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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4. 시험 기간 (4)

"이렇듯 누구나 쉽게 할 수 있는 것이다."

말은 이렇게 했지만, 아닐 거라는 것은 누구보다 잘 안다.

'선을 흩어놓는다'라는 개념을 깨닫긴 했으나, 내가 시연할 수 있는가는 또 다른 문제다.

하지만 내게는 '교학상장'이라는 사기 스킬이 있었으니.

학회에서 새겨 둔 표식을 유용하게 써먹은 것.

형의 구현만으로 사용한 터라 아깝긴 하다만.

"내가 검으로 시범을 보였다고 해서 검으로 한정할 것은 없다. 어제 강의에서 말했듯, 모든 기술에는 무기를 초월해 형이 존재하고, 그 형은 선에서 시작되는 법."

내 기본 베이스는 어디까지나 기초 검술에서 시작하기 때문에 설명은 검을 위주로 진행된다.

수강생 중 가장 많은 인원이 검을 사용하기도 하고.

그렇다고 해서 검에 치우친 것은 아니다.

내 강의는 어디까지나 '전투의 모든 것.'

권, 각, 창 같은 다른 무기에서부터 방패술에 이르기까지 모든 것을 포괄한다.

각자의 무기에 맞게 '검'으로 그들에게 맞는 설명을 부연했다.

검을 착검하고 아연한 표정의 학생들을 둘러보았다.

딱-

손가락을 튕기자 리트가 무언가를 한 아름 들고 강의실로 들어섰다.

"자아, 한 병씩 받으세요."

하나씩 나눠 준 그것은, 현존하는 가장 효과 좋은 회복 포션.

상당한 금액을 자랑하지만, 아낌없이 나눠 줄 수 있는 이유- 

더스트 인더스트리의 협찬이기 때문이다.

"마셔라."

그 가치를 아는 학생들은 우물쭈물하고 있었다. 모두가 귀족이 아닌 탓에, 귀족이어도 이 포션 한 모금이 얼마나 비싼지 알기에 손이 쉽사리 움직이지 않는 것이다.

"너희에게 그런 것으로 장사할 생각은 없다. 그냥 들이켜라."

그제야 안심한 이들이 병을 따서 쭈욱 들이켰다.

약효가 금방 도는지 혈색이 훨씬 좋아졌다.

5분 정도 지나자 후끈한 기운이 강의실을 덥힐 정도로 다들 기운이 넘치는 모습이다.

"...이제 다들 충분히 회복되었겠지."

딱-

손가락을 한 번 더 튕기자, 다시금 전투 인형이 안광을 발하며 기동을 시작했다.

내 앞에 있던 전투 인형 역시 붉은색 안광을 발하며, 원래 있던 위치인 에일론의 앞으로 향했다.

"내가 보여 준 것을 참고하여 다시 실습을 시작하라."

"교, 교수님 잠깐만요-!"

에일론이 다급한 목소리로 외쳤다. 하지만 이미 실습은 시작되었다.

콰앙!

전투 인형의 일격에 학생들이 당황한다.

"그리고 이번 실습부터는 전투 인형에 선공 설정을 추가했으니 참고하도록."

그들이 느낄 의문을 빠르게 해소해 주었다.

학생들이 빠르게 강해지길 바라는 마음에서 선공 설정까지 추가했다.

그러니 아무리 ㅈ같더라도, 꾹 참고하라고.

* * *

처음은 조금 헤맸다. 그러나 그 재능들은 금방 적응을 해냈다. 데얀이 가장 먼저 성공했고, 그다음은 의외로 루이나가 성공했다.

역시 검에 재능이 남다른 녀석이다.

그 뒤 강의가 되어서는 강의 시간 통째로 할애해서 성공하더니, 이제는 거의 모든 인원이 1시간 안에 성공해 냈다.

감을 잡은 것이다.

다만-

"크윽...."

'거의 모든'이라는 표현은 예외가 있기 때문이었다.

바로, 에일론.

육체파가 아니라 그런지 부침이 있다.

무엇보다 이 강의에서 가장 마력의 의존도가 높은 학생이 아닌가.

마력을 제한한 디로그는 체감상 그 위력이 반쪽도 아닌, 터무니없이 낮아졌다.

"한 번 더 하겠습니다!"

그러나 에일론은 쉽게 포기하지 않는다.

오로지 디로그의 능력만으로 전투 인형과 상대하고 있는 것이다.

물론, 당연하게도 가능하다.

디로그는 세계관 최강의 육체와 동급이거나 그 이상이니까.

무기에 제한 또한 없는 몸이다.

창을 쓰고 싶으면 창을, 검을 쓰고 싶으면 검을, 그냥 주먹으로 때워도 훌륭한 전투 수단이 되는 것이다.

그러나 에일론은 결국 중간고사 직전까지 성공하지 못했다.

침울한 티를 내지 않는 녀석이긴 하지만 자존심이 상당히 상한 듯하여, 한 마디 첨언했다.

"너의 '형'과 '선'은 특별한 것이다. 자유롭고 제한이 없지."

"...."

가만히 듣고 있던 에일론은 무언가 깨달은 눈빛으로 슬며시 미소를 띠었다.

그 미소가, 굉장히 찝찝했다.

* * *

-입학 후 처음 맞이하는 '고사'로 학생들의 긴장이 클 것으로 압니다. 긴장하지 말고, 그간 배운 모든 것을 선보이세요. 마법 학부의 학생들은 마법적 연구와 성취를! 일반 학부의 학생들은 지식의 깊이를! 공학 학부의 학생들은 세상을 놀라게 할 신기술을! 전투 학부의 학생들은 갈고닦은 실력을! 저와 교수진 일동은 여러분의 성취를 기꺼운 마음으로 지켜보도록 하겠습니다. 하인즈 총장님을 대신해 그라스코의 '중간고사' 시작을 선포합니다.

아직 회복 중인 하인즈를 대신해 부총장 로널드의 선언과 함께 중간고사가 시작되었다.

'고사'의 개념은 시험이라기보다는 축제에 더욱 가깝다고 할 수 있다.

공학 학부는 발명품을 전시해 각종 기업의 눈도장을 찍기 위해 혈안이 되어 있었고, 일반 학부는 퀴즈쇼 형식의 지식 배틀을 개최해 우승자는 졸업 후 왕실 직속 행정관으로 임명되는 기회를 얻을 수 있었다.

중간고사 기간 동안 그라스코는 개방 상태가 되며, 갖가지 볼거리를 제공한다.

이것은 거의 모든 아카데미가 동일한 메커니즘이다.

이 중에서도 수위를 다투는 인기 콘텐츠는 단연코 마법 학부와 전투 학부의 중간고사이다.

마법 학부는 중간고사는 특유의 아름다운 볼거리로 사람들의 시선을 사로잡았고, 전투 학부는 육체와 육체가 부딪히는 그 원초적 재미로 사람들이 가장 많이 찾는 볼거리였다.

특히나 이번 중간고사에서는 루카스의 '전투의 모든 것' 강좌에 대한 이슈로 뜨거웠다.

현시점 최강자라고 하면 단연코 첫손에 꼽히는 루카스.

그런 그가 엄선한 재능들은 과연 얼마나 대단한 재능을 보이며 중간고사에서 두각을 드러낼 것인가!

심지어 대륙 최고의 재능이라 불리는 제시 애슬론마저 떨어졌다고 하는 그 강좌.

사람들의 시선이 자연스레 쏠릴 수밖에 없었다.

-첫 번째 경기는- 이번 중간고사의 초미의 관심사라고 할 수 있죠, 1학년 제시 애슬론 군과 3학년 도란 에두아르도 군입니다!

약 천여 명에 이르는 전투 학부의 수강생들.

그중에서도 38명만이 아카데미 대항전, '기말고사'로 향하는 영예를 얻을 수 있다.

기말고사의 성적이 어쨌든, 진출하는 것만으로 일단 각종 기사단의 눈도장을 찍을 수 있기에 학생들은 어떻게 해서든 기회를 잡고 싶어 한다.

이제 3학년인 도란 에두아르도 역시 그 기회를 잡고 싶어 하는 학생 중에 한 명이다.

그의 재능은 출중하다 볼 수 있는 편이었으나 항상 운이 좋지 않았다.

처음 중간고사는 당대 중간고사의 우승자였던 선배와 맞붙었고, 두 번째는 1학년 치고 높은 순위인 100위권까지 올라갔을 정도로 놀라운 재능을 보였다.

2학년이 되어서는 그 재능이 발화해 40위권까지 올라갔으나, '결정전'에서 전에 치른 부상의 여파로 탈락. 지난 중간고사 때는 배탈로 인한 조기 탈락이었다.

그러나, 그 재능은 충분히 뛰어난 것이었다.

"승자는! 제시 애슬론!"

하지만 상대는 대륙 최고의 재능, 제시 애슬론.

그의 5번째 도전도 역시나 운이 좋지 않았다.

* * *

-역시 바론 군! '전투의 모든 것' 수강생다운 실력입니다! 티모시 군의 공격이 속속들이 무력화되고 있습니다!

중간고사는 벌써 중반을 넘어섰다.

대륙 최고의 재능이라 불리는 제시 애슬론은 그야말로 엄청난 재능을 보이며 압도적인 승리를 기록했고, 사람들이 가장 많은 관심을 보이는 '전투의 모든 것' 수강생들은 그 기대에 걸맞은 실력을 보이며 전원 순항 중이었다.

"근데... 뭐지? 뭔가 좀 이상하지 않아?"

그러던 중 사람들은 한가지 이상한 점을 느꼈다.

분명히 '전투의 모든 것' 수강생들은 압도적인 실력으로 승승장구하고 있었다.

그러나 무언가 빠진 것 같은 묘한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알았다...."

'전투의 모든 것' 수강생들의 모든 경기를 지켜보던 한 사람은 겨우 눈치챌 수 있었다.

비등비등하거나 우위에 있는 경기 양상 때문에 전혀 눈치챌 수 없었던 것....

그것은,

"저 녀석들 마력을 전혀 쓰지 않고 있어! 그리고 공격의 루틴 또한 허망할 정도로 간단하다...."

그제서야 확연히 보이는 현실.

'전투의 모든 것' 수강생들은 그 누구도 마력을 사용하지 않고 중간고사를 치르고 있었다. 심지어 저쪽은 제대로 단련된 기술을 가지고 나왔지만, 이쪽은 단순한 공격만으로 승리를 하고 있었던 것.

"그러고 보니... 저 녀석들 기숙사에서 내려 베기만 주구장창 하지 않았어?"

"잠깐...그렇다면 그 모든 것은 중간고사를 위한 빌드업?"

사람들의 입에서 경악성이 터졌다.

* * *

'생각보다 더 잘하네.'

내가 '선'의 사용만으로 제한을 걸어 두긴 했지만, 이렇게까지 잘할 줄은 몰랐다.

몇 명은 떨어질 줄 알았는데 오히려 마력 없이도 압도하는 모습을 보이며 이번 중간고사의 돌풍이 되어가고 있다.

솔직히 지도교수로서 상당히 뿌듯한 일인 것은 맞지만, 기뻐할 수만은 없다.

'너무... 양학 같잖아.'

저런 그림을 바라진 않았다.

마치 뉴비들이 몰린 초보 지역에서 인성질 하는 고인물 같지 않은가.

당연히 그 원인은 나일 것이고.

뭔가 악의 축이 되어 버린 느낌이다.

표정 관리하자, 표정 관리.

이거 웃으면 찍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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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

웃참 실패다.

* * *

'단체로 저런다는 것은....'

'전투의 모든 것' 수강생들의 특이점을 눈치채자, 사람들의 시선은 자연스레 루카스 교수에게 옮겨갔다.

도대체 그가 어떻게 했길래 그 밑에 제자들이 저토록 압도적인 우위를 보인단 말인가.

도대체 무슨 이유로 저렇듯, 상대방을 끝없는 절망감에 빠지게 한다는 말인가.

교수들의 전용석.

그중 가장 잘 보이는, 아니- 그 외모 덕에 눈에 띌 수밖에 없는 루카스 교수가 보인다.

그는, 저 상황을 보며... 웃고 있었다.

다른 이의 심력을 꺾어놓고 그 꼭대기라 할 수 있는 자신은 웃고 있다니.

실로 악당의 보스와도 같은 마인드라 할 수 있었으나...

'아름답다....'

그 외모가 모든 것을 용서케 하였다.

그리고 그날, 루카스가 보인 웃음은 각종 신문의 1면에 도배되어 언론 역사상 가장 많은 부수를 판매한 날로 기록되었다.

* * *

'단순히 실력 차이가 압도적인 것이 아니야. 도대체 뭐지?'

한편, 가장 먼저 예선전을 끝내고 '전투의 모든 것' 수강생들의 경기만 집중해서 보던 제시는 무언가 잡힐 듯 잡히지 않는 묘한 기분을 느끼고 있었다.

그들은 결코 압도적인 실력 차이를 보이는 것이 아니었다.

그저 상대방의 기술을 묶어두고, 결정타를 날리는 것이었다.

다른 사람들 눈에는 어떻게 보일지 모르나, 제시의 눈에는 확연하게 보이고 있었다.

그러나 자세한 메커니즘을 알 수 없다.

다른 사람 눈에 손쉽게 보이는 이유, 그 차이를 알 수가 없어 답답했다.

-이어지는 경기는 4학년 트러커 브루스 군과 1학년 에일론 더스트 군입니다!

익숙한 이름에 생각을 멈추고 경기장으로 시선을 옮겼다.

휠체어를 끌며 경기장에 올라온 이는, 제시에게 살면서 가장 큰 좌절감을 안겨 주었던 이- 에일론 더스트.

"장애인이랑 싸우라고?"

멍청이.

에일론을 보며 황당하다는 듯 묻는 트러커를 보며 나지막이 읊조렸다.

그의 외형만 보고 판단해서는 안 된다.

에일론은, 정말 글자 그대로 '괴물'이니까.

"하. 야, 그 휠체어 아작나도 내 탓하지 마라. 형은 기말고사에 가야겠으니까."

트러커의 도발에도 에일론은 그저 해맑게 빙긋 웃을 뿐이었다.

"이런 게 어떻게 루카스 교수의 강좌에 소속된 거지? 나도 들어갈 수 있었겠네."

트러커가 도발을 하든 말든 에일론은 저기서 경기를 지켜보고 있는 루카스를 향해 외쳤다.

"교수님! 저, 생각해 봤는데요! 답을 찾아왔어요!"

"이 새끼가 뭐라는 거야?"

트러커는 어이없어했고, 제시는 '전투의 모든 것' 수업에 무언가 비밀이 있음을 직감했다.

에일론의 경기를 보면 더욱 명확해지리라.

그의 집중도가 최상으로 치달았다.

"그럼, 경기... 시작!"

심판의 경기 시작 사인과 함께, 트러커는 자신의 핼버드에 마력을 덧씌웠다.

4학년이라는 경력에 맞게 강대한 기운이 줄기줄기 뿜어진다.

그러나-

위잉-

철커덕, 철컥!

슈웅, 철컥, 쿵! 차르륵!

"어, 어어...."

에일론의 휠체어가 해체되고 재조립되며 그의 몸을 감싸더니, 공중에서 새로운 파츠가 계속해서 더해진다.

그 크기는 상당한 덩치를 자랑하는 트러커를 넘어서 계속 커졌고, 이내...

"와, 씨발...."

약 8m에 이르는 거대한 크기의 대형체가 트러커를 내려다보았다.

"괴, 괴물은 반칙 아니야?"

트러커는 절규했고,

'그 마음 잘 알지....'

제시는 트러커에게 동질감을 느꼈다.

§ 아카데미의 신화급 교수가 되었다 45화

45. 시험 기간 (5)

"...."

말문이 턱- 막힌다.

사람들의 시선이 에일론에게 갔다가 내게 쏠린다.

'나 쳐다보지 마, 나도 모르는 일이야.'

내가 분명 조언을 해 주긴 했다.

그렇다고 타이탄급으로 개조하라고는 하지 않았는데.

어쩐지 드론 같은 것들이 떠다니더라니, 다 디로그의 거체화를 위한 파츠였던건가.

거체화의 설정이 존재하긴 했다만, 그건 마족들과의 전쟁이 본격화되면서 더스트 인더스트리가 참전하면서부터였다.

시기상으로는 몇 년이나 훌쩍 앞당겨진 일이다.

'저건 진짜 반칙 아닌가?'

나조차도 상대인 트러커에게 동정심이 일 정도다. 심판이 에일론에게 반칙패를 선언하는 게 맞지 않나 싶지만, 규정상 '모든 무기'를 허용하고, 그 모든 무기에는 디로그가 포함되기에 반칙은 아니다.

게다가 내 조건에서 에일론 만큼은 예외였다.

정확하게는 허용범위를 넓혀 준 것이다.

트랜스폼 하는 데에 쓰이는 마력은 인정하겠다고 한 것.

남은 조건은 '선'만을 이용해 예선을 통과하는 것인데....

터엉-!

"트러커 브루스, 장외!"

그저 한 번 휘두르는 것으로 끝내 버린 에일론.

일단 저게 '선'은 맞긴 한데....

"교수님! 저도 해냈어요!"

저걸 해냈다고 해야 하나, 해치웠다고 해야 하나.

어느새 트랜스폼을 해제하고 아주 해맑게 손을 흔들고 있는 에일론.

덕분에 시선이 내게로 몰렸다.

불편해 죽을 것만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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ㄴ거대 로봇은 쫌ㅋㅋㅋㅋ

ㄴㅋㅋㅋㅋ질량으로 밀기

ㄴㅋㅋㅋㅋㅋ

ㄴ선이 ㅈㄴ 굵으면 해결ㅋㅋㅋ

.

.

.

...독자님들이 즐거워하신다니, 그나마 다행이군.

* * *

'전투의 모든 것' 수강생들은 전원 예선을 통과했다.

루카스가 가장 우려했던 루이나 역시 무리 없이 예선을 통과해 본선에 진출했다.

이제 본선부터는 수강생들이 '형의 구현'을 본격적으로 사용하며 볼거리를 더했다.

단순히 마력과 마력이 부딪히는 싸움보다 '전투의 모든 것' 수강생들의 대결이 더욱 큰 각광을 불러일으키는 이유였다.

"승자는 에일론!"

"이번에도 승자는 에일론!"

"64강 진출자는 에일론!"

에일론은 여전히 무식하게도 디로그를 이용해 무리 없이 진출했다. '형'이 아닌 '선'만으로.

하긴, '형'을 보여 줄 틈이 없긴 했다.

하지만, 64강은 다르다.

-점점 열기를 더해 가고 있는 전투 학부의 중간고사! 64강의 메인 매치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강력한 한방! 에일론 더스트 군과 하늘이 내린 재능, 제시 애슬론 군의 대결입니다!

"어? 그때 그 친구네?"

"...."

64강의 상대는 제시 애슬론.

오리엔테이션 리벤지 매치가 성사된 것.

"마광포는 못써. 대신-"

위이잉! 철커덕 철컥!

"한 방에 끝내줄게."

"...."

제시는 말없이 검을 뽑아 들었다.

지금까지 '전투의 모든 것' 수강생들의 대결을 빠짐없이 지켜보았고, 잡힐 듯 잡히지 않는 그 무언가의 끝자락을 붙드는 데는 성공했다.

"경기... 시작하세요!"

시작 사인과 함께 디로그가 거대한 '선'을 그리며 제시를 압박했다.

하지만,

"우와!"

-놀랍습니다! 제시 애슬론, 역시 대륙 최고의 재능! 지금껏 막아낸 적 없던 에일론 더스트 군의 일격을 막아 냅니다!

이변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어, 어? 저것은 '전투의 모든 것' 수강생들이 보여 준 수법 아닌가요?

제시 역시 마력을 배제하고, 트리오닉 소드의 '형'만을 구현하고 있었다.

루카스의 강의를 들은 적도 없는 제시가, 경기들을 살펴보며 자신이 붙든 깨달음의 끝자락만으로 '형의 구현'을 해내고 있었다.

물론 완벽하진 않았으나-

그 형은, 대륙 최고의 검술 중 하나로 손꼽히는 트리오닉 소드였으며, 그 시연자는 대륙 최고의 재능이라 불리는 제시 애슬론.

스웅-

그 움직임은 디로그의 움직임을 제한하고 틈을 만들어 파도처럼 몰아쳤다.

게다가-

-오오! 굉장한 마력입니다!

제시는 마력 사용의 제한도 걸려있지 않았다.

우우웅!

거대한 마력이 디로그에게 쇄도했다.

4배에 가까운 크기 차이였으나, 에일론은 느낄 수 있었다.

"졌습니다. 기권할게요."

제시의 마력은, 오러에 가깝다는 것을.

저것에 맞으면 뼈도 못 추리겠다는 것을.

-이, 이변입니다! 제시 애슬론 선수, 강력한 우승 후보였던 에일론 군을 누르고 32강, 기말고사에 진출합니다!

"축하해, 제시. 다음번에는 이길 거야."

"...고맙다."

"응? 뭐라고?"

"모, 못 들었으면 됐어."

두 사람이 보여 주는 훈훈한 모습에 사람들의 얼굴에도 웃음꽃이 피었다.

리트 역시 그 둘이 마치 자신의 제자인 양 흐뭇하게 바라보다가 어느 한 곳에 시선이 멈췄다.

'저, 저건....'

서둘러 루카스를 바라보았다.

그의 표정 역시 딱딱하게 굳어 있었다.

* * *

[총 조회수가 100만을 돌파하였습니다!]

[100만 조회수 돌파 기념으로 골드 상점에 '공방' 기능이 추가됩니다!]

[이제, 재료만 있으면 <아카데미의 천재 망나니>의 세계관에 있는 모든 물품을 제작할 수 있습니다! (단, 제작 시 골드 소모.)]

반가운 알림이 도착했다.

백만 조회수가 넘었다는 알림과 '<아.천.망>세계관에 있는 모든 물품을 제작'할 수 있다는 공방.

지금 내게 가장 필요한 것이었다.

내 오러를 담아낼 수 있는, 나만의 무기를 만들기 위해서였다.

모든 기운을 포용할 수 있는 단 하나의 무기.

'레바테인.'

<아.천.망>에서 살짝 언급한 무기이다.

문제는 제작하는 방법이 상당히 까다롭다는 것.

가장 먼저 핵심 재료인 에테르라는 초월적인 재료에 신성과 마기가 혼재한 혼돈의 물질이 필요하다.

에테르는 골드 상점에 팔고 있고, 혼돈의 물질은 얼마 전 베르트에서 유렌의 묵주를 잘 챙겨두었기 때문에 걱정이 없다.

문제는 제작을 하는 장인에 있었는데, 무려, 드래곤이다.

찾아가는 것도 문제이거니와 제작을 부탁하는 것도 문제였다.

하지만 이러면 모든 문제가 해결되지만... 재료의 압박이 강하게 다가온다.

-에테르 50,000G

고작 재료 주제에 더럽게 비싸다.

하지만 내게는 든든한 독좌라는 빽이 있지.

지금까지 모아 둔 것만 해도 상당한 액수다.

5만 골드가 큰 금액이긴 해도 아낌없이 내어놓을 수 있을 만큼.

그래도 빡치는 것은 어쩔 수 없다.

한참을 심각하게 이 ㅈ망겜 시스템을 욕하며 눈물을 머금고 구매했다.

그리고 제작 시스템에 들어가 '레바테인' 항목을 검색했다.

'있다.'

일단은 <아.천.망> 세계관에 존재하는 무기긴 하니까. 아직 등장하진 않았지만서도.

깊게 심호흡을 하며 레바테인의 제작을 결정하려는 순간, 볼드윈 교수가 친한척하며 말을 걸었다.

"루카스 교수. 도대체 무슨 짓을 한 겐가! 32강에 온통 자네 제자밖에 없으니 말이야! 게다가 안타깝게 떨어진 인원도 결정전에서 결국 진출권을 따내지 않았는가 말일세! 수강생 전원을, 그것도 1학년들이 기말고사로 진출하다니! 기말고사 진출자 과반이 1학년인 것은 그라스코 역사상 유례가 없는 일인데!"

"으흠! 다 제자들이 뛰어난 것 아니겠습니까?"

"미체른 교수, 그렇게 치자면 제시 군이 준우승 한 것이 설명이 되지 않네만? 자네가 아끼는 제자들이 기말고사에 진출하지 못했다고 해서 너무 옹졸하게 굴진 말게. 늙어서 추하게 그게 뭔가."

"뭐라고? 그러는 자네야말로 조교로 남기려 꼬시던 제자가 예선전에서 루카스 교수의 제자에게 광탈을 당했지 아마? 적어도 내 제자들은 예선은 통과했다고!"

"이 양반이, 말이면 다인 줄 아나!"

"교수님들, 싸우지 마십시오. 사람들이 지켜봅니다!"

"미체른 교수, 볼드윈 교수. 끝나면 둘 다 내 방으로 오게! 그라스코의 교수라는 사람들이...."

이거 뭐, 대꾸할 틈도 없이 자신들끼리 다투고 있다. 한바탕 난리가 벌어진 가운데, 내 뒤로 리트가 조용히 다가와 다급하게 불렀다.

"교, 교수님...."

공방에 제작을 걸어 두고 리트를 향해 몸을 숙였다.

"리트 왜 그러지?"

"저, 저기...."

리트의 손끝을 따라 시선을 옮겼다.

당연하게도 수많은 인파 이외에는 특별한 것은 보이지 않는다.

"교수님, 이미 알고 계셨겠죠?"

나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여 버렸다.

"교수님의 표정이 굳어지신 이유가 그럼...."

어...그건 그냥 에테르가 더럽게 비싸서 그런 건데.

리트의 표정을 보니 도저히 몰랐다는 말이 떨어지지 않는다.

무언가, 무언가 있다.

아주 잠깐 난감했으나 이내 이 상황을 타개할 방법이 떠올랐다.

'<시력 강화 2단계> 구매.'

아직 골드도 여유롭고, 시력 강화 같은 경우는 언제고 구매해야겠다 마음먹은 상태였다.

지금이 바로 그때인 모양이다.

잠깐 욱신거리는 느낌과 함께, <시력 강화>를 처음 샀을 때처럼 눈에 들어오는 모든 것이 달라졌다.

모든 사람들의 심장 부근에 색이 발한다.

재능과 능력을 보여 주던 그것과는 다르게, 한 존재 본연의 '색'을 보여 주는 듯한 느낌.

정열적으로 싸우고 있는 두 노교수는 붉은색 계열이었고, 그 둘을 말리고 있는 교수는 녹색 계열이었다. 두 교수에게 주의를 주는 로널드는 푸른색 계열이었다.

시선을 둘러봐도 모두 공통적으로 저마다의 색깔로 빛나고 있다.

이것은, 오러의 색이다.

본능적으로 알 수 있었다.

'저건....'

유달리 진한 어두운색 계열의 빛.

저런 빛을 띠는 오러는 딱 한 종족들만 가지고 있다.

짐작 가는 바가 있어 시선을 돌려보니, 똑같은 빛이 빛나고 있다.

이것이 뜻하는 바는 명확하다.

마족.

마족이 그라스코에 숨어들었다.

다만, 혼자 들어온 것이기도 하고, 그 빛이 미미하기에 조용히 처리할 수 있을 듯싶다. 괜한 소란을 일으켜 봤자 오히려 2차 사고만 날 뿐.

자리에서 일어나 교수진들에 양해를 구했다.

"잠시, 자리를 비워도 괜찮겠습니까."

"그래, 그러시게."

서둘러 그 빛이 있는 곳으로 움직였다.

마침 그는 출구를 향해 내달리고 있었다.

"잠깐."

"어엇! 루카스 교수님 아니십니까. 아이고, 이렇게 가까이서 뵙게 될 수 있을 줄은 정말로 몰랐습니다."

내 부름에 화들짝 놀란 그것은 내 얼굴을 보더니 활짝 웃으며 아는 체를 했다.

"왜 네가 이곳에 있는 거지?"

"그라스코의 중간고사라면 아에로크에서 가장 핫한 축제 아니겠습니까! 제가 이래 봬도 기잡니다, 기자. 아에로크 뉴스의 키리탄 기자입니다."

넉살 좋게 웃으며 악수를 청하는 이는, 다름 아닌 아에로크 뉴스의 키리탄 기자.

지난번 <카일론 관> 사태 때, 가장 자극적으로 기사를 썼던, 일종의... 기레기다.

"우리가 악수를 나눌 사이는 아니지 않나?"

"아, 제가 저번에 쓴 기사를 보셨나 보군요. 그때 기사 때문에 앙금이 남아 계신가요?"

"나는 그런 것에 의미를 두지 않는다. 악수를 나누지 않은 이유는 그쪽이 더 잘 알 텐데."

"흐음, 전혀 짐작 가는 바가 없습니다만. 기사가 아니면... 뭘 까나...."

키리탄의 얼굴에 만연하던 미소가 점차 사그라진다.

"짐작 가는 바가... 생겼나?"

"하하하."

놈이 몸을 빼려 한다.

하지만 미리 방비하고 있던 내 대처가 더욱 빨랐다.

놈의 멱살을 틀어쥐고 내 쪽으로 당겼다.

"어딜 도망가시나."

"키힛, 키히히! 어떻게 눈치챈 거지? 지난번에는 분명...컥!"

놈의 쓸데없는 소리를 더는 듣고 싶지 않다. 이미 그 존재 자체가 발현하는 기운이 악취처럼 내 신경을 자극한다.

나는 놈의 멱살을 더욱 단단히 틀어쥐었다.

"말해라. 이곳에는 어쩐 일로 왔는지. 무슨 목적으로 그라스코에 발을 들이민 건지."

"키히힛! 그러니까 말이야...."

[새로운 알림이 도착했습니다.]

[유료화가 시작됩니다!]

[지금부터 주어지는 포인트가 10배로 증가합니다.]

[유료화 특전이 지급됩니다.]

[<만류귀종>의 공능을 깨달았습니다!]

[<기초 검술>이 <기초 무예>로 변경되었습니다!]

[일일 훈련으로 얻을 수 있는 숙련도가 대폭 증가합니다!]

.

.

.

압도적인 알림창이 내 시야를 가렸고, 복잡한 감정이 뒤엉켰다.

첫째로, 기뻤다.

내가 소망하던 일. 내가 꿈에서조차 그리던 업적을 달성한 것에 대한 기쁨에 벅차오르는 감정을 느꼈다.

둘째로, 분노했다.

이 업적을 온전히 누릴 수 없다는 것에 깊은 분노를 느꼈다.

마지막은... 불길했다.

분명 기뻐해야 할 만한 일이지만, 마냥 기뻐할 수 없다.

이 ㅈ망겜의 시스템상 그냥 특전을 쥐여 줄 리 없으니까.

순수하게 축하해 줄 리가 없으니까.

아니나 다를까....

쿠웅!

묵직한 소음.

쿠우웅!

순식간에 침묵이 내려앉고.

쿠웅!

소음의 근원지로 사람들의 시선이 쏠린다.

콰아아앙!

동시에.

[유료화 기념 이벤트가 진행됩니다.]

이 ㅈ같은 시스템이 보내는 조소가 띄워졌다.

§ 아카데미의 신화급 교수가 되었다 46화

46. 이벤트 (1)

"크오오오!"

웨이브.

<카일론 관>에서나, 그것도 몬스터로 재현했을 뿐이었던 웨이브 현상이 지금 눈앞에 일어나고 있다.

선두에서 거대한 위용을 뽐내며 울부짖는 드레이크를 필두로 거대한 검은 물결이 다가온다.

"마, 마족이다!"

누군가의 외침을 시작으로 혼란이 사람들 사이에 스며들어 무질서를 낳았다.

'어째서? 아직 그라스코 침공까지는 2년이 남았을 텐데....'

[LIFE TIME : 25개월]

혹시나 하는 마음에 잔여 라이프 타임을 보았으나, 그 숫자는 굳건했다.

'이건, 그라스코 침공이 아니다.'

말 그대로 '이벤트성 침공.'

하지만 어째서.

'그라스코의 결계는 굳건할 텐데.'

특히 중간고사를 앞두고 외부에 개방을 결정하면서 내가 직접 살폈기에 확신할 수 있다.

의문을 품을 새 따위는 없다.

이렇게 혼란에 빠져있어서야, 오히려 반격이 더 힘들어질 뿐이다.

서둘러 진정시켜야만 한다.

"키히히! 그라스코의 결계 관리를 아주 훌륭하게 하셨더군. '균열'이 생긴 지도 모르고 말이야. 키히힛!"

"뭘 웃고 있지?"

서겅-

손에 오러를 덧씌우는 것만으로 간단하게 놈의 목을 베어 버렸다.

머리를 잃은 놈의 몸은 빠르게 무너져 내렸다.

잠깐 분리된 놈에게 시선을 주곤 안쪽을 향해 움직였다.

* * *

"키히힛... 바보 같은 놈."

덩그러니 남은 머리통에서 비웃음이 흘러나왔다.

"내 연기가 감쪽같았던 모양이군."

우드득!

꺾였던 관절이 펴지고 숨겨져 있던 '진짜' 몸뚱이가 모습을 드러내었다.

"키히힛! 목을 자른 줄 알았겠지?"

웃음을 참지 못하던 그는 널브러진 몸뚱어리에 다가가 거세게 발로 찼다.

"일어나 이 느려터진 놈아!"

"어웅... 루카스는 갔어?"

"그래, 우리가 '둘'이라는 걸 전혀 눈치채지 못한 모양이야."

"크흐흐... 그렇겠지. 우리가 한 몸이라는 걸 눈치챈 놈은 없으니까."

둘은 뭐가 그렇게 즐거운지 연신 킬킬대며 웃었다.

"자, 어서 합류하자. 우리들의 형, 발탄을 죽인 루카스 놈을 천 갈래 만 갈래로 찢어 죽여야 내 속이 시원할 거 같아."

"팔푼이 같은 놈 덕분에 계획이 더욱 쉽게...."

"그 팔푼이 같은 놈은 나를 말하는 건가?"

저 멀리 사라진 줄 알았던 루카스가 서늘한 표정으로 그 앞에 서 있었다.

가슴이 철렁 내려앉은 둘은 살기 위해 온갖 궁리를 다했다.

그나마 머리 회전이 빠른 머리 쪽의 마족이 겨우 입을 열어,

"...로 16행시를 지어...."

피유우우웅!

콰득!

그때, 공중에서 거대한 무언가 날아와 머리 쪽의 마족을 그대로 으깨 버렸다.

"혀어어어엉!"

몸뚱이 쪽은 절규했고,

"rmrjs dlal Tjajrdmsrjdi...."

드레이크는 낮게 울부짖었다.

* * *

'난감하게 됐군.'

키리탄이 '둘'이라는 것은 이미 알고 있었다.

<시력 강화>를 통해 보이는 빛이- 하나가 아닌 둘이었으니까.

어떻게 그라스코의 결계를 뚫었는지, 저 침공이 어떻게 된 일인지 물어보기 위해 살려 둔 것이었다.

하지만 머리 쪽은 드레이크의 발밑에 깔려 생을 마감했고, 남은 쪽은 대화가 쉽지 않을 것 같다.

무엇보다....

"키아아앗!"

드레이크와 눈이 마주쳤다.

약 5m에 이르는 거대한 몸집의 마수가 나를 바라본다는 것은 그다지 유쾌한 경험은 아니었다.

놈이 덤벼들면, 꽤나 각오를 다져야만 한다.

그도 그럴 것이, 드레이크는 상당히 영리하다.

오죽하면 약간 모자란 드래곤이라는 뜻의 드레이크라 이름 붙여졌을까.

물론 드래곤에 비하면 그 지능 수준은 벌레에 지나지 않겠으나, 비유하자면 그렇다는 것이다.

거대한 몸집과 영리한 두뇌. 그리고 하늘을 날 수 있는 날개까지 합쳐져 상대하기 여간 까다로운 놈이 아니다.

게다가 개인행동을 하는 드레이크가 저렇게 단체로 등장했다는 것은 드레이크 무리를 조종하는 누군가 있다는 뜻이다.

여러모로 방심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

무엇보다 지금은....

'무기가 없다.'

중간고사를 참관할 때 무기를 패용하지 않기 때문이다.

내 난감함을 눈치챈 것일까.

드레이크의 눈이 유난히 번들거린다.

"키앗, 후웁!"

놈이 흉부가 빵빵해지도록 숨을 가득 마신다.

'브레스!'

이윽고-

파아아아-!

본능적으로 앞으로 굴러 브레스를 피했다.

피한 건 좋지만 놈을 공격할 수단이 없다.

조금 전처럼 손에다 오러를 덧씌워서 해 볼 수는 있겠으나, 진짜 검과는 현격한 차이를 보인다.

어설프게 따라....

'잠깐.'

조금 전 얻은 유료화 특전.

분명히 <기초 검술>이 <기초 무예>로 변경되었다고 했다.

그렇다면....

슈와악!

양손에 오러를 두르고-

"교학상장(敎學相長). 이든 해밀턴- 드래곤 피스트."

해밀턴 가문의 비전, 드래곤 피스트.

실제 드래곤이 전수했다고 하는 이 권법은 대륙에서도 손꼽히는 격투술로, 남작이었던 해밀턴 가(家)를 후작 위까지 올려 준 절세의 비전이다.

쿠와아앙!

거대한 파공음과 함께, 용의 형상을 한 권기(拳氣)가 드레이크를 덮쳤다.

이든 것을 복사한 것이라 성취에 따라 달라지는 드래곤의 형상은 드래곤이라기보단 와이번에 더 가까운 것이었다. 그래도 엄청난 위력인 것은 변함이 없다.

"키에에엣!"

하지만 아직 주먹을 쓰는 것 자체가 익숙하지 않기도 했고, 눈치 빠른 드레이크가 재빨리 몸을 틀어 방어해 냈기에 약간의 흔적만 남기게 되었다.

"키에엑, 키에에엑!"

놈은 발광하며 소리를 질러댔다.

그리고는 기세를 한껏 끌어올리며 거세게 날갯짓을 했다.

모래 먼지가 일어나며 시야를 가렸다.

"키에엣!"

뻐억!

놈이 그 틈을 타 공격했지만, 애석하게도 내게는 그 모든 공격이 '보인다.'

카운터를 날려주고, 동시에 모래 먼지를 일으킬 수 없도록 날개뼈를 부러뜨렸다.

"키에에! 키엑!"

'제대로...들어갔다.'

아까보다 조금 더 정밀해진 것 같다.

해 볼 만... 했다.

[완벽한 정권입니다!]

[<기초 무예>의 숙련도가 증가했습니다. ]

[이벤트 중, 숙련도 증가 폭이 더욱 증가합니다!]

[<기초 무예>의 숙련도가 대폭 증가했습니다!]

어라? 이러면....

"야, 드레이크."

너 내 샌드백이 좀 되어 줘야겠다.

* * *

'이, 이게 다 무슨 일이지....'

드레이크부터 누누 같은 마수들과 대대급의 마족들이 검은 물결이 되어 들이닥치고 있었다.

이곳에 있는 이들은 전쟁에 잔뼈가 굵은 이들이라기보다 이런 상황이 처음인 학생들.

게다가 외부에서 온 손님들 또한 전쟁과는 거리가 먼 사람들이 대부분이었다.

'일단 손님들과 학생들을 안전한 곳으로 피신시켜야 한다!'

그라스코의 평판 때문이 아니다.

그들의 존재가 전투에 방해가 되기 때문.

전투 경험이 존재하는 이들은 어느새 자신들의 무기를 꺼내 들고 응전하고 있지만, 소리치며 우왕좌왕하는 이들 때문에 쉽지 않았다.

"다들 진정하세요!"

"침착하시고 질서를 유지해서 저희를 따라오세요!"

교수들과 조교들이 사람들을 진정시키며 대피시키고는 있지만, 대피 시켜야 할 인원이 너무나 많다. 결국엔 한계에 봉착할 수밖에 없는 것.

"결계는 왜 작동하지 않은 건가! 율레이드 교수, 율레이드 교수는 어디에 있나!"

"지금 결계 쪽에 확인하러 가셨습니다."

"도대체 결계 관리를 어떻게 했길래... 후, 일단 고위 마족은 없는 것 같으나 그 수가 너무 많아."

"부총장님, 학생들의 손이라도 빌리는 것이...."

"으음!"

본래 로널드는 절대 학생들을 위험에 노출 시켜서는 안 된다는 주의였다.

그러나 상황이 상황이니만큼 그런 원칙을 지키고만 있을 수는 없었다.

"대신, 절대로 다치지 않게 신신당부를 하게."

불가능에 가까운 주문이라는 것은 잘 안다.

저 엄청난 수의 마족을 실전 경험이 없는 이들이 태반인 학생들이 상처 없이 막아낸다는 것은 그저 희망 사항에 불과하다는 것은 로널드가 가장 잘 알았다.

그저 자신의 소망일뿐이다.

학생들이 그 누구도 다치지 않기를.

자신의 안위를 우선해서 행동하기를.

학생들의 손이라도 빌려야 하는 지금 이 상황에서 그가 할 수 있는 최대한의 기도였다.

"자아, 다들 무기를 챙겨라! 우리의 그라스코를 우리 손으로 지켜내자!"

그 선두에, 로널드가 가장 먼저 나섰다.

* * *

콰앙!

콰드드득!

"끼에에엑!"

"크워어어어!"

"더 밀어붙여!"

지독한 소모전이었다.

한쪽은 엄청난 물량을 앞세워 밀어붙이는 중이었고, 또 한쪽은 이제 막 피어나는 재능들까지 밀어 넣으며 버티고 있었다.

"크와아아아!"

거대한 몸집의 드레이크 군단이 공중에서 폭격하고,

"크롸롸라라!"

지상에는 이지를 상실한 마수, 누누들이 덮쳐든다.

그라스코 측도 만만치 않았다.

교수진들을 필두로 조교들 또한 제 몫을 해내며 훌륭히 막아서고 있었고, 무엇보다-

"마광포, 최대 출력 on."

-최대 출력 on.

"발사."

위이이잉-!

쿠콰콰콰콰!

에일론의 디로그가 고삐 풀린 망아지처럼 마력을 펑펑 써대며 마광포를 날리고 있었고, 한쪽에서는 데얀을 위시한 '전투의 모든 것' 수강생들이 '형의 구현'에 마력을 더해 눈부신 활약을 보이고 있었다.

그들의 활약에 힘입어 그라스코 측이 압도적인 우위를 점하나 싶었지만-

그것도 어디까지나 한계가 있는 법이었다.

질적으로는 그라스코 쪽이 우세하지만, 마족은 압도적인 물량을 쏟아붓고 있다.

그 차이는 조금씩 그라스코 측을 갉아먹고 있었다.

"거기 조심-!"

퍼걱-!

"딜론!"

게다가 그라스코는 외부에서 온 손님들까지 지키면서 싸워야 했다.

조금씩 균열이 생기고 있었다.

처음으로 실전을 경험한 학생들은, 실전이 주는 중압감으로 빠르게 지쳤고, 실전 경험이 어느 정도 존재하는 이들도 지쳐가는 이들까지 챙겨야 했기에 그 부하는 배가 되고 있었다.

"으아아아아!"

"죽어, 죽으라고!"

점점 아수라장이 되어가고 있다.

좌절이 깃든 절규가, 절망감이 서서히 퍼지고 있었다.

"율레이드 교수에겐 아직 연락이 없나? 결계 복구는 언제쯤 된다고 하던가!"

"지금 복구를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다는 연락만 받았습니다."

"크윽! 언제까지 버텨야 한단 말인가!"

"부총장님, 다치는 학생들의 수가 점점 많아지고 있습니다."

"공백이 생기는 곳에 곧바로 교수들과 조교들이 지원을 가주게. 조금만 더 참고 견뎌보세."

최대한 희망적으로 말은 했지만, 사실은 희망과는 거리가 멀다.

학생들의 부상이 늘어나고, 남은 이들의 부담은 점점 높아져만 가는 데다가. 어떻게든 결계가 복구되어야 지독한 소모전도 끝을 볼 수 있을 텐데, 그쪽도 영 암담하긴 마찬가지다.

'이렇게 그라스코는 무너져야 하는가!'

로널드의 뇌리에 불길한 생각이 번지었다.

'전투의 모든 것' 수강생들 역시 마찬가지였다.

체력은 점점 바닥으로 향해가고 있었고, 몸은 점점 무거워지고 있었다.

에일론만이 독보적인 활약을 하고 있으나, 대부분 처음 겪는 실전에 몸이 얼어 버렸다.

상처가 늘어났고, 심각한 부상을 입게 된 이도 있었다.

몸과 마음이 지쳐갔다.

그때였다.

"다들 무엇 하고 있나."

좌중을 압도하는 서늘한 목소리. 그 목소리를 향해 시선을 옮기자, 마치 화보와 같은 자태로, 고아하게 등장하는 한 인영.

또각-

순간적으로 침묵이 내려앉았다.

또각-

"내 가르침은 어디다 팔아먹은 거지?"

거대한 존재감에 그라스코의 사람들도, 마족들도 시간이 멈추기라도 한 듯 숨죽였다.

"움직여라."

그 움직이라는 한마디에, 심장이 거세게 뛴다.

"내 가르침을, 저들의 몸에 새겨주어라."

존재만으로 사기를 올려버리는 존재.

그들이 의지할 수 있는 유일한 존재.

"가라."

루카스의 등장이었다.

§ 아카데미의 신화급 교수가 되었다 47화

47. 이벤트 (2)

마계의 한 심처.

그곳에서 오르페가는 영상 통신구를 통해 그라스코의 현 상황을 지켜보고 있었다.

상황은 마족 측에 유리하게 돌아가고 있다.

하긴, 그렇지 않으면 말이 안 되지.

들어보니 저 계획 때문에 최하급 마족은 이그너 전선에서 죄다 그라스코로 향했다는데.

애초에 최하급 수준들 밖에 동원이 안 되는 작전이었다.

그라스코의 결계가 아무리 균열이 있다고 해도 하급 이상의 마족이 들어가면 능력치의 하락을 면치 못할 것이다. 최하급 마족만도 못한 수준의 것이 되어 버리겠지.

그럴 바에는 저렇게 물량으로 승부를 보는 편이 낫다.

그리고 이것은 전초전에 불과하다.

2년 뒤, 그라스코의 결계가 찢어발겨 지고 마족들이 그곳을 유린할 그날의 전초전.

루카스 놈이 완전한 준비를 하고 그때를 맞이하길 바란다.

이것은 그것을 위한 '안부 인사'다.

자신이 안배한 '안부 인사'를 무사히 넘기고 자신의 손에서 고통스럽게 죽어가길 원한다.

"큭, 크크크! 드디어 나타나셨군, 루카스 교수!"

오르페가는 욱신거리는 흉터를 매만지며 루카스의 등장을 반겼다.

"자아, 부디 쉽게 죽지 말라고. 클클클...."

* * *

루카스는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그저 나타났을 뿐이고, 존재했을 뿐이다.

그것만으로 전황이... 크게 바뀌었다.

루카스의 존재는 그런 것이었다.

그 존재만으로 절망을 희망으로 바꾸어 놓았다.

그가 바꾼 것은 분위기뿐만이 아니었다.

'전투의 모든 것' 수강생들은 그저 그가 있다는 것만으로 사기가 충전되었고, 움직임이 다시 가벼워졌다.

또한, 루카스에게 잘 보이고 싶어 혈안이 되어 있는 제시 역시 자신이 낼 수 있는 최선의 역량을 뽑아내고 있었다.

비단, 이들뿐만이 아니다.

"캐스퍼, 허리의 반동이 부족하다. 더욱 힘껏 튕겨라."

"릴페리아, 검 끝이 너무 가볍다. 좀 더 무게를 싣도록."

"카이야, 채찍의 템포가 너무 빠르다. 조절해라."

.

.

.

그야말로 전교생의 자세를 교정해 주고 있었다.

'전투의 모든 것' 수강생들의 특권이었던 루카스의 1대1 맞춤 교정이 그라스코 전체로 퍼지고 있는 것이었다.

덕분에-

쿠아아앙!

서걱-

휘이익, 짝!

"크악!"

"컥!"

"앗 따거!"

"끼요오옷!"

학생들 전원의 기량이 올라가고 있다.

잠시 밀리는가 싶던 전황이 완전히 그라스코 쪽으로 기울기 시작했다.

* * *

<시력 강화> 2단계로 바라본 학생들에겐 고칠 점이 너무나도 명확하게 보였다.

팔을 뻗는 각도, 무기에 배분되는 힘, 심지어 박자나 타이밍까지도.

아주 비싼 강의가 전장의 한복판에서 진행되었다.

이 강의의 비용은....

[새로운 알림이 도착했습니다.]

[바자 님께서 100G 후원하셨습니다.]

[책읽는생쥐 님께서 1,000G 후원하셨습니다.]

[라이트닝 님께서 100G 후원하셨습니다.]

[Vaporeon 님께서 3,000G 후원하셨습니다.]

[밀레트 님께서 100G 후원하셨습니다.]

[k2929 님께서 100G 후원하셨습니다.]

[이샤킨 님께서 500G 후원하셨습니다.]

[rain비 님께서 100G 후원하셨습니다.]

[햄찌궁뎅이 님께서 300G 후원하셨습니다.]

[ka설화 님께서 500G 후원하셨습니다.]

[n9744_rlawkdry1 님께서 5,000G 후원하셨습니다.]

[호령자 님께서 1,000G 후원하셨습니다.]

[grafil 님께서 1,000G 후원하셨습니다.]

[우즈키린 님께서 1,000G 후원하셨습니다.]

[remy2025 님께서 10,000G 후원하셨습니다.]

[Schmerz 님께서 500G 후원하셨습니다.]

[jay350090 님께서 100G 후원하셨습니다.]

[윌리엄루시 님께서 100G 후원하셨습니다.]

[[광풍]난설 님께서 3,000G 후원하셨습니다.]

[[광풍]난설 님께서 1,000G 후원하셨습니다.]

독자님들이 지불하셨다.

고마운 줄 알아라, 이것들아.

일단 저 많은 물량을 버티는 것은 속성 강좌로 어떻게든 버텨볼 수 있는 것이었다.

진짜는 다른 곳에.

이 결계의 균열이 생긴 원인 쪽이다.

'율레이드 베스티아.'

결계를 담당하고 있는 마법 학부의 교수.

그가, 이 사태의 원흉이다.

사실, 가장 간단하게 생각할 수 있는 인물이었다.

그라스코의 결계에 대한 전권은 그에게 있으며, 균열이 생겼다면 역시 율레이드밖에 의심할 사람이 없으니까.

"제게도 검을."

"자, 여기. 자네가 참전한다면 순식간에 저 마족 놈들을 척결할 수 있을걸세."

"저는 다른 곳에 볼일이 있습니다."

"뭐?"

"모든 것이 해결되면 말씀드리겠습니다."

잠깐 의문을 품었던 로널드도,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지지 마라. 조금이라도 다치는 것들은 모조리 낙제다."

'전투의 모든 것' 수강생들을 향한 경고를 날리고 서둘러 결계 장치가 있는 곳으로 몸을 움직였다.

상대는 대륙에서도 손꼽히는 마도사, 율레이드 베스티아.

<아.천.망>에서도 종종 언급되는 대마도사 중 한 명이다.

그만큼 쉽지 않은 상대일 것은 분명하지만, 자신 있었다.

교학상장의 표식은 가득 차 있었고, 포인트와 골드도 풍족하다.

능력이 안 되면 현질로-

그것이 ㅈ망겜의 보스 스테이지를 클리어하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다.

'어....'

그러나 기다리고 있는 것은 전혀 의외의 상황, 그리고 의외의 인물이었다.

"커티스 리카르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루카스 교수님."

일명, 천사 교수 커티스 리카르도.

한 손에는 율레이드 교수의 시체를, 전신에는 피를 뒤집어쓴 채 하얗게 웃고 있었다.

* * *

그라스코의 일반 학부는 전 대륙에서도 손에 꼽는 명문.

특히 '고대 역사 학과'는 전 대륙을 통틀어 최고라 칭송받는다.

'고대 역사 학과'가 높이 평가받는 가장 큰 이유.

바로 눈앞의 이 남자, 커티스 리카르도 교수의 영향이 가장 컸다.

나와 비슷한 또래에 이미 학계에서 최고의 자리에 우뚝 선 인물.

고대 역사에 한해서는 하인즈도 한 수 접어야 한다고 평가받는, 그 지식의 방대함이 끝이 없어 폴리모프한 드래곤이 아닌가 하는 의혹까지 받고 있는 불세출의 천재.

학생들에게는 한없이 자애로운 교수로 알려진 진정한 의미의 '선생'.

...하지만, 나는 <아.천.망>에서 이런 캐릭터를 묘사한 적이 없다.

루카스를 제외한 그라스코의 묘사에 힘을 뺐다 하더라도 이 정도의 명성을 가진 자라면, 작중에 짧게나마 언급이 되었을 테지만, 내 기억에 이 자에 대한 묘사는 없다.

"내가 올 걸 알았다는 듯한 말투로군."

"물론입니다. 이 모든 것은- 역사이기 때문이지요."

그는 한없이 자애로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이런 종류의 캐릭터가 위험한 것이다.

자신의 신념을 위해서라면 무엇이든 불살라 버릴 수 있는.

그렇기에 <시력 강화>로 보이는 저 광휘로 가득한 빛이 한없이 불길하게 느껴지는 것이었다.

나는 처음에 그를 마족이라 의심했었다.

하지만 파마의 오러를 얻은 뒤부터는 그 의심을 완전히 거두었다.

심지어 리트에게서조차 느끼는 거북함을 커티스에겐 전혀 느끼지 못했기 때문이다.

오히려 신성 제국인 베르트 사람들보다 순수한 의미로 신성함이 느껴지기도 했다.

그런 사람이었다.

그렇기에 어째서 그가 율레이드 교수를 죽인 것인지, 아니 그전에 어떻게 그럴 수 있었는지 의문이 밀려들었다.

"왜지?"

"이유를 물으셨습니까?"

그는 한없이 자애로운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긴 이야기가 될 것 같습니다. 들어주시겠습니까?"

나는 긴장을 풀지 않고 고개만 끄덕였다.

"감사합니다. 먼저 아셔야 할 것은 저는 이 '세계관'의 인물이 아닙니다."

그의 입에서 나온 '세계관'이라는 단어에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무슨 소리지?"

혹시 이놈이 나를 여기에 처박은 놈이란 말인가.

"아, 당황하셨나 봅니다. 저는 교수님께서 생각하시는 그런 인물은 아닙니다. 그저... 말하자면 '미래인'이라고나 할까요?"

그의 입에서는 다소 충격적인 말이 튀어나왔다.

"미래인?"

이제서야 그 존재에 대한 것이 일부 납득이 되었다. 커티스 리카르도는 미래인. 그렇기에 <아.천.망> 세계관에 등장하지 않았던 것이다.

처음부터 '존재한 적 없는' 인물이니까.

동시에 그가 어떻게 고대 역사에서 명성을 떨쳤는지도 이해가 됐다.

애초에 그는 미래 지식을 가지고 있었던 것이니까.

"제 사명은 역사를 틀어, 당신을 구하는 것이었습니다."

"...뭐?"

나를 구하는 것이었다?

이해가 되지 않는 상황에 되물을 수밖에 없었다.

나를 구한다니, 무엇으로부터?

"당신은 오늘, 율레이드 베스티아에 의해 죽을 운명이었습니다."

"말도 안 돼."

"의문을 느끼시는 것도 당연합니다. 당신의 예정된 수명은 지금으로부터 25개월 후- 이 그라스코가 함락되는 날. 그날로 알고 계실 테니까요."

이놈은, 무언가, 무언가 알고 있다.

"하지만 교수님이 베르트에 방문하시면서, 유렌을 처단하면서 '개연성'이 개입하기 시작했습니다."

"개연성이라니...."

이곳에서 나눌 수 있는 종류의 것이 아니었다.

머리가 어질해지며 이해가 되지 않았다. 마치 대화 내용 자체가 벽에 막혀 전해지지 않는 느낌이다.

"혼란스러우실 겁니다. 그것 역시 '개연성'의 개입으로 인한 것이니까요. 아마 제가 하는 말 태반은 이해할 수 없을 겁니다. 이렇게 '개연성'이 개입했기에 제가 역사를 틀어 버릴 기회 역시 만들어지게 된 겁니다."

대화에, 전혀 집중이 되지 않는다.

"아무튼, 틀어진 역사를 바로 잡기 위해 '개연성'은 율레이드를 통해 당신을 죽이려 했습니다. 그가 가진 결계 마법으로 당신을 봉인하고, 세계관 저 구석에 처박을 생각이었겠지요. 이번 마족들의 침공은 그라스코에 위해를 가하기 위한 것이 아닙니다. 온전히 당신을 노린 것. 당신을 이곳으로 유인하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그의 말이 떠듬떠듬 들렸다.

의식을 집중하려 하지만, 내 뜻대로 되지 않는다.

"그런데 당신 지금...."

시야마저 이상해진 것인가.

눈앞의 커티스가 조금씩 흐려지는 것 같았다.

"하지만 덕분에 제가 그걸 막을 기회도 생겼죠. 앞으로 더 이상 '개연성'의 개입은 없을 겁니다."

그의 몸이 파스스 부서지고 있었다.

커티스는 눈에 띄게 떨고 있었다. 그 목소리도, 그 존재도.

그러나 흔들리지 않는 눈빛으로, 올곧은 목소리로 분명히 말했다.

"저와 나눈 대화를 기억하지 못하셔도 좋습니다. 저의 존재를 기억하지 못하셔도 괜찮습니다. 그러나 반드시 기억하셔야 할 것 하나는, 당신이야말로 이 세계의 종말을 막을 수 있는 유일한 열쇠라는 겁니다."

"커티스."

"저는 커티스. 교수님을 구할 수 있어서, 교수님을 대신할 수 있어 영광입니다. 그러니 이제는 교수님이 이 세계를 구해 주셔야 합니다. 마족들보다 더 큰 위협이... 세계를 위협하고 있습니다. 반드시 기억해 주십시오, 교수님. 오직 당신만이 세계의 종말을 막을 열쇠입니다."

동시에 그의 신체는 하얀 빛무리가 되어 흩어졌다.

존재의 소멸.

그 자리에는 아무것도 남지 않았다.

'내가... 세상의 종말을 막을 열쇠라고?'

커티스가 남기고 간 의문 말고는.

동시에 내 의식이 멀어졌다.

§ 아카데미의 신화급 교수가 되었다 48화

48. 이벤트 (3)

휘청이며 쓰러지려는 몸을 다잡았다.

아주 잠깐-

의식을 잃었던 것 같은데.

'······뭐였지?'

분명 무슨 일이 벌어졌던 것 같은데.

'열쇠, 종말? 이게 다 무슨······.'

이상한 키워드만 머릿속에 뜨문뜨문 남았다. 마치 안개 속을 걷고 있는 기분이다.

지끈거리는 머리를 부여잡고 원래 이곳을 향한 목적인······.

'뭐였더라? 아, 그래. 결계.'

결계의 재가동 때문에 이곳을 찾은 것이다.

그 전에 무언가 할 일이 있었는데······ 떠오르지 않는다.

"키에엑, 키엑!"

어느새 다가온 드레이크들의 울음소리가 신경을 긁는다.

"키에엑, 키륵!"

"키르르륵! 키엑!"

설상가상으로 그 숫자는 둘이 더 늘어나 총 세 마리.

사방에서 서라운드로 질러대는 비명이, 끔찍하다.

도무지 가시지 않는 답답함과 더해져 짜증이 솟구친다.

"교학상장(敎學相長). 데얀 - 듀란달."

차원 저 너머에서 잠자던 신검(神劍)이 내 부름에 공간의 균열을 내며 모습을 드러냈다.

스걱-

그저 한 번의 휘두름.

"끼륵?"

"끄극······."

"키에에에-"

드레이크 세 마리를 지워버리는 데에는 그저 한 번의 '선'이면 충분했다.

* * *

'응? 뭐지?'

영상 통신구를 통해 루카스를 지켜보던 오르페가는 자신의 눈을 의심할 수밖에 없었다.

이 '안부 인사'의 묘미는 루카스가 혼자 율레이드를 찾아갔을 때 벌어지는 것이었다.

율레이드를 아군이라 생각하고 있는 루카스는 율레이드의 기습에 의해 커다란 타격을 입을 것이라 예상했지만······.

'도대체 무슨 일이 벌어진 거지?'

찰나의 순간에 율레이드는 싸늘한 시체가 되었고, 루카스는 숨 하나 흐트러지지 않은 상태로 서 있었다.

'개연성'의 개입으로 인한 현상이었지만, 오르페가는 물론이고 그 누구도 그것을 알 수는 없다.

그저 상황은 끝이 났고, '개연성'은 가장 적합한 형태로 결과를 도출해낼 뿐이다.

오르페가는 웃음을 터트렸다.

"크하하하. 그래도 조금의 타격은 줄 수 있을 거라 생각했건만. 역시, 루카스. 그래야 이 몸에 커다란 각인을 새긴 놈 답지. 그래도 아직 안부 인사는 끝나지 않았어. 결계사를 죽여서야, 일이 해결······."

하지만 이어지는 장면에 오르페가는 자신의 눈을 의심할 수밖에 없었다.

"이 도대체 무슨······!"

* * *

결계학은 마법이라는 거대한 카테고리에서도 상당히 어렵고 중요한 학문으로 취급받는다.

해박한 마법 지식은 기본이거니와 마법 진식에게 대한 이해, 그리고 가장 중요한 룬 문자에 대한 지식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룬 문자는 고어(古語) 중의 하나로, 그 자체로 마법적인 힘을 가지고 있어, 결계학의 핵심요소로 손꼽히곤 한다.

문제라면 그 극악의 난이도.

획의 각도가 조금만 틀어져도 달라지는 의미 때문에 수많은 고어 중 아직도 완전한 해석이 불가능한 언어다.

즉, 내가 알아보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소리다.

하지만,

[잠ㄱㅁ]

[두명화]

[단단하ㄱㅣㅣ]

'어째서 보이는 거지?'

보인다.

읽을 수 있다.

룬 문자 역시 언어의 일종이기에 언어 마스터리 덕분인가 싶겠지만, 이전에 결계 장치를 살폈을 때도, 그리고 로메로와 처음 알현하던 알현실 앞 결계도 '볼 수'는 있었으나, '읽을 수'는 없었다.

달라진 것이라고는······.

'시력 강화뿐이지.'

로메로를 알현했을 때는 <시력 강화> 자체가 존재하지 않았고, 지금은 <시력 강화> 2단계까지 적용된 상태.

<시력 강화>와 언어 마스터리가 모종의 시너지를 일으켰다고밖에 설명할 수 없다.

'그렇다면 이제 이걸······ 고쳐야 하는데.'

내가 고칠 수 있을까.

말했듯, 내게는 '마력'이라는 것이 존재하지 않는다. 심지어 포인트 상점에도 '마력' 스탯은 존재하지 않는다.

즉, 내게 마법이란 하등의 상관없는 학문이라는 소리다.

더군다나 결계학은 그런 마법학에서도 최고봉으로 손꼽히는 학문.

'읽을 수는 있으니······.'

불가능보다는 가능에 무게를 두는 것이 알맞겠지.

일단, 읽히는 글자 중 깨져 보이는 부분을 올바르게 수정하려 했다.

[경고]

[룬 문자를 사용하시겠습니까?]

[획당 1만 골드의 비용이 소모됩니다!]

수정을 시도함과 동시에 떠오르는 알림창.

한 획 당 1만 골드를 내어 놓으라는 협박성 메시지.

머리가 어질해질 만큼의 폭리다.

하지만 룬 문자의 위용을 생각해 본다면 투자해 볼 만한 가치가 있는 것이기도 했다.

묘하게 가격책정을 잘한다는 생각을 하며, 1만 골드를 소모해 한 획을 그었다.

[잠김]

우웅-!

시동음이 들리더니, 반투명한 막이 그라스코 전역을 뒤덮는 것이 보였다. 결계 밖에 있던 드레이크가 결계에 부딪혀 튕겨져 나갔다.

'된다!'

확실히, 작동된다.

이어서 다음 문자도 수정했다.

[투명화]

차르르르-

동시에 육안으로 선명히 보이던 결계가 순식간에 사라졌다. 아니, 사라진 것이 아니다. 사라졌다 느낄 수 있겠지만, 여전히 결계 밖 상공을 나는 드레이크가 무언가에 막혀 접근하지 못한다.

퉁- 투웅-!

결계가 새로이 생성되자, 밖에서 물밀 듯이 덮쳐오는 마족들이 결계에 공격을 가하며 깨려 하는 것이 느껴진다.

서둘러 마지막 문자를 수정했다.

[단단하게]

총 3만 골드를 투자하여 완성한 그라스코의 결계.

골드뿐만이 아니라 정신력도 함께 빠져나가는 듯, 상당한 피로감이 전신을 뒤엎는다.

쉬고 싶지만, 그럴 수 없다.

아직 내부가 완전히 정리되지 않았기에.

* * *

"겨, 결계다."

"결계가 복구되고 있다!"

결계가 복구되는 장면은 그라스코 내부의 모든 존재들이 목도한 것이었다.

그들은 결계가 복구되는 것을 보며 다시금 전의를 끌어올렸다.

마르지 않을 것 같던 적들의 병력이 이제 다시금 단절된 것이다.

"으오오오!"

그들은 마지막 힘까지 짜내어 움직였다.

온몸의 근육이 비명을 지르지만, 꾹 참고 움직였다.

그러나.

"이런, 늦을 뻔했군요."

결계가 완전히 그라스코를 뒤덮기 직전.

어떤 한 존재가 상공에서 모습을 드러냈다.

거대한 두 개의 뿔이 시선을 잡아끌고, 검붉은 전신의 털이 기괴하게 찰랑인다.

"인사드립니다. 오늘, 이 드레이크들의 조련을 맡은, 마수 군단장 아오레라고 합니다."

그는 품위 있게 가슴에 손을 대고 허리를 굽혔다.

"으음······ 보아하니 결계가 복구된 것 같군요. 원래 계획에 차질이 생긴 모양입니다."

아오레는 점점 투명하게 변하는 결계를 보며 안타깝다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

"제 귀염둥이들이 더 뛰어놀길 바랐지만······ 아무래도 여기까지인 모양입니다."

동시에 사람들을 압박하고 있던 드레이크들이 몸을 띄워 일제히 하늘로 날아올랐다.

"저는 이제 돌아가려 하니······."

딱-

그가 손가락을 튕기자, 그의 전신에서 마기가 줄기줄기 뿜어져 나와 도열한 드레이크에 흡수된다.

"그만 죽어주셔야겠습니다."

척-

아오레가 손을 총 모양으로 하고 사람들에게 겨누었다.

"그럼, 안녕히."

빵-

그가 총을 쏘는 시늉을 하자-

"크와아아!"

동시에 하늘에서 비처럼 쏟아지는 드레이크들. 종전과는 차원이 다르게 강해진 드레이크들의 공격이 거세게 몰아친다.

지금까지는 장난에 불과했다는 듯, 드레이크들은 몸으로 들이박고, 발톱으로 찢어발기며, 입으로는 막강한 위력의 브레스를 뿜어대며 사람들을 압박했다.

"다들 당황하지 마라!"

그런 드레이크를 상대할 수 있는 것은 교수급 정도나 되는 실력자들.

텅-!

"크억!"

"쿨럭,"

나머지는 혼란에 빠져 헤매고 있었다.

지상에는 누누들이, 하늘에는 드레이크들이.

다시금 분위기가 반전되고 있었다.

"꺄아아악!"

"으어억!"

"살려, 살려 줘!"

본격적인 살육의 시간이었다.

콰득-

파직, 파지지직!

에일론의 거대 병기도 네다섯의 드레이크 앞에 고전을 면치 못하며 팔이 뜯겨나가며 고철이 되어 가는 중이었다.

이윽고 디로그에 쌓여있던 에일론이 맨몸을 드러내었고, 그 육체가 모습을 드러냈다.

드레이크의 날카로운 발톱이 에일론을 향해 뻗어졌다.

"에일론!"

푸욱-!

"제시?"

제시가 에일론 앞을 막아섰다.

울컥!

"빠, 빨리 도, 도망······."

"아, 그게 그러니까······."

다시금 절망이 내려앉는다.

"내가 분명히 다치는 것들은 모조리 낙제라고 했을 텐데."

서늘하지만, 지금 이 순간만큼은 따뜻하게 느껴지는 목소리.

"교수님!"

결계를 복구한 루카스가, 다시금 모습을 드러내었다.

* * *

참혹하다.

아니, 처참하다는 표현이 맞을지도 모르겠다.

"교, 교수님······."

"제시가 저를 구하려다······."

죄송하다 고개를 숙인 저들의 모습에 왜 이렇게 짜증이 솟구치는지.

피 칠갑을 한 학생들의 몰골에 이다지도 분노가 치미는지.

"오, 루카스 교수님이신가 보군요. 오르페가 님께 말씀······."

휘익!

스걱-

"내가 허락할 때까지 입을 열지 마라."

놈이 더 입을 열기 전에 검을 뽑아 놈의 머리를 향해 날렸다.

그 존재 자체가 역겹다.

멀리 떨어져 있음에도 악취가 여기까지 느껴지는 것만 같다.

놈이 상당히 빠르게 반응해 피하긴 했으나 완전히 피할 수는 없었다.

놈의 뺨에 옅게 실선이 그어지며 피가 주륵 흐른다.

"하, 이것 참······."

놈의 표정이 딱딱하게 굳었다.

"상당히 예의 없으신 분이네."

"마족 놈에게 차릴 예의 따위가 필요한가?"

"하하하! 예의를 모르시면······ 죽어야지."

"할 수 있으면."

놈의 손끝이 하늘 높이 치솟았다.

동시에 드레이크들이 그의 손을 따라 하늘 높이 솟았다가-

휙!

놈의 신호에 맞춰 내게 쇄도한다.

검은 파도가 달려드는 것 같다.

교학상장(敎學相長). 바론 빌헬름- 철벽(鐵壁).

쿵, 쿠우웅! 쿠우우우웅!

세계관 최강의 방어술, 거대한 철벽이 내 신형을 뒤덮으며 드레이크들의 공격을 막아 낸다.

누가 봐도 으스러져야 하는 것은 내 쪽이지만, 오히려 드레이크들이 육편이 되어 사방으로 비산한다.

"한낱 미물이, 루카스 교수의 상대가 될 것 같은가!"

그 광경에 감화한 듯, 누군가 소리쳤다.

그래서, 놈이 직접 왔다.

놈의 기척은 계속해서 주시하고 있었기에, 놈이 내게 접근하자마자 목을 단단히 틀어쥐었다.

"켁, 케엑!"

"몰래 온다고 내 눈을 피할 수 있을 거라 생각했나?"

"이, 이거 놓고 말씀, 하, 하시지요. 푸, 품위 있게."

놈은 숨을 겨우겨우 쉬며 떠듬떠듬 말했다.

화아아아앗!

10만 포인트를 밀어 넣어 오러를 끌어올렸다.

"말했지만."

우득!

"마족 따위에게 차릴 예의는 없다."

그것으로 끝이었다.

목이 기괴하게 돌아간 마족은 그것으로 다시는 깝죽대지 못했다.

하지만 아직 모든 상황이 끝이 난 것은 아니다.

"······다들 어째서 가만히 있는 거지? 남은 것들을 당장, 내 시야에서 치워라."

"마, 마족들을 정리해라!"

씹어뱉듯 터트린 일갈에 드디어 사람들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구심점이었을 놈이 사라지니 순식간에 정리되고 있다.

마침내 마지막 누누의 숨통이 끊어지고-

[새로운 알림이 도착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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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료화 기념 이벤트가 종료되었습니다.]

[이벤트 기간 동안 후원받은 골드를 2배로 정산합니다.]

[이벤트 기간 동안 집계된 조회수가 골드로 변환되어 정산됩니다.]

[정산을 위한 집계를 시작합니다.]

[24:00:00]

§ 아카데미의 신화급 교수가 되었다 49화

49. 이벤트 (4)

얼마 지나지 않아 아에로크에서 파견된 조사팀이 그라스코에 도착했다.

"허, 참으로...."

조사팀의 총 책임자인 조사관, 로버트 모데리안.

그 역시 그라스코의 졸업생이었기에 기억하는 웅장한 모습에서 벗어난 광경에 침음을 금치 못했다.

"부총장님."

"아아, 오셨습니까. 조사관님."

"말씀 편안하게 하세요."

"아무리 제 제자였다고는 하지만, 지금은 아에로크의 국정을 보시는 분 아닙니까. 공과 사는 확실히 하여야지요."

대쪽같은 성정이, 그가 아는 로널드였다.

스승의 정정함에 기쁜 마음도 잠시, 이 참혹한 현장에 대한 설명이 필요하다.

"습격이 있었다고 들었습니다."

"그렇습니다. 결계에 무슨 문제가 생긴 모양인지, 아주 잠깐 균열이 생긴 틈을 타...."

"그라스코의 결계라면, 마탑의 최상급 결계라고 알고 있는데요."

"그렇습니다."

"마탑에서도 조만간 얼굴을 비추겠군요. 만약 결계의 문제가 확실하다면 마탑 측에서 보상을 해야 할 테지요."

"문제는 그것이 아닙니다."

로널드의 시선을 따라가자, 부상에 신음하거나 이미 숨을 거둔 사상자들이 보였다.

심지어 아직 어린 학생들도 있음에야.

"자책하지 마십시오."

"내 부덕의 소치입니다."

"부총장님께서 계시지 않았다면 더 큰 사상자가 발생했겠지요. 최소한의 피해로 막아 내신 것을 온 대륙이 인정할 것입니다."

"내가 아닙니다. 이 모든 공은 다른 사람에게 돌아가야 마땅합니다."

"다른 사람이라면...."

"저기 오는군요."

로널드가 가리킨 방향으로 고개를 돌리자, 순간 섬찟-하고 전신에 소름이 돋았다.

혼자 다른 세상에 존재하는 사람처럼, 주름 하나 없는 옷에 깔끔하게 정돈된 머리, 무엇보다 그 존재 자체가 풍기는 고고함.

'루카스 교수.'

그는 실제로 루카스를 보는 것은 처음이었으나 단박에 알아볼 수 있었다.

"루카스 교수가 아니었다면... 우리는 아마 더 큰 상실을 맛봤을 겁니다."

"그렇군요."

그 뒤로 어린 학생들을 줄줄이 데리고 나타난 그에게 로버트가 다가갔다.

"루카스 교수님, 만나 뵙게 되어 영광입니다. 저는 아에로크에서 나온 조사단의 조사관, 로버트 모데리안이라고 합니다."

루카스는 그 시선을 로버트에게 옮겼다.

서늘한 시선이 맞닿는 순간, 그는 마치 무언가에 전신을 관통당하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지금까지 수많은 강자를 만났던 로버트지만, 루카스가 주는 감각은- 뭐랄까, 다른 차원의 이질감을 느끼게 했다.

무엇보다 남자인 자신이 봐도 넋을 놓아버릴 것 같은 그 외모가 가히 충격적이었다.

하지만 그는 이번 사태를 조사해야 할 의무가 있는 조사관.

냉정을 찾고 입을 열었다.

"오늘 벌어진 일에 대해 여쭙고 싶은 것이 있습니...."

"...지금 당신의 눈에는 피 칠갑을 한 이들이 보이지 않는가?"

로버트는 저도 모르게 한 발짝 물러섰다.

"치료가 먼저. 조사는 그 후에."

그가 움직인다.

그 우아한 품격에 한참이나 넋을 잃었다가, 루카스의 무리가 시야에서 사라지고 나서야 제정신이 들었다.

"조사관, 이해해 주세요. 그의 학생들이 많이 다쳐서 그렇습니다. 지금 그에게는 학생들의 치료가 최우선일겁니다."

"그, 그렇군요... 제 생각이 짧았습니다."

"제가 협력하겠습니다. 일단 제 방으로 가시죠."

* * *

"다행히 상처는 깊지 않네요. 이 정도면 며칠 푹 쉬면 금방 나을 거랍니다. 그나저나 이게 다 무슨 난리람."

"고생하셨습니다."

다행히도 제시의 상처는 깊지 않았다. 며칠 요양하는 것으로 회복된다고 하니.

다른 학생들 역시 큰 상처는 없어 간단한 응급처치가 끝이었다.

안도감이 밀려왔다.

'그나저나 토레스가 웬일로 얌전한데?'

원래라면 '우리 도련님, 우리 도련님'하고 난리를 쳤을 놈인데, 옆에 딱 붙어 지키고는 있지만, 난리는 치지 않았다.

제시가 이곳으로 오기 전, 출혈이 과했던 때도 마찬가지였다. 심지어 제시를 두고 마족들을 정리하는 데 앞장까지 섰으니.

내 시선의 의미를 느꼈는지, 토레스가 화들짝 놀라 대답했다.

"도, 도련님이 오바하지 말라고 하, 하셨어요. 그, 그리고 교수님이 구해 주실 테니까...."

이건 좀 감동적인데.

그러니까 이제 제시에 대한 걱정보다 나에 대한 신뢰도가 높아졌다. 이건가.

"다들 수고 많았다."

이기적인 생각일 수 있지만, 내 학생들은 아무도 죽지 않았다.

다만, 자잘한 부상을 입은 학생들이 있었을 뿐.

"하지만."

그러나 나는 분명히 경고했다.

"조금이라도 다치는 것들은 모조리 낙제라고 했을 텐데."

이 경우, 낙제는 곧 기말고사 진출의 박탈을 뜻한다.

"하, 하지만 교수님. 그건...."

"어쩔 수 없는 상황이었겠지. 이해한다. 그래서-"

물론 낙제는 말뿐인 협박이다. 게다가 중간고사를 재개할 상황이 되지 않으니 재선발은 무리.

하여 내가 내린 답은-

"보강을 진행하겠다. 거기 제시. 듣고 있는 것 다 알고 있으니까 명심해라. 너도 포함이다."

이 아이들을 더 빡세게 굴리는 것이었다.

"교수님, 저는 안 다쳤는데요?"

누군가 소심한 반항을 했지만-

"예외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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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님들도 내 결정에 만족하신 듯하다.

* * *

"허허... '군단장' 급이라면 분명 상급 마족일 텐데, 단 일격에...."

"그러니 루카스 교수가 없었다면 이 그라스코는 진작에 무너졌을 거라고 말씀드리는 겁니다."

로널드는 루카스를 대신해 로버트의 조사를 성심성의껏 돕고 있었다.

"당사자에게 묻고 싶은 것이 많으실 테지만, 양해해 주시길 바라겠습니다."

"폐하께 보고 드릴 내용으로는 충분합니다. 이제 마탑의 조사 결과만 첨부하면 될 텐데...."

똑똑-

-부총장님, 마탑에서 손님들이 오셨습니다.

"오, 드디어. 적절한 때에 오셨군."

절묘한 타이밍에 마탑 소속의 조사관 또한 그라스코에 도착했다.

"결계 장치에 안내해 드리게. 나도 곧 출발하지."

-네 알겠습니다.

"같이 가시지요, 조사관님."

"그럴까요?"

두 사람이 몸을 일으켜 마탑의 조사단이 있는 결계 장치로 향했다.

그곳은 마탑의 마법사들이 접근 제한 마법을 설치하고 조사에 한창이었다.

"아, 로널드 부총장님이시군요. 들어오시죠. 팀장님께서 기다리고 계십니다."

입구의 마법사가 마법을 일부 해제해 로널드와 로버트의 입장을 도왔다.

"팀장님, 그라스코의 부총장님께서 오셨습니다."

"잠깐만 기다리시라고 해."

팀장이라 불린 여성은 타오르는 듯한 적발을 풀어헤치고서 결계 장치를 뚫어져라 쳐다보고 있었다.

방해하면 재미없을 거라는 오라가 팍팍 풍겨댄다.

"한 번 어긋난 건 맞는데... 누가 고쳐 놓은 거지? 그것도 이렇게 완벽하게 말이야."

그녀는 고쳐진 결계를 보며 감탄을 금치 못하고 있었다.

결계란 한 번 어긋나면 완전히 고쳐 놓기 힘들다. 아니, 힘든 수준이 아니라 거의 불가능에 가까운 것이었다.

빌어먹을 룬 문자의 특성 때문이다.

그러나 지금 그녀의 눈앞에 완벽하게 고쳐진 결계가 있다.

조사단의 팀장이기 전에 마탑의 룬 문자 연구가로서 흥미가 생긴다.

"아, 이거 실례. 너무 오래 세워 뒀군요. 밀리아라고 합니다. 보시다시피... 엘프죠."

그녀가 삐죽 돋아난 귀를 가리키며 자신을 소개했다.

"숲의 종족을 뵙게 되어 무한한 영광입니다. 그라스코의 부총장, 로널드라고 합니다."

"로버트 모데리안입니다. 아에로크 조사단의 조사관입니다."

"숲의 종족까진 아니고. 전 하프거든요. 아, 뭐. 그게 중요한 건 아니고."

로널드의 말을 정정한 밀리아는 허리에 손을 얹고 입을 열었다.

"일단, 이 결계 장치의 문제로 그라스코에 커다란 피해를 입힌 점은 사과를 드리겠습니다. 조사가 끝나면 적절한 수준의 보상이 지급될 겁니다."

"조사에는 최대한 협력하도록 하겠습니다."

"지금까지 조사한 바에 따르면 율레이드 고것이 마나를 배신한 것으로 보입니다. 자세한 건 마나 하트를 뜯어서 검사할 테지만, 정황상 확실해요."

"으음...."

마나를 배신했다.

그것은 마법사들이 마족들에게 영혼을 팔아넘긴 것을 의미하는 은유다.

로널드로서는 믿고 싶지 않은 일이었다.

전투 학부 학장에 이어 총장, 그리고 그라스코의 안전을 담당해야 할 결계사, 율레이드까지. 그라스코에 마족 관련자들이 이다지도 많이 침투했던가.

"일단 율레이드를 이쪽에 파견한 것은 저희니까 그것 역시 책임을 질 겁니다. 율레이드의 공석은 최대한 빠르게 채워드리겠습니다. 그런데, 도저히 이해가 가지 않는 것이 있단 말이죠?"

분명 율레이드는 결계 장치를 망가트려 놓았다. 그것도 상당히 오랜 시간을 소모해서.

"근데 이 장치를 누가 고쳤느냐, 이 말인데."

망가뜨리는 것도 오래 걸리지만, 고치는 건 더욱 오래 걸린다.

심지어 고쳐진 수준이 어마어마하게 뛰어나다.

결계학 자체가 마탑이 독점적으로 관리하는 것이다 보니까 이 정도 실력자라면 분명히 자신이 알고 있을 텐데 감도 잡히지 않는다.

혹시나 엘프 일족의 누군가인가? 드래곤의 보은인가?

오만 생각이 다 들 정도였다.

"아, 그거라면 아마 루카스 교수가 알 겁니다."

"루카스 교수요?"

밀리아 역시 들어본 적 있는 이름이다.

다만 자신과는 거리가 먼- 전투 학계의 사람이라 세세히 알지는 못할 뿐.

'그러고 보니, 루이나가 루카스인가 박카스인가 하는 놈 밑에서 공부 중이었지?'

자신과의 유일한 접점이라면, 마탑의 후계자인 루이나 정도일까.

"혹시 그분을 좀 만나 뵐 수 있을까요?"

"아, 그게 지금은...."

"이쪽으로 오시기 곤란하면 제가 직접 찾아가겠습니다."

만나서 루이나에 대한 이야기도 좀 듣고, 겸사겸사 이 결계에 대해서 물어볼 것도 있고.

"그럴 필요 없습니다."

그때였다.

접근 제한 마법 외곽이 출렁이더니, 두 사람의 인영이 등장했다.

"루이나! 그리고... 오호."

밀리아가 익히 아는 얼굴, 루이나. 그리고 그 곁에서 강한 존재감을 내뿜고 있는 사내- 루카스.

"밀리아 할머니!"

"저 썩을 것이. 할머니라고 부르지 말랬지! 그나저나, 그쪽이 루카스?"

"전투학 교수, 루카스 폰 크라우스입니다."

밀리아는 루카스의 전신을 훑었다.

상당히....

이질적이었다.

동시에 낯설었다.

'마력이... 느껴지지 않잖아?'

엘프의 피를 이어받은 그녀는 본능적으로 마력을 느낄 수 있다.

나무, 풀, 심지어 돌에도 마력은 존재하지만....

눈앞의 루카스에게는 마력이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그러면서도 본능이 그의 강함을 외쳐대고 있으니 이상한 일이다.

"할머니, 왜 그래?"

"할머니라고 부르지 말라니까! 아, 실례했습니다. 이 결계 장치 때문에 몇 가지 물어보고 싶은 것이 있습니다. 율레이드의 최초 발견자... 아니, 처단자라고 표현해 드릴까?"

"글쎄요. 편하실 대로."

"아무튼, 루카스 교수께선 율레이드가 망가뜨린 이 결계 장치. 이것을 누가 고쳤는지 알고 있습니까?"

"고치긴 누가 고쳐. 그라스코에 결계학을 할 줄 아는 사람이 누가 있... 잠깐. 그러네? 율레이드 교수님이 아니라면, 누가...."

율레이드가 죽어 가는 순간, 참회하며 결계장치를 고쳤을 리는 없다.

그렇다면 도대체 누가.

사람들의 시선이 루카스를 향해 움직였다.

그는 그저 아무렇지도 않은 듯, 마치 배가 고프기에 식사를 했다는 식의 말투로 가볍게 대답했다.

"제가 고쳤습니다."

잠깐 침묵이 돌았다.

너무 당연하게 이야기를 해 버리니, 어? 그런가 싶은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결계다.

단순히 '다재다능'으로는 건드릴 수 없는 영역이다.

"루카스 교수께서는 전투 학부의 교수로 재직 중이라고 알고 있는데. 결계를 어떻게 고치셨다는 말인지?"

"룬 문자를 조금 할 줄 압니다."

밀리아는 황당함을 금치 못했다.

룬 문자라는 것이 '조금 할 줄 압니다.'로 표현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괜히 마탑에서 특별 취급하며 그 연구를 독점하는 것이 아니란 말이다.

"조금 할 줄 아신다니, 참 반갑네요."

밀리아는 속으로 비웃었다.

룬 문자의 난해함은 역사상 최고의 마도사라는 마탑주마저 고개를 젓게 만드는 것이거늘.

고작 30년 남짓 살아 온 인간이 자신 있게 입에 담을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그녀에게 아주 고약한 발상이 떠올랐다.

"저도 마침 마탑에서 룬 문자를 연구하는 중인데. 그럼, 이것도 알아보실 수 있으려나?"

그녀는 자신이 지금 연구 중인 룬 문자의 한 구절을 허공에 그렸다.

100년 가까운 삶을 룬 문자 연구에 매진했으나 단 한 번도 '할 줄 안다'라고는 생각하지도, 입에 담지도 않았다.

이 문장 역시 그렇다.

자신도 30% 정도만 해석이 가능한 문장이었다.

그러나 그 30%의 해석은 룬 문자 연구를 진일보시켰다고 할 정도로 높게 평가받을 수 있는 것이었다.

흡혈귀 그리고 피.

새로운 단어의 해석이었다.

당연히 아직 학회에 발표하지 않았기에 이 문장에 흡혈귀나 피가 언급된다는 사실은 그 누구도 모를 것이다.

오직 이 문장을 조금이나마 해석한 자신 말고는.

'그거 봐. 얼굴이 딱딱하게 굳어 버리잖아.'

아니나 다를까 루카스의 표정이 딱딱하게 굳어간다.

단 한 문장으로 바닥을 보일 거면서.

밀리아는 웃으며 허공에 문자를 지우려고 했다.

그러나 그 순간.

"흡혈귀들이 식탁에서 웃음이 끊이지 않는 이유- 그것은 피 식(食) 하기 때문...."

아주 완벽하게 완성된 하나의 문장이, 그것도 이 룬 문자에 숨어져 있는 핵심 단어들로 구성된 문장이 루카스의 입에서 술술 튀어나왔다.

순식간에 룬 문자를 해석한 루카스는 한 마디 덧붙였다.

"유머 감각이 형편없으시군."

§ 아카데미의 신화급 교수가 되었다 50화

50. 이벤트 (5)

밀리아는 충격을 감출 수 없었다.

루카스가 내어 놓은 해석은 일견, 대충한 것처럼 느껴질 수 있지만, 핵심 키워드를 모두 포함한 해석이었기 때문이다.

자신은 이 문장에만 장장 10년의 세월을 바쳤다.

그러나 루카스는 그야말로 숨 한번 몰아쉴 시간 정도만으로 이 문장의 해석을 해냈다.

가장 충격적인 것은 그 내용이었다.

'내가 10년이나 바친 문장의 내용이 고작....'

아저씨들의 술자리에서나 떠들어댈 법한 농담이라니.

믿고 싶지 않았다.

"허허허! 루카스 교수님, 이제 보니 유머 감각이 상당한 분이셨군요! 아무리 룬 문자를 해석할 수 있는 사람이 없다지만 그토록 재미있는 농담으로 받아치다니! 그럼 저도 한자락 뽑아 보겠습니다. 얼음이 죽으면 뭔지 아십니까? 다이빙입니다, 다이빙! 허허허!"

"...."

심각한 분위기 속 로버트만 신나 떠들어대고 있었다.

루카스의 표정이 더욱 굳었다.

"저는 이런 종류의 말장난을 좋아하지 않습니다."

루카스는 서늘하게 한마디를 내뱉고 몸을 돌렸다.

"이곳에 더 머물 필요는 없겠군요. 이후 제 협력이 필요하다면 연구실로 연락 주시기 바랍니다."

아주 정중하고 품위 있는 태도였지만, 누구나 알 수 있었다.

루카스는 여기 있는 두 조사관과 말을 섞고 싶어 하지 않았다.

그의 얼굴에 옅게 어려 있는 경멸이 그 심정을 대변했다.

밀리아는 억울했다.

자신은 그저 연구 중인 룬 문자로 루카스를 시험해 보려 했을 뿐인데 저 로버트인가 로보트인가 하는 놈과 동급으로 취급되고 있었기 때문이다.

'루카스 교수! 오해야, 오해라고.'

해명할 틈도 없이 루카스는 접근 제한 구역을 빠져나가 버렸다.

"거 참, 이런 종류의 말장난을 싫어한다니. 밀리아님, 아몬드가 죽으면 뭔지 아십니까? 다이아몬드입니다! 껄껄껄!"

로버트는 여전히 상황 파악이 덜 된 건지 시답잖은 말장난을 계속하고 있었다.

"아이스크림이 죽으면 뭔지 아세요? 다이하...."

"로버트 조사관님."

"예, 밀리아 님."

"조사관님이 죽으면 뭔지 아세요?"

"저요? 어... 제가 죽으면... 글쎄요, 뭘까요?"

고민하는 로버트를 향해 밀리아는 마력을 끌어올리고 살벌하게 내뱉었다.

"...알고 싶지 않으면 제 앞에서 그 썰렁한 말장난 집어치우세요."

"딸꾹!"

* * *

"교수님, 교수 회의 소집되었습니다."

아에로크 본국과 마탑의 조사가 일단락되고, 이후 방안을 논의하기 위해 교수 회의가 소집되었다.

저번 <카일론 관>에서 벌어진 사태가 전투 학부만의 일로 치부되었다면 이번 침공은 그라스코 전체의 일로 인식되었으니.

거기다 이번 침공으로 인해 중단된 중간고사의 이후 처리방안과 희생자들에 대한 보상도 논의해야만 했다.

그라스코 모든 교수들에게 교수 회의의 소집이 전달되었다.

교수 회의가 열리는 장소인 <타벨루스 관>에 교수들은 물론, 휘하 조교와 조교수들까지 속속들이 모이기 시작했다.

"어?"

교수들은 들어서자마자 보이는 갈색 로브 집단에 의아함을 품을 수밖에 없었다.

"마탑 분들이 교수 회의에는 무슨 일로...."

"자, 자. 다들 진정하시게. 마탑에서 보상안 논의에 도움을 주시기 위해 참관하시게 됐네."

로널드가 놀란 교수들을 진정시켰다.

"반갑습니다. 마탑에서 파견된 조사단의 팀장, 밀리아라고 합니다."

"밀리아라면... 룬 문자의 권위자!"

마법 학부의 교수들은 단박에 밀리아를 알아보았다.

그러나 그 호칭을 들은 밀리아의 낯빛은 오히려 어두워졌다.

"팀장님께서 발표하신 논문은 항상 흥미롭게 읽고 있습니다."

"밀리아 님의 연구는 그야말로 학계의 수준을 올리고 계시죠."

마법 학부 교수들의 밀리아를 향한 관심이 뜨겁다.

"자자, 웬만큼 모인 것 같으니, 회의를 시작하도록...."

"저기, 아직 전투 학부에서는 한 분도 모습을 보이지 않습니다만?"

밀리아의 지적에 로널드가 자애롭게 웃으며 말했다.

"전투 학부의 피해가 가장 심각하다 보니, 내가 그들을 대표해 회의에 참석하게 되었습니다."

"그래도 한 분은 계셔야 할 것 같은데."

예를 들면 루카스라던가.

루카스는 분명 멀쩡해 보였는데.

그 순간.

끼이익-!

<타벨루스 관>의 문이 열렸다.

단지 닫혀있던 문이 열릴 뿐이었지만 순식간에 사람들의 시선이 몰린다.

그것은 밀리아에게 관심을 집중하던 마법 학부의 교수들 또한 마찬가지였다.

마치 자연의 섭리처럼 자연스럽게 시선이 이끌렸다.

또각-

그 시선에 끝에는 어김없이 루카스가 자리했다.

등장만으로 압도했다.

몇몇 교수들과 대부분의 조교들은 그저 감탄하며 그의 신형을 쫓았다.

그는 가타부타 말없이 자신의 자리를 찾아 착석했다.

무거운 침묵이 돌았다.

"전투 학부의 루카스 폰 크라우스. 도착했습니다."

"와 주었군."

시계를 보니 오후 8시 정각.

회의가 시작할 시간이었다.

강의 때도 그러하듯, 칼 같은 시간관념이었다.

"모일 수 있는 교수들은 다 모인 것 같으니, 회의를 시작하도록 하겠네."

로널드의 선언을 시작으로 그라스코 교수 회의가 시작되었다.

"가장 첫 번째 안건은 중간고사에 대한 안건이네. 전투 학부의 중간고사는 64강까지 진행되었고 일반 학부는...."

역시 가장 우선시 진행되는 안건은 중간고사.

"지금 상황에서 중간고사를 속행하기에는 무리가 있겠지요."

"하지만 적절한 대처가 마련되어야 하긴 합니다."

"그렇다면 기말고사에서...."

열띤 토론이 이어지고 있다.

이곳에서 한 발짝 물러날 수 있는 것은 오직 전투 학부뿐.

아니, 어떤 안건도 꺼낼 수 없었다.

32강에 진출한 학생들 대부분 커다란 피해를 입은 상태였고, 재개하는 데 가장 큰 어려움이 있는 학부가 바로 전투 학부였기 때문이다.

그래도 다행인 것은 38인의 기말고사 진출자가 모두 정해졌다는 것 정도.

전투 학부의 중간고사는 우승자 혜택이 크지 않으니 그에 관해서는 학생들의 동의만 받으면 될 일이었다.

"그럼 중간고사는 정식으로 종료를 선언하고, 이후 처리에 대해서는 각 학부에 일임하도록 하지. 이견 없나?"

"공학 학부, 이견 없습니다."

"일반 학부에서도 없습니다."

"마법 학부도 없습니다."

"전투 학부 또한 없습니다."

"좋아. 다음으로 넘어가지."

* * *

'저 양반은 왜 자꾸 쳐다보고 난리야?'

밀리아의 시선이 불편하다.

분명히 이 회의에 참석한 이유가 있을 텐데 노골적으로 내 쪽만을 노려보고 있다.

'설마 아까 자기가 룬 문자로 친 아재 개그 좀 깠다고 저러는 건가? 엘프 피가 섞여 있어서 그런가, 속 좁은 거 봐 저거.'

인종 차별이 아니다.

내 세계관에서 엘프의 특성이 '은혜는 잊어도 원한은 잊지 않는다.'이다.

그 원한이 얼마나 사소한 것이든 상관없다.

그야말로 쫌생이의 전형.

'대충 맞장구쳐줄 걸 그랬나. 아 씨, 난 금방 갈 줄 알았지.'

이렇게 오래 머물 줄 알았나.

밀리아의 시선 때문에 자꾸 그녀에게 의식이 향한다.

어쩔 수 없다.

그녀는 내 세계관에서도 손꼽히는 네임드.

혹시 내게 원한을 품었다면 순식간에 슥-삭 해 버릴 수 있는 실력자.

지금 내가 믿을 것은 <시력 강화>뿐이다.

살기 위해서라도 의식을 그녀에게 집중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러면서도 회의에도 의식을 유지해야 했다.

각 학과별로 이후 그라스코의 방향에 대한 논의가 오가는 이때, 정신을 놓을 수는 없으니.

정신력이 빠르게 소모되고 있다.

피곤...

[새로운 알림이 도착했습니다.]

[이강밍 님께서 10,000G 후원하셨습니다.]

[이리오드 님께서 1,000G 후원하셨습니다.]

[가규 님께서 500G 후원하셨습니다.]

[k2929 님께서 100G 후원하셨습니다.]

그딴 게 뭔데?

후원 버프로 피곤 따위는 순식간에 날아가 버리는 것이었다.

"...그럼, 전투 학부는 따로 생각한 방안이 있는가."

어느새 발언권이 전투 학부로 넘어왔다.

이곳에서의 전투 학부는 오롯이 나 혼자.

즉, 내가 전투 학부를 대표해야 한다.

이번 침공을 겪으면서 확실히 느낀 것이 있다.

전투 학부는, 아니 그라스코 전체는 실전 경험이 압도적으로 적다.

아마도 로널드의 교육 철학이 미치는 영향 때문이리라.

반드시 한번 짚고 넘어가야 한다.

"이번 침공 때 가장 많은 사상자가 발생한 학생들이 몇 학년이라 보십니까."

"그건 아직 조사 중으로...."

모든 교수들이 대답을 하지 못했다.

파악 중이라는 핑계로.

그까짓 파악 회복센터로 가보면 확연하다.

"4학년들입니다. 졸업반 학생들. 그라스코에서 가장 많은 배움을 받았을 학년이 역설적이게도 가장 큰 피해를 입었습니다. 그것이 뜻하는 바가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자연스레 내 강의의 방식인 소크라테스식 문답법이 튀어나오고 있었다.

하지만 교수들에게 답을 요구할 수는 없는 법.

"실전 경험의 절대적인 부족. <카일론 관>이 아무리 정교한 기술로 생생한 현실을 재현한다고 하지만, 오늘처럼 '진짜' 실전에는 미치지 못한다는 것을 다들 느끼셨을 겁니다."

"으음...."

교수들의 반응은 대체로 긍정이었다.

하긴, 이번 침공으로 느낀 것이 많았을 테니.

"로널드 부총장님의 교육 철학은 잘 알고 있으나, 이제는 진정한 의미의 실전 또한 경험해 봐야 합니다."

로널드의 반응이 관건이었다.

그렇지 않아도 학생들을 그라스코 밖으로 내돌리지 않기 위해, 전쟁의 화마에 던지지 않기 위해 노력했던 사람이 아닌가.

아에로크 왕실과 짜고 학생들을 징집하려 한다고 난리를 칠 수도 있었다.

하지만,

"나 역시 그 부분은 절감했네."

로널드는 순순히 인정했다.

자신의 교육 철학 방향이 어긋났음을.

"우리 학생들이 오늘 같은 일에 휩싸여도 당황하지 않을 경험이 필요하다는 것을, 내 절실히 느꼈네."

"그래서 저는 학생들의 실전 경험을 위해 '페두르 산맥'을 활용할 것을 제안합니다."

"페두르 산맥!"

'페두르 산맥'은 아에로크와 아니크 왕국 사이에 존재하는 산맥이다. 천혜의 절경과 더불어 마력 왜곡 현상으로 보통의 몬스터들보다 훨씬 강력한 개체가 서식하는 험지.

"마침 마족과의 전쟁 때문에 토벌이 한참이나 늦춰져 자칫하면 웨이브 현상이 발생할 수도 있습니다. 그곳을 실습지로 삼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건 너무 위험...."

"제가 있습니다."

이들이 걱정하는 가장 큰 원인은 언제 터질지 모르는 몬스터 웨이브.

하지만 나는 페두르 산맥의 몬스터 웨이브가 언제 터질지 정확히 알고 있다.

지금으로부터 약 반년 후.

그것 때문에 아에로크가 전력에 상당한 타격을 입게 되니.

비단 학생들의 실전 경험만을 위해서는 아니다.

예고된 위험을 최소화하기 위한 것도 있으며- 무엇보다.

'그곳에 숨겨진 고대 유물.'

'아탄 탑'과 마찬가지로 초고대 문명의 편린이 잠들어 있다.

<아.천.망>에서는 언급만 하고 말았지만, 그 존재를 아는 이상, 써먹는 것이 당연하지 않겠는가.

마족들의 침공 이후 더욱 강해져야만 한다는 압박감이 나를 지배하고 있단 말이다.

"...그렇군. 자네가 있는데. 괜한 걱정을 했군."

로널드는 순순히 동의했다.

"대신 전투 학부와 마법 학부가 통합 실습할 수 있도록 진행하지. 그 건은 루카스 교수에게 일임하도록 하겠네. 마법 학부는 관련 계획을 작성해 루카스 교수와 협력하길 바라네."

"알겠습니다."

* * *

"자, 그럼 마지막은 피해 보상 방안인데...."

지루한 마라톤 같은 회의도 이제 끝에 다다랐다.

드디어 마지막 안건이자 이번 회의의 핵심 주제 '보상'이 언급되었다.

순간, 교수들의 눈빛이 돌변했다.

"크흠! 이번에 우리 공학부의 손해가 참으로 막심하다는 것을 먼저 말씀드리고 싶군요. 이번 중간고사의 중단으로 학생들의 지원금이 반 토막이 났습니다."

"저희 일반 학부 또한 마찬가집니다. 저희 중간고사 피해로 말씀드리자면...."

"어허, 마법 학부의 손실도 빼놓으시면 안 됩니다!"

보상 문제가 논의되자 교수들의 어조가 강해졌다.

저마다 자신들의 학부나 학과에 대한 손해를 말하며 목소리를 높였다.

"우리는 기자재를 포함해서 손해가...."

"어이구, 우리는 연구자료까지 날아가서 백지에서 시작할 판이야!"

서로 자기가 더 손해입네 하고 날카롭게 대립각을 세우고 있었다.

도무지 끝날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다들 잘 알겠네만... 이 문제에 대해서는 가장 우선적으로 발언해야 할 학부가 있지 않은가?"

로널드의 일침에 교수들의 시선이 한곳으로 쏠렸다.

이번 침공으로 가장 큰 피해를 입은 학부라면, 두말할 것 없이 전투 학부.

인명이면 인명, 시설이면 시설.

심지어 교수들까지 부상을 입어 회복센터 신세를 지고 있지 않은가.

그들의 시선이 나를 향해 쏠린다.

그 시선에는 불안과 초조함이 엿보인다.

내가 얼마를 부르던 그들은 수긍해야만 한다. 내가 부르는 액수가 커질수록 저들에게 돌아가는 액수는 적어진다.

나는 잠깐 생각을 마치고 입을 열었다.

"마탑에서 보내 준 교수가 결계를 망가뜨려 이 같은 사달이 났습니다."

다소 뜬금없는 내 발언에 사람들의 눈에 의문이 담겼다.

"그런데 액수가 무슨 상관인지."

그들의 의문에 답하듯이 내 시선은 밀리아를 향했다.

"이 같은 실책을 덮기 위해서 마탑에서는 액수가 중요한 것이 아닐 텐데."

쉽게 말하자면, 달라는 대로 달라는 정중한 협박이었다.

§ 아카데미의 신화급 교수가 되었다 51화

51. 페두르 산맥 (1)

"...."

밀리아가 눈을 가늘게 뜨고 내 쪽을 응시했다.

나는 그 시선을 굳이 피하지 않고서 마주했다.

"...좋습니다. 이번 사태에 우리 마탑은 책임을 통감, 무조건적인 보상을 약속하겠습니다."

만세-

교수들 쪽에서 작게 환호성이 터져 나왔다.

"단, 한 가지 조건이 있습니다."

"조건이라면...."

로널드가 흥분을 억누르고 말했다.

항상 자금에 쪼들리던 로널드였으니, 밀리아가 말하는 무슨 조건이든 들어줄 태세다.

"그 부분은 이야기가 길어질 것 같으니, 부총장님과 따로 말씀 나누겠습니다."

"그러실까요. 허허허."

저저, 간이고 쓸개고 다 내어 줄 것 같이 구는 것 좀 봐.

뭐, 이 정도면 나는 내가 챙길 밥그릇에 더해 다른 학부의 것까지 챙겨주었으니 내 할 일은 넘치게 한 셈이다.

그 이후는 내 알 바가 아니다.

그리고 로널드가 저렇게 사람 좋은 웃음을 짓고 있어도 상당히 실리적인 사람이라 손해 보는 일은 없을 것이다.

괜히 그라스코의 안방마님으로 불리겠나.

알아서 잘 논의하겠지.

"그럼 각 교수들은 보상 방안을 정리해서 부총장실에 제출하도록 하게. 이것으로 회의를 마치도록 하지."

그렇게, 교수 회의는 끝이 났다.

* * *

"아, 루카스 교수님도 잠깐 남아계시죠?"

"...."

밀리아가 일어나려는 나를 불러 붙들었다.

"제가 있어야 할 이유라도?"

"마탑을 거덜 내려고 하셨으니, 어떻게 거덜 나는지도 지켜보셔야지."

다분한 엄살이다.

더스트 인더스트리 다음으로 돈이 많은 집단이 바로- 마탑이다.

심지어 더스트 인더스트리보다 보유한 현금은 더 많을지도 모른다.

그런 곳에서 보상 좀 한다고 거덜?

말도 안 되는 소리.

그래도 따질 기분도 아니기에 다시 자리에 앉았다.

교수들이 싱글벙글하며 한 명씩 <타벨루스 관>을 벗어났다.

그 광경을 물끄러미 지켜보다, 순간 알 수 없는 위화감이 들었다.

'교수의 숫자가 이것이 전부던가?'

특히 일반 학부 소속의 교수들이 삼삼오오 빠져나가는 모습에서 위화감이 극대화되었다.

무언가 중요한 것이 하나 빠진 것 같은... 그런 기분이었다.

"자네... 왜 그러나?"

"부총장님, 전투 학부를 제외한 나머지는 모든 교수가 참석한 것이 맞습니까?"

"그래, 그렇네만...."

"단 한 명의 불참자도 없는 것, 확실합니까?"

"그렇대도."

"알겠습니다."

찜찜함이 무겁게 내려앉았다.

"자, 이제 우리만 남았으니 마탑 측에서 내걸 조건이 무엇인지 들어나 봅시다."

"저희 마탑과 그라스코가 상호 협력을 했으면 합니다. 마탑은 그라스코를 전적으로 서포트하고, 협력하겠습니다. 그라스코 역시 마탑의 요청이 있으면 합동 연구를 진행해 주실 것을 요청합니다."

로널드의 눈이 커진다.

밀리아가 내건 조건은 그라스코에게 오히려 유리한 것이기 때문.

마탑은 세계 최고의 학문 기관 중 하나이다.

마법 학계의 학회도 마탑의 휘하이며 마탑이 독자적으로 연구하는 카테고리만 해도 아카데미를 세우기에 부족함이 없는 수준이다.

그런 곳에서 진행하는 연구에 그라스코가 한 발 걸치게 되는 것이다.

오히려 이쪽에서 막대한 비용을 지불하고서라도 잡아야 하는 기회다.

하지만 내겐 그 속에 담겨진 의미가 보인다.

마탑- 아니, 밀리아는 '나'를 노리고 있다.

굳이 깊게 유추해 볼 것도 없다.

저 시선이 노골적으로 내게 향해 있으니까.

로널드 역시 그 시선을 읽었다.

"자네는 어떻게 생각하나?"

마탑은 이 세계관에서 신성 제국과 더불어 강력한 힘을 가진 집단 중 하나다.

그들과의 우호를 쌓을 수 있다는 점에서 거절할 이유가 없긴 하다.

"...알겠습니다."

"그럼 결정됐군요!"

로널드가 눈에 띄게 기뻐하며 소리쳤다.

사실 그라스코에는 더없이 이득이긴 하니까.

"아, 그리고 필요 없으시겠지만, 마탑 파견 교수를 두었으면 하는데...."

밀리아의 말이 조심스러워진다.

아무래도 율레이드라는 전적이 있으니까.

게다가 밀리아가 보기에 그라스코에는 내가 있으니 결계사는 필요 없다고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각 아카데미에 파견된 결계사는 단순히 결계를 관리하는 것에서 그치지 않는다.

마탑의 고유 연구가 누출되거나 마탑에 해가 가는 일이 발생하지 않는지 감시하는 역할도 하는 것. 그러니 단순 결계사가 아닌, 교수로 파견하는 것이다.

그들에게는 결계사 파견이 반드시 필요하다.

...나 역시 마탑의 결계사가 너무나도 필요하다.

획당 1만 골드나 잡아먹는 룬 문자를 내가 관리할 순 없다. 나서서 관리해 준다는 놈들이 있는데, 굳이?

"대신, 조건이 있습니다."

하지만 그건 오직 나만이 아는 페널티.

마탑에게는 그라스코의 이해와 배려가 필요한 부분이다.

즉, 뜯어먹을 수 있다는 소리. 기회가 생겼을 때 왕창 뜯어먹어야 한다.

"제게 마탑의 모든 자료를 열람할 권리를 주십시오."

"모든... 자료요?"

말했듯, 마탑은 독자적으로 연구하는 카테고리가 상당수 존재한다.

룬 문자는 그중 하나에 불과하다.

마탑은 세계의 도서관이라고도 불리는 모든 지식의 기록관.

자료 열람의 권한은 상당한 가치를 지니는 것이다.

"그건...."

물론 마탑의 '모든' 자료를 열람하는 것은 상당한 제약이 따를 수밖에 없다.

하지만 이것은 상대방을 설득하기 위한 기술 중 하나.

무리한 것을 던져 진짜 원하는 것을 숨기는 고급 스킬이다.

"그건 곤란합니다."

어차피 모든 자료까지는 필요 없다.

그저 밀리아의 위치 정도에서 열람할 수 있는 정도의 수준이면 족하다.

"그렇다면... 팀장님께서 열람 가능한 것까지로 양보하죠."

"그 정도라면... 대상을 교수님께 한정한다면 가능합니다."

됐다.

내가 원하는 수준은 이 정도면 충분한 것이다.

"뭐, 알겠습니다."

"자, 대화가 원만하게 마무리된 것 같군요. 그럼 교수 파견은 언제쯤 되겠습니까?"

"최대한 빠른 시일 내에 절차가 완료될 겁니다."

"믿을만한 사람인 것은 확실합니까?"

율레이드처럼 마족에게 영혼을 팔 놈이 온다면 그라스코에 본격적인 침공이 닥치기 전 다시 한번 위험이 찾아올 수 있다.

그 부분은 철저한 검증이 필요하다.

"그거라면 걱정하지 마세요."

밀리아가 확신에 찬 목소리로 대답했다.

그 확신이 왠지 불안하다.

"제가 직접 올 거라서요."

이런.

* * *

교수회의 결과 중간고사는 완전한 종료가 선언되었다.

각 학부는 제각각 대책을 마련하고 공지하는 한편, 곧바로 강의를 재개했다.

그것은 교수들과 학생들이 대부분 회복센터의 신세를 지고 있는 전투 학부 역시 마찬가지였다.

* * *

"...반갑다. 나는 '전투의 모든 것'을 가르치고 있는 전투학 교수, 루카스 폰 크라우스."

드넓은 강의실.

그곳에서 뻔한 자기소개를 하는 이유-

그것은,

"공지한 대로, 당분간 너희 전투 학부 전원은, 이 '전투의 모든 것' 강의를 통해 보강을 대신하게 될 것이다."

지금 부상으로 드러누운 교수들을 대신해 전투 학부 모든 학생들 앞에서 강의를 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20명에서 천여 명에 이르는 학생들로 그 수가 어마어마하게 뻥튀기가 되었다.

이토록 많은 사람 앞에 선 것은 학회 이후로 처음이다.

심지어 학회 때보다 그 수가 훨씬 많다.

'원하지 않는 이는 참석하지 않아도 된다고 분명히 명시했거늘.'

오히려 병석에 있던 녀석들도 박차고 나와 버리다니.

심각한 부상을 입은 녀석을 제외하고는 전원이 모였다.

목이 뻐근할 정도로 고개를 돌려야 전부를 볼 수 있는 거대한 강의실. 강의실이라기보다 강당이라 표현함이 옳다.

신청 인원이 워낙 많아서 그라스코의 행사를 위해 사용되는 중앙 홀, <레오 홀>에서 강의가 진행되고 있기 때문.

천여 명이 보내는 시선에서 느껴지는 압박감을 온몸으로 받아내며 본격적으로 강의를 시작했다.

"내 강의는 선택된 소수에게만 진행되는 강의다. 이렇게 너희 전원에게 개방하게 되었다만, 진도를 맞춘다거나 할 수 없음을 인지하고 수업에 임해라."

천여 명이 모인 것치고는 소름이 돋을 정도로 고요했다.

다들 눈을 빛내고 내게 집중하고 있는 모습이, 상당히-

'나쁘지 않군.'

이렇게 반응이 좋으면 의욕이 샘솟는 법이다.

"이번 특강의 목표는 '생존'이다."

딱-

손가락을 튕기자, 거대한 스크린이 등장한다.

스크린에는 이번 그라스코 침공으로 인한 피해가 고스란히 기록되어 있다.

"다음."

화면이 넘어가고, 격렬했던 현장이 고스란히 재현된다.

몇몇 학생은 그때의 기억이 되살아나는지 눈살을 찌푸렸다.

"똑바로 봐라."

화면 속에는 한 학생이 드레이크의 공격에 옆구리가 갈라지고 있었다.

"문제다. 여기서 드레이크의 공격에 의해 부상을 입은 원인이 무엇이라 생각하나. 데얀, 대답해라."

아직은 소크라테스식 문답법이 익숙하지 않을 학생들을 배려해 기존 '전투의 모든 것' 수강생들 위주로 지목해 강의를 진행했다.

"방어구의 품질... 때문인 것 같습니다."

"반만 맞았다. 그라스코의 모든 무구는 대륙 최고의 품질이라 자부할만하지. 이든, 대답해라."

"피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반쪽의 정답이다. 바론, 자네의 생각은?"

"막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바론에 이르러서야 만족스러운 대답이 나왔다.

"정답이다. 단순하다. 막지 못했으니 부상을 입은 것이다. 당사자에게 직접 들어보지. 올로스. 왜 막지 못했나?"

"...."

지목당한 학생은 잠시 말문이 막혔다가, 이내 조심히 입을 열었다.

"막을 생각을 하지 못했습니다. 그 당시 저는 너무 두려웠고, 당황했습니다. 하지만 제정신이었다고 해도 막을 순...."

"막을 수 있었을 것이다."

물론,

"방법을 알았다면 말이지."

올로스의 발언을 막고 스크린을 다음으로 넘겼다.

이번에는 교수들이 전투하는 장면이었다.

"교수들의 표정 역시 당혹에 휩싸여 있다. 하지만 이들은 드레이크의 공격을 막아내고 있지."

"하지만 그분들은 교수님...."

"이들과 너희의 다른 점은 무엇이지?"

나는 되물었다.

너희와 저들의 차이가 무엇이냐.

"교수님들은 오러를 사용하실 줄 아십니다. 강기라면 드레이크의 공격을 손쉽게 막아 낼 수 있습니다."

4학년의 대답이었다.

"훌륭하다. 그것이 교수들과 너희의 차이점이지. 하지만 반은 틀렸다. 강기만이 드레이크의 발톱을 막아낼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이제 이 강의의 '핵심'이 등장할 차례다.

"오러란 결국 너희들이 가진 마력이 유형의 형태를 띠는 것이다. 너희는 오러를 너무 대단하게 보는 경향이 있어."

오러란 마력에 사용자의 특성이 더해져 자신만의 성질을 띠게 되는 현상이다. 물론 깨달음이라는 과정이 있긴 하지만, 결론적으론, 마력의 강화판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

"그렇다면 마력으로 강기를 대신하지 못할 것은 또 뭐지?"

이번 강의의 주제, '방'에 대한 개념이 튀어나왔다.

"너희 모두는 마력을 운용할 수 있다. 내 말이 틀리나?"

그라스코의 최소 입학 조건이니, 누구나 다 할 수 있다.

"마력이 오러보다 약하다면, 오러만큼 강할 수 있도록 단단히 뭉치면 될 일-"

이제껏 없던 개념이다.

당연하지. 이것은 오직 <아.천.망>의 주인공에게만 허락된 개념이니까.

'선'과 '형'처럼 '방' 역시 주인공이 스스로 깨닫게 되는 이치 같은 것이다.

"오늘의 목표는 마력을 원하는 곳에 두텁게 뭉쳐 너희를 보호하는 법을 배울 것이다."

"교, 교수님 자, 잘 이해가 가지 않습니다."

그럴 것이다.

전에 없던 새로운 개념이니까.

이해가 어려울 것이다.

그렇다고 내가 시범을 보여 줄 수도 없다.

나한텐 마력이 없거든.

하지만-

"걱정하지 마라."

딱-

손가락을 튕기자 리트와 함께 100기의 전투 인형이 모습을 드러내었다.

"그 이해를 위해 이 강의가 있는 것이니."

머리로 이해가 안 되면 몸이 고생하면 그만이다.

전투 인형이 붉은 안광을 밝히며 기동을 시작했다.

"으아아아!"

학생들의 절규에 마음이 약해질 뻔 했으나-

[새로운 알림이 도착했습니다.]

[은다래 님께서 1,000G 후원하셨습니다.]

[츠나츠나 님께서 500G 후원하셨습니다.]

[k2929 님께서 100G 후원하셨습니다.]

[아틸란 님께서 3,000G 후원하셨습니다.]

[딸기반하나 님께서 1,000G 후원하셨습니다.]

다시금 단단히 마음을 다잡았다.

§ 아카데미의 신화급 교수가 되었다 52화

52. 페두르 산맥 (2)

콰앙-!

퍽!

쿠웅!

13번째, 마지막 조까지 '방'을 완벽하게 구현한 사람은 없었다.

다만, 마법사 출신이라 마력에 대한 이해가 높은 루이나나, 세계관 최강의 탱커인 바론만이 근접하게 다가섰을 뿐이었다.

그래도 일단 감각은 있는 녀석들이라 어느 정도 이해는 했다는 것이 느껴졌다.

'오늘은 이쯤 해 둘까.'

어차피 오늘은 기본 개념만 소개할 생각이었다. 게다가 대부분 기본 메커니즘에 대해서는 이해한 것 같으니, 소기의 목적은 달성한 셈이었다.

그러나-

[새로운 알림이 도착했습니다.]

[k2929 님께서 100G 후원하셨습니다.]

[잼이 님께서 100G 후원하셨습니다.]

[Teawon 님께서 100G 후원하셨습니다.]

[qweta 님께서 100G 후원하셨습니다.]

[레븐 님께서 1,000G 후원하셨습니다.]

[국이야 님께서 1,000G 후원하셨습니다.]

[n9744_rlawkdry1 님께서 10,000G 후원하셨습니다.]

[자광대 님께서 500G 후원하셨습니다.]

ㄴ교수님 아직 단단한 교육에는 한참 모자란 거 같습니다.이 골드를 받으시고 더욱 단호한 교육을 해 주십쇼.

따끔하고 묵직한 일갈.

"일어나라."

딱-

전투 인형의 안광이 다시금 붉게 타오른다.

"아직 강의는 끝나지 않았으니."

독자님의 말씀이 맞다.

지금은 저들에게 측은함을 느낄 때가 아니라, 더욱 단호한 교육을 통해 이들의 수준을 높여야 할 때.

목표를 수정했다.

"오늘 강의가 끝나기 전까지, 완벽히 이해시켜 주마."

꼬우면 니들이 교수하던가.

* * *

전투 학부와 마찬가지로 마법 학부 역시 오늘 새로운 교수가 부임하여, 새롭게 강의가 시작되었다.

마탑 소속 밀리아.

기존의 율레이드를 대신해 <기초 원소 마법의 정립> 강좌를 맡게 된 것이었다.

사실 마법 학부에서 가장 인기 많은 수업은 마탑 소속의 교수가 강의하는 강좌였다.

학점도 가장 많이 배정되어 있고, 일단 기존의 지식과 마탑의 지식은 그 궤를 달리하니까.

밀리아의 강좌 역시 그런 기대를 안고 수강 신청이 밀려들었다.

첫 수업임에도 그 인원이 꽉 들어차 버렸으니까.

"오늘 처음 만나는 자리라 여러분들의 수준을 파악하기 어렵습니다. 간단한 시험으로 대강의 수준을 알아보겠습니다."

그렇게 준비한 그녀의 '간단한 시험'은······.

'이게 뭐야?'

'이걸······ 우리더러 풀라고?'

'야, 이건 마법 학계 난제 중에 하나지 않아?'

'우리······ 잘못 걸린 것 같은데?'

학생들의 곡소리를 유발하기에 충분했다.

마탑 역사상 손에 꼽히는 천재, 밀리아.

그녀는 누군가를 가르치는 데에 큰 소질이 없었던 것이다.

항상 천재들 사이에 둘러싸여 있던 천재는 범재를 이해하지 못했고, 마법 학부의 범재들은 밀리아의 수준을 따라가지 못했다.

'교, 교수님... 그렇게 큰 건 아, 안 들어가요.... 내 머리에 안 들어간다고 씨발.'

'아니 이걸 왜 못하지? 얘네 바보야?'

서로가 서로를 이해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벌어지는 강의는 강의가 아닌, 일방적인 폭행과도 가까운 것이었다.

밀리아의 강좌가 극악의 난이도로 곡소리를 유발했다면, 또 다른 천재, 루카스의 <전투의 모든 것>을 맛본 이들은 육체적인 부하로 곡소리가 흘러나왔다.

그러나 그 둘의 반응은 사뭇 달랐다.

밀리아의 강좌는 수강 취소가 이어지는 반면, 루카스의 강좌는 부상에서 회복한 이들이 추가로 강의를 신청한 데다, 심지어-

"교, 교수님이 여긴 왜······."

"나, 나 교수 아닌데!"

"교수님······ 복면 밑에 교수 펜던트 다 보여요······."

"크흠, 그러니까, 우리 강의의 질을 높이기 위해서 세미나 차원으로다가······."

부상에서 회복한 교수들도 몰래 청강하고 있었을 만큼 강의의 완성도가 높았다.

확실히 루카스의 강좌는 얻어가는 것이 훨씬 많았다.

'방'이라는 개념, 하나만 얻어 갔으나 이전의 자신보다 훨씬 강해졌다는 체감이 들었다.

또한, 전투 인형을 통한 실습으로 그 숙련도까지 증대했으니.

비록 몸은 힘들지언정, 루카스의 강의가 기대되는 이유였다.

가장 좋은 자리를 선점하기 위해 학생들 사이에서 눈치 게임이 벌어지는 이유였고, 아직 움직임이 제한되는 이들이 휠체어를 동원해서라도 강의를 들으려는 이유였다.

그렇게, 그라스코 전투 학부의 수준이 높아지고 있었다.

* * *

[어느 6학년의 일기]

다들 알겠지만, 우리 그라스코의 전투 학부는 강하지 않다.

기말고사 진출이 전투 학부의 가장 큰 영예인 것을 보면.

부끄럽게도 그 약한 전투 학부라는 명성에는 내 지분이 가장 크다고 생각했다.

나는 이 그라스코에서 가장 재능 없고 약한 학생이다.

나는 6학년이다.

4학년까지 존재하는 이 그라스코에서 유일한 6년째 재학생.

형편없는 실력으로 인해 낙제를 거듭한 탓이었다.

교수님들은 진작에 나를 포기했고, 미련하게 졸업을 미루던 나는 올해 졸업반에 그 이름을 올렸다.

그런 의미에서 이번 <전투의 모든 것> 특강은 내게 주어진 마지막 기회였다.

루카스 교수님은 사자와 같은 분이라고 생각했다.

평생 닿을 수 없을 것 같은 그 고고함은 나 같은 초식동물에겐 동경의 대상이었다.

그 사자의 첫 강의는 내 예상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첫 강의부터 수강생들을 벼랑에서 떨어뜨리셨으니.

루카스 교수님의 강의는 힘들고 고되었다.

재능이 형편없는 내가 그분의 강의를 따라가는 것이 벅찬 것은 당연했다.

나는 또 내 재능을 절감했다.

1학년들도 척척 해내는 것을 나는 한참을 헤매었다.

루카스 교수님의 시선이 내게 닿을 때마다 움찔했다.

하지만, 다른 교수님들과 달리 포기보다 계속된 기회를 주셨다.

내 몸에 멍이 늘어가긴 하지만, 루카스 교수님이 보여 주신 신뢰를 깨트리기 싫었다.

나는 느리게 성공을 했다.

루카스 교수님은 어떠한 칭찬도 하지 않으셨지만, 나 스스로 해냈다는 성취감은 그 어떤 것보다 강렬한 것이었다.

* * *

이제 어느 정도 '방'의 개념을 모두가 깨우친 듯하다.

완벽하진 않지만, 적어도 침공 때처럼 속절없이 부상을 입진 않겠지.

하지만 이것으로는 모자라다.

딱-

손가락을 튕기자, 이전처럼 스크린이 등장했다.

스크린 안에 한 장소가 투사되었다.

"이곳이 어딘지 아는 자가 있나."

"페두르 산맥······."

"그렇다."

화면이 넘어가고, 실습 계획서가 모습을 드러내었다.

"실습 계획서?"

"페두르 산맥에 실습?"

학생들이 술렁인다.

이미 알고 있는 교수들은 그저 고개를 끄덕······.

아니, 저 양반들이 왜 저기 있어?

아무튼-

"이 강의는 페두르 산맥에서 펼쳐질 실습을 대비하는 데에 의의가 있다. 그래서 가장 우선시 되었던 교육이 바로, '방'. 하지만 그것으로 너희가 저 마경에서 무사를 논할 수는 없지."

페두르 산맥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방'만 있어서는 안 된다.

"그렇다면 무엇이 더 필요하겠나."

"'방'에 버금가는······ 공격 수단입니다."

"정답이다."

역시 나를 가장 오래 경험한 '전투의 모든 것' 수강생 쪽에서 만족스러운 답변이 튀어나왔다.

최고의 수비는 결국, 공격.

강대한 몬스터들을 압도할 만큼의 공격 수단 역시 필수적인 것이다.

"이번 강의에서는 그 공격 수단을 깨우치게 될 것이다."

딱-

손가락을 튕기자, 이번에는 학생들의 눈앞에 철제 기둥이 솟아올랐다.

"테냐인 왕국의 합금인 텐스텐이다. 현존하는 금속 중 가장 단단한 금속이지."

오러로나 베어 낼 수 있다는 현존하는 최강의 합금.

그러나 무게가 더럽게 무겁고 가공이 어렵기 때문에 무기나 방어구의 재료로는 적합하지 않다.

하지만, 이번 강의의 개념인 '방을 이용한 공격력 강화'를 체득하기엔 더없이 알맞은 것이다.

가격이 비싼 게 흠이지만, 든든한 호구 마탑이 있으니. 또한, 텐스텐을 가장 많이 보유한 곳이 마탑이라 구하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이 텐스텐에 너희의 일격을 세기는 것. 그것이 이번 강의의 과제다."

학생들의 표정이 아연해진다.

"어, 어떻게······."

방법을 묻는 이가 있지만-

"나는 이미 모든 것을 알려 주었다. 힌트는- '방'에 있다."

'방'의 개념에서 한 발짝만 더 나가면 되는 것이다.

이런 것까지 친절하게 알려 주어선 제대로 성장할 수는 없는 법.

시계를 꺼내 들고 남은 시간을 가늠했다.

충분해 보인다.

"과제를 달성하면, 돌아가도 좋다. 하지만 과제의 완성 전에 이 강의가 끝날 일은 없을 것이다."

의자에 앉아 시계를 보며 입을 열었다.

"시작해라."

* * *

[어느 6학년의 일기-2]

큰일이다.

이 강의가 끝나면 페두르 산맥으로 실습을 떠난다니.

그 무서운 곳을 떠올리면 벌써부터 소름이 돋는다.

미리 포기했어야 할 것을.

후회가 솟구친다.

하지만 얻는 것 또한 존재한다.

이번에는 앞전에 배웠던 개념의 심화 버전.

그 비싼 텐스텐이 솟아오를 때는 조금 놀랐지만, 이 텐스텐에 흠집을 내라는 루카스 교수님의 말씀을 들었을 때는 기겁했다.

오러가 아니라 마력으로.

그게 인간이 가능한 영역인가?

하지만 루카스 교수님을 보고 있자면, 할 수 있다는 생각이 솟아오른다.

* * *

"두말할 것 없다. 합격이다."

과제의 시작과 동시에 합격한 이-

바로 에일론이었다.

그의 마광포가 이 개념의 원초적인 형태라고 할 수 있으니.

"훌륭하군. 합격이다."

에일론을 제외하고서 가장 먼저 해낸 것은 루이나였다.

'방'에서 마력의 성질을 변형해야 하는 것이어서 한참을 헤맸지만, 그래도 마법사 출신다운 이해도로 훌륭히 해내었다.

"제시, 훌륭하다."

그다음은 제시 애슬론.

과연, 대륙 최고의 재능이라 할 만하다.

"합격이다."

"좋다."

"약간 부족하지만, 충분히 합격이라 할 만하다."

1학년들의 선전에 고학년들도 힘을 냈고, 역시나 짬을 무시하진 못하는지, 그들 역시 해냈다.

하지만 모두가 수월하게 해낼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마력의 성질을 공격적으로 변환한다는 개념은 스스로 깨우치기 수월한 것은 아니었으니까.

강의 시간이 끝나고도 많은 이가 남아 있었다.

하지만 나는 기다렸다.

내 가르침을 받는 이상 포기할 수 없었다.

내 포기는 결국, 이어지는 실습에서, 그리고 곧이어 찾아올 '진짜' 침공에서 저들의 목숨을 앗아갈 테니까.

그리고- 남은 학생 중에는······.

* * *

[어느 6학년의 일기-2]

하나둘, 모두가 강의실을 떠난다.

주변의 인기척이 사라질 때마다 두렵다.

내 재능의 바닥을 보는 것 같아서.

포기할까, 싶은 생각에 고개를 들어보았다.

교수님이 있었다.

그 말처럼,

'과제의 완성 전에 이 강의가 끝날 일은 없을 것이다'라는 선언처럼 굳건하게.

나는 다시 마력을 끌어올렸다.

형편없을 정도로 미미한 양이었다.

자괴감이 몰려온다.

포기를 떠올렸다.

하지만 루카스 교수님의 그 서늘한 눈앞에선 포기라는 말도 포기해 버리게 되는 것이었다.

다시금 마력을 끌어올려 텐스텐을 향했다.

시간의 흐름도 잊은 채, 하염없이.

시선을 들었을 때마다 루카스 교수님이 존재했고, 그 시선이 내가 움직이는 동력이 되었다.

* * *

"늦었군."

이윽고 마지막 학생까지 텐스텐에 흠집을 내는 것에 성공했다.

그녀는 '방'의 개념도 가장 늦게 깨우친 둔재였다.

이번에도 가장 늦었다.

어느덧 어둠이 내려앉은 시간이었으나.

"하지만 잘 해내었다. 리오네."

그녀의 성공이 더없이 기꺼웠다.

리오네 에밀레이.

세상에 둘도 없을 둔재.

그러나 그녀의 진가는 '재능'으로 재단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그녀는 '재료'다.

훗날, 그녀의 희생으로 탄생하는 인류 역사상 최강이자 최악의 무기-

'에밀레이 소드'의 재료.

"교수님······."

그리고 나는 그 모든 것을 알고 있으면서 그녀의 호감을 사려 하는 위선자다.

§ 아카데미의 신화급 교수가 되었다 53화

53. 페두르 산맥 (3)

[제작 : 레바테인이 완료되었습니다.]

'드디어....'

2주의 제작 기간, 그 제작 비용만 20만 골드가 훌쩍 넘은 '신기' 레바테인.

수령을 선택하자-

철퍽-!

물컹한 질감의 어떤 것이 내 손 위에 올려진다.

이 액체 괴물 같은 것이 바로, 세상 모든 형상의 무기를 구현할 수 있는 신기, 레바테인.

초기에만 이런 괴상망측한 모양이고, 대부분은 사용자의 심상에 따라 그 형태가 자유자재로 변화한다.

하지만 주인을 각인하는 절차가 필요하다.

스릉-

샥-!

검을 뽑아 손바닥에 작은 상처를 냈다.

손바닥에 맺힌 검은 피를 그대로 레바테인에 흩뿌렸다.

우웅-

레바테인은 옅은 빛무리를 뿜어내더니, 이내 꺼졌다.

이걸로 '각인'은 끝났다.

이제-

'이렇게-'

손에 착 달라붙는 기본적인 형태의 검을 떠올리자, 즉시 그 모양으로 변했다. 창을 떠올리자 창으로 변했고, 방패를 떠올리면 방패로 변했다.

레바테인의 형태는 무구에 한정되지 않는다.

만년필이나 수첩(물론 쓸 수도 있다.)은 물론이고 시계 같은 액세서리나 심지어 의류로도 변모할 수 있다.

"나쁘지 않네."

그리고- 당연하게도 활의 형태 역시 변할 수 있으나-

파직!

"읏!"

내가 '루카스'에게 심어 두었던 저주가 발현된다.

떨어뜨린 레바테인을 만년필로 변형한 뒤, 주워들었다.

당장에 이 '신기'의 위력을 시험해 보고 싶었으나.

"즐거움은 뒤로 미뤄둬야겠군."

이제 곧 강의 시간이다.

학교 가기 싫어요!

그래도 가야지... 넌 선생이잖니.

따위의 농담을 떠올리며 몸을 움직였다.

하기 싫다고 해서 그럴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내 몸이 반응하는 것을.

* * *

<카일론 관>의 실습.

중간고사와 같은 대련형 설정을 세팅해 두었다.

"이거 뭐야? 중간고사 설정 아닌가?"

"아직 안 치운 건가? 아닌데, 경기장 깨끗한데."

의문을 가지는 학생이 있는가 하면, 대강 짐작을 마친 학생들도 있었다.

그런 그들 앞에 루카스가 모습을 드러내었다.

1초의 오차도 없는, 정확히 강의가 시작할 시간이었다.

여전히 주름 하나 없는 정복 차림으로, 흠잡을 곳 없는 자태.

그는 도열한 학생들 앞으로 가서 입을 열었다.

"오늘은 '페두르 산맥'으로 실습을 가기 전, 마지막 강의다."

여전히 군더더기 없는 강의의 서두.

학생들의 시선이 루카스를 향해 집중됐다.

"이미 눈치챈 이들도 있겠지. 너희는 그간 배운 것을 바탕으로 상호 대련을 펼친다. 그리고 이 대련 과정은 내 강의에서 평가로 작용하게 될 것이다."

순간 몇몇 학생들의 안색이 굳어진다.

주로 중간고사에서 예선도 통과 못 할 정도의 실력을 가진 학생들이었다.

"내가 평가하는 것은 '대련 과정'이다. 결과는 중요하지 않으니, 크게 걱정하지 마라."

루카스의 부연에 가슴을 쓸어내리긴 했지만, 그래도 크게 달라지는 것은 없을 것 같았다.

다시금 중간고사의 재현인가?

"이번 평가는 공과 방, 각 한 차례씩 5분간 주고받는다. 당연히 주고받을 공과 방은 내가 지난 시간 동안 너희에게 가르친 것이겠지. 공방을 주고받을 상대는 어제 과제를 일찍 끝낸 순으로 스스로 정하는 것으로 한다."

어차피 5분간 공방을 주고받는 것이니, 순서는 크게 불만이 없다.

"첫 번째는 에일론 더스트."

학생들이 가장 꺼리는 상대가 있다면, 단연코 에일론일 것이다.

그가 휠체어를 끌고 앞으로 나오자 은연중에 사람들은 그의 시선을 피했다.

"으음...저는...."

에일론의 성격상 가장 먼저 떠오른 상대는 제시였을 것이다.

중간고사에서 그에게 한차례 패배한 적이 있으니까.

아니나 다를까, 에일론의 시선이 제시에게 멈춰 섰다.

그리고는 어깨를 으쓱이더니 이내 다른 곳으로 향한다.

상대는 4학년.

지목을 받은 4학년은 인상을 찌푸리고 나왔다.

"잘 부탁드립니다아-"

"젠장, 왜 하필 나를 골라, 나를 고르길."

투덜대는 그의 귓전에 루카스의 음성이 꽂혔다.

"특별히 '전투의 모든 것' 정규 수강생에게 5분 안에 제대로 된 일격을 가하거나 그 공격을 제대로 막아 낸다면, 내 이름으로 된 추천서를 써 주겠다."

루카스의 추천서.

이것은 간단히 볼 것이 아니다.

현재 전투학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이름을 꼽으라면 단연코 루카스일 것이다.

그의 이름으로 된 추천서라면 원하는 기사단에 합격 프리패스는 물론이고, 각국의 근위기사인 로열기사단 자리까지 노려볼 수 있는 것이다.

"이러면 이야기가 달라지지."

눈빛부터가 달라졌다.

"그리고 정규 수강생들은 특강생들의 일격을 제대로 방어하지 못하거나, 유의미한 일격을 안기지 못했을 경우- 페널티를 부여하지. 그 페널티가 무엇인지는 상상에 맡기도록 하겠다."

루카스의 성격상 저 페널티가 평범한 것일 리 없다.

에일론을 비롯한 정규 수강생들의 눈빛도 달라졌다.

"시작해라."

선공은 4학년부터 시작했다.

그 역시 과제를 빨리 끝낸 축에 속할 정도로 감각이 있는 학생이었다.

그의 무구인 해머에 마력이 밀려들더니, 극한으로 압축되어 살벌한 기운을 띠게 되었다.

"간다."

"오시죠!"

해머가 힘껏 휘둘러지고-

카앙!

에일론은 디로그를 팔 부분만 트랜스폼 시켜, 마력의 출력을 조종해 막아 내었다.

다음은 에일론의 차례.

'제대로 막아 내면, 루카스 교수의 추천서다!'

그의 눈빛이 의욕으로 가득 찼지만,

"마광포 타겟 ON."

그는 이내 기억해냈다.

'아, 맞다.'

위잉-

지난 침공 때 에일론의 마광포가 보여 준 엄청난 위용을.

* * *

에일론을 상대했던 4학년은 에일론의 마광포를 맞고 멀리 날아가긴 했으나, 그래도 '방'을 제대로 펼쳐 크게 다치지는 않았다. 애초에 에일론이 출력을 잘 조절하기도 했지만, 결론적으로는 이 특강이 도움이 된 것이다.

"다음은 루이나 엘라임."

그다음 차례는 에일론 다음으로 가장 먼저 과제를 끝냈던 루이나.

호명을 받은 그녀는 미리 정했다는 듯, 망설임 없이 한 이름을 불렀다.

"에밀레이 선배님 계신가요?"

최약체라 할 수 있는 리오네 에밀레이.

참으로 약은 선택이었지만, 훌륭하다.

높은 평가를 받기 위해서는 자신보다 약한 사람을 고르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하니.

루이나는 우등생답게 잘 막고, 잘 공격했다.

리오네 에밀레이는 의외의 선전을 펼쳐냈다.

추천서를 받을 수 있을 정도는 아니었지만, 앞선 대련과는 다르게 5분을 꽉 채워 버틴 것.

"두 사람 모두 잘했다."

[리오네 에밀레이의 호감도가 대폭 상승합니다. +30]

내 칭찬에 리오네는 크게 기뻐했다.

"그다음은, 제시 애슬론."

세 번째로 과제를 끝낸 제시.

그는 망설임 없이 앞으로 나섰다.

"저는...."

제시의 눈은 학생들을 보고 있지 않았다.

"...."

그 눈은 내 쪽을 향해 있었다.

"저는 교수님께 직접 제 성취를 보여 드리고 싶습니다. 그리고...얼마나 노력해야 교수님께 닿을 수 있는 지도...알고 싶습니다."

그의 발언에 주변이 소란스럽다.

간혹 미친 거 아니야? 같은 반응들이 흘러나온다.

나는 가만히 제시의 눈을 들여다보았다.

맨 처음 마주했던 분노에 차 있던 눈은 찾아볼 수 없다.

순수한 열망 같은 것이 들어차 있다.

"그러지."

어차피 특강의 인원은 홀수.

즉- 한 명이 남는다는 소리다.

원래는 리트를 굴리려고 했으나-

'마침 잘됐군.'

레바테인의 성능을 시험해 볼 좋은 기회다.

"올라와라."

경기장에 먼저 올라 제시를 기다렸다.

그는 잠깐 마음을 추스르곤 성큼 걸어 올라왔다.

"5분간 전력으로 덤벼라. '방'의 구현은 딱 한 번으로 평가하겠다."

제시와 나의 대련은 다른 학생들의 방식과 사뭇 달랐다.

5분간 제시의 공격을 내가 방어하고, 제시는 단 한 번만 '방'을 펼치면 된다.

"예!"

"그리고... 네게는 추천서가 의미 없겠지."

제시 애슬론이라는 이름만으로 데려갈 기사단이 수두룩 빽빽이며, 태어날 때부터 에르멜의 로열기사단에 입단이 결정된 것이나 마찬가지인 신분이니까.

"내게 의미 있는 일격을 안겼다고 판단되면, 네가 원하는 것을 들어주지. 단, 당연히 합리적인 것에 한해서다."

"...예."

제시는 원하는 것이 있는지, 눈빛에 의욕이 가득 담겼다.

나는 품속에서 만년필의 모양을 한 레바테인을 꺼내 들었다.

갑작스러운 만년필의 등장에 사람들이 어리둥절해 하며 웅성댄다.

"그, 그건...."

"보다시피 만년필이다."

제시의 눈에 당혹감이 맴돈다.

'이거 설마 자기 무시하는 줄 알고 눈이 뒤집히는 거 아닌가....'

잠깐, 그런 생각이 들었다.

명색이 '신기'로 상대하는 건데.

"...감사합니다."

걱정과 달리 제시의 반응은 의외로 침착했다.

마치, '그래, 이 정도면 과분하다'라는 듯이. 아니, 상대해 주는 것만으로 감사한 쪽에 가까운 것 같았다.

아무렴 뭐가 되었든 좋다. 나는 레바테인의 위력을 시험하는 걸로 족하니까.

"그럼, 지금부터 시간 측정 시작하겠습니다!"

리트의 목소리가 들리고,

"후우!"

제시가 긴장한 듯 깊게 숨을 고르며 검을 바투 쥐었다.

눈을 감고 정신을 집중한다.

미미하게 존재하던 몸의 떨림이- 멎었다.

슈강-!

'이 새끼는 뭐 온다만다는 말도 없이!'

시력 강화가 아니었으면, 제시의 움직임을 놓쳤을 테고, 그 순간 저 검은 내 몸통을 꿰뚫었을지 모른다.

하지만, '보인다.'

보이기에 충분히 대처할 수 있다.

나는 비록 마력을 사용할 수 없어, '방'과 같은 효용을 보일 순 없으나, 대체할 수단이 분명히 존재한다.

교학상장(敎學相長). 킬리안 페드리치- 패링(Parrying).

학회에서 얻어 낸 표식 중 하나.

일명 쳐내기라고도 불리우는, 방어술의 극한.

알란 학회장의 흘리기보다 상위에 있는 기술이다.

팅-

제시의 검은 그 한 동작으로 무력화되었다.

그는 당황에 빠져 공격을 멈추었다.

'그러면 안 되지.'

이거 유지 시간이 길지 않단 말이다.

"움직임이 멎었다. 나는 분명히 5분간 전력으로 덤비라고 했거늘."

그제서야 제시는 정신을 차리고 다시금 공격을 이어갔다.

'시간은 아슬하려나.'

제시의 맹공을 패링으로 쳐내며 남은 시간을 가늠했다.

"후욱, 후욱!"

제시의 숨소리가 점점 거칠어지며, 그 공격이 더욱 빨라진다.

눈으로 좇는 것은 문제가 없다.

다만,

'거의 끝나가는데....'

초조한 마음으로 리트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팅!

패링의 유지시간이 끝났다.

하지만 제시의 공격은 끝나지 않았고, 그 검이 나를 향해 매섭게 쇄도한다.

"시간이 다 됐습니다!"

우뚝-

리트의 선언에 제시의 검이 그야말로 내 코앞에서 멈춰 섰다.

선명한 예기가 내 시야에서 아른거리자 공황이 도질 것 같았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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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김없이 독자님들의 후원이 나를 구해 주었다.

"자, 다음은 내 차례다."

이제 레바테인의 위력을 시험해 볼 차례다.

* * *

사람들은 제시의 선택에 경악을 금치 못했다.

루카스를 상대로 지목하다니.

하지만 그것과 별개로 충분히 흥미로운 대전임은 부정할 수 없다.

대륙 최고의 재능이자 중간고사에서 무쌍을 찍던 에일론을 파훼한 유일한 존재.

그런 신동에 맞서 루카스는 어떠한 모습을 보일지.

"저건 뭐야?"

"내가 보고 있는 게 맞아?"

그런 제시를 상대로 루카스가 꺼내 든 것은 품속의 만년필이었다.

상당히 고급스러운 것으로 보이긴 했으나 분명 저것은 만년필.

검을 상대로 꺼내 들기에는 한참이나 부족한 물건.

"보다시피 만년필이다."

루카스는 그저 당연하다는 듯한 태도로 부연했다.

그 당당함에 사람들은 침묵했다.

"...감사합니다."

뭐가 인마.

뭐가 감사하다는 건지, 제시는 감사 인사와 함께 검을 고쳐 쥐었다.

멀리서도 느껴지는 강대한 기운과 함께 루카스를 향해 쇄도했다.

워낙 순식간에 벌어진 일이라, 루카스 교수가 말한 '의미 있는 일격'으로는 손색없다고 여기는 순간.

팅-!

너무나도 맑은소리가 사람들의 귓전에 울렸다.

'이게 말이 돼?'

사람들은 자신의 눈을 의심했다.

만년필이다.

그것도 오러를 담거나 한 것도 아니고 그저 만년필에 불과했다.

그런 만년필이 오러에 가장 가깝다고 평가되는 제시의 마력이 담긴 검격을 손쉽게 막아 냈다.

제시가 선 채로 굳은 것이 이해가 된다.

루카스는 너무나 평온하게 멈춰있는 제시를 향해 일렀다.

"움직임이 멎었다. 나는 분명히 5분간 전력으로 덤비라고 했거늘."

압도적인 강함에서 오는 여유.

사람들은 루카스의 모습에 소름이 돋는 것을 느꼈다.

도대체 얼마나 강해야 만년필 따위로 저런 공격을 막아 낼 수 있는 것인가.

한 번의 요행인가 따위의 생각은 들지도 않았다.

팅- 팅- 티잉!

루카스는 그 뒤에도 제시의 공격을 여유롭게 막아 내고 있었으니까.

여전히 그 만년필에는 어떠한 오러나 마력의 흔적도 보이지 않았다.

순수히 자신의 능력만으로 제시를 유린하고 있는 것이다.

심지어 공격이 쇄도하는 와중에 다른 곳을 살피는 여유까지.

그들은 자신이 상대하고 있지도 않지만, 거대한 벽을 느꼈다.

"시간이 다 됐습니다!"

마침내 제시에게 주어진 5분의 시간은 끝이 났고,

"자, 다음은 내 차례다."

루카스 교수의 차례가 도래했다.

과연 그는 어떠한 공격을 선보일 것인가.

그가 천천히 움직였다.

그리고는... 만년필의 뚜껑을 열었다.

'서, 설마... 공격도 만년필로?'

설마는 사실이 되었다.

심지어.

화아아아-!

'아니, 여기서 오러가 왜 나와?'

만년필에 오러를 밀어 넣어 버린 것.

"너의 최선에 경의를 표하며, 나는 나의 최선을 다하겠다."

아, 교수님. 그건 좀.

거대한 일격이 경기장을 잠식했다.

§ 아카데미의 신화급 교수가 되었다 54화

54. 페두르 산맥 (4)

"훌륭하다."

루카스는 저 멀리 처박힌 제시를 향해 한마디 하고는 경기장을 내려왔다.

망가진 경기장은 간단하게 설정을 다시 하는 것으로 완전하게 복구되었다.

문제는 저기 처박힌 제시.

아무리 만년필로 공격했다지만, 오러를 품은 만년필인데, 저거 회복 센터에 데려다 줘야 하는 거 아닌가 싶었지만, 루카스는 아무 일 없었다는 듯이 다시 차례를 불렀다.

"빌리 네빌."

대련은 이어졌고, 그사이 제시가 터덜터덜 돌아왔다.

사람들은 제시에게 말을 걸진 않았지만, 신경이 제시를 향해 곤두서 있었다.

토레스도 근처까지 다가가긴 했지만, 말을 붙이지는 않고 그저 지켜만 보았다.

"그냥 발렸더라."

그런 제시를 향해 다가서는 기척.

"...."

에일론이었다.

제시는 그런 에일론에게 대꾸하지 않고, 경기장 쪽으로 시선을 옮겼다.

"그러게 덤비길 왜 덤벼? 난 네가 교수님 불렀을 때부터 느낌이 오긴 하더라만."

그의 말투는 다분한 시비조였으나, 은근한 걱정이 베여 있었다.

아직도 자신을 대신해 드레이크의 일격을 받아 냈던 기억이 선명하기 때문.

에일론은 제시에게 부채의식을 느끼고 있었다.

"교수님이 너더러 훌륭하단다."

그제서야 제시는 에일론을 내려다보았다.

"정말?"

"그래. 적어도 네 성취는 제대로 보여 드렸나 보지 뭐."

제시가 뿌듯한 표정을 짓자, 에일론이 피식, 웃으며 말했다.

"그래, 얼마나 더 해야 교수님한테 닿을 수 있을 거 같은데?"

"...모르겠어."

"하긴, 만년필에 발렸으니 모를 만도 하지."

"...교수님께서는 최선을 다하겠다고 하셨어."

"만년필에 발린 게... 말대꾸?"

빠직-

"마공학빨 주제에."

"마공학이 뭐 어때서."

"전투학에 맞지는 않지."

"말 되게 재밌게 하네. 야, 교수님도 마공학 지식 엄청난 건 알고 하는 소리냐?"

"교수님이라면 그럴 수 있지. 넌 마공학밖에 없잖아."

조금씩 투닥거리던 둘은 점점 목소리가 커졌다.

소곤대는 정도에서 목소리가 확연히 구분될 정도로.

"거기, 뭐지?"

결국, 루카스에게 발각되는 것은 시간문제였다.

루카스의 서늘한 음성이 그 둘에게 닿았다.

"그, 그게 그러니까...."

"내 강의가 언제부터 유치원이 된 거지?"

에일론과 제시는 그 기세에 움찔했다.

"리트, 저 둘을 <카일론 관> 밖으로 내보내도록."

그 말을 끝으로, 루카스의 시선이 둘에게서 거둬졌다.

* * *

'슬슬 숫자를 늘려볼까.'

3학년, 빌리와 아이젠의 평가까지 보고 확신했다.

이제 그 수를 늘려도 되겠다고.

애초에 여러 팀을 한 번에 볼 생각이었다.

그렇지 않으면 천여 명에 달하는 수강생들을 모두 평가할 수 없으니까.

5분씩 500팀이라고 가정하면 약 42시간쯤 걸린다. 하지만 오늘로 이 특강은 끝이다.

즉, 처음부터 여러 팀을 평가할 수밖에 없었다는 소리다.

다만 어디까지가 <시력 강화>의 영역 아래 있는지 시험해 볼 필요가 있었다.

지난 실습에서 느꼈지만, 백 명 단위는 문제없는 듯했지만, 그때와 달리 이번에는 상호 평가.

신중히 접근하고자 했다.

"지금부터는 숫자를 늘리겠다. 10명의 이름을 부를 테니, 각자 파트너를 정하도록."

10팀으로 진행하고, 두어 차례쯤 되자 여유가 생겼다.

그래서 그다음부터는 20팀씩 진행을 했다.

40여 시간이 걸릴 것이 4시간으로, 2시간가량으로 확 줄었다. 모든 수강생들의 평가가 끝나고도 강의 시간이 남을 정도였다.

"오늘 평가의 결과를 말해 주도록 하지."

<시력 강화>의 효용 덕분에 이번 평가를 무사히 끝낼 수 있었다.

2단계로 올리면서 생긴 '메모' 기능 덕분에 대련에서 '보이는' 점을 메모하며 구석구석 살펴 주었다.

이 결과는 그것을 바탕으로 산정한 가장 공평한 결과다.

* * *

처음 세 번의 대련을 빼면 단체로 진행되는 분위기였다.

당연히 사람들은 루카스가 모든 대련을 살피지는 못했을 거라 생각했다.

그런 상황에서의 평가 결과는 조금 공평하지 못하다는 생각이 들었... 지만 입 밖에 낼 수 있는 종류의 것은 아니었다. 그렇게 강의 분위기를 파토내기에는 너무 아쉬웠으니까.

"가장 먼저 수석은, 제시 애슬론이다. 공격은 물론이고, 마지막에 구현한 '방'은 가장 완성도 있었다."

이건 뭐... 인정할 만했다.

여기 있는 사람들 중, 루카스의 마지막 일격을 버텨낼 사람은 없을 테니까.

"그리고, 꼴등은 에일론 더스트. 출력의 배분이 적절하지 못했다. 단기적으로는 강해 보일지 모르나, 장기적인 관점에서는 낙제점을 줄 수밖에 없다."

루카스는 수석과 꼴등을 먼저 발표하며 그들이 그런 평가를 받은 이유를 설명했다.

사실, 여기까지는 이해할 수 있다.

애초에 한 경기씩 주의 깊게 살필 수 있어서 평가도 쉬웠겠지.

하지만 이젠 아닐 것이다.

"차석은 페레즈 디오나트. 가장 정석에 가까운 구현을 보여 주었다. 그다음으로는...."

루카스는 한 명 한 명 평가의 이유를 설명했다. 아직까지는 칭찬 일색이라, 그저 대충 평가한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지배적이었으나-

"277위는 댄 브로커. '방'의 반응이 너무 늦다. 한 템포만 빠르게 해도 지금 느끼는 통증의 반도 느끼지 못했을 것이다."

어느 순간 달라졌다.

그 사람이 대련에서 했던 사소한 실수를 놓치지 않고 짚어내었으며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았던 경미한 부상까지 알아차린 것이다.

루카스는 그야말로 모든 것을 보고 있었다.

어떻게 그게 가능한 건가 하는 의문과 경악이 번졌다.

"마지막으로 976등은 후버. '방'의 면적을 너무 넓게 설정한 탓에 그 효용을 제대로 살리지 못했다. 공격 때도 그 습관은 남아 있기에 효과적인 일격을 가하지 못한 것이다."

총 977명의 평가가 모두 끝났다.

평가를 들은 당사자들은 알 수 있었다.

루카스는 자신이 한 대련을 정확하게 보고 있었음을.

"근데 루카스 교수님, 생각해 보면 여기 수강생 이름 다 외우고 계신 거 아니냐?"

"잠깐만. 듣고 보니 그러네?"

"교수님이 뭘 보셨던가?"

"아니, 아무것도 없어...."

수강생들은 새삼 루카스가 수강생들의 이름 전부를 외우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약 천여 명에 이르는 인원의 이름을, 성까지 완벽하게.

그것도 어떠한 기록에 의존하지 않고.

무엇보다....

"그리고 지난 강의 때 과제 통과 순서까지 모조리 외우고 계셔...."

소름이 돋는 일이었다.

천 명에 가까운 사람들이 과제를 제출한 순서를 다 알고 있다고? 심지어 중간에 지목당한 사람들을 빼야 하는데 그걸 그냥 쌩 두뇌로 해내고 있었다.

"사람이 아니야."

그들은 이해를 멈췄다.

그들에게 루카스는 이미 상식의 영역 밖에 존재하는 괴물이었기에.

* * *

눈이 뻑뻑하다.

하긴, <시력 강화>를 계속 활성화 해 두고 있었으니 당연한 부작용인가.

하지만 아직 강의 시간이 좀 남았는데.

이 '루카스'의 성격상 강의를 늦게는 마쳐도 일찍 마칠 수는 없다.

도대체 왜 이러는 건지.

뻑뻑한 눈을 감았다 뜨며 조금이라도 풀어보려는 이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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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 인공눈물 투여됐어.

순식간에 시야가 맑아진 듯하다.

괜히 기분까지 좋아진다.

한층 밝아진 톤으로 입을 열었다.

"자, 그럼 오늘 대련에서 가장 많은 사람들이 범한 실수에 대해서 짚어보도록 하지."

일단은 가볍게 지적부터 들어간다.

대련의 과정에서 저들이 보인 가장 공통적인 실수.

그것은 여전히 상대를 전투 인형이나 텐스텐을 상대하듯 응수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전투 인형과 살아 있는 인간의 차이었으나 현격하다고 할 만큼의 차이를 보였다.

실전 감각의 부족이 그런 차이를 더욱 부각시켰다.

개인적으로 많은 시간을 할애할 수는 없기에 학생들이 보인 공통적 실수에 대해 부연하려 한다.

"가장 부족한 점을 꼽으라면, 상대를 여전히 '전투 인형'으로 취급하고 있는 이가 가장 많다는 것이다. 전투 인형은 말 그대로 프로그래밍 된 대로 움직이는 인형에 불과하다. 하지만 실제 너희들의 '적'은 인형이 아니지."

인형을 상대하는 것과 실전의 가장 큰 차이점.

"생명체는 고유의 '리듬'이 존재한다. 일견 비슷해 보일지라도 그 '리듬'은 저마다 다르지. 일례를 보여 주지."

교학상장(敎學相長). 레이 페드로- 페드리안 소드.

교학상장(敎學相長). 제니스- 스피어 댄스.

시연용으로 선택한 것은 특강생 중 레이 페드로와 제니스, 이 두 사람의 기술.

이 둘의 리듬이 독보적으로 독특하며, 또한 서로 양극단으로 다른 템포를 보여 주기 때문에 '리듬'이라는 개념을 곧바로 보여 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들의 기술을 복사하는 과정에서 '형'도 '선'도 아닌 '리듬'에 집중하며 구현했다.

"보다시피, 이 두 사람의 템포는 독특한 리듬을 만들어 낸다. 이 둘의 상대인 필립과 세이란이 저조한 평가를 받은 이유도 거기에 기인한다. 연습 상대였던 전투 인형이나 텐스텐 같은 것과는 차원이 다른 리듬-"

곧이어 다시 레이 페드로와 제니스에게 표식이 새겨진다.

다시금 페드리안 소드와 스피어 댄스가 재현된다.

"그 '리듬'이란 무엇인가에 대해 알아보도록 하지."

학생들이 무서울 정도로 집중하기 시작했다.

그들의 시선을 받아 내며, 강의의 마지막을 장식할 특강을 시작했다.

* * *

새로운 이론이다.

'리듬'이라는 키워드에 학생들의 의식은 이미 루카스를 향해 집중되었다.

'이, 이건 머릿속에 넣어야 해!'

애석하게도 필기구가 없다는 것이 슬프지만, 애초에 자신들은 그런 족속이었다.

종이보다 몸에 욱여넣어야 하는.

루카스의 강의는 매번 새로운 지식을 알려 주었다.

정확히 말하자면 새로운 지식이라기보다는 원래 은연중에 알고 있었던 감각이 이론으로 변환된 것에 가깝다.

흐릿한 시야를 밝게 만들어주는 안경과도 같은 느낌.

단 1주일짜리의 특강이었지만, 그라스코의 4년보다 훨씬 실력의 상승이 컸다.

새삼 정규 수강생들이 부러워지긴 하였으나-

"그 '리듬'이란 무엇인가에 대해 알아보도록 하지."

지금은 그런 시기와 질투에 사로잡혀 있을 때가 아니었다.

루카스의 음성과 몸짓하나를 놓칠세라 집중하고 또 집중할 때.

어느새 수강생들의 눈이 시뻘게져 있었다.

참으로, 눈 깜박거리기도 아까운 순간이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