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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1 화

서울시 용사 박물관.

지구를 구해 낸 영웅, 인류의 용사 를 기념하는 박물관이다.

나는 시계를 힐끔 봤다.

[PM 02:50]

약속 시간까지는 10분.

'조별 과제. 너무 귀찮다.'

나는 이맛살을 찌푸렸다.

헌터 학개론.

전공 필수라서 듣고 있는 과목인 데, 교수님이 기말고사 대신 조별 과제를 시켰다.

[인류의 영웅과 헌터의 역人H라는 주제였다.

'조별 과제는 공산주의가 왜 망했 는지 알 수 있는 좋은 사례인데.'

조별 과제가 얼마나 쓸모없는지,

교수님들만 몰라요.

조원들이 오기를 기다리다가 용사 동상을 올려다보았다.

'여긴 초등학교 때 소풍 단골 코스 였지.'

십 미터 크기의 동상이 나를 내려 다본다.

인류의 용사.

우리나라에서 나온 세계적인 위인.

내가 태어나기 전, 세계는 두 변의 대격변을 겪었다.

1차 대격변.

탑과 게이트의 등장, 그리고 헌터

가 역사의 전면에 나타난 때를 가리 킨다.

하늘을 향해 높이 솟아 있는 이계 의 건물.

탑이다.

30년 전.

저 거대한 구조물은 아무 전조도 없이 서울에 나타났다.

탑은 서울 어디에 있어도 볼 수 있을 만큼 커다랬다.

'탑과 함께 게이트가 나타났다고 했지.'

게이트에서 튀어나온 이형의 괴물.

통칭 몬스터들은 현대 병기가 잘 통하지 않았다.

괴물을 해치울 수 있는 것은 마나 를 다룰 수 있는 각성자뿐.

사람들은 괴물을 사냥한다고 하여 각성자들을 '헌터'라고 불렀다.

'인류의 용사가 나타난 것도 그 시 기였지.'

압도적인 강함.

용사는 게이트가 나타난 곳마다 앞 장서서 몬스터들을 베고, 사람들을 구해 냈다.

그 활약은 국내에서 그치지 않았으

니.

인류의 용사는 세계 각국을 돌아다 니며 고위험군의 몬스터들을 사냥했 다.

헌터 협회 설립과 여러 길드의 등 장. 그리고 용사의 활약.

세계가 1차 대격변의 충격에서 벗 어나서 사회의 기능이 조금씩 회복 될 때쯤.

지구는 두 번째 대격변을 겪었다.

천계 一 엘리시움.

그리고 마계 - 판데모니엄의 접 초

판데모니엄의 마왕, 데이모스는 무 수한 암흑의 군세를 이끌고 지구를 침략했다.

그에 대적하기라도 하듯, 엘리시움 의 천족도 모습을 드러내어 판데모 니엄의 마족과 맞서 싸웠다.

하지만 전쟁에 종지부를 찍은 것은 용맹한 천족도, 잔학한 마족도 아니 었다.

인류의 용사.

용사가 모든 생명을 불태우면서 마 왕의 심장에 칼을 꽂았고, 전쟁은 종결되었다.

'그건 그렇고 슬슬 약속 시간인데.'

시계를 흘끗거릴 때.

"선배! 저희 왔어요!"

"형. 일찍 오셨네요?"

학교 후배들이 나를 향해 인사했 다.

"시간 맞춰 다 왔네?"

"늦거나 잠수라도 타면 이름 빼 버 릴 거잖아요."

여자 후배가 입술을 샐쭉 내밀었 다.

"저번 학기에도 준석 선배 이름 빼 버리신 거 다 알거든요?"

"영미도 빼셨잖아요. 진짜로 뺄 줄

몰랐다고 하면서 얼마나 울고불고했 는데요!"

다른 후배들도 내 앞에서 엄청 조 잘거렸다.

아, 그런 일이 있었지.

작년 조별 과제 때 잠수를 탔던 두 사람의 이름을 빼 버렸다.

무임승차?

그런 걸 어떻게 용납해.

"하여간 민철 선배. 독하기로 유명 하다니깐."

"오 분만 늦었어 봐. 우리 놓고 바 로 가셨을 거야."

"그리고 이름 빠졌겠지. 으으."

저기요. 다 들리거든?

뒤를 한번 흘겨보니 모두 합죽이가 되었다.

나는 후배들과 함께 용사 박물관 안으로 들어갔다.

용사 박물관은 평일인데도 꽤 많은 사람들로 붐볐다.

대한민국이 낳은 위대한 영웅.

지금도 그 인기는 식지 않았었으 니.

사실 나도 어릴 때부터 너무 자주 온 탓에 박물관의 구조를 외울 정도

였다.

'오늘은 조금 특별하지.'

나는 미리 챙겨 둔 팸플릿을 펼쳤 다.

[인류의 용사 특별전시회 - 마왕 을 꿰뚫은 검]

용사가 마왕을 쓰러트릴 때 사용했 던 아티팩트, 신검 칼리트.

바로 오늘, 23년 만에 민간에 최초 로 공개되는 날이었다.

'이 정도면 레포트 소재로는 충분

하고도 남지.'

나는 의미심장하게 웃으면서 특별 전시회장으로 향했다.

전시회장 앞은 이미 줄이 길게 늘 어져 있었고, 오랫동안 줄을 서서 기다린 끝에 신검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와...

감탄사가 무의식적으로 튀어나왔 다.

순백의 검신.

검에 대해 일자무식인 내가 봐도 예술품처럼 아름다웠다.

새하얀 칼날은 보기만 해도 눈이 부셨고.

그 예리함은 몸을 오싹하게 만들 만큼 날이 섰다.

그때.

거치대에 고정되어 있던 용사의 검 이 하늘 위로 솟구쳤다.

"어?"

하고 놀랄 새도 없이.

공중으로 솟구친 칼이 나를 향해 쏘아졌다.

푸욱!

나, 설마 검에 찔린 거야?

불로 심장을 지지면 이런 느낌이 들까.

엄청나게 뜨거웠다.

가슴팍은 엄청나게 아픈데, 눈이 서서히 감기기 시작했다.

'이, 이게 뭐야.'

나는 말 한마디 내뱉지 못하고 의 식을 잃었다.

무채색의 세계.

짧은 비명이 새어 나왔다.

가슴팍이 데인 것처럼 화끈거린다.

통증이 느껴지는 곳을 바라보니, 기다란 검 한 자루가 내 심장에 박 혀 있었다.

몸 안에 꽂힌 이물의 차가운 감촉 이 선명하게 느껴진다.

방금 전에 봤던 신검, 칼리트였다.

'뭐야. 정말로 칼에 찔린 거였어?'

너무 아파서 눈물이 핑 돈다.

억울한 마음에 고개를 들어서 칼의 주인을 쳐다봤다.

말문이 막혔다.

내 가슴팍에 칼을 밀어 넣은 존재.

너무 잘 알고 있는 사람이다.

전 세계에서 이 자의 얼굴을 모르 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바로....

인류의 용사였다.

'형이 왜 거기서 나와?'

머리가 하얘졌다.

아무 생각도 들지 않았다.

"훌륭하다. 인류의 용사여. 나, 투

장 데이모스. 이런 변방의 차원에서 이만한 전사를 만날 것이라고는 생 각하지 못했다."

어?

입술이 마음대로 달싹였다.

내 몸인데도, 누군가가 움직이는 것처럼 묘한 이질감이 들었다.

잠깐.

'투장 데이모스라고?!'

방금 입에서 튀어나온 말.

가볍게 넘길 수 없는 이름이다.

인류의 용사만큼이나 유명한 이름.

사람들에게는 원래의 이름보다 '마 왕'으로 불렸던 전율적인 존재.

그 악몽의 존재가 내 입에서 튀어 나온 것이다.

'잠깐. 내가... 왜? 마왕이라고?'

꿈을 꾸고 있는 건가.

아까는 칼이 날아드는 환상을 보고 기절하더니.

이번에는 꿈속에서 마왕이 되었다.

중2병 말기 환자도 아니고.

이왕이면 꿈인데 멋진 역할을 맡을 것이지. 고기 산적이 된 마왕이 웬 말이냐.

그런 내 마음과는 상관없이, 입술 은 통제를 벗어나서 마음대로 떠들 었다.

"용사여. 비록 분신체이기는 하나, 나를 쓰러트린 그 무용은 칭송받아 마땅한 것이다. 그대의 이름을 듣고 싶구나."

돌아오는 대답은 없다.

인류의 용사는 그저 굳은 얼굴로.

묵묵히 힘을 주어서 칼을 더 깊이 찔러 넣었다.

으아아아아!

존나 아프다!

비명을 질렀는데도 목소리가 나오 지 않았다.

와. 아픔만 느끼고 내 마음대로 몸 도 못 움직이는 거야?

왠지 모를 억울함에 속으로 이를 갈았다.

"크크크, 대화를 섞는 것조차 거부 하는 것인가. 하나 두려워 말라. 그 대와 나는 다시 만날 것이니."

눈이 점점 감긴다.

전신이 축 늘어져서 손가락 까딱할 힘도 나오지 않았다.

[죽음]의 그림자가 드리우는 것이

선명하게 느껴진다.

마침내 풍경이 어둠에 녹아내려서 아무것도 보이지 않게 되었을 때.

돌연 빛이 뇌리를 강타했다.

"으아아아아!"

눈이 시리다 못해 뜨거워졌다.

할 수 있는 건 비명을 내지르는 것뿐이었다.

불로 시신경을 태우는 것 같은 고 통.

동시에 미지의 지식과 경험, 그리 고 기억이 뇌리에 새겨졌다.

빠른 재생을 누르고 영화를 보는

것처럼 수많은 장면들이 눈앞을 휙 휙 지나갔다.

고통에 몸부림친 지 얼마쯤 지났을 까.

거짓말같이 격통이 그쳤다.

나는 눈을 떴다.

米 米 *

"...철이 형."

머리가 웅웅 울린다.

"...민철 선배!"

"그만 좀 말해. 머리 울린단 말이 야."

나는 퉁명스럽게 대꾸하면서 눈을 떴다.

낯선 천장, 그 옆에는 조별 과제로 엮인 후배들이 나를 보고 있다.

"선배. 갑자기 기절은 왜 한 거예 요?"

"그리고 마왕이라고 막 중얼거리시 던데."

"이 선배. 기절해 놓고는 마왕이 되는 꿈이라도 꾼 거 아니야?"

잠깐.

내가 기절했다고?

"용수야. 저 칼이 나한테 날아들지 않았냐?"

"형. 무슨 소리세요. 신검을 쭉 보 고 계시다가 갑자기 쓰러지셨잖아 요."

허.

황당해서 말이 나오지 않았다.

칼이 심장에 파고들 때 느껴졌던 한기.

피륙을 가르는 이물의 감촉.

'다 환상이었다는 건가.'

그때.

머릿속에 욱여넣어진 지식이 떠올 랐다.

환생.

전생의 기억과 경험을 가지고 다시 태어나는 것을 말한다.

숱한 소설이나 영화에서 나오는 단 골 소재다.

그런 이야기를 왜 꺼내느냐고?

그 흔해 빠진 단골 소재의 주인공 이 바로 나이기 때문이다.

전민철.

올해 23세.

한국대 국어국문과에 재학 중이며,

과에서 제법 인기가 많은 인싸.

동시에 다른 이름이 떠올랐다.

투장 데이모스.

악마들의 사회, [판데모니엄]을 지 배하는 네 차원장 중 한 명이자 투 마의 왕.

신검 칼리트를 보는 순간.

모든 게 떠올라 버렸다.

'내가 마왕의 환생이라니...

아오, 시바.

나는 속으로 한숨을 쉬었다.

투마의 왕, 차원장 데이모스.

20년 전 지구에 강림했던 마왕.

그건.

인간이 되기 전, 전생의 나를 부르 던 말이었다.

2 화

"...이번 학기도 모두 수고했습니 다. 다음 학기에도 건강한 모습으로 봅시다."

1학기 마지막 강의.

교수님은 책을 덮고는 강의실 밖으 로 나가셨다.

학생들도 삼삼오오 무리를 지어서 밖으로 나갔지만, 나는 멍한 표정으 로 자리를 지켰다.

과 친구인 기태가 음흉한 표정으로 다가온다.

" 야."

"형 고민할 거 많다."

"어제 술 먹은 게 잘못된 거네. 그 래서 적당히 먹으라니까."

기태가 팔꿈치로 옆구리를 쿡쿡 찔 렀다.

이 새끼가.

옆구리는 왜 찌르고 난리야.

나는 오른손으로 장난을 거는 동기 녀석을 가볍게 밀어냈다.

"진짜 생각할 거 있다고."

"그럼 종강 모임도 안 올 거냐?"

"혼자 있고 싶어요. 다 나가 주세 요."

기태는 고개를 좌우로 저었다.

"얘 오늘 진짜 이상하네. 먼저 간 다. 혹시라도 마음 바뀌면 카톡해."

나는 시큰둥하게 손을 흔들어 주는 걸로 대꾸했다.

종강 모임이고, 술이고.

지금은 머릿속에 하나도 들어오지

않았다.

'내가 마왕의 환생이라니...

현실처럼 선명하게 느껴졌던 '마 왕'의 죽음.

망막을 뒤덮은 강렬한 빛과 함께, 내 머릿속에는 전생의 지식이 새겨 졌다.

투장 데이모스의 기억.

그가 쌓아 올린 투쟁의 업과 깨달 음.

그리고 방대한 지식.

전생의 지식을 이어받는 건 텅텅 비어 있는 컴퓨터 하드 디스크에 백

업 본을 이식하는 것과 같았다.

'대가리가 깨질 것처럼 아팠던 것 만 빼고 말이야.'

오른손으로 두피를 꾹꾹 눌렀다.

머리가 익어 버린 건 아닐까 걱정 될 정도로 뜨겁다.

과도한 정보를 한 번에 받아들인 후유증이었다.

지금도 전생의 지식이 머릿속에 둥 둥 떠다녔다.

하지만.

"후우-"

깊게 심호흡을 하면서 온갖 상념을

가라앉혔다.

전생은 전생이고.

지금을 살아가는 것은 바로 나, 전 민철이다.

머릿속을 가득 채웠던 뿌연 안개가 확 걷혔다.

흔들리는 자아를 안정시킨 뒤, 처 음으로 든 생각은 의구심이었다.

'이상하군. 분신이 죽었을 때, 내 영혼은 본체로 돌아갔어야 했을 터 인데...

나는 턱을 만지작거렸다.

전생처럼 강대한 존재는 하위 차원

에 진입하기 위해서 막대한 힘을 소 모해야 한다.

억제력.

영적 힘을 깨우치고 혼의 격을 쌓 아 올린 존재에게 부여되는 규칙.

전생의 나는 그 억제력을 피하려고 분신에 혼을 부여, 지구에 강림했다.

분신의 전투력은 본체에 비해 훨씬 떨어진다.

대신 분신이 죽어도 깃든 혼 자체 에는 타격이 거의 없다.

인류의 용사에게 사망한 순간.

투장 데이모스의 혼은 판데모니엄

의 심층에 둔 본체에게 돌아가야 했 다.

'그런데 환생을 해 버렸단 말이지.'

손을 쥐었다 폈다.

의심의 여지가 없다.

이 육체는 완벽한 인간이다.

이상한 건 하나 더 있었다.

'용사는 죽지 않았어.'

전생의 나에게 최후의 일격을 날린 용사.

그 녀석은 멀쩡히 살아 있었다.

다소 부상을 입었지만 죽을 정도는

아니다.

하지만 교과서에서는 용사가 마왕 과 함께 사망했다고 가르치고 있다.

생각해 보니 석연찮은 게 한두 가 지가 아니다.

'몰라. 생각해 봐야 머리만 아프 지.'

나는 고민을 관뒀다.

고민한다고 해결될 문제도 아니잖 아.

생각하는 시간도 아깝다.

머릿속의 상념을 빠르게 지우고는 몸을 훑어봤다.

'내 몸. 완전 약해 빠졌네.'

투마의 눈으로 볼 때는 허약해 빠 진 몸뚱이.

툭 건들면 팔 하나가 날아가도 이 상하지 않다.

내 몸은 하급 악마 하나 이기지 못할 정도로 나약했다.

문제는 그것만이 아니었다.

'몸도 약하지만 마나도 느낄 줄 모 른다.'

악마들은 태어날 때부터 마나를 느 끼고 호흡으로 기운을 축적한다.

암흑 마나.

차원을 이루는 힘의 원천 중 빛과 반대되는 암흑 에너지.

악마는 마력을 팔다리 다루듯 본능 적으로 다룬다.

반면 인류의 대부분은 마나를 감지 할 수 없다.

'인간 중에서는 극히 일부만 마나 를 느낄 수 있어.'

마나는 정신적인 힘.

하위 차원인 지구에서는 마나를 다 룰 수 있을 만큼 영적인 힘이 깨어 있는 사람이 많지 않았다.

현생의 나는 각성과는 연이 없었는

지 여태껏 마나를 느껴 본 적이 한 번도 없었다.

'지금은 다르지.'

투장 데이모스.

그 경험과 지식은 머릿속에 각인되 었다.

후읍-

호흡을 길게 들이마시면서 집중했 다.

현생의 몸은 마나를 느끼지 못한 다.

하지만 전생이 이룩한 경지는 내 영혼에 고스란히 새겨졌다.

정신을 집중하자 전혀 느낄 수 없 던 마나도 손에 잡힐 것처럼 선명하 게 느껴졌다.

[마나를 느꼈습니다. 조건을 충족 시켰습니다.]

[각성을 시작합니다. 아카식 레코 드에 접속합니다.]

[아카식 레코드에서 각성자의 혼에 맞는 능력을 검색합니다.]

[각성자 전민철은 특성으로 플레이 어를 부여받습니다.]

[스테이터스 시스템이 추가됩니다.]

뭐라고요.

내가 각성했다굽쇼?

23살의 여름.

나는 전생과 각성을 동시에 이루었 다.

* 米 *

거울을 봤다.

떨떠름한 표정을 짓고 있는 내 얼

굴이 보인다.

현실감이 없다.

전생이 실감 나기도 전인데.

갑자기 각성이라니.

'각성이 이렇게 쉽게 되는 거였 어?'

각성자.

마나를 느낀 사람들은 아카식 레코 드와 연결되어 각자에게 맞는 [특 성]을 부여받는다.

전 세계 인구 중 1%

각성자의 숫자다.

그중 전투와 관련된 특성을 받고 몬스터를 사냥하는 '헌터'는 그중 절반이 조금 넘는다고 알려졌다.

각성자가 되고 싶어 하는 사람들은 넘치고 넘쳤다.

그런 행운을, 나는 쉽게 거머쥔 것 이다.

[플레이어 전민철은 스테이터스 창 을 이용할 수 있습니다.]

[스테이터스 창은 당신에게 주어진 고유 능력입니다.]

[지금 당장 '상태 창'이라고 외쳐서

특성을 확인해 보세요.]

아카식 레코드가 빨리 특성을 확인

해 보라며 보챈다.

알았다. 확인해 보면 되잖아.

"상태 창."

나는 일러 준 말을 따라 읊었다.

이름 : 전민철

레벨 : 1

종족 : 인간

직업 : 없음

능력치

근력 : 7

민첩 : 6

맷집 : 6

체력 : 7

마력 : 1

* 특성

[플레이에

당신이 쌓은 업은 세계의 규칙을 비틀 만큼 깊습니다. 몬스터를 사냥 하고 포인트를 얻어서 본인의 규칙

을 개변할 수 있습니다.

* 스킬 [1/1 이

[진실의 눈]

직업 : 없음

등급 : s

제한 : 플레이어 특성

아카식 레코드를 열람하여 대상의 정보를 살펴봅니다. 사용 대상은 생 물, 무생물을 가리지 않습니다.

가장 눈에 띄는 건 특성이었다.

'플레이어 특성?'

몬스터를 죽여서 포인트를 쌓고 레 벨을 올리면 원하는 능력치를 강화 시킬 수 있다.

나는 금세 특성의 가능성을 깨달았 다.

'이거. 대박이잖아?!'

몬스터를 사냥하기만 해도 강해진 다.

투마 시절에도 누리지 못한 편의성 이다.

인간의 육신으로는 강해지는 데 한

계가 있다.

아무리 강한 특성을 부여받아도.

각성 후 잠재 능력이 엄청 뛰어나 도.

인간이라는 종이 가지고 있는 한계 를 뛰어넘는 것은 매우 어렵다.

'나는 다르다.'

플레이어 특성.

레벨을 올리면 육체를 강화시킬 수 있다.

세계의 규칙을 개변하는 힘.

실제로 손볼 수 있는 건 나 자신 에 한정되어 있지만.

그 정도로도 충분했다.

심장이 두근거리기 시작했다.

영혼에 새겨진 투마의 본능이 마구 뛰었다.

'강해질 수 있다.'

전생, 투마 데이모스의 목적은 단 하나였다.

강해지는 것.

아카식 레코드의 선물 덕분에 한계 를 뛰어넘어 강해질 수 있는 방법이 생겼다.

'몬스터를 사냥하면 능력치를 올릴 수 있다... 정말 게임 같군.'

피식.

웃음이 절로 나온다.

인간은 악마에 비해 약하다.

성인 남성의 신체 능력으로는 갓 유아기를 벗어난 악마조차 이길 수 없다.

헌터들이라면 다르겠지.

하지만 상위 헌터들조차도 귀족 등 급의 마족에게는 상대조차 안 된다.

내 능력은 다르다.

법칙 개변.

레벨을 올리면 인간이라는 '종'을 넘어서는 힘을 쌓을 수 있다.

나는 천천히 상태 창을 살펴봤다.

'마력이 다른 능력치보다도 엄청 낮군.'

방금 마나를 느낀 게 이유인 것 같다.

실제로 내 신체에는 마력 한 줌 깃들어 있지 않았다.

마나를 느낀 것은 마족으로 치면 막 아장거리는 갓난아이와 비교해야 될 수준이다.

'흐흐흐. 마력 수치를 올리는 건 일도 아니지.'

전생의 나는 판데모니엄의 네 정점

중 하나였다.

마력을 늘릴 수 있는 방법 정도는 머릿속에 차고 넘쳤다.

신체의 한계는 [플레이에 특성으 로 극복하면 된다.

나는 투장 데이모스의 지식을 뒤졌 다.

'역시... 무공을 익혀야겠어.'

무공.

과거 계약 때문에 타 차원에 파견 됐을 때, 무림이라는 차원의 인간들 에게 익힌 마력 운용 방법이다.

마교라고 했던가.

그곳의 인간들은 기이했다.

자연의 마나를 호흡으로 빨아들이 고, 체내에 쌓는다.

마치 악마나 천사처럼.

무공은 천사나 악마의 마력 운용 방식에 뒤지지 않았다.

오히려 뛰어난 부분도 있었다.

전생의 나는 그곳에서 오랫동안 머 무르면서 각종 무공을 습득, 하나하 나 뜯어 가면서 연구했다.

그 결과, 무공을 개선 및 발전시켜 서 마족의 마투술보다도 더 뛰어난 기술로 재탄생시켰다.

'투장에 오를 수 있었던 것도 무공 덕이지.'

어찌 보면.

처음부터 답은 정해졌을지도.

'성천조계공을 익히기 적절한 날이 군.'

성천조계공은 무수한 별의 기운을 심상 세계에 새기는 기공이다.

과거, 투장 데이모스를 마족들의 정점으로 오르게 해준 호흡법.

다만, 성천조계공을 익히려면 몇 가지 조건을 충족시켜야 한다.

대표적인 것이 시간.

[PM 4: 2이

금요일 오후.

햇볕이 조금씩 기울면서 그림자의 길이가 서서히 길어진다.

낮은 태양의 시간.

태양이 지구와 가장 가까이에 있기 에, 천체를 이루는 별들의 기운을 가려버렸다.

온갖 별이 떠 있는 밤에 성천조계 공을 수련해야 호흡법의 효과를 볼 수 있다.

'준비할 시간은 충분해.'

성천조계공을 완벽하게 익히기 위 해.

나는 미리 파악해 둔 장소를 향해 발을 옮겼다.

3 화

어둠으로 잠긴 하늘.

수많은 별들이 저마다 빛을 반짝이 면서 태양이 사라진 하늘을 수놓는 다.

"끙."

나는 굽혔던 허리를 폈다.

[PM 11:47]

"아슬아슬하게 시간에 맞췄어."

손등으로 이마에 맺힌 땀을 훔쳤 다.

대학교 뒤에 있는 야산.

공터 바닥에는 기하학적인 문양들 이 그려져 있다.

대마력 집속진.

한밤중에 야산에 올라서 그려 넣은 것은 대대로 투장에게만 전해지는 비술이다.

'마력의 흐름을 인위적으로 모아 주는 진이지.'

나는 뿌듯한 눈빛으로 노동의 결과 물을 바라봤다.

오 미터 지름의 원 안에 빼곡하게 새겨진 룬어.

하나하나가 마법의 힘이 담긴 단어 들이다.

이걸 새기려고 몇 시간 동안 얼마 나 고생을 했는지.

'눈알 빠지는 줄 알았네.'

나는 눈꺼풀을 매만지면서 건조해 진 눈을 풀어 줬다.

산속에서의 밤은 지독하리만큼 어 둡다.

휴대 전화의 불빛에 의지해서 공터 에 오 미터가량의 마법진을 그리는 건 엄청난 노동이었다.

마법진은 한 치의 오차만 있어도 효율이 극도로 떨어진다.

한 획 한 획, 그을 때마다 신중을 기했다.

[대마력 집속진]

종류 : 진법

등급 : S

완성도 : 100%

대대로 투마의 왕에게만 계승되는 마법진.

주변에 간섭하여 인위적으로 마나 를 모으는 기능이 있다.

총 24개의 룬(Rune) 문자를 사용 하였으며, 각 단어는 마법진의 효능 을 증폭시켜 준다.

현재는 마법진의 원동력이 없어서 작동되지 않는다.

엔진을 움직이려면 원동력이 되는 에너지를 주입해야 한다.

마법진도 마찬가지다.

에너지원인 마나가 없으면 작동하 지 않는다.

나는 주머니에 손을 뻗었다.

묵직하면서도 까칠한 촉감이 느껴 진다.

E급 마나 스톤.

다음 학기 등록금으로 받아 놓은 돈을 빼서 급하게 구매한 물건이다.

[PM 11:59]

내 눈빛이 반짝였다.

바로 마법진 끄트머리에 E급 마나 스톤을 올렸다.

우우웅-!

기분 좋은 진동음이 지면을 울린 다.

작대기로 그어 놓은 선에서 은은한 빛이 새어 나오기 시작했다.

[E급 마나 스톤이 대마력 집속진의 원료로 사용됩니다.]

[대마력 집속진이 에너지원을 인식 했습니다.]

[대마력 집속진이 활성화됩니다.]

[마력 증폭률 450%]

[지속 시간은 오 분입니다.]

[05:00]

[04:59]

[04:58]

이런 것도 알려 주는 거야?

플레이어라는 권능.

생각보다 더 쓸모가 있을지도.

-굿모닝. 빠빠빠빠빰 빠빠빠빰!

AM 12:00

휴대 전화가 미리 맞춰 둔 대로 알람 소리를 요란하게 냈다.

'지금이다!'

나는 집속진의 중심부에 앉아서 가 부좌를 틀었다.

米 米 米

솜털이 쭈뼛쭈뼛 선다.

마력 수치 1인 몸이 반응할 만큼 충만한 마나.

마력 집속진의 힘이다.

'모든 게 기억대로다.'

대마력 집속진의 효과는 뛰어났다.

내 주위로 푸르스름한 안개가 아른 거리기 시작했다.

고밀도의 마나.

대마력 집속진의 효과로 육안으로 확인할 수 있을 만큼 모인 것이다.

기공을 익히기에는 최적의 환경이 다.

'내가 익힐 게 일반적인 기공이라

면 말이지.'

일반적인 기공은 자연에 있는 마나 를 체내에 축적한다.

내가 익힐 것은 달랐다.

성천조계공.

별들의 기운을 축적해서 심상 세계 에 작은 우주를 만드는 호흡법.

마교의 지존만 익힐 수 있는 천마 신공 이상으로 익히기가 난해한 고 대의 무공이다.

나는 티끌만 한 마력 감응도로 마 력 집속진에 응집된 마나를 움직였 다.

파르르-!

대기가 떨린다.

고밀도로 응축된 마나가 내 정신력 에 감응한 것이다.

오감 외의 감각.

일명 육감이라고 불리는 영적 감각 이 마법진의 도움을 받아 마구 확장 된다.

나는 고개를 위로 젖혔다.

하늘을 수놓은 수많은 별들이 망막 에 비친다.

'별의 흐름을 담는다.'

정신을 집중해서 별들의 기운을 끌

어당긴다.

천체를 구성하는 수많은 별들.

희미한 은색 빛이 점점 강렬해진 다.

별의 기운이다.

방금 전까지 검게 물든 하늘이 새 하얗게 물들었다.

현기증이 나고 머리가 지끈거린다.

한번 시작된 두통은 머리를 마구 흔들면서 집중을 흐트러트렸다.

나는 혀를 깨물면서 집중을 유지했 다.

여기서 호흡법을 멈추면 십중팔구

는 미치거나 죽거든.

'이런 것쯤은!'

나, 이래 봬도 전직 마왕님이다.

이런 것쯤은 얼마든지 참아 낼 수 있거든!

입을 크게 벌렸다.

그리고.

있는 힘껏 숨을 들이마셨다.

한 번의 들숨.

별의 기운이 공기에 섞여서 몸 안 으로 스며든다.

입, 목, 폐가 모두 따끔거린다.

성운의 힘.

한 생명에게 담기기에는 너무나도 막대한 에너지다.

그 강대한 힘이 신체를 벗어나려고 몸부림치기 시작했다.

46 三y W

신음 한 줄기가 저도 모르게 새어 나왔다.

걱정하지 마라.

여기까지는 이미 예상했다.

'두 번째인데. 설마 몰랐을 것 같 나.'

전생 때, 멋도 모르고 성천조계공

을 익히려고 시도했다가 죽을 뻔했 었다.

튼튼한 마족의 몸뚱이로도 버티기 힘들었는데.

하물며 나약한 인간의 육신이라면? 한순간이라도 방심했다가는 별의 힘에 몸이 찢겨 나갈지도 모른다.

나는 별의 힘을 심상 세계로 인도 했다.

검게 물든 심상 세계.

마구 날뛰던 별들은 밤하늘과 닮은 심상 세계에 도달하자 움직임을 바 꾸었다.

방금 전 봤던 하늘.

눈동자에 담았던 그 모습과 똑같은 모습으로 별의 기운이 자리를 잡기 시작한 것이다.

한번 자리를 잡은 별의 기운은 움 직이지 않고 잠잠해졌다.

'좋아. 안정적으로 자리를 잡았어!'

나는 멈추지 않고 숨을 들이마셨 다.

대마력 집속진의 지속 시간 동안 조금이라도 더 많은 별의 기운을 담 아야 했다.

심상 세계에 만든 소우주는 아직

미약했다.

기운이 완전히 자리를 잡아야 성천 조계공을 익혔다고 할 수 있다.

[00:01]

[00:00]

[대마력 집속진의 지속 시간이 끝 났습니다.]

[대마력 집속진을 재가동시키려면 에너지가 필요합니다.]

E급 마나 스톤에 담긴 마력이 바 닥났다.

원동력을 잃은 마법진은 더 이상 작동하지 않았다. 마나 밀집도가 빠 르게 낮아졌다.

아쉬움은 없었다.

이미 원하는 것은 손에 넣었으니 까.

심상 세계에 안정적으로 자리 잡은 소우주.

성천조계공이 1성에 도달했다는 표 식이다.

[성천조계공 스킬을 습득했습니다.]

[성천조계공의 경지가 1성에 도달

했습니다.]

[성천조계공의 영향을 받아서 신체 가 강화됩니다.]

[근력이 5 증가합니다.]

[민첩이 5 증가합니다.]

[맷집이 4 증가합니다.]

[체력이 4 증가합니다.]

[마력이 20 증가합니다.]

[성천조계공]

분류 : 기공

등급 : EX

제한 : 없음

심상 세계, 혹은 상단전이라고 부 르는 상위 차원의 정신에 소우주를 형성하는 마력 호흡법입니다.

빛의 성운과 암흑 성운이 내뿜는 강력한 파동을 받아들여 심상 세계 에 옮겨서 사용자의 의지대로 사용 할 수 있습니다.

경지 : 1성(0%)

호오.

내가 가진 기술들도 스킬로 등록되 는 건가.

그런데.

상태 창의 알림은 끝나지 않았다.

[빛의 성운과 암흑 성운의 힘이 합 쳐집니다.]

[상반되는 힘이 융합되면서 새로운 힘으로 탄생됩니다.]

[마력 -〉혼돈력]

[마나 -〉혼돈기]

잠깐만요.

시스템 씨.

지금 뭐라고 한 거야?

* * *

"상태 창."

이름 : 전민철

레벨 : 1

종족 : 인간

직업 : 없음

능력치

근력 : 12

민첩 : 11

맷집 : 10

체력 : 11

혼돈력 : 21

혼돈기 - [210/21이

* 특성

[플레이에

당신이 쌓은 업은 세계의 규칙을 비틀 만큼 깊습니다. 몬스터를 사냥

하고 포인트를 얻어서 본인의 규칙 을 개변할 수 있습니다.

* 스킬 [2/1 이

[성천조계공 - EX급]

[진실의 눈 - S급]

"정말로 바뀌었어."

나는 떨떠름한 목소리로 중얼거렸 다.

혼돈력, 그리고 혼돈기.

투장 데이모스의 방대한 지식 속에

서도 들어 본 적이 없는 단어다.

단순히 표기 차이만 있는 걸까.

'상태 창의 알림을 생각해 보면 차 이가 있어.'

빛의 성운과 암흑 성운.

날개 달린 닭둘기, 천족들은 빛의 성운이 내뿜는 성력을 체내에 축적 한다.

반면 마족은 암흑 성운의 암흑 마 나를 힘의 근간으로 한다.

둘은 물과 기름처럼 섞일 수 없다.

그게 세간의 상식이다.

의문은 한 가지 더 있다.

'암흑 성운의 힘을 흡수하는 호흡 법이 아니었나?'

내가 처음 성천조계공을 익혔을 때 는 암흑 성운의 기운을 받아들였다.

심상 세계에 창조한 소우주의 힘을 바탕으로 강대한 암흑 마나를 다루 어 투장의 자리까지 올랐다.

투장 데이모스 때 이룬 경지는 10 성.

전생의 나는 성천조계공의 끝에 도 달했다고 자신했다.

하지만 아니었다.

'빛의 성운과 암흑 성운의 힘이 공

존하고 있어.'

심상 세계에 구축한 소우주에서 상 반된 힘이 느껴진다.

어울릴 수 없는 두 힘이 묘하게 조화를 이루면서 균형을 유지한다.

빛의 성운의 성력.

그리고 암흑 성운의 암흑 마력.

두 기운을 개별로 사용할 수도 있 고.

시스템의 말대로 둘을 섞어서 혼돈 기로 운용하는 것도 가능했다.

혼돈기로 운용하면?

같은 마력에 비해 몇 배는 강력해

졌다.

상식이 무너진다.

전생의 기억을 모두 뒤져 봐도 유 례를 찾아볼 수 없는 전대미문의 일 이다.

부르르.

저도 모르게 몸이 떨렸다.

'설마... 이게 성천조계공의 원래 모습이었다는 건가?'

당대에 성천조계공을 익힌 것은 나 뿐이다.

마교 최심부에 숨겨졌지만, 그 누 구도 해석을 하지 못해서 익힐 수

없었던 고대의 무공.

혹시.

전생의 내가 마족이라서 암흑 성운 의 힘만 받아들일 수 있었던 건 아 닐까.

'그게 사실이라면... 전생에 익혔 던 성천조계공은 반쪽짜리에 불과하 다는 거잖아!'

눈이 번쩍 떠졌다.

심장이 두방망이질을 쳤다.

'혼돈기를 키우면 전생의 나를 능 가하는 것도 꿈이 아니야.'

전율.

그리고 희열.

눈동자에 깃든 불꽃이 거세게 타올 랐다.

전생을 자각했을 때.

내심 인간의 육체에 실망했다.

하위 차원의 생물.

마나를 느끼지도 못하고 몸뚱이는 허약했다.

아카식 레코드가 하사한 특성, 플 레이어 덕분에 강해질 수 있는 가능 성을 찾았지만.

전생의 나에게 도달하는 건 어렵다 고 내심 생각했다.

'아니. 플레이어 특성과 혼돈기를 성장시키면 오래 걸리지 않을지도 몰라.'

불가능이 아니다.

나는 이미 성천조계공을 10성까지 완성시킨 몸이다.

그 깨달음은 온전히 영혼에 새겨졌 다.

이미 한 번 걸어 본 길을 다시 가 는 것은 어렵지 않다.

오히려 더 빠르게.

그리고 정확하게 갈 수 있다.

'온전한 성천조계공을 완성시킨다.

그리고 모든 차원에서 최고로 강해 진다.'

간단한 목표.

광대하고도 오만하게 느껴지는 목 표이기도 했다.

사람이 꿈을 꾸면 이왕지사 크게 꿔야지.

나는 마음을 가득 채우는 기대감에 벅차올랐다.

4 화

각성자로 활동하려면 헌터 협회에 반드시 등록해야 한다.

나는 근처에 있는 헌터 등록 센터 를 방문했다.

"대기표를 뽑고 기다려 주십시오."

33 번.

'사람이 많기도 하군.'

이제 막 해가 떠오른 아침.

나보다 32명이나 먼저 와서 헌터 적성 검사를 기다리는 중이었다.

센터 내부는 자신의 차례를 기다리 는 사람들로 북적거렸다.

나는 빈자리에 앉아서 느긋하게 차 례를 기다렸다.

"예! 엄마! 저 각성했어요! 이제 헌터라고요!"

"내, 내가 분명 메시지를 들었다 고! 이럴 리 없어!"

누군가는 각성의 기쁨을.

다른 이는 실망감을 드러냈다.

"놔! 놓으라고! 기계가 잘못된 거 라니깐! 난 분명 각성했어!"

"저 사람 내쫓으세요."

누군가는 결과를 부정하다가 내쫓 기기도 했다.

'검사비도 만만찮으니까.'

각성 유무를 판정하는 기계.

가동할 때마다 마력을 소모한다.

최하 등급인 E급 마나 스톤만 해 도 300만 원대.

당연히 공짜는 아니었다.

한 시간 정도 기다리니 내 차례가 왔다.

검사실 담당 직원은 40대쯤 되어 보이는 아저씨였는데 피곤에 찌든 눈빛으로 나를 올려다보았다.

"성함이 어떻게 되시죠?"

"전민철입니다."

"예. 전민철 씨... 신분증 좀 주 시겠어요."

"여기 있어요."

"본인 확인되셨고요. 안으로 들어 가면 됩니다."

검사실 안에 들어가니 요란한 엔진

소리가 귓가를 자극한다. 이명이 난 것처럼 웅웅거렸다.

"어서 오세요!"

단발에 화장기가 살짝 감도는 얼 굴.

20대 초반, 갓 성년이 된 것 같은 여자가 내 옆으로 다가왔다.

체리 향 비슷한 향수와 은근히 꾸 미는 것에 신경을 쓴 것 같은 모습. 정장 차림이지만 세련되면서도 청초 해 보인다.

그것 말고도 내 눈에는 한 가지가 더 눈에 띄었다.

'이 사람. 마나를 품고 있는데.'

직원한테서 상당한 마력이 느껴졌 다.

"헌터 협회 집행부에서 파견 근무 중인 소혜민이에요."

"아, 네. 전민철입니다."

역시나.

헌터 였구먼.

"헌터 검사는 처음이세요?"

"네. 처음인데요."

"그럼 제가 안내해 드릴게요!"

이야.

풋풋하다.

20살 새내기 학생을 보는 느낌이 다.

접수처의 아저씨를 보고 난 뒤에 생기발랄한 사람을 보니 덩달아 기 분이 상큼해졌다.

"탈의실에서 옷 갈아입고 검사실로 오시면 돼요."

옷을 갈아입고 나오니 소혜민이 기 기 패널을 한창 만지작거리고 있었 다.

"저기 원통 보이시죠? 저기로 들어 가시면 바로 검사를 시작할 거예 요."

"가만히 서 있기만 하면 되나요?"

"네. 빛이 많이 나오기는 하는데, 눈만 감고 있으시면 돼요."

"어렵지 않네요."

"전민철 님은 다른 분들하고 좀 다 르시네요."

"뭐가요?"

"처음 오신 분들은 많이 긴장하시 던데. 전혀 긴장하신 것 같지 않아 요."

"각성해서 온 거고 확인만 받는 건 데 긴장할 게 있습니까."

"아침에 왔던 아저씨들하고는 다르 게 잘생기시기도 하고...

"네?"

"아, 아니에요. 말씀대로 꼭 각성 판정이 나왔으면 좋겠네요."

혜민은 얼굴이 붉어진 채로 호호, 웃으면서 건투를 기원했다.

원통 안으로 들어갔다.

반쯤 열려 있던 기계 문이 닫혔다.

빛이 차단되면서 내부가 어둠으로 물들었다.

위이잉一

장비가 작동을 시작했다.

처음에는 적외선이 떠오르는 붉은 빛이 발끝에서부터 전신을 훑었다.

이어서 형형색색의 빛이 여기저기 서 번쩍였다.

이거 완전....

'클럽 분위기잖아.'

춤이라도 춰야 할 것 같은 조명이 다.

일 분 정도 지났을까.

닫혀 있던 문이 열렸다.

"전민철 님. 검사가 끝났어요! 조 금만 기다리시면 금방 결과가 나올 거예요."

옷을 갈아입고 나오니, 혜민이 결 과지를 내밀었다.

"빠르긴 빠르네요."

"헤헤. 그렇죠?"

나는 검사 결과를 확인했다.

검사 대상 : 전민철

주민등록번호 : 200207-

3XXXXXX

각성 유무 : O

능력치

근력 : E(E)

민첩 : E(E)

체력 : E(E)

맷집 : E(E)

마력 : D(D)

* 특성

미확인(담당자는 검사 대상에게 특 성을 확인할 것을 요함)

* 소견

마나를 느꼈으나 마력 수치를 제외 하면....

(중략)

총평 : 근접 클래스

이건 뭐... 처참하구먼.

"혹시 등급 중에 도는 없나요?"

"아, 아하하. 가장 낮은 수치는 E 예요."

혜민은 얼굴을 붉히면서 고개를 홱 돌렸다.

'내 거 봤네. 봤어.'

야.

왜 니가 민망해하냐.

마력을 제외한 모든 능력치가 E.

'D는 20 이상. E는 그 아래라고 보면 되겠어.'

상태 창이 협회의 검사 기계보다 훨씬 정확하고 세분화되었다.

그걸 확인한 것만으로도 큰 소득이 다.

'협회에서도 혼돈력을 모르나 보 군.'

결과지에 나온 능력치는 마력.

상태 창에 표기된 '혼돈력'을 감지 하지 못했다.

하긴.

혼돈력은 판데모니움의 정점 중 하

나였던 나조차도 듣지 못한 단어다.

하위 차원인 지구의 기계로 검사를 했다고 나오는 게 이상한 거다.

반복해서 검사 결과를 확인하던 중, 무언가가 눈에 띄었다.

"검사관님? 뭐 하나만 물어볼게 요."

"네네. 말씀하세요."

"능력치 옆에 괄호 처져 있는 건 뭔가요?"

"그건 전민철 각성자님의 잠재 능 력을 뜻해요."

"잠재 능력?"

"각성자들은 탑이나 게이트에서 몬 스터를 쓰러트리면 마력 일부를 흡 수하거든요. 전투를 반복하다 보면 능력이 성장해요."

"능력의 성장 한계를 말하는 게 잠 재 능력이라는 거죠?"

"그렇...죠."

혜민은 말끝을 흐렸다.

호오.

헌터들은 성장에 한계점이 정해져 있나 보다.

"소수이기는 하지만 협회에서 측정 한 잠재 능력보다 더 강한 힘을 얻

은 헌터도 있다고 해요."

뭐, 나하고는 상관없는 이야기였다.

플레이어의 권능.

그건 잠재 능력 같은 게 아닌, 규 칙의 개정을 뜻한다.

자가 개변.

한계 따위는 씹어 먹고 세계의 규 칙을 수정하고 개정한다.

그리고 전생의 다양한 지식.

강해질 수단은 얼마든지 있다.

"전민철 각성자님! 헌터로 등록하 시면 굳이 게이트나 탑이 아니어도 특기를 살릴 수 있는 분야는 많이

있으니 너무 실망하지 마세요!"

혜민이 갑자기 소리를 빽 질렀다.

위로해 주는 건가?

이쪽은 전혀 실망 안 했는데.

나는 떨떠름하게 웃었다.

"고맙습니다."

"참! 전민철 각성자님이 정식으로 헌터 활동을 하시려면 헌터 라이선 스를 취득해야 해요."

"헌터 라이선스?"

"네. 라이선스 취득 시험은 매달 있거든요. 헌터 라이선스를 따야 탑 이나 게이트 출입이 가능하세요."

나는 미간을 살짝 찌푸렸다.

'이러면 이야기가 좀 달라지는데.' 탑, 게이트, 혹은 침식된 땅. 몬스터와 싸울 수 있는 장소다. 명칭은 다르지만 공통점은 있다 세 지역 모두 일반인한테는 출입

통제 구역이라는 것이다.

"다음 라이선스 시험은 언제인가

요?"

"매달 둘째 주 월요일이니까, 10일 정도 남았네요. 자세한 건 문자로 공지가 갈 거예요!"

라이선스 시험이라....

아무래도 레벨을 올리는 것은 조금 뒤로 미뤄야겠다.

米 #: #:

검사를 마치고 나오니, 등록 센터 출입구 근처가 시끌벅적해졌다.

"진성 각성자님. 저는 용오름 길드 에 있는 정지운이라고 합니다. 저희 길드로 말할 것 같으면 유망주에게 많은 투자를 하고 있는데요."

"영산 길드에서는 신입 각성자 분 들을 친절하게 지도해 드리고 있습

니다."

"저희 휠 오브...

길드 관계자들.

검사를 마친 각성자들을 길드로 끌 어오기 위해 목에 핏대를 세우면서 홍보를 하는 중이다.

명함이나 길드 안내 팸플릿을 손에 쥐여 주는 것도 예삿일이 아니었다.

나한테는 별로 관심이 없는 듯 눈 빛 한 번 주고는 다시 쳐다보는 일 이 없었다.

'귀찮은 건 사양인데 다행이다.'

마력을 제외한 모든 능력치 E급.

어느 길드라도 사양하고 싶을 만한 인재 (?) 겠지.

부우웅!

휴대 전화가 요란하게 울렸다.

처음 보는 번호였다.

"협회 안내문?"

나는 문자 내용을 확인했다.

발신 : 헌터 협회

헌터 라이선스 시험 안내 사항

전민철 님의 각성자 등록을 축하드

립니다.

이 문자는 각성자 등록을 마친 모 든 사람에게 통지되는 안내 사항입 니다.

각성자로 활동하기 위해서는 헌터 협회에 정식으로 등록해야 합니다.

본 협회는 귀하가 탑 / 게이트에서 활동할 수 있는 재목인지 판단하기 위해 시험을 실시, 결과 여부에 따 라 라이선스를 부여합니다.

(...중략)

장소 : 서울특별시 마포구 성산 2 동 월드컵로 240.

시간 : 매월 둘째 주 월요일.

'열흘 정도 남았나.'

헌터 라이선스 시험.

시험 패턴은 다섯 개가 있지만, 매 번 무작위로 선정된다.

하지만 공통점은 있다.

'전투력과 생존 능력을 알아본다는 거지.'

탑.

그리고 게이트.

헌터는 몬스터들을 사냥하는 자다.

여러 환경에서, 그리고 어떤 적을 만나더라도 사냥에 성공하고 살아남 을 수 있는지.

라이선스 시험은 헌터한테 가장 중 요한 두 가지를 중점으로 두었다.

'지금의 내 능력이라면 유력한 탈 락 후보겠지.'

씩, 웃음이 입가에 감돌았다.

열흘이라고?

충분하다.

이번 라이선스 시험.

보란 듯이 합격해 주마!

米 * 米

나는 곧장 운동을 시작했다.

너무 빠르지도.

느리지도 않은 걸음으로 천변을 뛰 었다.

'몸을 만드는 건 기초부터 탄탄히 해야지.'

달리기는 모든 운동의 기본이다.

그러면서도 효과가 탁월했다.

물론.

단순히 양다리를 앞뒤로 움직이면

서 뛰고 있는 건 아니었다.

후으읍-!

심장이 두방망이질을 치고.

폐부가 달아올라도.

양반처럼 느긋하게 숨을 들이켜고 내쉬었다.

얼굴이 잘 익은 토마토처럼 빨개졌 다.

천변을 얼마쯤 뛰었을까.

느린 호흡으로 휴식 없이 뛰다 보 니 몸이 한계에 도달했다.

관절과 근육이 삐거덕거린다.

'참아야 해.'

나는 이를 악물고 호흡을 천천히 하면서 손과 발을 계속 움직였다.

동시에 심상 세계를 열고 성천조계 공을 운용했다.

꾹 참고 발을 내딛고, 호흡을 할 때마다 성운의 힘이 스며들면서 몸 에 원기를 더해 주었다.

한계에 달한 육체가 힘을 얻어서 계속 앞으로 나아갔다.

[성천조계공의 효과로 신체 능력이 향상됩니다.]

[근력이 0.2 증가했습니다.]

[체력이 0.1 증가했습니다.]

[맷집이 0.1 증가했습니다.]

시스템의 알림이 들리는 순간 걸음 을 멈췄다.

"헉, 허어어억! 쿨럭! 쿨럭!"

그리고 못다 쉰 숨을 마음껏 들이 마셨다.

시원한 공기가 한껏 달궈진 폐부를 천천히 식혀 준다.

나는 목덜미를 타고 흘러내리는 땀 을 닦아 냈다.

'몸을 개선하려면 역시 운동이 최 고지.'

지구에는 건강한 육체에 건강한 정 신이 깃든다는 말이 있다.

내 생각과 딱 맞아떨어지는 격언이 다.

혼돈기가 몸에 적응하고, 나아가 별의 기운으로 한계에 도달한 육신 을 단련한다.

단순하면서도 효과가 좋은 수련 방 법이다.

'지금은 기초적인 운동만 해도 육 체를 단련시킬 수 있어.'

호흡법을 운용하면서 달리는 것.

쉽지 않은 일이다.

육체와 정신 모두 극한으로 내모는 행위.

한계에 도달했을 때야 비로소 다음 단계를 밟을 수 있다.

달리기에 이어 팔 굽혀 펴기, 그리 고 윗몸 일으키기를 했다.

옷이 땀으로 흠뻑 젖었다.

팔과 다리는 쉴 새 없이 후들거렸 다.

죽을 것 같이 힘들지만.

'강해지고 있다.'

나는 손을 말아 쥐었다.

상태 창.

아주 기특한 녀석이다.

지칠 때쯤이면 능력치가 올라간 걸 친절하게 음성으로 알려 줬다.

아침 해가 떠오를 때부터 지기까 지.

나는 쉬지 않고 몸을 혹사시키면서 호흡법을 운용했다.

5화

해가 지평선 너머로 사라진다. 나는 운동을 멈췄다.

하아, 하아.

입에서는 단내가 났다.

몸을 그만큼 혹사시켰으니.

일반인이었다면 진즉에 탈이 나고 도 남았을 만한 운동량이다.

'운동보다는 혹사나 고문이라는 말 이 어울리지 않을까.'

나는 피식 웃었다.

전생의 기억.

투장 데이모스의 훈련은 이보다도 수십 배는 가혹했다.

오직 강해지기 위해!

자살 지망생이 아닐까 싶을 정도로 스스로를 한계에 몰아붙였다.

그 기억에 비하면 팔다리가 후들거 리는 것쯤....

'아무것도 아니야.'

나는 거칠어진 호흡을 가다듬었다.

오늘의 신체 훈련은 이걸로 종료. 하지만 '훈련'이 모두 끝난 건 아니 었다.

'성천조계공의 기운을 쌓는다.'

땅에 엉덩이를 대고 가부좌를 틀었 다.

시선은 하늘을 바라보고, 양손은 무릎에 올려놓아서 바닥을 향하게 한다.

낮은 태양의 기운이 강대해서 별의 기운을 흡수할 수 없다.

'낮에는 신체를 단련시키고 밤에는 성천조계공의 성취를 올린다.'

투마의 본능은 힘에 대한 욕망이 다.

현생은 인간이지만, 전생의 기억을 전승하면서 그 욕구도 고스란히 이 어 받았다.

강해지는 것.

그래서 무의 끝을 보는 것.

한 시간이라도 허투루 쓰고 싶지 않았다.

후으읍!

천천히, 그리고 많이.

최대한 느리게 호흡하면서 하늘을 물들인 별의 기운을 빨아들였다.

내 성천조계공의 성취는 1성.

이미 심상 세계에 소우주를 구축해 두어서 대마력 집속진의 도움 없이 도 별의 기운을 받아들일 수 있었 다.

뿌연 기운이 입가에 아른거린다.

우유를 희석시킨 것 같은 옅은 흰 색.

하늘에서 쏟아지는 별의 기운이다.

나는 숨을 들이마시고 뱉으면서 심 상 세계에 별의 기운을 축적했다.

편안하다.

성천조계공을 처음 익힐 때와는 다 른 느낌이다.

호흡에 뒤섞인 별의 기운은 전처럼 요동치거나 하지 않았다.

그저 부름에 순응하여 심상 세계로 흘러들어 가 소우주에 차곡차곡 쌓 여 간다.

심상 세계에 자리 잡은 별들은 조 금씩 그 빛이 강해졌다.

'아. 아아...

심상 세계가 채워지면서 조금씩 개 변되는 것.

한 번도 겪지 못한 황홀한 경험이 었다.

무아.

별의 흐름에 몸을 맡기고 무의식적 으로 호흡을 반복했다.

[성천조계공의 성취도가 1% 상승 했습니다.]

[혼돈력이 0.1 늘어났습니다.]

[성천조계공의 성취도가...]

시시때때로 시스템 알림이 들렸지 만.

무시했다.

내 정신은 별의 기운을 한 톨이라 도 더 호흡하는 것에 집중되었다.

얼마쯤 시간이 지났을까.

하늘에서 쏟아지던 별의 기운이 연 해진다.

"아...

아쉬움에 탄성이 흘러나왔다.

심상 세계를 가득 채웠던 황홀감이 옅어진다.

나는 눈을 감았다가 떴다.

어슴푸레 떠오른 태양이 기지개를 피면서 어둠을 몰아냈다.

아침.

마력 호흡법에 몰입해서 밤을 새 버린 것이다.

나는 즉시 상태 창을 켜서 지난 밤의 성과를 확인했다.

"이건 뭐...?!"

눈이 파르르 떨렸다.

처음에는 놀람의 빛이, 그 뒤로는 희열이 눈동자를 휘감았다.

[혼돈력 : 21 -〉22]

[혼돈기 : 210 -> 220]

[성천조계공 : 0% -> 10%]

혼돈력은 1.

그리고 성천조계공의 숙련도도 부 쩍 늘어났다.

내 예상을 뛰어넘는 성과였다.

"미친."

절로 욕이 튀어나왔다.

너무 기분이 좋아서!

당장 일어나서 춤이라도 추고 싶었 다.

'하루 만에 성천조계공의 성취가

이만큼이나 늘었다고?'

한 번 가 본 길이라 그런 건지.

아니면 성천조계공의 암흑 마나가 혼돈력으로 변화한 것과 관련이 있 는 건지.

이유는 모르겠다.

투마 중 최고의 재목으로 손꼽히던 전생도 이 정도는 아니었다.

아무렴 어때.

'빨리 강해질 수 있으면 좋은 거 지.'

나는 긍정적으로 생각했다.

잠을 한숨도 안 잤지만, 마력 호흡

법을 운용하는 동안 몸의 피로가 말 끔하게 풀어졌다.

근육통으로 비명을 지르던 육체도 잠잠해졌다.

비가 온 뒤에 땅이 더 굳는다고.

전신에서는 어제하고 다르게 힘이 넘쳐 났다.

'시험까지는 9일. 하루도 낭비하지 않을 거다.'

나는 의욕적으로 자리를 박찼다.

아.

그런데 냄새가 너무 심하다.

내 몸에서 나는 냄새였다.

인간적으로 샤워는 해야겠다.

* 米 *

훈련 일주일째.

낮에는 근력 운동을.

그리고 밤에는 성천조계공을 운용 했다.

내 몸에는 많은 변화가 있었다.

"상태 창."

이름 : 전민철

레벨 : 1

종족 :

인간

직업 :

없음

능력치

근력 :

21

민첩 :

20

맷집 :

16

체력 :

18

혼돈력

: 49

혼돈기 - [637/637]

* 특성

[플레이에

당신이 쌓은 업은 세계의 규칙을 비틀 만큼 깊습니다. 몬스터를 사냥 하고 포인트를 얻어서 본인의 규칙 을 개변할 수 있습니다.

* 스킬 [2/1 이

[성천조계공 - EX 급]

[진실의 눈 - S급]

*현재 성천조계공의 효과로 혼돈 기가 30% 증폭되어 있습니다.

*상시 효과입니다.

크으!

뿌듯하다.

저 영롱한 숫자를 보라.

지난 일주일 동안 흘린 피와 땀방 울과 눈물, 그리고 오줌... 아, 오 줌은 아니지.

뼈를 깎는 심정으로 몸을 혹사시킨 보람이 느껴졌다.

특히 가장 큰 발전을 이룬 것은

성 천조계공이 었다.

[성천조계공]

분류 : 기공

등급 : EX

제한 : 없음

심상 세계, 혹은 상단전이라고 부 르는 상위 차원의 정신에 소우주를 형성하는 마력 호흡법입니다.

빛의 성운과 암흑 성운이 내뿜는 강력한 파동을 받아들여 심상 세계 에 옮겨서 사용자의 의지대로 사용 할 수 있습니다.

경지 : 2성

*혼돈기 활성화 가능.

*2성 특전 - 혼돈기 30% 증가.

*혼돈기 재생 속도 : 3

'일주일 만에 2성이라니.'

빠르다.

빨라도 너무 빨랐다.

전생 때는 약 1년 만에 성천조계 공 2성에 도달했다.

2성부터는 성취도 오르는 속도가 극단적으로 줄어들기는 했지만.

전생의 성취와 비교해보면 굼벵이 와 독수리 정도의 차이다.

나는 성천조계공을 활성화시켰다.

빛의 성운과 암흑 성운.

대비되는 두 성운의 힘이 심상 세 계에서 쾅- 하고 부딪쳤다.

충돌과 함께 피어나는 회색 기운, 혼돈기 다.

[성천조계공이 활성화되었습니다.]

[혼돈기가 전신을 활보합니다.]

[혼돈기의 영향으로 혼돈력을 제외 한 모든 능력치가 40% 상승합니

다.]

[1 초당 2의 혼돈기가 소모됩니다.]

붕붕!

가볍게 뻗은 잽.

바람을 가르면서 위협적인 소리가 터졌다.

혼돈기를 운용하면 근력이 30에 육박한다.

각성 초기의 내 능력치와 비교해 보면 네 배를 넘는 수치였다.

나는 근처에 있는 바위를 끌어안았 다.

양팔을 쭉 뻗어야 겨우 감쌀 수 있을 만큼의 크기.

"하압!"

기합을 내지르면서 팔과 다리에 힘 을 주었다.

허벅지와 팔뚝의 근육이 이완되면 서 힘을 짜낸다.

구구궁-

무게만 수백 킬로그램이 넘는 바위 가 무거운 엉덩이를 떼면서 들어 올 려 졌다.

지상에서 일 미터.

나는 힘을 풀었다.

쿠웅!

땅이 비명을 내질렀다.

폭탄이 터진 것처럼 요란한 소리가 났다.

'기초는 다졌다. 이제 다음 단계로 넘어가도 되겠어.'

이제는 본격적으로 무공을 익힐 때 다.

무기 기술, 신체 강화, 방어술, 혹 은 경신법 등.

성천조계공의 혼돈기를 제대로 다 루기 위해서는 무공이 필수적이었 다.

무공은 총.

혼돈기는 탄환인 셈이다.

'무공에 대한 지식은 충분하지.'

내 전생.

투장 데이모스는 무공의 대부분을 익히고 총망라해서 연구, 발전시킨 괴물이다.

나는 전생 때 쌓았던 무공 지식을 빠르게 훑어봤다.

'이거다.'

[낭아칠성권]

낭아칠성권은 낭인들 사이에서 전 해져 내려오는 무공이다.

이름 없는 낭인이 수많은 사선을 넘나들면서 정리해 낸 무공.

무공 초식은 체계적이라기보다는 본능에 가까운 동작들로 구성되어 있다.

내가 이걸 선택한 이유는 두 가지 다.

'기초를 다지지 않으면 수준 높은 무공을 익힐 수 없다.'

머릿속에는 주먹 한 번으로 산을 날리고 발길질 한 번에 바다를 가르 는 절정의 무공도 머릿속에 각인되 어 있다.

하지만 그걸 발산해 낼 몸뚱이는

그 거력을 감당할 수 없다.

'그런 걸 지금 구사했다가는 몸이 남아나지 않을걸.'

대포알을 권총으로 발사하는 꼴이 다.

포탄을 끼우기도 전에 권총이 박살 나겠지.

기초적인 무공을 습득해서 혼돈기 의 흐름을 몸에 적응시켜야 한다.

두 번째는 응용력이다.

낭아칠성권은 총 칠 초식으로 되어 있는데, 어느 상황에서도 유연하게 순서를 바꾸거나 일부만 전개할 수 있다.

다른 무공에 섞어 사용하기도 용이 했다.

눈을 감고 정신을 집중했다.

순환 중인 혼돈기가 손에 잡힐 듯 선명하게 느껴진다.

전생을 자각하기 전에는 알지 못했 던 감각, 영적인 것을 감지하는 제6 감이다.

'혼돈기를 움직임에 동조시킨다.'

나는 손을 뻗었다.

허공을 빠르게 가르는 주먹.

파앙-

파공음이 나왔다.

방금 것은 단순히 주먹을 뻗는 것.

펑! 펑!

숙련된 권투 선수처럼 양팔이 반복 적으로 움직이면서 허공을 연신 때 렸다.

손끝에 회색 기운이 아른거린다.

혼돈기.

팔의 동작에 맞춰서 불어 넣은 혼 돈기 일부가 손에 맺힌 것이다.

'마력을 다루는 건 따로 단련을 할 필요가 없지!'

전생의 나는 강대한 암흑 마력을 자유자재로 다루었다.

영혼에 새겨진 경험은 현생에도 똑 같이 적용됐다.

다행히 혼돈기의 운용 방식은 암흑 마력과 큰 차이가 없었다.

오히려 작은 힘으로도 더 빠르고 강력한 주먹을 내지를 수 있었다.

문제는 영혼이 아닌 육체에 있다.

혼돈기가 발출될 때마다 근육이 비 명을 내지른다.

격하게 운동을 했을 때나 보였던 반응.

강대한 기운이 체내에 스며들면서 생긴 부작용이다.

일주일 동안 신체를 단련해서 망정 이지.

성천조계공을 익히고 곧장 무공을 훈련했다가는 근육이 파열되어서 터 져 버렸을 것이다.

십 분 정도 같은 동작을 반복했을 까.

[낭아칠성권을 습득했습니다.]

[낭아칠성권]

분류 : 무공

등급 : C

제한 : 마력/혼돈력을 다루는 자

떠돌이 무사 양천득이 무수한 실전 을 겪으면서 완성시킨 실전 무공이 다.

내력을 운용하여 신체 일부를 강화 시키거나 잠력을 끌어 올려 순간적 으로 공격력을 폭발적으로 상승시킬 수 있다.

경지 : 1성(0%)

* 신체 일부를 10% 증폭(1초당 혼 돈기 4 소모)

*근력, 민첩 50% 증폭시킨 공격을 1회 가함(혼돈기 10 소모)

기다리던 알림이 귓가에 아른거렸 다.

'흐흐. 성천조계공 때와 똑같다!'

웃음이 절로 지어진다.

반복 숙달을 하니 성천조계공 1성 을 달성했던 때와 마찬가지로 스킬 로 등록되었다.

C급 스킬.

성천조계공에 비하면 격이 많이 떨 어졌다.

스킬 설명만 봐도 그렇다.

성천조계공의 기초는 호흡법.

호흡법을 운용하는 것만으로도 신 체 능력을 증대시켜 주는 효과를 지 니고 있다.

반면 낭아칠성권은 신체를 강화시 켜 주는 게 주 능력인데도 성천조계 공보다 효율 면에서 뒤떨어졌다.

'기초니까 당연한 이야기지.'

나는 낙담하지 않았다.

오히려 무공의 등급을 확인할 수 있다는 게 큰 성과였다.

낭아칠성권의 등급은 C.

상승의 무공은 스테이터스 시스템 에서 어떤 평가를 내릴까.

기대감에 마음이 설렌다.

무공의 기초를 익혔으니.

다음은 달리는 방법, 경신법을 익 힐 차례다.

6 화

위대한 마족의 연합 사회, 판데모 니엄에서는 날개를 권위의 상징으로 여긴다.

판데모니엄은 철저한 계급 사회.

날개가 없는 종들은 하위 계급에 속해서 철저하게 봉사를 한다.

그 한계를 부순 이가 있으니.

바로 전생의 나다.

나는 경신법을 개수, 발전시켰다.

땅이 아니라 공간 자체를 밟으면서 상대를 굴복시키는 무공.

나는 경신법을 투마 일족에 전파했 고, 판데모니엄에서 그 무력을 인정 받아서 당당하게 상위 계급에 속해 있다.

'소싯적에는 날아다니는 놈들 날개 를 꺾어 줬지.'

전생에는 목에 힘 좀 주고 다니던 녀석들을 잡아서 일일이 날개를 부

러트려 줬는데.

쩝.

괜히 입맛을 다셨다.

지금 수준에는 맞지 않는 상승의 무공이다.

걷지도 못하는데 어떻게 날 수 있 겠어?

[운류보]

내가 익힐 건 걸음마 수준의 경신 법이다.

적수박투공을 익힐 때와 마찬가지 로 혼돈기를 운용하며 양다리를 움 직였다.

[운류보를 습득했습니다.]

[운류보]

분류 : 무공

등급 : B

제한 : 마력/혼돈력을 다루는 자

구름을 거닐 듯 힘이 들어가지 않 은 발걸음으로 미끄러지듯 바닥을 차고 움직이는 경신법이다.

어느 각도에서도 흐트러짐 없이 몸 의 흔들림을 잡아 주며 강한 힘을 마주했을 때 발과 접촉한 지면에 충 격 일부를 흘려보낸다.

경지 : 1성(0%)

* 이동 속도 50% 증가, 근력 10% 증가, 피격 시 피해 중 20%를 흘려 보냄. 자세를 안정화시켜 줌.(1초당 혼돈기 2 소모)

구름을 거니는 걸음, 운류보.

그 말대로 강하게 상대를 몰아붙이 는 데는 어울리지 않으나 매우 안정 적인 경신법이다.

'자세를 안정시켜 주는 게 얼마나 큰 효과인데.'

사람이 100의 힘을 가지고 있다 치자.

그 100의 힘을 온전히 발휘하려면 자세를 잡아야 한다.

가볍게 지르는 잽과 힘껏 날리는 훅의 위력이 다르듯.

어떤 자세를 취하느냐에 따라 공격 의 위력과 안정성에서 차이가 벌어 진다.

무공도 마찬가지다.

내력을 얼마나 자유롭게 운용하느

냐.

그리고 육체와 내공이 얼마나 조화 를 잘 이루어 내는가.

운류보는 어느 상황에서도 몸을 '안정'되게 보정해 주는 유용한 경 신법이 다.

[운류보를 사용합니다.]

[이동 속도가 50% 증가합니다.]

[1 초당 2의 혼돈기가 소모됩니다.]

나는 시험 삼아 지면을 퉁기면서 등산로를 달렸다.

팟!

주변의 풍경이 휙휙 지나간다.

'다리가 너무 가벼워.'

발을 내디딜 때마다 몸이 앞으로 쭉쭉 나아간다.

한 줄기 바람처럼.

내 신형이 등산로를 거침없이 내달 렸다.

이게 운류보 1성이라고?

'최소 4성은 되어야 이만한 속도를 낼 수 있을 텐데!'

내가 알고 있던 것과 다르다.

운류보는 속도를 중시하는 경신법 이 아니다.

구름처럼 걸으면서 상대의 공격을 흘리고 안정된 자세로 반격을 돕는 경신법이다.

그런데.

갓 익힌 운류보의 속도치고는 너무 빨랐다.

나는 바로 상황을 유추했다.

'암흑 마력이 아니라 혼돈기로 운 용해서 그런 건가?'

시험해 볼 가치가 있다.

나는 곧장 산책길 대신 길이 나

있지 않은 숲으로 발을 내디뎠다.

울창한 나무들은 장애물이 되어 앞 을 가로막는다.

지그재그로 움직이는 발.

스칠 듯 말 듯 감속 없이 나무들 사이를 파고들면서 질주했다.

자세 보정 효과.

몸을 무리하게 움직여도 중심을 쉬 이 잃지 않았다.

'맙소사. 정말이잖아.'

속도만 빠른 게 아니다.

격한 동작에도 흐트러지지 않는 자 세.

혼돈기로 운용한 무공은 본래의 암 흑 마력보다 훨씬 효율이 뛰어났다.

'다른 무공을 사용해도 그럴까?'

그때.

밑동이 허리보다 두 배 정도 두꺼 운 아름드리나무가 눈앞에 나타났 다.

실험 상대로는 딱이잖아.

나는 곧장 주먹을 말아 쥐고.

[낭아칠성권 - 타격을 사용합니 다.]

[혼돈기 10을 소모합니다.]

눈앞에 있는 커다란 나무를 향해 정권을 내질렀다.

주먹이 부딪치는 순간, 부러지는 소리 대신.

퍼어엉一

요란한 폭음이 나면서 아름드리나 무가 산산조각 났다.

맙소사.

나무를 부러트리는 게 아니라 박살 을 내 버렸다고?

톱질을 수백 번을 해야 잘라낼 수 있을 만큼 두꺼운 나무.

그걸 주먹 한 방에 가루로 만들었 다.

'낭아칠성권에 폭발 같은 효과는 없다고!'

확실하다.

혼돈기를 기반으로 한 무공은 암흑 마나보다 훨씬 뛰어났다.

"허, 허허."

기초 무공이 이 정도인데.

전생의 내가 사용했던 절정의 무공 을 익히면.

도대체 어떤 위력이 나올까.

쉽게 상상되지가 않는다.

성천조계공을 10성까지 익히고 육 체를 극한으로 단련한다면.

인간의 몸으로 투마의 정점에 도달 했던 전생을 뛰어넘을지도 모른다.

전에는 그저 저 멀리 있는 목표에 그쳤다면.

이제는 그 목표가 눈앞에 바로 있 는 것처럼 느껴졌다.

IX IX

=『, =『.

액체가 땅을 적시는 소리.

진원지는 나무를 박살 낸 오른손이 었다.

"아얏."

손등이 벌겋게 물들고 일부가 찢어 졌다.

팔 근육은 후들후들 떨렸다.

나무를 박살 낸 힘의 반동을 고스 란히 받아 낸 덕분이다.

'반작용도 무시 못 하겠군.'

나는 쓰게 웃었다.

현재의 육체는 예상을 뛰어넘는 혼 돈기의 힘을 감당할 만큼 단련되지 않았다.

맨몸으로는 혼돈기로 펼치는 무공 을 온전히 감당할 수 없다.

'혼돈기를 담아낼 수 있는 도구가

필요해.'

일반적인 무구로는 안 된다.

평범한 헌터가 사용하는 무기로는 몇 번 휘두르기만 해도 부러질 게 뻔하다.

다행히.

전생의 기억 속에는 혼돈기를 다뤄 낼 수 있는 무기가 있었다.

'일정을 조금 당겨야겠군.'

다음 일정은 이미 생각해 두고 있 었다.

용산에 있는 성간 연합 지부.

그곳에는....

'만병기 - 다크 스타.'

투장 데이모스의 애병이 잠들어 있 다.

용산에 있는 성간 연합 서울 지부.

대재앙 전에는 전자 상가로 유명했 지만, 몬스터의 습격을 받아서 허물 어진 이후에는 성간 연합에서 신설 한 지부가 들어섰다.

하늘 높이 솟아오른 마천루.

휘황찬란한 장식과 금색으로 반짝

이는 건물 표면.

50층 규모의 거대한 건물은 이계 의 건축 양식으로 지어졌다.

화려함의 극치를 달리는 건물.

그야말로 부를 쌓아서 만든 황금성 이다.

"이 녀석들은 어디서든 요란 떨기 를 좋아하지."

나는 혀를 찼다.

성간 연합.

정식 명칭은 '다차원 은하 종족 간 공동체 동맹 및 군사 및 상인연합' 이라는 단체다.

다차원 세계.

우주에는 여러 종족들이 있고, 그 중에는 종족끼리 연합을 맺기도 했 다.

그중 가장 큰 단체를 손꼽으면 세 군데가 있다.

천계 一 엘리시움.

마계 - 판데모니엄.

마지막으로 성간 연합.

'굳이 따지자면 전쟁상인이지.'

성간 연합은 피아의 구분 없이 물 건과 군사력을 판다.

단순 세력만 비교해 보면 엘리시움

이나 판데모니엄에 미치지 못하지 만.

성간 연합의 지부는 여러 차원에 흩어져 있어서 전쟁 물자를 신속하 게 공급했다.

덕분에 엘리시움도, 판데모니엄도 성간 연합에게 쉽사리 손을 대지 못 한다.

엘리시움과 판데모니엄의 세는 비 등했다.

성간 연합이 어느 한쪽의 손을 들 어 주면 전세가 기울어질 수 있을 정도.

'성간 연합 놈들. 머리 좋게 중립

을 표방했지.'

전생의 나는 성간 연합을 안 좋게 생각했다.

약삭빠른 놈들.

투장 데이모스의 눈에는 잔꾀로 중 간에서 이득을 취하는 녀석들로 비 쳐졌다.

'녀석들의 손을 빌릴 날이 올 줄은 몰랐지.'

이래서 사람 일은 알다가도 모른다 는 건지.

참으로 얄궂은 운명이로다.

나는 건물을 향해 걸어갔다.

건물 정문은 오 미터 크기의 대형 유리로 된 자동문이다.

양옆에는 경비원 대신 골렘 두 기 가 정문을 지키는 중이다.

골렘.

마도 공학으로 만든 인형 병기.

'지금이라면 상대하기 어렵겠지.'

성간 연합에서 만든 골렘은 온갖 마법적 공정을 거쳐서 만든 병기다.

그 전투력은 A급 헌터와 맞먹는 다.

건물의 경비를 세우기에는 과분할 정도로 강력한 전투 골렘.

성간 연합의 부를 다시 한번 느낄 수 있는 부분이다.

'그냥 돈지랄이지.'

하여간 지랄도 풍년이에요.

7人7人 -

나는 혀를 찼다.

정문 앞을 지나가려는 순간.

『정지. 정지.』

『이곳은 성간 연합 지부입니다.』

채앵!

미늘창 두 개가 앞을 가로막는다.

전투 골렘 두 기의 안광이 붉게

물들었다.

『성간 연합 지부는 자격이 있는 자만 출입할 수 있습니다.』

『자격은 마나를 다루는 상위 종의 흔적.』

『헌터 라이선스 혹은 각성자 등록 증을 제시해 주십시오.』

『불응 시 성간 연합 지부에 출입 할 수 없습니다.』

고철 덩어리 새끼들이 더럽게 땍땍 거리네.

나는 검사 때 받아 둔 각성자 등 록증을 내밀었다.

『각성자 등록증. 확인.』

『출입 허가.』

어휴.

전생이었으면 한주먹도 안 될 녀석 들이.

나는 불쾌감을 꾹꾹 누르면서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

건물 내부는 잘 꾸며 놓은 바깥만 큼이나 으리으리했다.

로비 천장을 가득 메운 샹들리에는 제각각 다른 빛을 내면서 반짝인다.

"어서 오세요! 성간 연합 용산 지 점에 방문해 주셔서 감사드립니다.

용무를 말씀해 주시면 안내해 드릴 게요!"

살랑거리는 꼬리와 머리 위에 삐쭉 솟아 있는 갈색 귀.

10대 후반쯤 되어 보이는 수인족 이 발랄하게 인사했다.

'전생의 기억이 소용 있어야 하는 데.'

후우.

속으로 한숨을 쉬면서 긴장감을 떨 쳐 내고는 입술을 떼었다.

"지점장을 만나고 싶어."

"네? 고객님. 다시 한번 말씀해 주

시겠어요?"

"코드 R. 여기서 그걸 확인할 수 있는 건 지점장뿐인 것 같은데."

멍한 모습이 귀엽네.

축 늘어진 꼬리가 강아지를 보는 것 같다.

이번 기회에 강아지나 키워 볼까.

"저, 저... 고객님. 무슨 말씀을 하시는지 잘 모르겠는데요."

"그냥 내가 말해 준 걸 위에다가 보고하면 돼."

"아, 넵! 잠시만 기다려 주세요!"

나는 뒷짐을 지고 느긋하게 기다렸

다.

잠시 후.

쿵쿵쿵-

누군가가 묵직한 발소리를 동반하 며 급히 뛰어왔다.

드워프였다.

나는 진실의 눈으로 지점장을 훑었 다.

이름 : 마르탄

종족 : 드워프

나이 : 311

적성 : 마이스터

능력치

근력 : 103

* 특성

[금전 감각]

타고난 금전 운으로 성공 가능성이 큰 투자 상품을 본능적으로 알아챕 니다.

'생각보다 나이가 어리잖아?'

나는 조금 놀랐다.

드워프의 평균 수명은 1500살.

인간으로 치면 이제 청년쯤 되는 나이다.

생김새는 산전수전 다 겪은 노인처 럼 생겼다만.

'꽤 능력이 있나 본데.'

지구는 여러 종족이 주시하고 있는 차원이다.

그런 차원에서 지점장이라니. 젊은 (?) 나이에 꽤나 중책을 맡았다.

"코드 R의 고객님이 맞으십니까?"

"왜. 고유 코드를 사용하는 사람은

처음 보나 보군."

"허허. VIP께서 저희 지부 같은 곳 에 방문하실 일이 없어서 말입죠. 무례를 용서해 주십시오."

성간 연합 VIP.

전 우주에서도 정상급에 있는 존재 들에게만 부여되는 특수 등급이다.

VIP 등급을 받은 존재는 스물네 명.

대외적으로 알려진 VIP는 엘리시 움의 천사장, 그리고 판데모니엄의 사대 차원장이다.

나는 지점장을 뚫어져라 쳐다봤다.

"근데 의심 같은 거 안 해?"

"코드를 알고 있는 분은 극소수입 니다. 거짓을 말하실 리는 없겠죠."

호오.

이 녀석.

꽤나 재밌다.

눈으로는 나를 끊임없이 훑으면서 정체를 파악할 힌트를 찾으면서도.

막상 나오는 말은 혀에 기름칠을 해 놓은 것처럼 미끌거린다.

'괜히 중책을 맡은 게 아니군.'

서울 지부의 지점장.

포커로 그 자리를 딴 건 아닌 모 양이다.

"차원 창고를 쓰고 싶은데."

"차원 창고는 정상에 있습니다. 그 쪽으로 모시겠습니다."

"지점장."

"예?"

"날 시험한 무례는 한 번만 넘어가 지."

지점장의 얼굴이 굳어졌다.

7 화

찰나의 순간, 놈의 얼굴을 빤히 보 고 있지 않았다면 몰랐을 만큼의 변 화.

나는 속으로 웃었다.

'차원 창고는 성간 연합에서 가장 중요하게 관리하는 곳이거든.'

정상은 건물에서 가장 돌줄된 곳이 다.

공격에 가장 취약한 곳.

지점장 녀석이 정상으로 모시겠다 는 것도 의심의 발로였다.

성간 연합 놈들. 내 생각을 1그램 도 못 벗어나는구먼.

오히려 속셈이 훤히 보이게 의심을 해 주니 더 좋았다.

크크크.

성간 연합 VIP의 정체는 철저하게 비밀에 부쳐지거든.

모르긴 몰라도, 생각이 복잡할 거

다.

"죄송합니다. 고객님. 바로 모시겠 습니다."

지점장을 앞세우고 뒤를 느긋하게 따라 걸었다.

로비를 지나면 백화점이 나오는데, 헌터들이 사용하는 장비들을 판매하 는 곳이다.

[블랙 미스릴 대검]

[본 자이언트 블레이드]

[지옥화염검]

한화로 억 단위를 호가하는 아티팩 트들이 줄줄이 진열되어 있다.

진한 마력을 품고 있는 무기들.

하나하나가 예사롭지 않은 빛을 번 뜩인다.

"VIP께서 마음에 드는 게 있으면 말씀해 주십시오. 방문 기념으로 드 리겠습니다."

헌터들이 들으면 눈이 돌아갈 소 리.

흥, 콧방귀가 절로 나온다.

나는 퉁명스럽게 대꾸했다.

"기껏해야 하품인 걸로 생색을 낸

다는 건가? 성간 연합 용산 지점의 수준을 알겠군."

지구에서는 억만금을 주고도 구하 기 어려운 상급 아티팩트이지만.

내 눈에는 빛 좋은 개살구로밖에 안 보였다.

'성간 연합 녀석들. 하위 차원에는 비싼 물건을 안 풀거든.'

하위 차원의 자원은 헐값에 사들이 고, 물건은 비싸게 판매.

그렇게 사들인 자원을 가공해서 상 위 차원의 종족들에게 다시 팔아먹 는 게 성간 연합의 영업 방식이다.

헌터 몇 명이 나와 지점장을 흘겨

봤다.

"마르탄 지점장이잖아. 어지간한 거래가 아니면 얼굴도 안 비치는 양 반인데."

"뒤에 있는 사람은 누구지? 저런 헌터가 있었나."

"아냐. 나도 처음 보는 얼굴이야."

성간 연합 지점장.

그 이름값은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삼대 헌터 길드와도 비견된다.

상거래와 용병 업무.

또한 연방 소속 종족들을 대표하는 외교관이기도 했다.

그런 거물 중의 거물이 앞장서서 나를 안내하는 중이니.

저 헌터들이 놀라는 것도 무리는 아니겠지.

"이쪽입니다."

지점장은 나를 숨겨진 공간으로 안 내 했다.

지하.

진짜 차원 창고가 있는 곳이다.

빛이 천천히 사그라진다.

눈꺼풀을 몇 번 껌벅였다.

망막에 맺혔던 잔상이 사라지면서 주변의 풍경이 보이기 시작했다.

투박하게 생긴 문 너머.

강력한 마력이 꿈틀거리는 것이 선 명하게 느껴졌다.

"VIP님. 차원 창고에 도착했습니 다."

"어. 제대로 왔네."

차원 창고.

여러 우주에 있는 무수한 아공간을 병렬로 엮어서 만든 인공 차원이다.

차원 창고에 보관해 둔 물건은 어 느 차원, 어느 지부에서든 즉시 찾 을 수 있다.

본래 차원을 넘나드는 데는 엄청난 시간과 자원을 소모한다.

자원은 충당할 수 있어도.

소모되는 시간을 당기는 건 어렵 다.

차원 창고는 그 괴리를 극복하고 실시간으로 물건을 주고받을 수 있 었다.

그야말로 성간 연합 기술의 결정 체.

지점장 녀석이 힐끔힐끔 나를 살펴 본다.

'내가 누군지 궁금하겠지.'

차원 창고를 가동시키려면 성간 연 합 간부, 혹은 VIP의 전용 마력 코 드가 있어야 한다.

차원 창고를 한 번 가동하려면 마 력 소모가 어마어마하거든.

극히 일부에게만 허락된 프리미엄 서비스인 셈이다.

나는 아직 VIP라는 징표를 아무것 도 보이지 않았다.

만약 차원 창고를 가동하지 못하

면.

지점장 녀석은 즉시 태도를 바꿔서 날 공격하겠지.

'걱정 마라.'

그런 일은 없을 거야.

나는 회색 문에 손을 맞댔다.

厂마력 패턴을 입력해 주십시오.J

우우웅!

성천조계공을 활성화시 켰다.

심상 세계에 있는 별들이 기운을 내뿜으면서 혼돈기를 빚어 냈다.

투장 데이모스 시절에 발급받은

VIP 코드.

혼돈기를 움직여서 문과 맞닿은 부 분에 마력 패턴을 그렸다.

'혼돈기가 다 소모되기 전에 패턴 을 완성시켜야 한다.'

마력 패턴이라는 게 생각보다 복잡 하다.

실을 가지고 실뜨기로 모양을 여러 개 만드는 거랑 비슷하다.

실 대신 마력을 쓰는 게 차이점이 지만.

차원 창고에 맡겨 둔 내 무기를 바로 찾지 못한 이유다.

기껏 여기까지 왔는데 마력이 부족 해서 차원 창고를 열지 못하면 다 꽝이거든.

[혼돈기가 1 소모됩니다.]

[혼돈기가...]

시스템 알림이 지속적으로 귓가를 울린다.

알고 있어, 마.

나는 목소리를 무시하고 마력 패턴 을 그리는 데 집중했다.

오 분이 지났다.

490이던 혼돈기가 50 언저리까지 떨어졌을 때.

r마력 패스를 확인합니다시

rVIP ###님. 신원 확인되었습니 다.□

「차원 창고에 접속되었습니다.」

휴.

아슬아슬했다.

나는 지점장이 보지 못하게 스리슬 쩍 이마에 맺힌 땀방울을 닦아 냈 다.

드###님이 차원 창고에 맡겨 둔 물품은 한 가지입니다.」

쩝.

환생을 할 줄 알았으면 재물이라도 많이 넣어 뒀을 텐데.

"그걸 꺼내 줘."

쓴웃음을 지으면서 말했다.

「알겠습니다. 차원 전송을 시작합 니다.J

우우우웅-!

문 너머.

병렬 연결된 이차원이 가동을 시작 했다.

강렬한 빛이 문틈 사이로 새어 나 온다.

「###님께서 맡겨 두신 물건이 지 구 차원으로 전송 완료되었습니 다.」

「차원 창고를 더 이용하시겠습니 까?J

"아니. 용건은 그게 끝이야."

「차원 창고를 이용해 주셔서 고맙 습니다. 앞으로도 성간 연합의 서비 스를 애용해 주시기를 바랍니다.」

구구구궁-

굳게 닫혀 있던 문이 육중한 소리 를 내면서 열리기 시작한다.

야구공 크기의 투박한 돌.

볼품없는 모습이지만.

나한테는 무엇보다도 화려하게 빛 나는 보석이었다.

나는 윗니로 입술을 지그시 눌렀 다.

입술이 터지면서 흘러나온 피.

엄지로 핏방울을 훔쳐서 돌 위에 쓱 문댔다.

'자. 깨어나라.'

[다크 스타가 새로운 주인을 인식 했습니다.]

화아아악!

검은 돌이 환한 빛을 뿜었다.

딱딱했던 돌의 표면이 열을

것처럼 흐물흐물해졌다.

물이 스펀지에 스며들 듯.

돌을 쥐고 있던 내 손바닥에

로 녹아들었다.

가한

그대

따끔한 고통이 손등을 자극했다.

다크 스타가 사용자를 인식하는 과 정이다.

잠시의 따끔거림을 참으니.

손등에 팔찌가 생겼다.

[사용자와 동기화를 마쳤습니다.]

[주인이 바뀌었으므로 무기에 쌓은 업이 초기화됩니다.]

[다크 스타]

등급 : 일반[Common]

종류 : 무기

내구도 : co

죽어가는 별의 정수를 벼려서 만든 만능병기 입니다.

여러 신화와 전설을 재현할 수 있 습니다.

*비활성화 시에는 팔찌 형태로 있 습니다.

*활성화 시 사용자의 의지대로 병 기를 변환시킬 수 있습니다.

*각 병기는 특성에 따라 사용자의 능력치를 증감시켜줍니다.

*다크 스타는 절대 파괴되지 않습 니다.

*이 아티팩트는 봉인되어있습니다. 봉인을 풀기 위해서는 격에 맞는 업 을 쌓아야 합니다.

' 역시나.'

예상했던 일.

신화 등급 아티팩트, 다크 스타. 이 녀석은 사용자가 쌓은 '업'에 따 라 힘이 결정된다.

현생의 나?

성장기인 악마종보다도 약한 몸.

쌓은 업도 형편없다.

'가장 중요한 기능은 살아 있으니

까.'

나는 미소를 지었다.

'길이 30센티, 폭 5센티. 날의 형 태는 한 면, 손잡이 길이는 15센티.'

머릿속으로 무기의 형태를 떠올렸 다.

사아악-

손등에 있던 팔찌가 사라졌다.

동시에 비어 있던 손에 흑색 재질 의 단검이 나타났다.

내가 상상한 이미지.

단검의 형태는 한 치의 오차도 없 이, 머릿속에 떠올린 모습과 일치했

다.

나는 곧바로 다른 무기를 떠올렸 다.

손에 쥐어졌던 단검이 검은 기류에 휘감기면서 쭉 늘어났다.

이 미터 길이의 창.

다크 스타의 변화는 거기서 그치지 않았다.

도끼, 철퇴, 창, 채찍 등.

'만 개의 모습을 취할 수 있다고 해서 만병기지.'

사용자의 상상을 구현하는 능력.

다크 스타의 핵심 기능이다.

당연하게도.

무기의 성능은 제각각이다.

[다크 스타 - 망고슈]

근력 증가 Lv3

민첩 증가 Lv4

[다크 스타 - 할버드]

근력 증가 LvlO

민첩 감소 Lv2

'여러 무공을 익힌 나만이, 이 녀 석의 기능을 최대로 발휘할 수 있 다.'

전생의 나는 수많은 무공을 총망라 했다.

상황에 따라 무기를 변환.

그에 맞는 무공을 운용해서 파괴력 을 극대화시킬 수 있다.

다크 스타는 그야말로 나를 위한 아티팩트였다.

"고객님. 용무는 다 보셨습니까?"

"응. 이것만 찾으면 되거든."

여러 무공을 펼칠 수 있는 만병기.

이것만 있으면 헌터 라이선스 시험 따위, 아무것도 아니었다.

米 米 米

성간 연합 건물 최상층.

마르탄은 다리를 꼰 채, CCTV 화 면에 시선을 뚫어져라 쳐다봤다.

똑똑 _

"들어와."

"지점장님. 부르셨어요?"

여인 한 명이 사무실로 들어왔다.

목덜미에 살짝 닿는 단발과 몸에 달라붙는 정장이 인상적인 미인이 다.

마르탄은 모니터를 여인이 있는 쪽 으로 돌렸다.

모니터에는 막 건물을 벗어나고 있 는 민철이 떠 있었다.

"엘리. 이거 봐봐."

"인간이네요. 키 크고 잘생기긴 했 는데. 저한테 남자 소개시켜 주시게 요?"

"이 얼굴. 본 적 있나?"

엘리는 마르탄의 질문에 얼굴의 웃

음기를 지웠다.

업무를 볼 때, 마르탄은 어느 때보 다도 진지했다.

오랜 시간 동안 그를 보조해 온 터라 눈빛, 목소리만 봐도 알 수 있 었다.

CCTV에 잡힌 민철을 뚫어져라 쳐 다보고는.

"없어요. 유명인은 아니에요."

엘리는 명쾌하게 대답했다.

"이 인간. VIP 코드를 알고 있었 어."

"VIP 코드요? 그런 인간으로는 보

이지 않는데요. 가짜는 아니었나 요?"

"그런 것도 못 알아볼까. 그냥 코 드만 보여 줬으면 모르겠는데 차원 창고까지 이용했다."

"조사해 볼까요? 아니면 입을 막을 까요."

마르탄은 고개를 저었다.

"엘리. 넌 아직도 나한테서 일을 더 배워야겠다."

"조사 때문에 저 부르신 거 아니에 요'?"

"VIP 코드. 하위 차원인 지구의 인 간에게 부여될 수 없는 거다. 그렇

다면 방금 전의 인간. 아니, 고객님 의 정체는 뻔하지."

"분신체... 고위 영격체의 아바타 요?"

"그래. 정체를 드러내기 싫은 고위 급 영격체가 분신체로 지구에 와서 힘을 숨기고 있는 거다."

"헤에."

엘리가 감탄사를 내뱉었다.

마르탄을 보고 있는 눈동자에는 숨 길 수 없는 존경의 눈빛이 감돌았 다.

드워프 마이스터 마르탄.

그는 300살이 조금 넘는 어린 나 이에도 불구하고 성간 연합에서 지 구 지점의 총 담당까지 오른 인물이 다.

지구.

'탑'의 출현 이후, 상위종들의 이목 이 집중된 세계.

탑과 가까운 거리에 있는 서울 지 부의 지점장 자리는 어지간한 능력 으로 얻어 낼 수 있는 게 아니다.

마르탄은 성간 연합 내에서 능력을 인정받고 출세가도를 걷고 있었다.

그런 그의 안목이 틀릴 리 없다.

"고위 영격체가 정체를 숨기고 일 을 진행하는데 우리가 슬쩍 거들면 어떻게 될까?"

"지점장님의 출세... 아니, 우리 성간 연합에 큰 이득으로 돌아오겠 죠."

"그자한테서 숨길 수 없는 대박의 냄새가 나."

마르탄은 코를 벌름거렸다.

"지점장님. 그럼 어떻게 할까요?"

"일단 지켜봐야지. 우리가 조사를 하려고 하면 관계가 무너질 거다."

"조사는 하지 않고 지켜만 본다,

알겠습니다."

"이 일은 절대 새어 나가면 안 돼. 다른 지부에서 알면 훼방을 놓을 게 뻔하다."

모난 돌이 정 맞는다고.

마르탄은 성간 연합 내부에도 적이 많았다.

문득 엘리는 CCTV에 찍힌 민철을 훑어보다가 입을 열었다.

"지점장님. 만약 정체가 판데모니 엄 측이면 어떡하죠?"

"뭘 걱정하냐. 엘리시움이든 판데 모니 엄이든."

마르탄의 엄지와 검지가 동그랗게 말렸다.

"돈이 되면 고객님이지."

"그 속물근성은 여전하시네요."

"너도 어서 배워라. 유능한 부하가 있어야 내가 덜 피곤하잖니."

"호호, 저는 저 고객님의 행동을 지켜볼게요."

"너만 믿는다."

엘리.

견인족 중에서 '귀족'의 피를 이어 받은 여인.

그녀의 첩보 및 조사 능력은 성간

연합 서울 지부에서도 따라올 자가 없다.

마르탄은 의자에 등을 기댔다.

'이 고객님을 물고, 나는 성간 연 합에서 더 높은 자리에 오르는 거 다.'

말아 쥔 주먹에 힘이 절로 들어갔 다.

8 화

시간은 쏜살같이 지나갔다. 헌터 라이선스 시험 당일. 나는 시험장을 올려다보았다.

'크긴 크군.'

돔 형태의 대형 건물.

대격변 전에는 월드컵 경기장으로 사용되었다던가.

지금은 협회에서 구매하고 개 • 보 수를 거쳐 라이선스 시험장으로 사 용되는 곳이다.

시험장 앞은 많은 사람들이 몰려서 인산인해를 이루었다.

"여기는 헌터 라이선스 시험장입니 다. 이번으로 55회째 실시되는 라이 선스 시험은...

"화랑 길드에서는 이번 시험에 서...

"이번 시험에서는 어떤 루키가 나 올 것인가. 벌써부터 관심이 집중되

고 있습니다."

기삿거리를 찾는 기자들.

"야! 이번 시험 꼭 붙어라!"

"아들. 긴장하지 말고 잘해."

"동암고 63기 김원준 파이팅!"

수험자들을 응원하러 온 여러 사람 들.

"자자. 이 부적만 있으면 시험에 딱 하고 붙는다고 해서 시험 부적! B급 아티팩트 제작자가 만든 물건 한번 보고 가십셔!"

"시험 필수 아이템, 매직 펜!"

혹은 수험생이나 응원하러 온 사람

들을 겨냥한 호객 행위까지.

시험장 앞은 온갖 소음으로 시끌벅 적 했다.

"접수 완료됐습니다. 안내 방송이 나올 때까지 기다려 주세요."

[헌터 라이선스 시험 응시생 : 전 민철]

[번호 : 511번]

나는 등록을 마치고 대기실로 들어 왔다.

대기실 안은 이미 절반 정도가 차

있었다.

모두 이번 헌터 라이선스 시험에 응시하러 온 수험생들이다.

빈자리에 앉아서 시험이 시작되기 를 기다릴 때쯤.

대기실 앞이 소란스러워졌다.

"신유미 씨! 이번 헌터 라이선스 시험을 응시하는 게 사실입니까?"

"저기 유승우 씨! 인터뷰 한 번만 해 주십시오!"

거리를 둔 채 걷는 남녀 한 쌍.

기자들이 그 주위를 포위하듯 감쌌 다.

매서운 눈매의 보디가드만 아니었 다면 금방이라도 다가갈 것 같은 모 습이다.

"신유미? 바나하임 대사관의 딸 아 니야?"

"맞아. 한국 사람이랑 결혼했다고 했지."

"그럼 엘프랑 인간의 혼혈이라는 말이야?"

"소문에는 정령술도 사용할 수 있 다고 하던데."

"잠깐. 유승우라는 이름. 들어 봤 어. 적성 검사 뒤에 화랑 길드에서 스카우트했다고."

"화랑 길드? 국내 1위 길드잖아."

"그런 길드가 영입한 인재야. 각성 초기 능력치나 적성이 어마어마하겠 지."

"이번 수석은 둘 중 한 사람이겠 어."

응시생들 사이에서 부러움과 경쟁 심이 들끓는다.

그들의 말대로, 온 이목을 받고 있 는 두 남녀는 자신감이 가득한 표정 이다.

'미안하게 됐네.'

수석은 내 차지가 될 건데.

- 십 분 뒤 제55차 헌터 라이선스 시험을 시작하겠습니다. 각 응시생 들은 수험 번호에 따라....

나는 두 남녀를 힐끗 바라본 뒤 안내에 따라 정해진 장소로 이동했 다.

협회 정복을 입은 안내원은 응시생 들한테 스마트 워치를 나누어 주었 다.

"자. 이걸 손목에 끼고 들어가시면

됩니다."

나는 왼쪽 손목에 스마트 워치를 휘감았다.

앞으로는 일직선으로 된 통로.

얼마쯤 걸었을까. 돌연 환한 빛이

눈동자를 가득 채웠다.

화악!

눈을 깜박이자 빛이 사라지고, 다 른 장소로 바뀌었다.

열대 우림.

빽빽하게 들어선 나무. 기다란 이 파리가 햇볕을 가로막아 준다.

지면에 드리운 기다란 그림자.

햇빛이 가려졌어도 습기 찬 공기가 몸을 끈적끈적하게 휘감는다.

'자연적인 지형이 아니야.'

시험장은 일종의 인공 게이트였다.

내가 흥미로운 눈빛으로 주위를 둘 러보는 동안.

"이야. 이번 시험은 정글이야?"

"으, 겁내 덥다. 이런 곳에서 어떻 게 시험을 치르라는 거야?"

"저번 시험은 혹한 지대였다고. 추 운 것보다는 더운 게 낫지."

응시생들이 하나 둘 시험장에 입장 했다.

나와 같은 위치로 전송된 응시생은 아홉 명.

- 제55차 헌터 라이선스 시험의 종목을 발표하겠습니다.

감독관의 목소리가 쩌렁쩌렁하게 울렸다.

- 시험 종목은 서바이벌. 시험장에 있는 몬스터, 그리고 예비 헌터들 사이에서 살아남으십시오.

"빌어먹을. 서바이벌이라니."

"이번 시험도 지랄맞잖아."

응시생 중 몇 명이 눈살을 찌푸렸 다.

- 시험 종료 때까지 총 100포인트 를 획득하면 합격입니다. 자세한 사 항은 시험 때 지급된 헌터 워치에 표기되어 있습니다.

수험생 - 전민철

응시번호 : 511

- 일반 몬스터 : 1 point

- 네임드 몬스터 : lOpoint

- 보스 몬스터 : lOOpoint

-응시생 : 보유 point 중 절반

- 최후까지 생존 : 50point

획득 포인트 - Opoint

실드 에너지 - 100/100

- 헌터 워치는 응시생의 획득 포인 트와 지도 표시, 그리고 실드 마법 이 내장되어 있습니다.

응시생은 모두 동일한 실드 에너지 로 시작되며, 충격을 받을 때마다 소모됩니다.

실드 에너지를 모두 소모한 응시생 은 자동 탈락 처리가 되며, 시험장

밖으로 이동합니다.

'이 시험... 꽤 재밌겠는데?'

시험에 합격하는 방법은 세 가지.

일반 몬스터를 오십 마리 사냥해서 50포인트를 모으거나.

지도에 표시되어 있는 보스 레이드 를 하거나.

혹은....

'응시생을 노리거나.'

포인트 획득 없이 '생존'만 하면

50 포인트.

시험 합격 커트라인은 100포인트.

50포인트가 모자란다.

'숨거나 도망치기만 해서는 합격할 수 없다는 거지.'

포인트를 얻으려고 몬스터를 사냥 하다 보면, 다른 응시생과 필연적으 로 경쟁을 벌여야 한다.

그러다가 포인트가 모자라면.

응시생을 노리는 수밖에.

그러니까 이 시험의 의도는.

대놓고 응시생들끼리 싸우라고 판 을 깔아 준 것이다.

이번 시험 주제는 서바이벌. 이 자 리에 있는 모두가 경쟁자였다.

각자 경계를 띠면서 거리를 벌릴 때.

"아직 우리는 포인트 획득한 게 없 잖아. 여기서 싸우면 다른 녀석들만 도와주는 꼴이다."

민머리 수험생이 앞으로 나섰다.

"나는 지평선 길드에 스카우트된 민형식이다. 내 이름을 걸고, 균등한 포인트 분배를 약속하마."

"지평선 길드?"

"그 있잖아. 박요한 헌터가 길드장 인 곳."

"거기는 중견 길드잖아."

"그 정도 길드라면 믿을 만하지."

응시생들 사이에 감돌던 불안감이 빠르게 가라앉았다.

'머리가 잘 돌아가는 녀석이군.'

0포인트인 응시생은 쓰러트려도 힘 만 소모한다.

당장은 싸울 이유가 없다는 것.

현명한 판단이다.

하지만.

'단체 행동은 귀찮지.'

저벅, 저벅.

나는 정글 안으로 걸어갔다.

"거기, 당신. 혼자 안으로 들어가려 는 건 아니겠지?"

민머리 녀석이 내 앞을 가로막았 다.

"문제가 있나."

"함께 힘을 합쳐야 시험에 합격할 확률이...

"그건 약자들의 생존 방식이다."

나는 민머리 녀석의 말을 끊었다.

꿈틀.

민머리 녀석의 이마에 굵직한 혈관 이 튀어 올랐다.

뒤에 있던 응시생들이 나섰다.

"민형식 헌터의 말 못 들었어?"

"저렇게 나대는 놈들은 꼭 초반에 탈락하지."

"허 참, 겸손할 줄도 모르나?"

나는 귀찮다는 듯 손을 휘휘 저으 며.

"여러분들이나 그렇게 살아. 겸손 하게."

응시생들을 뒤로하고 정글 안으로 들어갔다.

등 뒤에서 야유하는 소리가 들려왔 지만.

정말로 귀찮은 걸 어떻게 하냐.

단체 행동을 하면 내가 노리는 걸 얻기 어려울 것이 뻔했다.

그도 그럴 것이.

'나는 보스를 노릴 거거든.'

내 눈이 향하는 곳은.

지도 구석, 북쪽 방향에 있는 커다 란 점.

보스 몬스터가 있는 곳에 고정되어 있었다.

지면에 드리운 짙은 음영.

허리까지 자란 수풀.

정글은 상대를 기습하기 좋은 지형 이다.

몸을 은닉할 곳이 많고, 상대의 접 근을 알아채기에도 어렵다.

헌터가 마주하기 싫어하는 최악의 환경.

'상대가 어디서 달려들 줄만 알면 상관없지.'

[다크 스타 - 마체테]

나는 흑색 칼을 대각선으로 휘둘렀 다.

서걱!

피륙이 잘리는 소리.

핏방울이 허공을 수놓는다.

초록색 뱀의 머리와 몸통이 분리되 는 순간이었다.

-그린 스네이크를 쓰러트렸습니 다. 1포인트를 획득했습니다.

- 누적 포인트 : 22p

'여기는 온통 잔챙이뿐이군.'

정글 지역에 출몰하는 괴물들.

놈들은 지형지물의 특색을 살려서 습격하는 데 특화되었다.

자세를 낮춰서 수풀에 몸을 가렸다 가 기습하거나.

방금 쓰러트린 그린 스네이크처럼 보호색으로 위장했다가 빈틈을 노렸 다.

'경험치라도 오르면 보람이 있겠다 만.'

나는 아쉬움에 입맛을 다셨다.

시험장에 나오는 몬스터들은 모두 허상.

몇 마리를 사냥한들 경험치가 오르 지 않았다.

챙! 챙!

병장기가 부딪치는 소리였다.

방향은 서쪽.

여기서 멀지 않았다.

'싸움이 붙었나 보군.'

나는 소음이 일어나고 있는 곳을 향해 걸어갔다.

세상에서 가장 재밌는 게 싸움 구 경하고 불구경 아니던가.

'응시생들의 실력을 확인해 볼 기 회이기도 하고.'

그때.

앞에 있던 수풀이 살짝 흔들렸다.

[다크 스타 - 창]

롱 소드가 이 미터 길이의 창으로 변환되는 순간.

"크르르릉!"

전고 삼 미터 크기의 괴물이 수풀 이 흔들렸던 곳에서 뛰쳐나왔다.

스토커.

흑표범과 닮았지만 턱 아래까지 닿 는 기다란 이빨과 꼬리 끝부분이 철 퇴처럼 뭉툭하고 가시가 박혀 있는 괴물이다.

" 호오."

이 녀석은 사냥할 맛이 있겠는데.

환상으로 만들어진 괴물이지만.

놈이 내뿜는 살의는 진짜와 비교해 도 전혀 뒤처지지 않았다.

솜털이 비쭉 솟아오르는 느낌.

'계획 변경이다.'

나는 스토커의 눈을 마주하면서 씩 웃었다.

라이선스 시험에서 제대로 된 전투 는 이번이 처음이었다.

[성천조계공을 활성화시킵니다.]

[혼돈기가 전신을 휘감습니다. 혼 돈력을 제외한 모든 능력치가 40%

상승합니다.]

[혼돈기가 초당 2 소모됩니다.]

심상 세계에서 빚어진 대폭발.

빛과 어둠.

어울릴 수 없는 두 성운의 힘이 충돌하면서 강렬한 혼돈기를 빚어낸 다.

성천조계공을 활성화시키는 동시 에, 강렬한 혼돈기가 혈관을 타고 전신을 순환했다.

전신에 힘이 샘솟는다.

"크어어어엉!"

짧은 시선 교환 직후, 스토커는 아 가리를 쩍 벌리고 나를 향해 달려들 었다.

'그냥 공격으로는 못 받아 내겠군.'

돌진하는 기세가 사뭇 매섭다.

나는 발을 내디뎠다.

[운류보를 사용합니다.]

[이동 속도가 50% 증가합니다.]

[1 초당 2의 혼돈기가 소모됩니다.]

스케이트를 탄 것처럼 발이 쭈욱

미끄러진다.

마찰력을 최소화한 가벼운 발걸음 으로 스토커의 돌진을 흘려보냈다.

동시에.

손에 쥐고 있던 창으로 스토커의 옆구리를 쑤셨다.

콰득!

상처는 깊지 않았다. 두꺼운 가죽 이 창날을 흘려보냈다.

나는 운류보를 멈추지 않고 운용하 면서 스토커의 빈틈을 연신 노렸다.

자상이 여기저기 새겨졌다.

치명상은 아니었다.

스토커는 자잘한 상처를 무시하고 나를 향해 연신 달려들었다.

'방어력은 제법이야.'

상처를 깊게 내려면 무기를 바꾸고 근접해야 하는데.

흔들거리는 스토커의 꼬리 때문에 접근이 용이하지 않았다.

"크르릉."

스토커가 다시 한 번 크게 도약했 다.

쩍 벌어진 아가리.

턱 아래까지 닿는 기다란 어금니가 환하게 빛났다.

저기에 물리면 실드 에너지가 단숨

에 모두 소모될 것이 분명했다.

그 흉포한 입을 본 순간.

'이걸 기다렸다.'

내 입가에 웃음이 감돌았다. 가죽으로도 보호받지 못하는 곳.

녀석이 입을 크게 벌려서 약점을

노출해 주는 순간을 말이다.

팽그르르-

흑색 기운이 창대를 휘감았다.

무 대륙에서 창법으로 유명한 가

문, 산동악가의 창법이 내 손에서

재현됐다.

[악가 창법]

분류 : 무공

등급 : B

제한 : 마력/혼돈력을 다루는 자

무 대륙에서 창술로 명성이 드높은 산동 악가의 창법이다.

악가의 창법은 군더더기 없이 오직 상대의 숨통을 끊기 위해 발전된 쾌 속 • 파괴 일변도의 창법이다.

경지 : 1성(0%)

* 근력 30%, 민첩 20%, 관통력

120% 추가(혼돈기 8 소모)

[악가창법 - 쇄격을 사용합니다.]

[혼돈기 8을 소모합니다.]

창대를 휘감은 혼돈기가 마구 회전 했다.

빛살처럼 쏘아진 창끝은 한껏 벌려 진 스토커의 입을 찢고, 나아가 머 리 전체를 분쇄했다.

쿵.

머리를 잃은 스토커가 달려오던 기 세를 잃고 지면에 쓰러졌다.

-네임드 몬스터, 스토커를 쓰러트 렸습니다. 10포인트를 획득했습니 다.

- 누적 포인트 : 32p

"네임드 몬스터의 수준이 이 정도 였군."

스토커.

잔챙이들과는 달리 까다로운 상대 다.

처음에 마주했던 응시생 무리랑 맞 붙으면 전멸을 피하기 어려운 수준.

은신에 능하며 재빠른 기동력, 그

리고 뛰어난 방어력을 고르게 갖춘 괴물이다.

그럼 보스 몬스터는 어느 정도일 까.

'오래간만에 제대로 몸을 풀 수 있 겠어.'

나는 다가올 전투를 기대하며 히죽 웃었다.

"어? 저 녀석. 우리가 사냥하려던 네임드 몬스터를 잡아 버렸는데요?"

"우리 형제가 침 발라 놓은 걸 가 로채다니."

사박, 사박.

세 사람이 수풀을 가르면서 나를 향해 다가왔다.

놈들이 모습을 드러낸 건 서쪽.

병장기가 맞부딪치는 소리가 났던 방향이다.

9 화

나는 불청객들을 훑어봤다.

전방에는 흑색 경갑을 입은 근접 계열 헌터 둘.

검은 로브로 전신을 감싼 사내가 후방에 자리 잡았다.

불청객들은 공통적으로 가슴팍에

'山'이라는 한자로 된 브로치를 착 용했다.

"응시생. 우리가 누군지 알아?"

"흑색 삼연성 삼형제는 우리를 두 고 말하는 거야. 엉?"

"겁도 없이 우리 먹이를 가로채 네."

저거.

시비 거는 거 맞지?

어이가 없어서 웃음이 절로 나왔 다.

"형님. 이 새끼 웃고 있는데요?"

"포인트만 내놓으면 보내 주려고

했는데 버릇을 고쳐 줘야겠군."

나는 진실의 눈으로 불청객들의 정 보를 확인했다.

김영철

종족 : 인간

나이 : 26

적성 : 화염 마법

근력 : 9 민첩 : 10

맷집 : 6 체력 : 12

마력 : 61

잠재 능력 개화도 - 11%

* 특성

화염 낙인[A]

김영수

종족 : 인간

나이 : 24

적성 : 창

근력 : 35 민첩 : 40

맷집 : 29 체력 : 30

마력 : 26

잠재 능력 개화도 - 10%

* 특성

직감 [B]

쾌속 질주[C]

김영진

종족 :

인간

나이 :

20

적성 :

근력 -

54 민첩

: 40

맷집 :

45 체력

: 50

마력 :

21

잠재 능력 개화도 - 14%

* 특성

검의 달인[A]

'제법이잖아.'

여태 마주했던 응시생들하고는 차 원이 다른 능력치.

신체 능력만 놓고 보면 나보다 훨 씬 강했다.

잠재 능력도 굉장히 높다.

이 녀석들은 진짜다.

'실력에 자신이 있는 놈들이라면,

이렇게 행동할 줄 알았다.'

보스 몬스터 공략.

자신의 실력에 자부심이 있는 응시 생이 아니라면, 시도할 마음도 품지 못한다.

반대로 실력이 있는 응시생이라면.

이렇게 보스 몬스터를 노리겠지.

그 발상을 뒤집어 보면, 보스 레이 드를 하려는 응시생을 덮치는 녀석 들도 있다는 말이다.

내 앞에서 으스대고 있는 삼형제처 럼.

"흑색 삼연성인지 중2병 삼형제는

모르겠다만. 어차피 싸울 거잖아?" 나는 오른손을 까딱였다.

"말 길게 하지 말고 덤벼."

세 형제의 얼굴이 붉게 익었다.

"우리가 왜 흑색 삼연성이라고 불

리는지 알려 주마!"

"형님들. 제가 저놈 입을 닥치게

만들겠습니다."

김영수와 김영진.

근접 계열 헌터 둘이 거리를 빠르

게 좁혔다.

'제대로 된 훈련을 받은 녀석들이

군.'

창을 다루는 둘째는 일정 거리를 유지.

검을 든 막내는 서슴없이 내 공격 범위 안으로 들어왔다.

후방의 마법사는 마력을 재배열하 면서 공격 마법을 준비했다.

시험장 이동 직후에 마주했던 응시 생 무리하고는 질적으로 달랐다.

"죽엇!"

정면.

그리고 옆구리.

약간의 시간 차를 두고 날아드는

검과 창.

서로의 역량을 잘 이해할 수 있기 에 가능한 훌륭한 연계 공격이다.

'그 상대가 나만 아니었다면 말이 야.'

[운류보를 사용합니다.]

[이동 속도가 50% 증가합니다.]

[1 초당 2의 혼돈기가 소모됩니다.]

성천조계공의 능력치 증폭.

그리고 운류보의 이동 속도 증가

효과가 중첩되었다.

민첩 20이 이동에 한해서는 42까 지 증폭된 것이다.

단순 수치만 놓고 보면 110%.

두 배 이상의 스피드다.

성천조계공 - 초당 혼돈기 2 소 모.

운류보 - 초당 혼돈기 2 소모.

혼돈기 재생 속도 - 1초당 3.

혼돈기의 총량은 637.

경신법과 내력만 운용하면 10분 이상을 유지할 수 있다.

'10분이 뭐야. 1분이면 충분하지.'

이번 승부.

오래 끌고 싶은 생각은 하나도 없 었다.

구름을 걷는 걸음.

스케이트를 타듯, 쭉 미끄러지면서 종으로 쏟아지는 검격을 옆으로 흘 려보내면서 안쪽으로 파고들었다.

"멍청한 놈!"

둘째, 김영수의 입가가 귀에 닿을 만큼 올라왔다.

횡으로 쏟아지는 검을 피해 안쪽으 로 파고들면서, 창의 궤적에 정면으 로 몸을 던진 꼴이 되었다.

이대로는 창날에 직격이지만.

나는 당황하지 않았다.

'이미 대처법은 생각해 뒀지.'

[다크 스타 - 장도(粧刀)]

기다란 창이 사라지고, 30센티 길 이의 단검이 나타났다.

나는 단검을 역수로 쥐었다.

[화화단도술]

분류 : 무공

등급 : c

제한 : 마력/혼돈력을 다루는 자

하오문의 기녀들이 스스로의 몸을 보호하기 위해 만든 호신 무공이다.

오랜 하오문의 역사 속에서 끊임없 이 연구, 개발되면서 적은 힘으로 상대의 숨통을 효율적으로 끊거나 공격을 흘려보내는 데 특화되었다.

경지 : 1성(0%)

*반격 시 상대의 공격력을 30% 감소, 공격 궤적을 틀어 버린다.(혼 돈기 5 소모)

*급소를 찌르면 근력의 50% 추가 피해를 입힌다.(혼돈기 3 소모)

[화화단도술 - 화조풍월을 사용했 습니다.]

[혼돈기 5를 소모합니다.]

채앵!

창끝이 옆구리에 닿기 직전.

역수로 쥔 장도(粧刀)가 날을 정확 히 쳐 냈다.

정면에서 붙었다면 내가 힘에서 밀 렸겠지만.

화화단도술의 묘리가 실린 장도가 김영수의 창에 실린 힘을 흘려보내 면서 공격 방향을 확 틀어 버렸다.

나는 당황한 기색이 역력한 셋째, 김영진과 밀착했다.

손에 들린 장도가 김영진의 몸을 마구 쑤셨다.

카•각! 칵!

헌터 워치에 내장된 실드가 발동되 었다.

장도가 베거나 찌른 곳마다 초록색 빛이 아른거린다. 내 공세가 이어질 수록 빛이 빠른 속도로 연해졌다.

"이, 이익!"

김영진은 나를 떨어트리려는 심산 으로 검을 좌우로 크게 휘둘렀다.

후웅!

검을 휘두를 때에는 약간 거리를 벌리고.

재차 경신법을 운용해서 찰떡같이 붙었다.

'거리를 벌릴 틈을 주면 안 된다.'

나는 근접해 있는 두 명보다 후방 에 있는 첫째, 김영철을 의식했다.

'지금의 나한테는 마법에 대항할 방법이 많지 않아.'

무리해서 근접전을 벌이는 이유였 다.

김영철의 적성은 화염 마법.

단일 개체를 노리는 것보다 폭발 등의 효과로 광역 파괴 효과를 가진 마법이 많다.

지금처럼 셋째 녀석과 밀착해 있으 면?

'흐흐. 쉽게 마법을 사용할 수 없 겠지.'

내 짐작대로였다.

김영철은 초조한 표정만 지을 뿐.

처음의 기세와 달리 싸움에 개입하

지 못했다.

아가들아. 이게 바로 경험의 차이 란다.

둘째인 김영수가 크게 돌아서 내 등 뒤를 점했다.

"빌어먹을 놈. 막내한테서 떨어 져!"

하단을 노리는 창.

제자리에서 지면을 박차는 것으로 공세를 흘려보냈다.

여유를 되찾은 셋째 녀석이 뒷걸음 질을 치면서 거리를 벌렸다.

"버스트 플레어!"

김영철은 모아 두었던 마력을 해방 했다.

이 미터 크기의 화염구.

셋째 녀석이 거리를 벌리자마자 곧 장 나를 향해 날아왔다.

"끝이다."

"징그러운 놈!"

"우리 형제를 얕봤다간 이 꼴이 지."

삼형제는 한 마디씩을 내뱉었다.

내 탈락을 확신하는 모습이다.

그런데 이를 어쩌나?

이 상황은 말이다.

'모두 내가 유도한 거거든.'

[다크 스타 - 태도(太刀)]

흑색의 도신이 빛난다.

나는 혼돈기를 있는 힘껏 끌어 올 렸다.

이제 펼칠 무공은 지금의 내 수준 으로는 감당하기 어려운 상승의 무 학이다.

무 대륙에서 도법으로 유명한 명 가.

하북팽가를 상징하는 무공.

A급의 무공인 오호단문도가 내 손 에서 재현되었다.

[오호단문도를 사용합니다.]

[혼돈기 150을 소모합니다.]

혼돈기를 받아들인 다크 스타가 거 세게 떨었다.

우우웅!

흑색 기운이 불처럼 타올랐다.

도기 (刀 氣).

판데모니엄에서는 오러라고 부르는 기운이 다크 스타를 휘감았다.

무기에 기운을 형상화시키는 경지 는 성체가 된 마족이나 가능하다.

무 대륙에서도 기를 담아내는 무 사, 일명 검기상인의 경지에 달한 이들은 절정의 무인이라고 부른다.

'내가 한 건 그저 흉내 내는 것에 불과하지만.'

수준에 맞지 않는 상승의 무공을 사용했다.

전생의 지식.

무의 극한에 도달했던 투장의 지식

이 있기에 가능한 '흉내'였다.

나는 흑색 불길을 휘감은 도를 정 면으로 휘둘렀다.

서걱一

이글거리는 화염이 절반으로 잘려 나갔다.

나는 운류보를 극성으로 끌어 올리 고는 발아래에 꽂힌 창을 지지대 삼 아서 크게 도약했다.

"내 창을 발판으로 삼다니!"

경악 어린 김영수의 목소리를 배경 삼아.

셋째, 김영진을 그대로 뛰어넘고

후방에 있는 김영철을 향해 곧장 내 달렸다.

"어, 어어?!"

당황한 김영철의 얼굴이 크게 들어 온다.

녀석이 보인 잠깐 동안의 틈.

승부를 가르는 중요한 순간이었다.

"넌 여기까지다."

도를 크게 휘둘렀다.

카각!

실드가 일격에 소멸했다.

김영철이 뭐라고 입을 뻐끔거렸지

만.

환한 빛과 함께 시험장에서 사라진 탓에 뒷말을 들을 수는 없었다.

- 450번 응시생, 김영철을 쓰러트 렸습니다.

- 김영철 응시생의 획득 포인트는 25입니다. 13포인트를 획득했습니 다.

-누적 포인트 : 45p

휘유.

이 녀석. 포인트를 엄청나게 모았

구먼.

"혀, 형. 큰형이 당했어."

"미친. 방금 저 녀석의 무기에 실 린 거... 오러 아니냐?"

두 사람은 공황 상태에 빠졌다.

마법을 칼로 잘라 낸 게 그만큼 인상적이란 거겠지.

나는 흑의 삼연성. 아니, 이제 둘 로 줄어 버린 형제를 보고 씩 웃어 줬다.

"하던 일은 끝까지 해야지?"

이 녀석들은 포인트를 얼마나 줄 까?

저벅.

발을 내밀자, 두 사람이 본능적으 로 뒷걸음질을 쳤다.

米 氷 米

팟! 파팟!

대기실 우측 공간에서 빛이 솟아올 랐다.

실드 에너지를 모두 잃은 응시생들 이 하나둘 밖으로 전송되었다.

- 101 번 박준석 응시생. 시험에서 탈락했습니다.

- 755번 장진수 응시생....

안내 방송이 쉴 새 없이 흘러나온 다.

각 길드의 관계자들은 시험장 내부 를 모니터링했다.

"이번 라이선스 시험도 참가자가 많군요."

"절반 정도는 재수생이니까요."

"재수생 중에서 얼마나 뛰어난 인 재가 있겠습니까."

"어라, 모르는 소리. 이번 시험에는 흑의 삼연성 형제가 두 번째로 시험 을 치른다고요."

길드 관계자 한 명이 입을 가리면 서 호호, 하고 웃었다.

"잠깐. 그 이야기 사실입니까?"

"흑의 삼연성이라면 금산 길드에서 작정하고 키운 신예인데."

"허어."

몇몇은 놀라움에 탄성을.

누군가는 안타까움에 한숨을 쉬었 다.

금산 길드.

국내 부동의 1위 길드인 화랑과 유일하게 어깨를 견줄 수 있다고 알 려진 곳이다.

"신유미에 유승우, 그리고 흑의 삼 연성이 라니."

"우리 길드에 소속된 응시생이 그 들한테 걸려들지 않기를 바라야겠 군."

"이번 라이선스 시험의 수석은 그 중에 나오겠어."

"신유미를 빼면 이미 정해진 길드 가 있잖아. 의미가 없군."

길드 관계자 대부분은 낙담했다.

이번 라이선스 시험의 주제는 서바 이 벌.

위에 언급된 응시생과 조우하면 길 드 소속 응시생이 탈락하거나 실력 있는 인재가 조기에 떨어질 가능성 도 농후했다.

"생태계 교란종이 다섯이나 풀려서 어쩌라는 건지."

누군가가 내뱉은 한마디.

헌터를 섭외하러 온 길드 관계자 대부분의 마음을 대변하는 말이었 다.

그중에도 웃고 있는 이들은 있었 다.

화랑 길드 소속 스카우터인 방예리 와 금산 길드에서 나온 우효진이었 다.

'유승우가 떨어질 리 없어. 마스터 가 보장했거든.'

'흑의 삼연성. 녀석들의 연계를 당 해 낼 수 있는 응시생은 없다.'

국내 1위와 2위.

두 사람은 속마음을 감춘 채, 빙그 레 웃으면서 서로를 마주했다.

자신의 패가 더 좋을 것이라고 확 신하면서.

그때.

- 450번 김영철 응시생의 실드 에 너지가 0이 되었습니다. 이번 시험 에서 탈락했습니다.

우효진의 눈이 번쩍 뜨였다.

"뭐, 뭣이?!"

본능적으로 튀어나온 반응.

우효진은 금세 실수를 인지하고 표 정을 관리했다.

"어라. 그쪽에서 관리하던 삼형제 중 한 명 아닌가요?"

얄밉게도.

방예리는 낮게 웃으면서 우효진의 심기를 건드렸다.

그녀의 말이 일으킨 파장은 적지 않았다.

"흑의 삼연성 중 한 명이 탈락했다 고?"

"김영철. 맞아, 흑의 삼연성 중 맏 형의 이름이다."

"모니터. 모니터를 돌려 봐!"

"누가 삼연성을 쓰러트린 거지?"

길드 관계자들이 시험장 내 모니터 를 돌려 볼 때.

- 451 번 김영수 응시생의 실드 에 너지가 0이 되었습니다.

연달아 들리는 방송.

우효진은 더 이상 웃음을 가장할 수 없게 되었다.

"이럴 리 없다. 흑의 삼연성이 시 험에서 두 번이나 탈락할 리 없어!"

"호호, 금산 길드에서 자신하던 삼 연성도 승우 씨의 상대는 아니었나 보네요."

방예리의 입가에 승자의 미소가 감 돌았다.

그녀는 금산 길드의 유망주들을 쓰 러트린 사람이 유승우라고 믿어 의 심치 않았다.

"모니터가 잡혔다!"

"흑의 삼연성 중 한 명이다. 지금 싸우고 있어!"

흑색 갑주를 입은 사내, 김영진.

그와 마주하고 있는 건 평복에 검 은 무기를 든 응시생이었다.

모니터가 두 사람을 비추는 순간, 응시생의 무기가 김영진의 가슴팍을 찔렀다.

- 452번 김영진 응시생의....

"흑의 삼연성이 한 명한테 당한 건 가?"

"응시생이 누구인지 파악해!"

바쁘게 움직이는 길드 관계자들.

방예리는 느린 동작으로 우아하게 모니터를 바라봤다.

'호호. 이번 시험은 우리 길드가 이겼네요.'

길드 마스터의 호언장담대로다.

유승우.

국내 랭킹 2위 헌터이자, 화랑 길 드의 총책임자인 이원택이 직접 훈 련시킨 인재.

금산 길드의 유망주 세 명조차 유 승우의 적이 아니었다.

그러나.

모니터를 보는 순간, 방예리는 큰

착각을 했다는 것을 깨달았다.

"저건 누구죠?"

그녀의 입에서 얼빠진 목소리가 흘 러나왔다.

흑의 삼연성을 쓰러트린 응시생.

고개를 든 사내의 얼굴은 일면식이 전혀 없는 사람이었다.

전민철.

마나를 각성한 지 10일밖에 안 된 초짜 응시생이었다.

10 화

"커, 컥I"

창대로 목울대를 두들겨 맞은 응시 생이 비명을 토해 냈다.

- 333번 응시생....

나한테 두들겨 맞은 녀석은 빛무리 와 함께 시험장 밖으로 튕겨 났다.

- 511 번 전민철 응시생

- 보유 포인트 : 172p

'이걸로 스무 명째.'

포인트는 중2병 삼형제를 물리쳤을 때 이미 50을 넘겼다.

내가 원하는 건 단순한 합격이 아 니다.

'평범하게 통과만 하는 건 성에 안 차지.'

이래 봬도 전직 마왕이다.

자존심이 있지. 그냥 합격만 해서 는 의미가 없다.

압도적인 일등.

그게 내 목표였다.

나는 보스 존 주변을 돌면서 응시 생들을 사냥했다.

위기는 한 번도 없었다.

'처음에 만났던 녀석들이 그나마 괜찮았지.'

자칭 흑의 삼연성이라고 했던가.

중2병 삼형제는 제법 손맛이 있었 다.

다른 응시생들은 중2병 삼형제 중

한 명에도 미치지 못했다.

능력치도.

실전 경험도 말이다.

'그 두 사람은 좀 다를까?'

신유미.

유승우.

정령술을 다루는 하프 엘프, 그리 고 화랑 길드의 유망주다.

이대로 보스 사냥까지 성공하면 내 포인트를 따라잡을 응시생은 없을 것이다.

굳이 싸울 필요는 없지만.

두 사람과는 왠지 한 번쯤 마주칠 것 같은 예감이 들었다.

'둘을 쓰러트리면 변수는 없어지지 만.'

유력한 수석 후보인 두 사람이 어 디 있는지 알 방법이 없다.

보스를 노리지 않을까 생각해서 주 위를 돌았지만.

신유미나 유승우. 둘 다 나타나지 않았다.

나는 헌터 워치를 흘겨봤다.

[시험 종료 시간]

[00:57:35]

[00:57:34]

' 이쯤인가.'

서서히 줄어드는 시간.

나는 북쪽을 바라봤다.

바위로 된 산.

보스 몬스터가 있는 곳이다.

'보스를 잡으면 일등은 확정적이 다.'

이제는 더 미룰 수 없다.

나는 바위산을 향해 발걸음을 옮겼

다.

米 * 米

붉은 점이 가리키는 곳.

바위산의 안쪽으로 들어갈 수 있는 길은 하나뿐이다.

사람 한두 명이 지나갈 수 있는 좁은 통로.

햇볕이 닿지 않아서 어둡기만 한 길을 얼마나 걸었을까.

팅! 팅!

머리 위에서 빛이 쏟아졌다.

나는 기감을 끌어 올리는 동시에 몸을 뒤로 물렀다.

' 전등?'

빛을 내뿜은 것은 천장에 매달려 있는 전등이었다.

백 미터 넓이의 공동.

바위산의 안쪽이다.

전등의 빛에 의지해서 공동 내부를 살펴봤다.

평평한 땅.

몸을 은, 엄폐할 수 있는 장애물은 하나도 없다.

그리고.

텅 빈 공동의 중심부에는 거대한 괴물 하나가 우두커니 서 있었다.

'골렘이군.'

덩치는 오 미터.

돌과 이끼를 엮어서 만든 초기 형 태의 모델이다.

곧장 진실의 눈으로 골렘의 능력치 를 살펴봤다.

"흐음."

나는 이맛살을 찌푸렸다.

보스 몬스터의 이름은 푸른 파수 꾼.

통짜 바위로 만든 골렘이다.

놈은 예상대로 근력이 엄청나게 높 았다.

한 대라도 정타를 허용하면 실드 포인트를 모두 잃을 정도의 괴력.

대신 민첩이 20으로, 근력에 비해 엄청나게 둔했다.

'문제는 그게 아니야.'

[맷집 - 80]

* 특성

불굴의 전사(r)]

사용자의 방어력에 비례, 일정 이 하의 피해를 0으로 만듭니다.

자가 회복[C]

비전투 상태에 돌입하면 마력을 소 모해서 부상 부위를 회복합니다.

시험관 녀석들.

진심으로 저걸 공략하라고 만든 건 가?

높은 맷집 수치.

그리고 불굴의 전사 특성.

푸른 파수꾼의 능력치와 특성은 너 무나도 궁합이 좋았다.

'자잘한 공격은 의미가 없어.'

한 번이라도 정면 공격을 허용하면 게임 오버.

반면에 나는 꾸준히 타격을 누적시 켜야 한다.

푸른 파수꾼에게 조금이라도 시간 을 주면 자가 회복으로 손상 부위를 복구할 것이다.

누가 봐도 불리한 싸움이다.

그렇기에.

'이쯤 되어야 할 만하지.'

웃음이 입가에 번졌다.

중2병 삼형제 이후로는 일방적인 폭력을 휘두르기만 했다.

재미가 없었다.

내 영혼의 본질은 투마.

끝없는 투쟁에서 삶의 의미를 얻는 다.

라이선스 시험에서 처음으로 투쟁 을 벌일 만한 적을 발견했다.

[성천조계공을 활성화시킵니다.]

[혼돈기가 전신을 휘감습니다. 혼 돈력을 제외한 모든 능력치가 40% 상승합니다.]

[혼돈기가 초당 2 소모됩니다.]

온몸에서 힘이 솟는다.

나는 푸른 파수꾼을 향해 천천히 다가갔다.

「적. 발견.」

일정 거리 안으로 접근하자, 우두 커니 서 있던 푸른 파수꾼이 작동을 시작했다.

솥뚜껑만 한 손이 머리 위로 쏟아

진다.

'경신법은 아껴 두자.'

앞으로 달려들면서 푸른 파수꾼의 손길을 피하고, 녀석의 안쪽으로 파 고들었다.

민첩 : 20 -> 28

성천조계공으로 증폭된 민첩.

경신법을 사용하지 않아도, 내 움 직임은 푸른 파수꾼의 기동력을 상 회했다.

「공격. 실패. 재시도.」

이번에는 벌레를 쫓아내듯 왼팔을 휘휘 저었다.

나는 지면을 박차면서 회피, 양팔 을 휘두르면서 훤히 빈 파수꾼의 어 깨를 바라봤다.

'어중간한 공격은 차라리 안 하는 게 낫다.'

현재 펼칠 수 있는 무공은 일곱 가지.

그중 가장 강력한 건 팽가의 오호 단문도이다.

하지만.

'그건 현재의 내 육체로는 버거운

무공이야.'

상승의 무공을 펼치려면 단련된 육 체와 내력, 그리고 깨달음이 필요하 다.

내 경우에는 전생의 경험 덕분에 오호단문도의 오성을 깨우쳤지만 육 체와 내력은 그에 미치지 못했다.

신체와 정신의 불일치.

때문에 오호단문도는 비장의 한 수 였지, 주력으로 펼칠 수 있는 무공 은 아니다.

'그럼 이게 제격이다.'

[다크 스타 - 대부(大浮)]

손에 잡힌 대형 도끼.

나는 혼돈기를 운용해서 무공을 펼 쳤다.

[태산부법]

hJ S • 1그 고

TCTT . -厂 O

등급 : B+

제한 : 마력/혼돈력을 다루는 자

녹림왕으로 악명을 떨쳤던 오만득 의 독문무공이다.

도끼의 '베고 파괴한다'는 성질을 극대화시켜서 단순한 초식으로 상대 를 굴복시키는 패도적인 위력을 자

랑한다.

경지 : 1성(0%)

*근력 130%, 민첩 一10%, 방어력 20%를 무시하는 공격을 1회 가한 다. (혼돈기 15 소모)

[태산부법을 사용합니다.]

[혼돈기 15가 소모됩니다.]

두꺼운 날이 어깨와 팔을 연결하는 이음새를 후려쳤다.

카가가각, 바위로 된 육신이 깎여 나간다.

이음새 사이로 생긴 작은 균열.

'통한다.'

나는 속으로 탄성을 내질렀다.

푸른 파수꾼의 특성.

불굴의 전사가 무시하는 피해 이상 을 입혔다는 증거.

균열의 크기는 중요하지 않았다.

'한 번으로 안 되면 열 번, 백번 찍어서라도 쓰러트리면 된다.'

보스 공략.

성공할 수 있다.

'■유효 타격. 반격한다.J

푸른 파수꾼이 팔을 다시 한번 휘 저었다.

나는 놈의 몸뚱이를 발판 삼아 재 도약으로 회피, 아래로 내려가서 훤 히 드러난 하체에 도끼질을 했다.

쾅! 쾅!

연신 바위를 쪼개는 도끼.

쪼개진 바위의 파편이 사방으로 튀 었다.

「적. 위치 재파으h 공격.」

푸른 파수꾼은 양손으로 깍지를 쥐 었다.

너무 깊게 파고들었나.

이번에는 피할 수 없다.

[운류보를 운용합니다.]

바닥과의 마찰을 o으로 만든 것처 럼.

내 몸이 뒤로 미끄러지면서 파수꾼 의 공격 범위에서 멀어졌다.

[다크 스타 - 창]

[악가창법 - 쇄격을 사용합니다.]

[혼돈기 8을 소모합니다.]

인간으로 치면 팔꿈치.

창을 뻗어서 관절 부위를 빠르게 찔렀다.

' 얕다.'

도끼 때와는 손맛이 다르다.

유효 타격을 입히기에는 힘이 부족 했다.

「피해. 없음. 전투 속행.」

"친절하기도 해라."

열 받으라고 하는 말 같은데.

오히려 고마웠다.

'도끼질은 확실히 통한다는 거잖 아.'

오호단문도.

혹은 태부.

그 외의 무공은 푸른 파수꾼한테 타격을 줄 수 없다.

그럼 선택지 가지고 고민할 필요는 없지.

"누가 먼저 쓰러질지 승부를 보자 고."

나는 히죽 웃었다.

* * *

쾅! 콰쾅!

푸른 파수꾼의 팔이 연신 지면을 후려쳤다.

들썩이는 땅. 나는 한 끗 차이로 공격을 흘려 내고 관절의 이음새 사 이로 도끼질을 했다.

수십 번.

아니, 백 번 이상.

푸른 파수꾼의 몸뚱이에 도끼질을 얼마나 했던가.

입안에 단내가 감돌고, 팔 근육이 비명을 질렀다.

'이제 얼마 안 남았어.'

나는 이를 악물었다.

푸른 파수꾼 레이드.

그건 끈기의 싸움이었다.

푸른 파수꾼을 공략하려면 두 가지 조건을 충족시켜야 한다.

먼저는 [불굴의 전사]를 넘어서는 공격력.

두 번째는 [자가 회복]0] 발동되지 못하게끔 꾸준히 피해를 주는 것.

'한 번이라도 자가 회복을 시작하 면 답이 없지.'

전투 개시 후 삼십 분.

나는 한 번도 쉬지 않고 푸른 파 수꾼의 몸뚱이에 도끼를 박아 넣었 다.

단단한 돌덩이를 쪼개면서 수시로 위치를 바꾸는 것.

말은 쉽지만 행동으로 옮기는 건 매우 힘들었다.

[00:24:15]

[00:24:14]

'시간은 충분하다.'

앞으로 10분.

10분이면 놈을 쓰러트릴 수 있다.

팔과 다리의 이음새마다 새겨진 균 열

무수한 도끼질의 결과물이다.

보스 레이드 성공을 확신할 때 즈 음.

'잠깐. 이 소리는...

등 뒤. 통로에서 이질적인 것이 느 껴진다.

인간의 기척. 작은 발걸음 소리지 만, 성천조계공으로 증폭된 내 청각 은 미세한 소음도 놓치지 않았다.

「적. 빈틈.」

제길.

숨 좀 돌리자!

나는 황급히 운류보를 전개했다.

콰앙-

푸른 파수꾼의 주먹이 지면을 강타 했다.

충격의 여파로 튕겨 나온 돌조각이 볼을 스쳤다. 붉은 실선이 그어지고, 그 위로 핏방울이 맺혔다.

[실드 에너지 一 99퍼센트]

헌터 워치의 알람이 귀를 울렸지 만.

내 이목은 통로 너머로 모습을 드 러낸 불청객에게 집중되었다.

"어머, 이미 선객이 있었네요."

낭랑한 목소리다.

빌어먹을.

나는 이맛살을 찌푸렸다.

묘령의 여인.

허리까지 내려오는 폭포수 같은 흑 발.

커다란 눈동자는 사파이어를 녹여 낸 것처럼 푸르게 빛났고, 피부는

티 하나 없는 우윳빛을 띠었다.

한 번 보면 잊을 수 없는 미인. 유력한 수석 후보, 신유미였다.

'하필이면 지금 나타난 거냐... 나는 곧장 진실의 눈으로 신유미의

능력치를 파악했다.

'중2병 삼형제보다 능력치가 높아.' 눈썹이 꿈틀거렸다.

능력치도 능력치지만 신유미의 특

성이 더 문제였다.

* 특성

정령술 [A]

정령과 소통할 수 있다. 이야기를 나눈 정령은 계약을 맺고 사용자의 힘이 되어 준다.

정령의 힘은 사용자의 마력에 비례 한다.

전생의 나는 정령사들과도 싸워 본 적이 있었다.

'마법사보다 더 까다로운 부류지.'

계약한 정령에 따라 속성력을 자유 자재로 다루는 정령사들.

지금의 내 수준으로는 까다로운 상

대다.

신유미와 푸른 파수꾼.

둘 다 동시에 상대하는 건 불가능 하다.

'둘 중 하나는 포기해야 한다.'

하지만 신유미를 치게 되면.

푸른 파수꾼은 곧장 자가 회복으로 파손 부위를 회복할 것이다.

최대한 빨리 신유미를 쓰러트려도, 이미 어느 정도 수복을 마친 푸른 파수꾼을 시간 안에 사냥하는 건 어 렵 다.

신유미가 난입한 상황에서 보스 레

이드는 물 건너간 것이다.

'저걸 때리느라 얼마나 고생을 했 는데.'

울컥, 짜증이 치솟았다.

"저기요. 응시생 씨."

갑자기 왜 부르는 거야?

나는 퉁명스럽게 대꾸했다.

"왜."

"보스 레이드 도와 드릴까요?"

쟤. 지금 뭐라고 하는 거냐.

황당한 마음에 곧장 되물었다.

"나를 돕겠다고?"

"네. 보스 몬스터는 공헌도에 따라 포인트를 나눠서 받거든요."

그런 내용도 있었나.

헌터 워치를 대충 살펴봐서 몰랐던 사항이다.

그러니까 쟤가 하려는 말은....

"다 차려 놓은 밥상에 숟가락만 얹 겠단 말이군."

"숟가락? 어차피 응시생 씨 혼자서 푸른 파수꾼을 쓰러트릴 수도 없잖 아요."

신유미는 자신만만하게 웃었다.

어쭈.

그렇게 생각한다, 이 말이지?

'잘만 하면 써먹을 수 있겠는데.' 머릿속에서 한 가지 시나리오가 떠

올랐다.

만약 먹힌다면.

이 거지 같은 상황을 내가 원하는

대로 끌고 올 수 있다!

나는 신유미를 노려봤다.

"너. 나랑 내기할래?"

11 화

"내기, 요?"

신유미는 떨떠름한 목소리로 대꾸 했다.

"앞으로 십 분. 그 안에 내가 푸른 파수꾼을 쓰러트릴 수 있을지 말이 야."

"저기요. 푸른 파수꾼을 혼자서 공 략하겠다는 말이죠?"

신유미가 황당한 투로 되물었다.

"그래. 나 혼자."

"이겼을 때 제가 얻는 이득은요?"

"내 포인트를 모두 주지."

나는 헌터 워치를 조작해서 잔여 포인트를 보여 줬다.

순간 흔들리는 신유미의 눈빛.

여태껏 응시생들을 사냥하면서 포 인트가 적지 않거든.

내가 보유한 포인트는 보스 몬스터 를 공략하는 것보다도 많았다.

이 포인트를 모두 가지면 수석은 따 놓은 당상이다.

구미가 안 당긴다고 하면 거짓말일 걸?

"응시생 씨가 이기면요?"

아.

그건 생각 안 해 봤네.

[적. 공격. 멈춤. 자가 회복 시작.]

공세를 줄이자 푸른 파수꾼이 곧장 파손 부위를 수복하기 시작했다.

에이.

지금 내기 내용 가지고 고민할 때 냐?!

나는 생각나는 대로 말을 내뱉었 다.

"밥이나 한 끼 사 줘."

"...밥이요?"

"어. 밥."

신유미는 고민 끝에 내 제안을 받 아들였다.

"좋아요. 대신 응시생 씨가 아웃될 것 같으면 개입할 거예요."

"마음대로. 그럴 일은 없을 거니 까."

"근데 왜 계속 말을 편하게 하세 요?"

"억울하면 너도 편하게 하든가." 나는 픽, 웃고는 푸른 파수꾼을 향

해 달려들었다.

米 氷 #:

토끼 눈처럼 커진 신유미의 눈동 자.

그녀의 눈동자는 한 번도 쉬지 않

고 민철의 움직임을 좇았다.

콰앙- 쾅!

푸른 파수꾼이 위협적으로 주먹을

휘두른다.

민철에게는 닿지 않았다.

한 끗 차이.

발을 일 보만 잘못 내디뎠어도 실 드 에너지를 모두 잃었을 것이다.

우연일까?

'아냐. 저 응시생의 움직임... 간 격을 재고 있어.'

신유미는 우연이 아니라는 것을 알 고 있었다.

민철의 신체 능력은 그리 뛰어나지 않았다.

유력한 수석 후보였던 유승우에 비 하면 느리고 약했다.

하지만.

'파수꾼의 공격을 모두 읽어 내고 최소한의 움직임으로 피하고 있잖 아'

신유미의 눈동자에 놀라움의 빛이 번졌다.

매번 아슬아슬하게 스쳐 지나가는 공격.

민철은 푸른 파수꾼의 공세를 흘려 내면서 쉬지 않고 역공을 펼쳤다.

민철과 푸른 파수꾼의 전투는 합을 미리 맞춰 놓은 액션 배우들의 움직 임처럼 오차 없이 맞아떨어졌다.

'운이 좋아서 맞아떨어진 우연일 까?'

신유미는 고개를 저었다.

우연이 겹쳐지면 필연이라고 했다.

필연을 만들어 낸 것은 바로 민철 이었다.

콰직! 콰직!

도끼질은 어찌나 찰지게 들어가는 지.

「인간. 세계의. 끝이. 도래했다.」

"뭐라고 떠드는 거야?"

민철은 투덜거리면서도 도끼질을 쉬지 않았다.

저저적!

반복되는 타격. 푸른 파수꾼의 몸 통에 새겨진 균열이 크게 벌어졌다.

'공세의 흐름을 쥐고 있어. 그리고 날카로워.'

신유미는 유승우와의 전투를 떠올 렸다.

화랑 길드의 유망주.

그를 만난 것은 보스 룸 앞이었다.

유력한 수석 후보 두 명의 만남.

서바이벌이라는 주제 앞에서, 둘 사이에 대화는 필요 없었다.

유승우는 빠르고 강했다.

그러나.

딱 거기까지였다.

민철처럼 날카롭게 상대의 호흡을 끊어 내고 빈틈을 만들어 내는 기예 는 없었다.

신유미는 치열한 싸움 끝에 유승우 를 격퇴할 수 있었다.

정확히는 쓰러트리지는 못하고 쫓 아낸 것에 그쳤지만. 다시 한번 그 상황으로 돌아가도 유승우를 상대할 자신이 있었다.

하지만.

'내가 저 응시생 씨랑 싸우면 이길

수 있을까?'

신유미는 찬물을 맞은 것처럼 놀랐 다.

화랑 길드의 유망주보다 무명의 응 시생을 더 높게 생각한 것이다.

'정말로 밥 한번 사야 할지도 모르 겠어.'

서서히 무너지고 있는 푸른 파수꾼 을 보면서, 그런 생각이 들었다.

米 米 米

[00:01]

[00:0이

-시험이 종료되었습니다.

드디어.

헌터 라이선스 시험이 끝났다.

마주하고 있는 신유미가 입술을 뻥 긋거린다.

그 목소리를 듣기도 전에.

화아아악!

환한 빛무리가 눈을 덮쳤다.

시험장에 들어올 때와 동일한 현상 이었다.

다시 눈을 뜨니, 나를 비롯해서 최 후까지 생존한 응시생들이 강당으로 이동되었다.

'꽤 힘겨웠어.'

나는 물집 잡힌 손을 내려다봤다.

푸른 파수꾼 녀석. 신유미와 실랑 이를 벌이는 동안 손상 부위를 제법 많이 복구했다.

하마터면 내기에서 질 뻔 했다.

"아. 지친다."

나는 바닥에 털썩 주저앉았다.

체력도, 혼돈기도 바닥이다.

현재의 몸을 한계까지 쥐어짜지 않

았더라면.

푸른 파수꾼을 사냥하는 건 불가능 했다.

숨을 고르면서 주위를 둘러봤다.

'이게 다 마지막까지 살아남은 녀 석들인가.'

응시생들의 몸은 타박상과 피멍, 그 외에도 여러 상처가 가득했다.

헌터 워치가 제공하는 실드 에너지 는 이름과는 달리 피해를 막아 주거 나 하지는 않는다.

게임의 HP처럼 체력을 표시하는 용도.

실드 에너지가 0이 되면 즉시 방 어막이 처지면서 응시생을 보호, 동 시에 시험장 밖으로 내보낸다.

반대로 말하면 실드 에너지가 0이 되기 전까지는 시험장 내에서 얻은 상처가 고스란히 남는다는 뜻.

내 볼에도 돌 파편이 튀면서 긋고 간 상처가 그대로 있었다.

"의료반. 370번 응시생에게 응급조 치를!"

"이쪽 응시생도 상태가 좀 안 좋은 데. 포션 좀 가져와!"

미리 대기하던 의료 헌터들은 응시 생들의 상처를 치유했다.

나는 외형이 워낙 멀쩡해서 그런 지, 아무도 신경을 쓰지 않았다.

"511번? 저 응시생은 시험을 치른 것 같지가 않네."

"어디서 숨어 있던 걸까? 그러면 포인트를 못 모으잖아."

"그럼 살아남기만 하고 마지막에 탈락하겠지. 그런 응시생들 종종 있 잖아."

저기요.

다 들리거든요?

가볍게 째려봐 주자, 내 시선을 황 급히 피했다.

'근데 정말로 밥 얻어먹게 생겼잖 아.'

나는 왼손에 있는 물건을 살펴봤 다.

-꼭 연락 줘요. 밥 사 주겠다는 약속 지킬게요.

강당으로 이동하기 직전.

신유미가 손에 쥐여 준 명함이다.

푸른 파수꾼을 공략하기 위해 되는 대로 던진 말인데.

생각도 못 한 약속이 잡혀 버렸다.

-이제 곧 시험 결과를 발표하겠습 니다.

안내 방송이 흘러나왔다.

시장통 같던 강당의 분위기가 한순 간에 가라앉았다.

모든 응시생들의 시선은 전광판을 향했고.

전광판의 까만 화면이 응시생들의 이름을 하나둘 띄웠다.

"...이름이?"

"전민...철'?"

"처음 듣는 이름이야."

응시생들.

대기하던 스태프들의 표정이 경악 으로 물들었다.

전광판에서 가장 위쪽.

[1 등 一 전민철]

1등의 자리에는 내 이름 석 자가 떡하니 박혀 있었다.

"2등. 신유미...?"

"유승우는? 화랑 길드에서 키운 신 인은 어디 간 거야?!"

"3등. 3등이야!"

"유승우가 3등이라고?"

이변의 연속이었다.

조용했던 강당이 삽시간에 소음으 로 가득 찼다.

대다수는 합격자 명단 중에서 자신 의 이름을 찾느라 바빴지만.

일부는 나와 유승우의 이름을 번갈 아 가면서 불렀다.

-제55회 헌터 라이선스 시험 1 등 은 511번. 전민철 응시생입니다. 축 하드립니다.

"이건 인정할 수 없어."

새하얗게 질린 얼굴.

화랑 길드의 유망주라고 했던가?

유승우는 말끔하게 생겨서 인기 꽤

나 있게 생긴 외모를 갖춘 녀석이었 다.

나보다는 조금 못생겼지만.

그 잘생긴 얼굴이 분노로 일그러져 있었다.

"저, 저. 유승우 씨...

"미안합니다. 누구랑 이야기하고 싶은 기분이 아니네요."

유승우는 인터뷰를 하러 다가온 기 자를 확 밀쳤다.

"꺄악!"

응시생이라고는 해도 마나를 다룰 줄 아는 예비 헌터다.

일반인인 기자는 어깨에 가해진 힘 을 버티지 못하고 쓰러졌다.

"저기요! 유승우 씨!"

"이번 이변에 대해서...

기자들은 아랑곳하지 않고 유승우 를 향해 마이크를 내밀었다.

화랑 길드 소속 보디가드가 유승우 와 기자들 사이에 서서 막아섰다.

"지금은 응시생의 안정을 위해 인 터뷰를 할 수 없습니다."

"자세한 건 다음에 언론 보도를 통 해 발표하겠습니다."

보디가드들이 유승우를 감싸면서

소란이 가라앉았다.

대신 사람들의 이목이 나한테로 쏟 아졌다.

"511번이면 저 응시생이잖아."

"저 사람이 수석이라고?"

"아이템도 변변한 거 하나 없는 것 같은데."

사람들의 시선이 일제히 나를 향했 다.

놀라움, 경탄, 시기, 질투, 분노.

온갖 감정의 격류가 휘몰아치듯 나 한테로 쏟아졌다.

'이런 거야 익숙하지.'

전생에는 하층 계급인 전사부터 시 작해서 판데모니엄의 정점에 섰던 몸이다.

그때 마주했던 멸시와 질시에 비하 면 지금은 귀여운 애교지. 암.

나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여기서 볼일은 끝났다.

'이제 탑이나 게이트에 들어갈 수 있다.'

탑, 그리고 게이트.

이형의 괴물들이 출몰하는 이세계.

헌터 라이선스를 딴 것도 그곳에 출입하기 위함이었다.

'단련으로 강해지는 것에는 한계가 있다.'

현생의 종족은 인간.

훈련으로 끌어 올릴 수 있는 능력 치는 한계가 명확했다.

무 대륙의 인간들도 마찬가지였다.

그들이 마력을 다루는 힘, 무공은 종의 힘을 뛰어넘는 힘을 선사했지 만.

그릇이 되는 '인간'은 내력을 무한 하게 다룰 수 없었다.

'나한테는 남들에게 없는 특성이 있다.'

[플레이에 특성.

각성하면서 얻은 '개변'의 특성이 빛을 볼 때가 온 것이다.

나는 사람들의 시선을 뒤로하고 닫 혀 있는 강당 문을 열어젖혔다.

'아, 씨. 뭐야?'

한가득 인파가 눈앞에 펼쳐졌다.

모두 나를 기다리던 길드 관계자들 이었다.

"전민철 헌터님!"

"저희 아수라 길드에서는 헌터님께 최고의 보장을 해 드립니다!"

"위너스 길드는 전민철 헌터님의

평생 파트너가 되어 드릴 수 있습니 다!"

대부분은 이름도 들어 보지 못한 중소 길드들이었지만.

몇몇은 익숙한 이름도 들렸다.

"한림 길드에서 전민철 헌터님에게 맞는 최적의 지원을 약속드립니다."

"불새 길드에 오십시오. 만족하실 겁니다."

한림, 불새, 용발톱 등 이름깨나 날리는 중견 길드도 러브콜을 날렸 고.

"나는 다크문 길드 소속 스카우터 다. 전민철 헌터와 이야기를 나누고

싶군."

국내 10위권에 드는 길드 중 하나 인 다크문에서도 내 이름을 꺼냈다.

'많기도 하군.'

우리나라에 길드가 이렇게 많았던 가.

나를 섭외하려고 온 길드 관계자만 수백 명이었다.

"전민철 헌터! 인터뷰 부탁드립니 다!"

"이번에 수석으로 시험을 통과하신 소감 좀

그 뒤에는 뒤늦게 합류한 기자들까

지.

혼란은 극에 달했다.

'이대로 있다가는 집에 가긴 틀렸 군.'

나는 혼돈기를 끌어 올렸다.

"길드에 들어가는 조건이 있습니 다."

웅혼한 목소리.

확성기에 대고 소리를 친 것처럼 쩌렁쩌렁하게 울렸다.

기자들.

길드 관계자 모두가 내 입술이 떨 어지기만을 바라봤다.

신유미와 유승우를 밀어내고 라이 선스 시험에서 수석을 한 뜨끈뜨끈 한 신입.

어느 길드에 들어갈지, 당연히 궁 금하겠지.

'근데 어쩌나? 나는 어디에 소속될 생각이 없거든.'

전직 마왕의 자존심이 있지.

한 길드에 소속될 생각은 전혀 없 었다.

"50억. 계약금으로 50억을 주는 길 드에 들어가겠습니다."

주변이 급격하게 조용해졌다.

내 말에 호기롭게 대답하는 길드 관계자는 아무도 없었다.

"검사 결과는 잠재능력이 거의 없 던데."

"전투 기술은 뛰어나지만 능력치 자체는 낮은 편이잖아."

"잠재 수치가 A급이면 모를까, 발 전 가능성이 크지 않은 헌터를 굳 이...

당연하지.

갑자기 튀어나온 신입이 50억을 부르는데, 누가 선뜻 나설 수 있을 까.

"그 계약금. 제가 지불하도록 하지 요."

누군가의 목소리가 침묵을 깼다.

네?

잠깐만요. 지금 뭐라고 하셨어요?

12 화

신입 하나 영입에 50억을 부르는 길드가 있다고?!

'어떤 미친놈이야?'

나는 당황하는 기색을 어렵게 감췄 다.

"여기입니다. 여기!"

소리가 나는 곳을 쳐다봤다.

나와 시선을 마주친 길드 관계자들 은 시선을 홱 돌렸다.

50억이라는 폭탄(?)은 본인이 아니 라는 걸 강력하게 어필했다.

"여깁니다. 전민철 헌터!"

걸걸한 목소리와 함께 무언가가 그 자리에서 튀어 올랐다.

잠깐.

왜 당신이 여기에 있어?

상상도 못 한 인물의 정체.

마르탄.

성간 연합 서울 지점장이었다.

'작달막해서 소리만 들리고 보이지 않았구나.'

나는 땅딸보 드워프를 보면서 미간 을 찌푸렸다.

녀석은 내가 VIP 코드의 소유자라 는 걸 알고 있다.

'무슨 생각으로 50억을 부른 거 지?'

의문에 의문이 꼬리를 물 무렵.

땅딸보 녀석하고 눈이 마주쳤다.

씨익.

녀석은 천천히 입을 벌렸다.

-따. 로. 이. 야. 기.

많은 사람들 앞에서 50억이나 불 러 놓고, 무슨 이야기를 하자는 걸 까.

나는 긍정의 의미로 고개를 끄덕였 다.

'지금은 어울려 주마.'

허튼수작을 부리면 나중에 척추가 어디 있냐고 찾게 만들어 주마.

"저기요! 전민철 헌터!"

"소감 한마디만 부탁...

"성간 연합과는 이미 이야기가 된 영입 조건입니까?"

몰려드는 기자들.

땅딸보 녀석은 인파를 헤치고 내 곁으로 다가왔다.

"전민철 헌터는 성간 연합과 나눌 이야기가 있습니다. 자세한 건 연합 의 공식 성명을 통해 발표하도록 하 겠습니다."

성간 연합.

엘리시움과 판데모니엄에 이어 지 구를 삼등분하고 있는 거대 세력.

땅딸보 녀석이 직접 성간 연합의 이름을 들먹인 시점에서, 기자들은 더 나설 수 없었다.

"전민철 헌터. 가시죠."

녀석이 나한테 윙크를 했다.

웩.

땅딸보 아재가 무슨 윙크냐.

술을 진탕 먹은 것처럼 속이 울렁 거렸다.

장소만 아니면 욕을 한 바가지 해 줬을 텐데.

"이쪽으로 모시겠습니다."

미모의 여인이 앞장서서 내 에스코 트를 했다.

그 덕분에 인파를 뚫고 시험장 밖 으로 벗어날 수 있었다.

도로에는 성간 연합 마크가 붙은 리무진 차량이 나를 기다리는 중이 었다.

"무슨 꿍꿍이로 이런 짓을 저지른 거지?"

나는 인상을 구겼다.

땅딸보 녀석은 능글맞은 웃음을 지 었다.

"뭐긴요. 고객님의 파트너가 되고 싶어서입니다."

"난 길드에 소속될 생각 없어."

"알고 있습니다. 저는 그저 고객님 의 편의를 봐 드리고 싶은 마음뿐입

니다."

"내 편의를 봐준다고?"

"그렇습니다."

호오.

이 땅딸보 녀석.

무슨 이야기를 꺼내려고 뜸을 들이 는 거냐.

땅딸보의 의도는 성공했다.

무슨 말을 할지 엄청 궁금해졌거 든.

"좋아. 내 편의를 어떻게 봐주겠다 는 거지?"

"게이트 섭외. 고객님 전담 서포트 팀 구축. 세금 감면 혜택. 사냥에서 얻은 부산물은 모두 최고가로 구 매...

"내 말을 잘못 들었나 보군."

나는 미간을 찌푸렸다.

땅딸보 녀석의 지원은 나쁘지 않았 다.

지원을 받으면 몬스터 사냥 외에 귀찮은 과정은 모두 생략해도 될 정 도다.

"성간 연합은 자원봉사 단체가 아 닐 텐데."

대가 없는 호의는 없다.

저만한 지원을 받으면 길드나 용병 단체에 소속되어야 한다.

'성간 연합이라는 놈들은 돈에 엄 청 민감하거든.'

투자하면 반드시 대가를 얻어 낸 다.

성간 연합의 규칙이다.

땅딸보 녀석이 말한 지원을 받으면 얼마나 많은 제약으로 내 목줄을 조 일지 감도 안 왔다.

'시간 낭비였군.'

쯧, 속으로 혀를 찼다.

막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려는 순 간.

"고객님을 성간 연합의 자유 용병 으로 등록해 두겠습니다."

땅딸보가 한 말이 내 발을 붙잡았 다.

"자유 용병?"

"예. 소속은 일반적인 길드나 용병 단체처럼 성간 연합에 있지만, 실제 로는 활동에 대해 일체 간섭하지 않 는 용병입죠."

"성간 연합이 그렇게 널널한 단체 는 아니잖아."

"자유 용병은 계약서상 저희 연합 과 동등한 위치입니다."

"그렇게 해서 얻을 수 있는 건?"

"고객님의 신뢰를 얻을 수 있죠."

"내 신뢰인가. 아니면...

나는 말끝을 흐렸다.

땅딸보 녀석의 노림수는 뻔했다.

VIP 코드를 가진 고객.

내 뒤에 있을 거대 세력의 지원.

'근데 가진 건 VIP 코드뿐이라는 거지.'

녀석이 무엇을 원하든, 그걸 얻을

가능성은 없었다.

내가 가진 거라곤 손등에 인식시켜 둔 다크 스타가 전부거든.

"전민철 헌터님. 계약 내용을 확인 해 보시겠습니까?"

내 앞에 내민 태블릿.

아까 에스코트를 해 준 여인이었 다.

사양하지 않고 성간 연합의 조건을 확인했다.

'문제는 없다.'

땅딸보 녀석이 말한 대로다.

온갖 지원과 혜택.

반대로 의무 조항은 없었다.

'나만 좋은 거잖아.'

성간 연합이 일방적으로 주기만 하 고 받는 것은 없는 거래.

후원이나 지원이라는 말이 더 어울 렸다.

"여기에 서명하면 되는 건가?"

"예. 서명하시는 즉시 법적 효력을 가집니다."

입 벌리면 밥 떠먹여 준다는데.

거절할 이유가 있나.

나는 태블릿에 서명을 휘갈겼다.

* * *

성간 연합 용산 지부 최고층.

마르탄은 민철과의 가계약을 마친 뒤 곧장 사무실로 돌아왔다.

"지점장님."

" 응?"

"자유 용병 계약... 괜찮으세요?"

엘리는 걱정스러운 기색이 역력했 다.

자유 용병 계약은 마르탄의 능력을

아득히 벗어나는 일이다.

용 사냥꾼 카르둠.

역천의 거인 카이.

차원 여행자 건.

자유 용병에 등록된 이들은 판데모 니엄의 [귀족]급과도 뒤지지 않는 여러 차원의 강자들이다.

최소 이사급.

자유 용병은 연합 중진의 승인이 있어야 계약을 맺을 수 있다.

"나라고 아무 생각 없이 일을 저지 른 건 아니다."

걱정스러운 엘리와는 달리.

마르탄은 담담한 투로 대꾸했다.

"오늘은 퇴근해."

" 예."

방에 홀로 남은 마르탄.

그는 탁자 한쪽에 있는 수정구에 손을 뻗었다.

「마력 패턴을 입력해 주십시오.」

마르탄은 손을 주머니에 넣었다.

불쑥, 카드키를 집고는 구체 표면 에 밀착시켰다.

厂마력 패스를 확인합니다.J

'■성간 연합 녹스 이사님의 할당

코드입니다.」

'■할당 코드의 주인에게 접속 허가 를 요청합니다.」

꿀꺽.

마르탄은 침을 삼켰다.

긴장된 눈빛.

상대는 거물이었다.

담대한 그조차도 긴장하게 만드는 상관.

1분이 한 시간처럼 길게 느껴졌다.

우우웅!

수정구가 빛을 발하더니, 홀로그램

을 투영했다.

성간 연합의 열두 이사.

용인, 녹스였다.

-이 코드를 준 녀석은 많지 않은 데. 누구인가?

"아, 안녕하십니까! 이사님! 성간 연합 용산 지점장, 마르탄입니다."

-마르탄. 마르탄... 아, 그 드워 프 꼬맹이. 기억이 났군.

마르탄은 속으로 안도의 한숨을 내 쉬었다.

'1단계는 통과했다.'

과거 연합 차원에서 진행된 대규모

프로젝트.

그 프로젝트에서 활약을 벌인 덕에 연합의 이사에게 눈도장을 찍고 지 점장으로 발령받을 수 있었다.

이사 직통 라인.

단 한 번 사용할 수 있는 아이템 과 함께.

-그래. 무슨 일이지?

"예. 이사님께 긴히 부탁드릴 일이 있습니다."

마르탄은 곧장 본론을 꺼냈다.

시간은 금.

단 한 번, 이사급 거물과 이야기할

수 있는 아이템까지 사용했다.

미사여구를 붙이는 것도 아까웠다.

-호오. 부디 그만한 가치가 있는 이야기였으면 하네.

"지구인 한 명을 자유 용병으로 등 록하고 싶습니다."

-자유 용병? 하위 차원에서 그만 한 인재가 나왔을 리는 없고.

"설명드리겠습니다."

마르탄은 민철이 차원 창고를 이용 했던 일과 헌터 라이선스 시험에서 벌어졌던 사건을 짧게 설명했다.

-VIP 코드 사용자라.... 흥미로

운 이야기로군.

"저는 전민철 헌터와의 관계를 지 속적으로 이어 가기 위해...

-그걸로는 부족하네.

녹스의 차가운 목소리가 마르탄의 말을 끊어 냈다.

비록 홀로그램이지만.

한기가 뚝뚝 묻어나는 모습이었다.

-자유 용병은 본 연합에서도 잘 내주지 않는 라이선스다. 왜 그러는 지 알고 있나?

"그들을 돈으로만 지배하는 게 불 가능하기 때문입니다."

-잘 알고 있군. 그럼 전민철이라 는 자가 왜 결격 사유인지도 알고 있으리라 보네.

연합의 이사. 녹스의 태도는 명확 했다.

VIP와의 끈을 대는 것보다도 자유 용병의 가치가 더 크다.

마르탄이 가져온 거래 조건은 정답 이 아니었다.

-이야기는 그게 끝인가?

차가운 목소리.

뱀의 기다란 혓바닥이 목을 핥고 있는 느낌이 들었다.

마르탄은 직감했다.

여기서 멈추게 되면 성간 연합에서 자신의 출세가도도 끝이라고.

"아, 아닙니다. 이사님. 이 자료 화 면을 봐 주십시오."

이미 엎질러진 물.

어떻게든 민철이 자유 용병에 어울 리는 급이라는 것을 증명해야 했다.

-이건?

"전민철 헌터가 시험 때 보인 활약 입니다."

-시간을 낭비하지 않았으면 하는 군.

마르탄은 미리 입수해 둔 시험 영 상을 재생했다.

흑의 삼연성과의 싸움.

그리고 푸른 파수꾼 레이드.

길드의 헤드헌터들이 감탄사를 내 뱉었던 영상이다.

'이사님의 마음을 돌이킬 다른 방 법을 찾아봐야 해!'

영상은 그저 시간 끌기.

하위 차원에서 막 마나를 느낀 각 성자.

실력은 대단했지만 연합의 이사의 눈을 끌기는 역부족이었다.

마르탄은 영상으로 시간을 벌면서 대안을 생각했다.

- 허어. 이자는 도대체...!

그런데.

녹스의 반응은 마르탄이 생각했던 것과 정반대였다.

-움직임 하나하나가 절제되어 있 고 낭비가 없다.

녹스는 자료 화면에서 한시도 눈을 떼지 못했다.

한결 풀어진 목소리로 연신 감탄사 를 터트렸다.

마르탄이 보여 준 영상.

전민철의 활약상은 연합 이사인 녹 스가 봐도 흠잡을 데 없이 완벽했 다.

- 이 건 마치 그자의 싸움을 보

는 것 같군.

"그자요?"

-아, 아닐세. 내가 생각한 자는 이미 죽었으니. 그의 분신일 가능성 은 없지.

영상이 끝날 무렵.

-후우.

녹스는 아쉬운 투로 한숨을 내쉬었 다.

꿀꺽.

마르탄의 눈동자가 녹스의 입에 집 중되 었다.

혹시나 하는 기대감.

아닐 경우에는 영상을 보는 동안 생각해 둔 대안을 꺼내기 위해.

긴장을 늦추지 않고 녹스가 어떤 말을 할지 기다렸다.

-자유 용병 계약. 진행하지.

"고맙습니다! 이사님!"

-자네에게 준 코드는 영구 지속으 로 바꾸겠네. 저자를 전폭적으로 지 원해 주고 무슨 일이 생기면 즉시

나에게 보고하게.

"알겠습니다!"

-그리고 자유 용병 계약은 당분간 비밀일세. 외부에 알려져서 좋을 건 없으니까.

"예!"

대답을 마치자마자 수정구가 어두 워 졌다.

[통신이 종료되었습니다.]

"하... 이대로 끝장나는 줄 알았 네."

다리에 힘이 풀려서 제자리에 주저 앉은 마르탄.

녹스의 차가운 음성이 환청처럼 귓 가에 아른거렸다.

"어쨌든 이야기는 잘 풀려서 다행 이긴 한데."

마르탄은 힘없는 목소리로 중얼거 렸다.

시간 끌기용으로 틀어 놓은 영상.

마르탄이 보기에도, 민철의 실력은 뛰어났다.

하지만 감탄사를 내뱉을 정도는 아 니었다.

연합의 이사, 녹스는 무엇을 보고 그렇게 놀랐는지.

그리고 녹스가 떠올린 자는 누구였 는지.

궁금한 건 많았지만 연합 이사에게 의문을 제기할 수 없었다.

"몰라. 일단 한 건은 넘겼잖아?"

지금은 아무 생각도 하고 싶지 않 았다.

마르탄은 생각하기를 관뒀다.

같은 시각.

서울 강남에 위치한 신성 길드 건

지상에서 35층.

하늘을 찌를 것처럼 높이 솟아오른 건물을 보면 신성 길드의 위세를 느 낄 수 있었다.

국내 3위.

화랑과 금산의 뒤를 쫓는 굴지의 길드이 다.

최고층에 있는 길드 사무실.

허리 언저리까지 닿는 붉은 머리카 락.

잡티 하나 없이 환한 피부와 오뚝

한 코, 그리고 커다란 눈망울의 미 인은 영상을 뚫어져라 쳐다봤다.

전민철의 영상이었다.

영상은 푸른 파수꾼이 무너지면서 끝났다.

"부장님 말대로 대단하네요. 아니, 대단하다는 말로는 부족해요."

신성 길드의 길드장. 천지연은 눈 빛을 반짝였다.

"예. 이런 몸놀림은 우리 길드에 속해 있는 헌터들도 흉내 내기 어렵 습니다."

맞은편에는 머리가 반쯤 벗겨진 중 년 사내가 맞장구를 쳤다.

신성 길드 섭외부장, 이종수였다.

천지연은 길게 늘어진 머리카락을 빙빙 꼬았다.

그녀가 고민을 할 때마다 보이는 습관이다.

"성간 연합에서 선수를 쳤다고요?"

"예. 아직 정식 발표는 없습니다 만...

"50억. 아깝지 않은 금액이네요."

"제가 독단으로 하기에는 너무나도 큰 액수여서. 죄송합니다."

"부장님을 탓하려는 건 아니었어 요. 그 금액은 업계 처음이었잖아

요."

화랑 길드에서 유망주로 섭외했던 유승우의 계약 금액이 10억.

민철이 부른 몸값은 그 다섯 배에 달했다.

"부장님. 자료는요?"

"준비해 왔습니다."

민철이 시험을 치른 지 몇 시간도 지나지 않았다.

그 짧은 시간 동안, 신성 길드는 민철의 신상을 모두 파악해 두었다.

"마력 빼고 모두 E급. 잠재 능력도 E 급?"

"예. 검사 결과는 그렇다고 합니 다."

"협회 놈들도 보는 눈이 없네요. 저 움직임이 어떻게 E급인가요?"

"잠재 능력 수치가 잘못되었거나 2 차 각성을 했을 수도 있지요."

2차 각성.

혹은 한계 돌파.

어느 쪽이든, 민철은 협회의 자료 를 뛰어넘는 활약을 보였다.

"호호. 어쨌든 잘됐네요. 이 자료를 다른 길드에도 은근히 흘리세요."

"예, 예?"

"누가 못 먹게 고춧가루 좀 뿌리게 요."

"그렇다는 말씀은 전민철 헌터를 포섭할 생각이십니까?"

"그래요. 계약금 100억. 본사에는 제가 허락을 맡을게요."

"알겠습니다. 지시대로 이행하겠습 니다."

이종수가 사무실을 떠난 후에도, 천지연은 뚫어져라 민철의 영상을 쳐다봤다.

"전민철 헌터. 이 사람을 포섭하면 우리 길드가 화랑이나 금산을 제치 는 것도 꿈은 아닐 거야."

천지연의 눈빛이 활활 타올랐다.

13 화

이튿날.

눈을 자극하는 햇볕에 눈을 떴다.

'알람이 안 울렸네.'

꺼져 있는 휴대 전화.

이러니 알람이 울리지가 않았지.

나는 가볍게 한숨을 쉬고는 휴대 전화를 다시 켰다.

부우웅! 부우웅!

전원 버튼을 누르자마자 촐싹대는 휴대 전화.

나는 눈을 의심했다.

"뭐야 이거?"

[부재중 통화 306건]

[문자 560건]

90%가 모르는 번호였다.

전화를 걸 엄두가 안 나서 문자를 확인했다.

"이런

나는 이맛살을 찡그렸다.

-매발톱 길드는 당신 같은 인재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 최고 조건 보장! 최고의 대우! 용사 길드에서는....

- 드래곤 길드에서는 당신이 원하 는 조건을 모두 맞춰....

수백 개의 문자.

대부분은 길드를 홍보하는 내용이 다.

"인기남은 이래서 괴롭구먼."

자는 동안 전화가 하도 와서 폰이 꺼졌나 보다.

이 양반들. 적당히 좀 하지.

하여간 우리나라는 개인 정보가 아 주 공공재예요.

부우웅!

손에 들린 휴대 전화가 요란하게 울렸다.

모르는 번호다.

'또 어딘가의 길드겠군.'

헌터 라이선스 수석이 대단하긴 하 나 보다.

각성자 등록 때만 해도 아무도 관 심을 가지지 않았는데 말이다.

밀려 있는 부재중 전화와 문자를 보니 휴대 전화를 쳐다볼 엄두가 안 났다.

나는 들고 있던 휴대 전화를 침대 에 던져 놓았다.

똑똑!

어쭈. 이제는 아예 집까지 찾아와?

"전민철 헌터님. 성간 연합에서 나 온 엘리입니다."

"아. 잠깐만."

나는 급히 옷을 주워 입었다.

여름이라서 바닥에 널려 있는 티셔 츠와 반바지를 걸쳐 입는 걸로 충분 했다.

문을 열어 주니, 어제 나를 에스코 트해 주었던 미인이 있었다.

"귀한 곳에 누추한 분이 오셨네."

"뵙고 이야기를 하는 게 좋을 것 같아서 요."

"연락 좀 하고 오지."

"미리 문자 드렸는데요."

아, 그랬나.

문자 온 게 너무 많아서 몰랐다.

근데 이 양반. 한마디를 안 지려고 하네.

내 앞에서 손을 싹싹 비비던 땅딸 보 녀석하고는 다른 느낌이다.

"미안. 못 봤네."

부우웅!

그 시간에도, 폰은 요란하게 진동 음을 냈다.

"못 보실 만하네요. 이해합니다."

"이야기가 좀 길 것 같으면 들어 와."

"그럼 실례하겠습니다."

남자 혼자 사는 원룸 자취방.

거부감이 들 법도 한데, 엘리는 불 쑥 집 안으로 들어왔다.

"이게 혹시 서민 체험이라는 것입 니까?"

"왜."

"VIP께서 너무 검소하신 것 같아 서요."

"검소는 무슨. 내가 어떻게 사는지 이미 조사했을 거잖아."

"설마요. 고객님. 아니, 전민철 헌 터님께서 싫어하실 만한 일은 하나 도 하지 않았습니다."

"라이선스 시험 때 나타난 건 뭐 고?"

"연합 건물에 출입하실 때 각성자 등록증을 제시하셨으니 곧 시험을 치르리라 예상한 거죠."

오호라.

'제법이야. 마음에 들어.'

내 비위는 건들지 않으면서 행동을 읽는 행위.

땅딸보 녀석의 수완이다.

동업자의 유능함은 나에게도 이득 이다.

"참. 앉을 자리가 없네."

"괜찮습니다. 전 바닥이 편해요." 엘리는 바닥에 다소곳이 앉았다. 정장에 스커트 차림인데도, 전혀

흐트러짐이 없는 모습이다.

난 침대에 걸터앉아서 엘리와 마주 했다.

"참. 계약 기념 선물이 있어요." 엘리는 휴대 전화 하나를 나한테

내밀었다.

"업무용 폰이에요. 문의하실 게 있

으면 저 폰으로 연락 주세요."

"뭐야. 이런 것도 준비했어?"

"호호, 여러 길드들한테 시달릴 줄

알았거든요."

"이건 잘 쓰지."

주는 건 또 사양 안 하지.

나는 망설이지 않고 휴대 전화를 집었다.

"그럼 바로 본론으로 넘어갈까요?"

"그래. 아침부터 날 찾아온 이유나 들어 보지."

"전민철 헌터님을 전담할 지원 팀 편성, 그리고 게이트 수배 조건을 조정하려고 왔어요."

"지원 팀은 사체 수거 팀만 있으면 됐어."

엘리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탱킹이나 원딜, 보조해 줄 헌터는 어떻게 하시고요?"

"나 혼자면 충분해."

"예. 그럼 사체를 해체할 장인과 짐꾼들로 편성할게요."

엘리는 지원 팀 편성 외에도 게이 트 섭외 조건이나 시간 등을 물어봤 다.

"...알겠습니다. 그럼 전민철 헌 터님께서 말씀하신 대로 진행할게 요."

"게이트 공략은 언제부터 가능해?"

제일 궁금한 것이었다.

몸이 근질근질하다.

플레이어의 권능. 레벨 업.

나는 특성을 얻어 놓고 한 번도 써 보지를 못했다.

라이선스 시험이야, 순수한 내 힘 으로 해낸 것이고.

'나도 헌터의 특권이라는 것을 누 려 보고 싶단 말이다.'

플레이어 특성을 확인해 보고 싶은 마음에 가슴이 두근거렸다.

크리스마스 때 포장된 선물을 앞둔 마음이 이러지 않았을까 싶다.

"팀 편성과 게이트 섭외가 끝나면 요."

"시간이 꽤 걸리겠군."

"얼마 걸리지 않을 거예요. 전 유 능하니까요."

엘리는 자신만만한 미소를 짓고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米 米 米

얼마 지나지 않아서 곧장 연락이 왔다.

엘리 였다.

[엘리]

오후 두 시. 암사동 쪽에 D급 게 이트를 섭외했어요.

빨라도 너무 빠르잖아!

나는 솔직하게 감탄했다.

[민철]

지원 팀과 게이트 섭외. 모두 끝난 거야?

[엘리]

물론이죠. 전 유능하다고 말씀드렸 잖아요.

[민철]

자신감의 이유가 있었네. 납득.

[엘리]

한 시 반까지 모시러 갈게요. 준비 해 주세요.

약속 시간이 되자, 엘리는 검은색

대형 밴을 대동하고 집 앞으로 왔 다.

나는 이동하면서 게이트 정보를 브 리 핑 받았다.

"이번에 갈 게이트는 암사동 부근. 게이트 난이도는 D, 지형은 삼림 지대예요."

"삼림이면 숲'?"

"네. 출몰 가능성이 있는 몬스터들 의 리스트는 여기 있어요."

엘리는 게이트 정보가 담긴 태블릿 을 넘겼다.

[암사동 게이트]

등급 : D

지형 : 온대 삼림

크기 : 2〜3 킬로미터.

* 괴물 유형

고블린(D), 가시멧돼지(D), 위즈덤 몽키(D), 크리쳐 이터 (D)....

브레이크 예정 시간 : 36시간 58 부

'또 삼림이군.'

라이선스 시험 때는 열대 우림이었

다.

이번에는 온대 삼림 지역.

숲과 인연이 깊은 모양이다.

나는 온대 삼림에서 출몰하는 몬스 터들을 훑어봤다.

'첫 공략이다. 완벽하게 해내 주 지.'

게이트 정보를 훑어보던 중.

"받으세요."

엘리가 금색 카드와 통장을 내밀었 다.

"이건 뭐지?"

"계약금이 들은 카드예요."

잊고 있었다.

근데 내가 계약금을 얼마로 불렀던 가.

'에이. 설마 50억을 다 줬겠나.'

나는 통장을 확인했다.

[IC 은행]

[전민철 님]

[계좌번호

7XXXXX-XX-XXXXXX]

[남은 금액 : 4,775,000,00이

"헉!"

나도 모르게 탄성을 터트렸다.

잠깐.

눈을 몇 번이고 감았다가 떴다.

'그러니까 이게 다 얼마야...

47 억.

뒷자리만 떼고 봐도 엄청난 금액이 다.

엘리는 고개를 숙였다.

"죄송해요. 세금 부분까지는 어쩔 수 없더라고요."

"이, 이걸 정말로 나한테 준다고?"

마왕이고 투장이고 간에, 내 금전 감각은 현생, 그러니까 23살의 전민 철한테 맞춰져 있다.

평생 가도 구경도 못 할 금액이 내 이름으로 찍혀 있는 통장.

쿵쿵거리는 심장을 도통 진정시킬 수가 없었다.

"달라고 하셨잖아요. 당연히 드려 야죠."

"후, 후우. 후-"

이런 건 깜빡이 좀 켜고 들어와라.

나는 심호흡을 하면서 놀란 속을

달랬다.

"호호, 그렇게 놀라실 줄은 몰랐네 요."

"내가 검소하게 산다고 했잖아."

"예. 계약금은 전민철 헌터님 것이 니 원하시는 곳에 쓰세요."

"됐어. 지금은 게이트 공략에 집중 해야지."

나는 고개를 좌우로 털면서 47억 을 지워 냈다.

태블릿에 기재된 자료를 보는 동 안, 어느새 게이트가 열린 장소에 도착했다.

암사동 북쪽에 있는 야산.

나는 엘리의 안내를 받으며 산을 올랐다.

산 중턱쯤 올랐을 때 푸른색 타원 이 눈에 들어왔다.

'저게 바로 게이트.'

다른 차원과 지구를 연결하는 이계 의 문.

내부는 파괴 본능만 남은 괴물들로 가득한 위험 지대다.

전생과 현생을 통틀어서 게이트를 실물로 보는 건 이번이 처음이었다.

'다른 차원에서도 저런 건 없었거

rz

판데모니엄은 수많은 차원을 직, 간접적으로 지배했다.

지배하에 둔 수많은 차원 중 게이 트가 출몰하는 현상은 나타나지 않 았다.

천계, 엘리시움도 마찬가지.

탑, 그리고 게이트.

엘리시움과 판데모니엄이 지구에 관심을 둔 이유였다.

게이트 옆에는 가벼운 무장을 갖춘 이들이 대기하고 있었다.

"여기가 전민철 헌터님을 도와 드

릴 지원 팀이에요."

"그렇군."

턱에 수염이 잔뜩 자란 아저씨가 나를 향해 다가왔다.

"이쪽이 이번에 라이선스 시험을 뒤집어 놓았다던 신입입니까?"

"예."

"흐흐. 이번에 그 솜씨를 가까이에 서 보겠구먼. 내 이름은 정영현. 잘 부탁하네."

수염 가득한 아저씨가 손을 내밀었 다.

나는 그 손을 마주 잡았다.

헌터가 된 뒤 처음으로 나서는 게 이트 공략.

이제부터 시작이다.

게이트에 발을 내딛는 순간.

푸른 타원이 파문을 일으키면서 스 며들 듯 빨려 들어갔다.

잠깐 동안 눈을 가리는 어둠.

눈을 깜박이니, 전혀 다른 곳이 나 타났다.

"여기가 게이트 안인가."

온대 삼림.

브리핑을 받은 것과 다르지 않은 풍경이다.

드문드문 심겨 있는 나무들.

발목 언저리에 닿을락 말락하는 풀 과 꽃.

서울의 탁한 공기와는 달리 상쾌한 향이 코밑에 아른거린다.

'안쪽도 마찬가지일까.'

성천조계공이 꿈틀거린다.

숲 안쪽에서 느껴지는 살의.

나를 향한 것이 아니다.

파괴 욕구로만 움직이는 괴물들이 내뿜는 본능적인 살의였다.

"브리핑대로군."

"숲은 싫은데 말이죠."

"괴물들이 몸을 숨기기에 딱 좋지. 그래도 열대나 늪지대보다는 나아."

지원 팀도 하나둘 게이트 안으로 들어왔다.

나는 지원 팀한테 방침을 일렀다.

"사냥은 나만 합니다. 상황이 종료 되면 부산물을 채집해 주세요."

부산물.

괴물의 사체, 혹은 게이트 안에서 만 채집할 수 있는 특수 물질을 모 두 아우르는 명칭이다.

이미 지시를 받았는지, 지원 팀은 내 말에 쉽게 납득하는 모습이다.

[성천조계공을 활성화시킵니다.]

[혼돈기가 전신을 휘감습니다. 혼 돈력을 제외한 모든 능력치가 40% 상승합니다.]

[혼돈기가 초당 2 소모됩니다.]

감각을 끌어 올리고 숲 안쪽으로

진입했다.

괴물 하나가 바로 눈에 들어왔다.

가시멧돼지.

들창코 아래로 삐죽 올라와 있는 날카로운 어금니, 몸길이만 삼 미터 정도 되는 녀석이다.

멧돼지를 두 배 정도 키운 덩치, 그리고 피부에는 무수한 가시가 달 려 있다.

"뀌이이익!"

가시멧돼지가 혀를 날름거린다.

쿵 쿵!

가시멧돼지는 투레질을 하더니 곧

장 앞으로 달려들었다.

[다크 스타 - 창]

"정면 승부. 아주 좋지."

오른손으로 창대를 쥐고, 최대한 뒤로 당겼다.

앞에는 성큼성큼 다가오는 가시멧 돼지.

"위, 위험합니다!"

"저건 너무 무모하잖아!"

뒤에서는 지원 팀 아저씨들의 비명 섞인 목소리가 들렸다.

나는 피식 웃고는 왼발을 앞으로 내디뎠다.

[악가 창법 - 투창을 사용합니 다.]

[혼돈기 8을 소모합니다.]

그리고 뒤로 당긴 창을 앞으로 발 사!

쇄애애액!

흑색 창이 가시멧돼지의 미간에 정 확히 박혔다.

"뀌...!"

가시멧돼지는 눈을 부릅뜬 채로 죽 었다.

달리던 기세를 어찌하지 못해 지면 을 데굴데굴 굴렀고, 몸에 박혀 있 던 가시가 깨어져 나갔다.

나는 몸을 살짝 틀어서 이미 죽은 가시멧돼지를 피했다.

- 경험치 7.5%를 획득했습니다.

"가시멧돼지를 일격에 쓰러트렸다 고?!"

"가시멧돼지는 D급 괴물 중에서도 흉포하다고 악명이 자자한 녀석이잖 아."

"라이선스 시험 수석은 저런 괴물 이었나."

지원 팀 아저씨들이 뒤에서 웅성거 렸다.

내 귀에는 그들의 음성이 제대로 들어오지 않았다.

'됐다!'

헌터로 각성 후.

처음으로 경험치가 올랐다는 말이 들렸다.

시스템의 음성이 오늘따라 천상의 아리아처럼 달달하게 들리는 건 왜 일까.

'역시 플레이어 특성은 몬스터를 죽였을 때만 경험치로 인정해 줘.'

능력을 확인한 것으로 충분하다.

앞으로 싸울 일은 엄청 많을 테니 까.

"아저씨들. 앞으로 바빠질 것 같은 데요."

나는 기쁜 마음을 감추지 않았다.

14 화

암사동 게이트.

적막한 숲속에서 뜻밖의 파티가 열 렸다.

"우끼! 우끼!"

"뀌이 이익!"

파괴 본능으로 움직이는 야수들의

괴성을 배경 음악 삼아.

"죽엇!"

한 사람의 신들린 듯한 춤사위.

그 춤을 추는 사람은 당연히 나였 고.

배경 음악을 깔아 주는 건 게이트 안에 있는 괴물들이었다.

푸아아악!

머리를 잃은 위즈덤 몽키의 목덜미 에서 피 분수가 솟구쳤다.

- 경험치 6.3%를 획득했습니다.

- 경험치 4.5%를 획득했습니다.

"우끼!"

나뭇가지를 꼬리로 말아서 매달린 위즈덤 몽키.

거리를 벌린 녀석들은 일제히 화염 구체를 던졌다.

나는 다크 스타를 창으로 변형해서 몸에 닿기 전에 구체를 튕겨 내고는 지면을 박차면서 위즈덤 몽키를 향 해 날았다.

[다크 스타 - 대도(大刀)]

한 번 휘두를 때마다 한 놈.

무르익은 열매를 수확하듯 위즈덤 몽키의 머리통이 아래로 떨어졌다.

"우, 우끼!"

마지막 남은 녀석이 나한테서 등을 돌렸다.

"들어올 때는 마음대로지만."

[다크 스타 - 채찍]

"나갈 때는 아니란다."

손에 들린 채찍을 빠르게 휘둘렀 다.

채찍은 막 나뭇가지를 밟고 도약하 려는 위즈덤 몽키의 발목을 휘감았 다.

나는 있는 힘껏 채찍을 당겼다.

"우끼이이이一!"

메아리치는 위즈덤 몽키의 비명 소 리.

녀석을 반겨 주는 건 굳게 말아 쥔 내 주먹이었다.

콰앙-

주먹을 맞은 위즈덤 몽키의 몸이 축 늘어졌다.

- 경험치 5.2%를 획득했습니다.

-레벨이 올랐습니다. 상태 창을 활성화해서 능력치를 올려 주세요.

'드디어 레벨이 올랐다!'

게이트 진입 20분 만에 이룬 쾌거 였다.

나는 지원 팀을 돌아봤다.

"잠시 쉬겠습니다."

"드디어 쉬는 거야?"

"어휴. 전민철 헌터, 장난 아니네."

지원 팀 소속 장인과 짐꾼들은 앓 는 소리를 냈다.

논스톱으로 이어지는 사냥.

나야 혼돈기를 운용하면서 적당히

체력 안배를 했지만, 저 아저씨들은 아니었다.

위즈덤 몽키를 손질하는 장인들 외 에는 모두 지면에 엉덩이를 붙이고 휴식 시간을 만끽했다.

'상태 창.'

나는 마음속으로 외쳤다.

이름 : 전민철

레벨 : 2(0.5%)

종족 : 인간

직업 : 없음

능력치

근력 : 21

민첩 : 20

맷집 : 16

체력 : 18

혼돈력 : 49

혼돈기 - [637/637]

잔여 포인트 : 5

오오.

정말로 레벨이 올랐다.

'잔여 포인트?'

-플레이어는 레벨을 올릴 때마다 5개의 능력치 포인트를 받습니다. 포인트를 소모하면 원하는 능력치를 올릴 수 있습니다.

시스템 음성이 친절하게 설명해 줬 다.

'정말 게임 같잖아.'

몬스터를 사냥하고 레벨을 올려서

캐릭터를 강화한다.

예전에 자주 했던 RPG 게임을 떠 올리는 특성이다.

'뭘 올릴지는 미리 생각해 두고 있 었지.'

내 힘의 근간은 혼돈기다.

전체 능력치 증폭.

그리고 무공의 활용.

혼돈기가 없으면 어느 것 하나 할 수 없다.

선택지는 이미 정해져 있었다.

나는 망설임 없이 잔여 포인트를 혼돈력에 투자했다.

능력치 배분을 마치는 순간 심상 세계에 작은 변화가 일어났다.

빛의 성운과 어둠의 성운.

정신 속에 자리 잡은 별들의 기운 이 증폭되었다.

혼돈력 : 49 -> 54

혼돈기 : 637 -〉702

'맙소사. 이건 정말로...

사기다.

나는 입이 쩍 벌어졌다.

플레이어 특성.

실제로 레벨이란 것을 올려 보니 그 사기성이 더 크게 느껴졌다.

고작 30분 사냥으로 혼돈기 10% 가 증가.

무 대륙의 무인들이 내력을 늘리기 위해 눈에 불을 켜고 영약을 찾는 걸 생각하면 말도 안 되는 수치였 다.

'미쳤다. 진짜 미쳤어.'

나는 입을 가렸다.

막지 않으면 당장이라도 웃음보가 터질 것 같았다.

아까 47억을 받았을 때보다도 더 흥분이 되었다.

'성천조계공의 진정한 힘과 플레이 어 특성. 두 개가 있으면 어디까지 강해질 수 있을까.'

전생의 나를 뛰어넘는다.

전에는 막연하게 세운 목표였지만.

몬스터를 사냥하고 레벨을 올려 보 니, 목표가 마냥 멀게만 느껴지지 않았다.

가능하다.

마음속에서 타오르는 웅심에 몸이 떨렸다.

나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휴식 끝! 다시 사냥 시작합니다." 의욕에 가득 찬 모습으로 숲 안쪽

을 향해 거침없이 전진했다.

지원 팀장 정영현.

그는 성간 연합과 고정 계약을 맺 은 베테랑 장인이다.

장인은 몬스터의 사체에서 부산물 을 분류하는 존재.

각성자이지만, 전투 대신 제작 쪽 에 특화된 이들을 가리키는 단어다.

오늘 아침.

[엘리 부장]

지원 팀장님. 급히 연락드려서 죄 송해요. D급 게이트 하나 공략하는 데 도와주실 수 있나요?

마르탄 지점장의 오른팔.

엘리의 부탁은 거절하기 어려웠다.

영현은 지원 팀을 소집, 곧장 게이 트 지원에 투입되었다.

지원 대상은 전민철이라는 헌터.

처음 듣는 이름이었다.

"라이선스 시험에서 수석을 차지했 다던데요?"

"그럼 내가 못 들을 리 없는데."

"바로 어제 자 시험이니까요. 팀장

님이 모를 수도 있죠."

"이런. 미친...

갓 헌터 라이선스를 딴 헌터. 그것 도 혼자서 게이트를 공략한다고?

라이선스 시험 수석이라지만, 이건 미친 짓이었다.

"애송이가 아주 간이 배 밖으로 나

왔구먼."

"게이트 안에서 적당히 사냥하다가 다른 팀도 부르겠죠."

"사고만 안 났으면 좋겠군."

민철이 오기 전, 지원 팀과 나눈 대화였다.

괜한 걱정이었다.

'내 평생 이런 놈은 처음 본다!'

영현은 혀를 내둘렀다.

성간 연합과 고정 계약을 맺은 지 도 수년.

연합에 소속된 수많은 헌터, 혹은 이종족 용병들을 지원했다.

온갖 게이트를 드나들고, 여러 헌 터와 호흡을 맞춰서 일했다.

'누가 저 사람을 게이트 초행이라 고 생각하겠나.'

실전 경험 없는 애송이?

아니다.

영현은 싸움이 벌어지고 있는 현장 을 흘겨봤다.

압도.

괴물들이, 더한 괴물을 만났다.

"이 새끼들. 어딜 도망가?"

민철은 괴물을 놓치는 일이 없었 다.

그의 병기는 기묘해서, 끊임없이 형태를 바꾸었다.

창이나 칼, 단검. 그리고 채찍에 이르기까지.

싸움의 상황에 맞춰 온갖 무기의 모습으로 변했다.

'어떤 무기든 잘 다루는 민철 헌터 의 솜씨도 대단하다.'

바뀐 무기가 무엇이든 능숙하게 다 루어서 괴물들을 압도했다.

저게 갓 각성한 헌터의 싸움이라 고?

'아니. 그럴 리가 없어.'

영현은 아침에 들었던 정보를 머릿 속으로 부정했다.

수많은 수라장을 거쳐서 완성된 전 투 방식.

지원 팀으로 많은 싸움을 지켜본 영현이기에, 본능적으로 느낄 수 있 었다.

싸움에 미친 투귀.

그게 민철의 싸움이었다.

'이거 참... 터무니없는 녀석의 지원을 맡게 됐군.'

영현의 입가가 씰룩 올라갔다.

지원 팀이 지원하는 헌터가 유능할

수록 자신들에게도 떨어지는 몫이 큰 법이다.

이제 막 헌터가 된 애송이가 이 정도인데.

과연 어디까지 날아오를 수 있을 것인가.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