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ebnovel

1

24.

띠링!

[모든 것을 베는 천검] 에게 고유권능 <검의 극의> 와 220만 갓코인, 그리고 그가 가진 <천검의 보고(寶庫)>를 세 번 사용할 수 있는 대여권을 받았습니다.

[모든 것을 베는 천검]의 <천검의 보고(寶庫)>는 무투 계열의 신들이 군침을 흘리는, 신계에서도 손꼽히는 보고입니다.

띠링!

[소리 없이 기어오는 악몽] 에게서 고유권능 <밤에 피는 장미>를 선물 받았습니다.

갓메이커의 메시지가 기분 좋게 울렸다.

후후, 좋은 거래였다.

난 [모든 것을 베는 천검]에게 사마귀에게서 뺏은 단검을 돌려주는 대가로 그의 권능과 저번에 강탈당했던 갓코인을 돌려 받았다.

게다가 그가 가진 [천검의 보고]라는 걸 이용할 수 있는 대여권까지 받았다.

솔직히 저게 얼마나 좋은건지는 잘 체감이 나지 않았지만, 1억 갓코인을 제시했던 [소리 없이 기어오는 악몽]께서 기가 죽어 경매를 포기해버릴 정도니까 제법 쓸만하지 않을까?

게다가 이게 끝이 아니다.

난 경매에 패배한 [소리 없이 기어오는 악몽]의 권능까지 받았다. 난데없는 선물에 왜 그러시냐고 물었더니.

['소리 없이 기어오는 악몽'께서 당신께 강한 호감을 느낀다고 합니다. 그래서 자신의 권능을 꼭 받아줬으면 한다고 수줍게 말합니다.]

이런 스토커, 아니 좋은 호구님들 같으니.

아무튼 공짜로 주겠다는데 사양하지 않았다.

"당장 뭐 변한 느낌은 없는데?"

역시 한번 써봐야 알려나.

"내일 시험해보자."

시간이 늦었기도 했고 저번에 미리씨와 시험 삼아 스킬 공유 하다가 날아가버린 천장이 좋은 교훈이 되어주었다.

자고로 인간은 실패에서 배우는 법.

이번에 얻은 권능 시험은 외지고 넓은 곳에서 해야지.

그렇게 생각하며 난 잠자리에 누웠다.

쿨.

몸이 피곤해서인지 평소와는 다르게 금방 잠이 들었다.

하지만 난 몰랐다.

내가 잠든 방에 은밀히 찾아온 침입자가 있다는 것을.

***

푱! 푱!

갓메이커에서 옅은 파문들이 일더니 벌레들이 은밀하게 모습을 드러냈다.

또 황제가 보낸 군대들일까?

아니다.

군대로 보기에는 그 숫자는 터무니 없을 정도로 적었다.

갓메이커에서 모습을 드러낸 것은 겨우 십여 마리 정도의 벌레들.

전신에 새겨진 호박색 무늬는 마치 꿀벌을 연상케하였다.

그들은 바로 황제 직속의 십검(十劍) 중 일 인, 암살의 대가 암검 킬러비와 그의 직계 혈족들이었다.

대륙 전체에 황제의 악신 척살령이 내렸다.

악신을 노리는 수많은 자 중, 제일 먼저 도착한 것은 바로 이들이었다.

킬러비가 악신을 응시했다.

'저것이 카미키리를 죽인 악신이로구나.'

악신의 위용은 무시무시하였다.

하나의 살아있는 생명체가 아니라 거대한 산맥 같았다.

드르렁! 드르렁!

악신의 가슴이라 짐작되는 부분이 요란하게 들썩이며 코를 고는데 천둥이 치는 것 같았다.

파르르!

혈족들이 더듬이를 떨며 공포에 잠겼다.

"떨지마라. 우리 혈족은 무적이니라."

"사, 살주(殺主)님."

킬러비가 혈족들을 향해 자신만만하게 말했다.

"어리석은 카미키리는 무려 오백만의 병사를 이끌고도 악신 토벌에 실패했지만, 우리 혈족은 그런 땅이나 기는 하등한 벌레들과는 차원이 다르니라. 기억해라. 우리가 죽인 신들을. 그 오만하고 잔인한 신들조차 우리 혈족의 독에 처참히 죽음을 맞지 않았더냐."

그랬다.

그들에게는 창공을 자유롭게 누비는 날개와 신조차 죽일 수 있는 맹독이 있었다.

킬러비의 혈족은 비록 압도적인 숫자에 밀려 붉은 개미들에게 세력이 밀렸지만, 전투력만은 제국 최강이란 자부심이 있었다.

자신들이 죽일 수 없는 것은 세계에 존재치 않았다.

그것은 신조차 예외가 아니다.

"가자, 내 용맹한 아이들아. 땅이나 기는 하찮은 땅개미들 따위에게 하늘의 지배자인 우리 일족의 힘을 보여주자구나!"

독 따위를 쓰는 암살일족이라 불리며 천대받던 세월로부터 절치부심하며 십검의 자리에 오르기까지 무려 백 년.

마침내 일족을 부흥시킬 절호의 기회가 왔다!

"신살(神殺)의 영광은 우리 혈족이 차지할 것이다!"

"우오오오!"

웅혼한 킬러비의 외침과 함께 혈족들이 쏜살같이 악신을 향해 날았다.

부우우웅!

삼삼오오 무리를 지은 혈족들이 악신의 목과 심장을 향해 강철마저 녹여버리는 독침을 겨눴다.

수장인 킬러비는 악신에게서 제일 약한 부분인 눈을 노렸다.

이것은 대전에서 황제의 분노를 산 그래스호퍼를 녹여버린 극독보다 100배나 강한, 일족의 비전중의 비전 신살의 맹독이었다.

킬러비의 입가에 회심의 미소가 어렸다.

오늘로 십 검 중 최고는 그 음침하고 오만한 독거미년이 아니라, 바로 자신이 될 것이다.

"죽어라! 악신아!"

그가 야망에 불타며 악신의 몸에 신살의 독침을 박아넣으려 할때였다.

띠링!

['소리 없이 기어오는 악몽'의 고유권능 <밤에 피는 장미> 의 조건을 만족했습니다.]

-오호호호! 하찮은 피조물들아! 공포에 떨어라! 너희들의 악몽이 지금 피어나리라!

"뭣?"

츠츠츠츠!

심상치 않은 기운이 악신에게서 뿜어져 나왔다.

휘리릭! 휘릭!

동시에 그의 몸에서 뻗어나온 촉수가 채찍처럼 킬러비와 혈족들을 휘감았다.

갑작스런 공격에 그들은 당황했지만, 그것은 겨우 시작에 불과했다.

드드드득!

킬러비와 혈족들은 그들을 뒤덮는 거대한 그림자를 보았다.

그것의 정체는 악신의 머리에서 피어난 거대한 꽃이었다.

피처럼 붉은 그 꽃은 아직 봉우리만 피어있음에도 불구하고, 꿀처럼 달콤하고 마약처럼 치명적인 향기를 뿜었다.

게다가 또 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꽃의 아름다운 자태와 감미로운 향에 매료된 그들은 자신들이 결박당했다는 것도 잊은 채 그것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그것은 수장인 킬러비조차 마찬가지였다.

스르르륵.

그 꽃이 만개하며 마각을 드러내기 전까지는.

-끼아아악!

소름끼치는 괴성과 함께 만개한 꽃에게서 송곳니가 잔뜩 돋은 거대한 입이 모습을 드러냈다.

"으아아아악!"

그제야 정신을 차린 킬러비와 혈족들이 비명을 지르며 넝쿨에서 벗어나려 발버둥쳤지만.

휘릭, 꿀꺽!

휘리릭, 꿀꺽!

그 괴물 꽃이 넝쿨을 움직여 그들을 하나씩 삼키기 시작했다.

"으아악! 사, 살려주십시오 살주!"

"안 돼! 당장 멈춰라! 이 괴물!"

혈족들의 처참한 죽음을 보다못한 킬러비가 악신에게 쓰려고 아꼈던 신살의 독침을 괴물꽃에게 날렸다.

쐐애액!

화살처럼 날아간 독침이 혈족을 잔인하게 삼키는 꽃의 아가리에 꽂혔다.

그 어떤 마수도, 심지어 신성을 가진 신조차 죽음에 이르게 만드는 킬러비 일족 비전의 독.

독침을 맞자 꽃이 꽃잎을 파르르 떨더니 석상처럼 멈췄다.

'됐다!'

곧 독이 퍼져 처참하게 녹아내릴 괴물 꽃의 모습을 기대하며 킬러비가 음험하게 눈을 빛냈다.

-끼히히히히!

하지만 비명대신 들려온 것은 소름끼치는 여자의 웃음 소리였다.

그 괴물꽃이 환희하듯 꽃잎을 만개하며 킬러비를 굽어보고 있었다.

신마저 죽이는 비전의 독침을 맞았음에도 시들기는커녕 오히려 방금 전보다 더 화사하게 피어난 괴물 꽃의 모습에.

"서, 설마!"

킬러비는 오래 전 읽었던 일족의 문헌을 떠올렸다.

유일하게 자신들의 독이 통하지 않았던 존재.

삼천 년전 대륙의 인구 90퍼센트를 먹어치운 최악의 흉신 '소리 없이 기어오는 악몽'의 사도.

나이트 로즈, 일명 악몽의 꽃.

그것이 지금 눈 앞에 있었다.

꿀 대신 끈적이는 군침을 질질 흘리는 아가리를 벌린 채.

쩌어어억!

"으아아악!"

꿀꺽!

스르르륵.

킬러비와 혈족들을 모두 삼킨 꽃은 임무를 마쳤다는 듯 유일신의 머릿속으로 사라졌다.

드르렁! 쿨쿨!

잠시 후, 그곳엔 유일신이 요란하게 코고는 소리만이 남았다.

***

띠띠띠띠띠! 띠띠띠!

요란하게 울리는 알람소리에 난 부스스한 몰골로 잠자리에서 몸을 일으켰다.

벌써 아침인가?

"끄윽~!"

그때 갑자기 입에서 헛트림이 나왔다.

"으. 왜 이리 속이 더부룩하지."

밤에 뭐 먹은 것도 없는데 말이다.

"뭐 아무렴 어때."

아침 먹는 것도 귀찮았는데 잘됐다.

그렇게 긍정적으로 생각하며 난 대충 씻고 츄리닝을 챙겨입은 후, 공원으로 나갔다.

이른 아침이라 공원은 한산했다.

'좋아, 새로 얻은 권능이나 시험해볼까?'

내가 평소답지 않게 이렇게 일찍 일어난 것은 바로 새로 얻은 권능을 시험해보기 위해서다.

내가 이번에 얻은 권능은 두 개다.

하나는 소리 없이 기어오는 악몽에게 받은 '밤에 피는 장미'.

그리고 다른 하나는 모든 것을 베는 천검이 준 '검의 극의' 다.

'천검의 보고' 의 대여권은 세 번 밖에 이용할 수 없으니 좀 신중하게 사용하기로 하고, 지금은 이 두 개에 집중해보자.

일단은 [소리 없이 기어오는 악몽]이 준 권능부터.

난 정신을 집중하며 시동어를 외쳤다.

"권능 [밤에 피는 장미]!"

조용.

아무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당황하고 있을때 갓메이커에 메세지가 떴다.

띠링!

[권능 발동에 실패했습니다. 권능 개화 조건을 만족시키지 못했습니다.

'소리 없이 기어오는 악몽'의 고유권능 '밤에 피는 장미'를 쓰기 위해서는 소유주가 일단 잠들어야 합니다.]

"잠들어야한다고?"

나도 모르게 얼굴이 구겨졌다.

뭐 이런 어이없는 권능이 있냐?

어쩐지 순순히 공짜로 준다고 했더라니!

이름이 구려서 별 기대는 안했었지만 짜증이 났다.

막말로 잠들었을 때 발동하면 이게 무슨 능력인지 내가 어떻게 알아?

"후, 괜찮아. 이건 분명 쓸만할거야."

심호흡을 하며 흥분을 가라앉혔다.

내겐 아직 시험해볼 권능이 하나 더 남아있다.

나는 품에 챙겨왔던 칼을 꺼냈다.

예전에 다이써에서 무려 오천원이나 주고 산 사시미 형태의 식칼이었다.

뭐 결국 집에서 밥을 잘 안해먹어서 계속 방치해두긴 했지만.

그래도 그런것치고는 녹도 없고 일반적인 식칼보다는 한뼘 정도는 길어 뭔가 진짜 칼을 잡은 느낌이 났다.

['모든 것을 베는 천검'이 자신의 고유권능 '검의 극의'를 쓰고 검을 잡는다면 그 어떤 달인도 당신의 상대가 되지 않을거라고 단언합니다.]

나는 천검이 내게 권능을 줄때 보냈던 메세지를 떠올리며 식칼의 손잡이를 꽉 쥐었다.

"좀 떨리는데."

어릴 때 즐겨보았던 무협지의 주인공이 신검을 손에 넣고 무림 최고의 고수가 되는 스토리가 떠올랐다.

자고로 검은 남자의 로망이 아니겠는가.

"권능 [검의 극의(極意)]!"

권능을 쓴 나는 기대하며 이후에 벌어질 일을 기대했다.

어쩌면 무협 고수처럼 막 검기를 날리고 멋진 검법을 쓸 수 있지 않을까?

하지만.

조용.

역시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심지어 이번에는 실패 메시지조차도 없었다.

느낌이 쌔하다. 사기 당한 기분이다.

"이것들이 진짜 보자보자하니까."

결정했다.

"좋아, 집에 있는 신검인가 뭔가는 팔아버리자."

애초에 그 자칭 신검은 '천검의 보고' 대여권을 모두 쓰고 나서 돌려주기로 계약한거라, 아직 내 서랍에 고이 모셔져 있었다.

팔면 적어도 고철값은 나오겠지.

그리고 이참에 그 스토커놈들하곤 인연을 끊어버려야지.

-······싶다.

"응?"

그때 귀에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렸다.

-베고 싶다······.

처음에는 모기소리처럼 작았지만, 그 음성이 점점 뚜렷하게 들리는게 아닌가?

나는 황급히 주위를 살폈지만 공원에는 나밖에는 없었다.

"설마?"

난 의심하며 내 손에 쥐어진 식칼을 바라보았다.

"에이, 아니겠지."

하하, 요즘 하도 별의별 일을 겪고 나니 이런 시덥잖은 생각도 드네.

-베고 싶다!! 베고 싶다!!

웅웅웅웅!

식칼이 무서운 기세로 진동하더니 내 귓속으로 엄청난 고성이 파고들었다.

"으윽!"

츠츠츠츠!

순간 내 안에 걷잡을 수 없는 강렬한 충동이 치밀어올랐다.

세상을 모두 베어버리고 피로 물들이고 싶은 엄청난 살기가 파도처럼 내 머릿속을 잠식한다.

그리고 잠시 후.

내 입술 사이로 광기에 젖은 음성이 새어나왔다.

"크큭, 베고 싶다······."

밤에 피는 장미와 광기의 식칼 끝

ⓒ 크래커™

=======================================

가화만사성의 유일신입니다.

25.

[家和萬事成]

가정이 화목해야 모든 일이 잘 이루어진다는 한자성어.

하지만 우리 동네에서는 그냥 중국집이다.

"허억! 허억!"

나는 가쁜 숨을 헐떡이며 내 앞에 산처럼 쌓여있는 내 광기의 희생량을 노려보았다.

야채는 얼마나 얇게 잘랐는지 안이 투명하게 비쳤고, 핏기 하나 없는 고기는 한 치의 오차도 없이 깍둑썰기 되어 있었다.

그리고 저기 손질된 생선은 자신의 뼈는 물론 잔가시 하나 몸에 남기지 못하고 도륙되었다.

"이럴 수가! 우리 가게에서 사흘 영업할 식재를 한시간도 안되서 손질하다니!"

후덕한 인상의 중국집 사장님이 감탄을 토했다.

붉게 충혈된 눈으로 식칼을 쥔 내가 다짜고짜 식재를 썰게 해달라고 할때는 얼굴이 새파랗게 질렸었지만 말이다.

하긴 내가 만약 이집 단골이 아니었다면 신고당해도 할 말이 없는 상황이었다.

-만족······. 했다······.

내 손에 쥐어진 식칼이 배부른 사자처럼 나른하게 웅얼거렸다.

"아, 그래요. 만족하셨어요?"

XXX! 입으로 욕이 튀어나오는 것을 간신히 참았다.

내가 아침부터 중국집에서 이 지랄을 한건 이놈 때문이었다.

갑자기 치밀어 오르는 이 욕망을 방치했다가는 지나가는 사람이라도 베고 싶은 충동이 들었기에.

잘못하면 희대의 살인마가 될 뻔했다.

"단골 총각! 우리 가게에 취직 안할래? 월급 많이 줄게!"

"어허, 사장님. 바지 늘어나요!"

바짓가랑이를 붙잡는 중국집 사장님을 차도남처럼 매정하게 뿌리치고 부리나케 귀가했다.

"그래, 먼저 이것부터!"

드르륵! 탕!

치이익! 찌지직!

집에 오자마자 난 서랍에 식칼을 던져버리고는 박스테이프로 단단히 밀봉했다.

씩씩! 내가 다시는 저걸 잡나봐라.

검을 봉인한(?) 후에 내가 몸만 빠져나왔던 이불속으로 다시 누웠다.

젠장, 아침부터 뻘짓을 했더니 삭신이 다 쑤시네.

"큭, 두고보자. 이 망할 사기꾼 신들."

오늘 일은 절대로 잊지 않겠다.

시계를 보니 아직 7시도 되지 않았다.

미리씨와의 트레이닝 약속까지는 아직 시간이 좀 남았으니 그동안 모자란 잠이나 마저 잘까?

그때 갓 메이커의 알람이 다급히 울렸다.

띠링! 띠링!

['성녀'와 그 휘하 101명의 신도들이 유일신님께 간절히 구원을 요청합니다!]

참, 이것도 간만이네.

"그래. 이번엔 무슨 일이냐?"

졸린 눈으로 핸드폰 화면을 들여다보았다.

"어? 이것들 왜 이래?"

내 신도인 흰개미 성녀와 검은 개미들이 빌빌거리며 죽어가고 있었다.

***

난 인터넷으로 개미 치료에 대해 검색해보았다.

하지만 개미 박멸법은 많이 떴지만, 정작 내가 찾는 치료법은 단 한 건도 없었다.

이걸 보니 사람들이 개미를 단순히 해충으로 밖에 취급하지 않는다는걸 알 것 같았다.

뭐 나도 그랬었지만.

"음."

붉은 개미라면 치가 떨리지만, 이 검은 개미들에게는 그래도 애완동물 정도의 애정은 가지고 있다.

처음에 별 생각 없이 짓눌러 죽였다는 것에 대해서도 죄책감이 들긴 하고.

['성녀'와 그 휘하 101명의 신도들이 유일신님께 간절히 구원을 요청합니다.]

바들바들 떠는 몸으로 내게 엎드려 머리를 조아리고 있는 저 모습들이 불쌍하고 동정심이 들었다.

내 능력이 닿는다면 살려주고 싶다.

혹시나 해서 설탕가루를 뿌려보았다.

전에 애들이 이걸 먹고 좋아했던 기억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하지만 전에는 환장하고 달려들던 개미들이 영 반응이 없었다.

'대체 원인이 뭐야?'

혹시 어디서 개미약이라도 주워 먹은 거 아냐?

젠장. 뭐 말이 통해야 물어보기라도 하지.

하지만 내게는 아쉬운 대로 이 눈이 있다.

나는 빌빌거리는 성녀와 개미들에게 정신을 집중했다.

[눈 먼 신의 눈의 권능이 발동합니다.]

띠링!

[감정에 성공했습니다. ]

['성녀'와 그 휘하 101마리의 신도]

-'유일신'을 섬기는 검은 부족들이다.

특이사항 : 킬러비 일족이 뿌린 독에 중독되었다.

중독되었다고? 그런데 킬러비면 그 아프리카에 자생하는 독벌 말하는거 아닌가?

"에휴, 니들은 어쩌다가 벌독에 중독돼서 이러고 있냐."

설마 내가 안보는 사이에 꿀이라도 먹고 싶어서 벌집이라도 털었나?

-켁!

그때 유난히 빌빌거리던 개미 한 마리가 검은 체액을 토하더니 움직임이 멎었다.

[신도 하나가 중독되어 사망했습니다.]

파스스스.

죽은 개미의 몸이 회색빛으로 변하더니 먼지처럼 사라졌다.

"주, 죽었어?"

게다가 그렇게 죽은 개미에게서는 코인조차 드랍되지 않았다.

아무것도 남기지 못하는 너무나도 허망한 죽음이다.

비록 하찮은 개미라 할지라도, 나를 따르고 의지하는 생명들이다.

한심한 삼류 작가에 불과한 나를, 자비롭고 위대한 신으로 여기는.

"살려주고 싶다······."

안타까움과 탄식을 담아 나도 모르게 중얼거렸다.

띠링!

[신도를 생각하는 유일신의 간절한 마음으로 인해 [기적] 메뉴가 활성화됩니다.]

그러자 갑자기 갓 메이커가 반응했다.

"기적이라고?"

[기적]

-신도에게 신의 존재 의의 중 하나는 바로 '기적'입니다.

당신이 베푸는 기적에 성향에 따라 신도들은 당신을 더욱 더 경외하거나, 혹은 두려워하며 신앙을 바칠 것입니다.

[중독되어 죽어가는 신도들을 위해 기적을 사용할 수 있습니다.

킬러비 혈족의 독을 치유하는 기적을 사용하기 위해서는 유일신님의 신력과 갓코인 100,000이 필요합니다.

기적을 사용하시겠습니까? (Yes/No) ]

고민할 필요도 없었다.

어차피 코인은 넘쳤고 신력이 뭔지는 모르겠지만, 그런게 내게 있다면 기꺼이 감수할 수 있다.

"Yes."

띠링!

[갓코인 100,000을 사용합니다.]

[현재 유일신님이 사용할 수 있는 갓코인은 4,886,342 입니다.]

[유일신의 의지에 따라 신도들에게 기적을 실행합니다.]

[유일신께서 흡수했던 '세계수의 열매' 의 일부가 기적의 재료로 사용됩니다.]

쏴아아아!

갓 메이커의 화면에 갑자기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눈부신 황금빛을 머금은 빗물이 중독된 개미들에게 닿자, 그들을 괴롭히던 독이 씻은 듯이 사라졌다.

죽어가던 개미들은 갑자기 일어난 기적에 놀란 듯 머리를 번쩍 들어 나를 올려다보았다.

그들의 눈에 빗물 섞인 눈물이 흘러내렸다.

['성녀'와 휘하 신도 100 마리가 감격의 눈물을 흘리며 유일신님을 찬양합니다.]

약간의 쑥스러움과 뿌듯한 기분이 들었다.

아무래도 나도 이 개미들한테 정이 좀 들었나보다.

그런데 이상하네?

"으, 갑자기······ 왜 이리······ 졸리······?"

온몸에 힘이 쑥 빠져나가는 기분과 함께 지독한 졸음이 밀려왔다.

나는 몸을 채 가누지 못하고 그대로 쓰러졌다.

털썩! 쿵!

갓 메이커의 알림음이 들렸지만 이미 의식이 사라진 내 귀에는 들리지 않았다.

띠링!

[선신 타이틀 <자애로운 구원자(E->D)가 업그레이드 되었습니다.

선신 타이틀의 영향으로 유일신님의 성향이 악에서 중립으로 변화합니다.]

[몇몇 고위 악신들이 노골적으로 불쾌한 기색을 비칩니다.]

[특히 '소리없이 기어오는 악몽' 께서 당신의 매력이 떨어졌다고 조금 실망스러워 합니다.]

[몇몇 선신들이 유일신을 조금 다른 눈으로 주시하기 시작합니다.]

[특히 '한없이 베푸는 풍요' 께서 당신을 눈여겨 보기 시작합니다.]

***

검은 부족은 제국의 십검 중 일인 킬러비와 그가 이끄는 혈족의 습격을 받았다.

검은 부족들은 성지를 침범하려는 자들을 막으려 했지만, 하늘을 날며 독을 뿌리는 그들에게 상대도 되지 않았다.

"기다리거라. 네 놈들은 저 악신의 수급을 취한 후에 황제께 제물로 바칠테니."

"살고 싶다면 행여나 도망칠 생각은 하지 마라. 우리 혈족의 독은 수천 년의 역사를 가진 비전의 독이니라. 일부러 즉사하지 않도록 독의 농도는 낮췄지만, 그렇다해도 너희들의 능력으로 해독은 불가능하다."

성녀와 검은 부족원들은 공포에 질렸다.

그만큼 암살일족이라 불리는 킬러비 일족의 악명은 유명했다.

그들이 그동안 암살한 신의 숫자가 열을 넘어갔으니.

킬러비 일족의 숫자는 적었지만, 그들은 신조차 위협하는 맹독과 창공을 자유롭게 누비는 날개로 한때는 대륙의 공포로 군림했었다.

지금의 황제가 나타나기 전의 이야기였지만 말이다.

킬러비 일족이 신을 사냥하러 떠난 뒤 남겨진 검은 부족원들은 중독된채 절망과 공포에 사로잡혀 죽어가고 있었다.

만약 킬러비 일족이 신을 죽이고 돌아온다면 당장 생명은 건질 수 있을지 모르지만, 제국으로 끌려가 잡아먹히거나 평생 노예로 전락할 운명이었다.

그들이 할 수 있는 것은 그저 자신들이 모시는 유일신의 승리를 기원하는 것 뿐이었다.

구구구궁!

순간 하늘이 갈라지며 신께서 모습을 드러내셨다.

성녀는 상처하나 없어보이는 신의 모습을 보며 자신의 불신을 책망했다.

하긴 어찌 미천한 암살자들이 감히 위대하신 유일신님을 해할 수 있겠는가.

드드드드!

신께서 지옥불처럼 이글거리는 시뻘건 안광으로 지상에서 죽어가는 자신과 일족들을 굽어보았다.

그 무시무시한 눈동자에 한순간 연민이 어린 것으로 보인 것은 그저 자신의 착각일까?

[기적 사용]

신이 말씀하셨다.

쏴아아아!

그러자 갑자기 하늘에 먹구름이 끼더니 눈부신 황금빛을 머금은 비가 쏟아지기 시작했다.

치이익!

빗방울에 몸에 닿자 죽어가던 검은 개미부족원들의 몸에서 달군 쇠가 식어가듯 검은 연기가 피어나기 시작했다.

신께서 내려주신 기적의 비가 죽어가는 부족원들의 병마와 독을 씻어내고 있었다.

"아아, 유일신님."

죽음의 늪에서 건져진 성녀와 검은 부족들이 감격한 눈으로 눈물을 쏟으며 유일신을 올려다보았다.

유일신의 외모는 대악마처럼 무시무시했지만 그것은 겉모습만의 이야기였다.

어찌 이리도 자애로우실 수 있단 말인가.

이런 분을 잊고, 수백 년 동안 더러운 토굴에 방치하다니.

조상과 자신들의 행태에 부끄러움마저 들 정도였다.

그때 기적을 내려준 유일신이 갑자기 비틀거렸다.

쿵! 콰콰쾅!

"시, 신이시여!"

놀라운 기적을 베푸신 신께서는 기력을 다하셨는지 그만 쓰러지시고야 말았다.

마치 어미를 잃은 새끼양처럼 검은 개미부족들이 서글프게 외쳤다.

"아, 안 돼!"

"신께서 쓰러지셨다!"

"성녀님! 부디 제 몸을 신께 제물로 바쳐주소서!"

신, 특히 악신에게 최고의 제물은 바로 인신공양이다.

검은부족들이 유일신을 위해 초개처럼 자신의 목숨을 던지려했다.

그때 성녀가 부족원들을 향해 결연히 말했다.

"여러분, 저기 우리들을 위해 쓰러지신 유일신님의 모습이 보이지 않나요? 저런 자애로운 분께서 과연 여러분의 희생을 바라시겠습니까?"

부족원들이 숙연해졌다.

그렇다.

겉모습은 비록 흉측한(?) 괴물 같았지만, 사실 천사처럼 자애로운 마음을 가진 우리의 신께서는 결코 인신공양 같은 것을 원하지 않으실 것이다.

"신도들이 보내는 신실한 믿음이야말로 신께 드릴 수 있는 최고의 공물입니다! 유일신님의 회복을 위해 우리 모두 신앙의 증거를 보입시다!"

검은 부족원들이 함성을 지르며 성녀에게 동조했다.

"성녀님 말씀이 옳습니다!"

"신께 우리의 믿음을 보입시다!"

"유일신님을 위하여!"

"와아아아아!"

열성적으로 함성을 지르는 성녀와 부족원들의 눈동자가 시뻘겋게 충혈됐다.

띠링!

[성녀와 그 휘하 100마리의 신도들이 광신(狂信) 상태에 빠졌습니다.]

띠링!

[광신의 결과물이 생성됩니다.]

가화만사성의 유일신입니다. 끝

ⓒ 크래커™

=======================================

퀘스트 하는 유일신입니다.

26.

얼마나 지났을까?

나는 이부자리에서 눈을 떴다.

"선생님, 일어나셨어요?"

눈을 뜨자 미소녀가 있었다.

"아, 미리씨? 여긴 어떻게?"

"약속시간이 지나도 선생님이 안오시길래 걱정되서 와봤어요. 쓰러져 계셔서 혹시 무슨일 있는 줄 알고 제가 얼마나 놀랐는지 아세요? 아무리 귀찮아도 잠은 이불에서 주무셔야죠."

"하하, 죄송합니다."

머리를 긁적이며 멋쩍게 웃자 미리씨가 갑자기 내 얼굴을 빤히 들여다보았다.

"왜 그렇게 보세요?"

"선생님, 혹시 피부관리 받으세요?"

"네? 그게 무슨 소리세요?"

"선생님 피부가 너무 좋아서요!"

미리씨가 무슨 말을 하나 싶어서 방구석에 있는 거울을 들여다보았다.

"?"

잦은 밤샘으로 다크써클이 늘어져 있던 내 얼굴이 잡티하나 없을 정도로 매끈했다.

변화는 피부뿐만이 아니었다.

몸 상태가 지나치게 좋았다.

항상 뭉쳐있던 어깨결림도 없었고, 만성 두통도 사라졌다.

이런 기분은 한 10년만에 느껴보는 것 같다.

"그런데 선생님. 저건 뭐에요?"

미리씨가 손으로 가리킨 곳에는 내 팔뚝만한 조각상이 있었다.

뭐야, 저건? 내 방에 저런 게 있었나?

근데 뭐 저렇게 무섭게 생겼냐.

절 입구 사천왕 신상의 얼굴은 어린 아이처럼 보일 정도로 무시무시하게 생겼다.

어휴, 꿈에 나올까봐 무섭네.

내 눈이 그것을 감정했다.

[검은 부족의 신 '유일신' 의 신상]

-검은 부족원들이 기적을 베푼 유일신에 대한 감사와 광신을 담아 정성스레 신의 모습을 본따 만든 신상이다.

특이사항 : 못생겼다.

시발, 특이사항란에서 상처받았다.

이 개미들이 살려줬더니 그 보답으로 이런 쓰레기를 내 방에 투척하다니!

"저 석상 어쩐지 선생님 닮은거 같아요."

뭐라고요?

지옥에서 지옥불로 사람들 통구이하며 킬킬거릴 얼굴인데 저런게 날 닮다니요.

아무리 미리씨라고 해도 화낼겁니다?

"그런데 어쩜. 볼수록 멋있다. 좀 귀여운 거 같기도 하구. 선생님, 혹시 필요없으시면 이거 저 주시면 안되요? 네?"

저기, 농담이시죠?

아니 눈빛이 초롱초롱한게 농담 하는 건 아닌 것 같다.

"미리씨? 아무래도 안과를 가보는 게 어떨까요."

미리씨의 안구 건강을 염려하고 있을 때, 친절하게 내 눈에 석상의 특이 사항란이 추가되었다.

[특이사항 : 못생겼다. 하지만 유일신의 신도들에게는 유일신의 신상이 강한 '매력 보정'을 받는다.

신도들에게는 이 신상이 마치 사랑에 빠진 연인처럼, 눈에 꽁깍지 씌인 상태로 보인다.]

미친. 그딴 보정 필요없어!

***

예의 그 트레이닝을 빙자한 미리씨의 봉인 해제 작업을 끝냈다.

SS급의 봉인인지라 진척이 느려서 적어도 한달 정도는 더 이렇게 해야할 것 같았다.

"랄라~."

한편 내 석상을 품에 꼭 안고 귀가하는 미리씨의 뒷모습을 보니 복잡 미묘한 기분이 들었다.

하도 애걸복걸해서 주긴 했지만, 한참 감수성 예민한 소녀의 집에 저런 흉물스런 것이 존재해도 과연 괜찮은걸까.

['소리없이 기어오는 악몽' 께서 자기도 석상이 가지고 싶다며 암컷 인간을 부러워합니다.]

['모든 것을 베는 천검' 자신이 준 권능의 대단함도 모르는 우매한 어린놈이라며 울컥합니다.]

머릿속으로 두 스토커의 메시지가 울려퍼졌지만 무시했다.

아직도 새벽에 중국집에서 칼부림 하던 기억을 떠올리면 경기가 인다.

내가 다시는 이 스토커들을 상종하면 사람이 아니다.

"후, 그럼 본격적으로 작업을 해볼까."

나는 마음을 다잡고 반쯤 타버린 밥상 위에 노트북을 척 올려놓았다.

웬지 글이 잘써질 것만 같은 기분이다.

이제부턴 정말 마감뿐이야!

그렇게 창작열에 불타 노트북을 노려보았다.

하지만.

"띠발."

노트북 화면이 내 통장 잔고처럼 텅텅 비어있었다.

의지와 작업 속도는 꼭 비례하지만은 않나보다.

진짜 더럽게 안써지네.

"에휴."

깊게 한숨을 내쉬며 널부러진 내 눈에 방구석에 놓여 있는 핸드폰에 들어왔다.

나도 모르게 자연스레 갓메이커를 실행했다.

흠흠. 이것은 게임을 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소재를 얻기 위해서다.

저번에 독에 중독되어 쓰러졌던 개미들의 상태가 걱정되기도 하고 말이다.

[갓메이커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당신의 성향과 플레이에 따라 선신도, 악신도 될 수 있습니다.]

예의 무미건조한 메시지와 함께 화면이 전환됐다.

스스스.

처음 보인 것은 토굴 안에서 웅성거리며 모여있는 개미들이었다.

그들은 무언가를 중심으로 원처럼 모여 있었는데, 환희와 절망의 감정이 공존하고 있었다.

내가 개미들의 감정을 느낄 수 있는 것은 그들과 내가 서로 신과 신도의 관계로 엮여 있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근데 대체 뭐가 있길래 저러는거야?

궁금해하는 날 봤는지 흰개미 성녀가 경건히 고개를 조아리며 나를 맞았다. 그러자 다른 개미들도 일제히 넙죽 엎드렸다.

그러자 겨우 개미들이 에워싸고 있던 것이 보였다.

실눈을 뜨고서야 겨우 보였던 그것은 개미의 더듬이 길이보다 작은 싹이었다.

내 눈이 그것을 감정했다.

[세계수의 새싹]

-무성이다. 갓 태어난 세계수의 싹으로 세계수의 열매를 흡수한 유일신이 내린 기적의 영향으로 발아했다.

특이사항 : 병들었다. 곧 시들 것 같다.

남은 생존 예상 시간 : 24 시간 30분 39초

세계수의 열매?

설마 전에 개미들이 내게 공물로 바쳤던 그 이상한 열매를 말하는걸까?

그당시 끔찍한 전신화상을 입었던 난 그것을 먹고 순식간에 나은 적이 있었다.

그때는 그것을 못팔아먹은게 아쉬웠다.

하지만, 이 새싹이 그 세계수란 말이지.

순간 물욕이 피어올랐다.

만약에 이 새싹이 무럭무럭 자라 내가 그때 먹었던 열매가 가득 열리는 나무로 자란다면······.

대박이다!

연금조차 나오지 않는 작가의 불안한 노후대책이 완벽히 해결되는 것이다.

하지만 내 희망찬 노후계획의 걸림돌이 있었으니.

특이사항 : 병들었다. 곧 시들 것 같다.

남은 생존 예상 시간 : 24 시간 29분 49초

지금 순간에도 생존 예상 시간이 빠르게 줄어들고 있었던 것이다.

난 주먹을 불끈 쥐며 결심했다.

"살리자!"

내 희망찬 노후를 위해서.

-오오, 신께서 우리를 위해 세계수를 부활시켜 주시려 하신다!

-역시 유일신님이시다! 위대하신 신을 찬양하라!

-꺄악! 유일신님 사랑해요!

그런 내 모습에 개미들이 감격하며 덩실덩실 춤을 추었다.

[유일신이 '세계수의 새싹' 에게 성장신의 가호를 내립니다.]

내가 처음 시도해본 것은 박카스, 아니 성장신의 가호를 새싹에게 뿌려보는 것이었다.

젓가락으로 살짝 성장신의 가호를 찍어서 새싹에게 살짝 한방울을 떨어뜨리자.

츠츠츠.

새싹이 푸른 빛에 휘감기며 잠시 생기를 찾았다.

"오오!"

하지만 그것도 찰나, 곧 잎사귀가 샛노랗게 변하며 원래대로 축 시들어 버리는게 아닌가.

띠링!

[병마가 세계수의 성장을 방해하고 있습니다.]

나름 좋은 아이디어라고 생각했지만 안되나보다.

"할 수 없나."

차안으로 '신의 상점'을 활성화시켰다.

띠리링!

그러자 언제나 그렇듯 족히 수천 개는 될 것 같은 메뉴창이 떴다. 이 중에서 분명 이 상황에 쓸만한 권능이나 아이템이 있을 것이다.

에휴, 그래도 뭐 이건 찾는 것도 일이겠네.

그렇게 생각하고 있을 때.

New! 라고 써진 품목들이 상단에 있었다.

뭐지? 새로 입고된 물품들인가?

그 중에서 한가지 아이템이 내 눈에 들어왔다.

New! [한없이 베푸는 풍요의 눈물 (하급신)]

카테고리 : 선신 전용 아이템

구매금액 : 20,000 coin

효과 : 여신의 은혜가 담긴 신기로 모든 식물의 병을 낫게 한다.

특이사항 : 단 여신이 인정한 선한 자만이 사용할 수 있다.

구매를 원할 시 퀘스트가 발생하며 그것을 완수해야만 상품을 수령할 수 있습니다.

주의 : 퀘스트를 완수하지 못할 시에 구매 금액은 환불되지 않습니다.]

"오?"

일단 모든 식물의 병을 낫게 한다는 문구가 내 눈을 사로잡았다.

이거라면 비실비실한 세계수의 새싹을 치료할 수 있겠다 싶었다.

하지만 퀘스트를 완수해야만 한다는 조건이 좀 마음에 걸렸다.

게다가 환불도 안된다니. 실패하면 그냥 먹튀하겠다는 소리 아냐?

"음."

고심 끝에 구매 버튼을 눌렀다.

다른 품목들을 검색해봤지만 식물의 치료에 도움이 되는 것은 이것뿐이었다.

회복에 관련된 다른 아이템은 백만 단위가 넘어가는 고가기도 했고.

"뭐 이제 이만 갓코인 정도는 큰 부담은 안되니까."

투자할 가치가 있다.

띠링!

[한없이 베푸는 풍요의 눈물]을 구매하셨습니다.

20,000Gcoin 이 차감됩니다.

퀘스트가 발생합니다.

약간의 설렘과 기대감이 벅차올랐다.

과연 어떤 퀘스트일까?

장르 작가답게 생각한다면 보통 이런 상황에서는 어려운 시련이 내리던데. 사건이 발생할 장소를 미리 알려주고 사람들을 구하는 거라던지 말이다.

아, 그래도 너무 어려운 퀘스트가 나오면 걱정이긴 하다.

그래도 여차하면 미리씨도 있고 어떻게든 되겠지?

띠링!

곧 갓메이커에 퀘스트 텍스트가 떴다.

[퀘스트 : '하루에 하나씩 착한 일을 하면 온 세상이 아름다워질거야.']

'엥? 무슨 이름이 이래?'

-'한없이 베푸는 풍요'께서는 자애로운 선신입니다.

그녀의 권능이 담긴 아이템을 사용하기 위해서는 사용자의 선함을 증명해야합니다.

그 어떤 사소한 선행도 좋습니다.

자애로운 선신들은 선행에 경중을 따지지 않으십니다.

[퀘스트 완료까지 달성해야 할 선업 수치 : 0/100]

-기간 : 무제한

"어, 음."

복잡미묘한 기분이 들었다.

뭔가 생각했던 것과 많이 다르다.

그러니까 지금 착한 일을 하라는 거지?

***

'하루에 하나씩 착한 일을 하면 온 세상이 아름다워질거야.' 란 낯부끄러운 이름의 퀘스트처럼 일일일선을 행하는 것도 나쁘진 않지만, 그랬다가는 세계수의 새싹이 시들어 죽어 버릴거다.

가급적 오늘 하루 안에 이 퀘스트를 끝내야했다.

그래서 당장 행동에 나섰다.

척.

난 집게로 손에 든 쓰레기 봉투에 담배 꽁초를 담았다.

그러자.

띠링!

[당신은 세상의 정화에 이바지했습니다.

선업이 1 올랐습니다.

퀘스트 완료까지 달성해야 할 선업 수치 : 10/100]

"오. 또 1 올랐다."

집 주변을 돌며 쓰레기를 주운지 한 시간째.

선업 수치를 무려 10이나 올릴 수 있었다.

"후후, 이거 보람도 있고 좋네."

이마에 맺힌 구슬땀을 소매로 훔치며 깨끗해진 거리를 보니 기분이 나쁘지 않다.

이 맛에 착한 일을 하는 건가.

좀 지루하긴 하지만 이 속도면 선업 100을 달성하는 것도 어렵지 않을 것 같았다.

"좋아! 희망찬 노후를 위해 힘내자 유일신!"

나는 만병통치약인 열매가 주렁주렁 열릴 세계수의 모습을 떠올리며 의욕을 고취시켰다.

그래. 그랬던 때가 있었지.

[퀘스트 완료까지 달성해야 할 선업 수치 : 10/100]

"왜! 왜 더이상 안오르는거야!"

세시간이 넘게 청소를 해도 미동도 하지 않는 내 선업 수치를 확인하기 전까지는 말이다.

퀘스트 하는 유일신입니다. 끝

ⓒ 크래커™

=======================================

최강의 청소부

27.

그 남자의 이름은 최강산.

이 바닥에서 잔뼈가 굵은 몸이다.

말하자면 스페셜 리스트라고 할까.

하지만 오늘 그의 아성을 위협하는 놈이 나타났다.

최강산이 사납게 눈을 빛내며 자신의 구역을 침입한 애송이 놈을 노려보았다.

***

나는 집 근처의 지하철역에 와있었다.

한참을 쓰레기를 주워도 선업 수치가 오르지 않자, 장소를 바꿔보기로 한 것이다.

'오! 오른다!'

[당신은 세상의 정화에 이바지했습니다.

선업이 1 올랐습니다.

퀘스트 완료까지 달성해야 할 선업 수치 : 11/100]

과연 내 생각이 옳았는지 정체되어 있던 선업 수치가 오르기 시작했다.

나는 집게로 집은 빈 캔을 재활용 쓰레기봉투에 넣었다.

후후, 나 유일신. 분리수거도 철저히 하는 남자다.

[당신은 세상의 규범을 잘 따르는 훌륭한 준법자입니다.

선업이 1 올랐습니다.

퀘스트 완료까지 달성해야 할 선업 수치 : 12/100]

"헤헤, 오른다. 올라."

좋아. 잠시 정체됐었지만 이런 사소한 선행으로도 선업이 오른다면 오늘 안에 100 정도는 충분히 채울 수 있겠다.

난 건강해진 세계수에서 주렁주렁 달릴 만병통치약인 열매들을 상상하며 흐뭇하게 웃었다.

하지만 그때 뒤에서 누군가의 손이 내 어깨를 덥썩 잡았다.

"애송아, 지금 내 구역에서 뭘 하는 거냐?"

흠칫 놀라며 고개를 돌리자 회색빛의 수염을 길게 기른 노인의 얼굴이 보였다.

꾀죄죄한 깔깔이에 쥐색 잠바를 걸친 노인의 등에는 망태기가 매어져 있었다.

등에 식은땀이 흘렀다.

이, 이분은?

요즘에는 좀 뜸해졌지만 주로 역 근처에서 서식하는, 노로 시작하고 숙자로 끝나는 단어의 주인공이 아니신가.

나를 위아래로 훑는 노인의 눈빛이 살벌했다.

"여기는 감히 너 같은 풋내기가 올 곳이 아니다."

그래. 얼핏 들은 적이 있다.

노숙자들은 자신의 구역에 대해 매우 민감하다는 것을.

나는 객관적으로 지금의 내 상태를 점검해보았다.

안 감아서 까치집인 머리에 허름한 츄리닝, 그리고 몇시간 동안 청소를 하느라 먼지와 땀으로 지저분한 내 모습은 자신의 구역을 침범하는 신입 노숙자로 보일 수도 있을 것 같았다.

"저기, 뭔가 오해를 하신 거 같은데요. 전 그런 사람이 아니거든요. 아. 저, 이걸로 식사라도."

나는 주머니에 있는 꾸깃꾸깃한 지폐 하나를 꺼내보았다.

내 전재산 오천원이었다.

"흐흐, 지금 감히 나 최강산에게 적선을 하는 것이냐!"

그러자 노숙자 노인이 눈을 부리부리 뜨며 날 노려보았다.

"죄, 죄송합니다."

무안함에 황급히 주머니에 다시 지폐를 넣으려고 했는데.

휙!

내 손에서 지폐가 사라졌다.

"어?"

사라진 내 지폐는 구멍뚫린 면장갑을 낀 노인의 손에 쥐어져 있었다.

마치 매가 병아리를 낚아채는 것 같은 엄청난 속도였다.

"하지만 나 최강산. 사나이의 성의를 무시하지 않지."

그러더니 슥 자신의 바지 주머니에 넣어버렸다.

흑. 안녕.

내 율곡 이이 선생님.

내 돈을 꿀꺽한 노숙자 노인이 근처 편의점 안으로 성큼성큼 들어갔다.

그 뒷모습을 보며 가슴이 쓰렸지만, 그래도 혹시 하는 기대감은 있었다.

'노숙자 할아버지한테 적선한 거니까 선업이 오르지 않을까?'

하지만 기대와 달리 선업 수치는 변하지 않았다.

'왜지? 분리수거해도 선업이 오르는데 이건 왜 안 올라?'

도무지 알 수 없는 시스템에 당황하고 있을 때, 노인이 편의점에서 나왔다.

"크으, 역시 술은 낮술이지!"

시바. 왜 안 오르는지 알겠다.

양손에 소주병을 들며 희희낙락하는 노친네의 얼굴을 본 순간 분노가 치밀어 올랐다.

울컥한 마음에 나도 모르게 언성을 높였다.

"이봐요. 할아버지!"

"뭐 인마?"

병나발을 불던 노친네가 성큼성큼 내게 다가왔다.

"지금 감히 나 최강산에게 할아버지라고 부른 것이냐!"

우드득!

그가 굽은 허리를 꼿꼿이 펴자 순식간에 나보다 키가 머리 하나는 더 커졌다.

게다가 후줄근한 잠바로 가려져 있었지만, 가까이서 보니 이 노친네 몸이 장난이 아니다.

소주병을 든 저 팔뚝만 해도 내 가는 팔의 두 배는 되었다.

흐, 흥! 그래도 누가 쫄 줄 알고!

내게는 쇠도 씹어먹을 젊음이 있다!

"할 말이 있으면 해봐라!"

쨍그랑!

그때 노인이 든 소주병이 과자처럼 부서졌다.

"쩝. 요즘 병은 너무 부실하군."

바닥에 쏟은 술이 아깝다는 듯 입맛을 쩝쩝 다시는 노인네.

저, 저게 저렇게 맨손으로 부술 수 있는 물건이었나?

"그래서 뭐?"

나는 손에 든 재활용 쓰레기를 내밀었다.

"이, 이거 드리고 싶어서요."

손이 덜덜 떨리는 건 절대 쫄아서 그런 게 아니다.

그러자 노인이 콧방귀를 꼈다.

"흥, 나 최강산. 그런 자잘한 쓰레기는 취급하지 않는다. 내가 처리하는 건 더 크고 세상에 해로운 쓰레기뿐이지!"

아, 네 그러세요?

난 더는 이 미친 노인과 엮이지 않는 게 상책이란 걸 본능적으로 느꼈다.

"그럼 형님, 수고하세요. 전 바쁜 일이 있어서 먼저 가보겠습니다."

덥썩!

도망치듯 사라지려는 내 어깨를 술에 젖은 손이 움켜잡았다.

"왜, 왜 그러세요?"

"지금 나보고 형님이라고 한 것이냐?"

험악하게 날 노려보는 미친 노인네를 보고 있자니 눈물이 날 것 같다.

젠장, 재수도 오지 게 없지.

그런데 이 노친네가 갑자기 어깨를 들썩이며 웃기 시작하는 거 아닌가.

"보기보다 보는 눈이 있는 애송이로군! 하긴 내가 좀 동안이긴 하지! 마음에 들었다. 너 어디 소속이냐?"

로키미디어요.

순간 내가 계약한 출판사를 말하려다, 원고 안 줘서 잘린 게 떠올랐다.

흑, 갑자기 좀 서럽다.

"······지금은 프리랜서인데요."

"오, 하긴. 혼자인 게 속 편하긴 하지. 더 마음에 든다. 하하하!"

그러면서 내 어깨를 팡팡 두드렸다. 윽, 더럽게 힘도 좋은 게 분명 피멍이 들었을 것 같다.

어떻게 이 괴력 미친 노친네한테 벗어날까 고민하고 있을 때.

위이잉!

갑자기 사이렌 소리가 요란하게 울려 퍼졌다.

귀에 익은 소리다.

화재 현장에 출동하는 소방차보다도 데시벨이 훨씬 높은 이 소음은 게이트나 던전이 나타났을 때 울려 퍼지는 경고다.

뭐야? 설마 근처에 몬스터라도 나타난 거 아냐?

가시뿔소의 트라우마가 떠올라 나도 모르게 몸이 움찔 떨렸다.

하지만 그런 나와 다르게 노친네의 눈빛이 희번뜩하게 빛났다.

"크크, 나타났나? 역시 미라클의 예지는 정확하군."

미라클? 어디서 많이 들어본 이름인데 누구더라?

"형님. 아무래도 무슨 일이 벌어진 거 같은데 전 먼저 실례하겠습니다."

진짜 몬스터가 나온 거라면 빨리 대피해야 한다.

근처에 있던 사람들도 서둘러 역 안의 대피소로 달려가는 모습이 보였다.

하지만 이 노친네는 뭔가 다른 오해를 하는 것 같다.

"호오, 너도 가겠다는 거냐? 좋아. 따라와라. 이 형님의 실력을 보여주지."

"네? 어디를 따라······"

내가 채 대답을 하기도 전에 그의 손이 율곡이이님을 움켜쥔 것처럼 내 목덜미를 덥썩 움켜잡았다.

그리고.

쾅!

도약했다.

"하하핫! 시원하군!"

지금 꿈을 꾸고 있는 것일까?

휘이이잉!

내 발이 딛고 있는 땅이 사라지고 대신 귀싸대기 때리듯 날카로운 강풍이 얼굴을 때렸다.

아까 이 노친네가 내 오천 원을 강탈할 때 매가 병아리를 채가는 것 같은 움직임이라고 표현했는데 말이 씨가 되었다.

왜냐하면, 지금 내가 지금 그 병아리가 되었기 때문이다.

내 발아래로 마치 장난감처럼 작고 귀여워 보이는 빌딩들이 비쳤다.

'시발! 생각났다!'

어쩐지 이 노친네 조금 낯이 익더라니.

환경미화원으로 평범하게 살다 던전이 발생한 학교에서 딸을 구하기 위해 능력을 드러낸, 대한민국의 전설적인 남자.

이명은 청소부.

S급 헌터 최강산!

"응? 내 얼굴에 뭐 묻었나? 뭐 그리 빤히 쳐다보나 동생."

꼬르륵!

해맑게 묻는 그의 얼굴을 마지막으로 난 게거품을 물며 기절했다.

***

최강산은 손에 축 늘어진 채 기절한 유일신을 어이없다는 눈으로 보았다.

"뭐야, 이놈? 지금 기절한 건가? 이상하군. 못해도 최소 B급으로 보였는데?"

현역에서 몇 년 손을 뗐더니 감이 무뎌진 걸까.

처음 유일신을 보았을 때 그에게서 느껴지는 기운이 범상치 않았는데 말이다.

그래, 마치 그 뇌제라는 귀여운 아이처럼 말이다.

"뭐 그건 나중에 생각하기로 하고."

최강산이 기절한 유일신을 휙 뒤로 던지고는 척척 앞으로 걸어갔다.

그가 향하는 곳에는 '그것'이 있었다.

"균열 생성 확률 80%라더니 과연 미라클의 예지는 여전하군."

허공에 마치 거대한 짐승이 할퀸 것 같은 갈라진 틈이 있었다.

[??? 의 사도, 지구에 진입한다.]

그리고 지구의 언어가 아닌 기이한 문자가 허공에 새겨지더니.

쩌적! 쩌저적!

갈라진 틈을 억지로 비집으며 괴물이 모습을 드러냈다.

20m는 되어 보이는 그 괴물의 겉모습은 마치 개구리를 닮았다.

하지만 머리에 돋은 거대한 뿔과 아가리를 비집고 튀어나온 백상아리 같은 날카로운 이빨들은 그것이 개구리같이 무해한 생물이 아님을 보여주었다.

"겨우 베엘제부포 (Beelzebufo)냐."

그 형상이 악마를 닮았다 하여 바알제불의 이름을 따기도 한 흉포한 몬스터. 한국명은 악마 뿔개구리.

출몰 빈도는 높지 않았지만, 무려 A급에 랭크된 몬스터였다.

"오래간만에 몸풀기는 좋겠군."

하지만 S급 헌터인 그가 겨우 A급 몬스터를 단신으로 토벌하는 것은 어렵지 않은 일이다.

그러나 최강산은 몰랐다.

지금 출몰한 저 베엘제부포의 뿔 사이에 검은 돌기 같은 왕관이 씌워져 있다는 것을.

그는 베엘제부포 중에서도 특출난 개체로, 위대한 신에게 총애를 받는 킹 베엘제부포였다.

일명 왕개구리가 우묵한 눈을 꿈틀거리더니 구석에 널브러져(?) 있는 유일신을 응시했다.

-저것이 그 소문의 어린 신인가? 운이 좋군. 다른 놈들이 오기 전에 내가 제일 먼저 도착하다니. 놈을 바치면 내 주인께서도 필경 기뻐하시겠지.

왕개구리가 살아있는 뱀이 박혀있는 혓바닥을 날름거리며 자신을 가로막고 있는 최강산에게 경고했다.

-비켜라, 늙은 인간아. 오늘은 기분이 좋으니 넌 살려주마.

이 상황에 흡족해하며 자비롭게 말하는 왕개구리였지만.

"크, 그놈 더럽게 울어대네."

하지만 최강산에게는 그저 괴물이 개굴개굴하며 우는 소리로밖에는 들리지 않았다.

"흐읍!"

최강산이 주먹을 불끈 쥐며 깊게 심호흡했다.

짜아악!

그러자 그가 입고 있던 상의가 갈가리 찢겨나가며 폭발할 것 같은 강인한 구리빛 근육이 모습을 드러냈다.

최강산이 누런 이를 드러내며 히죽였다.

"흐흐, 좋아. 오늘 저녁 술안주는 개구리 뒷다리다!"

-이런 건방진! 감히 인간 주제에 위대한 신께 총애를 받는 나를 막겠다는 거냐!

왕개구리는 감히 자신을 가로막는 최강산의 모습에서 분노했다.

번쩍!

그러자 왕개구리의 몸이 갑자기 눈부신 황금빛으로 빛나며 엄청난 기운이 뿜어지기 시작했다.

쿠구구궁!

그 여파에 지진이라도 난 듯 대지가 요동쳤다.

-하찮은 미물아! 보아라! 이것이 신의 총애를 받는 자의 힘이다!

최강산은 예상 이상의 왕개구리의 기운에 잠깐 당황했지만, 곧 미친 듯이 웃기 시작했다.

"하핫! 내가 몇 년 쉬는 동안 악마뿔개구리 수준이 이리 높아졌는가! 좋아! 이 정도라면 내가 전력을 다해도 되겠군!"

-이 주제도 모르는 것이! 오냐! 정 그렇게 소원이라면 미물에게 위대한 신의 힘을 보여주리라!

"와라! 개구리!"

최강의 인간과 최강의 괴물이 서로에게 살의를 뿜으며 격돌하려는, 그 일촉즉발의 순간.

띠링!

기절해 있는 유일신의 핸드폰에서 메시지가 떠올랐다.

[권능의 소유주에게 위협적인 살기를 감지했습니다.]

[사용 조건을 만족했습니다.]

[소리없이 기어오는 악몽] 에게 받은 고유권능 '밤에 피는 장미' 가 발동합니다.

"응?"

-크르?

둘이 무심코 고개를 뒤로 돌렸다.

그리고 한 인간과, 한 마리는 곧 끔찍한 악몽을 마주하게 되었다.

"으아아악! 저게 뭐야!"

-꾸에에엑!!

휘리릭!

꿀꺽!

······조용.

최강의 청소부 끝

ⓒ 크래커™

=======================================

네가 왜 거기서 나와? (수정)

28.

띠링!

[당신은 사악한 악신의 수하를 쓰러뜨려 세상의 평화에 이바지했습니다.

선업이 1,000 올랐습니다.

퀘스트 선업을 초과 달성했습니다.

달성한 선업 : 1,012/100

축하합니다! '하루에 하나씩 착한 일을 하면 온 세상이 아름다워질 거야' 퀘스트가 완료되었습니다!

퀘스트 보상으로 신기 아이템 [한없이 베푸는 풍요의 눈물]이 지급되었습니다.

[한없이 베푸는 풍요의 눈물]의 효과가 발동하며 병든 세계수의 새싹을 치유합니다.

띠링!

초과 선업 달성으로 대선신 '한없이 베푸는 풍요' 의 호감도가 크게 오릅니다.

그분께서 앞으로도 당신의 선행을 주의 깊게 지켜보겠노라 전언하십니다.]

...

...

.....

나는 최고급 레스토랑에서 요리를 먹는 꿈을 꾸었다.

냠냠, 쩝쩝쩝!

살짝 닭고기 같으면서도 그것과는 비교할 수 없을 만치 담백하고 고소했다.

그야말로 끝내주는 요리!

역시 비싼 곳이 짱인가보다.

헤헤, 맛있다. 맛있어.

그렇게 정신없이 요리를 먹고 있을 때.

콰드득!

이빨에 돌처럼 단단한 게 씹혔다.

"윽!"

나도 모르게 얼굴을 와락 구겼다.

그것은 딱딱할 뿐만 아니라, 마치 구정물에 담근 행주처럼 역겨운 맛이었다.

나도 모르게 본능적으로 그것을 뱉어냈다.

퉤!

***

나는 눈을 떴다.

"웩!"

동시에 헛구역질 하며 침을 퉤퉤 뱉었다.

분명 꿈이었지만 얼마나 더러운 맛인지 아직 혓바닥에 그 여운이 진득하게 남아있었다.

으, 내가 비위가 약한 게 아닌데도 불구하고 이 정도라니. 꿈에 또 나올까 두려운 맛이다.

그런데 여긴 어디지?

그 미친 노친네 때문에 고소 공포 체험을 하고 기절한 것까지는 기억이 나는데.

"이 양반은 왜 여기서 자고 있어?"

내게 얼마 떨어지지 않은 길바닥에서 그 노친네가 코를 골며 자고 있는 게 보였다.

"윽!"

그에게 다가가다 나도 모르게 코를 움켜쥐었다.

노친네는 온몸에 끈적끈적한 검은 액체를 흠뻑 뒤집어쓰고 있었는데 악취가 장난 아니었다.

"크, 하수구라도 빠지셨나? 냄새 한번 지독하네."

어쩐지 낮부터 깡소주를 나발 불더라니 발이라도 헛디뎠나 보다.

"히익. 엄니. 무서워유."

거기다가 잠꼬대까지 한다.

"하아. 가지가지 하시네."

이런 주정뱅이 노친네가 S급 헌터라니 우리나라의 미래가 암울하다.

괜히 더 얽혀봐야 머리만 아플 것 같아서 그냥 남겨두고 귀가하기로 마음먹었다.

"어디 보자."

두리번두리번.

오, 있다.

그래도 그냥 두고 가기에는 양심에 걸려서 근처에 굴러다니고 있는 신문지를 덮어주었다.

펄럭, 펄럭.

몸에도 한 장, 다리에도 한 장, 마지막으로 머리에도 한 장.

후, 내가 봐도 난 너무 착한 듯.

혹시 이 착한 행동에 선업이 오르지 않았는지 갓메이커를 확인해보는 순간.

"어?"

진행 중이던 선업 퀘스트가 완료된 건 물론 심지어 초과 달성되어 있었다.

게다가 설명이 더 가관이다.

악신의 수하를 쓰러뜨려 세계 평화에 이바지했다고?

'내가 언제?'

설마 저기 쓰러져 있는 노숙자 영감이 악신의 수하인 것은 아닐 테고.

내가 기절해 있는 동안 대체 무슨 일이 일어났던 거지?

['눈먼 신의 눈' 고유 권능이 발동합니다.]

의문을 품고 있을 때 갑자기 내 고유 권능이 발동하며 풍경이 변했다.

거대한 나무가 서 있었다.

마치 하늘을 받치는 기둥처럼 웅장하고, 오색으로 신비롭게 빛나는 잎사귀는 무지개처럼 아름다웠다.

그 나무에는 알을 닮은 듯한 열매들이 주렁주렁 매달려 있었는데 하나같이 신령스러운 백광을 뿜고 있었다.

하지만 그 신비로운 나무조차.

그 아래서 경건하게 기도하고 있는 여인의 강렬한 존재감에는 미치지 못했다.

베일을 쓰고 눈처럼 순백의 머리칼을 땅에 길게 늘어뜨린 여인은 그저 뒷모습만으로도 사람의 눈을 떼지 못하게 만드는 마력이 있었다.

나도 모르게 홀린 듯 바라보고 있는데 그녀가 문득 고개를 돌리더니 베일을 젖혔다.

스윽.

신이 빚은 예술품이라고밖에는 표현할 길 없는 아름다운 얼굴이 세상에 모습을 드러냈다.

여왕의 위엄과 성녀의 성스러움이 공존하는, 그녀의 붉은 눈동자가 나를 응시했다.

그러자 그녀의 얼굴에 봄날의 햇살 같은 미소가 어렸다.

쿵! 쿵!

심장이 요동친다.

왜지? 이게 갑자기 미쳤나?

그때 그녀가 붉은 꽃 같은 입술을 열며 꿀처럼 달콤하게 속삭였다.

"아아, 돌아오셨습니까. 위대하고 자비로운 저의 신이시여······."

위이이잉!

갑자기 들려오는 사이렌 소리에 정신이 퍼뜩 들었다.

그러자 방금까지 내가 보고 있던 신비로운 풍경은 사라지고 없었다.

대신 건강해진 세계수의 새싹을 동그랗게 에워싼 채, 날 향해 넙죽 엎드리고 있는 흰개미와 검은 개미들이 보였다.

나도 모르게 눈을 비볐다.

헛게 보이는 걸 보니 요즘 몸이 허한가 보다.

집에 가면 라면에 달걀 두 개를 넣어서 몸보신이나 좀 해야겠다.

이곳을 향하는 경찰차와 구급차가 몰려오는 것을 보고 난 서둘러 자리를 떴다.

띠링!

[축하합니다. 세계수의 부활에 성공했습니다.]

[검은 부족 부흥의 기초를 마련했습니다.]

[신도들의 수가 늘고 그들이 번성할수록 그들이 섬기는 당신의 신력 또한 강해질 것입니다.]

띠링!

[검은 부족원들이 세계수를 부활시켜준 당신께 경의와 감사를 담아 '유일신의 석상(2)' 을 추가로 바쳤습니다.]

······그리고 집에 도착하자 미리씨에게 넘겼던 그 못생긴 석상이 두 개로 증식해 나를 맞이했다.

아, 좀. 이러지 마라!

***

헌터 협회.

협회장 이지태가 집무실에서 보고서를 읽고 있었다.

그의 앞에는 슈트 차림에 은테 안경을 쓴, 30대 후반의 남자가 서있었다.

바로 비서실장 최우신, A급 헌터이기도 한 남자는 협회장이 가장 신뢰하는 수하였다.

보고서를 살피던 협회장이 흡족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과연 청소부 최강산이군. 공백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S랭크 균열로 추정되는 몬스터를 가볍게 처리하다니. 그래 입원했다고 들었네만 몸은 좀 어떻던가?"

"몸에는 상처 하나 없으셨습니다."

"허허, 역시 강산이로군. 강골은 여전한가 보군."

"다만."

비서실장이 말끝을 흐렸다.

"왜? 무슨 일이라도?"

"문병으로 꽃을 사갔더니 갑자기 경기를 일으키셔서······."

최우신은 몇 시간 전에 있던 일을 떠올렸다.

몸에 아무 이상도 없으니 당장 퇴원하겠다고 고래고래 소리 지르던 최강산이 자신이 들고 온 꽃바구니를 보더니 게거품을 물며 기절했던 것이다.

"히이익! 꽃! 괴물! 으아악!"

협회장이 혀를 찼다.

"저런, 그 친구 꽃 알레르기가 있었나? 그런 약점이 있었을 줄이야. 다음부터는 조심하도록. 대한민국을 지탱하는 기둥 중 한 명이니."

"넵. 유념하겠습니다."

"그나저나 헌터 아카데미 쪽 일은 잘 진행되고 있나?"

"이미 모든 준비가 끝났습니다. 최강산님이 퇴원하는 대로 프로젝트를 시작하겠습니다."

"그래, 그 친구도 이제 나이가 있으니 일선에서 뛰기보다는 후학을 양성하는 데 주력해줘야지. 아, 그러고 보니 뇌제 그 아이가 아카데미의 학생이었지?"

"네, 그렇습니다."

뇌제는 어린 나이임에도 불구하고 얼마 전에 A급으로 승급한, 세계적으로도 희귀한 전격 계열의 능력자였다.

만약 뇌제가 지금처럼 성장해 S급이 된다면, 앞으로 닥칠 재앙을 막아줄 든든한 교두보가 되어 줄 것이다.

"강산이 그 친구라면 분명 뇌제 그 아이에게 좋은 스승이 되어줄게야."

좋은 스승만큼 성장에 필요한 기폭제는 없었으니까.

협회장이 뇌제와 최강산을 떠올리며 흐뭇하게 웃었다.

두 사제가 있는 이상 대한민국의 미래는 밝았다.

***

"미리씨, 준비됐어요?"

"넵!"

"그럼 잽니다. 준비, 땅!"

번쩍!

쿠르릉!

눈부신 뇌전이 번뜩였다.

그리고 그보다 조금 늦게 뇌성이 울려 퍼졌다.

딸깍!

나는 내 앞을 스쳐 지나가는 빛을 보며 스톱워치를 눌렀다.

"선생님! 몇 초예요?"

파직! 파지직!

몸에 아직 스파크를 두른 채 미리씨가 눈을 반짝반짝 빛내며 물었다.

미리씨, 빛나는 건 둘째 치고 전기라서 그런지 따가운데요.

우리 거리를 좀 둡시다.

"우와 1초 84네요."

"야호! 드디어 2초대를 깼다!"

수학을 놓은 지 좀 돼서 헷갈리지만, 대충 초당 54m를 달린 거니까 시속 200킬로쯤 될 것 같다.

미리씨, 우리 조금만 더 노력해서 KTX도 따라 잡아봅시다.

지금 같은 성장 속도면 충분히 가능할 것 같다.

"다 선생님 덕분이에요!"

"제가 한 게 뭐 있다고요. 다 미리씨가 잘나서죠."

나는 기뻐하는 미리씨에게 은밀하게 검지를 들었다.

스스슥.

그러자 내 시야가 변하며 미리씨의 심상 세계에 웅크리고 있는 괴물이 보였다.

파지직! 파직!

사슬에 묶인 채 마치 모 주머니 괴물처럼 전격을 뿜는 거대한 짐승.

뇌수(雷獸).

처음에는 사납게 이를 드러내며 경계하던 뇌수가 이젠 나를 향해 반갑다는 듯 꼬리까지 살랑살랑 흔들었다.

그래, 그래 착하다.

얘도 보다 보니 이제 좀 귀엽다.

조금 커다란 고양이 같달까?

나는 뇌수를 향해 권능을 발동했다.

[짓뭉개는 신의 검지.]

딸깍!

까드득!

권능을 쓰자 뇌수를 칭칭 감고 있던 사슬 중 하나가 끊어졌다.

트레이닝을 핑계로 삼아 미리씨의 힘을 속박하고 있는 봉인을 이제 거의 절반까지 풀어냈다.

그 정도로도 미리씨의 뇌기가 무서울 정도로 상승했다.

저 봉인을 다 풀어내는 순간 어떤 일이 일어날까?

대한민국의 열 번째 S급 헌터를 내 손으로 만든다고 생각하면 조금 흥분되기도 했다.

"오늘도 수고하셨어요."

"네, 선생님! 그럼 내일 뵐게요!"

꾸벅 90도로 인사하는 미리씨와 헤어지고 귀가했다.

나름 보람찬 하루를 보냈다고 생각할때, 집에서 날 맞이하고 있는 석상을 발견했다.

흥분되던 기분이 짜게 식었다.

또 늘었다!

이제 그만 좀 하라고 이놈들아!

"그나저나 진짜 더럽게 못생겼네."

저게 나라니. 아무래도 이 개미들 눈이 한참 삔 게 틀림없어.

발로 석상을 방구석으로 툭 밀어 넣고 저녁 메뉴를 고민했다.

너굴면의 오동통한 면발과 매콤한 국물, 짜장라면의 MSG 듬뿍 섞인 춘장 맛 중에 고심하다 그냥 둘 다 섞어 먹기로 했다.

후후, 솔로몬도 감탄할 최고의 선택이다.

띠링띠링!

막 냄비에 물을 올리고 왔을 때 핸드폰에서 갓메이커의 알림이 울렸다.

벌써 밥줄 시간인가 생각하며 설탕통을 들었다.

흠흠, 오늘도 나 유일신께서 백주부의 은총을 너희들에게 내리리라.

하지만 갓메이커를 실행하자 내 눈에 비춘 건.

[당신의 신도들 일부가 중상을 입었습니다.]

땅에 널브러진 채 빌빌거리고 있는 검은 개미들과 그들을 간호하고 있는 개미들이었다.

아놔, 이것들은 동네북인가?

무슨 눈만 떼면 이 꼴이란 말인가.

"이번에는 대체 무슨 일이냐!"

정신을 집중해서 개미들을 감정해보았다.

띠링!

-감정에 성공했습니다.

[빌빌거리는 검은 부족원]

-'유일신'을 섬기는 신도들이다.

특이사항 : 마수에게 습격받았다.]

"마수?"

마수라니? 그건 또 뭐야?

뭐가 됐든 감히 내 개미들을 건드리다니 용서할 수 없다!

내가 씩씩거리며 분노하고 있을 때, 흰개미 성녀가 빨빨거리며 기어 왔다.

성녀가 나를 향해 더듬이를 치켜들며 작은 주둥이를 열었다.

깨톡깨톡!

그와 동시에 핸드폰에 깨톡이 왔다.

무심코 누가 보냈나 하고 봤더니.

<성녀>

-오, 위대하고 자비로운 우리의 신 유일신님이시여.

어? 네가 왜 거기서 나와?

네가 왜 거기서 나와? (수정) 끝

ⓒ 크래커™

=======================================

공포 혼돈 경악 전율의 마수!

29.

당황스럽다.

갓메이커의 개미한테서 깨톡이 오다니 이게 말이 되나?

그래도 혹시나 해서 한번 물어보았다.

<유일신님이시닷!>

-누구세요?

<성녀>

-저이옵니다. 유일신님의 신실한 종.

"설마 진짜 너라고?"

갓메이커 화면의 흰개미를 향해 물어보자, 머리가 떨어질 기세로 고개를 세차게 끄덕였다.

하하, 살다 보니 별일이 다 생기네.

동물과 교감하는 헌터 이야기도 듣긴 했지만, 이렇게 개미랑 깨톡하는 사람은 나밖에 없을 거다.

그런데 어떻게 갑자기 이런 일이 일어난 거지?

우우웅!

그때 구석에 처박아놓은 내 석상들이 진동하며 희미한 빛을 뿜기 시작했다.

내 눈이 그 현상을 감지했다.

[검은 부족의 신 '유일신' 의 신상들]

-기적을 베푼 유일신에 대한 감사를 담아 검은 부족들이 바친 신상이다.

특이사항 : 못생겼다. 신도들에게 '매력 보정'을 받는다.]

여기까지는 전과 같았지만, 추가사항이 있었다.

[신상들의 효과로 갓메이커 세계 '앤트라니아' 와의 교감률이 10%로 상승했다.

신도들에게 신앙과 공물을 얻을수록 교감률이 상승한다.]

"석상 때문에 교감률이 올랐다고?"

저 못생긴 석상이 이 상황의 원인이었나.

그러니까 저게 갓메이커 세계와 현실을 잇는, 일종의 와이파이 같은 역할을 한다고 보면 되는걸까.

깨톡깨톡!

<성녀>

-아아, 이렇게 직접 신과 대화를 나눌 수 있다니 넘쳐흐르는 감격을 이루 말할 수 없나이다······.

-소녀는 유일신님의 모든 것을 알고 싶사옵니다!

-부디 우매한 저희들에게 유일신님의 거룩하고 고귀한 말씀을 내려주소서!

....

....

깨톡이 쉴 새 없이 올라왔다.

좀 무, 무섭다.

이것이 광신도인가?

"야, 그만 좀 해."

<성녀>

-히익! 제, 제가 주제도 모르고 감히! 부디 저만 벌하시고 저희 가엾은 부족원들은 살려주소서. ㅠㅠ

무심코 중얼거린 말에 사시나무처럼 몸을 떨며 애걸했다.

그러니까 내가 엄청 나쁜 놈 같잖아.

뭐 초반에 피치 못하게 좀 죽이긴 했지만, 그땐 잘 모르고 그런 건데······.

그래도 좀 많이 죽이긴 했구나.

미안함과 죄책감이 밀려왔다.

"저기 울지 말고. 착하지. 뚝. 아, 설탕 먹을래?"

우는 아이 달래는 기분으로 상냥하게 말해보았지만.

꾸르륵!

이번에는 다른 놈들이 게거품을 물며 벌렁 엎어졌다.

아무래도 내가 말만 해도 무섭게 보이는 모양이다.

처지 바꿔 생각하면 뭐 그럴 만도 한가?

나도 산처럼 거대한 거인이 나한테 화를 낸다고 치면 좀 섬뜩할 거 같긴 하다.

오들오들.

떨고 있는 성녀에게 최대한 자비롭게 깨톡을 날렸다.

<유일신님이시닷!>

-겁먹지 말거라, 성녀여. 나는 나를 믿는 자들을 해하지 않는다. 내 신도인 너희들은 내 자식과도 같은 것을. 어찌 어버이가 자식을 해칠 수 있겠느냐.

일단 자비로워 보이는 신의 말투를 연출해보았다.

그래도 내가 작가인데 이 정도 캐릭터 메이킹은 껌이지.

<성녀>

-아아, 유일신님. 자식이라니. 신께 비하면 하찮은 먼지 같은 저희들에게 어찌 그리 황공한 말씀을. ㅠㅠ

아니, 먼지까진 아니고 개미인데. 아무튼.

깨톡깨톡!

<유일신님이시닷!>

-흠흠, 마수들에게 안내해라. 감히 내 소중한 신도들을 해친 그것들을 내 손으로 직접 짓눌러 죽여 버리겠다!

음, 내가 봐도 제법 신 컨셉에 맞게 잘 쓴 거 같다.

역시 작가 짬밥이 어딜 가진 않는군. 하고 자화자찬해보았다.

<성녀>

-아아, 유일신님. 은총에 감사드립니다. ㅠㅠ

성녀와 개미들이 일제히 바닥에 고개를 조아리며 닭똥 같은 눈물을 뚝뚝 흘렸다.

짠하게 왜 그러니. 너희들.

이런 애들을 아무 생각 없이 코인 얻겠다고 짓눌러 버리다니 양심이 쿡쿡 쑤셨다.

'앞으로라도 잘해주자!'

굳게 다짐하며 설탕을 뿌려주었다. 눈처럼 내리는 설탕을 받아먹으며 개미들이 덩실덩실 춤췄다.

좋아하는 모습을 보니 기분이 좋았다.

<유일신님이시닷!>

-그럼 그 마수 놈들이 있는 곳으로 안내해라.

<성녀>

-알겠사옵니다. 저의 신이시여.

성녀가 개미 중 그나마 건장해 보이는 애들을 이끌며 이동하기 시작했다.

"오오, 바뀐다."

신기하게도 그들이 이동하자 토굴 속으로 한정되었던 갓메이커의 화면이 바뀌기 시작했다.

지긋지긋한 토굴에서 정글처럼 우거진 울창한 숲으로 배경이 이동한다.

마치 4D 영화를 보는 것처럼 생생하고 입체적인 숲의 모습은 물론 심지어 피톤치드 가득한 내음까지 맡을 수 있었다.

이것도 신상 와이파이의 영향으로 교감률이 높아졌기 때문일까?

조금 가슴이 두근거렸다.

하지만 나는 한 가지 사실을 간과했다.

얘네들이 개미라는 걸.

개미 걸음은 진짜 지독하게 느렸다.

"아함."

째깍째깍.

라면을 끓여 먹고 설거지까지 마친 후, 방구석에 누워 만화책을 보며 꾸벅꾸벅 졸고 있을 때 즈음.

깨톡깨톡!

<성녀>

-도착했사옵니다. 유일신님!

오, 드디어 도착했나?

한두 시간쯤 걸린 것 같다.

갓메이커 화면을 보자 더듬이를 파르르 떨며 앞발로 숲의 공터를 가리키고 있는 성녀의 모습이 보였다.

<성녀>

-저기 있사옵니다. 유일신님. 저 추악하고 사악한 마수들에게 부디 신벌을 내려주소서!!

성녀가 가리킨 곳에는 거무튀튀한 무리가 모여 있었다.

뭐 마수라고 해봐야 사실 별생각은 없었다.

개미들에게나 무서운 괴물이지 내게는 손가락으로 짓눌러 죽여 버리면 그만인 하찮은 벌레에 불과할 테니까.

"어디 보자."

난 마수들이 있는 공터를 줌인했다.

그러자 검은 덩어리로 보이던 마수들의 실체가 더 확실히 비쳤다.

카작카작!

하, 공터가 왜 생겼나 했더니 이것들이 나무들을 통째로 씹어 먹고 있었다.

크기는 대략 개미의 다섯 배정도 돼 보였다.

뭐 그래 봐야 내게는 가볍게 눌러 죽일 수 있는 벌레에 불과하다만.

"그런데 이것들 낯이 익네? 어디서 봤지?"

검은 광택이 흐르는 갑각과 낚싯대처럼 늘어진 길쭉한 더듬이, 그리고 먹은 먹이를 토하며 서로 나눠 먹는 역겨운 모습은.

오싹!

등줄기에 칼날이 지나간 듯한 소름이 돋았다.

"헉!"

애써 침착해보려 했지만, 핸드폰을 쥔 손이 심하게 덜덜거렸다.

이성으로 억누를 수 없었다.

당연하다.

이것은 인간이라면 당연히 가질 수밖에 없는 본능적인 공포의 영역이었으니.

내가 저것들을 맨손으로 짓눌러 죽이려고 했다니 상상만 해도 끔찍했다.

마수들을 보는 내 눈의 고유 권능이 발동했다.

띠링!

감정에 성공했습니다.

<코크로치의 소환 마수>

-마수사 코크로치가 마계에서 소환한 어둠의 마수들이다.

특이사항 : 한 시간에 한 번씩 두 배로 증식한다.

남은 시간 : 1초

으득! 으득!

동시에 오십 마리 정도 되던 바퀴벌레들의 몸이 분열되더니 순식간에 백 마리로 늘어났다.

깨톡깨톡!

<성녀>

-위대한 유일신님이시여! 어서 저 사악한 마물들에게 신벌을 내려주소서!

그냥 못 본 거로 하고 싶다.

어둠의 마수는 개뿔.

"시발! 저것들 바퀴벌레잖아!"

그것도 한 시간에 두 배로 증식한단다.

그야말로 악몽 속에서나 존재할 것 같은 끔찍한 바퀴벌레였다.

<성녀>

-······신이시여? 혹시 저희가 무슨 실수라도 ㅠㅠ

내가 침묵하자 성녀가 불안한 듯 메시지를 보냈다.

난 서둘러 자판을 두드렸다.

<유일신님이시닷!>

-내가 잘못 생각하였다!

<성녀>

-네?

<유일신님이시닷>

-물고기를 잡아주는 것보다 물고기를 잡는 방법을 가르쳐주는 것이 어버이의 마음인 것을.

내 순간의 분노에 사로잡혀 중요한 것을 잊었구나.

내가 지금 저 마수를 물리쳐준다 해도 제2, 제3의 시련이 너희들을 덮칠 터. 그때마다 내가 너희들을 지켜줄 수는 없느니라.

저 더러운 바퀴, 아니 마수를 토벌하는 것은 너희들의 힘으로 해야 한다.

<성녀>

-하, 하지만 신이시여. 저희는 저 무시무시한 마수를 상대하기엔 너무 나약하옵니다. ㅠㅠ

난 사색이 되어 떨고 있는 성녀의 모습에 공감했다.

물론 그 심정을 이해할 수는 있다.

나도 저것들이 소름 끼치게 무섭다.

하지만 나는 최대한 내색하지 않고, 신답게 위엄 있고 자비로운 미소를 지었다.

"아무 의심하지 말고 그저 나를 믿어라. 성녀여."

바퀴벌레는 너희들이 잡아야 한다.

기필코 반드시.

***

제국의 황성.

-이번은 틀림없겠지?

장막 안에 오만하게 앉아 있는 앤트리니아 대륙의 절대자, 황제가 말했다.

"물론이옵니다."

제국 최강의 실력자라 불리는 십검(十劍) 중 일인, 마검(魔劍) 코크로치.

온갖 마도에 능통한 코크로치가 장막을 향해 정중히 머리를 조아렸다.

로브로 몸을 가리고 있었지만, 살짝 드러난 그의 몸에는 검은 갑각이나 더듬이 같은 흔적이 보였다.

마치 그가 소환한 마수처럼.

사악한 비술에 손을 댄 대가였다.

"그것은 저희 일족의 금술(禁術)로 마계에서 소환한 마수들입니다. 저번 전쟁에서도 그것의 활약을 보지 않으셨습니까?"

-그래, 그건 제법 재밌는 여흥이었지.

그때를 떠올리며 황제가 음산하게 웃었다.

코크로치가 소환한 단 한 마리의 마수가 끝없이 증식해서 한 나라를 먹어 치워 버리기까지 겨우 이틀도 걸리지 않았다.

코크로치가 자신만만하게 외쳤다.

"길어야 사흘, 그 안에 제가 소환한 마수에 먹혀 뼈만 남은 악신의 주검을 황제 폐하께 진상하겠나이다."

-기대하겠다. 하지만 명심해라. 날 실망시킨다면 그 대가는 죽음뿐이다.

그오오오!

장막 너머에서 뿜어져 나오는 살기에 코크로치는 검은 갑각을 파르르 떨었다.

"여, 여부가 있겠사옵니까. 반드시 황제폐하의 기대에 부응하겠나이다."

코크로치는 자신이 있었다.

그가 소환한 마수는 그 전투력은 물론 어떠한 환경에서도 살아남는 엄청난 생명력을 가졌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그 끝없는 번식력이야말로 최고의 장점이다.

설령 마수들이 악신에게 당한다 해도 그 중 단 한 마리만 살아남으면 된다.

그럼 몇십 시간만으로도 다시 수십억 단위로 증식할 수 있을 테니.

모든 전쟁이 증명하듯 숫자야말로 가장 압도적인 힘이다.

"급보 이옵니다!"

그때 대전으로 전령이 헐레벌떡 달려왔다.

승전보를 기대하며 코크로치가 여유 있게 물었다.

"그래? 검은 부족 놈들이 섬기는 악귀는 어찌 되었느냐? 내 마수들에게 갈가리 찢겨 먹혔겠지?"

"그, 그것이."

전령의 붉은 피부가 파리하게 질려있었다.

코크로치는 그 모습에서 일말의 불안을 느꼈다.

장막 안에서 서슬 퍼런 황제의 음성이 울려 퍼졌다.

-찢어 죽이기 전에 그 비루한 입을 열어 사실만을 고하라.

"그, 그래! 어서 말하라! 내 마수들은 어떻게 됐느냐!"

불안한 마음에 코크로치가 전령의 멱살을 잡고 소리쳤다.

"코크로치 대법사께서 소환한 마수는 불과 이틀도 안 되어 수억 마리로 불어났으나······."

"불어났으나? 그래서 뭐 어쨌다는 것이냐!"

전령이 차마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두렵다는 듯 새파랗게 질린 얼굴로 외쳤다.

"히이익! 그 사악하고 잔인무도한 악신이······!"

공포 혼돈 경악 전율의 마수! 끝

ⓒ 크래커™

=======================================

증식하는 신의 엄지

30.

'그것'의 이름은 없다.

격 또한 하찮다.

신에게조차 맞설 수 있는 마계의 고위 악마에 비한다면, 그저 벌레에 불과하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그것'은 그 어떤 대악마들보다도 오랫동안 마계에서 살아남은 존재들이었다.

풀 한 포기 나지 않고 물 대신 피를 마셔야 하는 척박한 마계.

그곳에서 최고(最高)는 아닐지언정, 최고(最古)의 마수.

[위대한 파괴신의 권속이자 마계의 심연, 오물로 뒤덮인 추악의 늪을 지배하는 '이름 없는 자여'.

나 마수 소환사 코크로치의 부름에 응하여 현세에 강림하소서.]

그 마수가 제국의 십검 중 일인 마검(魔劍) 코크로치에 의해 현세로 소환되었다.

마수에게 현세는 천국이었다.

세상이 온갖 먹을 수 있는 것으로 뒤덮였다.

키릭키릭!

그는 환희하며 자신의 존재의의를 표명했다.

닥치는 대로 먹고.

번식하고.

파괴하는 것.

그렇게 시간이 흘렀다.

먹은 음식을 늘어난 동료들과 나눠 먹고, 배설물로 이루어진 웅덩이를 헤엄치던 마수들의 몸에 변화가 일어났다.

다시 번식의 시간이 돌아왔다.

-키에에엑!

으득으득!

마수의 몸이 플라나리아처럼 갈라지며 분열하기 시작했다.

그 숫자는 어느덧 천을 넘어섰다.

-그륵, 그르륵.

코크로치의 손에 최초로 현세에 소환된 마수는 이제 때가 되었음을 직감했다.

이 정도면 충분했다.

나무나 풀 같은 저항하지 못하는 식물을 먹는 것은 질렸다.

이제는 온몸에 달콤하고 따뜻한 피가 도는 동물을 먹고 싶었다.

산채로 뜯어 먹힐 때 고통에 차 내지르는 끔찍한 비명을 양념 삼아.

이미 목표는 정해두었다.

비스킷처럼 바삭한 갑각을 가진 작고 나약한 검은 부족들.

처음 조우했을 때는 놈들의 숫자가 많아 어쩔 수 없이 도망쳐야 했지만, 이제는 사정이 달랐다.

족히 놈들의 열 배 이상 자신들의 숫자가 늘었으니까.

걸리는 것은 단 하나뿐 이였다.

너무 증식해서 잡아먹을 검은 부족들의 살점이 줄어들 거라는 것 정도?

-그르르륵!

샤샥. 샤샤샥!

마수 떼가 빠르게 폐허가 된 숲을 가로질렀다.

달콤하고 싱싱한 살냄새가 풍기는 검은 부족의 마을을 향해.

잠시 후.

낑낑거리며 뭔가를 나르고 있는 검은 부족의 모습이 마수의 일곱 개의 눈동자에 박혔다.

"마, 마수다!"

"도망쳐!"

검은 부족들이 우르르 몰려오는 마수들을 보자 기겁하며 도망쳤다.

마수들이 킬킬거리며 놈들을 비웃었다.

느려터진 놈들, 겨우 그런 속도로 우리에게 도망치겠다고?

도망치는 검은 부족들의 살점을 유린하고 씹어 삼킬 생각에 흥겨워하며 길게 휘어진 더듬이를 카락카락 긁었다.

우뚝!

하지만 검은 부족들을 쫓아 질주하려던 마수들의 발놀림이 일제히 멈췄다.

키릭? 키릭?

마수들이 더듬이를 허공에 허우적거렸다.

틀림없었다.

먹이! 그것도 최상급의 먹이다!

이것은 무시하고 지나가기에는 너무나 달콤하고 감미로운 냄새를 풍기고 있었다.

두리번두리번!

주변을 살피던 마수들이 그 향의 진원지를 찾았다.

조금 전, 검은 부족들이 나르고 있던 거대한 검은 상자!

먹이의 향은 바로 그 안에서 풍기고 있었다.

샤샤샥!

마수들이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부리나케 상자 안으로 기어들어 갔다.

내가 먼저다! 내가 먼저 먹을 것이다!

먹이에 미친 마수가 먼저 입구로 들어간 동료의 다리를 물어뜯고 억지로 끄집어내려 했다.

-캬아아악!

반쯤 끌려 나온 마수가 분노하며 자신의 다리를 물고 있는 동료의 머리를 물어뜯었다.

순식간에 아비규환이 펼쳐졌다.

하지만 다툼은 길지 않았다.

그들은 발견했던 것이다.

그 상자들이 사방에 널려 있었다.

족히 백 개는 될 것 같은 상자 안에서는 하나같이 탐스러운 먹이의 향이 풍기고 있었다.

-키키키! 키리리릭!

마수들이 갑각을 부딪치며 흥겹게 웃었다.

자신들에게 이런 먹이를 바치다니 기특한 놈들이다.

저번에 전멸시킨 흰 나무 부족들과는 달랐다.

흥겨움에 그들은 검은 부족들에게 자비를 베풀기로 했다.

적어도 이 맛 좋은 먹이를 다 먹어 치우기 전까지는 살려두기로.

까득! 까드득!

마수들이 정신없이 상자 속으로 기어들어 가 먹이를 먹어 치웠다.

[바퀴박멸 콤배트]

상자 위에는 정체를 알 수 없는 글자가 새겨져 있었지만, 그들에게는 아무래도 상관없었다.

그것이 '죽음'의 상징인지도 모른 채.

***

-그륵, 그르륵······.

눈에 닿는 모든 곳에 배를 뒤집고 죽은 마수들의 시체가 널렸다.

하나같이 입에 게거품을 물고 있는 모습은 마치 독에 중독된 듯 보였다.

온몸이 찢겨나가는 고통 속에서 죽어가는 마수들은 이 상황을 믿을 수 없었다.

이것은 절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마계에서 부패한 시체와 악마의 독혈을 마시고 산 마수들을 해칠 독은 없었기에.

그러나 지금 중독되어 죽어가고 있는 마수들은 이 잔혹한 현실을 부정할 수 없었다.

"아직 살아있다!"

"죽여라!"

마수 시체 사이를 누비던 검은 부족이 채 숨이 끊어지지 않은 마수의 목덜미에 날카로운 송곳니를 박아 넣었다.

콰득!

-끼에에엑!

처참한 비명과 함께 절명한 마수의 시체가 모래처럼 바스러지더니, 곧 새하얀 금속동전으로 변했다.

띠링!

['유일신'의 신도가 세상을 어지럽히는 마수 토벌 선업을 이루었습니다.

보상으로 갓코인(화이트)이 1 드랍됐습니다.]

확인사살을 벌이는 검은 부족은 단 한 마리가 아니었다.

콰득! 콰득!

끼에에엑!

곳곳에서 목을 물어뜯는 소리와 마수의 처참한 비명이 울려 퍼졌다.

띠링! 띠링!

그와 함께 사방에서 갓코인이 드랍됐다 어딘가로 빨려가듯 사라졌다.

그것은 마계에서 악명을 떨친 마수에게는 어울리지 않는 허망한 죽음이었다.

그러나.

마수 모두가 그런 죽음을 맞은 것은 아니었다.

불과 오십 마리도 안 되는 숫자였지만, 놀랍게도 그 짧은 시간에 내성을 가진 마수들이 있었다.

일부러 죽은 척을 했던 마수들이 검은 부족들이 몰려들자 짧게 시선을 교환했다.

그리고.

샤샤샥!

사방팔방으로 흩어지며 도주했다.

"자, 잡아라!"

"놓치면 안 돼!"

검은 부족들이 기겁하며 그들을 쫓았지만, 아무리 독으로 중독됐다 해도 그들의 움직임을 다 따라잡는 것은 무리였다.

마수들은 이를 갈며 복수를 다짐했다.

설령 그들이 다 죽는다 해도 단 한 마리만 살아남는다면 그것으로 충분했다.

이미 검은 부족들이 쓴 독의 내성을 가졌다.

다음번에는 더 강해진 육체와 압도적인 숫자로 저 간악스러운 검은 부족들을 몰살시킬 것이다.

그들이 여태껏 전멸시킨 수많은 희생양들과 마찬가지로.

결국, 승리하는 것은 자신이다!

슈우욱!

쿵!

그때 하늘에서 뭔가가 도망치는 마수들을 향해 떨어졌다.

샤샤삭!

콰쾅!

놀랄만한 반사 신경으로 그것을 피해낸 마수가 땅에 처박혀 있는 금속 통을 경계 어린 눈으로 주시했다.

그것의 겉면에는 알 수 없는 기묘한 문자가 적혀 있었다.

[바퀴를 단 한방에 깡그리! 슈퍼파월~! <바퀴지옥 연막탄!> ]

치이익!

콰오오오!

지옥 같은 독무가 순식간에 마수를 집어삼켰다.

끼에엑!

마수의 처참한 단발마 섞인 비명이 사방에서 울려 퍼졌다.

***

[갓코인이 30 드랍됐습니다.]

[갓코인이 24 드랍됐습니다.]

메시지와 함께 핸드폰에서 새하얀 광채를 뿜는 갓코인들이 딸랑딸랑 떨어졌다.

지금까지는 뭔가를 죽이면 검은 갓코인이 드랍됐는데 좀 신기하긴 했다.

혹시 바퀴벌레라서 그런가?

역시 인류에게 해로운 놈들이다.

-와아아아! 우리가 마수를 쓰러뜨렸다!

-수호신 유일신님을 찬양하라!

화면을 보니 개미들이 열렬히 환호하며 함성을 지르고 있었다.

하하, 기쁘냐? 나도 기쁘다.

최악의 상황에 만약 저것들이 내 방으로 쏟아져 나왔다면.

어휴, 생각만 해도 아찔했다.

다만 바퀴벌레약을 사느라 비상금까지 몽땅 털어버린 게 문제지만 말이다.

"휴."

아무튼, 그렇게 한숨 돌리고 있을 때.

띠링!

[고유권능 생성 조건을 충족했습니다.

100코인을 소모해 고유권능 '증식하는 신의 엄지'를 획득할 수 있습니다. (Yes/No)

갓메이커에서 고유권능 생성 조건을 충족했다는 메시지가 떠올랐다.

"증식하는 신의 엄지?"

메뉴를 터치했다.

[증식하는 신의 엄지]

카테고리 : 고유권능

설명 : 끝없이 증식하는 마계의 마수를 학살하고 획득한 <유일신>의 고유권능이다.

특이사항 : 신의 권능은 신앙과 공포, 그리고 그가 이룬 위업에서 비롯되는 것!

'크큭, 시련이여 오너라. 나는 시련을 먹고 앞으로 더욱더 강해지리라!']

거참, 언제봐도 중2스런 메시지다.

오그라드는 것을 참고 새로 생긴 권능을 활성화해보았다.

이제 100코인쯤은 뭐 부담도 안 되니까.

띠링!

[고유권능 '증식하는 신의 엄지'를 얻으셨습니다.]

100코인이 사라지고 메시지가 떠올랐다.

하지만, 딱히 달라진 점은 느낄 수 없었다.

이럴 땐 그냥 한번 써보는 게 최고다.

멈칫.

"음."

아직 공사가 덜 마무리된 천장을 보니 일말의 불안감이 생겼다.

혹시 이거 썼다가 또 무슨 골치 아픈 일이 일어나는 건 아니겠지?

좋아, 혹시 모르니 나가서 시험해보자.

그렇게 대충 츄리닝을 걸치고 공원에라도 가보려고 할 때였다.

깨톡깨톡!

깨톡깨톡!

갑자기 핸드폰에서 깨톡이 연속해서 올라오고 있었다.

또 흰개미 성녀인가 생각하며 화면을 확인했다.

<위대하신 담당놈>

-작가님. 메시지 확인하시면 제발 연락 좀 주세요 ㅠㅠ

어? 이 양반이 왜?

***

"작가님. 자, 한잔 더 받으시죠."

30대 중반의 뿔테안경을 쓴, 사람 좋아 보이는 미소를 머금은 남자가 내게 소주를 내밀었다.

내 애증의 대상, 바로 위대하신 담당 놈이다.

"저 잘린 거 아니었나요?"

"아이고, 무슨 그런 섭섭한 말씀을. 물론 원고 마감이 안 되자 사장님께서는 당장 잘라버리라고 길길이 날뛰셨지만, 제가 누굽니까! 바로 작가님의 믿음직한 담당! 유일신 작가님이 지금은 비록 슬럼프에 빠져 있지만, 앞으로 우리 회사를 이끌어갈 천재 작가라고 사장님을 설득했지요!"

"제가 천재라고요?"

"네, 설마 모르셨습니까?"

"금시초문인데요."

"하하, 술 한 잔 드시면 생각날 겁니다. 자아, 쭈욱~ 드시죠. 술이 쭉쭉 들어간다~."

담당 놈께서 능글맞게 웃으며 내 빈잔을 채웠다.

원샷, 투샷.

한번 꺾고 쓰리샷.

"쩝. 아직 생각이 안 나는데요?"

"저런, 술이 부족하군요. 이모! 여기 참이슬 한 병 추가요!"

자고로 공짜 술이란 작가에게는 사막의 오아시스처럼 거부하기 힘든 유혹이다.

그것이 돈이 없어서 반강제적으로 두 달이나 금주한 내게는 더욱더.

"아이고, 작가님. 오늘 술 좀 받으시네요."

"냠냠. 여기 안주 맛있네요. 골뱅이 하나 더 시켜도 돼요?"

"하하, 물론이죠. 신에게는 아직 열두 장의 법인 카드가 있나이다."

테이블에 텅텅 빈 소주병이 세 병 이 될 때까지는 분위기가 좋았다.

다섯 병까지도 뭐.

하지만 열병은 하지 말았어야 했다.

"······딸꾹! 자까님. 저 이 팀장을 전적으로 믿으셔야 합니다! 우리도 언젠가 장르소설판을 뒤흔들 초대박을 만들 수 있단 말입니다! 그래서 양주도 마시고! 어! 빌딩도 짓고! 장가도 가고! 응? 근데 자까님. 아까부터 뭐하십니까?"

술이 잔뜩 오른 나는 엄숙히 엄지를 들며 외쳤다.

"[증식하는 신의 엄지]!"

번쩍!

증식하는 신의 엄지 끝

ⓒ 크래커™

=======================================

천지창조의 유일신입니다.(추가)

31.

"[증식하는 신의 엄지]!"

띠링띠링!

"오? 진짜 늘어나네? 신기방기~."

그러자 담당 놈이 불그레한 얼굴을 내게 불쑥 내밀었다.

"자까님, 뭐하시냐니까여?"

"딸꾹! 에헤헤, 겜하는데여? 담당님도 좀 볼래요? 내 개미들 졸라 귀엽지 않아요? 내가 손댈 때마다 바글바글 늘어나는 거 좀 봐여."

불어나는 내 개미들을 자랑스레 보여주자 담당 놈이 발끈했다.

"아니 이 양반이! 하라는 원고는 안 하고 뭐 게~이임?! 미쳤습니까! 휴먼!"

당연히 나도 발끈했다.

"아씨! 사람이 게임 좀 할 수 있지!"

"야 이 망할 자까놈아! 솔직히 말해! 그동안 겜하느라 마감 짼 거지!"

"뭐 망할 자까놈? 이 망할 담당 놈아! 지금 말 다 했어?!"

"다했다! 오늘에야말로 그 썩어빠진 근성을 고쳐주게써!"

"흥! 근성 찾으려면 당신 뱃살부터 빼고 말하시지! 누가 보면 임산부인 줄 알겠네!"

"뭐 인마!"

어허! 그래도 우리 장르 소설계를 선도하는 사나이답게 머리는 좀 잡지 맙시다!

***

갓메이커의 세계 '앤트라니아'.

유일신과 그를 따르는 검은 부족의 활약으로 마수는 전멸했다.

코크로치가 소환했던 최초의 한 마리를 제외하곤.

최초의 한 마리는 신중했다.

그는 치명적인 맹독을 품은 먹이의 유혹에도, 죽음을 뿌리는 독무에도 살아남았다.

어찌 보면 당연하다.

처음부터 그는 지상에 나간 적이 없었으니까.

카득카득!

꿀꺽!

깊은 땅속에서 몸을 웅크린 채 최초의 마수는 끊임없이 흙을 파먹었다.

지상의 먹이에 비할 바는 못되었지만, 살아남아 복수를 하기 위해서는 이것이라도 먹어야 했다.

우드득! 우득!

증식할 충분한 흙을 퍼먹자 그의 몸이 분열되며 두 마리가 되었다.

숫자를 늘린 마수는 다시 계속 작업을 이어갔다.

위장이 비명을 지를 때까지 먹고, 증식한다.

그것을 끝없이 반복했다.

마수들의 숫자가 만을 넘어, 그들이 인지할 수 있는 숫자를 아득히 넘어섰다.

무려 억 단위의 마수.

최초의 마수는 자신만만했다.

독이 든 먹이든, 죽음의 독무든 그 어떤 장애도 그 압도적인 숫자의 폭력에는 저항할 수 없으리라.

-카아아악!

마수들이 웅크리고 숨어있던 땅거죽을 뚫고 지상으로 돌입했다.

이제부터 복수의 시간이다.

그 하찮은 검은 부족 놈들과 그들이 섬기는 신을 살 한 점, 뼈 한 조각 남기지 않고 먹어 치울 것이다.

콰콰콰콰!

샤락샤락!

폭발하는 화산처럼 땅을 뚫고 나오는 마수들의 모습은 이 대륙 전체를 삼킬 기세였다.

그러나.

그들이 나오기만을 기다린 자들이 있었다.

성녀가 외쳤다.

-유일신께서 우리에게 내려주신 기적을 찬양하라! 동포들이여! 지금부터 저 사악한 마수들을 토벌할 것입니다! 우리의 신 유일신님의 이름으로!

바글바글!

온 세상을 뒤덮을 기세로 진을 친 수십억 마리의 검은 부족 전사들이 마수들을 포위했다.

그것은 바로 유일신의 권능 '증식하는 신의 엄지'로 만들어진 대군세.

"[증식하는 신의 엄지]!"

짙은 주향을 풍기시는 유일신께서 갑자기 엄지를 치켜들며 자신과 신도들을 향해 권능을 쓰셨을 때.

[성녀와 검은 부족 100명이 유일신의 '증식하는 신의 엄지' 권능 효과로 증식합니다!

효과 : 권능을 받은 최하급 세계의 신도들이 30분당 두 배로 증식한다.

유지시간 : 24시간 ]

뾱! 뾱뾱! 뾱뾱뾱!

갑자기 엄청난 기세로 증식 분열하는 모습에 패닉에 빠지기도 했었다.

하지만 이 모든 것이 저 사악한 마수의 뿌리를 뽑기 위한 신의 안배셨던 것이다.

성녀는 벅찬 경외심을 느꼈다.

아아, 이 얼마나 위대하고 지혜로운 분이신가.

덜덜덜.

마수들의 더듬이가 공포로 떨렸다.

압도적인 숫자로 짓뭉개는 것은 바로 그들의 수법이었다.

하지만 지금 그 상황이 완전히 역전되었다.

-전군 돌격!

-와아아아! 마수를 죽여라!

-신의 가호가 우리와 함께하신다!

콰콰콰콰!

광신 어린 검은 부족의 외침과 함께 대학살이 펼쳐졌다.

.

.

.

띠링!

파괴신 [???]의 권속 '재앙의 마수' 토벌에 성공했습니다.

유일신께서 300,000,000 갓코인(화이트)을 획득했습니다.

['재앙의 마수 토벌' 결과로 선신 타이틀 <자애로운 구원자>가 D랭크에서 C 랭크로 업그레이드되었습니다.

축하합니다!

이것은 갓 태어난 신이 이룰 수 없는 거대한 위업입니다!

업그레이드된 선신 타이틀의 영향으로 유일신님의 성향이 중립에서 선 쪽에 가까워집니다.]

띠링!

[몇몇 고위 선신들이 유일신에게 큰 관심을 보입니다.

그중 유일신에게 호감을 느끼고 있던 '한없이 베푸는 풍요' 께서 친히 후원을 자청하셨습니다.]

[고위 선신과 고위 악신들이 매우 놀랍니다.]

[특히 '소리없이 기어오는 악몽'께서 도끼눈을 뜨며 그녀를 노려봅니다.]

['한없이 베푸는 풍요' 께서 풍요한 가슴을 내밀며 자랑스러워합니다.]

띠링!

[후원 시스템을 시작합니다.]

[유일신님께서는 <자애로운 구원자> C랭크 보상 특전으로 원하는 권능을 무엇이든지 선택할 수 있습니다.

그에 드는 비용은 '한없이 베푸는 풍요'께서 부담합니다.]

띠링!

[유일신께서 다음의 권능을 선택하셨습니다.]

[천지창조(天地創造 초월신급)

카테고리 : 초월신 전용 권능

구매 비용

1,000,000,000,000,000,000,000,000 Gcoin]

['한없이 베푸는 풍요'께서 식은땀을 흘리며 손을 바들바들 떠십니다.

풍요로운 가슴이 한없이 움츠러듭니다.]

['한없이 베푸는 풍요'께서 애절한 눈으로 당신을 바라봅니다.

초월신급의 권능은 세계의 인과를 뒤틀 수도 있는 위험한 권능이라고 경고합니다.

정말, 정말로 이 초월신급 권능을 선택하시겠습니까? (Yes/No)]

하지만 가차 없이 Yes를 선택하는 손가락.

띠링!

['한없이 베푸는 풍요'께서 마침내 울음을 터트립니다.]

[다른 고위 선신들이 측은한 표정으로 그녀를 동정합니다.]

[다른 고위 악신들이 낄낄거리며 즐거워합니다.]

['소리없이 기어오는 악몽'께서 흥에 차 깨소금을 뿌립니다.]

[당신을 향한 일부 악신들의 호감도가 오릅니다.]

띠링!

[천지창조] 를 구매하셨습니다.

[천지창조]는 초월신 전용권능입니다.

[천지창조]의 권능을 온전히 사용하기에는 아직 '유일신'의 격이 그에 한참 미치지 못합니다.

[천지창조]가 '유일신'의 격에 맞게 일부 재조정되어 [거짓된 천지창조] 1회 사용으로 변경됩니다.

[천지창조] 구매 갓코인 중 일부가 [한없이 베푸는 풍요]께 반환됩니다.

['한없이 베푸는 풍요'께서 안도의 숨을 내쉽니다.]

띠링!

유일신께서 [거짓된 천지창조天地創造] 를 시작합니다!

고오오오오!

경고!

[세계가 일부 개변합니다.]

***

"으으."

지독한 두통을 느끼며 나는 눈을 떴다.

담당 놈이랑 머리끄덩이 잡고 싸우다, 다시 의기투합해서 화해주를 마시러 간 것까진 희미하게 기억이 나는데······.

하지만 그 이후가 전혀 기억이 나지 않는다.

아 머리 아파.

"이 꼴은 또 뭐야?"

게다가 지금 난 공원 벤치에 속옷만 입은 채 널브러져 있었다.

손에는 갓메이커가 실행되고 있는 핸드폰을 꼭 움켜쥔 채.

"이 의리 없는 인간! 날 버려두고 혼자만 가버리다니!"

두고 봐라. 다음에는 반드시 내가 버려줄 테다.

담당에게 복수를 다짐하며 난 주변에 허물처럼 벗어놓은 옷을 주섬주섬 챙겼다.

그나마 사람이 없어서 다행이지 유치장 신세를 질 뻔했다.

그런데?

"어라?"

무심코 올려다본 밤하늘에 낯선 게 하나 더 있었다.

주정뱅이 작가를 향해 영롱한 빛을 뿌려주시는 달님.

과연 이태백이 반해서 물에 뛰어들 정도로 미인이시다.

하하, 근데 한 분이 더 계시네?

"달님, 쌍둥이셨어요?"

잘못 봤나 싶어 눈을 비벼보아도 여전히 달은 두 개였다.

"아무래도 진짜 술이 덜깼나 보네."

에구, 빨리 집에 가서 발 닦고 잠이나 자야지.

달이 두 개라서 그런지 날 비추는 달빛이 유난히 밝게 느껴졌다.

[긴급속보입니다! 새벽 2:10분 경 아무런 전조 없이 갑자기 생겨난 두 번째 달! 일명 세컨문에 대한 NASA의 보고서에 따르면, 이것이 앞으로 있을 거대한 게이트 균열의 전조라고······.]

[이 시간부로 헌터협회에서는 비상사태에 대응할 수 있는 특무 헌터 팀을 상시 운영하겠다는 발표를······.]

[미국에서 세컨문 탐사 로켓을 발사했습니다! 탐사 멤버로는 게이트 균열의 권위자 릭 골드스튼을 필두로 SSS 헌터 로이스와 SS 헌터 잭 블랙이 합류하였고······.]

[네이브 급상승 검색어 순위]

1. 세컨문

2. 게이트 균열

3. NASA 보고서

4. 미국 세컨문 탐사 로켓 발사

5. 특무 헌터팀 멤버

······

···

"드르렁~ 쿠으으!"

그렇게 내가 잠든 사이.

전 세계가 발칵 뒤집히고 있었다.

그리고 동시에.

세계에 은밀히 숨어있던 어둠 또한 태동하기 시작했다.

***

대한민국에는 대략 헌터들로 이루어진 길드 단체가 100여 개 정도 있다.

그중 광휘 길드.

지난 10년간 헌터협회 평가 랭크에서 50위 정도를 항상 유지하고 있는, 마치 일부러 딱 맞춘 듯한 중위권 길드다.

하지만 사람들은 모른다.

이 광휘 길드가 이름과는 다르게 몬스터를 재료로 사용한 불법적인 마약 제조 유통은 물론 심지어는 생명력이 높은 헌터의 장기밀매까지 제공하는, 대한민국의 블랙마켓을 지배하는 곳이라는 것을.

경기도 외곽에 있는 광휘 길드의 본사.

"헉! 헉!"

2m가 넘는 근육질의 중년 남자, 광휘 길드의 길드장 박상철과 그의 수하들이 거친 숨을 헐떡이며 계단을 올랐다.

쾅!

길드장이 펜트하우스의 문을 거칠게 열었다.

"사도님! 드디어 우리 애들 실종에 연관된 년놈들을 찾았습니다! 그런데 그중 한 년이 바로 최근 A랭크에 오른 뇌제라고 합······!"

"쉿."

펜트하우스의 중심에서 한 남자가 등을 보인 채 서 있었다.

검푸른 빛의 장발에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단단한 몸은 마치 그리스 신화의 석상처럼, 인세의 것을 초월한 아름다움이 있었다.

잠시 홀린 듯, 그의 뒷모습을 보던 길드장은 문득 허전함을 느끼고 옆을 돌아보았다.

"흐아악!"

자신과 같이 이곳에 들어왔던 수하들이 사라지고 없었다.

마치 날카로운 칼로 도려낸 것처럼 그들이 신었던 신발과 발목만이 바닥에 뒹굴고 있을 뿐이었다.

등줄기에 싸늘한 오한이 흘렀다.

B급 헌터인 자신이 옆에서 누군가 죽었음에도 아무런 기척도 느끼지 못했다.

역시 차원이 다르다.

"사, 사도님! 제발 용서를!"

길드장이 사색이 된 얼굴로 바닥에 넙죽 엎드렸다.

길드장이 사도라 부른 남자야말로 바로 광휘 길드의 실질적인 주인이었다.

그는 허밋, 은둔자였다.

비록 헌터협회에 등록하진 않았지만, B랭크인 길드장으로서도 그 끝을 알 수 없을 정도의 능력자였다.

그의 존재야말로 광휘 길드가 아귀 전쟁 같은 블랙마켓을 제패할 수 있었던 이유다.

"하늘을 보세요. 길드장님."

"네, 네?"

길드장이 무심코 고개를 들었다가 불현듯 깨달았다.

펜트하우스의 천장이 흔적도 없이 사라졌었다는 것을.

그 사라진 천장 너머의 밤하늘에 두 개의 달이 영롱하게 빛나고 있었다.

"보셨습니까?"

사도가 그에게 몸을 돌렸다.

그러자 사람들을 벌레처럼 죽인 사람답지 않게, 마치 그의 얼굴은 자비로운 천사 같았다.

"기뻐하십시오. 신께서 제게 계시를 주셨습니다. 마침내 우리가 그토록 기다리고 기다리던 때가 온 것입니다."

"그, 그 말씀은?"

길드장이 식은땀을 비처럼 쏟으며 몸을 떨었다.

"그렇습니다. 드디어 신의 사도인 제가 세상에 모습을 드러낼 때가 왔습니다. 의식을 준비하세요."

"이번엔 몇 명이나 준비하면 되올지."

"어린 양은 많을수록 좋지 않겠습니까. 그래요. 일단 이천 마리 정도는 준비하지요."

그가 말하는 어린 양은 인신 공양에 쓸 인간이었다.

터무니없는 숫자에 소스라치는 공포를 느끼며 길드장은 생각했다.

인간답지 않은 아름다운 외모와 기행, 그리고 깊이를 알 수 없는 능력까지.

어쩌면 자신을 사도라 자칭하는 요한의 말이 틀리지 않을지도 모른다.

단, 신이 아니라 악마의 사도겠지만.

"아아, 조금만 기다리소서. 이 미천한 종이 반드시 당신의 바람을 이루어 드리겠나이다."

사도 요한이 밤하늘에 떠 있는 두 개의 달을 올려다보며 신열에 찬 눈물을 흘렸다.

"이 추악한 세계에 반드시 신의 구원을."

천지창조의 유일신입니다.(추가) 끝

ⓒ 크래커™

=======================================

개미도 에볼루션합니다.

32.

한동안 세상이 떠들썩했다.

원인은 바로 갑자기 지구 궤도에 생긴 미확인 행성, 일명 세컨문(Second Moon) 때문이다.

미국에서는 서둘러 탐사 로켓을 보냈지만, 세컨문의 대기에는 강한 전자 역장이 있어서 접근할 수 없었다.

생방송으로 세컨문으로 향하던 로켓에 갑자기 연기가 피어오르며 좌초했을 때는 가슴 한구석이 뜨끔했지만.

다행히 SSS급 헌터가 둘이나 있어서 인명피해는 없었다 한다.

그 후, 역장을 제거하는 방법을 찾기 전까지는 탐사가 금지되었다.

개인적으로는 두 헌터들이 대체 어떤 능력이 있었기에 좌초된 우주선을 끌고 지구까지 귀환할 수 있는지 궁금하긴 했다.

밤에는 황금빛으로, 그리고 낮에는 초록빛을 뿜으며 하늘에 걸려있는 세컨문은 그것만으로도 엄청난 존재감을 뿜었다.

뭐 존재감뿐이었지만.

게이트와 던전이 폭증할 거라는 예측에 정부와 헌터협회가 촉각을 곤두세웠지만, 별사건은 일어나지 않았다.

세상은 여전히 평온했다.

그리고 평범한 소시민 A인 내 삶도.

"으으······."

앓는 소리를 내며 이불에서 꾸물꾸물 기어 나왔다.

원고 한다고 거의 사흘 밤낮을 샜더니 죽을 것 같다.

"무, 물."

졸린 눈을 비비며 더듬더듬 머리맡에 둔 생수병을 찾았다.

잠시 후, 내 손에 뭔가가 손에 잡혔다.

근데 좀 딱딱하다?

"······또냐?"

내 손에 잡힌 건 개미들을 향해 흉악스러운 거인이 엄지를 척 들고 있는 흉측한 몰골의 석상이었다.

아마 바퀴벌레를 물리친 내 업적(?)을 기념하는 용도인 거 같다만.

얘들아, 너희들의 마음은 알겠지만 그래도 이제 좀 그만하지 않을래?

난 한숨을 쉬며 구석에 쌓여있는 신상 무더기에 그것을 던져놓았다.

이제 그 숫자가 열 개가 돼가니 슬슬 부담스러울 정도다.

어휴, 저걸 확 버려버릴 수도 없고.

['소리 없이 기어오는 악몽' 께서 버릴 거면 자신한테 버려달라고 눈을 반짝이며 당신을 바라봅니다.

자신한테 주면 물고 빨고 넣고 잘해주겠다며 강하게 어필합니다.]

들려오는 개소리를 무시하고 냉장고에서 생수병을 꺼내 벌컥벌컥 들이켰다.

"후, 이제 좀 정신이 드네."

이래서 냉수 먹고 속 차리라는 말이 있나 보다.

"좋아."

정신을 차린 난 정리한 원고를 위대하신 담당놈에게 보냈다.

내가 그동안 겪었던 기묘하고도 소소한 갓 메이커의 이야기를 원고로 만들었다.

사흘 동안 철야하느라 몸은 좀 힘들지만, 얼추 한 권 정도 되는 원고를 보니 마음이 뿌듯했다.

이 시간이 작가에게는 가장 보람찬 순간일 것이다.

['Magamworker@media.com' 님께 메일을 발송했습니다.]

Ok. 전송 완료.

이제 남은 건 별 수정 없이 원고가 무사통과하길 기다릴 뿐.

"으으, 좀 출출한데 뭐 먹을 거 없나?"

띠링띠링!

그때 잠잠하던 핸드폰에 알림이 울렸다.

갓메이커였다.

혹시 또 무슨 일이 생겼나 게임을 실행시켜 보았다.

그러자 검은 개미들에게 둘러싸여 있는 흰개미 성녀가 보였다.

한때 내 '증식하는 신의 엄지' 의 권능으로 수십억 단위까지 증식되었던 개미들은 시간이 지나자 다행히도 원래의 숫자로 돌아왔다.

어휴, 그 애들한테 뿌릴 설탕값을 생각하면 정말 다행이다.

그런데 너희들, 지금 뭐하니?

성녀가 주둥이를 열었다.

"유일신님 가라사대, 너희들이 한 끼 먹을 물고기를 잡아주는 것보다 앞으로 물고기를 잡는 법을 가르쳐주는 것이 진정한 어버이의 마음이니라 말씀하셨습니다."

여태까지는 개미들의 목소리 같은 게 눈으로 보였다면, 지금은 그들의 음성이 생생하게 귀로 들렸다.

갑자기 새벽에 핸드폰에서 '위대하고 자비로우시며 전지전능하신 유일신님을 찬양하라~!' 하면서 귀기 어린 여자의 목소리가 들릴 때는 귀신인 줄 알고 깜짝 놀랐다.

그것은 정확히 방구석에 쌓인 신상이 세 개가 됐을 때 일어난 현상이었다.

일명 신상 와이파이(?)가 늘수록 동화율이란 게 오르더니, 이렇게 개미들의 목소리까지 들리기 시작했다.

"그것이 그날, 우리의 신성한 숲을 파괴하려는 저주받은 탐식의 마수를 유일신님께서 손가락으로 간단히 짓뭉개 버릴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우리를 사역하신 이유입니다."

아니 그건 그냥 손대기 싫었어.

"유일신님께서는 우리 한명 한명을 수백만의 군사로 만드시는 기적을 펼치시어, 나약하고 우둔한 우리에게 자긍심과 승리의 기쁨을 가르쳐주셨나이다. 아아, 이것이야말로 진정한 신의 성총일지니!"

성녀의 설교에 개미들이 호응하며 함성을 질렀다.

"와아아! 유일신! 유일신!"

"검은 부족이여, 유일신님의 가호 아래 영원하여라!"

할렐루야만 안 외치지 이거 어째 사이비 단체의 교주가 된 기분이다.

으, 창피해. 남이 안 봐서 다행이다.

희번뜩!

순간 개미들이 일제히 날 향해 고개를 돌리며 눈을 빛냈다.

"오오! 유일신님께서 강림하셨다!"

"와아아! 위대하고 자비로우신 우리의 신이시여!

"꺄아악! 신께서 날 보셨어!"

아무래도 얘들이 점점 제정신이 아닌 것 같다.

어휴, 그냥 닥치고 설탕이나 먹어라.

샤라락.

설탕을 솔솔 뿌려주자, 개미들이 덩실덩실 기쁨의 댄스를 추며 받아먹었다.

"후후."

자식들, 좀 귀엽네.

흐뭇하게 웃으며 그 광경을 바라보고 있을 때, 메시지 알림이 울렸다.

띠링!

[성녀가 간절하게 유일신님을 바라봅니다.]

응? 왜 그러지?

"왜? 너도 설탕 먹을래?"

성녀가 앞발을 그러모으더니 조심스럽게 주둥이를 열었다.

"유일신님이여. 감히 간청하건대 제게 이름을 내려주실 수 있겠습니까?"

"이름?"

"네! 부디 소녀에게 이름을 내려주소서!"

이 녀석은 왜 갑자기 이름 타령일까?

뭐 하긴 나도 성녀라 부르기엔 좀 낯간지럽긴 했으니까.

"뭐 그럴까? 잠깐만 기다려봐."

"넵! 소녀는 유일신님께서 기다리라 하시면 평생 기다릴 수 있나이다!"

가볍게 생각했지만 날 바라보는 성녀의 초롱초롱한 눈동자가 심히 부담스러웠다.

얘는 개미가 무슨 눈이 이리 예쁘냐.

'좋아, 새하야니까 흰둥이나 백구로? 아니 그건 개한테나 어울릴 거 같고 개미는 좀. 애가 좀 맹한 데가 있으니까 백순이?'

십 분 정도 고민해보았지만 새삼 내가 더럽게 네이밍 센스가 없다는 걸 깨달았다.

-푸하핫! 작가님. 대체 주인공 이름이 삼식이가 뭡니까? 앞으로 작가님은 절대로 이름 짓지 마세요. 아셨죠?

새삼 날 비웃던 담당놈의 얼굴이 떠올랐다.

우이씨. 갑자기 화나네. 삼식이가 어때서!

촌스럽지만 어딘가 친숙한 주인공의 이름으로 딱이지 않은가!

"에휴, 그런데 뭐 이런 거로 고민하고 있지."

겨우 개미 이름 짓는 거일 뿐인데 말이다.

"그래. 네 이름은 앤티라고 하자. 어때?"

개미니까 그냥 앤트라고 부르려다, 그래도 여자니까 앤티로 정했다.

앤티가 닭똥 같은 눈물을 뚝뚝 흘리며 고개를 조아렸다.

"흐으윽, 유일신님. 은총에 감사드리옵니다. 소녀 앤티, 신께서 내려주신 신명을 걸고 평생 유일신님의 신실한 종이 될 것을 맹세하옵니다."

대충 지은 이름에 저러니까 좀 양심에 찔리는데.

"시, 신이시여! 제게도 이름을 내려주소서!"

"저, 저에게도 부디!"

"유일신님 제발!"

띠링!

[검은 부족 100명의 신도가 간절하게 유일신님에게 애원합니다.]

분위기를 탔는지 다른 개미들도 우르르 내게 애원하기 시작했다.

에라, 기분이다.

전부 백 마리랬지?

"좋아, 줄을 서거라. 옳지. 자 너는 일호. 그리고 다음은 이호에 삼호. 야, 오호 새치기하지 말고!"

***

"······좋아, 백호까지 끝! 휴, 이것도 은근 힘드네. 왜 이리 땀이 나지?"

"선생님! 뭐하세요?"

"헉! 깜짝이야! 아? 미리씨 오랜만이네요. 특무헌터 일 많이 힘들죠?"

세컨문 사태 이후, 던전과 게이트 출몰이 증가할 거라는 전망에 따라 우리나라에서도 특무헌터가 창설됐다.

떠오르는 신예답게 미리씨도 특무헌터에 소속되게 되었다.

일이 바빠서인지 그녀를 보는 게 딱 사흘만이었다.

미리씨가 지친 강아지 같은 얼굴로 어깨를 축 내렸다.

"아직까진 대기만 하고 별로 힘든 일은 없긴 한데요. 선생님 수업을 못 받는 게 힘들어요."

"하하. 별거 없는 트레이닝을 뭐 그렇게까지. 모처럼 비번이면 그냥 쉬는 게 어때요?"

"아니에요! 선생님! 빨리 수업하러 가요!"

"악! 팔 빠져요! 좀 천천히 가요!"

"빨리요! 선생님!"

내가 오래간만에 찾아온 미리씨와 트레이닝을 하러 갔을 때.

갓메이커 안의 세계에 변화가 일어났다.

띠링!

[성녀와 검은 부족의 신도 100인의 진명이 '유일신'에 의해 갱신되었습니다.

<성녀 앤티, 검은 부족원 일호, 이호, 삼호, 사호, 오호, 육호, 칠호, 팔호, 구호······. 백호.>

지금부터 성녀와 검은 부족이 유일신의 '증식하는 신의 엄지' 권능의 가호를 받고 쓰러뜨린 코크로치의 소환 마수들의 경험치를 환산합니다.

띠링!

경험치가 종족의 한계치에 달했습니다!

띠링!

[종족 진화 조건을 모두 충족했습니다!

종족 진화 조건 : '신께 하사받은 진명과 한계에 달한 경험치']

띠링!

[지금부터 성녀와 검은 부족들이 진화를 시작합니다.]

***

"에구, 죽겠네."

미리씨와의 트레이닝을 마치고 귀가 중이었다.

이상하게 트레이닝을 하는건 미리씨인데 내가 더 피곤한 것 같은 건 기분 탓일까?

"먹는게 부실해서 그런가."

흑, 고기 먹고 싶다.

하지만 바퀴벌레 잡는다고 출혈이 너무 컸다. 덕분에 통장이 텅장이 되어버렸으니.

하아, 원고도 모처럼 넘겼는데 인세나 조금 가불해달라고 담당 놈에게 부탁해볼까?

하지만 가뜩이나 그 출판사 사장 놈이 날 자르려고 눈에 불을 켜고 있다는데 괜히 긁어부스럼이다.

미리씨는 자꾸 내게 수업료를 내겠다고 하는데, 생명의 은인인 데다 집수리비까지 받았는데 더 신세를 지는 것도 어른의 체면상 좀.

"에휴, 어디 단기알바라도 알아봐야 하나."

그때 내 뒷주머니에 꽂혀 입는 중국집 사장님의 명함이 떠올랐다.

[가화만사성家和萬事成

화목한 가정의 식사를 책임져드립니다.

신속배달! 연중무휴!]

제발 파트 타임이라도 좋으니 일 좀 해달라고 애걸복걸하던 사장님의 얼굴이 떠올랐다.

"으으음."

월급 얼마나 줄 건지 한번 물어나 볼까?

명함의 번호로 전화를 해보려고 했는데 주머니가 허전했다.

아차, 미리씨한테 급하게 끌려 나오느라 핸드폰 챙기는 걸 깜빡했네.

서둘러 집으로 돌아가 이불 한구석에 파묻혀 있는 핸드폰을 발굴했다.

안 끄고 나갔는지 핸드폰 화면에는 갓메이커가 돌아가고 있었다.

그런데.

"어?"

얘들의 상태가 뭔가 좀 많이 이상하다?

"너, 너희들.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거야?"

갓메이커 화면에 내 개미들이 사라지고 없었다.

와글와글.

대신 다른 것들이 가득했다.

쪼르르!

그중에서 백발에 푸른 눈동자를 가진, 깨물어주고 싶을 정도로 귀여운 이등신 소녀가 내게 쪼르르 달려오더니.

"앗! 강림하셨사옵니까! 위대하고 자비로운 유일신님!"

······누구세요?

개미도 에볼루션합니다. 끝

ⓒ 크래커™

=======================================

게임의 왕도는 현질이죠

33.

내 개미들이 변했다.

과연 얘네 들을 더는 개미라고 부를 수 있을까?

개미의 특징인 더듬이와 긴 꽁무니 같은 것이 엉덩이에 달려있긴 하다.

하지만 그것을 제외하고는 완전히 사람 같은 모습을 하고 있었다.

마치 창작물에 종종 나오는 수인(짐승인간) 같달까?

물론 이 경우에는 충인(곤충인간)이란 표현이 더 적절할 거 같긴 하다.

'잠깐 나갔다 온 동안 무슨 일이 있었던 거야?'

갓메이커는 이능으로 구현된 게임이라 설명 로그 같은게 남아 있는 친절한 게임은 아니다.

하지만, 내게는 이 두 눈이 있다.

나는 일단 진정하고 그들을 감정해보았다.

띠링!

['눈먼 신의 눈' 고유 권능이 발동합니다.]

[성녀와 검은 부족의 신도 100명

-본래 미천한 최하등종족이었으나 유일신이 내려준 이름의 은총과 재앙의 마수 사냥의 경험치를 얻어 진화했다.

종족 : 가야미족

특이사항 : 귀요미다.]

설마 대충 지어준 이름 때문에 이렇게 진화했다고?

게다가 그동안 없었던 종족 란까지 생겼다.

가야미라면 고어로 개미란 말인데.

"신이시여. 혹시 저희가 변한 모습이 마음에 들지 않으십니까?"

앤티와 날 올려다보는 개미, 아니 이제 가야미족들의 시선에 불안감이 묻어있었다.

마치 버림받을까 무서워하는 강아지 같은 눈빛들이다.

"응? 아, 아냐. 보기 좋네. 진작 변하지 그랬냐. 아주 마음에 든다. 하하하!"

"와아아! 유일신께서 우리의 변한 모습에 기뻐하신다!"

뒷머리를 긁적이며 멋쩍게 웃자, 앤티와 가야미족들이 덩실덩실 춤을 추며 환호했다.

잘해봐야 이등신 밖에 안 되는 작은 가야미족들이 그러는걸 보고 있자니.

'좀 귀엽네.'

[펑펑!]

그때 화면에 폭죽 같은 것이 터지며 메시지가 떠올랐다.

[신도들이 어버이인 신을 닮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축하합니다. 신도들의 진화로 인해 갓메이커 유저 '유일신'님의 레벨이 1 올랐습니다.

유일신님의 현재 레벨은 2입니다.]

어, 이거 레벨이 있는 게임이었어?

[레벨의 상승으로 인해 봉인되었던 '문명부흥' 메뉴가 활성화되었습니다.]

갑자기 화면에 [문명부흥]이라는 버튼이 생겼다.

"이게 뭐야?"

터치해보자 다음과 같은 설명이 떴다.

[문명부흥]

: 신은 자신을 믿는 신도들의 문명을 발전 시킬 수 있습니다. 신도들의 문명을 발전시켜 신앙을 높이십시오.

신앙이 높아질수록 그들의 신인 당신의 권능 또한 강해질 것입니다.

현재 유일신님의 레벨로 사용할 수 있는 메뉴는 다음과 같습니다.

<[??] [??] [??]>

메뉴는 터치와 함께 활성화됩니다.

정체 모를 메뉴의 숫자는 총 세 개.

제법 호기심을 자극한다.

이제야 좀 게임 같달까.

좋아, 일단 첫 번째 메뉴 터치.

띠링!

축하합니다. [개척] 메뉴가 활성화되었습니다.

'오, 개척?'

[개척]

-숲이나, 황무지를 개간해 영지로 만듭니다.

비용 : 1,000 Gcoin

지금의 나에게 1,000코인쯤이야.

바로 실행시켜보았다.

[개척을 시작합니다.]

스스스스.

방구석에 쌓여있던 갓코인 1,000이 사라지더니, 갓메이커 화면에도 변화가 일어났다.

스르륵! 스스슥!

가야미족들의 마을 주변에 있던 숲과 바위들이 녹아내리듯 사라지더니, 순식간에 비옥한 땅으로 바뀌기 시작했다.

[개척에 성공해 1,000 평의 땅을 얻었습니다.

개척한 땅을 농지로 변환할 수 있습니다.]

[농지]

-신도들을 먹일 식량을 얻을 수 있다.

비용 : 1,000 Gcoin

역시 클릭.

띠링!

[농지] 변환을 시작합니다.

스륵스륵.

그러자 아무것도 없던 땅에 파릇파릇한 새싹이 돋더니.

드드드드!

순식간에 탐스러운 알곡이 영근 황금색 밀밭으로 변하기 시작했다.

가야미 부족 애들이 눈을 동그랗게 떴다.

"이, 이럴 수가."

"유일신님께서 기적을 펼치셨다!"

"오오!"

호, 이거 조금 재밌는데?

다음 메뉴도 터치.

[건설]

-신도들에게 필요한 건축물을 만들 수 있습니다.

현재 만들 수 있는 건축물 메뉴는 다음과 같습니다.

[집]

-신도들의 주거지다.

비용 : 100 Gcoin

[훈련장]

-신도들이 건강한 육체를 단련할 수 있다.

훈련장의 레벨이 오르면 '병사' 직업군을 생성할 수 있다.

비용 : 1,000G coin

[신전]

-신도들이 유일신께 예배를 올리는 곳이다. 교육을 겸하다.

신전의 레벨이 오르면 '신관' 직업군을 생성할 수 있다.

비용 : 2,000 Gcoin

[성벽]

-신도들을 외세에서 지켜줄 수 있는 튼튼한 방벽이다.

비용 : 50,000 Gcoin

그러고 보니 얘들이 움막 같은 곳에서 사는 게 마음이 안 좋긴 했다.

일단 숫자에 맞게 집을 백 채 정도 결제하고, 다른 메뉴도 모두 결제했다.

특히 훈련장과 성벽이 마음에 들었다.

심심하면 얻어터지고 빌빌거리는 내 얘들이 안전해진다면 이 정도는 투자할만하다.

다해봐야 10만 갓코인도 안 하는데 뭐.

이정도야 바퀴벌레들을 일망타진하고 3억이 넘는 갓코인을 가진 내겐 티도 안 난다.

드드드드!

결제를 끝내자 핸드폰이 요란하게 진동하기 시작하더니, 갓메이커의 화면이 극적으로 변하기 시작했다.

스륵스륵!

흙과 나무로 대충 만든 움막이 현대식 느낌이 나는 백색의 이층집으로 변했다.

그것이 무려 백 채.

그 한가운데에는 마치 고대 그리스의 신전을 연상케 할 정도로 우아하고 아름다운 신전이, 그 옆에는 고대의 콜로세움 같은 원형 건축물이 우뚝 솟아있었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압도적인 것은 성벽이었다.

가야미족들을 기준으로 했을 때, 백배는 크고 두꺼운 성벽이 마을과 방금 내가 만든 농지를 감싸고 있었다.

"이럴 수가! 아무것도 없는 곳에서 농지와 건물들이 솟아나다니! 지금 내가 꿈을 꾸고 있는 것인가."

"기, 기적! 유일신님께서 미천한 우리를 위해 베푸시는 기적이시다!"

가야미족들이 감격과 환희가 뒤섞인 얼굴로 눈물을 질질 짜며 나를 올려다보고 있었다.

앤티가 외쳤다.

"아아, 여러분 보셨습니까? 우리의 유일신님께서 벌이신 이적을. 그분께서 검지를 가리키시자 그곳에 우리를 먹일 밀밭이 생기고, 추위에 떨지 않아도 될 집이, 그리고 사악한 무리로부터 우리를 지켜줄 거대한 성벽이 생겨났습니다!"

"아아, 유일신님!"

"위대한 유일신님을 찬양하라!"

이것 참, 별것도 아닌데 뭘 그리 오버하고 있니.

그런데 이것 제법 지르는 맛이 있다.

얘들도 좋아하는 데다 왠지 예전에 한 시뮬레이션 게임이 떠오르기도 하고.

이제 남은 메뉴는 하나.

난 약간의 설렘을 느끼며 그것을 터치했다.

[개척]과 [건설].

이다음에는 무슨 메뉴가 있을까? 약간 설레는 마음으로 메뉴를 터치해보았다.

"어?"

[용사의 탑]

-영겁의 시간이 응축된 고행과 시련의 탑이다.

'용사' 직업군을 생성할 수 있다.

비용 : 50,000,000 Gcoin

"요, 용사?"

용사라면 그러니까 세상을 정복하려는 마왕이나 마신 같은 것과 싸우는 정의의 사도. 그 용사 말인가?

"이 게임 장르 RPG였냐!"

***

같은 시각.

제국의 황성.

그곳의 주인, 장막 안의 황제에게서 싸늘한 음성이 흘러나왔다.

-코크로치. 네게 실망했다.

마계에도 주력이 미치는 대주술사 코크로치. 그런 그가 황제의 발아래 엎드린 채 애처롭게 몸을 떨었다.

"이, 이럴 리가 없는데······."

-실패는 죽음뿐이다.

황제의 선언에 검은 갑각으로 뒤덮인 코크로치의 얼굴이 순간 회색빛으로 변했다.

"폐, 폐하! 저는 마왕과도 계약한 대주술사이옵니다! 제게 한 번만 더 기회를 주시면 이번에야말로 확실하게 검은 부족 놈들을 반드시 박멸하겠나이다."

-예외는 없다.

스윽.

장막 안에서 검은 손이 불쑥 튀어나오더니 그의 검지가 코크로치를 겨눴다.

"으아악!"

코크로치가 비명을 지르며 대전 밖으로 도망치려고 했다.

그 순간 황제의 검지에서 눈부신 광휘가 번뜩였다.

콰아아아!

불에 달군 쇠가 피부에 닿은 것처럼, 소름 끼칠 정도의 열기가 대전을 휩쓸고 지나갔다.

하지만 대전에 있던 신하들은 몸이 얼 것 같은 한기를 느꼈다.

파스스 파삭!

달려 나가던 자세 그대로 잿더미가 되어버린 코크로치의 몸이 무너져 내렸다.

-이 하찮은 벌레 놈들, 정말 하나같이 쓸모가 없구나! 정녕 짐이 직접 나서야 하는가!

장막 안의 권좌에 앉아있던 황제가 몸을 일으켰다.

구구구궁!

그러자 그와 동시에 대전이 지진이라도 난 듯 요동치기 시작했다.

신하들이 퍼렇게 질린 얼굴로 바닥에 머리를 쾅쾅 박으며 탄원했다.

"폐하, 고정하시옵소서! 위대한 신의 혈통을 이은 위대한 반신께서 어찌 그런 하찮은 자들에게 직접 손을 쓰려 하시옵니까?"

-닥쳐라. 그따위 버러지 같은 개미 새끼조차 치우지 못하는 네놈들 따위를 내가 더 믿고 기다리란 말이냐! 이 쓸모 없는 벌레들아!

황제의 분노에 호응하듯 대전이 불에 달군 쇠처럼 붉게 달아오르기 시작했다.

"으윽! 폐하! 제발 고정하옵소서······!"

숨쉬기도 힘든 광폭한 열기에 헐떡이며 신하들이 애원했지만, 황제는 분노를 거두지 않았다.

장막을 걷어내며 황제의 손이 불뚝 튀어나왔다.

툭! 툭! 치이익!

바닥에 바짝 엎드린 신하들이 흘린 땀방울이 바닥에 닿자 달군 쇠에 닿은 것처럼 증발해버렸다.

이대로면 황제에 의해 황궁의 모든 것들이 불타버릴 순간이었다.

"호호, 노여움을 거두소서. 황제 폐하."

꿀처럼 달콤한 여성의 옥음이 대전에 울려 퍼지자.

거짓말처럼 대전을 들끓게 하던 열기가 사라졌다.

동시에 천장에서 투명한 실 한가닥이 내려왔다.

스스슥.

그것을 타고 대전으로 비단처럼 화려한 무늬로 온몸을 수놓은 꽃 같은 여인이 내려섰다.

그녀를 본 신하들의 얼굴에 화색이 돌았다.

"오오, 신녀님!"

장막 안에 있던 황제의 음성이 몰라보게 부드러워졌다.

-돌아왔느냐. 내 귀비여.

여인은 제국 최강이라 불리는 십검의 일인인 음검(淫劍)이자, 황제의 총애를 한 몸에 받는 귀비였다.

하지만 그저 아름다움만으로 그녀를 함부로 재단하는 것은 섣부른 판단이다.

그녀는 반신인 황제조차 함부로 하지 못하는 존재.

바로 제국이 모시는 수많은 신을 총괄하는 신녀(神女) 아라크네였다.

귀비가 공손히 고개를 조아렸다.

"네. 소첩, 황제 폐하가 내리신 임무를 무사히 마치고, 마침내 폐하의 품으로 다시 돌아왔나이다."

-그, 그 말은?

광폭한 황제답지 않게 그의 음성이 살짝 떨렸다.

"가장 위대한 신들이 모인 백신좌의 주인께서 확답해주셨습니다. 폐하를 당당히 이 별의 신으로 인정하시겠다 하옵니다."

-하하하! 500년인가! 그 오만한 자들이 드디어 짐을 인정하겠다는 것이지!

황제가 광소했다.

"그렇사옵니다. 경축드리옵니다. 폐하."

"감, 감축 드리옵니다!"

신하들이 이때다 싶어 황제를 찬양했다.

아라크네가 황제에게 고개를 조아리며 말했다.

"소첩 사정은 모두 들었사옵니다. 하지만 폐하께서는 곧 반신에서 진정한 신으로 다시 태어나실 귀하디귀하신 분."

마치 옥구슬이 쟁반을 구르는 것 같은 아라크네의 음성은 수컷의 마음을 진탕케 하는 마성이 있었다.

하지만, 감히 황제의 여인에게 음심을 품을 정도로 간이 큰 자는 없었다.

"현세의 일은 소첩에게 맡기시고 폐하께서는 신계에 오를 준비를 하소서. 검은 부족의 벌레들과 그들이 섬기는 악신 놈은 저 아라크네의 이름을 걸고 한 마리도 남기지 않고 박멸하겠나이다."

금방이라도 뛰쳐나갈 기세였던 황제가 옥좌에 몸을 뉘였다.

그러자 대전을 채우던 광폭한 기운이 지워지듯 사라졌다.

-그래. 귀비 아라크네. 너라면 믿을 수 있지. 하지만 방심하지 말거라. 놈들에게 당한 십검이 벌써 셋이니.

아라크네가 검은 입술을 뒤틀며 요염하게 웃었다.

"호호, 소첩 아라크네. 단순히 싸울 줄만 아는 그들과는 다르옵니다. 천지 분별 못하는 악신따위. 진정한 신들에 비하면 그저 우물 안 개구리에 불과하다는 것을 똑똑히 가르쳐주겠나이다."

게임의 왕도는 현질이죠 끝

ⓒ 크래커™

=======================================

용사의 탑과 흡혈백작

34.

나는 새로 생긴 메뉴를 바라보았다.

[용사의 탑]

-영겁의 시간이 응축된 고행과 시련의 탑이다.

'용사' 직업군을 생성할 수 있다.

비용 : 50,000,000 Gcoin

오천만 코인이면 지금 내게도 좀 부담스러운 수치긴 하다.

나는 호기심과 오천만 갓코인을 잠시 저울질해보다.

"에라."

결국 호기심이 이겼다.

게다가 용사라지 않나!

사나이치고 그 단어에 가슴이 떨리지 않을 수 있겠냐!

과감하게 터치!

띠링!

[50,000,000 Gcoin을 소모합니다.]

[용사의 탑]을 건설합니다.

쿠구구궁!

내가 만든 임시 도시의 한가운데 탑이 우뚝 섰다.

갓메이커의 화면임에도 불구하고 그 탑의 웅장함이 느껴졌다.

내가 지은 집들에 비교하면 적어도 백배는 높고 거대한 탑이었다.

"어디."

화면을 줌 해보자 더욱 탑의 위용이 느껴졌다.

하지만.

"이거 진짜 용사를 만드는 탑이 맞나?"

우우우웅!

끼에에엑!

탑을 감싸고 있는 음울한 어둠과 곳곳에 박힌 채 비명을 지르는 해골 오브제는 아무리 봐도 용사와는 어울리지 않았다.

그 반대라면 모를까?

마왕의 탑을 잘못 말한 거 아니냐?

혹시나 해서 감정해보았다.

띠링!

감정에 성공했습니다.

[용사의 탑]

-'영겁의 구도자'가 수행하는 탑을 모방해서 만들어졌다.

신앙이 높고 용맹한 자만이 도전할 수 있는 탑으로 도전자의 피와 영혼을 갈구한다.

특이사항 : 도전 생존율 0.000001% 이하.

시바. 피와 영혼을 갈구한단다.

게다가 일억분의 1이란 저 어처구니없는 생존율은 뭐냐.

이건 뭐 무조건 죽는다는 이야기네?

용사는 개뿔.

['용사의 탑'을 본 가야미족 신도들이 공포에 질렸습니다.]

내가 농지와 집을 지어줄 때는 기뻐서 날뛰던 가야미족 애들이 겁에 질린 눈으로 탑을 보며 덜덜 떨고 있었다.

"시, 신께서 원하신다면 소녀 기꺼이 저 사악해 보이는 탑에 몸을 바치겠나이다!"

그 와중에 성녀 앤티가 새파랗게 질린 얼굴로 엉금엉금 탑의 입구를 향해 기어가고 있었으니.

"어허, 저리 가. 지지야 지지!"

손가락으로 탑으로 기어가는 앤티를 막았다.

애는 뭘 또 오버하고 난리람.

"에휴."

난 깊은 한숨을 쉬며 애물단지 탑을 보았다.

오천만 코인이 아까워서 속이 약간 쓰렸다.

그거면 박카스가 몇 병인데!

역시 충동구매는 좋지 않다.

"쩝. 일단 입구는 막아둘까."

공포에 질려 있는 가야미족 애들이 탑에 들어갈 일은 없을거 같지만, 귀여운 겉모습과 달리 무대포 기가 좀 있는 앤티는 불안했다.

난 건설 메뉴를 활성화해서 탑 입구 주변에 방벽을 높게 쌓았다.

그리고 그중 일부를 손가락으로 무너뜨렸다.

와르르! 쿠콰쾅!

잠시 후, 입구에 커다란 돌무더기가 산처럼 잔뜩 쌓였다.

사람으로 치면 수백 톤의 바위가 쌓인 거니까 이 정도면 괜찮겠지.

"낑낑!"

증거로 앤티가 바위에 손을 댔지만, 당연히 꿈쩍도 하지 않았다.

"야, 지지라니까. 저리가, 휘휘."

"꺅! 꺅!"

앤티와 겁에 질린 가야미족애들을 탑 주변에서 쫓아내고 있을 때.

띠리리리!

핸드폰이 울렸다.

[위대하신 담당놈]

오, 설마 벌써 원고 검토가 끝났나?

"난 잠깐 일보고 올 테니까 얌전히 있어. 절대 저 탑에 접근할 생각하지 말고? 알겠지?"

"넵! 걱정 말고 다녀오소서! 위대하고 자비로운 유일신님이여!"

성녀 앤티와 가야미족들이 넙죽 엎드리며 날 배웅했다.

"네, 담당님. 안녕하세요."

난 원고에 대해 좋은 대답을 기대하며 핸드폰을 받았다.

***

잠시 후, 유일신이 사라지자 가야미족들은 뿔뿔이 흩어졌다.

그들은 유일신이 지어준 집과 농지를 구경하며 환호했고, 성녀 앤티는 아름다운 신전에서 한층 유일신에 대한 신앙을 굳게 다지며 기도를 올렸다.

고오오오!

그들 중 아무도 불길한 기운을 뿜는 용사의 탑에는 관심이 없었다.

아니 의식적으로 피했다는 표현이 적절하리라.

오직 단 한 명을 제외하고는.

성녀 앤티를 제외하고, 유일신이 첫 번째 이름을 내려준 가야미족의 전사 일호.

그가 탑의 입구를 틀어막은 바위 무더기를 치워보려고 힘을 썼다.

"끙! 끙!"

본래 가야미족들은 자신 무게의 열 배를 들어 올릴 만큼 강인한 체력의 소유자들이다.

하지만 그런데도 신께서 막아놓은 바위는 꿈쩍도 하지 않았다.

일호가 어깨를 축 늘어뜨렸다.

아직 턱없이 부족한 것이다.

힘도, 그것을 뿜어낼 근육도.

일호는 탑을 올려다보았다.

절망적일 정도로 거대한 탑.

고오오오!

해골들이 박힌 탑에서 뿜어지는 섬뜩하고 음울한 기운은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전신에 얼어붙을 것만 같았다.

부드득!

일호가 이를 악물었다.

자신은 너무나 나약했다.

만약 가야미족의 전사였던 자신이 강했더라면, 그 잔악한 제국 놈들에게 허무하게 동족을 잃지 않아도 됐을 것이다.

산채로 동족을 잡아먹는 놈들은 지옥의 악귀 자체였다.

다시는 그런 일을 당하고 싶지 않았다.

일호는 이 탑을 본 순간 운명을 느꼈다.

만약 자신이 이 시련의 탑을 오른다면 다시는 동포를 잃지 않을 힘을 손에 넣을 수 있을 것이다.

일호가 주먹을 불끈 쥐었다.

"위대한 유일신님이시여! 기다리십시오! 저 일호! 반드시 이 탑을 올라 신의 기대에 부응하겠나이다! 그리고 이번에야말로 전사로서 동포를 지키겠나이다!"

희번뜩!

일호가 광신 어린 눈을 빛내며 유일신이 만들어준 훈련장을 향해 쪼르르 달렸다.

입구를 막고 있는 저 무시무시한 바위들을 치우려면.

"근육! 크고 단단한 근육이 필요하다!"

***

담당이랑 전화를 몇 시간이나 했나 모르겠다.

다행히도 보낸 원고 반응이 괜찮았다.

-하하, 유일신 작가님. 원고 진짜 좋은데요. 분량 좀 더 쌓이면 연재 시작해보시면 어떨까요?

"네? 여, 연재요?"

-넵. 달피아 연재사이트에서 일단 무료 연재로 시작하다 독자 반응이 괜찮으면 유료 연재로 전환하죠. 그때 사용할 표지도 외주해둘게요. 혹시 요청하시고 싶은 거 있으세요?

"······아, 그럼 주인공이 들고 있는 핸드폰에 개미 한 마리만 그려주실 수 있을까요? 어떤 형태로든 상관없어요."

-알겠습니다! 작가님!

"연재라니."

연재란 단어는 언제나 작가의 마음을 설레게 하는 뭔가가 있다.

하도 퇴짜를 맞아서 한때는 글 쓰는 일을 접어야 하나 고민했지만, 다시 연재를 할 수 있다니.

사실 각성만 하면 당장 글 쓰는 걸 때려치우겠다고 했지만, 진심은 아니다.

나는 글이 좋다.

내가 품은 상상의 세계가 손가락을 타고 자판을 두드릴 때.

백지의 세계에 활자로 형상화되는 순간을 참을 수 없을 만큼 사랑한다.

하지만 창작의 과정은 그만큼 고통스럽기 때문에 그 사랑이 때론 지옥처럼 변해가는 순간이 온다.

흔히 작가들이 말하는 슬럼프.

그렇기에 글은 작가에게 애증 그 자체다.

사랑하지만 증오하고, 증오하지만 사랑한다.

감개무량함을 느끼며 핸드폰을 들었다.

[갓메이커를 실행합니다.]

처음에 개미를 보았을 땐 뭐 이런 괴상한 게임이 있나 생각했지만, 지금은 다르다.

갓메이커로 얻은 권능으로 몇 번의 위기를 무사히 넘겼고, 무엇보다도 내 창작의 뮤즈가 돼 주었다.

'어디 애들은 뭐하고 있나?'

갓메이커 세계의 시간도 깊은 밤이었다.

새근새근.

개미들, 아니 이제는 가야미족이 된 이등신의 애들이 내가 지어준 집에서 자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보니 나름 뿌듯했다.

그런데.

'어휴, 이 녀석은 왜 여기서 자고 있어?'

흰개미, 아니 앤티는 내 신전 대리석 바닥에서 침을 질질 흘리며 자고 있었다. 꼴을 보니 기도하다 잠든 것 같은데.

"유일신님······. 음냐음냐 너무 머쪄여."

잠꼬대까지 이렇다니 그야말로 훌륭한 광신도의 표본이었다.

'하아, 뭐 덮어줄 거 없나?'

슥 신전을 훑어보니 벽에 붙어 있는 양탄자가 보였다.

확대해보자 내가 제국군 개미들과 싸우며 고지라처럼 불을 토하는 그림이 새겨져 있었다.

이런 적 없어!

아무튼 손가락으로 양탄자를 눌러보자.

'오, 움직인다.'

그것을 죽 당겨서 앤티의 몸에 덮어주었다.

근육! 근육!

'응?'

그때 어디에서 희미하게 이상한 소리가 들려왔다.

화면을 확대해보자 밤의 어둠 속에서 내가 만들었던 콜로세움 모양의 훈련장이 환하게 빛나고 있을게 보였다.

그곳에서 상체를 벗고 있는 가야미족 한명이 열심히 바위를 번쩍번쩍 들어 올리며 구슬땀을 흘리고 있었다.

거 참, 이런 늦은 시간에도 이렇게 열심히 훈련하다니.

[일호]

-가야미족의 전사다.

특이사항 : 일족을 지키기 위해 열심히 훈련 중이다.

내 눈이 그를 감정했다.

특이사항을 보니 더욱더 녀석이 기특해졌다.

일호가 바위를 들며 다시 우렁차게 외쳤다.

"근육! 근육!"

뭐 다 좋은데 구호가 좀 구리긴 하다.

열중한 탓에 내가 자신을 보고 있는 걸 눈치채지 못했는지 일호는 훈련을 멈추지 않았다.

나는 성장신의 가호를 한 병 사고 신의 은총 메뉴를 활성화했다.

띠링!

[유일신께서 신도 '일호' 에게 성장신의 가호를 하사합니다.]

밤샘에는 역시 박카스지.

일호에게 선물을 준 후 난 각오를 다지고 다시 노트북 앞에 앉았다.

좋아, 나도 녀석을 본받아서 열심히 글을 써야겠다.

탁탁! 타다닥!

나도 입에 박카스를 물며 열심히 타자를 치기 시작했다.

***

인간을 가장 많이 죽이는 생물은 무엇일까?

인간이란 대답이 많을 거라 예상되지만, 사실 인간이 매해 죽이는 인간은 겨우 45만 명 정도에 불과하다.

매해 무려 725,000명의 인간을 죽이는 압도적인 1위.

그것은 바로······.

찌직! 찌지직!

공간이 갈라졌다.

그 틈에서 황제의 십 검 중 일인, 혈검(血劍) 모스토가 현실 세계에 은밀히 모습을 드러냈다.

'이곳이 악신의 근거지로군.'

낯선 풍경에 잠시 당황했던 모스토는 앉은 자세로 천지를 울리는 소음을 내는 악신의 뒷모습을 보았다.

'저것이 소문의 악신.'

과연 자신과 같은 십검을 셋이나 황천으로 보내버린 악신답게 그 덩치와 살기가 심상치 않았다.

하지만 모스토는 아무런 공포도 느끼지 못했다.

츠츠츠츠!

그가 손에 들고 있는 불길한 핏빛을 뿜는 장침을 보았다.

이것을 준 것은 바로 제국의 신들과 직접 교신하는 위대한 신녀 아라크네였다.

-흡혈백 모스토. [추악한 역병의 기수] 께서 내려주신 저주의 침을 악신 놈에게 박고 오세요. 악신 놈이 아무리 강한 육신을 가지고 있더라도 위대하신 신 [추악한 역병의 기수]께서 직접 담은 저주에는 무력할 터.

아라크네의 말에 모스토가 눈을 커다랗게 떴다.

-호오, 이것이 바로 병마의 신께서 내려주신 신기란 겁니까?

-그렇습니다. 어때요? 당신에게는 쉬운 일이겠죠?

모스토의 은신은 암살 일족인 킬러비조차 한 수 위로 쳐줄 만큼 뛰어났다.

-물론입니다. 신녀님. 다만 한 가지 청을 드려도 되겠습니까?

-무엇이지요?

모스토가 송곳니를 드러내며 음흉하게 웃었다.

-악신의 피를 좀 맛봐도 되겠습니까? 검은 부족놈들이 섬긴다는 악신의 피 맛은 과연 어떨지 궁금하군요. 흐흐.

흡혈귀 백작 모스토.

흡혈신의 가호를 받아 피를 마실수록 강해지는 모스토의 스킬은 신녀 아라크네도 인정할 만큼 강했다.

다만 그 부작용으로 그는 끊임없는 흡혈 충동에 사로잡혔다.

제국에 대적하는 적들은 물론, 모스토가 지배하는 영지의 백성들도 모스토에게 피를 빨려 미이라처럼 죽었다.

아라크네가 보랏빛 입술을 뒤틀며 독 투구꽃처럼 웃었다.

-물론입니다. 악신의 피도 신살의 명예도 모두 흡혈백 모스토, 당신의 것입니다.

회상을 마친 모스토가 아라크네가 준 역병신의 침을 자신의 주둥이에 꽂았다.

그리고.

타닥! 타다닥!

여전히 천지를 부술 듯한 기세로 키보드를 후려치는 악신을 향해 은밀히 날개를 움직였다.

위이이잉~!

착.

솜털처럼 가볍게 악신의 머리에 착지한 모스토가 입에 문 침을 박을 때까지도 악신은 눈치채지 못했다.

푸욱!

'어리석은 놈. 덩치만 컸지 둔하기 짝이 없구나. 넌 이제 끝이다.'

이제 곧 아라크네가 준비한 역병신의 신기가 발동해 이 악신을 처참히 죽여버릴 것이었다.

"그전에 악신의 피를 마셔볼까?"

악신의 피부 안에 흐르는 생명력 넘치는 피가 모스토를 유혹했다.

쩌어억!

모스토가 탐욕스럽게 입을 쩍 벌리며 악신의 살을 물어뜯었다.

푸욱! 쪼오옥!

순간 모스토의 눈동자가 찢어질 듯 커졌다.

예상을 훨씬 뛰어넘었다.

'이것은?!'

천상의 맛과 와인 같은 농후함, 거기에 활화산처럼 엄청난 힘을 품은 혈액이 모스토의 안으로 스며들었다.

모스토의 스킬은 흡혈(吸血).

강자의 피를 마실수록 강해진다.

츠츠츠츠!

모스토가 환희했다.

"오오오! 온몸에 힘이 끓어오른다!"

용사의 탑과 흡혈백작 끝

ⓒ 크래커™

=======================================

이상한 빡빡이가 자꾸 친한척 굴어서 곤란하다

3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