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3화. 경서
이번 봄비는 기세가 대단하여 그 후로도 십여 일간 날씨는 흐렸다. 그러다가 석가탄신일 전날이 돼서야 날이 개었다.
서과원의 싱싱한 파초가 초록색으로 빛났고, 바람이 불자 잎들이 나른하게 기지개를 켰다.
교소는 붓을 내려놓고, 자리에서 일어나 천천히 창가로 가서 잠시 쉬었다. 책상 위에 올려놓은 불경의 먹물이 다 마르자, 교소는 빙록을 불러 지시했다.
“이 불경들을 잘 담아서 할머니께 갖다 드리렴.”
며칠간 문안인사를 드릴 필요도 없었고 가문의 아가씨들이 와서 트집을 잡는 일도 없어서, 교소는 편안한 날들을 보냈다. 그래서 교소는 빠르게 법문 한 부를 필사할 수 있었다.
“예.”
빙록은 필사를 마친 법문을 보고 기분이 좋아져서 입술을 오므리고 웃으며 말했다.
“아가씨, 경성의 아가씨들을 다 데려와도 아가씨만큼 글씨를 잘 쓰는 사람은 없을 거예요. 이번에 아가씨의 법문은 분명 고승들의 눈에 들어서 소영암으로 보내질 거예요.”
“응, 나도 그렇게 생각해.”
교소가 미소를 지었다. 그 모습에 빙록이 입을 쩍 벌렸다.
‘아가씨가 이렇게 자신만만하게 말하다니.’
전과 다른 아가씨의 모습에 의외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한편으로는 속이 시원할 정도로 기뻤다.
“무슨 생각하니?”
교소가 묻자, 정신을 차린 빙록이 생글생글 웃으며 말했다.
“예전 일을 생각하고 있었어요. 그 해, 아가씨가 교 선생의 글씨를 모사해서 동부의 큰 나리마님께 생신 선물로 드렸는데, 그걸 보고 둘째 아가씨가 비웃었잖아요. 큰 아가씨는 말은 하진 않았지만, 속으론 분명 신이 났을 거라구요. 그리고 넷째 아가씨랑 여섯째 아가씨, 다들 아가씨를 보고 비웃었죠. 하지만, 이젠 얼마나 좋아요. 드디어 아가씨가 이렇게 글씨를 잘 쓰게 됐으니, 누가 감히 비웃겠어요!”
“그래, 앞으론 그럴 일 없겠지.”
교소가 감정이 벅차올라 말하면서, 손으로 빙록의 볼을 꼬집었다.
“이제 빨리 가봐. 정말 말도 많구나.”
눈을 깜빡이는 빙록의 볼이 빨갛게 물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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