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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 와이번 괴수.

고오오오!

쉬우우웅!

또다시 불모지 위를 날아간다.

하루 만에 다시 출발한 롱퍼드 왕국이었지만, 이곳에서 얻은 것이 많다.

시기는 확실하진 않지만, 괴수의 공격이 있을 거라는 정보를 얻었다.

카르마탄!

지금도 지구를 박살 내고 있고, 전생에 수많은 인간과 헌터를 죽인 초거수.

그놈을 다시 볼 가능성이 커지자, 마음이 심란하다.

하지만 침울해하고 공황에 빠질 틈이 없다.

지금은 행동하고 움직일 때였다.

이길 확률이 아예 없는 것도 아니다.

'전생의 나와 지금의 나는 다르니까!'

게다가 함께 하는 많은 이들이 있었다.

일단 이번에 롱퍼드 왕국을 방문한 것은 다행이었다.

아하르 국왕은 내가 괴수와 싸울 때 병력을 보내 협력해 주겠다고 했다.

이들의 인구는 생각보다 많아 30만 명이 넘어가고, 병력도 1만 명에 달한다고 했다.

롱퍼드 왕국의 거신 군단만으로 적어도 십만 괴수를 상대할 수 있었다. 그리고 이들은 지금부터 더 적극적인 군사 훈련에 들어간다고 했다.

"거기 밧줄을 잡아! 비공정은 바람을 타야 훨씬 빨라진다고!"

"네!"

웨슬리의 호통에 헌터들이 바쁘게 움직인다.

이곳에서 만난 카타리나와 두 헌터에게 지금 타고 있는 중형 수송형 비공정을 건네기로 했다.

그리고 대수림 가까운 성채를 다니며 헌터들을 모으라고 시켰다. 괴수와 전투가 언제 벌어질지는 모르지만, 그전까진 내 영지에 살도록 집도 주고 일감도 주기로 했다.

나중에 괴수와 전투에 참여하는 것은 그들 자율에 맡기기로 했다.

이 정도 조건이면 충분하다.

어차피 정붙이고 살면 그곳에 고향이고 집이다.

그것을 지키는 것은 당연하고.

'툰다라 대마경에 가는 길에 두 제국에 들려야겠어······.'

그들도 다가올 위험에 대해 알아야 했다.

어차피 이 일은 나 혼자만의 일이 아니라 대륙, 아니 이곳 세상 전체의 일이 될 테니까.

그리고 그들의 힘도 필요했다.

그렇게 다음 계획을 고민하고, 해야 할 우선순위를 정리했다.

며칠 후.

이제 카타리나와 두 헌터가 자동인형이 없이도 비공정을 충분히 몰 수 있을 정도가 됐다.

그리고 우리가 출발했던 성채 도시에 도착했다.

"저, 저건 뭐야?"

커다란 그림자가 날개를 펄럭이며 성채 위를 날아다니고 있었다.

"젠장! 비행 괴수다!"

몸길이가 40미터에 좌우 날개를 쫙 펴면 200미터나 되는 거대 와이번 괴수였다.

"지금은 낮인데? 와이번 괴수가 무슨 일이지?"

카타리나가 대답했다.

"이곳처럼 대수림에서 가까운 성채엔 가끔 저렇게 날아다니다가 거신을 하나씩 물어가기도 합니다. 그래도 한 시간 이상은 햇볕을 버티지 못해 돌아가니, 이곳에서 조금만 기다리면 물러갈 겁니다."

"그래?"

난 마나를 눈으로 뿜어내며 거대 와이번 괴수를 쳐다봤다.

놈은 몸에 차원 마나를 가득 뿜고 있었다.

'S급 비행 괴수라······.'

잡아볼까?

위험 부담은 좀 있지만, 지금은 그걸 따질 틈은 없었다.

또 아는가? 내 마법인형으로 만들 수 있을지.

저번에 성채를 공격한 괴수들을 죽이고, 대군주를 허수아비로 만들며 운명의 실타래 스킬 레벨도 올랐기에 실타래 여유가 좀 생겼다.

만약 성공만 한다면, S급 꼭두각시 마법인형으로 만들 수 있었다.

"카타리나. 내가 놈을 유인해 처리할 테니까, 비공정을 성채 안에 착륙시켜."

"네? 하지만 위험······."

난 괴조인형을 꺼내고 그 위에 타고 와이번 괴수를 향해 날아갔다.

"끼이이아!"

괴조가 괴성을 지르며 날아가자, 성채 위를 날던 와이번 괴수가 고개를 돌렸다.

"쿠아아아아!"

놈이 먹이를 발견한 매처럼 우리를 향해 쏜살같이 날아왔다.

그리고 먹이를 공중에서 낚아채기 위해 거대한 발톱을 뻗었다.

'고도를 낮춰!'

쉐에엑!

괴조가 갑자기 급강하하자, 목표를 잃은 와이번이 날개를 펄럭여 공중에서 정지했고, 방향을 선회해 우릴 따라 내려왔다.

공중에서 방향을 선회하는 동작은 괴조보다 느렸지만, 큰 날개를 펄럭이자, 속도를 내며 순식간에 뒤에 붙었다.

놈이 이번엔 거대한 입을 벌려 괴조의 날개를 물려고 했다.

'우측으로 방향을 틀어!'

휘익! 콰직!

방향을 틀자, 놈이 허공을 깨물었다.

"쿠아아아!"

와이번 괴수가 성난 울음을 울었다.

아주 약이 바짝 오른 것 같았다.

'좋아! 이제 곧장 대수림으로 향해!'

괴조인형이 다시 방향을 틀어 대수림을 향해 날아갔다.

그러자 어느새 와이번 괴수가 다시 뒤에 붙었다.

'속도를 조금 줄여!'

놈을 덮칠 정확한 타이밍이 필요했다.

너무 일찍 대수림으로 들어가면 놈은 포기할 것이고, 너무 늦으면 괴조인형이 저 무지막지한 놈에게 잡힐 것이다.

"쿠아아!"

놈이 괴성을 지르며 옆으로 다가왔다.

공중에서 날개로 후려칠 생각인 것 같았다.

"속도를 더 내라!"

"끼이이아!"

괴조가 다시 속도를 내자, 와이번도 더 속도를 냈다.

이제 대수림이 겨우 100여 미터밖에 남지 않았을 때였다.

놈이 더욱 날개를 펄럭이며 발톱으로 괴조 인형을 공격하려 했다.

그 순간 우리와 와이번이 대수림으로 들어섰다.

'지금이다! 드라우켄!'

"크아아아아!"

쿠웅! 콰직!

몸길이 40미터의 드라우켄이 와이번 괴수의 등에 올라타 앞발로 목을 물었다.

두 S급 괴수의 몸집은 비슷했다.

다만 와이번이 날개가 있기에 더 거대해 보였을 뿐.

"쿠아아?"

갑작스러운 공격에 와이번이 깜짝 놀라 괴성을 질렀다.

와이번은 날개를 펄럭이며 공중으로 날아오르려 했다.

'대군주!'

"끄어어어!"

콱!

대군주 꼭두각시가 한 손으로 괴수의 한쪽 다리를 잡았다.

그러자 놈이 날지 못하고 계속 날개만 펄럭이고 있었다.

'킹콩인형! 너도 가라!'

킹콩인형이 드라우켄의 등에 올라타더니, 나이트급 기간트의 창을 들곤 와이번 괴수의 날개를 공격했다.

"괴조, 너도 놈을 공격한다!"

난 먼저 괴조인형에서 뛰어내렸다.

괴조인형도 방향을 틀어 놈에게 날아갔다.

와이번은 여러 괴수의 공격에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

쿠앙!

급기야 거목에 부딪히고, 땅에 떨어졌다.

"모두 일제히 공격해!"

내 괴수 마법인형이 모두 달려들었다.

드라우켄은 여전히 등에 매달려 목을 물고 있었고, 대군주는 벌떡 일어서 놈의 옆구리에 검을 찔렀다.

그런데도 놈은 필사적으로 날개와 발톱을 휘두르고, 몸을 발버둥 치며 도망치려 했다.

'퀸급 기간트를 꺼내!'

토우 인형으로 퀸급 오리지널 기간트를 꺼냈다.

난 기간트에 타고 거대한 대검을 들고 달려들었다.

기이이잉! 쿵쿵쿵!

내가 달려오자, 위기를 느낀 와이번이 공중으로 날아오르려 했다.

하지만 주변에 거목들 때문에 날개를 제대로 펼 수 없었다.

[모두 꽉 잡아라!]

그때 킹콩인형이 두 손으로 와이번의 눈을 가렸다.

난 시야가 가린 놈의 심장을 향해 검을 찔렀다.

쿠쿠쿵! 푸욱!

"쿠아아아아악!"

내 대검이 몸에 박혔다.

[운명의 실타래를 연결합니다.]

하지만 거기서 멈추진 않았다.

계속 검을 찔러넣었고, 대검은 와이번 괴수의 가슴을 뚫고 등 뒤에 있는 드라우켄의 몸까지 박혔다.

"쿠에에엑!"

쿵! 쿵!

놈은 괴성을 지르며 몸부림쳤다.

드라우켄이 문 목에선 연신 피가 흐르고 있었고, 대군주는 다시 한번 몸을 찔렀다.

하지만 그래도 놈은 죽진 않았다.

[드라우켄 마무리를 지어!]

콱! 콰직!

드라우켄이 목을 계속 물고 흔들었다.

그러자 목이 반쯤 잘리고, 놈의 몸이 축 늘어졌다.

드디어 운명의 실이 검은색으로 물들었다.

'겨우 잡았네!'

주먹을 불끈 쥐었다.

[기사회생(lv.max) 스킬을 사용합니다.]

기사회생에 실패해도 어쩔 수 없다.

와이번은 괴수고 이건 운명의 실타래니까.

[와이번(lv.1) 허수아비 마법인형을 만들었습니다.]

'오! 좋았어!'

그래! 최소한 이 정도 운은 따라줘야지!

살짝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드라우켄과 킹콩인형, 대군주, 와이번 허수아비까지 일단 인형의 집에 넣었다.

그리고 난 곧바로 괴조인형을 타고 성채로 향했다.

***

괴조가 성채 안에 내려앉자, 헌터들이 달려왔다.

"타일러 대공님, 어떻게 됐습니까?"

"다치신 데는 없습니까?"

"그 괴수는 잡았습니까?"

내가 괴수를 부리는 것을 보고, 괴수를 조련하는 능력이 있다고 알고 있는 헌터들이 궁금한 표정을 지었다.

난 가볍게 웃어 보였다.

지금 인형의 집에서 와이번에 운명의 실을 연결했고, 꼭두각시로 만들어 훈련시키고 있었다.

"일단 잡는 건 성공했다. 다음에 직접 보여주지."

"오! 세상에! 이젠 S급 괴수들을 부대로 끌고 다니시겠네요!"

"와아! 대단하시다."

"그럼 시간이 없으니, 난 먼저 돌아가지. 헌터들을 최대한 많이 모아봐."

"넵! 맡겨주십시오."

순간 비공정에 달랑 헌터 셋만 남기고 가려니 좀 위험해 보였다.

그래서 자동인형 셋과 룩급 기간트 3기를 꺼냈다.

"여기 기사들과 기간트를 남겨둘 테니까 위험하면 도움을 받고."

"오오! 감사합니다."

"사실 우리끼리 움직이기 좀 불안하긴 했습니다."

이제야 마음이 조금 편해졌다.

난 거신 성채 동굴 내부에 최고급 마석으로 수인족 차원으로 가는 마법진을 그렸다.

마법진이 너무 클 필요는 없었다.

대군주와 나만 이동하면 되니까.

"타일러 대공님, 다녀오십시오."

"꼭 돌아오셔야 합니다."

"그럼 나중에 보지."

대군주와 마법진 위에 서고, 대군주가 마법진에 차원 마나를 뿜어내자 차원 이동 마법진이 발동했다.

***

어두워졌다가 점점 세상이 밝아졌다.

눈을 뜨자, 대수림과 사막이 동시에 보였다.

다행히 대수림 안쪽은 아니었다.

난 괴조인형을 타고 곧장 사막을 건너 테오아칸으로 향했다.

난 테오아칸의 첫 번째 성벽 밖에 내렸다.

전과 다르게 성문도 완전히 수리됐고, 해자와 성벽 외부도 모두 깔끔히 치워져 있었다.

혹시 괴수들이 다시 공격할 수도 있었기에 성벽 방비를 살핀 것이다.

그리고 성문을 통해 테오아칸으로 들어갔다.

에테나와 알베르토가 가장 먼저 다가왔다.

"타일러님!"

"타일러 대공 전하, 어서 오십시오."

알베르토는 내게 고개를 숙였고, 에테나는 환하게 미소를 지었다.

그래도 에테나의 미소를 보자, 기분이 좀 좋아졌다.

"무슨 일은 없지?"

"네. 라이진 수왕과 수인족 전사들은 우리 기사들과 아직 사막에서 남은 괴수를 처리하고 있고, 거신들은 괴수 사냥을 하러 대수림으로 향했습니다."

주변을 둘러봤다.

"응? 마르틴 전하와 아리칸 기사들이 안 보이는데?"

"아리칸 왕국에서 연락을 받고, 크루세이더 기사단과 며칠 전에 급하게 돌아갔습니다."

"그래?"

아리칸에 급한 일이 뭐가 있지?

의문이었다.

"알베르토. 난 에테나와 할 일이 있으니까, 마키아스와 기사단이 돌아오면 대수림에서 사냥해 괴수 부산물을 난민 기지로 계속 보내라고 해줘. 그리고 라이진 수왕이 돌아오거든 최대한 마석을 많이 확보해 달라고 말하고."

"네! 알겠습니다. 주군."

그때 익숙한 얼굴이 보였다.

"뭐지? 아리엘 6황녀가 왜 여기에 있지?"

게다가 그녀는 수인족 아이들과 놀고 있었다.

알베르토가 고개를 흔들었다.

"갑자기 기사들과 찾아와선 저하가 어디 계신지 묻더군요. 저도 잘 모른다고 했더니, 저러고 있습니다. 아리엘 황녀님을 모셔 올까요?"

"아니. 나중에 보지."

어지간히 케인 황제도 할 일이 없다.

저런다고 내가 아리엘 황녀와 결혼할 것도 아닌데······.

황제를 아비로 둔 아리엘 황녀의 처지가 딱할 뿐이었다.

"에테나, 가자."

"네!"

나와 에테나는 괴조 인형을 타고 관문을 통과해 아리칸의 수로도 향했다.

[아리칸 왕국 수도 엔실루드]

괴조가 성안에 내리자, 마르틴 국왕과 기사들이 직접 마중을 나왔다.

"어서 오시오. 타일러 대공."

"아리칸 왕국에 무슨 급한 일이 생긴 겁니까?"

마르틴 국왕이 고개를 흔들었다.

"아베르크 제국이 탈로스 왕국을 점령했소."

"예?"

순간 내가 잘못 들은 줄 알았다.

"그뿐만 아니라 살루스 왕국과 윈데르 왕국을 공격해 수도를 파괴하고 왕족과 귀족들을 모두 숙청했소."

씁쓸했다.

"이제 비공정이 생기니 타국을 공격하기도 쉬워졌군요."

"살루스와 윈데르는 아베르크 제국을 공격했기에 그럴 수도 있다고 생각이 들지만, 탈로스 왕국을 점령한 것은 아무래도 우리를 노리는 포석이라고 생각되오. 그래서 지금 대책을 논의하고 있었소."

나도 고개를 끄덕였다.

마르틴 국왕의 말처럼 저건 아리칸 공국을 노리는 것 같았다.

"제가 케인 황제를 만나봐야겠군요."

"나도 함께 가겠소."

"아닙니다. 이번엔 혼자 가겠습니다. 가서 확실한 저들의 의도를 확인하고, 경고를 하고 오겠습니다."

"경고요?"

마르틴 국왕이 눈을 똥그랗게 떴다.

"설마, 아베르크 황궁을 공격하겠다는 말이오?"

197. 메제트의 탑(전격).

197. 메제트의 탑(전격).

난 피식 웃었다.

"그건 아닙니다. 사실 지금 신경 쓸 것은 따로 있습니다. 머지않아 차원 균열이 장벽 안쪽에 생길 겁니다."

"······?"

"그리고 우리가 수인족 차원에서 싸웠던 괴수들이 몰려나올 겁니다. 물론 규모도 더 클 거고요."

마르틴 국왕의 표정이 심각해졌다.

그리고 옆에 있던 기사들의 표정도 어두워졌다.

기사들도 수인족 차원에서 끝없이 몰려오는 괴수를 상대했기에 그 위험성을 잘 알고 있었다.

다들 내 작전이 통했기에 그래도 큰 피해 없이 막을 수 있었다는 것도 알고 있었다.

그리고 차원 균열이 어디에 생길지도 모르는 상태였기에 더 심각했다.

"정말 확실한 것이오? 전에 내게 말했을 때는 확실하지 않다고 하지 않았소."

"유감스럽게도 이번엔 확실합니다."

"허허! 이거 큰일이군."

"게다가 언제 어떻게 차원 균열이 생길지 알 수 없으니, 지금부터라도 괴수를 막을 준비를 해야 합니다. 지금 다른 것에 신경 쓸 여력이 없습니다."

"무슨 말인지 알겠소. 지금 당장 방비를 해야겠소."

"전 일단 아베르크와 가디언 제국에도 알리고 저희도 괴수를 막을 준비를 해야겠습니다."

"아베르크에 가거든 조심하시오. 그놈들은 뒤로 무슨 짓을 벌일지 모르는 놈들이오."

"그건 저도 알고 있습니다."

마르틴 국왕은 곧장 기사들과 회의를 하러 갔고, 난 아베르크 제국으로 날아갔다.

***

[아베르크 수도 에르가드]

내가 수도 상공에 나타나자마자, 사방에서 비공정이 달려왔다.

날 공격하거나 그런 건 아니지만, 매우 경계하고 있다는 것이 느껴졌다.

난 황궁 안에 괴조인형을 착륙시켰다.

그러자 근위 기사단의 기간트들이 우르르 몰려왔다.

그리고 그란츠 기사단장의 퀸급 오리지널 기간트가 다가왔다.

[타일러 대공, 여긴 무슨 일이십니까?]

"황제 폐하를 뵈러 왔소."

[지금 폐하께선 황궁에 계시지 않습니다.]

"뭐요?"

황제가 황궁에 없어?

왜 거짓말을 하는 거지?

왠지 나를 피하는 것 같다.

내가 죽이기라도 할까 무서운가?

"그럼 윌리엄 원수나 추밀원장이 어디 있는지 아시오?"

[글쎄요.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다들 날 피한단 말이지······.

난 괴조인형을 타고 추밀원으로 이동했다.

그리고 찰스 그레빌 추밀원장을 만났다.

"여긴 무슨 일이십니까. 타일러 전하."

"황제 폐하를 알현하러 갔는데, 황궁에 없다고 하시더군요."

"하하! 이해하십시오."

찰스 추밀원장이 웃었다.

"프란 황태자의 반란 사건 이후로 황제 폐하는 외부인을 만나지 않으십니다."

"제가 외부인입니까?"

"응? 모르셨습니까?"

"무슨?"

난 영문 모를 표정을 지었다.

"황제께서 발레리온을 왕국으로 선포하시고, 타일러 전하께 발레리온의 국왕 자리를 내리셨습니다. 그러니 좁은 의미로 이제 외부인이십니다."

"그래요?"

이건 무슨 상황이지?

미운 놈 떡 하나 더 주는 건가?

아니면 아리칸을 공격하는데, 내가 관여하지 못하게 미리 수작을 부리는 건가?

순간 그럴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아!"

나도 모르게 한숨이 나왔다.

지금이 어떤 때인데······.

찰스 추밀원장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왜 한숨을 쉬십니까? 이제 발레리온이 독립 왕국이 되었는데 축하를 하셔야죠."

"지금 이럴 때가 아닙니다. 곧 장벽 너머에 차원 균열이 생길 겁니다."

난 앞으로 생길 일을 찰스 추밀원장에게 말해줬다.

"그, 그게 사실입니까?"

"믿고 안 믿고는 자유입니다. 하지만 제대로 방비하지 않는다면, 제국이 휩쓸리는 정도로 끝나지 않을 겁니다. 온 세상이 괴수들에게 끝장날 겁니다. 그때 땅을 치고 후회해도 늦습니다. 그러니 윌리엄 원수께 당장 알리는 것이 좋을 겁니다."

난 자리에서 일어났다.

"어딜 가십니까. 윌리엄 원수께선 황궁에 있습니다. 당장 함께 가시죠."

"난 가디언 제국으로 가야 합니다."

"네? 그곳에도 알려주시려고요?"

"제 말을 제대로 안 들으셨군요. 이건 아베르크 제국만의 문제가 아닙니다. 차원 균열은 하나가 아니고 여러 개 생길 겁니다. 모두 힘을 합하지 않는다면, 절대 막을 수 없습니다. 그리고 탈로스 왕국을 아베르크가 점령했으니, 그곳도 책임져야 할 겁니다."

난 자리를 박차고 나왔다.

필요한 것은 다 알려줬다.

차원 균열은 최소 6개 이상.

어쩌면 지구에 생긴 게이트처럼 작은 것부터 생기고, 점점 큰 차원 균열이 생길 수도 있었다.

"이야기는 잘 끝나셨어요?"

밖으로 나오자 에테나가 물었다.

"일단 경고는 했으니, 내 말을 믿는다면 저들도 준비하겠지."

윌리엄이나 시안이라면 그래도 내 의도를 알 것이다.

"그럼 이제 가디언 제국으로 가나요?"

난 고개를 끄덕였다.

***

세계 일주를 하는 기분이었다.

가디언 제국 역시 내가 괴조인형을 타고 나타나자 비공정이 사방에서 몰려왔다.

일부러 산맥 쪽으로 이동했음에도 그들은 날 빨리 발견했다.

하지만 이들도 날 공격하지는 않았다.

날 공격하는 게 무슨 의미인지 잘 알고 있었으니까.

[가디언 제국 수도 파트리아]

황궁에 도착하고, 잠시 기다리자 루이스가 나타났다.

그는 더는 황자의 신분이 아니었다.

얼마 전 황제가 죽고, 그가 새로운 황제로 등극했으니까.

"루이스 폐하를 뵈옵니다."

"어서 오시오. 타일러 국왕."

"벌써 제 소식을 들으셨군요."

"물론이요. 우리에겐 아베르크의 정보보다 발레리온 왕국의 정보가 더 중요하니까."

루이스는 날 보며 어색한 표정을 지었다.

아마도 안드레아스 때문일 것이다.

한 달 전 그가 병으로 죽었다는 소식을 찰스 추밀원장에게 들었다.

십중팔구는 병이 아니라 윌리엄에게 제거당했을 것이다.

"폐하, 기사들을 물리고 잠시 걷는 게 어떻겠습니까?"

"그럽시다. 어차피 저들이 있어도 타일러 국왕을 막을 순 없을 테니까요."

루이스 황제와 나란히 걸었다.

"아베르크 제국이 탈로스를 장악했다고 하던데, 그것 때문에 오셨소?"

"아닙니다. 경고를 하러 왔습니다."

루이스가 깜짝 놀란 표정을 지었다.

"무슨 말이오? 우리가 약속을 안 지킨 것은 없는데?"

"그런 경고가 아닙니다. 머지않아 대수림에 있는 차원 균열이 장벽 너머 이곳에도 생길 겁니다."

"뭐요?"

"그리고 그 안에서 괴수가 쏟아져 나올 거고요."

루이스가 심각한 표정을 지었다.

"안드레아스 경이 엘프 차원에서 봤다던 그 수많은 괴수를 말하는 것이오?"

"네. 그것보다 더하면 더하지, 숫자가 적진 않을 겁니다."

루이스가 놀란 표정으로 걸음을 멈췄다.

"다른 차원을 멸망시켰다는 괴수가 장벽 너머로 온다니!"

"그러니 당장 놈들의 공격을 막을 준비를 해야 합니다. 전 그걸 경고하고자 왔습니다."

"다른 왕국에도 알려야 하는 것이 아니오?"

"아리칸과 아베르크 제국엔 알렸습니다. 믿고 안 믿고는 그들 자유지만 준비하는 곳은 피해가 덜하겠지요."

루이스 황제가 입술을 깨물곤 물었다.

"솔직히 말해 주시오. 우리가 막을 가능성이 있겠소?"

"최선을 다해야지요. 그리고 세상이 무너져도 솟아날 구멍은 있다고 했습니다. 막을 방법은 분명 있습니다. 그러니 최선을 다해 제국을 방어하세요. 제가 드릴 말은 그것뿐입니다."

"휴우! 알겠소."

다행히 루이스 황제하고는 말이 잘 통했다.

"그리고 비행 괴수도 있으니, 공중도 대비하고, 비공정의 무장도 더 늘려야 할 겁니다."

"경고를 해주어 고맙소."

루이스는 대답과 함께 고개를 끄덕였다.

어차피 자국의 방비를 늘리면 더 좋은 것이 아니겠나.

언제 다시 아베르크 제국과 싸울지도 모르니까.

"혹시, 드로리안 왕국과 친분이 있으십니까?"

"물론이오. 그곳은 우리 마장기를 수입해 대수림과 툰다라 대마경에서 괴수를 사냥하고 있소."

"그럼 드로리안 왕국은 폐하께서 경고를 해 주십시오. 전 괴수를 막기 위해 할 일이 많아서요."

"알겠소. 나와 가디언 제국은 최선을 다해 막겠소."

"이야기가 잘 통해서 다행입니다. 그럼."

내가 몸을 돌려 괴조인형으로 걸어갈 때였다.

"그때 무슨 수를 쓰든 타일러 경을 붙잡았어야 했는데······."

루이스 황제의 후회의 한 마디가 들려왔다.

우리가 함께 손을 잡고, 가디언 전진 기지에서 반란군을 무찔렀을 때를 말하는 것이다.

그때 내게 영지를 줬다면, 지금쯤 가디언 제국에 있었을 수도.

이제 와 의미 없는 말이었다.

시간은 되돌릴 수 없으니까.

난 못 들은 척 괴조인형으로 향했다.

그리고 그 길로 드로리안 왕국의 장벽 관문으로 향했다.

***

[메제트의 탑(전격)]

늦은 밤 에테나와 둘이 몰래 드로리안의 관문 옆에 있는 메제트의 탑을 올랐다.

지금 난 비숍급 오리지널 기간트 레오파드에 올라탔다.

레오파드는 아리칸 왕국의 오리지널 기간트를 개조해 주고 대가로 받은 오리지널 마장기기였다.

이 레오파드를 기간트로 개조하면서 안에 전격 마법을 발견했다.

[라이트닝 스파크!]

아주 강력한 위력은 아니었지만, 상대의 해치에 손을 대고 마법을 발동시키면 기간트는 멀쩡해도 안에 타고 있는 기사는 기절하거나 죽을 수도 있었다.

이 라이트닝 스파크 마법은 낮은 단계의 마법이라고 했으니, 이 전격의 탑에는 더 강력한 전격 마법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일단 시간이 없으니, 모두 챙겨!"

[네! 주군!]

에테나와 기간트들이 주변을 다니며 마법서부터 챙기기 시작했다.

이곳 역시 아직 인간에게 발견되지 않았기에 전격 마법책이 그대로 남아 있었다.

[타일러님! 거신 갑옷을 발견했어요.]

오! 이곳에도 있었네.

그것도 13미터 퀸급 갑옷이었다!

난 내부를 살폈다.

마법진이 무려 3개나 새겨져 있었다.

[라이트닝 스파크]

[콜 라이트닝]

[기가 라이데인]

약한 마법부터 광역 공격이 가능한 고급 전격 마법까지 새겨져 있었다. 아예 이걸 암 드로운에게 줘도 될 것 같았다.

그리고 일단 전격 마법이 괴수에게 어느 정도 통할지 몰랐기에 실험을 해봐야 했다.

'일단 이건 챙기고.'

전격 마법서와 퀸급 전격 갑옷도 챙겼다.

이제 내 인형의 집엔 화염과 얼음, 암흑, 전격까지 4가지 마법서가 들어 있었다.

거신들의 마법 유산을 내가 고스란히 이어받고 있었다.

그리고 전격 마석을 만드는 마법진 근처에서 전격 속성 마석도 몇 개 찾았다.

다행히 전격 마석이 부족했는데, 쉽게 얻었다.

난 퀸급 오리지널 기간트 카디스를 꺼냈다.

카디스엔 3가지 화염 마법이 새겨져 있었고, 비어 있는 왼쪽 가슴에 전격 마석으로 콜 라이트닝 마법진을 새겼다.

이젠 빙결의 오브 주재료인 다바르의 심장을 구하러 갈 차례였다. 그리고 오늘 새긴 전격 마법의 위력도 시험해 볼 생각이었다.

냉기 브레스를 쏘는 S급 괴수 다바르라면 위력을 시험하기 제격이었다.

***

[툰다라 대마경]

드로리안 왕국 북동쪽에 산맥이 병풍처럼 펼쳐져 있다.

이 산맥을 넘으면 끝없이 펼쳐진 얼음의 땅이자 괴수가 서식하는 툰다라 대마경이 있었다.

눈에 보이는 것은 온통 하얀 세상.

이런 곳에 생명체가 산다는 것이 신기했다.

치직!

"에테나, 그쪽은 어때?"

[아직 아무것도 안 보여요. 그것보다 너무 추워요.]

"내 기사들은 추위를 타지 않으니까 교대하고 안으로 들어가!"

[아니에요. 그래도 제 눈이 제일 좋으니까, 더 살펴볼게요.]

쓸데없는 고집은······.

그래도 그게 날 위해서 하는 일이었기에 피식 미소가 지어졌다. 귀엽단 말이야.

우린 비공정 5척으로 넓게 펼쳐져 얼음의 땅을 수색하고 있었다.

다바르는 거대 도마뱀 괴수임에도 등에 흰색 털이 뒤덮여 있었기에 더 찾기 힘들었다.

게다가 이곳은 산도 있고, 골짜기와 얼어붙은 호수, 얼음 절벽까지 있었기에 몸을 숨기기에 너무 좋았다.

거신들은 대체 어떻게 이곳에서 다바르를 잡았을까?

나처럼 하늘을 날지도 못했을 텐데······.

드로리안 왕국의 사냥팀도 툰다라 대마경 안으론 들어가지 않았다.

그저 입구에서 마장기로 대마경에서 나오는 괴수를 잡았을 뿐이었다.

내가 봐도 이곳에 들어가서 괴수를 잡는 것보다 장벽 너머 북쪽의 대수림에서 괴수를 잡는 게 훨씬 손쉬워 보였다.

'이거 괴수를 잡는 것보다 찾는 게 더 힘드네······.'

툰다라 대마경은 너무 넓었고, 온통 흰색에 시도 때도 없이 눈발이 날리기에 이 백색 괴수를 찾기가 너무 힘들었다.

하지만 다바르는 반드시 찾아야 했다.

레기우스와 불카누스만 없애도 카르마탄의 전력 1/4은 없애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선 빙결의 오브가 더 필요했다.

"주군! 저기 보십시오!"

설원에 붉은 피가 가득했다.

거대한 흰색 괴수가 방금 사냥한 백곰 괴수의 시체를 파먹고 있었다.

'찾았다!'

이제 체격은 드라우켄만큼 크고, 사정거리가 500미터나 되는 냉기 브레스를 쏘는 매우 위험한 놈을 사냥할 일만 남았다.

다바르도 마법인형으로 만들면 큰 전력이 될 텐데······.

저런 마법인형이라면, 천금을 줘도 아깝지 않아 보였다.

마법인형으로 만들면 심장은 놔둬야 하나?

고개를 흔들었다.

잡지도 못했는데 설레발은······.

"자! 모두 모여! 작전을 짜보자!"

198. S급 괴수 다바르.

198. S급 괴수 다바르.

S급 괴수의 냉기 브레스에 맞으면 기간트는 어떻게 될까?

그리고 기간트에 탄 마법인형은?

괴수인형은 브레스에 맞고도 인형의 집에 넣으면 회복할 수 있을까?

놈의 브레스 범위는 어디까지 일까?

사냥하기 전 테스트는 필수.

몇 가지만 잘 확인해도 사냥은 쉬워진다.

'그래도 다행이네. 내 운명의 실타래 범위가 놈의 냉기 브레스 사정거리보다 넓으니까.'

폰급 기간트에 나방 괴수 허수아비 하나를 넣었다.

전에 엘프 차원에서 괴수를 유인할 때, 나방 괴수의 공격을 받았다. 그때 수많은 나방 괴수를 찔러 죽이고 허수아비 마법인형을 30마리 정도 만들어 놓았다.

다 이럴 때 쓰기 위함이었다.

난 폰급 기간트를 놈의 브레스 사정거리 끝에 조심히 내려놓았다.

그리고 그 주변에 괴수 허수아비 마법인형을 배치해 놓았다.

다바르는 한창 맛있게 식사 중이라 예민할 것이다.

그러니 작은 소리에도 반응하지 않을까? 얼음 마법사인 알리사 엘가의 말로는 놈은 조금만 신경을 거슬려도 얼음 브레스를 쓰니까 조심하라고 했다.

난 표범인형을 꺼내 기간트 뒤쪽으로 조금 떨어트려서 포효하게 했다.

"크아아앙!"

그러자 머리를 처박고 식사를 하던 놈이 고개를 휙 돌렸다.

그리고 폰급 기간트를 보며 입을 벌렸다.

화아아아아!

쩌쩌쩌쩌쩍!

2초!

정확히 2초 만에 500미터를 날아와 기간트를 모두 얼려버렸다.

무서운 속도와 위력이었다.

그럼, 안에 타고 있던 허수아비는?

'이런 운명의 실이 끊어졌네······.'

연결이 끊겼다는 것은 마법인형에겐 죽음을 의미한다.

그러니까 냉기 브레스에 맞은 마법인형은 곧바로 죽을 수 있다는 말이었다.

냉기를 쏜 다바르는 쿨하게 다시 자신이 먹고 있는 먹이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난 다시 표범인형을 포효하게 했다.

"크아아앙!"

놈이 다시 고개를 돌렸다.

그런데 이번엔 바로 브레스를 쏘지 않았다.

그리고 다바르는 잠시 후에 다시 폰급 기간트를 향해 브레스를 쏘았다.

화아아아! 쩌쩌쩍!

'한번 브레스를 쏘고 다시 냉기 브레스를 쏘기까지 10초쯤 걸리네······.'

길지도 그렇다고 짧은 시간도 아니었다.

표범인형을 인형의 집에 넣었다.

놈의 브레스 딜레이 시간을 알았다.

이번엔 놈의 냉기 브레스의 위력을 조심스럽게 확인해 봤다.

일단 바닥에 원뿔형으로 길게 얼음이 얼어버린 흔적이 있었다.

'최대 550미터까지 살상력이 미치네!'

그리고 넓이는 500미터 지점에서 100미터까지 퍼진다.

20미터 간격으로 배치해 놓은 나방 괴수 허수아비와 연결이 끊어진 것을 계산해서 나온 수치였다.

'쉽지 않겠네.'

그 말은 괴수인형도 저 브레스에 직격으로 맞는다면, 운명의 실이 모두 끊어질 수 있다는 말이었다.

단숨에 놈의 숨통을 끊지 않으면 역으로 당할 수도 있겠어.

일단 내 운명의 실타래 범위가 700미터였기에 놈의 근처에 접근해 괴수인형을 한 번에 인형의 집에서 꺼내 공격할 순 있었다.

하지만 냉기 브레스를 쏘는 입을 막지 못하면 애써 키운 괴수인형이 사라질 수도 있었기에 고민이었다.

난 다시 괴조 인형을 타고 비공정이 있는 하늘로 올라갔다.

'쉽진 않겠어. 놈의 입을 봉쇄할만한 게 없을까?'

내 고민을 알고 있는 에테나도 고개를 갸웃거렸다.

역시 와이번 괴수를 잡았을 때처럼 한꺼번에 달려드는 방법밖에 없나?

힘은 들겠지만, 엄폐물도 없는 지역이라 그 방법밖에 없었다.

그래서 에테나에게 내 계획을 말해줬다.

"그럼, 우리가 비공정에서 소리를 내서 저놈의 주의력을 분산시킬게요."

"그건 괜찮군. 대신 조심해야 해! 거리가 너무 가까우면 냉기 브레스에 당할 수 있으니까."

"네!"

일단 에테나의 의견대로 작은 소리에도 민감하게 반응하는 놈이었기에 비공정으로 신경을 긁어 주의력을 분산하기로 했다.

그리고 난 지상으로 내려가 놈의 600미터 지점에 잠복했다.

놈의 식사가 거의 끝나갔기에 최대한 서둘러 끝내야 했다.

위이이잉!

탱탱탱탱!

비공정 5척이 다바르가 있는 상공에서 돌면서 시끄러운 소리를 냈다.

그러자 다바르가 먹이를 먹다 말고, 으르렁거리며 하늘을 쳐다봤다.

거리가 가까웠다면, 곧바로 냉기 브레스를 쐈을 것이다.

그러나 놈은 자신의 사정거리를 잘 알고 있는지, 브레스를 쏘진 않았다.

'일단 나도 오리지널 퀸급 기간트에 올라타고.'

600미터 지점에서 달려들 준비를 했다.

무조건 뒤에서 접근해야 했다.

잘못해 브레스에 맞으면 내가 죽으니까.

아! 혹시 몰라 몸을 교체할 수 있는 토우인형도 준비했다.

완벽한 준비가 끝났으니, 공격할 차례였다.

다바르가 고기를 향해 시선을 돌릴 때였다.

'응?'

그때 에테나가 탄 비공정에서 뭔가 떨어졌다.

반짝이는 것을 보니, 지름이 1미터쯤 되는 큰 얼음 덩어리였다.

쿵!

얼음 덩어리는 다바르의 머리에 떨어졌다.

'어라? 에테나가 벌써 얼음 마법을 저렇게 쓸 수 있었나?'

옛날에 비공정에서 알리사가 에테나에게 얼음 마법에 소질이 있다고 한 것은 기억나는데, 언제 저렇게까지 배웠지?

놀라울 따름이었다.

얼음 마법이 좋은 것은 마나가 끊겨도 얼음은 남아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위에서 떨어트리면 지금처럼 큰 충격을 줄 수 있다.

'근데 멀쩡하네······.'

다바르가 얼음덩이에 맞았지만, 그냥 화가 많이 난 상태였다.

그때 비공정이 고도를 조금 더 낮췄다.

그리고 다시 얼음 덩어리가 위에서 떨어졌다.

몇 개의 얼음 덩어리가 떨어지자, 가만히 위를 보고 있던 다바르가 참지 못하고 입을 벌렸다.

"쿠아아아아!"

화아아아아!

냉기 브레스가 하늘 위로 뿜어졌다.

'아! 지금이다! 모두 공격!'

에테나가 시선을 끌어줬다.

드라우켄이 먼저 다바르의 등에 올라타 다바르의 머리를 공격했다.

덩치가 비슷했기에 힘에선 밀리지 않았다.

그와 동시에 대군주가 옆에서 나타나 다짜고짜 앞발을 향해 검을 찔렀다.

푸욱!

"쿠아아악!"

놈이 발광했다.

킹콩인형이 꼬리에 매달렸고, 괴조 인형은 날카로운 발톱으로 눈을 공격했다.

여러 번 합을 맞추고 SS급 괴수까지 잡은 완벽한 협공이 다시 발휘됐다.

그리고 난 퀸급 기간트로 부지런히 달리고 있었다.

기이이잉! 쿵쿵쿵!

'조금만 버텨라!'

와이번(lv.5) 괴수인형이 조금만 더 레벨이 높았다면 써먹었을 텐데, 아직은 S급 괴수를 공격하기엔 무리였기에 우리끼리 해내야 했다.

"쿠아아아!"

10초가 됐다.

놈이 고개를 돌려 검으로 한쪽 다리를 찔러 제압한 대군주를 향해 입을 벌렸다.

화아아! 쩌쩍!

'인형의 집으로!'

쩌쩌쩍!

다행히 간발의 차로 대군주를 인형의 집에 넣었다.

드라우켄이 머리를 앞발로 후려치며 공격했다.

퍽! 퍽!

다바르는 자신의 등으론 브레스를 쏘지 못했다.

기이잉! 쿵! 쿵!

'다들 고생했다.'

난 다바르에 접근했다.

그리고 왼쪽 가슴에 손바닥을 댔다.

푸른빛의 마법진이 손바닥 위에서 번쩍였다.

난 놈의 몸통을 향해 손바닥을 댔다.

[운명의 실타래를 연결합니다.]

[콜 라이트닝!]

번쩍!

파지지지지지직!

부르르르르르르!

다바르의 몸에서 연기가 피어오르고 감전된 것처럼 몸을 부르르 떨었다.

그리고 드라우켄과 꼬리를 잡고 있던 킹콩인형도 동시에 몸을 부르르 떨었다.

전격 마법이 그치자, 괴수의 몸이 빳빳이 굳었다.

놈은 죽지 않았다. 잠시 쇼크 상태일 뿐.

그러니 서둘러야 했다.

스릉!

등에서 대검을 뽑았다.

그리고 놈의 등에 올라타, 목을 향해 대검을 찔렀다.

푸우우욱!

놈이 비명을 지르지도 못하고, 몸을 파닥거렸다.

한 번 더!

푸우욱!

"쿠엑!"

쿠웅! 놈의 몸이 축 늘어지고 운명의 실이 검은색으로 변했다.

됐다!

[기사회생(lv.max) 스킬을 사용했습니다.]

[다바르(lv.1) 허수아비를 만들었습니다.]

'응? 또 성공했다고?'

대체 무슨 일이지?

신이 정말 날 밀어주고 있는 기분이었다.

문제는 허수아비는 넘치는데, 운명의 실이 부족하다는 것이었다.

'그냥 심장을 꺼낼까?'

아니다.

일단 가지고 있는 것이 좋을 것 같았다.

허수아비 상태로 내 인형의 집에 있으면 심장이 상할 일은 없으니까. 그리고 운명의 실타래 레벨이 오르면 꼭두각시로 만들 수도 있으니까.

그사이 에테나가 탄 비공정이 내려왔다.

"와! 성공했네요."

"에테나의 도움이 컸어. 그런데 얼음 마법은 언제 배운 거야?"

"알라사에게 틈날 때마다 배웠어요."

"틈날 때마다 배운 게 그 정도라니······."

에테나는 정말 능력자였다.

상태창이 없으면서도 모든 이계 언어를 배워서 자유자재로 쓸 수 있고, 마나도 늘어 룩급 오리지널 기간트에도 탈 수 있었다.

거기에 신체 능력도 뛰어났고, 활은 기본이고, 이젠 거신의 얼음 마법까지 쓸 수 있었다.

게다가 엘프라 워낙에 미인이기도 했고, 거기에 세계수 열매까지 먹어 엘프 중에서도 더는 따라갈 엘프가 없을 정도였다.

유일하게 하이엘프인 시노우엘이 비슷한 정도였다.

누구라도 반하겠어······.

그렇게 첫 번째 사냥은 대성공했다.

두 번째, 세 번째, 네 번째, 다섯 번째, 여섯 번째 다바르를 사냥했다.

첫 끗발이 개 끗발이었기에 그다음엔 계속 기사회생 스킬에 실패했다.

'역시 신은 없는 거였어!'

하지만 지난 두 달 동안 다바르의 심장 5개를 얻었다.

그리고 S급 괴수를 연속으로 다섯 마리나 더 죽이자, 운명의 실타래 스킬 레벨이 올라 드디어 첫 번째 다바르 허수아비를 꼭두각시로 만들었다.

이제 정말 S급 괴수인형만으로도 군단이라 부를 수 있을 정도였다.

그리고 다바르의 심장 5개면, 최소 빙결의 오브 5개를 만들 수 있었다.

그럼 내가 가진 2개를 더해 총 7개가 된다.

일주일을 더 찾아 헤맸지만, 또 다른 다바르 괴수를 찾기 힘들었기에, 우린 곧장 얼음의 탑이 있는 아리칸 왕국으로 향했다.

메제트의 탑(얼음)에서 빙결의 오브를 제작했다.

그런데 7개가 아니라, 무려 12개가 됐다.

심장 하나로 제작할 수 있는 오브가 1개가 아니라 2개였다.

이 정도면 레기우스와 불카누스를 잡을 수 있지 않을까?

자신감이 생겼다.

그리고 그 두 놈만 잡는다면, 레기우스가 끌고 다니는 불의 괴수 군단도 무용지물이 될 것이다.

지금 불의 괴수 군단이 있는 곳은 오크 차원!

마지막에 오크를 구할 때 놈들은 그곳에 있었다.

그러니 그곳에 레기우스와 불카누스도 그곳에 있을 거다.

***

[발레리온 왕국]

왕국으로 승격되고 처음으로 수도인 발레리온에 도착했다.

비공정에서 내려 영주관으로 향했다.

아직 왕궁은 영주관 뒤쪽에 짓고 있다고 했다.

난 필요 없다고 했지만, 왕국에 왕궁이 없으면 절대 안 된다나······.

어쩔 수 없이 허락했다.

"타일러 빈스 국왕 폐하 만세!"

"타일러 국왕 폐하 만세!"

"와아아아아!"

이렇게 많은 사람이 나를 보고 위해 오다니, 좀 쑥스럽다.

거리에 수많은 인파가 모였다.

내가 왔다고 누가 소문이라도 냈나보다.

그리고 사람들 사이에 드워프와 엘프도 꽤 보였다.

이계 난민들이 함께 있었지만, 이젠 익숙해졌는지 위화감은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그렇게 열열한 환영식을 받고 영주관으로 들어갔다.

미리 연락해 모이라고 한 지휘관들이 영주관 집무실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타일러 국왕 전하를 뵙습니다!"

"타일러 국왕 전하를 뵙습니다!"

대신과 지휘관, 기사들, 이계 대표들까지 모두 내게 한쪽 무릎을 끓고, 고개를 숙였다.

오크들만 가운뎃손가락을 펼치며 나를 맞이했다.

"다들 일어나게."

집무실이 꽉 찼다.

이래서 왕궁이 필요하고 알현실이 필요한 모양이었다.

"타일러 전하, 보고할 것이 산더미처럼 많이 있습니다."

프레디가 작정하고 앞으로 나섰다.

"아닙니다! 아베르크 제국이 움직였습니다. 지금은 외부 정세가 중요합니다. 제 보고부터 들으셔야 합니다."

역시나 두꺼운 서류철을 들고나온 클린드 외무대신도 앞으로 나섰다.

"지금 중요한 것은 국내입니다. 언제 차원 균열이 열리고 괴수가 출몰할지 모릅니다. 현재 왕국내 방어 준비부터 들으셔야 합니다."

펠릭스 기사단장과 오를레앙 백작도 앞으로 나섰다.

모두 중요한 정보였다.

나를 자주 만나지 못했기에 보고할 것이 너무 많았기에 서로 보고를 하겠다는 해프닝이 벌어졌다.

하지만 내가 그걸 들을 시간이 없었다.

"일단 그대들이 다 알아서 처리하게. 그리고 당장 원정을 떠나야 하니. 그것부터 준비해 주게."

"원정이요?"

대신들과 지휘관들이 눈을 똥그랗게 떴다.

199. 레기우스와 불카누스.

199. 레기우스와 불카누스.

방금 도착했는데, 바로 원정을 떠난 다는 말에 다들 어안이 벙벙한 표정을 지었다.

프레디가 물었다.

"원정은 어디로 가는 겁니까?"

"우린 오크 차원으로 간다."

"쿠오크?"

쿠훌린이 엘프 통역사가 오크 차원에 간다는 말을 하자, 황당한 표정을 지었다.

"쿠오크! 타일러여! 오크 차원은 폐허밖에 남지 않았다. 더 구할 오크 없다. 갈 필요 없다."

그리고 서리 오크 족장인 호빌테 역시 고개를 흔들었다.

"쿠오크! 쿠훌린의 말이 맞다! 오크 차원 희망 없다. 이곳이 이제 오크 집이다."

"그건 나도 알아. 하지만 난 너희 차원을 멸망시킨 레기우스와 불카누스를 잡으러 가는 거야."

두 오크 족장과 오크 해병대 지휘관들이 놀란 표정을 지었다.

"원수를 갚아야지. 왜 괴수가 겁나는 거야?"

쿠훌린이 송곳니를 드러내며 말했다.

"쿠오크! 오크 복수 원한다! 타일러와 함께 간다면 분명 죽일 수 있다!"

"쿠오크! 나도 타일러를 믿는다. 오크 복수하자!"

"쿠오크! 쿠오크!"

오크 지휘관들이 일제히 함성을 질렀다.

"하지만 철저히 준비해야 해. 놈은 강력하니까."

그때 펠릭스 근위 기사단장이 말했다.

"하지만 차원 균열이 언제 발생할지 모르는데, 병력을 모두 빼도 괜찮을까요?"

"현재 발레리온에 있는 기사들은 아무도 함께 가지 않는다. 오크 해병대와 드워프 포병대, 엘프 항해사만 갈 거야."

"하지만 그럼 병력이 너무 적습니다. 오크 차원에 괴수 군단은 수인족 차원을 공격한 놈들보다 더 많다고 들었습니다."

"그건 그렇겠지. 하지만 이곳이 더 중요하다. 여기가 밀리면 더는 의미가 없어. 그리고 최대한 빨리 다녀오지. 그동안 방비나 철저히 해 놓게."

"휴! 알겠습니다. 전하."

병력을 많이 데려갈 필요는 없다. 놈들을 잡는데 필요한 것은 빙결의 오브니까.

작전은 간단했다.

불카누스를 잡는다.

일단 크기가 3km나 되는 놈에게 10개의 오브를 던진다.

끝!

원정에 필요한 물자는 일단 내 인형의 집에 몽땅 넣어버렸다.

그리고, 오크 해병대 1,500명과 드워프 포병대 500명, 엘프 500명으로 구성된 원정대를 꾸렸다.

비공정 20척에 나눠타고, 곧장 관문으로 향했다.

그리고 수인족 차원에 들려 암 드로운의 거신 기사단과 알리사의 마법병단도 태웠다.

암 드로운은 얼음 마법진을 사용할 수 있고, 알리사는 얼음 마법사였기에 불 괴수들을 잡는 데 큰 도움이 될 것이다.

20척의 비공정은 곧장 대수림을 지나 오크 차원으로 이동했다.

길목에 A급 괴조 괴수들이 있었지만, 이번엔 감히 달려들지 못했다.

"쿠아아아아!"

내가 S급 괴수 와이번에 타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내 와이번(lv.9) 꼭두각시는 A급 괴조보다 3배나 크고 강했으며, 포효를 내지르면 괴조들이 사방으로 도망쳤다.

그래도 가끔 겁 없는 괴조가 달려들면 한 놈의 날개를 찢고, 대수림에 던져버렸다.

그럼 다른 괴조들이 달려들어 다친 놈을 잡아먹었기에 잠시 시간을 벌 수 있었다.

그렇게 우린 무사히 오크 차원 균열에 도착했다.

이곳은 서리 오크 땅과 연결된 차원 균열 내부.

오크를 구할 때, 불의 괴수 군단이 이곳에 있었기에 여기서부터 수색할 생각이었다.

"모두 놈을 잡으러 가자!"

"쿠오크!"

"가자!"

***

[오크 차원]

희뿌연 연기와 화염.

곳곳에 화산이 터졌는지, 재와 먼지까지 자욱해 시야가 좋지 않았다.

한 가지 다행이라면 불의 괴수 군단에 비행 괴수가 없다는 것이다.

그러니 레기우스와 불카누스를 찾기 위해 병력을 나눌 수 있다는 것이었다.

20척의 비공정이 오크 차원을 누비며 놈들을 찾기 시작했다.

시야가 좋지 않았지만, 불카누스는 그 크기가 3km나 되기에 그나마 찾을 확률이 높았다.

하루, 이틀, 보름, 한 달······.

역시 놈을 찾는 것이 가장 힘들었다.

그리고 불의 괴수 군단도 찾을 수 없었다.

이 정도면 벌써 다른 차원으로 간 것이 아닐까?

계속해서 시간이 흐르고 있었기에 특단의 방법을 써야 했다.

오크 해병대를 지상에 풀어 수색을 시작했다.

괴수를 만나면 위험했지만, 지금은 방법이 없었다.

사실 그 때문에 오크를 데려온 것이지만.

1,500명의 오크 해병대가 사방으로 퍼져 일단 불의 괴수를 찾기 시작했다.

이곳은 오크 차원!

오크들은 조상이나 고대 짐승의 힘을 자신에게 깃들어 쓸 수 있었고, 오크 해병대의 강습 갑옷을 입고 있었기에 이곳에선 강습 기간트를 입은 기사들보다 강했다.

그렇게 다시 지상까지 수색한 지 한 달이 지났을 때였다.

치직!

[괴수를 발견했습니다!]

한 오크 해병이 불의 괴수를 발견했다는 무전이 들어왔다.

다행이었다.

괴수가 있다는 것은 아직 놈들이 이곳에 있다는 뜻이니까.

"저깁니다! 저기 괴수가 있습니다."

우리 비공정도 불의 괴수를 발견했다.

협곡 안쪽에 불의 괴수들이 몰려 있었고, 한쪽을 바라보고 멍하니 서 있었다.

이건 엘프 차원에서 봤던 그 장면이었다.

그때 그들은 뭔가를 뚫어지게 쳐다보며 가사 상태로 아무것도 하지 않고 한곳에 모여 있었다.

내 생각엔 그곳에 차원 균열이 생기고 있었고, 놈들은 그곳에 들어가기 위해 에너지를 쓰지 않고, 대기하고 있었을 것이다.

그리고 균열이 완성되자, 차례로 수인족 차원을 넘어와 공격한 거고.

아마도 카르마탄도 차원 균열을 완성하는 데는 시간이 상당히 걸리는 것 같았다.

'지금 저 괴수들이 바라보는 곳이 어딜까?'

어쩌면 불의 군단은 장벽 너머 대륙을 공격하기 위해 기다리고 있는 것인지 몰랐다.

그렇다면 더더욱 여기서 레기우스와 불카누스를 잡아야 한다.

그래야 불의 괴수 군단을 흩트릴 수 있었다.

협곡을 한참 이동하자, 협곡 가운데 대군주가 보였다.

그리고 대군주와 괴수들이 바라보는 곳에 공간의 일그러짐이 보였다.

엘프 차원에선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지만, 이곳은 이미 군데군데에 검은 연기도 같은 것도 보였고, 조금씩 회전하고 있었다.

차원 균열의 완성이 멀지 않은 것 같았다.

그런데 한쪽의 괴수는 이쪽 차원 균열을 쳐다보지 않고, 동굴 안쪽을 쳐다보고 있었다.

그건 동굴 안쪽에도 차원 균열이 생긴다는 말이었고, 그곳에 다른 대군주도 있다는 뜻이었다.

그리고 어쩌면 레기우스와 불카누스도 동굴 안에 있을 것이다.

문제는 이제 저 동굴로 들어가야 한다는 것이다.

중형 비공정도 한 척씩이라면 충분히 들어가고도 남을 크기지만, 잘못해 벽에 부딪히면 가사 상태인 괴수를 자극해 공격받을 수 있었기에 은밀해 들어가야 했다.

어쩔 수 없이 나 혼자 강습 기간트에 타고 괴조인형에 올라탔다.

그리고 동굴을 따라 안으로 들어갔다.

***

동굴 안으로 들어갈수록 점점 더 뜨거워진다.

그리고 계속 아래로 내려가고 있었다.

강습 기간트가 아니었다면, 몸이 익어버렸을 수도 있었다.

그리고 곳곳에 거대 공동이 펼쳐져 있었고, 공동마다 대군주와 괴수 군단이 자리를 잡고 있었다.

놈들도 역시 가사 상태로 일그러진 차원 균열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런데 정말 숫자가 많네!'

협곡과 동굴 가득 몰려 있는 불의 괴수는 끝도 없었다.

족히 수십만은 되는 것 같았다.

수인족 차원을 공격했던 괴수 군단보다도 훨씬 숫자가 많았고, 괴수들도 더 강해 보였다.

불을 뿜는 괴수도 있었으니까!

그러니 반드시 여기서 막아야 했다.

그렇게 동굴 안쪽으로 한참을 이동하자, 다른 공동보다 수 배는 더 큰 공간이 나왔다.

바닥엔 용암의 강의 흐르고, 메케한 유황 냄새가 코를 찔렀다.

그리고 놈들을 찾았다.

이곳도 차원 균열이 생기는 중인지. 용암의 강 앞쪽 공간이 일그러지고 있었고, 공동 안에 모인 괴수들은 역시 그 공간을 뚫어지게 쳐다보고 있었다.

레기우스와 불카누스도 마찬가지였다.

다만 불카누스는 용암의 강에 몸을 반쯤 걸치고 있었다.

'정말 거대하네!'

초거수 카르마탄에 비하면 아주 작지만, 3km나 되는 괴수를 이렇게 가까이서 보자, 등골이 오싹하고 오금이 저렸다.

게다가 놈의 피부 곳곳에서 가끔 불꽃이 치솟고 있었다.

몸속이 화염으로 되어 있어 몸 밖으로 불을 마구 뿜어내는 것 같았다.

순간 의문이 들었다.

'빙결의 오브로 죽일 수 있겠지?'

빙결의 오브 위력을 잘 알고 있지만, 불카누스를 직접 보자 왠지 빙결의 오브를 12개 다 터트려도 왠지 그 얼음을 깨고 나올 것 같은 불안한 생각이 들었다.

그나마 한 가지 다행이라면, 직접 본 레기우스는 SSS급까진 아닌 것 같았다.

전에 수인족 차원에서 죽인 SS급 거신 괴수보다 조금 강한 수준이었다.

문제는 역시 불카누스야!

처음 작전은 놈의 근처에서 빙결의 오브 10개를 터트리고, 도망치는 것이었다.

하지만 작전을 바꿔야 했다.

'놈의 입속에 빙결의 오브를 털어 넣어야겠어!'

놈의 몸을 얼리는 것이 아니라 확실하게 죽여야 했다.

아무리 놈이 불의 괴수고, 드래곤이 변이한 놈이라도 뱃속에서 빙결의 오브가 터진다면, 분명 죽을 것이다.

문제는 어떻게 입속에 넣느냐는 거겠지.

일단 작전을 세웠다.

작전을 실행하기 위해선 먼저 이곳 거대 공동 가득 모여 있는 불의 괴수 군단부터 내보내야 했다.

이놈들이 달려들면 정신없이 막다가 끝날 것 같았다.

난 괴조인형을 인형의 집에 넣고,

동공 입구에서 무전을 쳤다.

치직!

"에테나, 내 말 들려?"

동굴이 매우 넓고, 에테나가 동굴 입구에 대기 중이라 바로 무전이 될 줄 알았다.

하지만 답신이 없다.

"에테나? 내 말 들려?"

젠장 다시 나가야 하나?

치직!

[네. 들립니다.]

다행히 신호가 약하지만, 전달됐다.

"지금 시작해!"

[네! 조심하세요.]

에테나와 연락이 됐다.

난 강습 비공정의 단계를 4단계로 맞추고. 천장 위로 올라가 안 보이게 숨었다.

쿵! 쿠쿠쿵!

동굴 밖에서 진동이 느껴졌다.

20척의 비공정이 대포로 협곡을 공격해, 불의 괴수들을 파묻는 소리였다.

"끄어어?"

레기우스가 몸을 돌렸다.

역시 공격을 바로 알아차린 것 같다.

"끄아아아아!"

레기우스가 괴성을 지르자 몸에서 화염이 뿜어졌다.

그러자.

"끼이이아!"

"쿠에에에!"

공동 안에 있던 괴수들이 입구를 통해 우르르 몰려나가기 시작했다.

난 화염 괴수들이 모두 사라질 때까지 기다렸다.

밖에선 계속 진동과 폭음이 들렸다.

공동 안에 불의 괴수가 모두 사라지고, 레기우스와 불카누스만 남았다.

난 조용히 놈들이 어디로 이동하는지 지켜봤다.

그때 레기우스는 동굴 입구로 향했고, 불카누스는 몸을 돌려 용암 쪽으로 이동했다.

불카누스는 워낙 컸기에 들어온 입구가 다른 것 같았다.

'지금이다! 다바르!'

쿵쿵!

다바르가 모습을 드러내자, 레기우스가 잠시 멈춰 섰다.

고개를 갸웃거리는 것이 왜 저 괴수가 자신의 앞에 나타난 건지 의아해하는 것 같았다.

'냉기 브레스를 뿜어!'

그때 다바르가 입을 벌렸다.

"쿠아아아!"

화아아아아!

쩍! 쩌쩌쩌쩍!

냉기 브레스가 날아가 레기우스를 뒤덮었다.

레기우스는 순식간에 얼어버렸다.

하지만 그 순간 레기우스의 몸에서 화염이 뿜어지며 얼음을 녹이기 시작했다.

'놈이 살아 있다! 공격해라!'

대군주가 레기우스 뒤에서 나타나 검을 찔렀다.

푸우욱!

다바르가 달려들어 앞발로 레기우스를 쓰러트렸다.

그리고 드라우켄이 놈이 덮쳤다.

쾅! 쾅! 쾅!

거대한 발톱으로 레기우스를 사정없이 때렸다.

하지만 몸에 얼음을 다 녹인 레기우스는 큰 타격이 없는지, 일어서려 했다.

그때 난 와이번 괴수인형을 타고 쏜살같이 내려갔다.

"다바르, 한 번 더!"

화아아아!

쩌쩌쩌쩍!

다바르가 냉기 브레스를 쓰러져 있던 레기우스에게 다시 뿜었다.

놈이 얼어붙었지만, 곧 몸에서 화염이 뿜어지며 다시 얼음을 녹이고 있었다.

"끄어어!"

"놈을 붙잡아!"

S급 괴수인형 둘이 레기우스를 붙들었다.

그리고 내가 타고 있는 와이번이 놈의 위를 덮쳤다.

쿠웅! 쿵!

난 손에 빙결의 오브 하나를 들고 놈의 얼굴로 달려들었다.

그리고 쓰러져 발버둥 치는 레기우스의 입에 빙결의 오브를 넣었다.

[운명의 실타래를 연결합니다.]

그리고 오브를 향해 마나를 뿜었다.

쩌쩍!

빙결의 오브가 깨지며 엄청난 냉기가 휘몰아쳤다.

'모두 인형의 집으로!'

괴수인형을 모도 인형의 집에 넣고, 난 동굴 입구 위에 세워놓은 토우인형을 향해 바꿔치기 스킬을 사용했다.

휘익!

쩍! 쩌쩌쩌쩍!

그리고 보았다.

레기우스의 얼굴과 몸이 냉기에 잠식되는 것을.

그때 놈의 몸에서 갑자기 화염이 뿜어지더니, 서로 상충하는 냉기와 불의 기운이 충동했다.

퍼어엉! 후두두두둑!

몸에서 폭발이 일어났고, 놈의 상체가 수백 조각의 얼음이 되어 바닥에 흩어졌다.

그리고 운명의 실이 검은색으로 변했다.

"됐다!"

레기우스를 잡았다!

모든 것은 단 20초 만에 벌어진 일이었다.

냉기는 아직도 남아 있어 주변 수십 미터를 다시 얼려버렸다.

"그어어어어?"

용암 속으로 걸어 들어가던 불카누스가 거대한 몸을 돌렸다.

자신의 주인이자, 파트너에게 무슨 일이 생겼다는 것을 바로 알았다.

그리고 레기우스가 죽자, 놈이 폭주하기 시작했다.

"크아아아아아!"

'괴조인형 나와라!'

난 괴조에 타고, 도망치기 시작했다.

그리고 거대한 불카누스가 내 뒤를 쫓아왔다.

쾅! 쿠쿠쿠쿵!

놈의 힘이 얼마나 무식하고 강력한지, 동굴을 무너트리고 스스로 길을 만들면서 달려왔다.

"더 빨리 날아! 잡히면 끝장이야!"

그리고 죽기 진전 레기우스의 명령을 다시 받았는지, 불의 괴수 군단이 다시 안쪽으로 몰려오고 있었다.

난 놈들의 머리를 위를 지나갔다.

그리고 불카누스가 뒤에서 쫓아오며 그 불의 괴수 군단을 휩쓸었다.

"쿠에엑!"

"끄아아악!"

괴수들의 비명이 들렸다.

불카누스 때문에 매몰되어 죽는 것이다.

이건 차도살인도 아니고, 같은 편을 죽이는 상황이었다.

이제 남은 불의 괴수 군단을 잡을 필요는 없어 보였다.

불카누스가 다 쓸어버리고 있었으니까!

그리고 내가 마지막에 불카누스만 죽이면 끝날 것 같다.

이제 희망이 보인다.

200. SSS급 화염 드래곤 괴수를 죽이는 방법.

200. SSS급 화염 드래곤 괴수를 죽이는 방법.

쿠쿠쿠쿵! 콰콰쾅!

'와! 이건 너무 살벌한데!'

등 뒤에서 동굴이 실시간으로 무너지고 몸길이가 3km나 되는 괴물이 쫓아온다.

동굴이 아무리 넓다고 해도, 그 두세 배쯤 되는 괴수가 우격다짐으로 밀고 들어오니 밑에 깔린 불의 괴수 군단은 그냥 압사였다.

그리고 동굴이 아니라 이 주변 협곡과 일대가 모두 무너지고 있었다.

조금만 실수하면 그날이 제삿날이다.

'그래도 한 방에 산도 날려버린다는 화염 브레스를 쏘지 않는 게 어디냐?'

근데 아까부터 등 뒤에서 놈이 내뿜는 뜨거운 콧김이 느껴진다.

벌써? 설마 아니겠지?

"더 빨리!"

위잉! 착!

입고 있던 강습 기간트도 벗어서 던져버렸다.

괴조인형의 속도를 더 내기 위해서다.

'저기 빛이다!'

드디어 출구가 보인다.

그때 놈의 추격이 갑자기 멈췄다!

서늘한 느낌에 뒤를 슬쩍 돌아보았다.

'이런, 젠장!'

놈이 입을 벌리고 있었다.

뭐야? 알리사가 브레스를 쏘려면 시간이 걸린다고 했는데?

화륵! 화아아아아!

거센 화염이 동굴을 무너트리고 작은 괴수들을 녹이며 이쪽으로 쏟아진다!

화르르르르!

'제발! 조금만 더!'

팟!

동굴을 나왔다!

"위로 솟구쳐!"

쾅! 콰콰쾅! 화아아아!

간발의 차로 놈의 브레스를 피할 수 있었다.

아니 괴조인형의 날개가 살짝 녹아내렸다.

저건 스쳐도 사망이다.

'와이번! 나와라!'

와이번 괴수인형을 꺼냈다.

"쿠아아아아!"

와이번(lv.11) 꼭두각시가 나오면서 괴성을 질렀다.

왠지 힘들어하는 괴조인형을 인형의 집에 넣고, 난 와이번 인형에 올라탔다.

그리고 아래를 내려다봤다.

입구 앞에 있던 괴수들이 녹아내렸고, 동굴 입구가 두 배로 커져 거대한 구멍이 생겼다.

'뭐지? 알리사가 분명 브레스를 쏘기 전까지 15분 정도의 시간이 필요하다고 들었는데?'

방금은 레기우스가 죽고, 겨우 10분 정도에 브레스를 쏜 것 같았다.

아무래도 놈이 브레스를 쏘는 딜레이가 옛날보다 더 줄어든 것 같았다.

일단 공중으로 더 높이 올라갔다.

불카누스의 몸길이가 워낙 길었기에 웬만한 높이는 불안했다.

내가 고도를 빠르게 높이자, 비공정들이 날 따라서 이동했다.

그리고 에테나가 탄 비공정이 다가왔다.

"타일러님, 괜찮으세요?"

"난 괜찮아. 그보다 모두 여기서 멀리 벗어나!"

"네?"

"놈의 브레스 사정거리가 5km는 되는 것 같아! 범위도 매우 넓고, 한번 휩쓸리면 비공정은 그냥 녹아내릴 거야."

"아! 그건 저도 방금 봤습니다."

에테나도 브레스의 위력을 봤다.

동굴 입구를 뚫고 나온 브레스에 협곡에 있던 괴수들까지 깡그리 몽땅 불에 타고 녹아버렸으니까.

얼마나 뜨거우면 화염의 괴수들이 불에 죽다니······.

쿠르르릉! 콰콰쾅!

그때 동굴과 협곡이 무너지면서 거대한 굉음이 들려왔다.

"놈이 온다! 어서 여기서 벗어나!"

"네!"

비공정 함대가 고도를 더 높이고, 주변으로 흩어질 때였다.

콰아아앙! 쿵! 쿵!

"쿠아아아아아!"

땅 위로 변이한 드래곤 괴수 불카누스가 솟아 올라왔다.

이제야 놈의 온전한 모습이 보였다.

머리에서 몸통까지 길이가 2km였고, 꼬리 길이가 무려 1km였다.

그리고 몸통 지름이 400미터나 되는 정말 초거대 드래곤 괴수였다.

이제 공중에서 놈의 브레스를 피하며 입안에 빙결의 오브를 털어 넣으면······.

응? 그런데 등에 날개가 있네?

설마, 날진 못하겠지?

에이! 그건 아닐 거야.

"쿠르르르르르!"

놈이 나를 올려다보더니, 하울링을 하듯이 목을 부풀리며 몸을 부르르 떨었다.

그러자 날개가 점점 옆으로 펼쳐졌다.

'미친! 정말 거대하군.'

불카누스가 정말 거대한 날개를 좌우로 활짝 펼쳤다.

꼭 세기말 소설에 나오는 종말의 용 같았다.

그리곤 놈이 날개를 천천히 펄럭거리기 시작했다.

"에이! 설마, 그 덩치로 나는 건 반칙이잖아!"

부우우우웅! 부우우웅!

날개를 두세 번 흔들자, 놈의 몸이 천천히 공중으로 떠올랐다.

이건 악몽이었다.

"쿠아아아아!"

놈이 괴성을 지르며 나를 향해 날아왔다.

난 와이번 꼭두각시의 방향을 틀고 도망쳤다.

'제길! 알리사에게 따져야 할 것 같다.'

불카누스가 하늘을 날 수 있다는 말은 하지 않았다.

아! 하늘을 나는 건 몰랐을 거다.

과거엔 놈은 하늘을 날 필요가 없었겠지.

하늘 위에서 자신을 공격할 적이 없었으니까!

그리고 원래 드래곤은 하늘을 나는 놈이었어.

그러니 변이한 드래곤 괴수인 불카누스도 하늘을 날 수 있다고 생각했어야 했다.

'젠장! 인생 쉽게 가는 법이 없네.'

어쩔 수 없다.

또다시 계획을 변경해야 했다.

원래 계획은 놈의 브레스를 피하며 가까이 접근해 빙결의 오브를 입속에 털어 넣는 것이었다.

그런데 지금 저렇게 하늘을 날며 내 뒤를 바짝 쫓아오니, 그 타이밍을 잡기 힘들었다.

잘못하면 내가 죽으니까.

뭔가 다른 계획이 필요했다.

불카누스가 하늘을 나는 속도는 느린 것 같지만, 날개가 워낙 크기에 몇 번 펄럭이면 순식간에 거리를 좁히고 내 뒤로 바짝 붙였다. 그래서 다시 속도를 최대한으로 높였다.

내가 타고 있는 와이번 괴수인형의 몸길이는 40여 미터였고, 꼬리 길이까지 더하면 100미터나 됐다.

그리고 좌우 날개를 쫙 펴면 200미터였고.

그런데 불카누스는 이 거대한 S급 괴수를 그냥 독수리 앞에 참새 수준으로 만들어 버렸다.

가까이 접근했다간 그냥 한입에 잡아 먹힐 것이다.

'일단 놈을 다른 곳으로 유인하자!'

근처에 있는 비공정을 보면 공격할 수도 있었기 때문이었다.

비공정은 괴수인형처럼 빠르지 못해 금방 뒤를 잡힐 것이다.

그리고 빙결의 오브를 던지더라도 놈이 브레스를 쏘고 난 직후를 노려야 했다.

그래야 효과가 있을 것 같다.

레기우스와 다르게 놈은 화염 브레스를 쏠 수 있었다.

빙결의 오브를 던졌는데 곧바로 화염 브레스를 쏜다면 오브가 냉기를 뿜어내기도 전에 순식간에 녹을 수도 있으니까.

그런데 워낙 덩치도 크고 날개가 크니까 순식간에 뒤를 다시 잡혔다.

'아! 근처에 바다가 있지. 그쪽으로 가자!'

이 주변을 수색하면서 동쪽에 바다가 있다는 것이 떠올랐다.

'젠장, 하강해!'

쉐에엑!

내 명령을 받은 와이번은 곧바로 아래로 하강했다.

그러자 입을 벌려 우릴 물려고 했던 불카누스가 허공을 깨물곤 성난 표정으로 내려다봤다.

다행히 불카누스는 공중에서 방향을 급하게 틀거나 고도를 빠르게 낮추거나 높이는 것은 힘들어 보였다.

놈이 고도를 낮추자, 이번엔 좌측으로 틀었다.

'어디 몸을 숨길만 한 곳이 없을까?'

이제 곧 놈이 화염 브레스를 쓸 시간이 된다.

그때 다행히 바다가 보였다.

주변의 호수와 강, 산과 들, 숲은 모두 불타서 사라졌다.

하지만 눈앞에 바다는 끝없는 수평선과 함께 아직도 푸른 빛이 넘실거리고 있었다.

"최대한 빨리 움직여!"

내 뒤를 바짝 따라오던 놈이 벌써 코를 벌렁거리고 있었다.

그리고 곧 날개를 펄럭이며 입을 벌렸다.

다행히 난 푸른 바다 위를 빠르게 날고 있었다.

놈이 화염 브레스를 쏘는 타이밍을 잘 잡아야 했다.

"쿠아아아아!"

화륵! 화아아아아아!

그때 불카누스의 입에서 거센 화염이 뿜어졌다.

"물속으로 들어가!"

쉐에엑! 파악!

촤아아악!

와이번이 물속으로 곤두박질쳤다.

그리고 바로 뒤를 이어 수면 위로 거센 화염이 일렁거리는 것이 보였다.

물속이었음에도 엄청난 열기가 느껴졌다.

조금만 늦었다면 통구이가 되거나 몸이 녹아내릴 뻔했다.

그때 와이번 괴수인형이 갑자기 위로 떠 오르기 시작했다.

위는 지금 불바다였다. 나가면 위험했다.

어쩔 수 없이 와이번을 인형의 집으로 넣었다.

난 물속에서 그래도 5분은 버틸 수 있었다.

다 세계수의 열매를 먹고 신체 능력이 월등히 좋아진 덕분이었다.

화염이 없는 곳으로 헤엄치며 빠르게 이동했다.

그대 거대한 그림자가 내 바로 위에서 날갯짓하는 모습이 보였다.

내가 올라가면 곧바로 저 거대한 발톱으로 찍을 생각인 것 같았다.

'큭! 더 참지 못하겠어!'

이젠 한계에 다다랐다.

어쩔 수 없이 위로 올라야 했다.

토우인형을 꺼내 인형 바꿔치기 스킬을 사용해 피한다고 해도 그 범위가 700미터였다. 그리고 한번 스킬을 쓰면 3분의 딜레이가 있었다.

그러니 저 거대한 놈에게 벗어나기는 거의 불가능한 일이었다.

'아! 그렇지!'

그때 번개처럼 머릿속에 좋은 생각 하나가 떠올랐다.

난 곧장 수면 위로 올라갔다.

"푸하!"

"쿠아아아아!"

그때 놈에 정말 거대한 발과 발톱을 내게 뻗었다.

'지금이다! 다바르!'

쿵! 쿵!

난 불카누스의 날개 위에 다바르(lv.10) 꼭두각시를 꺼냈다.

'얼려버려!'

"쿠아아아!"

화아아아아아!

쩍! 쩌쩌쩌쩌쩍

다바르가 냉기 브레스를 한쪽 날개를 향해 뿜자, 550미터나 순식간에 얼어붙었다.

그러자 그 거대한 놈이 날갯짓이 이상해지더니, 한쪽으로 기울어지며 바닷물에 빠졌다.

촤아아아아아!

치이이익!

"쿠아아아아악!"

바닷물에 몸이 닿자, 놈은 고통스러운 괴성을 질렀다.

치이이이익!

"쿠아아아!"

놈의 날개는 화염을 뿜어지지 못하기에 얼음을 바로 녹일 수도 없었다.

그리고 화염을 뿜어냈던 놈의 몸통 역시 바닷물에 닿자, 부글부글 끌어 오르고 있었다.

난 곧장 허우적거리는 놈의 얼어붙은 날개를 향해 헤엄쳤다.

[운명의 실을 연결합니다.]

'지금이다! 거대 토우인형!'

룩급 기간트 2개를 붙인 크기의 거대 토우인형이 룩급 기간트 6개를 들고 불카누스 날개 옆에 나타났다.

그순간 난 빙결의 오브 하나를 꺼냈다.

그리고 마나를 뿜어내며 오브를 깼다.

콰직!

쩍! 쩌쩍!

냉기가 휘몰아치며 주변 바다를 얼리기 시작했다.

난 곧바로 인형 바꿔치기 스킬을 써서 500미터 위쪽에 꺼내 놓은 토우인형과 몸을 바꿨다.

'괴조인형!'

괴조인형이 날 태우고 공중으로 솟구쳤다.

그리고 괴조인형이 가지고 나온 강습 기간트에 탔다.

아래를 내려다보자 이미 빙결의 오브가 바닷물과 내 거대 토우인형, 룩급 기간트 6개를 얼렸고, 불카누스의 거대한 날개와 몸통까지 주변 1km를 통째로 얼려버렸다.

그리고 불카누스는 필사적으로 움직이려 했지만,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물속으로 가라앉기 시작했다.

무거운 토우인형과 룩급 기간트 6기가 날개와 몸통에 함께 얼려있었기에 무게를 이기지 못한 것이다.

그리고 놈은 헤엄을 치지 못했다.

"쿠아아아!"

게다가 방금 브레스를 뿜었기에 화염을 쏘지도 못했다.

치이이이익!

그 순간 놈이 물속으로 가라앉았다.

난 곧장 놈의 뒤를 따라 물속으로 들어갔다.

강습 기간트의 무게를 늘리면서 운명의 실타래 범위 내에서 놈의 뒤를 쫓았다.

내 작전은 놈을 익사시키는 것이었다.

실패하더라도 최소한 화염의 능력은 없앨 수 있지 않을까?

실제로 불을 뿜어내던 붉은 피부가 용암이 굳어버린 바위처럼 딱딱하게 변하고 있었다.

"쿠르르르륵!"

놈이 입을 벌리며 고통스러워했다.

내 작전이 먹혀들어 가고 있었다.

그리고 내 강습 기간트도 완벽한 밀폐가 아니라 순식간에 물이 차올랐다.

난 크게 호흡을 하며 숨을 참았다.

쿵! 쿠쿵!

그때 놈이 해저 밑바닥에 도착했다.

'아! 수심이 깊지 않아!'

익사시키기엔 충분했지만, 문제는 바닥에 도착한 불카누스가 땅을 향해 움직이기 시작했다.

한쪽 날개와 몸의 절반이 얼음에 뒤덮였지만, 반대쪽 날개와 두 앞발은 쓸 수 있었다.

놈이 밖으로 걸어 나가 화염 브레스를 쏜다면 빙결의 오브도 녹아버릴 거다.

'미안하다! 기사 꼭두각시!'

난 마나인형에 빙결의 오브를 들게 하고, 불카누스의 반대편 날개 위에 꺼냈다.

그러자 기사 꼭두각시 마나인형이 마나를 뿜어내며 빙결의 오브를 깼다.

콰직!

쩍! 쩌쩌쩌적!

빙결의 오브 주변으로 냉기가 뿜어지며 놈의 날개와 바닷물을 동시에 얼려버렸다.

이번엔 냉기에 휩싸여 나도 함께 얼릴 뻔했다.

다행히 아슬아슬하게 바로 내 앞에서 멈췄다.

"쿠아아아아!"

놈이 물속에서 입을 벌리며 고통스러워했다.

이번 빙결의 오브로 반대쪽 날개와 몸통 일부 그리고 한쪽 다리를 얼렸다.

그런데도 한쪽 다리로 계속 기어가고 있었다.

살고자 하는 놈의 집념이 강했다.

그리고 꼬리를 채찍처럼 휘둘러 얼어버린 얼음 덩어리를 내려쳤다.

미안하지만 물속이라 위력도 떨어졌고, 빙결의 오브로 얼린 얼음은 쉽게 깨지지 않는다.

화염을 뿜어내면 모를까.

그래도 놈은 꾸역꾸역 수심이 낮은 곳으로 움직이고 있었다.

'그럼, 빙결의 오브 하나 더!'

201. 불카누스 복제인형.

201. 불카누스 복제인형.

아까운 기사(lv.11) 마나인형 꼭두각시를 놈의 다리 옆에 하나 더 꺼냈다.

꾸준히 키웠기에 곧 자동인형이 될 테지만, 지금은 어쩔 수 없었다.

그리고 마나를 뿜어내며 오브를 깼다.

콰직!

쩍! 쩌쩌쩍!

오브가 깨지며 냉기가 휘몰아치고, 놈의 마지막 다리와 몸통도 순식간에 얼려버렸다.

그리고 밑바닥 땅도 함께 얼어버렸다.

이제 놈은 이동할 수 없었다.

그리고 얼지 않은 곳은 머리와 꼬리밖에 없었다.

'거! 더럽게 안 죽네!'

슬슬 나도 한계 지점에 다가왔다.

지금 올라가지 않으면, 올라가다가 익사할 수도 있었다.

하지만 조금 더 버텼다.

혹시라도 기사회생에 성공할 수도 있을 테니까!!

그동안 S급 괴수 다바르를 다섯 마리나 잡았지만 계속해서 기사회생에 실패했다.

그러니 이번엔 성공할 때도 되지 않았을까?

그 한 줌의 기대 때문에 쉽게 자리를 뜨지 못하는 거다.

그때였다!

"꾸르르르르르!"

불카누스가 눈을 뒤집어 까며 입을 벌렸다.

입에서 기포가 마구 올라오더니, 곧 입을 벌린 채로 머리가 멈췄다.

마지막으로 휘둘리던 꼬리의 움직임도 멈췄다.

그리고 드디어 운명의 실이 검은색으로 물들었다.

'됐다! 놈을 잡았다!'

세상에! 내가 SSS급 괴수를 잡다니!

[기사회생(lv.max) 스킬을 사용했습니다.]

성공이냐? 실패냐?

제발! 빨리 변해라!

숨 막혀 죽을 것 같단 말이다!

[불카누스(lv.1) 허수아비를 만들었습니다.]

됐다!

"꼬로로록!"

기쁨에 바닷물을 먹었다.

난 곧장 불카누스를 인형의 집에 넣었고, 강습 기간트를 4단계에 맞춰서 수면 위로 올라갔다.

물을 너무 먹어 정신이 아득해졌다.

하지만 필사적으로 팔을 저었다.

그리고 수면 700미터를 남겼을 때, 인형 바꿔치기 스킬을 사용했다.

"푸하! 우웨엑!"

이번엔 정말 죽을 뻔했다.

머리와 가슴이 아프고 목도 따가웠다.

[인형술사 레벨이 올랐습니다. (lv.75 -> lv.79)]

[운명의 실타래 레벨이 올랐습니다.]

[인형 바꿔치기 스킬 레벨이 올랐습니다.]

[토우인형 제작 스킬이 레벨이 올랐습니다.]

SSS급 괴수를 죽이자, 기분 좋은 알람이 계속 울렸다.

허! 79레벨이라니!

'오오! 이제 2레벨만 더 올리면, 난 SSS급 헌터가 된다!'

그동안 계속 대수림의 괴수도 잡고, 대군주와 S급 괴수들, SS급 괴수도 잡아 레벨이 그래도 많이 오른 상태였다.

그런데 SSS급 괴수를 잡자마자, 한 번에 무려 4레벨이나 올랐다.

2레벨만 더 올린다면, 어떤 헌터도 오르지 못했던 경지에 오른다.

그리고 물에 둥둥 떠 있는 커다란 다바르와 괴조인형이 보였다.

둘 다 인형의 집에 넣지 못해 운명의 실이 모두 끊어진 것이다.

아깝지만 괜찮다!

레벨은 초기화됐지만, 운명의 실을 다시 연결하면 다시 꼭두각시로 만들 수 있었다.

난 다바르와 괴조에게 운명의 실을 연결하고 인형의 집에 넣었다.

그리고 와이번을 꺼내 그 위에 올라탔다.

"협곡으로 돌아가자!"

"쿠아아아아!"

와이번이 괴성을 지르며 날개를 펄럭였다.

'SSS급 괴수인형이라니!'

불카누스가 정말 마법인형이 될 줄은 몰랐다.

이번에 운명의 실타래 레벨이 올라 실타래 여유가 1,500개 정도 있었다.

문제는 이 거대한 놈을 꼭두각시로 만들려면 적어도 운명의 실이 5,000개는 필요할 것 같았다.

'아! 그럴 필요는 없지! 복제인형이 있으니까.'

복제인형으로 만드는 데는 운명의 실이 2,000개면 됐다.

그때 협곡 근처 상공에 20척의 비공정이 보였다.

모두 날 기다리고 있었다.

난 개선장군처럼 그들에게 날아갔다.

에테나가 두 눈을 똥그랗게 떴다.

"와아! 정말 그 괴수를 잡은 거예요?"

난 아무것도 아니라는 표정으로 피식 웃어줬다.

사실 몇 번이나 죽을 뻔했지만.

"쿠오크! 타일러여! 정말인가?"

좀처럼 내 말에 의심하지 않은 쿠훌린과 오크들도 이번엔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그렇다니까! 그 두 놈 다 끝장냈지."

하나는 내 마법인형이 됐고.

"쿠오오오오!"

"쿠오크! 타일러가! 오크 원수 갚았다!"

"쿠오크! 쿠오크!"

20척의 비공정에 탄 1,500명의 오크가 일제히 함성을 내질렀다.

자신들의 세상을 태워버린 괴수를 내가 잡았으니, 얼마나 통쾌할까!

오크들은 두 손을 들어 가운뎃손가락을 펼쳤다.

평소엔 한 손만 오크 가운데 높이 솟은 오크 대전사를 표시했는데, 이젠 두 손을 번쩍 들어 표시했다.

헌터들이 봤다면, 이게 무슨 상황인가 했을 거다.

"쿠오크! 우리 오크는 언제나 타일러와 함께 한다!"

"쿠오오오크!"

아무튼, 오크의 원수를 갚았더니, 기분이 좋았다.

그리고 오크들의 신뢰가 더 깊어졌다.

원래도 그랬지만, 이제 저들은 내가 불에 들어가도 따라 들어갈 것 같았다.

***

비공정의 고도를 더 높이고, 우린 차원 균열을 향해 움직였다.

오크 차원의 공기가 좋지 않았기에 빨리 벗어나고 싶었다.

그리고 며칠 후.

우리 차원의 대수림으로 돌아갔다.

우린 곧장 남쪽으로 이동했다.

그리고 난 와이번에 타고 일부러 괴조들을 찾아다니며 공격했다. 어서 레벨을 올려야 했으니까!

장벽으로 향한 지 보름이 지나자 괴조가 출몰하는 구역을 벗어났다.

비공정의 대포와 포탄 성능이 많이 좋아지긴 했지만, 아직 A급 괴수를 상대할 순 없었기에 여기까지 함께 온 것이다.

"에테나! 이제부턴 함대를 이끌고 장벽으로 가."

"어디 가시려고요?"

"차원 이동 마법진으로 먼저 이동할게."

"아! 조심하세요."

"조심은 에테나가 해야지."

에테나는 함께 가지 못해 섭섭한가 보다.

그래도 누군가는 함대를 이끌어야 했고, 에테나는 내 부관이기도 했지만, 다재다능한 최고의 지휘관이기도 했다.

비공정이 아무리 빨라졌어도 장벽까진 앞으로 한 달은 걸릴 것이다.

***

나 혼자 차원 이동 마법진으로 수인족 차원으로 이동했다.

"오! 타일러 국왕께서 오셨다!"

라이진 수왕과 수인들이 몰려나왔다.

전에 왔을 땐, 다들 사막의 괴수를 잡으러 갔기에 만나지 못했다.

"말씀하신 대로 마석을 상당히 모아 놓았습니다."

"고맙습니다."

수인들은 괴수 군단으로부터 이곳 세상을 구한 내게 매우 감사하고 있었다.

"그리고 우리 힘이 필요하거든 언제든 말씀하십시오. 우린 준비가 되어 있습니다."

"하하! 감사합니다. 안 그래도 머지않아 수인족의 힘이 필요합니다. 그때 도움을 부탁드립니다."

"걱정하지 마십시오. 지금 드워프 공방에서 괴수 부산물로 저희의 갑옷과 무기를 계속해서 만들어 주고 있습니다. 이대로라면 수인족 전사 모두에게 제대로 된 장비를 나눠줄 수 있습니다. 그럼 더 강력한 힘으로 도울 수 있을 겁니다."

수인족은 대부분 키가 3미터에 달하고, 전사 숫자가 수만에 달했다.

그들 한 명이 제대로 된 무기와 장비를 착용하면 E등급 괴수도 쉽게 처리할 수 있었기에 괴수 군단을 막기에 적합했다.

"어서 오십시오. 타일러 국왕 전하!"

알베르트가 다가왔다.

"표정을 보니, 일이 생긴 것 같군."

"맞습니다. 장벽 너머에 차원 균열이 생겼습니다."

"벌써 말인가?"

"네! 그리고 그 숫자가 수백 개나 됩니다. 그리고 크기가 작습니다."

"수백 개?"

순간 지구에 게이트가 생겨났을 때가 떠올랐다.

엘프나 드워프, 오크, 수인족 차원까지 모두 수백 미터 크기의 거대한 6개의 게이트가 생겼고, 그 안에서 괴수 군단이 몰려나와 온 세상을 휩쓸었다고 했다.

하지만 내가 살았던 지구는 상황이 달랐다.

먼저 규모가 작은 게이트들이 우후죽순처럼 전 세계 곳곳에 생겼고, 작은 괴수들 먼저 공격했었다.

이 때문에 초기엔 효과적인 대응이 어려워 많은 사람이 죽었고, 군부대 역시 힘을 집결하지 못해 피해가 극심했다.

하지만 헌터가 생겨나면서 잠시마다 괴수의 공격도 막을 수 있었고, 역으로 게이트 안으로 들어가기도 했다.

그리고 점점 더 커다란 차원 게이트가 생겼고, 게이트 크기가 클수록 안으로 들어온 괴수도 점점 커졌고, 등급도 강해졌다.

그러다 나중엔 어마어마하게 큰 차원 게이트가 생겼고, 그 안에서 카르마탄이 나온 것이다.

'왜 작은 게이트를 먼저 만들어 공격시키는 거지?'

놈이 직접 들어오긴 아직 차원 마나가 부족한가?

그런 의문이 들었다.

"피해 상황은?"

"우리 왕국엔 총 4개의 게이트가 생겼고, 3, 4미터의 괴수들이 몰려나왔지만, 이미 차원 균열 주변을 봉쇄하고 잘 막고 있어 피해가 거의 없습니다."

"휴! 다행이군."

"그런데 아베르크 제국과 탈로스 왕국의 피해가 좀 큽니다."

"뭐? 내가 경고를 했는데도?"

"발생한 게이트 숫자가 많기도 하지만, 주로 방비가 수도와 대도시 위주에 집중되어 있었습니다. 그러다 보니 기간트와 타이탄이 부족한 영지는 처참하게 당한 것 같습니다."

인상이 찡그려지며, 고개를 흔들었다.

수도나 대도시, 대영지엔 원래 주둔한 병력도 많고, 기간트도 있었다. 그러니 적당히 방비를 끝낸 곳은 놔두고, 취약한 곳을 지원해야 했다.

하지만 그러지 않았기에 애꿎은 사람들만 죽었다.

귀족들이 무섭다고 했나?

정치인들의 방식은 정말 이해할 수 없었다.

"지금은 비공정을 동원해 괴수를 모두 처리했습니다. 하지만 이미 많은 사람이 죽었고, 집과 건물이 무너진 곳이 많습니다."

난 고개를 흔들었다.

"앞으로 더 큰 게이트도 생기고, 더 강한 괴수도 나올 거야. 대수림에 사냥 중인 트라스의 개 기사단도 본국으로 보내."

"안 그래도 이미 발레리온으로 돌아갔습니다."

"잘했군."

알베르토가 한쪽에 있는 수인들을 보며 말했다.

"수인족 전사들에게 도움을 청할까요?"

"아니야. 벌써 그들의 도움을 받을 순 없어. 그들은 정말 위험할 때, 써야 해. 그러니 본국과 계속해서 소식을 주고받아."

"네! 알겠습니다."

차원 균열이 컸다면, 당장 모든 병력을 집결해 막아야 했지만, 아직은 아니었다.

"아! 그리고 이제 아리칸 장벽 관문에서 발레리온으로 바로 연락할 수 있습니다."

"뭐? 산맥 너머로 마석 전선을 연결한 거야? 거리가 멀어서 마석이 엄청나게 들 텐데?"

"그건 아닙니다. 앨리슨 마도 기술관께서 마나 통신 비공정을 만들었습니다. 최대 통신 거리가 500km로 이런 통신 비공정을 많이 만든다면, 왕국뿐만 아니라 제국 전역도 실시간으로 통신이 가능합니다."

"허!"

나도 모르게 탄성이 흘러나왔다.

이건 완전 인공위성이 따로 없었다.

통신 비공정은 비행석의 힘으로 늘 공중에 떠 있으니, 비용이 많이 들어갈 일도 없었다.

역시 천재가 중요한 시기에 제 역할을 해 주고 있었다.

"한 달 후에 에테나와 함대가 도착할 테니까, 일단 모두 발레리온으로 보내."

"네! 알겠습니다."

난 차원 이동 마법진을 그리고 암흑 차원으로 이동했다.

***

내가 암흑 차원으로 이동한 이유는 하나였다.

이곳 암흑 대수림에 등급이 높은 강한 괴수가 많기 때문이었다.

'모두 나와라!'

드라우켄과 대군주, 다바르, 와이번 괴수까지.

S급 괴수인형 넷과 내 자동인형이 탄 기간트 40기로 사냥하기로 했다.

1차 목표는 운명의 실타래 레벨을 한 단계 더 올려, 불카누스를 복제인형으로 만드는 것이다.

그리고 2차 목표는 최대한 괴수를 많이 잡아 2레벨을 올려, 내가 SSS급 헌터가 되는 것이다.

그럼 초거수 카르마탄을 잡을 방법도 생기지 않을까?

그런 기대가 들었다.

나도 퀸급 오리지널 기간트에 올라탔다.

기이잉! 쿵! 쿵!

[자! 가자!]

본격적인 괴수 사냥의 시간이 시작됐다.

괴수가 크건 작건 상관없었다.

대수림으로 진입하며 눈앞에 있는 괴수를 닥치는 대로 잡았다.

S급 괴수가 튀어나오면 나와 괴수인형들이 잡고, A등급 이하는 기간트들이 우르르 달려들어 칼침을 놓았다.

그렇게 보름 동안 사냥하자!

[인형술사 레벨이 올랐습니다.]

[운명의 실타래 레벨이 올랐습니다.]

이제 SSS급 헌터까지 1레벨만을 남겨두었다.

그리고 운명의 실타래 스킬 레벨이 오르면서 불카누스를 복제인형으로 만들 수 있었다.

[불카누스(lv.1) 허수아비 마법인형을 복제인형으로 만드시겠습니까?]

그래!

[불카누스(lv.1) 복제인형이 만들어졌습니다.]

순식간에 만들어진 복제인형.

불카누스는 날개를 펼치고, 눈을 똥그랗게 뜨고, 인형의 집 내부를 돌아보고 있었다.

이곳이 어떤 곳인지 어리둥절한 것 같았다.

이 녀석은 나의 어떤 능력을 복사했을까?

녀석의 상태창을 열어봤다.

[불카누스(lv.1)]

[클래스 – 차원 드래곤(F)]

[고유 스킬 – 운명의 불꽃(lv.1), 화염 괴수 제작(lv.1)]

[특수 스킬 – 화염의 숨결(lv.4), 드래곤 포효(lv.3), 꼬리 채찍(lv.3), 폭풍의 질주(lv.2), 앞발 내려찍기(lv.1)]

[용암의 집]

그때 불카누스와 눈이 마주쳤다.

놈은 날개를 접더니 나를 향해 고개를 숙였다.

후후후!

이 거대한 불카누스를 앞세우고 대수림에서 사냥한다면, 1레벨은 금방 올릴 수 있을 것 같았다.

'자! 불카누스! 너의 실력을 좀 볼까?'

202. 운명의 불꽃.

202. 운명의 불꽃.

SSS급 마법인형이라니······.

다시 생각해도 흐뭇해진다.

불카누스(lv.1) 복제인형의 실력을 보기 위해 인형의 집에서 꺼냈다.

쿵! 쿠쿠쿠쿵!

기이이잉! 콰앙!

"크르르릉!"

허! 원래 체격이 큰지는 알고 있었지만, 눈앞에서 보니 정말 거대하다.

눈앞에 산이 우뚝 솟아 있는 느낌이었고, 작은 거신목은 그냥 몸으로 눌러버릴 정도였다.

꼭두각시라면 걸음마부터 가르쳤겠지만, 복제인형은 분신인형보다 상위 마법인형이었다.

스스로 생각하고 운명의 실타래 범위를 자유자재로 넘나들 수 있었고, 매우 자주적이고 독립적이었다.

'자! 대수림을 향해 불을 뿜어봐!'

난 불카누스에게 의식을 전달했다.

그때 불카누스가 거대한 머리를 내게 돌리며 곤란한 표정을 지었다.

분명 그렇게 느껴졌다.

복제인형과 난 의식이 통하니까.

'왜?'

"크릉! 크르릉!"

불카누스가 거대한 어깨를 으쓱거렸다.

'아! 용암이나 마그마를 흡수해야 한다고?'

불카누스의 의식이 내게 말했다.

그래서 그렇게 용암 속에 몸을 담그고 사는구나!

그리고 그때 처음 본 불카누스와 지금의 모습은 매우 달랐다.

처음 봤을 땐 온몸에서 밝은 붉은빛을 뿜어냈다면, 지금은 투박하고 짙은 바위 색으로 붉은빛은 찾아볼 수 없었다.

'그럼 용암이나 마그마를 찾아야겠네.'

불카누스가 불을 뿜는 모습을 보고 싶었지만, 일단은 용암부터 찾아야 했다.

"크릉! 크르릉!"

'뭐? 근처에 화산이 있다고? 냄새가 나?'

불카누스가 거대한 머리를 끄덕였다.

다행히 멀지 않은 곳에 화산이 있다고 했다.

근데 용암을 흡수하기 위해선 시간이 걸린다는 말을 했다.

'그래? 아쉽지만 어쩔 수 없지. 가서 용암을 흡수하고, 내가 있는 곳을 찾아와!'

"쿠아아아!"

쿵! 쿵! 쿵!

불카누스가 고개를 한 번 끄덕이더니, 대수림으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방금 한걸음 땠을 때 하늘을 날아서 가면 되지 않겠냐고 물었더니, 피부가 바위처럼 굳어져 무거워 날 수 없다고 했다.

하늘을 날기 위해서도 용암이 필요하다고 했다.

그래서 조심해서 다녀오라고 했다.

그랬더니, 살짝 콧방귀를 뀐 것 같았다.

하긴 암흑 대수림에서 SSS급 괴수를 상대할 놈이 있겠냐마는.

놈이 거대한 엉덩이를 실룩거리며 사라졌다.

덩치는 정말 거대한데, 살짝 귀염성도 있네.

'어? 다리가 길어서 그런지 금방 사라졌어!'

순식간에 내 운명의 실타래를 벗어나 사라졌다.

그럼, 불카누스가 올 때까지 나도 조금 쉴까?

레벨업을 위해 지난 보름을 쉬지 않고 사냥했다.

그리고 며칠 후면 밤이 되기에 근처 성채에 가서 좀 쉴 생각이었다.

내가 몸을 돌릴 때였다.

쿵! 쿵! 쿵!

'어?'

묵직한 발걸음 소리에 고개를 돌렸다.

불카누스가 다가와 거대한 머리를 내밀었다.

'왜 돌아왔어?'

"크릉! 크르릉!"

'응? 그러니까 내 허수아비를 달라는 거야? 아무거나?'

불카누스의 의식이 다시 흘러들러 왔다.

'뭐? 화염 괴수를 제작할 수 있어?'

불카누스가 고개를 끄덕였다.

"크릉! 크르릉!"

'아! 무슨 말인지 알겠다.'

녀석의 고유 스킬인 운명의 불꽃은 내 운명의 실타래처럼 스스로 연결할 수는 없다.

오로지 나와 연결된 마법인형만 가능하다는 소리였다.

그러니까 내가 운명의 실타래와 연결된 마법인형을 주면, 운명의 불꽃 스킬로 불카누스가 마법인형과 연결된다.

그리고 그 마법인형을 용암의 집에 넣어 화염 괴수로 제작하는 것이다.

'오! 신기한데! 그럼 화염 괴수가 되면 불꽃도 뿜어낼 수 있는 거야?'

불카누스의 입꼬리가 살짝 올라갔다.

당연한 걸 묻는다는 표정.

어쩐지 표정이 날 닮은 것 같기도 하고.

"크릉! 크르릉!"

'아! 화염 괴수 제작 스킬 레벨과 괴수 등급에 따라 다르다고.'

불카누스가 말하길 화염 괴수 제작 스킬 레벨이 높을수록 화염 괴수의 능력이 좋아지고, 화염도 더 강하게 뿜어낼 수 있다고 했다.

그리고 마법인형의 원래 등급이 높으면 당연히 강한 화염 괴수가 나온다고 했다.

"크릉! 크르릉!"

'이왕이면 강한 마법인형으로 달라고?'

아! 스킬 레벨도 좀 올리게······.

정말 생각하는 것이 날 닮았는데?

내 성격을 복제했나?

'좋아! 좋은 놈으로 주지!'

난 며칠 전에 암흑 대수림의 괴수를 죽이고 허수아비로 만든 와이번(lv.1) 마법인형을 꺼냈다.

"크르르르릉!"

불카누스가 아주 기뻐했다.

S급 괴수를 줬으니 당연하지.

불카누스가 와이번을 입에 물더니, 획 허공으로 던졌다.

그러자 와이번이 사라졌다.

저건 용암의 방에 넣는 것이다.

"크릉! 크르릉!"

불카누스가 지금 운명의 불꽃(lv.1) 레벨로 한 마리 더 만들 수 있다고 한 마리를 더 달란다.

대신 등급이 조금 낮은 괴수 마법인형으로.

난 고심하다가 요즘 체격이 작아서 거의 쓰지 않은 3미터 크기의 표범 괴수를 꺼냈다.

'이 정도면 되겠어?'

불카누스가 딱 좋다며, 고개를 끄덕였다.

불카누스가 표범인형을 물고 던지자, 또 허공으로 사라졌다.

왠지 표범인형에 이빨 자국이 났을 것 같다.

난 살짝 터치하면 운명의 실을 연결할 수 있었지만, 불카누스는 아마도 입에 물어야 하는 것 같았다.

"크르릉!"

불카누스가 곧 다녀오겠다며, 몸을 돌려 대수림으로 사라졌다.

'정말 불카누스가 내 지능을 복제했나?'

시키지도 않았는데, 행동하는 불카누스가 마음에 들었다.

드래곤이었을 때 꽤 똑똑했을 수도.

난 마법인형들과 기간트, 자동인형들을 인형의 집에 넣었다.

그리고 와이번 꼭두각시에 올라타 북쪽으로 향했다.

***

[쿨레인 성채]

거신 인구 10,000명의 거대 성채.

대수림과 가까운 도시 성채 중에서 이곳이 가장 규모가 컸다.

난 이곳에서 두 달 후에 카타리나와 용병들을 다시 만나기로 했다.

'응? 저기 비공정이 보이네. 벌써 왔나?'

비공정이 성벽 위쪽에 걸쳐 살짝 떠 있었다.

지금 내 자동인형들은 비공정에 타고 있었다.

"끼아아아아!"

난 일부러 와이번 괴수를 성채 안에 착륙시켰다.

그러자 사방이 조용해졌다.

가끔 와이번에 거신을 잡아가는 경우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만큼 이곳 거신들은 와이번을 두려워했다.

그런데!

척! 처처처척!

수백 명의 거신 병사들이 창을 들고 우리 주변을 포위했다.

'오! 뭔가 좀 바뀌긴 했네.'

아하르 국왕이 거신 병사들을 훈련한다고 하더니, 조금 체계가 잡혔나?

그때였다!

이번엔 인간 헌터들이 무기를 들고 우르르 몰려나왔다.

"어? 타일러 대공님이시다!"

카타리나와 두 헌터가 와이번 등에 탄 날 알아보고 달려왔다.

난 와이번에서 내렸다.

그러자 거신들도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난 와이번을 인형의 집에 넣었다.

거신 병사들과 지휘관은 그런 내 모습을 보자, 고개를 숙였다.

이미 아하르 국왕에게 내 이야기를 들었나 보다.

"와! 타일러 대공 저하의 능력은 언제봐도 신기합니다."

카타리나가 말했다.

"나 이제 대공 아니야. 국왕이라고 불러."

"네? 왕이 되신 겁니까?"

난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데 저 헌터들이 전부 우리 왕국으로 오겠다는 헌터들인가?"

"그렇습니다. 이곳과 비공정에 200여 명이 있습니다. 대부분 비공정과 기간트를 보자마자, 다들 전하의 왕국으로 가겠다고 했습니다."

그때 헌터들이 우르르 몰려왔다.

"이분이 그 SS급 헌터와 같은 능력이 있다는 분이신가?"

"오오! 괴수 테이머나 소환 술사이신가 봅니다."

헌터들은 말을 하면서도 살짝 긴장한 것 같았다.

방금 S급 괴수를 타고 내렸고, 순식간에 사라지게 했기에 내가 최소 S급 이상의 실력자란 것은 다들 알고 있었으니까.

헌터 중에는 동양인도 여럿 보였다.

난 일부러 한국인을 찾진 않았다.

지구의 모든 나라가 붕괴하고 멸망했는데, 이전 국적이 무슨 상관이겠는가.

이제 내 왕국도 있고.

"카타리나, 그런데 왜 벌써 이곳에 모인 거지? 나와 약속한 날짜는 두 달 후일 텐데?"

카타리나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네? 알고 오신 거 아니셨습니까?"

"······?"

"전에 에릴 성채를 공격한 괴수들 말입니다. 최근 그 괴수들과 같은 종류의 괴수들이 다른 성채를 공격했고, 한 달 만에 3곳이 당했습니다. 그리고 이제 이곳이 대수림 근처에 남은 마지막 성채입니다. 그랬기에 거신 병사들이 이곳에 많이 모여 있는 겁니다."

"그럼 헌터들은 왜 이곳에 있는 거지?"

"사실 비공정에 타고 불모지 안쪽 성채로 이동하려다가 그동안 우릴 받아주고 도움을 줬는데, 그냥 도망치기가 뭐해서요. 그리고 이곳에서 타일러 국왕 전하를 만나기로 했는데 성채가 망하면 우릴 찾지 못하실 수도 있고요."

"다른 건 몰라도 거신들을 돕는 건 잘한 거다. 사람이 은혜를 받았으면 갚는 게 도리지."

"감사합니다."

난 이곳의 성채를 다시 한번 살폈다.

성벽은 높고 성문 역시 에릴 성채보다 훨씬 두꺼웠다.

하지만 대군주가 있기에 성문은 오래 버틸 수 없을 것이다.

"참! 저들의 병력 규모가 얼마나 되지?"

"그건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한 달 안에 벌써 3개의 성채를 휩쓸었으니, 수만은 되지 않을까요?"

"그렇군. 낮이 얼마나 남았나?"

"나흘 남았습니다."

"그럼 공격은 밤이 되는 나흘 후가 되겠군."

이곳 성채를 지키는 거신 병사 숫자는 대략 5천 명.

대수림과 가까운 변방이라 원래 거신 병사가 많았고, 대수림 마지막 성채를 지키기 위해 중앙에서도 병사가 추가됐기에 제법 병력은 많았다.

그리고 C급, B급 헌터가 합쳐서 200여 명이었다.

이 정도 병력에 내가 좀 도와준다면, 괴수 군단이 수만 마리라도 충분히 막을 수 있어 보였다.

그리고.

'다행이야. 애써 대수림의 괴수를 찾아다니지 않아도 되겠어!'

지난 며칠은 대수림에 괴수가 많이 보이지 않았다.

이미 이곳 대수림의 괴수들도 나와 마법인형 군단의 힘을 알았는지, 도망치는 놈들이 많았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알아서 죽으러 온다는데 나는 더 반가웠다.

이곳을 공격한 놈들을 모두 잡고, 여기서 1레벨을 더 올릴 생각이었다.

그럼 드디어 내가 SSS급 헌터가 된다.

"좋다! 나도 도와주지!"

"오! 타일러 전하께서 도와주시면 이 성채는 지킨 것이나 다름없습니다."

헌터들은 카타리나의 말에 다들 고개를 끄덕였다.

SS급 헌터가 돕는다면 당연히 막을 확률이 올라가니 저런 반응을 보이는 것이다.

"다들 방비를 철저히 하고, 준비하도록."

"네!"

헌터들과 함께 한 첫 번째 전투였다.

이들에게 내 실력을 보여주는 것도 나쁘지 않았다.

그래야 저쪽 차원에 가서도 불안해하지 않고 괴수들과 더 열심히 싸울 테니까.

***

나흘 후 해가 지기 시작했다.

이제부터 열흘간은 계속 밤이다.

물론 여기 거신들은 우리 기준으로 20일의 낮과 10일의 밤을 하루로 친다.

높은 성문 위로 올라갔다.

그리고 대수림에서 실시간으로 괴수들이 어둠과 함께 몰려나오는 것이 보였다.

그런데 괴수 숫자가 많아도 너무 많다.

'오! 좋은데!'

이번엔 확실히 레벨을 올릴 수 있을 것 같다.

괴수들의 뒤쪽에서 대군주가 모습을 드러냈다.

하나, 둘, 셋, 넷, 다섯!

뭐야? 왜 이렇게 많아?

'어? 거신 괴수도 있네!'

이곳 암흑 차원에도 SS급 거신 괴수가 있었다.

그때 거신 괴수 뒤쪽으로 뭔가 거대한 실루엣이 꿈틀거리며 나타났다.

높이가 60미터에 거대한 두 발로 걷는다.

그리고 도마뱀 형태의 머리를 가졌다?

"크아아아아!"

허! 공룡 괴수야?

티라노사우루스를 닮은 거대 괴수가 거신 괴수 뒤에서 따라오고 있었다.

"헉! SS급 괴수입니다!"

옆에 있던 카타리나가 공룡 괴수를 보며 놀란 입을 벌렸다.

거신 병사들도 마찬가지였다.

무시무시한 포스를 뿜어내는 거대 괴수를 보고, 서로를 쳐다보며 마른침을 삼켰다.

솔직히 나도 조금 놀랐다.

불카누스를 보지 않았다면, 오금이 저릴 뻔했다.

하지만 불카누스와 싸우고 나선 다른 괴수는 왠지 작고 약해 보였다.

다만 지금은 불카누스가 옆에 없어서 그런지 조금 걱정이 되긴 했다.

"괜찮아! 저 정도는 내가 충분히 잡을 수 있어."

"아! 역시!"

"대신 헌터들에겐 말하지 마. 사기가 떨어질 수 있으니까."

"네! 그럼 내려가서 전투를 준비하겠습니다."

카타리나가 성벽 아래쪽으로 내려갔다.

솔직히 살짝 쫄리긴 하지만, SS급 괴수도 몇 마리 잡았기에 허세를 부려봤다.

203. 하드 캐리.

203. 하드 캐리.

쿨레인 성채는 100미터 높이였고, 타원형으로 되어 있었다.

뒤와 양옆 쪽에는 깎아지른 듯한 뾰족한 산들이 있었고, 괴수들이 기어오르기 힘들었기에 앞쪽 성벽만 막으면 됐다.

지금 성벽 위의 방어는 거신 병사 3,000명이 맡기로 했다.

사실 성벽을 오르는 작은 괴수보다 성문을 뚫고 들어오는 거대 괴수가 문제였다.

이곳은 해자도 없었기에 오래지 않아 성문이 뚫릴 것이다.

'그런데 암흑 차원에도 거신 괴수가 있다니······.'

전부 지구로 간 것이 아니었나 보다.

거신 괴수는 이데아 제국의 위대한 열두 기사가 초거수를 죽이자, 퍼져 나온 포자를 마시고 변이한 괴수였다.

열둘 중에서 여섯이 거신 괴수가 됐고, 내가 둘을 죽였다.

하나는 엘프 차원을 멸망시킨 놈이고, 다른 하나는 오크 차원을 멸망시킨 화염의 레기우스였다.

이제 남은 네 거신 괴수 중에서 이곳에 하나가 나타난 것이다.

놈을 죽이면 또 하나의 군단을 처리하는 셈이니, 여기서 처리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

'숫자는 적은데, 괴수가 좀 세 보이긴 하네.'

대군주 하나당 따르는 괴수 군단은 대략 1만.

그럼 5만의 괴수 군단과 대군주 다섯에 SS급 괴수 둘.

전에 수인족 차원에서 싸운 놈들에 비하면 숫자는 훨씬 적었지만, 괴수는 더 강해 보였다.

B등급 이상의 큰 괴수도 더 많고.

적의 전력은 강성했다.

하지만 충분히 해볼 만하다.

"모두 준비해!"

쿵! 쿠쿠쿠쿵!

자동인형이 탄 기간트 40기가 성벽 안쪽에 만든 1차 바리케이드 뒤에 섰다.

대부분 룩급 기간트에 비숍급 기간트가 섞여 있었기에 대군주를 제외하면 상대 못 할 괴수는 없었다.

그리고 2,000명의 거신 병사와 헌터들은 1차보다 몇 배나 넓은 2차 바리케이드 뒤에 배치했다.

먼저 내 마법인형들이 몰려드는 괴수의 기세를 꺾고, 헌터와 거신들이 뒤쪽에서 마무리하는 방식으로 대형을 짰다.

괴수인형은 아직 꺼내지 않았다.

'괴수인형들이 자동인형이었으면 좋았을 텐데······.'

한 가지 아쉬운 점이었다.

내 괴수인형들은 복제인형을 빼곤 모두 꼭두각시였다.

꼭두각시는 내가 구체적인 명령을 내려야 움직이는 마법인형들.

그랬기에 항상 내 반경 700미터 내에 있어야 했기에 활동 범위가 너무 좁았다.

만약 운명의 실타래 범위를 벗어나면 운명의 실이 모두 끊어진다.

물론 운명의 실타래가 모두 끊어져도 곧바로 연결하면 레벨이 초기화되거나 떨어지진 않는다.

하지만 이전에 불카누스를 잡을 때처럼 시간을 지체하면 레벨이 초기화되는 일도 있었다.

그랬기에 다바르(lv.8)와 괴조(lv.7) 꼭두각시가 레벨이 초기화됐고, 이곳 대수림에서 지금 레벨까지 다시 올린다고 고생 좀 했다.

가장 좋은 건 SSS급 헌터가 돼서 운명의 실타래 레벨이 2배로 올라 SS급과 S급 괴수인형을 모두 복제인형으로 만드는 것이다.

그럼 전력이 엄청나게 올라갈 것이다.

그때 태양이 사라지고, 쿨레인 성채가 어둠에 뒤덮였다.

쿵! 쿵! 쿵!

거대한 놈들의 진군에 땅이 흔들렸다.

"놈들이 온다!"

"전투태세를 갖춰라!"

"횃불을 밝혀라!"

탱탱탱탱!

쉴새 없이 비상종이 울리고.

거신 병사들이 부산하게 움직였다.

난 1차 바리케이드 뒤쪽에 준비된 퀸급 오리지널 기간트에 올라탔다.

내 마법인형이 죽여도 경험치가 오르지만 내가 죽였을 때 경험치가 훨씬 더 많이 오른다.

그랬기에 오늘은 나도 선두에서 싸우기로 했다.

위험하면 인형 바꿔치기 스킬도 있고.

"쿠아아아!"

"끼이이아!"

성벽 밖에서 괴수들의 울음이 들린다.

그리고 놈들이 몰려와 성벽을 기어오르기 시작했다.

"찔러라!"

"놈들이 올라오지 못하게 막아!"

푹! 푹! 콰앙!

성벽 위에선 3천 명의 거신 병사가 창을 찌르고 방패를 휘둘러 괴수들을 막기 시작했다.

그리고.

쿠웅! 쿠웅! 쿠웅!

뭔가 거대한 것이 성문을 두드렸다.

마나를 보는 눈으로 살펴보자, 거대 코뿔소 괴수인 머스터였다.

머스터는 15미터 크기의 A등급 괴수로 덩치가 크고 전면이 발달해 돌진 공격에 수많은 헌터가 목숨을 잃었었다.

'저놈을 다시 보다니!'

하지만 방향 전환이 늦고, 옆구리와 후방 공격에 취약해 파티를 맺은 헌터들에겐 꽤 좋은 사냥감이었다.

지금은 아니었지만.

머스터 십여 마리가 교대로 성문을 돌진해 박았다.

콰앙! 콰앙!

놈들은 부모의 원수가 성문인 것처럼 머리가 깨지도록 달려들었다.

콰앙!

그리고 그 소리가 들릴 때마다 성문이 들썩였고, 뒤에 있는 헌터들과 거신들의 몸이 움찔거렸다.

"성문이 뚫린다! 조심해라!"

성벽 위에 거신 지휘관이 소리쳤다.

두두두두! 콰아앙!

쩌억!

머스터의 이마에 달린 뿔 하나가 성문을 뚫었다.

놈은 보통 머스터보다 체격이 1.5배나 큰, S급 괴수인 엘리트 머스터였다.

[모두 준비해!]

두두두두두! 쿠아아앙!

성문이 부서지며 엘리트 머스터가 들어왔다.

안으로 들어온 놈은 입을 벌리며 괴성을 질렀다.

"쿠에에에엑!"

그리곤 바리케이드를 향해 돌진하기 시작했다.

[저놈은 내가 잡는다.]

난 바리케이드를 넘어 왼손에 든 커다란 방패를 내밀었다.

쿠쿠쿠쿵!

그러자 엘리트 머스터는 나를 향해 돌진했다.

[얼음 방패!]

쩍! 쩌쩌쩍!

방패 앞으로 3배나 되는 얼음 방패가 생겼다.

쾅! 콰콰쾅!

놈의 돌진에 얼음 방패가 깨졌다.

쿠웅! 치이이익!

"크윽!"

13미터의 퀸급 기간트가 뒤로 10미터나 밀렸다.

하지만 쓰러지진 않았다.

20미터나 되는 놈의 돌진을 막았다.

이제 내 차롄가!

[불의 검!]

화르르르르!

대검에 불꽃이 이글거렸다.

몸을 옆으로 틀며 엘리트 머스터의 옆구리에 검을 찔러넣었다.

푸욱!

"꾸에에엑!"

놈이 괴성을 지르며 옆으로 쓰러졌다.

쿠우웅!

내 오리지널 기간트엔 괜찮은 속성 마법진을 하나씩 다 새겨 놓았다.

그때 거대한 성문 안쪽으로 머스터와 도사견을 닮은 괴수, 땅강아지를 닮은 괴수들이 쏟아져 들어왔다.

그것이 성채 내부 전투의 시작이었다.

쿠쿠쿠쿵!

[놈들을 죽여라!]

웨슬리가 먼저 외쳤다.

[괴수를 죽여라!]

[가자!]

쾅! 콰콰쾅!

바리케이드를 넘어온 괴수들과 전투가 벌어졌다.

기간트들이 속도를 잃은 괴수를 향해 검을 찔렀다.

적의 속도만 줄여줘도 지금처럼 전투가 수월하다.

웨슬리와 자동인형들은 계속해서 기간트의 검을 찔렀다.

그러자 실시간으로 경험치가 쌓이기 시작했다.

[뒤로 간다! 조심해!]

기간트 기사들이 열심히 괴수 숫자를 줄이곤 있지만, 40기로 몰려오는 모든 괴수를 막을 순 없었다.

많은 괴수가 2차 바리케이드로 몰려갔다.

"파이어 월!"

"윈드 커터!"

"트리플 샷!"

화아아아! 촤아악!

푸푸푹!

원거리 헌터들의 스킬이 먼저 괴수를 공격했다.

자신들의 제일 강한 스킬을 사용했기에 그래도 괴수들이 여러 마리 쓰러졌다.

하지만 워낙 많은 괴수라 어림도 없었다.

"탱커가 놈들을 막는다!"

B등급 헌터 카타리나와 탱커 헌터들이 앞으로 나섰다.

그리고 2천 명의 거신 병사가 창을 들고, 바리케이드 위를 겨눴다.

"쿠아아아!"

"죽여라!"

쾅! 콰콰쾅!

2차 바리케이드에서도 치열한 전투가 벌어졌다.

[우리가 최대한 괴수를 잡는다! 그래야 후방이 편해진다!]

[네! 주군!]

나와 기간트들이 괴수를 쉴새 없이 베고 죽이자 바리케이드 뒤쪽에 괴수 시체가 높이 쌓이기 시작했다.

대부분 3, 4미터의 괴수들이라 기간트 한 대가 10분만 잡아도 순식간에 전투 공간이 부족해졌다.

[앞으로 간다!]

일단 공간이 더 많은 바리케이드 앞으로 이동했다.

그리고 몰려오는 괴수를 계속해서 찌르고 베어 넘겼다.

쾅! 콰쾅!

가끔 괴수에 밀려 쓰러진 기간트가 있을 때면, 안에 탄 자동인형을 인형의 집에 넣었다. 성벽 뒤쪽과 2차 바리케이드 뒤쪽에 빈 기간트를 세워 놓았기에 10분 후에 다시 배치할 수 있었다.

이것이 기간트를 이용한 인형술사의 장점이었다.

"끄어어어!"

그때 대군주가 안으로 들어왔다.

놈의 군단이 거의 다 죽었단 뜻이었다.

[놈은 내가 처리한다!]

'드라우켄 앞을 뚫어라!'

"쿠아아아!"

40미터 크기의 드라우켄이 괴성을 지르며 앞으로 내달렸다.

쾅! 콰콰쾅!

난 드라우켄의 뒤를 따라 달렸다.

내 괴수인형으로 잡아도 되지만, 경험치를 위해서 내가 죽일 생각이었다.

"쿠아아!"

"그어어!"

부우우웅!

대군주가 드라우켄을 향해 검을 휘두르자, 드라우켄이 옆으로 몸을 날렸다.

'다바르!'

쿵! 쿵!

S급 냉기 괴수 다바르가 뒤에서 대군주를 덮쳤다.

그리고 쓰러진 대군주의 등을 향해 불의 검을 찔러 넣었다.

푸욱!

"끄아아아!"

놈이 괴성을 질렀다.

[운명의 실타래를 연결합니다.]

푹! 푹!

두 번을 더 찌르자, 놈이 축 늘어졌다.

경험치가 들어왔다.

기사회생 스킬을 사용했지만, 곧바로 운명의 실이 끊어졌다.

'아! 아쉽네!'

하지만 괜찮다.

경험치를 많이 얻었으니까.

그리고 우린 주변에 남은 괴수를 처리했다.

"와아아아!"

"괴수를 막았다!"

성벽 위와 안쪽에서 커다란 함성이 들렸다.

이제 첫 번째 웨이브였지만, 거의 피해 없이 적 병력을 1/5이나 줄인 것이다.

"대형 괴수가 온다!"

성벽 위에 거신 병사들이 외쳤다.

나도 알고 있었다.

이번엔 키가 60미터나 되는 공룡 괴수가 먼저 움직였다.

그리고 대군주 하나와 1만 마리의 괴수 군단이 몰려왔다.

'벌써, 보스가 등장했네!'

군단을 지휘하는 SS급 거신 괴수는 후방에 있었지만, 실질적으로 이곳 괴수 중에서 가장 강한 것은 지금 다가오는 SS급 공룡 괴수였다.

놈을 잡기 위해선 내 괴수인형을 모두 동원해야 했다.

[모두 뒤로 물러난다!]

일단 주변에 괴수 시체가 너무 많았기에 1차 바리케이드와 2차 바리케이드의 공터까지 물러섰다.

"끄어어어!"

"크아아아아!"

이번엔 공룡 괴수와 대군주가 포효하며 먼저 들어오고, 괴수들이 쏟아져 들어왔다.

괴수들의 전술 변화가 있었다.

먼저 대군주는 성문 입구에 서서 괴수들을 지휘했다.

쾅! 콰콰쾅!

그리고 공룡 괴수는 거신 괴수의 명령을 받았는지 1차 바리케이드를 사정없이 부숴버렸다.

꼬리가 얼마나 길고 강력한지 한번 휘두르자, 주변의 괴수와 바리케이드까지 휩쓸었다.

'저! 꼬리는 조심해야겠어!'

제대로 맞으면 S급 괴수의 뼈도 부러질 것 같았다.

[공룡 괴수는 내가 맡겠다! 모두 작은 괴수를 막아라!]

[네! 주군!]

2차 웨이브의 시작이었다.

콰앙!

"끼아악!"

"쿠엑!"

나와 기간트들이 전진하며 괴수들을 죽였다.

그리고 헌터들과 거신 병사들이 뒤를 맡았다.

그때 공룡 괴수가 바리케이드를 넘어와 나를 노려봤다.

13미터 퀸급 오리지널 기간트보다 4배나 큰 놈이 나를 향해 입을 벌리자, 털이란 털은 모두 곤두섰다.

드라우켄이 달려들 준비를 하고, 다바르가 냉기 브레스를 쏠 준비를 했다.

다바르의 브레스로 먼저 놈의 다리를 묶고, 드라우켄으로 달려들고, 하늘에서 와이번 괴수가 덮치고, 옆에서 대군주가 검을 찌르고, 내가 전격 마법과 불의 검으로 마무리하는 작전이었다.

"크아아아아!"

그때 공룡 괴수가 우리를 향해 포효했다.

'와! 등골이 오싹하군!'

놈이 달려들 준비를 하며 거센 콧김을 내뿜었다.

그때였다!

"쿠아아아아아아아아!"

갑자기 온 성채가 떠나갈 정도의 포효가 멀리서 들려왔다.

그러자 공룡 괴수와 밀려오는 괴수들이 깜짝 놀라 자리에 멈췄다.

놀라서 몸이 굳은 건 헌터들과 거신 병사들도 마찬가지였다.

그리고.

화르르르르! 화아아아아아!

성벽 너머로 시뻘건 붉은빛이 치솟으며 번쩍였다.

"태, 태양이 떴다!"

그때 뒤에서 한 헌터가 소리쳤다.

태양이 아니다!

저건 내 복제인형, 불카누스가 화염 브레스를 내뿜는 것이었다.

거리가 제법 멀었지만, 복제인형의 의식이 전달됐다.

불카누스는 지금 화염 브레스를 뿜어내고 괴수들을 짓밟고, 채찍 같은 꼬리로 쓸어버리고 있었다.

'뭐야? 거신 괴수를 죽였다고?'

게다가 방금 브레스로 괴수 군단의 총지휘관인 SS급 거신 괴수와 대군주 하나를 죽였단다.

그리고 1만 괴수 군단을 휩쓸어버렸다.

허! 혼자서 하드 캐리했네!

과연 SSS급 괴수.

그리고.

"쿠아아아아!"

붉은 날개를 펄럭이며 화염 와이번 괴수가 날아왔다.

[화염인형과 운명의 실타래를 다시 연결하시겠습니까?]

화염인형이라고?

새로운 타입의 마법인형이 생겼다.

[화염인형과 연결하기 위해선 800개의 운명의 실타래가 필요합니다.]

[연결을 해제하면 운명의 실타래는 복구되고, 화염인형은 불카누스(lv.7) 복제인형의 지배하로 돌아갑니다.]

800개 정도는 실타래 여유가 있었기에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연결해!'

[와이번(lv.9) 화염인형이 연결됐습니다.]

휘이잉! 쿵! 쿵!

화염 와이번이 내 옆에 착륙했다.

불을 뿜는 S급 화염인형이 생겼다. 심지어 레벨도 높은 편이었다.

내 군단의 공격 옵션이 다양해졌다.

'자! 이제 놈을 잡으러 가자!'

나와 S급 괴수 군단이 달려가자, 공룡 괴수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204. 최초의 SSS급 헌터.

204. 최초의 SSS급 헌터.

[화염 와이번! 네 실력을 먼저 보자!]

쿠쿠쿵!

와이번이 입을 크게 벌렸다.

"쿠아아악!"

화르르르륵!

화염 방사기 같은 뜨거운 불길이 입에서 쏟아졌다.

그리고 달려오는 작은 괴수를 태우고 공룡 괴수에게 쏘아졌다.

화염의 길이가 300미터는 되는 듯했다.

"크아아아!"

화염에 휩싸인 공룡 괴수가 고통스러운 괴성을 질렀다.

그런데!

쿵쿵쿵!

'뭐야? 도망간다고?'

지능이 있는 건가?

화염에 그슬린 공룡 괴수가 뒤로 돌아 달렸다.

살짝 당황했지만 놓칠 순 없었다.

[모두 놈을 쫓아라!]

나와 드라우켄, 화염 와이번, 다바르가 공룡 괴수를 쫓았다.

"끄아아아아!"

그때 성문 앞에 있던 대군주가 소리를 지르자, 주변에 있던 괴수들이 나와 괴수 인형에게만 달려들기 시작했다.

마치 대군주가 공룡 괴수를 지키려는 것 같았다.

수십, 수백 마리가 한꺼번에 몰려들자, 내 S급 괴수 마법인형들도 뒤로 밀리기 시작했다.

[모두 괴수들을 공격해!]

자동인형에게 명령했다.

그러자 웨슬리가 한 번 더 소리쳤다.

[주군의 명이다! 전진하라]

[공격하라!]

기간트들이 전진하며 몰려든 괴수들을 차례로 처리했다.

"우리도 가자!"

"괴수를 죽이자!"

"와아아아!"

헌터들도 바리케이드를 넘어 우리를 공격하는 괴수를 공격했고, 거신 병사들도 일제히 달려 나와 힘을 보탰다.

그렇게 몰려든 괴수를 죽이며 앞으로 나아갔다.

대군주와 공룡 괴수는 입구 쪽에 서 있었다.

이제 보니 공룡 괴수는 도망친 것이 아니라 후퇴한 것이다.

놈과 대군주는 우리 체력이 빠지길 기다리고 있었다.

'역시 거신 괴수뿐만 아니라, 대군주도 모두 죽여야 괴수들이 혼란에 빠지는구나!'

괴수는 자신이 따르던 대군주가 있으면 광포화하거나 발광하지 않는다.

대군주도 어느 정도 지능을 가지고 있고, 거신 괴수가 죽어도 명령을 내리고 있어서였다.

화아아아아아!

화르르르르르!

그때 가까운 곳에서 붉은빛이 번쩍였다.

그리고 거대한 화염이 성벽 위까지 치솟았다.

불카누스가 바로 성채 가까운 곳에 화염 브레스를 쏜 것이다.

[저기 있다! 전진해라!]

S급 괴수 3마리와 기간트 군단이 1차 바리케이드를 넘어 공룡 괴수와 대군주를 향해 전진했다.

기이잉! 쿵쿵쿵!

그때였다!

"쿠아아아아아!"

하늘 위에서 고막이 찢어질 듯한 괴성이 들렸다.

그러자 지상에 있는 생명체들이 일제히 얼음처럼 몸이 굳었다.

그리고 난 공중을 쳐다보았다.

고개를 들자, 성채 입구 바로 위에 거대한 불카누스가 이쪽을 내려다보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쿵! 쿵!

[불카누스(lv.15) 복제인형의 경험치가 정산됩니다.]

불카누스가 내 운명의 실타래 범위 내로 들어온 순간 엄청난 경험치가 내게 더해졌다.

그리고 드디어 레벨이 올랐다.

[인형술사 레벨이 올랐습니다. (lv.80 -> lv.82)]

[헌터 등급이 올랐습니다. (SS -> SSS)]

[운명의 실타래 스킬 레벨이 대폭 올랐습니다.]

[운명의 실타래 범위가 대폭 늘었습니다. (700m -> 2.8km)]

[영혼 이동 스킬 레벨이 대폭 올랐습니다.]

[영혼 이동(lv.max).]

[병렬사고 스킬 레벨이 대폭 올랐습니다.]

[그림자 투영 스킬이 대폭 올랐습니다.]

[인형 바꿔치기 스킬 레벨이 대폭 올랐습니다.]

[인형 바꿔치기(lv.max).]

[토우인형 제작 스킬 레벨이 대폭 올랐습니다.]

[토우인형 제작(lv.max).]

[금속인형 제작 스킬이 생겼습니다.]

[금속인형(lv.1)을 만들 수 있습니다.]

[합성인형 제작 스킬이 생겼습니다.]

[합성인형(lv.1)을 만들 수 있습니다.]

[마법인형 소환 스킬이 생겼습니다.]

[운명의 실타래 자동 연결 스킬이 생겼습니다.]

'허! 뭐가 이렇게 많아?'

SSS급 헌터가 되자, 순식간에 상태창 메시지가 쫙 올라갔다.

불카누스가 2개의 괴수 군단과 SS급 거신 괴수, 대군주 셋을 죽이고 다가왔기에 그 경험치가 정산된 것이다.

그리고 내 마법인형은 경험치를 적게 먹고, 내게 경험치를 많이 양도한다. 그런데도 불카누스의 레벨이 15레벨로 올라있었고, 헌터 등급도 E등급으로 올라가 있었다.

[운명의 실타래 자동 연결 스킬이 생겼습니다.]

순간 마지막에 생긴 SSS급 스킬이 뭔지 알 것 같았다.

난 놀란 표정으로 거대한 불카누스를 올려다보고 있는 공룡 괴수를 쳐다보았다.

'운명의 실을 연결한다.'

[운명의 실타래가 연결됐습니다.]

허! 이게 되네!

난 지금 터치 없이도 300여 미터나 떨어진 공룡 괴수와 운명의 실타래를 연결했다.

진작 이런 스킬이 있었다면, 위험을 무릅쓰고 운명의 실타래를 연결하지 않아도 됐을 텐데!

난 그 옆에 대군주를 쳐다봤다.

[운명의 실타래가 연결됐습니다.]

다시 한번 해봐도 가능했다.

"크릉! 크르릉!"

불카누스가 입맛을 다시며 내게 의식을 전달했다.

'그래, 알아서 해라!'

불카누스가 거대한 입을 벌리며 공룡 괴수를 내려다봤다.

자신을 바라보는 화염 드래곤 괴수의 식탐을 느꼈을까?

공룡 괴수가 갑자기 성문 밖으로 달리기 시작했다.

역시 머리가 좋은 놈이네!

불카누스가 자신보다 훨씬 강하다는 것을 알고 작전상 후퇴를 하는 것이다.

하지만.

"쿠아아아!"

거대한 꼬리가 채찍처럼 휘둘렸다.

촤아아악! 퍼억!

"크에엑!"

콰아앙!

불카누스의 꼬리가 공룡 괴수의 다리를 후려치자, 놈이 바닥을 구르며 쓰러졌다.

내가 직접 보지 않아도 불카누스의 동작과 소리만 들어도 알 것 같았다.

그리고 불카누스가 성벽 밖으로 고개를 숙였다.

콰직!

"쿠에에에에엑!"

공룡 괴수의 고통에 찬 비명이 들렸다.

불카누스가 고개를 들자, 그의 입에 공룡 괴수가 보였다.

불카누스의 이빨이 놈의 몸통을 뚫어버렸다.

그리고 곧 놈의 몸이 축 늘어졌다.

그러자 운명의 실이 검은색으로 물들었다.

이제 내 운명의 실타래 범위는 반경 2.8km.

어마어마하다!

'그런데 SS급 괴수를 이렇게 쉽게 죽였다고?'

불카누스의 의기양양한 의식이 전달됐다.

놀랄 틈이 없었다.

[기사회생(lv.max) 스킬을 사용했습니다.]

성공이나 실패냐?

SSS급 헌터의 끗발은?

[공룡(lv.1) 허수아비 인형을 만들었습니다.]

오! 또다시 내 인형의 집에 SS급 허수아비가 추가됐다.

이제 SS급 괴수가 둘이나 된다.

그랬기에 공룡 괴수는 불카누스에게 양보했다.

불카누스는 공룡 허수아비를 자신의 용암의 집으로 던져버렸다.

[괴수를 죽여라!]

그때 웨슬리가 다시 자동인형 기사들에게 공격 명령을 내렸다.

그리고 기간트들이 남아 있는 괴수를 공격했다.

"쿠아아아!"

불카누스가 꼬리를 성문 안쪽으로 넣더니, 대군주의 몸을 말아서 위로 올렸다.

"끄어어어어!"

캉! 캉! 캉!

대군주가 커다란 몽둥이로 불카누스의 꼬리를 내려쳤으나 결박을 풀지 못했다.

으드드득!

"끄어어어어!"

불카누스는 뱀처럼 꼬리로 대군주의 몸을 말아서 땅을 향해 내려쳤다.

부아앙! 쾅! 쾅! 쾅!

대군주의 머리가 박살 나며 곧 운명의 실이 검은색으로 물들었다.

[기사회생(lv.max) 스킬을 사용했습니다.]

아쉽게도 운명의 실이 끊어졌다.

하지만 괜찮다.

지금 내 인형의 집엔 S급 허수아비가 많으니까.

"끼이이이아!"

"쿠아아악!"

모든 대군주가 죽자, 괴수들이 광분해 달려들었으나 이미 숫자도 많이 줄어 있었고, 내 괴수 군단과 기간트 군단이 힘을 합치자, 순식간에 정리했다.

그렇게 그날의 전투는 대승으로 끝이 났다.

최고의 수훈은 SSS급 마법인형인 불카누스였다.

***

"그 화염 거수도 타일러 전하께서 길들이신 겁니까?"

카타리나의 질문에 난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이지."

"세상에! 이런 일이!"

"와아! 너무 놀라, 말도 안 나옵니다."

헌터들은 다들 경악했다.

SS급 괴수도 단숨에 물어 죽이는 거대 괴수.

게다가 엄청난 화염 브레스까지 뿜어내 괴수들을 몰살시키는 괴수를 길들였다는데 놀라지 않는 것이 이상한 일이었다.

게다가 난 이제 SSS급 헌터.

이 세계에 눈을 뜨고, 9년 만이었다.

난 거신들과 헌터들이 놀라지 않게 불카누스를 인형의 집에 넣은 상태였다.

불카누스는 인형의 집이 편한지 자리를 잡고 잠을 청하기 시작했다.

잠을 자는 마법인형은 또 처음이었다.

그리고 인형의 집의 크기가 다시 몇 배로 커졌다.

솔직히 이젠 너무 넓어져 조금 무서울 정도였다.

"이제 대수림에 있는 차원 균열로 이동할 테니까 준비해."

"네? 지구로 가는 겁니까?"

한 헌터가 긴장한 표정으로 물었다.

"그래. 두렵거나 무서운 사람은 함께 가지 않아도 된다. 이제 괴수 군단은 사라졌으니, 이곳도 이젠 옛날처럼 조용해질 거다. 그러니 바로 죽을 일은 없을 거야."

난 헌터들에게 선택권을 주었다.

이틀 후에 비공정에 올라탔다.

이곳에 모인 200여 명의 헌터는 모두 나를 따라가기로 했다.

눈앞에서 괴수 군단을 무찌른 실력을 봤으니, 나 같아도 따라가겠다.

조촐하게 비공정 한 척에 헌터들을 태우고 이동했다.

그리고 와이번(lv.12)과 화염 와이번(lv.9)이 우리를 호위했다.

지름 500미터 크기의 차원 균열.

암흑 대수림을 보름 동안 항해하고 도착한 곳으로 이 근처에서 가장 큰 차원 게이트였다.

물론 암흑 대수림 더 깊은 곳엔 카르마탄이 지구로 넘어간 초거대 차원 균열도 있었다.

그리고 아하르 국왕의 말로는 어비스라고 불리는 거대한 구멍이 암흑 대수림에 있는데, 원래는 구멍 지름이 수 km에 그 깊이는 가늠할 수 없을 정도라고 했다.

하지만 지금 어비스의 구멍은 수십 km로 넓어졌는데, 바로 카르마탄이 지하 세상에서 힘을 기르고 괴수 군단과 함께 지상으로 나온 흔적이었다.

"자! 들어가자!"

비공정이 차원 균열로 들어갔다.

***

휘이이이잉!

삭막한 바람이 분다.

공기는 탁하고, 아직 화산재가 뿌옇게 날리고 있었다.

지상은 그야말로 폐허.

산과 강까지 통째로 집어삼키는 카르마탄 때문에 눈에 보이는 세상이 온통 불모지에 평지가 되어있었다.

차라리 암흑 차원이 살기 좋았다.

'이런 세상에 아직 헌터와 인간이 산단 말인가?'

1년 전에 암흑 차원으로 넘어온 헌터가 말했다.

카르마탄이 아직 도달하지 않은 곳은 그래도 인간이 살고 있다고.

놈의 크기를 정확히 가늠할 순 없지만, 놈이 중국에 나타났을 때, 베이징시 전체를 덮고 있었다.

그런 놈이 거대한 입을 벌리며 모든 것을 삼키고 있었기에 지구의 종말은 얼마 남지 않았을 거다.

그리고 저쪽 차원도 이렇게 되지 않으려면, 무슨 수를 쓰든지 카르마탄을 죽여야 했다.

우린 카르마탄과 장벽 너머에 생긴 차원 균열을 찾아 움직였다.

그리고 오래지 않아 차원 균열이 생기길 기다리고 있는 괴수 군단을 찾았다.

'저건 드워프 차원에서 봤던 괴수네!'

거신 괴수와 대군주들!

그리고 수십 만의 괴수 군단이 역시나 한 곳을 멍하니 바라보고 있었고, 그곳엔 차원 균열이 생기고 있었다.

저놈들은 다음 웨이브를 준비하고 있는 것이었다.

이곳의 차원 게이트는 모두 2개.

그리고 게이트 크기가 정말 거대했다.

지름이 최소 2km.

아마도 총공격을 감행할 생각인 것 같았다.

내가 죽인 거신 괴수는 총 셋이다.

하나는 엘프 차원을 멸망시킨 괴수, 하나는 레기우스, 그리고 며칠 전에 하나를 더 죽였다.

그럼, 이곳 지구에 남은 거신 괴수는 셋.

그 말은 우리 차원을 공격할 괴수 군단이 셋이란 뜻이었다.

그러니 이 지구 어딘가에 침략을 준비하는 2개의 군단이 더 있다는 말이었다.

'그 괴수들이 모두 쏟아져 들어가면, 피해가 없을 수가 없겠네······.'

아무리 방비가 잘 되어있다고 해도.

지름이 2km나 되는 게이트에서 수십만 괴수가 우르르 몰려나온다면, 그걸 막을 수 있을까?

물론 발레리온 왕국에 이 거대 게이트가 생긴다면 막을 순 있었다. 하지만 그런 게이트가 모두 6개다.

다른 제국이나 왕국이 그 많은 괴수를 다 막을 순 없을 것이다. 나중에 괴수를 정리한다고 해도 이미 상당한 도시가 파괴되고, 많은 사람이 죽은 후가 될 것이다.

'역시 공격을 기다리다간 답이 없겠어!'

전장 선택을 잘해야 했다.

3개의 괴수 군단이 일제히 공격한다면, 너무 피해가 커진다.

내 생각엔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해선 선공만이 답이었다.

전장을 이곳 지구로 한다면, 최소한 제국과 왕국은 더 피해를 받지 않을 수 있었다.

문제라면 나와 내 군단만으론 한계가 있었다.

그러니 저쪽 세상의 힘을 모두 모아야 했다.

205. 괴수 군단을 칠 생각입니다.

205. 괴수 군단을 칠 생각입니다.

그 이후로도 주변을 한참이나 수색했지만, 카르마탄의 모습은 볼 수 없었다.

아마도 다른 대륙에 있는 것 같았다.

그래도 다른 2개 괴수 군단의 위치는 확인했다.

놈들은 모두 100km 지역 내에 몰려 있었고, 내 생각대로 6개의 거대 게이트가 생성 중이었다.

게다가 비행 괴수가 다수 포진된 괴수 군단도 있었다.

주변 정찰을 마치고, 저쪽 차원으로 들어가는 작은 게이트를 찾아 이동했다.

'거신 괴수와 괴수 군단은 이제 무섭지 않은데, 역시 카르마탄이 문제네······.'

카르마탄은 몸길이가 수십 km였고, 방어력이 엄청났기에 핵폭탄 수백 개를 맞고도 죽지 않았다.

놈은 수천 개의 다리를 가지고 있었고, 놈의 몸에서 나온 촉수 숫자가 수백만 개가 넘었다.

카르마탄의 촉수는 살아 있는 괴수처럼 움직였고, 2km나 늘어나 공격할 수 있었다.

그리고 놈의 하부에 붙어 있는 기생 괴수도 문제였다.

크기는 5m에서 15m 정도 되는데, 작은 기생 괴수는 C등급, 큰 기생 괴수는 A등급 괴수와 맞먹었다.

그런 놈들이 수십 만이나 됐다.

헌터 결사대가 카르마탄을 공격했다가 전멸한 이유가 바로 촉수와 기생 괴수 때문이었다.

그 말은 지금까지 카르마탄을 직접 공격한 헌터가 아무도 없다는 뜻이었다.

공중에서 공격하면 촉수가 막고, 땅에서 공격하면 기생 괴수들이 막는다.

유일한 단점은 모든 것을 계속 먹어치우며 움직이다 보니, 속도가 느리다는 것이다. 물론 멀리에서 보니까 그렇게 보이는 거고 실제론 사람이 달리는 속도보다 빨랐다.

이 난공불락의 괴수를 어떻게 죽일지 벌써 머리가 아프다.

어떻게든 가까이 붙어야 타격을 입힐 텐데······.

'대체 거신들은 어떻게 그 초거수를 죽였을까?'

그 초거수와 지금의 카르마탄의 크기는 비슷할 것이다.

새끼니까 생김새도 똑같을 거고.

그러니 초거수를 죽인 방법을 알면, 카르마탄도 죽일 수 있지 않을까?

일단 그 시대 사람이 알리사 엘가 마법사밖에 없었으니, 자세한 내용을 알 순 없었다.

그래도 이데아 제국에 무슨 기록이 남아 있지 않을까?

아무래도 알리사에게 다시 물어봐야겠다.

***

우리가 빠져나온 차원 게이트는 아리칸 왕국에 생긴 차원 게이트였다.

주변을 지키던 아리칸 왕국의 기사들이 놀랐지만, 발레리온의 비공정임을 알았기에 손까지 흔들며 환영했다.

마르틴 국왕을 만나고 가라고 했지만, 지금은 할 일이 많았기에 우린 곧바로 발레리온 왕국으로 향했다.

'금속인형 제작이라······.'

새로 생긴 제작 스킬.

거대 토우인형은 대수림의 단단한 흙으로 만든 것으로 내 모발과 운명의 실을 연결해 내가 직접 움직일 수 있었다.

기간트를 넣고 꺼내는 것은 충분했지만, 전투용으론 사용할 수 없었다.

괴수가 몇 대만 때려도 박살 날 테니까.

하지만 이번에 생긴 스킬인 금속인형 제작 스킬의 경우는 인형을 모두 금속으로 만들 수 있었고, 금속이라 단단하기에 크기를 크게 만들어도 상관없었다.

그리고 제작 스킬 레벨을 조금 더 올리면, 만렙을 찍은 토우인형 제작 스킬처럼 모발을 사용할 필요도 없었다.

'정말 초거대 기간트를 한번 만들어 볼까?'

무게가 엄청나게 무겁겠지만, 내게 비행석이 있었다.

그걸 적절하게 이용한다면, 정말 엄청나게 큰 기간트를 만들 수도 있을 것 같았다.

한 가지 문제라면 이 금속인형은 괴수 부산물을 쓸 수 없었기에 금속이 정말 많이 필요했다.

그리고 운명의 실타래 역시 상당히 많이 필요했다.

하지만 운명의 실타래는 이젠 걱정이 없었다.

SSS급 헌터가 되면서 운명의 실타래 레벨이 2배로 늘었고, 운명의 실타래 여유가 17,000개나 생겼기 때문이었다.

지금 당장 SS급 괴수와 S급 괴수 허수아비를 모두 복제인형으로 만들 수 있을 정도였다.

하지만 아직 만들진 않았다.

그건 SSS급 인형술사 스킬인 합성인형 제작 때문이었다.

[합성인형(lv.1) - 2개 이상의 마법인형을 합성할 수 있습니다. 합성은 같은 종류의 마법인형만 가능합니다. (성공률 - 25%)

실패 시 마법인형이 사라질 수 있습니다.

성공 시 운명의 실타래가 추가될 수 있습니다.]

그러니까 허수아비는 허수아비끼리, 자동인형은 자동인형끼리만 합성된다는 뜻이었다.

그리고 운명의 실타래가 더 필요할 수도 있었다.

일단 한 번 시도해 보고 효과가 좋으면, 괴수인형끼리도 합성할 수 있었고, 마나인형도 합성할 수 있었다.

문제라면 실패 시 마법인형이 사라질 수 있다는 뜻이었다.

그러니까 일단 스킬 레벨을 높여서 사용하면 안전하다는 뜻이었기에 스킬 레벨부터 높여야 했다.

그래서 이왕이면 약한 괴수를 왕창 잡아 허수아비를 잔뜩 만들고, 스킬 레벨부터 올린 후에 강한 마법인형을 합성해 보기로 했다.

이게 가능한 것은 다 운명의 실타래 자동 연결 스킬이 생겼기 때문이었다.

이제 난 그냥 쳐다만 봐도 2.8km 안에 모든 생명체에 운명의 실을 연결할 수 있으니까.

[발레리온 왕국]

"여기가 발레리온 왕국이다. 앞으로 자네들이 살 곳이지."

"와아아아!"

헌터들이 환호성을 내질렀다.

그들은 이미 이곳 차원의 공기를 마시자마자 반한 상태였다.

게이트가 발생하기 전 지구보다 훨씬 맑은 공기와 청명한 하늘은 누구라도 반할 수밖에 없었다.

지구의 석탄이나 석유 같은 에너지원과 다르게 마석은 고효율에 무한한 힘을 지녔고, 공해가 전혀 없었으니까.

"저, 저건 뭐야?"

헌터들이 갑판 난간에 붙어서 놀란 눈으로 쳐다보고 있었다.

나도 살짝 놀랐다.

25미터의 거대 기간트가 기간트 공방 밖에서 검을 휘두르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벌써 완성한 거야!'

글러드 왕자와 케네스 영감 말로는 최소 5년은 걸릴 거라고 했다.

그런데 아직 2년이나 남았는데, 벌써 완성했다.

난 비공정의 고도를 낮췄다.

'아! 스텐 뱅커스와 거신 대장장이 때문이구나!'

그 이유는 바로 알 수 있었다.

코린트 왕국의 천재 대장장이가 나를 따라왔고, 거대 기간트와 초거대 비공정 생산을 돕고 있었다.

13미터의 스텐 뱅커스와 거신들이 돕자, 생산이 훨씬 빨라진 것이다.

난 곧장 기간트 공방 아래에 착륙했다.

"여! 타일러! 어서 오게!"

날 발견한 스텐 뱅커스가 손을 흔들었다.

"고생했군."

그리고 그 옆으로 글러드 왕자와 드워프 대장장이들도 나와 있었다.

"이 기간트는 언제 완성된 거야?"

"타일러여! 오늘이 첫 시험이다!"

"그래?"

"잠시만 기다려라! 곧 끝난다."

25미터 거대 오리지널 기간트가 한참을 움직이더니, 내 앞으로 다가왔다.

기이이잉! 쿵! 쿵!

한걸음 걸을 때마다 천지가 울리는 기분이었다.

그러다가 갑자기 발소리가 매우 작아졌다.

움푹 파였던 땅도 이젠 거의 자국이 남지 않았다.

"비행석을 얼마나 장착한 거야?"

글러드 왕자가 웃으며 말했다.

"비공정 5척 분량을 때려 박았다! 보통 이동 시에는 폰급 기간트 수준의 무게로 움직이고, 최대한 가볍게 하면 강습 기간트 무게까지 줄어든다."

저 거대한 놈이 깃털처럼 가볍게 움직일 수 있다는 말이었다.

이러다가 하늘도 날겠다!

위이이잉! 철컹!

치이익!

커다란 해치가 열리며 안에서 암 드로운이 걸어서 나왔다.

"충! 타일러 빈스 주군을 뵈옵니다."

"어때, 기간트를 직접 움직인 소감이?"

"아주 대단합니다. 조금만 더 적응한다면, 훨씬 강한 적도 맞서 싸울 수 있습니다."

난 고개를 끄덕였다.

암 드로운이 이 거대 기간트를 탄다면, 혼자서 SS급 괴수 정도는 썰고 다닐 수 있었고, 잘하면 SSS급하고도 싸울 수 있어 보였다.

"마석 배터리는 얼마나 필요하지?"

"3시간 기동하는데, 일반 마석 배터리 30개가 필요하다."

"뭐?"

아무리 몸집이 몇 배로 커졌다지만, 3시간에 30개는 좀 심했다.

"하지만 걱정하지 마라! 전투 시에만 그렇고, 평소엔 비행석을 이용해 몸을 가볍게 하면 된다."

"아! 그렇지."

일반 퀸급 오리지널 기간트도 격렬한 전투를 하면 3, 4시간에 마석 배터리 8개를 소모한다.

그렇게 따지면 많은 건 아니었다.

거대 기간트를 보자, 나도 살짝 욕심이 났다.

금속인형을 한 번 만들 봐야겠다.

그때 스텐 뱅크스가 눈에 들어왔다.

"스텐! 이것보다 큰 기간트를 만들고 싶은 생각이 없나? 내 전용으로 말이야."

"응? 이것보다 더 큰 기간트 말인가?"

"그래 마석 배터리도 필요 없고, 그저 모든 관절이 잘 움직일 정도면 된다. 그리고 괴수 부산물 말고, 금속으로만."

스텐이 자신의 턱을 매만졌다.

늘 새로운 물건을 만드는 것을 좋아하는 스텐이었다.

"좋아! 한번 도전해 보지. 크기는 얼마나 커야 하지?"

"만들 수 있는 만큼 만들어 봐. 바로 옆에 철광석 광산도 있고, 비행석을 가져다 써도 된다."

"그렇단 말이지······."

스텐이 의미심장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

그런데 그 뒤에 있는 거신 대장장이들의 안색은 별로 좋지 않았다.

금속인형을 제작하는데, 내가 굳이 만들 필요는 없다.

다 만들어진 금속인형에 운명의 실만 연결하면 되는 거지.

"케니스와 앨리슨은 어디 있지? 안 보이네."

글러드 왕자가 고개를 흔들었다.

"요즘 더 강력한 원거리 무기를 만든다고 이곳에 오지도 않는다."

"어디서 만드는데?"

"북서쪽 산맥 가까운 곳에 연구소를 따로 만들어 실험 중이다."

앨리슨이 마나 대포를 만들더니, 그쪽으로 아예 푹 빠져 있었다.

그때였다.

프레디와 대신들이 내가 왔다는 소식을 듣고는 몰려왔다.

그것도 손에 가득 서류를 들고.

"타일러 빈스 국왕 전하를 뵈옵니다!"

"타일러 빈스 국왕 전하를 뵈옵니다!"

"다들 오랜만이네."

프레디 내무대신이 앞으로 나왔다.

"이번엔 반드시 보고를 드려야겠습니다."

"그전에 저기 헌터들 보이지."

"네? 전에 말씀하신 지구 이계인들입니까?"

"그래, 대부분 폰급 기간트 이상의 능력자들이니까, 우리 왕국에 정착할 수 있게 그대가 도와주게."

"오! 기간트에 타지도 않았는데, 그 정도 능력이란 말씀입니까?"

"그래."

"그럼, 기사급으로 대우하겠습니다."

난 클린드 외무대신을 쳐다봤다.

"그대가 당장 해야 할 일이 있네."

"그보다 보고부터 들으시고······."

"아니야. 이게 더 급해. 두 제국과 모든 왕국에 서신을 보내게. 이 괴수와 전쟁을 끝내고 싶으면 한 달 후에 이곳으로 최고 책임자를 보내라고."

"전쟁을 끝내요?"

"그리고 만약 오지 않는다면, 우리 발레리온 왕국과 척을 지는 거라고 말하고."

클린드 외무대신이 화들짝 놀란 표정을 지었다.

"네? 그렇게 보내도 될까요?"

"괜찮아! 저 기간트 보이지? 저거 한 대면, 아베르크가 자랑하는 근위 기사단도 전멸일걸."

클린드가 25미터의 거대 기간트를 보고 고개를 끄덕였다.

"하긴, 그렇겠네요."

암 드로운이 탄 거대 오리지널 기간트는 최종병기였다.

그가 20미터 길이의 장검을 휘두르면, 현재 나온 기간트로 막을 수 있는 기체는 없었다.

게다가 도망칠 수도 없었다.

비행석을 장착했기에 더 빨리 달릴 수 있으니까.

이미 거대 기간트가 완성되는 순간 우리 왕국의 전투력은 대륙 최강이 됐다.

물론 괴수인형을 전혀 쓸 필요도 없고.

***

한 달 후.

발레리온 왕국엔 각국의 비공정이 모여들었다.

아베르크 제국에선 윌리엄 원수와 찰스 추밀원장이 왔고, 다른 왕국에서도 최고 지도자들이 날아왔다.

특이한 것은 가디언 제국에선 루이스 황제가 직접 왔다는 것이다. 그것도 마장기 없이 호위 기사들만 데리고.

"어서 오십시오. 루이스 폐하!"

"오랜만입니다. 타일러 국왕."

루이스는 내게 고개를 숙이고, 공손하게 말했다.

전과는 또 다른 반응이었다.

"직접 오실 줄은 몰랐습니다."

"타일러 국왕께서 경고해 주어 수십만 명을 살렸습니다. 그 은혜를 어찌 모르겠습니까. 그리고 전쟁을 끝낼 방법이 있다니, 열 일을 제쳐놓고 와야지요."

난 고개를 끄덕이며 피식 웃었다.

루이스가 방금 한 말은 근처에 있는 윌리엄 원수에게 들으라는 말이었다.

아베르크 제국도 내 말을 듣고 방비는 했지만, 수도와 대도시 위주로만 기간트를 배치했다.

그 결과 10만 명이나 되는 제국 국민이 죽거나 다쳤다.

하지만 가디언 제국의 피해는 겨우 수백 명.

수치로만 따져도 엄청난 차이였고, 건물이나 집들이 부서진 것까지 더하면 패해 규모는 훨씬 컸다.

윌리엄 원수도 그걸 알고 있었기에 표정이 좋지 않았다.

"일단 오늘 회의 장소로 이동하시지요."

난 루이스와 각국 대표들을 데리고 영주관을 지나 새로 지은 발레리온 왕궁으로 이동했다.

"와! 정말 웅장하고 아름답군요!"

드워프 건축가들이 만든 왕궁이었다.

왕궁을 둘러싼 성벽은 없었지만, 왕궁을 두르는 기둥과 조각상이 매우 아름다웠기에 꼭 신전으로 들어가는 기분이 들었다.

그리고.

기이이잉! 쿵! 쿵!

"헉! 저게 뭐야?"

"기, 기간트?"

난 그들에게 거대 기간트 보여줬다.

"이번에 새로 만든 거인급 오리지널 기간트입니다."

"거인급이요?"

"킹급 위에 등급이 없으니, 거인급이라고 등급을 만들어봤습니다."

"설마, 이거 움직이는 겁니까?"

내가 고개를 끄덕이자, 암 드로운이 거인급 기간트를 움직였다. 그리고 근처에 세워둔 룩급 기간트를 단칼에 3기나 반으로 깨끗하게 베어버렸다.

그 모습을 본 각국 대표들은 경악했고, 꿀 먹은 벙어리가 되었다.

이건 경고의 의미였다.

나와 척을 지면 어떻게 될지 알아서 생각하라는 뜻이었다.

우린 왕궁 안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난 자리에 앉자마자, 대표들에게 입을 열었다.

"전 차원 균열 안으로 들어가 괴수 군단을 칠 생각입니다. 그런데 병력이 부족해서요."

그 말을 듣는 순간 루이스 황제를 뺀 각국 대표들의 눈동자가 크게 흔들렸다.

206. 힘을 모아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