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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7화 [Episode 12] 구원자 (5)

항상 있어왔던 고통의 감내 이후에는 언제나 그래왔듯 영역 내의 몬스터들은 경험치로 만들고, 사람들에게는 시민권을 부여했다.

이번 레벨업은 뼈대인 길이 확장되는 것이 아닌 돔 형태의 범위가 넓어지는 것이었기에, 별채의 영역 또한 한 번에 넓어졌다.

여기까지는 일반적인 레벨업 과정과 완전히 동일했다.

한 가지 다른 점은.

[던전이 발견되었습니다.]

[최초로 던전을 발견하였습니다.]

[보상으로 크리스탈 100개를 획득합니다.]

늘어난 영역 안에서 던전이 발견되었다는 것이다.

'보상으로 크리스탈이 나왔다는 건, 크리스탈과 관련이 있는 곳이라는 이야기인데'

던전이 발견된 지역은 아파트 단지 뒤쪽의 황령산 중턱 부근이었다.

'이준혁 파티를 보내봐야겠어.'

그를 포함해 그가 이끄는 모든 파티원들과 종속의 계약을 맺으면 충분한 전력이 될 것이다.

영역이 넓어지며 구호팀이 활동하고 있는 반경도 모두 영역 안으로 들어왔으니, 이제는 사냥 팀을 붙여둘 필요가 없었다.

절대자의 눈을 사용해 이준혁 파티를 바라봤다.

그들은 골목길 전체에 넓게 퍼져 있었는데, 갑작스럽게 전투가 끝나버린 듯한 분위기를 풍기고 있었다.

아무래도 레벨업 과정에서 새로 편입된 영역 안이다 보니 사냥하던 몬스터가 내 영향력에 의해 쓸려나간 모양이었다.

얼떨떨해하는 이준혁을 향해 말했다.

[준혁씨. 파티원들을 이끌고 저를 찾아와주세요.]

"예, 알겠습니다."

이준혁은 별다른 의문 없이 파티원들을 소집해 아파트 단지로 복귀하기 시작했다.

그들의 동향을 살피는 동안에도 하동건 파티를 향한 시야는 계속해서 유지되고 있었다.

하지만 딱히 내가 도와줄 일이 없었다.

전체적인 능력이 업그레이드 된 하동건 파티는 이제 자력으로도 몬스터 떼를 돌파할 실력을 지니게 된 것이다.

더군다나 그 영역에서 군림하던 우두머리인 트윈 헤드 오우거를 제거했으니 그 이후는 일사천리였다.

하동건 파티는 어느새 한 아파트 단지를 향해 움직이고 있었다.

하동건, 강덕수, 김 건의 가족들이 모여 있다던 그 아파트 단지의 브랜드명이 보였다.

벌써 목적지에 도착한 것이다.

그러나.

"취익!"

아파트 단지 입구로 들어가자마자 그들을 반겨준 것은 생존의 가능성이 아닌 새까만 피부를 가진 오크 떼였다.

그것들은 그냥 오크들과는 차원이 달랐다.

무기라고는 글레이브가 전부였던 전포역의 오크들과는 달리 하나하나가 개성 넘치는 무기를 가지고 있었다.

창, 활, 검, 도, 망치, 도끼 등.

다양한 무기와 더불어 그들의 전신에 수놓아져 있는 붉은 문신들은 한 눈에 봐도 놈들이 보통 몬스터가 아니라는 것을 말해주었다.

더불어 그들의 레벨은.

「블랙 오크(Lv. 31)」

가장 약한 오크조차 30레벨 초반, 전포역의 우두머리였던 오크 족장보다도 강력한 레벨이었고,

「블랙 오크 전사(Lv. 35)」

갑옷을 갖추어 입은 오크들의 레벨은 그보다 한 술 더 뜨고 있었다.

게다가.

"취익?"

"취익!"

그 숫자가 자꾸만 늘어나는 중이었다.

정문 바로 앞에 있는 지하 주차장에서 쏟아져 나온 블랙 오크들의 숫자만 수십 마리가 넘어가고 있었다.

그것이 의미하는 바는 자명했다.

빠득

바로, 이곳에 남아 있는 생존자가 거의 없을 거라는 것.

그리고 그것은 하동건, 강덕수, 김 건의 가족들이 모두 저 괴물들에게 죽임을 당했을 가능성이 높다는 소리였다.

"일어나라!"

강덕수의 분노에 찬 외침 속에서 강철의 기사 10기가 솟아났다.

"저것들을 쳐죽여!"

기사들은 명령을 충실히 이행했다.

서걱!

용감하게 돌격한 기사들이 블랙 오크들을 향해 할버드를 휘둘렀다.

"크웍!"

[블랙 오크(Lv. 31)를 사냥하셨습니다.]

[블랙 오크(Lv. 32)를 사냥하셨습니다.]

실제로 그것들의 용감한 돌격은 성과를 만들어냈다.

말단 오크 두 마리를 잡아내는 데 성공했으니까.

그러나.

"취익!"

콰직! 콰가각!

뒤이어 나선 블랙 오크 전사들에게 맥을 못 추고 나가 떨어졌다.

그들의 할버드는 블랙 오크 전사들의 갑옷을 뚫지 못했지만, 블랙 오크 전사들의 공격은 은빛 갑옷을 우그러뜨렸다.

지금까지의 몬스터들과는 전혀 다른 결과.

그만큼 놈들이 강력하다는 뜻이었다.

'어쩐지 이 주변만 몬스터들이 깨끗하더라니'

그 많던 해양 몬스터가 이 근처에는 코빼기도 보이지 않는 게 이상하다 싶었는데, 저것들에게 모조리 사냥당한 듯 했다.

한 차례 공방을 주고받은 강철 기산단과 오크 무리는 서로를 견제하며 팽팽한 긴장감이 흘렀다.

그때였다.

콰아아아앙!

검은 기운을 머금은 창이 오크들의 중심에 떨어지며 대폭발을 일으켰다.

하동건이 무미건조한 눈으로 그 모습을 바라보며 조용히 읊조렸다.

---

"전투 개시"

전투의 개막을 알린 폭발과 함께 난전이 시작되었다.

가장 적극적인 것은 역시나 하동건, 강덕수, 김건 세 사람이었다.

타앙!

김 건의 권총이 계속해서 불을 내뿜었고, 강철의 기사들은 갑옷이 우그러지고 찢어지면서도 할버드를 휘둘렀고, 하동건은 창을 던지는 것만으로는 만족할 수 없었는지 직접 오크 무리를 향해 달려들었다.

"축복!"

그와 동시에 김다정의 축복이 하동건의 몸에 깃들었다.

단지 분노에 눈이 멀어서 나온 행동은 아니었다.

블랙 오크들은 기본적으로 레벨이 높은 데다 날렵했다. 창을 던지는 족족 피해버리니 이렇다 할 피해를 주지 못했기 때문에 직접 달려든 것이었다.

카가각!

동시에 하동건은 강덕수가 소환한 강철의 기사들을 백분 활용하고 있었다.

그들에게 어그로가 끌려 있는 것들의 허를 찌르며 차근차근 전공을 늘려갔다.

검은 기운이 폭발하며 블랙 오크 한 마리의 옆구리가 터져나갔다.

[블랙 오크(Lv. 31)를 사냥하셨습니다.]

[경험치를 획득합니다.]

[집구석 절대자의 지갑에 731,093,221 원이 입금되었습니다.]

그간의 사냥으로 38레벨까지 치솟은 하동건은 그에 걸맞는 움직임을 보여주고 있었다.

게다가 신뢰의 힘과 남작 등급의 버프 덕에 몇 배는 더 강력한 신체 능력을 발휘하는 상황.

겨우 블랙 오크 말단이 버텨낼 재간이 없었다.

"크르릉!"

한쪽에서는 오언주가 날뛰고, 김가영, 김 건, 문병호의 엄호사격까지 더해지니 화력 면에서는 하동건 파티가 블랙 오크들을 월등히 앞서고 있었다.

그러나.

카가각!

"칫."

말단 오크들이 아닌 전사 계급이 나서기 시작하자 일방적이기만 하던 판도가 흔들리기 시작했다.

'창고 소환, 탄두'

푸슉!

결정적인 순간마다 나의 보조로 인해 위기를 헤쳐 나가고는 있었지만, 바꿔 말하면 내 보조가 없었다면 위험한 외줄타기가 계속되고 있단 소리였다.

결국.

서걱!

섬뜩한 소리와 함께 하동건의 오른쪽 어깨가 깊게 패였다.

"크윽."

그 나름대로 최선을 다했지만, 수적 열세는 어찌 할 수 없었다.

한쪽을 막아서면 다른 한쪽에서 공격이 날아왔다.

"힐!"

곧바로 김다정의 힐이 들어오며 상처는 회복되었지만, 이 싸움의 미래가 그리 밝아보이지는 않았다.

지하 주차장 밑에서 끝도 없이 밀려 나오는 오크들.

열댓마리를 죽였지만, 그보다 많은 숫자의 오크가 보충된 것이다.

게다가 오크들이 들고 있는 병장기는 칼이나 창이 전부가 아니었다.

쐐애애액! 푸욱!

"꺄아악! 다정아!"

오크의 화살이 하동건 파티의 가장 약한 부분, 김다정의 배를 꿰뚫었다.

화살이 박힌 상태였으니 힐을 써도 소용이 없었다.

이제부터는 김다정의 힐을 기대할 수 없다는 의미였다.

자체적인 재생력이 충만한 오언주라면 어느 정도 버틸 수 있어도 하동건은 아니었다.

그리고 부상을 당한 하동건이 전투에서 빠지게 되면 싸움의 무게추는 급격하게 기울어질 것이다.

이것은 이미 시작부터 끝이 정해져 있던 전투였다.

도망치려면 지금이 마지막 기회였다.

그러나 하동건은 쉽사리 명령을 내리지 못하고 있었다.

"으아아악!"

평소 그라면 보여주지 않을 처절한 모습을 보니 내 마음이 다 아파왔다.

원래라면 도망가라는 명령을 내리는 게 맞겠지만, 쉽게 말할 수 없었다. 그들의 분노에 나 또한 동조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내가 선택한 방법은 그들에게 힘을 실어주자는 것이었다.

'가신 하동건, 레벨업. 40까지'

35레벨부터 40레벨 구간에서 레벨업에 필요한 돈은 10억이었다.

38레벨이었던 그의 레벨을 20억을 들여서 40레벨로 만들어주었다.

동시에.

'김 건 레벨업. 강덕수 레벨업'

32레벨이던 김 건과 강덕수의 레벨도 모두 40레벨로 강제로 끌어올렸다.

백억이 넘는 돈이 들어갔지만, 상관없었다.

지금까지 하동건 파티가 벌어들인 금액은 그 이상이었고, 저 빌어먹을 블랙 오크들을 잡는 것으로 더 많은 수익을 만들어줄 테니까.

"일어나라!"

곧바로 강덕수의 스킬에 변화가 나타났다.

겨우 10기에 불과했던 강철의 기사는 단숨에 30기까지 그 숫자가 불어났고, 그들의 움직임 또한 레벨에 맞게 민첩해졌다.

카가각!

"취익?"

갑옷의 강도 또한 마찬가지.

서걱!

오크 전사를 상대로 처참하게 깨지던 나약한 모습은 온데간데없이 이제는 놈들을 압도하기 시작했다.

30기의 강철의 기사가 강덕수의 분노를 사방으로 흩뿌렸다.

[블랙 오크 전사(Lv. 35)를 사냥하셨습니다.]

[경험치를 획득합니다.]

[집구석 절대자의 지갑에 1,023,322,854 원이 입금되었습니다.]

더불어 김건의 까마귀들에게도 변화가 생겨났다.

-까아악!

위협적으로 비행하며 활을 든 오크들을 집중공략 했다.

날카로운 발톱과 부리가 그들을 상처입히고 있었다.

김다정을 노리던 오크 궁수들은 어쩔 수 없이 자신들을 위협하는 까마귀들을 향해 활을 쏘아야 했다.

그러는 동안.

푸슉!

김가영의 빛의 화살이 블랙 오크 궁수의 머리를 꿰뚫었다.

'김다정은 어떻게 됐지? 전선에 복귀할 수 있나?'

김가영의 도움으로 간신히 화살을 빼낸 김다정은 자신의 배를 부여잡은 채 헐떡거리고 있었다.

힐을 사용할 여력이 없는 모양이었다.

'김다정 퀘스트 부여, 퀘스트 보상 완전 회복.'

아무런 내용이 없는 퀘스트를 부여하자 곧바로 퀘스트 보상이 적용되었다.

[시민 김다정이 퀘스트를 완료했습니다.]

[퀘스트 비용 100,000,000 원이 소모됩니다.]

자신의 배를 치유하던 김다정의 컨디션이 완전회복 되었다.

그리고 동시에.

'김가영, 문병호, 김다정 레벨업'

나머지 멤버들의 레벨도 모두 40레벨로 맞추었다.

또 다시 100억이 넘는 돈이 들어갔지만, 전혀 아깝지 않았다.

타앙—!

기습적으로 등장한 문병호가 오크 궁수의 머리를 날려버렸다.

[블랙 오크 궁수(Lv. 36)를 사냥하셨습니다.]

[경험치를 획득합니다.]

[집구석 절대자의 지갑에 1,243,234,460 원이 입금되었습니다.]

그보다 많은 돈이 떼로 들어오고 있었으니 아까워 할 새가 없었다. 돈이 나가는 만큼 하동건 파티는 모두 제 역할을 다 해 주었다.

'그렇다면'

지금까지 그들이 벌어들인 돈으로 넓어진 영역을 수복하는 데 사용하고, 사람들이 사용하는 전기와 가스, 수도를 감당하고, 새로운 시설들을 건축하는 데에 사용해왔다.

여기서 만큼은, 적어도 여기서 벌어들이는 돈 정도는 하동건 파티를 위해 사용해도 괜찮지 않을까.

블랙 오크들을 상대로 가장 효율 좋은 싸움을 하는 이들은 세 명.

'하동건, 오언주, 강덕수 45레벨로 끌어올려'

44레벨이었던 오언주에게는 30억, 그리고 이제 막 40레벨이 됐었던 하동건과 강덕수에게는 총 150억의 투자가 이루어졌다.

45레벨.

이들이 아까 만났던 트윈 헤드 오우거와 동급의 수준이라는 소리다.

그런 괴물이 무려 셋.

그들이 날뛰자 오크들이 무더기로 죽어나가기 시작했다.

"크워어어억!"

"카아아악!"

"취이이익!"

궁지에 몰린 오크들이 마지막 발악을 시작했다.

전신에 퍼져있던 문신들이 붉은 빛을 내뿜으며 그들의 근육이 터질 것처럼 부풀어 올랐다.

오크들 중에서도 오크 전사들만이 자신들의 문신에 담긴 힘을 개방할 줄 알았다.

"크으으윽!"

「블랙 오크 전사(Lv. 37)」

실시간으로 레벨이 올라갈 정도의 변화였다.

그러나.

푸확!

갑옷의 틈새로 찔러 넣은 하동건의 창 끝에 서린 검은 기운이 폭발하며 오크의 머리를 날려버렸다.

[블랙 오크 전사(Lv. 37)를 사냥하셨습니다.]

[경험치를 획득합니다.]

[집구석 절대자의 지갑에 1,323,546,574 원이 입금되었습니다.]

30기의 강철의 기사단이 조직적으로 움직이며 광폭화 중인 오크들의 숨통을 끊어나갔다.

"크륵!"

콰직!

오언주는 강화된 신체 능력으로 놈들의 갑옷 째 찢어버리고 있었다.

하동건 파티 중에서 친절하게 그들의 각성을 기다려주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잠시 후.

전장에 두 발을 딛고 서 있는 것은 하동건 파티 일행 뿐이었다.

058화 [Episode 12] 구원자 (6)

전투에서 승리했지만, 그 누구도 기뻐하거나 미소 짓는 이들이 없었다. 하동건 파티는 그저 조용히 전후 정리를 한 뒤 아파트 단지 안으로 진입했다.

아파트 단지 내부의 광경은 처참했다.

특히 저층 부근은 베란다 창문이 박살이 나 엉망이 된 내부가 훤히 들여다보였다.

어지럽게 널려 있는 유리 조각과 엉망이 되어버린 실내, 그리고 그곳에 있는 핏자국은 그곳에서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인지를 말해주고 있었다.

묘한 것은 아파트 베란다 창문 중에 멀쩡한 것들이 없다는 점이다.

'한 층씩 창문을 깨면서 올라간 건가'

그나마 철로된 현관문이 있어서 희망을 가졌는데, 고블린 보다도 신장이 훨씬 큰 오크들이 아파트 벽을 타고 베란다 창가 쪽으로 침입한 흔적이 역력했다.

하동건은 그것들을 무표정하게 바라보았다.

투둑툭

비가 한 방울씩 내리기 시작했다.

하늘에 먹구름이 끼여 날씨가 심상치 않다 했는데, 이내 소나기가 퍼붓기 시작했다.

쏴아아아아—

아무도 말이 없었다.

비를 그대로 맞으면서 조용히 하동건의 뒤를 따를 뿐이었다.

그가 106동에 진입했다.

찰칵찰칵

처참하게 박살난 아파트 정문 안으로 들어가니 깨진 유리 밟히는 소리만 요란하게 울려댔다.

오크들의 영향력은 광범위하게 펼쳐져 있었다.

현관문이 아예 없어진 1층 세대만 보아도 얼마나 끔찍한 일이 있었는지를 짐작할 수 있었다.

하동건은 그것들에 눈길 한 번 주지 않고 비상구 계단을 묵묵히 올라갔다.

그렇게 10층에 도달했을 때, 하동건은 엉망진창인 복도에서 걸음을 멈추고 1001호의 현관문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손잡이가 있는 부분이 우그러지고, 박살이 나 있었다. 그것은 문으로서의 제 기능을 완전히 상실해버린 상태였다.

끼이익

그저 손으로 잡아끄는 것만으로도 쉽게 열리는 문.

이곳에서 무슨 일이 벌어졌을지, 문이 부서지는 동안 안에 있던 사람들이 얼마나 공포에 떨었을지.

"동건아."

김가영이 하동건의 손목을 붙잡았지만, 하동건은 천천히 뿌리치며 기어코 집안으로 들어갔다.

붉은 발자국.

바닥 곳곳에 선명하게 찍혀 있는 붉은 발자국들은 블랙 오크들의 것이 분명했다.

집안은 난장판이 되어 있었고, 거실 한 쪽에는 핏자국이 존재했다.

저항의 흔적인지 거실 중앙에 식칼 하나가 덩그러니 떨어져 있었다.

한동안 그것을 지긋이 내려다보던 하동건은 붉은 발자국들을 따라 안방으로, 작은 방으로, 화장실로 천천히 걸어 다녔다. 집 전체를 돌아봤고, 무표정한 얼굴을 그대로 유지하며 말했다.

"나가자."

여기가 누구의 집인지는 말하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시체는 찾아볼 수 없었지만, 거실과 방 곳곳에 묻어 있는 핏자국이 누구의 것인지 굳이 확인하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그럼에도 하동건의 얼굴에서는 아무런 감정도 찾아볼 수 없었다.

"동건아...."

"난 괜찮아."

그가 울지 않기 때문일까, 김가영이 대신 울음을 터뜨렸다.

"차라리 울어 이 바보야."

"이미... 예상하고 있던 일이야."

하동건은 자신의 품에 안긴 김가영의 등을 두드려주고는 말했다.

"가자."

다른 곳의 상황도 그리 다르진 않았다.

강덕수의 집도, 김 건의 집도 현관문이 열려 있는 채였다.

세대수가 그렇게 많지 않은 아파트단지이기 때문일까, 예외가 없었다.

다만 두 사람의 경우 집안에 핏자국은 없었다. 그것이 유일한 희망이었다.

마지막으로 자신의 집을 확인한 김 건이 입을 열었다.

---

"그렇죠. 이게 현실이죠, 보통은."

하동건은 무표정했고, 강덕수와 김 건은 허탈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그들은 김가영 때와는 달리 함께 슬퍼할 가족조차도 없었다.

철저하게 세상에 혼자로 남겨진 것이다.

허탈한 표정을 짓는 김 건과 강덕수를 향해 하동건이 말했다.

"아직 희망을 버릴 필요는 없어. 어딘가에 살아계실지도 모른다."

그 말을 한 것이 다른 누구도 아닌 하동건이었기에, 그들은 아무런 대답도 하지 못했다.

희망이라도 있는 그들의 상황이, 하동건의 상황보다는 나았으니까.

김건이 말했다.

"잘 모르겠어요.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하는 건지.."

하동건의 대답은 간단했다.

"그래도 살아야겠지."

그렇게 말한 뒤, 그는 무표정한 얼굴로 나를 찾았다.

"재현님. 혹시 계십니까?"

[네, 여기 있습니다.]

"죄송하지만, 저희들 좀 불러주실 수 있으십니까? 조금... 쉬고 싶군요."

[알겠습니다.]

가신 소환을 사용해 그들을 모두 불러들였다.

지이잉—

하동건 파티의 등장과 동시에 공기가 무겁게 내려앉는 듯한 착각이 들었다. 절대자의 눈으로 보기만 했던 것과는 분위기부터가 달랐다.

그들이 느끼는 절망감이 공기를 타고 전해져왔다.

그나마 가족이 무사한 문병호와 김가영은 죄인처럼 얼굴을 숙이고 있었다.

나도 마찬가지였다.

내가 욕심을 부려서 너무 늦은 게 아니었을까.

만약에 조금만 더 일찍 그들의 가족들을 구하러 갔었다면, 구할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그런.

"그럼 쉬러 가보겠습니다."

하동건이 내게 대표로 고개를 숙이고 떠나려던 그때였다.

나는 그들을 향해 말했다.

"죄송합니다."

내가 사과하자 하동건 파티의 시선이 모두 내게 집중됐다.

"제 탓입니다. 제가 너무 욕심을 부린 탓입니다."

따지고 보면 나는 그렇게까지 발버둥 칠 필요가 없었다.

부모님은 당신들의 능력으로 알아서 이곳으로 찾아오셨고, 할아버지도 좋은 능력을 타고나서 충분히 잘 버티고 계셨으니까.

내가 찾으러 가지 않았더라도 모두 무사히 잘 계셨을 것이란 소리다.

그리고 시간이 지나면 가족들의 무사함을 확인할 수 있었겠지.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저 때문에.."

"재현님 탓이 아닙니다."

하동건이 내 말을 끊으며 말했다.

"재현님께서는 저희들의 구원자이십니다."

"..네?"

"저희들을 포함해서 여기 있는 사람들은 모두, 재현님의 능력에 의해 구원받은 사람들입니다."

하동건은 힘 있는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먹을 것 걱정 없이, 마실 물 걱정 없이, 몬스터 걱정 없이 있을 수 있는 것은 모두 재현님의 힘 덕분입니다. 저희가 처음에 병호네 할머님을 구하러 갈 수 있었던 것도, 가영이네 부모님을 만나러 갈 수 있었던 것도 재현님이 내려주신 축복이 아니었다면 불가능했을 겁니다. 그리고....."

순간 하동건의 목소리가 약간 흐트러졌다.

그 작은 틈에서, 그가 얼마나 깊게 슬퍼하는지, 그가 지금 멀쩡해 보이기 위해 얼마나 이를 악물고 참고 있는 것인지가 느껴져서 마음이 아팠다.

하동건은 다시금 아무렇지 않다는 목소리를 가장해 말했다.

"저희들이 가족들의 생사를 간접적으로나마 확인할 수 있는 일도 없었겠지요. 놈들에게 복수를 할 기회도 없었을 겁니다. 거기 있던 몬스터들의 수준은 평범한 저희들의 힘으로는 도저히 감당할 수 없는 종류의 것이었으니까요."

하동건은 담담하게 말을 이어 나갔다.

"세상에 슬픔이 너무 많습니다. 그러나 그것들은 누군가를 노리고 찾아간 것이 아니라, 그냥 흩뿌려진 물처럼 아무렇게나 뿌려진 것일 뿐입니다. 그 모든 것들을 재현님이 책임 지실 필요는 없습니다. 이것은 세상이 잘못한 것이지, 재현님이 잘못한 것이 아니니까요."

그는 생각보다 더 단단하고 성숙한 사람이었다.

나 같은 사람보다 훨씬 더.

"너무 많이 짊어지려 하지 마세요. 재현님은 그저 거대한 나무처럼 그 자리에 버텨 주시는 것으로 충분합니다. 할아버님의 능력처럼이요. 마음 놓고 쉴 수 있는 그늘을 만들어주시는 것만으로도 저희는 감사드립니다."

위로를 해야 할 입장은 나인데, 오히려 그에게서 위로를 받을 줄이야.

분명 따뜻하고 친절한 말인데, 어째선지 나는 눈물이 날 것만 같았다.

"...감사합니다."

[시민 하동건의 신뢰도가 올라갑니다.]

[시민 하동건의 신뢰도가 100에 도달했습니다.]

['던지기'를 획득합니다.]

이상했다.

내가 하동건을 신뢰하는 마음이 100이 된 것 같은 타이밍에, 하동건의 신뢰도가 100이 되다니.

"이만 가보겠습니다."

하동건은 고개를 꾸벅 숙이고는 떠나갔다.

"파이팅!"

강덕수가 주먹을 불끈 쥐어 보이며 나를 응원했고,

---

"항상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김 건이 감사인사를 남겼으며,

"힘내세요, 재현님."

"재현님이 아니었다면, 저는 할머니를 구하지 못했을 겁니다."

김가영과 문병호가 나를 응원했고.

"저도 재현님이 구해주시지 않았더라면, 그때 집안에서 죽었을 거예요. 방금 화살에 맞았을 때도 재현님이 저를 구해주셨던 거죠? 제 목숨은 이미 재현님 것이랍니다."

[시민 김다정의 충성도가 100에 도달했습니다.]

[시민 김다정은 이미 가신으로 등록되어 있습니다.]

[가신 보유 한계치가 늘어납니다.]

김다정의 진심이 담긴 말을 받았다.

"저도 마찬가지입니다. 재현님이 아니었다면, 저는 아마 미쳐버렸을 거예요."

마지막으로 오언주의 한 마디까지.

그들은 그렇게 나를 위로하고 떠나갔다.

"하하."

저 사람들과 만나서, 좋은 인연을 맺게 돼서 참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구원자...'

하동건은 나를 구원자라 말했지만, 사실 나는 그런 거창한 이름으로 불릴 자격이 없는 사람이었다.

'지금까지 나는 나를 위해서 움직였을 뿐인데.'

살아남기 위해 움직였고, 가족들을 구하기 위해 발버둥 쳤다.

가신들의 가족을 구하는 것을 도와주었던 것은, 단순히 기브앤테이크일 뿐이었다.

그들이 나를 도와줬으니, 나도 그들을 도와준다는 그런 개념이었다.

내가 아닌 다른 평범한 사람이 이 자리에 있었어도 나와 같은 선택을 하고, 여기까지 왔을 것이다.

그런 내가 구원자라고 불릴 자격이 있을까.

'큰 나무가 되어달라고 했지!'

우연일지 모르지만, 마침 내 이름도 비슷한 뜻이었다.

심을 재, 나타날 현

큰 나무가 되어 많은 사람을 품으라는 뜻에서 지어 주신 이름이라고 하셨다.

'그래'

사실 가족들이 무사한 것을 확인한 나는 길을 잃은 상태였다.

그 뒤에 만들어낸 우리나라를 구해보자는 결심은 그저, 그래야 할 것 같았기 때문에 세운 목표였다. 그냥, 내게 주어진 힘이 너무나도 부담스러워서, 그 정도는 해야 할 것만 같았기 때문이었다.

솔직히 절실하게 원하는 목표도 아니었고, 그것을 위해 최선을 다해 달릴 자신도 없었다.

그저 지금처럼 몬스터들을 사냥하고, 스킬 레벨을 올리다보면 자연스럽게 그렇게 되지 않을까. 전략적으로 별채를 배치하고 영역을 늘려 가면 언젠가 그렇게 되지 않을까 생각했던 것뿐이었다.

하지만.

'한 번 돼 보자!'

하동건이 원하는 큰 나무.

존재하는 것만으로도 수많은 사람들이 쉴 수 있는 그늘을 만드는 그런 나무가 되어보자는 생각이 들었다.

'내 이름처럼!'

못할 게 뭐가 있을까.

벌써 만 명이 넘어가는 사람들이 나를 의지하고 있었다.

그리고.

사람들은 생각보다 강인해서, 자기들끼리 계속해서 발전해나가는 중이었다.

의료팀이 필요하지 않냐며 의사들이 찾아오고, 구호팀에 소속된 이들은 누구보다도 적극적으로 사람들을 구하기 위해 노력했다.

어떤 사람들은 정신적으로 지친 사람들을 위로하고, 함께 모여 가족들을 구하러 가려하며, 이런 열악한 상황에서도 최선을 다해 아이들을 돌본다.

그저 몬스터를 사냥하고 실적을 올리는 것만이 용감하고 능력 있는 게 아니었다.

사람들은 모일수록 저마다 특기를 활용하여 자신이 할 일을 찾아내고, 그것들을 수행하는 것이었다.

'내가 할 일은 그저 그 자리에 가만히 존재하는 것뿐'

가만히 있는 것만으로도 사람들의 구원자가 될 수 있다니?

이런 기회가 또 어디 있을까.

'거창하게 대한민국을 모두 구하겠다는 목표는 버린다.'

아직 부산도 모두 구하지 못한 주제에 대한민국을 구한다는 말은 너무 거창하고 현실감 없었다.

'목표를 수정한다'

대신 커다란 나무가 되어 내 그늘 안에 들어온 사람들이 더욱 확실하게 쉴 수 있는 곳을 만드는 데 집중하기로 했다.

사람들이 알아서 자신들의 장점을 살려 사회에 공헌할 수 있는 기회를 만들어주는 것.

마음 놓고 살아갈 수 있는 시스템이 갖춰진 사회를 만드는 것.

그것이 내가 할 일이라는 확신이 들었다.

'우선 내실을 다지는 것부터 집중해야 해!'

지금 필요한건 몬스터들을 사냥하며 무작정 레벨업 하는 것이 아니었다.

사람들이 진정으로 편히 쉴 수 있는 그늘이 되어주는 게 중요했다.

'김다빈 같은 사람이 더 필요해!'

059화 [Episode 13] 내실 다지기 (1)

♩♪♫♬♯

철컥

현관문을 열자 복도에 옹기종기 모여 있는 이준혁 파티의 모습이 보였다.

"모두 데려오라고 하셔서 다 함께 왔습니다."

이준혁을 포함해서 스물네 명이나 되는 성인남녀가 모여 있으니 복도가 무척이나 비좁아 보였다.

"우선은 장소를 옮기죠."

집안에 들일 수 있는 것은 가신들뿐이다.

일반적인 시민들이 진입 가능한 곳은 현관문 안쪽, 그러니까 신발이 놓여있는 곳까지로 한정되어 있었기에 장소를 옮기기로 한 것이다.

나는 밖으로 나가 우리 집 현관문을 잡은 채로 절대자의 문을 사용했다.

'이준혁이 쓰고 있는 1802호로'

그를 비롯해서 파티의 핵심 멤버라고 할 수 있는 7인이 함께 지내고 있는 곳이었다.

"들어가시죠."

내가 그 안으로 발을 들이니 이준혁이 영문을 모르겠다는 표정을 지으며 물었다.

"방금 장소를 옮기신다고 하시지 않으셨습니까?"

"네. 그래서 옮겼습니다만?"

현관 안쪽으로 들어온 내가 웃어보이자 하나 둘 차이점을 알아차렸다.

"어?"

"이건 우리 집이잖아?"

"뭐야? 어떻게 된 거야?"

[시민 이현찬의 신뢰도가 올라갑니다.]

[시민 이현찬의 충성도가 올라갑니다.]

[시민 신아영의 신뢰도가 올라갑니다.]

[시민 신아영의 충성도가 올라갑니다.]

역시 능력을 보여주는 게 가장 효율 좋게 신뢰도와 충성도를 올리는 방법이었다.

이준혁 파티의 인원들은 그동안 지속적인 접촉으로 충성도를 모두 개방시킨 상태였다.

아무래도 신뢰의 힘이라는 스킬이 있는 이상 사냥 파티의 전력을 빠르게 늘릴 수 있는 방법이었기 때문이다.

웅성거리는 그들을 향해 말했다.

"안으로 들어오시죠."

꽤 넓은 거실이었음에도 스무 명이 넘는 사람들이 들어오니 가득 들어찬 느낌이었다.

이들은 현재 영역 내에서 손꼽히는 사냥팀이었다.

물론 리더인 이준혁의 존재가 컸지만, 그걸 제외하더라도 나머지 23명의 파티원들이 모두 적극적으로 몬스터를 사냥하는 편이었다.

'평균 레벨이 벌써 20대 초반이다'

핵심 멤버인 7명은 전부 20대 후반을 바라보고 있었다.

가장 많은 전공을 쌓은 이준혁의 레벨은 여전히 각성 때와 같은 40레벨이었지만, 레벨이 올라갈수록 성장이 힘든 걸 감안하면 당연한 일이었다. 그들이 평소 사냥하는 몬스터들은 대다수가 18~25정도의 레벨이었으니까.

어쨌든 상대적으로 저레벨이었던 파티원들은 폭발적인 레벨업을 이뤄냈다.

아무리 주변 몬스터 수준이 오르고, 권총을 가지고 있다고 해도 단기간에 이만한 성과를 내기는 쉽지 않았다.

이것은 그들이 그만큼 적극적으로 사냥에 나섰다는 증거였다.

그들을 향해 말했다.

"여러분들에게 제안 드리고 싶은 일이 있습니다."

"말씀하십시오."

"저와 계약을 맺어주셨으면 합니다."

"계약이요?"

"네."

종속의 계약에 대해 간단히 설명했다.

"저에게 충성을 맹세하시면, 각성 능력을 드리겠습니다."

내 말이 끝나자마자 곧바로 격렬한 반응이 나왔다.

"각성?"

"준혁이처럼 될 수 있다는 거야?"

"진짜? 정말로?"

그 직후 격한 대답이 쏟아져 나왔다.

"저요! 제가 하겠습니다!"

"저도 하겠습니다!"

"저는 이미 마음속 깊은 곳에서부터 충성을 맹세하고 있었습니다!"

모두가 긍정적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이들은 강력한 능력자인 이준혁을 가장 가까이에서 지켜본 사람들이었으니까.

"진정하세요. 각성한다고 모두 강력한 능력을 손에 넣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니 신중하게 선택하셔야 합니다."

그때 누군가가 앞으로 나섰다.

"재현님."

이준혁이었다.

"저를 포함해서 여기 있는 사람들은 모두 재현님께 충성을 맹세할 각오가 되어 있는 사람들뿐입니다. 왜냐하면 그게 더 이득이라는 걸 너무나도 잘 알고 있는 약삭빠른 사람들 이거든요."

"맞습니다!"

"옳소!"

장난스럽게 바뀐 분위기 속에서 이준혁이 나를 향해 한쪽 무릎을 꿇으며 고개를 숙여왔다.

"그러니 저부터 계약을 맺어주십시오, 재현님. 충성을 다 하겠습니다."

그러자 주변에 있던 사람들이 장난조로 말했다.

---

"저건 좀 오바 아니야?"

"무릎을 꿇는다고? 저렇게 까지 해야 돼?"

"왜 못해? 난 할 수 있어!"

이내 이준혁을 따라 한쪽 무릎을 꿇는 이들이 나타났다.

"어어? 나, 나도!"

"뭐야. 다 같이 하는 거야? 그럼 좀 덜 쪽팔리겠네."

"이거 몰래카메라야?"

이것으로 모두가 종속의 계약을 받아들이는 게 기정사실이 되었다.

확실히 이들의 분위기는 하동건 파티와는 달랐다.

여기 모인 사람들 중에서도 분명 가족을 잃은 이도 있고, 아직 가족을 찾지 못한 사람들도 꽤 많은 것으로 아는데, 이들은 항상 유쾌하고 자유분방한 분위기를 지향했다.

"재현님 부끄러워하시는 거 같은데?"

내가 약간 부담스러워하는 것을 알아챈 이들이 더욱 더 과장된 톤으로 장난치기 시작했다.

"충성을 다 하겠습니다, 주군!"

"오, 주군 좋다."

"푸핫. 아니, 무슨 사극 찍냐고!"

낄낄거리는 사람들 속에서 나는 쪽팔림을 무릅쓰고 이준혁의 머리에 손을 올리며 말했다.

"그대의 맹세를 받아들입니다."

파아앗!

그 순간 내 몸에서 뿜어져 나온 밝은 빛이 이준혁을 덮쳤다.

그와 동시에 이준혁의 [기사]칭호가 [자작]으로 변화했다. 오언주의 경우처럼 남작을 뛰어넘어 곧바로 자작이 된 것이다.

덕분에 또 가신 등록 제한이 3명이나 증가하게 됐다.

이준혁의 스킬셋은 변화가 없었지만, 하동건 파티가 그랬듯이 스킬의 전체적인 퀄리티가 확 올라갔을 것이다.

그만큼 강해졌다는 소리다.

"오오!"

"대박!"

"방금 빛 봤어?"

워낙 신기한 것을 많이 봐서 그런지 이제는 이런 것으로는 잘 놀라지도 않는 이준혁 파티였다.

"재현님! 다음은 저요! 저부터 해주세요!"

이준혁 파티의 간부급이라고 할 수 있는 신아영이 무릎을 꿇은 채로 손을 들어 자신을 어필해왔다.

"알겠습니다..."

그렇게 한 명 한 명 머리에 손을 올리고 모두 종속의 계약을 맺게 되었다.

예상했던 대로 대부분이 D등급이나 C등급의 능력을 얻게 되었다.

"설병훈씨의 능력은 강타입니다. 일시적으로 파괴력을 3배 증가시켜주는 스킬이네요."

한 명 한 명 직접 각성 능력을 말해주며 자신의 힘에 대해 인지하도록 했다.

"서요한씨는...."

D등급 능력은 단순히 근력을 강화시키거나 시각, 청각, 후각과 같은 감각의 기능을 올려주는 종류의 능력이었다.

이능력이라고 하기에는 조금 아쉬운 부류의 능력들.

하지만 없을 때와 비교하면 전력을 확실하게 증가시켜준다.

C등급부터는 누가 봐도 이능력이라고 인정해줄 능력이 많았다. 불이나 얼음 화살 같은 것을 날리거나 장성준이 얻었던 염력을 얻은 이도 나왔다.

물론 등급이 낮은 만큼 장성준이 가지고 있는 A등급 염력에 비하면 퀄리티가 많이 떨어질 테지만, 무궁무진한 상황에서 활용이 가능하다는 장점이 있었다.

그리고.

'B등급이 셋이나 각성했다.'

이현찬, 신아영, 김지태.

모두 이준혁 파티의 간부급인 사람들이었다.

'약간 알 것 같아!'

표본이 쌓이기 시작하니 어떤 경우에 더 높은 등급의 능력이 뜨는지 알 것 같았다.

B등급 능력이 모두 간부급에서 나온 것은 단순히 우연이 아닐 것이다.

D등급 능력을 각성한 이들이 대부분 10대 후반 레벨을 가진, 파티에서도 가장 낮은 레벨을 가지고 있는 이들에 집중되어 있다는 것을 생각하면 말이다.

'단순히 레벨이 전부는 아니야'

그렇다면 처음 만날 때 겨우 10레벨 초반에 불과했던 장성준이 A등급 능력을 각성하는 일은 없었을 테니까.

'선천적인 무언가가 있다.'

잠재력, 또는 재능이라고 표현해도 되겠지.

'종속의 계약의 한계는 100명뿐'

그러니 앞으로는 최대한 재능 있는 이들과 종속의 계약을 맺는 게 좋을 것 같았다.

'가신 등록. 이현찬, 신아영, 김지태'

우우우웅!

"뭐여?"

"애들 몸에서 빛이 났는데?"

"어? 나 몸이 갑자기 가벼워진 것 같아."

B등급 능력을 각성한 세 사람은 곧바로 가신으로 등록시켰고, [기사] 칭호를 얻으며 스펙업 했다.

나는 이준혁을 향해 말했다.

"준혁씨"

"네, 재현님."

"실은 여러분에게 한 가지 부탁드리고 싶은 일이 있습니다."

"편하게 말씀하십시오."

본론이 나오자 장난스럽던 파티의 분위기가 금세 진지하게 변했다.

유쾌할 땐 유쾌하고, 진지할 땐 진지해질 수 있는 이들.

이준혁 파티는 그런 이들이었다.

"이번에 영역이 넓어지면서 황령산 전체가 영역 안으로 들어오게 됐습니다."

"황령산이라면 저기 뒤에 있는 산 말씀이십니까?"

"네. 그리고 그곳에 던전이라는 게 있다는 것 같군요."

이준혁이 묘한 표정을 지으며 대답했다.

"...던전이라면 제가 생각하는 그 던전이 맞을까요?"

나와 이준혁 세대의 대한민국 남자라면 대부분 던전이라는 개념에 익숙할 수밖에 없었다.

바로 던전이라는 이름을 걸고 나온 게임의 존재 때문이었다.

"아마도 맞을 것 같습니다."

기본적으로 던전은 위험한 곳이었다.

무엇이 나올지 알 수 없기 때문이다.

"던전 탐사를 부탁드리겠습니다."

"믿고 맡겨주셔서 감사합니다."

이준혁은 흔쾌히 던전 공략을 받아들였다.

"저도 최대한 보조하겠습니다. 일단 오늘은 쉬고 내일 아침부터 탐색을 시작하는 게 좋을 것 같네요."

"알겠습니다."

"그럼 편히 쉬십시오."

할 일도 끝났으니 집으로 돌아가서 쉬려하는 순간, 김다빈에게서 연락이 왔다.

[재현님. 재현님이 지시하신대로 일 머리가 좋은 사람들 열 명을 모아 놨습니다.]

[지금 바로 가겠습니다.]

쉴 틈도 없이 21층의 공용 시설로 향했다.

철컥

절대자의 문을 사용해 공용 시설 안방 쪽에서 나타나니 그곳에서 대기하고 있던 모든 사람의 시선이 내게로 집중되었다.

"반갑습니다. 김재현이라고합니다."

김다빈이 모아 놓은 열 명의 남녀는 모두가 낯익은 얼굴들이었다.

"이분들이 다빈씨가 추천하는 분들이지요?"

"네, 그렇습니다."

"얼굴들이 익숙하네요."

"아무래도 검증된 사람들만 엄선하다보니 함께 일한 사람들 중에서만 고르게 되더군요. 새로 유입된 사람들 중에서 찾아볼까요?"

"아닙니다. 딱 마음에 듭니다."

확인해보니 현재 모두가 경제활동인구로 지정되어 하루 일당을 받아가고 있는 이들이었다.

그들을 향해 말했다.

"저는 여러분들에게 다빈씨와 같은 부장 직위를 부여할 생각입니다."

인구가 꽤 늘어난 지금도 부장 직위를 가지고 있는 이들은 몇 없었다.

김다빈을 포함해 의료팀의 리더인 이성민과 구호팀의 리더인 백승민 정도가 전부였다.

현재 남아 있는 부장 직위가 총 12개이니 대부분을 이들에게 주겠다는 소리였다.

"정말이십니까?"

"열심히 하겠습니다!"

물론 그냥 줄 생각은 없었다.

기뻐하는 그들을 향해 찬물을 끼얹었다.

"단, 조건이 있습니다."

들떴던 분위기가 순식간에 가라앉고 긴장감이 흐르기 시작했다.

"여러분들을 뽑으려는 이유는 간단합니다. 합류하는 사람들이 빠르게 늘어나면서 크고 작은 문제들이 발생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것들을 해결할 방안을 제게 제안해주시는 분들만, 부장의 직위를 드릴 생각입니다."

솔직히 말해서 안정적인 사회를 위해 내가 무얼 해야 하는지도 잘 알 수 없었다.

이런 자리에 있어 본 적이 없었으니까.

집단을 대표하는 자리에는 대통령은커녕 반장도 해 본 적이 없는 사람이 바로 나였다.

'딱 한 번 있기는 있네. 군대에서 분대장을 했으니!'

하지만 그거야 대한민국 남자라면 대부분이 경험하는 직무일 뿐이다.

대단한 일을 하는 것도 아닐뿐더러 지금처럼 거대한 집단을 이끌어나가는 법을 배우진 못했다.

'잘 모르면 배워야겠지!'

그러니 사람들에게 물어본 것이다.

이들은 김다빈이 직접 엄선한 엘리트들이었으니까.

"치안 유지를 할 집단이 필요합니다. 아직 큰 일이 나지는 않았지만 경찰처럼 중심을 잡아줄 존재가 없다면 언젠가 사고가 날 것입니다."

확실히 곧바로 의견이 나오기 시작했다.

"쓰레기가 너무 많이 쌓이고 있습니다. 이것들을 처리할 부서가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넓어진 영역에 몬스터나 사람의 시체 청소가 필요합니다. 도로 정비도 필요하고요. 그동안 주먹구구식으로 하고 있었는데, 이를 효율적으로 지시할 부서가 필요해요."

아이디어가 마구 쏟아져 나오고 있었다.

'좋군'

그 중에서 가장 구미를 당긴 것은 조금 엉뚱한 내용이었다.

"저어... 혹시 경찰서 무기고에 소총을 비롯한 총기류들이 있다는 거 알고 계십니까? 그것들을 확보할 인원을 배치해주셨으면 합니다."

060화 [Episode 13] 내실 다지기 (2)

"경찰서에 소총이 있다고요? 군대가 아니라?"

"네. 아시다시피 대한민국은 휴전국가지 않습니까. 그래서 유사시를 대비해 경찰서 무기고에 충분한 양의 무기를 보관해두고 있는 것으로 압니다."

구조가 필요한 사람을 찾는 과정에서 절대자의 눈으로 영역 전체를 뒤지며 파출소를 본 적이 있었는데, 그곳에 무기고 같은 건 없었다.

'좀 더 규모가 큰 경찰서에는 무기고가 따로 있나 보군'

그를 향해 물었다.

"여기서 제일 가까운 경찰서가 어디죠?"

"제일 가까운 곳이라면 아마 서면에 있는 부산진경찰서일겁니다."

"어느 쪽에 있죠?"

"그 서면역 근처에 있습니다. 롯백화점 있는 쪽이요."

곧바로 절대자의 눈을 사용해 새롭게 넓어진 영역을 살폈다.

여긴...

그가 말한 장소는 싸이클롭스에 의해 철저하게 부서졌던 지역이었다.

'어디에 있는지 모르겠군.'

박살난 건물들이 즐비해있는 지역이라 경찰서의 위치를 도무지 알아볼 수가 없었다.

경찰서에 대해 의견을 제시한 사람을 바라보며 말했다.

"양지호씨가 직접 팀을 구성해서 출발해보세요."

"제가요?"

"네. 크게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이번에 영역의 범위가 늘어난 상태이니 아마 경찰서도 그 안에 포함되어 있을 겁니다. 영역 바깥에 있다면 무리하진 마시고요."

양지호는 고개를 갸웃하며 물었다.

"그런데 팀원이라고 하심은...?"

"지호씨가 선택한 팀원들은 모두 일시적인 사원직위를 부여해 해드리겠습니다. 지호씨가 직접 선택해서 뽑으세요."

"앗, 감사합니다!"

만약에 영역 바깥이라면 서예진의 생쥐를 활용해 무기고를 확보하면 될 것이다.

"그럼, 지금 당장 출발해주세요."

"알겠습니다!"

양지호가 떠나가고 남은 인원들과의 토론을 이어나갔다.

"아까 경찰 인력이 필요할 것 같다고 하신 분이 누구셨죠?"

"접니다."

"경찰 인력을 구성한다고 치면 인력 충원은 어떻게 할 생각이시죠?"

"세상이 망하기 전에 경찰로 근무했던 사람들을 적극 채용하고자 합니다. 이미 한 번 자신의 능력을 증명했던 사람들이니까요."

확실히 일리 있는 의견이었다.

기존에 경찰 인력이었다면 체력이나 기본적인 인성도 합격점이었다는 이야기일 테니까.

인터넷 세상에는 여러 직업들의 혐오가 널리 깔려 있는 편이었지만, 실제 현실에서 만난 사람들은 자신의 직업에 대한 신념이 있는 경우가 더 많았다.

지금 의료팀을 굴리고 있는 이성민 교수님만 해도 그랬다.

의사로서 책임과 사람을 구하겠다는 신념을 가지신 올바른 분이었다.

경찰에 근무하시던 분들도 대부분이 마찬가지일 것이다.

자격이 없는 사람들보다 선한 마음과 신념으로 자신의 책임을 다하는 사람들이 많았기에 지금까지 우리 사회가 큰 문제없이 돌아가고 있는 것일 테니.

"좋습니다. 우선 시범적으로 운용하고자 하는데 규모는 어느 정도가 적당할까요?"

"시범 운용이라면 열 명 내외가 적당할 것 같습니다."

"알겠습니다. 직접 팀을 구성하고 운영해보도록 하세요. 인원 충당이 필요하다면 말씀하시고요."

"네!"

그때 다른 한 명이 또 손을 들고 말했다.

"저희 팀에서 진행하는 프로젝트가 하나 있습니다. 아마 저번에 보고 드려서 알고 계실 텐데, 재현님의 허가를 받고 카페나 빵집, 아이스크림 집을 운영 중에 있습니다. 이것을 좀 더 확장했으면 합니다."

김다빈을 통해서 전해들은 적이 있었다.

전기나 가스를 공급하는 것이야 그리 어려울 것 없었기에 바로 지원해줬던 기억이 난다.

그들이 진행하는 프로젝트 중에 카페는 특히 시민들로부터 좋은 반응을 얻었다고 알고 있었다.

"적극적으로 지원해드릴 테니 한 번 할 수 있는 데까지 해 보세요."

"감사합니다!"

그렇게 하나 둘 역할이 정해지고, 원래는 김다빈에게 몰려있던 업무를 분담하게 되었다.

"자, 그럼 지금 당장 움직여봅시다."

"네!"

그날 하루는 새롭게 선출된 부장들이 뽑은 팀원들에게 직위를 부여하고, 그들을 지원하느라 한동안은 정신없이 바빴다.

그동안 제일 먼저 팀을 만들어 출발했던 양지호가 부산진 경찰서에 도착했다.

아니, 부산진경찰서였던 곳이라 표현하는 게 맞겠지.

절대자의 시야에는 허탈한 표정으로 주변을 둘러보고 있는 양지호 팀이 있었다.

양지호가 뽑은 팀원이 한숨을 내쉬며 물었다.

"팀장님. 지하에 무기고가 있다고 했었나요?"

"그렇습니다."

"이건 어떻게 진입해 볼 수도 없겠네요."

부산진 경찰서 건물은 철저하게 박살나 있었다.

운이 없게도 싸이클롭스의 이동경로에 있었던 것이다.

어떻게 들어가 볼 수도 없게 개박살이 나 있는 상태였다.

"주변 탐색이라도 해 볼까요?"

"네, 그러는 편이 좋겠어요. 혹시라도 총기를 찾을 수 있을지도 모릅니다."

양지호 팀은 폐허가 된 건물 잔해를 조심스럽게 뒤지기 시작했다.

'여기였군'

나는 곧바로 시야를 지하로 이동시켜 무기고로 보이는 곳들을 찾아다녔다.

그리고.

...설마 여긴가?

무기고로 추정되는 곳을 찾을 수 있었다.

빛 한 점 없는 지하실이었지만, 내게 문제는 없었다.

이곳 또한 내 영역의 일부.

어둠 속에 뭐가 있는 지 정도는 모조리 파악이 가능했다.

그런데.

'없다'

평소 총기가 비치되어 있었을 것으로 보이는 총기함과 탄약을 보관했을 것으로 추측되는 장소는 모두 텅텅 비어 있었다.

'이곳에 있는 총기를 누군가 싹 챙겨갔어!'

그것도 싸이클롭스가 경찰서를 짓밟기 전에 말이다.

그 사람들이 경찰인지, 아니면 양지호처럼 경찰서에 무기가 있다는 걸 알고 있는 일반인인지는 알 수 없었다.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소총으로 무장한 생존자 집단이 있다.'

무기고의 모습을 보니 겨우 몇 자루 수준도 아니었다.

이 정도 규모의 무기고라면 몇 백 명은 족히 무장시킬 수 있을 정도의 소총을 보유하고 있었을 것이다.

그 정도 규모라면 고블린이나 오크 따위는 두려울 수가 없었다.

총알 한 방이면 끝장낼 수 있었을 테니까.

'어디로 갔을까!'

이렇게 깨끗이 비워간 것을 보면 분명 조직적으로 움직이는 집단일 것이다.

'위험해'

나는 지금까지 영역에 접근하는 사람들에게는 모두 공평하게 시민권을 부여해왔다.

스킬 레벨업을 통해 영역이 확장되는 경우에도 마찬가지였다. 남녀노소 가릴 것 없이 모두 시민으로 받아들였다.

시민권의 한계도 무척이나 여유로웠고, 누구는 받아들이고 누구는 쳐낼 기준을 세우기가 애매했기 때문이다. 다들 처음 보는 데 뭘 보고 그런 기준을 세운단 말인가.

그래서 일단 모두 받아들인 것이다.

인구가 늘어남에 따라 생겨나는 여러 가지 장점이 더 많다고 판단했으니까.

실제로 얻은 것이 훨씬 많았다.

'하지만 총을 가진 사람은 위험하다!'

총은 몬스터는 물론이고 사람까지 한 방에 보낼 수 있는 물건이었다.

통제가 가능하다면 강력한 무기가 되어주겠지만, 시민권을 부여받은 사람들 모두가 내 통제 아래 있는 건 아니었다.

당장 구호 팀의 인도 아래 아파트 단지에 몰려드는 사람보다 아직까지 집에 방치되어 있는 인원들이 훨씬 많았다.

내가 미처 확인하지 못한 인원들이 적어도 수천 명이라는 뜻이다.

'새롭게 받아들인 사람들 중에 총으로 무장한 사람들이 있을 수 있겠어!'

그 즉시 나는 절대자의 눈을 사용해 주변을 샅샅이 뒤지기 시작했다.

내 예상은 적중했다.

그리 멀지 않은 곳, 그나마 멀쩡한 어느 어느 빌라 안에서 소총을 소유하고 있는 사람들을 찾을 수 있었다.

소파에 덩그러니 놓여 있는 M16을 곧바로 상점에 등록시켰다.

'물품 등록'

그 다음 총에 장전할 실탄을 찾아봤다.

'총알은 어디에 있지?'

그런데 아무리 찾아봐도 탄알이 없었다.

거실 책상에 세 명의 식구가 도란도란 모여 앉아 라면 하나를 부숴서 나눠먹고 있었다.

"아빠. 이게 마지막이지?"

"그래. 아빠가 또 구해올 테니까 걱정하지 말고 먹어."

"또 밖에 나가게?"

"나가야지."

그는 소파 한쪽에 놓여 있던 총기를 손에 들었다.

그러자 딸이 말했다.

"...그거 이제 총알도 없다며. 들고 가서 어떡하게?"

"어떻게든 해야지."

"그걸로 몬스터를 두들겨 패기라도 하려고? 말이 되는 소리를 해!"

나는 조용히 물과 라면 등을 비롯한 구호물자들을 그들에게 지원해주었다.

"어?"

그들은 갑자기 나타난 구호물자를 보고 얼어붙었다.

'알아서 잘 챙겨먹겠지.'

가스버너까지 챙겨주었으니 오랜만에 따뜻한 식사가 가능할 것이다.

기본적인 것만 지원해준 나는 신경을 끄고 총알을 찾아서 여기저기를 돌아다녔고, 드디어 실탄이 장전된 총을 들고 있는 남자를 발견할 수 있었다.

그는 숨을 쉬지 않고 있었다.

싸이클롭스가 날뛸 때 무너진 건물 잔해에 깔려 그대로 생을 마감한 듯 했다.

지이잉.

나는 그가 들고 있는 총을 회수하고, 그의 시체에 불을 붙였다.

화르륵!

까미의 레벨이 오르면서 강력해진 불 마법은 이제 시체 하나 정도는 충분히 태울 힘이 있었다.

'편히 잠드시길'

내 나름대로의 추모였다.

그 후로 한동안 주변을 뒤져보니 같은 종류의 총기를 가지고 있는 이들을 발견할 수 있었다. 하지만 다 합쳐봤자 겨우 수십 명 수준이었다.

'이들이 전부일 리가 없다.'

경찰서 무기고에 보관되어 있을 것으로 추정되는 소총의 숫자는 적어도 수백 정이었다.

대규모로 무장한 집단이 반드시 있을 거라는 소리인데, 우선 이 근처에서는 발견할 수 없었다.

'일단은 필요한 곳에 소총을 지급하자!'

곧바로 절대자의 눈 시야 하나를 장성준에게 집중시켰다.

가족들을 찾으러 떠난다던 장성준 일행은 각자 권총을 소중하게 쥐고 있었다.

어느새 그들은 영역 바깥까지 진출해 있었다.

그 모습을 보며 소통의 반지를 사용했다.

[장성준씨.]

"엇, 네?"

[이것들을 받으세요.]

지이잉—

상점에서 구입한 소총 세트를 지급받은 장성준 일행의 표정은 눈에 띄게 밝아졌다.

"이건!"

같은 총이라고 해도 권총과 소총은 격이 다르다.

게다가 그들에게 지급된 권총은 자동권총도 아닌 리볼버.

장전이나 연발 면에서 여러 가지 단점을 가지고 있는 모델인 것이다.

그래서 그들은 가급적 몬스터와의 전투를 피하며 반드시 필요할 때만 사용하고 있었다.

하지만 소총을 들고 있다면 체급이 달라진다.

"취익!"

그때 멀찍이 떨어진 오크 무리가 그들을 발견했다.

"성준씨! 오크들에게 들켰어요!"

장성준이 다급하게 외쳤다.

"경택씨, 소라씨, 은별씨가 놈들에게 사격 좀 부탁드려요! 나머지는 빨리 소총 들고 탄창부터 채워요! 빨리!"

타앙—!

그의 지시에 따라 폐허가 된 도시 속에서 총성이 울렸다.

그러나 그것이 실제로 오크들에게 타격을 주지는 못하고 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놈들과의 거리가 100m이상 떨어져 있었기 때문이다.

단지 위협사격일 뿐이었다.

다행히 그것은 효과가 확실했다.

"크르르륵."

금방이라도 돌격해올 것 같던 오크들이 걸음을 멈추고 경계하기 시작한 것이다.

화약이 터지는 커다란 소리는 본능적인 공포를 자극할 수밖에 없었으니까.

어쩌면 공포의 실체를 겪어봤을 지도 모르고,

그러는 동안.

철컥!

장성준을 포함한 군필 남자 세 명이 장전을 완료했다.

그들은 익숙하게 오크들을 조준했고, 방아쇠를 당겼다.

타앙—! 타앙!

동시에 오크 한 마리의 머리가 터져나가고, 두 마리가 가슴을 움켜쥐며 쓰러졌다.

[오크(Lv. 18)를 사냥하셨습니다.]

[경험치를 획득합니다.]

[집구석 절대자의 지갑에 1,221,005 원이 입금되었습니다.]

머리를 맞은 놈이 즉사하고, 몸통에 맞은 두 놈도 곧 같은 운명을 맞이할 것이다.

타앙! 탕!

군필 남자들의 침착한 조준 사격은 계속됐고, 오랜 시간을 훈련받은 그들에게 100m 남짓한 거리의 멈춰있는 표적을 맞추는 것은 일도 아니었다.

"꽤애애액!"

순식간에 오크 무리의 절반이 총상을 입고 쓰러졌다.

"취이익! 취이익!"

열세를 깨달은 오크들이 혼비백산하여 도망치기 시작했다.

"이건...!"

놈들이 정신없이 도망치는 모습을 바라보는 장성준 파티의 얼굴은 희망이 싹트고 있었다.

"우리 할 수 있어요!"

"갑시다!"

자신감을 얻은 장성준 파티의 움직임이 아까보다 훨씬 더 과감해졌다.

그들은 거리를 활보하고 다니는 해양 몬스터 또한 어렵지 않게 처리하는 전투력을 보여주고 있었다.

'이게 소총의 힘인가'

지금 이 성과들은 장성준이 아닌 군필자 시민들로 구성된 팀이라면 누구나 만들어낼 수 있는 성과였다.

동시에 확신할 수 있었다.

'대한민국 군대는 건재하다.'

싸이클롭스와 같은 규격 외의 괴물과 마주친 것이 아닌 이상 대한민국 군대는 멀쩡할 가능성이 높다는 것.

고블린과 오크 무리 정도는 총기 하나만으로도 쓸어버릴 수 있었을 것이다.

탱크, 전투기, 지뢰, 수류탄 등.

현대 무기로 무장한 군대가 쉽게 무너졌을 리가 없었다.

몇몇 운 없는 부대를 제외하면 멀쩡할 가능성이 높다는 뜻이다.

'그렇다면 왜?'

시민들을 구하러 오지 않는 것일까.

'뭔가 이유가 있을 텐데'

아직은 알 수 없었다.

061화 [Episode 13] 내실 다지기 (3)

황령산.

정상까지의 높이가 427m로 그리 높지는 않았지만, 산속 어딘가에 있는 던전을 찾는 일이란 완전히 쉽지 않은 일이었다.

산책로처럼 잘 정비된 길도 있었지만, 길이 아예 없는 곳의 면적이 훨씬 더 많았다. 길이 없는 지역은 산세가 험하고 경사가 높았기 때문에 더더욱 탐색이 어려웠다.

그래서 서예진을 투입했다.

"찾았습니다!"

수백 마리의 생쥐들이 탐색에 나서니 한 시간도 지나지 않아 성과가 나왔다.

"이준혁 파티에게 안내해주세요."

"네!"

예상대로 던전이 있는 곳은 길이 정비되지 않은 험한 산 속이었다.

우우웅

던전의 입구는 나무 그늘 아래에서 은은한 푸른빛을 내뿜고 있었다.

「D등급 던전」

-리자드맨의 늪지대 (0/10)

절대자의 눈으로 들여다본 던전의 정보에는 숫자가 포함되어 있었다.

'무슨 의미지?'

처음에는 수용인원 제한인 줄 알았는데 그것도 아니었다.

"진입하겠습니다."

이준혁을 시작으로 스물네 명 모두가 차례차례 던전 안으로 진입하는 데 성공했기 때문이다.

[이준혁 파티가 최초로 던전에 진입하였습니다.]

[경험치와 정산금을 2배로 획득합니다.]

던전 내부는 물과 나무로 가득했다.

마치 땅이 있어야 할 자리에 물이 대신 자리 잡고 있는 모양새였다.

당장 그들이 서 있는 자리도 골반까지 물이 차올라 있었다.

신아영이 인상을 찌푸리며 말했다.

"준혁 오빠. 이래서는 공략이 쉽지 않겠는데요."

그녀의 말처럼 당장 이동하기도 쉽지 않은 상황이었다.

어느 정도 깊이인지조차 알 수 없으니 섣불리 발을 내딛기도 힘들었다.

"배 같은 거라도 구해 와야 탐사를 진행 할 수 있을 것 같은데."

던전에서 빠져나가는 것은 걱정할 것 없었다.

던전 입구는 여전히 남아 있었기 때문에,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지 나갈 수 있는 구조였기 때문이다.

그때 이준혁이 단호하게 말했다.

"그럴 필요 없어."

그는 길게 설명하지 않고 행동으로 보여주었다.

두 손을 정면으로 들어 올려 양쪽으로 벌렸다.

그러자.

쏴아아아아—

늪지대가 반으로 갈라졌다.

자신이 소환한 물에만 적용이 가능했던 컨트롤 워터였지만, 자작으로 승급하며 그 제한이 사라진 것이다. 반으로 갈라진 물 사이로 질척한 진흙이 모습을 드러냈다.

이준혁은 태연한 목소리로 말했다.

"가자."

일행들은 얼떨떨해 하면서도 이준혁의 뒤를 따랐다.

양쪽으로 2m가 넘는 물의 벽이 그들을 둘러싸고 있는 광경은 비현실의 극치였다.

---

아쿠아리움에 온 것 같네."

"저도 그 생각했어요. 그 터널 같은 곳."

얼마 지나지 않아 이현찬이 말했다.

"전방 11시 방향에 적 발견! 세 마리야! 이쪽으로 접근 중!"

이현찬이 각성한 능력은 '미니맵'.

반경 100m 범위의 지형을 파악할 수 있는 능력이었는데, 가신 등록을 통해 적과 아군을 구분할 수 있는 기능을 추가로 얻게 되었다.

그의 능력이 활성화되어 있는 한 기습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보면 된다.

쏴아아아아

이준혁의 의지에 따라 11시 방향으로 물이 갈라졌고, 리자드맨 세 마리가 나타났다.

"사격 개시"

이미 이준혁 일행에게도 모두 소총을 지급한 상황이었다.

투두두두―

리자드맨 세 마리는 영문도 모른 채로 물 속에서 드러나 그대로 즉사했다.

[리자드맨(Lv. 21)을 사냥하셨습니다.]

[리자드맨(Lv. 22)을 사냥하셨습니다.]

[리자드맨(Lv. 21)을 사냥하셨습니다.]

원래라면 환경적 특수를 누리는 것은 리자드맨들이었을 것이다.

수심이 2m가 넘어가는 늪지대를 이동하는 것조차 쉽지 않았을 테니까.

물속에서 자유롭게 움직이는 리자드맨들의 존재는 그야말로 움직이는 사신이나 다를 바 없었을 것이다.

하동건 파티가 투입됐다고 해도 힘겨울 수 있는 환경이었다.

하지만 이준혁의 존재만으로 리자드맨의 강점이 무력화 된 상황이었다.

"3시 쪽 네 마리!"

이준혁은 리자드맨들을 강제로 물 밖으로 끄집어내는 게 가능했으니까.

쏴아아아

투두두두-

[리자드맨(Lv. 22)을 사냥하셨습니다.]

[리자드맨 전사(Lv. 23)을 사냥하셨습니다.]

[리자드맨(Lv. 21)을 사냥하셨습니다.]

[리자드맨(Lv. 21)을 사냥하셨습니다.]

이준혁의 능력이 그 모든 판도를 뒤바꿔 놓고 있었다.

"여기서 휴식한다."

휴식하기 적당한 지형이 나오면 잠시 쉬었다가 움직이기를 반복하며 벌써 수십 마리에 달하는 리자드맨을 잡아냈다.

'내가 따로 지원해줄 것도 없네!'

솔직히 이준혁 파티 전체가 투입될 필요도 없어 보였다.

이준혁과 이현찬. 그리고 화력을 지원해줄 몇 명만 있어도 충분히 공략하고도 남을 듯 했다.

그때였다.

"준혁아!"

"왜?"

"뭔가, 뭔가가 접근 중! 고속으로 여길 향해 오고 있어!"

이현찬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콰과과과

요란한 물보라와 함께 던전의 우두머리가 나타났다.

놈은 물 위에 선 채로 이준혁 파티 일행을 지긋이 노려보고 있었다.

「리자드맨 족장(Lv. 30)」

평범한 리자드맨들보다 머리 하나는 더 큰 덩치에 전신이 단단한 근육질로 뒤덮여 있는 놈이었다.

"쏴!"

투두두두―

이준혁의 명령과 함께 놈을 향해 총알이 쏟아졌지만,

쏴아아아아—

갑자기 치솟아 오른 물기둥이 총알을 모조리 막아내었다.

이윽고 총알을 모조리 막아낸 물기둥들이 이준혁 파티를 향해 덮쳐오기 시작했다.

그러나 이준혁이 손을 앞으로 뻗는 순간, 이준혁 파티를 덮쳐오던 물길이 그대로 멈추었다.

리자드맨 족장을 가만히 바라보던 이준혁은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그렇게도 쓸 수 있구나."

그 직후 이준혁이 놈을 향해 튀어나갔다.

"준혁 오빠!"

"준혁아!"

이준혁은 물 위를 달려 나가기 시작했다.

처음 몇 걸음은 발이 물속으로 푹푹 빠졌지만, 한 걸음 한 걸음 나아갈 때마다 완벽하게 그의 체중을 지탱했다.

이윽고 리자드맨 족장의 앞에 도달했을 때에는 완벽하게 물 위를 달리고 있었다.

-!?

이준혁은 뒷걸음질 치는 리자드맨 족장의 머리를 똑바로 쳐다보며 중얼거렸다.

"워터밤."

리자드맨 족장의 머리를 감싸는 물이 생겨남과 동시에.

콰아아앙!

요란하게 폭발했다.

[리자드맨 족장(Lv. 30)을 사냥하셨습니다.]

[경험치를 획득합니다.]

[집구석 절대자의 지갑에 1,200,238,911 원이 입금되었습니다.]

그와 동시에.

[시민 이준혁이 '리자드맨 늪지대'의 우두머리를 해치웠습니다.]

[보상으로 크리스탈 10개를 획득합니다.]

[최초로 던전을 공략에 성공하였습니다.]

[보상으로 크리스탈 100개를 획득합니다.]

너무나도 손쉽게 공략이 끝이 났다.

그렇게 공략을 마친 이준혁 파티가 밖으로 나오자 던전의 설명이 약간 달라져 있었다.

「D등급 던전」

-리자드맨의 늪지대 (1/10)

저 숫자가 말하는 것은 던전의 공략 횟수 제한이었던 것이다.

'앞으로 9번인가'

보스를 잡으면 크리스탈 10개를 주는 듯 했으니 9번만 더 공략하면 딱 300개가 된다.

소통의 반지와 같은 신기를 하나 더 얻을 수 있게 되는 셈이었다.

[준혁씨. 컨디션은 좀 어떠신가요?]

"조금 피곤한 것 말고는 멀쩡합니다."

확실히 늪지대 공략은 이동하는 것만 해도 정신력을 소모하니 피곤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하루에 한 번씩 공략 진행이 가능할까요?]

"가능합니다."

[그럼 부탁드리겠습니다.]

김민호는 오랜만에 만난 자신의 애마, 쏘렌토를 쓰다듬었다.

구석에 주차되어 있던 덕분인지 고블린들의 소굴로 쓰일 때에도 별다른 악영향을 받지 않은 상태였다. 아무리 못해도 창문 한, 두 개쯤 박살나 있기 마련인데 김민호의 차량은 그런 것도 없었다.

덕분에 배터리 충전 이후 곧바로 운행이 가능했다.

"어머, 차 좋네."

문해리가 너스레를 떨었다.

"타시죠."

김민호 팀은 새로 유입된 두 명이 추가되어 총 다섯 명이 되었다.

기존에 김민호의 팀이었던 남지호 문해리 부부와 추가로 유입된 강성철과 하서준이 차량에 탑승했다.

부르릉

시동과 함께 차가 출발했다.

어느새 아파트 단지 주변에 있는 도로는 완전히 텅텅 비어 있었고, 거인의 발자국으로 인해 엉망이었을 도로도 어느 정도 정비가 된 상태였다.

서면역 쪽은 싸이클롭스에 의해 박살난 곳이 너무 많았기 때문에 범내골역 쪽으로 향했다.

아파트 단지에서 어느 정도 멀어지자 슬슬 방치된 차량과 장애물들이 이곳저곳을 막고 있었다.

김민호는 그것들을 교묘하게 피해가며 운전해나갔다.

"우리 민호 운전 잘하네."

"감사합니다."

강성철이 감탄하며 말했다.

"차타고 오니까 금방이네요."

김재현의 영역이 넓어지면서 몬스터 사냥을 위해서 꽤 오랜 시간을 걸어야 했다.

그런데 차를 타고 오니 시간도 절약하고 체력 낭비도 줄일 수 있었다.

그렇게 아파트 단지에서부터 상당히 떨어진 지역에 도착해서야 슬슬 몬스터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김민호는 영역 끄트머리에 아무렇게나 주차한 다음 내렸다.

"다들 장비 챙기고."

"넵!"

강성철과 하서준이 빠릿빠릿하게 소총을 챙겨왔다.

특이한 것은 소총으로 무장한 것이 강성철, 하서준, 남지호 이 세 명뿐이라는 것이다.

김민호는 맨몸이었고, 문해리는 여전히 활과 화살을 들고 있었다.

김민호가 강성철과 하서준을 향해 지시했다.

"너희들은 평소처럼 청새치 사냥에 집중해

""네!""

강성철과 하서준은 사냥꾼 직위를 얻은 이들이었다.

이들이 사냥한 사냥감은 사체가 그대로 남게 되는데, 때문에 맛이 좋은 청새치 사냥을 맡긴 것이다.

"출발하자."

김민호는 소총을 들고 있지 않았는데, 이는 그가 김재현에게 새롭게 부여받은 능력 때문이었다.

영역 밖으로 나가니 금세 몬스터들에게서 반응이 나타났다.

하늘 청새치들이 김민호를 덮쳐왔다.

날카로운 청새치들의 콧날이 김민호에 닿기 직전.

'경화'

그가 스킬을 사용하자 그의 피부가 단단한 암석으로 변했다. 청새치들의 콧날은 김민호의 피부를 뚫지 못하고 튕겨져 나갔다.

투두두―!

강성철과 하서준이 망설임 없이 김민호 쪽을 향해 총을 쏴댔다.

모르는 사람이 본다면 위험하다고 생각할 수 있겠으나, 그들에게는 익숙한 일상이었다.

실수로 김민호가 맞는다고 하여도 전혀 문제가 없었기 때문이다.

경화된 그의 피부는 총알조차 뚫지 못했다.

그때 한쪽에서 육지 상어가 나타나 김민호를 향해 달려들었다.

그 순간.

쐐애애액!

문해리가 쏘아낸 화살이 육지 상어의 머리에 그대로 적중했다.

그리고.

쩌저적─

화살에 맞은 머리에서부터 육지 상어가 빠르게 얼어붙었다.

[육지 상어(Lv. 24)를 사냥하셨습니다.]

[경험치를 획득합니다.]

[시민 문해리의 지갑에 2,700,612 원이 입금되었습니다.]

김재현에게 힘을 부여 받은 이는 김민호뿐만이 아니었다.

문해리가 소총이 아닌 활을 들고 있는 이유가 바로 이것이었다.

문해리가 빙긋이 미소 지으며 말했다.

"역시 고블린들이랑은 벌이가 다르네."

가신 등록이 된 그녀의 주머니 속으로 들어오는 돈은 기본급 100%에 불과했지만, 그것만으로도 상당히 만족스러운 금액이었다.

몬스터들의 레벨이 올라가면 올라갈수록 기하급수적으로 벌어들이는 양이 많아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팀장님! 조심하세요!"

그때 한쪽 골목길 사이에서 키틴질 갑옷을 입은 거대 몬스터가 등장했다.

투두두두두―

강성철과 하서준이 열심히 총을 쏴댔지만, 그런다고 자이언트 크랩의 키틴질 갑옷을 꿰뚫을 수는 없었다.

그때 김민호가 자이언트 크랩의 품으로 파고들어 주먹을 힘껏 내질렀다.

"흐으읍!"

콰직!

자이언트 크랩의 키틴질 갑옷에 미세한 금이 갔다.

몇 번만 더 두드리면 그것을 박살낼 수도 있을 것 같았다.

그러나.

"크윽."

한 방의 대가로 김민호의 손목 또한 박살이 난 상태였다.

그 순간.

화르르륵!

자이언트 크랩의 발밑에서 거대한 불기둥이 치솟았다.

[자이언트 크랩(Lv. 35)을 사냥하셨습니다.]

[경험치를 획득합니다.]

[시민 남지호의 지갑에 151,232,110 원이 입금되었습니다.]

"지호형 나이스!"

062화 [Episode 13] 내실 다지기 (4)

하동건은 눈을 떴다.

암막커튼을 살짝 걷어내자 눈부신 햇살이 안방 침대에 쏟아졌다.

벌써 해가 중천에 뜬 모양이었다.

이곳은 그의 신혼집이었다.

김재현의 영역이 아파트 단지 전체로 확장되었을 때부터 김가영과 함께 이곳으로 옮겨와서 살고 있었다.

기존에 지내던 2901호에는 문병호의 할머니와 강덕수, 김건이 지내고 있었고, 원래는 김다정의 집이었던 2902호에 유혜린과 오언주가 함께 지내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하동건과 김가영까지 함께 사용할 때는 집이 좁게 느껴졌기 때문에, 여건이 갖춰지자마자 곧바로 옮겨온 것이었다.

'된장찌개 냄새'

철컥.

방문을 열고 나가자 부엌에는 장모님과 김가영이 함께 요리를 하고 있었다.

"일어났어?"

"명환이는?"

"아침 일찍 사냥 나갔어."

"밥도 안 먹고?"

"고블린 사냥하려면 멀리까지 나가야 하잖아."

현재 도로는 상당 부분 정비가 완료되어 있었지만, 정작 멀쩡한 차를 가지고 있는 사람이 얼마 없었다.

덕분에 사냥을 위해서는 2km가 넘는 거리를 걸어가야만 했다.

"명환이도 열심히네."

"우리처럼 되고 싶다잖아."

김명환은 하동건 파티가 싸우는 모습을 두 눈으로 직접 목격한 뒤로 매일 열심히 몬스터 사냥을 나가는 중이었다.

김재현에게 선택받기 위해서는 사냥으로 성과를 낼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하기 때문이었다.

"요즘 잘 나간다던데."

자기 나이 또래의 사냥팀까지 만들어서 활동 중이라던데, 성과가 나쁘지는 않은 편이라고 알고 있었다.

"명환이도 날 닮아서 활에 재능이 있는 편이거든."

물론 김명환은 재능뿐만이 아니라 좋은 백까지 두고 있었다.

하동건과 김가영에게서 시작부터 활과 창을 지원받았기 때문이다.

질 좋은 무기를 지원받은 것부터 남들과는 시작점이 다를 수밖에 없었다.

"하 서방. 어서 와서 앉게."

"감사합니다."

하동건은 한상 가득 차려진 반찬들을 보며 옅게 웃었다.

"장모님이 오신 뒤로 밥상이 엄청 푸짐해졌네요."

김가영이 곧바로 태클을 걸었다.

"어허. 내가 차릴 때도 푸짐했거든?"

"그땐 배달 음식이 푸짐하게 있었지. 피자, 치킨, 육회..."

"그만! 일주일에 서너 번 정도는 내가 직접 만들어줬잖아!"

"그치, 라면, 간계밥, 스팸, 전부 다 맛있었어."

"크흠."

장모님이 입을 가리며 웃었다.

"미안하네. 내가 우리 가영이를 너무 귀하게 키웠나 봐. 그래도 시집가면 알아서 잘 할 줄 알았더니...."

"가영이가 라면은 참 잘 끓이더라고요."

도란도란 세 식구의 식사가 끝나고 김가영이 말했다.

"오늘 저녁에는 고기 구워 먹을까?"

"좋지."

"엄마! 우리 장 보고 올게!"

"그려."

밖으로 나오니 쌀쌀한 공기가 뺨에 부딪혀왔다.

"조금 걸을까? 소화시킬 겸."

"그러자."

김가영은 하동건의 손을 잡고 산책로를 이끌었다.

날씨가 추워진 탓인지 산책로에는 두 사람 뿐이었다.

김가영이 물었다.

"괜찮아?"

"뭐가?"

태연하게 대답하는 하동건을 보며 김가영이 투덜거렸다.

"힘들면 힘들다고 말 해. 알겠지?"

"알았어."

"으으. 춥다. 이제 후딱 고기 사서 들어가자."

하동건은 그간의 사냥으로 수십억이 넘는 현금을 보유하고 있었다.

워낙에 파티의 중추 역할을 한 덕분에 기본급만으로도 많은 돈을 벌어들일 수 있었던 것이다.

하동건 뿐만 아니라 그의 파티에 속해 있던 모두가 모두 억 단위에 달하는 자산가가 되어 있는 상황이었다.

'평화롭네'

그들이 치열하게 전투를 치렀던 바깥과는 달리 영역 안쪽은 너무나도 평온했다.

날씨가 추워지며 쓸쓸해진 길거리였지만, 몬스터의 습격을 걱정하지 않고 걸을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축복처럼 느껴졌다.

매점에 도착한 그들은 충분한 양의 고기와 함께 쌈 채소들을 사서 집으로 돌아왔다.

해가 질 때 쯤 김명환이 돌아왔고, 함께 저녁 식사를 했다.

"누나, 들어봐! 오늘 드디어 처음으로 오크 사냥에 성공했다니까?"

"오크를? 네가? 어떻게?"

"내가 화살로 정수리를 뚫어버렸거든! 캬 매형! 매형도 그 장면을 같이 봤어야 했는데."

그날 저녁은 김명환의 무용담으로 가득 찼다.

단란한 저녁 식사가 끝이 나고 각자의 방으로 흩어졌다.

김명환은 복도 끝의 작은 방에 들어가 내일 사냥을 준비하며 빠르게 잠들었고, 장모님도 원래는 손님방이었던 곳에서 주무셨다.

그리고 하동건과 김가영은 안방으로 들어와 침대에 누웠다.

"잘자."

"너두."

한동안 침묵이 이어졌다.

그러다.

"있잖아."

어둠 속에서 하동건의 목소리가 울렸다.

"나, 왜 눈물이 나질 않는 걸까?"

"동건아"

"불효 자식이 따로 없지? 근데 실감이 나질 않는다고 해야 할까. 분명히 그때 그곳은 우리 집이었고, 핏자국도 선명했지만, 그냥 어딘가에서 멀쩡히 살아계실 것만 같은 느낌이라 해야 하나."

하동건의 담담한 목소리에는 슬픔의 감정이 담겨있지 않았다.

정말로 담담하게, 아무렇지 않은 목소리로 말을 이어 나갔다.

"잠도 평소보다 더 많이 자고, 밥도 맛있어. 분명 슬퍼야 하는데, 슬퍼해야 하는데, 이상하게 그게 잘 되질 않네."

김가영은 천천히 몸을 움직여 하동건을 품에 안았다.

"가영아?"

하동건은 울지 않았다.

아니, 어쩌면 울지 못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그렇기에 오늘도 눈물을 흘리는 것은 김가영의 역할이었다.

"가영아 정말 난 괜찮아."

"...내가 안 괜찮아서 그래."

김가영이 울음 섞인 목소리로 그에게 부탁했다.

"조금만, 조금만 이렇게 있자."

하동건은 김가영의 눈물을 닦아주고 싶었지만, 그럴 힘이 없었다.

손을 들어올리기 너무 버거웠기 때문이다.

'잠이...!'

졸음이 쏟아졌다.

요즘 따라 잠이 많아진 것 같았다.

예전에는 이렇지 않았는데.

아무리 많이 자도 피로가 풀리지 않는 묘한 느낌이었다. 머릿속에 안개가 낀 것처럼 멍한 느낌.

내일 눈을 뜨면 또 해가 중천에 떠 있는 걸까.

하루가 무척 짧았다.

인생을 통틀어서 이렇게 게을러 본 적이 처음인터라 하동건은 게으른 자신의 모습이 영 적응이 되질 않았다.

그러면서도 무언가를 하기에는 조금 귀찮았다.

그저 오늘처럼, 숨 쉬듯이 하루를 또 보내겠지.

김가영이 말했다.

"미안해."

떨리는 김가영의 목소리를 자장가 삼아, 하동건은 점점 더 무거워지는 눈꺼풀을 느꼈다.

'울지마'

말해주고 싶었지만, 김가영을 위로해주고 싶었지만, 그럴 힘이 그에게 없었다.

그저 몰려오는 졸음에 몸을 맡기는 수밖에.

"괜찮아. 금방 괜찮아 질 거야."

김가영의 품속은 따뜻했다.

그녀의 말처럼.

시간이 쏜살처럼 흘러갔다.

지난 열흘간 모두가 한 마음 한 뜻으로 도시를 정비해나가니 빠르게 안정을 되찾아 나갔다.

곳곳에서 인재가 쏟아져 나왔다.

특히 가장 큰 활약을 하고 있는 이들은 바로 건설 현장에서 일해 본 경험이 있는 사람들이었다.

"어이 김씨! 여기로!"

"여기부터 해줘!"

현장에 투입되어 있는 중장비들을 운용해 싸이클롭스가 박살낸 도시를 빠른 속도로 정비해 나갔다.

각 분야의 전문가들이 나서서 서로를 보조하며 일처리를 해나갔다.

다만 문제는.

'경제활동인구가 가득 찼다!'

현재 시민들이 돈을 벌 수 있는 방법은 크게 두 가지가 있었다.

하나는 경제활동인구가 되어 하루 일당을 받으며 살아가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몬스터를 사냥하는 것이다.

총 인구수가 늘어나는 만큼 경제활동인구수도 함께 늘어나고는 있었지만, 무한은 아니었다.

내가 퀘스트를 통해 직접 급여를 전달하고는 있지만, 이것은 임시방편에 불과했다.

필연적으로 몬스터 사냥으로 생계를 이어나가야 하는 사람들이 생겨나게 된다.

특히 학생들.

아직 아무런 경험도, 전문 지식도 없는 그들이 무언가 공헌을 하여 경제활동인구에 들기는 쉽지 않은 일이었다.

화장실 청소나 진상들을 받아야 하는 공용 시설 관리 정도가 가능한 일인데, 그것마저 경쟁률이 워낙 심해 자리가 없는 실정이다.

결국 그런 이들에게 남는 선택지는 몬스터 사냥 밖에는 없었다.

'문제는 사냥할 몬스터의 수준이 지나치게 올라갔다는 점이지'

이제 막 사냥을 시작하는 평범한 사람이 노릴 수 있는 사냥감은 결국 고블린 정도였다.

아니, 일반인들의 입장에서는 고블린을 상대하는 것만 해도 충분히 위험하다고 할 수 있었다.

그런데 그 고블린을 사냥할 수 있는 장소가 그리 많지 않은 것이다.

'일부 지역을 제외하고는 모두 해양 몬스터나 오크처럼 강력한 몬스터들만 남은 상태다'

고블린이 등장하는 지역은 황령산 너머 연산동.

현재로서는 그곳이 고블린들이 등장하는 유일한 스폿이었다.

당연하게도 이미 그곳은 고블린 사냥에 익숙해진 베테랑들이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이제 막 시민권을 부여 받은 아이들이 혼자 힘으로 살아가기에는 너무 힘겨운 세상인 것이다.

그나마 복지 차원에서 시행되는 무료 배급소가 있어 연명하고 있는 이들이 많았다.

'이들에게도 기회를 줘야 해!'

가끔 여유가 되는 사람들 중에서 학생들을 거두어주는 경우가 있긴 했다.

하지만 그마저도 대부분 자식의 친한 친구거나 평소부터 알던 사이에서나 벌어지는 일이었고, 관심의 사각지대에 놓이는 아이들은 존재했다.

'고블린들이 충분했으면 좋았을 텐데'

이제 막 영역을 넓혀가던 시기, 주변에 고블린들이 충만했을 때에는 문제가 없었다.

고블린들을 조잡한 무기로도 충분히 잡을 수 있었고, 사람들은 조금씩 성장해나갈 수 있었으니까.

'몬스터의 존재를 바라게 되는 날이 올 줄이야.'

아이러니였다.

악몽과도 같던 몬스터가 이제는 사회를 유지하는 데 필요한 존재가 되어버리다니.

이 문제에 대해서 골머리를 앓고 있던 그 때, 반가운 알림음이 들려왔다.

[시민 이준혁이 '리자드맨 늪지대'의 우두머리를 해치웠습니다.]

[보상으로 크리스탈 10개를 획득합니다.]

[최초로 던전을 완전히 공략하셨습니다.]

[보상으로 크리스탈 100개를 획득합니다.]

예정대로 이준혁 파티가 D등급 던전을 10회 공략하는 데 성공했다.

'최초 보상 덕분에 크리스탈이 400개로 늘어났군'

신기 뽑기에 필요한 크리스탈의 개수는 300개.

'새로 뽑는 신기에서 해결방법이 나올지도 모른다'

이번엔 어떤 신기가 나올지 기대하며 뽑기를 진행하려던 그 순간.

[조건이 충족되었습니다.]

[건설 가능 항목에 'F급 인스턴트 던전{고블린 소굴}'이 추가됩니다.]

"응?"

무언가 이상한 알림에 고개를 갸웃거릴 수밖에 없었다.

'던전을 건설 할 수 있다고?'

-F급 인스턴트 던전{고블린 소굴} (13,000,000 원)

<F급 인스턴트 던전[고블린 소굴}"< p>

저렙 시민들을 위한 사냥터.

20레벨 이하의 시민들에게는 기본급 2배 이벤트가 적용된다.

100회 공략 가능하며 1회에 약 80~110마리의 고블린들이 등장한다.

※한 번에 최대 10개까지 설치가 가능하다.

'...이건?'

인스턴트 던전.

사냥감 문제를 해결해주는 것과 동시에 새로운 사냥 팀을 육성하는 데에도 큰 도움을 줄 수 있는 시설이었다.

몬스터를 만들어내는 능력이라

내 능력의 근간이 '창조'에 있다는 것은 어느 정도 눈치 채고 있었다.

상점, 품위 유지.

물건을 만들어내고 가스, 전기, 수도 등을 창조해내는 능력이라고 할 수 있었다.

하지만 몬스터마저 창조해내는 게 가능할 줄이야.

'일단은 사용한다'

지금 상황에 너무나도 필요한 기능이었다.

'조금 다르게 설명할 필요는 있겠어!'

나는 곧바로 김다빈에게 연락했다.

[다빈씨.]

[네, 재현님.]

[부장들을 모두 소집해주세요.]

[알겠습니다.]

김다빈의 텔레파시를 통해 빠르게 모인 간부들을 향해 설명했다.

"앞으로 영역 내에 던전이 생겨날 것입니다."

부장들 중에서는 이준혁 파티가 공략 중인 던전에 대해 알고 있는 이들도 있었다.

"리자드맨들이 나온다는 그 던전 말입니까?"

"아니요. 조금 다릅니다. 앞으로 생겨날 던전은 그보다는 훨씬 난이도가 낮습니다."

"그렇다면...."

"네. 고블린들이 등장하는 던전입니다."

고블린이 등장하는 던전이라는 것을 들은 부장들의 반응은 반으로 갈렸다.

"혹시 던전을 공략하지 못하면 어떻게 되는 겁니까?"

던전 그 자체에 대해 경계하는 부류와.

"고블린이 등장하는 던전이라면 오히려 반겨야 되는 입장이 아닐까 싶네요. 고블린 사냥에 목마른 사람들이 꽤 많지않습니까."

그들을 향해 말했다.

"던전이 터진다거나 하는 일은 없을 겁니다. 다만 이번에 이준혁 파티가 공략하는 던전과는 달리 총 100번을 공략해야 하며, 한 번 공략할 때 거의 100마리에 달하는 고블린을 잡아야 합니다. 이는 파티 수준에 따라 상당히 위험한 도전이 될 거라고 생각합니다."

사냥으로 먹고 사는 사람들을 지원하기 위해 만드는 인스턴트 던전이었다.

그곳에서 목숨을 잃거나 크게 다치는 사람이 나오게 되면 어불성설인 것이다.

"따라서 고블린 100마리를 충분히 감당할 수 있는 파티의 확실한 기준을 세웠으면 합니다."

063화 [Episode 13] 내실 다지기 (5)

고블린 100마리가 등장하는 던전.

이는 생각보다 쉬운 목표가 아니었다.

지금까지 시민들이 고블린을 사냥하는 방식은 대부분 안전지대를 활용하거나, 수적 우세를 활용하여 사냥하는 방식이었다.

"같은 고블린 100마리라고 해도 그것들이 한 번에 모두 달려드느냐, 조금씩 나타나느냐에 따라 난이도가 천차만별일 것입니다. 던전 내부의 환경이 어떤지도 중요하고요."

양지호가 핵심을 찔러왔다.

"그러니 우선은 던전 내부 환경이 어떤지 부터 파악하는 게 먼저라고 생각합니다."

그의 말이 맞았다.

일례로 이준혁이 공략했던 리자드맨 늪지대의 경우 리자드맨들에게 굉장히 유리한 환경을 조성하고 있었다.

고블린 소굴도 마찬가지로 고블린들에게 유리한 환경일 가능성이 있었다.

"선발대가 필요겠군요. 고블린 100마리가 한 번에 덤벼도 아무렇지 않을 수 있는 수준의 선발대가."

"네, 그렇습니다."

당장 생각나는 파티들만 대 여섯 개가 있었다.

이준혁 파티를 포함하여 영역 바깥으로 사냥을 나가는 이들은 모두 고블린 100마리쯤은 우습게 감당할 수 있는 실력자들이었으니까.

'하지만 이들을 선발대로 사용하기에는 아깝다'

당장 그들이 해양 몬스터들을 사냥하며 벌어오는 정산금은 겨우 고블린 100마리와 비교할 게 아니었다.

'하동건 파티가 쉬고 있기는 한데'

에이스 파티라고 할 수 있는 하동건 파티는 현재 긴 휴식에 들어가 있는 상태였다.

'강덕수 혼자서도 선발대 역할은 하고도 남는다'

강철의 기사단으로 진화한 그의 능력은 다수의 몬스터를 상대하는 데 그 누구보다 특화되어 있었다.

'하지만....'

현재 그들의 상태는 좋지 못했다.

종종 절대자의 눈으로 그들의 상태를 확인하고는 했다.

그 중에서도 하동건, 강덕수, 김 건은 심리 상담이 필요한 게 아닐까 싶을 정도로 상태가 심각해 보였다.

김가영이라는 반려가 있는 하동건은 그나마 괜찮은 편이었다.

힘이 되어주는 가족이 바로 옆에 있었으니까. 약간의 무기력증과 우울 증세가 보이긴 했지만, 김가영이 곁에 있어준다면 금세 호전될 것으로 보였다.

문제는 강덕수와 김 건이었다.

두 사람은 밤에는 죽어라 술을 퍼마시고, 낮에는 시체처럼 잠만 자는 생활을 반복하고 있는 중이었다.

사냥으로 벌어들인 돈을 술 마시는 데 모조리 탕진하고 있는 셈이었다.

'차라리 강제로 일을 시키는 편이 더 나을지도 모르겠어!'

그들을 어떻게 굴려야 할지 고민하고 있던 찰나.

"던전 공략 한정으로 총기를 대여해주는 방식은 어떻습니까?"

이전 회의에서 경찰 병력을 이끌어보겠다고 어필해왔던 강한결이었다.

"기본적인 총기 사용 교육을 받은 다섯 명이 한 팀을 이루게 된다면, 던전에 들어가자마자 고블린 백 마리가 덤벼든다고 해도 충분히 감당할 수 있을 겁니다."

소총의 위력은 나도 잘 알고 있다.

그의 말대로 잘 교육받은 소총수 다섯 명이라면 고블린이 아니라 오크 100마리가 달려든다고 하여도 큰 문제없이 처리할 수 있을 것이다.

"다른 방법은 없을까요?"

하지만 총기 규제를 느슨하게 푸는 것은 경계가 될 수밖에 없었다.

자칫 잘못하면 대형사고로 이어질 수 있다는 불안 때문이었다.

"재현님이 걱정하시는 바는 저도 이해합니다. 총기 규제를 푼다면 분명히 어느 정도 위험은 따라올 것입니다. 하지만 재현님, 그 어떤 전쟁터에서도 총이 위험하다는 이유로 병사들에게 총 대신 창이나 활을 지급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그 말을 듣는 순간, 내가 지나치게 걱정을 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깨달을 수 있었다.

총기 규제가 익숙한 대한민국에서 나고 자랐기 때문인지도 몰랐다.

지금 세상은 몬스터들과 전쟁을 치르고 있는 것과 마찬가지였다.

'목숨 걸고 싸우는 사람들에게는 총을 지급할 필요가 있다.'

내가 총기를 나눠준 것은 현재 최전선에서 몬스터들과 싸우고 있는 이들에 한해서였다. 그들 전부가 가신 등록이 된 이들이 포함되어 있는 파티였다.

신뢰도와 충성도가 높아서 내가 확실하게 믿을 수 있는 이들.

소수정예의 파티만 몬스터 사냥에 투입되어 있을 뿐인 것이다.

'나부터가 사람들을 완전히 믿지 못하고 있던 거였어!'

지금의 내 모습은 쿠데타가 무서워 군대로부터 총을 빼앗은 독재자와 같았다.

스스로가 자기 군대의 힘을 깎아먹고 있던 셈인 것이다.

'소총을 적극적으로 활용하게 되면 지금보다 사냥 인력이 몇 배는 늘어나게 되겠지'

당장 대한민국 남자들은 소총만 쥐여 주면 곧장 실전 투입이 가능한 전력이 된다.

당연히 성장 속도도 배가 될 것이다.

'믿자'

물론 믿음에 대한 배신에는 합리적인 철퇴를 내릴 것이다.

하지만 총기 사고가 무서워서 총기를 규제할 필요도 없었다.

"강한결씨"

"네."

"경찰 인력이 얼마나 되죠?"

"총원 백오십 명입니다."

"총기 500정과 실탄 3만발을 드리겠습니다. 관리하실 수 있겠습니까?"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나는 강한결을 똑바로 쳐다보며 선언했다.

"지금부터 경찰이라는 명칭은 폐기합니다. 강한결씨가 이끄는 부서는 던전 관리국이라 부르도록 하겠습니다. 인력은 얼마든지 충원하셔도 좋습니다. 대신 최초 던전 조사, 던전 공략에 따른 총기 불출, 던전 공략을 희망하는 사람들의 기초 교육까지 모두 전담해주실 수 있겠습니까?"

강한결은 진지한 얼굴로 고민해보다가 말했다.

"해보겠습니다."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회의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온 나는 곧장 건설 모드를 사용했다.

'인스턴트 던전 건설.'

일단은 시범적으로 하나만 만들어 봤다.

[F급 인스턴트 던전{고블린 소굴}을 설치할 장소를 정해주세요.]

장소는 전포역 8번 출구.

[정말로 설치하시겠습니까?]

[예/아니오]

'예'

그와 동시에.

[F급 인스턴트 던전(고블린 소굴 건설이 완공되었습니다.]

즉시 건설이 완료되었다.

이제 내버려두면 시민들 중 누군가가 던전에 대해 보고할 것이고, 강한결이 도맡아서 일처리를 하게 될 것이다.

'그 전에'

던전 안은 절대자의 눈으로도 들여다보는 게 불가능했다.

즉, 던전 안의 환경을 확인하기 위해서는 가신을 들여보낼 필요가 있다는 말이었다.

마침 적임자가 있었다.

'절대자의 문'

곧바로 2901호를 열고 들어갔다.

들어가자마자 술 냄새가 진동했다.

거실에는 술병이 굴러다니고 있었고, 과자 봉지와 쓰레기가 여기저기 널려 있었다.

소파에서 대자로 뻗어 코를 골고 있는 강덕수에게 다가가서 그의 이름을 불렀다.

"강덕수씨. 일어나세요."

그러나 내 목소리만으로는 아예 반응이 없었다.

"덕수씨. 일어나 보세요."

어깨를 쥐고 흔들자 드디어 반응이 왔다.

"으응? 재, 재현님?"

여전히 술에서 깨지 못한 표정이었다.

그가 입을 열 때마다 알콜 냄새가 풀풀 풍겨왔다.

내가 인상을 살짝 찌푸리자 강덕수는 두 손으로 입을 막으며 말했다.

"여, 여긴 어쩐 일로...."

"부탁드리고 싶은 일이 있어서 왔습니다."

"...부탁이요?"

"네."

던전에 대한 개념을 간략히 설명했다.

"그러니까 고블린들이 나오는 던전이 생겼다고요? 영역 안에?"

"그렇습니다."

강덕수가 심각한 얼굴이 되어 물었다.

"그거 큰일 아닙니까?"

"그래서 강덕수 씨가 도와주셨으면 합니다. 강덕수씨라면 혼자서도 공략이 가능할 테니까요."

"흐음. 알겠습니다."

"우선은 좀 씻고 나오시죠."

"예."

샤워를 하고 나온 강덕수의 모습은 아까보다 훨씬 나아져 있었다.

"가시죠."

그를 이끌고 곧바로 전포역 8번 출구로 이동했다.

지이잉—

그곳에 은은한 푸른빛을 내뿜는 던전 입구가 있었다.

실물로 보는 것은 나도 처음이었다.

"이겁니까?"

"그렇습니다."

"신기하게 생겼네요."

안에 들어가면 더 신기할 것이다.

완전히 다른 환경이 펼쳐져 있으니까.

"그럼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금방 다녀오겠습니다."

강덕수가 던전 안으로 진입하는 것을 확인한 나는 곧바로 절대자의 눈을 사용해 그를 관찰했다.

던전 안으로 들어가자마자 그를 반긴 것은 한치 앞도 보이지 않는 캄캄한 어둠이었다.

"재현님. 여기 아무것도 안 보이는 데요?"

[헤드랜턴을 드리겠습니다.]

'상점 오픈, 헤드랜턴 구입'

곧바로 그에게 헤드랜턴을 지급했다.

랜턴을 키자 울퉁불퉁한 동굴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일어나라."

강덕수는 강철의 기사 1기만을 소환한 채로 앞으로 나아갔다.

"끼긱?"

제일 처음 등장한 것은 고블린 세 마리였다.

놈들은 강덕수의 헤드랜턴과 마주하자마자 경기를 일으키며 달려들었다.

"끼기긱!"

"끼이익!"

그러나 곧바로 강철의 기사가 휘두른 할버드에 목이 잘려나갔다.

고블린 세 마리가 순식간에 썰려나갔다.

[고블린(Lv. 7)을 사냥하셨습니다.]

[경험치를 획득합니다.]

[집구석 절대자의 지갑에 18,012 원이 입금되었습니다.]

"너무 쉬운데요?"

확실히 던전 안의 고블린은 현실에 있던 고블린들보다 오히려 수준 떨어졌다.

놈들이 들고 있는 무기라고 해 봐야 뼈칼이나 돌칼처럼 조잡한 무기가 다였고, 무엇보다 한 번에 마주치는 숫자가 적었다.

[고블린(Lv. 7)을 사냥하셨습니다.]

[고블린(Lv. 8)을 사냥하셨습니다.]

[고블린(Lv. 7)을 사냥하셨습니다.]

매번 세 마리씩 나타나는 고블린들은 등장할 때마다 강철의 기사에게 썰려나가기 바빴다.

동굴 안쪽으로 들어갈수록 조금씩 넓어지는 양상을 보였는데, 그에 따라 등장하는 고블린들의 숫자도 조금씩 늘어갔다.

"끼에엑!"

[고블린(Lv. 7)을 사냥하셨습니다.]

[경험치를 획득합니다.]

[집구석 절대자의 지갑에 17,991 원이 입금되었습니다.]

그러나 고블린 몇 마리가 더 늘어났다고 해서 강철의 기사의 상대가 될 리가 없었다.

카각!

고블린의 공격은 모조리 은빛 갑옷에 막혔고, 반대로 강철의 기사가 휘두르는 할버드는 매번 확실하게 고블린의 숨통을 끊어 주었다.

그렇게 강철의 기사 한 기가 94마리의 고블린을 베어냈을 때.

[시민 강덕수가 '고블린 소굴'을 소탕하였습니다.]

아쉽게도 인스턴트 던전에서는 크리스탈이 나오지 않았다.

아마 자연 발생된 던전에서만 크리스탈 수급이 가능한 듯 했다.

공략을 완료하고 밖으로 나온 강덕수의 얼굴은 아까보다 한결 개운해보였다.

강덕수는 공략을 끝마치고 나왔는데도 멀쩡히 남아 있는 던전 입구를 바라보더니 물었다.

"이거 한 번 더 가능한가요?"

"가능할 겁니다."

"한 번 더 해도 됩니까?"

"물론이죠."

강덕수가 인스턴트 던전을 공략하는 모습을 보니 더욱 확신할 수 있었다.

'훈련용으로 딱 좋은 수준이다.'

이거라면 걱정할 필요가 없었다.

심지어 강한결의 주도 아래 공략을 이어나갈 사람들은 소총을 들고 던전에 진입할 테니 더욱 더 걱정할 필요가 없었다.

'한 번에 최대치까지 늘려도 되겠어.'

고블린 사냥에 재미가 들린 강덕수를 내버려두고 집으로 돌아온 나는 적재적소의 위치에 나머지 아홉 개의 던전을 설치했다.

'이제 뽑아볼까'

소파에 앉자마자 까미가 달려와 내 허벅지 위로 올라왔다.

-삑!

나는 피식 웃으며 까미를 검지로 조심스럽게 쓰다듬으며 말했다.

"오늘따라 기분이 좋은 모양이네.."

-삐빕!

평소에는 따스한 햇볕 아래에서 낮잠 자기 바쁜 녀석이었는데, 가끔 이렇게 애교를 부리고는 한다.

까미와 적당히 놀아주고 난 뒤 스킬창을 열었다.

그리고.

'신기 뽑기!'

드르륵!!

크리스탈 300개가 소모되며 황금빛 마법진이 화려한 빛을 내뿜었다.

완성된 마법진에서 뿜어져 나온 빛은 이내 한곳으로 뭉치더니 점점 그 크기를 불려나갔다.

우우웅!

황금빛으로 찬란하게 빛나던 그것의 주위로 붉은 실타래가 스며들어갔다.

그 모든 과정이 끝났을 때,

<집구석 절대자의 왕관>

보석으로 화려하게 꾸며진 왕관 하나가 찬란한 빛을 내뿜고 있었다.

064화 [Episode 14] 흡혈귀 (1)

왕관은 그 찬란한 외양만큼이나 효과도 대단했다.

<집구석 절대자의 왕관>

착용 시 시민들에게 부여되는 효과가 2배로 증폭된다.

현재 시민들에게 부여되는 효과는 총 6가지였다.

경험치, 정산금 100% 증폭.

신뢰의 힘.

세금징수.

기본급.

경제활동인구 지원금.

직업 효과.

이것들의 효과가 모두 2배로 증폭된다는 소리였다.

'...계속 쓰고 있어야 하는 거겠지?'

조금 거추장스럽긴 해도 착용 했을 때의 효과가 너무 좋아 안 쓸 수가 없었다.

'어차피 집에서 나갈 일도 잘 없으니 평소에도 쓰고 있자.'

마침 아까부터 계속해서 울리고 있는 시스템 알림이 있었다.

[고블린(Lv. 7)을 사냥하셨습니다.]

[경험치를 획득합니다.]

[집구석 절대자의 지갑에 18,011 원이 입금되었습니다.]

강덕수가 고블린 소굴에서 고블린을 양학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써 보자'

나는 조심스럽게 왕관을 머리 위에 올렸다.

그러자 무언가 시원한 기운이 머릿속을 훑고 지나가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그리고 왕관을 착용하자마자 알림창에 변화가 나타났다.

[고블린(Lv. 7)을 사냥하셨습니다.]

[경험치를 획득합니다.]

[집구석 절대자의 지갑에 28,670 원이 입금되었습니다.]

'고블린 한 마리가 거의 3만원이라니'

앞자리 수부터 달라졌다.

예전에 고블린 한 마리를 내가 직접 잡았을 때, 겨우 3천 원짜리였던 것과는 비교하면 거의 10배의 효율을 내고 있었다.

단지 고블린 뿐만 아니라 앞으로 있을 모든 사냥에 있어서 효율이 증가했으니, 될 수 있으면 자고 있을 때에도 왕관을 쓰고 있어야 할 것 같았다.

'그러고 보니 세금 징수 쿨타임도 다 됐겠구나'

그간 너무 바빠서 세금 징수 스킬을 사용하는 것을 까먹고 방치해두고 있었다.

한 달 전에 세금 징수 스킬을 사용했을 때는 그리 의미 있는 액수가 아니었다. 하지만 지금은 다를 것이다.

그동안의 하동건 파티의 급격한 성장으로 각자 수십억에 달하는 자산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으니까.

약간의 기대감을 가지며 스킬을 사용했다.

'세금 징수'

왕관의 효과로 인해 이것도 2배의 효율로 적용된다면, 10%가 아닌 20%를 가져온다는 의미였다.

그렇다면 적어도 수십억은 얻을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

그런데.

[세금 징수로 집구석 절대자의 지갑에 15,674,528,243 원이 입금되었습니다.]

'어?'

내가 기대한 금액과 자릿수부터가 달랐다.

'150억?'

그렇다는 것은 시민들이 보유하고 있는 금액이 750억쯤 된다는 소리였다.

'그렇군. 사냥뿐만 아니라 경제활동인구 지원금으로 벌어들인 돈도 꽤 될 거야'

경제활동인구 지원금에 등용된 시민들이 하루에 벌어들이는 금액만 억 단위였다. 그것들을 다 모으면 족히 수십 억 규모는 될 것이다.

'생각보다 사람들이 돈이 많네?'

어쩐지 요즘 따라 매점 매출이 심상치 않더라니.

그만큼 시민들의 구매력이 증가했다는 소리겠지.

'조금 있으면 매점에서 차를 팔아도 되겠어!'

도로 정비가 완료되어 가면서 차량 수요가 조금씩 생겨나고 있었다.

꼭 사냥이 아니더라도 차가 있으면 여러 가지로 편해지기 때문에 차를 원하는 사람이 많았다.

'지하 주차장에 차를 판매하는 지점을 따로 만들면 되겠지. 곧바로 운전해서 가져갈 수 있도록'

아니면 새롭게 늘어난 영역 중에서 원래부터 차량을 판매하던 지점들에 매점을 설치할 수도 있었다.

그러나 아직은 계획 단계에서 멈춰 있을 수밖에 없었다.

'빨리 25레벨을 달성해야 상점 스킬을 레벨업 시키고 슬롯을 늘릴 텐데!'

현재 상점의 모든 슬롯을 채워 넣은 상태였다.

품목화를 통해 슬롯 하나의 효율을 극한까지 끌어올릴 수 있었지만, 그것도 한계가 찾아온 것이다.

그 중에서 의학 용품들이 차지하고 있는 비중이 제법 컸다.

의약품들은 종류가 워낙 다양해서 품목화를 통해 묶는다고 하여도 한계가 있었고, 슬롯을 빠르게 채워나갔다.

현재는 의료팀이 가장 많이 소비하는 약품 위주로만 등록을 해 놓고 쓰고 있는 실정이었다.

그것만으로도 벌써 500개의 슬롯이 가득 찬 상황이었고, 차를 등록할 슬롯은 남아있지 않은 상황이었다.

즉, 차량을 팔기 위해서는 상점 스킬의 레벨업이 필요하다는 뜻이다.

'그래도 이제 곧 25레벨이다.'

그동안 꾸준히 레벨업을 하며 영역을 넓혀왔다.

이제는 25레벨을 목전에 두고 있는 상태.

여기에서 경험치가 올라가는 속도에 박차를 가해줄 왕관까지 얻게 되었으니 조금만 있으면 25레벨이 될 것이었다.

'앞으로 영역이 넓어지게 되면 차에 대한 수요가 더욱 더 많아지게 되겠지'

어차피 아직은 영역 중심에서 밖까지 가는 데 겨우 몇 킬로 정도였다. 굳이 수천만 원이나 하는 차를 구입할 필요가 없는 것이다. 그리고 그런 여력이 있는 이들이라고 해봐야 사냥팀들뿐이었다.

그것도 최상위권에 있는 사냥 팀들 정도는 되어야 수중에 수천만 원이 있을 테니까.

'어쨌든 좋은 일이다. 시민들의 자산이 늘어나고 있다는 건 앞으로의 세금 징수가 계속해서 짭짤할 거라는 소리였으니까.'

머리에 쓰고 있는 왕관이 점점 더 마음에 들었다.

'기본급도 두 배로 늘어났을 테니 사냥으로 생계를 이어나가던 사람들은 좀 더 사정이 좋아지겠어'

대부분의 시민들은 정산금이 0%이다.

그럼에도 돈을 벌 수 있는 것은 시민권을 받은 사람들에게 보장되는 기본급 시스템 덕분이었다. 내가 건드릴 수 없는 100%만큼의 경험치와 정산금.

그것이 두 배로 늘어나게 되었으니 시민들의 성장도 빨라질 것이고, 벌이도 괜찮아질 것이다.

'인스턴트 던전이 나온 타이밍에 이런 신기가 나오다니, 운이 좋군!'

고블린 사냥 말고는 딱히 할 수 있는 것이 없던 사람들도 이제는 먹고 사는 데 지장이 없을 것이다.

'게다가 경제활동인구도 확 늘어났다'

경제활동인구 스킬은 지원금이 두 배로 늘어나는 대신 제한 인구가 두 배로 늘어나 있었다.

한 번에 제한 인구가 두 배로 늘어나게 되면서 상당히 많은 사람들을 새롭게 받아들일 자리가 생겨난 것이다.

'좋군'

그렇지 않아도 일하는 사람에 비해 자리가 부족해서 불편하던 참이었다.

어쩔 수 없이 내가 직접 퀘스트 부여 형식으로 돈을 지급하고 있었는데, 이젠 그럴 필요가 없었다.

왕관이 일으키는 긍정적 효과를 하나하나 점검하고 있던 그때였다.

벨소리가 울렸다.

'절대자의 눈'

확인해보니 얼마 전 가족들을 구하러 가기 위해 총기를 빌려달라고 부탁했던 장성준이 문 앞에 서 있었다.

그의 얼굴만 봐도 결과를 알 수 있었다.

철컥.

현관문을 열어주자 만면에 미소를 띠우고 있는 장성준의 모습이 보였다.

그는 손에 잔뜩 들고 있는 총기류를 내밀어 보이며 말했다.

"안녕하십니까, 재현님. 저번에 빌려주신 물건들을 반납하러 왔습니다."

나는 피식 웃으며 말했다.

"축하드립니다. 가족들과 무사히 재회하신 거요."

"네. 모두 재현님 덕분입니다. 조금이라도 늦었다면 가족들을 영영 만나지 못했을 겁니다. 그런데 재현님이 흔쾌히 총기를 지급해주신 덕분에 기적처럼 가족들을 구할 수 있었습니다."

"저는 그저 할 수 있는 지원을 해드렸을 뿐입니다. 가족분들을 구한 것은 본인들의 힘이에요."

장성준은 허리를 숙이며 감사를 표했다.

"그 기회가 저희는 너무나도 절실했었습니다. 이 자리를 빌어 다시 한 번 감사드립니다. 계속 저희를 굽어 살펴주시면서 부족한 물자를 공급해주셨지 않습니까"

이들 파티가 연지동에 있는 자 아파트에 도착했을 당시 아파트 사람들은 오크들과 전면전을 펼치고 있었다. 그러나 아무런 힘도 없는 일반인들에게 오크는 너무나도 버거운 상대였고, 속수무책으로 밀리던 상황이었다.

그때 장성준 파티가 등장한 것이다.

소총으로 무장한 장성준 파티는 금세 오크들을 쓸어버렸고, 그 아파트의 영웅이 될 수 있었다.

또한 내가 지원해준 물자들을 아파트 단지 내에 있던 사람들에게 베풀어 완전히 그들의 마음을 얻었고, 해당 아파트 단지에 있던 생존자 집단 수백 명을 데리고 복귀에 성공했다.

다행히 생존자 집단에 그들의 가족도 끼어있었고 말이다.

'소총만 있으면 웬만한 몬스터들은 제압 가능하다는 것을 증명한 셈이야.'

물론 내가 무제한적으로 실탄을 지급할 수 있다는 점이 꽤나 중요하게 작용하긴 했다.

실시간으로 실탄 보급이 가능하다는 점이 그들을 더욱 강력하게 만들어준 것이었다.

"재현님께서 계속해서 지원해주신 덕분에 저희들도 힘을 내서 미션을 완수할 수 있었습니다. 저희를 믿고 총을 빌려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장성준 파티에게 총기를 그대로 가지고 있게 할까도 생각해봤지만, 이미 총기에 대한 전권을 강한결에게 넘긴 상황이었다.

'이미 기존 사냥 팀들에게 분배한 총기도 모두 회수하라고 말해놓았으니.'

능력 좋은 사냥 팀들도 사냥이 필요할 때 던전 관리국에서 총기를 지급받는 시스템을 정착시킬 생각이었다.

'창고 보관'

지이잉

장성준이 가져온 총기를 모두 창고에 보관한 다음 그를 향해 물었다.

"지금 가족분들이랑 동료분들 전부 공용시설에서 지내고 계시죠?"

"네, 그렇습니다."

"제안 드리고 싶은 일이 하나 있습니다."

현재 장성준 파티는 모두 종속의 계약으로 묶여 있는 사람들이었다.

다들 각성 능력을 하나씩 얻은 사람들이라는 뜻이다.

'하지만 작전 수행 과정에서 총기만을 사용해서 아직 자신들의 능력을 사용하는 데 익숙하지 않은 이들이지'

능력 좋은 소총수들을 길러내는 것도 분명 중요했다.

그러나 이런 특수 능력을 가진 사람들은 따로 관리해야 한다는 것이 내 생각이었다.

당장 하동건 파티의 경우만 봐도 각성 능력을 가지고 있는 집단이 얼마나 큰 잠재력을 가지고 있는 지 알 수 있었으니까.

"동료 분들과 사냥 팀을 만들어주시지 않겠습니까?"

"사냥팀이요?"

"네. 단 조건이 있습니다. 오직 각성 능력만을 사용해서 몬스터 사냥에 나서주셨으면 합니다."

우선은 고블린 소굴 하나를 이들 전용으로 만들어 능력을 사용하는 것에 익숙해지게 만들 계획이었다.

"소총을 사용하지 말라는 말씀이신가요?"

"네, 그렇습니다."

"흐음...."

다른 이들은 상관없었다.

하지만 장성준만큼은 반드시 전투 인력으로 사용하고 싶었다.

'무려 A등급 염력이다. 잘만 키우면 하동건이나 오언주 못지않은 전력이 될 거야'

고민하는 장성준을 향해 말했다.

"사냥에 적극적으로 나서만 주신다면 아파트 3개 세대를 드리겠습니다. 그리고 함께 오신 생존자분들이 지낼 임시 거처도 마련해드리죠."

대부분은 일반 주택이 될 테지만, 개인 주택을 사용하는 편이 그들이 현재 처해 있는 상황보다는 훨씬 나을 것이었다.

수십 명이서 아파트 한 세대를 공유해야 하는 것은 생각보다 상당히 고된 일이었으니까.

그것을 해결하주겠다고 하자 장성준이 크게 고개를 끄덕거리며 대답했다.

"하겠습니다!"

[시민 장성준의 신뢰도가 올라갑니다.]

[시민 장성준의 충성도가 올라갑니다.]

"다른 분들에게도 물어봐야하지 않나요."

"조건을 들으면 무조건 승낙할 겁니다."

비장한 표정의 장성준을 향해 말했다.

"너무 긴장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처음에 여러분들이 사냥할 몬스터는 고작해야 고블린 정도가 될 테니까요."

인스턴트 던전인 고블린 소굴에서 뺑뺑이를 돌릴 계획이었다.

"처음에는 소총 없이 전투를 치른다는 게 어려울지 몰라도 금방 익숙해지실 겁니다."

"알겠습니다."

"그리고 장성준씨는 평소에도 염력을 사용하려고 노력해보세요. 처음에는 귀찮고 힘들 테지만, 익숙해지기만 한다면 소총보다도 훨씬 위력적인 무기를 얻게 되실 겁니다."

"예. 노력하겠습니다."

아마 장성준은 빠르게 적응할 것이다.

가족들을 데리러 연지동에 가는 과정에서 여러 몬스터를 사냥한 결과 벌써 20레벨 초반까지 성장해 있었기 때문이다.

'고블린 정도는 쉽게 잡아낼 거야!'

다른 파티원들의 레벨도 준수했기 때문에 여섯 명이서 고블린 백 마리 쯤은 너끈히 감당할 수 있을 것이다.

'능력 사용에 완전히 익숙해지고 난 다음에 진짜 사냥을 보내보면 된다'

자세한 일정은 추후에 잡기로 하고 장성준이 싱글벙글한 얼굴로 내려갔을 때였다.

[시민 장대일이 사망하였습니다.]

[시민 김남기가 사망하였습니다.]

[시민 이세현이 사망하였습니다.]

[시민 서고은이 사망하였습니다.]

'음?'

갑자기 시민들의 사망 메시지가 무더기로 올라왔다.

무려 열 댓 명의 시민들이 순식간에 목숨을 잃었다.

'지금까지 단 한 번도 이랬던 적은 없었는데?'

순간 사고라도 난 건가 싶었다.

건물이 무너지거나 그런 사고가 아니라면 이렇게 많은 사람이 한 번에 죽을 이유가 없었으니까.

그런데 그때, 이상한 알림하나가 더 나타났다.

[최하급 흡혈귀(Lv. 18)를 사냥하셨습니다.]

[경험치를 획득합니다.]

[집구석 절대자의 지갑에 2,223,988 원이 입금되었습니다.]

"흡혈귀?"

065화 [Episode 14] 흡혈귀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