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20화. 약속을 지키다
여씨는 임근용의 말을 듣고 몹시 불쾌해 입술을 부들부들 떨었다. 하지만 뭐라고 할 수는 없어서 잠시 침묵했다가 힘겹게 한 마디 내뱉었다.
“의랑이가 참 착하구나.”
의랑이 고개를 돌리고 여씨를 바라보며 천진난만하게 웃더니 장난스럽게 얼굴을 긁적이고 재빨리 임근용의 품에 얼굴을 묻었다. 임근용이 미소를 머금고 그의 등을 가볍게 두드리며 나지막이 말했다.
“이제 한 숨 자.”
기뻐하는 것도 잠시, 마차가 갑자기 급정거를 하며 멈춰 섰다. 그리고 차갑고 음산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다 내려. 물건들을 두고 가면 목숨만은 살려주겠다. 거부하면 다 죽일 것이다.”
여씨가 깜짝 놀라 육건립의 팔을 움켜쥐고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또 왜 이래요? 무슨 일이에요?”
육건립이 말없이 문발 근처에 앉아 있는 두아에게 문발을 걷으라고 눈짓했다. 문발이 들리자 모두들 헉 하고 숨을 들이마셨다. 눈앞에 보이는 길목에는 아직도 연기가 피어오르는 목재들이 어지러이 쌓여 있었고, 관군 복식을 한 채 온몸에 피 칠갑을 한 이십여 명의 남자들이 각양각색의 무기를 들고 길목을 막고 있었다. 맨 앞에 있는 세 사람은 전부 말을 타고 있었는데, 그중 가운데 있는 새카맣고 삐쩍 마른 사람은 손에 유성추(*流星锤: 긴 쇠사슬 양끝에 쇠로 된 추가 달려 있는 무기)를 들고 있었다. 그가 사나운 늑대 같은 눈빛으로 매섭게 이쪽을 노려보았다.
여씨가 또 기절하려 했지만, 이번에는 아무도 그녀에게 신경을 쓰지 않았다. 사람들은 본능적으로 생사의 기로에 놓여있다는 걸 직감했다.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마차를 타고 하인들의 호위를 받으며 움직이면 확실히 눈에 띌 수밖에 없었다. 만약 저들이 이 마차 안에 많은 재물이 있을 거라 생각한다면……. 임근용은 그녀와 여지가 전생에서 사람들 틈에 섞여 도망쳤던 것처럼 이번에도 그렇게 했더라면 오히려 사람들 눈에 띄지 않고 더 좋았을 거라는 생각을 떨쳐 버릴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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