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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화. 얼굴을 붉히다

13화. 얼굴을 붉히다

설응향은 고교의 뒤를 조심스레 두 걸음 따라가 보았다. 고교는 그녀를 내치지 않았다. 설응향은 그제야 마음 놓고 고교의 뒤를 쫓아갔다.

하지만 설응향은 전족을 했기 때문에 걸음이 느렸다.

고교는 머리를 쥐어 잡더니, 결국에 걸음을 멈추고 그녀를 기다려줬다.

두 사람이 서원에 도착했을 때, 때마침 서원의 수업이 끝나 있었다.

책 보따리를 들고 나오던 소육랑은, 맞은편 골목 어귀에 있는 고교를 한눈에 찾았다. 고교의 모습을 보자 그는 잠시 멍해졌지만, 평소와 다름없는 표정으로 그녀에게 걸어갔다.

“오늘도 근처에 있었어?”

“음…… 네.”

고교는 얼버무리며 대답했다.

설응향은 놀랐다. 장터에서 여기까지 족히 7, 8리는 되는데, 그것도 근처라고 할 수 있단 말인가?

소육랑은 뒤늦게 고교 옆에 설응향이 있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소육랑의 눈에 의아한 기색이 스쳐 지나갔다. 아무리 생각해 봐도 왜 두 사람이 함께 있는지 알 수 없었다. 게다가 설응향은 고교의 옷을 입고 있었다.

나씨 아저씨의 수레가 골목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고교가 아침에 아저씨께 유시(*酉時: 17시~19시)에 와달라고 미리 부탁드렸기 때문이었다.

세 사람은 수레에 함께 올라탔다. 고교는 두 사람 사이에 앉았다.

설응향은 예전에 소육랑에게 호감을 가졌지만, 방금 그런 일을 겪게 되자 모든 남자가 무서워져, 소육랑에게 한마디 말도 건넬 수 없었다.

소육랑은 설응향이 자신을 대하는 태도를 크게 신경을 쓰지 않았다. 그저 조금 이상하다 생각했을 뿐, 아무것도 묻지 않았다.

솜옷을 설응향에게 준 고교는 얇은 겹옷 한 벌만 입고 있었다. 길을 갈 때는 아무렇지 않았지만, 수레에 앉으니 점점 추워졌다.

소육랑은 고개를 숙여 자신의 원복을 쳐다보며 머뭇거렸다. 그녀에게 옷을 건넬 정도로 둘의 관계가 다정한 건 아니었다.

그러나 또 주지 않자니, 그녀가 추위에 얼 것 같았다. 소육랑이 고민하고 있던 중에, 설응향은 고교 옆으로 다가가 온기를 나눴다.

“…….”

수레가 골목길을 지났다. 고대순이 길목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고이순은 이미 쫓겨나 집으로 돌아갔고, 차를 기다리는 사람은 고대순뿐이었다.

고대순은 수레에 있던 설응향은 신경 쓰지도 않고, 태연한 기색의 소육랑과 고교를 쳐다봤다.

아침에도 이런 침착한 얼굴이었던 것이 생각났다. 그들은 처음부터 이런 결과가 있으리라는 걸 알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그들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고이순이 쫓겨나는 것을 지켜만 봤다. 게다가 하마터면 스승님의 의심까지 살 뻔했다.

도대체 누구 머리에서 나온 생각이지? 소육랑? 아니면 저 바보?

바람이 고교의 얼굴을 스쳐 지나갔다. 고교는 얼굴에 있는 모반을 신경 쓰지 않고 가볍게 머리카락을 털어냈다.

고대순은 이런 태도의 고교를 본 적이 없었다.

아니, 사실 그도 본 적이 있었다. 시험이 있던 날 아침, 그녀는 수레에서 그를 끌어내렸다.

그때는 화가 나서 주의 깊게 살피지 못했지만, 그때 그녀의 모습도 지금처럼 평온했다.

이 바보 계집한테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기에 갑자기 성격이 바뀐 거지? 이제는 집에 와서 밥도 먹지 않고, 뜬금없이 소육랑과 사이도 좋아졌다.

“목이 말라?”

설응향은 허리에 있는 물주머니를 풀어 고교에게 건네줬다.

원수 같았던 설 과부와도 친구가 됐다고?

고대순의 미간이 깊게 파였다.

수레가 마을에 도착하자, 고대순은 수레에서 훌쩍 뛰어내렸다.

고교는 수레에 앉아 엷은 미소를 지으며 그를 쳐다봤다.

“내일은 소순이를 서당에 데려다주는 거 잊지 마세요, 오라버니.”

고대순은 주먹을 꽉 움켜쥐었다.

* * *

집으로 돌아온 고교의 손발은 꽁꽁 얼어있었다. 오늘따라 유난히 춥다고 느꼈던 고교는, 밤이 되자 월경을 시작했다.

시골 사람들은 영양이 부족했기 때문에 월경이 늦었다. 고교도 이미 14살이었지만 오늘이 첫 생리였다.

얼마 전 물에 빠졌다가 나온 탓에 한기가 심한 데다, 오늘 찬바람까지 맞아서 배가 몹시 아팠다.

그녀는 여러 해 동안 조직 활동을 하면서 각종 통증에 익숙해져 있었지만, 유독 월경통은 견디지 못했다.

설응향이 옷을 건네주러 왔다가 의자에 앉아 고통스러워하는 고교를 보고 놀랐다.

“왜 그래?”

“별일 아니에요.”

고교가 담담하게 말했다.

대낮에 한주먹으로 장정 네 명을 때려눕혔던 여자가 지금은 일어설 수 없을 정도로 끙끙거리는데, 별일이 아닐 리가 있겠는가? 설응향은 배를 움켜쥔 그녀의 손을 보고 물었다.

“너 달거리야?”

고교는 그녀를 상대할 힘도 없었다.

소육랑도 방 안에서 인기척을 듣고 다가왔다.

“무슨 일이오?”

고교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지만 설응향이 입을 열었다.

“달거리를 시작했어요. 아주 아픈가 봐요. 집에 홍탕 있나요? 홍탕을 달여서 줘야겠어요.”

그러자 소육랑은 그 자리에서 얼어 버렸다.

설응향은 단순하게 생각했다. 두 사람은 이미 반년 동안 부부로 살았으니, 분명 합방을 했을 것이다. 때문에 내외할 필요도, 이런 말을 못 할 이유도 없었다.

난처해진 소육랑은 밖으로 나왔다.

집에는 홍탕이 없었다. 시간이 늦어 장터도 문을 닫았으니, 남의 집에 가서 빌릴 수밖에 없었다.

소육랑은 여태 한 번도 다른 사람에게 물건을 빌린 적이 없었다. 더욱이 여자가 그날에 마시는 홍탕을 빌려야 하다니.

처마 밑에 서 있던 그의 두 볼이 뜨거워졌다.

그는 숨을 크게 한번 들이마시고, 마을 동쪽으로 걸음을 돌렸다.

“장씨(张大婶) 아주머니.”

그는 장 씨네 집 문을 두드렸다.

장씨 아주머니는 문을 열고 소육랑을 보더니 환하게 웃으며 물었다.

“소육랑이 이 시간엔 어쩐 일로 오셨소?”

“저…… 홍탕이 있으면 좀 빌려주시겠습니까?”

소육랑은 침착한 척하며 말을 했다.

홍탕은 시골에서 귀한 물건으로, 일반적인 집에는 없었다.

소육랑은 일전에 장씨 아주머니가 나씨 아저씨에게 홍탕을 가져다 달라고 말하는 부탁을 들은 적이 있었다. 장씨 아주머니의 며느리가 갓 아기를 낳고 몸을 풀고 있었기 때문이다.

“홍탕은 뭐에 쓸라구? 고교가 임신이라도 한 것이여?”

장씨 아주머니가 물었다.

소육랑의 볼이 또 뜨거워졌다,

“아니, 아닙니다!”

“아, 그럼 달거리가 왔나 보지? 처음인가?”

장씨 아주머니는 경험이 많기에, 그의 모습을 보자마자 무슨 일인지 단번에 알아차렸다.

의외였다. 소육랑이 여자를 아끼는 사람일 줄은 몰랐기 때문이었다.

장씨 아주머니는 방에 들어가서 그릇에 홍탕 한 개를 담아와 그에게 건네주었다.

“여자가 달거리를 시작한다는 건 경사여. 곧 아기도 낳을 수 있겠구먼!”

소육랑은 그 자리를 어떻게 떠났는지 기억도 나지 않았다.

그는 끓인 홍탕 물을 들고 고교의 방으로 향했다. 설응향은 이미 가고 없었다. 고교는 침상에서 쪼그리고 있었다. 힘이 없어 보였다.

그는 곧바로 방으로 들어와 홍탕 물을 상 위에 올려놨다.

“먼저 마셔. 모자라면 다시 부르고.”

말이 끝나자, 그는 몸을 돌려 방을 나왔다.

걸음이 빨랐음에도 불구하고, 고교는 그의 귓불이 빨개진 것을 보았다.

고교는 살짝 웃으며 그릇에 담긴 홍탕 물을 한 방울도 남기지 않고 마셨다.

홍탕 물이 진짜로 효과가 있을 줄은 몰랐다. 몸이 따뜻해지면서 아픔이 가시기 시작하자, 그녀는 순식간에 잠이 들었다.

* * *

또 꿈을 꾸었다. 그녀는 자신이 다음 날 늦게 일어나는 꿈을 꿨다.

혼자 집을 나간 소육랑은 마을 어귀에서 고소순을 만났다.

두 사람은 함께 서원으로 가서 같은 반으로 들어갔다.

고소순은 오전의 첫 수업부터 졸기 시작해 유생들에게 나쁜 인상을 남겼다. 때문에 방을 정할 때, 아무도 그와 함께하려 하지 않아 소육랑이 나서게 됐다.

두 사람은 서쪽에 있는 침사로 배정받았다. 그 방은 오랫동안 수리를 하지 않아 매우 위험했다.

아니나 다를까, 방은 두 사람이 옥상에 올라가자마자 무너져 내렸다. 소육랑은 중상을 입었고, 고소순은 경상을 입었다.

* * *

다음 날, 고교는 진짜로 늦게 일어났다.

지난번에 꿈을 꾸었던 경험이 있었기 때문에, 고교는 이번에 침착하게 상황을 받아들였다.

소육랑이 안 보이는 걸 보니 이미 서원에 갔을 것이다.

그녀는 나씨 아저씨의 수레를 타고 읍으로 달려갔다. 걸어서 서원에 도착했을 때, 마침 정오였다.

고소순은 책상에 엎드린 채 깊은 잠에 빠져 있었다. 그의 앞에 있던 유생이 붓대로 그를 콕 찔렀다.

“이봐, 밥 먹어야지!”

고소순이 눈을 비비며 일어났다.

“아, 밥 시간이오?”

모두 그의 얼굴에 찍힌 책 자국을 보며 킥킥대기 시작했다.

고소순이 낙하산이라는 것을 모르는 이는 없었으나, 그가 이 정도로 일자무식일 줄은 몰랐다.

지자을반이 천향 서원에서 제일 최악의 반이라고 해도, 그렇게까지 근본이 없는 것은 아니었다.

때문에 모두 달갑지 않은 시선으로 고소순을 쳐다봤다.

곧이어 장 스승님이 들어왔다.

“오늘은 침사를 나눠야 한다. 네 사람이 한 방을 써야 하니, 각자 상의한 다음에 내게 와서 열쇠를 받아 가거라.”

지자을반은 모두 26명으로, 이들 중 두 사람은 같은 방을 써야 했다.

모두 재빨리 방을 나누기 시작했다. 소육랑의 짝꿍은 어렸을 때부터 알고 지낸 두 친구와 함께 소육랑을 불렀다.

반면 고소순 쪽은 평탄치 못했다. 아무도 그와 한 방을 쓰려 하지 않아 그는 혼자 낙오되었다.

또 한 명은 어제 서원에 나오지 않아 아는 사람이 없어 낙오되었다.

하지만 그 유생도 고소순과 같은 방을 쓰는 것을 싫어했다.

“나…… 나는 저 사람과 한 방을 쓰고 싶지 않소!”

“흥! 그럼 나 혼자 자지 뭐!”

고소순은 손을 품에 끼고 천장을 쳐다봤다.

나머지 한 명이 벽에 기대 자지 않는 이상, 그가 혼자 자는 일은 있을 수 없었다.

소육랑은 담담하게 입을 열었다.

“내가 바꾸지.”

그 유생은 감격해 몇 번이나 감사 인사를 했다. 어찌나 고마운지, 하마터면 그를 아버지라고 부를 뻔했다.

고소순은 징징거렸다.

“매형, 나랑 같이 있지 않아도 돼! 매형이 싫은 게 아니라, 그냥 나는……”

그러나 소육랑은 무표정한 얼굴로 장 스승님께 열쇠를 받고 가버렸다.

고소순은 혀를 차며 마지못해 따라갔다.

좋은 방은 이미 다른 사람이 다 골라갔고, 제일 구석에 있는 방만 남아 있었다. 두 사람은 보따리를 들고 침사로 향했다.

거의 도착할 즈음에, 어떤 사람이 땀을 뻘뻘 흘리며 그들을 향해 달려왔다.

“소육랑이 누구요?”

소육랑은 걸음을 멈추고 돌아서서 그에게 말했다.

“내가 소육랑이오.”

그는 숨을 헐떡이며 말했다.

“밖에 가족이 와서 기다리고 있소! 급한 일이라 하니, 당장 가보시오!”

소육랑은 고아였다. 때문에 그의 가족이라고 불릴 수 있는 사람은 딱 한 사람밖에 없었다.

소육랑이 멈칫하자 그는 고소순을 향해 말했다.

“자네 누님이라는데.”

“우리 누나가?”

고교라는 말을 듣자 고소순은 정신이 번쩍 들었다.

“매형은 뭘 꾸물거리고 있어? 빨리 누님에게로 가자!”

몇 발자국만 가면 침사였기 때문에, 침사에 물건을 놓고 그녀를 보러 가도 늦지 않았다.

하지만 급한 일이라고 했다.

소육랑은 보따리를 들고 발걸음을 재촉했다. 고소순과 함께 서원의 대문 앞으로 갔다.

거리에는 사람들이 지나다녔고, 그녀는 평범한 옷을 입고 있어 눈에 띄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소육랑은 한눈에 그녀를 발견했다.

그녀는 차가운 바람을 맞으며 서 있었다. 추위에 언 작은 얼굴은 조금 붉게 물들어 있었다. 시끄러운 거리가 싫은지, 그녀는 이따금씩 미간을 찡그렸다.

“누님! 누나!”

고소순은 신나서 고교를 향해 달려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