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ebnovel

7

50화 탄약대대 (4)

괴물들을 떨쳐 낸 뒤 출발한 차량들이, 부대를 가로지른다.

목적지는 적의 대장.

'여왕'이 머무르고 있는 곳.

'정확히 어디 있는지는 모르지만.'

어디로 가야 할지는.

꽤 쉽게 알 수 있었다.

-샤아아아악!!!

[여왕의 분노가 울려 퍼집니다.]

계속해서 피어를 뿜어내는 괴성.

"소리가 들리는 방향으로 밟아!"

"예!"

그 소리의 진원지에, 여왕이라는 녀석이 있을 것이다.

두두두두....

"저기, 반대쪽에서 거미들이 접근합니다!"

소리의 진원지로 향하는 길.

우리가 온 곳과는 전혀 다른 곳에서 온 거미 괴물들이 우리를 공격해 왔다.

'탄약대대는 넓은 만큼 탄약고도 여러 곳에 퍼져 있으니까.'

다른 탄약고.

아니.

부화장에 있던 개체들이 뛰쳐나와 우리를 사냥하러 오는 것이겠지.

다행히 멀리서부터 달려오는 괴물들은 밀집해 있지는 않았다.

덕분에.

"쳐 버려!"

콰지지지지직.

-키에에에엑!!!

차량에 달린 커다란 뿔과 가시, 창날들.

접근해 오는 괴물들 대부분이 맥의 마력으로 강화된 날들에 갈려 나갔다.

"하, 하핫! 어떻습니까! 전투차량의 힘이!"

"잘했어, 이 자식들아!"

공병 각성자들이 의기양양하게 떠들었다.

충분히 그럴 만한 위력이었고.

'자재 확보를 우선시 한 건 최고의 판단이였다.'

방호력은 물론.

전투력까지 가미된 전투차량.

소수의 괴물 정도는 아무렇지 않게 갈아버리며 이동할 수 있었다.

그 결과.

-샤아아아아아아아악!!!

들려오는 괴성의 크기가.

아까보다 커진 것이 느껴졌다.

"저쪽에서 들리는 것 같습니다!"

"저기도 탄약고 아냐?"

머지않아.

우리는 소리의 진원지에 도착하는 데 성공했다.

"어, 어어?"

"그. 탄약고는 맞는 것 같은데."

다른 탄약고들과 마찬가지로, 산에 구멍을 뚫은 터널이나 굴처럼 생긴 탄약고.

한 가지 차이가 있다면.

"엄청 크군...."

부화장으로 사용되고 있던 이글루형 탄약고들.

그 자체도 일반적인 부대의 탄약고에 비하면 턱없이 넓었다만.

눈앞에 보이는 탄약고의 문은 그런 수준을 넘어섰다.

산 하나를 아예 깎아 만든 듯한 거대한 크기.

"우리 부대의 탄약을 보급받던 곳도 저기야."

"김 중위님?"

"탄약 보급대대 내에서도 가장 규모가 큰 탄약고지. 괴물들의 대장이 여기 있었을 줄이야."

저 정도 규모의 탄약고라면.

평범한 포탄이나 탄약을 보관하고 끝나진 않을 것 같았다.

어쩌면 미사일 같은 것도 보관하고 있지 않을까 싶을 정도의 규모.

탄약고의 거대한 문은 반쯤 열려 있는 상태였다.

그리고 그 안쪽에.

거대하고 새하얀 거미의 모습이 보였다.

-샤아아아아아아아아악!!!

어지간한 대형 트럭만 한 덩치의 흰 거미.

그런 거미가 침을 튀기며 괴성을 지르는 비현실적인 광경이 보였다.

"저게 여왕."

여왕의 피어는 적을 약화시키고 아군을 강화시킨다.

여기서 적은 우리고 아군은 거미들.

저 피어가 울려 퍼지기 전에는 전투 자체가 우리에게 훨씬 유리하게 돌아갔다.

반대로 말하면.

"여왕만 제거하면, 나머지는 양만 많은 오합지졸이란 뜻이다!"

숫자가 많기는 하다만.

버퍼만 제거한다면 어떻게든 대처 가능하리라는 확신이 있다.

다른 탄약고의 부화장에 있던 새끼 괴물들이 우리를 쫓아오고 있는 상황.

속전속결로 여왕의 목을 베어 넘길 생각이었는데.

"여왕만이 아니군요."

"여왕씩이나 돼서 혼자 있을 것 같지는 않았지. 제기랄."

끼이이익.

키이익....

대형 트럭만 한 크기의 여왕.

그에 비하면 작지만, 승합차 정도 크기는 되는 거대한 괴물들이 그 주위에 있었다.

스무 마리 정도 돼 보이는 커다란 괴물들.

그 모습에 시선을 가져가자.

['하급 요리의 깨달음 - 아라크론의 흰거미 손질법'을 깨닫습니다.]

스킬이 발동했다.

[아라크론의 날카롭고 단단한 앞발은 훌륭한 대장장이 재료로 손꼽히지만, 특별한 종족이 아닌 한 식재료로 사용하기는 어렵다. 우선 이 앞발을 손질하는 게 핵심으로....]

[피부 껍질 또한 단단한 편이지만, 앞발을 제외한 신체 부위의 경우 열을 가하면 껍질이 물러져 쉽게 제거할 수 있다.]

[대신 살점도 많이 물러지니 이 점에 주의할 것. 맛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살점을 뭉개지 않는 선에서 섬세하게 손질할 필요가....]

"이름부터가 다르군."

지금까지 우리가 싸웠던 거미들의 이름에는 '불완전한'이라는 명칭이 붙었다.

제대로 태어나기도 전이였던 유체들.

눈앞의 거대한 거미들은 그것들과는 달랐다.

'정상적으로 태어난 뒤, 성장까지 거친 성체.'

불완전한 유체.

온전한 성체.

지금까지와는 달리 쉽지 않은 전투가 될 것이라는 예감이 들었다.

하지만.

"속전속결로 끝낸다."

다른 부화장에서 부화해 이쪽으로 달려오고 있을 새끼들.

녀석들이 합류하는 순간 끝장인 셈이니까.

"신 병장님... 이거, 가능하겠습니까?"

칼을 꺼내 든 뒤.

전투식량을 대충 씹어 삼키며 전투 준비를 하고 있자니.

광일이 녀석이 불안한 듯 물어왔다.

녀석에게 해 줄 말이라 봐야.

하나밖에 없다.

"벌써 잊었냐?"

되냐.

안 되냐.

그딴 건 중요한 게 아니다.

"안 되도 되게 해야지."

군대란 게 그런 거잖냐.

아니, 지금은 비단 군대라서 그런 것이 아닌가.

"살아남기 위해서."

"...그렇군요."

이 세상 자체가.

그래야만 하는 세상이 되어 버렸거든.

"우오오오!!! 전장으로! 영광스러운 죽음이 우리를 기다린다!"

"오늘 저녁은 저 녀석들로 먹는다!"

"끼에에에에에엑!!!"

많은 말은 필요 없었다.

망설임을 떨쳐 낸 광일이 녀석을 시작으로.

전사조가 돌진하고, 후열의 각성자들이 무기를 꺼내 들었다.

전투의 개시였다.

* * *

"최대한 빨리 여왕을 제거한다!"

"예!"

각성자들이 각자의 무기를 들고 달려들 때.

공병들은 전투차량의 조종석에 앉았다.

"돌격!"

"하하핫! 이럴 경우도 있을 것 같아서. 저런 커다란 괴물과 싸울 때를 대비한 설계도 해 놨다, 이 말입니다!"

부우우우웅....

공병들에 의해 개조된 전투차량.

그 앞에 달린 충각 같은 거대한 뿔이 여왕을 향해 쇄도했다.

분명 직격한다면 상당한 피해를 줄 공격이었으나.

-샤아아아아악!!!

쿵!

"큭...!"

"아. 제기랄, 엔진도 개조를 했어야 했는데!"

한두 마리의 성체들이 달라붙어 움직임을 저지하자.

바퀴만 헛돌 뿐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는 전투차량.

'강화했다고 해도 엔진은 기존 차량에 불과하니까.'

애초에 힘 싸움에서 밀리면 효과가 없다는 것.

공병들의 수준이 올라간다면 엔진의 개조도 가능하겠지만, 지금은 아닌 모양.

성체 몇 마리가 전투차량들을 막기 위해 빠진 것에 의의를 둬야 할 것 같았다.

"젠장, 좀 비켜 이 자식들아!"

"저 녀석들. 여왕을 지키는 데 혈안입니다!"

녀석들의 전력 핵심은 여왕의 버프.

적들도 그것을 아는 것인지.

여왕은 뒤에서 괴성만을 지를 뿐.

앞으로는 나서지 않았다.

난 그 모습을 보며 어이없이 중얼거렸다.

"괴물 주제에 포지션까지 잡기냐?"

게임에서 흔히 잡는 포지션.

버퍼를 뒤에 두고, 앞에는 탱커들이 막는 모양새.

'지능이 높다는 건가.'

저렇게 진형을 짤 정도의 지능이 있는 것을 보아하니.

디버프 요리를 던진다고 냅다 주워 먹을 것 같지도 않다.

우리 쪽도 어떻게든 여왕에게 접근하기 위해 무리를 해 보았으나.

챙!

-키에에엑!

"크읍...!"

성체 괴물의 날카로운 앞발이 우리의 앞을 막아섰다.

속전속결로 끝내야 하는 전투.

하지만 이런 식이어서야.

전투가 늘어질 수밖에 없다.

'뭐든 좋으니. 방법을 만들어 내야 해.'

하지만 어떻게?

한 마리, 한 마리가 상당히 강력한 괴물들.

시간 여유가 있다면 모를까, 순식간에 제거하기엔....

'어?'

그 순간.

뭔가 이상한 것을 발견했다.

"방금 나를 가로막은 괴물 녀석!"

확실히 강력한 몬스터임에 틀림없다.

하지만 한 가지 이상한 부분이 있었다.

"다리가 하나, 모자랐던 것 같은데...?"

"예?"

"...맞습니다! 저 녀석만 다리가 하나 없어요!"

전투에서 한 걸음 물러나 다시 보니, 틀림없었다.

괴물 중 한 마리는, 다른 괴물들에 비해 다리 하나가 없었다.

'아니, 녀석뿐만이 아니야.'

다리가 없는 수준의 괴물은 녀석뿐이긴 하다.

하지만 다른 괴물들도 마찬가지.

새하얀 몸체에 묘하게 피멍이 들어 있는 녀석.

묘하게 앞발의 칼날을 절뚝거리는 녀석도 있었다.

"이 녀석들."

"다친 상태인 건가...?"

어디서 맞고 왔는지는 모르겠다만.

다리 한 짝이 없는 녀석이 그중 가장 큰 부상을 입은 듯하니.

약점이 있다면.

파고들지 않을 수가 없잖아?

"저 녀석! 다리 한 짝이 없는 녀석이 구멍이다! 저쪽으로 화력 집중해!"

"""예!"""

공략할 부분을 찾았다는 생각에, 희망이 조금 차오르던 순간.

"신 병장님! 뒤쪽에...!"

후열에서 원거리 공격을 하던 병사 중 하나가 무언가를 발견한 듯 소리를 지른다.

그 소리에 반응해 뒤를 보니.

'제기랄.'

저 멀리서, 다른 탄약고에서 부화한 거미 떼들이 접근하고 있는 것이 보였다.

아직은 거리가 꽤 있는 편이지만.

머지않아 도착할 터.

양쪽에서 포위당하기라도 하면 전멸이다.

'어떻게 해야 하지?'

죽음의 위기 속.

머리가 미친 듯이 팽팽하게 돌아갔다.

'도주? 아니. 전투차량이 아무리 튼튼해도, 한 대라도 전복당하는 순간 대참사야.'

'차라리 탄약고 안쪽으로 파고들어야 하나? 양쪽에서 포위당하진 않을 테니.... 포위당하지 않으면 뭐? 도주로도 사라지는 셈인데 저 숫자를 어떻게 이기려고?'

아무리 머리를 굴려도 도저히 답이 나오지 않았다.

애초에 여왕의 피어를 들은 순간 도주를 선택해야 했을지도.

'지금이라도 뿔뿔이 흩어져서 도주하면 몇 명은 살 수 있을지도 모르지.'

그렇게 후퇴 명령을 내리려던 순간.

탄약고 안쪽에서 무언가 보였다.

'미사일...?'

커다란 미사일.

그리고 포탄들.

"...민재 형."

"후퇴냐?"

"아니."

민재 형도 전황을 보고 생각하는 게 있었는지.

후퇴를 생각하고 있었던 것 같지만.

내 생각은 달랐다.

"화염 마법사들, 전부 불러와."

"뭐...?"

민재 형은 순간 '무슨 소리냐' 싶은 표정이었으나.

"아니, 네가 하는 일이니 생각이 있는 거겠지. 조금만 기다려라."

곧.

진중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이며 몸을 뒤로 옮겼다.

"부르셨습니까!"

"마법사 조, 화염 계열 총원 7인. 집합 완료했습니다!"

격전의 와중.

나와 화염 계열의 마법사들만이 잠시 뒤로 빠져나왔다.

부대에서부터 함께한 화염 마법사들.

거기에, 최근에 각성을 마친 생존자 출신.

박씨 할아버지와 친했던 자매의 동생 쪽까지.

화염 마법으로 인한 재를 얼굴에 묻힌 녀석들이 급한 숨을 내쉬며 집합했다.

한시가 급한 상황.

설명할 시간은 없으니.

내가 유일하게 신경 쓰였던 부분을 물었다.

"하나만 묻자."

"예! 뭐든지 물어보십쇼!"

"너희들. 마법을 던지고 조금 나중에 폭발하도록 하는 건 가능하냐?"

이게 안 된다면 조금 문제가 생길 수도 있는 일.

하지만.

"예? 아. 폭발에 딜레이를 주는 것 말씀이십니까?"

"조금 신경 써야 하긴 합니다만. 그 정도라면야."

"어렵지는 않을 것 같습니다!"

그것마저 가능하다고 하면.

문제는 없다.

"좋아. 너희들이 해야 할 일이 있다."

"충성. 뭐든지 맡겨 주십쇼."

"저 안쪽에 거미줄들이 튀어나와 있는 부분들 보이지?"

손가락을 가리키자.

병사들의 시선이 탄약고 안쪽을 향했다.

거미줄로 덮인 거대한 탄약고.

거미줄은 바닥에만 쳐진 것이 아니라, 무언가 튀어나와 있는 물건들도 덮고 있었다.

"예. 보입니다."

"저렇게 튀어나와 있는 거 보면. 아마 탄약고의 포탄들이 쌓여 있던 곳 아니겠습니까?"

"잘 보이면 됐어."

녀석들이 해 줘야 할 일은 간단했다.

"아까 내가 말한. 그 딜레이 마법? 그걸 저 부분들을 노려서 쏴."

"괴물들이 아니라. 탄약고 안쪽에 말입니까?"

"미안하지만 설명할 시간은 없다. 가급적 빨리, 강한 녀석으로. 부탁하마."

"...뭘 하시려는 건지는 잘 모르겠습니다만."

"신 병장님 하시는 일이니까. 이유가 있겠죠. 알겠습니다!"

내 부탁을 들은 마법사들은 즉각 눈을 감고 무언가 주문 같은 것을 외우기 시작했다.

녀석들의 준비가 시작한 것을 확인한 뒤.

이번에는 한창 전투가 진행 중인 전열로 복귀했다.

"신 병장님!?"

"이쪽은 너무 위험합니다! 신 병장님은 전투직이 아니시니, 외곽에서 싸우시는 게...!"

내가 향한 곳은 그중에서도 가장 격전지.

우리 길드에서도 고레벨의 전사들이 모여 있는 장소였다.

생산계열인 내가 있으면 언제 뒤져도 이상하지 않을 장소지만.

녀석이라면 여기 있을 테니까.

"광일아! 전광일!"

"크크큭. 즐겁구나! 나를 더 즐겁게 해 봐라, 벌레 같...."

"정신 차려 이 새끼야!"

미친놈처럼 성체급 괴물 한 마리를 혼자서 쥐어패고 있던 광일이 녀석.

녀석의 머리를 살짝 후려쳤다.

"크륵... 아. 신 병장님?"

"그래, 임마."

"말로 하시지. 왜 머리를 때리고 그러십니까."

"...."

한참 즐기고 있는 와중에 미안하지만.

일은 해 줘야지.

"아무튼. 무슨 일이십니까?"

"부탁할 일이 있다."

"예?"

부대에서 가장 강한 신체 능력을 가진 녀석들이 모인 곳.

이 녀석들이어야만 가능한 일.

"지금부터는 전투 방식을 조금 바꾼다."

"뭘 하시려고... 아니. 생각이 있으시겠죠. 어떤 식으로 바꾸면 되겠습니까."

"여왕을 노리는 건 무리야. 괴물들을 탄약고 안쪽으로 몰아넣는다."

"여왕을 노리는 게 아니라, 녀석들을 안쪽으로 몰아넣는다...."

잠깐 고민하던 녀석이 이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음. 오히려 지금 전투보다는 이게 더 쉽겠군요. 그게 다입니까?"

"하나 더. 녀석들을 안쪽으로 몰아넣는 데 성공한 뒤에는. 탄약고 문을 닫아 줘야겠다."

"예에?"

탄약고 안에 있는 것은.

여왕을 비롯한, '아라크론'이라는 괴물들.

그리고.

"탄약고를 폭발시킬 거다."

엄청난 양의 폭발물들.

51화 탄약대대 (5)

"탄약고를 폭발시킬 거다."

광일이 녀석의 눈동자가 순간 커졌으나.

녀석은 더 이상 묻지 않았다.

"탄약고 문을 닫는다.... 닫는 거 자체는 전사조 중 두세 명만으로도 가능할 겁니다."

"문제는 다른 쪽이겠지."

"예. 우리가 문을 닫는데 저 녀석들이 얌전히 그러십쇼 하고 구경할 리도 없으니까요."

저항이 꽤 격렬할 터.

"...많이 힘들려나?"

"그렇긴 합니다만."

잠시 얼굴을 찡그리며 턱을 매만지는 녀석은.

이윽고 씨익 웃으며 말했다.

"안 되면 되게 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새끼. 이제 잘 아네."

"전사조! 작전 변경이다!"

전사조장의 명령이 떨어졌다.

"대원이, 한일이!"

"예!"

"이한일 여기 있습니다!

"두 명은 문 쪽으로 붙는다. 한쪽씩 붙어서 문을 닫아!"

"예!"

"나머지는 괴물을 안쪽으로 몰아넣는다. 실시!"

"실시!!!"

짧은 명령이 끝나자.

전사들의 행동이 눈에 띄게 변화했다.

여왕을 지키는 괴물을 처치하고 어떻게든 여왕에게 도달하려던 방식에서.

처치고 뭐고 일단 녀석들을 탄약고 안쪽으로 밀어 넣는 쪽으로.

몰려 있던 병사들이 산개했다.

전사 계열 각성자들의 진형이 갖춰졌을 때쯤.

"신 병장님! 마법, 준비됐습니다! 딜레이는 3분!"

마법사들의 영창이 끝났다.

"바로 쏴!"

화염 마법사들의 마법이, 활짝 열린 탄약고 안쪽으로 들어간다.

본인들을 향한 공격이 아니라 판단한 괴물들은 그 마법들을 쳐 내지도 않았다.

이윽고, 탄약고 안의 각종 포탄들에 마치 점착 폭탄처럼 달라붙는 마법들.

'탄약 대대의 부지가 넓은 이유는... 유폭의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해서.'

혹시라도 폭발이 발생했을 때 근처의 건물에 피해가 가지 않도록.

가급적 건물 간의 거리를 멀게 하고, 이로 인해 부지가 넓어지는 것이다.

본래라면 탄약과 탄약 간의 유폭을 막기 위해 탄약고 내에서도 거리를 둔다.

어지간한 폭발로는 큰 문제가 없었겠지만.

'지금 안쪽은 거미줄로 뒤덮인 상태니까.'

작은 폭발 하나가 다른 곳에 도달하기는 더없이 쉬울 터.

그렇게 탄약고가 폭발했을 때 그 피해는....

주변을 초토화하고도 남겠지.

'문이 열린 상태로 그런 폭발이 일어나면 아군도 반 전멸이야.'

그렇기에.

"빨리 닫아!"

끼이이익...

거대한 철문.

그 양쪽에 전사들이 달라붙어 문을 밀기 시작했다.

-샤아악?

아군이 문을 닫기 시작하자.

안쪽에서 여왕을 지키는 데에 혈안이 되어 있던 괴물들.

녀석들도 무언가를 눈치챈 듯했다.

-키에에에엑!

"저 새끼들, 빠져나오려고 한다!"

"절대 못 나오게 해!"

탄약고 밖으로 나오려고 날뛰는 괴물들이었으나.

콰과가가가강.

투다다다다다....

전사들이 몸으로 밀어가며 괴물들을 안쪽으로 밀어 넣고.

후열의 사수들과 마법사들이 화력을 투사.

빠져나오려는 괴물들을 오히려 탄약고 안쪽으로 밀어 넣었다.

몬스터를 처치하는 것과는 전혀 다르다.

괴물을 안쪽으로 밀어 넣는 것은.

"밀리면 안 된다!"

"좀 더 힘줘!"

단순한 힘 싸움.

안쪽의 괴물들 역시 밖으로 빠져나오고자 발악하고 있었으나.

정상적인 상태였으면 모를까.

-끼에에엑...!

-끄륵...!

상처 입은 괴물들.

우리 부대의 화력 투사를 버텨 낼 정도는 아니었다.

점점 더 안쪽으로 밀려 들어가는 녀석들.

"거의 다 닫았습니다!"

"잠금 장치만 걸면...."

"잘했어!"

됐다!

문이 완전히 닫히기 직전.

이제 잠금장치만 걸고 도망치면 된다고 생각한.

그 순간.

-끼에에에에에에엑!

더없이 시끄러운 괴성과 함께.

캉!

비현실적으로 거대한 두 개의 칼날이.

닫히던 문 사이로 튀어나왔다.

"큭!"

문 근처에 몰려 있던 병사들이 그 칼날에 밀려 날아갔다.

어지간한 사람의 두 배.

아니, 세 배는 될 것 같은 거대한 칼날의 모습을 한 앞발.

불완전했던 유체들은 물론.

성체 괴물의 앞발도 이 정도는 아니었다.

저 칼날의 주인은.

"여왕."

뒤에서 버프만 뿌리며 몸을 지키던 여왕.

녀석이 위기 상황에서 드디어 전면에 나선 것.

그리고 그 힘은.

괜히 왕이란 이름을 달고 있는 게 아니었다.

"끄으으윽...."

"이 녀석, 무슨 힘이!"

거의 다 닫힌 문이었으나.

여왕이 두 개의 앞발을 문 사이에 끼워 넣자 더 이상 닫히지 않는 문.

아니, 오히려.

'조금씩 열리고 있다.'

엄청난 완력.

모든 전사가 문을 닫는데 가세했음에도 불구하고.

문은 닫히기는커녕 서서히 열리고 있었다.

"제기랄, 화력 투사해!"

"하고 있습니다!"

마법사들과 사수들의 화력이 여왕의 몸을 두들겼지만.

단단한 칼날은 아무런 피해도 입지 않은 듯 굳건했다.

난 녀석들의 손질법을 떠올렸다.

'이 괴물들의 앞발은 엄청나게 튼튼하다고 했지.'

적을 공격하는 칼날이면서도 동시에 커다란 방패이기도 한 셈.

폭발까지 남은 여유가 없었다.

의도한 대로 폭발할 수만 있다면 여왕도 멀쩡하진 못하겠지만.

저 문을 닫지 못한다면 그건 이쪽도 마찬가지.

'그렇다면.'

생각을 정리한 나는.

허리춤의 사시미칼을 뽑아 들고 뒤를 보며 소리쳤다.

"화염 마법사들! 마법 장전해!"

"예! 여왕한테 쏘면 되겠습니까?"

"아니."

그걸로 죽일 수 있다면 다행이지만.

화력이 모자랄 가능성이 크니.

"여기에 쏜다."

"예?"

"그건...."

마법사들이 내 명령에 의아함을 표했다.

"식칼인데요?"

"잘 봤네. 내 칼에 쏘라고."

"...잘못 들었습니다?"

"내 칼. 최대한 뜨겁게 달궈 줘."

목표는 괴물이 아니다.

내가 들고 있는 식칼.

그걸 화염 마법으로 달궈야 한다.

"시간 없으니까. 빨리!"

"하, 하지만. 칼을 뜨겁게 달구면 쥐고 있는 신 병장님 손도 무사하지 못할 텐데요."

"그런 건 내가 알아서 할 테니까. 신경 쓰지 말고 어서."

강하게 말하자.

화염 마법사들은 망설이면서도 내 칼을 향해 불길을 방사했다.

이윽고.

마력이 담긴 기름에 불이 붙어 크게 타오르고.

그 열기로 인해, 칼날 또한 점점 붉게 물들어 갔다.

'...대장장이 유튜브 같은 데서 본 비주얼이구만.'

후임 녀석에게 받은 뒤.

지금까지 애용해온 기다란 사시미칼.

그 도신이 새빨갛게 변해 간다.

손잡이 너머로도 그 열기가 절절히 느껴질 정도.

아마 평범한 사람이라면 살이 녹아내릴 열기겠지.

하지만.

'버틸 만해.'

[특성 목록]

[하급 화염 친화]

요리사는.

열에 강하니까.

"후열은 전부 후퇴해라."

"예!? 하지만."

"탄약고가 터지면 주변 일대는 초토화될 거야. 여기 있으면 전멸이니까. 어서."

망설이고 있을 여유 따위는 없었다.

후열의 병사들이 전투차량을 타고 멀어지는 것을 확인한 뒤.

나는 열로 인해 새빨갛게 변한 칼을 꽉 쥔 채.

문을 붙잡고 있는 여왕.

그 두 칼날을 향해 다가갔다.

"괜히 무기로 쓰는 부위가 아니란 건가. 엄청나게 단단해 보이는구만."

실제로 마법사와 사수들의 화력 투사도 막아 내고 있으니.

평범한 칼질로는 피해를 입히기 힘들 것이다.

하지만.

"옥체에 상처가 꽤 많으시네."

다른 성체 괴물들이 그러했던 것처럼.

여왕의 몸에도 몇 군데 상처 난 부위가 보였다.

그리고 그 상처 중 몇 가지는.

칼날과 같은 앞발.

그 관절부에도 존재했다.

어느 정도 아물어가는 듯한 상처.

덕분에 총알 정도는 버텨 낸 듯하지만.

이 녀석들의 '손질법'은 잘 알고 있다.

[피부 껍질 또한 단단한 편이지만, 열을 가하면 껍질이 물러져 쉽게 제거할 수 있다.]

뜨겁게 달궈진 사시미칼.

그 열기로 인해 주변 공기가 일렁거릴 정도의 칼날을.

상처 난 관절 부위를 향해 휘둘렀다.

푸욱!!!

찌르고.

서걱.

베고.

꽈직!

끊었다.

그러자.

-크라아아아악!

쿠웅-

'성공이다.'

거대한 칼날이 잘려 나간다.

고통스러운 비명과 함께 바닥을 뒹구는 칼날.

팔이 여덟 개나 된다고 한들.

한쪽 팔이 날아간 고통이다.

어지간히 참기 힘들었는지.

반쯤 문밖으로 몸을 내밀려 하던 여왕의 몸이 주춤하며 뒤로 빠졌다.

"지금이다! 닫아!"

쿵!

이제는 남은 것은 나머지 한쪽 칼날뿐.

문을 닫게 두지 않겠다는 듯 문 사이에 끼어 있다만.

"이제 슬슬, 좀!"

앞발과 몸통의 연결 부위.

그곳을 향해 열기가 일렁이는 칼을 휘두르자.

"들어가라!"

서걱-

나머지 한쪽의 날카로운 앞발마저 잘려 나갔다.

쿵!!!

그제야.

거대한 철문이 커다란 소리를 내며 닫혔다.

문이 닫힌 것을 확인한 나는 급히 뒤를 돌아보고 외쳤다.

"다들 전투 식량 꺼내고! 전투차량 뒤로 후퇴!"

괴물들을 안쪽에 가둬 두는 데 성공했다.

이제는 도망갈 일만 남은 상황.

[하급 요리사의 정성이 담긴 가벼운 발 슬레이파의 육포]

[일시적으로, 특성 - '슬레이파의 준족(열화)'을 획득합니다.]

"다시는 안 먹겠다고 다짐했는데, 제기랄."

탄약대대 내에서도 가장 규모가 큰 탄약고.

아무리 두꺼운 철문이 있다고 한들.

그 폭발의 위력은, 철문 따위로 막을 수 있는 게 아니다.

오히려 탄약고 자체를 터트리기에 충분할 터.

"빨리 튀어!"

"예, 예!"

나 역시 최대한 빠르게 탄약고에서 멀어지기 위해, 전력을 다해 발을 박찼다.

어지간한 차량과도 비교가 되지 않을 속도로 탄약고에서 멀어지면서, 주변을 살폈다.

'다른 녀석들은, 괜찮은 것 같네.'

다행히 신체 능력이 떨어지는 후열 각성자들은 전투차량을 타고 대피했다.

전투차량의 방호력이라면, 폭발로 인한 파편 정도는 막아 줄 테지.

나와 함께 문을 닫던 전사조 녀석들 역시 괜찮을 것 같았다.

괜히 전사직이 아니란 걸까.

안 그래도 전력 질주만으로 차량에 버금가는 속도를 내던 녀석들.

그런 녀석들이, 마수의 특성까지 얻었으니까.

이미 나보다도 훨씬 더 앞서서 달려가고 있는 녀석들.

'뒤쳐져 있는 녀석들은....'

그리고 마지막으로.

혹시나 싶어서 뒤를 돌아보자.

....

아무도 없었다.

'...어?'

내 뒤에.

아무도 없다.

'이거 혹시.'

내가 가장 뒤에 있다는 뜻인가?

전투직인 전사조 녀석들과는 달리.

요리사인 내 신체 능력은, 초인이라기엔 약간 모자람이 있는 수준이다.

아무리 특성을 얻었다고 한들.

아무리 열심히 달린다 한들.

가장 늦게 도망치는 게 내가 될 것은.

생각해 보면 당연한 일.

즉.

'나만 X된 거냐?'

폭발이 얼마 남지 않았다.

제대로 망했단 걸 직감한 나는 이를 악물고 전력을 다해 달렸다.

"신 병장님! 빨리 이쪽으로 오십쇼!"

"이 미친 새끼들이! 신 병장님 안 챙기냐!"

앞서 달리던 전사조 녀석들이.

저 멀리서, 내가 어마어마하게 뒤쳐져 있다는 것을 깨달은.

바로 그 순간.

콰가가가강!!!!!!!!!

등 뒤에서, 거대한 소리가 들려온다.

'미친...!'

거대한 탄약고.

그 안에 있을, 엄청난 양의 탄약들.

시작은 작은 폭발이었다.

본래라면 유폭이 일어난다고 한들 다른 탄약들에는 영향을 주지 못해야 정상이겠지만.

안쪽에 쌓인 거미줄들이 폭발의 도화선이 되어 준 결과.

다른 탄약과 포탄들의 뇌관을 건드렸을 것이다.

그 엄청난 양의 폭발물들이 순식간에 터진다는 것은 곧.

탄약고 자체를 폭발시키고도 남을 만큼의 큰 폭발이 일어날 것이라는 뜻이다.

바로 이렇게.

콰아아아아아아아아앙!!!

거대한 소리가 들린 뒤에 찾아온 것은.

등 뒤를 뒤덮는-.

'크으으으윽...!"

미칠 듯이 뜨거운.

엄청난 규모의 열기.

이미 탄약고는 제대로 보이지 않을 정도로 도망쳐 왔음에도 불구.

충분히 멀어지지 못한 나는, 그 열기에 고스란히 노출되어야만 했다.

하지만.

[하급 화염 친화]

[요리란, 그 기원에서부터 이미 불과 함께하고 있습니다.]

[식당 요리사가 뜨거운 쇠 냄비를 맨손으로 잡을 수 있듯이.]

[뜨거운 불길 앞에서, 강철의 팬을 잡고 휘두르는 것이야말로 요리사의 숙명!]

[강철 가죽 지휘 전투복]

[강철 리자드 일족의 가죽으로 만든 코트. 높은 물리 저항력, 일반적 수준의 속성 저항력을 제공합니다.]

등 뒤의 살점이 녹아내리는 게 느껴지지만.

어떻게든 이를 악물고 열기를 버틴 채.

"커어...."

폭발로 인한 반동을 추진력 삼아.

더 빠르게 몸을 내던졌다.

폭발한 탄약고의 파편이 사방으로 비산하고.

마른 하늘이 붉게 물들었다.

그렇게, 이성을 잃은 채 한참을 내달리자.

"제기랄, 신 병장님!"

전사들이 손을 뻗어 내 몸을 엄폐물 뒤로 끌어당겼다.

등 뒤의 살점이 녹아내린 것만 같은 고통.

'제기랄.'

너무 아프다.

진짜 뒈질 것처럼 아프다.

하지만....

'죽지는 않았어.'

가쁜 숨을 내쉬며 하늘을 올려다보자.

폭발로 인해 붉게 물든 하늘이 보였다.

"폭발은, 일단 멈췄나."

"빨리 신 병장님을 의무병 쪽으로 데려가야 한다! 서둘러!"

오늘도.

어떻게든 죽지 않고 살아남았다.

'큭큭.'

전광일 상병의 등에 업힌 채 쓰러진 내가 마지막으로 본 것은.

사제와 치료사가 급하게 달려오는 모습이었다.

'군 생활 개빡세네, 진짜.'

52화 대장장이 (1)

등의 뼈와 살이 녹아내리는 고통에 쓰러지고 난 뒤.

"낯선 천장이다."

"어? 눈 뜨셨습니까. 신 병장님."

"...아. 있었냐."

한 번 해 보고 싶은 말이었는데.

쪽팔리게.

눈을 떴을 때는 병실 같은 곳에 누워 있는 상태였다.

마침 주변에서 일을 보던 의무병.

사의준 일병이 나를 눈치채고 다가왔다.

"아프신 곳은 없으십니까?"

"어, 신기할 정도로 안 아프네."

눈을 뜬 뒤 내심 신기하게 생각하던 부분이었다.

지난번에 격한 전투 후에 쓰러졌을 때와는 꽤 다른 느낌.

그때는 일어나자마자 엄청난 근육통에 시달렸었지.

'오히려 상처는 지금이 더 심할 텐데?'

엄청난 격통에 기절했음에도.

살짝 불편한 느낌만 들 뿐, 고통은 느껴지지 않았다.

생각해보면.

가장 크게 다친 부분은 등이었을 터.

멀쩡하게 침대에 등을 대고 누워 있다는 것도 신기한 일.

이유는 금방 알 수 있었다.

"하하. 저도 레벨이 꽤 올랐으니 말입니다."

"아하."

과연.

그동안 성장한 것은 나뿐만이 아니라는 얘기다.

다른 부대원들도.

각자의 분야에서 빠르게 성장하고 있다는 것이겠지.

"그래도 실제로 상처가 완치된 것은 아니니까. 한동안은 누워 계시는 게 좋을 겁니다."

"병가 낸 것 같아서 편하네. 그나저나."

슬쩍 주변을 둘러보았다.

우리 부대가 사용하던 거점은 관사.

이런 병실 같은 곳은 없었을 테니.

"여긴 탄약대대 내에 있던 의무실인가?"

"맞습니다."

"부대 상황은 괜찮고?"

"예. 안 그래도 신 병장님 깨어나시면 좀 불러 달라고 이민재 병장님이 말씀하셨습니다. 보고드릴 일이 많다더군요."

"아, 그럼 좀 부탁하마."

"옙. 금방 다녀오겠습니다."

의준이 녀석이 의무실 밖으로 나간 뒤.

나는 [상태창]을 열어 보기로 했다.

기절한 상태라 확인하지 못했던 문구가 눈앞을 가득 메웠다.

대부분은 경험치나 포인트를 획득했다는 문구들이었으나.

한 가지 눈에 띄는 것이.

[아라크론의 마지막 여왕, 카틀라냐를 처치하였습니다.]

[한 종족의 수장을 처치하였습니다.]

[업적 - 킹 슬레이어의 조건을 일부 달성하였습니다. (1/3)]

[업적의 부분 달성 보상이 주어집니다.]

[보상 - 특성 강화권x1]

바로 이 보상.

특성 강화권이라?

[특성 강화권]

[가지고 있는 특성 중 한 가지를 '강화'합니다.]

[강화로 인한 효과는 확인할 수 없습니다.]

[기회는 한 번뿐이니 신중하게 결정하세요!]

그 이름만큼이나 효과도 간단했다.

내가 가지고 있는 특성들.

그중 하나를 선택해, 강화 할 수 있다는 것.

"흐음."

난 내 상태창을 열어 정보를 확인했다.

눈여겨 볼 부분은 특성.

[특성 : 하급 단도 숙련, 하급 요리 숙련, 하급 식재료 감별, 하급 화염 친화]

특성의 강화.

이름부터가 강화시킨다는 내용인 만큼, 뭘 선택한다 해도 나쁜 부분은 없겠지만.

그럼에도 신중하게 정할 일이었다.

'전투에 가장 도움이 되는 건 단도 숙련이나 요리 숙련이긴 한데.'

화염 친화야 이번에 목숨을 살려 준 스킬이긴 하다만.

평상시에 덕을 볼 일은 많지 않으니까.

싸움에서 빛을 발하는 건 내 칼질 실력에 직접적으로 연관되는 단도 숙련.

그리고 버프를 담당하는 요리 숙련.

하지만.

이 두 개 중에서 결정하는 게 맞는 걸까.

잠시 고민한 나는 결정을 내리고 말했다.

"강화하는 건. 식재료 감별이다."

['하급 식재료 감별' 특성을 강화합니다.]

[강화하시겠습니까? Y/N]

내 입으로 말하긴 뭐하지만.

내 개인의 전투력은 사실 큰 도움이 되지는 않는다.

단도 숙련의 강화는 여기서 제외.

요리 숙련의 경우.

솔직히 가장 끌리는 부분이긴 했다만.

'요리 실력은 내가 직접 끌어올리면 되니까.'

식재료 감별을 고른 이유는 간단하다.

최근 내게 요리 재료의 한계가 사라진 뒤.

식재료 감별은 사실상 제한 없는 감정 특성이나 다름없어졌다.

'모든 걸 감별할 수 있는 특성.'

앞으로도 미지의 적들을 많이 마주하게 될 터.

그때, 상대의 정보를 파악할 수 있는 이 특성은 요리만큼이나 큰 도움이 될 것이다.

이 식재료 감별이 강화된다면.

더 좋은 효과를 볼 수 있지 않을까.

[특성이 강화되었습니다.]

[하급 식재료 감별]

->

[식재료 감별(강화)]

그렇게 강화된 특성.

그러나.

"뭐가 바뀐 거야?"

당장 바뀐 점은 크게 눈에 띄지 않았다.

특성의 설명 문구도 그대로고.

...설마.

"이거 꽝인가?"

그때.

"영준아, 들어간다."

방 밖에서 노크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사의준 일병이 데려온다고 했던 이민재 병장.

방문을 열고 들어온 그에게 인사를 하려던 순간.

특성이 발동했다.

[특성 - 하급 식재료 감별(강화)이 발동합니다.]

특성의 사용이 미숙한 탓일까.

가끔 이렇게 혼자 발동하곤 하는 특성.

그런데.

'어?'

강화된 특성의 영향일까.

[식재료 감별]로 인해 눈앞에 나타난 문구.

그 내용이, 이전과는 조금 달랐다.

그 내용을 모두 읽은 뒤.

확신했다.

이건.

'대박이잖아?'

* * *

민재 형이 방에 들어왔다.

"영준이, 괜찮냐."

"뒈질 것 같아. 내가 죽는다면 다음 길드장은-"

"멀쩡한가 보군. 다행이다."

나는 눈 앞에 나타난 [식재료 감별(강화)]의 문구를 치우고.

민재 형과의 대화를 시작했다.

"엄청난 폭발이었다."

"그야. 꽤 큰 탄약고였으니까."

"솔직히. 난 너와 전사들이 영락없이 죽었을 거로 생각했어."

이미 전투차량을 타고 피신했던 후열의 병사들.

그들은 폭발의 모습을 두 눈으로 목격했다.

한참을 떨어져 있는 장소에서도 보일 정도로 거대한 폭발.

"나중가서 확인해 보니. 그 거대하던 탄약고 자체가 통째로 터져 버렸더군. 그 파편이 탄약대대 건물 몇 곳을 부숴 버리지 않나. 난리도 보통 난리가 아니었지."

"...."

"우리를 사냥하기 위해 몰려 왔던 다른 거미들도. 그 폭발에 말 그대로 녹아내렸더군."

생각해 보면.

폭발로 인한 열기야, 어느 정도 멀어진 상태에다가 [하급 화염 친화]로 견뎌 냈지만.

그 파편 중 하나라도 내 몸에 닿는 순간.

난 순식간에 사망했을 테지.

'이번엔 운 좋게 살아서 다행이지만. 진짜 죽을 뻔했다는 건가.'

아무튼.

내 부상이 워낙에 심각하다 보니, 오랫동안 기절해 있는 사이.

부대원들은 꽤 바빴던 모양.

'폭발로 인한 화재를 진압하고, 소리를 듣고 몰려든 괴물들을 처치하고.'

내가 누워 있는 동안.

영화 한 편은 찍어도 될 것 같은 분량의 격렬한 사건들이 있었다고.

"이제 막 어느 정도 정리가 된 참이야. 정말이지, 사망자가 없어서 다행이다만. 앞으로는 이런 위험한 작전은 되도록 자제해라."

"그래야지. 나라고 딱히 죽고 싶은 건 아니니까."

"네가 죽으면 우리 부대의 전력은 급감해. 그걸 잊지만 말아다오."

이번에는 다른 방법이 보이지 않았기에, 어쩔 수 없이 도박을 걸었을 뿐.

이런 미친 짓을 또 할 생각은 없다.

"그리고 말인데.

"응?"

"네가 누워있는 동안. 이 탄약대대를 새로운 거점으로 쓰는 게 어떤가, 하는 얘기가 나왔다."

"여기를?"

보고가 시작됐다.

"관사는 결국 임시거점이니까. 주변에 너무 오픈되어있기도 하고. 지금 인원수만으로도 반쯤 포화 상태였지."

"이왕 점령했으니 탄약대대를 새 거점으로 삼자는 건가."

"그런 셈이다. 이번 폭발로 부서진 건물들도 많기는 하다만. 그 건물만 안 쓰면 그만이니까."

관사는 어디까지나 임시거점이었으니.

떠나는 건 문제가 없다만.

"면적이 너무 넓은 거 아니야?"

탄약대대는 지나치게 넓었다.

우리 부대원들만으로 이 넓은 부지를 다 방어할 수 있을지.

"일단은 활용할 수 있을 정도의 면적만 거점으로 삼고 공병들이 장벽을 세우는 식으로 활용하면 어떨까 싶다."

"흐음."

"더 넓은 영역을 방어할 수 있겠다 싶으면 그때 더 넓은 면적에 장벽을 세우면 그만이니까."

슬쩍 창문 밖을 내다보는 민재 형.

"탄약대대 내부에는 물이 흐르는 냇가도 있더군. 올 때도 봤지만 입구 근처에는 논밭도 있고. 식수 확보도 가능한 데다가, 잘하면 농사도 지을 수 있어. 나는 나쁘지 않다고 보는 편이다."

"농사라."

"얼마 전에 눈을 뜬 탈영병 중에 농사에 유독 관심이 많은 녀석이 하나 있더군. 시도는 해 봐도 괜찮겠지."

그러고 보니.

공병들이 강화된 자재들을 얻었을 때, 장벽을 만들 수도 있을 것 같다느니 하는 얘기를 했었지.

"그렇게만 된다면. 흠. 괜찮겠는데?"

"길드장 허가만 떨어진다면. 관사의 물자들을 천천히 옮기려고 하는데."

민재 형의 얘기에.

나는 잠시 고민을 해 보았다.

'요새를 소환할 수만 있으면 고민할 필요도 없을텐데.'

각성 초기에 얻은 특전, [기동요새 비마나]

이 녀석을 소환할 수 만 있다면, 거점으로 고민할 필요는 없겠지만.

'안 되는 일에 미련을 가지는 것도 좋지 않지.'

아쉽게도.

[기동요새 비마나]는 아직까지도 소환할 방법을 찾지 못한 상태.

요새를 뒤로 밀어두고 생각해 본다면.

확실히, 이 곳은 괜찮은 거점이 될 수도 있을 것 같았다.

"그렇게 하자고."

"좋은 선택이야. 애들한테도 전달해 두마."

보고는 그 외에도 계속되었다.

"일단은 탄약대대를 정리하고 있다. 우리에게 필요한 포탄, 탄약들은 따로 모아서 정리 중이야. 가장 큰 탄약고가 폭발해 버리긴 했지만, 그래도 엄청난 양이지."

"당분간 탄약 걱정은 없겠네. 사수 녀석들은 좋아 죽겠어."

"군용 차량이나 박격포 같은 것도 몇 개씩 노획했다. 공병 녀석들이 가져갔으니 조만간 쓸 만한 물건들이 많이 나오지 않을까 싶다. 장갑차 같은 건 없어서 아쉽지만."

"오."

그건 좀 기대가 되는걸.

전투차량만 해도 꽤 활약했으니.

그리고 내게 중요한 보고는 다음 녀석.

"다른 탄약고들을 열어 보니 아직 부화하지 않은 알들도 꽤 있더군. 혹시 모르니까 남은 알들도 처리하는 쪽으로 진행하려고 하고 있다."

"어? 남은 알이 있다고?"

"음. 괴물들이 튀어나오진 않는 것 같지만 일단은. 그건 왜?"

알이라니.

그건 못 넘어가겠는데.

"그 알들, 굳이 깨트리진 말고 잘 보관해 달라고 전해 줘."

"...혹시나 해서 물어보는 건데. 내가 생각하는 그 이유냐?"

"아마도."

"...."

한숨을 내쉬는 민재 형.

아직까지 부화하지 않은 걸 보면.

알을 깨고 나온 괴물들보다도 수정이 덜 됐다는 뜻.

즉.

"그냥 계란같은 느낌일 거 아냐?"

새로운 식재료다.

한 번, 요리는 해 봐야 하지 않겠어.

"하아. 먹을 때는 맛있게 먹겠는데, 재료의 정체를 들을 때마다 머리가 어지럽군. 거기에 이제 거미 알까지 추가된다고?"

"맛만 좋으면 된 거지 뭐."

기겁하는 민재 형.

나는 그 얼굴을 보며 가볍게 웃어 주었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