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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3화. 일부러 놓아주다

253화. 일부러 놓아주다

임근용은 잠시 손을 멈추고 차를 치자 화분에 부은 다음 다시 깨끗한 물을 한 잔 따라 그에게 건네주며 말했다.

“밤이 깊었으니 이제 그만 쉬어요.”

그러고 나서 뒤 돌아 말없이 책상을 치웠다. 임근용은 책문의 먹물이 아직 마르지 않은 걸 보고 조심스럽게 한쪽에 펼쳐 문진으로 눌러 놓았다. 그녀가 붓을 깨끗하게 씻어 붓걸이에 걸고 막 벼루를 치우려 하는데 육함이 벼루를 집어 들며 말했다.

“내가 하겠소.”

* * *

그들이 잠시 정리를 하고 나니 벌써 삼경에 가까워져 있었다. 이미 비가 그쳐 간혹 크지 않은 빗방울만 몇 개씩 떨어졌다. 육함은 여지에게 우산을 접으라고 한 뒤 임근용의 손을 잡고 빗물에 깨끗하게 씻긴 청석판 길을 따라 천천히 집으로 돌아갔다.

집으로 돌아가니 두아가 황급히 와서 말했다.

“아까 육운 아가씨께서 오셨었어요. 무슨 일이 있는지 한참을 앉아서 기다리시다가 두 분께서 안 오시니까 그냥 돌아가셨어요.”

임근용이 주저하며 말했다.

“벌써 밤이 너무 깊어서 괜히 잘 자는 사람 깨울 것 같아 사람을 보내기도 그렇네요.”

하루 종일 바빴던 육함은 이미 너무 지쳐 있었다.

“별일 아닐 거요. 심각한 일이면 청설각으로 찾아 왔겠지. 내일 다시 얘기해도 늦지 않을 테니 잠이나 잡시다.”

그날 밤은 그렇게 조용히 지나갔다.

* * *

이튿날, 두 사람이 함께 임옥진에게 문안을 드리러 갔다. 육함이 육운에게 물었다.

“아운, 어젯밤에 우리를 찾아 왔다던데 무슨 일이야?”

육운이 웃으며 말했다.

“별일은 아니고 어제 새언니한테 들었던 그 일에 대해서 잠깐 이야기하려고 갔었어요. 근데 둘이 청설각에 갔다고 하더라고요…….”

육함이 말했다.

“네 새언니가 한가할 때 읽을 책이 필요하다고 해서 내가 데리고 갔었어.”

범포와 맹 마마를 처리하는 일에 대해 상의했던 건 역시 아는 사람이 적을수록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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