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9화. 모조품
“어머니.”
남궁월이 바로 임씨에게 말했다.
“월이는 황화로 할게요.”
임씨가 고개를 끄덕였다. 임씨 또한 이 황화란 아이가 괜찮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 외에도 그녀는 자신의 거처에 둘 적절한 나이대의 아이 두 명을 더 골랐고, 아파에게 돈을 가져가라했다.
“월아.”
임씨가 사랑이 담긴 눈으로 딸을 보았다.
“네가 직접 이 아이에게 이름을 지어주겠니?”
시골아이는 이름조차 촌스러웠다. 그래서 여종이 주인에게 속하게 되면 주인은 듣기 좋은 이름을 지어주었다.
남궁월이 살짝 고개를 기울이고 깊게 생각하더니 웃으며 말했다.
“황화. 이제부터 네 이름은 화미(畵眉)다.”
황화, 아니 화미가 급히 인사를 드리며 대답했다.
“이름을 내려 주셔서 감사합니다, 아가씨.”
그때 연랑이 다가와 고했다.
“둘째 부인. 영안당의 화청(花廳) 배치가 끝났습니다. 한번 가서 보시겠습니까?”
소씨의 생신연회는 이만큼 중요했다. 임씨는 당연히 소홀히 할 수 없었기에 바로 일어났는데, 그때 남궁월이 웃으며 제 팔꿈치에 달라붙었다.
“어머니, 월이도 같이 가서 보고 싶어요, 그래도 돼요?”
임씨 또한 딸도 이제 어리지 않으니, 집안일을 관리하는 법을 좀 배워도 되겠다 생각하여 동의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 * *
네 사람은 바로 영안당 옆뜰에 있는 화청으로 향했다.
화청은 이미 새롭게 달라져 있었다. 벽지와 가구는 새로 바뀌어 있었고, 창문의 격자도 먼지 한 톨 없이 깨끗했다.
화병, 향로, 서화 등등 화청을 장식하고 있는 장식품들도 꼼꼼하게 배치되어 있었다.
연랑은 임씨 곁에서 수 년을 함께했기에, 임씨의 취향을 잘 알았고 일처리도 믿을 만했다.
임씨가 한번 쭉 둘러보더니 연이어 고개를 끄덕이며 몇 가지만 배치를 살짝 바꿨다.
남궁월 또한 자세하게 살펴보았다.
어머니가 맡은 일은 아주 중요했기에, 잘만 처리한다면 큰 공을 세우는 거였다. 반대로 제대로 처리를 못한다면 다른 명문세가들 앞에서 체면이 깎여 버리게 되므로, 아마 할머니에게 철저히 미움을 당할 것이었다.
남궁월이 반 정도 둘러봤을 때, 갑자기 그녀의 시선이 벽 모퉁이 바닥에 놓인 큰 화병에 멈추었다.
그녀는 눈썹을 한번 까딱거리고, 곧 아무 내색도 하지 않았다.
‘이 화병…….’
남궁월은 한발 앞으로 가 그 화병에 매우 관심 있는 척했다. 하지만 지금 그녀의 마음은 무거웠다.
‘이거, 아주 심상치 않아.’
임씨가 유심히 딸을 지켜보다가 딸이 이 화병에 관심을 보이자, 그녀의 옆으로 와 웃으며 말했다.
“월이, 넌 이 십나한분채유상채동과낙지화병(十羅漢粉彩釉上彩冬瓜落地花甁)을 처음 보겠구나. 이건 네 증조할아버지께서 전조(前朝) 때부터 보관하신 건데, 아주 오래된 거라 그 값이 엄청나단다.”
남궁월은 아무 일도 없는 것처럼 시치미를 떼고 웃으며, 일부러 아주 들뜬 척 말했다.
“우와, 그럼 월이도 더 자세히 감상해 볼래요.”
남궁월은 아랑곳하지 않고 손가락으로 화병을 쓰다듬고는, 반쯤 눈을 내리 깔며 어두워진 눈빛을 감추었다.
‘뭐지? 이 화병에 발린 유약 색이 좀 이상해. 볼록 튀어나온 배 부분도 정교하지 않고. 그림은 그런 대로 괜찮지만, 좀 덜 구워졌어.’
이전 생에서 그녀는 태자비와 황후 자리에도 올랐었기에, 진귀한 것이라면 못 본 게 없을 정도였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레 보는 안목이 길러져, 이 화병이 모조품이란 걸 단번에 알아챘다.
그녀의 증조부는 명문세가 출신인데다가 재상에도 올랐던 사람인데, 어찌 이런 모조품을 수집할 수 있겠는가?
한마디로, 이 화병은 누군가가 바꿔치기 한 것이다.
‘대체 누구 짓이지?’
저쪽에 있던 임씨가 조금도 눈치채지 못하고 웃으며 남궁월에게 물었다.
“월아, 잘 감상했니?”
“네, 너무너무 예뻐요.”
남궁월은 배시시 웃으며 대답했지만 사실은 조금 걱정이 되었다.
‘어차피 이 화병은 이미 바꿔치기 당했다. 그럼 창고 안에 있는 다른 물품들은 어떻게 됐지? 어머닌 분명 이따 다시 창고에 가서 물품을 가져올 거야. 만약 그때 또 모조품을 갖고 오시게 되면…….’
이 일은 결코 가벼운 일이 아니었다. 그래서 남궁월은 화청(花廳)의 북서쪽 벽 모퉁이를 가리키며 말했다.
“어머니, 월이 생각엔 여기에 하나 더 놓아도 될 거 같아요.”
그녀는 애교를 부리면서 적극적으로 어머니의 일을 도와드리려고 했다.
“어머니, 월이가 직접 창고에 가서 골라도 될까요?”
임씨는 늘 딸에겐 원칙 없이 대했기에, 곧바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그렇게 하렴.”
임씨는 연랑을 보고 남궁월에게 창고의 대패(對牌)를 건네주라는 눈짓을 보냈다.
“아가씨…….”
연랑은 원래 남궁월을 데리고 함께 창고에 갈 생각이었으나, 웬 여종 하나가 자신을 부르며 달려오자 허리를 숙여 남궁월에게 인사를 드리고 바로 물러갔다.
남궁월은 손에 쥔 대패를 쳐다보다가 의매와 함께 영안당을 나갔다. 의매는 남궁월이 창고로 가려는 줄 알았는데, 갑자기 다른 방향으로 가는 걸 알고 말했다.
“아가씨, 여기는…….”
“일단 묵죽원으로 가자.”
남궁월이 그렇게 말하자, 의매도 더는 묻지 않았다.
둘은 함께 묵죽원에 돌아왔다.
남궁월은 방에 들어가 여러 가지 물건들을 챙긴 다음 작아를 불렀다.
* * *
안마당의 창고는 남궁부의 남서쪽에 있었고, 늙은 제(齊) 아낙 혼자 관리하고 있었다.
제 아낙은 원래 소씨의 영안당에서 온 사람이라,, 이런 중요하고도 한가한 일을 담당할 수 있었다.
남궁월이 오자 제 아낙은 놀랐지만, 이내 친절하게 고개를 숙여 인사했다.
“셋째 아가씨를 뵙습니다. 아가씨, 창고엔 무슨 일로 오셨습니까?”
남궁월은 의매에게 대패를 보여주라 지시하고는 차분하고 느긋하게 말했다.
“우리 어머니가 요새 많이 바쁘셔서, 내가 일을 도와드리게 됐거든. 그래서 오늘 직접 화청에 둘 화병 좀 고르러 왔어.”
제 아낙이 대패를 확인하더니, 웃는 얼굴로 공손히 안내했다.
“절 따라오십시오.”
그녀는 열쇠꾸러미를 꺼내 창고 문을 열었다.
오랫동안 햇빛을 받지 못한 창고 안은 음침했지만 눅눅하진 않았다. 은근한 곰팡내가 나자, 남궁월이 미간을 살짝 좁히더니 얼른 손수건을 꺼내 코를 막았다.
“아가씨, 화병은 모두 안쪽에 있습니다.”
이미 창고 구조에 익숙한 제 아낙이 앞서서 그녀들을 인도했다.
남궁월은 일부러 호기심 어린 눈으로 사방을 둘러봤고, 가끔씩 어떤 물건을 가리키며 그 내력(來歷)을 물어보기도 했다.
그러면 제 아낙은 손에 들고 있는 장부를 넘기면서 성심성의껏 대답해 주었다.
창고를 반 정도 살펴본 남궁월의 표정은 평온했지만, 그녀의 마음속엔 이미 거대한 파도가 출렁거리고 있었다.
그녀의 추측이 맞다면, 그 십나한분채유상채동과낙지화병(十羅漢粉彩釉上彩冬瓜落地花甁)뿐만 아니라, 향로 하나와 크고 작은 두 개의 화병 역시 모조품이었다.
두루마리 서화(書畵) 몇 점과 구석에 가려진 물건은 잘 보이지 않아 함부로 확신하긴 어려웠다.
역시 이 일은 아주 성가실 게 분명했다.
보름 뒤면 곧 할머니의 대수(大壽)였기 때문에, 분명 중간에 더 많은 모조품들이 화청에 배치될 것이다.
부(府)에서 일하는 여종과 아낙들은 보는 눈과 식견이 없었기에 당연히 진짠지 가짠지 알아챌 수가 없었다.
하지만 생신연회인 그날엔 분명 많은 권세가 사람들이 올 것이다.
그리고 그중엔 분명 모조품을 알아보는 이가 있을 게 틀림없었다. 이렇게 큰 남궁부에서 마련한 생신연회 자리에 모조품이 섞여 있으면, 이 일은 분명 밖으로 새어나가 온 황도 내 권문세가들의 화젯거리가 될 게 분명했다.
그렇게 되면 본래부터 체면을 중시하던 할머닌 분명 크게 분노하실 거고, 자신의 어머니는 큰 죄를 면하기 어려울 터였다.
남궁월은 생각할수록 점점 등골이 섬뜩했다. 동시에 양 미간이 꿈틀거리고, 마음이 초조해졌다.
‘안 돼!’
그녀는 반드시 이 위기에서 어머니를 구할 방법을 생각해 내야 했다.
‘그런데, 대체 누가 이것들을 바꿔치기 한 걸까?’
남궁월이 제일 처음으로 의심한 사람은 이 창고를 관리하는 제 아낙이었다.
남궁월의 눈이 순간 번뜩거렸다. 그녀는 갑자기 연산운해낙지대화병(煙山雲海落地大花甁) 앞에 멈춰서더니 흡족한 듯 고개를 끄덕였다.
“이 화병, 정말 괜찮은 거 같아.”
제 아낙이 금방 그녀 옆으로 다가와 장부를 넘기며 말했다.
“셋째 아가씨 안목이 정말 대단하십니다. 이건 대감마님의 40세 생신 때, 대감마님의 동년배 어르신께서 선물하신 겁니다. 당시 대감마님께서도 몹시 좋아하셨지요.”
그녀가 말하는 대감마님은 이미 돌아가신 남궁월의 할아버지 남궁호였다.
“그럼 이걸로…….”
그렇게 말하면서, 남궁월이 자연스럽게 그 대형 화병을 손으로 가리키면서 손에 쥐고 있던 손수건을 제 아낙 쪽에 대고 두어 번 털었다.
소량의 백색 분말가루가 공중에 퍼져 제 아낙의 콧구멍 속으로 들어갔고, 그녀가 숨을 들이마시자 곧 혈관으로 진입했다.
“제 아낙, 그럼 지금 바로 사람을 불러서…….”
제 아낙은 처음에 정신을 집중하려 했으나, 점점 정신이 몽롱해지더니 그 자리에 멍하니 넋을 잃은 채로 눈이 살짝 돌아갔다.
“제 아낙?”
그녀가 좀 이상해 보여 의매가 가까이 다가가려 하자, 남궁월이 손을 들어 움직이지 말란 의사를 표했다.
온순한 의매는 그 자리에 바로 멈춰 섰다.
남궁월이 손을 뻗어 제 아낙의 얼굴 앞에 대고 손을 흔들어 보다가, 시험 삼아 질문했다.
“제 아낙, 네 이름이 무엇이냐?”
제 아낙이 들이마신 미혼산(迷魂散)은 남궁월이 특별히 제조한 것이라, 일반적인 미혼산과는 날랐다.
남궁월이 직접 제조한 이 미혼산은 사람의 신경을 마비해 신경을 교란하는 효과가 있었다. 그래서 보통사람이 이 미혼산에 당하면 무슨 질문을 해도 즉시 대답을 했고, 다른 때보다 더 고분고분해졌다.
그리고 정신이 돌아오면 본인도 잘 기억이 안 나서, 자신이 잠시 넋을 잃고 있었다고 생각했다. 단, 아쉬운 건 약의 효력을 반각(*半刻: 약 8분)밖에 유지할 수 없다는 것이다.
“내, 내 원래 본명은 내제(來娣)다. 부에 들어온 뒤 노마님께서 내 이름이 듣기 안 좋다며 내게 지녹(之綠)이란 이름을 지어 주셨다.”
제 아낙은 의식이 몽롱해서, 오랜 세월 말한 적 없던 시골에 살았던 시절의 자기 이름을 토로했다.
그 모습을 본 남궁월은 약의 효력이 제대로 나타나 흡족해했다. 남은 시간이 얼마 없으니 그녀는 얼른 서둘러 계속 질문했다.
“제 아낙. 내가 여기서 모조품 몇 개를 발견했다. 혹시 네가 몰래 바꿨느냐?”
제 아낙이 대답도 하기 전에, 남궁월의 뒤에 서 있던 의매와 작아가 대경실색했다. 그녀들의 눈엔 놀라움과 두려움이 가득했다. 노비가 주인의 물건을 도둑질하는 건 엄청난 중죄였다.
멍한 얼굴을 한 제 아낙의 눈은 여전히 흐리멍덩했다.
“난 아니다.”
“그럼 혹시 누가 그랬는지 아느냐?”
남궁월이 곧바로 되묻자, 제 아낙이 멍하니 대답했다.
“모른다. 내가 창고를 맡은 1년 동안 창고를 연 적은 몇 번밖에 되지 않는다.”
남궁월은 살짝 실망한 눈빛이었다. 제 아낙이 이렇게 말하는 걸로 보아, 분명 그녀의 소행은 아니었다.
미혼산에 걸린 사람은 거짓말을 못한다. 일반인들과는 다른 강한 의지가 있는 사람이 아니고서는 이 약을 이겨 낼 수 있는 이가 없었다. 그러니 제 아낙 같은 이런 보통의 여인들은 더더욱 그럴 리가 없었다.
만약 제 아낙이 아니라면, 제 아낙 앞전의 창고 관리 기록부터 시작해 찾아야했다. 그리고 그때는 그녀들이 황도가 아닌 고향에 있던 시절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