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화 튜토리얼(1)
1. 튜토리얼(1)
좁고 허름한 빌라 거실.
누워서 스마트폰을 보던 강아현이 벌떡 일어났다.
"야. 언제까지 그렇게 있을 거냐?"
강아현은 자신의 오빠, 강현을 표독스럽게 노려봤다.
"뭐가."
"언제까지 내 집에 얹혀서 살 거냐고! 새해도 밝았는데 좀 새롭게 살고 싶은 생각이 안 들어?"
"기다려봐. 일자리 알아보고 있잖아."
평소와 같은 잔소리에 강현은 시큰둥하게 대답했다.
말을 하면서도 그의 눈은 여전히 모니터 속의 게임 캐릭터에 고정된 채였다.
"한심한 새끼. 컴퓨터를 중고로 팔아버리던가 해야지."
"저거저거! 입 험한 것 좀 보소. 시집도 못 갈 년이야."
"아아아악! 제발 좀 꺼져!"
결국 폭발한 강아현이 괴성을 지르며 손에 잡히는 대로 물건을 집어던졌다.
그 야단에 강현은 다급히 컴퓨터를 끄고 밖으로 나왔다.
"요즘 히스테리가 더 심해진 것 같네. 뭔 일 있나."
중얼거리며 담뱃갑을 꺼낸 강현.
"참나, 담배도 없네."
그의 표정과 함께 구겨진 담뱃갑은 곧장 쓰레기통으로 던져졌다.
"하아... 인생아."
강현도 몰랐다. 자신이 이런 답 없는 인생을 살게 될 줄은.
불과 2년 전.
대학을 졸업하고 대기업 인턴으로 들어갈 때만 해도 세상을 다 가진 것 같았다.
고작 인턴이었지만, 그에게는 희망이 있었다.
2년만 고생하면 정직원으로 승진시켜준다는 약속.
그 거짓에 속아 강현은 200만원도 되지 않는 월급을 받으며 정말 밤낮없이 일했다.
노력의 대가는 1년 반이 지났을 무렵에 예고도 없이 날아온 해고 통보였다.
-퉤! 여기 아니라도 일할 곳 천지야! 알아!?
강현은 당당하게 외치며 회사를 떠났다.
그 결과가 바로 지금이다.
생각보다 취직은 쉽지 않았고 결국 생활비 한 푼이라도 아끼기 위해 동생의 자취방에 얹혀 생활한 지 1년이 지났다.
27살의 백수. 아니, 새해가 밝았으니 이제 28살의 백수.
그게 지금의 강현이었다.
"이젠 정말 뭐라도 해야 하는데... 알바라도 알아봐야 하나..."
사실 당장 한 푼도 없는 상황에 아르바이트든 뭐든 일을 하는 것이 옳았다.
하지만 자칫하면 영원히 취직하지 못하고 아르바이트만 전전할 것이라는 막연한 불안감에 쉽사리 문을 두드리지 못하고 있었다.
"사실 이것도 백수 생활이 편해서 하는 핑계일지도 모르지."
자조적인 미소를 지은 강현이 시간을 확인했다.
[20:17]
벌써 새해의 첫날도 끝나가고 있었다.
"그래. 이딴 생활도 이제 지친다. 뭐라도 해야지. 너 강현이다. 할 수 있어!"
강현이 오글거리는 다짐을 외칠 때였다.
오랜만에 그의 스마트폰이 울렸다.
액정을 확인하자 익숙한 친구의 이름이 떠 있었다.
"어, 웬일이냐."
-뭐하냐? 술 한잔하자.
"나 돈 없다."
-언제는 있었냐. 나와 인마. 내가 쏜다.
"콜!"
뭐라도 하려면 우선 배가 차야 했다.
**
-치이이이~
뜨거운 불판에서 춤추는 삼겹살.
이 소리는 언제 들어도 아름답다.
감미로운 육즙과 함께 술잔이 돌고, 제법 취기가 조금 올랐을 무렵이었다.
"요즘 취업은 알아보고 있냐?"
오늘의 물주이자 강현의 소꿉친구, 김태수가 본론을 꺼냈다.
"나 모르냐? 강현이야. 강현. 알아보고 있으니까 걱정하지 마라."
강현은 언짢은 질문에 인상을 찌푸리며 건성으로 대답했다.
"야. 말 돌리지 말고. 걱정돼서 하는 말이잖아. 내가 너희 집안 사정까지 다 아는데 어떻게 그냥 보고만 있어?"
김태수의 말에 강현이 신경질적으로 소주잔을 내려놓았다.
순간, 취기와 함께 화가 치밀어 올랐다.
"그래서 뭐?! 내가 거지 백수인데 보태준 거 있냐? 참견하지 마. 새꺄!"
김태수가 자신을 걱정해서 하는 말이라는 것은 알고 있다.
하지만 강현은 이미 너무 지치고 삐뚤어져 있었다.
미안함. 부끄러움. 자괴감.
수많은 감정을 감추기 위해 강현의 입에서 마음에 없는 거친 말들이 쏟아져 나왔다.
"이 새끼는 말을 왜 그딴 식으로 해? 걱정해서 말하면 좀 들어야 할 거 아냐! 언제 철들래?"
"지금 말 다 했냐?"
"다 못했다. 지금까지 네가 한 게 뭐야? 대학 나와서, 고작 대기업 인턴 한번 한 게 벼슬이냐?"
"이 새끼가!"
사소한 것에서 시작된 말싸움은 금세 주먹다짐으로 이어졌다.
"네가 나에 대해 뭘 알아!"
자리를 박차고 일어난 강현이 힘껏 주먹을 휘둘렀다.
그러나 비실한 그의 주먹은 허무하게 허공을 갈랐다.
원체 운동과는 거리가 멀었고 백수 생활 동안 몸 관리라고는 일절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에 반해 평소 자기관리가 철저한 김태수가 휘두른 주먹은 그대로 강현의 턱에 꽂혔다.
"컥!"
짧은 신음과 함께 강현이 바닥에 쓰러졌다.
"정신 차려 새끼야. 게임만 처하지 말고 뭐라도 해라. 동생한테 부끄럽지도 않냐?"
"씨X..."
분했다.
너무 화가 나서 눈물이 흘러나왔다. 김태수가 아닌 스스로에 대한 분노였다.
'내가 왜 이렇게 됐지...'
아직 젊고 창창한 나이라 생각했다.
그래서 더 꿈을 크게 갖고 야망을 품어도 된다 생각했다.
하지만 자신은 생각만큼 대단하지도, 운이 좋지도 않았다.
그저 평범한 사회 초년생.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약값이라도 해라."
김태수는 무심하게 강현의 손에 5만 원짜리 지폐 6장을 쥐여 주고는 떠났다.
가볍게 주먹 한 대 맞은 것 치고는 과한 돈이었다.
심지어 먼저 주먹을 휘두른 것도 자신이다.
"하아, 끝까지 비참하게 만드네..."
눈물을 닦아낸 강현이 비틀대며 집으로 향했다.
**
"야. 어디 갔다 왔냐? 술 마셨어?"
현관문이 열리고 강현과 함께 밀려오는 술 냄새에 강아현이 미간을 찌푸렸다.
"어, 조금 마셨다. 미안해."
"돈도 없으면서 무슨 술을…."
"여기 이거 받아."
비틀거리며 동생에게 다가간 강현이 그녀의 손을 잡고는 30만 원을 쥐여 주었다.
"뭐야? 이거 무슨 돈이야. 얼굴은 또 왜 그래? 싸웠어?"
"아냐. 넘어졌어. 내가 미안하다."
"갑자기 뭐가 미안해?"
"그냥 다. 피곤해서 먼저 잘게."
"야! 싸운 거냐고! 돈은 또 뭐고?"
"미안. 내일 이야기하자."
걱정스러운 물음에도 강현은 그저 미안하다는 말뿐이었다.
강현이 비틀대며 방으로 들어가고, 쾅-하는 소리와 함께 문이 닫혔다.
"무슨 일 있었나..."
강아현은 평소와 다른 오빠의 모습에 걱정했지만, 어쩐지 말을 걸기 힘든 분위기에 내일 대화를 하자고 생각했다.
"하아..."
방으로 들어온 강현은 옷도 갈아입지 않고 쓰러지듯 바닥에 누웠다.
머리가 빙글빙글 돌아 당장이라도 기절할 것만 같았다.
"이렇게는 못 산다. 아니, 안 살 거야. 할 수 있어. 너 강현이다..."
강현이 반쯤 정신을 놓고 중얼거리던 그때였다. 갑자기 눈앞에 메시지가 떠오르기 시작했다.
[하켄 차원의 일방적인 연결을 감지합니다]
[지구의 방호 시스템이 작동합니다]
[하켄 차원의 연결을 임시로 거부합니다]
…
[지구에 튜토리얼이 시작됩니다]
[하켄 차원과의 완전한 연결까지 남은 시간 : 4년 364일 23시 59분 27초]
[26초...]
[25초...]
"이게 뭐야..?"
비몽사몽하며 허공을 휘적거리던 강현의 눈이 결국 완전히 감겼다.
**
새하얀 공간.
강현이 눈을 뜨자마자 보이는 것은 온통 새하얀 공간이었다.
바닥까지 새하얗게 되어 있어 자신이 어디에 발을 딛고 있는지도 알 수 없는 기묘한 곳.
"여기가 어디지?"
인상을 찌푸린 강현이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그 순간,
[강현 님의 튜토리얼 입장을 환영합니다]
눈앞에 메시지가 떠오르고, 중성적인 목소리가 들려왔다.
[본 튜토리얼은 총 8 단계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튜토리얼은 수면시간 동안 진행되며 현실의 시간과 무관합니다]
[튜토리얼에서의 죽음은 현실에서의 죽음과 무관합니다]
[튜토리얼 클리어 시, 각성과 함께 보상이 부여됩니다]
[튜토리얼은 중도 포기할 수 없으며, 클리어에 실패할 경우 재도전할 수 없습니다]
정신없이 눈앞을 채우는 메시지와 목소리.
"이게 뭔 말이야..?"
알 수 없는 상황에 강현은 그저 눈만 끔뻑거릴 뿐이었다.
[1단계에 입장하시겠습니까?]
메시지의 물음에 강현이 생각에 잠겼다.
"튜토리얼이라..."
아마 대한민국에서 튜토리얼이 무엇인지 모르는 20대 남자는 거의 없을 것이다.
쉽게 말해 본 게임을 하기 위한 준비운동 같은 것.
"뭔지 잘 모르겠지만, 게임 같은 곳에 들어온 건가?"
본인이 생각하고서도 웃겼던 강현이 헛웃음을 흘렸다.
"크큭. 술을 많이 먹어서 그런가? 별 희한한 꿈을 다 꾸네. 아니야. 꿈이 아니라도 상관없지."
꿈일 것이 분명하지만 꿈이 아니라도 좋았다.
분명 통과하면 보상을 주고 현실의 목숨과 관련도 없다고 했다.
"개꿀이네! 입장한다."
[당신의 용기가 지구를 구원하기를]
**
눈앞이 번쩍이며 몸이 붕 뜨는 듯한 감각이 느껴지는 것도 잠시. 다시 눈을 뜨자 강현은 자신이 칙칙한 동굴에 서있음을 알 수 있었다.
[첫 번째 단계(stage 1)]
[가장 두려워하는 것을 이겨내고 자신의 용기를 증명하십시오]
[클리어 조건 : 동굴의 끝. 도착 지점에 도달]
[실패 조건 : 사망]
"끝이야?"
메시지에 나오는 튜토리얼의 내용은 그다지 어려울 것이 없어 보였다.
"뭐, 심플해서 좋네."
강현은 천천히 동굴을 걸었다.
간간이 빛을 내는 무언가가 떠돌아다녔지만, 전체적으로 굉장히 어두운 길이었다.
-또옥, 또옥
물방울이 떨어지는 소리가 들릴 때마다 소름이 끼쳐왔다.
강현은 한쪽 벽에 손을 짚은 채로 계속해서 길을 걸었다.
10분. 20분...
정확히는 모르겠지만 꽤나 오래 걸은 것 같았다.
조금씩 불안감이 밀려왔다.
'얼마나 더 가야 하는 거야?'
주위를 살피며 조심스럽게 이동하느라 속도가 너무 느렸다.
점점 집중력이 흩어지고 몸에 피로가 쌓였다.
'무작정 뛸 수도 없고. 미치겠네.'
생각 없이 달리다가 무슨 일이 벌어질지 모른다.
천천히 한 발씩 내디딜 수밖에 없는 상황.
강현은 입을 꾹 다문 채로 계속 길을 걸었다.
'빛이다!'
다행히 얼마 지나지 않아 멀리서 새어 나오는 빛이 보였다.
"허억, 허억!"
동시에 주변의 온도가 급격하게 올라가는 것이 느껴졌다.
강현의 전신에서 진득한 땀이 흘러내리기 시작했다.
'왜 이렇게 더워?'
엄청나게 뜨거운 불가마 찜질방에 들어온 느낌이었다.
강현은 이마의 땀을 훔치며, 서둘러 동굴 밖으로 빠져나왔다.
"뭐야...?"
동굴을 나서자마자 보이는 풍경에 강현의 입이 저도 모르게 벌어졌다.
"튜토리얼 이라며?"
강현의 앞에 지옥이 펼쳐져 있었다. 그것도 평범한 지옥이 아닌 화려한 불지옥이다.
TV에서나 보던 화산의 분화구처럼 생긴 거대한 원통형 공간.
높이가 수백 미터는 될 법한 그 공간에 수많은 다리가 거미줄처럼 얽혀 있었다.
수많은 사람이 제각각 다리를 건너는 모습을 보였다.
"지금 나보고 이걸 건너라고..?"
다른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강현의 앞에도 반대편으로 건너가는 다리가 놓여 있었다.
톡 치면 부서질 것 같은 위태로운 다리를 보며 강현이 침을 삼켰다.
"일단 아래에 뭐가 있는지 보자."
강현은 조심스럽게 다리 앞으로 다가가서 고개를 내밀어 아래를 확인했다.
"이게 뭐야..."
그곳에는 용암과 불로 이루어진 산과 강, 바다가 있었다.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얼굴이 익을 것만 같은 엄청난 열기에 강현이 고개를 저었다.
"불꽃 고켓몬도 저기 떨어지면 바로 즉사야."
강현이 저기에 떨어진다면 뼛조각 하나 남기지 않고 사라질 것이 분명했다.
상상만으로 끔찍했던지라, 강현은 온몸을 부르르 떨었다.
"으아아아아!"
그때였다.
어디선가 터져 나온 비명이 공간을 가득 메웠다.
다급히 소리가 들리는 곳을 확인하자 누군가 아래로 떨어지고 있는 것이 보였다.
-퍽! 콰앙!
"꺄아아아아!"
"으아아!"
떨어지던 남자는 아래에서 다리를 건너던 어떤 불행한 여자를 쳤고, 그 충격에 연약한 다리가 부러지며 둘은 함께 아래로 떨어졌다.
-퍽! 퍽! 쾅!
"으아아악!"
그렇게 연쇄 반응으로 떨어진 사람들이 대략 20명 남짓.
그들은 사이좋게 용암의 바다에 떨어졌고, 이내 아무런 일도 없었다는 듯이 조용해졌다.
"무슨 튜토리얼이 이래..?"
원래 튜토리얼이란 게임의 조작법을 알려주는 초보자의 친구 같은 존재이다.
이런 불지옥에 초보자를 처박는 튜토리얼 따위. 들어본 적도 없다.
"혼자서 조용히 다리를 건너도 될까 말까인데..."
다리 자체도 굉장히 불안해 보이는데 저런 자연재해. 아니, 인간 재해까지 조심해야 한다.
"후우..."
긴장한 강현이 주먹을 꽉 쥐었다.
"그래도 건너야 해. 건널 수 있어. 어차피 현실의 목숨이랑 관계가 없다고 했잖아?"
태연함을 가장한 말과는 달리 떨리는 두 다리는 좀처럼 진정할 생각을 하지 않았다.
"그런데 사실이 아니면 어쩌지? 진짜로 죽는 거면?"
저 아래 불지옥으로 떨어지면 시체조차 찾지 못할 것이다.
다시 불안감이 강현을 엄습했다.
"후아! 정신 차려!"
강현이 자신의 뺨을 힘차게 때렸다.
날뛰던 심장이 조금은 진정되는 느낌이었다.
"강현아, 신중하게 가자. 우선 다른 위험이 없는지 더 살펴봐야 해."
단순히 다리를 건너는 것만이 다가 아니다.
또 어떤 위험이 들이닥칠지 모르는 상황.
강현은 한동안 다른 사람들이 다리를 건너는 것을 지켜봤다.
"으음... 실제 사람이 아닌 건가?"
그렇게 한참을 지켜봤지만 별다른 것은 보이지 않았다.
특이한 점이 있다면 다리를 건너는 사람들이 감정을 보이지 않는다는 것.
그 모습에 강현은 그들이 게임의 NPC같은 존재가 아닌가 짐작했다.
"좋았어. 이 정도면 충분히 할 만해. 할 수 있다. 할 수 있어!"
그저 폭이 30cm 정도로 매우 좁은 다리를 건너기만 하면 되는 것이다.
"후아! 당장 시작해야 해."
사우나를 능가하는 뜨거운 열기에 땀이 비 오듯이 쏟아져 내렸다.
이대로라면 다리를 건너기도 전에 탈수 증상으로 쓰러질지도 몰랐다.
"가즈아아아아!!!"
힘차게 기합을 내지른 강현이 드디어 첫발을 내디뎠다.
우렁찬 기합과는 달리 굉장히 조심스러운 발걸음이었다.
-파스스...
한 발자국 내디뎠을 뿐인데 지옥의 다리에서 돌가루가 흘러내렸다.
미칠 듯이 요동치는 심장박동이 귓가를 울렸다.
"하아, 하아..."
걸을 때마다 숨이 가빠왔다.
아래에 보이는 용암과 불꽃이 당장에라도 자신을 잡아먹을 것만 같았다.
'할 수 있다. 할 수 있다...'
강현은 마치 주문을 외듯이 '할 수 있다'를 중얼거렸다.
그 순간,
"으아아아!"
머리 위쪽에서 비명이 들려오기 시작했다.
강현은 본능적으로 고개를 숙이며 몸을 웅크렸다.
'제발...!'
아직도 사람들이 부딪히며 아래로 떨어지던 광경이 눈에 선했다.
가까워지는 비명에 심장이 터질 것만 같았다.
-콰직!
떨어지던 사람은 강현의 바로 앞에 부딪히며 튕겨 나갔다.
그 충격에 다리가 부서지며 크게 떨려왔다.
-쾅! 퍽!
"으아아!"
"꺄아아아!"
수많은 사람이 내지르는 비명으로 공간이 떨려왔다.
그러나 그 비명은 5초도 지나지 않아 다시 사그라졌다.
"사, 살았어..."
가슴을 쓸어내린 강현이 천천히 숨을 가다듬었다.
"후우... 괜찮아. 그냥 걸으면 돼."
반쯤 풀린 눈으로 중얼거려 봤자 없던 자신감이 생기지는 않았다.
도저히 일어날 수 없었던 강현이 양손으로 다리를 붙잡고 천천히 기어갔다.
**
잠시 후.
"조금만 더... 조금만!"
강현은 거의 다리의 끝에 도달해 있었다.
이제 남은 것은 한 발자국.
"도착이다! 으아아아아!"
마침내 목적지에 도달한 강현이 미친 듯이 소리를 질렀다.
"해냈다! 해냈다고!"
수능이 끝났을 때.
군대에서 전역했을 때.
대기업에 취직했을 때.
지금까지 살아오며 꽤 많은 환희의 순간들이 있었지만, 지금의 희열은 단연코 모든 순간을 압도했다.
"으하하하! 내가 다시 살아났다! 살아났다고 새끼들아!!!"
자신이 무슨 말을 외치는지도 모른 채로 정신없이 소리를 지르던 강현의 눈앞에 메시지가 떠올랐다.
[축하합니다. 1단계를 클리어했습니다]
2화 튜토리얼(2)
2. 튜토리얼(2)
[축하합니다. 1단계를 클리어했습니다]
[클리어 보상으로 임시 각성을 완료했습니다]
[튜토리얼 종료 시 정식으로 각성합니다]
[레벨업!]
[도움말을 이용하실 수 있습니다]
한참을 미친 듯이 뛰어다니던 강현은 결국 제풀에 지쳐 쓰러졌다.
"헉, 헉..."
잠시 숨을 고르자 그제야 시야 한쪽을 차지한 메시지가 눈에 들어왔다.
"으음, 도움말이라... 어떻게 사용하란 거야?"
잠시 고민하던 강현이 주먹을 힘껏 쥐었다.
"도움말!"
그렇게 잔뜩 기합이 들어간 채로 외치자, 눈앞에 새로운 메시지들이 떠올랐다.
[기본적인 인터페이스에 관한 설명 및 사용법을 알려주는 도움말입니다]
[상태창, 인벤토리, 스킬…]
꽤나 많은 단어들이 나타나자 고민하던 강현은 결국 차례대로 살펴보기 했다.
"상태창!"
강현의 힘찬 외침과 동시에 새로운 메시지들이 떠올랐다.
▫이름 : 강현
▫칭호 : -
▫레벨 : 0 → 1 new!
▫상세 능력치 :
·근력 8
·순발력 9
·체력 7
·마력 14
·추가 스텟 : 0 → 1 new!
▫고유 능력 : 부활
▫능력 : -
▫스킬 : -
상태창을 본 강현이 인상을 찌푸렸다.
"이거 영 쓰레기인 것 같은데 착각인가..."
보통 게임이나 소설을 보면 가장 기본 능력치가 10이다.
꼭 그러리란 법은 없지만 정말 10이 평균적인 수치라면 자신은 확실하게 평균 아래다.
그나마 마력이 조금 높은 것 같지만 직관적인 다른 스텟들과 달리, 당장은 사용방법조차 모르는 무용지물일 뿐이었다.
"아주 좋지 않아."
볼 것도 없는 상태창을 한참이나 심각하게 들여다보던 강현의 앞에 다시 메시지가 떠올랐다.
[대기 시간이 만료되었습니다. 튜토리얼에서 퇴장합니다]
"어, 어? 아직 스킬도 못 봤…."
말을 하던 도중, 강현은 눈앞이 아득해지는 것을 느끼며 그대로 의식이 끊어졌다.
**
-빠빠빠빠빠~ 빠빠뽰빠! 굿모닝!
오래된 알람음이 시끄럽게 방을 울렸다. 강현은 눈을 비비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어... 개꿈인가?"
머리가 멍했다.
아직 다리를 건너던 순간이, 건넌 후의 쾌감이 생생했지만 묘하게 현실감이 없었다.
[05:58]
아직 이른 시작.
잠시 후면 동생도 일어나 출근을 준비할 것이다.
"오랜만에 밥이나 차려 볼까."
평소라면 조금 더 잠을 청했겠지만 이상하게 몸이 개운했다.
강현은 간단하게나마 아침을 차려 주기 위해 주방으로 향했다.
-달그락, 달그락
-보글보글
부엌에 구수한 된장찌개 냄새가 퍼지고, 기분이 좋아진 강현은 콧노래를 부르며 식탁을 닦았다.
"야!"
그때 방문이 열리며 강아현이 다급히 뛰쳐나왔다.
"왜 아침부터 호들갑이야?"
"너 뭔데 갑자기 아침밥을... 아니지. 그게 중요한 게 아니라. 너 꿈꿨어?"
"꿈? 불지옥에서 서커스 쇼하는 꿈을 꾸기는 했는데. 네가 그걸 어떻게 알아?"
강현의 태평한 대답에 강아현의 인상이 잔뜩 찌푸려졌다.
"으휴. 이 화상아. 어젯밤에 너 방에 들어가고 나서 메시지 뜬 거 못 봤어?"
"메시지..? 아!"
순간 강현은 떠올랐다.
술에 잔뜩 취한 어젯밤.
잠들기 직전 희미한 메시지와 함께 목소리를 들은 것 같았다.
지금 생각하니 튜토리얼에서 들었던 그것과 같은 것이었다.
"그게 너도 보였다고? 오늘 꿈도 꾸고?"
"그래! 이럴게 아니라 인터넷부터 확인하자."
남매가 동시에 괴상한 꿈을 꿨다.
그렇다면 높은 확률로 다른 사람들 또한 그러한 꿈을 꿨을 것이 분명했다.
강현은 스마트 폰을 꺼내 포털 사이트를 확인했다.
[실시간 검색]
1 – 튜토리얼
2 – 꿈
3 – 지구 종말
4 – 각성
5 – 자각몽
6 – 외계인
⦙
"이게 뭐야?"
강현은 검색어를 하나하나 눌러 기사를 살펴봤다.
-전 세계적으로 튜토리얼이란 꿈에 빠진 이번 현상은….
-일각에선 신의 개입을 주장하며 종말의 시작을 알려주는….
한창 기사를 둘러보며 열중하던 강현의 눈에 베스트 댓글이 들어왔다.
[베스트 댓글]
나도.., 튜토리얼 통과하고 각성... 근력 15, 순발력 11, 체력, 14 마력 7, 총합 48... 현직 헬스 트레이너라면. 이 정도는 되야지... ㅋ
'나는 총합 38인데...'
은근히 자랑을 하는 댓글을 본 강현의 이마에 힘줄이 돋았다.
-아재 손가락에 렉걸렸어요?
-마력이 IQ랑 관련 있다는 말이 있던데. 7이면 돌고래 수준일 듯
-내 초등학교 4학년 사촌동생이 8이던데...
-초등학교 4학년보다 낮은 거 실화냐고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윗댓 어그로 ㄴㄴ 미성년자 튜토리얼 못들어간댔음
-총합 덧셈도 못하는 거 보면 뇌가 근육으로 이뤄진 건 팩트인 듯.
-심지어 맞춤법도 틀림ㅋㅋㅋ
그러나 댓글에 달린 대댓을 확인한 강현이 만족스럽게 웃었다.
"하아~ 쾌비스콘."
"갑자기 뭔 소리야?"
뜬금없는 강현의 말에 강아현이 눈을 흘겼다.
"아무것도 아냐. 그나저나 너는 능력치가 얼마야?"
"나는 근력 7, 순발력 12, 체력 8, 마력 13. 너는?"
총합 40. 자신보다 높은 수치였다.
"나, 난 10, 10, 11, 14야."
"지랄하네."
뜨끔한 강현이 눈을 돌렸다.
"됐고, 일단 밥이나 먹자. 너 곧 일가야 하잖아."
"휴, 그래. 출근... 해야겠지?"
강아현은 심각한 표정으로 한숨을 내쉬었다.
"당연하지. 갑자기 왜 그래?"
"너 도움말 똑바로 확인 안 했지?"
"아, 시간이 없어서..."
"쯧. 여기선 상태창은 확인 안 되니까, 시간만 확인해봐."
"시간?"
"그래. 시간."
강현이 조심스럽게 스마트 폰을 꺼내 들었다.
"지금 여섯 시 사십…."
"아니 그거 말고! 상태창 열듯이 시간 확인하라고."
"아..."
고개를 끄덕인 강현이 힘껏 주먹을 쥐었다.
"시간! 확인!"
"어휴 저 병신.."
강현이 기합 넘치게 시간 확인을 외치자 눈앞에 단조로운 메시지가 떠올랐다.
[하켄 차원과의 완전한 연결까지 남은 시간 : 4년 364일 17시 3분 13초]
메시지를 보고 있는 와중에도 초가 실시간으로 줄어드는 것이 보였다.
"이거 설마..."
게임을 좋아하는 강현에게 이런 상황은 꽤나 익숙했다.
"아포칼립스(멸망)까지 카운트다운?"
강현이 멍하게 중얼거렸다.
"저 연결이란 게 확실히 멸망을 말하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일단은 그래. 지금 인터넷도 난리야. 세상이 멸망하는 거 아니냐고."
확실히 단순한 해프닝으로 끝날 일은 아니었다.
"미친... 진짜 난리네. 난리야."
그러고 보니 오늘따라 유독 집 밖이 소란스러웠다.
창가로 다가간 강현은 창문을 열었다. 그러자 시끄러움 소음과 함께 소란스러운 풍경이 눈에 들어왔다.
"그것 좀 이리 줘요!"
"종말이다! 주님의 품으로! 회개하라!"
"이 새끼야! 그거 내 거야!"
혼란의 도가니란 이런 것을 보고 하는 말이 아닐까 싶었다.
"..."
"출근을 하라고?"
"아니. 오늘은 일 쉬어."
"그래야겠지. 우리도 뭐 사러 나가야 하지 않을까?"
강아현이 걱정스럽게 물었다.
"아냐. 지금 나가봤자 위험하고 당분간은 집에 있는 걸로 충분해."
무려 5년이나 남았다고 했다.
치안이 전 세계에서 손꼽히는 대한민국이 5년 뒤에 무슨 일이 벌어질지도 모르는 상황에서 간단히 무너질 리가 없었다.
"아마 며칠 내로 상황이 진정될 거야. 그때 보고 필요한 걸 사던지 해야지. 그리고 5년이나 보존 가능한 식품이 어디 있냐? 이러나저러나 지금 나가는 건 의미 없으니까 그냥 있자."
의외로 침착하고 논리적인 강현의 말에 강아현은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
집 밖으로 나가지 않은 남매는 하루 종일 인터넷을 돌아다녔다.
그렇게 모은 정보를 정리하자면 이러했다.
1) 만 18세 이상의 모든 사람은 잠에 빠지면 튜토리얼이 입장한다.
2) 튜토리얼에서 죽어도 현실의 생명에 영향을 끼치지 않는다.
3) 1단계의 내용은 모두 다르며 개인의 트라우마, 공포와 관련되어 있다.
4) 튜토리얼을 클리어 해도 현실에서 능력을 사용할 수 없다.
대부분은 기존의 메시지로 얼추 알고 있었던 내용이었지만, 4번은 강현도 의문이었다.
"상태창!"
[아직 튜토리얼이 끝나지 않아 사용할 수 없습니다]
확실히 튜토리얼에서 했던 것처럼 힘껏 외쳐봤지만 같은 메시지만 반복해서 보인다.
"분명 각성인가 뭔가 했다고 했는데..."
그리고 예상과는 달리 현실에서 아무런 사건도 일어나지 않았다는 점도 이상했다.
"나는 무슨 괴물 같은 거라도 튀어나올 줄 알았는데 조용하네."
"그러게."
덕분에 한국은 하루 만에 꽤나 안정되었다.
경찰과 군인이 시내를 돌아다니는 모습이 불안감을 조성하긴 했지만, 별 일이 없자 대부분의 시민들도 얌전히 일상으로 돌아간 것이었다.
그렇게 첫날이 저물었다.
**
온통 새하얀 공간.
두 번째로 들어오자 조금 익숙한 느낌이었다.
[강현 님의 튜토리얼 입장을 환영합니다]
"어어, 그래."
[튜토리얼에 관한 설명을 다시 들으시겠습니까?]
"어."
강현은 혹시나 하는 마음에 설명을 들었지만 역시나 어제와 같은 내용뿐이었다.
[이상입니다. 2단계에 입장하시겠습니까?]
"가자."
[당신의 용기가 지구를 구원하기를]
**
눈을 뜨자 보이는 것은 1단계처럼 동굴과 비슷한 공간이었다.
그러나 훨씬 넓었고 주위에 초를 밝혀 놓은 것이 제법 분위기 있어 보였다.
[두 번째 단계(stage 2)]
[적들을 물리쳐 자신의 실력을 증명하십시오]
[클리어 조건 : 고블린 5마리를 처치하십시오]
[실패 조건 : 사망]
메시지를 확인한 강현이 미간을 찌푸렸다.
"본격적인 싸움인가."
주위를 둘러보니 테이블 위에 각종 무기들이 놓여있는 것이 보였다.
대부분이 철로 만들어진 냉병기다.
"시대가 어떤 때인데 이딴 철 쪼가리를 쓰라는 거야?"
도검, 도끼, 창, 폴암, 둔기, 활, 방패까지 온갖 종류의 무기들이 있었다.
강현은 턱을 쓰다듬으며 고민했다.
"혹시 클리어에 시간제한이 있나?"
[없습니다]
혼잣말을 중얼거린 것인데 예상외로 답변이 들려왔다.
"그럼 도움말부터 확인해야겠네."
시간제한이 없다면 굳이 서두를 필요가 없었다. 강현은 우선 어제 확인하지 못한 도움말의 나머지 내용들을 확인하기로 했다.
"흐음... 게임이랑 비슷한 것 말고는 별거 없네."
인벤토리, 스킬 등 여러 가지를 확인했지만 특별한 것은 없었다.
아직 튜토리얼이라 그런지 보이는 것은 온통 깨끗한 화면뿐이었다.
"하지만 아직 이게 남았지."
도움말을 모두 살펴본 강현이 마지막으로 '고유 능력'을 확인했다.
▫고유 능력 : 부활
"부활, 부활이라... 뭔가 개사기 먼치킨 냄새가 솔솔 나는데?"
히죽히죽 웃던 강현이 곧장 상세 설명을 확인했다.
부활(Z)
능력 : 죽음 24시간 후에 부활한다.
설명 : 지구가 위기에서 벗어나는 그 순간까지 죽음에서 되돌아온다.
* 부활 장소를 지정하지 않을 시 마지막 수면 장소에서 부활한다.
페널티 : 1 레벨 하락. 24시간 동안 모든 능력치 –50%
* 현재 레벨 20 이하로 페널티를 적용하지 않는다.
"대박이다! 대박!"
강현이 펄쩍펄쩍 뛰어다니며 소리쳤다.
"개사기 스킬 아냐? 무조건 부활한다니. 개꿀이네!"
비록 페널티가 존재하긴 했지만 부활이라는 메리트에 비하면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그래! 이렇게 엑스트라 축에도 못 끼는 인생이 내 인생일 리가 없잖아? 하하!"
다가올 미래를 모른 채 호탕하게 웃던 강현이 메시지를 끄고는 무기를 둘러봤다.
"좋아. 얼른 선택하고 가자."
기분이 좋아진 강현이 재빠르게 무기를 살폈다. 얼른 강해져서 떵떵 거리는 자신의 모습을 보고 싶었던 것이다.
"쓰읍... 너로 정했다."
마침내 강현이 집어 든 것은 적당한 크기의 메이스(둔기)였다.
원래 강현의 로망은 검이었지만 다루기 쉽지 않을 것이라는 판단에서였다.
이름 : 허접한 메이스
등급 : F
내구도 : 17/20
설명 : 대충 철을 뭉그러뜨려 만든 허접한 메이스다.
성의 없는 설명을 치워버린 강현이 메이스를 이리저리 휘둘러보았다.
"무게도 적당하고 좋네."
양손으로 쥐고 휘두르자 적당한 무게감이 느껴졌다.
"좋아. 가즈아!"
사실 한 손 무기인 메이스를 들고 자신감을 얻은 강현이 앞에 보이는 거대한 문으로 다가갔다.
-끼이이익
문을 열자 고풍스러운 중세의 성과 같은 느낌이 드는 장소가 나왔다.
'분명 고블린 이랬지?'
고블린이라면 자신도 제법 알고 있다.
원래는 유럽의 신화 속에 등장하는 요정. 그러나 판타지 세계에서는 주로 녹색 피부에 작은 체구, 교활한 성격으로 묘사된다.
'그리고 초심자한테 가장 많이 죽어나가는 쪼렙 몬스터지.'
긴장감을 풀기 위해 긍정적인 생각을 이어갔다.
어차피 튜토리얼에서 부활이 적용되지 않더라도 현실의 죽음과 아무런 관련이 없다.
다만, 튜토리얼을 깰수록 무언가 보상이 있을 것 같으니 최대한 신중해야 했다.
"키륵, 케륵!"
조금 걷기 시작하자 어디선가 가래가 끓는 듯한 기괴한 소리가 들려왔다. 강현은 조심스럽게 소리의 근원지로 이동했다.
"케륵, 케륵!"
마침내 코앞에서 소리가 들려오고, 벽 뒤에 몸을 숨긴 강현이 살며시 고개를 내밀었다.
'씨발... 고블린이라며?'
3화 빌어먹을 고블린(1) - 20.01.29
3. 빌어먹을 고블린(1)
작은 체구에 열악한 장비.
위협이라고는 독과 함정밖에 없다.
이처럼 고블린에게는 제법 건실한 클리셰가 존재했다.
'저게 무슨 고블린이야?'
그러나 눈앞에는 서 있는 두 마리의 괴물은 전혀 달랐다.
170cm는 될 법한 키에 큰 덩치를 가진 놈들.
장비가 허름했고 배가 볼록하게 나온 것이 딱히 단련된 것 같지는 않았으나 그것은 강현도 마찬가지다.
'저게 진짜 고블린이라고?!'
예상과는 너무 다른 모습에 강현이 눈을 비비고 다시 봤지만 역시나 고블린이 맞았다.
[고블린 민병대원]
떡하니 고블린의 머리 위에 쓰여 있는 글자.
'하아, 몰래 기습하면 한 마리 정도는 어떻게 될 것 같은데...'
그렇다고 해도 한 마리가 남는다.
강현의 눈이 고블린의 손에 들린 1m가 넘는 녹슨 장검에 고정됐다.
'분명 저기 맞는다면 파상풍 정도로 끝나지는 않을 거야.'
조용히 숨을 내뱉은 강현이 가슴을 진정시켰다.
"후우..."
평생 동안 싸움에서 이겨본 기억이 없었다.
선천적인 약골에 남들은 다 다녔다는 태권도장 한번 가보지 못했다.
그런 강현이 건장한 성인 체격의 '괴물' 두 마리를 죽여야 하는 것이다.
게다가 그 괴물들은 끔찍한 흉기까지 들고 있다.
'밑져야 본전이야. 여기 평생 갇혀 있을 것도 아니잖아.'
강현은 마음을 다잡으며 조심스럽게 이동했다.
**
"케륵, 케륵"
"케르르르라웃! 켈켈."
고블린 민병대원 둘은 여느 때와 다름없이 농담을 던지며 웃고 있었다.
굳이 해석을 하자면 누구의 얼굴이 더 잘 생겼나에 대한 이야기였다.
"케르르르, 켈켈, 커헉!"
그때 한쪽 고블린의 뒤통수가 깨지며 피가 뿜어져 나왔다.
"으아아아!"
나머지 고블린이 상황을 알아차리기 전에, 강현은 재차 쓰러진 놈의 머리에 메이스를 처박았다.
단숨에 머리가 깨어지며 피와 함께 내용물이 흘러나왔다.
"케에엑!"
그제야 상황 파악을 한 다른 한 놈이 괴성을 내질렀다.
강현은 재빨리 거리를 벌리고 다음 공격을 준비했다.
"후욱, 후우..."
긴장감에 호흡이 거칠어졌다.
손끝에서 느껴지는 짜릿한 감각에 팔이 부들부들 떨려왔다.
'내가, 내가 죽였어.'
누가 뭐래도 강현은 21세기를 살아가는 평범한 한국인이다.
벌레 하나 밟아 죽이지 못하는 사람이 흔한 이 시대.
지극히 소시민이었던 강현이 인간과 유사한 동물(?)의 머리통에 흉기를 내려친 것이다.
스크린 너머로 보는 것과는 차원이 다른 잔혹한 폭력의 현장감이 강현의 정신을 강타했다.
쓰러진 놈의 머리에서 쏟아져 나오는 피와 건더기를 보자 구토가 올라왔다.
'참아야 돼. 아직 하나 남았다.'
강현이 떨리는 눈으로 고블린을 노려봤다.
"키에에에!"
때마침 남은 고블린도 자신의 할 일을 깨달았는지 괴성을 지르며 검을 휘둘렀다.
강현은 막을 생각도 하지 못하고 바닥을 넘어지다시피 굴러 공격을 피했다.
-깡!
바닥에 부딪힌 검에서 불똥이 튀었다.
공격은 그것으로 끝이 아니었다.
고블린은 멈추지 않고 검을 휘둘렀다.
그 기세에 강현은 접근은커녕 뒤로 물러나기만을 반복할 뿐이었다.
'도대체 어떡해야 되는 거야!?'
싸움에서 무기의 길이는 굉장히 중요한 요소다.
만약 아무것도 모르는 생초보라면 더욱 그렇다.
70cm 길이의 메이스를 든 강현은 1m가 넘어가는 장검이 계속해서 휘둘러지자 어쩔 줄 몰랐다.
-스걱
결국, 물러서며 피하기만 하던 강현의 팔에 깊은 상처가 생겼다.
"으아아!"
강현은 살면서 처음 느끼는 고통에 비명을 내질렀다.
불에 댄 듯 뜨거운 팔.
그 팔을 흘러내리는 더욱 뜨거운 피.
생명에 지장이 없다는 말 따위는 지금 상황과 고통에 아무런 도움도 되지 않았다.
"으으으..."
점차 공포가 강현의 머리를 지배했다.
"으아아아! 씨바알! 살려줘!"
결국 패닉에 빠진 강현이 메이스를 집어던지고 뛰기 시작했다.
'도대체 왜! 왜 내가 이딴 일을 겪어야 하는 거야!?'
강현은 한참을 도망치며 비명을 질렀다.
그럴수록 머리는 점점 새하얗게 변했다.
'갔나...?'
강현은 슬쩍 고개를 돌려 뒤를 바라봤다.
그러자 오히려 숫자가 늘어나 4마리나 되는 고블린이 자신을 쫓고 있는 것이 보였다.
그 순간.
-턱!
뒤를 보느라 확인하지 못한 돌부리에 강현의 발이 걸렸다.
'안 돼!'
강현은 꼴사납게 바닥을 구르며 기둥에 처박혔다.
"케륵, 케륵!"
"켈켈!"
그 장면을 본 고블린들이 배를 부여잡고 웃었다.
명백한 비웃음.
"..."
바보처럼 바닥을 구른 탓에 전신이 먼지투성이다.
피부는 곳곳이 까져 쓰라렸다.
게다가 못생긴 괴물들이 자신을 비웃는다.
말 그대로 총체적 난국.
그 상황에 강현의 선택은 눈물을 줄줄 흘리며 애원하는 것이었다.
"살려줘! 제발, 부탁이야!"
"케륵, 케륵."
"키렉!"
고블린들은 강현의 절실한 요청을 알아듣지 못했다.
놈들이 주섬주섬 밧줄을 꺼내더니 강현을 묶기 시작했다.
사실 강현의 말을 알아들었더라도 결과는 달라지지 않았을 것이다.
"어, 뭐하는 거야..? 왜 묶어?"
"켈켈켈켈!"
강현이 당황하는 모습에 고블린들이 재미있다는 듯이 더욱 사악하게 웃었다.
"안 돼... 안 돼! 으악!"
**
침대에서 일어난 강현은 어딘가 멍해 보였다.
"아... 으어..."
전신을 떨어대며 무언가를 중얼거리는 강현.
고블린에게 붙잡힌 강현이 당한 것은 상상을 초월하는 고문이었다.
처음에는 손톱이 뽑혔다.
다음에는 발톱.
그리고 손톱, 발톱이 빠진 곳을 놈들은 녹이 슨 칼로 난도질했다.
그 외에도 다양한 고문을 받던 강현은 결국 과다출혈로 죽고 나서야 현실로 돌아올 수 있었다.
"..."
몸은 정상적으로 회복되었다지만 아직도 그 기억은 생생했다.
강현은 아무것도 하지 못한 채 이불을 뒤집어쓰고 그저 떨고 있을 뿐이었다.
-덜컥
그때 방문이 열리며 강아현이 들어왔다.
"뭐하냐. 무슨 일이야?"
"아현아... 아현아! 흑흑."
동생을 보자 마침내 안심이 된 강현이 눈물을 질질 흘리며 오열했다.
"더럽게 뭐야? 뭔 일이야?"
"그 새끼들이, 그 개새끼들이... 흑흑."
"질질 짜지 말고 똑바로 말해."
강아현이 다독거리며 묻자 강현은 조금씩 진정되는 것이 느껴졌다.
호흡을 가다듬고 튜토리얼에서 있었던 일을 하나하나 말했다.
"에휴..."
모든 이야기를 들은 강아현이 한숨을 내쉬었다.
그녀도 방금 비슷한 일을 겪었기에 어떤 기분인지 조금이나마 알 수 있었다.
지금도 잘게 떨리는 손이 그 증거였다.
'그래도 나는 저 정도는 아니었는데...'
하지만 그녀는 고문 따위는 없었다.
그저 흉측한 괴물에게 고통을 느낄 새도 없이 단번에 절명했던 것이다.
그것만으로도 큰 충격이었지만 워낙 현실감이 없었고, 고통 또한 없었기에 강현처럼 큰 충격에 빠지지는 않았다.
"일단 방에 좀 있어. 밥 차려놓고 나갈게. 회사에서 오늘부터 다시 나오래."
"어디가? 가지마!"
"나보고 어쩌라고!? 어차피 한 번으로 끝이야. 인터넷 보니까 처음 실패한 사람들은 오늘 꿈 안 꿨다고 했어. 오늘부터 그럴 일 없으니까 얌전히 있어."
그녀의 말에 강현의 표정이 조금 밝아졌다.
'나도 오늘 죽어서 실패했지.'
그렇다면 이제 튜토리얼은 끝인 것이다.
'이제 그놈들이랑 만날 일은 없는 건가..?'
그렇게만 된다면 더는 바랄 것이 없을 것이다.
**
다시 새하얀 방.
[강현 님의 튜토리얼 입장을 환영합니다]
[두 번째 단계 진행 중 오류가 발생했습니다. 곧바로 이동합니다]
[당신의 용기가 지구를 구원하기를]
"끄아아아아-!"
강현이 정말 제대로 미친놈처럼 소리를 질렀다.
어제와 똑같은 동굴.
눈앞에는 무기들이 놓여있고 앞쪽에 거대한 문이 보인다.
[현재 Lv. 1로 부활 페널티를 받지 않습니다]
자리에 주저앉은 강현이 눈물을 흘렸다.
"이게 뭐냐고 씨발..."
아직도 선명한 고통의 기억에 강현은 웅크린 채로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그렇게 한 시간.. 두 시간... 몇 시간이 지났는지 알 수도 없을 만큼 시간이 흘렀다.
울다 지쳐 잠이 들고, 다시 일어나면 울었다.
-꼬르르륵.
배속에서 끊임없이 무언가를 넣어 달라며 아우성쳤다.
강현의 시선이 무기들이 진열된 곳으로 향했다.
"..."
잠시 무기를 바라보던 그의 눈에 힘이 깃들었다.
"그래. 어차피 이대로 죽어도 다시 이곳으로 올게 분명해."
이유는 모르지만 자신의 부활 때문에 튜토리얼에 무언가 오류가 생긴 것이 분명했다.
"평생 잠들 때마다 여기서 굶어 죽으면 그땐 진짜 미치고 말겠지."
강현은 움직이기로 결심했다.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나자 온몸의 뼈와 근육이 비명을 질렀다.
"후우..."
강현이 천천히 무기를 살펴봤다.
그때 들어온 활 하나.
"활... 우선 활로 한 놈 처리하고, 다가오는 놈을 창으로 찌르면 되지 않을까?"
생각할수록 괜찮은 방법 같았다.
고민하던 강현은 결국 비교적 다루기 쉬워 보이는 석궁을 선택하고 창과 방패까지 챙겼다.
다행히 무기를 하나만 사용하라는 조건은 없는 듯했다.
강현이 한동안 석궁용 볼트(화살)를 벽에 쏘며 감을 익혔다.
"됐다. 가자."
강현이 조심스럽게 문을 열었다.
-끼이이익
소름끼치는 소리와 함께 열리는 문.
안으로 들어가 조금씩 나아가자 금세 어제 본 고블린들이 보였다.
'한방에 머리나 목을 맞춰야 돼. 두 마리가 덤비면 그땐 진짜 끝이야.'
살금살금 접근한 강현이 석궁을 조준했다.
'지금!'
강현이 방아쇠를 당기고,
-피슉!
석궁용 볼트가 경쾌한 소리를 내며 날아갔다.
'제발, 제발!'
강현은 제발 볼트가 고블린의 머리에 박히길 기도했다.
"케에엑!?"
아슬하게 고블린의 귀를 스치고 지나가는 볼트.
"으아아아, 시발!"
"케륵, 케륵!"
귀에 상처를 입어 분노한 고블린들이 미친 듯이 달려왔다.
강현은 석궁을 집어던졌다.
그리고 양손에 창을 쥔 채 마주 달려 나갔다.
방패 따위, 안중에도 없었다.
"나도 모르겠다! 뒤져어!"
강현이 달려가던 자세 그대로 앞에 있던 고블린의 배를 찔렀다.
"죽어! 죽으라고!"
"케, 케르... 케륵..."
창은 단숨에 고블린의 살가죽을 뚫으며 깊숙이 틀어박혔다.
배에 구멍이 난 놈이 피를 토해냈다.
"허억, 허억... 하하! 하하하!"
한 마리의 고블린을 해치운 강현이 떨려오는 쾌감에 몸을 떨었다.
"아...?"
그런데 예상치 못한 문제가 생겼다.
"이익, 이게 왜 안 빠져!"
너무 깊숙이 박힌 탓인지, 창이 빠지지가 않았다.
당황한 강현이 목에 핏줄이 서도록 용을 썼다.
"끄아아아!"
점차 빠져나오기 시작하는 창.
-뾱!
"됐다!"
마침내 빠져나온 창을 본 강현이 환하게 웃었다.
그리고 고개를 들자 어느새 코앞까지 다가온 녹슨 장검이 보였다.
-콰직!
**
"으아아악!"
발작하듯이 일어난 강현이 거칠게 숨을 들이켰다.
"허억, 헉. 그래도 오늘은 바로 죽었어."
다행히 단칼에 죽어 고통을 느낄 새가 없었다.
그때 방문이 열리며 강아현이 들어왔다.
"왜 소리를 지르고 지랄이야? 뭐야, 악몽이라도 꿨어?"
전신에 식은땀을 흘리고 있는 강현의 모습에 아현이 걱정하듯 물었다.
"튜토리얼, 또 다녀왔어."
"무슨 소리야? 너도 어제 죽었다면서? 나는 오늘 아무 일도 없었는데."
"몰라. 어떤 개같은 능력 때문인 것 같은데 무슨 오류라 뜨면서, 시벌..."
어느새 부활은 '개사기 능력'에서 '개같은 능력'으로 변해있었다.
강현이 피곤한 표정으로 이마를 쓸어 넘겼다.
"우선 인터넷에서 정보를 얻어야겠어."
남매는 잠시 동안 입을 닫은 채 열심히 스마트폰을 들여다봤다.
"어제보다 정보가 너무 적은데?"
"그러게."
처음 1단계가 끝난 날만 해도 엄청나게 많은 경험담과 정보들이 쏟아져 나왔었다.
그러나 2단계가 끝난 후에는 정보가 절반 이하로 급감했다.
그리고 오늘.
3단계가 끝나자 정말 드문드문 후기들이 보였다.
"대부분 두 번째에서 죽었다는 말 뿐이야. 너처럼 다시 재입장한 경우는 아예 없고. 세 번째 스테이지 정보는 조금 있네."
인터넷을 좀 더 뒤져본 결과 3단계의 테마는 인내와 끈기인 것 같았다.
그러나 1, 2 단계와 달리 클리어했다는 사람은 굉장히 적어 보였다.
"결국 아무 도움도 안 되는 것들뿐이네."
"후... 일단은 나 일가야 하니까 저녁에 다시 이야기하자."
"그래."
강아현이 집을 나가고 난 뒤에도 강현은 계속해서 스마트폰을 확인했다.
여전히 사람들은 튜토리얼에 대해 논쟁을 계속했지만 확실한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모두 다 소위 말하는 뇌피셜뿐.
그밖에도 각자가 가진 고유 능력에 대해 이야기했으며 하켄 차원이 무엇이냐에 대한 말도 많았다.
"이런 것도 있네..."
-이틀 새 정신병원 방문자수 급증
포털 사이트 메인에 걸린 기사의 헤드라인이었다.
"그럴 만하지..."
기사를 읽자 다시금 고블린들이 떠올랐다.
놈들의 추악한 얼굴.
녹슨 장검.
그리고 고문.
"결국은 깰 수밖에 없어. 그래야 내가 정상적으로 살아갈 수 있어."
당장 튜토리얼이 8단계라는 것을 생각하면 암울해졌지만.
그래도 남은 평생을 밤마다 고블린과 피 터지게 싸울 수는 없는 일이다.
-무기 사용법
-검 실제로 쓰는 법
-검술 배우기
-활 잘 쏘는 법
강현은 위튜브, 가글 등 여러 사이트에 무기와 관련된 것들을 검색했다.
-헌팅그라운드 신무기 활용법
-신규 총기 사용
-영화 속 최고의 검술
대부분 위처럼 쓸모없는 것들이었지만 강현은 그중에서 조금이라도 자신에게 도움이 될 만한 것이 있는가를 찾아 헤맸다.
그렇게 강현의 공부는 밤이 될 때까지 이어졌다.
**
"잘 수 있겠냐?"
"자야지."
"괜찮겠어?"
"어... 평생 이렇게는 못살아."
오랜만에 남매가 진지하게 대화를 주고받았다.
"오늘 나름 인터넷 검색도 하면서 무술 공부도 했으니까 그냥 당하지는 않을 거야."
"병신, 그딴 걸로 무술 배워서 잘할 수 있으면 세상 사람들 전부 무술 고수겠다."
"초치지 마. 이년아."
한숨을 내쉰 강현이 굳은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후우... 이제 간다. 응원해줘."
"그래. 다녀와."
방으로 들어온 강현은 곧장 침대에 누워 눈을 감았다.
"할 수 있을까..."
머릿속에 고블린들의 역겨운 얼굴이 떠오르자 도저히 잠을 잘 수가 없었다.
"해내야만 해..."
그렇게 시간이 흘러 새벽이 되고, 피로를 이기지 못한 강현이 점차 수마에 빠져들었다.
4화 빌어먹을 고블린(2) 20.01.30
4. 빌어먹을 고블린(2)
[강현 님의 튜토리얼 입장을 환영합니다]
[두 번째 단계 진행 중 오류가 발생했습니다. 곧바로 이동합니다]
[당신의 용기가 지구를 구원하기를]
"지구를 구원하기는 개뿔. 지랄하네."
욕지거리를 내뱉은 강현의 눈에 제법 익숙해진 풍경이 들어왔다.
음침한 동굴. 널려있는 무기들.
잠시 그것들을 둘러보던 강현이 과감하게 검을 집어 들었다.
이름 : 허접한 롱소드
등급 : F
내구도 : 11 / 13
설명 : 시골에서 농기구나 만들던 대장장이가 만들 법한 허접한 롱소드다.
어쩐지 이전에 들었던 메이스보다 설명이 더 구린 느낌이다.
잠시 고민하던 강현은 신경 쓰지 않기로 했다.
"어차피 여기 있는 것들은 다 쓰레기 같으니까."
튜토리얼에서 너무 많은 것을 바라면 안 된다.
-부웅, 부웅!
검을 들고 휘둘러보니 메이스보다는 확실히 가벼웠다.
힘이 약한 자신이 한 손으로 휘두르기엔 제법 버거운 무게.
하지만 다른 손엔 방패를 들 예정이라 어쩔 수 없다.
"힘..? 맞아!"
힘이 부족하단 생각과 동시에 무언가가 강현의 머리를 스쳤다.
"힘이 부족하면 올리면 되잖아?"
강현이 곧장 상태창을 열었다.
▫이름 : 강현
▫칭호 : -
▫레벨 : 1
▫상세 능력치 :
·근력 8
·순발력 9
·체력 7
·마력 14
·추가 스텟 : 1
▫고유 능력 : 부활
▫능력 : -
▫스킬 : -
추가 스텟 1 포인트.
저 스텟을 사용하면 근력이 조금이나마 더 강해질 것이다.
[추가 스텟 1을 근력에 사용하시겠습니까?]
"어."
띠링! 하고 울리는 경쾌한 알람과 함께 근력이 9로 상승했다.
다시 검을 휘두르자 조금 수월해진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생각보다 큰 차이는 없는 것 같지만, 그래도 이게 어디야."
스텟 확인을 끝낸 강현은 석궁을 집어 들고 한동안 사격 연습을 이어갔다.
"이 정도면 되겠지."
잠시 후.
준비를 마친 강현이 롱소드와 나무 방패, 석궁까지 다양한 무기를 챙겼다.
몸이 짊어진 무게만큼 마음이 든든해지는 기분이었다.
-끼이이익
조심스럽게 문을 열었음에도 삐걱대는 소리가 귓가를 때렸다.
'시벌... 그래도 떨리네.'
당당하게 들어왔지만, 뼛속까지 새겨진 공포가 하루 이틀 사이에 어떻게 되지는 않는다.
후들거리는 다리에 힘을 불어넣은 강현이 익숙한 경로를 따라 이동했다.
조금 걸어가자 낯익은 고블린 두 마리가 보였다.
'확실하게 지지한 다음 호흡을 멈추고...'
강현이 신중하게 고블린을 조준했다.
'지금!'
날아간 석궁용 볼트가 고블린의 어깨에 박혔다.
"키에에엑!"
볼트가 어깨에 박힌 고블린이 괴성을 내질렀다.
동료가 다친 모습에 당황하던 놈이 곧 강현을 발견하고는 달려왔다.
벌렁거리는 심장을 뒤로하고 강현도 마주 달려갔다.
'처음은 위에서 아래로 크게 내려찍는다.'
몇 번 마주한 사이 약간의 패턴을 기억할 수 있었다.
강현이 방패를 들어 내리쳐지는 검을 막았다.
-깡!
생각보다 강한 충격에 왼팔이 저릿했다.
"이번엔 내 차례다!"
-스걱!
강현이 롱소드를 횡으로 힘껏 휘둘렀다.
검에 크게 베인 고블린이 복부에서 피를 쏟아내며 주저앉았다.
"키에에엑!"
"죽어!"
강현은 빠르게 쓰러진 고블린을 마무리하려 했다.
하지만 어느새 볼트를 맞은 놈이 정신을 차리고는 강현에게 검을 휘두르고 있었다.
깜짝 놀란 강현은 황급히 방패를 들었다.
-깡!
다시 한번 부딪히는 검에 팔이 저릿하게 울렸다.
그 충격에 방패를 놓칠 뻔한 강현은 재빨리 뒤로 물러났다.
"키르르르..."
"허억, 허억..."
딱히 움직인 것이 없는 데도 가슴이 터질 듯이 오르내렸다.
지나친 긴장으로 인해 호흡이 가빠진 것 같았다.
하지만 놈들도 상처를 입어 정상이 아니다.
'충분히 할 수 있어..!'
드디어 희망이 보이기 시작했다.
"덤벼 새끼들아! 쫄았냐?! 어?!"
강현이 발악하듯 외치자 고블린들이 주춤하며 물러났다.
"들어오라고! 안 오면 내가 먼저 간다!"
그 순간.
"키에엑!"
고블린들이 갑자기 뒤돌아 도망치기 시작했다.
"뭐야? 어디가!?"
**
눈을 뜨자 익숙한 자신의 방이 보였다.
"이 썅놈들이 다구리를 쳐!?"
도망친 두 마리의 고블린들은 금세 다섯 마리가 되어 돌아왔다.
결국 강현은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사방에서 칼을 맞아 죽었다.
"또 죽었어..?"
언제부터 방에 있던 것인지 아현이 걱정스럽게 강현을 바라보았다.
"아냐. 거의 다 이겼어. 조금만 더 하면 다 죽인다고... 크큭."
말을 하는 강현의 눈에 점차 기이한 광기가 차오르고 있었다.
**
[강현 님의 튜토리얼 입장을….]
강현이 인상을 쓰며 손을 휘저었다.
"환영이고 나발이고 빨리 보내."
[당신의 용기가 지구를 구원하기를]
강현이 메시지와 함께 다시 동굴로 돌아왔다.
"강현아. 길게 보자. 길게!"
강현이 뺨을 두드리며 눈을 크게 떴다.
"이대로는 안 된다."
이번에 다시 도전한다면 처음 나타나는 두 마리의 고블린은 잡을 수 있을지도 몰랐다.
그러나 그 뒤에 3마리는 절대 무리였다.
뭔가 다른 대책이 필요했다.
"훈련... 훈련을 해야 해."
롱소드를 집어 든 강현은 인터넷에서 봤던 검을 휘두르는 방법을 떠올리며 힘껏 휘둘렀다.
-부웅, 부웅!
처음에는 어색했지만 계속해서 휘두를수록 조금 익숙해지는 느낌이 들었다.
하지만 몇 번 휘두르지도 않았는데 벌써 팔이 저리고 있었다.
'오늘 깬다는 생각은 버려. 최대한 연습한 뒤에 단번에 깬다.'
그렇게 강현은 계속해서 검을 휘둘렀다.
그러다가 팔이 아파 도저히 검을 들 수 없는 상태가 되면 석궁을 연습했다.
활에도 잠시 눈이 갔지만 아무래도 석궁에 비해 낙차가 심해 쉽게 쓸 수 있을 것 같지가 않았다.
그렇게 먹지도 않고 쉬지도 않은 채 5시간을 넘게 훈련한 강현이 결국 바닥에 드러누웠다.
"이렇게 열심히 하면 보통 스텟도 주고 하던데 얄짤 없네. 시벌..."
내심 기대했지만 스텟은 주어지지 않았다.
"아니야... 아직 노력이 부족한 걸지도 몰라."
호흡과 함께 마음을 가다듬은 강현은 다시 일어나 검을 휘둘렀다.
배가 고파오고, 온몸이 물에 젖은 듯 무거웠지만 다른 방도가 없었다.
그저 검을 휘두를 뿐이었다.
"허억, 허억..."
다시 3시간 후.
이제 강현이 검을 휘두르는 것이 아니라 검이 강현을 휘두르고 있었다.
팔이 들어 올려지지 않아서 완전히 춤을 추는 것 같은 우스꽝스러운 모양새가 되었다.
순간, 롱소드를 휘두르던 강현이 다리에 힘이 풀려 그대로 쓰러졌다.
"더는 못해..."
-띠링!
그때 반가운 알람이 들려왔다.
[당신의 한계를 넘어서는 노력으로 체력이 1 상승합니다]
"왜 근력이 아니라 체력이…."
중얼거리던 강현이 그대로 기절했다.
**
깨어난 강현은 집이 아닌 여전히 동굴에 있었다.
그리고 끔찍하게 배가 고파왔다.
-꼬르르륵
"알겠다고. 간다. 가."
굶주린 배를 달래며 강현이 다시 문을 열었다.
-끼이익
'이 소리도 듣다 보니 짜증 나네.'
피곤함과 배고픔에 예민해진 강현이 신경질적으로 문을 걷어찼다.
"후우, 이번엔 한 마리만 죽이는 걸 목표로 하자."
근육통에 제대로 검을 휘두를 수조차 없는 상황이다.
이긴다는 것은 기대조차 하지 않았다.
그저 한 마리라도 잡아서 분을 풀면 그걸로 족했다.
'천천히 호흡을 가다듬고...'
마침내 고블린을 발견한 강현이 조심스럽게 석궁을 조준했다.
하지만 근육통으로 떨리는 팔은 좀처럼 진정할 생각을 하지 않았다.
-피슉!
시원하게 허공을 가르는 볼트.
"키에에에엑!"
"염병하네..."
**
"으아아아!!!"
결국 고블린을 단 한 마리도 잡지 못한 강현이 잠에서 깨어났다.
"이 시벌놈들!"
심지어 이번 싸움에서 강현은 철저하게 농락당했다.
강현이 지쳐 있다는 것을 알아본 놈들이 아주 천천히 그를 압박한 것이다.
고블린들에게 10분 넘도록 공격을 받은 강현은 결국 피를 너무 많이 흘려 바닥에 쓰러졌다.
그리고 케륵거리는 웃음과 함께 목이 떨어져 나갔다.
"오늘 밤에 두고 보자."
강현이 어금니를 꽉 깨물며 말했다.
까드득-하고 이가 갈리는 소리가 살벌하게 울렸다.
강현은 이제 반쯤 미친 사람처럼 보였다.
옆에 있던 아현은 그 모습을 걱정스레 바라봤지만 할 수 있는 것이 없었다.
"하아..."
한차례 한숨을 내쉰 강아현이 조용히 출근을 준비했다.
**
-띠링!
[당신의 한계를 넘어서는 노력으로 근력이 1 상승합니다]
"으아아아!"
원하던 알람이 울리자 강현이 괴성을 내지르며 쓰러졌다.
장장 10시간이 넘는 웨이트 끝에 얻어낸 값진 스텟.
평균 이하의 몸을 가진 강현에겐 말 그대로 인간승리였다.
"상태창!"
▫이름 : 강현
▫칭호 : -
▫레벨 : 1
▫상세 능력치 :
·근력 9 → 10 new!
·순발력 9
·체력 8
·마력 14
·추가 스텟 : -
▫고유 능력 : 부활
▫능력 : -
▫스킬 : -
"드디어 총합 40을 넘겼어!"
사실 스텟의 총합이 별다른 의미는 없다.
다만, 평균보다 낮은 것 같다는 느낌에 기분이 좋지 않았던 강현이었다.
하지만 이제 총합 40을 넘겼으니 적어도 평균 이상은 됐으리라.
"가자!"
흥분한 강현은 당장 롱소드를 뽑아 휘두르려 했다.
그러다 일어서는 도중 다리에 힘이 풀려 풀썩 쓰러졌다.
"괜찮아. 계속 이렇게 하면 얼마 안 가서 다 죽일 수 있어!"
바닥에 누워 애써 긍정적인 생각을 이어가던 그때, 문득 무언가가 떠올랐다.
"레벨업을 하면 되지 않을까?"
분명 첫날에 고블린 한 마리를 죽였었다.
비슷한 방법을 사용한다면 한 마리 정도는 잡을 수 있을 것 같았다.
지금 상태로 무리하게 고블린과 싸울 바엔 하나라도 확실히 잡으면 경험치를 줄지도 몰랐다.
"만약 그렇게 해서 레벨업이 되면 개꿀이지."
온몸이 난도질당하며 죽는 것이 개꿀이라 할 만한 상황은 아니었지만.
적어도 강현의 기준에는 그러했다.
휴식을 끝낸 강현이 메이스를 들고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가보자고. 후후."
**
"왜? 왜 레벨업을 안 하는 건데!?"
눈을 뜨자마자 강현이 난동을 부렸다.
강현은 첫날과 같이 뒤통수를 후려치는 방법으로 고블린 한 마리를 죽일 수 있었다.
하지만 기대했던 레벨업은 없었다.
그저 분노한 다른 놈에게 순식간에 목이 베어 죽었을 뿐이었다.
"오늘 밤엔 그 새끼 뒤통수 먼저 깬다."
강현이 이를 갈며 인터넷을 확인했다.
어느덧 튜토리얼이 시작한 지 7일 차. 즉, 6번의 튜토리얼을 거친 것이다.
만약 정상적으로 하루에 한 단계씩 진행했다면 오늘 6단계를 마무리하고 7단계를 준비해야 했을 것이다.
그러나 강현은 여전히 2단계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사람들도 별거 없네."
인터넷을 돌아다녀도 4단계 이상을 깼다는 사람은 잘 보이지 않았다.
3단계까지는 그나마 제법 후기가 있었는데 4단계부터는 정말 클리어가 힘든 듯했다.
"이걸 8단계까지 깨야 나갈 수 있는 거겠지?"
잠시 정신이 아득해졌지만, 강현이 양손으로 뺨을 강하게 두들겼다.
-짝!
"할 수 있다!"
기합 넣고는 다시 정보를 찾아 돌아다녔지만 별다른 것은 없었다.
여전히 사람들은 현실에서 능력을 쓸 수 없었고, 현실 세계에 괴물 같은 것이 나타났다는 글도 없었다.
결국, 웹서핑을 종료하고, 강현이 다시 검술 관련 강의를 틀었다.
**
[강현….]
"스킵! 스킵!"
[당신의 용기가 지구를 구원하기를]
다시 튜토리얼에 들어온 강현이 곧장 운동부터 시작했다.
"확실히 전보다 힘이나 체력이 붙은 게 느껴져. 레벨업을 못하더라도 충분히 강해 질 수 있을 거야."
그렇게 강현은 또다시 쓰러질 때까지 검을 휘둘렀다.
[당신의 한계를 넘어서는 노력으로 체력이 1 상승합니다]
"으아아아아아!"
강현은 이제 반쯤 울부짖으며 바닥에 주저앉았다!
-띠링
[능력 최하급 검술(F)이 생성됩니다.
"어?"
최하급 검술(F)
능력 : 검을 휘두를 시 자세 교정, 힘의 분배를 도와주어 효과적으로 휘두를 수 있게 해 준다.
설명 : 동네 건달들이나 휘두를 법한 검술이지만, 없는 것보다는 나아 보인다.
"이, 이게..."
메시지를 보던 강현은 눈에서 저도 모르게 눈물이 터져 나왔다.
"고맙습니다... 크흡.. 고맙습니다! 으엉!"
스텟과 더불어 전혀 기대하지 못한 검술까지 얻었다.
강현은 그간의 노력이 인정받는 듯한 느낌에 감격의 눈물이 흘리지 않을 수가 없었다.
"이게 인간승리다-!"
상태창만 봐도 알 수 있듯이 강현은 평균 이하의 체력을 가진 굉장한 약골이었다.
그런 강현이 며칠 동안 쓰러질 정도로 검을 휘둘렀다.
너무 힘들어서 도중에 소리를 지르며 울기도 했었다.
그러나 절대 멈추지 않았다.
고블린들의 얼굴을 떠올리며 그렇게 노력한 결과가 이제야 나타난 것이다.
비록 설명이 허접했지만, 강현은 만족했다.
"열심히 하다 보면 등급도 오를 거야 분명!"
자리에서 일어난 강현이 어디서 솟아나는지 모를 힘으로 다시 검을 휘둘렀다.
"느껴진다... 느껴져!"
기분 탓일까?
검을 휘두르는 자세가 묘하게 편안해지며 검에 힘이 실렸다.
강현이 주먹을 불끈 쥐었다.
"기다려라. 이 악마 같은 놈들. 다 뒤졌다."
기세가 오른 강현이 거대한 문을 걷어차며 동굴 밖으로 나갔다.
5화 빌어먹을 고블린(3)
5. 빌어먹을 고블린(3)
'침착하자...'
근육통으로 팔이 떨리는 와중에도 강현은 정신을 집중했다.
'머리, 머리를 노려야 해.'
호흡이 정지함과 동시에 바짝 당겨진 석궁의 시위가 풀어진다.
-피슉!
볼트가 공기를 가르는 파공음이 들렸다.
"됐다!"
날아간 볼트가 정확히 고블린의 목덜미에 박혔다.
어제 강현의 목을 내려쳤던 그 고블린이었다.
볼트에 맞은 고블린은 단말마의 비명조차 내뱉지 못하고 그대로 쓰러졌다.
"크에엑?"
남은 놈이 쓰러진 동료를 보고 당황한 표정을 짓는다.
강현은 지체하지 않고 놈을 향해 내달렸다.
"너도 죽어!"
강현이 전력으로 휘두르는 롱소드를 고블린이 힘겹게 막아냈다.
그리고 이어지는 몇 번의 공방.
-챙, 챙!
강현은 날아오는 검을 방패로 쳐내고 빈틈이 보일 때마다 검을 휘둘렀다.
조금씩 고블린의 몸에 자잘한 상처가 늘어갔다.
"마지막이다!"
"케엑, 켁..!"
마침내 드러난 빈틈에 강현의 검이 정확하게 틀어박혔다.
목에 검이 틀어박힌 고블린이 천천히 허물어졌다.
"드, 드디어..!"
마침내 두 마리의 고블린을 깔끔하게 해치웠다.
지금까지 고블린들에게 당했던 고문, 그 고통의 순간들이 파노라마처럼 지나갔다.
[레벨업!]
동시에 들려오는 메시지.
▫이름 : 강현
▫칭호 : -
▫레벨 : 1 → 2 new!
▫상세 능력치 :
·근력 10
·순발력 9
·체력 9
·마력 14
·추가 스텟 : 0 → 1 new!
▫고유 능력 : 부활
▫능력 : 최하급 검술(F)
▫스킬 : -
"역시 내 예상이 맞았어."
강현의 생각이 맞았다.
튜토리얼에서도 레벨업은 가능했다.
"이번에는 순발력을 올리자."
강현은 이번에 얻은 스텟을 순발력에 투자하기로 했다.
근력과 체력은 단순 무식하게 운동으로 올릴 수 있었지만, 순발력은 어떻게 올려야 할지 알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포인트로 올릴 수 있을 때 올리는 것이 좋아 보였다.
"좋아. 이 기세로 계속 간다."
레벨업과 동시에 모든 근육통과 피로가 사라졌다.
지금이라면 3마리가 함께 다니는 고블린 무리도 충분히 이길 수 있을 것 같았다.
"가즈아!"
강현이 주먹을 불끈 쥐며 힘차게 외쳤다.
**
"아아아악!"
고블린 3마리의 문턱은 높았다.
석궁으로 한 마리.
롱소드를 휘둘러 한 마리.
총 두 마리의 고블린을 해치웠지만 결국 마지막 고블린에게 뒤통수를 맞고 기절했다.
죽은 게 아니라 기절이었다.
그리고 이어지는 고문의 세계.
-그만, 그만하라고! 넌 내일 밤에 진짜 뒤졌어. 알아!? 으아아아!
강현은 밧줄에 묶인 채로 무려 두 시간 동안 고문을 당했다.
늘어난 체력 포인트에 레벨업으로 몸을 회복해서인지 쉽게 죽지도 않았다.
"후우..."
그러나 강현은 전처럼 궁상맞게 이불을 뒤집어쓰고 떠는 짓 따위는 하지 않았다.
"시벌놈들... 기다려라. 오늘이 마지막이다."
오직 두 눈을 광기로 번득일 뿐이었다.
**
[강현 님의 튜토리얼 입장을 환영합니다]
다시 새하얀 방.
그리고 이어는 눅눅한 동굴.
튜토리얼에 입장한 강현은 곧장 검을 들고 뛰쳐나가려다 멈춰 섰다.
"체력 업 한 번만 더 하자."
현재 스텟은 근력 10 순발력 10 체력 9 마력 14이다.
여기서 체력만 9에서 10으로 올라주면 모든 스텟이 깔끔하게 10 이상이 되는 것이다.
"후욱, 후욱"
생각을 마친 강현이 다시 검을 휘두르기 시작했다.
확실한 것은 없지만 이렇게 검을 휘두르다 보면 체력이 올라가는 것은 물론, 검술의 랭크까지 오를지도 모른다.
"후아아!"
전에는 십 분만 휘둘러도 검을 들 수조차 없을 정도로 팔이 저려왔다. 그래서 잠시 다른 운동을 하거나 석궁을 쏘는 연습을 해야 했다.
'하지만 이제는 아니지'
지금은 무려 이십 분 가까이 검을 휘두르고 있었지만, 아직 견딜만했다.
나름 장족의 발전이라 생각하며 강현은 계속해서 검을 휘둘렀다.
열 번, 백 번, 천 번...
얼마나 휘둘렀을까?
강현은 어느 순간부터 세는 것을 그만두었다.
그저 무아지경으로 검을 휘두를 뿐이었다.
시간이 얼마나 흘렀는지도 알 수 없을 때가 되었을 때.
-띠링!
[당신의 한계를 넘어서는 노력으로 체력이 1 상승합니다]
"우에에엑!"
알람과 동시에 강현이 바닥에 토를 했다.
"크흐읍, 시간이 그렇게 많이 지난 것 같진 않은데."
강현이 소매로 입가에 묻은 토사물을 닦았다.
"이거 전보다 오히려 스텟이 더 빨리 오른 거 아냐?"
시계가 없어 감으로 한 말이었지만 정확했다. 오늘 강현이 검을 휘두른 것은 대략 다섯 시간 이상.
10시간 넘게 운동했어야 하는 전보다 오히려 더 빨리 스텟이 올랐다.
그 이유는 바로 강현이 독기.
전이라면 쉬었을 타이밍에 쉬지 않고 운동을 한 결과, 더욱 육체를 한계까지 몰아붙일 수 있었던 것이다.
"후후... 시간이 무슨 상관이야. 올랐다는 게 중요하지."
▫이름 : 강현
▫칭호 : -
▫레벨 : 2
▫상세 능력치 :
·근력 10
·순발력 10
·체력 10
·마력 14
·추가 스텟 : -
▫고유 능력 : 부활
▫능력 : 최하급 검술(F)
▫스킬 : -
상태창을 보며 만족스럽게 웃은 강현이 바닥에 드러누웠다.
"푹 쉬고 오늘 끝내자."
그렇게 강현은 단잠에 빠져들었다.
**
"좋았어! 가즈아!"
잠에서 깨어난 강현이 힘차게 몸을 풀었다.
뭉친 근육으로 몸이 찌뿌둥했지만, 전보다 견딜만했다.
강현이 유심히 무기를 살펴봤다.
이제는 손에 감기는 롱소드와 석궁.
그리고 전보다 무거운 철로 덧대어진 방패를 챙겼다.
든든하게 무장한 강현이 천천히 문 안으로 진입했다.
'우선 석궁으로 한 마리.'
고블린이 있는 곳에 도착한 강현은 침착하게 석궁을 조준했다.
-피슉!
날아간 볼트가 정확하게 고블린의 뒤통수에 박혔다.
그리고 나머지 한 마리가 당황하는 사이 강현은 전력으로 달려가 방패로 고블린을 후려쳤다.
기존의 나무 방패보다 더 무거운 철 방패에 맞은 고블린이 단숨에 뇌진탕을 일으키며 쓰러졌다.
"이제 튜토리얼답게 편하게 가자!"
"키에엑..!"
바닥에서 버둥거리는 놈.
강현은 망설임 없이 놈의 목에 롱소드를 찔러 넣었다.
"키르르륵..."
입에서 핏물을 토해내는 고블린을 바라보며 강현이 웃었다.
"그래. 이게 튜토리얼이지."
고블린을 발로 밀어내며 검을 뽑은 강현이 잠시 호흡을 가다듬었다.
"후우, 가자!"
고블린 세 마리가 있는 곳은 지난 죽음에서 미리 확인해 두었다.
'이 근처인 것 같은데...'
그러나 혹시라도 먼저 발각되어 세 마리가 한꺼번에 달려들면 승산이 없기에 강현의 움직임은 굉장히 조심스러웠다.
"케륵!"
'저기다.'
소리가 들려오는 방향으로 움직이자 세 마리의 고블린이 태평하게 웃고 있는 것이 보였다.
'석궁으로 한 마리를 처리하더라도 두 마리가 남는다.'
그렇다면 지난번처럼 두 마리의 고블린을 상대해야 한다.
'차라리 좀 더 거리를 벌리고 석궁을 두 번 쏠까?'
고민하던 강현이 고개를 저었다.
'괜히 멀어졌다가 첫발이 빗나가기라도 하면 그냥 끝이야.'
강현은 결국 한 마리를 안정적으로 처리하기로 했다.
석궁을 들어 올린 강현이 신중하게 고블린을 조준했다.
-피슉!
"켁!"
파공음이 들림과 동시에 고블린의 비명이 터져 나왔다.
'그렇지!'
날아간 볼트는 정확히 머리에 명중했다.
"케에엑!"
"케륵, 케륵!"
동시에 강현을 발견한 고블린 두 마리가 괴성을 내지르며 달려왔다.
"으아아! 덤벼 이 새끼들아!"
-탕, 탕!
강현은 TV에서 나오는 전사들처럼 검으로 방패를 두들기며 기합을 넣었다.
"케륵, 키엑!"
가래가 끓는 듯한 목소리.
고블린의 흉측한 얼굴이 실시간으로 가까워진다.
'최대한 지형을 이용해서 한 마리씩 덤비도록 해야 돼.'
흥분으로 인해 몸이 달아올랐지만 이제 처음처럼 떨리지는 않았다.
-캉!
날아오는 검을 방패로 쳐내는 동시에 검을 휘둘렀다.
복부를 베인 고블린이 주춤하며 물러섰다.
그사이 다른 놈이 휘두르는 검을 침착하게 막아낸다.
"죽어!"
순간 생겨난 빈틈 사이로 강현이 재빨리 검을 내질렀다.
뼈에 걸리지 않고 복부를 꿰뚫은 깔끔한 일격.
"키엑!"
상처를 입은 두 마리의 고블린이 뒤로 물러났다.
그 모습을 보며 강현의 입에 미소가 걸렸다.
'됐어.'
이미 흐름은 넘어왔다.
이제는 기세를 타고 나아가기만 하면 된다.
"쫄았냐! 어?! 한번 또 도망쳐봐!"
2단계에 등장하는 고블린은 총 5마리.
더 이상 남은 동료도 없다.
"이제 불러올 친구도 없지? 새끼들아!"
"키에에!"
고블린들도 그것을 아는 것인지 결국 괴성을 내지르며 강현에게 달려들었다.
-채앵, 챙!
강현과 상처 입은 고블린 두 마리가 치열하게 공방이 주고받았다.
그동안 일취월장한 강현의 전투 솜씨가 빛을 발했다.
"켁... 케륵..."
마침내 마지막 고블린이 피를 흘리며 주저앉았다.
그 모습을 보며 숨을 헐떡이던 강현이 힘껏 롱소드를 쥐었다.
"하아, 하아... 만나서 엿 같았고."
"케에에..."
"다시는 보지 말자."
-스걱!
수천, 수만 번을 연습한 내려치기.
검에 베인 고블린의 목은 허무하게 잘려나갔다.
[축하합니다. 2단계를 클리어했습니다]
[클리어 보상으로 추가 스텟 5를 획득합니다]
[클리어 보상으로 무기를 선택하실 수 있습니다]
[능력 최하급 방패술이 생성됩니다]
[능력 최하급 석궁술이 생성됩니다]
[레벨업!]
[레벨업!]
"으아아아!"
강현이 검을 집어던지고 미친 듯이 소리를 내질렀다.
"해냈다! 내가 이겼다고!"
정말 정신이 나간 사람처럼 소리를 지르며 한참을 뛰어다녔다.
"이 더러운 고블린들! 이제 주제를 알았냐!? 어!? 끝까지 가면 내가 다 이긴다고! 개새끼들아!"
강현이 악을 쓰며 마지막 사자후까지 토해내고 나서야 천천히 숨을 골랐다.
"후욱, 후우... 그래. 보상. 보상을 확인해야지. 하하하!"
강현이 실성한 사람처럼 웃으며 상태창을 열었다.
▫이름 : 강현
▫칭호 : -
▫레벨 : 2 → 4 new!
▫상세 능력치 :
·근력 10
·순발력 10
·체력 10
·마력 14
·추가 스텟 : 0 → 7 new!
▫고유 능력 : 부활
▫능력 : 최하급 검술(F), 최하급 방패술(F), 최하급 석궁술(F)
▫스킬 : -
꽤나 다채로워진 상태창.
가장 눈에 띄는 것은 무려 7 포인트나 되는 추가 스텟이었다.
"와아... 갑자기 고민되네..."
가만히 그것을 들여다보며 강현이 행복한 고민에 빠져들었다.
"후반으로 갈수록 레벨업이 힘들고 자연스럽게 스텟 포인트 하나하나가 귀해질 거야. 어떡하지..."
강현은 우선 순발력이 무엇인지 확인했다.
근력과 체력처럼 직감적으로 알아채기 어려웠던 탓이다.
[순발력 : 동체시력 및 반응속도, 근육의 활용 능력 증가]
"흐음..."
한참을 고민하던 강현이 마침내 스텟 분배를 끝마쳤다.
근력에 3포인트.
순발력에 2포인트.
체력이 2포인트.
총 7포인트를 모두 사용했다.
"좋았어!"
스텟을 투자하고 나자 온몸에 힘이 넘쳐나는 느낌이었다.
"그리고... 오! 방패술이랑 석궁술이 생겼네?"
강현이 곧장 새로 얻은 능력을 확인했다.
최하급 방패술(F)
능력 : 방패를 더욱 효과적으로 사용할 수 있게 한다.
설명 : 열심히 한다면 동네 꼬마의 칼질 정도는 막을 수 있을 것이다.
최하급 석궁술(F)
능력 : 석궁을 조금 능숙하게 다루고, 사격의 정밀도를 높여준다.
설명 : 머리 위에 사과를 놓고 쏘는 살인행위는 하지 않는 것이 좋다.
"으음...?"
지난번 것도 그랬지만 상태창이 굉장히 장난스러운 기분이 들었다.
"그래도 없는 것보단 낫겠지."
이미 검술로 그 효과를 입증했기에 능력은 많을수록 좋았다.
"마지막으로 무기만 고르면 되네."
강현의 눈앞에는 2단계를 시작할 때 놓여있던 무기들이 그대로 놓여있었다.
"역시 익숙한 게 좋겠지?"
강현은 고민 없이 롱소드를 집었다.
그러자 신기하게 검이 순식간에 사라졌다.
동시에 눈앞에 메시지가 떠올랐다.
[대기 시간이 만료되었습니다. 튜토리얼에서 퇴장합니다]
**
8번째 튜토리얼을 끝낸 강현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후후, 해냈어. 해냈다고..!"
눈을 뜨니 평소처럼 괴성을 지르고 싶었지만, 아직 동생이 자고 있을 것 같아 참았다.
-보글보글
"룰루~"
강현은 콧노래를 부르며 아침밥을 준비했다.
동생이 일어나서 놀랄 모습을 생각하니 벌써 신이 나는 듯했다.
-쿠구구구구
그때였다.
갑자기 땅이 울리며 집 밖에서 소음이 들려왔다.
동시에 강현의 앞에 메시지가 떠올랐다.
[지구의 튜토리얼이 종료됩니다]
[튜토리얼 밖에서도 시스템 사용이 자유로워집니다]
[던전이 활성화됩니다]
[던전은 각성 능력자만이 입장 가능합니다]
[일정 시간 내에 던전을 클리어하지 못할 시 던전의 문이 개방됩니다]
"이게 무슨 말이야...?"
원래라면 오늘은 정상적으로 튜토리얼이 끝나는 날이기는 했다.
"그것과 관련이 있는 건가?"
강현이 멍하니 메시지를 바라볼 때였다.
"꺄아악!"
갑자기 창밖에서 비명소리가 들려왔다.
강현은 다급히 창가로 달려가 창문을 열었다.
"깜짝이야! 이게 뭔 지랄이야!?"
집 앞에 3m는 넘어 보이는 거대한 문이 떡하니 솟아올라 있었다.
온갖 기이한 문양들이 조각된 문은 마치 지옥으로 향하는 입구 같았다.
"이게 그 던전인가?"
"어... 그런 것 같네."
어느새 다가온 아현이 강현의 뒤에 바짝 붙어 밖을 내다봤다.
"메시지 봤지?"
"어."
"나 지금 여기서 상태창이 보여..."
아현이 심각한 표정으로 말하자 강현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겠지. 메시지에서 능력이 부여된다 했으니까... 아 시간은 어떻게 됐지? 시간 확인!"
[하켄 차원과의 완전한 연결까지 남은 시간 : 4년 357일 13시 59분 51초]
다행히 시간은 정상적으로 줄어들고 있었다.
"이게 종말의 시작 같은 건 아닌가 보네."
"그러게..."
강현의 말에 함께 시간을 보고 있던 아현이 고개를 끄덕였다.
"너 레벨도 오르고 스킬도 올랐다 했지? 상태창 한번 확인해봐."
"아, 맞아. 상태창!"
아현의 말에 강현이 다급하게 상태창을 불렀다.
[아직 튜토리얼이 끝나지 않아 사용할 수 없습니다]
"응..?"
뭔가가 잘못된 듯하다.
6화 참지 않는 자(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