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화. 장강당(章江堂)
마차는 서쪽을 향해 달리다 또 갑자기 북으로 향했다가, 크게 몇 바퀴를 돌다가, 드디어 높고 큰 저택의 측문으로 조용히 들어가더니, 이내 운치 있고 조용한 작은 뜰에 멈춰섰다. 그 후에야 호위들은 이 신의가 내릴 수 있도록 했다.
이 신의는 굳은 얼굴을 하고 밖으로 나와 좌우를 살피다가, 뜰 입구에서 시선을 멈추고는 꿈쩍도 하지 않았다.
이 신의가 날카로운 눈으로 호위병을 노려보더니, 화가 나서 물었다.
“여기가 어디냐?”
그리고 대답을 기다리지도 않고, 혼자 냉소를 하며 말했다.
“나에게 시랑 댁이라는 말은 하지도 마라! 이 늙은이가 다 계산하고 있었다. 측문에서 여기까지 족히 30분은 걸렸는데, 어느 시랑 댁이 이렇게 크단 말이냐!”
호위병들은 서로 얼굴만 쳐다볼 뿐, 누구도 감히 나서서 말을 하지 못했다. 주인은 시랑 댁의 명의로 이 신의를 속였으나, 더 이상은 감출 수 없었다.
“과연 이 신의는 듣던 대로 혜안을 가지고 계시군! 그래도 너무 탓하지는 말아주시오.”
뜰 안에서 서른 살 남짓의 남자가 걸어 나와 이 신의에게 읍(*揖: 두 손을 맞잡아 얼굴 앞으로 들어 올리고, 허리를 공손히 구부렸다 펴면서 손을 내리는 인사)을 했다. 이 신의는 남자의 옷소매에 수놓아진 용문양의 무늬가 몹시도 눈에 거슬렸다. 그는 눈썹을 떨며 말했다.
“예왕 전하?”
그는 오랫동안 이런 황제의 친족과 왕래가 없었다. 그러나 현(現) 황제가 낳은 두 명의 황자에 대해서는 그래도 인상이 남아있었다.
다섯째 황자는 예왕에 봉해졌고, 여섯째 황자는 목왕(沐王)에 봉해졌다. 한편 다섯째 황자 예왕은 몸이 허약하여, 목왕보다도 많이 야윈 체형이었다.
“전하께서 무슨 일로 이 늙은이를 부르신 겁니까?”
이 신의는 좋지 않은 예감이 들었다. 사람은 모름지기 욕심을 부리면 안 되거늘, 그는 불로초 하나 때문에 자신을 이곳으로 몰아넣은 것이다. 작은 시랑부에서 어떻게 그런 희귀한 불로초를 얻었을까 하는 의심은 들었으나, 급히 필요했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이렇게 꾐에 넘어간 것이다.
예왕은 이 신의의 괴팍한 성질에 대해 익히 들어 알고 있었다. 그래서 친왕 신분임에도 감히 거들먹거릴 수가 없어서 급히 말했다.
“본 왕이 몸이 좋지 않아 신의께 진료를 청하고자 이렇게 모시게 된 것이오. 안으로 드셔서 나와 얘기를 더 나누는 게 좋겠소.”
두 사람은 뜰 안의 건물로 들어갔고, 예왕의 심복만이 곁에 남아있었다. 이 신의가 답답하다는 눈길로 재촉하자, 예왕이 머뭇거리며 입을 열었다.
“본 왕은 여러 해 동안 아들만 둘을 낳았는데, 잇따라 요절하였소. 그래서 제 몸에 이상은 없는지 신의께서 좀 봐주실 수 있겠소?”
‘황자의 자손이라니!’
예왕이 입을 떼자, 이 신의는 머리가 터질 것 같았다.
명강제(明康帝)는 열렬한 도교 신자였다. 그는 종일 불로장생이나 영원히 강산을 누리는 것 따위를 생각하면서, 궁 안에 전문적으로 한 무리의 도사들을 데려다 놓고 장수단(長壽丹)을 만들도록 했다. 의원이 봤을 때는 우스울 따름이었다. 그 단약은 복용하게 되면 오래 사는 것이 문제가 아니라, 사람이 죽지나 않으면 다행이었다.
그 때문에 명강제의 몸은 좋지 않았고, 태어난 황자들도 몸이 허약하여 십여 명의 황자들 중 성년이 될 때까지 자란 이는 겨우 둘 뿐이었다. 그들이 바로 예왕과 목왕이었다.
명강제는 아직도 황태자를 책봉하지 않고 있어서, 비슷한 나이의 예왕과 목왕은 자연스레 암암리에 서로 경쟁하고 있었다. 예왕은 목왕보다 연장자로, 원칙대로라면 우위를 차지해야 하지만, 몸이 허약하여 후사를 보는데 명강제처럼 어려움을 겪었다. 이제 서른 살의 나이가 되었는데도 자식 하나 남기지 못한 것이다. 명강제가 자손 하나 없는 황자를 절대 황태자의 자리에 앉힐 리가 없다는 것을 다들 잘 알고 있었다.
이 신의의 얼굴이 솥바닥처럼 까맣게 어두워졌다. 자신이 예왕을 진찰하게 된다면, 어찌 황자들의 황위 다툼에 휘말리는 것으로 끝나겠는가. 이제 황위 다툼의 한가운데에 서서, 그 폭풍우가 가져오는 시련을 온몸으로 견뎌야 할 것이다.
이 신의가 몸을 돌려 가려고 했다.
“신의, 멈추시오!”
예왕이 공손이 읍을 하더니 말했다.
“본 왕이 성심껏 청하는 것을 봐서라도, 한번 진찰을 해주시오.”
이 신의가 꿈쩍도 하지 않자, 예왕이 덧붙여 말했다.
“게다가 신의가 경성에 와서 사람들을 피하지도 않았으니, 지금쯤이면 이미 많은 사람들이 신의가 예왕부에 온 것을 알고 있을 것이오. 그러니 만일 이대로 떠나신다면, 아마 안전하지는…….”
이 신의는 걸음을 멈추고, 한동안 침묵하더니 몸을 돌려 퉁명스럽게 말했다.
“여기에 머무르면 되는 겁니까?”
예왕이 크게 기뻐하면서 손수 이 신의를 부축하며 대꾸했다.
“신의가 마음에 들어하는 곳이라면, 본 왕이 즉시 사람을 시켜 깨끗이 정리하도록 시키리다!”
이 신의가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이제 구덩이에 빠졌으니, 나오고 싶어도 쉽지 않을 터였다.
* * *
성안의 온 백성이 승리하여 돌아온 북벌군을 보러 나가자, 대로가 아닌 다른 길은 한산했다. 황성 부근에 있는 금린위의 관아는 더욱 적막하기만 했다.
강원조는 관아 앞에 서서 검은 두루마기를 정리하더니, 관아 안으로 걸음을 옮겼다.
“멈춰라. 금린위는 중요한 요지로, 관계없는 사람은 함부로 들어올 수 없다!”
입구의 금린위가 그를 가로막았다. 강원조는 입꼬리를 올리며 가볍게 웃었다.
“관계없는 사람?”
뒤에 있던 수하가 즉시 앞으로 나와 큰 소리로 말했다.
“이놈이 뭘 잘못 먹었나. 태보 나리도 몰라 뵈는 것이냐!”
“태보 나리라 굽쇼?”
젊은 금린위가 여전히 중얼거리고 있자, 또 다른 금린위가 튀어 나왔다.
“아이고, 태보 나리 오셨습니까? 빨리 안으로 드십시오!”
강원조는 여전히 입가에 웃음을 띠고 있었으나, 냉담한 눈으로 그를 보더니 안으로 걸어가며 물었다.
“대도독은 안에 계시느냐?”
강원조를 한눈에 알아본 금린위가 공손하게 허리를 구부리며 말했다.
“어르신께서는 안 계십니다. 오늘 오셔서 한번 둘러보시고는 댁으로 돌아가셨습니다.”
‘집으로 가셨다고?’
강원조는 잠시 생각을 하다가 물었다.
“오늘이 큰 따님의 생일이더냐?”
금의위가 연신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나리는 기억력이 참 좋으십니다. 대도독께서는 바로 따님의 생일을 쇠러 댁으로 가셨습니다.”
강씨 가문의 규수 강시염(江詩冉)은 금린위 지휘사, 대도독 강당(江堂)의 외동딸로, 금린위의 사람 중 강씨 아가씨가 강당의 금지옥엽임을 모르는 자가 없었다.
강원조는 걸음을 멈추고 고개를 살짝 끄덕였다.
“너희들은 알아서 일하도록 해라. 난 강부(江府)에 가서 의부님을 봬야겠다.”
강원조가 수하를 데리고 떠나자, 젊은 금린위가 고개를 빼꼼 내밀고 그 모습을 보았다. 그러자, 또 다른 금의위가 손바닥으로 그를 치며 말했다
“뭘 그렇게 보고 있어?”
이곳에 들어온 지 얼마 되지 않은 젊은 금린위가 감탄하며 말했다.
“저분이 바로 13태보중 한 명인 원조 나리시죠? 정말 젊으시네요!”
“앞으로 잘 보고 다녀. 대도독이 가장 아끼시는 분이 바로 저분이시니까!”
젊은 금린위는 마음속으로 중얼거렸다.
‘대도독께서는 원조 나리를 가장 아끼신다면서 어떻게 몇 년씩이나 타지로 보내신 거지? 쯧쯧, 대인들의 마음은 정말 알 수가 없다니까!’
강당은 황제의 깊은 총애를 받고 있었고, 저택도 황성에서 멀지 않은 곳에 자리했다. 강원조는 수하를 시켜 진보각에 가서 인형을 사오라고 하여 그것을 들고 강부를 방문했다.
* * *
“원조 나리께서 돌아오셨습니다! 잠시만 기다리십시오. 바로 들어가서 아뢰겠습니다.”
문지기가 소식을 전하러 들어가는 것을 보고, 강원조는 쓴웃음을 지었다.
과거 그가 경성에 있을 때는, 본가에 올 때마다 안에 아뢸 필요 없이 바로 들어갈 수 있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문지기가 쏜살같이 달려왔다.
“나리, 주인어른께서 들어오시랍니다!”
강원조는 고개를 끄덕이고 안쪽으로 걸어 들어갔다. 저 멀리 계단 위에서 강당이 기다리는 것이 보였다. 강원조는 빠르게 몇 걸음을 걸어가, 강당의 근처까지 갔을 때 한쪽 무릎을 꿇고 말했다.
“불효자가 돌아와, 의부님께 절 올리겠습니다.”
만약 눈앞의 남자가 없었다면, 어린 시절 거리를 떠돌던 그는 지금까지 살아있을 수 없었을 것이다. 그는 의부인 강당을 진심으로 존경하고 사랑하고 있었다.
계단 위의 강당은 오십 살 정도의 나이로, 살이 쪄서 배가 불룩 나와 있었다. 손수 강원조의 손을 잡아 일으키는 그의 얼굴은 근엄했으나, 눈만은 웃고 있었다.
“돌아왔으니 그걸로 됐다.”
두 사람은 함께 안으로 들어갔다. 방 안에서 분홍색 옷을 입은 소녀, 강시염이 급히 뛰어나왔다. 강시염은 얼굴 가득 환한 웃음을 지으며 강원조에게 말했다.
“원조 오라버니, 드디어 돌아오셨군요!”
강원조는 아무도 눈치채지 못하게 옆으로 살짝 몸을 틀어 강시염과 몸이 부딪치는 것을 피하더니, 손에 들고 있던 아름다운 상자를 그녀 앞으로 내밀었다.
“다행히도 네 생일에 맞춰왔구나.”
강시염은 환호성을 지르며 선물을 받아들고는 곧장 두 사람의 앞에서 상자를 열었다. 그 안에는 정교하게 만들어진 장난감 인형이 들어있었다. 인형을 본 강시염은 기뻐하면서도 또 참지 못하고 원망을 했다.
“오라버니, 저 이제 열여섯 살이라구요. 이제 애도 아닌데, 어찌 아직도 인형을 사주시는 겁니까?”
강원조가 빙그레 웃었다.
“이 오라버니 마음속에선, 시염이 너는 늘 꼬마 숙녀란다. 어릴 적처럼 널 아끼고 있다.”
이렇게 말하고 나자, 무슨 영문에서인지 그의 머릿속에 갑자기 누군가의 그림자가 스쳐 지나갔다. 그 사람은 한 소녀였다. 강원조는 종종 그 점을 망각하곤 했다. 아마도 관군후에게 감히 선인장을 던질 수 있는 여자는 흔히 볼 수 없기 때문이리라.
강원조의 말에 강시염은 기분이 나빠져서 발을 동동 구르더니, 한마디 말을 던지고는 몸을 홱 돌려 뛰어갔다.
“난 이제 어린애가 아니라고요!”
강당은 난처한 듯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원조야, 저 녀석이랑 언쟁할 필요 없다. 저 녀석은 성격이 원래 저러니.”
“아닙니다.”
강원조가 담담하게 웃었다. 강시염의 언행은 마치 큰 바다에 떨어진 빗물처럼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강당은 조금 실망한 듯 분부를 했다.
“날 따라 서재로 가자꾸나.”
두 사람이 앞서거니 뒤서거니 서재로 들어서자, 강당은 웃음기를 거두고 엄숙한 표정을 지었다.
“원조야. 네가 가봉을 지키고 있었는데, 바로 네 눈앞에서 어찌 교(喬)씨 가문에 그런 큰불이 났던 것이냐? 그 불은 대체 천재(天災)냐, 아니면 인재(人災)인 것이냐?”
“제가 제대로 지키지 못해 그런 일이 일어났습니다. 의부님, 벌을 내려주십시오!”
강당은 손을 내저으며 답답하다는 듯 말했다.
“쓸데없는 말은 하지 말고, 본론만 말해라!”
강당의 스스럼없는 태도에 강원조는 조용히 한숨을 돌렸다.
몇 년간 떠나있어서 사이가 서먹해진 것은 어쩔 수 없지만, 의부님이 자신을 대하는 태도는 변하지 않았다.
“의부님, 제가 보기에 교가에 났던 큰불은 분명 인재인 것 같습니다.”
“왜 그렇게 생각하느냐?”
“교가에 큰불이 난 것은 지나치게 갑작스러웠습니다. 아직 의심 가는 인물을 찾아내지는 못했습니다만, 생존한 교 공자의 행적이 꽤 이상합니다. 그는 가봉에 남아 삼년상을 치르지도 않고 치료도 하지 않은 채, 어린 여동생을 데리고 친분이 있는 몇 집에 들렀다가 가봉을 떠났습니다. 제가 보기엔 교 공자가 뭔가 알고 있는 듯합니다.”
부모를 포함한 가족이 모두 큰불로 사망한 가운데, 살아남은 교 공자가 친분 있는 집을 방문할 정신이 있었다는 것은 확실히 상식에서 벗어난 일이었다.
“제 수하가 전한 소식에 따르면, 교 공자는 3일 전 이미 경성에 들어와서 외가댁인 구(寇) 상서부에 머무르고 있다고 합니다. 현재까진 그가 경성에 온 사실이 알려지지 않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