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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이거 아까운 상급 마족 하나만 잃은 꼴이 됐어. 학생 하나의 목숨을 취하거나, 적어도 루카스 놈에게 생채기라도 냈어야 했는데 말이야.

-죄송합니다.

-그라스코에 루카스, 그놈이 있는 이상 침공 계획은 차질을 빚을 수밖에 없겠어. 안 그래?

그의 지적에 쥐죽은 듯 침묵이 내려앉았다.

-다들 입만 쳐 닫고 있을 생각인가?

-제게 좋은 생각이 있습니다.

-뭐지?

그 시선이 곱진 않다.

입을 뗀 이가 바로 이번 계획의 책임자였기 때문.

-그라스코는 전통적으로 '학술적 성과'가 교수를 평가하는 데 가장 중요한 잣대로 쓰이고 있습니다. 성과를 내지 못한 교수는 이 그라스코에 남아 있기 힘듭니다. 그것은 전투 학부라고 해도 다르지 않습니다.

-그런데?

-현재 리바이의 난동 덕분에 루카스에게 향하는 시선이 좋지는 못합니다.

-웃기는군. 오히려 평가는 더욱 공고해졌을 텐데.

<카일론 관>의 영상이 퍼져나가면서 오히려 '동부 전선의 영웅'이라는 이름에 금칠을 더해 준 꼴이 되어 버렸다.

-하지만 학부모들에게는 아니지요. 루카스 교수 때문에 그런 위험이 벌어졌다고 여기고 있으니까요.

-....

일리 있는 말이었다.

지금까지 그라스코는 마족이 힘을 쓰지 못하는 성역이었다.

그러나 루카스 교수의 취임 이후, 그 성역의 명성에 금이 갔다.

본인이 해결하긴 했으나, 사람들에겐 그런 사실보다 어째서 그런 일이 벌어졌는지가 중요하다.

한 언론에서는 이 마족의 등장을 '동부 전선의 영웅'으로 칭송받는 루카스 교수를 처리하기 위한 것이 아닐까? 하는 기사를 내놓았고, 그 기사는 소소한 화제를 불러일으키고 있었다.

평범한 사람들에게야 루카스의 활약이 큰 인상을 주었을지 모르나, 그라스코에 자식을 맡긴 부모 입장에서는 그렇지 않다.

오히려 위험의 원인으로 보는 시선 또한 적지 않은 것이다.

-이 상황에서 루카스 교수의 '학술적 성과'를 트집 잡아, 압박할 수 있지 않겠습니까? 아시다시피, 루카스 교수가 교수에 취임한 것은 왕이 손을 썼기 때문입니다. 어떠한 학술적 성과가 있었던 것은 아니지요.

그러니까, 여론을 선동해 루카스 교수의 입지를 좁히자는 뜻이다.

그럴듯한 계획이다.

-정기 학회가 머지않았습니다. 루카스 교수에게 남은 시간도 얼마 없다는 뜻이지요. 더군다나, 루카스 휘하의 조수는 단 하나. 그것도 우리가 심은 스파이입니다.

실현 가능성이 있다.

거기다 루카스의 강의는 상당히 폐쇄적인 강의로, 그 수강생의 숫자가 제한되어 있다.

그러니 축출을 막을 여론도 힘이 실리기는 어려울 터.

-좋다. 한 번 더 기회를 주지.

-감사합니다, 오르페가 님.

* * *

똑- 똑-

"누구지?"

리트도 퇴근하고 없을 텐데.

-루카스 교수, 나 로널드일세. 들어가도 되겠나?

부총장이 여기까지는 무슨 일로 왔단 말인가.

...상사의 방문은 언제나 달갑지 않은 법인데.

하지만 언제까지 밖에 세워둘 수도 없다.

"들어오시죠."

일단 문을 열어 로널드를 안으로 들였다.

"늦은 시간에 찾아와서 미안하네. 지나가다가 불이 켜져 있길래."

"...제 집무실에는 창문이 없습니다만."

"크흠! 그런 사소한 것은 넘어가도록 하고. 요즘, 뭐 괜찮나?"

이 양반이 왜 이래? 우리가 근황 토크나 나눌 사이는 아니지 않나?

"아, 아니. 나는 요새 자네가 청문회다 뭐다 해서 정신이 없는 것 같으니... 크흠. 하긴, 자네가 그런 거에 휘둘릴 타입은 아니긴 하네만."

"하실 말씀 있으시면 편하게 하십시오."

"그, 그러니까.... 내가 자네를 찾아온 이유는 말이지...."

묘하게 말을 끄는 것이 뭔가 꿍꿍이가 있는 모양이다.

"흠, 사실 자네 실습 때 일어난 사건 때문에 여론이 좋지 않아. 알고 있나?"

모를 리가.

최근 언론을 도배하는 게 그 일에 관련된 것들인데.

'아아. 대충 알만하군.'

보통 사람들에게는 <카일론 관>에서 벌어진 사건 덕분에 나에 대한 오해(?)도 더욱 깊어진 상태다.

하지만, 학부모들에게는 다르다.

아에로크 뉴스였던가? 키비탄인가 비비탄인가 하는 놈이 자극적으로 써 낸 기사 때문에 내 이미지가 그다지 좋지 않은 상황이었다.

그러니까 로널드는 지금 그에 관련된 이야기를 하러 온 것이다.

"그래, 이미 알고 있는 모양이군. 그럼 단도직입적으로 말하겠네. 자네가 그라스코에 있는 것을 탐탁지 않아 하는 이들이 있어."

나를 쫓아내려는가.

어림도 없다.

내가 버릴 때까지, 그라스코는 내 방패가 되어야 한다.

"...하지만, 나는 그것을 원치 않네."

응?

이 양반이 앞서서 쫓아내자고 할 줄 알았는데.

의외에 대답에 로널드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카일론 관> 사태로 확실히 느꼈네. 자네는 이 그라스코에 꼭 필요한 사람이야. 자네를 쫓아낸다는 건 내 생에 가장 멍청한 일이 될 테지. 자네를 지키고 싶네. 하지만, 나 혼자서 자네를 지킬 순 없어. 아마 이사회에서는 자네의 '학술적 성과'를 요구할 걸세."

아아, 그러고 보니 이 그라스코는 '학술적 성과'라는 것이 중요한 곳이었다.

내가 집무실을 배정받자마자 리트가 논문 주제들을 잔뜩 가져오지 않았던가. 그런 이유였다.

"내가 도와줄 수 있네. 조수를 몇 더 붙여 주지. 그리고 '학술적 성과'로 인정될 만한 논문도 주겠네. 조만간 열리는 학회에서 자네 이름으로 발표하기만 하면 되네. 발표자도 따로 구해 주지."

그러니까 다 차려 은 밥상에 숟가락만 얹으라는 이야기다.

"부총장님."

"오오, 그래."

하지만, 그럴 필요는 없다.

"싫습니다."

내 논문이 더 뛰어난데, 굳이?

§ 아카데미의 신화급 교수가 되었다 26화

26. 학회 (1)

"아니, 이 사람아. 생각도 해 보지 않고서 싫다니. 일단 자리는 보전해야 할 것 아닌가!"

"관심 없습니다."

"아, 아니... 관심 없다니, 그게 무슨 소린가!"

물론 자신의 제안이 명예롭지 않다는 것은 알고 있었다. 훗날 문제의 여지가 될 수도 있다는 사실도 알고 있다.

하지만 그에 대한 고민까지 마치고 내민 제안이었다. 방법은 이것밖에 없다.

"알아, 아네. 자네에게 이런 불명예스러운 짓을 권유하는 나도 내가 한심하네. 하지만 어쩔 수 없지 않은가. 이대로라면 자네는 그라스코에서...."

"부총장님."

루카스는 로널드의 말을 끊고 물었다.

"학회가 얼마나 남았는지 아십니까?"

"한 달 정도... 남았지?"

뜬금없는 질문이었지만, 그래도 긍정적인 반응이다.

학회에 대한 궁금증이 생겼다는 것은 곧, 자신의 제안을 고려해 볼 수도 있다는 시그널 아닌가.

하지만 루카스의 입에서 나온 말은 전혀 다른 뉘앙스의 것이었다.

"그 정도면 충분합니다."

"충분하다니, 뭐가 말인가?"

"학회는 제가 알아서 준비하겠습니다."

"아니, 지금 남은 시간이...."

"충분합니다."

마주한 루카스의 눈은 확고한 빛을 띠고 있었다.

자신도 모르게 설득될 만큼.

"아, 아니 그, 그게 충분하다고 될 일이...."

설득해야 하는 건 자신인데, 오히려 아무 논리도 없는 루카스에게 설득당하고 있다.

참 이상하게도 묘한 신뢰감이 솟아오른다.

"하아...알겠네. 대신 도움이 필요하면 언제든지 말하게. 부총장실의 문은 항상 열어 둘 테니."

"명심하겠습니다."

이렇다 할 성과를 거두지 못한 채 돌아서는 로널드였지만, 어쩐지 발걸음은 가벼웠다.

'참 이상하단 말이야.'

이해할 수 있는 부분은 아니었다.

"안녕하세요!"

"오오, 에일론 군 아닌가. 한데, 이 늦은 시간에 여긴 무슨 일인가?"

"교수님 뵈러 왔습니다."

"루카스 교수? 마침 안에 있네. 들어가 보게."

* * *

...저 영감탱이가?

안에서 듣고 있자니, 기가 찰 노릇이다.

저 영감님은 집에 안 가고 왜 남의 집무실 앞에서 안내데스크 역할을 하는 거야?

똑똑-

의문이 이어질 틈은 없이 노크 소리가 들렸다.

이미 밖에서 한 대화를 들었으니, 누군지는 알고 있었다.

"들어와라."

문이 열리고, 전보다 업그레이드된 휠체어를 타고 에일론이 등장했다.

"교수님, 안녕하세요."

"...달라졌군."

"알아봐 주시는군요!"

<시력 강화> 덕분에 눈썰미도 좋아진 탓이다.

실제로 그 변화는 상당히 미미하다 볼 수 있었다.

소재가 달라졌을 뿐, 디자인은 차이가 없었으니까.

기능도 추가가 됐으려나?

"교수님께 제일 먼저 보여 드리고 싶었어요. 이름은 디로그. 사상 최강의 마도 병기라고 자신할 수 있습니다."

디로그.

그 이름을 듣는 순간, 깜짝 놀랐다.

에일론의 호언장담처럼 디로그는 사상 최강의, 전무후무한 마도 병기로서 '아카데미의 천재 망나니' 세계관에서 그 위용을 떨친다.

하지만-

"정말 자신하나?"

그것은 mk.X때의 이야기.

본래보다 이른 시기에 개발되긴 했지만, 이건 프로토타입, 즉 mk.1이다.

X 정도의 위력을 장담하기에는 무리가 있다.

에일론은 흠칫 놀라더니, 씨익- 하고 웃는다.

"역시, 교수님 눈은 못 속인다니까. 맞아요. 이건, 어디까지나 프로토타입. 하지만 교수님께 제일 먼저 보여 드리고 싶었다는 건 사실이에요."

"어째서지?"

"교수님이라면, 이 디로그의 부족한 점을 아시지 않을까 해서요."

...광기다.

일견, 맑아 보이는 저 눈에 광기를 숨기고 있다.

본능적으로 느껴졌다.

이거, 말 잘못 섞으면 큰일 난다.

생명의 위협 같은 것은 아니다. 비록 싸이코일지라도, 선을 넘을 놈은 아니니까.

진짜 위험한 건 저 녀석의 천재성이다. 내 가면이 벗겨질 수 있다. 내 모든 비밀이- 뽀록날 수도 있다.

"마도 공학은 내 전공이 아니다. 번지수를 잘못 찾아왔군."

"마도 공학적 지식을 말씀드리는 게 아니에요. 그저, 개선점을 찾아주셨으면 해서요."

"왜 나를 찾아왔지? 그라스코의 공학 교수들이 훨씬 도움이 될 텐데."

폭탄을 떠넘기려 했다.

"공학 교수님들은 아무런 도움이 되지 못해요."

그건 맞는 말이다.

에일론에 비하면 공학 교수들의 수준은 갓난아기와 다름없는 것이니.

폭탄 돌리기는 실패다.

"오직, 교수님만 해답을 알고 계실 것 같거든요. 제 마광포를 무용지물로 만든 건 교수님이 유일하시니까. 혹시 이번에도 그런 개선점을 살펴 주실 수 있을 것 같은데."

아슬한 지점이다.

발을 빼기도, 모르쇠로 일관하기도 애매하다.

무엇보다 에일론의 성격이 미친 싸이코라는 것이 가장 걸린다.

까짓거, 알려 줄 수 있다.

문제는 디로그의 진정한 완성은 스토리가 어느 정도 진행되고 나서야, 그러니까 그라스코 침공 작전 이후, 마족들과의 전쟁이 궤도에 오르면서 그나마 진행이 된다는 점이다.

인간계가 아닌, 마족의, 그것도 마왕급의 존재를 죽이고 얻은 부산물로 탄생하는 거 거든.

심지어 그렇게 만들어진 것도 mk.5다. 진정한 의미의 완성체인 X에 비비기는 한참 무리가 있지.

'방법이 없지는 않다.'

에일론이 원하는 것은 어디까지나 개선.

없다고 모른 척할 수도 있지만, mk.1은 프로토타입인 만큼 하자가 많다. 하자가 많다는 것은 에일론을 고기 방패로 삼을 내게 사망변수가 늘어난다는 뜻이다.

"...그렇게 기대는 하지 않는 것이 좋을 것이다."

"네, 교수님."

대답은 그래놓고, 엄청나게 기대하는 눈빛이다.

부담감을 누르고 마광포로 트랜스폼 한 디로그를 살폈다.

'역시.'

가장 중요한 마력의 통로.

과거처럼 취약하진 않았지만, 소재를 변경하면서 최대 출력을 사용했을 때 불안정해질 위험성이 있었다.

하긴, 지금 시점에서 디로그가 최대 출력까지 낼 이유가 뭐가 있겠는가만은.

그래도 개선할 점은 개선할 점.

"하나씩 불러 주마."

개연성이 파괴되지 않을 선에서 조금만 힌트를 주는 것도 괜찮겠지.

* * *

"감사합니다, 교수님!"

에일론이 밝게 인사하며 집무실의 문을 닫았다.

'...역시.'

예상대로, 루카스는 마도 공학에 일가견이 있는 것이 분명했다.

그것도 상당한 수준으로.

'그 부분을 단번에 찾아내다니 말이야.'

디로그를 개발할 때, 루카스 교수를 염두에 두고 개발했다.

그에게 무력화된 마광포의 기억이 아찔하게 남아 있었기 때문이다.

원초적인 의문이 들었다.

어째서 그는 마광포의 약점을 그렇게 쉽게, 그것도 순식간에 간파한 것일까.

결론은 하나였다.

마광포의 구조를 이해하고 있다는 것.

그게 아니면 설명이 되지 않는다.

아니나 다를까, 의도적으로 남겨 둔 결함을, 루카스는 단번에 찾아내었다.

'나조차도 두 번, 세 번 시뮬레이션 하지 않았다면 그냥 넘어갔을 그 결함을 말이야.'

그리고 더욱 놀라운 것은 그것 말고도 몇 가지의 결함을 짚어냈다는 것이었다.

그중에는 에일론이 자각하지 못한 결함도 있었다.

심각한 수준은 아니었지만, 개선된다면 훨씬 좋을 것들이었다.

'역시 재밌는 교수님이야.'

에일론의 미소가 짙어졌다.

* * *

'교수님은 아직도 퇴근 안 하시나?'

예전에는 퇴근 시간이 기다려졌다면, 이제는 퇴근 시간이 가까워지는 게 싫다.

비록 문이 자신과 루카스 사이를 가르고 있다지만, 어쨌든 같이 있을 수 있는 얼마 안 되는 시간이니까.

목을 빼고 집무실의 문을 바라보던 리트는 입술을 오물대더니, 무언가 결심한 듯 일어서 폴리모프를 풀었다.

조금은 과감한 의상.

몽튜브에서 본 '남자에게 호감을 살 수 있는 청순&섹시 스타일링'이라는 영상을 참고해 입어 보았다.

물론 루카스가 이런 시각적인 것에 휘둘릴 남자는 아니지만, 그래도 일말의 기대를 품었다.

"교수님, 퇴근 안 하세요?"

-아직 마무리할 일이 남았다. 먼저 들어가라.

최근 논문의 막바지 작업에 한창이다. 학회 일정이 가까워지면서 더욱 퇴근이 늦어지는 루카스였다.

리트는 뭐라도 돕고 싶었다.

자료 조사가 필요하다면 당장에 도서관을 털 수 있었고,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이라면 뭐든 돕고 싶었다.

무슨 용기에서인지, 집무실의 문을 조심히 열었다.

"제가 도와드릴 일은 없을까요?"

루카스의 시선이 리트에게 향한다.

그 눈이, 놀라움을 담아 커지고 있었다.

'남자에게 호감을 살 수 있는 청순&섹시 스타일링'이 효과가 있는 모양이다.

* * *

-교수님, 퇴근 안 하세요?

리트의 부름이 정적을 깨운다.

벌써 시간이 그렇게 되었나.

심지어 원래 퇴근 시간에서 한 시간이 더 지나갔다.

재능은 없다손 치더라도 글을 쓸 때 가장 행복한 모양이다. 시간이 빠르게 흐르는 것을 보면.

"아직 마무리할 일이 남았다. 먼저 들어가라."

퇴근 시간을 한 시간이나 넘겼는데 아직 퇴근을 안 했나?

내가 누구 때문에 교수들의 눈총을 받고 있는데.

끼익-

문이 열리고, 리트가 빼꼼히 들여다본다.

"제가 도와드릴 일은 없을까요?"

지금 당장 도움이 될 만한 건...

없다.

혹시 나중에 상급 마족이 됐을 때라면 또 모를까.

지금은 크게 도움이 될 만한 구석이....

[새로운 알림이 도착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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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규몬 님께서 30,000G 후원하셨습니다.]

[아카살 님께서 500G 후원하셨습니다.]

무슨 후원이 이렇게 많이 들어온단 말인가.

기쁘면서도 한 편으로는 무거웠다.

이것이 내 생존을 응원하는 이들의 의지고 목소리다.

[LIFE TIME : 27개월]

시스템 개편 후, 선작수가 증가해도 늘어나지 않는 저 숫자. 내 남은 수명이자, 이 그라스코가 무너지는 이벤트, '그라스코 침공'까지 남은 시간.

지금 들어오는 후원과 추천, 댓글은 모두 저 이벤트에 대비해 살아남으라는 응원이다.

금액은 얼마든 간에 상관없다.

모두가 똑같은, 똑같....

'응?'

내 눈이 잘못됐나? <시력 강화> 2단계가 있던데 그걸 사야 하나?

중간에 숫자가 조금 이상하게 보인다.

다시 한번

무려 삼만 골드.

잠깐 정신이 멍-해지고, 의식이 날아갈 것 같다.

27개월이나 남은 수명이 단번에 없어져도 좋을 것 같았다.

'아, 아니지. 살아남으라고 주신 후원인데, 이딴 생각을 가지면 안 되지.'

삼만 골드가 문제가 아니라 수없이 이어진 후원에 대한 압도적인 감사가 너무나도 크다.

지금 당장 감사의 의미로 뭐라도 해야 하지 않을까 같은 조바심이 떠올랐다.

인터넷 방송을 보면 이렇게 거대한 후원이 들어오면 춤 같은 걸 추곤 하던데 말이다. 내가 하는 건 불쾌하기만 할 것 같은데.

그때, 알림창 너머의 리트가 보였다.

폴리모프는 해제한 상태였고, 과감한 듯 청순한 의상이 그녀의 미모를 한층 더 빛나게 해 주고 있었다.

생겼다. 리트가 도움이 될 만한 구석이.

"...나를 돕고 싶다고 했나?"

"네, 교수님!"

그럼, 네가 나 대신, 감사의 리액션 좀 해 줘야겠다.

§ 아카데미의 신화급 교수가 되었다 27화

27. 학회 (2)

'됐다....'

이곳에서 내 유일한 취미(?)가 되어 버린 논문 집필.

글을 쓰고 있는 순간은 내 목숨이 경각에 달했다는 것을 잊을 수 있었다.

상당히 괜찮은 취미이자 해방구였다.

'부담감이 없어서인가. 괜찮네.'

이제 탈고까지 마쳐진 원고는 상당히 괜찮은 수준이다.

가독성도 나쁘지 않았고, 논문의 형식이라는 것을 잊을 만큼 재미도 있었다. 당장 연재해도 꿇리지 않겠다는 생각이 들 만큼.

물론, 그건 커다란 착각이겠지.

이 <아.천.망>을 처음 쓰는 순간만 해도 유료화는 가뿐하고 통장에 월 천만 원씩 꽂히는 상상을 하곤 했으니까.

하지만 현실은 '응, 아니야.' 월 천만 원은 무슨, 유료화도 못 했다. 이것도 실제 연재한다면 비슷할 것이다.

'그래도 '학술적 성과'용이라면 이 정도로 충분하다.'

원고를 잘 갈무리해 봉투에 넣고, 마법적인 처리가 된 인장을 꾹 눌렀다.

이것으로 학문적 성과를 핑계로 나를 그라스코에서 축출할 수는 없을 것이다.

지금 학계에 던져진 커다란 화두가 마족들의 전투 양상인데, 비록 내 상상이라고는 하지만 이 논문에는 충실히 서술되어 있으니.

애초에 이 세계관이 내 머릿속에서, 내 손끝에서 탄생한 것이니 고증의 오류 따윈 없다.

하나의 장애물을 해결했다.

이런 날은 축배를 들어야지.

"리트. 이 논문을 학회로 보내라. 그리고...."

회식이나 할까 싶어 말을 꺼내려다-

'아니지. 아무리 호감도가 100이 넘었다고 해서 교수가 회식에 끌고 가는 걸 좋아할 조교가 어딨어? 그래. 혼자 마시자.'

문득 떠오른 깨달음에 도로 집어넣었다.

"그 뒤는 퇴근해도 좋다."

이런 배려심 넘치는 교수라니.

스스로 대견했다.

['리트'의 호감도가 하락했습니다. -3]

아니, 이게 왜 떨어져?

* * *

'루카스 교수는 매일 새벽 <카일론 관>에 나타난다.'

얼마 전 있었던 사건 이후로 <카일론 관>의 사용도가 현저히, 아니 완전히 없어졌다고 해도 좋을 수준으로 떨어졌다.

하지만 단 한 명의 예외가 있었으니, 바로 루카스.

그는 새벽 다섯 시 무렵에 이곳에 출몰한다.

제시가 <카일론 관> 입구에 있는 것은 루카스를 만나기 위함이다.

5시 무렵.

저 멀리서 하나의 인영이 보인다.

"여기에서 뭐 하는 거지?"

알려진 대로, 정해진 시간에 <카일론 관> 앞에 도착한 루카스 교수.

그의 서늘한 존재감이 온몸을 압도하는 기분이었다.

하지만 묻고 싶은 것이 있었다.

"교수님께 여쭤볼 것이 있어서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

"제게 보여 주신 트리오닉 소...."

"내가 분명 보여 줄 수 있는 친절은 거기까지라고 했을 텐데."

그렇다.

분명 루카스 교수는 시연 이후에 자신이 베풀 수 있는 친절은 거기까지라며 확실히 선을 그었다.

하지만 답을 구해야 할 문제가 있었다.

...그는 어째서 가문의 비전인 트리오닉 소드를 그토록 완벽하게 구현할 수 있는가.

어떻게 애슬론 가문의 후계자인 자신보다 완벽한 1식을 구사할 수 있었는가.

그에 닿기 위해서는 도대체 어떻게 해야만 하는가.

눈앞의 루카스에게 묻고 싶었다.

하지만 입을 열 수 없었다.

그때, 루카스의 입이 열렸다.

* * *

'...쟤는 왜 저기서 저러고 있어?'

일일 훈련을 위해 찾은 <카일론 관>.

그 입구에 한 인영이 서 있다.

어둠 따위는 상관없이 <시력 강화>의 효과로 그 존재가 똑똑히 보인다.

제시 애슬론.

누가 봐도 누군가를 기다리고 있는 듯한 모양새다.

그리고 그건 아무래도 나겠지.

애초에 지금, 이 <카일론 관>을 이용하는 사람이 나뿐이니까.

"여기서 뭐 하는 거지?"

"교수님께 여쭤볼 것이 있어서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역시나.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

"제게 보여 주신 트리오닉 소...."

뭔가 더 말하기 전에 서둘러 말을 끊었다.

"내가 분명 보여 줄 수 있는 친절은 거기까지라고 했을 텐데."

그의 의문은 눈에 보일 듯 훤하다.

어떻게 자기 가문의 비전인 트리오닉 소드를 시연할 수 있는가.

비전이란 무엇인가, 가문 내에서 비밀스럽게 전승되기에 비전인 것이다.

애초에 내가 트리오닉 소드의 존재를 알았던 것은 내가 그 트리오닉 소드라는 설정을 썼기 때문이고, 사용할 수 있었던 건 스킬의 효과일 뿐이다.

이러한 사실을 어떻게 말해 주겠는가.

말한다고 하더라도 납득이나 하겠는가.

아니, 그저 입을 다물 수밖에 없다.

내 매몰찬 대답에 제시는 입술을 짓씹었다.

하지만 순순히 포기할 놈이 아니라는 것쯤은 알고 있다.

그리고 제일 중요한 건, 저 제시 애슬론이 그라스코 침공에서 가장 까다로운 빌런이 된다는 것이다.

괜히 악감정을 심어 둘 필요는 없겠지.

"혹시나 다음에 너에게 가르침을 내리게 된다면, 그땐 네 질문에 답을 주지."

한 가닥 희망을 남겨 주었다.

물론, 그런 일은 벌어지지 않을 것이다.

* * *

"어디 보자, 그 다음 논문은... 오, 루카스 폰 크라우스. 그 유명한 '동부 전선의 영웅'이 아니신가."

그는 산더미처럼 쌓인 논문 사이에서 익숙한 이름을 발견하고 손을 뻗었다.

멋들어진 필체로 '동부 전선의 상황으로 본 마족과의 전투 양상'이라고 적힌 논문.

애초에 그는 큰 기대를 하지 않았다.

'동부 전선의 영웅'이란 위명은 위명일 뿐, 증명이 되지 않았으니.

최근에 화제가 된 영상이 있긴 했지만, 그는 그 영상에 과장이 있다고 생각했다.

설령 진짜라고 치더라도 누가 봐도 '실전형'인 그가 어떻게 쟁쟁한 논문 사이에서 주목을 받을 수나 있을까.

그는 크게 비웃을 생각으로 논문의 첫 장을 넘겼다.

'흠, 뭐. 시작은 나쁘지 않네.'

논문을 관통하는 논거들이 실전에 바탕을 두고 있으니, 시선은 간다.

팔락-

생각보다 술술 읽힌다.

자료 정리도 깔끔하고, 논제에 대한 근거 역시 반박할 여지가 없다. 이론과 실제를 비교하는 데이터 역시 흠잡을 데가 없다.

팔락-

'으음....'

팔락-

팔락-

페이지를 넘기는 속도가 점점 빨라진다.

자세가 곧게 펴지고, 눈은 빠르게 다음 단락을 쫓는다.

"벨키르 교수, 뭔가? 왜 그러는데?"

"...."

하지만 그는 이렇다 할 대답 없이 페이지만을 넘기고 있었다.

자연히 함께 있는 위원들의 시선이 쏠린다.

그 손에 든 제목과 저자의 이름이 눈에 띈다.

"루카스? 아아, 그 요새 한창 화제인 그 영상의 주인공? 뭐, 흥미로운 거라도 있나 봐?"

"...."

돌아오는 대답은 없다.

슬슬 다른 논문을 검토하던 위원들의 호기심이 극에 달하기 시작했다.

팔락-!

마지막 장이 넘어가며, 벨키르 교수가 멍한 표정이 드러났다.

"이보게, 벨키르. 도대체 그 논문이 어떻길래 그래? 어디, 나도 한번 보자고."

"자, 잠깐."

그는 손에 쥔 논문을 뺏길세라 몸을 등졌다.

"하, 한 번만. 한 번만 더 읽어 보겠네."

그리고는 처음부터 다시 논문을 정독하기 시작했다.

이번에는 페이지가 넘어가는 속도가 느렸다. 흥미가 떨어진 것이 아니었다.

'한 글자도 놓쳐선 안 돼!'

오히려 눈이 벌게지도록, 한 글자, 한 글자를 눈에 쑤셔 넣고 있었다.

* * *

"교수님, 부총장님 호출입니다."

"무슨 일이지?"

"무슨 일인지 확인할까요?"

"아니, 됐다. 내가 직접 가지."

옷매무새를 가다듬고 부총장실로 향했다.

문을 여니, 전투 학부의 교수들이 삼삼오오 모여 있었다.

"오, 루카스 교수. 왔는가!"

"다들 모여 계셨군요."

"자, 자. 일단 앉지."

로널드가 자리를 권했다.

그의 비서가 빠르게 차를 내왔다.

내게 몰린 시선이... 부담스럽다.

"저를 찾으셨다고 들었습니다."

"크흠, 그러니까 자네가 학회에 제출한 논문을 봤네."

"그렇습니까?"

"그, 뭐랄까...."

"굉장하더군요."

로널드의 말을 미체른 교수가 대신 받았다.

로널드의 눈총은 신경도 쓰이지 않는지 그는 침을 튀겨 가며 열변을 토했다.

"굉장히 신선한 접근이었습니다. 저는 그런 시각으로 접근한다는 것은 상상도 못 했지요. 이게 다 경험에서 우러난...."

학구파인 미체른이 내 논문을 좋게 봐주는 건 고맙다.

그런데 그게 나를 부른 이유와 어떤 연관이 있단 말인지.

"미체른 교수, 진정하시게. 루카스 교수가 당황하지 않나."

"아, 제가 흥분을 했습니다. 죄송합니다."

"...그래서 저를 찾으신 용건이 뭡니까."

이 자리가 상당히 불편하다.

아직 밝혀지지 않은 마족의 정체가 거슬리기 때문이다.

이곳에 있을 수도 있으니, 신경이 날카롭게 곤두설 수밖에 없다.

"다름이 아니고, 학회에서 자네 논문을 보고 정식으로 초청했어. 자네가 발표한 '동부 전선의 상황으로 본 마족과의 전투 양상'에 관한 강연을 부탁하더군. 학회에서도 난리가 난 모양이야. 으허헛!"

"알겠습니다."

담백하게 대답하고 서둘러 일어섰다. 아까부터 느껴지는 정체 모를 끈적한 시선이 아찔하다.

* * *

-자네의 계획이 또 물거품으로 돌아간 것 같은데?

-아직 아닙니다. 지금까지는 제가 컨트롤 가능한 범위입니다.

그는 여유롭게 말했지만, 사실 이건 큰 변수였다.

하지만 이런 사실을 입 밖으로 꺼냈다간, 오르페가는 자신을 살려 두지 않을 것이다.

무리수라도 꺼내야 했다.

-루카스 교수가 잠시 그라스코를 떠났을 때, 그때를 노리겠습니다.

-그의 부재가 있다고 한들, 그라스코의 방벽은 공고하다.

-본격적인 침공이 아닙니다. 본격적인 거사는 2년 뒤-. 저는 그때를 위한 씨앗을 심으려 함입니다.

-씨앗이라.

-그렇습니다. 이번에 입학한 신입생 중에, 최고의 자질을 가진 이가 있습니다.

오르페가는 손쉽게 그 이름을 떠올릴 수 있었다.

-제시 애슬론.

-네, 그렇습니다. 그는 루카스 교수에게 선택받지 못했습니다. 그리고 소문에 개강 첫날, 그 강의에서 무슨 소란이 있었다고 하더군요.

-무슨 소란이지?

-...자세한 내용은 알 수 없습니다. 리트 역시 현장에 없었고, 루카스가 그 사건에 대한 함구령을 내렸습니다. 하지만 분명 제시 애슬론은 루카스 교수에게 증오를 품고 있을 테지요. '씨앗'을 심기 딱 좋은 상태입니다.

-그래, 그래서 제시 애슬론을 꼭두각시로 쓰겠다?

-그렇습니다.

-...나쁘지 않은 계획이로군. 이번에는 나를 실망시키지 않겠지?

-실망시켜 드리지 않겠습니다.

* * *

'아...좆됐네.'

담백하게 말하고 자리를 박차고 나오긴 했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그 자리를 빨리 피해야겠다는 직감 때문이었다.

물론, 강연 자체는 커다란 기회다.

강연에 모일 수준급 이상의 강자들에게 표식을 새길 수 있는 기회이기 때문.

하지만 커다란 장애물이 존재한다.

바로- 강연에 있어 필수적 요소인 '시연'

'교학상장'으로 복사한 기술로 그들의 눈을 속일 수 있을지 장담할 수 없다.

나만의 오리지널리티가 필요한 순간이었다.

그리고 이 세계관에서 오리지널리티란, 오러와 같은 말이었다.

문제는 나는 오러를 사용할 줄 모른다는 것.

'교학상장'으로 복사할 수는 있어도, 그게 내 오리지널리티가 될 수는 없다.

오러에는 고유의 특색이 깃들기 마련이다.

학생들이라면 모를까, 그들의 눈을 속이기엔 무리가 있다.

'방법이 없는 것은 아니다.'

골드 상점 3티어 구간의 첫 번째 아이템이 바로-

-오러 100,000G

이전에 얻은 '특별한 상품권'의 제한이 티어3까지만 됐었어도 망설임 없이 골랐을 것이다.

하지만 '특별한 상품권'의 제한은 2티어였고, 이 오러는 그림의 떡으로 존재할 수밖에 없었다.

사고 싶어도 내겐 10만 골드라는 큰 금액이 존재하지 않는다.

현재까지 모인 골드는 총 77,200골드로, 10만 골드에 한참 미치지 못한다.

'뽑기권에서 얻을 수 있지 않을까.'

무모하지만, 충분히 가능성 있는 아이디어였다.

처음에 교학상장을 뽑은 것처럼, 운에 스탯을 몰빵하고 뽑으면 되지 않을까.

'그래, 그 방법밖에 없다.'

골드 상점의 포인트 전환으로 손이 간다. 8만에 가까운 골드를 모조리 포인트로 변환하고, 그동안 넘칠 정도로 쌓인 포인트를 모조리 운에 몰빵한다면.

누가 봐도 미친 생각이지만, 그럴 판단을 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

그 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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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스토레 님께서 3,000G 후원하셨습니다.]

시야를 빼곡하게 채우는 후원창.

총 20,900G의 후원이 정신을 번쩍 들게 했다.

'...

...이 ㅈ망겜에 당할 뻔했다.'

이 시스템의 기반은 3N에 버금가는 돈미새 ㅈ망겜이라는 사실을 간과해선 안 된다.

이것은 거대한 함정이었다. 방심한 순간 파멸의 구렁텅이에 떨어지는 것이다.

다행스럽게도 미친 짓을 하기 직전에 멈출 수 있었다.

무엇보다 방금 후원으로 한참이나 모자랐던 골드가 10만이라는 수치에 가까워졌다.

약간의 희망이 보이기 시작했다.

'남은 것은 약 2천 골드

....

....'

큰 금액임은 틀림없다.

하지만 2만 골드에 비하면 확실히 가능성 있는 금액이었다.

문득, 지난번 리트의 후원 리액션에 달린 댓글이 떠올랐다.

-조수한테 리액션 떠넘기기라니 역시 교수는 사람의 마음을 모른다...

-난 교수님이 추는걸 보고 싶다.

유일한 돌파구가 보인다.

두 손을 들어 뒤통수를 향해 뻗었다.

'....'

실수할 뻔했다.

넘어서는 안 될 선이었다.

나는 주인공.

그러니까 이런 식으로 목숨을 구걸해서는 안 되는 것이다.

독자님들께 당장의 즐거움을 줄 수 있을지 모른다.

그러나, 이런 행위는 장기적으로 봤을 때 오히려 마이너스 요소가 될 뿐이다.

자세를 바로잡았다.

짜악-

두 뺨을 있는 힘껏 갈겼다.

정신이 번쩍 들었다.

'잊지 마라. 나는 주인공이다. 이야기 저편에 방치된 엑스트라가 아니다.'

눈을 부릅떴다.

"나는, 루카스다."

§ 아카데미의 신화급 교수가 되었다 28화

28. 학회 (3)

"도련님, 말씀하신 논문을 구해 왔습니다."

"오, 드디어!"

에일론은 반색하며 레놀에게서 논문을 받아들었다.

'동부 전선의 상황으로 본 마족과의 전투 양상'

최근 학계에 엄청난 광풍을 일으키고 있다는 바로 그 화제의 논문.

저자에 확연히 적혀 있는 루카스의 이름이 눈에 박힌다.

엄밀히 말해서 이 논문이 다루는 주제는 에일론의 주력 분야가 아니다. 하지만 이 논문의 저자가 루카스 교수이지 않은가. 이 지극한 관심은 당연하다 할 수 있었다.

이미 루카스 교수의 강의를 온몸으로 맛봤다. 핵심을 파고들면서도 신선한 무언가가 있었다.

이 논문 또한 그런 맥락에서 커다란 기대감을 갖게 했다. 학계에서 화제가 되고 있다는 사실은 양념에 불과하다.

에일론은 흥미진진한 표정으로 논문의 첫 장을 넘겼다.

'어디, 내 기대를 얼마나 충족시키실지 한번 볼까?'

한 장, 두 장...

가벼운 마음으로 논문을 읽기 시작했다.

...그렇게 주말이 다 가 버렸다.

읽는 게 느린 것이 아니다. 30권 분량의 책도 반나절이면 모조리 독파하고 외워버리는 에일론에게 두툼하다고는 해도 루카스의 논문은 오래 붙들고 있을 것이 아니다.

그저 이 논문이 준 영감.

그것이 에일론의 광기를 자극했다.

"도련님께서는 아직도 그대로셔?"

"으응."

"하이고, 이게 정말 몇 년 만이야. 5년 만인가?"

"주인님께서도 걱정만 하시고, 고집을 꺾으시진 못하시니...."

꼬박 이틀째 식음을 전폐한 상황이었다.

그의 집중력이 대단하긴 해도 식음을 전폐하는 것은 드문 일이었다.

타고난 체질 때문에 건강을 극도로 신경 쓰는 탓이다.

하지만 아주 드물게 이렇게 건강도 등한시하고 몰입하는 때가 있었다. 그리고 그 끝에 탄생하는 것은 모두 더스트 인더스트리의, 아니 인류의 역사에 한 획을 긋는 것들뿐이었다.

그의 가족에겐 그런 것보다 에일론의 건강이 우선이었지만, 저 똥고집을 꺾을 수가 없으니, 의료진을 상주시키고 지켜볼 수밖에 없는 일이다.

* * *

구걸하지 않는다.

정신을 차리고서 다른 방법을 강구하기로 했다.

세상에는 최선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니까, 차선책을 찾자.

'시연을 다른 방식으로 풀어야 한다.'

그래, 차라리 형(形)을 흉내라도 낼 수 있는 것이 어딘가.

마법이었으면 얄짤 없이 구현해야 했을 거다.

작은 위안을 찾고 멘탈을 추슬렀다.

방법은, 있을 것이다.

시연에 오러를 쓸 수 없다면, 실제 전투를 보여 주는 건....

'시발 그거나, 그거나.'

차선책도 무리다.

차차선책을 찾아야 할 판이다.

이러다 최악을 선택하지 않는 게 다행처럼 느껴질 경지까지 내려갈지도 모르겠다.

똑똑-

누구야, 이렇게 싱숭생숭한 순간에.

-교수님, 에일론이 찾아왔습니다.

'에일론 그 녀석이 또 왜?'

그렇지 않아도 학회 준비로 마음이 뒤숭숭한 이때, 그다지 반갑지는 않았다.

'돌려보내야 할까?'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아니다.

이 이벤트 역시 호감작의 일환이 될 수도 있으니.

"들어와라."

문이 열리고 리트의 안내에 따라 에일론이 들어왔다.

"교수님, 또 왔어요."

평소의 에일론 답지 않다.

그 밝은 모습은 어디 가고, 어딘가 음울한 분위기마저 풍겨댄다.

'무슨 일이지?'

신경 쓰인다. 저 싸이코는 어디로 튈지 모르기에 취급에 주의를 요해야 한다.

대신 제대로만 사용하면 강력한 한방이 될 수 있지.

그래서 일단은 품고 있는 것이고.

"제가 조금 나쁜 타이밍에 찾아왔나요?"

"아니다. 일단 앉아라."

에일론에게 자리를 권하고, 곧바로 차를 준비했다.

"아, 교수님. 제가 하겠습니다."

"됐다, 리트."

내가 하는 편이 낫다.

"하하, 동부 전선의 영웅이 타는 차를 맛볼 수 있다니, 호강이 따로 없습니다."

"느물거리지 말고 본론만 말해라."

차를 내려놓자, 에일론의 눈빛이 달라진다.

그 눈동자에 일렁이는 광기가 등줄기를 서늘하게 만들었다.

"교수님의 논문... 읽었어요."

내 논문을 읽었다고?

관심 밖의 주제는 신경도 안 쓰는 저 에일론이?

에일론의 전문 분야는 어디까지나 '마도 공학'.

그리고 내 논문의 주제는 '전투학'

지금 에일론이 내 강의를 듣고 있다지만, 애초에 전투학에 관심을 가질 캐릭터는 아닌데.

"그래서?"

이 녀석의 입에서 어떤 말이 튀어나올지 감이 오지 않는다.

"제가 이런 부탁을 드리는 건 처음인데, 정말."

"...말해라."

호감도를 늘릴 이벤트 같은데, 이 정도 시간은 할애할 수 있다.

"이 논문에서... 그러니까... 이해가 가지 않는 부분이 있습니다. 그 부분을 여쭤보고... 싶습니다."

에일론의 얼굴이 눈에 띄게 붉어졌다. 말도 쉽게 꺼내지 못한다.

"그러니까... 내 논문을 주해 해 달라, 그 말인가?"

"그렇습니다."

세기의 천재가 내가 쓴 논문을 이해 못 해서 해석을 부탁한다? 이런 소설 같은... 아, 이상할 건 없겠구나.

"내 논문이 아무리 네 전문 분야가 아니라고 해도 네가 이해 못 할 수준은 아닐 텐데."

"이해의 문제라기보다, 여기 이 부분."

그는 빠르게 논문을 넘겨 한 단락을 짚었다.

"여기에서 제시하신 마기 공명 이론 말인데요, 이거를 그러니까... 이런 식으로 계산식을 대입하면...."

...경이롭다.

그저 스쳐 지나가듯 적어 둔 설정이었다.

동시에 이것은 후에 디로그 mk.6의 기반이 되는 핵심 기술의 실마리이기도 했다.

하지만 이 한 줄로 떠올릴 수 있을 수준은 아니다.

이 녀석은 그야말로 시간을 뛰어넘으려 하고 있었다.

'잠깐.'

순간 머릿속에 떠오르는 것이 있었다.

학회에서의 '시연.'

에일론이 생각한 아이디어대로 마기 공명 이론을 적용하면, 더스트 인더스트리 사의 전투 인형을 마족과 비슷하게 구현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한마디로, 오러 없이도 시연이 가능해지는 길이 열렸다는 소리다.

"...그 부분은 연구가 필요하겠군."

최대한 흥분을 감추고 입을 열었다.

티를 내선 안 된다.

이 주도권은 내가 쥐고 있어야 한다.

"학회 전까지 시간이 좀 남는가. 하지만 그냥 시간을 허비할 생각도 없어. 내 시간을 할애한다면, 자네는 내게 뭘 해 줄 수 있지?"

그의 광기 어린 눈이 내 눈에 닿는다.

그 속에 어린 불꽃이 일렁인다.

"원하시는 건 전부요."

순수한 지식의 탐구.

에일론을 움직이는 원동력.

그것이 에일론의 입에서 이런 말이 튀어나오게 하는 것이다.

"설령, 더스트 인더스트리의 모든 것을 요구한다고 해도?"

실질적인 총수는 스티븐 더스트라고 하나, '진짜' 주인은 이 눈앞의 에일론이라고 할 수 있었다.

모든 원천 기술이 에일론의 것이었고, 모든 시스템이 에일론의 손아귀에 들어 있으니까.

"원하신다면."

당연하게도 더스트 인더스트리를 원하지는 않는다.

내가 원하는 것은 이 세계의 재력 따위가 아니다.

여기서 완전무결하게 생존할 수 있는 수단.

그리고 더스트 인더스트리에는 그 퍼즐 조각 중 하나가 있다.

지금 에일론의 대답으로 그 퍼즐 조각을 가질 수 있는 수단이 생긴 것이다.

* * *

...다시 한번 느낀 것이지만, 에일론의 천재성은 그야말로 미친 수준이다.

그저 내 설정을 조금 더 구체화해서 풀었을 뿐이었다.

그런데 놈은 그것만 듣고 계산하더니 오류까지 잡아내면서 완벽한 이론을 정립하는데 만 이틀밖에 걸리지 않았다.

괴물 같은 녀석.

이제 그 연구의 성과가, 눈앞에 고운 자태를 드러내고 있었다.

"이제 시험 가동 한번 해 볼까요?"

에일론이 설렘 가득한 목소리로 말했다.

나도 두근댄다.

그저 텍스트로 상상하던 설정이 눈앞에 생생하게 나타나게 될 참이니.

에일론이 전투 인형을 가동했다.

우웅-

시동이 걸림과 동시에 전투 인형의 안광이 형형하게 불타오르며 가동을 시작했다.

마치 살아 있는 것처럼 움직이는 거야, 이미 구현이 됐던 기술이라 크게 놀랍지는 않다.

이제 중요한 것은 마기 공명 이론이 제대로 적용이 되었는가.

사실 이 부분이 가장 큰 문제였다.

이론은 완벽하다.

하지만 이제 막 실제로 검증하는 것이기에 얼마든지 오류가 발생할 수 있다.

'공명한 마기가 폭발이라도 하면.... 어우.'

그에 대한 대비는 에일론이 완벽하게 마쳐두었을 테니 걱정....

'잠깐. 얘는 에일론... 이지.'

싸이코 공학자에 뒤라고는 없는 노빠꾸 스타일. 슬그머니 걱정이 앞선다.

"에일론, 폭주 대비는 완벽하게 해 뒀겠지?"

"네? 무슨 대비 말씀이요?"

그는 정말로 모른다는 표정으로 되물었다.

"...마기 공명의 폭주를 염두에 두지 않았나?"

"아아, 그거 말씀이시군요!"

다행히 미친놈은 아니....

"안 했는데요?"

미친 새끼. 그럼 당장 꺼야 될...

이미 늦었다.

이제 흥분과 기대감이 아닌 분노와 두려움으로 몸이 떨린다.

시야는 전투 인형에 고정해 두고 마음의 준비를 단단히 했다.

언제라도 도망칠 수 있도록.

웅-!

마기 공명 시스템이 작동하고, 대기가 떨린다.

마(魔)의 기운이 전투 인형 주위로 몰려든다.

"성공이네요!"

...다행히 폭주는 일어나지 않았다.

"그럼 성능도 한번 실험해 볼게요."

에일론이 명령어를 입력했다.

기본이 되는 전투 데이터는 모두 내 논문에서 따온 것이다.

이걸 학회에 가져다 시연에 써먹을 생각이거든.

우웅!

전투 인형이 붉은 안광을 띄며 주변을 살폈다.

가장 기본이 되는 말살 모드. 이지가 존재하지 않는 마물들이 띄는 양상이다.

전투 인형은 주변의 물체들을 모조리 파괴하기 시작했다. 정말 마물과 흡사하게 움직인다. 더군다나 마기까지 띠고 있으니, 마물 그 자체로 보이기도 했다.

"음, 기대치 이상이네요. 이제 시험 가동을 중단하겠습니다."

만족스러운 결과다.

이제 저 출력을 적당히 조절해서 시연에 써먹으면....

어? 저게 왜 안 멈춰?

"에일론?"

"어? 어라?"

에일론이 눈에 띄게 당황하며 내 쪽을 바라봤다.

그 순간 본능적으로 느낄 수 있었다.

ㅈ됐다는 걸.

전투 인형은 이제 주위의 모든 것을 파괴하고 그 시선을 이쪽으로 돌린 상태였다.

"아, 생명체 감지 모드가 시작됐나 봐요. 하지만 괜찮습니다. 오러가 닿으면 파괴되도록 만들어뒀으니까요. 교수님, 부탁드려요."

...뭘.

뭘 부탁한다는 건데.

그냥 그 잘난 디로그로 처리해도 되... 잠깐. 이제 보니 이 녀석, 디로그가 아닌, 평범한 마력 휠체어를 타고 있다.

"너 그 휠체어는...."

"아, 디로그는 mk.2로 업그레이드 중이라. 하하!"

멋쩍게 웃는 녀석의 얼굴에 거대한 주먹을 날리고 싶다.

아무튼, 그렇다는 말은. 저 괴물 딱지를 상대할 사람이 없다는 뜻이 된다.

"오러가 닿기만 하면 됩니다. 시연 때 쓰실 거라고 해서 큰 난리가 나지 않도록 고려했어요."

...그래, 고려해 줘서 차암 고맙다.

이제 전투 인형이 코앞까지 다가왔다.

이렇게 보니, 꽤 크구나.

슬프게도.

"교수님! 화이팅!"

에일론의 응원 따위 하나도 기쁘지 않다.

거대한 손이 나와 에일론을 향해 휘둘러지려고 한다.

세상이 느리게 움직이며 주마등이 스쳐 지나가는 순간-

진짜 기뻐할 만한 응원이 내려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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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레이 님께서 100G 후원하셨습니다.]

[테레이 님께서 100G 후원하셨습니다.]

[테레이 님께서 100G 후원하셨습니다.]

[테레이 님께서 100G 후원하셨습니다.]

[테레이 님께서 100G 후원하셨습니다.]

[Mafia바람 님께서 1,000G 후원하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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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령자 님께서 500G 후원하셨습니다.]

[덜렁덜렁 님께서 1,000G 후원하셨습니다.]

[임베디드 님께서 300G 후원하셨습니다.]

[소지 골드가 10만 골드를 돌파했습니다.]

구원의 빛이 내려왔다.

망설임 없이 골드 상점을 열어 오러를 구매했다.

이 모든 것은 찰나의 순간에 이루어졌다.

[고유 아이덴티티, 오러를 획득하셨습니다.]

[특성 - 파마(破魔)]

[이제, 오러를 사용하실 수 있습니다.]

[단,...]

뒤이어 이어지는 알림을 볼 시간은 없다.

서둘러 오러를 활성화했다.

파아아앗-!

§ 아카데미의 신화급 교수가 되었다 29화

29. 학회 (4)

파아아앗!

-우어어어!

오러가 닿으면 파괴된다는 말이 그냥 한 말은 아닌 모양이다.

황급히 방출한 오러가 전투 인형에 닿자마자 괴기스러운 절규를 내뱉더니, 그야말로 '녹았다.'

"하...."

진짜로 죽음의 위기를 넘겼다. 주마등까지 봤으니 할 말 다 했지.

안도의 탄식이 자연스레 흘러나왔다.

너무 자극적인 경험 탓일까. 극심한 피로가 몰려들었다.

쉬고 싶다.

정확하게는 초회복의 뽕 맛을 느끼고 싶다.

서둘러 <카일론 관>으로 가야겠다.

'아 참.'

몸을 돌려 이곳을 빠져나가려다, 에일론에게 전할 말이 떠올랐다.

"에일론."

학회의 일정이 그야말로 코앞까지 다가온 상황이니, 에일론의 연구를 함께하는 것도 무리가 있을 것 같으니-

"봐주는 것은 여기까지다."

뭔가 굉장히 생략하긴 했지만, 똑똑한 놈이니 대충 알아들었을 것이다.

이만 쉬자. 얼른.

* * *

에일론은 그야말로 미친놈이라 표현할 수 있었다.

원하는 데이터를 수집하기 위해서라면, 뒤를 돌아보지 않는다.

물론, 안전장치는 마련해 둔다.

이번 실험 역시 마찬가지였다.

전투 인형의 폭주는 실험 실패가 아닌, 에일론이 계획한 계획의 일부였다. 그의 강함을 디로그에 녹여내고자 데이터를 수집하기 위해 일부러 이런 상황을 연출한 것.

루카스 교수의 오러를 참고하려고 했으나 알려진 것이 수상할 정도로 없었다.

강의 때도 그렇고, <카일론 관>에서 마족이 쳐들어왔을 때도 그러했다.

그러니 직접 나설 수밖에.

에일론은 그의 오러를 보기 위해 일부러 상황을 조작했다.

일부러 폭주 코드를 심어 두고 루카스가 오러를 뽑아낼 수밖에 없는 상황을 조성했다.

게다가 이번 시험에 사용한 전투 인형은 특수 합금 소재로 만들어 평범한 일격으로는 흠집도 나지 않게 만들어 두었으니, 오러를 꺼낼 수밖에 없으리라.

물론 위험하다 싶은 순간이 있었지만, 그는 루카스를 철석같이 믿고 있었다.

그의 강함에 대한 것은 한 치의 의심도 존재할 수 없으니까.

애초에 루카스가 존재했기에 이런 무모한 계획도 꾸밀 수 있었던 것이다.

즉, 루카스가 곧 이번 실험의 안전장치였던 것.

에일론의 예측은 정확했고, 마침내 루카스 교수의 오러를 직접 확인할 수 있었다.

'이것이 루카스 교수의 오러인가.'

뭐라 형언하기 힘든 빛깔의 오러다.

지금껏 수많은 오러를 봐왔지만, 단연코 본적이 없는 빛깔이었다.

신성 제국 기사들의 그것처럼 성스러워 보이기도, 일견 푸른빛을 띠는 것 같기도 하면서 불그스름한 기운이 맴돌았다.

혼탁하면서 맑은 듯도 보였다.

단언하건대, 난생처음으로 보는 빛깔의 오러였다.

황홀감이 들 정도다.

에일론은 이 모든 상황을 영상으로 기록해두었다.

만족스럽다.

"에일론."

한참 머릿속으로 이번에 새로 수집한 데이터를 어떻게 접목할지 계산 중이었던 에일론의 귓가에 루카스의 음성이 들렸다.

찔리는 구석이 있어서인가, 평소보다 더욱 차갑게 가라앉은 것처럼 들렸다.

"...봐주는 것은 여기까지다."

싸늘한 경고를 남긴 루카스는 그대로 에일론을 스쳐지나 밖으로 향했다.

무어라 변명할 여지도, 그럴 생각도 하지 못했다.

난생처음으로 '사고'라는 것이 정지해 버린 듯, 멍하다.

'모든 걸... 알고 계셨구나.'

루카스가 남긴 서늘한 경고가 에일론의 전신을 찌릿하게 휘감았다.

* * *

스겅-!

이제는 너무나도 익숙한 내려 베기.

단 1밀리미터라도 틀어지면 실패로 쳐버리는 <기초 검술>의 특성상, 제대로 해내기가 어려웠던 처음과 달리, 이제는 각 잡고 하면 성공 판정을 못 받는 게 더 어려울 지경이다.

[일일 훈련을 완료하였습니다.]

[일일 보상이 지급됩니다.]

초회복의 효과가 전신을 상쾌하게 씻어 내었다.

조금 전까지 전신을 짓누르던 피로감이 거짓말처럼 사라졌다.

'후, 이제 본격적으로 학회 준비를 해 볼까.'

에일론의 전투 인형이라는 방법이 생기면서 돌파구가 생겼다.

거기다 더해, 오러라는 최선책까지 얻어 냈으니.

'시연에는 문제가 없다.'

남은 기간 동안 철저한 연습으로 완벽한 '연극'을 해내면 되는 것이다.

거기에 부수적으로 따라올 수많은 강자들의 스킬은 내 생존력을 압도적으로 늘려줄 것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이 오러.'

오묘한 빛깔을 띠고 있는 나의 오러.

메이드 인 골드 상점이라 그런지 원색에 가깝다고 서술한 여타 오러들에 비해 상당히 특이한 빛깔이긴 하다.

'애초에 평생 가질 수 없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그 가격이 1만, 2만 골드도 아니고 10만 골드다.

골드 상점에서 가장 먼저 확인한 상품이기도 하지만, 그 액수가 엄청난 장벽이었다.

많은 독자님들께서 후원을 해 주시긴 하지만, 10만 골드라는 액수는 터무니없도록 높은 금액이 아닌가.

애초에 내가 골드를 잘 사용하지 않고 모으기 시작한 것도 이 오러를 가장 염두에 두었기 때문이다. 가능성을 조금이라도 높이기 위해서.

빌어먹을 시스템이 중간에 억지 선택을 강요하지 않았더라면 10만 골드가 될 때까지 묵혀두었을 텐데.

한 번의 좌절(?)이 있긴 했지만 결국 손에 넣었다.

새삼 감회가 새롭다.

독자님들을 향한 감사가 마구 샘솟는다.

'잠깐. 아까 단... 어쩌구를 봤던 것 같은데.'

그때는 목숨이 오늘내일하던 순간이라 미처 확인하지 못했다.

생각난 김에 확인하도록 하자.

===

▶오러(아이덴티티 스킬)

특성 : 파마(破魔)

마(魔) 속성에 한해서 압도적인 우위를 가진다.

단, 활성화와 유지에 포인트가 소모된다.

===

'이 양아치 같은 시스템. 내가 그럴 줄 알았다.'

활성화는 물론 유지할 때도 포인트가 소모된다.

즉, 틀고 있는 것만으로 포인트가 줄줄 새는 스킬이라는 것이다.

다만, 다행이라면 골드처럼 구하는 데에 한계가 있는 재화가 아니라, 조회수나 선작수, 추천수, 댓글 수에 비례해 증가하는 포인트가 소모된다는 점이었다.

게다가 급할 땐 골드로 포인트 전환을 할 수는 있으니.

'신중히 아껴 두길 잘했군.'

지금껏 포인트를 거의 사용하지 않았던 것이 신의 한 수가 됐다.

스텟을 올려볼 생각을 하지 않은 것은 아니다.

실제로 존재감이나 기타 등등 말고도 다른 스텟을 찍어 보기도 했다.

현재 내 스텟 중 가장 높은 근력.

하지만 100 이상은 투자 자체가 되지 않았다. 다른 스텟도 한 번 100으로 맞춰 볼까 생각은 하고 있었지만, 뭔가 있겠다 싶어 자제하는 중이었는데, 이런 식으로 소모를 시키려하다니.

잘 참았다 나 자신.

그리고 선작과 추천, 댓글 달아 주신 모든 독자님들 감사합니다.

소모량 확인차 잠깐 사용해 보니, 활성화하는 데만 1,000p, 초당 10p가 소모되는 엄청난 폭리를 확인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간 쌓은 것이 많아 걱정할 수준은 아니다.

그래도 남은 포인트가 여유롭기는 하다.

'포인트를 소모할 때가 되긴 했어.'

3 스텟이라 불리는 체, 근, 민.

체력과 근력, 그리고 민첩.

이 세 가지만이라도 100을 맞춰 두어야겠다.

순식간에 엄청난 포인트가 빠져나가고, 체력과 민첩 역시 100을 찍었다.

그리고 그 순간.

[최소 조건에 도달하였습니다.]

[스텟 등급의 잠금이 해제되었습니다.]

[체력 - 100>1(F)]

[근력 - 100>1(F)]

[민첩 - 100>1(F)]

[등급이 부여된 스탯에 한해서, 업그레이드 시 소모되는 재화의 비용이 두 배로 증가합니다.]

'그래, 이래야 ㅈ망겜이지.'

이제 이 정도 통수는 가렵지도 않다.

* * *

'아니야, 이게 아니야.'

제시의 트리오닉 소드는 날이 갈수록 눈부시게 발전하고 있었다.

이미 전대 가주들의 수준은 가뿐히 넘어서는 수준이었고, 트리오닉 소드의 창시자인 트리온의 그것과 점점 가까워지고 있었다.

하지만 제시는 여전히 끝없는 부족함을 느끼고 있었다.

'루카스 교수는 이렇게 움직이지 않았어.'

겨우 1식.

트리오닉 소드의 여러 초식 중에서도 가장 쉽고 간결하며 기초가 되는 초식이었다.

그런데 그 초식만으로 루카스는 영혼의 울림을 안겨주었다.

하지만 자신의 트리오닉 소드는 아직도 춤사위에 머물러 있었다.

비교 대상이 루카스이니 당연하게도 자신의 존재가 처량할 만큼이나 볼품 없어 보인다.

약한 자신이 증오스러웠다.

"고민이 깊어 보이는 군, 제시 애슬론."

그때, 누군가의 목소리가 제시의 귓가를 때렸다.

제시는 고개를 돌려 목소리의 주인공을 확인했다.

"여기는 무슨 일이시죠? #@%님."

"내가 오면 안 될 곳에 온 건가?"

"그건 아니지만...."

"이렇게 늦은 시간까지 수련에 열심이라니. 어지간히도 강해지고 싶나 보군."

"...그런데요."

너무나도 당연한 질문에 당연한 대답을 했다.

"내가 자네의 염원을 들어줄 수 있다면 어떤가."

"내 염원?"

"그래. 강력한 힘으로 모두를 발아래에 두는 것. 그것이 자네의 염원이 아니던가."

아주 정곡을 찔렀다.

그의 말처럼 강함에 대한 갈망이야말로 제시를 살아 있게 만드는 원동력 아니던가.

"정말 내가 원하는 만큼 강해질 수 있습니까?"

"물론이다."

그는 자신 있게 고개를 끄덕였다.

"자아, 내 손을 잡아라. 그러면 네가 원하는 강함을 주겠다."

그의 눈이 마기로 번들거렸다.

"...당신, 마족이었나...?"

"그래, 나는 요마들의 군주, 발탄. 네게 힘을 선사할 자다."

제시의 눈빛이 흔들렸다.

* * *

[임시 휴강 공지]

'전투의 모든 것'의 지도교수 루카스 교수님께서 XX월 XX일 부터 진행되는 '세계 전투학 포럼'에 강연자로 초청되시어 '전투의 모든 것'은 학회 일정이 끝날 때까지 임시로 휴강하게 되었음을 알려드립니다.

'전투의 모든 것' 수강생들은 이점 유의하시기 바랍니다.

강의 관련 문의 : 전투학부 조교, 리트(MXQ52472XZ) 내선 117번

* * *

준비는 완벽하다.

에일론에게서 받은 전투 인형을 사용, 강연의 내용을 완벽하게 숙달했고, 예상할 수 있는 범위의 질문들은 모조리 대비했다.

[새로운 알림이 도착했습니다.]

[k2929 님께서 100G 후원하셨습니다.]

[Onibi 님께서 300G 후원하셨습니다.]

[아스토레 님께서 1,000G 후원하셨습니다.]

[cat956 님께서 1,000G 후원하셨습니다.]

[아구바구 님께서 100G 후원하셨습니다.]

[피닉 님께서 100G 후원하셨습니다.]

[피닉 님께서 100G 후원하셨습니다.]

[조커좆커 님께서 300G 후원하셨습니다.]

[침대늘보 님께서 300G 후원하셨습니다.]

독자님들께서 떨지 말라고 용돈(?)까지 두둑이 챙겨주셨다.

"리트, 가자."

더스트 인더스트리 측에서 준비한 최고급 마차(魔車)에 몸을 실었다.

목적지는 에르멜 제국의 수도.

"출발하지."

중후한 소리와 함께 마차는 출발했지만-

끼-익!

"죄, 죄송합니다, 교수님."

갑작스레 멈춰 섰다.

다행히 중심을 잃어 품위를 잃는 일은 벌어지지 않았다.

"무슨 일이지?"

"금방 해결하겠습니다."

운전기사는 헐레벌떡 차에서 내렸다.

하지만 좀처럼 해결되지 않는지, 소란스럽다.

상황을 확인하고자 창문을 활성화하니 바깥의 풍경이 훤히 보인다.

차창 밖으로 보이는 얼굴이 상당히 익숙하다.

창문을 내리자, 그가 이쪽으로 헐레벌떡 다가왔다.

"무슨 일이냐, 토레스."

전신은 땀으로 범벅되고, 얼굴에 핏기가 하나도 없는 것이 마치 곧 죽을 사람처럼 위태롭게 보이기도 했다.

"네가 이렇게 생각 없는 짓을 할 인물은 아니라고 생각하는데."

"죄, 죄송합니다, 교수님. 제, 제가 너무 급한 나머지 이, 이런저런 생각을 할 겨를이...."

"서론이 길다. 본론만 말해라."

"교, 교수님 도와주십시오!"

그는 감정을 주체 못 하고 처절하게 울부짖기 시작했다.

"무엇을 말이냐."

"도, 도련님이. 제시 도련님이...."

순간, 불길한 예감이 몰아치기 시작했다.

§ 아카데미의 신화급 교수가 되었다 30화

30. 학회 (5)

'어떻게 된 거지?'

대충 토레스의 말을 종합해 보자면, 이렇다.

제시의 방에서 커다란 소리가 나서 가봤더니, 쓰러져 있었다.

검은 기운이 전신을 뒤덮고 있는데, 어떡할지 모르겠다.

교수님 밖에 생각이 나지 않았다.

도와달라.

여기까지 들었을 때 떠오르는 추론이 있었다.

'마족과 접촉했다.'

원래도 제시는 마족과 접촉해 그라스코를 위기에 빠트린다. 하지만 지금은 일러도 너무 이르다.

무엇보다 마음에 걸리는 것은, 제시가 '쓰러져 있다'라는 것.

······그것은 명백한 거부반응이기 때문이다.

제시의 재능은 마기마저도 담아내면서 그의 능력은 폭발적으로 증가하게 된다.

그런데 굳이 거부반응을 보이는 것이라면 제시 스스로가 그 힘을 거부하고 있다는 소리가 되는데, 강함만이 전부인 제시가 어째서 힘을 거부하고 있는 것이란 말인가.

의문은 밀어두고 서둘러 움직임을 재촉했다.

방문을 열자 죽은 듯 쓰러진 제시가 보였다.

가까이 다가가 그를 살폈다.

검붉게 변색되어 버린 피부, 괴기하게 튀어 오른 혈관들.

확실히, 거부반응이 맞다.

"나 말고 이 상태를 보여 준 이가 있나?"

"아, 아직 없습니다. 제, 제가 다, 당황해서······."

잘한 일이다.

누군가에게 보여 줬다면 제시는 살아 있지도 못했을 것이다.

"앞으로도 그 누구에게 제시의 상태를 보이지 마라. 할 수 있겠나?"

"ㅇ, 예. 아, 알겠습니다. 그, 그런데 교수님. 저, 저희 도련님은 깨어나실 수 이, 있는 건가요?"

장담할 순 없다.

다행이라면 제시가 '거부반응을 보인다'라는 그 자체랄까.

어쨌든 아직 살아 있으니 거부반응이라도 보일 수 있는 것이다.

하지만 희망적인 상황은 아니다.

나도 답답하다.

아마 이곳에서 제시의 의식을 가장 찾아주고 싶어 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건 다름 아닌 나일 테니까.

'녀석이 만난 마족. 그 정체를 반드시 알아야 한다.'

무언가 방법이 필요하다.

마기를 제거할만한 무언가가.

하지만 내가 신성제국의 성녀도 아니고 그런 방법을 가지고 있을 리···

[새로운 알림이 도착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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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이너리 님께서 100G 후원하셨습니다.]

[와이너리 님께서 100G 후원하셨습니다.]

[와이너리 님께서 100G 후원하셨습니다.]

[와이너리 님께서 100G 후원하셨습니다.]

독자님들의 후원이 물밀 듯이 몰려온다. 덕분에 나는 당황해서 잊고 있었던 한 가지 기억을 떠올릴 수 있었다.

===

▶오러(아이덴티티 스킬)

특성 : 파마(破魔)

마(魔) 속성에 한해서 압도적인 우위를 가진다.

단, 활성화와 유지에 포인트가 소모된다.

===

독자님들이 아니었다면 얻을 수 없었을, 나의 오러.

그 특성 또한 '마(魔) 속성에 한해서 압도적인 우위를 가진다.'는 것.

어쩌면 해 볼 만한 가능성이 떠올랐다.

"토레스. 너는 나를 믿나?"

그의 동공이 심하게 떨린다.

그는 제시를 제외한 그 누구도 완전히 신뢰하진 않으니.

그 누구에는 나도 포함이다.

문제는, 내가 지금 하려는 행위가 토레스에게는 다른 의미로 받아들여질 수 있다는 점이다.

그가 마음먹고 저지하고자 한다면, 나는 위험한 상황에 빠지게 될 수도 있다.

미리 확답을 받아둬야 했다.

"네가 나를 믿는다면, 제시를 고칠 수 있다."

토레스뿐만 아니라 리트 역시 의문이 가득한 눈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어떻게, 나를 믿나."

"미, 믿겠습니다."

"좋다. 내가 무슨 짓을 해도 믿어라. 이 모든 것은 제시를 구하기 위함이다."

그의 확답을 받고 토레스의 허리춤에 달려 있던 검을 뽑아 들었다.

"교, 교수님!"

"너는 분명 나를 믿는다고 했다. 그 말을 지켜라!"

당황하는 토레스를 진정시키고 검에 오러를 불어넣었다.

오묘한 광휘가 검에 깃들며 이글댔다. 동시에 곁에 있던 리트의 표정 또한 일그러지고 있었다. 리트는 본래 마족. 파마의 속성을 가진 이 오러에 영향을 받고 있는 것이었다.

"교, 교수님······."

리트가 고통에 찬 얼굴로 괴로워하는 것이 보인다.

'시간이 없다.'

리트가 괴로워한다고 해서 오러를 거둘 수도 없다.

자그마치 1,000p.

'리트, 참아라.'

일단 제시 놈부터 해결하자.

검을 곧게 들어 그대로, 제시의 가슴팍을 향해 꽂았다.

"뭐, 뭐 하는 거야!"

동시에 토레스가 광분하며 달려들었다.

숫제 황소와 같은 그 기세에 오금이 저려왔다.

"믿어라! 지금 나를 방해한다면 제시는 죽을 것이다!"

"하, 하지만!"

리트의 얼굴이 고통으로 더욱 일그러진다.

그녀가 두르고 있던 껍질이 불안정하게 흔들리기 시작했다.

'아직, 아직!'

자그마치 세 사람의 목숨이 내 손에 달려 있다.

제시와 리트, 그리고······.

'내 목숨도 걸려 있다고, 일어나, 이 새끼야!'

내 정성이 닿은 것일까.

"쿠, 쿨럭-!"

"도, 도련님!!"

제시의 입에서 피 분수가 뿜어져 나왔다.

토레스는 눈이 거의 돌아버린 상태로 울부짖었다.

강맹한 기운이 그의 전신에 깃든다.

광포화.

그의 피에 깃들어 있던 숨겨진 힘이 깨어나려 하고 있었다.

"토, 토레스······ 멈춰······"

그때, 제시의 입에서 실낱같은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토레스의 고개가 휙 돌아가며 제시에게 향했다.

"도, 도련님······. 괜찮으신 거예요?"

"나는 괜찮으니까······."

"으허어어엉!"

토레스는 그 자리에서 무너지며 크게 울어댔다.

제시의 가슴팍에서 검을 뽑아내 그 앞에 던졌다.

쩡-!

"내가 분명히 나를 믿으라고 했을 텐데."

"죄, 죄송······ 죄송합니다, 교수님."

정말 아슬한 순간이었다.

토레스가 내게 달려들었다면 아마도 나는 그 강맹한 기운을 이기지 못하고 그대로 죽어 버렸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근데 왜 도중에 멈추지 않았지?'

이상한 일이었다.

내 최우선 목표는 생존일 텐데. 생명의 위협을 받는 상황에서 제시고 나발이고 그냥 멈추고 몸을 빼야 했는데. 그래야 마땅할 텐데, 그 당시 내게는 제시를 살려야겠다는 생각밖에 들지 않았으니.

'저 새끼가 딱히 이쁜 것도 아닌데 말이야.'

미운 놈 떡 하나 더 준다는 심보인가.

나조차도 이해할 수 없는 내 판단이 조금 당황스럽지만-

['토레스'의 호감도가 대폭 상승합니다. +80]

['토레스'의 호감도가 100을 돌파했습니다.]

[<육성> 시스템에 토레스가 추가됩니다.]

['제시 애슬론'의 호감도가 대폭 상승합니다. +50]

['제시 애슬론'의 호감도가 100을 돌파했습니다.]

[<육성> 시스템에 제시 애슬론이 추가됩니다.]

그래도 얻는 것이 더 많다. 제시까지 육성 시스템에 추가된 건 의외지만, 토레스의 호감도 대폭 상승은 예상 범위다. 그렇다고 100을 돌파할 줄은 몰랐지만.

"일단 몸을 추스르고 있도록."

"네, 네. 교수님."

대답하는 두 녀석을 두고, 아직 해롱대는 리트를 데리고 밖으로 빠져나왔다. 나도, 저 녀석들도. 몸을 추스를 시간이 필요하다. 무엇보다 껍질이 불안정하게 흔들리는 리트를 저 녀석들의 시선에서 멀어지게 할 필요가 있었다.

"죄, 죄송합니다. 교수님. 갑자기 몸이 이상해서···"

"사과할 것 없다."

오히려 사과해야 할 건 내 쪽이다.

내 오러에 담긴 파마의 기운이 리트를 죽일 수도 있었다.

"네 몸부터 추스르도록 하자."

"교수님······."

['리트'의 호감도가 대폭 상승합니다. +30.]

모조리 그녀의 마력에 투자했다.

호감도가 상승할 때마다 마력에 집중적으로 투자하고 있다.

마력의 상승은 곧 마족의 강함과 비례하니까.

그녀가 조금이라도 더 강해지는 것이 나를 위한 일이다.

"······어? 조금 괜찮아진 것······."

확실히 마력이 뒷받침되니 훨씬 편해진 모양이다.

그녀의 안색이 훨씬 괜찮아졌다.

그렇다면 이제 일을 해야겠지.

"괜찮아졌다면 너의 할 일을 하도록."

"아······. 네! 지금 당장 학회로 모시겠습니다."

"아니."

나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지금은 학회가 중요한 것이 아니다.

"너는 지금 당장 학회 스케줄을 뒤로 미뤄라. 학회 측에서 불가하다고 하면, 강연을 취소시키도록."

"네? 하, 하지만······."

"그게 네가 할 일이다."

당황하는 그녀를 두고, 몸을 돌렸다.

학회보다 훨씬 중요한 일이 생겼기에.

* * *

"도, 도련님 정말 다행입니다. 정말······."

"네가 루카스 교수님을 불렀나?"

"네? 네······ 루카스 교수님밖에 떠오르는 사람이 없어서······."

"······고맙다."

"예?"

폭탄 발언이었다.

제시의 입에서 감사가 흘러나오다니.

토레스는 어안이 벙벙해 자신의 귀를 의심할 정도였다.

"몸은 다 추슬렀나?"

적절한 타이밍에 다시 등장한 루카스 교수.

그는 제시 앞으로 다가왔다.

"네가 조금 전까지 보였던 반응은 분명 마기의 거부반응이다. 그 말인즉슨- 마족과 네가 접촉했다는 뜻이지."

"그, 그게······."

"마족의 개가 되었나, 제시 애슬론."

"교, 교수님! 저희 도, 도련님은 절대로 그런 분이······."

"토레스, 네게 물은 것이 아니다. 다시 끼어드는 행위는 용서하지 않겠다."

루카스의 경고에 토레스는 입을 다물었다. 다시금 루카스의 서늘한 시선이 제시에게 닿았다.

"다시 한번 묻지, 마족의 개가 되었나?"

억울했다.

자신에게 접근하는 그를 거부했다.

물론 그의 제안이 잠깐 혹하기도 했었다.

하지만 제시는 거절했다.

루카스 교수에 비하면 그가 말하는 강함은 아무것도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기에.

그저- 당신, 루카스 때문에 그 달콤한 제안을 거절했다.

그러나 그 말이, 그 변명이 입 밖으로 튀어나오지 못했다.

억울했다.

"대답해라, 제시 애슬론."

"저는 당신이 생각하는 그런 짓을 하지 않았습니다."

겨우 입 밖으로 내뱉었지만, 루카스가 믿어줄까.

루카스에게 자신에 대한 신뢰가 있기나 할까.

하염없이 마음이 무거워지고 있었다.

그러나 그 순간.

"믿겠다."

"······."

믿겠다는 단 세 글자가 어째서 이렇게 가슴에 와닿는가.

"흑,"

어째서 흐르는 눈물을 주체할 수 없는가.

"제시, 네가 해 줘야 할 일이 생겼다."

* * *

어두운 밤.

학생들이 기거하는 기숙사에 한 어둠이 찾아 들었다.

그는 아무런 저지 없이 기숙사를 활보했다.

그의 발걸음은 어떤 방 앞에서 멈춰 섰다.

{308호}

조금 전, 계획한 일을 그르쳤던 바로 그곳이다.

그는 문을 열고 방 안에 들어섰다.

어둠이 내려앉아 있었지만, 그의 움직임을 멈출 순 없었다.

끄으으-

끄으으으-

일정한 간격으로 신음이 들린다.

'아직도 저항 중인 건가.'

새삼 이 방의 주인인 제시 애슬론의 잠재력이 무섭게 느껴졌다.

'하지만 그것도 이제 끝이다. 조금 전에는 웬 멍청한 놈 때문에 일을 그르쳤다만······ 두 번의 실수는 없을 것이다.'

마기에 제시 애슬론을 완전히 침식시켜, 자신의 명령만을 따르는 인형으로 만들리라······.

그는 천천히 발걸음을 옮겨 앓는 소리를 내뱉고 있는 제시 애슬론의 머리맡에 다가섰다.

"이제 너는 나의 소중한 전사가 될 것이다. 받아들여라, 제시 애슬론이여."

그의 손에 어둠보다 더 칠흑 같은 마기가 일렁였다.

이제 이 손이 닿는 순간, 제시 애슬론은 완전히 마기에 침식되어 마(魔)전사로 거듭나게 될 것이다. 평범하게 사람들 틈에 섞여 그라스코의 침공 계획의 보조가 될 것이고 마침내 그날이 도래하였을 때, 선봉에 서서 수많은 이들을 도륙할 것이다.

그의 손이 제시 애슬론을 향해 다가갔다.

그러나 그 순간.

"멈추어라. 조금이라도 움직이면······ 벤다."

지저의 한기마저 웃돌 서늘한 음성이 그의 귓가를 파고들었다.

전신이 무언가에 옥죄인 듯, 꼼짝도 할 수 없었다.

'이런 젠장!'

어둠 속에서 모습을 드러낸 것은 루카스.

시리도록 차가운 눈이, 자신의 심연을 꿰뚫어 보고 있었다.

"<데커드 홀>의 사감, 일루이드."

루카스의 입에서 그의 이름이 흘러나왔다.

······끝이다.

하지만 일루이드는 조소를 지으며 돌아섰다.

"흥. 가소롭다, 루카스. 너는 절대······."

서걱-

순식간에 그의 팔이 잘려나갔다.

"끄어어억-!"

"조금이라도 움직이면 벤다고 했을 텐데."

"끄흐흐, 끄흐흐!"

차원이 다른 통증이었다.

마치 세상 모든 고통을 한데 모아 둔 것처럼 괴로웠다.

"묻겠다."

정신이 아득해져 가는 이때, 루카스의 물음이 그의 귓전에 닿았다.

"네 본체······ 그러니까 주인은 어디에 있나."

순간, 모든 고통을 잊을 만큼 커다란 충격이 일루이드를 덮쳤다.

§ 아카데미의 신화급 교수가 되었다 31화

31. 학회 (6)

-요마들의 군주?

-네, 분명 자신의 입으로 요마들의 군주, 발탄이라고 했습니다.

조금 전 제시와의 대화를 떠올렸다.

요마족의 다섯 군주 중 하나, 인형술사 발탄.

어렵지 않게 그에 대한 설정을 떠올릴 수 있었다.

그렇기에 확신할 수 있었다.

이놈은 발탄이 아니다.

발탄의 인형일 뿐.

그 눈동자에 맺힌 동그란 안광이 그것을 증명한다.

"네 본체... 그러니까 주인은 어디에 있나."

일루이드의 눈빛이 크게 흔들렸다.

어떻게 자신이 본체가 아니라는 걸 알았나 하는 표정이었다.

하지만 순식간에 표정을 바꾸고 혓바닥을 놀렸다.

"크큭, 천하의 루카스 눈이 단춧구멍과 다름없구나. 어디서 본체를 찾는가, 내가 바로 본체다!"

지랄한다.

파마의 기운을 띤 오러를 더욱 끌어올렸다.

"끄헉, 끄으으억!"

그러자 놈의 팔에서도 내 오러가 잔불처럼 타오르기 시작했다.

괴로움에 몸부림치는 일루이드.

역하다.

그 고통에 찬 비명이 가식처럼 느껴졌다.

"말하라, 일루이드."

"크윽, 그러니까, 그러니까...."

그래, 네 본체의 이름이 나오는 순간, 고통 없이 죽여 주마. 얼른, 얼른 대답해라.

"크으윽!"

푹-!

'어?'

손 쓸 겨를도 없었다.

놈은 남은 하나의 팔을 이용해 스스로 제 가슴을 꿰뚫었다.

피가 사방으로 튀며, 일루이드의 몸이 뒤로 넘어갔다.

생기가 사그라들고, 눈동자에 남은 인형의 흔적이 사라지고 있었다.

"크윽, 쿨, 쿨럭. 루, 루카스 교수님... 제 말 들리십니까."

이전과는 달리, 마기가 느껴지지 않는 음성.

불쾌한 기분도 사라졌다.

"사, 살려 주십시오. 제발 살, 살려 주십시오."

살리고 싶어도 살릴 수 없다. 발탄의 인형이 맞이하는 죽음은, 죽음이 아닌 소멸. 벌써 그의 전신이 가루로 변해 부서지며 흩어지고 있다.

성녀 정도 되는 이가 '기적'을 행한다면 모를까, 절대 무리다.

그리고 일루이드가 살려 달라고 하는 것은 자신이 아니다.

"저, 저는 어떻게 되어도 좋습니다. 제 가족, 놈에게 볼모로 잡혀있는 제 가족을...."

일루이드는 말을 끝맺지 못했다.

그는 시체조차 남기지 못하고 사라졌다.

'...그래, 네 부탁은 담아 두지.'

"루카스 교수!"

"교수님!"

곧이어 들이닥친 하인즈를 비롯한 교수진들.

그들은 오면서 상황을 전해 들었는지 자못 심각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일루이드가 마족이라니, 그게 정말인가?"

로널드가 크게 소리쳐 물었지만, 말을 아꼈다.

이 안에, '진짜' 발탄이 있기 때문이다.

인형이 스스로 자폭하도록 조작하려면 일정 거리에 있어야 한다.

그리고 여기 모인 이들이야 말로 그 조건을 충족하는 이들.

무엇보다, 그를 둘러싸고 있던 껍질이 아주 잠깐이지만 흔들렸다.

상대하기보다는 일단 몸을 피해야 한다.

심신이, 너무 지쳐있다.

쩌억-!

떨그렁!

때마침 내 손에 들고 있던 검이 크게 균열하며 갈라졌다.

파편이 사방으로 튀진 않았으나, 의미 없는 적막을 깨트리기엔 충분했다.

"자세한 이야기는 내일 말씀드리도록 하겠습니다."

"그, 그러지."

발을 내딛자, 인파가 갈라지며 길을 만들어 내었다.

"가자, 리트."

"네? 네!"

잔뜩 주눅이 든 리트가 종종걸음으로 따라왔다.

우리의 뒷모습을 지켜보고 있는 시선 하나하나를 고스란히 기억해 두었다.

* * *

"후우-!"

루카스가 떠나갔다.

그제서야 참고 있던 숨을 몰아쉬었다.

'이 기운은 뭐란 말인가.'

위험하다.

이 방은 물론이고, 조금 전까지 루카스에게 남아 있던 그 기운의 잔재.

마치 목을 옥죄는 듯한 강대한 기운은 '그'에게 숨쉬기조차 힘들 만큼 버거움을 안겨주었다.

마치 자신의 존재 그 자체를 배제하려는 듯한 기운이다.

"음? 자네 괜찮나?"

"으음, 그래. 믿었던 일루이드가 마족이라는 소식이 조금 충격이었나 보네."

"그래. 그럴 만도 하지. 나도 엄청난 충격이라네. 마족이 그라스코의 지붕 아래서 활보하고 있었다니."

"끔찍한 일이지."

"어쨌든 이번 일은...."

"그래, 그라스코 밖으로 새어나가서는 안 되겠지."

이 일은 그라스코 안에서만 취급되는 기밀로 다루어질 것이다.

하지만.

'큰일 났구나....'

자신에게는 해당 사항이 없는 일이리라.

오르페가의 귀에는 이미 들어갔을 테니....

'방법을 찾아야 한다. 오르페가 놈이 납득할 만한 무언가를....'

골치가 지끈거리고 있었다.

* * *

"하, 강연의 일정을 미뤄 달라?"

에르멜 학회의 최고 결정권자인 알란은 밤늦게 온 연락 한 줄에 황당함을 감추지 못했다.

당장 학회의 첫날에 예정된 강연.

사실상 이번 학회의 모든 관심이 루카스의 강연에 쏠려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당장 그 강연의 티켓만 해도 매진된 상태에, 암표까지 암암리에 돌고 있다고 하니, 그 관심이 얼마나 지대한지 알 수 있다.

'출신도 모를 놈이...'

그런 루카스 측에서 강연 일정을 미뤄달라는 연락이 왔다. 더군다나 이유는 알려줄 수 없다는 오만함까지 보이고 있다.

"해 주겠다고 해."

그렇다고 해도 주도권은 저쪽에 있다.

엄청나게 팔려 나간 티켓을 환불해 주느니, 일정을 미루는 편이 훨씬 낫다.

'어디 얼마나 잘난 강연을 준비했는지 기대하마.'

그래. 네놈이 주도권을 가지고 있으니 허락은 해 주마.

그 대신, 얼마나 잘난 강연을 준비했는지, 이 눈으로 똑똑히 확인하리라.

만약 형편없는 수준의 강연을 준비해 놓고 이따위 강짜를 부렸다면 그 대가를 톡톡히 치르게 하리라.

알란은 몸을 일으켜 루카스의 논문을 집어 들었다.

강연에서 그를 당황하게 만들기 위해, 구석구석 분석해 볼 참이다.

* * *

"...."

밤이 깊었지만 잠들 수 없었다.

아주 짧은 순간이었지만, 놈은 그 가면을 벗었다.

의식조차 하지 못할 찰나였지만, 내 '눈'에는 보였다. 놈을 감싸고 있던 '껍질'이 요동치는 것이.

'그렇다면 진짜 '그'는 어디에 있는 거지?'

나는 발탄이 그의 모습으로 변장했다는 것을 쓴 적이 없었다.

이 모든 것이 그라스코라는 배경이 내 스토리 저편에 밀어져 있었기 때문이다.

가끔 루카스나 등장시킬 때 썼지, 그라스코가 무너지는 과정을 심도 있게 다루지 않았다.

그것이, 그 안일함이 이렇게 내게 돌아오고 있었다.

'잠깐.'

번뜩 든 생각에 몸을 일으켜 하나의 책을 집었다.

그리고는 훑듯이 빠르게 읽었다.

난해하고 어려운 내용이었다.

하지만, 이 안에 엄청난 비밀이 숨겨져 있었다.

"부르셨습니까, 교수님."

"데얀."

나는 아주 은밀하게 데얀을 호출했다.

"네게 부탁할 일이 있다."

"...교수님께서 제게 부탁할 일이요?"

"단순히 데얀에게 부탁하는 것이 아니다. 아에로크의 '그림자'에게 부탁하는 것이다."

데얀의 자세가 곧게 펴졌다.

"심각한 일입니까?"

"심각하다."

"폐하께는...."

"숨기지 못할 것 다 알고 있다. 상관없으니 시키는 일만 제대로 해내도록."

"알겠습니다. 그럼 부탁하실 일이라는 건?"

"...하인즈를 찾아라."

"네? 그게 무슨...."

"지금 우리 앞에서 하인즈 행색을 하고 있는 놈은 가짜다. 진짜 하인즈를 찾아."

"하지만 어떻게...."

의문이 가득 담긴 표정의 그에게 <마나와 존재>라는 책을 넘겼다.

"이건 하인즈 님의 저서가 아닌가요?"

"그래. 가장 최근에 낸 저서다."

"이게 왜...."

"자세히 설명할 시간이 없으니, 똑똑히 새겨들어라. 이 책은 필요 이상으로 난해하다."

"그, 그렇죠. 대륙 최고의 석학들도 혀를 내두를 정도라고 했으니...."

"하인즈는 그런 류의 지식을 싫어한다."

하인즈는 세상 모든 지식은 공평하게 분배되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다.

그런데 그런 사람이 최고의 석학들도 벽을 느낄 만큼 어려운 책을 써냈다? 이건 필시 어떠한 이유가 있는 것이다.

하인즈의 사상이 갑작스럽게 바뀌어 이런 책을 냈다고 생각할 수 있다.

단언하건대 절대 그럴 일이 없다.

그 이유는....

'내가 그 정도로 입체적인 캐릭터를 만들 수 있을 리 없다.'

내 필력은 내가 잘 알기 때문이다.

하인즈 역시 내가 만든 캐릭터.

그렇게 다채로운 변화를 보일 리 없다.

"이 책에 거대한 암호가 숨겨져 있을 것이다. 아에로크의 정보국을 이용해서 풀어내라."

"...."

데얀은 망설이고 있었다.

이 모든 것은 내 가설일 뿐이고, 근거가 없으니까.

확신 없이 왕국의 정보국을 움직이는 것은 위험할 수 있으니.

그를 움직이게 할 무언가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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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치 지금 사용하라는 듯 이어지는 후원.

지금 받은 900G에 더해, 이전에 받았던 100G까지 지록위마에 쏟아 넣었다.

"이 안에, 아에로크 역사상 최고라 불리는 석학의 목숨이 달려있다."

데얀의 눈빛이 몽롱해지더니, 이내 총기를 찾았다.

"믿겠습니다. 곧바로 정보국에 암호 해독을 의뢰하겠습니다."

"최대한 빨리 찾아내라. 시간이 없다."

"예!"

시간이 없다고 판단한 이유는 간단했다.

원래 스토리라면 최소 1년은 뒤에나 이루어졌을 제시와 마족과의 접촉.

그것이 상당히 앞당겨 졌다는 것은 저쪽도 뭔가 상당히 급하게 움직여야 할 이유가 있다는 뜻이다.

최악의 경우 그라스코 침공 계획이 앞당겨질 수도 있다.

[LIFE TIME : 25개월]

아직까지 내 수명에 큰 변동은 없으나, 혹시 모른다.

'선수를 친다.'

아직 놈이 제 정체가 완전히 밝혀지지 않았다고 믿는 지금.

지금이야말로 놈의 정체를 까발릴 적기였다.

* * *

"로널드, 어제 일루이드 건도 그렇고 내가 생각해봤는데 말이야."

"뭔가?"

"신성 제국의 도움을 요청하는 것이 어떻겠나."

"외부인을 그라스코에 들이자고? 으음, 그건 좀...."

"그렇다고 왕실의 도움을 받을 수도 없지 않은가. 왕실에서 개입할 여지를 줄이는 것. 그것이 자네가 가장 원하는 거 아닌가?"

로널드는 하인즈의 말에 더욱 깊은 고심에 빠졌다.

그의 말처럼 왕실의 도움을 받자니, 그 후가 문제다. 게다가 전운이 점점 짙어지는 이 상황에서 쉽게 도움을 줄 수 있을지도 문제였다.

"하지만 제3국의 도움을 왕실과 의논 없이 결정한다는 것이 후에 큰 문제로 야기될 수 있음이야."

"걱정된다는 거 다 아네. 하지만 그라스코가 자랑하는 방벽이 뚫린 이상, 오래가지 못할 걸세. 루카스 교수만 너무 믿는 것도 그에게 부담을 지어주는 일이 될 게야."

"하지만 그러자면 그라스코의 결계를 풀어야 하네. 그게 더 위험부담이 될 수 있어."

"잠깐이면 되지 않겠나? 내가 베르트로 직접 가겠네."

"자네가 직접?"

"그래. 이래 봬도 대륙 최고의 석학으로 손꼽히는 몸일세. 그들도 내 면을 생각해서 쉽게 거절하지는 못할 거야. 왕실과의 담판도 내가 짓겠네."

"으음...."

로널드는 더욱 깊은 고민에 빠졌다.

"무얼 그리 고민하는 겐...."

하인즈가 문득 이상함을 느낀 것은 그 무렵이었다.

"로널드, 자네... 시간을 끌고 있군."

하인즈는 곧바로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입구로 내달렸다.

그라스코의 결계 때문에 본신의 위력을 제대로 사용할 수 없다.

자칫 다른 교수들까지 몰려든다면... 자신은 끝이다.

"움직이지 마라, 요마족 발탄."

그때, 서늘한 음성이 하인즈, 아니 발탄의 귓전에 꽂혔다.

"루카스...."

발탄이 입술을 짓씹으며 루카스의 이름을 불렀다.

다른 교수들 역시 속속 모습을 드러내고 있었다.

로널드가 일어나 루카스를 향해 물었다.

"자네 말대로 시간을 끌긴 했네만... 정말 하인즈가 마족이라고?"

"아무리 봐도 총장님이신데 자네가 뭔가 착각한 건 아닌가?"

루카스는 일절 대답하지 않고, 검에 오러를 밀어 넣었다.

오묘한 빛깔의 오러가 사위를 밝혔다.

"큿, 크윽...."

하인즈를 뒤덮고 있던 껍질이 눈에 띄게 요동쳤다.

이윽고, 껍질은 검은 안개가 되어 산화되었고, 그 안에서 꼭두각시를 닮은 마족, 발탄이 모습을 드러내었다.

"하아, 그래 인정하지 루카스. 하지만... 너도 이건 예상 못 했을 거다!"

루카스의 바로 옆에 있던 교수가 그에게 달려들더니, 그대로 폭사(爆死)했다.

저것으로 루카스를 어떻게 할 순 없겠지만, 잠깐 시간을 벌 정도는 충분하다.

피륙이 이들의 시야를 가리고 있는 이때, 있는 힘껏 달아나기 시작했다.

"헉, 헉, 헉...."

한참을 내달리고 내달렸다. 혹시나 깔아 둔 인형을 사방으로 분산시켜 추적을 방해했다.

겨우 그라스코 외곽까지 다다르자, 발탄은 숨을 골랐다.

"헉, 헉... 루카스 놈, 어떻게 눈치챈 거야?"

짜증이 확 솟구쳤다.

자신의 계획은 완벽했으나, 루카스 놈 때문에 모조리 망가지고 있었다.

"오르페가 그 개같은 새끼가 독촉만 하지 않았더라면 만반의 준비를 갖출 수 있었을 것...."

그때 등 뒤에 느껴지는 서늘한 기운에 발탄이 몸을 돌렸다.

재밌다는 얼굴을 한 오르페가가 발탄을 지긋이 바라보고 있었다.

발탄은 살아남기 위해 억지로 머리를 짜냈다.

"...으로 34행시를 지어 보겠습니다."

"오."

"오르페가, 위대한 존재시여!"

"사."

"...?"

§ 아카데미의 신화급 교수가 되었다 32화

32. 학회 (7)

폭발로 인한 데미지가 몸에 쌓여 끔찍한 고통을 자아냈다.

이마에 힘줄이 불거질 정도로 이를 악물고 고통을 참아내고 본능에 따라 걸음을 옮겼다.

"루카스 교수! 여길세!"

누군가 내 발걸음을 막아섰다.

해리엇 블룸.

전투 학부의 학장이다.

천천히 그에게 다가섰다.

"여기, 여길 보게."

그의 손길을 따라가니, 온몸의 관절이 기괴하게 꺾인 채 죽어 있는 발탄의 시체가 보였다.

"누군가 손을 쓴 듯해. 내가 도착했을 때는 이미...."

블룸은 안타깝다는 듯 고개를 저었다.

"그나저나 정말 깜짝 놀랐어. 설마 마족 놈이 총장님의 모습을 하고 우리 틈에 섞여 있었을 줄이야."

쉴 새 없이 쫑알대는 그를 지나쳐, 발탄의 시체를 살폈다.

확실히 발탄이 맞다.

그러나 커다란 문제가 있었다.

...해리엇 블룸이 이 사실을 어떻게 알았는가.

조금 전, 해리엇 블룸은 현장에 없었다.

일부러 배제했거든.

문답무용.

놈이 알아차리기 전, 기습을 노렸다.

교학상장(敎學相長). 데얀- 로크 소드, 발검(拔劍).

아에로크 전통의 검식, 로크 소드. 그중에서도 데얀의 발검은 인지를 넘어서는 속도를 자랑한다.

스겅-

하지만, 내 검은 허망히 허공을 베었다.

스탯의 부족함을 절감했다.

"하하! 루카스 교수. 장난이 심하잖아. 아직... 몸도 성치 않을 텐데."

놈은 내 상태에 대해서도 낱낱이 알고 있었다.

침묵이 내려앉았다.

"언제부터 알고 있었지?"

"의심은 첫 만남부터. 확신은 지금."

"호오, 이유를 물어봐도 될까?"

해리엇 블룸.

놈은 첫 만남부터 내 경계 대상 중 하나였다.

왜냐면-

"내가 이종족이라는 사실을 밝힌 적이 없거든."

루카스의 종족은 설정상 이종족이긴 하나, 인간과 다름없는 모습으로 스스로 정체를 밝히지 않는 한, 그 누구도 이종족이라는 사실을 알아챌 수는 없다.

루카스가 철저하게 언어를 익히려고 했던 이유 역시, 인간들 사이에 완벽하게 녹아들기 위해서였다.

그런데 해리엇의 첫인사는-

-소문의 그 이종족 백작을 뵙게 되어 영광이로군. 전투 학부의 학장을 맡은 해리엇이라고 하네.

그 순간부터 나는 해리엇을 경계했다.

아무도 모를 비밀을 알고 있다는 것 자체가 충분히 수상쩍은 것이었으니.

"크하하하! 그렇지. 하긴, 자네 종족의 특수성 때문에 내가 지나치게 경계한 것 같아."

"...."

일부러 말을 아꼈다.

여기서부터는 내 설정 밖이다.

루카스의 부족이 이종족인 것은 맞지만, 자세한 설정은 굳이 짜두지 않았다. 이유는 간단했다.

엑스트라니까.

하지만 지금까지 만나본 마족들의 반응은 하나같이 비슷했다. 루카스의 종족이 무언가 있는 듯이,

마치- 자신들의 천적이라도 되는 듯이 굴었다.

"그런데 내가 자네를 지켜봐 오면서 느낀 한 가지 이상한 점이 있는데... 어째서 활을 쓰지 않지?"

"대답해 줄 의무가 있나?"

"하하하! 그래도 함께한 정이 있는데 너무 매몰차군."

"마족 놈에게 붙은 정 따윈 없다."

"그러면 자네 옆에 그 아이가 너무 섭섭해하지 않겠나?"

"말장난은 집어치워라."

무슨 일이 있어도 놈은 여기서 끝장내야만 했다.

'할 수 있을까?'

아니, 자신 없어도 해야 한다.

앞으로 내 생존의 문제가 달려있으니.

쿠와아아아-!

오러를 활성화하고 대량의 포인트를 밀어 넣었다.

마치 거대한 불기둥처럼 엄청난 존재감을 뽐내며 이글댔다.

단순히 놈을 끝장내기 위한 것만은 아니다.

이 오러를 보고 누구라도 서둘러 와 줬으면 하는 마음이었다.

일종의 신호탄 같은 것이다.

"역시 '그' 종족 아니랄까 봐, 엄청난 파마의 기운이로군. 결계 안에서 맞서는 건 무리겠어."

그런 것 치고 상당히 여유가 있어 보인다.

하지만 내겐 그런 여유가 없다.

거대하게 부풀어 오른 크기만큼, 포인트도 어마어마하게 빠져나간다.

시간이 없다.

"안타깝지만, 우리의 만남은 여기서 마무리 짓도록 하자고. 다음에 만나면 제법 재미있을 거야. 그때는 준비를 단단히 해서 올 테니, 각오하라고."

쿠르르릉-!

놈의 뒤에 블랙홀 같은 균열이 생겨났다.

"또 보자고, 루카스 교수."

안된다.

이대로 놈을 보낼 순 없다.

[새로운 알림이 도착했습니다.]

[k2929 님께서 100G 후원하셨습니다.]

[카체 님께서 300G 후원하셨습니다.]

[뜨거운맛 님께서 100G 후원하셨습니다.]

[상상대제 님께서 300G 후원하셨습니다.]

[흑백마법 님께서 1,000G 후원하셨습니다.]

놈을 놓치지 말라는 듯, 후원이 이어졌다.

누구의 기술을 써야 할까, 그런 판단조차 내릴 시간이 없다.

그저 내게 제일 익숙한 자세.

검을 높게 들고, 놈을 향해 그대로 내렸다.

쩌어어어억-!

땡그렁-!

미처 완전히 검을 내리기도 전에, 검은 오러의 기운을 버티지 못하고 부러지고 말았다.

그 사이 놈은 완전히 균열 너머로 사라진 뒤였다.

흐하하핫-!

놈의 비웃음 소리가, 환청처럼 들리는 것 같았다.

* * *

쿠르르릉-!

공간이 일순 일그러지더니, 거대한 균열 속에서 한 존재가 뱉어지듯 튀어나왔다.

"끄, 끄억...."

어깨 한쪽부터 복부까지.

세로로 크게 베여 금방이라도 분리될 듯 깊은 상처다.

"오, 오르페가 님!"

"빨리 오르페가 님을 모셔라!"

오르페가의 주위로 수많은 마족이 모여들었다.

"괜찮으십니까, 오르페...."

콰직!

"응?"

순식간에 오르페가를 향해 있던 두 팔이 날아갔다.

의문을 채 느끼기도 전에,

와득!

이번에는 상반신 전부가 무언가 베어 먹은 듯이 날아갔다.

"오, 오르페가 님의 식사가 시작됐다! 모두 도망쳐-!"

하지만 늦었다.

꽈직! 콰득!

콰드득! 아득!

오독, 오도독!

끄어억!

소리가 멎었을 때, 그의 주위에 남은 생명체는 단 하나도 없었다.

어느새 갈라진 신체가 붙은 오르페가의 눈이 떠졌다.

"큭. 큭큭큭!"

재생 능력에도 치유되지 못한, 자신의 몸에 선명하게 남은 루카스의 흔적.

깊게 패인 상처를 쓸며 오르페가는 미친 사람처럼 웃었다.

조금만 늦었더라면.

아니, 루카스의 검이 그 기운을 잠깐이라도 더 이겨냈다면 자신은 이미 죽은 목숨이었으리라.

그라스코의 결계 때문에 본신의 위력을 전부 낼 수 없었다고는 해도 충격적인 결과였다.

'다음에는 네 놈을 반으로 갈라주지. 기대해라, 루카스.'

오르페가의 눈이 광기로 번들거렸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