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정성희에게 여러 정보를 들었 다.
'공중정원은 단순하게 한 층계가 아니야.'
하나의 작은 사회.
도전자들은 공중정원에 머무르면서 더 높은 시련에 도전한다.
시련을 통과하려면 여러 장비와 아 이템이 필요했다.
희소성이 높은 물건은 원하는 사람 도 많은 법.
그런 아이템들은 자연스럽게 강한 힘을 가진 커뮤니티에게 집중되었 다.
'칠황과 그들이 이끄는 커뮤니티,
라고 했던가.'
탑의 칠황.
각 층계에서 고 랭크를 달성한 이 들이자, 현재 도전자들 중에서 가장 강한 힘을 지닌 존재들이다.
칠황이 공통적으로 원하는 것은 하 나.
자신이 탑의 정상에 오르는 것이 다.
'지금은 서로 경쟁을 하느라 상위 층 공략이 지지부진하다고 했지.'
탑의 시련.
그리고 상대 커뮤니티의 견제.
최상위 커뮤니티들은 양쪽 모두를 신경 써야 했다.
이런 갈등은 탑이 생겨난 직후부터 지금까지, 억겁에 이르는 시간 동안 반복되었다.
'나하고는 관계없는 일이지.'
커뮤니티에는 들 생각이 전혀 없었 다.
혼자 탑의 시련에 도전하는 편이 훨씬 편했다.
"하여간, 민철 헌터는 대단하군요."
"갑자기 왠 금칠이야?"
"5층까지 도전자들은 평균 능력치
가 A입니다."
"뭐, 그게 대순가."
"민철 헌터를 스카우터로 살펴보니 모든 능력치가 B나 B十던데요."
오호.
혼돈기를 숨겼더니, 혼돈력 수치가 스카우터에 잡히지 않은 것 같다.
하긴. 나머지 능력치는 그렇게 높 은 편이 아니지.
'성스러운 화염과 성천조계공이 없 었다면 꽤 고생했을 거다.'
혼돈기와 권능의 중첩 버프 효과.
신체 능력을 두 배 이상 끌어올릴
수 있는 버프는 전 우주를 뒤져봐도 없었다.
'둘을 중복으로 사용하면 순수 스 탯은 S급에 육박하지.'
근력 500대.
민첩은 400대에 육박한다.
두 버프를 동시에 발동하면 눈앞에 있는 A급 헌터, 정성희 정도는 순 식간에 제압할 수 있다.
헌터 인준 시험 때는 꽤 애먹었는 데.
몇 개월 만에 엄청난 성장을 이루 었다.
정성희한테 정보를 듣다 보니 제법 오랜 시간이 지났다.
"아차. 저도 커뮤니티로 돌아가야 겠군요."
"이야기 잘 들었다."
"뭘요. 제가 탑에 오르게 된 것도 민철 헌터 때문인데, 이 정도는 아 무것도 아닙니다."
응?
이 아저씨는 또 무슨 이야기를 하 는 건지 모르겠다.
'두 번 만난 게 전부 아니었나?'
게이트 브레이크 때.
그리고 헌터 인준 시험 때.
너무나도 얇은 관계다.
'그래. 짧은 만남도 인연이라면 인 연이겠지.'
나는 더 깊게 생각하지 않았다.
"전에 뵌 것도 인연이니 드리겠습 니다."
녀석은 떠나기 전, 지도 기능이 있 는 구슬도 줬다.
이유를 알 수 없는 정성희의 호의.
준다고 하는데 안 받는 건 또 예 의가 아니지 않은가.
말이 바뀔까 염려해서 지도 구슬을
바로 아공간 주머니에 넣었다.
정성희를 떠나보낸 뒤, 나도 곧이 어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곳에도 대장장이들이 있다고 했 지?'
서쪽.
대장간이 모여 있는 지역이다.
탑은 여러 차원의 실력자들이 모여 있는 장소다.
그렇다면.
과거 2층에서 얻은 [요르문간드 망 토]의 각인을 할 수 있을 정도의 실 력자도 있지 않을까.
나는 기대를 품으며 도시 서쪽을 향해 걸었다.
98 화
깡_ 깡_
금속을 제련하는 소리가 여기저기 서 울려 퍼졌다.
공중정원 서부 지역.
몇 갈래로 뻗어진 길.
수많은 대장간들이 그 사이로 서
있었다.
'이 근방 전부가 대장간인 건가.'
시커먼 연기가 굴뚝을 타고 모락모 락 올라왔다.
쇠를 두드리면서 나는 매캐한 냄 새.
시작의 공터와는 전혀 다른, 화끈 한 분위기였다.
'판데모니엄의 병기고가 연상되는 군.'
규모는 훨씬 작았지만, 공기에 감 도는 뜨거운 열기만큼은 그에 뒤지 지 않았다.
나는 주위를 둘러봤다.
'마이스터보다 높은 수준의 대장장 이를 찾아야 한다.'
마에스트로.
온 우주를 통틀어도 100명이 채 안 되는 명장의 경지를 일컫는 명칭 이다.
탑은 다중차원 우주에서 '가능성' 을 내포한 이들을 초대한다.
그중에는 뛰어난 장인들도 포함되 어 있다.
'이럴 땐 가장 큰 곳을 가는 게 좋 겠지?'
[바크 대장간]
내 시선이 멈춘 곳이다.
다른 대장간과 비교했을 때 압도적 으로 커다란 크기.
백화점을 연상시키는 커다란 건물 이었다.
안으로 들어가자, 대장간보다는 성 간 연합 빌딩과 비슷하게 생긴 로비 가 나왔다.
드워프가 나를 맞이했다.
"손님. 무슨 일로 오셨습니까?"
"아이템에 각인을 하고 싶은데."
"저희 바크 대장간은 손님이 원하
시는 수준의 장인을 알선해드리고 있습니다."
"여기에는 혹시 마에스트로급 장인 이 있나?"
드워프는 말을 멈추고 눈동자를 위 아래로 굴렸다.
평범한 사람이라면 드워프의 눈 돌 아가는 속도가 빨라서 알아채지 못 했을 것이다.
'땅딸보 녀석. 감히 간을 봐?'
어디.
어떤 말을 하나 들어보자.
"죄송합니다. 마에스트로급 장인께
서는 최근 의뢰를 받은 작업이 많으 셔서...
말끝을 흐리는 드워프.
얼굴에는 미안한 기색이 전혀 보이 지 않았다.
"혹시 소속 커뮤니티라도 있으신지 요?"
"그런 거 없다."
"당분간은 의뢰가 많으셔서 안 받 으실 겁니다. 혹시 모르니 의뢰서라 도 쓰고 가시지요."
"어이. 드워프. 이름이 어떻게 되 지'?"
"아르틴 해머든입니다만."
"이게 의뢰를 맡기려고 했던 아이 템이다."
아공간 주머니에 손을 집어넣었다.
검은색 가죽으로 된 망토.
요르문간드의 가죽과 비늘을 엮어 서 만든 강력한 아티팩트가 내 손에 이끌려 밖으로 나왔다.
"그게 뭐가 어째서... 허억?!"
마르틴의 눈이 경악으로 물들었다.
드워프는 타고난 장인.
눈을 옹이구멍으로 달아놓은 게 아 니라면, 망토의 가치를 알아봤을 것
이다.
'모든 장인은 질 좋은 재료를 거부 하지 않는다.'
무 대륙의 무인은 영약이라면 환장 한다.
섭취만 해도 내력이 늘어나고, 운 이 좋으면 깨달음을 얻어 다음 경지 로 나아갈 수 있다.
장인에게는 희귀한 재료가 영약과 도 같았다.
마력의 패턴.
재료에 깃든 신비.
요르문간드는 명색이 신화시대의
괴물, 아니 신수다.
선배(?)님의 가죽, 장인이라면 눈 에 불을 켜고 찾을 만한 뛰어난 재 료였다.
"아르틴이라. 그 이름을 꼭 기억해 두지."
나는 등을 홱 돌렸다.
이야기는 끝이다.
손님도 못 알아보는 녀석한테 맡기 고 싶지 않았다.
"소, 손님! 잠시만 기다려주십쇼!"
마르틴의 애절한 목소리를 무시하 고 건물 밖으로 나왔다.
하.
새끼, 지금 똥줄 좀 타겠지.
'그 땅딸보가 어떻게 나올지 궁금 하군.'
흐흐흐.
낮은 목소리로 웃으면서 주위를 둘 러봤다.
이곳에는 [바크 대장간] 외에도 여 러 대장간이 있었다.
'마에스트로 수준의 장인이 한 명 만 있으리라는 법은 없잖아?'
찾아보고 안 되면 다시 바크 대장 간으로 오면 된다.
나는 한결 편해진 마음으로 대장간 지구를 천천히 살펴봤다.
米 米 #:
[바크 대장간]에 비해 규모는 작아 도, 꽤 큰 규모의 대장간들은 많았 다.
장인과 도제 관계로 엮여진 수많은 대장장이들.
그들은 탑을 오르는 도전자들의 병 장기를 만들거나 수리해주는 대신, 포인트를 받았다.
'수준은 나쁘지 않아.'
나는 길가에 진열해놓은 견본을 만 져봤다.
잘 제련된 롱 소드.
[르아김의 롱 소드]
등급 : 희귀[R] / 분류 : 검
내구도 : 222/222
* 근력 증가 Lv 20
* 민첩 증가 Lv 14
*[예리한 칼날] 스킬 사용 가능
가격은 50,000 pt.
길거리에 내놓고 파는 검이 희귀 등급이었다.
'지구에서는 꽤 구하기 힘든 등급 이다.'
희귀 등급 이상 아이템은 늘 수요 가 공급보다 훨씬 많았다.
괴물을 죽여서 완제품을 얻을 확률 은 매우 낮은 편이다.
설령 완제품 장비를 얻어도, 인간 유형의 괴물이 아니라면 사이즈도 안 맞아서 쓰기가 어려웠다.
'장비를 맞추려면 장인에게 의뢰하
는 게 보편적이지.'
대격변 이후.
헌터들의 수준은 조금씩 상향되었 고, 고등급 장비를 원하는 사람은 갈수록 늘어났다.
반면 제작되는 장비의 숫자는 큰 차이가 없었다.
헌터 장비에 매겨진 가격은 시간이 지날수록 가파르게 상승했다.
'지구의 헌터들이 여길 오면 환장 하겠군.'
시련의 탑에 모인 장인들은 하나하 나가 예사롭지 않은 솜씨를 지녔다.
판매하는 무구와 방어구는 모두 마 력을 지녔다.
하지만 구매욕을 당기게 하는 아이 템은 없었다.
'장비를 특별히 보충할 필요는 없 지.'
무기는 다크 스타면 충분했다.
갑주는 최근에 얻은 초월 등급 아 티팩트인 [원초 그림자의 갑주]를 입고 있었고, 나머지 장비들도 모자 람을 느끼지 못했다.
마르탄이 맞춤형으로 만들어준 방 어구들.
성능은 유니크 등급에 비해 떨어졌 다.
하지만 내 성향과 체구를 고려해서 만들어준 덕에 유용함에서 뒤처지지 않았다.
'그나저나... 실력 있는 장인을 찾는 건 역시 어렵다.'
대장간 지구를 돌아다닌 지 몇 시 간 째.
[마에스트로] 수준의 대장장이는 쉽게 찾을 수 없었다.
마이스터급 장인은 꽤 있었지만, 그보다 높은 경지의 대장장이는 거 의 없었다.
'있다고 해도 자리를 비웠거나.'
마에스트로 수준의 대장장이는 세 명.
그중 둘은 희귀한 재료를 찾으러 탑에 직접 등반하는 중이란다.
남은 한 사람은 [바크 대장간]의 주인인 바크였다.
'그 건방진 땅딸보 녀석이 있는 곳 이지.'
나는 인상을 찌푸렸다.
아르틴이라고 했던가.
재수 없는 드워프의 면상이 떠오르 니, 발길이 쉽게 닿지 않았다.
'조금만 더 돌아보자.'
대장간 지구는 넓었다.
지금까지는 규모가 있는 대규모 대 장간 위주로 돌아다녔다.
걸음 닿는 대로.
구석구석을 찾다 보면 은거 기인이 라도 만날 수 있지 않을까.
'안 되면 다시 가는 수밖에.'
나는 크게 걱정하지 않았다.
마에스트로의 호칭을 받은 장인, 바크.
상위 커뮤니티의 주문이 밀려있다 곤 해도, 요르문간드 망토를 외면하
지는 못할 것이다.
시간은 꽤 걸리겠지만.
각인을 할 수 있는 실력자가 있다 는 게 어딘가.
대장간 지구의 구석진 곳으로 가니 대로변에 비해 한산했다.
나는 대장간을 하나씩 돌며 진실의 눈을 사용했다.
'수준이 조금 떨어지네.'
매직, 혹은 희귀 등급 무구.
완성도나 내구력, 옵션 등이 대규 모 대장간에 비해 한 단계씩 뒤처졌 다.
외곽으로 갈수록 아이템의 질도 떨 어져 갔다.
'포인트가 저렴한 건 장점이다만.'
나는 고개를 좌우로 저었다.
하자가 있는 제품.
저렴한 가격에 판다고 해도 선뜻 손이 안 갔다.
습관적으로 [진실의 눈]을 사용하 던 중.
"어어?!"
돌연 감탄사가 튀어나왔다.
[기형 소드 브레이케
등급 : 희귀[R] / 분류 : 검
내구도 : 10/350
*근력 증가 Lv 10(Lv 30)
* 민첩 증가 Lv 5(Lv 24)
* [무기 파괴] 스킬 사용 가능.(비 활성화)
* [방어구 파괴] 스킬 사용 가능.
(비활성화)
* 특이사항
무기 관리 상태가 좋지 않아서 극 히 제한적인 성능만 낼 수 있다.
녹슨 검.
무기의 성능은 뛰어났지만, 관리 부실로 제 기능을 다 하지 못했다.
골목 구석에 있는 허름한 대장간.
기형 소드 브레이커처럼 본 성능이 가려진 무구들이 여럿 진열되어 있 었다.
'우연인가?'
나는 진실의 눈을 사용해서 무기를 일일이 확인했다.
모두 희귀 등급 중에서도 상등품이 었다.
녹을 제거하고 수리하기만 하면, 누구라도 탐낼 만한 성능을 지녔다.
개중에는 유니크 등급도 섞여 있었 다.
'이건... 고의적인 거다.'
병장기들은 공통적으로 제작 당시 의 성능을 내지 못했다.
원인은 관리 부족이 아니었다.
무기를 벼려낸 장인이 마지막에 고 의적으로 성능을 하락시킨 것이다.
까앙! 까앙!
소리의 진원지는 허름한 대장간 안 쪽이었다.
누군가가 일정한 간격으로 금속을 내려치는 중이다.
'망치 소리가 일정하다.'
나는 무언가에 홀린 것처럼 무너져 가는 대장간을 향해 걸어갔다.
얇은 천으로 된 문을 걷고 안으로 들어가는 순간, 후끈한 열기가 전신 을 휘감았다.
깡!
일정하게 들리던 망치 소리가 멈췄 다.
"밖에 누구쇼?"
"의뢰를 맡기고 싶어서 왔습니다
만."
"의뢰... 의뢰라. 잠시만 기다리 쇼."
잠시 후, 땀에 흠뻑 젖은 대장간 주인이 밖으로 나왔다.
온통 붉게 물든 피부.
곳곳에 새겨둔 문신이 인상적이다.
대장장이는 불칸 종족 사내였다.
이름 : 하칸 토리아
종족 : 불칸 / 나이 : 522
적성 : 마이스터
* 특성
마에스트로 [S]
미친.
마에스트로 등급의 장인이 이렇게 허름한 대장간에서 일하고 있다고?!
상태창의 말이다.
의심의 여지가 없었다.
나는 떨리는 마음을 겨우 가라앉히 고 입을 뗐다.
"주문할 게 있어서 왔습니다만."
"거. 혹시나 해서 말하는 건데 앞 에 물건은 보고 주문하는 거 맞소?"
" 봤죠."
"당신. 무기를 보는 안목이 더럽게 없구려."
이런 걸로 사람을 떠보려고 하네?
당신이 마에스트로 등급의 장인이 라는 건 스킬 덕분에 이미 알고 있 다고.
'뭔가 사연이 있나 보군.'
나는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
살면서 사연 하나 없는 사람이 어
디 있겠는가.
은둔 생활 중인 불칸 대장장이.
그에게 어떤 이유가 있는지는 상관 없었다.
중요한 것은, 불칸 대장장이가 내 망토에 각인을 새길 정도의 실력자 라는 것이다.
나는 불칸 대장장이의 말에 피식 웃을 뿐, 대꾸하지 않았다.
"크흐흐. 결과물이 눈에 안 차도 책임 못 진다는 건 알고 계시오."
"의뢰를 들을지 말지를 못 들었는 데."
"거, 들어보기나 합시다."
나는 다시 한번 요르문간드 망토를 꺼냈다.
심드렁한 불칸 대장장이의 눈빛.
이내 망토의 진가를 알아보고 흥분 을 감추지 못했다.
"혀, 형씨. 이건 대체 어디서 난 거슈?!"
"알려줄 의무는 없는데요."
"아니. 그것보다... 이 망토는 이 미 완성에 가까운 것이오. 나보고 어떻게 해달라고 가져온 거요?!"
"이건 각인을 해야 완성되는 아티
팩트입니다. 그 작업을 당신한테 맡 기고 싶은데요."
꿀꺽.
불칸 대장장이의 목젖이 요동쳤다.
자, 네게 거절할 수 없는 제안을 건네마.
99 화
"나를 어찌 믿고 이렇게 귀한 걸 맡긴다는 거유?"
"각인이 어려울 것 같으면 포기하 셔도 됩니다."
갈등의 빛이 불칸 대장장이의 눈동 자에 아른거렸다.
이보쇼.
지금 찬밥, 더운밥 가릴 때가 아닌 것 같은데요?
'애를 좀 닳게 해야겠군.'
나는 요르문간드 망토를 안쪽으로 당겼다.
그때.
붉은 손이 망토 끝자락을 세게 잡 았다.
"아니. 나한테 맡겨주쇼."
"자신 없는 것 같은데 저기 바크 대장간에다가 부탁해야겠네요. "
내가 한다니까. 어찌 사람 마음이
쉽게 바뀌슈?"
"그렇다면 뭐...
힘에 못이기는 척, 불칸 대장장이 한테 망토를 맡겼다.
"아. 각인에 필요한 재료비는 받을 거유."
"얼마나 합니까?"
"10만 포인트. 공임비 다 떼고 에 누리 없이 해주는 거요."
[하칸 토리아한테 100,000pt를 지 불합니다.]
"거래 성립. 잘 부탁합니다."
"이 양반, 덩치는 작은데 통은 참 크군. 10만 포인트면 희귀 등급 무 기를 2개나 살 수 있는 돈이요."
"뭐, 그렇더군요."
나는 어깨를 으쓱했다.
희귀 등급 무기 2개?
마에스트로급 대장장이를 부려먹는 것과 비교하기에는 조금 모자랐다.
"하여간 잘 부탁드립니다."
나는 오른손을 내밀었다.
의뭉스러운 눈빛으로 바라보는 불 칸 대장장이.
잠깐 망설이다가 내 손을 마주 잡 았다.
"하루 뒤에 찾으러 오쇼."
"장인의 뜻대로 하겠습니다."
"참, 그리고 난 하칸이니 그냥 이 름으로 부르쇼."
"내 이름은 전민철입니다."
나는 하칸의 눈빛을 마주하면서 씩 웃었다.
:k 米 米
거래를 마치고 밖으로 나가려는 찰 나.
하칸이 나를 불러 세웠다.
"이보쇼. 보아하니 5층에 온 지 얼 마 안 된 초짜인 것 같은데."
"티가 나나요?"
"근처에 벌레들이 좀 있는 것 같아 서 말하는 거유."
"걱정해줘서 고맙습니다."
"아니. 딱히 걱정돼서 말하는 건 아니었는데...
하칸은 말끝을 흐렸다.
이 양반.
은근 귀여운 구석이 있네.
"한 몸 건사할 실력은 있으니 신경 안 쓰셔도 됩니다."
문대신 걸어둔 천막을 걷어내면서 바깥으로 나왔다.
빛이 잘 닿지 않는 골목.
그늘진 곳에서 숨소리가 하나둘씩 들렸다.
"그만 나오지?"
나는 갈색 지붕으로 된 건물을 향 해 소리쳤다.
"당신. 신입치고는 눈이 좋군요."
드워프 하나가 지붕 위로 얼굴을
들이밀었다.
구면이었다.
"아르틴 해머든이었나?"
"신입은 기억력도 좋군요."
"이런 골목에서 만나다니, 놀라운 우연이군."
"지금 상황을 정말로 우연이라고 생각하는 겁니까?"
"설마. 그 정도로 등신 호구는 아 니거든."
나는 열 손가락을 펼쳤다.
한 번의 손짓에 품속에 숨겨둔 섬 전비도 10개가 사방으로 쏘아졌다.
커억! 큭!
골목의 그림자.
숨어있던 녀석들이 비명을 질렀다. 마르틴의 눈동자가 파르르 떨렸다.
"시, 신입. 지금 무슨 짓을?!"
"첫수에 모두 죽일 생각이었는데.
다들 감이 좋네."
쳇.
나는 혀를 찼다.
섬전비도술을 펼쳤는데도 셋밖에
못 죽였다.
비도가 날아들기 직전.
간신히 몸을 틀어서 치명상을 면한 게 다섯.
두 녀석은 무기를 휘둘러서 간발의 차로 비도 투척을 막아냈다.
"이 녀석. 정말로 신입 맞는 거 냐?"
"아르틴, 이 개자식. 제대로 알아보 고 이야기했어야지!"
몸을 숨기고 있던 습격자 일행이 모습을 드러냈다.
일행의 숫자는 20명.
부상자를 포함한 숫자였다.
나는 히죽 웃었다.
'예상을 벗어나지를 않는군.'
요르문간드 망토.
뒤에 얼굴만 내밀고 있는 드워프 녀석이라면, 망토의 가치를 알아보 기에 충분했다.
마에스트로급 장인도 눈이 뒤집힐 만큼 엄청난 재료.
물욕이 솟는 건 당연했다.
'대장간에 말하거나 내 뒤를 밟거 나...
녀석한테 망토를 보여주면서 내심 후자이기를 바랐다.
그래야 내 손으로 손봐주지 않겠
어?
"이봐. 건방진 신입."
그때.
험상궂게 생긴 사내가 앞으로 나섰 다.
얼굴을 가로지르는 기다란 흉터.
살갗이 비치는 얇은 상의에도 상처 가 가득했다.
양손에는 40cm 정도 되는 단검 두 개를 역수로 쥐었다.
"비루트. 신입의 능력치는 어떻게 되지?"
"스카우터로 확인해보니 B十에서 B
사이입니다."
"조금 전은 요행이었나. 운도 좋구 먼."
사내는 스카우터를 착용한 도전자 와 대화를 나누더니, 다시 나를 바 라봤다.
"너, 우리가 누군지 알고 이러는 거냐?"
"모르지. 자기소개라도 한번 해보 지 그러냐."
"우리는 황야의 이리 커뮤니티다."
그게 뭔데.
나는 눈을 끔뻑였다.
"너희. 유명한 커뮤니티냐?"
도발하려는 게 아니라 정말로 궁금 해서였다.
험상궂은 아저씨는 다른 의미로 받 아들인 모양이다.
"으그그. 일단 팔 하나 잘라내!"
"크로덴! 녀석한테서 망토를 빼앗 아야 합니다!"
마르틴이 목소리를 쥐어짜 내듯 비 명을 질렀다.
"이 땅딸보 새끼야. 저런 놈이 신 입이라고 거짓말을 해? 닥치고 있 어!"
오.
저 아저씨, 내가 하고 싶은 말을 속 시원하게 해줬다.
'한패는 아니라는 건가.'
[바크 대장간] 차원이 아닌, 땅딸 보 녀석의 개인적으로 커뮤니티에 의뢰를 넣은 것 같다.
둘이 티격태격하는 동안, 나도 놀 고 있지는 않았다.
진실의 눈을 사용해서 개개인의 역 량을 살펴봤다.
키요드
종족 : 오크 / 나이 : 25
적성 : 도끼
근력 : 201 / 민첩 : 155 /맷집 :
210 / 체력 : 210 마력 : 130
'협회 요원인 정성희와 비슷하거나
조금 모자란 수준이다.'
황야의 이리 커뮤니티.
개개인의 능력치는 평균 A에서
A+ 사이였다.
놈들은 공통적으로 [육감]을 익히 고 있었다.
'4층을 통과한 보상인가.'
기습적으로 펼친 섬전비도술을 어 떻게 피할 수 있나 궁금했다.
전원이 육감 특성을 익혔으니 가능 한 일이었다.
'도전자들과 싸울 때는 신경을 써 야겠어.'
손가락을 까딱여서 비도들을 회수 했다.
"저 신입이 다시 무기를 던지기 전 에 덮쳐!"
비도를 회수하는 행동이 녀석들을 움직이는 신호탄으로 변해버렸다.
사방에서 몰아치는 살의.
황야의 이리 소속 도전자들은 각자 병장기를 들고 나를 향해 쇄도했다.
우우웅!
습격자들이 쥐고 있는 무기가 푸른 색으로 물들었다.
오러 였다.
'이런 싸움에 익숙한 녀석들이다.'
퇴로를 점한 배치.
포위를 하면서 도망칠 만한 곳을 모두 가로막았다.
'그럼 이쪽도 진심을 내볼까.'
성천조계공을 활성화했다.
혼돈기가 혈맥을 타고 거세게 질주 했다.
힘이 전신에서 솟구쳤다.
이번에는 비도에 혼돈기를 실었다.
칼날에 형상화된 기.
다시 한번 팔을 양쪽으로 뻗어내 니, 비도 10개가 날개를 펼치듯 좌 우로 쏘아졌다.
채채챙!
"크윽. 무기가?!"
"저, 저 작은 칼에 저렇게 무식한 힘이?"
"육감으로도 제대로 파악할 수 없 잖아!"
사방으로 날아간 비도들은 습격자 들의 무기를 튕겨냈다.
살의를 담지 않은 공격.
그저 '무기'만 노렸기에, 육감도 내 공격에 바로 반응하지 않았다.
'육감에도 구멍이 있지.'
감각을 극대화한다고 해서 만능은 아니었다.
살의를 지운 공격.
혹은 육신이 아닌, 사물을 노리는 공격에는 즉각적으로 반응하지 않았
다.
모두 전생 때 얻은 지식이다.
습격자 중 절반이 순식간에 비무장 상태가 되었다.
'남은 건 절반.'
나는 다크 스타를 아틀라스 건틀렛 으로 변형했다.
[아틀라스 건틀렛 내장 스킬 - 인 력을 사용합니다.]
오른손으로는 정면으로 달려오는 적을 당기면서, 왼손을 펼쳤다.
대수인.
흑색을 띤 장력이 펼쳐지면서 인력 으로 당긴 습격자를 정면으로 밀쳐 냈다.
피를 토하면서 멀리 나가떨어지는 습격자.
한순간이지만 포위망에 구멍이 뚫 렸다.
나는 운류보를 밟아서 대수인으로 만든 틈 사이로 빠져나왔다.
"재빠른 녀석."
"다시 포위망을 구축한다."
"뭐해? 떨어진 무기 안 줍고!"
황야의 이리 소속 습격자들은 빠르 게 재정비를 했다.
포위망이 뚫리고 무기를 튕겨냈는 데도, 크게 당황하는 기색을 보이지 않았다.
'그래 봐야 이 정도인가.'
성화의 권능은 사용하지도 않았다.
성천조계공으로 능력치를 증폭시키 면 습격자들의 평균 수치보다 조금 높은 수준이다.
그럼에도.
주도권을 쥐고 있는 것은 나였다.
[운류보를 사용합니다.]
지면을 박차면서 맹렬하게 돌진했 다.
습격자들이 재정비를 마치기 직전, 한발 빠르게 먼저 공세를 펼쳤다.
다크 스타를 제왕의 검으로 변형.
남궁세가를 상징하는 무공, 창궁무 애검법을 펼쳤다.
파츠츠츠!
칼날에 기를 맺히는 수준을 넘어 혼돈기를 형상화시켰다.
검강.
무 대륙의 무인들이 펼치는 강기보 다 2배 이상 파괴적이고 강렬한 강 기가 빠르게 쇄도했다.
선두에 있는 습격자는 당황한 기색 으로 모닝스타를 휘둘렀다.
철퇴가 푸른색으로 물들었다.
모두 오러 사용자였다.
"이 새끼. 조금 봐주려고 했더 니...
습격자는 말을 잇지 못했다.
서걱-
모닝스타가 반으로 잘려 나갔고, 그 뒤에 있는 습격자도 같은 꼴이
되었다.
나는 검을 멈추지 않았다.
강제 무장 해제.
포위망 와해.
습격자 무리가 수적 우위에 있다는 심리적인 이점을 역으로 이용, 진형 을 무너트리고 빠르게 몰아쳤다.
'다섯, 이제 여섯이군.'
창궁무애검법은 강맹하면서도 빨랐 다.
흑색 강기가 한 번 쏘아질 때마다 하나의 목숨이 사그라졌다.
"당황하지 마라. 그래 봐야 신입,
적은 혼자라고!"
험상궂은 사내, 크로덴이 악을 질 렀다.
습격자들이 재정비를 마쳤을 때 즈 음에는 이미 절반을 줄여놓았다.
"틈을 주지 말고 촘촘히 서서 녀석 을 몰아!"
남은 습격자 무리는 바짝 붙어서 고기를 모는 것처럼 정면으로 달려 들었다.
포위망을 포기하는 대신, 나를 확 실히 압박할 생각인 듯했다.
"어리석은 짓을 저질렀군."
나는 씨익 웃었다.
[다크 스타 - 칠성검]
일렬로 선 습격자들.
모두 칠성마검의 발검 범위 안으로 들어왔다.
나는 한 번 숨을 고르고는 칼집에 둔 검을 해방했다.
콰콰콰콰-
기다란 검강이 전방을 휩쓸었다.
정면으로 달려들던 습격자들은 강
기의 파도에 휘말리는 순간 상체와 하체가 분리되었다.
[육감]을 활성화시켜도 소용없었다.
'서로 다닥다닥 붙어있으면 회피하 기만 힘들어지지.'
리더의 어리석은 판단이 빚은 참극 이었다.
황야의 이리라고 했던가.
커뮤니티에 속한 습격자들은 조금 전 일검에 대부분 숨을 거두었다.
예외도 있었다.
"끅, 끄윽...
"어? 아직 살아있었군. 운이 좋았
네."
험상궂은 아저씨는 피를 철철 흘리 면서 바닥을 기었다.
포위망 끝에 있어서인지, 아니면 육감으로 위기를 감지한 건지.
칼을 교차하고 오러를 끌어올려서 검강을 막아냈다.
정확히는 막았다기보다는 궤도를 살짝 튼 것에 불과했다.
그 덕에 허리가 잘리는 대신 어깻 죽지가 깔끔하게 날아가 버렸다.
"괴, 괴, 괴... 괴물!"
"비 랭커 출신 지구인한테 괴물이
라니. 그건 좀 실례잖아."
"미, 미, 미친. 너, 너 같은 비 랭 커가 있다고?"
"칭찬으로 받아들이지. 네 덕분에 대인전의 감각을 좀 살렸어."
A급 헌터에 준하는 도전자 20명.
성스러운 화염을 사용하지 않은 상 태에서도 어렵지 않게 쓰러트렸다.
'이 정도면 S급 헌터는 되려나?'
성스러운 화염까지 사용하면 어느 정도까지 상대할 수 있을까.
강한 적과 싸우고 싶다는 호승심에 갈증이 났다.
"내 발판이 되어주느라 수고했다."
푹!
제왕의 검으로 바닥에서 허우적대 던 크로덴의 목덜미를 빠르게 찔렀 다.
"끄륵...
꿈틀대던 크로덴은 이내 머리가 목 뒤로 꺾인 채로 숨을 거두었다.
크게 뜬 눈은 비통함이 가득했다.
그러게.
건들 사람을 건드려야지.
"참. 정산할 게 하나 더 있지."
다크 스타를 아틀라스 건틀렛으로 변경.
주먹을 꽉 쥐면서 인력을 사용했 다.
"끼아아아아악!"
저 멀리.
녀석들을 사주했던 땅딸보가 열심 히 도망을 치던 중, 건틀렛의 인력 에 끌려왔다.
"우리 정산할 게 있지 않나?"
나는 차게 웃었다.
100 화
황야의 이리 커뮤니티.
그리고 땅딸보 드워프.
이번 일과 관계된 자들은 한 놈도 몸 성히 돌려보낼 마음이 없었다.
마르틴은 아틀라스 건틀렛의 인력 에 끌려와서 바닥에 내팽개쳐졌다.
"자, 잘못했습니다. 제가 귀한 분을 못 알아보고 실수를 저질렀습니다!"
"누구나 실수는 할 수 있지. 용서 해주는 건 별개지만."
칼을 뽑았다면.
반대로 찔릴 각오도 해야 한다.
이 녀석은 남을 찌를 마음가짐이 부족했다.
주위를 둘러봤다.
대장장이 몇 명이 나를 힐끗하더니 고개를 홱 돌렸다.
나머지는 철저한 무관심.
조금 전에 거래를 했던 하칸은 아
예 얼굴 하나 비추지 않았다.
내 호언장담 때문인지.
아니면 주위에 무관심한 건지 모를 일이다.
'여러모로 살풍경한 곳이구먼.'
한국보다는 전생의 고향, 판데모니 엄에 가까운 곳이다.
나는 마르틴을 바닥에 내동댕이치 고 발로 가슴팍을 밟았다.
"끄으으. 커헉!"
폐부를 쥐어짜 내는 비명 소리.
마르틴은 지면을 기면서 꿈틀거렸 다.
"저, 저까지 죽이면 커뮤니티에서 반드시 보복할 겁니다."
"이게 끝이 아니었어?"
"황야의 이리는 100명이나 되는 커뮤니티라고요. 여기서 물러나면 더 피해는 없을 겁니다."
"아. 다행이다."
나는 안도한 기색을 띠었다.
마르틴의 얼굴이 환해졌다.
"쿠, 쿨럭. 발 좀 치워주시면 안 됩...
"녀석들이 더 있는지 몰랐으면 그 대로 지나칠 뻔했잖아."
어버버 -
마르틴은 입을 벙긋거렸다.
조금 전에 내가 한 말을 제대로 못 알아들은 모양이다.
이 녀석은 분위기 파악을 못 하네.
"내가 뒷맛이 안 좋은 걸 싫어하거 든."
"그러니까 다 쓸어버릴 거야." 잠시 침묵이 감돌았다.
마르틴은 눈을 파르르 떨더니, 느
린 속도로 입을 열었다.
"당신.... 미쳤군요."
발에 힘을 지그시 줬다.
커헉! 마른 비명이 튀어나왔다.
"녀석들한테 안내해라."
"쿠, 쿨럭. 알겠습니다."
"엉뚱한 짓 벌이면 가만히 안 둘 거다."
땅딸보 녀석의 몸에서 발을 떼었 다.
"하칸. 내 말 들립니까?"
"이제 와서 왜 찾는 거유."
펄럭.
하칸이 천을 걷으면서 밖으로 나왔 다.
나는 지면에 쓰러져 있는 습격자들 을 가리켰다.
"아이템 수거를 맡겨도 되겠습니 까."
"귀찮은 짓을 시키는구먼."
"한 방 먹여주려면 빨리 움직여야 해서요."
"알겠수다. 잔업 비용은 받을 거 요."
입으로는 투덜거리면서도 해줄 건 다 해준다.
나는 뒷수습을 하칸에게 맡기고 골 목을 벗어났다.
米 氷 #:
공중정원 북부.
일명 커뮤니티 지구로 불렸다.
대장간 지구가 일관적인 분위기였 다면, 이곳은 온갖 세계들의 집합체 처럼 보였다.
'사람이 참 많군.'
오크, 다크 엘프, 트롤 등 여러 종 족이 섞여 있다.
게이트에서 출몰하는 '반쪽짜리'가 아닌, 진짜 이계 출신의 존재들이다.
"이, 이쪽입니다."
산발된 머리.
흙투성이가 된 마르틴은 애처롭게 몸을 떨면서 길 안내를 했다.
녀석의 안내를 따라가다 보니 점점 인파가 줄어들었다.
커뮤니티 지구 외곽지역.
인적이 드물고 곳곳에 그림자가 진 어둑한 골목에 들어섰다.
골목 끝.
으슥한 곳에 자리를 잡은 건물이
눈에 들어왔다.
주황색 불빛이 살짝 열린 문틈 사 이로 새어 나오고 있다.
"저기가 황야의 이리 커뮤니티입니 다."
"수고했다."
"저는 그럼 어떻게 되는 겁니까?"
"약속은 지켜야지."
푹-
다크 스타를 재차 검으로 변형, 땅 딸보 드워프의 심장을 빠르게 찔렀 다.
"왜, 왜...
"엉뚱한 짓 하면 가만히 안 둔다고 했잖아."
나는 드워프의 귓가에 속삭였다.
길 안내를 하는 도중.
녀석은 품안에 숨겨둔 무언가를 작 동시 켰다.
은밀한 마력 파동.
6성에 이른 성천조계공의 기감을 속이지는 못했다.
'일종의 신호였겠지.'
약속은 약속이니 지켜야 하지 않겠 는가.
나는 한 입으로 두말하지 않았다.
드워프를 쓰러트리는 순간, 사방에 서 살의가 쏟아졌다.
"알고 있으니까 나와."
사'/사삭" _
그림자 여럿이 골목길 주위에 드리 웠다.
대장간 지구 때보다 2배 이상 많 은 숫자였다.
"신입 주제에 간도 크네?"
건조한 목소리.
검은 피풍의를 뒤집어쓴 여인이 커 유니티 건물 옥상에서 모습을 드러 냈다.
기다란 귀가 머리를 뒤덮고 있는 후드 사이로 삐져나왔다.
다크 엘프였다.
"네가 황야의 이리인가 하는 놈들 의 단장인가 보군."
"이번 신입은 건방지네. 주둥이만 살았어."
"주둥이만 산 놈한테 죽어버린 네 부하들은 다 등신들인가."
커뮤니티 단장은 잠시 입을 다물었 다.
"크로덴은 어떻게 했나?"
"죽였다."
"덕분에 우리 커뮤니티 부단장 자 리가 공석이 되어버렸네."
"안타까운 일이야. 애도하지."
나는 영혼 없는 투로 대꾸했다.
"신입, 커뮤니티 부단장으로 들어 올 기회를 줄게."
"누구. 저요?"
"크로덴을 쓰러트렸으면 실력도 있 고, 배포도 마음에 들어."
"너희 부하들을 죽였다는 사실은 벌써 잊어버렸나 보군."
"부단장으로 들어오면 죄를 용서해 줄게. 이 정도면 괜찮은 조건이잖
아."
"용머리가 어떻게 뱀 꼬리에 붙 나."
커뮤니티 단장은 안색을 굳혔다.
"호호. 아무래도 신입한테는 따끔 한 조교가 필요하겠어."
짝짝!
단장이 손뼉을 마주치는 순간.
주변을 가득 메운 단원들이 행동을 개시했다.
암기와 화살이 사방에서 날아들었 다.
전후좌우.
피할 곳은 어디에도 없었다.
[호신강기를 사용합니다.]
혼돈기 1,000을 사용해서 전신을 둘렀다.
'오러도 싣지 못한 공격정도야.'
티티팅!
암기 세례는 호신강기에 전혀 타격 을 주지 못했다.
나는 불멸 권능으로 빚어낸 아공간 을 열었다.
푸른 인페르노 사이트가 일그러진 공간 틈새로 붉게 타올랐다.
전사 3기.
그리고 기사 1기가 5층에서 모습 을 드러냈다.
콰앙-
불멸의 군세가 착지하자 육중한 무 게 때문에 지축이 흔들렸다.
'임모탈 워리어가 힘을 발휘하기에 는 장소가 안 좋다.'
주변에 있는 건물과 비슷한 덩치.
10m의 거구가 전장에서는 불리함 으로 작용했다.
나는 임모탈 나이트를 지목했다.
"지휘권을 주마. 임모탈 워리어와 함께 녀석들을 쓰러트려라."
『존명!』
임모탈 나이트의 전신이 흑색 기류 에 휘감겼다.
[임모탈 나이트가 폴리모프를 사용 합니다.]
[크기가 줄어들어서 능력치에 패널 티를 받습니다. 마력을 제외한 모든 능력치가 30% 하락합니다.]
10m에 이르던 커다란 신체가 2m 크기로 작아졌다.
나와 비슷한 덩치.
기세가 조금 줄어들었지만, 여전히 강했다.
『잡것들아. 지존의 행사를 방해하 지 마라.』
임모탈 나이트는 전사 계급을 통솔 하면서 양옆에 배치된 단원들을 학 살하기 시작했다.
커뮤니티 단장의 얼굴에서 핏기가 사라졌다.
나는 성스러운 화염을 몸에 둘렀
다.
성천조계공에 이어 중복으로 늘어 난 능력치.
전투 준비는 끝났다.
"탈색 귀쟁아. 우리도 할 이야기가 있잖아?"
골목길을 빠르게 내달리다가 지면 을 강하게 박찼다.
땅거죽이 충격을 받아서 헤집어졌 다.
그 반동으로, 높이 뛰어올라서 커 뮤니티 단장이 있는 곳까지 직행했 다.
"신입 주제에 건방지구나!"
단장은 양팔을 휘저었다.
녀석의 그림자가 등 뒤에서 꿈틀거 렸다.
섀도우 핀드.
시련의 탑 1층에서 마주했던 괴물, 펠 비스트와 마찬가지로 판데모니엄 에 서식하는 마수였다.
그림자가 칼날 수십 개로 변해서 나를 향해 쇄도했다.
'모두 물리력을 가진 실체들이다.'
나는 제왕의 검을 들고 창궁무애검 법을 펼쳤다.
파츠츠츠!
강기가 서린 검이 눈에 보이지 않 을 만큼 빠른 속도로 쏘아졌다.
그림자 검 수십 개가 순식간에 부 러져 나갔다.
기세를 거두지 않고 단장을 향해 정면으로 무공을 펼쳤다.
서걱-
난간이 검강에 잘려 나갔다.
제왕의 검이 단장의 머리를 쪼개기 직전, 녀석의 몸뚱이가 검게 물들더 니 감쪽같이 사라졌다.
[그림자 이동]
그림자 사이를 건너뛰는 섀도우 핀 드의 스킬이다.
단장이 모습을 드러낸 것은 수십 미터 떨어진 건물의 옥상이었다.
"마수를 그만큼 자유자재로 다루다 니, 제법이야."
"이익, 너. 그 힘은 설마 무림에 속한 도전자였냐?!"
무림.
익숙한 명칭이다.
과거 무 대륙에서 활동했을 때 무 인들의 세상을 가리키는 용어였다.
"아니. 지구 출신인데."
"거짓말 마!"
단장은 다시 한번 손을 휘저었다.
암흑 정령 여럿이 돌아다니면서 흑 색 장막을 드리웠다.
'잔꾀를 부리는군.'
나는 거리를 빠르게 좁혔다.
그 순간.
"다크 스피어!"
순식간에 재배열된 암흑 마나.
3m 길이의 흑색 창이 허공을 격하 면서 빠르게 날아갔다.
내가 막 난간을 밟고 도약한 상황
을 노린 것이다.
"생각은 꽤 좋았다만."
섬전비도 하나에 혼돈기를 실어서 근처에 있는 건물 외벽에 투척했다.
돌로 된 벽도 쉽게 뚫어내는 비도.
아라크네의 실을 확 당겨서 비도가 있는 곳으로 궤도를 틀었다.
흑색 창이 내 머리카락을 아슬아슬 하게 스쳤다.
"정령 해방!"
암흑 정령 5기가 일제히 기운을 방출하면서 날아들었다.
검은 구체.
순수한 암흑 마나가 뭉쳐진 형태 다.
정령의 힘을 일순간에 폭발시키는 강력한 기술이지만, 사용 후에는 꽤 긴 시간 동안 해당 정령을 불러올 수 없었다.
정령사들은 위급한 상황이 아니면 잘 쓰지 않았다.
'피하는 건 어렵겠다.'
의지를 가진 정령들.
다크 스피어처럼 한 번 피하는 걸 로 끝나지 않고 나를 계속해서 노릴 것이다.
다크 스타를 일각수의 뿔창으로 변 형.
[악가창법을 사용합니다.]
[창에 강한 기운이 깃듭니다.]
파츠츠츠!
뿔창의 홈이 혼돈기의 위력을 증폭 시켰다.
나는 창끝을 빠르게 내질러서 구체 중심부에 있는 정령을 꿰뚫었다.
-끼아아아!
암흑 정령은 비명을 지르면서 역소 환되 었다.
"메가리스 헤드!"
내가 정령들을 무력화시키는 동안, 단장도 가만히 있지 않았다.
딛고 있는 땅 주변이 검게 물들었 다.
지면은 마법의 영향으로 검은 상어 의 아가리로 변했다.
주위를 덮은 이빨 수백 개.
콰직!
칼날보다 예리한 이빨들이 내 몸을 짓눌렀다.
"호호호! 이제야 잡혀주었구나. 이 누나를 힘들게 한 대가를 치르게 해 줄게."
"누나는 무슨. 탈색 귀쟁이 주제에 말이 길군."
"너...?"
나는 양팔에 힘을 주었다.
콰드득!
암흑 마나로 이루어진 상어의 아가 리가 힘에 못 이겨서 양쪽으로 찢어 졌다.
"꺄악!"
마법을 파훼한 반작용이 단장에게
들이닥쳤다.
칼날 수백 개가 몸에 박히는 상황.
내 몸은 멀쩡했다.
'역시, 초월 등급 장비는 다르다.'
입가에 미소가 감돌았다.
메가리스 헤드는 내 몸통만을 집요 하게 노렸다.
암흑 마나가 집약된 이빨.
전신이 아니기에, [원초의 그림자 갑옷]의 방어력을 믿고 호신마강도 사용하지 않았다.
효과는 대단했다.
몸에 전해지는 충격은 극히 일부.
부분적으로 헤지기는 했지만 내구 력도 크게 떨어지지 않았다.
"이, 이, 이! 건방진 신입이!"
마탄이나 저주를 사용하면서 거리 를 벌리는 단장.
나는 쉬지 않고 뒤꽁무니를 쫓았 다.
상체는 [원초의 그림자 갑옷]으로 보호받고 있었다.
단발적인 마법으로는 갑옷의 방어 력을 뚫고 나한테 피해를 입히기 어 려웠다.
갑옷을 뚫을 정도의 피해를 준다 한들.
성스러운 불꽃이 금세 상처를 회복 시켜주었다.
"도망치는 재주 하나는 끝내주잖 아."
진심이었다.
섀도우 핀드는 어느 환경에서도 상 대하기가 까다로운 괴물이다.
단장이 섀도우 핀드와 완벽히 동화 를 이룬 덕에 추격에 꽤 애를 먹었 다.
영원히 끝나지 않는 술래잡기는 없
는 법.
한순간이지만 단장의 마력 운용에 빈틈이 생겼다.
연거푸 무리하게 암흑 마나를 재배 열하다가 손이 꼬여버렸다.
"이제 그만 끝을 내자고."
나는 단장의 급소에 제왕의 검을 밀어 넣었다.
1()1 화
탑의 칠황(七皇).
시련의 탑의 정점에 군림한 일곱 존재를 가리키는 말이다.
탑이 세워진 지 억겁의 세월이 지 났지만, 칠황이라는 이름은 늘 유지 되어 왔었다.
누군가가 사망하거나 밀려나면, 또 다른 강자가 그 자리에 군림했다.
칠황이 이끄는 무리는 탑의 7대 세력으로 불리며 탑에서 강한 영향 력을 끼쳤다.
[드래곤 투스]
용인과 하위 용족, 그리고 용족을 따르는 추종자들로 구성된 커뮤니 티.
[뫼비우스]
금단의 영역에까지 손을 뻗은 강력 한 마법사들의 집단.
[프로비덴티움]
엘리시움 소속 천사들, 그리고 친 엘리시움 파 종족들로 구성된 커뮤 니티.
[게헤나]
판데모니움 소속 악마들과 동맹 종 족들로 구성된 커뮤니티.
[무림 (武林)]
무 대륙 출신 무인들이 모여서 설 립한 단체.
[타이탄]
거인족과 유사 거인들, 신화시대에 몰락해버린 네피림들이 모인 집단.
[아트록스]
다차원 종족으로 구성된 커뮤니티.
현재 탑의 패권을 쥐고 있는 7대 커뮤니티다.
"마음에 안 들어."
"갑자기 마음에 안 든다고 하면 뭔 지 어떻게 압니까?"
"고착화된 7대 커뮤니티의 세력도 말이야."
미호.
[아트록스]의 부대장이자, 수인 중 여우 일족의 피를 이은 여인이다.
그녀는 육감적인 몸매를 과시하는 타이트한 옷을 입고, 다리를 꼰 채 로 앉아있었다.
반면 미호를 마주하고 있는 부관은 철제 갑주로 전신을 무장했다.
"어쩌겠습니까. 7대 커뮤니티의 힘 겨루기는 공고한 것을요."
7대 세력은 모두 탑 45층에 거점 을 두고 오랫동안 영역 다툼을 벌이 는 중이었다.
칠황은 모두 탑의 정상을 향하는 경쟁자.
누구 하나 탑의 위층으로 올라서지 못하고 오랜 시간 동안 지지부진한
대치를 벌였다.
"말이 7대 커뮤니티지. 우리는 말 석이잖아."
부관의 얼굴이 새파래졌다.
"부대장님. 혹시 누가 들으면 어쩌 시려고 그런 말씀을 하십니까."
"내가 틀린 말 했어?"
7대 커뮤니티 중 말석.
[드래곤 투스]와 [뫼비우스]는 구성 원의 숫자가 많지 않지만, 강력한 힘으로 최상위 커뮤니티의 자리를 굳건히 지키고 있다.
[프로비덴티움]과 [게헤나]는 또 어
떤가.
다중차원 우주의 패권을 두고 전쟁 을 벌이는 두 거대 세력이 그대로 자리를 잡고 있다.
[무림]은 탑의 패권에 큰 관심을 두지 않았고.
[타이탄]은 실전된 옛 영광을 찾기 위해 탑의 문헌과 기록을 찾는 일에 열중을 올렸다.
반면 [아트록스]는 가장 최근에 7 대 커뮤니티에 진입했다.
여러 차원의 종족들을 받아들이고 훈련시켰지만, 이미 오랫동안 군림 해온 여섯 커뮤니티에 비해 세력이
나 역사에서 모두 뒤처졌다.
"그러니까 부대장님이랑 저도 5층 거점에 있는 거 아닙니까."
"인재를 발굴해서 세력을 키워내 자?"
"예. 그게 대장님의 뜻이기도 하고 요."
탑에는 오래전부터 이런 말이 전해 져 내려왔다.
[공중정원이야말로 진정한 탑을 등 반하는 시작점이다.]
열사의 사막 - 생존능력.
심연의 바다 - 여러 능력 시험.
블랙 포트리스 방어전 - 전투능 력.
고난의 통로 - [육감] 각성
1층에서 4층의 시련은 도전자의 역량을 가늠하는 역할을 했다.
포인트의 사용도 제한적이며, 정보 공유도 거의 없었다.
쉼터 역할을 하는 5층.
그 위부터는 시련의 난이도가 기하 급수적으로 상승한다.
도전자들은 탑을 오르기 위해 공동
체를 결성하고 정보를 공유하며 상 행위를 했다.
공중정원은 탑 안에 세워진 또 하 나의 작은 사회였다.
탑의 도전자들이 처음으로 마주하 는 사회.
재능이 있거나 강한 힘을 지닌 신 입을 포섭하기에 제격인 공간이다.
"그래서 내가 45층이 아니라 여기 에 있는 거잖아."
"대장님께서 미호 부대장님을 그만 큼 신뢰하신다는 뜻 아니겠습니까."
"신뢰는 얼어 죽을, 사고나 치지 말라는 거겠지."
부관은 저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일 뻔했다.
미호의 불같은 성정은 아트록스 내 에서 유명했다.
"그래서. 요새 떠오르는 신입은 누 구야?"
"가장 유명한 건 역시... 라우 드 골드리 안입니다."
"아. 그 금색 꼬맹이."
라우 드 골드리안.
에인션트 드래곤의 피를 계승한 용 인.
비어있는 다섯 번째 왕좌를 계승할
합법적인 후계자이며, 그 스스로도 강력한 용족이었다.
"몇 층까지 올라갔다고 했지?"
"지금 8층의 시련에 도전하고 있습 니다."
"엄청 빠르네."
"황(皇)급과 비교해도 손색이 없 죠."
"근데 걔는 용족이잖아. 드래곤 투 스에서 채갈 것 같은데."
"이미 접선 중이라고 합니다."
"쳇. 다른 녀석들은?"
부관은 5층에 도달한 신입 중에서
명성을 떨치고 있는 자들을 차례대 로 언급했다.
"시시해."
"그건 너무 약하잖아."
"7대 커뮤니티에 들 정도는 아니 네."
미호는 똑같은 의미가 담긴 말을 어투만 바꿔서 말했다.
아트록스가 7대 세력의 말석이라고 는 해도, 수많은 커뮤니티를 제치고 정상에 섰다.
어지간한 인재로는 눈에 차지 않았 다.
"참. 최근 랭킹 창을 보신 적 있습 니까?"
"아니. 가기 귀찮잖아."
탑의 랭킹을 확인하려면 공중정원 중심에 있는 탑으로 가야 한다.
미호는 5층으로 내려온 뒤, 한 번 도 거점 밖으로 나선 적이 없었다.
"후후. 0층 시련의 랭킹이 바뀌었 다고 합니다."
"우리 대장님 또 한 칸 밀렸겠네. 몇 위가 바뀐 거야?"
"1 위입니다."
"장난치지 말고."
"진짜입니다."
미호는 안색을 굳혔다.
0층 시련의 랭킹 교체.
그 누구도 넘보지 못했던 마황의 자리를, 누군가가 밀어낸 것이다.
부관의 말이 사실이라면 탑의 역사 에 길이 남을 큰 사건이었다.
"근데 왜 난 몰랐지?"
"보고서를 올렸지만 제대로 안 보 셨겠죠."
미호는 급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우왓! 그럼 빨리 꼬셔... 아니 지, 우리 편으로 데려와야지. 뭐 하
고 있어?!"
"아직 탑의 시련을 치르는 중인 것 같습니다."
"휴, 다행이야. 0층 시련의 새 1위 는 누구인데?"
"전민철이라는 이름이더군요."
"무 대륙 출신인가? 어쨌든 잘 체 크해둬. 다른 건 몰라도 전투 센스 만큼은 발군이라는 거잖아."
0층 시련의 최종 스테이지는 칠황 들조차 통과하지 못했다.
레기온.
자신과 동일한 스탯을 보유한 존재
와 100대 1로 싸우는 극악한 난이 도.
그걸 통과했다면, 잠재력만큼은 현 재의 칠황조차도 능가할지도 모른다 는 말이었다.
"이미 다른 길드에서도 눈을 밝히 면서 그자를 찾고 있습니다."
"호호. 발견만 하면 이 누나가 꼭 안아줘서 아트록스로 데려올 거야."
부관은 고개를 좌우로 저었다.
미호가 매력적인 건 부정할 수 없 었지만, 그녀의 자기애는 때로 너무 과하게 발휘되었다.
"아. 눈에 띄는 신입이 한 명 더
있습니다."
"누군데?"
"이름은 모릅니다만...
"뭐야. 이름을 모르는데 어떻게 판 단을 해."
미호는 김샜다는 듯 콧방귀를 뀌었 다.
"황야의 이리라는 커뮤니티를 들어 보셨습니까?"
"몰라."
"신입을 갈취하거나 협박해서 세력 을 불린 신흥 커뮤니티입니다."
"탑에서 그런 녀석들이 한 둘인
가."
시련의 탑.
오랫동안 쌓인 규율은 결국 강자들 이 세워놓은 가이드라인이다.
어느 차원을 둘러보더라도, 탑만큼 이나 힘의 규율이 적용되는 곳은 별 로 없었다.
판데모니엄의 악마 종족 중 하나인 투마 정도나 비교가 될까.
"비 랭커 출신 도전자가 그 커뮤니 티와 마찰을 일으켜서 전원을 쓰러 트렸다고 합니다."
"지구 출신?"
"예."
"걔네는 약해 빠졌잖아. 그 황야 의... 뭐라고 했더라."
"이 리입니다."
"그래. 늑대인지 이리인지, 그 녀석 들이 약한 건 아니었고?"
"총원 80명. 커뮤니티 단장은 S급 에 조금 못 미치는 수준이었습니 다."
"비슷한 시기에 신예가 둘이나 나 타난 거네?"
미호는 혀를 내밀어서 입술을 핥았 다.
"정보를 수집하는 중입니다."
"전민철이라는 헌터는 아직 안 올 라온 거잖아."
"정황상으로는 그렇습니다."
"시작의 공터 배치 인원 3배로 늘 려. 그 황야 어쩌고 하는 애들이랑 싸운 신입은?"
"소재지를 파악하고 있습니다."
"오래간만에 대장님한테 상을 받을 수 있을지도 모르겠어."
0층 랭킹을 엎어버린 기라성 같은 신예.
비 랭커 출신이면서도 커뮤니티 하
나를 몰락시킨 신입.
당장 7대 세력의 판도를 뒤집을 만큼의 변수는 되지 않겠지만.
섭외 후 시간을 들여 키우면 커뮤 니티의 주 전력으로 삼을 만한 저력 을 지닌 존재들이다.
미호와 부관은 두 존재가 같은 사 람이라는 사실을 알지 못한 채, 섭 외를 위한 계획을 준비했다.
나는 황야의 이리에 소속된 이들을
모두 쓰러트렸다.
도중에 이탈하는 녀석들도 놓치지 않았다.
'후환을 남기면 안 되지.'
약육강식의 세계.
원한 관계는 그때그때 해결해두는 게 좋았다.
탑에서는 현생의 내 모습보다 전 생, 데이모스의 성향이 두드러지게 나왔다.
'이렇게 사람을 죽이게 될 줄은 몰 랐는데.'
나는 쓰게 웃었다.
황야의 이리 커뮤니티에는 비 랭커 출신, 다시 말해 지구인도 포함되었 다.
예외는 없었다.
땅딸보 녀석이 장난질을 친 순간부 터,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너버렸 다.
'이런 쓰레기 커뮤니티 따위. 들은 녀석이 잘못한 거다.'
적에게 베풀 자비 같은 건 없다.
한번 이빨을 드러낸 이상.
둘 중 하나가 쓰러질 때까지는 멈 출 수 없는 싸움이었다.
도중에 도망친 녀석들까지 모두 처 리하는 데 하루 가까이 걸렸다.
나는 하칸이 운영하는 대장간으로 돌아왔다.
"오. 마침 좋은 시기에 왔수다."
"각인 준비가 끝난 겁니까?"
"그렇수다. 근데 피 냄새가 몸에 엄청 베어버렸구먼."
"어제 그 녀석들 처리하느라 나름 바빴죠."
"겁쟁이 놈들. 여럿이서 몰려다닐 줄이나 알고 말이야."
하칸은 경멸을 감추지 않았다.
불칸 종족.
투쟁에 목마른 종족답게, 내 몸에 찌든 피 냄새를 맡고도 크게 거부감 을 느끼지 않았다.
나는 하칸의 안내를 받아 대장간 안으로 들어갔다.
"공정은 모두 끝났수다. 여기에 피 한 방울만 떨어트리면 각인 완료되 는 거유."
"수고하셨습니다."
"낯간지러운 소리는 관두쇼. 나도 각인하면서 많이 배웠으니."
질색하면서 고개를 젓는 하칸.
뭘 또 저렇게 부끄러워하나.
나는 가볍게 웃었다.
'피를 떨어트리라고 했지.'
품속의 섬전비도를 꺼내서 엄지를 살짝 그었다.
몽글몽글 맺히는 핏방울.
살짝 힘을 주어 피를 요르문간드 망토 위에 떨어트렸다.
[각인 마법진이 당신의 기운에 반 응합니다.]
[사용자의 기록이 요르문간드의 망 토에 새겨집니다.]
[요르문간드 망토의 형태가 사용자 가 원하는 모습으로 변화합니다.]
[망토 一 코트]
꿈틀꿈틀.
길게 늘여졌던 망토가 현대의 패션 에 어울리는 코트로 변화했다.
각인 도중, 내 무의식이 반영된 듯 했다.
요르문간드 망토.
아니, 이제는 코트라고 불러야 할 장비와 연결되는 느낌이 들었다.
각인 의식이었다.
"흐흐. 이제는 그 망토의 힘을 모 두 발휘할 수 있을 거요. 무슨 기능 이 있는지 알고 있슈?"
"제가 확인해도 될 것 같습니다. 고맙습니다."
하칸의 안목을 못 믿는 건 아니었 다.
하지만.
나에게는 더 확실하고 빠르게 물건 의 내력을 확인할 수 있는 스킬이 있었다.
[요르문간드 코트]
등급 : 초월 [0] / 종류 : 망토
내구도 : 6,666 / 6,666
* 물리 방어 Lv 150
*자가 수복 기능
*독 완전 내성
* [투명화] 스킬 사용 가능
* [요르문간드의 독] 스킬 사용 가 능
유물.
아티팩트라는 말이 어울리는 강력
한 아이템이다.
나는 놀라지 않고 차분하게 상태창 을 살펴봤다.
'역시. 초월 등급이었나.'
엄청난 물리 방어.
독 완전 내성.
코트에 부여된 스킬 두 가지도 매 우 강력했다.
신화시대의 괴수. 요르문간드의 신 비가 깃든 강력한 독을 다룰 수 있 게 되었다.
투명화 스킬은 기척을 숨기고 적을 급습하거나 정찰 용도로 사용하는
등 활용 방법이 많은 스킬이었다.
'선배님의 사랑. 잊지 않겠습니다.'
죽음의 해역에 잠들어있는 요르문 간드를 한 번 떠올리는 것으로 감사 인사를 마쳤다.
"다음에도 잘 부탁드립니다."
"그런 희귀한 재료는 언제든지 맡 겨주쇼."
암요.
마에스트로급 장인한테 안 맡기면 누구한테 맡기겠습니까?
'이제 5층에서 해결할 일은 하나만 남았나.'
나는 주머니에 손을 넣었다. 까끌까끌한 감촉.
경매에서 완성시킨 아이템.
[드랑카의 열쇠]였다.
102 화
드랑카의 열쇠를 꺼내는 순간.
부우웅!
열쇠에 전화가 온 것처럼 진동음을 냈다.
'반응이 있다.'
금색 빛이 수정 안쪽에서 새어 나
왔다.
경매장에서 조각을 모두 모아 열쇠 로 합쳤을 때도, 이런 반응을 보이 지는 않았다.
'역시 5층에 와서 활성화된 건가.'
5층의 히든 스테이지.
드랑카의 시련으로 입장하게 해주 는 열쇠.
나는 [천호동 게이트] 공략 때 처 음으로 열쇠 파편을 얻었다.
여러 조각으로 나누어진 열쇠.
나머지 조각들은 경매장에서 구할 수 있었다.
'마르탄도 용도를 알아내지 못했으 니까.'
마르탄의 경지는 마이스터.
지구에서는 최고 수준의 장인이다.
나도 [진실의 눈]이 아니었다면 열 쇠의 진가를 알아보지 못했을 것이 다.
'이게 왜 게이트에서 나왔을까.'
게이트는 지구에서만 일어나는 기 현상이다.
1차 대격변이 일어난 지 수십 년 이 지났다.
오랜 시간이 흘렀지만 게이트가 열
린 원인에 대해서는 아직도 규명되 지 않았다.
'우연이라고 치기는 너무 공교로 워.'
탑과 게이트.
밝혀지지 않은 연결점이 둘 사이에 있는 건 아닐까.
'뭐, 당장 알 수 있는 것도 아니잖 아.'
나는 고개를 좌우로 빠르게 저으면 서 상념을 털어냈다.
황금빛을 띠는 드랑카의 열쇠.
사용 방법은 이미 진실의 눈을 통
해 숙지해두었다.
열쇠를 앞에 내밀고는 살짝 돌렸 다.
구구구궁!
빈 공간인데도, 마치 문에 열쇠를 꽂은 것처럼 맞아떨어졌다.
'이걸 이렇게 하면...
힘을 주어서 열쇠를 옆으로 젖혔 다.
공간 일부가 밀려나고, 환한 빛이 내 몸을 감쌌다.
눈을 깜박이니, 조금 전까지 서 있 던 골목 대신 다른 풍경이 펼쳐졌
다.
[드랑카의 열쇠를 확인했습니다.]
[드랑카의 시험 장소에 입장했습니 다.]
고대 신전.
신전의 형태는 파르테논 신전과 비 슷했다.
세월의 풍파를 정면으로 맞았는지, 군데군데에 금이 가고 허물어졌다.
신전의 현판은 반쯤 부서진 채로 바닥에 나뒹굴었다.
'무한 고리 별자리?'
무한의 고리(..)와 비슷한 형태의
문양.
훼손이 심하게 돼서 온전한 상태의
모습을 떠올리는 건 쉽지 않았다.
나는 반쯤 무너진 현판을 지나 신
전 안쪽으로 들어갔다.
[시련의 탑 - 5층]
[서브 퀘스트 : 드랑카의 시험] 드랑카는 근원을 숭배했던 신전 안
에 소중한 보물을 숨겨두었다.
시험을 통과하면 드랑카의 보물을
얻을 수 있다.
* 목표
마력 패턴 풀기.
* 제한
60분 안에 목표를 달성.
패턴을 정해진 시간 안에 맞추지 못하면 자동적으로 실패한다.
신전 중심에는 3m 크기의 비석이 떡하니 박혀 있었다.
퀘스트가 말한 '시험' 내용이었다.
나는 비석 위에 손을 포개었다.
여러 마력 패턴이 비석의 표면 위 로 떠올랐다.
길게 늘여진 마력 다발이 엉켜놓은 실타래처럼 수십 갈래로 꼬여있다.
'오호. 재밌는 걸 준비해뒀잖아.'
나는 흥미로운 눈빛으로 패턴을 훑 어봤다.
엉키고 엉킨 마력 패턴.
상황은 좀 다르지만, 동일한 원리 로 작동하는 것을 다뤄본 적은 있 다.
차원 창고.
성간 연합이 자랑하는 실시간 다중
차원 전송 장치.
'전생의 나는 지구에 오기 전, 다 크 스타를 차원 창고에 맡겨뒀다.'
차원 창고는 성간 연합 VIP만 사 용할 수 있다.
VIP 코드는 사용자만 알고 있는 고유의 마력 패턴을 그려내야 활성 화된다.
'문제를 푸는 방식은 조금 다르다 만.'
어려울 건 없지.
나는 자신 있게 혼돈기를 불어넣었 다.
마력을 섬세하게 운용해야 엉켜있 는 회로를 풀어낼 수 있다.
마력 운용.
전 우주를 통틀어도, 나보다 마력 을 잘 다루는 존재는 없을 것이다.
'식은 죽 먹기다.'
제한 시간이 60분이라고 했던가?
10분이면 끝내주마.
나는 의욕적으로 혼돈기를 움직였 다.
엉켜버린 마력 회로가 하나둘 풀려 나가기 시작했다.
米 5k 米
실타래처럼 엉킨 마력 회로가 원래 의 자리로 돌아왔다.
쳇.
나는 혀를 찼다.
'실력이 녹슬었군.'
11분 25초.
마력 회로를 원래대로 돌리는 데 걸린 시간이다.
'전보다 세밀하게 운용하기가 어렵 다.'
죽음의 핵을 사용해서 세계석의 기 운을 자극, 막대한 혼돈기를 흡수했 다.
성천조계공의 성취는 6성까지 치솟 았고, 혼돈기가 전보다 두 배 이상 늘어났다.
내력이 짧은 기간 동안 급격하게 불어난 탓일까.
마력 회로를 풀어내는 과정이 생각 만큼 매끄럽지 않았다.
'너무 기운을 키워가는 것만 신경 썼다.'
나는 짧게 반성했다.
진정한 고수라면, 미세한 움직임 하나하나에 예민하게 반응할 줄 알 아야 한다.
비슷한 수준의 상대와 맞붙게 되면 미세한 마력 응용 차이가 승패를 가 르기도 했다.
'혼돈기를 다스리는 데 좀 더 신경 을 써야겠어.'
양도 중요하지만.
내력의 질도 그에 못지않게 중요했 다.
나는 성천조계공 6성에 도달하면서 안이해진 마음을 다잡았다.
[시련의 탑 - 5층]
[드랑카의 시험을 통과했습니다.] [업적 보상으로 100,000pt와 무한
의 공간이 주어집니다.]
[무한의 공간은 도전자에게 귀속됩
니다.]
[무한의 공간 - Lv 1]
등급 : 초월 [0] / 분류 : 아공간 내구력 : *
'드랑카의 시험'을 통과한 자에게 주어지는 전용 아공간 창고입니다.
사용자가 아공간에 보관해둔 물건 을 떠올리면 즉시 꺼낼 수 있습니 다.
* 허용량 : 0/1,000kg
*공간 확장 포인트 : 100,000pt
서브 퀘스트 보상은 개인전용 아공 간이었다.
'허용량이 1톤이나 돼?!'
미친.
내 시선이 아래를 향했다.
허리춤에 주렁주렁 매달아 놓은 가 죽 재질 주머니.
마르탄한테 빌린 아공간 주머니다.
하나당 100kg까지 보관할 수 있는 아이템. 한화로 치면 약 20억 정도 의 가치를 지녔다.
'단순 계산으로도 200억.'
아공간은 내부 용량에 따라 기하급 수적으로 가격도 불어난다.
방금 서브 퀘스트 보상으로 얻은 [무한의 공간]은 보관 용량이 무려 1 톤.
보관 가능한 수치만 봐도 300억은
넘지 않을까.
'이건 아공간 주머니보다 훨씬 좋 다.'
마음만 먹으면 바로 물건을 불러낼 수 있다는 점.
아공간 주머니에 손을 넣고 해당 물건을 찾을 때까지 뒤적거릴 필요 가 없었다.
'귀찮게 달고 다닐 필요도 없어.'
격하게 움직이면 아공간 주머니도 좌우로 흔들렸다.
은근히 거슬렸는데, 귀찮은 점이 해결되었다.
나는 곧장 10만 포인트를 사용해 서 무한의 공간을 확장했다.
[무한의 공간 Lv 1 - 2]
[보관 용량이 2,000kg로 늘어났습 니다.]
'당분간 보관 장소로 고민할 건 없 겠다.'
2톤 이상 보관할 수 있는 아공간 은 전 우주를 기준으로 두었을 때 희귀한 건 아니었다.
하지만.
그 어떤 아공간도 의지만으로 열고 닫을 수는 없었다.
'생각도 못 한 보상이었다.'
나는 경매에서 드랑카의 열쇠 파편 들을 10억에 사들였다.
얼마나 이득을 본 건지 산술적으로 계산할 수가 없다.
"흐흐흐흐!"
타인의 눈치를 볼 것 없이 마음껏 웃었다.
구구궁.
돌연 가만히 있던 비석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비석은 지면에서 30cm 정도 떠올 랐다.
표면에 흐르는 강렬한 마나.
퀘스트를 진행하면서 원래의 형태 를 되찾은 마력 회로가 작동을 시작 했다.
'뭐야. 이게 끝이 아니었어?'
나는 의아한 눈빛으로 비석을 바라 봤다.
宗 %#&■<>
처음 보는 글자가 비석의 표면 위 로 떠올랐다.
고대의 글자.
룬(Rune) 어처럼 글자 하나하나에 신비와 강력한 마력을 내포한 강력 한 문자였다.
'내가 모르는 글이야.'
전생의 지식을 모두 뒤져봤지만, 비석 위에 떠오른 글자와 일치하는 게 없었다.
글자에 담긴 신비와 힘.
신화시대에 버금가는 옛 시대의 흔 적이다.
'이런 글자라면 마법진이나 진법에 활용할 수 있을지도 몰라.'
나는 바로 [진실의 눈]을 사용했
다.
[???? ?? ???]
[....]
[사용자의 수준이 낮아서 문자를 해독할 수 없습니다.]
뭣이?!
라우 드 골드리안이나 바리스 실 린, 혹은 관리자를 진실의 눈으로 살펴봤을 때와 마찬가지였다.
'이 문자가 그만큼 높은 격을 지녔 단 말인가?!'
비석에 새겨진 글귀.
어떤 문자인지, 그리고 무슨 내용 을 써놨는지.
궁금한 마음이 치솟았다.
전생의 나조차도 몰랐던 힘의 언 어.
현재의 내 수준으로는 접근조차 할 수 없는 강력한 글자다.
'해석할 수 없다면 챙겨가자.'
나는 비석에 다시 손을 뻗고, 무한 의 공간을 사용했다.
[올바른 대상이 아닙니다.]
[무한의 공간에 보관할 수 없습니 다.]
비석은 퀘스트의 일부.
통째로 챙길 수는 없었다.
'원문을 못 가져간다면 기록이라도 해둬야 한다.'
파츠츠츠!
혼돈기를 손가락에 집중시켰다.
나는 반쯤 무너진 기둥 앞에 서서 비석에 떠오른 문자를 하나하나 새 겨 넣었다.
한 획, 한 획을 그을 때마다 신중
을 기하면서 집중했다.
필사를 마친 뒤.
기둥 밑동을 잘라서 무한의 공간에 보관했다.
'다행히 작동을 하네.'
기둥도 퀘스트 일부로 포함된다면, 피라도 내서 옷에 글자를 써야 하나 생각했다.
피를 볼 일은 없어서 다행이었다.
신전 끝에 빛나고 있는 웜홀.
5층으로 돌아가는 통로다.
나는 푸르게 빛나고 있는 비석을 흘겨봤다.
'언젠가 꼭 해석해주마.'
아쉬운 마음을 뒤로 한 채, 시련의 탑 5층으로 돌아갔다.
米 氷 #:
공중정원의 중심부에는 '탑'이 있 다.
생김새는 서울에 나타난 탑과 동일 했다.
대신 크기는 훨씬 작았다.
나는 정성희의 안내를 떠올렸다.
'다음 층에 도전하거나 원래의 세 계로 돌아가려면, 여길 이용하라고 했지.'
5층에서도 많은 것을 얻었다.
요르문간드 망토 각인.
무한의 공간.
그리고 해석이 불가능한 고대의 문 자까지.
마음 같아서는 곧장 6층의 시련에 도전하고 싶었다.
'그러기에는 시간이 부족해.'
탑 6층부터는 본격적인 시련이 시 작된다.
6층의 시련을 통과하는 데 걸리는 시간은 평균 반년 정도다.
시련 장소도 훨씬 넓어지고, 난이 도도 올라갔다.
오랫동안 탑에 머무를 수는 없었 다.
'탑은 많은 것을 숨겨두었다.'
시련이 험난할수록 더 많은 보상을 얻었다.
6층의 시련도 마찬가지.
제대로 된 보상을 받으려면 차근차 근 탑을 공략해야 한다.
'당장은 그럴 시간이 부족하다.'
흑사회.
그리고 천사들의 움직임.
심복들을 양쪽 세력에 심어두었고, 그 결과가 조금씩 표면 위로 드러나 려 했다.
강해지는 것도 중요하지만.
겁도 없이 내 영역에 발을 내민 녀석들을 좌시할 수는 없었다.
전생에는 그저 '힘'을 추구했지만.
현생의 내게는 강해질 '이유'가 확 실히 있었다.
'내 건 내가 지킨다.'
엘리시움과 판데모니엄이 마음대로
분탕질을 치게 둘 수 없었다.
나는 탑의 문을 힘껏 밀었다.
끼이익-
열린 문 사이로 탑 내부가 보였다.
바닥에는 커다란 마법진이, 왼쪽에 는 커다란 크리스탈이 있었다.
'저게 기록 수정인가.'
기록 수정.
탑의 각 시련마다 랭킹을 기록해둔 수정이다.
많은 도전자들이 0층 시련의 랭킹 교체 사실을 안 것도 저 수정 덕분 이었다.
나는 기록 수정에서 시선을 떼었 다.
바닥에 설치된 마법진에 발을 딛는 순간.
-시련의 탑 전송 시스템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시스템의 음성이 나를 반겨주었다.
탑의 시스템은 사무적인 목소리로 마법진 이용 수칙에 대해 알려주었 다.
-다음 층계에 도전하거나 도전자 가 속한 세계로 귀환할 수 있습니 다.
"도전이라면 6층으로 가는 건가?"
-그렇습니다. 시련에 도전하시겠습 니까?
"아니. 원래의 세계로 돌아가겠다."
- 알겠습니다.
검게 물드는 시야.
나는 허공에 몸이 붕 떠오른 것 같은 부유감을 느끼면서 지구로 돌 아갔다.
103 화
탑에서 귀환한 지 일주일이 지났 다.
베르데와 타니엘.
양 세력에 포진해 있는 수하들은 내게 정보를 물어다 주었다.
*판데모니엄
중국의 거대 암흑가, 흑사회가 한 국에 뿌리내릴수 있게 암약하는 중.
* 엘리시움
모종의 의식을 준비하기 위해 재료 를 모으는 중.
미스릴과 오리하르콘 수급에 차질 이 생겨서 의식 날짜 변동이 불가피 함.
두 세력 모두 뚜렷한 움직임을 보
이지 않았다.
나는 급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지금은 힘을 기르면서 기다려야 할 때다.'
낚시의 미덕은 기다림이다.
찌를 던지고 물고기가 물 때까지 인내하는 것.
그때를 기다리며 수련에 박차를 가 했다.
'후, 이제야 기의 흐름을 매끄럽게 잡아낼 수 있군.'
감았던 눈을 떴다.
무한 고리 별자리를 새긴 뒤로는
숨만 쉬어도 성천조계공을 자동으로 운용 가능했고, 혼돈력도 꾸준히 늘 어났다.
[혼돈력 : 600 _ 610]
'힘을 효율적으로 다루는 것도 중 요하다.'
무지막지하게 불어난 혼돈기.
드랑카의 시험 때는 갑절 이상 늘 어난 내력을 제대로 컨트롤해내지 못했다.
혼돈기는 기, 혹은 암흑 마나보다
훨씬 강력하다.
나는 탑에서 돌아온 뒤로 틈이 날 때마다 명상을 했다.
그 결과.
갑절로 불어난 혼돈기를 전처럼 효 율적으로 다룰 수 있게 되었다.
'앞으로 혼돈기가 급격하게 불어나 면 주의해야겠어.'
혼돈기를 다스리기 위해 게이트 공 략도 멈췄다.
지닌 힘을 제대로 다루지 못하는데 사냥에 열을 올릴 수는 없었다.
일주일간의 수련.
한 가지 성과가 더 있었다.
『하압!』
검을 휘두르는 에인헤야르.
4기사는 나란히 서서 매화검법을 펼쳤다.
칼을 휘감는 자색 검기.
화산파의 심법, 자하신공의 특징이 다.
[자하신공]
분류 : 기공
등급 : S
제한 : 없음
무 대륙의 9대 문파, 화산파의 장 문인과 직전 제자에게만 전해지는 심법입니다.
어떤 기운과 마주하더라도 조화롭 게 흘려보내거나 흡수하는 기묘한 성질을 지녔습니다.
검법과 경신법.
그걸 뒷받침해줄 심법까지 전수했 다.
'매화검법을 가르치길 잘했어.'
내 선택은 옳았다.
자하신공은 화산파의 절진 무공이 다.
극양의 성질을 띠면서도 온갖 기운 을 포용하며 자신의 힘으로 돌리는 강력한 심법이었다.
에인헤야르의 속성은 빛.
힘의 근원인 성력은 극양의 기운이 라, 자하신공을 운용해도 이상이 전 혀 없었다.
오히려 성력의 기운이 한층 더 강 해졌다.
'수련하면서 꾀도 안 부리니, 완전 이상적인 제자들이야.'
나는 한결 누그러진 눈빛으로 에인 헤야르를 바라봤다.
처음에는 웬 밥버러지들인 줄 알았 다.
하지만, 에인헤야르에게는 의외로 무공에 재능이 있었다.
또한 잠도 잘 필요 없으며, 쉽게 지치지도 않았다.
에인헤야르는 내게서 무공을 배운 뒤로 쉬지 않고 수련하면서 빠르게 성취를 올렸다.
'수련장의 최대 수혜자는 이 녀석 들이군.'
하린 린스우드가 건설한 수련장.
원래는 내 무공과 심법을 가다듬으 려고 세운 곳이다.
건물을 보호하는 마법진.
중심부에는 대대로 투마 군주에게 만 전해지는 대마력 집속진까지 설 치 했다.
정작 수련장에서 무공을 가장 열심 히 수련한 것은 에인헤야르였다.
'조금만 더 수련을 하면 실전에도 투입할 만하겠어.'
나는 에인헤야르의 무력을 가늠했 다.
그때.
부우우웅!
휴대전화 진동 소리가 요란하게 울 렸다.
왠지 누군지 알 것 같았다.
[발신자 - 엘리]
슬픈 예감은 벗어나는 적이 없는 건지.
전생을 각성한 뒤, 극도로 좁아진 인간관계를 탓해야 하는 건가.
나는 쓴웃음을 지으면서 휴대전화 를 들었다.
"전화 받았습니다."
-민철 헌터!
다급한 목소리.
평소의 엘리한테서 보기 어려운 모 습이다.
"무슨 일이야."
-지금 어디에 계세요?
"당연히 수련장이지."
-게이트 공략 건이 급하게 들어와 서요
뭐야.
중요한 일인 줄 알았는데.
일상적인 이야기였다.
'혼돈기를 다루는 연습도 끝났으 니, 상관없나.'
판데모니엄도, 엘리시움도 아직까 지는 눈에 띄는 움직임을 보이지 않 았다.
게이트 하나 공략하는 건 문제가 안 되겠지.
나는 마음을 느긋하게 가졌다.
-S급. S급 게이트에요.
엘리의 다음 말을 듣기 전까지는 말이다.
米 * 米
S급 게이트 공략을 의뢰.
의뢰인은 신성 길드의 마스터, 천 지연이었다.
미팅 전.
엘리는 짧게 상황을 브리핑했다.
"민철 헌터한테 개인적으로 들어온 의뢰에요."
나는 의아한 마음이 들었다.
의뢰인인 천지연하고는 스쳐 가는 인연에 불과했다.
"왜 나한테 그런 의뢰를 준 거지?"
"저는 당신이 그 이유를 알 줄 알 았는데요."
"인사 한번 나눈 게 전부야."
흐응.
엘리는 비음을 내면서 눈을 좌우로 움직였다.
"뭐야. 마음에 안 드는 거라도 있 어?"
"이번 게이트. 아직 언론에 공표가 안 되었어요."
"S급 게이트가 열렸다는 게?"
"지금쯤이면 인터넷에서 난리가 나 야 정상일걸요."
엘리는 휴대전화 화면을 흔들었다.
실시간 검색어에는 S급 게이트와 관련된 글자를 하나도 찾아볼 수가 없었다.
"이상하긴 하네."
나는 턱을 만지작거렸다.
S급 게이트는 매우 낮은 빈도로 출몰한다.
희귀한 만큼 위험하며 보상도 컸 다.
의아한 마음을 품은 채, 약속 장소 로 향했다.
문수산.
김포시 북쪽에 위치한 산이다.
산 진입로가 북적거렸다.
신성 길드 소속 팀원들이 바쁘게 움직이는 중이었다.
별다른 절차를 거치지 않고 천지연 을 만났다.
"이렇게 뵐 줄은 몰랐는데요."
"그러게요. 좋은 일로 보면 좋았을 텐데."
천지연은 드레스가 아닌, 가죽 재 질로 된 경갑과 천으로 된 방어구를 입었다.
잔뜩 날이 선 기운.
전투를 앞둔 전사의 모습이다.
"자세한 이야기를 듣고 싶은데요."
"우리 길드 2공격대가 진입했던 A 급 게이트. 그곳이 변이를 일으켰어 요."
"등급이 S급으로 오른 거군요."
"맞아요. 그리고 저 상태가 되어버 렸죠."
천지연은 게이트를 가리켰다.
푸른빛 대신 피를 연상시키는 섬뜩 한 붉은색이었다.
나는 작게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폐쇄형 게이트."
"맞아요. 한 번 들어가면 게이트를 폐쇄할 때까지는 나올 수 없는 죽음 의 공간이죠."
"안에 들어간 인원들로는 클리어가 어렵습니까?"
"게이트에 투입된 헌터들의 수준으 로는 버티는 게 고작이에요."
"그럼 빨리 지원을 보내야겠군요."
"그게... 쉽지가 않아요."
천지연은 입술을 살짝 깨물었다.
그녀의 얼굴에서 곤란한 감정이 고 스란히 드러났다.
"문제라도 있습니까?"
"최대 다섯. 게이트에 투입할 수 있는 헌터의 숫자예요."
변이를 일으킨 게이트.
난이도가 올라간 데 이어 설상가상 으로 투입 가능한 숫자에도 제약이 걸려버렸다.
S급 게이트를 무사히 공략할 수 있는 정예.
"그 다섯 중에 나를 포함시키려는 겁니까?"
"맞아요."
"신성 길드의 주력도 있을 텐데 요."
"주력 공격대는 지금 다른 게이트 를 공략하는 중이에요."
게이트 안에 들어가면 외부와 차단 된다.
일종의 차원 격리.
통신 마법이나 전자기기 등 모든 소통 방법이 차단된다.
하지만.
방금 들은 이야기가 모두 납득이 가는 건 아니었다.
"꽤 위험한 장소인데, 나 같은 신 참을 데려가도 되겠습니까?"
"동인천역 게이트."
천지연의 짧은 말.
그 안에는 많은 의미가 포함되었 다.
변종 A급 게이트.
죽음의 땅에서 금산 길드 공격대를 구출(?)하고 단신으로 게이트를 공 략한 적이 있었다.
'거기까지 파악한 건가.'
금산 길드에서는 그때 벌어진 사건 을 철저하게 함구했다.
그 내막까지 알고 있다는 건, 천지 연이 내 능력을 믿고 의뢰를 했다는 말이었다.
나는 모르는 척, 한발 물러났다.
"무슨 말씀이신지, 잘 모르겠군요."
"금산 길드 2공격대도 고전했던 게 이트를 혼자 공략해버린 실력자잖아 요. 맞죠?"
"틀린 말은 아니죠."
"이번 게이트는 그만큼 위험한 곳 이에요. 확실한 사람을 데려가고 싶 거든요."
"그 확실한 사람이... 나다?"
"동인천역 게이트의 기록을 보면, 제가 당신을 고용할 이유는 차고도 남아 보이네요."
"수완이 대단하시군요."
"칭찬은 됐어요. 민철 헌터의 대답 을 듣고 싶은데요."
대답은 처음부터 정해져 있었다.
S급 게이트.
더 강력한 괴물이 나오는 게이트를 거절할 이유는 없었다.
"좋습니다."
천지연은 희미한 미소를 지으면서 악수를 건넸다.
"게이트 공략. 잘 부탁드려요."
" 이쪽이야말로."
나는 거절하지 않고 그녀의 손을 마주했다.
米 米 #:
문수산 게이트.
변이를 일으켜서 등급이 올라간 s 급 게이트.
신성 길드에서는 빠르게 후발대를 편성했다.
나를 빼면 모두 신성 길드 소속 헌터 였다.
모두 A+급.
국내에서 최정상에 가까운 헌터들 이다.
'길드장이 직접 참여할 줄은 몰랐 다.'
천지연.
재벌가인 신성 그룹의 막내딸이자, 신성 길드를 운영하고 있는 길드 마 스터다.
이번 게이트 공략에는 천지연도 참 여했다.
내 눈빛에 섞인 의아함을 읽은 걸 까.
"제가 게이트 공략에 참여하는 게
의외라고 생각하세요?"
"조금은요."
"제 길드원이에요. 가만히 구경만 할 수는 없잖아요."
천지연의 태도는 당당했다.
평소 생각했던 재벌의 이미지와는 조금 다른 모습이었다.
우리는 붉은 게이트 안으로 진입했 다.
붉은 장막 너머.
넓은 이파리를 달고 있는 열대 우 림 지대가 눈에 들어왔다.
'아니. 조금 달라.'
비슷한 풍경을 영화에서 본 것 같 았는데.
기억이 바로 나지는 않았다.
"길드장님. 여긴 고대... 그러니 까 중생대의 환경과 비슷합니다."
신성 길드 소속 헌터가 궁금증을 풀어줬다.
중생대.
오래전에 멸망의 길을 걸은, 공룡 들이 지구를 지배했던 시대를 가리 키는 단어였다.
파지지직!
일행이 모두 진입하자, 게이트에서
강렬한 스파크가 쏟아졌다.
"뒤로 물러나요."
천지연은 빠르게 명령을 내렸다.
게이트는 잠시 번개를 토해내더니 빠르게 수축하면서 자취를 감췄다.
'이게 폐쇄형 게이트인가.'
사라져버린 입구.
한 번 들어가면 보스 몬스터를 사 냥할 때까지 원래의 세계로 돌아갈 수 없다.
헌터 한 명이 주위를 둘러보면서 중얼거렸다.
"이런 환경... 베헤모스인가."
"베헤모스?"
"땅의 짐승, 이라고 하지. 공룡을 닮은 괴물들을 일컫는 말이라네."
공룡이라.
이야기를 들으니 타임머신을 타고 과거로 온 기분이 들었다.
천지연은 나를 포함한 일행을 둘러 보면서 입을 뗐다.
"첫 번째 목표는 공격대를 발견하 는 겁니다."
신성 길드 공격대.
그들이 게이트의 어딘가에 있을지 는 알 수 없다.
최초 진입 때 파악했던 정보는 모 두 휴지쪼가리가 되어버렸다.
게이트의 파장도 흐트러져서 협회 에서도 내부 사정을 파악하기 어려 웠다.
"모두 긴장을 늦추지 말아 주세 요."
그때.
콰우우우우-!
쩌렁쩌렁한 소리가 고막을 뒤흔들 었다.
[블랙 티라노의 포효에 노출되었습
니다.]
[상태 이상 - 공포가 적용됩니 다.]
[두려움에 몸이 굳습니다. 모든 능 력치가 40% 하락합니다.]
"이, 이 소리는?!"
"블랙 티라노야! 놈이 근처에 있 다!"
신성 길드의 정예 헌터.
수많은 게이트를 공략했던 A+급 헌터들인데도, 당황하는 기색을 감 추지 못했다.
나는 소리가 들리는 방향으로 고개 를 돌렸다.
블랙 티라노.
30m 길이의 거대 괴수는 번뜩이는 노란 눈으로 일행을 내려다보았다.
104 화
블랙 티라노는 신화시대에 버금가 는 고대종이다.
무엇이라도 분쇄할 것 같은 날카로 운 이빨.
이 하나하나는 lm에 가까웠고, 잘 벼려진 칼날보다도 날카로웠다.
강렬한 마나를 전신에 두르고 있는 데, 일반적인 공격으로는 흠집 하나 내기 어려워 보였다.
블랙 티라노
근력 : 450 / 민첩 : 420 / 체력 : 500 / 맷집 : 500 / 마력 : 300
탑의 시련에서 마주쳤던 거인보다 한 단계 위였다.
콰우우우우!
조금 전 울부짖음에 응답하듯.
일행의 뒤쪽에서 블랙 티라노 두
마리가 더 튀어나왔다.
"블랙 티라노가 셋이나 나오다니."
"역시 S급 게이트라는 건가."
신성 길드 헌터들은 병장기를 움켜 잡았다.
앞뒤로 서 있는 블랙 티라노.
열대 우림이 작게 보이는 압도적인 크기였다.
블랙 티라노가 내뿜는 살의에 피부 가 오싹오싹했다.
전신에서 솟구치는 강력한 마력.
고대의 신비를 간직한 괴물답게 강 력 했다.
'신성 길드의 부탁을 들어주기를 잘했어.'
할짝.
나는 혀로 입술을 핥았다.
이 게이트 안에는 저런 괴물이 얼 마나 더 있을까.
기대감에 가슴이 두근두근 뛰었다.
"신성 길드장님. 벌써부터 힘 빼실 필요는 없습니다."
"네?"
천지연의 얼굴 위로 의문부호가 떠 올랐다.
나는 친절하게 대꾸했다.
"저 녀석들은 제 먹이입니다."
일행을 제치고 앞으로 나섰다.
"저기 젊은 친구. 지금 뭐 하는 건 가?!"
"대형 괴수는 일반적인 괴물보다 훨씬 강해."
"단독행동은 말게 힘을 합쳐야 피 해 없이 사냥할 수 있다네."
신성 길드 소속 헌터들은 각자 한 마디씩 했다.
글쎄.
그건 약자들의 싸움 방식이지.
나는 마음에 있는 것을 입으로 말
하는 것보다, 행동으로 보여줄 생각 이었다.
'싸울 준비부터 해볼까.'
성천조계공을 운용해서 혼돈기를 전신 세맥에 흘려보냈다.
동시에 혼돈기 일부는 성력으로 치 환해서 전신을 휘감았다.
[성천조계공을 사용합니다.]
[혼돈력을 제외한 모든 능력치가
40% 증가합니다.]
[성화(聖火)의 권능을 사용합니다.]
[혼돈력을 제외한 모든 능력치가
100% 증가합니다.]
[성스러운 화염이 삿된 기운을 몰 아냅니다. 공포 효과가 사라졌습니 다.]
신체 능력 140% 증가!
블랙 티라노의 포효를 듣고 굳었던 몸도 원래대로 돌아왔다.
나는 불멸의 권능을 사용해서 불멸 의 군세를 불러냈다.
기사 1기.
전사 3기.
10m 크기의 흑색 거인들이 하나둘
모습을 드러냈다.
"저런 소환수가 있던가?"
"아니. 처음 보는 유형이다."
"그나저나 보기만 해도 몸이 으슬 으슬해지는 기분이 들잖아."
신성 길드 소속 헌터들은 불멸의 군세를 보면서 꺼림칙한 표정을 지 었다.
반면, 천지연은 불멸의 군세를 보 면서 눈빛을 빛냈다.
이미 알고 있다는 눈치였다.
'동인천역 게이트 때 이야기를 제 법 자세하게 알고 있나 본데.'
불멸의 군세를 사람들 앞에서 꺼낸 건 처음이 아니었다.
동인천역 게이트.
금산 길드 2공격대와 공동공략을 할 때도 불멸의 군세를 부렸었다.
나는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
"너는 애들 데리고 저 둘을 쓰러트 려라."
『존명!』
불멸의 기사는 전사 3기를 대동하 고 블랙 티라노 둘을 향해 돌진했 다.
내가 상대해야 할 건 정면에 있는
녀석이었다.
"콰우우우!"
블랙 티라노는 입을 쩍 벌리면서 괴성을 질렀다.
발을 구르자 등에 나 있는 돌기가 우수수 위로 솟구쳤다.
[초감각이 활성화됩니다.]
블랙 티라노의 근육 하나하나가 움 직이는 게 선명하게 보인다.
돌진을 위한 준비 자세.
정면으로 달려들어서 나를 깔아뭉 갤 생각인 모양이다.
'알고도 당해줄 수는 없지.'
돌진 궤도.
블랙 티라노의 능력치를 감안했을 때 돌진의 속도는 어느 정도인가.
놈의 움직임이 손에 잡힐 듯 훤히 보였다.
쿵- 쿵-
블랙 티라노의 거체가 순식간에 가 까워 졌다.
전차를 정면으로 둔 것 같은 압박 감이다.
나는 다시 한번 초감각을 발동했 다.
'정면으로는 힘들지.'
블랙 티라노의 체중은 30톤을 넘 어갔다.
상태창에 표기되는 근력은 내가 녀 석보다 높았다.
하지만 저 막대한 질량으로 돌진을 하면, 근력으로 표기되는 것 이상으 로 엄청난 물리력이 실렸다.
다이아몬드가 지구의 광물 중에서 가장 단단하다고 해도, 무언가에 부 딪치면 흠집이 나거나 깨지는 것과 마찬가지였다.
'발과 발 사이의 간격을 읽어낸다.' 돌진에서 생기는 작은 틈.
한없이 느려진 시간 속에서, 최적 의 행동 루트를 읽어냈다.
나는 돌진하는 블랙 티라노를 향해 뛰어들었다.
[제왕의 검]
[청룡도]
다크 스타로 검과 도를 구현. 양손에 다른 무기를 쥐면서 내력을
끌어올렸다.
파츠츠츠!
제왕의 검과 청룡도에 깃든 강기.
형태는 무공의 영향을 받아서 조금 씩 달랐지만, 모두 혼돈기에 기반을 둔 강력한 강기였다.
[쌍수호박]
양손으로 다른 무공을 펼치는 기 예.
무공의 이해도와 기를 완벽하게 통 제하지 못하면 흉내 낼 수조차 없는
경지다.
'일주일간 혼돈기를 다스리는데 애 쓴 보람이 있다.'
양손으로 다른 무공을 사용해서 강 기까지 끌어내는 건 쉽지 않았다.
초인적인 집중력과 초감각 덕분에 가능했다.
경신법을 사용해서 블랙 티라노의 보폭 사이에 생기는 틈을 파고들었 다.
[창궁무애검법을 사용합니다.]
[오호단문도를 사용합니다.]
검강과 도강이 블랙 티라노의 거죽 을 찢어내고 인대에 기다란 상처를 입혔다.
나는 공세를 멈추지 않았다.
일직선으로 뻗는 돌진.
힘을 많이 준 만큼, 그리고 몸의 무게가 무거운 만큼 방향 전환을 하 기 힘들었다.
블랙 티라노가 전방을 초토화시킬 때, 놈의 뒤를 밟으면서 다리를 난 도질했다.
"콰우우우우!"
녀석은 돌진을 멈추더니 오른쪽 뒷 발을 들었다.
뒷발 차기의 준비 자세였다.
'뼈 구조와 근육의 움직임만 알면 공격 궤도를 읽어내는 것쯤...
초감각을 활성화시키면 놈의 움직 임 하나하나를 모두 잡아낼 수 있 다.
몸을 지탱하는 반대쪽 다리에 붙어 서 무공을 연달아 펼쳤다.
살과 근육이 잘려 나가고 피가 솟 구쳤다.
콰앙-
블랙 티라노는 성을 내면서 뒷발을 열심히 찼다.
땅거죽이 뒤집히고 파편이 사방으 로 튀면서 방어구가 보호받지 못하 는 부분을 스치기도 했다.
화르륵!
성스러운 불꽃이 생채기가 난 곳에 스며들었다.
흉터 하나 남지 않고 재생되는 상 처.
블랙 티라노가 거리를 벌리려고 다 시 움직였지만, 사각에 파고들어서 공세를 멈추지 않았다.
'누가 거리를 줄 것 같아?'
몸체의 1/3을 차지하는 기다란 꼬 리.
반경 10m를 휘저을 수 있는 꼬리 공격은 위험했다.
"콰우우우!"
블랙 티라노는 몸을 홱 돌렸다.
고개를 뒤로 살짝 젖히더니 입을 크게 벌리면서 정면으로 쇄도했다.
'저걸 맞으면 나도 무사하진 못하 겠지.'
옆에 있는 야자수를 비스듬히 차면 서 빠르게 나무 위로 올라갔다.
블랙 티라노는 머리를 짓쳐 들었 다.
'이 위치다.'
나는 야자수를 박차면서 위로 도약 했다.
빙그르르 도는 몸.
재빠르게 무게중심을 잡으면서 공 중제비를 돌고 블랙 티라노의 몸 위 에 안착했다.
블랙 티라노가 한발 늦게 내가 있 던 자리를 깨물었다.
뒤에 있던 야자수가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펜리르랑 싸운 경험을 여기서 써 먹네.'
대형 괴수는 신체 능력이 일반적인 괴물보다 높다.
상태창에 표시된 수치도 높은데, 대형종 특유의 무게까지 더해지면 정면 대결이 거의 불가능했다.
대신, 펜리르나 블랙 티라노 같은 녀석들은 사각이 많은 편이었다.
지금 올라탄 등처럼.
"불주사 들어갑니다. 조금 따끔할 거예요?"
나는 건조하게 웃으면서 다크 스타
를 휘둘렀다.
米 米 米
블랙 티라노는 베헤모스 종이다.
옛 시대의 신비를 품고 있으며, 대 형을 넘어 초대형으로 분류되는 괴 수
난이도는 S급으로 책정되어 있지 만, 위험도만 놓고 보면 그보다 더 높다.
그렇기에.
천지연은 놀라운 기색을 애써 억눌
렀다.
'블랙 티라노를 압도하고 있어.'
그녀를 포함한 신성 길드의 추가 공격대는 모두 A+급 수준의 헌터 다.
S급 게이트에서 생존할 수 있는 여력을 지닌 실력자들.
하지만 단독으로 블랙 티라노를 몰 아붙일 정도의 수준은 아니었다.
'정말로 혼자서 저 괴물을 상대하 다니.'
천지연의 눈동자가 빠르게 움직였 다.
전민철.
5달 전에 영입하려고 눈에 봐둔 신예 헌터다.
기묘한 마력 운용 방식.
믿기지 않는 속도.
그리고 블랙 티라노의 몸뚱이에 상 처를 새길 만큼의 파괴력.
'A급... 아니, 이 정도면 S급 헌 터 수준이야.'
걸어 다니는 전술 병기라고 불리는 게 S급 헌터다.
민철의 움직임은 그 S급 헌터와 비교해도 전혀 밀리지 않았다.
'단순히 신체 능력만 강한 게 아니 잖아.'
블랙 티라노는 베헤모스 급으로 분 류되는 거대 괴수다.
꼬리를 한 번 휘두르기만 해도 전 방을 초토화시킬 수 있었다.
저렇게 거대한데, 반응 속도도 느 리지 않아서 조금만 잘못 움직여도 공세의 범위 안에 휘말리기 십상이 다.
민철은 그런 괴물을 상대하면서 공 격을 한 번도 허용하지 않았다.
'저게 어떻게 가능해?!'
미래를 읽기라도 하는 걸까.
블랙 티라노의 공격을 종이 한 장 차이로 흘려보내고 곧바로 역습을 가했다.
대담함과 과감성.
설령 적의 공세 방향을 모두 읽어 낸다 한들, 흉내 내기 힘든 기예였 다.
'내가 본 헌터 중에서는 처음이야.'
천지연 스스로도 A十급 헌터의 실 력자였고, 길드 내에 S급을 받은 헌 터도 있었다.
개인적으로 알고 있는 헌터 중에는
민철보다 강한 자도 있었다.
그러나 그 누구도, 민철처럼 싸우 지는 못했다.
'저 소환수는 어떻고?'
등 뒤를 바라봤다.
흑색 거인들은 흉흉한 기운을 두른 채로 블랙 티라노 둘과 사투를 벌이 고 있었다.
쿠르릉!
거대 괴수들끼리 벌이는 싸움.
두 존재가 부딪칠 때마다 충격파가 지면과 대기를 뒤흔들었다.
야자수가 뽑혀 나가고 강풍이 휘몰
아친다.
놀라운 건 블랙 티라노가 조금씩 밀리고 있다는 것이다.
민철만큼 일방적이지는 않지만 블 랙 티라노를 상대로 주도권을 잃지 않았다.
'그 이야기는 과장이 아니었어.'
천지연은 민철이 짐작했던 대로 이 미 불멸의 군세에 알고 있었다.
민철에 대한 자료를 얻던 중, 동인 천역 게이트에서 소환수를 부렸다는 것을 들은 것이다.
S급 게이트의 괴물.
베헤모스 급 거대 괴수를 몰아붙이 는 소환수는 흔치 않았다.
'민철 헌터의 끝은 도대체 어디일 까?'
본신의 무력도 출중하고 자아를 지 닌 강력한 소환수도 부릴 줄 알았 다.
불과 5개월 전만 해도 모든 능력 치가 E급에서 D급 사이였다.
천지연은 민철이 시험을 치르는 모 습을 영상으로 몇 번이나 돌려봤다.
그렇기에, 그때의 수준을 확실히 알고 있었다.
짧은 기간 동안 E급에서 S급을 넘 보는 수준의 실력자가 된 것이다.
'그때 우리 길드로 포섭을 했어야 했는데.'
아쉬운 마음에 속이 쓰렸다.
만약.
조금이라도 민철을 빨리 알았다면 성간 연합에게 선수를 빼앗기는 일 따위는 없었을 것이다.
천지연은 길게 늘어진 머리카락을 빙빙 꼬았다.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어.'
손에 넣을 수 없다면.
좋은 비즈니스 관계라도 유지해야 한다.
천지연의 눈동자는 민철한테서 떨 어질 줄을 몰랐다.
105 화
블랙 티라노와 벌인 1대1 승부.
대형 괴물을 상대하는 건 익숙했 다.
권능과 심법으로 강화된 육체는 강 인했고, 강기의 예리함은 놈에게 치 명상을 입히기에 충분했다.
"콰우
블랙 티라노를 쓰러트린 뒤, 임모 탈 나이트에게 맡긴 전장으로 향했 다.
"저놈들을 붙들어라."
『존명!』
불멸의 군세는 적극적으로 공세에 나섰다.
이미 죽은 사체를 권능으로 되살렸 기에, 고통이나 죽음의 두려움을 느 끼지 않았다.
블랙 티라노의 발을 불멸의 군세로 묶어두고, 급소를 쳤다.
변수는 없었다.
"쿠우••••••
마지막 남은 블랙 티라노가 혀를 밖으로 내밀고는 힘없이 쓰러졌다.
변이 게이트에서 벌인 첫 전투는 큰 피해 없이 승리했다.
'당연한 결과지.'
나는 감흥 없는 표정으로 블랙 티 라노를 내려다봤다.
앞서 쓰러트린 녀석과 달리, 가죽 곳곳에 주름이 생기고 상당히 말랐 다.
원인은 불멸의 군세가 사용한 [생
기 갈취] 스킬이었다.
'오랜 시간 근접했더니 생명력을 많이 빨아먹었네.'
임모탈 워리어 3기도 상당한 피해 를 받았다.
블랙 티라노에게 물려서 어깨에 커 다란 구멍이 뚫리기도 했고, 몸의 1/3정도가 날아간 녀석도 있었다.
비교적 멀쩡한 건 임모탈 나이트뿐 이었다.
꾸물꾸물.
초록색 기운이 파손 부위를 감싸기 시작했다.
생기 갈취로 빼앗은 블랙 티라노의 생명력이었다.
임모탈 워리어 3기는 빠른 속도로 손상된 부위를 회복했다.
'완전히 파괴만 안 되면 금세 복구 하는군.'
트롤의 재생능력보다도 더 빨랐다.
권능의 이름, [불멸] 이라는 단어 와 어울리는 모습이다.
'경험치도 많이 얻었다.'
마리당 4%.
블랙 티라노 셋을 사냥했더니 단번 에 경험치가 10% 넘게 올랐다.
정말이지.
S급 게이트는 엄청났다.
"저게 각성한 지 5개월 된 헌터라 고?"
"잠재능력이 얼마나 되는 건가."
"봐요. 제 안목이 틀리지 않았죠?"
흐흐.
우리 고용주님께서 내 활약에 제법 감동하신 모양이다.
'경험치도 얻고 덤으로 보상도 받 겠구나.'
돈에 크게 연연하지는 않지만.
많을수록 좋은 게 돈이었다.
S급 게이트 공략 의뢰.
들어왔을 때 냉큼 받아들이기를 잘 했다.
전투를 마무리한 직후.
나는 주위를 둘러보았다.
중생대를 연상시키는 삼림이 넓게 펼쳐져 있다.
'보고를 받았던 거랑 다르네.'
[문수산 게이트]
협회에서 게이트 등급을 처음 책정 했을 때는 전체 면적이 3km 정도 되는 소규모 게이트였다.
'면적까지 커졌을 줄이야.'
변이를 일으킨 게이트.
내부는 불과 수 시간 전과 완전히 달라졌다.
게이트 면적은 대충 둘러봐도 수 킬로미터를 넘어섰다.
'이 정도면 최소 중형이다.'
면적이 11km 이상이면 중형 게이 트로 분류했다.
넓게 펼쳐진 삼림.
혼돈기를 눈에 집중해서 안력을 늘 려도, 게이트의 끝을 확인할 수가 없었다.
'단기간에는 끝낼 수 없겠군.'
이번 공략.
꽤 길어질 것 같은 예감이 들었다.
신성 길드에서 투입된 2차 공격대.
전원이 A급을 넘어선 A+급 헌터 로 이루어진 만큼, 행동도 기민했다.
천지연은 공격대를 진두지휘했다.
"양성수 팀장님. 게이트 특성 파악 은 끝났나요?"
"넓이는 15km 정도이고 블랙 티 라노와 화이트 켄트로스, 다크 프테 라돈 등 베헤모스급 괴물들이 있습 니다."
지목받은 헌터가 대꾸했다.
"정은수 헌터. 주변 탐색 가능할까 요?"
"블랙 티라노의 눈은 은신을 쉽게 간파할 수 있습니다."
"역시 S급 괴수답네요. 단독행동은 위험하겠죠?"
"예. 나눠도 두 팀 정도가 적당한 것 같습니다."
천지연은 윗니로 입술을 지그시 깨 물었다.
"장현진 헌터. 대 베히모스급 장비 는 준비되었나요?"
"3인분으로 준비했습니다."
"난 원래의 무장이면 충분해요."
"예. 그럼 대 베히모스급 장비로 세팅하겠습니다."
와.
게이트에 들어온 지 얼마나 되었다 고, 벌써 내부 정보를 파악했다는 건가.
'역시 국내 3대 길드라는 건가.'
이들은 신성 길드의 주력이 아니었 다.
굳이 따지자면 2군.
핵심 멤버가 다른 게이트를 공략하 는데 발이 묶여서 지원을 나온 것이 다.
'그런데도 이 정도라니.'
게이트 조사.
괴물들의 특성 파악.
그리고 괴물의 강 • 약점을 분석해 서 전용 장비를 다루기까지.
여태 게이트에서 마주했던 헌터들 하고는 레벨 자체가 달랐다.
'이게 진정한 프로.'
개개인의 전투력은 나보다 약했지 만, 정보를 빠르게 파악하고 상황에 따라 대응할 수 있게 만반의 준비를 갖추었다.
이런 점은 배워야겠어.
나는 탐색 준비 중인 신성 길드 헌터들을 쭉 훑어봤다.
"후, 탐색이 더뎌지는 건 감수해야 겠네요."
그때.
천지연의 입가에서 한숨이 새어 나 왔다.
넓어진 게이트.
길드원들이 게이트 변이에 휘말려 위험에 노출되었으니, 걱정되는 모 양이다.
이왕 의뢰를 받았으니 서비스를 좀 해줄까.
"그 문제. 제가 해결해드릴 수 있 을 것 같은데요."
"민철 헌터가요?"
"잔재주가 좀 있어서요."
천지연은 내 말에 반색했다.
신성 길드 헌터들도 놀라운 기색을 감추지 않았다.
그들은 기대감이 섞인 눈으로 나를 바라봤다.
'이럴 때 유용한 녀석들이 있지.'
나는 성력을 왼손에 집중시켰다.
은은하게 빛나는 주먹.
손을 펼치면서 응집했던 기운을 해 방했다.
[빛의 군세를 사용합니다.]
[에인헤야르 최대 소환 숫자를 초 과했습니다.]
[기존에 소환된 에인헤야르를 사용 자의 주위로 부릅니다』
불멸 권능과 대칭을 이루는 빛의 군세.
수련장에 있던 에인헤야르 4기사가 게이트 안으로 소환되었다.
내가 없어도 꾸준히 수련을 하고 있던 걸까.
검을 휘두르던 자세 그대로였다.
『에인헤야르. 주군께 인사드립니 다!』
녀석들은 갑작스러운 소환에도 당 황하지 않고 자세를 바꾸어 한쪽 무 릎을 꿇었다.
"너희가 활약할 때가 왔다."
『드, 드디어!』
『주군께서 우리의 힘을 필요로 하 신다.』
『명령만 내려주십시오! 이 몸이 닳아서 없어지는 한이 있어도 수행 하겠나이다!』
에인헤야르의 반응이 생각 이상으 로 뜨거웠다.
너무 수련장에만 둔 것은 아니었 나.
잠깐이지만 미안한 마음이 들 정도 였다.
"헌터들이 게이트 안에 표류하고 있다. 그들을 찾아."
『Yes. My Lord!』
"무력 충돌은 가급적이면 피해라. 사람들을 찾는 게 먼저니까."
나는 다시 한번 성력을 손에 집중 시켰다.
화르륵!
하얀 불꽃이 왼팔을 뒤덮었다.
천사장 미카엘의 권능.
성스러운 화염이다.
'성화의 권능은 자신에게만 아니라 천사들한테도 유효하다.'
미카엘은 판데모니엄과의 전투에서 성스러운 불꽃으로 아군을 강화시켰 다.
성스러운 화염의 활용 방법은 녀석 과 검을 마주해본 덕에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었다.
'에인헤야르는 천사와 거의 비슷 해.'
내 생각이 틀리지 않았다면.
에인헤야르의 부족한 능력치를 성 스러운 불꽃으로 어느 정도 채워줄 수 있을 것이다.
세례를 내리듯, 에인헤야르 피네스 의 이마에 손을 얹었다.
[성화(聖火)의 권능이 에인헤야르 피네스의 몸에 스며듭니다.]
[빛 속성을 다루는 존재의 힘을 증 폭시 킵니다.]
[성력을 제외한 모든 능력치가 40% 상승합니다.]
백염을 부여받은 피네스가 몸을 부 르르 떨었다.
『주군! 힘이 온몸에서 끓어오르는 것 같습니다!』
역시.
내 생각은 옳았다.
성스러운 불꽃을 사용하면 에인헤 야르의 전투능력도 끌어올릴 수 있 었다.
'다소 손실은 있다만.'
크게 아쉽지는 않았다.
40%도 절대 낮은 수치가 아니었 다.
강력한 축복 스킬을 사용해야 저 정도 증폭 효율을 볼 수 있었다.
남은 에인헤야르 3기사한테도 성스 러운 불꽃을 나누어주었다.
;찾으면 바로 나한테 말해라."
『Yes. Your Majesty!j
에인헤야르 4기는 날개를 펴고 하 늘 위로 올라갔다.
은은한 자색 기운이 에인헤야르의 갑주와 날개 위로 떠올랐다.
자하신공 특유의 색깔이다.
'내력을 제법 다루잖아.'
나는 희미한 미소를 지었다.
에인헤야르에게 무공을 전수한 지 는 얼마 되지 않았다.
전생의 지식을 전승받았다곤 해도, 그걸 오롯이 자신의 의지대로 사용 하려면 피나는 수련을 해야 했다.
처음 소환했을 때 품었던 실망감은 눈 녹듯이 사라졌다.
파팟!
에인헤야르 4기사는 각자 다른 방 향으로 쏜살같이 날아갔다.
잠시 후.
『주군! 사람을 발견했습니다!』
에인헤야르 카스파가 텔레파시를 보냈다.
'빨리 찾았네?'
탐색 속도는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신속했다.
곧장 천지연을 불렀다.
"신성 길드장님."
"벌써 발견한 건가요?"
"이쪽으로 1km쯤 가면 사람들이 있습니다."
천지연의 얼굴이 화색으로 물들었 다.
신성 길드 헌터들도 어두운 기색을 떨쳐냈다.
"어서 가요!"
멀지 않은 거리였다.
나는 선두에 서서 일행을 안내했 다.
-주변에 괴물이 있나?
『없습니다.』
-경계를 늦추지 말고 있어. 금방 갈게.
『Yes. My Lordlj
괴물이 없는 것을 확인했으니, 경 계를 하느라 속도를 줄일 필요도 없 었다.
전력으로 달리니 카스파가 있는 장 소에 금방 도착했다.
그런데.
상황이 조금 이상했다.
"숫자가... 모자라네?"
나는 얼빠진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헌터 다섯 명이 카스파가 있는 위 치 근처에서 수풀 사이에 몸을 숨기 고 있었다.
공격대의 숫자는 30명.
게이트 진입 전에 들었던 것보다 훨씬 적은 숫자였다.
"어떻게 된 거죠?"
뒤를 따라온 천지연은 길드원들에 게 물어서 곧장 사태를 파악했다.
"게이트가 변이를 일으킨 뒤에 뿔 뿔이 흩어졌습니다."
"다른 사람들은 어디에 있는지 모 르나요?"
"그것까지는 잘...
1차로 진입했던 공격대 헌터는 말 끝을 흐리더니 고개를 푹 숙였다.
'일이 귀찮아졌군.'
최초로 진입했던 공격대는 게이트 의 변이에 휘말려서 사분오열되었 다.
뭉쳐도 위험한 상황인데, 전력이 분산되었다.
공격대 헌터들의 생존 확률은 더더 욱 낮아진 셈이다.
'흩어진 사람들을 모두 찾아야 하 잖아.'
게이트 면적은 넓었다.
에인헤야르를 부리지 않았더라면, 흩어진 공격대원들을 찾는데 제법 시간이 걸렸을 것이다.
『주군. 또 다른 인간 무리를 발견 했습니다.』
내 생각을 읽기라도 한 걸까.
이번에는 피네스가 텔레파시를 보 냈다.
-숫자는 얼마나 되나.
『일곱 명입니다. 그런데 상황이 안 좋습니다.』
-무슨 일이지?
『인간들이 블랙 티라노와 교전을 벌이고 있습니다.』
흩어진 다른 무리.
게이트 등급이 올라가면서 나타난 베헤모스 급 괴수, 블랙 티라노의 공격을 받는 중이었다.
피네스가 날아간 방향은 카스파와 반대였다.
왔던 길을 되돌아가야 하고, 그보 다 더 먼 거리를 돌파해야 한다.
-주변 상황은 어때.
『블랙 티라노와 화이트 켄트로스 같은 괴물들이 여기저기에 산재해
있습니다.』
-헌터들이 이길 수 있을 것 같아?
『어려울 것 같습니다.』
-피네스. 넌 헌터들에게 합류해서 시간을 벌어라.
「Yes. Your highness!j
에인헤야르 1기로는 블랙 티라노를 쓰러트릴 수 없다.
시간 벌이.
성력만 있으면 일정 시간 후에 다 시 불러낼 수 있기에, 망설임 없이 전장에 투입시켰다.
나는 천지연에게 대략적인 상황을
설명했다.
"그럼 어서 구하러 가야죠!"
"길목에 괴물들이 꽤 있습니다."
"강행돌파를 해서라도...!"
"잘못하면 괴물들의 어그로만 잔뜩 끌 수도 있습니다."
나는 고개를 저었다.
제법 먼 거리.
길목에는 괴물들도 여럿 있었다.
괴물을 무시하고 가면 오히려 교전 중인 헌터들을 위험에 빠트릴 수도 있다.
"방법이 없는 것도 아니죠."
나는 의미심장하게 웃었다.
괴물들의 시선을 피해 헌터들을 구 출하러 가야 한다.
나한테는 이 상황에 딱 알맞은 아 티팩트가 있었다.
106 화
나는 어깨에 힘을 주어서 요르문간 드 코트를 펄럭였다.
[요르문간드 코트 내장 스킬 - 투 명화를 사용합니다.]
[혼돈기 wo을 소모합니다.]
"민철 헌터. 몸이...?"
천지연은 놀란 투로 중얼거렸다.
요르문간드 코트의 마력이 몸 위를 코팅하듯 살짝 덮었다.
전신이 흐려지면서 주변 풍경에 동 화되었다.
나는 숨을 한 번 들이마실 만큼의 시간이 지나자 감쪽같이 자리에서 사라져버렸다.
아니.
정확히는 사라진 것처럼 보였다.
"먼저 출발합니다."
운류보를 사용하면서 앞으로 나아 갔다.
빠르게 달렸는데도, 풍경과 동화된 모습에서 위화감을 찾아볼 수 없다.
'역시 초월 등급 아티팩트다.'
투명화 스킬 자체는 희귀하지 않았 다.
포션이나 아이템, 마법 등.
몸을 가리는 수단은 여럿 있다.
하지만.
어떤 방법을 쓰더라도 요르문간드 코트처럼 위화감 없이 완벽하게 몸 을 가려주지는 못했다.
'살문의 무공까지 익히면 완벽하겠 어.'
암살에 종사하는 살문.
살문 특유의 경신법은 소리와 기운 을 차단하는데 특화되어 있다.
요르문간드 코트의 투명화 기능이 더해지면, 누구라도 쉽게 날 간파하 지는 못할 것이다.
나는 카스파와의 거리를 가늠했다.
'앞으로 1분인가.'
거리가 꽤 멀었다.
코트의 투명화 기능을 사용해도 발 자국이나 소리를 감추지는 못했다.
괴물들은 소리나 냄새에도 민감하 다.
놈들의 감각에 걸리지 않게 최소한 의 거리를 두면서 뛰어야 하기에, 제 속도를 낼 수 없었다.
-카스파. 상황은 어떻게 되고 있 지?
『아직 사망자는 없습니다. 제 시 야를 공유하겠습니다.J
호오.
그런 쓸 만한 기능도 있었나.
반투명한 창이 시야 한쪽에 떠올랐 다.
카스파의 '시야 공유' 스킬이다.
전투는 이미 한창 진행되고 있었 다.
"콰우우우!"
블랙 티라노 두 마리가 신성 길드 공격대를 몰아붙였다.
"당황하지 마라. 힘을 합치면 이길 수 있어!"
[철벽]
[방패의 성]
탱커들은 각자 스킬을 사용하면서 블랙 티라노의 시선을 끌었다.
쿵 쿵!
정면으로 달려드는 블랙 티라노.
돌진하는 기세는 정면으로 열차를 마주하는 것처럼 강렬했다.
"라이트닝 케이지!"
"블랙 텐티클!"
"어스 그립!"
하늘에서는 벼락의 우리가 내려왔 고, 검은색 촉수 다발이 지면 위로 솟구쳤다.
블랙 티라노가 밟고 있던 땅 일부 는 커다란 손이 되어 딛고 있던 발 을 붙잡았다.
"콰우우우!"
블랙 티라노 두 마리는 괴성을 지 르면서 이빨을 드러냈다.
몸을 구속하던 번개 감옥이 찢겨 나가고, 꼬리를 휘두르니 촉수 다발 이 뭉개졌다.
쿠드득-
발에 힘을 주니 대지의 손도 송두 리째 뽑혀 나갔다.
헌터들의 마법은 돌진을 잠시 저지 하는 정도의 효과밖에 내지 못했다.
블랙 티라노 둘은 정면에 있는 헌 터들을 들이받았다.
다소 돌격의 기세가 줄었지만, 거
구에 실린 힘은 대단했다.
"크윽!"
"컥!"
탱커들은 차에 치인 것 마냥 수 미터 뒤로 날아갔다.
축 늘어진 몸.
손가락이 간헐적으로 꿈틀대는 걸 로 보니, 죽지는 않았다.
돌진 한 번을 받아낸 것으로 빈사 상태에 빠졌다.
『보아라. 이게 주군께서 내려주신 새로운 힘이다!』
카스파의 검 위로 자색 검기가 떠
올랐다.
자하신공으로 이끌어 낸 성광기였 다.
진한 매화 향기가 칼끝에서 흘러나 왔다.
카스파는 하늘 위에서 빠르게 낙하 하며 블랙 티라노의 시선을 사로잡 았다.
우우웅!
매화 한 송이가 카스파의 검에서 피어올랐다.
검이 현란하게 움직일 때마다 매화 가 피어났고, 블랙 티라노의 몸뚱이 에 상처가 새겨졌다.
큰 피해를 입히지는 못했다.
'그거면 됐다.'
당초 목적인 시선을 돌리는 데는 성공했다.
카스파는 허공을 활보하며 내가 올 때까지 시간을 끌어주었다.
콰직!
너무 근접한 탓에 블랙 티라노에게 잘근잘근 씹혀버렸지만.
[에인헤야르 카스파가 큰 타격을 받고 역소환됩니다.]
[12시간 후에 다시 소환할 수 있습
니다.]
자하신공과 성스러운 불꽃의 효과 로 능력치가 증폭되었지만.
블랙 티라노와 정면으로 맞서기에 는 부족했다.
물기 공격에 당해서 몇 번 씹히다 보니 금세 역소환되었다.
내 입가에 미소가 감돌았다.
'제법 쓸 만 해졌잖아.'
1 분.
카스파가 벌어준 시간은 헛되지 않 았다.
녀석이 분발해준 덕분에 늦지 않게 전장에 합류할 수 있었다.
곧장 투명화를 해제했다.
"콰우?"
블랙 티라노 두 마리의 시선이 나 를 향했다.
米 米 米
에인헤야르의 우수한 기동력. 뛰어난 효과를 지닌 투명화 스킬. 나는 두 요소를 적극적으로 활용해
서 공격대 인원들을 구출했다.
그동안 신성 길드에서도 손 놓고 있지는 않았다.
"하압!"
천지연은 짧게 기합을 내지르면서 주먹을 뻗었다.
화르륵-
불꽃이 주먹을 휘감았다.
붉게 물든 그녀의 머리와 잘 어울 리는 화염이었다.
신성 그룹의 막내딸.
금지옥엽으로 자랐을 거라고 생각 한 것과 달리, 천지연의 전투 방식
은 꽤 과격했다.
블랙 티라노나 에인션트 트리세스 와 정면으로 맞붙기를 주저하지 않 았다.
'혈통만으로 길드장에 오른 게 아 니라는 건가.'
공격대에 포함된 헌터 3명도 베헤 모스급 괴수를 상대로 거침없이 공 세를 펼쳤다.
자주포를 연상시키는 마력 대포.
대형 괴수의 발도 묶을 수 있는 강력한 함정.
그 외에도 진귀한 장비들을 차례차 례 꺼내서 괴물들을 물리쳤다.
먼 거리에 있는 길드원들은 내가 움직여서 구출했고.
가까이에 있는 이들은 신성 길드에 서 나섰다.
『주군! 이 근처에서 사람들을 발 견했습니다.』
에인헤야르는 공중을 활보하며 생 존자들의 위치를 알려주었다.
상황이 긴박할 때는 에인헤야르를 미끼로 사용했다.
덕분에 먼저 진입했던 신성 길드 2공격대를 빠르게 규합할 수 있었 다.
피해는 경미했다.
중상 7명과 경상 10명.
사망자는 없었다.
"민철 헌터 덕분이에요. 감사드려 요."
국내 3대 길드 중 하나, 신성 길드 의 마스터.
천지연이 허리를 숙였다.
낯간지러운 마음에 손을 휘휘 저었 다.
"뭐, 이제 시작 아닙니까."
"호호, 그건 그렇죠."
길드원들을 구출한 것은 공략의 1 단계에 불과했다.
게이트 입구는 여전히 폐쇄되었다.
외부의 도움을 일체 받을 수 없는 상황.
현재 인원만으로 변이 게이트의 보 스 몬스터를 공략해야 한다.
"재정비 시간을 가질게요."
천지연은 바로 사냥에 나서지 않았 다.
변이에 휘말린 길드원들.
경상자들은 스킬이나 포션을 사용 해서 금세 회복했다.
부상이 큰 중상자가 문제였다.
상처를 치유하고 기력을 회복하기 까지는 하루 이상 정양해야 했다.
'가만히 있을 수는 없지.'
베헤모스급 괴수들이 게이트 내부 에 바글거렸다.
블랙 티라노나 다크 프테라돈, 화 이트 켄트로스 같은 고대종들.
하나하나가 경험치 덩어리였다.
'뷔페를 와서 젓가락만 가지고 노 는 건 바보 같은 짓이잖아?'
나는 천지연을 독대했다.
"잠시 단독행동을 하겠습니다."
"이유를 알 수 있을까요?"
"게이트 브레이크도 걱정되고, 정 보도 탐색해야죠."
사실은 경험치를 올리려는 거지만, 솔직하게 말할 수는 없었다.
"무리는 하지 말아주세요."
천지연은 길게 말하지 않았다.
신성 길드원들을 구출하면서 보인 활약 덕분일까.
목소리에서 신뢰가 묻어났다.
나는 신성 길드의 거점에서 벗어났 다.
열대 우림.
거점에서 조금만 벗어나도 괴수가 득실거리는 야생의 세계다.
나는 성천조계공과 성스러운 불꽃 을 둘렀다.
'S급 게이트다. 마음을 놓아서는 안 된다.'
언제라도 무기를 뽑을 수 있도록 긴장감을 유지했다.
"꾸우우웅!"
에인션트 트리세스.
코뿔소를 닮은 고대종이 출몰했다.
코와 눈 위쪽에 뿔이 달려있고, 목 덜미를 뒤덮고 있는 뼈는 급소를 보
호해주는 역할을 했다.
놈은 나를 보는 순간 발을 구르면 서 빠르게 달려들었다.
'돌진하는 기세만큼은 블랙 티라노 이상이다.'
이마 부근에 있는 날카로운 뿔.
기다란 원통형 뿔 주위로 자잘한 가시들이 수백 개 박혀 있다.
저 뿔에 박히면 내부가 갈기갈기 찢겨질 거다.
'맞는다는 전제가 붙어야겠지.'
[초감각을 활성화합니다.]
돌진 속도와 궤도.
에인션트 트리케라톱스의 움직임이 손에 잡힐 것처럼 훤히 보였다.
충돌 직전.
나는 제 자리에서 크게 도약했다.
[섬전비도술을 사용합니다.]
동시에 손을 퉁기면서 섬전비도 열 개를 동시에 방출했다.
조금 전까지 서 있던 자리를 지나
친 에인션트 트리케라톱스.
섬전비도 10개가 놈의 등 위로 꽂 혔다.
마력으로 아라크네의 실을 축소시 키면서 에인션트 트리케라톱스의 등 위에 올라탔다.
'투우를 하는 느낌이잖아.'
[제왕의 검]
[청룡도]
블랙 티라노의 다리를 베어냈던 때 처럼 창궁무애검법과 오호단문도를
양손으로 펼쳤다.
촤아악-
뼈가 모두 감싸지 못한 급소 부위 를 난도질했다.
"꾸우우우?!"
에인션트 트리케라톱스가 전신을 마구 흔들었다.
나는 혼돈기를 집중해서 발에 힘을 주었다.
몸이 흔들렸지만 흐트러진 기색 없 이 놈의 목덜미를 연신 베었다.
[경험치 4.1%를 획득했습니다.]
에인션트 트리케라톱스는 지면에 고개를 처박았다.
혼돈기로 구현한 강기.
S급 게이트에서 출몰하는 몬스터라 고 해도 버틸 수 없는 위력이었다.
나는 허리를 좌우로 돌렸다.
우드득.
시원한 소리가 몸에서 났다.
"이제 본격적으로 해볼까."
지금까지는 몸풀기.
진짜 사냥은 이제부터 시작이다.
나는 불멸 권능과 빛의 군세를 모 두 사용했다.
임모탈 나이트 1기.
임모탈 워리어 3기.
에인헤야르 1기.
피네스를 제외한 나머지 에인헤야 르는 역소환 된 탓에 재소환까지 제 한 시간이 걸렸다.
'이 정도면 충분하다.'
언제부터 소환수를 믿었다고.
위기의 순간에서 믿을 수 있는 것 은 오직 자신의 무력뿐이다.
"피네스. 주위를 살펴라."
『Yes. My Lord.j
에인헤야르 피네스는 하늘을 날면 서 주위를 살피는 역할을 맡았다.
높은 곳에서 내려다본 덕에 괴물의 위치를 효율적으로 파악할 수 있었 다.
『주군. 4시 방향에 괴물 무리가 있습니다.』
"무리 구성은 어떻게 돼?"
『블랙 티라노와 화이트 켄트로스 가 각각 둘씩입니다.』
"그럼 가야지."
불멸의 군세를 앞세워서 괴수 무리
와 조우했다.
블랙 티라노 두 마리는 임모탈 나 이트를 보자마자 흉성을 터트리면서 돌진했다.
"발을 묶어라."
『존명!』
임모탈 나이트에게 불멸의 군세의 지휘권을 일임한 뒤.
블랙 티라노 둘의 돌진 궤도를 살 짝 돌아서 후방에 있는 화이트 켄트 로스를 노렸다.
코모도 도마뱀을 수백 배 확대시켜 놓고 전신에 기다란 뿔을 수십 개 박으면 저런 모습이지 않을까.
"크루루루."
화이트 켄트로스 두 마리는 몸에 달린 가시를 정면으로 발사했다.
"그럴 줄 알았지."
화이트 켄트로스는 생긴 것과 달리 장거리 공격을 주력으로 삼는 괴물 이다.
놈들의 특성을 알기에 불멸의 군세 로 블랙 티라노의 발을 묶고 놈들을 타격하러 나선 것이다.
나는 제왕의 검을 크게 휘두르면서 검막을 펼쳤다.
호신마강보다 면적이 좁지만, 위력
면에서는 훨씬 강력했다.
티티팅!
가시 수십 개가 검막에 튕겨 나갔 다.
손이 저릿저릿하다.
가시에 실린 힘은 성천조계공과 성 화의 권능으로 강화한 육신으로도 쉽게 떨쳐내기 어려웠다.
'역시, S급 게이트의 괴물은 다르 단 말이야.'
화이트 켄트로스에게도 약점은 있 다.
가시를 방출하면 재생성까지 10초
정도 시간이 걸린다는 것이다.
평소에는 길지 않은 시간이지만.
전장에서는 승패를 가늠할 정도로 길었다.
'그래서 정면으로 돌진한 거다.'
나는 화이트 켄트로스가 한 번에 모든 가시를 방출하게끔 유도했다.
재생성까지는 무방비한 상태.
불멸의 군세가 블랙 티라노를 잡아 두고 있는 동안, 빠르게 승부를 볼 생각이었다.
날카롭게 벼려진 칼끝이 화이트 켄 트로스의 몸뚱이를 향해 날아들었
다.
107 화
게이트에 진입한 지 나흘이 지났 다.
신성 길드에서는 게이트 내부 지형 과 보스 몬스터의 정보를 파악했다.
나는 그들과 행동하는 대신 휴식 시간엔 홀로 열대우림을 돌며 괴물 들을 사냥했다.
단독행동에 대해서는 신성 길드와 도 무난하게 합의를 봤다.
"어머. 그렇게 해주시면 제가 고맙 죠."
천지연은 오히려 내 제안을 긍정적 으로 받아들였다.
괴물이 늘어나는 걸 방치하면 게이 트 내부 마력 수치가 급격히 상승한 다.
임계치를 넘어서는 순간.
게이트는 현실과 동화작용을 일으 키면서 내부에 있는 괴물들을 토해 낸다.
일명 게이트 브레이크 현상.
브레이크 사태를 저지하려면 괴물 을 주기적으로 사냥해야 한다.
'이런 게 윈윈이라는 거지.'
나는 [플레이에 특성 덕에 경험치 를 얻고.
신성 길드에서는 [문수산] 게이트 브레이크 시기를 늦출 수 있었다.
헌터들은 신기하다는 기색으로 나 를 바라봤다.
"저 헌터. 오늘도 또 괴물을 사냥 하러 가는 건가?"
오늘로 나흘째인데. 쉬는 걸 거의
못 봤어."
"부산물 채집을 못 하는 상황인데 도 괴물들을 사냥하고 있잖아."
헌터가 괴물을 사냥하는 이유는 간 단했다.
바로 돈이다.
1차 대격변이 일어난 지 수십 년 이나 흘렀다.
생존을 위해 무기를 들고 괴물한테 맞서 싸웠던 시기는 오래전에 끝났 다.
나는 부산물 채집도 하지 않고 괴 물을 사냥하기만 했다.
신성 길드 헌터들의 눈에는 그 모 습이 신기하게 비친 듯했다.
"게이트 브레이크를 막기 위해서라 고 하던데."
"돈보다 사람들의 안전을 생각하는 건가?"
거참.
재밌는 오해를 하시네.
'경험치를 못 얻으면 이렇게 나서 지도 않았지.'
괴물을 사냥할수록 강해지는 특성.
나는 이미 보상을 두둑하게 챙기는 중이었다.
'역시 혼자가 편해.'
끝없이 샘솟는 혼돈기.
무한 고리 별자리를 새기면서 내력 이 부족할 일은 거의 없었다.
불멸의 군세와 에인헤야르는 내 옆 에서 사냥을 보조했다.
그 덕분에 레벨을 5개나 올렸다.
'역시 고등급 게이트답다.'
베헤모스급 괴수.
고대의 신비를 품은 괴수답게, 경 험치도 짭짤했다.
나는 상태창을 확인했다.
이름 : 전민철 레벨 : 43(21.4%) 종족 : 인간 능력치
근력 : 15이A]
민첩 : 129EB+]
맷집 : 91 [B]
체력 : 93[B]
혼돈력 : 630B+] 혼돈기 - 13,860
이전과 비교했을 때, 눈에 띄는 변 화는 다음과 같았다.
[근력 :
140 -
150]
[민첩 :
114 -
129]
[혼돈력
: 610 -
_ 630]
보너스 스탯 25개.
나는 레벨 업 보너스를 모두 근력
과 민첩에 투자했다.
'둘 다 A등급으로 맞춰야겠어.'
맷집과 체력은 뒷순위였다.
호신마강.
그리고 초월 등급 방어구인 원초의 그림자 갑옷과 요르문간드 코트가 있다.
체력은 스태미나 쪽이지만, 내력으 로 대체가 가능했다.
'혼돈력은 가만히 있어도 불어나는 구먼.'
압도적으로 높은 혼돈력 수치.
무한 고리 별자리를 새긴 뒤로는 숨만 쉬어도 성천조계공의 성취도가 올라갔다.
별자리는 세계석 태양의 기운을 흡 수, 소우주의 기운을 더욱 불려 나 갔다.
'조만간 세 번째 권능도 일깨울 수 있겠다.'
45레벨이 머지않았다.
지옥의 겁화와 불멸 권능.
두 번째 삶을 살아가고 있는 나한 테는 절대로 빼놓을 수 없는 강력한 힘이다.
과연.
세 번째 권능은 어떤 게 나올까.
'또 매혹은 아니겠지?'
매혹의 군주 세르핀의 권능.
두 번이나 선택지에서 나왔지만,
모두 선택하지 않았다.
매혹을 익혀도 어디에 쓰겠는가.
나는 고개를 좌우로 돌리면서 상념
을 떨쳐냈다.
사냥을 마치고 거점으로 돌아왔다.
한쪽에 마련된 숙소로 들어가려고
할 때.
"민철 헌터. 이제 돌아왔나요?" 낭랑한 목소리가 발걸음을 붙잡았
다.
붉은 머리카락을 허리 언저리까지
늘여놓은 미인, 천지연이었다.
"그렇습니다."
"호호, 안 그래도 할 이야기가 있 었는데 여기서 마주쳤네요."
"할 이야기요?"
"내일. 보스 몬스터를 공략하려고 해요."
[문수산 게이트] 공략.
신성 길드에서는 마침내 보스 레이 드라는 검을 뽑아 들었다.
* * *
[문수산 게이트]의 심부에는 축구 경기장 크기의 분지가 있다.
보스 몬스터, 데빌사우루스의 영역 이다.
분지로 진입할 수 있는 입구는 하 나밖에 없다.
안쪽에서 심상치 않은 기운이 느껴 졌다.
"모두 위치로."
신성 길드 공격대가 좌우로 갈라졌 다.
마법 계열 헌터 10명은 가파르게
솟아있는 분지 위로 올라섰다.
"양성수 팀장님."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사내는 천지연의 신호를 듣자 들고 있던 수정구에 마나를 흘려 넣었다.
우우웅!
강대한 마력이 분지 주위를 뒤덮었 다.
'이건?'
나는 두 눈을 동그랗게 떴다.
돔 형태로 솟아난 우윳빛 막은 분 지를 완벽하게 차단했다.
"호호. 외부에서는 분지 안에서 벌 어진 일을 알지 못할 거예요."
"기척 차단 마법인 겁니까?"
"비슷한 거죠. 자세한 건 사업 비 밀이라서 알려드릴 수가 없네요."
내가 놀란 게 마음에 드는 건지.
천지연은 미소를 지었다.
'나흘 동안 레이드를 준비하고 있 었군.'
나는 가라앉은 눈빛으로 마법진의 구조를 살펴봤다.
환상과 기척 차단, 그리고 특정 상 대의 능력치를 낮추는 기능.
분지를 중심으로 방점 6개를 둬서 3중 마법을 발동했다.
'천상의 룬어 없이도 이 정도 효율 이라니.'
제법이잖아.
이게 본심을 낸 국내 3대 길드의 실력이라는 건가.
일행은 분지 안으로 진입했다.
가파른 산지로 둘러싸여 있는 공 터.
마치 고대 로마 시대의 콜로세움을 떠오르게 하는 지형이다.
분지 안쪽에는 베헤모스급 괴물이
바닥에 몸을 눕힌 채로 일행을 바라 봤다.
50m 크기의 커다란 몸뚱이.
블랙 티라노 두 마리를 합쳐놓은 크기다.
붉은 피부. 날카로운 돌기가 그 위 에 다닥다닥 붙어있다.
길게 쭉 찢어진 파충류의 눈동자가 붉게 물든 동공 중심부에 자리 잡고 있었다.
코를 킁킁거릴 때마다 불꽃이 튀어 나왔다.
땅거죽도 녹여버리는 고열의 불이 다.
데빌사우루스.
게이트의 핵을 수호하는 보스 몬스 터는 일행과 눈을 마주하는 순간, 몸을 일으켰다.
콰우우우우-!
분지 전체를 울리는 포효.
심령을 옥죄고 몸을 굳게 만드는 포식자의 소리였다.
[데빌사우루스의 포효에 노출되었 습니다.]
[상태 이상...』
공포 효과.
그리고 능력치 감소.
능력치 감소 폭과 지속시간만 다를 뿐.
데빌사우루수의 포효는 블랙 티라 노의 괴성과 동일했다.
나는 진실의 눈을 사용했다.
[데빌사우루스 파트쿰]
근력 : 800 / 민첩 : 700 / 체력
: 800 / 맷집 : 800 / 마력 : 400
* 특성
고대종 [A]
거대 괴수[B]
신비의 존재[B]
* 스킬
화염 브•레스[A]
어스퀘이 크 [A]
대지 떨구기 [A]
탑에서 마주쳤던 괴물, 서리 거인 보다 조금 높은 스펙이다.
하지만 스킬 구성에서 차이가 많았 다.
서리 거인은 근접 / 마법을 둘 다 다루는 하이브리드 유형의 괴물이었 다.
혹한의 대지나 빙결 마법.
매서운 한기를 다루면서 상대의 몸 을 굳게 만들고, 커다란 몸으로 짓 눌러서 결정타를 날리는 식이었다.
반면 데빌사우루스는 모든 스킬이
신체와 관련된 육체파였다.
'블랙 티라노의 강화판이라고 보면 되겠어.'
나는 신성 길드 공격대를 훑어봤 다.
하얗게 질린 얼굴.
가까스로 공포에 저항했지만, 팔과 다리가 떨리는 것까지는 어쩌지 못 했다.
"마법 아이템으로 저항해도 이 정 도라니."
"젠장. 몸이 저릿저릿해."
헌터들은 힘없는 목소리로 중얼거
렸다.
그중 멀쩡한 건 천지연뿐이었다.
"힐러들은 축복 주문을 사용해주세 요."
심령을 옥죄는 기운을 겨우 떨쳐낸 듯, 입술을 살짝 깨물고는 지시를 내렸다.
힐러들은 축복 주문을 사용해서 공 포를 떨쳐냈다.
'이미 방비를 해두었구나.'
적어도.
신성 길드가 발목을 잡을 일은 없 을 것 같다.
'저쪽 페이스에 맞춰주는 건 내 성 격에 안 맞지.'
하지만.
싸움을 주도하는 건 신성 길드가 아니라, 내 몫이었다.
나는 신성 길드 공격대에서 이탈, 앞으로 나아갔다.
"민철 헌터? 지금 무슨...
"먼저 갑니다. 보조 잘해주세요."
S급 게이트의 보스 몬스터.
경험치 덩어리를 두고 가만히 있을 수는 없지.
[성천조계공을 사용합니다.]
[혼돈력을 제외한 모든 능력치가 40% 증가합니다』
[성화(聖火)의 권능을 사용합니다.]
[혼돈력을 제외한 모든 능력치가 100% 증가합니다.]
넘쳐나는 힘.
나는 주먹을 꽉 말아 쥐었다.
데빌사우루스의 공포 효과도 말끔 하게 사라졌다.
'아직은 부족하다.'
상대는 S급 게이트의 보스 몬스터.
약화된 펜리르보다도 강한 베헤모 스급 괴물이다.
성천조계공 6성과 성화의 권능.
신체 능력을 비약적으로 강화시켜 도 정면에서 맞서기는 어려운 존재 였다.
'오래간만에 힘 좀 쓰겠어.'
피가 끓어올랐다.
펜리르와의 사투 이후.
늘 상대를 압도했을 뿐, 목숨을 걸 고 상대할 만큼 강한 적을 만나지 못했다.
데빌사우루스는 내 마음을 자극하 는 강력한 적이었다.
콰직!
흑색 수정이 손가락 끝에 맺혔다.
나는 오른손 검지를 가볍게 퉁기면 서 수정을 쏘아냈다.
[불멸의 권능이 대상에게 깃듭니 다.]
[불멸의 저주로 모든 능력치가 10% 하락합니다.]
[낙인이 찍힌 상대를 쓰러트리면 불멸의 전사를 제작할 수 있습니
다.]
-누가 나의 잠을 방해하느냐!
"뭐야. 말도 할 줄 알았어?"
-나는 위대한 핏줄을 이은 후예. 고작 말하는 것 따위....
"뭐래. 게이트가 만든 환상 따위 가."
나는 데빌사우루스의 말을 중간에 잘랐다.
고작해야 게이트가 만들어낸 반쪽 짜리 괴물.
녀석이 어떤 '설정'을 가지고 있는
지는 관심이 없었다.
[빛의 군세를 사용합니다.]
[불멸 권능으로 제작한 군세를 불 러냅니다.]
한 줄기 빛이 분지에 내리쬐었다.
순백의 날개를 등에 달고 있는 4 기사가 지면을 향해 천천히 하강했 다.
『에인헤야르. 주군께 인사드립니 다.』
뒤이어 지면에서는 커다란 구멍이
나타났다.
지저에서 솟구치는 흑색 거인.
임모탈 나이트 1기.
임모탈 워리어 3기가 모습을 드러
냈다.
『충!』
백색 기운을 내뿜는 에인헤야르.
죽음의 기운을 두르고 있는 불멸의
군세.
흑과 백의 군세는 내 명령이 떨어
지기만을 기다렸다.
"저 녀석을 사냥한다."
『Yes. My Lord!j
『존명!』
표현 방식은 다르지만 뜻은 똑같았 다.
주인에 대한 절대적인 충성심.
에인헤야르 4기사는 홰를 치며 하 늘 위로 올라갔다.
반면 불멸의 군세는 명령이 떨어지 자마자 데빌사우루스를 향해 맹렬히 돌진했다.
-시체 썩은 냄새 나는 것들이, 감 히 위대한 존재에게 덤비려 하느냐!
;말하는 게 용족 꼰대들 같네."
쯔쯧.
나는 혀를 찼다.
데빌사우루스는 분노를 토해내면서 발을 굴렀다.
돌진 준비.
블랙 티라노와 동일했다.
그때, 분지를 감싸고 있던 마법진 이 본격적으로 발동되었다.
[대형 포박진이 발동되었습니다.]
[대상은 데빌사우루스입니다.]
[근력과 민첩이 15% 하락합니다.]
차라랑!
금색 쇠사슬이 지면에서 솟구쳤다.
쇠사슬 수십 가닥은 데빌사우루스 의 팔과 다리에 휘감겼다.
'신성 길드. 제법이잖아?'
보스 레이드 전에 준비했던 마법 진.
그 위력은 내가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뛰어났다.
신비의 존재.
신화시대나 고대 종에게 붙는 특성 으로, 강력한 마법 저항력을 선사한
다.
데빌사우루스에게는 어지간한 마법 이 안 통했다.
고대 종의 신비와 타고난 마법 저 항력을 뚫어내고 능력치를 15%나 깎아낸 건 대단한 성과였다.
이 정도로 판을 깔아주면 못 이기 는 게 이상하지.
나는 불멸의 군세를 뒤따라 데빌사 우루스를 향해 돌진했다.
108 화
데빌사우루스의 눈동자가 분노로 활활 타올랐다.
-건방진 미물들 주제에!
몸을 반대로 홱 돌리면서 꼬리를 휘둘렀다.
"방어해라."
『존명!』
콰앙-
불멸의 군세가 꼬리를 정면으로 맞 고 뒤로 쭉 밀려났다.
갑옷이 움푹 파이고 죽음의 기운이 새어 나왔다.
임모탈 워리어 3기는 상당한 타격 을 받고 잠시 몸을 움찔거렸다.
기사급은 조금 나았지만.
상당한 타격을 받은 건 동일했다.
불멸의 결정과 대형 포박진의 영향 을 받았어도, 스펙은 여전히 압도적 이었다.
'생각대로다.'
블랙 티라노와 비슷한 체형.
크기는 훨씬 크지만, 공격 패턴은 비슷할 거라고 짐작했다.
불멸의 군세를 앞으로 들이민 것 도, 꼬리 공격을 유도하기 위함이었 다.
'강하고 범위가 넓지만 뒤를 노출 하게 된다.'
꼬리 공세를 받아낸 직후.
운류보를 전력으로 펼쳐서 데빌사 우루스의 뒤를 점했다.
놈은 빈틈투성이였다.
몸을 전력으로 돌린 탓인지, 그 자 리에 버티려고 발에 힘을 꽉 주었 다.
[다크 스타 - 칠성검]
검마의 무공, 칠성마검.
1초식을 펼치기 위해 자세를 살짝 낮추었다.
'처음부터 전력으로 나간다.'
단발적인 위력은 칠성마검이 도와 검을 동시에 다루는 것보다도 더 위 였다.
대신, 발검에 제대로 힘을 실으려 면 자세를 다잡아야 했다.
촌각의 시간.
전투 중에는 그 짧은 순간만으로 승부가 나는 경우도 빈번했다.
'지금처럼 제동이 걸린 상태라면 상관없다.'
충분히 시간을 들여서 내력을 끌어 모으고, 자세를 잡았다.
나는 칠성검을 칼집에서 해방했다.
콰콰콰콰-!
칠성마검 1초식, 낙일검이 펼쳐졌 다.
검 너머로 솟구친 기다란 검강은 데빌사우루스의 양쪽 인대를 그어냈 다.
쿠우우우!
데빌사우루스는 고통에 찬 신음을 내뱉었다.
-미물 따위가 감히 내게 상처를 입히다니!
놈은 발을 좌우로 격하게 움직였 다.
후두둑.
검강이 훑고 지나간 상처에서 피가 솟구쳤지만 개의치 않았다.
'이것도 예상했던 행동 중 하나.'
초감각을 쓸 필요도 없었다.
게이트 내부의 괴물들을 소탕하면 서 블랙 티라노만 몇 마리를 썰었던 가.
그저, 더 강력하고 빠르며 공격 범 위가 넓을 뿐이다.
나는 제왕의 검과 청룡도를 각각 다른 손으로 쥐었다.
[창궁무애검법을 사용합니다.]
[오호단문도를 사용합니다.]
제왕의 검에는 중압의 기운을.
청룡도는 칼날에 번개를 휘감았다.
나는 운류보로 회피하면서 상처 부 위를 계속 난도질했다.
칠성마검에는 못 미쳐도, 충분히 강력한 공격이었다.
인대를 감싼 두꺼운 표피가 너덜너 덜해지고 상처가 더욱 깊어졌다.
'이쯤이면 되겠어.'
크게 벌어진 상처 안에 지옥의 겁 화를 쑤셔 넣었다.
일찍이 펜리르나 어보미네이션을 상대할 때 유용하게 먹힌 전술이었
다.
마법 저항력이 뛰어나도.
살갗 안쪽까지 지켜주지는 못했으 니까.
데빌사우루스의 시선이 나를 향하 고 있을 때.
「주군을 해하려 하다니. 용서할 수 없다.』
에인헤야르 4기사는 날개를 접고 빠르게 하강했다.
시야의 사각.
공중에서 수직 낙하하면서 검에 기 운을 불어넣었다.
자색으로 된 성광기가 데빌사우루 스의 머리 위에 상처를 새겨 넣었 다.
지상에서는 피해 부위를 복구한 불 멸의 군세가 다시금 달라붙었다.
데빌사우르스의 시선이 어지럽게 흔들렸다.
실제로 입은 상처는 크지 않았다.
하지만 소환수들을 동원한 총공세 에 신경이 분산되어 능동적으로 대 처하지 못했다.
-한낱 미물 따위가!
데빌사우루스는 몸을 크게 떨었다.
등 위에 붙은 껍질들이 몸에서 떨 어지더니, 지면으로 떨어져 내렸다.
[고대병 제작]
떨어진 껍질들은 이족보행의 괴수 로 형태를 바꾸었다.
인간과 비슷한 크기의 괴물이었다.
'귀찮게 됐군.'
고대병 각 개체는 약했지만 대신 숫자가 많았다.
[냉기 포격]
그때, 분지에서 강력한 마력 반응 이 나타났다.
커다란 얼음덩어리가 밀집해있는 고대병들의 머리 위로 쏟아졌다.
얼음 포격을 쏟아낸 것은 푸른색으 로 된 3층 높이의 포탑이었다.
마력으로 구현해낸 건축물.
신성 길드에서 데빌사우루스 공략 을 위해 설치해둔 마법 건물이다.
포대는 모두 4개였다.
푸른 포탑은 일제히 화염탄을 발사
했다.
쾅- 쾅-
서리가 감도는 얼음 구체가 데빌사 우루스의 옆구리를 가격했다.
-이 벌레 같은 것들이!
데빌사우루스는 숨을 들이마셨다.
등에 붙은 돌기가 시뻘겋게 달아올 랐다.
화염 브레스의 전조였다.
붉은 눈동자는 시선이 분지 위에 자리 잡은 포탑을 향했다.
"임모탈 나이트. 놈의 뺨을 쳐라."
「존명.』
임모탈 나이트의 칼이 시커멓게 물 들었다.
데스 블레이드.
죽음의 기운을 응축시켜서 만든 오 러의 일종이다.
단순하게 파괴력만 놓고 보면 오러 나 성광기보다도 한 수 위였다.
[아라카스 식 기초 검법]
임모탈 나이트는 검법을 펼쳐서 데 빌사우루스의 얼굴을 가격했다.
카각!
기다란 자상이 볼에 새겨졌다.
상처는 크지 않았지만, 충격을 모 두 해소하지는 못했다.
-크으으으!
막 불을 내뿜으려던 데빌사우루스 의 고개가 옆으로 홱 돌아갔다.
이글거리는 화염이 전방을 기준으 로 했을 때 오른쪽으로 쏘아졌다.
화염이 휩쓸고 지나간 뒤, 땅 일부 가 녹으면서 부글부글 끓어올랐다.
'좋아. 한번은 넘겼고.'
데빌사우루스의 브레스.
체내에 담긴 강대한 마력을 일거에 방출하기에, 정면으로 맞서기는 위 험했다.
'연속적으로 사용할 수가 없는 게 흠이지.'
데빌사우루스의 마력 수치는 신체 능력에 비해 낮은 편이다.
화염 브레스를 사용할 수 있는 마 력을 회복하기까지는 상당한 시간이 걸릴 것이다.
"체인 라이트닝!"
"아이스 스톰!"
벼락과 얼음 폭풍이 데빌사우루스
에게 몰아쳤다.
후방에서는 추가로 설치된 마법 포 대가 얼음탄을 마구 발사했다.
"이쪽을 봐라!"
탱커 헌터들은 남은 고대병들의 어 그로를 끌어주었다.
내가 데빌사우루스와 공방을 주고 받는 동안 전력을 정비한 모양이다.
-크으으으. 고작 미물 따위에게 이 렇게 고생하다니.
아직도 정신 못 차렸네.
그 흐리멍덩한 정신머리, 조만간 충격요법으로 일깨워주마.
후유증으로 죽을 수도 있지만 말이 다.
米 氷 #:
데빌사우루스 레이드.
놈은 S급 게이트의 보스 몬스터답 게 강력했다.
발끝부터 머리까지의 높이는 약 20m, 몸길이는 50m에 달하는 초대 형 괴수.
발을 한 번 떼는 것만으로도 자연 재해가 일어나는 수준이다.
보스 레이드는 수십 분 동안 쉬지 않고 이어졌다.
[어스퀘이 크]
데빌사우루스의 지진 스킬은 일반 적인 마법이 아니었다.
지면을 있는 힘껏 후려치면서 마력 을 흘려보내는 것.
그 충격으로 지축이 흔들리는 스킬 이었다.
분지 일대가 마구 흔들렸다.
충격으로 헌터 일부가 넘어지거나
마력 역류를 일으키기도 했다.
나는 운류보를 운용하면서 데빌사 우루스의 몸뚱이에 칼날을 박아넣었 다.
'그런 건 안 통한다.'
운류보의 자세 보정 효과 덕에 안 정적으로 피해를 입힐 수 있었다.
데빌사우루스는 어스퀘이크 외에도 몸뚱이를 활용한 공격을 했다.
하지만.
정면에서 들어오는 공격은 불멸의 군세가 막아냈다.
위에서는 에인헤야르가 끊임없이
데빌사우루스의 신경을 분산시켰고.
나는 안으로 파고들어서 직접적인 타격을 주었다.
혼돈기로 구현한 강기.
이 자리에서 나보다 강력한 힘을 다루는 존재는 없었다.
"디스 인티그레이트!"
"프로스트 빔!"
"라이트닝 보텍스!"
신성 길드 헌터들도 가만히 있지 않았다.
마법으로 데빌사우루스를 타격하거 나 고대병을 처리했다.
근접 계열 헌터들은 데빌사우루스 의 어그로가 엉뚱한 곳으로 튀었을 때 간간이 나서서 상황을 통제했다.
하나둘씩 상처가 덧대어진다.
나는 지옥의 겁화를 적극적으로 놈 의 상처 안에 불어넣었다.
시간이 지날수록 승기가 한쪽으로 기울기 시작했다.
데빌사우루스는 처음으로 초조한 기색을 내비쳤다.
-죽어라. 미물들아!
놈은 분로를 담아서 크게 울부짖었 다.
등의 돌기만이 아닌, 전신에 붙은 돌기가 모두 시뻘겋게 물들었다.
나는 [진실의 눈]으로 이미 데빌사 우루스의 공격 패턴을 간파하고 있 었다.
"모두 후퇴해요!"
신성 길드를 향해 외쳤다.
헌터들은 군말 없이 데빌사우루스 한테서 최대한 멀어졌다.
그와 동시에.
콰아아앙-!
몸에 달린 돌기 수천 개가 사방으 로 불덩이를 쏘아냈다.
데빌사우루스를 중심으로 반경 수 십 미터가 불길에 휩싸였다.
발악 패턴인 [화염 난동부리기]였 다.
'저러니까 꼭 물기를 털어내는 멍 멍이처럼 보이네.'
진실의 눈이 있는 한.
어떤 비장의 수단을 숨겨놔도 통하 지 않았다.
-콰우우우우!
데빌사우루스는 괴성을 내질렀다.
입가에 불길이 아른거린다.
'브레스? 아니야. 그거랑은 조금
다르다.'
붉은 피부에 윤기가 흐른다.
[광폭화]
마력을 외부로 방출하는 것이 아 닌, 내부에 순환시키면서 신체 능력 을 증폭시키는 스킬이다.
데빌사우루스는 광폭화를 활성화한 상태로 돌진했다.
"막아라."
『존명.』
임모탈 나이트를 위시한 불멸의 군 세가 데빌사우루스를 막아섰다.
쿵!
충돌 순간, 불멸의 군세 4기가 모 두 달려들었는데도 뒤로 밀려났다.
데빌사우루스는 입을 크게 벌리더 니 임모탈 워리어의 상반신을 집어 삼켰다.
우드득-
임모탈 워리어의 몸뚱이가 축 늘어 졌다.
'한방이라고?'
불멸의 결정과 포박진의 중첩 효과
로 능력치에 큰 패널티를 받았다.
일격에 파괴되지만 않으면 암흑 마 나를 불어넣어서 피해를 복구시킬 수 있다.
불멸의 군세가 놈의 공세를 받아낼 수 있는 이유였다.
데빌사우루스가 마력을 폭주시키기 시작하자, 여태 유지해왔던 균형이 한 번에 무너졌다.
'놈도 그만큼 여유가 없다는 거지.'
광폭화는 후유증이 심했다.
마력으로 신체 능력을 강제로 격상 시키기 때문에 지속시간 후에 체력 이 훅 떨어졌다.
'그때까지 버티기에는, 놈의 돌파 력이 압도적이다.'
지금은 물러날 시기가 아니다.
한발 앞으로 나아갈 때다.
'놈도 한계에 달했다.'
화염 난동부리기에 이어 광폭화 스 킬을 연속적으로 사용했다.
데빌사우루스가 죽음의 위협을 느 꼈다는 것.
놈의 생명력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것을 증명하는 것이다.
"죽어도 버텨라."
『존명.』
나는 임모탈 나이트에게 저지 명령 을 내리고 지면을 박찼다.
데빌사우루스가 물고 있는 임모탈 워리어의 사체를 발판 삼아 위로 올 라갔다.
『어리석은 괴수여. 이쪽을 봐 라!』
[매화검법]
자색 기운이 움직이면서 매화를 피 워냈다.
에인헤야르 4기사가 펼쳐낸 화려한
꽃은 데빌사우루스의 눈을 잠시 현 혹시 켰다.
[에인헤야르 라피드가 큰 타격을 받고 역소환됩니다.]
시선을 끌던 중 에인헤야르 한 기 가 데빌사우루스에게 잡아먹히기도 했다.
그 희생 덕분에 놈의 머리 위로 어렵지 않게 올라왔다.
"지금입니다."
나는 천지연에게 짧게 말한 뒤, 다
크 스타를 칠성검으로 바꿨다.
광폭화가 진행되면 방어력이 낮아 진다.
지금은 모든 화력을 퍼부어서 데빌 사우루스의 숨통을 끊을 때였다.
천지연은 내 말에 담긴 뜻을 바로 이해했다.
"전원. 데빌사우루스에게 화력을 집중!"
마법 포탑, 그리고 마법 계열 헌터 들의 총공세가 펼쳐졌다.
나는 호신마강을 전개하면서 칠성 마검을 사용했다.
다시 한번 기다란 강기가 발현되었 다.
이번에는 데빌사우루스의 목덜미에 적중했다.
콰쾅-
쾅! 뒤이어 마탄 세례가 사방에서 날아들었다.
『척살!』
임모탈 나이트는 데빌사우루스가 돌발행동을 하지 못하게끔 철저하게 발을 묶었다.
아껴둔 힘을 총동원한 공격.
광폭화를 사용한 게 오히려 독이
되었다.
"콰우우...
데빌사우루스의 눈동자에서 급격하 게 총기가 사그라졌다.
광폭화를 사용한 게 무색하게도 신 체를 지탱하는 힘을 잃어갔다.
지금이 승부수를 사용할 때였다.
"하압!"
나는 칠성마검 2초식, 유성검을 펼 쳤다.
109 화
S급 게이트의 보스 몬스터.
데빌사우루스의 거체가 옆으로 기 울었다.
이미 난장판이 된 지면.
콰앙-
수십 톤의 거체와 땅이 충돌하자,
다시 한번 요란하게 들썩였다.
"우, 우리가 S급 게이트를 공략했 어!"
"믿기지가 않아. 여기서 살아나갈 수 있다니...
"데빌사우루스. 내 평생 이런 괴물 을 사냥하는 날이 올 줄이야."
신성 길드 헌터들은 기쁨을 감추지 못했다.
A급 게이트에 맞춰서 편성된 공략 팀.
게이트 내부 난이도가 S급으로 격 상된 이상, 전멸을 면하기 어려웠다.
죽음을 각오한 이도 있었다.
신성 길드가 인명 피해 없이 게이 트를 공략할 수 있었던 이유.
"저 헌터가 없었더라면 큰일 났을 거야."
"전민철이라고 했나? 들어본 적 없 는 이름인데."
"길드장님은 어디서 저런 헌터를 섭외해오신 거지?"
데빌사우루스의 머리 위에 올라탄 사내, 전민철의 활약 덕분이었다.
문수산 게이트에 있는 모든 헌터들 은 그 사실을 알고 있었다.
"저길 봐요!"
누군가가 소리를 질렀다.
손가락이 향하는 곳.
분지 일부가 일그러지면서 푸른빛 으로 물들었다.
게이트 출입구.
변이를 일으키면서 사라진 통로가 다시 나타났다.
데빌사우루스가 죽으면서 게이트 폐쇄도 자연스럽게
'정말이지. 믿기지가 않아.'
천지연의 입가에 미소가 감돌았다.
변이 게이트에 갇힌 길드원들을 구 출하려는 계획.
한시가 바쁜 상황, 길드의 주력은 게이트 심층부를 공략하느라 연락이 어려웠다.
다른 국내 3대 길드에 손을 벌리 는 것도 불가능했다.
화랑과 금산은 경쟁 관계.
한 차례 연락을 보냈지만 곧바로 투입 가능한 S급 헌터가 없다는 답 을 받았다.
신성 길드가 타격을 받으면 그만큼 격차가 벌어지기 때문이다.
다른 길드에도 협조 요청을 보냈 다.
대답은 부정적이었다.
'소수 인원으로 S급 게이트를 공략 할 수 있는 수준은 3대 길드 말고 없으니까.'
S급 게이트.
정예 멤버를 추리고 철저하게 준비 를 갖춰야 피해 없이 공략할 수 있 는 난이도다.
진입 가능한 인원은 다섯.
숫자도, 준비 기간도 턱없이 부족 했다.
'내가 직접 가야 해.'
천지연은 현재 가용 가능한 최대의 전력으로 게이트를 공략하기로 결심 했다.
다소의 희생은 각오했다.
흩어진 길드원들을 규합하고 부족 한 전력으로 보스 몬스터를 공략해 야만 했다.
최악의 상황.
그걸 뒤집은 게 바로 전민철이었 다.
'어쩌면... 국내에서 7번째 S급 헌터가 곧 나올지도 모르겠는걸.'
S급 헌터.
A급과는 한 단계 차이지만, 실제 힘의 차이는 수 배 이상 났다.
초인의 영역.
인간의 경계를 넘어서는 존재가 바 로 S급 헌터였다.
'A급 헌터 몇 명이 동시에 덤벼도 이길 수 없는 존재.'
신성 길드에도 S급 헌터가 한 명 있다.
고민섭.
각성 전에는 무도의 달인이었으며, 마나를 깨우친 뒤에는 국내에서 여
섯뿐인 S급 헌터가 된 사내였다.
민철의 활약상은 고민섭과 비교해 도 전혀 밀리지 않았다.
'의뢰 비용은 톡톡히 지불해야겠 군.'
천지연은 다시 한번, 민철과의 친 분을 돈독히 유지해야겠다고 다짐했 다.
* * *
칠성검을 데빌사우루스의 목덜에 꽂아 넣었다.
최후의 일격.
놈의 눈동자에서 총기가 사라지더 니, 그대로 고꾸라졌다.
[경험치 17%를 획득했습니다.]
[불멸의 결정을 맞은 대상이 사망 했습니다.]
[새로운 숙주를 발견했습니다. 죽 음의 이해도가 올라갑니다.]
[불멸 포인트 : 100 - 20이
아차.
이대로 두면 불멸의 결정이 데빌사 우루스의 몸뚱이를 모두 먹어치워 버릴 것이다.
'부산물을 배분해야 하잖아.'
나는 곧장 불멸 권능을 회수했다.
공략의 주체는 신성 길드.
보스 레이드 비중을 따져서 부산물 소유권 일부를 인정받을 수는 있지 만 사체를 통째로 얻는 건 불가능했 다.
'큰일 날 뻔했군.'
하마터면 보스 레이드를 도와주고 욕을 먹을 뻔했다.
일행은 게이트 안에서 대기했다.
전고 50m의 초대형 괴수를 해체해 서 쓸 만한 부위를 모두 챙겨가야 했다.
데빌사우루스가 장인의 손짓에 하 나둘 해체되었다.
분지 앞에 서서 혹시 모를 괴수의 습격에 대비하고 있을 때.
저벅, 저벅.
발소리가 가볍다.
신성 길드의 마스터, 천지연이었다.
"민철 헌터."
"무슨 일이시죠?"
"이번 레이드. 당신이 도와주지 않 았다면 피해 없이 끝내지 못했을 거 예요."
당연한 소리를.
나는 겸양을 표하는 대신 고개를 끄덕였다.
"이번 게이트 공략에서 얻어지는 매출 중 50%를 민철 헌터께 드리 려고 해요."
"그게 보상은 아니겠죠?"
"설마요. 당연한 대가인걸요."
호오.
나는 짧게 감탄사를 내뱉었다.
게이트 공략 권한은 신성 길드에게 있다.
실제로 괴물을 다수 사냥한 건 나 지만, 신성 길드에서 권한을 행세하 려 한다면 부산물 배분이 복잡해졌 다.
'나도 혼자서는 부산물을 챙기지 못하니까.'
탑 3층의 시련.
블랙 포트리스 방어전 때는 괴물을 수도 없이 죽였다.
하지만 괴물의 사체에서 부산물 하 나 챙기지 못했다.
어느 부위가 돈이 되는지, 어떻게 추출해야 하는지 알지 못했다.
이번 게이트도 신성 길드의 장인들 이 없었다면 경험치만 얻고 빈손으 로 돌아갔을 것이다.
'값싼 노동력이지.'
돈에는 크게 구애받지 않았지만, 많으면 많을수록 좋은 게 아니던가.
"기대되네요."
"호호, 앞으로도 민철 헌터하고는 좋은 관계를 유지했으면 좋겠네요."
"저도 마찬가지입니다."
암암.
S급 게이트 공략 초대라면, 언제든 지 응할 생각이 있다.
그때.
장인 한 명이 땀범벅이 된 모습으 로 천지연에게 다가왔다.
"마스터. 해체 작업 완료되었습니 다."
"기대 수익은 얼마인가요?"
"뼈와 근육, 그리고 고기만으로 300억 정도일 것 같습니다."
게이트 보스 몬스터 하나에 300억 이라니.
현실감이 느껴지지 않는 액수다.
'그중 절반이 내 거라는 거잖아?'
데빌사우루스의 부산물만 해도 150억이다.
며칠 동안 사냥한 고대 종들의 부 산물은 포함하지 않은 가격이다.
며칠 만에 수백억을 번 셈이다.
오래 기다린 만큼 수확의 과실도 달았다.
천지연은 안색 하나 변하지 않은 채로 대꾸했다.
"수고하셨어요."
역시 대기업 오너 일가는 다른 건 가.
돈에 구애받지 않는 나조차도 살짝 놀랐는데, 전혀 신경 쓰지 않는 눈 치였다.
그런데, 장인은 할 말이 더 있는 듯 입술을 재차 달싹였다.
"참. 마스터께서 직접 확인하실 게 있습니다."
" 뭔가요?"
"데빌사우루스를 해체하던 중에 나 온 겁니다."
붉은 돌과 푸른 돌.
나는 장인이 내민 돌을 보자 헉, 하고 비명을 지를 뻔했다.
'저, 저 돌은?!'
동공에 지진이 난 것처럼 파르르 떨렸다.
익숙한 형태의 돌.
모두 내가 아는 것들이다.
붉은 돌은 고대의 결정.
푸른 돌은 소울 스톤이라고 불렸 다.
[고대의 결정]
등급 : 유니크[U]
종류 : 잡화
내구도 : 250/250
고대의 신비가 응축된 돌입니다.
아이템에 고대의 힘을 부여해서 강 화시킬 수 있습니다.
[소울 스톤]
등급 : 유니크[U]
종류 : 잡화
내구도 : 100/100
어떤 존재의 영혼을 가두어둔 봉인 석입니다.
'고대의 결정은 다크 스타 3차 해 방에 들어가는 필수 재료다.'
다크 스타 3차 해방.
본래는 신화 등급에 버금가는 힘을 내재한 강력한 아티팩트다.
생각보다 2차 해방 시기도 빨랐으 니, 무기가 지닌 본래의 힘에 빠르 게 다가가고 있었다.
'고대의 결정을 구해두면 3차 해방 시기가 왔을 때 고생할 일이 없지.'
고대의 결정은 다중차원 우주 전역 을 뒤져봐도 구하기 힘들었다.
고대 종.
베헤모스급 괴수가 출현하는 차원 은 매우 드물었다.
전생의 나는 고대의 결정을 구하려 고 여러 차원을 뒤지면서 꽤 고생했 었다.
소울 스톤도 희귀하기는 마찬가지 였다.
특정 영혼을 담아둔 봉인석.
자아를 지닌 에고 아티팩트를 만들 거나 특정 마법진의 촉매로 사용할 수 있다.
'펭구한테 주면 딱이잖아?'
펜리르의 영혼 포식 특성.
녀석은 혼을 집어삼키는 것으로 자 신의 힘을 강화시킬 수 있다.
지금처럼 원래의 힘에 비해 훨씬 약해진 상태에서는, 영혼 포식의 효 과가 극대화되었다.
소울 스톤은 펜리르한테 영약과도 같았다.
"이 돌들을 원하는 것 같네요."
으
천지연이 정곡을 찔렀다.
너무 놀라서 표정 관리도 안 되었 다.
나는 숨기기를 포기하고 나지막하
게 한숨을 내쉬었다.
"후.... 탐나는 아이템이군요."
고대의 결정과 소울 스톤.
둘 다 나한테 꼭 필요했다.
'정산금을 까더라도 저건 받아 가 야겠다.'
속내를 들킨 이상, 협상에서 우위 를 서기는 틀렸다.
무리를 해서라도 두 아이템을 가져 가야겠다.
"그럼 민철 헌터가 가지세요."
잠깐.
뭐라고요?
잘못 들은 것은 아닐까, 나는 두 귀를 의심했다.
"••••♦•예?!"
"개인적인 보답이에요. 아이템 값 은 제 사재로 길드에 지불할게요."
와.
이 양반, 박력이 넘치다 못해 터져 버릴 것 같잖아.
고대의 결정, 그리고 소울 스톤.
엄청난 값어치를 가진 아이템이 손 에 쥐어졌다.
나는 떨떠름한 표정을 지었다.
"이런 걸 받아도 되는 건지 모르겠 군요."
"제 마음의 선물이에요."
천지연은 전혀 아까운 기색을 보이 지 않았다.
준다는데 거절하는 건 또 예의가 아니지.
다른 말이 나올까 봐 [무한의 공 간]에 바로 아이템들을 보관했다.
신성 길드.
그리고 신성 길드장.
앞으로도 도울 일이 있으면 종종 나서줘야겠다.
* *
츠츠츳!
문수산 게이트의 출입구가 움츠러 든다.
일그러진 공간은 수축을 반복하다 가 눈에 보이지 않을 만큼 작아졌 다.
"문수산 게이트의 소멸을 확인했습 니다."
협회 직원의 선언.
게이트 공략이 종료되었음을 알리
는 말이다.
"꺄! 무사히 돌아왔어!"
"그 인원으로 S급 게이트를 피해 없이 공략하다니."
"이건 기적이야!"
대기하고 있던 신성 길드 관계자들 은 환호성을 내질렀다.
누군가는 막 게이트에서 복귀한 헌 터들을 끌어안았다.
"길드장님. 다치시지는 않았습니 까?"
"길드장님의 지도력을 믿고 있었습 니다."
"길드장님께서 돌아오셨다고 회장 님께 보고드려!"
일부는 천지연의 곁에 가서 다친 게 없는지 세세하게 확인했다.
신성 길드 공격대는 축제를 방불케 하는 뜨거운 분위기가 되었다.
'받을 건 다 챙겼고.'
의뢰비와 게이트 공략 중 얻은 부 산물 정산 금액은 다음 날에 받기로 했다.
신성 길드의 의뢰.
문수산 게이트 공략에서 얻은 게 참 많았다.
나는 곧장 수련장 겸 집으로 돌아 왔다.
문을 여는 순간.
멍-!
펜리르가 꼬리를 흔들면서 나를 맞 이해주었다.
-주인님. 날 놓고 어딜 그렇게 오 래 돌아다닌 것이냐.
"새삼스럽게 그러네."
-흰둥이들도 사라져서 얼마나 심 심했는지 모른다고.
아.
수련 중이던 에인헤야르 4기사를
게이트로 불러냈었지.
늘 북적거렸던 수련장.
며칠 동안 자리를 비웠더니 휑해진 느낌이었다.
-내가 혼자 얼마나 외로웠는지, 주 인님은 모를 거다.
펜리르는 토라진 기색으로 투덜거 렸다.
명색이 신화시대의 괴수인데, 그렇 게나 귀여운 모습은 반칙이잖아.
나는 펜리르의 머리를 쓰다듬어주 려고 손을 뻗었다.
-흥. 나쁜 주인님.
펜리르는 콧방귀를 끼면서 내 손을 피했다.
정말로 삐졌네.
"에이. 우리 펜리르 좋아할 만한 거 있는데 어쩔 수 없네."
-내가 좋아할 만한 게 있어?
펜리르가 꼬리를 와이퍼처럼 좌우 로 흔들었다.
정말 알기 쉬운 녀석이다.
나는 [무한의 공간]에서 소울 스톤 을 꺼내서 펜리르의 앞에 놨다.
-주, 주인님. 이 향은 도대체 뭐 냐?!
"오다 주웠다."
녀석.
토라진 마음도 소울 스톤 앞에서는 별수 없을걸?
110 화
검은 푸들은 초록색 눈동자를 위아 래로 움직였다.
위로는 나를.
아래로는 소울 스톤을 눈가에 담았 다.
펜리르는 잠시 몸을 떨고는, 몸을
발랑 뒤집으면서 배를 깠다.
-주인님밖에 없다. 멍!
"푸흡."
엄청 빠른 태세 전환.
기분이 좋은지, 꼬리의 움직임이 와이퍼 수준을 넘어서서 프로펠러처 럼 빠르게 움직였다.
"너 아까는 화났다며."
-우웅? 펭구는 화낸다는 게 뭔지 잘 몰라요.
"그건 선 넘었다."
쿵-
나는 펜리르의 머리를 살짝 쥐어박 았다.
-주인님. 이건 반려동물 학대야.
"네가 반려동물이냐?"
신화시대 괴수의 위엄은 어디에다 가 팔아먹은 건지.
엘리나 나한테 아양을 떠는 모습을 보면 강아지 하나 입양한 느낌이 들 었다.
"헛소리 말고 먹기나 해봐."
-그럼 잘 먹겠습니다!
흰 돌이 펜리르의 입안으로 쏙 들 어갔다.
저렇게 삼켜도 되는 건가, 라는 의 구심이 들 때.
우윳빛 기운이 검은 털 위로 솟구 쳤다.
한 줄기 바람이 수련장 내부를 휘 감더니, 금세 강풍이 되어 건물을 흔들었다.
[건물에 충격을 감지했습니다.]
[방어 마법을 전개합니다.]
수련장 전체가 푸른빛으로 물들었 다.
하린이 설치해둔 마법진이었다.
힘의 폭풍이 수련장을 연신 휘저었 다.
'이러다가 수련장이 무너지거나 하 진 않겠지?'
걱정스러운 마음이 들 만큼, 펜리 르의 몸에서 솟구치는 기세가 강렬 했다.
-아우우우우!
펜리르는 고개를 위로 올려서 크게 울었다.
그 순간, 수련장 내부를 휘감던 강 대한 에너지가 펜니르의 몸으로 흡
수되 었다.
피부가 짜릿짜릿하다.
'기세가 완전히 달라졌다.'
나는 진실의 눈으로 펜리르의 상태 를 확인했다.
펜리르
종족 : 신수 / 나이 : ???
적성 : 본능, 격투
근력 : 811 / 민첩 : 798 / 맷집 : 800 / 체력 : 732 / 마력 : 750
*불완전한 의식의 여파로 힘 대부
분이 봉인되어 있습니다.
강해졌다.
모든 능력치가 300가량 상승했다. 봉인된 스킬 일부도 해방되었다. 꿀꺽.
불현듯 솟구친 호승심에 저도 모르
게 침을 삼켰다.
'싸워보고 싶다.'
나는 들뜬 마음을 가라앉혔다.
잃어버린 힘을 일부 회복한 것 가
지고 수련장 방어 마법이 발동했다.
여기서 펜리르가 대련이라도 벌인 다면....
'수련장은 끝이군.'
당시 있는 돈을 다 털어서 지은 소중한 장소다.
건물을 날려 먹으면 시공자인 하린 이 얼마나 잔소리를 할지도 짐작이 안 갔다.
'그나저나 아직도 힘 대부분이 봉 인되어 있다니.'
상태창에 표기된 사항은 모든 능력 치가 800에 근접했는데도 변하지 않았다.
근력 800.
순수한 근력만으로 작은 언덕이나 빌딩 정도는 어렵지 않게 박살 낼 수 있는 수치다.
마력을 운용하면 훨씬 더 강해질 것이다.
지금도 이 정도인데 모든 힘을 개 방하면 어디까지 강해질지, 쉽게 짐 작할 수 없었다.
'나도 전생의 힘을 되찾으면 좋은 승부가 되겠다.'
언젠가 다가올 날을 생각하며 끓어 오르는 투쟁심을 가라앉혔다.
-멍! 날 챙겨주는 건 주인님밖에 없다.
"밥값만 잘해라."
나는 펜리르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米
고요한 밤.
나는 머릿속으로 데빌사우루스와 벌였던 전투를 복기했다.
'혼돈기를 다스리는 수련은 제법 성과가 있었다.'
쌍수호박.
양손으로 각자 다른 무공을 펼치는 기예다.
배 이상 불어난 혼돈기를 완벽하게 통제하지 못하면 상승 무공을 동시 에 전개할 수 없었다.
'완벽하지는 않지만 말이야.'
무공과 권능의 연계.
혼돈기 - 성력 / 마력을 전환시키 는 과정은 원하는 만큼 매끄럽게 되 지 않았다.
성질이 전혀 다른 무공을 동시에 운용할 때도 마찬가지였다.
'단번에 해결할 수 있는 건 아니 다.'
문제를 짚어내고 풀어낼 방법을 알 고 있다.
그럼 이미 반은 해결된 셈이다.
남은 건 알아낸 공식을 직접 행하 기만 하면 된다.
전투 내용 면에서는 아쉬운 점도 있었다.
'덩치 큰 놈에게 효율적으로 사용 할 만한 무공이 많지 않아.'
대형 괴수.
혼돈기를 형상화해서 강기를 끌어
내도, 베어낼 수 있는 면적에는 제 한이 걸렸다.
기껏해야 2〜3m.
칠성마검은 범위가 넓지만, 첫 초 식을 펼치려면 자세를 잡는 시간이 필요했다.
'지금 익힌 무공들은 효율이 떨어 져.'
대형 괴수를 효율적으로 상대할 수 있는 무공이 필요했다.
내가중수법.
기운을 안으로 흘려보내서 내부에 타격을 주는 무공들을 일컫는 말이 다.
'내부를 진탕시키면 대형 괴수도 픽픽 쓰러지지.'
전생에서도 나보다 수 배 이상 커 다란 괴물들을 여럿 상대했다.
그때는 내가중수법의 묘리가 깃든 무공을 펼쳐서 효과를 톡톡히 봤다.
그 외에도 익힐 무공은 많았다.
괴수의 위로 올라탔을 때 무게중심 을 잡아줄 수 있는 무공.
요르문간드 코트의 [투명화] 스킬 을 사용했을 때 효율을 극대화시킬 수 있는 기습 관련 무공도 필요했 다.
시간의 흐름도 잊고 전생의 지식을 뒤적거리면서 무공을 찾았다.
눈을 떴을 때는 달이 이미 하늘 위에 떠올라 있었다.
"후...
나는 짧게 한숨을 토했다.
투장 데이모스의 지식.
너무나도 방대한 정보량에 뇌가 익 어버릴 것처럼 뜨겁게 달아올랐다.
고생한 만큼 보람도 있었다.
머리가 지끈거렸지만, 만족스러움 에 웃음이 지어졌다.
'먼저 익힐 건 천근추다.'
천근추.
무게를 늘려주고 자세를 제어하는 데 도움을 주는 보조적인 무공이다.
천근추를 사용하면 대형 괴수의 위 에 올라탔을 때 고정축이 없어도 안 정적으로 공세를 펼칠 수 있었다.
'단순히 몸을 고정시켜주는 게 끝 이 아니다.'
누군가에 올라서서 천근추를 사용 하면 수배 이상 무거워진 무게로 상 대를 짓누를 수 있다.
그 외에도 활용 방법은 다양했다.
나는 혼돈기를 운용하면서 발을 몇
번이고 바닥에서 떼었다가 붙였다.
[천근추를 습득했습니다.]
[천근추]
분류 : 무공
등급 : B
제한 : 마력 / 혼돈력을 다루는 자.
내력을 사용해서 무게를 늘립니다.
어떤 상황에서도 중심을 잡고 안정 적으로 무공을 펼칠 수 있습니다.
경지 : 1성
천근추는 특별한 동작을 필요로 하 지 않는다.
무공이라기보다는 내력 운용 방식 이 더 어울렸다.
나는 혼돈기를 발에 집중하면서 천 근추를 슬며시 펼쳤다.
[천근추를 사용합니다.]
[몸이 무거워집니다. 현재 2배 효 율입니다.]
삐거덕-
마루가 비명을 질러댔다.
천근추를 사용하면 몸무게를 16배 까지 늘릴 수 있었다.
'바로 무게를 늘리는 건 무리지만.'
내력을 더 불어넣으니, 무게 배율 이 4배로 늘어났다.
단번에 최대 수치인 16배까지 갈 수는 없었다.
천근추의 증폭 배율을 자유자재로 조정하려면 무공의 성취를 올려야 했다.
'다음은 침투경이다.'
침투경은 내가중수법의 일종이다.
접촉한 면에 기, 다른 말로는 마나 를 불어넣어서 내부를 파괴하는 무 공이다.
전생의 기억을 떠올리며 팔을 뻗 고, 혼돈기를 운용했다.
휙! 휙!
손바닥을 펼친 채로 얼마쯤 반복적 으로 초식을 펼쳤을까.
[침투경을 습득했습니다.]
천근추와 마찬가지로 스킬란에 추
가되었다.
침투경의 등급은 B+.
죽음의 해역에서 익혔던 무공들에 비하면 한 수 뒤처지는 수준이다.
'더 상위의 내가중수법은 내가 손 에 안 익거든.'
전생의 나는 무 대륙에 있는 여러 무공들을 익혔다.
하지만 무공을 습득했다고 해서 모 두 사용하지는 않았다.
투마 일족의 성향은 힘으로 짓누르 는 것.
패도적인 무공 위주로 펼쳤고, 현
생의 나도 그 영향을 받아서 강맹한
무공을 선호했다.
'내가중수법은 대부분 이론만 알고 있어서 말이야.'
무공 성취도가 빠르게 오르는 건 '전생'의 기억을 육체에 동기화시키 기 때문이다.
상위 내가중수법은 전생 때 즐겨 사용하지 않아서 처음부터 익혀야 했다.
마지막으로 익힐 것은 살문의 은신 술이었다.
[유령과신술을 습득했습니다.]
유령처럼 존재감을 흐리게 만드는 은신술.
소리와 기척, 그리고 마력의 흐름 마저 차단하는 A급 은신술이다.
'투명화까지 사용하면 들킬 일은 없겠다.'
피식.
웃음이 새어 나왔다.
전생이었다면 은신술을 실전에서 활용할 생각조차 하지 않았을 것이 다.
현생과 전생
둘의 의식이 섞이면서 사고의 폭이 넓어진 덕분이다.
전생과 비교했을 때 심리적인 변화 가 낯설면서도 나쁘지 않게 느껴졌 다.
'무공을 자유롭게 펼칠 수 있을 만
큼 수련을 해볼까.'
나는 침투경의 초식을 펼치기 위해 팔을 뻗었다.
* * *
달이 지평선 너머로 넘어가고, 다
시 태양이 고개를 내밀기 시작했다.
햇볕은 거리에 드리운 어둠을 몰아 내면서 세상을 밝혔다.
'밤을 새 버렸잖아.'
몸을 움직이는 수련은 오래간만이 었다.
혼돈기를 다스리는 건 명상과 심법 을 운용하는 것으로 충분했다.
무공을 몸에 익히고 펼치는 것은 달랐다.
'스킬 창에 생성되었다고 해서 전 부는 아니니깐.'
무공이 정식으로 플레이어 시스
템에 등록되었다 한들, 내가 실전 에서 사용하지 않으면 그건 익히 지 않은 것과 똑같다.
무공과 무공의 연계.
효율적으로 무공을 이어나가는 연 습도 필요했다.
까똑!
휴대전화 알람 소리가 수련의 흐름 사이에 끼어들었다.
'벌써 아침이군.'
나는 수련을 멈추고 휴대전화를 확 인했다.
[신성 길드_천지연]
저번에 말했던 대로 부산물 판매대 금 중 50%를 입금했어요.
근데 랭크 갱신을 안 하셔서 세 금이 많이 나오더라고요. 확인할 때 참고하세요.
보통 이런 건 직원들이 담당하지 않던가.
상대는 국내 3대 길드 중 한 축을 담당하는 신성의 길드장이었다.
'뭐, 나야 좋긴 한데.'
나는 은행 어플을 확인했다.
0 이 10개.
입금 단위가 백억이었다.
처음 보는 금액은 아니었지만, 단 일 입금 액수로는 가장 높았다.
내역을 확인하던 중.
나는 눈살을 찌푸렸다.
'세금이 뭐가 이렇게 많이 나왔 어?'
문수산 게이트의 부산물 처리 대금 중 20% 정도가 세금으로 빠져나갔 다.
천지연이 말한 대로였다.
'랭크 갱신은 또 뭔데?'
나는 부아가 치밀어 올랐다.
견물생심이라고, 처음부터 없던 돈 이었으면 모르지만 세금으로 빠져나 간 걸 보니 속이 쓰렸다.
나는 바로 엘리한테 전화를 걸었 다.
-좋은 아침이에요.
"물어볼 게 있어. 랭크 갱신이라 는 게 뭐야?"
-저 아직 출근 안 했는데 벌써부 터 일 시키는 건가요?
엘리는 토라진 목소리로 대꾸했다.
시계를 힐끗 보니 오전 7시를 막
넘어가고 있었다.
"...미안. 아침인 것만 알았거든."
-호호, 농담이에요. 민철 헌터의 전화는 언제나 환영이랍니다.
웃음을 짓는 엘리.
낭랑한 목소리에는 경쾌함이 섞여 있었다.
-민철 헌터. 헌터 시험 치른 뒤 에 따로 랭크 갱신 안 하셨죠?
"전에 인준했던 거랑 같은 거 아닌 가."
-인준이랑 랭크 갱신은 달라요.
"무슨 차이인데?"
-인준은 고위험군 게이트에서 생 존 여부를 테스트하는 거고, 랭크는 헌터에게 매겨지는 등급이에요.
헌터를 나누는 등급.
A급이나 B급, 혹은 C급.
헌터 라이선스는 시험을 치른 뒤 에 랭크 갱신을 따로 해야 비로소 등급이 정해진다.
"게이트 공략을 하면 자동적으로 정해지는 게 아니었어?"
-협회가 그 정도로 헌터 개개인의 데이터를 챙기지는 않는답니다.
"그런 이야기는 전혀 몰랐어."
-제가 행정적인 부분은 다 처리 했으니까요.
"그럼 내 등급은 뭔데?"
-시험 후에 갱신을 따로 안하셨 잖아요.
"그렇지."
-그럼 E급이네요. 시험을 우수하 게 통과해도 갱신을 하지 않으면 기본 랭크거든요.
"세금도 많이 붙는다던데•"
_협회 방침이 그래요.
뭐야.
랭크 갱신을 안 하면 앞으로도
세금 폭탄을 맞아야 한다는 이야 기잖아?
-일반적으로는 헌터 시험을 통과 하고 바로 랭크 갱신을 하거든요. 그 등급으로 몸값이 정해진답니다.
"나는 안 했잖아."
-성간 연합에 바로 소속되었고 세 금 공제 부분은 제가 다 처리했으니 까요.
쳇.
나는 혀를 찼다.
다른 길드의 의뢰를 받을 때는 세 금 손해를 봐야 하는 건가.
-차라리 이번 기회에 랭크 갱신 을 하는 게 어떠세요?
엘리는 갑작스러운 제안을 건넸다.
Ill 화
두 번째로 방문하는 협회 본부.
협회 본부는 여전히 많은 사람들이 북적거렸다.
"랭크 갱신이라."
나는 꿍한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세금 조금 더 내는 건 싫지만, 랭
크를 갱신하려고 본부에 오는 것도 귀찮았다.
반면 엘리의 표정은 밝았다.
입장이 인준 시험 때와는 반대가 되었다.
"호호, 이번 기회에 높은 등급 받 으셔서 저희 지부 기를 살려주셔야 죠."
"너희 기 살려주려고 귀찮은 일을 해야 하는 건 아니잖아?"
"민철 헌터와 관련된 정산금은 서 류 처리도 상당히 번거롭고 귀찮은 일이랍니다."
엘리는 여태 말없이 내 뒤치다꺼리
를 했던 걸 언급했다.
아예 몰랐으면 상관이 없었지만, 아침 전화로 먼저 물어본 탓에 할 말이 없었다.
쳇.
하여간 말은 잘해요.
되로 주고 말로 받았다.
"민철 헌터 정도면 A급은 무난하 게 받으실 거라고요."
"당연하지."
성천조계공만 운용해도 모든 능력 치가 A에서 A+사이까지 올라간다.
여러 무공.
그리고 다크 스타.
어떤 시험이 나와도 능동적으로 대 처가 가능했다.
"그래도 귀찮은데."
"계속 그렇게 투덜거리실 거예요?"
엘리는 샐쭉 입술을 내밀었다.
저런 표정 지으니까 은근히 귀엽 다.
나만 그렇게 생각한 게 아닌지, 주 변의 시선이 엘리한테 쏟아졌다.
'이대로 두면 귀찮아지겠어.'
사람들의 눈길을 끌면 엉뚱한 일에 엮일지도 모른다.
"알았어. 불평 그만할게."
한번 굽히고 들어가자, 엘리가 '풋' 하고 웃었다.
랭크 갱신 장소는 인준 시험을 치 렀던 곳과 같은 장소였다.
'저번처럼 대련인가?'
인준 시험 때는 A급 헌터, 정성희 와 겨뤘었다.
칼 일곱 자루를 다루는 근접 계열 헌터.
탑에서도 제법 신세를 졌었다.
그땐 제법 스릴이 있었는데 말이 야.
'지금은 그 정도 수준으로 스릴을 느끼기가 어렵지.'
현직 S급 헌터 정도는 나와야 붙 어볼 마음이 들지 않을까.
긴장되기보다는 미뤄둔 숙제를 하 는 느낌이다.
신청서를 넣고 얼마쯤 기다렸을까.
"전민철 헌터 맞으시죠?"
정장을 입은 협회 직원이 다가왔 다.
"맞는데요."
"요즘 유명하시다고 이야기는 들었 는데, 이렇게 뵐 줄은 몰랐네요."
내가... 유명하다고?
의문이 섞인 눈빛으로 엘리를 흘겨 봤다.
"헌터 시험 1위, 게이트 브레이크 사건 해결, 최근에는 신성 길드와 S 급 게이트를 공략해서 유명세를 탔 죠."
"은근 사람 약 올리네."
"호호, 제가 민철 헌터를 왜 약 올 려요?"
엘리는 눈웃음을 치더니 손으로 입 을 가렸다.
저거, 즐기고 있는 거 맞지?
'그렇게 유명해졌다고 생각은 안 했는데.'
얼굴을 보고 이름을 알아맞힐 정도 의 유명세는 탔나 보다.
협회 직원은 랭크 갱신 과정에 대 해 설명했다.
"근접 계열 헌터는 테스트용 허수 아비를 타격하는 시험을 치릅니다."
연습장 중앙에 있는 허수아비.
검은색으로 칠해진 몸통 위에 누런 거적을 둘러쓰고 있다.
"그냥 치면 되는 겁니까?"
" 예."
"그러다가 부서지면 배상 같은 걸 요구하지는 않겠죠?"
"하하. 제가 몇 년 동안 쭉 봤는데 A급 헌터님께서 쳐도 흠집 조금 나 고 말더라고요."
협회 직원은 자신만만했다.
똑같은 질문을 한 헌터가 꽤 많은 모양이다.
"참고로 저 허수아비. 저희 지부에 서 납품하는 거랍니다."
엘리는 협회 직원의 말에 사족을 붙였다.
성간 연합제 허수아비.
A급 헌터가 전력을 다해도 흠집이 나는 수준의 강한 내구성을 지녔다.
근접 계열 A급 헌터는 대부분 오 러를 다룰 줄 안다.
기, 다른 말로는 마나를 불어넣어 서 유형화시킬 수 있는 경지.
무 대륙으로 치면 일류와 절정 사 이의 수준이다.
'오러, 다시 말해 검기 정도로는 타격도 안 입는다는 거군.'
오러를 무기에 싣는 경지.
A급 헌터는 국내에서 200명도 채 안 된다.
그중에서 순수하게 근접 계열 헌터 만 솎아내면 100명 정도.
오러를 사용할 수 있는 실력자는 전 국민을 뒤져봐도 그 정도뿐이라 는 것이다.
협회 직원이 호언장담하는 것도 당 연했다.
'나를 다른 헌터들이랑 똑같이 생 각하면 곤란하지.'
오러가 안 된다면?
그것보다 더 강한 공격을 때려 박 으면 된다.
다크 스타를 칠성검으로 변형.
자세를 살짝 낮추면서 검을 뽑았 다.
[칠성마검 - 1초식을 사용합니 다.]
기다란 강기가 테스트용 허수아비 의 허리를 자르고 지나갔다.
이원택.
헌터 협회 보안부 부장.
그리고 1차 대격변 당시 각성했던 알파 세대 헌터다.
여러 전장에서 늘 선두에 서며 많 은 사람들을 구해냈던 영웅.
제 3차 서울 방어전 때의 부상으 로 반 은퇴 상태이지만, 그 무용담 을 기리는 사람들은 여전히 많았다.
협회 내에서도 인망이 높아, 그를 함부로 대할 수 있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그래서 무슨 일인데?"
이원택은 마뜩잖은 눈동자로 초대
받지 않은 손님을 흘겨봤다.
갑자기 사무실에 들이닥친 중년 여 인.
인사부 부장인 김다솜이다.
그녀는 협회 내에서 자신을 허물없 이 대할 수 있는 극히 일부였다.
"그렇게 뾰족하게 말할래? 네가 궁 금해 할 이야기를 가져왔단 말이 야."
"그래, 그래. 듣고 있잖아. 본론이 나 말해."
"랭크 갱신 담당에서 난리가 났 어."
"그래?"
이원택은 심드렁하게 대꾸했다.
오랫동안 알고 지낸 전우.
같은 알파 세대 헌터인 만큼, 그녀 의 성향을 잘 알고 있었다.
'솔직하지만 과장과 리액션이 심한 편이지.'
김다솜은 시시콜콜한 이야기도 곧 장 원택에게 와서 털어놓았다.
친한 동료 사이.
알파 세대라는 공감대가 있기에 가 능했지만, 가끔은 작은 일을 과장되 게 말해서 귀찮을 때도 있었다.
하지만.
"테스트용 허수아비가 박살 난 거 있지?"
이어진 말은 평소처럼 과장되거나 시시콜콜한 이야기가 아니었다.
원택의 얼굴이 놀라움으로 물들었 다.
"내가 잘못 들은 것 같은데."
"잘 들은 거 맞아."
"테스트용 허수아비가 박살 났다 고?"
"성간 연합에서 수입한 테스트용 허수아비가 반으로 갈렸어."
성간 연합 표 허수아비.
공격을 맞으면 자동적으로 파괴력 을 분석해서 알려주는 펀칭 머신의 일종이다.
"그게 부서진 게 몇 번째지?"
"이번까지 포함하면 5회."
"맙소사."
이원택은 작게 신음을 흘렸다.
테스트용 허수아비를 파괴하려면 최소 완벽한 오러 블레이드를 구현 해낼 수 있어야 한다.
'오러 블레이드의 사용자가 한 명 추가되었다는 말인가.'
오러 블레이드.
무기나 신체에 기를 깃들게 하는 수준을 넘어서 완벽하게 형상화를 시킬 수 있는 경지다.
'단순히 마력만 강해서는 안 돼. 오러 블레이드는 깨달음을 동반한 힘이다.'
테스트용 허수아비를 파괴할 수 있 는 실력자는 국내 전체를 뒤져봐도 4명밖에 없었다.
국내 헌터 업계의 정점에 도달한 이들.
근접 계열 S급 헌터 4인이다.
오늘, 그 기록에 발을 디딘 다섯 번째 헌터가 나타났다.
"근데 왜 나를 찾아온 건가? 그건 인사부 일이지 않나."
"그 헌터. 저번에 네가 부탁했던 사람이야."
이원택은 멍한 표정을 지었다.
인사부 부장인 김다솜한테 부탁을 했다? 전혀 기억이 나지 않았다.
곰곰이 생각하던 중.
4개월 전의 어느 날이 떠올랐다.
정성희.
보안부 팀장이자, 그가 꽤 아끼는
직속 부하가 사표를 낸 날이었다.
'정의 바보의 마음을 흔들어놓은 신입이 있었다.'
당시의 원택은 정성희가 탑을 오르 기로 마음먹게 한 헌터의 이름을 떠 올렸다.
전민철.
게이트 브레이크 사건을 단독으로 해결하고 여러 사람을 구한 신입 헌 터였다.
이원택은 치솟는 궁금증을 이기지 못해 전화기를 들었다.
전화를 건 사람은 김다솜이었다.
-난데. 부탁 하나만 하자고.
- 뭔데?
-전민철이라고, 최근에 각성하고 헌터 시험을 치른 헌터가 있다.
- 애송이네.
-그 애송이가 랭크 갱신을 하러 오면 알려주지 않겠나.
-뭐야. 까마득한 후배한테 관심이 라도 생긴 거야?
-내 직속 부하가 재밌는 이야기를 해서.
-전민철이라고 했지? 일단 기억해
두고 있을게.
"자, 자. 잠깐. 설마 그 헌터의 이 름이...
"전민철. 당신이 부탁한 그 신입이 야."
덜컹-
이원택은 거친 기세로 자리를 박차 면서 일어났다.
쭉 밀린 의자가 바닥에 나동그라졌 지만, 전혀 신경 쓰지 않았다.
이원택의 신경은 온통 대화에만 쏠 려 있었다.
"어때. 구미가 당기는 이야기지?" 김다솜은 원택의 반응에 만족스러
워하며 장난스러운 웃음을 지었다.
米 氷 #:
"지, 지... 지금 허수아비를 부순 겁니까?!!"
허수아비를 부술 수 없다고 호언장 담했던 헌터 직원.
사색이 된 얼굴로 허리가 반으로 동강 나서 바닥에 나뒹굴고 있는 허 수아비를 바라봤다.
흐
골려주니 왠지 기분이 좋다.
'안 되는 게 어디 있.어?'
나는 손목을 가볍게 털었다.
테스트용 허수아비는 생각 이상으 로 단단했다.
오러 블레이드.
무 대륙의 표현으로는 강기를 끌어 올리지 않으면 절대로 자를 수 없었 다.
하지만, 직원이 장담한 것과는 반 대의 결과가 나왔다.
"이건 있을 수 없는 일이야."
망연자실한 표정을 짓는 협회 직 원.
가만히 두면 계속 멍하니 있을 것 같다.
나는 직원의 어깨를 살며시 잡으면 서 부주겼다.
"저기요. 테스트 끝난 겁니까?"
"잠시만 기다려주세요!"
협회 직원은 사색을 띤 채로 나와 엘리를 대기실로 안내하고, 어딘가 로 달려 나갔다.
"내가 좀 과했나."
"과했죠. 왜 멀쩡한 우리 제품을
박살 내요?"
"뭐야. 실수한 거야?"
나는 볼멘소리를 냈다.
부수지 말라는 말은 안 했잖아?
"호호, 농담이에요. 우리 자랑스러 운 헌터님이 모처럼 실력 발휘한 건 데요."
"허수아비 박살 낸 건 문제 없는 건가."
"물론이죠. 우린 하자 없는 제품을 협회에 팔았을 뿐이랍니다."
...제품에 문제가 없으면 만사형 통이라는 거냐.
역시 돈에 환장한 성간 연합다운 발언이다.
엘리는 기분이 좋은 듯 연신 미소 가 입가에 감돌았다.
"민철 헌터의 실력이 인정되면 저 희 지부도 바빠지겠네요."
"무슨 상관이 있는 거야?"
"저희는 아무래도 외행성의 존재이 다 보니, 길드나 용병 활동에서도 제약을 꽤 받거든요."
엘리의 손가락 끝이 나를 가리켰 다.
"이제는 한국에 어울리는 간판스타
가 생겼죠."
"간판스타는 무슨. 고작 허수아비 하나 자른 거 가지고...
끼이익-
엘리와 잡담을 나누던 중, 문이 열 렸다.
나와 엘리는 말을 멈췄다.
열린 틈 사이로, 두 사람이 들어왔 다.
이원택과 김다솜.
각각 협회에서 부서의 부장을 맡은 인물들이었다.
112 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