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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꾸르륵...

마지막 괴물이 공기 빠지는 소리를 내면서 쓰러졌다.

나는 이마에 맺힌 땀을 팔등으로

움쳤다.

-레벨이 올랐습니다. 상태 창을 활성화해서 능력치를 올려 주세요.

진입 다섯 시간째.

나는 최소한의 휴식만 가지고 몬스 터를 사냥했다.

덕분에 레벨을 세 개 더 올릴 수 있었다.

혼돈력 : 64 -> 69

혼돈기 : 832 -〉897

다섯 시간 사냥의 성과인지, 괴물 의 씨가 말라 버렸다.

레벨을 올리고 싶어도 사냥할 괴물 이 없었다.

'이제 보스를 공략할 때가 됐나.'

게이트 너머의 이차원.

그곳에는 공간을 유지시켜 주는 '핵'.] 있다.

게이트 공략은 게이트 핵을 파괴해 야 마무리된다.

내부의 괴물들을 아무리 소탕한들,

시간이 지나면 게이트 내부에 차오 른 마력으로 재생성되기 때문이다.

"팀장님. 보스 레이드 갈 건데 상 관없죠?"

"아, 으응. 민철 헌터 뜻대로 하 게."

팀장 아저씨가 놀란 듯 더듬으면서 대꾸했다.

지원 팀 소속 장인이나 짐꾼들도 놀란 기색을 띠었다.

"왜요. 뭔 일 있어요?"

"놀라서 말이야. 일반적으로는 게 이트 탐사를 이틀에서 삼 일 동안 한 뒤에 보스 레이드를 시도해서 말

일세."

"그러는 이유는요?"

"정보가 부족하니까. 목숨을 걸고 싸우는 건데 확실히 하자는 거지. 하지만... 민철 헌터라면 상관없을 것 같군."

뭐야.

별 이유도 아니군.

나는 픽, 웃으면서 앞장섰다.

숲의 가장 안쪽.

끝에 다다르니 오십 미터 넓이의 공터가 나타났다.

보스 몬스터를 마주하는 순간.

" 얼씨구."

비웃음이 입가에서 흘러나왔다.

다듬어지지 않은 나무로 우스꽝스 럽게 만든 의자.

그 위에 위즈덤 몽키보다 세 배 정도 큰 원숭이가 앉아 있었다.

양옆에는 위즈덤 몽키 이십 마리가 나뭇잎을 한데 엮어 만든 부채로 대 장 원숭이에게 부채질을 하는 중이 다.

"저건 에테몽키군. 곤란한 적이 나 타났어."

"에테몽키요?"

"그래. 위즈덤 몽키의 대장으로 주 술을 다룰 줄 아는 녀석이지. 주의 해야 해."

팀장 아저씨가 처음으로 경고를 했 다.

나는 진실의 눈을 사용해서 에테몽 키의 상태 창을 살펴봤다.

'능력치는 별거 없는데. 재밌는 스 킬들을 가지고 있잖아.'

방금 전에 들은 말대로였다.

에테몽키의 특기는 주술.

주력 스킬은 토템, 그리고 강신의 술법이 었다.

토템이 특기라면.

설치할 시간을 안 주면 그만!

"민철 헌터. 에테몽키는 강적이네. 신중하게 상대하지 않으면...

나는 팀장 아저씨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지면을 박찼다.

[운류보를 사용합니다.]

[이동 속도가 50% 증가합니다.]

[1 초당 2의 혼돈기가 소모됩니다.]

"우, 우끼!"

당황해하는 에테몽키의 얼굴이 빠 르게 가까워졌다.

"저건 너무 무모해!"

"에테몽키한테 바로 돌진이라니!"

뒤에서는 지원 팀 인원들이 비명을 질렀다.

"우끼이이!"

쿵.

우스꽝스럽게 생긴 토템이 에테몽 키의 앞에 나타났다.

[마비의 토템 - Lvl의 범위 안에 들어왔습니다.]

[마비의 저주가 몸에 스며듭니다.]

[민첩이 3 감소합니다.]

귀찮은 짓을 하는군.

[다크 스타 - 단검]

나는 다크 스타를 단검으로 변형시 킨 뒤.

[화화단도술 - 투척을 사용합니 다.]

[혼돈기 5가 소모됩니다.]

빠르게 던졌다.

콰직!

토템이 반으로 갈라졌다.

몸을 무겁게 누르던 저주가 곧장 해제되었다.

"우, 우우끼!"

"내가 호구로 보이냐?"

위즈덤 몽키들이 앞을 가로막는다.

멍청한 놈들.

'허약한 놈들이 정면 승부를 건 순

간부터 패배는 정해진 거다.'

[다크 스타 - 마체테]

무공을 쓸 것도 없다.

성천조계공으로 증폭된 신체 능력 이면 충분했다.

마체테가 칼춤을 출 때마다 위즈덤 몽키의 목숨이 사그라졌다.

"우끼. 우끼우끼!"

위즈덤 몽키를 모두 쓰러트릴 때

1=1 •

에테몽키의 몸이 부풀어 올랐다.

우당탕-

앉아 있던 의자가 급격하게 늘어난 무게를 버티지 못하고 산산조각 났 다.

[강신 一 가시멧돼지]

[강신 - 킹 우탄]

오랑우탄처럼 커진 몸뚱이.

강신을 마친 에테몽키의 피부는 은 색으로 물들었다.

거죽 위로 날카로운 가시가 촘촘히 돋아났다.

팀장 아저씨가 망연자실한 목소리

로 중얼거렸다.

"맙소사. 동시에 두 영체 강신이 가능한 에테몽키였을 줄이야."

"팀장님. 저건 혼자 상대할 수 있 는 적이 아닙니다!"

"어서 도와야 해요!"

뭐라고 하는 거야.

'고작 저런 놈 때문에 나를 돕는다 고?'

강신을 마친 에테몽키가 정면으로 달려든다.

멧돼지의 힘을 받았더니 겁도 없어 진 모양이다.

나는 대도를 하늘 위로 치켜세웠 다.

[오호단문도를 사용합니다.]

[혼돈기 150을 소모합니다.]

도를 휘감은 흑색의 기운.

곧장 앞으로 달려드는 에테몽키를 향해 도를 힘껏 휘둘렀다.

대도가 아름다운 궤적을 그렸다.

괴성을 지르던 에테몽키도.

뒤에서 우려 섞인 목소리로 외치던

지원 팀 각성자들도.

내가 휘두른 일격에 찬물을 끼얹은 것처럼 조용해졌다.

15 화

게이트 공략을 마치고 나왔을 때는 이미 달이 하늘 위에 떠오르는 중이 었다.

"전민철 헌터님. 애쓰셨어요."

"지금까지 기다렸던 건가?"

"첫 게이트 공략이잖아요. 당연히

기다려야죠."

내 뒤로 지원 팀 인원들이 하나둘 게이트 밖으로 나왔다.

마지막 인원이 현실로 돌아오는 순 간.

슈아아악!

푸른 타원이 쪼그라들더니 금세 자 취를 감추었다.

"암사동 게이트 공략 완료. 협회에 보고해야겠네요."

"나 때문에 야근하겠네."

"뭘요. 지점장님 뒤치다꺼리하다 보면 야근은 일상인걸요."

엘리는 웃음을 흘렸다.

"참. 다음 공략 일정은 어떻게 되 지?"

"사흘 뒤로 잡았어요."

"내일이 아니라 다행이군. 다른 일 정을 잡아야 할 것 같아서 말이야."

"다른 일정이 없으면 게이트를 바 로 공략할 생각이었어요?"

"당연한 것 아닌가."

엘리가 버럭 소리를 질렀다.

"안 당연하죠! 일반적인 헌터 팀은 사흘에서 나흘 간격을 두고 게이트 를 공략한다고요."

"맞는 말이네. 괴물과 싸우는 건 물적이나 심리적인 피로감을 동반하 는 일이니까."

정영현 팀장이 첨언했다.

나는 고개를 저었다.

"상관없어. 내일모레부터는 하루 1 개씩 잡아 줘."

"음... 알겠어요."

"아. 그리고 내일 장인 한 명 소개 시켜 줄 수 있어?"

"바로 만날 수 있는 건 연합 소속 마이스터뿐이 에요."

"괜찮아. 일단 뭐든 걸쳐 입어야

할 것 같아."

끝이 살짝 찢어진 소매를 펄럭였 다.

'전생의 나를 기준으로 생각하면 안 돼.'

투장 데이모스 시절에는 자잘한 공 격을 전혀 신경 쓰지 않았다.

호신마강.

넘쳐 나는 마력을 강기 형태로 전 신에 둘렀다.

어지간한 공격은 무위로 돌려 버리 는 강력한 방패.

지금 내 수준으로는 택도 없다.

호신마강을 펼칠 수도 없고, 억지 로 흉내를 내도 몇 초 안 가서 혼 돈기를 모두 소모해 버릴 게 분명했 다.

'장비가 필요해.'

현생의 나는 아직 약하다.

투장 때의 전투 방식을 고수해서는 안 된다.

"마이스터 미팅은 잡히는 대로 연 락드릴게요. 오래 걸리진 않을 거예 요."

확신으로 가득 찬 엘리의 대답.

"기대하지."

나는 웃으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 米 *

이튿날. 나는 성간 연합 빌딩으로 갔다.

[전민철 헌터님. 환영합니다.]

골렘 녀석들.

이번에는 사람을 잘 알아보는군.

우쭐한 마음에 어깨에 힘이 잔뜩 들어갔다.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땅딸보 녀석이 입구까지 나와서 나 를 맞이했다.

잠깐.

"혹시 마이스터라는 게...

"접니다. 제가 누구라고 생각하십 니까?"

아니.

너 고작 300살밖에 안 먹었잖아?

하마터면 [진실의 눈]으로 본 정보 를 입 밖으로 꺼낼 뻔했다.

드워프 기준으로 300살은 내 나이 와 비슷하다.

마이스터, 장인이라는 호칭을 받기

에는 너무 어린 나이었다.

'영 믿음이 안 가는데.'

나는 시답잖은 눈빛으로 땅딸보 녀 석을 바라봤다.

그런 내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전민철 헌터님. 일단 제 사무실로 모시겠습니다."

우 O "

흐.

어쩌겠나.

나는 땅딸보 녀석의 사무실로 따라 갔다.

"미리 생각해 두신 장비, 혹은 따 로 주문하실 게 있습니까?"

지난밤.

나한테 필요한 장비가 뭔지 고민해 봤다.

'무공을 최대로 발휘하려면 무게가 가벼워야 해.'

무 대륙의 무인들은 갑옷을 거의 입지 않았다.

기를 형상화해서 병장기에 두르면 강철도 쉽게 찢어 낼 수 있기 때문 이다.

무거운 갑주는 움직임을 둔하게 만 들고 내력만 더 소모할 뿐.

싸움에서 큰 도움이 되지는 않았

다.

그래서 무공은 방어구나 방패의 효 용성을 늘리는 것보다 상대의 공격 을 중간에 끊어 내거나 상쇄시키는 방어술이 발달되었다.

"경갑. 움직임에 방해가 안 되게 가벼워야 해."

"무기는 필요 없으십니까?"

"이 녀석이면 충분하지."

나는 손등을 툭툭 건드렸다.

땅딸보 녀석은 턱을 만지작거리면 서 내 전신을 훑었다.

"갑주라... 전민철 헌터님의 능력

치가 어떻게 됩니까?"

내 능력치?

등급을 묻는 건가.

"아. 잠깐만."

난감했다.

상태 창에는 숫자로만 표기되어 있 는데.

-능력치를 지구의 기준에 맞춰 표 기합니다.

* 전민철

근력[D], 민첩[D], 맷집[D], 체력

[D], 혼돈력 [C+]

'이런 것도 해 줄 수 있어?'

-상태 창에 공동 표기도 가능합니 다.

와.

갓태창 찬양해!

나는 상태 창에 변환된 수치를 불 러 줬다.

"마력 수치가 유독 높군요."

"문제 있어?"

"아닙니다. 근접 계열 헌터들은 마 력 수치가 낮은데 의외라서요."

땅딸보 녀석은 홀로그램 하나를 띄 웠다.

흑색으로 된 갑각.

표면은 윤기로 번들거렸다.

"B급 게이트에서 출몰하는 곤충 유형 괴물. 안드레의 껍질입니다. 이 걸로 경갑을 제작하겠습니다."

"벌레의 껍질. 가볍기는 하겠는데 내구성이나 화염 속성에 약하지 않 나?"

"흐흐. 안드레의 껍질은 마력 전도 율이 높습니다. 사용자의 마력 수치 에 비례해서 방어력이 올라가는 술 식을 새겨 넣으면 효과가 좋습니 다."

오.

굉장히 전문가처럼 보이잖아?

처음에 품었던 미덥잖은 느낌이 한 풀 꺾였다.

내 눈빛이 바뀐 걸 느꼈는지, 땅딸 보 녀석의 얼굴에 자부심이 스쳐 지 나갔다.

"원래는 맷집 수치가 낮은 마법 계 열 헌터들이 선호하는 재료입니다

만. 전민철 헌터님께 잘 어울릴 것 같습니다."

"방어력 증가 말고 다른 능력치 증 폭도 가능한가?"

"물론입니다."

방어력 말고 다른 능력치도 늘릴 수 있다니.

선택지가 넓어졌다.

"그럼 근력을 증폭시켜 줘."

"알겠습니다. 참, 주로 사용하시는 무기의 종류도 알려 주실 수 있습니 까?"

주로 사용하는 무기라.

'그럼 역시 검이지.'

무 대륙에서는 이런 말이 있다.

검은 만병지왕이다.

그 말에 100% 동의하는 건 아니 지만.

무 대륙의 무공 중에 높은 상승 무공은 검이 많았다.

'지금은 검으로 펼칠 만한 무공이 많지 않아서 문제지.'

검은 다루기 힘든 병기다.

나는 검으로 펼치는 무공을 일부러 익히지 않았다.

현재 등록 가능한 스킬은 최대 10

개.

그 개수는 시스템의 한계보다는 내 육신이 지닌 잠재 능력의 최대치라 고 보는 게 맞았다.

"알겠습니다. 그에 맞춰서 갑주를 제작해야겠군요."

"갑주 제작에 필요한 예산은 얼마 지'?"

땅딸보 녀석은 눈을 감았다.

머릿속으로 예산을 짜고 있는 듯, 간헐적으로 눈살을 찌푸렸다.

"가공비 빼고 순수 재료값으로 20 억 정도 들 것 같습니다."

"좋아. 이걸로 지불할게."

금색 카드.

엘리한테서 받은 물건이다.

"그럴 순 없지요. 저희 연합에서는 민철 헌터님을 적극적으로 지원한다 고 말씀드렸지 않습니까."

"아이템 지원은 계약 내용에 없었 어."

"저의 성의라고 생각해 주십시오."

나는 고개를 저었다.

"난 연합과 공정한 거래 관계를 유 지하고 싶다."

"공정한 거래...

"당신. 마르탄 지점장을 동등한 거 래의 대상으로 본다는 뜻이야."

땅딸보 녀석.

아니, 마르탄과 엘리의 수완은 나 를 몇 번이고 놀라게 했다.

'파트너로 나쁘지 않아.'

마르탄은 감격한 듯 초롱초롱한 눈 빛으로 나를 바라봤다.

야.

중년 아재의 눈빛 공격은 반칙 아 니냐.

"더 필요한 건 있으십니까?"

"아니. 생각해 둔 건 없는데."

"반지나 팔찌, 귀고리, 아니면 목걸 이를 착용하셔도 좋을 것 같습니 다."

"솔직히 말하지. 그쪽은 잘 몰라."

"예산 상한을 정해 주시면 그 안으 로 세팅하겠습니다."

"40 억."

나는 이번 계약으로 받은 금액 대 부분을 쏟아부었다.

"알겠습니다. 아티팩트 제작이 끝 나는 대로 연락을 드리겠습니다."

"기대하지."

"흐흐흐. 실망하시는 일은 없을 겁

니다."

마르탄은 양손을 비볐다.

米 * 米

부우우웅-

버스의 엔진음이 귀를 울린다.

집으로 가는 길.

30분 정도 쭉 가면 자취방 근처 정류장이 나온다.

'오늘은 일정도 안 잡았으니 심법 이나 수련해야겠다.'

육체를 한계까지 내몰고 성천조계 공을 운용해서 그릇을 성장시키는 방식.

근간이 되는 성천조계공의 성취가 높을수록 신체 단련의 효과도 극대 화된다.

라이선스 시험을 보기 전, 며칠 훈 련했다고 폭발적으로 신체 능력이 향상된 것도 성천조계공의 기운을 받아들인 덕분이다.

'이제는 그런 폭발적인 성장을 바 랄 수 없어.'

무 대륙의 무인들이 심법 단련에 많은 시간을 들이는 이유였다.

빠르게 지나가는 풍경을 바라보면 서 수련 생각을 떠올리던 중.

콰아아앙!

요란한 폭발음이 터졌다.

끼이이 익一

불쾌한 마찰음과 함께 버스의 속도 가 급격하게 줄어들었다.

"꺅!"

"으아아아!"

갑작스러운 급제동에 승객들이 비 명을 내질렀다.

'서울 한복판에 고라니라도 뛰쳐나 왔나?'

궁금증은 금세 해결됐다.

"저, 저. 저기 게이트가 나타났다!" 한 사내가 오른손으로 창문 밖을

가리켰다.

손가락이 향하는 곳.

공간의 균열이 도로 한복판에 나타

났다.

"게이트 색이 이상한데."

나는 게이트를 뚫어져라 쳐다봤다.

검은색 게이트.

어제 들어갔던 것과는 전혀 다른

색이다.

"게이트에서 몬스터가 나오고 있어 요!"

"모두 도망쳐!"

버스 승객들은 패닉 상태에 빠졌 다.

아니.

이 일대에 있는 시민들 모두 공포 에 질린 채 게이트에서 멀어지려고 발버둥을 쳤다.

'저건... 코볼트군.'

개 머리에 이족 보행을 하는 괴물.

신장은 평균 1미터 20센티 정도로 작지만, 다양한 도구를 다뤄서 신체

적인 약점을 메우는 괴물이다.

평균 랭크는 E급.

가시멧돼지나 위즈덤 몽키보다 한 수 아래였다.

특이한 점이 있다면.

푸른색으로 알려진 것과는 달리 지 금 게이트에서 넘어온 코볼트들은 털이 검정색으로 물들어 있었다.

"헌터! 헌터 없나요?!"

"협회에서는 언제 출동하는 거야!"

괴물이 튀어나오자 비명을 지르는 사람들.

이럴 때는 기대에 부응해 주는 게

도리지.

나는 버스 창문을 밀고, 그 틈새로 빠져나왔다.

[다크 스타 - 창]

창대를 붙잡고는, 앞으로 내달렸다.

"꺄아아악!"

다리를 접질렸는지 바닥에 넘어진 시민.

코볼트가 침을 흘리면서 다가갔다.

나는 혼돈기를 활성화시키는 동시 에 경신법을 운용해서 속도를 높였 다.

"건방진 개새끼가. 어디서 침을 흘

려?"

"크르릉! 먹이. 반항한다!"

코볼트는 왼손에 들고 있던 석궁 레버를 당겼다.

피잉!

당겨졌던 줄이 풀리면서 반탄력으 로 화살을 세게 밀어냈다.

눈으로 보고 피하기에는 불가능한 속도.

'쏘는 각도랑 타이밍만 알면 되지.'

팽그르르!

코볼트가 석궁을 쏘기 직전.

창을 앞으로 내밀고 빠르게 회전시 켰다.

팅, 화살이 창대에 막혀서 튕겨 났 다.

"크릉?"

"넌 무공을 쓰는 것도 아깝다."

쭉 뻗은 창이 코볼트의 목울대를 관통했다.

비명도 지르지 못하고 즉사.

E급 몬스터인 코볼트는 성천조계 공으로 증폭된 공격을 버텨 내지 못 했다.

- 경험치 2.5%를 획득했습니다.

- 쓰러트린 상대의 체내에서 혼돈 의 기운을 감지했습니다.

-성천조계공을 운용해서 혼돈의 기운을 흡수할 수 있습니다.

응?

시스템 님. 지금 뭐라고 하신 건가 요?

16 화

혼돈의 기운.

내가 다루는 혼돈기와 비슷한 건 가.

그걸 왜 코볼트가 가지고 있는 거 지?

의문을 품기에는 상황이 안 좋았

다.

크르릉, 크릉!

검은 게이트가 코볼트를 쉬지 않고 토해냈다.

늘어나는 코볼트의 숫자.

'일단 시스템이 시키는 대로 해보 자.'

손을 뻗어 코볼트의 사체와 접촉한 상태로 성천조계공을 운용했다.

M I W

정말이었다.

코볼트의 내부에는 '혼돈기'와 동 일한 기운이 깃들어있었다.

놈의 사체에 일렁이던 기운은 더 강한 혼돈기를 느끼자 물이 아래로 흘러내리듯, 접촉면을 타고 스며들 었다.

[혼돈의 기운을 흡수했습니다.]

[성천조계공의 성취도가 0.5% 상 승했습니다.]

[혼돈력이 0.1 늘어났습니다.]

'미친. 진짜로 늘었어.'

시스템의 음성이 아니더라도.

심상세계로 스며든 혼돈기가 선명

하게 느껴졌다.

암사동 게이트의 몬스터들을 쓰러 트렸을 때는 없었던 일이다.

틀림없다.

검은색을 띠는 게이트.

코볼트에게 스며든 혼돈기의 비밀 은 저 게이트 안에 숨겨져 있다.

"이얍! 이 몬스터들!"

"고작 코볼트 따위. E급 몬스터라 면 할 만해!"

헌터 두 명이 가세했다.

판금갑옷과 커다란 방패를 든 남자 와 주먹 크기의 보주를 든 여자였

다.

"크르릉! 크릉!"

끼리릭- 피융!

시위를 화살 여러 대가 남자 헌터 의 방패를 마구 두들겼다.

"큭!"

짧은 비명을 내지르면서 뒤로 밀리 는 남자 헌터.

자신 있게 나선 것과는 달리 팔과 다리가 후들거리는 것이, 오래 못 버틸 것 같다.

"오, 오빠!"

"미진아. 이 녀석들 평범한 E급이

아니야! 이대로는 얼마 못 버텨."

후방에 있는 헌터는 보주에 대고 마력을 집중했다.

"파이어 볼트!"

화르륵!

보주에서 생성된 화염 화살은 방패 를 노리던 코볼트의 몸통에 꽂혔다.

크레레렉!

화염에 맞은 코볼트가 비명을 지르 며 쓰러졌다.

하지만 남은 코볼트의 숫자가 너무 많았다.

쾅! 쾅! 쏟아지는 공세에 찌그러지

는 방패. 남자 헌터는 방어에 전념 했지만 무너지는 건 시간문제였다.

다음 마법을 준비하는 헌터의 눈빛 이 사시나무처럼 흔들렸다.

그때.

[운류보를 사용합니다.]

[이동속도가 50% 증가합니다.]

[1 초당 2의 혼돈기가 소모됩니다.]

지면을 박차면서 코볼트 무리를 향 해 뛰어들었다.

'저건 내 먹잇감이다!'

눈동자에서 불꽃이 일렁였다.

무 대륙의 무인들이 환장하는 게 있다.

바로 영약이다.

천년하수오, 만년설삼, 공청석유 등 강대한 기운을 품고 있어서 내력을 늘려주는 약을 일컫는 말이다.

검은 털 코볼트들은 내게 있어 걸 어 다니는 영약이나 다름없었다.

다크 스타를 채찍으로 변형시킨 뒤 손목에 스냅을 주어 크게 휘둘렀다.

"크르릉! 크릉?"

차악!

채찍은 도끼를 치켜세우고 도약하 던 코볼트의 손목을 휘감았다.

입질이 느껴지자마자 팔에 힘을 주 어 세게 당겼다.

"크릉! 뭐냐!"

포물선을 그리면서 나를 향해 날아 오는 코볼트.

어릴 적에 아버지를 따라가서 해봤 던 낚시를 하는 느낌이다.

[낭아칠성권 - 타격을 사용합니 다.]

[혼돈기 10을 소모합니다.]

퍼엉-

전력으로 뻗은 주먹이 코볼트의 머 리를 날려버렸다.

[혼돈의 기운을 흡수했습니다.]

[성천....]

'됐다!'

다른 녀석도 마찬가지였다.

주먹을 뻗은 직후에 성천조계공을

운용해보니 코볼트의 사체에서 혼돈 기를 뽑아낼 수 있었다.

"크릉. 다른 적."

"크르릉, 위험하다."

코볼트 무리의 시선이 나를 향해 쏟아졌지만. 그땐 이미 놈들과 거리 를 충분히 좁힌 뒤였다.

[다크 스타 - 할버드]

2미터가량의 창대를 쥐고 크게 휘 둘렀다.

서걱-

창대 끝에 달린 도끼날이 코볼트들 의 목덜미를 쭉 그었다.

무공?

성천조계공을 운용하면서 증폭된 신체 능력만으로 충분했다.

"끄륵. 끄르륵...

코볼트 세 마리가 바람 새는 소리 를 내면서 고꾸라졌다.

"크릉! 죽어라!"

미처 쓰러트리지 못한 코볼트 한 마리. 녀석은 급히 쇠뇌의 방아쇠를 당겼다.

피융!

옷이 찢겨나간다. 팔뚝에 생긴 생 채기 사이로 핏방울이 울컥울컥 맺 혔다.

"제법이잖아."

나는 씩 웃고는 할버드를 다시 한 번 크게 휘둘렀다.

퍼억!

묵직한 도끼가 미간에 박힌 채, 코 볼트의 몸이 허물어지듯 땅에 쓰러 졌다.

두 헌터가 고전한 사실이 무색할 만큼 허무한 최후였다.

"가, 감사합...

"잠깐."

나한테는 인사를 받는 것보다 더 중요한 일이 있었다.

[혼돈의 기운을 흡수....]

쓰러트린 코볼트들은 여지없이 혼 돈의 기운을 품고 있었다.

성천조계공을 운용해서 사체에 스 며든 기운을 흡수했다.

'혹시 이 녀석한테도?'

파이어 볼트에 쓰러진 코볼트에게 도 기운 흡수를 시도했다.

제길.

이미 녀석의 체내에는 혼돈의 기운 이 남아있지 않았다.

나는 숙였던 허리를 폈다.

비로소 멍한 표정을 짓고 있는 두 헌터가 눈에 들어왔다.

'이 녀석들은 방해만 돼.'

찌릿!

나는 젊은 남녀를 노려보면서 입을 열었다.

"저건 내가 맡는다."

"네, 네?"

검은 게이트 앞.

코볼트의 숫자는 조금 전에 쓰러트 린 무리보다 배 이상 늘어나 있다.

'한 놈도 양보할 수는 없지!'

그런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두 헌터는 두려움이 섞인 기색을 띠며 대꾸했다.

"저 괴물들을 혼자 상대하는 건 무 리입니다."

"맞아요. 저건 그냥 코볼트가 아니 라고요."

아놔.

내 혼돈기 셔틀 뺏어가지 말라고!

둘을 전장에서 멀어지게 할 방법이 없을까 생각하던 중에 미처 피난을 마치지 못한 일반인들이 눈에 들어 왔다.

"시민은 누가 지키고?"

아싸.

두 헌터는 내 말에 대꾸하지 못했 다.

"당신들은 사람들 피난을 도와. 그 동안 내가 막는다."

좋은 핑곗거리였다.

"알겠습니다."

"조, 조심하세요!"

사람들의 피난을 돕기 위해 후방으 로 빠지는 두 헌터.

괴물들의 살의가 일제히 나를 향해 쏟아졌다.

짜릿한 느낌.

그래. 이게 바로 전장에서만 느낄 수 있는 감각이다.

'그럼 영약 잡수러 가볼까?'

할짝.

나는 혀로 입술을 적셨다.

* * *

"와...

오미진의 입에서 감탄사가 흘러나 왔다.

게이트 브레이크 사태.

민간인이 위험에 노출된 급박한 상 황에서 멍을 때리다니.

헌터가 벌여서는 안 되는 중대한 실수다.

정민수는 미진을 나무라지 않았다.

아니. 나무랄 수 없었다.

'이건 대체...

정민수도 오미진과 같은 생각을 하 고 있었다.

두 사람은 각성 4년 차인 D급 헌 터다. 여러 게이트을 공략하고 능력 활용에 익숙해져서 경력 있는 베테 랑 헌터로 인정받았다.

그렇지만.

이런 전투는 처음이었다.

처음 정민수를 놀라게 한 것은 검 은색 코볼트였다.

코볼트는 협회 기준 E등급으로 분 류된 괴물.

정민수 역시 헌터로 지내면서 코볼

트를 여럿 상대한 경험을 가지고 있 다.

'저 검은색 괴물은 다르다.'

E급?

아니. 최소 D급으로 분류해야 할 정도로 강력했다.

검은색 코볼트가 방패를 두들길 때 마다 근육이 파르르 떨리고 뼈가 시 렸다.

경험 많은 정민수조차 겨우 버텨낸 공세. 경력이 길지 않은 헌터라면 얼마 못 버티고 나가떨어졌을 만큼 강했다.

'여기서 죽는 건가.'

그렇게 생각할 무렵.

정민수를 더욱 놀라게 한 존재가 튀어나왔다.

촤아악-

핏방울이 바닥에 튄다.

모두 괴물의 몸뚱이에서 나온 것들 이다.

"왜, 힘 좀 더 써보지?"

전민철.

홀로 검은색 코볼트 무리와 싸우고 있는 괴물 같은 헌터였다.

흔한 방어구 하나 없이, 무기 하나 를 믿고 코볼트 무리를 향해 돌진했

다.

일대 다수의 싸움.

코볼트의 숫자는 스무 마리 이상 늘어나 있었다.

'압도하고 있다.'

꿀꺽.

정민수는 침을 삼켰다.

방어구 하나 걸치지 않은 사내. 코 볼트보다 압도적으로 강한 것도, 위 력적인 아이템을 사용하는 것도 아 니다.

그런데도.

기세에서 밀리는 것은 코볼트 무리

였다.

"오빠. 지금이라도 도와야 하지 않 을까요?"

미진이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정민수의 고개가 좌우로 움직였다.

"우리가 낄 곳은 없는 것 같다."

전민철은 코볼트 무리를 종횡무진 하며 유린했다.

팔뚝이나 다리, 볼에 생채기가 하 나둘씩 새겨진다.

벌어진 상처 사이로 붉은 피가 홀 러내렸지만 한 번도 멈추지 않았다.

상처가 생기면 물러서기는커녕 입

가에 웃음기를 머금고 무기를 휘둘 렀던 코볼트의 머리를 깨버렸다.

헌터.

괴물을 사냥하는 자.

정민수는 그 단어가, 코볼트 무리 가운데에서 날뛰고 있는 사내에게 가장 잘 어울린다고 생각했다.

米 米 米

검은 게이트 주변.

무거운 침묵이 내려앉았다.

숨을 쉬고 있는 존재는 오직 둘 뿐.

한 명은 당연히 나였고, 다른 한 놈은 코볼트 대장이었다.

그 주위에는 숫자만 백에 가까운 사체가 널려 있었다.

모두 코볼트의 시체다.

일반적인 코볼트의 전투력을 상회 하는 괴물.

하지만 내 적수는 아니었다.

온몸에 상처가 났지만, 대부분 하 루면 낫는 작은 찰과상이었다.

작은 생채기는 신경 쓰지 않았고,

치명상이 될 만한 공격만 피했다.

싸움 끝에는 상처가 좀 많아져서 피를 좀 흘렸지만, 생활에 지장을 줄 만큼은 아니었다.

'인간은 확실히 약하단 말이야.'

강대한 투마족의 육신을 떠올리니 절로 아쉬웠다.

전생의 나는 강대한 육신과 마력으 로 상대를 찍어 누르는 전투를 지향 했다.

현생은 치명상을 피하면서 상대의 급소를 노리는 아웃복싱 타입으로 싸워야 한다.

뭐.

성천조계공의 성취가 올라가고 혼 돈기를 많이 쌓으면 어떻게 되지 않 을까.

"흐흐흐."

입에서 기쁨의 웃음이 새어 나왔 다.

전신이 상처로 쓰라렸지만 웃음을 가리지는 못했다.

'횡재다. 기연이야!'

[혼돈력 : 69 -> 80.1]

[혼돈기 : 897 -> 1041.3]

이번 싸움에서 운용할 수 있는 혼 돈기의 양이 부쩍 늘어났다.

검은색 코볼트에게서 혼돈의 기운 을 흡수한 덕분이다.

성천조계공의 숙련도도 꽤 상승했 다.

"크르릉, 크릉...

무릎을 꿇고 반쯤 쓰러져 있는 코 볼트 대장은 억지로 고개를 들었다.

팔과 다리가 한쪽씩 날아갔고, 눈 에도 기다란 자상이 났다.

전투 불능 상태.

코볼트 대장을 저 모양으로 만든

건 나였다.

놈은 한쪽만 남은 눈으로 나를 노 려보는데, 선명한 살의가 느껴졌다.

"어쩌라고?"

되먹지도 못한 짐승의 살기 따위.

마계에서 수많은 투쟁을 겪으면서 업을 쌓아온 내 영혼을 침범하기에 는 너무나도 하찮았다.

코볼트 대장을 왜 살려두었냐고?

죽이려면 진즉에 끝낼 수 있었지 만.

나는 그렇게 하지 않았다.

'검은색 게이트가 계속해서 괴물들

을 불러냈지.'

일반적인 게이트 브레이크는 포화 된 괴물들을 한 번에 풀어내고 작동 을 멈춘다.

검은색 게이트는 달랐다.

시시때때로 표면을 일그러트리면서 코볼트를 증원했다.

'가만히 있어도 영약이 걸어 들어 오잖아.'

대량의 혼돈기를 흡수한 것은 모두 검은 게이트 덕분이었다.

코볼트 대장의 숨통을 끊지 않은 것도 그 까닭이다.

'녀석은 게이트와 연결되어 있다.'

혼돈기를 다루기에 안 사실.

코볼트 대장은 게이트의 보스 몬스 터처럼 '핵'의 역할을 하고 있다.

대장을 죽이면 검은 게이트도 사라 질 것 같다는 예감에 무력화만 시킨 뒤 게이트가 불러내는 코볼트들을 주기적으로 쓰러트렸다.

어느 순간이 되자, 검은 게이트는 더 이상 괴물들을 불러내지 않았다.

'영약 꿀이었는데.'

쩝. 아쉬움에 입맛을 다셨다.

팽그르르-

검은 창을 한 바퀴 돌리고 날 끝 으로 코볼트 대장의 목덜미를 찔렀 다.

코볼트 대장은 비명조차 내지르지 못하고 쓰러졌다.

-레벨이 올랐습니다. 상태 창을 활 성화해서 능력치를 올려주세요.

호오.

레벨이 올라가는 건 생각도 안 하 고 있었는데.

걸어 다니는 영약에 이어 경험치

셔틀까지. 검은색 코볼트는 뭐 하나 빼놓을 게 없는 괴물이었다.

구구구궁!

그 순간. 검은 게이트의 표면이 거 칠게 일렁였다.

괴물을 토해낼 때와 정반대의 파장 을 일으키면서 빠른 속도로 수축했 다.

펑-

검은 게이트는 폭죽 터지는 소리를 내면서 흔적을 감추었다.

17 화

5분 뒤.

나는 헌터 협회 소속 요원과 대면 했다.

"헌터님. 반갑습니다. 정성희라고 합니다."

말끔한 외모의 30대 사내가 명함

을 들이밀었다.

[헌터협회 보안부]

[정성희 팀장]

[010-XXXX-XXXX]

명함을 받는 와중 손가락이 살짝 닿았다.

사내의 신체에서 상당한 양의 마력 을 느꼈다.

'협회 보안부 소속이라더니 헌터였 나.'

이 정도면 A급? 아니면 B급인가. 어쨌든 상당한 실력자였다.

"다른 두 분에게는 이미 말씀을 들 었습니다."

명함을 내민 사내, 정성희가 뒤를 가리켰다.

아까 코볼트 한 마리를 태워 먹어 서 혼돈기를 날려버린 헌터 두 명이 었다.

"두 분의 증언을 들어보면... 사실 상 전민철 헌터 혼자 게이트 브레이 크 사건을 해결한 셈이군요."

"그렇죠."

"너무 놀랍습니다. 각성 검사 때 E 랭크를 받으셨고, 각성 기간도 오래 되지 않으셨는데 말이죠."

정성희는 놀라움을 감추지 않았다.

의심하는 기색이 섞이지 않은, 순 수한 놀라움이었다.

갑작스러운 게이트 브레이크 사건 이 벌어졌는데 기물 파손과 피난 중 인 민간인 몇 명이 부상을 입는 선 에서 해결되었다.

"오늘 전민철 헌터님의 활약이 아 니었으면 대참사가 일어났을 겁니 다. 고맙습니다."

정성희는 허리를 꺾으면서 정중하

게 인사했다.

낯간지럽지만 기분이 나쁘지는 않 았다.

한 차례의 감사 인사 후, 뒤이은 협회 관계자와의 대화는 길지 않았 다.

협회 전달 사항은 두 가지였다.

첫 번째는 금전적 보상.

"게이트 브레이크를 해결하셨으니 협회 차원에서 보상이 갈 겁니다."

정성희가 말한 금액은 3억.

게이트 브레이크의 규모를 분석해 서 피해 예상 규모에 비례해서 보상

금을 책정한단다.

두 번째는 괴물의 사체 처리.

"검은색 게이트와 괴물은 처음 발 생한 일이라 협회에서 반드시 사체 를 구매하고 싶다는군요."

사냥한 괴물의 권리는 헌터에게 있 다.

헌터 협회가 세워지고 꾸준히 지켜 지는 대원칙이다.

이미 코볼트한테서 혼돈의 기운을 모두 흡수해서 시체에게는 관심이 없었다.

"잠깐. 그건 담당 길드랑 이야기 나누시죠."

나는 엘리에게 일을 떠밀었다.

모르거나 귀찮은 일은 전문가한테 넘겨야지.

엘리는 연락한 지 몇 분 만에 현 장에 나타났다.

구석으로 가서 대화를 나누는 엘리 와 정성희.

몇 분 동안 뜨겁게 대화를 나눈 뒤, 두 사람은 내가 있는 곳으로 돌 아왔다.

표정을 보니 승자와 패자가 명확해 보인다.

"으, 으음. 협회에서는 코볼트 사체

를 두당 천만 원에 구매하기로 결정 했습니다."

"세금도 떼고 말이죠."

엘리가 바로 첨언했다.

두당 천만 원이면.

잠깐... 모두 해서 얼마야?

'대충 봐도 십억은 되겠는데.'

보상금과 사체 판매대금을 합하면 총 십삼억.

아주 좋았다.

전에 계약금으로 오십억을 받아서 그런지 생각보다 큰 금액인데도 놀 라지는 않았다.

"제가 힘쓴 덕분이라고요."

엘리는 싱긋 웃으면서 어깨를 활짝 폈다.

인정하지.

그녀는 확실히 유능한 파트너다.

"일은 다 끝난 겁니까?"

"예. 다시 한번 민철 헌터님의 활 약상에 감사를 드립니다."

"그럼 이만 가보죠."

"예? 지금 기자들이 헌터님을 보려 고 기다리는 중입니다."

사회는 대격변이 일어난 뒤로 다시 '영웅'을 찾기 시작했다.

각성한 지 얼마 안 된 헌터의 놀 라운 활약. 기사로 만들기에 너무 좋은 소재다.

'번거로운 건 질색이다.'

명예가 밥 먹여주는 것도 아니고.

"그래서 가는 겁니다."

나는 귀찮다는 의미로 손을 휘휘 저었다.

米 米 #:

늦은 밤.

나는 옥상에서 성천조계공을 운용 했다.

구름 한 점 없이 맑게 갠 하늘.

은은한 별빛이 나를 향해 내리쬐었 다.

"후읍••••••

입가에 아른거리는 서기.

별의 기운이 호흡을 타고 몸속으로 빨려 들어온다.

폐부에 들어온 성운의 힘은 성천조 계공의 묘리에 따라 심상세계로 스 며들었다.

무 대륙에서는 상단전이라 불리는

곳.

환생한 내 육체는 약한 인간이지 만, 상단전에 자리한 영혼은 판데모 니엄의 차원장이다.

심상세계에 구축한 소우주는 실제 우주와 비교해도 신비 면에서 절대 뒤처지지 않았다.

호흡을 할 때마다 조금씩 자리를 잡아가는 성운의 힘. 나의 심상세계 도 더욱 확장해가면서 힘을 키워냈 다.

화아악-

밤이 지나고 아침이 되었다.

지평선 너머.

태양이 서서히 모습을 드러내면서 밤의 장막을 거두어낸다.

별의 기운이 극양의 기운에 밀려서 옅어지기 시작했다.

"후 "

짧은 아쉬움을 토해내면서 성천조 계공의 운용을 멈추었다.

[혼돈력 : 86.5 -> 87.3]

[혼돈기 : 1124.5 -> 1134.9]

[성천조계공 : 56% -> 63%]

상태창을 보니 입술이 씰룩였다.

나날이 불어나는 능력치.

실제로 '강해지는 것'을 체감하고 있기에, 더더욱 수치가 늘어나는 것 을 보고 기분이 좋아졌다.

'혼돈기가 빠르게 늘어나고 있다.'

현재 내 레벨은 6.

레벨 5개를 올리면서 얻은 스탯 25개는 모두 혼돈력에 투자했다.

기연의 도움도 있었다.

걸어 다니는 영약, 검은색 코볼트 를 쓰러트리고 혼돈의 기운을 흡수

했다.

혼돈의 기운을 흡수한 결과, 혼돈 력을 10 이상 늘렸다.

내 혼돈력은 불과 하루 전만 해도 49 였다.

거의 두 배에 가까운 수치!

다룰 수 있는 혼돈기도 두 배 가 까이 늘었다.

주먹을 꽉 쥐었다.

혈맥을 따라 흐르는 혼돈기.

빛의 성운과 암흑성운의 힘이 충돌 하면서 빚어낸 강대한 기운이 전신 세맥을 누빈다.

'성천조계공의 상승도가 조금씩 느 려지고 있군.'

처음에는 혼돈기가 부쩍부쩍 늘어 났지만, 조금씩 성장세가 느려지고 있다.

원래 무공이라는 건 상승 경지로 갈수록 익히기가 까다롭다.

성천조계공은 마교에서 보관했던 수많은 절학 중에서도 난해하기가 이를 데 없어서 누구도 익히지 못한 신공이다.

전생의 내가 10성까지 익힌 덕분 에 그나마 빠르게 숙련도가 오르는 거지.

성취도 상승 속도가 느려지는 건, 보너스 스탯으로 혼돈력을 늘려서 보완해야겠다.

'아쉬운 점도 있었지.'

무리와의 전투.

군집 생활을 하는 괴물은 상대하기 가 까다롭다.

전생에서는 압도적인 힘으로 짓눌 렀지만. 현생의 육체에는 어울리지 않는 방법이다.

인간의 육신은 약하다.

최소한으로 회피를 하면서 몰아붙 였지만.

아직 단련이 덜 된 그릇으로는 혼 돈기를 완벽하게 다루어낼 수 없었 다.

'의뢰했던 장비를 빨리 받아보고 싶군.'

으드득.

나는 기지개를 켜면서 굳은 몸을 풀었다.

가벼운 스트레칭을 마치고 방으로 걸어가던 중, 익숙한 사람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과 친구 기태였다.

"꼭두새벽부터 무슨 일이냐?"

"야. 씨... 후우."

기태는 복잡한 표정을 짓더니 돌연 한숨을 푹 쉬었다.

"너희 어머니가 나한테 연락 왔어. 자식새끼 살았는지 죽었는지 방에 가서 확인 좀 해달라고 하시더라."

"전화를 하시면 되지. 그걸 너한테 왜 부탁하셨대?"

"네가 전화를 안 받잖아."

아.

잠깐?

'맞다. 나 전화기 바꿨었지!'

기태의 말을 듣고 잊고 있던 사실

을 떠올렸다.

여러 길드에서 전화가 몰려와서 기 존에 쓰던 휴대폰을 구석에 던져두 고, 성간 연합에서 준 폰을 쓰고 있 었다는 사실을.

부모님이 새로 바뀐 연락처를 알 리 없었다.

기태는 낮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갑자기 휴학계를 내지를 않나. 전 화도 안 받고."

전생의 기억.

그리고 헌터로의 각성.

전생과 현생의 가치관이 뒤섞이고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느라 주변 사 람들을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

"미안하다. 요새 정신이 없었다."

"자식. 화내는 거 아니야. 너 유명 인사 됐는데 사인이라도 받으려면 잘 보여야지."

"유명인사?"

"모르는 척하긴. 이거 너잖아."

기태가 휴대전화를 내밀었다.

[새롭게 등장한 영웅, 그의 정체 는 누구인가?]

자극적인 기사 제목.

그 아래에는 검은 무기를 쥔 헌터 의 사진이 큼지막하게 박혀 있었다.

저건... 나잖아?

입이 쩍 벌어졌다.

귀찮을 것 같아서 인터뷰도 피했는 데. 언제 저런 사진을 찍은 걸까.

"너희 엄마가 걱정 많이 하시더라. 빨리 연락 드려라."

"잠깐. 이걸 어머니도 보셨다고?"

"그래. 기사 보고 나한테 걱정돼서 가보라고 하신 거야."

오}.

부모님한테는 아직 헌터가 됐다고 이야기도 안 했는데.

아무래도... X 된 것 같다.

기태 녀석은 나중에 술 한번 거하 게 산다고 하고 집으로 돌려보냈다.

친구를 보내고 바로 전화를 눌렀 다.

뚜르르르-.

전화벨이 울리는 시간이 왜 이렇게 길게 느껴지는 건지.

- 여보세요?

익숙한 음성.

바로 어머니의 목소리였다.

"어머니. 저 민철이입니다. 연락 못 드려서 죄송해요."

-아들. 엄마한테 할 말 있지 않아?

순간 말문이 막혔다.

짧은 기간 동안 많은 일이 있었다.

어떻게 말을 해야 할까. 머릿속으 로 쉽게 정리가 되지 않았다.

"...저 헌터가 됐어요."

-기사 봤어. 아들 너무 멋지게 나

왔더라고. 사진 보니까 누구 아들인 지 바로 알아보겠더라.

"먼저 말씀드렸어야 했는데 죄송해 요."

잠시간의 침묵.

무슨 말을 해야 할까.

'내 잘못이지.'

휴대전화에 전화가 많이 와서 연락 을 안 했다는 건 핑계다.

전생. 투장 데이모스의 기억을 각 성하면서 '강해지는 것'에 집중하느 라 소홀해진 것이다.

-아들. 헌터로 활동하는 거 위험하

지는 않지?

울컥, 마음이 저며 온다.

당신의 서운함보다 먼저 내 몸을 걱정해주시는 모습.

가슴이 먹먹해지고 목구멍에 뭐가 걸린 것처럼 턱 막혀서 대꾸를 할 수 없었다.

잠시 끓어오르는 마음을 겨우 가라 앉힌 뒤에야 겨우 입을 열 수 있었 다.

"어머니. 절대로 안 위험해요. 걱정 안 하셔도 돼요."

-위험한 짓은 하지 말고. 엄마는 아들이 자랑스러운데 한편으로는 걱

정되네. 주책이지?

주책이긴요, 무슨.

목소리를 타고 '진심'0] 느껴졌다.

"절대 위험한 짓 안 할게요."

-그래. 그건 그렇고 이놈의 시키 야. 왜 이렇게 전화를 안 받아?!

갑자기 하이톤으로 소리를 지르시 는 어머니.

여태 참아온 답답함을 풀 듯 고성 을 지르면서 나한테 엄청 화를 내셨 다.

왜 욕을 먹는데도 기분이 좋은 건 지.

"풋."

-전민철! 누가 엄마가 혼내는데 웃으라고 했어!

이런 대화도 즐겁게 느껴졌다.

간만에 오랫동안 이야기를 나누던 중, 어머니가 화들짝 놀란 목소리로 외쳤다.

-나 좀 봐! 찌개 끓인다고 물 올 려놓고 깜박했네.

"아버지 곧 출근할 시간이네요."

-몸 건강하고. 헌터 활동도 좋지만 건강이 우선이야.

"알겠어요. 헌터 일 적응되면 집에

꼭 내려갈게요."

-아들. 기사로 봐서 놀랐지만 사람 을 구하는 모습, 너무 멋있었어. 사 랑해.

툭.

그 말을 마지막으로 통화가 끊어졌 다.

생각도 못 했던 통화.

어머니의 마지막 말이 깊은 여운으 로 남았다.

'지금의 나는 전생하고는 완전 다 른 사람이구나.'

마족은 가족의 정 같은 게 없다.

부모 자식 간에도 핏줄이라는 유대 감보다는 동족으로써 느끼는 동질감 을 더욱 강하게 느꼈다.

현생의 나, 전민철은 달랐다.

부모님의 사랑을 느끼고 감동하고, 마음이 울렁이는 '인간'이었다.

나는 스스로의 정체성을 다시 한번 확인했다.

'강해지는 것도 중요하지만 내 소 중한 사람들도 지켜야지.'

전생에는 강해지는 것이 절대명제 였지만.

이번 생에서는 강해져야 하는 이유

가 생긴 것 같다.

18 화

米 #: #:

게이트 브레이크 사건 이후 일주일 이 지났다.

나는 하루도 빼지 않고 게이트을 공략했다.

'하루도 낭비할 수는 없어.'

내 목표는 단순했다.

강해지는 것.

단순한 목표이지만, 나한테는 그만 큼 강렬한 동기부여도 없었다.

강해진다는 것은 중독성이 있다.

단련을 하고 괴물을 사냥할 때마다 신체가 강건해지고 혼돈기의 양이 불어난다.

나한테 주어진 [플레이에의 권능.

객관적인 숫자로 내 능력치를 표기 해주니, 의욕에 불을 붙여주었다.

서걱!

검신 전체가 흑색으로 된 검이 보 스 몬스터, [트윈 헤드 웨어울프]의 목덜미를 빠르게 베었다.

-경험치가 2.3% 올랐습니다.

-레벨이 올랐습니다. 상태창을 활 성화해서 능력치를 올려주세요.

11 레벨.

일주일 동안 사냥에 매진한 덕분이 다.

'점점 레벨을 올리기 힘들어지는 군.'

일반 몬스터는 평균 0.1%

보스 몬스터를 쓰러트리면 2% 대 의 경험치를 얻었다.

경험치 획득 난이도는 레벨을 올릴 수록 가파르게 상승하리라.

'이 정도 패널티는 있어야지.'

플레이어의 권능.

자가 개변. 괴물을 사냥하는 것만 으로 한계를 뜯어내고 능력치를 올 릴 수 있다.

오히려 이만한 패널티도 가볍게 느 껴질 만한 권능이다.

"마무리 부탁드립니다."

지원 팀에게 괴물 사체 처리를 맡 긴 뒤, 뒤로 빠졌다.

"흐읍!"

양팔로 땅을 짚고 발을 걷어차서 반동으로 몸을 뒤집었다.

공중 물구나무서기!

그 상태로 성천조계공을 운용하면 서 팔을 굽혔다.

드드드득-!

팽창된 팔 근육이 힘을 뿜어낸다.

괴물을 사냥한 직후여도 휴식은 없 었다.

어려운 상대도 아니었고, 체력과

혼돈기도 여유롭게 남았다.

'지금이 딱 운동하기 좋다.'

몸이 풀린 느낌.

긴장감으로 온몸의 신경이 날카로 워져서 오감이 예민해졌다.

이때야말로 단련의 효과를 최대로 끌어올릴 수 있었다.

나는 신체단련을 하면서 성천조계 공을 운용했다. 심상세계에서 생성 된 혼돈기가 전신 세맥을 회전하면 서 근육에 스며든다.

무 대륙의 심법은 인간의 육체를 변화시 킨다.

대기에 있는 마나가 신체에 스며들 면서 인간의 한계를 뛰어넘어 초월 적인 존재로 탈바꿈시키는 것이다.

성천조계공은 무 대륙의 수많은 심 법 중에서도 가장 뛰어난 무공.

당연히 단련의 효과도 금방 나타났 다.

또 한 가지 사실.

게이트 안은 지구보다 마나의 농도 가 훨씬 풍부했다.

[성천조계공의 효과로 신체 능력이 향상됩니다.]

[근력이 1 증가했습니다.]

[맷집이 0.4 증가했습니다.]

[민첩이 0.5 증가했습니다.]

풍부한 마나에 신체가 자극받아 혼 돈기를 더욱 효율적으로 받아들였 다.

'이 안에서 단련을 하면 지구에서 보다 세 배 이상 효율이 좋다.'

게이트 안에서 시간이 날 때마다 육체 단련을 시작한 이유다.

한참 육체를 혹사시키고 있을 때, 정영현이 다가왔다.

"민철 헌터. 이쪽은 다 끝났어."

"수고하셨습니다."

"거참. 또 운동하고 있어? 그렇게 몸을 혹사시켜 놓고."

"지금 긴장 덜 풀렸을 때가 딱 좋 아요."

"하이고. 잘났구먼."

피식 웃고는 자세를 풀었다.

이제 원래 장소로 돌아갈 때다.

米 氷 #:

게이트 공략을 마치고 나오니, 밖 에서는 엘리가 평소처럼 나를 기다 리고 있었다.

"또 기다리고 있네."

"민철 헌터를 보조하는 게 제 주 업무이니까요."

"성간 연합 일이 그렇게 한가하진 않을 텐데."

"호호, 그만큼 저희 지부에서 민철 헌터를 챙긴다고 생각해주세요."

엘리는 입을 가리면서 웃었다.

"이봐. 엘리 부장. 우리는 보이지도 않는 건가?"

"설마요. 지원팀도 모두 수고하셨 어요."

"엎드려 절받기 군."

입으로는 툴툴거리지만, 정영현의 입가가 씰룩였다.

눈에 띄는 미인의 칭찬. 기분이 안 좋으면 더 이상한 법이다.

"민철 헌터. 내일은 지부장님이 뵙 자고 하는데요."

"무슨 일로?"

"의뢰하신 장비가 다 완성되었다고 하셨어요."

마르탄에게 의뢰했던 무장.

계약금 50억 중 40억을 돌려주면 서 부탁한 물건이다.

'물건을 수령하고 게이트까지 도는 건 무리겠지.'

게이트 공략은 전 • 후 과정을 포 함해서 꽤 많은 시간을 잡아먹는다.

게이트 탐색부터 헌터 팀과 지원팀 의 장비 착용 등, 준비 과정부터 많 은 시간을 소모한다.

나는 좀 예외 케이스지만.

게이트에 홀로 들어가서 정보 수집 없이 쓸어버리는 사람은 흔치 않다.

'지원팀이 준비할 시간은 필요하니

까.'

게이트 공략도 중요하지만, 장비를 확인하는 게 우선이다.

지점장이 자부하는 실력을 두 눈으 로 직접 구경하고 싶기도 했고.

"내일은 게이트 공략을 쉬어야겠 군."

나는 아쉬움이 남은 투로 중얼거렸 다.

반응이 튀어나온 건 엉뚱한 방향이 었다.

"민철 헌터. 정말인가?"

"예? 뭐 말입니까."

"내일 공략을 쉬어간다는 것 말이 야."

영현이 흥분한 투로 되물었다.

내일 쉬는 게 그렇게 중요한 일인 가.

나는 떨떠름한 음성으로 대꾸했다.

"네. 그렇죠."

"으, 으으으! 이게 얼마만의 휴일 이냐!"

"으어어. 드디어 쉴 수 있다."

"모두 고생하셨습니다. 매일 게이 트 들어가느라 얼마나 힘들었는데 요."

지원팀에서 내 결정을 열렬히 환영 (?) 했다.

이제껏 참아온 울분을 터트리듯이 오래간만에 찾아온 휴일에 광분했 다.

지원팀의 격렬한 반응에 어안이 벙 벙해졌다.

"뭔데. 이 반응은...?"

"호호호. 정말로 왜 저러는지 모르 세요?"

"모르겠는데."

"직장에서도 주말 휴식 보장은 중 요한 법이랍니다. 근데 어떤 악덕

업주님이 계속 일을 시켰잖아요."

"그 악덕 업주가 나라는 건가."

엘리는 대답하는 대신 묘한 웃음을 지었다.

매력적인 미소이지만, 지금만큼은 얄밉기 그지없었다.

"일반적인 헌터는 이틀이나 삼 일 에 한 번씩 게이트를 공략해요. 저 분들도 평소보다 두 세배는 일한 셈 이죠."

"일반적이지 않아서 미안하네."

툭 쏴도 웃기만 한다.

지부장인 마르탄은 내 눈치를 보느

라 바쁜데.

직속 부하인 엘리는 오히려 큰 부 담을 가지지 않고 나를 대했다.

분명 내가 '코드 R'의 소유자라는 것을 알 텐데 말이지.

마르탄과 엘리.

하여간 재밌는 조합이다.

게이트 공략을 마무리하고 집으로 돌아왔다.

게이트 공략 때는 성간 연합에서 차량을 지원해주어서 편히 쉴 수 있 었다.

"지금까지 총 정산금은 얼마나 나

왔어?"

"게이트 7개 공략. 괴물의 부산물 과 아이템을 처분해서 나온 금액은 총 4억 5천만 원이에요. 오늘 건 포 함 안 된 금액이고요."

"생각보다는 적네."

게이트 브레이크 사태를 해결하고 13억을 벌어들였다.

난이도만 보면 D급 게이트 하나를 공략하는 것과 비슷했다.

엘리는 내 속마음을 안다는 듯 혀 를 찼다.

"그건 특수 상황이고요. 일주일 동 안 4억 넘게 번 것도 보통 일은 아

니거든요?"

"순수익은 아니잖아."

"그렇죠. 지원팀에 일부 할당해주 고 소모품 비용이랑... 하면 1억 정도 빠져요."

그래도 3억은 남는군.

일주일에 3억.

전생을 깨우치기 전에는 생각도 못 한 거금이다.

별로 놀랍지 않은 것은, 그만큼 내 간덩이도 커졌다는 말이겠지.

'자본도 결국 힘이다.'

마계의 정점.

차원장이던 시절에는 원하는 것을 모두 얻을 수 있었다.

자본주의가 지배하는 지구는 다르 다. 원하는 것을 얻으려면 가치에 해당하는 재화를 지불해야 한다.

'마르탄 녀석이 만든 장비를 보면 투자의 폭을 가늠할 수 있을 거다.'

돈은 많을수록 좋다.

물론 나한테는 돈도 강해지기 위한 수단 중 하나에 불과했다.

끼이익-

차가 멈췄다.

어느덧 집 근처까지 왔다.

문을 열고 나가려는데, 엘리가 입 을 열었다.

"아침 10시까지 모시러 올게요."

"응. 오늘도 수고했어."

"민철 헌터님도요."

뒷문을 닫고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해가 서쪽으로 기울기 시작한다.

선선한 바람이 부는 가을.

낮과 밤의 시간 차가 역전되기 시 작하는 시기이다.

밤에 할 일?

당연히 정해져 있다.

'심법이지.'

성천조계공의 성취도를 올릴 수 있 는 건 오로지 밤뿐.

누군가에게는 하루 일과가 끝나가 는 시간이지만, 나한테는 새로운 일 정이 시작되는 순간이었다.

米 米 米

다음 날.

마중 나온 엘리와 함께 성간 연합 서울 지부를 찾아갔다.

차가 건물 근처에서 멈췄다.

몇몇 사람들이 서울 지부 앞을 서 성거리고 있다.

"기자들이네요."

"기자? 쟤네들이 왜 여기서 서성거 리는데."

"민철 헌터님 때문이죠. 신비주의 를 고수하시니깐 기삿거리 하나라도 얻어내려는 거예요."

아냐.

신비주의 같은 거 고수한 적 없어.

그냥 귀찮아서 패스한 건데.

남들 눈에는 고상한 신비주의 헌터 로 비쳤나 보다.

"기자들이 좀 빠질 때까지 기다릴 까요?"

"됐어. 약속 시간은 지켜야지."

나는 망설임 없이 건물 정문으로 향했다.

근처를 서성이던 기자 몇 명이 눈 을 반짝였다.

"전민철 헌터! 한 말씀만 부탁드리 겠습니다!"

"저번 게이트 브레이크 사건 때 활 약하신...

나는 성천조계공을 운용했다.

혼돈기 일부를 성대에 스며들게 하

고 고함치듯 말했다.

"정식 답변은 성간 연합을 통해서 하겠습니다."

콰르릉!

마른하늘에 날벼락이 이러할까.

혼돈기를 섞은 목소리가 증폭되어 서 건물 앞을 쩌렁쩌렁하게 울렸다.

그 기백에 눌린 기자들이 주춤하는 동안 재빠르게 건물 안으로 들어갔 다.

잠시 기백에 눌렸던 기자들은 뒤따 라오던 성간 연합 담당자, 엘리를 쳐다봤다.

"...내가 이럴 줄 알았어."

뒤에 남은 엘리가 이마를 부여잡으 면서 중얼거렸다.

나는 기자들과 엘리를 흘겨봤다.

'미안하지만 귀찮은 일은 맡길게.'

빌딩 프론트에는 이미 직원 한 명 이 나를 기다리던 중이었다.

안내를 받아서 곧장 지부장 사무실 로 갈 수 있었다.

넓은 사무실.

땅딸막한 드워프는 나를 보자마자 자리를 박차듯 일어나면서 함박웃음 을 지었다.

성간 연합 서울 지점장, 마르탄이 었다.

"오오. 민철 헌터. 요새 하루하루 바쁘게 보내신다고 들었습니다."

"그래. 바쁘니까 본론부터 이야기 하지."

나는 눈동자를 좌우로 움직였다.

지점장 녀석의 인사보다도 40억을 쏟아부은 결과물을 더 보고 싶었다.

"크크. 분명 만족하실 겁니다."

마르탄은 히죽 웃고는 카트 하나를 끌고 왔다.

상 • 하의가 세트로 된 흑색 갑주.

동일하게 검은색으로 된 부츠.

그리고 귀걸이 한 세트, 반지 두 개였다.

'제법 괜찮아 보이는군.'

정련된 마력이 갑주의 표면을 따라 흐르고 있다.

마르탄 녀석. 마이스터라는 호칭은 그때 말했던 대로 포커 놀음으로 딴 건 아닌 모양이다.

"아이템의 설명을...

"괜찮아. 내가 살펴보는 게 더 확 실해."

[진실의 눈]

플레이어 특전 스킬.

나는 진실의 눈을 사용해서 아이템 성능을 확인했다.

[탄로스의 약속]

등급 : 희귀[R] / 종류 : 갑옷

내구도 : 250/250

* 물리 방어 Lv 20

*화염 내성 Lv 7

* [하드 아메 스킬 사용 가능

[탄로스의 믿음]

등급 : 희귀[R] / 종류 : 바지

내구도 : 210/210

* 물리 방어 Lv 13

*바람 저항 Lv 15

* 민첩성 7% 증가

*1바■람길] 스킬 상시 적용

[실프의 눈물] x 2

등급 : 희귀[R] / 종류 : 귀걸이

내구도 : 50/50

* 민첩 20% 증폭

[불칸의 서약] x 2

등급 : 희귀[R] / 종류 : 반지 내구도 : 45/45

* 근력 20% 증폭

"이건... 엄청나군."

감탄 말고 할 말이 떠오르지 않았

다.

40억이 아깝지 않았다.

방어구의 성능은 전투 도중 느꼈던 아쉬움을 충분히 커버할 수 있었다.

약한 공격은 방어력을 믿고 무시하 고, 위력이 있는 건 [탄로스의 믿 음]에 내장된 하드 아머를 사용해서 방어력을 증폭시키면 된다.

귀걸이와 반지도 내가 필요한 요소 를 채워주었다.

내 전투 방식을 다 알고 부족한 것을 채워준 것 같은 템 세팅.

"흐흐흐. 제 작품이 마음에 드십니 까?"

"퍼펙트. 기대 이상이다."

"시간과 예산이 조금 더 있었더라 면 더 완벽한 장비를 만들 수 있었 을 텐데, 그게 좀 아쉽습니다."

"아니. 이 정도면 훌륭해. 나를 위 해 만들어졌어."

"당연합죠. 지원팀의 블랙박스를 보고 귀빈의 능력을 극대화시킬 수 있는 방향으로 제작했습니다."

지점장의 수완만 있는 게 아니라 마이스터의 자질도 뛰어났다.

나는 다시 한번 마르탄의 가치를 상향 조정했다.

'탑에서 가까운 지점을 맡은 건 우 연이 아니었군.'

나는 아이템들을 착용했다.

[근력 28 -> 39.2]

[민첩 27.5 -> 40.4]

사라랑-

착용하자마자 능력치 증가 효과가 바로 적용되었다.

미증유의 힘이 전신에 들끓었다.

'40억이 아깝지 않다.'

나는 여태껏 보너스 스탯을 모두 혼돈력에 투자했다.

혼돈력은 100에 가까웠지만, 나머 지 능력치는 20대 중후반에 머물렀 다.

성천조계공의 단련 효과를 제외하 면 신체를 강하게 만들 방법이 전혀 없었기 때문이다.

아이템을 착용하니 부족한 기초능 력을 어느 정도 보완할 수 있었다.

'이 정도면 게이트 등급을 올려도 되겠다.'

D급 게이트는 아이템 없이도 충분 히 해결할 수 있다.

이제는 아이템의 보조로 등에 날개 를 단 셈.

더 높은 곳을 향해 도전할 준비가 된 것이다.

"지점장."

"예. 더 필요하신 거라도 있으십니 까?"

"B급 게이트를 수배해줘."

멍한 표정을 짓는 마르탄.

잠시 후.

"예에에에?!"

사무실이 떠나가도록 크게 고함을 질렀다.

19 화

한차례 고성이 사무실을 휘감은 뒤.

"당장은 어렵습니다."

마르탄은 흥분을 가라앉히고 차분 하게 말했다.

내가 원하는 답은 아니었다.

"왜지?"

"B급 게이트 이상을 출입하려면 협회의 인준을 통과해야 합니다."

처음 듣는 말이다.

대꾸하는 대신 마르탄을 지그시 바 라보면서 설명을 요구했다.

"말이 길어질 것 같은데 마실 것 좀 드시겠습니까?"

"아이스 아메리카노. 조금 연하게 줘."

잠시 후 정장 차림의 미인이 사무 실 안으로 들어왔다.

"자. 여기요."

쾅-

컵에 담긴 얼음이 위태롭게 부딪친 다. 꽤 거친 손속이었다.

'아까 혼자만 빠져나와서 기분 상 했나 보군.'

마르탄의 오른팔.

지금은 내 담당으로 되어있는 여 인, 엘리였다.

기자들한테 밀어 넣다시피 하고 나 혼자 성간 연합 건물 안으로 들어갔 으니, 기분이 편치는 않으리라.

피식, 가볍게 웃으면서 빨대로 커 피를 들이마셨다.

반면 마르탄은 우아한 자세로 진하 게 우려낸 홍차를 천천히 마셨다.

'엄청 안 어울리네.'

드워프 하면 맥주를 벌컥벌컥 마시 면서 거품을 수염에 다 묻혀야 하는 거 아닌가?

홍차라니. 쓸데없이 고상한 취미를 가지고 있네.

마르탄은 적당히 목을 축인 뒤 중 단했던 이야기를 이어갔다.

"게이트 할당의 최종 결정권은 협 회에 있습니다."

게이트 관할은 헌터 협회의 몫이

다.

「차원 경보 시스템」, 일명 DOS 를 운영하여 세계 각지에서 게이트 가 나타나는 것을 감지하고 공지한 다.

게이트는 미지의 가능성을 품은 외 부 공간.

무사히 공략할 수만 있다면 많은 재화를 얻을 수 있다.

"각 길드들은 조금이라도 더 많은 게이트를 할당받으려고 힘을 쓰고 있죠."

게이트 탐지 기계를 사용하면 들어 가지 않아도 내부 지형과 괴물 유형

을 얼추 파악할 수 있다.

희귀한 자원을 내포하는 지형, 혹 은 괴물이 나오는 게이트는 길드들 의 제1 우선순위였다.

"그게 나랑 상관이 있는 건가?"

"입찰 과정에서 잡음이 발생하면서 협회가 공략 기준을 정해버린 겁니 다."

협회에서는 고등급 게이트 출입 조 건을 제시했다.

-D등급 게이트 40회 이상 공략.

-C등급 게이트 30회 이상 공략.

게이트 공략 경력이 쌓인 베테랑

헌터에게만 B급 이상 게이트를 공 략할 수 있게 만든 것이다.

"저 조건을 충족시킨 헌터들만 게 이트 공략에 편성할 수 있습니다."

"길드 차원에서도 안 되는 것이 고?"

"예. 그리고 연합 내에서 당장 할 당받은 B급 게이트가 없기도 합니 다."

이러니저러니 해도 안 된다는 이야 기다.

쳇-

나는 빨대로 먹다 남은 커피를 휘 저었다.

달그락달그락. 얼음이 부딪치면서 나는 소리가 고요해진 사무실 가운 데 울려 퍼졌다.

'횟수가 너무 많아.'

터무니없는 공략 횟수.

게이트를 매일 공략해도 두 달 이 상 걸린다.

"다른 방법은 없는 건가."

무심코 내뱉은 말.

뒤에 있던 엘리가 기대하지도 않은 답을 꺼냈다.

"흠흠, 그건 제가 설명해드릴게요. 실은 협회 인준을 받는 방법이 하나

더 있어요."

"뭔데?"

귀가 솔깃했다.

엘리는 마르탄과 나를 번갈아 보더 니, 조심스러운 투로 입을 열었다.

"협회의 A급 헌터와 대련을 하는 거예요."

米 >k 米

헌터 협회.

UN과 맞먹는 권한을 가진 범세계

적 국제기구이다.

대격변 이후 괴물과 싸울 힘을 얻 은 각성자, 일명 헌터들이 세계 곳 곳에서 나타났다.

게이트와 탑. 그리고 헌터의 등장.

헌터들을 규합할 국제기구의 출현 은 당연한 일이었다.

"사진으로만 봤는데. 내가 여기 올 줄이야."

나는 감탄사를 내뱉었다.

헌터 협회 본부.

구) 과천 종합청사에 들어선 건물 이다.

구 종합청사 단지에는 본부 건물 외에도 협회 관련 전문 기구의 건물 들이 들어서 있다.

엘리가 놀란 기색을 띠었다.

"협회에 오신 게 처음이세요?"

"나 각성한 지 한 달도 안 됐어."

"하긴. 그렇죠. 너무 빨리 강해지시 니까 잊고 사네요."

샐쭉 입술을 내미는 엘리.

뭇 사람들의 애간장을 녹일 만큼 매력적인 모습이지만.

나는 전혀 신경 쓰지 않고 협회 건물을 바라봤다.

"민철 헌터는 협회 본부가 왜 한국 에 들어선지 아세요?"

"아니. 모르는데."

"호호, 바로 탑 때문이에요."

" 탑?"

엘리가 말하는 '탑'을 가리키는 것 은 하나뿐이다.

1차 대격변 때 서울에 나타났던 거대한 구조물. 정식 명칭은 [시련 의 탑]이지만 다들 줄여서 탑이라고 부르고 있다.

"탑은 여러 차원에서 주시하고 있 으니까요. 지구인들도 그 중요성을

깨닫고 한국에 협회 본부를 설립한 거죠."

"다른 차원의 주민인 네가 나보다 도 더 잘 아는 것 같은데?"

"호호. 정보는 상인에게 돈이 된답 니다."

입을 가리고 웃던 엘리.

돌연 웃음기를 싹 지우고 나를 바 라봤다.

"정말로 협회 인준 시험을 치르실 건가요?"

"당연하지."

"민철 헌터는 각성한 지 아직 한

달도 안 됐잖아요."

조금 전에 한 말을 이렇게 돌려주 네?

"해볼 만하니까."

그 말을 툭 던지고는 앞으로 나아 갔다.

협회 인준 시험 기준은 A급 헌터 를 이기는 게 아니다.

대련을 벌여서 합격선을 받아내는 것.

'사생결단도 아닌데 할 만하지.'

오만이 아니다.

심상세계에 넘쳐흐르는 혼돈기.

새로 얻게 된 장비.

그리고 전생에서 쌓은 수많은 경험 과 지식.

주어진 모든 것을 동원하면 A급 헌터를 이기지는 못해도 엇비슷하게 맞추어 갈 자신이 있었다.

"민철 헌터. 어디로 가야 하는지 알고 계세요?"

"...아니."

걸음을 멈췄다.

엘리는 풋, 웃더니 앞장섰다.

협회 인준 시험은 본부 건물에서 멀찍이 떨어진 연습장에서 진행된

다.

시험이 시작되기 전.

협회 직원이 인준 시험에 대해 설 명했다.

"인준 시험은 협회 소속 A급 헌터 와 대련을 벌여서 합격 여부를 결정 합니다."

"상대를 쓰러트리면 합격인가?"

"재밌는 농담을 하시는군요. 시험 합격 여부는 심사관님이 결정하실 겁니다."

"채점 기준을 알고 싶은데."

"그건 비공개라서 저도 알지 못합

니다."

입을 싹 다무는 협회 직원.

더 물어봐도 대답을 듣기는 어려울 것 같다.

엘리가 귓가에 대고 속삭였다.

-기초능력과 순발력, 그리고 위기 시 상황 판단능력이 주요 채점 목록 이래요.

참 유능한 파트너다.

나는 그녀의 말을 못 들은 척 살 짝 고개를 끄덕이는 것으로 대답을 대신했다.

"시험 준비가 끝났다고 합니다. 안

쪽으로 입장해주십시오/

저벅- 저벅-

자로 뻗은 통로를 쭉 걷자 통짜 쇠로 된 문이 나왔다.

문을 미는 순간, 연습장 내부의 모 습이 한눈에 들어왔다.

야트막한 언덕이나 바위, 나무 등. 연습장 내부는 게이트 내부를 나름 대로 재현해놓은 모습이었다.

연습장 안에는 사내 한 명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민철 헌터. 다시 뵙는군요."

"당신은...

놀랍게도.

시험관은 이미 한 번 본 사람이었 다.

정성희.

며칠 전 게이트 브레이크 사건 때 상황을 수습하러 왔던 협회 소속 요 원이었다.

米 米 米

정성희는 헌터 인준 시험 대상자를 바라봤다.

구면이다.

전민철. '00동 게이트 브레이크' 사 건을 해결한 일등 공신이다.

'그때 그가 나서지 않았다면 피해 가 컸겠지.'

DOS 체계도 잡아내지 못했던 급 속 게이트 출현.

검은색 게이트는 곧장 게이트 브레 이크를 일으키면서 괴물들을 현실로 불러냈다.

그때 민철의 활약 덕분에 인명피해 없이 브레이크 사태를 무마시킬 수 있었다.

'하지만 공은 공, 사는 사다.'

보안부에서 대기 중인 A급 헌터는 정성희뿐이었다.

얄궂은 일이지만, 정성희는 이런 일에서 사적인 감정에 휘둘리지 않 았다.

반면 민철의 눈동자에는 흥미가 감 돌았다.

'정말로 A급이었군.'

살짝 닿았을 때 느꼈던 정련된 마 나.

상당한 수준의 헌터라고 생각했는 데 A급이었다.

이길 수 있을까?

아니.

가능성을 생각하는 것은 무의미하 다.

비록 게이트 출입 자격을 시험하는 대련이지만. 민철은 쉬엄쉬엄 싸울 생각이 전혀 없었다.

'전력을 다하는 건 이번 생에서 처 음이군.'

히죽.

입가에 웃음이 감돌았다.

헌터 시험에서 [푸른 파수꾼]을 쓰 러트릴 때도.

'흑의 삼연성'이라는 웃기지도 않

은 녀석들을 쓰러트릴 때도.

질 거라는 생각은 하지 않았다.

이길 수 있기에 싸운 것뿐.

지금 마주하고 있는 정성희는 여태 싸웠던 이들하고는 차원이 달랐다.

민철은 진실의 눈으로 정성희의 능 력치를 살펴봤다.

과연 A급 헌터라고 해야 할지.

시험에서 마주했던 여물지 않은 이 들과는 달리, 완성된 능력치를 보유 했다.

상대는 A급 헌터. 민철의 수준을 월등히 뛰어넘는 상대였다.

'처음으로 모든 걸 쥐어짜 낼 수 있겠어.'

투쟁을 업으로 삼는 투마의 혼.

결코, 꺼지지 않는 투쟁심이 민철 의 마음에 불을 질렀다.

"협회 보안부 소속 A급 헌터, 정성 희입니다. 이번 인준 시험의 시험관 을 맡게 되었습니다."

"전민철입니다."

서로 묵례를 하며 가볍게 인사를 나누었다.

살짝 숙였던 고개를 위로 올린 순 간.

민철은 대뜸 입을 열었다.

"그때 내가 어떻게 괴물들을 쓰러 트렸는지 궁금했죠?"

게이트 브레이크 사건 수습을 위해 만났을 때. 정성희가 놀랐던 것을 꼬집는 말이었다.

정성희는 부정하지 않았다.

"각성 검사 때 E랭크를 받은 분이 대단하다고 하긴 했었죠."

"오늘 보여드리면 되겠네요."

민철은 당당했다.

A급 헌터인 정성희를 앞에 두고 도, 위축되는 모습을 볼 수 없었다.

"자신만만한 모습, 좋습니다. 부디 실력으로 증명해서 시험을 통과하길 바랍니다."

정성희는 웃음기를 지웠다.

헌터 인준 시험에서 사적인 감정을 배제하겠다는 의지였다.

스르릉-

길이가 다른 검 두 자루가 칼집에 서 뽑혀 나왔다.

오른손으로는 90센티 길이의 바스 타드 소드를 쥐었고.

왼손에는 60센티 길이의 곡도(曲 刀)를 들었다.

민철의 눈가에 이채가 감돌았다.

'이검류, 아니. 검과 도를 동시에 다루는군.'

검과 도는 사용 방법이 다르다.

검은 양쪽 날을 모두 세워서 찌르 기와 베기를 동시에 할 수 있지만, 도는 한쪽 날만 세우고 끝을 없애서 베기에만 적합했다.

용도가 다른 두 무기를 동시에 다 룬다?

'꽤 까다롭겠어.'

생각과는 달리 입술은 호선을 그렸 다.

투마의 혼은 언제나 강한 상대와의 싸움을 갈구한다.

상대가 강하고 까다로울수록 더욱 거세게 타오르는 것이 투마의 본질 이었다.

'우선 탐색전부터 가보자고.'

민철은 무기의 형태를 상상했다.

[다크 스타 - 창]

손등에 있던 팔찌가 사라지고, 동 시에 검은 창이 나타났다.

민철은 양손으로 창대를 쥐었다.

"응시생. 준비는 되었습니까?"

"보다시피."

창을 까딱이는 걸로 대답을 대신했 다.

무례한 모습이지만, 민철에게 호감 을 품은 정성희는 크게 개의치 않았 다.

"그럼 헌터 인준 시험을 시작하겠 습니다."

시작 선언과 동시에 민철의 발이 미끄러지듯 지면을 빠르게 밟았다.

파밧!

흑색 창이 빛살처럼 쏘아진다.

거의 동시에, 정성희의 왼손에 들 린 곡도가 꿈틀거렸다.

캉!

곡도의 끝이 창대를 쳐내서 궤도를 틀어 냈다.

정성희는 공격을 쳐낸 것으로 만족 하지 않았다.

"주는 게 있으면 가는 것도 있는 법."

왼발을 앞으로 내밀면서 상체를 기 울이고, 쥐고 있던 바스타드 소드를 쭉 뻗었다.

바스타드 소드는 비어있는 민철의

가슴팍을 노렸다.

[다크 스타 - 청강검]

튕겨났던 흑색 창이 검은 연기와 함께 사라지면서 민철의 빈손에 검 이 나타났다.

째앵-

검과 검이 충돌하면서 날카로운 금 속음이 울렸다.

정성희는 공격이 무위로 돌아가자 곧바로 검을 뒤로 빼더니 검과 도를 동시에 휘둘렀다.

"이건 막아낼 수 있을까?"

검과 도가 쏟아내는 수십 번의 참 격.

민철은 거리를 조금 벌리고 다시 한번 다크 스타를 창으로 변형, 연 속적으로 쏟아지는 참격을 쳐냈다.

인준 시험을 지켜보던 엘리는 감탄 사를 터트렸다.

"민철 헌터의 실력이 이 정도였을 줄이야."

A급 헌터의 손속은 자비가 없었 다.

싸움에 문외한인 그녀의 눈에도,

정성희의 연속 공격은 날카로웠다.

보고 있는 것만으로도 소름이 돋는 공세.

민철은 입을 꾹 다문 채로 묵묵히 정성희의 공격을 쳐내거나 흘려보냈 다.

5분이 지났다.

두 사람은 여전히 공세를 주고받았 다.

'이 정도면 인준 시험을 통과하는 건 따 놓은 당상이야!'

엘리는 주먹을 꽉 쥐었다.

코드 R의 주인.

VIP 의 아바타.

상관인 마르탄은 민철을 VIP와 동 일하게 여겨서 어렵게 대했지만, 그 녀는 달랐다.

오직 보이는 대로 인간 '전민철'을 대했다. 그렇기에 민철의 시험 합격 을 진심으로 응원했다.

챙!

돌연 민철이 크게 창을 휘둘렀다.

강한 힘으로 정성희의 공세를 물리 고는 뒤로 물러났다.

두 사람의 거리는 30미터.

근접전을 벌이기에는 상당히 먼 거

리였다.

정성희는 진심으로 감탄했다.

'내 공격을 어렵지 않게 막아냈어.'

헌터 인준 시험.

전력을 다한 것은 아니다.

하지만 정성희가 쏟아낸 공격은 잠 재력을 모두 개방한 B급 헌터라도 받아내기 어려운 수준이었다.

그걸 민철이 막아낸 것이다.

"대단하군요. 00동 게이트 브레이 크를 홀로 막아냈다는 게 이해 가...

"당신."

차가운 목소리가 정성희의 말을 잘 라냈다.

민철의 눈동자는 대련 동안 한 번 도 볼 수 없었던 흉흉한 살의로 번 들거렸다.

"당장 전력으로 덤벼. 안 그러면 죽여 버릴 거다."

화아악!

혼돈기가 민철이 뿜어낸 살의에 반 응하면서 거칠게 일렁였다.

20 화

[성천조계공이 활성화됩니다.]

[혼돈기의 영향으로 혼돈력을 제외 한 능력치가 40% 상승합니다.]

[초당 2의 혼돈기가 소모됩니다.]

콰콰콰-!

혼돈기가 거친 기세로 전신을 순환 했다.

당황한 기색이 역력한 정성희.

나한테는 그 낯짝이 가증스럽게만 느껴졌다.

'감히... 여유를 부려?'

다른 사람의 눈은 현혹시킬 수 있 겠지만.

내 눈은 속일 수 없다.

[진실의 눈].

플레이어 특성을 각성하면서 얻은 특전 스킬 덕분이었다.

정성희

종족 : 인간 / 나이 : 31 적성 : 검, 도

근력 : 190(190)

민첩 : 175(175)

맷집 : 160(160)

체력 : 160(160)

마력 : 155(155)

* 특성

세븐 소드[A]

검술의 달인[A]

쌍검술 [B]

[진실의 눈]으로 본 정성희의 능력 치다.

근력과 민첩은 내 스탯의 4배를 상회했고, 그나마 마력(혼돈력)이 1.5배 정도 차이 났다.

정성희가 전력을 다했다면 검격을 쳐내기는커녕 흘려보내기도 버거웠 을 것이다.

'기교니 뭐니 해도 힘이 압도적이 라면 저항할 수 없지.'

5분 동안의 싸움.

나는 성천조계공도, 무공도 일체 사용하지 않았다.

오직 순수한 기교와 기량으로 정성 희의 공세를 쳐냈다.

가능하냐고?

'그럴 리가 있냐!'

저놈은 나를 상대하면서 손속에 여 유를 둔 것이다.

감히 자비를 베푼다?

몸뚱이는 인간이지만.

내 영혼은 '전민철'과 '데이모스'의 자아정체성을 동시에 가지고 있다.

나는 전민철이며 동시에 투장 데이 모스인 것이다!

'그런 나를 시험하려 든다고?!'

콰아아아!

혼돈기가 솟구치는 살심에 영향을 받아서 마구 들끓었다.

"저... 응시생. 뭔가 오해가 있는 것 같은데."

"아까 한 말은 진심이다. 전력을 다해라."

경고는 끝났다.

지는 건 두렵지 않다.

전생 때는 투장의 자리에 오르기까

지 수많은 전투를 벌였고, 수없이 패배했다.

그럼에도 정점의 자리에 오른 것은 언제나 꺼지지 않고 활활 타오르는 '투쟁의 혼' 덕분이었다.

저 녀석은 내가 쌓은 영혼의 업을 무시했다.

정성희는 몇 번 입술을 달싹이더니 한숨을 내쉬었다.

"알겠습니다. 지금은 어떤 말을 해 도 소용이 없을 것 같군요."

휘이익-

구석에 있던 칼 하나가 빨려들 듯 정성희의 곁으로 날아왔다.

"세븐 소드. 그게 제가 가진 능력 입니다."

[세븐 소드]

도검 일곱 자루를 다룹니다. 각 무 기의 능력을 최대로 끌어올리고, 의 념대로 검을 다루어 공간의 제약 없 이 자유자재로 다룰 수 있습니다.

이미 알고 있는 내용이다.

중요한 건 정성희가 스스로의 능력 을 밝혔다는 사실이다.

진심을 다하겠다는 의지를 내비친

것이다.

"좋다."

나는 씩 웃었다.

[운류보를 사용합니다.]

[이동속도가 50% 증가합니다』

[초당 2의 혼돈기가 소모됩니다.]

혼돈기를 발에 실으면서, 곧장 바 닥을 박찼다.

삼십 미터라는 거리가 눈 깜짝할 사이에 좁혀졌다. 놀란 기색을 띠는

정성희를 향해 곧장 창을 내질렀다.

[악가창법 - 쇄격을 사용합니다.]

[혼돈기 8을 소모합니다.]

흑색 기운을 휘감은 창날.

살의를 담은 쇄격이 폭발적인 기세 로 정성희의 심장을 향해 쏘아졌다.

우우웅-!

세 번째 검이 공명음을 일으켰다.

보이지 않는 손이 잡아 이끌 듯 반원을 그리면서 급소를 노리는 창

날을 쳐냈다.

채앵-

창대를 잡은 손목이 저릿저릿하다.

'그래. 진즉에 이랬어야지.'

나는 웃었다.

무공을 십분 활용해도.

혼돈기를 운용해도.

A급 헌터는 지금의 내가 넘을 수 없을 만큼 높은 벽이었다.

그렇기에.

더 도전할 가치가 있는 법이다.

"저를 두 번이나 놀라게 하는군

요."

정성희는 말과 달리 각오를 다진 듯 굳은 표정을 지었다.

"더 놀라게 될 거다."

창을 회수하면서 발을 앞으로 내디 뎠다.

그 안쪽은 정성희의 공간.

바스타드 소드와 곡도가 동시에 휘 둘러지면서 공간 자체를 제압하려 했다.

이전과는 다른 참격의 속도.

정성희도 진심이었다.

'한 번.'

놈의 거리에서 공격을 피할 수 있 는 횟수였다.

운류보를 운용하면서 몸을 크게 비 틀었다.

연체동물처럼 기묘한 자세. 덕분에 정성희의 공격을 흘려보낼 수 있었 다.

운류보에 있는 '자세 보정' 효과를 믿고 벌인 신기였다.

동시에 다크 스타를 장도(粧刀)로 변형했다.

[화화단도술 - 화조풍월을 사용했

습니다.]

[혼돈기 5를 소모합니다.]

품속으로 파고들면서 날린 일격.

그때, 정성희의 품속에서 무언가가 꿈틀거렸다.

갑옷 사이로 나온 것은 내 단도와 비슷한 크기의 검이었다.

세븐 소드.

정성희가 다루는 네 번째 칼이었 다.

단검은 화화단도술의 묘리를 실은 장도를 가볍게 쳐냈다.

"제길."

검 일곱 자루라고 하더니.

품속에서 튀어나올 줄은 몰랐다.

'염동력의 한 종류인가?'

나는 고개를 저었다.

단순히 염동력으로 검에 이만한 힘 을 실을 수 있다면. 굳이 '검'을 사 용하지 않아도 된다.

정성희의 특성과 관련된 것이 분명 했다.

운류보를 운용해서 뒤로 물러났다.

파팟!

정성희가 자리를 박차면서 곧장 내 뒤를 쫓았다.

'과연 빠르군.'

민첩 170의 순발력과 속도.

성천조계공으로 신체 능력을 증대 시키고 운류보를 사용해도 정성희의 속도보다 뒤처졌다.

괜찮다.

내게 필요한 건 내력을 이끌어 낼 잠깐의 시간.

[다크 스타 - 대도(大刀)]

극성으로 끌어올린 혼돈기를 흑색 도신에 불어넣었다.

현재 내가 펼칠 수 있는 최강의 무공. 오호단문도였다.

[오호단문도를 사용합니다.]

[혼돈기 150을 소모합니다.]

칠흑색 기운이 도신에 맺혔다.

미완성의 무공이지만 마력보다 훨 씬 강력한 혼돈기를 기반 삼은 덕분 에 위력만 놓고 보면 완성된 도기 (刀氣)를 뛰어넘었다.

파츠츠츠!

푸른빛이 바스타드 소드와 곡도를 휘감았다.

검기와 도기.

다크 스타를 휘감고 있는 불안정한 기운과는 다르게 훨씬 안정된 모습 이었다.

'미친. 마력을 유형화시킬 줄도 알 았나?'

칠흑과 푸른빛이 충돌했다.

위력은 백중세!

정성희의 전력이 실린 공격을 처음 으로 받아내는 데 성공했다.

세 번째 검이 빈틈을 파고들었다.

"하아압!"

젖 먹던 힘까지 쥐어짜 냈다.

채앵!

오호단문도의 도기를 극성으로 끌 어올려서 검과 도를 밀어냈다.

동시에 도를 크게 휘두르면서 흑색 기운을 개방, 그 여파로 세 번째 검 을 가까스로 쳐냈다.

"끝이 아닙니다."

뒤따르던 네 번째 검.

칼끝이 나를 향했다.

제길.

오호단문도를 무리하게 전개한 반 동이 몸을 덮쳤다.

도를 더 휘두를 여력도, 피할 수도 없었다.

카가각!

칼날 끝이 어깻죽지에 박혔다. 충 격과 함께 요란한 마찰음이 울려 퍼 졌다.

'버텨내기만 하면 반격할 수 있다.'

검 세 개를 쳐냈다.

거리만 좁히면, 다시 오호단문도를 펼쳐서 정성희를 몰아붙일 수 있다.

이를 악물고 제자리에서 버텼다.

쾅!

파공음이 고막을 강타했다.

공중에 치솟은 몸.

하늘을 떠다니는 느낌이 잠깐 들었 으나, 금세 지면으로 추락했다.

타당.

10미터 넘게 날아가서 바닥을 나 뒹굴었다.

젠장. 바닥 한번 더럽게 딱딱하네. 전신이 지압 안마라도 받은 것처럼 쑤셨다.

통증에 정신이 없었지만 바로 일어

나서 자세를 잡았다.

그때.

"응시생. 어떻게 그 공격을 받고도 멀쩡한 겁니까?"

경악으로 가득 찬 정성희의 목소리 가 머리를 시끄럽게 울렸다.

米 米 米

"퉤."

나는 피가 섞인 침을 뱉었다.

세 번째 검에 실린 힘이 너무 세

서 내부가 진탕되었다.

하지만.

칼에 찔린 어깨는 무사했다.

어깨의 근육이 찢어질 듯 아팠지 만, 잘리지는 않았다.

'무기를 휘두를 수 있기만 하면 돼.'

왼손을 쥐었다 폈다.

불로 지지는 것 같은 고통이 들었 지만. 다크 스타를 휘두를 수는 있 었다.

그거면 충분했다.

'이게 아니었으면 팔 한쪽은 날아

갔겠어.'

나는 반쯤 찢긴 가죽을 힐끔 쳐다 봤다.

[탄로스의 약속 - 내장 스킬 : 하 드 아머를 사용합니다.]

[혼돈기 150을 소모합니다.]

칼에 찔리기 직전, [탄로스의 약 속] 갑주에 마력을 불어넣어 내장 스킬을 사용했다.

하드 아머

분류 : 마법

등급 ' C

제한 : 탄로스의 약속 내장 스킬.

사용자의 마력을 소모해서 방어구 의 물리 방어를 강화시킨다.

혼돈기는 마력의 상위호환.

같은 양이면 두 세배의 효과를 지 닌다.

그런데도 검격에 실린 힘을 완전히 상쇄시키지 못했다.

'버티지 않는 게 최선이었다.'

나는 세 번째 검이 어깨를 꿰뚫지 못하고 막혔을 때 몸을 지탱하던 다 리의 힘을 풀어냈다.

칼에 실린 힘의 반동에 밀리면서 내상을 입었지만. 그 덕에 정성희의 공격 범위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격돌의 짧은 순간.

수많은 투쟁을 겪으면서 쌓아 올린 전투 본능이 상대의 힘까지 역이용 해서 위기를 벗어난 것이다.

정성희도 그 사실을 알아챈 모양이 다.

"응시생. 당신은 도대체...

"쳇."

나는 대꾸하는 대신 혀를 찼다.

'역시 강하다.'

스탯 차이를 숫자로 보는 것과 직 접 겪어보는 건 이야기가 달랐다.

성천조계공을 운용해도 세 배 정도 차이가 났으니.

A랭크 무공, 오호단문도를 펼쳤는 데도 동수를 이루는 것에 그쳤다.

'더 강한 무공이 필요하다.'

비기는 것으로는 부족했다.

손속에 자비를 베풀었던 저 심사관 에게 한 방 먹여줘야 속이 풀릴 것

같다.

나는 눈을 감았다.

검게 물든 세계.

환한 불꽃이 온통 어둠밖에 없는 공간에서 피어올랐다.

전생의 내가 쌓아 올린 모든 것.

바로 투쟁의 업이다.

'업'이란 생명이 태어나서 죽기까 지 행한 모든 일을 가리키는 말이 다.

나는 높게 쌓아 올린 투쟁의 업 중 일부를 현생으로 끄집어냈다.

칠성마검.

마교의 기나긴 역사 가운데에서 손 꼽힐 만큼 강맹한 무공이다.

적 앞에서 동작을 반복해서 검술을 체득할 시간 따윈 없다.

나는 쌓아둔 업 일부를 몸에 그대 로 받아들였다.

부들부들-

열병에 걸린 것 마냥 몸이 떨렸다.

흰개미가 온몸에 달라붙어서 몸을 뜯어먹는 감각이 이러할까.

전생의 업을 준비 과정 없이 억지 로 이끌어 내려 하니 곧장 부작용이 전신을 휘감았다.

'버텨야 한다.'

입을 꽉 다물었다.

전신을 뒤덮었던 고통이 점점 사라 져간다.

[칠성마검을 습득했습니다.]

[칠성마검]

분류 : 무공

등급 : S

제한 : 마력/혼돈력을 다루는 자

일곱 번의 검격에 하늘의 이치를

담았다고 전해지는 검술이다.

검마 서류민의 독문 무공이며, 본 래 칠성검이라고 불렸으나 그가 마 교에 투신한 뒤 마교의 무공과 결합 하여 위력을 증대시켰다.

시스템의 음성이 이렇게 반가울 수 가 없었다.

마침내 전생의 업을 받아들여서 무 공을 몸에 정착시켰다.

번쩍!

감았던 눈을 떴다.

정신세계에서 보낸 시간은 찰나.

몸을 뒤덮었던 끔찍한 고통은 짧은 악몽을 꾼 것처럼 전혀 느껴지지 않 았다.

정성희와 눈이 마주쳤다.

스르릉-

레이 피어 하나가 추가로 나타났 다.

총 다섯 자루. 둘은 손에 쥐고 있 고, 나머지 검 세 개는 그의 주위를 빙빙 돌았다.

"미안합니다. 챙겨온 검은 이게 전 부라서 100%의 힘을 낼 수는 없겠 군요."

검 하나마다 실린 흉흉한 마력.

무형의 기운이 바늘처럼 피부를 쿡 쿡 쑤신다.

녀석은 적어도 현재의 '전력'을 다 한다는 약속을 지킨 셈이다.

나도, 정성희도.

이제껏 사용하지 않았던 최후의 비 기를 꺼낼 순간이라는 사실을 감으 로 깨달은 것이다.

"충분하다."

씩 웃었다.

피부를 아리게 하는 살의.

전력을 짜내어서 마주해야 하는 강

대한 적.

이게 바로 내가 원하는 것이다.

[다크 스타 - 칠성검]

나는 검마가 사용했던 칠성검을 다 크 스타로 재현해냈다.

형태만 갖추었을 뿐, 아직 업을 쌓 지 못해서 본래의 보물이 가진 신비 에 비해서는 약했지만.

내게 필요한 것은 '칠성마검'을 극 대화시킬 수 있는 형(形) 자체였다.

검을 수납하듯 허리춤 옆에 비스듬

히 내렸다.

다크 스타 일부가 변형되어서 칼집 으로 변했다.

양쪽 다리를 약간 벌리면서 무릎을 굽히고, 상체를 살짝 숙였다.

오른손으로는 칼자루를 쥐고 왼손 으로는 칼집을 슬며시 잡았다.

폭풍 전 고요.

먼저 움직인 것은 정성희였다.

"칼날이여. 울부짖어라. 칼날 폭 풍!"

푸른빛을 휘감은 바스타드 소드와 곡도. 이어서 등 뒤에 따라붙은 검

세 자루도 차례차례 힘을 해방했다.

칼날로 된 수천 개의 바람은 연습 장의 바닥, 나무, 돌 등 닿는 것을 가리지 않고 모두 잘라냈다.

그야말로 검의 폭풍이었다.

회전검이 만든 압도적인 파괴의 파 동.

광범위하게 펼쳐진 폭풍이 나를 압 박해온다.

스르릉-

나는 칼집에서 검을 뽑았다.

검마의 성명절기.

초인의 경지에 닿은 무공, 칠성마

검의 1초식이 지구에서 처음으로 모 습을 드러냈다.

21 화

콰콰콰콰콰!!

흑색 기운, 미처 갈무리되지 않은 혼돈기가 칼날 너머까지 솟구쳤다.

[칠성마검-1초식을 사용합니다.]

[혼돈기 400을 소모합니다.]

-첫 번째 별을 떨어트리다.

칠성마검 1초식, 낙일검.

육 미터에 달하는 흑색 검기는 검 이라는 매개체를 벗어난 탓에 거칠 게 일렁였다.

육신과 정신의 부조화.

미완성된 '그릇'으로 펼치는 무공 이기에, 완벽하게 기운을 통제할 수 없었다.

더욱이 검기를 형성하고 있는 것은 마력보다 훨씬 더 강력하고 통제하 기 어려운 혼돈기다.

나는 그 막대한 기운을 정면으로 휘둘렀다.

사선으로 그어지는 검은 광선.

칠흑의 검과 칼날 폭풍이 부딪치는 순간.

콰아앙-

세상이 찢겨나가듯 커다란 폭음과 함께 충격파가 퍼져나갔다.

바람 칼날 수천 개가 다크 스타를 두들겼다. 칼날과 검기가 부딪치는 순간 불똥이 사방으로 튀었다.

서걱!

베이는 것은 칼이 아니라 바람이었

다.

폭풍이 반쯤 찢기자, 정성희가 손 을 휘저었다.

검 세 자루가 회전을 멈췄다.

잦아든 바람.

검풍을 만드는 대신 힘을 집중시켜 서 내 발검을 받아내는 것을 선택한 것이다.

'별을 떨어트린다는 의미를 알려주 마.'

나는 혼돈기에 의념을 실었다.

콰콰콰콰!

더욱 거세게 타오르는 혼돈기.

불완전하지만 검의 형태를 유지한 채로, 가로막는 것을 모두 부숴버리 는 파괴의 힘이 발현되었다.

챙강!

금속이 깨지는 소리와 함께.

다섯 번째 검의 벼려진 면이 균열 을 일으켰다.

한 번 생긴 균열은 고요한 호수에 파문이 이는 것처럼 수십 개의 균열 로 이어졌다.

산산이 부서지는 칼날.

곧이어 세 번째, 네 번째 검도 위 태롭게 흔들리기 시작했다.

정성희의 얼굴에 다급함이 감돌았 다.

돌진을 멈추고 양손에 든 바스타드 소드와 곡도를 휘둘러서 낙일검을 막아냈다.

카가각-!

움직임을 멈추고 검을 받아내는 정 성희.

반대로 혼돈기를 전개해서 베어내 려는 나.

환하게 빛나는 푸른빛과 세상을 집 어삼키려는 칠흑이 충돌했다.

챙강! 챙강!

충격이 누적된 검 두 자루가 연이 어 부러졌다.

정성희가 쥐고 있던 바스타드 소드 와 곡도에도 미세한 균열이 하나둘 생기기 시작했다.

나는 입술을 지그시 깨물었다.

'일격으로는 얕다.'

칼날 폭풍을 거의 파훼했지만.

그 대가로 낙일검의 힘을 대부분 소진했다.

거칠게 일렁이던 흑색 검기가 빠르 게 사그라졌다.

'두 번째 초식을 전개해야 한다.'

칠성마검 2초식, 유성검(流星劍).

출수를 막아낸 상대를 쉬지 않고 몰아붙이는 쾌검(快劍)이다.

잔여 혼돈기는 약 400.

2초식을 제대로 펼치기에는 아슬아 슬한 양이었다.

나는 검을 움직이려 했다.

울컥.

피 한 덩이가 식도를 타고 역류했 다.

아까 입은 내상이 도진 것이다.

육신의 한계를 뛰어넘은 무공.

단 일 검이지만.

그걸 펼쳐내는 몸뚱이가 검격에 실 린 심득과 혼돈기의 무리한 운용을 더 이상 버텨내지 못했다.

웩 _

속에서 올라온 핏덩이를 토했다.

본래라면 펼쳐낼 수 없을 상승의 무공을 펼쳐냈다.

한계를 뛰어넘은 대가로 팔과 다리 가 영혼의 통제를 벗어나면서 사시 나무처럼 떨렸다.

"크윽••••••

한 줄기의 신음.

목소리의 진원지는 정성희였다.

그는 지친 기색이 역력했다.

칼끝을 나한테 겨누는 대신 지면에 박아서 지지대로 삼아 몸을 지탱했 다.

그 순간. 억지로 움직였던 몸이 한 계에 달했다.

힘이 빠진 오른쪽 다리가 무너지듯 푹 꺼졌다. 한쪽 무릎을 지면에 댄 채 숨을 돌렸다.

'내가 녀석보다 늦게 쓰러졌으니까 이긴 거다!'

무릎을 꿇은 건 나지만.

먼저 검을 거둔 건 녀석이잖아?

그러니까 내 승리였다.

"괜찮습니까?"

"...남 걱정은."

입을 열 힘도 없다.

나는 억지로 입술을 달싹이면서 힘 겹게 대꾸했다.

"이건 내가 이긴 거다."

"검 일곱 자루를 가져왔으면 제가 이겼을 겁니다."

나와 정성희의 눈빛이 허공에서 마 주쳤다.

큭. 크크크큭!

하하하하!

뭐라 할 것 없이, 나와 녀석의 입 에서 동시에 웃음이 튀어나왔다.

연습장 절반을 날려버린 소동도 지 나갔다.

상황을 수습한 뒤에야, 비로소 협 회에서 헌터 인준을 받을 수 있었 다.

시험을 통과한 헌터에게 주는 증

표입니다."

정성희는 엄지 크기의 메달을 내밀 었다.

협회 인준을 받은 헌터에게 주어지 는 일종의 명예 표창이었다.

나는 표창을 받으려고 손을 뻗었 다.

"아야!"

팔이 후들후들 떨린다.

보다 못한 엘리가 대신 표창을 받 았다.

"다 자초한 거잖아요. 아프다는 소 리 하지 마요."

"아이고. 아픈 걸 어떻게 해?"

"그러니까 누가 그렇게 사고 치래 요'?"

엘리는 눈에 쌍심지를 켜고 나를 쳐다봤다.

분노와 걱정.

상반된 두 감정이 그녀의 눈동자에 아른거렸다.

대련이 끝난 직후, 엘리는 내 상태 를 확인하려고 다급히 뛰어왔다.

연습장 반을 날려버린 격렬한 전 투.

말만 대련이었지. 사실 목숨을 걸

고 벌인 쟁투에 가까웠다.

"내가 못 살아. 이미 합격된 거나 다름없었는데 왜 시험관을 도발해 요!"

쩝.

할 말이 없군.

이렇게까지 할 생각은 없었는데.

정성희의 '힘 조절'이 내 심기를 건드려서 제대로 뚜껑이 열려버렸 다.

"결과가 좋으면 됐지."

"네네. 그러니까 그냥 아픈 대로 계세요."

엘리는 가느다란 손가락으로 내 옆 구리를 쿡 찔렀다.

으어어억!

더럽게 아프다.

비명을 애써 참아내고 엘리를 째려 봤다.

"치료도 안 받으셨잖아요. 아프시 면 바로 힐러 불러드릴게요."

"...됐다."

속으로 한숨을 삼켰다.

칠성마검은 현재의 내 수준으로 흉 내를 내는 것도 어려웠다.

검으로 무 대륙의 역사에 한 획을

그은 검마의 성명절기.

팽가의 오호단문도도 뛰어났지만, 초월의 경지에 이른 검마의 심득을 갈무리한 칠성마검에 비하지는 못했 다.

여물지 않은 몸으로 무리하게 무공 을 펼쳤으니.

지금 내 몸뚱이는 그 대가를 톡톡 히 치르고 있었다.

'어으으. 진짜 엄청 아프네.'

전신 근육이 한계 이상의 힘을 낸 탓에 상당수 손상되었다.

한 발자국을 뗄 때마다 짜릿한 고 통이 척추를 타고 뇌리까지 직행했

다.

포션이나 치유 마법을 받으면 금방 회복될 수 있지만.

나는 엘리의 제안을 거절했다.

[성천조계공의 효과로 신체 능력이 향상됩니다.]

[근력이 0.3 증가합니다.]

[민첩이 0.2 증가합니다.]

[체력이 0.2 증가합니다.]

'무리하게 무공을 펼친 게 오히려

도움이 됐어!'

근육은 손상과 회복을 반복하면서 더욱 탄탄해지고 발전한다.

운동을 하고 나면 근육통이 오는 것도 똑같은 원리다.

칠성마검을 전개한 뒤, 내 몸뚱이 는 그야말로 너덜너덜해졌다.

'성천조계공으로 신체를 강화시키 기에 적합한 상황이다.'

혼돈기가 파열된 근육에 스며들어 서 치유력을 올려주면서 신체를 개 변했다.

우드득, 우득.

내 귓가에만 들리는 소리.

지금 이 순간에도. 내부에서는 혼 돈기를 받아들인 육체가 빠르게 변 화하는 것이 느껴졌다.

영문을 알 리 없는 엘리가 나를 이상하게 쳐다보는 것 빼고는 모든 게 좋았다.

'이제 볼일도 끝났군.'

협회 인준도 받았겠다.

몸만 안정되면 곧장 B급 게이트를 공략할 일만 남았다.

몸을 돌려서 협회를 벗어나려는 순 간.

정성희가 나를 불렀다.

"민철 헌터. 선배 된 입장에서 좋 은 모습을 보여드리지 못했군요."

"됐어. 이제 다 풀었거든."

나는 손을 휘휘 저었다.

정성희한테 남은 앙금은 하나도 없 었다.

이번 대련은 얻은 게 많았다.

A급 헌터의 수준.

그리고 내 육신의 한계가 어느 정 도인지.

검을 휘두르면서 감정까지 동시에 쏟아낸 덕분에 오히려 상쾌하기까지

했다.

정성희는 내 눈을 똑바로 쳐다봤 다.

"이번 대련에서 느낀 것이 많습니 다."

"나랑 관련이 있는 건가?"

"그렇습니다. 먼저... 당신은 앞 으로도 더 강해질 겁니다."

"당연하지."

"그리고 저 또한 멈춰서 있지 않을 겁니다."

응?

이 녀석. 뭔 소리를 하는 거야.

혼자 너무 진지한 표정을 짓고 있 어서 물어보기도 좀 그랬다.

"저도 금방 당신의 뒤를 따라가겠 습니다."

"어, 그래. 뭔지는 모르겠지만 힘내 라."

나는 떨떠름하게 대꾸했다.

왜 이렇게 혼자 하이 텐션인 건 가? 무슨 말인지를 모르겠네.

"그런데... 언제까지 말을 놓으실 겁니까?"

"불만 있으면 너도 놓던가."

나는 한 마디를 내뱉고는 건물을

벗어났다.

米 * 米

마르탄의 일 처리는 확실했다.

그가 장담했던 대로, 헌터 인준을 제외한 나머지는 일사천리로 진행되 었다.

최근 소속 헌터들의 부상으로 게이 트 공략을 나서기 어려운 길드와 타 협, 바로 B급 게이트를 수주해온 것 이다.

협회에서 입찰받은 게이트는 길드

의 상황에 따라 포기하거나 다른 길 드에 양도할 수 있다.

물론 입찰 때에도 수수료를 내야 하기 때문에 공짜는 아니었다.

"제가 누굽니까? 바로 성간 연합의 간부죠."

마르탄은 자신만만하게 웃었다.

다른 길드에서 수주하기 전에 평소 시세보다 높은 값을 지불하고 B급 게이트 공략 권한을 가져왔다.

"그렇게 하면 남는 게 없잖아?"

성간 연합에서 얻는 이득은 내가 게이트 공략에서 얻은 부산물들을 판매하면서 얻는 수수료뿐이다.

"에이. 다 귀빈을 위해서죠."

"연합에서 손해 보는 짓을 다 하다 니. 이상한 녀석이군."

나는 혀를 찼다.

상인이라면 이윤을 추구한다.

성간 연합은 모든 차원을 통틀어서 그 이념을 가장 잘 지키는 곳이다.

그런 곳의 간부라는 놈이 손해를 보는 행동을 해?

이 드워프 녀석은 이상한 곳에서 구멍이네.

"아, 후우우우. 아닙니다."

마르탄은 내 말에 얼굴이 새빨개지

더니 말을 삼켰다.

나는 녀석의 헛짓(?) 덕분에 협회 인준을 받은 지 3일 만에 B급 게이 트를 공략했다.

천호역 로데오거리 부근에 열린 게 이 트.

엘리는 게이트 정보를 일러주었다.

"내부 지형은 툰드라. 꽤 추울 거 예요."

"차가운 곳은 처음인데."

"사막이나 용암 지대처럼 기후가 거친 곳은 공략 난이도가 높아요. 그래서 해당 길드도 무리하게 공략 을 안 한 거고요."

"그들한테는 불행이지만 나한테는 행운이지."

덕분에 쉼 없이 바로 게이트를 공 략할 수 있게 되었다.

내 상태는 만전.

칠성마검의 후유증은 이미 모두 회 복했다.

도리어 성천조계공의 신체 개변 효 과로 더욱 능력치가 상승했다.

휴식 기간을 3일이나 가지니 좀이 쑤셨다.

"몸이 근질근질하군."

"에휴. 추울 텐데 그렇게 들어가도

되겠어요?"

"괜찮아. 추위쯤은 마력을 운용하 면 버틸 수 있거든."

방한 도구는 거추장스럽다.

추위 저항력을 올려줄 수 있는 아 이템을 구하고 갈 시간도 아깝다.

'게이트 공략이 더 늦어지는 건 이 쪽에서 사양이다.'

엘리는 내 생각을 뻔히 읽기라도 한 듯, 한숨을 쉬면서 고개를 저었 다.

"게이트 내부 자료. 여기 있어요."

[천호역 게이트]

등급 : B

지형 : 툰드라

크기 : 4〜5킬로미터.

* 괴물 유형

예티(r)), 프로스트 골렘(r)), 서리 트롤(r)), 눈 요정(C)....

브레이크 기한 : 25시간 17분.

나는 괴물들의 공통점을 발견했다.

"대형 괴물이 많군."

"예. 그래서 포기한 거죠. 날씨에

대형 괴물, 상대하기가 까다로울 걸 요."

"왠지 내가 물먹기를 바라는 것 같 다?"

"착각이겠죠. 전 늘 민철 헌터 편 이랍니다."

입술을 샐쭉 내미는 엘리를 무시하

고 눈을 감았다.

나는 자료에서 나온 괴물들의 이미 지와 전투 방식을 떠올렸다.

정신세계에서 벌어지는 모의 전투.

커다란 괴물의 팔과 다리가 오가고 검광이 번쩍였다.

머릿속에서 벌어진 격렬한 싸움.

승자는 당연히 나였다.

씨익.

기분 좋은 상상에 절로 웃음이 지 어졌다.

경호원이 힐끗거렸다.

"민철 헌터님이 웃으셨군요."

"놔둬요. 좋은 꿈이라도 꾸나 보 죠."

목적지로 이동하는 동안 엘리의 투 덜거림을 배경음 삼아 휴식을 취했 다.

22 화

휘이이잉-!

차가운 바람이 볼을 스친다.

B급 게이트, 천호역 게이트.

게이트에 발을 딛자마자 한기가 휘

몰아치면서 반겨주었다.

[냉기 Lv5에 노출되었습니다.]

[근력 / 민첩 / 체력이 10% 하락 합니다.]

[노출 시간이 길어지면 추가 상태 이상 효과가 적용됩니다.]

'으으. 더럽게 춥군.'

곧장 성천조계공을 운용했다.

혼돈기가 전신을 누비며 냉기를 몰 아냈다.

금세 감각이 정상으로 돌아온다.

상태 이상 해제.

혼돈기가 꾸준히 소모되지만, 성천 조계공의 효과로 회복 속도가 더 빠 르니 상관없었다.

'주변에 적은 없어.'

게이트 주변의 안전을 확보하고 지 원팀을 불렀다.

천호역 게이트로 하나둘 넘어오는 지원팀.

"으으으.... 엄청 춥군."

"추운 곳이나 용암지대는 진짜 싫 단 말이야."

"여긴 다른 곳보다 더 추운 것 같 지 않나?"

다들 한 마디씩 뱉으면서 팔짱을 꽉 꼈다.

한파를 대비해서 장비를 갖주어도 추위에서 완전히 벗어나지는 못했 다.

마력이 섞인 냉기.

단순히 보온장비를 갖춘다고 벗어 날 수 있는 추위가 아니다.

"이, 이보게. 헌터 양반은 안 추운 가? 으으으으...

정영현은 입술을 파르르 떨면서 힘 겹게 말했다.

두터운 털옷과 보온장비로 온몸을

둘러싼 지원팀. 반면 내 모습은 헌 터 인준 때와 차이가 없었다.

"바람도 적당하고 시원하네요."

"젊어서 괜찮은 건지. 으흐, 추워 라."

"아저씨들. 그래서는 제 보조 가능 하겠어요?"

정영현이 고개를 좌우로 저었다.

"일단 게이트 앞에 간이 캠프라도 마련해야 할 것 같네. 몸이 얼어붙 으면 작업도 더뎌질 거야."

"먼저 둘러보고 오죠."

"무리는 하지 말게."

손을 휘휘 젓고는 게이트 안쪽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사박, 사박.

무릎 언저리까지 쌓인 눈발을 헤치 면서 앞으로 나아갔다.

'산간지대지만 나무가 없네.'

게이트 내부는 크고 작은 바위, 그 리고 언덕이 들어서 있다.

혹한의 날씨 때문에 나무가 없어서 시야가 탁 트이는 게 불행 중 다행 이다.

"Krrr!"

철판을 긁는 것 같은 괴성.

소리의 진원지는 머리 위였다.

길게 드리우는 그림자.

[운류보를 사용합니다.]

[초당 2의 혼돈기를 소모합니다.]

콰앙-

커다란 손톱이 내가 조금 전에 서 있던 곳을 할퀴었다.

쌓여있던 눈발이 사방으로 날리고, 손톱이 할퀴고 지나간 지면에는 기 다란 상흔이 새겨졌다.

"krrr

괴물이 입맛을 다셨다.

전고 사 미터의 괴물.

외형은 두터운 흰털로 전신을 뒤덮 어서 마치 눈을 덮어쓴 것 같았다.

나는 [진실의 눈]으로 괴물을 살펴 봤다.

예티

근력 : 120 / 민첩 : 120 / 체력

: 110 / 맷집 : 90

* 특성

냉기의 가히B] / 위장술[C]

* 스킬

혹한의 숨결(c)] / 마구 할퀴기 [C] / 공포의 기습[C] / 순간 도약[D]

'저 덩치에 위장술이라고?'

어이가 없다.

더 놀라운 건 예티의 위장 능력이 제법 효과가 있었다는 것이다.

한순간이지만 성천조계공으로 극대

화된 내 오감조차도 속였다.

'눈 속에 숨어있으면 육안으로 구 분하기 까다롭겠어.'

예티의 덩치는 사 미터.

대형으로 분류될 만큼 크지만 눈이 덮인 지형에서는 위장을 간파하기 어려웠다.

"KRRR!!"

예티가 크게 도약했다.

경신법으로 벌린 거리가 순식간에 좁혀졌다.

양팔을 마구 휘두르는 예티.

손톱에 닿는 것은 바위, 얼음 할

것 없이 모두 찢겨나갔다.

나는 거리를 허용하지 않고 다크 스타를 장창으로 변형, 악가창법의 초식을 펼쳐서 쳐냈다.

카가각.

손톱을 쳐낼 때마다 불똥이 튀었 다.

"이게 전력인가."

할 만했다.

능력치 두 배 차이?

칼보다도 날카로운 손톱?

나한테는 닿지 않았다.

근력 120이라는 수치는 '최대'의 힘을 발휘했을 때의 이야기다.

펀치 머신을 칠 때도 있는 힘껏 치는 거랑 슬쩍 밀 때 포인트가 다 르지 않은가.

악가창법의 특징은 섬전 같은 찌르 기.

예티의 공격을 흘리거나 위력이 최 고점에 도달하기 전에 차단했다.

무리하게 움직여도 운류보의 '자세 보정' 효과로 몸의 밸런스를 유지할 수 있었다.

조금씩 갈라지는 손톱.

흠집 하나 나지 않은 다크 스타와 대조되는 모습이다.

"Kuuuu!"

예티가 입을 크게 벌렸다.

혹한의 숨결. 비장의 수단을 꺼낸 것이다.

'기다리고 있었다.'

[진실의 눈]으로 모든 정보를 살펴 볼 수 있다는 것.

싸우기도 전에 상대의 특성을 파악 할 수 있다는 건 엄청난 능력이었 다.

나는 곧장 운류보를 극성으로 전

개, 녀석이 숨을 내뱉기 전에 옆구 리를 옆쪽으로 돌았다.

저저저적!

혹한의 숨결이 한발 늦게 쏟아졌 다.

예티가 당황한 기색으로 고개를 돌 리며 한기의 방향을 틀었다.

내가 파고든 곳은 놈의 사각.

방향 조절을 해도 혹한의 숨결이 닿지 않는 곳이다.

'협회 기준으로 B급이면 이 정도인 가.'

조금은 긴장했는데.

생각보다 할 만하잖아?

나는 혀로 입술을 핥았다.

콰콰콰콰!

혼돈기가 대도로 변한 다크 스타를 휘감았다.

팽가의 오호단문도.

도에 맺힌 도기가 전보다 한결 안 정적인 모습이다.

나는 제 자리에서 도약, 예티의 목 덜미를 일격에 베어냈다.

머리를 잃은 예티의 몸뚱이는 몇 번 비틀거리더니 지면에 쿵, 하고 쓰러졌다.

-경험치 2.7%를 획득했습니다.

와!

너무 놀라서 비명을 지를 뻔했다.

예티 한 마리가 주는 경험치는 D 급 게이트의 마물 열 마리 이상이었 다.

'역시 상위 게이트를 뚫는 게 답이 었어.'

꾸욱.

다크 스타를 쥔 손에 힘이 꽉 들 어갔다.

* * *

[헌터 협회 보안부 부장 이원택]

기다란 명패가 놓인 책상.

흰 봉투가 그 위에 올려졌다.

"이게 뭔가?"

"사표입니다. 부장님."

정성희는 담담한 투로 직속 상관의 눈동자를 직시했다.

부장은 허, 하는 헛웃음을 짓더니.

"내가 그걸 몰라서 묻는 거라고 생 각하는 건가?"

"...죄송합니다."

고개를 푹 숙이는 정성희.

마주하고 있는 이, 이원택은 그가 진심으로 존경하는 헌터였다.

1차 대격변 때 최전선에서 싸우며 사람들을 지켰던 알파 세대의 각성 자.

제 3차 서울 방어전 때 큰 부상을 입고 일선에서 물러난 뒤 협회에서 일하고 있지만, 당시의 활약상을 기 억하는 이들은 여전히 많았다.

"성희야. 너 나랑 일한 지 몇 년이 나 됐냐?"

"10년입니다. 부장님."

"내가 말이다. 다른 건 몰라도 사 람 보는 눈은 있다고 자부해요. 근 데 네가 이렇게 돌발행동하는 녀석 이 아니었거든."

이원택은 못마땅한 듯 혀를 찼다.

"사람을 구하고 싶어서 헌터가 되 겠다는 녀석. 이제 제구실 좀 하게 만들어놨더니 사표를 내?"

"...그럴 이유가 생겼습니다."

"좋아. 그렇게 말해야지. 사표를 내 야 할 이유, 그게 나와야 나도 납득 하지 않겠나."

"만약 그 이유가 마음에 안 드시면 요?"

"계급장 떼고 한판 붙는 거지. 가 까운 주먹 두고 왜 주둥이를 나불거 리냐."

이원택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몸을 휘감는 푸른 아우라.

일선에서 물러났다고 보기 어려운, 흉흉한 기세가 솟구쳤다.

정성희는 침을 꿀꺽 삼켰다.

직장 상사이자 은사이기도 하고, 동경하던 영웅이기도 한 사내.

정성희는 최근까지만 해도 협회 소 속 요원으로 일하는 것에 만족감을 느꼈다.

그 사람만 만나지 않았더라면.

이렇게 사표를 내는 일도 없었으리 라.

"부장님. 저번에 00동 게이트 브레 이크 사건 기억하십니까?"

"알지. 그때 DOS 체계 구멍 났다 고 내가 엄청 성질냈잖아."

"예. 그때 전...

정성희는 최근 겪은 일을 상세하게 말했다.

00동 게이트 브레이크 사건에서 두각을 보인 헌터. 전민철에 대한 이야기였다.

사람들을 구하기 위해 홀로 괴물들 과 맞서 싸웠던 용기 있는 신규 각 성자.

다른 헌터들한테는 피난을 도우라 고 하고, 변종 괴물들을 상대하면서 한 치도 물러서지 않았다.

첫 만남 때는 그저 전도유망한 헌 터라고 생각했다.

그 생각이 깨지기까지는 오래 걸리 지 않았다.

"인준 시험에서 민철 헌터를 다시 만나게 될 줄은 몰랐습니다."

정성희의 귓가에는 민철의 서슬 퍼 런 목소리가 아른거리는 듯했다.

-어설프게 봐주다간 죽여 버릴 거 다.

"응시생의 힘과 속도는 잘 쳐줘도 C급이었는데 말이죠."

최초 각성 검사 때 올 月급.

각성한 지 한 달도 되지 않아 놀 라운 발전을 이룩했지만, A급인 자 신에게 닿을 정도는 아니라고 생각 했다.

교만이 었다.

전력을 다해서 몰아붙였다.

금방이라도 항복을 받아낼 수 있을 거라 생각했지만.

민철은 잡힐 듯 말 듯 한 끗 차이 로 공세를 피하거나 흘려내면서 간 간이 반격에 나섰다.

마지막에 주고받은 최후의 공격.

"검 세 자루가 박살 나고 두 자루 에 금이 갔습니다."

칼날 폭풍.

최후의 비기를 사용하고도 승부를 가리지 못했다.

정성희는 그때를 떠올리다가 말문 을 잠시 멈췄다.

파르르 떨리는 손.

흥분이 온몸을 휘감은 것이다.

"부장님. 저는 더 강해지고 싶습니 다. 아니, 강해져야 합니다."

올곧고 정의로운(?) 마음을 품은 후배에게 '진심'을 다하지 않는다고 일침을 받았다.

정성희의 눈빛이 활활 타올랐다.

강해져야 할 이유가 생겼다.

어릴 적에 꿈꿨던 헌터의 정의.

협회에 들어오고 사회 흐름에 적응 하면서 잊고 살았던 꿈의 단편을 민 철에게서 보았다.

이원택은 손으로 이마를 짚었다.

'이 녀석. 눈을 보니까 이미 맛이

가버렸어.'

완숙의 경지에 이른 A급 헌터.

정성희는 3대 길드에서도 바로 러 브콜을 날릴 정도의 실력을 지녔다.

전형적인 정의 바보.

강자에게는 강하고 약자에게는 약 한, 올곧은 녀석이었다.

"성희야. 너 근데 이미 잠재능력 다 해방하지 않았냐?"

"탑에 갈 겁니다."

이원택은 낯빛을 굳혔다.

시련의 탑.

1 차 대격변과 함께, 서울에 나타난 거대한 구조물.

탑은 정상을 오르려는 사람에게 여 러 시련을 부여한다.

각 층의 시련을 극복하면 보상을 주고, 인간의 한계를 넘어 더욱 강 해질 수 있다.

하지만.

그 시련은 너무나도 혹독해서 도전 자를 죽이기도 한다.

아니. 각 층의 시련은 처음부터 도 전자의 '죽음'을 상정한 것처럼 혹 독했다.

"죽을 수도 있다."

"그래서 사표를 낸 겁니다."

"바보 같은 녀석."

이원택은 사표를 집더니.

부욱-

봉투를 반으로 찢었다.

"부, 부장님?"

"이거 못 본 거다. 오랫동안 고생 했으니까 길게 휴가나 다녀와라."

퉁명스러운 이원택의 말투.

목소리에 스며든 감정까지 속이지 는 못했다.

정성희는 그 모습을 정면으로 볼 용기가 나지 않았다.

고개를 푹 숙이고는 감정을 억지로 눌렀다.

"휴가, 무사히 다녀오겠습니다. 그 래서 부장님께 꼭 인사드리러 오겠 습니다."

"선물이나 잊지 말고 사 와라."

정성희는 허리를 숙여서 인사를 한 뒤, 부장실 밖으로 나갔다.

한적해진 부장실.

손이 근질근질하다.

문득 끊었던 담배 생각이 간절하게

났다.

'됐다. 무슨 담배냐.'

이원택은 미련을 떨쳐내려는 듯 주 먹을 꽉 쥐었다.

심란한 마음을 가라앉히니 정성희 가 언급했던 헌터가 떠올랐다.

전민철.

정성희의 마음에 불을 질러놓은 당 돌한 신입 헌터.

이원택은 휴대전화에 손을 뻗었다.

"어. 난데. 부탁 하나만 하자고."

고요했던 부장실 내부가 원택의 목 소리로 시끌벅적해졌다.

* *

천호역 게이트 공략 3일째.

나는 하루도 쉬지 않고 괴물들을 사냥했다.

[브레이크 기한 : 40시간 30분.]

수용 중인 괴물의 숫자가 줄어드 니, 브레이크 기한도 늘어났다.

게이트가 내부 마력으로 매일 괴물

을 생성했지만 내 사냥 속도를 따라 오지 못했다.

사냥을 거듭할수록 속도도 빨라졌 다.

익 숙해 졌다기 보다는.

그 짧은 시간 동안 더 강해진 것 이다.

[근력 28 -> 30.1 -> 38.1]

[민첩 27.5 -> 29 -> 36]

단련으로 늘어난 능력치.

거기에 레벨을 올리면서 얻은 보너 스 스탯 15개를 근력과 민첩에 각 각 8개와 7개씩 투자했다.

'상승 무공을 무리 없이 펼치려면 육신도 단단해야 해.'

근력과 민첩은 장비 효과로 각각 40%와 47%가 늘어난다.

여기에 성천조계공을 운용하면 혼 돈력을 뺀 모든 능력치가 추가로 40% 증폭 효과를 받았다.

근 80에 가까운 근력과 민첩.

3주 전, 처음 헌터가 되었을 때와 비교하면 열 배 이상 강해진 것이 다.

무공을 사용하지 않아도 주먹 한 방에 아름드리나무를 박살 낼 수 있 는 수준!

나는 내력을 실어서 창을 내질렀 다.

"Ooooo...

예티의 약점인 목덜미 사이로 파고 드는 창날.

피가 분수처럼 솟구치고, 예티가 바람 새는 소리를 내면서 고꾸라졌 다.

-경험치 1.6%를 획득했습니다.

-레벨이 올랐습니다. 상태창을 활

성화해서 능력치를 올려주세요.

언제 들어도 반가운 시스템의 음 성.

그런데.

이번에는 시스템의 음성이 더 있었 다.

-15레벨이 되었습니다.

-혼의 흔적을 검색하여 당신에게 새겨진 권능을 일깨웁니다.

-매혹의 권능을 발견했습니다.

-지옥염의 권능을 발견했습니다.

잠깐만요.

지금 뭐라고 하셨어요?

23 화

[권능 - 지옥의 겁화]

악마 그랑지오스의 권능.

모든 것을 불태우는 지옥불을 다룬 다.

[권능 - 치명적인 매혹]

악마 세르핀의 권능.

매혹의 기운을 발산하여 이성을 유 혹한다.

-혼의 기록에서 읽어낸 권능은 두 개입니다.

-두 가지 권능 중 한 개를 선택할 수 있습니다.

[죄악의 권능]

판데모니엄 차원의 심층부에는 '죄 악의 전당'이라고 불리는 오래된 성 이 있다.

죄악의 수를 상징하는 72좌.

판데모니엄에서 정점에 달한 72악 마에게만 허락된 자리다.

상징성만 가지고 있느냐?

아니다.

수많은 악마들이 72좌에 오르려고 기를 쓰고 노력하는 데는 모두 이유 가 있다.

'죄악의 전당은 권좌에 앉은 악마 에게 권능을 내려준다.'

섭리를 벗어나서 전능한 영역에 도 달한 강대한 힘.

권능을 얻은 72악마는 '귀족'이라 고 불리며 판데모니엄 내에 막대한

영향력을 지녔다.

근데 그건 전생이잖아.

현생의 나는 순도 100% 인간이다.

죄악의 권능과 한참 떨어진, 수명 이 있는 필멸의 존재.

이상한 점은 한 가지 더 있었다.

'저건 내 권능이 아니다.'

전 랭킹 11위의 악마이자 겁화의 주인. 그랑지오스.

지옥의 겁화는 무스펠헤임 일족의 왕이었던 그랑지오스에게 어울리는 권능이다.

마찬가지로 전 랭킹 55위의 악마,

매혹의 군주 세르핀.

서큐버스 여왕인 세르핀 또한 자신 에게 맞는 권능을 부여받았다.

왜 전(前)자가 붙었냐면....

'내가 다 죽였거든.'

두 놈은 비주류 세력인 투마 일족 출신인 나를 무시하고 공공연하게 모욕했다.

나는 대꾸하는 대신 녀석들의 주둥 이를 찢어줬다.

문제는 그 녀석들의 권능이 왜 나 타났느냐다.

-15레벨이 되었습니다.

-혼의 흔적을 검색하여 당신에게 새겨진 권능을 일깨웁니다.

시스템은 아까 했던 말을 반복했 다.

내 질문에 대해 답하는 듯했다.

'그러니까... 내가 죽인 놈들의 권능을 얻을 수 있다는 건가?'

돌아오는 대답은 없었다.

정답을 맞힌 모양이다.

"허허."

바람 빠지는 소리가 입술을 비집고 튀어나왔다.

시스템에 대해서는 더 이상 놀랄 일이 없다고 생각했는데.

착각이었다.

악마도 아닌 내가 죄악의 권능을 얻을 수 있다고?

이보다 더 놀라운 일이 또 있을까!

이 사실이 알려지면 판데모니엄의 악마들이 얼마나 경악할지 짐작도 안 갔다.

72좌에게만 허락된 권능.

판데모니엄과 동떨어진 변방 차원

에서, 수명이 정해진 필멸의 존재가 그 강대한 힘을 얻게 된 것이다.

'둘 중 선택하라는 건가.'

겁화와 매혹의 권능.

하나만 얻을 수 있다면?

고민은 길지 않았다.

'당연히 지옥의 겁화지.'

전 11위의 악마, 그랑지오스.

녀석의 권능, 지옥의 겁화는 꽤 강 력 했다.

전생 때 그랑지오스와 싸우던 중, 권능 때문에 제법 고생했었다.

반면 매혹은 전혀 쓸모가 없다.

'매혹 같은 걸 어디다 쓰나?'

이성을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매혹 하는 권능.

매혹에 저항해도 신체 능력이 하락 한다.

정작 권능의 주체인 세르핀의 전투 능력이 강하지 않아서 어렵지 않게 찢어버릴 수 있었다.

-[지옥의 겁화] 권능을 선택했 습니다.

-[치명적인 매혹] 권능은 혼의

흔적 속으로 가라앉습니다.

-레벨 30이 되면 다음 권능을 획 득할 수 있습니다.

-혼돈력이 10 상승합니다.

화아아아악!

죄악의 권능이 혼에 새겨진다.

이미 겪어본 일이다.

72좌에게만 허락된 강대한 힘.

위대한 권능이 혼에 새겨진 것만으 로 혼돈력 스탯이 늘어났다.

변화는 거기서 끝나지 않았다.

-[지옥의 겁화] 권능이 사용자 의 혼과 동기화됩니다.

-사용자는 빛과 어둠의 기운을 모 두 품고 있습니다.

-[지옥의 겁화] 권능이 [심연 의 불꽃] 으로 변화합니다.

조금 전에 더 놀랄 일이 없을 거 라고 했나?

그 말, 취소한다.

시스템의 목소리를 듣는 순간.

내 눈이 튀어나올 듯 크게 떠졌다.

* * *

오늘 하루.

내가 알고 있던 '상식'이 몇 번이 고 깨졌다.

죄악의 권능을 인간인 내가 얻지를 않나.

72좌의 악마에게 하나씩만 허락된 권능을 여러 개 얻을 수 있게 되었 다.

하나하나가 모두 상식을 파괴하는 일이지만.

방금 벌어진 일만큼 나를 놀라게 한 것은 없었다.

[심연의 불꽃]

분류 : 권능

등급 : SS

제한 : 권능을 인정받은 자

악마 그랑지오스의 권능, 지옥의 겁화를 원형으로 둔 새로운 권능이 다.

빛과 어둠, 그리고 혼돈의 힘에 기 원을 둔 불을 일으킨다.

불의 속성과 형태는 사용자의 의지

에 따라 변형된다.

* 성화(聖火)

성력에 기반을 둔 성스러운 불길을 일으킨다. 신성한 불꽃은 삿된 것을 물리치고 사용자의 힘을 강하게 해 준다.

*지옥의 겁화

마력에 기반을 둔 지옥의 화염을 사용한다. 꺼지지 않는 겁화는 닿은 것을 마구 불태운다.

*[???]

조건 미달성. 달성 시 사용 가능.

'성력에도 반응한다고?'

나는 혼돈기를 분리했다.

성력과 암흑마력.

상반된 두 기운이 충돌을 멈췄다.

나는 오른손에 마력을 집중했다.

화르륵!

검붉은 불꽃이 피어올랐다.

그랑지오스의 권능, 지옥의 겁화였 다.

여기까지는 내 기억대로다.

이번에는 왼손에 성력을 흘려보냈 다.

하얀 불길이 왼손을 휘감는다.

눈이 부신 빛.

시스템이 말한 대로, 신성한 힘을 내포한 성스러운 불꽃이다.

'성력에 닿아도 멀쩡하다니.'

쓴웃음이 입가에 감돌았다.

강렬한 신성을 품은 불.

전생 때 신성한 불꽃이 몸에 붙어 서 고생했던 기억이 떠올랐다.

성화에 고통받지 않는다는 것.

도리어 신성한 불길이 머무는 곳은 활력이 솟아났다.

새삼 인간으로 환생했다는 것을 다 시 한번 실감했다.

'근데 이걸 어디서 봤더라?'

왼손에 일렁이는 하얀 불꽃.

생김새가 익숙했다.

전생의 기억을 뒤적거리던 중.

"아! 이거 그 새끼 거잖아!"

나는 비명을 토해내듯 소리를 질렀 다.

미카엘.

성스러운 불꽃의 주인이자, 엘리시 움의 일곱 천사장 중 한 놈이다.

이걸 더 이상 [죄악의 권능] 이라 고 부를 수 있을까.

상반된 권능을 다루는 녀석은 전 우주의 역사를 통틀어서 나 한 놈뿐 일 것이다.

'익숙해지려면 연습이 필요하겠어.'

시스템?

권능?

상관없다.

시스템이 부여한 '힘'은 나를 더욱 강하게 만들어줄 것이다.

그리고... 권능을 사용해볼 상대 는 넘치고도 남았다.

천호동 게이트 공략을 마칠 때까지 권능 사용에 익숙해지는 것.

나한테 새로운 목표가 생겼다.

쿵 쿵 쿵!

예티 세 마리가 정면으로 달려들었 다.

왼쪽에 있는 예티를 향해 손을 펼 쳤다.

-지옥의 겁화를 사용합니다.

-마력 150을 소모합니다.

검붉은 화염이 손에 맺혔다.

지옥의 겁화.

판데모니엄 전 11위, 그랑지오스의 권능이다.

화아악-!

겁화가 예티의 몸뚱이에 달라붙었 다.

작은 불씨가 순식간에 크기를 키워 서 예티의 전신을 뒤덮었다.

"Kuooo?!"

전신이 타는 고통.

죽을 맛이겠지.

나도 저 불꽃에 당해봐서 안다.

겁화는 꺼지지 않고 더욱 강렬하게 타오르면서 예티의 전신을 갉아먹었 다.

"휘오...

발버둥 치던 예티는 나를 바라봤 다.

화염의 주체를 본능적으로 깨달은 듯, 나를 향해 성난 기세로 달려들 었다.

"이미 늦었다."

겁화는 한 번 붙여놓으면 마력을 부여해서 규모를 더 키울 수 있다.

나는 겁화에 마력 100을 더 소모 했다.

지옥의 불길이 더욱 거세졌다.

나를 향해 달려오던 예티의 몸이 크게 꺾였다.

놈은 비명조차 지르지 못하고 까맣 게 탄 채 지면에 고꾸라졌다.

'그랑지오스의 권능은 역시 유용 해.'

지옥의 겁화는 한 번 닿기만 하면

다시 맞추지 않아도 된다.

추가 마력을 불어넣는 것으로, 이 미 몸에 붙은 겁화의 기세를 키울 수 있다.

작은 불씨 하나만 몸에 붙어도, 마 력을 불어넣어서 몸 전체를 뒤덮을 수 있는 강력한 권능.

반면 성화는 정반대의 성질을 지녔 다.

-성화를 사용합니다.

-성력 100을 소모합니다.

하얀 불꽃이 전신을 뒤덮는다.

사특한 것을 몰아내는 데 특화된 빛.

예티 같은 생물체한테는 타격을 줄 수 없다.

성스러운 불꽃의 사용 방법은 바 로....

[성화(聖火)가 전신을 휘감습니다.]

[혼돈력을 제외한 모든 능력치가

50% 증가합니다.]

[치유의 축복이 몸에 깃듭니다.]

나 자신에게 끼얹는 것이다.

능력을 강화시키는 버프!

성스러운 불꽃은 악마를 제외한 모 든 종족에게 강력한 축복을 선사했 다.

'그 닭 날개 새끼랑 싸운 게 이런 데서 도움이 될 줄이야.'

미카엘은 성스러운 불꽃을 공격과 버프, 양쪽 용도로 사용했다.

몸이 한결 가볍다.

지면을 박차자, 무공을 운용하지 않았는데도 빠르게 앞으로 나아갔 다.

예티 두 마리?

축복을 받은 내 상대는 아니었다.

"Uoooo...

예티 두 마리는 몇 번 공방을 주 고받더니 피를 흩뿌리면서 쓰러졌 다.

"으으, 닭살 돋는다."

손으로 팔뚝을 비볐다.

전생 악마라서 그런지, 성화를 몸 에 끼얹을 때마다 닭살이 돋았다.

심리적인 거부감이 들었다.

강력한 축복인데도. 괜히 움츠러드 는 느낌이다.

나는 까맣게 타버린 예티의 사체를 흘겨봤다.

'겁화는 사용 시기를 잘 가늠해야 겠어.'

한 번 맞추기만 하면 마력을 불어 넣어 언제든지 적을 갉아먹을 수 있 는 지옥의 화염.

단점은 가성비가 안 좋았다.

순수 위력은 혼돈기를 응용한 무공 보다 한 수 뒤처졌다.

권능이 약하고 무 대륙의 무공이 뛰어나다?

그런 개념이 아니다.

힘의 연료가 되는 기운, 마력과 혼 돈기의 차이였다.

'같은 양이라면 혼돈기의 위력이 두 배 이상이다.'

겁화의 권능을 발휘하려면 암흑마 력을 혼돈기에서 분리해서 사용해야 한다.

권능의 위력은 어지간한 상승 무공 보다도 뛰어나지만.

그 기반이 되는 혼돈기가 훨씬 강 력해서, 무공의 효율이 뛰어난 것이 다.

'정리하면 이 정도인가.'

겁화 - 방출 계열

성화 - 축복 계열

시스템이 하사한 권능.

내가 알던 [죄악의 권능] 과는 180도 다른 모습이지만.

확실한 건 나한테 큰 도움이 된다 는 것이다.

'축복과 원거리의 적을 공격할 수 있는 수단이 생겼다.'

무공 대부분은 근접전에 특화되어 있다.

투척 무기나 활을 다루는 무공도 있지만, 다크 스타로는 구현해낼 수 없다.

아니.

구현은 가능하지만 던진 걸 회수해 야 한다.

전에 코볼트랑 싸울 때 채찍을 써 서 끌어당긴 것도 그 이유였다.

강력한 축복과 원거리 공격기.

권능 하나를 익힌 것만으로, 전투 수행능력이 두 배는 늘어난 셈이다.

나는 위를 올려다보았다.

회색으로 물든 하늘.

왜곡된 차원이 만들어낸 가짜 천장 은 눈을 지상에 흩뿌리고 있었다.

떨어지는 눈을 손으로 집었다.

눈은 체온에 녹아 물 한 방울로 변했다.

고개를 돌려 게이트 안쪽을 바라봤 다.

천호동 게이트의 심층.

눈발로 뒤덮인 곳은 침입자의 발걸 음을 허락하지 않은 미지의 공간이 다.

'여기도 꽤 오래 머물렀지.'

공략에 이틀 이상 소모한 건 천호

동 게이트가 처음이었다.

훨씬 강력한 괴물.

그리고 혹독한 기후.

B급 게이트는 여태 공략한 D급 게 이트의 난이도를 몇 배 이상 높았 다.

하지만.

오늘은 다를 것이다.

'오늘. 게이트 공략을 끝낸다.'

나는 주먹을 말아 쥐었다.

24 화

나는 게이트 안쪽으로 공략의 방향 을 돌렸다.

괴물들의 공격이 거세졌다.

"Krrr!!"

야트막한 언덕이나 바위 틈새에서 뛰쳐나오는 예티.

"키르르. 죽어라 인간!"

66 | 99

서리 임프와 눈 정령은 눈밭 사이

에 몸을 숨긴 채로 주술과 냉기 주

문을 준비했다.

-지옥의 겁화를 사용합니다.

-마력 50을 소모합니다.

숨어있는 서리 임프나 눈 정령은 겁화로 처리했다.

체구가 큰 예티는 무공을 사용해서 하나둘씩 사냥했다.

때로는 합공을 펼치거나 지원팀을 노리기도 했지만 통하지 않았다.

성천조계공으로 오감을 극대화, 괴 물들이 수상한 동태를 보이면 겁화 를 적극적으로 활용했다.

무공에 비해 가성비가 떨어질 뿐.

권능의 불꽃은 여느 마법사들의 마 법보다도 훨씬 강력하고 시전 속도 도 빨랐다.

괴물들이 득실거리는 산간지대를 그대로 돌파. 보스 몬스터의 영역까 지 도달했다.

10미터 높이로 솟아오른 빙벽.

벽과 벽 사이, 人} 미터 정도로 벌 어진 통로가 하나 있다.

한 번 진입하면 후퇴하기가 쉽지 않아 보였다.

'지원팀의 안전까지 보장하는 건 어렵겠어.'

입구가 한 곳뿐인 공간.

일행을 데리고 들어가기에는 변수 가 많았다.

나는 지원팀장인 정영현을 불렀다.

"여기서 잠시 쉬고 계세요."

"따라오라고 해도 안 따라간다."

정영현은 대번에 질색하며 고개를

좌우로 저었다.

잠깐의 침묵.

그는 내 눈치를 보다가 슬며시 입 술을 떼었다.

"정말로 혼자 B급 게이트의 보스 몬스터를 공략할 생각인 거냐?"

"여기서 돌아갈 생각은 없습니다."

"...죽지 마라. 너 죽으면 우리 목숨도 위험해지니까."

당연한 말을.

나는 가볍게 웃는 걸로 대답을 대 신했다.

빙벽 사이, 갈라진 틈 안으로 들어

갔다.

1.5배 정도 큰 예티가 지면에 몸을 눕힌 채 잠을 자고 있다.

바로 진실의 눈을 사용했다.

[예티 부족장 노논]

근력 : 200 / 민첩 : 180 / 체력

: 200 / 맷집 : 170 / 마력 : 90

*세계의 가호

게이트 핵의 가디언이다. 능력치와 생명력, 그리고 마력에서 추가 보너 스를 받는다.

과연 B급 게이트의 보스 몬스터.

순수 스탯은 A급 헌터인 정성희보 다도 높다.

예티 부족장은 인기척을 느끼고는 슬며시 눈을 떴다.

"고작 한 놈인가."

"그러는 너도 혼자네."

흐으으으-

예티 부족장은 가볍게 웃었다.

"콜 슬레이브."

우우우웅!

커다란 마법진이 나타났다.

보스 몬스터 전용 스킬. 콜 슬레이 브였다.

예티가 마법진 위로 하나둘 소환되 었다.

마법진은 예티 20마리를 토해내고 는 자취를 감추었다.

"침입자를 없애라."

권태로운 눈빛.

나를 보고도 지면에 몸을 붙인 채, 일어날 기색을 보이지 않았다.

침입자가 한 명이라고 방심한 건 가?

'후회하게 해주지.'

나는 차게 웃었다.

예티 무리가 몰려든다.

몇 마리는 재빠르게 돌아서 출입구 를 틀어막았다.

막힌 퇴로.

예티의 살의가 사방을 잠식한다.

몸이 오싹해졌다.

목숨을 건 전장에서만 느낄 수 있 는 감각이다.

"딱 좋아."

[성천조계공을 운용합니다.]

[혼돈기가 전신을 휘감습니다. 혼 돈력을 제외한 모든 능력치가 40% 상승합니다.]

[초당 2의 혼돈기가 소모됩니다.]

전신에 솟구치는 힘.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성화(聖火)가 전신을 휘감습니다.]

[혼돈력을 제외한 모든 능력치가 50% 증가합니다.]

[치유의 축복이 몸에 깃듭니다.]

성스러운 하얀 불꽃이 몸을 휘감는 다.

옷이나 장비에는 해를 끼치지 않는 신비한 백염(白炎).

검은색 갑주 위로 하얀 불꽃이 어 우러지면서 신비한 느낌을 자아냈 다.

다크 스타를 커다란 도끼로 바꾸고 는, 땅을 가볍게 찼다.

[운류보를 사용합니다.]

[초당 2의 혼돈기가 소모됩니다.]

쌔애행!

엑셀을 최대로 밟은 오토바이가 스 쳐 지나가듯.

달리기만 했는데도 굉음이 터져 나 오고 눈발이 사방으로 휘날렸다.

" 후오오?"

놀란 기색이 가득한 예티.

그게 놈의 유언이었다.

[태산부법을 사용합니다.]

[혼돈기 15가 소모됩니다.]

도끼날이 두터운 거죽과 살, 그리 고 목뼈를 갈랐다.

일격에 완전히 베어내지는 못했지 만 예티의 숨통을 끊기에는 충분했 다.

'닭살 돋지만 효율성 하나는 죽인 단 말이야.'

성스러운 불꽃.

심리적인 거부감은 떨쳐내기 어렵 지만.

효과 하나는 확실했다.

"Krrrrr!!"

"Kuooo!!"

근처에 있던 예티 세 마리가 우악 스러운 동작으로 나를 잡으려 했다.

도낏자루에 힘을 살짝 주었다.

너무 깊이 박았나.

쉽게 빠지지 않았다.

예티 무리의 입가에 흉흉한 웃음기 가 감돌았다.

"좋아하기는 이를걸?"

나는 다크 스타를 손등으로 회수했 다.

축 늘어진 예티의 사체를 발판 삼 아 뻥, 걷어차고는 부락 건물 사이 로 도약했다.

"Krrrrr!!!"

혹한의 숨결이 전방위로 들이닥쳤 다.

시야가 하얗게 물들었다.

[지옥의 겁화를 사용합니다.]

[마력 50을 소모합니다.]

나는 검붉은 화염을 이 미터 정도 로 얇게 펼쳤다.

겁화와 혹한의 숨결이 허공에서 부 딪쳤다.

치이이익!

굉음을 동반하면서 엄청난 수증기 가 발생했다.

'길을 만든다.'

광범위로 펼쳐진 혹한의 숨결.

모두 받아칠 필요는 없다.

작은 틈새.

내가 지나갈 수 있는 틈만 있으면 된다.

최소한의 마력만을 소모해서 혹한 의 숨결을 뚫었다.

정면에 입을 크게 벌리고 있는 예 티가 보였다.

[태산부법을 사용합니다.]

[혼돈기 15가 소모됩니다.]

한껏 벌어진 입에 도끼를 넣어줬 다.

피가 튀고, 예티의 몸뚱이가 지면 으로 쓰러졌다.

"흐우우?!"

예티 부족장의 눈이 크게 떠졌다.

좀 놀랐냐?

나는 이제부터가 시작이다.

米 * 米

예티의 숫자가 1/3 정도 남았을 때 즈음.

"흐우우. 난쟁이. 내가 직접 죽인 다."

예티 부족장이 몸을 일으켰다.

[814/1720]

짧지 않은 전투.

상당한 혼돈기를 소모했다.

'절반 정도인가.'

충분하다.

잘난 듯 내려 보는 놈의 목을 별 모양으로 예쁘게 잘라주지.

"그 불 공격. 요상한 술법이다."

예티 부족장은 지옥의 겁화를 경계 했다.

눈동자를 요리조리 굴리면서 나를 살펴보던 중.

[강력한 도약 공격]

투쾅!

지면에서 발을 구르면서 높이 뛰었 다.

수십 미터의 거리가 순식간에 좁혀 졌다.

정면으로 쏟아지는 건 얼음으로 된 커다란 몽둥이. 겁화를 던져도 예티 부족장을 맞추기는 어려웠다.

"불을 쓸 기회. 안 준다!"

호오.

녀석이 나름대로 머리를 쓴 모양인 데.

나는 다크 스타를 창으로 변형시키 고 지면을 한 바퀴 휩쓸었다.

쌓였던 눈이 창대에 부딪혀서 하늘 위로 나부끼며 눈안개를 만들었다.

"흐우우. 소용없다."

지면에 길게 드리운 그림자.

콰아아앙!

예티 부족장은 눈안개가 드리운 지 역 전체를 쑥대밭으로 만들었다.

자신만만하게 웃는 예티 부족장.

이내 웃음기가 얼굴에서 가셨다.

"흐우우우?!"

예티 부족장은 당황하면서 발을 동 동 굴렀다.

화르륵!

땅 밑에서 솟구친 검붉은 화염은 하얀 털을 태우면서 예티 부족장의 발목을 휘감았다.

"멍청하게 달려드니까 그렇지."

예티 부족장이 나를 덮치기 직전.

눈을 흩뿌려서 시야를 차단했다.

그야말로 찰나의 시간.

[지옥의 겁화를 사용합니다.]

[마력 150을 소모합니다.]

시야를 가리면서 권능을 사용, 땅 아래에 겁화를 심어두었다.

곧장 경신법을 운용해서 전력으로 이탈, 충격의 범위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놈이 승리를 확신했을 때.

숨겨둔 겁화를 해방, 예티 부족장 의 몸에 붙였다.

"흐우우우우!!"

부족장은 고통에 얼굴을 일그러트 렸다.

양팔을 크게 휘저으면서 강렬한 냉 기를 해방했다.

[아이스 블리자드]

크고 작은 얼음 파편 수천 개가 쏟아졌다.

피할 곳은 없다.

혹한의 숨결과는 달리 물리력을 겸 하고 있는 파편들.

상당수는 겁화로 녹이기 어려울 정 도로 컸다.

'쳐낸다.'

다크 스타를 청강검으로 변형, 큰 덩어리 위주로 쳐냈다.

쳐내지 못한 작은 파편이 하나둘 몸을 두들겼다.

대부분은 갑주에 가로막혔지만, 일 부는 보호를 받지 못하는 생살을 찢 고 지나갔다.

[성스러운 불꽃이 상처를 치유합니 다.]

[성력 1을 소모합니다.]

하얀 불꽃이 생채기에 스며든다.

시간을 역행하듯, 새살이 돋으면서 상처가 깔끔하게 사라졌다.

한바탕 쏟아진 눈보라.

빙설 폭풍이 휩쓸고 지나간 곳은 폭격을 맞은 것처럼 초토화가 되었 다.

내가 서 있는 곳을 빼고는.

'녀석의 비장의 카드 하나를 뺐다.'

이미 '진실의 눈'으로 예티 부족장 의 정보를 확인했다.

아이스 블리자드는 육탄전을 제외 한 가장 강력한 스킬이었다.

놈에게 남은 선택지는 하나.

나는 입술을 비죽였다.

"이게 전부냐?"

"흐오오오오! 난쟁이. 짓밟는다. 없 앤다!"

쿵!

예티 부족장이 앞으로 발을 내디뎠 다.

나는 마력 100을 겁화에 더 불어 넣었다.

더욱 거세지는 겁화.

위로 옮겨붙더니 다리 한쪽을 모두 뒤덮었다.

힘껏 달리던 예티 부족장의 자세가

크게 휘청거렸다.

자세가 무너져서 무릎을 꿇은 예티 부족장.

훤히 드러난 목덜미는 일검을 뻗어 노리기에 좋은 위치였다.

[칠성마검 1초식을 사용합니다.]

[400 혼돈기를 소모합니다.]

콰콰콰콰!

수 미터에 이르는 검기가 하얀 세 상에 기다란 선을 그었다.

하늘의 별을 떨어트리는 검.

내 성취가 부족해서 별까지 닿지는 않았지만.

검에 실린 위력은 예티 부족장의 목숨을 취하기에 충분했다.

-경험치 20.5%를 획득했습니다.

-레벨이 올랐습니다.

썰물처럼 빠져나간 혼돈기.

탈력감이 몸을 짓누른다.

후우.

한숨을 한 번 쉬고는 허리를 추켜 세웠다.

'이겼다.'

심연의 불꽃.

성화 / 겁화의 권능을 얻은 덕분이 었다.

-흐우우우.

- 휘오오.

남은 예티들의 몸뚱이가 희미해졌 다.

콜 슬레이브의 주체.

예티 부족장이 죽어서 형체를 유지 하지 못하는 것이다.

신기루가 꺼지듯 사라지는 예티들.

두 발로 온전히 서 있는 것은 나 한 명뿐이었다.

米 氷 米

入天츳I

7,,•

천호동 게이트의 출입구가 움츠러 든다.

수축을 반복하던 게이트는 잠시 후 공간의 일그러짐과 함께 모습을 감 췄다.

엘리가 음료를 내밀었다.

"고생하셨어요."

"어. 엄청 고생했지."

나는 가볍게 대꾸하면서 음료를 단 박에 넘겼다.

"빈말 아니에요. 혼자서 B급 게이 트를 닫는 건 보통 일이 아니라고 요."

"대련장에서 만났던 녀석이라면 혼 자서도 쉽게 게이트를 닫을 수 있을 텐데."

"민철 헌터. 보통은 그렇게 홀로 사냥을 하지 않거든요?"

그런가.

나는 머리를 긁적였다.

엘리가 답답하다는 표정으로 미간 을 살짝 찡그렸다.

"일반적인 헌터는 B급 게이트를 혼자 공략하지 않아요."

게이트는 매일 자정, 내부 마력으 로 괴물들을 생성한다.

시간이 지나면 다시 늘어나는 괴물 들.

일반적인 게이트 공략은 외곽지역 부터 차근차근 괴물들을 소탕하다가 보스 레이드가 가능한 시점에 왔을 때 전력을 붓는 식으로 진행된다.

"민철 헌터처럼 단기간에 보스를 공략하는 팀은 거의 없어요."

"게이트를 빨리 닫으면 좋은 거잖 아?"

"좋죠. 근데 본인이 하는 일이 얼 마나 위험한 건지 생각은 하란 말이 에요."

걱정해주는 건지 화를 내는 건지 도통 분간이 안 가네.

"일단 걱정해주는 거 맞지?"

"무, 뭐... 그렇죠!"

"난 무리하는 게 아니니까. 너무 걱정하진 마."

"개인적인 걱정 아니거든요! 민철 헌터한테 큰일이라도 나면 연합의 입장도 곤란하다고요."

당황한 기색이 가득한 엘리.

볼이 살짝 붉어졌다.

"흠흠. 이야기 중에 미안한데 부산 물 관련해서 확인 좀 해줘야 할 게 있어서."

정영현이 불쑥 끼어들었다.

엘리는 흥분을 가라앉히고 평소의 모습으로 돌아왔다.

"팀장님. 무슨 일이죠?"

"그게 좀, 문제가 생겼어."

정영현은 난처한 표정을 지으며 손 을 내밀었다.

"보스 몬스터의 사체에서 이상한 게 나왔거든."

폭 3센티.

20센티 길이의 수정이었다.

엘리의 눈동자에 호기심이 감돌았 다.

"이게 뭔가요?"

"그게 문제다. 처음 보는 광석인 데다 분석도 안 돼."

언짢은 듯 눈살을 찌푸리는 영현.

나는 진실의 눈을 사용해서 정체불

명의 수정을 살펴봤다.

반투명한 창 너머로 광물의 정보가 나타났다.

'이거... 말도 안 되는 물건이잖 아?!'

나는 눈을 부릅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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