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화. 경성으로 돌아오다
배 위의 한 남자가 창가에 홀로 앉아 차를 마시고 있었다.
흰 비둘기 한 마리가 푸드득 하고 갑판 위에 앉더니 한 사람의 손바닥으로 뛰어들었다. 그 사람은 재빠르게 흰 비둘기의 발에 있던 종이를 꺼내어 들고는 큰 보폭으로 걸어가 남자에게 말했다.
“나리, 대수(臺水) 쪽에서 보낸 서신입니다.”
남자는 종이를 건네받고 내용을 훑어보더니, 종이를 찢어 창밖으로 버리고 조용히 중얼거렸다.
“대수 부둣가에서 그 소녀가 또 다른 사람들의 마차를 탔다는데, 그 사람들과는 헤어진 건가?”
‘분명 평범한 소녀이건만, 왜 상황이 갈수록 재밌어지는 것일까?’
오랫동안 금린위에 머무르며 생긴 예민한 감각으로 인해 그는 습관적으로 탁자를 톡톡 두드리면서 분부를 내렸다.
“사람을 나눠서 그 소녀를 뒤따르도록 해라. 그리고 나중에 만난 그 사람들이 누군지도 알아보거라.”
사실 이 남자는 지찬 등 세 사람이 떠들썩하게 얘기를 했던 강십삼으로, 강 대도독의 수양아들인 강원조(江遠朝)였다. 금린위는 전국 각지에 주둔지가 있어, 거대한 정보망을 형성하여 중요한 소식을 경성으로 보낸다.
강원조는 가봉에 주둔하고 있었기에 전국의 모든 사람을 감시하고 통제할 수는 없었다. 그러나 특수한 신분을 가진 사람들을 집중적으로 관리했다. 행자림의 교씨 집안처럼 조정에 있지는 않지만, 여전히 영향력이 있는 사람에 대해서도 정기적으로 상황을 파악했다.
그러나 뜻밖에도 교씨 가문에 불이 나, 모든 것이 타버리게 된 것이었다. 비록 이 사건이 예사롭지 않다는 생각은 들었으나, 자세한 상황은 알 수가 없어 사람을 보내 긴밀히 감시하고 있었다. 그리고 며칠이 지나 사람들이 오자, 당연히 그들도 감시망 안에 들게 되었다.
다음 날이 되자 강원조는 이 노인의 신분을 알게 되었다.
“뜻밖에도 행방이 묘연하던 이 신의라니!”
한결같이 침착하던 강원조도 이 순간에는 저절로 낯빛이 변했다.
이 신의가 누구인가? 현 황제조차 만나면 예의로써 대하는 명의가 아니던가. 그가 태의원에 들어가지 않겠다고 하자 황제도 강요하지 않았고, 그가 자유로이 떠날 수 있도록 내버려 두었다.
강원조의 의부는 이 신의가 면사금패(*免死金牌: 황제가 하사하는 것으로, 죄를 지어도 처벌하지 않음을 증명하는 금패)를 가지고 있다고 말했었다.
“다른 사람들은 무슨 신분이더냐?”
수하가 공손히 대답했다.
“누군지 알아내지 못했습니다. 모두 고수들처럼 보이긴 했는데, 아마도 호위를 하는 무리 같습니다.”
강원조가 가늘고 긴 손가락을 구부려 탁자를 탁탁 두드리자, 맑은 소리가 계속 이어졌다.
“보아하니 경성의 어느 높으신 분이, 이 신의의 종적을 찾아서 병을 치료하려고 하는 것 같군.”
그는 이런 추측을 하며, 찻잔을 탁자 위에 놓고 몸을 일으켰다. 강원조의 몸은 꼿꼿했고 그는 키도 컸다. 그는 긴 다리를 휘적여 문을 나서 깊게 심호흡을 하고는 강풍(江風)에게 명령을 내렸다.
“육지에 닿으면 말 한 필을 준비하도록 하라.”
경성의 부잣집 도련님들보다는 이 신의를 쫓는 편이 더 가치가 있을 듯 했다.
사람이 한 가지 일을 오래 하다 보면, 언행 또한 자연스럽게 영향을 받게 된다. 강원조는 이번에 경성으로 가는 것과 신의와는 아무런 상관이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그의 촉은 신의를 따라가라고 부추겼다. 만약 의외의 수확이 있다면, 의부님이 대단히 기뻐하실 터였다.
* * *
초봄이 되자 세상 만물이 다시 소생했다. 길 위의 수레와 말, 행인까지도 겨울철보다 늘어났다. 교소가 멀리서 바라보니 길은 번화한 모습이었다. 교소를 태운 마차도 행렬 안으로 섞여 들어가 행인들과 어우러졌다.
봄기운이 짙어지자, 경성과도 점점 가까워졌다. 교소의 몸은 하루가 다르게 좋아졌으나, 그녀의 기분은 쉽사리 풀어지지 않았다.
며칠만 지나면 여소의 부모님이 계신 집으로 가게 될 것이었다. 여소의 기억을 가지고는 있지만, 그 모든 것은 그녀에게 있어서 너무도 낯선 것이었다.
갑자기 마차가 멈추더니, 마부로 분장했던 호위병이 이 신의에게 공손하게 말했다.
“길가에 찻집이 하나 있습니다. 차 말고도 뜨거운 만두도 팔고 있는데 드시겠습니까?”
여행길은 고생스러운 것이어서, 뜨거운 만두라는 말은 듣자 잠시 잠을 청하던 이 신의도 즉시 눈을 뜨며 말했다.
“좋다.”
“알겠습니다. 제가 가서 사오겠습니다.”
이 신의가 그를 막더니 말했다.
“아니다. 가서 먹자꾸나.”
호위병이 즉시 곤란한 얼굴이 되었다.
“그건 좀!”
“뭘 꾸물거리는 게냐. 계속 마차에 앉아있는 탓에 이 늙은이의 몸이 온통 쑤시는데.”
호위병은 신경도 쓰지 않은 채, 이 신의는 바로 마차에서 내려버렸다.
교소도 신의의 뒤를 따랐다.
그들은 먼 길을 가는 할아버지와 손자로 보이도록 가장한 뒤, 시위와 시녀의 보호를 받으며 빈자리에 앉았다. 곧 주모가 김이 모락모락 나는 만두와 찻물을 내어왔다.
이 신의는 만두를 들어 한 입 베어 물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맛있군.”
그는 경성에 오는 것을 탐탁지 않아 했지만, 확실히 경성 근처의 길은 무척 깨끗했고 길거리 좌판에서 파는 만두조차도 다른 곳보다 맛있었다.
교소는 묵묵히 만두를 먹었다. 이 신의는 빨리 마차로 돌아가고 싶지 않은지, 옆 좌석의 손님들과 한가로이 얘기를 나누었다.
그때, 누군가 이상하다는 듯 말했다.
“봄날엔 모래바람이 거센데, 어째서 이 길은 내가 전에 왔을 때보다 더 깨끗한 것 같지?”
옆에 있던 사람이 웃으며 말했다.
“자네는 아마 멀리서 와서 잘 모르는 모양이군. 북벌장군이 곧 경성으로 돌아오게 되어, 매일같이 이 길에 물을 뿌리고 닦는 거라네.”
* * *
북벌장군 소명연이 돌아온다는 소식은 최근 경성과 그 주변 지역의 화제였다. 누군가 이 얘기를 꺼내면 즉시 분위기가 뜨겁게 달아오르곤 했다.
“와, 소 장군은 정말 대단해. 이제 갓 20살이 조금 넘었는데, 관군후에 봉해지고 말이야.”
“그게 뭘 놀랄 일이라고 그래. 소 장군은 장성(*將星: 장군을 뜻하는 별)이 사람으로 환생하신 분인데. 겨우 14살에 소씨 가문의 노장군을 대신해 남북을 평정하고, 우리 양나라를 위해 연성까지 수복하셨으니 엄청난 공을 세우신 거지. 그러니 소 장군이 관군후에 봉해진 건 당연한 거야!”
다들 한마디씩 하며 한창 이야기를 나누던 중, 갑자기 누군가 긴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소 장군은 이 나라와 백성을 위해 정말 대단한 일을 했지. 그런데 이 얘기도 들었나? 당시 북제국놈들이 소 장군의 부인을 붙잡아서 군대를 퇴각시키라고 장군을 협박했다네!”
시간도 때울 겸 이야기를 듣고 있던 이 신의가 갑자기 찻잔을 움켜쥐었다.
그러나 교소는 조금의 동요도 없이, 손수건을 꺼내 입가를 닦고 찻잔을 들어 가볍게 한 모금 마셨다.
“정말인가? 그래서 퇴각을 했나?”
남쪽에서 온 사람들은 이 사건에 대해 들어본 적이 없어서인지, 잔뜩 긴장한 얼굴을 했다. 소 장군의 공적은 이미 사람들 사이에 유명해서, 지금 사람들에게 다시 얘기해줄 수 있는 것만으로도 말하는 자는 신이 나 있었다.
“당연히 퇴각하지 않았지. 제나라 놈들이 우리 연성을 빼앗아갔을 때, 그놈들이 얼마나 잔인했는지 아나? 성안의 사람들을 몰살한 것도 모자라, 갓난아기도 죽였다니까! 나중엔 연성의 지리적 이점 때문에 우리 양나라 군대를 맹렬하게 공격했지. 그렇게 몇 년 동안 북쪽 변경 지역의 백성들이 고통을 겪다가 어렵사리 연성을 수복할 기회를 얻었는데, 소 장군이 퇴각을 하겠나?”
“당연히 못하지. 암, 절대 못 하고말고!”
얘기를 듣던 사람들이 일제히 고개를 가로저었다.
양나라는 줄곧 천조국임을 자처하였으며, 백성들은 양나라 사람으로서 자긍심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니 연성을 빼앗긴 것은 모든 양나라 사람들의 수치이자 아픔이었고, 그 굴욕적인 사건은 날을 거듭하면서 양나라 사람들의 마음속에 상처로 자리 잡았다. 양나라 사람들은 이 일만 생각하면 자다가도 분통을 터트렸다.
“그래서 소 장군은 어떻게 했나?”
얘기하던 사람은 차를 단번에 마시고, 존경심이 가득한 목소리로 말했다.
“소 장군은 그 북제국놈이 하는 말을 끝까지 듣지도 않고, 활을 쏴서 자신의 부인을 죽였다네. 그놈들이 더는 위협할 거리를 만들지 않게 해서 사기를 올린 거지.”
“아…….”
사방에서 탄식하는 소리가 들렸다.
그 순간 이 신의의 찻잔이 땅으로 떨어져 산산조각이 나면서 사람들의 시선이 이 신의에게로 집중되었다. 낯빛이 어두워진 이 신의가 눈처럼 흰 수염을 들썩이며 물었다.
“소 장군이 부인을 죽였다고?”
“네, 어르신이 보기에도 장군님이 정말 대단하죠? 소 장군은 우리 양나라를 위해 너무 많은 희생을 한 것 같아요.”
“대단하기는, 쥐뿔!”
이 신의가 갑자기 일어나 욕을 퍼붓기 시작했다. 교소는 차를 마시다가 하마터면 사레가 들릴 뻔하여, 손수건으로 입을 막고 가볍게 기침을 했다.
“아니, 영감님, 그렇게 말씀하시면 안 되죠.”
“이 늙은이가 감히 소 장군을 욕하다니!”
사람들은 불만이 가득해졌다.
이 신의는 사람들의 반응은 신경도 쓰지 않고 노발대발하며 말했다.
“자네들은 그자가 대단하다고 하는데, 그럼 그자의 부인은 뭔가? 그렇게 비참하게 죽었는데, 누가 알아주기나 한단 말인가? 흥, 내가 볼 땐 그 녀석이 무능해서 자기 부인이 제나라 놈들한테 잡힌 걸세.”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고기만두와 찻잔 같은 물건이 이 신의에게 날아왔다. 그중에는 심지어 낡은 짚신도 있었다.
이런 결과를 예상했던 교소가 이 신의를 잡아끌고 도망쳤다. 호위병들은 사람들의 이목이 모일까 두려워 감히 사람들을 어쩌지는 못하고, 그저 신의를 대신해 성난 사람들의 맹공격을 막고 있을 뿐이었다.
일행이 허겁지겁 마차로 돌아왔을 때쯤, 찻집에 있던 사람들의 화도 서서히 풀렸다. 그들은 나누던 얘기를 마저 이어나가기 시작했다.
찻집에서 그리 멀지 않은 백양나무 아래, 강원조가 서 있었다. 그는 멀리 사라져 가는 마차를 눈으로 쫓으며 얇은 입술을 굳게 다물었다.
‘그녀가 죽었구나.’
강원조는 북녘 하늘에 걸린 구름을 바라보며 짧게 한숨을 쉬었다. 그는 그녀라면 시집을 가든 가지 않든, 분명 뜻하는 바를 이루며 잘 살 것이라고 생각했었다.
‘그러나 뜻밖에도 이렇게 되다니. 이렇게 될 줄 진작 알았다면…….’
강원조는 그쯤에서 생각을 멈췄지만 가슴 깊숙한 곳에서 몰려오는 통증에 온몸이 아려왔다. 그 아픔은 날카롭진 않았지만 무게감이 있어, 숨을 쉴 때마다 고통이 느껴졌다. 그 아픔은, 강원조가 평소처럼 태연하게 담소를 나누고 생각을 하는 동안에도 여전히 사라지지 않고 옅게 남아있었다.
강원조의 옆에 서 있던 젊은 남자가 계속 멍해 보이는 강원조를 보며 생각했다.
‘내 착각인가. 어르신이 슬픔에 잠긴 것 같다니, 이건 무섭도록 놀라운 일이다.’
남자는 참다못해 큰 소리로 강원조를 불렀다.
“어르신!”
생각에서 깨어난 강원조는 옅은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