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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화. 무고

9화. 무고

말이 끝나자, 청앵은 오 씨를 잡아당기며 까치에게 말했다.

“화로를 가지고 가자, 나는 물건을 훔쳤다고 주인을 의심하는 하인을 본 적이 없어!”

청앵은 은상탄을 가져오지 않았지만 오 씨의 방엔 확실히 은상탄이 있으니, 그것이 증거였다.

은상탄은 한 근에 은 두 냥이나 하였는데, 오 씨의 한 달 급료보다 곱절은 더 비쌌다. 그러니 오 씨가 어떻게 쓸 수 있겠는가?

하지만 빼빼 마른 청앵이 젖 먹던 힘까지 짜내도 건강하기 짝이 없는 오 씨를 끌어당기기엔 역부족이었다.

오 씨는 너무 화가 났다. 그녀의 방에는 겨우 은상탄이 두 근이 있었을 뿐이었다.

겨울엔 그녀가 직접 목탄을 가져왔다. 매년 겨울이면 청운이 받는 몫이 은상탄 오십 근은 너끈히 살 정도였는데, 오 씨는 청운이 그 돈을 쓰는 걸 보지 못했다. 분명 다른 사람이 빼돌렸을 거라 생각했다.

그래서 오 씨는 청운이 필요해 한다고 거짓말하며 은상탄 세 근을 가져왔고, 그중 한 근은 그녀가 이미 써버렸다.

은상탄은 보통 목탄이 아니었다, 마치 은을 태우는 것 같았다. 귀한 은상탄은 피워놓았다 하면 아까워서 자리를 뜨지도 못하였다.

오 씨 또한 아까워서 쓰지 못하고 있었고, 어느 날 가지고 나가서 팔 생각이었다. 은상탄 두 근이면 아주 싸게 팔아도 은 두 냥은 받을 터였다.

그런데 이번에 청앵에게 들키게 되니, 조금 전의 그 위세는 이미 사라지고 걱정만이 남았다. 비록 노부인이 셋째 아가씨를 싫어하긴 하지만, 그보다 더 중요시하는 것은 백부의 체면이었다. 주인은 목탄이 없어서 못 쓰고 있는데 하인이 은상탄을 쓰다니. 백부의 체면을 제대로 구기는 일이었다. 노비가 주인을 만만하게 보고 주인 행세를 하다니.

그렇게 되면 셋째 아가씨는 벌만 받고 끝나겠지만, 그녀는 맞아 죽게 될 것이었다.

뒷일을 생각하자, 오 씨는 두려움에 몸이 떨려왔다. 손을 들어 청앵을 뿌리쳤다.

만일 까치가 청앵을 부축하지 않았다면, 청앵은 바로 바닥으로 넘어질 뻔했다.

오 씨는 이를 바득바득 갈며 화로를 노려보고는, 몸을 돌려 나갔다.

밖에 말려놓은 목탄들을 보자, 화가 난 오 씨는 포악하게 목탄을 밟아서 가루로 만들었다.

청앵이 문 앞에서 그 모습을 보곤 화가 나 뛰쳐나가려고 했는데, 까치가 청앵을 붙잡고 달래며 말했다.

“화내지 말아요, 저런 사람 때문에 화내봤자 몸만 망가져요.”

화로 안에 은상탄이 들어있지 않은 것이 안타까울 뿐이었다. 그래도 그들은 애초에 오 씨에게 겁만 줄 생각이었다. 만약 정말로 일러바친다면 오 씨의 앞잡이인 추아가 은상탄을 숨길 것이고, 그렇게 되면 그들은 무고해질 것이 뻔했다.

하여 일단 참을 수밖에 없었다.

뜰 밖에서는 청록색 치마를 입은 여종이 머리카락의 반 정도가 하얗게 센 남자를 데리고 들어오고 있었다. 약상자를 들고 들어오는 남자는 의원이었다.

오 씨는 들어오는 여종을 보더니, 곧바로 웃으며 맞았다.

“홍수(紅袖)씨, 어떻게 시간이 나서 불향원에 들르셨어요?”

방금 목탄을 밟아서인지, 오 씨가 걸을 때마다 그녀의 뒤로 새카만 발자국이 남았다.

홍수는 보면서 눈살을 찌푸렸다. 그는 잘 타고 있던 목탄을 굳이 밟아서 박살을 낸 오 씨에게 문제가 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는 아무 것도 묻지 않은 채 말했다.

“셋째 아가씨는 어디계신가. 안방마님께서 의원을 데려다가 셋째 아가씨의 목을 살펴보라 하셨네.”

오 씨는 급하게 웃으며 말했다.

“셋째 아가씨는 방에 있어요.”

오 씨가 말하면서 길을 안내했다.

청운은 대부인이 의원을 불러 그녀의 목을 살피게 하실 줄은 몰랐다. 보아하니 오늘 그녀가 노부인 앞에서 기침한 것이 효과가 있었던 모양이다.

아니지, 노부인이 백부의 작위를 회복하게 도와줄 청운의 혼처를 찾는 중인데, 언제까지고 그녀를 아픈 채로 내버려 둘 수는 없어서 그랬을지도 몰랐다. 아무도 벙어리를 색시로 맞고 싶지는 않을 테니.

의원이 앉아있는 청운의 맥박을 짚고 나서 병명을 말했다. 의술 실력이 꽤 괜찮았다.

그다음 청운은 의원이 쓴 처방전을 힐끔 쳐다보았다. 처방전도 괜찮았다. 다만 너무 융통성이 없었다. 약을 꼬박꼬박 잘 먹는다고 해도 보름이 걸릴 터였다.

홍수가 처방전을 받아 들고, 청운에게 말했다.

“셋째 아가씨, 좀 이따가 저를 따라 약을 지으러 갈 여종을 하나 붙여주십시오. 빨리 목이 나으셔야하지 않겠습니까.”

청앵이 들으면서 어딘가 석연치 않은 느낌을 받았다. 말하는 본새가 마치 셋째 아가씨가 목 아픈 걸 즐기는 것처럼 이야기 했다.

까치가 정국공부에 하루 동안 가 있었고, 덤으로 손까지 다쳤으니, 청앵이 홍수와 같이 약을 지으러 가야했다.

그들이 약을 지으러 나간 후, 청운은 계속해서 자신이 짓던 약을 달였다.

두 각(*二刻: 약 30분)이 지난 후, 청운은 달여 놓은 약을 마셨다. 너무 썼지만, 그녀는 코를 막고 약을 삼켰다.

약을 다 먹고 나자 추아가 점심을 들고 들어왔다.

반찬 세 가지에 국과 흰쌀밥.

반찬들엔 어김없이 고추기름이 뿌려져 있어서 새빨갛게 번들거리고 있었다. 청운의 목이 아프지 않았더라면 좋아했겠지만, 지금은 침만 삼킬 수밖에 없었다.

게다가 국이 조금 짠 편이어서, 목으로 넘어갈 때 아파서 죽는 줄 알았다.

그래서 청운은 맨밥만 먹을 수밖에 없었다.

그녀는 밥을 그냥 먹는 것이 아니라, 그릇을 하나 가져와 물을 부어 죽처럼 만들어 먹으려 했다.

약을 달이던 화로여서인지, 금방 끓었다.

뜨거웠던 죽이 미지근해질 때까지 오래도록 천천히 먹었다.

죽을 다 먹고, 청운은 불경을 베끼기 시작했다.

가훈을 적은 종이가 이미 더러워진 것을 보니, 내일 밥을 먹을 수 있겠단 기대는 일찌감치 접어두었다. 내일 밥을 못 먹게 되면 배가 고파 분명 불경을 베끼는 속도가 느려질 터였다.

청운은 어차피 불경을 다시 베껴야 할 테고, 지금은 시간이 좀 남아서 심심하니 미리 해두면 내일이 좀 수월할 듯싶었다.

불경을 한 번 다 베끼고 나니, 밖에서 청앵이 약재를 들고 뛰어 들어왔다.

얼굴은 새빨갛고, 숨을 가쁘게 내쉬었는데, 두 눈은 반짝반짝한 것이 마치 용과 같았다. 게다가 목소리엔 짙은 기쁨이 묻어 나왔다.

“아가씨, 외할아버님이 백부에 오셨어요!”

듣자마자 청운의 손이 멈추었다.

붓에서 먹물이 한 방울 종이로 떨어졌다. 청운이 재빨리 붓을 내려놓았다. 아무것도 적지 않은 새 종이여서 다행이었다.

옆에서 먹을 갈던 까치가 기다리지 못하고 물었다.

“아가씨의 혼사 때문에 오신 거예요?”

청앵은 고개를 끄덕였다.

“말해 뭐해. 당연히 혼사 때문에 오신거지.”

두 여종은 기뻐서 어쩔 줄을 몰랐다. 춘휘원에 가지 못해 직접적인 소식을 접하지 못하는 게 안타까웠다.

그들의 반응을 보면서, 청운은 강 노태야가 윤기가 흐르는 흑마를 타고, 그 뒤에 백마를 탄 공자들이, 과분한 태부(太傅)의 외손녀를 아내로 맞이하기 위해 줄지어 백부로 들어오는 장면을 그렸다. 백부로 좌천되었지만 그렇게 보이지 않는 적녀를 아내로 맞이하기 위해 대판 싸움을 벌이는 모습, 피 비린내 났지만 장관이었다.

상상은 달콤했지만, 현실은 썼다.

관리들의 세계에선 이익이 되는 것은 쫓고 해가 되는 것은 피하는 법이었다.

권력을 얻었을 땐 문전성시를 이루지만, 권세를 잃고 나면 찾아오는 사람이 전혀 없었다.

백부도 그럴 텐데, 하물며 황제에게 직접 해직 당한 태부는 어떠하랴.

청운이 웃어넘기며, 크게 희망을 갖지 않았다.

만일 정말 강 노태야가 청운에게 사윗감을 찾아주었다면, 그녀는 담담하게 받아들일 생각이었다. 강씨 집안이 권세를 잃고 난 후, 옛정을 생각하는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었다.

하여튼 청운이 혼사를 거부하는 것도, 강 노태야를 난처하게 만드는 일이었다.

청운은 붓을 들어 먹물을 묻히고는 다시 한 번 불경을 베끼려 했다. 그러나 그녀는 자신을 너무 높이 평가했다. 그녀의 일생이 걸린 문제인데, 어찌 벽에 핀 꽃을 구경하듯 무관심할 수 있을까?

더 이상 써 내려 갈 수 없어, 청운은 붓을 내려놓고 앉아서 멍하니 있었다.

까치와 청운은 말리던 목탄을 정리하러 뜰에 갔다. 원래도 가진 목탄이 그리 많지 않았는데, 오 씨에 의해 밟혀 박살난 걸 보니 마음이 아팠다.

두 사람은 목탄을 방으로 들고 들어와, 창문을 열고 말리기 시작했다.

그리곤 밖으로 나와서 문을 잠갔다.

밖에선 오 씨가 자신의 방에서 물건을 훔친 것도 모자라, 이젠 문까지 잠갔다며 욕을 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청앵과 까치는 왜 문을 잠그게 됐는지 까먹고 흥분하게 될까봐, 아예 오 씨를 상대하지 않았다. 만약 문을 잠그지 않으면, 언제 또 사람들이 마음대로 뒤질지 모르는 일이었다.

그러나 그녀들이 오 씨를 상대하지 않는다고 가만있을 오 씨가 아니었다.

오 씨가 방으로 들어가 은상탄을 살펴보았다. 적어지긴 했지만 고작 두 덩이가 없어졌다. 화로 안도 깨끗이 태워버려서 증거가 없었다. 아무도 그녀를 어찌하지 못할 것이었다.

오 씨는 밖에 서서 큰소리로 욕을 하기 시작했다. 그녀가 베개 밑에 놓아둔 은팔찌가 사라졌다는 내용이었다. 그녀는 여종들이 방에서 목탄을 훔쳐 갈 때, 은팔찌도 같이 가져갔다고 모함했다.

오 씨는 일을 크게 만들어 청앵과 까치를 내보낼 작정이었다. 만약 내보내지는 못하더라도, 그녀들을 어떻게든 벌을 내려 청운에게 그녀의 옷을 더럽힌 복수를 해줄 생각이었다.

그러나 오 씨가 가만있지 않는다고, 두 여종도 얌전히 당하고만 있을 사람들이 아니었다.

그녀들은 근본적으로 팔려가는 것이 두렵지 않았다. 그녀들을 팔 수 있는 권리는 노부인과 대부인이 아닌 백야에게 있었기 때문이었다.

만약 노부인과 대부인 손에 권리가 있었다면, 언제 어디로 팔려갔을지 모를 일이었다.

청앵과 까치는 뜰에 서서 불당을 향해 맹세했다. 만약 그녀들이 가져가지 않아야 할 물건들을 가져갔다면, 벌로 손과 발이 잘려도 좋다고.

만일 누군가가 이유 없이 그녀들을 모독한다면, 결국 온 몸이 망가진 채로 관저에서 쫓겨나 말년을 처량하게 만들어 줄 것이라고.

이런 맹세의 말에, 오 씨의 등 뒤가 서늘해졌다. 그래서 더는 여종들이 그녀의 팔찌를 훔쳐 갔다고 말하지 못하고 방으로 들어가 향을 피웠다.

오 씨가 방에서 향을 피우며, 아무도 듣지 못할 정도로 불만 섞인 욕설을 나지막이 중얼거렸다. 오 씨가 불경한 삼매경을 읊는 동안, 밖에선 경쾌한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그때 청앵이 고개를 내밀고 바라보자, 한 아가씨가 들어오고 있었다.

그 아가씨는 자줏빛 나비가 수놓인 치마를 입고 있었고, 분홍색 허리띠에는 등꽃이 새겨져 있었다, 허리에 달린 옥패에는 술이 달려있어, 걸을 때마다 우아하고 아름다웠다.

그녀는 대부인의 딸 목청유였다.

그녀의 용모는 꽃같이 아름다웠고, 피부도 매끈해 눈이 부셨다. 다만 눈초리가 위로 올라가 오만함을 담고 있었고, 눈에 뵈는 게 없어 보였다.

목청유는 뒤에 두 명의 아가씨들과 함께 들어왔다.

한 명은 생동감 넘치는 연꽃이 수놓인, 잎처럼 푸른 치마를 입고 있었다.

그녀의 용모는 수려하며 아름다웠고, 발걸음이 가벼웠다. 게다가 머리 위엔 간단하게 영롱한 금비녀를 두 개 꽂았는데, 빛에 반사되어 반짝거리는 것이 눈이 부셨다.

그녀는 안정백부의 둘째 아가씨인 목청지(沐淸芷)였다.

생모는 후작 나리의 첫 번째 첩이었는데, 목청지는 관저에서 목청유를 제외하고 가장 노부인의 총애를 얻는 사람이었다.

또 다른 한명은 두 번째 첩의 소생인 넷째 아가씨 목청설(沐淸雪)이었다.

그녀는 옅게 화장을 했는데, 눈빛이 초롱초롱하고 이는 가지런하며 눈썹이 버들잎 같았다.

그녀가 입고 치장한 것은 둘째 아가씨보다 못했지만, 용모만큼은 전혀 지지 않았다.

세 사람이 계단을 내려오는 것을 보자, 청앵은 속으로 비명을 질렀다. 아닌 밤중에 세 사람이 같이 오다니. 그녀가 재빨리 그들을 맞이하러 나갔다.

세 사람은 결코 상대하기 쉬운 사람들이 아니었다. 그들은 예전부터 셋째 아가씨를 괴롭히는 것을 낙으로 삼는 사람들이었기에, 만일 제대로 시중을 들지 못한다면 끝까지 책임을 져야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