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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의선처

“온전한 신체와 자유로운 삶은 그녀가 지금껏 그토록 갈망하던 것이었다.” 썩은 내를 풍기던 몸과 가면으로 가려야만 했던 문드러진 얼굴은 더 이상 없었다. 눈을 뜨니, 거울 속엔 꽃다운 열여섯의 아리따운 여인만이 있을 뿐! 상림당가의 서출 둘째 딸 당염원의 몸에서 깨어난 그녀는 이복자매를 대신해 무시무시한 소문들을 달고 다니는 괴물에게 시집을 가게 된다. 하지만, 그곳에는 열두 명의 아내를 배 속에 삼켰다는 끔찍한 괴물은 없었다…. 그저 신비로운 분위기의 아름다운 남자, 설연산장의 장주 사릉고홍만이 있을 뿐이었다. 천성적으로 독을 내뿜어 아무도 곁에 둘 수 없었던 사릉고홍에게, 독을 도리어 약으로 받아들이게 되는 특이한 체질의 당염원은 그토록 기다려 온 유일무이한 존재다. 하나, 전생에서 늙은 괴물에게 노예처럼 부려졌던 당염원은 그저 자유만을 갈구하는데…. 사릉고홍에게서 흘러나오는 독의 기운을 흡수하여 힘을 모아 이곳에서 탈출하고 마리라! 그때까진 그저 얌전히 그의 곁에 있어야만 한다. 그것이 이 세계, 약육강식의 법칙이니까…. 하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자신에게 더없이 상냥한 사릉고홍에게 마음이 가고 마는데…. 처음으로 사랑이란 감정을 느껴본 당염원의 앞날은 과연 어떻게 될 것인가? 원제: 莊主有毒之神醫仙妻

수천철 · Fantasia
Classificações insuficientes
756 Chs

5화. 영보 녹녹 (2)

5화. 영보 녹녹 (2)

북쪽 끝의 허설산은 항상 눈과 얼음으로 뒤덮여 있었다. 봉우리 끝은 눈에 보이지 않을 만큼 높고 험준했다. 한기가 뼛속을 파고들었다. 그곳은 아득히 넓어서 발자취가 드문드문 끊어져 있었고, 지평선 끝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광활했다. 거센 북풍과 함께 진눈깨비가 흩날리면, 배꽃이 바람을 타고 깃털처럼 휘날리는 듯 아름다운 풍경을 자아냈다.

선연한 붉은색의 비단길이 흰 눈만 가득한 일대에 유일한 유채색이 되어 부드럽게 일렁였다. 쉽게 볼 수 없는 아름다운 절경이 눈앞에 펼쳐졌지만, 아쉽게도 이를 목격한 이는 아무도 없었다.

설연산장.

주묘랑(朱妙瀧)은 솜을 누빈 연녹색 치마와 수를 놓은 솜옷을 입고 붉은색 허리띠를 두르고 있었다. 그녀는 저 멀리서 다가오는 꽃가마를 보고 함박웃음을 지으며 다가와 물었다.

“신부님이 오신 건가요?”

꽃가마가 땅 위에 내려졌다. 주변은 적막에 휩싸인 채 눈이 흩날리는 소리만 들려왔다. 그때 서수죽이 입을 열었다.

“신부를 맡기겠습니다.”

“네, 걱정 마세요.”

주묘랑이 환한 미소와 함께 답했다. 하지만 꽃가마의 주렴을 걷자, 미소는 이내 사라지고 약간의 놀라움이 섞인 목소리가 들려왔다.

“앗, 신부가…….”

당염원은 두 사람의 얘기를 듣고 설연산장에 도착했음을 알 수 있었다. 주렴이 걷히자 눈앞에는 스물다섯에서 여섯 정도 되어 보이는 여인의 얼굴이 있었다. 흰 얼굴에 검고 짙은 눈썹을 가졌고, 머리를 곱게 빗어 넘긴 여인의 눈빛에는 부드러움과 날카로움이 공존하고 있었다.

주묘랑이 멈칫하는가 싶더니 서수죽을 향해 미간을 찌푸리며 말했다.

“개두는 어디 있죠?!”

그러자 서수죽이 답했다.

“일이 좀 있었소.”

그가 고개를 한 번 끄덕여 보이자 그제야 얼굴색이 돌아온 주묘랑이 당염원에게 다시 부드럽게 웃어 보였다.

“오시느라 고생 많으셨습니다. 저는 설연산장의 사무관 주묘랑이라고 합니다. 제가 신방으로 인도해드리지요.”

주묘랑이 당염원에게 손을 내밀었다.

당염원이 바라보니 눈앞의 여인에게서 옅은 회색빛의 연기가 뭉게뭉게 피어나고 있었다. 단약을 자주 접하는 것이 분명했다. 당염원은 말없이 그녀의 손을 잡고 가마에서 나왔다.

이토록 자신의 말에 순응하는 신부는 처음 보았기에 주묘랑은 내심 놀라웠다. 그녀는 붉은 비단 끈 하나를 꺼내면서 입을 뗐다.

“신부님께 실례를 좀 하겠습니다.”

당염원은 실례가 아니라는 듯 고개를 가로젓고는 눈을 가리기 전 주위를 한 번 둘러보았다. 흰 눈에 뒤덮인 소나무들과 높다란 망루들이 보였다. 한 폭의 수묵화처럼 아름다웠으나 사방이 흐릿하여 마치 구름 속에 있는 듯했다.

당염원의 협조적인 태도에 주묘랑 역시 한결 더 부드러워져 끈으로 당염원의 눈을 가리는 것도 더욱 조심스러워했다. 함께 걸어갈 땐 나긋한 목소리로 말했다.

“이곳에 시집오기로 결심하기 전에, 이미 설연산장에 대해서 들어보신 적 있으실 겁니다. 저도 거짓을 말하진 않겠습니다. 이전 열두 명의 신부들께서 모두 돌아가신 것은 맞습니다. 그간의 혼인들 모두 저희가 장주님을 위해 직접 약조한 것들인데, 장주님 혼자 외로이 생을 보내게 하고 싶지가 않아서였지요. 그걸 장주님께서도 아셔서 저희의 이런 결정을 눈감아 주시는 거고요.”

그러자 당염원이 물었다.

“어떻게 하면 죽지 않을 수 있지요?”

주묘랑은 그녀가 이토록 갑자기 입을 뗄 줄은 몰랐다. 질문 또한 상당히 직설적이었다. 잠시 멍해 있던 주묘랑이 이내 웃으며 답했다.

“말씀 편하게 하세요, 신부님. 그나저나 그간 이런 물음을 한 신부는 없었는데. 솔직히 말씀드리자면, 장주님께선 일반인과 매우 다릅니다. 죽지 않기 위해서는 주모님께서 장주님을, 또 장주님께서 주모님을 연모하셔야 하지요.”

표정에는 변화가 없었지만, 당염원은 힘이 쭉 빠지는 기분이었다. 주묘랑의 말은 하나 마나 한 그런 대답이었다.

주묘랑 역시 자신의 말이 다소 이상하게 느껴질 수 있음을 알아채고는 가볍게 헛기침을 하며 웃어 보였다.

“그럼 이렇게 대답해드리죠. 영리하게 행동하셔야 합니다.”

당염원은 눈을 가리고 있는 비단 너머로 주묘랑을 한 번 쳐다본 뒤 더 이상 말을 꺼내지 않았다. 물어본 것에 비해 대답에는 영양가가 하나도 없었다.

비록 표정 변화는 없었지만, 당염원의 양 볼이 미세하게 뾰로통해졌다. 이는 그녀 스스로도 인지하지 못한 듯했다. 그 모습을 본 주묘랑은 저도 모르게 미소 지었다. 이번에 시집온 신부는 확실히 이전의 신부들보다 훨씬 흥미로웠다. 장주님께서 좋아하실진 모르겠지만.

‘휴…….’

주묘랑은 소리 없는 한숨을 쉬었다. 장주님께서 점점 나이가 들어가시는데 여인들에겐 눈길도 주지 않으시니, 장주님을 모시는 다른 이들만 속이 까맣게 타들어 갈 뿐이었다.

신방에 도착했지만 주묘랑은 당염원의 눈에 씌워진 비단을 벗기지 않은 채 입에 단약 하나를 넣어 주었다.

“이건 절대 독약이 아닙니다. 그저 하루 동안 무기력하게 만들어 주는 약인데, 겁내지 않으셔도 됩니다. 이전에 신부로 왔던 열두 명 중에 약을 먹지 않겠다고 소동을 부렸던 분도 계신데, 결국 그날 밤 돌아가셨지요. 오늘 밤을 무사히 보내기 위해서 이걸 먹는 편이 더 좋을 겁니다. 주모님께 정이 가서 제가 특별히 솔직히 말씀드리는 거예요.”

당염원은 약을 삼키고 주묘랑의 부축을 받으며 침상 위에 앉아 호기심 가득한 목소리로 물었다.

“왜?”

주묘랑이 가볍게 웃고는 당염원을 가볍게 침상 위에 눕게 한 후 의미심장하게 답했다.

“지금이 바로 영리하게 행동해야 하는 순간이에요.”

당염원은 지금껏 저항 한 번 하지 않았다. 그녀가 자신과도 퍽 잘 맞는다고 생각한 주묘랑이 설명을 덧붙였다.

“오늘이 바로 혼삿날입니다. 그렇다면 장주님께서도 저희의 노력을 가상히 여겨 오늘 밤 오실 텐데, 가만히 누워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이 장주님의 심기를 거스르지 않는 좋은 방법 아닐까요?”

주묘랑은 한마디를 더 덧붙인 뒤 그대로 방을 나갔다.

“아무쪼록 잘 해결하시길 바랍니다.”

그렇게 문이 닫혔다. 당염원은 손으로 눈을 가린 비단 끈을 살짝 걷어 낸 후 방 안을 조심히 살폈다. 녹녹의 힘 덕분에 속혼단이라는 독마저도 아무런 효과가 없었다. 주묘랑이 줬던 성질을 잠재우는 단약은 더 말할 것도 없었다. 녹녹은 독이 강력할수록 더 큰 힘을 냈고, 더욱 기뻐했다.

신방에는 직접 손으로 만든 정교한 가구들이 들어차 있었다. 공기 중에 퍼져 있는 은은하고 차가운 향기는 마음을 편안하게 했다. 당염원은 방을 둘러본 후 다시 붉은 천을 덮어쓰고 가만히 누워 있었다.

어느새 시간이 빠르게 지나갔고, 까만 하늘 위로 달이 떠올랐다.

당염원이 전혀 눈치채지 못한 사이에 신방의 문이 소리 없이 열렸다. 뒤이어 검은 수가 놓인 흰색 가죽 신발이 발을 디뎠다. 월백색의 옷자락이 문턱을 쓸고 지나가며 흰색 가죽 신발이 가볍게 다가왔다.

「주…… 주인님! 독, 독이에요! 독! 독을 주세요!」

당염원은 갑자기 들려온 녹녹의 목소리에 깜짝 놀라 깨어났다. 다급한 녹녹의 목소리에선 그만큼 간절한 갈망이 느껴졌다. 그 때문에 놀라 경직된 당염원은 몸을 일으켰다. 그리고 뭐라 말을 하려고 입을 벌린 순간, 별안간 어떤 물체가 입속에 들어왔다.

응?

그건 길고, 차갑고, 섬세하면서도 부드러웠다…….

당염원은 눈을 깜빡이며 본능적으로 혀를 움직여 입속에 들어온 물체의 형태를 더듬기 시작했다.

「독, 독이에요……. 독을 주세요, 주인님…….」

녹녹이 부드러운 목소리로 아양을 부리는 바람에 당염원은 다시금 놀랐다.

지금 이곳은 설연산장의 신방이 아닌가? 입속에 이건 대체 뭐지? 어떻게 갑자기 이런 게 내 입에? 그리고 이 형태…… 이 느낌…… 너무 익숙해!

“맛있소?”

그때 갑자기 담담하고 차가운 사내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당염원의 눈앞이 빛으로 번쩍였다. 그녀의 눈을 가리고 있던 붉은 천이 벗겨진 탓이었다.

방 안의 야명주가 부드러운 빛을 발산하고 있었고, 침상 앞에는 어느 한 사내가 당염원의 입에 검지 하나를 찔러넣은 채 조용히 서 있었다. 눈을 뜬 당염원은 놀라움에 휩싸였다.

경국지색, 절세가인.

보통 여인들을 묘사할 때 쓰이는 말이지만, 지금 눈앞에 있는 자는 사내였음에도 조금도 아까운 말이 아니었다.

당염원은 그동안 빼어난 미모를 가진 남녀를 수없이 봐 왔다. 지금의 그녀 자신 역시 그중 하나였다. 지금 그녀의 모습이야말로 말로 형용하기 힘들 정도로 아름답다고 생각했는데, 눈앞의 사내도 만만치 않았다.

그는 소매가 넓은 월백색의 긴 옷을 입고 있었는데, 옷섶에는 검은 구름이 수놓아져 있었다. 고아한 자태에 길고 훤칠한 것이 절대 왜소해 보이진 않았다. 딱 적당히 알맞은 키와 풍채였다. 원래도 백옥처럼 하얗던 얼굴은 분을 바른 탓에 더욱 하얬고 입술은 매우 빨갰다. 눈썹과 눈도 아름다웠다. 긴 속눈썹 밑으로 드리워진 옅은 그림자는 까맣게 반짝이는 두 눈을 더 몽롱해 보이게 만들었다. 눈부신 달 조각 하나가 눈 안에 들어 있는 것 같았다. 마치 환영처럼 손댈 수 없는 아름다움을 지닌 사내였다.

검은 머리칼을 등 뒤로 묶어 내린 그의 눈빛에서 약간의 의구심이 느껴졌다. 눈동자에 이따금 이는 잔잔한 물결에는 말할 수 없는 적막이 감돌았다. 그 적막은 마치 추운 밤하늘에 떠 있는 달을 연상케 해 보는 이의 마음을 취하게 만들었다.

당염원은 이 사내의 외모에 놀란 것이 아니라 그의 온몸에서 뿜어져 나오는 짙은 검은 안개에 놀랐다. 그것은 곧 이 사내에게 많은 ‘독’이 있음을 의미했다.

머릿속에서 녹녹이 끊임없이 갈망의 외침을 내지르고 있었다. 당염원 역시 녹녹이 갑자기 이러는 이유를 알 수 있었다.

“맛있소?”

사내가 다시 말했다. 꼭 당염원이 자신의 말을 이해하지 못했다고 생각하는 듯했다. 당염원의 입속에 있던 손가락이 살짝 움직이며 멍하니 있던 그녀의 작은 혀를 건드렸다.

당염원은 눈을 또르륵 굴렸다. 가빠진 숨에 가슴이 오르락내리락하길 반복했다. 그러다 고개를 뒤로 젖혀 자신의 침이 잔뜩 묻은 손가락을 뱉어냈다. 당염원은 이내 맞은편에 서 있는 사내의 두 눈을 응시하면서 열심히 고개를 끄덕였다.

“네, 맛있어요.”

당염원은 사내의 몸 주위로 짙게 응결된 검은 안개를 다시 한번 바라보았다. 이걸 모두 먹으면 그녀의 천성약체도 거의 모든 수련을 마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녀는 지금 이 사내를 ‘먹어 치워 버리고’ 싶었다. 동시에 지금 이곳에 들어온 사람이 아마 자신의 부군, 즉 설연산장의 장주일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녀의 목숨이 이 사내의 손에 달려 있었다. 누가 누구에게 ‘먹히느냐’가 지금의 문제였다.

사릉고홍(司陵孤鴻)은 허공에서 손가락을 가볍게 튕겼다. 이에 따라 그의 눈동자도 가볍게 출렁였다. 곧이어 침상 위에 가만히 앉아 있던 당염원을 바라보던 사릉고홍이 전혀 예상치 못한 행동을 했다.

그는 주저하지 않고 손가락을 또다시 당염원의 입에 넣었다.

“으음.”

당염원은 입속에 갑작스럽게 들어온 불청객을 뱉지 않은 채 그저 눈빛으로 물었다. 지금 뭐 하자는 거예요?

그때 사릉고홍이 말했다.

“맛있으면 많이 드시오.”

하마터면 당염원은 유혹을 견디지 못할 뻔했다. 그 말에 정말 그의 독기를 ‘먹어’ 버리고 싶었던 것이다. 그러나 눈앞에 있는 사람의 감정 변화를 알아채기란 어려운 일이었다. 자신의 경거망동으로 벼락같은 공격이 가해질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고요한 신방 안, 혼례복을 입은 당염원은 침상 위에 앉아 앞에 서 있는 자신의 부군이라는 사람의 손가락을 물고 있었다. 누구도 말을 하지 않았고, 그저 서로가 서로를 ‘애정 어린 눈빛’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누군가 이 장면을 본다면 놀라움에 넋을 잃을 게 분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