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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6-134

126화 밀려오는 어둠(2)

126. 밀려오는 어둠(2)

언제부터일까...

남편이 조금 이상해졌다.

말로는 설명하기 힘들지만 묘하게 분위기가 바뀌었다고 할까?

최근에 힘든 일이 있기는 했지만, 그것 때문에 변했다고 하기에는 뭔가 이상하다.

얼마 전에는 갑자기 좋은 곳에 간다며 무작정 나를 데려갔다.

혹시 무슨 이벤트는 아닐까 하며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갔지만 도착한 곳은 이상한 종교 단체였다.

요즘 동네 아줌마들도 자주 간다는 곳이긴 한데, 나는 꺼림칙해서 권유를 받아도 항상 거절했었다.

순간적으로 화가 나서 남편에게 이런 곳을 다니느냐고 짜증을 냈다.

그러자 남편이 무서운 얼굴로 나를 쳐다봤다.

남편이 그렇게 무서운 얼굴을 하는 것은 생전 처음 봤다.

그날 이후로... 남편이 나를 쳐다볼 때마다 소름이 끼친다.

남편이 무섭다.

내가 예민한 것일 수도 있겠지만, 이대로 가다가는 정말

"응?"

일기를 쓰던 박하선은 현관문이 열리는 소리에 다급히 공책을 덮었다.

공책을 책장 깊숙한 곳에 숨겨두고 자리에서 일어선 순간, 뒤에서 목소리가 들려왔다.

"여기서 뭐해?"

"왔어요?"

"뭐 했냐고."

"당신도 참. 하긴 뭘 해요. 그냥 핸드폰이나 보고 있었죠."

"그래..."

남편이 무표정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박하선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놀란 가슴을 쓸어내렸다.

그 순간,

-쿵. 쿵.

남편이 성큼성큼 걸어오더니 박하선 코앞에 멈춰 섰다.

무표정. 정색하는 남편의 얼굴을 마주한 박하선이 침을 꿀꺽 삼켰다.

"왜 그래요... 부담스럽게..."

박하선이 조심스럽게 남편을 밀어냈다.

아니, 밀어내려 했다.

"내가 바보로 보여?"

**

태한 시는 지방에 위치한 작은 소도시였다.

상가들이 모인 몇몇 지역 빼고는 대부분이 논밭인, 아주 한적한 도시.

-끼이이익!

보닛에 불타는 글씨체로 BADASS가 적힌 차량이 시골길 한복판에 멈춰 섰다.

"쓰읍... 하아. 공기 좋네."

차량에서 내린 남자는 강현이었다.

크게 숨을 들이쉬자 산뜻한 공기가 폐의 깊은 곳까지 가득 들어차는 느낌이었다.

"오기 싫다고 그렇게 난리를 치더니 제일 신났네."

"닥쳐."

뒤이어 차량에서 내린 윤나래의 딴지에 강현이 인상을 찌푸렸다.

"그러는 너는 왜 따라온 건데?"

"흥. 따라가든 말든 내 마음 아니에요?"

"됐다. 어차피 이유야 뻔하지."

곧이어 윤나래가 따라온 이유인 안유성이 차량에서 내렸다.

한창 티격태격하는 강현과 윤나래를 보며 안유성이 흐뭇하게 웃었다.

"둘이 보기 좋네요. 의좋은 남매 같아요."

"도착하자마자 시비냐?"

마지막으로 신성아까지 차량에서 내리자 마침내 강현 패거리가 모두 모였다.

"강현 님. 이 동네는 확실히 뭔가 이상한 것 같습니다."

"오자마자? 뭐가 이상한데?"

"음모와 모략. 범죄자들의 냄새가 코를 찌릅니다."

"내가 탐정 드라마 좀 작작 보라고 했지?"

심각한 얼굴로 중얼거리는 신성아를 보며 강현이 절레절레 고개를 흔들었다.

"아무튼, 오자 해서 오긴 왔는데... 이제 어쩔 건데?"

안유성과 신성아의 강한 주장으로 무작정 내려오기는 했으나, 답이 없었다.

사실 이 일은 그렇게 주목받는 사건이 아니었다.

대형 던전이 터진 것도 아니고, 처리 또한 대부분 인명피해 없이 깔끔하게 끝났기에 사람들의 관심이 쏠리지 않은 것이다.

"하아, 어쩌다 내가 이런 일까지 맡게 된 건지..."

강현이 한숨을 내쉬며 거칠게 머리를 쓸어 넘길 때였다.

"강현 님. 여기 뭔가가 있습니다."

탐정 모자의 대명사라 할 수 있는 코튼 헌팅캡을 쓴 신성아가 돋보기로 무언가를 가리켰다.

"뭔데?"

"발자국입니다."

"그게 어쨌다고..."

신성아가 가리킨 곳에는 발견한 것이 신기할 정도로 희미하게 발자국이 찍혀 있었다.

"발자국이 한두 개가 아닙니다. 상당히 많이 보입니다."

"그렇겠지."

시골길이라지만 도로 옆이다.

발자국이 많다고 해서 전혀 이상할 게 없었다.

"강현 님. 여기는 밖이지 않습니까?"

"자꾸 당연한 소리 할래?"

"이것 좀 보십시오."

강현의 미간이 좁혀지다 못해 찌그러지던 순간, 신성아가 무언가를 가리켰다.

"이게 뭔데?"

"이건 맨발로 찍은 발자국입니다. 그리고 묘하게 인간의 그것과 다르게 생겼습니다."

"나는 잘 모르겠는데..."

신성아의 말대로라면 확실히 이상하기는 했다.

도로 옆 흙길에 신발도 아니고 맨발바닥 자국이 찍혀 있는 것이니까.

하지만, 지금 사건과 이것을 연결하기에는 무리가 있어 보였다.

"네가 최근에 잘록 홈즈에 빠진 건 알겠는데, 이렇게 아무거나 붙잡아서 돌아다닌다고 단서가 되는 게…."

강현의 말을 들은 체도 하지 않고, 신성아는 어느새 발자국을 따라 이동하고 있었다.

"야! 어디가!"

"푸흡, 무시당했대요."

"닥치라고 했지?"

"아악! 오크가 사람 때린다!"

강현은 키득거리는 윤나래에게 꿀밤을 먹이고는 서둘러 신성아를 쫓아갔다.

"후우, 뭐가 좀 보여?"

신성아는 바닥에 쪼그린 채로 오리처럼 걸어가고 있었다.

"예. 누군가가 흔적을 지우기는 했지만 어설프군요. 점점 더 수상해지기 시작했습니다. 뭔가 음모가 있는 게 분명합니다."

"그러냐..."

그렇게 신성아를 필두로, 일행은 조용한 시골길을 걸었다.

8월, 여름의 끝자락.

햇볕은 유난히 따가웠고, 매미 소리는 귀를 찔러왔다.

조금씩 흘러내리기 시작하는 땀방울에 강현의 인내심이 한계에 달하려는 찰나,

"강현 님. 저기입니다."

마침내 무언가를 발견한 신성아가 강현의 귀에 속삭였다.

"그냥 크게 말하면 안 될까?"

"저기 범인이 있는 게 분명합니다."

"그래그래. 너 정말 대단한 탐정이구나..."

탐정 신성아가 진지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됐네. 그럼 그냥 들어가자."

"아! 탈출로를 봉쇄하고 들어가야..."

"1절만 해라."

순간 강현이 정색을 했다.

"예."

"동굴에 탈출로 봉쇄는 무슨."

인상을 팍 찡그린 강현이 성큼성큼 동굴로 들어갔다.

"확실히 냄새가 나긴 하네."

동굴은 퀴퀴하고 무언가가 썩어가는 듯한 냄새로 가득 차 있었다.

그 안에는 제법 익숙한 냄새도 섞여 있었다.

"잠깐만, 이 엿같은 냄새... 어디서 많이 맡아봤는데..."

강현이 코를 킁킁거릴 때였다.

"케륵..."

동굴 저 안쪽에서 역시나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시벌, 또 고블린이야?"

**

동굴 안에서는 고블린 세 마리가 신나게 술판을 벌이는 중이었다.

고블린 주술사 하나, 고블린 전사가 둘이었다.

"아주 살판났네. 이것들은 뭐야?"

놈들이 먹고 있는 음식은 분명 인간의 것이었다.

익숙한 초록색 술병.

육해공 종류를 가리지 않고 펼쳐져 있는 고기의 향연.

말 그대로 진수성찬이었다.

"케륵? 켈켈켈."

술에 거나하게 취해서인지 놈들은 강현이 다가와도 아무런 적대감을 보이지 않았다.

그저 낄낄대며 손을 내밀 뿐이었다.

"뭐야?"

통역 장치는 길드 훈련장에 케르고와 함께 두고 왔기에 말을 알아들을 수는 없었다.

자신이 손을 내밀었음에도 강현이 아무런 반응이 없자 고블린 주술사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그러고는 허리춤에 손을 올리고는 무언가를 지껄였다.

"케에에엑! 케륵, 케르륵!"

나름 근엄하게 무언가를 외치는 듯했지만, 강현에게는 그저 때려달라고 비는 모습으로 보일 뿐이었다.

-짜아악!

반응조차 하지 못할 정도로 빠르게 날아간 손바닥.

"잡놈이 어디서 소리를 질러."

강현에게 따귀를 맞은 놈이 단숨에 동굴 벽에 처박혔다.

고블린 전사 둘이 서둘러 자리에서 일어났지만, 바뀌는 것은 없었다.

-짜악, 짜아악!

순식간에 쓰러진 세 마리의 고블린.

강현은 놈들을 바닥에 나란히 눕혀놓고 자근자근 밟았다.

"너희가 무슨 사람이야? 엉? 그냥 뒤져. 고블린은 다 죽어야 돼."

"강현 님. 잠시 기다려 주시겠습니까."

신성아가 강현을 붙잡았다.

"왜?"

"뭔가 알아내야 하지 않겠습니까. 농담이 아니라 진심입니다."

"맞아. 멍청한 길드장은 여기 있는 음식들 안 보여? 누가 봐도 사람들 음식이잖아... 요."

강현이 윤나래를 째려보고는, 턱을 쓰다듬었다.

"확실히 그렇긴 하네."

"밖에 발자국까지 찍혀 있는 거로 봐서 놈들이 약탈을 한 걸 수도 있겠습니다만, 인터넷을 찾아봐도 아무런 일이 없었습니다. 그리고 여러 사람이 이 동굴을 드나든 흔적을 발견했습니다."

"그 말은 사람들이 고블린한테 음식을 갖다 바쳤다?"

"정황상 그렇게 보입니다."

어이가 없어진 강현이 허탈하게 웃었다.

"드디어 세상이 미친 건가."

그렇다면 자신이 왔을 때 태연하던 고블린들의 태도도 이해가 됐다.

평소처럼 인간이 무언가를 상납하러 온 것인 줄 알고 태연하게 손을 뻗은 것이 분명했다.

"어떡하시겠습니까?"

"여기서 기다려야 하나? 하아, 통역 장치가 있었으면 그냥 패면서 물어보는 건데."

"일단 여기 숨어서 찾아오는 사람을 기다리는 게 어떠십니까?"

잠시 고민하던 강현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지 뭐. 기다리다 보면 누가 와도 오겠지."

**

다음 날.

거짓말처럼 아무도 오지 않았다.

"형. 내가 그냥 가자고 했죠?"

"닥쳐봐. 나도 빡치니까."

일행은 꼬박 하루를 동굴 앞에 숨어서 기다렸지만, 다람쥐 하나 구경하지 못했다.

"하아, 통역기만 있었어도!"

"여기서 멍청하게 기다릴 시간에 길드장님이 서울에 다녀오지 그랬어요? 두 번은 왕복했겠네!"

"너 진짜 죽는다."

"아아악! 오크가 사람 때려요!"

귀찮게 구는 윤나래를 때릴 힘도 없었다.

혹시라도 들킬 것을 염려해서 식사조차 하지 못했기에 강현은 정말 손가락 하나 까딱하기 싫었다.

"강현 님. 이 기회에 통역 마법을 배우시는 게 어떻습니까?"

"뭐야? 그런 게 있었어?"

강현의 물음에 신성아가 고개를 끄덕였다.

"예. 가끔 스킬북이 매물로 올라옵니다."

경매장이 활성화된 요즘은 돈만 있으면 스킬북도 쉽게 구할 수 있었다.

통역은 스킬이 아닌 능력으로 들어가지만, 그것들을 배우는 것은 모두 책의 형태를 하고 있기에 스킬북으로 통일해서 부르곤 했다.

"나는 왜 한 번도 못 봤지?"

"엄청나게 비싼 가격에도 불구하고 매물이 올라오는 순간 순식간에 사라집니다. 그래서 일반인에겐 잘 알려지지 않은 능력입니다."

"너는 진짜 잡지식이 많구나."

"헤헤."

강현의 칭찬에 신성아가 머리를 긁적였다.

"일단 당장은 어쩔 수가 없으니까 재문이한테 연락해서 안에 고블린들 실어가라고 해."

"알겠습니다."

신성아가 길드에 연락을 취하고, 강현은 바위에 누워서 멍하니 하늘을 바라봤다.

"그래도 이렇게 소득 없이 돌아가는 건 찝찝한데..."

한숨을 내쉬던 그때, 문득 무언가가 떠올랐다.

"오랜만에 신태길 팀장 찬스 좀 써야겠다."

강현은 곧장 신태길에게 전화를 걸었다.

-예.

신태길의 짧은 단답.

"오늘은 왜 이렇게 시크해요? 차도남인 줄 알았네."

-장난하실 거면 끊습니다. 할 일이 산더미입니다.

"역시 차가운 도시의 남…."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전화가 끊어졌다.

강현은 다시 전화를 걸었다.

-예.

"거 되게 비싸게 구네. 물어볼 거 있어서 전화했어요."

-말씀하시죠.

"최근에 태한 시(市) 근방에서 던전 브레이크 많이 일어나는 거 알아요?"

-알고 있습니다. 그건 왜 물으십니까?

"그거 제가 조사 좀 해보려고요."

강현의 말에 신태길의 목소리 톤이 한 단계 올라갔다.

-안 그래도 저희 쪽에서도 조사했는데 나오는 게 없어서 곤란하던 차였습니다. 강현 씨가 맡아주신다면 정말 감사하….

"뭐 해줄래요?"

-우리 사이에 무슨 대가를... 크흠.

그사이 안면의 철판 두께가 상당히 두꺼워진 신태길이었다.

"됐고, 통역능력 배울 수 있는 스킬북이나 하나 구해줘요."

통역능력이라는 말에 신태길이 한숨을 내쉬었다.

-하아, 그건 또 어떻게 아셨습니까.

"그게 중요해요? 이번 일 해결하려면 필요하니까 가능하면 빨리 구해줘요."

-강현 씨. 통역 스킬북은 돈이 있어도 못 구하는 겁니다.

"왜요?"

-전 세계의 갑부들이 자제들을 위해서 구매하기 때문입니다. 튜토리얼 1단계만 통과하면 어떤 능력이든 배울 수 있으니까요.

확실히 아무런 대가 없이 모든 언어를 이해할 수 있게 되는 것은 엄청난 메리트였다.

돈이 많다면 충분히 탐을 낼 만한 능력.

어찌 보면, 구하기 어려운 것이 당연했다.

"아! 그래서 구해줄 거예요? 말 거예요!?"

-구해보겠습니다...

강현이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었다.

"다른 보수는 차차 이야기하고, 아까 그쪽에서 조사했다는 것 좀 말해봐요."

강현의 요청에 신태길이 한동안 설명을 이어갔다.

그 내용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이 근방에서 발생한 던전 브레이크는 크게 두 가지로 일어났다.

하나는 제시간 안에 던전을 공략하지 못해서 발생하는 것.

다른 하나는 공략 중 실수로 메인 코어를 부숴서 발생하는 것.

"둘 다 이상하네요."

-예. 요즘같이 시스템이 갖춰진 상황에서 던전 관리가 안 된다는 게 저도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공략 중에 실수로 메인 코어를 박살 낸다는 건 더 이상하고요."

-그래서 브레이크를 일으킨 길드의 길드장, 길드원들을 만나고 다녔지만 별다른 소득이 없었습니다. 그들이 일부러 그렇게 했다는 증거도 발견하지 못했고요.

"신태길 씨도 한물갔네요."

강현의 빈정거림에 신태길이 한숨을 내쉬었다.

-요즘 마정석으로 전자 장비 대체하는 것과 관련해서 조사하고 움직이는 데만 해도 손이 남아나지 않을 지경입니다. 솔직히 그리 높은 등급의 던전도 아니고, 딱히 큰 피해가 발생하지 않은 사건에 많은 인력을 투입하기가 어려웠습니다. 그렇지 않아도 예산이 부족한 마당에 강현 씨에게도 계속 돈이 들어가고…

"알겠어요. 알겠어. 아까 시크한 척할 땐 언제고, 변명할 때 되니까 말 엄청 많아지네. 그리고 내 핑계는 또 왜 나오는 거야?"

-...

정곡을 찌르는 강현의 말에 신태길이 침묵했다.

"알겠으니까, 이때까지 그쪽에서 모은 정보 정리해서 좀 넘겨줘요."

-예... 바로 보내드리겠습니다...

신태길의 목소리는 조금 전과 달리 잔뜩 가라앉아 있었다.

"삐졌어요?"

-그런 사람 아닙니다.

신태길의 대답을 들은 강현이 씨익 웃었다.

"삐졌구만."

-끊습니다. 자료는 지금 보내드리죠.

"삐졌죠? 삐진 거 맞는 것 같은데."

신태길은 대답하지 않고 곧장 전화를 끊었다.

강현은 통화 내용을 스피커로 함께 듣고 있던 길드원들을 바라봤다.

"삐진 거 같지?"

"예. 확실히 삐졌습니다."

모두가 하나같이 고개를 끄덕였다.

"삐졌네. 삐졌어."

127화 밀려오는 어둠(3)

127. 밀려오는 어둠(3)

한가로운 주말 점심.

조민현은 정성스럽게 차려진 밥상 앞에 앉았다.

"엄마는 안 드세요?"

"엄마는 생각이 없어서. 여보. 잠시 밖에 좀 나갔다 올게요."

"어. 다녀와."

분명 평소와 전혀 다를 것이 없는 평범한 하루였다.

하지만 조민현은 뭔가 찝찝하다는 기분을 떨칠 수가 없었다.

"어디 가시는데요?"

"이 앞에 약속이 있어서."

"예..."

어머니가 밖으로 나가고 거실에는 음식을 씹는 소리만 남았다.

"쩝, 쩌업."

아버지는 여느 때와 다름없이 밥을 먹고 있는 모습.

어째서인지 조민현은 밥이 넘어가지 않았다.

"무슨 일 있어?"

"아니에요..."

불안했다.

알 수 없는 위화감이 발끝에서부터 스멀스멀 기어 올라오는 기분이었다.

"한창 클 때인데 밥을 잘 먹어야지."

"예..."

조민현은 수저를 들었다가 다시 식탁에 내려놨다.

심호흡을 한번 하고, 조민현이 아버지를 바라봤다.

"아빠. 요즘 엄마가 좀 이상한 것 같지 않아요?"

"그게 무슨 말이냐. 엄마가 이상하다니."

"그냥..."

사실 가장 먼저 이상해진 것은 아버지였다.

조민현이 어머니와 몰래 아버지에 관한 이야기를 심각하게 나눈 적이 있을 정도.

그런데 어느 순간 어머니의 태도가 돌변했다.

언뜻 보기에는 평소처럼 인자했지만, 때때로 감정이 없는 인형처럼 보이기도 했다.

"하아... 아무것도 아니에요."

끝내 조민현은 아무런 말도 하지 못했다.

"무슨 고민이 있나 보구나."

아버지가 조민현을 바라보며 미소를 지었다.

"그런 거 아니에요."

"아빠가 도와주마."

"예?"

갑자기 아버지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아니, 괜찮아요. 딱히 도와주실…."

순간 아버지의 품에서 흘러나오는 괴상한 무언가.

"으아아아! 이게 뭐야?!"

그것을 본 조민현이 기겁하며 비명을 내질렀다.

"괜찮다. 내가 도와주마."

조민현이 도망치려 했으나, 아버지의 우악스러운 손길이 그의 목덜미를 잡았다.

"으아아! 잘못했어요! 제발 살려주세요!"

조민현이 미친 듯이 발버둥 쳤다.

그러나 저항은 무의미했다.

"금방 끝난다. 편안해질 거야."

**

"당신들은 뭐야?"

"배데스 길드에 강현이라 합니다."

"강현!?"

술에 거나하게 취해있는 중년 남자.

강현은 남자에게 자신의 명함을 내밀었다.

"유명한 사람이었구만, 아이고 몰라봐서 죽을죄를 지었습니다~"

중년 남성이 비실비실 웃으며 머리를 테이블에 쿵 처박았다.

"김배순 씨. 맞으시죠?"

"예에. 소인이 바로 김배순 입니다요."

중년 남성, 김배순이 마치 사극에 나오는 거지 처럼 손을 비비며 빈정거렸다.

그 모습을 본 강현의 이마에 힘줄이 돋아났다.

"하아, 이 아저씨가 정말..."

"강현 님. 참으시죠."

강현은 신태길이 건네준 정보를 바탕으로 인근의 길드장들을 만나는 중이었다.

"아저씨. 정신 좀 차려봐요. 뭐 좀 물어보려 하니까."

"예이예이. 물어보시죠."

그들은 대부분 상태가 좋지 않았다.

잘 나가던 길드가 하루아침에 무너졌으니,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기도 했다.

던전 브레이크를 일으키는 순간 그 길드의 생명은 끝이니까.

이후에 어떤 훌륭한 대처를 하고, 깔끔히 상황을 마무리 지었더라도 그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

그렇게 대부분의 길드장은 미쳐 있었다.

"아저씨. 던전 터진 날 기억해요?"

강현이 김배순과 눈을 똑바로 마주치며 물었다.

"던전이 터져...?"

"예. 던전 브레이크요."

순간 초점 없던 김배순의 눈에 분노가 깃들었다.

"그... 그 썩을 놈!"

김배순이 갑자기 소리를 지르며 테이블을 내려쳤다.

"이만석! 그 개새끼 잘못이야! 나는 아무 죄가 없다고!"

그래도 한 길드의 길드장이었던 사람이라 그런지, 테이블은 주먹질 한 방에 박살이 났다.

"에휴... 저 양반 또 시작했네."

안쪽에서 여성의 한숨 소리가 들려왔다.

"이만석? 그게 누군데요?"

강현의 물음에 김배순이 열변을 토해냈다.

"그 기생오라비 같은 놈! 처음부터 길드에 들이는 게 아니었어. 하라는 사냥이나 잘할 것이지. 갑자기 왜 시키지도 않은 메인 코어를 부숴서! 날 이렇게 만들어!?"

"그 이만석이라는 사람이 메인 코어를 부쉈다? 갑자기?"

"그래! 그 씨불놈의 새끼를 당장 족쳐야 하는데!"

김배순의 정신이 돌아온 것 같은 이 순간, 최대한 많은 정보를 얻어내야 한다.

강현이 쉬지 않고 질문을 이었다.

"이만석이라는 사람. 지금 어디 있어요?"

"몰러."

갑자기 김배순이 털썩 의자에 걸터앉았다.

"모른다고요?"

"갑자기 없어졌어. 썅놈의 새끼..."

답답해진 강현이 남자를 붙잡고 물었다.

"어디로 갔는데요?"

"모른다고! 여보! 술 더 가져와!"

"네가 갔다가 먹어! 어휴, 이놈의 집구석. 능력자인지 뭔지 한다고 지랄할 때부터 알아봤다. 멀쩡히 회사나 잘 다닐 것이지. 뭣 하러 그걸 때려치워서! 하여간 뭐 하나 잘하는 꼴을 못 봐요."

"지금 뭐라 했어? 말 다 했어!?"

"다했다. 어쩔래!?"

갑자기 일어난 부부싸움.

당황한 일행이 토끼 눈이 됐다.

"야야. 가자."

"이대로 두고 가십니까?"

"사례비 봉투에 담아서 놔둬."

강현의 말에 안유성이 끼어들었다.

"형. 구경 안 해요?"

"안 해! 미친놈아!"

강현은 봉투에 현금 100만 원을 담아서 의자 위에 올려두고 서둘러 집을 빠져나왔다.

"하아... 진전이 없네. 진전이."

방금 만난 김배순은 네 번째 길드장이었다.

이제 날이 저물어 가고 있었고, 성과 없는 만남에 모두가 지쳐가고 있었다.

"슬슬 접어야 하는 거 아니에요? 술주정뱅이들 만나 봤자 무슨 의미가 있다고."

"하는 게 없으면 가만히라도 있어라. 열 받게 하지 말고."

"맨날 나만 미워해."

입술을 삐쭉 내민 윤나래를 무시하고, 강현은 생각에 잠겼다.

'확실히 구리긴 한데...'

지금까지 만난 길드들은 모두 작은 규모로 E, F 등급의 던전을 관리하고 있었다.

그러다 갑자기 길드원 하나가 미쳐 날뛰어서 던전 브레이크가 일어난 것이다.

분명 굉장히 수상한 일은 맞았다.

하지만 결국 그것뿐이었다.

던전 브레이크를 일으킨 길드원은 그 이후로 모두 죽거나 사라졌다.

메인 코어를 부순 순간 던전의 보스에게 죽거나, 아니면 감쪽같이 사라진 것이다.

"하아... 머리 굴리는 건 내 스타일이 아닌데."

답이 없는 상황에 강현이 머리를 긁적이고 있을 때였다.

"강현 님. 마지막으로 한 명만 더 만나보는 게 어떻습니까?"

옆으로 다가온 신성아가 서류를 내밀었다.

"누군데? 조유식?"

"예. 피해를 본 길드장 중에 가장 규모가 큰 길드를 운영하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아직 길드를 해체하지 않고 운영 중이라고 합니다."

길드는 던전을 공략해서 얻은 수익금으로 운영된다.

그리고 던전 브레이크를 일으킨 길드는 앞으로 던전을 구매할 수 없게 된다.

시간이 지날수록 다른 길드보다 뒤처질 수밖에 없고, 그런 길드에 남고 싶어 하는 길드원은 아무도 없다.

따라서 자연스럽게 해체의 길을 걷는 것이 일반적인 상황.

"어떻게 아직 운영 중이래?"

"원래 제법 규모가 있던 중견 길드라 기존에 구매했던 던전들이 제법 있었던 것 같습니다. 현상 유지는 가능한 수준이라 아직 길드원들이 남아 있는 것 같습니다."

"흐음... 그럴 수도 있겠네."

딱히 이상한 일은 아니었다.

안정적으로 사냥하면서 평범한 회사원보다는 더 나은 돈벌이를 할 수 있으니까.

규모가 있는 길드라면 만족하고 남는 사람이 있을 수도 있다.

"그 사람 만나봤자 딱히 다를 거 없을 것 같은데."

강현이 심드렁하게 반응하자 신성아가 고개를 저었다.

"현재 조유식이 운영하는 길드의 길드원은 정확히 336명입니다."

"뭐야? 왜 이렇게 많아?"

"저도 그게 이상해서 알아본 결과 원래는 약 300명 정도였다고 합니다. 던전 브레이크 이후 점차 사람이 줄어들다가, 어느 순간 다시 길드원이 늘어나기 시작했답니다."

"그게 말이 돼?"

소수 정예를 지향하는 길드가 아닌 일반적인 길드 기준으로 300명 정도면 거의 중대형 길드 수준이다.

그렇다고 해도 던전 브레이크가 일어나 미래가 없는 길드.

사람이 더 늘어난다는 것은 말이 되지 않았다.

"강현님. 뭔가 수상하지 않습니까?"

"확실히 이건 대놓고 수상하네. 성아가 드디어 한 건 했어?"

"감사합니다. 헤헤."

강현의 말에 신성아가 배시시 웃었다.

"일단 가보자고. 만나보면 알겠지."

강현은 곧바로 서류에 적힌 번호로 전화를 걸었다.

**

조유식과 만나기 위해 약속 장소인 카페로 가는 길.

강현과 일행의 주위에 구름처럼 사람이 모여들었다.

"내가 평범하게 다니자고 했지?"

"형. 평범한 게 뭔데요? 눈 찢어진 뽀통령 티셔츠 입는 거?"

"닥쳐."

누가 봐도 배데스 길드임을 알 수 있는 검은색 라이더 재킷의 강현.

어딜 가던 튀는 외모와 패션 센스를 가진 안유성.

마법소녀 코스프레 윤나래.

마지막으로 특별히 제작한 탐정 에디션 길드 복을 갖춰 입은 신성아까지.

어지간한 관종은 명함도 못 내밀 수준의 사람이 무려 4명이나 모이니 시선을 끌지 않을 수가 없었다.

"사인해주세요!"

"꺄아아! 성아 언니! 팬이에요!"

선글라스를 끼고 한껏 무게를 잡던 신성아의 입꼬리가 씰룩댔다.

"좋냐? 좋아?"

"무슨 말씀이신지."

"어휴, 내가 말을 말아야지."

현재 대한민국 랭킹 1위는 단군 길드다.

하지만 단군은 극도의 소수 정예를 추구하고 밖으로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다.

그에 비해 강현이 이끄는 배데스는 대중에게 굉장히 열려있었다.

배데스 소수 정예를 지향하기는 하지만, 폐쇄적인 집단은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 결과 배데스의 길드 랭킹은 비록 2위라고 해도 화제성 면에서는 단연 압도적인 1위였다.

그런 유명 길드의 간부진이 주로 활동하던 수도권이 아닌 다른 지역에 나타나자 더욱 큰 파급력을 가져왔다.

"휴우, 겨우 빠져나왔네."

강현과 일행은 한참을 시달리고 나서야 인파를 떨쳐낼 수 있었다.

"음... 이쯤이었던 것 같은데."

잠시 후. 강현이 약속장소 인근에 도착해서 주위를 두리번거리던 순간,

"믿으면 누구나 영생을 누립니다. 한번 찾아오세요."

푸근한 인상을 한 중년 여성이 전단지를 나눠주는 것이 보였다.

여성의 등에는 불사(不死), 영생(永生), 안락(安樂)과 같은 글들이 붉은 글씨로 쓰여 있는 투박한 피켓이 매달려 있었다.

"교회에서 전도하는 건가?"

강현이 생각 없이 중얼거린 말.

"그렇다고 하기에는 십자가가 보이지 않습니다."

신성아가 눈을 날카롭게 뜨며 말했다.

"사이비인가 보지 뭐."

"어? 저 카페 아니에요?"

"그러네. 얼른 가자."

때마침 조유식과 만나기로 한 카페가 보였다.

일행은 피켓에서 눈을 떼고 카페로 향했다.

**

"TV에서나 보던 분을 만나 뵙게 돼서 영광입니다."

"아닙니다. 이렇게 선뜻 나와주셔서 제가 더 고맙죠."

실제로 만난 조유식은 차분하고 인자한 느낌을 풍기는 40대 초반의 남성이었다.

"제가 돌려 말하는 걸 싫어해서, 단도직입적으로 묻겠습니다. 던전 브레이크가 일어난 그 날. 기억하십니까?"

"예. 기억하고 있습니다."

"자세히 들어볼 수 있을까요?"

강현의 요청에 조유식이 한동안 설명을 이어갔다.

"으음... 그러니까 사고였다는 말입니까?"

"예. 다행히 길드원들이 모두 지역 주민이고, 사건 이후로도 똘똘 뭉친 덕에 길드가 무너지지 않을 수 있었습니다."

"사고를 일으킨 길드원은요?"

"여전히 길드에 몸담고 있습니다. 어떻게든 자기 실수를 만회하겠다고 온종일 사냥만 하는데,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닙니다."

조유식의 말에 강현이 당황했다.

"사고를 일으킨 길드원이 살아있다고요?"

"예. 저희는 정말 '실수' 때문에 던전 브레이크가 일어난 거니까요. 그 친구가 날린 마법이 빗나가서 메인 코어를 부쉈다고 말씀드리지 않았습니까? 그래서 어떻게든 길드를 다시 살리겠다고 지금도 열심히 사냥 중입니다."

"미쳐서 날뛴 게 아니라 실수다?"

"실수입니다."

강현의 물음에 조유식이 다시 한번 강조했다.

"지금도 길드원들은 모두 한 가족처럼 똘똘 뭉쳐서 던전을 공략하고 있습니다."

확신에 찬 듯한 조유식의 말에 강현이 떨떠름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예... 고맙습니다. 여기 이건 사례비입니다."

"아닙니다! 잠깐 대화를 나눈 것뿐인데요. 제가 그렇게 어려운 상황도 아니고... 오히려 유명한 분을 만나서 진귀한 경험 했네요. 하하!"

조유식은 한사코 강현이 내미는 돈을 거절했다.

그렇게 호의적인 태도로 대화에 응하던 조유식이 떠나고, 카페에 남은 일행은 모두 생각에 잠겼다.

"이상하지?"

강현이 물었고,

"형도 느꼈어요? 이상하네요."

안유성이 대답했다.

"강현 님. 확실히 이상합니다."

신성아도 거들었다.

뜬금없이 셋이서 주고받는 말에 윤나래는 당황했다.

"갑자기 무슨 말이에요? 이상하다니. 완전 좋은 아저씨 같던데."

윤나래의 의문에 모두가 진지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돈을 거절하잖아. 이상하지."

"저는 그냥 기분이 나쁜데요?"

"제가 관상을 좀 보는데 전형적인 사기꾼 얼굴입니다."

"허어..."

윤나래가 황당한 얼굴로 셋을 바라봤다.

'무슨 이런 또라이들이 다 있어?'

**

-띵동, 띵동

들려오는 초인종 소리에 조유식이 현관문을 열었다.

"누구십…."

문이 열리기도 전에 누군가 불쑥 머리를 들이밀었다.

"조문석 씨. 갑자기 찾아와서 미안합니다."

"조유식입니다만..."

"예. 조유식 씨. 괜찮으시면 잠시 집에 들어가도 되겠습니까?"

예고도 없이 찾아온 강현의 요청에 조유식의 미간이 좁혀졌다.

"갑자기 이러시면 곤란합니다. 집에 가족들이 쉬고 있으니 나가서 이야기하시죠."

"그래요? 어디 보자."

나가서 이야기하자는 말에도 강현이 억지로 문을 잡아당겼다.

조유식은 막으려 했으나 완력에서 상대가 되지 않았다.

"어허, 왜 이러십니까!?"

"흐음..."

강현이 문 안으로 고개를 내밀자 거실에서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모자(母子)가 보였다.

"부인께서 미인이시네요. 아들도 잘생겼고! 아주 좋으시겠네!"

"왜 이러십니까! 자꾸 이러시면 경찰에 신고하겠습니다. 아니, 인터넷에 강현이 주거침입을 저지르고 다닌다고 글이라도 올릴까요!?"

조유식은 정말 화가 난 것처럼 보였다.

"아이고, 죄송합니다. 오늘 조유식 씨 인상이 너무 좋아서 같이 저녁이나 할까 했는데, 싫다 하시면 어쩔 수 없죠."

"알겠으면 그만 나가주시죠."

"하나만 물어보고 가죠. 조유식 씨. 저기 있는 아들 나이가 어떻게 됩니까? 아직 어려 보이는데."

"중학교 2학년입니다. 됐습니까?"

조유식의 말에 강현이 씨익 웃었다.

"아하! 중학교 2학년! 15살! 한창 좋을 때네요. 내가 저 때는 참 대단했는데. 언제 세월이 이렇게 됐는지."

"헛소리 그만하고 가십쇼! 계속 이러시면 저도 못 참습니다!"

조유식의 호통에 강현이 낄낄거리며 물러났다.

"예예. 갑니다. 가요. 편안한 밤 되세요."

마침내 문이 닫히고, 강현의 얼굴이 사라지자마자 조유식은 쇠사슬로 문을 걸어 잠갔다.

"무슨 저런 미친놈이…."

그 순간,

-콰아앙!

굉음과 함께 문이 박살 났다.

날아온 문짝에 얻어맞은 조유식이 거실까지 날아가 식탁에 처박혔다.

"끄으으... 이게 무슨...?"

현관문을 바라보자, 주머니에 손을 찔러 넣을 채로 껄렁하게 서 있는 강현이 보였다.

"이게 무슨 짓이야! 당신 정말 죽고 싶어!?"

결국, 참지 못한 조유식이 소리를 질렀다.

"이봐, 조유식. 내가 조용히 집에 가려했는데 갑자기 궁금한 게 생겨서 다시 찾아왔어."

"이런 미친놈이! 이건 선을 넘는 거라고! 알아!?"

조유식이 호통을 쳤으나, 강현은 태연하게 귀를 후볐다.

"하나만 묻자."

강현은 귀를 후비며 조유식을 바라봤다.

"아들이 혹시 능력자인가?"

"그건 무슨 개소리야!?"

"15살짜리가 어떻게 마력을 가지고 있을까? 그것도 제법 향이 진한데."

순간 조유식의 얼굴이 당혹으로 물들었다.

"그, 그게 무슨..."

"그리고 이 난리가 벌어졌는데 저 둘. 너무 태연하네? 아주 강심장인가 봐?"

강현의 말대로였다.

원래라면 비명소리가 난무했어야 할 거실은 지나치게 고요했다.

조유식의 아내와 아들 모두 한마디도 하지 않은 채 무표정한 얼굴로 강현을 바라보고 있었다.

아니, 오히려 약간 화가 난 것 같기도 했다.

"조유식. 당신 뭔 짓을 한 거야?"

순간 조유식의 얼굴이 악귀처럼 일그러졌다.

"이런 씨발! 저거 죽여!"

조유식의 말에 아내와 아들이 부엌칼을 빼 들고 달려왔다.

실시간으로 가까워지는 칼끝을 바라보며 강현이 흐뭇하게 웃었다.

"진작 이렇게 나왔으면 좀 좋아?"

128화 밀려오는 어둠(4)

128. 밀려오는 어둠(4)

"진작 이렇게 나왔으면 좀 좋아?"

강현에게 달려가는 아내와 아들을 내버려 두고, 조유식이 창문을 열었다.

"어어, 여기 7층인데 괜찮겠어?"

강현이 장난기가 가득한 얼굴로 말했다.

"두고 보자!"

조유식이 진부한 대사를 날리며 창밖으로 뛰어내렸다.

강현은 뒤쫓지 않고 여유롭게 그 모습을 지켜봤다.

이미 밖에서 길드원들이 대기 중이었기 때문이다.

조유식은 그들에게 맡기고 강현은 자신에게 닥친 일을 해결해야 했다.

"으음..."

코앞까지 다가온 날카로운 칼날.

조금 전까지 맛있는 저녁거리를 만들던 부엌칼이 지금은 강현을 썰기 위해 뻗어오고 있었다.

당장 몸을 피해야 할 것 같았지만, 강현은 그저 멍하니 서서 지켜봤다.

-까아앙!

강현과 닿은 부엌칼이 조각조각 나뉘어 흩어졌다.

"마력은 느껴지는데 완력 면에서는 일반인이랑 다를 게 없네?"

여성은 칼이 부러졌음에도 당황하는 기색 없이 재차 손을 뻗었다.

-퍼억!

강현의 면상을 때린 가녀린 주먹.

부서진 쪽은 당연히 주먹이었다.

강현은 턱을 쓰다듬으며 분석을 계속했다.

"뼈가 박살 날 정도로 때리는 걸 보면 근육을 한계 이상으로 쥐어짜 내는 것 같기는 한데..."

뒤이어 조유식의 아들 또한 강현에게 공격을 해왔으나, 딱히 다를 것이 없었다.

"의식이 아예 없는 건가? 마력은 왜 느껴지는 거지? 분명 일반인인데 말이야."

생각에 잠겨있던 강현이 돌연 둘을 붙잡았다.

"이러다가 죽겠네. 쯧쯧."

자신의 몸을 사리지 않고 공격한 탓에 모자의 몸은 엉망진창이었다.

전신이 상처투성이에 뼈가 부러져 부은 곳도 심심찮게 보였다.

그런 상태에서도 그들은 오직 강현을 공격하는 것에만 집중했다.

"잠시만 누워있어요."

강현은 가볍게 목덜미를 내려쳐 모자를 기절시키고, 바닥에 눕혔다.

"일단 나가볼까? 지금쯤이면 붙잡았겠지."

자세한 것은 조유식에게 물어보면 될 것이다.

그렇게 생각한 강현이 창문으로 뛰어내리려던 순간, 바닥에 쓰러져 있던 모자가 경련하기 시작했다.

"뭐야? 이거 왜 이래?"

무당이 접신이라도 한 듯 부들부들 떨어대는 그들을 보며 강현이 당황했다.

"죽으면 안 돼. 정신 차려!"

순간 손가락 물총 마법을 사용해서 깨워볼까? 라고 생각했지만, 왠지 그러면 안 될 것 같았다.

"커, 커헉..!"

다행히도 모자는 금세 진정했다.

눈을 까뒤집은 채로 움직이지 않는 모자.

강현이 얼굴을 바짝 들이밀어 둘의 상태를 확인했다.

"음... 괜찮은 건가..?"

그 순간 갑자기 여성의 입이 벌어지고, 그 안에서 거대한 벌레가 기어 나왔다.

"으아아아! 시발!"

주먹만 한 크기에 바퀴벌레보다 수백 배는 혐오스럽게 생긴 생명체.

강현이 기겁을 하며 엉덩방아를 찧었다.

"깜짝 놀랐네. 하아... 이 더럽게 생긴 건 뭐야?"

벌레를 강현이 인상을 찌푸렸다.

"어어? 이거 왜 이래!?"

꿈틀거리던 벌레가 갑자기 엄청난 속도로 움직이더니 강현의 몸에 들러붙었다.

벌레는 날카로운 이빨로 강현의 살을 파고들려 했다.

"이게 어디서 더러운 아가리를 들이밀어?"

물론, 강현의 단단한 피부에는 생채기조차 나지 않았다.

강현은 벌레 한 마리를 발로 밟아 터뜨렸다.

그리고 남은 한 마리를 손에 쥔 채로 밖으로 나왔다.

찝찝하긴 했지만, 이것보다 안전하게 운반할 방법이 생각나질 않았다.

"잘 정리했나 보네."

밖으로 나오자 조유식을 사로잡은 길드원들이 보였다.

"예. 일단은 기절시켜 놨습니다."

"잘했어. 신태길 팀장한테 연락해서 여기 정리하라고 해줘."

"알겠습니다."

조유식은 입에 게거품을 문 채로 바닥에 쓰러져 있었다.

"저 아저씨 입에서 벌레 같은 거 안 나왔어?"

"벌레 말입니까?"

"이렇게 생긴 거."

강현이 방금 잡은 따끈한 벌레를 신성아에게 들이밀었다.

"흐음, 특이하게 생겼군요. 어디서 발견하신 겁니까?"

"조유식 가족의 입에서 나왔어."

"오호..."

신성아가 흥미롭게 그것을 바라보던 때였다.

뒤쪽에서 비명이 터져 나왔다.

"꺄아아아아! 그 드럽고 징그럽게 생긴 건 뭐예요!?"

윤나래가 오만상을 지으며 호들갑 떨었다.

"귀청 떨어질 뻔했네. 왜 소리를 지르고 지랄이야. 때리고 싶게."

"지금 내가 소리를 안 지르게 생겼어요? 그 더러운 벌레 당장 치워요! 밟아! 죽여! 빨리!"

"이게 어디서 명령질이야?!"

인상을 팍 찡그린 강현이 들고 있던 벌레를 윤나래에게 집어던졌다.

윤나래는 기겁을 하며 엄청난 속도로 검을 뽑아 벌레를 두 동강 냈다.

"으이이! 초록 색깔 피다! 극혐!"

윤나래가 검에 묻은 피를 보며 질색을 했다.

"어, 어..!? 안 되는데..."

그 모습을 보며 강현이 멍청한 표정을 지었다.

"강현 님. 방금 그 벌레. 또 남았습니까?"

신성아가 심각한 표정으로 물었다.

"아니..."

중요한 단서라고 할 수 있는 벌레가 허무하게 사라져 버렸다.

옆에서 그 모습을 지켜보던 안유성이 배를 부여잡고 낄낄댔다.

"하아, 시벌..."

강현은 한숨을 내쉬며 거칠게 머리를 쓸어 넘겼다.

"이렇게 된 이상 남은 건 조유식 뿐이다."

강현이 기절한 조유식에게 다가가 손가락 물총 마법을 사용했다.

손가락에서 발사된 물이 조유식의 얼굴에 조르르 흘러내렸다.

"형. 그건 뭐하는 거예요?"

"깨워서 족쳐야지. 이제 이놈 말고는 단서도 없어."

그때였다.

강현이 물을 쏘아내는 모습을 본 윤나래가 헐레벌떡 달려왔다.

"손 좀 줘봐요."

"왜 또?"

"저 벌레 피가 얼마나 끈적한지 알아요!? 이대로 칼에 눌어붙으면... 끄으으! 미쳐버릴지도 모른다고요!"

윤나래가 상상도 하기 싫다는 듯이 몸을 부르르 떨었다.

"아... 그러냐..."

강현의 이마에 힘줄이 돋아나기 시작했다.

그 모습을 보지 못한 윤나래가 강현의 손을 붙잡아서 자신의 검에 가져다 댔다.

졸졸 흘러나오는 물에 피가 씻겨 내려가고, 윤나래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휴우, 이거 수압 좀 더 세게는 안 돼요?"

"되지. 되고말고."

강현이 흐뭇하게 웃으며 수압을 더욱 올려주었다.

이제 강현은 눈이 완전히 뒤집혀 흰자위만 보이는 수준에 이르러 있었다.

윤나래는 여전히 눈치채지 못했다.

"휴우, 겨우 다 씻었네. 그러게 왜 그런 더러운 걸 집어던져서! 찝찝해서 죽는 줄 알았다니까요?"

"그냥 죽지 그랬냐?"

"뭐라고요?"

강현의 말에 윤나래가 고개를 돌렸다.

강현과 눈이 마주친 윤나래가 그제야 상황을 파악했다.

"그냥 죽었으면 너도, 나도 편했을 텐데."

눈이 뒤집힌 채로 싱긋 웃으며 말하는 강현.

윤나래가 어색하게 미소를 지었다.

"하하... 엿됐네..."

**

"조유식이 붙잡혔습니다."

-그 강현이라는 놈인가?

"예..."

-귀찮은 벌레가 들러붙었군.

머릿속에서 울리는 음성에는 아무런 감정이 없어야 했건만, 남자는 그 안에서 깊은 분노를 느꼈다.

-놈이 찾아냈다는 고블린은 어떻게 됐지?

"모두 사살했습니다. 마을 주민들의 입단속도 철저히 했으니 문제는 없을 겁니다."

남자가 필사적으로 설명했다.

-아직 충분한 힘이 모이지 않았다. 이제 시작인데 일이 틀려는 안되지.

"조유식은 어떻게 할까요?"

-지금 조유식이 잡혀서는 안 된다. 그의 길드원들을 보내도록 해라.

"그걸로 충분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그게 무슨 말이지? 놈들은 분명 4명이라 들었는데.

평소에는 목소리의 주인에게 딴지를 거는 일 따위, 있을 수 없는 일이다.

하지만 지금은 해야만 했다.

남자가 용기를 내어 의견을 말했다.

"강현과 그 일행은 보통 놈들이 아닙니다. 이곳에 널려있는 능력자들과는 차원이 다를 겁니다.."

-그 300명이 넘는 인간들로도 안된다는 것인가?

"힘들 수도 있습니다..."

-그렇다면 사도를 하나 붙여주지.

사도(使徒)라는 말에 남자가 깜짝 놀랐다.

"고귀하신 분을 보내주신다는 말씀입니까!?"

-그래. 그러니 확실하게 끝내도록.

"알겠습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조금 전까지 가득했던 불안감은 온데간데없고, 남자의 얼굴은 어느새 믿음과 경외로 가득 차 있었다.

**

조유식의 집 인근에 위치한 폐공장.

"퉤! 이런다고 내가 입을 열 것 같아!? 어림도 없는 소리."

의자에 몸이 결박된 조유식이 침을 뱉으며 열변을 토해냈다.

"아저씨. 설레발 놓지 마. 아직 아무것도 안 했어."

강현이 황당한 얼굴로 조유식을 바라봤다.

"흥! 지금은 기고만장하겠지. 기다려라. 머지않아 후회할 날이 온다. 그때가 되면 너도 벌벌 떨며 구원을 바라겠지만, 이미 늦었겠지."

"하여간 악당 새끼들은 레퍼토리가 변하지를 않아. 아주 진부해 죽겠어."

얼굴을 찌푸린 강현이 귀를 후비고는 말을 이었다.

"아저씨. 서로 좋게좋게 가자고. 맞고 말할래? 그냥 말할래? 대답을 잘해서 내 기분이 나쁘지 않으면 살려줄 수도 있어. 어지간하면 죽겠지만."

일행이 오묘한 눈빛으로 강현을 바라봤다.

'도대체 누가 악당인 건지...'

그러한 사실을 알지 못하는 강현은 무심하게 조유식을 바라봤다.

"그냥 죽여라! 뭘 하든 결과는 같을 거다."

"어허, 그건 내가 알아서 할 거라니까."

"죽여! 나는 어차피 영생할 몸. 죽음 따위 두렵지 않다!"

"거 참. 말 존나 많네."

강현이 조유식의 뺨을 후려쳤다.

단숨에 피와 함께 새하얀 이빨이 튀어나왔다.

"커, 커헉..."

"조유식. 지금부터 내가 말하라 할 때만 입을 열어. 아니면 이렇게 이빨이 털리는 거야. 알겠으면 고개 끄덕여."

"죽여라!"

"하아..."

말이 통하지 않았다.

완전히 광기로 젖어든 조유식을 보며 강현이 한숨을 내쉬었다.

"요즘 교회에서는 뭘 하길래 인간이 저렇게 미치는 거야?"

"강현 님. 저건 교회가 아니라 사이비입니다."

"그래? 아무튼, 귀찮게 됐네."

강현과 신성아가 대화를 나누는 사이에도 조유식은 쉴 새 없이 떠들어 댔다.

"얼마 남지 않았다. 그분이 오시면 모든 것이 정화되고 이 세계가 다시 태어난다!"

"예예. 알겠으니까 가족 이야기 좀 해보자고. 당신도 가족은 소중할 거 아냐?"

강현이 가족을 들먹였지만, 조유식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어차피 죽음 뒤에는 영생을 누릴 몸. 아내와 아들도 이해할 거다."

"이거 완전 상또라이네."

"형. 어떡할 거예요?"

안유성의 물음에 강현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어떡하긴 뭘 어떡해. 정신 차릴 때까지 패야지. 십중팔구는 맞다 보면 제정신을 차리더라고."

"그건 그렇죠."

생각을 정리한 강현이 조유식에게 다가갔다.

"그런다고 내가 두려워할 줄 알아!? 어림도 없는 소리."

"예예. 잘 알겠습니다."

강현이 조유식의 머리통을 붙잡았다.

"끄, 끄으으... 끄아아악! 크아아!"

"말해. 안 그러면 대가리 터진다."

머리에서 느껴지는 엄청난 압력에 조유식이 비명을 내질렀다.

"보니까 레벨도 제법 되고 튼튼하네. 적당히 치료하면 하루 종일 할 수도 있을 것 같은데, 그냥 서로 편하게 가면 안 될까?"

강현이 나긋하게 말할 때였다.

"형. 뭐가 오는 것 같은데요?"

다가온 안유성이 강현을 붙잡았다.

"어? 그게 무슨..."

순간 강현에게도 마력이 느껴지기 시작했다.

"그러네. 잠깐만, 이거 몇 놈이야?"

"뭐야? 어어? 이거 도망가야 하는 거 아니에요?"

마찬가지로 다가오는 마력을 느낀 윤나래가 당황했다.

"한꺼번에 해결할 기회가 왔는데 왜 도망을 가? 튀고 싶으면 너 혼자 튀어."

"정신 차려요! 지금 달려오는 놈들 못해도 300은 되겠구만! 빨리! 빨리 나가자고요!"

"300이면 적당하네. 오랜만에 한바탕 하겠어."

강현의 말에 안유성이 미소를 지었다.

"형. 내가 재미있을 것 같다 했잖아요."

"탐정에게는 시련이 있는 법이죠."

마지막은 신성아의 대사였다.

"휴우, 내가 왜 이런 곳을 들어와서 이 개고생인지..."

윤나래는 고개를 저으며 한숨을 내쉬었다.

"에휴. 나도 모르겠다."

혼자만 도망칠 수도 없는 노릇이다.

"이거 끝나면 보너스 줘요! 소녀마법 리미티드 에디션 코스튬을 사야 이 스트레스가 풀릴 것 같으니까!"

윤나래가 지팡이를 꽉 쥐며 의지를 불태웠다.

"안 죽고 살아있으면 생각해 볼게."

물론, 강현은 조금도 줄 생각이 없었다.

129화 밀려오는 어둠(5)

129. 밀려오는 어둠(5)

"크하하하! 너희들은 이제 끝이다!"

조유식이 미친 듯이 웃었다.

"내가 말하라고 할 때만 입 열라고 했지."

강현이 힘껏 조유식의 뺨을 후려쳤다.

짜악-하는 소리와 함께 조유식이 그대로 쓰러졌다.

"형. 이 아저씨 얼굴이 조금 찌그러진 거 같은데."

"나랑 관계없어."

그때였다.

-콰앙!

폭음과 함께 폐공장의 입구가 박살나고, 수많은 사람이 밀려들어 왔다.

"인사도 없이 바로 시작이냐!"

그들은 아무런 말도 하지 않고 칼을 휘두르고 마법을 뿌려댔다.

자신의 동료들이 다치는 것에는 전혀 신경 쓰지 않는 모습이었다.

"셋은 뭉쳐서 막아! 마법 쓰는 놈들은 내가 처리한다!"

다수를 상대할 때 가장 귀찮은 것 중 하나가 디버프 마법이다.

긴박한 순간에 아주 잠깐의 둔화, 혹은 감각 이상이 생기면 치명적인 부상으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길드원 모두 디버프 스킬을 해제할 수단이 하나쯤은 있었지만, 난전 중에 어떤 일이 벌어질지 모르는 법.

따라서 뒤쪽에 위치한 지원형 능력자들을 먼저 처리하는 것이 우선이었다.

"뭐가 어떻게 된 건지 확실한 게 없으니까 가능하면 살려!"

"노력은 해볼게요!"

적들의 수준은 그리 높은 편이 아니었다.

느껴지는 것으로는 대략 30~40레벨의 능력자들.

적을 제압하는 것은 사살하는 것보다 훨씬 힘들지만, 이 정도 수준이라면 충분히 할만할 것 같았다.

-카강! 캉! 콰앙!

강현의 몸에 온갖 칼과 마법이 날아와 부딪혔다.

'자기들끼리 죽이는 게 더 많네.'

강현은 최대한 제압하려 했지만, 놈들이 너무 막무가내였다.

동료 따위 신경 쓰지 않고 날아드는 공격에 저들끼리 맞아 죽기 시작했다.

"작작 좀 해라! 미친놈들아!"

그때였다.

놈들도 이대로는 안 되겠다고 판단했는지 갑자기 무기를 버리고 강현에게 달려오기 시작했다.

"뭐야?!"

그리고는 온 힘을 다해 강현을 짓눌렀다.

강현도 능력자 수십이 달라붙어 압박을 가하자 쉽사리 움직일 수가 없었다.

"지금이다!"

그러자 뒤쪽에 있던 몇몇 능력자가 무기를 꼬나 쥐고 달려왔다.

"좋아. 지금 죽어야 해!"

"눈 같은 곳을 찔러. 이거 완전히 바윗덩이 같은 놈이야."

그들을 본 강현은 상황을 눈치챌 수 있었다.

'너희들이 숨어서 조종하던 놈들이구나.'

이렇게 모습을 들어내 준다면 강현의 입장에서는 오히려 고마웠다.

놈들이 근처까지 접근했을 때였다.

"마력폭발!"

강현이 사방으로 마력폭발을 난사했다.

그 폭발력에 능력자들이 날아가고, 강현이 전력으로 땅을 박찼다.

-콰앙!

마치 대포알처럼 날아오는 강현을 보고 놈들이 기겁했다.

"으아아! 막아! 막으라고!"

놈들의 명령에 인형처럼 변한 능력자들이 강현을 향해서 몸을 던졌다.

"튀자! 저건 사람 새끼가 아니야!"

그사이 놈들은 뒤도 돌아보지 않고 밖을 향해 달아났다.

아니, 달아나려 했다.

"어디가 이 새끼들아!"

[분노의 사자후가 발동됩니다]

[모든 적들의 사기와 능력치가 감소했습니다]

[모든 디버프가 해제됩니다]

강현이 분노의 사자후를 발동함과 동시에 새로 얻은 무기를 꺼내 들었다.

[필시언의 해머]

얼마 전 변종 언데드 싸이클롭스를 잡고 얻은 무기.

'그날 이후 딱히 쓸 일이 없어서 넣어뒀는데 드디어 기회가 생기네.'

필시언의 해머에는 독특한 능력이 있다.

바로 크기 변형과 무게 조절.

*크기 변형 – 사용자가 원하는 크기로 변경이 가능하다. 단, 크기가 커질수록 무게 또한 무거워지니 주의가 필요하다.

*무게 조절 – 마력을 이용해 무게를 최대 50%까지 감소 혹은 증가시킬 수 있다.

강현은 사전에 크기 변화에 따른 무게 변동을 확인했다.

지금 강현의 몸통을 완전히 가리는 해머의 무게는 약 1t.

여기에 최대 무게 감소치인 50% 사용하면 500kg으로 줄어든다.

"이 정도면 충분하지."

너무 무겁지도 가볍지도 않은 무게.

모든 버프를 활성화한 강현이 들고 달리기에 딱 적당한 무게라고 할 수 있었다.

"하아아압!"

강현은 필시언의 해머를 앞에 두고 전력으로 달렸다.

사방에서 날아오던 능력자들은 그 압도적인 힘에 자동차에 치인 사람처럼 튕겨 나갔다.

"크하하하! 이거 완전 재밌잖아!?"

해머를 앞세운 강현은 불도저나 다름없었다.

"히이익!"

무지막지한 흉기를 들고 쫓아오는 강현을 본 놈들이 기겁했다.

"젠장! 사도께서는 언제 오시는 거야!? 이러다 다 죽게 생겼어!"

"강현이 저런 괴물이란 걸 알았으면 오지 않았을 거라고!"

뒤를 돌아볼 때마다 괴물이 실시간으로 가까워지고 있었다.

이제 강현은 능력자들의 포위망도 거의 빠져나온 상태.

"지금 서면 딱 한 대만 때린다!"

저 해머에 한 대라도 맞으면 이승 구경은 다 한 것이나 다름없었다.

이미 전력으로 달리고 있었던 놈들의 다리가 더욱 빨라졌다.

"따라 잡히겠어! 어떻게 해봐!"

"으아아! 저기! 사도다. 사도가 오셨다!"

놈들의 시야 끝에 검은색 로브를 뒤집어쓴 무언가가 보였다.

"사도야! 이제 살았어. 사도께서 오셨다고!"

강현 또한 그것을 볼 수 있었다.

'사도는 뭐야? 대장 같은 건가?'

뭔지는 모르겠지만 쫓는 것을 멈출 수는 없었다.

그렇게 놈들과 강현의 거리가 거의 좁혀졌을 때쯤, 놈들이 먼저 검은 로브를 두른 사도에게 도착했다.

"살려주십시오! 사도님! 뒤에서 괴물이 쫓아옵니다!"

"사도시여! 어서 저 오크를…."

사도에게 다가간 놈들이 연신 로브 자락을 붙잡으며 소리 질렀다.

"어서! 저 괴물을!"

그 순간, 사도가 팔을 들어 올렸다.

-시끄럽군.

그 손짓과 동시에 파악-하는 소음이 터지고, 남자들의 머리가 단숨에 터져나갔다.

**

머리 없이 쓰러진 시체들.

그 앞에 선 강현이 멍하니 전방을 주시했다.

-네가 강현이란 놈인가.

"그래. 말하는 꼬락서니를 보니까 너는 또 해골이네. 이젠 지겹다."

머릿속에서 직접적으로 울리는 목소리는 언데드들이 가지고 있던 공통적인 특성이었다.

-불경한 놈이군. 나는 그분에게서 '올룬(Olun)'의 작위를 하사 받은 영광의 종. 너 같은 놈이 함부로 말할 존재가 아니다.

사도라 불린 놈이 뒤집어쓰고 있던 로브를 벗자 새하얀 두개골이 드러났다.

그 모습은 지금까지 봐온 수많은 해골과는 상당히 달랐는데, 머리에서 마치 광이 나는 것만 같았다.

'머리 위에 이름이 없다. 어떻게 된 거지?'

일반적으로 몬스터는 던전 밖에 나오더라도 머리 위에 이름이 뜨기 마련이다.

케르고처럼 예외적인 경우가 있기는 했지만.

강현은 조금 더 적을 살펴보기로 했다.

"제자고 지랄이고, 내 알 바 아니고. 방금 네가 죽인 애들."

-이 하찮은 인간들을 말하는 건가.

"그래. 그 하찮은 놈들. 내가 걔들한테 물어볼 게 좀 많았거든? 근데 시벌. 네가 폭죽놀이를 잘못하는 바람에 전부 날아가 버렸네?"

-그렇군.

사도의 덤덤한 태도에 강현은 점차 열이 받기 시작했다.

"하나만 묻자."

-뭐지?

"해골도 맞으면 아프냐?"

-고통은 하찮은 미물들이나 느끼는 것이지. 불사, 불멸의 존재인 우리는 어떠한 고통도 느끼지 않는다.

"그래... 비명을 질러줘야 어느 정도로 패야 하는지 감이 잡히는데, 아쉽게 됐네. 알아서 살아라."

강현이 어금니를 깨물며 말했다.

-알량한 허세를 부리는군.

사도가 말을 던진 순간, 강현이 힘껏 땅을 박찼다.

"마력폭발!"

동시에 던져진 마력구가 엄청난 속도로 날아갔지만, 놈의 펼쳐낸 장벽에 막혔다.

-하찮은 공격이야.

강현은 대답하지 않고 곧장 필시언의 해머를 휘둘렀다.

"우라야아!!!"

사도가 해머를 피하기 위해 공중으로 몸을 띄었다.

-무식한 놈. 힘만 센 것이 마치 오우거와 같구나.

그 순간, 강현이 해머의 크기를 폭발적으로 늘렸다.

'넌 뒤졌다.'

사도는 갑작스럽게 늘어난 공격 범위에 반응하지 못했다.

결국, 해머의 끝에 아슬하게 발끝이 걸렸다.

-타앙!

그 충격에 한쪽 발이 박살나며 사도가 마치 바람개비처럼 빙글빙글 하늘을 날았다.

"다음은 대가리다!"

강현은 기회를 놓치지 않기 위해 곧장 마력폭발을 사용했다.

-콰앙, 쾅! 쾅! 쾅!

원래 살상을 목적으로 터져 나오는 폭발력을 이용해 몸을 띄우는 기술.

보통 사람에게는 자살 시도와 같은 것이었으나, 강현에게는 약간의 고통만 감수하면 엄청난 속도로 하늘을 날 수 있는 최고의 기술이었다.

-스스로 죽음을 자초하는구나.

그 모습을 본 사도가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멍청한 놈. 감히 공중으로 날아오다니.'

허공에서는 이동이 자유롭지 않고, 그만큼 회피가 힘들어진다.

-불타 죽어라.

사도는 곧장 자신이 펼칠 수 있는 최대의 화염 마법을 전개했다.

-화르르르..!

사도의 앞에 화염으로 이뤄진 거대한 용의 대가리가 만들어졌다.

"이건 또 뭐야!?"

거대한 용의 대가리가 당장에라도 강현을 덮칠 것만 같았다.

"엿됐네."

사도가 가볍게 손을 까딱이고, 거대한 화염의 용이 날았다.

-푸화아아아아!

강현이 엄청난 화염에 집어 삼켜졌다.

사도는 확인할 것도 없다는 듯이 등을 돌렸다.

지금껏 자신의 화염에 당하고 버틴 인간은 단 한 명도 없었으니까.

-나머지 벌레들을 처리해야겠군.

그렇게 사도가 일행이 있는 공장 쪽으로 몸을 날리려던 순간이었다.

"어디 가냐?"

뒤쪽에서 들려오는 음성에 사도가 고개를 홱 돌렸다.

그곳에는 강현이 전신에 불이 붙은 채로 자신에게 손을 뻗어오고 있었다.

-어떻게...!

"어떻게고 지랄이고, 일단 좀 맞자."

강현이 사도의 팔을 붙잡은 채로 힘껏 당겼다.

-파악!

단숨에 놈의 팔이 박살나며 어깨에서 뽑혀 나왔다.

"일단 하나."

사도는 갑작스러운 상황에도 당황하지 않고 마력을 운용했다.

아니, 운용하려 했다.

하지만 엉망진창이 된 마력은 쉽사리 움직여 주지 않았다.

-네놈. 무슨 짓을 한 거냐!

"내가 마법사랑 원투데이 싸우냐? 너희들 족치는 데는 도가 텄어!"

강현은 몸에 있는 마력을 방출해 사도의 마력을 뒤엉키게 만들었다.

이러면 강현 본인도 스킬을 사용하기 힘들지만, 상관없다.

"서로 스킬 빠지면 엿 되는 건 너야!"

강현이 남아있는 사도의 반대쪽 팔을 붙잡았다.

-안 돼! 이게 무슨 일이냐! 이렇게 허무하게 내가…!

"원래 인생이 좀 허무하긴 하지. 다들 뒤질 때 되니 비슷한 말을 하더라고."

-끄아아아!

"생각해 보니 머리만 남아있으면 되지? 해골이니까 살 거 아냐?"

강현이 양손으로 사도의 어깨를 붙잡았다.

그리고는 이빨로 놈의 목 부분을 깨물었다.

-무슨, 이게 무슨 짓이냐!

"이르니끄 이예나 승극나느."

(이러니까 옛날 생각나네)

그리고는 온 힘을 다해 사도의 몸에서 머리통을 뽑아냈다.

"끄아아아아아!"

강현의 전신에서 터질듯한 핏줄이 올라오고, 사도의 목에서 뿌드득하는 소리가 새어 나왔다.

-백 년이 넘는 세월을 견뎌 그분의 제자가 되었건만! 이렇게 당할 수는 없다! 그분의 제자인 나 알로스 올룬이 이깟 놈에게! 이런 버러지에게 당한다는 말이냐!

사도, 알로스 올룬이 발버둥 쳤으나 소용없었다.

"크하아악!"

강현의 괴성과 함께 놈의 몸에서 두개골이 뜯겨 나왔다.

**

"정말 죄송합니다..."

어두운 밀실.

한 줄기의 빛도 새어 나오지 않는 이곳에서 무릎을 꿇은 남자가 덜덜 떨었다.

"사도께서 당하셨습니다."

-당하다니? 알로스 올룬이 고작 인간 따위에게 졌다는 말인가.

"죄송합니다..."

-다른 놈들은 어떻게 됐지?

"함께 움직인 능력자들도 전원 죽거나 붙잡혔습니다."

남자의 말에 목소리가 침묵했다.

다급해진 남자가 바닥에 자신의 머리를 처박았다.

이마가 바닥을 때리며 쿵-하는 소리가 울렸다.

"죽을죄를 지었습니다. 용서해 주십시오!"

-고개를 들어라.

목소리의 명령에 남자가 조용히 고개를 들었다.

어둠 속에서 다가온 날카로운 뼈가 남자의 목을 쓸었다.

"자, 잘못했습니다. 살려만 주시면..."

-알로스는 어떻게 됐지? 확실하게 죽은 건가?

"그런 것 같습니다... 사방으로 흩어져 있던 사도의 흔적을 발견했습니다."

사실 알로스라 불린 사도의 두개골은 찾지 못한 상태였지만, 남자는 그 사실을 말하지 않았다.

잘못했다가는 정말 자신의 목이 달아날 것이 분명했으니까.

-일이 시작부터 꼬이는군.

"하, 하지만 놈들도 저희의 정체를 알진 못할 겁니다! 비밀을 알만한 놈은 모조리 죽었고, 지금까지 깔끔하게 일을 처리했기에 조유식 세력이 잘려나가는 선에서 끝날 게 분명합니다!"

-그건 확실한 거겠지.

"예! 믿어주십시오!"

남자가 다시 한번 바닥에 자신의 머리를 쿵- 하고 내려쳤다.

이마에서 피가 줄줄 흘러나왔지만, 전혀 고통을 느낄 새가 없었다.

압도적인 공포.

숨을 쉬는 것조차 버거운 상황에서 이마의 상처는 그저 사소한 일에 불과했다.

-알겠다.

"그럼..."

-나가라. 너의 일을 하도록.

그 말을 끝으로 남자를 압박하던 기운이 사라졌다.

"허억, 허억..."

남자는 그제야 숨을 몰아쉬며 바닥에 털썩 주저앉았다.

130화 지긋지긋한 놈들(1)

130. 지긋지긋한 놈들(1)

"이번에는 독수리 슛이다!"

"그 유치한 기술은 뭐예요!?"

"나 때는 이게 전설이었어. 인마!"

양팔을 벌리며 달려나간 강현이 두개골을 힘껏 발로 찼다.

-크아아아! 너희들 모두 죽여버리겠다!

"시끄러워 죽겠네."

빠른 속도로 날아온 두개골을 안유성이 가슴으로 받아냈다.

"읏차, 패스할게요."

안유성이 두개골을 윤나래가 있는 방향으로 올려 차고,

"하압! 문 스파이럴 헤드 어택!"

윤나래가 허공에서 한 바퀴 돌아 흔히 오버헤드 킥이라 부르는 고난이도 슛을 구사했다.

"네 기술이 더 유치하거든?"

"길드장님이 소녀 감성을 알아요?"

그렇게 일행은 한동안 족구(?)를 이어갔다.

-네놈들... 용서할 수 없다. 그분의 제자인 내게 이럴 수는 없어!

머리만 남은 사도, 알로스 올룬에게서 강렬한 분노가 느껴졌다.

"강현 님. 패스하겠습니다."

"오케이! 이번에는 바나나 슛이다!"

그러거나 말거나 일행은 오랜만의 놀이에 집중했다.

-전부 죽여주마....

그때였다.

두개골에서 갑자기 소름 끼치는 마력이 풍겨오기 시작했다.

테크노 월드컵의 전설적인 기술, 바나나 슛을 구사하려던 강현이 멈칫했다.

"위험해!"

생각은 짧고 행동은 빨랐다.

강현은 마력이 느껴짐과 동시에 '웨인의 비기'를 활성화했다.

"이 새끼가 어디서!"

강현이 하늘을 향해 발을 들어 올리고, 발뒤꿈치를 이용해 두개골을 내려찍었다.

-콰직! 콰아앙!

그 충격에 두개골이 총알처럼 날아가서는 바닥에 꽂혔다.

"뭐야? 무슨 일이에요!?"

강현의 갑작스러운 행동에 일행이 다급히 모였다.

그곳에는 수십 조각으로 나눠진 두개골이 있었다.

"죽었잖아요! 무슨 짓이에요!?"

"이 새끼가 미쳐가지고 마법을 쓰려고 하잖아. 그리고 얘는 원래 죽어있던 놈이거든?"

"지금 그게 중요해요!?"

윤나래와 강현이 아옹다옹하는 사이, 다가온 신성아가 조심스럽게 파편을 살폈다.

"강현 님. 머리만 남은 놈이 마법도 씁니까?"

"몰라. 갑자기 마력이 느껴졌어."

"이거 신태길 팀장에게 보낼 거라 하시지 않았습니까?"

"그랬지..."

그때 강현의 전화가 울리기 시작했다.

"양반은 못 되겠네..."

스마트폰 화면에는 신태길 팀장의 이름이 떠 있었다.

**

강현은 자신이 묵고 있던 호텔의 레스토랑에서 신태길을 맞이했다.

"웬일로 직접 찾아왔어요? 바빠 죽겠다더니."

"사안이 사안인 만큼. 직접 와야 한다 생각했습니다. 그나저나 왜 여기로 오라 하셨습니까?"

"저녁 시간이잖아요. 인터넷을 보니까 이 호텔 소고기가 그렇게 맛나다 해서."

"매일 먹는 소고기 질리지도 않습니까?"

"안 질리는데요. 그리고 매일 먹는 거 아니거든요."

강현이 정색을 하며 말했다.

"흐아! 빛깔 좋네."

잠시 후.

강현과 신태길의 앞에 스테이크가 놓이고, 둘은 고기를 썰며 대화를 이어갔다.

"그래서. 오늘 용건은 뭐예요?"

"일단 강현 씨께 감사드립니다."

"감사?"

"예. 강현 씨가 아니었다면 정말 대형 사건이 터졌을 겁니다. 아무도 눈치채지 못하고 있었으니까요."

"으음, 그런가? 잘 모르겠는데."

강현이 어깨를 으쓱했다.

"강현 씨가 붙잡았다던 언데드 마법사. 아주 강한 능력을 지니고 있다 하시지 않았습니까?"

"뭐, 그 해골이 제법 세긴 했죠."

"예. 그렇게 강한 몬스터가 밖을 활보하고, 사람들의 숭배를 받는다니... 자칫 잘못하면 국가적인 위기로 발전할 수도 있는 대형 사건입니다."

"듣고 보니 그런 것 같기도 하네요."

강현이 듣는 둥 마는 둥 하며 열심히 스테이크를 욱여넣었다.

그 모습을 보며 한숨을 내쉰 신태길이 자신도 스테이크를 한입 썰어 먹었다.

"확실히 맛있기는 하군요. 그나저나 강현 씨가 사로잡았다던 언데드는 어디 있습니까?"

신태길이 언데드를 찾자 강현의 표정이 딱딱하게 굳었다.

"그게... 죽었어요."

"예? 분명 생포했다고 하시지 않았습니까?"

"안타까운 사고가 있었죠."

침통한 표정을 지은 강현이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혹시 다른 일이 터진 겁니까?"

"그건 아니고... 그냥 다 같이 노는데, 머리만 남은 놈이 아주 위험한 마법을 쓰더라고요! 그래서 어쩔 수 없이 부쉈어요."

신태길이 이해가 가지 않는다는 듯 인상을 찌푸렸다.

"다 같이 놀다니, 그게 무슨…."

"아주 위험한 놈이라니까요! 잘 처리됐으니 다행이죠. 하하하!"

어딘가 어색한 강현의 웃음.

"그렇습니까...?"

신태길은 찝찝했지만, 강현이 그렇다고 하니 할 말이 없었다.

"해골 이야기는 됐고, 오늘 왜 찾아온 거예요?"

"해골 수거하러 왔지 않습니까?"

"아, 그랬지... 다른 용건은 없어요?"

강현의 물음에 신태길이 한숨을 내쉬었다.

"강현 씨가 보내주신 괴상한 벌레 있지 않습니까?"

사람들의 몸에서 나오는 벌레.

처음 조유식의 아내와 아들에게서 나온 벌레 두 마리는 모두 죽었다.

하지만 지난 폐공장 전투에서 또다시 엄청나게 많은 수를 구할 수 있었다.

강현은 그렇게 사로잡은 벌레를 모두 신태길에게 보냈었다.

"뭐가 나왔어요?"

"그 벌레들이 이송 중에 전에 전부 죽어버렸습니다."

"죽었다니요?

신태길이 침울한 표정을 지으며 말을 이었다.

"말 그대로입니다. 갑자기 하나둘 죽기 시작하더니 나중에는 사체까지 사라졌습니다. 아마도 특정 조건. 예를 들면 기생할 숙주 같은 것이 없으면 그대로 소멸하는 것 같습니다."

신태길의 설명에 강현이 인상을 찌푸렸다.

"그때 놈들 공격에 조유식이 죽어서 이제 믿을 건 벌레들밖에 없었는데..."

"죄송합니다."

"신태길 씨가 미안할 건 아니죠. 쩝... 다음에는 내 몸에 붙인 채로 가야겠네."

"너무 위험한 행동은 하지 마시죠."

"예예. 내가 언제 위험한 짓 하는 거 봤어요?"

강현의 농담에 신태길이 웃었다.

"아, 그러고 보니 이것도 말씀드려야겠군요. 조유식 가족 있지 않습니까?"

"병원에서 식물인간 신세라면서요."

"예. 그런데 여기 오는 사이에 깨어났습니다."

"오, 잘됐네요. 조유식이 죽었다는 말은 신태길 씨가 전해줘요. 아, 내가 죽인 거 아니니까 오해가 없게 잘 전해줘야 합니다."

"그게... 그럴 필요가 없어졌습니다. 둘 다 백치가 됐거든요."

백치라는 말에 강현의 눈이 크게 떠졌다.

"백치요?"

"예. 아무런 말도 하지 않고 온종일 멍하니 하늘만 보고 있습니다."

"아버지는 죽고. 엄마와 아들은 백치라. 집안 하나가 풍비박산이 났네."

"듣고 보니 그렇군요... 안타까운 일입니다."

"뭐, 어쩔 수 없죠. 우리가 뭔가 해줄 수 있는 것도 아니고..."

한숨을 내쉰 강현이 맥주를 들이켰다.

"그러면 이제 단서는 없는 거죠?"

"예. 이번에 폐공장에서 사로잡은 자들도 깨어나면 조유식의 가족과 같은 상태가 될 게 분명합니다."

"흐음..."

아무런 단서가 남지 않은 상황.

강현은 혹시 자신이 놓친 것이 없을까 생각에 잠겼다.

그러다 문득 떠오르는 것.

"사이비 놈들..."

"예? 사이비요?"

뜬금없이 터져 나온 사이비라는 말에 신태길이 당황했다.

"신태길 씨. 지금 이쪽 지방에 이상한 사이비 종교 단체가 있던데. 아는 거 없어요?"

"사이비 종교... 정확히 뭘 말씀하시는지는 모르겠지만, 그런 것들은 전국 어디든 있지 않습니까?"

신태길의 반문에 강현이 고개를 저었다.

"단순히 그런 '도를 아십니까'가 아니었어요. 조유식이 죽기 전에 별 희한한 소리를 했는데... 뭐라 했더라? 자기가 영생을 누릴 거니, 그분이 오시면 세상이 망하니 뭐니 했거든요."

"으음, 영생이라..."

"그리고 때마침 이쪽 지방에서 이상한 전도를 하는 사이비 놈들을 봤다는 말이죠. 피켓에 무슨 불사, 영생 이런 말들을 적어놨었는데..."

강현의 말에 신태길의 눈이 날카로워졌다.

"강현 씨 말이 사실이라면, 확실히 수상하긴 합니다."

"그러게요. 말하고 나니까 더 이상하네."

"단순히 우연이라 치부하기에는 너무 절묘하군요. 종교 단체에 대한 것은 제가 자세히 알아보겠습니다."

신태길의 말에 강현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새로운 정보가 나오면 다시 뵙죠. 강현 씨도 조금 더 고생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신태길이 가볍게 고개를 숙이고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가시려고요? 뭐 잊은 거 없어요?"

"예? 무슨 말씀입니까?"

"통역 능력. 스킬북 구해달라 했잖아요. 어떻게 됐어요?"

"아, 죄송하지만 아직 구하지 못했습니다. 워낙 매물이 없어서. 그건 구하는 대로 연락 드리겠습니다."

할 말을 마치고 떠나려는 신태길을 강현이 다시 붙잡았다.

"그리고 하나 더."

"또 뭐가 남았습니까?"

"단가를 올려줘야죠."

단가라는 말에 신태길이 당황했다.

"그게 무슨 말씀이신지..."

"본인 입으로 이야기했잖아요. 아주 심각한 문제! 국가적인 위기! 엄청난 사건을 제 덕분에 알아차렸다. 그리고 이제는 해결까지 부탁한다."

"..."

"이걸 스킬북 하나로 퉁치려는 건 아니죠? 아무리 헬조선헬조선 한다지만 계산은 확실하게 해야지."

강현의 말에 신태길이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원하는 게 뭡니까..."

"듣자 하니 요즘 정부에서 무슨 마력 물약 같은 거 만든다면서요?"

"그건 또 어디서 들었습니까..."

"아주 대단하단 말이죠! 무슨 정부가 연구소보다 연구를 더 잘해."

"..."

"어디 외계인 하나 붙잡아서 고문하고 있는 거 아닌지 몰라. 아, 외계인이 아니라 해골인가?"

강현이 낄낄거리며 말하자 신태길이 한숨을 쉬었다.

"본론만 말씀하시죠..."

"크큭. 인상 펴요. 초상난 줄 알겠네. 아무튼, 그 사업 우리도 한발 걸치게 해 줘요."

한발 걸치게 해 달라는 아리송한 말이었지만, 신태길은 곧장 그 의미를 파악했다.

"저희 쪽 연구에 정서빈 소장을 참여시켜 달라는 겁니까?"

"맞아요. 이해가 빨라서 좋네."

"으음..."

"정서빈 씨. 나름 좋은 인재인데 정부에서 혼자만 정보를 독점하니 연구 효율이 떨어지잖아요. 이건 국가적! 아니, 전 인류적 손해라고요."

"그냥 강현 씨에게 떨어질 돈이 더 늘어나니까 그런 거 아닙니까?"

신태길의 말에 강현이 씨익 웃었다.

"그런 이유도 아주 쪼금 있고. 아무튼, 해줄 거예요? 말 거예요? 싫으면 사이비가 설치든 해골이 설치든 나는 발 뺍니다."

"저 혼자 독단으로 결정할 게 아닙니다. 시간을 조금만 주시죠."

신태길의 말에 강현이 턱을 쓰다듬었다.

"어허... 이번에 잡은 해골이 얼마나 강했더라? 마력 수치로만 보면 국내 탑5는 씹어먹겠던데. 에휴, 내가 아니면 누가 그런 놈을 피해 없이 잡았을지."

강현이 오글거리는 연기를 이어갔다.

"딱 보니까 그놈보다 더 센 놈들도 튀어나올 것 같던데... 뭐, 괜찮아! 내가 없어도 신태길 팀장이 알아서 사람 구해서 막겠지. 안 그래요?"

"하아...."

신태길이 마른세수를 하며 한숨을 내쉬었다.

"알겠습니다. 강현 씨 요청대로 진행하도록 하죠."

"방금 아주 현명한 판단을 내린 거예요."

강현의 입꼬리가 슬쩍 올라갔다.

'돌아가면 정서빈 소장한테 엄청 생색내야지.'

**

"교주님."

나대수는 자신을 부르는 목소리에 시선을 돌렸다.

"무슨 일이지?"

"외지인이 침입 시도가 있었습니다."

외지인이라는 말에 나대수의 얼굴이 차갑게 굳었다.

"외지인이라면... 설마 강현과 관련된 놈들이냐?"

"그건 잘 모르겠습니다. 일단 능력자는 아닌 것 같습니다."

분명 모든 게 잘 풀리고 있었다.

언제나 탄탄대로일 것만 같았는데, 요즘 들어서 자꾸만 무언가가 틀어지고 있었다.

"조유식이 죽고, 길드가 해체되고, 사도께서 죽고... 어쩌자고 자꾸 이런 일이 반복되는지..."

나대수가 고개를 숙인 채로 상심에 빠져들었다.

여자는 그 모습을 보며 눈가를 훔쳤다.

"교주님. 걱정하지 마세요. 저희는 교주님 편입니다. 다른 곳에서 저희를 어떻게 보던 저희는 지금 최고로 행복합니다!"

"그렇게 말해주니 고맙구나."

"앞으로도 외지인은 철저하게 막도록 하겠습니다."

"그래. 그들도 언젠가 교화되어야 하겠지만, 아직은 때가 아니다. 조금만 있으면 그분의 제자인 사도들께서 본격적으로 이곳에 강림하는 때. 그때를 위해서 우리는 기반을 닦아야 한다."

"알겠습니다."

"그러면 나가봐라. 나는 사도를 알현해야겠다."

"예."

여자가 밖으로 나가고, 홀로 남은 순간 나대수의 표정이 돌변했다.

"쓸모없는 놈들. 뭐 하나 제대로 풀리는 게 없어!"

외지인이라면 정체가 뻔했다.

이곳에 의심을 품은 누군가가 정보를 캐기 위해 보낸 것이다.

아니, 어쩌면 이미 교단 내에 그러한 끄나풀이 들어왔을지도 모른다.

"이번에는 정말 죽을 거야..."

의문의 목소리는 사도 중에서도 높은 위치에 자리한 것 같았다.

그 목소리와의 마지막 면담에서 자신이 한 말이 머릿속을 스쳐 갔다.

-놈들도 저희의 정체를 알진 못할 겁니다! 비밀을 알만한 놈은 모조리 죽었고, 지금까지 깔끔하게 일을 처리했기에 조유식 세력이 잘려나가는 선에서 끝날 게 분명합니다!

그게 마지막 기회였다.

만약 누군가 이곳에 대해 의구심을 갖게 되었다는 사실을 목소리가 아는 날에는...

'무능한 나를 죽이겠지.'

나대수는 이곳에서 교주로 추앙받으며 살고 있었지만, 그는 똑똑한 사람이었다.

'내가 가진 권력? 권위? 그깟 것들은 아무런 도움도 되지 않아. 나를 대체할 인간은 널렸으니까.'

애초에 나대수가 이 일을 시작한 것도 살기 위해서였다.

죽기 싫어서 교단을 만들었고, 교주가 되었다.

거부한다는 것은 선택지에 존재조차 하지 않았다.

자신에게는 가족이 있었고, 사도들이 보여준 무력은 자신의 상식을 아득히 뛰어넘는 것이었으니까.

'정말 신의 제자들이 아닐까? 라는 생각까지 했었지.'

하지만 지금은 알고 있다.

놈들은 괴물이다.

빠져나올 수 없는 늪이고, 동시에 모든 생명을 죽이는 독이다.

사도의 뼈만 남은 새하얀 손가락은 거부할 수 없는 죽음의 손길로 숨통을 조인다.

'당장 움직여야 한다.'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

지금 자신의 선택이 어떤 결과를 가져올지는 모르겠지만, 이대로 아무것도 하지 않고 죽을 수는 없었다.

"후우..."

야심한 시각.

몰래 건물 밖으로 빠져나온 나대수가 서둘러 걸음을 옮겼다.

131화 지긋지긋한 놈들(2)

131. 지긋지긋한 놈들(2)

"그래서 안으로 들어가는 건 안 되겠다고요?"

-예. 종교 시설이라고 믿기 힘든 수준의 경비와 보안입니다.

"제가 말했잖아요. 구린내가 난다고. 아무튼, 계속 조사해 주시고 나오는 거 있으면 연락 줘요."

-예.

신태길과의 짧은 통화 후.

옆에 앉아 있던 신성아가 강현을 바라봤다.

"어떻게 됐다고 합니까?"

"입구컷이라네."

"으음..."

"외지인이라서 안 받는다나?"

"생각보다 폐쇄적인 곳이군요. 점점 더 수상해지기 시작했습니다."

"형. 그럼 이제 어떡할 거예요?"

핸드폰 게임을 하던 안유성이 물었다.

"어떡할 거냐니?"

"거기 우리가 직접 조사하는 게 빠를 것 같은데. 뭔가 늦으면 안 될 것 같다는 예감이 들어서요."

안유성의 예감이란 것은 남들과는 다르다.

그가 그런 생각이 들었다면 무언가 이유가 있을 것이 분명했다.

"그럼 정해졌네. 일단 찾아가자."

"그러고 난 다음에는요?"

"문을 두드리는 거지. 여기 책임자 누구야! 하고 소리도 한번 치고."

강현의 말에 안유성과 신성아가 고개를 끄덕였다.

'저건 무슨 개소리야?'

옆에서 듣고 있던 윤나래는 어이가 없었지만, 괜히 나섰다가 맞을 수도 있는 일이다.

윤나래는 그냥 얌전히 있기로 했다.

"강현 님. 그런 다음에는 어떻게 합니까?"

"그렇게 하면 책임자가 나올 거 아니야? 그때 그놈 멱살을 딱! 잡아서 묻는 거야."

"오오..."

"너희들 뭐하는 놈들이야! 하면 알아서 술술 불지 않겠어?"

"좋은 방법인 것 같습니다."

"확실히 그렇겠네요."

신성아와 안유성이 동감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결국, 참다못한 윤나래가 폭발했다.

"그게 무슨 헛소리예요!? 좀 상식적으로 생각을 해요!"

"이게 가만히 있는데 또 지랄이네! 사회에 불만 있냐?"

"불만은 그 멍청한 계획에 있지. 전부 대가리가 어떻게 된 거 아니야? 그걸 듣고 고개를 끄덕인다고?"

"어떻게 된 건 상식을 파괴하는 네 패션 센스지. 이 로리 오타쿠야."

"이건 개성이라고!"

"아니, 그런데 이게 아까부터 꼬박꼬박 반말이네."

강현의 미간이 좁혀지자 윤나래가 벌떡 자리에서 일어났다.

"어어? 또 때리려고? 또! 사람들! 여기 봐요! 오크가 사람 때려요!"

"넌 뒤졌어!"

항상 본인이 맞을 짓을 한다는 것을 자각하지 못하는 윤나래였다.

"응?"

강현이 윤나래가 한창 술래잡기를 하던 때였다.

강현의 전화가 울렸다.

-강현 씨. 맞습니까?

"크흠, 예. 맞습니다. 누구시죠?"

-저는 나대수라고 합니다.

"나대수?"

-조유식과 관계된 사람입니다.

조유식이라는 말에 강현의 태도가 진지해졌다.

"자세히 들을 수 있을까요?"

-길게 말하기는 힘듭니다. 오늘 새벽 2시. 하양 공원 연못 앞에서 만납시다.

나대수는 대답을 듣지 않고 일방적으로 전화를 끊어버렸다.

"이건 또 뭐야?"

강현의 인상이 잔뜩 구겨졌다.

"형. 누구예요?"

"조유식이랑 관계된 놈이라는데, 뜬금없이 만나자는 말만 하고 전화를 끊네."

"함정일 가능성은 없겠습니까?"

신성아의 물음에 강현이 고개를 저었다.

"우리가 언제 그런 거 따지면서 돌아다녔냐."

"그것도 그렇습니다."

"일단 시간이 늦었으니까 자고, 내일 아침 일찍 움직이자."

**

"지금 몇 시야?"

"2시 30분이요. 2시에 만나기로 한 거 맞아요?"

안유성이 연못에 돌을 던지며 말했다.

"맞다니까."

"형 기억력 나쁘잖아요."

"넌 나를 대체 뭐로 보냐?"

"음... 재미는 있는데 머리가 좀 나쁜 형? 아니, 많이 나쁜 형?"

"조만간 기강 한번 다시 잡아야겠네. 서울 가면 뒤질 준비 해라."

강현이 선글라스를 고쳐 쓰며 낮은 목소리로 으르렁거렸다.

"이것 봐요. 기억력이 이렇게 나쁘다니까. 제가 언제 형한테 맞은 적이 있었어요?"

"기억 못 하는 거 보니까, 예전에 나한테 처맞았을 때 대가리가 어떻게 됐나 보네. 보험은 들어 놨냐?"

"와아, 형. 설마 정의현 사건 때 이야기하는 거 아니죠?"

"맞는데?"

"그게 언제적 일인데... 형도 진짜 지독하네요."

"뭐가 새꺄!"

강현과 안유성의 티키타카는 한동안 계속됐다.

하지만 그들도 새벽 3시가 넘어가자 지치기 시작했다.

"뭐 보이는 거 없어?"

-조용합니다. 시골이라 그런지 경치가 좋은 것 같습니다.

약간 들뜬 것 같은 신성아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이 새벽에 뭐가 보이긴 해?"

-가끔 은밀한 커플들이 보입니다.

"그거 범죄 아니냐..."

-보고 싶어서 보는 게 아닙니다만.

"그딴 경치는 됐고, 나가수인지 나대수인지 하는 놈. 왜 안 와!?"

-역시 함정 아니겠습니까?

"기다리다가 열 받아 뒤지게 하는 함정이라면 거의 성공했네."

-철수하실 겁니까?

"철수는 무슨. 직접 찾아가야지."

강현의 말에 신성아가 당황했다.

-예? 그 나대수라는 사람을 직접 말입니까?

"어. 사이비 놈들 본진으로 들어간다."

-민간인들도 많을 겁니다. 나대수가 그쪽과 관련돼 있다는 확실한 근거도 없고요.

"괜찮아. 내가 알아서 책임질 거니까 윤나래 끌고 내려와. 바로 이동한다."

-알겠습니다.

전화를 끊은 강현은 곧장 차량으로 이동했다.

"형. 어떡하려고요?"

"어떡하긴. 그냥 처박는 거지. 가서 건물이고 뭐고 때려 부수다 보면 알아서 기어 나오지 않겠어?"

"푸흐흡. 그거 재미있겠네요."

"내가 막무가내로 들이박는 것처럼 보이지만 나름대로 생각이 있다고."

"오호... 그 생각이란 게 뭔데요?"

강현이 생각을 한다는 말에 안유성이 씨익 웃었다.

"어차피 이 정도면 놈들한테 뭔가 있다는 건 백퍼센트 확실하잖아."

"그런데 증거가 없잖아요."

"그러니까. 지금 그걸 찾으러 가는 거지. 결과만 좋으면 장땡 아니겠어?"

그것을 실천하는 사람이 강현이라 가능한, 말 그대로 기적의 논리였다.

"에휴, 일단 가자."

그렇게 상황을 정리하고 강현이 자리를 뜨려던 때였다.

추레한 차림에 후드를 뒤집어쓴 남자가 다가왔다.

"강현 씨?"

"뭐야? 당신 설마 나대수?"

"맞습니다. 늦어서 죄송합니다."

"2시라면서요. 뭐 하다가 이제 나타났어요?"

"이곳에 녹음기를 설치해서 여러분을 감청하고 있었습니다. 저도 확신이 있어야 나올 수 있으니까요."

"범죄 사실을 굉장히 당당하게 이야기하시네."

"죄송합니다."

"어휴... 됐어요. 바로 본론으로 갑시다. 시간 아까우니까."

**

한동안 나대수의 설명을 들은 강현이 턱을 쓰다듬으며 생각에 잠겼다.

"그러니까 당신이 교주 같은 위치에 강제로 앉혀졌고, 거기 보스는 해골들이 차지하고 있다. 그 해골들은 어디선가 갑자기 나타났고?"

"예. 맞습니다."

약 2개월 전.

예고도 없이 나타난 그들은 빠르게 세를 불려 갔다.

상식을 뛰어넘는 강력한 마법들, 세뇌, 기괴한 벌레 등 온갖 수단을 이용해서 그들은 지역 주민들을 하나둘 자신의 편으로 끌어들였다.

"그러면 그 고블린들은 뭐야? 여기 오는 길에 동굴에 처박혀 있던 걸 봤는데."

"이들은 기본적으로 던전을 숭배합니다. 절대자가 세상을 정화하기 위해 보내는 군대라고 생각하죠."

"어지간히 미친 사상이네."

"표면적인 이유는 그렇습니다만, 실제로는 몬스터 우상화에 대한 실험입니다."

"몬스터 우상화?"

"저도 자세한 것은 모릅니다. 교주라고는 하지만 꼭두각시에 불과한 사람이라..."

"일단 알겠어요. 덕분에 그래도 궁금했던 내용은 거의 다 알게 됐네."

순간 나대수의 표정이 밝아졌다.

"그러면 제가 말한 보호 요청도…."

"그건 아직 안돼요."

언제 밝았냐는 듯 나대수의 얼굴이 시무룩해졌다.

"어째서입니까..."

"뭘 믿고 당신을 받아요? 그 해골 놈들 첩자면 어쩌려고?"

"첩자면 제가 이렇게 정보를 술술 불 리가 없지 않습니까!?"

"솔직히 당신이 말한 정보가 딱히 중요한 것도 아니었잖아요. 어차피 알아내는 것도 시간문제인 상황이었고. 내 말이 틀렸어요?"

"아무리 그렇다 해도..."

나대수는 할 말이 없었다.

솔직히 강현의 말이 아주 틀린 것은 아니었으니까.

자신이 말한 것에서 사도들에 대한 핵심 정보는 아무것도 없었고, 강현이 얻은 것이라고는 조금만 돌아다녀도 알 수 있는 교단의 본거지.

그리고 자신의 정체와 지금까지 어떤 일이 벌어졌나 정도이다.

"그래도 제가 이렇게 찾아와서 정보를 불지 않았습니까? 이럴 순 없는 겁니다!"

머리로는 알고 있었지만, 자신은 목숨이 달린 문제다.

나대수가 필사적으로 강현에게 애원했다.

"제발, 부탁드립니다... 저는 살고 싶습니다."

"대신 당신 가족들을 받아줄게요. 나대수 씨를 받는 건 그 이후. 오늘 저녁에 교단을 찾아갈 테니 대기하고 있어요."

"그러면..?"

"내가 거기서 해골 놈 끝장내면 그 이후에 나대수 씨도 보호해드린다고 약속하죠."

"알겠습니다!"

나대수는 안심했다.

아무리 사도가 강하다고 하지만, 강현은 이미 사도를 박살 낸 전력이 있었다.

"대신 내부에 사람들 비워놔요. 전투가 격해지면 다칠 수도 있으니까."

"예."

"그럼 이따가 봅시다."

**

늦은 저녁.

"여기야?"

"예. 맞습니다."

강현과 일행은 밋밋한 외관의 박스형 콘크리트 건물 앞에 서 있었다.

마치 거대한 공장과 같은 모습을 보며 강현이 인상을 찌푸렸다.

"제대로 온 거 맞아?"

"나대수 씨가 말한 주소는 이곳이 맞습니다."

"으음, 그래. 가보면 알겠지."

생각할 시간에 움직이는 게 편했다.

차량에서 내린 강현이 곧장 건물로 향했다.

그곳에는 제법 큰 덩치의 인상이 험악한 남자들이 서 있었다.

"여기는 사유지입니다. 돌아가 주시죠."

남자들은 강현을 보자마자 손을 내밀어 제지했다.

"사유지? 여기 무슨 교단이라던데."

"아닙니다."

"다 알고 왔는데요?"

"분명 아니라고 말씀드렸습니다. 여기는 사유지입니다. 들어오시면 주거침입으로 간주하겠습니다."

남자들은 완고했다.

"후우, 나 누군지 알죠?"

"예. 압니다."

모를 수가 없었다.

현재 강현은 어지간한 연예인보다 더 유명한 사람이었으니까.

"내가 돌아가란다고 돌아갈 사람처럼 보여요?"

강현의 말에 남자들이 입을 꾹 닫았다.

'뭐 이런 양아치 같은 놈이...'

보통은 무력으로 제압해서라도 돌려보내지만, 아쉽게도 지금은 선택이 불가능한 선택지였다.

"서로 피곤하게 하지 말고 좋게좋게 갑시다. 무슨 말인지 알죠?"

"..."

"나대수라는 양반이랑 잘 아는 사이라니까 그러네. 오늘 만나기로 했으니까, 비켜요."

"교주님 말씀이십니까...?"

"예예. 그 교주라는 양반이 나랑 만나자고 했다니까 그러네."

"잠시만 기다려 주시죠. 안쪽에 연락을 넣어 보겠습니다."

"아! 거참 답답하네!"

강현이 답답함에 가슴을 두드릴 때였다.

갑자기 건물의 거대한 문이 열리며 사람들이 우르르 쏟아져 나왔다.

그들은 하나같이 무표정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제대로 찾아왔네."

인형처럼 변한 사람들.

강현에게는 제법 익숙한 일이었다.

"강현 씨. 잘 오셨습니다."

굉장히 화려한 옷을 입은 중년의 남자, 나대수가 강현에게 다가왔다.

"여기서는 완전히 딴 사람 같네요."

"그렇습니까? 하하."

"입구에 내가 찾아온다고 말 안 해뒀어요?"

"이런, 제가 깜빡했습니다. 일단 안으로 들어가서 이야기하는 게 어떻습니까?"

"사람들이 많네요?"

"예?"

강현의 뜬금없는 말에 나대수가 당황했다.

"사람들이 많다고요."

"아, 예. 열심히 포교 활동을 한 덕분이지요."

강현이 피식 웃었다.

'누굴 호구로 보나.'

지금 앞에 있는 남자는 나대수가 아니다.

같은 모습에 같은 목소리를 하고 있지만, 강현은 확신했다.

이 남자는 나대수가 아니다.

미리 사람들을 대피시키라 한 것도 모르는 것을 보면 거의 백퍼센트라고 할 수 있었다.

'이걸 장단에 맞춰 줘야 하나?'

평소 같았으면 그냥 박살을 냈을 것이다.

하지만 이곳에는 능력자가 아닌 일반인들도 있다.

아마 지금 주변에 있는 사람들 대부분도 '벌레'에게 당한 일반인일 것이 분명했다.

비록 그들이 백치가 될 운명이라고 해도 죄가 없는 사람을 함부로 해치는 것은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렇게 하죠. 너희들은 밖에서 기다려."

"또 형만 재미 보려고 그래요?"

"재미는 지랄. 여차하면 안에 같이 있는 것보다는 밖에 있는 게 유리해. 안전하기도 하고."

강현의 말에 일행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들도 나대수가 뭔가 이상하다는 것을 눈치챈 것이다.

예전이라면 안된다고 했겠지만, 지금은 강현이 부활한다는 것을 아는 상황.

굳이 위험을 감수할 이유가 없었다.

"안으로 가실까요?"

"그래요."

그렇게 강현은 나대수와 함께 안쪽으로 건물 안으로 사라졌다.

그 모습을 불안한 눈으로 보던 신성아가 안유성을 불렀다.

"안유성 씨."

"네?"

"왜 따라가지 않으셨습니까?"

"형이 남아 있으라 했으니까 남은 거죠."

"평소 안유성 씨 성격이라면 무시하고 안으로 들어갔을 텐데요."

신성아의 의문은 타당했다.

언뜻 보기에 안유성은 강현의 말을 잘 따르는 것 같았지만, 그동안 신성아가 지켜본 바로는 다르다.

그녀가 보기에 안유성이 강현의 말을 드는 것에는 두 가지 조건이 충족되어야 한다.

자신의 안전이 보장될 것.

자신의 재미를 해치지 않을 것.

이것이 절대적이라고 할 수는 없지만 대게 그렇다.

그녀가 생각한 두 가지의 기준은 특히 전투와 관련되어 있을 때는 더욱 정확해진다.

"왜 안 따라 갔나랴... 딱히 이유는 없어요. 그냥 그게 맞는 것 같아서?"

안유성의 말에 신성아의 표정이 어두워졌다.

"건물 안은… 많이 위험한 겁니까?"

그 말에 안유성이 씨익 웃었다.

"누나는 한 번씩 깜짝 놀라게 한다니까요. 그래서 재미있어요."

"제 질문에 대답해 주시죠."

신성아가 정색을 하고 물었다.

"네. 많이 위험해요. 그리고 우리가 따라가지 않는 게 서로가 더 안전해지는 방법이에요."

132화 지긋지긋한 놈들(3)

132. 지긋지긋한 놈들(3)

공장 같은 외양과는 달리, 건물 내부는 깔끔하게 꾸며져 있었다.

마치 호텔처럼 치장된 복도.

적막이 내려앉은 공간에 조용한 발걸음 소리만 들려왔다.

"어째서 우리에게 관심을 가진 거지?"

먼저 입을 연 것은 나대수, 정확히는 나대수의 모습을 한 무언가였다.

놈의 말을 들은 강현이 낄낄댔다.

"바로 본론으로 가니 좋네. 되지도 않은 가식 떤다고 고생했겠어?"

"묻는 말에 대답해라."

"으음, 어째서 관심을 가지게 됐냐라... 그냥? 우리가 좀 심심했거든."

농담 같았지만, 진담이었다.

"심심해서라... 재미있구나."

"나도 뭐 좀 묻자. 하나씩 물어봐야 공평하지 않겠어? 그러면 성실하게 대답해 줄게."

강현의 말에 놈이 고개를 끄덕였다.

"마음대로 해라."

이것은 사실 놈에게 하나의 유흥에 불과했다.

놈도 강현에게 궁금한 것이 있었기에 짧은 대화가 성립할 수 있었다.

"나대수는 어디 있어?"

"그 건방진 인간은 감히 나 '바노 쿨사'를 배신하려 한 죄로 죽었다."

"역시 죽은 건가..."

나대수. 아니, 바노 쿨사는 무표정한 얼굴로 입을 열었다.

"이제 내 차례군."

"말해봐."

"알로스 올룬. 네가 죽였나?"

"그게 뭐야?"

"시치미 떼지 마라. 비록 올룬의 작위를 가졌다고 해도 이곳의 인간들에게 당할 놈은 아니었다."

"아, 그 해골?"

강현은 그제야 생각났다는 듯이 손뼉을 쳤다.

"그거 떼서 머리만 가지고 다녔는데, 갑자기 마법을 쓰길래 발로 차서 부숴버렸어."

"뭐라...?"

"신기하더라. 어떻게 머리만 남아도 마법을 쓰지?"

강현의 말에 처음으로 바노 쿨사의 얼굴에 표정이란 것이 생겼다.

그것은 시리도록 차가운 분노였다.

"이제 내 차례지? 사람들 몸에서 나오던 벌레는 도대체 뭐야?"

"내 마법이다. 이곳에서 하등한 인간들을 조종하기 위해 원래 있던 마법을 손봐서 만들었지."

"오호, 너 대단한 놈이구나."

강현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을 이었다.

"그런 김에 몇 개 더 묻자. 이 사이비 단체는 왜 만든 거야? 그리고 그분이란 건 또 뭐고?"

한 번에 많은 질문이 쏟아졌지만 바노 쿨사는 예상외로 친절하게 설명했다.

"우선, 이건 사이비 종교가 아니다. 너희 인간들의 허무맹랑한 종교와 달리 실존하는 존재, 살아있는 신을 찬양하는 진실한 종교지. 그리고 그분이란 우리의 위대한 스승을 지칭하는 말이다."

"으음, 그러니까 위대한 스승이 그분이고 그분이 신이라는 거지?"

강현이 인상을 찌푸리며 생각을 정리할 때였다..

계속해서 걷던 바노 쿨사가 갑자기 멈춰 섰다.

"도착했다."

도착한 곳은 제법 넓은 방이었다.

함께 걷던 사람들은 어느새 사라지고, 둘만 남은 상황.

"여기가 어딘데?"

"네놈의 무덤이지."

"야. 그 멘트 너무 식상하다는 생각 안 들어? 내가 늘 말하지만, 악당 새끼들은 레퍼토리가 변하지를 않아요. 아주 지긋지긋해 죽겠어."

강현의 말을 들은 체도 하지 않고 바노 쿨사가 뒤로 돌아섰다.

강현의 눈을 똑바로 응시하는 바노 쿨사.

놈은 분명 인간의 얼굴을 하고 있었지만, 어딘가 기분 나쁜 이질감을 뿜어내고 있었다.

"뭘 꼬나봐?"

그런 놈을 보며 강현이 씨익 웃었다.

"하고 싶은 말은 다 했나?"

"왜. 더 남았으면 친절하게 설명이라도 해주게?"

"궁금증을 해결하는 것은 모든 지성체가 가지고 있는 본능과도 같은 것. 절대 불변의 진리를 찾아가는 그분의 제자로서 약간의 아량은 베풀어 줄 수 있다."

"아, 그럼 하나만 더 묻자."

강현이 정말 궁금해 죽겠다는 표정을 지었다.

"너도 대가리만 똑 떼놔도 마법 쓸 수 있냐?"

"..."

"진짜 너무 신기하더라고. 너도 되나 싶어서."

"명을 재촉하는구나."

순간 놈의 목소리가 뭉개지며 얼굴이 녹아내렸다.

점차 드러나기 시작하는 새하얀 두개골.

"진짜 고블린이랑 해골 새끼들. 지긋지긋하다."

짜증스러운 말과는 달리 강현의 얼굴에는 미소가 가득 차 있었다.

**

바노 쿨사에게서 뿜어져 나오는 엄청난 마력에 강현의 옷자락이 잘게 떨렸다.

'이 정도면 거의 반다렌코 급인가?'

과거, 자유 능력자 해방 연합의 수장이었던 반다렌코.

놈은 마지막에 다른 능력자들의 마력을 모아서 엄청난 힘을 발휘했었다.

지금 눈앞에 있는 바노 쿨사에게서 느껴지는 마력은 거의 그 정도 수준으로 느껴졌다.

'문제가 있다면 저 해골은 혼자서 그 힘을 자유자재로 휘두른다는 거겠지.'

반다렌코와 달리 바노 쿨사는 아무런 제약 없이 저런 힘을 마음껏 휘두를 것이다.

강현이 몸을 긴장시키며 공격에 대비했다.

-좋구나.

그때 바노가 양팔을 활짝 펼쳤다.

지금 이 상황에 심취해있는 것 같은 모습이었다.

-이 장소는 최대한 내 본신의 능력을 끌어내도록 농밀한 마력이 가득 들어차게 만들어졌다.

"그래서?"

-하찮은 너희 차원의 인간들이 나를 이길 가능성은 없다는 뜻이지.

놈의 말에서 강현은 작은 단서를 얻어냈다.

'너희 차원'

그 말은 바노 쿨사가 다른 차원에서 왔다는 뜻과 일맥상통했다.

강현은 그 사실을 기억하며 태연하게 미소를 지었다.

"내가 좋아하는 명언이 하나 있는데 뭔지 아냐?"

강현의 말에 바노가 턱뼈를 달그락거렸다.

-어디 지껄여 보아라.

"누구나 그럴듯한 계획이 있다. 나한테 처맞기 전까지는."

그 말과 동시에 강현이 힘껏 땅을 박찼다.

-하등한 인간답게 졸렬하기 그지없는 수법이군.

강현이 빠른 속도로 달려왔지만, 바노 쿨사는 여유로웠다.

자신은 쿨사의 작위를 하사받은 자.

비록 마력이 부족한 낯선 세계에서 많은 힘을 잃었지만 문제없다.

제대로 된 마법 체계조차 갖춰지지 않은 이깟 열등한 세계.

혼자서도 얼마든지 깨부술 자신이 있었다.

-이것은 잠깐의 유희 같은 것이지.

바노 쿨사가 가볍게 손가락을 튕겼다.

그러자 사방에서 날카로운 칼날이 생성돼 강현에게 쏘아졌다.

강현이 다급히 검에 마력을 둘러 칼날을 쳐냈다.

"뒤져!"

강현이 마법을 뚫고 달려가서 바노에게 빌게인의 장검을 휘둘렀다.

-까앙!

허무하게 튕겨 나오는 검.

"뭐가 이렇게 단단해?"

분명 마력을 두른 상태였음에도, 놈에게 아무런 타격을 주지 못했다.

'쉬운 상대는 아닐 거라 생각했지만... 예상보다 더 힘들 수도 있겠어.'

**

-힘만 무식하게 센 놈이군.

쉴드 너머로도 인간의 한계를 뛰어넘은 강한 힘이 느껴졌다.

'마력을 다루는 능력도 제법이고, 육체 능력은 최상급. 이 정도라면 알로스 올룬이 당할 만했군.'

특히나 지구에서는 자신들의 힘이 약해졌기에 더욱 속수무책으로 당했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다르다.'

자신이 쿨사의 작위를 하사받은 지도 300년이 넘게 흘렀다.

이제 갓 올룬에 이른 알로스와 자신을 비교하는 것 자체가 실례다.

'마력 흡수는 순조로워.'

강현과의 탐색전을 이어가며 바노 쿨사는 계속해서 마력을 끌어모으는 중이었다.

그가 원래 있던 하켄 차원은 마력이 풍부하다 못해 넘쳐나는 세계.

그곳에서 지니고 있던 능력을 100% 발휘하기 위해서였다.

비록 일시적인 것에 불과하겠지만, 강현을 처리할 수 있다면 그것으로 충분했다.

'나머지는 신경 쓸 가치조차 없어 보이는 하찮은 놈들이니.'

그때였다.

갑자기 강현이 거대한 해머를 꺼내 들었다.

'눈치챈 것인가.'

자신이 이곳에서 힘을 모은다는 사실을 알아챈 것 같았다.

제법 초조한 기색을 띠며 강현이 다급히 무기를 휘둘렀다.

-이 세계에서는 그런 둔한 무기에 맞아 죽는 놈도 있나 보군.

"그쪽 세계에는 수다쟁이 순서로 해골을 만드나 보네."

강현은 단 한 마디도 지지 않았다.

"흐아아압!"

강현은 필시언의 해머를 능숙하게 다루며 바노 쿨사를 압박했다.

지금껏 제자리에서 모든 공격을 받아내던 바노도 해머를 무시할 수는 없었다.

바노가 재빠르게 허공을 날며 공격을 회피했다.

'마력이 거의 다 모였군.'

마침내 이 방에 있는 거의 모든 마력이 흡수됐다.

오랜만에 느껴지는 충족감에 바노가 턱뼈를 부딪치며 웃었다.

-장난은 이제 끝이다.

바노가 양손을 하늘로 뻗었다.

새하얀 뼈만 남은 그의 손에 엄청난 마력이 모여들기 시작했다.

-죽어라.

이내 두 손이 바닥으로 떨어지고,

-콰아아아앙!

엄청난 폭발과 함께 건물이 무너졌다.

**

건물 안에서 들리는 소리로 전투가 벌어졌음을 알 수 있었다.

"지금이라도 들어가야 하지 않겠습니까?"

신성아가 걱정스러운 얼굴로 물었다.

"어차피 곧 나올 껄요?"

안유성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엄청난 마력이 모여들기 시작했다.

마력에 둔감한 편인 신성아도 소름이 돋을 정도로 강인한 마력.

"전부 뒤로 물러나요."

안유성이 입을 연 순간,

-콰아아아앙!

마치 거대한 폭탄이 터진 듯한 굉음과 함께 건물이 무너지기 시작했다.

"저게 뭐야...? 마법 한 방에 저렇게 된다고?"

무너져 내리는 거대한 콘크리트 구조물.

현실의 붕괴는 영화의 그것과는 차원이 다른 충격을 주었다.

그 모습을 멍하니 보던 윤나래가 다급히 안유성을 붙잡았다.

"저런 놈을 어떻게 이겨? 지금이라도 우리끼리 튀자! 빨리!"

도망가자는 말을 들은 신성아가 무서운 표정으로 윤나래를 노려봤다.

"노, 농담이죠... 하하..."

그때였다.

전신에 상처를 입어 피투성이가 된 강현이 일행에게 다가왔다.

"퉤!"

강현이 입에 물고 있던 바노 쿨사의 손가락을 뱉어냈다.

"형. 어떤 것 같아요?"

"제대로 조진 것 같다. 엿 됐어."

강현의 말에 윤나래가 펄쩍 뛰었다.

"봐봐! 지금이라도 도망가야 한다니까!"

"길게 말할 시간 없어. 너희들은 윤나래 말대로 튀어."

"예?"

강현의 말에 일행이 당황했다.

"농담 아니야. 내가 시간 끌 테니까 빨리 튀어. 신태길 팀장한테 이 근방 봉쇄하라고 말하고."

"그렇지 않아도 신태길 씨와 길드에 지원 요청을 했습니다."

신성아의 말에 강현이 인상을 썼다.

"안돼! 어중간한 놈들 모여봤자 피해만 늘어나. 이쪽으로 오는 게 아니라, 이 근방을 완전히 봉쇄해서 아무도 출입하지 못하게 해!"

"하지만 강현님…."

"말싸움할 시간 없어. 먼저 간다. 시키는 대로 해! 명령이야!"

그 말을 끝으로 강현은 다시 놈에게 달려갔다.

"으음, 그럼 어떻게 할까..."

이번만큼은 안유성도 쉽사리 움직일 수 없었다.

저렇게 광범위 마법을 마구잡이로 날려대면 날고 기는 안유성도 모든 공격을 피하는 것은 불가능했다.

강현만큼 맷집이 좋거나, 뛰어난 마력 컨트롤이 없으면 접근조차 불가능한 상대인 것이다.

안유성이 고민에 빠져있는 사이 신성아가 다가왔다.

"안유성 씨. 일단 강현 님께서 말씀하신 것은 모두 조치가 끝났습니다."

"네? 벌써요?"

"예. 이제 이 근처로 다가오는 사람은 없을 겁니다."

신성아의 빠른 일 처리에 안유성이 감탄했다.

"이제 어떡하면 좋겠습니까?"

"흐음..."

"솔직히 당장 달려가고 싶지만, 그랬다가는 강현 님에게 방해만 될 것 같습니다."

신성아의 판단은 정확했다.

안유성도 같은 고민을 하고 있었으니까.

"저는 여기서 안유성 씨의 결정에 따르겠습니다."

그렇다고 해도 신성아의 이런 냉철한 판단은 한 번씩 안유성을 깜짝깜짝 놀라게 했다.

'강현 형 일이라면 물불 안 가리고 달려들 줄만 알았는데...'

아마 강현이 죽지 않는다는 사실에 그녀 또한 바뀐 것이리라.

-콰아아앙!

천지가 무너지는 듯한 폭음이 계속해서 들려왔다.

강현이 얼마나 버틸지 알 수 없는 상황.

모든 상황이 안유성의 결정을 더욱 압박했다.

'이런 건 내 스타일이 아닌데...'

그때였다.

옆에 쪼그려 앉아있던 윤나래가 벌떡 일어나며 소리쳤다.

"가자!"

"네?"

"너답지 않게 무슨 고민을 하고 있어. 그리고 저 바보 길드장 불안해서 혼자 남겨둘 수 있겠어?"

"잘못하면 형한테 방해가 될 수도 있어요."

안유성의 말에 윤나래가 고개를 저었다.

"여차하면 내가 메테오로 둘 다 날려버리면 돼. 어차피 길드장은 죽어도 다시 살아나잖아?"

틀린 말은 아니었다.

잘못하다간 적은 살고 강현만 죽을 수 있다는 게 문제긴 했지만.

"그리고 원래 서포트는 내 전문이야. 내가 오더 할 테니까 따르기만 해. 어떻게든 도움이 되게 써먹어 줄 테니까."

윤나래가 허리춤에 손을 올리고 당당하게 말했다.

"둘 다 표정이 왜 그래?"

솔직히 윤나래는 대단한 찬사를 바란 건 아니지만 다시 봤다는 말 정도는 해줄 줄 알았다.

그런데 안유성과 신성아의 표정이 굉장히 오묘했다.

"윤나래 씨. 본인 맞습니까?"

신성아가 눈을 가늘게 뜨며 말했다.

"왜요?"

"아닙니다... 가시죠."

신성아가 찝찝하다는 표정으로 돌아섰다.

"뭔데요!? 지금 엄청 나쁜 생각 했죠!?"

"아닙니다. 시간이 없습니다. 얼른 강현 님을 도와야 합니다."

"맞아요. 빨리 가요."

"뭐냐고! 나도 멋있는 역할 한번 맡으면 안 돼!? 안 되냐고!"

윤나래가 발악하듯 소리쳤지만, 둘은 고개를 저으며 걸어갈 뿐이었다.

133화 지긋지긋한 놈들(4)

133. 지긋지긋한 놈들(4)

"하악, 하아..."

강현이 만신창이가 된 몸으로 숨을 헐떡였다.

-트롤보다 더 질긴 놈이군. 어떻게 아직 살아있지?

"뒤지고 나면 조상님한테 가서 여쭤봐라."

다 죽어가도 입만은 살아있는 강현이었다.

-오랜만에 연구욕이 끓어오르는군. 너는 특별히 죽이지 않고 은총을 내려 주마. 언데드가 된 상태에서 그 회복 능력이 어떻게 작용할지 궁금하지 않나?

"나는 딱히 관심 없는데. 해골이라면 질색하는 사람이라서."

-정말 흥미로워. 내가 있던 세계에도 너 같은 인간은 흔치 않았지. 역사를 통틀어서 말이다.

"그래그래. 나도 너처럼 말 많은 해골은 처음이다."

둘이 신경전을 주고받는 것 같았지만, 사실 각자의 속셈이 있었다.

'몸이 거의 회복됐다.'

'마력이 어느 정도 돌아왔군.'

강현은 놈에게 당한 상처를 치유할 시간이 필요했고, 바노 쿨사는 오랜만에 남발한 마력을 보충하고 마력 회로를 진정시킬 시간이 필요했다.

둘 다 그 사실을 어느 정도 눈치채고 있었기에 이렇게 일시적인 휴전이 성립될 수 있었다.

"후우, 좀 살 것 같네. 손가락은 안녕하냐?"

마침내 회복을 끝낸 강현이 바노 쿨사의 손을 보며 비웃었다.

대폭발이 일어나기 직전.

놈의 마력을 뚫고 달려간 강현은 손가락 세 개를 물어뜯었다.

때문에, 현재 바노의 왼손은 상당히 허전한 상태였다.

-이것 말인가? 문제없다.

바노가 왼손을 들어 올리자, 잘려나갔던 손가락이 빠르게 복구되기 시작했다.

-고작 이런 거로 타격을 줬다고 생각하는 건 아니겠지?

"너 잘났다. 새끼야."

애초에 이기기는 힘들 것이라 생각했지만, 예상보다 더욱 힘들었다.

육체의 피로는 계속해서 누적되고 있었고, 마력은 절반도 남지 않았다.

그에 반해 놈은 언데드라 지치지도 않았다.

게다가 어떤 방법을 쓰는 건지 마력도 빠르게 회복하는 것 같았다.

'결국, 시간을 끄는 게 다인가...'

신태길이라면 사태의 심각함을 충분히 인지했을 게 분명했다.

이곳에서 자신이 죽더라도 잘 대처할 것이다.

'오랜만에 죽겠네.'

반다렌코와의 싸움 이후 한 번도 죽지 않았으니 대략 7개월 만의 죽음이다.

이제 와서 죽음이 두렵지는 않았으나, 걱정을 떨칠 수는 없었다.

'피해 없이 막는 건 무리일 거야.'

아마 지금도 이 전투에 휘말린 누군가가 죽고 다쳤을 것이다.

사방에서 마력이 진탕하고 있었기에 누가 어디 있는지 감지하는 것조차 힘든 상황이었으니까.

'됐다. 내가 언제부터 그런 거 신경 쓰고 다녔다고.'

자신은 영웅이 아니다.

성인군자는 더더욱 아니다.

그저 살아남기 위해, 자신의 것을 지키기 위해 싸우다 보니 여기까지 왔을 뿐이다.

오랜만에 그 사실을 되뇌며 강현이 빌게인의 장검을 꼬나쥐었다.

'야. 지금 광전사 써도 저건 못 잡겠지?'

강현이 마음속으로 베일에게 물었다.

-불가능하다. 놈의 수준이면 곧장 능력의 정체를 파악하고, 모든 힘을 도망치는데 쏟을 게 분명하지. 그러다 보면 5분이 흐를 거고, 힘이 빠진 너에게 남은 건 죽음뿐이다.

강현 또한 같은 생각이었다.

광전사는 분명 최후의 비기라고 할 수 있는 강력한 능력이다.

하지만 그 지속시간은 고작 5분.

그 5분마저도 정신이 온전치 못한 상황에서 싸워야 하고, 시간이 끝나면 완전히 무력화된다.

앞뒤 없이 덤벼드는 몬스터라면 대부분 5분 안에 처리할 수 있지만, 지능이 있는 적을 상대로는 그것이 쉽지 않다.

'일단 조금이라도 더 놈의 능력에 대해 알아내야 해.'

광전사는 말 그대로 최후의 보루.

아직 여유가 남아 있었기에, 강현은 조금 더 상황을 지켜보기로 했다.

그래야 죽고 나서 돌아왔을 때, 다음 전투의 승산이 조금이라도 더 높아질 테니까.

-회복이 끝났으면 다시 놀이를 시작하지.

바노는 이제 이 싸움을 즐기고 있었다.

수십 년 만에 제대로 된 싸움을 하는 것이기에 어찌 보면 당연한 일.

강현도 그것을 눈치채고 있었다.

'방심을 이용해서 어떻게 접근만 하면 될 것 같은데...'

놈은 하늘을 날고 있다.

그 상태에서 자유자재로 공수가 가능하다.

처음부터 두 발을 땅에 딛고 있어야만 힘을 쓰는 강현이 불리할 수밖에 없는 싸움이었다.

'어떻게 접근하지? 한 방. 딱! 한 방만 먹이면 되는데...'

**

일행은 조금 떨어진 건물 옥상에서 전투를 지켜보고 있었다.

"어떤 것 같아요?"

"강현님이 고전하고 있습니다."

윤나래의 물음에 신성아가 걱정스러운 얼굴로 대답했다.

"당장 해결해야 할 과제는 놈을 지상으로 끌어내리는 것입니다. 계속 허공에 떠 있으니 제대로 된 공격을 먹일 수가 없습니다."

"형도 원거리 공격이 있잖아요?"

안유성의 반문했지만, 신성아가 고개를 저었다.

"어지간한 공격은 모두 실드에 막히고 있습니다. 아마 강도가 굉장히 높은 실드 마법을 사용하는 것 같습니다."

"형이 직접 붙어서 공격하지 않으면 답이 없다는 건가..."

"예. 놈의 마력이 바닥나기를 기다릴 수도 있겠지만 그때까지 강현 님이 버티기는 무리인 것 같습니다."

바노의 특성은 일행에게도 까다로운 것이었다.

주로 속도와 기교로 승부를 보는 이들에게 튼튼한 보호막 안에서 마법을 난사하는 바노의 공격 방식은 상성 면에서 상당히 좋지 않았다.

"윤나래 씨. 어떻게 하면 좋겠습니까?"

"잠시만 기다려 봐요. 생각 중이니까."

"강현 님이 더 지치기 전에 움직여야 합니다."

신성아의 말에 윤나래가 결심을 한 듯 고개를 끄덕였다.

"불나방 작전으로 가요."

"불나방 말입니까...?"

"그거 농담으로 했던 이야기 아니었어요?"

신성아와 안유성은 못 미덥다는 듯이 미간을 좁혔다.

"지금 상황에 다른 수 있어요? 일단 설명해줄 테니까, 따를 것인지는 그때 가서 선택해요."

"으음, 하지만 그게 제대로 된다고 해도 강현 님의 목숨은..."

"어차피 저대로 둬도 죽어요! 이쪽도 목숨을 걸었으니, 길드장도 목숨 하나 정도는 걸어야 하지 않겠어요?"

"하아, 알겠습니다. 일단 들어보죠."

**

"너 진짜 잡히기만 하면 뒤질 줄 알아!"

-아직도 소리 지를 힘이 남았나?

"네 대가리 박살 낼 힘도 충분히 남았는데. 와서 확인해 볼래?"

마력이 거의 바닥나자 회복이 더뎌지기 시작했다.

'시벌, 지금이라도 광전사를 써야 하나.'

-그걸 쓴다고 갑자기 하늘을 날게 되는 게 아니다. 차라리 이번 생에서 비밀을 드러내지 말고, 한 수를 숨겨두는 것도 방법이지.

베일의 말은 냉혹했지만, 옳은 말이었다.

괜히 비장의 한 수를 보여줬다가 실패하면 적에게 경각심만 일으키게 된다.

어차피 죽이지 못할 것이라면 이대로 힘을 숨긴 채 죽는 것도 나쁘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으아아! 답답해 죽겠네!"

온몸에 난 상처보다 정신적 스트레스가 강현을 더욱 고통스럽게 했다.

"강현님!"

그때였다.

뒤쪽에서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뭐야!? 여긴 왜 왔어!?"

지금 신성아가 와서는 안 된다.

일행이 모두 온다고 해도 놈에게 죽을 피해자만 늘어날 뿐이다.

"내가 가라고 했잖아!"

진심으로 화가 난 강현이 버럭 소리를 질렀다.

신성아는 진중한 표정으로 고개를 저었다.

"어떻게 길드장님을 버리고 길드원이 가겠습니까."

"그럼, 다 같이 뒤지자고?"

"불나방 작전입니다."

"뭐...?"

불나방 작전이란 말에 강현이 당황했다.

'그거 농담 아니었어?'

윤나래가 메테오를 배운 이후.

일행이 농담처럼 주고받던 말이 있었다.

-어차피 길드장님은 죽어도 다시 살아나잖아요?

-그래서?

-혹시라도 엄청 강한 놈이 나오면 내가 메테오를 쓸 테니까 길드장님이 꽉 껴안고 그 안으로 뛰어드는 건 어때?

-이게 미쳤나. 나보고 뒤지라고?

그 당시 강현은 단순히 농담이라고만 생각했다.

-왜!? 어차피 죽어도 살아나니까. 적만 죽이면 그걸로 해피엔딩 아냐? 우리 이걸 불나방 작전이라 부르자.

-작전은 지랄이야. 그리고 은근슬쩍 반말할래?

-아아악! 또 때린다. 또 때려!

짧은 회상을 마친 강현이 고개를 저었다.

"저걸 어떻게 잡아!?"

"저희가 기회를 만들겠습니다."

그 말을 끝으로 신성아가 달렸다.

신성아가 사방으로 움직이며 화살을 날려 바노 쿨사의 시선을 교란했다.

-하찮은 것들이 늘었군. 하지만 벌레는 모여봐야 벌레일 뿐이지.

날아드는 화살을 보며 바노가 조소했다.

"하아압!"

-이제 조금 지루해지기 시작했어.

안유성이 뒤쪽에서 안유성이 메이스를 휘둘렀으나, 바노의 마력 실드에 허무하게 막혔다.

-결국 인간은 인간이었을 뿐인가.

바노가 이제 전투를 끝내야겠다고 생각할 때였다.

-음, 이건?

하늘에 엄청난 마력 덩어리가 쏟아지고 있었다.

'이걸 이제야 눈치채다니... 조금 방심했군.'

주위에 마력이 진동하는 상태에서 놈들이 방해까지 하자 알아채는 것이 조금 늦어졌다.

'하지만 달라지는 건 없다.'

하지만 그뿐이다.

저렇게 느릿한 공격에 맞아줄 정도로 바노는 둔하고 멍청하지 않았다.

"형! 달려요!"

그 순간, 지금까지 두 발을 땅에 붙이고 있던 강현이 갑자기 허공을 달리기 시작했다.

-이게 무슨...!

기본적으로 공중을 이동하는 마법은 느리다.

지상에서 능력자들이 달리는 것과는 비교하기 힘들 정도로.

그런데 강현은 지상과 같은, 아니 더욱 빠른 속도로 허공을 달리고 있었다.

-마력 실드!?

바노는 금세 그 방법을 눈치챘다.

강현의 발밑에 아슬아슬한 속도로 마력 실드가 생성되고 있었던 것이다.

달리는 속도에 맞춰서 발아래에 생성되는 실드.

그 마력은 조금 전 메이스를 휘둘렀던 남자에게서 흘러나오고 있었다.

'위험한 놈이군.'

마력 자체는 보잘것없지만, 컨트롤의 섬세함이 남달랐다.

자신조차 가능하다고 확언하기 힘든 수준의 기술.

바노 쿨사가 안유성을 보며 반드시 없애리라 다짐했다.

-즐기는 것은 이제 끝이다.

바노 쿨사가 몸을 피하며 강현에게 견제 마법을 날렸다.

-콰과과광!

강현은 피하지 않고 마법을 몸으로 받아내며 바노에게 달려갔다.

"뒤져어!"

바노의 코앞에서 점프한 강현이 필시언의 해머를 생성했다.

그리고 해머가 휘둘러지는 순간, 해머의 무게와 크기를 폭발적으로 늘려 위력을 증가시켰다.

-채애앵!

엄청난 충격을 받은 실드가 단숨에 깨졌다.

뒤이어 해머에 직격당한 바노 쿨사가 빠르게 바닥에 추락했다.

-쿠웅!

해머를 막아낸 양손이 부서지고, 전신의 뼈가 충격에 울렸다.

-제법이다만, 바뀌는 것은 없다.

바노 쿨사는 전혀 당황하지 않았다.

실드가 대부분의 충격을 흡수해서, 겉보기와 달리 큰 피해를 보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 정도 상처는 약간의 시간만 있으면 회복할 수 있었다.

-으음!?

그 순간, 어느새 다가온 강현이 다시 해머를 휘둘러 왔다.

바노 쿨사는 다시 실드를 전개했다.

'오히려 거리를 벌려주는군. 멍청한 놈.'

강현은 한 번에 자신을 죽이지 못한다.

이 공격으로 자신이 날아가게 되면, 결과적으로 이곳에서 안전하게 벗어나게 되는 것뿐이다.

'일거양득이로군.'

약간의 피해만 감수하면 하늘에서 떨어지는 강력한 마법을 피하고, 강현에게서 멀어질 기회였다.

'이곳 말로 전화위복이라 하는가.'

그렇게 바노가 웃을 때였다.

"페이크다 새꺄!"

해머를 휘두르던 강현이 돌연 자세를 바꿔 올려 차기를 날렸다.

강현은 그 한방에 자신이 가진 모든 힘을 내쏟았다.

-콰아아아앙!

충격에 강현이 발을 디디고 있던 아스팔트가 박살나고, 바노가 빠르게 허공으로 치솟았다.

-쓸데없는 짓을 하는군.

바노가 균형을 바로잡고 다시 반격하려 할 때였다.

'이건...'

느껴지는 섬뜩함.

바노가 재빨리 뒤로 돌아섰다.

그곳에는 엄청난 크기의 불타는 바윗덩어리가 떨어지고 있었다.

'이런 얕은꾀에 당하다니...'

아슬아슬 하지만 아직 몸을 피할 시간이 있었다.

바노가 빠르게 피하려던 순간, 누군가 바노의 앞을 막아섰다.

안유성의 마력 실드로 바노를 쫓아온 강현이었다.

"어디 가려고?"

비록 바노를 한번에 죽일 힘은 없었지만, 놈이 도망치지 못하게 하는 것 정도는 충분했다.

-비켜라! 여기서 같이 죽을 작정이냐!

"어. 그럴 작정인데."

강현의 얼굴에 만연한 미소가 걸려 있었다.

'당했군...'

동시에 메테오가 추락했다.

134화 지긋지긋한 놈들(5)

134. 지긋지긋한 놈들(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