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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7화. 운명 (2)

517화. 운명 (2)

육함이 가랑눈을 맞으며 방문 안으로 들어가자 임근용이 흰옷을 입고 혼자 등잔 옆에 앉아 바느질을 하고 있는 것이 보였다. 그녀의 여린 뒷모습에서 그녀가 지금 얼마나 집중하고 있는지 느껴졌다. 육함이 안으로 들어가자 임근용이 얼른 그를 보고 환하게 미소를 지으며 부드럽게 그를 껴안았다. 그녀의 따뜻하고 부드러운 몸이 낙담한 육함의 마음을 살짝 어루만져 주는 것 같았다. 이렇게 비적들을 토벌한 건 물론 정말 좋은 일이었지만, 만약 이 일로 그가 했던 모든 일이 우스꽝스러운 짓이 되어 버린다면, 그건 평생을 따라다닐 조롱거리로 전락하고 말 것이다. 그럼 그는 지금보다 훨씬 더 낙담하게 될 수밖에 없었다.

임근용은 육함이 왜 낙담하고 있는지 잘 알고 있었다. 그녀가 육함의 허리를 부드럽게 감싸 안으며 나지막이 그에게 물었다.

“민행, 처음에 당신이 이 일을 하기로 결정했을 때, 당신도 분명히 모든 가능성을 다 생각해 봤을 거 아니에요. 이렇게 될 수도 있다는 걸 알면서도 하는 게 바로 진정한 용기인 거예요.”

육함이 잠시 침묵했다가 웃음을 터뜨렸다.

“아용, 마음의 평안을 얻었으니 된 거라는 말을 하고 싶은 거요?”

임근용이 고개를 끄덕였다.

“진인사대천명이라 하잖아요. 애초에 당신 목적은 최대한 많은 사람이 재난을 피하게 만드는 거였잖아요. 그럼 당신은 이미 그 목적을 달성한 거나 다름없는 거죠.”

이제 더는 사람들을 설득하고 다닐 명분이 없었다. 더구나 육함마저 이렇게 마음이 흔들리고 있었다. 임근용은 혼자서 모든 것을 감당해야만 했던 그때로 다시 돌아간 것 같은 기분이었다. 하지만 이제는 정말 더는 어떻게 할 수가 없어서 그저 한 걸음 한 걸음 조심스레 내디디는 수밖에 없었다.

변화는 항상 예상치 못한 때에 들이닥쳤다. 운명의 힘은 너무나 강해서 그녀가 앞에 큰 구덩이가 있다는 걸 알고 피해 가면 예상치 못한 곳에 또 다른 구덩이를 파 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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