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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배는 겉보기와 달리 꽤 컸다. 다만 오랫동안 항구를 떠나지 못하고 정박해 있던 탓인지 짐들이 너저분하게 널려 있었다.

후안은 선장실로 가서 고급스러운 술과 약간의 '성의'를 선물 받았다.

그가 '선물'을 살펴보는 사이, 아이작은 잠시 밖으로 나와 배를 살펴보았다.

선원들은 여전히 부산스럽게 짐을 옮기고 있었고, 긴장한 기색이 역력해 보였다. 아이작이 갑판 위를 걸어 다닌 지 얼마 되지 않아 기다렸던 사람이 모습을 드러냈다.

"이렇게 먼저 찾아오실 줄 몰랐습니다. 안 그래도 조만간 연락드리려고 했는데."

"나도 네가 선장이 된 줄은 몰랐다만."

그제야 에이단은 아직도 자신의 어깨에 걸쳐진 선장 외투를 부담스럽다는 듯 들썩였다.

"아, 으음. 눈치채셨겠지만 저는 선장이 아닙니다. 이 배의 선장과 대화하느라 잠시 머물고 있었을 뿐이죠. 술이 안 들어가면 말을 안 하려고 하는 통에 며칠 동안 계속 마셨더니 머리가 부서질 것 같군요."

"히야니스?"

"아시는군요? 예. 맞습니다. 그분이 '용맹한 연어' 호의 선장이자 소금 의회 의원 중 한 분이십니다."

소금 의회는 신으로부터 신탁을 받을 수 없는 만큼 의회의 의원들이 중요한 정책과 교리를 결정한다. 물론 신의 교리를 마음대로 결정할 수는 없으므로 심각한 갈등이나 대립이 있는 경우에만 회의로 결정하며, 그마저도 애매모호한 미신으로 떡칠된 결론을 내놓는 경우가 흔했다.

아무래도 의원들 대부분이 선장 아니면 선주들이라 미신에서 벗어나질 못하는 것이다.

"그럼 성물을 보여줬겠군."

"아, 예! 정말... 작동하는 성물이더군요."

에이단은 기쁜 표정으로 주머니에서 무언가를 꺼냈다. 그것은 투명한 유리병 안에 정교한 작은 배가 들어있는 모형이었다. 오직 화로 장인의 손끝에서만 탄생할 수 있는 예술품이자 성물이었다.

[표류자의 고향(희귀)]

[병 안에 바닷물을 담으면 배모형의 선수(船首)가 늘 바닷물을 담았던 그 장소를 향한다.]

대단한 물건은 아니고 광휘석 목걸이처럼 실용적인 조금 특이한 나침반에 불과하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그것이 소금 의회의 성물이며, '새롭게' 만들어진 성물이라는 점이었다.

"말씀하신 대로 바닷물을 담그고 기도문을 외우자 성물이 완성됐습니다. 기록에 이런 성물이 존재했다는 이야기는 있었는데, 소금 사막이 만들어질 때 제작 방법이 분실되어서... 아마 이게 만들어진 건 거의 천 년만일 겁니다."

소금 의회 신도들은 과거의 지식과 유물, 유적들을 갈증 난 듯 찾아다닌다. 그런 그들에게 새로운 성물을 만들어 내는 기술의 발견은 더할 나위 없는 기쁨이었다.

더군다나 그것이 천년 전에 사라진 지식이라면.

"도움이 됐다니 다행이군."

아이작은 과거에 소금 의회로 플레이하던 때를 기억하고 있던 것이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아무리 네필림이라 해도 아무 준비 없이 다른 신앙의 성물을 만들어 낼 수는 없었다. 하지만 '표류자의 고향'은 소금 의회 신도라면 간단한 기도문만으로 만들어 낼 수 있었다.

그리고 아이작이 이런 지식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은, 소금 의회가 그에게 큰 호감을 갖게 만들기에 충분했다.

에이단은 선망하는, 혹은 갈증이 나는 듯한 눈길로 아이작을 바라보았다. 무언가를 기대하는 눈치였다. 아이작은 그 눈빛에 부담감을 느끼면서 시선을 돌렸다.

북해의 회색빛 바다가 불길하게 출렁이고 있었다.

"의회 일이 마무리됐고 성물도 완성됐다면 됐어. 그보다 북해의 괴물 이야기는 뭐야? 그거 익사자 왕 이야기 맞지?"

"...예."

에이단은 침중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아이작은 혹시나 했지만 역시나 했다. 지금 잠들어 있어야 할 명천사가 왜 깨어나 있나 생각했지만 짚이는 구석이 없었다.

'칼센 밀터의 실종으로 인한 나비효과가 본격적으로 역사를 왜곡하고 있는 건가?'

아이작은 일단 그렇게 추정하는 수밖에 없었다.

"익사자 왕이 소금 의회에 뭔가 곤란한 것을 요구했다고 들었는데 그게 뭐지?"

"그건... 제가 함부로 말씀드리기가 어렵습니다."

어지간해서는 아이작의 말에 순종하는 에이단이지만 이 사안에서만큼은 말을 아끼는 듯했다. 소금 의회 신도들은 거짓말을 못 하니 곤란한 상황이면 아예 입을 다무는 쪽을 택한다. 입 다물기를 선택한 소금 의회 신도들에게서 대답을 듣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하지만 대답은 의외의 방향에서 들려왔다.

"제가 말씀드리도록 하지요. 성배기사 나으리."

복도 모퉁이에서 회백색 머리카락의 남자가 모습을 드러냈다.

아까 후안 주교와 아이작을 상대하던 선원, 아니 선장, 히야니스였다.

"익사자 왕은 소금 의회에 인신 공양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

인신 공양.

산 사람을 제물로 바쳐 의식의 도구로 사용하는 것이다.

신앙을 빠르게 충족시킬 수 있어서 고대 신앙이 만연하던 시절에는 가장 흔하게 강력한 의식을 발휘하기 위한 방법으로 쓰였다. 하지만 아홉 신앙이 세계를 지배하게 된 이후 엄격하게 금지된 풍습이기도 했다.

즉, 인간 제물을 바치는 것은 고대 신앙과 아홉 신앙을 구분하는 가장 큰 구분점 중 하나다. 붉은 성배가 식인을 하기는 하지만 그것은 쾌락을 위한 식재료일 뿐이지 신에게 바치는 제물로 쓰는 것은 아니다.

물론 식재료가 된 사람 입장에서는 뭐가 다르냐고 묻겠지만.

"인신 공양? 정말인가?"

하지만 만약 익사자 왕이 인신 공양을 요구한 게 진짜라면 놈이 천사로서 한계점에 다다랐으며, 타락하기 직전이라는 뜻이었다. 뿐만 아니라 소금 의회 전체가 고대 신앙 수준으로 타락할 가능성이 있었다.

즉 소금 의회를 제외한 다른 모든 신앙들이 그들을 적대할 수도 있다는 뜻이었다.

"그렇습니다. 익사자 왕은 인간 제물을 요구했습니다. 의회는 아직도 그걸로 갑론을박 중이죠. 천사의 명령을 거역해도 괜찮을지 알 수 없으니."

그렇게 말하는 히야니스의 얼굴에는 피곤함이 가득했다.

대화를 듣고 있던 에이단은 사색이 되었다.

표면상으로나마 빛의 법전 소속인 아이작에게 그것을 밝힌다는 것은 공격당할 빌미를 제공하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에이단은 설마 히야니스가 주교와 아이작을 제거하기 위해 배로 끌어들인 것인가 생각했다.

하지만 아이작은 싸늘한 미소를 지으며 히야니스를 바라보았다.

그때 배가 크게 출렁이기 시작했다. 창밖의 회색빛 바다가 느리게 흘렀다.

아이작이 입을 열었다.

"일부러 이 배 안으로 끌어들였군."

"예."

히야니스는 초조한 듯 대답했다.

"저는 익사자 왕의 요구를 받아들일 수 없습니다. 때마침 이렇게 빛의 법전에서도 그 '괴물'을 퇴치하기 위해 와주시기까지 했으니 차마 도움을 거절할 수 없군요. 협조에 감사드립니다. 성배기사님."

108화. 바다 깊은 곳에 (1)

"의회는 익사자 왕을 배제하기로 결정한 건가?"

"아니오. 의회는 늘 그렇듯 두루뭉술하고 애매모호한 결론으로 시간만 끌다가 요구를 뭉갤 겁니다. 하지만 그 머저리들은 현장 상황을 몰라요. 선원들의 생계를 생각해서라도 계속 여기에 배들이 붙잡혀 있도록 둘 수는 없습니다."

히야니스는 침중하게 대답했다.

"익사자 왕의 요구는 거절한다고 조용히 끝낼 수 있는 부류가 아닙니다. 소금 의회의 운명이 달린 일입니다. 놈이 소금 의회의 명줄을 끊는 것을 보느니 우리가 천사의 명줄을 끊는 게 낫습니다."

즉, 소금 의회의 의견은 둘로 갈라져 있는 셈이다.

익사자 왕의 요구를 들어주느냐 마느냐.

히야니스는 요구를 거절해야 한다는 강경파에 속하는 것 같았다. 사실 '강경파' 수준을 넘어서긴 했다.

그는 의회의 결론을 기다리는 대신 아예 천사의 목을 따기로 결정한 것이다.

"그런데 때마침 빛의 법전에서 주교와 천사를 퇴치했다는 성배기사가 넙죽 도와주겠다며 모습을 드러낸 셈이고?"

"공교롭지만 그렇게 됐군요."

아이작은 실소했다.

어쩌면 아이작의 등장 자체가 히야니스의 결정을 빠르게 앞당겼을 수도 있겠다.

아까부터 선원들이 부산스럽게 움직이고 짐들이 어지럽게 실려 있던 것도 전투를 위한 준비였던 것이다.

"후안 주교가 제대로 협력할 거라고 생각하나?"

히야니스는 씁쓸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사실 후안 주교가 그런 의도로 온 것이 아니라는 것은 알고 있습니다만, 자기 입으로 그렇게 말을 꺼내놓고 인제 와서 도망칠 수는 없겠지요. 이미 배까지 출항했으니 말입니다. 살아서 돌아가려면 협력하지 않을 방법이 없을 겁니다."

"머리 썼군."

"후안 주교에게 지금까지 바친 돈이 막대한데 돈값은 해야지요."

사실 히야니스는 후안 주교보다 아이작에게 더 희망을 걸고 있었다.

그는 이미 에이단을 통해서 아이작에 대해 들은 상태였다. 아이작이 천사를 퇴치하고 고대신을 쓰러뜨렸으며, 무수한 전과와 업적을 이룬 떠오르는 신성이라는 것을.

성공에는 기세가 있다.

히야니스는 천사를 상대한다는 것이 결코 쉬운 일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다.

하지만 이 성배기사라면 기세를 타고 어떻게든 할 수 있지 않을까?

"당신은 어떻습니까? 사악하고 타락한 천사가 인간 제물을 계속해서 요구하도록 내버려 둘 생각입니까? 이단 신앙이라는 이유로?"

아이작은 잠시 생각을 정리했다.

"그러니까 히야니스 선장은 의회의 결정 없이 독단으로 자기네 천사를 처단하러 떠나는 중인 거군. 배의 선원들은 모두 동의한 건가?"

"저뿐만이 아니라 저와 뜻이 맞는 배의 선장들은 모두 출항을 결정했습니다. 예정보다는 이른 결정이지만, 지금보다 나은 시기는 없을 거라는 판단에서입니다. 제가 가장 빠르지만 뒤이어 배들이 따라올 겁니다."

히야니스는 결연하게 중얼거렸다.

"만약 제가 잘못되어 수장된다면, 저희가 인신 공양으로 바쳐진 제물인 셈 치기로 했습니다. 신도들이 익사자 왕에게 보복당하는 일이 생겨선 안 되니까요."

"히야니스 선장님...."

에이단은 감동한 듯 중얼거렸다.

그 역시도 졸지에 사지로 끌려오긴 했지만, 같은 배에 타고 있던 걸 보면 어느 정도 동감하는 구석이 있었을 것이다.

'주교한테 말실수할 것이 두려워서 에이단에게 선장복을 입혀 일을 떠민 사람치고는 제법 용감한 태도군. 아니, 어떻게든 후안 주교를 배에 끌어들이기 위해서 그랬던 건가?'

"익사자 왕이 뭐라고 말했는지 정확히 알 수 있을까요?"

원래대로라면 의회 밖에 발언해서는 안 될 정보다. 하지만 이미 의도를 드러내고 배까지 출발한 이상, 문제가 해결되거나 그들이 전부 죽기 전까지는 말이 새어나갈 염려는 없었다.

히야니스는 목을 가다듬고 익사자 왕의 말을 옮겼다.

"익사할 자를 달라. 그의 피로 이 바다를 와인빛으로 물들여 신을 부를 목을 축이겠다. 소금에 절여질 자를 달라. 그의 육은 해풍 속에 신을 맞이할 성찬이 될 것이다."

"그대로 옮긴 것은 아니지?"

아이작의 말에 히야니스는 눈을 크게 떴다.

"어떻게 알았습니까? 으음, 워낙에 고어(古語)가 많아 번역하고 윤문하느라 여기저기 달라진 구석이 많습니다. 하지만 사제들과 의원들이 머리를 맞대고 검토한 결과 원문에 가장 일치하는 해석이긴 합니다."

아이작은 그 말을 듣고서야 내심 혀를 찰 수밖에 없었다.

"익사자 왕은 인신 공양을 요구한 게 아니다."

아이작의 말에 복도 안에 정적이 찾아들었다.

한참의 침묵 끝에 히야니스가 입을 열었다.

"무슨 말입니까? 이게 인신 공양을 요구한 게 아니라면 뭐란 말입니까?"

"그 말의 뜻은 의식을 수행할 사람 한 명을 찾아달라는 뜻이다. 다만 그 의식이 대단히 위험하다고 미리 경고해주는 것이니, 충분한 신앙심으로 합의된 사람을 데려와 달라는 거지."

아이작은 대충 무슨 상황인지 알 수 있었다.

'익사자 왕이... 사투리가 어마어마하지, 아마.'

수백 년에 한 번 잠에서 깰까 말까 한 천사다.

사후세계를 통해 신도들과 대화도 이루어지지 않으니 지식도, 개념도, 말투도 수백에서 천여 년 가깝게 머물러있는 것이 당연했다. 그 고풍스러운 말투는 흡사 제물을 요구하는 기이한 고대신의 목소리처럼 들렸을 수도 있었다.

'물론 죽을 수도 있는 임무에 투입될 사람을 요구하는 것도 문제라면 문제지만.'

다만 그 임무란 소금 의회 신앙에서 가장 주요한 스토리라인이었다. 소금 의회를 선택한 플레이어에게는 익사자 왕을 만날 기회가 주어진다. 익사자 왕을 깨운 플레이어는 그를 도와주고 보상을 얻는다.

대단히 위험하지만 보상이 큰 퀘스트였기에 기억하고 있는데, 어째선지 그 스토리 퀘스트가 지금 당장 활성화된 것이다. 하지만 천사가 직접 사람을 사후세계로 보내 버리겠다고 하는 거니 언뜻 듣기에는 인신 공양과 다를 게 없다고 느끼는 것도 당연했다.

히야니스와 에이단은 서로 당황한 눈빛을 공유했다.

"죄송하지만 '그렇군요' 하고 받아들이기에는 힘든 이야기군요."

히야니스가 결국 입을 열었다.

"이렇게 말씀드리기는 그렇지만 성배기사님은 부외자입니다. 직접 익사자 왕이 내린 지령을 들은 것도 아니고, 소금 의회에서 토론에 참가하신 것도 아니지요. 의회 의원들이 다 같이 모여 전언을 분석하고 해석했는데 바로 받아들이기는 힘들 것 같습니다."

"그래. 이해한다."

아이작도 선선히 납득했다.

누구라도 갑자기 밖에서 온 사람이 너희들이 이때까지 생각하던 건 다 틀렸어! 라고 했을 때 넙죽 받아들이기는 어려울 것이다. 그것이 단체의 운명이 걸린 일이라면 더더욱.

하지만 히야니스는 한결 마음이 가벼워진 눈치였다.

"그래도 만약 성배기사님의 말씀이 옳다면 이 문제는 온건하게 해결될 가능성도 있다는 뜻이군요. 비록 그 죽을지도 모르는 의식이라는 것이 걸립니다만...."

아이작의 말이 맞든, 맞지 않든 그들은 익사자 왕을 만나러 가야 했다.

익사자 왕이 제물을 요구한 것이 아니라 원래의 뜻이 와전된 것이라면 그걸 제대로 확인해야 했고, 반대라면 그때야말로 결전을 치러야 했다.

하지만 아이작은 자신의 해석에 확신을 가졌다.

'생각보다 싱겁게 해결될 수도 있겠군.'

어차피 아이작이 소금 의회를 움직이려던 것도 사실 이 '퀘스트'를 위해서였다. 엉겁결에 휘말리긴 했지만 속전속결로 진행할 수 있어서 다행이었다.

다만 아주 사소한 의문은 남아있었다.

'그런데 누가 익사자 왕을 깨운 거지?'

***

용맹한 연어 호는 순풍을 타고 금방 노르덴 항을 떠나 대양으로 나아갔다.

히야니스 선장이 말했던 대로 수평선 끄트머리에서 배 몇 척이 따라붙었다. 그 규모는 아이작이 예상했던 것보다 제법 많았는데, 아이작은 그 전부가 용맹한 연어호를 도와주러 따라오는 배라고 생각하진 않았다.

"저 중에 우리를 잡으러 오는 배는 몇 척이나 될 것 같나?"

아이작의 질문에 히야니스가 쓰게 웃었다.

"절반 정도는 될 것 같군요."

"절반밖에? 그럼 나머지 절반은 우리를 도울 거라고?"

"아뇨. 나머지 절반 중 절반은 상황이 온건하게 해결되길 기대하다가 틀어지면 우리를 공격할 겁니다. 그래도 1/4 정도는 우리 편을 들지도 모르겠군요."

그때 갑판 위로 후안 주교가 허겁지겁 올라왔다. 뒤에는 어린 사제가 금박을 씌운 상자를 양 옆구리에 낀 채로 뒤뚱뒤뚱 따라오고 있었다.

"자, 자자잠깐. 이게 무슨 일인가? 배가 왜 항구를 떠난 거지?"

후안에게선 독한 술 냄새가 풍겼다. 히야니스가 꽤 독한 술을 제공한 것 같았다.

히야니스는 감사를 표하듯 가슴에 손을 얹고 인사하며 대답했다.

"영광스럽게도 주교님이 말씀해주신 대로 사악한 괴물을 퇴치하러 가는 중입니다."

"괴물? 잠깐만, 그 괴물? 설마 익사자 왕을 말하는 건 아니겠지?"

히야니스는 고개를 끄덕였다.

후안은 창백한 표정으로 아이작을 바라보았다. 제발 아니라고 답해 주길 바라는 표정이었지만 아이작은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음으로써 긍정했다.

후안은 잠시 휘청거리다가 난간을 짚었다. 어린 사제가 서둘러 그를 부축했다.

"아니, 이런 빌어먹을. 정말인가? 자기네 천사를 공격한다고? 이 미친놈들은 제 신이 소금 사막 아래 묻히니까 제정신도 같이 파묻혔나?"

아이작은 어쩌면 싸우지 않고 해결될 가능성도 있다고 말해 주려다가 겁먹은 후안의 반응을 좀 더 즐기기로 했다. 히야니스 역시 아까 선장실에서 당당하게 돈 받아먹을 때와는 다르지 않냐고 따지지 않았다.

다만 아이작은 지나치게 자신감 없는 주교의 태도에 의아함을 느꼈다. 천사가 막강한 힘을 가지고 있긴 하지만 빛의 법전 주교 정도 되면 일방적으로 당할 수준은 아니다. 설령 붉은 살점의 선지자라 해도 주교급은 함부로 건드리기 어려웠다.

괜히 히야니스가 '이 정도라면 해볼 만하다'라고 생각하고 갑작스럽게 출항을 결정한 게 아닌 것이다.

히야니스 역시 그걸 생각한 건지 지적하는 말을 꺼내고 말았다.

"걱정이 지나치시군요. 후안 주교님. 이 배는 제법 무장을 잘 갖추었습니다. 그리고 주교님도 계시고, 이미 천사 토벌 경험도 있는 성배기사님도 계시지 않습니까?"

"네놈들이 우릴 속인 게 문제잖나!"

"속이다니요. 저희는 도움의 손길을 거절하지 않았을 뿐입니다. 그 대가도 이미 드렸구요."

"정말로 익사자 왕을 토벌하러 갈 줄 알았으면 겨우 그 액수만 받진 않았지!"

액수가 문제였나? 아이작은 잠깐 할 말을 잃었지만 히야니스에게 속삭였다.

"가진 돈 더 없습니까?"

"소금 의회의 결정이 있었다면 모를까, 사실 이번에 드린 돈도 제 사재를 턴 것이라."

"헛소리 말고 당장 배 돌려! 나는 이단의 천사 따위와 마주치고 싶지 않단 말이...."

쿵. 후안이 뭐라고 또 소리 지르던 중, 갑작스러운 충돌음과 함께 배가 들썩였다. 갑판 위에 있던 사람들이 일시에 멈추면서 숨을 죽였다.

후안의 얼굴이 더더욱 창백해져서 새하얗게 보일 지경이 되었다.

"익사자 왕은 아닐 겁니다. 아직 도착하기에는...."

콰직, 쿵!

히야니스는 말을 잇는 대신 서둘러 난간 쪽으로 달려가 수면을 내려다보았다. 이내 그는 수면 아래쪽에서 움직이는 검은 형체들을 발견했다.

"어인 해적이다! 전원 전투 태세!"

***

"어인? 이곳이 원래 어인이 출몰하는 구역입니까?"

급히 전투 준비를 하려던 히야니스는 얼굴을 찌푸리며 대답했다.

"아닙니다. 하지만... 익사자 왕이 깨어난 상태이니 생태계가 뒤틀리는 것은 이상할 게 없지요."

천사는 존재 그 자체만으로도 주변 생태계를 교란한다. 익사자 왕이 잠들어 있을 때에는 그 힘이 미약한데다 오랫동안 지속되었으니 안정되어 있었지만, 깨어나 활동하기 시작하자 이상 현상이 일어나기 시작한 것이다.

"어차피 뱃일을 하다 보면 어인 해적단을 만나는 건 종종 있는 일입니다. 선원들이 잘 대응할 테니 걱정 마십시오."

"이게 익사자 왕이 우리를 공격하는 신호라면?"

후안 주교의 말이 이어졌지만 히야니스는 무시했다.

어인 무리는 빠르게 늘어나 어느새 수십의 무리가 배 주변을 빙글빙글 돌면서 공격할 기회를 노렸다. 선원들은 어인들을 향해 욕설을 내뱉으면서 활과 작살을 겨냥했다.

반면 어인들 역시 커다란 배를 공격할 만한 도구는 없었다.

그들도 물 위에서 어느 정도 버틸 수는 있었지만, 섣불리 배에 올라탔다가 공격당하는 대신 더 효율적인 방식을 선택했다.

빙글빙글 돌던 어인들은 어느 순간 빠르게 추진력을 얻어 배를 향해 돌진했다. 돌진하는 어인들 뒤에 따라오는 거품을 본 선원들이 고함을 질렀다.

"놈들이 공성추를 쓴다!"

109화. 바다 깊은 곳에 (2)

쾅! 묵직한 굉음이 배를 뒤흔들었다. 바다에서 나무를 구해 깎았을 리는 없으니 분명 어떤 배의 돛대였을 것이 분명한 커다란 나무가 어인들의 손에 엮여 있었다.

놈들은 바닷속을 빠르게 헤엄치다가 이 '공성추'를 배에 충돌시켜서 가라앉힐 속셈으로 보였다. 물 밖에서는 그들이 불리하겠지만, 물속에서라면 선원들이 익사하기만을 기다리면 되니까.

이번 충돌은 제법 타격이 있었는지 일부 선원들이 휘청거리며 주저앉을 정도였다. 벌써 선체 일부가 파손되었다.

"갑판장!"

"예!"

히야니스의 자세한 지시가 없어도 갑판장은 무슨 뜻인지 바로 알아듣고 선원 몇 명과 함께 갑판 아래로 내려갔다. 그들은 선체를 복구하고 물을 푸는 작업을 시작했다. 그때 허겁지겁 선원들이 어인 대응책으로 마련된 준비물을 갑판 위로 끌고 왔다.

"투망을 던져라!"

선원들이 일제히 투망을 던졌다. 넓게 펼쳐진 그물에 빠르게 배 주변을 돌던 어인들이 뒤엉켜 걸려들었다. 흐름이 꼬이자 어인들은 이리저리 흩어졌다. 투망에 걸린 어인들이 발버둥 치는 모습을 보면서 선원들은 희희낙락했다. 하지만 그 웃음은 오래 이어지지 않았다.

"어, 어어?"

투망 안에 걸린 어인들이 발버둥 치며 상처를 입거나 자기들끼리 물어뜯는 것을 어느 순간부터 멈췄던 것이다. 대신 그들은 일제히 한 방향으로 헤엄치기 시작했다. 심지어 다른 어인들끼리 합세해 그물을 끌고 가기 시작했다. 그물을 쥐고 있던 선원들이 손을 다치면서 비명이 터져 나왔다.

히야니스가 급히 외쳤다.

"그물 버려!"

그물은 바다에 그대로 빠지지 않도록 돛대에 감겨 있었다. 하지만 어인들이 그물을 당기는 기세가 심상치 않자 배가 기울며 끌려가기 시작한 것이다. 선원 한 명이 서둘러 칼을 뽑아 그물을 끊고서야 겨우 배가 수평을 찾았다.

그제야 히야니스는 이 어인들의 공격이 심상찮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는 주변을 둘러보았다. 주변 해역이 시커멓게 물들고 있었다.

수백, 아니, 수천의 어인들이 그들의 배를 둘러싸고 있었다.

오직 기적만이 이 상황을 해결할 수 있을 것이라 판단한 선원들의 시선이 한 곳으로 향했다.

"성배기사님, 도와주십시오!"

***

'아니, 억지로 끌고 온 건 자기들이면서 왜 나한테 저런 말을 해?'

갑작스러운 도움 요청을 들은 아이작은 황당했지만 같은 배에 탄 이상 그들의 운명이 아이작의 운명이기도 했다. 하지만 아이작이라고 당장 어떻게 할 수 있는 수단은 없었다. 마음대로 기적을 펑펑 써댈 수 있는 후안 주교라면 모를까.

히야니스도 비슷하게 판단한 듯 후안 주교에게 서둘러 다가왔다.

"죄송한 말씀이지만 저들을 상대할 기적을 부탁드려도 되겠습니까?"

후안 주교도 아이작과 비슷한 생각을 했겠지만, 돕는 것 외에는 별다른 수가 없다는 것은 마찬가지였다.

"이 뱃놈들이... 고작 물고기 대가리 하나 상대 못 하면서 천사를 잡겠다고 나댄 거냐?!"

"익사자 왕을 상대할 방법은 따로 생각해 둔 바가 있습니다. 하지만 고작 어인 따위에게 쓸 수도 없고, 써도 통할 만한 상태가 아니군요."

히야니스는 초조한 듯 후안을 재촉했다.

"무례에 대해서는 사과하겠습니다. 어쨌든 우리가 살아 돌아가야 후안 주교님께서도 돈을 더 받던가, 아니면 받은 돈이라도 챙겨서 돌아가시지 않겠습니까?"

후안은 눈을 부라려 히야니스를 노려보았다. 하지만 후안 입장에서도 더 투덜거려 봤자 소용없는 일이었다.

배가 두 동강 나 버리면 구조되기 전에 어인들이 심해 속으로 모조리 끌고 갈 테니까. 모두의 시선, 심지어 동행한 어린 사제까지 간절한 눈빛으로 바라보기까지 하자 후안은 얼굴을 잔뜩 일그러뜨린 채 난간으로 향했다.

모두들 빛의 법전 주교가 무슨 기적을 행사해 어인들을 쫓아낼지 기대하는 눈빛으로 바라보았다. 소금 의회 신도들은 자신의 신을 매장해 버린 빛의 법전을 싫어하는 동시에 선망하는 경향이 있었다. 이번에도 분명 막강한 기적을 보여 줄 것이라는 기대감이 후안에게로 향했다.

아이작의 머릿속에도 이런 무리 생물들을 상대할 때 발휘할 수 있는 기적들 몇 가지가 떠올랐다. 주교급이라면 바다를 끓어오르게 하는 것만으로도 그들을 데친 새우 꼴로 만들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물속을 응시하던 후안은 이내 안 좋은 표정으로 뒷걸음질 쳤다.

"이사크레아 경."

"주교님?"

"자네가... 자네가 좀 해결해 주게."

아이작은 무슨 말인가를 후안에게 되물으려 했다. 하지만 후안의 간절한 표정을 본 아이작은 그가 그런 질문에 답할만한 상태가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다.

물고기 공포증이 있든, 뱃멀미를 하는 중이든 상관없었다.

아이작은 당황한 어린 사제에게 후안을 넘겨주고 성큼 히야니스를 향해 다가갔다.

"물에서 싸우는 데 도움 될 만한 기적 알고 있나? 수상 보행이든, 수상 호흡이든, 소금 의회가 사용할 수 있는 기적 중에서."

"그걸 어떻게...."

히야니스는 놀란 얼굴로 아이작을 보았다. 소금 의회에 사제는 극소수다. 전승되는 지식이 적은 데다 신내림 수준으로 우연히 각성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들은 자신들 중 누가 사제인지 엄격하게 숨기는 편이었다.

"익사자 왕을 상대할 방법을 생각해 둔 게 있다길래 대충 짐작했지. 천사를 상대하려면 성물이나 기적이 필요할 텐데, 사제 정도 되지 않으면 그걸 제대로 쓸 수 있을 리가 없으니."

"...비밀로 부탁드립니다. 그리고 '파도의 교리'를 쓸 수 있기는 합니다. 이걸 쓰면 움직이는 동안 물 위에서 움직일 수 있습니다. 하지만 멈춰 있는 동안에는 가라앉게 되니 주의하십시오."

히야니스는 아이작의 양손을 붙잡고 작게 기도문을 외웠다. 짧은 기도문이 끝나고, 아이작은 입 안에서 짠맛이 올라오는 것을 느꼈다. 소금 의회의 기적이 몸 안에 스며든 것이다.

[이름 없는 혼돈이 당신을 주시합니다.]

기적이 스며들자마자 이름 없는 혼돈이 언짢은 기색을 내비쳤다.

'어쩌라고? 발에 문어 발이라도 달아줄 건가?'

그 사이 그물에서 빠져나온 어인들이 재차 대열을 정비해 공성추를 장비하고 돌진할 준비를 하고 있었다. 아이작은 기적을 시험해 볼 틈도 없이 바로 난간 밖으로 몸을 던졌다.

***

수면에 발이 닿은 순간 기분 이상한 출렁임이 느껴졌다. 균형을 잡느라 머뭇거리자 바로 천천히 발이 수면 아래로 끌려 들어가기 시작했다.

'계속 뛰어야겠군.'

발을 움직이자마자 바로 미끄러지듯 아이작의 몸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딱딱한 지면에서 달리듯 달리면 팡팡 물을 차내는 이질감이 심했다. 아이작은 바로 물 위에서 스케이트를 타듯이 움직이는 게 더 유리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어인들은 공성추를 들고 배를 향해 달려들려다가, 물 위에 떠 있는 아이작을 보고 뭐라고 날카로운 고주파를 내뿜었다. 이내 놈들은 공성추로 아이작과 배를 함께 꿰뚫어 버리겠다는 듯 빠르게 헤엄쳤다.

[홀로 다수의 적을 상대하고 있습니다.]

[숭고한 여정 효과가 강화됩니다.]

순간 아이작이 루앗딘 열쇠를 꺼내 수면을 갈랐다.

화아아아아악!

뜨겁게 달아오른 루앗딘 열쇠가 수면에 닿자 맹렬한 수증기와 함께 물보라가 치솟았다. 루앗딘 열쇠는 소금물에 절여진 단단한 공성추를 비스듬하게 잘라 냈다.

"────!!"

어인들 사이에서 뭐라 형언할 수 없는 날카로운 비명이 터져 나왔다. 심해에서 지내는 어인들의 피부는 차갑다. 때문에 놈들은 약간 높은 온도조차도 견디기 힘들어했다. 뜨겁게 달아오른 루앗딘 열쇠의 온도는, 비록 수증기를 조금 유발할 정도라 해도 놈들이 견딜 수 없을 정도로 뜨거웠다.

'적당히 겁먹고 도망가주면 좋겠는데.'

아이작은 손바닥이 얼얼한 것을 느끼며 생각했다. 정면으로 저 단단한 공성추를 칼로 찍었다간 손목이 부러질 것 같아서 적당히 귀퉁이만 자르고 뒤따르던 어인들을 베었다. 다행히 숭고한 여정 효과가 강화된 탓인지 공성추도 생각보다 깊숙이 벨 수 있었다.

물 위로 익거나 베여 나간 어인들이 떠올랐지만, 놈들은 포기할 생각이 없어 보였다. 잘려 나간 공성추를 메고 물속 깊은 곳으로 잠수한 놈들은 다시 기회를 노리기 시작했다.

아이작이 물속으로 들어올 수 없다는 것을 알아본 듯했다.

그사이 다른 어인들이 아이작을 덮쳐 왔다. 하지만 물 위로 계속해서 미끄러지듯 달리는 아이작을 사로잡기는 쉽지 않았다. 아이작이 검술을 쓸 필요도 없이 루앗딘 열쇠를 물에 담근 채 달리기만 해도 어인들은 비명 지르며 나가떨어졌다.

개중 덩치가 제법 큰 몇몇이 삼지창을 꼬나쥐고 목숨을 각오한 듯 일제히 공격해 왔다. 그제야 아이작은 제대로 검을 들고 이삭 검술:여덟 갈래를 사용했다.

여덟 줄기의 칼날이 수면 위를 찢어발겼다.

새하얀 수증기가 스치고 지나간 자리에 어인들의 토막 난 시체들이 우수수 쏟아져 내렸다.

사실 정상적인 전장이라면 이렇게 싸울 수는 없었다.

아무리 아이작이 막강한 능력을 가지고 있다 해도 적의 수가 이렇게 많으면 그 질량 자체가 폭력이다. 뭍이었다면 얼마 버티지 못하고 시체 더미에 깔려 죽고 말 것이다. 하지만 시체는 모조리 물 속으로 가라앉고 있었고, 아이작은 머리 위에서 적들을 일방적으로 공격할 수 있었다.

***

일방적인 학살을 펼치는 아이작의 모습에 배 위에서 선원들의 환호와 응원이 터져 나왔다.

히야니스 역시 놀란 얼굴이었다. 그는 신음하듯 에이단을 향해 말했다.

"자네한테 이야기는 들었지만, 저 정도일 줄은 몰랐군."

"...사실 저도 저 정도일 줄은 몰랐습니다."

에이단은 사실 아이작이 직접 싸우는 모습을 본 적이 없었다. 붉은 살점의 선지자를 처단할 때는 그 자리에 없었고, 불사 교단이 침공해 왔을 때도 마찬가지로 미묘하게 장소가 어긋나 있었기 때문이었다.

리빙 아머는 제대로 싸웠다고 보기도 힘들었다. 그래서 아이작에 대해 전할 때에는 그가 싸우는 방식에 대한 묘사보다는 그가 세운 업적에 치중했었다.

하지만 지금 아이작이 싸우는 모습은 온갖 것을 다 봐 온 히야니스의 상식을 초월했다.

"말이 안 되는데. 저게 정말 갓 스물이 된 성기사 맞나? 엘릴의 소드마스터들이 저 성배기사를 보면 환장하겠군."

"그 정도입니까?"

"당연하지. 일단 흔들리는 배 위에서 싸우는 게 얼마나 힘든지 아나? 그런데 저 성배기사는 파도치는 바다 위에서, 그것도 멈춰있으면 발이 빠지는 곳에서 끊임없이 움직이며 싸우고 있어. 심지어 정교하게 움직이지 않으면 발동되지 않는 상급 검술까지 사용하면서."

히야니스는 흥분과 놀라움을 감추기 힘든 듯 중얼거렸다.

"거기에 수상 보행 기적 외에는 다른 기적은 쓰지도 않고, 생소한 전장에서, 수면 아래서 튀어나오는 낯선 적들을 향해 망설임 없이 돌격하고 있지. 루앗딘 열쇠가 있다 해도 상식적으로 저건 말이 안 돼. 두려움이라는 게 없나?"

조금의 두려움이라도 품고 발을 멈춘다면 아이작은 즉시 바다에 가라앉을 것이다. 혹은 뜨거움을 견디고 수면 위로 올라온 어인이 발을 잡아챌지도 모른다. 하지만 아이작은 거침없이 어인들을 난도질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런 분투에도 서서히 한계가 보이고 있었다.

'끝이 없군.'

사실 아이작의 상황은 좋지만은 않았다.

슬슬 그의 체력이 한계가 다가오고 있었던 것이다. 아무리 기적으로 가볍게 만든 갑옷이라 해도 이렇게 죽어라 달리면서 검술까지 쓰는 데 지치지 않을 도리가 없었다.

결국 아이작의 동작이 느려진 어느 순간, 거대한 물보라가 튀어 올랐다.

바다가 거의 수직으로 일어서면서 아이작의 몸이 단숨에 뒤집혔다. 균형을 잃은 아이작의 몸 위로 파도와 함께 거대한 무언가가 그를 덮쳤다.

날카로운 갈기를 가진 거대한 어인이었다.

수상 보행의 기적이 무력하게도 아이작은 그대로 거대한 어인과 함께 수면 아래로 가라앉았다.

아이작은 개구리를 닮은 어인들을 보았다. 바닷속에서도 놈의 톱날 같은 송곳니가 보였다. 놈은 손이 루앗딘 열쇠에 꿰뚫려 익어 가고 있는데도 놔줄 생각을 하지 않았다.

위기냐고 묻는다면, 그렇진 않았다.

아이작은 이 상황을 기다리고 있었으니까.

'이 정도면 포식할 가치가 있겠군.'

아이작은 수면으로부터 충분히 멀어진 것을 확인한 뒤, 왼손을 어인의 가슴팍에 꽂아 넣었다.

110화. 바다 깊은 곳에 (3)

콰드드득.

촉수가 어인의 가슴팍을 거칠게 꿰뚫었다. 거대 어인은 흠칫했지만 아이작이 단검이라도 꽂았다고 생각한 건지 꼼짝도 하지 않고 점점 더 깊은 심해로 가라앉았다.

그러나 통증이 있다면 자가 진단을 할 것이 아니라 일찍 병원을 찾는 것이 장수의 지름길.

어인이 착각한 잠시 동안 촉수가 두터운 가죽을 거칠게 찢고 뜯어먹으며 어인의 가슴 안으로 파고 들어갔다.

갈비뼈를 잡아 뜯어내는 통증에, 뒤늦게 거대 어인은 뭔가 이상하다는 것을 눈치채고 아이작을 떨쳐 내려 했다.

하지만 이미 놈의 몸 안에 단단한 뿌리를 박아 넣은 아이작의 몸은 떨어져 나가지 않았다. 완력으로 몸을 으스러뜨리려 했지만 단단한 갑옷은 구겨지지도 않고 통증만 더 심해질 뿐이었다.

바닷속이 어인의 피로 순식간에 붉게 물들었다. 주변에서 어인들이 모여들었지만 피 때문에 무슨 상황인지 파악하지 못한 듯 빙글빙글 돌기만 할 뿐이었다.

거대 어인은 아무리 아이작을 떼어내려 해도 떨어지지 않자, 생각을 달리했다.

놈은 더더욱 맹렬하게 심해를 향해 나아가기 시작했다. 아이작을 아예 숨 막혀 죽게 하려는 수작이었다. 개구리 머리라고 생각할 수 없는 현명한 판단이었다.

반면 아이작은 더욱 거칠게 촉수를 밀어 넣었다. 이미 거대 어인의 몸 안은 진탕되어 있었다. 아이작이 풀려나도 놈은 죽은 것이나 다름없었다.

하지만 놈은 최후의 발악인지 사후 경련인지 모를 집념으로 더더욱 심해로, 또 심해로 파고 들어갔다.

'이제 슬슬....'

그렇게 아이작의 호흡에 한계가 올 때쯤, 기다리던 효과가 나타났다.

['심해인 장군(A)'을 포식하였습니다.]

['죽은 신의 내장' 특전으로 섭취 효율이 상승합니다.]

[어보미네이션 포식 효과로 신체 융합이 진행됩니다.]

[수중 호흡이 가능해졌습니다.]

[물속에서의 움직임이 더 빨라집니다.]

아이작의 가슴 아래쪽에 가느다란 아가미가 생겼다. 아이작이 굳이 입으로 바닷물을 들이마시지 않아도 폐를 통해 물이 들어오고 산소를 여과시키며 빠져나갔다. 아이작이 죽기만을 기다리던 거대 어인은 끝내 그가 죽는 모습을 보지 못하고 느리게 가라앉았다.

놈의 몸 안에서 촉수가 찢어발기며 튀어나와 순식간에 필수부위들을 포식해 집어삼켰다. 아이작은 아직 상황 파악을 못 한 어인들을 향해 힘껏 도약했다. 거대 어인이 끌어당기지 않아도 아이작은 갑옷 무게 때문에 저절로 가라앉게 되어 있다.

하지만 아이작에게는 지금 '파도의 교리', 즉 수상 보행의 기적이 걸려 있었다.

아이작이 다시 바다를 박찬 그 순간 바다는 그를 맹렬하게 밀어냈다. 쏟아지는 화살과 같은 기세로, 아이작은 순식간에 스쳐 지나가는 어인들을 썰어 넘기며 치솟아 올랐다.

그의 뒤로 검붉은 피거품이 뒤따랐다. 그 끝에는 공성추를 몸에 매단 어인들이 있었다.

공성추 때문에 몸이 느려진 어인들은 아이작을 피할 수 없었다.

펑. 아이작은 빠른 속도로 수면 위로 뛰어올랐다. 그가 뛰어오른 자리 뒤쪽으로 어인들의 토막 나고 익은 사체들과, 주인을 잃은 공성추가 둥둥 떠올랐다. 어인들의 비명인지 고함인지 모를 괴성들이 바다의 위와 아래에 모두 울려 퍼졌다.

'거대 어인, 아니, 심해인 장군? 놈이 죽어서 그런가, 움직임이 흐트러졌군.'

어인들은 이제 아이작 주변으로 함부로 다가오지 못했다. 공성추도 잃었으니 놈들이 배를 가라앉힐 방법 따윈 없었다. 물론 여전히 숫자는 바다를 채울 만큼 바글바글했다.

놈들은 포기하지 않은 듯 무언가를 합창하기 시작했다.

[이름 없는 혼돈이 당신을 주시합니다.]

아이작에게 경고하듯 알림음이 들려왔다.

'세이렌의 노래.'

정신을 몽롱하게 만들어 노래를 듣는 사람들을 바다로 끌어들이는 능력이었다. 아이작은 즉시 귀를 막으려 했다. 하지만 곧 자신이 노래를 들어도 아무렇지 않다는 것을 깨달았다.

'심해인 장군을 먹어서 그런가? 아니면 이름 없는 혼돈 때문인가?'

이유는 모르겠지만 아이작은 아무 이상도 없었다. 하지만 선원들은 그렇지 못할 터였다. 아이작은 급히 배 위를 돌아보았다. 단련된 선원들에게도 나름대로 대응책이 있겠지만 수많은 어인의 합창은 일반인들이 저항하기 힘든 공격이다.

풍덩. 누군가 비틀거리다가 난간 밖으로 몸을 던지는 소리가 들려왔다.

'공성추보다 효과적인 공격 방법인데 왜 이제서야?'

하지만 아이작은 곧 어인들이 뒤늦게 합창을 시작한 이유를 알 수 있었다.

쿠구구구구구....

아이작은 어느새 하늘과 바다가 짙은 잿빛으로 물든 것을 눈치챘다. 해류가 비틀리면서 거대한 소용돌이가 발 아래 형성되고 있었다. 파도가 사방팔방으로 갈피를 못 잡고 헤매면서 물줄기가 튀어 올랐다. 어인들의 합창이 뒤늦게 중단되었지만, 이미 늦은 뒤였다.

아이작은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깨달았다.

"익사자 왕...."

천사들 가운데 가장 거대한 육신을 가진 천사.

움직이는 것만으로도 해류를 바꾸는 존재가 다가오고 있었다.

***

"────!────!!"

어인들 사이에서 진짜 비명이 튀어나오기 시작했다. 이전처럼 비난이나 고통에 찬 소리가 아니라 공포에 찬 비명이었다. 놈들은 뒤늦게 도망치기 시작했지만, 부질없는 짓이었다. 수면 아래로 시커먼 그림자가 드리워졌다.

'그것'이 도착한 순간 어인들은 이미 고래 입안에 들어온 새우나 다름없었다.

콰아아아아... 폭포수 같은 소리가 울려 퍼지기 시작했다.

아이작은 바다가 몸을 일으켜 세운다고 느꼈다.

거센 파도에 배가 금방이라도 뒤집힐 듯 기울어졌다. 그러나 그 순간, 바닷속에서 촉수가 하나 기어 올라와 배가 쓰러지지 않도록 잡아 주었다.

촉수가 가볍게 배를 휘감자 으스러지는 듯한 소리가 울려 퍼졌지만, 촉수는 배를 부수는 대신 놀라울 만치 사뿐하게 잡아 파도로부터 보호해 주었다. 그리곤 믿기지 않는 섬세함으로 바다에 빠진 선원을 집어 올려 갑판 위에 내려놓았다.

갈라지는 바닷속에서 모습을 드러낸 존재는 거대한 크라켄이었다.

"하하...."

아이작은 히야니스가 '저것'을 상대로 싸울 생각을 했다는 것이 믿기지가 않았다.

해수면에 드러난 머리 크기만 대략 500에서 600m 정도 되어 보였다. 수면 아래에는 훨씬 더 큰 몸통과 그 몇 배는 될 촉수들이 숨겨져 있을 것이다.

익사자 왕이 수면 아래 촉수를 가볍게 흔드는 것만으로도 어인들은 해류에 휩쓸려 우왕좌왕하며 서로 부딪치고 수면 위로 튕겨 올라왔다. 마치 몰이 낚시를 하는 듯한 모습에 아이작은 그들의 운명을 느낄 수 있었다.

하지만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어인들을 한자리에 모은 익사자 왕은 군청색으로 빛나는 눈동자로 잠시 그들을 주시했다. 어인들은 곧 해류의 움직임이 풀리기 시작한 것을 느꼈다. 그들은 허겁지겁 그들을 가두던 바다 감옥에서 빠져나와 달아나기 시작했다.

"익사자 왕이시여!"

히야니스가 다급히 난간에 매달려 외쳤다. 익사자 왕은 고개도 돌리지 않았지만 워낙에 거대한 눈 때문에 어딜 가도 그가 보고 있는 것 같았다.

"놈들을 잡아야 합니다!"

[왜 ■■지?]

익사자 왕의 대답이 나온 순간 바다가 부르르 끓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끓어오르는 거품 하나하나에 익사자 왕의 목소리가 담겨 있는 것 같았다. 발음은 부정확하고 알아듣기 힘들었지만, 그가 의문을 표했다는 것만으로도 히야니스는 그의 의지를 감지할 수 있었다.

"저들은 신도들을 공격했습니다!"

익사자 왕을 공격하러 온 주제에 뻔뻔하게 호소하는 히야니스를 보고 아이작은 기가 막혔지만, 이내 그의 의도를 알 수 있었다.

히야니스는 어인들의 습격이 익사자 왕의 의도가 아니었는지 의심하고 있었다.

실제로 익사자 왕은 묵묵히 어인들을 보내 주었다. 어인들이 대양 너머로 사라질 무렵에서야 그가 대답했다.

[저■은 불■■ 자들■다.]

익사자 왕은 이내 배를 향해 시선을 돌렸다. 하지만 그때 그의 시선이 아이작과 마주쳤다. 아이작은 순간 그 군청색의 눈이 불타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그러나 그 느낌은 오래 가지 않고, 익사자 왕은 느리게 다시 시선을 돌렸다.

***

아이작이 다시 배 위로 올라왔을 때, 그는 선원들의 시선이 전과 달라진 것을 느꼈다. 전에는 배에 탄 것만으로도 못마땅해하면서 어쩔 수 없이 받아들인 느낌이었다면, 지금은 경외와 존경에 가득 차 있었다.

'물론 그 경외와 존경은 저기 있는 저 문어에 비할 바가 못 되지만....'

아이작은 쓰게 웃으면서 수면 아래 조용히 침묵하는 크라켄을 힐긋 보며 생각했다. 익사자 왕은 같은 신앙의 신도들을 구하러 왔지만, 잠시 시간을 달라는 히야니스의 말에 조용히 수면 아래로 사라졌다. 하지만 여전히 바다 아래에 시커먼 실루엣을 드리우고 있어서 그가 떠나지 않았다는 것을 보여 주고 있었다.

사실 히야니스에게 따지거나 대화하지 않는 데에는 의사소통의 어려움 때문도 있는 것 같았다.

'분명 고어(古語)로 이야기하고 있었지....'

사후세계에서 찾아온 이름 없는 혼돈의 짐승들이 내뱉던 언어들과 같은 언어였다. 다른 점이 있다면 이름 없는 혼돈의 짐승들은 말 전체가 고어였던 반면, 익사자 왕은 새롭게 익힌 건지 몰라도 억양이며 발음이 일부는 현대어에 가까웠다.

이상하게도 아이작은 전부 알아들을 수 있었다.

'저들은 불쌍한 자들이다, 라고?'

소금 의회의 천사가 자신의 신도들을 사냥하던 어인들을 동정하는 이유란 무엇일까.

어인들 상당수가 해적으로 살아가고 있는 것을 생각하면, 그들과 소금 의회의 관계는 적대적일 것 같은데.

"성배기사님, 무사하셔서 다행입니다!"

히야니스가 급히 달려와 아이작을 끌어안으려는 듯 팔을 벌렸다. 하지만 그와 자신이 그렇게까지 친하다고 생각하지 않는 아이작은 포옹을 밀어내며 바로 중요한 화제로 들어갔다.

"바로 익사자 왕과 대화하지는 않는 건가?"

"그게... 아까 들으셔서 아시겠지만 의사소통이 원활하지 않습니다. 이때까지는 보통 일방적으로 익사자 왕이 자신의 의사를 전달하고, 우리는 그걸 의회로 가져와서 해석하는 경우뿐이었으니까요. 하지만 이번에는 대화를 해야 하니 다른 배를 기다려야 할 것 같습니다."

"의원들을 만나서 실시간 통역하며 대화하겠다 이거군."

"예. 안 그래도 조만간 만날 것 같으니까요."

히야니스를 도우러 온 건지 잡으러 온 건지 알 수 없는 배들의 무리들은 꽤 가까워진 상태였다. 익사자 왕이 나타나자 1/3쯤은 도망가긴 했지만 당연한 일이었다. 혹시라도 이미 히야니스가 익사자 왕에 대한 암살을 시작했다면 근처에 있지 않는 편이 건강에 이로울 테니까.

"소금 의회 의장, 옌코스 선장은 고어 전문가입니다. 실시간 통역을 할 수준은 아니지만요. 저와 의견이 완전히 반대긴 하지만 그래도 성배기사님이 말씀하신 바가 정말인지 아닌지를 확인하고 싶어 할 겁니다."

익사자 왕이 인신 공양을 요구한 것이 아니라는 아이작의 말. 히야니스와 의견이 반대라는 것은 인신 공양을 해서라도 익사자 왕을 도와야 한다는 쪽이라는 뜻이지만, 아이작은 그다지 걱정하지 않았다. 자기 나름대로 확신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고어 전문가는 필요 없을 것 같다만."

"예? 하지만 익사자 왕의 진짜 의도가 뭔지 알아내려면...."

"내가 직접 통역할 수 있다. 실시간으로 말하는 것, 전달하는 것 다 해보지."

111화. 바다 깊은 곳에 (4)

"익사자 왕이 무슨 말을 했는지 알아들으셨단 말입니까?"

히야니스는 눈을 크게 뜨고 되물었다. 아이작은 고개를 끄덕였다.

히야니스는 말문이 막힌 듯 버벅거리다가 가까스로 입을 열었다. 하지만 그의 말은 밖에 나오지 못했다. 그의 목소리보다 훨씬 더 큰 목소리가 배 위에 울려 퍼졌기 때문이었다.

"히야니스!!"

언제 이렇게 가까이 왔는지, 용맹한 연어 호보다 훨씬 큰 배 한 척이 부딪칠 듯 다가왔다.

그 배 위에서 한 여자가 고래고래 소리를 질러대고 있었다.

배는 그대로 스쳐 지나가는 듯하다가 일제히 갈고리를 던져 단숨에 용맹한 연어호를 붙잡았다. 선원들이 일제히 끌어당기는 밧줄 때문에 배가 비명을 질렀다. 해적질이라도 하는 듯한 모습에 히야니스는 눈살을 찌푸렸다.

소리를 지르던 구릿빛 피부의 여자가 갑판 위로 뛰어내렸다. 용맹한 연어 호의 선원들은 이미 그녀에 대해 잘 아는 듯 제지하지 않고, 오히려 눈인사를 보내기까지 했다.

여자는 선원들을 무시하고 바로 히야니스를 향해 커틀라스를 뽑아 든 채 다가왔다.

"너 이 새끼, 거기 그대로 있어! 함부로 나대면 그 골통 분명 쪼개준다고 했지!"

"성배기사님, 소개해 드리지요. 이분이 소금 의회의 옌코스 하레 의장입니다."

의장이라는 지위에 맞지 않는 제법 젊은 여자였다. 하지만 아이작은 그 지위가 허투루 얻은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녀는 제국 대학에서 온갖 학문을 섭렵하고, 대학원생이 되라는 제안을 마다한 채, 탐험에 목숨을 바친 사람이었다.

아이작은 가볍게 눈인사를 보냈다. 옌코스는 성배기사라는 말에 흠칫한 듯했다. 히야니스는 일부러 옌코스더러 들으라고 소개의 말을 던진 것이다. 적당히 자중하라는 뜻에서 말이다. 성배기사 앞에서 인신 공양을 운운할 수는 없으니.

옌코스는 결국 히야니스 의도대로 한풀 기가 죽은 모습을 보일 수밖에 없었다. 그녀는 씨근거리며 손을 내밀려다가 오른손에 커틀라스를 들고 있다는 것을 깨닫고 다시 검집에 넣었다.

"옌코스 하레요."

"아이작 이사크레아입니다."

아이작은 말투를 고민하다가 의장의 권위를 존중해서 존대를 했다. 옌코스는 팔짱을 낀 채 아이작을 위아래로 노려보았다.

"그래서 유명하신 성배기사 나으리, 이 비린내 나는 바다까지는 어쩐 일이신지? 아니, 아까 그 커다란 덩치를 보셨을 테니 숨기지도 못하겠군요. 혹시 우리 천사님께 용무가 있으신지?"

옌코스는 긴장한 기색이 역력했다.

아이작이 인신 공양에 대해 안다면 가만둘 수가 없는데, 그렇다고 빛의 법전에서 한창 뜨고 있는 성배기사를 공격하는 것도 부담스럽다. 게다가 아까 그가 바다 위에서 어인들을 썰어 넘기던 모습은 옌코스도 먼 거리에서나마 보았다.

아이작을 바다에 던져 버리기로 마음을 먹더라도, 절대로 쉬운 과정은 되지 않을 것이 뻔했다.

아이작은 그녀의 걱정을 좀 덜어 주기로 했다.

"익사자 왕이 인신 공양을 요구했다더군요."

다만 그 전에 조금만 놀리고.

예상대로 옌코스는 하늘이 무너지는 표정을 했다.

그녀의 눈이 히야니스에게 향했다. 옌코스가 커틀라스로 히야니스의 머리통을 쪼개기 전에 아이작은 말을 이었다.

"하지만 사실 인신 공양 요구가 아니라 오해일 거라고 추측됩니다. 그러니 히야니스 선장에게 함부로 행동하지 말라고 경고했지요."

"오해라고?"

옌코스는 심해에 처박혔다가 건져 올려진 사람 같은 얼굴이 되었다. 그녀의 감정 기복이 심한 표정을 감상하는 것은 재미있었지만 이제부터는 집중적인 질문 공세에 시달릴 차례였다.

"오해라니, 잠깐. 그러면 익사자 왕이 한 말에 대해서 알고 있는 거요? 우리도 최근에서야 해석이 끝났는데? 그 말들이 어떤 맥락에서 오해였다고 추측되는 거지? 빛의 법전의 입장인 거요, 아니면 성배기사 당신의 개인적인 입장인 거요?"

그 질문에 대해서는 히야니스도 굉장히 궁금한 듯했다. 아이작은 질문을 하나로 요약해서 대답했다.

"저는 익사자 왕이 무슨 말을 했는지 알아들을 수 있습니다. 대화를 해보죠."

"고어를 알아들을 수 있다고?"

옌코스의 믿기지 않는다는 듯한 말에 아이작은 대충 둘러댔다.

"고어를 공부해둔 적 있어서."

"아니, 읽는 거라면 모를까 고어를 공부한다고 알아들을 수 있다는 건 이상하지 않나?"

"옌코스 의장도 익사자 왕의 말을 해석하지 않았습니까?"

"그래요, 대화가 아니라 해석이지! 글자를 읽는 거야 나도 실시간으로 읽고 쓰고 다 할 수 있어요. 글자를 읽는 방식은 몇백 몇천 년이 흘러도 바뀌지 않으니까. 하지만 천년 전 발음이나 억양으로 말하면 천년 전 사람이 아닌 바에야 알아듣는 건 추측만 가능하다고!"

아이작은 무슨 말인지 알 것 같았다.

하다못해 50년 전 사람만 해도 지금과 말투가 다르다. 조선시대 사람의 말투는 이삭이 살던 시대의 말투와 완전히 다를 것이다. 하물며 천년 전, 그것도 천사가 사용하는 언어라면 어떨까.

즉, 어쩌면 아이작은 천사들을 제외하면 거의 유일하게 고어를 바로 알아들을 수 있는 사람이었다. 아이작은 결국 둘러대는 대신 신비주의로 포장하는 길을 선택했다.

"그럴만한 사정이 있었습니다. 그 사정까지 중요한 건 아니겠지요?"

어차피 눈앞에서 보여 주면 된다. 다만 아이작에 대한 신뢰가 문제였다.

아이작이 진실을 말하는지 아닌지 실시간으로 확인할 수 없을 테니까.

하지만 옌코스는 더 따질 수 없었다.

만에 하나라도 아이작이 천사와 대화가 가능하다면, 그래서 통역을 해준다면 그들은 이때까지 늘 그랬던 것처럼 일방적인 계시를 듣는 것이 아니라 다른 신앙의 사제들처럼 '대화'가 가능하게 될지도 모르니까.

옌코스가 넘어올 듯 말 듯하자 아이작은 떡밥을 하나 더 던지기로 했다.

"아까 익사자 왕이 한 말이 있으니 그것부터 번역해보도록 하지요. 그건 모두들 들었으리라고 생각합니다."

히야니스와 옌코스는 고개를 끄덕였다. 워낙에 우렁찬 목소리라서 멀리 있던 옌코스도 들은 목소리였다.

"어인들을 풀어주면서 저들은 불쌍한 자들이다, 라고 하더군요. 원문이 뭐였는지는 히야니스 선장과 선원들을 통해 알아보십시오."

아이작은 그 말을 남겨 두고 떠나려다가 문득 생각난 듯 물었다.

"그런데 익사자 왕이 왜 그런 말을 했는지 혹시 아십니까?"

***

불쌍한 자들.

천사가 몬스터나 다름없는 어인들을 가리키며 한 말이었다.

아이작은 그 사실이 못내 신경 쓰였다.

익사자 왕은 그 흉흉한 이름만큼이나 자상하거나 관대한 천사가 아니었다. 더군다나 그 상대가 인간이 아닌 괴물이라면 더더욱.

소금 의회가 과거 대제국을 이루던 시기, 그들이 그만한 영향력을 가질 수 있던 것은 익사자 왕의 흉흉한 행적 덕분이라고 봐도 될 정도였다.

'동질감인가? 어인들과 공감대를 느껴서?'

아이작이 옌코스에게 어인들이 왜 불쌍한 자들인지 묻자 그녀는 이렇게 대답했다.

어인들은 과거 인간이었던 자들이 고대신의 힘으로 아가미가 생기고 물갈퀴가 돋아난 부류라고 한다. 그들은 물속에서 살며 독자적인 문명을 발전시켰지만, 빛의 법전 시대 이후로 끊임없이 쇠퇴하여 지금은 대화조차 불가능한 괴물들이 되었다고.

어인과 소금 의회는 세계를 통틀어 가장 비슷한 역사를 가지고 있으면서도 서로를 혐오했다.

익사자 왕은 어쩌면 이 유사한 역사에 동질감을 느꼈던 것인지도 모른다.

소금 의회는 몰락해 가고 있었고, 어인처럼 괴물이 되지는 않겠지만 평생 신을 잃은 채 살아갈 것이 거의 분명했기 때문에.

끼익.

문을 열자 객실에 앉아 있던 어린 사제가 벌떡 일어났다. 그는 두려움이 가득한 표정으로 단검을 쥐고 있었다. 아이작은 왜 저러나 하다가 밖에 있는 배 때문에 그가 뭔가 오해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우리 잡으러 온 거 아니다. 칼 치워."

상대가 아이작인 것을 확인한 어린 사제는 안도하며 주저앉듯 칼을 내려놓았다. 아이작은 후안 주교를 따라 '목소리'를 대신하는 이 어린 사제에게 대체 무슨 사연이 있는지 궁금했다.

하지만 지금은 후안 주교가 먼저였다.

"주교님."

후안 주교는 침대에 등을 돌린 채 누워 있었다. 언덕길을 내려오며 쌩쌩하게 '돈 버는 법'을 강변하던 모습은 온데간데없었다.

'뱃멀미라도 하나?'

"자네도 내가 한심한가?"

아이작은 뭔 말인가 하다가 아까 그가 기적을 부탁받았을 때 사용하지 않았던 것을 떠올렸다.

아이작이 날뛰는 사이 배 위에 남겨진 후안은 자격지심 혹은 패배감을 느꼈던 모양이다. 하기야, 다들 주교의 기적을 기대하던 눈치였으니까.

아이작은 사실 크게 신경 쓰지 않고 있었지만, 그가 이렇게까지 풀 죽은 모습을 보이자 뭔가 문제가 있나 싶었다.

이 세계에 오고 나서야 알게 된 것이지만 기적이 발동되지 않는 것은 의외로 발기부전만큼이나 흔했다. 강대한 기적일수록 그렇다. 신앙에 대한 흔들림이 온 것일 수도 있고, 뭔가 미운털이 박힌 것일 수도 있다. 헤사벨만 하더라도 그 귀한 핏줄을 머금고도 기적을 마음대로 못 쓸 때가 있지 않았나.

하지만 곧 아이작은 후안이 기도문조차 외우지 않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후안 주교님, 혹시 기적을 발휘하실 수 없으십니까?"

후안 주교의 어깨가 흠칫 떨렸다. 하지만 그는 이내 단단히 마음먹은 듯 몸을 추스르고 자리에 바로 앉았다.

"...변명할 여지가 없군. 그래."

기적을 못 쓰는 주교라니, 아이작은 말문이 막혔다.

주교는 빛의 법전의 수많은 사제들 중에서도 10명에 불과한 최상급 사제다. 교황 다음가는 자리인 만큼 막강한 기적과 은총이 보장되어 있었다.

"등하맹인이라더니, 정말 딱 맞는 표현이지. 안 그런가?"

아이작은 당황하지 않을 수 없었다. 자신에게 빚어준 루앗딘 열쇠를 만든 것은 무엇이란 말인가? 그것도 기적의 일종이 아니었던가?

"저, 그럼...."

"루앗딘 열쇠 말인가? 그건 기적과는 다른 종류네. 모든 심판의 검은 사용자를 보호하기 위해서 천상의 빛이 함부로 드러나지 않도록 허물을 씌우고 있지. 그러다 자격 있는 자에게만 그 허물을 비틀어 약간 그 빛을 드러내는 것뿐이야."

후안은 아이작의 당혹감을 인지한 듯 설명했다. 심판의 검을 루앗딘 열쇠로 바꾸는 것은 능력이 아니라 자격 문제라는 설명이었다. 당연히 주교인 후안에게는 자격이 있었다.

후안은 침대 머리맡에 있는 촛대를 향해 손가락을 살짝 비볐다. 기도문도 없이 자연스럽게 불꽃이 피어오르며 초에 불이 붙었다. 기적을 아예 못 쓰는 것은 아니고 강력한 고위급 기적을 못 쓰는 것 같았다.

"내 위치정도 되니까 필요한 기적은 수행사제들이 대부분 다 알아서 하고, 나는 손끝 하나 까딱하지 않아도 의심하는 사람도 없더군. 다른 주교들이야 전쟁터나 재난 지역으로 파견되기도 하지만... 나는 더 중요한 일을 맡곤 했으니."

아이작은 후안이 돈벌이와 성인 지정 같은 '정치적인' 일에 매진하던 이유를 알 수 있었다.

그가 자신의 '필요성'을 입증할 만한 곳은 그런 곳밖에 남지 않았던 것이다. 자연스럽게 손가락질받을 수밖에 없겠지만 후안은 빛의 법전에 자신이 필요한 존재임을 증명하기 위해 더더욱 매달릴 수밖에 없었다.

'잠깐, 그러면 이 인간 이제 쓸모없잖아.'

솔직히 늙은 할아버지의 자아 찾기와 퇴직 문제는 아이작이 알 바 아니었다.

문제는 아이작이 내심 든든한(?) 전력으로 생각하고 있던 후안 주교가 무능력 할아버지가 됐다는 점이었다. 바다 한복판에서 유사시 자신을 던져 버릴지도 모르는 선원들과 세상에서 제일 거대한 천사를 눈앞에 둔 상황에서 예상치도 못한 변수였다.

"...어째서 빛의 법전께서 내게서 기적을 거두어가신 것인지는 알 수 없네. 내 비록 타락하긴 하였으나 그건 다른 사제들도 마찬가지인데, 내가 없으면 조직은 건사하기도 힘들 것이건만...."

"잠깐만요. 주교님. 혹시 이 사실 다른 사람들에게 알렸습니까?"

"으, 응? 아, 아니. 일단은 이 방에 있는 우리뿐이군."

아이작은 어린 사제를 돌아보았다. 입이 무거운 아이 같아서 걱정스럽지는 않았다.

"일단 계속 조용히 하십시오. 이단 한복판에서 주교가 무능력자가 되었다는 사실은 이로울 게 없으니."

"무, 무능력자?!"

아차. 아이작은 자신도 모르게 본심을 내뱉은 것을 깨닫고 다급히 수습했다. 그는 후안의 어깨를 두드리며 속삭였다.

"아까 그 일은 뱃멀미 때문에 그런 것으로 전달하겠습니다. 고작 물고기 따위를 잡느라 강대한 빛의 법전의 권능을 보일 수는 없으니, 사냥개인 저를 풀어 사냥했다고 하십시오. 사실 그게 맞지요! 이런 비린내 나는 일에 주교님께서 손을 쓰시는 게 맞습니까?"

"그런, 어, 그런가?"

"아까 그런 때에는 기적을 쓰실 수 있으시더라도 쓰지 않는 것이 맞습니다. 계속 빛의 법전 주교다운 권위를 보여주십시오. 지금은 당신이 필요한 때입니다."

아이작의 웅변에 후안은 얼떨떨한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아이작이 가진 카리스마는 이 순간에도 빛을 발했다.

모두가 존경하는, 선원들이 떠받드는 성배기사의 말은 후안에게 묘한 힘을 불어넣었다.

후안이 소심하게 되물었다.

"진짜 그런가?"

"물론입니다! 주교님이 천사나 교황님 앞에서 기죽으면 기죽었지 이런 뱃놈들 앞에서 기죽으셔야 되겠습니까?! 애초에 우릴 멋대로 끌고 온 놈들인데!"

"맞... 다! 그것도 그렇다!"

"그렇습니다! 주교님 최고!"

***

'힘들군.'

나이 일흔 가까이 먹은 노인네를 둥기둥기하는 것은 감정적으로도 쉬운 일이 아니었다. 하지만 필요한 작업이었다.

아이작은 어인들을 썰어 넘기던 때보다 더 강한 피로감을 느끼며 갑판 위로 발을 옮겼다.

이제 그는 일흔 먹은 늙은이보다 더 늙은 존재를 상대해야 했다.

대략 최소 930년 이상 된 것을.

"익사자 왕, 대화 좀 해봅시다."

아이작은 수면 밖으로 군청색 눈을 빛내는 익사자 왕과 눈을 마주하며 입을 열었다.

112화. 바다 깊은 곳에 (5)

밤바다는 놀라울 만큼 고요했다. 아마 익사자 왕이 통제하고 있으리라.

잔잔한 수면 아래서 빛나는 익사자 왕의 군청색 눈을 마주한 아이작은 등골이 오싹해지는 것을 느꼈다. 그 창백한 눈빛은 죽어 바다를 부유하는 익사체를 떠올리게 했다.

아이작은 그가 왜 익사자 왕이라고 불리는지 알 것 같았다.

"...조금만 더 예의를 갖춰 말씀해주셨으면 합니다."

옆에 있던 옌코스가 조심스럽게 말했다.

천사와 소통하는 이 대화에는 아이작만이 아니라 옌코스와 히야니스, 에이단이 함께 하고 있었다. 이 회담 자리에 참가하고 싶어하는 선장과 선원들이 많았다.

하지만 어차피 대화는 아이작이 도맡아 할 것이었고, 익사자 왕은 쓸데없이 번잡스러운 분위기를 싫어하는 편이었다. 덕분에 이 자리에 모인 사람은 통역사, 배의 선장, 의장, 그리고 용도는 잘 모르겠지만 어쩌다 보니 끼게 된 에이단이었다.

아이작은 좀처럼 익사자 왕에게서 대답이 없자 다시 말했다.

"지금쯤 제가 누군지 알아보셨으리라 생각됩니다. 하지만 당장 배를 뒤집지 않으시는 이유는 대화할 의도가 있다는 것이겠지요."

아이작은 익사자 왕이 자신이 네필림이라는 것 정도는 알아봤으리라고 생각했다. 고대신들은 물론, 붉은 살점의 선지자도 바로 알아챌 정도였으니까. 네필림이라는 것만으로도 천사들이 눈에 거슬려 할 이유는 된다.

마침내 익사자 왕으로부터 반응이 왔다.

갑판 위로 게 한 마리가 올라왔다. 손바닥보다 작은 게는 입에서 거품을 보글보글 뿜어 올렸다. 거품이 터지면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아직도 살아있는 죄가 있을 줄 몰랐구나. 네 부모가 누구냐?]

게 치고 말투가 건방졌지만, 익사자 왕의 대신 전달하고 있을 뿐이었기에 아이작은 그저 넘어가 주었다.

익사자 왕이 한 말은 역시나 고어였다. 다른 선원들에게 말할 때에는 나름 배려해서 말했던 것이다.

'살아있는 죄'는 네필림을 가리키는 호칭 중 하나였다. 호의적인 표현이라고 보기는 힘들었지만, 적대적이지도 않았다. 잡종이나 튀기라고 부르지 않은 것만으로도 충분히 예의를 차린 편이었다.

"부모는 모릅니다. 양쪽 다요. 혹시 근본 모르는 놈이랑 대화 안 하는 주의입니까?"

익사자 왕은 낮게 웃었다. 웃음소리는 들리지 않았지만 바다가 부글거리며 출렁이는 것이 느껴졌다.

[대화, 좋지. 그런데 네가 소금 의회의 신도인 줄은 몰랐구나.]

"저는 소금 의회의 신도가 아닙니다."

익사자 왕은 잠시 말이 없었다. 아이작은 익사자 왕의 눈이 다시 물속에서 불탄다고 느꼈지만, 달빛이 반사된 것 때문일 수도 있었다.

[소금 의회의 신도가 아니라고?]

"하지만 당신이 소금 의회에 요구한 사항은 알고 있습니다. 원문은 모르겠습니다만 익사할 자를 달라고 요구하셨지요. 그래서 소금 의회의 의원들은 당신이 인신 공양을 요구한 줄 알고 기겁하고 있습니다."

[인신 공양?]

다시 또 낮은 웃음소리가 울려 퍼졌다. 그 웃음소리에 옌코스와 히야니스는 불편한 표정을 했다. 한참 이어지던 웃음의 끝은 긴 한숨이었다.

[새삼 단절의 시기가 길었다는 것이 느껴지는구나. 아이들이 점점 내 말을 알아듣길 어려워하고 있어. 나도 새 언어를 배우려고 하지만 깨어있는 것조차 어려워지고 있으니.]

반전은 없었다. 역시나 인신 공양을 요구한 것은 아니었다.

아이작은 익사자 왕이 진짜 요구한 바를 말했다.

"'달우물 의식'을 치르실 생각이었지요?"

아이작이 생소한 의식을 언급하자 익사자 왕은 예상치 못했다는 듯 침묵했다.

[그래. 의원들도 알아차리지 못한 의도를 이단의 성기사가, 그것도 살아있는 죄가 내 의도를 정확하게 알아보다니 아이러니하군. 지금은 소금 의회에서조차 기록을 찾기 힘들 텐데.]

익사자 왕이 한탄하듯 말했다.

[단절이 너무 길었다. 내가 직접 간다면 좋겠지만, 의식을 도와줄 매개도 사제도 존재하지 않는다. 그리고 간다 한들 다시 돌아올 수 있을 것 같지가 않군. 그래서 용감한 지원자가 필요했다.]

"직접 사후세계로 사람을 보내서 당신들 신이 어떻게 됐는지, 이 고난이 언제쯤 끝나는지 묻기 위해서입니까?"

[그래. 이제 더는 미룰 수가 없다.]

익사자 왕은 느리게 중얼거렸다.

[아이들은 너무 오랫동안 방치됐고, 나도 너무 약해졌어. 지금보다 더 늦어지기 전에 신의 의중을 알아내야만 한다. 만약 신께서 더 늦으신다면....]

익사자 왕은 뒷말을 생략했다.

자신의 신앙이 파멸하는 모습을 지켜만 보아야 한다는 것이 천사에게 어떠한 의미일지, 아이작은 상상도 하기 힘들었다.

아마도 자신의 존재를 뿌리부터 부정당하는 느낌이 아니었을까.

배교를 저지르거나 죄를 지어 타천사가 되는 경우도 있는데, 익사자 왕은 대답 없는 신의 밑에서 천 년이나 묵묵히 천사로 활동해 온 것이다.

어쨌든 일을 진행하려면 의식의 시전자인 익사자 왕과 달우물 의식에 던져질 지원자가 필요했다.

말할 것도 없이 위험한 일이다. 실패할 확률도 어마어마하게 높았다.

아이작은 자신이 사후세계에 연결됐을 때 벌어진 일을 떠올렸다. 운이 좋으면 소금 의회의 천국에 떨어지겠지만, 붉은 성배의 만찬장에 오르거나 엘릴의 콜로세움에 던져질 수도 있는 것이다.

아이작은 소금 의회 대표로 온 자들을 돌아보았다.

사실상 대화의 절반만 듣고 있는 그들은 불안한 표정을 감추지 못하고 있었다. 아이작은 익사자 왕과 회담을 시작하기 전 그들과 나눴던 대화 내용을 떠올렸다.

***

"생환 의식에 대해서라면 당연히 아시리라 생각합니다."

옌코스와 히야니스는 황당하단 표정을 지었다. 물으나 마나 한 일이었다. 생환 의식은 소금 의회에 얼마 남지 않은 의식 가운데 가장 중요하면서 자주 행해지는 의식이었으니까.

옌코스와 히야니스도 그 의식을 받은 당사자들이었다.

"빛의 법전에서 말하는, 사제 서품 의식 말씀이십니까?"

"예."

"당연하지요. 저희도 받은 의식입니다."

생환 의식의 절차는 다음과 같다.

먼저 사제 후보로 발탁된 자를 해변에 데려간다. 그리곤 온몸을 서서히 물에 담그다가 머리까지 집어넣는다. 처음에는 금방 넣었다 뺀다. 그리곤 신의 목소리를 들었는지 묻는다. 들었다면 사제로 각성한 것이고, 아니라면 다시 머리를 물에 담근다.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더 담그는 시간이 길어진다.

원래의 의식은 여기까지다.

하지만 그들의 신이 소금 사막 아래에 매장된 뒤에는 달라졌다.

신의 대답이 들리지 않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지금 생환 의식은 상당히 가혹해졌다. 사제 후보는 의식이 성공하거나 포기할 때까지 반복해서 머리를 바다에 담근다. 결국 폐 안을 바닷물로 가득 채우고, 심장이 멈추고, 피부가 푸르죽죽해질 정도로 변한다. 그제서야 사제 후보를 물 밖으로 꺼내 심폐소생술을 한다.

일부는 살아나지만, 대부분은 영영 돌아오지 못한다.

이렇게 되살아난 자만이 비로소 사제가 된다.

히야니스와 옌코스가 바로 그런 희박한 확률을 뚫고 사제가 된 사람들이었다.

적어도 사후세계에 한 발을 담가야지만 그들의 신과 다시 연결될 수 있는 것이다.

이렇게 살아있으면서 사후세계를 연결하는 기적을 가진 신앙은 오직 소금 의회뿐이었다. 불사 교단은 사후세계가 아예 없었으니까.

아이작은 그것을 이야기하고 싶었다.

"익사자 왕이 수행하려는 의식은 '달우물 의식'일 겁니다."

"...그게 뭡니까?"

소금 의회 의장인 옌코스조차도 처음 듣는 의식이었다. 사실 소금 사막의 매장 이후로 단 한 번도 치러진 적 없는 의식이었기 때문이었다.

"사람을 산 채로 사후세계로 보냈다가, 다시 꺼내오는 의식입니다."

생환 의식도 충분히 위험하다. 하지만 말할 것도 없이 '달우물 의식'은 그보다 한층 더 위험한 의식이었다. 사후세계로 보내지는 사람과 시전자, 그리고 주변 모두까지 위험하게 만들 수 있는 의식.

말 그대로 깊은 우물 속에 들어가 달을 퍼오는 것처럼 허무맹랑하고 위험한 의식이다.

옌코스가 황당하다는 듯 물었다.

"그런 게... 가능합니까?"

"제가 알기로는 소금 의회만이 가능한 기적으로 알고 있습니다."

"불사 교단은? 그들은 사후세계 문을 마음대로 열어젖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만."

"놈들은 사후세계를 지상에 끌어내리는 겁니다. 그래서 불사 교단에게는 사후세계라는 것이 아예 없지요. 지상이 그들의 시작이자 끝인 세계니까."

"익사자 왕이 왜 그런 의식을 치르려는 겁니까?"

"생환 의식에서 돌아온 사람들은 사후세계에서 신의 목소리를 듣고 사제가 되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신이 뭐라고 말했는지 기억하는 사람은 없지요?"

아이작의 말에 옌코스와 히야니스 모두 고개를 끄덕였다. 그들 모두 사제의 지위를 얻었지만 신의 목소리는 기억하지 못했다. 그제야 히야니스는 뭔가 깨달았다는 듯 말했다.

"익사자 왕은... 신께 전령을 보내려는 거군요."

아이작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온전히 신과 대화하고 그 내용을 기억해서 돌아오려면 산 육신을 사후세계로 보냈다가 다시 돌아오게 해야 한다는 결론을 내린 것이다. 몰락해 가는 그들의 신앙에 고난이 언제 끝나는지, 언제 소금 사막을 깨부수고 그들의 성전이 다시 모습을 드러내는지 묻기 위해.

의원들은 한참 동안 침묵에 빠졌다.

아이작이 의원들도 모르는 지식들을 어떻게 알고 있는지는 모른다. 다만 그가 고어를 알고 익사자 왕과 대화할 수 있는 거의 유일한 사람인 시점에서 의심은 의미가 없었다.

히야니스는 손을 들었다.

"그렇다면 제가 틀렸군요. 의장님."

"지금은 잘잘못을 따지는 것이 의미가 없으니 접어두지요, 히야니스. 익사자 왕의 의도를 잘못 이해한 것은 우리 모두 마찬가지였으니."

"아니, 그래도 불경에 대한 책임은 져야 합니다."

히야니스는 주먹을 꽉 쥐고 일어서며 말했다.

"제가 달우물 의식에 자원하겠습니다. 운 좋은 몸이니 이번에도 통하겠지요."

그 말에 옌코스는 눈살을 찌푸렸다.

"무슨 소릴. 의장으로서 죄를 지은 것은 저도 마찬가지입니다. 고어도 못하면서 신께서 하시는 말씀은 제대로 들을 수 있겠습니까? 제가 더 젊고 지식도 많으니 제가 가는 게 맞습니다."

"아니죠. 그러니 여기에 남는 게 맞지 않겠습니까? 살날이 창창하신 분이니...."

"잠깐."

아이작은 이 아웅다웅하는 남녀를 제지했다. 그들이 싸우는 이유가 정말 죄 사함을 위한 건지, 신과 대화할 기회를 놓치고 싶지 않기 때문인지 알 수 없었으나 이 의식에는 의욕과 동기보다 의욕과 동기가 아닌 다른 것들이 더 중요했다.

"생환 의식 때 살아 돌아오는 사람들에겐 일관된 패턴이 없다고 들었습니다."

아이작의 말에 둘의 말이 뚝 멎었다. 아이작 말대로 신앙심이 대단히 깊거나 많은 사람들의 존경을 받았다고 해서 생환 의식 때 살아 돌아올 확률이 딱히 더 높지는 않았다.

"사후세계로 보내진 순간 어디에 떨어질지 아무도 모른다는 것이지요. 극히 소수의 사람만이 운 좋게 소금 의회의 사후세계로 떨어졌다가 운 좋게 돌아온다는 뜻인데, 두 분은 그러실 수 있습니까?"

"한번 갔다 왔으니 충분히 운이 좋은...."

"이번엔 그 운이 좋지 않다면? 달우물 의식이 쉬운 의식이었다면 익사자 왕은 지난 천 년 동안 몇 번은 수행했을 겁니다. 사제를 만드는 데만도 한 해에 십수 명씩 죽어 나가는데, 신과 대화하고 깨우기 위해서라면 천 년 동안 천 명을 못 죽일 이유가 없지요."

잔혹한 이야기지만 신들의 권능으로 죽어 나가는 사람의 수를 생각하면 아무것도 아니었다.

즉, 이 거대한 문어 천사에게 달우물 의식은 최후의 수단이었다. 그저 기다리기에 천년은 너무 길다. 사후세계가 단절된 상황에서 이런 의식은 익사자 왕에게도 위험부담이 적지 않을 것이다.

"아마도 이번 의식이 실패한다면 두 번째 기회는 없을 겁니다. 그리고 만약 실패한다면 익사자 왕이 그냥 실망하는 정도로 끝낼 것 같지는 않군요."

히야니스와 옌코스는 다시 말을 잃었다.

옌코스는 침묵 끝에 다시 입을 열었다.

"그러면 성배기사께서는 어떤 조건이 더 필요하다고 생각하십니까?"

"우선 운은 당연하고."

아이작은 손가락을 하나씩 펼쳤다.

"사후세계에서 무엇을 만나도 맞설 수 있는 강건한 체력, 어떤 위기 상황에서도 대범하게 대처할 수 있는 능력, 고어에 능숙한 언어 실력, 누구에게나 호감을 사는 매력. 무엇보다 사후세계에서도 버틸 수 있는 경건한 신앙심을 바탕으로 한 신의 강력한 가호를 갖춘 사람이 필요하겠지요."

아이작이 쉴 새 없이 펼치는 손가락들을 보고 사람들은 황당하단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이내 옌코스는 한 대 얻어맞았다는 표정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설마 지금 말씀하시는 사람이...."

***

아이작은 익사자 왕을 향해 입을 열었다.

"에이단 베어베크를 추천합니다."

113화. 바다 깊은 곳에 (6)

익사자 왕은 긴 침묵 끝에 대답했다.

[그건 누구지?]

익사자 왕의 질문은 모두의 의문을 대변하고 있었다.

히야니스는 에이단과 같은 반 인신 공양파였기 때문에 그를 잘 알지만, 옌코스를 비롯한 다른 선장들은 에이단이 누군지 모르고 있었다.

하지만 아이작은 당당하게 말했다.

"원하는 물건을 얻기 위해서라면 기꺼이 성벽조차 기어오르는 도둑이자, 소금 의회를 위해서라면 목숨도 아끼지 않는 광신도이며, 목적을 위해서 다른 신앙의 사제 수발도 기꺼이 드는 유연한 사고를 갖춘 상인입니다."

뒤에서 에이단의 딸꾹질 소리가 들려왔다. 익사자 왕은 더 설명하라는 듯 침묵했다.

"고고학 지식도 훌륭하고, 고어도 좀 알더군요. 저만큼 훌륭하지는 않습니다만 어차피 저를 보낼 생각은 아니시겠지요. 그렇다고 다른 선장들을 보내시겠습니까? 그들은 이미 저승 한번 갔다 온 시점에서 인생의 운을 다 썼다고 봅니다."

이제는 옌코스와 히야니스도 딸꾹질하기 시작했다.

"무엇보다 에이단은 독신입니다. 죽어도 슬퍼해 줄 가족이 없다고 하더군요. 최고 아닙니까?"

파도가 출렁이다 부딪히는 소리가 잔잔하게 울려 퍼졌다.

짙은 구름 때문에 달은 보이지 않았다. 아이작은 은은하게 불어오는 바람 속에 짠 냄새가 더 강해진 것을 느꼈다. 천사의 존재는 그 자체만으로도 주변 모든 환경에 영향을 미친다. 익사자 왕처럼 솔직한 천사라면 더더욱 그렇다.

다소 거칠어진 파도, 음산하게 흘러가는 구름, 바람에 실려 오는 짠맛.

모든 것이 익사자 왕의 감정을 얼굴 대신 보여 주고 있었다. 정작 그는 파도 아래서 군청색 눈을 불태우고 있을 뿐이지만.

"...저런 말로 과연 설득이 될까요?"

에이단은 불안감을 감추지 못한 표정으로 두 선장을 향해 속삭였다. 그는 고고학자이자 상인으로서 안 가 본 데가 없다. 고고학자가 사실상 도굴꾼이나 다름없다는 것을 생각하면 사후세계도 크게 다르지 않을지도 모른다.

"솔직히 불안하지요. 당신이 우리보다 어떤 면에서 더 탁월한지도 잘 모르겠고."

옌코스는 불편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그녀의 시선은 아이작의 등으로 향했다.

"하지만 성배기사가 저렇게나 당신을 강력하게 추천하고 있으니 믿는 수밖에요."

사실 그녀는 아이작이 아이작 자신을 추천할 줄 알았다. 그가 열거해 놓은 조건을 듣고 보니 그 이상으로 적합한 상대가 도저히 생각나지 않았던 것이다. 그래서 에이단을 언급했을 때에는 실망감마저 느꼈다. 아이작은 애초에 다른 신앙 소속이라 보낼 수 없는데도.

"희생이라면 얼마든지 할 수 있어요. 저 역시 사제가 되기로 한 시점부터 목숨을 바다에 맡기지 않았습니까. 문제는 이 의식을 다시 치르기 어려울지도 모른다는 거죠."

옌코스는 신경질적으로 중얼거렸다. 그녀의 말에 히야니스 역시 어렵게 고개를 끄덕였다.

익사자 왕은 생각할 시간이 필요한 듯 좀처럼 대답을 하지 않았다. 히야니스는 긴장감을 누르기 위해 주변을 둘러보았다. 그들이 익사자 왕과의 대화를 위해 멈춰 있던 사이, 용맹한 연어호를 뒤쫓아온 배─거의 50여 척이 주변에 늘어서 있었다.

'이 정도면 노르덴 항에 있던 배들은 거의 다 나온 셈이군.'

만약 계획대로 익사자 왕과 싸워야 했다면 저 배들 중 약 절반은 적이 되었을 것이다. 이미 옌코스와 포탄을 나누고 있을지도. 하지만 익사자 왕에 비하면 배 몇 척쯤은 문제도 아니다.

'그러고 보니 의도치 않게 익사자 왕을 포위한 형태가 됐는데.'

옌코스는 포위가 아니라 보호라고 항의하겠지만, 익사자 왕과 싸울 생각을 하고 있던 히야니스는 포위라고 무의식중에 생각했다. 그는 문득 다른 배의 선장들이 자지 않고 이 대화의 결과를 기다리고 있을 것이란 사실을 깨달았다.

그리고 히야니스는 뭔가 이상하다고 생각했다.

"옌코스 의장님?"

"예?"

"해류의 움직임이... 아니, 잠깐만. 뭐 좀 확인해 보고 오겠습니다."

히야니스의 머릿속에 별로 가정하고 싶지 않은 가능성 하나가 떠올랐다. 그는 제발 자신이 착각하고 있기를 간절히 바라며, 조용히 뒤로 빠졌다.

***

[그건 너의 추천인가, 소금 의회의 결정인가?]

긴 침묵 끝에 나온 익사자 왕의 대답이 나오자, 아이작은 옌코스에게 통역해주었다.

"성배기사가 추천했고, 소금 의회는 받아들였습니다."

[그런가. 알겠다.]

익사자 왕은 의회가 결정했다는 말에 순순히 반응했다.

게는 그걸로 임무를 다했다는 듯 거품을 더 이상 피워올리지 않고, 난간 밖으로 기어나가 떨어졌다. 그리고 이내 바다에서 거품이 들끓어 오르며 우렁찬 익사자 왕의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나는 위험에 기꺼이 뛰어들 자를 요구했고, 너희들은 지원자를 제안했다. 나는 여기에 내 판단을 개입시키지 않겠다. 이 의식이 성공하든 실패하든, 기쁨과 슬픔 모두 함께 나누리라.]

바다를 진동시키는 그의 목소리는 선언이자 도발이었다. 그의 선언에 호응하듯 바람이 거칠게 불기 시작했다. 하늘의 구름은 요동치며 더욱 빠르게 흘렀다.

[의식을 시작하자!]

"바로 말입니까?"

아이작은 익사자 왕의 빠른 움직임에 당황했다. 천년을 기다린 끝에 내린 결정이다. 솔직히 좀 더 철저한 준비와 대비가 있을 줄 알았다. 하지만 익사자 왕은 오래 끌고 싶지 않은 모양이었다.

[방해꾼이 있을지도 모른다. 우리가 지금 이 상태 그대로를 유지하길 바라는 자들도 있을 테니까.]

아이작은 문득 구름이 익사자 왕의 머리 위를 중심으로 회전하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가끔 불안정하게 바람이 몰아닥칠 뿐, 파도가 잔잔해서 느끼지 못했는데 그들은 사실 이미 태풍 속에 들어와 있었다. 아이작은 익사자 왕이 왜 태풍을 미리 불러냈는지 알아차렸다. 외부의 방해를 막기 위해서였다.

[우리가 이미 접촉한 시점부터 우리를 주시하는 자들이 있을 것이다. 방해를 막으려면 최대한 빨리 일을 진행하는 것이 좋겠지. 에이단 베어베크라는 자는 여기 있나?]

"예. 여기 있습니다."

에이단은 여전히 과연 자신이 이 일에 합당한 자인지 의문이 있었다. 하지만 이 의식이 영예로운 일이라는 것은 알고 있었으며, 거부할 생각 따위는 추호도 없었다. 만약 자신의 죽음이 의회가 다시 일어서는 데 도움이 된다면 기꺼이 받아들일 생각이었다.

에이단은 아이작이 준 성물을 손에 꼭 쥐고 앞으로 나섰다. 바다에서 거대한 촉수 하나가 흘러나오더니 에이단의 이마에 바닷물을 한점 찍었다. 차갑고 섬뜩한 기운이 그의 머릿속으로 스며들었다.

동시에 에이단은 허물어지듯 주저앉았다. 아이작이 급하게 그를 붙잡았지만, 완전히 의식을 잃은 상태였다.

[그의 육신과 영혼을 우르반수스에 맞게 강화하는 중이다. 우르반수스와 이 세계는 영적인 밀도가 맞지 않는다. 어지간히 강한 영육을 갖추지 못하면 영혼이 짓눌려 터지거나 빙의당할 테니까.]

아이작은 에이단을 편하게 눕혀 놓았다. 옌코스도 갑자기 시작된 의식에 당황했지만, 사제답게 걸맞는 의식의 보조를 위해 성물을 꺼내 들고 기도문을 암송하기 시작했다. 그녀는 에이단의 머리맡에 무릎 꿇고 앉아 그의 몸에 축복과 가호를 걸기 시작했다.

***

촤아아아아....

바닷물이 폭포수처럼 흘러내리면서 익사자 왕이 서서히 몸을 일으켜 세우기 시작했다. 수백여 미터에 이르는 몸통과, 하늘을 떠받치는 기둥 같은 촉수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그를 둘러싼 배들이 일제히 휘청거리며 비명 지르는 모습이 보였다.

'저 문어 다리에 비하면 내 촉수는 차라리 귀엽군.'

하지만 두 번째로 보는 아이작은 경외감보다 딴생각에 젖어 있었다.

[이름 없는 혼돈이 당신을 주시합니다.]

'...내 촉수가 빈약하거나 못하다는 게 아니라, 적당하게 아담해서 좋다는 뜻이었지. 촉수는 크기보다 강도와 기술이 중요한 법이라니까?'

변명하듯 둘러댄 거긴 했지만 아이작은 정말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다.

익사자 왕의 촉수가 거대하고 섬세할지 모르지만, 그 근간은 결국 생물의 살점이다. 하지만 아이작의 촉수는 강철도 씹어먹는 괴물이었다.

아이작은 흘러내리는 바닷물 속에서 군청색 눈동자가 자신을 응시하는 것을 보았다. 그의 눈동자는 어째선지 다시 불타오르고 있었다.

[그런데 궁금하군. 성배기사. 너는 무엇을 위해 이 위험을 부담하고 있나?]

'위험이랄게 있나? 통역해주는 게 전부인데.'

라고 생각하려던 아이작은 그것이 지나치게 순진한 생각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아이작은 어떤 상황에서건 살아남을 자신이 있지만, 다른 사람들에게는 다른 신앙의 천사를 만난다는 것 자체가 목숨을 거는 일이었다.

게다가 의식이 성공하든 실패하든 여파가 얼마나 클지 모르고, 실패한다면 실망한 익사자 왕이 때마침 그 장소에 있었던 다른 신앙의 성기사와 주교를 안주 삼아 씹으면서 스트레스를 풀려고 할지도 모른다.

"짧은 시일 안으로 큰 변화의 시기가 도래할 겁니다. 제 보상은 그때 소금 의회가 협조해주는 것으로 충분합니다."

그것이 아이작이 처음부터 가졌던 목적이었다.

아이작은 여명군을 염두에 두고 말하고 있었다. 하지만 외부 변화에 둔감한 익사자 왕이 여명군에 대해 잘 모른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심지어 불사 교단에 대해서도 굉장히 모호하게 이해하고 있을 뿐이었다. 익사자 왕보다도 700년이나 어린 신생 교단이니 당연했다.

[모호한 요구로군.]

"선명한 요구입니다. 제 편에 서달라고 요구할 때, 소금 의회는 제 편을 들어주시면 됩니다. 지금처럼 소금 의회가 여기저기 눈치 보며 나약한 모습을 보이는 것은 제가 원하는 바가 아닙니다."

아이작은 일부러 당장 받을 수 있는 성물이나 보물이 아니라, 미래를 제안했다. 익사자 왕으로서는 충분히 납득할 수 있는 사안이었다. 소금 의회의 신이 자리를 비운 지금, 그들을 일방적으로 움직일 수 있는 것은 익사자 왕뿐이었으니까.

[좋다.]

아이작이 희열에 찬 미소를 짓기 전에 익사자 왕이 말을 이어갔다. 중얼거리는 그의 말에는 어딘가 공허함과 쓸쓸함이 담겨있었다.

[빛의 법전은 혼혈을 인정하지 않을 텐데, 몰래 숨어있는 것인가?]

"아무래도 그렇지요. 어쩌겠습니까?"

[소금 의회는 네 피의 죄를 눈감아줄 수 있다.]

익사자 왕의 은근한 회유에 아이작은 미소를 지었다.

그는 아이작더러 지금이라도 빛의 법전을 배교하라고 제안하고 있었다. 사실 아이작은 애초부터 빛의 법전이 아니기 때문에 배교하고 자시고 할 것도 아니었지만, 그의 제안을 받아들일 수도 없었다.

[이름 없는 혼돈이 당신을 주시합니다.]

"죄송하지만 제가 모시는 분은 질투가 강한 분이라."

빛의 법전은 비인격신이기 때문에 질투가 강하고 자시고 할 것도 없다. 하지만 익사자 왕은 그것을 대충 아이작의 완곡한 거절 정도로 이해했다.

[그런가. 하긴, 행운이 몇 년 사이에 두 번이나 올 리가 없지.]

그는 실망한 기색도 없이 중얼거렸다.

사실 그의 입장에서는 에이단보다 아이작을 대신 전령으로 선택하고 싶었을 것이다. 옌코스가 그렇게 느꼈듯, 이 임무에 훨씬 더 적합한 사람이었으니까.

하지만 아이작은 별로 사후세계에 발을 딛고 싶은 마음이 없었다.

'거기서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궁금하긴 하지만 또 발을 디뎠다간 무슨 난리가 날지 모르니... 응?'

아이작은 문득 익사자 왕이 지나치듯 한 말에서 위화감을 느꼈다. 익사자 왕이 내뱉은 단어 하나가 사소하지만 신경 쓰였다. 그러나 그가 익사자 왕에게 무슨 말인지 되묻기 전에 그의 선언이 다시 이어졌다.

[그럼 의식을 시작하겠다.]

아이작은 궁금함을 억누르고 원활한 의식을 위해 뒤로 물러나 있기로 했다. 이제 통역사가 할 일은 없었다. 나머지는 모두 소금 의회의 사제와 천사가 진행할 것이다.

그때 등 뒤에 무언가 물컹한 감촉이 닿았다. 익사자 왕이 그가 물러나지 못하게 막고 있었다.

[여기 남아서 의식을 도와주면 좋겠군.]

간단한 도움 요청일 수도 있었다.

하지만 아이작은 다시 한번 얕은 위화감을 느꼈다.

'행운이 두 번이나 올 리 없었다는 것은, 첫 번째 행운이 있었다는 뜻이다.'

자신만큼이나 뛰어나고 비범한 다른 신앙의 성기사가 기꺼이 익사자 왕의 제안을 받아들일 정도의 행운이. 그리고 아이작은 기나긴 세월이면 몰라도 '몇 년 사이'라면 그 정도 성기사는 한 명밖에 떠오르지 않았다.

'칼센 밀터? 칼센 밀터가 익사자 왕과 만났었나?'

익사자 왕은 불사 교단조차도 잘 알지 못할 정도로 외부 세계와 단절된 존재다.

그런데 그런 그가 칼센 밀터는 어떻게 알고 있지?

"아이작 님! 의식을 중단하십시오!"

아이작은 갑자기 들려온 목소리에 고개를 돌렸다. 배 후미에서 히야니스가 다른 배와 장거리에서 소통하기 위해 사용되는 발광 신호기를 든 채 소리 질러대고 있었다.

발광 신호기에 비친 그의 안색이 창백했다.

"속았습니다! 익사자 왕은 달우물 의식을 할 생각이 없습니다!"

114화. 익사자 왕 (1)

"무슨...."

순간 아이작은 반사적으로 몸을 움직였다. 히야니스의 말이 진실인지 아닌지 판가름할 시간이 없었다. 계속 신경 쓰이던 위화감과 '달우물 의식을 할 생각이 없다'라는 가정만으로 움직일 이유는 충분했다.

그가 몸을 튕겨 떠오른 순간, 아슬아슬하게 익사자 왕의 촉수가 그의 몸이 있던 자리를 스치고 지나갔다. 용맹한 연어 호의 난간과 갑판이 박살 나면서 배가 크게 출렁였다. 옌코스는 경악하며 다급히 에이단이 바다에 빠지지 않도록 붙잡았다.

아이작은 돛대를 붙잡고 착지하면서 생각했다.

'달우물 의식을 할 생각이 없다고? 왜? 전령을 보내서 신을 깨울 생각이 아니었던 건가?'

익사자 왕의 촉수가 다시 아이작을 노리고 날아왔다. 문어의 얼굴은 표정을 가늠하기가 어려웠다. 흐물거리는 점액질로 뒤덮인 표피 아래 얼굴은 무표정할 뿐이었다. 다만 거칠어진 바람과 파도가 그의 다급해진 감정을 대신하고 있었다.

콰쾅! 아이작은 다시 회피했지만 용맹한 연어호의 돛대가 한 번에 박살 나 부서졌다. 이걸로 범선인 용맹한 연어호는 다른 배가 끌어 주기 전까지 움직일 수 없게 되었다.

이 바다 위에 완전히 고립됐다는 뜻이었다.

아이작은 지금 주어진 단서와 상황들을 조합했다.

'소금 의회는 익사자 왕의 전언을 오역해서 혼란스러워하다 못해 분열한 상태였지. 결국 의회가 양분되어 익사자 왕을 처단하기 위해 배를 끌고 나왔고. 그 와중에 어인들의 습격을 당해서 침몰하기 직전, 익사자 왕의 개입으로 가까스로 살아남았다. 그리고 자신의 전언이 오역임을 밝혀주고 사후세계로 전령을 보내는 달우물 의식을 진행할 것이라고 밝혔다.'

아이작은 문득 되짚어 보다가 처음부터 문제가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애시당초 아무리 익사자 왕의 사투리가 심해도 의식에 참가할 자원자와 인신 공양에 바칠 제물을 헷갈릴 정도로 모호할 정도로 말할 수 있나? 중요한 의식인 만큼 익사자 왕은 정확하게 말했어야 했다.

하지만 그게 아니라면.

애당초 일부러 모호하게 말한 것이라면?

'설마 오역은 내가 한 것이었나?'

실제로 아이작은 원문을 듣지 못했다.

어쩌면 정말 소금 의회 의원들은 정확하게 번역한 것이었을지도 모른다. 일부러 오해하기 쉬운 시적인 단어들로 채운 익사자 왕의 전언을.

"이 새끼, 진짜 인신 공양을 받을 생각이었나!"

***

아이작의 분노 담긴 일갈에 시선이 집중되었다. 히야니스는 이를 갈았고, 옌코스는 눈을 부릅뜨고 숨을 멈췄다. 익사자 왕은 촉수 휘두르기를 멈추고 아이작을 응시했다.

더 이상 아이작을 잡기 위해 촉수를 휘둘러댔다가는 통째로 배를 가라앉힐 판이었다. 때문에 그는 아예 촉수들로 용맹한 연어호를 둘둘 감았다.

배가 으스러질 듯 비명 지르는 소리가 들려왔다.

아이작은 에이단을 보호하기 위해 루앗딘 열쇠를 꺼내 들었다. 뜨거운 열기가 사방으로 발산되자 촉수들이 넘실거리며 주변에서 멀어졌다.

아이작은 깨달은 사실을 폭로하기 시작했다.

"일부러 전언을 애매하게 전해서 소금 의회를 분열시켰지! 소금 의회에서 인신 공양이라도 기꺼이 받아들일 놈과 목숨 걸고 항의할 놈을 걸러내고 싶었을 거야! 그래서 항의할 놈들이 바다로 나오면, 모조리 침몰시킬 생각으로!"

간단한 숙청 방법이다.

왕이 일부러 약한 모습을 보이거나 말도 안 되는 행동을 벌이다가 본색을 드러내는 신하가 있다면 바로 제압하는 것이다.

무엇을 위해? 뻔한 일이다.

신으로부터 연락이 두절된 천사는 교단의 새로운 신이 되기로 한 것이다.

[억지를 쓰는군. 성배기사. 그러면 내가 왜 너희들을 어인들로부터 구했겠나?]

폭로를 당하는 입장임에도 익사자 왕의 말투는 담담했다. 어차피 아이작이 탄 배를 붙잡았으니 구구절절 변명할 필요 없으나, 한번 들어나 보자는 투였다.

거기에는 압도적인 존재의 내려다보는 시선이 깔려있었다.

아이작은 발악하듯 외쳤다.

"애초에 어인들의 습격이 네 지시였으니까!"

이 정도 어인들의 규모와 조직력은 비정상적이다. 그것은 히야니스도 이미 지적한 것이었다.

하지만 천사가 개입했다면 말이 된다. 익사자 왕은 다른 소금 의회 신도들로부터 욕먹지 않기 위해 대신 손을 더럽혀 줄 용병을 구한 것이었다.

"인신 공양을 받고 신의 반열에 오르게 되면 어인들도 구원해주겠노라고 약속해줬겠지! 그들이 잃어버린 신을 대신해주겠다고! 소금 의회와 어인들을 아우르는 신!"

어인들의 뿌리는 소금 의회와 같다고 했다. 다만 그들은 바다로 돌아가 다른 고대신을 섬기는 길을 선택했고, 소금 의회는 바다 위에 남았을 뿐이다. 그러니 익사자 왕이 다시 그들을 받아들이는 것도 어색하지 않았다.

이 경우에는 익사자 왕이 어인들의 신으로 들어가는 것일지도 모르지만.

"그리고, 구해줬다고? 어인들의 노래가 '반역자'들만이 아니라 네게 충성을 바칠 의원들까지도 수장할 판이었으니까 개입한 거였겠지! 너는 소금 의회를 가능한 온전한 상태로 먹고 싶었을 테니까!"

실제로 옌코스 의장이 탄 배는 익사자 왕이 나타나고 얼마 되지 않아 나타났다. 익사자 왕으로서는 자신의 편이 될지도 모르는 선원들까지 바다에 처박혔다가는 곤란한 상황이었다. 그래서 어인들이 사이렌의 노래를 부르기 시작하고서야 그들을 제압해 구원하는 연출을 만들어낸 것이다.

원래대로라면 모든 것이 수월하게 진행되었을 것이다. 히야니스를 비롯한 강경파들은 바다에 처바히고, 옌코스 같은 순응파만이 남았을 것이다.

하지만 아이작이 이 배에 타면서 모든 것이 틀어졌다.

동시에, 활로도 만들어졌다.

달우물 의식이라는.

"그리고, 이제는 달우물 의식을 빙자해서 제물을 바칠 생각이겠지. 가장 간단하게 신성을 획득하는 방법이니까. 그렇게 신이 되고 싶었나, 익사자 왕?"

[하하....]

익사자 왕은 느리게 웃음소리를 냈다.

[남의 신앙에 쓸데없이 상관해서 명을 재촉하는구나, 살아있는 죄악아.]

***

툭, 투투툭.

거센 바람과 함께 비가 쏟아지기 시작했다.

이제 하늘은 형태를 마구잡이로 일그러뜨리며 태풍으로 발달하기 시작했다. 장대 같은 빗줄기가 갑판을 난타했다. 그 와중에 익사자 왕과 아이작은 서로에게 눈도 깜빡이지 않고 마주 보았다.

[역시 이런 음모는 나와 맞지 않는다고 말했었는데... 그 해골 놈들이 부추길 때 그만둘 걸 그랬군.]

익사자 왕의 말에 아이작은 이번에도 불사 교단이 개입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역시 칼센 밀터가 접촉했을 때 불사 교단이 함께 했던 모양이다.

익사자 왕은 딱히 그 사실을 숨길 생각도 없어 보였다.

"변명할 생각도 없어 보이는군?"

[오랜만에 한 대화가 즐거워 받아 주었다만, 구구절절 변명해줄 필요는 없어 보이는구나.]

익사자 왕의 말에는 여전히 내려다보는 교만함과 여유가 담겨있었다.

처음 아이작을 잡으려 했을 때만 해도 그에게는 당혹감의 기색이 역력했다. 지금 와서 이런 여유를 보인다는 것은, 이제 숨길 생각도, 필요도 전혀 없다는 뜻이었다.

사실 이게 일반적인 천사와 인간의 관계였다.

천사는 인간과 대화하지 않는다.

그들은 신의 전령이자 의지의 대변자로서 선언하고 전달할 뿐이다.

[들어라!]

아이작은 머리가 쨍할 정도로 아픈 의지가 전달되어 오는 것을 느꼈다. 아이작은 그것이 이름 없는 혼돈이 의지를 전달하는 것과 같은 방식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신앙을 사용해 의지를 전달하는 방식. 하지만 이름 없는 혼돈보다 훨씬 투박하고 거칠었다.

대신, 익사자 왕은 오역의 여지 없이 정확하게 자신의 의지를 전달할 수 있었다.

[오랜 기다림은 끝났다!]

폭풍이 거칠어지고 있었다.

배를 정신없이 뒤흔드는 풍랑 속에서 각 배들은 두려운 자연의 경이와, 폭력적으로 전달되는 익사자 왕의 목소리, 그리고 무언가 일어나고 있다는 두려움 속에서 갑판 위 난간에 매달렸다.

[나는 대답 없는 아버지를 기다리는 대신, 너희들의 앞길을 인도하려 한다!]

달우물 의식에 대해 전해 들은 선장들은 당혹감 속에서 서로를 마주 보았다.

사후세계로 전령을 보내기로 한 것 아니었나?

벌써 의식이 끝났나?

설마, 우리의 신은 돌아오지 않는 건가?

그들은 '대답 없는 아버지'에 경악하느라 뒤의 내용에 미처 신경 쓰지 못했다.

하지만 옌코스는 그 의미를 정확하게 깨달았다.

[방황하고 고통받는 표류자들아, 바다 밑의 부름을 들어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