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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교수님!"

리트가 빠르게 달려와 내 이곳저곳을 살폈다.

"괜찮으세요? 정말 괜찮으신 건가요?"

"괜찮다."

사실 온몸이 후들거려 떨지 않기 위해서 안간힘을 다 쓰고 있지만 내색할 수는 없으니.

"발탄은... 죽었군요."

"발탄이 너와 '언약'을 맺은 놈이냐?"

그녀가 고개를 가만히 끄덕였다.

"그럼...."

하지만 저기서 다가오는 교수들 때문에 질문은 도로 삼켜 낼 수밖에 없었다.

"루카스 교수, 대체 이게 다 무슨 일인가?"

로널드가 황망한 표정으로 주위를 둘러보며 물었다.

"한 놈 더 있었습니다."

"마족이 또 있었단 말인가?"

"잠깐. 해리엇 학장님은... 서, 설마!"

고개를 끄덕이는 것으로 대답을 대신했다.

"이, 이럴 수가!"

로널드는 아주 자지러질 것 같은 반응이다.

옆에 리트도 마족이라는 걸 알면 아주 졸도할 기세다.

"이거, 일이 너무 커진 것 같습니다. 당장 대책을...!"

"아니요, 당장은 그러시지 않으셔도 좋을 것 같습니다."

군주급의 발탄을 단숨에 제압할 정도의 마족이라면 꽤나 고위급 마족임이 틀림없다. 그런 놈까지 물러났으니, 당분간 큰 위험은 없다.

대책을 마련해 일을 키우느니, 조용히 내실을 다지는 편이 나았다.

"그나저나... 하인즈, 그 친구는 어디에 있는지 혹시 아는가?"

아마도 로널드가 가장 궁금할 하인즈의 현재 상태.

하지만 이것은 나도 아는 바가 없다.

그것 때문에라도 발탄을 살려두었어야 했는데.

'하지만 아에로크 정보국이라면...'

아직 희망은 남아 있다.

"알아보는 중입니다. 분명, 무사하실 겁니다."

"그래, 자네가 그렇게 말해 주니 힘이 되는구만. 하아...."

로널드의 고민은 깊어 보였다.

"지금, 갑작스레 총장과 한 학부의 학장 자리가 공석이 되었네. 교수들의 노고가 극심하다는 것은 알지만 오늘부터 밤을 새워서라도 그 공백을...."

두 사람의 자리가 자리이다 보니 그 공백이 어마어마할 것이다.

한동안 그라스코에 혼란이 도래할 것 같다.

...학회 갔다 올 동안 해결됐으면.

* * *

기사들에겐 마탑과도 같은 위상의 '학회'.

그 학회에서 올해 가장 뜨거운 감자는 단연코, 루카스의 '동부 전선의 상황으로 본 마족과의 전투 양상'이다.

원래 그 논문을 주제로 한 강연이 첫날에 예정되어 있었으나 모종의 이유로 가장 마지막 날로 연기된 상태.

때문에 그 강연을 이유로 학회에 몰려든 인원들은 상당한 실망을 했지만, 소득이 없는 것이 아니었다.

애초에 여기 몰려든 이들 전부가 루카스의 '동부 전선의 상황으로 본 마족과의 전투 양상'에 열광하고 있었기에, 그에 파생된 다양한 의견을 나눠 볼 수 있는 장이 마련된 것이었다.

어떻게 보면, 차라리 마지막에 배치된 것은 신의 한 수라고 할 수 있었다.

그 파생된 이론 또한 다양했기 때문에 '학구파'들이 좋아하는 논쟁이 끊임없이 벌어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다양한 의견을 나누며 그 이론을 세세히 분해해 봄으로써 또다시 새로운 시각으로 지식을 탐구할 수 있으니.

이런 기이한 열기는 비단 '학구파'로 분류되는 이들에 국한되는 것은 아니었다.

'실전파'로 분류되는 이들 역시 루카스의 강연에 커다란 기대를 안고 학회에 참석했다.

동부 전선의 영웅이라 불리는 루카스의 시연을 직접 볼 수 있는 기회였기 때문이다.

게다가 얼마 전 <카일론 관>에서 벌어진 일 때문에 아주 단편적이지만 루카스의 무력이 드러나지 않았던가.

강함을 숭상하는 이들답게, 서로의 무학을 비교하면서 저들 나름대로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사실상 축제 분위기나 다름없었다.

이런 분위기에서 동떨어진 것은, 학회장 알란을 중심으로 모인 파벌뿐이었다.

'학파 주의'를 부르짖는 그들답게, 정통성에 민감한 이들이었다.

루카스라는 출신도 모를 이의 이론이 학계를 달구고 있는 상황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더군다나 학회를 무슨 동네 행사처럼 여기는지, 자신의 마음대로 스케줄을 변경하질 않나, 불가하다면 차라리 참가하지 않겠다고 강짜를 놓질 않나. 아주 눈엣가시가 따로 없었다.

하여, 그들은 '동부 전선의 상황으로 본 마족과의 전투 양상'을 철저히 분석해 루카스의 코를 납작하게 만드는 것을 목표로 삼았다.

이제 처음으로 학회에 초대받은 이에게, 이 학회의 권위가 얼마나 대단한지 몸소 체험하게 만들어 줄 심산이었다.

그럴 계획이었으나...

'이, 이런 것을 생각해 낼 수 있다고?'

'이론적으로는 완벽해. 검증 과정도 전혀 문제없어.'

'하... 루카스, 그는 신이 아닐까?'

'논문이 이렇게 재미있을 수 있다니, 내 학부 시절이 억울해질 정도야!'

'다시 학창시절로 돌아가고 싶구만.'

오히려 루카스를 학문적으로 존경하게 되어 버렸다.

물론 알란의 눈치 때문에 내색할 수는 없었다.

그러나 그들에게 루카스는 동경하는 아이돌이요, 그의 강연은 콘서트나 마찬가지처럼 되어 버렸다.

'루카스... 이 알란의 모든 명예를 걸고서 네 강연이 얼마나 대단할지, 내 눈으로 똑똑히 지켜보겠다. 그리고 모든 강연이 끝나고, 내 반드시....'

그리고 그것은-

'이 논문에 친필 사인을 받아 내겠다.'

알란 역시 마찬가지였다.

§ 아카데미의 신화급 교수가 되었다 33화

33. 학회 (8)

피곤함을 추스를 틈도 없이 학회로 향했다.

원래 예정된 일정보다 한참을 미뤘으니, 더는 지체할 수 없다.

"리트."

"네? 네! 교수님."

"이제 그라스코에 마족은 너 말고는 없는 것이 확실한가."

이 마차(魔車)는 완벽한 방음 시스템이 갖춰졌기 때문에 물을 수 있는 질문이었다.

마족과 교류하고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전 대륙의 공적이 되는 세상이니까.

"제가 알기로는 그렇습니다."

"그렇구나."

리트의 말을 100% 신뢰하는 것은 아니다.

다만, 확인이 필요했다.

'초회복'으로도 가시지 않는 심신의 피로. 조금이라도 희망을 느낄 수 있는 위로가 필요했다.

마지막에 조우한 놈이 주는 정신적 데미지는 그 정도로 큰 것이었다.

'그런 것들에게서 살아남아야 한다고?'

마족들의 힘을 제한하는 결계 안에서도 엄청난 기운을 내뿜던 놈이다.

그라스코 침공 때는 결계도 파괴되니 본신의 위력으로 나타날 것이 아닌가.

무엇보다 가장 두려운 점은, 그들을 마주할 땐 도망가야 한다는 생각이 들지 않는 것이다.

'이게 가장 큰 문제다.'

생존본능은 모든 본능보다 우선해야 할 텐데, 발탄도 그렇고, 그놈도 그렇고, 발을 빼겠다는 생각보단 죽여야겠다는 생각이 더욱 크게 들었다.

오러를 얻고 나서 두드러진 현상이다.

지금 떠올릴 수 있는 가설은 단 하나, '파마의 기운'이 영향을 미친다는 것.

'곤란하다.'

지금까지 내 우선순위는 생존이었다.

하지만 이딴 식으로 굴어서야 생존이 어렵지 않겠는가.

그렇다고 해서 오러를 버릴 수도 없다. 또한, 버린다고 해서 내가 살 수 있는 확률이 올라갈 거라 생각하지 않는다.

최선의 해답은 성장.

성장이 필요하다.

고기 방패들이라 지칭하는 제자들은 물론이고, 나 역시도, 비약적인 성장이 필요하다.

"아, 교수님. 그리고 부서진 검은 교내 공방에 의뢰를 넣어두겠습니다."

"...."

그리고 무기.

어째서인지 일회용이 되어 버리고 만다.

내 오러를 버텨 내지 못하는 것이다.

하긴, 내 오러를 구성하는 힘은 이 세계의 '마력'과는 다른 개념이니까.

'그렇다면 보통 무기로는 안 된다.'

공방에 제작을 맡겨봤자 헛짓거리밖에 되지 않는다는 말이다.

"두어라."

"네? 하지만...."

그라스코의 공방이 뛰어난 수준을 갖췄다고는 해도, 양산품은 양산품.

그걸로는 무리다.

"직접 구할 것이다."

내 오러를 버텨 내는 것은 물론이고, 내가 가진 최고의 장점- 교학상장 스킬을 떠올리면 여러 활용성을 겸비해야 한다.

떠오르는 무기가, 딱 하나 존재한다.

* * *

"루카스 교수의 현재 위치는 어디쯤이죠?"

"현재, 테그란 고원을 지나고 있는 것으로 파악됩니다."

"반나절이면 도착하겠군요."

"그렇습니다."

"감시를 늦추지 마세요. 혹시 루카스 교수가 감시를 눈치챈 것은 아니겠죠?"

"아직 이렇다 할 움직임이 없는 것으로 봐서는 눈치채지 못한 것 같습니다. 더군다나 성물을 통해 감시 중입니다. 절대로 알아차릴 수 없습니다."

"좋아요. 우리의 목표는 루카스 교수의 생포입니다. 절대 실패해서는 안 됩니다. 아시겠나요?"

"예, 성녀님!"

"다들 각자의 위치에서 최선을 다해 주세요."

"네!"

신성 제국 베르트의 기사들 역시 이번 학회에 참석했다.

다만, 그들의 목적은 루카스의 신병확보.

'분명, 그것은 마족의 능력이었어.'

발단은 얼마 전 세상에 퍼진 <카일론 관> 영상.

그 속에서 루카스 교수는 갑자기 등장한 마족을 상대로 훌륭히 싸웠다.

문제는 너무도 훌륭히 싸웠다는 것. 마치 짜고 친 듯이. 심지어 상대 마족은 자기 자신의 기술에 당하지 않았던가.

자세한 과정은 영상의 한계 때문에 확인할 수 없지만, 충분히 수상했다.

애초에 베르트에서는 갑자기 등장한 루카스라는 강자에 대한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었다.

루카스가 어째서 동부 전선의 영웅이라는 위명을 얻었는지, 어째서 그 무용담을 목격한 이가 아무도 없는지. 모든 것이 수상한 것투성이였다.

그러던 차에 루카스의 신위를 확인할 수 있는 유일한 정보, <카일론 관>의 영상이 공개된 것이었다.

그 영상에서 의심은 증폭되었다.

베르트의 최고 의결기구인 '콘클라베'는 루카스의 신병확보를 승인했다.

단, 아에로크의 영웅으로 추앙받는 루카스인 만큼, 이 체포 작전에 아에로크의 협력을 바랄 수 없는 법이다. 때문에 제삼구역인 학회에서 은밀히 진행되고 있다.

그 총 책임을 맡은 책임자는 베르트의 성녀이자 성기사인 카린.

'그가 학회에 들어서기 전에 끝내야 한다.'

루카스라는 미지의 강자를 상대해야 한다.

그녀의 어깨에 수하들의 생명이 달려 있다.

실패는, 없다.

* * *

'언제까지 따라올 참이지?'

그라스코를 벗어난 순간부터 긴장을 한순간도 늦춘 적 없었다.

피곤하긴 해도 <시력 강화>를 활성화해 둔 상태였다.

아에로크의 국경을 벗어나자마자 쫓아오는 일련의 무리들.

거대한 존재감이 무시하려고 해도 무시가 되지 않았다.

'하긴, 나야 눈이 좋으니 보이는 거고.'

보통은 저들의 추적을 눈치조차 챌 수 없을 것이다.

마족이 아니라는 것이 유일한 안심 거리랄까.

아니, 오히려 그 반대편인 신성 제국 쪽이다.

그 복장에 덕지덕지 묻은 신성함을 가릴 생각도 없는 모양이다.

하지만 좋은 의도가 아니라는 것 또한 확실히 알 수 있었다.

'신성 제국은 좀 골치 아픈데.'

신성 제국.

말 그대로 광신도들의 집단이 국가를 세운 것이다.

오러의 특성도 하나같이 신성 특성을 띠고 있고, 마법 또한 신성계열 마법이라 마족과 상극인 존재.

마족과의 전쟁이 한창인 지금은 상당히 든든한 아군이지만, 저들이 귀찮은 이유는 미친 듯한 흑백논리 때문이다.

자신들은 무조건적인 '선'이며, 그에 반대되는 것들은 모조리 '악'이다.

신념이 곧 무력이 되는 특성상, 그만큼 강력한 무력을 가지고 있지만, 엮이면 아주 골치가 아파진다.

그래도 결국 '선역'에 가까운 존재들이라 주인공에 협력하지만...

루카스는 주인공이 아니잖아?

저들이 골치 아프게 엮일 가능성이 상당히 크다는 뜻이다.

저 추격에 좋은 의도가 담겨 있지 않다는 사실 또한 심증에 힘을 싣는다.

방음 시스템을 해제하고 운전기사에게 물었다.

"...이 마차, 더스트 인더스트리의 최신 기종이라 했나."

"네, 그렇습니다."

운전기사가 자랑스레 대답했다.

"그렇단 말이지."

그 대답이면 충분했다.

"그러면...."

나는 은밀히 운전기사에게 한 가지 부탁했다.

* * *

"이제 곧 타겟이 목표 범위에 들어옵니다."

"목표 범위까지 1km! 700m, 500m... 어, 어?"

도착까지 코앞.

이제 곧 포위만 하면 되는 상황이었다.

"루, 루카스 교수가 탄 차량이 말도 안 되는 속도로 추적을 벗어납니다!"

"따라잡을 수 없습니다!"

하지만 루카스는 이런 상황을 예상이라도 한 듯, 목표 범위 100m를 앞두고 급가속을 시작했다.

그야말로 순식간에 추적을 따돌리고 정신 차렸을 때는 학회의 입구에 도착해 버린 것이다.

"젠장!"

도착 10km를 남겨 두고 더스트 인더스트리의 신기술, 소닉 부스트가 작동되었다.

그야말로 초음속.

소리가 나중에 따라올 정도로 엄청난 속도로 사라져 버렸다.

"아, 아마 강연 스케줄에 늦어서 급가속한 듯 보입니다."

"강연은 내일 아닌가요?"

"그건 그렇지만...."

"정말 우리 추적을 눈치 못 챈 건 확실한가요?"

"그, 그렇습니다."

"그럼 단순한 변덕일 뿐이라고요?"

"현재로서는 그것밖에...."

이상했다.

마치 추적을 눈치채기라도 한 듯한 수였다.

하지만 성물을 이용한 추적이었고 거리 또한 인간의 인지 범위를 벗어나는 거리였기에 알아채기란 불가능할 것이다.

분명 이성적으로 생각하면 그렇다.

하지만 카린은 알 수 없는 위화감을 느꼈다.

그래도 아직 작전 실패는 아니다.

루카스가 학회에 있는 한, 일말의 가능성은 남아 있었다.

* * *

"어떻습니까. 저희 더스트 인더스트리의 기술력이 대단하지 않습니까?"

"그렇군."

"이 최신 소닉 부스트로 말씀드리자면...."

운전기사가 마치 딜러처럼 차량의 신기술을 읊으며 애사심을 불태웠다.

하지만 귀에 들어올 리가 없다.

"정말 놀랐어요, 교수님! 엄청 빠른데 승차감은 너무 좋아요!"

"그렇죠? 조교님이 뭘 잘 아시는구나. 이 승차감으로 말할 거 같으면...."

이제 신성 제국 기사들의 존재감은 저만치 사라져 있다.

"후우-"

진한 긴장감을 한숨으로 털어 냈다. 운전기사가 괜히 찔렸는지 헛기침을 하며 화제를 전환했다.

"아, 제가 말이 너무 많았습니다. 죄송합니다, 교수님. 그나저나 어디로 모실까요? 아직 식사 전이시니 유명한 식당으로 모실까요? 마슐린 3성을 받은 레스토랑을 알고 있습니다."

"바로 호텔로 가 줬으면 좋겠군."

"오랜 여행으로 피곤하셨구나! 그럼 바로 호텔로 모시겠습니다."

내가 예약한 호텔은 다른 것 필요 없이 보안만을 바라보고 예약한 호텔이다.

기자들에게 시달리는 것이 번거롭다는 이유였지만, 사실 그라스코를 떠나 내 안위에 대한 걱정이 가장 컸기 때문이다.

하필 그 대상이 신성 제국이 될 줄은 몰랐지만, 어쨌든 호텔에서까지 그들의 추적을 걱정할 필요는 없게 됐다.

호텔의 입구 앞에 차가 멈춰 서자, 호텔리어들이 쏟아져 나왔다.

가히 '의전'이라고 말하기에도 부끄럽지 않을 수준.

"최고의 서비스로 모시겠습니다, 교수님. 저희 호텔을 찾아 주셔서 감사합니다. 체크인 수속은 모두 완료된 상태입니다. 바로 방으로 모실까요?"

"그러지."

"조수분의 숙소는...."

"네? 저요? 저는 그냥 밖에 모텔을...."

...젠장.

리트까지 생각하지 못했다.

아니, 애초에 신성 제국의 사람들이 나를 추적한다는 것이 가장 큰 변수였으니.

리트는 신성 제국에 있어 가장 군침 도는 꼬투리일 것이다.

나를 추적한다는 것은 나와 함께한 운전기사나 리트에까지 그 영향이 미칠 것이고, 운전기사는 상관없지만, 마족인 리트는....

"리트, 거기 서라."

"네?"

내 짐을 내리고 자신의 숙소로 향하려던 리트가 내 부름에 멈춰 섰다.

그녀를 혼자 두는 것은 위험하다.

정확히 말하자면 그녀보다는 내가.

"따라와라."

[새로운 알림이 도착했습니다.]

[도르동 님께서 100G 후원하셨습니다.]

[k2929 님께서 100G 후원하셨습니다.]

아니, 이 타이밍에 갑자기 왜?

* * *

"따라와라."

"ㄴ,네네네에?!"

루카스의 말에 리트가 깜짝 놀라 되물었다.

심장이 밖으로 튀어나올 것처럼 놀랐다.

그러나 루카스는 표정 하나 변하지 않고 그녀의 팔을 잡아끌었다.

그 박력이 가슴을 두근거리게 했다.

"같이 쓰도록 하지."

같이 쓰자니.

이게 무슨! 음란한!

"그, 그그그게...."

"조수분과 함께 사용하시겠습니까?"

"문제없겠지?"

"네, 전혀 문제없습니다. 이번에 교수님께서 이용하실 VVIP룸은 침실만 세 개로 구성되어 있으며, 쾌적한 이용을 위해 각 방에 화장실도 별도로 설치되어 있습니다. 또한, 룸 내부에 회의실이 따로 구성되어 교수님께서 강연을 준비하시는 데에도 큰 무리가 없을 것이라 자신합니다."

침실만 세 개라니. 다행스러운 마음과 실망이 뒤섞여 몰아쳤다.

"올라가지."

쿵! 쾅! 쿵! 쾅!

꽉 쥔 리트의 팔목에서 엄청난 고동이 느껴진다.

"떨지 마라."

루카스의 음성이 부드럽게 그녀의 귀를 간질였다.

"지켜주마."

그 한마디에 리트는 코피가 나오려는 것을 억지로 틀어막았다.

§ 아카데미의 신화급 교수가 되었다 34화

34. 학회 (9)

"내가 제일 큰 침실을 쓰도록 하지."

"흐엣! 네? 그러실까요?"

리트는 루카스의 말 하나하나에 기괴한 반응을 보였다.

"······웬만하면 밖으로 나오지 말도록."

-안 그러면 내가 널 어떻게 할지도 모르니까.

쓸데없는 망상이 뒤따랐다.

기분이 술에 취한 듯 멍- 했다.

같은 공간, 그것도 호텔이라는 이 불손한 공간에서 함께 있다니.

"듣고 있나?"

"네? 네! 물론입니다!"

"······그래. 그럼 쉬어라."

어딘가 떨떠름한 표정의 루카스가 문을 닫고 사라졌다.

하지만 루카스 특유의 향기는 떠나지 않고 맴돌아 그녀의 마음을 달뜨게 했다.

"후우!"

자꾸 드는 이상한 생각을 한숨으로 밀어냈다.

눈을 꼭 감아보기도 하고, 서성여 보기도 했다.

하지만 좀처럼 진정이 되지 않는다.

목이 탄다.

생수 한 통을 비워도 목이 탔다.

목을 축일만 한 다른 방법을 찾았다. 그런 리트의 눈에 포착된 것이 있으니-

술.

그녀는 입에도 대어 본 적 없는 종류의 것이다.

목이 타기도 하거니와 저 찰랑거리는 황금빛이 유독 유혹적이다.

이 긴장을 풀 겸, 그녀는 딱 한 모금만 마셔보기로 했다.

* * *

······뜬눈으로 밤을 새웠다.

신성 제국이 급습이라도 하면 어쩌나 하는 생각 때문에 공황이 몰려오는 탓이다.

코오-코오-

그러나 저것은 얄밉게도 잘만 잔다. 코까지 골면서. 분명 신성 제국에 대한 경고까지 친절히 해 주었건만.

딱히 뭐라 하고 싶은 생각은 없지만 왜 하필 내 침대에서.

어젯밤 술에 잔뜩 취해 내 침실의 문을 두드려 침입하더니, 내 침대를 점거하고 저렇게 잠들어 있다.

다른 방으로 옮기고 싶었으나, 이곳이 사방을 경계하기에는 가장 좋았고, 또 조금이라도 이 방을 벗어날라치면 리트가 서럽게 울어댄다.

남성체였으면 그냥 집어 던져 버리고 말았겠지만, 껍데기가 사라진 저 모습에는 조금 약해지는 것도 사실이다.

어차피 잠들 생각은 없었다.

이 몸은 잠을 자지 않는다고 해서 피로감을 느끼진 않는 데다, 일일 훈련보상인 초회복이 있으니.

그저 창문 밖을 하염없이 바라보았다.

온종일 <시력 강화>를 하며 살피는 탓에 눈이 뻑뻑해지긴 했으나, 창밖으로 보이는 풍경에 빛이 더해져 아름답게 보이기도 했다.

하지만 저 아름다워 보이는 풍경 속에, 신성 제국 놈들이 이쪽을 예의주시하고 있다는 것 또한 '보였다.'

내가 저들에 맞설 수 있을까?

무리다.

마족들은 오러의 특성인 '파마'라도 있지, 저것들과는 순수 피지컬 싸움이 될 텐데, 둘 정도라면 방심을 틈타 어떻게 해 보겠지만, 저 정도로 많은 인원은 감당이 안 된다.

그저 개죽음을 당하러 뛰어드는 꼴이다.

스텟을 올려 둘까 싶은 생각을 하기도 했지만, 체력 근력 민첩을 각각 F등급 100까지 올리자 더 이상 올라가지 않았다.

다음 등급을 활성화하기 위해 무언가 해야 한다는 사실은 자명하다.

문제는 그런 걸 실험해 볼 만큼 여유가 없다는 것.

내게 포인트란 오러를 활성화하는 마력과도 같다.

마구잡이로 쓸 순 없다.

불행인지 다행인지, 놈들은 일정 거리에서 이쪽을 지켜보고 있을 뿐, 이렇다 할 행동은 보이지 않았다.

이제 본격적으로 여명이 밝아오기 시작했다.

거리는 점점 활기를 찾기 시작했고, 인파가 점점 많아지기 시작했다.

어제도 밤늦게까지 사람들의 열기가 대단했지만, 오늘은 그 열기가 더한 듯 보였다.

내게는 반가운 일이었다.

인파가 많다는 건, 신성 제국 놈들이 쉽게 손을 쓸 수 없다는 것과 같은 뜻이니까.

이제 슬슬 체크아웃 준비를 해야겠다.

"리트, 깨어 있는 것 다 안다."

움찔!

이불이 크게 들썩인다.

하지만 아직도 들키지 않았다 여긴 모양인지 연기를 이어 나간다.

쓸데없는 실랑이를 벌이고 싶지 않다.

주문을 외웠다.

"지금 일어나지 않으면, 네가 먹은 미니바는 네 월급에 달아 두겠다."

"흐허!"

그녀가 튕기듯이 일어났다.

하루 만에 처마신 술의 값만 3천만 골드.

당황하는 눈이 내 시선과 얽혔다.

"씻어라. 강연 시작 3시간 전이다."

"네, 넷!"

* * *

오늘은 '세계 전투학 포럼'의 마지막 날이자, 메인이벤트, 루카스 교수의 강연이 있는 날이다.

길다면 긴 학회의 일정 중 가장 많은 사람의 관심이 쏠린 날이었고, 그 관심만큼 많은 인파가 강연이 열릴 <테마칸 홀>에 몰려들었다.

'모든 강연이 끝나고, 루카스 교수의 신병을 확보한다.'

'네.'

신성 제국에서 온 이들 역시 미리 티켓을 확보해 두어 입장한 상태였다.

<ARF 시스템>으로 구현한 가상의 공간을 제외하고, 대륙에서 가장 많은 인원을 수용할 수 있는 건물인 <테마칸 홀>은 그 명성이 무색하게 조금의 움직일 틈도 없이 사람들로 빽빽했다.

마법사들에 비하면 다소 호전적이라 할 수 있는 기사들이 모여든 상태에서 불쾌지수가 높아져만 가는 상황이었지만, 의외로 질서 유지는 잘 지켜지고 있었다.

그 이유는, 조금의 소동이라도 일어나면 강연이고 뭐고 취소시켜버리겠다는 알란 학회장의 엄포가 있었기 때문이다.

대부분 멀리서 루카스의 강연만을 보고 여기까지 온 사람들이라 그 엄포는 효과적이었다.

물론 소동이 일어난다고 해서 강연이 취소되는 일은 없을 것이다.

다분히 루카스의 강연에 어떠한 잡음이라도 섞이는 것이 싫은 알란의 개인적 감정으로 인한 협박 아닌 협박이었던 것이다.

그만큼 루카스의 강연은 사람들에게 기대를 안겨주고 있었다.

'옵니다.'

'드디어······.'

루카스가 드디어 저 문 너머에 도착했다.

신성 제국의 기사들은 루카스의 기척에 촉각을 곤두세웠다.

'그래, 얼마나 잘난 강연을 준비했길래, 이 위대한 논문으로 얼마다 엄청난 강연을 준비했을지, 내가 똑똑히 지켜보겠네, 루카스 교수.'

'아아, 루카스 교주시여! 저희에게 지식의 은총을!'

'진짜 30년만 늦게 태어났어도 그라스코에 입학하는 건데! 그럼 루카스 교수한테 직접 배울 수 있었을 거잖아!'

알란을 위시한 그의 파벌들 역시 문밖에서 느껴지는 루카스의 기척에 기대감을 최고조로 올렸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루카스를 실물로 보는 것은 처음이었다.

유일하게 그 모습을 알 수 있는 <카일란 관>의 영상은 얼굴까지 자세히 확인할 수 있을 정도로 찍힌 것은 아니었으니 그 외모에 대한 궁금증도 넘쳐났다.

들려오는 소문들이 있긴 했지만, 대부분 중간 과정을 거치면서 왜곡되고 변형된 것이 많았다.

'소문에 엄청난 미남이라는 소문이 있던데?'

'사실 그 얼굴 때문에 과대 평가받는 부분도 있다더라고.'

'내 동창이 아에로크 왕실 기사단에서 근무하는데, 어어엄청 잘생겼대.'

'그리고 그런 종류의 소문은 믿을 만한 게 못 된다, 이 말이야. 어차피 중요한 건 그게 아니지 않나?'

그건 소문을 접한 대부분의 사람들 역시 인지하고 있는 부분이었다.

소문이 얼마나 과장되었든, 루카스 교수가 어떤 외모를 가지고 있든 실망할 건덕지는 아니었다.

'근데 그게 우리한테 중요한가?'

'우리는 상관없지.'

'근데 뭐하러 루카스 교수의 미모를 그렇게 상세하게 설명하고 있어?'

'그러게? 내가 왜 그랬지?'

'아무튼, 핵심은 이 논문으로 시연할 강연, 그 자체란 말이야.'

'그럼! 물론이지.'

저마다 강연에 대한 기대감을 끌어올리며 루카스가 저 문을 열기를 기다렸다.

그리고 마침내.

벌컥-

문이 열리고, 쏟아지는 빛을 가르며 한 사내가 등장했다.

또각- 또각-

아주 규칙적인 걸음, 말끔하게 정돈된 머리, 흐트러짐 없는 복장.

사람들은 그 존재를 보며 하나같이 같은 생각을 했다.

루카스의 외모에 대한 소문은 왜곡되었다고.

엄청난 미남? 사람을 홀리는 미모?

너무······ 축소되었다.

저건 그런 표현들로 설명될 수 있는 수준이 아니었다.

* * *

확실히 소규모 강의와 이런 대규모 강연은 그 위압감부터 다르다.

짓눌릴 것 같지만, 티를 낼 수 없다.

특히 저기 한 구석에서 나를 내려다보고 있는 신성 제국 놈들 때문이라도 무슨 일이 있어도 이 강연에서 얻어 내야 할 것이 많다.

"······반갑습니다. 저는 루카스 폰 크라우스. 아에로크의 그라스코에서 전투학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숨 막힐 듯한 정적이 이어지고 있었다.

환영의 박수라도 쳐주면 덜 어색할 텐데. 하긴, 내 잘못이 크다.

"개인적인 일정으로 강연이 예정된 시일보다 늦어진 점, 사과드립니다."

가볍게 고개까지 숙였다.

이 정도면 성의는 보인 셈 아닌가.

고개를 들고 보니, 정면에서 실핏줄이 터질 듯이 벌게진 눈으로 나를 노려보는 노인이 보인다.

나는 단숨에 그를 알아볼 수 있었다.

'학회장 알란.'

이 학회의 수장이자 최고 권력.

느닷없이 스케줄을 첫날에서 마지막 날로 바꿀 수 있었던 것은 저 노인의 권력 덕분이다.

이거, 감사 인사라도 하는 것이 도리다.

그러면 분위기도 한결 풀리겠지.

"알란 학회장님."

천천히 그의 앞으로 다가가 그에게 먼저 악수를 청했다.

학회장이 손을 떨며 내 손을 맞잡았다.

이건, 용서해 준다는 사인이겠지.

"학회장님의 배려에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이, 이······!"

가벼운 인사였다.

그러나 그에게는 아니었던 모양이다.

알란은 갑자기 극도로 흥분하더니 눈을 크게 뜨고, 그대로···

풀썩!

······쓰러져 버렸다.

분위기가 이거 더 싸늘하게 얼어붙었다.

그래도 강연은 해야 하는데. 지금 이게 취소되면 신성 제국 놈들의 타겟이 될 텐데.

난감함에 등줄기에 땀이 솟는다.

저들의 시선이 부담스럽게 느껴진다.

신성 제국 놈들이 더욱 강하게 의식되고 있다.

공황이- 몰려올 것 같다.

그러나 그 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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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님들의 후원창이, 시야를 가려주었다.

그것만으로 거칠게 뛰던 심장 고동이 차분하게 가라앉고, 호흡이 편해졌다.

됐다.

충분히 할 수 있다.

몸을 돌려 연단으로 향하곤 입을 열었다.

"······강연을 시작하겠습니다."

* * *

왜 이렇게 캄캄하지?

나는 분명히······.

'루카스 교수의 강연을 기다리고 있었을 터인데.'

아아, 그래. 분명 루카스 교수가 들어왔어.

엄청났지.

하나의 예술품을 보는 것 같았어. 그 자태며, 품위며.

그런데 왜 이렇게 어둡지?

이래서야 루카스 교수의 강연을 제대로 볼 수가 없잖은가.

누가 불을 좀 켜줘.

어서 빨리!

"어서······ 불을 켜······ 빨······ 리."

"!#%장님, 정@#%이 드세요?"

이런 고얀, 불 켜라니까 무슨 외계어를 하고 있나.

"학#@장님!"

"학회장님!"

"허억!"

갑자기 쏟아지는 불빛이 알란의 눈을 따갑게 파고 들었다.

"아니, 이게 무슨······. 뭐야, 여긴······ 내 방이잖나. 강연은, <테마칸 홀>에서 열릴 루카스 교수의 강연은!"

알란은 주변을 두리번거리며 물었다.

그 앞에 자신의 파벌에 속한 이들이 약간은 몽롱한 얼굴로, 약간은 걱정되는 얼굴로 서 있었다.

"부, 분명 루카스 교수가 <테마칸 홀>을 열고 들어왔어. 그리고···"

"예, 학회장님 앞으로 다가와서 학회장님께 악수를 청했지요."

"그래, 맞아. 거기까지 기억이 난단 말이야."

"그 뒤에 쓰러지셨습니다."

"뭐? 쓰러져? 내가?"

"예."

"워낙 갑작스러운 일이라 저희도 크게 당황했습니다."

"그, 그럼 강연은?"

"그게, 그 강연은······."

다시금 이들의 표정이 몽롱해진다.

"정말······ 대단했습니다."

"환상적이였지요."

"말로는 차마 담아내지 못할 만큼······"

아, 끝났구나.

끝나 버렸어.

"하, 학회장님!"

"학회장님!"

알란은 깨어난 것이 무색하게 다시 졸도해 버렸다.

다만, 직전에는 믿을 수 없는 상황에 심장이 멈춘 것이라면, 이번에는 자신만 빼고 그 환상적인 강연을 즐긴 눈앞의 놈들 때문에 혈압이 뻗쳐오른 탓이었다.

§ 아카데미의 신화급 교수가 되었다 35화

35. 학회 (10)

"리트, 너와 나는 이제부터 따로 움직인다."

"네? 교수님, 하지만...."

이제 학회의 막바지다.

내 강연이 사실상 마지막 이벤트였으니, 인파는 점점 줄어들 것이다. 그렇게 되면 신성 제국의 추격을 피할 수 없게 되겠지.

지금 내게 가장 큰 문제가 바로 리트다.

저 녀석들에게 이 녀석이 마족이라는 것을 들켜 버린다면, 리트와 나 둘 다 꼼짝없이 종교재판 행이다.

말했듯, 저 미친 광신도 집단은 명분만 있다면 과정 따위는 얼마든지 생략해 버린다.

"말했지 않나. 신성 제국이 붙었다고."

왜 처음 듣는 표정이냐, 너?

울컥 솟아오르는 빡침을 누르고 입을 열었다.

"네게 위험을 안길 순 없다. 놈들이 주시하고 있는 것은 나 하나뿐. 그러니 따로 움직이는 것이 낫다."

리트는 마족.

그런 마족과 내가 함께 있다면?

저 광신도는 나한테까지 덤터기 씌우겠지.

그렇다고 리트를 팔순 없다.

그녀의 미래를 알고 있는 이상, 그 잠재력의 가치가 얼마인지 잘 알기 때문에.

최선책이 바로 양동작전인 것이다.

둘이 함께 있다가 잡혀가는 것보다, 따로따로 움직여 저들의 의식이 내게 돌리고, 거의 유일하다고 해도 좋을 증거를 밖으로 빼돌린다.

이것이 이번 계획의 핵심이다.

* * *

-네게 위험을 안길 순 없다. 네게 위험을 안길 순 없다....

루카스의 한 마디가 자꾸 귀에 맴돈다.

얼굴이 붉어지는 것을 감출 수가 없다.

정신 차리자.

지금 밖에 신성 제국의 사람들이 루카스와 자신을 노리고 있다질 않은가.

하지만 자꾸 정신이 이쪽으로 빠지는 것은 어쩔 수 없다.

"듣고 있나?"

"네, 네! 교수님. 그런데 교수님은 어떻게...."

정말 본능적으로 이런 질문이 튀어나왔다.

질문하고서도 자신이 이해가 가지 않는다.

누구보다 생존에 있어서는 이기적이었던 자신이, 다른 사람의 생존을 걱정한다니.

"내가 마족인가?"

"아...!"

자신만 없다면 애초에 루카스 교수가 저들 때문에 고초를 겪을 일이 없다.

그 사실이 희망적이면서도 왠지 모르게 슬펐다.

"내 걱정은 말고 서둘러 떠나라."

"네에...."

어깨가 축 처진다.

도움이 되지는 못할망정 방해가 되고 있다는 사실이 아프다.

"리트."

"네...."

"항상 말하지만, 네겐 아무 잘못이 없다. 그러니, 어깨를 펴라."

"교수님...."

무뚝뚝하지만 무겁게 다가오는 진심이 그녀에게 닿았다.

자신이 마족이라는 것을 알고 있던 처음부터, 루카스는 자신을 이해했고, 자신의 편이 되어 주었다.

아무런 잘못이 없다고 말해 주었다.

'저, 강해질게요. 교수님께 짐이 되진 않도록 강해질게요.'

리트는 혼자 다짐했다.

"아, 그리고 이거."

"이, 이건...."

마석.

마족들의 마력이 모인 핵이다.

그리고 이것은 발탄의 마석- 즉, 상급 마족의 마석이다.

"교수님...."

"어서."

리트는 루카스의 손에서 마석을 조심히 받아들었다.

우웅-

리트의 마기와 공명한 마석은 순식간에 그녀에게 흡수되었다.

* * *

'아니, 들고 있으라고...'

순식간에 사라진 발탄의 마석.

아직 그라스코에 마족이 잠입했었다는 사실이 알려지지 않았으니, 이 마석을 들고 있어 봤자 골치만 아파질 거 같아 리트 편으로 보내 버리려고 했는데, 리트는 이걸 흡수해 버렸다.

아깝다는 생각이 들던 찰나-

[리트의 '등급'이 격상합니다.]

[하급 마족 -> 중급 마족]

[리트의 호감도가 대폭 상승합니다. +100.]

잊고 있었다.

마석은 마족들에게 있어 경험치 돌과 같은 역할.

발탄의 마석은 중급 마족이 되기에 부족한 리트를 순식간에 중급 마족으로 만들어 버릴 만큼 엄청난 경험치를 부여한 것이다.

발탄이 상급 마족이니까 가능한 것이다.

'그렇다면...'

내게는 마석이 하나 더 있다. 그것도 상급 마석이.

"내 집무실에 가면 리바이의 마석이 있다. 그것도 취해라."

"...네!"

내겐 그저 보석처럼 생긴 기념품에 불과한 것이다.

차라리 그걸로 리트를 성장시키는 편이 훨씬 낫다.

[리트의 호감도가 대폭 상승합니다. +200.]

얻은 호감도를 모조리 마력에 투자했다.

리트가 강해지는 것이 눈으로 보인다.

하지만 아직 적응을 잘 못 하는지, 마기를 잘 컨트롤하지 못하고 있다.

평범한 사람들은 눈치채지 못하겠지만, 신성 제국 놈들은 가까이에 접근한다면 바로 눈치챌 정도.

"내가 먼저 나가겠다. 체크아웃은 따로 하지 않을 테니, 정리되면 떠나도록."

그녀에게 힘을 갈무리할 시간도 충분히 줬다.

이제 문제는 저 신성 제국 놈들을 정면 돌파하는 것이다.

* * *

"내, 내가 얼마나 이렇게 쓰러져 있었나!"

"그러니까...."

"아니, 그전에 루카스 교수는 어디에 있나!"

"호텔에 있을 겁니다... 오늘 떠난다고 들었...."

알란이 벌떡 일어나 그를 밀쳐냈다.

"서둘러라! 지금 당장 루카스 교수가 묵고 있는 호텔로 간다!"

그는 잔뜩 흥분한 상태로 문밖을 나섰다.

* * *

"루카스 교수님, 아니 루카스가 호텔 밖으로 나옵니다!"

"다들 긴장하세요. 지금부터 실전입니다."

이제 루카스가 학회에 남아 있을 시간도 얼마 남지 않았다.

그의 신병을 확보할 기회가 얼마 남지 않았다는 뜻이기도 하다.

그래서 최후의 수단을 쓰기로 했다.

자신들의 정체를 가리고, 대놓고 그의 신병을 확보하기로 한 것.

신성 제국을 떠올릴 만한 것은 몸에서 다 떼어 놓았다.

그저 칠흑같이 검은 복장으로 적기를 노리고 있었다.

사실 강연이 끝났을 때가 최적의 적기이긴 했다.

하지만 <테마칸 홀>을 떠나는 루카스를 붙잡을 생각도 못 할 만큼 그의 강연은 충격적이었다.

'학구파'가 아닌 대다수도 멍하니 그가 남기고 간 지식을 수습하기에 바빴으니까.

'이번에는 그런 실수를 하지 않겠어요!'

만약 루카스가 정말 마족과 관련이 있다면, 이 대륙은 큰 위험에 부닥칠 수밖에 없다.

자신은 신이 선택한 성녀.

대륙을 혼란으로 빠트릴 위험은 차단해야 했다.

그것이 자신의 숙명이고, 베르트가 신성 제국으로 군림하는 이유였다.

"다들 준비하세요."

그녀의 지시에 신성 제국의 기사들이 복면을 끌어 올렸다.

입구 유리창 너머로 루카스의 신형이 아른했다.

'지금!'

그녀의 수신호에, 신성 제국 기사들이 움직였다.

그러나 그때-

"루카스 교수, 잠깐 기다리게!"

예상외의 변수가 터지고야 말았다.

* * *

"...."

참으로 어색한 삼자대면이었다.

한쪽에는 내가 기절시킨 알란 학회장, 또 한쪽에는 대놓고 내게 기습하겠다고 작정한 듯한 흑의를 입은 신성 제국 놈들.

"...이것들은 뭐냐?"

알란이 신성 제국 놈들을 흘기며 한마디 했다.

"호오, 루카스 교수를 노리는 괴한들인가. 재밌군. 내 그렇지 않아도 울분으로 몸이 쑤셨는데, 너희를 상대로 좀 풀어주랴?"

하지만 신성 제국도 보통의 각오로 달려든 것은 아닌 듯했다.

완전한 실패의 상황임에도 오히려 기세를 끌어올렸다.

그리고-

"아, 안 돼요!"

옥구슬 같은 목소리가 애석하게, 누군가의 몸에서 신성해 보이는 빛이 터져 나오기 시작했다.

'세크리파이스?'

자기희생.

보통의 경우라면 이는 절대적 회복을 뜻하겠지만, 내 소설에서는 아니다.

저것은 광신도 집단에 맞게, 자신이 희생하는 대신 아군에게 절대적으로 유리한 상황을 만들어 주는 스킬이다.

그리고 시전하며 터지듯이 폭발하는 광휘는 잠시지만 시야를 멀게 한다.

이미 발을 빼는 것은 늦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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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 몸이 안 움직여!"

"아, 앞이 보이지 않아!"

나와 신성 제국 놈들을 제외하고 모두 시야가 멀었다.

모두 무언가에 잡힌 듯 허우적대고 있었다.

도심 한가운데, 혼란이 퍼져 나가고 있었다.

"왜 이런 멍청한 짓을!"

"빨리 빠져나가셔야 합니다. 빨리요!"

"그러지 않았어도 됐는데!"

"카린 님, 시간이 없습니다!"

놈들이 발을 빼려 한다.

하지만 그렇게 놔둘 수는 없었다.

저들이 발을 빼도 언제고 내게 걸리적거릴 것이 분명하기에.

"멈춰라."

드래곤 피어를 사용해 신성 제국 놈들의 발을 묶었다.

"윽, 어, 어떻게!"

갑작스러운 상황에 놈들이 당황하며 허우적댔다. 내가 자유롭게 움직이는 것 또한 의문이겠지.

상황은 반전되었다.

그들에게 천천히 다가가 물었다.

"신성 제국이 나를 덮친 이유, 그리고 이곳을 엉망으로 만든 합당한 이유를 대라."

"시, 신성 제국? 그들이 도대체 왜?"

드래곤 피어의 효과는 1분.

저 효과가 끝이 나면 저들은 그대로 사라져 버릴 테고, 내 위험은 가시지 않겠지.

그러니 저들의 정체를 밝혀 두었다.

역시나 사람들의 의문이 뒤따른다.

신성 제국이 도대체 학회에서 왜 이런 짓을, 어째서 나를 노리는가.

이 의문은 이제 저들의 강력한 족쇄가 될 것이다.

"성녀, 카린. 그대가 답하라."

하지만 나는 여기서 그치지 않고, 폭탄을 하나 더 던져두었다.

"서, 성녀가 와 있다고?"

당연하게도 혼란이 가중되었다.

그들에겐 이제 합당한 변명이 필요하다.

어째서 '세계의 정의'를 표방하는 그들이 이런 짓을 벌였는가. 그것도 성녀를 앞세워서.

세크리파이스의 효과도 가시는지 점점 사람들이 정신을 차리고 몸을 일으키고 있었다.

신성 제국 놈들의 주위를 둘러싸듯 압박했다.

"...."

선두에 있던 이가 복면을 잡아당겨 벗었다.

폭포처럼 떨어지는 백금발의 긴 머리, 그러나 그보다 더욱 시선을 압도하는 아름다운 외모.

내 세계관 최고의 미녀, 성녀 카린.

번진 눈물이 그녀의 청초한 매력을 더욱 부각시키고 있었다.

"저, 정말 성녀다!"

"아니, 근데 성녀가 왜 루카스 교수를 덮친 거지?"

밝혀진 그들의 정체에 사람들은 강한 의구심을 표출했다.

이제, 합당한 대답을 내어 놓지 않으면 학회와, 그리고 이 많은 기사의 소속국가와 외교적 문제를 초래하게 될 것이다.

내 목적은 이것으로 충분히 달성됐다.

이제 신성 제국의 발은 묶였으니.

"우리는... 루카스 교수를 체포하려 했습니다."

카린이 무언가 체념한 투로 말했다.

나를 체포하려 했다니.

내 예상이 얼추 맞아떨어졌다.

이거 손 놓고 있었으면 꼼짝없이 당할 뻔했다.

"루카스 교수는 마족과 싸워 공을 세운 사람인데, 어째서 신성 제국에서 체포하려 했던 겁니까?"

"그, 그건 밝힐 수 없습니다."

"밝힐 수 없어요? 어째서?"

"베르트의... 기밀입니다."

충분한 답변이 되지 않았다.

민심이 들끓었다.

이제 내가 저들의 손아귀에서 빠져나갈 상황은 모두 만들어졌다.

이렇게 되면 차라리 리트와 함께 편하게 복귀하는 것이...

우우웅!

그때, 주머니 속에서 휴대용 통신구가 울었다.

확인해 보니, 데얀이었다.

-교수님, 암호 해독 완료했습니다. 하인즈 총장님께서는 현재, 신성 제국 베르트에 있는 것으로 확인됩니다.

§ 아카데미의 신화급 교수가 되었다 36화

36. 신성 제국 베르트 (1)

'젠장, 하필이면....'

상정할 수 있는 최악의 시나리오였다.

사실, 무언가를 숨기기에 신성 제국만큼 확실한 것이 없긴 하다.

신성 제국은 입국은 물론이고 출국도 그 절차가 까다롭다.

쉽게 들어갈 수 없고, 쉽게 나올 수 없으며, 상당히 폐쇄적인 색깔을 띠는 국가다.

솔직히 말하자면 가장 먼저 떠올린 수단이었다. 하지만 발탄이 마족이라는 핑계로, 가능성을 지워 버렸다.

신성 제국과 엮이고 싶지 않은 마음이 가장 컸다.

'하지만....'

-교수님, 암호 해독 완료했습니다. 하인즈 총장님께서는 현재, 신성 제국 베르트에 있는 것으로 확인됩니다.

...젠장.

'암호 해독 좆같이 한 거기만 해 봐라.'

어쩔 수 없이 신성 제국과 엮여야 한다.

이것이 의미 없는 일이라면, 내가 무슨 수를 써서라도 아에로크 정보국 놈들 가만두지 않을 거다.

'후우!'

신성 제국의 이면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만큼, 결심이 쉽지 않다.

하지만 신성 제국에 입국할 방법은 지금으로선 딱 하나다.

저 앞의 성기사들과 함께 동행하는 것.

알고 있지만, 쉽사리 입이 떨어지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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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수수 쏟아지는 알림.

그것이 곧 자신감이 되었다.

한결 편해진 마음으로 입을 열었다.

"성녀에게 묻겠다. 신성 제국으로 가면, 재판이 열리겠지?"

"그렇습니다."

"그 재판이 공정하다 자신할 수 있나?"

"무, 물론입니다."

사실 베르트의 재판에 공정성이 있을 리는 없다.

'세계의 정의'를 표방하는 이들이 그 정의를 위해 얼마나 많은 것을 묵살하고 쳐부수는지, 작가인 나는 고스란히 알고 있다.

굳이 이런 이야기를 꺼내는 이유는 여기 있는 제삼자들에게 카린의 발언을 '각인' 시키기 위함이다.

이곳에서 루카스라는 이름이 가지는 무게가 결코 가볍지 않다.

신성 제국, 그리고 루카스. 이 모든 키워드가 저들에게 깊게 각인되었을 것이고, 신성 제국이 앞으로도 자신들을 '정의'로 규정할 거라면, 이 상황에서 내게 함부로 위해를 가하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이걸로도 불안한 건 마찬가지다.

"공정? 웃기는 소리! 내가 신성 제국을 모를 것 같은가?"

"그게 무슨 소리죠?"

"신성 제국만큼 폐쇄적인 곳이 어디 있다고. 그런 폐쇄적인 곳은 항상 폐단을 만들기 마련이지. 그 안에서 벌어지는 재판이 정말로 공정한가? 그것은 누가 보증하지?"

"그야 베르트의 성녀인 제가-"

"성녀 역시도 베르트의 사람 아닌가. 그 보증을 어떻게 믿냐, 이 말일세."

"그, 그건...."

어이쿠, 잘한다. 학회장님.

내가 원하던 상황을 알아서 그려 주고 있다.

하지만 그 뒤는 내가 바라던 것 그 이상이었다.

"이 신성한 '학회'를 책임지는 이로서, 학회에서 벌어지는 모든 일에 책임을 질 의무가 있네. 이번 신성 제국의 만행 역시 우리 학회의 소관이라 할 수 있을 터. 마족과의 전쟁에 혁혁한 공을 세운 그대들을 존중해 이곳의 율법으로 처리하진 않겠지만, 내가 루카스 교수와 동행해 신성 제국의 정의를 이 두 눈으로 똑똑히 지켜볼 것이야. 그 과정에 의혹이 발견되면, '학회'의 이름을 걸고 신성 제국에 책임을 물을 걸세. 동의하나?"

"...."

카린은 쉽사리 대답하지 못했다.

그도 그럴 것이, 이름만 번지르르할 뿐, 성녀라는 이름에 그렇게 커다란 힘이 있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베르트의 모든 결정은 '콘클라베'에서 나온다.

당연히 콘클라베의 12 추기경들은 이 상황을 보고 있을 것이다.

"...동의하셨습니다."

콘클라베로 부터 답변을 받은 모양이다.

그래, 동의할 수밖에 없을 테지.

이 상황을 지켜보는 눈이 이렇게나 많으니까.

"그럼, 루카스 교수님과 알란 학회장님, 신성 제국 베르트로 모시겠습니다."

성녀의 말에 뒤에 있던 성기사 한 명이 다가왔다.

"지금 뭐 하는 건가!"

성기사가 수갑을 꺼내는 것을 본 알란이 대노했다.

"분명, 루카스 교수는 너희에게 협조하고 있거늘, 지금 신성 제국은 루카스 교수를 죄인 취급하려는 건가!"

"아...."

카린이 황급히 그 앞을 막아섰다.

"결례를 용서하세요. 이 모든 것은 제 책임입니다."

"떼잉...."

성녀가 빠르게 사과하는 데 굳이 뭐라 더 보탤 필요가 있을까.

알란도 나도 이 정도 실수는 그냥 넘어가 주기로 했지만...

"정말 죄송합니다. 오늘 어려서부터 형제처럼 지내던 제 친우가... 신의 곁으로 떠났습니다. 제가 느끼는 슬픔을 헤아려...."

"시몬!"

카린이 황급히 소리쳐 그 남자의 입을 막으려 했지만, 이미 물은 엎질러졌다.

"...신의 곁으로 떠나? 슬픔을 헤아려? 웃기는 소리 하네!"

알란이 두툼한 주먹으로 시몬이라는 자의 머리를 내리찍었다.

"보통 사람들은 그걸 자살 테러라고 한다, 이 광신도 놈아!"

맞는 말이라 굳이 말리지는 않았다.

* * *

"영감, 빨리빨리 움직이라고!"

철썩!

일말의 자비심도 없는 채찍이 휘둘러진다.

무식한 위력의 일격에 노인의 신형이 크게 휘청였다.

하지만 노인은 신음을 꾹 삼키며 버텨 내곤 다시금 자신의 몸만 한 바위를 옮기기 시작했다.

날이 어두워져서야 참혹한 노동은 끝이 났다.

노인을 비롯한 일꾼들이 지친 몸을 이끌고 허름한 숙소로 이동했다.

들어서자마자, 사람들이 노인의 주위로 몰려들었다.

"영감님, 괜찮으셔요?"

"괜찮소."

"이것 좀 잡수십시오. 아까 몰래 남겨 둔 빵입니다."

"고맙소만, 나처럼 늙은이보다는 젊은 그대가 드시는 것이 어떻겠소."

"영감님께서 쓰러지시면, 저희 모두가 무너집니다. 잘 드셔야지요. 고초를 이겨내셔야지요."

"맞습니다. 영감님이 저희 버팀목이지 않습니까."

사람들이 그의 말에 동조했다.

노인은 자신 앞에 놓인 빵 덩이를 바라보다 집어 들었다.

꼴-깍.

굶주림이 당연한 이곳에 이 빵은 무엇보다 큰 의미를 지닌다.

푸석한 데다, 모래 씹는 맛이라 그저 허기를 달랜다는 수준이지만, 그마저도 감지덕지다.

노인은 빵 귀퉁이를 뜯어내기 시작했다.

그리고는 어린아이부터 시작해서 조금씩 나누어 주기 시작했다.

"이 비루한 몸을 버팀목이라 불러 주어 고맙소. 하지만 나 역시 그대들이 지탱해 주기에 버팀목으로 굳건할 수 있소. 다 같이 버팁시다. 분명히 이 지옥에서 벗어날 방법이 분명히 있을 것이오."

"영감님!"

가장 큰 빵 덩이가 남았다.

노인은 귀퉁이를 아주 살짝 뜯어내곤, 남은 것을 원주인에게 건넸다.

"입이 짧아 이것으로 충분하오."

"영감님...."

"자아, 이것으로 조촐한 파티나 합시다."

노인이 가루나 다름없는 조각을 털어 넣자, 사람들이 따라 입에 넣었다.

혹시나 남은 가루가 있을까 샅샅이 핥는 아이들의 모습이 보인다.

'제발, 누가 그 암호를 눈치채 주게. 시간이 없네.'

노인은 마음속으로 간절히 빌었다.

* * *

신성 제국으로 향하는 길, 샤이닝 로드.

허가받은 자만 지나다닐 수 있는 이 통로에 몸을 실으며 <아.천.망> 속 신성 제국의 설정을 떠올렸다.

신성 제국은 그 자체로 특별- 아니 특이하다고 보는 것이 맞았다.

이 세계의 근간을 이루는 공학은 마도공학이다.

하지만 신성 제국은 '성유물'이라고 불리는 오파츠를 사용한다. 당장, 이 샤이닝 로드만 봐도 평범한 길이 아닌, 오파츠와 오파츠가 연결되며 만들어진 '터널'이다.

그저 올라 있는 것만으로 베르트까지 '전이'한다.

하지만 성유물에는 한계가 존재한다.

민간에게까지 널리 퍼진 마도구와는 달리, 성유물은 베르트 내에서도 소수만이 차지할 수 있는, 일종의 특권이다.

그러다 보니, 부분적으로는 원시의 형태를 띠고 있는 곳도 있다.

예를 들면- 

'아탄 탑 공사 현장이라던가.'

훗날, 마족들을 가두는 수용소 역할을 할 아탄 탑 공사는 순수 인력으로 만들어지고 있다.

물론, 그 인부들은 베르트의 국민들이 아닌 외부 인력이 대다수다.

정확히는 마족과 내통한 혐의가 발각된 인간들이다.

그들의 손으로 마족을 벌할 시설을 지으며 회개한다는 의미가 담겨 있으나, 모두가 마족과 내통한 인간들만 있는 것은 아니다.

말했듯, 신성 제국의 일 처리는 광신도 집단의 그것과 다를 바가 없기 때문에 마녀사냥으로 억울하게 끌려온 사람도 있고, 연대 책임을 물어 아무런 관련 없이 먼 친척이 마족과 내통했다는 이유로 붙잡혀 온 이들도 있었다.

'하인즈를 숨겨 뒀을 만한 곳은 역시...'

아무리 생각해도 아탄 탑 공사 현장뿐이다.

"아, 저건 아탄 탑이라고 합니다. 아직 완성 전인데도 엄청난 위용이지 않습니까?"

"...."

성기사 하나가 자랑스레 말을 한다.

동시에 카린의 낯빛이 어두워졌다.

그럴 수밖에 없다.

저 탑의 완공이 곧, 그녀의 죽음을 의미하니까.

마족들을 안전하게 수용하기 위해서는 엄청난 신성 에너지가 필요하다.

이 미치광이들이 그 신성 에너지를 어디서 뽑아올지는 굳이 말하지 않아도 눈치챌 수 있으리라.

"루카스 교수님과 알란 학회장님을 국빈급으로 모시라는 콘클라베의 결정이 있었습니다."

모양새는 전혀 국빈급 대우가 아니었지만, 나 때문에 그들의 치부가 드러나며 이렇게라도 무마할 생각인가 본데.

아직 방심해서는 안 된다.

"이곳이 두 분께서 머무실 세인트로 신전입니다."

애초에 베르트에는 호텔이라는 개념이 없다.

관광객이 존재하지 않기 때문.

그러나 분명히 국빈급의 방문은 존재하는 법이고, 그들의 숙소를 베르트의 중심에 위치한 신전인 세인트로에서 담당하는 것이다.

가우디의 사그라다 파밀리아 성당을 그대로 옮겨온 듯한, 성스러움이 진하게 묻어나는 신전.

연락을 받고 마중을 나온 사제들에 나와 알란이 인계되었다.

"조사는 내일부터 이루어질 겁니다. 실례지만 그전까지 자리를 지켜 주셔야 합니다."

"그렇겠지."

국빈급 대우라고 해도, 내가 이곳에 온 이유는 어디까지나 신성 제국 놈들이 나를 데모닉- 그러니까 마족과 접점이 있는 용의자로 보기 때문이다.

"그게 무슨 결례인지, 쯧! 하여간 이 빌어먹을 광신도 놈들, 마음에 드는 구석이 없군!"

나 대신 알란이 불평한다.

희한한 일이었다.

이 할아버지는 사실 신성 제국에 우호적인 양반이다.

베르트가 광신도 집단이긴 해도, 마족과의 전쟁에서 커다란 힘이 되는 것은 사실이니까.

하지만 학회에서 난동을 부린 게 크게 찍힌 모양인지, 그 노선이 단단히 바뀐 것 같다.

"쉬실 곳으로 모시겠습니다."

사제를 따라 걸음을 옮겼다.

상당한 규모를 자랑하는 신전인 만큼 한참을 걸어야 했지만, 이 신전 자체가 성유물이므로 피로감은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학회장과 나는 각기 다른 층에 머물게 되었다.

방을 안내한 사제는 문을 나서며 단단히 일렀다.

"오늘 10시부터는 금식하셔야 합니다. 내일 있을 마기 검사 결과를 조금 더 정확히 하시고 싶으시다면요. 물은 드셔도 좋습니다."

무슨 건강검진 전날 같은 멘트를 하고 있어.

"그리고 절대로 혼자서 이곳을 나서는 일은 없도록 하여 주십시오."

사제는 친절하면서도 동시에 섬뜩한 경고를 남기고 떠났다.

그 경고 이면에는 그럴듯한 이유가 있다.

이 세인트로 신전은 국빈들의 숙소 역할도 하지만, 동시에 그들을 가두는 일종의 감옥 역할도 겸한다.

강제 감금의 개념이 아니라, 함부로 빠져나와 베르트를 활보하지 못하게 만드는 수단인 것이다.

물론 평소 같으면 나도 그 말을 충실히 따랐을 것이다.

하지만, 내가 이 베르트까지 순순히 따라온 것은 그 이유가 존재한다.

바로, 하인즈의 행방을 찾아내는 것.

그러나 이 광신도 소굴에서 아무런 준비 없이 나 혼자서 하인즈를 찾아낼 수는 없다.

'...독자님들이 안 계셨다면 말이지.'

나를 지켜보고 있을 독좌(座)님들 덕분에 방법이 생겼다.

"특별한 뽑기권 사용."

[특별한 뽑기권을 사용하셨습니다!]

나에게 현재 가장 필요한 아이템이 떨어진다고 했겠다.

['고우디의 외알 안경'을 획득하였습니다.]

§ 아카데미의 신화급 교수가 되었다 37화

37. 신성 제국 베르트 (2)

고우디.

그 이름에서 알 수 있듯, 가우디에서 따온 이름으로, 고우디 역시 이 <아.천.망>에서는 엄청난 위업을 떨친 건축가이다.

일명, 베르트의 아버지.

웃기게도 고우디의 고향은 마탑이 위치한 페오른 왕국이다.

이방인인 그가 베르트의 아버지라는 칭호를 받게 된 이유- 그것은 그 이름에 힌트가 있다.

가우디와 고우디.

가우디가 바르셀로나 건축물의 대부분을 건축했다면, 고우디는 베르트를 통째로 건축했다.

신성 제국 베르트는, 말이 신성 '제국'이지, 그 국토의 크기는 일개 도시 정도밖에 되지 않기 때문에 그런 업적이 가능했던 것이다.

그렇게 고우디는 신성 제국 역사상 가장 존경받는 이방인이자, 베르트의 역사에 이름을 남긴 유일한 이방인이 되었다.

그러니까, 이 외알 안경은 그 고우디의 외알 안경이라는 뜻이다.

외관은 평범한 외알 안경이었다.

다만, 알의 크기가 터무니없이 작은 것으로 보아 착용하는 용도는 아닌 것 같았다.

'이게 지금 나한테 가장 필요한 아이템이라 이 말이지?'

혹시 눈앞에 가져다 대면 뭐라도 보일까 싶어 대보았다.

하지만 투명한 유리 너머로 비치는 풍경이 전부였다.

애초에 그럴 용도면 차라리 <시력 강화>를 쓰고 말지.

이 외알 안경은 그런 종류의 아티팩트는 아니었다.

팅- 탁!

티잉-! 탁.

외알 안경을 손으로 튕기며, 이것의 용도를 생각했다.

분명히 '현재 가장 필요한 아이템'이라고 했다.

내가 지금 가장 필요한 것은 하인즈의 행방을 찾는 것이다.

그러니 이 외알 안경은 하인즈의 행방을 찾는데 분명한 도움을 줄 것이다.

'그런데 어떻게 써야 할지 모르겠단 말이지.'

그대로 침대에 드러누웠다.

외알 안경을 매만지며, 어떻게 써야 할지 계속해서 고민했지만, 답이 나오지 않는다.

답답함이 목구멍까지 차오른다.

어디까지나 베르트에 구금되어 있다는 것이 떠오르며 슬슬 불안감도 더해지려 한다.

그 순간-

[새로운 알림이 도착했습니다.]

[나스탸 님께서 500G 후원하셨습니다.]

[k2929 님께서 100G 후원하셨습니다.]

[선임 님께서 100G 후원하셨습니다.]

[wngpals4 님께서 500G 후원하셨습니다.]

[이구아 님께서 300G 후원하셨습니다.]

[덜렁덜렁 님께서 1,000G 후원하셨습니다.]

[냐옹이 님께서 100G 후원하셨습니다.] x 12

[펩시젠 님께서 500G 후원하셨습니다.]

[민트수호대 님께서 1,000G 후원하셨습니다.]

[민트수호대 님께서 3,000G 후원하셨습니다.]

[민트수호대 님께서 1,000G 후원하셨습니다.]

마치 내가 혼자가 아니라는 듯이 쏟아지는 후원들.

'그래. 쉽게 포기할 생각 하지 마. 이게 분명 해답을 가져다... 응?'

아주 우연한 발견이었다.

어릴 적 부모님께 혼나면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리며 장판의 모양을 따라 그림을 그리곤 했다. 그것처럼 외알 안경 너머로 보이는 알림창과 천장이 겹쳐진 부분에서 미묘한 형상이 그려지고 있었다.

본래 천장은 물론이고 이 건물 자체가 기하학적인 문양들로 뒤덮여 있었는데, 알림창에 의해 일부가 가려지면서 오히려 그 안에 숨겨진 형상들이 떠오르기 시작한 것이다.

정확히는 원래부터 있었던 것을 발견했다는 표현이 맞을지도.

알림창을 걷어 내고 본격적으로 그림을 그려 나가기 시작했다.

중간중간 막히긴 했으나 어찌어찌 그려 낼 수 있었다.

이것은-

'초상화잖아?'

누군가의 초상화였다.

* * *

"이제 '아탄 탑'의 완성이 머지않았군요."

"그렇군요. 축하드립니다. 유렌 추기경."

창밖으로도 한눈에 보이는 거대한 탑을 보며 유렌이 묘한 웃음을 머금었다.

아탄 탑은 그의 오랜 숙명이다.

마족들을 감금하는 신성 감옥.

하지만 그 이면에 가려진 '진실'은 그 누구도 알지 못한다.

'저것이 완성되는 순간. 내 오랜 염원은 드디어 이루어지리라.'

알려진 것처럼 단순히 마족을 가두는 것에서 그치지 않는다.

아탄 탑의 진짜 용도는 거대한 에너지 추출 도구이다.

"흐음... 나는 아직도 저 탑의 완성이 필요할까 싶소."

"시모아 추기경께서는 아직도 그런 소리입니까! 대륙이 마족 때문에 신음하고 있습니다."

"그렇다고 우리의 성녀를 희생하겠다는 생각이 가당키나 하오? 나는 아직도 의문이외다!"

"대를 위한 희생 아니겠습니까. 성녀께서도 이미 수락한 일입니다."

"성녀께서 수락한 일? 이보시오들, 다들 아시지 않소. 성녀께는 선택권이 없었다는 것을. 이 모든 것은 다 콘클라베의 결정 아니오!"

"시모아 추기경은 그러면 마족들을 행패를 지켜봐야 한다는 말씀이신가요?"

"밀레나 추기경, 내 말은 그런 뜻이 아니잖소!"

"지금 하시는 행태가-"

추기경들 사이에 언성이 높아지려 하고 있었다.

유렌은 이 모든 것을 지켜보며 그저 조소했다.

'어리석은 것들아, 너희가 찬성하던 반대 하건 그런 것은 중요하지 않다. 모든 것은 내 계획대로 되어 가고 있음이니.'

저들의 주된 싸움의 원인은 애초부터 성립되지 않는 것이었다.

아탄 탑의 존재를 완성하는 성녀의 희생.

사실 그런 것은 필요 없기 때문이다.

성녀를 없애는 것까지가 그의 계획.

저 팔푼이들은 유렌의 손에 놀아나며 그저 자신이 옳니, 아니니 하며 싸우고 있다.

진실은 아탄 탑은 애초에 마족들을 가두는 수용소가 아니다.

내부의 모든 생명체가 가진 에너지를 흡수하고 저장하는 장치. 성유물 따위가 아닌 초고대 문명의 편린.

저것은 유렌을 신으로 만들어 줄 장치다.

그는 속으로 추기경들을 한껏 비웃으며 입을 열었다.

"아탄 탑이라는 성유물은 신께서 인간에게 보내 주신 은혜입니다. 제가 성녀 대신 희생하고 싶지만, 자격이 되지 않습니다. 신의 뜻에 자격이 되는 이는 오직 성녀님뿐입니다. 저도 심장을 찌르는 것만 같은 고통을 참으며 결정한 사안입니다. 다들 싸우지 마십시오. 성녀님의 희생이 무색해집니다."

"으음!"

유렌의 제지에 추기경들은 어색한 헛기침만 늘어놓았다.

자신들도 어느 것이 맞고 어느 것이 틀린 것은 확신할 수 없다.

그저- 성녀의 희생과 인류의 안전.

그 둘을 놓고 저울질하고 있을 뿐이었다.

"모든 것은 신의 뜻대로."

"신의 뜻대로."

물론, 유렌이 말하는 신은 다름 아닌 자신이었다.

* * *

"어이쿠!"

노인이 기우뚱- 하며 쓰러졌다.

덕분에 옮기던 석제에 금이 가며 새겨져 있던 문양이 쪼개졌다.

저 멀리서 관리자가 달려왔다.

"영감, 무슨 일이야!"

"죄송합니다. 제가 발을 헛디뎌서 그만...."

"이, 멍청한 영감이-!"

그는 채찍을 들어 노인을 향해 후려쳤다.

한 번- 두 번- 결국에는 헤아리는 숫자가 무색해질 만큼 수없이.

"어떻게 책임질 거야! 어?"

그는 눈이 돌아갈 정도로 흥분했다.

이러다가는 큰일 나겠다 싶었는지, 저 멀리서 부하가 달려와 그를 필사적으로 말렸다.

"관리관님, 그만하십시오. 이러다 저 노인 죽습니다."

"죽으라고 휘두르는 거야."

"저 노인은 아내 분을 죽인 그 마족이 아닙니다. 그 마족과 내통한 것도 아니고요. 저 노인만이 모든 문양을 외고 있습니다. 저 노인 없으면 작업이 지체됩니다."

"후우...."

부하의 필사적인 만류에 관리관은 채찍을 내던졌다.

"오늘 밤을 새워서라도 다시 만들어 놔. 알겠어?"

하지만 노인은 대답할 상태가 되지 못했다.

"이 노인과 같은 방을 쓰는 이들은 어서 노인을 방으로 데려가시오."

그의 말에 일련의 무리가 조르르 달려와 노인을 조심히 안아 들고 숙소로 향했다.

최대한 푹신하게 자리를 만들고 조심히 노인을 뉘었다.

"괜찮으십니까, 노인장? 아유, 왜 하필 평소에 안 하시던 실수를 하셔서...."

"괘, 괜찮소. 나이를 먹어서 그런가, 손에 힘이 없구려. 미안하오, 다들 나 때문에."

"그런 말씀 마십시오. 일단 몸을 좀 추스르십시오."

"고맙소."

마음 같아서는 곁에서 노인을 보살피고 싶었지만, 서둘러 돌아가지 않으면 그들 역시 노인처럼 혹독한 매질을 당할 것이 분명하다.

그들은 서둘러 작업현장으로 복귀했다.

모두가 사라지고 적막만이 남은 공간.

노인은 조용히 눈을 떴다.

'그것의 완성이 머지않았어. 이제는 정말 시간이 없음이야. 내 육신으로 버티는 것도 한계가 있어. 제발, 제발 누군가 와 주게. 이러다가는 인류의 희망이 사라질 걸세.'

노인은 이 아탄 탑에 숨겨진 모든 비밀을 알아챘다.

저들이 요구한 이 문양을 보고선 눈치챌 수밖에 없었다.

이것은 초고대 문명의 편린.

마족을 가둔답시고 만들고 있는 것을 보면 그 목적은 뻔했다.

마기의 수집.

게다가 흘려들은 이야기로 성녀가 이 탑의 완성에 방점을 찍는다 한다.

신성력과 마기과 한데 어우러진 그 힘이 누군가의 손에 들어간다면, 그 힘을 악용하려 한다면-

'이 세상은 마족이 문제가 아니게 된다. 사상 최악의 위기가 전 차원을 뒤덮을 거야.'

악신의 탄생.

초고대 문명이 멸망한 원인이 다시금 재림할 것이다.

* * *

완성하고 보니, 아직 모자란 부분이 딱 한 군데 있었다.

눈동자 부분에 옴폭 패인 무늬.

그저 평범한 무늬라고 생각했던 부분이지만, 완성하고 보니 확실히 알 수 있었다.

이것은 비어 있다.

무엇을 위해?

손에 들린 고우디의 외알 안경에 시선이 갔다. 자연스레 손을 뻗어 빈 곳에 넣어 보았다.

딸-깍.

'...딱 맞다.'

비어 있는 만큼의 공간과 이 외알 안경의 크기가, 소름 돋을 정도로 딱 맞아떨어진다.

마치 이것을 위해 만들어졌나 싶을 정도로.

지이잉-!

틈에 끼워진 외알 안경에서 푸르른 빛이 뿜어졌다.

그 속에 거대한 3D 모형이 보인다.

눈에 익은 구조물들이 꽉 들어찬 이것은, 신성 제국 베르트의 입체 전도(全圖)였다.

구조물은 물론이고, 거리에 돌아다니는 사람 모형까지 섬세하게 구현된....

'아니, 이건... 진짜다.'

모형인 줄 알았으나 자세히 보면 움직인다.

이것만으로 진짜라고 생각하진 않았다.

결정적으로 저기, 베르트의 북쪽에서 그 위용을 드러내고 있는 저 건물.

저건 고우디 시절에는 존재하지 않던 건축물, '아탄 탑'이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이 장치는 베르트의 모든 것을 실시간으로 보여 주고 있는 것이었다.

확대도 되고, 어느 특정 부분만 볼 수도 있었다.

이것은 성유물이 아니다.

이 기술의 근간은-

'마도 공학.'

베르트에는 존재하지 않는, 아니, 존재해선 안 될 기술이다.

고우디는 신성 제국 몰래, 이런 장치를 남겨 두었던 것이다.

'무엇을 위해?'

굳이 생각할 필요도 없다.

'탈출용인가.'

그 시절이나 지금이나 신성 제국의 달라지지 않은 점이라면 광신도 집단이라는 것일 뿐.

고우디는 베르트를 설계한 뒤, 신성 제국에 눌러앉았다.

정확히는 '감금'된 것이다.

역사는 그의 죽음을 기록하지 않았다.

신성 제국에서 '베르트의 아버지'라고 칭송받는 이의 무덤 하나 없다는 것은 이상하다.

그는, 이곳에서 모종의 방법으로 탈출한 것이다.

그것도 이 '베르트 전도(全圖)'를 활용해서.

'현재 자신에게 가장 필요한 랜덤 아이템이 지급된다.'라는 특별한 뽑기권의 설명처럼, 현재 내가 가장 필요한 아이템을 뽑았다.

하인즈는 신성 제국 어디에 있는가.

가장 의심되는 곳은, 당연하게도 아탄 탑의 공사현장.

그곳을 확대하자 분주히 움직이는 모형들이 보인다.

'찾았다.'

한 모형의 머리에 선명하게 쓰여진 <하인즈>라는 이름.

하인즈의 행방은 찾아냈다.

이제, 그를 구하러 가야 한다.

우선,

'내일 재판이 문젠데....'

일단 내일 재판에서 무사히 내게 씌워진 혐의를 벗어나야 한다.

'그건 쉽지.'

방법은 있다.

아주 간단한 방법이.

§ 아카데미의 신화급 교수가 되었다 38화

38. 신성 제국 베르트 (3)

가장 먼저 깔아 둬야 할 사실은, 베르트의 재판은 공평하지 않다.

그저 '신의 이름으로'라는 미명 아래, 마(魔)를 척결하는 것에 중점을 뒀을 뿐, 그 과정에서 얼마나 많은 이가 억울하게 심판대로 끌려갔는지 모른다.

물론 처음부터 이랬던 것은 아니었다.

모든 집단의 폐단은 그릇된 결정에서 시작되는 법.

이 베르트의 부패는 콘클라베에서 시작되었다.

정확히는 콘클라베의 실질적인 수장- 유렌이라는 놈으로부터.

놈은, 말하자면 끝판왕이다.

정확히 말하자면, <아.천.망>의 연재를 끝내기 위해 급하게 투입한 놈이었다.

'그놈이 나를 노리게 될 줄은 몰랐지.'

자기가 쓴 소설 속 캐릭터 때문에 위기를 맞는다니.

하지만 급하게 만든 놈이니만큼 구멍이 숭숭 뚫린 놈이었다.

일신의 무력 또한 그렇게 뛰어난 편이 아니었고, 특성빨로 추기경까지 올라 콘클라베를 장악한 놈이었다.

그 특성이란, 바로- 선동.

놈의 오라는 사람의 마음을 현혹한다.

그야말로 사이비 교주에 어울리는 특성이라 할 수 있었다.

사기적인 특성인 만큼, 대신 보통의 경우에는 시간이 엄청나게 걸린다는 것이 흠이다. 게다가 일정 시간 공백이 발생하면 선동의 효과도 풀려버리게 된다. 그러나 베르트의 폐쇄적인 성향과 맞물려, 베르트에 한해 엄청난 위력을 발휘하게 된 것이다.

그렇다고 무조건 오래 걸리는 것은 아니다. 출력을 제한하고, 자신의 신성력을 모조리 밀어 넣으면 단기간에 한 명 정도는 제대로 선동하는 것이 가능하다.

놈은, 그 방법으로 콘클라베를 장악했고, '성황'을 죽였다.

지금 대륙에는 성황이 모습을 감추었다고만 알려져 있지만, 실상은 유렌에 의해 선동당한 교황이 스스로 목숨을 끊은 것이다.

성황이라는 존재가 정신력이 어째서 그렇게 나약한가.라는 의문은, 필력이 구린 작가의 손에 의해 탄생한 설정이기 때문이다.

애석하게도, 그 작가가 나다.

하지만 그렇기에 놈에 대한 경계심을 끌어올릴 수 있고, 대책을 마련할 수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여기서 가장 큰 위험이 될 인물은 누구인가.

가장 우선적으로 떠올릴 수 있는 사람은-

알란 학회장이다.

놈이 마음만 먹는다면 알란 학회장을 선동해 여론을 뒤집는 것은 물론이고, 나에 대한 적의를 심을 수도 있었다.

알란 학회장은 세계관에서 손꼽히는 강자.

당연하게도 적으로 삼고 싶지 않은 1순위의 사람이다.

지금은 무슨 이유에서인지 내 편이라 든든하지만, 유렌의 농간으로 순식간에 적이 될 수도 있다.

그것만은 막아야 한다.

그리고, 당연히 방법은 있다.

* * *

-학회장님, 들리십니까?

'으응?'

알란은 난데없이 들려오는 익숙한 목소리에 주위를 살폈다.

그러나 아무도 없다.

-학회장님, 접니다, 루카스.

'루카스?'

알란은 읽고 있던 논문을 내려놓고 주위를 살폈다.

아니, 주변에 아무도 없는데 루카스의 음성이라니. 이거 환청인가? 논문을 하도 읽었더니 이제 저자와 상상의 대화를 나눌 수 있는 경지에 이르게 된 것인가?

-설명할 시간이 없으니 잘 들어주십시오. 조금 있을 재판에 학회장님께서는 재판장이 아닌 다른 곳에 들러주십시오.

아니, 이게 무슨 소린가.

저 신성 제국 놈들이 루카스 교수에게 무슨 해코지를 할지 몰라 따라왔더니, 정작 재판에 참석하지 말라니.

'내가 노망이 든 건가... 나이가 먹어 서럽구나, 서러워....'

-어제 보셨던 아탄 탑이라는 곳의 건설 현장, 그곳에 반드시 구해야 할 사람이 있습니다.

하지만 노망으로 치기에는 루카스의 음성이 다급하고 절박하게 느껴졌다. 영혼의 울림을 주는 듯한 어떤 울림마저 느껴질 정도이니.

'헛것이 아닌가?'

-저를 믿어 주십시오. 제가 지금 믿을 분은 학회장님뿐입니다.

-아탄 탑의 현장에서 하인즈라는 노인을 꼭 구해 주십시오, 부탁입니다.

루카스의 목소리에서 느껴지는 울림은 알란의 마음을 심란하게 했다.

단순히 헛것이라고 하기에는 무언가가 계속 걸린다.

특히나 '하인즈'라는 이름.

하인즈라면 세계 최고의 석학이자, 그라스코의 총장이 아닌가.

동명이인일 수도 있지만, 왠지 석연찮다.

'가는 것은 어렵지 않겠으나....'

문제는 재판에 홀로 서게 될 루카스였다.

신성 제국 놈들이 어떤 누명을 씌울지 모르니....

하지만 이것은 최애의 부탁.

거절할 수도, 그렇다고 받아들이기도 난감한 상황.

-제 부탁을 들어주신다면 학회장님의 부탁 한 가지를 제 명예를 걸고 들어드리겠습니다.

거절할 수 없는 제안이 펼쳐졌다.

'정말인가? 정말이지?'

돌아오는 대답은 없다. 하지만 알란의 눈은 이미 돌아간 상태였다.

* * *

'아우, 아까워.'

내 절박함이 닿았으려나 모르겠다.

정말 피눈물을 흘리는 심정으로 알란 학회장에게 부탁했다.

나와 격리된 알란 학회장에게 내 의사를 전달할 수 있었던 것은, 골드 상점의 서비스 중 하나인 '귓속말' 기능 덕분이다.

이렇게 서로 격리된 상황에서 쓸 수 있지만, 문제는 그 비용이다.

ㅈ망겜답게 골드를 소모하며, 그 비용은 한 번에 1,000골드.

심지어 하루에 10번이라는 제한도 달려 있다.

빌어먹을 골드 만능주의 시스템 같으니라고.

하지만 이것으로 알란을 유렌에게서 떨어뜨림과 동시에 하인즈까지 구출할 수 있게 됐다.

거기 병력이 많긴 하지만, 알란 학회장 정도면 충분히 정리하고도 남겠지.

이제 내가 문제다.

알란이라는 아군 없이 재판이라는 위험을 빠져나와야 한다.

사실, 이건 정말 쉽다.

신성 제국의 메커니즘은 마족의 그것과 일맥상통하는 부분이 있기 때문이다.

강자존.

힘이 곧 권력인 셈이다.

신성 제국에서의 힘이란, 신성력.

즉 엄청난 신성력으로 사람들을 아닥하게 만들면 되는 것이다.

문제는 내겐 신성력이 없다는 사실.

누군가 파마의 기운이 있지 않냐고 따질 수 있지만, 내 오러의 특성인 '파마'는 신성력과 전혀 다른 개념이다.

신성력은 말 그대로 신의 기운을 이 세상에 발현하는 것이고 파마의 기운은 마족을 멸하는 기운이다.

공통점이 있다고 해서 같은 것이 아니다.

오히려 이단이라고 핍박받지 않으면 다행이다.

즉, 파마의 기운으로는 저들에게 보여 줄 수 있는 것이 없다.

반드시, 신성력이여야만 한다.

그런 의미에서, 교학상장은 정말 사기적인 스킬이 맞는 것 같다.

* * *

"뭐? 알란 학회장이 재판에 참석하지 않겠다 했다고?"

"그렇습니다, 유렌 님."

유렌은 휘하 사제의 보고를 들은 유렌은 속으로 미소 지었다.

원래부터 알란의 재판 참관을 막으려 했는데, 스스로 참관하지 않겠다는 의사를 밝혀오다니.

"검사 결과는 어떻게 됐지?"

"그렇지 않아도 검사 결과를 알려 드려야 할 것 같아 서둘러 왔습니다."

휘하 사제는 누가 들을세라 유렌의 귀에 속삭였다.

그의 보고를 들은 유렌의 입꼬리가 점점 올라가고 있었다.

모든 것은 자신이 원하는 상황대로 흘러가고 있다.

'세상이... 이 나를 돕고 있다.'

마치 자신이 신이 되어 가는 과정을 운명이 돕는 듯했다.

가장 큰 걸림돌이 될 것 같은 루카스를 치워 버리는 과정이, 꽤 순탄하게 흘러갈 듯싶다.

만족스러웠다.

하지만, 유렌이 간과하고 있는 사실이 있다.

원래 신성 제국에 우호적이었던 알란이, 루카스를 변호하기 위해 신성 제국에 왔다는 것.

그러나 유렌은 지금 승리의 기분에 도취하여 그런 것을 생각하지 못하는 상황이었다.

주도면밀한 그가, 잠깐 보인 틈이 커다란 실책이 되었다.

* * *

베르트의 심장, 베르트로 대성당.

베르트의 왕성이기도 하고, 콘클라베의 의결장소이기도 하며, 종교 재판이 열리는 베르트의 가장 핵심적인 건축물이라고 할 수 있다.

세인트로 성당과 마찬가지로 건물 자체가 성유물이며, 신성력을 띄고 있다.

오늘 이곳에서 내 재판이 열린다.

말이 재판이지, 사실상 선고에 가까운 그것.

하지만 오늘 그 선고를 뒤집어야 한다.

사제들의 안내에 따라 재판대 정면의 자리에 착석했다.

"재판장님이신 유렌 추기경께서 입장하십니다. 모두들 자리에서 일어나 주시기 바랍니다."

유렌이 바로 이 신성 재판의 재판장.

모든 판결은 저놈에게 달렸다는 소리다.

하지만 저놈의 목적은 '아탄 탑'의 에너지를 채우기 위함일 뿐.

그러니 어떤 변론으로도 지금껏 무죄가 뜬 적이 없었다.

"사건 번호 HO2369815-34. 루카스 폰 크라우스에 대한 신성 재판을 시작하겠습니다."

재판은 기본적으로 공개 재판이다.

뭐, 나름의 공정성을 보여 주기 위한 쇼인 셈인데 사실상, 이 베르트 전체가 유렌에게 선동을 당한 만큼 공개고 비공개이고는 상관없다.

"혐의 사실부터 말씀드리겠습니다. 피고, 루카스 폰 크라우스는 동부 전선의 영웅이라는 거짓된 가면으로 전 대륙을 속여 왔다."

...그건 사실.

벌써부터 피고 취급하는 것이 기분 나쁘긴 했지만, 굳이 따져 들고 싶지 않으니 얌전히 침묵했다.

유렌이 계속 말을 이어 갔다.

"...얼마 전 공개된 <카일론 관> 영상에서 그에게 마족과의 관련성을 찾아볼 수 있어, 우리 베르트 신성 기사단은 루카스 폰 크라우스를 긴급 체포하여 혐의를 조사했고, 그 결과 놀라운 사실을 밝혀낼 수 있었다. 그의 혈액 검사 결과 혈중 마기의 농도가 92%를 상회하는...."

덜컹-!

"피고, 얌전히 앉으세요!"

말도 안 되는 소리에 벌떡 일어났다.

사제들이 얼른 튀어나와 제지했다.

혈중 마기의 농도가 어떻게 90%를 넘는단 말인가.

사실상 마족이라는 선고나 다름없다.

아니, 마족도 70%를 넘진 않겠다.

이 모든 것은 저 유렌에 의해 만들어진 각본인 것이다.

"하여, 본 법정은 루카스 폰 크라우스를 마족으로 판단, 법정 최고형인...."

"그쯤 해 두시지."

저렇게 판결이 떨어지면 그대로 끝이다.

서둘러 그의 말을 끊어 냈다.

"신성한 재판 중입니다. 피고는 본 혐의에 대해 어떠한 반론도 할 수 없습니다."

"웃기는군."

모든 상황이 그저 우스웠다.

"내가 마족으로 보이나? 동부 전선의 영웅이라 불리는 내가, 마족이라고."

교학상장(敎學相長). 카린 세이트라- 신성력 발현.

푸와아아-!

신성함을 담은 하얀 오러가 내 몸을 감싸기 시작했다.

세계관 최강의 신성력을 가진 성녀, 카린의 신성력이 고스란히 내게 재연됐다.

하지만 이것으로 충분치 않다.

'SB-Ⅳ 사용.'

콰직-

치아 사이에 끼워두었던 SB-Ⅳ를 활성화하자, 더욱 거세게 신성력이 타올랐다.

"너희의 눈으로 똑똑히 보아라. 이 내가... 마족으로 보이나."

* * *

강대한 신성력의 폭풍 앞에 사람들은 경악했다.

이 정도의 신성력은, 성녀 카린 조차도 발할 수 없는 것이다.

마치, 신 그 자체가 현현한 듯, 아득한 신성력이 베르트로 대성당을 감싸고 있었다.

한 사람이 발현한 신성력이라고는 도저히 믿을 수 없는 것이다.

'말도 안 된다... 루카스가 신성력을 쓴다는 소리는 듣지도 보지도 못했는데....'

루카스의 몸에서 발현된 신성력으로 인해, 유렌의 계획이 어그러지고 있었다.

이대로 두면 안 된다.

무슨 수를 써서 이 상황을 반전해야 한다.

다행히도 유렌에게 그런 수단이 존재한다.

지금껏 자신을 베르트의 실질적인 왕으로 군림할 수 있게 한 특성이....

* * *

놈의 집행봉에서 거대한 신성력이 솟아오르기 시작했다.

저 신성력이 의도하는 바는 명확하다.

'나를 선동하려 하고 있다.'

저 기운이 나를 잠식하는 순간, 그대로 나는 놈에게 선동당하겠지.

놈이 말하는 것을 모두 믿을 것이고, 그것이 진리인 양 생각하게 될 것이다.

겨우 신성력으로 뒤집어놓은 상황이 다시 제자리로 찾아가다 못해 악화될 수도 있는 것이다.

그렇게 되면, 나는 끝이다.

하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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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카데미의 신화급 교수가 되었다 39화

39. 신성 제국 베르트 (4)

'아, 아니 어떻게?'

유렌의 눈이 당혹감으로 물들었다.

무려 자신의 신성력을 모조리 쏟아 루카스를 노렸다.

그러나 루카스에게는 일말의 동요도 보이지 않는다.

자신의 능력이, 전혀 통하지 않은 것이다.

지금까지 유렌을 지탱해왔던 완전무결한 특성이 루카스에게는 티끌만큼도 통하지 않는다.

"저, 저것은 거짓된 신성입니다! 여러분들은 지금 속고 계신 겁니다!"

유렌은 루카스를 부정했다.

신성력을 모조리 소모해 버린 이상, 믿을 곳이라고는 이미 선동을 끝낸 사람들뿐.

"어, 어...."

하지만 신성력이 바닥난 유렌의 선동은 루카스의 압도적인 신성력에 의해 그 힘이 점점 퇴색되고 있었다.

애초에 신성 제국에서 신성력이란 발언권과도 같은 것.

지금은 누가 뭐라 해도 루카스가 유리한 상황이었다.

'크윽, 일단 이 재판을 어떻게든 끝내고 수습해야 한다.'

유렌이 내릴 수 있는 최선의 해결책이었다.

일단 루카스를 치우고 다시금 추슬러서 수습한다.

신성 제국의 폐쇄성을 믿는다.

성유물이 아니면, 입국도 출국도 불가한 이 천연 요새의 폐단을 믿는다.

"본 재판은 임시 폐정하고, 루카스 폰 크라우스를 본국으로 송환-"

"거기, 잠깐. 아직 묻고 싶은 것이 남았네만?"

시선을 주목하게 만드는 웅혼한 기운이 담긴 외침.

사람들이 시선을 돌리자, 앙상한 몰골의 한 노인과 함께 알란 학회장이 모습을 드러내었다.

그 노인의 얼굴을 확인한 유렌의 표정이 딱딱하게 굳었다.

"자네는 이분의 의문을 하나도 남김없이 해소해야 할 것이야. 그렇지 않으면...."

알란의 흉흉한 기세가 베르트로 대성당 안을 잠식했다.

숨을 쉬기 힘들 정도로 엄청난 위압감.

사람들의 주목이 쏠리자, 알란은 노인을 부축하며 중앙으로 걸어들어왔다.

"말씀하시지요, 총장님."

"감사합니다, 학회장님."

노인의 정체는 바로, 하인즈.

하인즈는 알란에게 인사하고 몸을 똑바로 세웠다.

모진 고초가 가득 담긴 몸이었으나 그 존재감은 사람들을 압도했다.

"유렌 추기경, 나를 기억하시오? 마족 발탄과 짜고 아탄 탑의 공사현장으로 몰아넣은 나를 모른다 하진 않겠지!"

서두부터 터트린 폭탄선언에 사람들은 경악했다.

"모두들 잘 들으시오! 유렌 추기경의 목적은 처음부터 아탄 탑의 완공, 그것뿐이었소. 저 탑은 성유물 따위가 아니오! 저것은 초고대 문명의 편린이자 최악의 무기 중 하나!"

"신성 기사단은 무얼 하고 있습니까! 당장 저 헛소리를 내뱉는 노인을 체포하세요! 어서!"

유렌이 악을 쓰자, 사방에서 문이 열리며 신성 기사단이 나타나 포위하듯 둘러싸기 시작했다.

"이 미친 광신도 놈들이...."

알란이 그들의 행태에 분노하며 기운을 끌어올리는 그 순간.

"다들 멈추세요!"

또 다른 거대한 신성력.

"카린님!"

성녀, 카린이 거대한 광채를 뿌려대며 등장했다.

"신성 기사단은 칼을 거두세요. 성녀로서, 신성 기사단장으로서의 명령입니다."

그녀의 말에 신성 기사단은 일말의 망설임 없이 검을 착검했다.

카린이 움직이자, 해일처럼 그들이 길을 만들었다.

그녀는 하인즈의 옆에 서서 유렌을 향해 물었다.

"유렌 추기경, 이분이 말씀하시는 것이 모두 사실인가요?"

"그, 그건...."

유렌은 대답할 수 없었다.

모두 사실이니까.

"신성 기사단은 들으세요. 지금 당장, 신성 제국의 배신자- 유렌 추기경을 체포하세요."

"명을 받듭니다."

"아니야, 이건 아니야!"

유렌이 절규하며 끌려 나갔다.

* * *

'하아....'

카린의 등장은 참으로 시기적절한 것이었다.

물론 신성 기사단쯤이야 알란이 알아서 처리할 테지만, 문제는 나도 나서야 할지 모른다는 것.

상대적으로 저들이 혼란에 빠져 위축되어 있으니 몇 명 정도는 어떻게 상대할 수도 있겠지만, 결국 밑천이 드러날 것이다.

착각만으로 먹고 살던 내게는 아주 끔찍한 결말이 도사리고 있는 것이다.

시기적절하게 등장해 준 카린 덕분에 그런 고생은 덜었다.

"결례를 범했습니다, 루카스 교수님... 그리고...."

"하인즈라고 합니다."

"하, 하인즈? 현자 하인즈 말씀이신가요?"

"몇몇 사람들이 그렇게 부르는 것뿐, 그저 책 읽기를 좋아하는 노인일 뿐입니다."

"어, 어떻게 이런... 신성 제국을 대신에 사죄드리겠습니다. 그리고 루카스 교수님께는 뭐라 드릴 말씀이 없습니다. 모셔온 과정에서부터 결례를 범한 것으로 모자라...."

뻔한 레퍼토리의 사과가 이어졌다.

그러나 내 의식은 악을 쓰며 끌려가는 유렌에게 더 쏠려 있었다.

"저자는 어떻게 되는 겁니까."

"유렌 추기.... 아니, 유렌 저자는 신성 제국의 율법에 따라 처리될 것입니다."

순간, 뭔지 모를 께름칙함이 들었다.

이 레퍼토리, 너무나도 익숙하다.

저렇게 끌려간 빌런이 결국 위기 탈출해서 나중에 주인공에게 더 큰 위협이 되는....

작가에겐 에피소드 하나가 더 추가되는 셈이지만, 독자에겐 예정된 고구마가 되는 바로 그 전개.

"불길한 예감이 드는군."

이건 작가이기 이전에 독자로서도 오랜 기간 장르문학을 즐겼던 내 본능이 외치는 것이다.

서둘러 유렌이 향한 쪽으로 몸을 날렸다.

* * *

[동부전선의 영웅, 신성 제국에 체포?]

[루카스 폰 크라우스 교수, 신성 제국에 조사차 방문 중]

[알란 학회장과 동행... 혐의는 비공개.]

학회에서 쉬쉬한다고 했지만, 루카스에 대한 소식은 결국 대륙 전역으로 퍼지게 되었다.

당연히 사람들의 이목을 끌 수밖에 없었다.

루카스 교수와 신성 제국.

참으로 묘한 대립이었다.

한쪽은 동부전선의 영웅이고, 또 다른 하나는 반마의 선봉.

공통점이 더 많을 것 같은 둘이 현재 대척을 하는 아이러니한 상황.

하지만 성유물을 통하지 않으면 입국은 물론이고 출국 또한 불가능한 베르트의 특수성 때문에 그 이후의 상황은 알 수 없다.

그러다 보니 사람들의 시선은 자연히 루카스의 소속인 그라스코나 아에로크로 향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그 두 진영은 침묵을 지키고 있었다.

사람들의 의문은 깊어질 수밖에 없었다.

'답답하구나!'

로널드 부총장은 신문을 구기며 답답함을 삼켜냈다.

루카스 교수가 어째서 신성 제국에 잡혀가야 하는가.

이미 세 차례나 루카스의 손에 의해 마족들이 소탕되는 것을 똑똑히 보지 않았는가.

하지만 그들은 나설 수 없다.

자신들은 어디까지나 교육기관.

섣부르게 나섰다가는 학생들을 투쟁의 화마에 내던지는 꼴이 될 수밖에 없다.

'그나저나 왕실은 무엇 하는가! 루카스는 아에로크에서 더욱 중한 인재가 아닌가!'

로널드는 새삼 왕실의 침묵이 원망스러웠다.

동부전선의 영웅인 루카스가 잡혀가고 있는데 왕실은 무엇을 하고 있는가.

그러나 아에로크의 제왕, 로메로 역시 답답한 것은 마찬가지였다.

그는 루카스가 체포되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오히려 모종의 이유로 신성 제국에 스스로 들어갔다고 보는 것이 맞았다.

그 이유란 당연하게도 얼마 전 그가 데얀을 통해 의뢰한 <마나와 존재>에 담긴 암호 해독과 연관이 있을 것이다.

암호 해독 결과 놀랍게도 베르트를 향하고 있었고, 루카스에게 전달이 되었다고 하니, 루카스는 스스로 베르트에 걸어 들어간 것이다.

사실 당장이라도 신성 제국에 따지고 싶은 마음은 굴뚝같다.

대륙의 현자도 모자라, 동부전선의 영웅까지.

그러나 신성 제국의 입지는 '세계의 정의'.

명분이 밀린다.

무엇보다 병력이 없다. 현재 아에로크의 이그너에 밀집하다시피 한 병력을 빼면 아에로크는 금방 멸망할 것이다. 그것이 아니더라도 현재 전선에서 가장 가까운 왕국은 아에로크. 하여- 신성 제국의 도움이 무엇보다 절실하다는 점이 그의 발목을 붙잡고 있었다.

또한, 전쟁을 선포한다고 하더라도 신성 제국에 들어갈 방법이 없다.

그러나 그들이 모르는 사실이 있었다.

그들이 걱정하는 모든 것은 해결되었다는 사실.

그리고 신성 제국에 어떠한 변화가 시작되고 있다는 사실을 말이다.

* * *

"크윽, 이렇게 끝낼 수는 없다."

유렌의 주변으로 이미 목이 달아난 시체가 즐비했다.

'루카스, 이 빌어먹을 루카스!'

유렌은 루카스에게 진득한 원한을 품으며 아탄 탑의 현장으로 달렸다.

아탄 탑만 있으면, 다른 것들 따위 어떻게 되어도 상관없다.

"추, 추기경 각하...."

아탄 탑 현장은 그야말로 가관이었다.

일꾼들을 감독해야 할 감독관들이 모조리 엎어지고 기절했다. 깨어 있는 이들은 어디 한군데씩 부러져 운신이 불가했다.

"죄, 죄송합니다. 어떤 노인이 들이닥치는 바람에-"

콰직-

유렌은 자신에게 다가오는 감독관의 머리를 밟아 터트리곤, 아탄 탑을 향해 발을 뻗었다.

아직 아탄 탑은 제대로 완성되지 않았다.

하지만 그런 것을 따질 틈이 없다.

불완전한 것이라도 가동시켜야만 하는 상황에 직면한 것이다.

'루카스, 내 계획을 망친 너를 저주한다. 내 이 아탄 탑의 첫 제물로 너를 바칠 것이야.'

유렌은 탑으로 향하며 루카스에 대한 저주를 계속해서 퍼부었다.

루카스에 대한 원망도 있지만, 이런 원념과 악의 또한 아탄 탑에게는 먹이가 되기 때문이다.

감독관들을 일부러 악의가 가득한 놈들로 뽑은 것이 다 이유가 있는 셈이었다.

섬찟-!

그때였다.

갑자기 등줄기에서부터 느껴지는 이상함에 돌아보았다.

"루카스...."

마치 그려 놓은 듯, 이질적으로 존재하는 사내.

루카스가 있었다.

* * *

"멈춰라. 네 계획은 이미 끝났다."

성녀를 포함한 나머지들처럼 시체에 발이 묶였다면 이미 유렌은 탑에 당도했을 것이다.

비록 완공이 되지 않았다고는 해도, 초고대 문명의 병기.

무슨 사고가 터질 것은 자명했다.

"아니, 내 계획은 끝나지 않았다. 이 탑만 있으면...."

"과연 그럴까?"

나는 품속에서 어떤 조각 하나를 꺼내 들었다.

'제발 속아라....'

나는 지금부터 운명을 건 블러핑을 할 것이다.

내가 <아.천.망>의 작가이기에, 이 빌어먹을 엔딩을 구상한 본인이기에 할 수 있는 블러핑이었다.

내 손을 유심히 살피던 유렌의 표정이 딱딱하게 굳었다.

"그, 그것은...."

속았다.

놈에게서 반응이 왔다.

"그래. 아탄 탑의 핵심 조각이다. 이것이 내 손에 있는 이상- 너는 그 계획을 실현시킬 수 없어."

사실 내 손에 들려 있는 것은 탑의 핵심 조각이고 나발이고가 아니다.

핵심 조각은 탑에 얌전히 잘 설치되어 있을 것이다.

이것은 내가 '탑에는 기동을 위한 핵심 조각이 존재한다'라는 설정을 썼기에 할 수 있는 거짓이었다.

"네놈이 그걸 어떻게...."

"나는 네가 가진 아픔을 안다. 너를 이해한다. 그러니, 이만 포기해라."

"네 놈이 뭘 안다고-"

"유렌 소사르트. 신실의 일족이여."

"!"

놈의 표정이 경악으로 물든다.

소사르트.

그들은 신성 제국의 어떤 이들보다 신실한 일족이다.

하지만 소사르트 일족은 멸족했다.

다름 아닌, 인간들에 의해서. 그것도 신의 뜻을 전파하다가 말이다.

그래서 놈은 인간을, 일족의 멸망을 지켜본 신을 증오한다.

그렇기에 놈은 신이 되어 이 세상을 멸망시키려 하는 것이다.

엔딩을 위해 만든 놈이라 그럴듯한 이유가 필요했다.

지금에 와서는 내 발목을 잡을 뿐이지만.

"너의 분노는 내가 감당하겠다."

"그대가, 그대가 어떻게 내 분노를 감당한단 말인가!"

실책이다.

감당할 수 없는 거대한 분노가 공간을, 탑을 뒤흔든다.

아탄 탑이 놈의 분노에-

공명한다.

콰르릉! 쾅! 쾅!

마른하늘에 날벼락이다.

탑은 흩어져 가루가 되었다.

...전혀 반길 일이 아니다.

그 가루는 유렌의 주위로 휘몰아쳐 몰려들었다.

악신의 재림이 시작되려 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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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기를 감지한 독자님들의 후원이 이어진다.

하지만, 저것은 이렇게 감당할 수 있는 종류의 것이 아니다.

절망감이 뇌리에 떠오르려는 찰나-

[선호작이 10,000을 돌파하였습니다!]

[축하의 의미로 썰피아 1위 작품의 스킬을 1회에 한해서 빌려올 수 있습니다.]

[현재 썰피아 1위 작품 : <교수님이 개강함>]

§ 아카데미의 신화급 교수가 되었다 40화

40. 신성 제국 베르트 (5)

"크으으...인간을 멸하리라...."

탑이 채 완성되지 않아서인지, 점점 모습을 드러내는 유렌은, 이지를 상실한 것처럼 보였다.

오직 '인간을 멸한다'라는 본능만 남은 괴물.

그렇기 때문에 더욱 위협적이다.

"저, 저게 뭐야!"

뒤늦게 도착한 사람들의 입에서 경악성이 터져 나온다.

"크아아아!"

유렌이 울부짖었다.

그것만으로 전신이 저릿저릿해진다.

"인간... 모두 멸하리라...!"

"오, 신이시여...."

이 와중에 신을 찾는 성직자들의 모습이 어처구니가 없다.

저놈의 터치 한 방이면 여기 있는 사람들 모두- 그렇게나 찾아대는 신과 면담을 할 수 있으리라.

하지만 난 신 따위 보고 싶지 않다. 가급적이면 오래도록. 나는 살고 싶다.

유렌이 휘두르는 어마어마한 손을 바라보며, 간절히 외쳤다.

'빨리 빌려와, 씨발!'

[<교수님은 개강함>의 스킬, '개강(開講)'을 빌려옵니다.]

* * *

"꺄아악-!"

루카스를 향해 휘둘러지는 거대한 무언가.

카린의 입에서 끝을 직감한 비명이 터져 나왔다.

콰아아앙-!

운석이 땅에다 내려찍는 소리가 그러할까.

이것은 마치, 성전에 기록된 신벌처럼 인간의 힘으로는 감당할 수 없을 것처럼 느껴졌다.

'끝... 이야.'

비단 루카스뿐만이 아니다.

저것을 막지 못하면 대륙의 명운도 끝이고, 저런 존재를 만들어 낸 신성 제국 역시 끝이다.

자신의 안위가 걱정되는 것은 아니다.

그저 받드는 신의 이름을 신성 제국 스스로가 더럽혔다는 사실이 그녀를 괴롭게 했다.

이제 저 괴물은 우리를 짓밟을 것이고 우리는 신성을 더럽힌 죄로 안식 없는 죽음을 맞이하게 되리라.

카린의 눈이 질끈 감겼다.

"어, 어어?"

그런 그녀의 귀에 사람들의 의아함 가득 담긴 탄성이 들려오고 있었다.

뭐지, 뭘까.

조심스레 뜬 눈에 비치는 광경은-

그야말로 믿지 못할 것이었다.

* * *

<교수님이 개강함.>

이 소설은 후레타 작가의 역작으로, 주인공인 교수가 그야말로 '개' 강한 소설이다.

이 소설을 읽는 내내 나는 내 필력에 좌절했고, 한없는 우울감에 처박혀야 했다.

유료로 가서도 승승장구하는 모습을 보며 배 아파하곤 했다.

'그랬던 작품이, 이제는 내 구명줄이 되다니.'

인생이란, 이토록 아이러니의 연속이다.

"인간... 살아 있다...."

"죽을 줄 알았는데, 살아 있어서 놀랐나."

놈의 팔을 꽉 붙든 채로 대꾸했다.

작중 주인공의 스킬, '개강'.

그야말로 '인.자.강(인간 자체가 강함)' 스킬의 정수인, 이 스킬.

"교수님이 왜 강한 줄 아냐?"

뿌득-

말아쥔 주먹을 그대로 놈의 얼굴로 뻗었다.

"왜냐면, '개강'하거든."

"노재...."

뻐억-

꽈아아아아앙!

놈은 말을 끝마치지 못하고 그대로 '소멸'했다.

다시는 아재개그를 무시하지 마라.

툭-

놈이 소멸한 자리에, 유렌을 상징하는 묵주만이 처량하게 남아 떨어졌다.

"후우...."

그대로 주저앉고 싶지만 그럴 수 없다.

저기서 달려오는 사람들 때문에.

"루카스 교수, 괜찮나!"

"괜찮습니다. 그나저나 신성 제국의 동의 없이 멋대로 유렌을 처리한 점, 양해를 부탁하지."

"아닙니다. 루카스 교수님이 아니었다면... 더 큰 위험을 마주해야 했을 테지요. 오히려 신성 제국은 루카스 교수님께 감사를 전하는 바입니다."

"이제 상황이 원만하게 해결된 것 같으니, 조금 더 건설적인 이야기를 해 보자고. 제삼자인 내가 봤을 때, 신성 제국에서 루카스 교수와 하인즈 총장께 갚아야 할 것이 많지 않나?"

알란이 아주 서슴없이 본론을 빼 들었다.

내가 해야 할 일을 대신해 주다니, 존경심이 무럭무럭 샘솟는다.

"신성 제국이 학회에서 벌인 일은 이미 매스컴을 통해 온 대륙에 퍼졌을 것이고...."

신성 제국이 나 하나 잡아가겠다고 벌인 일은 지금쯤 온 대륙에 퍼졌을 것이다.

아에로크와 그라스코에 시선이 집중되었을 것이고, 이곳에서 벌어진 일들에 대해 대륙이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을 것이다.

왜냐, 내가 그렇게 만들어 두고 왔으니까.

"루카스 교수가 무사 생환하면 당연히 신성 제국에 의심의 꼬리표가 붙겠지. '세계의 정의'를 표방하는 신성 제국이 말도 안 되는 누명을 씌워가며 루카스 교수를 잡아 두질 않나...게다가 대륙을 대표하는 최고의 석학이자 현자이신 하인즈 총장님까지...."

"이 노인에 대한 보상은 괜찮소. 제가 이곳 베르트에 갇혀 있었다는 사실은 아직 밝혀지지 않았...."

"총장님."

나는 사람 좋게 넘어가려는 하인즈의 말을 끊었다.

"로널드 부총장님은 아십니다. 걱정을 많이 하고 계십니다."

"음?"

"근데 총장님께서 신성 제국의 '호.의'를 거절하셨다는 것을 알면...."

"으음!"

하인즈의 몸에 작은 경련이 일었다.

철저한 실리주의자인 로널드.

그런 그가 당연히 받아야 할 것을 알아서 거절했다는 소식을 들으면 어떻게 될까.

내 교수 면접 때를 생각해 보면...

결코 좋은 그림은 아닐 것이다.

"그렇지 않아도 신성 제국이 할 수 있는 최선의 보상 방안을 마련할 예정이었습니다."

다행히 카린에게 양심은 있었던 모양이다.

"여러분들께 한가지 부탁드릴 것이 있습니다."

"뭔가?"

"무엇인가요?"

"유렌이 벌인 일은 묻어 주십시오."

"아니, 그걸 묻자니, 자네 지금 제정신인가!"

"유렌의 일을 터트리면 베르트의 입지가 흔들립니다. 마족과 한창 전쟁 중인 상황에서 베르트의 역할은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신성 제국은 계속해서 반마의 선봉으로 굳건해야 합니다."

그래야 내가 산다.

지금 전쟁 상황에서 베르트의 역할이 큰 것은 부정할 수 없다.

만약 유렌의 일로 신성 제국의 입지가 흔들리고 전력이 악화된다면, 내게 위험만 될 뿐, 이득이 전혀 없다.

멀리 봐야 한다.

"루카스 교수님...."

['카린 세이트라'의 호감도가 대폭 상승합니다. +50]

['카린 세이트라'가 당신에게 무조건적인 지지를 보냅니다.]

내 본심을 모르는 카린이 감명이라도 받았는지, 호감도가 대폭 상승했다.

성녀의 미움을 받는 것보단 지지를 받는 쪽이 낫지.

"아, 저에 대한 보상은 논의에서 빼주십시오. 그저 제 학생들에게 영향이 가지 않도록 조치만 해 주시면 됩니다."

"아, 아닙니다. 그럴 순 없습니다."

당연히 그래야지.

단박에 받아들이면 서운할 뻔했어.

"그렇다면...."

짐짓 고민하는 척하면서 소멸한 유렌이 떨군 묵주를 집어 들었다.

"이거면 되겠군."

"그건...."

카린의 얼굴에 당혹이 일었다.

이것은 콘클라베의 증표.

신성 제국의 의결권을 대표하는 것이나 다름없다.

외부인에게 넘길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하지만 굳이 내가 이걸 집어 든 이유는 이 묵주가 반드시 필요하기 때문이다.

추기경급인 유렌의 신성력과 아탄 탑에서 비롯된 혼돈의 기운이 스민 이 묵주가.

"알겠습니다. 유렌의 묵주를 루카스 교수님께 드리겠습니다. 하지만...."

조건이 있나? 괜히 정화하겠답시고 건들면 일이 꼬이는데.

"그것만으로는 저희의 마음이 불편합니다. 보상안을 따로 마련할 테니, 거절하지 말아 주세요."

"...그러죠."

생각했던 최악이 아니라 안심했다.

대강의 보상안이 논의되고 더 자세한 것은 각자의 대변인을 통해 이야기 나누기로 했다.

나도 그렇고 하인즈도 그렇고 호구 잡히기 딱 좋은 성격이라 차라리 로메로나 로널드에게 맡기는 것이 낫다는 판단이었다.

아에로크와 그라스코에 연락해 자세한 사정을 알리고, 가까운 시일 내에 3자 회담을 진행하기로 결정이 되었다.

정말, 모든 것이 끝났다.

"우리 신성 제국 베르트는 루카스 교수님의 은혜를 잊지 않을 것입니다. 루카스 교수님께서 원하시면 언제든 베르트는 당신의 힘이 될 것입니다. 이 모든 것은 주신의 이름 앞에 맹세합니다."

아, 예. 그러세요.

"샤이닝 로드의 목적지를 그라스코로 설정하겠습니다."

베르트에서 그라스코까지는 금방이다.

샤이닝 로드가 있으니까.

물론, 결계 때문에 그라스코 내부까지 들어갈 순 없지만, 이게 어딘가.

빛의 길에 오르는 것만으로 그 먼 거리를 이토록 짧게 단축한다는 것은 마공학 이상의 편리함이 있었다.

순식간에 그라스코 정문에 도착했다.

미리 소식을 들은 이들이 정문 앞에 나와 대기 중이었다.

"교수님!"

"루카스 교수, 하, 하인즈 이 친구야...."

리트가 가장 먼저 나를 반겼고, 그 뒤로 로널드가 뛰어나왔다.

"고생 많았네, 고생 많았어."

그는 내 어깨를 두어 번 치고는 곧바로 하인즈를 살폈다. 깊은 걱정이 뚝뚝 묻어나는 행동들이었다.

"로널드, 나 때문에 괜한 마음고생을 했나 보군. 가뜩이나 노안이 더 쭈글해졌어."

"그래. 네놈이 결재해야 할 사안이 이만큼이나 쌓여 있느니라!"

"원, 그 친구 농담도."

로널드와 하인즈 사이의 오랜 친분만큼 하인즈의 태도도 한없이 편안해 보였다. 하지만 편안함 속에 애틋함이 묻어 이산가족과도 같은 상봉이 이어졌다.

"이러고 있을 때가 아니지, 자, 다들 뭣들 하나! 어서 총장님을 모시게."

교수들이 하인즈를 부축해 그라스코 안으로 사라졌다. 교수들이 사라지자 로널드가 내 쪽으로 몸을 돌려 다가왔다.

"이야기는 다 들었네. 자네가 하인즈 때문에 신성 제국엘 갔다지."

"그렇게 됐습니다."

"고생 많았네. 고생 많았어."

"아닙니다."

"아이고, 지친 사람을 붙잡고 쓸데없는 말을 늘어놓았구만. 어서 가 보시게."

"제가 모시겠습니다, 교수님."

리트에게 짐을 맡기고, 몸을 돌리려는 찰나.

"저기, 루카스 교수님."

카린이 나를 불러 세웠다.

그리고는 내게 다가와 볼에 살포시 입 맞추었다.

"성녀인 제가 할 수 있는 최고의 축복이랍니다. 교수님의 앞길에 신의 축복이 함께하길."

[새로운 알림이 도착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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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알리따 님께서 1,000G 후원하셨습니다.]

[KH용이다 님께서 500G 후원하셨습니다.]

"...감사합니다."

뜬금없이 터진 후원에 왠지 모르게 입가에 미소가 번졌다. 왕도네도 섞여 있는데, 이게 축복의 위력? 대단하다, 성녀의 축복!

['카린 세인트라'의 호감도가 대폭 상승합니다. +20]

['리트(리리트)'의 호감도가 하락합니다 -10]

"그, 우, 웃으시는 건...."

"그스늠... 쁠르 그스즈으...(교수님...빨리 가시죠...)"

...얘네 둘 왜 이래?

* * *

루카스가 드디어 그라스코에 복귀했다.

오랜 휴강을 안타까워하는 학생도 있는 반면, 그렇지 않은 학생도 존재했다.

루이나 엘라임.

본래 마법사인 그녀에게 전투학이란 적성에 너무나도 맞지 않는 것이었다.

자신의 목적이 아니었다면, 이 전투 학부에 진학하는 일 또한 없었으리라.

하지만 이미 진학은 해 버렸고, 자신의 목적을 위해선 이곳에서 졸업할 때까지 붙어 있어야 한다.

그나마 휴강이 길어 버틸 수 있었던 것이었는데...

'그 교수는 무슨 복귀를 하루 만에 한대?'

그라스코에 도는 소문으로는 신성 제국에서 엄청난 일이 있었다고 하는데, 루카스는 복귀한 다음 날 바로 강의를 시작한다고 한다.

투덜거리고 있는 사이, 강의 시작 시각이 다 되었다.

벌컥-

칼같이 정확한 시간에 강의실 문이 열렸고, 이제는 새삼 놀라기도 지겨운 그림 같은 자태의 루카스가 고아한 분위기를 풍기며 모습을 드러내었다.

잘생기긴 더럽게 잘생겼네.

이렇게 보면 휴강이 끝난 것도 나쁘지 않은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루카스는 특유의 서늘한 눈빛으로 학생들을 훑고는 입을 열었다.

"휴강이 길었다."

네네, 잘 알고 계시네요.

루이나는 속으로 비꼬았다.

"그 시간 동안 너희들이 놀지 않았다는 것을 증명해라."

네?

갑자기 이게 무슨 뜬금없는 소리란 말인가.

사과가 이어질 줄 알았던 대화의 흐름이, 학생들이 자신들을 증명하는 흐름으로 완전히 뒤바뀌어 버렸다.

"...간단한 테스트를 하지. 이것으로 밀린 강의를 대체하겠다."

그, 그게 무슨-!

§ 아카데미의 신화급 교수가 되었다 41화

41. 시험 기간 (1)

-이게 네가 바란 결말인가?

주변이 온통 불길이다.

익숙한 얼굴의 시체가 굴러다닌다.

한없는 절망감이 나를 옥죄어 온다.

-너는 바꿀 수 있지 않았던가? 너라면, 너라면 예정된 결말을 틀어 버릴 수 있지 않았는가?

미안, 미안해. 나도 바꾸고 싶었어.

-예정된 결말을 맞이할 것인가, 아니면 결말을 깨부술 것인가.

주변의 풍경이 다 타고 재가 되어 사라졌다.

허무함만 남은 공허의 공간에서, 분명한 목소리가 울렸다.

-지켜내라, 반드시.

* * *

"으음."

새벽 다섯 시.

이 빌어먹을 기상 시간은 어긋나질 않는다.

몸 상태는 최상이다.

그러나 어딘가 고장이 난 듯한 감각이 전신을 지배한다.

누군가 내 목을 틀어쥐고 강하게 압박하는 느낌이다.

혹시 기억나지 않는 꿈 때문인가.

매번 기억하려 노력하지만, 깨면 사라지는 기억을 나더러 어쩌란 말인가.

조금 더 자면 나아질까 싶어 다시 잠을 청했지만, 정신만 또렷해질 뿐이고, 오히려 조급해지는 느낌이다.

카일론 관에서 늘 그렇듯, 일일 훈련까지 해봤지만 달라지는 것은 없었다.

항상 먹히는 방법이었지만, 이제는 통하지 않는다.

뭔가.

이 공허함은 뭐란 말인가.

이 압박감은 무엇에서 비롯되는 것이란 말인가.

"교수님, 나오셨어요."

"그래."

오랜만에 찾은 내 집무실에 도착해서도 이런 압박감은 사그라들지 않았다.

오히려 더욱 심해지는 것만 같았다.

"교수님, 무슨 일 있으세요? 편찮아 보이세요."

"없다."

"편하게 말씀하세요. 제가 도움이 될 일은 없을까요?"

그래.

혹시 정신계 능력을 가진 리트라면,

그녀라면 지금 이 고통을 조금이나마 덜어줄 수 있지 않을까.

마치 내가 이곳에 끌려오기 전 복용했던 약의 효과를 낼 수 있지 않을까.

"...아니다. 괜찮으니 신경 쓰지 말아라."

잠깐 그런 생각을 했지만, 이내 고개를 저었다.

약은 잠깐 상황을 모면할 뿐이다.

근본적인 원인을 제거하지 않는다면 오히려 더욱 심해지겠지.

리트의 도움을 받는 것도 비슷하리라.

오랜 경험을 바탕으로 내린 결론이었다.

"강의 공지는 제대로 했겠지?"

"네... 그런데 교수님 안색이 너무 안 좋으세요. 잠깐이라도 쉬시는 게...."

"됐다. 그나저나 리바이의 마정석은 제대로 흡수했나?"

"아, 아직...."

"곧 수업 시작이군. 수업이 끝날 때까지 진전을 보이도록."

"네에...."

오랜 휴강이다.

그렇지 않아도 <카일론 관>에서 있었던 일 때문에 한 번 휴강을 진행했는데 베르트에 얽히는 바람에 예정에도 없던 휴강이 더욱 길어져 버렸다.

내 학생들은 모두 내게서 무언가를 배우기 위해 모인 엘리트들.

긴 휴강이 그저 미안하기만 하다.

벌컥-

문을 열자 오랜만에 보는 학생들의 얼굴이 시선에 담겼다.

연단에 서서 그들 하나하나의 얼굴을 살펴보았다.

'얼굴들이... 좋군.'

이것들이.

"휴강이 길었다."

그동안 놀았다, 이거지.

"그 시간 동안 너희들이 놀지 않았다는 것을 증명해라."

학생들 사이에 의문이 번진다.

당황하고, 곤란해했다.

"...간단한 테스트를 하지. 이것으로 밀린 강의를 대체하겠다."

그 순간-

전신을 짓누르고 있던 압박감이,

조금은 편해졌다.

* * *

"너희가 아는 최고의 기술을 선보이고, 증명해라. 내가 평가하마."

휴강 기간 동안 조금의 진전이라도 있었는지, 오히려 퇴보는 없는지 점검하겠다는 뜻이었다.

그야말로 '증명'하는 자리인 것이다.

"제가... 먼저 증명하겠습니다."

가장 먼저 나선 이는 데얀.

아에로크와 루카스 사이의 연락책을 하면서도 단련을 쉬지 않았기에 자신 있었다.

"제가 아는 검술은 오직 로크 소드 뿐입니다. 그 모든 것을 선보이겠습니다."

데얀은 아에로크에 충성하는 기사답게, 아에로크 기사들의 가장 기본이라 할 수 있는 로크 소드를 선보였다.

발검에서부터 로크 소드의 오의, 인피니티 슬래쉬까지.

정통 아에로크의 검식을 완벽하게 구현해 내자, 학생들의 환호성이 터졌다.

'저 녀석은 뭐야?'

'지금까지 존재감이 제일 없다고 생각했는데, 알고 보니 복병이었잖아?'

'저 정도면 제시보다 나은 거 아니야?'

제시 애슬론으로 굳어졌던 교내 최강자의 이미지가, 데얀 쪽으로 옮겨올 정도였으니.

"B-."

"...."

하지만 루카스의 평가는 야박하다 싶을 정도였다.

"발검은 군더더기 없이 좋았다. 하지만 마지막에 보여 준 인피니티 슬래쉬는 그 무게 중심이 제대로 배분되지 않아 위력이 반감되었다. 검 끝에 집중했다면 무한히 이어지는 검격- 인피니티 슬래쉬의 정수를 보여 줄 수 있었을 테지."

"...맞습니다."

루카스의 지적은 정확했다.

마지막에 무게 배분이 틀어진 것은 단련의 부족이다.

그것은 데얀 본인도 너무나 잘 알고 있다.

어떠한 변명의 여지도 없다.

"발검만 보았다면 A를 주어도 부족함이 없었을 것이다. 나는 분명 '너희가 아는 최고의 기술'을 선보이라고 했고, 최고가 아닌 것을 포함하였으니 감점한 것이다. 들어가라."

데얀은 평가를 받아들고 루카스에게 깊이 고개를 숙인 후 돌아섰다.

"다음-"

'간단한' 테스트는 계속해서 이어졌다.

* * *

'저, 저게 B-라고?'

루이나는 그야말로 발등에 불이 떨어진 기분이었다.

자신이 보기에 데얀이 펼친 로크 소드는 완벽에 가까운 것이다.

물론 마법사의 시선으로 본 것이라 플러스 요소가 있었겠지만, 그런 것을 차치하고서라도 데얀의 로크 소드는 훌륭했다.

-로크 소드를 저렇게 정확하게 구사하다니, 왕실에 연이 닿은 사람인가?

-에이 설마, 성이 없잖아.

-혹시 쫓겨난 근위 기사라던가....

당장 주변의 반응만 봐도 데얀이 새로운 화제로 떠오르지 않았는가.

그만큼 데얀이 준 임팩트는 강렬했다.

루카스가 무언가 지적하긴 했지만, 루이나는 알 수 없는 것이었다.

주변은 '역시 그렇군....'같은 이해한다는 반응이다.

'도대체 얼마나 잘해야 루카스 교수를 만족시킬 수 있는 거야?'

"C다."

"D-. 네 최고의 스킬을 선보이라 했을 텐데."

하지만 뒤에서 연이은 C와 D의 행렬에, B-가 얼마나 대단한 점수인지 새삼 비교가 되었다. 하지만 그의 점수 책정 방식은 더욱더 알 수 없는 미궁에 빠지고 있었다.

루이나가 보기에도 엉망이라 느껴졌던 검식을 펼친 학생이 C+를 받기도 했기 때문이다.

그런 이들이 보이면 루이나의 마음에 희망이 불쑥불쑥 자라는 것이었다.

"다음은... 에일론, 너냐."

아이러니하게도 이 전투 학부에서 가장 많은 기대를 받고 있는 에일론.

그가 오리엔테이션에서 보여 준 퍼포먼스가 뇌리에 강하게 남았기 때문이리라.

특히 루이나는 에일론에 대한 기대가 컸다.

마공학과 마법.

기사들이 득실한 이곳에서 에일론에게 묘한 동질감을 느끼고 있었던 것이다. 또한, 그가 보여 준 마공학적 수준이 루카스 교수의 코를 납작하게 해 주지 않을까 하는 기대도 있었다.

"기존에 디로그를 mk.2로 업그레이드를 했습니다. 제가 아는 최고의 기술은 당연히 마공학! 교수님께서 한번 확인해 주셨으면 합니다."

위이잉- 철컥, 철커덕!

그의 휠체어가 분해되고 재조립되더니, 에일론의 몸에 갑옷처럼 들러붙었다.

그 모습은 마치, 전신 갑옷을 입은 기사와도 같았다.

-갑니다, 교수님!

위이잉-!

양쪽 기계 팔이 서로 깍지를 끼고 높게 치솟았다. 동시에 응집되는 엄청난 마력!

마치 문헌에서나 봤던 메테오가 저런 기운을 품고 있지 않을까.

그 무지막지한 것이 향하는 방향은-

루카스였다.

'저, 저 미친놈이....'

루이나는 에일론이 루카스의 코를 납작하게 해 주길 바랐지, 루카스 자체를 납작하게 만들기를 바라진 않았다.

'누가 말려-!'

루이나는 속으로 소리쳤지만, 주변에는 아무도 움직일 낌새를 보이지 않았다.

오히려 자신처럼 속으로 누군가를 독촉하는 모양새였다.

"확실히 업그레이드됐군. A-다."

'아니, 교수님, 지금 한가하게 점수나 매기실 때가 아니잖아요옷!'

마치 메테오의 기세를 담은 그것은 루카스를 향해 날아갔고,

슈유웅- 툭.

'엥?'

상당히 맥빠지는 소리와 함께 루카스에게서 아주 조금 떨어진 곳에 안착했다.

"하지만, 디로그를 기동하는 파일럿의 가동 이해도가 형편없다. 그러니 이렇게 쉽게 파훼 되는 것이지. 그건 디로그가 강한 것이지, 네가 강한 것이라 할 수 없다."

"...."

경악이 강의실을 뒤덮었다.

'뭔데, 왜, 뭐야!'

자신만 모르는, 기사들에게만 보이는 무언가 있었던 모양이다.

"자, 마지막. 루이나 엘라임."

의문을 해소할 새도 없이 자신의 차례가 다가왔다.

그러나 자신은 최강의 기술이 없다.

마법이라도 쓸까 싶었지만, 저 깐깐한 루카스 교수가 인정해 줄까 싶었다.

'그, 그렇다면....'

루이나는 조금 전 보았던 형편없는 기술을 떠올렸다.

그게 C+를 받았으니, 어쩌면 자신에게도 희망이 있을지도 모른다.

"제가 알고 있는 최고의 기술은...."

루이나는 목검을 하늘 높이 치켜들었다.

자신이 아는 한 가장 강렬했던, 그리고 아름다웠던, 동시에 자신도 따라 할 수 있을 것 같은 최강의 기술.

"내려 베기입니다."

그녀는 루카스 교수가 보여 주었던 것을 떠올리며, 그대로 천천히 검을 내리그었다.

'됐다.'

처음 한 것 치곤 제대로 선보인 것 같았다.

내심 만족하며 루카스 교수를 바라보니, 그의 표정에 옅은 경악이 어려 있었다.

'뭐, 뭐야. 설마 나 생각보다 재능이 있었던 거야?'

끔찍한 표정이 아닌, 긍정적인 경악이다.

루이나의 마음에 희망이 샘솟을 때쯤, 루카스 교수가 미소를 띠었다.

그 미소는 그야말로 한 폭의 예술작품처럼 잠시간 루이나의 의식을 멀게 만들었다.

'그, 그 웃음은 반칙이잖아요.'

뒤이어, 그녀의 귀를 의심하게 만드는 루카스의 음성이 들렸다.

"...쁘다."

* * *

'진짜 죽을 뻔했네.'

역시 에일론의 디로그는 어마무시한 병기다.

알란 학회장의 '흘리기'가 아니었다면 아마 나는 납작한 쥐포가 되어 이 세상을 하직했을지도 모르겠다.

하여튼 저 싸이코 새끼.

하지만 저 공격이 나를 향하는 것이 아니라, 내 안전을 위해 쓰인다면.

그것만큼 든든한 건 또 없을 것이다.

물론, 아직 더 개선의 여지는 있다.

그렇지 않아도 베르트에서 놈에게 줄 선물을 챙겨 온 참이니.

'대충 수석 선물이라고 하고 주면 되겠... 아, 하나가 남아 있었구나.'

루이나 엘라임.

이 강의실에 유일한 홍일점.

루이나 역시 엄청난 재능의 소유자다.

그녀는 본래 마법사. 그러나 '진짜' 재능은 검에 있다.

기대가 된다.

"제가 알고 있는 최고의 기술은...."

그녀는 목검을 뽑아 하늘 높이 쳐들었다.

저 자세는....

"...내려 베기입니다."

확실히 자세는 흠잡을 곳 없다.

지금까지 검을 제대로 다루지 않은 것으로 아는데, 태가 살아 있다고나 할까.

하지만 결정적으로, 어설프다.

낙제다.

너는 모자란 만큼 집중적으로 검을 배우게 될 것이다.

이 결과를 전하려는 찰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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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에는 잘못 본 줄 알았다.

심각하게 다시 들여다봐도 금액은 변하지 않았다.

일십백천만십만.

공이 다섯 개.

현실이라는 것을 깨닫자 희미한 미소가 지어졌다.

알림창 너머로 멍-한 표정의 루이나가 보인다.

아, 그래 네 결과를 알려 주어야지.

"...프다."

발음이 좀 샜다.

너무 기뻐서 그런 것이다.

"아, 그, 그, 그래도 예, 예쁘다니 너무 가, 갑작...."

새어 버린 발음으로 인해 루이나가 지극한 착각을 하고 있다.

"에프라고."

친절히 정정해 주었다.

§ 아카데미의 신화급 교수가 되었다 42화

42. 시험 기간 (2)

나는 연단에 올라서, 침울한 상태의 학생들을 쓸어 보았다.

A-라는 최고점을 받은 에일론도, 낙제점을 받은 루이나도 하나같이 비슷한 표정이었다.

아직 어린 학생들에게는 너무 신랄한 평가가 문제였을 수도 있다.

하지만 거짓 칭찬은 아무런 도움이 되지도 않는다.

따뜻한 칭찬과 격려가 사람을 성장시킨다고?

개소리다.

안락은 게으름을 유발한다.

이들은 절대 나태해져서는 안 된다.

[LIFE TIME : 25개월]

이제 2년밖에 남지 않았다.

2년 후면, 이 그라스코에 끔찍한 침공이 벌어진다.

그 참혹한 현장에서 살아남으려면, 겨우 이 정도로 만족해서는 안 되는 일이다.

향상심.

너희가 살아남기 위해서 반드시 더 높은······.

잠깐, 정정하겠다.

내가 살아남기 위해서다.

"너희는 더 높은 곳을 향해라."

너희에게 더 높은 수준을 요구할 것이다.

받아들이고, 흡수해라.

아카데미 1학년에겐, 아니 아직 현장을 겪어보지도 못한 이들에게는 더없이 버거운 나날이 될 것이다.

그러나, 걱정하지 말아라.

"내가 돕겠다."

반드시, 너희를 살릴······ 아니, 나는 살아남을 것이다.

"오늘 수업은 이것으로 마무리하도록 하지."

* * *

[신성 제국, '루카스 교수 체포 사건'의 전말에 대해 입 열다.]

[루카스 교수, 체포 아닌 협력이었다.]

[신성 제국에 드리운 암운을 거둬준 고마운 존재.]

[(단독 인터뷰) 알란 학회장, '루카스 교수는 내가 본 그 어떤 기사보다 이론과 실전 모두 완벽한 사람.']

[아에로크, '3자 회담에서 소상히 밝혀지길 원해.']

[베르트 '루카스 교수의 명예가 실추된 건에 대해 사죄하겠다.']

[(특집 르포) 그날, 신성 제국에서는 무슨 일이 일어났는가. (부제 : 영웅의 탄생)]

"······쓸데없이 부풀려 놨군."

미리 말을 맞춘 시나리오였지만, 어째 과장이 심하다.

알란 학회장의 단독 인터뷰는 그야말로 주접의 연속인 데다가 특집 르포를 달고 공개된 '썰'은 다량의 MSG가 첨가된 것이었다.

덕분에 사람들의 어그로는 확실히 끌려, 유렌에 관계된 일은 흐지부지 묻을 수 있게 되었지만······.

이 시선이 내게로 쏟아질 것을 생각하면 아찔하다.

어디까지나 선작 1만 돌파로 얻은 특전 때문에 벌어진 일이라, 재현하라고 하면 절대 못 한다.

'그렇기 때문에 강해지려고 하는 것이고.'

특히 학생들의 수준을 확 끌어올려야 한다.

때문에 내 머리가 으깨지는 것 같은 고통을 참아가며 기초 검법서를 탐독하고, 각종 논문을 분석하고, 알려진 모든 검법들을 해체하고 있는 것이다.

머리를 식히려 집었던 신문을 다시 고이 접어 한쪽에 치워두고 다시금 집무실 가득 펼쳐진 논문과 서적 더미에 몸을 내맡겼다.

정신적인 피로감이 상당하다.

이건 일일 회복으로도 고칠 수 없는 것이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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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게는 박하수와도 같은 후원이 있다.

그 덕분에 모인 골드가 상당하다.

또한, 포인트 역시 대단히 모인 상태다.

'집중력'과 '정신력'의 스텟을 한계까지 올리는 것으로 극복할 수 있었다.

이 모든 노력의 요체가, 하나의 강의에 담길 것이다.

'이것으로 시험 전까지의 강의는 충분하겠지.'

완벽하게 정리된 강의 정리본을 가방에 챙겨 몸을 일으켰다.

이제 이 지식을 학생들에게 전달할 시간이다.

* * *

멀리서도 느껴지는 소란.

그라스코 전체가 기이한 열기 같은 것에 잠식되어 소란스럽지만, 내가 향하는 강의실마저 마찬가지여서야.

벌컥-

문을 열고 들어서니, 소란이 멎는다.

대신, 그 공백을 은근한 기대가 담긴 눈빛들이 채운다.

"강의를 시작하겠다. 이번 강의의 핵심 과제는 <'형'의 구현>이다."

아무래도 다들 소식을 들은 모양이다.

묘하게 과대평가된 기록들이 기대가 되어 따갑게 돌아온다.

하지만 그런 기대를 풀어 줄 시간 따윈 없다.

"저기, 교수님. 혹시 실례가 되지 않는다면 베르트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스릉-

누군가 용기를 내어 입을 뗐지만, 그 말을 싹둑 자르듯이 검집에서 검을 뽑아내었다.

"아직도 정신을 못 차렸나 보군."

교학상장(敎學相長). 데얀- 로크 소드, 인피니티 슬래쉬.

내 검 끝에서, 어제 데얀에게 B-를 안겨주었던 결정적 원인, 인피니티 슬래쉬가 재현되어 나오고 있었다.

하지만 데얀의 그것과 같은 듯 달랐다.

[<만류귀종>의 효과로 <인피니티 슬래쉬>의 숙련도가 <기초 검술>과 연동됩니다.]

지금은 위력을 배제한 채, 오직 '형(形)'에만 집중을 했다.

내가 원하는 것은 <인피니티 슬래쉬>를 그대로 따라 하는 것이 아닌, 내 이해도를 덧붙이는 것.

그리하여- 복제가 진품을 넘어서 완벽에 다가서는 것.

검이 그어진다.

하나가 둘이 되고, 둘이 넷이 되고, 넷은- 여덟로, 열여섯으로-

무한히 증식한다.

공간을-

빼곡히 잠식한다.

착검 이후, 숨소리조차 들리지 않는다.

그것이 마치 사치인 듯.

넋이 나가 있던 데얀에게 오늘 강의의 핵심 질문을 던졌다.

"데얀, 너의 인피니티 슬래쉬와 내 것의 차이가 무엇인지 말해봐라."

"그, 그게······그러니까······."

역시나, 데얀은 쉽게 답하지 못했다.

그는 단순하게 내가 지적했던 '무게 중심'만을 생각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것은 전체적인 완성도가 갖춰졌을 때 따져야 할 요소.

"보아라."

나는 다시금 검을 뽑아 천천히 '인피니티 슬래쉬'를 하나하나 분해해 따로 나누었다.

"무한히 이어지는 이 공격은, 결국 하나의 선에서 시작한다."

모든 공격은 결국 하나의 선에서부터 시작되는 법.

이 선을 얼마나 완벽하게 완성시키느냐에 모든 것이 달려있다.

"이 선은 위에서 아래로 내려지기도 하며."

후웅-

"좌에서 우로, 우에서 좌로. 대각으로-"

훅, 후웅- 훅!

결국, 모든 무리(武理)의 기본은 '기초 베기'에서 시작하는 것이다.

[기초 베기의 숙련도가 증가합니다.]

[기초 베기의 숙련도가 증가합니다.]

[기초 베기의 숙련도가 증가합니다.]

.

.

.

가르치는 이 순간,

역설적이게도 내가 깨달음을 얻어 가고 있었다.

근본.

"그저 '형'을 잇기 위한 움직임을 배제해 보도록 하자. 그렇다면 무엇이 남는가."

기초 검술.

그저 휘두름이라 여겨지는 기초 검술이 '선'이 되어 모든 검식에 녹아 있었다.

"하지만 여기서 당연한 의문이 든다. 모든 '선'은 직선이어야만 하는가."

아니다.

"선은 그저 선일 뿐. 곡선도 선이며 무수한 진동을 담고 있는 것 역시 선이다."

그저 내 기초 검술이 직선의 형을 띄고 있을 뿐.

"다른 것들로 그 예시를 살펴보도록 하지."

내 검 끝이 흔들렸고, 그에 따라 학생들의 시선도 따라 움직였다.

* * *

학생들은 그간 루카스를 겪으며 이제 특별하게 감탄할 일은 없을 거로 생각했다.

하지만 그것은 그들의 오만이었다.

루카스는 지금, 자신들의 비전을 낱낱이 분해하고 있었다.

비전이라 함은 비밀스레 전승되기에 비전인 것이다.

그런 비전을, 루카스는 아주 자연스레, 그리고 정확하게 구현하고 또 그것을 하나하나 해체하고 있었다.

루카스는 단 한 번의 목도로, 이 모든 것을 해내고 있는 것이었다.

물론 널리 알려진 기술을 선보인 이도 있었으나, 대부분은 자신의 비전, 가문의 비전을 선보였다.

그러한 기술을 정확히, 자신들보다 더 완벽하게 구사하고 있었다.

경악을 금치 못할 일이었다.

눈앞에서 자신의 비전이 낱낱이 파헤쳐지는 금기가 벌어지고 있었으나, 그의 손에서 낱낱이 분해되어 가는 자신들의 비전이 전혀 아깝지 않았다. 오히려 경외를 담은 찬사를 보내고 싶을 따름이었다.

비전이 까발려져서 생기는 손실보다 오히려 그것으로 하여 깨닫는 것이 더 많다.

무엇보다 이런 식의 연구라면 오히려 루카스 쪽에서 꼭꼭 숨겼어야 함이 옳다.

하지만 그는 자신의 지식을 아낌없이 풀어 나누어 주고 있었다.

마치 '학회'급의 강연이 이어지고 있었다.

'필기······ 필기!'

학생들은 태어나 처음으로 강하게 필기의 욕구를 느꼈다.

어떻게 해서든 기록으로 남겨야 할 필요성을 느꼈다.

그러나 평생을 필기와 담쌓은 그들이 필기구를 가지고 다닐 리 없었다.

귀중한 지식이, 깨달음이 허공으로 날아가려 하고 있었다.

그때였다.

누군가 홀린 듯이 자신의 무기를 뽑아 루카스를 따라 하기 시작했다.

그것이 신호가 되어, 강의실에서는 누가 시키지도 않았건만 모두 자신의 무기를 빼 들었다.

그리고는 '선'을 그리기 시작했다.

시작은 루카스를 따라.

"너희의 '선'은, 반드시 내 것과 같을 필요는 없다. 오러와 같다. 자신의 특성을 담아내라. 네게 가장 잘 맞는 '선'을 찾아내라."

루카스의 말처럼 조금씩 자신의 색채를 더해갔다.

무아지경.

시간의 흐름도 잊고 강의에 집중했다.

자신들이 지금껏 살아오며 이토록 강렬한 집중을 보인 적이 있던가?

이런 생각조차 무의식중에 흐를 뿐, 모든 의식은 루카스를 향해 있었다.

순식간에 4시간이 흘렀다.

* * *

"오늘은 여기까지."

"아······."

저도 모르게 탄식이 흘렀다.

어찌나 집중했던지, 긴장이 풀리자 근육 곳곳이 비명을 지르기 시작했다.

더러는 털썩 주저앉았고, 어떤 이는 탈진하여 그대로 드러눕기도 했다.

강의의 끝은 아쉬웠으나, 루카스가 절묘하게 끊지 않았다면 오히려 며칠을 앓아눕거나, 강의를 복기할 새도 없이 혼절하는 역효과가 났을지도 몰랐다.

이 강의실에서 유일하게 멀쩡한 루카스가 옷매무새를 가다듬고 널브러진 학생들을 쓸어보며 입을 열었다.

"조만간 중간고사가 시작된다는 것은 모두 알고 있겠지."

중간고사.

모든 아카데미에서 그러하듯, 가장 큰 행사 중의 하나이다.

이론을 점검하는 타 학부와 달리, 실습에 그 중점을 둔 전투 학부는 그 시험 방법 또한 실습의 형태를 띈다.

시험이라기보다는 대련이라고 칭하는 것이 더 알맞을지 모르겠다.

조 편성을 하고 각자의 기량을 겨루어, 그 결과를 바탕으로 상대 평가를 진행하는 것이다.

특히 중간고사가 중요한 것은 '기말고사'라 불리는 아카데미 대항전의 전초전 역할을 겸하기도 하기 때문이다.

단순한 성적을 넘어서 아카데미를 대표해 '기말고사'에 진출하는 것.

그것이 '중간고사'의 가장 큰 목적인 것이다.

"너희는 단순히 '전투 학부'가 아닌, '전투의 모든 것' 수강생으로서 중간고사에 참전하게 된다."

그 탄생부터 특별했던 '전투의 모든 것' 강좌는, 단연코 그라스코 내에서 가장 뜨거운 감자다.

"너희를 지켜보는 시선이 많을 것이다."

특히 루카스가 신성 제국의 건으로 유명세에 불을 지핌으로써 그 현상은 더욱 심화되었다. 입학 후 처음 맞이하는 중간고사에서 그들이 어떤 모습을 보일지, 루카스의 눈은 옳았는지 틀렸는지를 판가름하기 위해 아주 눈에 불을 켜고 지켜볼 것이 분명하다.

"그들은 너희를 재단할 거고, 평가할 것이다. 감독관이 아닌데도 말이지."

루카스의 말에 '전투의 모든 것'의 수강생이라는 타이틀이 얼마나 큰 무게인지 확- 다가왔다.

"그런 시선은 신경 쓰지 마라. 그 모든 것은 내가 감내하겠다. 너희는 중간고사에서 내게만 증명하면 된다."

그 모든 무게를 혼자 감당하겠다는 말에, 학생들의 시선은 루카스를 향했다.

"너희가 신경 써야 할 것은 오직 나 하나."

맞는 말이었다.

'전투의 모든 것' 수강생들은 루카스에게 배움을 청하고자 그라스코에 온 것이지, 다른 시선들에게 증명하기 위해 입학한 것이 아니다.

그들이 신경 써야 할 우선순위는 루카스.

"하여, 나는 중간고사로 이번 강의의 테스트를 대체할 것이다."

그리고 루카스의 입에서 경악할 만한 발언이 터져 나왔다.

"중간고사는 이번 강의의 핵심인 '형'의 구현만을 사용하도록. 특히 예선은 오늘 배운 '선'의 사용으로 한정한다. 마나를 사용하는 즉시, 낙제다."

'고사'는 학년의 구분이 없다.

즉, 1학년과 맞붙던, 4학년과 맞붙던 예선에서는 오직 '선'만으로 고사를 통과해야 한다는 것이다.

본선으로 가서도 '형'의 구현만 사용할 수 있고.

실로, 최악의 난이도라 할 수 있다.

다행인 것은 기말고사의 진출 여부는 평가에 포함이 되지 않······.

"기말고사 진출은 당연한 것일 테니, 굳이 따로 말하진 않겠다."

아, 기말고사 진출이 당연한 거였어요?

§ 아카데미의 신화급 교수가 되었다 43화

43. 시험 기간 (3)

오늘 강의실은 유달리 빠르게 채워졌다.

어제의 감동이 남아 학생들을 재촉한 것이다.

필수 교양 과목을 마치고 날듯이 강의실에 도착해 자리를 채웠다.

아직 강의는 1시간 가까이 남았음에도.

시간이 유달리 더디게 흐르는 느낌이었다.

1달 같은 1시간이 흐르고-

벌컥-

한 치의 오차도 없는 시간, 루카스 교수가 강의실의 문을 열고 등장했다.

여전히 흐트러짐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자태로, 고아한 품위가 깃든 모습으로 학생들 앞에 섰다.

"어제에 이어, 오늘은 <'형'의 구현>의 심화 과정에 대해 다뤄보겠다. 간단한 실습을 하도록 하지."

딱-

루카스가 손가락을 튕기자, 조교인 리트와 함께 20구의 전투 인형이 강의실 안으로 들어왔다.

"이것은 내가 학회에서 시연을 위해 사용했던 전투 인형들이다. 더스트 인더스트리의 최신 기술이 탑재된 최신 모델이지."

학회와 시연이라는 소리를 듣자, 반응이 폭발적이었다.

"학회에서 시연? 그 엄청났다고 소문이 자자한?"

"우와, 대박! 설마 그 시연을 여기서 보여 주시려고 그러시나?"

루카스가 학회에서 선보인 강연은 그야말로 환상적이었다는 평가가 지배적이었다.

그 알란 학회장이 단독 인터뷰에서 극찬을 할 정도이니.

혹시 루카스가 그때의 강연을 재연하는가 싶어 학생들은 기대했지만, 이것은 그런 용도가 아니었다.

"이 전투 인형에 그라스코의 교양 검술, 페리어드 소드의 정보를 입력해두었다."

루카스가 손짓하자, 전투 인형이 각을 맞춰 인당 한 구씩 학생들에게 이동했다.

"너희는 그것들과 모의 대련을 펼치면 된다. 말했듯, 전투 인형은 페리어드 소드만 사용할 것이다. 너희는 '형'의 구현만으로 전투 인형을 무력화시키도록. 전투 인형이 무력화되면 그것으로 실습은 종료다. 질문 있나?"

"없습니다!"

"좋다. 대련을 시작해라."

루카스의 시작 선언과 동시에 전투 인형들의 눈에 형형한 안광이 맺혔다.

"참고로, 전투 인형은 마력을 사용할 것이니, 최선을 다해라."

위이잉-!

아, 잠깐만.

* * *

언뜻 불공정해 보이는 이 대련은 오늘 강의의 핵심과제인 '형'의 분석에 선행과제로 반드시 필요한 것이었다.

그리고 중간고사 역시 같은 조건으로 치러내야 하니, 체험의 목적도 있다.

"이든, 마력으로 받아 내는 것도 금지다."

"카르엔, 의식을 집중해라. 의식적으로 마력의 출력을 없애."

가끔 울컥하고 마력을 뿜어내려는 학생들도 있다.

마력을 발현하고, 무기에 담아낸 이후에는 거의 본능처럼 이어진 습관일 테니 어쩔 수 없는 것이다.

그렇기에 미리 잡아 두려고 하는 것이다.

마력에 의존하는 순간, 지금까지 강의한 내용이 모조리 수포가 되어 버린다.

저들이 조금 더 완벽하게 강의를 체득할 수 있게 계속해서 집중할 것을 명했다.

5분이 흐르고, 10분이 흘렀다.

당연하게도 전투 인형을 무력화시킨 학생은 존재하지 않는다.

30분이 흐르자 슬슬 반응이 온다.

물론, 전투 인형 쪽이 아닌 학생들 쪽에서.

어제의 피로감에 더해 몸이 무거워지는 것이 똑똑히 보였다.

지치지 않는 전투 인형과 체력의 한계가 존재하는 인간의 대결.

무엇보다 인형은 마력까지 사용한다.

인간이 압도적으로 불리하게 보일 수 있지만-

"어제 강의에서 무얼 배웠나. 어제 강의를 떠올려라."

그렇지 않다.

이 실습은 어디까지나 클리어가 가능하도록 철저하게 계획되어 있다.

실제 전투 인형의 출력도 상당히 낮춘 상태였고, 입력한 데이터도 하급의 검술인 '페리어드 소드'. 게다가 전투 인형은 먼저 공격하지 않는다.

학생들이 공격하면 그에 맞게 응대할 뿐.

"크으으...."

"으헉! 허어, 헛!"

학생들은 더욱 지쳐갔다.

숨소리가 거칠어지고, 자세가 무너졌다.

한 시간이 다 되어서도 무력화를 성공시킨 학생은, 아무도 없다.

"그만."

<시력 강화>로 확인한 학생들의 한계선은 여기까지다.

실습은 끝이다.

종료를 선언하자마자 전투 인형의 출력이 꺼졌고, 동시에 학생들의 신형이 와르르 무너졌다.

"무력화에 성공한 이는 아무도 없군."

솔직히 말해 조금은 실망감이 들었다.

그래도 한둘쯤은 성공할 수 있을 줄 알았건만.

"...."

실망감에 입을 열려는 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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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망감을 눈 녹듯 녹여버리는 알림창이 쇄도했다.

자연스레 입꼬리가 올라가려고 한다.

안 된다.

시간이, 이 기쁨을 추스를 시간이 필요하다.

"...10분간 쉬었다 하지."

미소가 나오려는 것을 억지로 억누르고 빠르게 몸을 돌려 강의실 밖으로 나갔다.

* * *

"...10분간 쉬었다 하지."

루카스 교수는 이제껏 본 적 없는 기이한 표정만 남기고 강의실 밖을 빠져나갔다.

처음 보는 표정이었으나 학생들은 알 수 있었다.

저것은 진한 실망의 표출이다.

"교수님 엄청 실망하셨나 본데?"

"아니, 근데 애초에 상대가 안 되는 게임이었잖아?"

억울한 감정이 솟구쳐 올랐다.

마력을 사용하는 상대와 1시간 가까이 대련했다.

어른과 어린아이의 체급 차를 1시간이나 버틴 셈이니 오히려 대단한 것 아닌가?

"그렇지. 사실 버틴 것만으로 대단한 거라고. 교수님의 기준점이 너무 높았던 거야."

"마력 쓰는 상대를 맨몸으로 버틴 게 용하긴 하지."

일부 학생들이 동조했다.

그때.

그들의 대화를 듣고 있던 데얀이 입을 열었다.

"너희는 못 느꼈나? 전투 인형은 선공을 가하지 않았다. 페리어드 소드의 검식을 구현하긴 했어도, 우리가 공격 의사를 내보이기 전까지 절대 그 검식이 우리에게 향하는 일은 없었어."

"아, 그건 맞아. 저 전투 인형, 내가 만들어서 잘 알거든. 이것들 겨우 이런 수준으로 상대할 수 있는 게 아니야."

에일론도 한마디 거들었다.

"...!"

그제서야 그들도 무언가 깨달은 듯했다.

"분명, 어떤 방법이 있었을 거다. 교수님은 답이 없는 문제를 주시는 분이 아니니까."

이론 강의에서도 느꼈듯이, 그의 질문에는 항상 답이 있었다.

물론 정형화된 것이 아니라, 생각과 고민 끝에 나오는 것들이긴 하지만, 분명히 답이 존재하는 질문들이었다.

이번 실습 역시 다르지 않을 것이다.

답은... 있었을 것이다.

다만, 자신들이 몰랐을 뿐.

"그래도 교수님도 마력 쓰는 상대 앞에서 '형'의 구현만으로 싸우라고 하면 힘드시지 않았을까?"

"음...."

그들은 잠깐 고민하더니 하나의 답을 내렸다.

"될걸."

"그렇지 될 거야 그 양반은."

"무조건 되지."

"하긴, 이런 문답이 의미가 없는 분이지."

의견을 낸 학생조차 루카스가 보여 준 강함을 떠올리곤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두 눈으로 보고 싶었다.

루카스의 답은 무엇인지.

* * *

"강의를 계속하지."

겨우 감정을 추스르고 강의실에 돌아왔다.

연단에서 아까 마무리하지 못한 강의를 계속 이어나갔다.

"너희가 전투 인형을 무력화시키지 못한 원인은 무엇이라 생각하나."

"마력 없이 싸웠기 때문입니다."

"정답이다."

내 긍정에 학생들은 무슨 개소린가 하는 표정으로 나를 바라봤다.

"착각들을 하고 있는 모양인데, 같은 수준의 실력이라면 마력이 더 뛰어난 쪽이 더 강하다. 그건 불변의 진리다."

"하, 하지만 교수님께서 마력 사용 없이...."

"어디까지나 '같은 수준'의 실력이라면. 월등한 실력 차가 존재한다면 마력의 유무는 하등의 상관이 없게 된다. 여기서의 수준은 무엇을 말하는가. 데얀, 네가 계속 답해 봐라."

"경지의... 차이입니다."

"맞았다. 경지의 차이는 어디에서 오는가- 그것은 무리(武理)의 이해에서 오는 것이다. 너희들 눈앞에 있는 전투 인형이 펼치는 '페리어드 소드'는 기술적으로 대단한 완성도를 가졌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 전투 인형이 너희보다 무리의 이해가 뛰어나다고 할 수 없다."

전투 인형은 그저 프로그래밍이 된 정보를 바탕으로 그대로 움직이는 것에 불과하다.

그 속에 담긴 이해는 빠질 수밖에.

"하지만 교수님, 기술적으로 대단한 완성도를 보인다는 것 자체가 이해도를 증명하는 것이 되지 않을까요?"

전투 인형의 제작자인 에일론이 반론했다.

'뭔가 꿍꿍이속이 있나 보군.'

의아했다.

에일론은 이 전투 인형의 제작자이기에, 마공학의 천재이기에 누구보다 인간의 이해와 기계의 이해가 다르다는 것을 안다.

그러나 저렇게 지적한다는 것은 무언가 꿍꿍이속이 있다는 증거.

아니나 다를까-

"그래서 교수님께서 시범을 보여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내가 강의실을 빠져나간 사이에 짠 것인가.

학생들이 동조하고 있다는 것이 확연히 보이고 있었다.

"...좋다."

어차피 이 실습을 계획하면서부터 이런 상황이 벌어지리라는 것은 예상했다. 그렇기에 가장 기초가 되는 검술인 '페리어드 소드'를 입력한 것이고, 출력도 최저 수준으로 설정해 둔 것이다.

위잉- 철커덕!

가장 앞에 있는 전투 인형이 기동하여 연단으로 올라섰다.

우웅!

동시에 붉은 안광을 내 뿜으며 그 기세를 끌어올렸다.

'생각한 것보다 출력이 센데?'

새삼 이런 것을 앞에 두고 한 시간을 버틴 이놈들의 재능이 감탄스럽다.

하지만 감탄하고 있을 때가 아니다.

"다들 똑똑히 눈에 새겨 두도록."

지금은, 배움의 시간이니까.

* * *

위잉- 철커덕!

전투 인형이 기동하기 시작했다.

동시에 범상치 않은 기운이 범람한다.

'저, 저걸 마력 없이 상대한다고?'

그 심상치 않은 기세에 지켜보는 학생들은 마른침이 삼켜졌다.

루카스의 눈앞에 있는 저것은, 에일론이 루카스의 수준에 맞추기 위해 특별히 출력 제한을 풀어 둔 것이기 때문이다.

때문에 자신들이 상대한 전투 인형과 내뿜는 그 기운부터가 달랐다.

하지만 루카스는 표정 변화 하나 보이지 않는다.

스응-

전투 인형의 검이 뽑히고, 움직이기 시작했다.

'페리어드 소드.'

그저 마력의 출력이 올라간 것이지만, 자신들이 상대한 그것과는 차원이 다른 압박감을 안겨 주었다.

여전히 루카스는 평온하게 전투 인형의 '페리어드 소드'를 보며 입을 열었다.

"보아라, 이 '페리어드 소드' 역시 '선'에서 시작한다."

루카스의 검이 천천히 뽑혔다.

대단한 명검이 아닌, 그라스코의 공방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철검.

그러나 그 손에 있는 것만으로 남다른 예기를 발하는 것 같다.

루카스의 검이 뻗어진다.

동시에 당연하게도 전투 인형의 공격 역시 본격화된다.

압도적인 위압감!

그러나 루카스는 그런 위압감이 우습다는 듯 그저 가볍게 움직였다.

"이 선을 파훼하는 것으로...."

툭-

가벼운 터치 한 번에 전투 인형이 보이는 검식은 흐트러졌다.

그때를 놓치지 않고-

콰악!

"이렇게."

그야말로 순식간에 벌어진 일이었다.

그저 루카스가 쥔 검이 한 번 움직이는가 싶더니, 그대로 상황은 끝이 나버렸다.

허탈할 정도로 간단했다.

"이렇듯 누구나 쉽게 할 수 있는 것이다."

...아닌데요.

§ 아카데미의 신화급 교수가 되었다 44화

44. 시험 기간 (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