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ebnovel

9

75화

"반응이 아주 뜨겁습니다."

젊은 사람들이 밀집하는 거리에서 개최한 상금 2천만 원짜리 광고 이벤트는 사람들 사이에서 화제가 되었다.

그도 그럴 게, 전국에서 진행한 이벤트임에도 2주가 넘는 기간 동안 각성자임을 숨기고 참여했다 들통난 일을 제외하면 단 한 명의 성공자도 없었으니까.

상황이 이쯤 되자 사람들은 상금 획득보다는 실드에 대해 더욱더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다.

"상품이 가방인 건 눈치챘나요?"

김덕배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예. 대부분 가방이 이번 이벤트와 관련 있는 건 아닌지 추측하고 있습니다."

임준일의 주장에 따라 직접적인 정보보다는 체험을 통한 경험을 주기 위해 정보 제공을 최소화했지만, 가방이 이벤트의 목적이라는 힌트는 많았으니까.

상금을 타려면 실드를 뚫고 가방을 가져와야 한다는 것에서 이미 끝난 거나 다름없지.

"디자인 평가는 어떤가요? 내가 보기엔 예뻤는데."

"호평 일색입니다."

"오케이."

디자인과 기능 모두 사람들에게 호평 일색인 상황.

이건 출시하면 무조건 품절 대란이 일어날 게 분명했다.

"미리미리 만들어 둬야겠네요, 물량 부족하지 않게."

"그런데 회장님, 이 가방 가죽 안쪽엔 회장님께서 만든 명령진을 새겨 넣어야 하지 않습니까?"

"그렇죠. 그래서 미리 만든다 한 거고."

"혹시 이것도 나중에 스켈레톤을 시켜서 만드실 예정이십니까?"

"정말 생산량이 너무 많아서 곤란할 지경이면 몰라도, 당분간은 제가 직접 할 겁니다."

스켈레톤을 이용해 마법진을 새기려면 마법진을 새겨 넣을 수 있는 도구를 또 만들어야 되는데, 그러다 그 도구가 유출되면 곤란하잖아?

게다가 스켈레톤들도 똑같은 마법진을 복사해 넣어 순식간에 수천 개씩 찍어 내는데, 고작 실드 마법 하나 정도야 누워서 떡 먹기지.

"그럼 이 가방을 회장님이 직접 만든 가방이라 홍보해도 무방하겠군요."

"내가 직접 만들었다 홍보한다고요?"

"예. SS급 각성자인 한지혁 회장이 직접 만든 가방을 사용한다는 우월감에 더해 회장님에게 직접 보호받는 느낌을 줄 것 아닙니까."

"오! 괜찮네요."

물론 나 자신에게는 아무 의미도 없는 홍보용 문구다.

애초에 세론 그룹이 수만 단위로 운용 중인 스켈레톤들이 들인 정성만 따지면 오히려 손이 더 많이 갔으니까.

하지만 구매자 입장에선 느낌이 다를 수밖에 없지.

"그리고 초도 물량은 딱 2천 개로 한정 지을 생각입니다."

"물량을 조절해서 희소성을 유지한다?"

"물론 그것도 이유이지만, 그보다는 가격이 문제입니다."

"가격이 왜요. 너무 비싼가?"

그러자 김덕배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반대입니다. 싸도 너무 쌉니다."

"엥?"

2천이 싸다고?

"일반적인 명품 가방 원가가 얼마인지 아십니까? 고작 15퍼센트입니다."

"그것밖에 안 돼요?"

"명품은 결국 이름값이니까요. 반면 저희는 어떻습니까? 인공 정수에 더해 최고급 가죽과 임준일 디자이너의 로열티 등을 생각하면 거의 천만 원에 육박합니다. 여기에 각종 유통비와 마케팅비를 더하면 저희가 얻는 이익은 더 줄어들겠죠. 그래서 2천 개씩 한정 수량으로 판매한다는 겁니다."

김덕배가 자신감 넘치는 표정으로 말했다.

"매번 새로 출시할 때마다 가격을 올리기 위해서 말이죠."

나는 눈을 빛내며 말했다.

"우리 가방은 지금이 가장 싸다?"

"정확합니다."

실드라는 확실한 기능과 빼어난 디자인.

거기에 재벌 회장이자 SS급 각성자가 직접 만들었다는 확실한 셀링 포인트를 지닌 물건이 매번 새로운 물량이 풀릴 때마다 가격이 올라간다면 사람들 입장에서는 한시라도 빨리 사는 게 이득이라는 생각이 팽배해지겠지.

당연히 그럴수록 우리 가방은 내놓는 족족 품절이 될 테고.

"그렇게 가방이 계속해서 품절을 이어 나가면 명품으로서의 입지는 더욱 확고해질 겁니다."

나는 엄지를 들어 올리며 말했다.

"굿굿. 저는 부회장님만 믿을 테니 알아서 하세요."

"알겠습니다."

나는 달력을 보고 손을 비비며 말했다.

"이제 2주 남았네요."

앞으로 2주 뒤 실드 가방을 임준일의 이름을 건 패션쇼에서 화려하게 등장시킨다.

나는 환하게 웃으며 말했다.

"명품 가방 시장 한번 먹어 봅시다."

*

임준일의 패션쇼에 초대를 받은 유명 인플루언서.

하지만 그녀의 관심사는 패션쇼가 아닌 다른 곳에 가 있었다.

"오늘인데··· 어디서 공개하는 거지?"

세론에서 갑자기 주최한 이벤트는 그야말로 장안의 화제였다.

투명한 방어막을 만들어 소유자를 보호해 주는 가방이라니.

물론 공개된 정보가 워낙 없다시피 하기에 추측이긴 하지만, 만약 그게 정말이라면 SNS로 일상을 공유하며 스타가 된 그녀에게 가장 필요한 물건이었다.

"팬이랍시고 스킨십해 오는 놈들 전부 막아 낼 수 있을 것 아니야. 그것도 자연스럽게."

일상을 공유하여 유명세를 얻고 많은 돈을 벌기는 했지만, 역설적이게도 그 유명세는 그녀를 유명하게 만들어 준 일상을 무너트렸다.

너무 많은 사람들이 그녀를 알아보니 평범한 일상 자체를 보낼 수가 없었고, 심지어 그중엔 음흉한 속내를 지닌 채 접근하는 사람도 있었으니 그로 인해 외출 기피증까지 걸릴 지경.

그런데 이런 가방이 있으면 언제 어디서든 스스로를 지킬 수 있으니 안심하고 생활할 수 있을 것 아닌가.

"디자인도 예쁘던데. 아. 빨리 갖고 싶다."

그렇게 딴생각을 하는 사이 본격적으로 시작된 패션쇼.

심드렁하게 모델들을 바라보던 그녀는 모델들이 들고 있는 가방을 보고 놀란 표정으로 말했다.

"어!"

그 가방은 바로 그녀가 방금 전까지 사고 싶어 했던 바로 그 가방.

그때 그녀 주변에서도 그녀와 비슷한 반응이 터져 나온다.

"저 가방 그거잖아!"

"보호막!"

"설마 여기서 공개하는 거였어?"

사전에 그 어떤 언질도 없었기에 당황해하는 그녀와 주변 사람들이었지만, 그런 당황은 곧 환희로 바뀌었다.

여기서 공개를 한다는 건 다시 말해 오늘 직접 실물을 보고 살 수 있는 기회가 왔다는 거나 다름없으니까.

그 후로도 옷은 계속해서 바뀌지만 가방만은 바뀌지 않고 똑같은 걸 계속 들고 나오는 모델들.

그렇게 사람들의 기대감 속에 패션쇼가 모두 끝났다.

그러자 무대 뒤에서 가방을 들고 나타난 임준일.

"반갑습니다. 임준일입니다."

임준일이 주변을 돌아보며 말했다.

"패션쇼는 즐거우셨나요?"

그 말에 사람들이 말했다.

"최고였습니다!"

"역시 임 디자이너십니다."

그러자 임준일이 씨익 웃으며 말했다.

"그럼 다행이군요. 하지만 저도 잘 압니다. 여러분이 지금 다른 것보다 더 관심 있어 하는 것이 무엇인지를요."

임준일이 가방을 들어 올리며 말했다.

"바로 이 가방 아닙니까?"

임준일이 가방을 들고 런웨이를 천천히 걸으며 말했다.

"이 가방을 왜 하필 제 패션쇼에서 공개했을까요. 이유는 간단합니다. 이 가방은 제가 디자인한 물건이기 때문이죠."

그 말에 인플루언서가 눈을 초롱초롱 빛내며 말했다.

"심지어 임준일이 디자인한 거였어? 미친 대박."

"어디 그뿐입니까? 이 가방을 만드는 데는 세론 그룹 한지혁 회장님도 참여하셨습니다. 한 회장님께서 직접 이 가방에 보호막, 우리는 실드라 부르는 기능을 추가하도록 명령진을 그려 넣으셨지요. 제가 디자인하고 한 회장님이 직접 한 땀 한 땀 제작한 가방. 그것이 바로 여러분이 궁금해하시던 이 가방의 정체입니다."

그 말에 초대받은 사람들이 모두 수군거리며 말했다.

"대박인데? 한 회장이 직접 만들었다고?"

"SS급 각성자인 재벌 회장이 직접 손으로 만든 실드 가방이라니. 이걸 어떻게 참아?"

그런 사람들의 반응을 즐기며 임준일이 말했다.

"성능 시험은 이미 다른 곳에서 충분히 했으니 따로 하지 않겠습니다. 그냥 각성자를 제외하면 이 실드 가방을 뚫을 수 있는 일반인은 없다는 것 하나만큼은 확실하게 말씀드리죠. 물론 총까지 막지는 못하지만요. 하하."

그렇게 가벼운 농담을 던진 임준일이 말했다.

"초도 물량은 2천 개. 그중 여기 참석해 주신 200여 분께 먼저 한 개씩 구입할 수 있는 기회를 드리겠습니다. 나머지 물량은 조만간 백화점에 정식 입점하여 판매할 예정이고요. 자. 말이 길었군요."

임준일이 가방을 들어 올리며 말했다.

"세론 그룹이 만든 명품 브랜드 프로티지의 첫 실드 가방, 판매 시작하겠습니다."

*

세론에서 새로이 명품 가방으로서 론칭한 브랜드 프로티지.

프로티지는 프랑스어로 지키다는 뜻이었다.

그냥 프랑스어로 하는 게 좀 있어 보이는 것 같아서 내가 골랐지.

아무튼 그렇게 정식으로 론칭한 프로티지의 실드 가방은 임준일의 패션쇼를 시작으로 어마어마한 관심을 불러일으켰다.

참석자 모두가 SNS에서든 아니면 연예계에서든 모두 인지도 있는 유명인들인데, 이들에게 첫 실드 가방이 주어졌으니 가만히 있을 리가 없지 않나.

자신들의 SNS에 실드 가방을 인증하고, 거기에 더해 성능 실험 영상까지 제작하며 알아서 대신 홍보를 해 주는 유명인들.

당연히 유명인들의 팬들은 그런 유명인들이 극찬하면 극찬할수록 가방에 대한 소유욕이 치솟았다.

그리고 그런 주목을 받으며 압구정 백화점에서 정식으로 오픈한 프로티지의 첫 오프라인 매장.

그리고 그 결과는 당연하게도······.

"첫날 판매분으로 준비한 600개가 완판됐습니다."

순식간에 팔려 나갔다.

600개가 겨우 2시간 만에.

"대단하네요."

"사실 예견된 상황이긴 합니다. 어제 저녁부터 텐트까지 치고 기다리던 사람이 이미 500을 한참 넘었었으니까요."

가방을 사기 위해 전날부터 기다리는 사람들.

물론 그중엔 되팔이들이 상당수 있겠지만, 되팔이들이 있다는 건 그만큼 원하는 사람이 많다는 방증이나 다름없다.

"이제 하루 200개씩만 한정 판매 해 1차 물량을 모두 판 다음, 3주간 시간을 둔 다음에 2차 물량을 2,200에 판매하는 식으로 완판 때마다 2백씩 늘릴 예정입니다."

김덕배가 생각하는 최종 금액은 3천.

이것보다 더 낮으면 명품으로서의 가치가 훼손되고 이보다 더 높으면 접근성이 너무 떨어진다며 정한 금액이었다.

나 역시 그 정도면 수익성도 괜찮으니 만족이었고.

"실드에 대한 불만은 없던가요?"

"아예 없는 건 아닙니다. 예를 들어 주변에 사물이 많으면 실드가 그 사물 모양에 맞춰 찌그러지는 데에 대한 불만이 있습니다."

나는 이번 실드 가방을 만들며 실드 범위에 생성을 방해하는 방해물이 있으면 그 모양대로 찌그러진 모양이 나오도록 고안했다.

주변에 장애물이 많은 현대 사회의 특성을 고려해서 그렇게 만들었지.

하지만 모양이 그럴 뿐이지 보호 능력엔 아무 문제가 없건만, 아무래도 겉으로 보이는 걸 중요시하는 명품족들이 무리해서 장만한 거다 보니 그런 불만이 튀어나온 것 같았다.

"그거야 외관상 문제인 데다 방해물 없는 곳에서 다시 시전하면 그만인데 무슨 상관이에요? 그냥 무시하세요."

"알겠습니다."

"그 외에 다른 건?"

"없습니다."

나는 히죽 웃으며 말했다.

"좋네요."

이렇게 프로티지가 완전히 명품으로 자리 잡으면 온갖 실드 명품들을 양산하는 거다.

"프로티지 로고가 보이면 감히 건드리지도 못하는 수준으로 만들자고요."

"물론입니다. 아. 그리고 제가 너튜브에서 실험 영상을 봤는데, 실드로 비를 막는 영상이 있었습니다."

"비를요?"

"예. 그 아이디어를 적용해서 핸즈프리 실드 우산을 만드는 건 어떻겠습니까?"

"오오! 그거 좋네!"

강도를 약하게 해서 위에만 실드를 생성하여 우산으로 쓴다.

이거야말로 실용성의 끝판왕 아닌가.

물론 비를 막아 낼 때마다 마력이 소모되는 돈지랄 마법 무구지만, 애초에 그걸 감수할 만한 재력의 사람들만 사 갈 테니 문제될 것도 없다.

"오케이. 다음 라인업은 그걸로 합시다."

*

실드 가방의 완판 행렬로 초도 물량이 동나고 2차 물량이 2,200으로 팔리기 시작하자 광풍은 더욱 거세어져 갔다.

프로티지에서 대놓고 원가 비율이 높다며 앞으로 가격을 계속 올릴 거라 공언한 덕분에 되팔이들 가격까지 올라가며 그야말로 나오는 족족 모조리 매진되는 실드 가방.

그때 그다음으로 등장한 게 핸즈프리 실드 가방이었다.

기존 실드 가방에 우산 기능을 추가한 제품으로 가격은 무려 3천만 원.

물론 이 역시도 나오자마자 모조리 팔려 나가며 프로티지의 이름을 더욱더 높여 주었다.

그 후로 남자용 실드 가방 등 새로운 라인업을 계속해서 출시한 프로티지.

그렇게 순조로운 순항을 하던 그때 내 귀에 짜증 나는 소식이 하나 들려왔다.

"짝퉁?"

한국에서만 한 달 매출 천억을 넘으며 미친 듯한 고공 행진을 하고 있는 상황에 등장한 짝퉁.

물론 짝퉁이 등장할 걸 모르는 건 아니었다.

프로티지 로고가 가진 안전성을 동경하지만 돈이 없는 사람들에게 있어 가장 좋은 대안은 짝퉁이었으니까.

하지만 나는 어지간한 수준의 짝퉁이면 그냥 묵인하기로 이미 마음먹은 상태였다.

기존 명품들과 다르게 실드 시전이 가능한 프로티지의 제품은 진품과 짝퉁의 구별이 너무나도 쉬웠기에 짝퉁으로 인한 피해가 크지 않으리라 예상했고, 무엇보다 짝퉁을 구매하는 사람들 역시 언젠가는 진짜를 가지고 싶어 하는 예비 구매자이기에 그냥 내버려 두기로 결정한 거지.

그래서 짝퉁이 화제가 되면 인터뷰를 하며 프로티지를 론칭한 건 모든 사람이 안전함을 누리도록 만들기 위함이니 짝퉁 로고라지만 그걸로 사람들이 범죄로부터 안전해질 수 있다면 나는 만족한다며 세상 좋은 사람인 척 연기하려 했는데··· 이번 짝퉁은 이야기가 좀 달랐다.

"진품으로 속여서 팔았다고요?"

짝퉁을 짝퉁으로 판 것까지는 이해한다.

적은 돈으로 명품이 지닌 가치를 느끼고 싶은 건 사람이라면 당연한 욕망이니까.

거기에 프로티지 제품을 사용하고 있으면 범죄자들이 함부로 건드리지 못한다는 인식까지 있으니 더욱더 그럴 거고.

그래서 묵인까지 하려고 했던 건데 짝퉁을 진품으로 속여서 파는 건 선을 넘어도 한참 넘었지.

우리 예비 고객의 돈을 뜯어먹은 거나 다름없는데.

"예. 되팔이 행세를 하며 진품으로 팔아먹었다고 합니다."

"이 새끼들이······."

감히 내 고객의 돈을 털어 가?

내가 아직 털지도 못했는데?

"경찰에 신고하고 사람 풀어서 잡으세요. 각성자 필요하면 박인귀 길드장한테 요청하고."

"알겠습니다."

김덕배 역시 자신이 맡은 프로젝트를 방해하는 존재가 나타나자 화가 많이 났는지 싸늘한 얼굴로 말했다.

"감히 누굴 건드렸는지 확실하게 가르쳐 주겠습니다."

76화

"형님, 이번 달 수익만 10억 원이 넘었습니다."

부하의 말에 보스가 환하게 웃으며 말했다.

"역시 인기 많은 물건은 돈이 된다니까."

보스가 프로티지의 제품.

정확히는 프로티지의 짝퉁 제품을 만지며 말했다.

"그러게 다들 잘 알아보고 사셨어야지. 킥킥."

프로티지의 제품은 단순한 명품을 넘어 호신용으로서의 가치가 워낙 높기에 돈 많은 여자들이 들고 다니기에 정말 최고의 제품이었다.

비싼 명품을 들고 다니면 허세를 부린다며 손가락질을 받기 일쑤인데, 프로티지의 제품은 자신의 보호를 위해 들고 다닌다는 확실한 핑곗거리가 있으니까.

추가로 남편들의 지갑을 털기 딱 좋은 제품이라는 점도 한몫했다.

평소라면 이미 집에 쌓인 명품이 몇 개인데 또 사냐며 한 소리 할 만도 하지만, 아내의 보호란 이유가 걸려 버리면 안 사 주는 순간 돈 때문에 아내의 안전도 무시하는 좀팽이가 되어 버리니 어쩔 수 없이 지갑을 여는 남편들.

덕분에 프로티지는 돈 많은 여자들 사이에서 이만큼 남편이 자신을 아낀다는 상징처럼 되어 버리며 매장에 재고가 쌓이는 순간 사라져 버리는 기염을 토했다.

당연히 아낌의 상징을 가지고 싶어 하는 여자들은 어떻게든 되팔이 제품이라도 구하려 안달을 냈고, 그때 등장한 게 이 조직이었다.

"그런데 형님, 이거 계속하면 위험하지 않을까요."

보스가 호탕하게 웃으며 말했다.

"하하. 늘 해 오던 건데 뭐가 걱정이야? 어차피 거래는 조선족 애들이 하는 건데."

원래부터도 짝퉁을 오랜 기간 유통해 온 조직답게 당연히 판매 방식은 일반적이지 않았다.

중국에 고용해 둔 조선족들이 중계기를 통해 한국 전화번호인 것처럼 만든 다음 문자로 거래하여 거래가 성사되면 이쪽에서 익명으로 물건을 보내는 방식.

당연히 경찰에 신고해도 익명으로 물건을 보낸 자신들을 다이렉트로 찾는 건 사실상 불가능하고, 결국 전화번호를 추적해 조선족을 먼저 잡는 수밖에는 없는데, 중국에 있는 조선족들은 한국 경찰의 추적 범위 밖이기에 경찰의 수사는 늘 흐지부지 끝났었다.

"경찰 놈들이 수사해 봐야 아무 의미 없어. 아니면 뭐, 심부름하는 애들 몇 명 던져 주면 그만이고."

그런 보스의 말에 부하가 걱정스럽다는 표정으로 말했다.

"저는 경찰이 아니라 세론 그룹을 말하는 겁니다."

보스가 흠칫하며 말했다.

"세론 그룹?"

"다른 사람도 아닌 한지혁이 직접 만든다며 광고를 한 제품 아닙니까. 그룹 회장이 직접 나설 만큼 심혈을 기울인 브랜드인데, 짝퉁 때문에 브랜드 이미지가 훼손된다며 찾아 나서면 어떡합니까?"

그러자 보스가 침묵하더니 말했다.

"설마 그렇게까지 할까? 한지혁이 SS급이기는 하지만 순하기로 소문났잖아."

한지혁에 대해 잘 모르는 사람들의 일반적인 인식이 바로 이것이었다.

일자리 염려 때문에 스켈레톤도 조심스럽게 배치하며 상생해 나가는 순한 사업가이자 각성자.

그도 그럴 게, 자신에게 저런 능력이 있었으면 이미 한국 정복 하고 해외로 진출했을 거라 말하는 기업인들이 있을 만큼 한지혁은 상생을 위해서라면 사업의 많은 부분을 양보해 왔으니까.

"꼭 그렇지만도 않은 것 같던데요. 그 소문 못 들으셨습니까? 그 무슨 중견 건설 회사가 뒤에서 수작질하다 세론에게 제대로 당했다고요."

"그래? 그런 일이 있었어?"

"세론이랑 건설사 모두 지금은 쉬쉬하고 있어서 건설업계를 잘 아는 사람들 사이에서만 알려진 건데, 당시에 살벌했다고 합니다. 거의 말려 죽일 기세였다고 하던데."

그 말에 보스가 고민하더니 말했다.

"하긴. 마냥 착하기만 한 사람이 어떻게 대기업을 운영하겠어. 심지어 SS급인데. 확실히 그렇게 듣고 보니 좀 그렇네."

"예. 그러니 차라리 해외에 파는 건 어떨까요."

"흠··· 그럴까?"

그렇게 사업의 방향을 비틀까 고민하던 그때.

"이제 와서 고민을 하기엔 너무 늦은 것 같은데."

그들이 있는 창고 어딘가에서 들려오는 목소리.

"뭐, 뭐야!"

당황한 그들 앞에 나타난 건장한 남자들.

남자들이 무전기를 들어 올리며 말했다.

"창고 확보 완료. 중국 쪽은 어떻게 됐어."

그러자 무전기에서 다른 목소리가 들려온다.

-그쪽도 확보 완료. 조선족 8명이랑 한국인 2명.

조선족 8명에 한국인 2명이면 중국에 있는 영업 팀의 숫자와 정확히 일치했다.

"서, 설마."

그때 남자가 뒤쪽을 향해 외쳤다.

"길드장님! 전부 정리됐답니다!"

그 말에 창고 문을 통째로 뜯어내며 등장한 한 남자.

그 남자를 본 보스가 경악하며 말했다.

"바, 박인귀!?"

한국으로 귀화해 7번째 SS급으로 등록된 조선족 각성자 박인귀.

그의 등장에 비로소 보스는 모든 상황이 이해되었다.

그때 박인귀가 보스에게 다가와 말했다.

"설마 저항할 생각은 아니겠지?"

감히 SS급에게 저항할 생각은 꿈에도 못 꾼 보스가 말했다.

"어, 어떻게 찾아내신 겁니까."

박인귀가 가소롭다는 표정으로 말했다.

"이런 수법을 어디 한두 번 보는 줄 알아? 게다가 한국에 오기는 했지만 조선족 사회에서 내 발언권은 절대적인 수준이라서, 너 같은 놈들 찾아내는 건 일도 아니야. 아무튼 용기가 대단해, 한 회장님 비위를 거스르다니."

박인귀가 보스의 뒷덜미를 잡으며 말했다.

"가자. 용기에 대한 대가를 치를 시간이다."

*

비록 박인귀가 중국에 완전히 배신자로 낙인찍히기는 했지만, 그거야 내막을 알고 있는 소수의 인물들에게나 해당되는 말.

박인귀는 직접 중국에 가지 않고도 중국 현지에 있는 지인 각성자나 조선족 협의회의 회장 등에게 연락을 돌려 순식간에 놈들을 찾아냈다.

그런 다음 중국 정부의 구린 일을 해 주던 실력을 백분 발휘하여 조선족들을 도청해 역으로 조직의 창고까지 추적하여 모조리 한 큐에 잡아 온 박인귀.

그렇게 박인귀가 조직을 모조리 잡아 오자 김덕배는 프로티지 짝퉁 판매만으론 원하는 형벌이 안 나올 것 같으니 머리부터 발끝까지 탈탈 털어 과거에 저질렀던 범죄의 증거까지 찾아 나섰다.

그런데 그 과정에서 재미있는 걸 하나 물어 온 김덕배.

"본인이 만든 거라고요?"

조선족을 이용해서 영업을 하길래 당연히 짝퉁도 중국에서 수입해 온 걸 거라 생각했는데, 아니었다.

내 앞에 있는 청년이 식은땀을 흘리며 말했다.

"죄, 죄송합니다. 처음엔 그저 먹고살 길이 막막해 몇 개 만들어서 판 게 전부입니다. 그런데 갑자기 조직이 찾아와 자기들 장사를 방해했다며 자기들을 위해 일하지 않으면 경찰에 넘기겠다고 협박하는 바람에······."

협박을 당해서 짝퉁을 만들어 줬다?

김덕배를 바라보자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맞는 것 같습니다. 자금을 추적해 보니 한 달에 고작 250만 원을 받고 있었습니다."

짝퉁 같은 불법 제품을 만들고도 한 달에 250이면 거의 착취 수준.

"따로 돈을 챙긴 건 아닙니까?"

그러자 청년이 다급한 목소리로 말했다.

"저, 정말 아닙니다. 그랬다면 아직도 조직원들 감시 받으며 월세방에 살 리가 없지 않습니까."

청년이 머리를 숙이며 말했다.

"정말 죄송합니다. 어차피 이번에 조직이 싹 쓸렸으니 저도 완전히 손 털고 평범하게 살겠습니다. 그러니 회장님, 제발 한 번만 봐주시면 안 되겠습니까? 제발······."

아무리 협박으로 인해 짝퉁을 만들었다지만 어찌 되었든 만든 건 만든 거니 내가 이 청년을 경찰에 넘기는 순간 실형은 확정이나 다름없었다.

나는 잠시 고민하다 말했다.

"그나저나 최근에 출시한 제품도 거의 똑같이 만들었던데, 어떻게 한 겁니까?"

솔직히 원래는 사정이 어떠하든 그냥 김덕배에게 알아서 하게 두려고 했다.

이번에 제대로 털어 내기는 했지만 내가 고작 이런 짝퉁이나 유통하는 조직과 엮일 레벨은 아니니까.

그런데 이번에 박인귀가 습격한 창고에 불과 일주일 전에 출시한 미니 크로스 백 짝퉁이 있다는 게 내 흥미를 자아냈다.

내부를 보면 확실히 진품과의 차이가 느껴지지만, 겉모양만 봤을 땐 진품과 구별이 힘들 만큼 퀄리티 있는 짝퉁.

심지어 듣자 하니 조직에서 진품을 구하는 데 실패해 오직 영상과 사진만 보고 구현했다는데, 이게 보통 대단한 일이 아니란 말이지.

당장 세론만 해도 임 디자이너가 직접 디자인 도안을 건네주었음에도 그걸 완벽히 구현하기까지 상당한 시간이 소요됐는데, 고작 사진과 영상만으로 1주일 만에 이 정도 퀄리티로 만들어 내다니.

내 말에 청년이 눈치를 보며 말했다.

"그게··· 어릴 때부터 눈썰미가 상당히 좋은 편이었습니다. 대충 눈으로만 봐도 미세한 차이를 감지한다고 해야 하나요. 손재주랑 기억력도 제법 좋은 편이었고요."

미세한 차이를 감지한다?

'설마······.'

나는 혹시나 하는 마음에 종이를 두 장 가져와 마법진을 두 개 그려 넣은 다음 청년에게 보여 주었다.

"차이점이 느껴지십니까?"

그러자 청년이 두 마법진을 번갈아 보더니 말했다.

"여기와 여기가 미세하게 다릅니다. 여기도 이쪽이 조금 더 안쪽으로 그려졌고요."

이걸 이렇게 빨리 구분한다고?

그때 내가 그린 마법진을 본 김덕배가 말했다.

"···차이가 있는 겁니까?"

그래.

저게 정상적인 반응이다.

일부러 일반적인 사람은 캐치 하기 힘들 만큼 미세한 변화를 주었으니까.

하지만 그런 미세한 변화를 고작 두어 번 보는 걸로 찾아내다니.

나는 그 이후로도 여러 가지 그림을 그려 청년에게 보여 주었고, 청년은 잠깐 보는 것만으로도 차이점을 바로 집어 낸다.

"오호······."

나는 흥미롭다는 표정으로 말했다.

"기억력이 좋다고 했죠. 혹시 내가 3번째로 그려 주었던 것 기억나십니까?"

"대충은 기억납니다."

나는 종이와 펜을 건네주며 말했다.

"해 보세요."

그러자 주저 없이 그려 나가는 청년.

그렇게 청년이 기억력에 의지해 그린 그림은··· 내가 그려 준 그림과 디테일 한 부분까지 거의 대부분 일치했다.

'마지막 테스트.'

나는 청년을 바라보며 말했다.

"잠깐 손 줘 보시죠."

"예? 아, 알겠습니다."

그렇게 청년의 손을 잡고 마력을 살짝 흘려보낸 나.

그런데 마력이 들어가자마자 청년이 흠칫하며 말했다.

"어? 뭔가 찌르르한데요."

정말 극소량의 마력을 넣은 건데도 바로 반응이 오다니.

혹시나 싶어 이번엔 마력을 청년 몸의 이곳저곳에 넣었는데, 그때마다 정확히 위치를 짚어 낸다.

"이번엔 왼쪽 어깨가······."

그런 청년의 모습을 보고 나는 더 이상의 테스트는 의미가 없다는 걸 깨달았다.

'천재구나.'

그것도 마법에 특화되어 있는 천재.

마법은 마법진을 만드는 것에서 시작한다.

그 말은 완벽한 마법진을 그릴수록 더욱 효율 좋은 마법을 사용할 수 있다는 말.

그렇기에 마법사에게 마력 감응력만큼이나 중요한 재능이 바로 눈썰미와 손재주 그리고 기억력이었다.

즉석에서 기억력에 의지해 언제든 정확한 마법진을 그릴 수 있어야 진정한 마법사이니까.

그런데 심지어 마력 감응력까지 뛰어나다니.

만약 세론이었다면 마탑의 대마법사들이 탐냈을 만큼 대단한 천재.

"혹시 나이가 어떻게 됩니까?"

"올해로 23살입니다."

그 정도면 마법에 입문하기 조금 늦은 편이긴 하지만 크게 문제될 것도 없다.

당장 나만 해도 29살에 끌려가 입문한 거니까.

'이놈을 어떡하지?'

돈을 벌고 언데드 군단을 막은 뒤 조용히 은퇴하는 것이 내 목표.

그렇기에 귀찮은 제자 따위 키워 봤자 골치만 아프고, 무엇보다 각성자가 즐비한 이 세상에 마법이란 학문까지 추가되어 생기는 변수의 영향을 걱정하여 그간 몇몇 마법진과 알고리즘을 제외하면 그 어떤 마법 지식도 세상에 공개하지 않은 나다.

하지만 그런 나조차 탐이 날 만한 천재가 이렇게 갑자기 나타나다니.

이 정도 기억력과 눈썰미 그리고 마력 감응력이라면 스펀지가 물 빨아들이듯 내 지식을 습득할 테니 크게 귀찮지도 않을 거고, 오히려 나를 대신해 일을 하는 훌륭한 조수가 될지도 몰랐다.

하지만 이놈을 시작으로 마법 지식이 퍼져 나가는 것도 문제고, 무엇보다 이놈을 내가 어떻게 믿고 마법을 가르쳐 주나.

나는 잠시 고민하다 말했다.

"만약 내가 봐주면 앞으로 뭘 할 생각입니까?"

그러자 청년이 다급한 목소리로 말했다.

"원래 저는 디자이너가 목표였습니다. 그러니 깨끗하게 손 털고 돈을 못 벌어도 좋으니 디자이너로서 삶을 살아가고 싶습니다."

짝퉁이 아닌 오리지널의 삶을 살고 싶다라.

"혹시 디자인해 놓은 것 있습니까?"

자신의 작품을 재벌 회장인 내가 봐 준다니 기쁜지 바로 핸드폰을 꺼내 사진첩을 실행하며 말했다.

"여기 있는 이게 제가 예전부터 고안해 오던······."

나는 청년의 말을 끊으며 말했다.

"나 말고 부회장님한테 보여 주세요. 난 그쪽으론 문외한이라서."

"아, 알겠습니다."

본격적으로 자신의 디자인에 대해 김덕배에게 설명하는 청년.

그런 청년의 디자인을 확인한 김덕배가 놀라기도 하며 탄성을 터트린다.

그렇게 한참 동안 설명을 듣던 김덕배가 나에게 다가와 귓속말로 말했다.

"실력이 상당합니다. 디자인도 독창적이고요. 이 정도면 어지간한 디자이너 못지않은 수준입니다."

"그래요?"

마법 재능도 충만한데 디자인 실력까지 있다고?

이것 참.

나는 청년을 바라보며 말했다.

"이름이 뭐라고요?"

"나지운이라고 합니다."

"나지운 씨, 혹시 디자이너로 프로티지에서 일해 볼 생각 있습니까? 그렇지 않아도 저희 자체 디자인이 약해서 디자이너를 구하려던 중이었는데."

그러자 나지운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며 말했다.

"저, 정말이십니까?"

"예."

탐나는 재능을 가진 나지운.

그러니 일단 옆에 두고 천천히 지켜본다.

나 역시 지금 당장 나지운을 어떻게 해야 할지 감이 안 오니까.

"그렇게만 해 주신다면 정말 최선을 다해서 일하겠습니다!"

"부회장님은 어떻게 생각하세요?"

"저는 찬성입니다."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자리 만들어 줄 테니 내일부터 출근하세요."

*

프로티지의 첫 디자이너로 받아들인 나지운은 열정적으로 일했다.

그간 꿈꿔 온 디자인을 줄줄이 선보이는 것은 물론, 임준일과 협업하는 과정에서 자신의 실력을 유감없이 뽐내며 임준일이 정말 23살이 맞냐 놀랐을 정도.

아무튼 그렇게 나지운을 품은 나는 일단 원래 사업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그러던 중 나를 찾아온 한 미국의 유명 유통 기업.

"미국에 프로티지를 론칭하고 싶으시다고요."

"예."

재미 교포 직원이 약간 어눌한 말투로 나에게 말했다.

"미국 사람들의 실드 가방에 대한 관심은 상당합니다. 이미 일부 사람들은 한국에서 웃돈을 주고 직수입해서 쓰고 있는 상황이고요."

"흠. 근데 솔직히 말해서 미국에는 좀 안 맞지 않나요? 이게 칼 같은 무기는 잘 막아 줘도, 일정량 이상의 충격을 받으면 깨지게 되어 있어서 총을 막을 수는 없는데."

미국의 사망 원인 1위는 바로 총기 사고.

지나가던 강도조차 총을 들고 다니는 나라가 바로 미국인데, 이 실드는 그런 미국에서 영 힘을 못 쓸 거란 말이지.

"물론 그렇기는 합니다. 하지만 미국이라고 해서 꼭 총기 사고만 있는 건 아니니까요. 폭력 사건부터 성폭행 등 다양한 범죄가 벌어지고 있고, 그런 상황에서 실드는 믿을 만한 방어 수단입니다. 게다가 이 실드가 총알을 막아 주지는 못하지만······."

교포 직원이 나를 바라보며 말했다.

"효과가 아예 없는 건 아니었습니다."

"효과가 있다고요?"

"저희 회사에서 어렵게 실드 가방을 입수해 총기 실험을 해 보았습니다."

역시 미국답게 입수하자마자 총질을 해 보는 구나.

그나저나 결과가 궁금하네.

총알을 막지 못한다고 추측만 했을 뿐 총기를 구할 수 없어 직접적인 실험을 해 본 적은 없었으니까.

"결과가 어떻게 나왔습니까?"

"구경별로 다르기는 하지만 총알이 실드를 뚫는 과정에서 관통력을 상당량 소실했습니다. 잘만 하면 한 번에 죽을지도 모르는 걸 목숨은 부지할 수 있게 해 주는 수준으로 말이죠."

그러니까 막지는 못하지만 치명상을 중상 정도로 바꿀 정도는 된다?

"이 정도만 해도 총기 사고가 만연한 미국에서 가능성은 충분합니다. 그리고 사실 그런 걸 다 떠나서라도 실드라는 이능을 쓸 수 있다는 점 하나만으로도 셀링 포인트는 충분합니다."

하긴.

애초에 이 사업은 내 입장에서 별것도 아닌 일인데, 그 별것도 아닌 일을 부러워하는 일반인의 심리를 생각하고 구상한 사업이니까.

"아무튼 판매는 전부 저희가 알아서 할 테니 염려 마시고 수출만 해 주시면 됩니다. 저희는 프로티지 제품이 미국에서도 먹힐 거라 확신하니까요."

그렇다면야 거절할 이유는 없지.

마침 한국에서 일부러 확장 속도에 제동을 걸고 있는 상황에서 미국 수출길이 열리면 프로티지는 더욱 가파르게 성장할 테니까.

"좋습니······."

그렇게 수출 제안을 수락하려던 그때.

"음?"

뭔가 한 가지 아이디어가 떠올랐다.

'실드가 약한 이유는 아무것도 없는 허공에다가 마력으로 물리력을 구현하기 때문이잖아. 반대로 뼈 방패는 뼈를 매개체로 삼기에 방어력이 월등한 거고.'

나는 잠시 고민하다 말했다.

"만약에 말이죠. 미국 현지화된 실드를 만든다면 어떨 것 같습니까?"

"현지화요?"

"지금 실드는 어디까지나 한국 사정에 맞춰 개발된 거란 말이죠. 실드 생성 모양부터 성능 등등 전부 다. 그러니 이걸 미국 현지에 맞춰서 만드는 거죠. 예를 들어 일반 실드와 다르게 총알을 막는 것에 특화된 실드라든지."

그러자 교포 직원이 눈을 빛내며 말했다.

"그런 것도 가능하십니까? 그렇다면 더욱 펄펙트할 겁니다!"

"그렇죠?"

나는 씨익 웃으며 말했다.

"그럼 우리 실험 한번 해 볼까요? 미국 현지화 실드 실험."

77화

마력을 이용해 대상 물질의 성질을 강화하고 조정하는 건 기본 중의 기본.

이것을 이용하면 미국 현지에 맞는 방탄 실드를 만드는 게 가능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온갖 제품을 준비하여 교포 직원과 실험실로 이동한 나.

나는 이동하며 마법진을 그려 넣은 옷을 마네킹에 입히고, 마찬가지로 기존 마력진을 개조한 실드 가방을 마네킹의 손에 걸며 말했다.

"총알은 회전하면서 관통되는 거죠?"

"그렇습니다."

"그럼 회전속도를 줄이면 관통력도 줄어들겠네요?"

나는 마네킹에게 입힌 옷을 가리키며 말했다.

"이 옷은 방금 제가 강화 명령진을 새겨 넣은 옷입니다. 이 옷이 실드의 매개체 역할을 하는 거죠. 에너지는 이 가방에서 공급 받고. 자, 보세요. 실드 켭니다."

가방에 달린 실드 시전 버튼을 누른 나.

그런데 일반적으로 타원 형태의 실드가 생겨나는 다른 실드 가방과 다르게 아무런 변화도 없다.

"아무것도 안 나오는 것 같은데요."

"당연히 일반 실드랑은 다릅니다."

나는 옷을 가리키며 말했다.

"이건 옷 자체를 실드화하는 거니까. 간단하게 설명해서, 이 옷의 섬유질의 질김을 극대화한 거라고 해야 하나?"

"그게 무슨······?"

"말로 설명하기 힘드니 직접 보여 드리죠."

나는 곧바로 아공간에서 뼈를 꺼내 빠른 속도로 회전시키며 말했다.

"제가 총 위력은 몰라서 대충 적당한 수준으로 날리겠습니다. 잘 보세요."

그렇게 내가 손을 휘젓자 옷을 향해 빠른 속도로 날아간 뼈.

그런데 원래라면 저런 옷 따위는 통째로 찢어발겼을 뼈가 옷을 관통하지 못하고 옷에 칭칭 감기기만 한다.

"저겁니다. 섬유질을 강화해 회전력을 잡는 방식. 이렇게 되면 최소한 뚫리지는 않죠."

그러자 교포 직원이 눈을 빛내며 말했다.

"방탄 슈트랑 비슷한 원리군요."

"···어?"

이미 있어?

"케블라 방탄 섬유를 이용한 방탄 슈트도 같은 원리로 총알을 막아 줍니다. 물론 그로 인한 충격까지는 막아 줄 수 없어 엄청난 고통이 동반되지만요."

나는 슬쩍 마네킹에 다가가 옷 안쪽을 살펴보았다.

그러자 아니나 다를까, 관통은 막아 냈지만 충격으로 인해 안쪽이 움푹 파인 마네킹.

이 정도 충격이면 일반 사람은 나뒹굴 정도로 엄청난 통증을 느낄 테니 교포 직원이 말한 방탄 슈트와 별반 다를 게 없다는 말이었다.

"뭐야. 좋다 말았네."

획기적인 아이디어라 생각했는데 이미 존재하는 거였어?

역시 총기의 나라답게 온갖 물건들이 다 있구나.

그런데 한 가지 의문이 든다.

그렇게 완벽한 방탄 슈트가 있다면 왜 그 많은 사람들이 여전히 총기로 목숨을 잃는 거지?

나는 교포 직원을 보며 말했다.

"그 방탄 슈트라는 거, 자세히 좀 말해 보세요."

*

충격을 막아 주지는 못해도 최소한 뚫리지는 않는다는 방탄 슈트.

때문에 실망했지만 자세한 이야기를 들어 보니 생각보다 별것 아니다.

"뭐야. 그럼 사실상 덕지덕지 입어야 한다는 말이네요?"

방탄 슈트는 말 그대로 슈트였다.

무슨 말인고 하니, 티셔츠부터 조끼 그리고 재킷으로 이루어진 두꺼운 풀세트를 입어야 그나마 방탄이 가능하다는 말이었다.

심지어 그렇게 입어도 기능이 한정적이라 관통력이 높은 철갑탄이나 구경이 큰 소총에는 그대로 뚫린다니 다행히도 방탄 슈트는 내가 예상한 것처럼 만능의 물건은 아니었다.

"하긴. 슈트만 입어도 방탄이 되면 뭐 하러 방탄조끼를 입겠어. 그냥 옷 같은 방탄 슈트 입고 말지."

"그렇긴 하지만, 방탄조끼를 입을 수 없는 중요한 자리에 참석해야 하는 정치인이나 연예인들이 많이들 애용하고 있죠."

"가격은 어떻게 됩니까?"

"슈트 전체 가격이 대략 2만 5천 달러 정도 합니다."

"그럼 3천만 원이 넘는다는 소리네요?"

가격도 별 차이 없고 성능도 떨어지는 데다, 심지어 두껍기까지 하다 이거지?

그럼 별것 아니네.

"아까 뭐라고요? 케블라 방탄 섬유?"

일반 옷감으로도 비슷한 성능을 보여 줬는데, 저 방탄 섬유라는 걸 사용해 옷을 만들면 더 튼튼하게 만들 수 있다는 소리니까.

나는 뒤따라온 비서에게 말했다.

"저 방탄 섬유 구할 수 있는 방법 알아봐요."

"알겠습니다, 회장님."

나는 교포 직원을 바라보며 말했다.

"기다려 보세요, 아주 획기적인 방탄 제품을 만들어 드릴 테니까."

*

비서를 시켜 찾아낸 독일의 방탄 섬유 제조 회사.

나는 곧바로 사람을 직접 파견해 각종 샘플을 가져왔고, 그걸 기반으로 방탄 실드 옷을 만들었다.

아니나 다를까, 일반 섬유와 다르게 방탄 섬유를 매개체로 쓰니 방탄 성능이 압도적으로 올라간 방탄 실드 옷들.

나는 그걸 기반으로 각종 파생 상품을 만들었다.

"보세요."

나는 우산을 펴며 말했다.

"이 우산은 방탄 우산입니다. 이렇게 펼치면 총알을 막아 주죠. 이렇게 하면 통증으로 인해 아플 일이 없을 것 아닙니까. 물론 손목이 버텨 주냐가 문제기는 하지만, 아무튼."

그러자 교포 직원이 우산을 만지며 말했다.

"이렇게 얇은 재질로 총알이 막아진다는 말입니까?"

"이게 방탄 섬유로 만든 다음 방수 처리를 한 거라서요."

기존 방탄 섬유 제품과의 차별점은 바로 옷을 매개체로 하여 실드를 구현한 덕에 얇은 재질임에도 뛰어난 방탄 성능을 보여 준다는 거였다.

기존 방탄 섬유 제품은 결국 방탄 섬유를 겹겹이 쌓아 올려 방탄 능력을 끌어올리는 식이기에 두꺼울 수밖에 없지만, 이건 뼈 방패를 강화할 때와 비슷한 방법을 이용해서 섬유 자체를 강화한 방식이니까.

그렇기에 기존 방탄 섬유 제품과 다르게 겉으로 보기엔 완벽히 일반 옷들과 똑같은 옷맵시를 보여 줄 수 있다는 게 핵심.

물론 작정하고 기존 제품처럼 방탄 섬유를 덕지덕지 바르면 더 강력한 방탄 능력을 자랑하겠지만, 명품 브랜드를 지향하는데 옷이 예쁘지 않으면 그게 무슨 소용이야?

그러니 프로티지는 예쁨과 성능의 균형을 잡는 데 집중한다.

"그리고 이건 옷."

나는 나지운에게 받은 디자인으로 만든 여성 드레스를 들어 올리며 말했다.

"이건 방탄 드레스입니다."

"방탄 드레스라니······."

드레스는 몸매가 훤히 드러날 만큼 얇은 게 핵심이기에 이건 세계 최초의 방탄 드레스나 다름없었다.

"그리고 제가 곰곰이 생각해 봤는데, 충격으로 인해 너무 아파서 그대로 쓰러지면 그게 무슨 소용이겠나 싶더라고요. 그래서 방법을 좀 바꿨습니다."

처음엔 옷을 그대로 굳게 만들어 통증을 최소화할까 생각했지만, 곰곰이 생각해 보니 그럼 도망칠 수가 없단 말이지.

그렇다고 두껍게 만들면 드레스를 착용하는 의미가 없고.

그래서 아예 발상을 전환했다.

"실드가 시전이 되면 착용자의 통각이 20분의 1 수준으로 둔감해집니다. 실드가 풀리면 통각도 정상으로 돌아오고."

"···예?"

"원래는 아예 차단할까 했는데, 아픈 부위를 알아야 나중에 치료할 것 아니에요. 한마디로 아파서 쓰러지더라도 안전한 곳에서 쓰러지라 이겁니다."

그러자 멍하니 있던 교포 직원이 말했다.

"그거 말 되는군요."

"그쵸?"

교포 직원의 반응에 신이 난 나는 이어서 다음 제품을 선보였다.

"자! 이건 어린이용 방탄 가방."

"어린이용 방탄 가방?"

"듣자 하니 미국에서 학생들을 대상으로 총기 난사가 자주 벌어진다면서요. 그때 사용하기 위한 거죠. 이 가방의 내부 지지대가 뼈로 만들어져 있거든요. 그래서 여기 이 버튼을 누르면?"

내가 버튼을 누르자 가방이 쭉쭉 펼쳐지며 작은 상자 모양으로 변한다.

"짠! 가변형 방어 가방! 좀 좁긴 하지만 어린이 한 명 정도는 충분히 들어가죠. 그러니 이 안에 들어가면 총기 난사로부터 안심!"

그걸 본 교포 직원이 헛웃음을 치며 말했다.

"이거··· 대단하군요."

"하하. 감사합니다."

"그런데 이건 전부 개별적으로도 작동이 되는 겁니까?"

나는 손가락을 흔들며 말했다.

"어린이용 가방은 가방 하나로 충분하지만, 나머지는 가방과 옷 모두 있어야 합니다. 즉, 세트라는 말이죠."

옷은 그저 매개체의 역할일 뿐이고, 마력은 가방에 설치된 정수에서 공급 받아야 하니까.

"가격은 어떻게 됩니까?"

"가방은 일괄적으로 모두 개당 4천. 옷은··· 뭐, 저렴하게 600~1,000?"

이 정도면 방탄 슈트보다 훨씬 예쁘고 성능도 좋으니 완벽하잖아?

"물론 단점은 있습니다. 이게 한국 버전보다 에너지 소모가 압도적으로 많아서 유지비가 많이 들 겁니다. 거기다 실드를 시전했을 때만 방탄 기능이 작동돼서 상시 방어가 안 되는 것도 문제고. 물론 뭐··· 돈 많은 사람이야 아예 정수 쟁여 놓고 하루 종일 실드 가동해도 되니 별문제 없겠지만."

내 말에 교포 직원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 정도 성능이면 그까짓 단점은 씹어 먹고도 남습니다. 통증을 완화시켜 주는 능력이라니. 방탄 장비의 가장 큰 문제가 통증으로 인한 무력화인데 그게 해결됐으니까요."

"그렇죠?"

나는 시제품들을 교포 직원에게 건네주며 말했다.

"이거 가지고 미국 가서 총기 실험 해 보고 영상 보내 주세요. 혹시 미흡한 점이 있으면 수정해야 되니까."

"알겠습니다."

교포 직원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이것 하나만은 확실하게 말씀드리죠. 만약 말씀하신 성능이 모두 구현된다면··· 프로티지는 미국의 방탄 시장을 모두 석권하고도 남을 겁니다."

"방탄이라니요. 방탄 기능을 지닌 명품이라 불러 주시죠."

"그럼 두 시장을 동시에 석권할 수 있다로 바꾸죠. 하하! 아무튼 바로 가서 시험해 보겠습니다!"

*

그렇게 미국에서 진행된 총기 시험.

그 결과는 매우 만족스러웠다.

권총탄은 확실하게 방어해 냈고, 소총탄도 구경에 따라 다르기는 하지만 최소한 생명에 지장은 없는 수준으로 막아 줬으니까.

가격이 두 배 가까이 비싸긴 하지만 소총탄을 막지 못하는 방탄 슈트에 비해 훨씬 나은 방어력을 지녔고, 얇은 소재로 구현이 가능해 겉으로 봐서는 그저 디자인이 예쁜 명품 옷인데 필요하면 언제든 방탄 성능을 제공하는 프로티지의 제품.

그렇게 상품성을 확인한 미국 유통사는 곧바로 교포 직원을 다시 파견해 정식으로 수출 계약을 하였고, 본격적으로 생산 체제가 갖춰지자 유통사는 자신 있게 미국에서 임대료가 비싸기로 유명한 맨해튼 메인 스트리트에 매장을 오픈했다..

그리고 당연하게도 결과는 대박.

"매진이랍니다!"

김덕배가 환하게 웃으며 말했다.

"현지화가 완벽하게 먹혀서 유명 연예인부터 정치인들까지 발길이 끊이질 않는답니다! 이미 예약받은 물량만 저희 1차 납품 물량의 몇 배에 달하고요!"

비록 한국 버전보다 가격과 유지비도 비싸고 옷으로 감싸지 않은 부분은 보호받지 못한다는 단점은 있으나, 총기가 즐비한 미국에서 디자인과 실용성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은 제품은 프로티지가 유일하니까.

"거기에다 워낙 거물들이 찾다 보니 한 번에 인공 정수를 수십 개씩 추가로 사 간답니다."

"으하하하."

역시 해외를 공략할 때는 현지화를 해야지.

아무렴 한국과 미국은 사정이 다르잖아?

막말로 미국 버전을 한국에 출시하면 사 갈 사람이 얼마나 되겠어.

한국에서는 비록 총알은 막지 못해도 전신을 온전하게 지켜 주는 기존 버전이 맞고, 미국처럼 총기가 있는 나라엔 저게 정답이다.

"총기 허용 국가가 또 어디 있죠?"

김덕배가 자료를 보며 말했다.

"일단 미국처럼 전면적으로 총기를 합법화해 주는 나라는 없습니다. 대신 제한적으로나마 허용해 주는 나라는 제법 많습니다. 그리고 유럽 같은 경우엔 테러로 인한 인명 피해가 많이 발생해 수요가 상당할 걸로 생각합니다."

"오케이."

일단 미국 시장을 먹은 다음 쭉쭉 팔아먹어야지.

나는 환하게 웃으며 말했다.

"돈 팍팍 벌어 보자고요!"

*

프로티지가 한국, 미국에서 불티나게 팔리는 사이 소형 발전소로 성능 테스트를 마치고 정식 발전소를 만들자 정수 소비량이 순식간에 폭증한다.

당연히 정수 소비량이 폭증할수록 내 주머니는 더욱 풍족해져 갔고.

그렇게 정수의 소비처가 생기며 돈이 쌓이자 나는 그걸 이용해 기존 전북과 충남에 한정되어 있던 에너지 매입 부스를 점점 더 넓혀 가기 시작했다.

그런데 그 비용이 내 생각보다 훨씬 가파르게 오른다.

"하루 매입 비용만 3백억이니까, 한 달에 9천억? 여기에 중국에서 매입하는 비용을 더하면 대충 한 달에 1조 5천억."

그럼 일 년이면 18조 원이 들어간다는 소리잖아.

"미쳤네."

그러자 김덕배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대신 그만큼 저희 매출도 늘어나지 않았습니까."

그전에야 마력을 매입하는 족족 내가 쓰는 게 전부였기에 그룹 전체로 보면 그 모든 게 지출이나 다름없었다.

하지만 이제는 발전소와 프로티지를 통해 정수로 수익을 창출하고 있으니 사실상 마력 매입은 사업을 위한 원자재 매입이나 다름없어 분명 김덕배의 말처럼 지출이 늘어나는 만큼 매출도 상승하는 것이 사실.

거기에 기존 사업들도 모두 성장하고 있기에 감당 못 할 수준은 아니었다.

실제로 매입한 정수의 상당량을 언데드 제작에 사용하고 있지만 그럼에도 여전히 세론 그룹은 막대한 순이익을 기록하고 있었고.

하지만 그렇다 해도 매달 1조 5천억이라는 금액은 아무리 나라고 해도 숨이 턱 막힐 만큼 큰 금액이란 말이지.

원래 한 번에 빠져나가는 천만 원보다 매달 다달이 나가는 백만 원이 더 무서운 법이라고.

"일단 매입량 조절 합시다. 일단은 여기까지. 프로티지랑 발전소 사업 확장하는 것 봐서 같이 늘려요."

"알겠습니다."

물론 그럴 일이야 없겠지만, 혹시라도 정수 소비량이 공급량을 따라가지 못하면 남은 잉여 정수 재고에 따른 재고 비용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날지도 모르는 일.

그렇게 되면 어쩔 수 없이 매입량을 줄여야 되는데, 그렇게 되면 좀 모냥 빠지니 그 전에 미리미리 공급과 수요를 조절해야··· 응?

공급과 수요?

"원래 자연스러운 흐름 때문에 시작한 사업이잖아."

그런데 시장의 흐름에 따르는 게 아닌, 내가 강제로 정해 둔 가격에 매입과 판매가 이루어지는 게 과연 자연스러운 흐름일까?

이제 스켈레톤으로 발전소를 돌리니 사실상 석유와도 비슷한 역할을 하는 게 마력 아닌가.

"석유는 늘 가격이 오르락내리락하잖아."

시장 상황에 따라 가격이 변동되는 석유.

심지어 석유는 선물 시장에서 가장 주목을 받는 일종의 투자 상품으로서의 역할도 한단 말이지.

나는 잠시 고민하다 말했다.

"이거, 가격을 정해 둘 게 아니라 변동 가격을 도입할까?"

물론 정말 시장에 완전히 맡긴다는 말은 아니었다.

그렇게 되면 중국에 비해 10배 가까이 비싼 한국 마력 매입 비용이 순식간에 추락할 테니까.

"각 국가마다 매일 다른 가격을 공시하는 거야."

예를 들어, 오늘은 7천 원이면 내일은 6,900원 이런 식으로.

그런 다음 사람들에게 그날그날 진짜 현금을 주는 게 아니라 마력을 팔 때마다 횟수를 누적한 후 언제 그 마력을 현금으로 환전할 수 있는지 선택을 하게 해 주는 거지.

이렇게 되면 똑같이 30회분을 모아도 그날 시세에 따라 판매 가격이 달라지게 될 테니 사람들은 그때그때 처분하는 게 아니라 가격이 높을 때를 기다리며 횟수를 차곡차곡 누적할 거다.

"오오! 이거다!"

이렇게 되면 내가 얻게 되는 이점이 한두 개가 아니다.

즉시 현금을 주는 게 아닌 만큼 사람들이 횟수를 쌓으며 가격이 높아지길 기다리는 동안에도 나는 그 마력을 이용해 이익을 창출할 수 있으며, 동시에 그렇게 사람들이 쌓는 회차가 많아지면 많아질수록 마력 매입에 자금이 묶이는 것을 최소화할 수 있으니까.

한마디로 사람들에게 외상으로 마력을 매입해 올 수 있다는 말.

당연히 그렇게 자금이 남으면 세론 그룹은 더욱 여유롭게 사업을 추진할 수 있지.

"자금이 부족해? 그럼 가격을 다운하면 돼. 그럼 사람들이 횟수만 쌓으면서 현금으로 환전을 안 할 테니."

시세가 떨어지면 사람들은 당장 환전하기보단 가격이 오를 때까지 회차만 누적하겠지.

그럼 그사이 세론 그룹은 사실상 외상으로 매입한 마력을 이용해 사업을 해서 자금을 확보하고.

"이렇게 되면 참여율도 그대로 유지시킬 수 있어."

만약 지금처럼 그날그날 시세에 따라 현금을 주는 방식이고 최근 에너지 매입 가격이 떨어졌다?

그럼 일부 사람들은 적어진 금액에 귀찮음을 느낄 거고, 참여율이 저조해질 게 분명했다.

하지만 누적해서 팔 수 있다면 언젠가는 가격이 오르겠지란 생각으로 습관처럼 마력을 팔며 참여율을 똑같이 유지시킬 수 있다는 말.

"그러다 자금이 확보되면 가격 올려서 외상값 처리 해 주면 되고."

참여율도 그대로 유지하면서 여유 자금 확보는 물론 시장 상황까지 조절할 수 있는 완벽한 방법.

"아! 그럼 아예 사람들끼리 사고 팔 수 있게 해 줄까?"

회사는 평상시와 똑같이 굴러가지만 주식시장에서 회사의 지분을 사람들끼리 계속해서 사고 파는 것처럼 마력도 거래를 하게 해 주어 일종의 투자 자산화를 하는 거다.

당연히 투자 자산화를 하면 시장에 묶이는 금액이 그만큼 커질 거고, 그사이 세론은 외상으로 매입한 마력을 이용해 더욱더 가파르게 성장할 수 있겠지.

나는 눈을 빛내며 말했다.

"에너지의 투자 자산화. 이거다."

78화

군산 공단에 다니는 김혜은의 일상은 늘 똑같았다.

평일엔 회사에서 퇴근하는 길에 에너지 매입 부스에 들러 에너지를 팔고, 주말엔 아파트에 설치된 매입 부스에서 팔고.

이렇게 김혜은이 한 달에 벌어들이는 돈은 21만 원이지만 남편과 아들 둘까지 합치면 84만 원이니 결코 적은 돈이 아니었다.

그렇게 평소처럼 퇴근하는 길에 들른 매입 부스.

"어?"

그런데 에너지 매입 부스가 무인화된 이후로 없어졌던 세론의 직원이 부스에서 사람들을 상대로 무언가를 하고 있는 게 아닌가.

그간 세론이 추진한 일을 적극적으로 협조하며 손해 본 적은 없었기에 별생각 없이 직원에게 다가간 김혜은.

"안녕하세요."

김혜은의 인사에 직원이 친절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예. 어서 오세요."

"이번엔 뭔가요?"

"다른 게 아니라, 저희 회사에서 지금 매입 시스템을 변경 중이라서 말입니다. 그것에 대한 설명을 드리기 위해 파견 나왔습니다."

"변경된다고요? 설마 가격이 낮아지나요?"

"낮아질 수도 있죠."

"예? 그러면 안 되는데······."

근처에 사는 부모님들도 에너지 판매 덕분에 한결 여유로워졌는데, 여기서 가격이 낮아진다니.

그때 직원이 웃으며 말했다.

"하지만 반대로 오를 수도 있고요."

"그게 무슨 말인가요?"

"아시다시피 저희 회사에서 정수를 이용해 다양한 사업을 하고 있지 않습니까?"

"그렇죠."

"그런데 사업을 하다 보면 사업이 잘될 때도 있고 안될 때도 있지 않습니까. 그러다 보니 기존의 정액 가격보다는 상황에 따른 변동 가격제를 도입하는 게 어떻겠냐는 주장이 나와서요."

"변동 가격제?"

"주식처럼 시장이 좋으면 올라가고 나쁘면 내려가는 거죠."

"아하."

"게다가 지금까지처럼 무조건 매일 사람들에게 현찰을 뿌리는 것도 업무에 부담이 너무 과중해서 앞으로는 바로 현금으로 드리지 않고 회차를 쌓아 드릴 겁니다."

"회차를 쌓아 준다고요?"

"예. 그런 다음 원하시는 가격대에 파시면 되는 겁니다. 예를 들어 오늘 시세가 6,900원인데, 이 가격이 마음에 안 드시면 나중에 오르셨을 때 그간 쌓아 온 회차를 한 번에 파시면 된다는 말이죠."

"그렇구나."

직원의 설명을 듣고 안도한 김혜은.

당장의 가격이 떨어져도 나중에 가격이 올랐을 때 팔면 그만이니 얼마나 편한가.

"또 어플을 이용해 개인 간의 거래도 활성화할 겁니다."

"개인 간의 거래요?"

"잠깐 핸드폰 줘 보시겠습니까?"

그렇게 핸드폰을 받아 들고 어플을 설치한 다음 어플에 대해 설명하기 시작한 직원.

"여기 보시면 그간 쌓은 회차를 확인할 수 있고, 이쪽에선 주식처럼 개인 간에 이 회차를 거래할 수 있습니다. 원하는 가격대의 금액으로 매수 주문을 넣고, 같은 가격에 매도를 원하는 사람이 있으면 자동으로 매칭되는 거죠."

"진짜 주식 같네요. 아무튼 쌓아 뒀다가 나중에 가격 올랐을 때 팔면 된다는 거죠?"

"정확합니다."

그렇게 모든 설명을 들은 김혜은은 부스로 들어가며 말했다.

"오늘 6,900원이라고? 그럼 나중에 팔지, 뭐."

*

김혜은이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또 떨어졌어?"

6,900원을 시작으로 점점 매입 가격이 내려가더니, 5,900원까지 떨어졌다.

가격이 오르면 팔 생각으로 30회나 모아 뒀는데, 이러면 예전보다 훨씬 손해를 보고 팔아야 한다는 말.

한숨을 한번 내쉰 김혜은이 이번엔 사람들이 글을 올리는 커뮤니티로 들어갔다.

그러자 계속되는 하락에 판매 시점을 잡지 못한 사람들이 성토하는 글로 가득 차 있는 커뮤니티.

그중엔 귀찮아졌다며 이미 손절 쳤다는 사람도 다수 있었다.

"지금 팔면··· 17만 7천 원."

고작해야 3만 원 조금 넘는 차이지만 그럼에도 마치 생돈을 잃은 기분이 들어 김혜은은 마음이 편치 않았다.

잠시 고민하던 김혜은이 말했다.

"그냥 팔자."

분명 에너지 매입이 가계에 큰 도움이 되는 건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언제까지 이것만 붙들고 있을 수는 없으니까.

그렇게 팔기로 결심한 그때.

"어?"

한 게시 글의 제목이 김혜은의 눈을 사로잡았다.

"지금이 저점이라고?"

그렇게 게시 글을 눌러 내용을 확인한 김혜은.

게시 글은 세론이 현재 정수와 관련해 벌이고 있는 사업의 추이와 그로 인한 정수 소비량을 분석하여 아무리 내려가도 이 이하로는 내려가지 않을 테니 지금이 저점이라는 내용이었다.

"저점이라고?"

마치 뭐에 홀리기라도 한 듯 최근 가격 변동을 확인한 김혜은.

"계속 5,900이랑 5,800에서 횡보하고 있어."

6,900을 시작으로 꾸준히 내려가던 가격이 5,900과 5,800을 오가며 멈춰 선 상황.

"정말 저점이라고? 이거 개인 거래도 가능하다며. 만약 내가 100원씩만 더 주고 잔뜩 매입한 다음 가격이 올랐을 때 팔면 돈 버는 것 아닌가?"

김혜은이 멍한 표정으로 말했다.

"어차피 세론이 망할 리도 없고, 에너지가 폭락해 봤자 얼마나 폭락하겠어. 실체 없는 코인도 그렇게 가격이 많이 올랐는데, 에너지는 소비처도 확실하잖아."

지금도 계속해서 사업을 확장 중인 세론.

그렇게 세론의 에너지 파트 사업이 확장하면 확장할수록 더 많은 정수가 필요해질 거고, 당연히 에너지 가격은 오를 수밖에 없다는 생각이 든 김혜은.

"여유 자금이··· 3,000 있었지?"

*

마치 귀신에 홀린 것처럼 여유 자금을 모조리 에너지 매입에 투자해 버린 김혜은.

그녀는 개인 거래 시장에서 현 시세보다 딱 100원 비싸게 정수를 매입했고, 그렇게 김혜은의 어플에 쌓인 회차의 양이 무려 5천 회였다.

그리고 그날부터 김혜은의 초조함은 날이 갈수록 심해져 갔다.

"5,700······. 더 내렸네?"

저점이라 생각해 남편 몰래 3천만 원을 투자했는데 오히려 더 떨어진 상황.

"아아. 내가 미쳤지, 미쳤어. 그냥 하던 일이나 열심히 할걸."

주식도 재미 삼아 백만 원 해 본 게 전부인데 갑자기 에너지를 매입해서 이렇게 마음고생을 할 줄이야.

"그래도 아직은 괜찮아. 조금만 더 참자."

그렇게 애써 핸드폰을 외면하고 티브이로 뉴스를 시청한 김혜은.

그런데 그때.

-속보입니다. 미국의 유명 할리우드 배우가 괴한으로부터 5번에 달하는 총격을 받았지만 방탄 기능을 지닌 한국산 명품 옷과 가방 덕에 도주에 성공하여 현재 병원에서 치료 중이라고 합니다. 이 배우는 아주 경미한 타박상만 입은 것으로 알려졌으며, 한국 제품 덕분에 살 수 있었다며 고마움을······.

그 뉴스를 본 김혜은이 외쳤다.

"프로티지! 호재다!"

다급히 핸드폰을 켜서 개인 거래 항목으로 들어간 김혜은의 입이 헤벌쭉 찢어진다.

"가, 가격이, 올랐어."

매일 세론에서 공지하는 가격보다 딱 100원 비싸게 거래되던 에너지 가격이 갑자기 800원 넘게 뛰어 있는 게 아닌가.

이 말은 사람들 모두 이 뉴스로 인해 프로티지 판매가 더욱 호조를 보일 것이며 자연스럽게 에너지 판매량 역시 늘어날 거라 예상했다는 말.

김혜은의 동공이 흔들린다.

"팔아? 지금 바로 팔아?"

지금 개인에게 팔면 무려 350만 원의 수익을 올릴 수 있는 상황.

하지만 김혜은은 망설일 수밖에 없었다.

아직 세론에서 내일 단가가 공지되기까진 시간이 남았고, 무엇보다 사람들이 800원 웃돈을 주고 매입한다는 건 그보다 더 오를 거라는 기대감이 있기 때문이니까.

결국 김혜은은 핸드폰을 움켜쥐며 가끔 인터넷으로만 들었던 용어를 외칠 수밖에 없었다.

"존버. 존버는 승리한다!"

*

테스트 삼아 한국에만 도입한 에너지 거래 시장.

나는 사람들에게 학습 효과를 주기 위해서 일부러 가격을 떨어뜨린 다음, 미국 할리우드 배우가 프로티지 옷 세트를 입고 총격을 당했음에도 멀쩡하게 도망쳐 살아남았다는 뉴스가 나오자 바로 그다음 날 7,200원으로 한 번에 1,500원을 올려 버렸다.

아마 눈치 빠르게 저점에서 매수한 사람은 거의 20퍼센트에 달하는 이익을 남겼겠지.

"이러다 아예 에너지만 전문적으로 투자하는 사람들도 나오는 것 아닙니까?"

김덕배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럴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나는 피식 웃으며 말했다.

"아무튼 성공적이네요."

이번 시스템 도입의 효과는 그야말로 성공적이었다.

일부 급한 마음에 처분하는 사람을 제외하면 대부분의 사람들이 기다렸다 팔거나 아니면 시장에서 회차를 매수하는 사람들에게 팔아 치웠고, 덕분에 원래 세론이 지불했어야 할 금액의 80퍼센트 이상이 시장에 잠겨 버린 거다.

그렇게 자금이 시장에 묶여 있는 사이 세론은 이미 그 에너지를 발전소와 프로티지 제품 생산에 사용해 수익 창출을 완료해서 회사 통장엔 그야말로 엄청난 금액의 돈이 쌓여 있었지.

그때 때마침 할리우드 배우 총격 사건이 터졌길래 7,200원으로 한 번에 가격을 급등시켜 밀린 외상금을 지불한 나.

김덕배가 연신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정말 좋은 방법입니다."

일반적인 거래라면 일단 원재료를 사서 제품을 만든 다음 팔아서 이익을 남기겠지만, 이 방법이 도입되며 세론은 외상으로 원재료를 구입해 먼저 이익을 창출한 다음 나중에 외상을 갚는 꼴.

"그나저나 회장님, 혹시 사람들이 갑자기 동시다발적으로 에너지를 팔아 치우면 큰일 나는 것 아닙니까?"

나는 피식 웃으며 말했다.

"뱅크런이요?"

"예."

"그럼 긴급 공지 올려서 가격을 떨어뜨리면 되죠. 싸게 외상값 처리 할 기회네."

"···아."

"애초에 이걸 도입한 이유가 이걸로 돈을 벌려는 게 아니라 원래 줘야 할 돈을 내가 주고 싶을 때 유동적으로 주기 위해서니까요."

은행처럼 예금을 받아 그 자금을 굴려 이자 수익을 얻는 방식은 예금을 많이 받을수록 돈을 더 많이 벌 수 있기에 감당할 수 없는 수준까지 극한으로 고객을 유치하지만, 난 애초에 이걸로 돈을 벌려는 게 아니란 말이지.

그렇기에 딱 감당할 수 있는 수준의 고객만 유치한 다음 그 안에서 자금이 많이 필요한 일이 생겼을 땐 가격을 낮춰 최대한 자금을 시장에 묶어 두고, 자금에 여유가 생기면 외상값 갚는 느낌으로 가격을 올려 주면 끝.

"막말로 지금 당장 모든 사람들이 동시에 돈을 환전해도 감당 못 할 수준은 아니잖아요? 앞으로도 이 정도 수준으로만 관리하면 되지."

"그렇군요. 알겠습니다. 그나저나 몇몇 임원들 사이에서 선물거래 이야기도 나오던데······."

김덕배의 말에 나는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그건 안 됩니다. 그건 완전히 도박이잖아요, 심지어 가격 책정을 우리가 일방적으로 하는. 만약 선물로 손해 보는 사람이 나오면 우리가 가격을 조종해 피해를 봤다며 난리를 칠 게 뻔합니다."

김덕배의 말을 이해하지 못하는 건 아니다.

만약 사람들이 에너지로 선물거래를 하여 상승에 베팅했을 때 우리가 가격을 역으로 내려 버려 강제 청산 시키면 세론은 외상값마저 헐값에 처리할 수 있게 되니까.

하지만 그렇게 되면 가격 변동 권한을 쥐고 있는 세론이 일부러 손해를 입히기 위해 가격을 조종했다는 비난을 들을 것 아닌가.

"굳이 욕먹을 짓은 하지 맙시다. 지금도 잘나가고 있는데 그렇게까지 할 필요는 없잖아요?"

내 말에 김덕배가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

"그렇군요. 그럼 임원들에겐 입조심시키겠습니다."

"아니, 아니. 그냥 내버려 두세요. 그렇게 의견 하나씩 말하다가 대박 아이디어가 나오는 법이니까. 아무튼 당분간 지금 가격대 유지하세요. 그런 다음 적당히 오르락내리락하게 하고."

에너지 거래는 이번이 특별했을 뿐, 앞으로 로우 리스크 로우 리턴을 지향한다.

그래야 사람들도 더욱 안심하고 시장의 물량을 잠글 테니까.

"알겠습니다."

나는 환하게 웃으며 말했다.

"그나저나 확실히 할리우드 배우가 당하니 홍보 효과가 확실하네요."

그렇지 않아도 불티나게 팔리던 프로티지 제품이 이번 할리우드 배우 사건으로 그 성능을 입증하며 수요가 더욱더 폭증하고 있었다.

더욱이 미국 현지화 된 프로티지는 세트로 입어야 기능을 발휘할 수 있기에 돈 많은 사람들의 경우 가방 여러 개에 옷도 십수 벌씩 한 번에 구매하는 일이 부지기수.

"그렇지 않아도 미국 유통사에서 공급량만 늘려 주면 미국 전역에 오프라인 매장을 열겠다고 연락해 왔습니다."

"공급량 늘리죠, 뭐. 생산 라인 증설하세요."

그때 김덕배가 내 눈치를 보며 말했다.

"그런데 그러면 회장님 업무가 너무 과중해지는 건 아닌지······."

지금 프로티지의 제품은 원단이나 가죽이 입고되면 내가 그 위에 마법진을 새기고 그 마법진을 중심으로 재단하여 옷과 가방을 만드는 방식으로 만들어지고 있었다.

당연히 생산량을 늘리기 위해선 내가 마법진을 새기는 원단의 양도 늘어난다는 말.

나는 입맛을 다시며 말했다.

"솔직히 못 할 건 없는데··· 여기서 더 늘어나면 곤란하긴 하겠네요."

명품을 지향하지만 결국 같은 모양의 기성품이기에 마법진을 단순 복사만 하면 끝이라 크게 힘들지는 않지만, 나중에 하루 수만 장씩 만들어야 한다면··· 아무리 나라도 좀 부담이 될 수밖에 없다.

벌인 사업이 프로티지 하나만 있는 것도 아닌데 하루 종일 그것에만 매달려 있을 수는 없잖아.

나는 잠시 고민하며 말했다.

"어쩔 수 없지. 공장 하나 만드세요."

"공장 말입니까?"

"그 어떤 사람도 침입할 수 없는 보안 시설을 갖춘 공장이 필요합니다."

그동안 생각만 해 왔던 정수와 연결해서 마력을 새길 수 있는 도구를 만들 시간이다.

그렇게 도구를 만든 다음 보안이 확실하게 갖춰진 공장에서 스켈레톤들이 도구를 이용해 똑같은 마법진을 원단에 무한정 그려 넣는 게 유일한 방법.

그리고 이 공장은 당연하게도 철통 보안을 필요로 했다.

마법진이나 마법진을 그릴 수 있는 도구가 유출되면 큰일이니까.

"공장 내부는 제가 전부 알아서 할 테니까, 부회장님은 외부 보안만 신경 쓰세요."

오직 나만이 오갈 수 있는 철통 보안 공장에 스켈레톤 군단을 대거 배치하여 그 누구도 침입할 수 없는 요새로 만든다.

"알겠습니다."

*

김덕배가 주도하여 새로운 철통 보안 공장을 건설하는 사이 나는 미국 내 수요에 맞춰 프로티지 제품의 생산량을 적극적으로 늘려 갔다.

덕분에 하루하루 매출이 폭등하는 프로티지.

그런데 갑자기 국내에서 안 되길 바라 왔던 제동이 하나 걸려 왔다.

"후우."

나는 인상을 쓰며 말했다.

"올 게 왔구나."

그것은 바로 부가가치세.

모든 영리적 목적을 지닌 거래에는 10퍼센트의 부가세가 붙는 것이 한국의 법이었다.

예를 들어 A가 원자재를 만들어서 B에게 100원을 받고 팔면 A는 100원의 10퍼센트인 10원을 부가세로 내야 한다.

그리고 만약 B가 그 100원짜리 원자재를 가공해 250원에 팔면 그 차익인 150원에 또 10퍼센트 부가세가 붙어 15원을 납부하는 방식.

그런데 마력은 형체도 없고, 무엇보다 얼마 전까지 이걸로 수익을 거둔 게 없었기에 이 부가세에서 면제되었었는데, 최근 발전소가 가동되고 프로티지가 성장하며 영리적 목적이라는 전제 조건이 달성되며 부가가치세 납부 대상으로 언급되기 시작한 거다.

"이건 어쩔 수 없네."

스켈레톤과 다르게 이건 말 그대로 석유 같은 원자재와 비슷한 상황이었으니까.

문제는 이 비용을 내야 하는 사람이 바로 세론에 마력을 팔고 있는 일반 사람들이라는 거였다.

"일단 최대한 미룰 수 있으면 미뤄 보고, 그러다 안 되면 어쩔 수 없고. 어차피 원망은 나라가 듣는 거니까."

나는 나라에서 정한 법대로 하는 것뿐이라고.

"그럼 앞으로 7,000원에 사면 700원씩 세금이 나가겠네? 그럼 변동 폭을 조금 더 크게 해야 사람들 거래가 더 활발히··· 잠깐만. 근데 이러면 사람들끼리 거래할 때는 어떻게 되는 거야?"

지금 에너지 거래 시장이 열리며 사람들 간의 거래가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있었다.

차익을 노리는 사람들이 시장에서 세론 단가보다 백 원에서 이백 원 비싸게 매입을 하고 있고, 급전이 필요한 사람은 세론이 아닌 이 사람들에게 돈을 받고 회차를 파는 상황.

만약 이 거래에도 부가가치세가 붙으면 이 시장은 완전히 박살 나는 것 아닌가.

나는 급히 내선 전화를 들어 비서에게 말했다.

"회계사한테 빨리 내 방으로 오라고 해요."

*

내 호출을 듣고 한걸음에 달려온 세론 그룹의 회계 업무 전담 회계사.

회계사가 내 말을 듣더니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그런 식의 거래에는 부가세가 붙지 않습니다."

"안 붙는다고요?"

"예. 이건 실물이 오가는 게 아닌 일종의 권리를 사고파는 행위기에 세론에 회차를 정산 받아 현금을 쥐는 최종 단계에서만 세금이 붙습니다. 만약 권리를 사고파는 것에도 세금이 붙는다면 증권시장이 유지될 리 없잖습니까. 하하."

하긴.

매번 거래할 때마다 10퍼센트씩 날아가는데 어느 누가 주식을 하겠어.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거 다행이네요."

그때 회계사가 아차 하는 표정으로 말했다.

"아. 증권시장보다는 금 거래소를 비유하는 게 더 맞는 표현이겠군요."

금 거래소?

"원래는 금 거래를 할 때 10퍼센트 부가세가 붙어 금 투자자들이 현금 거래만 선호했었습니다. 그래서 등장한 게 금 거래소죠. 직접 금을 거래하는 게 아니라 거래소가 지닌 금의 권리만 사람들끼리 사고파는 식이라 부가가치세가 없어 금 투자가 아주 용이해졌습니다. 그러다 만약 진짜 실물 금이 필요하면 부가가치세를 내고 금을 수령하고요."

에너지 매입 거래랑 완전히 똑같네?

그런데 여기서 한 가지 의문이 든다.

"그럼 사람들이 실물 금으로 수령하는 경우가 많나요?"

30만 원 주고 샀는데 실물로 수령하는 순간 3만 원 부가가치세가 나간다?

그럼 나 같아도 실물로 수령 안 하고 그냥 다른 사람에게 다시 되판 다음 돈만 챙길 것 같은데?

아니나 다를까 회계사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당연히 실물로 수령하는 경우는 일부에 불과합니다. 애초에 금 투자를 목적으로 들어갔으니 적당히 금값이 오르면 다른 사람에게 되팔고 돈만 수령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죠. 솔직히 만약 사람들이 너도나도 전부 실물을 수령했으면 금 거래소는 진작에 파산했을 겁니다. 은행이 예금을 전액 현금으로 가지고 있지 않은 것처럼 금 거래소 역시 금 보유량엔 한계가 있으니까요."

나는 눈을 휘둥그레 뜨며 말했다.

"그럼 금은 그대로 있고 시장에서 사람들끼리 자금만 계속 굴린다는 말이네요?"

"정확합니다."

나는 손가락을 튕기며 말했다.

"그거 대박이네!"

부가가치세로 현금화에 장벽을 치고 시장에서 사람들끼리 알아서 거래하도록 만든다고?

원래 내 계획은 대략 한두 달을 주기로 외상값을 한 번씩 털어 주는 거였는데, 이러면 이야기가 달라지지 않나.

"잘하면 한두 달이 아니라 더 오래 묶이게 만들 수도 있겠는데?"

어차피 바로 환전해 봐야 10퍼센트 세금을 내야 하니 그럴 바에는 계속 시장에서 굴리는 거지.

"어? 잠깐만. 근데 그러려면 금처럼 가격이 우상향 될 거라는 기대감이 있어야 되는 것 아닌가?"

지금 에너지 거래소는 어디까지나 가격 변동에 의한 단기 투자를 유도하여 자금을 묶어 두는 방식.

즉, 오르락내리락하기는 하지만 결국 평균을 내면 그전과 별반 다를 바 없다는 소리였다.

그렇기에 단기 투자로는 괜찮지만 장기 투자에 대한 메리트가 없단 말이지.

당연히 그런만큼 사람들이 자금을 오래 묶어 두지 않을 거고.

"금 거래소라······."

금 거래소와 비슷한 구조의 에너지 시장.

이 에너지 시장이 금 거래소에 비해 부족한 건 단 하나다.

바로 우상향이 될거라는 기대감 그 자체.

실제로도 이미 그들이 권리를 가진 마력은 정수가 되어 이미 팔리고 없으니까 사실상 지금 이대로라면 늘 언제나 같은 가격을 횡보할 뿐 우상향이 될래야 될 수가 없단 말이지.

하지만 어찌되었든 인위적이든 뭐든 이 기대감만 채워 줄 수 있다면 금 거래소처럼 굴릴 수 있다는 말 아닌가?

나는 눈을 빛내며 말했다.

"금 거래소 말입니다. 어떤 구조인지 또 어떤식으로 운영되는지 좀 더 자세히 설명해주시겠습니까?"

79화

에너지를 팔면 바로 돈을 쥐어주는 게 아니라 회차를 쌓아주고 그렇게 쌓인 회차를 자신이 원하는 가격에 거래 할 수 있도록 만든 에너지 시장.

그 에너지 회차 시장에서 김혜은은 남편 몰래 3천을 투자하여 다른 사람들이 에너지를 팔고 쌓은 회차를 매입했는데 그게 3천7백으로 불어나자 그때부터 시간만 나면 에너지 시장에서 매입과 매도를 반복하는 단타를 하여 수익을 올렸다.

그녀 스스로 정한 기준은 6,500원이하로 내려가면 매입 그리고 7,000원을 넘으면 매도.

덕분에 엄청난 돈을 만지지는 못했지만 꾸준한 수입을 올리며 쏠쏠히 재미를 보던 김혜은.

하지만 시간이 지나자 김혜은처럼 같은 방식으로 투자를 하는 사람들이 늘어나며 점점 수익이 줄어들어갔다.

김혜은이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말했다.

"세론 공식 매입가가 6,300인데 6,700에 매입한다고?"

워낙 안정적으로 오르락 내리락을 반복하다 보니 100원에서 200원 웃돈을 주고 매입하던 사람들이 이제는 4백원이나 웃돈을 주며 매입한다.

김혜은처럼 기다리면 언젠가는 반드시 7,000원을 넘길 거라는 확신이 있기에 가능한 일.

잠시 침묵하던 김혜은이 말했다.

"6,700가자."

비록 그녀가 정한 기준선인 6,500보다 높긴 하지만 어찌됐든 7,000원으로 오르면 회차당 300원의 차익이 생기니 결국 매입을 결정한 김혜은.

"경쟁이 만만치 않네."

어쩌면 에너지 투자로만 생계를 꾸리는 전문 투자자가 될 수 있을지도 모른다 생각했는데 역시 돈이 된다는 소문이 돌자 너도나도 뛰어들며 수익률이 점점 낮아지는 에너지 시장.

그렇게 매입 주문을 걸어두고 핸드폰으로 뉴스를 보던 김혜은은 경악했다.

"뭐? 에너지에 부가가치세가 적용된다고? 그것도 10퍼센트나!?"

당황한 김혜은이 자신이 매입한 단가를 계산하며 말했다.

"지금 내 평단이 6,500원이잖아. 그럼 7,200원을 넘어야 본전이라는 소린데?"

이젠 재미를 떠나서 본전을 걱정해야 하는 수준에 이른 상황.

"다. 다음달부터 적용이라고? 그럼 그전에 빨리 처분해야지."

다급히 방금 넣었던 주문을 취소하려 어플에 접속한 김혜은.

하지만.

김혜은이 울상을 지으며 말했다.

"거. 거래 완료?"

이미 거래가 모두 완료되어 있는 게 아닌가.

다급히 지금이라도 다시 되팔기 위해 가격을 확인했는데 400원넘게 웃돈이 붙어있던 게 그 잠깐 사이에 매수세가 사라지며 하락 장으로 전환된 에너지 시장.

김혜은은 발을 동동 구르며 말했다.

"어떡하지? 팔아? 아니면 존버? 아아! 어떡해야 돼!"

그렇게 부가가치세 발표와 함께 불어 닥친 폭풍.

그간 에너지 시장에 투자하던 사람들은 마치 시장이 망하기라도 한 것마냥 그간 매입했던 물량을 모조리 세론에 팔아 치웠다.

다른 사람들이 너무 많이 팔아 치워 가격이 떨어지기 전에 처분해야 한다는 생각으로 말이다.

하지만 의외로 오히려 가격을 7천원으로 올리며 시장에 나오는 물량을 모조리 흡수한 세론.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회차를 정산 받던 그때 김혜은은 전혀 다른 선택을 하였다.

"분명 이대로 끝낼 리 없어."

처음엔 부가가치세로 인해 손해 볼 거를 생각했지만 곰곰이 생각해보니 세론의 대처에 상당한 의문이 생긴 거다.

"아무런 대응도 없이 순순히 받아들인 건 이상하잖아. 게다가 가격도 7,000원을 유지하고 있고."

만약 가격을 떨어뜨렸다면 세론도 에너지 시장의 가능성을 낮게 보고 청산과정에 들어간 거라 추측할 수 있지만 세론은 오히려 굳건하게 가격을 유지한다.

마치 이번 부가가치세는 아무것도 아니라는걸 사람들에게 보여주려는 것처럼.

그렇기에 그간 세론이 하는 일에 편승해서 손해 본일은 없기에 묵묵히 버텨보기로 결정한 김혜은.

그때 옆에 있던 남편이 말했다.

"제발 팔자. 응? 부가가치세 도입되면 무조건 손해라고!"

"아니야. 이렇게 끝나지는 않을 거야. 다른 사람도 아닌 한 회장님이잖아. 난 믿어."

"지금 여기에 여유자금이랑 전부 다 부었잖아. 다 합쳐서 5천이라고!"

"아니. 그래도 난 존버 할거야. 당신이 말했잖아. 해보라고."

7백이나 벌었다며 남편에게 자랑을 하자 남편도 혹해 계속해보라며 따로 모아둔 돈까지 건네 받아 투자를 한 김혜은.

"그때랑 지금이랑 상황이 같아?"

"잘 생각해봐. 세론이 왜 가격을 유지하겠어."

"그거야 모르지! 사람들한테 빠져나갈 기회를 주는걸 수도 있잖아!"

"반대일수도 있지. 시중에 풀린 물량을 최대한 흡수해야 하는 이유가 생긴걸 수도 있잖아."

"뭐? 굳이 자기들 돈 풀어가면서 왜?"

"그것까진 나도 모르지. 하지만 나는 믿어. 분명히 뭔가 있어."

남편이 가슴을 치며 말했다.

"답답해죽겠네 진짜!!"

그런 남편을 무시하고 습관처럼 에너지 시장 어플을 켠 김혜은.

"···이젠 거래량이 확 줄었네."

시중에 풀려있던 에너지 회차들을 세론이 7천원에 모조리 흡수하며 남은 회차 자체가 거의 없는 상황.

그런 시장 상황을 보고 잠시 지금이라도 다른 사람들처럼 정리해야 하나 고민했던 김혜은이지만 이내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아니야. 참자."

원래 시장과는 반대로 움직여야 돈을 번다는 말도 있지 않나.

"그냥 당분간 어플 확인 안하고 기다리···"

그렇게 어플을 끄려던 그때.

"어?"

어플에 새로운 공지가 하나 올라와 있는 걸 확인한 김혜은.

김혜은은 다급히 공지를 눌러 내용을 확인해보았다.

"···고객들의 적극적인 참여 덕에 에너지를 얻을 수 있었습니다. 그렇기에 저희 세론은 그런 고객들에게 보답하고자 회차를 이용한 추첨제를 도입합니다. 회차가 오래될수록 점수를 누적시켜 그런 회차를 이용해 프로티지 제품 우선권을 추첨할 수 있는 기회를 드립니···뭐? 우선권?"

모든 내용을 확인한 김혜은이 말했다.

"···그러니까 오래된 회차 일수록 점수가 높고 이 점수를 이용해서 프로티지 제품을 추첨 받을 수있다고?"

그때 이미 시장에 풀렸던 회차 대부분이 회수되고 남은 회차가 별로 없다는 걸 떠오른 김혜은.

"프로티지 제품은 일단 사면 무조건 따불이잖아."

화제가 되며 워낙 많은 사람들이 몰리기에 일단 사기만하면 두 배 이상으로 되팔 수 있는 프로티지 제품의 우선권을 받을 수 있다니.

정확히 무슨 내용인지는 이해가 안되지만 일단 공지에 쓰여있는 링크를 누른 김혜은.

"프로티지 홈페이지네."

그런데 홈페이지에 우선권이란 항목이 보인다.

그렇게 우선권을 눌러 보자 각 상품별로 우선권 신청이 뜨는 게 아닌가.

"가방 가지고 싶었는데."

홀린 듯 가방 우선권을 눌러본 김혜은.

그러자 가방 사진 밑으로 우선권을 신청한 회차들이 쭉 나열되어 있다.

"1점 82,400개. 2점 5,200개. 3점 720개. 4점 20개?"

점수의 총합이 아닌 회차별로 신청이기에 다급히 자신의 회차들을 확인한 김혜은.

김혜은이 경악하며 말했다.

"이. 이렇게 많아?"

5천만원을 투자해 만개에 가까운 회차를 보유하고 있던 김혜은.

그 중엔 시장에서 돌고 돌던 초창기 회차도 제법 있었다.

당연히 그런 만큼 많은 점수가 누적되어 있는 김혜은의 회차들.

그 중에서 가장 높은 점수를 가진 회차는 4점짜리로 그런 4점짜리 회차만 30여개에 3점짜리도 100개나 되었다.

"점수가 높을수록 당첨확률이 높다고 했지?"

떨리는 손으로 4점짜리 30여개와 3점짜리 100개를 가방에 몰빵한 김혜은.

"가방 수량은 50개. 현재 가장 높은 점수는 나 빼고 4점 20개 밖에 없잖아. 그럼 운만 좋다면 가방 50개가 전부 당첨될 수도···히이이익!!"

일단 사면 되팔아서 수천의 차익을 챙길 수 있는 프로티지의 가방 50개라니.

김혜은이 침을 삼키며 말했다.

"며. 몇 억은 남겨먹을 수 있다는 말이잖아. 그런데 그렇게 많이 당첨되어도 살 돈이 없는데?"

혹시나 하는 마음에 약관을 확인한 김혜은의 입이 찢어질 듯 벌어진다.

"우선권을 타인에게 양도 가능하다고?"

한마디로 우선권을 돈 받고 팔아도 된다는 말.

김혜은은 바로 무릎을 꿇으며 말했다.

"역시 한 회장님은 생각이 있으셨던 거야! 그래 내가 그럴 줄 알았다고!! 한 회장님 만세!!"

금 거래소가 내부에서만 자금이 돌 수 있는 이유는 금으로 환전했을 때보다 가지고 있을 때가 더 이득이라는 사람들의 기대감 덕분이다.

하지만 에너지 시장은 금과 다르게 이미 사들인 마력을 소진한 뒤라 이 기대감을 채운다는 게 불가능했지.

그때 떠오른 게 바로 아파트 청약이었다.

아파트를 당첨 받기 위해 부양가족을 늘리고 한방을 위해서 수십 년간 청약금을 넣으며 무주택으로 살아가기도 하는 사람들.

당연히 그런 상황이 가능한 건 아파트에 당첨되면 무조건 청약금보다 비쌀 거라는 기대감이 있기 때문이었다.

"되팔 때 무조건 이득인 프로티지 제품이라면 딱이잖아."

마침 프로티지 제품이 이 포지션에 정확히 어울리기에 이걸 미끼로 회차에 청약처럼 점수제를 도입한 나.

간단하게 설명해서 회차 하나하나가 청약 통장인 셈이었다.

당연히 오래된 청약 통장일수록 당첨확률은 올라가는 법이고.

내 옆에 있던 김덕배가 감탄한 표정으로 말했다.

"어떻게 이런 생각을 다 하셨습니까? 이런 식이라면 회차에 점수가 쌓일수록 사람들은 더욱 더 세론에 회차를 청산하지 않을 겁니다."

회차의 점수는 어디까지나 그들에 대한 보답성 이벤트이기에 세론에다 회차를 청산해봐야 점수가 얼마나 쌓여있던 세론은 딱 정해진 가격만 돌려주니까.

심지어 거기에 부가가치세까지 적용되니 사람들은 점수가 쌓인 회차를 청산할 바에야 우선권을 노리는 사람들에게 팔 거고 그 사람들은 프로티지의 제품 우선권을 위해 그런 회차를 높은 가격에 매입할거다.

즉 이걸로 완벽한 우상향이 가능해진다는 말.

어차피 되팔이들 좋은 일 하던걸 고객들에게 나눠주고 얼마나 좋나.

거기에 이런 진입장벽을 두면 프로티지의 제품은 더욱 더 명품같은 명품이 될 거다.

아무나 돈이 있다고 해서 바로 살 수 있는 게 아니니까.

"아. 그런데 점수 상한은 없습니까?"

"청약은 만점이 몇 점이었죠?"

"84점입니다."

"흠."

확실히 무한정 쌓게 두면 초기 회차와 나중의 회차간에 양극화가 생길게 뻔하지.

"일단 만점 36점. 점수는 1달에 1씩 오르니까 이것만해도 3년은 걸리겠죠. 그러다 만점이 너무 많이 늘어났다 싶으면 상한 살짝 풀어주는 식으로 합시다."

나는 피식 웃으며 말했다.

"그나저나 끝까지 버틴 사람들은 완전히 노났겠네요."

최대한 공평하게 시작하도록 만들기 위해서 일부러 가격을 7천원에 고정해두고 시장의 물량을 모조리 흡수한 세론.

하지만 그 중에는 끝까지 버틴 소수의 사람들이 있었고 이들은 4점짜리 회차를 적게는 수십 개에서 많게는 수백 개씩 보유하고 있었다.

만약 이 시스템이 완전히 정착되어 만점 회차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났다면 3점이나 4점이나 고작 한달 차이기에 큰 의미가 없지만 지금은 완전히 빈집이란 말이지.

김덕배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맞습니다. 지금 고안한 추첨 시스템을 적용하면 전체 대상 물량 중 4점이 55퍼센트를 가져가고 3점이 25퍼센트. 2점과 1점이 각각 15퍼센트와 5퍼센트이니 아마 그 소수의 사람들이 절반이 넘는 물량을 가져갈 겁니다."

최고점에 모든 물량을 주지 않는 건 다른 회차에도 가능성을 부여해 함부로 팔지 못하게 하기 위함이었다.

그래야 어떻게든 회차를 부여잡은 채로 버티고 또 버틸 때니까.

하지만 그럼에도 최고점에게 주는 55퍼센트의 물량은 결코 적은 양이 아니지.

게다가 설사 4점을 넣고도 떨어졌다 쳐도 그 다음달엔 5점으로 여전히 최고 점수로서 도전이 가능하니 아마 끝까지 버틴 사람 중엔 이것만으로도 수십억을 버는 사람들이 나올 거다.

"조금 확률을 조정할까요?"

김덕배의 말에 나는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대박난 사람이 있어야 다른 사람들도 혹해서 동참할거 아닙니까. 어찌됐든 끝까지 세론을 믿어준 거니 대박나게 두세요."

"알겠습니다. 이거 참 저도 부러울 지경이군요."

"뭘 또 부러울 거 까지야. 그 정도 돈 1년이면 버시는 분이."

"하하. 그냥 해본 말입니다."

그렇게 김덕배와 농담을 주고 받은 나는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아무튼 이번에 최종적으로 테스트 해보고 좋은 결과 나오면 프로티지 진출국에 전부 도입하세요."

"알겠습니다."

나는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자. 그럼 사람들이 어떻게 반응하는지 한번 볼까요?"

처음엔 50개 모두 당첨되는 게 아닌가 기대를 했던 김혜은이지만 그 후 4점 회차가 제법 등장하며 치열해진 경쟁.

그렇게 초조한 마음으로 결과를 기다리던 김혜은은 추첨 결과를 보고 넋이 나간 표정으로 말했다.

"3개 당첨."

비록 처음 생각한 것처럼 50개는 아니지만 3개의 우선권만 팔아도 수천 만원이 떨어지는 상황.

"미쳤다."

단타로 용돈벌이나 할 생각이었는데 존버 한번에 연봉을 넘어서는 돈을 벌다니.

"···당첨된 회차 점수는 초기화되네."

그렇게 회차가 초기화된걸 확인한 김혜은은 황홀한 표정으로 말했다.

"그런데 당첨 안된 것도 다음에 또 넣으면 되는 거잖아."

어차피 모든 회차는 1달에 한번 공평하게 1점씩 쌓이니 현재 김혜은이 가진 최고점 회차는 당첨되기 전까진 앞으로도 계속 최고점 회차일 테니까.

"어? 그런데 잠깐. 그럼 이 회차들 가격은 어떻게 되는 거지?"

그렇게 어플을 켜서 가격을 확인한 김혜은은 경악하며 말했다.

"4. 4점짜리 회차 가격이 200만원이라고?!"

높은 확률로 프로티지 제품이 당첨될 수 있고 심지어 앞으로도 계속 최고점일 테니 말도 안 되는 수준까지 올라간 회차 가격.

"300배 떡상···아아! 한 회장님. 정말 감사합니다."

이제야 자신이 돈방석에 앉았다는 걸 피부로 느낀 김혜은.

"무조건 들고 있는 거야 무조건."

어떻게든 점수를 하나라도 더 올려야 한다.

그래야 우선권 획득 확률이 올라가니까.

그때 김혜은이 아차한 표정으로 말했다.

"아니지. 단순히 모으기만 해서 될 일이 아니잖아."

더 사모아야 한다.

공지에 의하면 회차당 점수 상한은 36점.

"지금이야 4점이 압도적으로 당첨확률이 높지만 그 4점들이 모두 초기화 되고 나면 결국 3점의 시대가 올 거잖아."

4점은 워낙 비싸니 부담스럽지만 3점이라면 사 모을만하지 않을까?

그렇게 잠시 고민하던 김혜은이 말했다.

"우선권 팔아서 돈 챙기고 그 돈으로 3점짜리 사 모으자."

미래를 위해 점수가 단 1이라도 높은 회차를 중점적으로 매입한다.

김혜은이 핸드폰을 부여잡고 외쳤다.

"가즈아!!!"

그렇게 추첨제가 도입되며 시작된 에너지 시장 광풍.

그 광풍은 순식간에 한국 전체를 뒤덮으며 커져가기 시작했다.

80화

사람들은 세론에 에너지를 팔 때마다 회차를 하나씩 적립 받는다.

그리고 이 회차를 원하는 때에 팔아 돈을 챙길 수 있고.

그런데 이 회차에 부가가치세가 적용되고 점수제가 도입되자 상황이 완전히 뒤바꼈다.

이 회차에 누적된 점수로 프로티지 제품 우선권 추첨이 가능해지니 10퍼센트 세금을 내고 돈으로 바꿀 바에야 최대한 들고 있으면서 점수를 쌓아 프로티지 우선권에 당첨되길 노리면 상당한 돈을 손에 쥘 수 있으니까.

그렇게 사람들이 회차를 단순히 돈벌이 수단을 넘어 청약 통장 같은 추첨권으로 인식하자 다양한 현상이 나타났다.

높은 점수의 회차를 매입하기 위해 돈을 지르는 사람들부터 아예 점수를 쌓아 되팔 걸 상정하고 낮은 점수의 저렴한 회차를 대량 매입 해 묵히기 시작한 농부형 투자자까지.

하지만 그중에서도 단연 돋보인 것은 바로 보유하고 있던 물량을 끝까지 쥐고 있던 존버형 투자자들이었다.

그들은 부가가치세 적용으로 인한 대량 청산 과정에도 끝까지 회차를 들고 있던 사람들.

다른 사람들은 모든 회차를 청산해 0부터 시작이지만, 이들이 가지고 있던 회차는 이미 시간이 흘러 점수가 제법 쌓여 있는 상황이었으니까.

그렇게 그들은 점수가 쌓인 회차를 이용해 프로티지 제품 우선권을 받아 되팔거나, 아니면 회차 자체를 팔아 치우며 어마어마한 돈을 벌었다.

그리고 그런 사람들의 이야기가 외부로 알려지자 에너지에 관심이 없던 사람들도 관심을 가지기 시작해 그야말로 모든 화제의 중심에 선 에너지 시장.

"4점짜리에 프리미엄이 5백까지 붙었습니다."

세론에 청선해 봐야 7천 원인 4점짜리가 5백만 원에 거래되는 상황.

나는 피식 웃으며 말했다.

"당첨되면 차익으로만 천만 원은 우스울 테니 당연하죠."

물론 이 상황이 영원히 지속되지는 않을 거다.

지금이야 최고점을 가진 회차들이 워낙 적어 당첨 확률이 압도적으로 높지만, 그 최고점 회차들이 모두 당첨되어 초기화되면 그때부턴 매일 수백만 개씩 쌓이고 있는 회차들이 최고점이 될 테니까.

그만큼 최고점 간의 경쟁도 치열할 테니 그때쯤이면 점수별로 프리미엄이 많아야 몇천 원 정도씩만 붙을 거다.

당연히 상황이 그렇게 되면 당첨 확률을 높이기 위해 최대한 많은 회차를 보유하려 할 거고, 그것이 바로 내가 이번 일을 기획한 핵심이지.

점수가 쌓이면 당첨 확률이 올라가 프리미엄이 붙는데 세론은 오직 딱 정해진 7천 원 수준만 청산해 주니, 차라리 당첨을 노리고 프리미엄을 주며 매입하는 개인에게 파는 것이 훨씬 이득이니까.

"세론에 회수되는 비율이 얼마나 됩니까?"

내 말에 김덕배가 씨익 웃으며 말했다.

"1퍼센트 미만입니다."

그냥 거래만 도입했을 땐 20퍼센트 정도였던 회수율이 1퍼센트 미만으로까지 떨어진 상황.

"좋네요."

최소한 내가 최고점으로 정한 36점이 쌓이는 데 필요한 3년 동안은 지금과 같은 흐름이 유지될 거다.

"공장은 언제 완공이죠?"

그리고 이 모든 일은 프로티지의 제품이 정가보다 훨씬 높은 가격으로 사람들 간에 거래되기에 가능한 일.

그러니 프로티지의 제품을 더 신경 써서 만들어야지.

가죽에 마법진을 새길 철통 보안 공장 건설에 대해 김덕배에게 물어보자 김덕배가 자신감 넘치는 표정으로 말했다.

"조만간입니다."

"보안은?"

"철근 콘크리트로 두껍게 벽을 쌓았고 창문도 없습니다. 공장 안으로 들어갈 수 있는 문도 스켈레톤들이 완성한 가죽을 쌓아 둘 창고로 연결된 문과 회장님이 드나드실 문 두 개뿐이고요."

오직 나만 드나들 수 있는 철통 보안의 공장.

이 공장에서 스켈레톤을 이용해 마법진이 그려진 가죽을 대량 양산 한다.

"이것만 완성되면 일에서 해방이네."

그동안 프로티지 제품 늘리면서 하루에도 몇 시간씩 가죽에 마법진을 그려 넣는 단순 반복 작업을 하면서 얼마나 지루하고 귀찮았는지.

이제 이 공장만 만들어서 가동하면 일에서 해방이다.

"공장 완성되면 바로 말해 줘요, 준비해 뒀다 바로 가동할 거니까."

*

드디어 완성된 공장.

나는 공장을 바라보며 말했다.

"이 정도면 보안은 충분하겠지."

일단 공장 외부에선 사설 경비업체에서 파견한 경비들이 24시간 교대로 돌아가며 공장을 지킨다.

이들의 역할은 일반인의 침입을 막고 수상한 인물에 대한 경계로, 이 역할은 스켈레톤보단 유동적인 판단을 내릴 수 있는 사람이 적합하기에 사설 업체를 이용했지.

거기에 추가로 한국에 귀화한 박인귀의 길드원 일부가 번갈아 가며 상시 대기 하고 있으니 어지간한 수준의 침입은 이 단계에서 막힐 거다.

마스터 카드로 두꺼운 철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간 나는 곧바로 전투형 스켈레톤을 대량으로 소환했다.

"입구에는 S급을 배치하고 벽을 따라 A급이랑 B급. 그리고 비상 대기로 SS급도 배치하고······."

원래라면 세상에 함부로 공개해서는 안 될 SS급의 배치.

하지만 이곳은 나를 제외한 그 누구도 들어올 수 없는 공간이고, 만약 이 철통 보안과 두꺼운 철근 콘크리트를 뚫고 들어올 만한 놈이라면 애초에 악의가 가득 담긴 놈일 테니 상관없다.

다른 것도 아니고 마법진이라는 내 핵심 지식을 탐내는 놈에게 자비를 내려 줄 만큼 나는 착하지 못해서 말이지.

그렇게 공장 내부에 전투형 스켈레톤을 대량으로 배치한 나는 손을 비비며 말했다.

"자. 이제 일꾼을 배치해 볼까?"

*

달그락. 달그락.

스켈레톤들이 가죽 위에 인공 정수가 연결된 펜을 들고 무언가를 그려 넣는다.

그것은 당연히도 프로티지 제품에 들어갈 마법진들.

나는 손을 탁탁 털며 말했다.

"이걸로 끝! 해방이다!"

마법진을 그릴 수 있는 도구를 이용해 알고리즘에 따라 24시간 무한정 같은 마법진을 그려 넣는 스켈레톤들.

사실 이 방법은 효율로만 보았을 때는 극악이나 다름없었다.

마력 소모도 크고 느리니까.

하지만 에너지 시장을 키우며 얻은 막대한 마력과 스켈레톤 물량이 있는데 무슨 상관인가.

"역시 내 몸 편한 게 제일이라고."

부족한 효율은 양으로 떼우면 그만인 법.

아무튼 이제 여기서 완성된 가죽은 옆의 창고에 쌓일 거고, 주기적으로 세론의 직원들이 가져다가 프로티지 생산 라인에 공급할 거다.

그러니 나는 가끔 한번씩 들러서 문제가 없나 확인하고 관리만 해 주면 끝.

"···그나저나 나지운을 어떻게 하지?"

내가 아닌 스켈레톤이 마법진을 그리는 순간이 오자 조폭들에게 협박당해 짝퉁 제품을 만들다가 내 눈에 띈 나지운이 생각난다.

마법을 배우기에 최적화된 재능을 가지고 있어 일단 옆에 두고 보기 위해 디자이너로 영입했는데, 생각보다 디자이너로서도 상당한 재능을 보이며 이제는 프로티지의 일부 제품 라인업을 직접 구상할 정도로 성장해 있었다.

"마법진을 가르쳐 준 다음 저 도구만 쥐여 주면 준네크로맨서로 활동할 수 있을 텐데."

그간 지켜본 나지운은 상당히 소박하고 이타적인 인물로 성격 자체는 참 괜찮았단 말이지.

"잘만 가르치면 날 대신해서 온갖 일을 다 해 줄··· 아니지, 아니지."

나는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무력도 없는 디자이너한테 마법 도구만 틱 쥐여 줄 거면 이런 공장을 뭐 하러 만들어."

가장 확실한 건 나지운을 진짜 네크로맨서로 키워 본신의 무력과 능력을 모두 잡는 것.

그리고 그걸 위해선 내가 가진 상당량의 지식을 직접 전수해야 한다.

솔직히 무조건 제자를 키워야만 하는 상황이라면 모를까, 그건 좀 피하고 싶단 말이지.

"아무튼 공장도 완성됐겠다, 이제 계속 양산하면 되겠네. 오케이."

팍팍 만들어서 팔자고.

*

사람들에게 회차를 나눠 주고 그걸로 마력을 매입해 프로티지 제품을 팔고.

그야말로 사업은 순풍 그 자체였다.

그런데 갑자기 들려온 한 가지 소식.

"인력난이요?"

"예."

군산에 에너지 매입 자금이 풀리며 소상공인들이 토로했던 인력난이 군산을 넘어 에너지 매입 부스가 도입된 전북 그리고 충남 전체로 퍼져 나간 거다.

"좀 많이 심각한가 봅니다. 최근 회차에 점수를 도입하며 가격이 올라 에너지 판매에 생계를 의지하는 사람들이 많이 생겼다고 합니다. 특히 저임금 노동자와 중소기업일수록 그 경향이 더욱 강하게 나타나고 있습니다."

기존 21만 원이던 에너지 매입 가격에 점수에 따른 프리미엄이 붙으며 수입이 늘어나자 아예 일을 그만두는 사람이 늘어난 거다.

"아니, 그래 봤자 최고점 회차가 아니라면 4인 가족 기준 백만 원 조금 넘는 수준일 텐데······."

"그 정도 돈만 해도 저임금으로 맞벌이를 하던 사람들에겐 큰돈이니까요."

"아."

"저임금 맞벌이 부부들 입장에서 돈 몇십 더 벌겠다고 파트 타임 알바를 하느니 차라리 둘 중 한 명이 살림에 전념하면 생활비도 절약할 수 있고 가정에 더 집중할 수 있으니까요."

그거 말 되네.

"물론 모든 사람들이 그런 건 아니지만 때문에 소상공인들이나 중소기업의 인력난이 심각하다고 합니다."

워낙 저임금이기에 외국인이나 아니면 파트 타임 알바를 쓰던 공장과 소상공인들이 직격탄을 맞은 상황.

나는 눈을 빛내며 말했다.

"스켈레톤 밀어 넣어?"

가장 처음 에너지 매입을 도입했던 군산에서 소상공인들이 인력난에 허덕일 때는 그 작은 가게 하나하나 관리하기 버거울 거라 생각해 주저했지만, 지금은 상황이 달라졌다.

중국의 가짜 SS급 게이트 사건을 통해 사람들이 세론을 불안하게 바라보자 내가 없어도 인공 정수에서 마력을 공급 받아 작동하는 시스템을 완성해 스켈레톤의 독립화를 완성했고, 프로그래머 역시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났으니까.

"일단 군산시부터 시범적으로 도입해 볼까?"

스켈레톤으로 인해 생긴 공백을 스켈레톤으로 메꾸는 아주 자연스러운 흐름.

어차피 내버려 두면 외국 인력을 데려다 메꿀 텐데, 그럴 바에는 그냥 내 스켈레톤으로 돈을 빨아들여야지.

물론 위험성은 있다.

사람 직원을 일부러 내보낸 다음 인력난이라 우기는 회사가 나올 수도 있으니까.

나는 잠시 고민하다 말했다.

"스켈레톤 빌려줍시다."

"괜찮으시겠습니까? 악용의 우려가 있는데."

나는 환하게 웃으며 말했다.

"악용을 할 수 없도록 만들면 되죠."

스켈레톤으로 인한 부작용은 스켈레톤이 사람 직원보다 더 효율적이고 저렴하기 때문.

그럼 이걸 뒤틀어서 최대한 사람 직원을 두는 게 이득이도록 만들면 될 것 아닌가.

"일단 5인 이상 사업체는 패스하고 군산시의 소상공인들을 대상으로 하는 겁니다. 게다가 어차피 모든 가게마다 그 가게에 맞도록 설정을 해 줘야 할 것 아니에요? 거기다 변동 사항이 있으면 프로그래머도 파견해야 하고."

"맞습니다."

나는 씨익 웃으며 말했다.

"그럼 그에 상응하는 비용을 받는 겁니다, 진짜 어쩔 수 없을 때만 스켈레톤을 쓰도록."

*

군산 시내 편의점 사장은 요즘 그야말로 죽을 맛이었다.

세론 덕에 군산시 경기가 살아나고 에너지 판매 자금이 풀리며 여유로워진 사람들이 소비를 늘린 덕에 매출은 상승했는데, 일을 할 직원을 구하질 못한 거다.

그래서 와이프와 번갈아 가며 하루에 12시간씩 편의점 일을 봐 왔는데, 최근 야간 알바가 그만두며 이제는 매일 16시간을 일하게 된 편의점 사장.

본사와 24시간을 기준으로 계약이 되어 있어 무조건 24시간 영업을 해야 하기에 도저히 다른 방법이 없었다.

편의점 사장이 퀭한 눈으로 말했다.

"이러다 정말 죽을지도 몰라."

어떻게든 새로운 알바를 구하기 위해 최저 시급보다 더 비싸게 구인 광고를 올렸지만, 그럼에도 연락이 한 통조차 오지 않는다.

"아아."

그런데 그때 편의점으로 들어오는 한 남자.

"어서 오세······."

습관적으로 인사를 하던 편의점 사장은 그 남자 뒤에 있는 무언가를 발견하고 멍한 표정으로 말했다.

"···스켈레톤?"

그것은 바로 스켈레톤이었다.

물론 스켈레톤 자체는 별로 이상하지 않았다.

군산은 세론의 근거지이기에 공단에 가면 일하고 있는 스켈레톤을 무더기로 볼 수 있었고, 그 외에도 세론의 건설용 스켈레톤도 이곳저곳에 배치되어 있었으니까.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공사 현장과 기업에 국한된 일일 뿐, 저렇게 개인이 스켈레톤 하나만 딸랑 데리고 다니는 건 처음 본 사장.

그때 남자가 사장에게 다가와 말했다.

"안녕하십니까."

"아. 예."

"구인 광고 보고 왔는데, 혹시 아르바이트생 구하셨나요?"

편의점 사장이 눈을 번쩍 뜨며 말했다.

"아, 아르바이트!?"

가장 간절히 원하던 말을 듣자 스켈레톤을 머릿속에서 지워 낸 사장이 말했다.

"아직 못 구했습니다!"

그 말에 남자가 환하게 웃으며 말했다.

"그거 다행이군요. 그럼 혹시 스켈레톤을 알바로 쓰실 생각 있으십니까?"

"스켈레톤?!"

군산시에 양질의 일자리가 생기고 에너지 매입 대금이 뿌려지며 저임금 노동자가 자취를 감추자 소상공인연합회에서 나온 의견 중 하나가 바로 스켈레톤을 이용해 빈자리를 채우자는 것.

하지만 세론의 반대로 무산되었는데, 그랬던 세론이 드디어 움직인 거다.

'저렴한 스켈레톤을 쓰면 수입도 늘어날 거니 최고잖아!'

일도 덜 수 있고 수입도 늘어나는 최고의 선택지.

사장이 격렬하게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당연히 있지요!"

다른 지역이라면 모를까, 군산시는 스켈레톤과 세론에 대한 호감이 하늘을 찌르는 도시기에 스켈레톤에 대한 거부감도 없어 그야말로 완벽했다.

그때 남자가 서류를 한 장 건네며 말했다.

"그럼 이걸 읽어 보시고 동의하시면 사인해 주세요. 그럼 바로 설치 들어갈 겁니다."

그렇게 희희낙락 서류를 받아 든 사장.

하지만 읽으면 읽을수록 표정이 굳는다.

"···이거 뭔가 이상한데요."

"뭐가 이상하신가요."

"설치비가 100만 원이나 되나요?"

"당연합니다. 이 가게만을 위한 알고리즘을 짜서 적용해야 하는데, 이 알고리즘은 다른 곳에선 사용하지 못할 것 아닙니까. 대신 매달 한 번 방문하여 원하는 수정 사항을 적용해 드립니다. 물론 그 외에 따로 부르시면 20만 원 추가금이 붙지만요."

설치 후 뭔가 하나 변경하려면 20만 원 추가금을 내고 부르거나 아니면 한 달을 기다려야 하는 상황.

잠시 침묵하던 사장이 말했다.

"그것까진 이해하겠습니다. 원래 로봇도 그렇고 자동화는 초기 비용이 비싼 대신 유지비가 저렴하니까요. 그런데 이건 유지비도 비싼데요?"

사장이 계약서에 적힌 스켈레톤 이용비를 가리키며 말했다.

"이 돈이면 최저 시급보다도 조금 더 비싼 수준 아닙니까?"

"맞습니다."

"설치비도 내야 하고 수정도 내 마음대로 못 하는데 최저 시급보다 더 비싸고. 이러면 그냥 사람 쓰지 누가 스켈레톤을 씁니까?"

남자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게 핵심입니다."

"···예?"

"애초에 이번 사업은 인력난에 허덕이는 사람들을 위해 회장님이 특별히 배려 차원에서 시작한 일입니다. 그러니 이 스켈레톤들은 인력난을 잠시 동안 메꿔 주는 역할이지 완전한 대체가 아니라는 뜻이죠."

사장이 멍한 표정으로 말했다.

"사람 직원을 구할 수 있으면 쓰고 못 구하면 스켈레톤 힘이라도 빌려라?"

"정확합니다."

남자 직원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어떻게··· 계약하시겠습니까?"

81화

군산시에만 시범적으로 도입해 본 소상공인 전용 스켈레톤 알바 서비스.

이 서비스는 어디까지나 직원을 구하다 실패한 사장들을 대상으로 추진한 것이기에 스켈레톤 대여 비용은 설치비 등을 고려하면 오히려 더 비싼 수준이었다.

"반응은 어떻습니까?"

내 말에 백상호 센터장이 멋쩍은 표정으로 뒤통수를 긁으며 말했다.

"솔직히 불만이 상당합니다. 가격은 비싼데 일은 잘 못한다면서요."

"당연히 그렇겠죠."

이건 작업 난이도면에서 공장보다 압도적으로 어려울 수밖에 없었다.

같은 라인에서 같은 동작을 반복하는 공장과 다르게, 가게들은 구조와 영업 시스템이 모두 제각각인 탓에 한 스켈레톤이 해야 하는 업무의 종류가 어마어마했으니까.

그나마 비교적 수월한 편인 편의점조차도 청소부터 시작해서, 오만 가지 상품을 알맞게 진열해야 하며, 동시에 계산까지 해야 하는 등 알고리즘을 짜야 하는 작업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그래도 프로그래머들이 점점 익숙해지며 데이터가 쌓여 가고 있으니 점점 더 나아질 겁니다."

"그럼 다행이고."

하지만 그건 백상호의 말처럼 데이터가 쌓이면 자동으로 해결될 일이다.

결국 알바는 단순 반복 작업 위주이기에 계산이나 진열 같은 각 업무별 기본 알고리즘만 확립되면 그때부턴 가게의 구조에 맞춰 적용하면 되니까.

"그나저나 이거 수익률이 괜찮은데요."

인력난 해소를 위해 스켈레톤을 투입한 거지만 의외로 수입이 상당하다.

애초에 스켈레톤의 사람보다 저렴한 노동력을 활용해 돈을 벌어온 건데, 알바에 투입된 스켈레톤의 유지비는 오히려 사람보다 비싸단 말이지.

덕분에 스켈레톤 한 기당 수익률이 상당한 수준.

나는 눈을 빛내며 말했다.

"여기에 중소기업으로까지 확장하면··· 이야, 쏠쏠하겠네."

빈집인 데다 이 정도까지 배려해 줬으니 문제될 일도 없고 얼마나 좋나.

게다가 기존 협력사들에 빌려준 스켈레톤보다 높은 유지비를 받기 때문에 협력사들도 불만이 없을 거고.

나는 백상호를 보며 말했다.

"아무튼 이 기회에 알고리즘 보강 확실하게 하고 갑시다."

그간 공장에서 굴리던 스켈레톤과 다르게 알바 스켈레톤은 실생활과 밀접한 업무를 주로 담당하고 있었다.

청소나 간단한 물건의 배치 그리고 사람과 돈 혹은 카드를 주고받는 상호 작용 등.

당연히 그간 해 본 적 없는 작업이라 미숙하지만, 데이터가 쌓여 완전히 적응하는 순간 스켈레톤의 활용 범위는 더욱더 늘어나게 될 거다.

어쩌면 그 과정에서 내가 생각하지 못한 새로운 사업 아이템을 찾을 수 있을지도 모르고.

"알겠습니다, 회장님. 확실하게 처리하겠습니다."

"백 센터장님만 믿고 있겠습니다."

*

편의점 유니폼을 입은 스켈레톤이 과자 상자를 뜯어 과자를 꺼내 선반에 진열한다.

그때 손님이 들어오는 벨 소리가 나자 스켈레톤은 손님을 향해 공손히 허리를 숙이고는 다시 진열 업무를 진행한다. 손님이 모든 물건을 고르고 카운터 앞에 놓인 호출 벨을 누르자 카운터로 척척 걸어가는 스켈레톤.

그러고는 손님이 올려놓은 상품을 쭉 늘어놓더니 하나씩 하나씩 바코드를 찾아 찍고는 화면에 적힌 금액을 가리킨다.

그렇게 금액을 확인한 손님이 카드를 내밀자 카드를 받아 계산을 진행하는 스켈레톤.

그 모습을 본 편의점 사장이 연신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이제 좀 괜찮네."

처음 스켈레톤 알바를 반신반의하며 고용했던 편의점 사장은 바로 후회했다.

생각과 다르게 스켈레톤들이 너무나도 멍청했던 거다.

사람 직원이면 여기에 뭐가 있고 저기에 뭐가 있다는 식으로 말 몇 마디면 인수인계가 가능한데, 스켈레톤은 그 모든 걸 걸음마 단계부터 하나하나 전부 가르쳐야 했으니까.

하지만 시간이 흐르며 상황이 점점 바뀌었다.

설치비로 100만 원을 받은 세론의 직원이 아직 완전히 설치되지 않았다며 수시로 방문해 알고리즘을 수정해 주었고, 동시에 사장과 머리를 맞대고 편의점의 전체적인 시스템을 스켈레톤에 맞춰 변경한 세론의 직원.

그렇게 고안한 방법 중 하나가 계산을 원하는 손님에게 호출 벨을 눌러 달라 하여 스켈레톤으로 하여금 확실하게 계산하려는 손님을 인식하게 만드는 것이었다.

덕분에 처음엔 손님이 구경하려고 카운터에 서기만 해도 하던 일을 멈추고 카운터로 향했던 스켈레톤이 이제는 확실하게 타이밍을 잡고 계산을 진행한다.

그것말고도 포인트 적립이나 할인 등 손님과 소통을 해야 할 때는 그 상황에 맞는 말이 적힌 카드를 내민다거나 물건을 담을 비닐 봉투를 미리 세팅해 두는 등 여러 방법을 동원한 세론의 직원과 편의점 사장.

여기에 이렇게 변경된 시스템에도 큰 불만 없이 적응하는 군산 시민들의 협조가 더해지자, 이제는 스켈레톤 혼자서도 제법 그럴싸하게 편의점 일을 척척 처리한다.

편의점 사장이 작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로봇 청소기 느낌이네."

처음엔 바닥에 수건 한 장만 있어도 그걸 빨아들인 다음 삐빅거려 사람들의 인내심을 시험하던 로봇 청소기.

하지만 사람이 그 로봇 청소기에 적응하여 로봇 청소기가 잘 움직일 수 있도록 집 안을 세팅해 두면 그 후론 청소에서 완전히 해방되는 것처럼, 스켈레톤도 편의점의 시스템을 스켈레톤에 맞추자 효율적으로 움직이기 시작한다.

그때, 편의점 문을 열며 콘솔을 들고 들어온 세론의 프로그래머.

"저 왔습니다."

하도 자주 보다 보니 이제는 친숙해진 프로그래머의 등장에 편의점 사장이 말했다.

"오셨습니까?"

"어떤가요?"

"이제는 진짜 쓸 만하네요."

그말에 프로그래머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거 다행입니다. 휴, 사실 이제 와서 하는 말이지만 저도 처음 해 보는 업무라 많이 버벅였을 텐데 이해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하하. 그렇습니까?"

"아무튼 그럼 제가 한 번 더 체크하겠습니다."

그리고는 물건을 하나 집어 들더니 카운터로 다가가 벨을 누른다.

그러자 다시 스켈레톤이 다가와 계산을 하고 금액을 가리킨 순간 프로그래머가 말했다.

"환불."

그러자 다시 바코드를 찍고는 환불을 진행한 스켈레톤.

그 모습을 본 프로그래머가 계속해서 테스트를 진행한다.

"이거 계산. 아, 마음이 바뀌었어. 이것 중에 이거랑 이것만 빼고 계산."

그렇게 떠올릴 수 있는 여러 경우의 수를 테스트해 본 프로그래머.

그렇게 모든 테스트를 마친 프로그래머가 말했다.

"일단 카드로 계산하는 상황에선 대부분 대처가 되는 것 같군요. 현금은 여전히 갈 길이 좀 멀지만."

"그건 상관없습니다. 요즘 다들 현금은 안 들고 다니는 데다 스켈레톤이 일할 때는 아예 편의점 문앞에 카드 계산만 된다고 써 붙여 놨으니까."

"잘하셨습니다. 아무튼 그러다 도저히 스켈레톤 자력으로 해결이 안 될 땐 사장님께 긴급 호출이 갈 테니 그때 잘 대응해 주시면 큰 문제는 없을 겁니다."

"그 정도만 돼도 다행이죠."

"그럼 이제 매일 들를 필요는 없을 것 같으니 설치는 오늘부로 최종 종료되었습니다. 동의하십니까?"

사장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동의합니다. 솔직히 100만원 받고 대충 설치해 주면 어쩌나 걱정했는데 이렇게 꼼꼼히 봐주실 줄은 몰랐네요."

그러자 프로그래머가 웃으며 말했다.

"저희 세론이 그럴 리 없잖습니까. 아무튼 앞으로 한 달에 한 번만 들를 테니 변경을 원하시면 그때 말씀해 주세요."

"알겠습니다."

"아, 그리고 만족도 설문 조사를 좀 해 오라고 지시를 받아서요. 스켈레톤 알바에 만족하십니까?"

"가격도 비싸고 초반엔 형편없었지만 지금 이 정도라면··· 만족합니다."

"만약 사람 직원을 구할 수 있다면 스켈레톤 계약을 취소할 생각이십니까?"

그러자 편의점 사장이 잠시 고민하더니 말했다.

"솔직히요?"

"예, 솔직히 말씀해 주셔야 합니다."

"솔직히 말하면 그냥 스켈레톤 쓸 것 같습니다. 갑자기 그만둘 일도 없고 근무 시간도 내 마음대로 조정할 수 있으니까요. 물론, 뭐··· 스켈레톤에게도 야간 수당을 줘야 하는 건 좀 그렇지만요."

"그건 죄송하게 생각합니다. 하지만 사람 직원과의 형평성 문제 때문에 어쩔 수 없습니다. 세론은 스켈레톤이 사람의 자리를 위협하길 바라지 않으니까요."

"이해합니다. 저도 군산 시민인데 그걸 모를까요. 하하. 아무튼 사람 직원이 생긴다? 그럼 파트타임 알바가 아니라 매니저로 쓸 것 같습니다."

"매니저요?"

"예, 스켈레톤이 많이 나아지긴 했지만 비닐 봉투 세팅도 해 줘야 하고 중간중간 사람이 한 번씩 들러 스켈레톤이 잘 일할 수 있도록 관리를 해 줘야 한단 말이죠. 그러니 상주할 필요는 없고 한두 시간에 한 번씩 들러 관리해 주거나 나 대신 비상 호출을 받아 줄 매니저가 딱일 것 같은데. 아, 그럼 인건비가 너무 많이 들려나? 스켈레톤 유지비에 매니저 월급··· 아무튼 지금 느낌은 그렇습니다."

프로그래머가 흥미롭다는 표정으로 말했다.

"일하는 스켈레톤과 그런 스켈레톤을 관리하는 매니저. 그거 좋군요. 아무튼 만족도 설문 조사는 여기까지 하겠습니다. 그간 수고하셨습니다."

*

시간이 흐르며 각 가게별 상황에 맞춰 실시간으로 업그레이드되어 가는 알고리즘.

덕분에 처음엔 불만을 토로하던 사장들도 이제는 대부분 만족하며 스켈레톤 알바에 적응해 나갔다.

그런데 만족도 조사에서 전혀 의외의 결과가 나왔다.

"생각보다 만족도가 높은데."

가격을 일부러 사람 직원보다 높게 잡았지만 군산시 경기가 워낙 활황이라 그런지 사장들이 그정도 비용은 감수하려고 드는 게 아닌가.

갑자기 그만두거나 사고 치는 사람을 쓸 바에는 그냥 스켈레톤 쓰는 게 마음 편하다며.

그러면서 동시에 나온 이야기가 바로 매니저다.

스켈레톤으로 커버할 수 없는 부분을 사람 매니저를 고용해 관리를 맡기는 방식.

나는 눈을 빛내며 말했다.

"이거 완전 딱인데?"

세론이 지향하는 것과 정확히 일치한다.

스켈레톤이 일하고 사람이 관리하고.

어쩌면 인력난을 겪고 있는 지금이 이런 시스템을 도입할 최적의 시기 아닐까?

"매니저라······."

스켈레톤의 유지비를 높게 잡아 스켈레톤 알바와 사람 알바의 균형을 맞출 생각이었는데 이런 식이라면 소상공인들의 산업 구조가 완전히 뒤바뀐다.

원래는 사장이 있고 그 밑에 수많은 알바생들이 번갈아 가며 일을 하는 방식이었는데, 이게 가게를 소유한 사장과 그런 사장이 관리하지 못하는 부분을 대신 관리해 주는 매니저 그리고 현장에서 일을 하는 스켈레톤 이렇게 3단계로 나누어지는 셈.

"그래. 이게 맞지, 자연스러운 사이클. 그런데 이게 성립하려면 스켈레톤 유지비를 좀 깎아 줘야 될 텐데?"

기존엔 알바생들 월급만 주면 됐지만 이제는 비싼 스켈레톤의 유지비에 더해 관리 매니저의 월급도 줘야 할 테니까.

하지만 그렇게 유지비를 사람보다 저렴하게 깎아 주면 소상공인과는 상황이 다른 중소기업에서 악용 사례가 나올지도 모른다.

나는 잠시 고민하다 말했다.

"단계별로 도입하자."

일단 소상공인들에게는 그들이 말한 것처럼 매니저 고용을 유도하기 위해 유지비를 조금 깎아서 균형을 맞춰 준다.

그리고 다음 타깃인 인력난의 중소기업엔 기존과 같은 비싼 유지비를 유지하고.

이렇게 순차적으로 테스트를 해 보며 스켈레톤과 사람이 공존할 수 있는 최적의 포지션을 찾아가는 거다.

그렇게 생각을 정리한 나는 김덕배에게 전화를 걸었다.

-예, 회장님.

"소상공인 유지비 깎아 주세요. 그리고 매니저 고용해서 관리하는 방식으로 유도하고요. 그리고 소상공인 테스트는 거의 끝난 것 같으니 이젠 군산시 내 인력난 겪는 중소기업들 모집하세요."

나는 환하게 웃으며 말했다.

"다음 테스트 진행합시다."

*

소상공인에 이어 진행된 중소기업 테스트.

당연히 결과는 성공적이었다.

애초에 소상공인들과 다르게, 중소기업은 규모가 작아서 그렇지 결국 세론이 공장을 돌리던 것과 다를 바 없으니까.

물론 유지비를 조율해서 매니저를 고용할 수 있도록 유도한 소상공인들과 다르게 중소기업엔 사람보다 살짝 더 비싼 유지비를 받아 불만을 샀지만, 어차피 인력난을 겪는 중소기업은 스켈레톤과 외국인 노동자 말고는 대안이 없기에 결국 그 불만은 금세 사그라들었다.

그렇게 스켈레톤을 이용해 군산시의 인력난을 성공적으로 메꿔 낸 세론.

"이야."

덕분에 스켈레톤으로 상당한 수익이 발생한다.

이번에 군산시에 배치한 스켈레톤은 소상공인 쪽에 1,000여 개와 중소기업에 2,000여 개해서 도합 3,000여 개.

그런데 이 스켈레톤들이 각각 시간당 최저 시급 수준의 돈을 받고 있고 그중엔 24시간을 일하는 스켈레톤도 있기에 한 달 평균 수익이 한기당 400만 원에 육박하여 스켈레톤 3천 개로 벌어들이는 수입만 무려 120억으로, 유지에 들어가는 정수 비용과 프로그래머 인건비를 제외하고도 90억 가까이 순이익이 나왔다.

물론 세론의 다른 계열사 매출이 워낙 높기에 별거 아니라 생각할 수 있지만 여기서 핵심은 저 90억이 고작 인구 26만의 군산시 하나에서 나온 거고, 심지어 모든 업종에 적용된 것도 아니라는 거다.

"대한민국 인구가 200배잖아. 그럼 이것만으로도 1달에 1조 8천억?"

여기에 인력난을 겪고 있지만, 테스트 대상에서 제외된 업종을 생각하면 그 금액은 더욱 높아질 거다.

"이거 의외로 노다지네."

협력사로 중견 기업만 받아들였을 만큼 작은 건 철저히 무시해 왔지만 작은 것도 모이니까 엄청난데?

나는 눈을 빛내며 말했다.

"빨리 다른 곳에도 에너지 매입 부스 도입해야겠다."

그래야 에너지 판매 수익으로 인한 인력난이 발생할 테니까.

거기에 최근 프로티지 제품과 연동한 에너지 시장이 커지며 에너지 부스가 설치되지 않은 지역들에서 차별 논란이 일어나고 있는 상황이었으니 더욱 좋다.

"돈이 생기니 일할 사람이 줄어들고, 일할 사람이 줄어드니 스켈레톤이 일을 차지하고. 완벽한 사이클 아니야? 좋아, 이제 군산시를 넘어서 전북을··· 어? 잠깐만."

그때 한 가지 문제가 떠올랐다.

그것은 바로 세론의 인력난.

"···지금 우리 프로그래머만으로 감당이 될까?"

가게가 늘 똑같은 물건만 팔지는 않을 테니 주기적으로 프로그래머를 파견해 관리를 해 줘야 하는데, 군산시야 세론의 근거지니 그렇다 쳐도 전국을 전부 감당하는 게 과연 가능할까?

"그렇지 않아도 지금 프로그래머들이 공장에서 일하다 시간 날 때 외근 나가서 처리하는 방식이잖아. 그런데 이게 전국 규모? 이건 안 되지."

차라리 그럴 거면 계열사로 분리 독립시켜 이쪽 업무만 전담하는 프로그래머들을 대량 모집하는 쪽이 맞다.

하지만 이것도 문제인 게 프로그래머들 연봉이 결코 적지 않단 말이지.

세론이 대기업 반열에 오르며 프로그래머들의 연봉 역시 기하급수적으로 올랐으니까.

"평균적으로 공장에서는 스켈레톤 100개당 프로그래머 한 명이 필요해. 하지만 이건 가게를 직접 방문하며 돌아다녀야 하고, 가게마다 세팅이 다르니 담당할 수 있는 스켈레톤의 수가 훨씬 적을 거란 말이지."

물론 버는 돈이 많은 만큼 인건비는 충분히 감당이 되겠지만 전국 모든 지역에 프로그래머를 배치해서 외근 업무를 시키고 그들의 관리까지 해야 한다고?

게다가 일단 한 프로그래머가 그 지역에 완전히 정착하면 다른 곳에 함부로 배치할 수도 없다.

한 프로그래머가 작업한 가게는 그 프로그래머가 가장 잘 알고 있으니까.

"와 씨, 이거 보통 일이 아니네."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회장실을 서성이며 말했다.

"어떻게 그 많은 프로그래머들을 다 직접 고용해서 관리해."

순환 배치도 힘들고 가게 하나하나를 직접 관리해야 하는 상황.

대기업인 세론이 모든 걸 직접 챙기기엔 너무나도 비효율적이다.

그렇게 한참을 고민하던 그때.

"어?"

책상 위에 있던 컴퓨터가 내 눈에 띈다.

"컴퓨터······."

컴퓨터를 보고 프로그래머란 직업을 떠올렸던 나.

"지금이야 컴퓨터 고수들이 사방 천지에 깔려 있지만 처음 보급될 때도 그랬던 건 아닐 거 아니야."

그간 협력사와 세론 내부에서만 굴리던 스켈레톤이 처음으로 다른 가게나 회사에 고용이란 형태로 들어간 상황.

이른바 보급형 스켈레톤이 뿌려지는 셈이다.

컴퓨터가 처음 보급되었을 때 어땠지?

"처음엔 대부분 컴맹이었어. 그렇다고 컴퓨터 회사 직원들이 고객들을 일일이 찾아다니며 모든 기능을 하나하나 가르쳐 준 건 아니잖아."

그때 우후죽순으로 등장한 게 바로 컴퓨터를 수리해 주는 컴퓨터 가게와 조작법을 알려 주는 컴퓨터 학원들.

물론 사람들이 컴퓨터에 대해 잘 모르는 걸 이용해서 폭리를 취해 인식이 나쁘기는 했지만, 아무튼 그들 덕분에 컴퓨터는 더욱 빠르게 보급되어 사람들의 생활에 완전히 녹아들 수 있었다.

"컴퓨터 학원과 컴퓨터 가게. 오호?"

스켈레톤만 보급하는 게 아니라 컨트롤 방법도 같이 보급하는 거다.

그런 다음 스켈레톤 조작 콘솔을 대여해 주어서 시장의 흐름에 맡기면 컴퓨터 보급 초창기와 비슷한 모습이 연출되지 않을까?

컴퓨터 제조사는 컴퓨터만 만들어서 팔고 그외에 자질구래한 수리는 근처의 컴퓨터 가게들이 해 주던 것처럼.

"결국 돈이 되면 사람도 몰리는 법이지. 해 보자."

82화

컴퓨터로 인터넷 서핑을 하던 남자가 눈을 휘둥그레 뜨며 말했다.

"뭐야, 이거. 세론이 스켈레톤 콘솔 조작 방법을 풀었다고?"

최근 군산시에 알바 시스템을 도입하며 점점 범위를 넓혀 가던 세론이 갑자기 풀어 버린 스켈레톤 콘솔 조작 방법.

남자가 눈을 빛내며 세론 홈페이지로 들어가 콘솔 조작 방법을 확인하였다.

"버전이 여러 가지네?"

전문가용부터 공장 특화 버전이나 간편 버전 등등 여러 가지 조작 콘솔이 올라가 있고 그 밑에 그 콘솔의 조작 방법이 기록된 파일이 첨부되어 있는 세론의 홈페이지.

남자는 간편 버전의 조작 방법을 다운 받아 그 내용을 확인하였다.

"오호?"

남자가 턱을 쓰다듬으며 말했다.

"간편 버전이 이 정도라고? 생각보다 훨씬 복잡한데?"

스켈레톤의 동작을 설정하여 그것을 매크로로 적용하는 방법부터 그 동작을 조종하는 방법 등이 빼곡히 적힌 파일.

"그렇지 않아도 세론 연구 센터 들어가고 싶었는데, 미리 공부하면 딱이겠네!"

*

그렇게 본격적으로 콘솔 조작 방법을 공부하기 시작한 남자.

하지만 그 과정은 쉽지 않았다.

가르쳐 주는 사람도 없고, 심지어 콘솔 실물도 없기에 오직 글자에서만 지식을 습득해야 했으니까.

물론 세론에서 콘솔을 대여해 준다고는 하지만 그 가격이 한 달 50이고, 설사 그렇게 콘솔을 빌린다 해도 조종할 스켈레톤이 없으니 그게 무슨 의미가 있나.

그래도 언젠가 교육 센터에 입소하면 큰 도움이 될 거라는 생각에 열심히 공부해 나가던 어느 날.

"하아."

아버지의 한숨 소리가 들려온다.

"이거 문제네."

공부를 하던 남자가 아버지에게 다가가 말했다.

"무슨 일 있으세요?"

"이번에 우리 가게에 스켈레톤을 들여놓을까 고민 중이거든?"

스켈레톤을 들여놓는다는 말에 남자가 눈을 빛내며 말했다.

"스켈레톤이요?"

"응."

아버지가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근데 스켈레톤을 믿어도 될까 싶네."

정육점을 운영 중인 아버지의 말에 최근 공부한 조종법을 떠올린 남자.

'확실히 고기는 좀 어렵긴 하겠다.'

그날그날 가격도 바뀌고 규격화된 제품이 아닌 만큼 변수가 많은 정육점은 확실히 스켈레톤이 일하기 좋은 환경은 아니었으니까.

물론 못 할 건 없었다.

다만 그걸 위해선 고기가 도착하는 매일 아침마다 그날 상황에 맞는 변경점을 추가해야 할 뿐.

"처음 설치야 세론에서 해 준다지만, 언제 어떤 변경 사항이 나올지 모르는데 매번 부를 때마다 20이라잖아."

"20이라······."

잠시 고민하던 남자가 아버지에게 말했다.

"아버지, 혹시 아버지 같은 고민 하는 상인분들이 많나요?"

"많지."

"만약에요, 정말 만약에, 아버지. 누군가 아버지에게 매달 10만 원을 받는 대신 아침마다 방문해서 미세 조율을 해 준다면··· 지불할 의향 있으세요?"

그러자 아버지가 웃으며 말했다.

"그렇지 않아도 세론에서 스켈레톤 유지비를 다운 해 줬는데 여기에 10만 원만 더하면 매일 조율해 준다? 그럼 나야 땡큐지."

그 말에 남자의 머리가 빠르게 굴러가기 시작했다.

'첫 설치는 몰라도 고기 자르는 비율이나 위치 조정 같은 세팅값 수정 정도는 나도 충분히 할 수 있을 것 같은데.'

비록 콘솔 대여비로 한 달에 50만 원을 지불해야 하지만, 아버지와 같은 고민을 하는 가게의 수가 많다지 않나.

그런 가게를 많이 확보하면 확보할수록 더 많은 돈을 벌 수 있다는 말.

남자가 눈을 빛내며 말했다.

"이거 돈 될 것 같은데."

세론이 해 줄 수 없는 디테일을 채워 주며 돈을 버는 거다.

"아버지."

"어?"

"스켈레톤 고용하세요. 제가 아침마다 조율해 드릴게요."

"뭐? 네가 할 수 있다고?"

"예. 제가 요즘 열심히 공부한 게 있어서요. 대신······."

남자가 아버지에게 손을 벌리며 말했다.

"돈 좀 빌려주세요. 제가 지금 기가 막힌 사업 아이템이 떠올라서요."

*

콘솔 대여와 조작 방법을 전격적으로 공개해 버리고 한 달.

드디어 반응이 슬금슬금 올라온다.

나는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그래. 이거지."

방법을 공개하자 돈 냄새를 맡은 사람들이 너도나도 콘솔을 빌려 세론의 빈자리를 채워 나간다.

그렇게 스켈레톤 업자라는 새로운 직업이 탄생하며 사장들은 저렴한 가격에 조율을 맡길 수 있어서 좋고 세론은 빌려준 후 신경을 덜 쓸 수 있어서 좋으니 이거야말로 누이 좋고 매부 좋은 일 아니겠나.

그때 보고를 하던 백상호가 굳은 표정으로 말했다.

"그런데 회장님, 군산시에 새로 생긴 스켈레톤 학원 말입니다. 그 학원 창업자가 최근 퇴사한 프로그래머였다고 합니다."

정보를 공개한 지 불과 한 달 만에 생겨난 사설 학원.

고작 한 달 만에 누군가를 가르칠 만큼 수준이 올라온 사람이 있나 의아해했는데, 그럼 그렇지.

"콘솔을 3개 대여하고 스켈레톤도 알바 시스템을 이용해 5개를 고용한 다음 교육 연구 센터에서 배운 커리큘럼을 그대로 적용하여 운영하고 있답니다."

백상호가 이글거리는 눈으로 말했다.

"어떻게 조치할까요."

백상호에게 있어서 세론은 그야말로 알파이자 오메가.

그런 세론을 박차고 나가 세론에서 배운 기술을 그대로 활용한다니 배신감이 들 만도 하지.

심지어 백상호는 세론 프로그래머의 총책임자이자 창사 초부터 교육 커리큘럼을 만들어 온 장본인이기에 더욱 그럴 거다.

"억울한가요?"

"억울하지는 않습니다. 다만 화가 날 뿐이죠. 기껏 가르쳐 주고 키워 줬더니 그걸 그대로 가지고 나가 자기 잇속 챙기는 데 활용하다니."

나는 웃음을 터트리며 말했다.

"푸하하. 우리 백 센터장 이제는 완전히 임원 마인드가 다 됐네요."

"예?"

"우리가 할 수 있는 조치가 뭐 있죠? 기밀 유출로 고소? 그러기엔 이미 세론에서 조작 방법 자체를 전부 공개해 버렸네요."

나는 백 센터장을 보며 말했다.

"백 센터장에겐 미안하지만 조작 방법을 공개한 시점에서 이건 어쩔 수 없는 흐름입니다. 스켈레톤이 대중화되며 그 조작 방법도 점점 대중화되는 거죠. 대신 장점도 있죠. 그동안 우리는 프로그래머 양성을 위해 교육 센터를 운영해 왔습니다. 순전히 우리 자비로. 그런데 학원들이 생겨 프로그래머들이 양산된다면······."

나는 환하게 웃으며 말했다.

"우리는 돈 한 푼 안 들이고 실력 있고 경력 있는 프로그래머들을 채용할 수 있게 된다는 거죠. 어쩌면 그 덕분에 교육 연구 센터에서 교육을 빼 버릴 수 있을지도 모르고."

그간 연구와 교육을 동시에 담당해 오던 교육 연구 센터.

그런데 학원 같은 사설 교육 시설이 생겨 교육에 대한 부담을 그들에게 전가하는 거다.

그럼 세론은 앞으로 완성된 프로그래머들 중 마음에 드는 사람만 골라서 채용하면 그만.

당연히 그렇게 모든 교육을 사설 업체에 전가하면 교육 연구 센터는 더 이상 교육을 전담할 필요 자체가 없어진다.

그런 내 말에 백상호의 표정이 미묘하게 변한다.

"교육을 빼 버린다고요? 그럼 연구만?"

"그런 셈이죠."

백상호가 침묵하더니 말했다.

"···그거 괜찮군요."

"그렇죠? 그러니 배신감 드는 건 알지만, 냅둡시다. 우리는 손해 볼 건 없으니까."

내 말에 백상호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알겠습니다."

"아무튼 군산시 테스트는 이 정도면 된 것 같네요."

스켈레톤으로 인력난을 메꾸고 세론의 틈을 사설 업자들이 채운다.

"이제 범위를 넓힙시다. 에너지 매입 부스를 전국에 설치하는 거예요."

점수제 도입으로 에너지 시장에 자금이 묶이고 있어 부담 없이 지를 수 있게 된 상황.

그렇게 에너지를 모아 프로티지와 발전소 사업을 확장하고 동시에 그로 인한 인력난을 스켈레톤으로 메꾸어 돈을 갈퀴로 긁어모으는 거다.

나는 환하게 웃으며 말했다.

"스켈레톤 없는 삶은 상상조차 못 하도록 만들어 줍시다."

*

에너지 매입 부스를 전국에 설치하는 한편 군산시에만 시범 도입 했던 알바 시스템을 전북과 충청도로 넓힌 세론.

덕분에 군산시처럼 인력난에 허덕이던 많은 중소기업과 소상공인들이 만세를 외쳤고, 그에 발맞춰 스켈레톤 업자가 우후죽순처럼 생겨났지만, 마냥 좋은 일만 있는 것은 아니었다.

"스켈레톤 불법 고용이라······."

한 스켈레톤 업자와 공장주가 짜고서 중소기업이 빌리는 스켈레톤은 비싸고 소상공인이 빌리는 스켈레톤은 싸다는 걸 악용하여 불법으로 고용한 거다.

가게들을 섭외하여 저렴하게 하루 8시간씩만 쓰겠다며 스켈레톤을 빌린 다음 그 스켈레톤을 가게가 아니라 공장에서 24시간 굴리며 이익을 취한 공장주.

"전부 고소 고발 하세요. 공장주랑 업자 그리고 소상공인까지."

이 사건이 문제가 되는 게 공장주가 스켈레톤을 불법 고용 하며 기존 직원들을 모두 해고했다는 점이었다.

내가 가장 우려하던 일을 불법으로 계약까지 어겨 가며 진행한 업자와 공장주.

심지어 이걸 사업화해 더 많은 공장들에게 스켈레톤을 불법으로 알선하려고까지 했다니 더욱더 봐줄 수 없지.

"그리고 전부 다 블랙리스트 올려서 앞으로 스켈레톤과 콘솔을 절대 빌려주지 마세요."

김덕배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알겠습니다."

그렇게 지시를 내린 나는 피식 웃으며 말했다.

"그나저나 그 스켈레톤 업자 실력이 제법이네요."

가게에 맞게 알고리즘 세팅해 둔 걸 가져다 공장에 맞게 불법으로 개조한 업자.

그 정도면 지금 당장 세론 데려다 놔도 프로그래머가 되기 충분한 수준인데, 기껏 생각한 게 스켈레톤 불법 알선 사업이라니.

그럴 거면 요즘 한창 핫한 학원을 차리든가 했어야지.

"돈이 된다는 소문이 돌고 업자들이 점점 늘어나며 실력도 상향 평준화 되고 있어서 그렇습니다."

"재미있네요."

스켈레톤의 대중화와 함께 조종 실력 역시 일취월장해 가는 사람들.

"아무튼 이런 일이 다시 발생하지 못하도록 대비하세요. 스켈레톤 작동 시간도 마력 공급을 끊든 어쩌든 해서 8시간이면 8시간 딱 이렇게 락 걸고."

인공 정수로 스켈레톤에 마력을 공급하는 시스템을 완성해 두었기에 시간별로 락을 거는 것 정도는 일도 아니지.

"알겠습니다."

그렇게 보고를 마무리하려던 그때.

"어?"

한 가지 아이디어가 떠오른다.

"스켈레톤과 콘솔 보급으로 실력이 늘어나는 사람들."

돈이 되기에 사람들은 열정적으로 기술을 배우고 스켈레톤을 활용하려 한다.

그런데 지금 늘어나는 건 어디까지나 일꾼용 스켈레톤에 국한된단 말이지.

공장에서 일하고 가게에서 일하고.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내 궁극적인 목적을 위한 중간 과정에 불과하지 않나.

내 진짜 목적은 돈을 무지막지하게 벌어서 언데드 군단을 재건하는 것이니까.

"전투 알고리즘을 만들기는 했지만 여전히 부족해."

30년에 걸쳐 만들어 둔 전투 알고리즘이 날아간 후 열심히 복구하기는 했지만, 여전히 미흡한 전투 알고리즘.

그나마 대인간 전투 알고리즘은 제법 수준이 올라왔지만, 세론에서 부리던 내 언데드 군단엔 인간형 언데드만 있는 게 아니란 말이지.

5대 결전 병기중 하나인 미트 골렘부터 기마형 스켈레톤 등등.

당연히 그런 언데드를 상대하려면 나 역시 그에 맞는 알고리즘을 구축해야 하지만, 시간도 없고, 무엇보다 전투 데이터도 부족하다.

나는 턱을 쓰다듬으며 말했다.

"사람이 모여 경쟁을 하면 기술은 발전되게 되어 있어. 당장 교육 연구 센터만 해도 내가 상상 못 한 포인트를 집어내며 일의 효율을 높여 주었잖아."

내가 비록 대마법사라지만 인간의 상상력과 사고력에는 한계가 있다.

그렇기에 교육 연구 센터를 만든 거고 그 덕분에 스켈레톤의 알고리즘은 점점 더 정교하고 완벽해져 갔다.

하지만 전투 알고리즘은 지금까지 나 혼자서만 끙끙거리며 짬을 내 만들어 온 상황.

나는 눈을 빛내며 말했다.

"경쟁을 붙인다? 전투형 알고리즘을 위해서?"

사람들끼리 스켈레톤으로 대결을 하게 만드는 거다.

창과 방패의 대결처럼 서로가 서로를 이기기 위해 연구하고 또 연구할수록 전투 알고리즘은 더욱더 완벽해져 가겠지.

당연히 그렇게 열정적으로 대결에 임하도록 만드는 동기는 돈.

"돈을 걸고 시합을 주최하는 거야. 그럼 사람들이 미친 듯이 전투 알고리즘을 연구하겠지?"

그럼 나는 그 알고리즘들의 장점을 모두 취합하여 하나로 만드는 거다.

"인간형만이 아니라 다른 형태의 스켈레톤도 도입해 대결시키면? 그 형태에 대한 대응 방법도 자동으로 연구할 것 아니야."

완벽하다.

이거야말로 전투형 알고리즘을 구축하는 데 있어서 최고의 방법.

"아! 여기에 레이드 경기를 도입해도 되잖아!"

그렇게 인간형이 아닌 다른 형태의 언데드 알고리즘이 무르익었을 때 내가 직접 그 형태의 언데드를 최대한 원판과 비슷하게 재구성한 다음 사람들로 하여금 그 언데드를 공략하도록 만드는 거다.

그렇게 사람들이 언데드를 공략하는 데 성공하면 그들이 만든 알고리즘은 고스란히 나에게 흡수되어 훗날 언데드 군단과의 대결에 어마어마한 도움이 되겠지.

나는 잠시 고민하다 말했다.

"그래. 이건 해야겠다."

전투 알고리즘을 성장시키고 동시에 사람들에게 즐거움을 안겨 줘 세론의 이미지 역시 좋아지게 만드는 방법.

"기왕하는 거, 판을 크게 깔아야겠지?"

나는 옆에서 묵묵히 대기하고 있던 김덕배에게 말했다.

"부회장님, 우리 스켈레톤 경기 주최합시다. 전투 알고리즘을 성장시켜야겠어요."

그러고 보니 너무 부회장 앞에서 대놓고 이야기했나?

그때 김덕배가 당연하다는 표정으로 말했다.

"좋은 생각이십니다. 전투 알고리즘이 완성되어야 더욱 완벽한 전투형 스켈레톤이 나올 거고, 그런 스켈레톤이 많아져야 세론과 회장님의 안전이 보장되는 법이죠."

아.

그렇게 이해했어?

아무튼 좋아.

"아! 사내 프로그래머들 중에서도 참가하고 싶은 사람은 얼마든지 참가해도 좋다 공지하고요."

경쟁이 치열할수록 알고리즘은 더욱 완벽해질 테니까.

세론에서 수없이 스켈레톤을 다뤄 온 베테랑 프로그래머들을 빠트릴 순 없지.

"알겠습니다."

"상금은 100억 원."

수많은 사람들이 나 대신 전투형 알고리즘을 연구해 주는 대가가 고작 100억 원이면 완전 거저 아닌가.

물론 이건 어디까지나 시작이기에 그런 거고, 앞으로 사람들의 수준이 오르면 오를수록 상금을 더욱더 키워 더 많은 능력자들이 참가하도록 유도한다.

나는 환하게 웃으며 말했다.

"아주 성대한 축제 한번 만들어 보죠."

83화

스켈레톤 대회를 주최하기로 결정한 나는 전투용 콘솔을 만들었다.

인식과 회피 그리고 이동과 공격 등의 알고리즘을 컨트롤할 수 있는 콘솔로, 이것만 있어도 기본적인 전투는 충분히 수행이 가능했다.

각성자처럼 특별한 능력이 있는 게 아닌 이상 결국 같은 주먹 공격이더라도 주먹을 휘두르는 각도와 타격 위치 등의 세부 세팅 요소에 의해 승패가 갈릴 테니, 아직 초보 단계인 사람들에게는 이 정도만 해도 충분하지.

아무튼 그렇게 전투용 콘솔을 만들고 홈페이지에 이 조작법을 전부 공개함과 동시에 스켈레톤 대회를 대대적으로 선전한 나.

"반응이 좋네요."

당연히 사람들의 반응은 폭발적이었다.

어설픈 로봇 결투도 사람들로 하여금 가슴을 끓어오르게 하는데, 이건 무려 전투용과 경호용으로 그 능력이 입증된 스켈레톤을 직접 다룰 수 있는 기회니까.

물론 내가 그들에게 제공할 전투용 스켈레톤의 기본 스펙은 그보다 한참 떨어지겠지만, 아무튼.

"그런데 일각에서 전투용 콘솔을 뿌리면 일꾼 스켈레톤을 조종해 악용할 수도 있다는 주장을 하고 있습니다."

나는 피식 웃으며 말했다.

"별걸 다 걱정하네."

애초에 일꾼 스켈레톤엔 전투용에 필요한 마법진 자체가 깔려 있지 않다.

어차피 죽어라 일만 하다 고장 나면 새걸로 교체할 뿐인 일꾼 스켈레톤인데 마력 아깝게 그런 걸 뭐 하러 집어넣어.

당연히 전투용 콘솔이 뿌려져도 일꾼 스켈레톤으로는 아무것도 못 한단 말이지.

"전투용 콘솔이랑은 호환 안 된다고 보도 자료 뿌리세요."

"알겠습니다."

"지역 예선 준비는 잘돼 갑니까?"

상금으로 100억을 책정했지만 그 돈을 우승자에게 전부 넘기는 건 멍청한 짓이다.

내가 대회를 주최한 이유는 그들 간에 경쟁을 일으켜 알고리즘을 강화하기 위함.

당연히 이것만으로도 생계를 유지할 수 있는 구조를 만들어 오직 전투 알고리즘 강화에 모든 걸 바치는 프로 선수들을 대량으로 양산하는 게 가장 효율적이란 말이지.

그래야 이걸로 돈 벌면서 더 위로 올라가기 위해 자신의 모든 걸 전투 알고리즘 강화에 투자할 테니까.

그걸 위해선 승자가 독식하도록 만드는 것보단 설사 성적이 그리 뛰어나지 않아도 먹고는 살 만한 수입을 거둘 수 있는 밑바닥을 만들어 줘야 한다.

그래서 만든 게 바로 지역 예선.

"예. 1차 지원자들이 치를 시험은 완성되었습니다."

보나 마나 어마어마한 수의 지원자들이 나올 텐데, 그들 하나하나에게 전투용 콘솔과 스켈레톤을 쥐여 주고 알고리즘을 만들도록 기다리는 건 너무 비효율적.

그렇기에 시험을 통해 전투용 콘솔에 대한 지식을 테스트하고 거기서 합격한 사람만 모아서 지역 예선을 치를 예정이었다.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좋습니다. 시합 방식은 토너먼트 맞죠?"

"맞습니다."

그렇게 예선에 합격한 사람들로 토너먼트 시합을 개최하고, 거기서 이길 때마다 상금을 주는 거다.

첫 승은 20만 원, 두 번째도 이기면 50만 원 이런 식으로.

그렇게 최종적으로 지역 예선에서 우승한 사람은 상금으로 총합 천만 원이 넘는 상금을 타 갈 수 있고, 그다음 그런 우승자들만 모아 본선을 진행한다.

나는 김덕배를 바라보며 말했다.

"그때도 말했지만, 기억해 두세요. 이건 어디까지나 첫 대회기에 이렇게 한 거고, 제 최종 목표는 리그화입니다."

지역 예선이 2부 리그가 되고 전국 본선이 1부 리그가 된다.

그렇게 2부 리그 선수는 더 위로 올라가기 위해 그리고 1부 리그는 내려가지 않기 위해, 필사적으로 알고리즘을 연구하는 선의의 경쟁 구도가 바로 내가 생각하는 이 대회의 최종 종착지.

"기억하고 있습니다. 아. 그리고 개인이 아니라 팀 단위로 신청하면 어떻게 할까요?"

"당연히 받아야죠. 오히려 더 좋네."

여러 명이 힘을 합쳐 알고리즘을 연구하면 훨씬 효율이 좋아질 테니까.

"지금이야 일대일이지만, 앞으로 집단 전투부터 단체 사냥 등 다양한 종류로 늘릴 거니까 팀 단위를 더 권장하는 방향으로 진행하세요."

"알겠습니다."

"그리고 세론 소속 프로그래머들을 그냥 지역 예선에 참가시키면 너무 일방적 일수 있으니 프로그래머들은 프로그래머들끼리 경기를 잡는 걸로 하고요."

경쟁을 통해 알고리즘을 성장시키는 게 목적인 만큼 전문가인 프로그래머들을 배제하는 건 하책.

그렇다고 일반인 참가자들과 섞어서 배치하는 건 형평성 문제가 있으니 아예 프로그래머들끼리 경쟁하도록 만든다.

그렇게 대회의 세부 사항을 김덕배와 이야기하던 그때 비서실로부터 내선 전화가 걸려 온다.

"무슨 일입니까."

-회장님, 방송국에서 사람이 찾아왔습니다.

"방송국?"

-예. 스켈레톤 대회 관련해서 제안을 드릴 게 있다고 합니다.

방송국에서 대회를 보도하면 홍보 효과는 확실하겠지.

"들어오라고 하세요."

*

중년 남자가 공손하게 양손으로 명함을 건네며 말했다.

"안녕하십니까, 한 회장님. 고준영 PD라고 합니다."

나는 명함을 받아 들며 말했다.

"···예능국?"

당연히 뉴스 같은 시사 쪽일 줄 알았는데, 예능국 PD였어?

"예능국에서 스켈레톤 대회로 뭘 하시려고요?"

"당연히 방송을 하려는 겁니다."

고준영이 눈을 빛내며 말했다.

"자고로 로봇 격투는 남자의 로망 아니겠습니까? 비록 스켈레톤이긴 하지만 근본적으로 스켈레톤과 로봇은 매우 유사하니까요."

"그건 그렇죠."

"지역 예선을 통한 선수들의 대결 그리고 이어지는 전국 본선. 그리고 그 과정에서 피어나는 투쟁심과 각자의 사연들. 저는 보자마자 느꼈습니다, 이건 대박 아이템이라고. 혹시 어떤 식으로 대회가 진행되는지 알려 주실 수 있으십니까?"

어차피 조만간 발표할 생각이었기에 대략적인 구조를 알려 준 나.

그러자 고준영이 주먹을 불끈 쥐며 말했다.

"토너먼트! 더 대박이군요! 이걸 영상으로 잘 만들면 개개인의 선수를 응원하는 사람들도 생길 거니 이거야말로 완벽한 경연입니다!"

경영 하니 한 가지 프로그램이 떠오른다.

"노래 경연?"

"예! 그거랑 비슷한 겁니다!"

고준영이 흥분한 표정으로 말했다.

"바닥에서부터 기어 올라가 최종적으로 정상의 자리에 서는 거야말로 스토리의 정석 아닙니까! 당연히 그 과정에서 선수들을 응원하는 팬덤도 생길 거고요!"

고준영이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

"회장님, 저 정말 자신 있습니다. 한번 믿고 맡겨 주시면 제대로 된 프로그램 만들어 드리겠습니다. 기회만 주십시오!"

경연 예능이라.

하긴.

생각해 보면 해외에서 유행했던 로봇 대결 프로그램도 예능 형식이었잖아.

오히려 그렇게 다가가야 사람들에게 더욱 친숙할 거고, 그렇게 대중적인 인기가 생기면 자연스럽게 선수나 팀 개개인을 후원하는 기업들도 나올 거다.

그렇게 되면 더욱 많은 돈이 몰리니 리그화도 더 쉬워지겠지.

그야말로 스켈레톤의 진정한 스포츠화.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좋습니다."

고준영이 고개를 번쩍 들어 올리며 말했다.

"저, 정말이십니까! 감사합니다! 제 방송 인생을 걸고 최고의 작품을 만들겠습니다!"

"대신 조건이 있습니다."

나는 고준영을 바라보며 말했다.

"첫째, 악의적인 편집 금지. 예능인 만큼 적당한 조미료까지는 좋은데, 대회에 찬물 끼얹는 행위는 안 됩니다."

예능 특유의 악의적인 편집은 내가 개인적으로 매우 혐오하는 행위 중 하나.

그걸 내가 만든 대회에서 하게 둘 수는 없지.

"그건 걱정 안 하셔도 됩니다. 선수들의 사연이나 이런 것보다는 스켈레톤의 대결 그 자체에 초점을 맞출 생각이니까요."

"오케이. 두 번째, PPL 금지."

"···예?"

"과도한 PPL 때문에 눈살 찌푸려진 게 한두 번이 아니라서요."

그러자 고준영이 곤란하다는 표정으로 말했다.

"하지만 지역 예선만 해도 참가자가 어마어마할 텐데, 그걸 전부 촬영하려면 제작비가······."

"제가 있는데 무슨 상관입니까? 제작비 지원 해 드리죠."

그러자 고준영이 환하게 웃으며 말했다.

"정말이십니까?!"

"그러니 최대한 긴박감 넘치고 재미있게 만드는 데만 집중해 주세요, 돈 걱정 하지 말고."

생각해 보면 세론이 촬영 노하우가 있는 것도 아닌데 스켈레톤의 대결을 촬영을 잘해 봐야 얼마나 잘하겠어.

하지만 편집의 고수들이 즐비한 예능국이라면 별것 아닌 경기도 손에 땀을 쥐는 것처럼 연출할 수 있겠지.

그러니 딴짓하지 못하게 제작비를 전액 내가 지원해 주며 오직 경기에만 집중하도록 만든다.

"이 조건만 받아들이신다면 독점으로 촬영할 수 있게 해 드리겠습니다."

고준영이 허리를 숙이며 말했다.

"이런 조건이면 당연히 받아들여야죠!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그렇게 감사의 인사를 한 고준영이 말했다.

"아. 그나저나 프로그래머들은 따로 모아 경기를 진행하신다고요?"

"예. 아무래도 실력 차이가 날 수 밖에 없으니까요."

그러자 잠시 고민하던 고준영이 말했다.

"원래 스토리라는 건 보여주기 나름인 법이죠. 그런 의미에서 이렇게 하시는 건 어떻습니까? 일단 프로그래머들도 일반 참가자와 똑같이 참가시킨 다음······."

*

"후우. 침착하자, 권주민."

권주민이 심호흡을 하고 있자 팀원이 어깨를 두들기며 말했다.

"긴장돼?"

"조금 긴장되네."

1차 시험을 통과한 사람들은 세론의 권유에 친분이 있던 통과자들을 모아 팀을 구성했다.

권주민 역시 친분이 있던 통과자들을 모아 라이트닝이란 팀을 만들었고 곧바로 세론에 참가 등록을 하였다.

그러자 경기를 준비할 수 있도록 경기용 스켈레톤과 콘솔이 비치된 장소를 제공해 준 세론.

경기용 스켈레톤은 위력이 상당하여 외부에 나가면 문제가 생길 수 있다며 오직 제공된 장소에서만 준비하게 했기에 그날부터 권주민과 팀원들은 그 장소에서 숙식을 모두 해결하며 경기 준비에 매진했다.

그리하여 드디어 시작된 지역 예선 토너먼트 첫 경기.

"전북에서 몇 팀 출전이라고 했지?"

"700개 팀. 그중에서 2팀만 최종 본선 진출."

"후우. 1퍼센트도 안 되네."

수치로만 보면 절망적인 수준의 확률.

권주민은 주먹을 불끈 쥐며 말했다.

"할 수 있다. 나는 할 수 있다!"

평소 로봇과 격투 모두에 관심이 있어 공학과를 다니면서도 끊임없이 운동에 매진해 온 권주민.

그런 권주민에게 이번 대회는 기회였다.

권투부터 이종격투기 등 다양한 격투기를 섭력한 데다 공학 지식도 보유한 자신이라면 충분히 가능성 있다 생각했으니까.

하지만 막상 경기장에 도착하니 긴장감이 물밀 듯이 몰려온다.

그런데 그때.

"실례합니다."

한 남자가 카메라맨과 다가와 말했다.

"잠시 인터뷰 좀 가능할까요."

"인터뷰요?"

"예. 이번 스켈레톤 대회는 저희 TBC에서 촬영하기로 협의가 되어 있어서요. 참가서에도 방송 촬영에 적극 협조 한다는 항목이 있었을 텐데."

"대충 봐서 몰랐네요. 알겠습니다. 인터뷰하죠."

"감사합니다. 그럼 간단한 질문 먼저 드리겠습니다. 대회에 출전하신 이유가 뭔지 알 수 있을까요?"

당연히 돈이라는 말이 머릿속을 맴돌았지만 권주민의 입은 전혀 다른 말을 하고 있었다.

"스켈레톤의 한계를 경험해 보고 싶어서입니다."

"한계를 경험해 본다."

"예. 저는 스켈레톤으로 인한 사회 변화는 앞으로 피할 수 없는 현상이라 생각합니다. 그렇기에 적극적으로 그 한계가 어디인지를 먼저 알아내는 게 이 급변하는 사회에 적응하는 가장 확실한 방법이라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돌아가신 어머니에게 아들의 자랑스러운 모습을 보여 드리고 싶기도 했고요."

"그렇군요."

그렇게 간단한 몇 가지 질문을 던진 남자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협조 감사합니다."

그러곤 뒤를 돌아 곧바로 다른 팀을 인터뷰하는 남자.

그때 경기 진행 요원이 외쳤다.

"대진표 나왔습니다! 시간이랑 확인해 주세요!"

그 말에 대진표를 확인하러 다가간 권주민.

"여깄다, 64번. 1시간 뒤에 17번이랑 경기네."

권주민이 말없이 자신들 팀의 번호가 적혀 있는 증패를 바라보며 말했다.

"팀명이 아니라 번호로 불린다라."

분명 신청서에는 팀명으로 라이트닝을 적었지만 여기서 그들은 그저 64번이란 번호로 불릴 뿐이었다.

거기에 인터뷰라더니 고작 5분도 안 되는 짧은 시간에 형식적인 질문 몇 마디가 전부였고.

물론 이해는 한다.

진행 요원들에게나 인터뷰를 요청한 남자에게나 자신들의 팀은 전북에서 출전한 700개의 팀 중 하나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었으니까.

하지만 이상하게 그 사실을 떠올리고 나니 긴장감이 사그라들기 시작한 권주민.

"그래. 아직은 지나가는 엑스트라라 이거지? 조금만 기다려. 우리 팀명을 뇌리에 확실하게 심어 줄 테니."

*

그렇게 본격적으로 시작된 경기.

경기장에선 10개 팀의 스켈레톤이 경기대에 올라 결투를 벌이고 있었다.

"안 돼!"

물론 당연하게도 대부분의 스켈레톤들은 경기 실력이 형편없었다.

모두들 이론적으로는 충분히 배워 왔지만 그걸 스켈레톤에 적용하는 건 별개의 문제이며, 무엇보다 그들은 격투 자체를 해 본 적 없는 사람이 대부분이었으니까.

거기다 무기를 사용하는 것도 자유이기에 오만 잡가지 무기를 들고 참가하다 보니 더욱 난장판이었다.

"낫은 생각 못 했다고!"

권주민이 경기를 보며 말했다.

"낫이라. 제법 머리를 썼네."

본선과 다르게 예선은 스켈레톤 파괴를 막기 위해 몸 이곳저곳에 달려 있는 표적을 누가 먼저 많이 맞히느냐에 따라 승패가 결정되는 방식.

그렇기에 공격도 중요하지만 각 부위에 맞는 방어 알고리즘도 중요한데, 그걸 낫이란 기상천외한 무기를 이용해 빈틈을 노린 거다.

보통 봉이나 검 같은 무기는 일직선이기에 방패나 팔로 막으면 그만이지만, 낫은 손잡이 부위를 막아도 날 부분이 훨씬 더 깊숙이 박히는 만큼 전혀 다른 방식으로 막아야 했으니까.

그때 진행 요원이 시간을 확인하고는 호루라기를 불며 말했다.

"삑! 1라운드 종료! 5분 정비 시간입니다!"

진행 요원의 말에 낫으로 호되게 당한 팀이 다급히 콘솔을 들고 알고리즘을 수정하기 시작했다.

"젠장! 낫을 막으려면 더 먼 곳에서 막아야······."

"아니지! 차라리 회피 기동을 넣어서 피해야 하는 것 아니야?"

"그럼 공격 동선이 꼬인다고!"

그렇게 옥신각신하는 팀을 보고 권주민이 말했다.

"저긴 졌네."

보아하니 실력도 그냥 그런데, 저런 실력으로 이제 와서 새로운 무기 체계에 대한 대비를 5분 만에 해낸다는 건 불가능에 가까우니까.

권주민은 콘솔을 들고 빠르게 조작하며 말했다.

"낫으로 공격하면 차라리 안쪽으로 파고들면서······."

경기를 보면서 알고리즘을 수정해도 된다 세론이 공언했기에 스켈레톤과 콘솔을 이용해 경기 관람 중에도 실시간으로 수정이 가능했다.

어차피 저기서 승리하여 올라온 팀도 다시 관람석에 올라와 다른 팀들의 경기가 끝날 때까지 참고할 수 있는 시간은 똑같이 주어지니까.

그렇게 알고리즘을 수정한 권주민이 말했다.

"좋아. 이 정도면 됬겠지."

권주민이 기대된다는 표정으로 말했다.

"어서 우리 차례가 왔으면 좋겠는데."

*

드디어 기다림 끝에 권주민의 팀 라이트닝의 차례가 돌아왔다.

긴장한 표정으로 링 뒤에 선 권주민과 그의 팀원들.

"어?"

그런데 상대인 17번은 팀이 아니라 한 사람이었다.

모자를 푹 눌러쓰고 혼자서 콘솔을 든 채 여유롭게 서 있는 남자.

"혼자야?"

"그런가 본데?"

권주민이 피식 웃으며 말했다.

"실력을 너무 과신하는 것 아닌가?"

직접 조종해 본 권주민은 스켈레톤 알고리즘의 핵심은 얼마나 다양한 변수 상황에 대처할 수 있느냐라는 걸 깨달을 수 있었다.

당연히 그런 변수는 팀원이 많을수록 아이디어도 많기에 대처하기 쉽고.

그런데 그런 대회에 혼자 참가하다니.

"첫 경기는 시시하게 끝나겠네."

그때 진행 요원이 호루라기를 불며 말했다.

"64번 팀, 17번 팀 시합 시작!"

그 말에 양측의 스켈레톤이 서로에게 달려들며 격돌한다.

일꾼 스켈레톤과는 비교도 안 되는 완력을 지닌 스켈레톤의 격돌.

그런데 금방 끝날 거라는 권주민의 생각과 다르게 상대 팀의 스켈레톤이 제법 잘 대응을 하는 게 아닌가.

"어······?"

권주민이 배워 온 각종 격투 기술을 그대로 이식한 스켈레톤을 이렇게 잘 막아 내다니.

의외의 실력자라는 생각에 권주민이 웃으며 말했다.

"이거, 제법 상대할 맛이 나겠어."

그렇게 10분간 이어진 대결.

그리고 그 대결은 권주민 팀의 스켈레톤이 상대 스켈레톤 몸에 달린 표적을 한 개 박살 내며 근소한 차이로 우위를 점했다.

"5분 정비 시간!"

진행 요원의 말에 권주민이 콘솔로 빠르게 보강해 나간다.

"보니까 입식 타격에 생각보다 대응을 잘해. 그러니 이걸 조금 비틀······."

그런데 그때 팀원이 입을 쩍 벌리며 말했다.

"저, 저 사람 뭐야?"

"뭐?"

팀원의 말에 상대 팀 사람에게 고개를 돌린 권주민.

그렇게 상대 팀 사람을 확인한 권주민은 경악한 팀원처럼 입을 쩍 벌릴 수밖에 없었다.

"뭐, 뭐가 저렇게 빨라?"

마치 신들린 것처럼 손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콘솔을 두드리고 조종하는 상대 팀 남자.

그렇게 몇 분이나 지났을까.

상대 팀 남자가 콘솔 조작을 중단하고 팔짱을 낀 채 멀뚱멀뚱 서 있는 게 아닌가.

"벌써 끝났다고?"

그때 팀원이 다급히 말했다.

"뭐 해! 2분 남았어!"

"어? 어!"

그말에 정신을 차린 권주민이 콘솔을 계속해서 조작하지만, 그 와중에도 남자가 보여 준 엄청난 속도가 잊히질 않는다.

'절대 대충 누른 게 아니었어.'

직접 콘솔을 조작해 본 권주민이기에 잘 알고 있다.

남자가 아주 미세한 단위까지 정밀하게 컨트롤했다는 걸.

심지어 저런 미친 속도로 말이다.

'설마 세론 프로그래머?'

권주민은 입술을 깨물며 말했다.

'그래도 상관없어. 공장에서 일하는 일꾼 스켈레톤과 경기용 스켈레톤은 다르다고!'

그렇게 다급히 조율을 완료한 권주민.

그때 진행 요원이 외쳤다.

"삑! 2차전 시작합니다!"

그리하여 다시 시작된 2차전 경기.

그런데 경기의 양상이 1차전과는 완전히 달라졌다.

권주민 팀 스켈레톤의 공격을 막는 데 집중하던 상대 팀 스켈레톤이 반격을 시작한 거다.

그것도 엄청나게 자연스러운 동작으로 정확하게 그리고 정교하게.

"와, 완전히 달라졌어."

저걸 3분 만에 완성하다니.

상대가 괴물이라는 걸 깨달은 권주민이 말했다.

"절대 지지 않아! 절대!"

*

4차전까지 이어진 스켈레톤 경기.

그 결과는 충격적이었다.

무릎을 꿇은 권주민이 멍한 표정으로 말했다.

"졌어··· 완벽하게."

1차전과 다르게 2차전에서 근소한 차이로 패배한 권주민의 스켈레톤.

하지만 그 격차는 라운드가 거듭될수록 더욱 벌어졌다.

3차전에선 일방적으로 밀리기 시작했고, 4차전엔선 완전히 압도당한 권주민의 팀.

그런 권주민이 정신을 차리고 처음으로 한 생각은 억울하다였다.

"저 사람만 아니었어도. 젠장!"

그동안 봐 온 경기에서 자신의 팀보다 실력이 뛰어난 팀은 없었으니까.

그렇기에 자신감이 붙어 있었는데 첫 경기에서 이렇게 무참히 패배할 줄이야.

억울하다.

너무 억울해서 화가 치밀어 오를 지경.

그런데 그때 모자를 푹 눌러쓴 남자가 권주민에게 다가와 말했다.

"실력이 대단하신데요. 실시간으로 대처해 나가는데, 저도 놀랄 정도였습니다."

자신을 놀리나 싶은 마음에 울컥했지만 진 것은 진 것.

권주민이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감사합니다. 많이 배웠습니다."

"그런데 보아하니 격투기 기술을 완전히 이식한 것 같은데, 방법이 좀 잘못됐네요."

"예?"

"격투기는 사람과 사람의 대결을 상정해서 만든 기술 아닙니까. 그런데 이건 사람보다 신체 능력이 훨씬 월등한 경기용 스켈레톤이란 말이죠. 게다가 승리 조건도 상대를 쓰러뜨리는 게 아니라 표적을 부수는 거고. 그러니 지역 예선에선 격투 기술은 보조로 두고 게임처럼 접근하는 게 맞을 겁니다. 물론 본선은 다르겠지만."

남자의 충고에 권주민이 입술을 깨물며 말했다.

"이제 와서 알면 뭐가 달라집니까? 이미 다 끝났는데."

"끝나지 않았어요. 패자부활전이 있을 예정이라서요."

"패자부활전? 정말입니까?"

"정말이죠."

"그런 이야기는 처음 듣는데요."

"당연히 처음 들을 겁니다. 아직 공개되지 않은 내용이니까요."

외부에 공개되지 않은 정보를 알고 있는 내부인.

"···역시 세론 프로그래머십니까?"

"맞습니다. 아무튼 실력이 마음에 들어서 알려 드리는 거니 다른 데는 말하지 마세요."

뛰어난 실력을 지닌 세론 프로그래머에게 칭찬을 받은 데다 패자부활전의 존재를 알게 되자 다시 힘이 생긴 권주민이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

"감사합니다! 계속 노력하겠습니다."

"예. 서로 파이팅 하자고요. 저도 이런 쪽은 처음이라 한번 참가해 본 거니까."

그렇게 고개를 숙였다 든 권주민의 눈에 모자로 가려져 있던 남자의 얼굴이 스치듯 보인다.

그리고 그 얼굴을 본 권주민이 경악하며 말했다.

"백상호 센터장님?!"

세론 최고의 프로그래머이자 한지혁 회장의 최측근 중 하나인 백상호 센터장.

그런 백상호 센터장이 바로 자신들의 상대였던 거다.

백상호가 피식 웃으며 말했다.

"아무튼 기죽지 마요. 내가 여기 와서 본 사람 중에선 실력이 가장 좋았으니까. 파이팅 하세요."

그렇게 모자를 다시 눌러쓰고 경기장을 나서는 백상호.

권주민이 감격한 표정으로 말했다.

"우리가 백상호 센터장님에게 진 거였어?"

그렇다면 이야기가 달라지지 않나.

백상호는 현존하는 세계 제일의 스켈레톤 프로그래머니까.

권주민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며 말했다.

"다시 준비하자. 패자부활전 노려야지! 본선행은 딱 둘이니까 백 센터장님 하나 드리고 나머지 하나는 우리가 차지하는 거야!"

84화

영상 속에서 두 스켈레톤이 호쾌하게 움직이며 무기를 주고받는다.

빠른 속도로 상대의 표적을 노리고, 그런 공격을 막아 내며 역으로 반격하는 스켈레톤.

그렇게 화려한 공방 끝에 결국 한쪽 스켈레톤의 마지막 표적이 공격을 받으려는 그 순간.

-라라라~.

영상이 끊기며 중간 광고가 흘러나온다.

나는 혀를 차며 말했다.

"···중간 광고 빼는 것도 조건으로 넣었어야 되나."

하지만 뭐··· 긴장감 유지에는 나름 나쁘지 않으니까 넘어가 주자.

나는 백상호를 바라보며 말했다.

"그나저나 정말로 저렇게 잘 싸웁니까?"

그러자 백상호가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말했다.

"저 경기 제가 직접 봤는데 그냥 허우적거리는 수준이었습니다. 그런데 그걸 저렇게 여러 각도에서 찍은 걸 짜깁기해 그럴싸하게 편집해 내네요."

그럼 그렇지.

이제 첫 대회인데 일반 참가자들로 저런 수준 높은 공방이 오가는 건 말이 안 되니까.

나는 피식 웃으며 말했다.

"편집하기 좋아 보이는 건 화려하게 편집하고 편집으로 못 살릴 것 같은 건 아예 개그 요소로 사용하고. 완급 조절 능력이 괜찮네."

방금 전 경기는 편집으로 어떻게든 살려 냈지만, 도저히 편집으로 살릴 수 없는 경기도 무수히 많았다.

그중엔 공격하다 왼팔과 오른팔 동선이 꼬여 경기 내내 스켈레톤의 양팔이 서로 부딪히는 촌극을 연출한 팀이 있었는데, 그걸 개그 요소로 활용한 고준영 PD.

그냥 통짜 영상으로 봤다면 저게 뭐야 했을 만한 장면인데 그걸 자막과 CG로 재미있게 편집하니 나조차 웃음이 나올 정도였다.

그렇게 얼마나 지났을까, 중간 광고가 끝나고 계속해서 방송이 이어지다 새로운 경기가 나온다.

"어!"

나는 모자를 눌러쓴 한 남자를 보고 말했다.

"저거 백 센터장님 아닙니까?"

그 말에 함께 방송을 시청하던 김덕배와 강찬수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맞습니다, 백 센터장."

"오오! 방송 출연!"

고개를 돌려 백상호를 바라보니 자신이 티브이에 나왔다는 사실이 부끄러운지 벌게진 얼굴로 티브이를 보고 있다.

아무래도 나와 김덕배에 비해서 대중에 노출된 경험이 적기에 당연한 반응.

그때 우렁찬 호루라기 소리와 함께 경기가 시작된다.

"오호?"

백상호의 스켈레톤을 거세게 밀어붙이는 상대 팀 스켈레톤.

그런데 그런 상대 팀 스켈레톤의 동작이 범상치가 않다.

최적의 동선을 따라 움직이고 효율적으로 백상호의 스켈레톤 공격을 막아 내는 등 상당한 수준의 결투 능력을 보여 주는 상대 팀 스켈레톤.

"이것도 편집의 힘인가? 이쯤 되니 분간이 안 가네."

그런 내 말에 백상호가 답했다.

"아닙니다. 저건 진짜입니다."

"진짜라고요?"

"가벼운 마음으로 갔다가 1차전에서 근소한 차이로 밀렸습니다. 정말 놀랐죠. 결과적으로 급하게 수정해서 이기기는 했는데, 일반인이라곤 믿기 힘들 만큼 상당한 실력이었습니다."

백상호가 비록 전투 경험은 없지만 보통 한 업무만 전담하는 일반 프로그래머들과 다르게 오만 잡가지 버전을 연구하고 발전시켜 온 사람인 만큼 콘솔을 이용한 스켈레톤 조종 능력은 타의 추종을 불허할 정도다.

그런 백상호가 아무리 방심했다지만 일반인 참가자에게 1차전에서 밀리다니.

그나저나 이거 스포 아니야?

결과를 다 말해 줘 버리네.

아무튼.

"그럼 저 팀으로 콜업 하려고요?"

"그럴 생각입니다."

원래는 프로그래머들만 따로 모아서 경기를 진행할 생각이었지만 고준영이 그래서는 그림이 살지 않는다며 제안한 방법이었다.

각 지역 예선에 프로그래머들이 신분을 숨기고 개인 혹은 팀으로 경기에 참가한 다음 마음에 드는 팀을 골라 콜업 해 그들끼리 패자부활전을 진행하게 하고, 프로그래머들은 그들의 조력자로 붙어 그들의 승패에 따라 상금을 취득하는 방식.

뭐라더라?

프로그래머들이 일종의 암중 심사 위원이 되어 인재를 발굴하는 포맷이라나 뭐라나.

아무튼 이렇게 되면 프로그래머는 중간에 경기에서 이탈하여 심사 위원이자 조력자로 참가하기에 형평성 논란도 없을 거고, 프로그래머들은 그들이 콜업 한 팀을 통해 실력을 발휘하며 상금을 벌면 되기에 나쁘지 않을 것 같아 수락했지.

그때 방송에서 치열한 혈투 끝에 상대 팀 스켈레톤이 1차전에서 근소하게 우위를 가져가 환호하지만 바로 이어서 백상호가 신들린 손놀림으로 콘솔을 조작하는 모습과 그 모습을 보고 경악하는 상대 팀 사람의 모습이 클로즈업되며 나왔고, 이 경기가 이렇게 끝나지는 않을 거라는 것과 백상호가 보통 사람이 아니라는 걸 암시하며 방송이 막을 내렸다.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잘 만들었네요. 제법 재미있어요."

스켈레톤의 극의에 달한 내가 이렇게 느낄 정도면 일반 사람들 반응은 볼 것도 없지.

여기에 지역 예선과 다르게 무제한 룰이 적용될 본선까지 가면 말 그대로 게임 끝.

나는 환하게 웃으며 말했다.

"첫 단추는 잘 끼운 것 같으니 계속 갑시다."

*

첫 방송의 후폭풍은 어마어마했다.

스켈레톤의 박진감 넘치는 경기는 많은 사람들의 심금을 울렸으니까.

뭐랄까, 어릴 때부터 사람들이 품어 온 로봇 격투에 대한 로망이 현실화된 느낌?

덕분에 1화의 마지막을 장식하며 선수들 중에서 제법 주목을 받은 권주민이지만, 그런 외부의 반응과 다르게 권주민은 초조했다.

"언제 연락이 오는 거지?"

1화에서는 이제 겨우 첫 경기를 방송했을 뿐이지만, 실제 토너먼트는 2번이나 진행되어 이미 전북에서만 수백에 달하는 팀이 나가떨어진 상황.

그리고 그렇게 떨어진 팀은 콘솔과 스켈레톤도 회수해 가기에 권주민과 그의 팀은 그저 머릿속으로만 계속해서 시뮬레이션을 돌리는 것 말고는 백상호가 말한 패자부활전을 준비를 할 방법이 없었다.

그때 팀원이 불안하다는 표정으로 말했다.

"설마 패자부활전 없는 것 아니야?"

그러자 권주민이 단호한 표정으로 말했다.

"그럴 리 없어. 다른 사람도 아니고 백 센터장님이잖아, 최고의 프로그래머."

"알고는 있는데, 혹시라도 계획이 틀어졌다거나 그럴 수도 있잖아."

권주민이 불안해하는 팀원을 다독이며 말했다.

"걱정 마. 우리 믿고 기다리자. 백 센터장님이 인정해 준 우리라고! 자부심을 가져!"

그의 독려에 팀원이 주먹을 불끈 쥐며 말했다.

"맞아. 우리는 인정받았다고. 내가 너무 초조해서 헛소리를 했네."

"그래. 그러니 우리는 침착하게 기다리······."

그때 권주민의 핸드폰으로 전화가 걸려 온다.

"여보세요?"

전화를 받은 권주민의 귀에 들려오는 수화기 너머의 목소리.

-권주민 씨?

그 사람은 바로 백상호였다.

"백 센터장님!"

권주민의 외침에 몰려든 팀원들.

"백 센터장님이야!?"

"오오! 드디어!"

-음··· 혹시 지금 다 같이 계시나요?

"예. 맞습니다."

-잘됐네요. 지금 제가 불러 드린 주소로 함께 와 주세요.

백상호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며 말했다.

"알겠습니다! 지금 바로 가겠습니다!"

-아. 그리고 제가 지금 제작진이랑 함께 있는데··· 그··· 그게, 제가 정체를 갑자기 공개하면 놀라셔야 한다고 하네요.

"···예?"

이미 알고 있는데 정체를 공개한다고?

-그때는 제가 즉흥적으로 말을 거는 바람에 영상으로 찍질 못했답니다.

"아··· 네. 알겠습니다."

-그럼 기다리겠습니다.

그렇게 통화를 마친 권주민이 말했다.

"얘들아, 우리 놀라는 연습 좀 해야겠다."

*

갑자기 백상호가 등장하여 정체를 공개하자 놀라는 라이트닝의 팀원들.

그리고 잠시 백상호의 정체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자 제작진이 말했다.

"이 정도면 됐습니다. 이제 제대로 이야기 나누셔도 됩니다."

그러자 백상호가 길게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하아. 이거 보통 일이 아니구나."

"그러게 말입니다."

"그래도 잘해 주셨습니다. 아무튼 이제 본론으로 들어가죠. 지역 예선엔 저 말고도 많은 세론의 프로그래머 팀들이 있습니다. 이 팀들은 이제 마음에 드는 팀을 골라······."

그렇게 앞으로의 일정에 대해 이야기해 준 백상호.

"그럼 프로그래머님들은 이제 선수로 출전하지 않으시는 겁니까?"

"예. 어디까지나 저희는 심사 위원이자 조력자니까요."

"그런데 그렇게 되면 이겨서 올라간 팀들이 역으로 차별받는 것 아닙니까?"

"그건 걱정 안 하셔도 됩니다. 저희에게 선택된 팀들끼리 겨룬 다음 거기서 패한 쪽 프로그래머들이 생존한 팀들에 조력자로 붙을 거니까."

결국 끝까지 살아남은 팀은 누구나 프로그래머들의 지원을 받을 수 있다는 말.

"···지면 안 되겠네요."

최고의 프로그래머에게 도움을 받을 수 있는 기회.

그런데 이 기회가 패배 한 번에 날아가고, 심지어 그 기회가 다른 팀에게 간다니 투지가 끓어오르는 기분이었다.

"당연히 지면 안 됩니다. 물론 이건 저뿐만 아니라 참가한 모든 프로그래머들도 마찬가지지만. 이 대회는 저희 회장님께서 심혈을 기울여 만든 대회니까요."

"한 회장님이······."

"게다가 이 대회는 이번 한 번으로 끝이 아닙니다. 회장님은 이걸 진짜 스포츠화해서 제대로 운영하실 예정이니까요. 그러니 열심히 하세요."

권주민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알겠습니다. 열심히하겠습니다!"

"그럼 이제 스켈레톤 알고리즘에 대해 이야기를 해 볼까요? 우선 격투술은 나쁘지 않은데······."

*

첫 방송부터 화제를 모은 스켈레톤 대회.

그러다 프로그래머들이 암중 심사 위원으로 숨어 있다는 반전이 드러나고 그들이 패배한 팀을 이끌어 패자부활전을 진행한다.

그러면서 매력적으로 그려지는 그들의 군상극과 나날이 발전해 가는 실력은 사람들의 심금을 울렸고, 자연스럽게 팀별로 팬덤이 만들어졌다.

그중에서 가장 주목을 받는 건 백상호와 라이트닝.

그들은 하루가 다르게 실력이 일취월장해 갔고, 그렇게 진행된 패자부활전에서 다른 팀을 누르며 가장 주목받는 팀이 되었다.

그사이 패자부활전에서 자신의 팀이 패배해 자존심을 구긴 프로그래머들이 토너먼트에서 승리한 팀들에 합류하며 이제는 패자부활전 팀과 토너먼트 승리 팀으로 나뉘어 운명의 대결을 앞둔 상황··· 이 지금까지 방송으로 진행된 내용이었다.

"본선 진출자 확정됐네요."

그리고 방송과 다르게 진짜 경기는 훨씬 앞서 나가고 있기에 이미 본선 진출자들이 확정된 상황.

김덕배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예. 지역 예선을 통과한 70개 팀이 최종 진출 했습니다."

원래는 딱 50개 팀만 뽑으려 했는데, 그냥 떨어뜨리기 아까운 팀들이 몇몇 있기도 하고 방송의 재미를 위해 본선 진출 팀을 좀 늘렸지.

"라이트닝. 백상호."

그중에서 특히나 내 주목을 받은 건 바로 라이트닝과 백상호였다.

백상호야 말할 필요도 없지만, 라이트닝.

특히 그중에서도 권주민이란 남자는 백상호의 지식을 스펀지가 물 빨아들이듯 흡수하며 하루가 다르게 성장하고 있었다.

방송에선 원래부터 격투기를 오래 배워 왔기에 도움이 되었다 말했지만, 본인이 무언가를 잘하는 것과 콘솔로 잘하게 만드는 것은 전혀 다르단 말이지.

애초에 그런 식이었다면 프로그래머로 뭐 하러 백상호 같은 사람을 뽑았겠어.

그냥 신발 쪽 프로그래머면 신발 제조 베테랑을 뽑는 식으로 했겠지.

그때 김덕배가 나에게 말했다.

"그나저나 회장님, 대회와 방송이 흥행하며 기업들에서 후원 제안이 계속 들어오고 있는데, 어떻게 할까요."

"후원이요? 설마 PPL?"

"그런 건 아니고, 스포츠 경기처럼 경기장 외곽에 자사 로고를 넣는 대신 후원금을 주는 방식입니다."

"그건 괜찮네요."

스켈레톤의 스포츠화를 위해서 내가 이번에 투자한 돈은 상금을 제외해도 진행 요원 인건비와 경기장 임대 비용 등을 모두 더해서 수백억 원에 달했다.

지금이야 전부 내 돈으로 하고 있지만 진정한 스포츠화를 위해선 스폰서와의 연계도 빼놓을 수 없지.

"어차피 본선은 경기장 하나 골라 가지고 거기서만 진행할 예정이니 경기에 지장 안 가는 선에서만 받아 주세요."

"알겠습니다."

"혹시나 선수 개인이나 팀에 대한 후원 같은 게 있으면 그것도 허가해 주고."

돈 벌 구멍을 만들어 줘야 더 열심히 알고리즘을 만들기 위해 노력할 테니까.

나는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이제 진짜 본선이네요."

지역 예선과 다르게 상대 측 스켈레톤을 박살 내도 상관없는 무제한 룰의 본선.

거기다 전투 경험이 누적되며 모두들 알고리즘 실력이 상당히 올라왔기에 제법 볼만하겠지.

"본선 경기엔 저도 참관하겠습니다."

전국에서 모이고 모인 70개 팀이 머리를 맞대고 만든 알고리즘을 흡수하는 거다.

물론 첫 대회인 만큼 내 마음에 들 만한 수준은 아니겠지만, 혹시 모르는 일이니까.

"또 보고할 것 있나요?"

"음··· 스켈레톤을 꾸며도 되겠냐는 요청이 있었습니다."

"꾸며도 되냐고요?"

"스켈레톤의 소유권이 세론에 있다 보니 색조차 함부로 못 칠하지 않습니까. 때문에 외형이 모두 비슷비슷해 직관성도 떨어지고 시청자들의 몰입에 방해가 된다고 합니다. 그동안에야 지역 예선이라 워낙 팀이 많은 관계로 상관없었지만, 이제 전국 본선인 만큼 각 팀별로 개성을 부여해 줄 필요가 있답니다."

맞는 말이네.

한눈에 분간이 돼야 응원하기도 더 편하고 재미도 있을 테니까.

"허가해 주세요. 어차피 본선 진출 할 정도 실력이면 앞으로도 계속 대회에 참가할 테니까, 아예 지정 스켈레톤을 정해서 1년 단위로 계약하면 되겠네요. 색칠을 하든 아니면 장식을 달든 알아서 마음껏 개성 있게··· 음?"

저들이 원하는 건 팀의 개성이다.

그리고 팀의 개성이야말로 스포츠의 묘미 아닌가.

여러 스타일의 선수들이 팀으로 모인 야구나 축구도 그렇고, 각기 다른 덩치와 주특기를 지닌 격투기 선수들도 그렇고.

그런데 그걸 고작 외관만 살짝 다르다 해서 개성이라 부를 수 있을까?

거기에 너무 형평성에 목매어 모두에게 같은 스켈레톤만 쥐여 주는 건 다양한 변수에 대응해야 할 알고리즘 제작에도 부정적인 영향을 줄 거다.

"스켈레톤마다 특별한 무언가를 부여해야 더 다양한 상황이 연출되고 알고리즘도 강화될 것 아니야."

어쩌면 이 개성이야말로 내 언데드 군단을 상대하는 데 있어서 가장 필요한 것일지도 모른다.

아무리 완벽하게 만든 알고리즘이라지만, 어디까지나 마왕군을 상대하는 데 특화된 게 바로 내 세론 언데드 군단이니까.

그런데 여기에 사람들의 창의력이 더해진 변칙적인 스켈레톤이 무더기로 나온다면 아무리 내 스켈레톤 군단이라도 대응에 어려움을 겪을 테니까.

"개성··· 그래. 본선에서는 팀별로 개성을 부여하는 거야."

상대를 이겨서 상금을 차지하기 위한 저들의 투쟁심에 불을 질러 저들의 창의력을 극한까지 끌어올리는 거다.

나는 눈을 빛내며 말했다.

"스켈레톤을 파츠별로 만들어 봐? 그런 다음 팀들이 알아서 조합하게 하고?"

몸통과 머리는 그대로 두고 팔다리를 떼었다 붙였다 할 수 있게 만드는 거지.

애초에 여러 사체를 합쳐 거대한 한 개 개체로 만드는 건 나한테 있어서 아무것도 아니니까.

"오! 이건 다른 스켈레톤들에도 적용할 수 있겠다."

언제든 팔다리 파츠를 갈아 끼울 수 있고 부가 장비도 장착이 가능한 스켈레톤.

각 상황에 맞는 파츠를 양산해 두고 직원들이 알아서 그때그때 파츠를 갈아 끼우게 하는 거다.

"이거 진짜 점점 컴퓨터처럼 돼 가네?"

부품을 조립해 하나의 완제품 컴퓨터를 만드는 것처럼 원하는 대로 조합이 가능한 스켈레톤.

이거라면 변수 창출에도 용이하고 방송과 대회를 더욱 흥행하게 만드는 요소가 될 거다.

그때 한 가지 아이디어가 더 떠오른 나는 손가락을 튕기며 말했다.

"아니면 팀별로 파츠를 하나씩만 만들어 주고 이기는 쪽이 진 쪽 파츠를 강탈하는 방식도 나쁘지 않겠다."

팀들에게 원하는 파츠를 딱 하나씩만 만들어 준다.

밸런스를 해치지 않고 구현이 가능한 범주 안에서.

그런 다음 경기를 진행하여 이긴 쪽이 진 쪽의 파츠를 강탈해서 장착할 수 있게 하는 거지.

이건 효율을 떠나서 재미 하나는 확실할 것 같은데?

나는 히죽 웃으며 말했다.

"부회장님, 팀들이랑 프로그래머들한테 원하는 파츠 하나씩 구상해 오라고 하세요. 전통적인 손이나 팔 아니어도 좋으니, 집게손이든 뭐든 전부 상관없으니까."

85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