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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8화. 따스함

128화. 따스함

임유가 손을 멈추었다.

“이제 그만 때릴 겁니까?”

기삭이 웃으며 물었다.

“때리는 것도 힘들어요.”

임유는 퉁명스럽게 대답했지만 속은 여전히 의문투성이였다.

한편 기삭은 화가 난 소녀를 보면서도 이렇게 차분한 적이 없었다.

방금 그녀가 자신의 품에 안긴 것으로 마침내 그녀의 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그 사실은 그에게 힘과 용기를 주었다.

그녀를 바라보며 올라간 입꼬리는 내려갈 줄을 몰랐다.

임유는 마음이 온갖 감정으로 꽉 차서 한참 후에야 겨우 진정할 수 있었다. 그녀는 눈앞의 사람을 흘겨본 다음 시선을 땅바닥으로 떨어뜨렸다.

이런 깊숙한 골목은 늘 어둡고 축축해서 봄추위가 유난히 심하게 느껴지곤 했다.

하지만 임유에겐 더 이상 춥다고 느껴지지 않았다.

“그날 밤, 당신은 어떻게 그곳에 나타났던 거죠?”

“나도 도망치던 중이었어요.”

임유는 자신의 추측이 사실로 확인되자, 다시 물었다.

“왜 도망치고 있었나요?”

잠시 침묵이 흐른 후, 기삭은 그녀에게 한 걸음 다가서더니 두 사람만이 들을 수 있을 정도로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내가 태자를 죽였거든요.”

임유가 눈을 번쩍 들어 속을 알 수 없는 그 눈동자를 마주 봤다.

그 눈동자에는 곧 웃음이 떠올랐다. 숨길 것 없는 데서 오는 시원함과 비밀을 공유하는 기쁨 탓이었다.

“그날은 나에게 행운의 날이었죠. 원수를 갚았고 또 당신과 다시 만났으니까요.”

임유는 순간 상대방의 뜨거운 눈동자를 견디지 못하고 시선을 살짝 돌렸다. 두 뺨에 슬그머니 붉은 노을이 번졌다.

“정말 신기한 일이었네요.”

겨울날 눈 내리는 밤의 어두운 거리에서 우연히 두 사람이 마주쳤다.

게다가…….

임유는 눈을 들어 기삭의 눈을 마주 보다가 문득 어떤 생각이 들었다.

지금 저 사람이 한 말은, 자기가 오래전부터 날 좋아했다는 말인가?

분위기가 분위기인지라 그녀는 빙빙 돌리지 않고 이를 물었다.

기삭도 그녀를 물끄러미 쳐다보며 서슴없이 대답했다.

“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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