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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6. 힘을 모아야 합니다.

"지금 차원 균열 안에 들어가서 괴수를 잡자는 말입니까?"

윌리엄 원수가 황당한 표정을 지었다.

"그렇습니다."

"몇 달 전만 해도 최선을 다해 지키라고 하시지 않았습니까?"

"그랬지요."

"그런데 왜 지금은 차원 균열을 넘어가야 합니까? 저희는 괴수들의 공격을 막을 만반의 준비를 끝냈습니다."

난 짧은 한숨과 함께 고개를 흔들었다.

"전에는 괴수가 나오는 차원 균열 앞을 지키는 것으로 충분했습니다. 하지만 이젠 상황이 바뀌었습니다."

"네?"

윌리엄이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이젠 괴수의 공격을 막을 수 없습니다. 먼저 앞으로 닥칠 일을 말해드리겠습니다. 먼저 지름 2km 게이트가 여기 모인 각 나라에 생길 겁니다."

아리칸 왕국의 대표인 서열 2위의 라호트 페르도 후작이 인상을 찡그렸다.

차원 균열을 많이 본 그는 2km나 되는 차원 게이트를 이미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건 수인족 차원에 발생했던 차원 균열의 크기였다.

그리고 그 안에서 나온 괴수 군단을 직접 막아보기도 했고.

"그리고 그 게이트에서 적어도 30만 이상의 괴수 군단이 공격할 겁니다."

"예? 30만이요?"

윌리엄과 대표들이 놀란 표정을 지었다.

윌리엄 원수가 인상을 찡그리곤 물었다.

"확실한 정보입니까?"

"윌리엄 경, 그럼 제가 각국의 대표분들을 모시고 확실하지도 않은 정보를 말하겠습니까?"

"험. 죄송합니다."

윌리엄이 살짝 고개를 숙이며 사과했다.

"그것도 길어야 5개월입니다. 4, 5개월 안에 차원 게이트가 완성될 거고, 각국은 그 괴수 군단과 싸울 것입니다."

루이스 황제가 손을 들고 말했다.

"그럼 방비를 더 철저히 하는 게 좋지 않겠습니까? 어차피 차원 균열에 들어가 싸우는 거나 지키는 것이나 마찬가지가 아닙니까?"

각국의 대표들은 살짝 놀란 표정을 지었다.

루이스 황제가 내게 존댓말을 쓰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게이트 지름이 2km면 하루도 되지 않아 30만 괴수 군단이 모두 통과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우린 차원 게이트의 발생 장소조차 모르고 있습니다. 만약 인적이 없는 곳에 발생한다면, 가디언 제국 내에서 30만 괴수와 싸워야 합니다."

"허! 그건 심각한 일이 되겠군요."

"그래서 전 차라리 앉아서 기다리지 말고 차원 균열 너머에 있는 괴수들을 공격하자는 제안을 하는 겁니다."

각국의 대표들이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루이스 황제가 다시 손을 들었다.

그러자 다들 조용해졌다.

"각 왕국에 30만의 괴수가 들어온다면 차원 너머엔 180만이나 되는 괴수가 있다는 소리가 아닙니까? 우리가 아무리 힘을 모은다고 해도 그 많은 괴수를 이길 수 있는 겁니까?"

"물론 가능합니다. 다행히 괴수들은 대략 100km의 거리를 두고 세 그룹으로 떨어져 있습니다. 그러니 한 번에 하나씩 처리해 나가는 겁니다. 그럼 180만이 아닌 60만을 세 번 상대하는 겁니다."

그때 드로리안 왕국의 리처드 공작이 말했다.

"한 번에 천여 마리의 괴수를 막는데도 마장기가 50기가 필요했는데, 괴수 60만 마리라면 우리 힘으로 되겠습니까?"

"물론 거대 병기만으론 60만 괴수를 다 막을 순 없습니다. 그렇다고 인간 병사들은 괴수의 상대가 되지 않지요. 하지만 추가 지원군이 있습니다. 수인족 전사 7만 명이 전투에 참여할 겁니다. 그리고 거신 왕국인 코린트 왕국과 롱퍼드 왕국에서 거신 병사 1만 명을 보내줄 겁니다."

"상당한 숫자긴 하군요."

"그러니 우리도 힘을 모아야 합니다."

리처드 공작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우리가 마장기를 얼마나 보내야 합니까?"

"쉽게 말하겠습니다. 아베르크 제국과 가디언 제국에선 각 기간트 2,000기와 마장기 2,000기를 보내주시고, 다른 왕국에선 500기의 병기를 보내주시면 됩니다."

"뭐요? 2,000기요?"

"허! 지금 왕국의 타이탄을 거의 다 보내란 말씀입니까? 이번 괴수 출몰로 타이탄이 상당히 상했습니다. 500기면 지금 글론 왕국의 거의 모든 병력입니다."

글론 왕국의 폴 후작이 황당한 표정을 지었다.

그리고 윌리엄 원수도 2,000이란 숫자에 당황한 것 같았다.

다른 왕국도 대부분의 거대 병기를 보내란 소리였기에 고개를 흔들고 있었다.

아리칸 왕국의 라호트 후작도 심각한 표정을 지었다.

지금 아리칸의 기간트를 다 합쳐봐야 600기가 조금 넘었기 때문이었다. 기간트는 생산할 수 있어도 기간트에 탈 기사가 부족했다.

글론 왕국의 폴 후작이 물었다.

"혹시 병력을 보내지 않으면 어떻게 되는 겁니까?"

"한 곳이라도 병력을 보내지 않으면 계획은 없던 일이 될 겁니다."

"그게 답니까?"

난 웃으며 대답했다.

"제가 무슨 보복이라도 하실 줄 알았습니까?"

"아까 그 거대 기간트를 보여주신 건 우리를 겁주기 위함이 아닙니까?"

"그건 맞습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보복을 하려는 의도는 없습니다. 어차피 괴수에게 멸망할 텐데, 보복은 필요 없지요."

"쩝."

폴 후작이 입맛을 다셨다.

"그럼, 연합 병력의 지휘는 누가 맡을 겁니까?"

"당연히 제가 맡겠습니다. 물론 저보다 더 지휘를 잘하시는 분이 있다면 양보하겠습니다."

루이스 황제가 말했다.

"난 타일러 국왕이 지휘하는 것에 동의합니다."

"네?"

대표들의 시선이 루이스 황제에게 쏠렸다.

그러자 아베르크의 윌리엄도 손을 들고 말했다.

"사실 타일러 국왕께서 적임자이시긴 합니다. 우리 아베르크 제국도 찬성합니다."

날 잘 알고 있는 두 제국이 저리 나오니, 다른 왕국은 싫어도 내게 맡겨야 했다.

다른 왕국도 동의했다.

"그리고 3개의 괴수 군단을 모두 쓰러트리는 것이 끝이 아닙니다."

"네?"

"괴수가 더 있는 겁니까?"

"괴수들을 다 쓰러트린 후엔 초거수를 잡으러 가야 합니다."

"초거수요?"

난 이들에게 거신 왕국을 멸망시켰던 초거수 이야기를 해줬다. 그리고 그 초거수의 새끼인 카르마탄이 지금 이곳 차원을 노리고 있다는 이야기도 설명했다.

그러자 각국 대표들의 표정이 심각해졌다.

"그건 신화 속에 이야기가 아닙니까? 정말 그런 초거수가 있다는 말입니까?"

드로리안 왕국의 리처드 공작이 물었다.

"물론 믿기 힘드실 겁니다. 하지만 직접 눈으로 보여드릴 테니, 보고 판단하십시오."

"그게 무슨 말씀입니까?"

"여기 이렇게 모이라고 한 이유는 단순히 회의하기 위함이 아닙니다. 비공정에 타고 저와 함께 저쪽 차원에 넘어가서 괴수 군단도 살펴보고, 카르마탄이라는 초거수도 직접 보시라는 뜻이었습니다."

"그러다 초거수가 우릴 공격하는 건 아닙니까?"

"괴수 군단은 가까이서 보실 수 있지만, 초거수는 5km 정도 떨어진 곳에서 볼 겁니다. 그러니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난 에테나를 쳐다봤다.

"가장 빠른 비공정으로 부탁해."

"네! 타일러 전하."

에테나가 밖으로 나갔다.

난 지난 한 달간 지구 차원을 수색해 지금 카르마탄이 어디 있는지 위치를 알아냈다.

다행히 초거수는 괴수 군단과 상당히 떨어진 곳에 있었기에 우리가 괴수들을 모두 휩쓸어버린 다음에 상대할 수 있었다.

"지금 꼭 함께 가야 합니까?"

"그렇습니다. 확실한 증거도 없이 어떻게 본국으로 돌아가서 설득할 수 있겠습니까."

"하지만 위험할 수도 있고······."

지금 당장 비공정을 타고 간다는 말에 각국 대표들은 조금 혼란스러워했다.

"좋소. 갑시다!"

그때 루이스 황제가 고개를 끄덕이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러자 윌리엄 원수도 한숨과 함께 자리에서 일어섰다.

두 제국이 같이 가기로 하자, 각국 대표들도 울며 겨자 먹기로 함께 가기로 했다.

난 이들과 가장 빠른 비공정에 타고, 가까운 지구 차원 균열로 들어갔다.

그리고 일주일을 이동해 먼저 거대한 카르마탄을 아주 멀리서나마 보여줬고, 괴수 군단도 모두 보여줬다.

우리가 다시 왕국으로 돌아왔을 때는 이미 보름이 지났다.

그리고 모두 병력을 내기로 했다.

차원 게이트가 벌써 조금씩 형체를 잡아가고 있었다. 가만히 있다간 정말 제국이든 왕국이든 모두 망할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희망도 하나 선사했다.

그들이 침울해 있을 때, 불카누스와 화염 브레스 쇼를 보여줬다.

3km가 넘는 거대 괴수와 엄청난 화염을 보고는 어쩌면 이길 수도 있다는 희망을 뿜었다.

그리고 내가 좀 무섭기도 했을 거다.

비공정이 없거나 적은 왕국은 내가 비공정을 빌려주기로 했다.

일단 병력 이동은 비공정으로만 해야 했다.

걸어서 이동한다면 너무 오래 걸릴 것이고, 싸우기도 전에 진이 빠질 것이다.

최종 집결 시간은 석 달 후였고, 각자 병력을 모아 이곳 발레리온 왕국에 모이기로 했다.

다들 각국으로 돌아가고, 아베르크 제국 대표만 남았다.

윌리엄 원수와 찰스 추밀원장은 고민이 많은 얼굴이었다.

"내게 무슨 할 말이 있소?"

이들과는 개인적인 만남이었기에 말을 편하게 했다.

윌리엄이 심각한 표정을 지었다.

"힘은 들겠지만, 괴수 군단은 충분히 막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거대 드래곤 괴수도 있고요. 그런데 고대 거신들도 막지 못했는데, 그 카르마탄이라는 초거수를 우리가 막을 수 있겠습니까? 솔직히 말해 주십시오."

윌리엄은 진지했다.

"지금 방법을 알아내고 있소."

"네?"

"몇 가지 계획은 있지만, 더 완벽한 계획을 위해 정보와 방법을 알아내고 있소."

"아직 확실한 것은 아니란 말입니까?"

"그렇소. 하지만 지금까지 그래왔듯이 이번에도 가장 좋은 방법을 찾아낼 것이오. 그러니 윌리엄 경은 케인 황제나 잘 설득하시오. 그는 반대할 게 분명하니까."

윌리엄이 짧은 한숨을 쉬었다.

"휴우! 설득은 불가능할 겁니다."

"뭐요?"

"케인 황제께선 예전의 총명함을 잃어버리셨습니다. 지금은 황성 내에서 외부와 단절된 상태로 명령만 내리고 계십니다."

"만약 황제가 반대하면, 아베르크 제국은 병력을 보내지 않겠다는 말이오?"

윌리엄이 손을 흔들었다.

"그럴 리가 있겠습니까. 그랬다가 괴수가 오기도 전에 제국이 난리가 날 텐데요."

그건 맞는 말이다.

내가 가만히 있을 리가 없지.

"그래서 프란 황태자가 썼던 방법을 쓸 생각입니다."

난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건 전에 실패했던 방법이 아니오. 황태자도 죽었고. 시안 왕도 허락하지 않을 거요."

"어쩔 수 없습니다. 제국을 망하게 둘 순 없지 않겠습니까. 그동안 타일러 전하께서 하신 것처럼 일단 저지르고 어떻게든 수습하기로 했습니다."

난 피식 웃었다.

내가 맨날 윌리엄 원수에게 했던 말이 있었다.

허락을 구하기보단 용서받는 게 쉽다.

그것과 맥락이 같은 말이었다.

"알겠소. 행운을 빌지."

아베르크 제국의 대표도 돌아갔다.

이제 괴수 군단과 카르마탄을 상대할 병력은 어느 정도 준비됐다.

남은 건 카르마탄을 어떻게 죽일지 방법을 고민하는 것이었다.

***

두 달이 지났다.

전투 준비는 차근차근 되어가고 있었다.

이번 원정은 나도 돌아오지 못할 수 있었기에 특히 신경이 더 쓰였다.

원정대가 실패하면, 난 이곳에 남아 있는 프레디와 클린드 대신에게 이계인들과 이동을 원하는 왕국 국민을 모두 이끌고 수인족 차원으로 가라는 말까지 했다.

카르마탄이 이 땅에 넘어오는 순간 모든 것이 끝나기 때문이었다.

원정대도 모두 죽을 것이고.

그러니 어떻게든 놈을 죽여야 했다.

"알리사 경과 마법병단이 도착했습니다."

"그래? 어서 이리 데려오게."

알리사 엘가가 왕궁 알현실로 들어왔다.

이곳 발레리온 왕궁은 거신들도 들어올 수 있게 일부러 천장을 높이고, 통로와 입구를 크게 지었다.

"충! 타일러 전하를 뵈옵니다."

"어서 오시게. 그래 찾았나?"

알리사의 표정은 어두웠다.

그녀는 마법병단과 함께 지금까지 이데아 황궁 발굴지에서 고대 기록을 뒤지고 왔다.

"찾긴 찾았습니다."

"정말 카르마탄을 죽이는 방법이 나와 있단 말인가?"

"네. 그런데······."

알리사는 말을 끝맺지 못하고 내게 두꺼운 책을 내밀었다.

이건 이데아 제국의 역사를 기록한 사서였다.

책에 마석과 마법까지 걸려 있는 것이 보관이 상당히 신경을 쓴 흔적이 엿보였다.

알리사가 날 위에 자신이 찾은 부분을 열어서 보여줬다.

몇 장을 읽어 내려가자, 나 역시 표정이 어두워졌다.

"하아! 세상에 쉬운 일이 없군······."

"같은 시대를 산 저도 정확한 사실은 몰랐습니다. 어떻게 초거수를 죽이고, 또 어떻게 끔찍한 저주를 받았는지 말입니다."

고대 거신들이 초거수를 죽인 방법은······.

207. 준비 운동.

207. 준비 운동.

직접 초거수의 몸으로 들어가는 것이었다.

그것도 몸을 뚫고 들어가는 것이 아니라, 15km나 되는 거대한 입속으로 몸을 던져서 들어가는 방법이었다.

'이런 무식한 방법을 쓰다니······.'

이게 통했다는 것이 더 놀라웠다.

거신들도 초거수를 한 번에 잡은 것이 아니었다.

여러 번 공격하고, 또 어떻게든 초거수의 전진을 막아보려 했다.

하지만 도저히 타격을 입힐 수 없었다.

거신 기사들은 기생 괴수들을 뚫고 접근했지만, 놈의 단단한 피부는 어떤 병기로도 뚫지 못했고, 마법사들의 마법 역시 통하지 않았다.

초거수는 계속 거신 제국이 있는 남쪽으로 내려왔고, 거신들은 고심하다가 한 가지 방법을 알아냈다.

한 거신 영웅이 후퇴하다가 실수로 움직이기 시작한 초거수에게 먹혔고, 이틀 만에 살아나온 것이다.

생존한 거신이 말하길 안에는 숨 쉴 수 있는 공기도 있고, 엄청 넓은 공간이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계속해서 밀려드는 토사와 잔해 때문에 자신은 한 곳에 숨어 있어야 했고, 내부에도 또 다른 기생 괴수가 많다고 했다.

그 말은 들은 거신들은 새로운 작전을 짰다.

- 겉에서 타격을 줄 수 없다면, 안에 들어가서 공격하자! -

그렇게 해서 조금 특별한 원정대가 꾸려졌다.

이데아 제국의 위대한 열두 기사 중에서 여섯 명과 가장 뛰어난 영웅 기사 3,000명이 초거수의 입으로 들어가기로 했다.

다만 한 가지 조건이 필요했는데 원정대가 초거수 안에 들어갔을 때, 놈이 세상을 집어삼키는 걸 중지해야 했다.

아니면 들어가자마자 뒤에서 밀려온 온갖 토사와 바위, 나무 등에 대부분 깔려 죽을 테니까.

그래서 남은 여섯 명의 기사와 수만 명의 거신들이 밖에서 초거수를 공격했다.

초거수는 일단 공격을 받으면 먹기를 멈추고, 기생 괴수와 촉수가 위협을 제거할 때까지 멈춰있기 때문이었다.

드디어 원정대가 초거수의 입속으로 들어갔고, 그 사이 외부에선 치열한 전투가 벌어졌다.

그때 많은 거신이 죽었고, 또 다쳤다.

하지만 거신들은 멈추지 않았다.

계속해서 기생 괴수와 촉수와 싸웠고, 이틀 만에 초거수의 몸에서 이상한 반응이 생겨났다.

그리고 사흘째 되던 날, 드디어 초거수가 쓰러졌다.

거신들은 환호성을 내질렀고, 승리의 함성을 질렀다.

그런데 안으로 들어갔던 원정대가 나오지 않은 것이다.

괴수는 죽자마자, 몸에서 독과 같은 지독한 포자를 뿜어냈고, 포자를 마신 영웅 기사들이 쓰려지기 시작했다.

그때 초거수 안에서 새끼 괴수가 튀어 나왔다.

그리고 곧바로 괴이하게 변이한 20미터 크기의 거신 괴수들이 따라 나왔다.

밖에 있던 거신들을 새끼 괴수를 죽이려 했지만, 끔찍한 포자가 밀려왔고, 새끼를 보호한 거신 괴수들 때문에 죽이지 못하고 물러서야 했다.

'괴수는 죽였지만, 안으로 들어간 위대한 기사들은 모두 변이한 거네.'

그럼 나도 괴수를 죽였다고 해도 변이할 수 있다는 말이었다.

그러니 알리사가 저리 표정이 좋지 않은 것이었다.

"결코, 좋은 작전은 아닙니다. 결국, 아무도 살아 돌아오지 않았다는 말이니까요."

알리사가 고개를 흔들었다.

하지만 나와 알리사는 그 방법밖에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알리사, 난 괜찮을 거야."

"하지만······."

"난 도망쳐 나올 방법이 있어. 그러니 너무 걱정하지 말고. 이 이야기는 우리 둘만 알고 있잖고."

알리사가 입술을 깨물었다.

"네······."

어쩔 수 없다.

이 사실을 알면 다들 반대할 테니까.

그리고 괴수의 입속으로 들어가는 건 나 혼자 할 생각이었다.

내겐 기간트 군단과 괴수인형 군단이 있으니까.

***

한 달 후.

발레리온 왕국 상공에 대륙의 거의 모든 비공정이 집결했다.

기간트 3,000기, 마장기 2,500기, 타이탄 1,000기.

보급을 위한 비공정과 작업용 기간트도 최대한 모았다.

동원한 병사도 만 명에 달했다.

"전군 진입하라!"

"진입하라!"

우린 차원 게이트를 통해 지구 차원으로 전진했다.

비공정이 모두 통과하는 것만 해도 하루가 걸렸다.

드디어 첫 번째 괴수 군단 근처에 집결했다.

그곳엔 내가 이번에 완성된 초거대 비공정이 기다리고 있었다.

그리고 초거대 비공정 위쪽엔 엘프와 드워프, 오크 해병대가 타고 있었다.

초거대 비공정과 내 비공정 전투 함대는 비행 괴수를 상대할 생각이었다.

그리고 수인족 전사들이 이곳에 도착해 있었다.

"도움에 감사드립니다. 라이진 수왕, 크로카일 수왕, 갈루스 수왕, 로덴트 수왕."

"아닙니다. 타일러 국왕께서 저희 차원을 지켜 주셨는데, 당연히 힘을 합쳐야지요. 그리고 저들이 거신 차원을 점령하면 다음은 우리 차례가 될 것이 아닙니까. 그러니 여기서 놈들을 막아야 합니다."

라이진 수왕이 대표로 말했다.

4개의 수인 왕국에서 예상보다 많은 총 8만이나 되는 병력을 모아왔다.

그리고 롱퍼드 왕국의 아하르 국왕이 직접 8천이나 되는 거신 병사들을 이끌고 왔다.

"어서 오십시오."

"오! 엄청난 병력입니다. 이 정도 병력이면 못 이길 적이 없을 겁니다."

아하르 국왕은 6,500기나 되는 거대 병기와 하늘의 거대 비공정을 보곤 눈을 크게 떴다.

그의 말대로 이 정도 병력이면 세상 무서울 것이 없었다.

카르마탄을 제외하면······.

"최선을 다해야죠."

"우리도 최선을 다해 돕겠습니다."

코린트 왕국에서도 기사들과 병사들이 도착했다.

병사 숫자는 2천밖에 되지 않았지만, 오리지널 기간트와 맞먹는 기사도 있었고, 마법사도 있었다.

그리고 이번에 코린트 왕국은 거신 국민들의 투표로 새로운 왕을 뽑았다.

압도적인 표 차로, 알리사 엘가가 뽑혔다.

알리사는 내 마법병단의 단장이기도 했지만, 코린트 왕국의 여왕이기도 했다.

그렇게 병력이 집결했고, 사흘 후 적 괴수 군단을 공격하기로 했다.

***

"포격을 준비해라!"

"서둘러라!"

초거대 비공정과 함포를 가진 전투 비공정이 포격을 준비했다.

그리고 내 예상대로 가디언 제국과 아베르크 제국도 비공정에 함포를 만들었다.

아직 초기 단계긴 하지만, 마석 배터리를 이용한 마나 대포였다.

그리고 대륙 유일한 지상 포병대인 드워프 포병대도 포격을 준비했다.

포병대의 주력 대포는 앨리슨이 개발한 사거리 5km의 장거리 마나 대포로 구형 버전보다 사거리도 2배 이상 늘었고, 포탄의 위력도 더 증가했다.

"발사하라!"

"발사!"

내 명령에 초거대 비공정의 함포가 불을 뿜기 시작했다.

펑! 퍼퍼퍼펑!

그리고 공격형 비공정과 후방에 있는 포병대의 마나 대포도 거의 동시에 불을 뿜었다.

펑! 퍼퍼펑! 펑!

휘잉! 휘잉!

다가오는 위협을 느꼈을까?

차원 균열이 생기길 기다리며 가사 상태에 빠졌던 거신 괴수와 대군주가 고개를 돌렸다.

하지만 이미 늦었다.

쾅! 콰콰콰쾅!

화륵! 화아아아아아!

세상을 모두 박살 내 버릴 것 같은 포탄이 쏟아졌다.

한 번에 수천 마리의 괴수가 녹아내렸다.

"계속 쏴라!"

"발사하라!"

연이어 포탄이 떨어지고, 괴수 군단을 향해 계속해서 마나 대포를 쏘고, 또 쏘았다.

엄청난 포격 속에서도 거신 괴수와 대군주들은 죽지 않았다. 하지만 B등급 이하의 괴수는 녹아내렸다.

거신 괴수가 포효했다.

"끄아아아아!"

그러자 괴수 군단이 드워프 포병대를 향해 움직였다.

이곳 괴수 군단은 비행 괴수가 없었다.

하지만 가장 강력한 지상 병력을 보유하고 있었기에 첫 번째 타겟이 되었다.

"끼이아아!"

"쿠아아!"

포격으로 상당한 숫자를 없앴지만, 괴수는 아직 많았다.

놈들은 거신 괴수와 대군주의 명령을 받아 파도처럼 밀려 나갔다.

[검을 들어라! 아베르크 기간트의 위력을 보여라!]

[와아아아아!]

드워프 포병대를 맨 앞에서 보호하고 있는 것은 2,000기의 아베르크의 기간트였다.

그리고 그 뒤쪽은 수인족 전사 3만 명이 대기하고 있었다.

쾅! 콰콰콰쾅!

괴수와 인간의 최종병기인 기간트가 맞부딪쳤다.

거대 병기의 원조국답게 아베르크의 기간트와 기사들은 강했다.

다가오는 괴수를 찌르고 베고 숫자를 빠르게 줄여나갔다.

그리고 운 좋게 기간트를 지나가던 괴수들은 수인 전사들이 잘 막고 있었다.

그러자 몰려오던 괴수 군단도 속도가 줄어들고 점점 정체되기 시작했다.

[모두 공격하라!]

[가디언 제국을 위하여!]

기이이이잉! 쿠쿠쿠쿵!

가디언 제국의 마장기와 드로리안 왕국의 마장기 2,500기가 옆면에서 달려들었다.

그들의 뒤에서 수인족 전사 2만이 함께 하고 있었다.

몰려 있던 괴수들이 갑작스러운 공격에 또다시 숫자가 줄어들었다.

그리고 반대편에도 거대 병기가 전진했다.

마르틴 국왕의 퀸급 기간트가 거대한 낫을 들었다.

[아리칸의 기사들이여! 괴수들을 쓸어버려라!]

[타이탄의 위력을 보여라!]

아리칸과 글론, 탈로스 왕국의 기간트와 타이탄이 반대쪽 괴수들을 휩쓸며 전진했다. 그리고 그 뒤를 거신 병사들이 받쳤다.

세 왕국은 얼마 전까지 치열하게 싸운 사이였지만, 오늘은 공동의 적을 맞이해 하나의 군단이 되어 괴수를 공격했다.

삼면에서 거센 공격을 받은 괴수 군단.

가운덴 포격에 죽고, 끝은 거대 병기의 공격에 속수무책으로 쓰러졌다.

후방에 거신 괴수와 대군주들은 당황했다.

60만이나 되는 괴수 군단이 힘없이 무너지고 있었다.

그리고.

"끄어어어?"

계속 포격을 쏟아붓던 초거대 비공정과 전투 비공정이 거신 괴수와 대군주 근처에 내려앉았다.

[거신 기사들이여! 우리가 놈들을 공격한다!]

"공격하라!"

쿠웅! 쿠웅!

초거대 비공정에서 25미터의 거인급 오리지널 기간트가 모습을 드러냈다.

그리고 거신 기사들과 발레리온의 기간트가 비공정에서 내려 거신 괴수를 향해 공격했다.

[거신 괴수를 죽여라!]

[가자!]

거신 괴수와 대군주들을 지키던 수백 마리의 거대 괴수들이 앞을 막았다.

하지만 우리의 상대는 아니었다.

발레리온의 기사들은 모두 괴수를 죽이는 데 이골이 난 기사들이었다. 특히 트라스의 개 기사단은 나와 자주 괴수를 잡았기에 가장 빨리 거대 괴수를 뚫고 전진했다.

내 기간트들이 괴수를 처리하자, 거대한 기간트가 앞으로 달렸다.

[주군의 명이다! 죽어라!]

20미터의 대군주들이 앞을 막았다.

부아앙! 촤악! 촤악!

"그억!"

"끄아아!"

하지만 암 드로운이 탄 25미터의 거대 오리지널 기간트는 대군주들을 단칼에 반으로 갈라버렸다.

S급 괴수들이 순식간에 당하자, 거신 괴수가 놀란 표정을 지었다.

"끄아아아아!"

거신 괴수가 괴성을 지르자, 전방에서 거대 병기와 싸우고 있던 괴수들이 하나둘 몸을 돌려 이쪽으로 달려왔다.

[닥쳐라!]

다다닥!

챙! 챙! 서걱!

단 세 번의 칼질에 거신 괴수의 머리가 바닥에 떨어졌다.

쿵! 쿠쿵!

'전투는 끝났군.'

난 초거대 비공정 위에서 그 모습을 보고 있었다.

지휘관을 모두 잃은 괴수 군단은 잠깐 광분하겠지만, 오합지졸일 뿐이었다.

[우리가 후미를 친다!]

[괴수를 공격하라!]

거신들과 발레리온의 기간트가 성공적으로 괴수 지휘부를 처리하고, 후미의 괴수를 향해 공격했다.

그렇게 몇 시간 동안 전투가 이어졌고, 괴수 군단은 궤멸했다.

도망친 괴수는 다 합쳐봐야 수천이 되지 않았다.

[이겼다!]

[괴수 군단을 무찔렀다!]

[와아아아!]

잠시 승리의 기분을 만끽하게 놔뒀다.

그리고 몇 분 후에 난 무전을 쳤다.

"북쪽의 괴수 군단이 온다! 전투를 대비해라!"

북쪽에서 멀쩡한 괴수 군단이 이곳을 향해 몰려오고 있었다.

내 명령을 받은 기간트들이 마석 배터리를 교체하고 죽은 괴수들은 바리케이드처럼 쌓기 시작했다.

웨이브는 앞으로 한 번만 막으면 된다.

다른 쪽의 괴수 군단은 이미 지휘관을 잃었기에 흩어진 괴수를 정리하면 끝이었다.

그렇다!

다른 쪽엔 불카누스와 화염 마법인형들을 보냈다.

불카누스가 먼저 화염 브레스를 뿜어 총지휘관인 거신 괴수를 죽이고, 다른 화염인형들이 대군주를 공격하는 방법이었다.

그리고 이미 성공했다는 불카누스의 의식이 들어왔다.

그곳엔 다수의 비행 괴수가 있었기에 우리가 막기 까다로운 괴수들이 많았다.

그랬기에 불카누스를 이용해 먼저 지휘관들을 없앤 것이다.

그리고 분노하며 이쪽으로 이동하는 괴수 군단을 최대한 줄이면서 합류할 것이다.

***

"비행 괴수들이 온다!"

내 뛰어난 시력이 먼저 비행 괴수들이 보였다.

북쪽에서 몰려온 괴수 군단엔 수만 마리의 비행 괴수가 있었다.

서쪽에 있는 괴수 군단보단 비행 괴수가 절반 수준이었지만, 그래도 많긴 많았다.

우리가 놈들을 막아야 했다.

"이번만 승리하면 끝이다! 모두 최선을 다해 막아라!"

[모두 막아라!]

기이잉! 쿵! 쿵! 쿵!

초거대 비공정에 내 발레리온 기간트들이 올라섰다.

초거대 비공정은 괴수 부산물로 만들었기에 기간트도 갑판 위에서 싸울 수 있었다.

그리고 좌우에 전투 비공정들이 비행 괴수를 맞이하기 위해 길게 일렬로 늘어섰다.

"쿠오오오크!"

"쿠오크! 오크가 저놈들을 막는다!"

쿠훌린과 1,000명의 오크 해병대들은 초거대 비공정 위에서 결사 항전을 다짐했다.

그리고 전투 비공정엔 서리 오크 해병대가 100명씩 배치되어 적과 싸울 준비를 마쳤다.

엘프들은 화살을 쏜 준비를 하고, 드워프들은 마나 대포를 준비했다.

"괴수를 향해 쏴라!"

펑! 퍼퍼펑!

마나 대포가 불을 뿜었다.

우리 천재 앨리슨이 특별히 고안한 공중에서 터지는 포탄을 쏘았다.

쾅! 콰콰쾅!

공중에서 포탄이 터지자, 순식간에 파편이 퍼져 나갔고, 주변에 있는 비행 괴수들을 타격했다.

"끼아!"

비행 괴수들이 아래로 추락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포격을 피해 비공정에 접근한 괴수를 향해 엘프들이 화살을 쏘았다.

화살의 위력이 떨어져도 3, 4미터의 작은 비행 괴수들은 충분히 타격을 입혔다.

그리고 비공정을 공격한 괴수들은 기간트와 오크 해병대가 막았다.

초거대 비공정은 전체 길이가 거의 3km나 됐기에 움직이는 요새와 같았다.

마나 대포 수십 개가 탑재되어 있었고, 한 번에 기간트 200기를 태우고, 내릴 수도 있었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은 선체가 단단한 괴수 부산물로 만들어져 있었기에 B등급 이하의 약한 괴수는 타격을 입히지도 못했다.

지상에서도 괴수 군단이 도착했다.

하지만 6,000기가 넘는 거대 병기와 포병대, 거의 10만에 달하는 수인족과 거인 병사들의 힘에 오는 족족 쓰러지고 있었다.

매우 순조로운 출발이었다.

지금 전투는 카르마탄을 상대하기 위한 준비 운동일 뿐이었다.

208. 전야.

208. 전야.

우리가 북쪽 괴수 군단을 절반쯤 줄였을 때였다.

서쪽에서 거대한 비행체가 날아왔다.

"쿠아아아아!"

불카누스와 4마리의 화염 와이번이 도착했다.

지난 3개월 동안 다들 병력을 준비할 때, 난 불카누스와 차원 이동 마법진으로 암흑 대수림에 가서 와이번 괴수를 계속 잡아서 허수아비를 몇 마리 더 만들었다.

그리고 와이번 허수아비를 불카누스에게 넘겨, 화염 와이번을 추가로 만들었다.

아무래도 불카누스가 하늘을 날아다니다 보니, 화염 괴수를 만들더라도 함께 비행하는 괴수가 좋을 것 같았기에 와이번 허수아비를 더 만들어 준 것이다.

그리고 암흑 대수림에서 용암도 충전했다.

어제까지만 해도 불카누스의 레벨은 33이었다.

헌터 등급은 C등급이었고, S급 화염 와이번을 4마리까지만 만들 수 있었다.

하지만 서쪽의 거신 괴수와 대군주들을 죽이고, 괴수 군단을 상당히 죽였기에 45레벨로 올라섰다.

불카누스는 이제 화염 와이번을 7마리까지 늘릴 수 있었다.

아무튼, 와이번을 넘겨줬기에 지금 그 효과를 톡톡히 보고 있었다.

이제 서쪽에서 달려드는 괴수 군단은 하나도 없었다.

아마도 불카누스와 화염 와이번 인형들이 대부분 처리했을 것이다.

가까이 다가온 불카누스에게 의식을 전달했다.

'북쪽으로 가서 대장을 죽여. 그래야 네가 경험치를 더 먹지.'

불카누스는 내 의식을 받자마자 북쪽으로 방향을 바꿨다.

헌터 등급이 올라가니, 신이 난 듯한 느낌을 받았다.

아마도 자신의 부하들이 늘어나니까 기분이 좋은가보다.

그리고 지금 북쪽에 있는 괴수 군단을 지휘하고 있는 거신 괴수와 대군주들을 죽이면 B등급 헌터 레벨까지 오를 것이다.

그리고 불카누스도 헌터의 능력을 복제했기에 나처럼 헌터 등급이 오르면 새로운 능력이 하나씩 생긴다.

화아아아아아!

화르르르르!

저 멀리 북쪽에서 거대한 화염이 치솟았다.

나뿐만 아니라 모두 그것이 불카누스가 뿜어내는 화염임을 알고 있었다.

그리고 조금 전에 불카누스가 순식간에 B등급 헌터가 됐다.

화염 브레스 한 번에 거신 괴수가 죽었나 보다.

'자식, 난 B등급 헌터까지 4년은 걸린 거 같았는데, 그걸 6개월 만에 올리네. 그것도 경험치를 내게 2/3나 주는 마법인형이면서······.'

이래서 시작부터 강한 게 좋다니까.

그리고 내 또 다른 복제인형인 여왕개미는 벌써 S급 헌터가 됐다.

원래 SS급 괴수였던 녀석이 F급부터 시작해 S급이 됐으니 얼마나 더 강해졌을까?

여왕개미는 내 비밀 병기라 이번 전투엔 참여시키지 않았다.

여왕의 군단이 없어도 충분히 이길 수 있기도 했고.

여왕개미의 첫 전투는 카르마탄의 배속이 될 것이다.

내겐 SSS급 인형술사 스킬인 마법인형 소환 스킬이 있으니까.

'그보다 내가 할 일이 없네!'

전투가 급박한 상황이거나 밀리는 곳이 있을 때 투입하려던 200여 명의 헌터가 갑판으로 올라왔다.

이대로 있다간 괴수를 다 잡아 레벨을 전혀 올리지 못할 수도 있다는 생각에 전투에 합류한 것이다.

덕분에 비공정 위에 앉은 비행 괴수들을 순식간에 처리했다.

그러자 달려드는 비행 괴수들이 현저하게 줄어들었다.

'벌써 끝이 보이네······.'

괴수들이 약한 것이 아니고 우리가 강한 거다.

그리고 불카누스와 화염 와이번 인형들이 사방을 날아다니며 불을 뿜고 있었기에 괴수들의 숫자가 더 빠르게 줄었다.

지휘관 괴수가 이미 모두 죽었기에 전투는 끝이라고 봐야 했다.

전투는 대승이었다.

***

'여긴 이제 별도 보이지 않네.'

지구의 밤하늘은 여전히 탁했다.

그래도 흐릿하게 달은 보였다.

지금 카르마탄은 북쪽으로 향하고 있었다.

처음엔 자신의 괴수 군단이 공격당하자 이쪽으로 향했으나 괴수 군단이 모두 궤멸하자, 그냥 하던 대로 지구를 삼키고 있었다.

부하들의 복수도 하지 않는 건가?

매정한 놈.

'드디어 내일이면 모든 것이 끝나겠네······'

우린 내일 카르마탄을 죽이러 이동한다.

이번에 카르마탄을 죽이지 못하면, 내가 죽겠지.

게다가 이미 난 한 번 카르마탄에게 죽었기에 두려움도 있었다.

전생에 내가 죽고, 다시 거신 차원의 타일러에 빙의해 헌터가 된 이유가 뭘까를 생각해봤다.

어쩌면 세상엔 진짜 신이 있고, 지구의 신이 지구를 지키기 위해 마지막 선택을 한 것은 아닐까?

지구가 형편없이 망가지긴 했지만, 아직 완전히 망한 것은 아니었다.

카르마탄을 찾다 보니, 아직 놈이 전진하고 있는 북반구 쪽엔 꽤 많은 산과 숲이 있는걸 확인했고, 작은 섬들은 거의 피해가 없다고 했다.

'카르마탄을 죽이면, 지구도 다시 살아날 수 있겠지?'

아직 완전히 늦진 않은 것 같았다.

그리고 이번엔 돌아오지 못할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하니까 왠지 잠이 오지 않았다.

그래서 마르틴 국왕과 아리칸 기사들의 야영지를 찾았다.

"오오! 타일러 국왕께서 오셨다!"

"어서 오십시오!"

"어서 오시오."

마르틴과 크루세이더 기사들이 반갑게 맞이했다.

그들은 낮에 전투를 안주 삼아 한잔하고 있었다.

"잠시 이야기 좀 나눌 수 있을까요?"

"하하! 그럽시다."

마르틴과 잠시 걸었다.

"걱정이 있으시오?"

"솔직히 그렇습니다."

"하긴 그런 괴물을 상대하는데, 누구라도 걱정되겠지."

"이미 몇 번 말했지만, 초거수가 죽으면 바로 물러서야 합니다. 놈에게서 뿜어지는 포자를 흡입하면 괴수가 되니까요."

마르틴이 고개를 끄덕였다.

"명심하겠소. 그런데 정말 혼자서 괜찮겠소?"

"제 괴수들을 보시지 않으셨습니까. 혼자서도 충분합니다."

"그렇긴 하지만, 혼자 초거수 안으로 들어간다고 하니 걱정이 돼서 말이오."

난 피식 웃었다.

마르틴 국왕과 첫 대면은 완전한 적이었다.

비공정 2척에 타고 와 아베르크 제국의 황제를 죽이려 했던 간 큰 사내였다.

아마 내가 개입하지 않았다면 케인 황제를 죽였을 것이고, 역사는 또 어떻게 흘러갔을지도 모른다.

물론 지금은 둘도 없는 동맹이다.

"앞으로도 우리 발레리온 왕국과 동맹을 계속 유지해 주십시오."

"하하! 당연한 말씀을 하시오. 강성한 두 제국이 있는데, 우리 아리칸도 발레리온과 동맹을 유지해야 지킬 수 있지 않겠소."

"그리고 힘들어도 기술 개발에 투자하셔야 합니다."

"무슨 말인지 알겠소."

마르틴은 날 빤히 쳐다봤다.

"고맙소. 타일러 국왕 때문에 우리 아리칸 왕국이 무사할 수 있었소. 나 마르틴이 살아 있는 한 우린 아리칸은 언제나 그대와 친구요."

"그렇게 말해 주시니, 고맙습니다."

난 마르틴에게 고개를 살짝 숙였다.

"그럼 나중에 뵙겠습니다."

"나중에 봅시다."

마르틴과 헤어지고, 난 기사들을 찾아갔다.

내일 전투에선 함께 할 수 없었기에 미리 인사를 하는 것이다.

"충! 타일러 국왕 전하를 뵈옵니다."

마키아스와 트라스의 개 기사단이 내게 고개를 숙였다.

난 마키아스를 따로 불렀다.

"그래 퀸급 오리지널 기간트는 이제 좀 적응이 되나?"

마키아스가 웃으며 말했다.

"네, 이젠 서열 2위에서부터 5위까지 한꺼번에 덤벼도 당해낼 자신이 있습니다."

"오! 대단하군."

2위부터 5위까지는 모두 룩급 오리지널 기간트에 타는 기사들이었다. 아무리 퀸급 기간트라지만 베테랑 기사가 탄 4기의 룩급 오리지널 기간트를 당해낼 수 있다는 것은 정말 대단한 것이다.

마키아스는 가디언 제국에서 우리 발레리온으로 전향한 기사로 이젠 우리 왕국 제일의 기간트 기사가 됐다.

그리고 200기의 기사단을 지휘하기도 했고.

"내일 전투에서 조심하게. 아주 강한 괴수는 없어도 그 숫자가 어마어마하니까. 촉수도 조심하고."

"걱정하지 마십시오. 제가 기사들을 잘 챙기겠습니다."

마키아스에게 내일 전투에서 주의할 점을 다시 일러줬다.

"그럼, 푹 쉬게."

"들어가십시오. 전하."

마키아스와 헤어지고, 초거대 비공정 내에 있는 드워프 공방을 찾았다.

이곳은 늘 후끈한 열기로 가득하다.

"타일러여! 왔는가!"

글러드 왕자와 드워프 대장장이들이 손을 흔들었다.

"공방은 마음에 들어?"

"물론이다!"

드워프들에게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웠다.

"난 드워프들에게 늘 감사하다."

"타일러여! 우리가 더 감사하다. 타일러는 우리 드워프들의 은인이다. 드워프는 은혜를 갚는다."

"하하! 그래서 고맙다는 거야."

드워프는 은혜를 아는 종족이었다.

그들이 아니었다면 기간트 개발은 요원했을 것이고, 또 초거대 비공정을 만들지도 못했을 것이다.

그들을 구한 것은 신의 한 수였다.

지금은 발레리온 왕국에 없어선 안 될 종족이었다.

드워프 대장장이들과 일일이 악수를 하고, 공방을 나섰다.

다음으로 찾아간 것은 마도 공학 연구소였다.

초거대 비공정에서 가장 신경 쓴 곳으로 실험소와 별도의 공방, 실험실까지 갖춰진 곳이었다.

난 이곳의 주인을 만나러 왔다.

"앨리슨, 뭐하니?"

"삼촌, 왔어."

앨리슨은 고개도 돌리지 않고, 테이블 위에 뭔가를 만들고 있었다.

좀 섭섭했다.

아끼는 조카를 딴 놈에게 빼앗긴 기분이 든다.

그것도 인간도 아닌 연구에 빼앗기다니······!

"뭘 만들길래 그렇게 정신이 없어?"

"마탄총."

"마탄총?"

"어떤 헌터가 소총을 들고 다니는 걸 봤는데, 개인화기로 꽤 좋을 것 같아."

"그런데 이름이 왜 마탄총이야?"

"마나 폭발을 이용해 총알이 나가야 하는데, 매번 총알이 마나의 힘을 버티지 못해 폭발하는 거야. 그래서 지금 마나의 힘을 버티는 총알을 만드는 거야. 그러니까 총보다 마나탄이 중요한 거지. 마나탄을 쏘는 총을 줄여서 마탄총이라고 이름을 붙였어."

"아!"

난 오랜만에 앨리슨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그러자 앨리슨이 고개를 휙 돌렸다.

"왜? 무슨 할 말 있어?"

"아니야. 좀 쉬엄쉬엄하라고. 케네스 영감님이 널 이렇게 혹사하는 걸 안다면, 난리 칠 거야."

"알았어."

대답하고선 다시 테이블에 고개를 처박았다.

귀여운 녀석!

난 앨리슨을 뒤로하고 문으로 향했다.

"삼촌, 무사히 돌아와."

"응?"

앨리슨은 날 향해 손을 슬쩍 흔들더니, 다시 연구를 계속했다.

"그래, 알았다."

쪼르륵 달려와 안기는 어린 조카는 이제 성숙한 여자가 됐다.

하지만 앨리슨은 여전히 날 걱정하고 있었고, 나와 발레리온을 위해 저렇게 밤을 지새우며 연구에 몰두하는 것이다.

앨리슨과 인사를 하고, 떠들썩한 오크들을 찾아갔다.

쿠훌린과 오크 해병대원들과 실컷 떠들고 방으로 돌아왔다.

날 돕고, 따르는 많은 이계인과 동료들, 기사들이 있기에 여기까지 올 수 있었다.

그리고 내 마법인형들도.

자리에 누웠지만, 그래도 잠이 오지 않았다.

에테나와 인사하지 못했기 때문인가?

그래서 그녀를 보기 위해 초거대 비공정의 선교로 올라갔다.

그곳엔 에테나가 있었다.

"잠자리가 불편하세요?"

"그럴 리가 있나, 내 방이 제일 편한걸."

비공정에 내 방이 따로 마련되어 있었다.

왕의 침실이라 나름 침대도 고급이고, 전용 화장실도 있다.

"그럼, 내일 전투가 걱정되세요?"

난 고개를 끄덕였다.

"조금."

"저도 함께 카르마탄 안으로 들어가면 안 되겠습니까?"

"응?"

에테나가 날 빤히 쳐다봤다.

순간 허락할 뻔했다.

그녀가 같이 간다면 큰 힘이 되겠지만, 그녀는 갈 수 없었다.

괴수가 죽어도 난 살 방법이 있지만, 에테나는 포자 때문에 죽거나 괴수로 변이할 것이다.

"내가 이야기했잖아. 에테나는 이곳에서 비공정 함대를 지휘해야지."

"하지만 너무 위험합니다. 그것도 타일러님 혼자 들어가시다니요."

"혼자는 아니지. 암 드로운도 있고, 기사들과 괴수들도 있으니까."

"저도 함께 가고 싶은데······."

날 바라보는 에테나의 커다란 눈동자가 촉촉해졌다.

"왜? 이것이 마지막일 것 같아서 그래?"

"그건 아니에요······."

에테나는 뭔가 불안한가 보다.

"난 꼭 돌아올 테니까. 걱정하지 마."

에테나가 슬쩍 눈가를 훔치며 고개를 끄덕였다.

"타일러님은 약속을 꼭 지키시는 분이니까. 돌아오실 거라 믿어요."

"물론이야. 걱정하지 말고, 몸조심해."

말은 자신 있게 내뱉었지만, 카르마탄과 전투는 솔직히 어떻게 될지 짐작할 수 없었기에 불안한 마음이 들었다.

순간 그녀를 다시 보지 못할 수도 있다는 마음에 심장이 뛰었다.

그녀와 맨 첫 만남이 떠올랐다.

엘프들은 쇠창살 감옥에 갇혀 있었고, 곧 죽을 운명이었다.

하지만 에테나가 갑자기 내 다리를 잡고 살려달라고 애원했었다.

솔직히 그때 그녀를 보고 마음이 움직였다.

그리고 에테나 때문에 엘프를 구해줬고, 그것이 인연이 되어 지금까지 나와 함께 하고 있었다.

내 마법인형을 제외하곤 이곳 차원에서 가장 오래 함께 있었던 것이 바로 에테나였다.

그만큼 정도 들고, 이제 그녀가 없으면 안 될 것 같았다.

난 에테나를 바라봤다.

그리고 진심을 전했다.

"에테나, 고마워. 항상 내 곁에 있어 줘서."

"아니에요. 제가 고마워요."

굳이 긴 말은 필요 없었다.

우린 함께 많은 모험과 전투를 벌였다.

그랬기에 눈빛만 봐도 서로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알고 있었다.

그녀는 나를 걱정했고, 나도 그녀를 다시 볼 수 없을까 불안했다.

"그리고 꼭 돌아오세요."

갑자기 에테나가 내 품에 안겼다.

난 그녀의 머릿결과 등을 천천히 쓰다듬었다.

매일 일만 시키고, 부려먹기만 해서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조금 더 잘해줄걸.

가장 소중한 것은 가까이 있기에 잘 느끼지 못하는 법이다.

후회해봤자, 시간은 되돌릴 수 없다.

그녀를 다시 보기 위해서라도 꼭 카르마탄을 죽이고 다시 돌아올 것이다.

그렇게 탁한 지구의 밤하늘을 보며 맹세했다.

209. 카르마탄 공략.

209. 카르마탄 공략.

쿠쿠쿠쿠쿵!

천지가 개벽하는 소리가 들린다.

저 멀리 초거수 카르마탄이 보였다.

놈은 지금 정신없이 숲과 대지를 먹어치우기 바빴다.

아마도 빨리 차원 마나를 모아 자신이 통과할 거대 차원 균열을 만들려는 것 같았다.

'내가 정말 저놈을 죽일 수 있을까?'

살짝 긴장했다.

[모두 준비해라! 놈이 온다!]

지상에서 기간트들이 부산하게 움직였다.

지금 병력이 집결한 곳은 숲이 끝나고 너른 들판이 있는 곳이었다.

어차피 워낙 거대한 놈이라 어디에서 공격하더라도 상관은 없었다.

다만 기간트가 움직이기 좋고 장기전을 벌일 만한 장소를 고르다 보니, 이곳을 선택했다.

카르마탄에게 다가가기 위해 괴조 인형을 꺼냈다.

"끼이이이아!"

"타일러 전하!"

그때 알리사가 다가왔다.

"위험하면 곧바로 밖으로 나오세요. 카르마탄을 죽이는 다른 방법이 있을 수도 있어요."

그녀는 날 걱정했다.

알리사는 이곳에서 유일하게 고대 거신들이 초거수를 죽이고 괴수로 변이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난 괜찮아. 그보다 마법병단을 잘 챙겨. 이번 전투는 매우 위험할 거야."

"휴! 알겠습니다."

알리사를 뒤로하고 괴조인형을 타고 움직였다.

5km 지점에서 드워프 포병대가 먼저 공격을 준비하고 있었다.

난 포병대 뒤에서 대기하고 있었다.

"드워프들이여! 우리 차원을 멸망시킨 괴수를 죽여라!"

포병대장 하버 족장이 큰 소리로 외쳤다.

"발포하라!"

"발포!"

펑! 퍼퍼퍼펑!

카르마탄을 향해 포화가 쏟아졌다.

휘이이이잉!

쾅! 콰콰콰쾅!

더욱 강화된 마나 대포와 폭발력이 더 향상된 포탄이 카르마탄에 적중했다.

하지만 화염이 뒤덮인 것은 아주 일부분이었다.

그리고 카르마탄은 드워프 포병대를 향해 움직였다.

"계속 쏴라!"

펑! 퍼퍼퍼펑!

연속된 포격 속에서도 카르마탄은 3km 지점까지 전진했다.

[자! 우리 차례다! 괴수를 공격해라!]

[가자!]

기이이이잉! 쿠쿠쿠쿵!

카르마탄 좌측에서 아베르크의 기간트가 달려들었다.

[가디언 제국의 영광을 위하여!]

우측에선 가디언의 마장기가 전진했다.

그리고 드워프 포병대 1km 앞에 있던 기간트와 타이탄들도 전진했다.

삼 면에서 거대 병기들이 파도처럼 달려들었다.

그리고 수인들과 거신병들은 2차 공격을 준비하고 있었다.

기간트가 사방에서 몰려오자, 거대한 카르마탄이 멈췄다.

그리고!

후두둑! 후두두두두둑!

"께게겍!"

"께겍!"

수백, 수천, 수만 마리의 기생 괴수들이 카르마탄의 배에서 떨어지고 있었다.

놈들은 땅에 떨어지자마자, 곧바로 사방으로 퍼져 본체를 지키기 시작했다.

기생 괴수는 본체에서 멀리 벗어나진 않았다.

그리고 한꺼번에 모두 내려오지도 않았다.

[괴수를 죽여라!]

[공격하라!]

쾅! 콰콰콰쾅!

기간트와 기생 괴수가 먼저 부딪쳤다.

기생 괴수는 5에서 15미터까지 크기가 다양했다.

가장 강력한 괴수가 A등급이었고, 대부분 C등급과 B등급이었기에 기간트가 밀릴 이유는 없었다.

거기에 후미에서 포탄이 계속 카르마탄의 배 밑으로 쏟아지고 있었기에 숫자를 줄이고 있었다.

펑! 퍼퍼펑!

하늘에서도 공격을 시작됐다.

카르마탄을 향해 계속 포격을 시작했다.

하지만 가까이 다가가진 못했기에 위력이 반감됐다.

그때 갑자기 카르마탄의 몸에서 엄청난 숫자의 촉수가 쏘아졌다.

촤악! 촤악!

촉수는 하늘과 지상을 향해 뻗어지고, 초거수를 지키고 있었다.

'이젠 내 차례군.'

난 지금 강습 기간트에 타고 있었다.

호흡을 가다듬었다.

"가자!"

나를 태운 괴조인형이 앞으로 쏜살같이 날아갔다.

카르마탄과 가까워지자, 거대하고 긴 촉수가 나를 향해 날아왔다.

괴조인형이 촉수를 피해 아슬아슬하게 비행했다.

"촉수를 쏴라!"

"마나 대포를 발사하라!"

펑! 퍼퍼퍼펑!

그때 초거대 비공정에서 포탄이 날아왔다.

에테나가 전투 비공정을 이끌고 촉수를 공격한 것이다.

'딱! 적당한 타이밍이네.'

난 비공정의 도움으로 촉수를 피할 수 있었다.

그리고 저공비행을 하며 수만 마리나 되는 기생 괴수 위를 날아갔다.

기간트는 그런 기생 괴수들과 치열한 전투를 벌이고 있었다.

그리고 난 숲을 삼키다 멈춘 카르마탄의 거대한 입을 향해 돌진했다.

'정말 거대하네!'

마치 악마의 구덩이에 들어간 기분이다.

곧 사방이 어두워졌다.

바닥은 숲과 풀, 흙과 바위가 뒤섞여 있었고, 천장과 벽은 시커먼 동굴을 연상시켰다.

'더 빨리! 최대한 안으로 날아가자!'

괴조인형이 속도를 더 냈다.

카르마탄의 중심부에 가까울수록 전투도 빨리 끝날 것이다.

그렇게 순조롭게 안으로 들어갈 때였다.

촤악! 촤악!

갑자기 천장에서 십여 개의 날카로운 촉수가 날아왔다.

괴조인형이 피하자, 그다음엔 백여 개로 촉수가 늘어나며 우릴 공격했다.

'쉽게 들여보낼 생각은 없나 보네.'

촉수 하나하나가 살아 있는 생명체처럼 우릴 집요하게 쫓아왔다.

그러다가!

촤! 촤촤촤촤촤촤악!

'아래로 피해!'

천장에서 동시에 수천 개의 촉수가 찔러졌다.

난 괴조인형에서 뛰어내렸다.

쿠웅!

낙하 장치 덕분에 무사히 착지했다.

하지만 괴조인형은 그러지 못했다.

촉수로부터 날 보호하고, 운명의 실이 모두 끊어졌다.

그랬기에 인형의 집에 넣을 수도 없었다.

'잘 가라!'

아쉽지만 어쩔 수 없었다.

난 멈출 수 없었기에 계속 앞으로 달렸다.

그나마 다행히 지면으로 이동하자, 촉수가 공격하진 않았다.

그렇게 얼마를 달리자, 이번엔 몸길이가 3미터에 달하고 다리가 여섯 개인 곤충 기생 괴수들이 벽에서 나와 앞을 막기 시작했다.

처음엔 수십 마리였다가 점점 늘어나 수백, 수천 마리까지 늘어났다.

'나와라! 괴수인형 군단!'

드라우켄과 S등급 괴수들이 기간트를 가지고 밖으로 나왔다.

'앞을 정리해!'

"크아아아아!"

"쿠아아아아!"

내 괴수 군단이 사방에서 달려드는 곤충 기생 괴수를 공격했다.

그리고.

"모두 기간트에 올라타라!"

웨슬리와 자동인형들이 인형의 집에서 나와 기간트에 올라탔다.

[불을 밝혀라!]

[길을 뚫어라!]

기이이잉! 쿠쿠쿵!

[가자! 우리가 주군의 검이다!]

[와아아아!]

촤악! 촤악! 푹!

기간트 50기가 괴수를 베고 찌르며 전진했다.

이제 내 운명의 실타래 범위는 거의 3km에 달했기에 괴수인형의 활동 범위도 넓어졌다.

첫 번째 전투부터 기생 괴수들의 강렬한 저항에 부딪혔다.

하지만 기간트는 단단하고 강했고, 괴수인형들은 무시무시했다.

그렇게 한참을 싸우며 앞으로 나아가자, 달려드는 기생 괴수 숫자가 현저하게 줄어들었다.

"마석 배터리를 교체하라!"

[마석 배터리 교체!]

쉴 틈이 없었다.

기간트의 마석 배터리를 교체하고, 다시 전진했다.

자잘한 곤충 괴수들은 계속 달려들었지만, 우리의 전진을 막을 순 없었다.

특히 드라우켄과 S급 괴수 일곱 마리가 선두에 서서 곤충 기생 괴수 숫자를 상당히 줄였기에 뒤에선 기간트 군단이 수월하게 처리했다.

[주군! 벽과 천장이 움직입니다!]

웨슬리가 말했다.

고개를 돌려 쳐다봤다.

"저건 괴수다! 조심해라!"

기생충처럼 생긴 기생 괴수였다.

몸길이가 10여 미터에 주둥이에 날카로운 이빨을 가진 것들이 천장과 벽에서 몰려나오고 있었다.

그 숫자가 얼마나 많은지 천장과 벽 전체가 움직이는 것처럼 느껴진 것이다.

"쿠아아앙!"

드라우켄이 포효하며 앞발을 휘두르자, 한 번에 네다섯 마리가 우르르 잘려나갔다.

이빨은 공격은 강력하고 무서운데, 몸체는 매우 허약했다.

하지만 숫자가 많아도 너무 많았기에 순식간에 드라우켄의 몸을 휘감고, 물기 시작했다.

'젠장! 수십만 마리는 되겠어.'

쪽수가 많으니, 아무리 죽여도 계속 몰려온다.

'인형의 집으로!'

일단 드라우켄과 S급 괴수인형을 인형의 집에 넣었다.

그리고 조용히 정신을 집중했다.

[마법인형 소환 스킬을 사용합니다.]

"끼아아아아아아!"

[여왕개미(lv.65)가 소환됐습니다.]

괴성을 지르며 100여 미터 크기의 거대 여왕개미(lv.65)가 모습을 드러냈다.

[여왕개미가 첫 번째 군단을 배치합니다.]

"끼끼긱!"

"끼릭!"

수백 마리의 병정개미와 수천 마리의 일개미들이 갑자기 여왕 주변에 모습을 드러냈다.

이건 여왕개미의 S급 고유 스킬인 군단 배치 스킬이었다.

"끼리리릭!"

거대 여왕개미가 날 향해 고개를 숙였다.

명령을 내려달라는 의미.

그때 사방에서 기생수가 밀려왔다.

'앞을 막아서는 기생 괴수를 뚫어라!'

"끼이이이이아!"

여왕개미가 포효하자, 개미군단이 달려들었다.

수백 마리의 거대 병정개미가 사방으로 뻗어 나가 커다란 턱으로 기생수를 마구 잘라버렸다.

그리고 수천 마리의 일개미들이 병정개미 밑으로 기어오는 놈들을 강한 턱으로 물어뜯었다.

역시 쪽수는 쪽수로 상대해야 하는 법이지.

[여왕개미가 두 번째 군단을 배치합니다.]

"끼기긱!"

"끼끽!"

군단이 또 있었네?

두 번째 군단이 나와 이번엔 앞으로 길을 내며 달려나갔다.

첫 번째는 막고 두 번째는 뚫는다.

여왕개미의 군단 운용 스킬이었다.

난 기간트 군단과 여왕개미를 이끌고, 두 번째 개미군단이 뚫어놓은 길을 따라 전진했다.

그렇게 계속 나아가자, 달려드는 기생수가 없었다.

뒤를 돌아봤다.

첫 번째 개미군단이 모두 사라졌다.

난 고생한 여왕개미를 향해 말했다.

"여왕개미, 첫 번째 군단이 사라진 건 미안하다."

"끼릭! 끼리릭!"

여왕개미가 나를 위해 준비한 병력이라며 괜찮다고 의식을 전달했다.

첫 번째 개미군단은 사라졌지만, 우린 무사히 기생수를 통과할 수 있었다.

여왕개미는 남은 두 번째 군단과 함께 맨 앞에서 우리를 보호하며 전진했다.

'상당히 깊이 들어온 거 같은데, 대체 어디까지 들어가야 하지?'

거리감이 없었기에 얼마나 들어왔는지 알 수 없었다.

확실한 건, 계속 앞으로 나아가고 있다는 것이었다.

"크으으으!"

"끄으으으!"

'징그러운 놈들이군!'

이번엔 온몸이 점액질로 덮여있는 30, 40미터 크기의 거대 기생 괴수들이 앞을 막았다.

역시나 바닥에 가득했다.

저 징그러운 놈들을 뚫고 지나가야 했다.

"끼이이이아!"

여왕개미가 개미군단에 명령을 내렸다.

두 번째 개미군단이 달려들었다.

그런데!

병정개미가 강력한 턱으로 괴수를 공격했지만, 놈들의 몸은 잘려나가긴 했어도 금방 다시 아물었기에 큰 소용이 없었다.

반대로 놈들이 거대한 점액질 몸으로 개미를 감싸면 개미들의 몸은 실시간으로 녹아내리기 시작했다.

'뒤로 물러서!'

난 여왕에게 명령했다.

여왕이 아직 남은 군단을 뒤로 물렀다.

순식간에 1/3이나 되는 병력을 잃었다.

이놈들을 상대할 병력은 따로 있었다.

'불카누스!'

"쿠아아아아아!"

3km나 되는 거대한 SSS급 괴수가 모습을 드러냈다.

이 거대한 괴수가 등장했음에도 공간은 차고 넘쳤다.

카르마탄의 배속 공간은 그보다 훨씬 넓었다.

비밀 무기를 너무 일찍 꺼낸 감이 있지만, 앞으로 어떤 괴수가 나올지 몰랐기에 피해를 최소화해야 했다.

'카르마탄! 녹여버려!'

"크아아아아아!"

불카누스가 입을 벌렸다.

화아아아아아!

거센 화염 브레스가 점액질 거대 기생 괴수들을 덮쳤다.

화르르르르르!

"끼이이이아!"

"꿰에엑!"

거대 점액질 기생 괴수들은 정말 잘 탔다.

그리고 시커먼 불길에서 나온 연기는 천장으로 흡수되고 있었다. 공기정화 시스템이야? 뭐야?

이 초거수도 숨을 쉬는 건가?

'불카누스! 길을 뚫어라!'

"크릉! 크르릉!"

불카누스가 거대한 몸으로 쓱 지나가자, 불길 가운데 길이 생겼다.

우린 그 길을 통과해 앞으로 나아갔다.

'대체 어디까지 이어진 거야?'

통로가 너무 깊었다.

앞으로 더 이동하자, 이번엔 5에서 10미터 사이의 커다란 박쥐 괴수들이 사방에서 날아오기 시작했다.

첫 무리는 불카누스의 화염 브레스를 처리했지만, 역시나 박쥐 기생 괴수의 숫자가 너무 많았다.

그래서 화염 와이번도 7마리 모두 꺼냈다.

비행 기생 괴수가 사방에서 달려들고, 우린 계속해서 싸우면서 지나가야 했다.

"무시하고 계속 전진해!"

난 불카누스의 어깨에 올라타 이동했다.

괴수들이나 기간트까지 타격을 받았지만, 불카누스는 전혀 타격이 없었다.

역시 SSS급 괴수였다.

그리고 내게 달려드는 박쥐 기생 괴수는 불카누스가 꼬리를 채찍처럼 휘둘러 아예 산산조각을 내버렸다.

그렇게 다시 한참을 전진하자, 박쥐 기생 괴수들의 구역을 지났는지 달려드는 숫자가 현저히 줄어들었다.

그런데!

쿵! 쿠쿠쿠쿠쿠쿠!

갑자기 지진이 난 듯이 땅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등 뒤에서 엄청난 토사와 나무와 풀들이 해일처럼 밀려들어 왔다.

'이런! 카르마탄이 다시 활동을 시작했네······.'

외부 공격이 끝난 걸까?

밖에서 계속 공격을 해야 카르마탄이 세상을 삼키는 행동을 멈출 수 없었다. 하지만 지금 이렇게 토사가 밀려온다는 것은 놈이 다시 움직인다는 뜻이었다.

'일단 모두 인형의 집으로 들어가!'

불카누스까지 모두 집어 넣었다.

난 퀸급 기간트에 타고 한쪽 벽으로 기어 올라갔다.

자동인형들이 탄 기간트는 토사에 휩쓸려 사라졌다.

하지만 괜찮다.

내 인형의 집엔 기간트는 많으니까.

다행인 것은 카르마탄이 활동을 시작하자, 기생 괴수들이 감쪽같이 사라졌다는 것이다.

이거 밖에서 계속 싸워줘야 내가 전진할 수 있을 텐데······.

피해가 심한가?

외부 상황을 모르니 답답했다.

점점 수면이 올라오듯 거대한 통로가 토사와 수풀로 가득 차기 시작했다.

난 멈출 수 없었기에 벽을 타고 조금씩 전진했다.

잘못해 저 해일 같은 토사에 휩쓸린다면, 그냥 꼼짝없이 죽을 뿐이었다.

그러다 한 시간가량 지나자, 갑자기 토사의 유입이 멈췄다.

'다시 공격했나 보구나!'

외부에서 카르마탄을 다시 공격했기에 놈의 활동이 멈췄다.

그래 믿고 있었다고!

이 틈에 다시 전진해야 했다.

그리고 거짓말처럼 다시 기생 괴수가 나왔고, 난 괴수인형 군단과 기간트 군단을 다시 꺼냈다.

그렇게 우린 싸우면서 계속 전진했고, 곧 중앙에 거대한 검은 그림자를 발견했다.

'저건 뭐지?'

뭔가 거대하고 검은 것이 이글거리고 있었다.

그리고 근처에 있던 토사와 휩쓸려 들어온 나무와 바위들이 그 안으로 빨려 들어가고 있었다.

차원 게이트?

그럼, 카르마탄이 지구의 모든 것을 삼켜 다른 차원으로 보내고 있는 건가?

210. 인생 쉽게 가는 법이 없다.

210. 인생 쉽게 가는 법이 없다.

아무리 봐도 그런 것 같았다.

카르마탄이 그렇게 세상을 계속 먹어치우는 이유가 다른 차원으로 자원을 보내는 거 같았다.

아니면 이렇게 모은 자원과 에너지로 차원 균열을 만드는 건가?

직접 들어가 보지 않는다면 알 순 없었다.

하지만.

'굳이 들어갈 필요는 없지.'

난 카르마탄을 죽이려고 왔으니까!

중앙에 이글거리는 검은 게이트 뒤쪽으로 이동했다.

얼마 가지 않아 20미터 크기의 거대한 것들이 앞을 막아섰다.

"하아!"

순간 나도 모르게 한숨이 흘러나왔다.

대체 이런 괴상한 것들이 어디서 계속 나오는 거야?

몸통이 빼빼 말랐고, 팔다리가 기형적으로 긴 수백 마리의 괴수들.

마치 지옥의 구덩이에서나 살만한 거대 괴수들이 내 앞에 서 있었다.

어비스에 사는 괴수들인가?

그런데 대부분 S등급 괴수였다.

이 괴이한 지옥의 괴수들만 공격해도 저쪽 차원은 멸망했겠다.

'대체 고대 거신 기사들은 어떻게 여기까지 와서 저런 놈들을 다 죽인 거야?'

새삼 그들의 능력이 대단하게 느껴졌다.

아니면 이건 카르마탄이 어비스에서 키운 놈들인가?

괴수는 성가시지만, 그래도 이제 끝이 보이는 것 같았다.

저들 뒤에는 막다른 길이었다.

그렇다면 그 뒤에 약점 같은 게 있지 않을까?

확인하기 위해선 우선 이 지옥의 괴수들부터 처리해야 했다.

"크르르르!"

"끼리리릭!"

그때 거대 지옥 괴수들이 날 발견했다.

그리더니 고개를 갸웃거렸다.

마치 너 혼자야?

이렇게 물어보는 것 같다.

'응! 아니야!'

인형의 집을 열었다.

쿵! 쿵! 쿵!

먼저 SS급 여왕개미와 SS급 지네 괴수인형, SS급 화염 공룡 괴수인형을 꺼냈다. 그리고 SS급 괴수들이 나오면서 기간트를 꺼냈다.

일단 자신들보다 거대한 세 괴수 마법인형의 등장에 지옥 괴수들이 살짝 놀란 반응을 보이기 시작했다.

너희보다 등급이 높은 괴수는 오랜만이지?

그리고.

'너희도 나와라!'

기이이잉! 쿵! 쿵!

드라우켄과 S등급 괴수들이 나왔고, 역시 기간트도 가지고 나왔다.

S급 괴수인형은 SS급 괴수들 옆으로 섰다.

그리고 웨슬리와 내 자동인형들이 다시 기간트 50기에 올라탔다.

기간트가 사라져도 계속 나올 수 있는 것이, 내 인형의 집엔 기간트가 아직도 500기 넘게 있었다.

기이이잉! 쿵! 쿵! 쿵!

'카르마탄을 상대하는데 이 정도 준비는 해야지!'

내 마법인형 기간트들도 옆에 길게 늘어섰다.

아직도 우리가 숫자는 부족했다.

"끼이이이아!"

여왕개미가 괴성을 지르며, 두 번째 개미군단이 모습을 다시 드러냈다.

1/3이 상했지만, 아직 병정개미 수백과 일개미 수천이 남아 있었다.

이젠 쪽수도 우리가 더 많았다.

아직 끝난 건 아니다.

'불카누스!'

이젠 병력을 아낄 필요가 없다.

얼마 남지 않았다.

몸길이가 3km나 되는 불카누스와 화염 와이번 7마리가 모습을 드러냈다.

불의 군단까지 모습을 드러내자, 질적이나 양적으로도 우리가 압도하는 모양새였다.

[운명의 실타래를 연결합니다.]

일단 지옥 괴수들과 운명의 실을 연결했다.

"다들 저 괴수들을 죽여라!"

"쿠아아아아아!"

[주군을 위하여! 공격하라!]

[와아아아!]

괴수인형 군단과 기간트 군단이 지옥의 괴수들을 향해 공격했다.

쾅! 콰콰콰쾅!

치열한 전투가 벌어졌다.

S급 괴수 수백 마리는 확실히 강했다.

긴 팔과 다리를 검이나 창처럼 찔러서 공격했고, 제대로 찔리면 내 SS급 괴수들도 타격을 입을 정도였다.

내 마법인형들도 상당히 상했고, 기간트 역시 부서졌다.

난 다친 마법인형은 인형의 집에 넣고, 부서진 기간트의 기사들 역시 인형의 집에 재빨리 넣었다.

특히 자동인형 기사들은 10분이면 다시 싸울 수 있으니, 괴수인형보다 효율적인 면에서 훨씬 뛰었다.

괴수인형들은 워낙 강했기에 잘 다치진 않지만 한번 다치면 최소 며칠은 인형의 집에서 치료해야 했으니까!

그리고 나도 퀸급 오리지널 기간트에 타고 앞으로 내달렸다.

"헉헉!"

꽤 힘든 전투였다.

꼬박 3시간이나 싸웠다.

드디어 마지막 지옥 괴수를 죽였다.

내 괴수인형들은 대부분 다쳤기에 인형의 집에 넣었고, 불카누스도 용암이 떨어졌기에 더는 화염 브레스를 쓸 수 없었다.

그랬기에 온몸이 딱딱해졌고, 지옥 괴수들의 공격에 몸통 곳곳이 떨어져 나갔다.

용암이 떨어진 불카누스의 전투력은 25%수준까지 급감한다.

내가 불카누스를 쉽게 잡을 수 있었던 이유가 물속에서 화염 브레스를 쓰지 못하게 했기 때문이었다.

불카누스도 회복을 위해 인형의 집에 넣었다.

"끼이이아!"

여왕개미가 날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자신도 힘들다는 뜻이었다.

지옥 괴수는 너무 빠르고, 또 몸체가 아주 단단했기에 개미군단도 녀석들을 잡는데 애를 많이 먹었다.

여왕개미도 다쳤고.

"그래, 너희도 고생했다. 들어가 쉬어."

"끼릭?"

여왕개미가 나 혼자 괜찮겠냐고 되물었다.

난 고개를 끄덕였다.

아직 기간트 군단이 남아 있으니까.

여왕개미가 먼저 개미군단을 회수했고, 내 인형의 집으로 들어갔다.

'그래도 수확이 꽤 괜찮았어!'

수백 마리를 죽이고 S급 지옥 괴수 19마리를 허수아비로 만들었으니까.

지금까진 등급은 낮고 숫자는 무지막지하게 많은 기생 괴수였지만, 이번엔 숫자는 적지만 등급은 높은 괴수였기에 괴수인형으로 만들기 제격이었다.

그리고 몇 마리는 불카누스에게 줄 생각이었다.

기이잉! 쿵! 쿵!

웨슬리의 룩급 오리지널 기간트가 다가왔다.

[주군! 마석 배터리를 모두 교환했습니다.]

[잘했다. 모두 전진한다!]

난 마법인형 기간트 군단과 전진했다.

그리고 우리 앞에 있는 벽을 공격했다.

푹! 푸푸푹!

기간트들이 열심히 검을 찌르자, 구멍이 뚫렸다.

기사들과 그 안으로 들어갔다.

'역시 끝이 아닌 줄 알았어······.'

이놈들이 최종 보스인가?

조금 전에 입구를 지키던 S급 지옥 괴수보다 2배는 크고 훨씬 강해 보이는 SS급 지옥 괴수 이십여 마리가 기다리고 있었다.

그리고 이 지옥 괴수들 뒤에 뇌인지 심장인지 정수인지 모를 거대한 녹색 덩어리가 하나 벽에 붙어 있었다.

왠지 저게 마지막일 것 같은데······.

저 200여 미터 크기의 덩어리만 부수면 카르마탄은 죽을 것이다.

"끄아아아아!"

"끼아아아아!"

SS급 괴수 이십여 마리를 상대하기엔 50기의 기간트 군단은 부족해 보였다.

물론 내가 있으니, 어떻게든 잡을 수 있겠지만, 이럴 때를 대비해 가장 아끼는 카드를 남겨뒀다.

'거대 병정개미!'

인형의 집에서 거대 병정개미 6마리를 꺼냈다.

원래는 마나 대포를 끌고 다니던 마법인형들이었는데, 드워프 포병대가 있었기에 이젠 굳이 필요 없었다.

녀석들이 들고나온 것은 25미터 크기의 거인급 오리지널 기간트였다.

그리고 암 드로운이 나와 기간트에 올라탔다.

기이이잉! 쿵! 쿵!

[주군 명을 내려 주십시오.]

내 최종병기 암 드로운이 말했다.

"눈앞에 괴수를 모두 치워라!"

[네! 주군!]

암 드로운과 웨슬리 슈나이더 그리고 자동인형이 탄 기간트 군단이 앞으로 달려들었다.

그와 동시에 난 SS급 지옥 괴수들과 운명의 실타래를 연결했다.

암 드로운이 검을 휘두르고, 기간트들이 사방에서 달려들자, SS급 지옥 괴수들 역시 오래 버티지 못했다.

그렇게 하나둘 운명의 실이 검은색으로 물들기 시작했다.

난 부지런히 기사회생 스킬을 사용했고, SS급 지옥 괴수 넷을 허수아비 마법인형으로 만들었다.

SS급 괴수는 강력했기에 나중에 복제인형으로도 만들 수 있었다.

아직 운명의 실타래 여유가 많았으니까.

그렇게 SS급 지옥 괴수 허수아비도 만들고, 20분 만에 전투도 끝났다.

암 드로운이 혼자서 14마리를 잡았기에 전투가 수월했다.

이제 남은 건.

거대한 녹색 덩어리뿐.

"모두 저 녹색 덩어리를 부숴라!"

기이이잉! 쿵! 쿵! 쿵!

푸푸푹! 촤악! 촤악!

암 드로운과 기간트들이 우르르 달려들어 녹색 덩어리에 검을 휘두르고 찔렀다.

하지만 아무리 상처를 내도 곧바로 상처가 회복되어 녹색 덩어리를 부수지 못했다.

불카누스나 화염 괴수라도 있으면 불태워버렸을 텐데······.

'아! 폭약이 있었지.'

그때 앨리슨이 준 폭약이 생각났다.

한번 폭발하면 주변 수백 미터는 박살 나고, 불타버려 흔적도 없이 사라질 거라고 했다.

그렇다면 폭파할 수밖에!

그때 다시 카르마탄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놈이 다시 세상을 삼키고 있었고, 저 앞에 있는 차원 게이트로 이동시키고 있었다.

서둘러야 했다.

인형의 집에서 수백 kg의 폭탄을 꺼냈다.

그리고 녹색 덩어리 아래에 겹겹이 쌓아 놓았다.

이제 불만 붙이면 된다.

그런데 남은 화염 괴수가 없다?

"크르릉!"

아니 한 마리 남아 있었다.

표범 화염 괴수인형을 꺼냈다.

터벅! 터벅!

녀석이 폭약 앞에 섰다.

난 다른 인형들과 기간트를 모두 인형의 집에 넣고, 2km 뒤쪽에 대기했다.

그리고 대군주 꼭두각시를 꺼냈다.

"그어어어!"

대군주가 손에 들고 있는 것은 평평한 바위였다.

대군주 꼭두각시가 바위를 조심스럽게 내려놓았다.

그 바위 위에는 차원 이동 마법진이 그려있었다.

그렇다!

내 작전은 카르마탄을 죽이자마자, 수인족 차원으로 이동하는 것이었다.

잠시 시간이 흐르고 마음의 준비를 끝냈다.

"치타! 끝내라!"

"크릉!"

내 명령을 받은 표범괴수가 입을 벌렸다.

화아아아!

화르르르!

화염이 20여 미터 앞에 있는 폭약을 향해 쏘아졌다.

그 순간 표범인형을 인형의 집에 넣었다.

쾅! 콰콰콰쾅!

엄청난 폭발과 함께 화염이 뿜어지고 녹색 덩어리를 날려버렸다.

그 순간 카르마탄과 연결한 운명의 실이 검은색으로 물들었다.

'됐다! 놈이 죽었다!'

역시 저곳이 약점이었다.

[기사회생(lv.max) 스킬을 사용합니다.]

그때 저 멀리서 녹색의 포자가 화염과 함께 안쪽에서부터 밀려오는 것이 보였다.

놈의 몸속에 있던 포자가 터진 것 같았다.

게다가 폭발 때문에 포자의 이동이 더 빨라졌다.

'차원 마나를 뿜어!'

대군주가 차원 이동 마법진을 항해 차원 마나를 뿜었다.

그런데!

'뭐야?'

마법진이 작동되지 않았다!

너무나도 진한 차원 마나 농도 때문인가?

아니면 초거수의 뱃속이라 마나 간섭이 있는 건가?

길게 생각할 여유가 없었다.

포자가 코앞까지 밀려왔다.

일단!

'인형 바꿔치기!'

난 2.8km 끝에 토우인형을 내려놓고, 인형 바꿔치기 스킬을 썼다.

잠시 시간을 벌었다.

하지만 폭발과 포자가 너무 빨리 쫓아왔다.

스킬 딜레이가 있었기에 다시 인형 바꿔치기 스킬을 쓸 수도 없었다.

'젠장! 이대로 괴수가 되는 건가?'

그때 카르마탄이 세상을 삼키던 차원 게이트가 보였다.

그런데 점점 게이트가 흐려지고 있었다.

포자는 다가오고, 저걸 조금이라도 마시거나 피부에 닿았다간 나도 거신 괴수처럼 변이할 것이다.

망설일 틈이 없었다.

곧바로 차원 게이트를 향해 달렸다.

그때였다!

[카르마탄(lv.1) 허수아비 마법인형이 만들어졌습니다.]

난 마지막으로 '인형의 집으로!'를 외치며 차원 게이트 안으로 몸을 던졌다.

***

"으아아아아아!"

갑자기 아래로 끝없이 추락하고 있었다.

'나와라! 와이번!'

"끼이이아!"

와이번 괴수인형이 날개를 펴고 내 아래에 나타났다.

턱!

"휴!"

겨우 와이번 꼭두각시의 등에 올라탔다.

'여긴 대체 어디야?'

주변을 돌아보았다.

거대한 보랏빛 달이 비추고, 엄청난 차원 마나가 느껴진다.

한참 아래로 내려오자, 정말 거대한 산이 있었다.

이건 방금까지 카르마탄이 삼키던 지구의 토사와 바위, 나무가 쌓여 만들어진 것이었다.

다시 한참을 내려가자, 수백만, 수천만은 되는 커다란 차원 벌레들이 지구의 자원을 한쪽으로 옮기고 있었다.

'허! 이곳은 초거수가 사는 차원이구나!'

난 또 다른 차원에 들어왔다.

순간 마른침을 삼켰다.

작게만 보였던 차원 벌레는 100여 미터나 되는 크기였고, 최소 A급 괴수였다.

그런 놈이 수천만 마리가 바글거렸다.

그리고 대수림의 거신목보다 몇 배는 더 큰 나무로 이루어진 초거대 대수림이 보였다.

일단 그 초거신목 위에 내려왔다.

작은 벌레도 수 미터에 달했고, 조금 크다 싶으면 수십 미터, 괴수들은 기본이 수백 미터나 됐다.

'대체 여긴 어떤 차원이야?'

나 작은 벌레보다도 작았다.

고개를 흔들었다.

여기서 오래 있고 싶진 않았다.

카르마탄의 차원 게이트에 몸을 던졌을 때부터 차원 이동 마법진을 그려서 돌아갈 생각이었다.

그런데!

'하아! 인생 쉽게 가는 법이 없구나!'

차원 마나가 많아서인가?

마나 간섭 때문인가?

이곳도 차원 이동 마법진이 발동하지 않았다.

속성 마석을 이용한 차원 이동 마법진도 마찬가지.

이 한 가지에 기대를 걸고 있었는데, 이 초거수의 차원에 갇혔다.

'여기서 포기할 순 없지.'

어떻게든 돌아갈 방법을 찾는다!

나를 기다리는 이들이 있는 곳으로 돌아갈 것이다.

이를 악물었다.

"고어어어어어어!"

그때 하늘을 뒤덮은 수십 km의 거대 고래 괴수가 날아가는 것이 보였다.

우선 생존이 먼저였다.

일단 불카누스가 쓸 용암부터 찾자.

그리고 카르마탄을 복제인형으로 만들고!

여왕의 개미군단도 키우자!

머릿속에 생존을 위해 할 일들이 떠올랐다.

211. 해후. (완)

211. 해후. (완)

이곳에서 얼마나 살았을까?

시간과 날짜를 잃어버렸다.

그저 살기 위해 바둥거리다 보니, 상당한 세월이 흐른 건 분명했다.

다행인 것은 세계수의 열매를 먹어서일까?

수명이 늘어난 것 같았다.

노화가 더딘 것을 보면.

난 200년은 거뜬히 살 것 같았다.

'카르마탄, 이제 차원 이동 마법진이 발동할까?'

카르마탄(lv.152) 복제인형이 그렇다고 의식을 전달했다.

이제 겨우 돌아갈 수 있었다.

이곳 차원엔 카르마탄과 같은 초거수를 키우는 하이브란 어미가 존재했다.

하이브는 하나의 괴수라고 하기보단 이곳 차원 자체라고 설명하는 게 더 맞을 것이다.

하이브는 너무 오래 존재했기에 언제 생겼고, 어떻게 생겼는지는 모른다.

그리고 놈은 너무 거대하기에 너무 많이 먹는다.

이곳 차원에 먹이가 부족해지자, 자신의 새끼인 초거수를 다른 차원으로 보내 그곳 차원의 모든 것을 이곳 차원으로 보내면 그걸 흡수해 생명을 유지하는 것이다.

그렇게 보낸 초거수가 얼마나 많은지는 아직도 알 수 없지만, 난 놈을 죽어야 했다.

그래야 차원 마나가 옅어지고, 집으로 돌아갈 수 있으니까!

하지만 놈을 죽이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했다.

200레벨이 다 된 불카누스도 기껏해야 브레스 한 번에 수십 km을 초토화할 수 있었지, 수십만 km나 뻗어 있는 하이브를 죽일 순 없었다.

그랬기에 난 놈을 굶기기로 했다.

놈에게 가는 영양분을 끊기 위해, 먹이를 가져가는 괴수를 차례로 죽이기 시작했다.

하이브는 거대했지만, 너무 거대해 오히려 움직이지 못했다.

몇 개 차원 게이트에서 놈의 위로 자원을 떨어트렸지만, 그것만 가지곤 거대한 자신을 유지할 수 없었다.

난 내 마법인형 군단을 이끌고 괴수들을 죽이고 죽여 영양분을 대부분 차단했고, 드디어 놈을 굶겨 죽였다.

그리고 다시 시간이 꽤 흐르자, 이제야 차원 마나 농도가 옅어지며 드디어 차원 이동 마법진을 사용할 수 있게 되었다.

'정말 긴 시간이었어. 그래도 너희가 있었기에 버틸 수 있었다.'

난 내 마법인형들을 돌아봤다.

암 드로운(lv.219)은 더는 기간트를 타지 않았다.

암 드로운은 검기 하나로 초거수를 난도질할 수 있었고, 여왕개미(lv.142)는 수천만 개미군단을 보유했다.

불카누스(lv.197)는 화염의 방 말고도 냉기의 방, 대지의 방, 맹독의 방이 추가됐고, 수천 마리의 비행 괴수 군단을 이끌고 있었다.

'자! 그럼 돌아갈까?'

난 내 마법인형들을 모두 인형의 집에 넣고, 차원 이동 마법진을 발동시켰다.

우우웅!

푸른 빛이 번쩍이며 곧 세상이 어두워졌다.

***

[지구 차원]

가장 먼저 도착한 곳은 지구였다.

카르마탄을 죽이고, 지구가 다시 돌아왔을지 궁금했다.

다시 나무가 자라는구나!

아직 북반구만 회복되고 있었지만, 점점 범위를 넓혀가고 있는 것 같았다.

카르마탄이 내 마법인형이 되어 사라지자, 포자를 뿜지도 않았다.

덕분에 지구는 스스로 치유해가고 있었다.

난 인형의 집에서 비공정 하나를 꺼냈다.

이젠 전부 분신인형이 된 마나인형들이 비공정을 몰았고, 거신 차원으로 통하는 차원 게이트로 향했다.

그런데!

슈우우웅!

방금 비공정 한 척이 엄청난 속도로 날아갔다.

'뭐가 저렇게 빨라?'

내가 없는 사이에 기술이 많이 발전했나 보다.

발레리온 왕국으로 통하는 차원 게이트가 있는 곳으로 이동했다.

다행히 카르마탄이 기존에 만들어 놓은 차원 게이트는 아직도 멀쩡히 남아 있었다.

그리고 차원 게이트 주변에 도시가 형성되어 있었다.

도시 주변에 숲도 새로 조성되어 있었고.

그런데 처음 보는 식물들이었다.

아니 엘프 차원에서 본 건가?

내 비공정이 차원 게이트로 다가가자, 전투 비공정들이 내 비공정 좌우로 붙었고, 난 안내를 받아 게이트 입구로 이동했다.

그런데 입구에 다다르자, 갑자기 보이지 않는 벽에 막혔다.

그리고 어려 보이는 여 엘프 한 명이 바람의 정령을 타고 날아와 내 비공정에 올라탔다.

지구에도 세계수가 심어졌나 보다.

"와우! 정말 오래된 골동품이네요. 초기 비공정은 모두 박물관이나 있는 줄 알았는데, 신기하네요."

내 비공정을 살펴보던, 엘프가 놀란 표정을 지었다.

엘프가 스카우트 같은 고글을 쓰더니 내 비공정을 훑어봤다.

"별 이상은 없네요. 위험한 물건도 없고. 발레리온 제국으로 입국하시는 목적이 뭔가요?"

"네? 제국이요?"

"아! 발레리온 제국이 처음이신가 보군요. 일단 게이트를 통과하시면 차원 관리국에 가서 신분증부터 발급받으셔야 합니다. 아니면 무단 거주자로 처벌받을 수 있으니까요."

"네······."

왠지 내가 딴 세상에 온 것 같았다.

"일단 여행이라고 적어 놓겠습니다. 이름이?"

"타일러 빈스라고 합니다."

내 이름을 들었는데, 어린 엘프는 별다른 반응이 없다.

"이름이 이상하지 않나요?"

"아시다시피 타일러란 이름이 하도 많아서요. 전 차원을 구한 초대 황제시니까요."

황제라고 내가?

발레리온이 제국이라 불리는 것도 조금 이상하긴 했다.

"그런데 발레리온 제국이 저쪽 차원에서 강한가요?"

"하하! 물론이죠. 정말 어디 섬이나 산속에서 혼자 사시다가 오셨나 보네요."

"오늘이 몇 년인가요?"

"차원력 48년이죠."

고개를 갸웃거렸다.

"아베르크 제국력은 몇 년인가요?"

"네? 아베르크 제국이 사라진 지 30년이 다 됐는데······."

"사라져요?"

"네, 발레리온 왕국과 전투에서 패해 황제와 귀족들이 식민지 대륙으로 넘어갔다가 그곳에서도 얼마 버티지 못하고 망했죠. 그때 아베르크 제국의 영토는 모두 발레리온 제국이 흡수했죠. 그래서 지금은 대부분 나라에서 발레리온 차원력을 씁니다. 타일러 빈스 황제께서 카르마탄을 무찌른 그해를 원년으로 차원력이 시작됐죠."

그 말은 내가 사라지고 48년이 흘렀다는 것이다.

"저기 또 다른 비공정이 오네요. 그만 통과하셔도 됩니다."

여 엘프가 손을 젓자, 바람의 장막이 걷혔다.

우리 비공정은 차원 게이트를 통과했다.

'아베르크 제국이 망했다니, 내가 없는 사이에 무슨 일이 벌어진 거야?'

그나저나 48년이 흘렀으면, 내가 아는 많은 사람이 죽었겠네.

그건 좀 슬픈 일이었다.

난 곧장 발레리온으로 이동했다.

'허 너무 많이 변했네······.'

뾰족한 건물들과 수백 개의 거대 공중 타워들이 도시 외곽에 세워져 있었다.

이젠 옛 모습은 찾아볼 수 없었다.

비어있는 한 타워 선착장에 비공정을 접안시켰다.

골동품이라고 하더니, 내가 탄 비공정이 제일 후져 보였다.

저건 비공정보다 비행기나 우주선에 가깝다.

내 분신인형들도 너무나 변해버린 세상을 보곤 나처럼 당황했다.

난 마법인형을 모두 인형의 집에 넣고, 황궁이 있다는 곳으로 향했다.

그런데 경비가 너무 삼엄하다.

게다가 아무도 날 알아보지 못했다.

'아! 수염과 이 아무렇게나 자른 더벅머리 때문인가?'

근처 여관을 찾아가 수염과 머리를 밀었다.

그리고 다시 황궁을 찾아갔다.

"아니, 그러니까 황궁엔 아무나 들어갈 수 없다니까요."

"내가 타일러 빈스라니까."

"비슷하게 생기신 건 인정하지만, 그런 억지를 부리시면 안 됩니다. 처벌받을 수 있어요."

병사는 내 말을 듣지 않았다.

하긴 50년 가까운 세월이 흘렀기에 나도 나이가 들었다.

하지만 세계수 열매를 먹었기에 기껏해야 30대 초반 정도로 보였을 뿐이었다.

아무래도 믿지 않으니, 불카누스를 꺼낼 생각이었다.

"헉! 타, 타일러 폐하?"

누군가 내 이름을 불렀다.

고개를 돌리니 하늘에 떠 있는 마차에 백발노인이 경악한 표정으로 날 쳐다보고 있었다.

"응? 누구지?"

노인이 마차에서 내려서 달려와 무릎을 꿇었다.

"접니다. 알프레도."

"응? 알프레도 중령?"

"정말 타일러 폐하시군요."

알프레도의 눈가에 눈물이 맺혔다.

"자네 많이 늙었군. 그래도 아는 사람이 있어 다행이네. 나 방금 여길 박살 낼 뻔했다니까."

"일단 안으로 들어가시죠."

난 알프레도가 탄 비행 마차에 탔다.

"제가 발레리온 제국의 차원 관리국장입니다."

"차원 관리국장? 그게 뭐 하는 직책이지?"

알프레도가 미소를 지었다.

"발레리온 제국에 발생한 차원 게이트를 관리하고, 다른 차원의 왕국들과 연락하는 중책을 맡고 있지요."

내가 전에 알프레도에게 맡겼던 임무였다.

"그런데 지금 황제는 누구지?"

"황제는 초기부터 계속 공석이었습니다. 다들 타일러 폐하께서 돌아오실 거라고 믿고 있었으니까요."

"그럼, 발레리온 제국은 누가 다스리지?"

"앨리슨 여왕 전하와 마키아스 국왕께서 다스리고 있습니다."

"뭐? 둘이 부부가 된 거야?"

"네."

알프레도에게 이곳 소식을 많이 들었다.

"마르틴 국왕께서는?"

"40년 전쯤에 돌아가셨습니다. 지금 아리칸 왕국은 탈로스 왕국을 점령해 영토가 3배로 늘어났습니다. 우리 발레리온 제국의 동맹이기도 하고요."

"동맹이라니 다행이군. 지금 아리칸 국왕은 누구지?"

"마르틴 국왕의 아들인 비에르 페르도입니다."

"오! 비에르가 아직 살아 있군."

지금은 80이 넘었을 텐데, 그래도 장수했네.

우린 황성으로 곧장 들어갔다.

그리고 난 황제의 알현실로 들어갔다.

텅 비어있었지만, 매우 깔끔하게 관리되고 있었다.

언제든 내가 올 거라고 진짜 믿고 있었나 보다.

그리고 사방에 내 모습이 그러진 그림이 걸려 있었고, 조각상들 역시 내가 활약한 전투를 조각한 것이었다.

그리고 문이 열렸다.

"타일러 삼촌!"

고개를 돌리자, 얼굴에 주름이 가득한 70대의 앨리슨이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앨리슨!"

거동이 살짝 불편해 보이는 앨리슨을 대신해 내가 달려가 안았다.

"왜 이렇게 늦었어요. 흑흑!"

"그러게 말이다. 내가 너무 늦게 왔구나."

이제 백발이 된 앨리슨의 머리를 쓰다듬어 줬다.

내가 없는 동안 얼마나 마음고생을 했을까.

우린 한참을 부둥켜안고 울었다.

밀린 이야기가 너무 많았다.

내 이야기는 차원 괴수를 죽이는 것밖에 없었기에 재미없겠지만, 그동안 발레리온 제국의 역사는 너무나 흥미로웠다.

그리고 문명이 이렇게 발전한 것은 전부 앨리슨 때문이었다.

그녀는 여왕이 됐지만, 왕국을 지키기 위해 꾸준히 무기와 기술을 개발했고, 지금은 누구도 건들 수 없는 국력을 가지고 있었다.

가디언 제국과는 한 번도 전쟁을 벌이지 않았다고 했다.

루이스 황제가 죽으면서 절대 발레리온 왕국과는 싸우지 말라는 유언을 남겼기 때문이었다.

아마도 전쟁을 벌였다간 내가 돌아와 복수할 수도 있다고 생각했던 것 같았다.

지금 가디언 제국은 루이스 황제의 막내아들이 황제로 있었고, 몸이 매우 아프다고 했다.

아마도 곧 새로운 황제가 등극할 것이다.

그리고 글러드 왕자와 내가 아는 드워프들은 대부분 살아 있었다.

드워프들은 수명이 길어서 당연히 살아 있을 줄 알았다.

그런데!

"뭐? 쿠훌린이 살아 있다니! 그건 뜻밖이네."

"다른 오크는 다 죽었어요."

오크는 오래 살아야 40, 50년밖에 살지 못했다.

아! 맞다.

쿠훌린은 나와 세계수 열매를 나눠 먹었다.

그래서 아직 살아 있는 것 같았다.

그리고 쿠훌린은 아직도 5,000명이나 되는 오크 해병대를 이끌고 있다고 했다.

"에테나는?"

가장 궁금한 것을 물었다.

앨리슨은 어린 소녀처럼 피식 웃었다.

"암흑 차원에 가 있어요."

"거긴 왜?"

앨리슨이 짧은 한숨을 쉬었다.

암흑 대수림의 중심에 거대한 구멍인 어비스에서 카르마탄의 새끼들이 올라왔다고 했다.

놈들은 아직 크기가 수 km에 불과했지만, 암흑 대수림에 적수가 없었고, 대수림과 괴수들을 삼키고 몸집을 부풀리고 있다고 했다.

그놈들을 토벌하기 위해 함대를 이끌고 갔다고 말했다.

에테나가 지금 발레리온 제국의 원수였고, 총사령관이었다.

"내가 가봐야겠군."

난 자리에서 일어섰다.

"금방 돌아올 테니까, 이야기는 나중에 하자."

앨리슨이 내게 고개를 숙였다.

"황제 폐하! 조심해서 다녀오십시오."

난 앨리슨에게 말했다.

"그냥 삼촌이라고 불러!"

앨리슨이 미소를 지었다.

"삼촌 다녀와."

앨리슨이 손을 흔들었다.

난 황실 바닥에 순식간에 차원 이동 마법진을 그렸다.

그리고 암흑 차원으로 이동했다.

***

발레리온 제국의 함대를 찾는 건 어렵지 않았다.

암흑 대수림 상공에 수천 대의 전투 비공정이 있었다.

그곳에 코린트 왕국과 롱바드 왕국의 비공정도 있었다.

난 일부러 불카누스를 타고 날아갔다.

내가 다가온 것을 알고 초거대 비공정이 내게 다가왔다.

불카누스는 대수림에 내려앉았고, 난 초거대 비공정 위에 올라탔다.

"쿠오오오크!"

거구의 쿠훌린이 먼저 달려왔다.

그는 나를 향해 가운뎃손가락을 펼쳤다.

"쿠오크! 타일러! 위대한 전사여! 너무 반갑다!"

녀석은 오크답지 않게 나를 와락 안았다.

침이 좀 튀긴 했지만 어떤가!

나도 반가워 녀석을 안아줬다.

"쿠훌린! 우는 거냐?"

"쿠오크! 오크 전사 울지 않는다!"

말은 그렇게 했지만, 녀석은 뜨거운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자식, 오래 살더니 감수성이 예민해졌네.

주변에 있던 오크 해병대들은 대장이 눈물을 흘리자, 경악한 표정을 지었다.

그리고!!

나를 향해 눈부시게 아름다운 엘프가 달려오고 있었다.

그 순간 나도 모르게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타일러님!"

"에테나!"

나도 달려가 에테나를 안았다.

그녀는 더 아름다워졌고, 더 성숙해져 있었다.

"미안해! 내가 너무 늦었지."

"아니에요. 전 꼭! 돌아오실 줄 알았어요."

난 그녀를 보기 위해 그 끔찍한 차원에서 50년을 견뎠고, 그렇게 수많은 차원 괴수와 싸운 것이다.

그리고 약속을 지키기 위해 돌아왔다.

그렇게 한참을 에테나를 안고 온기를 느꼈을 때였다.

"험! 험!"

내 주변엔 나를 아는 이들이 가득했다.

에테나가 그제야 주변을 살피곤 내게 떨어졌다. 하지만 난 그녀를 잡은 손을 놓지 않았다.

알리사 엘가가 미소를 지으며 다가왔다.

"타일러 빈스 황제 폐하를 뵈옵니다!"

"정말 오랜만이네."

"죄송하지만, 곧 카르마탄의 새끼들이 이곳으로 옵니다. 전투 명령을 내려 주십시오. 저희 마법병단은 언제든 출격할 수 있습니다."

알리사 뒤로는 100여 명이나 되는 마법사들이 서 있었다.

"모두 철군해라!"

"네?"

알리사가 영문 모를 표정을 지었다.

"전력은 충분합니다. 과거와 달리 마법사들도 강해졌고, 비공정의 함포는 S급 괴수도 단숨에 죽일 수 있을 정도로 강해졌습니다."

"아니, 우린 밤새 밀린 이야기를 해야지. 암 드로운도 알리사가 보고 싶은 것 같던데."

"네?"

알리사의 얼굴이 붉어졌다.

난 뒤를 돌아봤다.

"불카누스! 놈들을 처리해!"

"크릉! 크르릉!"

불카누스가 고개를 끄덕이며, 수천 마리나 되는 비행 군단을 꺼냈다.

그러자 다들 입을 떡 벌리며 경악했다.

"아! 아니다. 저놈들을 죽이고, 어비스도 다 태워버려!"

"쿠아아아아!"

불카누스가 군단을 이끌고 카르마탄 새끼들을 향해 날아갔다.

그리고 우린 밀린 이야기를 하면서 발레리온 제국으로 향했다.

타일러 빈스는 후에 일곱 차원을 다스리는 차원 황제가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