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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욱!

흑색 칼날이 레기온의 심장을 꿰뚫

었다.

최후의 1인.

중갑주로 무장한 레기온은 믿을 수

없다는 눈빛을 띠었다.

불신과 경악.

"나를. 우리를. 쓰러트리다니."

"그게... 뭐가... 큰일이라

고...

민철은 기운 없는 목소리로 대꾸했

다.

말과 달리 그의 육체는 심각한 상

태였다.

고갈된 체력.

상처에서 꾸역꾸역 흘러나온 피가 전신을 붉게 물들였다.

잘게 떨리는 눈동자.

몸뚱이는 한계에 달한 지 오래였 다.

초인적인 정신력으로 성천조계공을 운용하며 한계에 달한 몸을 억지로 움직인 것이다.

"이만... 끝내자."

민철은 마지막 힘을 짜냈다.

급소를 관통하는 다크 스타.

최후의 레기온은 더 버티지 못하고 지면에 고꾸라졌다.

'■미친. 정말로 해내다니! 저 레기 온이 졌단 말인가!」

지니의 눈동자가 튀어나올 것처럼 크게 떠졌다.

레기온.

탑이 생긴 뒤로 한 번도 쓰러진 적이 없는 무패의 괴물이다.

칠황조차도 넘어서지 못한 전설.

그 무패의 전설이....

무너졌다.

'■루체 님. 이 싸움의 결과도 이미 내다보신 겁니까?j

"설마."

厂이런 역사적인 순간을 직접 보다 니!」

루체는 오른손을 입가에 댔다.

그녀의 눈동자는 지친 기색이 역력 한 민철에게 고정되어 있었다.

"탑에 새로운 전설이 기록되겠어."

전민철.

탑에 나타났을 때만 해도 눈에 띄 지 않는 도전자였다.

신체 능력은 평범.

아니. 그 이하였다.

기원을 알 수 없는 [무구]를 사용 하고 있었지만.

선별된 랭커들 중에도 강력한 무구 를 다루는 이들은 얼마든지 있었다.

'역시 내가 있는 곳을 본 건 우연 이 아니었어.'

레기온 100마리를 가지고 내기를 했을 때도, 큰 기대는 하지 않았었 다.

그저 '감'을 믿고 내지른 것뿐.

마음속으로는 50단계를 통과하지 못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 생각을 비웃기라도 하듯.

민철은 보란 듯이 레기온 100기를 모두 쓰러트렸다.

'이번 도전자가 탑에 오르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칠황과 하이 랭커.

오랜 세월 동안 고착화 되었던 탑 의 질서에, 커다란 파문이 일어날 것 같다는 예감이 들었다.

38 화

푸스스-

레기온의 사체가 가루로 변했다. 나는 바닥에 드러누웠다.

'아. 진짜 뒈질 것 같네.'

전신이 욱씬 거린다.

격전 중에 생긴 수많은 상처.

한계 이상으로 힘을 쥐어짜 낸 몸 뚱이.

폐부가 터질 것처럼 부풀어 올랐 고, 심장은 미친 듯이 펌프질을 하 면서 피를 순환시켰다.

손가락 하나 까딱할 힘이 없다.

'이런 느낌. 얼마 만에 느껴보는 건가.'

성스러운 불꽃도 치유 대신 버프용 으로 돌렸다.

치명상이나 깊은 상처만 싸움에 방 해가 되지 않을 정도로 치유했다.

혼돈기 대부분을 가장 위협이 되는 마법 계열 레기온을 쓰러트리는 데 소모했다.

그 이후 격전에서는 무공 사용도 최소화하고 기본기로 상대했다.

덕분에 이 꼴이 되었지만.

아이러니하게도.

나는 지금 '살아있다'라는 것을 강 렬하게 느꼈다.

생사의 갈림길.

한순간의 손짓으로 승자와 패자가 갈라진다.

전생에는 이런 싸움을 여러 번 치

렀다.

승자는 모두 나였다.

단 한 번.

용사한테 진 것을 빼면 말이다.

'지금도 나쁘지 않은데.'

전생의 나는 무의 끝에 도달했다고 자신했다.

만약 환생하지 않았더라면.

성천조계공의 진면목이나 플레이어 권능을 알지 못했을 것이다.

상념에 빠져서 거친 숨을 몰아쉬고 있을 때.

화아악!

빛이 내 몸을 휘감았다.

"맞다. 싸움이 끝나면 회복시켜줬 지."

전신에 생겼던 상처가 눈 녹듯 사 라졌다.

정신세계에서 모든 기운을 뿜어내 고 잠들었던 빛과 암흑성운들도 원 래의 빛을 되찾았다.

[시련의 탑 - 0층]

[결투의 시련을 통과했습니다.]

[달성도 - 100%]

[도전자 중 최초로 0층의 시련을

100% 달성했습니다.]

[0층의 시련 - Rank]

전민철 - 1위

마황 - 2위

[누구도 해내지 못한 업적을 기록 했습니다.]

[당신의 이름과 업적이 탑의 역사 에 기록됩니다.]

[업적 보상으로 l,000,000pt가 주 어집니다.]

[포인트는 탑의 화폐입니다. 포인 트의 사용 방법은 광장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백만 포인트?'

숫자만 보면 큰데.

어느 정도의 가치인지는 알 수 없 었다.

업적에 대해 엄청나게 띄워주고 있 으니, 분명 높은 수치겠지.

'짐바브웨 달러 같은 건 아닐 거

야.'

1천억으로 달걀 세 개를 살 수 있 다는 전설(?)의 화폐.

그 정도로 인플레이션이 일어나지 않고서야, 백만이라는 수치는 큰 가 치를 가지고 있을 것이다.

『시련을 통과하신 것을 축하드립 니다.』

"어우, 씨. 깜짝이야."

나는 화들짝 놀라서 몸을 일으켰 다.

맞은편에는 탈모 사자 가면을 쓴 관리자가 있었다.

'이번에도 기척을 못 느꼈잖아.'

관리자가 나타났는데도 마력의 유 동을 전혀 감지하지 못했다.

나는 부아가 치밀었다.

'자존심 상하는데.'

탑의 시스템인지.

혹은 관리자 고유의 능력인지.

현재의 내 수준으로는 힘의 원리를 꿰뚫어 볼 수 없었다.

『시련에 통과하셨는데 언짢으신 것 같습니다.』

"아무것도 아니야."

『후후.... 그럼 시련의 보상을 지급하겠습니 다.』

우우웅!

공간 일부가 일그러졌다.

관리자는 태연하게 오른손을 일그 러진 공간에 집어넣었다.

잠시 후.

그 손에는 뾰족하게 생긴 붉은 돌 이 튀어나왔다.

『이, 이건!! 이게 0층 시련의 최 종 보상일 줄이야?!』

관리자의 음색이 마구 흔들렸다.

감정의 동요가 가면 너머까지 고스

란히 느껴졌다.

'뭐야. 관리자도 최종 보상을 모르 던 건가?'

저게 무엇이기에 저렇게 호들갑을 떠는 건지.

"그거. 안 줄 건가?"

『죄송합니다. 저도 0층 시련의 최 종 보상은 처음 봐서 말이죠.』

"관리자는 뭐든 다 알고 있다고 생 각했는데."

『탑은 비밀이 많습니다. 그건 탑 의 권한 일부를 얻은 관리자에게도 마찬가지 입니다.』

"그런 걸 다 이야기해줘도 되는 건 가'?"

『민철 님이 마음에 들어서 서비스 한 겁니다.』

"서비스는. 그거나 주시지."

나는 붉은 돌을 가리켰다.

『아. 너무 놀라서 드리는 것도 잊 었군요.』

붉은 돌이 공중에 떠오르더니 내 앞으로 날아왔다.

손으로 낚아채고, 곧장 진실의 눈 을 사용해서 정보를 확인했다.

'이게 무엇이기에 저렇게 호들갑

을... 어어억?!'

비명이 나올 뻔했다.

초인적인 인내력을 발휘해서 입을 꾹 다물었다.

안간힘을 쓴 덕에 꼴사나운 모습을 면했지만, 눈동자가 떨리는 것까지 는 어찌하지 못했다.

나는 두 눈을 의심했다.

[세계석]

등급 : 신화[Myth]

종류 : 잡화

내구도 : 00

창조의 힘이 깃들어있는 돌입니다.

세계석.

차원조차 창조해낼 수 있는 강력한

보석이다.

은은하게 빛나는 붉은 돌.

손으로 보석의 표면을 만지는 순 간.

내부에 잠들어있는 강렬한 에너지

를 느낄 수 있었다.

번쩍!

붉은빛이 한층 강해졌다.

잠들어있던 에너지가 내 혼돈기에 반응했다.

'보상으로 세계석을 준다고?'

꿀꺽.

침이 목울대를 타고 넘어갔다.

0층의 보상이 세계석이라면, 위로 올라갈수록 어떤 보상을 얻을 수 있 을까.

쉽게 짐작이 가지 않았다.

『민철 님이 얻은 보상이 예외적인 겁니다.』

관리자는 내 생각을 읽기라도 한

듯 속을 찌르는 말을 했다.

"내가 뭐라고 했나."

『세계석은 그만큼 귀한 물건이니 까요.』

"그건 맞는 말이지."

『비 랭커 출신 인물인데 세계석에 대해 잘 아시나 보군요.』

나는 대꾸하지 않았다.

전생에 마왕이었다는 것을 밝힐 필 요는 없지.

관리자도 대답을 기대하진 않은 듯, 하려던 말을 이어갔다.

『이만한 크기로는 차원을 만들거

나 하지는 못할 겁니다.』

"그렇겠지."

『강력한 아티팩트를 만드는 것 정 도는 가능하겠지요.』

차원장들의 주력 무기는 모두 세계 석의 파편으로 벼려냈다.

창조의 근원.

크기만 조금 커도 차원까지라도 빚 어낼 수 있는 신비와 힘을 지녔다.

세계석으로 무구를 빚어내게 된다 면.

초월 [Over] 이나 신화[Myth] 등급 의 아티팩트를 얻을지도 모른다.

'신화 등급 아티팩트는 모든 차원 을 통틀어도 스무 개가 안 되지.'

판데모니엄이 보유한 신화 등급 아 티팩트는 3개.

엘리시움은 7개다.

독자적인 세력을 구축한 강자들이 소유한 신화 등급 아티팩트가 5개 다.

만약.

이 세계석을 잘 벼려내는 데 성공 한다면.

16번째 신화 등급 아티팩트가 나 올지도 모른다.

'신화가 아니라 유일 등급만 나와 도 어디야?'

초월 [Over] 등급은 신화급보다 한 단계 아래의 아티팩트다.

신화보다 아래 단계지만, 그것도 흔하지 않다.

온 차원을 뒤져봐도 100개가 될까 말까 한 희귀 등급이다.

"이걸 다룰 줄 아는 장인이 있어야 하잖아."

『탑 안에는 유능한 장인들이 있습 니다. 그들에게 부탁하면 가능하겠 지요.』

나는 묘한 눈빛으로 세계석을 바라 봤다.

'무기는 필요 없다.'

다크 스타.

나한테는 최강의 무기가 있다.

전생의 내가 다크 스타를 사용했을 때는 신화 등급에 도달했었다.

현생의 내가 쌓은 업이 적기 때문 에 과거의 위용과 멀어졌지만.

발전 가능성을 생각하면 세계석으 로 예비 무기를 만들 필요는 없었 다.

"아티팩트로 가공하지는 않을 거

다."

『무기로 벼려내는 것 외에 세계석 을 다루는 방법은 없습니다만.』

"아니. 알 것 같아."

세계석을 쥐는 순간, 이 돌덩어리 는 내 혼돈기에 반응해서 공명을 일 으켰다.

그때.

한 가지 가정이 떠올랐다.

'부디 그 생각이 맞기를 바라야지.'

나는 혼돈기를 세계석에 불어넣었 다.

우우웅!

세계석이 공명음을 토해냈다.

표면을 흐르던 붉은 빛이 한층 진 해지고 사시나무 바람에 떠는 것처 럼 요란하게 떨렸다.

『도, 도전자. 지금 무슨 짓을 하 려는 겁니까?J

관리자는 처음으로 당황한 기색을 띠었다.

금방이라도 부서질 것처럼 위태로 워 보이는 세계석.

저 광물이 지닌 가치를 생각하면, 당장이라도 내 손을 낚아채서 말리 고 싶을 것이다.

"흡수."

나는 짧게 대꾸했다.

챙그랑!

그 말에 반응하듯.

손에 쥐고 있던 세계석이 유리 깨 지는 소리를 내면서 수십 갈래 파편 으로 박살 났다.

米 氷 米

수십 조각으로 쪼개진 세계석.

파편 하나하나가 강렬한 기운을 품

고 있다.

여러 파편들은 땅으로 떨어지지 않 고 내 주위를 빙빙 돌았다.

"호법을 서줘."

『호법...?』

"날 보호해달라는 말이다."

나는 대답도 듣지 않고 바닥에 바 로 앉아서 가부좌를 틀었다.

'성천조계공을 운용한다.'

심상 세계의 소우주를 활짝 열어서 외부의 기운을 받아들인다.

평소에는 하늘에 있는 별들의 기운 을 담았지만.

오늘은 기운을 흡수할 대상이 달랐 다.

'세계석을 흡수한다.'

창조의 힘을 품은 보석.

세계석에 담긴 힘을 심상 세계에 담아낼 것이다.

모든 차원을 뒤져봐도 세계석을 그 런 용도로 사용한 적은 한 번도 없 다.

하지만 자신이 있었다.

단순한 '감'보다는 할 수 있다, 라 는 예지에 가까웠다.

'혼돈기는 근원의 힘이라고 했지.'

세계석에 실린 창조의 힘도 따지고 보면 근원에 맞닿은 힘이다.

성천조계공.

세계석.

둘은 방향성만 다를 뿐.

근원의 한 자락에 닿아있다는 공통 점이 있었다.

『포스 실드.』

우윳빛 방어막이 주위를 감쌌다.

관리자는 이해가 안 되는 듯 당혹 감을 감추지 않았다.

『뭐가 어떻게 돌아가는 거야?』

설명은 이따 해도 늦지 않는다.

나는 관리자의 궁금증을 풀어주는 대신 성천조계공 운용에 집중했다.

스으읍-

크게 숨을 들이마셨다.

파편 한 개가 붉은 안개로 변해서 들숨 가운데 섞여 들어왔다.

목이 타들어 가는 느낌이다.

어릴 적에 멋을 낸다고 양주를 들 이마셨다가 느꼈던 타는 느낌과 흡 사했다.

금방이라도 기침을 해서 토해내고 싶은 느낌.

나는 그 고통을 눌러내면서 세계석 의 기운 일부를 심상 세계로 인도했 다.

콰르르릉!

심상 세계가 뒤흔들린다.

한낱 파편이라도, 그 안에 깃든 힘 은 소우주에 막대한 영향을 끼쳤다.

심상 세계에 자리 잡은 우주에서 플레어가 터졌다.

항성의 열풍이 온 우주를 헤집어놓 았다.

나는 이를 악물었다.

'날뛰는 기운을 안정화시킨다.'

빛과 암흑성운의 기운이 부딪치면 서 혼돈기를 빚어냈다.

흑색 기운이 온 우주를 뒤흔들고 있던 세계석의 기운을 붙들었다.

사아아아 _

날뛰던 세계석의 기운이 차분하게 가라앉았다.

기운 흡수에 성공한 것이다!

[성천조계공의 성취도가 15% 상승 했습니다.]

[혼돈력이 2 늘어났습니다.]

'이제 시작이다.'

흡수한 세계석의 힘은 극히 일부.

내 주위에는 여전히 수십 개의 파 편이 둥둥 떠다니고 있었다.

'고작 파편 하나가 이 정도의 힘이 라니.'

혼돈기를 불어넣어서 세계석을 쪼 갠 것이 정답이었다.

보상으로 받은 세계석의 기운을 통 째로 흡수하려 했다면, 심상 세계에 구축한 소우주가 붕괴해버렸을 것이 다.

파편이 하나둘씩 붉은 기류로 변하

더니 입가로 빨려 들어왔다.

[성천조계공의 성취도가 10% 상승 했습니다.]

[성천조계공의....]

시스템의 알람도 무시했다.

무아지경.

세계석의 기운을 받아들이는 데 온 정신을 집중했다.

얼마쯤 집중했을까.

흡수한 세계석의 에너지가 심상 세

계 안에 안정적으로 자리를 잡았다.

하지만 심법을 멈출 수 없었다.

세계석의 기운을 담아내는 순간, 성천조계공으로 만든 소우주에도 변 화가 일어났다.

빛의 성운과 암흑성운 사이.

강렬한 빛을 내뿜는 항성이 우주의 정중앙에 떠오른 것이다.

세계석의 기운으로 만들어진 거대 한 태양이었다.

우주 창조의 신비.

차원을 빚어내는 창조의 근원이 소 우주에 완벽하게 자리 잡았다.

후우

한숨을 쉬면서 눈을 떴다.

시간이 얼마나 지났는지 짐작도 가 지 않았다.

[세계석의 기운을 흡수했습니다.]

[혼돈력이 50 증가합니다』

[성천조계공의 경지가 4성에 도달 했습니다.]

[성천조계공의 영향을 받아서 신체 가 강화됩니다.]

[근력이 10 증가합니다.]

[민첩이 10 증가합니다.]

[맷집이 8 증가합니다.]

[체력이 8 증가합니다.]

[혼돈력이 40 증가합니다.]

[성천조계공]

분류 : 기공

등급 : EX

제한 : 없음

심상 세계, 혹은 상단전이라고 부 르는 상위 차원의 정신에 소우주를 형성하는 마력 호흡법입니다.

빛의 성운과 암흑성운이 내뿜는 강 력한 파동을 받아들여 심상 세계에 옮겨서 사용자의 의지대로 사용할 수 있습니다.

경지 : 4성

*혼돈기 활성화 가능.

*2성 특전 - 혼돈기 30% 증가.

*3성 특전 - 혼돈기 40% 증가.

*4성 특전 - 무공 사용 시 소모 혼돈기 30% 감소

*혼돈기 재생 속도 : 9

[혼돈력 : 160 -> 25이

[혼돈기 : 2080 -> 425이

'성천조계공이 4성이라고?'

입이 쩍 벌어졌다.

성천조계공의 성취도는 세계석을 흡수하기 전까지만 해도 2성에 머물 렀다.

단번에 두 단계를 뛰어넘은 것이 다.

범인이라면 수십 년이 걸려도 나아 가지 못하는 경지.

심득을 깨달은 나조차도 족히 몇 개월 동안 쉬지 않고 심법을 운용해

야 가능한 경지였다.

'아직 세계석의 기운을 모두 흡수 한 게 아니야.'

수십 개로 쪼개진 세계석의 파편.

모두 체내로 빨아들였지만, 온전히 그 기운을 흡수하지는 못했다.

소우주의 중심에서 고고히 떠오른 태양.

나는 그 힘을 온전히 다룰 수 없 었다.

세계석에 담긴 힘은 내 상상을 뛰 어넘었다.

말 그대로 '쌓아둔 것'일 뿐.

그걸 내 심득으로 모두 녹여내지는 못했다.

'1/100정도인가.'

세계석의 기운 중에서 나와 동기화 를 마친 것은 극히 일부에 불과했 다.

저 태양의 힘을 마음대로 다루어낼 수 있다면.

얼마나 강해질 수 있을지 쉽게 짐 작이 가지 않았다.

심장이 마구 뛰었다.

'시련의 탑. 굉장한 곳이잖아.'

탑의 정상을 향한 도전.

나는 이제 막 한 걸음을 떼었을 뿐이다.

우우웅!

반투명한 발판이 나타났다.

'1층으로 올라가는 길인가.'

딱딱한 감촉.

보기와는 다르게 튼튼했다.

나는 계단을 밟으면서 위로 올라갔 다.

『잠깐만요.』

나를 붙잡는 목소리.

관리자, 루체였다.

39 화

나는 관리자를 바라봤다.

귀여운 탈모 사자 가면이 눈에 들 어온다.

그 안에 숨겨진 얼굴.

무슨 표정을 짓는지 알 수 없었다.

"뭐지?"

『세계석을 어떻게 한 건가요.』

"글쎄...

세계석을 흡수한 원리?

그저, 될 것이라는 '감'.] 왔다.

심상 세계에 자리 잡은 성천조계공 의 영향이라고 짐작할 뿐.

'그게 아니면 설명이 안 돼.'

단 한 번.

전생의 나도 세계석을 만져본 적이 있다.

그때는 이런 감을 느끼지 못했다.

'온전한 성천조계공을 익힌 덕인

가.'

투장 데이모스의 성천조계공은 반 쪽짜리였다.

암흑성운을 다루는 심법.

반대 성질인 빛의 성운을 심상 세 계에 담아내지 못했다.

반면 지금은 빛의 성운과 암흑성운 의 힘을 부딪쳐서 혼돈기를 다룰 수 있게 되었다.

'전생 때는 무의 정점에 달했다고 생각했는데.'

완전한 성천조계공에는 숨겨진 비 밀이 아직도 많았다.

좀 더 높은 성취를 이루면 그 근 원까지라도 알 수 있을 것이다.

말은 길지만 결론은....

"나도 몰라."

『후후. 재미있는 답이군요.』

"별로 신용은 안 가겠지만 진심이 다."

『그 말을 믿습니다. 나름의 잔재 주가 있어서요.』

관리자는 의외로 내 말에 수긍했 다.

"물어볼 건 그게 끝인가?"

『네. 솔직하게 대답해주신 보답을

드리고 싶군요.』

관리자의 정장이 바람에 나풀거린 다.

무언가가 주머니 사이를 비집으면 서 공중으로 떠올랐다.

투박한 돌이다.

나는 가까이 온 돌을 낚아챘다.

"이건 뭐지?"

『관심의 증표입니다.』

"별로 관심을 즐기는 성격은 아닌 데."

『후후.... 어딘가에는 쓸 데가

있을지 모르죠.』

모호하게 웃는 관리자.

그냥 알려주지는 않겠다는 건가.

'그러든지 말•든지.'

[진실의 눈]

바로 스킬을 사용했다.

[오론의 조각]

등급 : 전설 [L]

종류 : 잡화

내구도 : 500/500

"시련의 탑"3층 어딘가에는 보 물창고가 숨겨져 있습니다. 특정 장 소에서 증표를 사용하면 값진 물건 을 얻을 수 있을지도 모릅니다.

드랑카의 열쇠 파편에 이어 탑의 특정 공간과 관련된 아이템이었다.

'탑은 비밀이 많다고 했었지.'

아까 관리자가 했던 말이 떠올랐 다.

숨겨진 장소.

정보.

0층 시련의 최종 보상이 세계석이

라는 것도 알려지지 않았다.

'사람들의 손을 타지 않은 보상도 있다는 건가.'

게임으로 치면 히든 피스인 셈이 다.

"그럼 기념품으로 챙겨두지."

나는 투박한 돌을 아공간 주머니에 넣었다.

*

[시련의 탑 - 1층]

[퀘스트 : 열사의 사막]

낮에는 혹한의 더위가, 밤에는 극 한의 추위가 몰아치는 사막에서 생 존하라.

* 목표

생존

* 종료 조건

2층으로 올라가는 길을 찾는 것.

* 탐색률 - 0.01%

이글거리는 태양.

강렬한 빛이 머리 위로 내리쬔다.

나는 손을 이마에 대서 햇볕을 살 짝 가렸다.

"더럽게 뜨겁네."

주위를 둘러봤다.

보이는 것은 금색의 모래뿐.

지면에서 올라오는 아지랑이가 푸 른 하늘과 맞닿으면서 풍경을 일그 러트렸다.

[열기 Lv 12에 노출되었습니다.]

[체력 소모가 20% 증가합니다.]

[무리하게 몸을 움직이면 탈진에 걸립니다.]

[상태이상 - 화상 Lv 2]

[상태이상 - 갈증 Lv 7]

[노출 시간이 길어지면 추가 상태 이상 효과가 적용됩니다.]

후욱.

땀이 이마에 송골송골 맺혔다.

작렬하는 열기가 몸에 영향을 주기 시작했다.

'천호역 게이트보다 더하네.'

나는 그때와 마찬가지로 성천조계 공을 운용했다.

화끈거리는 피부가 빠르게 진정된 다.

질식할 것 같은 더위가 가시고, 숨 을 쉬기가 한결 편해졌다.

[혼돈기가 1 소모됩니다.]

대신 혼돈기 소모가 늘었다.

천호동 게이트 때에는 없던 일.

열사의 사막의 기후는 그만큼 악랄 했다.

'일단 지형 파악부터.'

나는 해를 등지고 걸었다.

사박, 사박.

드넓은 사막에 발자국이 새겨졌다.

[새로운 지형을 확인했습니다. 탐 색률이 0.01% 늘었습니다.]

한 50미터쯤 걷자 알람이 귓가에 감돌았다.

이제 탐색률이 0.01%라니.

차라리 안 듣는 게 나았다.

'여긴 면적이 얼마나 되는 거야?,

나는 생각하기를 관뒀다.

0층의 시련이 왜 '튜토리얼'이라고

불렸는지 바로 실감했다.

정처 없이 사막을 헤매는 것보다는 괴물하고 싸우는 게 낫다.

다섯 걸음을 더 걸었을 때.

[다크 스타 - 창]

기다란 창을 빠르게 뻗었다.

거의 동시에, 성인 몸뚱이 정도 되 는 애벌레가 모래 위로 솟구치면서 나를 향해 날아들었다.

"기이이잇!?"

졸지에 창끝을 향해 돌진하게 된 애벌레.

공중에서 몸을 선회할 수는 없다.

푸우욱!

애벌레는 돌진한 그대로 창에 박혀 서 꼬치가 되어버렸다.

-경험치 0.3%가 올랐습니다.

창대 절반까지 박힌 애벌레.

초록색 체액이 뚝뚝 떨어진다.

나는 곧장 창을 회수했다.

'역시. 단순히 사막을 돌아다니는 게 시련일 리 없지.'

뜨거운 햇볕.

그리고 모래 사이에 숨어서 도전자 를 노리는 괴물들을 상대하며 2층으 로 올라가는 길을 찾아야 한다.

나는 서쪽을 향해 쉬지 않고 걸었 다.

대머리독수리, 전갈, 독사 등 여러 괴물들이 튀어나왔다.

-경험치 0.5%를 획득했습니다.

-경험치....

모두 경험치가 되었다.

사막의 괴물들은 기습에 능하고 공 격력이 뛰어나다.

대신 내구성이 약해서 급소를 노리 면 쉽게 쓰러트릴 수 있었다.

물론, 기습을 '당하는' 입장에서 먼 저 대응하고 급소를 공격하는 건 쉬 운 일이 아니다.

나라서 가능한 일이지.

꼬르륵.

뱃가죽이 떨렸다.

'마지막으로 밥을 먹은 게 언제였 지?'

0층의 시련을 겪는 동안 밥 한 끼 먹지 못했다.

1층에 올라와서는 쉬지 않고 걷거

나 싸웠으니.

체력과 혼돈기는 보존할 수 있지 만, 공복감까지는 피해갈 수 없었다.

아공간 주머니에 준비해둔 식량을 꺼냈다.

전투식 량.

어느 상황에서도 큰 준비 없이 섭 취할 수 있는 음식이다.

내용물은 봉지로 포장된 식량, 그 리고 물 500ml가 담긴 통이 담겨있 다.

"이렇게 하는 거였나."

봉지 옆으로 삐져나온 줄을 당겼

다.

부글부글-

안에서 끓는 소리가 나면서 예열되 기 시작했다.

3분 정도 기다리니 그럴싸한 향이 코를 간질였다.

줄 하나 당겨서 완성된 볶음밥.

시장이 반찬이라고.

기대를 안 하고 먹었는데 의외로 맛이 괜찮았다.

우물우물-

밥알을 씹으면서 탐사율을 힐끗 봤 다.

[0.2%]

'꽤 걸은 것 같은데.'

1층 시련은 사막을 모두 탐색하는 게 아니다.

사막 어딘가에 있는 계단을 찾아내 는 것. 운이 좋으면 금방 발견할 수 도 있다.

'운에 맡길 수는 없지.'

아공간에 있는 전투식량은 30일분.

상당한 양이지만.

지금의 탐색 속도로 비추어 볼 때 꽤 아슬아슬했다.

'식량을 좀 아껴야겠어.'

이 정도는 위기 축에도 못 끼지.

투마 시절에는 이보다 더한 일도 많았다.

나는 밥을 천천히 씹었다.

천천히 먹는 것. 공복감을 줄이는 요령이다.

인스턴트 특유의 msg 맛을 음미하 면서 절반 정도 먹었을 때.

멀리서 사람의 그림자가 보였다.

'다른 도전자들인가.'

이방인은 총 셋.

정수리에 뿔 하나를 달고 있는 녀 석과 이마에 눈이 하나 더 있는 놈,

그리고 양팔이 비정상적으로 긴 사 람이다.

셋은 나를 향해 일직선으로 다가왔 다.

입으로는 전투식량을 먹으면서도 시선은 이방인에게 고정시켰다.

거리가 50미터 정도로 좁혀졌다.

나는 먹던 전투식량을 내려놓고 자 리에서 일어났다.

"무슨 일이지?"

손에는 칼로 변형시킨 다크 스타를 쥔 채로 이방인들을 노려봤다.

뿔 난 녀석이 앞으로 나섰다.

"이봐. 같은 도전자끼리 너무 날을 세우지 말자고."

양손을 위로 올린 모습.

적대 의사가 없다는 제스처다.

"목적을 말해."

"별거 아니다. 너, 0층에서 넘어온 지 얼마 안 됐지?"

"그렇다만."

"거래하자. 우리는 정보를 팔고 너 는 식량을 주는 거지."

"그 말을 어떻게 믿지?"

"의심이 많군. 그렇다면 먼저 정보 를 풀지. 들어보고 값을 지불할 가

치가 있다면 그때 식량을 줘도 되지 않겠나?"

나는 뿔 난 녀석의 눈을 지그시 바라봤다.

어떤 감정도 떠오르지 않은 눈동 자.

발언의 진위 여부를 파악하는 능력 같은 건 나한테 없다.

대신.

[진실의 눈]

뭐 하는 녀석들인지 알 수 있는 스킬은 있지.

'오호. 이 녀석들...

재밌군.

나는 입가에 웃음을 머금고는 칼을 거뒀다.

"그래. 이야기를 들어보지."

뿔 난 놈의 이름은 아인.

삼눈이는 츠바이.

팔이 긴 녀석은 드라이라는 이름으 로 자기소개를 했다.

"전민철이라고 한다."

나는 대충 대꾸했다.

굳이 이름을 기억할 필요야 없으니 까.

나와 이방인 셋은 모래로 된 바닥 에 대충 엉덩이를 붙였다.

뿔 난 놈이 입을 열었다.

"우리는 1층을 헤매던 중 마음이 맞아서 함께 하게 되었다. 시련에 참여한 기간은...

"됐고. 본론이나 말하지."

"성격이 급한 친구군. 이 시련을 어떻게 해야 통과할 수 있는지 아 나?"

"2층으로 올라가는 길을 찾아야 지."

"그렇다면 말이 빠르겠군. 우리는

2층 통로를 알고 있다."

"그럼 왜 올라가지 않는 건가."

"다 이유가 있지. 그것보다는 다음 층으로 올라가고 싶지 않나?"

뿔 난 놈은 자신의 뿔을 만지작거 렸다.

휘익.

먹다 만 생수통을 던져줬다.

"크크. 센스 있는 친구일세. 퀘스트 창의 기능은 좀 알고 있나?"

"몰라."

"완전 초짜고만. 퀘스트 창을 떠올 리고 지도라고 외쳐봐."

"지도."

솨아악!

홀로그램 창 위로 지도가 펼쳐졌 다.

"거기 보면 이제까지 다닌 지역이 모두 밝혀져 있을 거야."

뿔 난 놈의 말대로다.

전략 게임에서 유닛으로 시야를 밝 혀놓듯, 내가 다녀온 길은 모두 표 시가 되어 있었다.

"정말이군."

"크크. 넌 보이는 게 거의 없겠지 만 우리는 다르다는 말씀."

뿔 난 놈이 지도를 살짝 보여줬다.

나하고는 다르게 탑 1층의 대부분 이 환하게 밝혀져 있었다.

"아까 왜 올라가지 않느냐고 물었 지?"

"그랬지."

"서브 퀘스트 때문이다."

뿔 난 놈은 서브 퀘스트에 대해 설명했다.

탑의 시련은 다음 단계로 넘어가기

위한 '메인 퀘스트'이다.

메인 퀘스트 외에도 도전 여부를 선택할 수 있는 서브 퀘스트가 있 다.

"우리 셋은 그 서브 퀘스트를 수행 하는 중이다."

"그래서... 1층... 체류...

삼눈이가 느릿하게 말했다.

말을 못 하는 게 아니라 혀가 둔 한 거였구먼.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 조건이라면 납득은 가네."

"식량과 2층으로 가는 계단. 어떤

가."

"나쁘지 않은 제안이야."

"그럼 지도 정보를 넘겨주지."

뿔 난 놈은 자리에서 일어나더니 성큼성큼 걸어왔다.

10미터, 5미터.

거리가 빠르게 가까워진다.

지척까지 다가온 녀석은 악수를 하 듯 손을 내밀었다.

나는 놈의 손을 망설임 없이 잡았 다.

"협조해줘서 고맙군."

"고맙기는. 이쪽이 더 고맙지. 디크 란 씨."

"너, 너...

뿔 난 놈'이 놀라는 틈을 타서.

[다크 스타 - 장도(粧刀)]

나는 비어있는 왼손으로 다크 스타 를 쥐었다.

"내 이름을 어떻게!"

형이 말이야. 진실의 눈이라는 스 킬이 있어요.

'어디서 가짜 이름을 대고 있어?'

말할 시간도 아깝다.

역수로 쥔 칼을 휘둘렀다.

[화화단도술을 사용합니다.]

[혼돈기 3.5를 소모합니다.]

내력을 실어서 무방비로 드러난 뿔 난 놈의 목덜미를 쑤셨다.

"커 헉!"

뿔 난 놈, 디크란이 불의의 습격에 몸을 갸우뚱거리면서 뒤로 물러났

다.

나는 놈이 그대로 물러나게 두지 않았다.

성천조계공을 운용, 그와 동시에 성스러운 화염으로 몸을 감쌌다.

급격하게 늘어나는 스탯.

힘을 줘서 디크란의 자세를 무너트 리고 급소에 다크 스타를 꽂아 넣었 다.

"끄으윽...

뿔 난 놈은 별다른 반항도 못 하 고 쓰러졌다.

뒤에 있던 동료 둘이 자리에서 급

히 일어났다.

" 노 ◎스 "

I그 -厂1三 •

"무슨 짓이긴. 너희들이 하려는 짓

을 거꾸로 해 준 거지."

어,우-근! - 해

"사기를 치려면 몸에 묻은 피 냄새

나 지우고 하지 그래?"

삼눈이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피 냄사]... 그런 게... 몸에

... 전혀... 몰랐다."

당연하지.

거짓말이거든.

내가 놈들의 의도를 알아챈 이유는 이름 말고도 하나가 더 있었다.

40 화

풀썩.

팔이 기다란 녀석은 비명 하나 안 지르고 쓰러졌다.

몸뚱이에 새겨진 커다란 상흔.

오호단문도의 흔적이다.

그 옆에는 삼눈이가 피거품을 문 채로 널브러져 있었다.

2대 1의 싸움.

기습적으로 뿔 난 놈을 처리한 덕 에 쉽게 이겼다.

"사, 살려줘."

"너희한테 당한 피해자들도 그런 말을 하지 않았나?"

뭐.

딱히 정의구현을 하겠다는 건 아니 다.

나는 뿔 난 놈의 허리춤에 매달려 있던 열쇠를 집었다.

[피로 젖은 열쇠]

등급 : 희귀[R]

종류 : 잡화

내구도 : 91/100

열사의 사막 어딘가에 있는 '이름 없는 신'의 제단.

열쇠를 사용하면 유적의 시험을 피 할 수 있습니다.

현재 열쇠는 완성되지 않았습니다. 제 기능을 갖추기 위해서는 도전자 의 피를 먹여줘야 합니다.

'놈들이 말했던 서브 퀘스트인가.'

이름 없는 신의 제단.

메인 퀘스트에서는 전혀 언급되지 않은 장소다.

"이거. 어디에 쓰는 거지?"

"쿠, 쿨럭. 알려주면 살려주는 건 가."

"고통 없이 죽여주지."

"크, 크흐흐.... 그러면 말해줄 수 없다."

하아.

반성이라는 게 없는 녀석이다.

"이름 없는 신의 제단."

"그걸 어떻게...!"

"아까처럼 어수룩한 도전자를 낚아 서 열쇠의 제물로 삼았나."

"...이, 이놈. 처음부터 다 알고!"

거참.

솔직한 놈이네.

진실의 눈으로 파악한 정보를 대충 던져보니 일일이 다 반응했다.

"너 같은 비겁자를 살려둘 수는 없 지."

피를 머금은 열쇠.

얼마나 많은 도전자들이 열쇠의 완 성을 위해 피를 흘렸을까.

'전사들이 죽는 건 당연하다.'

칼을 든 자.

언제나 죽음을 마주해야 한다.

전생 때 내 신조였다.

하지만 정면 승부가 아니라 이런 암습으로 헛되이 목숨을 잃는 건 예 외다.

비겁자에게는 당연히 벌을 내려야 지.

서걱-

태도를 휘둘러서 삼눈이의 목을 쳤 다.

[내구도 - 92/100]

'한 놈당 하나씩인가.'

열쇠를 완성시키려면 앞으로 도전 자 8명을 더 죽여야 한다.

나는 고개를 저었다.

드넓은 사막.

뿔 난 놈 일행을 만난 것도 우연 에 가까웠다.

열쇠를 완성시켜서 이름 없는 군주 의 유적 안으로 안전하게 들어가는 건 요원했다.

'방법이 없진 않을 거야.'

열쇠는 유적의 시험을 피하게 해 준다고 했다.

그 '시험'이라는 것만 치르면 열쇠 가 없어도 유적 안에 들어갈 수 있 다.

'탑은 시련에 맞는 보상을 준다.'

유적의 시험이 뭔지는 모르겠지만.

열쇠의 조건만 봐도 쉽지는 않을 것이다.

반대로 생각하면 그만큼 엄청난 보 상이 유적 안에 숨겨져 있다는 말이 다.

[1 층의 도전자를 살해했습니다.]

[도전자가 탐색한 지역 정보를 모 두 승계합니다.]

[탐색률 : 0.2% -> 81.1%]

어럽쇼?

지도에는 뿔 난 놈 일행이 탐색했 던 1층 구조가 훤히 보였다.

2층으로 가는 계단.

이름 없는 신의 제단.

남부 오아시스.

동부 안식처.

그 외에도 몇몇 지형지물이 눈에 들어왔다.

제단은 북쪽.

2층으로 가는 계단은 서부에 위치 했다.

해를 등지고 간 덕분인지, 처음 출 발했던 곳에서 계단을 향해 꾸준히 걷고 있었다.

'그대로 올라가는 건 재미가 없지.'

내 시선이 북쪽을 향했다.

이름 없는 신의 제단이 있는 방향 이다.

米 米 米

이틀 동안 북동쪽을 향해 걸었다. 이름 없는 신의 제단.

뿔 난 놈 일행의 목적지였다. 불행인지, 다행인지.

[피를 머금은 열쇠]의 내구도를 올

릴 만한 기회는 없었다.

"天 H H르!"

人,•

대신 괴물들이 튀어나왔다.

빅 코브라.

5미터 길이의 뱀은 초록색 액체를 뱉었다.

닿으면 1분 안에 먹이의 숨통을 끊어버리는 맹독이다.

나는 운류보를 밟으면서 독액을 피 하고 도끼로 빅 코브라의 목을 썰어 버렸다.

'덕분에 사냥은 많이 했다만.'

1층에 출몰하는 괴물들은 평균 B 에서 C급이었다.

경험치를 얻는 사냥이라고 생각하

면 마음이 한결 편했다.

단점도 있었다.

'심법을 수련할 상황이 안 나와.' 성천조계공을 운용할 때는 반드시

주위의 안전이 확보되어야 한다.

이곳은 넓게 펼쳐진 사막.

사막의 괴물들은 지면 아래에서 움

직이는 경우가 많다.

시야가 확보되어도, 안전하다고 할

수 없다.

결국 성천조계공 수련을 포기했다.

'조금이라도 빨리 세계석의 기운을

흡수해야 하는데.'

이제는 별의 기운을 흡수할 필요가 없었다.

심상 세계 가운데에 자리 잡은 커 다란 태양.

세계석의 기운을 흡수하기만 해도 소우주의 완성도가 빠르게 올라갔 다.

'안 되는 걸 생각하지 말자.'

1층의 시련을 겪는 동안에는 성천 조계공 수련을 잊는 게 편했다.

얼마쯤 더 걸었을까.

모래 사이에 우뚝 서 있는 커다란 구조물이 눈에 들어왔다.

나는 혼돈기를 눈에 집중시켜서 안 력을 강화했다.

'저게 제단인가?'

하늘을 향해 쌓아 올린 제단.

고대 메소포타미아 지역에서 신을 섬기기 위해 지었던 지구라트와 비 슷하게 생겼다.

[시련의 탑 - 1층]

[서브 퀘스트 : 이름 없는 신의 제 단]

과거 인신 공양으로 신성을 추구했 던 포악한 신의 제단.

전쟁에서 추종자들을 모두 잃고 쇠 락하였지만, 제단에는 여전히 신의 힘이 남아 있다.

제단을 지키고 있는 수호자의 시험 을 통과하고 신의 유물을 손에 넣어 라.

* 목표

제단의 시험 통과

* 제한

10일에 한 번 수행 가능

* 보상

-10,000pt

-심장석

반투명한 창이 나타났다.

1층으로 올라왔을 때 봤던 홀로그 램 창이다.

차이점이 있다면 탑의 메인 퀘스트 와 비슷했지만 종료 조건 대신 제한 이 걸려있다는 것이다.

'더 큰 보상을 원하면 도전하라는 건가.'

그나저나.

서브 퀘스트 보상이 10,000포인트 라니.

튜토리얼 때 받은 백만 포인트가

작은 수치는 아닌 듯했다.

제단을 오르려는 순간.

귓가에 미세한 소리가 들렸다.

사박, 사박.

점점 가까워지는 발자국 소리.

모래 언덕 너머, 불청객의 실루엣 이 보였다.

"선객이 있었구려."

중후한 음성.

[이름 없는 신의 제단]을 노리는 경쟁자가 등장했다.

불청객의 외형은 인간과 비슷했다.

2미터쯤 되는 키.

금발에 금안, 그리고 금색을 띠는 갑주.

전신을 금색으로 물든 사내였다.

' 강하다.'

꿀꺽.

나는 침을 삼켰다.

진한 마력의 향.

사내의 전신에서 솟구치는 기세가 심상치 않았다.

연신 꿈틀거리는 혼돈기.

성천조계공이 사내가 내뿜는 강력

한 마력에 반응했다.

'선객... 녀석도 이 제단을 노리 고 온 거다.'

10일 제한이 걸린 서브 퀘스트.

사내와 나, 둘 중 한 명만 제단에 오를 수 있다.

젠장.

피부를 따끔따끔하게 자극하는 강 렬한 아우라.

현재의 수준으로는 사내를 이길 가 능성이 전혀 없다.

나는 진실의 눈으로 상대의 능력치 를 확인했다.

라우 드 골드리안

종족 : 드래코니안 / 나이 : 111

적성 : 격투, 마법

근력 : ??? / 민첩 : ??? / 맷 집....

현재의 내 수준보다 월등히 강한

상대.

진실의 눈으로 능력치를 읽어낼 수

없었다.

'용인이었군.'

용인, 드래코니안.

드래곤의 피를 계승한 종족이다.

용인은 명예와 힘을 중요하게 생각 한다.

정정당당한 싸움, 그리고 투쟁을 통한 성장을 최고의 가치로 여겼다.

그래서인지, 전생의 나는 용인들과 꽤 죽이 잘 맞았다.

'100살이면 아직 어린 녀석이잖 아.'

용인은 드래곤보다 성장이 빠른 편 이다.

100살이면 갓 성년식을 치른 것 같은데. 나이에 비해 풍기는 기운이 꽤 강했다.

나는 먼저 질문을 던졌다.

"당신은 누구지?"

"본인은 라우 드 골드리안. 자랑스 러운 골드 일족의 후예니라."

"지구인. 전민철이다."

사내, 라우의 금색 눈동자가 환하 게 빛났다.

선명한 금빛이 내 몸을 빠르게 훑 었다.

"그대를 위해 첨언하자면 제단에

오르지 않는 것이 좋을 걸세."

"왜지?"

"제단의 시험은 그대 같은 지구 출 신으로는 감당하기 어려울 것이니 라."

어쭈.

이제 막 성인이 된 놈이 누구한테 훈계를 하고 있어?

야.

내가 마, 너희 수장이랑 같이 술도 먹고 목욕도 같이 한 사이야!

'...전생에서 말이지.'

괜히 입맛이 쓰렸다.

"내가 서브 퀘스트를 포기하면 얻 는 건 뭔데."

"생존과 탑 다음 층을 올라갈 수 있는 기회다."

"그럼 넌 내가 얻지 못한 보상을 얻겠네."

"본인은 그대가 걱정되어서 하는 말이다만...

"보상을 가로챌 생각은 없다는 거 지'?"

"그러하다. 용족은 그렇게 파렴치 하지 않노라."

그래.

파렴치하지 못한 종족이라는 건 누 구보다도 잘 알고 있지.

'잘만 하면 이용할 수도 있겠어.'

용족은 알고 보면 은근 허당 끼가 있다.

슬슬 긁어주니 원하는 대로 대답이 튀어나왔다.

내심 반쯤 포기했던 서브 퀘스트.

라우의 반응에서 실낱같은 가능성 을 발견했다.

"내가 제단의 수호자를 쓰러트릴 수 있으면 어떻게 하려고."

" 흐음••••••

라우의 얼굴에 갈등의 빛이 번졌 다.

용족은 거짓을 말하지 않는다.

드래곤이든.

그 피를 계승한 드래코니안이든.

바보같이 솔직해서 그런 쪽으로 요 령을 부리는 놈은 많지 않았다.

왠지 전생의 나도 그런 이야기를 많이 들었던 것 같은데.

"믿기지 않는군. 그대의 마력 양은 다른 도전자들보다 특출나지 않네 만."

"그럼 시험해보든지."

"무엇을 말인가?"

"내가 제단의 수호자를 혼자서 쓰 러트릴 수 있는지 말이야."

"그대가 위험해지는 일이니라."

"누가 껴들지만 않으면 이길 수 있 다고. 당신이 주위를 지켜주면 되잖 아?"

라우는 고민하는 듯 미간을 찌푸렸 다.

"내가 죽을 것 같으면 그땐 당신이 나서면 되지."

"본인이 손을 쓴다?"

"서브 퀘스트를 넘긴다는 말이다."

"선객인 그대의 권리를 빼앗는 것 은 내키지 않았으니. 뜻대로 하게."

나는 웃음을 참았다.

낯선 불청객의 방문은 최상의 결과 로 이어졌다.

자존심과 바보... 아니, 솔직함 덩어리인 용족. 드래코니안.

막 성체가 된 녀석이라고 해도, 어 지간한 악마 정도는 가볍게 쓰러트 릴 수 있을 만큼 강하다.

그런 녀석이 잠깐이지만 내 보디가 드가 된 것이다.

제단의 수호자와 싸우는 동안 누군

가의 방해를 받을 걱정은 없어졌다.

"무운을 빌도록 하지."

라우는 약속대로 뒤로 물러났다.

저런 호구 아니. 신사다운 녀석.

나는 제단 위로 올라갔다.

꼭대기.

공양을 바치는 장소다.

정육각형으로 된 커다란 돌이 꼭대

기에 얹어있다.

바위 중심에는 구멍이 나 있다.

'피를 머금은 열쇠'의 모양과 동일 했다.

[제단의 수호자가 출현합니다.]

화아악!

정육면체 바위가 불그스름한 빛을 내면서 투명해졌다.

바위 안에 잠들어 있던 수호자가 눈을 떴다.

"이게 수호자라고?"

이름 없는 신.

누군지는 몰라도 꽤 악취미를 가진 게 분명했다.

수호자는 개를 닮은 괴물이었다.

도베르만을 이십 배 정도 확대하고 등 뒤에 촉수 수십 개를 달아두면 저런 모습이지 않을까.

펠 비스트.

촉수 다발로 사냥감을 낚아채서 진 액을 쥐어짜고 고기를 씹어 먹는 지 옥의 사냥개다.

"크어어어엉!"

잠에서 깬 펠 비스트가 울부짖었 다.

놈의 눈은 정확히 나를 향했다.

[수호자와의 싸움이 시작됩니다.]

[전투지역이 제단 안으로 제한됩니 다.]

불그스름한 빛이 반구 형태로 주위 를 감쌌다.

퀘스트로 선포된 결투 지역이다.

라우가 당황한 듯 신음을 흘렸다.

"이, 이런. 이렇게 되면 그대가 위

험에 처해도 도움을 줄 수가...."

"걱정하지 마."

나는 라우의 말을 중간에 잘랐다.

[다크 스타 - 칠성검]

손에 쥐어진 검.

흑색 칼날이 섬뜩한 빛을 흩뿌렸 다.

"오래 걸리지 않을 거야."

성큼성큼 다가오는 펠 비스트를 향 해.

그대로 검을 휘둘렀다.

41 화

촉수 몇 개가 나를 향해 날아들었 다.

쩌어억-

끝이 입처럼 벌어진다.

벌려진 촉수 끄트머리에서는 흑색 기운이 넘실거렸다.

'마력을 빨아먹는 촉수다.'

펠 비스트는 저 촉수로 마력의 향 을 맡아서 먹이를 감지했다.

지옥의 사냥개가 사냥을 하는 방식 이다.

카각!

촉수 다발이 금속음을 내면서 튕겨 났다.

내력을 싣지 않은 검격.

단단하고 질긴 펠 비스트의 촉수를 잘라내지 못했다.

'놈의 공격 방식은 두 가지.'

육탄 공세.

그리고 촉수 공격이다.

펠 비스트

종족 : 마수

근력 : 220 / 민첩 : 230 / 맷집

: 250 / 체력 : 250 / 마력 : 200

'이 상태로는 이길 수 없지.'

이미 성천조계공을 활성화시켰지 만.

펠 비스트의 압도적인 스펙에 미치 지는 못했다.

[성화(聖火)가 전신을 휘감습니다.]

[혼돈력을 제외한 모든 능력치가

50% 증가합니다.]

[치유의 축복이 몸에 깃듭니다.]

화르륵!

하얀 불길이 전신을 휘감는다.

"으르르릉!"

펠 비스트가 눈을 가늘게 뜨고 성 스러운 불꽃을 경계했다.

호오.

그러고 보니.

저 녀석은 판데모니엄의 마수잖아.

펠 비스트는 판데모니엄 본 성계에 만 서식하는 괴물이다.

'녀석도 경시하지는 못하겠어.'

성화는 천사장 중 한 명인 미카엘 의 권능이다.

그 근간이 되는 내 혼돈기는 아직 미약하지만, 권능에 실린 힘은 다르 지 않다.

" 컹!"

펠 비스트는 지면을 박차면서 도약 했다.

커다란 바위가 날아드는 것 같은 압박감이다.

[운류보를 사용합니다.]

[혼돈기 1.4를 소모합니다.]

발로 지면을 튕기면서 옆으로 움직 였다.

촤아악!

수십 개의 촉수 다발이 펼쳐졌다. 처음은 간 보기였다는 듯 촉수 여 럿이 사방을 점하면서 날아들었다.

정면을 바라보는 펠 비스트.

측면으로 붙는 촉수 다발.

촉수가 자아를 지니고 있어서 마치 따로 행동하는 것 같다.

나는 칠성검을 허리춤에 가져다 대 었다.

다크 스타 일부가 칠성검을 덮는 칼집으로 형태를 바꾸었다.

[칠성마검 - 1초식을 사용합니다.]

[혼돈기 280을 소모합니다.]

콰콰콰콰!

수 미터에 달하는 흑색 기운.

기다란 흑색 검기가 칼 너머로 넘 실거 렸다.

하늘의 별을 떨어트리는 검.

칠성마검의 1초식, 낙일검이 펼쳐 졌다.

서걱-

주위를 잠식해 들어오던 촉수 다발 수십 개가 일격에 모두 잘려 나갔 다.

"크르르릉!!"

펠 비스트는 몸을 움찔거렸다.

절반쯤 잘려 나간 촉수 다발 수십 개가 마구 꿈틀거렸다.

검은 체액이 바닥에 튀었다.

머리를 잃고 발광하는 촉수 다발.

그로테스크한 모습이다.

나는 그 끔찍한 광경을 외면하지 않고, 도리어 펠 비스트를 향해 돌 진했다.

'펠 비스트 본체는 촉수가 잘려도 타격이 거의 없어.'

촉수는 사람으로 치면 머리카락과 같다.

무언가에 닿으면 감각이 있지만,

잘라낸다고 해서 아프지는 않다.

놈을 치려면 본체를 노려야 했다.

'대신 촉수를 잘라내면 바로 회복 을 하지.'

사람은 야한 생각을 하면 머리가 빨리 자라는 것처럼.

펠 비스트는 마력과 체력을 소모해 서 촉수를 재생시킨다.

잠깐 몸을 움찔거린 것도 촉수를 회복하기 위해 체력과 마력을 소모 한 반동이다.

그때가 놈의 빈틈.

'장기전으로 끌고 가면 답이 없지.'

촉수만 잘라내다가는 내가 먼저 지 친다.

펠 비스트의 빈틈을 유도하고 바로 승부수를 던졌다.

[칠성마검 - 2초식을 사용합니다.]

[혼돈기 280이 소모됩니다.]

발검에 이은 칠성마검의 두 번째 초식.

유성검(流星劍)이 펼쳐졌다.

천체에서 지상으로 낙하하는 별의 기세를 담은 검격이 무겁게 쏟아진

다.

검이 내려오는 속도는 생각보다 빠 르지 않았다.

제때 반응하기만 하면.

충분히 피할 수 있는 속도다.

[유성검의 기운이 펠 비스트를 압 박합니다.]

[상태 이상 - 마비에 걸렸습니다.]

하지만 펠 비스트는 움직일 수 없 었다.

등 위를 짓누르는 중압감에 버티는 게 고작이었다.

'유성검은 적을 압제하는 공격이 다.'

유성.

하늘에서 땅으로 떨어지는 별.

그 이름대로, 두 번째 초식에는 검 이 닿기 전부터 상대를 짓누르는 강 력한 중압감이 실려있다.

푸아악!

미간에 꽂힌 검격.

중심에 있는 자수정과 머리 일부가 그대로 쪼개졌다.

"크르으으으으-!"

펠 비스트가 괴성을 지르면서 몸뚱 이를 지면에 마구 비볐다.

좌우로 왔다 갔다 하니 상처와 갈 라진 촉수에서 흘러나온 피가 제단 을 흠뻑 적셨다.

후욱.

나는 거칠어진 숨을 가다듬었다.

'아직은 2초식이 한계인가.'

넘쳐나는 혼돈기.

세계석을 흡수하면서 성천조계공의 성취가 4성에 도달했다.

단번에 두 배 이상 혼돈기가 늘어

났고 무공 사용 시 소모량 30%가 감소했다.

반면 무공을 펼쳐내는 몸뚱이는 여 전히 약했다.

성천조계공과 성화 버프.

내 신체 능력을 두 배 가까이 증 가시켜주지만, 상승 무공의 묘리를 온전히 펼치기에는 아직도 부족했 다.

'조금 얕았다.'

칠성마검의 2초식으로 펠 비스트의 숨통을 끊으려 했다.

하지만 상승 무공의 묘리를 펼쳐낼 힘이 부족했다.

'그래도 마력석을 부쉈으니 당분간 움직일 수 없을 거다.'

미간에 있는 자수정. 마수의 두 번 째 심장인 마력석이다.

마력석은 암흑 마나를 저장하는 장 소다.

마수의 힘은 악마와 마찬가지로 암 흑 마나를 기반으로 한다.

그 중요한 것을 깨트렸으니 지금쯤 속이 엉망이 되었을 것이다.

나는 호흡을 가다듬으면서 소진된 체력을 회복했다.

남은 것은 하나.

무력화된 펠 비스트의 숨통을 끊는 것이다.

米 米 米

라우 드 골드리안.

그는 태어났을 때부터 '제왕'의 그 릇을 타고났다.

에인션트 드래곤, 라우페르의 피를 계승.

비어있는 다섯 번째 왕의 자리에 오를 재목이었다.

때문에 어릴 적부터 수많은 교육을

받았다.

제왕학.

마법.

정령술.

격투를 비롯한 온갖 무기를 다루는 방법.

여러 스승을 만났고, 많은 기예를 익혔다.

그렇기에.

'그대는 정말로 비 랭커 출신이 맞 는 거요?'

라우는 제단 위의 전투를 보면서 경악을 금치 못했다.

민철의 움직임은 한 폭의 그림을 보는 것만 같았다.

극한에 다다른 마력 운용.

과감한 손짓.

펠 비스트를 마주하고도 한 치의 망설임 없이 무기를 휘두르면서 압 박했다.

'펠 비스트가 저렇게 형편없이 밀 릴 줄은 몰랐소.'

제단의 수호자.

라우는 이미 서브 퀘스트의 시련 과제가 펠 비스트라는 것을 알고 있 었다.

탐색률 100%.

시간을 들여서 1층의 모든 요소를 돌아본 덕분이다.

서브 퀘스트를 해결하는 방법은 두 가지.

도전자 100명을 죽여서 열쇠를 완 성시키거나, 혹은 1대1로 펠 비스트 를 쓰러트리거나.

'펠 비스트의 악명은 잘 알려져 있 지.'

판데모니엄의 사냥개.

악마들은 길들여놓은 펠 비스트를 여러 전장에서 활용했다.

펠 비스트를 목격한 이들은 하나 같이 괴물의 집요함과 악랄함에 치 를 떨었다.

뿔 난 놈 삼인조도 펠 비스트와 1 대1 대결을 포기하고 열쇠를 완성시 킬 생각을 했다.

그런데.

이걸 전투라고 부를 수 있을까.

촉수 다발이 잘려 나가고 약점을 공략당했다.

일방적인 폭력이었다.

'본인이 살펴본 본 바, 민철이라는 자의 신체 능력은 형편없소.'

라우는 열사의 사막을 돌아다니며 여러 도전자들과 마주쳤다.

[현왕의 심안]

골드 일족의 '군주'에게만 내려지 는 지혜의 눈동자.

마력을 감지하여 상대의 마력 운용 성향을 색깔로, 강 • 약을 색의 크 기로 알아낼 수 있다.

라우가 나선 것도 그 까닭이다.

'본인이 쓸데없는 걱정을 한 모양 이구려.'

헛된 참견이었다.

서브 퀘스트에서 라우의 도움을 구

하는 일은 없었다.

이렇게 되니, 라우가 오히려 곤란 해졌다.

서브 퀘스트의 보상.

심장석.

라우는 그 아이템이 반드시 필요했 다.

'이렇게 되면.... 어쩔 수 없구 려.'

금빛 눈동자는 막 펠 비스트의 숨 통을 끊고 있는 민철의 모습에 고정 되어 있었다.

米 米 米

푸욱!

싸늘한 칼날이 펠 비스트의 급소를 파고들었다.

"크르••••••

펠 비스트는 낮게 신음을 흘리더니 고개를 푹 숙였다.

-경험치 8.5%를 획득했습니다.

"질긴 녀석 같으니라고."

쯧, 혀를 차면서 펠 비스트의 사체 를 흘겨봤다.

몸뚱이에 새겨진 상흔만 5개.

하나하나가 치명상이다.

하지만 펠 비스트의 생명력은 상태 창에 표기된 대로 엄청났다.

'아니. 아직은 내 힘이 부족한 거 겠지.'

세계석의 힘을 흡수하지 않았더라 면 꽤 고전했을 듯했다.

쳇-

아쉬움에 혀를 찼다.

그 순간.

손등이 화끈거렸다.

다크 스타가 새겨진 손이다.

인두로 지지는 것 같은 고통.

나는 무의식적으로 손등을 흘겨봤 다.

'이건••••••!'

검은 문장의 중심.

비어있는 곳에 회오리를 연상시키 는 새 문신이 추가되었다.

착각이라도 한 듯.

고통은 눈 깜짝할 사이에 사라졌

다.

다크 스타.

죽어버린 별의 정수를 다듬어서 만 든 병기.

그 진정한 힘은 신화급 무구에 닿 아있지만, 현시점에서는 대부분 봉 인되어 있다.

나는 여태 다크 스타의 기본적인 기능만을 사용했다.

'사용자와 계약을 맺으면 그 업에 따라 쓸 수 있는 힘이 달라지거든.'

지금의 나는 한낱 인간.

다크 스타의 진정한 힘을 끌어내기

에는 현생의 업이 부족했다.

그런데.

'반응이 왔어.'

새롭게 추가된 문장. 다크 스타의 힘 일부가 해방되려는 징조였다.

일명 2단계 해방이다.

나는 왼손으로 검은 문장을 만지작 거렸다.

'다크 스타의 해방 속도가 예상보 다 빠르다.'

전생 때는 다크 스타의 힘을 2단 계로 끌어내기까지 수십 년이 걸렸 다.

내가 각성한 지는 고작 2개월.

수십 년의 세월이 2개월로 단축된 것이다.

'원인은 모르겠지만 기회다.'

다크 스타의 등급은 일반[C].

최소한의 옵션과 날카로움만 지닌 무기다.

그럼에도, 내가 다크 스타를 선택 한 이유는 '여러 무공'을 상황에 따 라 펼칠 수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그 선택은 옳았다.

난전.

소형, 혹은 대형.

다크 스타와 무공을 활용해서 상황 과 종류를 따지지 않고 괴물들을 해 치울 수 있었다.

여기서 다크 스타가 한 단계 강해 진다면?

'내 전투력도 급격하게 상승할 것 이다.'

장인은 도구를 따지지 않는다고 하 지만.

버드나무 가지와 잘 벼려진 칼을 들고 싸우는 건 분명한 차이가 있 다.

'탑을 더 올라가려면 준비도 필요 하다.'

문제는 탑의 시련이 아니었다.

탑을 오르는 도전자들.

랭커 / 비 랭커 구분할 것 없이, 도전자들은 모두 경쟁자이다.

힘을 합칠 수도 있지만, 서로 칼을 겨누게 될 가능성이 더 높다.

다크 스타 2단계 해방.

전력을 상승시킬 수 있는 최선의 수다.

'문제는 1층에서 재료를 구할 수 있을런지.'

2단계 해방을 위해서는 희귀한 금 속이 필요했다.

-미스릴 10kg.

-오리하르콘 5kg.

탑의 바깥.

지구에서는 충분히 구할 수 있는 금속이다.

희귀한 만큼 많은 돈을 지불해야겠 지만.

하지만 보이는 것이 모래뿐인 열사 의 사막에서 희귀 금속을 구할 수 있는 방법이 떠오르지 않았다.

[시련의 탑 - 1층]

[이름 없는 신의 제단의 수호자를

쓰러트렸습니다.]

아.

맞다.

나, 서브 퀘스트 수행하던 중이었 지?

42 화

[시련의 탑 - 1층]

[이름 없는 신의 제단의 수호자를

쓰러트렸습니다.]

[업적 보상으로 10,000pt와 심장석

이 주어집니다.]

[본 시련은 서브 퀘스트입니다. 일

정 시간 동안 재도전할 수 없습니 다.]

[남은 시간 - 239:59:59]

제단을 감싸고 있던 붉은 기운이 사라졌다.

10,000포인트.

그리고 검붉은 돌, 심장석이다.

나는 눈살을 찌푸린 채로 제단 위 에 놓인 심장석을 봤다.

[심장석]

등급 : 유니크[U]

종류 : 잡화

내구도 : 300/300

수많은 생명을 녹여내서 응축시킨 돌입니다.

강한 원령이 돌 안에 깃들어 있습 니다.

심장석은 어떤 악마가 [세계석]을 따라 만든 물건이다.

수많은 생명의 정수를 강제로 추 출, 한곳에 모아서 응축시킨다.

심장석을 의식이나 마법의 촉매로

사용하면 위력을 수 배 이상 증폭시 킬 수 있다.

그 외에도 활용 방법은 많다.

아티팩트를 제작하거나 심장석을 취해서 마력을 늘리는 영약으로 사 용할 수도 있다.

'대신 원령을 억눌러야겠지.'

여러 생명체를 생으로 갈아 넣어 만든 저주받은 물건.

심장석 안에 있는 힘을 취하려면 원령을 정화시키거나 정면으로 싸워 이겨야 한다.

'악마나 마공을 익힌 무인에게는 꽤 탐이 나는 영약이겠다만.'

나는 고개를 저었다.

심장석.

만약 튜토리얼 보상으로 [세계석] 을 받지 않았더라면.

원령과 싸우는 한이 있어도 심장석 의 기운을 흡수했을 것이다.

'지금은 세계석의 기운을 받아들이 기도 벅차.'

하나의 차원조차 [창조]해낼 수 있 다고 알려진 세계석.

그 강대한 힘이, 비록 일부 조각일 지라도 내 심상 세계에 머무르고 있 다.

여기에 원혼이 깃든 심장석의 힘이 더해진다면?

'성천조계공에 심대한 타격을 줄지 도 몰라.'

나는 뒤통수를 긁었다.

서브 퀘스트.

이름 없는 신의 제단의 보상인 심 장석.

막상 아이템을 얻게 되니 사용하기 가 애매해졌다.

차라리 미스릴이나 오리하르콘을 주면 좋았을 텐데 말■이야.

"그대여. 혹시 서브 퀘스트의 보상

으로 심장석을 얻은 게 맞소?"

라우가 나를 향해 다가왔다.

호오.

이 녀석 보소.

금빛 눈동자 위로 묘한 빛이 일렁 였다.

나는 쥐었던 손의 힘을 풀었다.

"너한테는 이게 필요한 것 같군."

검붉은 돌.

심장석이 모습을 드러냈다.

라우의 시선이 심장석에서 떠날 줄 을 몰랐다.

'용족이 심장석을 왜 원하는 거 지?'

용족은 마력을 심장에 담아둔다.

얼핏 보면 심장석과 궁합이 좋아 보인다.

하지만 용족의 심장은 정순한 기운 만을 담고, 사특한 기운을 배제했다.

심장석은 생명을 희생해서 만든 응 축 에너지.

삿된 기운이 가득했다.

한 마디로 용족과 궁합이 안 좋은 물건이다.

'뭐, 이유가 중요한가.'

확실한 건.

이 신출내기 용인은 심장석을 원하 고 있고.

그 아이템은 내 손아귀에 쥐어져 있다는 사실이다.

'흐흐흐.... 상황이 재밌게 됐네?'

용족은 재화에 대한 탐욕이 강하 다.

일반적인 상황에서는 협박을 해서 라도 내가 얻은 심장석을 빼앗는 것 도 서슴지 않을 놈들이다.

문제는, 이 녀석이 서브 퀘스트를 진행하는 동안 나를 지켜주겠다고

선언한 것이다.

맹약에 따른 결과물.

아까 한 말이 족쇄가 되어 저 자 존심 강한 용족의 행동을 붙잡았다.

'나만큼 용족의 성격을 잘 아는 악 마는 없지.'

전생의 경험이 빛을 발하는 순간이 다.

심장석에 대한 탐욕.

스스로 내건 약속.

라우는 두 가지 가치 사이에서 오 락가락하면서 탐욕을 억누르라 어쩔 줄 몰라 했다.

"이거, 너한테 넘겨줄까?"

"저, 정말이오? 조건을 말씀하시구 려. 마땅한 값을 치르리다."

바로 화색이 감도는 표정.

용족은 얼굴을 조금만 살펴도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뻔히 쓰여 있 다.

말을 멈추고 잠시 뜸을 들였다.

라우의 안색에서 조바심이 스쳐 지 나갔다.

'자. 그럼 뭘 얻을 수 있지?'

심장석.

희소성이 있는 아이템이지만 나하

고는 궁합이 맞지 않다.

바깥에서 제값에 주는 것도 방법이 고.

비싼 아이템으로 치장하고 있는 호 구한테 팔아도 된다.

'아니. 그렇게 사용하기는 아까워.'

라우 드 골드리안.

나는 저 이름이 가진 의미를 알고 있다.

왕의 직속 혈계.

비어있는 권좌에 앉을 '군주'의 그 릇이다.

이 만남 자체가 기회다.

'그렇군. 다음으로 이어갈 선을 연 결하면 되겠어.'

심장석을 이용해서 얻을 수 있는 최대의 보상을 떠올렸다.

나는 심장석을 내밀었다.

"조건 같은 건 없어."

"그게 무슨 말씀이오?"

"없다고. 네가 제단 주변을 지켜줬 잖아."

"그건 그대가 서브 퀘스트의 선객 이기 때문에 한 일인 것을...

말은 그렇게 하면서도.

라우의 눈동자는 심장석에서 떨어

질 줄을 몰랐다.

솔직한 녀석 같으니라고.

나는 담담한 투로 대꾸했다.

"네가 양보하지 않았더라면 심장석 을 얻을 수 없었을 거다."

"본인은 약속을 지킨 것뿐이오."

"역시 용족. 소문대로 신의를 아는 종족이다."

내 말에 고개를 끄덕이는 라우.

"대신 부탁을 하나 하고 싶다."

"대가를 받는 게 아닌 부탁이라. 말씀해보시구려."

"기회가 되면 드래코니아가 있는 세계에 가보고 싶어."

"드라코 말이오?"

"어. 지구에서는 드라코를 환상의 세계라고 부르거든."

고향 성계 칭찬에 라우의 표정에 자부심이 드러났다.

미안한데.

그거 뻥이야.

'사실 사람들은 드래곤이 있는지도 잘 모르거든.'

판데모니엄과 엘리시움은 다차원 우주의 정보가 지구에 알려지는 것

을 최대한 통제했다.

탑을 지닌 세계.

휴전 이후 다차원 우주를 양분하는 두 거대 세력의 경계선이 되었다.

아슬아슬한 대치 상황.

여기에 다른 차원 세력이 끼어드는 것을 방지하기 위함이다.

엘프나 드워프, 성간 연합 등 몇몇 차원만 대사관을 파견해서 정식 외 교 루트를 마련했지만.

그 외 차원의 정보는 대부분 알려 지지 않았다.

'용족의 차원은 그중에서도 특별한

곳이지.'

라우한테 뻥을 치긴 했어도, 용족 의 사회인 드래코니아의 모성 - 드 라코는 정말 아름다운 곳이다.

드라코에는 아무나 갈 수 없다.

출입할 수 있는 건 용족의 인정을 받은 자 뿐.

근데 그 인정이라는 게, 받기가 엄 청나게 어렵다.

'왕의 피를 이은 용족의 인정이라 면 심장석보다 더 가치가 있다.'

라우 앞에서 용족의 공명정대함과 신의를 칭찬한 것도.

심장석을 선물로 주는 것도.

이 어린 용족의 인정을 받으려는 계산이었다.

"우리 세계를 방문하려면 특별한 조건이 필요하다오."

"조건?"

나는 모르는 척 되물었다.

"용족의 인정을 받은 자 만이 출입 할 수 있소."

"그런 건 못 들었는데. 용족한테 부탁하면 된다는 이야기만 들었어."

"지구 같은 하위 차원이라면 잘 모 를 수도 있는 법이오."

"그럼 안 되는 건가."

"방법이 있긴 하오만...

라우가 고민하는 듯 턱을 만지작거 렸다.

나는 느긋하게 대답을 기다렸다.

'용족의 성격상 빚을 지고는 못 살 지.'

평범한 사람이라면 고민하는 척 심 장석을 날름 먹을 것이다.

용족은 그러질 못하는 종족이다.

탐욕이 강하지만 은원도 확실했다.

"차라리 이건 어떻소?"

라우는 품속에서 금색 원반을 꺼냈 다.

크기는 한 손으로 겨우 쥘 수 있 는 정도, 표면에는 드래곤 조각과 라우의 풀 네임이 새겨져 있다.

"내 명패요. 드라코에 출입하고 싶 다면 이것을 선물로 주고 싶구려."

잠깐.

그 명패를 나한테 준다고?!

米 米 米

나는 살짝 굳은 표정으로 명패를

흘겨봤다.

표정이 안 좋다.

사실은 놀라움을 감추기 위해 안간 힘을 쓰는 중이다.

'야. 그걸 나한테 준다고 하면 안 되지!'

'이름'이란 그 사람을 상징하는 고 유한 단어다.

고위의 격을 이룬 영체일수록, 이 름에 대한 가치가 더욱 커졌다.

'용족의 명패는 친한 친구한테만 주는 거라고!'

명패를 주는 건 한국 사회로 치면

보증을 서주는 것과 마찬가지다.

진심으로 신뢰할 수 있는 존재에게 주는 믿음의 증표다.

라우는 내 표정을 힐끔 보더니 명 패에 대한 설명을 시작했다.

"이것은 본인의 명패요. 이 물건의 가치를 설명하려면...

알아.

안다고.

그러니까 설명 안 해줘도 돼.

명패에 대해 설명하는 라우.

그 목소리가 전혀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그렇게 귀한 거라면 왜 날 주는 건데?"

"그대는 본인을 믿어주었소. 그러 니, 본인 또한 그대를 믿고 싶은 것 이오."

"아니. 믿는다고 해도 말이지."

용족의 성격을 알고 깔아놓은 포 진.

약 빨이 너무 셌나보다.

"또한 본인은 그대의 성장 가능성 을 높이 평가하고 있소."

"성장 가능성?"

"조금 전에 보인 전투. 극한의 마

력 응용과 몸놀림, 하나하나가 예술 의 경지였소."

"어, 으음...

"본인은 상대의 힘을 가늠할 수 있 는 눈이 있소. 현재의 그대는 매우 약하지만, 앞으로 강해질 것이오."

요약해보면 내가 보여준 신뢰와 발 전 가능성에 반했다는 말이다.

라우는 진심 어린 목소리로 말했 다.

'이, 이 녀석...!'

진심이다.

생각했던 것보다 더 호구... 아니

착한 놈이잖아!

이렇게까지 말하는데, 명패를 안 받는 것도 예의가 아니지.

나는 벅차오르는 마음을 겨우 억누 르면서 라우의 명패를 받았다.

'왕의 후계자를 상징하는 명패라.'

서브 퀘스트의 진짜 보상은 라우의 이름이 새겨진 명패였다.

심장석보다 훨씬 가치가 있었다.

'다른 용족을 만나도 적대할 일은 없다.'

용족의 수는 많지 않다.

하지만 개개인이 모두 상위 악마에

이를 만큼 강했다.

만약에라도 안 좋은 상황에서 용족 과 마주치면, 방금 받은 명패가 큰 힘이 되어줄 것이다.

"후후.... 좋은 인연과 심장석을 얻은 뜻깊은 날이구려."

라우는 심장석을 보면서 맑게 웃었 다.

하.

이 양반, 험난한 세상에서 어떻게 살아가려고 이렇게 순박한 건지 모 르겠다.

"그대는 이제 어찌할 것이오?"

"위로 올라가야지."

나는 하늘을 가리켰다.

탑 1층에서는 얻을 게 많지 않다.

삼눈이 일동을 털면서 여러 정보를 취득했는데, 1층에서 탐이 나는 건 크게 없었다.

라우가 아쉬운 눈빛을 흘겼다.

"그럼 당분간 이별이겠구려."

"넌 안 올라가?"

"심장석을 흡수할 것이외다. 그러 려면 정화 작업이 필요하오."

하긴.

심장석에 섞인 탁기는 용족과 상성 이 안 맞았다.

흡수하려면 시일을 들여서 차근차 근 원혼과 탁기를 씻어내야 했다.

"그대와의 재회를 기대하겠소."

"너야말로."

제발 어디서 누구한테 사기당하지 마라.

라는 뒷말은 차마 할 수 없었다.

라우와 헤어진 뒤.

나는 2층으로 향하는 계단을 향해 걸었다.

끝없이 펼쳐진 사막.

제단을 찾았던 때와 마찬가지로 며 칠을 걸은 뒤에야 하늘 위로 뻗은 통로를 발견할 수 있었다.

43 화

하늘 높이 솟아있는 계단.

보이는 것과는 달리, 몇 걸음 옮기 니 머리 위에 딱딱한 것이 닿았다.

[시련의 탑 - 1층]

[열사의 사막의 시련을 통과했습니

다.]

[달성도 - 80%]

[업적 보상으로 3,500pt가 주어집 니다.]

[다음 시련에 도전하거나 원래의 차원으로 돌아갈 수 있습니다.]

아직은 돌아갈 때가 아니지.

미리 챙겨온 식량도 넉넉했다.

"2층으로 올라간다."

화아악!

강렬한 빛이 쏟아졌다.

몸을 휘감는 부유감.

눈을 감고 공간 이동이 끝나기를 기다렸다.

잠시 후, 눈꺼풀을 자극하던 빛이 사그라졌다.

' 음?'

이상했다.

공간 이동 특유의 붕 떠오른 느낌 이 여전히 느껴졌다.

눈꺼풀을 들어 올리니, 2층의 풍경 이 망막 너머로 비쳤다.

"미친."

반사적으로 욕이 튀어나왔다.

몸을 감싼 커다란 방울.

그 너머로 푸른 바다가 펼쳐졌다.

사면을 둘러봐도 온통 새파란 물밖 에 없다.

고개를 들어서 위를 봤다.

저 멀리.

희미한 빛이 수면 위로 비쳤다.

얼핏 봐도 꽤 먼 거리다. 헤엄쳐서 가려면 얼마를 가야 할지 짐작도 가 지 않았다.

[시련의 탑 - 2층]

[퀘스트 : 바다의 보석]

깊이를 알 수 없는 심연의 바다. 위험천만한 바다에는 보석이 잠들어 있다.

바다 여러 지역에 숨겨진 보석을 찾아라.

* 목표

바다의 보석 [0/7]

* 종료 조건

바다의 보물 네 개 이상 찾기.

[현재 위치 - 심해 300m]

[공기 지속시간 - 02:59:59]

[도전자에게 심해의 나침반이 주어 집니다.]

[심해의 나침반은 가장 가까이에 있는 안전지대를 향합니다.]

보글보글- 몸 주위를 감싸고 있던 공기 방울이 축소되었다.

차가운 바닷물이 온몸을 휘감았다.

[수압 Lv 3에 노출되었습니다.]

[움직임에 제한이 걸립니다. 움직

임 속도가 50% 하락합니다.]

[시야 제한 Lv 3]

[특정한 기운이 시야를 가로막습니 다.]

묵직해진 몸.

시야가 급격하게 제한된다.

빛이 비치는데도 200m 이상 보려 고 하면 어둠이 드리워서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나는 숨을 쉬었다.

'바닷속에서도 숨 쉴 수 있다.'

바닷물이 입가와 코를 들락날락하 는데 전혀 불편하지가 않다.

바깥에서 숨을 쉬는 것과 똑같았

다.

팔과 다리를 움직여봤다.

'무겁다.'

물의 저항력.

그리고 깊이에 따른 수압.

두 가지가 겹쳐지면서 움직임에 제 약을 걸었다.

이번에는 양다리에 힘을 주고 헤엄 치듯 세게 물을 밀어냈다.

앞으로 나아가는 몸.

이곳은 정말로 모두 '물'로 되어있 는 바다였다.

사방이 물이니 발을 디딜 곳도 없 다.

'근접전이 특기인 녀석들은 꽤나 곤욕을 치르겠어.'

힘을 줄 때 가장 중요한 건 하체 의 움직임이다.

허공에 뜬 상태로 주먹을 휘두르 면?

주먹의 위력이 평소에 비해 반도 나오지 않는다.

'무공에서도 보법을 중요하게 여기 는 게 그 이유지.'

온전히 힘을 싣기 위해서는.

지지대가 되는 하체가 중요하다.

발을 디딜 곳이 없는 바다에서의 싸움.

근접전이 특기인 자들은 전투력의 태반이 깎여나가는 패널티를 감수해 야 한다.

'그건 평범한 녀석들의 경우고.'

전생에 산전수전 공중전까지 다 겪 어본 몸이다.

이런 제약쯤.

아무것도 아니다.

나는 혼돈기 일부를 발에 집중했 다.

검은 기운이 발바닥을 감쌌다.

다리 근육에 힘을 줘서 발을 앞으 로 내밀었다.

저벅-

아까처럼 물이 발에 밀리지 않고 그 자리에 버티면서 몸을 지탱해줬 다.

나는 심해 한가운데서 지면을 딛는 것처럼 멀쩡하게 섰다.

[혼돈기 1을 소모합니다.]

대신 혼돈기를 소모해야 했다.

열사의 사막의 가혹한 기후를 버텨 냈던 것과 마찬가지였다.

'탑을 만든 놈은 변태인 게 분명하 다.'

사막에 이어 바다라니.

탑의 시련.

악명대로 난이도가 엄청났다.

'설명해주는 녀석도 하나 없고.'

0층처럼 관리자가 나와서 탑의 시 련을 알려주면 좋겠건만.

1층과 2층은 맨땅에 머리를 들이 받는 느낌이다.

나는 몸을 풀면서 바다의 수압에 적응했다.

* * *

성천조계공을 운용하면서 몸을 움 직이니, 어느 정도 적응할 수 있었 다.

[움직임이 10% 둔해집니다.]

수압을 완전히 떨쳐내지는 못했지 만, 이 정도면 패널티가 거의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이쯤이면 되겠어.'

나는 심해의 나침반을 봤다.

야구공 크기의 조개.

조개껍질 위에는 화살표(一) 모양 으로 된 나침반이 달려 있다.

나는 나침반이 가리키는 방향을 바 라봤다.

'일단 여기로 가볼까.'

퍼엉-

폭발음과 함께 몸이 쏜살같이 앞으 로 나갔다.

레기온과의 전투에서 써먹었던 혼 돈기의 응용 방법이다.

운류보를 전력으로 밟으면서 종종 혼돈기를 폭발적으로 방출했다.

평지에서 뛰는 것에 뒤지지 않는

속도였다.

바닷속을 누비면서 달리던 중.

무언가가 보이기 시작했다.

'저게 안전지대인가?'

커다란 공기 방울.

운동장 크기의 땅, 그 위로 중세시 대를 연상시키는 오래된 건물 몇 개 가 공기 방울 안에 있다.

나는 공기 방울을 향해 쭉 전진했 다.

방울에 닿는 순간.

신선한 공기가 뺨을 스쳤다.

[안전지대에 진입했습니다.]

[안전지대에 머무는 동안에는 공기 의 지속시간이 줄어들지 않습니다.]

나는 땅을 디뎠다.

지상에 올라온 것처럼 굳건한 대 지.

공기 방울 안에 있는 땅이라고는 생각하기 어려웠다.

'일단 정보를 수집해보자.'

가장 가까이에 있는 건물 앞에 섰 다.

세월의 흔적이 있는 목제 문.

끼이익-

손에 힘을 줘서 문을 밀었다.

"손님이 왔군."

걸걸한 목소리.

은색 비늘로 뒤덮인 어인이 나를 맞이했다.

어인은 커다란 눈을 희번덕거리면 서 내 몸을 훑었다.

"낄낄. 행색을 보니 막 2층으로 올 라온 도전자로군."

"어떻게 눈치챘지?"

"여긴 심연의 바다의 첫 번째 구역 이지. 딱 보면 알아."

"다들 여길 거쳐 가나."

"거쳐 가는 놈들도 있고, 그냥 머 무르는 녀석들도 있지."

이곳에 머무른다?

의아함이 들었지만 지적하지는 않 았다.

"딱 보니 궁금한 게 많은 표정이구 먼. 이리 앉지."

"공짜...는 아닌 것 같군."

"눈치 빠른 도전자는 싫어하지 않 아."

어인은 입술 끝을 살짝 일그러트렸 다.

비틀린 웃음.

웃는데도 비호감을 주는 재주를 지 닌 녀석이다.

나는 의자에 몸을 기댔다.

삐거덕-

등받이에 등을 대자, 나무가 비명 을 내질렀다.

관리를 어지간히 안 하나 보다.

"정보 값은?"

"여긴 잡화점이야. 물건만 구매해 주면 말해주지."

"그럼 가장 싼 걸로."

"흐음. 이런 식으로 눈치 빠른 건 싫어하는데."

어인은 못마땅한 듯 입술을 비죽였 다.

휘익!

생수통이 날아왔다.

"값은 5pt다."

[아올옥의 상점에서 생수를 구매했 습니다.]

[5포인트가 차감됩니다.]

"물이 저렇게 넘쳐나는데, 이걸 돈 받고 파는 건가."

"그럼 소금물 먹고 뒈지시든가."

어인, 아올옥은 커다란 눈을 부라 렸다.

못마땅한 기색이 가득했다.

"됐고. 시련에 대해 아는 거나 이 야기해."

"크... 약속은 약속이니 궁금한 걸 물어보면 말해주마."

"원래 이 시련은 안내해주는 관리 자가 없나?"

처음 2층에 오자마자 들었던 의문 이었다.

특유의 불친절함.

사막과 바다, 극한의 환경에 던져 놓고 시련에 대한 단서도 제한적이 었다.

"관리자? 무슨 말이야. 관리자는 그렇게 쉽게 볼 수 있는 존재가 아 니야."

"음?"

"이거 완전 애송이구먼! 관리자 녀 석들이 얼마나 바쁜 척을 하는데."

아올옥은 말을 던져놓고는 화들짝 놀라서 주위를 둘러봤다.

"우씨. 관리자가 들으면 큰일 날 뻔했구먼."

"...뭐한 거냐?"

"관리자가 동네 친구인 줄 아냐. 쉽게 볼 수 있는 존재가 아니여."

관리자를 보기가 그렇게 어려운 건 가?

아니.

그것보다도 어인은 관리자를 두려 워했다.

나는 0층에서 만났던 관리자, '루 체'를 생각하고 있었는데.

계층마다 관리자의 성향이 다른 것 같다.

"관리자는 됐고. 시련 목표인 보석

에 대해서나 알려줘."

"크, 심연의 바다는 일곱 해역으로 나누어져 있다."

"일곱 해역?"

"그래. 너희 도전자들이 찾는 보석 은 해역마다 한 개씩 있다. 참고로 이곳은 침묵의 바다라고 불리고 있 지."

[이름 없는 신의 제단]

1층에서 치른 서브 퀘스트가 떠올 랐다.

'제단의 시련은 10일에 한 번 치를 수 있었다.'

실제로 이름 없는 제단을 올라가려 고 할 때 용족인 라우를 마주치기도 했다.

"누가 보석을 챙겨 가면 어떻게 되 는 거지?"

"크크. 시련의 주제인 보석은 사라 지지 않는다."

그건 다행이군.

서브 퀘스트처럼 기다릴 필요는 없 는 듯했다.

나는 그 외에도 시련에 관한 정보 를 몇 가지 더 물었다.

아올옥은 투덜거리면서도 성실하게

답했다.

우선 '심연의 바다'는 열사의 사막 만큼이나 넓다.

각 해역에는 안전지대가 하나씩 있 다.

공기를 채울 수 있는 것은 안전지 대뿐.

안전지대마다 머무르고 있는 상인 한테 공기 팩을 구매해서 채울 수 있다.

1시간에 lOOpt.

공기 팩의 가격이다.

'값어치가 상당하단 말이야.'

열사의 사막의 시련을 통과하고 얻 은 포인트가 3500이었다.

모두 공기 팩으로 돌리면 35시간 을 머무를 수 있다.

'포인트 수급도 가능하다고 했지.'

바다를 유영하는 괴물을 사냥하면 포인트를 얻을 수 있다.

평범한 도전자들은 안전지대와 바 다를 드나들며 괴물을 사냥, 공기팩 을 구매하면서 보석을 하나씩 모았 다.

나는 튜토리얼 보상으로 얻은 100 만 포인트 덕에 번거로운 과정을 생 략할 수 있었다.

튜토리얼 보상으로 받은 100만 pt 의 가치가 직접적으로 체감이 되었 다.

'포인트로 장비도 구매할 수 있다.'

1층에서는 쓸 곳이 없었던 포인트.

안전지대에서는 포인트를 가지고 여러 물건을 구매할 수 있었다.

생수, 식량 같은 생존 관련 필수 품.

여관 이용.

칼이나 방패, 갑주 등 무장도 팔았 다.

성능은 마르탄이 손수 제작한 장비

에 비해 뒤떨어져서 구매 욕구가 생 기지 않았다.

'각 해역에 대한 정보도 있으면 좋 았을 텐데.'

심연의 바다는 해류의 흐름에 따라 일곱 해역으로 구분된다.

아올옥이 알고 있는 건 침묵의 바 다에 대한 정보뿐.

다른 해역에 대해서는 잘 알지 못 했다.

"필요한 건 다 들은 것 같네."

나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일곱 해역에 대해서는 부딪치면서

알아보면 된다.

"크크. 가려는 건가?"

"일단 이 해역에 있는 보석부터 얻 어야지."

"자신만만해 보이는데. 절대로 쉽 지 않을 거야."

아올옥은 눈동자를 데룩데룩 굴렸 다.

"신참. 이곳을 뭐라고 부르는지 알 아?"

"모르지. 방금 왔는데."

"크크, 한 번 빠지면 절대로 빠져 나올 수 없다고 해서 심해라고 부르

지."

"심해라."

온통 바다로 된 층계.

누가 지은 지는 몰라도 참 어울리 는 말이다.

과연.

그 말이 나한테도 통용될까?

44 화

잡화점을 나서기 전.

"중요한 걸 안 물었네."

나는 뒤를 돌아 어인을 바라봤다.

"이 해역의 보석은 어디로 가야 얻 을 수 있지?"

"잡화점 정문을 기준으로 45도 각

도. 2km 정도 직진하면 나오지."

"이정표 같은 건'?"

"여긴 바다 한가운데다. 그런 걸 찾을 수 있겠냐."

하긴.

여긴 바다였지.

"다음 해역으로 가려면 어디로 가 야 하나."

"초롱... 아니, 아니. 보석이 있는 곳에서 더 직진하면 해류벽이 나 와."

"해류벽?"

"해역을 나누는 벽이다. 거기서 아

래로 내려가면 나침반이 반응할 거 다."

"꽤 순순히 이야기해주는군."

"크크. 이 해역의 보석에 바로 도 전할 생각인가?"

"그렇다만."

"보석이 있는 곳에 간다고 해서 바 로 얻을 수 있는 게 아니다."

아올옥은 손가락을 펼쳤다.

마디 사이에 있는 물갈퀴가 빛을 받아서 번들거린다.

썩 보기 좋은 모습은 아니다.

"하이파이브라도 하게?"

"500pt."

"앞뒤 다 자르면 어떻게 알아듣 나."

"크크, 이 몸이 보석 공략도 알려 주고 유용한 아이템도 추천해 주겠 다, 이 말이지."

"다른 사람한테 열심히 팔아라."

"신입. 보석은 네가 생각하는 것만 큼 쉽게 얻을 수 없을 거다."

"응, 아니야."

끼이익-

문을 밀면서 밖으로 나갔다.

나가기 전, 다시 한번 뒤를 돌아서

쏘아주는 걸 잊지 않았다.

"문에 기름칠 좀 해라. 이러니까 장사가 안되지."

쿵!

살짝 힘을 줘서 대문을 밀었더니 요란한 소리가 났다.

부서졌거나 곧 부서지거나.

둘 중 하나겠지 뭐.

"야! 신입! 너 이 @#$%@#$

어인이 뭐라고 고래고래 소리를 질 렀다.

누굴 호구로 아나.

물값으로 들은 정보면 충분했다.

'잡화점 기준으로 45도라.'

고개를 오른쪽으로 살짝 돌렸다.

대충 이쯤인가.

나는 방향을 잡고 전진했다.

방울 너머로 몸을 밀어 넣자, 공기

대신 차가운 물이 피부를 뒤덮었다.

[해저에 진입했습니다. 공기가 소 모됩니다.]

[공기 지속시간 - 02:45:31]

꽉 차 있는 물살을 가르면서 앞으 로 나아갔다.

보폭을 생각하며 거리를 가늠하던 중.

나는 전진을 멈췄다.

' 이쯤인데...

잡화점에서 45도 각도로 2km 지 점.

어인이 말한 거리다.

두 눈을 부릅뜨고 주위를 둘러봤 다.

사방은 바다였다.

보석이 묻혀있을 만한 땅은 보이지

않았다.

'어인 놈이 거짓말을 한 건... 어?!'

은은한 붉은빛이 발밑에 감돈다.

집중해서 보니 발광체의 정체가 눈 에 들어왔다.

'보석이라는 게 저거였나.'

2미터 크기의 보석 초롱아귀.

미간 사이에 붙은 더듬이에는 붉은 빛을 내뿜는 보석이 달려 있었다.

[시련의 탑 - 2층]

[퀘스트 : 바다의 보석 - 루비]

제한 시간 안에 보석 초롱아귀에게 서 루비를 낚아채라.

루비는 보석 초롱아귀한테 피해를 주면 물에 녹아 사라진다.

[제한 시간 - 00:05:00]

반투명한 창이 떴다.

퀘스트를 확인한 순간, 보석 초롱 아귀도 내 존재를 알아챘다.

"꾸릉, 꾸릉."

이상한 소리를 내면서 멀어지는 보 석 초롱아귀.

붉은빛이 점점 사그라진다.

'저 녀석이랑 경주하라는 말이잖 아.'

루비는 보석 초롱아귀에게 피해를 입히면 얻을 수 없다.

순수하게 물속에서 속도를 다루는 시련이다.

물고기와 수영 싸움을 하라니.

이번 시련.

좀 재밌겠는데?

[성화(聖火)가 전신을 휘감습니다.]

[혼돈력을 제외한 모든 능력치가

50% 증가합니다.]

[치유의 축복이 몸에 깃듭니다.]

하얀 불꽃은 해저에서도 꺼지지 않 고 더욱 환하게 빛났다.

빛이 바닷물을 투과하면서 시야를 가로막았던 어둠도 일부 몰아냈다.

성천조계공과 성스러운 불꽃의 버 프 중복.

신체 능력이 두 배 가까이 상승했 다.

'수영 실력으로는 저 녀석을 잡을

수 없겠지.'

빠르게 멀어지는 빛.

상대는 물고기다.

물고기를 수영으로 이기기는 어불 성설이다.

그러니.

나는 수영을 하지 않을 것이다.

'각자 잘하는 걸로 승부를 보자고.'

보석 초롱아귀는 수영으로.

나는 달리기로.

바닷물 사이로 은은하게 비치는 붉 은빛.

보석 초롱아귀가 도망간 방향을 향 해 있는 힘껏 발을 내디뎠다.

퍼엉!

발바닥 끝에 혼돈기를 응축시키고 폭발, 몸을 밀어내면서 가속을 더했 다.

희미해진 붉은빛이 조금씩 강해진 다.

빛의 근원인 루비에 차근차근 가까 워졌다.

"꾸룩꾸루룩!(어딜 도망가)!"

성격대로 말을 내뱉었다가 물거품 소리만 잔뜩 났다.

웩.

물만 엄청 먹었네!

너무 자연스럽게 뛰어서 물 안에 있다는 것을 깜박했다.

" 꾸릉?"

보석 초롱아귀가 뒤를 힐끔거렸다.

흔들리는 동공.

내가 뛰어오는 모습을 보고 당황한 듯했다.

"꾸릉, 물속을 뛰어다니는 도전자 는 처음이다."

뭐야.

말도 할 줄 알았어?

자세히 보니 몸통에 팔과 다리가 붙어 있었다.

순수한 물고기가 아니라 아올옥이 라는 녀석처럼 어인이었다.

'뭐, 상관없지.'

어인이든 물고기든.

더듬이에 달린 루비만 잡으면 된 다.

보석 초롱아귀의 생각은 나랑 다른 모양이다.

"꾸릉. 콜 슬레이브!"

부글부글-

커다란 물거품이 일면서 요란한 소 리가 났다.

레이피어처럼 날카로운 주둥이, 그 리고 두툼한 비늘과 커다란 몸뚱이.

괴물의 크기는 보석 초롱아귀보다 두 배 정도 컸다.

바다 유형 게이트에서 출몰하는 괴 물, 소드피시다.

보석 초롱아귀가 불러낸 소드피시 는 셋.

지느러미로 물살을 밀어내면서 나 를 향해 곧장 날아들었다.

'시간을 끌겠다는 건가.'

거침없이 들이닥치는 소드피시.

그 기세와 속도는 경시할 수 없었 다.

소드피시 세 마리가 앞을 막으니, 시야가 꽉 막혔다.

틈이 없는 정면.

놈들을 뿌리치고 보석 초롱아귀를 잡는 건 불가능해 보였다.

'헤엄을 쳐서 가면 그러겠지.'

미안하지만.

네가 말한 곳에 답이 있다.

나는 아까 말한 대로, 물속을 '뛰 고' 있거든.

발에 혼돈기를 집중해서 물을 박차 고 도움닫기를 했다.

뜀틀을 넘는 학생처럼 소드피시 세 마리를 발밑으로 넘겼다.

"꾸릉. 그렇게 위로 가면 날 잡을 수 없다."

'걱정도 많군. 다정하기도 해라.'

나는 씩 웃어줬다.

수면 위를 향해 올라가는 몸.

물속에서 공중제비를 돌아서 방향 을 바꿔 주고 재차 물을 밀어냈다.

급격한 방향 전환.

몸에 무리가 갔지만, 운류보의 효

능으로 충격을 상당수 해소했다.

'허공답보, 아니. 수중답보인가.'

전생의 나는 날개도 없고 비행 마 법을 다룰 줄도 몰랐다.

하지만 무 대륙에서 익힌 무공으로 종족의 한계를 뛰어넘었다.

경신법으로 허공을 누비는 경지.

허공답보의 원리를 물속에서 응용 한 것이다.

나는 심해로 빠르게 하강했다.

보석 초롱아귀가 있는 위치였다.

"꾸릉! 꾸릉!"

지느러미를 파닥이는 보석 초롱아 귀.

'잡았다!'

빠르게 손을 뻗어서 놈의 더듬이에 달려 있는 루비를 낚아챘다.

[시련의 탑 - 2층]

[퀘스트 : 바다의 보석 - 루비의 시련을 통과했습니다.]

[업적 보상으로 LOOOpt가 주어집 니다.]

[공기 팩에 10시간이 추가됩니다.]

* * *

물에 녹듯 스르르 사라지는 소드피 시. 보석 초롱아귀도 움직임을 멈췄 다.

'이제 하나인가.'

루비 자체에는 특별한 기능이 없었 다.

나는 루비를 아공간 주머니에 쑤셔 넣었다.

"꾸릉, 너. 비 랭커 출신 맞냐?"

보석을 빼앗긴 초롱아귀가 말을 걸

었다.

근데, 대답을 해주고 싶어도 물속 이라 말을 할 수가 있어야지.

아.

전음을 사용하면 되겠구나.

사용할 일이 없다 보니 잊고 있었 다.

-지구 출신 인간이다. 그러니까 여 기에 들어왔지.

"꾸릉? 믿기지 않아. 내가 본 비랭 커들은 모두 물속에서 고전했단 말 이다."

-할 말은 그게 끝?

"꾸릉, 아니다. 너처럼 빨리 잡은 도전자는 추가 보상이 있다."

호오.

시련을 빨리 해결하면 추가 보상도 있는 건가.

"꾸릉, 꾸릉. 심해의 나침반을 꺼내 봐라."

보석 초롱아귀는 내 나침반에 손을 얹더니 작게 중얼거렸다.

푸른빛이 나침반에 스며들었다.

우웅-

나침반의 화살표 끝에 작은 진주가 맺혔다.

-이건 뭐지?

"꾸릉. 시련을 모두 통과하면 알게 될 거다."

다른 시련들도 특정 조건을 만족하 면 추가 보상을 준다는 의미인 듯했 다.

[진실의 눈]으로 살펴봐도 얻을 수 있는 정보가 없었다.

'일단 부딪쳐봐야 알겠어.'

나는 심해의 나침반을 다시 챙겼 다.

-다른 시련도 너처럼 도망치는 걸 잡아야 하는 건가?

"꾸릉. 보석들을 얻은 방법은 말해 줄 수 없다."

-쳇. 까다롭기는.

"그게 관리자가 세운 원칙이다. 나 한테 항의해도 소용없다."

첫 번째 보석을 건 시련.

얻을 수 있는 건 모두 얻었다.

다른 시련에 대한 정보를 얻었으면 더 좋았겠지만.

'됐다. 언제는 정보 수집하고 부딪 쳤나.'

무모하더라도 앞으로 간다.

전생의 방식이었다.

-더 줄 건 없지?

"꾸릉. 그렇다."

-그럼 간다.

"꾸릉. 너 같은 비 랭커. 처음 봐. 기대된다."

손을 흔들면서 배웅하는 보석 초롱 아귀를 뒤로 하고, 다시 전진했다.

콰아아아!

물로 된 커다란 벽이 앞을 가로막 았다.

어인 아올옥이 말했던 해류벽이었 다.

몇 미터를 사이에 두고 해류의 흐

름이 완전히 달랐다.

'더 다가갔다간 위험하겠어.'

자연적인 현상이 아니었다.

탑이 해역을 나누기 위해 인위적으 로 구현해낸 해류였다.

제자리에서 몸을 반 바퀴 돌리고 심해를 향해 머리를 향했다.

팟!

물을 걷어차면서 바다 안쪽으로 들 어갔다.

[해저 500m 구간에 진입했습니 다.]

[수압이 상승합니다.]

[수압 Lv 3 -> 4]

[움직임에 제한이 걸립니다.]

몸을 짓누르는 압박감이 한층 더 강해졌다.

'이 정도는 견딜 만해.'

혈도를 타고 전신을 순환하는 혼돈 기.

심상 세계에서 빚어진 강대한 기운 이 외부의 압력에서 몸뚱이를 유지 할 수 있게 지켜 주었다.

팽그르르!

나침반의 화살표가 반 바퀴를 돌아 서 새로운 안전지대를 가리켰다.

'이제 첫 해역을 벗어난 건가.'

[공기 지속시간 - 12:03:55]

남은 공기는 넉넉했다.

나침반을 길잡이 삼아 쭉 전진하다 보니, 두 번째 안전지대가 슬슬 보 이기 시작했다.

안전지대를 찾는 과정이 마냥 순탄 하지는 않았다.

'침묵의 바다하고는 조금 차이가 있어.'

2층 초입인 침묵의 바다는 고요했

다.

물고기 몇 마리가 간간이 돌아다녔 지만, 도전자한테는 관심도 주지 않 았다.

두 번째 해역은 침묵의 바다처럼 안전한 곳이 아니었다.

메탈 샤크.

소드피시.

유령 해파리 등.

희귀하다고 알려진 해양 괴물들이 잔뜩 있었다.

그중 일부는 이동 중인 나를 감지 하고 겁 없이 습격했다.

물론.

위험한 상황은 한 번도 없었다.

'포인트와 경험치를 얻긴 했지만 별로 싸우고 싶지 않아.'

물속에서 싸우는 건 불편하다.

걸음 하나하나를 내디딜 때마다 혼 돈기로 물을 끌어와서 단단하게 붙 여야 한다.

나니까 가능한 거지.

이론을 알려줘도 해낼 수 있는 사 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어쨌든 도착했다.'

침묵의 바다에 있는 안전지대보다

몇 배는 커다란 공기 방울.

두 번째 안전지대가 모습을 드러냈 다.

45 화

두 번째 안전지대는 마을을 연상시 키는 분위기였다.

중앙을 가로질러서 난 커다란 도 로.

크고 작은 건물들이 도로를 사이에 두고 서 있다.

길가를 오가는 사람들.

그 숫자만 수십 명 정도였다.

'좀 낯선 느낌이잖아.'

나는 턱을 만지작거렸다.

북적거리는 사람들.

백인, 황인 등, 지구 출신인 비 랭 커들.

어인이나 엘프 등 다른 차원에서 초대를 받은 랭커 등.

여러 차원에서 온 자들이 한데 섞 여 있었다.

"싸다. 싸. 소드피시 주둥이를 가공 해서 만든 단검이 단돈 3,000pt!"

"킹크랩 갑주. 사용감 있음. 내구력 우수. 4200pt."

"연금술로 제작한 중급 힐링 포션 팝니다."

온갖 상점.

그리고 노점상들.

종족을 가리지 않고 서로 흥정을 하거나 물건을 사고파는 모습이다.

탑보다는 전통시장 같은 느낌.

"이보게."

중후한 음성이 귓가에 아른거린다.

설마 날 부르는 건 아니겠지.

목소리를 무시하고 안전지대 안쪽 으로 들어가려는 찰나.

누군가가 불쑥 나를 향해 다가왔 다.

"자네. 잠깐 멈추게."

50대쯤 되는 백인 사내였다.

노란색과 갈색이 섞인 머리카락, 그리고 푸른 눈.

코에는 콧수염을 멋들어지게 길렀 다.

마치 TV에서 나올 법한 신사의 모 습이다.

'뭐야. 이 양반은?'

경계 어린 눈빛으로 사내를 바라봤 다.

"초면인데 미안하구먼. 잠시 시간 좀 내주지 않겠나?"

"$#@%(이!※#(c)"

웩!

아무 생각 없이 대꾸하려다가 물만 왕창 먹었다.

'저 아저씨는 어떻게 말을 하는 거 지?'

알 방법이 없구먼.

나는 전음을 사용했다.

-도에는 관심 없는데요.

"자네. 이 안전지대에 온 건 처음 이지?"

어인도 그랬지만, 정체 모를 아저 씨도 하는 말이 똑같다.

내 이마에 [시련 처음 참여했습니 다.]라고 써놓고 다니는 것도 아닌 데 말이야.

"다 아는 법이 있지. 자네 신발을 보면 알아."

신발?

발을 내려다봤다.

물에 젖어있는 것 빼고는 멀쩡한 데.

이번에는 시선을 돌려서 사내의 신 발을 쳐다봤다.

'저게 뭐지?'

점액질처럼 보이는 무언가가 하얀 신발을 뒤덮고 있다.

"투명 해파리 신발. 바다를 다닐 때는 필수 아이템이라네. 어인 아올 옥이 설명해주지 않았나?"

-아니. 못 들었는데요.

"이걸 신지 않으면 중심을 잡기도 힘든데, 용케도 여기까지 왔군."

잡화점에 있는 어인 녀석.

정말 중요한 건 쏙 빼놓고 알려줬

네?

"해양 괴물들도 마주치지 않고 여 기까지 무사히 온 게 천운일세."

-뭐. 그렇군요.

나는 떨떠름하게 대꾸했다.

뭔가 크게 오해하고 있구먼.

하지만 나쁜 의도가 있어 보이지는 않았다.

"자네. 포인트는 얼마나 있나? 2천 포인트는 필요한데."

뭐야.

이 아저씨도 그 어인처럼 장사치였 나?

- 없는데요.

"끄응. 투명 해파리 신발이랑 오르 자의 망토는 필수란 말일세."

-아이템 없어도 여기까지 잘만 왔 는데.

"안 되겠군. 아이템의 효과를 직접 보여주는 게 빠르겠어."

중년 사내는 주위를 둘러봤다.

유유히 옆을 지나가는 소드피시 한 마리.

발을 구르더니 능숙한 수영 솜씨로 소드피시를 향해 다가갔다.

소드피시가 중년 사내를 인식했다.

"이 녀석은 돌진 속도가 빨라서 수 영으로는 피할 수가 없다네."

뾰족한 입을 앞세우면서 돌진하는 소드피시.

중년 사내의 등을 덮고 있는 망토 가 환한 빛을 내뿜었다.

"오르자의 망토는 물에서도 발판을 만들어 준다네."

발밑에 생기는 반투명한 판.

중년 사내가 판을 밟고 위로 올라 가자, 바로 물속에 녹아내렸다.

간발의 차이로 스쳐 지나가는 소드 피시.

"십 분에 한 번만 쓸 수 있으니 신 중하게 사용하는 게 좋네."

팔과 다리를 허우적대는 사내.

"투명 해파리 신발은 물속에서도 자세를 보정해 주지."

물속에서 바동거리다가 금세 안정 을 되찾았다.

"그러면 이렇게... 소드피시가 잠 시 움직임을 멈춘다네.''

사내의 말 대로였다.

목표물을 놓친 소드피시는 잠시 경 직상태에 빠졌다.

"아이스 스피어!"

저저적!

재배열된 마나가 실체화된다.

물 일부가 얼어붙더니 커다란 창의 형태를 갖추었다.

얼음 창이 물살을 가르면서 나아간 다.

푸욱-

소드피시의 미간 사이에 꽂힌 아이 스 스피어. 괴물은 눈을 부릅뜨더니 그대로 멈췄다.

"어떤가. 이래도 이 아이템들의 필 요성을 못 느끼겠는가?"

-글쎄.

쓸 만하긴 하네.

나한테는 전혀 필요 없지만.

"후, 그럼 대여 형식으로라도 내 걸 빌려주겠네. 중고지만 쓸 만할 거야."

아.

이 아저씨, 그냥 오지랖이 넓고 사 람이 좋은 거였구나.

목소리에서 악의가 느껴지지 않았 다.

근데 어쩌나.

정말 필요가 없는데.

마침 소드피시 한 마리가 더 나타

났다.

물을 박차면서 소드피시의 주의를 끌었다.

"자, 자네. 그렇게 달려가면...!"

아저씨의 목소리가 귓가에 아른거 린다.

내가 말입니다.

여기까지 오면서 소드피시를 몇 마 리나 횟감으로 만들었는지 알면 기 절할걸?

'오지랖 넓은 아저씨한테는 직접 보여주는 게 최고지.'

다크 스타를 태도로 변형.

바로 오호단문도의 첫 초식을 펼쳤 다.

흑색 도기는 소드피시를 주둥이 째 반으로 갈라버렸다.

- 봤죠?

"...자네는 뭐 하는 사람인가?"

중년 사내의 동공이 좌우로 흔들렸 다.

米 米 米

중년 신사의 이름은 제라드.

영국 출신 헌터였다.

제라드는 나뭇잎 모양 브로치를 줬 다.

그걸 옷에 걸으니 물속에서도 말을 할 수 있었다.

"내가 번데기 앞에서 주름을 잡았 구먼."

"알면 됐네요."

험험, 제라드는 민망한 듯 헛기침 을 했다.

하긴.

나라도 같은 상황이라면 부끄럽겠 다.

"오지랖을 떤 김에 내가 이곳, 심 해를 안내해주도록 하지."

"심해?"

"이 해역의 안전지대. 아니... 도 시라고 불리는 곳이지."

"근데 도시 이름치고는 이상한데 요."

"도전자들이 붙인 이름일세."

"바다에 있는 도시라서 심해라고 부르는 건가?"

"그 말도 일리가 있다만 정답은 아 니라네."

"이유나 들어봅시다."

"3층으로도, 원래의 세계로도 돌아 갈 수 없는 곳. 심해에 빠진 자들이 머무는 곳."

이봐요. 아저씨.

설명을 해달라니까 무슨 시를 읊고 있네.

"그 못마땅한 표정은 뭔가?"

"알아듣기 어려워서 그렇죠."

"아. 자네는 이 층계의 구조를 아 직 모르고 있겠군."

제라드는 땅에 쭈그리더니 지팡이 로 땅을 벅벅 긁었다.

뭘 하나 지켜봤더니 무언가를 바닥

에 그리고 있었다.

"그거 해바라기인가요?"

"...심연의 바다 구조라네."

"아. 좀 꽃 같이 생겨서."

중앙의 동그라미 하나를 두고 다른 동그라미 다섯 개가 감싼 형태.

그림 위쪽으로는 기다란 타원이 쭉 뻗어있다.

"우리가 있는 곳은 이곳, 중앙 해 역이라네."

"중앙 해역?"

"모든 해역으로 통한다고 해서 그 렇게 부르고 있지."

"그럼 저 막대기는 침묵의 해역인 가요?"

"그렇다네. 이해가 빠르군."

해역은 단계별로 쭉 나누어지는 줄 생각했다.

이야기를 듣고 보니 스테이지 방식 이 아니라, 원하는 보석의 시련을 취사선택으로 고를 수 있는 모양이 다.

"그래서인지, 다른 해역의 안전지 대보다 유독 중앙 해역 안전지대가 크다고 하더군."

"직접 본 건 아닌가 보네요?"

"뭐, 그런 셈이지."

제라드가 쓴웃음을 머금었다.

"3층으로 올라가려면 보석을 최소

4개는 모아야 하지."

"그렇죠."

"바꿔 말하면 원래 세계로 돌아가 려고 해도 보석 4개가 필요하다는 말이라네."

잠깐.

그럼 그 심해라는 말이....

'벗어날 수 없다고 해서 심해인 거 야?'

나는 입을 쩍 벌렸다.

"이해한 모양이군."

"그럼 저 많은 사람들이 모두 2층 에 발이 묶인 건가요?"

"그렇다네. 나를 포함해서 말이지."

2층의 시련, [심연의 바다]에서 장 기 체류를 하고 있는 이들은 얼추 수백.

도시 규모인 '심해'를 뺀 나머지 안전지대에도 도전자 상당 숫자가 머무르는 중이라고 한다.

"숙식은 어떻게?"

"소드피시 같은 괴물들을 죽여서 포인트를 얻고, 그걸로 생활비를 충

당하고 있다네."

탑의 시련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사 람들.

누가 붙인 건지는 모르겠지만, 도 시의 명칭인 '심해'는 도전자들의 상황과 잘 맞아떨어졌다.

"이곳은 보다시피... 살아갈 수 있는 최소한의 조건은 마련되어 있 다네."

"글쎄요. 이걸 삶이라고 할 수 있 을까."

나는 고개를 저었다.

갇힌 곳에서 반복되는 생활.

그걸 진짜 삶이라고 생각하지는 않 았다.

"2층 시련이 그렇게 어렵나요?"

"열사의 사막하고는 비교할 수 없 지. 자네도 그 보물 초롱아귀를 보 지 않았나?"

" 봤죠."

"그걸 잡으라니... 아이템의 힘을 빌어도 쉽지 않은 일이지."

"이미 잡고 왔는데요."

"••••••응?"

백 마디 말보다 한 번 보여주는 게 빠르겠지.

아공간 주머니를 뒤져서 루비를 꺼 냈다.

"정말이군. 괜한 참견을 했어."

"실수를 할 수도 있죠. 이해합니 다."

나는 관대하게 웃으면서 넘겼다.

입이 쩍 벌어진 제라드.

방금 한 말에 감격이라도 받았나보 다.

흐흐.

내가 이렇게 배려심이 넘치는 사람 이다.

"제라드. 왜 나한테 이런 걸 알려

주는 거죠?"

"심연의 바다는 혹독한 곳이다. 자 네 같이 처음 온 젊은이들한테는 반 드시 말을 해주고 있다네."

"당신은 좋은 사람이네요."

"조, 좋기는. 그냥 심해에서 벗어나 지 못한 망자에 불과하다네."

"몇 년이나 있었는데요?"

"올해로 3년 정도 되었나."

3년 동안 바다 안에서 머무르다니.

끔찍하구먼.

나는 혀를 내둘렀다.

"이제까지 3개를 모았지만, 나머지 시련들은 감당하기가 어려워서 도전 할 엄두가 나지 않더군."

이런 사람이 한둘이 아니란다.

탑에 들어간 헌터 중 사망률이 30%정도 된다고 하던데.

그중 상당수는 2층에서 장기 체류 를 벗어나지 못해서 사망 처리된 사 람들도 있는 것 같다.

'그 사람들의 시련을 내가 치러줄 것도 아니니.'

나는 심해에 머무는 이들을 동정하 지 않았다.

그들은 모두 전사다.

스스로 선택하여 시련에 도전했고, 벽에 멈춰서 더 나아가지 못했다.

그 벽을 넘는 것은 자신의 몫.

내가 동정하거나 도와준다고 해서 넘을 수 있는 게 아니었다.

"중앙 해역의 시련은 어디로 가야 치를 수 있죠?"

"여기서 멀지 않네."

제라드가 게슴츠레한 눈으로 나를 흘겨봤다.

"바로 시련을 치르러 갈 건가?"

"그래야죠. 시간 끌어서 뭐 합니

까."

체력은 넘쳐났다.

시간은 금.

지금 시련을 치르지 않으면 시간 낭비를 하는 기분이 들었다.

"알겠네. 그럼 내가 안내해주도록 하지."

"그냥 알려주기만 하면 되는데."

"자네가 시련을 치르는 모습을 보 고 싶어서 그런 것이니 신경 쓰지 말게."

이 아저씨가.

어떻게 신경을 안 씁니까?

속으로 투덜거리면서 제라드의 안 내를 따랐다.

안전지대, [심해]에서 조금 떨어진 곳.

아래로 백 미터 정도, 해저의 바닥 이 눈에 들어왔다.

'저게 보석인가?'

바닥에 박혀 있는 커다란 보석.

주황빛을 흩뿌리고 있어서 못 볼 수가 없었다.

보석 주위로는 커다란 소용돌이가 휘몰아치고 있다.

[시련의 탑 - 2층]

[퀘스트 : 바다의 보석 - 가넷] 제한 시간 동안 마나 소용돌이 안

에서 버텨라.

소용돌이에 휘말리거나 흐름에 저 항하지 못하고 튕겨 나가면 실패한 다.

[시간 - 00:10:00]

"저 소용돌이 안에서 버티고 있으

면 되는 겁니까?:

"그렇다네."

콰콰콰콰-!

바닷물을 빨아들이면서 맹렬하게 회전하는 소용돌이.

아까 마주했던 해류벽과 비교해도 절대 꿀리지 않는 기세다.

소용돌이 안에는 여우 귀를 단 수 인이 물살에 떠밀리지 않게 버티는 중이었다.

"이미 시련을 시작한 자가 있구먼. 잠시 기다리세."

시간이 지날수록, 소용돌이가 더욱 거세졌다.

"끼아아아아!"

소용돌이의 흐름을 버텨내던 여우

귀 수인이 결국 바깥으로 튕겨 났 다.

"안타깝구먼. 1분만 더 버티면 되 었을 텐데."

"그래도 죽을 일은 없겠네요."

1층의 서브 퀘스트.

펠 비스트는 실패 = 죽음이었다.

반면 2층의 시련은 실패해도 얼마 든지 재도전을 할 수 있는 구조였 다.

"이 시련은 그렇지. 2층의 모든 시 련이 이런 식이지는 않다네."

보석마다 시련의 난이도가 다른 건

가.

"어떤가. 쉽지 않아 보이지?"

"뭐, 그렇네요."

"저기에서 버티려면 특수한 장비가 있어야...

"장비는 무슨. 들어갑니다."

언제 시련 전용 장비를 맞추나.

그게 아니어도.

마나 소용돌이에서 버티는 건 자신 이 있었다.

"이보게! 그건 너무 무모해!!"

나는 제라드의 말을 무시하고 주황

빛 보석이 있는 땅에 섰다.

[가넷의 시련을 시작합니다.] 폭풍전야.

소용돌이가 허접한지, 내가 허접한 지 결과가 말해줄 것이다.

46 화

시련 장소에 발을 디딘 순간.

휘이잉!

물에 깃든 마나가 한쪽 방향으로 회전하기 시작했다.

바다의 흐름이 뒤틀린다.

소용돌이의 전조다.

'잠깐만. 굳이 기다릴 필요는 없잖 아?'

두 번째 해역의 시험은 보석 초롱 아귀 때처럼 제한이 따로 없었다.

10분을 버텨내는 것.

수단은 상관없다.

그렇다면.

'소용돌이를 부순다.'

[다크 스타 - 창]

양손으로 온통 검은색으로 된 기다

란 창대를 잡았다.

내 주위로 회전을 시작한 마나.

마나 소용돌이의 흐름이 손에 잡힐 듯 선명하게 느껴진다.

[악가창법을 사용합니다.]

[혼돈기 5.6을 소모합니다.]

파파팟!

빛살같이 쏘아진 창.

악가창법의 묘리를 담은 찌르기가 물을 헤집었다.

나는 멈추지 않고 창을 휘두르면서 악가창법의 다음 초식으로 이어갔 다.

팔과 다리를 움직일 때마다 기포가 보글거렸다.

'다음은 여기다.'

팟! 파팟!

창이 쉴 새 없이 움직인다.

타인이 볼 때는 아무 의미도 없어 보이는 행동.

나한테는 달랐다.

'잘라낸다.'

창끝이 물을 가를 때마다 마나 소

용돌이의 흐름이 뚝뚝 끊겨 나갔다.

1분, 그리고 2분.

시간이 지나도 마나 소용돌이가 생

성되지 않았다.

"이게 무슨... 지금쯤이면 소용돌

이가 거세게 일어나야 하는데?!"

제라드의 목소리가 귓가를 스쳤다.

창에 실린 혼돈기.

기(氣)를 형상화할 만큼 강하지는

않다.

하지만 마나 소용돌이의 흐름을 파

훼하기에는 충분했다.

소용돌이는 끊임없이 생성과 소멸

을 반복했다.

소리 없는 적과 싸우기를 5분째.

콰콰콰!

전례 없는 커다란 마나의 격류가 내 주위를 휘감기 시작했다.

물살이 마나 격류에 휘말리면서 여 태 한 번도 보지 못했던 커다란 소 용돌이를 만들어내기 시작했다.

'이건 버텨낼 수 없어.'

나는 창을 거뒀다.

악가창법으로는 부족했다.

소용돌이에 휘말린 몸이 지면에서 떨어졌다.

물에 실린 힘은 강대했다.

보석 초롱아귀를 잡은 뒤에 마주했 던 해류벽처럼.

무슨 수를 써도 넘을 수 없는 커 다란 벽처럼 느껴졌다.

'이게 전력이라는 건가.'

이전보다 수십 배 이상 거세진 마 나의 흐름.

그렇기에.

볼 수 없었던 빈틈이 드러났다.

나는 소용돌이의 중심, 조금 전까 지 발을 딛고 있던 바닥을 바라봤 다.

'그곳이었구나.'

마나 소용돌이의 중심.

일거에 기운을 폭발시키면서 소용 돌이의 핵이 모습을 드러냈다.

인간의 몸으로 치면 사혈.

찌르면 반드시 죽는 혈 자리다.

'알아도 찌르기는 어렵겠지.'

소용돌이에 밀려난 몸뚱이.

와류에 저항할 틈새도 없이 빠르게 밀려났다.

눈 깜짝할 사이에 해저 바닥에서 10미터 이상 위로 치솟았다.

오른손을 골반 왼쪽에 갖다 대었 다.

흑색 칼집이 허리춤에 나타났다.

'저곳을 노린다.'

[칠성마검 - 1초식을 사용합니 다.]

[혼돈기 280을 소모합니다.]

칠흑.

저 하늘의 별마저 떨어트리는 칠성 마검의 1초식, 낙일검이 펼쳐졌다.

커다란 검기가 소용돌이의 흐름을 일거에 잘라냈다.

물과 마나.

생명이 없는 무생물이라도 '죽이 는' 검이다.

소용돌이가 주춤했을 때.

바닥을 향해 전력으로 돌진했다.

[칠성마검 - 2초식을 사용합니 다.]

[혼돈기 280을 소모합니다.]

두 번째 초식.

하늘에서 떨어지는 별, 유성검.

첫 번째 검으로 베어버린 공간을 그대로 내려와서 해저 바닥을 찍어 눌렀다.

콰아아앙!

커다란 폭음이 났다.

검을 휘두른 게 아니라 포탄이 박 힌 것 같은 충격이다.

중압의 묘리를 실어낸 이 초식.

그건 '벤다.'라는 말보다는 누른다 는 단어가 더 어울렸다.

이 초식을 땅에 내리꽂자, 마나 소

용돌이가 더 이상 일어나지 않았다.

휘오오오-

역류하는 마나 소용돌이.

정방향으로 회전했던 소용돌이가 반대로 돌면서 내 주위에 있는 것들 을 모두 밀어냈다.

바닥에 침전된 흙이 마나 역류에 휘말려서 바다로 솟구쳤다.

대량의 흙먼지가 일어나서 시야를 마구 어지럽힌다.

"미, 미친! 무슨 일이 일어난 거 야!"

"소용돌이가 사방으로 퍼지고 있다

고!"

시련에 참여하려던 대기자들도 마 나가 역류하면서 일어난 폭풍에 휘 말렸다.

"이게 무-슨- 일- 이

그중에는 제라드도 껴있었다.

[시련의 탑 - 2층]

[퀘스트 : 바다의 보석 - 가넷의 시련을 통과했습니다.]

[업적 보상으로 2,000pt가 주어집 니다.]

[공기 팩에 10시간이 추가됩니다.]

보석 초롱아귀한테서 루비를 낚아 챘을 때와 같은 메시지였다.

하지만.

시스템의 알람은 그걸로 끝나지 않 았다.

[시간 - 00:4:31]

[가넷의 시련을 초과 달성했습니 다. 누구도 해내지 못한 놀라운 업 적입니다.]

[당신의 이름과 업적이 탑의 역사 에 기록됩니다.]

[업적 보상으로 나침반에 심연의 진주가 맺힙니다.]

[심연의 진주가 이미 존재합니다. 진주의 크기가 성장합니다.]

'초과 달성이라고?'

이번 시련은 마나 소용돌이에서 버 티는 것.

나는 버티는 것에 만족하지 않고 소용돌이 자체를 잘라내 버렸다.

'퀘스트가 제시하는 방법으로만 클 리어할 필요는 없다는 것인가.'

쉽게 생각할 수 없는 발상의 전환.

덕분에 탑의 숨겨진 요소를 하나 발견할 수 있었다.

물론.

나처럼 소용돌이를 '잘라낸다'는 건 절대로 쉽지 않다.

사방이 물인 해저.

몸을 가누는 것만 해도 어려운 장 소다.

마나 소용돌이에 휘말리기까지 하 면 중심도 잡기 힘들 것이다.

'방법을 알려줘도 힘들 거다.'

처음에 마나의 흐름을 끊어내야 하 고 힘을 전면 개방했을 때 드러나는

짧은 틈을 노려서 잘라내야 한다.

차라리 사막에서 바늘을 찾고 말 지.

나, 전민철이라서 가능한 거다.

'탑. 정말 끝이 없군.'

시련의 탑.

올라가면 올라갈수록 숨겨진 요소 가 나오면서 나를 즐겁게 해줬다.

米 米 米

나는 곧장 세 번째 해역의 시련에

도전했다.

세 번째 시련은 샛노란 빛을 발하 는 보석, 오팔의 시험이었다.

[바다의 보석 - 오팔]

거대 메탈 샤크를 쓰러트려라.

15m 크기의 메탈 샤크.

해역에 출몰하는 메탈 샤크의 세 배 이상 되는 크기다.

전신을 철갑으로 덧댄 상어 괴물.

커다란 입을 벌리니, 촘촘하게 박

혀 있는 이빨 수백 개가 존재감을 드러냈다.

"저기에 물리면 치명상이라네!''

제라드가 충고했다.

음... 그런 건 굳이 말 안 해줘 도 알 것 같은데요.

치명상이 아니라 시체도 못 찾을 것 같다.

나는 처음부터 전력을 다했다.

칠성마검 일 초식으로 뱃가죽에 커 다란 상처를 만들고, 그 안에 지옥 의 겁화를 쑤셔 넣었다.

'대형 괴물한테는 이만한 게 없지.'

제대로 된 칠성마검을 펼쳤다면.

아무리 큰 괴물이라고 해도 일격에 잘라낼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무공의 주체인 내 몸뚱이는 아직 연단이 덜 되어서 상승 무공의 묘리를 온전히 실어내지 못했다.

지옥의 겁화는 그런 거대 괴물한테 상성이 좋았다.

화르륵!

해저에서도 꺼지지 않는 지옥의 불 길.

검붉은 화염은 거대 메탈 샤크의 안을 파먹었다.

'차라리 이런 시험이 쉽지.'

나는 씩 웃었다.

역시 머리를 쓰는 것보다는 몸으로 부딪치는 게 편했다.

"Kuooooo

거대 메탈 샤크는 발버둥을 치다가 쓰러졌다.

"다음 시련이 있는 장소로 안내해 주시죠."

"자네. 몸은 괜찮은가?"

" 멀쩡한데요."

"허허. 안 지치냐는 말일세."

글쎄.

지친다는 느낌은 못 받았다.

물속을 뛰어다니고 괴물을 사냥한 다?

전생 때는 이보다도 더한 환경에서 백일 동안도 쉬지 않고 싸웠었다.

현생의 몸뚱이와 그때를 비교하는 건 무리가 있지만.

심상 세계에서 끊임없이 솟아나는 혼돈기 덕분에 전혀 지치지 않았다.

네 번째 시련 장소는 해저 화산이 었다.

부글부글 끓고 있는 용암.

검은색 연기가 물을 비집고 위로 올라갔다.

"여기서부터는 쉽지 않을 걸세."

제라드가 경고했다.

갈라진 바닥.

구멍이나 틈 사이로 시뻘건 마그마 가 솟아올랐다가 들어가기를 반복했 다.

[바다의 보석 - 에메랄드]

도보로 화산 지대를 가로질러라.

"이게 제일 어려운 시련입니까?"

"아니. 남은 시련들 중에서는 그나 마 쉽다고 알려져 있지."

"다행이네요."

"뭐가 말인가?"

"시시하면 보상도 적어지잖아요."

나는 전혀 걱정하지 않았다.

탑의 시련.

난이도가 높을수록 보상도 높다.

반복적으로 시련을 수행하면서 느 낀 점이다.

마나의 소용돌이를 버텨내고 얻은

보상.

소용돌이 자체를 파훼했을 때 얻은 보상이 훨씬 컸다.

'고난이도일수록 나한테는 더 좋 지.'

2층, [심연의 바다]는 객관적으로 볼 때 난이도가 흉악했다.

바닷속에서 이루어지는 시련.

어인이나 인어, 도마뱀 인간 같은 일부 종족을 제외하면 운신조차 불 편한 곳이다.

특히 지구에서 넘어온 도전자들, 일명 비 랭커들은 심연의 바다 시련 을 치러내기 힘들 것이다.

오죽하면 체류 중인 도전자들이 심 해라는 이름을 붙였을까.

"근데 제라드 씨는 왜 안내를 계속 해주는 겁니까?"

"3년 동안 자네 같은 사람은 처음 보거든."

"칭찬이죠?"

"아니. 불안해서 따라다니는 걸세."

"거참. 좀 계십쇼. 금방 다녀옵니 다."

제라드는 못마땅한 기색으로 코털 을 만지작거렸다.

"사람이 긴장감 하나 없기는. 죽지

나 말게."

나는 해저 화산 근처에 발을 디뎠 다.

목표는 화산 지대 끝.

해류벽이 주위를 감싸고 있어서 화 산 지대를 반드시 관통해야 한다.

약속을 지키는 건 쉬웠다.

화산 지대.

위험천만한 곳이다.

용암은 지맥을 타고 흐르다가 제멋 대로 폭발을 일으켰다.

눈에 보이지 않는 곳에서 일어나는 폭발 작용.

운이 없으면 용암을 뒤집어쓴다.

도전자 여러 명이 용암 폭발에 휘 말려서 뼈 하나 건지지 못하고 죽어 나갔다.

'그건 일반적인 경우지.'

보이지 않는다고 해서.

성천조계공으로 극대화된 내 감각 을 피해 가지는 못했다.

눈으로 보는 것보다.

잘 벼려진 감각을 믿고 화산 지대 를 가로질렀다.

화산 지대 끝에 있는 에메랄드를 집자, 바로 출발 지점으로 이동했다.

"축하하네. 이제 다음 계층으로 넘 어갈 수 있겠구먼."

"제라드 씨. 무슨 말입니까?"

나는 고개를 저었다.

"이왕 시작한 김에 모두 모아봐야 죠."

두 번째 시련.

심연의 바다에 잠든 일곱 보석.

나는 모든 시련을 통과하고 보석을 모을 생각이었다.

'그래야 보상도 더 크겠지.'

업적 시스템.

남들이 거의 하지 않은 위대한 일 을 해내면 추가 보상이 주어진다.

0층의 시련 때가 그랬고.

마나 소용돌이를 파훼했을 때도 마 찬가지 였다.

'일곱 보석을 다 모으고 3층으로 넘어가는 도전자는 많지 않아.'

일곱 보석 수집.

탑에서 업적으로 인정하기는 충분 하지 않을까.

"...좋네. 안내해주지."

제라드의 표정에서 피곤한 기색이 감돌았다.

"왜 그렇게 피곤해 보이십니까?"

"누구 때문이겠나. 내 앞에 있는 동양인 때문이지!"

"그건 인종차별 발언이라고요."

"알 바 아니네. 당최 이런 괴물이 어디서 튀어나온 건지."

투덜거리는 제라드.

본심이 아니라는 건 입가에 감도는 웃음을 봐도 알 수 있었다.

다섯 번째 시련 때는 사파이어.

여섯 번째 시련에서는 남색을 띤 보석, 라피스 라줄리를 얻었다.

심연의 바다에 있는 시련들을 파죽

지세로 통과했다.

'이제 하나만 더 구하면 된다.'

일곱 번째 시련.

보랏빛을 발산하는 보석, 아메지스 트만 남았다.

47 화

도시, '심해'를 기준으로 북쪽.

일곱 번째 시련 장소는 심연의 바 다 최북단에 위치한 해역이다.

"아래로 이어지는군요."

물의 흐름이 급격히 아래를 향했 다.

청소기가 강력한 기압으로 먼지를 빨아들이듯.

몸을 휘감고 있는 바닷물이 무거워 진 느낌이다.

"여기를 뭐라고 부르는지 아는가?"

"전 오늘 여기에 처음 왔습니다 만."

"미안하군. 여섯 시련을 한 번에 통과한 사람은 처음이라, 잊고 있었 네."

거참.

미안하게 됐수다.

"통칭 죽음의 해역이라고 부른다

네."

"이름은 쓸데없이 요란한데."

"도전했다가 살아 돌아온 사람이 거의 없지."

"아예 없는 건 아니잖아요?"

"그래. 있기는 하지. 탑에서는 칠황 이라고 불리는 존재들이라더군."

황제에게 붙는 칭호인 황(皇).

꽤 대단한 자들인 모양이다.

'탑에만 거주하고 있는 강자들인 가.'

전생 때는 들어본 적이 없는 이야 기다.

흐음.

오른손으로 턱을 만지작거렸다.

들어갈지를 고민하는 건 아니다.

'보상이 엄청나겠는걸.'

2층 해역의 시련.

여태까지 감당 못 할 만한 건 하 나도 없었다.

칠황이라는 자들이 시련을 이겨냈 다면.

나도 할 수 있다.

'전투 능력은 가파르게 오르고 있 다.'

성천조계공과 성스러운 불꽃.

둘을 동시에 응용해서 신체 능력을 극대화시키면 B급 헌터를 넘어설 수 있다.

나에게는 무공도 있었다.

지금이라면.

과거 무승부를 기록했던 A급 헌 터, 정성희와 정면으로 싸워도 지지 않을 자신이 생겼다.

'그리고... 탑의 시련은 단순히 무력을 시험하지 않아.'

마나 소용돌이의 시련.

그리고 화산 지대를 통과하는 시련

이 그랬다.

마나의 흐름을 읽어내는 감각.

그 '감'만 있으면 힘이 약해도 얼 마든지 시련을 통과할 수 있다.

[공기 지속시간 - 101:45:01]

공기 팩 시간은 여유로웠다.

시련을 연달아 빠르게 클리어했더 니, 공기 팩 포상이 엄청 쏟아졌다.

2층을 나서기 전에 다 쓸 수 있을 지나 모르겠네.

"나중에 뵙죠."

"무운을 빌겠네."

손을 휘휘 흔들고는 '죽음의 해역' 을 향했다.

[시련의 탑 - 2층]

[퀘스트 : 바다의 보석 - 아메지 스트]

바닥이 보이지 않는 심해.

바다 깊숙한 곳의 수압과 응축된 마나의 압박을 버텨내라.

* 목표

해저 바닥에 도착.

[수압 Lv 10에 노출되었습니다.]

[제약이 강화됩니다.]

[마나 밀도가 높아집니다』

[상태 이상 - 마비에 노출되었습 니다.]

순간 비명이 튀어나오려는 것을 참 아냈다.

엄청난 압력이 몸을 짓눌렀다.

나는 그 흐름에 저항하지 않았다.

'시련을 통과하려면 바닥에 가야 한다.'

어깨와 발을 잡고 우악스럽게 끌어 당기는 느낌이다.

미증유의 힘에 몸을 맡기고 해역 아래로 빨려 들어갔다.

[해저 600m .]

[해저 800m....]

[해저 1,000m 구간에 진입했습니 다.]

바닷물의 색이 점점 어두워진다. 물 위에서 비추던 태양 빛.

절대 꺾이지 않고 앞만 향해 가는 빛조차도.

바다 안쪽까지는 닿지 않았다.

[수압 Lv 10 -> 13]

[마나 밀도 Lv 8 -> 10]

'압력이 점점 거세진다.' 전신을 짓누르는 압박감.

잠깐이라도 긴장을 풀면 온몸이 으

스러질 것만 같다.

'마나 밀도가 장난 아니잖아.'

바닷물에 섞인 마나.

자연을 구성하는 모든 무생물에는 마나가 깃든다.

하지만.

죽음의 해역에 있는 마나 양은 자 연스러움과 거리가 멀었다.

'아. 무 대륙에서 비슷한 물이 있 었다.'

천중수 (千重水).

무겁다고 해서 붙은 이름이다.

천중수는 닿는 것을 모두 빨아들여 서 짓눌러버렸다.

그렇기에.

어떤 물고기나 풀포기 하나 살 수 가 없었다.

천중수에 빠지면 나올 수 없다.

유형의 물체든 보이지 않는 무형의 기(氣)든 따지지 않고 모두 빨아들 이기 때문이다.

'천중수에서 빠져나오려면 그 압력 을 이겨내야 하지.'

갑자기 천중수가 떠오른 건 왜일 까.

나는 [죽음의 해역]의 물이 천중수 와 닮았다고 생각했다.

'일단 버텨본다.'

혼돈기를 순환시키면서 몸 바깥에 있는 외부의 마나와 공명시켰다.

파지직! 파직!

혼돈기와 바다에 깃든 마나가 부딪 치면서 푸른 스파크를 튀겼다.

빛 하나 없는 심해에서 강렬한 빛 이 일어났다.

마나와 혼돈기가 충돌할 때마다 피 부가 화끈거렸다.

[외부의 압력에 저항합니다.

[혼돈기가 52 소모됩니다.]

[혼돈기가 33 소모....]

심해의 압박을 정면으로 반발하니 그만큼 소진되는 양과 속도가 엄청 나게 빨랐다.

순식간에 보유 혼돈기 중 1/10이 증발해버렸다.

[1,000m -> 2,000m .]

점점 더 거세어지는 수압.

마나의 밀도도 커졌다.

해저 바닥은 보일 기미가 전혀 없 었다.

문득 다른 생각이 들었다.

'아냐. 이 물은 천중수랑 달라.'

천중수는 '물' 자체가 무겁다.

모든 것을 빨아들이는 물.

이 해역의 바닷물은 천중수와 달랐 다.

고밀도의 마나.

그리고 중력.

두 가지가 합쳐지면서 육신을 계속 짓눌렀다.

'천중수는 기를 품고 있지 않지만, 이 바다는 마나가 충만해.'

고밀도의 마나와 몸을 동기화시킨 다면.

수압 정도는 혼돈기를 응용해서 어 떻게든 버텨낼 수 있었다.

나는 침을 삼켰다.

'외부의 마나와 동기화를 한다.'

파직! 파지직!

첫 시도는 실패였다.

혼돈기와 외부 마나를 맞추려 하자

강렬하게 반발하며 압력에 저항했 다.

며칠은 굶은 호랑이가 먹이를 발견 하고 날뛰는 것 같이 강렬한 기세였 다.

'혼돈기를 완전히 통제한다고 생각 했었는데.'

쳇.

혀를 찼다.

수압과 고밀도의 마나가 몸을 짓누 르는 상황.

패도적인 기운의 혼돈기가 그 압력 에 반응해서 자꾸만 통제를 벗어나 려 했다.

나는 성천조계공의 구결을 중얼거 렸다.

발상의 전환.

소용돌이를 없애버렸듯.

생각의 방향을 뒤집어야 이 시련을 통과할 수 있다.

성난 황소처럼 전신을 누비던 혼돈 기.

움직임이 점점 차분해졌다.

반면 몸이 받는 압력은 훨씬 더 강해졌다.

우드득- 우득!

살이 짓눌리고 뼈가 압력을 버텨내

느라 비명을 내질렀다.

'좀 더 버틸 수 있어.'

팔 하나, 다리 하나.

내주마.

혼돈기를 완벽하게 길들여서 외부 의 기운과 동조화시킬 수만 있다면!

고통 속에서도 정신은 한없이 맑아 졌다.

성천조계공의 구결을 끊임없이 읊 기를 얼마나 했을까.

화아아악!

심상 세계의 중심.

태양이 환한 빛을 내뿜었다.

세계석의 기운이다.

강렬한 태양 빛은 거칠게 날뛰던 혼돈기를 휘감았다.

'안정되기 시작했다.'

혼돈기의 성질이 바뀐 것은 아니 다.

여전히 패도적이고, 강렬했다.

하지만 그 패도적인 기운 가운데에 산들바람 같은 부드러움이 뒤섞였 다.

'지금이라면 가능하다!'

나는 혼돈기를 외부의 마나와 공명

시켰다.

파직, 파지직....

충돌이 잦아든다.

바닷물에 깃든 초고밀도의 마나가 피부 바깥으로 흘러나온 혼돈기와 뒤섞였다.

맑은 물에 잉크를 풀어내듯.

내 혼돈기는 바다의 마나와 동조해 서 주위를 검게 물들였다.

'더 이상 마나의 압력이 느껴지지 않는다!'

몸을 누르는 압력이 훨씬 약해졌 다.

수압은 여전했지만.

혼돈기와 공명한 고밀도의 마나로 몸을 감싸는 것으로도 충분히 버틸 만했다.

'혼돈기를 이런 식으로도 응용할 수 있다니.'

전생의 나도 이런 식의 운용 방법 은 알지 못했다.

대신 암흑 마나를 넓게 전개해서 주위의 마나를 지배하고 마음대로 사용했다.

사용 방법은 비슷했지만.

원리는 전혀 달랐다.

동조화와 강제 지배.

동조화로 끌어온 마나는 힘에 의한 지배보다 더 효율이 좋았다.

[해저 10,000m 구간에 진입했습니 다.]

[수압 Lv 50에 노출되었습니다.]

몸이 더 이상 아래로 내려가지 않 았다.

해저 10,000미터.

드디어 바닥에 도달했다.

* * *

죽음의 해역.

바닥은 고요했다.

발로 지면을 비벼봤다.

침전되어 있던 진흙 일부가 위로 슬쩍 올라오더니 금세 가라앉았다.

'뭐가 있나?'

안력을 강화시키고 주위를 둘러봤 다.

길게 늘어진 기다란 산.

그것 말고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 다.

[시련의 탑 - 2층]

[퀘스트 : 바다의 보석 - 아메지

스트의 시련을 통과했습니다.]

[업적 보상으로 50,000pt가 주어집

니다.]

[공기 팩에 200시간이 추가됩니

다.]

[보상으로 나침반에 심연의 진주가

맺힙니다.]

[심연의 진주가 이미 존재합니다.

진주의 크기가 성장합니다.]

이게 끝이라고?

가장 악랄하다고 알려진 시련.

그 끝은 생각보다 허무했다.

'아무것도 없는 건 좀 그렇잖아?'

여기까지 오는 과정은 쉽지 않았 다.

수압과 마나의 이중 압력.

천중수를 떠올리고 발버둥을 쳤다 가 깨달음을 얻고 혼돈기를 응용했 다.

만약 새로운 응용 방법을 깨닫지 못했더라면.

상당히 위험했겠지.

'그래도 좀... 너무 살풍경한데.'

미간이 절로 찌푸려졌다.

그때.

아공간 주머니가 들썩였다.

우우웅-

여섯 보석이 주머니 바깥으로 튀어 나왔다.

원을 이루면서 회전하는 보석들.

일곱 번째 보석이 침전된 진흙 사

이를 뚫고 불쑥 올라왔다.

[가장 빠른 시간으로 일곱 시련을 모두 통과했습니다!]

[누구도 해내지 못한 업적을 기록 했습니다.]

[당신의 이름과 업적이 탑의 역사 에 기록됩니다.]

[업적 보상으로 500,000pt가 주어 집니다.]

[업적 보상으로 레인보우 링이 주 어집니다』

화아아악!

각 해역을 돌면서 모았던 일곱 보 석.

각 보석이 품고 있는 본연의 빛을 흩뿌렸다.

'이건...

일곱 보석의 빛은 한데 엮이면서 아름다운 무지개 고리를 만들었다.

무지개 띠로 만들어진 고리.

색이 점점 식어 들더니 백색 반지 로 형태가 굳어졌다.

일곱 보석은 크기를 줄여서 반지 곳곳에 박혔다.

2층 시련의 최종 보상.

일곱 개의 보석의 힘을 한데 묶어 서 만든 반지였다.

[레인보우 링]

등급 : 전설[L] / 종류 : 반지

내구도 : 777/777

* 모든 능력치 20% 증폭

*???(조건 불충분으로 미개방)

*???(조건 불충분으로 미개방)

*[무지개의 축복] 스킬 사용 가능

무지개의 축복

분류 : 마법

등급 : A+

제한 : 레인보우 링 내장 스킬.

모든 삿된 기운을 제거하고 원기를 회복시켜준다.

24시간마다 한 번 사용할 수 있다.

나는 할 말을 잃었다.

미쳤다.

1층 서브 퀘스트의 보상, 심장석하 고는 비교하는 게 미안할 정도로 뛰

어난 성능이다.

'희귀 등급 반지 다섯 개랑 얘랑 동급이잖아.'

내 손에 껴있는 반지는 희귀 등급 인 [불칸의 서약].

근력을 20% 늘려주었다.

레인보우 링은 비율만 놓고 보면 불칸의 서약 5개를 낀 것과 동일한 스탯을 늘려줬다.

'내장 스킬도 엄청나다.'

무지개의 축복.

디버프 해제와 상처 치유, 그리고 기력 회복.

만능에 가까운 회복 마법이다.

'나한테 쓸 일은 없겠지만.'

성화의 축복과 비교하면 약간 하위 호환 느낌이 났다.

하지만 사용 즉시 상처를 치유할 수 있다는 것과 상대에게도 쓸 수 있다는 차별성이 있었다.

왼손으로 레인보우 링을 만지작거 렸다.

금속 특유의 차가운 느낌.

그 한기에, 지금 이 순간이 현실이 라는 것을 자각했다.

'바로 3층으로 안 가기를 잘했어.'

일곱 시련을 모두 치른 보람이 있 었다.

-바다의 시련을 모두 통과한 자는 오래간만이군.

그때.

산이 있는 방향에서 커다란 소리가 났다.

목소리가 얼마나 컸는지, 해저 바 닥을 쩌렁쩌렁하게 울렸다.

본능적으로 다크 스타를 검으로 변 형 시켰다.

'누구지? 여긴 아무도 없었는데.'

주위를 둘러봤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성천조계공의 감각으로 적의 위치 를 파악하기는 어려웠다.

초고밀도의 마나.

주위의 마력의 파동을 읽어내는 게 전부였다.

-이곳이다. 어린 미물이여.

목소리가 들리는 곳.

산을 샅샅이 뒤져봤지만 목소리의 주인을 찾을 수 없었다.

'설마. 저 산이...

내 생각을 긍정하듯.

구구구궁-!

산이라고 생각했던 것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48 화

지면이 요동친다.

심해 바닥에 가라앉은 침전물들이 위로 솟구쳤다.

누군가의 공격?

'그런 게 아니야.'

꿀꺽.

나는 침을 삼켰다.

땅을 뒤흔드는 커다란 충격.

그건 산이라고 생각했던 '무언가' 가 움직인 여파였다.

잠자고 있던 '괴물'은 오래간만에 눈을 떴다.

위아래로 밀려나는 눈꺼풀.

지름만 수십 미터에 달하는 샛노란 눈동자가 나타났다.

해저 바닥을 가로지르는 기다란 산 맥.

그 정체는 커다란 '뱀'이었다.

『미물이여. 필멸자의 몸으로 용케

시련을 통과하였구나.』

뱀이 입을 살짝 벌리면서 쉿쉿거렸 다.

입술 사이를 비집고 튀어나오는 혀. 한 번 들락날락할 때마다 물이 밀려나면서 해류를 만들어냈다.

'더럽게 크네.'

탑의 시련에서 처음으로 만난 괴 물

어럽쇼?

난 괴물의 정체를 알 것 같다.

"요르문간드."

혼잣말하듯 작게 중얼거렸다.

『필멸자여. 어떻게 내 이름을 알 고 있는 건가?』

뱀은 부정하지 않았다.

세계뱀 요르문간드.

한 차원을 집어삼킨 뱀이다.

먼 옛날, 판데모니엄의 72좌 중 한 자리를 차지했던 전직 악마 군주이 기도 했고.

어느 날 72좌를 박차고 판데모니 엄에서 사라진 뒤에는 누구도 본 적 이 없다고 한다.

'나야 직접 만나본 적은 없지만.'

요르문간드가 악마 군주로 군림하

던 것은 아주 오래전이다.

판데모니엄의 기나긴 역사 중, 한 페이지에 기록으로만 남아있는 일이 다.

나야 전직 차원장이라 기억하고 있 는 거지.

요르문간드의 동공이 나를 뚫어지 게 쳐다봤다.

육신 너머.

속을 들여다보는 눈빛이다.

『기이한 현상이로군. 분명 필멸자 의 몸뚱이인데 그 안에 깃든 것은 악마의 영혼이라.』

"사정이 있어서."

나는 자조 어린 웃음을 지었다.

"당신은 왜 여기에 있는 거지?"

『...와의 맹약 때문이다.』

말 앞쪽이 뭉개져서 들렸다.

[이름]을 어그러트리는 무형의 힘. 언어까지도 구속하는 강력한 제약이 걸린 것 같다.

'물어봐도 답을 듣긴 어렵겠어.'

신화시대의 괴물.

이제는 판데모니엄에서도 거의 잊 힌 '전직 악마 군주'에게 더 흥미가 가지 않았다.

중요한 건.

왜 저 거대한 괴물이 지금 깨어났 냐는 거지.

『내가 맺은 언약은 단순히 이곳에 머무는 것이니, 걱정하는 일이 벌어 지지는 않을 것이다.』

휴.

저 무식한 놈하고 안 싸워도 돼서 다행이다.

얼마나 버틸 수 있냐고?

버티는 게 문제가 아니다.

저 커다란 몸뚱이에 스치기만 해도 죽는다.

'체급도 차이가 적당히 나야 덤비 지.'

안도의 한숨을 쉴 때.

『나 때는 말이야. 적이 있으면 세 든지 약하든지 상관 안 하고 입부터 벌렸는데.』

『요즘 후배들은 근성이 없어요. 근성이.』

묘하게 기분이 더럽네?

전생 때였으면 때릴 곳이 많다고 한판 벌였을 텐데!

'됐다. 이미 지난 과거를 생각해서

뭐하냐.'

내가 저 요르문간드의 혼쭐을 내줄 만큼 빨리 강해지든 해야지.

괜히 서러운 마음에 재차 다짐했 다.

저 뱀 대가리가 헛소리 더 하기 전에 화제를 돌려야겠다.

"맹약 내용은 뭐지?"

『말해줄 수 없는 것이 유감이 다.』

"나도 한때 악마 군주였는데. 알려 주지 그러냐."

『그럴 수 없음은 네가 더 잘 알

터.J

쳇.

혀를 찼다.

전직 악마 군주라면 맹약에 허점 하나는 만들어 뒀을 텐데.

요르문간드 녀석, 딱 봐도 귀찮아 보이는 태도다.

『대신 불쌍한 후배를 위해 선물을 주도록 하지.』

검은 무언가가 머리 위로 떨어졌 다.

팔을 뻗어서 낚아챘다.

" 가죽?"

『내 비늘과 피부로 만든 망토다. 각인을 하면 완성되지.』

"선배님! 선배님의 따스한 사랑을 잊지 않겠습니다!"

90도로 허리를 숙이면서 인사했다.

신화시대 괴물의 피부와 비늘.

희귀 광물보다 더 높은 가치를 지 닌 재료다.

와. 이 선배님.

통이 엄청 크시네!

역시 같은 판데모니엄 출신이라고, 후배 사랑이 나라 사랑이지.

『나에게 허락된 시간도 여기까지

인 것 같군.』

"그것도 맹약과 관련된 건가."

『그렇...지.』

커다란 눈꺼풀이 샛노란 눈동자를 덮었다.

늘어지면서 잠긴 목소리.

곧 잠들 것만 같다.

"선배님. 갑자기 눈을 감으면 어떻 게 해?"

『맹... 약... 수면....』

쿵-

요르문간드는 말을 하다 말고 해저

바닥에 머리를 박았다.

그 충격으로 지축이 다시 한번 흔 들리고, 바다가 마구 흔들렸다.

"와. 요르문간드 선배님이 해저를 뒤집어놓으셨다."

말을 건네도 돌아오는 대답이 없 다.

요르문간드 녀석.

정말로 잠든 것 같다.

'제 할 말만 하고 자네.'

어떤 맹약을 맺었는지.

맹약의 주체는 누구인지.

물어보고 싶은 게 많았다.

'당사자가 자고 있는데 어떻게 알 아보나.'

나는 고개를 좌우로 저었다.

고민해서 해결될 게 아니면 생각 안 하는 게 낫지.

그보다 2층의 시련을 모두 통과하 면서 얻게 된 보상이 중요했다.

-레인보우 링.

-세계뱀 망토.(미완성)

세계뱀 망토의 성능은 미지수.

각인을 새겼을 때 진정한 모습을 알 수 있으리라.

나는 망토를 쓰다듬었다.

'지구에서 재정비를 해야겠어.'

망토 각인.

시련 중에는 할 수 없는 작업이다.

다크 스타 2차 해방에 필요한 재 료도 수급해야 한다.

'마르탄한테 부탁했던 작업도 어떻 게 진행되고 있는지 확인해야지.'

나만의 수련장.

지구는 마나 밀도가 낮아서 수련을 해도 효과가 더디다.

수련을 하려고 매번 게이트를 들어 갈 수도 없는 법.

탑의 마나 밀도는 높은 편이지만, 늘 위험이 도사려서 집중하기가 어 렵 다.

'잠깐만.'

문득, 좋은 생각이 떠올랐다.

나는 주위를 둘러봤다.

요르문간드를 제외하면 숨 쉬는 생 물체 하나 없는 곳.

이곳은....

죽음의 해역 바닥이다.

[수압 Lv 50]

집중하지 않으면 손 하나 까딱하기 어려운 압력.

그리고 초고밀도의 마나 밀도.

'게이트보다 수십 배는 좋은 환경 이다.'

이곳에서 수련을 하면 단련과 무공 의 성취를 급격하게 올릴 수 있을 것이다.

왜 그 생각을 바로 떠올리지 못했 을까!

죽음의 해역은 최고의 수련 장소였 다.

'남은 공기 팩은 300시간.'

설마.

이러라고 공기 팩 시간을 보상으로

몰아준 건 아니겠지?

한정된 수련 기간.

그 기간 동안 최대한 몸을 담금질 해야 한다.

꽈아악-

나는 손에 힘을 줬다.

* * *

수련을 시작하기 전.

먼저 아이템을 모두 해제했다.

[탄로스] 갑옷을 벗을 때에는 수압

이 육신을 한층 더 강하게 짓눌렀 다.

[불칸의 서약] 반지와 [실프의 눈 물] 귀걸이를 뺐을 때는 강한 힘에 휘청거렸다.

성스러운 불꽃도 해제했다.

심해 10,000m.

엄청난 중력, 그리고 수압이 모든 것을 짓누르는 죽음의 바다.

아이템을 빼니 숨을 쉬는 것도 힘 들었다.

"으아아아아!"

자리에 서 있는 것만으로도 힘이

들다니.

비명을 지르면서 힘을 짜냈다.

금방이라도 수압에 짓눌릴 것 같지 만.

혼돈기가 순환하면서 뼈와 근육, 그리고 피부를 보호해줬다.

지릿, 지릿.

초고밀도의 마나가 혼돈기의 흐름 에 반응해서 육체에 자극을 주었다.

[성천조계공의 효과로 신체 능력이 향상됩니다.]

[근력이 0.2 증가합니다.]

[민첩이 0.1 증가합니다.]

[맷집이 0.2....]

버티는 것만으로도 신체가 단련되 었다.

몸을 짓누르는 엄청난 압력.

숨만 쉬고 있어도 온몸으로 스쿼트 를 하고 있는 효과였다.

'아이템을 벗으니 더 효과가 좋잖 아.'

숨이 턱턱 막히는 압박감.

고통스럽지만 웃음이 지어졌다.

일정 시간마다 귓가에 감도는 시스 템의 음성.

가만히 서서 수압에 버티기만 해도 강해지는 게 느껴졌다.

얼마쯤 수압에 적응을 했던가.

스텟 상승 알람 주기가 점점 길어 졌다.

'다음 단계로 넘어가야겠어.'

오른발을 앞으로 내디뎠다.

그저 걸은 것뿐인데.

몸이 휘청거렸다.

이를 악물고 왼발을 뻗었다.

반복적으로 움직이는 양발. 심해 바닥에 발자국이 하나둘 새겨졌다.

한 100미터 정도를 걸었나.

폐부가 타버릴 것처럼 뜨거웠다.

쿵쿵쿵쿵!

심장은 수축과 이완을 반복하면서 신선한 피를 전신으로 회전시켰다.

[근력이 0.1 상승했습니다.]

[운류보의 성취도가 0.3% 상승했 습니다.]

'그래. 이거지!'

일정하게 찍힌 보폭.

운류보의 심득이 담긴 걸음이다.

지구에서는 한 시간 이상 경신법에 집중해야 얻을 수 있는 성취였다.

'도대체 효율이 어느 정도야?!'

10배? 20배?

짐작도 가지 않았다.

나는 휴식과 경신법 수련을 반복했 다.

처음에는 느린 걸음으로.

몸이 경신법의 심득에 적응하면서

속도를 올렸다.

발자국이 지면에 하나둘 새겨진다.

해저 바닥.

오랜 세월 동안 시간이 죽은 채로 있었던 공간에 활기(?)가 감돌았다.

米 * *

한참 동안 경신법을 응용하면서 바 닥을 뛰었다.

처음에는 걷는 게 고작이었지만.

신체와 내력의 움직임이 일체화를

이루면서 심해의 압박감을 조금씩 이겨냈다.

'다음은 권법이다.'

낭아칠성 권.

처음으로 익힌 무공이다.

다크 스타를 사용한 탓에 실전에서 는 펼칠 상황이 나오지 않았지만.

그래서인지 동작을 취하는 게 영 어색했다.

부웅! 붕!

물살을 가르는 주먹.

한 번 주먹을 뻗을 때마다 허리를 틀고 보법을 밟았다.

'모든 무공의 힘은 하체에서 나온 다.'

경신법으로 심해의 압박에 적응한 것도 하체의 중요성 때문이다.

몸을 지탱해주는 하체.

다리와 발을 어떻게 움직이느냐에 따라 안정적으로 힘을 낼 수 있다.

한순간이라도 마음을 놓으면 수압 에 짓눌릴 것 같은 압박감.

주먹을 내지르고 발을 휘두를 때마 다 극도의 집중력을 발휘했다.

우득- 우드득!

근육이 파열과 재생을 반복한다.

전신 세맥에 스며든 혼돈기가 몸을 무공에 맞게 '개변'했다.

운류보.

낭아칠성 권.

악가창법.

태산부법.

화화단도술.

'기초가 될 무공들부터 몸에 익힌 다.'

상승 무공을 익히려면 초석을 잘 세워야 한다.

위의 무공들도 무 대륙에서 명성을 떨친 세가나 무인들의 심득을 담아

만들어진 것이다.

하지만.

오호단문도 같이 무 대륙의 패권을 다투었던 명문 세가의 성명절기에 비하면 부족했다.

내가 앞으로 익힐 무공은 각 명가 나 문파의 성명절기.

그리고 마교의 비전이다.

'무리하게 상승 무공을 먼저 익히 면 몸이 버틸 수 없어.'

칠성마검을 익혔을 때가 떠올랐다.

정성희와의 대전.

커다란 벽을 넘기 위해 혼의 기억

을 몸에 덧씌워서 상승 무공을 강제 로 사용했다.

그 고통은 지금 생각해도 너무 끔 찍 했다.

고통도 고통이지만, 혼의 정체성마 저 무너질 수 있는 위험한 대법이었 다.

'당시에는 눈이 뒤집혀서 그랬지 만.'

쩝.

괜히 입맛을 다셨다.

그런 미친 짓을 안 하려면 기초를 다져놔야 했다.

'이 무공들이라면 충분해.'

B급 무공은 모자란 무공이 아니었 다.

한 지역을 지배하거나 공포에 떨게 했던 패자들의 무공.

악가창법만 해도 산동악가의 대표 적인 창술로 위세가 대단했다.

천중수보다도 무거운 죽음의 해역.

몸을 끊임없이 자극하면서 성장을 촉진하는 초고밀도의 마나.

나는 휴식과 수련, 그리고 식사를 반복하며 적막한 바다에 한 줄기 바 람을 일으켰다.

49 화

낮과 밤의 구분이 없는 심해.

나는 공기 팩의 시간으로 하루를 가늠하며 무공 수련에 매진했다.

-수련 1일 차.

익힌 무공들의 형(形)을 다시 다듬

었다.

무공을 사용하면서 생긴 안 좋은 습관이나 힘이 과하게 들어간 부분 을 하나하나 점검했다.

-수련 2일 차.

창을 내지르는데 끝이 미세하게 흔 들렸다.

원인은 하체였다.

살짝 더 나아간 발.

허벅지에 필요 이상으로 힘을 주면 서 자세가 틀어진 것이다.

다른 무공들도 불필요한 습관들이

하나둘 나타났다.

-수련 3일 차.

무공을 펼치면서 생긴 안 좋은 습 관.

혹은 불필요한 동작을 하나씩 뜯어 고치기 시작했다.

습관이 한 번 잘못 자리 잡게 되 면 고치기가 매우 어렵다.

현생의 나는 무공을 익힌 지 얼마 되지 않은 몸.

자세 교정에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을 것이다.

-수련 5일 차.

실전에서 생긴 잘못 잡힌 습관을 바로잡았다.

언제 이런 습관들이 많이 생긴 건 지. 신경 쓸 것이 한두 개가 아니 네.

습관을 교정하면서 무공의 기초를 다졌으니 연계를 연습해봐야겠다.

수련 1주일이 되는 날.

나는 운류보를 응용하면서 지면을 내달렸다.

발자국의 흔적이 얕다.

구름을 거니는 것처럼 발걸음이 가 벼웠다.

운류보로 가속을 유지하고 다크 스 타를 창으로 변형, 악가창법의 첫 초식을 펼쳤다.

부우웅!

창에 실린 기운이 회오리를 치며 묵직한 물살을 찢어냈다.

창에 이어 도끼.

태산부법의 묘리가 담긴 도끼가 산 을 무너트릴 기세로 지면을 내려쳤 다.

침전된 흙이 충격을 받아 땅 위로 솟구쳤다.

다크 스타가 단도로 모습을 바꾸었 다.

단도의 칼날이 번쩍이면서 위로 솟 구친 홁덩이를 베어냈다.

이어지는 섀도우 복싱.

낭아칠성권을 응용한 주먹과 발차 기가 물을 휘저었다.

경신법 - 창 - 도끼 - 단도 - 박투로 끊임없이 이어지는 무공.

해당 무공에 대한 이해도와 숙련도 가 높아야 가능한 일이었다.

후우-.

나는 숨을 크게 내쉬었다.

'이제야 몸에 좀 익숙해졌어.' 만족스러운 마음에 미소가 절로 지

어졌다.

[태산부법 - 2성 一 4성]

[운류보 - 2성 一 5성]

[화화단도술 - 1성 一 4성]

[낭아칠성권 - 1성 一 3성]

[악가창법 - 2성 一 5성]

지난 일주일 동안 수련에 매진한 성과다.

'여긴 정말 최고의 수련 장소야!'

나는 전생의 기억을 가지고 있다.

무공의 무학과 묘리.

그리고 깨달음.

수련이라는 것은 이미 간 길을 다 시 한번 걷는 행위와도 같다.

죽음의 해역.

이곳에 온 건 기연을 얻은 것과 같았다.

무공의 성취가 가파르게 상승, 혼 돈기의 응용과 동작이 전보다 매끄

러 워 졌다.

'상승 무공을 익힐 준비가 끝났다.'

주춧돌은 단단하게 다져놨다.

이제는 그 위에 기둥을 세우고 건 물을 지을 때.

그 기둥이란, 상승 무학이다.

'처음으로 익힐 건 당연히 검이지.'

만병지 왕.

무 대륙에서 검을 지칭하는 말.

베기와 찌르기가 가능하여 능숙하 게 다룰 수만 있다면 모든 무기를 이길 수 있다는 뜻이다.

나는 이미 익힐 무공을 정해뒀다.

[창궁무애검법]

무 대륙에서 제일의 검술 가문, 남 궁세가를 대표하는 무공이다.

'빠르면서도 강한 검. 내 성향과 맞아.'

검마의 성명절기, 칠성마검.

위력은 절륜했지만 안정적인 것과 는 거리가 멀었다.

현재의 나는 총 7초식 중 3초식을 전개하기도 어렵다.

검법 자체가 힘을 폭발적으로 사용 하는 데 최적화되어있다.

단련이 덜 된 몸뚱이로 펼치기에는 어려운 기예다.

창궁무애검법은 달랐다.

패도적 이면서도 안정적이다.

'정파 무공의 특징이지.'

그렇기에.

육신의 단련이 덜 된 내가 사용하 기에는 더 잘 맞았다.

나는 다크 스타를 검으로 변형했 다.

흑색으로 된 칼날.

곧게 뻗은 검을 보면서 창궁무애검 법의 초식을 떠올렸다.

'혼돈기를 무공 초식에 맞춰서 움 직여야 해.'

창궁무애검법의 전 초식을 펼쳤다.

한 번, 두 번, 그리고 세 번.

같은 동작을 몇 번이고 반복했다.

심해에서 펼쳐진 검무.

창궁무애검법에 집중해서 검을 휘 두르기를 얼마쯤 지났을까.

[창궁무애검법을 습득했습니다.]

[창궁무애검법]

분류 : 무공

등급 : A

제한 : 마력/혼돈력을 다루는 자

무 대륙에서 검으로 유명한 남궁세 가를 상징하는 검법이다.

경지 : 1성(0%)

창궁무애검법의 형(形)이 몸에 새 겨 졌다.

의식하지 않아도 무공을 자연스럽 게 사용할 수 있을 정도.

몸이 총 36초식에 해당하는 검법 의 요체를 펼치는데 적응한 것이다.

[다크 스타 - 비도]

기다란 장검 대신 짧고 날카로운 단도가 손에 잡혔다.

끝에는 다크 스타로 구현해낸 기다 란 실이 내 손가락과 연결되어 있 다.

'중거리 견제용 무공도 하나 익혀 야지.'

섬전비도술.

무 대륙에서 악명 높은 살수 집단, 흑살문의 비전 무공이다.

비도 끝에 은사를 연결, 내력을 불 어넣어서 자유자재로 응용할 수 있 다.

투척과 회수를 반복.

[섬전비도술을 습득했습니다.]

창궁무애검법과 마찬가지로 금세 익힐 수 있었다.

등급은 마찬가지로 A.

명문 세가의 간판기에 뒤처지지 않 는 살수의 무공이다.

권법과 장법도 하나씩 터득했다.

[파황붕뢰권 - A등급]

사파의 거두, 오적심의 무공.

[대수인 - A등급]

무 대륙 서부 지역에 자리를 잡은 포달랍궁의 절기이다.

'창법과 부법은 충분하다.'

악가창법.

그리고 태산부법.

지금 내 수준에서는 모자람이 없는 무공이다.

경신법도 마찬가지였다.

'전생에 사용했던 경신법하고는 성

격이 안 맞으니깐.'

군림하는 패왕의 발걸음.

그걸 펼치기에는 내력도, 신체 능 력도 부족했다.

지금은 운류보로 만족하는 수밖에.

[공기 지속시간 - 130:23:55]

'5일... 정도인가.'

죽음의 해역을 다시 오는 일은 없 을 것이다.

남은 공기 팩의 지속시간 동안 무

공들의 성취도를 최대한 끌어올려야 한다.

할 수 있다.

나는 전민철이자 투장 데이모스.

과거에 전 우주에서 가장 강력했던 존재였고.

또한 다시 정점에 오를 사람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이렇게 찾아온

기회를 잘 활용해야 한다.'

1분, 1초도 낭비할 수 없다.

나는 이를 악물고 수련에 박차를 가했다.

米 米 米

[공기 지속시간 - 11:23:55]

5일이 더 지났다.

나는 상태창을 켜서 지난 수련의 성과를 확인했다.

[근력 - 40.5 _ 85]

[민첩 - 38.3 _ 75]

[맷집 - 30 - 81]

[체력 - 40.1 _ 83]

모든 스탯이 두 배가량 상승했다.

세계석을 흡수하고 4성에 이른 성 천조계공.

죽음의 해역이라는 극단적인 환경.

두 요소의 시너지 효과는 가히 폭 발적이 었다.

'무공의 성장도 순조로워.'

새롭게 익힌 상승 무공들도 모두 3성까지 숙련도를 올렸다.

다른 도전자들에게는 단순한 시련 이었지만.

나한테는 엄청난 기연이었다.

위를 올려다봤다.

'슬슬 출발하지 않으면 위험하겠 어.'

해저 10,000m.

평지여도 족히 두 시간은 쉬지 않 고 다리를 움직여야 하는 거리다.

[수압 Lv 50]

엄청난 수압과 중력을 버텨내면서 위로 올라가야 한다.

그 과정은 결코 쉽지 않을 것이다.

'제대로 단련이 되겠지?'

흐흐.

입가에 미소가 감돌았다.

이러니까 고통을 즐기는 변태 같잖 아.

나는 벗어뒀던 아이템들을 도로 착 용했다.

[탄로스 상, 하의]

[불칸의 서약 X 2]

[실프의 눈물 x 2]

[레인보우 링]

근력은 60%, 민첩은 67%, 나머지

능력치도 20% 증가했다.

우우웅!

전신을 누비는 혼돈기.

성천조계공의 효과로 40% 상승.

화르륵-

성스러운 불꽃을 몸에 두르면서 50%가 추가 상승했다.

장비 효과와 스킬 중첩.

근력과 민첩은 200대.

나머지 능력치들도 100대 후반에 도달했다.

'이게 내 전력이다.'

크게 심호흡을 한 뒤, 해저 바닥을 있는 힘껏 박찼다.

그와 동시에 발밑에 혼돈기를 집 중, 일순간에 방출했다.

혼돈기 방출로 파생된 에너지가 도 약에 힘을 더했다.

구구궁-

수압과 중력이 몸을 짓누른다.

상당히 힘을 줘서 도약했지만 멀리 가지 못했다.

'여기서 멈추면 안 된다.'

운류보를 극성으로 사용했다.

동시에 발바닥에 혼돈기를 집중, 물속에서 자세가 흐트러지지 않게 붙잡았다.

엄청난 수압.

무수한 손이 다리를 붙잡고 늘어지 는 것 같은 느낌이다.

이겨내지 못하면.

죽음의 해역에서 벗어날 수 없다.

'할 수 있다.'

물을 가르면서 조금씩 위로 나아간 다.

한 발자국씩.

퇴보가 아닌 전진이다.

나는 계속 발을 내디뎠다.

[9,000m - 8,000m .]

위로 올라갈수록 몸을 누르는 압력 이 약해졌다.

움직임에 가속도가 붙었다.

후욱.

턱 밑까지 올라온 호흡을 다스렸 다.

수압이 낮아진 덕에 움직이기가 한 결 수월해졌다.

나는 공기 지속시간을 한 시간쯤 남겨두고 죽음의 해역을 빠져나왔 다.

허억. 헉!

거칠게 숨을 쉬었다.

'진짜 더럽게 힘드네!'

온몸이 뻐근했다.

바닥이 있다면 바로 드러눕고 싶었 다.

한편으로는 해냈다는 성취감이 들 어서 뿌듯했다.

나는 '심연의 바다' 중심에 있는 안전지대를 향했다.

커다란 공기 방울.

그 안에 있는 중소 규모의 도시.

상주인구만 수백에 달하는 곳, 탑 의 시련에 좌절하고 발이 묶인 이들 의 안식처.

심해가 눈에 보였다.

공기 방울 안으로 발을 딛는 순간.

시원한 공기가 뺨을 스쳤다.

'이게 사람 사는 느낌이지.'

후우-

안도의 한숨이 절로 새어 나왔다.

역시 사람은 땅을 밟고 시원한 공 기를 마시면서 살아야 한다.

나는 심해에서 제라드 씨를 찾았 다.

제라드를 찾는 건 쉬웠다.

"제라드 씨? 저쪽 코너로 돌면 여

인숙이 있어. 거기 있을걸."

"너도 제라드 씨의 도움을 받았냐? 하여간, 그 영감 오지랖도 넓어."

"나쁜 사람은 아니니, 흠흠."

지구 출신 헌터 몇 명을 붙잡고 물어보니 금방 알 수 있었다.

오늘은 바다를 안 돌아다닌 건가.

2층을 떠나기 전에 얼굴이라도 보 고 가려고 했는데 다행이었다.

헌터들이 알려준 여인숙으로 가니, 탁자에서 술을 먹고 있는 제라드를 볼 수 있었다.

"자네! 살아서 돌아왔구먼!"

"거. 그런 눈빛으로 보지 마쇼."

"무슨 말인가?"

"꼭 죽은 사람 보는 눈빛이잖아."

"허허. 사실 자네가 살아서 돌아올 지 반신반의했다네."

"근데 대낮부터 술입니까?"

"여기가 언제 낮과 밤을 구분했다 고. 그냥 자네를 기리는 위로주를 먹고 있었지."

"마음대로 죽이지 마쇼."

나는 투덜거리면서 제라드의 잔을 뺏었다.

거품이 살짝 올라온 맥주.

꿀꺽-

한 모금 마시니 갈증이 가셨다.

"난 진짜로 걱정했단 말이다."

"저기요. 아저씨?"

"이, 이렇게 무사히 돌아와서, 다행 이네. 흐끅!"

제라드의 눈가에 습기가 감돌았다.

아니.

중년 아저씨의 눈물이라니.

대낮(?)부터 음주하더니 울기까지 하면 어떻게 합니까?

"무사히 돌아온 사람 앞에서 왜 눈

물을 흘려요."

"크흡.... 다행이네. 정말 다행이 야."

나는 제라드를 겨우 진정시켰다.

걱정해주는 모습을 보니 기분이 나 쁘진 않은데.

그래도 중년 아저씨가 술잔 앞에서 눈물을 흘리는 모습은 미관상 안 좋 았다.

겨우 진정된 제라드는 붉어진 눈 사위로 나를 바라봤다.

"그래.... 그럼 마지막 시련도 통 과했겠군."

"그렇죠."

"모든 시련 통과. 3년 동안 한 번 도 못 본 일이라네."

그렇겠지.

3년이 아니라, 억겁의 세월 동안 죽음의 해역 바닥에 도달해서 무사 히 나간 사람이 얼마 없다고 하던 데.

"이제 위로 올라갈 일만 남았겠 군."

"지구로 돌아갔다가 다시 탑에 오 를 겁니다."

"2층의 시련을 모두 통과한 걸 축

하하네."

제라드는 오른손을 내밀었다.

투박하면서도 세월이 느껴지는 손.

나는 그 손을 마주 잡았다.

"아저씨는 어떻게 할 겁니까?"

"푸흐흐. 나도 다시 도전해야지."

"도전이라면...

"심해에서 벗어나서 탑에 다시 도 전할 거라네."

"괜찮겠습니까?"

"자네를 옆에서 지켜보니, 탑에 처 음 진입했을 때가 생각나더군."

제라드는 후련한 표정으로 창밖을 바라봤다.

심해.

그 너머로 펼쳐진 바다가 보였다.

"죽이 되든 밥이 되든, 이제는 두 려움을 벗어던지고 도전할 거라네."

"...응원하겠습니다."

시련은 혼자서 치러야 한다.

도움을 줄 수는 없다.

나는 그저, 제라드가 시련을 극복 하기를 기원했다.

"다음에는 지구, 아니면 탑 위층에 서 만나자고."

"꼭 그러길 바라죠."

나는 제라드와 짧고도 뜨거운 악수 를 나눴다.

50 화

[원래의 차원으로 돌아왔습니다.]

[탑을 다시 입장하면 3층으로 들어 갑니다.]

하늘을 향해 솟아오른 빌딩들.

여러 차량이 도로를 왕래하고 있

다.

내가 기억하고 있는 서울의 풍경과 똑같았다.

'돌아왔구나.'

등 뒤에는 탑의 문이 있다.

25일 만에 지구로 귀환했다.

기간은 길지 않았지만 탑에서 많은 일을 겪어서 그런지 낯설게 느껴졌 다.

나는 물품 보관소에서 물건을 찾고 마르탄에게 연락했다.

커피를 마시면서 10분 정도 기다 렸을 때.

"민철 헌터니이이임!"

땅딸막한 드워프 아저씨가 손을 흔 들었다.

으음.

남자의 관심은 사양하고 싶은데.

"무사히 나오셨네요."

옆에 있는 엘리를 보니 눈이 정화 되는 것 같다.

"어. 밥 약속도 했는데 무사히 나 와야지."

"제 인사는 왜 안 받아주시고 엘리 한테만...

지부장. 사람들이 쳐다보고 있으

니 일단 자리를 좀 옮기자."

" 예."

나는 마르탄의 볼멘 목소리를 빠르 게 잘라냈다.

성간 연합의 리무진에 탑승했다.

푹신한 감촉에 몸의 피로가 쫙 풀 리는 것 같다.

부르릉-

차량이 앞으로 나아가기 시작했다.

"집으로 모셔다드리겠습니다."

"혹시 수련장 신축은 얼마나 진행 됐어?"

"다 끝났습니다."

잘못 들은 건가?

자신만만한 마르탄의 표정을 보니 맞게 들은 것 같다.

"내가 주문한 지 한 달도 안 됐 어."

"예. 바로 일을 시작했습니다."

"날림 공사는 아니지?"

"설마요. 제가 누굽니까."

"턱에 털 붙이고 다니는 난쟁이 아 저씨."

"...아나. 제가 고향에서는 미남 형입니다."

"난쟁이의 미형에는 관심 없어."

"말 참 돌려서 하시네. 제가 바로 드워프입니다."

마르탄은 자부심을 드러냈다.

드워프.

일족 전원이 타고난 장인인 종족이 다.

뭐.

저 정도까지 말했으면 나름 잘 지 었겠지.

"참. 이번 기회에 이사를 하시는 게 어떻습니까?"

웬 이사."

"생각해보니 민철 헌터가 지금 자 취방에 쭉 계실 필요는 없을 것 같 아서 말입죠."

응?

맞는 말이네.

대학교는 휴학계를 내긴 했지만, 더 다닐 일은 없을 것 같다.

굳이 학교 근처에 방을 잡을 이유 가 없었다.

"그 말도 맞는데. 생각해둔 장소라 도 있어?"

"수련장 옆에 주거공간을 추가하면 되지 않겠습니까."

오.

머리 좋은데!

이 땅딸보 녀석. 보면 볼수록 참 쓸모가 있는 부하... 아니, 협력자 였다.

"좋아. 그렇게 해줘."

"알겠습니다. 추가 주문을 합죠."

"그럼 수련장으로 가줘."

"예. 알겠습니다."

근 한 달 만에 완성이라니.

몸이 달아올랐다.

'최근 성천조계공 수련을 통 못했

지.'

운기행공을 할 때는 외부의 충격에 굉장히 취약해진다.

그래서 안전이 보장된 장소에서 해 야 한다.

나 정도의 실력자라면 운기행공을 하는 중에도 얼마든지 끊어낼 수 있 긴 하지만.

탑은 워낙 변수가 많은 곳이라서 성천조계공에 집중하기가 어려웠다.

'이젠 별의 기운에 구애받지 않아 도 되니까.'

심상 세계에 자리 잡은 커다란 태 양.

세계석의 힘을 녹여내는 것만으로 도 정신에 구축된 소우주를 완성시 켜 나갈 수 있다.

"참. 구하고 싶은 물건이 있다."

"말씀만 하십쇼. 제가 뭐든 다 구 해드리겠습니다."

"미스릴 10kg. 그리고 오르하르콘 5kg."

"잘 못 들었습니다?"

"미스릴 10kg 랑

"아니. 농담 아니었습니까?!"

눈살이 찌푸려졌다.

내가 그런 농담 내뱉는 사람으로

보이나.

언짢은 기색을 읽었는지, 마르탄이 바로 '깨갱'하는 표정을 지으면서 손을 휘저었다.

"둘 다 희귀광물이라서 말입죠. 지 구에서는 나오지도 않고요."

"방법은 없는 거야?"

"제 라인으로 알아봐도 시간이 꽤 걸릴 것 같습니다."

쳇.

다크 스타를 한시라도 빨리 강화하 고 싶은데.

옆에 있던 엘리가 입술을 달싹였

다.

"그러지 말고 경매에 참여해보시는 건 어떨까요?"

"경매?"

"네. 2주 뒤에 성간 연합에서 주최 하는 경매가 곧 열릴 예정이거든 요."

"희귀광물이 나오리라는 보장은 없 잖아?"

"호호, 여기요."

엘리는 태블릿을 내밀었다.

경매 리스트였다.

화면을 쓱 내리다 보니 미스릴괴와

오리하르콘괴가 떡하니 있었다.

마르탄이 하얗게 질린 표정을 지었 다.

"야, 야. 엘리야. 외부인한테 경매 리스트 유출은 불법이잖아!"

"언제부터 원리 원칙 따지셨다고 그래요. 그리고 민철 헌터가 남인가 요'?"

엘리야.

그건 좀 멀리 간 것 같다.

나는 바로 그녀의 말 일부를 정정 했다.

"그건 아니야. 남이지."

지적할 건 지적해야지.

엘리가 준 정보는 큰 도움이 되었 다.

"과연, 내 파트너들은 능력이 좋 아."

"호호, 당연하죠."

"크흠.... 제가 좀 유능하죠."

마르탄과 엘리가 내 말에 호응하면 서 웃었다.

차이가 있다면.

마르탄은 한 대 얻어맞은 것처럼 웃음 속에 울상이 섞여 있었고.

엘리의 웃음은 해맑았다는 점이다.

나는 경매 리스트가 적힌 태블릿을 느긋하게 훑었다.

그러던 중.

눈을 사로잡는 경매 물품이 있었 다.

'이 물건은...?!'

정체를 알 수 없는 수정.

사진으로 볼 때는 아름답지도 않 고, 그 내력도 확인할 수 없어서 어 디에 쓰는지 알 수가 없었다.

하지만.

나는 저 수정이 뭔지 안다.

심지어 똑같은 걸 가지고 있다.

'이게 경매에도 나왔다고?!'

품속에 손을 넣었다.

아공간 주머니에서 불쑥 튀어나온 수정.

놀랍게도.

손에 잡힌 열쇠 파편과 사진 속의 수정은 생김새가 똑같았다.

탑의 히든 피스.

드랑카의 열쇠 파편이었다.

'경매로 내놓은 자는 사용 방법을 모르는 건가.'

안다면 저걸 경매로 내놓진 않겠 지.

탑의 숨겨진 장소로 입장할 수 있 는 열쇠. 어떤 보상이 숨겨져 있을 지 모른다.

"이봐. 마르탄 지부장."

"예, 예. 말씀하시죠."

"혹시 이게 뭔지 알아볼 수 있겠 어?"

나는 열쇠 파편을 내밀었다.

"그거 아직도 가지고 계셨어요?"

엘리의 반응이 마르탄보다 빨랐다.

"기억하고 있었나."

"물론이죠. 천호동 게이트에서 얻 은 거잖아요."

이래서 눈치 빠른 녀석은....

난 아무렇지 않은 척, 마르탄한테 열쇠 파편을 전달했다.

"어디 봅시다."

마르탄은 손을 비비면서 수정을 살 펴봤다.

볼록렌즈로 수정 표면을 살펴보고 마나를 흘려보내서 반응을 확인하기 도 했다.

5분 정도 열쇠 파편을 살펴보고는.

"이거 뭡니까? 뭔지 통 알 수가 없는데."

고개를 내저었다.

나는 애써 웃음을 감췄다.

'마이스터 급 장인도 정체를 간파 할 수 없다는 건가.'

마르탄이 좀 우습게 보여도 드워프 장인이다.

그것도 '마이스터' 호칭을 얻은 뛰 어난 실력자.

지구에서는 마르탄 정도의 장인이 몇 없다.

그런 장인조차도 수정체를 분석하 지 못했다면.

'수정의 진정한 가치를 아는 사람 은 나밖에 없는 거지.'

드랑카의 열쇠 파편.

생각지도 못한 장소에서 탑의 숨겨 진 장소를 공략할 '열쇠'를 발견했 다.

'경매를 참여할 이유가 하나 더 생 겼다.'

다크 스타 2차 해방 재료.

드랑카의 열쇠 파편.

얻을 것이 아주 많다.

벌써부터 경매가 기다려졌다.

끼이익!

리무진이 정차했다.

"도착했습니다."

기사님이 문을 열어줬다.

이렇게 대접해주니 VIP 느낌이 제 대로 나는구먼.

나는 막 완공된 건물 안으로 들어 갔다.

"와...

감탄사가 입술을 비집고 튀어나왔 다.

머릿속으로 상상했던 수련장을 그 대로 옮겨놓은 것 같은 모습이다.

학교 강당 크기의 수련장.

피로를 풀어주는 찜질방.

쾌적한 샤워실.

어지간한 헬스장보다도 더 잘 꾸며 져 있다.

'주문한 대로 마법진도 완벽하게 작용하고 있다.'

세 겹으로 된 보호 마법진.

원기를 보충해주는 회복 마법진.

그 외에도 수련을 도와줄 여러 마 법과 기자재가 배치되어 있다.

"헤헤. 어떻습니까?"

"최고다. 내가 원하는 모습 그대로 야."

"제 실력이 이 정도입니다."

"건축 디자인은 다른 사람이 짰다 고 하지 않았나?"

"크흠. 그건...

"농담이다. 용케도 한 달 만에 내 가 주문한 걸 완벽하게 만들었구 나."

자재 구입과 건축 장소 섭외.

지면 다지기와 뼈대를 구축하고 건 물을 올리면서 마법진도 새겨야 한

다.

마르탄이 드워프라고는 해도 상당 히 빠듯한 일정이다.

'녀석 나름대로 나한테 신경을 쓴 다는 거겠지.'

역시.

마르탄과 엘리.

두 사람을 파트너로 삼은 건 올바 른 선택이었다.

"참. 여긴 저희 지부와 멀지 않습 니다요. 찾아오시려면 금방 오실 수 있을 겁니다."

"일부러 이 자리를 고른 건가."

마르탄은 그저 웃었다.

충분한 대답이었다.

'그 와중에 잔꾀를 부렸네.'

나는 더 묻지 않았다.

사소한 걸 따지기에는 결과물이 만 족스러웠다.

아.

수련 마렵다.

번듯한 수련장을 보니 성천조계공 을 수련하고픈 욕구가 마구 샘솟았 다.

"지부장. 경매 일정 알려줘."

"엘리를 통해 전달하겠습니다."

"땡큐."

"게이트라도 섭외할까요?"

나는 고개를 저었다.

"경매 전까지는 게이트에 안 들어 갈 거야."

"예. 알겠습니다."

"다음에 올 때 집들이 선물 좀 사 오고."

"집으로는 안 가시고요?"

"번듯한 수련장도 만들어줬는데 써 먹어야지."

내 머릿속에는 성천조계공을 수련 할 생각만 들어가 있었다.

운기행공을 하면 피로도 회복된다.

잠을 잘 필요가 없으니 집에 갈 필요가 있나.

마르탄과 엘리를 돌려보내고 수련 장에 홀로 섰다.

'좋아. 시작해볼까.'

파츠츠츳!

혼돈기 일부를 손에 집중시켰다.

검게 물든 손가락.

강당 크기의 수련장 위에 마법진을 새겨 넣었다.

대마력 집속진.

투마의 군주에게만 대대로 내려오 는 전용 마법진이다.

전생을 각성한 첫날.

나는 대마력 집속진을 사용해서 성 천조계공 1성을 완성시킬 수 있었 다.

'효용성은 이미 증명됐다.'

지구는 마나 밀도가 낮다.

수련 효율을 올리기 위해 마법진으 로 마나 밀도를 높일 생각이다.

마법진이 서로 겹칠 걱정은 안 해 도 된다.

건물을 지을 때, 마르탄에게 부탁 해서 대마력 집속진이 겹치지 않을 만큼 간격을 확보해놓았다.

'이번에는 규모를 더 키워야지.'

E급 마나 스톤으로는 5미터가 한 계였다.

지금은 혼돈기를 사용하거나 더 큰 마나 스톤을 배치해서 대마력 집속 진을 운용할 수 있다.

강당 전체를 대상으로 새겨지는 마 법진.

손짓 한 번을 하자, 원 안에 빼곡 한 룬어가 새겨졌다.

각성 직후에는 몇 시간 동안 고생 했었는데.

'꽤 빠르게 성장하고 있잖아.'

입가가 절로 씰룩인다.

성취를 간접적으로 확인하게 되니 만족스러웠다.

곧장 대마력 집속진에 혼돈기를 불 어 넣었다.

우우웅-!

강당에 새겨놓은 마법진이 혼돈기 에 반응했다.

[대마력 집속진이 에너지원을 인식

했습니다.]

[대마력 집속진이 활성화됩니다.]

[마력 증폭률 1,000%]

마력 증폭률이 10배라고?!

'전에는 450%였는데.'

원인을 짐작하는 건 어렵지 않았 다.

마법진의 에너지원.

전에는 마나 스톤을 사용했지만.

이번에는 내 혼돈기를 불어 넣었 다.

혼돈기가 내뿜는 에너지는 마나의 3배 정도.

증폭률이 1,350%가 안 된 것은, 대마력 집속진이 가진 구조상의 한 계 때문이었다.

나는 대마력 집속진의 중심에 앉았 다.

'여기서 성천조계공을 수련한다.'

금세 풍부해진 마나.

심법을 수련하기에 완벽한 조건이 다.

바닥에 앉아서 가부좌를 틀었다.

충만한 마나의 흐름에 몸을 맡기고

눈을 감았다.

'잠깐.'

이내, 나는 눈을 떴다.

공기 속에 감도는 매캐한 향.

베르데를 만났을 때와 같은 냄새였 다.

대마력 집속진이 빨아들인 마나.

그 가운데에는....

판데모니엄의 악마들이 내뿜는 암 흑 마나가 섞여 있었다.

51 화

대마력 집속진에 깃든 혼돈기를 도 로 거뒀다.

우웅-.

마법진의 빛이 금세 사그라졌다.

'수련 좀 하려니깐...

뿌드득.

이가 갈렸다.

판데모니엄의 악마 새끼들.

이번에는 또 무슨 꿍꿍이야?

'사람을 쉬질 못하게 하네.'

검은 세례라는 것도 그렇고. 한국 에 침이라도 발라놨나.

나는 휴대전화를 들었다.

뚜- 뚜-.

-전화 받았습니다.

느끼한 목소리.

한국에서는 '장용수'라는 이름을 쓰고 있는 악마, 베르데였다.

" 나다."

-위대하신....

"위대하고 나발이고. 지금 어디 냐'?"

-길드원들이랑 게이트에 들어가려 고 합니다.

"용산 근처에서 엉뚱한 짓 하는 거 아니지?"

-지금 전남 나주 근처에 있습니다.

나는 이맛살을 찌푸렸다.

'이놈은 아니잖아.'

암흑 마나가 느껴져서 베르데인 줄 알았는데.

그럼 누가 암흑 마나를 사용한 걸 까.

-민철 님. 무슨 일이라도....

"암흑 마나가 감지되었다."

-저는 아닙니다. 죄악의 전당에 대 고 맹세할 수 있습니다!

"안다고. 그렇게 맹세 안 해도 돼."

놈은 나한테 예속된 몸.

물어보는 말에는 거짓으로 답할 수 없었다.

-검은 세례를 받은 악마는 다섯이 니, 저 말고 다른 자 아니겠습니까?

아.

맞네.

왜 이 녀석만 생각하고 있었을까!

"다른 놈은 모른다고 했지?"

-예. 불민하게도 다른 악마들의 동 선까지는 파악하지 못했습니다.

"오냐. 넌 게이트 공략이나 해라."

_ 이프....

뚝 _

대답도 안 듣고 바로 전화를 끊었 다.

뒤에 뭐라고 한 것 같은데, 중요한 건 아니겠지.

'답답하니 내가 나선다.'

팔을 걷어붙이고 자리에서 일어났 다.

성천조계공을 운용.

모든 감각을 극대화했다.

' 저쪽인가.'

수련장을 기준으로 북서쪽.

암흑 마나 특유의 유황 냄새가 코 끝에 감돌았다.

그것도 잠시뿐.

'사라졌어.'

성천조계공의 기감으로도 암흑 마

나의 기운을 잡을 수 없었다.

감지 범위에서 벗어났거나.

혹은 감지하지 못하게 모종의 조치 를 취했거나.

'숨겼을 가능성이 크다.'

암흑 마나의 파동을 느낀 걸 우연 이라고 넘길 수 없었다.

판데모니엄은 한국과 탑, 나아가서 지구를 장악하기 위해 여러 술수를 쓰는 중이다.

'조금 전의 암흑 마나도 뭔가 있 다.'

악마들의 술수는 내가 누구보다도

잘 알았다.

전생에는 그 악마들의 정점인 네 차원장 중 한 명이었다.

그렇기에.

더욱 방치하고 넘어갈 수 없다.

'베르데 녀석이 제일 세다고 했 지?'

[진실의 눈]으로 살폈던 베르데의 스펙을 떠올렸다.

마력은 600대.

나머지 능력치는 300대 정도였다.

'암흑 마나를 쫓다 보면 다른 악마 를 마주칠 가능성도 있다.'

베르데는 여차여차해서 속여 넘겼 지만.

다른 악마들한테도 허장성세가 통 하리라는 법은 없다.

부딪치자마자 전투를 벌인다고 생 각하는 게 현실성 있다.

'정면으로 붙어도 해볼 만하다.'

탑에서 얻은 보상.

그리고 수련.

짧은 기간 동안 가파르게 성장했 다.

베르데보다 조금 약한 수준의 악마 라면 해볼 한 판 벌여볼 만했다.

'붙어보고 안 될 것 같으면 몸을 베!지, 뭐.'

나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마지막으로 암흑 마나가 느껴진 방 향.

북서쪽을 향해 내달렸다.

길게 늘어진 원룸 건물의 지붕 사 이를 건너뛰면서 전진하다 보니, 야 산 하나가 눈에 보였다.

킁킁.

알싸한 유황 냄새가 공기 사이에 섞여 있다.

'찾았다.'

암흑 마나의 진원지는 야산.

숲 사이로 나 있는 산책길에 발을 디뎠다.

쭈뼛-

팔뚝의 솜털이 우수수 섰다.

강렬한 암흑마나.

여태까지는 느낄 수 없었던 강렬한 기운이 야산 전체를 휘감고 있었다.

'이 미친놈들. 서울 한복판에서 무 슨 짓을 벌이고 있던 거야?'

피잉!

바람을 가르는 소리.

당황하지 않고 고개를 아래로 숙였 다.

쩌저적-

등 뒤에 있는 나무가 반으로 쪼개 졌다.

나무를 쪼개버린 것은 전체가 검은 색으로 칠해진 화살이었다.

' 화살?'

나는 다크 스타를 비도로 변형.

[섬전비도술을 사용합니다.]

[혼돈기 35를 소모합니다.]

내력을 실어서 화살이 날아온 방향 을 향해 던졌다.

흑색 섬광이 번쩍였다.

강맹한 기세로 날아간 비도. 하지 만 소리가 하나도 나지 않았다.

푸욱.

살이 찢기고 피가 흘러나오는 섬뜩 한 소리가 나고, 잠시 후에 한 인영 (人影)이 지면에 고꾸라졌다.

나는 사체를 확인했다.

"역시... 화살을 다루더니, 이 녀 석들이었어."

갈색 피부.

청색 눈동자와 기다란 귀, 그리고 전반적으로 마른 체구.

사체의 정체는 다크 엘프였다.

나는 산책로를 따라 암흑 마나의 진원지를 추적했다.

-키키키킥. 못 올라간다.

-내 어둠에 범벅이 되어 죽어라.

그림자가 쭉 늘어나더니 붉은 눈을

가진 괴물로 변했다.

다크 엘프가 다루는 암흑정령이다.

나는 아까 회수했던 비수를 기다란 검으로 변형시켰다.

-크키키. 그런 검으로는 우리를 해 할 수 없어!

아.

당연히 알고 있다.

현재의 다크 스타는 단순히 무기의 형태만 갖추고 있는 꼴이거든.

'무공을 펼칠 수 있게 말이야.'

[창궁무애검법을 사용합니다.]

[혼돈기 56을 소모합니다.]

파츠츠츠!

흑색 검기가 다크 스타를 휘감았 다.

남궁세가의 상징.

모든 것을 무릎 꿇게 하는 패자(W 者)의 검이다.

혼돈기로 빚어낸 검기는 암흑정령 의 몸뚱이를 거침없이 양단했다.

- 키이?!!

한 줄기 괴성을 내지르면서 함께 찢겨나가는 암흑정령.

"쿨럭!"

"크으윽!"

숲 곳곳에서 비명이 새어 나왔다.

암흑정령을 다루던 다크 엘프들이 다.

강제 역소환.

정령의 영체에 타격을 주면서, 혼 의 끈으로 연결된 다크 엘프들도 정 신에 피해를 입은 것이다.

'당분간은 손가락 까닥하기도 어렵 겠지.'

무력화된 다크 엘프 한 마리한테 다크 스타를 겨눴다.

"엘프야. 여기서 뭐 하고 있냐?"

"너네는 인간이 아니니까 묵비권 행사해도 소용 없...

쿠르릉!

먹구름이 머리 위에 나타났다.

구름 사이로 꿈틀거리는 대단위의 암흑 마나.

다크 엘프의 비전 마법, 블랙 썬더 였다.

[성화(聖火)가 전신을 휘감습니다.]

[혼돈력을 제외한 모든 능력치가

50% 상승합니다.]

[치유의 축복이 몸에 깃듭니다.]

즉시 혼돈기 400을 성력으로 치환, 성스러운 불꽃을 몸에 일으켰다.

하얀 불꽃 일부는 검의 형태를 띤

다크 스타를 휘감았다.

하늘을 향해 원을 그리듯 검을 휘 둘렀다.

검 막(劍幕).

검기가 칼이 그려낸 궤적을 따라가

며 얇은 막을 형성했다.

창궁무애검법의 초식을 응용해서 만든 기의 방어막이다.

혼돈기로 일으킨 검막.

그 위로 성스러운 불꽃이 덧씌워진 다.

두 기운은 서로 충돌하지 않고 기 름과 물처럼 층을 이루었다.

콰르릉!

한발 늦게 떨어진 검은 벼락.

성스러운 불꽃을 휘감은 검막과 충 돌했다.

뇌전의 여파로 대기가 비명을 지르

고 수풀이 바짝 말랐다.

하지만 충격의 진원지는 멀쩡했다.

다크 엘프의 비전 마법으로도 내가 일으킨 검막을 뚫어내지는 못했다.

'무공에 성화를 섞어서 쓰는 것도 효율이 좋잖아?'

성스러운 불꽃은 삿된 기운, 즉 암 흑 마나 기반의 공격을 마주했을 때 상성에서 우위를 점했다.

창궁무애검법으로 펼친 검막.

검기를 넓게 전개해서 적의 공격을 받아쳐 내는 상승 경지이다.

검막과 성스러운 불꽃.

둘을 조합하니 너무나도 쉽게 블랙 썬더를 막아냈다.

"어떤 새끼야?"

평범한 다크 엘프는 블랙 썬더를 다룰 수 없다.

눈을 부라리면서 술자를 찾아봤지 만, 야산에 감도는 암흑 마나가 너 무 강해서 놓쳐버리고 말았다.

나는 기진맥진해 있는 다크 엘프를 노려봤다.

"어쩌냐? 너, 같은 동족한테 버림 받은 것 같은데."

"...난 죽어도 상관없다. 위대하신

분을 위해서라면!"

하.

헛웃음이 나왔다.

위대한 분은 무슨, 얼어 죽을 소리 를 하고 있네.

"원하는 대로 해주지."

망설임 없이 검을 휘둘렀다.

촤아악-

붉은 피가 땅을 수놓았다.

다른 다크 엘프들도 마찬가지 반응 이었다.

묻는 말에 대답은 안 하지.

목숨을 도외시하면서 나를 노렸다.

"침입자. 진입 중."

"남쪽에서 접근한다."

다크 엘프들은 정령술과 마법, 검 술, 그리고 궁술을 사용해서 내 앞 을 막아섰다.

처음에는 한둘 정도였지만, 암흑 마나가 움직이는 중심부가 가까워질 수록 다크 엘프의 숫자도 늘어났다.

주변 경비로 돌렸던 인원들이 나를 향해 모여들었다.

다크 엘프들은 까다로운 상대다.

암흑정령과 흑마법.

엘프처럼 궁술에도 능하고 민첩했 다.

특히 숲처럼 엄폐물이 많은 지형에 서는 특히 상대하기가 어렵다.

'그건 일반적인 경우고.'

나는 좀 달랐다.

다크 엘프의 싸움 습관이나 주요 마법, 그리고 정령술에 대해 빠삭하 게 알았다.

기습은 성천조계공으로 예민해진 감각 덕에 통하지 않았다.

아이템과 성스러운 불꽃으로 증폭 된 능력치.

향상된 신체 능력으로 펼치는 상승 무공은 다크 엘프들의 공세를 가볍 게 파훼했다.

다크 엘프의 숫자가 하나둘씩 줄어 들었다.

다수 대 혼자.

주도권을 잡은 것은 나였다.

'모두 모이기 전에 각개격파를 하 면 되지.'

난전에 능한 다크 엘프.

오히려 그들이 자랑하는 난전에서

나한테 압도당하고 있었다.

"너네. 지구는 어떻게 왔어?"

"주둥이에 풀을 붙여놨나. 말을 안 하네."

"위대하신 분을 위하여."

말이 안 통하는 놈들이다.

서걱!

대답을 기대한 것도 아니었다.

놈들의 목을 치는데 망설임은 없었 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