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97화. 단념
“주자옥.”
여인의 부드러운 목소리가 귓가를 울렸다.
다만, 부드러움 속에 냉정함과 무심함이 녹아있었다.
아무런 반응도 없던 사내가 갑자기 고개를 들어 여인을 바라보았다.
여인은 얼굴을 유모로 가리고 있었지만, 그가 이 목소리를 모를 리 없었다.
이 지경이 된 그가 누굴 가장 증오할까?
최명월, 그 잡것이 첫 번째요, 눈앞의 이 여인이 두 번째다!
그의 처제는 백운사에서 부인과 함께 돌아오던 그 순간부터 그를 수렁으로 처박아버리는 악귀로 둔갑했다.
주자옥의 눈빛이 흉흉하게 물들었다. 당장이라도 눈앞의 여인을 갈기갈기 찢어버리고 싶은 심정이었다.
하지만, 그 독기는 금세 힘없이 흩어져 버렸다.
주자옥은 다시 고개를 푹 숙이고 멍을 때렸다.
강서는 너울 너머로 거지꼴을 한 사내를 내려다보며 통쾌함을 느꼈다.
한때 촉망받던 서길사가 가문에서 쫓겨난 뒤, 고작 몇 개월 만에 이 모양이 되다니.
주자옥이 조강지처를 죽이고 신분 상승을 꾀하려 했다는 사실이 알려지자, 황제는 직접 벌을 내리고 주 가는 하루아침에 지탄의 대상으로 몰락했다.
그래서 주 씨 일가의 족장은 주자옥을 호적에서 지워버리고 가문에서 내쫓았다.
자신에게 벌어진 일에 충격을 받아 정신이 온전치 못했던 주자옥은 가문에서 쫓겨난 이후, 아예 정신을 놓아버렸다.
어머니가 몰래 그를 보살폈지만, 넋을 놓고 여기저기 뛰어다니는 그를 막을 순 없었다.
“주자옥, 네가 미치지 않았단 것을 안다.”
주자옥의 어깨가 움찔거렸다.
그의 정직한 반응을 보며, 강서는 입꼬리를 말아 웃었다.
온화한 얼굴 속에 부인을 죽일 계획을 세울 악독한 마음이 숨겨져 있었을 줄 누가 알았으랴?
그런 사람이 이렇게 쉽게 미쳤다고?
미친 척 하는 것은 사람들의 시선을 피하기 위한 수작일 뿐이다.
“복수를 하고 싶지 않은가?”
강서가 다시 묻자, 주자옥이 뼈마디가 톡톡 불거져 나온 앙상한 손으로 땅을 긁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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