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화. 영보 녹녹 (1)
조철은 놀랍고 의아한 나머지 당염원에게 물었다.
“얘야, 너 머리를 다친 건 아니지?”
그간 장주의 신부를 고를 때면 여인들은 울고불고 여간 난리가 아니었다. 하지만 결국 결과는 모두 똑같았다. 오늘처럼 스스로 장주에게 시집을 가겠다고 나서는 사람은 결코 없었다.
당염원은 너무나 침착했다.
“늦었습니다. 어서 가시지요. 만약 장주께서 절 마음에 들어 하지 않으신다면 그때 가서 당교지의 행방을 찾아 다시 혼례를 올리면 되지 않겠습니까. 뭐든 지금 빈손으로 가시는 것보단 나을 겁니다.”
조철이 뭐라고 하려 하자, 서수죽이 급히 손을 뻗어 꽃가마의 문을 가리고 있는 주렴을 걷어 내며 말했다.
“오르시지요.”
당염원은 천천히 가마에 올랐다. 그녀는 걷혔던 주렴이 다시 내려올 때까지 맞은편에서 환히 웃고 있는 유 씨를 주시했다. 그녀는 왼손으로 유 씨가 꼬집어 거의 피가 배어 나올 듯한 상처를 매만지며 입을 앙다물었다. 그렇게 유 씨에게 원한이 생긴 그녀였다.
서수죽은 당묘온에게 예를 갖춰 인사하며 말했다.
“오늘부로 당가의 둘째 딸 당염원은 설연산장으로 시집가오니, 지금부터 당염원과 당가는 그 어떤 연고도 없습니다. 또한 만일에 대비하기 위하여 조속히 당가의 셋째 딸을 찾으시길 청합니다.”
만일에 대비하기 위해.
여기까지 듣자 가마 안에 있던 당염원이 입꼬리를 말아 올리며 미세한 웃음을 지었다. 서수죽은 그녀를 위해 당가와의 인연을 정리해 주었고, 만일에 대비하기 위해서라는 말로 당교지의 가치를 떨어뜨림으로써 그녀를 대신해 일갈해 주었다.
서수죽이 당묘온과 유 씨의 표정이 어떤지는 거들떠보지도 않고 소리쳤다.
“가마를 올려라!”
그러자 네 사람이 가마의 기둥 하나씩을 들고 몸을 날려 일어났다.
붉은 비단이 꽃가마 밑으로 고르게 흩날렸다. 멀리서 보면 꽃가마가 바람을 타고 날아가는 것만 같은 모양새였다. 붉은색 하늘길을 타고 하늘로 날아가는 것만 같았다.
꽃가마는 그렇게 허공을 가로질러 갔다. 보통 사람은 절대 하지 못하는 것이었다. 꽃가마가 얼마나 많은 사람을 놀라게 했는지 가마 안의 당염원은 전혀 알지 못했다. 그저 가마가 매우 안정적이며 넓고 푹신하여 쾌적하다는 생각을 할 뿐이었다.
모처럼 평화로운 시간이 되니 그녀는 그제야 자신의 몸에 생긴 변화를 살필 수 있었다.
과거 오십 년간의 생활은 무미건조했고 늙은 괴물 역시 그런 그녀를 방치했지만, 수진자의 섭리에 대해서라면 그녀도 조금은 알고 있었다. 갑작스레 이곳 세계에서 보였던 것들, 뇌리에 스치는 기이한 느낌. 그녀는 이들로부터 하나의 가능성을 생각할 수 있었다.
당염원은 마음을 가라앉히고 깊은 영혼의 바다인 영해(靈海)로 들어갔다. 당염원은 일순간 현묘한 공간 속으로 들어갔다. 눈에 보이는 것이라곤 아득한 안개뿐이었다. 그 가운데 찬란한 빛을 발하는 옥석 하나가 떠다녔다. 낯설지 않은 느낌은 바로 그 옥석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이건…… 늙은 괴물에게서 빼앗고 내가 삼켜 버린…… 날 죽게 한 그 벽옥이잖아?
“주인님…….”
갑작스레 들려오는 부드럽고 앳된 목소리에 당염원은 깜짝 놀랐다. 목소리는 점차 또렷이 들려왔다. 그녀가 좀 더 세밀히 살필수록 벽옥은 점점 더 익숙한 모양이 되어 갔다. 당염원이 물었다.
“네가 이야기 하고 있는 거니?”
“네, 전 녹녹(綠綠)이라고 해요.”
“녹녹?”
당염원은 웃음이 나왔다. 어린아이 같은 음성과 안정적인 영혼이 주는 편안함으로 인해 그녀는 망설임 없이 궁금한 것을 물어보았다.
“네가 그 영보(靈寶)야? 지금 내 몸속에 있어서 나를 주인으로 섬기는 거고?”
“그렇습니다, 주인님…….”
벽옥은 마치 살아 있는 것처럼 공중을 떠다녔다.
당염원은 이것이 영지(靈智)가 생긴 지 얼마 안 된 영보라는 걸 알 수 있었다. 그리고 서로 간의 친근함 덕에 녹녹이 말하고자 하는 게 무엇인지 쉽게 파악할 수 있었다. 이 영보는 그녀가 낯선 세계에 온 후 줄곧 함께 있었다. 자신을 해하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에 당염원의 태도는 한결 부드러워졌다.
“내가 본 검은 연기들과 독을 먹어도 괜찮았던 것 모두 네 덕분인 거니?”
“녹녹은 강해요. 녹녹은 주인님을…… 보호합니다. 걱정 마세요.”
당염원은 잠시 멍해졌다가, 뒤이어 자신들이 서로를 받아들였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녀는 자신이 녹녹의 생각을 읽을 수 있고, 녹녹 또한 그럴 거라는 걸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었다. 피식하는 웃음소리와 함께 당염원은 벽옥을 향해 완전히 마음을 열게 되었다.
“응, 그래. 강하지. 걱정 안 할게.”
당염원은 최근 일어났던 기이한 일들을 상기하며 약간의 기대를 품고 물었다.
“너 독약을 좋아하니? 독약을 먹으니 오히려 원력이 회복되던데. 독약을 섭취해야 너에게도 좋고 내 몸 상태에도 도움이 되는 걸까?”
“독 좋아해요……. 주인님에게도…… 좋아요. 모두…… 좋아요…….”
녹녹의 말이 끊어질 듯 말 듯하며 이어졌다. 듣기에 분명치 않았지만 나른한 듯한 목소리가 한 자씩 고스란히 당염원에게 전해졌다.
“주인님…… 주인님도 강해질 수 있어요. 강하게……. 남들의 시선을…… 걱정하지 마세요…….”
당염원은 반응이 없었다. 그러자 벽옥에서 눈부신 녹색빛 한 줄기가 뿜어져 나왔다. 당염원은 본능적인 믿음으로 그것을 피하지 않았다. 그렇게 빛줄기가 영지에 녹아들어 갔다.
‘이건…….’
당염원은 잠시 놀라는 듯했으나, 놀라움은 이내 기쁨으로 바뀌었다. 영지에 녹아든 벽천결(碧泉訣)은 수진공법(修真功法) 중 하나이자 녹녹과 상호작용이 가능한 약수공법(藥脩功法)이기도 했다.
“녹녹, 고마워!”
공법을 얻게 된 당염원은 이제 더욱 건강해질 수도 있거니와 자신을 돌볼 원력도 만들 수 있게 되었다. 앞으로는 지금처럼 남의 뜻에 순종하며 살지 않을 수 있었고, 이전 생에서처럼 죽지 못해 사는 꼭두각시 삶을 살지 않아도 되었다.
“하하……. 주인님은 강해요. 앞으로 다른 사람들에게…… 놀아나지 마세요. 그 사람들을…… 제압해요……!”
녹녹이 다소 격앙된 어조로 말했다. 그러자 벽옥 주위로 흐르는 물결이 더욱 세차게 흐르기 시작했다.
“하하하!”
당염원은 호탕하게 웃기 시작했다. 이전 생에서는 손에 꼽을 정도로 웃었던 반면, 이곳 세계에선 하루가 채 되지 않아 그보다 더 많이 웃게 되었다. 심지어 모든 웃음엔 진심 어린 기쁨이 담겨 있었다.
그때 가마 밖에서 조철의 우렁찬 목소리가 들려왔다.
“저 아이 진짜 머리를 다친 거 아니오? 혼자서 저리도 호탕하게 웃다니.”
조철의 말에 당염원은 더 이상 이곳에 머물 수 없겠다는 생각이 들어 말했다.
“녹녹, 난 가 봐야 해. 바깥 세계에서도 이렇게 나랑 얘기할 수 있는 거지?”
“네, 그래요…….”
당염원은 대답을 듣고 영해에서 빠져나왔다. 눈을 뜨자 여전히 평화로운 꽃가마 안이었다.
잠시 뒤, 서수죽의 목소리가 뒤이어 들려왔다.
“허설산까지 약 이틀은 소요되니, 지치거나 허기가 지시면 저희에게 알리십시오.”
그 말인즉슨 그녀가 얼마나 지치고 배고프건 간에 이틀 내로 허설산에 도착해야 하니 시간을 지체하려는 행위는 용납할 수 없다는 뜻이었다.
당염원은 당장 이곳에서 도망치고 싶었지만, 아주 여유로운 태도로 담담히 답했다.
“그러지요. 별일 없는 거라면 전 눈을 좀 붙이겠습니다.”
그녀는 그 시간 동안 벽천결의 기반을 다져야겠다고 생각했다.
가마 바깥에서 서수죽이 다소 의아하다는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예, 주모님(*主母: 시종이 여주인을 부르는 말).”
그러자 송군경이 한 손으로 가마를 받쳐 들고 다른 한 손으로 부채를 살랑이며 실소를 터뜨렸다.
“이번 신부는 참 재밌는 사람이군.”
조철이 답했다.
“장주같이 대단한 분을 어찌 흠모하지 않을 수 있겠소! 뭘 모르는 사람들은 그런 뜬소문을 믿는다지만, 이분은 좀 다른 것 같군! 하하하!”
그때 뒤편에 있던 앳된 얼굴의 소년 이경(李璟)이 차가운 눈동자를 들어 올리며 말했다.
“하지만 그것도 죽으면 끝이지요.”
이경의 말에 잠깐의 정적이 찾아왔다. 조철이 뒤늦게 한숨을 쉬며 뒤에 있는 이경을 흘겨보았다.
“하여간 말을 해도.”
조철의 말에도 이경의 표정에는 조금의 미동도 없었다.
가마 안의 당염원은 이들의 대화를 엿듣다가 이내 조용해지자 눈을 감고 벽천결의 기반을 다졌다. 벽천결은 수진계의 약수공법이었다. 약수에 꼭 필요한 영보인 녹녹까지 있으니 더욱 쉽게 영기를 흡수할 수 있을 터였다. 그렇게 녹녹을 잘 키운 후 녹녹을 통해 한층 더 강력한 힘을 얻어낸다면 그녀의 신체도 함께 강해질 수 있었다.
약수에 가장 중요한 건 영약과 독약을 막론하고 모든 약을 잘 다루는 것이었다. 그렇기에 신체의 강한 정도는 그다음이었다. 벽천결은 천성약체(天聖藥體), 벽락영약(碧落靈藥), 황천수독(黃泉修毒) 세 장으로 나뉘었다. 첫 번째는 자신이 천성약체가 되도록 하는 수련공법으로, 축기(築基), 벽곡(闢谷), 심동(心動), 금단(金丹), 원아(元嬰), 합체(合體), 대승(大乘) 일곱 가지 경지로 이루어져 있었다. 나머지 두 장은 각각 약을 조제하고 독을 사용하는 것이었다.
녹녹의 도움 덕분에 축기는 성공적으로 끝냈다. 영력을 아주 잠시 동안만 느끼긴 했지만 녹녹이 만들어 낸 약력이 병약한 신체에 흡수되자 나른한 듯한 편안함이 몸 전체에 전해져 왔다.
“주모님, 하루가 지났습니다. 식사하시지요.”
서수죽의 목소리에 놀라 깨어난 당염원은 순간 그의 말뜻을 이해하지 못했다. 축기를 하는 동안 하루가 꼬박 지난 것이다.
“네, 알겠습니다.”
만일 당염원이 하루 동안 먹지 않아도 괜찮을 거라고 생각했다면, 서수죽은 식사를 제안하지도 않았을 것이다. 그가 옥병 하나를 가마의 주렴 사이로 건네며 말했다.
“허기를 채우는 단약입니다. 이걸 드시지요.”
당염원은 시집가는 길에 제대로 된 식사 한 끼 대접받지 못했다는 것에 전혀 화가 나지 않았다. 오히려 옥병을 바라보는 순간 기쁨에 눈이 동그래졌다. 옥병 주변에 피어나는 옅은 녹색의 안개는 약의 기운이 뿜어내는 것으로, 지금 그녀가 가장 원하는 것이기도 했다.
약병을 받아들며 고맙다는 인사를 하자 머릿속 깊은 곳에서 녹녹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주인님…… 주세요…….」
“진정해, 모두 네 것이야.”
일순간 당염원의 눈에는 총애의 빛이 어렸다. 지금 둘은 한배를 탄 사이와도 같았다. 단약에 들어 있는 독의 기운은 모두 녹녹이 흡수하고, 나머지 약의 기운을 녹녹이 깨끗이 정화한 후 당염원에게 준다. 그렇게 되면 수련이 더욱 빠르게 진행될 수 있었다.
옥병 안에는 연노란색의 단약이 세 알 들어 있었다. 당염원은 그중 한 알을 입에 넣고 녹녹과 함께 약을 통해 수련했다. 약의 기운이 많지는 않았지만, 지금으로선 이게 유일한 방법이었다. 녹녹이 성에 차지 않아 한다는 걸 느낀 당염원이 부드러운 목소리로 달랬다.
“걱정 마, 녹녹. 지금은 안 되지만 나중에 널 위해 꼭 독을 나눠줄게. 그때 배불리 먹으렴.”
「알겠어요. 주인님은 약속을 지킨다…….」
“그래, 꼭 지킬게!”
당염원이 고개를 세차게 끄덕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