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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난

신비한 부의(符醫)가 되어 인생을 뒤바꾸다! 까맣고 거친 피부에, 이마와 볼에 난 여드름, 턱에 남은 여드름 자국까지…… 회인백부의 셋째 아가씨 정미는 여러모로 ‘부잣집 아가씨’의 틀에서 많이 벗어난 규수다. 게다가 적녀임에도 불구하고 적녀 취급은커녕, 서녀들보다도 못한 취급을 받으며 어머니에게는 ‘쌍둥이 오라버니를 죽게 만든 아이’라는 이유로 미움을 받으니! 그러나 소꿉친구이자 상냥한 친척 오라버니인 한지와 자신만을 진정한 친여동생으로 바라봐주는 둘째 오라버니 정철 덕분에 꺾이지 않고 당찬 성격의 아가씨로 자라는데…… 하지만 어느 날, 사고로 정신을 잃은 날부터 정미의 눈앞엔 믿을 수 없는 장면들이 펼쳐진다. 행복할 줄만 알았던 한지와의 신혼은 완전히 무너져내리고, 불타 죽은 어머니와 등에 화살이 잔뜩 꽂힌 채 눈도 감지 못하고 죽은 정철, 태자를 낳지 못하고 죽어버린, 태자비이자 큰언니인 정아까지…… 눈앞의 장면이 너무나도 생생하여 정신이 나가버릴 것만 같던 그때, 정미의 머릿속에 어느 목소리가 울려퍼진다! 「이봐, 만약 지금 네가 본 것들이 미래에 정말로 일어날 일들이라면 어떻게 할래?」 과연, 정미는 자신의 운명을 바꾸어 행복한 인생을 살 수 있을까? 원제: 娇鸾(교난)

겨울버들잎 · Kỳ huyễ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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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76 Chs

17화. 묻는 말

17화. 묻는 말

정미는 고개를 숙여 발치에 내리쳐진 꽃신을 보았고, 또 고개를 들어 한지를 보았다. 새하얀 덧신을 신은 발은 신발이 아닌 살짝 젖은 진흙에 닿아 있었다. 그녀는 울컥한 듯 한지를 바라보았다.

한지는 이를 전혀 개의치 않고 품에서 한 물건을 꺼내 건네며 담담하게 말했다.

“너랑 싸우느라 잊을 뻔했구나.”

정미가 건네받은 것은 한 통의 서신이었다. 펼쳐서 한 번 훑어보자 몇 줄의 글자가 눈에 띄었다.

[무릇 부부간의 인연을 이야기하자면, 그것은 전생과 삼생에 닦아온 인연이다. 만약 인연이 결합한 것이 잘 맞지 않으면, 그것은 한 쌍의 원수와도 같다…….

만약 두 사람의 마음이 같지 않다면, 많은 일에 대해 합의하기가 어려우니, 이전에 두 사람이 서로 주고받은 물건을 서로 돌려주고 각자의 길을 갑시다…….]

그것은 놀랍게도 이혼서였다!

“어떻게 이럴 수 있습니까? 어찌 감히 이럴 수 있어요! 잊었어요? 우리의 혼사는 외조모께서 돌아가실 때 남기신 염원인데 당신과 내가 이혼하면, 외조모님을 뵐 면목이 있겠습니까?”

정미는 이 이혼서에 자극을 받은 듯 울부짖었다.

하지만 한지는 꿈쩍도 하지 않고 차갑게 말했다.

“조모님이 저승에서 이를 보고 계신다면, 틀림없이 내 결정을 지지해주실 것이다. 정미, 넌 정말 나를 실망하게 하는구나!”

청년의 한지가 마지막 말을 했을 때, 변성기 소년의 목소리가 동시에 들려왔다.

“정미, 넌 정말 나를 실망하게 하는구나.”

한 편의 복잡한 연극을 본 정미는 그 말 한마디에 마침내 현실로 돌아올 수 있었다. 그녀는 화가 난 얼굴의 소년 한지를 얼떨떨하게 보고 또 봤고, 그에게 부축 받고 있는 소녀 정요를, 그리고 고개를 숙여 피가 멈추지 않는 손목을 보고 또 봤다. 그제야 그녀는 다시 고개를 들고 입을 열었다.

“지 오라버니, 저 피가 나요…….”

정미는 그렇게 말을 마치고는 소리 없이 정신을 잃고 말았다.

한지는 그제야 정미의 손목에서 피가 줄줄 흘러 바닥의 눈을 녹인 것을 보았다.

“정미!”

정요가 한지를 밀치고 정미를 향해 달려갔다.

멀리 서서 주인들에게 이야기할 공간을 내주었던 시녀가 이를 보고 깜짝 놀라 소리치고는 창백한 얼굴로 달려왔다.

이때, 또 발소리가 들려오더니 오솔길에서부터 몇 명의 소년들이 돌아 들어왔다. 맨 앞의 자색 옷을 입은 소년은 바로 용흔이었다.

그는 시녀가 달려가는 방향을 따라 바라보았고, 놀라서 멍해졌다가는 바로 급히 달려갔다.

“정미, 왜 그래? 눈 좀 떠봐!”

정요가 정미의 몸 위에 엎드려 흐느꼈다.

이때 용흔이 곁으로 달려왔고 반짝이는 선혈에 놀란 듯이 멍하니 있다가 갑자기 펄쩍 뛰며 한지의 멱살을 잡았다.

“한지, 이게 무슨 상황이지?”

“이 손 놔!”

“아니! 네가 제대로 말해주지 않으면 놓지 않을 것이다!”

두 사람이 다투는 사이, 소년 중 가장 평범한 외모의 소년 하나가 조용히 다가왔고, 허리를 굽혀 조심스럽게 정미를 안아 들고 걸어 나갔다.

용흔은 급히 한지를 놓고 쫓아가 문책했다.

“한평(韓平), 이게 지금 뭐 하는 짓이지?”

이 평범한 외모의 소년은 정미의 넷째 외숙부네 장자이자, 위국공 집안의 손자 중 둘째 항렬인 한평이었다.

위국공부 넷째 아들에게는 세 명의 적자가 있었는데, 모두 어머니 조 씨의 외모를 물려받아 외모가 평범했다. 장자 한평은 올해 열네 살로, 용흔 등과 비슷한 나이였고, 평소 함께 지내왔다. 한 무리의 미소년들 중에 이 흔하디 흔한 얼굴의 소년이 섞여들자, 그 평범한 외모는 오히려 평범하지 않아 보였다.

한평은 분명 용흔보다 한 살 아래였지만, 보기에는 오히려 그보다 침착해 보였고, 용흔의 문책에 마지못해 대답했다.

“세손, 큰형님과 먼저 다투고 있으세요. 정미를 데리고 의원에게 가겠습니다.”

그는 말을 마치고는 정미를 꼭 껴안고 고개를 돌려 매화가지를 피해 성큼성큼 앞으로 걸어갔다.

용흔은 입을 뻐끔거리다 겨우 외쳤다.

“야, 좀 기다려봐……. 한평, 적당히 좀 해!”

용흔은 서둘러 그 뒤를 쫓아갔고, 몇몇 소년들은 서로의 얼굴만 쳐다봤다. 평소 정미에게 많든 적든 안 좋은 인상이 있긴 했지만, 지금 그 정신을 잃은 소녀와 눈에 띄게 땅에 흐른 피가 소년들을 당혹스럽게 했다. 그들은 용흔의 뒤를 함께 따라가기로 했다.

이내 홍매나무 아래에는 한지와 정요 두 사람만 남게 되었고, 이는 마치 조금 전 두 사람이 속마음을 털어놓던 때와 같았다. 하지만 눈밭에 그 홍매보다 더 선명한 핏자국이 유달리 눈에 띄어 이를 무시할 수 없었다.

한지는 그 핏자국을 뚫어져라 쳐다보다가 마음이 불안해져 떨리는 목소리로 정요에게 말했다.

“정요, 우리도 어서 가서 정미가 어떤지 보자.”

그가 분주히 걸어갔고, 정요도 비틀거리며 따라갔다.

* * *

“무슨 일이니?”

한평이 정미를 안고 청설림 밖으로 걸어가던 중, 한추화와 마주쳤다. 한추화는 그들의 모습을 보고 바로 물었다.

큰누이를 만나자 줄곧 찌푸리고 있던 한지의 눈썹이 풀리더니 곧장 대답했다.

“정미의 손목이 마른 나뭇가지에 베였고, 피를 많이 흘렸습니다. 다른 건 아직 잘 모르겠어요.”

한추화의 안색이 무거워지더니, 고개를 돌려 뒤의 여종에게 말했다.

“앵가(鶯歌)야, 네가 걸음이 빠르니 어서 가서 주(朱) 태의(太醫)를 여기서 가장 가까운 매원으로 모셔오거라!”

“예.”

앵가라고 불린 여종이 치맛자락을 들고 몸을 돌려 달렸고 순식간에 사라졌다.

한추화가 새하얀 손수건을 꺼내 분부했다.

“한평, 잠시 기다려. 상처를 싸매서 피가 너무 많이 나지 않게끔 해볼게.”

줄곧 침착했던 소년의 얼굴이 조금 달아올라 더듬거리며 말했다.

“역시 큰누님께선 세심하십니다. 저는 조급한 나머지 까맣게 잊고 있었어요.”

내내 옆에서 따라오던 용흔이 마침내 기회를 잡았다는 듯 불난 집에 부채질을 해댔다.

“흥, 그래서 내가 기다리라고 하지 않았느냐!”

용흔의 말에 얼른 쫓아온 몇 명의 소년들은 참지 못하고 눈을 흘겼다.

‘이 도련님은 갈수록 농담을 잘하는군. 한평에게 기다리라고 한 건 자신의 임무를 빼앗겼다고 느껴 불평한 것이 아니던가?’

‘방금 누가 다투는 것에 정신이 팔려, 다쳐서 정신을 잃은 사람을 잊고 있었던가? 만약 세손께서 상처를 싸매는 것을 생각해냈다면, 그것이야말로 귀신이 곡할 노릇이었겠지!’

그러나 용흔은 고귀한 신분이었기에, 몇 명의 소년들은 그저 마음속으로만 조용히 비방할 뿐 감히 입 밖으로 꺼내지 못했다. 한평도 그와 논쟁할 기분이 아니었기에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한추화도 이 왕세손의 성정을 아주 잘 알고 있었기에 그의 말을 잇지 않았다.

한추화는 정미의 손목을 재빨리 싸매주며 물었다.

“도대체 어떻게 된 일이니. 멀쩡하던 정미가 어쩌다 이렇게 다친 거야?”

한평은 멍해져서는 용흔을 쳐다봤고, 용흔은 사방을 둘러보다가 창백한 안색의 시녀를 쳐다보고는 큰소리로 물었다.

“이리 와, 우리에게 말해보아라. 이 애가 어쩌다 다치게 되었느냐?”

시녀의 안색이 더욱 창백해지더니, 염치 불고하고 다가와서는 한추화 앞에서 털썩 무릎을 꿇고는 말을 더듬었다.

“소, 소인이…….”

이때 한추화는 이미 정미의 손목을 다 싸매었고, 한지와 정요가 나란히 이쪽으로 서둘러 오는 것을 흘겨보았다. 그녀는 안색이 어두워지며 목소리를 높였다.

“됐다. 이따가 자세히 물어보마. 일단은 정미를 태의께 데리고 가는 것이 우선이다!”

일행이 분주히 앞으로 걸어 나가자 용흔이 탄식했다.

“하늘에 감사드립니다. 태의가 여기 있어서 정말 다행이군!”

그 말을 들은 한추화의 입꼬리가 들썩였다. 꽤나 어이가 없었다.

‘이 작은 패왕은 정말 조금도 걱정하고 있지 않은 모양이네.’

평소 태의는 교대로 입궁해 당직을 섰고, 당직을 서지 않은 태의는 태의서에 남았다. 태의서에 남은 태의에겐 양갓집 가문이 종종 진료를 요청하곤 했다.

오늘은 한지의 소성년식으로, 초대한 사람이 많지는 않았지만 신분이 모두 귀한 사람들이었다. 특히 경왕세손과 그의 어머니와 딸, 그 세 명에게 무슨 사고라도 일어나면 위국공 집안은 그 책임을 감당할 수 없었다. 게다가 위국공 부인 도 씨는 몸이 허약하고 잔병이 많아 일 년 내내 주 태의를 불러들이곤 했다. 이 때문에 오늘도 진작에 주 태의를 모셔 만일의 사태에 대비하고 있었다.

하지만 용흔은 이 자질구레한 이유는 마음에 두지 않은 것이 분명했다.

* * *

그들은 어느새 청설림을 빠져나왔고 가는 길에 마주친 눈과 매화를 감상하던 소년소녀들도 모두 따라와 아기자기한 매원은 발 디딜 틈도 없이 꽉 찼다.

소식을 듣고 급히 달려온 위국공 부인 도 씨 등의 사람들은 이를 보고 머리가 아파져 급히 이 어린아이들을 다른 곳으로 내쫓았고 한추화 등만 남겼다.

도 씨가 뭔가를 묻기도 전에, 위국공 노부인이 직접 달려와 방에 들어서자마자 거듭 물었다.

“정미는, 우리 정미는 어떤가?”

도 씨가 난처한 얼굴로 앞으로 나아갔다.

“노부인, 주 태의가 아직 정미를 진료하고 있으니 우선 마음을 놓으세요.”

“어찌 마음을 놓을 수 있겠느냐?”

노부인이 용머리가 새겨진 지팡이를 짚고 또 짚었다.

“눈 깜짝할 사이에 정미에게 큰일이 났는데! 추화야, 할미에게 말해보거라. 네 사촌 동생이 어쩌다 다친 것이냐?”

한추화는 붉어진 얼굴로 무릎을 꿇었다.

“조모님, 모두 손녀가 잘 보살피지 못한 탓에…….”

“중점만 말하거라!”

노부인이 맹렬히 다그쳤다.

“저와 아이들이 청설루에서 술을 마셨습니다. 밖에 눈이 내리는 것을 보고, 두세 명이 함께 나가 눈 구경을 하고 매화를 감상했지요. 저도 그 길을 가던 도중에 둘째 동생이 다친 정미를 데리고 나오는 것과 마주쳤습니다.”

한추화는 간결해야 할 때임을 알고 전혀 질질 끌지 않았다.

한평도 정직한 사람이라 노부인이 묻기도 전에 뒤따라 말했다.

“저와 몇 명은 여자아이들의 비명소리를 듣고 이를 찾아갔는데, 정미가 다쳐 바닥에 쓰러져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설마 그때 정미 혼자 있었단 말이냐?”

노부인이 물었다.

“멀지 않은 곳에 시녀 한 명이 서 있었고, 또…….”

한평이 조금 주저하자, 한지가 말을 이었다.

“조모님, 당시 그 자리에 저도 있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