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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게릴라 모드로 흩어지면 상황이 더 복잡해질 게 뻔하니 화력을 쏟아부어 순식간에 정리한 나.

덕분에 전멸한 백인대의 박살 난 뼈들이 사방에 널브러졌다.

나는 실눈을 뜨고 그 뼈들을 바라보며 말했다.

"이 정도면 됐겠지?"

유격단 스켈레톤들은 무려 강자를 만났을 때 박살 난 척하는 위장 파괴 기능까지 들어 있어서 단순히 박살 내는 것을 넘어 확인 사살까지 하기 위해 일부러 좀 과하게 화력을 쏟아부었다.

그렇게 잠시 박살 난 뼈들을 살펴보던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된 것 같네."

이 정도 박살 났으면 아무리 위장 파괴 기능이 있어도 복구가 안 될 거다.

"뼈부터 챙기자."

그래야 무슨 일인지 실마리라도 잡지.

그렇게 땅으로 내려간 나는 손으로 뼈를 주섬주섬 챙기며 말했다.

"그나마 유격단 스켈레톤인 게 다행이네. 만약 데스 나이트 기사단이나 특수 개체들이었다면 이렇게 쉽게 끝내지 못했을··· 어?"

뼈를 챙기던 그때 갑자기 불길한 상상이 떠오른 나는 멍한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유격단이 나왔다는 건··· 다른 언데드 군단이 또 나올 수도 있다는 말이잖아."

상대가 마왕군인 만큼 가장 약한 스켈레톤조차 일반 병사를 뛰어넘는 수준으로 만들어진 게 내 언데드 군단이다.

그렇기에 악마라고까지 불리며 공포로 군림한 거고.

그런데 만약 다른 언데드 군단.

그것도 기사단 같은 어나더 레벨의 부대가 나오고 이번과 마찬가지로 통제가 안 되면 어떡하지?

그때 또 한 가지 최악의 가정이 내 머릿속을 스쳐 간다.

"미트 골렘."

대마왕용으로 만든 다섯의 결전 병기들.

인류 연합군에게서 마정석과 각종 최고급 금속 등 기둥이 뽑혀 나갈 정도의 지원을 받고 인류, 마족, 몬스터 등 종을 불문하고 강자들의 사체를 총동원해 내가 만들어 낸 최강의 언데드들이었다.

그야말로 세론 대륙 인간 연합군과 내가 가진 모든 걸 집대성하여 완성한 결정체.

당연히 아군일 땐 그 무엇보다 든든했지만······.

나는 당황한 표정으로 말했다.

"그놈들이 나올 수도 있다고?"

내 마법 실력이 뛰어나긴 하지만, 전투력만 놓고 봤을 때 마왕은 고사하고 나를 소환한 대마법사인 테로스보다도 약한 게 사실이다.

나는 직접 전투가 아닌 제작 특화니까.

그건 다시 말해 다섯 결전 병기 중 가장 약한 미트 골렘이 튀어나와도 나 혼자서는 상대가 안 된다는 말이다.

미트 골렘은 마왕군을 헤집고 나보다 강한 마왕을 단신으로 때려잡은 괴물이니까.

그런데 심지어 그런 미트 골렘보다 강한 개체가 4개나 더 있다고?

나는 창백해진 표정으로 말했다.

"좆됐다."

미트 골렘 하나만 튀어나와도 아마 수많은 사람들이 목숨을 잃을 거다.

은퇴하기 위해 지구로 돌아왔는데 내 언데드 군단으로 인해 지구가 위험해질지도 모르는 상황.

막아야 한다.

비록 아직은 가정에 불과하지만, 유격단이 나온 이상 또 다른 언데드 군단이 나올 수도 있고 통제도 안 될지 모른다는 최악의 상황을 염두에 두고 움직여야 한다.

다른 것도 아니고 내 언데드 군단이 내 은퇴 예정지를 박살 낼지도 모르는 상황인데 가만히 있을 수는 없지 않나.

그런데 어떻게?

나는 잠시 멍하니 있다 말했다.

"군단을 재건해야 돼. 그 방법밖에 없어."

세론에서 만든 언데드 군단을 막기 위해 지구에서 새로운 언데드 군단을 만들어야 하는 상황.

그렇다면 언데드 군단을 만들기 위해 지금 나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일단은 사체."

언데드의 기본인 강력한 개체의 사체.

사람의 사체를 쓸 수는 없으니 결국 선택지는 게이트 속 강력한 몬스터들뿐이다.

그런데 그 많은 사체를 언제 다 모으지?

게다가 문제는 그뿐만이 아니다.

"마력도 문젠데."

세론에선 부족한 마력을 보완하기 위해 인류 연합군이 지원해 준 마정석을 에너지 드링크 마시듯 흡수하며 언데드들을 만들었다.

그렇게 30년간 지원 받은 마정석은 그야말로 인류 연합군 소속 국가들 모두를 재정난에 휘청거리게 만들었을 정도.

하지만 지구엔 마정석이 없······.

"아!"

그때 한 가지 대안이 떠오른다.

"정수!"

게이트의 몬스터에게서 가끔씩 나오는 보석 모양의 몬스터 정수.

상당한 힘을 내포하고 있어 그걸 이용해 장비를 만드는 등 많은 방면에서 쓰이는 비싼 물품이었다.

저번에 한번 지나가다 보니 마정석과 상당히 유사하던데, 그거라면 마정석을 대체할 수 있지 않을까?

"일단 한번 정수로 시도해 보자. 그다음 또 뭐가 필요하지? 일단 고급 언데드에는 금으로 마법진도 빼곡히 박아야 하니 금도 필요하고, 그다음 약점 보강용으로 금속들을··· 어?"

사체도 모아야 하고 정수도 필요하다.

거기에 금은 물론 각종 금속들을 비롯한 부자재들까지.

분명 모아야 할 건 많다.

그런데 이 모든 걸 동시에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이 하나 떠올랐다.

"돈."

바로 돈이었다.

자본주의의 세상에서 돈으로 사지 못하는 건 없으니까.

사체가 많이 필요해?

돈 주고 사면 된다.

수많은 각성자들이 매일 사냥해서 사체를 내다 팔고 있으니까.

정수 역시 마찬가지.

"돈만 있으면··· 재건할 수 있어. 근데 도대체 돈이 얼마나 필요한 거지?"

세론에서야 인류 연합군 소속 나라들 등골 쪽쪽 빨아 가며 만들었지만 지구는 아니지 않나.

그렇다 해서 내 언데드 군단이 언제 또 나타날지도 모르고, 얼마나 강력한지를 내 입으로 설명하고 다닐 수도 없고.

결국 내가 그 많은 돈을 직접 감당해야 한다는 말.

"돈, 돈이 필요해."

그것도 내 은퇴 자금 따위와는 비교조차 되지 않을 만큼 어마어마한 금액이.

그리고 돈을 가장 많이 그리고 빠르게 모으는 방법은 단 하나다.

바로 스켈레톤을 이용한 사업을 지금보다 훨씬 더 빨리 그리고 미친 듯이 키우는 방법뿐.

"젠장."

게으름 피우던 것도 전부 끝이구나.

나는 하늘을 올려다보며 말했다.

"나 언제 쉬냐······."

18화

내 앞길에 드리운 먹구름에 망연자실해 있는 사이 들려오는 목소리들.

"가, 감사합니다!"

"정말 꼼짝없이 죽는 줄 알았는데··· 이 은혜 평생 잊지 않겠습니다!"

바로 긴급 대응 팀 각성자들이었다.

···내 유격단에게 죽을 뻔했던 사람들에게 듣는 감사 인사라.

기분이 묘하네.

그때 한 각성자가 부상 입은 몸을 이끌고 다가와 말했다.

"한지혁 대표님! 정말 감사합니다. 한 대표님이 이런 능력을 가지고 계실 줄 꿈에도 몰랐습니다!"

그 말에 다른 각성자들이 놀란 표정으로 말했다.

"뭐?! 저분이 한지혁 대표라고?"

"그 스켈레톤!?"

역시 알아보는 사람이 있구나.

일단 보는 눈이 많으니 오늘은 최대한 풀 서비스 해야지.

나는 곧바로 아공간에서 공장에 배치하고 남은 운반형 스켈레톤을 꺼내며 말했다.

"부상자를 실으세요. 지금 바로 병원에 가야 합니다."

"가, 감사합니다!"

그렇게 긴급 대응 팀 부상자를 실은 운반형 스켈레톤들.

"가세요!"

그렇게 병원으로 부상자를 이송하자 도망쳤던 기자들의 일부가 눈을 빛내며 다가와 말했다.

"한지혁 대표님! 잠시 인터뷰······."

역시 귀찮게 하네.

"부상자 수송이 먼저입니다. 인터뷰는 나중에 회사로 연락 주세요."

물론 전부 거절할 거지만.

그때 팀원들에 의해 운반형 스켈레톤에 실린 팀장이 기어 들어가는 목소리로 말했다.

"정말··· 감사합니다."

백인장 스켈레톤에게 중상을 입은 팀장.

"한 대표님이 아니었다면··· 저희는 전멸이었을 겁니다."

팀장이 질린 표정으로 말했다.

"그 스켈레톤들, 이성이라도 있는 것처럼 행동했습니다. 마치 사람처럼요. 어떻게 그런 합공과 완벽한 진이 가능한지······."

"아··· 예."

"어쩌면 그 화려한 투구를 쓴 개체가 지휘관 아니었을까요?"

"그··· 럴 수도 있겠죠."

"아무튼 이번 스켈레톤들은 제가 만나 본 그 어떤 언데드들과도 달랐습니다. 강하고 치밀하고. 한 대표님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한 대표님이야말로 스켈레톤 전문가······."

이렇게 하나하나 대답하다간 끝도 없겠다.

나는 팀장을 제지하며 말했다.

"일단 치료가 우선입니다. 궁금한 건 나중에 해결해도 되잖아요?"

"그건 그렇죠. 아무튼 다시 한번 감사드립니다."

그렇게 운반형 스켈레톤을 타고 인근 병원으로 이동한 팀장.

"후우."

가장 부상이 심한 팀장도 생명에 지장은 없는 것 같고.

사망자가 없으니 다행이라면 다행이라 해야 할까.

그나저나 유격단 백인장이 D급 각성자를 이길 정도라······.

물론 주변 스켈레톤의 협공 덕에 이긴 거지, 엄밀히 말하면 백인장의 실력은 D급 각성자인 팀장과 비슷하거나 조금 못 미치는 수준이었다.

"생각보다 약한데······."

하지만 그걸 고려해도 내가 생각한 것보다 각성자들의 수준이 좀 낮다.

유격단 백인장이면 세론의 평기사 수준.

그럼 만약 데스 나이트 기사단이 나오면 어느 정도 수준의 각성자가 나서야 하는 거지?

나는 잠시 고민하다 이내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아니. 지금 중요한 건 이게 아니지."

일단 도대체 어찌 된 영문인지 확인하는 게 우선이다.

나는 들고 있던 뼈를 바라보며 말했다.

"제발 뭐라도 나왔으면 좋겠는데······."

*

사태를 수습하고 투자를 제안하러 온 권기운도 거절한 뒤 돌려보낸 다음 나는 뼈를 가지고 본격적인 실험에 돌입하였다.

통제를 되찾아올 방법은 없는지 그리고 어쩌다 이런 일이 발생한 건지를 알아내기 위해.

그렇게 마력을 뒤틀어 가며 뼈에 남아 있던 마법진의 잔재를 간신히 읽어 낸 나는 제법 많은 걸 알 수 있었다.

"누가 손댄 흔적은 없어."

내 특유의 스타일이 그대로 묻어 있는 마법진.

즉, 이 스켈레톤들은 철저히 내가 만들어 둔 매크로에 따라 움직이고 있다는 말이었다.

그런데 마법진은 그대로지만 마법진을 구성하고 있는 마력에서 나는 이질감을 느꼈다.

"···내 마력이 아니야."

마법진은 내 것이 맞는데 마법진을 구성하고 있는 마력은 내 것이 아니다.

내 마력이 사라지고 그 자리를 다른 마력이 대체하고 있는 상황.

이제야 왜 아공간이 먹히지 않았는지 이해가 된다.

내 아공간은 오직 내 마력과 무생물에만 반응하니까 이질적인 마력을 품은 스켈레톤을 받아들이지 못한 거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누군가가 내 마력을 빼내고 자기 마력을 밀어 넣었냐면, 그것도 아니다.

나는 박 사장을 시켜 마정석 대용품으로 삼기 위해 실험 삼아 사 온 정수를 들어 올리며 말했다.

"마력의 느낌이 이거랑 비슷해."

정제되지 않은 거칠고 투박한 자연 그대로의 마력 느낌.

나는 여기서 한 가지 가설을 세울 수 있었다.

"설마 게이트 속 마력?"

마력이 메마른 지구와 다르게 마치 세론처럼 자연 마력이 풍부하게 존재하는 게이트 속 세상.

어쩌면 이놈들은 내가 지구로 오며 아공간이 아닌 게이트와 동화되었고, 그 과정에서 내 마력 역시 게이트 속 마력으로 대체된 것 아닐까?

그래서 통제가 안 된 채 그저 매크로에 따라 움직이는 거고.

하지만 이 가설도 여전히 구멍은 많다.

애초에 게이트가 무엇인지, 어디에서 어떻게 생겨나는 것인지조차도 인류는 아직 파악하지 못하고 있었으니까.

그래도 확실한 건 이거다.

언데드 군단의 마력진이 전부 저 마력으로 대체되어 통제를 상실한 이상 언데드 군단은 게이트 속 몬스터와 다를 바 없다는 것.

그리고 이 모든 일이 내가 지구로 돌아왔기 때문에 생긴 일이라는 것.

"···매크로대로 움직이는 몬스터화된 언데드 군단."

상상만 해도 끔찍하다.

아무튼 여기까지 파악했으니 이제 내 선택지는 두 가지다.

세론에서처럼 손가락질을 받든 말든 날뛰며 언데드 군단 재건만을 위해 움직이는 것과 일단 상황을 보며 은퇴와 언데드 군단 재건을 동시에 준비하는 것.

나는 잠시 고민하다 말했다.

"두 번째로 하자."

분명 이건 위기다.

언제 어디서 내 언데드 군단이 튀어나올지 감도 잡을 수 없는 상황이니까.

하지만 지구의 인류에게는 세론엔 없는 현대식 병기가 즐비하며, 비록 내 예상보다 수준은 낮지만 세론 대륙의 수배에 달하는 엄청난 인구수에서 나오는 각성자의 힘도 무시할 수 없다.

그리고 무엇보다 아직 닥치지도 않은 불확실한 미래 때문에 내가 30년을 꿈꿔 온 은퇴 라이프를 이렇게 간단히 망칠 수는 없단 말이지.

만약··· 정말 도저히 안 되겠다 싶으면 그때 하자.

아직은 평화로운 은퇴란 희망의 끈을 놓고 싶지 않다.

지구라는 탈출로가 있었던 세론과 다르게 이건 내가 평화롭게 은퇴할 수 있는 마지막 기회니까.

"아무튼 간에 돈 많이 벌어야 하는 건 똑같네."

심지어 그것도 원래 목표로 하던 돈의 수십 배 혹은 그 이상으로 말이다.

"후우. 좋게 생각하자."

그래.

그 전과 달라진 건 없잖아?

단지 은퇴 준비와 언데드 군단 재건을 동시에 진행해야 하는 만큼 원래 계획보다 훨씬 더 압도적으로 많은 돈이 필요해졌을 뿐.

그래도 대신 회사가 커지면 성장 속도도 더 빨라질 것 아니야.

금액으로는 몇십 배지만 시간상으로는 원래 계획에서 몇 배만 더 늦어지는 수준일지도 모른다고!

그렇게 최대한 긍정적으로 생각해 보려 했지만······.

"···씨부럴."

역시 개 같은 건 개 같은 거다.

원래 계획에서 몇 배만 늘어나도 그게 도대체 얼마야?

나는 머리를 잡아 뜯으며 외쳤다.

"으아!"

일하는 게 싫어서 권기운의 제안에 혹할 만큼 일이라면 학을 떼는 난데, 이제는 기약 없이 언데드 군단 재건을 위해 일을 해야 하다니.

그냥 난 조용히 은퇴해서 평화롭게 살고 싶을 뿐인데!

나는 지친 표정으로 말했다.

"이럴 줄 알았으면 언데드 군단 두고 올걸. 뭐 그리 아깝다고 바리바리 챙겨서······."

그렇다고 내가 싼 똥인데 무시할 수도 없는 노릇 아닌가.

"그래. 내가 싼 똥은 내가 수습한다."

내가 그간 아끼고 아껴 온 '노오력'이란 걸 하는 거다.

나는 이글거리는 눈으로 말했다.

"돈 벌어서 언데드 군단도 막고 은퇴도 한다. 두 마리 토끼 동시에 잡아 주지."

*

돈을 더 많이 그리고 빨리 버는 방법은 간단하다.

신발 같은 경우엔 주문이 너무 많아 모든 스켈레톤을 24시간 돌리고도 모든 물량을 소화하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었으니까.

즉, 생산량만 늘리면 돈은 계속해서 늘어날 거라는 말.

하지만 지금까지처럼 작은 공장을 야금야금 하나씩 먹는 게 과연 진짜 맞는 길일까?

"효율이 너무 떨어져."

작은 공장은 좁은 공간만큼이나 들여놓을 수 있는 기계와 스켈레톤의 수에 한계가 있다.

당연히 비좁아지면 비좁아질수록 이동 동선이 겹쳐서 병목현상도 나타나고.

"큰 공장이 필요해."

김덕배는 말했다.

모든 스켈레톤이 모든 제품을 만드는 하이브리드 구조로 만들어야 효율을 극대화할 수 있다고.

지금처럼 옷 공장의 스켈레톤이 옷을 다 만들면 일감이 없어 노는 게 아니라, 옷을 다 만들면 신발을 만들고 신발도 다 만들면 모자를 만드는 식의 하이브리드 공장.

내가 노리던 종합 제작사에 가장 걸맞은 방식이다.

하지만 이걸 위해선 최소 수천 개 이상의 스켈레톤을 동시에 수용할 수 있는, 지금까지와는 비교조차 안 되는 커다란 부지의 공장이 필요하다.

당연하게 이런 커다란 부지의 공장은 가격이 어마어마하겠지.

"작은 공장이야 대출 인계 조건으로 싸게 인수했지만, 대형 공장은 그게 안 될 것 아니야."

한국에는 대형 신발 공장이란 존재 자체가 없으니까.

그렇다고 전혀 다른 업종의 공장을 사서 내 입맛에 맞게 뜯어고치는 것도 전부 돈이고.

가장 좋은 건 역시 비어 있는 대형 공장을 매입해서 스켈레톤과 기계 그리고 자재들을 전부 때려 박는 거다.

나는 머리를 박박 긁으며 말했다.

"이것도 돈, 저것도 돈. 미치겠네, 진짜."

돈을 더 많이 벌려면 돈이 더 필요한 상황.

물론 지금 돈을 잘 벌고 있으니 언젠가는 살 수 있겠지.

하지만 그때까지 언제 기다리고 있나.

노오력을 해야 할 것 아니야, 노오력을.

그때 한 가지 방법이 내 머릿속을 스쳐 지나간다.

"게이트."

내 마법 실력을 드러내며 단번에 유명 인사가 된 나다.

다중 능력자로 돈도 잘 벌지, 심지어 전투 능력도 A급으로 추정되는 상황.

그럼 그냥 A급 테스트 받은 다음 게이트로 들어가서 진짜 눈 딱 감고 노가다 좀 뛸까?

A급 각성자가 A급 게이트에서 사냥을 하면 한 달에 이삼십억도 넘게 번다고 들었는데.

하지만 그 생각을 하자마자 온몸에서 힘이 빠져나가기 시작한다.

"아. 진짜 하기 싫다······."

고작 한 달에 이삼십억 벌자고 그 생노가다를 해야 한다고?

그냥 사무실에 누워서 보고 들으며 숨만 쉬어도 공장들에서 나오는 순수익이 이미 그보다 훨씬 많은데?

그렇게 잠시 축 처져 있던 나는 간신히 몸을 일으키며 말했다.

"그래도 해야지. 노력하기로 했잖아."

한 푼이라도 더 빨리 벌어야 언데드 군단 재건도 하고 은퇴 준비도 할 것 아닌가.

진짜 몸 쓰기 싫어 죽을 것 같지만 지금 당장 사업과 별개로 목돈을 벌 방법은 그것뿐이다.

일단 사업이 완전 궤도에 오르기 전까지만이라도 뛰는 거다.

지금의 수십억이 훗날 수십조 원으로 돌아오는 법이니까.

딱 몇 달만 뛰자.

게다가 어차피 언데드 군단을 재건하기로 마음먹은 이상 전투용 매크로도 준비해야 할 것 아닌가.

게이트로 들어가 노가다도 뛰면서 동시에 매크로도 완성해 나가는 거다.

내 똥 내가 치우기로 결심한 이상 이 정도 노력은 해 줘야지.

그렇게 노가다를 하기로 마음먹은 바로 그때.

내 핸드폰으로 전화가 온다.

"여보세요."

-안녕하세요. 혹시 저 기억하십니까?

"인터뷰면 전부 거절입니다. 길드 가입 관심 없고요. 주문만 받습니다."

그날 이후 쏟아지는 인터뷰 요청 전화를 받다 보니 모르는 전화를 받으면 자동 응답처럼 튀어나오는 말.

-하하. 기억 안 나시나 보네요. 저 긴급 대응 팀 팀장입니다.

"아! 팀장님?"

-다름이 아니라, 이번에 퇴원해서 팀원들을 대표해 감사 인사를 좀 하고 싶어 연락드렸습니다. 제가 지금 공단 근처인데, 혹시 시간 좀 내주실 수 있나요?

"음······."

굳이 거절할 필요는 없겠지?

"가능합니다. 위치 보내 드릴게요."

-하하. 알겠습니다. 금방 가겠습니다.

그렇게 위치를 보내 주고 얼마나 지났을까.

한 스포츠카가 굉음을 내며 공장 안으로 들어온다.

"뭐야. 누가 저렇게 요란하게······."

그런데 그때 스포츠카의 문을 열고 나오는 긴급 대응 팀 팀장.

"어?"

뭐야.

팀장 차였어?

공장을 나가 팀장에게 다가가자 팀장이 환하게 웃으며 말했다.

"한 대표님!"

그러곤 조수석에서 선물 꾸러미를 꺼내 나에게 다가오는 팀장.

"그때 정말 감사해서 찾아왔습니다. 혹시 바쁘신데 방해한 건 아닌가요?"

"아니요. 마침 쉬던 중이긴 했는데······."

나는 스포츠카를 바라보며 말했다.

"이거 비싼 것 아닌가요?"

그러자 팀장이 어색하게 웃으며 말했다.

"좀 비싸긴 하죠."

D급 각성자 수입으로도 살 정도인가?

"무리해서 산 겁니다. 그래도 나름 각성자인데 아무 차나 끌고 다니는 건 좀 그래서. 하하. 이거 번데기 앞에서 주름 잡는 것 같아 창피하네요."

"호오."

체면을 위해 수억대 스포츠카를 거침없이 지른다라.

하긴.

내가 만드는 소비재와 완전히 반대되는 것이 바로 이런 사치품이지.

희소성과 우월감을 위해 존재하는 사치품.

몬스터를 사냥하다 지구로 돌아오는 각성자들은 이런 경향이 더 심할 수밖에 없다.

일종의 보상 심리랄까.

특히 젊고 높은 등급의 각성자들일수록 허영심도 높고 수입도 높으니 아낌없이 지르겠지.

"각성자들이 스포츠카를 많이 타는 편인가요?"

"각성해서 돈 벌면 가장 먼저 사는 게 스포츠카이긴 하죠."

나는 눈을 빛내며 말했다.

"그렇단 말이죠······."

사실 한국에 이런 스포츠카가 마음 놓고 달릴 수 있는 장소가 어디 있나.

사방이 방지턱이고 과속 단속 카메라인데.

그럼에도 이들은 자신들의 허영심을 충족하기 위해 스포츠카 같은 사치품을 사는 데 돈을 아끼지 않는다.

즉, 성능이야 어찌 됐든 상관없고, 딱 봤을 때 남들이 부러워할 만한 거면 전부 상관없다는 말.

이거, 잘만하면 돈 될 것 같은데?

그때 팀장이 나에게 선물 꾸러미를 건네며 말했다.

"별건 아니지만, 건강식품 좀 챙겨 왔습니다. 거기다 저희 할머니께서 감사하다며 따로 시골 된장도 챙겨 주셨는데, 마음에 드실지 모르겠네요."

"시골 된장 최고죠. 제가 사실 고아 출신이라 맛볼 기회도 별로 없고."

그러자 팀장이 흠칫하며 말했다.

"아. 제가 괜한 말을 한 건 아닌지······."

"아니, 그건 괜찮은데, 저한테 감사하다고 하셨죠?"

"물론입니다, 생명의 은인이신데."

나는 눈을 빛내며 말했다.

"그럼 저 좀 도와주실 수 있으십니까?"

19화

팀장은 자신의 목숨을 구해 준 한지혁에게 진심으로 감사해했다.

그가 아니었으면 팀장 본인은 물론 부하 팀원들까지 모두 전멸했을 테니까.

그런데 이렇게 바로 은혜를 갚을 기회가 생기다니.

그렇기에 한지혁의 도움 요청을 흔쾌히 수락한 팀장.

하지만 한지혁이 요청한 도움은 팀장의 예상과 달라도 많이 달랐다.

"보자······."

대뜸 자신을 데리고 부산물 시장에 들른 한지혁.

한지혁은 시장에 있는 각종 뼈들을 보더니 상인에게 말했다.

"좀 더 큰 것 없습니까?"

"어느 정도 찾으시는데요?"

"일단 말 정도 크기에, 기왕이면 상위 몬스터라 튼튼했으면 좋겠는데. 아! 그리고 4족 보행이면 더 좋고요."

"말 정도? 4족 보행? 그럼 이건 어떠십니까? 데모라라는 몬스터인데."

"데모라?"

상인의 말을 듣고 검색을 해 본 한지혁이 눈을 빛내며 말했다.

"오! 이거 나쁘지 않네. B급 게이트 대형 고양이과 몬스터. 이거 한 마리 주시죠. 다른 건 또 없습니까?"

"이것보다는 좀 작고 약한 몬스터긴 한데, 말이랑 생김새가 상당히 비슷한 놈도 있습니다."

"그것 좋다. 그것도 주세요."

그렇게 시장에서 엄청난 양의 뼈를 사들이더니 그 뼈를 모조리 아공간에 집어넣은 한지혁.

그 모습을 보고 팀장이 말했다.

"···그거 소환수만 넣을 수 있다고 들었던 것 같은데."

"아. 그랬었나? 나중에 알고 보니 다른 것도 되더라고요. 뼈만 되는 건지 뭔지."

얼렁뚱땅 넘어가려는 생각인지 대충 얼버무리는 한지혁.

그 모습을 보고 팀장이 이내 피식 웃으며 말했다.

'그래. 그까짓 게 뭐 그리 중요하다고.'

이런 사소한 것 가지고 태클을 걸기엔 그간 한지혁이 벌인 일이 너무 많고 화려하다.

그렇게 모든 쇼핑을 마치고 공장으로 돌아온 한지혁이 사 모은 뼈들을 전부 꺼낸 뒤 손을 들어 올린다.

그러자.

탁탁탁.

순식간에 하나씩 조립되듯 완성되어 가는 뼈들.

일부는 팀장도 자주 봐 왔던 몬스터였지만, 그냥 몬스터로 보았을 때와 이렇게 스켈레톤화된 몬스터를 보았을 때의 느낌은 상당히 달랐다.

달그락. 달그락.

한지혁의 손짓에 따라 이리저리 움직이는 몬스터 스켈레톤들.

그때 한지혁이 팀장을 보며 말했다.

"타 보세요."

"···예?"

"안장이 없어서? 잠시만요."

다시 한지혁이 손을 휘젓자 순식간에 만들어진 안장.

"자. 타 보세요."

"타, 타 보라고요?"

"도와주신다면서요."

"···알겠습니다."

이유는 모르겠지만 일단 시키는 대로 안장이 만들어진 데모라 스켈레톤에 탑승한 팀장.

"걷습니다."

그렇게 천천히 걷기 시작한 데모라.

그런데 팀장의 엉덩이에서 전해지는 승차감이 정말 최악이었다.

"윽. 큭!"

각성자인 만큼 아프지는 않지만, 위아래로 거세게 요동치는 안장.

"잠시만요."

그때 한지혁이 손을 들어 올리며 무어라 중얼거린다.

"자. 다시."

그러자 다시 걷기 시작한 데모라.

그런데 아까완 다르게 승차감이 안정적으로 변한 게 아닌가.

"오!"

"나아졌죠?"

"훨씬 나아졌습니다."

"그럼 이번엔 뛰어 보겠습니다."

*

영문도 모르고 각종 몬스터 스켈레톤을 번갈아 가며 탑승한 팀장.

하지만 그 덕분에 한지혁의 스켈레톤 마개조 능력이 얼마나 뛰어난지 다시 한번 깨달을 수 있었다.

애초에 누군가를 태우기 위해 존재하는 생물이 아님에도 빠른 속도로 사람이 탈 만한 수준으로 변해 갔던 거다.

"어떻습니까?"

"이 정도면··· 정말 괜찮습니다."

마치 서스펜션처럼 사람이 타고 있는 등을 움직여 안정감을 준다.

"하하. 이 정도면 평소에 타고 다녀도 되겠는데요?"

"그래요? 그럼 1차 조율은 이 정도로 하죠."

"그나저나 뭘 하시려는 겁니까? 저는 아직도 모르겠··· 아! 설마?"

강하고 큰 몬스터를 찾던 한지혁.

어쩌면 한지혁이 드디어 전투형 몬스터 제작에 뛰어든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팀장의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다.

"전투형! 그것도 사람이 타고 다닐 수 있는 전투형 소환수군요!"

흥분한 팀장이 말했다.

"처음 탔던 데모라 정도만 해도 전투에 분명 큰 도움이······."

그런데 한지혁이 심드렁한 표정으로 말했다.

"다들 이런다니까."

"예?"

"전투마 따로 조율하고 그 위에 탑승하는 언데드도 따로 조율하는 게 얼마나 번거로운데. 기마병 필요하면 그냥 켄타우로스처럼 말 몸에 스켈레톤 상체 붙이는 게 최고예요. 말에서 떨어질 일도 없고 얼마나 좋아."

무슨 말을 하는지 이해는 안 가지만 한 가지만큼은 확실하게 알아차린 팀장.

"전투형이··· 아니라고요?"

"이놈 그냥 승마용이에요. 이걸 만들어서 팔려고."

"판다고요? 이걸? 승마용으로?"

차가 한국에만 수천만 대씩 굴러다니는 세상에 이걸 단순히 타고 다니는 용으로 사는 사람이 있을 리가 없지 않나.

"기다려 봐요, 아직 완성 안 된 거니까."

그렇게 한지혁이 손을 들어 올리자 찬란한 광채와 함께 데모라의 몸에 변화가 생기기 시작했다.

눈알이 없어 휑했던 동공이 파란 광채로 가득 채워지고, 몸 이곳저곳에 스산한 기운이 감도는 수증기가 피어오른다.

그뿐인가.

창고 구석에 있던 뼈들이 날아와 내장과 살이 없어 휑해진 뼈 사이를 감싸며 뼈 갑옷의 형태를 띤다.

"어······?"

처음엔 도대체 이걸 왜 만드나 생각하던 팀장의 가슴에 뭔가 알 수 없는 감각이 끓어올랐다.

멋들어진 뼈 갑옷과 몽환적인 분위기의 파란 광채를 뿜어내는 눈.

거기에 분위기를 한층 돋워 주는 알 수 없는 수증기들까지.

분명 뼈만 남아 볼품없었던 데모라 스켈레톤이었는데, 어느새 점점 더 원래 데모라의 위풍당당한 모습을 되찾는 걸 넘어, 오히려 초월해 나간다.

'뭐, 뭐지, 이 감각은.'

전투용이 아니라는 건 이미 들어서 안다.

그런데 뭔가··· 멋있다.

그것도 엄청나게.

스포츠카를 무리해서 살 정도로 보이는 모습을 중요시하는 팀장이기에 더욱더 그랬다.

"어떤가요?"

"어, 어떻다니요?"

"일단 멋있어 보일 만한 건 다 넣어 봤는데."

"멋이요? 설마······?"

"예. 눈의 광채랑 저런 거, 아무 기능 없어요, 그냥 멋있어 보이는 용이지. 속된 말로 간지."

멋 때문에 저런 걸 추가했다는 말에 어이가 없을 만도 했지만, 팀장은 자기도 모르게 그 말에 고개를 끄덕이고 말았다.

솔직히 멋있었으니까.

"이놈 타고 돌아다니면 사람들 눈 돌아갈 것 같지 않아요? 안 타고 뒤에 따라만 다녀도 위압감이 상당할 텐데."

그제야 이 알 수 없는 감각이 무엇인지 확실하게 깨달은 팀장.

그것은 바로 소유욕이었다.

게임에서나 볼 법한 언데드 탈것.

그것도 화려한 뼈 갑옷과 광채로 치장한 B급 게이트의 몬스터라니.

"저, 저걸 타고 돌아다니면······."

이제는 각성자라면 개나 소나 다 타는 스포츠카와는 비교조차 안 될 만큼 주목을 받게 될 거다.

하다못해 집 앞에 엎드려 있게만 해도 그 위압감은 장난이 아닐 터.

팀장이 멍한 표정으로 말했다.

"간지··· 간지 납니다."

"그렇죠? 여기에 게이트 내부에서 타고 다닐 수 있도록 몬스터 회피 기능을 추가하면?"

"이걸 타고 게이트로 들어갈 수 있다고요?"

"뭐··· 생긴 것만 다르지, 기본 원리는 운반형이랑 다를 바 없으니까요."

복잡한 지형, 특히 숲이 우거진 나무들을 헤치며 다녀야 하는 경우엔 모든 각성자들이 걸어서 다니는 게 일반적이다.

그런데 이걸 타고 편하게 돌아다닐 수 있다니.

이제야 한지혁이 말한 승마형이 무슨 말인지 확실하게 이해한 팀장.

"멋있고··· 게이트 내에서 타고 다닐 수 있는 언데드 탈것······."

"팔릴 것 같나요?"

"무조건 팔립니다, 무조건."

허영심도 채워 줄 수 있고, 심지어 실용적이기까지 하다.

그 어떤 각성자가 이걸 보고 눈이 돌아가지 않을 수 있을까.

"그래요? 오케이, 좋았어. 그나저나 여기서 뭘 추가해야 더 멋있을까요? 내가 이런 쪽을 잘 몰라서 그러는데, 팀장님이 좀 도와줄 수 있습니까?"

내 취향을 반영해 준다고?

눈이 돌아간 팀장이 말했다.

"이, 일단 색이 좀 밋밋하니 뼈 갑옷을 검은색으로 칠하고 철판을 덧대면 좀 더 멋있··· 아! 다리 쪽에도 광채가 나면 더 멋있을 것 같습니다!"

"역시 팀장님에게 도움 요청 하길 잘했네. 내가 이런 미적감각은 좀 떨어져서. 자, 계속 말해요! 더!"

"그··· 만지면 반응하게도 할 수 있나요? 뭔가 좀 더 소통하는 느낌으로."

"오! 그것도 좋다! 턱 만지면 손에 볼 비비기?"

"크! 그겁니다!"

"좋아! 좋아! 팀장님 참 마음에 드네! 계속합니다!"

*

"팀장님 퇴원하신 것 아니었어?"

"휴가 내셨대. 뭐라더라? 한지혁 대표님에게 부탁받은 게 있다나 봐."

"뭐? 그런 거면 나한테도 말해 주지!"

한지혁은 긴급 대응 팀 전원의 목숨을 구해 준 생명의 은인.

"일단 팀장님 한 분이면 충분하다고 했나 봐."

그때 한 팀원이 말했다.

"그나저나 정말 A급 맞을까?"

하늘에서 폭풍처럼 뼈의 비를 흩뿌린 한지혁.

그 뼈의 비는 단 몇 초 만에 지상에 있는 모든 스켈레톤들을 순식간에 박살 냈다.

문제는 그게 한지혁이 가진 전부냐는 거다.

한지혁은 단 한 번도 자신의 능력을 제대로 공개한 적이 없었으니까.

"처음엔 F급에 소환수 30이더니, 갑자기 500. 그리고 천, 그다음은 2천. 그러더니 이제는 아예 A급······. 솔직히 이제는 뭔가 새로운 게 더 튀어나온다 해도 안 놀랄 것 같은데."

그러자 팀원이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말했다.

"그건 나도 좀 이해가 안 가. 이럴 거면 아예 처음부터 자기 능력 전부 공개하고 떵떵거리며 살면 되는 것 아닌가? 숨기려는 것 같기도 하고 아닌 것 같기도 하고."

그렇게 한지혁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던 팀원들.

그때 한 팀원이 경악한 표정으로 대기실에 뛰어 들어오며 말했다.

"지, 지금 밖에! 지금 밖에!"

다급해 보이는 모습에 자리에서 벌떡 일어난 팀원들이 말했다.

"출동이야!?"

"젠장··· 그날 이후로 조금 살 떨리는데······."

긴급 출동이라 생각해 급히 나가려는 팀을 향해 팀원이 말했다.

"그게 아니라, 지금 밖에 팀장님이 오셨어!"

"팀장님? 휴가 내셨다며. 게다가 그게 그렇게 놀랄 일이야?"

"아이씨. 설명이 안 되네. 주차장으로 나가서 직접 봐!"

팀원의 말에 어리둥절한 표정을 한 채 주차장으로 향한 팀.

그런데.

"다들 잘 지냈지?"

태연한 표정으로 주차장에서 팀에게 인사를 하는 팀장.

그런데 그 팀장이 타고 있는 무언가가 팀원들을 경악하게 하였다.

"저, 저게 뭐야?!"

육중한 체구의 고양이과 몬스터.

그런데 각종 보석 장식이 박혀 있는 검은 광택의 뼈 갑옷을 입고 눈과 다리에선 광채가 흘러나오며, 스산한 수증기가 뿜어져 나오는 모습은 그야말로 위엄이 흘러넘쳤다.

그 모습을 보고 위에 타 있는 팀장이 흐뭇한 표정으로 타고 있는 무언가를 쓰다듬으며 말했다.

"가자."

그러자 타고 있는 무언가에서 소리가 흘러나왔다.

-크르르르.

그러곤 한 발 한 발 팀원들을 향해 걸어오는 그 무언가.

그때 울음소리를 들은 한 팀원이 말했다.

"저거 데모라 울음소리 같은데?"

"데모라? 저게 데모라라고?"

온몸을 가린 전신 뼈 갑옷 등 너무 많은 변화로 인해 데모라임을 알아보지 못한 팀원들.

그렇게 팀원들 앞에 도착한 팀장이 말했다.

"앉아."

그러자 데모라 스켈레톤이 자연스럽게 몸을 엎드렸고, 그렇게 사뿐한 몸놀림으로 데모라에서 내린 팀장.

"수고했어. 잠시 쉬고 있어."

그러곤 팀장이 데모라의 턱을 긁어 주자 데모라가 기분 좋은 듯한 울음소리를 내며 팀장의 손에 자신의 볼을 비빈다.

-그르릉.

데모라라면 B급으로, 자신들 팀 전원이 달려들어도 상대할 수 없는 강력한 몬스터.

그런 몬스터가 팀장에게 애교를 부리며 저렇게 얌전히 엎드려 있다니.

"입들 닫아라, 파리 들어가겠다."

팀장의 말에 입을 쩍 벌리고 있던 팀원들이 말했다.

"저건 도대체 뭡니까? 데모라 맞아요?"

"스켈레톤이죠? 저거 스켈레톤 맞죠?"

팀장이 피식 웃으며 말했다.

"맞아, 데모라 스켈레톤. 한지혁 대표님께서 만드셨지."

"마, 만져 봐도 되나요?"

"만져 봐."

"혹시 무는 건······."

"안 무니까 괜찮아."

그러자 눈을 빛내며 데모라에게 달려든 팀원들.

그렇게 데모라의 여기저기를 만지는데, 데모라가 아무런 반응도 하지 않는다.

"아까 그건 어떻게 하신 거예요? 볼에 막 비비던데."

"아. 그거?"

팀장이 자신만만한 표정으로 말했다.

"그건 주인으로 인식한 사람한테만 해 주는 거야."

"오오!"

"다시 보여 줄까?"

그렇게 데모라에게 다가간 팀장이 머리를 쓰다듬자 데모라가 다시 한번 기분 좋은 소리를 내고, 눈처럼 빛나던 파란 광채가 마치 실눈이라도 뜬 것처럼 얇게 빛난다.

-그르릉.

"오오오오!"

"귀여워! 큰 고양이 같아!"

팀장이 씨익 웃으며 말했다.

"그렇지?"

팀원이 부럽다는 표정으로 말했다.

"와. 한지혁 대표님한테 부탁받으셨다던데, 고맙다며 받은 건가요?"

그러자 팀장이 갑자기 살짝 침울한 표정으로 말했다.

"···그건 아니야. 사실 열흘만 빌려주신 거라서."

"열흘?"

"팔 거래, 이거. 그래서 끌고 다니면서 사람들 반응이랑 얼마 정도가 적당할지 알아봐 달라 하시더라고."

"판다고요?!"

팀원이 흥분한 표정으로 말했다.

"얼마인가요?!"

"그건 아직 몰라. 오히려 내가 물어보자. 얼마 정도면 살래? 참고로 전투 능력은 없다."

그러자 팀원들이 살짝 실망한 표정으로 말했다.

"전투 능력이 없다고요?"

"당연하지. 시내에서 타고 다녀야 할 수도 있는데, 전투 능력 있으면 곤란하잖아. 그래도 최고 120km/h로는 달릴 수 있어. 물론 정부에서 허가해 준다면 말이지."

순식간에 요점을 깨달은 팀원들이 말했다.

"그러네."

"이건 말도 아니고 차도 아니고······. 애초에 교통 수단으로 인정받을 수나 있는 건가?"

팀장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대신 게이트에는 타고 들어갈 수 있지."

"어?"

"게이트!?"

"그래서, 얼마나 받을 수 있을까?"

자기만의 몬스터를 데리고 다닐 수 있고, 심지어 게이트로 타고 들어갈 수도 있다니.

사치품이 비싼 이유는 희소성 때문인데, 이 데모라 스켈레톤의 희소성은 넘치다 못해 폭발할 정도였다.

"솔직히 돈만 있다면 얼마가 되든 살 것 같은데."

"나도."

팀장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한 대표님에게 말씀드릴게. 아. 그나저나, 이제 시내 횡단하면서 사람들 반응도 보고 홍보도 해야 하는데, 같이 가 볼 사람?"

그러자 팀원들이 흥분한 표정으로 말했다.

"자, 잠시만요! 지금 반차 내고 올 테니까 잠시만!"

"나도!"

*

탑승용 스켈레톤.

종을 불문하고 사령마라 명명한 이 스켈레톤의 등장은 상당한 화제를 불러일으켰다.

원판부터가 사람이 탈 만한 중형급 몬스터들이기에 겉으로만 봤을 때 굉장한 위압감을 가지고 있고, 거기에 더해 오직 멋을 내기 위해서 장식한 각종 뼈 갑옷과 광채들이 제대로 사람들의 눈을 홀린 거다.

당연하게도 이 사령마가 돌아다니자, 굳이 이야기를 하지 않았지만 세론으로 문의가 쏟아진다.

대한민국에 사령마 같은 언데드를 만들 수 있는 사람은 오직 나뿐이니까.

"길을 지나가며 가격을 물어 온 사람이 셀 수도 없이 많았습니다."

"뭐라고 합니까?"

"대부분 물어본 게 몇억 정도냐였습니다."

"억은 무조건 넘는다고 봤다는 거네."

"아. 그리고 소환수를 시내에서 소환하면 안 된다며 게이트 관리청 애들이 뭐라고 하던데요."

나는 심드렁한 표정으로 말했다.

"괜찮아요."

운반형과 다르게 이건 누가 봐도 강인해 보이고 위압감이 넘치니 그럴 만하다.

하지만 그래 봤자 사령마가 보급되고 점점 더 많은 사람들이 끌고 다니면, 결국 의미 없는 항의가 될 거다.

이놈들은 애초에 공격 능력 자체가 없고, 혹시 모를 사고를 대비해 생명체 회피 알고리즘을 특히나 신경 써서 만들었으니까.

"문제가 생기면 매입자 책임이라고 계약서에 못 박을 생각이라서요."

나는 팔기만 하면 그만이다.

그다음은 멋에 취해 산 사람들과 정부 쪽 공무원들이 지지고 볶을 일이지.

애초에 나는 탑승용이라 했지, 이걸 탄 채 시내를 활보하란 이야기는 안 했다고?

"저 나름 공무원인데 제 앞에서 그렇게 말씀하시면······."

"설마 잡아가기라도 하시려고? 생명의 은인인데?"

"···그냥 하는 소립니다. 못 들은 걸로 하죠."

오케이.

"그건 그럼 대충 그렇게 처리하고. 그럼 가격을 어떻게 해야 하나."

데모라 같은 애들은 덩치도 크고 B급 게이트 출신이라 뼛값만 해도 상당한 데다, 거기에 각종 보석 같은 장신구를 더하면 원가만 거의 수천만 원이다.

나는 잠시 고민하다 말했다.

"기본 가격 1억 5천. 어때요?"

그러자 팀장이 눈을 빛내며 말했다.

"1억 5천이요? 정말입니까? 그 가격이면 제가 먼저······."

"아. 물론, 타고 다니던 것 말고."

나는 온갖 장식과 광채를 뿜어내는 1호 데모라가 아닌 뼈만 앙상하게 있는 민짜 데모라 스켈레톤을 가리키며 말했다.

"이게 1억 5천."

"···예?"

"대신 커스텀 옵션 비용 별도. 어때요?"

일단 기본은 싸게.

대신 옵션은 비싸게.

광채 추가 얼마, 뼈 갑옷 추가 얼마 이런 식으로 파는 거다.

거기다 나중에 장식을 바꾸고 싶으면 그때 또 돈 받고 바꿔 주고.

여기에 더해 중고로 다른 사람에게 팔 때도 양도 이전비까지 받으면 계속해서 추가 수익을 낼 수 있을 것 아닌가.

자고로 탈것은 역시 옵션 장사지.

나는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어때요? 돈 없으면 민짜 타고, 돈 많으면 화려하게 꾸며서 타고. 이 정도면 상품성은 충분할 것 같은데?"

20화

상품성이 있냐는 내 질문에 팀장이 자신 있게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충분하다 못해 넘칩니다. 당장 저부터도 사고 싶으니까요."

그렇지?

"돈만 있으면 무조건 옵션도 추가할 겁니다. 물론··· 돈이 있다면······."

팀장 말처럼 솔직히 내가 만들었지만, 옵션 추가 안 한 깡통은 영 멋이 안 산단 말이야.

하지만 그래서 더 좋다.

결국 옵션은 돈이 많은 각성자일수록 선택이 아닌 필수가 될 거니까.

"커스텀 비용은 얼마로 생각하십니까?"

팀장에게 내가 생각한 액수를 말해 주자 고민스러운 표정으로 말했다.

"기본은 괜찮은데 옵션가가 좀··· 비싸네요."

비싸야지.

아무나 다 살 수 있으면 그게 사치품인가?

기본 민짜는 진짜 탑승용이 필요한 사람들을 위한 거고, 옵션은 말 그대로 허세용이니 비싸게 받고.

간단하잖아?

"팀장님, 휴가 조금만 더 낼 수 있습니까?"

"슬슬 끝나 가는데······."

"대신 나중에 산다고 하면 30프로 디시 해 드릴게요."

팀장이 바로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연차 전부 사용하겠습니다."

좋아.

"그럼 우리가 지금부터 할 일은 커스텀 옵션 디자인을 만드는 겁니다."

이 중에 골라 보라 이거지.

갑옷은 이런 디자인, 이거는 뭐, 이런 식으로.

물론 예쁘고 멋있을수록 비싼 건 덤이다.

그다음 주기적으로 새로운 디자인을 만들어 출시하면 이미 팔아 버린 사령마로도 수익을 올릴 수 있겠지.

"자. 일단 갑옷이랑 눈 광채 모양과 색깔부······."

그런데 그때.

"대표님!"

창고 문이 열리며 이제는 팀장으로 승진한 백상호가 스켈레톤 콘솔을 들고 들어와 말했다.

"시키신 대로 라인 조정 모두 완료··· 우와!"

사령마를 본 백상호가 눈을 빛내며 말했다.

"언데드 탈것을 실물로 보는 날이 올 줄이야······. 와······."

맞다.

그러고 보니 백상호도 게임 좋아했지?

"혹시 백 팀장도 와서 디자인 좀 해 보렵니까? 적용할 커스텀 디자인 만드려던 중이었는데."

"저, 정말이십니까?"

한걸음에 달려온 백상호가 펜을 들어 올리더니 말했다.

"너무 검은색보다는, 뼈 색깔이랑 어울리게 은빛 바탕으로, 여기는 좀 더 화려하게 꾸미고······."

그렇게 한참을 그려 나가던 백상호가 말했다.

"완성입니다!"

나는 완성된 디자인을 보고 놀란 표정으로 말했다.

"오! 이것도 좋은데?"

팀장의 작품이 뭔가 강하고 파워풀 하다면, 백상호의 디자인은 훨씬 정갈하고 우아한 느낌이 강하다.

도색부터도 팀장은 검은색인 반면 백상호는 은색이었으니까.

그러자 팀장이 굳은 표정으로 말했다.

"이건 너무 유약하지 않나요. 자고로 언데드 탈것이면 딱 봐도 강함이 느껴져야 하는데."

그러자 백상호가 반발하며 말했다.

"언데드라고 해서 무조건 검은색이어야 한다는 편견은 버리세요, 조화로운 우아함은 강함도 겸비하는 법이니까."

게임충과 허세충의 자존심 대결.

좋다, 좋아.

선의의 경쟁은 훌륭한 결과물을 낳는 법이니까.

다양한 취향을 고려해야 커스텀 범위도 넓어지지.

나는 씨익 웃으며 말했다.

"그럼 둘 다 해 봐요. 누가 누가 잘 만드는지 그리고 누가 더 선택 많이 받는지 보자고. 백상호 씨가 선택 많이 받으면 특별 상여금. 팀장님이 선택 많이 받으면 추가 할인. 어때요?"

그러자 팀장과 백상호 모두 의지를 불태우며 말했다.

"맡겨 주시죠."

"제가 이런 건 전문입니다!"

그렇게 디자인에 몰두하기 시작한 두 사람.

일단 시작은 이 두 사람의 도움을 받아 만들고, 그다음엔 진짜 디자이너를 고용해 커스텀의 폭을 넓혀 가는 거다.

마치 게임에서 주기적으로 새로운 스킨을 출시해 매출을 늘리는 것처럼 돈을 쭉쭉 빨아먹는 거지.

"아!"

아예 디자인만 추가하는 게 아니라 감정 표현도 옵션으로 팔아 치울까?

지금 한 10개 정도만 만들었는데 이건 기본으로 장착해 주고, 그 후 새로운 감정 표현이 나올 때마다 돈 주고 파는 거다.

거기에 뭐, 전투 기능은 귀찮아서 안 넣을 거지만, 그 외의 자잘한 기능 업그레이드도 할 게 생기면 그것도 팔아먹고.

"이야. 짭짤하겠네."

사람은 이래서 머리를 써야 돼.

힘들게 노가다 뛸 필요가 뭐 있어.

사령마 팔고 스킨 갈이만 하는 쪽이 훨씬 돈이 되는데.

나는 환하게 웃으며 말했다.

"자. 한번 신나게 벌어 볼까?"

*

그렇게 모든 준비를 마치고, 아예 행사장 하나를 빌려 첫 판매식을 연 세론.

당연하게도 많은 자산가들.

특히, 그중에서도 각성자들이 대거 참여하며 판매식의 분위기가 후끈 달아올랐다.

나는 단상에 올라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반갑습니다. 한지혁입니다."

그러자 참여자들이 수군거리기 시작했다.

"한 대표 A급으로 추정된다며?"

"영상 봤잖아. 그 정도 화력이 나오려면 A급은 돼야지."

"A급인 데다 소환수로 앉아서 돈도 벌고. 진짜 부럽다. 나는 왜 저런 능력으로 각성 안 해서······."

너희 눈엔 나나 너희나 갑자기 강해진 것 같겠지만, 가만히 앉아 있다 각성해서 힘을 얻은 너희랑 나는 시작점이 아예 다르거든?

내가 여기까지 오는 데에 죽을 고비를 얼마나 넘겼는 줄 알아?

···라고 속으로는 생각했지만, 여기 있는 모두가 내 예비 고객들.

친절하게 대해 줘야지.

나는 환하게 웃으며 말했다.

"우선 간단한 설명을 드리겠습니다. 사령마는 철저히 개인 취향을 반영하여 만들어집니다. 일단 기본 토대부터 보여 드리죠."

내가 손짓을 하자 이번 판매식에서 팔려고 준비한 사령마들이 단상 위로 모습을 드러낸다.

데모라와 그보다 하급인 말과 비슷한 형태의 몬스터 등, 도합 3종의 사령마 10구였다.

"어······."

"저게 기본 형태라고?"

나는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인터넷으로 보셨던 거랑 다를 겁니다. 인터넷으로 보셨던 건······."

내가 손짓을 하자 팀장이 1호 데모라를 타고 나타난다.

"이거고요."

"오오! 저거야, 저거!"

"저게 원래 저 상태였다고? 완전히 다른 종인 것 같은데?"

나는 흥분한 사람들을 향해 말했다.

"참고로 저건 저기 타고 있는 각성자분이 원하는 취향을 전부 반영해서 만든 겁니다. 즉, 여러분도 사령마를 매입하시면 원하는 모습으로 커스텀 할 수 있다는 말이죠."

나는 입꼬리를 끌어 올리며 말했다.

"여러분, 동물 하나 키우는 것도 얼마나 손이 많이 갑니까. 먹여 줘야지, 씻겨 줘야지, 배설물 치워야지. 하지만 이놈들은 먹지도 싸지도 않습니다. 심지어 수명조차 없죠."

어때?

이것 하나만으로도 희소성은 충분하잖아?

솔직히 나 아니면 어디 가서 몬스터 끌고 다닐 수나 있겠어?

테이머 각성자가 있다고는 하지만, 그래 봤자 본인이 데리고 다니는 게 전부인데.

"게다가 이 사령마는 게이트에서도 활용성이 무궁무진합니다. 그간 걸어 다니느라 얼마나 힘드셨나요. 이제는 사령마를 타고 편하게 돌아다니시는 겁니다. 그러다 몬스터를 만나도 문제될 건 없습니다. 몬스터 회피 기능을 통해 자동으로 몬스터를 피해 다니다 주인이 호출하면 바로 달려오니까요."

사람들, 그중에서도 특히 각성자들이 눈을 빛내며 말했다.

"저걸 타고 게이트 들어가면 완전 편하겠는데?"

"편한 것뿐이겠어? 일단 멋있잖아. 성능도 성능이지만, 디자인 떨어지는 건 역시 못 참는다고. 솔직히 요즘 게이트 근처 가면 죄다 스포츠카잖아. 근데 저걸 타고 나타나 봐."

그렇지.

그거지.

편리성과 희소성을 모두 지닌, 그야말로 각성자에게 있어 완벽한 탈것 그 자체가 바로 이 사령마다.

"더 이상 길게 설명하지 않겠습니다. 직접 느껴 보세요. 우선 데모라부터 시작하겠습니다. 기본 판매가 1억 5천. 번호 부르겠습니다."

원래는 경매를 할까도 생각해 봤지만, 너무 비싼 가격은 희소성을 높여 명품으로서의 브랜드 가치는 높여 주는 반면 보급형을 판매하기 애매하게 만든다.

막말로 그 유명한 스포츠카 브랜드 매출보다 일반 보급형 자동차를 파는 회사들 매출이 압도적으로 높은 것처럼, 진짜 제대로 돈을 벌려면 고급형과 보급형 모두를 잡아야 한단 말이지.

그런 점에서 볼 때 민짜를 1억 5천 보급형으로 만들고 사치품으로써의 가치는 커스텀으로 가져가는 쪽이, 장기적으로 볼 때는 훨씬 돈이 될 게 분명했다.

나는 사전에 미리 나눠 준 번호 중 무작위로 하나를 뽑아 외쳤다.

"37번!"

그러자 한 젊은 남성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며 외쳤다.

"접니다!"

"기본가 1억 5천, 매입하시겠습니까?"

남자는 주저 없이 외쳤다.

"삽니다!"

운 좋게 바로 돈 있는 놈이 걸렸다.

나이와 옷차림으로 봐선 아마도 각성자.

이러면 분위기 업이지.

"그럼 바로 올라오세요! 커스텀 하겠습니다!"

이건 쇼다.

사람들에게 멋있음을 보여 주기 위한 쇼.

그럼 커스텀 과정도 화려해야지.

나는 백상호와 팀장이 혼신의 힘을 다해 만든 카탈로그를 보여 주며 말했다.

"여기서 고르시죠. 물론 이것과 별개로 원하는 디자인이 있으면 그것도 가능합니다."

물론 가격은 그만큼 더 비싸겠지만.

그러자 각성자가 신이 난 표정으로 말했다.

"그냥 여기서 고를게요, 디자인은 하나도 몰라서. 와. 근데 가격이 좀··· 세네요."

눈 광채 양쪽에 3천만 원이고, 원하는 부위의 광채 하나 추가당 1천만 원.

뼈 투구 하나에 3천이며, 전신 갑옷은 디자인에 따라 다르지만 평균 1억 5천 이상.

대충 그럴싸하게 꾸미기만 해도 순식간에 5억은 될 거다.

당연히 원가는 고작해야 수천만 원 수준.

"카드 할부 가능합니다."

그러자 각성자가 피식 웃으며 말했다.

"괜찮습니다, 그 정도 여윳돈은 있어서."

제법 고위 각성자인가 본데?

그때 사람들이 수군거리는 목소리가 들려온다.

"어? 저 사람 한울 길드 1팀장 아니야?"

"맞는 것 같은데?"

한울 길드?

어디서 들어 본··· 아.

한국에서 열 손가락 안에 꼽히는 길드 중 하나인 한울 길드.

거기에 1팀이면 길드 최정예 팀이고, 거기에 심지어 팀장이면 간부급인데.

제법 거물이잖아?

설마 허튼 생각을 하고 온 건······.

그때 카탈로그를 보고 한울 길드 팀장이라는 각성자가 눈을 빛내며 말했다.

"진짜 이런 게 있으면 꼭 타 보는 게 로망이었는데··· 이게 진짜 실현되는 날이 오네요."

아닌가 보네.

표정에서 진심이 느껴진다.

"혹시 착용 상태도 미리 볼 수 있습니까? 카탈로그만 보니 감이 안 오는데."

그 정도 서비스는 준비했지.

"가져오세요!"

그러자 직원이 낑낑거리며 미리 만들어 둔 예시용 전신 갑옷을 가져온다.

은빛으로 도색된 반짝이는 뼈 갑옷.

"오오! 최곤데?"

"입혀 볼 수는 없습니다, 입히는 순간 중고라서."

"그래요? 그럼 여기 이 은색 투구랑······."

그렇게 15분여간 카탈로그를 들고 고민하던 한울 팀장이 결국 최종적으로 고른 건 바로 백상호가 디자인한 은빛 계열의 옵션.

"역시!"

백상호는 주먹을 불끈 쥐고, 선택받지 못한 팀장은 아랫입술을 깨문다.

"선택 끝나신 거죠?"

"잠시만요. 여기에 광채 제가 원하는 대로 붙일 수 있다 했죠?"

"물론입니다."

돈만 준다면이야 뭐든 못 해 줄까.

"제 이니셜인 SHS를 양옆에 새기고 싶은데."

"이니셜을요?"

이건 또 생각 못 했네.

근데 돈 많이 들걸?

나는 대충 계산해 보고는 말했다.

"한 스펠링에 대충 10개씩 박는다 치면, 양옆으로 6개니까 60개. 그럼 이것만 6억인데?"

그러자 한울 길드 팀장이 흠칫하며 말했다.

"광채 옵션만 6억?"

아무리 돈 잘 버는 각성자라도 이 정도 금액은 좀 고민이긴 하겠다.

6억에 이미 추가한 갑옷이랑 기본값만 더해도 10억에 달하는 금액이니까.

하지만 뭐, 내가 시킨 건 아니잖아?

"으음. 이번 달은 너무 많이 썼는데"

잠시 고민하던 한울 팀장이 말했다.

"나중에 추가도 가능한가요? 다음 달 정산 나오면 추가하게요."

고위 각성자가 잘 벌기는 잘 버나 보구나.

억 단위 돈을 다음달 정산금으로 처리하려 하다니.

아무튼 손님이 돈 쓰겠다는데 나야 좋지.

"얼마든지."

"그럼 제일 첫 스펠링인 S만 양옆에······."

결국 양쪽에 하나씩으로 타협을 본 한울 팀장.

"아! 이마에도 작게 S 하나 부탁드립니다."

"참고로 한번 완성하면 제거에도 돈 내셔야 됩니다. 무르기, 환불 일절 없어요, 커스텀이라서."

"알겠습니다."

좋아.

"그럼 마지막으로 확인하겠습니다. 은빛 전신 갑옷 F형, 금빛 안광, 추가 광채랑 다 해서······."

그렇게 추가 옵션을 하나하나 읽어 나간 나.

"다 해서 옵션가 5억 5천, 기본 가격까지 해서 7억입니다. 동의하십니까?"

"동의합니다."

"주문 완료."

기본가 1억 5천인데 옵션 추가 비용이 5억 5천.

방문객들은 경악했지만, 그 경악은 이내 감탄으로 뒤바뀌었다.

"시작!"

내가 손을 들어 올리자 미리 도색해 둔 뼈들이 허공을 가르며 날아와 데모라의 전신을 감싸기 시작한다.

그렇게 순식간에 완성되어 가는 은빛 갑옷을 입고 금색 안광을 빛내는 새로운 형태의 데모라 사령마.

그리고 그 우아한 자태에서 나오는 화려함은 사람들의 입을 쩍 벌리게 만들었다.

"우와! 아까 그 민짜가 저렇게 된다고!?"

"검은색이랑은 또 다른 맛이 있는데?"

"존나 멋있어."

한울 팀장이 황홀해하는 표정으로 S자 모양으로 신묘한 빛을 뿜어내는 광채를 어루만지며 말했다.

"와··· 예상했던 것보다 더 멋있네."

"그럼 등록해 드리겠습니다. 입 쪽에 손을 내밀어 보세요."

데모라의 입 쪽으로 손을 내민 한울 팀장.

그러자 단상 위에서 미동도 없이 서 있던 데모라의 금빛 안광이 번뜩이더니, 은빛 투구를 쓴 얼굴을 한울 길드 팀장의 손에 비빈다.

"이제 마지막으로 그 데모라의 이름을 지어 주시면 됩니다."

한울 팀장이 흥분한 표정으로 말했다.

"넌··· 은돌이야!"

어··· 은돌이?

다 좋다가 마지막에 깨네.

뭐.

손님이 좋다니 그걸로 됐다.

나는 마법진을 만들어 목소리와 호칭을 인식한 다음 말했다.

"자, 그럼 등록 완료. 이제 앞으로 은돌이의 주인은 이분입니다!"

"우와!"

나는 방문객들의 환호성을 만끽하며 말했다.

"자··· 그럼 이제 다음 사령마의 주인을 뽑아 볼까요?"

21화

일반 사람들이 몬스터를 접하는 방법은 두 가지뿐이었다.

사진이나 동영상 같은 영상물, 이미 죽은 사체를 통해 간접적으로 보거나, 아니면 불안정 게이트에서 튀어나와 자신을 향해 달려드는 몬스터를 직접 보는 것, 이렇게 두 개.

당연하게도 후자는 목숨이 걸린 일인 만큼 사실상 일반 사람이 안전하게 살아 움직이는 몬스터를 볼 방법은 없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사령마가 등장하기 전까지는.

탁. 탁. 탁.

"모, 몬스터다!"

은빛 갑옷을 입고 등장한 사족 보행의 몬스터에 경악한 남자.

그러자 옆에 있던 친구가 오히려 눈을 빛내며 말했다.

"야, 야. 위에 사람 타 있잖아."

"어?"

"저거 사령마야. 소환수라고."

"소환수?"

"그러니까······."

친구의 설명을 들은 남자가 놀란 표정으로 말했다.

"그럼 스켈레톤?"

"어. 몬스터를 스켈레톤화해서 탈 수 있게 만든 거래. 그래서 전투력도 없다던데?"

"그럼 안 위험한 거야?"

"안 위험하지. 위험하면 저 위에 사람이 어떻게 타."

그제야 진정된 남자가 사령마를 보고 눈을 빛내며 말했다.

"그나저나 덩치가 장난 아닌데?"

"저건 데모라라고, B급 게이트 몬스터래."

"와······."

비록 전투력이 없는 스켈레톤이라곤 하지만, 육중한 체구에 전신 갑옷을 입고 눈에서 광채를 뿜어내며 고양이과 특유의 사뿐사뿐한 발걸음으로 걸어가는 데모라는, 그 모습만으로도 위압감을 느끼기 충분했다.

"한번 만져 봐도 되냐고 물어볼까?"

"되겠냐? 저게 얼마짜린데. 어? 잠깐. 저기 옆이랑 이마에 S자가 광채로 박혀 있는데? 한울 길드 팀장이구나?"

"그걸 보면 알아?"

"이번 판매식 때 S자 새긴 사람은 한울 길드 팀장밖에 없다고."

"그래?"

남자가 조금 침울한 표정으로 말했다.

"완전 부럽다, 돈 많으니까 저런 것도 타고 다니고."

그렇게 자기들 눈앞에서 움직이고 있는 데모라의 모습에 신기해하는 사람들.

그리고 그 누구보다 그 광경을 마음껏 즐기고 있는 사람이 있었으니, 바로 데모라 위에 타고 있는 한울 길드 팀장이었다.

'이거지. 이 맛에 돈 쓰는 거지.'

늘 겸손하라 교육을 받고 자라 오지만, 남들에게 자신의 우월함을 증명받고 싶어 하는 건 인간의 본성에 내재된 욕구다.

당연하게도 겸손과 우월감을 동시에 챙길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은 바로 명품.

그저 소유하고 있다는 그 사실 하나만으로도 남들보다 우월하다는 느낌을 가질 수 있게 해 주니까.

그리고 그런 명품이 되기 위한 조건은 희소성과 화제성이었다.

그런 점에서 사령마는 그야말로 완벽했다.

사람들의 시선을 끌 만한 강렬한 외관을 갖춤은 물론, 주인의 개성이 투영되어 한눈에 누구의 사령마인지 알 수있는 커스텀 디자인과 이니셜.

거기에 더해 그 위에 타고 있다는 정복감까지.

굳이 직접 말을 하지 않아도 저절로 자신이 누구인지 알아보게 만듦과 동시에 부러움을 자아내는 은돌이는 가히 명품 중의 명품이라 불려도 손색이 없었다.

이제는 게이트 근처만 가도 사방에 널려 있는 스포츠카로는 느낄 수 없는 완벽한 충만감.

극도의 만족감을 느낀 한울 길드 팀장이 다시 한번 이 느낌을 만끽하기 위해 흐믓한 표정으로 은돌이의 목덜미를 쓰다듬으며 말했다.

"가자, 은돌아."

그러자 애교 부리듯 꼬리를 살랑살랑 흔들며 기분 좋은 소리를 내는 은돌이.

-갸르릉.

그러자 사람들이 경악하며 말했다.

"뭐, 뭐야!"

"지금 애교 부린 거야?!"

"미쳤다."

그런 사람들의 시선을 느끼며 한울 길드 팀장은 생각했다.

'아. 짜릿해.'

물론 은돌이를 산 후 여러 테스트를 해 본 한울 팀장은 이 사령마가 진짜 살아 있는 데모라와는 다르다는 걸 확실히 인지하고 있었다.

특히 방금 선보인 애교의 경우 대략 10여 종 정도의 애교 반응이 자신의 제스처에 따라 랜덤하게, 그리고 시기 적절하게 나오는 것일 뿐이었으니까.

생명체라기보단 로봇에 가깝다고 해야 할까.

하지만 자신의 제스처에 무언가 반응한다는 것 자체만으로도 뭔가 소통하는 기분이 들며 동시에 자신을 돋보이게 해 주니, 이 생명 없는 생명체에게 애정이 샘솟는 느낌.

그렇게 은돌이와 함께 사람들의 시선을 즐기며 한울 길드의 건물에 도착하자 팀장을 알아본 길드원들이 다가와 말했다.

"오! 윤 팀장님!"

"이게 그 사령마인가요?"

윤 팀장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은돌이야."

"이야. 데모라 제법 잡아 봤는데, 이건 느낌이 완전 다르네."

"나도 사고 싶다."

일반인은 말할 것도 없고 길드원들까지 부러워하니 윤 팀장은 자기도 모르게 어깨가 으쓱해지는 기분이었다.

그런데 그때.

"오호."

한 중년 남성이 윤 팀장과 데모라 사령마로 다가오며 말했다.

"이게 그거야?"

그 중년 남성은 바로 한울 길드의 길드장 김한울.

S급 각성자이자 유력한 차기 SS급 각성자로 평가받는 사람이었다.

세간에서 내리는 김한울에 대한 평가는 의리 있는 상남자.

"예. 은돌이라고 이름 지었습니다."

김한울이 눈을 빛내며 말했다.

"갑옷이라······."

하지만 동시에 단세포처럼 단순해서 한번 꽂히면 물불 안 가리는 걸로 유명한 사람이 바로 김한울이었다.

그런 김한울이 관심을 보이자 윤 팀장이 경계심 어린 표정으로 은돌이 위에서 내려가며 말했다.

"은돌아, 저쪽에 가서 쉬고 있어."

-크르릉.

그러자 윤 팀장의 지시대로 이동하여 얌전히 주차장 한구석에 웅크리고 앉은 은돌이.

"오오!"

"의외로 귀여운데?"

하지만 그런 길드원들의 반응과 다르게 김한울은 뭔가 다른 것에 꽂힌 듯 은돌이를 뚫어져라 바라보며 말했다.

"잠깐 구경 좀 해도 돼?"

그러자 윤 팀장이 불안한 표정으로 말했다.

"뭐 하시려고요?"

"말 그대로 구경."

"진짜 구경만 하는 겁니다?"

"그래, 그래."

그렇게 은돌이에게 다가간 김한울.

그런데 은돌이를 보면 신기해하며 고작해야 쓰다듬는 게 전부인 다른 사람들과 다르게, 손가락으로 갑옷 부분을 툭툭 두들겨 본다.

"···강도가 제법인데. 나쁘지 않아. 영상을 보니 마음대로 조합도 가능한 것 같고. 윤 팀장."

"예."

"이거, 갑옷 잠깐만 벗겨 볼게."

그러자 윤 팀장이 대경실색하며 말했다.

"예?! 뭐, 뭘 벗겨요?!"

김한울이 갑옷을 잡더니 힘을 준다.

"흣차. 어라? 이거 잘 안 벗겨지네? 더 힘줘야 하나?"

"자, 잠시만요! 그건 벗겨지는 게 아니라 일체······!"

하지만 그런 윤 팀장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이미 은돌이의 갑옷을 잡고 있는 힘껏 들어 올린 김한울.

"흐으으읍!"

그러자.

우지직.

갑옷이 들어 올려지며 은돌이의 뼈들이 함께 뜯겨 나간다.

"끼아아아아아!"

"어!?"

김한울이 놀란 표정으로 말했다.

"이거 왜 같이 뜯겨?"

윤 팀장이 뜯겨 나간 은돌이를 부둥켜안으며 말했다.

"으아아! 은돌아!"

새로 산 차에 흠집 하나만 나도 마음이 찢어지는데, 이름을 지어 주고 나름 소통하며 애정을 키워 오던 은돌이가 뜯겨 나가다니.

윤 팀장은 눈물이 핑 돌 정도였다.

당황한 김한울이 말했다.

"이게 왜 뜯기지? 난 그냥 잠깐 벗겨 볼······."

"일체형이라고! 이거 바꾸려면 직접 가야 된다고!"

"빨리 말하지······."

"말하기도 전에 뜯었잖아요! 으어··· 은돌아··· 은돌아!"

김한울이 멋쩍은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미안하다."

"미안하면 답니까?! 도대체 갑옷을 왜 뜯어내려 해요!"

"입어 보려고 했지. 알잖아, 내 능력."

그러자 윤 팀장이 흠칫하더니 말했다.

"설마······."

"가능성 있을 것 같아서 한번 보려고 한 건데, 이렇게 될 줄 몰랐지. 미안. 수리비는 내가 물어 줄게."

윤 팀장이 눈을 부라리며 말했다.

"수리한다고 새것 된답니까? 사고차도 중고값 떨어지는 것 몰라요?"

"진짜 미안. 아니면 새걸로 사 줄까?"

"후우."

윤 팀장이 심호흡을 하며 말했다.

"···수리해 준다고 했습니다."

"물론이지!"

"그럼 직접 가서 길드장님이 말해요, 수리해 달라고. 그리고 갑옷도 애먼 은돌이 괴롭히지 말고 한 대표한테 직접 물어봐요."

윤 팀장이 이를 갈며 말했다.

"길드장님 사정 아니까 이 정도로 봐준 겁니다. 진짜 한 번만 더 이런식으로 사고 치면 저 바로 탈툅니다!"

*

사령마가 성황리에 팔리며 마리당 평균 수억 원의 차익을 벌어들인 나.

덕분에 노가다라도 해야 하나 싶던 고민이 한 번에 싹 사라졌다.

노가다 할 시간에 사령마 만들어 팔고 나머지 시간을 공장에 집중하면, 돈도 더 벌고 일도 더 효율적으로 할 수 있었으니까.

일단 이걸로 시드 머니를 벌어 대형 공장을 매입하고 사업을 쭉쭉 확장해, 수십조 혹은 그 이상의 매출을 일으키는 굴지의 대기업을 세우는 것이 내 계획.

그런데······.

"오······."

그 원대한 계획의 첫 단추인 1호 사령마가 이렇게 팔려 나간 지 며칠 만에 이 지경이 돼서 올 줄은 상상도 못 했다.

나는 너덜너덜하게 뜯겨 나간 갈빗대를 보며 말했다.

"작살이 났네."

나름 튼튼하게 만들었는데.

한울 길드 팀장이 안절부절못하며 말했다.

"수, 수리 가능할까요?"

"가능이야 한데······."

나는 부러진 단면을 보며 말했다.

"수리비가 상당하겠는데요. 이 정도면 크기 맞는 뼈 찾아서 전부 갈아야 할 것 같은데."

그러자 한울 길드 팀장이 울상을 하며 말했다.

"뼈, 뼈를 교체한다고요? 그렇게 되면 은돌이 안에 다른 몸이 섞인다는 거잖아요."

뭘 또 그렇게까지 오버해?

뼈가 다 같은 뼈지.

"그냥 부러진 걸 이어 붙일 수는 없나요?"

"못 할 거는 없는데, 대신 그렇게 되면 다음엔 더 쉽게 부러질 겁니다. 일단 한번 박살 나면 사기··· 그러니까, 기운이 빠져나가서."

그러자 잠시 고민하던 한울 길드 팀장이 굳게 다짐한 표정으로 말했다.

"그렇게라도 해 주세요. 비록 며칠이지만 정이 많이 들어서······. 정 안되면 나중에 교환하더라도 일단은 원형 복원만 부탁드립니다."

튜닝보단 역시 순정이다 뭐 이런 건가?

"그러죠, 뭐. 수리비는··· 5천만 원만 받을게요, 그래도 최대한 안 부러지게 강도 유지하려면 보강 작업이 필요해서."

이 정도면 거의 반파인데, 7억짜리 반파 5천 수리비면 싸잖아?

"알겠습니다."

"그나저나 어쩌다 이렇게 되신 겁니까? 달리는 차에 정통으로 치여도 이렇게는 안 됐을 텐데."

이건 원판이 B급 몬스터 데모라인 만큼 뼈의 강도가 상당한 수준인 데다 몬스터 회피 기능까지 탑재된 상황.

아무리 생각해도 이렇게 쉽게 박살 난 게 이해가 되질 않는다.

그러자 한울 길드 팀장이 옆에 있는 중년 남자를 노려보며 말했다.

"그러고 보니 왜 꿀 먹은 벙어리처럼 계시는 겁니까?"

"어······."

중년 남자가 뒤통수를 긁으며 말했다.

"민망해서."

"민망한 건 아시고요?"

"나 그렇게 염치 없는 놈은 아니거든. 너무 그러지 좀 마라. 모르고 그런 거잖아."

"보통 사람이면 그 상황에서 왜 안 벗겨지는지 의문을 가지지, 힘으로 잡아 뜯지 않아요!"

이게 뭔 소리야.

잡아 뜯어?

한울 길드 팀장이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그러니까······."

*

갑옷을 입어 보고 싶어서 잡아 뜯었다고?

그것도 길드장이자 한국에서 손꼽히는 강자가?

'미친놈인가?'

어쩐지 너무 쉽게 박살 났더라니.

내가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바라보자 김한울이 허둥지둥하며 말했다.

"판매식 영상을 봤는데, 막 뼈들이 날아와서 자동으로 착착 합쳐지는 게 아닙니까?"

그러곤 뼈가 날아오는 모습을 표현하려는 듯 손을 휘저으며 말했다.

"이렇게 착착착, 그러더니 짠 하고 갑옷이 되고."

"아, 예."

"저거라면 자유자재로 조절이 되니 나한테 딱이겠다 이 생각이 든 겁니다. 그래서 일단 한번 구경해 보고 마음에 들면 직접 오려고 했는데··· 이렇게 됐네요."

도대체 이게 무슨 말이야.

길이만 3m가 넘는 중형 몬스터 전신 갑주가 자기한테 딱이겠다니.

그때 윤 팀장이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물론 길드장님 사정은 이해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아닌 건 아닌 겁니다. 하나 꽂히면 돌진하는 성격 좀 고치세요."

"미안하다니까. 수리비 내가 전부 내줄게. 아무튼."

김한울이 눈을 초롱초롱 빛내며 말했다.

"혹시나 해서 그런데, 저 갑옷 사람용으로도 제작이 가능합니까?"

나는 침묵하다 말했다.

"도대체 저 갑옷을 사람이 왜 입습니까?"

"왜 못 입어요? 내 팔에 장착하면 딱이겠더만."

"팔?"

또라이인가?

"저걸 팔에 장착한다고요? 왜? 아니, 그 전에 어떻게?"

"못 할 것 없죠. 코에 걸면 코걸이, 귀에 걸면 귀걸이 아닙니까."

"누가 설명 좀 해 주면 안 돼요? 이게 도대체 무슨 말이야?"

대화의 흐름이 자꾸 엇나가자 이상함을 느낀 윤 팀장이 말했다.

"혹시 저희 길드장님 능력 모르십니까?"

"모르는데요?"

"아. 그래서 그러신 거구나. 길드장님 능력이 유명한 편이라 당연히 아실 줄 알고. 죄송합니다."

예의 바른 건 마음에 드네.

"저희 길드장님 능력은 거대화입니다."

아.

거대화?

"대략 10m까지 커지시는데··· 때문에 장비 관련 해서 애로 사항이 많습니다. 능력을 계속 유지할 수 없어 커졌다 작아졌다를 반복해야 하니 맞는 장비 하나 구하기도 쉽지 않아서요."

그 정도면 저걸 팔 갑옷으로 생각할 만하긴 하네.

이제야 이해가 된다.

그런데 그게 날 찾아올 정도의 일인가?

"늘어나는 소재로 만들면 되는 것 아닙니까?"

"당연히 늘어나는 소재로 만들어서 쓰고 있긴 한데, 그게··· 설명하기 힘드네. 길드장님, 그냥 한번 보여 주시면 안 됩니까?"

그러자 김한울이 흠칫하며 말했다.

"이렇게 사람 많은 곳에서?"

"보지도 않고 맞춤 갑옷을 어떻게 만듭니까."

"그건··· 그렇지."

그렇게 한참을 고민하던 김한울이 결심한 표정으로 말했다.

"좋습니다. 마당에서 보여 드리죠."

*

"후우."

심호흡을 한 김한울이 말했다.

"시작하겠습니다. 아주 짧게 몇 초만 보여 드리죠. 흡!"

그러자 김한울의 몸이 순식간에 커지기 시작한다.

그리고.

찌이익.

그 엄청난 팽창 속도에 산산조각으로 찢어진 옷들.

그리고 그 옷들 안에 숨어 있던 검은색 고무 질감의 옷이 나타났다.

커져 가는 김한울의 몸집에 맞게 늘어나는 검은색 옷.

그렇게 김한울이 완전히 거대화를 마쳤을 때, 김한울의 몸에 남은 건 그 검은색 옷 한 벌뿐이었다.

그리고 나는 바로 알았다.

무엇이 문제인지.

"아."

몸의 크기에 맞게 늘어난 검은색 옷.

하지만 너무나도 팽창한 탓에 김한울의 우락부락한 근육 윤곽까지 전부 보이는 검은색 쫄쫄이처럼 변한 거다.

몸매 좋은 여자가 입어도 곁눈질은 할지언정 입으론 저런 걸 입고 어떻게 밖을 활보하냐는 소리가 나올 정도인데, 건장한 중년 남성인 김한울이 저걸 입으니······. 어휴.

나는 손사래를 치며 말했다.

"이해했으니 해제하세요."

민망하다.

솔직히 노골적으로 말하자면 몇몇 민망한 부위들 때문에 안구를 테러당하는 수준.

김한울이 능력을 해제하고 다시 원래 모습으로 돌아오자 미리 준비한 옷을 입혀 주는 윤 팀장.

김한울이 나를 바라보며 말했다.

"이해하셨습니까?"

"갑옷이 필요한 게 아니군요?"

"예."

김한울에게 필요한 것은 갑옷이 아니라 저 민망한 옷차림을 위에서 감싸 줄 옷이었던 거다.

22화

"솔직히 나는 내 몸에 자부심이 있습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남들의 구경거리가 되고 싶지는 않단 말이죠."

김한울이 이를 갈며 말했다.

"남들이 멋있는 갑옷 입고 싸워나갈 때 혼자 검은색 타이즈 입고 싸우는 기분이 뭔지 아십니까?"

모른다.

알고 싶지도 않고.

"심지어 거대화까지 되어서 눈에 잘 띄기까지 하니 어쩌다 최상위 불안정 게이트라도 떠서 이걸입고 싸우는 날엔 그날 온 뉴스가 제 검은색 쫄쫄···아니 타이즈로 도배가 됩니다."

본인도 쫄쫄이라 인지하고 있구나.

"그래서 늘 꿈꿔왔습니다. 몸의 크기에 따라 자유자재로 변하는 옷이 나오기를. 그러다 영상을 본겁니다. 자유자재로 날아와 완성되는 갑옷. 그때 생각했습니다. 어쩌면 저 갑옷이야 말로 내가 바라고 바라던 그거 아닐까?"

소박하지만 동시에 절박한 소원.

"갑옷의 성능? 당연히 좋으면 좋을수록 좋지만 그보다는 옷으로서의 기능을 원합니다. 자유자재로 변형이 가능한 옷. 가능하겠습니까?"

같은 남자로서 그 절박함에 백 번 동감한다.

매번 전투마다 반 나체상태가 된다는 건데 신경 안 쓰일 사람이 어디 있겠나.

"돈이라면 얼마든지 드리겠습니다."

돈을 얼마든지 준다고?

김한울 정도면 아마 쌓아둔 재산이 어마어마할 텐데.

게다가 언데드 군단과 싸워야 할지도 모르는 상황에서 김한울 같은 정상급 각성자의 호감을 사는 것만해도 나름 의미가 있고.

'그냥 사령마 팔아서 돈이나 벌 생각이었는데 이게 또 이런 식으로 이어지네. 이 기회에 호감도 얻고 돈도 좀 땡겨볼까?'

사회적 지위면 지위, 돈이면 돈 친해져서 나쁠 게 없는 사람이다.

이런 변신형 대형 갑옷은 만들어 본적 없어 알고리즘을 짜는데 제법 애는 먹겠지만 그래도 이 정도면 내 귀찮은 몸뚱아리 움직일만한 동기로는 충분하지.

아무려면 게이트 가서 노가다 뛰는 것보다야 이쪽이 훨씬 편하니까.

"혹시 비슷한 사정을 가지고 있는 각성자가 많습니까?"

그러자 김한울이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거대화 능력을 가진 각성자는 그리 많지 않습니다. 전세계로 보아도 백 명이 겨우 넘는 수준이니까요."

그건 좀 아쉽네.

이왕 만드는 거 다른 거대화 각성자들에게도 팔아먹을 생각이었는데 시장이 너무 작다.

아무튼 뭐 보아하니 일발성 이벤트로 돈 벌 기회인 거 같은데 옷 비스무리하게 대충 만들어주고 돈이나···

그런데 그때 한가지 생각이 머릿속을 스쳐 지나간다.

"아!"

과거 내가 아직 약하고 이제 막 매크로를 만들어나가기 시작할 때 허점 투성이인 매크로를 보완하기 위해 도움을 요청했다.

기사 같은 무투가들의 몸에 스켈레톤을 붙여 그 움직임을 측정해 매크로 제작에 활용하기 위해서.

하지만 기사들은 말할 것도 없고 용병들마저 불경한 언데드를 자기 몸에 붙일 수는 없다며 지랄 발광을 해서 결국 맨땅에 헤딩하는 수밖에 없었지.

그런데 지금 한국에서 손에 꼽히는 강자가 무려 자기 의지로 내 스켈레톤을 입겠다 하는 거 아닌가.

"혹시 주 무기가 뭔지 알 수 있을까요?"

"저는 격투술을 씁니다. 매번 거대화 할 때 쓸 무기를 가지고 다니는 것도 일이라서."

더 완벽하다.

따로 무기가 없다면 스켈레톤을 입혀 모든 동작을 카피하는 것 만으로도 김한울의 모든 격투술을 고스란히 빼올 수 있다는 말이니까.

'언데드야 돈만 충분히 확보하면 얼마든지 만들 수 있지만 전투용 매크로는 아니란 말이지.'

내 적은 무려 내가 30년 가까이 공들여 만든 매크로로 움직이는 언데드 군단.

그 언데드 군단을 상대하려면 나도 그에 필적하는 매크로를 다시 복구해야 한다.

그런 점에서 김한울 같은 최상급 각성자의 전투 데이터는 분명 지금의 나에게 큰 도움이 될 터.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가능할 거 같네요."

그러자 김한울이 환하게 웃으며 말했다.

"정말입니까!?"

"대신 저 한번 하면 허투루 안 합니다. 재료 튼튼한 걸로 준비해오세요. 최대한 높은 등급의 몬스터의 뼈. 기왕이면 크기 큰 걸로. 죽은지 오래 지난 건 안됩니다."

원래는 소원대로 대충 옷 비스무리한 걸 만들어줄 생각이었는데 전투 데이터 확보란 또 다른 목적이 생긴 이상 대충 만들 수는 없지.

"튼튼한 거? 그 말은···"

"갑옷다운 갑옷. 만들어드리죠. 그것도 멋있고 성능까지 좋은 걸로. 대신 좀 비쌀 겁니다."

그러자 김한울이 감격한 표정으로 말했다.

"옷 비스무리 한 걸로도 만족할 수 있는데 성능까지? 그거 아십니까? 저 각성한 이래 단 한번도 갑옷을 입어본 적이 없습니다."

"이번에 한번 입어보세요. 제대로 만들어드릴 테니."

내 말에 김한울이 주먹을 불끈 쥐며 말했다.

"알겠습니다. 지금 게이트로 달려가서 바로 구해오겠습니다! 또 필요한 거 없습니까?"

오랜만에 실력 발휘하자.

데이터 수집 갑옷이 박살 나면 나도 곤란하니까.

"일단 정수도 많이 필요하고 금이랑 은. 그리고 티타늄도 준비해주세요."

아주 평생 입고 다닐만한 갑옷으로 만들어주지.

"후우."

김한울이 사무실을 서성거리자 윤 팀장이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말했다.

"가만히 계시면 안됩니까? 정신 사납게."

"진정이 되겠어? 처음으로 옷다운 옷을 가지게 될지도 모르는데?"

사람들은 S급 강자인 김한울이 고작해야 옷 때문에 왜 이렇게 난리를 치나 이상하게 생각할지도 모르지만 측근인 윤 팀장은 이것 때문에 김한울이 얼마나 많은 스트레스를 받아왔는지 그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근육질 몸매의 상남자인 김한울은 평소에도 헐렁헐렁한 옷을 즐겨 입을 만큼 딱 들러붙는 옷을 싫어하는 사람.

당연히 그런 김한울인 만큼 매번 능력을 사용할 때마다 쫄쫄이로 변하는 자신 스스로의 모습을 극도로 혐오했다.

특히 사춘기에 접어든 딸이 제발 뉴스에서 아빠 쫄쫄이 입은 모습 좀 안 봤으면 좋겠다는 말을 했다며 절망하던 김한울을 생각하면 이러는 것도 충분히 이해가 갔다.

물론 김한울이 노력을 안 해본 것도 아니었다.

거대화를 한 다음 입을 옷을 챙겨본 적도 있고 아예 수영복 느낌이 나게 디자인을 바꿔보는 등 할 수 있는 선에서 모든 방법을 시도해본 김한울.

하지만 그 어떤 것도 근본적인 해결책이 되지 못했다.

전투 때마다 옷을 차려 입는 것도 말이 안되고 수영복 디자인은 너무 화려해서 오히려 더욱 민망함을 가중시킬 뿐이었으니까.

"얼마나 남았다고 했지?"

"며칠 내로 완성해서 연락 준다고 했습니다."

"그러니까 그 며칠이 얼마냐고."

"그걸 제가 어떻게 압니까. 재촉해봐요?"

그러자 김한울이 흠칫하더니 말했다.

"···아니야. 재촉하지마. 괜히 급하게 만들다가 옷 망칠라."

그런 상황에 혜성처럼 나타난 것이 바로 한지혁이었다.

뼈가 자유자재로 날아다니며 완성되는 갑옷.

저 기술이라면 거대화에도 적용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희망은 한지혁의 흔쾌한 수락에 의해 일사천리로 진행되었다.

A급 게이트에서 잡은 몬스터의 뼈부터 각종 귀금속과 정수들까지 원하는 재료라면 군말 않고 직접 사냥하든 아니면 돈을 주고 사든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구해다 준 김한울.

마음 같아선 S급 몬스터를 잡아다 재료로 주고 싶지만 S급 게이트는 고작해야 대한민국을 통틀어 1년에 몇 번 나올까 말까 한 희귀 게이트라 구하고 싶다 해서 마음대로 구할 수 있는 게 아닌데다 죽은 지 얼마 안 된 이라는 전제 조건까지 붙어 결국 김한울은 A급 몬스터로 만족하는 수밖에 없었다.

물론 그것만으로도 B급 몬스터 뼈보다 훨씬 비싼 A급 몬스터의 뼈가 김한울의 덩치만큼 들어가고 거기에 정수와 각종 부 재료들까지 그야말로 어마어마한 금액이 들어간 상황.

아무튼 그렇게 적지 않은 돈이 소요되었지만 김한울은 전혀 아깝지 않았다.

어쩌면 이게 옷을 구할 수 있는 마지막 기회일지도 모르니까.

"제발 멋있게 좀 나왔으면 좋겠는데."

"나올 겁니다. 제 은돌이 디자인 보셨잖아요?"

"맞아. 멋있었지. 그래서 내가 더 꽂힌 거고. 아무튼 부순 건 미안하게 됐다."

윤 팀장이 피식 웃으며 말했다.

"됐습니다. 이미 지나간 일인데. 그나저나 정말 괜찮은 결과물이 나오면 앞으로 한 대표한테 잘해야겠네요."

"어?"

"A급 각성자에 세상에서 유일하게 길드장님의 맞춤 옷을 만들 수 있는 사람. 이 정도만 해도 친하게 지내야 할 이유는 차고 넘치지 않습니까?"

"···그렇네?"

잠시 고민하던 김한울이 말했다.

"아예 길드 가입 권유 해볼까?"

"들어올 리가 없잖습니까. 이미 돈도 많은 사람인데. 게다가 한눈에 봐도 사업해서 돈 버는 것만 관심 있는 사람입니다. 게이트 근처는 얼씬도 안 한다잖습니까."

"그러고 보니 그렇게 관심 없는 사람이 왜 그때 불안정 게이트 사건엔 개입한 거지?"

"회사 근처 일이니 개입했겠죠. 게다가 같은 스켈레톤이니 궁금했을 수도 있고."

"그런가?"

잠시 고민하던 김한울이 말했다.

"그러고 보면 이상한 점이 참 많은 사람이야. 돈 욕심은 있는 거 같은데 왜 처음부터 능력을 드러내고 돈을 벌지 않은 거지? 어차피 이렇게 드러낼 거였으면서. 게다가 능력을 드러낸 후에도 게이트 근처에는 얼씬도 안하고 있어. 각성자라면 게이트를 통해 전투 경험도 쌓으면서 강해지고 싶어하는 게 보통 아닌가?"

윤 팀장이 심드렁한 표정으로 말했다.

"사정이 있겠죠. 가끔 그런 각성자 있잖아요. 종교적 신념이니 뭐니 하면서 폭력을 거부한다나 뭐라나."

"그런 문제였다면 저번 불안정 게이트에 개입하지도 않았겠지. 흠. 혹시 게이트에 대한 트라우마라도 있나? 그런 거라면 이해가 갈 법도 한데."

그렇게 이런저런 대화를 나누던 그때.

윤 팀장의 핸드폰으로 문자가 날아온다.

문자를 확인한 윤 팀장이 말했다.

"완성했답니다!!"

그 말 한마디에 방금 전까지 이상함을 느끼고 있던 김한울의 의문점은 순식간에 기억 속 저편으로 날아가버렸다.

김한울이 흥분한 표정으로 말했다.

"당장 가자!!"

"금방 오셨네요?"

연락을 주기 무섭게 공장으로 달려온 김한울과 윤 팀장.

김한울이 눈을 희번득 뜨며 말했다.

"어딨습니까? 완성품?"

어지간히 급했구나.

나는 옆에 천으로 가려둔 갑옷을 가리키며 말했다.

"직접 걷어보시죠."

김한울이 흥분한 표정으로 다가가 천을 질끈 잡고는 위로 내던졌다.

그러자 등장한 각종 장신구와 은색과 검은색이 조화롭게 어우러진 전신 뼈 갑옷.

멋을 내기 위해 포인트로 이곳 저곳에 날카로운 장식까지 더해진 백상호와 긴급 대응팀 팀장의 합작품이었다.

"오···오오오오!!"

김한울이 주먹을 불끈 쥐며 말했다.

"이게 제 갑옷입니까? 진짜 제 갑옷이라 이거죠? 거대화 되어도 입을 수 있는?"

"이건 일상 모드 입니다. 제가 도와드릴 테니 한번 입어보세요."

입는 방법을 알려주며 전신 갑옷을 착착 걸치기 시작한 김한울.

그렇게 갑옷을 장착한 김한울이 나를 보며 말했다.

"이제 거대화 하면 됩니까?"

"잠시만."

내가 손가락을 튕기자 근처에서 대기하고 있던 6족 보행 운반형 스켈레톤 여러개가 내 쪽을 향해 걸어온다.

그런데 일반적으로 텅빈 바구니가 올라가 있는 운반형과 다르게 그 위로 뼈가 가득 올라가 있는 특이한 모습.

"소개해드리죠. 운반형 스켈레톤를 개조한 갑옷 보조 스켈레톤 입니다. 여기 있는 뼈들이 거대화 후 갑옷의 파트를 구성하게 될 겁니다. 저기 1호기 보이시죠?"

나는 숫자 1이 쓰여져 있는 스켈레톤을 가리키며 말했다.

"저기 앞에 붙어서 손이랑 다리를 대자로 벌리세요."

그 말에 주저 없이 1호기에 다가가 손이랑 다리를 대자로 벌린 김한울.

그러자 김한울이 입고 있던 갑옷에서 빨간 광채가 번쩍인다.

"저 광채가 나오면 거대화 준비가 끝났다는 겁니다. 거대화 해보세요."

긴장한 표정으로 마른침을 삼킨 김한울이 말했다.

"거대화."

그러자 김한울의 몸이 순식간에 부풀어 오른다.

그리고 그런 김한울의 몸을 따라 일상모드 갑옷을 구성하고 있던 뼈들의 연결부위가 벌어지고 그 빈틈을 뒤에 줄줄이 서있던 거대화 보조 스켈레톤이 하나 둘 해체되며 매꿔나간다.

그렇게 얼마나 지났을까.

5개의 거대화 보조 스켈레톤이 모조리 갑옷의 일부로 사라지고 남은 건 10M에 달하는 거구의 김한울과 그의 몸을 감싸고 있는 멋들어진 뼈 갑옷 뿐이었다.

거대화한 자신의 몸을 내려다보던 김한울이 주먹을 쥐락펴락하며 말했다.

"이게···내 갑옷?"

나는 환하게 웃으며 말했다.

"좋은 재료를 구해다 주신 덕에 제법 튼튼할 겁니다. 물론 멋도 있고요. 마음에 드십니까?"

"마음에 들다마다요. 정말···제가 예상한 것보다 훨씬 멋있고 완벽합니다."

그때 밑에서 거대화 과정을 지켜보던 윤 팀장이 흥분한 목소리로 말했다.

"길드장님! 영화에 나오는 강철남자 같았습니다! 막 뼈들이 우르르 모여들며 거대 갑옷으로···크!!!"

"그 정도야?"

윤 팀장이 엄지를 들어올리며 말했다.

"최곱니다! 최고!"

그러자 김한울이 하늘을 올려다보며 말했다.

"늘 꿈꿔왔던 옷. 심지어 이런 퀄리티라니. 이제···딸에게 부끄럽지 않은 아빠가 될 수 있겠지?"

"물론이죠! 제아도 자랑스러워 할겁니다!"

잠시 침묵하던 김한울이 말했다.

"해제하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똑같이 대자로 벌리시고 파란 불이 들어올 때 해제라고 말하면서 거대화를 풀면 됩니다."

내 말에 김한울이 양팔을 벌리고 파란 불이 들어온다.

"해제."

그렇게 거대화를 해제한 김한울.

그러자 만들어질 때의 역순으로 뼈들이 빠져나가며 김한울의 뒤로 거대화 보조 스켈레톤이 완성되어간다.

그렇게 모든 해제가 완료되고 기본 갑옷을 입은 채 원래 모습으로 돌아온 김한울이 말했다.

"능력을 해제했는데 새 옷을 입지 않아도 된다라···한지혁 대표님."

"예."

"한 대표님은 모르실 겁니다. 제가 지금 얼마나 감동받았는지. 한 대표님은 제 평생의 소원을 이뤄주신 겁니다."

그리고는 나에게 다가와 내 양손을 잡고 위아래로 흔들며 말했다.

"정말 감사합니다. 한 대표님은 제 은인이십니다."

"뭘요. 그래도 솔직히 말하면 가격대비 성능은 좀 떨어질 겁니다."

이정도 돈이면 일반 체구의 각성자가 S급 몬스터 소재로 만든 최고급 갑옷을 사 입을 수 있을 정도의 금액.

당연하게도 김한울의 덩치에 맞게 크기를 키우고 원래도 내구도가 별로인 가변형까지 적용되었으니 갑옷으로서의 성능은 솔직히 좀 떨어졌다.

"그래도 기반이 A급 몬스터라 어지간한 공격 몇 방정도는 충분히 버틸 수 있을 거고 관절부위나 복부 같은 약점은 특히 신경 써서 단단하게 만들었으니 어지간해선 부서질 일 없을 겁니다."

내 말에 김한울이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말씀 드렸지 않습니까. 저는 옷 비스무리한 것만 되어도 만족했을 거라고. 이 정도면 만족차원을 넘어서 감동할 정도입니다."

김한울이 재차 부여잡은 내 손을 흔들며 말했다.

"앞으로 저 김한울은 무조건 한 대표님 편입니다. 어려운 일이 있으면 언제든 말씀만 하세요!"

자기 전속 재단사 챙기겠다?

나야 좋지.

어지간한 일은 김한울 이름 석자로 쉽게 넘길 수 있을 테니까.

"아! 잔금 계산해야죠. 얼마나 드리면 되겠습니까? 얼마든지 말씀하세요."

호감을 사는 데는 성공했고 이제는 두 번째 목적인 돈을 쟁취할 차례.

하지만 너무 과하게 받으면 기껏 얻어낸 호감이 반감으로 변할 수도 있단 말이지.

그렇다면···

"30억만 주시죠."

"30억? 그걸로 되겠습니까? 50억 드리겠습니다."

사령마로 몇 배의 폭리를 취해온 나이기에 30억이면 이거 하나 알고리즘 만든다고 고생한 내 노력대비 마진을 상당히 적게 본 수준이지만 상관없다.

덜 반감을 가질만한 방법으로 돈을 뜯어내면 되니까.

"딱 30억만 받겠습니다. 대신 세론에 돈 좀 투자해주시죠? 솔직히 말이 좋아 투자지 돈 좀 빌릴수 있냐는 말입니다."

"돈을 빌려달라고요?"

"제가 넓은 부지의 공장으로 이전준비 중인데 돈이 모자라서요."

어차피 전투 데이터를 지속적으로 확보하려면 김한울이 앞으로도 계속해서 이 갑옷을 입어줘야 한다.

당연히 그 과정에서 갑옷에 대한 수리와 보강작업은 필수이고.

하지만 김한울은 이걸 모르잖아?

그러니 아예 이걸 명분 삼아 돈을 빌려 시드머니로 쓰는 거다.

옷 계속 입고 싶지?

그럼 돈 좀 빌려줘.

돈 많잖아?

나는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대신 돈을 빌려주시면 앞으로 평생 A/S와 업그레이드를 보장해드리죠. 한마디로 부서지는 거 걱정 없이 마음 놓고 사용할 수 있게 해드린다는 말입니다. 어떻습니까? 나쁘지 않은 제안 같은데."

23화

"평생 A/S에 업그레이드!? 얼마나 필요하십니까?"

"많으면 많을수록 좋죠. 물론 최대한 빠른 시간 안에 갚을 생각입니다. 아시는지 모르겠지만 제 회사 매출이 이미 한달 수백억을 넘어 벌써···"

최대한 많이 빌리기 위해 어필을 좀 하려던 그때 김한울이 내 말을 끊으며 말했다.

"제 개인 사비로 200억 빌려드리겠습니다. 어차피 돈 모아봐야 남들처럼 장비 업그레이드 할 것도 아니라 돈이 계속 쌓이기만 해서 말이죠. 이자는 됐습니다."

기껏해야 몇 십억에서 많아야 100억을 넘지 않을 거라 생각했는데 무이자 대출로 200억?

좋은데?

그럼 김한울에게 대출 포함 230억에 그간 모은 돈이랑 사령마 팔아서 쌓아둔 돈을 합치고 은행권 대출을 끼면 내가 생각한 규모의 공장 하나 정도는 아마 충분히 살 수 있을 거다.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무이자는 내 양심이 좀 찔린다.

"그래도 이자는 있어야죠. 2퍼센트."

"어허. 괜찮다니까 그러시네."

"받으세요. 그래야 내가 마음이 편하니까."

그렇게 잠시 옥신각신하다 결국 1 퍼센트로 결정한 나와 김한울.

"한 대표 덕에 앞으로 안심하고 전투에 임할 수 있을 거 같습니다. 앞으로도 잘 부탁 드립니다."

"저도 잘 부탁 드립니다."

"돈은 바로 비서에게 연락해서 보내라 하겠습니다."

그런데 그때 윤 팀장이 핸드폰을 보더니 말했다.

"불안정 게이트 생겼답니다."

"뭐?"

"D급이고 긴급 대응팀 도착했다니 별 문제없이 끝날···"

그런데 갑자기 김한울이 주먹을 들어올리며 말했다.

"불안정 게이트라니! 시민들이 불안해하겠어 내가 직접 가지!"

"예? 평소에는 가라고 해도 안 가더니 굳이 안가도 되는걸 왜···"

김한울이 환하게 웃으며 말했다.

"왜긴 왜야!! 딸한테 옷 자랑해야지!!"

-흐아압!!

전신 뼈 갑옷을 입은 거대화 김한울이 불안정 게이트에서 뛰쳐나오는 몬스터들을 파리 때려잡듯 박살내는 모습이 뉴스에 나온다.

잠시 후 앵커가 나오며 말했다.

-방금 김한울 길드장이 평소와 다르게 전신을 덮는 뼈 갑옷을 입고 불안정 게이트에 출동했다고 하는데···김한석 전문가님.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아마도 세론의 한지혁 대표 작품이 아닐···

"빠르네."

불안정 게이트로 뛰쳐간 김한울은 모두에게 새 옷 자랑하듯 자신 있게 모습을 드러내며 몬스터를 박살낸다.

그리고 그런 김한울의 기대에 부응하듯 새 옷과 관련된 각종 추측을 하며 포커싱을 맞춰가는 언론사.

"서로 만족하면 됐지 뭐. 김한울은 성능 좋은 갑옷 구해서 좋고 나는 돈 구해서 좋고. 그리고 무엇보다."

다그닥. 다그닥.

나는 허공에 떠서 무언가 동작을 하고 있는 스켈레톤을 바라보며 말했다.

"전투 데이터 얻을 수 있으니까 더 좋고."

그때 화면이 다시 김한울이 싸우고 있는 모습을 다시 생중계로 내보낸다.

그런데 화면 속 김한울이 움직이는 모습과 정확히 똑같은 동작을 하고 있는 허공에 뜬 스켈레톤.

당연하게도 이 스켈레톤은 김한울이 입고 있는 갑옷과 연결되어 김한울이 하는 동작을 똑같이 따라 하며 기억하는 데이터 저장용 스켈레톤이었다.

갑옷 만든다는 핑계로 김한울에게 받은 돈과 재료의 일부를 빼돌려 김한울의 체형을 완전히 복제해서 만든 스켈레톤.

앞으로 이 스켈레톤은 김한울의 전투 데이터를 모조리 흡수해 내 매크로의 밑거름이 될 거다.

"흠. 그런데 이거 프로그래머들에게 적용해도 되지 않나?"

콘솔로 조종하는 게 아니라 직접 입어서 조종하는 거지.

나는 가능성을 따져보기 위해 고민해 봤지만 이내 피식 웃으며 말했다.

"오히려 효율이 떨어질 거 같은데."

세론에 고용된 프로그래머들은 모두 게임 쪽에서 두각을 드러낸 컨트롤과 창의력의 달인들이지 직접 몸을 쓰는데 특화된 사람들이 아니란 말이지.

즉 직접 몸을 쓰는 것보다 콘솔을 통해 옆에서 지켜보며 조작을 하는 게 더 익숙한 사람들이라는 말이다.

물론 그것도 적응하면 잘 하기야 하겠지만 이미 콘솔로 컨트롤 하는 시스템이 완전히 정착되었는데 갑자기 이걸 적용하면 오히려 혼선만 생길 거다.

"···그나저나 겨우 저거 만드는데 수십억이나 들다니."

이번 거대화 스켈레톤 갑옷은 일종의 실험이기도 했다.

말이 좋아 갑옷이지 사실상 입을 수 있는 스켈레톤이나 다름없기에 과연 얼마나 많은 돈을 들여야 쓸만한 언데드를 만들 수 있느냐의 척도를 세울 수 있으니까.

그리고 그 실험 결과는 상당히 실망스러웠다.

저 갑옷은 아무리 잘 쳐줘도 내가 수백 개씩 데리고 다니던 대형 공성용 스켈레톤 수준.

물론 특수 개체인 만큼 전투력은 상당하지만 그거 하나 만들자고 수십억이 넘게 들면···뭐 나머지는 말할 것도 없지.

"갈 길이 멀구나. 그래도 뭐···첫 술에 배부를 수는 없는 거니까. 열심히 돈 모으자."

그때 내 핸드폰에 알람음이 뜬다.

알람음을 확인한 나는 피식 웃으며 말했다.

"230억 입금."

비서에게 시킨다더니 불안정 게이트 가면서 입금 지시한 모양.

대뜸 200억을 빌려준다 할 때도 놀랐는데 이젠 아예 계약서도 안 썼는데 돈부터 입금해?

물론 계약서 안 썼다고 돈 떼어먹을 생각도 없지만 아무리 그래도 이제 겨우 몇 번 본 게 전부인데 수십억 원어치의 재료를 의심 없이 전부 건네고 추가로 200억을 일시불로 계약서도 없이 빌려주다니.

이걸 배포가 크다고 해야 하나 뭐라고 해야 하나.

무작정 갑옷 뜯을 때 알아봤지만 일단 꽂히면 돌진하는 상남자 스타일.

개인적으로 마음에 든다.

"좋아."

아무튼 갈 길이 멀었다는 건 알았지만 그거야 돈을 무지막지하게 벌면 해결될 일.

나는 히죽 웃으며 말했다.

"돈도 들어왔겠다 슬슬 덩치 좀 키워볼까?"

"후우."

로코의 대표 엔드류는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돈이 안돼."

정확히 말해서 돈이 안 되는 건 아니다.

다른 공장에서 생산한 신발들로 벌어들이는 이익이 세론에서 생산한 신발에 비해 초라할 뿐.

생산단가의 절반 가까이가 인건비인 신발의 특성상 스켈레톤을 공짜로 부리는 세론의 납품단가는 그야말로 압도적이었으니까.

특히 최근 들어 세론이 새로운 신발 공장 인수를 중단하며 생산능력이 포화상태에 도달해 그 아쉬움은 더욱 크게 작용할 수밖에 없었다.

그때 임원이 애써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그래도 저희는 대표님 결단 덕에 최우선 순위 계약자에 보장물량도 15만족이나 있어 그나마 상황이 좋은 편입니다."

그전까진 넘쳐나는 잉여 노동력을 활용하기 위해 온갖 메이커에 제안서를 뿌리며 신규 계약을 유치하던 세론이었지만 생산량이 한계에 도달하자 더 이상 새로운 신규 계약을 맺지 않고 있었다.

기존에 계약해둔 업체의 물량을 소화하는 것만으로도 벅찬 상태였으니까.

다행히 로코는 그 어떤 회사보다 가장 먼저 계약했고 보장으로 걸어둔 물량도 제법 되어 여유로운 편이었지만 딱 거기까지였다.

"그럼 뭐합니까. 공장이 풀 가동되며 추가 물량은 안받고 있는데."

새로운 고객사와의 계약을 거절할 만큼 풀 가동상태인 세론.

당연하게도 기존 고객사들 역시 추가 물량 발주가 원천 차단되어 버린 상태였다.

엔드류가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말했다.

"보장 물량이 이렇게 아쉬워질 줄이야."

원래 보장 물량은 제작사에선 어떻게든 많이 확보하려 하고 메이커에선 최대한 적게 주려 하는 게 기본이었다.

보장 물량은 메이커에서 제작사에게 주는 최소한의 매출 기준에 불과했으니까.

하지만 세론에서의 보장 물량은 그 의미가 완전히 뒤바뀌었다.

"15만이 아니라 30만. 아니 할 수 있는 양만큼 전부 계약했어야 했어."

한정된 세론의 생산량을 이용할 수 있는 최소한의 권리.

그것이 바로 세론에서의 보장 물량이 가진 의미였다.

15만 족을 계약한 로코는 한 달에 세론에서 15만족 밖에 생산을 할 수가 없다.

왜?

생산량이 부족하니까.

그렇기에 딱 계약서에 명시된 보장 물량만큼만 주문이 가능한 게 로코를 비롯한 다른 메이커들이 처한 현실.

엔드류가 후회스럽다는 표정으로 말했다.

"좀 더 빨리 인정했어야 했는데."

차라리 처음부터 세론을 단순한 하청 업체가 아닌 로코의 이익을 극대화 시켜주는 파트너로 인정하고 보장 물량을 넉넉하게 정해뒀다면 지금처럼 포화상태가 된 세론의 생산력을 다른 고객사들과 나눠먹지 않아도 됐을 텐데 하는 후회.

엔드류가 서류를 바라보며 말했다.

"같은 신발을 파는데 순수익 차이가 2배입니다. 2배."

보통 메이커가 신발 하나에 책정하는 순수익의 비율은 10퍼센트.

그런데 세론에서 생산한 신발은 인건비가 제외되며 그 비율을 20퍼센트 가까이 늘려주었다.

거기에 기존 제작사와 거래할 땐 단순 모델 변경 가지고도 짜증나는 줄다리기를 해야 하는데 세론은 그런 게 전혀 없으니 얼마나 좋나.

특히 세론에서 그전에 한번이라도 만들어본 경험이 있는 모델 같은 경우엔 요구하는 그 즉시 적용이 가능한 수준.

원자재만 넣어주면 자동으로 신발을 만들어주는 자동 기계처럼 말이다.

그렇기에 급한 상황을 대처하는데 있어서 세론만큼 완벽한 회사는 없었다.

그런데 그 가용 생산량이 완전히 정체되어 이제는 기존에 계약해둔 15만족 안에서 밖에 조율을 못하는 상황.

유일한 해결책은 세론이 스켈레톤을 대량으로 추가해 생산력을 끌어올려 추가 주문을 받아주는 것뿐이었다.

"세론이 생산량을 더 늘릴 수 있겠습니까?"

엔드류의 말에 임원이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최근 한 대표가 탑승용 스켈레톤 사업을 시작했답니다. 한 개에 대략 수억 원씩 받고 팔고 있죠. 그건 다시 말해 만들 수 있는 스켈레톤의 수가 한계에 달한 걸 수도 있다는 뜻입니다. 어쩌면 이미 만들어둔 노동자 스켈레톤을 해체해서 탑승용 스켈레톤을 만드는 걸 수도 있고요."

스켈레톤 제작 수량에 한계가 오니 비교적 수익률이 좋은 다른 사업 쪽으로 방향을 튼 거라는 추측.

매우 그럴싸한 추측이었다.

"후회해도 이미 늦은 건가···후."

그런데 그때.

한 임원이 대표실을 박차고 들어와 흥분한 표정으로 말했다.

"대표님!!"

"무슨 일입니까?"

"세론에서 새로운 대규모 공장을 개업한다고 합니다! 생산량은 기존 공장을 모두 합친 것의 두 배가 넘는다 하고요!!"

엔드류가 입을 쩍 벌리며 말했다.

"두. 두 배?!"

"예! 기존 공장의 계약은 그대로 두고 신규 공장은 별도의 계약을 통해 움직일 생각인가 봅니다. 지금 세론에서 신규 공장과의 신규 계약 의사를 타진하려고 하는 거 같은데 어떻···"

엔드류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며 외쳤다.

"다른 공장 보장 물량이 도합 얼마나 됩니까?"

"모든 공장 다 합쳐서 130만족 정도 됩니다."

로코가 한 달에 필요로 하는 신발 물량은 대략 200만족 정도이고 그 중 130만족이 계약으로 묶여 있는 상황.

나머지 70만족은 상황에 따라 이 공장 저 공장에 개별로 주문을 넣으며 물량 조율을 하고 있었지만 세론의 신규 공장이 등장한 이상 그건 아무 의미도 없었다.

"그럼 세론에 보장 물량 70만 제안하세요!"

한마디로 다른 공장에선 계약서상 명시된 보장 물량만 생산하고 나머지는 전부 세론에 밀어 넣는다는 말.

그야말로 로코 창사 이래 전례가 없는 최대 규모의 보장 물량이었다.

"그 공장까지 포화상태가 되기 전에 최대한 우리 물건을 많이 밀어 넣어야 합니다!"

신규 공장마저 포화 상태가 되어 추가 주문이 막히기 전에 미리 필요한 물량을 계약상 보장 물량으로 잡아 세론의 생산력을 최대한 확보하고 동시에 다른 메이커들이 비집고 들어올 틈을 메워야 한다.

그것이 로코가 성장할 수 있는 지름길이자 경쟁자들보다 우위에 설 수 있는 가장 효율적인 방법.

세론의 생산량 포화로 인해 그 빈자리를 절실하게 느낀 엔드류인 만큼 주저할 이유가 없었다.

"당장 로코 코리아 직원 보내서 계약 진행하라고 해요! 70만 족. 아니 여유만 된다면 더 넉넉하게 잡아도 되니까 다른 쪽에서 선수치기 전에 빨리!!"

사령마를 팔고 벌어들인 돈과 김한울에게 빌린 돈 거기에 은행 대출까지 껴서 매입한 대형 공장.

기존 공장들을 모두 합친 것보다 몇 배 이상 더 큰 규모로 이곳에 내가 배치한 스켈레톤은 비상용과 추가로 만든 것은 물론 기존 공장에 배치해둔 스켈레톤의 일부까지 빼와 도합 2천.

그야말로 며칠 만에 기존 생산량의 두 배를 소화할 수 있는 새로운 공장이 탄생한 셈이었다.

그렇게 공장을 만들고 그간 막아두었던 신규 계약을 주문자들에 타진하자···

"주. 주문이 쏟아집니다!"

막혔던 물꼬가 트인 것마냥 주문이 쏟아진다.

그 중에서도 가장 많은 주문을 주는 곳은 바로 스포츠 브랜드 메이커들이었다.

급한 물량만 우리에게 건네며 맛을 보다 슬슬 주문을 늘리려던 찰나에 공장이 포화상태가 되어 추가 주문을 하지 못하게 된 스포츠 브랜드 메이커들.

그 메이커들이 대형 신규 공장이 들어섰다니 아예 이젠 작정하고 물량을 들이민다.

"로코에서 보장 물량으로 70만족을 제안했습니다!"

김덕배의 말에 나는 놀란 표정으로 말했다.

"갑자기 70만?"

한 달에 200만족을 필요로 하는 로코인데 그 중 3분의 1을 보장 물량으로 하자고?

김덕배가 흥분한 표정으로 말했다.

"이 정도면 거의 다른 공장에는 정해진 보장 물량만 딱 주고 나머지를 전부 저희에게 의뢰하는 수준입니다!"

한마디로 계약에 위배되지 않는 선에서 우리에게 물량을 모조리 몰빵했다는 소리였다.

나는 히죽 웃으며 말했다.

"이 자식들 이제야 정신 차렸네."

그러게 뭐 하러 간을 봐 자꾸.

애초에 스켈레톤을 대체할 만큼 저렴한 노동력이 세상에 있을 리가 없는데.

"계약하세요."

"알겠습니다! 아. 그리고 파로에서도···"

그렇게 줄줄이 이어지는 계약 제안들.

"다 받아줘요. 전부다."

지금이야 2천에 불과하지만 애초에 더 늘릴 작정으로 큰 부지의 공장을 산 거니까.

"아예 지금 바로 천 개 미리 만들어서 풀까?"

그러자 김덕배가 놀란 표정으로 말했다.

"여기서 더 말입니까?"

30년 가까이 해온 게 이 짓인데 뭘.

"그런데 만약 정말 가능하시다면 저는 반대입니다."

"반대?"

"지금 메이커들과 주문자들이 서로 물량을 들이미는 건 저희 신규 공장이 언제 또 포화상태가 될지 모른다 생각해서 그런 겁니다. 미리 저희 생산량을 선점하고자 하는 거죠. 미리 선점하지 않았다가 저번처럼 추가 주문을 못하게 될지도 모르니까. 그런데 여기서 저희가 여유롭다는 신호를 보내면 메이커들로 하여금 오판을 하게 할 수도 있습니다. 아. 천천히 해도 되는구나 이렇게요."

오!

그럴 수도 있겠구나?

김덕배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그럼 차라리 조금 타이트한 척 생산량을 유지해야 지금처럼 계속해서 물량을 쏟아 붓지 않겠습니까? 홈쇼핑에서 매진임박을 띄우는 것처럼 고객사들을 안달 나게 하는 겁니다."

24화

"좋은 비유네요. 포화돼 가는 것처럼 하면서 물량 끌어들이고, 그러다 갑자기 또 팍 늘려서 확확 수주하고."

"정확합니다."

나는 엄지를 들어 올리며 말했다.

"굿굿. 나이스 아이디어. 그렇게 하죠. 뭔가 김 사장님, 점점 더 머리가 좋아지시는 것 같아."

내 칭찬에 김덕배가 민망한 듯 뒤통수를 긁으며 말했다.

"가, 감사합니다."

"그럼 포화까지 얼마나 걸릴 것 같나요?"

내 말에 김덕배가 잠시 계산을 해 보더니 말했다.

"솔직히 지금 페이스라면 오래 걸릴 것 같지는 않습니다. 스켈레톤 2천이 24시간 신발만 생산한다 해도 한 달 500만 족 수준인데, 저희는 신발만 만들고 있지 않으니까요."

대형 공장을 매입한 건 한 공장에서 모든 걸 다 만드는 하이브리드 시스템을 갖추기 위함.

그렇기에 대충 생산량의 절반을 신발에 투자한다 하면 250만인데, 로코 하나만으로도 벌써 그 양의 4분의 1을 채운 상황이었다.

"좋아요, 좋아. 그럼 기준을 세우죠. 생산량이 포화 상태가 되면 딱 1주일 버거운 척하다가 오백 개씩 추가합시다."

"그 정도면 나쁘지 않은 것 같··· 아니, 근데 오백 개씩 계속이면 도대체 얼마나 만드시려는 겁니까?"

"되는 데까지요."

"이러다 중국 쪽 신발 물량을 전부 우리 세론이 가져오는 건 아닌가 싶군요. 하하. 물론 꿈같은 소리지만요."

"그쪽 종사자가 얼마나 되는데요?"

"놀라지 마십시오."

김덕배가 질린다는 표정으로 말했다.

"신발 제작 관련 종사자만 백만 명이 넘습니다, 백만 명. 하여튼 중국 인해전술 하나는 인정해 줘야 합니다."

엄청난 수의 직원과 산업 규모에 내가 놀랄 거라 생각한 듯하지만 나는 오히려 반대였다.

"애걔?"

겨우 그것밖에 안 돼?

그걸로 신발 관련 산업 수십조의 매출을 올린다고?

"애··· 애걔?"

아닌가?

따지고 보면 우리나라 대기업들은 하청업체를 포함한 모든 직원을 다 합쳐도 수십만이 안 될 텐데 매출은 수백조씩 나오잖아.

그런 걸 보면 확실히 저부가가치 산업이라 종사자 수 대비 매출이 적은 것 같기도 하고.

아무튼 그 정도면 수십조 매출이 가능하단 말이지?

까짓것, 해 주지 뭐.

어차피 중국이 세계의 공장 노릇 한 것도 결국 저렴한 인건비로 다른나라 일자리 빼앗아 와서 만들어 낸 거잖아.

너무 아까워하지 말라고.

다 내가 좋은 곳에 쓸 생각으로 그러는 거니까.

"스켈레톤 100만이면 중국 신발 산업 전부 먹을 수 있다는 말이죠? 아니지. 스켈레톤은 24시간 주말도 없이 일하니까 30만이면 충분할 것 같은데?"

"···진심이십니까?"

"혹시 알아요? 내가 진짜 30만 만들어 낼지?"

전투용도 50만씩 만들어 끌고 다닌 나다.

고작해야 신발 만드는 스켈레톤 정도는 30만이 아니라 300만도 문제없을걸?

김덕배가 어색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이제는 농담인지 진담인지 구분이 안 가는군요."

"그냥 그런가 보다 해요."

설명하기도 귀찮아.

그냥 보고 느끼라고.

나는 씨익 웃으며 말했다.

"내가 또 물량이라면 어디 가서 안빠지는 놈이라. 한번 보자고요, 어떻게 될지."

*

포화 상태가 되면 살짝 시간을 끌었다 스켈레톤을 추가하고, 또 추가하고.

그야말로 단순한 무한 반복의 연속이었지만 그 효과는 엄청났다.

로코를 필두로 세론의 맛을 본 신발 제조사들이 너도나도 다른 공장에 줄 물량을 빼 세론에게 밀어 넣으니 추가하기가 무섭게 전부 포화상태가 되어 간 거다.

덕분에 하루가 다르게 무서운 속도로 성장해 나가는 세론.

하지만 아쉬운 점이 한 가지 있었다.

"왜 전부 중견 메이커 제안만 오는 거죠?"

바로 사람들이 신발 하면 바로 떠올리는 세계 톱 텐급 메이커는 감감무소식이라는 것.

그 메이커들이야말로 한 해에 십조가 넘는 매출을 기록하는 가장 탐나는 먹잇감인데 도통 입질이 안 온다.

"나이스 같은 곳은 한 해 매출만 수십조라면서요. 거기 물량 따내면 완전 돈다발일 텐데."

김덕배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그 정도급은 중견 메이커랑 입장이 좀 다릅니다."

"왜요?"

"보통 중견 메이커는 디자인과 마케팅으로 승부를 봅니다. 하지만 글로벌 톱 메이커 정도 되면 기술력을 앞세우기 마련이죠."

"기술력이라······."

"신발에 필요한 각종 신소재를 개발해서 적용하고, 유명 스포츠 스타에게 자사의 기술이 적용된 신발을 신겨 기술력을 뽐내고. 문제는 이런 신소재를 단순히 메이커 혼자 개발하는 게 아니라는 겁니다. 오랜 기간 협력해 온 협력사와 기술제휴나 공동 연구를 통해 신소재를 개발했는데 갑자기 생산 라인을 우리 쪽으로 옮긴다? 그게 그렇게 쉬운 일은 아니죠."

시중에 널린 소재로 만드는 중견 메이커들과 다르게 톱급 메이커는 진입 장벽이 더 두툼하다는 거네.

나는 아쉽다는 표정으로 말했다.

"기술력이라."

세론에게 유일하게 부족한 게 있다면 바로 기술력이지.

우리의 주 무기는 바로 세상엔 없는 끝판왕급 가성비니까.

"물론 걱정하실 필요는 없습니다. 어차피 시간이 지나면 해결될 일이니까요. 아무리 기술제휴 관계라지만 그 관계는 절대 영원하지 않습니다. 결국 세론이 계속 성장하고 있으면 그쪽에서 먼저 반응이 올 겁니다, 기술이전 할 테니 협력하는 게 어떻겠냐고. 그렇게 관계를 쌓아 가면 언젠가는 그쪽 메이커 물량도 자연스럽게 저희에게 올 겁니다."

"어떻게 그렇게 확신하시는데요?"

그러자 김덕배가 씁쓸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한국 신발 산업이 그렇게 망했으니까요."

"아."

"운신의 폭이 넓고 돈 한 푼이 아쉬운 중견 메이커가 먼저 빠져나갑니다. 그리고 덩치가 크고 기술 장벽이 있는 톱급 메이커들은 천천히 빠져나가죠. 신발 산업의 자연스러운 사이클입니다."

즉, 세론은 반대라는 거네.

일단 중견 메이커들이 먼저 오고, 그다음 톱급 메이커들이 오고.

"그럼 나중을 대비해서 우리도 기술 좀 키워야 되는 것 아닙니까?"

"기술을 키워서 손해 볼 일은 없지요."

"연구소라도 만들어야 되나?"

그렇게 내가 잠시 고민하고 있자 눈치를 보던 김덕배가 말했다.

"대표님, 혹시 한국신발협회라고 아십니까?"

"그게 뭡니까?"

"한국이 한창 신발로 잘나갔을 때 만들어졌던 협회입니다. 원래는 신발 회사들의 이익을 대변하는 단체였는데··· 뭐, 지금은 사실상 유명무실해진 상태입니다. 기반인 신발 산업 자체가 완전히 몰락했으니까요. 그래도 아직 수백 개 정도 되는 신발 공장들이 가입되어 있는 한국 최대이자 유일한 단체입니다."

"갑자기 신발협회는 왜요?"

"기술 이야기를 하시길래 말씀드리는 겁니다. 협회 소속 공장들은 중국의 저가 공세에도 지금까지 살아남은, 그야말로 정예들입니다. 당연히 그간 축적된 기술은 상당한 수준입니다. 특히 안전화 같은 특수 신발은 더욱더 그렇고요. 그 공장들과 기술제휴를 하면 세론에 부족한 기술력을 가장 빠르게 보강할 수 있지 않을까요?"

"오호?"

중국의 가성비에 맞서 기술력으로 승부해 온 신발 공장들.

물론 그래 봤자 수십조 매출을 자랑하는 톱급 메이커 기술력에는 한참 못 미치겠지만, 그래도 세론에 비하면 상당한 수준이겠지.

김덕배가 멋쩍은 표정으로 말했다.

"사실 저도 오래된 협회원 중 하나인데, 협회에서 지속적으로 저한테 연락을 해 대표님의 협회 가입 권유를 제안해 왔었습니다. 그동안은 대표님 성격에 귀찮아하실 게 뻔해 제 선에서 전부 거절해 왔는데, 기술 이야기를 하시니 생각이 나서 말입니다."

나는 피식 웃으며 말했다.

"잘 파악하고 계시네요."

아마 기술 이야기가 아니었다면 거들떠도 안 봤을 거다.

내가 뭐가 아쉬워서 협회에 가입해?

하지만 협회원들과의 기술 제휴는 제법 구미가 당긴다.

"거기에 협회원들 대부분 수십 년간 신발 산업에 종사한 사람들이라 인맥도 상당해서, 친하게 지내서 나쁠 건 없을 겁니다."

그렇단 말이지······.

나는 잠시 고민하다 말했다.

"그럼 가입하죠. 어차피 김 사장님도 가입되어 있는데 나 하나 더 한다고 뭐 달라지나."

김덕배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하하. 알겠습니다."

"혹시 텃세 부리면서 날 귀찮게 하거나 그러지는 않겠죠?"

"아이고, 텃세라니요. 제가 25년 차 협회원인데, 거기에 있는 제 지인이 한 트럭입니다. 누가 감히 대표님을 귀찮게 하겠습니까."

"그럼 김 사장님이 알아서 잘 조율해 가지고 해 주세요."

김덕배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알겠습니다. 제가 협회 쪽이랑 이야기해 놓겠습니다."

*

김덕배를 통해 가입 의사를 밝히고 얼마 지나지 않아, 가입 환영식을 열자고 해 초대된 나와 김덕배.

그런데.

"원래 이렇게 가입 환영식이 크고 성대합니까?"

한 대형 홀을 통째로 빌려 가입 환영식을 주최한 신발협회.

그러자 협회 가입을 추진한 장본인이자 25년 차 협회원인 김덕배조차도 당황한 표정으로 말했다.

"이, 이런 건 저도 처음 보는데······."

그렇게 잠시 당황해하던 김덕배가 애써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그만큼 대표님의 위치가 달라졌다는 것 아닐까요?"

"흐으음."

나는 세론 한지혁 대표 가입식이라 적혀 있는 현수막을 바라보며 말했다.

"여기까지 왔는데, 일단 들어가 보죠."

그렇게 안으로 들어가자 보인 건 홀을 가득 메우고 있는 2백여 명의 사람들.

그때 한 중년 남자가 나에게 다가와 내 손을 부여잡으며 말했다.

"어서오세요, 한 대표. 신발협회 협회장 유용오입니다."

"반갑습니다, 회장님."

그러자 홀에 앉아 있던 사람들이 박수를 치며 외쳤다.

"환영합니다!"

"와!"

유용오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다들 한 대표가 협회에 가입한다니 한걸음에 달려오더군요. 하하."

"아. 예."

"일단 앞쪽으로 가시죠, 오늘 주인공이시니."

그렇게 유용오의 안내를 받으며 홀로 가던 나는 김덕배에게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상황 파악이 좀 됩니까?"

그러자 홀에 있는 지인들과 인사를 나누던 김덕배 역시 이상함을 느꼈는지 말했다.

"뭔가 이상합니다. 정기총회 때도 이 정도로 참석률이 높았던 적은 없는데······."

"그래요?"

김덕배가 놀랄 정도로 유례가 없는 대형 가입 행사.

거기에 말도 안 될 만큼 높은 참여율까지.

나는 조용히 유용오를 따라 걷다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재미있네."

정확한 상황은 모르겠지만, 이것 하나만큼은 분명하다.

이 자리는 절대, 단순히 내 가입 축하를 위한 자리가 아니라는 것.

30년 가까이 시기와 질투 그리고 혐오를 겪으며 버텨 온 나이기에 더욱 확신한다.

그렇게 유용오가 안내해 준 자리에 앉자 유용오가 단상에 올라가 마이크를 잡고 말을 하기 시작했다.

"주인공도 오셨으니 이제 본격적으로 환영식을 시작하겠습니다."

그 말에 열화와 같은 박수를 날리는 협회원들.

"우선 환영식을 시작하기에 앞서 우리는 우리의 현실을 다시 되집어 볼 필요가 있습니다. 아시다시피 한국은 한때 세계 2위의 신발 수출 대국이었습니다."

나는 살짝 놀란 표정으로 김덕배에게 말했다.

"2위? 진짭니까?"

"예. 그랬던 적이 있었죠."

그랬던 게 불과 수십 년 만에 이렇게 몰락했다는 거네.

오히려 좋다.

세론은 한국 신발 산업과 정확히 역순으로 돌아가니, 한국 신발 산업이 빨리 망했다는 건 다시 말해 세론이 그만큼 빨리 성장할 수 있다는 말이니까.

그때 유용오가 계속해서 연설을 이어 나갔다.

"그때 전국에 있는 신발 공장만 수천 개에, 관련 산업 종사자만 수십만 명에 이르렀죠. 반면 지금은 어떻습니까?"

유용오가 한탄하는 표정으로 말했다.

"국내에 남은 기업은 고작해야 300개가 조금 넘고, 그중 종사자 500인 이상의 사업자는 단 한 개도 없습니다. 수십만에 이르던 종사자는 일만 명도 안 되는 7천 명대 수준이 되었고, 그걸로도 모자라 매해 마이너스 성장으로 계속 줄어들고 있죠. 모두들 말했습니다, 한국 신발 산업은 이제 끝이라고."

와우.

망한 줄 알고 뛰어들긴 했는데, 진짜 제대로 망했구나.

세계 2위까지 하던 산업이 다 망하고, 종사자 전체를 다 합쳐서 7천 명대에, 심지어 그것도 매해 줄고 있다니.

그럼 사무직 빼면 실제 노동자는 몇 명이라는 거야?

나는 조용한 목소리로 말했다.

"한국에 남은 공장 다 합쳐도 우리한테 안 되겠는데요."

김덕배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렇게 된 지는 제법 됐습니다. 말씀드렸지 않습니까, 중국, 동남아랑은 게임이 안 된다고. 사실 지금까지 살아남은 게 용한 수준이죠."

그때 유용오가 외쳤다.

"하지만!"

유용오가 기세등등한 표정으로 말했다.

"그때 한지혁 대표님이 등장하신 겁니다! 그리고 스켈레톤을 이용한 신공법으로 아직 한국 신발 산업에 희망이 있다는 걸 몸소 보여 주셨죠!"

"저렴한 노동력을 이용해 한국의 신발 산업을 송두리째 빼앗아 간 중국으로부터 다시 신발 산업을 되찾아오고 있는 겁니다! 이거야말로 저희가 늘 염원해 오던 꿈 아니겠습니까? 한국의 신발 산업을 다시 우뚝 세우는 것!"

"와!"

협회원들의 박수를 받으며 유용오가 외쳤다.

"만약 그런 한지혁 대표께서 그 힘을 우리에게 조금이라도 나누어 준다면 우리 모두 다 함께 일어설 수 있습니다! 상생이 무엇인지, 단순히 저렴한 인건비만이 전부가 아니라는 걸 세계에 알리면서! 안 그렇습니까!"

"맞습니다!"

"한지혁 대표의 협회 가입은 한국 신발 산업의 부흥을 알리는 신호탄이 될 것이라 저는 자신합니다! 한지혁 대표의 스켈레톤과 함께 저희 모두가 같이 일어서는 겁니다!"

협회장의 말에 호응하듯 협회원들이 외쳤다.

"한지혁! 한지혁!"

나는 피식 웃으며 말했다.

"뭔가 했더니 이거였구나."

결국 돌고 돌아 스켈레톤을 빌려 달라는 말.

그냥 나가야겠다.

귀찮게 이 많은 인원 언제 상대하고 있어.

그래.

기술은 무슨 기술.

그냥 평소처럼 하던 대로 수출이나······.

"잠시만!"

옆에 앉아 있던 김덕배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며 말했다.

"협회원이자 세론의 직원으로서 한마디 하겠습니다. 협회장님, 이건 저희랑 사전에 이야기된 바 없는 내용인데, 이런 공식 석상에서 이야기하셔도 되는 겁니까?!"

본인이 가입을 추진했는데 갑자기 이상한 소리를 들으니 진심으로 화가 났는지, 김덕배가 핏대를 세우며 말한다.

김덕배의 말에 환호하던 협회원들이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어? 대충 이야기됐다는 것 아니었어?"

"뭐지?"

음?

뭐야.

저 반응은.

대충 이야기가 됐다고 들었다?

그때 김덕배가 화가 난 표정으로 말했다.

"스켈레톤은 저희 세론의 핵심 자원이지만 동시에 한 대표님 고유의 능력입니다. 이게 지금 각성자한테 능력 나눠 달라는 말이랑 뭐가 다릅니까!"

그러자 협회장이 태연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자자, 진정하세요. 어디까지나 가능성을 논하는 것 아닙니까. 그리고 공짜로 빌려 달라는 게 아니라, 정당한 대가를 주고······."

"그럼 정식으로 요청을 해야지, 이런 식으로 상황을 몰고 가는 게 어딨습니까!"

나는 둘의 대화를 들으며 생각했다.

'사전에 이상한 언질을 받아 당황해하는 협회원들. 그리고 상황을 계속 몰고 가는 협회장.'

나는 눈을 빛내며 말했다.

"이거, 누가 뒤에서 바람 넣고 있는 거구나."

스켈레톤의 노동력을 탐낸 누군가가 협회와 협회원들에게 바람을 넣은 다음 앞세워 상황을 몰고 가고 있는 게 분명했다.

"오호······."

그냥 다 무시하고 나갈 생각이었는데, 이러면 이야기가 달라지지.

감히 나를 상대로 작전을 쳐?

차라리 스켈레톤이 필요하면 내 앞에 무릎 꿇고 빌었어야지.

그럼 좋은 사람이 되기 위해 노력하고 있는 내 입장에서 생각해 주는 척이라도 했을 텐데 말이야.

나는 언쟁 중인 협회장과 김덕배를 무시한 채 눈을 감고 생각했다.

'어떻게 할까.'

직접 나를 상대하긴 부담되니 협회를 앞세운 상대.

그게 가능한 이유는, 바람을 넣은 것도 있지만, 협회원들 모두 그 바람에 흔들릴 만큼 내가 가진 스켈레톤이란 패가 탐이 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나는 히죽 웃으며 말했다.

"협회 그냥 내가 먹어 치울까?"

협회만 먹어 치워 버리면 이제 한국 신발 바닥은 완전히 내 게 되는 거잖아.

동시에 뒤에서 바람 넣은 놈들이 가진 무기를 송두리째 빼앗는 꼴이고.

애초에 내가 한국 내수 시장에 진출하지 않은 이유가 바로 기존 업체들의 반발을 우려했기 때문인데, 협회를 통째로 먹어 치우면 그 기존 업체들을 전부 내 편으로 만드는 셈이니 더 이상 눈치 볼 필요도없다.

나는 고개를 돌려 다른 협회원들의 표정을 살펴보았다.

잘못된 언질을 받고 당황해하던 협회원들은 김덕배와 협회장의 논쟁이 길어지자 표정이 점점 어두워진다.

"···결국 안 빌려준다는 거네?"

"좋은 건 자기들만 쓰고 싶겠지."

"젠장."

협회장과 김덕배가 논쟁을 벌일수록 분위기가 점점 세론에게 부정적으로 흘러간다.

마치 우리가 이기적인 놈이 되어 가는 듯한 모습이랄까?

아마도 이게 뒤에 있는 놈들이 노린 상황이겠지.

"아무리 그래도······!"

나는 계속 화를 내던 김덕배의 팔을 잡으며 말했다.

"그만하시죠, 김 사장님."

더 논쟁해 봤자 우리만 손해다.

"예?! 하지만 대표님!"

"그만하셔도 됩니다."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며 말했다.

"협회장님."

"예, 대표님."

"보아하니 서로 의사소통에 문제가 있는 것 같은데."

나는 환하게 웃으며 말했다.

"일단 오늘은 파하고, 조만간 서로 입장을 정리해서 다시 만나는 게 어떻겠습니까?"

25화

"죄송합니다, 대표님."

김덕배의 사과에 나는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모르셨던 거잖아요."

"당연히 몰랐습니다. 알았으면 가입을 추진하지도 않았겠죠."

김덕배가 분노한 얼굴로 말했다.

"그런 말도 안 되는 요구 들어주실 필요 없습니다. 협회 그까짓 것도 필요 없고요."

"기술이랑 인맥이 좋다면서요?"

"있으면 좋다는 거지, 없다고 해서 문제될 것도 없습니다. 스켈레톤은 그만큼 압도적이니까요. 인맥이라면 저도 충분히 있고."

"지인분들 많은 것 같던데 그렇게 막무가내로 나가도 괜찮겠습니까?"

김덕배가 단호한 표정으로 말했다.

"저도 작기는 하지만 평생 사업을 해 온 놈입니다. 인정만으로 될 게 있고 안 될 게 있는 거죠. 제가 세론에 있는 이상 제 가족을 제외하면 세론이 그 무엇보다 최우선입니다."

좋은 마음가짐이다.

나는 히죽 웃으며 말했다.

"그나저나 느낀 것 없으셨습니까? 보아하니 누군가 바람을 넣어서 선동한 것 같던데."

그러자 김덕배가 굳은 표정으로 말했다.

"그렇지 않아도 환영식에서 나오고 지인들에게 따로 연락을 해 봤는데, 협회장과 그 측근들이 비밀이니 주변에 말하지 말라면서 세론이 스켈레톤을 일부 빌려줄 거라는 식으로 말을 하고 다녔다 합니다."

확실하네.

일부러 그런 분위기가 나오도록 연출한 거다.

목적은 당연하게 스켈레톤.

이제 남은 건 누가 선동을 했냐는 것 뿐.

"협회장이 바람 잡고 있는 건 확실해 보이는데······. 협회장이 직접 주도했을까요?"

"그건 아닌 거 같습니다. 협회가 유명무실해지고 사실상 상징성만 남은 지금, 협회장은 별다른 권한도 없는 명예직에 불과하니까요."

"그럼 협회장을 뒤에서 움직이게 할 수 있을 만한 사람은 누가 있습니까?"

그러자 김덕배가 잠시 고민하더니 말했다.

"협회장을 뒤에서 움직일 만한 사람이라 하면··· 솔직히 협회 내부가 아닌 외부 인물이라면 너무 많아서 알 방법이 없습니다. 그만큼 협회는 힘이 없으니까요."

망해가는 협회의 어쩔 수 없는 한계.

"그럼 내부라면?"

"협회 내부라면 만경 실업, 태흥 물산, TAL 인터내셔널. 이렇게 3군데밖에 없습니다."

"어떤 회사들입니까?"

"한국에서 제일 큰 신발 제조사들 입니다. 평균 연 매출은 대략 5천억에서 1조 원 정도 됩니다."

어?

잠깐만.

다 망했다면서 그 정도 중견급 신발 회사가 아직도 협회에 남아 있단 말이야?

그러자 내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바로 알아차린 김덕배가 말했다.

"본사만 한국에 있고 생산 공장은 전부 중국과 동남아에 있는 회사들입니다. 한국 신발 산업이 저물어 갈 때 해외로 진출해 살아남은 회사들이죠."

아아.

이제 이해가 간다.

"이 3개 회사들은 협회에 가장 많은 돈을 납부하는, 이른바 큰손들입니다. 솔직히 눈치 보기용이죠. 말만 한국 기업이지 공장은 전부 해외에 있고, 지분 역시 중국을 비롯한 해외투자자 지분이 절반을 넘으니까요."

"한국 회사입니다, 라고 포장하기 위해 돈 내 가면서 협회원 자격을 유지하고 있다?"

"그렇습니다."

"하지만 어찌 되었든 큰 회사들이라 협회장 움직이는 건 일도 아니니 그 3개 회사가 유력하다는 말이네요?"

"정확히는 그 3개 회사 말고 나머지 협회원은 전부 영세한 회사라 그럴 여력이 전혀 없다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자. 그럼 정리해보자.

가장 확률이 높은 건 협회 내부 관계자인 저 3개 회사 중 하나 혹은 전부.

하지만 외부의 개입 가능성 역시 아예 배제할 수는 없다.

스켈레톤은 사업을 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탐낼 수밖에 없는 존재이니까.

직접 나서기는 부담스러우니 신발 협회를 앞세워 내 반응을 떠보기 위한 술수일 수도 있다는 거다.

"일단 피아 식별부터 합시다. 나는 아군에는 관대해도 적에게는 엄격하거든요. 영세 업체들, 적입니까?"

그 말에 김덕배가 잠시 고민하더니 말했다.

"솔직히 영세 업체들이 스켈레톤을 탐내는 것은 진심일 겁니다."

"그렇겠죠."

"하지만 그 사람들은 그저 협회장과 뒤에 있는 놈들이 바람을 잡은 것에 흔들린 것뿐입니다. 솔직히 저 같아도 그들과 같은 입장이고 스켈레톤을 빌려준다는 언질을 받았다면··· 아마 신나서 환영식으로 뛰어갔을 테니까요."

"오케이. 그 정도는 패스."

단순히 동조했다고 해서 적으로 판단하면 세상에 상대해야 할 적이 너무나도 많다.

아군은 많을수록 좋고 적은 적을수록 좋은 법이니까.

"일단 지금 확실한 건 목표가 스켈레톤이라는 것 밖에 없네요."

정보가 너무 부족해 상대가 누구인지 그리고 목표인 스켈레톤을 어떤 방식으로 얻기 위해 선동을 유도한 건지는 알 수 없는 상황.

하지만 문제 될건 없다.

"그럼 간단하네요."

나는 씨익 웃으며 말했다.

"내부의 3개 회사랑 외부인 전부 다 쳐내버리면 되지."

"예?"

"제가 왜 수익성 좋은 운반형 스켈레톤을 만들다 중단한 줄 아세요?"

"그건 저도 잘······."

"기존에 일하고 있는 사람이 너무나 많아서. 전부 먹어 치우고 다 내 편으로 만들 수 없다면 그냥 안 하는 게 맞다 판단해 그런 거예요."

짐꾼 산업은 덩치가 너무 크고 여전히 성장 중인 산업이기에 세론이 성장하면 성장할수록 생겨날 적이 너무 많았다.

"그런데 신발 산업은 그게 아니잖아요? 이제는 나도 제법 덩치가 커져서 그 정도는 한입에 꿀꺽해도 소화할 수 있을 것 같은데."

반면 여기는 쫄아들 대로 쫄아들어 한입에 꿀꺽하기 딱 좋게 뭉쳐 있는 상태란 말이지.

"···예?"

"영세 업체를 전부 내 편으로 만들어 협회 자체를 내가 장악해 버리면 외부에서 무슨 짓을 하든 아무 소용 없잖아요. 그 다음 내부에 있는 그 3개 회사만 쏙 골라서 뽑아내면 아주 깔끔하게 정리 되겠네."

상대가 무기로 사용한 협회 그 자체를 통째로 내가 빼앗아 오는 거다.

"협회를 장악하시겠다고요? 그냥 깔끔하게 무시하시는 편이 낫지 않겠습니까?"

"설마 제가 그놈들 선동질 하나 때문에 그러겠어요?"

3개의 중견 회사들은 이미지 메이킹을 위해 협회원 자격을 유지해왔다.

그들이 바보라서 그런걸까?

절대 아니다.

하다못해 기자회견 하나를 해도 회사 혼자 나서서 말하는 것과 협회 뒤에 숨어 마치 신발 산업 전체의 의견인 것처럼 포장해 말하는 건 그 파급력 자체가 다른 법이지.

완전히 장악할 수만 있다면 협회가 가진 업계를 대표한다는 상징성을 훌륭한 방패이자 무기로 활용할 수 있다는 말이다.

동시에 스켈레톤과 사람 간의 상생이 가능하다는 걸 보여주는 본보기로 사용할 수도 있고.

즉 들이는 노력 대비 내가 얻는 무형적 이득이 훨씬 크다는 말.

그러자 김덕배가 설마 하는 표정으로 말했다.

"그런데 장악하시겠다는 건··· 영세 업체들에게 스켈레톤을 빌려주시겠다는 말씀이십니까?"

"에이.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를."

빌려주는 건 안 되지.

빌려준다고 해서 잘 운영할지도 의문이고, 무엇보다 세론의 강점을 내 손으로 덜어내는 건 멍청한 짓이다.

게다가 그렇게 스켈레톤을 뿌려서 7천에 달하는 신발 공장 직원들이 전부 실직되면 그 원망은 또 어떻게 하고.

상생의 본보기가 되어야 할 협회인데 실직자가 나오면 곤란하다고.

"내가 미치지 않고서야 스켈레톤을 빌려주겠어요? 그럴 거였으면 이런 식으로 사업 안 했지."

"그럼 어떻게 하시겠다는 말씀이십니까?"

"빌려주는 거랑 비슷한 효과만 내면 될 것 아니에요. 그러니까······."

김덕배에게 내 계획을 말해 주자 김덕배가 환하게 웃으며 말했다.

"아! 그렇게 하면 세론과 협회원 모두 이득을 볼 수 있겠군요! 공장 직원들 고용도 유지될 거고!"

정확히 말하면 협회원들과 그들의 직원 그리고 세론만 이득을 보고 나머지는 손가락만 쪽쪽 빨아야 하는 구조지만 아무튼 협회원에게 이보다 좋은 대안은 없다.

"그렇죠?"

선동질을 한 놈들에게 엿도 먹이고 돈도 벌고 협회도 꿀꺽하고 이거야 말로 일석삼조지.

나는 히죽 웃으며 말했다.

"회칙 적혀 있는 것 있으면 좀 가져와 봐요. 어떻게 먹어야 목 넘김 좋게 한 번에 넘어갈지 보자고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