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ebnovel

14-22

14. 재앙 속의 영웅(3)

"으어어!"

눈을 뜬 강현이 벌떡 일어났다.

"결국 잠든 건가... 응?"

그런데 눈에 보이는 것은 어제의 오솔길이 아닌 아현의 회사였다.

"뭐야, 왜..."

잠시 상황을 이해하지 못한 강현이 입을 벌리고 멍청하게 서있었다.

"이 씨발련이, 결국..!"

마침내 자신이 잠든 사이 죽었다는 것을 깨달은 강현이 욕지거리를 내뱉었다.

"그냥 뒤통수를 후려쳤어야 하는 건데! 후우, 오늘 돌아가면 기대해라.'

이번에는 사실 반지 덕에 손쉽게 클리어할 수 스테이지였다. 하지만 강현이 지나치게 신중을 기하는 바람에 실패했다고 볼 수 있었다.

"아침마다 쌍욕 하는 거 혹시 컨셉이냐?"

"하아... 아냐."

아현의 말에 한숨을 내쉬고는 강현이 자리에 주저앉았다.

"작작 좀 해라. 사람들이 불안해하잖아."

"아, 미안."

'그래. 일단은 현실에 집중하자.'

생각을 정리하고 강현이 주위를 둘러봤다.

하루 동안 다른 공간에 있다 와서인지 어제보다 조금 낯선 느낌이었다.

"별일 없었지?"

"어. 밖도 조용해."

창가로 다가간 강현이 밖을 내다봤다. 적막에 휩싸인 거리는 몬스터도, 사람도 보이지 않았다.

"막상 이렇게 되니 할 게 없네. 먹을 거라도 좀 구해올까?"

"네가 그걸 왜 자처해. 가만히 있어."

깜짝 놀란 아현이 다급히 강현의 입을 틀어막았다.

"힘 좀 생겼다고 나대지 말라고. 이 사람들 전부 끝까지 책임져 줄 거야?"

"그건 아니지..."

"그러니까…!"

그때 남매에게로 한 남자가 다가왔다.

"무슨 일 있어요?"

"아, 대리님. 아니에요. 하하..."

"혹시, 무슨 문제 있으면 혼자 고민하지 말고 말해요. 다 같이 생각하면 방법이 나올지도 모르니까."

"네. 신경 써주셔서 감사합니다."

평소와 다르게 아현이 상냥한 말투로 하하호호!하며 말했다.

강현은 대놓고 토가 쏠린다는 표정을 지었다.

"컥!"

"가만히 있어라."

"하이힐 뒷굽은 너무한 거 아니냐?"

강현이 발등을 부여잡으며 인상을 찌푸렸다.

"움직이지 말자 배 꺼져."

"그러게... 배고프다. 역시 내가 뭐라도 구해오는 게 좋을 것 같은데."

강현의 중얼거림에 아현이 눈을 흘겼다.

"보면 어쩔 건데? 내가 배고프다는데. 일단 오늘까지만 기다려보고, 계속 조용하면 내일 나가볼게."

"휴... 알겠어."

결국 그녀도 승낙할 수밖에 없었다.

**

-탕, 탕!

"뭐지? 총소리가 좀 가까워지고 있는 것 같지 않아?"

그날 오후.

멀리서만 들려오던 총성이 점차 가까워지는 것이 느껴졌다. 그리고 잠시 후, 땅이 울리기 시작했다.

"여러분. 군인이에요! 살았어요!"

장갑차와 함께 중대 규모의 군인들이 도로를 지나는 것이 보였다.

"케륵!"

"키에에엑!"

-타앙!

소리를 듣고 고블린이나 타란크들이 몰려들었지만, 현대의 총기 앞에서 모두 처참하게 죽어나갔다.

-시민 여러분 안심하십시오. 현재 대부분의 괴수들을 처치했으며, 마지막 소탕 작전이 진행 중입니다.

"살았다. 살았어..!"

-아직 거리는 위험하니 실내에서 대기해주시기 바랍니다. 내일 낮 12시부터 건우 지하철역에서 구호 물품을 나눠드릴 예정입니다. 시민 여러분 안심하십시오. 현재….

거대한 확성기에서 녹음된 말이 반복해서 흘러나오고 있었다.

시민들을 안정시킴과 동시에 몬스터를 유인하는 두 가지의 효과를 노린 것이었다.

"역시, 군인들이 올 줄 알았어!"

"하나님. 아버지. 감사합니다."

"이럴게 아니라 군인들을 따라가야 하지 않을까요?"

"실내에서 대기하라 했잖아요."

대부분의 사람들이 서로 부둥켜안고 좋아했지만, 몇몇 사람들은 밖으로 나가 군인들을 따라가려 했다.

"나가시려면 지금 바로 가시는 게 좋을 겁니다. 군인들이 멀어지기 전에."

"강현 씨는 같이 안 가시나요?"

"그건 강현 씨가 정하는 거지 왜 자네가 데리고 가려 그래?"

건물에 남아 있으려는 사람들과 군인을 따라가려는 사람들 사이에 강현 쟁탈전이 벌어졌다.

"여러분 죄송하지만 저는 조금 더 상황을 지켜본 후에 집으로 갈 생각입니다."

"아... 그래요?"

"그러시구나..."

"거 보라고!"

강현의 말에 밖을 나가려던 사람들이 잔뜩 실망한 표정을 지었다.

"이제 상황이 거의 종료된 것 같으니 걱정하실 필요 없습니다. 정 불안하시면 여기 쌓여있는 검 하나씩 들고 가세요."

"예. 감사합니다."

"저기... 이걸로 저 놈들을 이길 수 있을까요?"

"겁먹지 않고 싸운다면 한 마리 정도는 충분히 이기실 수 있을 겁니다."

강현은 정말 그렇게 생각했다.

어지간한 성인 남성이라면 고블린 정도는 1대1로 충분히 이길 수 있었다.

'물론, 공포를 이겨낼 수 있다는 전제 하에 말이지.'

어차피 바로 앞에 있는 군인에게 가기만 하면 되는 일이라, 굳이 불안감을 조성하는 뒷말은 하지 않았다.

**

늦은 오후.

군인들이 떠난 거리는 다시 적막에 휩싸였다. 이따금씩 거리를 걷고 있는 사람들도 보였다.

'이 정도면 아현이와 나가도 괜찮겠어.'

한참 동안 밖을 살피던 강현이 마침내 아현과 함께 빌딩을 나섰다.

"와, 어마어마하네."

"그러게."

아직 정리하지 못한 사람과 괴물의 사체들이 널려 있었고, 온갖 상점들의 입구가 부서져 물건들을 강탈해간 상태였다.

"우리도 한몫 챙길까?!"

강현의 말에 아현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됐네요. 지금 훔쳐 가면 밤에 찝찝해서 잠이나 오겠어?"

"쳇. 착한 척 하기는."

사실 강현도 농담으로 한 말이었기에 아현의 대답에 내심 만족했다.

"와. 그런데 정말 조용하긴 하다. 이런 적이 있었나?"

항상 사람들로 붐볐던 시가지.

평소라면 상상도 할 수 없는 텅 빈 도심을 걷다 보니, 현실성이 사라지는 느낌이었다.

"그래도 군인들이 확실하게 정리한 것 같아 다행이다."

강현은 만일을 대비해 계속 긴장을 유지하고 있었다. 그러나 다행히도 아무런 일 없이 조용히 집에 도착할 수 있었다.

"휴, 도착했다!"

"얼른 들어가서 씻자. 밥도 먹고!"

남매는 앞 다투어 빌라 계단을 올라갔다.

"뭐해?"

마침내 현관문 앞에 선 아현. 그러나 그녀는 가만히 문을 바라보고만 있었다.

"너 문 안 닫고 나왔냐?"

"응...?"

아현의 시선은 살짝 열려 있는 현관문에 고정되어 있었다.

"몰라...?"

아현이 문을 열자 완전히 난장판이 된 집안이 보였다. 강현은 그 모습을 멍한 표정으로 바라봤다.

"야이, 새끼야! 문단속도 안 하고 나오면 어떡해?!"

"저거저거! 지 오빠가 구해줬는데 말하는 싸가지 하고는! 시집도 못 갈 년이야 이거!"

"아아악! 그놈에 시집 소리 좀 그만해!"

결국 옥신각신하며 시작된 방 청소는 그날 밤이 되어서야 끝났다.

**

[강현 님의 튜토리얼 입장을 환영합니다]

[다섯 번째 단계 진행 중 오류가 발생했습니다. 곧바로 이동합니다]

[당신의 용기가 지구를 구원하기를]

**

다음날 아침.

잠에서 깨어난 강현이 멍한 표정을 짓던 것도 잠시.

"왜..? 도대체 이유가 뭐야?!"

이내 머리를 부여잡고 날뛰기 시작했다.

"왜! 튜토리얼 내용이 바뀌었냐고!?"

분명 어제 튜토리얼에 입장했을 때는 몽마, 서큐버스를 처치하라는 내용이었다.

그래서 오늘 강현은 들어가자마자 김연지에게 정의가 무엇인지 보여주리라 다짐하고 있었다.

뒤통수를 후려치는 것으로 말이다.

"분명 그랬는데..."

그러나 다시 입장한 튜토리얼에서는 전혀 다른 장소, 전혀 다른 클리어 조건을 요구했다.

"설마 이번 단계는 매번 내용이 바뀌는 건가..?"

그러지 않아도 강현은 머리를 쓰는 것에 약해 걱정이 많았다. 그런데 거기에 더해서 매번 튜토리얼의 내용까지 바뀐다면...

"완전 노답이네. 씨발. 잘못하다가 몇 년 걸리는 거 아니야?"

어쩌면 평생이 걸릴지도 몰랐다.

"후... 어쩔 수 없지. 편하게 생각하자. 편하게."

멘탈을 추스른 강현이 밖으로 나와 아침밥을 준비했다.

"이열~ 웬일이야. 오늘도 아침밥 준비하네. 제법이다?"

거실로 나온 아현이 강현에게 툭툭 잽을 날리며 빈정거렸다.

"시비 걸지 마라."

"뭬?"

"오라버니가 오늘 기분이 상당히 퍼킹 하거든?"

"새애뀌, 사람 다됐어! 엉?"

-툭, 툭

"아 시바, 왜 자꾸 시비야!"

결국 짜증이 난 강현이 소리를 질렀다. 그러자 아현이 실실 웃으며 스마트폰을 강현의 앞에 가져대 댔다.

"히히. 이거 보라고."

"이게 뭔데?"

-건우동 고블린 슬레이어

-건우동 학살남

-건우동 학살남 영상 합본

"건우동 고블린 슬레이어..?"

건우동이라면 자신이 살고 있는 동네 이름이었다. 불길한 예감이 든 강현이 재빨리 영상을 재생했다.

-꺄아아아!

-탕탕!

던전이 열리고 난 직후의 모습이었다.

카메라가 정신없이 돌아가며 군인들과 도망치는 시민들의 모습을 담았다.

-나와! 시간 없어 새꺄!

그때 근처에서 들리는 외침에 카메라가 다급히 움직였다.

때마침 강현이 검을 피하며, 부엌칼을 고블린의 턱 아래에 쑤셔 넣는 장면이 담겼다.

-케.. 케르...

-이건 고맙다. 이제 꺼져.

-퍽!

강현이 검을 뺏고는 고블린을 시원하게 발로 차는 장면이 나오고, 카메라는 이제 강현만을 쫓았다.

-챙, 챙!

"케엑!"

강현이 앞을 막아서는 고블린들을 거침없이 베어버리는 장면들이 담기고, 마침내 강현이 시야에서 완전히 사라지자 영상은 종료되었다.

"누가 찍은 거야? 이거 카메라 위치 보니까 우리 옆 동 같은데?"

"3층이나 4층 정도에서 찍은 것 같아."

강현이 영상을 내려 댓글을 확인했다.

-와, 검 쓰는 게 전문가 수준인데 실화인가?;;

-튜토리얼 최소 3단계는 넘게 깼을 듯.

-절대 2단계 못 깼음. 2단계 깨면 거기서 무기 얻어서 바로 현실에서 쓸 수 있었을 텐데, 처음에 보면 식칼로 고블린 찌르잖아? 자기 무기가 있었으면 그랬을 리가 없지.

-어 저기 우리 집 앞임. ㅋㅋㅋㅋㅋ

-다른 사람들도 괴수 잡는 영상 있긴 한데 이건 클라스가 좀 다른 느낌 아니냐?

-그 정도는 아닌데? 오버 ㄴㄴ

-이 남자 다른 영상 있는데 그건 더 박살남

댓글을 살피던 강현이 고개를 갸웃했다.

"다른 영상은 뭐야? 설마 뭐가 또 있어?"

"그게... 회사 사람 중에 너 싸우는 모습을 누가 찍었나 보더라고... 이 영상이 좀 유명해지니까 그것도 올렸나 봐."

"하아."

강현이 한숨을 내쉬며 머리를 쓸어 넘겼다.

"틀어봐."

"여기 이거."

-건우동 고블린 슬레이어 추가 영상

영상은 강현이 사람들과 함께 바리케이드를 치우는 장면에서부터 시작됐다.

-됐습니다. 이제 다들 물러나세요.

강현의 말에 다급히 뒤로 물러서는 사람들. 이윽고 강현이 마지막 사물함을 치우자 6마리의 고블린들이 들이닥쳤다.

-케륵, 켁!

-스걱!

일격으로 깔끔하게 고블린 한 마리의 목이 날아간다. 그다음 달려드는 놈을 어깨로 밀쳐냄과 동시에 바로 옆에 있는 고블린의 검을 막았다.

-챙!

잠시 힘겨루기를 하던 강현의 검이 자연스럽게 미끄러지며 고블린의 양 손목을 잘라버렸다.

-키에에엑!

손목이 잘린 채로 괴로워하는 고블린의 목을 쳐내고, 강현이 차례대로 고블린을 처리하기 시작했다.

약 3분 후.

6마리의 고블린들이 모두 죽자 환호성이 들려왔다.

천천히 움직인 카메라가 마지막으로 담은 것은 입구 너머에 쌓여 고블린의 사체 더미였다.

-건우동 고블린 슬레이어는 회사에 갇힌 자신의 여동생을 구하기 위해 달려온 것이었습니다. 현장에서 보면 완전 근육질이고 멋있어요.

올린이의 영상 설명.

"이걸 웃어야 돼 말아야 돼?"

댓글들을 확인하자 이전의 영상보다 훨씬 폭발적인 반응이었다.

-이건 제대로 미쳤다. 민간인이 아닌데 그냥?

-6대1을 처발라 버리네.

-와 진짜 클라스가 다른 것 같은데? 6대1 영상 이거 말고 있음?

-외국 보면 10대1도 수두룩하다.

-다른 시체들 보면 한번만 싸운 것도 아닌 듯, 집에서 저기 회사까지 가는 길에도 계속 싸웠을 거고.

-고작 고블린가지고 너무 호들갑떠네. 우리 형이 고블린 별거 없다고 했는데.

-네 형은 튜토리얼에서 만나자마자 뒤졌으니까 별게 있는지 없는지 모르는 거겠지.

지금도 실시간으로 조회수가 올라가며 댓글이 달리고 있었다.

"이 시국에 이딴 영상이나 볼 여유가 있나?"

"이런 때니까 더 그럴지도 모르지. 밖에 나갈 수도 없는데 집에 처박혀서 뭐하겠어."

확실히 아현의 말도 일리가 있었다.

"다른 영상은 없지?"

"어. 이거 외에는 없어."

강현은 회사로 향하던 도중 도움을 청하는 사람들을 외면한 적이 있었다.

지금도 어쩔 수 없는 일이라고 생각했지만, 괜히 그러한 장면들이 담겨서 시끄러워지는 건 아닐까 걱정이 되는 것도 사실이었다.

"어쨌든 유명인사 다 됐다. 이왕 이렇게 된 거 저작권 요청하고 광고비나 받는 게 어때?"

"진심이냐?"

"그럼 생활비 한 푼이라도 좀 보태던가!"

"..."

돈 이야기가 나오면 한없이 작아지는 강현이었다.

15화 튜토리얼의 끝 - 20.03.12

15. 튜토리얼의 끝

강현과 강아현.

남매가 오랜만에 장을 보기 위해 집을 나섰다.

"오늘이 마지막 단계라고 했지?"

"어. 끝내야지."

시간이 흘러 동시다발적으로 던전이 개방된 날로부터 2개월이 흘렀다.

강현은 여전히 튜토리얼을 졸업하지 못하고 있었다.

"하, 길었다. 정말로."

"벌써 끝난 사람처럼 말하네."

"그놈에 5단계만 아니었으면 진작 끝난 거였어."

강현은 어제 7단계를 완료하고, 이제 마지막 8단계 만을 앞두고 있었다.

2개월의 시간 중 대부분을 5단계를 통과하는 데 허비하느라 클리어가 늦어진 것이었다.

"지금 생각해도 어이가 없네."

매일매일 바뀌는 튜토리얼 내용.

강현은 아무리 머리를 굴려도 돌파구가 보이지 않았다.

그래서 무작정 강해지기로 했다.

던전에 들어가면 클리어할 생각은 지운 채로 오직 훈련과 사냥에만 집중했다.

그렇게 몇 주의 시간이 흐르고.

마침내 기회가 왔다.

[다섯 번째 단계(stage 5)]

[어떠한 어려움도 헤쳐 나갈 수 있는 당신의 지혜를 증명하십시오]

[클리어 조건 : F급 던전 레인드락의 둥지를 완전히 클리어하십시오]

[실패 조건 : 사망]

[Tip. 던전의 중심 핵(Main Core)을 지키는 레인드락은 보스 몬스터입니다. 약점을 공략하세요]

마침내 클리어 목표가 명확한 사냥이 걸린 것이다.

-약점? 시벌! 그게 뭔데!?

강현은 닥치고 보스에게 돌격했다.

그리고 몇 시간의 사투를 벌인 끝에 놈의 머리에 검을 박아 넣을 수 있었다.

쉽게 말하면 문손잡이를 돌려서 문을 여는 대신, 무식하게 문을 박살내고 통과해 버린 것이었다.

그 뒤로 각각 냉혹함, 헌신을 테마로 한 6단계와 7단계는 다행히도 큰 어려움 없었다.

대략 열흘 만에 나머지 단계를 돌파한 것이다.

"쯧쯧. 그러게 평소에 지혜롭게 살았어야지."

"야! 그거 말로만 지혜지 막상 보면 별 상관도 없었다니까? 너였으면 1년은 넘게 걸렸어. 인마."

어디까지나 강현 혼자만의 생각이었다.

"어쨌든 이제 진짜 끝이다."

"그런데 혹시..."

"왜?"

"너도 튜토리얼 끝나면 능력자 육성 학교 들어갈 거야?"

아현의 물음에 강현이 생각에 잠겼다.

"그래야지. 피나게 노력했는데 던전 들어가서 한탕 벌어야 하지 않겠냐."

"그래... 그렇겠지."

불과 두 달 사이 세상은 빠르게 현실을 받아들이고 변화했다.

한국에서만 약 100만 명이 넘게 희생된 그 날 이후.

정부에서는 던전을 클리어하는 것에 포상금을 걸고 '능력자 육성 학교'를 설립했다.

전체 성인의 절반가량이 능력자인 것을 적극 활용하기로 한 것이었다.

-정부가 해야 하는 일을 민간에게 떠넘기는 게 말이 되는가!?

-정부가 푼돈으로 사람들을 죽음으로 내몰고 있다!

처음에는 사회적으로 강한 반향이 일어났다.

하지만 막상 제도가 시작되자 걱정이 무색하게, 엄청난 수의 사람들이 능력자 육성 학교에 지원했다.

학교를 졸업하고 능력자 자격증을 발급받아 던전에 들어가기 위함이었다.

"너 던전에서 죽어도 살아난다는 거 확실한 거지..?"

"아마도."

"네 일인데 너무 태평한 거 아냐?"

무심한 대답에 아현의 눈꼬리가 조금 올라갔다.

"너도 100번 정도 죽으면 이렇게 돼."

"야. 아무리 그래도... 너도 똑같이 아플 거 아냐."

강현이 고개를 돌려 아현을 바라봤다.

"지금 나 걱정하는 거냐?"

"그럼 걱정이 안 돼? 던전에서 사람들이 그렇게 죽어 나가는데!"

점차 체계적인 시스템이 잡혀가고 있었지만, 여전히 많은 이들이 던전에서 산화했다.

그만큼 던전은 위험한 곳이었다.

"에휴, 됐다. 네 마음대로 해라."

"기다려봐. 지금 우리나라에 튜토리얼 졸업자(8단계 통과자)가 단 둘밖에 없는 거 알지? 이 오라버니 등장하면 대스타 자리는 따놓은 단상이다."

"지랄. 1주일 만에 튜토리얼 졸업한 엘리트랑 3개월이 넘게 거린 부진아랑 같냐?"

"부진아? 이게 오빠한테 못하는 말이 없네?"

"뭐 때리게? 쳐봐!"

남매가 서로 멱살을 부여잡고 흔들었다.

"응?"

그때 주위가 소란스러워지기 시작했다.

강현이 고개를 내밀자 앞쪽에 모인 엄청난 인파가 보였다.

"야야! 최동우가 왔데, 죽음의 성 보스 공략한다던데?"

"와! 일반 코어도 제거 못 한 걸 보스까지 간다고?"

최동우.

대한민국에 단 두 명뿐인 튜토리얼 졸업자. 그가 와 있었다.

30대 후반이라는 젊지 않은 나이에도 불구하고.

그는 현재 대한민국에서 가장 유명한 능력자였다.

뜻이 맞는 사람들을 모아 던전 공략대를 만든 최동우는 벌써 다섯 차례나 던전을 완벽하게 공략했다.

그가 사용하는 파티 전략은 능력자 육성 학교의 정식 교육 과목으로 채택될 정도였다.

"유명인사 납셨네."

"오, 너도 저 남자 알아?"

"요즘 연예인보다 유명하신 분 아니냐."

강현의 말대로 던전 공략이 사회적인 화두로 떠오르며 몇몇 능력자들의 유명세는 이제 연예인 못지않게 되었다.

특히 최동우의 인지도는 거의 수직 상승 중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그 아저씨 TV에서 보니까 잘생겼던데. 구경 갈래?"

"됐다. 장이나 보고 얼른 들어가자."

"쳇."

**

그날 밤.

경건한 자세로 바닥에 누운 강현이 눈을 감았다.

'한 번에 깨는 건 바라지도 않는다. 몇 달씩 걸리지만 마라.'

숨을 들이켜고 내쉬는 것에만 집중하기를 한참.

강현은 정신이 아득해지는 것을 느끼는 것과 동시에 눈을 떴다.

어느새 새하얀 공간에 서 있었다.

[강현 님의 튜토리얼 입장을 환영합니다]

[현재까지 튜토리얼 7단계를 완료했습니다]

[마지막 8단계에 입장하시겠습니까?]

"그래. 가자."

강현은 오늘따라 메시지를 읽는 목소리에서 친근감이 느껴지는 것 같았다.

[여덟 번째 단계(stage 8)]

[당신의 신념은 무엇입니까?]

"어?"

평소와는 다른 메시지.

용기가 지구를 구원한다는 말도, 눈앞이 깜깜해지며 몸이 떠오르는 현상도 없었다.

그저 새하얀 공간. 그곳에서 강현의 신념이 무엇인가 묻고 있었다.

"신념. 신념이라..."

꽤나 뜬금없는 질문이라 생각했지만, 강현은 진지하게 고민했다.

"신념? 하하."

강현은 본인이 생각해도 정말 평범한 소시민이었다.

그저 좋은 대학을 나와서, 좋은 직장에 취직하고, 단란한 가정을 꾸리면 그것으로 족했다.

요즘은 그것만으로 힘들고 벅찬 세상이라 느꼈기에 다른 것은 생각조차 하지 못했다.

그런 강현에게 신념 따위, 있을 리가 없었다.

"돈이면 사람도 사고, 사랑도 사는 세상에 무슨 신념이 있어?"

튜토리얼을 지독하게 열심히 한 것도 별다른 이유는 없었다.

그저 밤마다 다른 세상에 떨어져 고통받는 것이 싫었고.

변해가는 세상 속에서 소중한 가족을 지키고 싶었을 뿐이었다.

"으어어! 뭐야?!"

갑자기 강현의 주위가 빠르게 움직였다.

속이 울렁거리는 느낌에 강현이 눈을 감았다.

"으음...?"

눈을 뜨자 강현은 처음 보는 도시 위에 서 있는 자신을 발견했다.

낯선 도시는 한눈에도 지구가 아님을 알 수 있었다.

그곳에는 강현이 한 번도 보지 못한 존재들이 살아가고 있었다.

인간과 유사하지만 절대 인간이 아닌 존재들.

하지만 그들이 인간과 마찬가지로 거대한 사회, 뛰어난 문명을 이룩하고 있음은 한눈에 알 수 있었다.

'오오...'

강현이 지켜보는 도시의 시간 흐름이 점차 빨라졌다.

곳곳에서 몬스터들이 등장하고.

그중에는 강현이 튜토리얼에서 만난 놈들도 다수 섞여 있었다.

'저게 뭐야... 어마어마하네.'

얼마만큼의 시간이 흘렀을까.

갑자기 하늘에 닿을 듯한 거대한 무언가가 나타나며, 온갖 몬스터가 쏟아져 나왔다.

도시는 비명을 내질렀고, 이내 침묵했다.

"..."

강현의 눈앞에 그러한 도시 수백, 수천 개가 흘러갔다.

셀 수도 없을 만큼 많은 생명이 죽었다.

그 모든 것들이 생생하게 느껴짐에, 그것들이 주는 알 수 없는 무게감에 강현은 아무런 말도 할 수 없었다.

[어떠셨나요?]

어느새 강현은 새하얀 방으로 돌아와 있었다.

항상 메시지를 알려주던 목소리가 이번에는 강현에게 말을 걸어왔다.

[이번 튜토리얼은 저와의 개인 면담입니다. 궁금했던 것을 저에게 편하게 물으시고, 저도 강현 님에게 질문을 하는 유익한 시간이죠]

어쩐지 마음을 편안하게 해주는 목소리에 강현이 굳은 표정을 풀고는 입을 열었다.

"당신은 신인가요?"

[신이랑은 조금 달라요. 굳이 여러분들의 언어로 표현하자면, 차원의 관리자에 더 가깝겠네요]

"5년이 지나면 지구도 방금 본 도시들처럼 되나요?"

[그건 여러분들이 앞으로 어떻게 하냐에 달렸어요]

목소리의 대답에 강현이 인상을 찌푸렸다.

"이해가 안 되네요. 당신이 그런 엄청난 존재라면 그냥 이 사태를 막으면 되는 거 아니에요?"

[저는 지구의 수호자 같은 것이 아닙니다. 그저 균형을 맞출 뿐이죠]

"균형?"

[네. 이 튜토리얼과 여러분이 쓰는 상태창 같은 것들은 균형을 위해 제가 만든 것들이죠. 저는 제 한도 내에서 지구를 위해 최선을 다했어요]

관리자가 한 말의 의미를 고민하며 강현이 생각에 잠겼다.

[이제 제가 질문해도 될까요?]

"아, 예."

[강현 님은 지금까지 어떤 신념으로, 무엇을 위해 살아오셨나요?]

예상보다 실속 없는 질문이다.

강현은 헛웃음을 삼켰다.

"무엇을 위해 살았냐... 굉장히 뜬금없는 질문이네요."

[그런가요?]

어쩐지 목소리가 웃음기를 머금고 있는 것 같았다.

"그런 질문을 하는 이유가 뭡니까?"

[이번 사건으로 인간을 관찰하다 보니 흥미가 생겼달까요? 모든 지성체는 흥미롭지만, 인간은 더욱 그렇죠]

관리자의 말을 들은 강현은 괜히 기분이 나빠졌다.

한쪽 입꼬리를 올린 강현이 냉소적인 표정을 지었다.

"아직 관찰이 부족했네요."

[네?]

"적어도 제가 사는 나라에서는 그딴 것을 생각하며 사는 사람은 거의 없어요."

강현의 자조적인 말에 관리자가 입을 다물었다.

"그저 태어났으니까. 조금이라도 더 행복하게 살고 싶어서 아등바등하는 거죠. 현실은 대부분이 하루하루를 버티기에 바쁘지만."

[그런가요]

다른 능력자들과 달리 지나치게 솔직하고 염세적인 강현의 답변에 관리자가 조금 당황한 듯했다.

[강현 님은 지키고 싶은 것이 있나요?]

"싸가지 없는 동생이랑 제 부모님. 가족을 지켜야죠."

변해가는 세상 속에서 앞으로 믿을 것은 자신의 무력밖에 없을 것이다.

강현은 최소한 가족만이라도 지키고 싶었기에 끔찍한 시간들을 견뎌왔다.

[영웅이 되어 보실 생각은 없나요?]

"하하하! 영웅이요?"

[네]

"영웅이라... 저도 한때는 부정했지만 이제는 제 주제를 잘 압니다. 저는 그딴 거랑 거리가 멀어요."

지난 석 달 사이, 수많은 죽음을 경험했던 강현은 상당히 삐뚤어져 있었다.

그러나 동시에 철이 들기도 했다.

"그런 멋지고 피곤한 직업은 다른 사람에게 알아보세요."

[지금까지 지켜본 결과 영웅은 재능을 타고난 자들이더군요. 확실히 강현 님은 영웅의 자질은커녕 오히려 둔재에 가깝기는 합니다]

관리자의 말에 강현이 미간이 잔뜩 좁혀졌다.

'시벌. 장난하는 건가?'

아무리 강현이라도, 신적인 존재에게 차마 직접 욕을 내뱉지는 못했다.

[하지만 저는 개인적으로 강현 님의 팬이랍니다. 강현 님이 튜토리얼을 통과하는 모습을 얼마나 흥미진진하고 즐겁게 봤는지 몰라요]

"예에..."

'관리자라는 놈이 사디스트라니. 지구의 미래가 어둡네. 잠시만, 이거 뭔가...'

순간 무언가 촉이 올라왔다.

하지만 강현은 마지막 순간에 질문하기로 했다.

[그리고 지켜본 결과 강현 님은 부정하시지만, 분명 영웅이 되실 겁니다. 저와 내기해도 좋아요]

"적어도 빌런은 안 되도록 노력해보죠."

강현의 대답에 목소리가 작게 웃었다.

"아, 갑자기 궁금한 게 생겼는데 물어봐도 됩니까?"

[네]

"저 말고 여기까지 도달한 사람들이 얼마나 되죠?"

[강현 님은 정확히 62번째 졸업자입니다]

"예에?!"

예상보다 많은 숫자에 강현이 당황했다.

물론 이미 한국에서 알려진 사람만 해도 둘이 있기는 했지만.

전 세계적으로 이렇게 많을 줄은 몰랐다.

"뭔데 이렇게 많이 클리어한 거예요?"

[생각보다 세상에는 재능과 운을 타고난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리고 지금 이 순간에도 매일매일 튜토리얼에 30만 명이 넘는 사람들이 입장하고 있죠]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숫자적으로 말씀드리자면, 거의 1억 분의 1 에 가까운 수치입니다. 그리고 정말 중요한 것은...]

"중요한 것은..?"

잠시 말을 끌던 목소리가 웃으며 대답했다.

[튜토리얼은 그저 튜토리얼일 뿐이라는 거예요]

"그게 무슨 말이죠?"

[시간이 지나면 알게 될 겁니다. 이만 들어가 볼까요? 대화 너무 즐거웠습니다]

"보상은 없어요?!"

갑자기 상황을 끝내는 목소리에 강현이 다급히 물었다.

[칭호 '튜토리얼 졸업자'를 획득합니다]

튜토리얼 졸업자 : 튜토리얼을 8단계까지 모두 완료한 사람에게 주어지는 칭호.

효과 : 모든 스텟 +2

보상을 확인한 강현의 표정은 실망한 기색이 역력했다.

"뭔 놈에 칭호라는 게 전부 올스텟 밖에 없네요. 상상력 부족 아닙니까?"

[튜토리얼 보상에 너무 많은 것을 바라지 마세요]

"쳇."

강현 대놓고 김이 샜다는 표정을 지었다.

[하하. 만나서 즐거웠습니다. 기회가 된다면 다음에 또 보죠. 그럼 이만…]

"잠시 만요! 정말 마지막으로 하나만 물을게요."

[네. 말씀하세요]

강현은 떠나가려는 관리자를 다급히 붙잡았다.

그리고는 갑자기 심각한 표정으로 무게를 잡았다.

"튜토리얼 5단계... 지혜라는 테마였죠?"

[네]

"그거 원래 매번 내용이 바뀌는 겁니까?"

내 말에 잠시 동안 정적이 이어졌다.

[만나서 즐거웠습니다]

"야이 개새…!"

16화 능력자 육성 학교(1)

16. 능력자 육성 학교(1)

"끄아아아! 이 개같은 놈아아아!"

침대에서 일어난 강현이 괴성을 내질렀다.

"이 개같은 새끼야. 적당히 좀 해! 너 때문에 진짜 쫓겨나게 생겼어!"

아현이 방문을 열며 소리쳤지만, 이제 면역이 된 강현은 전혀 신경 쓰지 않았다.

"아. 미안. 앞으로 진짜 안 그럴게."

진심이라곤 단 1%도 느껴지지 않는 얼굴로 강현이 사과했다.

"됐다. 내가 말을 말지... 그래서 오늘도 죽었어?"

"아니, 이 오라버니를 뭐로 보고. 단판에 깨버렸지!"

"쯧, 축하한다."

아현이 혀를 한번 차고는 방문을 닫아버렸다.

"저거는 지 오빠가 죽기라도 바란 거야 뭐야?"

잠시 아현이 떠나간 자리를 흘겨보던 강현이 한숨을 내쉬었다.

"하아, 그래. 끝났으면 된 거지. 그럼 이제 가볼까?"

강현이 기대에 찬 눈으로 손을 비비기 시작했다.

"상태창!"

▫이름 : 강현

▫칭호 : 참지 않는 자 외 1개

▫레벨 : 28

▫상세 능력치 :

·근력 21 (+2)

·순발력 19 (+2)

·체력 20 (+2)

·마력 20 (+2)

·추가 스텟 : -

▫고유 능력 : 부활

▫능력 : 중급 검술(D), 하급 방패술(E), 최하급 석궁술(F)

▫스킬 : 분노의 사자후(C), 중급 육체 재생(B), 일도양단(E), 거인의 힘(B)

"됐다!"

처음으로 현실에서 상태창을 사용한 강현이 감격에 젖어들었다.

"이제 튜토리얼은 정말 끝이구나."

말 그대로 엄청난 발전.

레벨은 15에서 28까지, 검술은 하급에서 중급으로 상승했다.

사자후 또한 한 단계 더 올라 C등급이 되었다.

거인의 힘은 5단계 클리어하고 받은 보상으로 10분간 근력을 12 스텟 증가시켜 준다.

이 외에도 스킬을 추가적으로 얻었고. 6단계, 7단계를 클리어하며 각각 B등급의 무기와 방어구 세트까지 받은 상황이었다.

"칭호는 동시 적용이 된 건가?"

[선택된 1개의 칭호 외에는 모든 효과가 50%만 적용됩니다]

도움말을 확인해본 강현은 칭호를 '참지 않는 자'에서 '튜토리얼 졸업자'로 바꾸었다.

그러자 각 스텟 옆의 +2가 모두 +2.5로 바뀌었다.

"완벽하군. 완벽해."

마침내 강현이 고개를 끄덕이며 만족한 표정을 지었다.

"자, 이제 신청을 해볼까?"

강현은 능력자 교육 학교에 입학하기로 결정했다.

합법적으로 던전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교육 수료와, 능력자 자격증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달칵, 달칵

몇 차례 마우스를 클릭하자 모니터에 능력자 교육 학교 홈페이지가 떠올랐다.

여기서 입학 신청을 하고, 일주일 동안 교육을 받으면 합법적으로 던전에 들어갈 수 있었다.

"으음..? 이게 뭔 소리야?"

교육 신청을 하던 강현이 멈칫했다.

"시.. 십만 명?"

교육을 받기 위해 대기 중인 인원이 무려 10만 명이 넘어서고 있었다.

"분명 2단계 통과자부터 신청이 가능할 텐데?"

아래쪽에는 예상 대기시간이 6개월 이상이라고 써져 있었다.

"목숨 아까운 줄 모르는 미친놈들이 10만이 넘어가네."

어디까지나 강현의 시선으로 바라봤을 때의 이야기였다.

"휴... 이걸 어느 세월에 기다려."

실망감에 한숨을 내쉬던 때였다.

강현은 혹시나 하는 마음에 교육 신청을 눌렀다. 그곳에는 인적사항과 튜토리얼을 어디까지 통과했는지 묻는 항목이 존재했다.

"뭐야? 이거 뭔가 냄새가 나는데."

튜토리얼 통과 항목에 2단계를 강현이 8단계로 바꿔 보았다.

-예상 대기 기간 : 1일

*튜토리얼 단계를 거짓으로 작성하실 경우 처벌받을 수 있으니 유의하시기 바랍니다.

"허... 하루? 참나."

계속해서 단계를 조정하자 각 단계별로 교육 날짜를 조정할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7단계 – 1일

6단계 – 1일

5단계 – 1일

4단계 – 10일

3단계 – 1개월

2단계 – 6개월

단계별 기간을 보며 강현은 자신이 솔직하게 튜토리얼 졸업자라고 해도 될까 고민했다.

"굳이 그럴 필요가 있나?"

분명 자신이 튜토리얼을 졸업했다고 하면 단숨에 유명인으로 떠오를 것이다.

아현에게는 농담처럼 이제 연예인 부럽지 않은 사람이 될 거라 말하기도 했다.

그러나 요즘은 그것이 정말 좋은가에 대한 고민을 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얻는 것도 없이 요구만 많아지는 귀찮은 자리야."

점점 사람들이 능력자들에게 요구하는 것이 많아지기 시작했다.

이것이 심해져 때로는 이권 싸움을 넘어서 폭력사태까지 벌어지는 일도 심심찮게 있었다.

"지금 유명한

고위 통과자들만 봐도 답이 나오지."

그들은 하나같이 봉사가 권리인 양 착각하는 사람들에게 이리저리 끌려다니는 중이었다.

결국 강현은 5단계 통과자로 기입을 완료했다.

혹시나 들킨다 하더라도 원래 단계보다 낮은 것으로 말했으니 문제 될 게 있을까 싶었다.

"뭐야? 벌써 연락이 와?"

신청을 완료하고 3분 뒤.

강현의 전화벨이 울렸다.

"여보세요."

-강현 님 맞으십니까?

"예."

친절한 여성의 목소리가 전화기 너머로 들려왔다.

-저는 능력자 교육 학교, 중앙행정실의 안미영입니다. 현재 5단계 통과로 신청을 하셨는데 맞으신가요?

"예."

-빠른 교육을 위해 등급을 거짓으로 신청할 시에 퇴학 조치와 함께 1년 동안 재신청이 불가하고 벌금 부과된다는 점 알고 계시죠?

"예예."

기계적으로 들리는 목소리에 강현이 시큰둥하게 대답했다.

-그럼 교육 날짜는 언제로 잡으시겠어요? 5단계 졸업자 분들은 무료로 교육이 진행되며 교육 날짜 및 장소도 원하시는 대로 선택 가능합니다.

"최대한 집에서 가까운 곳이요."

-네. 알겠습니다. 교육 날짜는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제일 빠른 시간이 언제예요?"

-5일 후에 다음 교육이 예정되어 있습니다.

"그걸로 해줘요."

-네.

통화를 종료한 강현이 허탈하게 웃었다.

"살면서 이런 대접을 다 받아보네."

강현은 정말 짧은 시간 동안 세상이 변했다는 것을 새삼 피부로 체감했다.

**

예상치 못한 5일의 자유.

강현은 정말 오랜만에 아무것도 하지 않고 편안하게 쉬기로 결정했다.

그동안은 눈을 뜨면 운동과 튜토리얼 생각. 잠이 들면 튜토리얼 속에서 피 터지는 싸움을 벌여왔다.

단 한순간도 쉬지 못하고 그렇게 3달을 넘게 달려왔다.

"조금은 쉬어도 괜찮겠지."

육체적인 피로는 없었지만, 정신적으로 너무 피폐해져 있었다.

"일단, 위튜브부터 봐볼까? 드라마도 보고, 영화도 보자."

강현은 그동안 하지 못했던 나름의 문화생활을 즐기기라 다짐했다.

"..."

그 다짐은 채 하루를 넘기지 못했다.

"재미없어..."

가만히 앉아서 모니터만 들여다보니 온 몸이 근질거리고 쑤시는 것만 같았다.

"예전에는 어떻게 하루 종일 앉아 있었던 거야?"

불과 3 달 만에 강현은 너무 많이 바뀌어버렸다.

게임을 해도 재미가 없다.

영화를 봐도 지루하다.

친구는 원래 없다.

"태수야... 내가 미안했다."

유일하게 자신과 놀아줬던 소꿉친구 김태수를 떠올리며, 강현이 진심 어린 사과를 건넸다.

"시발... 그냥 운동이나 하자."

결국 강현은 운동을 하며 5일을 보냈다.

**

교육장 입학 당일.

집에서 차로 1시간 거리에 위치한 교육장에 가기 위해 강현이 이른 아침부터 움직였다.

"벌써 가냐?"

"어. 지하철 타려면 지금 가야지."

"잘 다녀와. 사고 치지 말고."

"내가 언제 사고친적 있었냐."

자신이 착하다는 생각은 하지 않는다. 하지만 적어도 최소한의 도리는 지키며 살아왔다고 자부했다.

"요즘 너 위험한 거 알지?"

"나는 지극히 편안한데."

"어휴. 눈깔만 봐도 반쯤 돌은 것 같구만... 어디서 시비 안 붙게 조심해."

"이년이 오빠한테 못하는 말이 없어! 쓸 때 없는 소리 할 거면 간다."

"어. 다녀와."

손을 흔들어 강현을 보냈지만 아현의 눈에서는 걱정이 떠날 줄 몰랐다.

**

"강현 님... 맞으세요?"

"예. 맞는데요."

강현의 입학은 접수부터 삐걱거렸다.

"첨부된 사진이랑 너무 달라서... 신분증 한번 확인해도 될까요?"

직원이 손에 든 서류를 보며 어색하게 웃었다.

그녀가 들고 있는 서류 속에는 강현이 2년 전 입사를 위해 찍은 증명사진이 들어 있었다.

'아무리 봐도 본인이 아닌데...'

사진 속 남자는 상당히 마른 얼굴에 흐리멍덩한 눈빛을 가지고 있었다.

고개를 들어 강현을 바라본 그녀의 눈이 강현과 마주쳤다.

"히, 히익!"

"뭐 문제 있어요?"

"아니에요!"

'무슨 눈이 저렇게 무섭게 생겼어...'

눈을 마주하자 마치 맹수를 마주하는 것만 같았다. 이건 어깨 형님들도 마주치는 순간 자동으로 굽실거릴 만한 인상이었다.

게다가 제법 큰 키에 몸도 우락부락한 것이, 도저히 사진 속의 남성이라고는 상상할 수가 없었다.

"여기요."

강현이 지갑에서 신분증을 꺼내 건넸다.

그 신분증은 약 8년 전, 대학교 입학 시즌에 만든 신분증이었다.

오히려 지금보다 더 커져버린 격차에 직원이 슬픈 표정을 지었다.

"저기... 아무리 봐도 본인이 아니신데요..."

"예?"

직원의 말을 듣는 강현의 인상이 험악하게 구겨졌다.

의도한 것은 아니었지만, 굉장한 위협에 직원이 점차 울먹이기 시작했다.

"죄송합니다... 그런데 본인이 아닌데 들여보내면, 저 혼나거든요? 흑흑..."

그녀는 일을 시작한 지 2주일 만에 자신이 공무원이 된 것을 깊이 후회했다.

딸이 공무원이 됐다며 동네방네 소문을 내며 좋아하던 부모님의 얼굴이 떠올랐다.

'엄마 미안해. 나 못하겠어...'

"저기 울지 말고요. 진짜 본인 맞으니까 그냥 들여보내면 돼요."

직원이 서럽게 울고 있는 모습에 주위의 시선이 모이기 시작했다.

"저 직원은 왜 울고 있는 거래?"

"저 남자 인상 봐라. 뭐 협박한 거 아니냐?"

목소리가 들리는 방향으로 강현의 고개가 천천히 돌아갔다.

"..."

강현의 얼굴을 마주한 순간, 수군거리던 사람들의 고개도 천천히 다른 곳으로 돌아갔다.

"저 본인 맞으니까 그냥 들여보내 줘요. 튜토리얼에서 스킬을 잘못 얻어서 이렇게 된 거니까."

결국 강현은 거짓말을 조금 보태서 입장하기로 했다.

"예..."

우여곡절 끝에 입학 서류 제출이 끝난 강현은 안내를 따라 다음 장소로 이동했다.

그곳에는 거대한 강당 앞에 세워진 가건물이 있었다.

안으로 들어가자 30대 중반에 정장을 차려입은, 한눈에도 엘리트 분위기를 풍기는 남자가 보였다.

"으음, 강현 씨 맞으십니까?"

남자가 안경을 고쳐 쓰며 말했다.

"예. 맞습니다..."

접수처부터 계속되는 물음에 강현은 슬슬 짜증이 나기 시작했다.

"아, 실례했습니다. 사진이랑 워낙 다르셔서. 저는 이번 교육을 담당하게 된 김이현이라고 합니다. 인력이 부족해서 능력 검사도 겸하고 있죠."

김이현은 엄청난 속도로 서류를 넘기고 있었다.

'제대로 보고 넘기는 건 맞아?'

한 페이지에 머무는 시간이 채 2초가 되지 않았다.

강현은 의문이 들었지만 굳이 그것을 묻지는 않았다.

"여기서는 간단하게 강현 씨의 능력 검사를 실시할 겁니다. 우선 지금 인벤토리에 가지고 계신 물품이 있습니까? 검이라던가."

"예."

"그럼 한번 꺼내서 보여주시죠."

남자의 말에 강현이 자연스럽게 빌게인의 장검을 꺼내려다가 멈칫했다.

'지금 이걸 꺼내면 안 되지?'

빌게인의 장검은 6단계를 클리어하고 받은 B등급의 검으로 현재 강현이 유용하게 쓰고 있었다.

이름 : 빌게인의 장검

등급 : B

내구도 : 476/500

설명 : 삼십 년 동안 전쟁터를 전전하며 이름을 떨친 용병 빌게인과 평생을 함께한 장검이다. 원래는 잘 만들어진 롱소드에 불과했으나 빌게인과 함께 피를 먹으며 귀기를 담은 검이 되었다.

능력 : 광전사, 내구도 강화

*광전사 – 5분 동안 근력과 체력이 1.5배 증가한다. 단 사용 중에는 정상적인 판단이 힘들어지고, 사용 후 후유증이 심하니 유의할 것.

*내구도 강화 – 검의 강도를 올려주며 쉽게 내구도가 닳지 않는다.

B등급이라는 이름값을 하는 화려한 스펙. 하지만 지금 이것을 꺼낼 수는 없었기에 강현이 평범한 롱소드를 꺼냈다.

"이건 2단계를 통과하면 받는 검이군요. 됐습니다. 다음은 레벨과 고유 능력을 말씀해 주시죠."

"레벨은 12이고, 고유 능력은 남자의 힘입니다."

강현이 새빨간 거짓말을 내뱉었다.

"튜토리얼을 통과 후, 불법으로 던전을 공략하셨습니까? 레벨이 제법 높으시네요."

"초반에 법이 바뀌기 전에 들어간 경험이 있습니다."

"으흠, 그렇습니까..."

"예. 그리고 던전 브레이크 때 밖에 돌아다니는 몬스터를 잡다 보니 이렇게 됐습니다."

"알겠습니다."

강현의 입에서 거짓말이 청산유수로 흘러나왔다.

처음에는 의심하는 표정을 짓던 김이현도 이내 납득한 것인지 고개를 끄덕였다.

"고유 능력이라 말씀하신 남자의 힘은 어떤 능력입니까?"

"일시적으로 힘을 두 배 증가시켜 줍니다."

김이현이 고개를 끄덕이며, 서류철에 무언가를 끄적였다.

"이제 마지막입니다. 능력자분들은 3단계에 스킬, 4단계에 액세서리, 5단계에 스킬을 지급받게 됩니다. 여기서 하나씩 보여주시죠."

'쯧, 쓸 데 없이 꼼꼼하기는.'

속으로 투덜거리며 강현이 먼저 강인한 정신의 반지를 보여주었다. 그리고 롱소드를 들어 자신의 팔을 베었다.

김이현이 잠시 당황한 듯했지만 강현의 팔이 빠르게 아무는 것을 보고는 금세 납득했다.

"마지막 하나는 소리를 질러서 주위에 있는 적들을 공포에 빠뜨리는 스킬인데, 여기서 사용해도 괜찮나요?"

"예. 그냥 사용하셔도 됩니다."

김이현이 무심하게 대답했다.

어쩐지 무시받는 느낌에 강현이 짓궂게 웃었다.

"야아아아-!"

[분노의 사자후가 발동됩니다]

[모든 적들의 사기와 능력치가 감소했습니다]

[적들이 공포에 빠집니다]

강현의 외침이 터져 나오자 가건물이 부르르 떨렸다. 동시에 김이현의 근처에 있던 사람들이 주저앉았다.

"아, 아아아."

김이현은 손으로 자신의 귀를 열었다 닫았다 하며 소리가 들리는지 확인했다.

"감사합니다. 길을 따라 강당으로 들어가시죠."

주위의 다른 사람들은 허우적거리며 일어나지도 못하는 상황. 오직 김이현 만이 아무런 일도 없었다는 듯이 태연하게 움직였다.

'제법이네.'

그 모습에 강현이 흥미로운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17화 능력자 육성 학교(2) - 20.03.04

17. 능력자 육성 학교(2)

강당에 들어서자 벌써 백 명에 가까운 사람이 모여 있었다.

조금 전에 강현이 내지른 고함을 들은 것일까.

모두의 시선이 강현에게 몰렸다.

"9시 시작이니까, 아직 십 분 정도 남았네."

강현은 태연하게 사람들의 시선을 받아넘기며 주변을 살펴봤다.

"딱히 눈에 띄는 사람은 없는 것 같은데..."

교육을 받기 위해 온 사람들은 대부분 평범해 보였다.

다만 대부분이 남성이라 조금 아쉬운 강현이었다.

'하긴... 피 터지게 싸우는 일인데 여자가 달려들긴 어렵겠지.'

시답잖은 생각을 하며 기다리던 그때.

단상 위로 누군가가 올라섰다.

조금 전 능력을 검사하던 김이현이라는 남자였다.

"안녕하십니까. 이번에 능력자 교육 학교, 성남 지부의 교육을 맡은 김이현입니다. 반갑습니다."

김이현의 소개에 의례적인 박수소리가 강당을 채웠다.

"여러분들은 지금부터 열흘간 이곳에서 숙식을 해결하며 교육을 받게 됩니다. 큰 문제가 없다면 모두 안전하게 교육을 끝마치고, 능력자로 등록을 하실 수 있을 겁니다."

김이현의 목소리가 공허하게 강당을 울렸다.

아직은 어수선한 분위기에 모두가 입을 닫고 김이현을 바라볼 뿐이었다.

"여러분도 아시다시피 세상이 이렇게 된 지 이제 겨우 3달이 지났습니다. 그래서 지금도 매일 새로운 던전과 몬스터의 정보가 쏟아져 나오고 있습니다."

잠시 목을 가다듬은 김이현이 말을 이었다.

"즉, 여러분들이 받게 될 교육내용이 절대적이지 않다는 겁니다."

"..."

"여기서 배운 것들은 얼마 뒤 쓸모없는 정보가 되어 있거나, 어쩌면 잘못된 정보가 되어 있을지도 모릅니다."

시작하기도 전에 사기를 떨어트리는 말이었다.

동요한 사람들이 웅성댔다.

"그러므로 저는 일주일간 철저하게 살아남는데 필수적인 것들만을 교육하겠습니다."

"..."

"어차피 정해진 커리큘럼도 없어요. 저는 기간제 임시 강사지만, 상부에서도 제 마음대로 하라 했습니다."

김이현의 가벼운 농담에 곳곳에서 실소가 터져 나오며 분위기가 풀어졌다.

"그럼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김이현의 연설이 끝나고 100명의 사람은 10명씩 총 10팀으로 나뉘었다.

표면적으로 이것은 팀워크를 배우기 위함이었지만.

실상은 교육자가 턱없이 부족했기 때문에 돌아가면서 교육을 받는 것이 진짜 목적이었다.

"열흘 동안 잘 부탁드립니다."

"네. 잘 부탁드려요."

"잘 부탁합니다."

강현 또한 팀이 배정되고 자리로 이동했다.

형식적인 인사가 오가고.

강현이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던 때였다.

강현에게 다가온 한 남자가 손을 내밀었다.

"곽수일이라고 합니다. 악수나 한번 하죠."

손을 내민 곽수일은 한눈에 보기에도 전문적으로 운동을 한 사람이었다.

'잘 걸렸다. 새끼.'

곽수일은 사실 처음 강현이 들어왔을 때부터 마음에 들지 않았다.

'처음부터 소란을 일으키더니 인상에 허세만 가득하군.'

곽수일은 고유 능력을 근력과 관련된 것으로 각성했다.

그리고 레벨업으로 얻은 스텟 포인트 또한 근력에 투자했다.

무식하리만큼 근력에 집착한 결과.

그는 능력자로 각성한 후 자신보다 힘이 강한 사람을 한 번도 보지 못했다.

'이런 놈은 초장에 콧대를 눌러 놔야 하는 법이지.'

곽수일은 자신이 있었다.

총합이 무려 32에 육박하는 이 힘으로 지난 두 달간 깨부수지 못한 놈은 없었기에.

"강현입니다. 반갑습니다."

그런 곽수일의 생각을 알지 못한 채 강현이 태연하게 손을 뻗었다.

"음..."

강현은 손을 붙잡자마자 느껴지는 강한 압력에 미간을 찌푸렸다.

곽수일을 바라보자 은은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

'이 근육 돼지가 뭐 하자는 거지?'

현재 강현의 힘 수치는 23.5

곽수일과 비교하면 턱없이 부족했다.

'한번 해보자는 거지?'

강현이 조용하게 스킬을 읊조렸다.

'거인의 힘'

스킬의 영향으로 강현의 힘이 단번에 35.5까지 치솟았다.

갑작스럽게 강해진 강현의 힘에 곽수일의 얼굴 또한 점차 일그러졌다.

"뭐야?"

"무슨 일이래..."

둘 사이에 흐르는 긴장감을 눈치채고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보기보다 제법이야? 허세만 가득한 줄 알았더니..."

예상보다 강한 강현의 힘에 곽수일이 부들부들 떨며 억지 미소를 지었다.

"뭐? 제법? 이 근돼 새끼가 장난하나. 지금이라도 얌전히 손 빼면 살려는 준다."

"그, 근돼애?!"

강현의 한마디에 곽수일의 이성이 끊어졌다.

근육 돼지는 그가 가장 싫어하는 별명 중 하나였던 것이다.

"으아아아!"

곽수일이 괴성을 지르며 힘을 쥐어짜냈다.

그의 팔 근육이 터질 듯이 부풀어 올랐다.

-펑!

그것은 분명 '펑' 하고 터지는 소리였다.

흡사 풍선이 터지는 것만 같은.

곽수일의 힘은 스킬의 영향으로 32에 이르렀지만 체력은 고작 14 였다.

곽수일 본인의 힘과 강현의 힘.

그리고 힘에 비해 턱없이 낮은 체력 수치.

이 모든 것이 삼위일체가 되어 결국 곽수일의 오른팔은 버티지 못하고 터져버렸다.

"끄으아아!"

곽수일이 비명을 지르며 바닥에 주저앉았다.

"거기 무슨 일입니까? 이봐! 당장 의료팀 불러!"

소란스러운 모습에 다가오던 김이현이 피투성이가 된 곽수일을 보고는 소리쳤다.

"당신이 한 짓입니까?"

여태 무표정으로 일관하던 김이현의 얼굴에 약간의 분노가 서렸다.

"아니, 그냥 악수 하자해서 해줬을 뿐인데..."

"그 말을 저보고 믿으라는 겁니까?"

"진짜라니까요? 저 근육 돼지가 지 혼자서 용쓰더니 팔이 뽀빠이처럼 부풀어서 터진 게 다예요."

강현이 양손을 들어 올리며 자신은 아무 잘못이 없다는 듯 말했다.

"하아... 모두 해체하세요. 교육 시작을 삼십 분 뒤로 늦추겠습니다! 강현 씨는 잠시 따라오시죠."

김이현의 선언에 사람들이 투덜거리며 흩어졌다.

"뭐야 저것들 때문에..."

"그러게 하여간 남자들이란."

순간 억울함에 화가 치솟았지만, 강현도 딱히 할 말이 없던 지라 조용히 김이현을 따라갔다.

**

"방금 하신 말씀들 전부 사실입니까?"

"아니 제가 거짓말할 이유가 어디 있어요. 저도 피해자라니까요? 그놈이 악수하자더니 시비를 걸어서 저도 마주 힘을 준 게 끝입니다."

강현이 정말 억울하단 듯이 말하자 김이현이 안경을 들어 올리며 그를 쳐다봤다.

"실례지만, 강현 씨 근력이 얼마나 되십니까?"

"근력은 18인데 그 강인한 힘이라는 능력이 힘을 1.5배로 증가시켜 줍니다."

"아까 분명 고유 능력은 남자의 힘이라고 하시지 않았습니까?"

거짓말을 하다 보니 저도 모르게 스킬명을 틀리고 말았다.

김이현의 말에 강현이 당황하며 손사래를 쳤다.

"아, 그렇죠! 남자의 힘! 하하!"

"그리고 능력도 분명 힘을 두 배로 증가시켜준다고 말씀하셨던 것 같은데요."

"그게... 제가 하도 황당하다 보니 이런 실수를 했네요. 하하하! 맞습니다요. 맞아요!"

"..."

김이현은 횡설수설하고 있는 강현을 의심스러운 눈으로 바라봤다.

'하아... 어쩔 수 없지.'

심증은 있지만 물증이 없다.

본인의 상태창은 타인이 확인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일단 CCTV를 확인하니 강현 씨의 말이 맞는 것 같기는 합니다."

"역시 그렇죠?"

"후... 이번에는 넘어가겠지만 다음부터는 조심하시기 바랍니다."

"예. 알겠습니다."

김이현과 면담을 마치고 교육장으로 돌아온 강현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휴우, 하마터면 걸릴 뻔했다."

가슴을 쓸어내리고 있는데 어쩐지 뒤통수가 따가운 느낌이 들었다.

뒤를 돌아보자 많은 사람들이 자신을 보며 수군거리는 것이 보였다.

'뭐, 어쩌라는 거야?'

강현은 당당하게 하나하나 눈을 마주쳐 주고 자신의 팀이 있는 곳으로 향했다.

팀원들은 저들끼리 뭔가를 열심히 이야기하고 있었는데.

강현이 오자 약속이나 한 듯이 모두가 입을 다물었다.

'시벌. 초장부터 말아먹었네.'

어차피 일주일 보고 말 사람들이라 생각하기는 했다.

그래도 괜스레 씁쓸해지는 것까지는 어쩔 수 없었다.

"안녕하세요?"

그때였다.

한 남자가 강현에게 다가와 인사를 건넸다.

'이건 또 뭐야?'

말을 건 남자에 대한 첫인상은 한마디로 정의할 수 있었다.

양아치.

머리를 노랗게 탈색하고, 얼굴에는 피어싱이 가득했다.

게다가 옷 밖으로 드러난 피부는 전부 문신에 뒤덮여 있어 절로 인상을 찌푸리게 했다.

"앞에서는 한마디도 못 하는 것들이 뒷담까는 건 정말 기가 막히네요."

남자가 날카롭게 눈을 빛내며 주변 둘러봤다.

몇몇 사람들이 헛기침하며 시선을 피했다.

"하하! 저는 안유성이라고 해요."

"예. 강현이라고 합니다."

손을 내밀며 인사하는 안유성의 모습에 강현은 고민했다.

'이 자식은 또 무슨 볼일이지?'

강현은 갑자기 친한 척을 하는 안유성이라는 남자를 어떻게 대해야 할지 알 수 없었다.

"그냥 형이라고 불러도 되죠? 저 이제 막 만 18세 지나서 튜토리얼 끝내고 왔거든요. 빠른 이라서 고등학교는 졸업했지만."

신나서 자신을 소개하는 안유성의 모습에 강현은 고개를 끄덕였다.

'너도 인생의 풍파를 제법 겪었구나.'

액면가가 자신의 또래로 보이는 이 남자가 겨우 19살이라는 말에 강현이 속으로 위로했다.

"형도 말 편하게 하세요. 그나저나 아까 그건 어떻게 한 거예요? 그 아저씨 팔이 펑! 하고 터진 거 있잖아요. 스킬이예요?"

눈을 반짝이며 묻는 안유성은 언뜻 보기엔 쾌활해 보였다.

'이놈도 정상이 아닌 건가?'

하지만 조금 이야기를 나누자 안유성이 묘하게 머리의 나사가 풀려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아니, 그 뽀빠이가 지 혼자서…!"

자신의 억울함을 토해내던 강현이 스피커에서 흘러나오는 목소리에 멈추었다.

"아아, 지금부터 교육을 시작하겠습니다."

"아! 아쉽다. 다음에 좀 더 이야기해요."

"그래."

안유성이 자신의 자리로 돌아갔다.

"오늘의 오전 수업은 던전에 대한 내용입니다. 화면 봐주시죠."

김이현의 말과 동시에 거대한 스크린에 PPT가 떠올랐다.

"현재까지 던전을 분류하는 방법은 2가지가 있습니다. 하나는 일반 던전, 다른 하나는 불완전 던전입니다."

김이현이 마이크를 잡고 본격적인 강의를 시작했다.

"일반 던전은 우리가 흔히 볼 수 있는 대다수의 형태입니다. 생성된 후 보통 4주가 지나면 던전이 개방됩니다."

"..."

"그러나 불완전 던전은 그러한 기간 존재하지 않습니다. 무작위로 던전이 개방되기 때문에 굉장한 주의가 필요합니다."

그 외에도 김이현은 던전의 형태에 따라 개방형, 폐쇄형, 기타 특수던전에 대해 설명했다.

마지막으로 던전의 클리어 조건인 던전의 일반 핵(Normal Core)과 보스가 지키는 중심 핵(Main Core)까지 알려주고는 잠시 숨을 골랐다.

"하암..."

강현은 이미 모두 알고 있는 내용이기에 하품을 하며 주위를 둘러봤다.

지루함을 느끼는 것은 강현만이 아닌지 곳곳에서 집중력이 흩뜨려진 모습이 보였다.

김이현 또한 그러한 분위기를 느낀 것인지, 미간이 살짝 찌푸려졌다.

"지금까지 제가 알려드린 내용은 마지막 필기시험에서 평가할 예정이니 모두 잘 기억해두시기 바랍니다."

예고도 없이 찾아온 평가 소식에 곳곳에서 반발이 터져 나왔다.

"뭐야? 필기시험도 있어?"

"그런 건 시작 전에 말해 줬어야죠!"

"맞아. 이제 와서 말하면 어떡합니까?"

사람들의 반발에도 김이현의 태도는 강경했다.

"지금 말씀하시는 분들 얼굴 기억해 뒀습니다. 또 걸리면 퇴출 조치합니다."

이어지는 말에 대부분의 사람들이 조용해졌으나 몇몇 사람들은 오히려 더욱 날뛰었다.

"당신이 뭔데 이래라저래라 하는 거야?!"

능력자 교육 학교의 입학 조건은 튜토리얼 2단계 통과이다.

이 말은 여기 있는 모두가 최소한 몬스터를 죽여 본 경험이 있다는 뜻이었다.

다시 말하자면.

나름대로 한 가닥 한다는 소리다.

"오오!"

덩치가 큰 40대 남성이 주변의 호응을 얻어 더 크게 소리치기 시작했다.

"까놓고 말해서, 괴물들 잡는데 뭐 다른 게 필요해?! 가서 죽이면 끝나는 건데, 이딴 쓸데없는 교육이나 하고 말이야!"

김이현이 단상에서 내려와 남자의 앞으로 다가갔다.

"뭐? 오면 어쩔 건데?"

"당신이 그렇게 자신만만한 데는 이유가 있으시겠죠."

김이현이 말을 하자 한기가 올라오는 것 같았다.

남자는 내심 당황했지만 겉으로는 당당함을 위장했다.

"어쩌라는 건데?"

"지금부터 저는 당신의 공격을 피하고 막기만 하겠습니다. 한 대라도 저에게 유효타를 넣으시면 바로 졸업시켜 드리죠."

"그런…."

"대신 실패하면 당신은 교육에서 퇴출입니다. 하시겠습니까? 아, 물론 무기를 사용하셔도 무방합니다."

김이현의 말에 남자가 잔인하게 얼굴을 일그러뜨렸다.

"하! 살려달라고 빌지나 마라."

**

3달 넘게 수라장을 거쳐 오며 강현의 전투 센스는 엄청난 발전을 이룩했다.

특히, 어느 정도 순발력 스텟이 오르자 웬만한 공격은 눈으로 확인하고 생각한 후에 여유롭게 피할 정도였다.

'그런 나도 저건 불가능해.'

김이현은 남자를 완전히 가지고 놀고 있었다.

"으아아아!"

처음 시작은 거침없이 뻗어 나간 주먹이었다.

제법 단련한 듯한 우람한 주먹.

겉모습만 봤을 때는 굉장히 여려 보이는 김이현이 다치지 않을까 걱정되는 모습이었다.

하지만 그것이 착각이라는 것을 깨닫는 데는 1분도 걸리지 않았다.

한 발자국.

김이현은 단 한 발자국도 움직이지 않은 채 모든 공격을 받아냈다.

"죽어, 죽으라고!"

그 상황은 남자가 인벤토리에서 검을 꺼내 들었을 때도 바뀌지 않았다.

"순간 가속!"

그때 남자의 외침과 동시에 그의 몸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빨라졌다.

강현도 잠깐 그의 움직임을 놓쳤을 정도였다.

'저건 위험해!'

강현은 김이현이 반 토막으로 잘리는 듯한 착각이 일었다.

"으윽...!"

하지만 그것은 말 그대로 착각이었다.

김이현은 알고 있었다는 듯이 검을 피하고는 어느새 손에 쥔 단검으로 남자의 목을 누르고 있었다.

"할 수 있는 건 다 하셨습니까?"

18화 능력자 육성 학교(3)

18. 능력자 육성 학교(3)

그 이후, 클레임을 걸었던 남자는 얌전히 퇴소했다. 그도 튜토리얼을 3단계까지 통과한 나름의 인재였지만 김이현은 가차 없었다.

소란스러웠던 오전 이론 교육이 끝나고, 점심식사 후 실습이 시작되었다.

"여러분은 앞으로 대부분의 교육시간을 앞에 보이는 냉병기를 익히면서 보내게 될 겁니다. 실제 던전에서 총이 사용 가능하지만, 여러분에게 총이 지급되는 않습니다."

김이현이 말하며 장검을 하나 집어 들었다.

"단순히 안전상의 문제만은 아닙니다. 그럼 왜 강력한 총기를 지급하지 않고 이런 검을 들게 강요하는가?"

-부웅!

김이현이 자세를 잡으며 검을 휘두르자 바람을 가르는 소리가 울렸다.

"그것은 앞으로 괴수들이 더욱 강해지고 능력자들의 힘이 상승할수록, 단순한 화기보다 이 검이 더 강한 힘을 낼 것이라 예상하기 때문입니다."

가장 먼저 던전을 클리어 한 집단은 군대이다.

능력자로 이뤄진 특수부대.

총기를 사용한 그들은 제법 빠르고 안정적으로 던전을 클리어할 수 있었다.

그러나 그들의 능력자들의 레벨은 거의 성장하지 못했다.

오히려 한참 뒤에 던전을 돌기 시작한 민간인들이 훨씬 빠른 속도로 레벨업을 하는 것을 지켜본 정부는 언젠가 총화기를 이용한 사냥에 한계가 올 것이라는 것을 예측했다.

"자세한 이야기를 해드릴 순 없지만 믿고 따라오시면, 여러분들 모두 강력한 능력자가 되실 수 있으실 겁니다."

김이현이 옆에 있는 조교에게 검을 건네주며 본격적인 교육을 시작했다.

"현재 무기 수량과 조교가 부족한 관계로 40명씩 로테이션 방식으로 교육을 진행하겠습니다."

설명이 끝나고 사람들이 각자 원하는 무기를 골랐다. 대부분 장검이었다.

창이나 둔기류, 원거리 무기들도 모두 구비되어 있었지만 검에 대한 로망은 모두가 비슷한 것 같았다.

무기를 선택이 끝나자 실제 연습이 시작됐다.

"하압!"

"얍!"

저마다 용을 쓰며 창칼을 휘두르는 사람들.

하지만 냉병기를 다루는 것은 생각보다 쉽지 않았다.

다들 머릿속으로는 영화 속 주인공을 떠올리며 검을 휘둘렀지만 현실은 엑스트라 1에도 미치지 못하는 수준이었다.

'아무리 경험이 없다지만 이 정도인가?'

따로 검술을 배운 적이 없는 강현이 봐도 문제점이 너무 많아 어디서부터 지적해야 할지 모를 정도였다.

사실 강현이 처음 휘둘렀을 때는 이들보다 훨씬 심각했었지만 어느새 올챙이 시절을 잊은 강현이었다.

"손은 이런 식으로 잡아주시고 안정적으로 다리를 조금 더 벌리시는 게 좋습니다."

김이현이 한 여성에게 붙어 자세를 교정해 주었다. 여성의 얼굴이 눈에 띄게 달아올랐다.

"야. 저 남자 괜찮지 않냐?"

"괜찮은 정도가 아니지. 스마트하게 생겼는데 매너도 좋아 보이고, 목소리도 섹시하잖아."

"게다가 능력도 출중하지."

벌써 친해진 몇몇 사람들이 수군거리는 것이 들려왔다.

"쯧. 개판이네."

강현이 혀를 차며 그 모습을 바라봤다.

아무리 이제 막 시작된 제도라지만 너무한 것이 아닌가 싶을 정도로 막무가내 교육이었다.

'일주일간 시간만 날리겠네.'

가장 마음에 들지 않는 것은 자신에게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어어, 이봐! 조심해!"

"어이쿠. 죄송. 크큭."

그때였다.

근처에서 소란이 일어났다.

강현은 소리가 들린 곳을 바라봤다.

'쟤는... 이름이 안유성이라 했나?'

안유성이라 자신을 소개한 남자가 위험하게 검을 휘두르고 있는 것이 보였다.

"진지하게 임해주시기 바랍니다. 교육용 검으로 날이 서있지 않지만 다치실 수 있습니다"

"예에. 죄송합니다."

결국 조교가 나서서 경고를 주었지만 안유성은 실실 웃으며 고개를 까딱일 뿐이었다.

'역시 저 새끼도 정상은 아니야.'

"연습 안 하십니까?"

강현이 주위를 둘러보는 사이 어느새 다가온 조교가 말을 걸어왔다.

"예. 할 거예요."

강현이 대답하며 자세를 잡았다.

-부웅!

한눈에 봐도 제법 모양새가 잡혀있는 모습. 정확하게 검을 휘두르는 바람을 가르는 소리가 나자 몇몇 사람들이 감탄을 내뱉었다.

"오오. 저 남자 검 좀 쓰나 본데?"

"요란스러운 것 치고 제법 능력이 있나 봐."

주위의 반응을 지켜보던 조교가 강현에게 가까이 붙었다. 그리고는 강현의 자세를 교정해주기 시작했다.

"음, 거기선 굳이 그런 식으로 하실 필요가 없습니다. 단순한 겉멋처럼 보이네요. 그런 자세는 전혀 효율적이지 않습니다."

'이 멍청한 새끼가 지금 뭐라는 거야?'

방금 강현이 휘두른 자세는 조금 아래에서 위로 검을 쳐올리는 방식이었다.

그저 막무가내로 휘두르는 것이 아닌 지금까지의 전투 경험으로 깨달은 것과 스킬의 보조까지 녹아든 자세였다.

'하아, 그냥 넘어가자.'

더 이상 문제를 일으키고 싶지 않았던 강현은 조용히 따르기로 결정했다.

"예. 알겠습니다."

얌전히 대답한 강현이 조교가 알려주는 대로 자세를 잡기 시작했다.

그때 둘 사이로 김이현이 걸어왔다.

"김성한 조교. 잠시 만요."

"예? 무슨 일이십니까?"

"잠시 교육을 위해 협조 부탁드리겠습니다."

-짝짝!

김이현이 박수를 쳐 이목을 모았다.

"다른 분들도 잠시 멈추시고 여기를 봐주시죠. 지금 이 교육은 앞으로 전투에서 굉장히 중요한 요소가 될 것이기 때문에 모두 눈여겨서 봐 두시기 바랍니다."

그 말에 사람들이 훈련을 멈추고 김이현의 주변으로 모여들었다.

"제가 신호하면 두 분이서 검을 전력으로 부딪치는 겁니다. 김성한 조교는 방금 강현 씨에게 알려주신 그 자세 그대로 휘둘러주시고 강현 씨는 처음 본인이 하셨던 자세로 휘두르시는 겁니다."

이어지는 김이현의 말에 김성한은 어리둥절한 표정이었으나 강현은 곧바로 의도를 눈치챘다.

"바로 준비해 주세요. 전력으로 부탁드립니다."

"알겠습니다."

강현도 어차피 자신을 지적하던 조교가 마음에 들지 않던 참이었다.

'이왕 하는 거 제대로 보여주지.'

'거인의 힘.'

강현이 조용히 스킬을 읊조렸다.

"다른 분들은 조금만 더 뒤로 물러나 주시기 바랍니다."

주위를 확인한 김이현이 손을 내리그었다.

"지금!"

-챙!

신호가 떨어지자마자 강현과 김성한이 격돌했다.

그 결과 김성한이 허공을 날았다.

약 2m 정도를 날아간 그가 결국 바닥에 꼴사납게 넘어졌다.

알 수 없는 장면에 사람들은 어안이 벙벙한 모습이었다.

"이 두 분은 모두 힘에 특화된 분들입니다. 여러분들도 머지않아 이분들의 근력과 비슷해지거나 넘어서는 순간이 오실 겁니다."

김이현이 주변을 둘러보고는 말을 이었다.

"그때가 되면 항상 힘이 가해지는 방향을 계산하고 움직이셔야 합니다. 잘못하다간 이렇게 몸이 떠오를 수 있기 때문이죠. 시범을 보여주신 두 분께 박수 부탁드립니다."

-짝짝짝짝

박수소리와 함께 김성한이 벌게진 얼굴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

그 후로도 비슷한 나날의 연속이었다. 오전에는 이론 교육, 오후에는 무기술 교육이다.

이론 교육은 주로 몬스터의 종류, 무기의 특징, 파티 전술에 대해 배웠다.

여전히 강현에게 도움이 될 만한 것은 없었다.

"지루하다..."

마지막으로 전투를 치른 지 며칠이나 지났다.

온몸이 쑤시는 와중에도 지루한 교육만 계속되니 강현은 당장이라도 폭발할 것 같았다.

"오늘 교육은 대련입니다."

"...!"

그러던 차에 대련 교육이 시작됐다.

"대련은 2명씩 짝을 지어 실시합니다. 교육용 검을 사용할 것이고 조교들이 위험한 순간에 바로 제지를 할 것이기 때문에 염려 마시기 바랍니다."

"좋아!"

드디어 몸을 풀겠다는 생각에 강현은 절로 신이 났다.

그러나 기대는 한 시간도 가지 않아 처참히 무너졌다.

"하아..."

대련을 끝내고 돌아온 강현이 한숨을 내쉬었다.

상대방이 몇 번 검을 부딪치기도 전에 검을 놓치거나 제압되어 몸 풀기조차 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차라리 저 김이현이라는 놈과 한번 붙어보면 좋겠는데 말이야.'

"이야, 형 대단하시던데요?"

시무룩해있던 강현에게 안유성이 다가왔다.

"어디서 수련이라도 하고 오셨어요?"

"그런 거 아냐. 인마."

"에이~ 완전 가지고 노시던데? 첫날에 조교 날려버리는 것도 그렇고... 무슨 검술 달인! 그런 거 아니에요?"

며칠 사이 강현은 안유성과 제법 친해진 상태였다.

모든 사람들이 강현을 피하기만 해서 심심했던 와중에, 안유성이 끈질기게 강현에게 말을 걸어왔기 때문이다.

"여기 너무 심심하죠?"

"어. 그냥 빨리 끝내고 가고 싶다."

"기다려 보세요. 저한테 재미있는 일이 일어날 것 같거든요? 크큭."

안유성이 실실거리며 말했다.

"다음 조 올라오세요."

"아! 제 차례네요. 기대해요."

이윽고 자신의 차례가 되자 안유성이 웃으며 앞으로 걸어갔다.

'저 새끼 왜 메이스를 들고 있는 거야?'

지금까지 안유성은 장검을 들고 교육을 받았다. 그러나 오늘은 어째서인지 둔기를 든 채로 앞으로 나가고 있었다.

'사고 치는 거 아닌가 모르겠네...'

강현의 우려는 3분도 지나지 않아 현실이 되었다.

"꺄아악!"

갑자기 들려오는 비명에 사람들의 시선이 한 곳으로 모였다.

"무슨 짓입니까!?"

안유성의 상대는 어떤 여성이었는데 바닥에 검을 떨어뜨린 채 울고 있었다.

"흑흑..."

"대련 도중에 조금 격해졌네요."

"의료팀! 빨리 와!"

여성의 손은 완전히 짓뭉개져 피부 밖으로 새하얀 하얀 뼈가 드러나 있었다.

여성이 휘두른 검을 손쉽게 피한 안유성이 메이스로 그녀의 손을 내려찍은 것이었다.

"안유성 씨. 지금 장난합니까?"

김이현이 이를 꽉 깨문 채로 말했다.

"이건 사고예요. 사고. 저도 깜짝 놀라서 피하고 나도 모르게 팍! 하고 휘둘렀는데 이렇게 된 거라니까요?"

드라마의 배우들도 울고 갈만한 연기. 게다가 심증은 있지만 의도적으로 했다는 증거가 없었다.

"아무래도 저 미친 새끼는 멀리하는 게 좋겠어."

강현이 고개를 저으며 중얼거리던 그때였다.

-프스스스...

무언가 찝찝한 기분에 강현이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그런 그의 눈에 안유성의 위쪽에 날카로운 얼음이 생성되는 것이 보였다.

"읏차!"

그러나 안유성은 마치 알고 있는 것처럼, 보지도 않고 자연스럽게 움직여 그것을 피해냈다.

"뭐가 어떻게 돼가는 거야...?"

분명 스킬, 그것도 마법이었다.

강현과 김이현을 포함한 몇몇 사람들이 그것을 눈치챘지만, 다들 더 소란을 키울 생각은 없어 보였다.

**

"으아아아악!"

교육이 끝나고 숙소로 돌아온 강현이 소리를 질렀다.

건물이 떠나가라 울리는 고함소리에 사람들의 시선이 모였지만, 이내 그 주인공이 강현임을 확인하고는 조용히 고개를 돌렸다.

"답답해서 미치겠다아!"

세 달이 넘는 시간 동안 강현은 하루도 빠지지 않고 죽을 때까지 싸워왔다.

튜토리얼이 끝나던 날.

이제는 더 이상 그런 짓을 하지 않아도 된다는 사실에 기뻐했던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채 일주일도 지나지 않아 생각이 바뀌었다.

"하아... 나도 진짜 미친놈이 된 건가."

전투가 그리웠다.

칼로 살갗을 가르고 뼈를 짓밟아 부수는 그 쾌감이 계속해서 머릿속을 맴돌았다.

계속 부정해 왔지만 이제는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

사실 낮의 안유성의 행동을 봤을 때도 강현은 묘한 쾌감을 느꼈다.

어째서인지 전투의 긴장감도 느껴졌다. 그리고 더 나아가 자신이 나서서 직접 전부 때려 부수고 싶었다.

"씨바알! 나는 또라이 새끼가 아니라고!"

강현의 고함소리에 함께 방을 쓰던 사람들이 슬그머니 자리를 피했다.

'아현이가 있었으면 쌍욕하면서 닥치라 해줬을 텐데...'

너무 심심했던 나머지 평소 귀찮았던 동생의 욕지거리까지 그리워졌다.

"이렇게는 안 되겠어."

혼잣말을 중얼거린 강현이 자리를 박차고 숙소를 나갔다.

잠시 어두운 통로를 지나, 빛이 새어 나오는 방에 도착한 강현.

가볍게 손을 든 그가 노크했다.

-똑, 똑

"들어오십시오."

허락에 떨어지자 강현이 문을 열었다.

"무슨 일입니까?"

커피를 놓아두고 서류를 정리하던 김이현이 강현을 바라봤다.

"저랑 대련 한번 하시죠. 진검으로다가."

"제가 왜 그래야 합니까."

김이현은 강현을 보지도 않은 채 계속 서류를 넘겼다. 그 속도가 얼마나 빠른지 읽고 있는 것이 아닌 그저 페이지만 넘기는 것 같았다.

"그쪽도 이딴 소꿉놀이 지루하잖아요?"

"무슨 말씀을 하시는지 모르겠네요."

김이현의 말에 강현이 바짝 얼굴을 들이밀었다.

"거짓말 치지 마. 얼굴에 다 쓰여 있어."

"..."

강현이 반말로 말했지만, 김이현은 가만히 서류만을 바라봤다.

"불편하니 떨어져 주시죠."

"솔직하게 가지?"

"저는 이미 솔직합니다만."

"그럼 왜 내 눈을 안 마주치는 건데?"

끈질긴 강현의 말에 김이현이 고개를 들어 강현을 마주 봤다.

그 눈동자는 여태껏 사람들에게 보여준 공허함이 아닌 거센 불길이 타오르고 있었다.

"그런 눈을 하고서 이딴 서류철이나 들여다보는 게 재미있을 리가 없잖아?"

19화 능력자 육성 학교(4)

19. 미친놈들(1)

야심한 시각. 텅 빈 교육장에 두 남자가 마주 섰다.

"갑옷을 착용하셔도 좋습니다."

"그쪽도 안 입었으면서 뭐라는 거야?"

"저는 맞을 일이 없으니 괜찮습니다."

김이현이 한쪽 입꼬리를 올리며 도발했다. 강현은 마주 웃어주며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맞아도 뒤질 일 없으니까 걱정하지 마. 이거면 충분해."

강현이 인벤토리에서 빌게인의 장검을 꺼내 들었다. 전신이 검붉게 물들어 있는 장검은 한눈에 봐도 위협적으로 보였다.

이름 : 빌게인의 장검

등급 : B

내구도 : 476/500

능력 : 광전사, 내구도 강화

"보통 검이 아니군요. 설마 6단계까지 클리어하신 분이었습니까?"

"오다가 주웠어."

"..."

"스킬이나 능력은 사용하지 않을 테니까 쫄지마."

강현이 본격적으로 스트레칭을 하며 몸을 풀었다.

"그럼 저도 오다 주운 걸로 상대하겠습니다."

김이현이 인벤토리에서 두 자루의 단검을 꺼내 들었다. 한눈에 보기에도 범상치 않은 검이었다.

"재미있네. 좋아."

모양새를 봐서는 분명 높은 등급의 무기일 것이다.

그리고 지금 그런 무기를 구할 수 있는 곳은 튜토리얼 6단계뿐이다.

'역시 한 가닥 하는 놈이야.'

예상대로 김이현이 튜토리얼의 높은 곳까지 통과한 것이 확실해지자 강현의 몸이 더욱 달아올랐다.

"그럼 바로 간다!"

-챙!

자리를 박차고 나간 강현은 처음부터 전력으로 검을 휘둘렀다.

김이현은 그 공격을 부드럽게 흘려냈다.

'예상보다 힘이 강하다.'

아직 근력이 16인 김이현은 강현의 검을 정면으로 받아내기 조금 버거웠다.

"그래! 좋잖아?!"

김이현이 쉽게 검을 받아넘기자 흥분한 강현의 검이 한층 빨라졌다.

-챙, 챙!

김이현은 모든 공격을 아슬아슬하게 피하거나 흘려냈다.

그를 쫓는 강현의 검로도 갈수록 날카로워졌다.

김이현이 쉽게 검을 받아내지 못하는 각도로 휘두르는 것이었다.

'검술 실력도 수준급. 하지만 지나치게 흥분하고 있다.'

-부웅!

김이현이 크게 휘둘러오는 검을 피해냄과 동시에 강현의 품으로 파고들었다.

"읏..!"

눈 깜짝할 새에 단검의 끝이 강현의 목에 닿았다.

강현의 눈동자가 당혹으로 물들었다.

"흥분을 조금 가라앉히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김이현이 검을 거두고는 천천히 뒤로 물러났다. 그 모습에 강현이 낄낄거리며 웃었다.

"역시 당신도 바로 끝내기는 아쉽지?"

"다시 가죠."

**

-채앵!

허공을 날아간 검이 바닥에 떨어졌다.

"하아, 하아... 제가 졌습니다."

김이현이 숨을 헐떡이며 항복을 선언했다.

그는 비 오듯이 쏟아진 땀으로 완전히 젖어 있었다.

피부도 조금 베여서 피가 새어 나오기는 했지만 그리 위험한 수준은 아니었다.

"흐읍, 후아... 쪽팔리게 그런 말 하지 마시죠. 이건 내가 진거나 마찬가지인데 뭐."

강현 또한 천천히 호흡을 가다듬었다.

강현의 옷은 찢어지고 피에 절어 걸레짝이 된 모습이었지만, 몸에는 별다른 상처가 보이지 않았다.

"그 회복 스킬 너무 사기 아닙니까?"

처음 기습으로 한번 패하고 난 뒤, 강현은 정신을 차리고 신중하게 싸움에 임했다.

그러자 둘 중 누구도 쉽사리 우세를 점하지 못했다.

강현은 분명 신체적인 힘이나 스피드는 앞서는 것을 느꼈지만 정타를 넣을 수가 없었다.

'내가 어디로 공격할지 알고 있는 것 같아.'

강현은 김이현이 예측에 관련된 스킬을 가지고 있는 것인가 의심했다. 하지만 사실 그의 고유 능력은 사고가속이었다.

느려진 시간 감각 속에서 김이현은 어떤 경로로 검이 날아오더라도 인지하고 피해낼 수 있었다.

때문에 강현이 더 높은 레벨, 뛰어난 신체 능력을 가지고 있음에도 제대로 된 공격을 할 수 없었던 것이다.

결국 싸움이 길어졌고 먼저 체력이 떨어진 김이현이 항복을 선언했다.

"그쪽 스킬이 더 사기 같은데 뭐. 어쨌든 고마웠어요. 덕분에 스트레스가 다 풀리는 기분이네."

오랜만에 땀을 흘리며 기분이 좋아진 강현이 손을 내밀었다.

"저야말로 고마웠습니다. 많은 도움이 됐습니다."

김이현이 강현의 손을 마주 잡고 흔들었다.

**

시간이 흘러 교육의 마지막 날.

100명이 넘는 대 인원이 교육장 밖으로 나섰다.

"마지막 교육은 실제 던전에서 몬스터와 싸우는 것입니다. 5인 1조가 되어 몬스터를 잡으시면 통과입니다."

김이현의 인솔 하에 그들이 도착한 곳은 F급 던전 앞이었다.

"이곳은 능력자 교육 학교에서 교육용 던전으로 지정해둔 케이카의 숲입니다."

케이카의 숲.

F급 던전이지만 일반적인 몬스터보다 강력하다고 알려진 케이카가 나오는 곳이었다.

그럼에도 정부에서 이곳을 교육용 던전으로 지정한 것에는 이유가 있었다.

"케이카의 숲은 필드형 던전이기 때문에 몬스터 외에 다른 위협이 존재하지 않습니다."

"..."

"그리고 케이카는 뭉쳐 다니지 않고 한 마리씩 다니는 습성을 지녔기 때문에 다들 조금만 조심하신다면 별다른 위험은 없을 겁니다."

김이현의 설명이 계속되었지만 굳어있는 사람들의 얼굴은 풀어질 줄 몰랐다.

"위험한 상황에서는 언제라도 제가 나서니 안심하시기 바랍니다. 그럼, 조교들을 따라 입장해 주십시오."

4명의 조교가 먼저 던전에 입장하고 뒤이어 사람들이 차례대로 들어갔다.

'실제 던전에 들어가 보는 건 처음이네.'

교육 내내 지루하기만 했던 강현도 흥분되는 것을 느끼며 던전에 입장했다.

-화악

오랜만에 눈앞이 반짝이며 몸이 떠오르는 감각에 강현이 미소를 지었다.

'이건 튜토리얼이랑 같아.'

마침내 눈을 뜨자 수풀이 무성한 정글이 눈에 들어왔다. 온도가 높고 습한 것이 절로 불쾌지수가 오르는 장소였다.

"먼저 조교들이 시범을 보일 겁니다. 그 후에는 여러분이 직접 사냥을 하셔야 하니 잘 지켜보시기 바랍니다."

김이현이 신호하자 두 명의 조교가 숲으로 들어갔다. 얼마 지나지 않아 그들이 들어간 방향에서 괴성이 들려왔다.

"키에에에엑"

마침내 조교와 함께 나타난 것은 2m가 조금 넘는 타조와 비슷한 모습의 짐승이었다.

케이카가 근처까지 다가오자 대기하던 두 명의 조교까지 합세해 전투를 치르기 시작했다.

"케이카는 발이 빠르고 부리가 단단한 것이 특징입니다. 부리에 맞는 순간 치명상을 입을 가능성이 높기 때문에 특히 조심하셔야 합니다."

"정석적인 케이카 공략은 여러 명에서 포위를 한 뒤 발을 묶고 차근차근 공략하시는 것입니다."

조교들은 능숙하게 케이카를 압박하며 상처를 늘려갔다.

"케이카는 위기에 처했다고 느끼면 간혹 도망가는 경우가 있습니다."

"캬아악!"

"때문에 다리부터 공략해서 제압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명심할 것은 절대로 성급하게 나서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조교들의 전투를 보며 김이현이 계속해서 설명을 이어갔다.

-쿵!

잠시 후, 온몸에 피칠갑을 한 케이카가 바닥에 쓰러졌다.

"키에에..."

조교 한 명이 다가가 케이카의 목에 칼을 찔렀다. 케이카의 두 눈에서 점차 생기가 사라지며 이내 완전히 감겼다.

"이렇게 사냥을 끝낸 후에는 마정석을 채취합니다. 마정석은 몬스터마다 다른 곳에 위치해 있는데 케이카의 경우에는 가슴 부근, 심장 근처에 위치해 있으니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한 조교가 단검으로 케이카의 배를 가르고 손을 넣어 뒤적거렸다.

"우엑..."

그 모습을 보며 사람들은 인상을 찌푸렸다. 몇몇은 헛구역질을 하기도 했다.

"지금은 상당히 역하게 느끼실 수도 있지만 금방 익숙해질 겁니다."

조교는 케이카의 몸에서 작은 구슬 크기의 보라색 보석을 꺼냈다.

"마정석은 이렇게 작기 때문에 찾는데 굉장한 시간이 걸립니다만, 가능하면 챙기는 걸 권유합니다."

그 후 몇 차례의 시범 사냥이 더 이뤄졌다. 계속 반복된 사냥에 사람들의 긴장도 점차 풀어졌다.

"자, 이제 그럼 첫 번째 조부터 시작하겠습니다."

이윽고 첫 번째 조의 차례가 다가왔다. 그들은 각자 2단계에서 얻은 무기를 들고 김이현이 지급해준 갑옷을 입은 채였다.

"완전 얼었네."

막상 자신의 차례가 되자 사람들은 모두 잔뜩 얼어붙어있었다. 그 모습을 보며 강현이 고개를 저었다.

"하긴, 여기는 현실이니까."

여기 있는 모두가 튜토리얼 2단계를 통과했다.

즉, 몬스터를 잡아본 경험이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곳은 현실.

다치고 부상을 입는다면 평생 장애를 가지고 살아야 할지도 몰랐고, 잘못하다간 그대로 죽을 수도 있었다.

모두 각오하고 여기까지 온 것이었지만, 막상 눈앞에서 피부로 마주한 공포는 훨씬 거대했다.

"사냥이 힘들다고 생각되시는 분들은 포기하셔도 좋습니다. 어떠한 페널티도 없고 차후에 다시 교육에 지원하실 수 있으니 무리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김이현이 말이 끝나기 무섭게 몇몇 사람들이 손을 들고 포기를 선언했다.

"흥, 겁쟁이들."

그들에게 멸시의 눈초리를 보내는 사람들도 있었지만, 그들의 목소리 또한 떨리고 있었다.

사실 그조차도 두려움을 감추기 위한 수단이었기 때문이다.

"키에엑!"

"준비하세요!"

마침내 조교들이 케이카를 몰아왔다.

첫 번째 팀은 앞으로 나서며 케이카를 맞이할 대형을 갖췄다.

"으으윽..."

그때였다.

한 남자가 뒤돌아 도망치기 시작했다.

"난 안 되겠어!"

"거기 뭐하는 거야?!

"도망가지 마요!"

남자는 코앞에서 2m가 넘는 거대 짐승을 마주하는 공포를 이겨내지 못했다.

다행히도 뒤에서 조교가 남자의 빈자리를 채웠다.

"빈자리는 조교가 채울 테니 걱정하지 마시고 계속 진행하시기 바랍니다."

김이현의 말에 동요하던 사람들이 점차 안정을 찾았다.

그들은 이미 열흘간 팀으로 지내며 파티 전략에 대해서 교육을 받았고, 충분히 합을 맞춘 상태였다.

"배운 대로만 하시면 됩니다!"

조교는 가장 앞에서 케이카의 시선을 끌어주었다. 그 틈에 사람들이 놈의 몸에 하나둘 상처가 늘렸다.

"뭐야? 할 만 한데?"

"좋았어!"

사람들이 자신감을 찾기 시작했다. 그리고 십분 정도가 흐르자 피투성이가 된 케이카가 바닥에 쓰러졌다.

"와아! 해냈다!"

"우리가 이겼어!"

케이카를 잡은 사람들이 성취감에 서로 부둥켜안고 소리를 질렀다.

지켜보던 이들도 별다른 부상 없이 몬스터가 쓰러지자 마음속에 자리 잡은 두려움이 조금은 가셔지는 듯했다.

"다음 조. 앞으로."

한 시간 후. 무려 절반이 넘는 사람들이 케이카를 처치했다.

중간에 몇몇 사람들이 부상을 입었지만 김이현이 빠르게 나서서 정리해 큰 사고로 번지지는 않았다.

그들이 입은 상처도 대기 중이던 치료팀이 응급처치를 한 덕에 생명에 지장은 없었다.

"드디어 내 차례다!"

마침내 자신이 포함된 팀의 순서가 다가오자 안유성이 소리를 지르며 뛰쳐나왔다.

"키에엑!"

신이 난 안유성이 케이카의 소리를 따라하며 괴성을 내질렀다.

"조용히 하십시오. 진지하게 임하기 바랍니다."

김이현의 제지에 그만두었지만 안유성은 전투를 한다는 흥분에 한눈에도 들떠 있는 것이 보였다.

"미친놈..."

강현은 거의 마지막 순번이라 지루한 표정으로 대기하고 있었다. 그러나 표정과는 달리 강현은 사실 안유성의 전투가 매우 궁금했다.

"자, 그럼. 조교 이동해…."

다음 몰이를 위해 조교들이 움직이려던 때였다.

[던전의 중심 핵(Main Core)이 제거되었습니다]

[외부로 향하는 포탈이 열립니다]

[던전이 붕괴될 예정이니 모두 밖으로 나가주시기 바랍니다]

갑자기 들리는 메시지에 김이현이 멈춰 섰다.

처음 보는 메시지에 사람들 또한 당황한 표정으로 웅성거렸다.

"여러분! 당황하지 마시고 앞에 생성된 포탈로 나가주시기 바랍니다. 제때 나가지 않으시면 위험하실 수 있습니다."

"이게 뭐야 시발!"

갑자기 벌어진 상황에 안유성이 욕지거리를 내뱉었다.

전투를 하지도 못하고 던전을 나가야 한다는 사실에 짜증이 오른 것이었다.

"하아..."

그러나 지금 나가지 않으면 어떻게 될지 아무도 모른다.

어쩌면 영영 던전에 갇힐 수도 있다.

결국 체념한 안유성이 포탈로 향했다.

"시간은 충분합니다. 천천히 이동하세요."

김이현은 침착하게 모든 사람들을 밖으로 인솔하고 마지막 한 명까지 확인했다.

"다 끝난 건가?"

더 이상 던전에 사람이 남아있지 않은 것을 확인한 그가 던전을 빠져나왔다.

"이게 무슨 일이래?"

"뭐, 메인 코어가 제거됐다 하지 않았어?"

"메인 코어 제거면, 던전을 완벽하게 클리어한 거라 들었는데."

많은 사람들이 웅성대는 모습을 보며 김이현이 고민에 잠겼다.

'누군가 던전을 클리어했다...'

메인 코어를 제거했다고 했고, 던전의 문에 점차 금이 가는 것이 보니 확실했다.

'누구지?'

이곳은 정부에서 지정한 던전으로 클리어하지 못하도록 통제되어 있다. 아니, 교육과 관련된 것이 아니면 입장조차 제한된다.

"그런데 왜…."

그때였다.

"꺄아아악"

"저게 뭐야!"

갑자기 사람들의 비명소리가 들려왔다.

김이현은 재빨리 시선을 움직여 확인했다.

"젠장, 이게 무슨..!"

문이 활짝 열린 채로 부서지던 던전. 그 안에서 케이카들이 쏟아져 나오고 있었다. 동시에 다른 케이카보다 압도적으로 거대한 케이카까지 밖으로 나왔다.

[돌연변이 케이카]

다른 케이카보다 훨씬 거대한 3m에 이르는 크기. 게다가 꼬리까지 달려 있는 놈은 보는 것만으로도 그 위용에 압도되었다.

"조교! 본부에 지원요청 해! 여러분들 대피하시기 바랍니다. 이곳은 저와 조교들이 막을 테니 도망치세요!"

말을 함과 동시에 김이현도 인벤토리에서 애병기인 단검 두 자루를 꺼내 들고 달려 나갔다.

"살려줘!"

"크악!"

던전의 보스와 함께 엄청난 수의 케이카들이 뛰쳐나오자 사람들이 비명을 지르며 혼비백산했다.

몇몇 사람들이 뭉쳐 케이카를 상대하려 했지만, 한 마리를 포위한 채로 싸우는 것과 사방에서 날뛰는 적들과 싸우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였다.

"싸우려 하지 말고 도망가!"

다급해진 김이현이 케이카의 목에 단검을 박으며 외쳤다.

"제길! 케이카들만 해도 벅찬데 보스까지..."

도저히 답이 보이지 않는 상황이다.

'일단 움직이자.'

이런 생각을 할 시간조차 아까웠다.

지금도 실시간으로 사람들이 케이카에게 죽어나가고 있었다.

"으악!"

"꺄아아아!"

"키에엑!"

불과 몇 초만 벌어진 생지옥.

모든 사람들이 어쩔 줄 몰라하고 있을 때였다.

"다 꺼져어!"

마치 천둥이 치는 듯한 고함소리가 터져 나왔다.

20화 미친놈들(2) - 20.01.17

20. 미친놈들(2)

"다 꺼져어!"

[분노의 사자후가 발동됩니다]

[모든 적들의 사기와 능력치가 감소했습니다]

강현이 인벤토리에서 빌게인의 장검을 꺼내 들며 달려갔다.

7단계를 통과하고 받은 로날드의 갑옷이 존재했지만 태평하게 옷이나 갈아입고 있을 시간이 없었다.

"키에에엑!"

강현의 스킬에 위축된 케이카들이 소리를 질렀다.

"거인의 힘!"

[10분간 근력이 12 스텟 증가합니다]

스킬을 사용하자 끓어오르는 힘이 느껴졌다.

"비켜!"

다가오는 케이카의 부리와 강현의 검이 정확하게 부딪혔다.

-챙!

흡사 쇠끼리 부딪치는 듯한 소리가 울리고, 케이카의 고개가 뒤로 젖혀졌다.

"키에에..!"

케이카의 강철만큼 단단한 부리가 색종이처럼 구겨졌다.

그 고통에 몸부림치는 놈의 목을 단번에 베어낸 강현이 계속해서 나아갔다.

"으아아! 살려줘!"

"키엑!"

한 남자가 필사적으로 케이카에게서 도망치고 있었다.

하지만 빠른 이동 속도를 가진 케이카에게 금방 따라 잡혔다.

그렇게 남자의 머리에 케이카의 부리가 내려 찍히기 직전.

전력으로 달려온 강현이 남자를 걷어찼다.

"쿠억!

간발의 차로 부리가 남자를 스치며 지나쳤다.

"인사는 됐어!"

"으으윽... 뼈가 부러진 것 같아."

남자가 옆구리를 부여잡고 바닥에서 신음했다.

강현은 남자에게 눈길도 주지 않고 케이카를 바라봤다.

"키엑!"

"일도양단!"

놈이 괴성을 지르며 달려들었다.

강현은 부리를 피하고는 스킬을 사용해서 단번에 케이카를 이등분했다.

"후우, 뭐가 이렇게 많아?"

주위는 완전히 혼돈 그 자체였다.

푸른 풀밭이 붉은 피로 뒤덮이고, 찢어지는 비명이 들려왔다.

"죽어! 죽어! 크하하하!"

그때 소란을 뚫고 들리는 웃음소리에 강현의 고개가 돌아갔다.

그곳에는 케이카 위에 올라탄 안유성이 있었다.

-쾅, 쾅, 쾅!

보기만 해도 위협적인 메이스를 든 안유성은 케이카의 머리를 쉴 새 없이 내려찍고 있었다.

분명 튜토리얼 6단계를 클리어하고 받은 무기가 분명했다.

"원래 메이스를 쓰는 놈이었구나."

결국, 케이카의 머리가 터져나가며 내용물을 쏟아냈다.

어쩐지 케이카가 불쌍하다고 생각하던 강현이 이내 고개를 저었다.

"이럴 때가 아니지."

한가롭게 구경이나 할 때가 아니었다.

다시 시선을 거둔 강현이 주변을 살펴봤다.

몇몇 능력자와 조교들이 제법 많은 케이카를 해치운 것이 보였다.

그러나 아직 보스, 돌연변이 케이카가 여전히 활개를 치고 다니고 있었다.

놈의 부리에는 몇 명의 것인지 알 수 없는 피와 살점들이 묻어 있었다.

"흐압!"

김이현은 홀로 놈을 상대하고 있었다.

-콰앙, 쾅!

부리가 바닥에 부딪히며 위협적인 소리가 울렸다.

김이현은 공격에 직접적으로 당하지는 않았지만, 계속 피하기만 하는 것이 위태로워 보였다.

'지금...!'

"일도양단!"

-스걱!

빠르게 돌연변이 케이카에게 접근한 강현이 스킬을 사용했다.

"키에엑!"

강현은 평소 '거인의 힘' 사용 중에 전력으로 힘을 쓰지 않는다.

몸이 버티지 못하고 근육이 손상될 수도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금은 그런 것을 따질 때가 아니었다.

강현이 전력으로 휘두른 검에 돌연변이 케이카의 날개가 절반가량 베이며 피가 흘러나왔다.

-퍽!

동시에 놈이 휘두른 꼬리에 맞은 강현이 한참을 날아가 바닥에 처박혔다.

"쿨럭!"

마치 자동차에 치인 것 같은 엄청난 충격이었다.

갑옷을 입지 않은 강현은 온몸이 부서지는 것만 같았다.

강현이 바닥에 침을 뱉자 피가 섞여 나왔다.

"아... 이건 시간이 좀 걸리겠는데."

좋지 못한 곳에 맞았는지 내장을 다친 것이 느껴졌다. 완전히 회복되려면 잠깐으로는 힘들어 보였다.

"형! 괜찮아요?"

언제 다가온 것인지, 안유성이 강현에게 손을 내밀었다.

"어..."

그 손을 잡으려던 강현은 안유성의 손에 잔뜩 묻어 있는 피와 살점들을 보고는 손을 거두었다.

"새끼가 더럽게."

"아, 왜 그래요~ 동지끼리!"

무슨 짓을 하다 온 건지 온몸에 피범벅이 된 안유성이 강현을 끌어안으려 했다.

강현은 기겁하며 물러났다.

"한 발자국만 더 다가오면 죽는다."

"쳇."

"후우, 이럴 시간 없어. 위험하니까 너는 빠져 있어."

강현은 다시 검을 집어 들고 놈에게 달려갔다.

"괜찮으십니까?"

"본인 걱정이나 해요!"

김이현의 인사를 받아준 강현이 빠르게 다가오는 부리를 옆으로 쳐내었다.

-캉!

그러자 옆에 있던 김이현이 자신에게 날아오는 케이카의 머리에 단검을 찔러 넣었다.

"키에에에에!"

오른쪽 눈에 단검이 박힌 놈이 비명을 질러댔다.

"오른쪽 시야가 가렸으니 그쪽을 집중적으로 공략합니다. 놈이 도망치지 못하게 다리부터 노려요!"

김이현이 하나 남은 검을 역수로 쥐고는 케이카의 아래로 뛰어들었다.

"목숨도 하나뿐인 양반이 대담하네."

강현은 케이카가 다치지 않은 왼쪽으로 이동해 검을 휘둘렀다.

놈의 시선을 끌기 위해서였다.

-쾅! 쾅!

놈의 부리가 내려찍힐 때마다 땅이 울렸다.

강현은 신중하게 공격을 피하고는 놈의 목을 향해 검을 내려쳤다.

"크윽!"

완전히 끊어낼 생각으로 휘둘렀지만, 놈의 두꺼운 가죽을 뚫는 것조차 힘겨웠다.

"도와드리겠습니다!"

그때 강현의 뒤쪽에서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이 목소리는..."

강현은 첫날 교육에서 자신에게 날아갔던 조교. 김성한 임을 알 수 있었다.

"흐아아압!"

김성한은 빠른 속도로 달려오며 보스의 얼굴을 향해 검을 휘둘렀다.

순간 놈의 눈이 빛났다.

-푸아악!

놈은 다른 케이카 보다 훨씬 긴 1m의 부리로 김성한을 찍어버렸다.

단숨에 꼬치처럼 부리에 꿰인 김성한.

보스가 머리를 들자 김성한도 함께 공중으로 떠올랐다.

-후두두두

놈이 거칠게 부리를 털어내자 하늘에서 피와 내장이 비처럼 쏟아졌다.

"저 멍청한 새끼가!"

"다른 조교들은 모두 빠져 있어! 사상자만 늘어난다!"

강현이 욕지거리를 내뱉었다.

김이현은 다른 사람들이 전투에 참여하지 못하도록 경고했다.

"키엑!"

시간이 흐를수록 돌연변이 케이카의 몸에 상처가 하나둘 늘어났다.

특히 오른쪽 다리는 이제 완전히 기능을 상실한 듯했다.

"허억, 허억..."

김이현 또한 잔뜩 지쳐서 숨을 헐떡였다.

한 번도 정타를 허용하지 않았지만, 고질적인 체력이 문제였다.

"조금만 더 하면 끝나요!"

-채앵!

기합을 내지르며 꼬리를 쳐내는 강현 또한 정상은 아니었다.

겉은 스킬로 인해 치료가 끝났지만, 아직 몸 내부는 엉망진창이었다.

"응?"

그때 갑자기 들려오는 익숙한 목소리에 강현의 고개가 돌아갔다.

"와다다다다다!"

"야! 어디가 인마!"

안유성이 달리기 선수처럼 양손을 앞뒤로 흔들며 엄청난 속도로 달려가고 있었다.

-탓, 탓!

이내 보스의 바로 앞에서 점프한 안유성이 허공을 한 바퀴 돌아 돌연변이 케이카의 몸통 위로 올라갔다.

엄청난 균형 감각이었다.

"키엑?!"

돌연변이 케이카는 무언가가 자신의 등에 올라탄 느낌에 뒤를 돌아보았다.

안유성이 미소를 지으며 놈의 얼굴을 마주했다.

"안녕?"

"키에엑!"

감히 자신의 몸에 올라탄 인간에게 분노한 놈이 부리를 내질렀다.

그것을 본 안유성이 도리어 날아오는 부리를 박차고는 다시 허공으로 떠올랐다.

"케엑?"

보스 돌연변이 케이카는 갑자기 안유성이 허공으로 사라지자 당황하며 머리를 흔들었다.

그 순간.

-콰앙!

어느새 인벤토리에서 메이스를 꺼낸 안유성이 놈의 눈에 박혀있던 단검을 정확하게 내려쳤다.

"케, 켁, 키엑..."

그 충격에 검의 손잡이까지 완전히 눈 안으로 들어가고, 뇌가 찔린 놈이 천천히 바닥에 허물어졌다.

"죽어! 죽어! 죽어-! 으하하하!"

-쾅! 쾅!

쓰러지고 난 후에도 부들거리는 케이카의 머리에 몇 차례 더 메이스가 처박혔다.

부들부들 떨던 놈은 결국 움직임을 멈추었다.

"..."

강현은 멍하니 그 모습을 바라봤다.

"저 새끼 정체가 뭐야..?"

단순히 신체적인 스텟의 문제가 아니었다.

그 이상의 몸놀림. 센스.

강현은 진정한 재능이 무엇인지 조금은 알 것만 같았다.

'타이밍을 기다리다가 기회가 생기자 망설이지 않고 움직였어.'

그뿐만이 아니다.

뛰어난 판단력과 결단력. 완벽한 균형감각. 허공에서 인벤토리를 열어 장비를 꺼내는 센스까지.

안유성은 타고난 싸움꾼 그 자체였다.

"형! 제가 처리했습니다."

노란 머리인지 붉은 머리인지 구별하지 못할 정도로 피를 뒤집어쓴 안유성이 강현에게 손을 흔들었다.

"미친놈."

강현은 그저 헛웃음을 삼키며 바라볼 뿐이었다.

**

"정말 감사합니다."

"인사는 이놈한테 해요. 이 자식이 다 마무리했으니."

감사 인사를 하는 김이현에게 강현은 안유성을 가리켰다.

"감사... 합니다."

"됐어요! 저도 재미있어서 한 일인데 뭐. 하하!"

얼마 지나지 않아 능력자 관리 기구에서 나온 사람들이 현장을 정리했다.

무려 23명이 죽었고 부상자는 40명이 넘었다.

몇몇은 정신적인 충격이 받아 일상생활조차 힘들 것이라고 했다.

"이번 일에 대한 보상은 제가 상부에 말해둘 테니 두 분 계좌로 지급될 겁니다. 메인 코어를 우리가 제거하진 않았지만 어쨌든 던전을 클리어했으니까요."

F등급 메인 코어 제거에 걸린 포상금은 무려 4000만 원이다.

김이현은 강현과 안유성에게 각각 2000만 원씩 지급될 것이라고 했다.

"다 끝났으면 피곤한데 들어가 봐도 됩니까?"

거인의 힘을 사용한 채로 너무 날뛴 탓에 후유증이 제법 컸다.

게다가 다급히 싸우느라 갑옷도 챙겨 입지 못해 곳곳이 부러지고 피를 흘리는 등 너무 많은 상처를 입었다.

"예. 능력자 등록증은 자택으로 보내드리겠습니다. 병원에 가시지 않아도 괜찮겠습니까?"

"됐어요. 놔두면 알아서 나으니까."

"알겠습니다."

"그럼 갑니다."

인사를 한 강현이 집으로 향했다.

옷의 먼지, 살점들을 털어내던 그가 인상을 구겼다,

"시벌... 이래서는 지하철도 못 타겠네."

입고 있는 것은 이미 옷이 아니라 거적때기라 불러야 할 정도였다.

"형! 어디 가요?"

어느새 다가온 안유성이 강현을 불렀다.

"집."

"저랑 같이 가실래요?"

"뭐?"

갑작스러운 안유성의 권유에 강현이 그를 빤히 바라봤다. 딱히 다친 곳은 없어 보이지만 옷을 짜면 핏물이 흐를 것 같은 모습.

"너랑 같이 가면 다음 날 뉴스에 나오는 것도 무리는 아니겠네."

"예?"

"꺼져."

"에이~ 왜 그래요. 저 기사님 불렀으니 같이 가죠. 태워다 드릴게요."

"기사님..?"

안유성의 말대로 얼마 지나지 않아 고급 세단이 그들의 앞에 멈춰 섰다.

"도련님 타시지요."

나이 든 남자가 운전석에서 내리며 공손하게 뒷좌석을 열었다.

"타요! 제가 형 집까지 모셔다 드릴게요."

"너 이 새끼! 금수저였구나?"

강현은 괜히 배알이 꼴렸지만, 집까지 갈 방법이 없었다.

어쩔 수 없이 차에 올라탔다.

-부우웅...

묵직한 엔진음과 함께 차가 미끄러지듯 앞으로 나아갔다.

"건우동 이라 했죠?"

"그래. 그 근방에만 내려줘 알아서 갈게."

피곤했던 강현이 대화를 끊고 눈을 감았다.

"그런데..."

"예? 왜요?"

강현은 그대로 고개조차 돌리지 않고 태연하게 말했다.

"왜 나한테만 살갑게 대하면서 따라다니냐?"

"그러면 안 돼요?"

"어. 내가 이유를 알기 전까진 안 돼."

어느새 눈을 뜬 강현이 차가운 눈빛으로 안유성을 노려봤다.

"형이랑 다니면 재미있을 것 같거든요."

"재미있을 것 같아서 따라다닌다고? 그 말을 지금 믿으라는 거냐."

"진짜인데..."

안유성은 정말 억울한 표정을 지었다.

"그것 말고 다른 이유 대봐."

"흐음... 일단 형은 강하죠."

"너도 만만치 않은 것 같던데."

"에이, 아직 형한테는 안 되죠."

무슨 근거로 하는 말인지는 모르겠지만 안유성은 확신에 찬 것 같았다.

"그리고? 그게 다야?"

"형이 저랑 닮았으니까."

안유성은 강현이 지금까지 본 사람 중 가장 미친놈이었다.

그런 놈이 자신과 닮았다는 말을 하자 강현의 얼굴이 와락 구겨졌다.

"뭔 개소리야? 내가 너 같은 또라이랑 어디가 닮았다는 거야?"

"크흠..."

강현의 거침없는 말에 운전석에서 헛기침 소리가 들려왔다.

"에이, 형도 알면서."

"몰라. 똑바로 말해."

"눈을 보면 알아요."

눈을 보면 안다.

어째서인지 저 말이 익숙했다.

기억을 더듬자 며칠 전 자신이 김이현에게 찾아간 밤이 떠올랐다.

-그럼 왜 눈을 안 마주치는 거지? 내 눈을 보고 이야기해보지 그래.

자신은 처음 본 그 순간부터 김이현의 눈 속에 담겨있는 권태와 호승심을 볼 수 있었다.

'이 자식도 내 눈에서 뭘 본건가?'

강현이 눈을 가늘게 뜨며 물었다.

"내 눈이 뭐 어떤데?"

"형도 알잖아요. 본인이 미쳤다는 거."

이어지는 안유성의 말에 강현의 눈이 차갑게 가라앉았다.

"무언가를 부수고 싶은 파괴 욕구. 뼈와 살이 부서질 때의 쾌감! 형도 느끼고 있잖아요?"

**

-부우우웅

"하아..."

집 근처에서 내린 강현은 지친 표정으로 걸었다.

안유성의 말이 머릿속에서 계속 맴돌았다.

"개새끼. 사람 착잡하게 만드네."

-띠띠띠띠, 따라란

마침내 도착한 강현이 현관에 비밀번호를 누르고 집 안으로 들어갔다.

"아현이는 아직 안 왔나 보네."

다행이었다.

지금 자신의 모습을 보면 놀랄 수도 있기에 강현이 서둘러 샤워를 하고 피에 젖은 옷을 버렸다.

잠시 후. 집으로 돌아온 아현이 방문을 열었다.

"여! 왔냐!"

해맑게 웃으며 들어오는 강아현의 모습에 강현이 피식 웃었다.

"그래도 오랜만에 보니까 좀 반갑다?"

"조금 있으면 더 반가워질걸?"

강현의 말에 아현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강현이 스마트폰을 확인하자 때마침 2,000만 원이 입금된 것이 보였다.

꽤나 빠른 일처리.

강현이 씨익 웃었다.

"오라버니가 돈 벌어오셨다. 오늘은 소고기 파티 한번 가자!"

21화 던전 공략(1)

21. 던전 공략(1)

햇살이 드는 넓은 사무실에 두 남녀가 마주 보고 앉아 있었다.

-달그락

칠흑처럼 어두운 장발을 하고 있는 여성이 찻잔을 내려놓았다.

"교사 체험은 어떠셨어요?"

"생각만큼 쉽지는 않았습니다."

여성의 말에 마주 앉아 있던 정장 차림의 남성. 김이현이 대답했다.

"큰 사고가 있었다고 들었어요."

"예."

"그리고 눈에 띄는 분들이 계셨다고."

김이현이 복잡 미묘한 표정을 지었다.

"특이한 남자 둘이 있긴 했습니다."

말을 하며 김이현이 눈앞의 여성을 바라봤다.

당장 TV에 나오는 연예인들과 함께 있어도 위화감이 없을 만한 아름다운 미모 소유자. 하지만 그 눈은 한없이 차가운 여성이었다.

"우리에게 도움이 될 만한 사람들인가요?"

그녀의 정체는 바로 한세연. 세간에는 한국의 단 두 명뿐인 튜토리얼 8단계 졸업자로 알려진 여성이었다.

"둘 다 제정신은 아니었습니다. 안유성이란 어린애는 확실히 미쳐있었고, 강현이라는 남자도 정상은 아닌 것으로 보였습니다."

김이현이 찻잔을 들어 목을 축이고는 말을 이었다.

"하지만 확실히 지켜볼 필요는 있을 것 같습니다. 제 생각에... 분명 높은 곳까지 올라갈만한 인물들입니다. 어떤 방식으로든."

"김이현 씨께서 그렇다면 그런 거겠지요."

한세연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혹시 사고에 대해서는 정보가 없습니까?"

"알아보고 있는 중이에요. 아마 던전의 보스를 무시하고 메인 코어를 제거한 것 같은데 누구의 짓인지 알 수가 없군요."

한세연의 입에서 알 수 없다는 말이 나오면 깔끔하게 포기하는 것이 좋다. 김이현은 그저 고개를 끄덕이며 납득했다.

"조직적인 테러로 번질 수 있기 때문에 정부도, 저도 신경을 쓰고 있습니다. 기다려 보세요."

"예. 알겠습니다."

**

"1인분에 3만 원? 미친 거 아냐?"

메뉴판을 확인한 강아현이 눈을 동그랗게 떴다.

"어허, 오라버니가 사준다면 그냥 감사합니다. 하고 먹으면 되는 거야."

"미친놈아. 네가 돈이 어디 있어서 이런 데를 와. 너 뭐 무슨 짓 했어?"

아현이 심각한 표정으로 묻자 강현이 검지를 들어 좌우로 흔들었다.

"쯧쯧쯧, 아직 놀라기는 이르지. 통장 확인해 봐라."

"통장..?"

혀를 차며 거만하게 말하는 강현의 모습에 압도된 아현이 스마트폰 앱을 켰다.

그곳에는 강현이 번 돈의 절반인 천만 원이 입금돼 있었다.

"일, 십.. 백... 천? 천만워언?!"

스마트 폰을 바라보는 아현의 눈이 튀어나올 정도로 눈을 치켜떠졌다.

"조용히 해! 사람들 다쳐본다. 쪽팔려 죽겠네."

"야! 이 돈 뭐야? 바른대로 말해. 너 무슨 짓 했어? 훔친 거야?"

얼른 대답하지 않으면 당장이라도 멱살을 잡을 기세였다.

"아씨. 조용히 하라니까. 정부에서 준 돈이니까 걱정하지 말고 써. 그동안 너한테 신세 진 것도 미안하고... 앞으로도 더 줄 테니까 생활비 걱정은 하지 마."

강현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정부에서 돈을 너한테 왜 주는데?"

"던전 깨서 주는 거니까 딴소리하지 말고 고기나 올려. 불판 뜨거워졌다."

-치이이이

달궈진 불판에 한우가 올라가고, 순식간에 고기의 표면이 노릇하게 구워졌다.

강현이 잘 익은 고기를 소금에 살짝 찍어 아현의 입가에 가져대 댔다.

평소라면 경기를 일으킬 만한 행동이었지만, 어째서인지 아현은 말없이 입을 벌렸다.

"흡... 흑..."

고기를 받아먹은 아현이 갑자기 눈물을 흘리기 시작했다.

"야. 뭐야? 왜 울어? 고기가 그렇게 맛있냐? 얼마나 맛있으면 눈물까지 흘려!?"

강현이 호들갑을 떨며 다급하게 젓가락을 입으로 가져갔다.

"흑, 흐윽..."

"쩝쩝, 울만하네... 맛있다.. 흑흑."

강현이 고기를 씹으며 과장되게 우는 시늉을 했다.

"그거 때문에 우는 거 아니거든!"

"아니 그럼 왜 우는데, 돈 받은 게 그렇게 좋냐?"

"그래! 좋다! 내가 얼마나 걱정했는데... 흐아앙!"

결국 눈물 콧물을 짜내며 아현이 서럽게 울음을 터뜨렸다.

"아니 이년이 왜 이래?! 고기 잘 처먹으면서 울고 지랄이야."

"월급은 쥐꼬리만 한데, 모아둔 돈도 다 떨어져 가고! 오빠라는 인간은 집에서 하루 종일 게임만 쳐하는데 내가 걱정이 안 되겠냐?!"

아현이 지금까지 담아왔던 서러움을 다 토해내겠다는 듯이 쉬지도 않고 말했다.

"엄마, 아빠도 어려운데 손 벌릴 곳도 없고 얼마나 힘들었는데!"

"야. 미안하다고... 앞으로 용돈도 많이 주고 할게."

"얼마나 줄 건데..."

울먹이면서도 돈의 액수를 물어보는 모습에 강현은 기가 찼다.

"하, 한 달에 50만 원 이상 줄게!"

"정말이지..?"

"그래. 더 벌면 훨씬 많이 줄 수도 있고. 그러니까 일단 고기 먹자. 소고기는 많이 익히면 맛없는 거 알지?"

"알겠어..."

울음을 그친 아현은 고기를 몇 점 집어 먹자 금세 진정했다.

어느 정도 시간이 흐르자 남매는 술까지 시키고는 수다를 떨기 시작했다.

"진짜 나는 비교도 안 되는 또라이였다니까? 걔에 비하면 나는 그냥 천사야. 천사."

"푸훕, 거짓말하네. 그런 스무 살이 어디 있냐."

"아니, 고등학교 졸업은 했는데 빠른 이라서 아직 열아홉 살이라고. 어쨌든 그 새끼는 리얼이야. 조만간 뉴스에 크게 나올 놈이라고."

"지랄."

"그런 놈이 '형도 저랑 똑같잖아요.' 하면서 소름 끼치게 말하는데…."

강현은 아현에게 교육 학교에서 있었던 사건과 안유성에 대한 이야기를 해주며 자신의 억울함을 토로했다.

"걔가 맞는 말 했네."

"뭐?! 이게 오빠한테…."

아현과 강현은 서로 소리치며 화를 내고 짜증도 냈다.

하지만 그날 밤만은 웃으며, 편안하게 하루를 보낼 수 있었다.

**

며칠 뒤, 강현의 능력자 등록증이 도착했다.

"이제 본격적으로 돈을 벌어야지."

등록증이 있으면 합법적으로 던전에 들어갈 수 있다.

강현은 당장이라도 뛰쳐 들어가고 싶었지만 참았다.

"우선 레이더를 확인하자."

'레이더(Raider)'

거의 모든 능력자들이 애용하는 커뮤니티 사이트였다.

전국에 위치한 던전의 정보를 실시간으로 업데이트하고, 각 던전을 공략하기 위한 공략대(파티) 모집이 이곳에서 이뤄진다.

아직 만들어진지 두 달도 되지 않은 사이트였지만, 가파르게 이용자 수가 늘어나 이제는 정부 공식 인증 사이트가 되었다.

"보자, 근처에 위치한 F급 던전이... 여기 있네."

F등급 던전. 타란크의 부화장.

"타란크.. 타란크? 어디서 많이 봤는데? 아!"

약 두 달 전. 동시다발적으로 던전이 개방되며 몬스터 웨이브가 일어난 그날.

아현을 구하기 위해 뛰쳐나갔던 강현은 고블린 외에 또 다른 몬스터를 마주했었다.

"그 거미새끼들!"

강인한 턱과 날카로운 다리 그리고 입에서 독을 쏘아대는 몬스터를 떠올린 강현이 던전의 상세 정보를 확인했다.

타란크의 부화장 : 습한 동굴의 폐쇄형 던전. 다수의 새끼 타란크와 유충이 등장한다.

타란크는 성체가 되면 상당히 위협적이지만 그 이전에는 충분히 초보 능력자들도 공략이 가능하다.

던전의 보스는 어미 타란크로 본신의 능력은 약하지만 주위에 몇몇 성체 타란크와 어마어마한 수의 새끼 타라크들이 지키고 있기 때문에 공략이 쉽지 않다.

여러모로 보나 F급 최상위에 위치한 던전.

산성액을 내뿜는 까다로운 적이 다수로 등장하기에 장비를 갖추고 조합이 잘 갖춰진 대규모 파티로 도전하는 것을 권장한다.

"생각보다 자세히 설명돼 있네."

던전 설명 아래쪽에는 현재 공략대를 모집하고 있는 글이 보였다.

[13일 타란크의 부화장 노말 코어 공략대 18/20]

-안전을 최우선으로 총 20명이 모여 공략할 예정입니다. 코어 정산은 인당 50만 원으로 얼마 되지 않지만 많은 수의 적이 나오기에 인당 50만 원 정도의 추가 수입이 있을 거라 예상합니다.

현재 던전의 코어 위치가 알려진 상황이기 때문에 예상 공략 기간은 4일~5일입니다.

참여 신청은 비공개 댓글로 올려 주시고 연락처도 함께 적어주시기 바랍니다.

"역시 처음부터 혼자 하는 것보다는 같이 다니면서 배우는 게 낫겠지?"

고민하던 강현이 댓글을 올려 신청을 했다.

-우우웅, 우우웅.

얼마 후. 강현의 스마트폰에 낯선 번호로 전화가 왔다.

"여보세요."

-강현 씨 맞으세요?

"네."

전화 너머로 제법 나이가 있어 보이는 남성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반갑습니다. 저는 김안성이라고 합니다.

이번 공략대의 대장 김안성은 강현에게 먼저 회복 스킬을 가지고 있는지 물었다.

-아... 그러니까 본인 회복만 가능하시다는 거죠?

"예."

어쩐지 떨떠름한 목소리였다.

-실례지만 레벨이 어떻게 되시나요?

"저 15입니다."

-좋습니다. 그럼 탱커 포지션으로 부탁드리겠습니다.

아직 던전이 생겨난 지 얼마 되지 않았기 때문에 회복 스킬을 가진 사람은 거의 없었다.

이 공략대에서 힐러 포지션이 절대적으로 부족한 상황이었다.

그러나 김안성은 강현을 받아들이기로 결정했다.

강현의 레벨이 제법 높았고, 자가 치유까지 있다면 충분히 도움이 될 거라 판단했기 때문이다.

"따로 챙겨가야 할 건 없나요?"

-필요한 물품들은 문자로 보내드리겠습니다.

"예."

-아시다시피 아이템 외에는 인벤토리에 넣을 수 없기 때문에 커다란 배낭이 필요하실 겁니다.

"알겠습니다."

통화를 종료한 강현이 잠시 후 떠오른 문자 내역을 보며 필요한 물품을 체크했다.

"침낭이랑 1주일 치 식량. 그리고…."

"야!"

그때 갑자기 방문이 열리며 아현이 뛰어 들어왔다.

"왜?"

"이거 너지?"

그러면서 아현이 스마트폰을 들이밀었다.

-건우동 고블린 슬레이어 근황

제법 익숙한 이름이었다.

"이게 뭐야?"

"이거 너 맞지? 그리고 능력자 교육 학교에서 던전 클리어한 거 사고라고 뉴스 떴더라. 왜 똑바로 이야기 안 했어."

아현의 말을 흘려들으며 강현이 사진을 유심히 살폈다. 검붉은 빛을 띠는 빌게인의 장검을 든 것이 확실히 자신이었다.

-이번에 성남시에서 있었던 사고를 해결한 장본인, 역시 클라스는 어디가지 않는다.

"나인 건 맞는데... 뒷모습만 보고 어떻게 아는 건데?"

사진과 함께 올라온 짧은 본문을 보며 강현이 의문에 휩싸였다. 일단 스크롤을 내려 댓글을 확인하기로 했다.

-이것만 보고 본인인지 어떻게 아냐?

-다른 사진도 있음. 이미 비교 분석 글 다 올라왔다.

-얘들아 머리를 굴려라. 건우동 학살남 뜬 게 두 달 전인데 저기는 신입들 교육받는 곳이다.

-이새끼는 능알못 인증하네. 현재 교육 대기자 10만 명 넘는데 충분히 지금 교육받을 수도 있지.

-저 정도 클라스면 조교나 교육 담당일 수도?

-ㅇㅈ 들리는 말로는 고작 세 명으로 보스 조졌다고함

-세 명에서? ㄷㄷㄷ

-아니 건우동 고블린 슬레이어가 뭡니까?

-링크 http….

계속해서 댓글을 확인하던 강현의 눈에 익숙한 이름이 들어왔다.

-그래도 한세연이나 최동우랑 비비기는 힘들겠지?

-안돼. 거긴 천외천임. 월드 클래스는 돼야 비비지.

댓글을 확인한 강현의 이마에 힘줄이 돋았다.

"할 짓이 이렇게 없나?"

"야. 요즘 인터넷 최고 관심사가 능력자라고. 이 정도는 당연하지."

지금 인터넷에서는 '어떤 능력자가 새로 등장하는가', '가장 강한 능력자는 누구인가' 따위가 최대의 관심사였다.

이미 그것과 관련된 커뮤니티 사이트, 카페들이 생겨나고 있었고 심지어 능력자들의 전투 능력을 분석해 랭킹까지 게시하는 사이트도 있었다.

"여기 이것 봐. 너도 랭킹에 올라가 있어."

-1위 최동우

-2위 한세연

27위 건우동 고블린 슬레이어

아현이 내민 랭킹은 총 100위까지 존재했다. 강현은 27위에 위치해 있었다.

"이딴 신빙성 없는 자료는 왜 만드는 거야?"

"재미로 하는 거지 뭐. 조회수도 올리고."

내심 본인 정도면 한국에서 한 손 안에는 들어가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가지고 있던 강현은 기분이 상했다.

"에휴, 부질없다. 준비나 해야지."

"준비? 무슨 준비?"

"3일 뒤에 던전 들어가거든."

22화 던전 공략(2)

22. 던전 공략(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