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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4. 기 싸움.

104. 기 싸움.

기이잉! 쿵! 쿵!

뒤쪽에서 기간트가 추가됐다.

엠버 중령의 비숍급 오리지널 기간트 베가스였다.

[윌리엄 사령관께서 기세에서 밀리지 말라고 보냈습니다.]

그때 또 하나의 룩급 오리지널 기간트 바벨이 앞으로 나섰다.

[응? 마이어스 소장은 왜 오셨소? 나 혼자도 충분한데?]

[제게도 사령관께서 한번 기세에서 밀리면 끝장이라고 가보라 하셨습니다.]

마이어스 소장은 이번 원정 직전에 진급한 인물로 윌리엄 사령관과는 동부전선에서부터 10년이나 함께 한 사이였다.

실력은 사실 조금 부족하지만, 북부군 중에서 유일하게 룩급 오리지널 기간트를 배정받았다.

하지만 내가 보기엔 싱크로율이 떨어져 실제 전투에선 큰 힘을 발휘하지 못할 것 같았다.

'양산형 룩급 기간트가 적당해 보이는데······.'

"타일러님! 저쪽에도 엘프가 있습니다."

[그래?]

가디언 제국의 마장기들 사이에 피부가 어두운 다크엘프들이 함께 다가오고 있었다.

[에테나, 혹시 근처에 정령이 있어?]

"잠시만요."

에테나가 주변을 살피더니 말했다.

"네! 있습니다."

[어쩐지 우릴 너무 빨리 발견했다고 생각했더니, 정령으로 감시했나 보군.]

"아! 그랬을 겁니다."

에테나가 우리 세계의 마나를 느껴 기간트에 탈 수 있는 건 좋은 일이었지만, 안 좋은 점도 하나 있었다.

그건 원래 있던 정령 마나가 현저하게 줄어들면서 정령을 부릴 수 없었다. 그랬기에 지금도 정령의 존재는 느끼지만, 그 흔한 실프 조차 불러내지 못하고 있었다.

기이이잉! 쿵! 쿵!

가디언 제국의 마장기 10대가 먼저 200여 미터 앞에 멈춰 섰다.

잠시 후에 연합군의 타이탄 10대도 비슷한 거리 앞에 멈췄다.

[자! 우리도 숫자를 맞춰 나가지.]

매러덕을 선두로 오리지널 기간트 4대와 선발대 기간트에서 10대를 맞춰서 앞으로 이동했다.

매러덕 소장의 오리지널 룩급 기간트가 먼저 앞으로 걷기 시작했다.

그러자 가디언 제국의 대표로 보이는 룩급 마장기가 앞으로 나섰다.

연합의 타이탄도 앞으로 나섰다.

셋은 곧 가운데서 만났다.

그리고 아바돈의 매러덕 소장이 대뜸 물었다.

[어이! 우리에게 무슨 볼일이 있나?]

그러자 가디언 제국의 대표로 보이는 룩급 기간트가 말했다.

[우린 아베르크 제국군을 환영하오.]

[환영?]

[다만 우리 가디언 제국의 채굴작업은 방해하지 말아 주시오.]

그리고 옆에 있던 키가 12미터나 되는 룩급 타이탄이 앞으로 나섰다.

양산형 타이탄들은 양산형 기간트나 마장기보다 1미터씩 더 크게 만들었는데, 성능이 좋아서는 아니고, 움직임이 둔탁하다 보니, 크기에서라도 압도해야겠다는 의미로 만든 것이었다.

하지만 마석 배터리만 더 빨리 소모하지 큰 의미 없는 짓이라고 들었다.

[우리 탈로스, 글론 연합 역시 아베르크 제국군을 환영하오. 하지만 우리 역시 채굴작업을 방해하면 가만있지 않겠소.]

[처음부터 세게 나오는군. 대체 무슨 방해 말하는 거냐?]

매러덕 소장이 물었다.

가디언 제국의 룩급 마장기가 대답했다.

[우린 각자의 구역이 있소. 광산 입구에서 북쪽 5km까지는 가디언 제국이, 광산 입구에서 남쪽으로 5km까지는 탈로스, 글론 연합 왕국이 자리를 잡았소. 그러니 아베르크 제국은 우리 채굴 작업장에서 멀리 떨어져 주시기를 바라겠소.]

[그렇소. 우리 탈로스, 글론 연합군 역시 소란을 원치 않소. 우리가 먼저 왔으니까 아베르크 제국은 다른 곳으로 가시오.]

매러덕 소장의 아바돈이 뒤를 돌더니, 나를 쳐다봤다.

[참모! 이게 무슨 소리지? 난 무슨 소린지 모르겠는데?]

내가 앞으로 나섰다.

그리고 광산을 살폈다.

[저기 전방에 광산을 살펴보면, 줄기나 뿌리가 많고 공중에 떠 있는 부유섬이 많이 몰려 있는 곳이 채굴 작업하기 좋은 장소입니다. 그런데 이 부근에서 가장 좋은 자리 두 곳을 가디언 제국과 두 왕국 연합군이 지금 선점하고 있습니다.]

[아! 그러니까 우리더러 다른 데로 꺼지라고?]

그때 마장기가 말했다.

[그래 주시면 별일 없을 거요.]

[우리 연합도 가만있을 거요.]

[싫다면?]

[뭐요?]

매러덕 소장의 아바돈이 먼저 룩급 마장기 앞에 섰다.

[여기가 가디언 제국의 땅이라도 되는 거야?]

[우린 경고했소. 우리 가디언 제국은 마장기가 500기요!]

[그래서? 숫자가 많다고 협박하는 거야?]

아바돈이 룩급 마장기를 머리로 툭툭 치기 시작했다.

[기다릴 게 뭐가 있나? 지금이라도 검을 뽑지 그래?]

하지만 마장기는 주춤거리며 검을 뽑지 못했다.

기이잉! 쿵! 쿵! 쿵!

매러덕 소장은 이번에 타이탄에게 다가갔다.

타이탄은 검을 뽑을 수 있게 손잡이를 잡았다.

[좋아! 뽑아봐! 그럼 채굴이고 나발이고 뭐고 바로 전쟁이니까!]

그의 오리지널 기간트가 머리를 디밀며 밀자, 타이탄이 뒤로 밀리기 시작했다.

이제 보니 매러덕은 무대포였다.

[뽑아보라니까! 이 새끼야!]

그의 입에서 욕까지 튀어나왔다.

하지만 룩급 타이탄은 검을 뽑지 못했다.

눈앞에 룩급 오리지널 기간트도 문제지만, 뒤엔 3대의 오리지널 기간트가 더 있었다.

'윌리엄 사령관이 매러덕 소장의 성격을 잘 파악하고 있었네.'

이렇게 머리를 들이받을 줄 알고, 오리지널 기간트를 더 보냈나 보다.

[검도 뽑지 못할 조무래기는 꺼지고, 진짜 대장을 불러와라!]

쿠웅!

아바돈이 타이탄을 두 손으로 밀어버렸다.

[킁! 두고 보자!]

룩급 타이탄이 먼저 몸을 돌렸다.

그러자 다른 타이탄들도 기체를 돌려 자신들이 있는 진영으로 돌아갔고, 가디언 제국의 마장기들도 자기 진영으로 돌아갔다.

[흥! 별것도 아닌 것들이 텃세는!]

매러덕의 아바돈이 돌아왔다.

마이어스 소장이 말했다.

[저들을 너무 자극한 것이 아닙니까? 저들이 연합하면 숫자가 우리 2배가 넘습니다.]

[괜찮소. 저것들은 어차피 우리와 전쟁을 치를 배짱이 없소.]

난 속으로 피식 웃었다.

매러덕 소장의 말이 맞기 때문이었다.

그의 머리는 장식인 줄 알았는데, 그래도 이번엔 맞는 말을 했다.

저들도 이곳에 온 목적이 비행석 채취였다.

우리와 전쟁을 한다면 비행석 채취도 늦어지고, 또 100% 이긴다는 보장도 없었다.

게다가 두 세력의 연합이 단단했다면, 방금 따로따로 오지 않고, 하나로 뭉쳐서 왔을 것이다.

그 말은 적당히 어르고 타일러서 우릴 다른 곳으로 보내자고 약속은 했지만, 전쟁을 함께 치르는 동맹 관계는 아니란 말이었다.

그때 전령이 안당고낙에 타고 달려왔다.

"사령관님께서 세 분을 모셔오라고 하셨습니다."

나와 매러덕 소장, 마이어스 소장까지 세 사람은 지휘 천막으로 향했다.

***

[아베르크 지휘 천막]

윌리엄 사령관이 매러덕을 보며 피식 웃었다.

"시작부터 화끈하게 했군."

"제대로 된 상대가 아니었습니다."

"그래, 처음엔 그냥 찔러보는 거겠지. 결정권이 있는 놈들은 곧 다시 올 거네."

마이어스 소장은 걱정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전 저들이 연합해 우리에게 대항할까 걱정입니다. 그럼 저들의 병력이 우리의 2배를 상회합니다."

윌리엄 사령관은 나를 쳐다봤다.

"타일러, 자네가 볼 때 저들이 연합할 것 같나?"

"할 수도 있고, 안 할 수도 있습니다."

"그런 대답은 누구나 하겠네."

"연합을 안 하면 다행이지만, 연합을 할 것 같으면 막으면 됩니다."

"방법은 있겠나?"

"별로 친하지도 않은 두 세력이 저렇게 가까이 붙어있어 봐야 뭐가 좋겠습니까? 서로 눈치만 보고 얼굴만 붉히겠죠."

"하긴 이간계가 쓸만하겠군."

그때 다니엘 참모장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안드레아스가 그런 이간계에 걸리겠습니까? 그는 바로 알아챌 겁니다."

"탈로스와 글론 연합을······."

"그거야 연합군 놈들에게······."

나와 윌리엄 사령관의 말이 겹쳤다.

하지만 뜻은 같았기에 서로 피식 웃었다.

"아무튼, 그건 나중 일이고, 우리더러 다른 지역으로 가라는 거 같은데, 그 말대로 해야 하나? 아니면 버텨야 하나?"

내가 바로 대답했다.

"다른 곳으로 가는 것도 나쁘진 않습니다. 오히려 좋은 점이 많죠."

"뭐?"

매러덕 소장이 날 쳐다봤다.

"그대는 조금 전에 나한테는 저들을 몰아내자고 하지 않았나?"

"제가요? 전 그런 말을 한 적이 없습니다만."

"채굴에 좋은 두 지역을 저들이 차지하고 있다면서? 그게 저들을 몰아내자는 말이 아니고 뭔가?"

"아! 당장 눈에 보이는 지역이 좋다는 말이지, 앞으로도 계속 좋다는 말은 아닙니다."

"응?"

매러덕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러자 윌리엄이 고개를 흔들었다.

"어렵게 말하지 말고 쉽게 말하게. 다들 지휘관들이 아닌가."

"제게 저들보다 채굴을 빨리할 방법이 있습니다. 그러니 우리는 어디서 작업해도 상관이 없습니다. 그리고 이곳 지역은 꽤 넓습니다. 안쪽으로 들어가면 보다 좋은 장소도 있을 겁니다."

"그럼 두 세력과 조금 떨어진 곳이 적당하겠군. 감시도 해야 하니까."

"제게 어떤 방법이 있는지는 묻지 않으시는 겁니까?"

"자네가 방법이 있다고 했으니, 있겠지."

윌리엄 사령관은 날 너무 믿는 게 탈이다.

내가 뒤로 챙기는 게 얼마나 많은데.

이번에도 난 비행석을 많이 챙길 생각이었다.

"일단 저들과 협상을 하면, 억지로 들어주는 척을 하고 얻을 수 있는 건 최대한 많이 얻어내고 우린 적당한 곳에 자리를 잡으면 됩니다."

윌리엄이 다른 지휘관들을 쳐다봤다.

"다른 의견이 있나?"

"없습니다."

"좋아! 그럼 저쪽 실무자들을 만날 준비를 하지."

***

[3군 회담장]

황량한 벌판에 천장만 있는 천막이 처지고, 세 원정군의 대표와 그를 호위하기 위한 기간트와 마장기, 타이탄이 모였다.

"먼 길을 온다고 힘드셨겠소."

"그거야 다 마찬가지가 아닙니까. 올해 일흔이 되셨다고요?"

"어쩌다 보니 나이만 먹었소. 요즘은 아침에 일어날 때마다 살아있음에 감사한다오."

"제가 보기엔 아흔까지도 거든 해 보이십니다."

"하하! 그렇게 이야기해주니 고맙소."

안드레아스 원수와 윌리엄 사령관은 반가운 얼굴로 인사를 했다.

하지만 탈로스 글론 연합군의 레티거 공작은 불만이 많은 얼굴이었다.

"잡담은 그만하고 어서 시작합시다."

회담장에 어색한 기운이 감돈다.

평소 자주 싸우던 아베르크와 가디언 제국군이야 미운 정이 들 정도로 회담을 자주 했지만, 탈로스와 글론 왕국의 대표는 두 제국과 신민지 말고는 부딪힐 일이 없었기에 이런 자리가 어색했다.

"왜 우리 기사들을 공격했소?"

레티거 공작이 물었다.

"공격이라니요. 그냥 훈계를 한 겁니다."

"뭐요? 훈계?"

"아니 그렇습니까? 우린 부사령관인 매러덕 소장이 직접 맞이하러 나갔는데, 어디 이름도 없는 기사가 와서 다짜고짜 꺼지라는 말을 하다니요. 우리 부사령관이 참을성이 많아서 검을 뽑지 않았지. 제국이었다면 머리를 날려버렸을 겁니다."

"큼! 이름 없는 기사는 아니었소."

레티거 공작은 괜히 말을 꺼냈다가 상대에게 빌미만 제공해주었다.

안드레아스가 나섰다.

"자자! 시작부터 언성을 높일 필요는 없습니다. 다들 이곳에 온 목적이 같으니, 서로 조심하면서 지내야 하지 않겠소?"

"그래서 하는 말인데, 먼저 왔다고 자리를 선점하는 건 아니지 않습니까?"

"제가 보기엔 타당해 보입니다만, 억울하면 일찍 오셨어야지요."

가벼운 언쟁을 주고받으며 회담이 시작됐다.

따분한 자리지만, 내가 이곳에 온 것은 상대편 기사들을 확인하기 위함이었다.

지금 천막 밖엔 가디언 제국의 오리지널 룩급 마장기가 3대나 서 있었다.

우리 아베르크 제국보다 1대가 더 많았다.

그리고 타이탄 역시 오리지널 타이탄을 3대나 끌고 왔지만, 룩급은 하나였고, 나머진 비숍급이었다.

그리고 우린 룩급 2대와 비숍급 하나를 끌고 왔다.

저마다 힘을 과시하기 위해 끌고 왔는데, 결론적으로 가디언 제국이 오리지널 기체가 더 많았고, 강한 기체도 더 많았다.

난 마나를 눈으로 뿜어내며 상대를 살폈다.

'허! 다들 마나량이 상당하군.'

가디언 제국의 기사들은 확실히 룩급 오리지널 마장기에 탈 정도로 마나량이 많았다.

그리고 한 명은 내 자동인형인 웨슬리 슈나이더 수준의 마나량을 보유하고 있었다.

게다가 내 기간트처럼 가슴에 마법진이 새겨 있었다.

'백색은 아니고, 밝은 회색인가?'

얼음 마법진은 아니었다.

그럼 뭐지? 전격인가?

내가 가지고 있는 전격 속성 마석은 은색에 가까운 색을 가지고 있었다. 그거로 마법진을 그리면 저런 빛이 날 것 같다.

상대가 저 전격 마법진을 쓸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상당히 부담스러운 것이 사실이었다.

'오리지널 기체 전력은 우리가 밀리겠어.'

그리고 연합군의 오리지널 타이탄을 쳐다봤다.

기사들 모두 준수한 수준이었고 예상대로 룩급 오리지널 타이탄에 탄 기사의 마나량이 가장 많았다.

"뭐요?"

큰소리를 낸 것은 윌리엄 사령관.

그의 표정이 좋지 않았다.

무슨 일이지?

105. S등급 헌터.

105. S등급 헌터.

"이곳에 괴수가 있다는 말입니까?"

안드레아스 원수가 고개를 끄덕였다.

"숫자가 얼마나 됩니까?"

"셀 수 없을 정도로 많소."

"그럼 위험한 것이 아닙니까?"

"그런데 무슨 일인지 놈들이 동면에 든 것처럼 한 곳에서 움직이지 않고 있소."

이건 나도 처음 듣는 말이었다.

에테나도 전혀 모르는 일이었고.

한 달 전에 가디언 제국의 수색대가 이곳에서 북동쪽으로 100km 정도 떨어진 곳에 엄청난 숫자의 괴수들을 발견했다.

처음엔 놀라서 가디언 제국군은 바로 철군할 생각이었다고 했다.

하지만 놈들은 무슨 일인지 꼼짝도 하지 않고, 자신들이 지켜보는 내내 한 곳만 바라보고 가만히 있었기에 채굴작업을 서두르고 있다고 말했다.

"그래서 일단 자극하지 않고, 감시만 하고 있소. 그러니 아베르크 제국도 놈들을 자극하지 않고, 최대한 조용히 채굴작업을 하는 게 좋을 것이오. 혹여 놈들이 이쪽으로 몰려오기라도 한다면, 여기 있는 누구도 감당하지 못할 것이오."

안드레아스가 자신이 알고 있는 정보를 말해주었다.

이제 보니 가디언 제국과 연합군이 가까운 곳에 자리 잡은 이유가 있었다.

혹여 괴수들이 밀려오더라도 혼자보다는 둘이 막는 것이 나았으니까. 물론 그렇다고 막을 수 있는 건 아니었다.

"우리도 서둘러야겠군요."

"일단 지휘관들 외에 기사들과 병사들에게는 비밀로 하는 게 좋을 거요. 한번 동요하기 시작하면 걷잡을 수 없을 거요. 우리도 그렇게 하고 있소."

"조언 감사합니다."

윌리엄 사령관이 일어섰다.

회담의 성과는 있었다.

먼저 도착한 저들의 정보를 얻었으니까.

물론 혹여 우리가 괴수들을 자극할까 걱정하는 마음에 알려줬겠지만.

"이보게 타일러 준장!"

[네, 사령관님.]

"여기서 서쪽으로 조금 떨어진 곳에 진영을 만들겠네. 일주일은 거릴 테니, 저들의 말이 맞는지 자네가 가서 괴수들을 살펴보고 오게."

[알겠습니다.]

"그리고 자네가 말한 빨리 채굴할 방법 말이네. 그것도 준비하고."

[네!]

난 부하들이 있는 곳으로 갔다.

"당분간 선발대 지휘는 펠릭스 중령이 맡는다."

"네! 그런데 대장님은 어디 가십니까?"

"기밀이다. 내 기간트는 너희에게 맡기겠다. 잘 지키도록."

"걱정하지 마십시오."

"그런데 혹시 대장님 기간트에 한 번 타봐도 되겠습니까?"

피식 웃었다.

"탈 수 있으면 타보던가."

그동안 나를 따라다니며 실전 경험을 풍부하게 쌓았다곤 하지만 오리지널 비숍급 기간트에 타고 전투를 벌일만한 녀석은 아무도 없었다.

난 에테나와 본대에서 떨어져 나왔다.

***

위이이잉! 촤촤촤촤!

비공정이 하늘로 날아올랐다.

깊은 후드와 마스크를 쓰고, 검은 제복을 입은 자동인형들이 비공정을 조종했다.

그들의 신분은 숨겨야 했다.

"타일러님, 이 비공정을 드러내도 괜찮으세요?"

난 고개를 끄덕였다.

"샤이닝 일족 비공정이라고 하면 되지. 그리고 우리가 이 비공정으로 채굴작업에 협력하면 황제께서 엘프에게 상을 내리실걸."

"아! 그렇군요."

내가 말한 방법은 바로 비공정이었다.

이 비공정으로 공중에 부유섬을 끌어다가 주면, 비행석 채취작업이 다른 세력보다 훨씬 빠를 것이다.

지금 문제는 정말 괴수들이 있는지 살펴보는 것이었다.

우린 곧장 북동쪽으로 날아갔다.

'헉!'

거대한 분지.

그 안에 어마어마한 숫자의 괴수가 몰려 있었다.

그뿐만 아니라 분지와 연결된 수백 개의 동굴 속에도 괴수들이 가득 차 있었다.

게다가 비행 괴수까지 엄청나게 많았다.

녀석들은 분지 정중앙을 뚫어지게 쳐다보고 있었다.

'대체 뭘 보고 있는 거지?'

그곳엔 아무것도 없는 그냥 허공이었다.

"저놈들이에요. 우리 세상을 멸망시킨 놈들이!"

에테나가 몸을 부르르 떨었다.

분노와 두려움이 뒤섞인 반응이었다.

"그런데 왜 저렇게 가만히 있는 거지?"

"그건 저도 모르겠어요."

"숫자가 엄청나군."

"우리와 싸울 때보다도 몇 배는 더 늘어난 것 같아요. 못 보던 괴수도 많이 보이고요."

"엘프 세상을 휩쓸고 군세가 더 강해졌다는 말이네······."

아무튼, 저놈들이 달려든다면, 세 세력의 원정군이 힘을 모아도 막을 수 없었다.

저건 막을 수 있는 병력이 아니었다.

"제길, 서둘러야겠어!"

저놈들이 공격할까 불길한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불길함은 언제나 현실이 됐다.

이번엔 아니길 빌면서 비공정의 방향을 돌렸다.

***

[아베르크 제국 원정군 진영]

5개의 줄기를 끌고, 진영 위쪽으로 천천히 내려앉았다.

하나의 줄기엔 3, 4개의 부유섬이 줄줄이 매달려 있었기에 5개를 전부 작업하려면 일주일은 필요할 것이다.

"이 비공정은 대체 어디서 났는가?"

"저에게 협력하는 샤이닝 일족의 비공정입니다. 이번엔 우리 원정군을 위해 힘을 빌려주기로 했습니다."

윌리엄 사령관은 에테나와 위장한 내 자동인형들을 향해 살짝 고개를 숙였다.

"고맙소."

에테나도 답례로 고개를 숙였다.

"자! 서둘러라! 줄기를 잡아!"

원정군 기간트들이 우르르 달려들어 비공정에 걸려 있는 줄기를 하나씩 잡아당겼다.

"바닥에 단단히 고정하고, 작업을 시작해라!"

내 작업방식은 간단했다.

비공정으로 부유섬을 챙겨와 작업하면 기간트들이 일일이 주변의 부유섬을 찾으러 다니지 않아도 되고, 작업 장소도 한 곳에서 할 수 있었기에 효율을 극대화할 수 있었다.

그리고 하늘에 워낙 많은 부유섬이 떠 있으니, 일감이 끊길 일도 없었다.

"전 또 다른 부유섬을 챙겨서 오겠습니다."

"고생하게."

그렇게 부유섬을 넘겨주고, 다시 공중으로 올라간다.

일부러 매우 천천히 이동하며 비공정의 속도가 느린 척을 했다.

그래야 우리도 작업할 시간을 벌지.

지상에선 원정대가 비행석을 캐고, 우린 하늘에서 비행석을 캤다.

숫자가 깡패라고 400기 가까운 기간트들이 달라붙자, 아베르크 제국군의 작업 속도는 매우 빨랐다.

그리고 내가 말한 채굴 도구도 챙겨왔기에 내가 예상했던 속도보다 2, 3배는 빠른듯했다.

'다시 오긴 너무 불안해. 이번에 최대한 확보해야 해!'

내 자동인형들과 괴수인형들도 쉴 새 없이 작업했다.

우린 그렇게 석 달을 작업했다.

비행석 양이 상당하다.

이 정도면 곧 제국의 하늘은 비공정이 가득할 것 같았다.

물론 나도 엄청나게 챙겼다.

아베르크 원정대가 부유섬 10개를 작업할 때, 난 혼자서 3개를 작업했으니까.

우리보다 먼저 온 가디언 제국과 탈로스 글론 연합군들 역시 자신들 주변에 부유섬을 거의 초토화했다.

그렇게 비행석 채굴작업은 매우 순조롭게 진행 중이었다.

***

'신기하단 말이야. 어떻게 움직이는 거지?'

채굴작업은 마법인형들이 하고 난 요즘 인형의 집을 보는 데 빠져있었다.

[드라우켄(lv.7) 허수아비]

허수아비도 레벨이 오를 줄은 몰랐다.

솔직히 말하면 허수아비는 그냥 적의 시선을 속이거나 급할 때 방패막이로 쓰는 것이 전부였다.

운명의 실타래도 하나밖에 들지 않았기에 전생엔 수백 개까지 쓸 때가 있었다.

하지만 대부분 소모되고, 쓸만한 것들만 꼭두각시로 업그레이드해서 사용했다.

그런데 지금 드라우켄 허수아비는 거대한 몸을 콩콩 튕기며 내 인형의 집 안에서 움직이고 있었다.

현재 내 레벨은 60.

드라우켄을 잡고 엘프 차원 균열까지 한 달 동안 1레벨을 더 올렸기에 이제 S등급까진 겨우 1레벨 남았다.

대수림으로 돌아가 사냥해 나머지 1레벨을 더 올릴 수도 있었다. 그럼 드라우켄을 바로 꼭두각시로 만들 수 있었다.

하지만 여기 비행석 채취도 소홀히 할 순 없었다.

이건 앞으로 내 영지의 발전 가능성이 달렸고, 영지 수비군에게 꼭 필요한 비공정을 만들 초석이었으니까.

"고도를 더 높여!"

매일 아침 다른 세력의 움직임을 감시하는 것도 내 임무였다.

지금 비공정은 가디언 제국의 진영 상공을 날고 있었다.

'뭐야? 짐을 싸고 있어?'

가디언 제국의 진영이 분주하다.

어제까진 분명 아무런 조짐이 없었는데, 그들은 벌써 철군 준비를 끝내가고 있었다.

'설마?'

불안한 마음에 난 곧장 괴수들이 있는 곳을 향해 날아갔다.

그리고 보았다.

분지를 나서는 20미터 크기의 거인 괴수를!

그리고 녀석이 이끄는 어마어마한 괴수 군단을!

"젠장! 방향을 돌려!"

촤르르르!

에테나가 기겁하며 방향키를 돌렸다.

"전속력으로 달려!"

비공정이 선회하자, 선체 좌우에 달린 프로펠러가 맹렬하게 회전했다.

그러자 우리 뒤로 수천 마리의 비행 괴수가 따라왔다.

"여긴 바람이 없어요! 더 위로 가야 합니다."

난 급하게 괴수인형들을 꺼냈다.

괴조가 비상하고, 킹콩인형과 표범인형이 갑판에 모습을 드러냈다.

기간트는 꺼내지 못했다.

그럼 속도가 떨어질 테니까.

"꾸아아!"

"꾸아!"

몸길이 1미터 크기의 푸른 빛을 내는 작은 괴수들이 우릴 향해 곧장 날아왔다.

놈들은 꼭 나방처럼 생겼고, 날카로운 여섯 개의 다리와 기다란 촉수를 날름거리며 날아왔다.

"고도를 높여!"

"네!"

우린 비공정을 상승시켰다.

'놈들을 막아!'

지척에 다가온 나방 괴수들을 향해 괴조가 달려들었다.

촤악! 촤악!

"끼아아아!"

괴조가 공중에서 발톱으로 나방 괴수들을 죽였고, 거대한 부리로 놈들을 잡아먹었다. 그리고 거대한 날개로 후려치자, 나방 괴수가 후드득 떨어졌다.

다행히 놈들은 그렇게 강하지 않았다.

그런데!

파다다닥! 팍! 팍!

수십 마리가 뒤를 돌아 괴조의 몸에 달라붙었다.

놈들은 인정사정없이 긴 촉수로 괴조의 몸을 찔렀다.

'젠장! 운명의 실이!'

나방 괴수 수백 마리가 괴조의 몸에 붙어 공격하자, 실시간으로 운명의 실이 끊어지기 시작했다.

이대론 꼭두각시 레벨이 초기화되거나 운명의 실이 모두 끊어질 것 같았다.

'들어가!'

난 어쩔 수 없이 괴조 꼭두각시를 인형의 집에 넣었다.

그러자 놈들이 방향을 바꿔 우리를 향해 날아왔다.

이윽고 나방들이 우리 배 선미 쪽 바닥에 붙었다.

그리고 인정사정없이 선체를 공격했다.

놈들은 비공정도 하나의 생명체라고 여기는 것 같았다.

"에테나! 놈들이 붙었어. 속도를 내야 해!"

"이제 곧 바람이 강해지는 지점이에요! 조금만 버티면 됩니다."

오늘따라 비공정의 상승은 더디기만 했다.

그리고 나방들이 배의 갑판에 올라서기 시작했다.

"놈들이 돛에 접근하지 못하게 막아!"

표범 괴수와 킹콩 인형이 나방 괴수들을 공격했다.

난리도 이런 난리가 없었다.

난 선미 갑판으로 올라가 에테나를 보호했다.

검으로 달려드는 나방들을 사정없이 베어 넘겼다.

하지만 놈들의 숫자가 많아도 너무 많았다.

"오리지널 기간트 꺼내!"

토우 인형이 폰급 오리지널 기간트를 꺼냈다.

"에테나 거기 타고 조종해!"

"네!"

나방이 너무 많았기에 에테나를 보호하기 힘들었다.

그랬기에 폰급 오리지널 기간트에 태웠다.

에테나는 계속 강한 바람을 타기 위해 키를 돌렸고, 나와 마법인형들은 필사적으로 나방 괴수를 막았다.

"돛을 보호해라!"

"꾸아아!"

촤악!

검으로 나방 괴수의 몸을 반으로 갈랐다.

1미터 밖에 되지 않았지만, 놈들의 날카로운 촉수 끝엔 이상한 액체가 흘러나와 선체는 물론이고 질긴 괴조 마법인형의 피부를 뚫을 수 있을 정도였기에 인간은 찔리면 그냥 죽는다.

어쩌면 내가 입고 있는 조끼도 뚫릴 수 있었기에 절대 찔리지 말아야 했다.

"주군! 놈들이 너무 많습니다!"

웨슬리가 검을 휘두르며 말했다.

"조금만 더 버텨라! 곧 강한 바람을 탄다!"

자동인형들은 이미 나방 괴수들의 촉수에 몸 곳곳이 뚫렸다.

다행히 그들은 고통을 느끼지 못했고, 죽지 않는다.

물론 운명의 실이 계속해서 끊어지고 있었지만.

"나를 따라와라! 선미 돛을 지켜라!"

"네!"

선미로 다시 올라가 몰려드는 나방 괴수를 죽였다.

'앞발 후려치기!'

나방 괴수의 몸을 정신없이 자르고 있었다.

'젠장! 인생 쉽게 가는 법이 없어요!'

팡! 팡!

힘이 없던 돛이 크게 부풀었다.

프로펠러의 힘에 돛의 힘이 더해지자, 비공정이 강하게 치고 나갔다.

그러자 선체에 붙어있던 나방 괴수들이 떨어져 나가기 시작했다.

"됐다! 남은 놈들을 정리해!"

갑판에 붙어있는 나방 괴수들을 사정없이 찌를 때였다.

[레벨(lv.61)이 올랐습니다.]

[헌터 등급이 올랐습니다. (A -> S)]

[운명의 실타래 스킬 레벨이 대폭 올랐습니다.]

[기사회생 스킬 레벨이 대폭 올랐습니다.]

[영혼 이동 스킬 레벨이 대폭 올랐습니다.]

[병렬사고 스킬 레벨이 대폭 올랐습니다.]

[토우인형 제작 스킬 레벨이 대폭 올랐습니다.]

놈들을 잡는 사이에 S급 헌터가 됐다.

갑자기 힘이 넘친다!

"남은 놈들은 내가 처리하겠다."

난 나방 괴수를 찌르기 전에 운명의 실을 연결했다.

[나방(lv.1) 허수아비 마법인형을 만들었습니다.]

[나방(lv.1) 허수아비 마법인형을 만들었습니다.]

[나방(lv.1) 허수아비 마법인형을 만들었습니다.]

.

.

기사회생 스킬 성공률이 90%로 대폭 올랐기에 괴수를 마법인형으로 만드는 확률도 크게 올랐다.

운명의 실타래도 2배 가까이 늘었기에 얼마든지 마법인형을 늘릴 수 있었다.

106. 선을 넘었다.

106. 선을 넘었다.

"에테나, 서둘러! 시간이 없어!"

"지금 전속력입니다!"

우린 아베르크 제국군 진영으로 향했다.

하지만 시간이 너무 부족했다.

최소한 괴수가 진영에 들이닥치기 전에 철군을 시작해야 했다.

'이대론 너무 늦어!'

마음은 급했지만, 지금은 내가 어떻게 할 방법이 없었다.

괴조 마법인형을 타고 갔다면 훨씬 빨랐겠지만, 괴조인형은 나방 괴수들에게 당해 운명의 실을 추가로 연결해야 하고, 상처가 치료되려면 사흘은 지나야 했다.

'그래! 일단 드라우켄부터 꼭두각시로 제작하자!'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빨리 전력을 늘리는 것이었다.

난 선실로 들어가 상태창과 인형의 집을 열었다.

내가 나방 괴수를 많이 잡긴 잡았나보다 렙업한 거 보면.

덕분에 드디어 S급 헌터가 됐다.

스킬 레벨도 대폭 올랐고.

게다가 인형의 집이 3배로 넓어졌다.

이젠 웬만한 소도시를 넣고 다닐 만큼 공간이 넓었다.

전생보다 무려 16년이나 빨리 S급이 된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기뻐할 틈이 없었다.

드라우켄에게 운명의 실타래를 연결했다.

[꼭두각시 제작에 실패했습니다.]

괜찮다.

운명의 실 300개로 부족하면 더 추가하면 된다.

100개를 더해 총 400개를 연결하자.

[꼭두각시 제작에 실패했습니다.]

그럼 500개!

[꼭두각시 제작에 실패했습니다.]

젠장 600개!

[드라우켄(lv.1) 꼭두각시 마법인형이 만들어졌습니다.]

"됐다!"

무려 600개나 되는 운명의 실타래를 사용했다.

그래도 S급 괴수인형이라 아깝진 않았다.

그리고 아직 여유가 있었다.

'일어서!'

명령을 내리고 운명의 실을 잡아당기려고 했을 때였다.

'어?'

녀석이 몸을 꿈틀거리더니, 자기 발로 일어섰다.

'이, 이게 가능한 건가?'

순간 놀란 표정을 지었다.

이건 갓난아이가 태어나자 벌떡 일어선 거나 다름없는 놀라운 일이었다.

게다가.

'앞으로 걸어!'

쿵! 쿵! 쿵!

천천히 발을 떼고 걷기 시작했다.

'뭐야?'

진짜 걷는다고?

혹시나 운명의 실은 전혀 건들지 않고 명령만 내렸는데, 정말 혼자 걷는다.

그것도 금방 걸음이 안정됐다.

이젠 드라우켄이 어슬렁거리며 주변을 두리번거릴 정도의 여유까지 생겼다.

[드라우켄(lv.2) 꼭두각시 레벨이 올랐습니다.]

'헉! 벌써 레벨도 올랐어!'

놀라움의 연속이다!

역시 S급 괴수는 뭔가 다른 건가?

내가 인형의 집을 확대해 살펴보자, 내 시선을 느낀 드라우켄이 날 향해 고개를 돌리기까지 했다.

허수아비로 4개월을 이상을 있다 보니, 다른 자동인형들을 보고 스스로 이미지 트레이닝이라도 한 건가?

아니면 지능이나 기억이 남아 있는 건가?

드라우켄이 다른 괴수인형과 다른 점이 하나 있다면, 몸속에 최상급 마석이 들어 있다는 것이었다.

표범인형이나 킹콩인형, 괴조인형까지 모두 내 마법인형이 되기 전에 마석을 품지 않았기에 그대로 허수아비로 만든 것이었고, 드라우켄은 유일하게 최상급 마석을 품고 있었다.

마석이 녀석에게 어떤 영향을 줬을 수도 있나?

'혹시, 달리기도 할까?'

드라우켄에게 달리기를 시켜봤다.

처음엔 조금 빨리 걷는 수준이더니, 순식간에 달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곧 장애물까지 넘고, 벽을 뛰어다니기까지 했다.

정말 드라우켄의 머리에 학습 인공지능이라도 달린 것 같았다.

그런데 또 자동인형으로 업그레이드한 것도 아니고.

괴수 마법인형 중에서 아직 자아를 각성해 자동인형이 된 적은 한 번도 없었다.

'주군, 아래쪽에 이상한 것이 있습니다.'

웨슬리의 목소리가 들렸다.

'알았어. 바로 나갈게.'

난 상처가 가장 심한 더그 자동인형을 인형의 집에 넣었고, 드라우켄에게 추가로 동작을 가르치게 했다.

비공정 갑판으로 나갔다.

"뭔데 그래?"

"저기 좀 보십시오."

난 웨슬리가 가리킨 지상을 내려다봤다.

그곳엔 작은 비공정 한 대가 날고 있었다.

에테나가 말했다.

"저건 말라키 일족의 비공정입니다."

"뭐? 놈들도 비공정이 있었어?"

"저희처럼 부서진 비공정을 수리했을 수도 있고, 이쪽 차원에 남아 있었을 수도 있습니다."

"하긴, 다른 엘프 일족의 일까진 다 알 수 없지."

말라키는 다크엘프처럼 생긴 놈들이었고, 가디언 제국을 돕고 있었다. 그리고 지금 저공비행하고 있는 녀석들의 비공적은 선체 길이가 50미터 정도로 작았고 폭도 매우 좁았기에 기간트를 옮길 수 있는 수준은 아니었다.

그런데!

"에테나! 고도를 낮춰!"

"네!"

우리 비공정이 아래로 내려가자, 이상한 것이 보였다.

"저놈들 지금 뭘 달고 있는 거야?"

"엠벌럭 같은데요."

"그러니까 지금 괴수를 잡아다가 팔다리를 자르고 비공정에 묶어서 끌고 가는 거네!"

순간 머리에 망치를 맞은 듯 멍해졌다.

'안드레아스! 이 개자식이!'

이건 당했다고밖에 할 수 없었다.

엠벌럭 저놈들은 2.5미터의 크기에 무리 생활을 한다.

온몸의 뼈가 드러날 정도로 깡마른 체격에 팔다리가 기형적인 놈들로 나무를 잘 타고, 얼굴이 박쥐처럼 생긴 놈들이었다.

하나는 그리 강하지 않지만, 무리가 매우 크고, 또 드워프 차원에서 봤던 개렉이나 포개렉처럼 군체의식이 있어 한 번에 수백 마리씩 달려드는 놈들이었다.

그러니까 하나를 저렇게 상처입히고 납치하면 다른 엠벌럭들이 녀석들 따라올 것이고, 그 엠벌럭이 움직이자 또 다른 괴수들까지 우르르 따라오고 이는 것이다.

무슨 일이 생길 줄은 예감했지만, 이런 개 같은 일이라니······.

'안드레아스 무서운 놈이네······.'

내가 아침에 가디언 제국의 진영을 정찰할 땐 이미 철군 준비가 끝난 상태였다. 그런데 내가 괴수가 있는 곳에 도착하자, 놈들은 이제야 분지를 빠져나오고 있었다.

그 말은 가디언 제국군은 철저히 계산해서 이미 철군하고 없을 때, 괴수를 우리 쪽으로 유인하는 것이었고, 지금 아베르크 제국군은 가디언 제국군이 왜 철군했는지도 모르고, 비행석 채취작업을 계속하고 있을 것이다.

한마디로 우리가 괴수들에게 몰살당하고, 자신들이 비행석을 가지고 돌아가면 경쟁자를 물리치고 대륙의 패권을 가져갈 힘을 얻게 된다는 계산일 것이다.

"하아!"

한숨이 흘러나왔다.

아베르크 제국과 가디언 제국은 300년간 잦은 전쟁으로 골이 깊어진 관계라곤 하지만, 괴수의 손을 빌려 같은 인간을 죽이려 하다니 순간 분노가 치밀었다.

루이스 황자와 친분 때문에 웬만하면 제대하고 가디언 제국과는 싸울 일을 만들지 않을 생각이었다.

하지만 이건 선을 넘었다.

안드레아스 원수의 행동은 가디언 제국엔 충정이겠지만, 같은 인간으로선 해서는 안 될 일이었다.

'어쩌면 내가 너무 무른 사람일 지도······.'

인간이란 원래 자기 이익 앞에선 어떤 짓이든 서슴지 않고 하는 자들이다.

그랬기에 전생의 인간들도 뭉치지 못했고, 서로 경쟁만 하다가 결국 괴수에게 멸망했다.

아니 이대론 이곳의 인간들은 서로 싸우다가 공멸할 것이다.

다시 화가 치밀었다.

이대로 당할 순 없지.

안드레아스는 날 계산에 넣지 않은 것을 후회할 것이다.

"에테나! 고도를 낮춰 저놈들을 잡는다!"

"네!"

우리 비공정은 다크엘프의 비공정 위로 접근했다.

피슉! 피슉!

화살이 계속 날아오고.

쉬이익! 휘이익!

다크엘프가 부리는 바람의 정령들이 쏜살같이 우릴 향해 날아왔다.

하지만 내 마법인형은 이미 저들의 비공정 위에 있지.

"쿠아아아!"

킹콩인형이 갑판 위로 뛰어들며 다크엘프들을 향해 거대한 주먹을 휘둘렀다.

부우웅!

퍽! 퍼억!

"으아아!"

"으악!"

다크엘프들이 비공정 아래로 떨어졌다.

"크아앙!"

표범인형은 선실로 들어갔고, 내 자동인형들은 선미 갑판을 공격했다.

촤악!

"크윽!"

쿵! 쿵!

열여섯 명의 다크엘프를 모두 처리했다.

'방향타를 동쪽으로 돌려!'

'네! 주군!'

촤르르르!

'돛을 단단히 고정하고.'

괴수를 유인한 비공정을 일단 다른 방향으로 돌렸다.

바람이 약해 곧 따라잡히겠지만, 조금이라도 시간을 벌어야 했다.

일단 활동을 시작한 괴수들이라 다시 동면 같은 상태로 빠질 가능성은 작아 보였다.

우리를 다 죽이고 몇 달 후면 모를까.

우린 서둘러 부유석 광산으로 향했다.

광산 상공에 도착했다.

하지만 가디언 제국의 진영은 텅텅 비어 있었다.

그리고.

"뭐야? 연합 놈들도 튀었네!"

두 세력이 같이 짰는지 아니면 눈치가 빠른 놈들이라, 가디언 제국이 빠르게 철수하는 모습을 보고 자신들도 철수했는지는 알 수 없었다.

일단 두 진영 모두 비어 있었다.

우린 아베르크 제국군 진영에 도착했다.

예상대로 다들 비행석 채취작업에 심취해 있었다.

내가 비공정에 타고 내려오자, 작업장 기간트들이 다가왔다.

[부유섬은 아직 충분합니다.]

"모두 작업을 중지하라!"

[네?]

"사령관께선 어디 계시냐?"

[그야 지휘 천막에······.]

에테나를 쳐다봤다.

"우리 짐 챙기고, 상공에서 대기해."

"네!"

에테나와 자동인형들은 비공정에 남겼다.

그리고 서둘러 지휘 천막으로 달렸다.

"사령관님!"

"응? 타일러 준장! 왜 벌써 돌아왔나?"

"큰일 났습니다!"

내 표정을 보자, 윌리엄 사령관도 심상치 않음을 알았다.

"괴수들이 이리 몰려옵니다."

"무슨 소리야?"

"안드레아스에게 우리가 당했습니다. 빨리 철수해야 합니다."

난 짧게 지금 상황을 설명했다.

"뭐, 뭐라?"

윌리엄 사령관은 큰 충격을 받은 것 같았다.

"그놈들이 괴수를 유인했고, 우리만 남아 있다는 말이군."

"그렇습니다."

"그 빌어먹을 늙은 놈에게 당하다니!"

윌리엄 사령관은 얼굴이 타오를 것처럼 새빨개졌다.

"이럴 때가 아니다! 바로 철수한다!"

"철수를 준비해라!"

윌리엄 사령관의 명령에 지휘관들이 진영을 다니며 짐을 싸기 시작했다.

그나마 다행이라면, 나 때문에 부유섬 채취를 할 필요가 없었기에 외부로 나간 병력이 없다는 것이었다.

"서둘러! 안당고낙을 준비해라!"

"천막을 버려라! 당장 필요 없는 물건은 싣지 마라!"

기간트가 400기 가까이 됐고, 병력도 상당했다.

물자도 챙겨야 했고, 또 가장 중요한 비행석도 챙겨야 했다.

철군을 준비하는 데만 한나절이나 걸렸다.

"사령관님! 우리가 들어왔던 차원 균열로 가다간 너무 늦습니다. 우리 쪽 엘프가 말하길 탈로스 연합 놈들이 들어온 차원 균열이 여기서 이틀 거리랍니다. 일단 그쪽으로 들어가고, 그다음에 아리칸 공국 쪽으로 이동하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알았네."

"제가 철군 명령을 내리겠습니다."

"그렇게 하게."

윌리엄 사령관은 너무 지쳐 보였다.

내가 지휘관들에게 소리쳤다.

"2군은 선봉에 서고! 3군은 좌측! 4군은 우측을 맡는다! 1군은 후미에서 행렬을 지켜라!"

"네!"

[네!]

지휘관들이 사방으로 흩어졌다.

"지금부터 저 비공정을 따라가라! 절대 뒤돌아보지 마라!"

"모두 출발하라!"

[비공정을 따라가라!]

기이잉! 쿵! 쿵!

그렇게 우리도 비행석 광산을 뒤로하고 귀환길에 올랐다.

그리고 나와 선발대는 이번엔 맨 후미에서 1군과 함께 행렬을 지키기로 했다.

***

잠을 자는 것도 앉아서 쉬는 것도 사치였다.

자더라도 걸으면서 자야 했고, 쓰러지더라도 계속 가야 했다.

조금만 처지면 저 앞에 가는 비공정을 따라갈 수 없음이다.

'조금만 늦게 와라! 조금만 더!'

조금 전에 비공정이 내 머리 위를 선회하며 연락을 했다.

차원 균열이 보인다고.

그러니 앞으로 1시간 정도만 더 가면 우린 대수림으로 돌아갈 수 있다.

'내가 대수림에 가는 걸 기뻐하다니······.'

그만큼 상황이 다급했고, 몰려오는 괴수가 많다는 소리였다.

"꾸아아!"

"끼이이아!"

'젠장! 왔다!'

발이 빠른 괴수들과 나방 괴수가 뒤쪽에서 새카맣게 몰려오고 있었다.

이대론 뒤를 잡힐 것이다.

[놈들이 온다! 1군은 전투를 준비해라!]

[전투태세를 갖춰라!]

그때 걸걸한 매러덕 소장의 목소리가 들렸다.

[크하하! 한바탕 칼춤을 춰야겠군!]

나방 괴수가 코앞으로 날아왔다.

놈들은 크기도 작고 속도도 그리 빠르지 않았지만, 하늘을 날 수 있었기에 가장 먼저 우리를 덮쳤다.

"하늘을 조심해라!"

"꾸아아!"

팍! 콰직!

기간트가 손으로 나방 괴수를 잡아 터트렸다.

그리고 커다란 검과 창을 휘두르자, 두세 마리가 후드득 떨어졌다.

하지만 워낙 숫자가 많았기에 기간트의 팔이나 몸에 붙었고, 촉수에서 이상한 액체를 뿜어냈다.

기사들은 기체에 거머리처럼 달라붙은 놈들을 떼어내기 바빴다.

[배를 조심해라! 놈들의 촉수는 기간트의 기체도 뚫을 수 있다!]

액체로 인해 기간트의 기체가 약해졌다.

그러자 나방 괴수들이 사정없이 촉수를 찔러댔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탑승구를 직접 찔리지 않으면, 촉수에 몇 번 맞았다고 기간트가 쓰러지는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탑승구를 찔리면 안에 있는 인간은 몇 초 안에 즉사한다.

푹!

[크헉!]

쿵!

'젠장!'

한 기사와 연결된 운명의 실이 검은색으로 물들었다.

[기사회생(lv.10) 스킬을 사용합니다.]

107. 거신 괴수.

107. 거신 괴수.

내 기사회생(lv.10) 스킬 성공률은 90%.

아군을 마법인형으로 만드는 것은 나도 달갑지 않았다.

아니! 하기 싫었다.

하지만 그들의 희생을 그냥 보고만 있을 순 없었다.

죽어서도 오늘의 복수를 해야 하지 않겠는가!

그 순간 운명의 실이 보랏빛으로 물들었다.

[허수아비(lv.1) 마법인형을 만들었습니다.]

나와 1군단 기사들은 모두 운명의 실타래로 연결된 상태였다.

"크악!"

"저리 가! 으악!"

바로 앞에 있는 병사들의 비명이 들렸다.

나방 괴수가 병사들을 공격한 것이다.

크기가 작아도 괴수는 괴수.

인간이 막아내기는 버겁다.

[선발대는 병사들을 지켜라!]

[네!]

나와 선발대는 병사들 사이에 섰다.

[죽어!]

[젠장! 왜 이렇게 가벼워?]

1미터의 작은 몸체라 기간트가 휘두른 검에 베이는 느낌이 거의 들지 않았다.

[방패를 휘둘러라! 그게 효과적이다!]

[네!]

부우웅! 퍼퍽!

내 명령대로 방패를 휘두르자, 놈들이 맞고 바닥에 떨어졌다.

그럼 검을 찔러 마무리!

날은 조금씩 어두워졌고, 기간트로 1미터의 크기의 나방 괴수를 맞추는 것도 쉬운 일은 아니었지만, 방패는 꽤 효과적이다.

다들 내 방법을 따라 하고 있었다.

그때 매러덕 소장의 목소리가 들렸다.

[지상에 괴수가 온다! 1군은 대열을 갖춰라!]

[대열을 갖춰라!]

척! 처처척!

1군의 기간트들이 물러서다 말고, 일자로 넓게 대열을 갖췄다.

저들이 뚫리면 그다음은 바로 병사들과 보급 마차였다.

[우리도 이곳에서 괴수를 막는다!]

[하아!]

나와 선발대 기사들도 멈춰 섰다.

대열을 뚫고 지나온 괴수를 막는 것이 먼저였다.

나방 괴수는 병사 한 명을 잡으면, 체액을 빨기 위해 한동안 붙어있었지만, 지금 달려오는 놈들은 한 놈만 난입해도 대량살상이 가능했다.

두두두두두!

"꾸르르르르!"

"꾸르륵!"

5미터 길이의 메뚜기를 닮은 놈들이 달려온다.

[제국의 영광을 위하여!]

[괴수를 막아라!]

쾅! 콰콰콰쾅!

기간트가 일제히 무기를 휘둘렀다.

콰직! 콰직!

메뚜기 괴수들의 몸이 잘리고, 앞다리가 잘렸다.

[크하하! 이 벌레 새끼들! 얼마든지 와라!]

룩급 기간트 아바톤이 한 손에 도끼, 다른 손엔 검을 들고 휘둘렀다.

촤악!

칼로 괴수의 몸통을 자르고.

부웅! 쩌억!

"꿰엑!"

도끼로 대가리를 갈랐다.

황태자와 추밀원장 사람이라고 좋지 않은 편견이 있었나?

매러덕 소장은 가장 앞에서 병사들을 지휘했고, 명령에 거침이 없었다.

그리고 잘 싸웠다.

[놈들이 넘어온다! 우리가 막는다!]

1군의 기간트들이 잘 막고 있었지만, 기어이 기간트를 뚫고 온 괴수들이 있었다.

[공격하라!]

[가자!]

나와 선발대 기간트들이 넘어온 괴수들을 공격했다.

[이야!]

쾅!

방패로 막고.

촤악!

검을 휘두른다.

가장 기본적인 공격방법이지만, 돌진밖에 모르는 괴수들에게는 이만큼 효과적인 것이 없었다.

그리고 선발대 기간트들은 내 덕분에 괴수와 전투는 이골이 난 상태였다.

하지만 다 잘 싸우는 건 아니었다.

콰앙!

[크윽!]

콜벳의 나이트급 기간트가 메뚜기 괴수의 배를 찌르곤 함께 뒤로 넘어졌다.

그때 또 다른 메뚜기 괴수가 옆에서 달려들었다.

[콜벳 조심해라!]

기이잉! 촤아악!

블리언의 기간트가 검을 휘둘러 괴수의 몸을 반으로 갈랐다.

그리곤 손을 내밀었다.

[선배, 조심 좀 합시다.]

[싸가지, 고맙다.]

콜벳의 기간트가 손을 잡고 일어섰다.

그 순간 좌우에서 메뚜기 괴수가 달려들었다.

그러자 약속이나 한 듯이 서로 앞쪽의 괴수를 향해 검을 찔렀다.

쉐엑! 푹! 푹!

쿵! 쿵!

괴수들이 동시에 쓰러졌다.

[조무래기들이 제법이네!]

메뚜기 괴수의 허리를 반으로 가른 워버린 소령이 한마디 했다.

[난 5마리째다!]

푹!

그때 펠릭스 중령의 룩급 기간트가 괴수의 몸통을 뚫었다.

[푸하하! 애송이 녀석. 난 7마리다!]

그의 검에는 메뚜기 괴수 두 마리가 꽂혀있었다.

그의 기간트가 발로 괴수를 누르고 검을 뽑자, 녹색의 피가 검날을 따라 흘렀다.

12마리를 죽인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아직은 다들 싸우면서도 여유가 있었다.

[한눈팔지 말고, 서로를 등을 지키며 싸워라!]

[네! 대장.]

다행히 괴수들의 숫자가 점점 줄어들었다.

그때 매러덕 소장의 아바돈이 검을 높이 들고 소리쳤다.

[뒤로 물러서라!]

[후퇴하라!]

이미 본대는 상당히 전진한 상태였다.

[달려라!]

쿵쿵쿵쿵!

선발대와 1군의 기간트들은 달리기 시작했다.

우린 나방 괴수가 병사의 체액을 빨고, 부서진 마차를 연신 공격하는 장소를 지나쳤다.

모두를 구할 순 없었다.

그렇게 얼마를 달렸을까.

본대가 좌우에서 메뚜기 괴수의 공격을 받는 모습이 보였다.

'역시, 그 거신 괴수가 머리를 쓰는 건가······.'

저놈들은 우리를 지나쳐 본대를 공격한 것이었다.

[모두 달려라! 괴수를 막아라!]

[가자!]

[와아아아!]

다시 시작된 전투!

몰려드는 괴수를 베고, 또 벴다.

[기사회생(lv.10) 스킬을 사용합니다.]

[허수아비(lv.1) 마법인형을 만들었습니다.]

기사들의 희생은 계속됐다.

벌써 기간트 기사 다섯이 죽어 내 허수아비가 됐다.

내 운명의 실타래 범위를 벗어나 죽은 기사들도 많았고, 다른 군도 피해가 컸다.

병사들은 이미 수백이 죽었다.

[뒤에서 괴수가 또 온다!]

어느새 뒤를 따라붙은 괴수들까지 쉴 새 없이 밀려왔다.

[막아라!]

[괴수를 막아!]

쾅! 콰콰쾅!

다시 몰려든 괴수와 싸웠다.

놈들이 너무 많았기에 이젠 서로를 돌봐줄 틈이 없었다.

[본대가 움직인다!]

[천천히 물러서면서 싸워라!]

좌·우측에서 달려든 괴수를 처리하자, 다시 균열을 향해 나아갔다.

그리고 우린 뒤로 물러나면서도 싸웠다.

'주군! 선두 행렬이 균열에 도착했습니다!'

비공정에 탄 웨슬리가 연락했다.

순간 안도의 한숨이 흘러나왔다.

쿠쿠쿠쿵! 쩌저저적!

[뭐, 뭐야?]

[지진이다!]

갑자기 땅이 갈라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갈라진 틈에서 거대한 것이 모습을 드러냈다.

쿠아아앙!

지네를 닮은 거대 괴수!

"끄아아아아아!"

괴수가 포효한다.

놈은 몸길이가 100여 미터가 넘고, 수백 개의 다리를 꿈틀거렸다.

그리고 지네 괴수 위엔 그 거신 괴수가 타고 있었다.

'저, 저건 격이 다르다!'

거신 영웅들이 변이한 대군주가 아니었다.

거신 마법사 알리사 엘가가 말한 이데아 제국의 위대한 열두 기사!

그것 중의 하나가 변이한 괴수가 틀림없었다.

'젠장! SS급 괴수인가!'

대군주가 S급이라면, 저건 적어도 SS급.

그리고 타고 있는 지네 괴수 역시 SS급이다.

저걸 상대하기 위해선 더 크고 강한 기간트가 필요해 보였다.

[멸망급 괴수다!]

[세상에! 저런 괴수가 있다니!]

기사들이 소리쳤다.

저건 도저히 상대할 놈이 아니었다.

"끄어어어!"

SS급 거신 괴수가 괴성을 질렀다.

그러자 달려들던 괴수들이 거짓말처럼 멈췄다.

"끄아아!"

거신 괴수가 다시 소리를 질렀다.

그러자 괴수들이 뒤로 물러섰다.

그리고!

쿵! 쿵! 쿵!

20미터 크기의 거신 괴수 여섯이 모습을 드러냈다.

대군주들이었다.

놈들의 뒤로 새로운 군단이 몰려왔다.

그중에는 이족보행을 하는 작은 괴수도 보였고, 바위를 뭉쳐서 만든 것 같은 거대한 괴수도 있었다.

뭐지? 새로운 군단을 시험하기라도 하는 거야?

[서둘러라!]

[빨리 들어가!]

기간트 기사들이 균열 안으로 들어가는 병사들을 다그쳤다.

그때 지네 괴수 위에 있던 SS급 거신 괴수가 괴수 뼈로 된 검을 겨누며 괴성을 질렀다.

"쿠아!"

그러자 대군주 하나가 거대한 몽둥이를 들었다.

그리고 우리를 향해 몽둥이를 겨눴다.

"쿠아아!"

대군주가 소리치자!

쿠쿠쿠쿵! 두두두두!

"꾸아아아!"

"끼이아아!"

놈이 이끄는 괴수 군단이 사방에서 몰려오기 시작했다.

지축을 뒤흔드는 엄청난 위압감에 기간트들이 뒷걸음질 치기 시작했다.

[도망쳐!]

[이건 막을 수 없어······.]

기이잉! 쿵! 쿵!

[도망치지 마라!]

매러덕 소장의 아바돈이 도끼를 겨누며 앞으로 나섰다.

[제국의 병사들을 지켜라!]

[우리가 제국의 방패다!]

그가 소리치자, 기간트들이 아바돈 옆으로 서기 시작했다.

[괴수를 막아라!]

[와아아아!]

부웅! 쾅! 콰직!

아바돈이 몰려드는 괴수를 인정사정없이 도끼로 찍었다.

다시 시작된 전투!

나와 선발대 기사들도 몰려오는 괴수를 막았다.

쿵! 콰콰쾅!

'왜 공격하지 않는 거지?'

등장은 했지만, 지네 괴수와 저 SS급 거신 괴수는 우릴 공격하지 않고, 지켜보고만 있었다.

그리고 다른 대군주들 역시 자신의 군단은 움직이지 않고, 그저 전투를 구경만 하고 있었다.

우릴 그저 새로운 군단의 연습 상대로밖에 보지 않는다는 말이었다.

"끄아아!"

대군주가 공격했다.

부아앙!

콰앙!

[크악!]

기간트의 머리가 박살 나고, 몸통이 움푹 파였다.

날카로운 무기가 아니었다.

놈의 무기는 그저 거대한 뭉둥이 같았다.

그리고 몽둥이를 휘두르자, 기간트들이 힘없이 나가떨어졌다.

[으아아! 네놈의 상대는 나다!]

아바돈이 달려들었다.

20미터 거신 괴수와 11미터의 아바돈.

크기에선 상대가 되지 않았지만, 아바돈은 거신 괴수의 공격을 옆으로 흘리고, 안으로 파고들며 대항했다.

캉! 캉!

부아앙! 콰직!

도끼가 제대로 가슴에 박혔다.

몸통이 파이긴 했지만, 그 정도로 대군주를 쓰러트릴 순 없었다.

[젠장할!]

콰앙!

쿠쿠쿵!

놈이 휘두른 주먹에 아바돈이 날아가 꼬꾸라졌다.

대군주는 아바돈을 향해 움직였다.

두 룩급 기간트가 앞을 막아서 보지만.

쾅! 콰쾅!

[기사회생(lv.10) 스킬을 사용합니다.]

[허수아비(lv.1) 마법인형을 만들었습니다.]

대군주를 막을 순 없었다.

가서 돕고 싶었지만, 내 앞을 막는 괴수들.

난 놈들을 방패로 밀고, 검을 휘두르며 길을 뚫으려 했다.

하지만 이미 놈은 정신을 차리지 못하는 아바돈을 향해 거대한 몽둥이를 들었다.

그때였다.

쿠쿠쿠쿵! 퍼억!

"쿠아아!"

콰앙!

날렵한 엠버 대령의 베가스가 몸을 날려 대군주의 옆구리를 받아버렸다.

그리곤 몸통 위에 올라가 검을 사정없이 휘둘렀다.

팍! 파파팟!

대군주의 몸에서 파편이 튀었다.

놈이 베가스를 향해 주먹을 휘둘렀다.

휘익! 쿵!

하지만 베가스는 몸을 한 바퀴 회전시키며 피했고, 뒤로 물러섰다.

[놈을 죽여라!]

[와아아아!]

2군의 기간트들이 도우러 온 것이다.

기간트들이 몰려와 쓰러진 대군주를 인정사정없이 공격했다.

쾅! 카캉! 쾅! 콰쾅!

나 역시 괴수를 뚫고 달려와 놈의 머리통을 방패로 내려찍었다.

[운명의 실타래(lv.13)를 연결합니다.]

놈이 팔을 휘두르자, 기간트 두 대가 날아갔다.

하지만 우리의 공격은 멈추지 않았다.

아바돈도 정신을 차리고 달려와 놈을 향해 도끼를 내리찍었다.

그리고 드디어 대군주의 움직임이 멈췄다.

놈을 잡은 것이다!

[기사회생(lv.10) 스킬을 사용합니다.]

[대군주(lv.1) 허수아비 마법인형을 만들었습니다.]

'어? 됐어?'

기쁨도 잠시!

"끄아아아!"

SS급 거신 괴수가 소리치자, 다른 대군주까지 군단 병력을 이끌고 공격했다.

다들 힘을 모아 대군주 하나를 잡았지만, 이건 시작도 하지 않은 것이다.

게다가 대군주가 죽자, 놈의 군단 괴수들이 더 미쳐 날뛰기 시작했다.

[크윽! 밀린다!]

[더는 버틸 수가 없습니다!]

[아직이다! 버텨라!]

콰앙!

기간트가 넘어지자, 괴수들이 득달같이 달려들어 물어뜯었다.

다시 일어서려 했지만, 괴수들이 또다시 덮쳤고, 기간트와 기사는 다시 움직이지 못했다.

그래도 그동안 괴수를 막다 보니, 병사들과 마차가 차원 균열을 통해 밖으로 나갔다.

이젠 기간트 차례였다.

하지만 너무 많은 운명의 실이 끊어진다.

이젠 이 운명의 실이 누구와 연결된 것인지도 모를 정도였다.

난 계속해서 기사회생 스킬을 사용했다.

90%의 확률이라 내 인형의 집에 기사 허수아비들이 쌓이기 시작했다.

'이러다 다 죽겠어!'

3군, 4군의 기간트들은 빠져나갔는데, 1군과 2군 기간트들은 순식간에 괴수들에게 포위당했다.

차원 균열까진 겨우 200여 미터를 남긴 상태였다.

[매더럭 부사령관!]

[크윽! 뭔가?]

[제가 길을 뚫겠습니다. 부하들과 나를 따라오십시오!]

[알았다! 타일러여!]

선발대 기간트들에게 명령했다.

[우리가 포위를 뚫른다!]

[가자!]

기이이이잉! 쿵쿵쿵!

난 가슴에 주먹을 대고 마법진을 발동시켰다.

그리고 우릴 막아서는 괴수들 향해 손을 뻗었다.

108. 선택과 집중.

108. 선택과 집중.

파지지직!

기간트의 손바닥에서 붉은 마법진이 번쩍였다.

[플레임 더스트!]

팟! 파파파파파팟!

포위하고 있는 괴수들을 향해 불꽃이 날아갔다.

일부러 손바닥을 움직이며 불꽃을 넓게 퍼트리며 쏘았다.

펑! 퍼퍼퍼퍼퍼펑!

십여 개의 불꽃이 사방에 터지며 화염이 치솟고, 곳곳에서 자욱한 연기가 뿜어졌다.

[공격하라! 무조건 뚫어라!]

나와 선발대 기사들은 괴수를 향해 돌진했다.

사실 나 혼자라면, 얼마든지 손쉽게 빠져나갈 수 있었다.

비공정도 있었고, S등급 괴수인형과 마법인형도 있었으니까.

하지만 이들을 이대로 죽게 버려둘 순 없었다.

난 지금 아베르크 제국의 군복을 입고 있었으니까!

'그림자 투영!'

S급 헌터가 되며 생긴 인형술사 고유 스킬을 발동시켰다.

[그림자 투영(lv.1) - 운명의 실타래 범위 안에 있는 마법인형의 신체 능력을 투영해 사용한다. (사용시간 100초, 쿨타임 100분)]

[선택된 마법인형 – 괴조(lv.8) 꼭두각시]

갑자기 달리는 내 기간트가 느려졌다.

그리고 주변 세상이 느리게 흐르기 시작했다.

앞을 막고 있는 괴수들이 커다란 이빨과 발톱을 세우고 달려오는 모습이 꼭 슬로비디오에 걸린 것처럼 느껴진다.

아니! 이건 괴조 꼭두각시의 시야와 동체 시력, 반응속도 등의 신체 능력이 내게 투영됐음이다!

한 마디로 주변이 느려진 것이 아니라 내 눈과 반응속도가 빨라졌음이다.

곧바로 또 다른 마법진을 활성화했다.

파지직!

그리고 전방의 지면을 향해 마법을 발동했다.

[어스 웨이브!]

쾅! 콰콰콰콰쾅!

땅에 큰 충격파가 쏘아졌다.

괴수들 사이로 군데군데 연기가 뿜어지고, 땅이 크게 일렁였다.

그러자 괴수들이 중심을 잃고 우르르 넘어지는 모습이 느리게 보였다.

난 검을 들고 달려가 넘어진 괴수들을 거침없이 찔렀다.

푸욱! 푸욱! 촤아악!

내 눈과 반응속도가 좋아졌지만, 기간트의 동작까지 빨리진 것은 아니라 조금 답답했다.

신체와 마나 운용이 지금 내 눈과 뇌의 지시사항을 따라가지 못함이다.

"꾸엑!"

"크악!"

검에 찔린 괴수 두 마리가 괴성을 질렀다.

하지만 내 검은 이미 다른 목표를 향해 찔러진다.

푸욱! 촤아악!

한 괴수의 목을 찌르고, 다른 괴수의 허리를 베고 지나갔다.

그렇게 10분 같은 100초가 흐르자, 나 혼자 30미터나 전진하며 괴수 이십여 마리를 쓰러트렸다.

내 활약을 본 선발대 기사들이 멈칫한 상태였다.

[멍청히 서 있지 말고, 괴수는 모조리 죽여라!]

[가자!]

[죽여라!]

그제야 선발대 기사들이 내 뒤를 따르며 괴수를 향해 거침없이 검을 찔렀다.

난 다시 어스 웨이브 대지 마법을 써서 내 앞에 괴수들을 넘어트리고 전진했고, 부하들은 내 뒤를 따라 쓰러진 괴수를 공격했다.

푹! 푸푹!

[앞으로 전진! 길을 뚫어라!]

[괴수 새끼들! 뒈져버려!]

선발대가 닥치는 대로 베고, 찌르고 또 찌르자 드디어 괴수들의 포위망을 뚫었다.

[뚫렸다!]

[이쪽이다! 서둘러라!]

그러자 기간트들이 우리 뒤를 따라왔다.

[선발대는 놈들을 막고 길목을 지켜라!]

[달려라! 어서 균열로 들어가!]

우리가 뚫은 길을 따라 기간트들이 우르르 달려왔다.

다들 이게 마지막 기회라는 것을 알기에 필사적으로 달렸다.

곧 2군단의 기간트가 차례로 차원 균열로 들어가고, 뒤를 이어 1군단도 균열을 향해 달려오기 시작했다.

"꾸엑?"

"꾸르르르!"

괴수들은 추격하다가 차원 균열 근처에 도달하면 머뭇거리며 다가오지 않았다.

그 틈에 우리가 괴수를 공격했고, 기간트들은 계속해서 차원 균열을 넘어 대수림으로 들어갔다.

하지만 아쉽게도 그 과정에서 죽는 기사들도 있었다.

[기사회생(lv.10) 스킬을 사용합니다.]

[허수아비(lv.1) 마법인형을 만들었습니다.]

전생보다 몇 배나 빨리 S급 헌터가 됐지만, 상황은 전생과 똑같았다.

죽어가는 동료들과 내 마법인형이 되는 동료들.

마음은 씁쓸했지만, 상심하거나 공황에 빠지진 않았다.

지금은 그저 최대한 많은 기사를 구하는 데만 집중했다.

[하악! 하악! 타일러 준장님, 고생하셨습니다.]

엠버 대령이 거친 숨소리가 들렸다.

[자네도 고생했네. 어서 들어가게.]

[네!]

그나마 2군단은 1군단보다 피해가 크지 않아 보였다.

그래도 절반은 귀환했으니까.

엠버 대령의 기간트 베가스도 균열 안으로 들어갔다.

기이잉! 쿵! 쿵!

아바돈이 무릎을 꿇었다.

[크윽! 우리가 마지막이네!]

매러덕 소장의 오리지널 기간트도 차원 균열 앞에 도착했다.

그의 옆에는 겨우 십여 기의 기간트밖에 남아 있지 않았다.

1군의 피해가 너무 컸다.

"그어어어어!"

대군주들이 우리를 향해 으르렁거렸다.

하지만 이놈들도 차원 균열론 다가오지 못했다.

[지독한 놈들! 이쪽으론 이제 오줌도 싸지 않을 테다!]

매러덕의 아바돈이 일어서며 고개를 흔들었다.

그리곤 조금 전까지 싸웠던 곳을 바라보았다.

그곳엔 미처 빠져나오지 못한 기간트들이 괴수들에게 철저히 유린당하고 있었다.

이미 운명의 실이 끊어진 기사들이라 우리가 할 일은 없었다.

[타일러 참모, 우린 최선을 다했소. 그만, 들어갑시다.]

아바돈이 주먹으로 내 기간트 크리드의 어깨를 한번 툭 치더니, 1군의 기간트들과 균열 안으로 들어갔다.

[우리도 모두 철수한다!]

[네! 대장.]

선발대의 기간트들도 모두 균열 안으로 들어갔다.

마지막으로 머리 위에 비공정도 안으로 들어갔다.

이제 이곳 차원에 살아있는 사람은 나밖에 없었다.

"끄아아아!"

그 순간 SS급 거신 괴수가 날 향해 뭐라고 소리를 질렀다.

제국의 위대한 열두 기사는 사라지고, 끔찍한 거신 괴수의 모습만 남아 있었다.

고개를 흔들며 손가락 욕을 하고, 차원 균열로 들어갔다.

***

"152기라고?"

피해 상황을 보고 받은 윌리엄 사령관은 손을 부들부들 떨고 있었다.

"멍청하긴! 모든 것이 내 책임이네. 괴수가 있다는 걸 알면서도 괴수를 이용할 거라는 생각을 하지 못하다니."

윌리엄 사령관은 두 손으로 머리를 감싸며 자책하고 있었다.

그는 아마도 안드레아스가 처음부터 괴수의 정보도 그냥 알려줬고, 비행석이나 캐고 돌아가자는 말을 믿은 것 같았다. 그리고 지난 3개월 동안 아무 문제가 생기지 않자, 방심하고 있었다.

그래도 내게 아침마다 가디언 제국과 연합군 진영을 돌아보라고 지시한 것이 있었기에 그나마 이 정도 피해로 끝낼 수 있었다.

"하아! 내가 어리석었어······."

윌리엄 사령관이 심란한 표정으로 고개를 흔들었다.

"사령관, 너무 상심하지 마십시오. 여기 있는 우리 누구라도 그런 끔찍한 생각은 하지 못했을 겁니다."

"맞습니다. 이번 일은 우리의 예상 범위를 벗어난 것입니다."

가장 큰 피해를 본 1군 대장인 알레스 준장이 말했다.

"그래도 우린 비행석을 지켰습니다. 그러니 너무 자책하진 마십시오."

다니엘 참모장이 위로의 말을 했지만, 분위기는 나아지지 않았다.

기간트 기사들이 괴수를 끝까지 막고, 병사들이 있는 힘을 다해 비행석이 들어있는 마차를 옮겼다.

그들의 희생이 있었기에 원정대는 비행석을 모두 지킬 수 있었다.

피해 상황은 이랬다.

1군은 73기, 2군은 49기, 3군은 12기, 4군은 18기.

이번 엘프 차원에서만 152기의 기간트가 파괴됐다.

그리고 앞서 대수림에서 드라우켄의 공격과 괴수의 공격에 파괴된 것까지 합하면 거의 절반인 200기 가까운 기간트를 잃었다.

병사는 300여 명이나 전사했고, 부상병은 그보다 배나 많았다.

기간트 수준만 따졌을 때, 제국은 2개 군단을 잃은 수준이었고, 이번 원정의 피해로 아베르크 제국은 전체 기간트 전력의 1/10이 줄었다.

물론 지방 영지군의 기간트가 더 있었지만, 그들은 정규군도 아니었고 기간트도 오래된 구형이 많았기에 큰 전력은 되지 못했다.

가뜩이나 기간트 숫자가 가디언 제국보다 적은 상황에서 이건 상당한 타격이었다.

하지만 벌어진 기간트 격차를 단기간에 줄일 기회는 아직 있었다.

내가 나섰다.

"여기서 더 지체할 순 없습니다. 식량이나 물자도 부족하고, 이곳은 적진이나 마찬가지입니다. 하루라도 빨리 카야킨으로 돌아가야 합니다."

"타일러 참모 말이 맞네. 우선 병력을 다시 재배치하고, 바로 출발하지."

우린 다음 날 카야킨 전진 기지 방향으로 출발했다.

***

난 길잡이를 계속했고, 선발대를 맡고 있었다.

돌아가는 길에도 괴수는 계속 나왔고, 누군가는 처리해야 했으니까.

본대엔 부상병도 많고 사기가 바닥이었기에 선발대 기사들은 그 어느 때보다 더 열심히 괴수를 잡았다.

그랬기에 실력도 마나도 전부 한 단계씩 성장해 있었다.

늦은 밤.

오늘은 잠이 오지 않았다.

아니 지난 3개월간 매일 잠이 오지 않았다.

잠이 들더라도 뒤척이는 날이 많았다.

사실 이번 원정이 내게는 큰 성공이었다.

아베르크 제국은 큰 손실을 봤지만, 난 오히려 엄청난 전력을 얻었다.

S등급 괴수 드라우켄을 마법인형으로 만들었고, S등급 거신 괴수도 허수아비로 만들었으니까.

게다가 상당한 양의 비행석과 30명이나 되는 마나인형까지 얻었다.

하지만 이 답답함은 무어란 말인가?

인간에 대한 실망감 때문인가?

아니면 평소 알고 지내던 기사들이 죽어서 그런 것인지.

그것도 아니면 친분이 있는 루이스 황자와 이제 생사를 걸고 싸워야 한다는 생각 때문인가?

고구마를 100개쯤 먹은 듯한 이 답답함이 좀처럼 사라지지 않았다.

'내가 큰 걸 바란 게 아니었는데······.'

그냥 적당히 돈도 벌고, 좋아하는 사람들과 이계 난민들도 함께 어울려 살 수 있는 영지를 만들고 싶었을 뿐이었다.

이상향까진 아니지만, 영지민들이 먹고살 만한 영지의 영주란 소리는 듣고 싶었다.

그것이 전생에 20년간 인형술사 헌터로 수없이 괴수와 싸우다가 죽었고, 이 세상에 다시 살아난 보상이자, 이유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지금 난 어떻게 하면 가디언 제국에 큰 타격을 줄 수 있을지 고민하고 있었다.

간절히 복수를 원하는 것이다.

가디언 제국의 다음 행보는 안 봐도 알 것 같았다.

비행석으로 비공정을 만들고, 마장기를 잔뜩 생산해 아베르크 제국의 국경을 넘겠지.

이미 전세는 기울어졌다고 판단할 것이다.

비행석을 캐러 간 원정대가 전멸했다고 믿고 있을 테니까.

그러니 그 점을 역 이용한다면, 반격의 기회는 반드시 올 것이다.

'그럼 꼭두각시 마법인형을 늘리길 잘한 거겠지?'

인형의 집을 열었다.

기간트를 타고 훈련이 한창인 꼭두각시들이 보였다.

이번에 추가한 꼭두각시는 모두 10명.

그들은 모두 이번에 전사했다가 내 마법인형이 된 1군단의 기사들이었다.

지난 3개월간 훈련했기에 벌써 기간트에 타고 전투를 벌일 정도까지 성장했다.

이제 난 20기의 기간트를 동시에 운용할 수 있었고, 그중의 10기는 자동인형들이었기에 여러 작전을 펼칠 수도 있었다.

그리고 인형의 집 한쪽에 허수아비 마법인형이 20명이나 더 있었다. 이들 역시 1군단의 기사들이었다.

하지만 그들을 꼭두각시로 만들 순 없었다.

남은 운명의 실타래가 이젠 많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여유는 좀 있었지만, 언제 어떻게 쓰일 지 몰랐기에 남겨둬야 했다.

사실 처음엔 S급 거신 괴수를 꼭두각시로 만들까도 고민했었다.

하지만 거신 괴수는 앞으로 가디언 제국과 전투에 활용하기 힘들었다.

'그래 기간트 전력을 늘린 건 잘한 거 같아!'

이 10명의 꼭두각시를 계속 굴리다 보면, 자동인형으로 올라갈 것이고, 그럼 비공정을 이용한 작전과 내 인형의 집을 이용한 작전까지 쓸 수 있어, 내 전략 전술이 많아진다.

그걸 십분 발휘해야 가디언 제국과 전쟁에서 우리가 이길 수 있었다.

그리고 내겐 이미 S급 괴수인형 드라우켄이 있으니, 정말 위급하면 녀석을 쓸 생각이었다.

지금 드라우켄(lv.6)은 기간트 20대의 위력을 발휘할 수 있었다.

녀석이 10레벨까지 올라 본래 능력을 발휘하면 얼마나 강해질지 벌써 기대된다.

다시 억지로 잠을 청했다.

아직 카야킨 전진 기지까진 먼 길이었다.

109. 비밀 수송 작전.

109. 비밀 수송 작전.

쏴아아아아!

"빌어먹을 대수림! 이러다 몸뚱이가 물에 불어 터지겠네."

우린 구멍 뚫린 하늘을 올려다봤다.

아직도 갈 길이 먼데, 대수림은 우릴 순순히 보내주지 않는다.

펠릭스 중령이 날 쳐다봤다.

"대장님, 정말 떠날 겁니까?"

"어딜?"

"정보국 말입니다. 돌아가면 그만두신다면서요?"

"그만둬야지."

"너무 아깝지 않습니까? 그 나이에 벌써 준장이면, 최연소 정보국 국장이 될 수도 있고, 또 압니까 추밀원장 자리에도 오를지?"

"됐다. 나 정도면 제국을 위해 할 만큼 했잖아."

난 피식 웃어줬다.

자리 욕심이 없는 건 아니지만, 그런 높은 자리는 정치를 동반해야 한다.

신경 쓸 일이 한둘이 아니겠지. 생각만 해도 머리가 아프다.

그리고 아무리 올라가도 결국 황제 밑에 이인자밖에 될 수 없었다.

물론 영주도 황제와 제국의 그늘에 있는 건 맞지만, 최소한 내가 있는 영지에선 눈치를 보지 않아도 되니까.

그러려면 힘이 필요하다!

아주 강한 힘이.

'최소한 마르틴 대공 정도의 힘은 있어야 해. 그래야 휘둘리지 않는다.'

이번 원정을 통해 새로운 목표가 생겼다.

영지를 키우고, 대영지를 만든다.

그리고 아리칸 공국 수준의 강력한 군대를 보유하는 것이다.

시간은 걸리겠지만, 그래야 내가 원하는 영지를 만들 수 있어 보였다.

"나도 이번에 그만둘 겁니다."

콜벳 소령이 말했다.

펠릭스 중령이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무슨 말이야? 넌 가족의 생계를 책임져야 해서 군대에 말뚝 박는다면서?"

"전 타일러 영주님을 따라갈 겁니다."

"뭐?"

기사들이 일제히 콜벳을 쳐다봤다.

"어차피 제국군에 있으나 영주님을 따라가나 마찬가지가 아닙니까. 이왕이면 조금 더 오래 살 수 있는 곳에 붙는 게 났죠."

"그래?"

콜벳 소령이 날 쳐다봤다.

"대장, 데려가실 거죠?"

"글쎄."

"에이, 왜 이러실까? 우린 그 엄청난 괴수를 뚫고 살아남은 역전의 용사가 아닙니까. 급료는 딱 제국군 수준으로만 받겠습니다. 물론 영지 내에 집을 마련해 주신다면 굳이 사양하진 않겠습니다. 그리고 아이들 학비는 영지에서 대주겠죠? 휴일에 근무할 순 있지만, 대신 수당은 2배로 챙겨 주셔야 합니다. 그리고······."

계속된 콜벳 소령의 요구사항에 난 고개를 흔들었다.

그러자 다른 기사들도 고개를 흔들었다.

"저도 대장님을 따라갈 겁니다."

"응?"

앤서니가 말했다.

"무슨 소리야? 넌 라포트 영지 소속이잖아."

"이번에 돌아가면 그만두고 대장님 영지로 갈 겁니다."

"저도요."

바람둥이 로버트도 끼어들었다.

그는 가는 도시마다 여자를 만들고 유난히 야한 농담을 좋아하는 놈이라 바람둥이란 별명이 붙었다.

하지만 기간트를 모는 실력만큼은 수준급이었다.

잘생긴 꽃미남 크리스와 늘 기간트가 좁다고 불평하는 거구의 마크까지.

제국군 소속이 아닌 기사들이 모두 내 영지로 온다고 떠들었다.

그러자 펠릭스 중령과 제국군 장교들의 눈동자가 흔들리는 것이 보였다.

"녀석들, 누가 너희를 고용한대?"

"어어? 왜 이러십니까. 역전의 용사는 다시 뭉쳐야죠!"

"맞습니다. 전 부모님과 가족들도 다 데리고 갈 겁니다."

물론 오면 나야 좋지.

영지의 기사가 부족한 상황에서 뛰어난 기간트 기사가 오면 좋지만, 막상 영지로 돌아가면 생각이 바뀔 것이다.

지금이야 싸우고 구르고 1년을 넘게 함께 했기에 전우애가 넘칠 때니까 그런 생각을 하겠지만, 삶의 터전을 바꾸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그래도 온다면 잘 해줘야지.'

어느덧 빗줄기가 약해지더니, 거짓말처럼 그쳤다.

경계를 서던 블리언과 바드의 기간트가 다가왔다.

[대장님, 출발할까요?]

"다들 기간트에 올라라! 출발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