.
그리고 그렇게 오르는 조회수는 나에게 있어서 막대한 도파민을 공급하고 있었다.
"하··· 조금만 더 있으면 급상승 동영상에 들어갈 것 같은데······."
압도적인 조회수가 만들어내는 압도적인 충족감.
이게 현대사회를 살아가는 사람들이 겪고 있다는 도파민 중독 문제인 것인가.
버튼을 누를 때마다 기분이 좋아지니 마치 실험실의 쥐가 된 기분이었다.
그렇게 내가 버튼을 누르며 유튜브 조회수를 5분간격으로 확인하고 있던 도중.
띠링-.
영상의 조회수를 확인하던 내 귓가에 낯선 알림이 울려퍼졌다.
"뭐야. 이번에는 다른 사람이 메세지를 보냈네?"
내 귓가에 울려퍼진 소리의 원인을 확인해보면, 1:1 대화 메뉴에 알림 아이콘이 떠올라있는 모습이었다.
낯선 누군가로부터 새로운 1:1 대화가 전송된 것이다.
나는 나에게 메세지를 보내온 사람의 닉네임을 확인해보았다.
커뮤니티 이용자명, 'ronaldo_7'.
현실과 정반대의 모습으로 활동을 이어나가고 있는 S급 헌터, 아서가 나에게 보내온 메세지였다.
"아서 테브란트? 검성이 나한테 메세지를 보낼만한 일이 뭐가 있지?"
검성, 아서 테브란트.
그는 한국의 신창만큼이나 세계적으로 유명한 헌터였다.
그런 아서와 나 사이에는 접점이라고 부를만한 요소가 단 하나도 존재하지 않았다.
심지어 커뮤니티에서도 나와 'ronaldo_7'은 이렇다할 대화를 나눈 적이 없었다.
그러니 아서가 나를 향해 메세지를 보내온 이 상황이 그리 이해가 가는 편은 아니었다.
"뭐, 키보드 배틀하자고 연락해온건 아니겠지."
나는 메세지를 보내온 영국의 검성이 최소한의 예의를 갖추길 바라며 메세지를 열었다.
툭-.
내 손가락이 1:1 대화 메뉴를 터치한 이후, 머지않아 'ronaldo_7'이 보내온 메세지가 화면에 출력되었다.
- ronaldo_7 : 너 한국인이지?
- ronaldo_7 : 닉네임을 보니까 아무래도 한국인처럼 보이는데.
- ronaldo_7 : 망원동불주먹이랑 너랑 이렇게 둘이 한국인 아니야?
나는 'ronaldo_7'이 보내온 메세지를 차분히 읽어보았다.
녀석이 나에게 보내온 메세지의 내용을 확인해보면, 거기에는 나와 '망원동불주먹'— 주선호가 한국인이냐는 질문이 담겨있었다.
해당 질문이 나온 맥락은 어렵지 않게 이해할 수 있었다.
내가 커뮤니티에서 사용하는 닉네임은 '거품판독기'다.
그러니 '망원동불주먹'과 '거품판독기', 이렇게 두 사람이 한국인이 아닌지 의심하고 있는 것일 터였다.
"내 국적은 왜 물어보는거지? 설마 비행기 타고 한국에 찾아오려는 건가?"
기껏해야 분쟁의 원인이 될만한 게시글에 대해 논할거라 생각했건만, 뜻밖에도 'ronaldo_7'은 내 국적에 대해 물어오는 모습이었다.
나로서는 부정할 이유따위는 없는 질문이기도 했다.
나는 'ronaldo_7'을 향해 흔쾌히 대답을 돌려주었다.
- 거품판독기 : ㅇㅇ
- 거품판독기 : 내가 한국인인데
- 거품판독기 : 갑자기 그 사실이 궁금해질만한 이유가 있나?
- ronaldo_7 : 당연히 있지.
- ronaldo_7 : 내가 이번에 한국에 가게 됐거든.
내가 국적에 대한 질문에 수긍하자, 'ronaldo_7'으로부터 빠르게 답장이 돌아왔다.
검성, 아서 테브란트가 내 국적에 대해서 물어본 이유.
그 이유를 확인한 나는 충격을 받지 않을 수 없었다.
"뭐야. 영국의 검성이 한국에 찾아온다고?"
헌터계의 1인자 자리를 두고 주선호와 다투는 검성의 내한이 결정된 것이다.
헌터에 대한 소식을 다루는 유튜버에게 있어서는 흥분하지 않을 수 없는 내용이었다.
검성의 인터뷰는 커녕 그 모습을 멀리서 촬영할 기회도 흔치 않은 편이었으니까 말이다.
'ronaldo_7'과 대화를 나누기에 따라서는, 입국장면을 포함해 그 이상을 촬영할 수 있을 가능성도 있다는 의미였다.
"처음 듣는 소식인데. 영국 내부에서 결정된 내용인가? 한국에 들어오기로 결정했으면 대체 언제쯤 들어오는거지?"
아서와 대화를 나누는 내 머릿속에 수많은 의문이 떠올랐다.
나는 그런 의문을 곧장 채팅창을 통해 아서에게 전달했다.
- 거품판독기 : 한국에 온다고?
- 거품판독기 : 언제쯤 한국에 들어오는건데?
- ronaldo_7 : 영국 총리의 방한일정에 맞춰서 갈거야.
- 거품판독기 : 그래서?
- ronaldo_7 : 사실은 내가 한국에 대해서는 잘 모르는 편이야.
- ronaldo_7 : 공식행사가 끝나면 유명한 관광지를 좀 돌아보고 싶은데.
- ronaldo_7 : 기왕이면 같은 커뮤니티의 이용자들에게 도움을 받으면 좋을 것 같아서.
- ronaldo_7 : 혹시 도와줄 수 있어?
아서 테브란트의 한국 관광.
그것을 도와달라는 이야기에 나는 대박의 기운을 감지할 수 있었다.
이건 한국의 헌터 유튜브계에서는 단 한번도 다룬적이 없는 컨텐츠였다.
더군다나 검성 본인과 대면할만한 일이라면 경우에 따라서는 괜찮은 컨텐츠가 나올 가능성도 있을 터.
나는 'ronaldo_7'을 향해 흔쾌히 수락하겠다는 메세지를 보내려고 했다.
"이건 당연히 수락해야지. 검성한테 뽑아먹을 수 있는 컨텐츠가 몇개인데."
타닥, 타다닥-.
키보드를 통해 장문의 환영 메세지를 작성한 이후.
내가 전송 버튼을 눌러 그것을 보내려던 순간이었다.
"······어? 뭐야?"
툭-.
내가 전송 버튼을 눌러 메세지를 보내려고 시도해봤지만, 그럼에도 메세지가 제대로 보내지지 않았다.
툭툭툭툭-.
몇번을 연달아 전송 버튼을 클릭해봐도 마찬가지였다.
그에 의문을 표한 내가 고개를 들어올리자, 갑작스럽게 눈앞에 보이던 커뮤니티 창이 종료되었다.
그리고는 그를 대신해 새로운 창이 떠올랐다.
- [커스텀 네트워크(C)]에 충분한 에너지가 축적되었습니다.
- [커스텀 네트워크(C)]의 등급이 다음과 같이 조정됩니다.
- 특성 등급 : C → B
- [커스텀 네트워크(B)]의 안정화를 위해 다음 시간동안 모든 기능이 일시적으로 중단됩니다.
- 남은 예상 시간 : 17시간 59분 58초
내 눈앞에 떠오른 메세지의 내용.
그것은 내가 가지고 있는 고유특성, [커스텀 네트워크]의 등급이 상승해 모든 기능이 중단되었다는 내용이었다.
그와 동시에 18시간의 서버 점검을 알리는 내용 역시 함께 적혀있었다.
고유특성의 등급이 오르면서 서버 점검 시간도 함께 늘어난 것이다.
나는 허공을 찌르고 있는 손가락을 보며 허탈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하··· 갑자기 무슨 서버점검이야."
아무래도 다음 메세지를 보내기까지는 상당한 시간이 필요할 것 같았다.
34화
처음부터 사용해본 경험이 없었다면 몰라도, 유용하게 누리고 있던 것들이 중간에 사라지면 불편해지는 법이다.
무선청소기. 건조기. 에어프라이어.
그런 편의성 제품들을 한 번 마주하면 다시는 돌아갈 수 없게 되는 것처럼 말이다.
그리고 지금의 나에게 있어서는 눈앞에 떠오른 반투명한 화면이 그러했다.
- [커스텀 네트워크(B)]의 안정화를 위해 다음 시간동안 모든 기능이 일시적으로 중단됩니다.
- 남은 예상 시간 : 7분 48초
고유특성, [커스텀 네트워크]를 기반으로 한 커뮤니티 기능.
나는 지금 해당 기능의 부재를 여실히 실감하고 있는 중이었다.
즐겨하던 온라인 게임의 서버점검을 기다리던 시절이 이러했을까.
나는 눈앞에 떠오른 커뮤니티의 점검화면을 멍하니 바라보며 한숨을 푹 내쉬었다.
매일같이 띄워놓고 있던 반투명한 화면이 하루만 없어졌을 뿐인데도 허전함을 채울 수가 없었다.
"······아무리봐도 내가 커뮤니티 중독은 아닌데 왜 이러지?"
혹시나 내가 커뮤니티 중독인 것은 아닐까.
그런 생각을 가지고 고민해보아도, 내가 평소에 커뮤니티에 글을 많이 쓰는 타입은 아니었다.
사실 커뮤니티에 '거품판독기' 닉네임을 가지고 작성한 게시글은 그다지 많지 않은 편이었다.
기껏해야 다른 이들의 게시글을 보기만 하는게 일상이었으니까 말이다.
그나마도 몇분정도 게시판을 훑어보다가 꺼버리는게 대부분이었다.
"최두식이나 천시예같은 인간들이 진짜 커뮤 중독자들인데."
그런 나와는 반대로 '마산사나이 최두식'과 'swordmaster'는 커뮤니티 중독이라고 할 수 있는 사람들이었다.
아침 사진, 점심 사진, 저녁 사진, 야식 사진을 골고루 올리는 최두식은 말할 것도 없고, 주선호가 기자회견을 할때마다 비난글을 올리는 천시예도 마찬가지였다.
두 사람은 틈만 나면 커뮤니티에 접속하는게 기본인 사람들이었다.
오죽하면 셋이서 술을 마시는데 두명이 커뮤니티를 보고 있겠는가.
물론 나도 두 사람이 커뮤니티를 보고 있기에, 어쩔 수 없이 같이 커뮤니티를 키긴 했지만 말이다.
"하··· 5분 남았네. 쇼츠나 보면서 떼울까."
이제는 다시 서버가 열리기까지 5분 가량이 남아있는 상황.
슬슬 남은 시간을 떼울만한 방법을 강구해야할 차례였다.
그렇게 내가 쇼츠나 보면서 시간을 떼울까 고민하던 찰나.
지이잉-.
내 스마트폰에서 진동이 울렸다.
누군가 나에게 메세지를 보냈다는 의미였다.
"카톡인가? 누가 보냈지?"
스윽.
나는 스마트폰의 잠금을 해제해 메신저앱을 실행했다.
그러자 화면에 보이는 익숙한 누군가의 이름을 확인할 수 있었다.
- [최두식]
나에게 메신저로 대화를 걸어온 인물.
그 정체는 바로 불사기사 최두식이었다.
대체 무슨 용건으로 메세지를 보냈나 싶어 확인해보니, 그 아래에 보이는 내용이 상당히 충격적이었다.
- 최두식 : (사진)
- 최두식 : 방금.먹은거다.^^
- 최두식 : 이집이.맛있어.~
- 최두식 : 아우도.밥.맛있게먹어라.
하루동안 커뮤니티에 음식 사진을 올리지 못해서 정신이 나가버린 것일까.
최두식은 나에게 직접 음식 사진을 찍어서 보내온 것이었다.
커뮤니티에 글을 올리질 못하니, 그를 대신해 나에게 사진을 보내올 줄이야.
나는 커뮤니티 중독자의 충격적인 근황을 보며 입을 다물지 못했다.
"아니, 이걸 왜 나한테 보내지?"
5분만 기다렸다가 커뮤니티에 올리면 될것을, 왜 나한테 사진을 보낸건지 도통 이해가 가지 않았다.
허나 나같은 사회생활의 스페셜리스트는 그런 내색을 하지 않는 법.
더군다나 나 신유호는 모두에게 공감할 줄 아는 사나이였다.
나는 불사기사 최두식을 향해 정중한 내용의 메세지를 전달했다.
- 신유호 : 형님 저희집 앞에 있는 순대국밥집이 거기보다 더 맛있습니다
- 신유호 : 언제 한번 오시죠
최두식을 향해 공감의 메세지를 전달한 이후.
나는 다시금 눈앞의 카운트 다운을 향해 시선을 돌렸다.
최두식의 문자를 보며 충격을 받은 사이에 상당한 시간이 흘러갔던 것일까.
어느새 카운트다운은 바닥에 가까워진 상황이었다.
10초. 9초. 8초. 7초. 6초.
나는 줄어들어가는 카운트다운을 보며 왠지 모를 편안함을 느꼈다.
"추석때 내려갔다가 막힌 고속도로 뚫고서 집에 돌아온 듯한 기분이야."
빠른 속도로 줄어들어가는 숫자.
그것이 1이 될때까지 여유로운 마음을 가지고 기다렸다.
그리고 마침내 서버점검의 카운트다운이 1에 도달했을 즈음.
띠링-.
익숙한 소리와 함께 눈앞에 반투명한 창이 떠올랐다.
- [신규 기능 : 경험치]가 추가되었습니다.
- [경험치]는 커뮤니티 이용자들의 활동에 비례해 커뮤니티 내부에서의 등급을 올릴 수 있는 기능입니다.
- [경험치]를 모아 등급을 올릴수록 더욱 특별한 혜택이 주어집니다.
- 커뮤니티 이용자의 등급에 따라 [리워드] 상점에서의 할인혜택이 적용될 수 있습니다.
- [신규 기능 : 인기 게시글]이 추가되었습니다.
- [인기 게시글] 기능을 통해 다른 이용자들에게 많은 추천수를 획득한 게시글을 모아볼 수 있게 됩니다.
- [인기 게시글]에 올라간 횟수에 따라 작성자에게 보너스 포인트가 지급됩니다.
- [특수 기능 : 리워드]가 강화되었습니다.
- [리워드] 상점이 조금 더 특별한 상품을 판매합니다.
- [신규 기능 : 에너지 증폭]이 추가되었습니다.
- 해당 기능을 활성화해 [긴급방어]나 [강력경고]를 더 넓은 범위에 사용할 수 있습니다.
기나긴 메세지가 순식간에 눈앞을 가득채웠다.
전부 고유특성의 등급이 오르며 [커스텀 네트워크]에 생긴 변화들이었다.
"뭐야. 새로운 기능이 많이 생겼네."
눈앞을 가득채운 정보의 나열에 혼란에 빠지는 것도 잠시.
나는 이내 손가락을 움직여 눈앞에 떠오른 패치노트를 차례대로 분류하기 시작했다.
가장 먼저 시선이 향하는 곳은 커뮤니티의 [경험치] 기능이었다.
"경험치라··· 활동량에 따라서 등급을 분류하겠다는 뜻인가?"
커뮤니티의 활동량에 따라서 등급을 세분화하는 [경험치] 시스템.
축적한 경험치와 달성한 등급에 따라 [리워드] 상점의 할인과 같은 소소한 혜택이 주어지는 모양이었다.
게다가 일부 기능의 경우 특정 등급에게만 개방될지도 모르는 일이고 말이다.
아무래도 한동안 커뮤니티 중독자를 많이 양성할 것 같은 기능이었다.
"그리고 그 다음은··· 인기 게시글······?"
그리고 그런 [경험치] 기능과 함께 들어온 것이, 다름아닌 [인기 게시글] 기능이었다.
게시판에 올라오는 게시글들 중에서도 유난히 추천수가 많은 게시글만 따로 분류하는 것이다.
다양한 종류의 커뮤니티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는 기능이었다.
다만 문제가 되는 것은 해당 기능이 보너스 포인트를 제공한다는 점이었다.
"추천을 많이 받으면 포인트를 받는다고?"
안그래도 커뮤니티에 이상한 인간들이 그렇게 많은데, 그중에서도 특출난 게시글을 분류하는 기능이 생겼다.
게다가 그에 따른 보상까지 주어지는 상황이었다.
나는 이번 패치로 대체 게시판에 어떤 혼란이 찾아올지 슬슬 두려워지기 시작했다.
"설명만 봐도 벌써 어지럽네."
경악스러운 내용을 확인한 나는 허탈한 미소를 지으며 스크롤을 내렸다.
[인기 게시글]의 아래에는 [리워드] 기능이 강화되었다는 내용이 적혀있었다.
특성의 등급이 오르면서 [리워드] 상점이 더 괜찮은 물건들을 판매하게 된 모양이었다.
E급 특성으로 시작했다는 사실을 고려해볼때, 당연한 변화라고 여겨지는 내용이었다.
"리워드 다음은··· 기존에 있던 스킬과 관련된 기능인가."
마지막으로 보이는 내용은, [에너지 증폭]이라는 이름의 신규 스킬과 관련된 내용이었다.
기존에 내가 가지고 있는 스킬, [긴급방어]와 [강력경고]의 범위를 증폭시킬 수 있는 유형의 스킬.
다시 말해서 해당 기능을 이용한다면 보호막이나 공포를 조금 더 넓은 범위에 사용할 수 있다는 이야기였다.
한 번 사용하는 것만으로도 더 많은 사람에게 죽음의 공포를 느끼게 만들 수 있게 된 것이다.
"이거 한 번 사용하면 이제 주변에 있는 적들이 전부 겁을 먹는단 말이지."
광역 공포.
위험한 상황에 비장의 한수로 사용하면 괜찮을 것 같은 능력이었다.
이번에 커뮤니티에 추가된 기능들 중에서도 가장 만족스러운 수확이라고 할 수 있었다.
기나긴 패치내역에 대한 평가를 마친 이후.
나는 눈앞에 떠오른 화면을 닫았다.
"벌써 B급에 도달해서 그런지는 몰라도 얻은게 제법 많네."
E급에서 시작했던 고유특성이 어느덧 B급에 도달했다.
B급정도 되면 헌터들 사이에서도 상당히 괜찮은 특성으로 분류되는 편에 속한다.
B급 특성이 하나만 있어도 한 사람의 헌터로 활동하기에 충분한 것이다.
그리고 나는 그런 B급 특성을 가지고, 남들보다 더 유익한 커뮤니티 활동을 즐기고 있었다.
참으로 대단한 특성이 아닐 수 없었다.
"커뮤니티 하다가 죽지말라고 방어막까지 넣어주고, 참 배려심이 넘치는 특성이야."
나는 이 대단한 특성에 대한 평가를 마치고서, 손가락을 움직여 커뮤니티의 메뉴에 가져갔다.
18시간의 서버점검을 마주하기 전, 검성 아서가 나에게 대화를 걸어왔던 상황.
이전에 진행하던 대화를 매듭짓지 못한만큼, 이번에야말로 검성과의 대화를 마무리해볼 생각이었다.
전세계의 유명한 S급 헌터들을 촬영하는건 오래전부터 나의 꿈이었으니까 말이다.
랭킹 2위에 해당하는 검성을 촬영할 기회가 찾아왔는데, 그것에 매달리지 않을 이유라고는 하나도 존재하지 않았다.
"슬슬 아서 테브란트의 스케줄을 자세히 조사해봐야겠지."
후우-.
짧은 심호흡과 함께 마음의 준비를 마친 이후.
나는 검성과의 1대1 대화버튼을 클릭했다.
그리고는 중단되었던 대화를 이어나가기 위한 메세지를 검성에게 전송했다.
- 거품판독기 : 님
- 거품판독기 : 한국와서 뭐할 생각임?
- ronaldo_7 : 아, 맞아.
- ronaldo_7 : 너랑 대화하고 있었지.
이용자명 'ronaldo_7' 역시 커뮤니티가 열리자마자 접속해있었던 것이었을까.
그는 내가 메세지를 전송하기 무섭게 답장을 보내오는 모습이었다.
타닥, 타다닥-.
그런 아서를 향해 내가 무언가를 더 이야기하려던 찰나.
반투명한 키보드를 두드리고 있던 내 손가락 위로, 'ronaldo_7'의 메세지가 새롭게 도착했다.
- ronaldo_7 : 잠깐만.
- ronaldo_7 : 그 전에 내 게시글에 추천 좀 눌러줬으면 좋겠어.
검성, 'ronaldo_7'으로부터 새로운 메세지가 도착한 이후.
나는 해당 메세지를 보며 경악하지 않을 수 없었다.
"······추천 조작해달라는건 대체 뭐야."
추천 구걸의 시대가 도래했다.
* * * * * *
다음날 오후.
나는 파천궁 오지후의 여동생, 오지아와 카페에서 만남을 가졌다.
온갖 우여곡절 끝에 아서 테브란트와의 일정을 조율하는데 성공하고서, 오지아와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카페에 찾아온 것이다.
새롭게 S급 헌터가 된 오지아에게는 조율해야할 문제들이 산더미처럼 남아있었으니까 말이다.
"······안녕하세요."
"네. 며칠만에 다시 뵙네요."
"······말 편하게 하셔도 되요."
"그래."
나는 오지아와 인사를 나누고서 가볍게 주위를 둘러보았다.
오지아가 가지고 있는 음침한 아우라 때문이었을까.
나와 오지아의 자리는 햇빛이 비치지 않는 구석에 자리하고 있었다.
물론 그마저도 상당히 불편했던 모양인지, 후드를 뒤집어쓴 채 주변을 경계하는 오지아였다.
"······오늘은 제 장비를 맞추는걸 도와주신다고 들었는데요."
"진로를 정했으니 방향성에 맞춰서 장비 세팅을 해야겠지. 거기에 대한 도움을 줄 생각이야."
오지아의 진로는 이지성과 마찬가지로 회피형 근접딜러, 정확히는 사장된 회피탱과 비슷한 트리로 결정된 상황.
그러니 오지아의 성장을 위해 그녀를 위한 아이템 세팅을 컨설팅해주기로 결정한 것이다.
다만, 무언가 마음에 걸리는 것이 있었던 모양일까.
오지아는 난감한 얼굴로 나를 바라보면서 이야기했다.
"······저 포인트 없는데요."
S급 헌터들의 세계에 본격적으로 발을 들이면서 깨달은 것이었는지, 나를 향해 포인트에 대한 이야기를 꺼내는 오지아였다.
그녀는 S급 헌터 커뮤니티에 들어온지 얼마 안됐으니, 기껏해야 며칠동안의 출석보상이 전부일 터.
그러니 오지아가 포인트가 없는건 당연한 일이었다.
"괜찮아. 오지후가 내주겠지."
"······."
"아무리 그래도 갓 S급이 된 가족한테 보태줄 포인트 하나 없으려고."
그러나 나는 그런 오지아의 포인트에 크게 걱정을 하지 않았다.
포인트가 부족하면 그녀의 가족인 오지후가 대신 지불할거라는 판단에서였다.
그렇게 내가 오지아의 걱정을 일축하며, 앞으로의 아이템 계획을 설명하려던 순간.
띠링-.
그런 내 귓가에 알림음이 들려왔다.
커뮤니티의 누군가가 나에게 메세지를 보내왔다는 이야기였다.
'갑자기 누구지?'
검성과의 대화는 어젯밤에 완전히 끝내놓은 상황.
지금 나에게 메세지를 보낼만한 사람은 딱히 떠오르는 인물이 없었다.
스윽.
이야기를 멈춘 내가 재빠르게 시선을 옮기면, 나는 단체 대화방에 띄워진 알림 표시를 확인할 수 있었다.
'망원동불주먹'이 개설한 단체 대화방.
헌터들의 세계를 꿈꾸는 이들의 비밀모임이었다.
'주선호가 메세지를 보내온건가.'
아무래도 주선호가 우리에게 무언가 공지를 하려는 것으로 보이는 상황.
그렇기에 나는 오지아가 눈치채지 못하게, 자연스러운 손길로 대화방을 열었다.
툭-.
대화방에 접속하자 주선호가 남긴 메세지가 눈에 들어왔다.
- 망원동불주먹 : 다들 시간 괜찮나?
- 망원동불주먹 : 여기에 전달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는데.
이용자명, '망원동불주먹'.
신창 주선호가 이곳에 있는 모두를 향해 이야기를 전하고 싶어하는 것이다.
'아무래도 주선호가 급하게 공지할 내용이 있는 모양이야.'
주선호는 대한민국의 헌터들 중에서도 민감한 정보에 누구보다 깊숙히 맞닿아있는 인물이었다.
이전에 게이트 브레이크에 대해 이야기했던 것처럼, 이번에도 주선호가 특급 정보를 풀지도 모른다는 이야기였다.
이번에는 대체 어떤 정보를 올리려고 하는 것인가.
나는 주선호가 올릴 특급 정보를 기대하며 화면을 노려보았다.
띠링. 띠링-.
내 기대감 가득한 시선에 부응하듯이, 수많은 메세지가 동시에 채팅창에 올라왔다.
- 망원동불주먹 : 우리의 계획을 위해 간곡히 부탁할 내용이 있다.
- 망원동불주먹 : 앞으로 내 모든 게시글에 추천을 눌러라.
- engine555 : ㅋㅋ
- nabi242 : 네??????
그렇게 주선호가 대화방에 보낸 메세지를 확인한 직후.
"켁, 케헥······!"
"······괜찮아요?"
나는 다급하게 사레가 들린 입을 틀어막아야만 했다.
35화
목에 걸린 사레가 진정된 이후.
나는 맞은편에 있던 오지아와 마주한 채로, 난감해하는 시선을 받으며 커피를 홀짝였다.
"······제가 뭔가 이상한 소리를 했나요?"
"아냐. 그냥 조금 목이 막혀서 말이야."
아무래도 오지아는 내가 갑작스럽게 기침을 터뜨린 것이 본인의 탓이라고 생각하는 모양이었다.
물론 이건 오지아의 탓이 아니라, 지금 내 화면속에서 대화중인 어떤 남자가 원인이었다.
그리고 그는 지금도 화면속에서 동료와 열정적인 토론을 하는 중이었다.
커피를 마시는 내 시선이 오지아의 얼굴과 겹친 메세지를 바라보았다.
- 망원동불주먹 : 다가올 재해에 대비하기 위해서는 포인트를 모으는건 필수불가결한 일이야.
- engine555 : 아니 대장
- engine555 : 무슨 생각하는지는 알겠는데 그건 좀 아니야
- engine555 : ㅋㅋ
- 망원동불주먹 : 무슨 문제라도 있나?
- engine555 : 대장이 글 적을때마다 추천수가 4개씩 올라간다고 생각해봐
- engine555 : 사람들이 그걸 보고 뭐라고 생각하겠어?
단체 대화방 안에서는 주선호와 이지성이 열정적인 대화를 나누는 중이었다.
주선호는 포인트 수급을 위해서 추천이 필요하다는 입장이었고, 이지성은 그런 주선호를 만류하고 있는 모습이었다.
상식적으로 생각하면 이지성의 이야기가 맞는 편이었다.
글을 적을 때마다 추천이 4개씩 올라가는 사람을 보고서 다른 이용자들이 어떻게 생각하겠는가.
적어도 정상적인 이용자를 보는 듯한 눈빛은 아닐게 분명했다.
- 망원동불주먹 : 매번 추천이 4개면
- engine555 : 매번 똑같은 숫자가 찍히는게 위화감이 안느껴질수가 없지
- engine555 : 딱봐도 이상하잖아
- engine555 : 하나나 두개정도면 그러려니해도 4개는 너무 나갔지
- 망원동불주먹 : 확실히 그렇게 보일지도 모르겠어.
- 망원동불주먹 : 알았다.
주선호도 그런 이지성의 설득에 납득한 것인지, 이내 수긍하며 물러나는 모습이었다.
나는 그제서야 정신을 차린 주선호의 모습에, 화면 너머의 오지아를 향해 시선을 넘겼다.
계속해서 한자리에 못박혀있는 내 시선이 신경쓰였던 것일까.
이전보다 후드를 한층 더 강하게 눌러쓴 오지아가 이야기했다.
"······제 얼굴에 뭐가 묻었나요."
얼굴에 뭐가 묻기는 커녕 후드때문에 절반이 가려져 제대로 보이지조차 않았다.
허나 그 사실을 곧이 곧대로 오지아에게 말할 수는 없는 노릇.
나는 지난 일에 대한 변명을 늘어놓는 대신, 조금 더 생산적인 이야기를 그녀에게 전했다.
"아니. 경매장에서 원하는 물건이 있는지 먼저 찾아보고서 이야기하는게 좋을 것 같아서. 경매장은 들어가봤지?"
"······네. 오지후가 말해줬어요. 그··· 쪽이 사실 정체를 숨기고 있다고."
오지아의 컨설팅에 나서기에 앞서, 정체를 이야기해도 되냐는 오지후의 질문이 한차례 1:1 대화를 통해 전해져왔었다.
거기에는 동생이 아는 사람이 별로 없으니 비밀이 유출될 걱정은 하지말라는 오지후의 조언도 함께 적혀있었다.
물론 오지후는 내 정체를 전혀 모르고 있지만, 나는 그런 오지후의 부탁에 흔쾌히 응해주었다.
사전에 이야기가 되어있지 않으면 대화를 진행하는데 불편함을 느낄거라 생각한 까닭이었다.
"그 말대로야. 물론 다른 사람한테는 이야기하지 않았으면 좋겠어."
다른 사람한테 거짓말하고 다니지 말라는 내 사소한 배려였다.
끄덕-.
오지아는 고개를 움직여 정직하게 살라는 내 충고에 수긍했다.
"······말해봤자 믿어줄만한 사람도 없어요."
"······."
"······그래서, 지금 접속해서 경매장을 확인해보면 되나요?"
허공에서 손가락을 움직인 오지아의 눈동자가 나를 바라보았다.
나 역시 당당하게 커뮤니티를 향해 손가락을 뻗었다.
"그래. 일단은 가볍고 날렵한 무기중에서 먼저 마음에 드는걸 골라봐. 무기 성능이 후보군에 넣기에 적합하다면 나도 같이 고민해볼테니까."
"······네."
"나는 필수 옵션이 붙어있는 무기류중에서 저렴한걸 찾아볼게."
내가 커뮤니티에 접속가능하다는 사실을 알고있다고 하더라도, 본인 앞에서 대놓고 커뮤니티를 하는 것과는 별개였다.
사람을 앞에 두고 스마트폰을 하는 것과 별반 다를게 없는 일이었으니 말이다.
나 역시도 이제는 진지하게 경매장에서 무기 매물을 살펴볼 생각이었다.
"······감사합니다. 그래도 든든한 선배가 있어서 도움이 되네요."
"고마우면 나중에 영상이나 하나 같이찍자고. 내 채널에 구독 누르는 것도 잊어버리지 말고."
"······얼굴 잘 안나오는 거면 괜찮아요."
스윽-.
그렇게 내가 손가락을 움직여 경매장 매물을 찾아보려던 찰나.
띠링.
익숙한 소리가 또 다시 귓가에 울려퍼졌다.
1:1 대화를 통해 전해져온 메세지였다.
그리고 해당 메세지의 주인공은 방금 전까지 단체 대화방에 메세지를 보내던 '망원동불주먹'이었다.
- 망원동불주먹 : 도움이 필요하다. 형제.
- 망원동불주먹 : 4명은 너무 눈에 띈다고 해도 한명정도는 보탬이 되는게 좋겠지.
- 망원동불주먹 : 가능하면 시간날때마다 내 게시글에 추천을 하나씩 눌러주지 않겠어?
뭔가 했더니 아까 하던 이야기의 연장선이었다.
야망이 커다란 녀석답게 아직도 [인기 게시글]의 꿈을 놓지 못한 모양이었다.
이쯤되면 포인트를 원하는건지 [인기 게시글]을 원하는건지 분간이 힘들 정도였다.
"하······."
추천을 4개나 받기는 부담스러우니 나한테 1개를 받고 싶다는 건가.
주선호의 태도를 보건데 내가 거절하더라도 다른 사람을 찾아갈게 분명할 터였다.
그렇기에 나는 흔쾌히 주선호의 부탁을 들어주기로 결심했다.
게시판에 접속한 나는 주선호가 올린 최신 게시글에 들어갔다.
그리고는 추천 버튼을 한차례 클릭했다.
툭-.
추천 버튼을 누른 직후, 나는 다시금 1:1 대화로 돌아가 메세지를 남겼다.
- 거품판독기 : 눌러주고 왔다. 형제.
- 망원동불주먹 : 고맙다.
- 망원동불주먹 : 도움이 필요하면 얼마든지 말해라.
내가 추천을 눌렀는지 직접 확인까지 해보고 돌아온 것이었을까.
'망원동불주먹'은 아주 약간의 딜레이와 함께 고마움을 표하는 답장을 보내왔다.
'망원동불주먹'이 보내온 답장을 확인한 이후, 나는 1:1 대화창을 닫고 밖으로 빠져나왔다.
그리고는 다시금 경매장으로 돌아가려고 하던 순간—.
띠링-.
다시 한 번 커뮤니티에서 알림음이 울려퍼졌다.
'아니. 이번엔 또 누구야.'
고작 10분동안 세번이나 듣게 된 알림음이었다.
누군가 또 한명이 나에게 메세지를 보내왔다는 이야기였다.
나는 세번째로 울려퍼진 알림의 주인을 찾아서 시선을 돌렸다.
'swordmaster'.
익숙한 영어 닉네임의 대화 요청에 알림이 울려퍼진 모습이었다.
검귀 천시예로부터의 메세지였다.
- swordmaster : 검귀.등장 ^O^
- swordmaster : 이번에.새로운 기능.추가된거 알아 ?¿?¿
나는 'swordmaster'에게서 날아온 메세지를 보기 무섭게 직감했다.
아. 이번에도 추천을 눌러달라고 부탁하겠구나.
그런 생각이 내 머릿속을 스쳐지나간 것이다.
'또 추천 구걸이야?'
보나마나 또 추천 구걸일 것이 분명했다.
슬슬 질린다는 생각이 들면서 황급히 대화를 빠져나가려고 준비하던 찰나.
띠링. 띠링.
천시예로부터 두개의 메세지가 더 도착했다.
- swordmaster : 망원동불주먹. 이사람 자꾸.자기가 신창이라고 하던데
- swordmaster : 같이.비추천.누르고 오자 ㅎㅅㅎ~
천시예가 나에게 보낸 메세지.
그것은 추천 구걸의 영역을 넘어선 것이었다.
바로 이번에 함께 추가된 비추천 버튼에 관한 부탁이었으니까 말이다.
'나보고 헌터계의 전설 신창 주선호한테 비추천을 누르고 오라고?'
터무니없는 부탁을 전해오는 천시예의 모습에, 나는 그녀의 부탁을 흔쾌히 받아들이기로 했다.
스윽-.
나는 방금 전에 들어갔던 주선호의 게시글에 다시 한 번 들어갔다.
그리고 천시예의 요구대로 비추천도 하나 눌러놓고서 게시글을 빠져나왔다.
결과적으로 주선호는 추천 2개와 비추천 2개를 얻은 셈이었다.
'이만하면 충분하겠지.'
주선호의 게시글에 비추천을 누른 나는 'swordmaster'와의 대화방에 그 사실을 알렸다.
- 거품판독기 : 원하던대로 하나 누르고 왔다
- swordmaster : 멋져 ^O^
천시예와의 대화를 마친 나는 곧장 대화창을 닫았다.
더 이상 나에게 날아올 메세지는 없는 것 같았으니, 이제는 다시 경매장을 찾아볼 시간이었다.
두 사람과의 마지막 대화를 나눈 이후, 나는 계속해서 경매장의 매물들을 확인했다.
[리워드] 상점이 갱신되며 제법 많은 물건들이 쏟아져나온 까닭이었을까.
경매장에는 평소보다도 많은 물건들이 올라오는 모습이었다.
내가 경매장을 찾아보는 틈틈히 오지아의 경악에 젖은 목소리가 울려퍼졌다.
"······이, 이거 포인트가 너무 비싼데요."
"일단은 골라놓기만 해봐."
"······네."
포인트의 가치를 깨달았기 때문인지, 오지아는 경매장의 가격표가 상당히 부담스러운 모양이었다.
나는 그런 오지아를 적당히 타이르면서, 계속해서 그녀에게 어울릴만한 아이템을 추려나갔다.
아이템을 고르는 틈틈히 게시판을 방문해, 주선호의 게시글에 부탁받은대로 추천과 비추천을 함께 누르는 것도 잊지 않았다.
그렇게 몇잔의 음료를 추가해가며, 카페에서 2시간 가량의 시간을 보낸 이후.
우리는 결과적으로 11개의 헌터 장비들을 추려낼 수 있었다.
"좋았어. 오늘은 여기까지만 하자."
"······이제 끝난건가요?"
"그래."
나는 오지아의 이야기에 고개를 끄덕였다.
나머지는 유튜버 '헌터사전'과 처리할 문제였으니, 이제는 서로 작별할 시간이었다.
"나머지는 내가 잘 아는 유튜버가 있으니까, 그 사람한테 물어보고서 처리할게."
"······네."
그렇게 2시간 가량의 용건을 마친 나와 오지아는 카페에서 작별인사를 나누고 헤어졌다.
그리고 그날 저녁.
커뮤니티의 [인기 게시글]에는 '망원동불주먹'을 저격하는 'frz0777'의 게시글이 등재되었다.
* * * * * *
온라인 게임을 해본 기억이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한번쯤은 이런 생각을 해본 적이 있을 것이다.
캐시랑 게임머니를 무제한으로 가지고 있었으면 좋겠다.
아무리 많이 쓰더라도 게임머니가 줄어들지 않았으면 좋겠다.
절대 마르지 않는 금전이라는 '치트'를 가지고 싶어하는건, 나를 포함해서 누구나가 크게 갈망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나는 지금 포인트 무한 치트를 적극적으로 휘두르는 중이었다.
"뭐야? 이게 이 가격에 올라왔다고?"
역 근처에 위치한 작업실.
자칭 '헌잘알 스튜디오'라고 칭하는 공간에서, 나는 현재 반투명한 화면을 바라보고 있었다.
커뮤니티에 탑재되어있는 S급 헌터들을 위한 경매장.
그곳에 올라온 매물들을 하나씩 살펴보고 있는 것이다.
내가 지금 이렇게까지 경매장을 구경하는데 심취해있는 이유는 하나.
[리워드] 기능이 한층 강화된 이후, 막대한 양의 아이템이 경매장에 쏟아지기 시작한 까닭이었다.
"와··· 이거 효용이랑은 별개로 희귀해서 등급이 높은 아이템인데."
그중에는 상위등급 헌터들에게는 의미가 없지만, 나에게는 유용할법한 아이템들 역시 존재하고 있었다.
A급의 헌터 장비, <스크롤 북(A)>.
스크롤을 소모해 해당 아이템에 마법을 메모라이즈 할 수 있으며, 스크롤 마법의 발동시간을 78% 감소시켜주는 아이템이었다.
나처럼 스크롤을 난사하는 사람에게 있어서는 꼭 필요한 장비 아이템.
그런 아이템이 고작해야 1800 포인트에 올라온 것이다.
"이건 무조건 사야지."
포인트 소모가 그리 크지도 않겠다.
나에게 있어서는 그리 문제될 일이 없는 아이템이었다.
나는 해당 아이템을 흔쾌히 구매했다.
- <스크롤 북(A)>을 1800포인트에 구매했습니다.
내가 손가락을 뻗어 아이템을 즉시구매한 직후.
툭-.
화려한 장식이 새겨져있는 수첩 하나가 내 책상 위에 떨어지는 모습이었다.
나는 만족스러운 얼굴로 <스크롤 북(A)>을 집어들었다.
"이게 그 소문의 가성비 박살난 헌터 장비인가. 생긴건 또 괜찮게 생겼네."
당연하지만 <스크롤 북(A)>을 샀다고 해서 내 쇼핑이 끝나는 것은 아니었다.
[리워드] 상점이 소각시키는 포인트가 어마무시하게 증가한 탓에, 커뮤니티의 경매장은 역대급 매물들이 쏟아져나온 상황.
그런 상황에서 소모품을 쓸어담지 않는건 바보나 다름없는 행동이었다.
"아, 저것도 마음에 드네. 하나 구매할까."
그동안 소각된 포인트를 감안하면 어느 정도는 소모하더라도 여유가 있을 터.
그렇기에 나는 시장에 풀리는 소모품을 '양심적인 선'에서 쓸어담기 시작했다.
- <블레이즈 스크롤(B)>을 439포인트에 구매했습니다.
- <특급 정력증강제 (C)>를 112포인트에 구매했습니다.
- <체인 라이트닝 스크롤(A)>를 666포인트에 구매했습니다.
- <윈드커터 스크롤(C)>을 123포인트에 구매했습니다.
- <파이어볼 스크롤(C)>을 155포인트에 구매했습니다.
- <특급 활력포션(D)>를 31포인트에 구매했습니다.
쿵-.
털썩, 데구르르-.
내 손길을 따라서 수많은 아이템들이 책상에 쌓이기 시작했다.
포션. 스크롤. 특수 아이템.
종류를 가리지 않고 다양한 물건들이 책상 위에 떨어져내렸다.
"이야··· 급해서 그런지 진짜 아무거나 다 긁어서 올렸네."
마치 블랙 프라이데이를 연상시킬만한 속도로 물건들이 잔뜩 쌓여나간 것이다.
실제로 경매장 안에서도 말도 안되는 파격적인 가격으로 물건들이 올라오고 있는 실정이었다.
포인트가 급한 헌터들이 올릴 수 있는건 죄다 올려버린 것이다.
그렇게 다양한 물건들이 쌓여나갈 때마다, 내 가슴속에도 커다란 만족감이 피어오르고 있었다.
"저렴한거 몇개는 유튜브 컨텐츠 용으로 써먹어도 될 것 같은데."
오죽하면 몇몇 아이템들은 유튜브에서 리뷰하는데 써먹으면 괜찮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물론 지나치게 저렴한 몇몇 아이템들만 가능한 이야기겠지만 말이다.
그렇게 수많은 물건들을 잔뜩 쌓아놓고서, 내가 경매장의 다음 페이지로 넘어가려던 순간.
띠링-.
커뮤니티의 대화 메뉴에 알림 메세지가 갑작스럽게 떠올랐다.
"······메세지?"
나는 자신에게 메세지를 보낸 사람의 닉네임을 확인해보았다.
커뮤니티 이용자명, 'engine555'.
이지성으로부터 보내져온 메세지였다.
나와는 단 한번도 1:1 대화를 해본적이 없는 사람이었다.
"주선호도 아니고 이지성이 대체 무슨 용건으로 대화를 걸었지?"
그림자사냥꾼, 'engine555'는 나와 같은 단체 대화방에 속해있는 인물이었다.
그런 이지성이 나에게 개인 대화를 걸어온 것이다.
나는 이지성이 어떤 용건으로 자신에게 대화를 걸어왔는지 의아해하지 않을 수 없었다.
툭.
나는 경매장 탐색을 종료하고 이지성과의 대화방에 들어갔다.
그러자 'engine555'가 나에게 보낸 메세지의 내용이 눈앞에 출력되었다.
- engine555 : 안녕 ㅎㅎ
- engine555 : 이렇게 개인대화를 보내는건 또 처음이네
- engine555 : 혹시 같은 동료끼리 도움을 좀 받을 수 있을까?
'engine555'가 나에게 보낸 메세지의 내용.
그것은 나에게 도움을 구한다는 것이었다.
타닥, 타다닥-.
나는 그런 이지성을 향해 의문을 표하는 내용의 메세지를 전송했다.
- 거품판독기 : 무슨 도움?
- engine555 : 만나야 할 사람이 있는데 대장이나 내가 직접 찾아가기에는 얼굴이 너무 많이 팔려버렸어.
- engine555 : 괜찮으면 나 대신 찾아가서 물건이랑 이야기 좀 전해주면 좋겠는데.
- 거품판독기 : 누구랑 만나는 일인데?
- engine555 : 더스트 길드장
이지성이 나에게 전하고자 하는 부탁.
그것은 내가 그를 대신해 더스트 길드의 길드장을 만나는 일이었다.
더스트 길드는 오지후와 오지아가 소속되어있는 길드이기도 했다.
다시 말해서 한국의 5대 길드 중 하나를 이끄는 사람과 만나라는 이야기였다.
더군다나 이지성의 이야기는 거기에서 그치지 않았다.
- engine555 : 이건 우리가 같이 꿈꾸는 '목표'를 위한 일이야
- engine555 : 불쌍한 동료를 생각해서라도 도와줄 수 있지?
- engine555 : 이번 부탁만 들어주면 나도 적당할때 한번은 도와줄게
- engine555 : 법적으로 조금은 껄끄러운 부탁이라도 나한테는 상관없어
- engine555 : 유튜버 '헌잘알'님.
나를 향한 이지성의 부탁이 담긴 메세지가 보내져온 이후.
나는 눈앞의 메세지에 그의 진심이 담겨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리고 그가 한번은 작정하고 내 정보를 캐냈다는 사실 역시 이해할 수 있었다.
적어도 이번 부탁이 이지성의 신뢰를 얻기 위해서는 반드시 필요한 일이라는 것만큼은 분명해보였다.
"······더스트 길드라."
거대 길드를 이끄는 길드장과의 대담.
아무래도 71만 유튜버인 나에게 있어서 피할 수 없는 순간이 찾아온 모양이었다.
36화
사람은 이해할 수 없는 것을 두려워하는 법이다.
그 상대가 자신이 통제할 수 없는 부류라면 더욱 그러했다.
헌터 사회가 시작된 이후, 전세계의 S급 헌터들은 각국의 정부가 두려워하는 대상이 되었다.
현재의 사회시스템이 그들을 온전히 통제할 수 있는가.
그 사실을 끊임없이 의심하고 경계해왔다는 이야기였다.
주선호나 이지성같은 위험분자들이 꽤나 많은 시선을 받는건 그런 이유에서였다.
그리고 나는 수많은 이들이 두려워하는 그들의 계획에 대해 이해하기 위해서 지금 이 자리에 나와있었다.
"38번··· 정확히 이쯤에 있으려나."
더스트 길드의 사옥 앞에 위치한 지하철역.
그곳에서 나는 눈앞에 놓여있던 커다란 물품보관함을 바라보았다.
그림자사냥꾼, 이지성.
때때로 정부의 눈조차 속일 수 있는 실력을 가진 그가 이곳에 숨겨놓은 물건을 찾기 위해 찾아온 것이다.
38번 물품보관함.
나는 이지성에게 들은 번호를 찾아 시선을 움직였다.
이미 열쇠는 그가 일러둔 장소에서 챙겨온 상황.
그러니 해당하는 물품보관함을 찾아 물건을 회수하기만 하면 끝이었다.
"여깄네. 38번."
구석에 있던 38번 보관함이 내 시야에 들어왔다.
이지성이 나에게 메세지를 통해 이야기했던 공간이었다.
철컥. 끼이이익-.
내가 열쇠를 넣고 보관함을 열어젖히자, 그곳에는 커다란 종이봉투 하나가 있었다.
아무래도 이지성이 나에게 부탁했던 물건이 이 종이봉투였던 모양이었다.
"······."
부스럭, 부스럭.
주변의 시선을 피해 종이봉투를 열어보니, 비어있는 종이와 인주가 들어있었다.
그리고 봉투의 한구석에 조그맣게 메모지 한장이 놓여있는 모습이었다.
이지성이 나에게 보낸 메모였다.
"뭐라고 적어놓은거야?"
아무래도 길드장과의 만남에 앞서, 내가 전해줬으면 하는 이야기를 적어놓은 모양이었다.
나는 이지성이 적어놓은 메모의 내용을 살펴보았다.
스윽.
내 시선이 향하는 곳에 조악한 필체로 적은 글자들이 적혀있었다.
- 길드장한테 서약서를 받아서 38번 보관함에 넣어줘 : )
- 협회의 감사 선임 관련 이야기도 이미 어느 정도 전달해놨어.
- 적당히 타이르면 우리 요구를 들어줄거야.
- 고마워. 형제.
나는 이지성이 적어놓은 메모를 위에서부터 쭉 읽어나갔다.
그리고는 그에 대한 감상을 가볍게 입밖으로 늘어놓았다.
"······글씨를 왜 이렇게 못쓰지?"
그림자사냥꾼, 이지성.
그는 엄청난 악필이었던 것이다.
다만, 이지성이나 주선호가 어떤 일을 꾸미고 있는지는 대강이나마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그들이 원하는 계획을 위해 협회쪽부터 내부정리를 하려는 모양이었다.
그를 위해 만나야하는 인원들 중 하나가 더스트 길드의 길드장이었고 말이다.
"더스트 길드··· 오지후와의 촬영 이후에 오랜만에 찾아가는 건가."
더스트 길드에 입장하기 위한 명분 자체는 이미 내 나름대로 준비해둔 상황이었다.
오늘은 유튜버에 대한 촬영허가를 발판으로 삼아, 오지후와 오지아의 영상을 간단하게 촬영할 생각이었다.
오지아와는 이미 컨텐츠 촬영이 약속되어있는만큼 그리 어렵지 않은 일이었다.
그 뒤에는 이지성이 언질을 전해둔 길드장을 찾아가서, 본격적으로 '비밀결사'에서 원하는 문제를 해결할 생각이었다.
목에 걸려있는 카메라의 무게가 오늘따라 무겁게 느껴졌다.
"후··· 정신차리자."
구독자 71만 3천명 유튜버의 품격을 지키며, 비밀결사의 목적을 무사히 완수한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주선호가 나에게 밝히지 않은 모임의 활동을 분석한다.
그것이 오늘의 나에게 주어진 역할이었다.
S급 헌터유튜버 '헌잘알'.
난생 처음으로 만나는 5대길드 길드장과의 미팅 시간이었다.
* * * * * *
더스트 길드에서 진행한 오지후 남매와의 컨텐츠 촬영은 순식간에 끝을 맺었다.
새로운 S급 헌터와의 인터뷰와 더불어, 그들의 훈련 장면을 영상에 담은 것이다.
요즘 오지아의 영상이 알고리즘을 타고 있는 상황이었으니, 유튜브에 올린다면 못해도 중박을 칠만한 영상이 나올게 분명했다.
그렇게 그들과의 만남이 끝난 이후에는, 나는 곧장 엘리베이터를 타고 약속장소로 이동했다.
더스트 길드의 최상층에 위치한 휴식공간.
그곳이 오늘 나와 더스트 길드장이 만나기로 약속한 장소였다.
"······왔나?"
끼이익-.
약속시간에 맞춰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가자, 나는 소파에 앉아있는 거대한 체구의 남자를 마주할 수 있었다.
A급 헌터. 철권(鐵拳) 강석구.
더스트 길드의 길드장이자 특유의 카리스마로 유명한 헌터였다.
지금의 더스트 길드를 일으켜세운 살아있는 전설이기도 했다.
그리고 그런 길드장의 뒤에는, 양복차림의 외팔이 남자 하나가 서있는 모습이었다.
더스트 길드의 A급 헌터 중 하나, 속검(贖劍) 오종철.
늘 길드장인 강석구와 함께 다니는 보디가드였다.
"시간에 정확히 맞춰왔군. 맞은편에 앉지. 아무래도 할말이 길어보이는데."
강석구는 맞은편에 놓여있는 의자를 턱짓으로 가리키며 이야기했다.
그리고 그런 강석구의 뒤에 있는 보디가드의 경우에는, 나를 향해 날카로운 시선을 보내오는 모습이었다.
나는 멋쩍은 미소를 지으며 강석구의 이야기대로 그의 맞은편에 앉았다.
"처음 뵙겠습니다. 신유호라고 합니다."
"이지성이 사람을 보내겠다더니, 설마하니 유튜버를 보내올줄이야."
"길드장님. 중요한 이야기를 해야할 것 같은데, 뒤에 계신 분은······."
"신경쓰지마. 입이 무거운 녀석이야. 내가 이 녀석한테 숨길 수 있는 비밀은 없다고 보면 될거다."
강석구는 그렇게 말하면서 입가에 담배 한개비를 무는 모습이었다.
외팔이 검객과 카리스마 길드장.
두 콤비의 이야기는 오래전부터 헌터계에서 유명한 편이었다.
비록 한쪽 팔이 잘린 오종철은 지금은 헌터를 은퇴하고 강석구의 호위 일을 하고있지만 말이다.
오종철은 사전에 진행된 이야기를 알고 있었는지, 나를 압박하는 듯한 시선을 계속해서 보내오는 중이었다.
최약체 헌터인 내 입장에서는 참으로 부담스러운 시선이 아닐 수 없었다.
"자네에 대해서는 방금 전에 보고받았어. '헌잘알'이라는 채널을 운영하는 유튜버라고 하던데."
그런 오종철을 뒤에 세워둔 채, 강석구는 나를 향해 이야기를 꺼내기 시작했다.
내가 운영하는 채널명, '헌잘알'.
그에 대한 이야기를 꺼내는 강석구의 눈빛이 무겁게 가라앉는 모습이었다.
"뭐, 재밌는 영상도 올리긴 하는데, 결국 우리 헌터들 팔아서 먹고 사는 녀석이더만."
"······예?"
그리고 그 뒤에 이어진 이야기에, 나는 강석구를 향해 의문을 표하지 않을 수 없었다.
강석구 길드장.
그가 나를 향해 지나치게 적대적인 표현을 서슴치 않고 꺼내온 까닭이었다.
평소부터 헌터 유튜버들을 안좋게 보고 있었던 것인가.
그게 아니라면 대화에 앞서 기선을 제압하려고 드는 것인가.
내가 그에게 보내는 의아함의 시선속에서, 강석구의 이야기가 계속해서 이어졌다.
"이지성 그놈도 나를 어지간히 우습게 본 모양이야. 중요한 대화라더니 고작해야 유튜버 따위한테 이런 이야기를 맡기고."
"강석구 길드장님. 제가 오늘 직접 이 자리에 나온건, 이번 이야기가 무척이나 중요하기에······."
"허, 참. 대형길드들한테 기생해서 벌어먹고 사는 주제에 입은 살았군."
까득-.
나는 강석구의 이야기를 듣고서 입꼬리를 한층 더 틀어올렸다.
겉으로 새나가지 않은 감정을 억누르며 그를 바라보았다.
무슨 생각을 하는건지는 몰라도 상당히 사람을 기분나쁘게 하는 재주가 있었다.
허나, 상대는 비밀결사에 필요한 일을 처리해야하는 인물이었다.
가능하면 서로 좋게 끝내는게 낫다는 이야기였다.
그렇기에 나는 애써 속을 억누르며 그를 바라보았다.
"······예. 더스트 길드같은 대형 길드들에는 항상 감사하고 있습니다."
"그래. 제 주제라도 알고 있으니까 좀 낫군."
씨익-.
나를 바라보던 강석구의 입가에 미소가 걸렸다.
그는 이제서야 내 반응이 마음에 드는 모양이었다.
"이지성이 나한테 전하라고 한말이 있겠지. 들어줄테니까 계속 이야기해봐."
담배를 태우며 나를 바라보던 강석구가 나를 깔보는 듯한 시선으로 입을 열었다.
거대 길드를 이끄는 A급 헌터 길드장.
그리고 길드의 떡고물을 받아먹고 사는 유튜버.
길드의 관계자들에게 굽신거리며 다니는건 나같은 유튜버에게 있어서 그리 낯선 일이 아니었다.
다만 강석구는 그중에서도 유독 사람의 신경을 거슬리게 하는 면이 있었다.
나는 강석구의 시선을 묵묵히 받아내면서도, 자신이 해야하는 일을 잊지 않았다.
이건 나 자신을 위해서도 한번쯤 필요한 절차였으니까 말이다.
"이지성씨에게 대략적인 이야기는 이미 들으셨다고 알고 있습니다."
"그래. 그 녀석한테 이미 들었지. 말도 안되는 터무니없는 이야기를 말이야."
"그에 대해서 오늘 서약서를 적고 지장을 찍어주셨으면 합니다."
스윽-.
나는 눈앞의 강석구를 향해 종이와 인주를 내밀었다.
비어있는 종이에 강석구가 직접 글씨를 적어 지장을 찍으라는 이야기였다.
내가 강석구에게 종이를 내민 이후.
콰앙!
강석구의 주먹이 테이블의 한구석을 일그러뜨렸다.
"나보고 지금 서약서를 적으라고? 구두로 확인받으면 끝날 이야기를 가지고 말이야?"
눈을 부릅 뜬 강석구의 시선이 나를 노려보았다.
내 이야기가 그의 심기를 불편하게 만든 것이었을까.
살기어린 시선이 나를 짓눌러오기 시작했다.
'역시 괜히 A급 헌터가 아닌건가.'
A급 헌터인 강석구의 기세는 상당히 무겁고 날카로웠다.
마주하고 있는 내 심장에도 조금은 부담이 갈 정도로 말이다.
허나, 나는 그런 강석구의 시선을 애써 참아내었다.
그리고 눈앞의 강석구를 향해 진지한 얼굴로 이야기를 전했다.
"예. 이곳에서 작성해주셨으면 좋겠네요. 저도 부탁을 받고 온 입장이라서."
"지금 나보고 장난하자는 거냐? 딱봐도 나한테 약점 내놓으라고 요구하는거잖아."
하-.
강석구가 연기를 내뱉으며 헛웃음을 지었다.
그 반응을 보고서 나는 이지성이 그에게 무엇을 요구했는지 알 수 있었다.
아무래도 이지성이 그에게 요구한 사항이 주선호의 '계획'과 관련된 모양이었다.
"이지성이 직접 찾아와도 못들어줄만한 이야기를 내가 너같은 기생충 따위한테 들으라고?"
정확히는 문서로 남겨서는 안되는 이야기를 이지성이 그에게 요구한 것이 분명했다.
그게 아니라면 강석구가 저런 반응을 보일 이유가 없을테니까 말이다.
강석구의 목에서는 서서히 핏대가 올라오기 시작했다.
"하, 참. 길드장 자리에 오래 있으니까 별 이야기를 다 들어보겠네."
"······."
"그딴 무모한 이야기를 들어줬으면 됐지, 하다못해 서약서를 써서 유튜버한테 넘기라고!"
콰앙!
강석구의 주먹이 다시 한 번 테이블을 내리쳤다.
묵직한 주먹이 테이블의 한쪽 다리를 찌그러뜨리며, 이내 테이블 전체가 한쪽으로 기울어져버리는 모습이었다.
스르르륵-.
기울어진 테이블을 타고 인주와 종이가 바닥에 떨어져내렸다.
바닥에 떨어진 종이를 보던 강석구가 짜증이 뒤섞인 목소리로 이야기했다.
"이지성 그놈, 내가 자기 말 안들으면 유튜버 통해서 서약서 방송에 내보내겠다는 이야기지?"
"강석구 길드장님."
"지금보니까 이지성이 자기 대신 욕먹으라고 너같은 기생충을 보낸거네. 어? 안 그러냐?"
"저는 중요한 일이라서 제가 이지성씨를 대신해 직접 찾아온거라고 분명······."
"등신같은 이야기는 집어치우자고. 너가 이게 얼마나 중요한 일인줄 안다고 그딴 소리를 지껄여?"
아무래도 내 이야기만 전해서는 진행이 어려울 것 같았다.
이지성 본인도 자신의 이름을 팔아먹으라고 이야기했으니, 적당히 이름을 써먹는게 좋을 터였다.
나는 눈앞의 강석구를 향해 이지성의 이름을 열심히 팔아먹었다.
"이지성씨가 당신한테 부탁한 일입니다. 길드장님."
"뭐?"
"······강석구 길드장님. 협회의 감사 선임에 대한 이야기도, 서약서에 대한 이야기도 전부 이지성씨가 전한 부탁입니다."
"나보고 이지성이, 지금 뭐라고······?"
담배연기 너머로 비추어지는 눈동자가 나를 노려보았다.
어디 한 번 지껄여봐라, 하는 듯한 살기를 머금은 눈동자.
내가 무슨 말을 하던지 욕할 준비가 되어있는 흉흉한 시선이었다.
"헌터협회 감사 자리에 이지성이 꽂아달라는 사람 꽂아달란거? 그거 다 들어준다고 약속했잖아. 시키는대로 다 해주겠다는데 내가 이제 서약서까지 써야되냐?"
나는 지끈거리는 머리를 붙잡고 그를 보았다.
아무래도 이지성과 강석구 사이의 이야기가 제대로 맞춰지지 않은 듯한 느낌이었다.
'딱봐도 주선호가 자기 사람으로 협회 내부를 장악하는 중인 것 같은데.'
주선호와 이지성이 자신들의 계획에 있어서 필요한 절차를 진행하고 있는건 분명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두 사람의 행적이 어느 정도 제약당하고 있다는 것도 확실했다.
다만, 그 탓에 중요한 이야기마저도 제대로 굴러가지 않는 느낌이었다.
대화를 진행하는 나 역시 서서히 인내심의 한계를 느낄 지경이었으니까 말이다.
"길드장님. 제 이야기를 듣고 서약서를 쓰라는게 아니라, 이지성씨의 이야기를······."
"그놈의 이지성 이야기 좀 그만 지껄여!"
눈앞에서 갑작스럽게 빛이 번뜩인 직후.
콰아앙-!
한순간 빠른 속도로 무언가 내 옆을 스치고 지나간 듯한 감각이 느껴졌다.
천천히 뒤쪽을 향해 시선을 돌려보니, 찌그러진 테이블의 다리 하나가 벽에 처박혀있는 모습이 보였다.
강석구 길드장이 테이블의 다리를 뜯어 집어던진 것이다.
조준이 조금만 빗나갔으면 어떤 일이 벌어졌을지 머릿속에서 끔찍한 상상이 스쳐지나갔다.
강석구의 태도가 슬슬 선을 넘어서기 시작한 것이다.
"너 나 누군지 모르냐? 나 더스트의 강석구야."
"······."
"S급 헌터를 두명이나 데리고 있는 더스트 길드의 길드장이라고!"
그 끔찍한 상상과 함께 내 인내심 역시 조금씩 무너져내리기 시작했다.
무례를 봐주는 것에도 정도가 있다.
유튜버와 길드 사이의 상하관계야 엄연히 존재하지만, 지금의 나는 평범한 유튜버같은게 아니었다.
지금 당장 내가 포인트를 풀기만 해도 헌터계의 판도가 뒤바뀔 것이다.
전세계를 구매하고도 남을 포인트가 나에게 있는 것이다.
그런 사람을 앞에 두고서, 고작해야 A급 헌터따위가 면전에서 모욕을 주는 이 상황이, 나는 그리 썩 달갑지만은 않았다.
언제까지고 길드한테 숙이면서 살려고 100만 유튜버가 되길 희망한건 아니었으니까 말이다.
"그런 내가! 이지성이 내 머리통 날릴까봐 두려워서! 이지성이 해달라는건 전부 다 들어줘야 한다는거냐—!"
강석구의 날선 목소리가 울려퍼졌다.
시끄럽고 정신사나우며 어수선하다.
그런 목소리를 들으면서, 나는 내 안에 잠들어있던 공포심이 찌그러지는 것을 느꼈다.
내가 원래부터 이런 사람은 아니었는데.
그런데도 달아오른 머리가 이성적인 브레이크를 거두어들였다.
조금은 이상해진 머리와 함께 강석구를 바라보자, 어느새 자리에서 일어선 강석구가 나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여기 있는 내가, 더스트를 이렇게 만들어낸 강석구가, 이지성이 하라는대로—."
나는 선을 한 번 넘으면 끝까지 달리는 사람이었다.
그게 이미 탈선해버린 열차라고 해도 말이다.
그렇기에 나는 어느새 일그러져버린 선을 바라보면서, 눈앞의 길드장을 향해 입을 열었다.
"입 좀 닥쳐봐. 시끄러우니까."
"뭐?"
- [에너지 증폭]이 활성화됩니다.
- 오늘은 더 이상 [에너지 증폭]을 활성화할 수 없습니다.
- [강력경고]가 활성화됩니다.
- 오늘은 더 이상 [강력경고]를 활성화할 수 없습니다.
날카로운 시선이 그를 파고들었다.
그 직후, 내 눈앞에 서있던 두 사람의 눈동자에서 동시에 힘이 풀렸다.
죽음.
선명하게 비추어지는 패배의 풍경.
원초적인 종말을 직면한 이들이 스스로의 목을 붙잡았다.
"커, 커헉······!"
"······!"
순식간에 두려움에 젖은 눈동자 두 쌍이 나를 바라보았다.
오종철은 창백해진 얼굴로 벽에 기대어 섰으며, 강석구는 다리가 풀렸는지 소파에 주저앉았다.
털썩-.
힘이 풀린 채로 소파에 내려앉은 그는, 스스로의 목을 더듬으며 나를 힐끔거렸다.
스스로의 생존을 확인하기 위해 그 증거를 찾고 있는 것이다.
흐릿하게 떨리는 목소리.
공포에 젖은 눈동자가 시선을 마주치지 못하고 도망갈 곳을 찾았다.
"이, 이건······."
무거운 분위기가 실내에 가라앉았다.
한순간에 생겨난 명확한 상하관계.
그 속에서 강석구는 자신이 있어야할 자리를 찾아내었다.
사람에게는 모두 저마다의 등급이 있다.
그리고 우리같은 헌터들은 조금 더 엄격하게 나누어진 등급을 가지고 있었다.
"허··· 허억······."
A급 헌터.
정점에 도달하지 못한 낙오자들을 조용하게 만드는데에는 고작 단 한번의 시선으로도 충분했다.
후욱, 후우-.
담배연기가 들어찬 방안에 거친 숨소리가 울려퍼졌다.
반복해서 울려퍼지는 거친 숨소리를 들으면서, 나는 이제서야 조용해진 헌터들을 바라보았다.
"이제야 좀 조용해졌네."
나는 헌터들을 좋아한다.
그리고 그들의 이야기를 좋아한다.
그렇다고 해서 내가 모든 헌터들을 좋아하는 것은 아니다.
내가 만들어낸 자그마한 울타리 안에 설 자격조차 갖추지 못한 이들이 이곳에 있었다.
그런 이들을 앞에 두고서, 나는 씁쓸한 미소를 입가에 머금으며 입을 열었다.
"주선호도 나보고 형제라고 부르면서 내 눈치를 보고 다니는데, 우리 길드장님은 그런 기생충 눈치따위는 안봐도 돼서 참 좋으시겠어."
"아, 으······."
"자신감이 넘치는게 좋은거지. 그 덕분에 이렇게 사업도 성공했으니."
스윽-.
나는 바닥에 떨어져있던 종이와 인주를 주워들었다.
그리고는 그것들을 기울어진 테이블 끝에 다시금 가지런히 올려두었다.
강석구 길드장에게 필요한 선물들을 제자리에 올려놓은 이후.
나는 눈앞의 길드장을 향해 친절한 얼굴로 이야기를 건넸다.
"강석구 길드장님. 자신있어요?"
"······."
"나를 적으로 돌리고도 여기서 살아나갈 자신있냐고."
브레이크를 망가뜨린 열차.
나는 그것을 선로의 끝을 향해 몰아가기 시작했다.
37화
더스트 길드의 길드장, A급 헌터 철권(鐵拳) 강석구.
그는 A급 헌터중에서도 일찍이 자신의 한계를 깨달은 인물이었다.
그저 운이 좋았을 뿐인 범재.
자신이 어떠한 노력을 하더라도 결코 S급에 도달할 수 없음을, 너무도 이른 나이에 깨달아버리고 말았던 것이다.
그렇기에 그가 선택한 길은 하나였다.
자신이 S급에 도달할 수 없다면, S급을 자신의 아래에 두자.
그런 그의 빠른 결단은 강석구를 지금의 위치에 올려두었다.
대한민국의 5대 길드 중 하나, 더스트 길드의 창립자.
카리스마 길드장 강석구.
그게 지금의 강석구를 나타내는 수식어였다.
"너 나 누군지 모르냐? 나 더스트의 강석구야."
"······."
허나, S급의 꿈을 일찍이 접었다고 해서, 그가 S급 헌터들에게 아무런 감정도 느끼지 못하는건 아니었다.
지금도 강석구의 가슴속에는 뿌리깊게 내려앉은 열등감이 존재하고 있었다.
개는 두려울수록 크게 짖는 법이다.
강석구 역시 마찬가지였다.
"S급 헌터를 두명이나 데리고 있는 더스트 길드의 길드장이라고!"
그는 S급 헌터들이 부러웠다.
그리고 두려웠다.
그들과 같은 자리에 섰음에도 그들이 A급인 자신을 우습게 여길까 두려웠다.
그래서 그는 S급 헌터와의 일에서는 항상 아슬아슬한 수준까지 선을 탔다.
이번에도 마찬가지였다.
주선호고 이지성이고, 지금 당장 일을 벌일 생각이 없는건 확실했다.
그들은 과격하지만 합리적인 사람들이다.
그러니 강석구가 작정하고 그들을 막는게 아니라면, 적어도 아직은 강석구에게 실력행사를 벌이지는 못할 것이 분명했다.
'어차피 이지성 그놈은 지금 당장은 나한테 손 못대.'
사업에 협상은 필수불가결한 과정이다.
밀고 당길 타이밍을 제대로 알아야한다는 이야기였다.
그리고 지금 강석구의 눈앞에 있는 것은, 이지성 본인조차도 아니고 그 심부름꾼에 불과했다.
그것도 한줌의 마력조차 제대로 느껴지지 않는 인간이었다.
민간인이거나, 그와 크게 차이나지 않는 저등급 헌터라는 이야기였다.
'지금은 내가 밀고 나갈 타이밍이다.'
이지성을 대신해서 자리에 나오기는 했지만, 상대는 고작해야 일개 유튜버.
이지성 본인도 적당히 '믿을만한 사람'을 대리자로 보냈다고 했을 뿐이었다.
더스트 길드를 이끄는 그가 눈치따위는 전혀 볼 필요없다는 이야기였다.
그러니 이번에는 자신이 강하게 밀어붙일 차례였다.
이지성 본인에게 너무 지나치게 굴지만 않는다면, 그가 일이 커질 리스크를 감안하면서까지 칼을 휘두르진 않을 테니까 말이다.
그렇기에 강석구는 그들을 향한 자신의 두려움을 감추기 위해 으름장을 놨다.
"그런 내가! 이지성이 내 머리통 날릴까봐 두려워서! 이지성이 해달라는건 전부 다 들어줘야 한다는거냐—!"
맹수의 포효와도 같은 거대한 외침.
제대로 된 마력조차 없는 눈앞의 인간에게 위압감을 심어주기 위한 일갈.
여기서 적당히 겁을 줘서 기세를 짓누르고, 서약서만이라도 없던 것으로 만들어야만 한다.
그런 생각으로 강석구가 신유호를 노려보던 순간.
"입 좀 닥쳐봐. 시끄러우니까."
"뭐?"
그는 무언가 단단히 잘못되었음을 깨달았다.
의아해하는 강석구의 시선이 눈앞의 남자를 바라보았다.
그 직후, 그는 죽음을 마주했다.
"······."
무투계 헌터의 방어체계를 뚫고 파고드는 선명한 살의.
명확하게 인지할 수 있는 속도로 다가오는 그것이, 조금도 저항할 수 없는 흐름으로 그에게 닿았다.
잘려나가는 살갗.
서늘함.
기울어진 시야.
그 속에서 스스로의 죽음을 마주한 강석구의 정신이 한차례 가라앉았다.
"커, 커헉······!"
강석구의 손이 자신의 목을 붙잡았다.
목이 베여나갔다.
인지했음에도 저항할 수 없는 흐름이 분명 그에게 찾아왔었다.
털썩-.
소파에 주저앉은 강석구의 손이 자신의 목을 더듬었다.
목이 베여나간 흔적을 찾아보려고 하지만, 그럼에도 강석구의 목은 여전히 제자리에 붙어있는 모습이었다.
"허··· 허억······."
강석구의 거칠어진 숨소리가 메아리쳤다.
그의 뒷편에서는 벽에 기대어선 오종철의 일그러진 호흡이 느껴졌다.
방금 전까지 그들에게 행해졌던 죽음의 풍경이 선명하게 뇌리를 스쳐지나갔다.
그리고 그런 풍경을 만들어낸건 단 한명의 헌터였다.
강석구의 맞은편에 앉아있는 남자.
유튜버 신유호.
제대로 된 마력조차 느껴지지 않는 남자가, 무미건조한 시선으로 그를 바라보고 있었다.
"이제야 좀 조용해졌네."
싸늘한 목소리가 방에 울려퍼졌다.
강석구를 내려다보고 있는 신유호의 목소리였다.
강석구는 그제서야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이해했다.
이지성의 장난이었다.
강석구가 이렇게 나올거라는걸 이해한 이지성이, 일부러 상대의 정체를 이야기하지 않은 것이다.
'의도적으로 실력을 숨기고 있었나······!'
상대는 강석구 자신보다도 강한 헌터였다.
그것도 이지성에 준하거나, 그보다 더한 전투능력을 가지고 있는 미등록 S급 헌터가 분명했다.
그런 인물이 강석구의 앞에서 실력을 숨기면서 일부러 모욕을 받아넘겼다.
그는 자신이 위험한 무언가를 자극하고 말았음을 깨달아버렸다.
"주선호도 나보고 형제라고 부르면서 내 눈치를 보고 다니는데, 우리 길드장님은 그런 기생충 눈치따위는 안봐도 돼서 참 좋으시겠어."
"아, 으······."
더군다나 상대의 입에서 흘러나오는 이야기는 그의 추측을 긍정하고 있었다.
주선호조차 '형제'라고 부르며 조심스럽게 대하는 미등록 헌터.
이지성은 '적당히 믿을만한 사람'이라고 이야기했지만, 눈앞의 상대는 겨우 그런 존재가 아니었다.
주선호가 주도하는 '계획'에 적극적으로 동참하고 있는 S급 헌터들 중 하나.
더스트 길드를 이끄는 자신조차 얼굴을 모르고 있었던걸 생각하면, 그중에서도 극비로 취급되는 인물인 것이 분명했다.
'저만한 실력을 가지고서 주선호랑 서로 형제라고 부르고 다닌다고······!'
그 사실을 이해한 강석구의 머릿속에 방금 전에 신유호와 나누었던 대화가 스쳐지나갔다.
—중요한 일이라서 제가 이지성씨를 대신해 직접 찾아온거라고 분명 말씀드렸습니다.
중요한 일이기에 자신이 직접 찾아왔다.
신유호는 분명 그렇게 이야기했다.
그가 주선호의 '비밀결사' 내에서 대의에 동참하는 인물이라면, 저 이야기가 의미하는건 결국 하나뿐이었다.
'나한테서 서약서를 받겠다는게 설마··· 이지성이 아니라 신유호 본인의 의지였던거냐.'
강석구에게 서약서까지 받아가려고 하는건 어디까지나 신유호의 개인적인 판단이 틀림없었다.
그렇기에 신유호 본인이 여기에 찾아온 것일테고 말이다.
소파에 주저앉은 강석구를 바라보던 신유호가, 그를 향해 씁쓸한 미소를 지으며 이야기했다.
"자신감이 넘치는게 좋은거지. 그 덕분에 이렇게 사업도 성공했으니."
강석구를 추궁하는 듯한 목소리가 울려퍼졌다.
그는 바닥에 떨어진 종이와 인주를 테이블에 올려놓았다.
방금 전에 목에 드리워진 금속의 서늘함을 떠올리자, 강석구는 소름이 돋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더군다나 신유호의 이야기는 거기에서 그치지 않았다.
"강석구 길드장님. 자신있어요?"
미등록 S급 헌터, 신유호.
정부의 감시조차 받지 않는 그가 강석구를 바라보며 이야기했다.
"나를 적으로 돌리고도 여기서 살아나갈 자신있냐고."
그것은 협박이었다.
자신의 뜻에 따르지 않으면 지금 당장 두 사람을 이 자리에서 죽여버리겠다는 협박말이다.
애써 눈을 피하던 강석구의 시선이 신유호의 눈동자와 마주쳤다.
광기에 물들어있는 눈동자가 강석구의 모습을 비추고 있었다.
이지성이나 주선호같이 제 진심을 숨기고 다니는 이들의 눈동자와는 달랐다.
그 눈동자에서 절제의 감정이라고는 조금도 보이지 않았으니까 말이다.
"······."
꿀꺽-.
신유호를 바라보던 강석구가 자신도 모르게 침을 삼켰다.
끝도 없이 차오르는 긴장감에 가슴이 답답해지는 느낌이었다.
그는 지금 자신이 위험한 낭떠러지에 걸쳐있다는 사실을 이해했다.
한발자국 앞으로 잘못 내딛으면 곧장 아래로 추락하는 낭떠러지 말이다.
'내가 파악해뒀던 명단이 전부가 아닐지도 모른다.'
어쩌면 저들의 세력이 강석구의 짐작보다도 훨씬 더 거대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정부의 감시망에서 벗어난 비밀스러운 전력을 가지고 있는 이들이다.
강석구 자신이 밖에서 입을 열지만 않는다면, 그 누구도 눈앞의 미등록 헌터가 활개치고 다니는걸 막을 수 없을 것이다.
그리고 그런 S급 헌터가 지금 강석구를 죽이겠다고 으름장을 놓고 있는 상황이었다.
"자신있으면 서약서 쓰지말고 그냥 찢어버립시다. 길드장님."
"······."
"저도 길드장님의 자신감이 어디까지 갈 수 있는지 한 번 보고싶네요."
한층 더 가라앉은 목소리가 방에 울려퍼졌다.
분명 존댓말로 그에게 이야기하고 있지만, 그 어떠한 표현보다도 모욕적이고 폭력적인 이야기였다.
까득-.
이를 악문 강석구가 떨리는 몸을 움직여 자세를 바로잡았다.
죽음의 공포에 직면했던 육체는 주인의 명령조차 제대로 듣지 않는 상황이었다.
"······미안하다. 내가 너무 과했다."
결국 자세를 되돌린 강석구의 입에서 나온 것은, 신유호를 향한 절제된 사과의 말이었다.
신유호를 압박하기 위해 강하게 나갔던 자신의 태도가 잘못되었음을 인정한 것이다.
허나, 그런 강석구의 이야기에도 신유호의 태도는 변하지 않았다.
"강석구 길드장님."
여전히 미소를 짓고 있는 신유호의 눈이 그를 바라보았다.
"저는 자신있으면 이 자리에서 저 종이 찢어버리시면 된다고 말했습니다."
"그건······."
"저한테 사과를 왜 하는겁니까. 더스트 길드의 길드장이나 되시는 분이."
강석구 자신을 지그시 바라보는 시선.
진심을 드러낸 이후로 아무런 움직임도 취하지 않고 있는 신유호였다.
작정하고 자신의 빈틈을 내어놓은 채 앉아있는 모습은, 마치 강석구가 그를 공격하기라도 바라는 모양새였다.
그럼에도 그 모습이 제 실력을 억누른 모습이라는 사실은, 이 자리에 있는 모든 이들이 알고 있는 것이었다.
'원거리 딜러인 오지후로는 저 녀석을 절대 못막는다.'
강박증에 가까워보일 정도로 자신의 수준을 숨기는 것에 능숙하다.
무슨 이유로 저렇게까지 힘을 숨기는건지는 모르겠지만, 적어도 맨정신이 박힌 인간이 할만한 짓은 아니었다.
"그래서, 우리 길드장님은 어떻게 하실 생각이십니까?"
눈앞에 있는 미치광이의 협박을 의심하며 목숨을 내걸어볼 것인가.
그게 아니라면 신유호가 원하는대로 서약서를 쓰고 약점을 쥐여줄 것인가.
한계까지 머리를 쥐어짜내던 강석구가 내린 결정은 하나였다.
툭-.
그는 떨리는 손을 뻗어 인주를 주워들었다.
"이것만··· 이것만 작성하면··· 전부 끝나는거냐."
그리고 뚜껑을 열어 엄지 손가락을 밀어넣으면서, 신유호를 향해 어색한 목소리로 이야기했다.
피식-.
그를 바라보던 신유호의 입에서 조소가 터져나오는 모습이었다.
지장을 찍기 위에 종이를 향해 손을 뻗는 강석구를 바라보면서, 카메라가 들어있는 가방을 만지작거리던 신유호가 이야기했다.
"그거 알아요? 저 길드장님이 생각하는 것보다 더스트 길드가 마음에 드는데."
"······."
"길드장님이 주신 기자 출입증이 있으면 저희가 조금 더 자주 볼 수 있을 것 같죠?"
계약을 맺은 유튜버나 일부 기자들에게만 발급되는 더스트 길드의 기자 출입증.
임시 출입증이 아닌 영구 출입증을 그에게 요구해오는 신유호였다.
명목상으로는 촬영을 위한 출입이지만, 눈앞의 신유호가 출입증을 원하는건 고작 그런 이유가 아닐 터였다.
강석구 본인을 포함한 더스트 길드의 감시.
비밀결사의 수뇌부들 중 하나가 직접 그를 감시하겠다고 이야기를 꺼내온 것이다.
"그, 기자··· 출입증은······."
비밀결사의 일원에게 감시당할 생각을 하다보니, 강석구는 자신도 모르게 말끝을 흐리게 되었다.
차마 자신을 감시해달라는 이야기를 꺼내기가 힘들었던 것이다.
적당히 발만 담구려했던 것을 지나치게 깊이 엮이게 생긴 상황이었다.
더군다나 눈앞의 핵폭탄을 사내에 들이는 것에는 커다란 거부감이 있었다.
그런 강석구를 보며 신유호가 재차 입을 열었다.
"아. 곤란하시구나. 미안하다더니 아니었나보네."
"······아, 알겠다. 지금 이야기하면 오늘중으로 출입증이 나올거다."
결국 신유호에게 기자 출입증을 허가해준 강석구는 떨리는 손으로 종이에 지장을 찍었다.
꾸욱-.
강석구의 선명한 지문이 새하얀 종이에 찍혀버린 모습이었다.
지장을 찍은 강석구는 입술을 깨문채로 셔츠에 꽂아두었던 만년필을 꺼내들었다.
종이에 글씨를 적으려는 강석구를 향해, 신유호의 마지막 한마디가 흘러나왔다.
"기왕이면 글씨 좀 예쁘게 써주시죠. 이지성이 적은 글씨는 너무 악필이라서 알아보기가 힘들더라고."
"······그렇게 하지."
A급 헌터, 강석구.
더스트 길드의 길드장이 인생 최대의 굴욕을 겪은 순간이었다.
* * * * * *
더스트 길드에서의 짧지만 강렬한 회담이 끝났다.
홧김에 강석구 길드장을 향해 강하게 질러버리기는 했지만, 결과적으로는 그리 나쁘지 않은 결과를 얻어낼 수 있었다.
이지성이 원하는 서약서를 받아 38번 보관함에 넣어놓는데 성공한 것이다.
물론 나오기전에 서약서의 내용을 자세히 확인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강석구 길드장이 작성한 서약서는 더스트 길드가 주선호의 '계획'을 전폭적으로 지지할 것을 약속하는 내용이었다.
그가 어째서 서약서 작성을 기피했는지 이해할 수 있는 부분이었다.
"······이거 하나면 컨텐츠 50개는 찍겠는데?"
그와 더불어 강석구와의 만남에서 엄청난 수확을 얻어내기도 했다.
더스트 길드의 기자 출입증.
아무런 제한없이 더스트 길드의 사옥에 들어갈 수 있는 권한을 얻어낸 것이다.
더 이상 오지후 남매와 만나기 위해 임시 출입증을 발급받을 필요가 없다는 이야기였다.
"진작에 이랬으면 서로 좋았을텐데 말이야."
그렇게 오늘의 할일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
나는 더스트 길드의 출입증을 주머니에 넣어놓은 채로, 커뮤니티를 통해 'engine555'에게 1:1 대화를 보냈다.
내가 이지성의 부탁을 무사히 해결했다는 소식을 그에게 알린 것이다.
물론 이지성이 나에게 말했던 두 사람의 '이야기'가 제대로 진행되지 않았음을 책망하는 이야기도 함께 전했다.
내가 이지성에게 메세지를 보내고서 한참이 지나자, 그제서야 'engine555'로부터 답장이 돌아왔다.
- engine555 : 미안해
- engine555 : 사실 정말로 우리편인지 한 번 시험해보고 싶었거든
- engine555 : 대장이 널 믿는다고해서 내가 무작정 신뢰하기는 또 쉽지않잖아?
- engine555 : 일처리를 보니까 내가 우리 형제의 진심을 오해했던 것 같네
- engine555 : 고생했어 : )
- [engine555]님이 500포인트를 선물했습니다.
커뮤니티 이용자명, 'engine555'.
그림자사냥꾼 이지성은 나에게 장문의 사과 메세지를 보내온 모습이었다.
강석구와의 대화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았던 것이, 이지성이 어느 정도 의도한 내용이었다는 이야기였다.
이번 부탁 자체가 이지성이 나에게 내린 시험이었던 것이다.
더군다나 그런 사과문과 함께 나에게 500포인트를 선물해온 이지성이었다.
500포인트.
나에게 있어서는 의미없는 액수지만, 이지성에게 있어서는 마냥 가벼운 액수는 아닐터였다.
"······."
나는 'engine555'의 메세지를 보며 이지성이란 사람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해보게 되었다.
그림자사냥꾼, 이지성.
그는 어떤 생각으로 주선호를 따르고 있는 것일까.
그리고 나에 대해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던 것이었을까.
피곤한 하루를 보내서 그런지, 유독 고민이 많아지는 밤이었다.
"피곤하네. 집에 가서 좀 쉴까."
짧은 하품을 내뱉은 나는 손가락을 움직여 'engine555'와의 대화창을 닫았다.
이지성과의 대화가 끝났으니 커뮤니티의 게시글이나 잠시 살펴볼 생각이었다.
툭-.
게시판에 접속한 나는 곧바로 [인기 게시글] 버튼을 눌렀다.
그렇게 접속한 [인기 게시글]의 최상단에는, 내가 전혀 예상치 못했던 제목의 게시글이 올라와있는 모습이었다.
작성자명 'xkingx'.
중국의 S급 헌터, 나선창 첸다오가 작성한 게시글의 제목을 확인한 내 얼굴이 딱딱하게 굳었다.
"음······?"
나는 의아함에 젖은 눈으로 게시글의 제목을 다시 한 번 눈으로 훑었다.
- 신창 주선호는 나선창 첸다오의 추격을 두려워하고 있습니다. [31] (xkingx)
S급 헌터들만이 모여있는 비밀 커뮤니티.
아무래도 커뮤니티의 게시판은 오늘도 떠들썩한 분위기에 휩싸일 모양이었다.
38화
대한민국에는 수많은 헌터들이 존재하고 있지만, 그중에서도 각국의 정부가 가장 경계하는 인물은 하나였다.
S급 헌터, 그림자사냥꾼 이지성.
그는 회피형 탱커, 척후, 도적같은 다양한 포지션으로 분류되었지만, 이지성 자신이 생각하는 그의 본질은 하나뿐이었다.
—암살자.
그것도 현대의 히트맨들과는 궤를 달리하는 초월적인 능력을 보유한 암살자였다.
그렇기에 신창 주선호가 자신의 계획을 위해 가장 먼저 찾았던 것이 바로 그림자사냥꾼 이지성이었다.
이지성 자신도 본인에 대한 외부의 평가를 알고 있기에, 적어도 겉으로 노출되는 모습으로는 어느 정도 자중하는 편이었다.
'500포인트를 썼고, 출석보상이 새로 들어올테니 이제 4500포인트 정도가 남아있는 셈인가.'
그리고 현재, 그런 이지성은 한가지 '상품'에 꽂혀있는 상황이었다.
이지성이 이용하는 [커뮤니티]에서 제공하는 [리워드] 상점.
최근에 이르러서 한차례 더 업그레이드 된 그곳에, 이지성의 이목을 한눈에 사로잡은 상품이 있었던 것이다.
상품명, <마력 소모량 감소 : 3%>.
4500 포인트를 소모해야만 구매할 수 있는 해당 상품은, 스킬의 소모값을 3% 낮춰주는 효과를 가지고 있었다.
'슬슬 그걸 구매하면 되겠어.'
언뜻 보기에는 무척이나 낮은 폭의 감소량이지만, 중요한건 해당 상품이 한번만 구매할 수 있는게 아니라는 점이었다.
한 번 구매할때마다 이지성의 전투 지속능력을 큰폭으로 올려주는 물건.
해당 아이템을 구매하는 횟수에 따라 복리로 계속해서 마력 소모량을 깎아낼 수 있는 것이다.
은신과 회피에 의존하는 이지성의 입장에서는 적지 않은 메리트를 가진 물건이었다.
그렇기에 이지성은 자신의 짓궂은 장난을 받아준 '동료'에게 포인트를 보낼 때에도, 자신이 사용할 만큼의 포인트만큼은 남겨두었던 것이다.
그렇게 지난밤에 남은 포인트가 4400포인트.
오늘의 출석보상 100포인트를 더하면 딱 4500포인트에 맞게 떨어질 터였다.
"—[네트워크 접속]."
출석 초기화 시간을 확인한 이지성은 곧장 [커뮤니티]를 호출했다.
띠링-.
경쾌한 알림음과 함께 익숙한 창이 이지성의 눈앞에 떠올랐다.
출석체크 화면에서 보상을 수령한 이지성은, 손가락을 [리워드] 메뉴에 가까이 가져갔다.
툭-.
이지성의 손가락이 [리워드] 버튼을 누르자 상점 페이지로 전환되는 모습이었다.
'어디보자. 마력 소모량 감소가······.'
[리워드] 페이지에 도착한 직후, 이지성은 자신이 그토록 찾던 상품을 향해 시선을 움직였다.
스윽.
이지성의 시선이 [리워드] 페이지를 한차례 훑고 지나갔다.
허나, 이지성은 [리워드] 상점에서 자신이 원하던 상품을 찾지 못했다.
[리워드] 상점에 이지성이 전혀 예상치 못했던 이변이 벌어진 것이다.
그 사실을 깨달은 이지성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었다.
"아니, 이게 대체······."
이지성의 눈앞에 보이는 [리워드] 화면.
그곳에는 이전과는 판이하게 바뀐 상점의 모습이 보이고 있었다.
단순히 상점이 바뀌었다는 수준이 아니었다.
지금 이지성의 앞에 보이는 [리워드] 화면은, 엄청나게 빠른 속도로 상품을 갈아치우고 있었으니까 말이다.
휘릭. 휘릭. 휘릭. 휘릭-.
그 말도 안되는 풍경 탓에, 평소라면 평정을 유지했을 이지성의 표정도 무너져버린 모습이었다.
"뭐야, 이거? 대체 왜 이래?"
이지성은 눈살을 찌푸리며 눈앞의 상점을 노려보았다.
말도 안되는 속도로 바뀌는 상품들이 순차적으로 이지성의 눈을 현혹시키는 모습이었다.
빠른 속도로 상품을 갈아치우는 모습이 마치 슬롯머신을 연상하게 만들 정도였다.
대체 왜 이런 일이 일어났는가.
그런 고민을 하기에 앞서, 이게 대체 뽑으라고 있는 것인가 의문이 들 정도였다.
'상태창에 문제가 생긴건가? 하지만, 상태창에 문제가 생겼다는 소문은 들어본 적이 없는데.'
그가 이용하는 [커뮤니티]는 상태창이 S급 헌터들에게만 제공하는 기능이었다.
그러니 눈앞의 문제는 이지성의 상태창에 문제가 생겼다는 이야기와 동일했다.
난감해하는 얼굴로 상점을 노려보던 이지성은 상품 페이지의 갱신 주기를 계산했다.
다른 헌터들에 비해 유독 정밀한 그의 생체시계로 계산하건데, 그의 눈이 포착하고 있는 화면의 유지시간은 대략 0.1초 이내.
상품을 구매하려면 적어도 0.1초 안에 두번의 터치를 가져가야한다는 이야기였다.
'원하던 상품이 아예 안나타나는건 아니야. 해당 상품이 눈앞에 보일때 정확히 터치하면 구매 자체는 가능할거다.'
암살자인 이지성의 속도는 S급들 중에서도 특출난 편에 속했다.
그런 그가 진심으로 손가락을 움직인다면, 정확한 터치를 가져가는 것도 가능할 터.
후우-.
짧은 심호흡을 내뱉은 이지성의 눈이 [리워드] 화면을 강하게 노려보았다.
'문제가 고쳐진 이후에는 원하는 상품이 상점에 남아있지 않을지도 모를 일이지.'
어쩌면 상태창이 고쳐질때까지 조금 더 기다리는 것도 방법일지도 모른다.
허나, 그렇게 고쳐진 뒤에 남아있을 상품이 이지성이 원하는 물건일거라는 보장이 없었다.
이지성은 언제 다시 나올지 모르는 물건을 위해, 무한한 기다림을 감내할 자신이 전혀 없었다.
상태창에 문제가 생겼다고 해서 원하던 아이템을 구매하지 않을 수도 없는 노릇.
그러니 이지성은 자신의 속도를 믿어보기로 했다.
'나라면 가능하다. 정확히 해당 상품을 집어낼 수 있어.'
원하는 상품이 스쳐지나가는 짧은 순간의 투 터치.
마치 회전하는 룰렛을 맞추는 정도의 난이도였지만, 뛰어난 동체시력과 빠른 속도는 이지성의 장기라고 할 수 있었다.
그는 초인으로서의 자신을 믿고서, 목표하던 상품을 향해 손을 뻗었다.
톡, 톡-.
번개와도 같은 빠른 번뜩임.
이지성의 손가락이 부드럽게 미끄러져내려간 직후, 이지성의 눈앞에 상태창으로부터의 알림 메세지가 떠올랐다.
- <고통 둔화(30일)>을 800포인트에 구매했습니다.
- 해당 효과는 앞으로 30일동안 유지됩니다.
눈앞에 떠오른 메세지를 마주한 이지성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이런, 씨······."
은신과 암습, 속도의 귀재. 그림자사냥꾼 이지성.
그는 도박에 실패했다.
* * * * * *
옛 현인의 말중에 이런 말이 있다.
군자의 복수는 10년이 걸린다.
하지만 난 군자가 아니기에 단 하루만에 복수를 감행했다.
이용자명 'engine555'— 이지성의 [리워드] 갱신 주기를 0.05초로 바꿔놓은 것이다.
다시 말해서 이지성의 상점은 1초에 20번씩 갱신된다는 의미였다.
꽤나 파격적인 복수라고 할 수 있지만, 내 복수는 여기에서 끝이 아니었다.
지금 내 눈앞에 떠올라있는 1:1 대화창.
그곳에서는 커뮤니티의 또 다른 이용자, 'yamazaki'와의 대화가 이루어지고 있었으니까 말이다.
- yamazaki : 부탁한대로 저주는 걸어줬어!
- yamazaki : ( つ' -')╮—̳͟◆
- yamazaki : 아마도 당분간은 치질에 시달리겠지.
- yamazaki : 근데 S급 헌터가 상대라서 그렇게까지 강하게 작용하지는 않을지도 몰라.
커뮤니티에서 'yamazaki'라는 닉네임을 사용하는 S급 헌터, 귀령(鬼靈) 야마자키 아오.
저주의 전문가인 그에게 500포인트를 지불하고서, 나를 골탕먹인 이지성에게 저주를 걸도록 주문한 것이다.
물론 'yamazaki'에게 보낸 500포인트는 이지성에게 받은 것이었다.
비록 나에 대해 악감정을 가지고 있다지만, 포인트의 유혹 앞에서는 그도 참을 수 없었던 것이었을까.
'yamazaki'는 흔쾌히 이지성에게 저주를 걸어주는 모습이었다.
"이지성 수준이면 야마자키의 저주에 완전히 저항하기는 힘들지."
'yamazaki'는 S급인 이지성에게 효과가 별로 없을지도 모른다 주장했지만, 내가 보기에는 이지성이 아무런 영향도 받지 않을 가능성은 없어보였다.
귀령, 야마자키 아오는 내가 전세계의 헌터들중에서 9위로 평가하는 인물이었다.
해당 평가에는 그가 가진 고유한 전투매커니즘도 크게 작용하고 있지만, 귀령의 관통능력도 높은 평가를 받는 요소들 중 하나였다.
그에 반해 이지성은 종합적인 전투지표에서 나에게 18위라고 평가받는 인물이었다.
두 사람 사이에는 명확한 급의 차이가 존재한다는 의미였다.
적어도 마법에 대한 저항능력이 낮은 이지성으로서는, 야마자키의 저주를 무력화할 수단이 없을 터였다.
타닥, 타다닥-.
나는 저주가 통하지 않을 걱정을 하는 'yamazaki'를 향해 메세지를 전송했다.
- 거품판독기 : 아마 그걸 맞고도 멀쩡하기는 힘들거야
- 거품판독기 : 귀령정도면 내 기준으로는 열손가락 안에 드는 헌터니까
- yamazaki : ( *˘╰╯˘)
- yamazaki : 너 식견이 훌륭한 헌터였구나?!
- yamazaki : 지난번에 말한 영상만 삭제한다면 저번에 건 저주도 바로 풀어줄게.
- yamazaki : /(´▽`)/
자신에 대한 내 객관적인 평가를 듣고서 기분이 좋아진 것이었을까.
그게 아니면 500포인트의 소득덕분에 도파민이 터져나온 것이었을까.
'yamazaki'는 나에게 영상만 삭제한다면 '헌터마스터'에게 걸린 저주도 풀어주겠다고 하는 모습이었다.
하지만 그건 안될 노릇이었다.
아직은 그에게 걸려있는 저주를 풀 타이밍이 아니었다.
"저주를 풀어주겠다고? 그건 안되지."
헌터마스터가 누구던가.
감히 구독자 72만 5천명을 보유한 유튜버, 나 '헌잘알'과 구독자들을 모욕한 인물이었다.
그런만큼 그는 충분히 죄의 대가를 치뤄야할 필요가 있었다.
그렇기에 나는 'yamazaki'의 제안을 정중하게 거절하기로 했다.
애초에 내가 삭제도 못하는 영상이었지만 말이다.
- 거품판독기 : ㄴㄴ
- 거품판독기 : 그건 그냥 계속 걸어
- yamazaki : ???
귀령과의 대화는 거기까지였다.
'yamazaki'로부터의 의문이 섞인 메세지가 올라왔지만, 나는 아무런 망설임 없이 대화창을 닫아버렸다.
귀령이 내 임무를 완수한 이상, 더는 내가 그와 나눌 이야기가 없는 까닭이었다.
툭-.
그렇게 'yamazaki'와의 대화창을 종료한 이후.
나는 커뮤니티의 게시판에 접속했다.
"오늘은 무슨 게시글이 올라왔는지 한 번 확인해볼까."
무릇 헌터 유튜버라면 헌터판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매일같이 살펴봐야하기 마련이었다.
그리고 내가 운영하는 S급 헌터 커뮤니티는, 전세계의 S급들이 매일같이 특급정보를 쏟아내는 정보의 보고였다.
그런만큼 오늘도 커뮤니티에서 다양한 정보들을 확인해볼 생각이었다.
결코 내가 커뮤니티 중독은 아니라는 이야기였다.
"오늘도 글이 많이 올라왔네."
그렇게 커뮤니티 게시판에 접속한 내 눈앞에는 무수한 게시글들이 올라와있는 모습이었다.
나는 눈앞에 떠오른 게시판의 게시글 제목들을 한번씩 훑어보았다.
- 오늘도.점심 머것서용 ^ O ^ [1] (swordmaster)
- 나는 지금 발생하고 있는 게이트 편향 현상에 대해 모두가 심각하게 여겨야한다고 생각한다. [3] (망원동불주먹)
- 밑에 환자분 보세요 [17] (frz0777)
- 나 지금 리워드 상점 1초마다 20번씩 갱신되는데 뭐야 [5] (engine555)
- 저희 선배가 너무 부끄럽습니다 [2] (firefox)
오늘도 게시판에는 다양한 종류의 게시글들이 올라와있는 모습이었다.
최두식과 식사사진 크루를 이루고 있는 'swordmaster'의 게시글부터, 무척이나 진지한 말투로 작성되어있는 주선호의 게시글까지.
많은 헌터들이 저마다의 이야기를 올린 것이다.
그리고 그중에는 유독 내 시선을 사로잡는 게시글 역시 존재하고 있었다.
"이야. 이지성도 바로 게시글을 올렸네."
지난 밤에 나에게 '짓궂은 장난'을 걸었던 한국의 S급 헌터.
이지성이 작성한 게시글이었다.
이지성의 게시글 제목에는 내가 그에게 걸었던 '사소한 장난'에 대한 내용이 적혀있었다.
1초마다 20번씩 갱신되는 [리워드] 상점의 갱신 퍼레이드.
그에 대한 불만을 이지성이 게시판에 적어놓은 것이다.
"대체 뭐라고 적어놨는지 한 번 확인해볼까."
자신의 복수에 대한 상대의 반응을 보는 것도 무척이나 통쾌한 일이다.
그렇기에 나는 이지성이 작성한 게시글의 내용을 확인해보기로 했다.
툭-.
내가 이지성의 게시글을 클릭하자, 이내 화면에 게시글의 내용이 출력되었다.
[ 제목 ] 나 지금 리워드 상점 1초마다 20번씩 갱신되는데 뭐야
[ 작성자 ] engine555
[ 이용자 정보 ] 이지성(30) / S급 / 그림자사냥꾼
나 지금 리워드 상점이 좀 이상한 것 같아.
계속해서 1초마다 20번씩 상점이 갱신되는 중이거든?
방금전에는 물건 구매하려다가 실수로 다른거 눌러서 포인트 날렸어.
이거 대체 어떻게 해결해야될까?
[ 댓글 5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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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지성이 방금 전에 커뮤니티에 올린 게시글의 내용.
거기에는 [리워드] 상점의 급격한 변동덕분에 상품을 잘못 구매했다는 내용이 적혀있었다.
내가 놓은 함정이 'engine555'를 제대로 물어뜯은 것이다.
"그 상황에서 기어이 물건을 구매한거야? 그것도 참 대단하네."
다만, 그보다 더 눈이 가는 것은 댓글의 내용이었다.
작성자 'engine555'의 게시글에 달려있는 5개의 댓글.
거기에는 내 입장에서 전혀 예상치 못한 내용들이 적혀있었으니까 말이다.
[ 댓글 5개 ]
- frz0777 : 허언증 환자
ㄴ engine555 : ?????
- xkingx : 칭화대 의과대학 출신인 제가 볼때 당신은 현재 환각증세에 시달리고 있습니다.
ㄴ engine555 : 너 첸다오잖아
ㄴ xkingx : 저는 첸다오 헌터님이 아닙니다.
현재 이지성에게 일어나고 있는 상황이 워낙 독특한 케이스이기 때문일까.
그게 아니면 이지성이 마땅한 증거를 제출할 방법이 없는 까닭일까.
그에게 달린 댓글은 하나같이 이지성이 거짓된 내용으로 작성한 게시글, 소위 '낚시글'을 작성했다고 판단하는 모습이었다.
상식이 박힌 사람이라면 이지성의 이야기는 상당히 믿기 어려운 이야기였다.
그러니 그들이 저런 반응을 보이는 것도 당연한 일이었다.
"하기야, 그거 말해준다고 누가 믿겠어."
해당 증상은 오직 이지성에게만 일어나고 있는 일이다.
그 누구도 이지성에게 생긴 문제를 확인할 수 없으며, 그 문제에 공감해주는 것조차 불가능한 일이었다.
이 세상에서 오직 나와 이지성만이 이해할 수 있는 현상.
그것이 바로 공포의 '리워드 룰렛'인 셈이었다.
"원래 확률뽑기가 제일 재밌는 법이지."
언제쯤 이지성의 갱신주기를 조정해줄지는 조금 더 고민해봐야할 일이었다.
나는 이지성의 게시글을 보며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었다.
* * * * * *
글로벌 시대.
바야흐로 지금은 온갖 국가와 빠르게 교류할 수 있는, 지구촌이라 부르기에 무척이나 적합한 시대였다.
하룻밤이면 비행기를 통해 어떤 나라라도 찾아갈 수 있는 것이다.
그리고 그런 시대에는 다국어를 할 수 있는 것도 하나의 재능이었다.
특히나 국제 공용어로 사용되는 영어의 중요성은 말로 다 표현할 수 없을 정도였다.
그런 의미에서 나는 지금 사소한 문제에 직면해있었다.
"······."
S급 유튜버 '헌잘알'.
악마적인 재능을 가지고서 유튜브 채널의 기적적인 성장을 이뤄낸 나였지만, 그런 나에게도 한가지 치명적인 단점이 존재하고 있었던 것이다.
토익점수 460점.
나는 영어를 제대로 못하는 편이었다.
아는 단어로 대화하는 시늉정도는 할 수 있지만, 외국인과 어려운 대화는 불가능하다는 이야기였다.
그런 이유로 나는 스마트폰의 메신저를 통해 온갖 인물들에게 메세지를 보내는 중이었다.
"······내 주변에 영어 잘하는 사람 없나?"
당장 며칠후면 영국의 S급 헌터, 아서 테브란트가 한국에 방문하는 상황이다.
아서와의 대화를 통해 컨텐츠를 따내기 위해서는, 해당 대화를 원활히 진행할 방법이 필요할 터.
명색이 S급 헌터를 상대로 얼굴에 파파고 번역기를 들이밀 수는 없는 일 아니겠는가.
또한 그렇게 해서 컨텐츠를 진행하더라도, 불만이 전혀 없으리라는 보장은 없는 상황이었다.
그런 이유로 나는 현재 심각하게 고민하고 있는 중이었다.
"커뮤니티 채팅이면 번역이 자동으로 될텐데, 본인을 앞에 두고서 계속 채팅을 칠 수도 없는 노릇이고."
무언가 방법이 필요했다.
외국인과 편하게 대화할 수 있는 방법.
그렇게 내가 작업실의 의자에 앉아 고민하고 있던 도중.
갑작스럽게 과거의 기억 하나가 내 머릿속을 스쳐지나갔다.
—[자동번역 기능]이 활성화됩니다.
—신들을 연결하기 위한 힘을 타고났는가.
"아, 잠깐만······."
언젠가 나와 마주했던 필드보스, 사령왕 아틀로스.
녀석이 나에게 했던 이야기가 생생하게 머릿속을 스쳐지나갔다.
그날은 분명 게이트에서 나온 필드보스가 했던 이야기임에도, 생생하게 번역이 되어 나에게 전달되었던 상황이었다.
내가 가지고 있던 커뮤니티의 [자동번역 기능]이 필드보스를 상대로 작동한 것이다.
그 사실을 떠올리던 나는 머릿속으로 한가지 가정을 만들어냈다.
"커뮤니티 기능이 게이트나 상태창과 관련된 것들에게만 반응한다고 하면, 커뮤니티에 가입한 헌터 상대로도··· [자동번역 기능]이 적용될 가능성이 있지 않나?"
커뮤니티 소속의 S급 헌터가 상대라면 [자동번역 기능]이 정상적으로 작동할 가능성.
나는 해당 가능성을 직접 검증해볼 필요를 느꼈다.
몬스터와 대화가 가능하다면 사람과도 대화가 가능할지도 모른다.
그러니 그것을 확인하기 위해서는, 내가 직접 움직여야할 필요가 있을 터였다.
"아무래도 당장 확인해봐야겠어."
나는 자신에게 숨어있을 또 하나의 가능성을 시험해보기로 했다.
39화
역 앞에 위치한 카페.
나는 현재 그곳에서 선글라스 차림의 천시예와 커피를 마시고 있는 중이었다.
내가 오랜만에 그녀를 이곳으로 호출한 이유는 단 하나.
내가 지난밤에 떠올린 가정이 사실인지 검증해보기 위함이었다.
"그래서, 커뮤니티 이용자간에 외국어 의사소통이 가능할지도 모른다는 이야기를 하고 싶은거야?"
커뮤니티의 [자동번역 기능]을 이용한 외국인 이용자와의 소통.
내가 생각해낸 희미한 가능성에 대한 이야기를 들은 천시예가, 나를 향해서 애매모호한 시선을 보내오는 모습이었다.
천시예로서는 상상조차 하지 못했던 이야기였던 것일까.
나는 그런 천시예의 이야기에 고개를 끄덕이면서 말했다.
"적어도 내가 생각하기에는 충분한 가능성이 있다고 보고 있어."
"근거는 있는 이야기인거지?"
"애초에 상태창을 거쳤다는 이유만으로 글자가 번역된다는거 자체가 말도 안되는 일이지."
천시예는 모르고 있는 이야기지만, 커뮤니티 기능은 내가 가지고 있는 고유특성이었다.
그리고 그 기능중에 하나가 언어계통에 작용하는 기능이었고 말이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내가 [자동번역 기능]이 모든 외국어를 번역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건 아니다.
그게 가능했으면 내가 진작에 외국 영화를 무자막으로 보고 있었을테니까 말이다.
'[커스텀 네트워크]가 반응하는데에는 명확한 조건이 있다.'
내가 생각하기에 [커스텀 네트워크]는 상태창이나 게이트와 관련된 것들에만 반응하는 경향이 있었다.
그렇기에 다른 헌터의 상태창에도 부착이 가능한 구조인걸테고 말이다.
이미 상태창에 커뮤니티가 부착되어있는 헌터가 상대라면, 굳이 문자의 형태를 거치지 않아도 번역의 효과를 볼 수 있는 것이 아닌가.
그것이 내가 지금 실험을 진행하고자 하는 이유였다.
"아마 문자가 아니라 다른 것도 번역할 수 있을거야."
반쯤 확신에 가득차있는 목소리.
그런 내 이야기를 들은 천시예가 한쪽 손으로 턱을 괸 채 물었다.
"그래서, 내가 뭘 해주면 되는건데?"
"영어로 나한테 말을 걸어봐."
내가 천시예에게 전한 부탁.
그것은 나를 향해 영어로 한 번 말을 걸어보라는 부탁이었다.
간단한 부탁에 천시예의 눈썹이 살짝 꿈틀거렸다.
"여, 영어······? 나 영어 못하는데?"
"괜찮아. 그럴 것 같았으니까."
"뭐? 그럼 왜 나를 부른거야?"
그를 긍정하는 이야기가 썩 마음에 들지 않는 모양이었지만, 솔직히 평생 한국에서 전투만 벌여온 헌터가 영어를 잘할거라는 기대는 하지 않았다.
그래서 나는 이번 실험을 위해 한가지 물건을 챙겨왔던 것이다.
"내가 그래서 괜찮은 물건을 하나 준비해왔거든."
스윽-.
나는 가방에 넣어서 가져온 책을 천시예에게 내밀었다.
여행자를 위해 준비된 여행용 영어책이었다.
내가 내민 책을 받은 천시예의 손이 그것을 활짝 열어젖혔다.
촤라라라락-.
책장의 페이지를 넘기던 천시예가 그 중 하나를 짚으면서 이야기했다.
"영어책이네? 아무거나 읽어도 괜찮아?"
"상관없어. 일단은 그 나라 언어로 해당 내용을 표현한다고 생각해봐."
만약 내 예상이 맞다면, 의도만 확실하다면 어떤 문장이든 상관없을 터였다.
그렇게 나는 천시예가 나에게 전해올 이야기를 기다렸다.
흠, 흠-.
커피를 한모금 마시고서 나를 바라보던 천시예가 목을 가다듬으며 입을 열었다.
"I seem to have left my wallet at home."
천시예가 어색한 발음으로 한차례 영어문장을 낭독한 이후.
나는 귓가에 익숙한 소리가 들려오는 것을 느꼈다.
- [자동번역 기능]이 활성화됩니다.
- "나 아무래도 집에 지갑을 놓고온 것 같아."
내 머릿속에 울려퍼지는 익숙한 천시예의 목소리.
허나, 그 내용은 명확히 이해할 수 있는 의사를 전달하고 있었다.
나는 그제서야 내 가정이 완전히 들어맞았음을 깨달을 수 있었다.
유레카를 외치던 아르키메데스의 기분이 이러했을까.
덜컥-.
나는 감격에 젖은 얼굴로 천시예를 향해 외쳤다.
"거봐, 제대로 돌아가잖아."
"뭐? 정말로 번역이 된다고?"
"정확하게 번역됐어. 아무래도 내 예상이 제대로 적중한 것 같은데."
내 이야기를 들은 천시예는 충격을 받은 모양인지, 눈을 휘둥그래 뜬 채 나를 바라보는 모습이었다.
깜빡, 깜빡-.
멍하니 눈을 감았다 뜨던 천시예의 눈이 나를 수초간 응시했다.
그리고 이내 나를 향해 한가지 부탁을 전했다.
"나한테도 한 번 해봐."
천시예 역시 번역이 제대로 돌아가는지 확인하고 싶은 마음이 든 것일까.
이제는 자신을 향해서 영어를 해보라고 이야기를 전하는 모습이었다.
"영어로 말해보라고?"
"응. 나도 궁금해졌으니까 빨리 이야기해봐."
그런 그녀의 이야기에 나는 잠시동안 고민했다.
나는 영어를 그리 잘하는 편이 아니었기에, 아는 단어나 문장이 그다지 많지 않은 편이었다.
그러니 나에게 갑작스럽게 영어를 해보라고 해도, 막상 딱히 할만한 이야기가 떠오르지 않았던 것이다.
그렇게 천시예의 얼굴을 바라보며 멍하니 고민하기를 십여초.
결국 나는 자신에게 있어서 가장 익숙한 영어문장을 이야기해보기로 결심했다.
"Subscribe to this channel."
"······."
침묵속에서 눈을 가늘게 뜬 천시예의 시선이 나를 바라보았다.
* * * * * *
세계 각국에는 국가를 대표하는 헌터들이 존재하고 있다.
대한민국의 신창 주선호.
미국의 뇌제 알렉스 오브라이어.
일본의 귀령 야마자키 아오.
이렇듯 다양한 국가에는 저마다 유명한 헌터들이 존재하기 마련이었다.
그리고 한국에 방문하기로 결정된 국빈, 여왕의 국가 영국 역시 마찬가지였다.
—검성, 아서 테브란트.
오래전에 전설로 내려오던 기사왕, 아서의 이름을 가지고 태어난 S급 헌터.
세계 최강의 검객이라고 불리는 아서가 그 자랑이었던 것이다.
"유호야. 우리 오늘 여기서 입국장면 찍을 수 있기는 한거냐?"
"뭐, 운이 좋으면 얼굴 한번정도는 찍을 수 있겠지."
그리고 오늘은 그런 아서의 방한날이었다.
구독자 103만명의 유튜브 채널을 운영하는 유튜버, '헌터사전' 최우현.
나는 지금 그와 함께 공항에 나와있었던 것이다.
여왕과는 다르게 아서 테브란트는 민항기를 통해 며칠 먼저 입국이 결정된 것이다.
워낙 유명한 헌터가 들어오는만큼 공항의 경계가 삼엄한 상황이었지만, 그럼에도 저들을 한 번 눈으로 보겠다는 이들은 수도 없이 많은 편이었다.
그런 이유로 현재 공항은 수많은 인파에 미어터질 지경이었다.
'뭐 이렇게 사람이 많아.'
나는 좌우로 자신을 짓누르는 인파의 힘을 느끼며 멍하니 눈앞을 바라보았다.
아무리 아서가 유명하다고 해도, 공항에 사람이 많아도 너무 많은 편이었다.
더군다나 그중에는 사인을 해달라고 종이를 들고온 사람 역시 있을 정도였다.
"아무리 그래도 사람이 너무 많은데?"
"······우리같은 사람들도 너무 많이 와버린 것 같지?"
"다들 우리처럼 뭐라도 하나 건져서 인스타니 틱톡이니 올릴 생각이겠지."
나는 좌우로 자신을 짓누르는 인파의 행렬을 느끼면서, 힘겹게 손가락을 움직여 커뮤니티 화면을 제어했다.
검성 아서가 언제쯤 입국심사를 빠져나와 카메라에 잡힐지도 모르는 상황.
그렇다고 해서 그 시간을 이렇게 하염없이 좌우로 흔들리고만 있을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그러니 아서가 오기 전까지 커뮤니티나 보고 있으려는 생각이었다.
'언제 들어올지 모르니 커뮤니티나 보고 있어야겠어.'
사람이 많은 바깥에서 시간을 떼우기에는, S급 헌터들이 올린 고급정보만한 것이 없었다.
스윽-.
나는 손가락을 움직여 커뮤니티에 접속했다.
그리고는 방금 전까지 커뮤니티에 올라온 게시글들을 하나씩 살펴보기 시작했다.
- 와 경매장에 올라온 스크롤들 왜 이렇게 저렴하죠? [11] (nabi242)
- 나 신창인데 [9] (tex11)
- 나선창 첸다오가 신창 주선호를 따라잡기 위해 준비한 5단계 비법 [3] (xkingx)
- 바르고 고운 말 부탁드립니다. [11] (artea)
- 한국가면 뭐가 제일 맛있냐? [4] (ronaldo_7)
- 나는 진심이라니까? [2] (engine555)
커뮤니티의 게시판에는 오늘도 특별한 게시글들이 수없이 올라와있는 모습이었다.
각양각색의 이용자들을 한곳에 모아놓은 까닭이었을까.
게시판에 올라와있는 게시글들은 저마다의 독특한 개성을 가지고 있었다.
그리고 그중에는 지금 내가 공항에서 기다리고 있는 인물의 게시글도 올라와있었다.
커뮤니티 이용자명, 'ronaldo_7'.
검성 아서가 작성한 게시글이었다.
'아서가 비행기에서 작성한 글인가?'
아서가 이전에 나에게 이야기했듯이, 그가 한국에 방문하는 것은 처음이기 때문이었을까.
아서는 커뮤니티에 어떤 한국 음식이 맛있는지 물어보는 모습이었다.
그리고 그런 아서의 게시글에는 4개나 되는 댓글이 달려있는 상황이었다.
누군가 아서에게 음식을 추천해준 모양이었다.
'음식 추천해달라고 하면 또 맛잘알인 내가 빠질 수가 없는데.'
과연 한국의 S급 헌터가 어떤 음식들을 아서에게 추천해놓은 것일까.
나는 그런 생각을 가지고서 'ronaldo_7'의 게시글을 클릭했다.
[ 제목 ] 한국가면 뭐가 제일 맛있냐?
[ 작성자 ] ronaldo_7
[ 이용자 정보 ] 아서 테브란트(24) / S급 / 검성
조만간 한국에 들어갈 것 같은데 어떤 음식이 맛있는지 모르겠네.
치킨이랑 토스트 추천하는 이야기는 주변인들한테 많이 들어봤으니까 안해줘도 돼.
저 목록이 아닌 것들중에서 내가 먹을만한 것들로 추천해줘.
[ 댓글 4개 ]
- tex11 : 홍어.
- tex11 : 산낙지.
- tex11 : 번데기.
ㄴ ronaldo_7 : 오, 고마워. 꼭 먹어볼게.
[ 공지사항 / 수정 / 삭제 ]
'ronaldo7'이 커뮤니티에 작성한 게시글의 내용.
그것은 치킨과 토스트를 제외한 한국음식들 중에서, 괜찮은 음식들을 자신에게 추천해달라는 이야기였다.
아무래도 치킨이나 토스트에 대해서는 추천을 지나치게 많이 받은 모양이었다.
그런 아서의 게시글에 어떤 댓글이 달렸나 확인해보자, 나는 댓글을 바라보기 무섭게 감탄을 터트렸다.
"······아."
홍어. 산낙지. 번데기.
외국인들에게 진입장벽이 상당히 높은 음식들을 무더기로 가져다놓은 모습이었다.
더군다나 아서는 그런 댓글을 보고서, 꼭 한번씩 먹어보겠다고 하는 모습이었다.
나는 해당 댓글을 작성한 이용자의 닉네임을 확인해보았다.
tex11.
S급 헌터, 파천궁 오지후였다.
'이거 오지후잖아.'
아무래도 오지후가 작정하고 아서에게 장난을 치려는 것처럼 보였다.
나는 그 모습을 보며 잠깐 고민에 잠겼다.
홍어와 산낙지. 번데기를 먹어보고서 리액션을 보여주는 검성의 모습.
머릿속에서 난감한 표정을 짓는 금발 청년의 모습이 그려졌다.
어디에서도 볼 수 없는 화끈한 영상이 분명했다.
상당히 좋은 컨텐츠가 될거라는 생각이 들긴 했지만, 아무래도 실현 가능성이 그리 높아보이지는 않았다.
'아무래도 그런 컨텐츠를 촬영하기는 어렵겠지.'
그렇게 나는 헛웃음을 지으며 눈앞의 반투명한 화면을 노려보았다.
말도 안되는 내용을 적어놓은 오지후를 대신해, 해당 글에 어떤 댓글을 남기는게 좋을 것인가.
내가 그런 생각을 가지고서 고민하고 있던 도중.
툭, 툭-.
갑작스럽게 내 옆에 서있던 최우현이 나를 강하게 흔들었다.
"유호야! 저기 검성 나온다!"
"뭐? 지금 도착했다고?"
나는 최우현의 이야기를 듣기 무섭게 정신이 번쩍 드는 것을 느꼈다.
그리고는 손에 쥐고있던 카메라를 한껏 높이 들어올렸다.
내 앞에 서있는 군중들을 넘어서 검성의 모습을 촬영하기 위함이었다.
한계까지 들어올린 카메라를 기울여 멀찍이 닫혀있는 문을 촬영하고 있으면, 머지않아 문이 열리며 다양한 사람들이 입장하는 모습이었다.
그리고 그들을 둘러싼 경호원들 역시 그곳에 존재하고 있었다.
"다들 밀지 말고 질서를 지켜주세요!"
"안으로 들어오시면 안됩니다!"
공항의 보안요원들은 수많은 인파들을 밀어내며 상황을 통제하려고 드는 모습이었다.
특별한 손님이 한국에 찾아온만큼, 그 인파를 통제하는 것도 마냥 쉬운 일은 아니었다.
그렇게 보안요원들이 현장의 상황을 정리하려고 노력하던 도중.
열려있는 문 바깥으로 나오는 이들 중에서, 막대한 존재감이 느껴지는 인물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저기, 아서 테브란트다······!"
"아서! 아서 테브란트!"
사방에 울려퍼지는 사람들의 목소리.
화려한 금발을 짧게 자른 채로, 머리 위에 선글라스를 걸치고 있는 청년이 걸어나오기 시작한 것이다.
터벅, 터벅-.
청년의 발걸음 소리는 소란스러운 현장속에서도 선명하게 울려퍼지는 모습이었다.
무수한 카메라 플래시를 받아낸 청년이 미소를 지은 채 주변을 돌아보았다.
"······."
영국 최강의 헌터.
그리고 전세계에서 유일하게 신창 주선호와 견줄 수 있는 기사.
검성, 아서 테브란트가 드디어 한국에 들어온 것이다.
그렇게 문을 빠져나온 아서의 시선이 주변을 한바퀴 도는 것도 잠시.
멀찍이 서있던 아서의 눈동자가 갑작스럽게 나와 시선을 마주쳤다.
- 성좌 [황금의 라스테리오]가 당신을 강하게 주시합니다.
- 접근이 거부되었습니다.
아서 테브란트.
그는 여전히 미소를 짓고 있었다.
40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