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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화. 추잡한 사건



28화. 추잡한 사건

남궁월이 경칩거에 도착했을 때 다른 자매들은 이미 와 있었고, 소경평만 아직 오지 않았다.

남궁월은 별일 없다는 듯 소경평의 자리를 한번 쳐다보곤 자신의 자리에 앉아 수업 준비를 했다.

남궁림은 남궁옥에게 붙어서 귀찮을 정도로 질문을 쏟아 냈다.

“큰언니, 할머니께서 문안을 받지 않으신다니, 혹시 어디 아프신 건 아닐까요? 큰언니, 저 좀 불안해요. 역시 할머닐 뵈러 가야 할까요? 큰언니…….”

남궁옥은 방여가 수업장에 들어올 때까지 참을성 있게 그녀의 질문에 대답해 주었다.

“아가씨들, 각자 숙제를 꺼내 펼치세요.”

방여의 말이 떨어지자마자 입구에서부터 소경평이 황급하게 들어와 난감해했다.

“죄송합니다, 선생님. 좀 늦었습니다. 사실…….”

하지만 방여는 그녀의 이유를 들을 생각이 없었기에 손을 저었다.

“자리로 가 앉으세요.”

소경평이 창피해하며 입을 다물었다.

반쯤 내리 깐 눈에는 울분이 담겼다가 금세 사라졌다. 그녀는 의기소침하게 자신의 자리로 가 앉았다.

그녀의 머릿속에 아까 영안당에서 있었던 일이 또다시 떠올랐다.

그 시각 그녀는 소씨의 머리를 빗겨 주던 중이었는데, 갑자기 왕 어멈이 들어와, 넷째 나리 남궁정의 통방(*通房: 하녀이자 첩을 겸한 여자) 여종 금아(琴兒)가 회임했다고 고했다.

소씨는 그 자리에서 크게 분노했고, 당장 그 금아와 남궁정을 데려오라 명했다.

그래서 소경평은 이만 물러가겠다며 방에서 나왔지만, 현장을 온전히 뜨지는 않고, 몰래 문발 뒤에 숨어서 그 뒤에 일어난 일을 생생히 목격했다.

그녀는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다 보았다.

금아는 눈물을 머금고 넷째 나리의 명성을 무너뜨리고 싶지 않다며, 기꺼이 낙태약을 복용하겠다고 말했다. 남궁정은 그 말을 듣자마자 기쁜 기색을 보이면서도 안쓰러운 표정을 지었다.

금아는 주저하지 않고 약이 담긴 사발을 들어 단번에 약을 넘겼다. 그러곤 마치 껍질이 벗겨진 것처럼 온 몸이 맥이 빠져 바닥 위로 쓰러졌고, 얼굴엔 처량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

그러자 남궁정은 너무나 감동한 얼굴로 달려가 금아를 품에 안고는 애석한 얼굴로 아프지 않냐며 그녀에게 물었다.

영안당을 나온 후, 육용은 탄식했다.

“넷째 나리 말입니다. 사내다운 분인 줄 알았는데, 이런 사람이신 줄은 정말 몰랐습니다. 저분은 좋은 배필감이 아닙니다!”

그러나 소경평의 생각은 달랐다. 그녀는 한쪽 입꼬리를 올리며, 요 며칠 동안 조사했던 남궁정의 정보를 떠올렸다.

역시 남궁정은 정말 귀가 얇았고, 다루기도 쉬워 보였다. 만약 그에게 빌붙는다면, 소경평 자신도 이 남궁부의 부귀영화를 누릴 수 있을 거란 생각이 들었다.

소경평은 문득 자신의 계모가 떠올랐다.

그 악독한 여인은 아버지조차 그녀에게 온 정신이 팔릴 정도로 푹 빠지게 만들었으니, 사람을 갖고 노는 데엔 아주 능수능란한 여인이었다.

‘만약 나도 똑같이만 한다면…….’

소경평이 속으로 쿡쿡거리며 차갑게 웃기 시작했다. 부귀영화가 곧 눈앞에 당도할 것 같았다. 그녀는 반드시 제대로 된 방법을 강구해 내겠다며 속으로 다짐했다.

* * *

남궁월이 수업을 마치고 묵죽원으로 돌아왔을 때, 작아는 이미 그녀의 방문 밖에서 그녀를 기다리고 있었다.

“아가씨.”

작아가 빠른 걸음으로 다가와 그녀를 맞이했다. 그러자 남궁월이 그녀에게 들어가서 이야기하자는 눈짓을 보냈다.

방에 들어온 뒤, 남궁월이 자리에 앉았다.

“말해 봐.”

자기가 알아 낸 소식을 다시 떠올린 작아의 작은 얼굴이 새빨갛게 달아올랐다. 이내 그녀가 말하기 부끄러운 듯 입을 열었다.

“아가씨, 소인이 알아봤는데요, 오늘 아침 영안당에 들지 못하셨던 이유는 바로 넷째 나리의 여종인 금아가 그, 그…….”

그녀는 말을 하면서도 너무 민망했는지 더 이상 말을 잇지 못했다.

안 유모는 작아가 무슨 말을 하려는지 금방 파악하곤, 그 자리에서 바로 꾸짖었다.

“작아! 그런 말을 어찌 아가씨께 하려는 게냐.”

“유모, 괜찮아. 어쨌든 나도 다 알게 될 텐데, 뭐.”

남궁월이 가만히 앉은 채 의미심장하게 말했다.

“늦게 아는 것보다 일찍 아는 게 낫지.”

그 말을 들은 안 유모는 더 이상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작아는 정신을 가다듬고 계속 말했다.

“넷째 나리의 여종 금아가 아이를 가졌답니다. 그런데 넷째 나리는 금아를 첩으로 들이지 않으신답니다. 만약 나리께서 서출 장자를 낳게 되시면, 나리의 명성에도 해가 되잖습니까? 금아와 넷째 나리의 애정이 워낙 두텁다 보니, 금아는 나리가 그런 오명을 뒤집어쓰시는 걸 두고 볼 수 없었는지, 스스로 자원해서 즉시 낙태약을 복용했답니다.”

드디어 말을 마친 작아는 너무 민망해 죽을 것 같았다. 넷째 나리가 점잖지 못한 분이신 건 알았지만, 이 정도까지인 줄은 몰랐다.

남궁월이 자신도 모르게 피식 비웃음을 날렸다.

“애정이 두텁긴 무슨. 어차피 그 아인 낳을 수 없는 아이었어. 금아가 낳고 싶어 한대도 할머니께서 절대 허락하지 않으실 거야.

만약 금아가 정말로 그 아이를 낳았다 치자. 그건 넷째 숙부의 명성을 깎는 걸 떠나, 남궁가 온 가문의 명예를 더럽히는 일이니, 다른 아버지들께서도 금아를 첩으로 맞으라 하실 거다. 다른 사람이 손을 쓸 때까지 기다리느니, 차라리 지가 먼저 낙태약을 먹었다고 봐야지. 그럼 넷째 숙부의 동정이라도 얻을 수 있으니까 말이야. 금아의 계획대로 됐겠지, 뭐.”

그 둘의 사이를 남궁월이 간단명료하게 분석하자, 안 유모와 의매, 작아는 놀라서 의아한 눈으로 남궁월을 쳐다보았다.

역시 아가씨는 정말 총명하고 지혜롭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홉 살 아이가 하기엔 어려운 추리란 생각은 못했지만 말이다.

남궁월이 눈을 내리깔며 생각했다.

‘금아 걘 역시 아주 대단한 재능을 가졌어. 머리회전도 빠르고, 대담하게 행동할 줄도 알다니. 사람 마음을 어떻게 쥐어 잡아야 하는지 잘 아는 애야. 그러니까 이전 생에서 넷째 숙부가 혼인한 뒤에도 재물복은 다 누리고 살았잖아?’

“아가씨.”

갑자기 작아가 말을 꺼냈다.

“어제 아가씨께서 종고모님에 대해 알아보라고 하신 일이요, 소인이 좀 알아봤습니다.”

‘이렇게나 빨리?’

남궁월이 의외라는 듯 작아를 위아래로 쳐다보곤 말했다.

“그래? 한번 들어보자.”

작아가 호흡을 깊게 들이마시더니 천천히 말을 하기 시작했다.

“소씨 아가씨께선 지금 영안당 옆뜰에 있는 별채에 머물고 계십니다. 집에서부터 측근 여종 하나를 데려왔는데, 이름은 육용이랍니다. 노마님께서 소씨 아가씨께 중급 여종 반하(半夏)를 보내주셨는데, 잠시 동안만 소씨 아가씨의 수발을 들고 있다 합니다.

그래서 어젯밤, 소인이 반하를 찾아가 이것저것 사소한 이야기를 나누다가 들었는데요, 소씨 아가씨에게 불만이 엄청 많았습니다. 소씨 아가씨가 쩨쩨하고 인색한데다가 상금도 많이 안 주시더랍니다. 게다가 측문(側門)의 문지기까지 매수해 바깥출입을 하시는데, 전당 잡힌 물건이 꽤 된답니다.”

작아가 끊임없이 줄줄 정보를 쏟아대도 남궁월은 아무런 동요 하나 없었지만, 속으론 작아가 상당히 마음에 들었다. 이 아이는 정말 쓸 만했다.

작아가 보고를 마치자, 남궁월이 다시 그녀에게 새로운 지시를 내렸다.

“작아, 아주 잘했다. 앞으로도 계속 종고모님을 주시하고, 반하를 매수할 방법을 찾아봐.”

* * *

점심을 먹은 후, 남궁월은 안 유모가 사온 약으로 직접 탕약을 달였다. 그리고 임씨에게 탕약을 주려고 천운원으로 가려는데, 뜻밖에도 임씨가 남궁월을 찾아왔다.

정말로 딸이 자신을 위해 탕약을 달여 주자, 임씨는 감동해 눈시울이 붉어졌다. 그녀는 기대에 가득 찬 눈으로 자신을 쳐다보는 딸 앞에서 탕약을 끝까지 다 마셨다.

그러고 나서야 임씨는 여기에 온 이유를 말하기 시작했다.

“월아, 여기 묵죽원에 여종 자리가 하나 비어 있잖니…….”

원래 남궁부에선 소씨의 생신연회를 위해 새 여종들을 들일 예정이었다. 그러다 임씨는 마침 남궁월의 거처에 여종 자리 하나가 빈 게 생각나, 그 자리를 채워 주고 싶었다.

임씨가 말하는 사이, 유 아주머니는 이미 아파(*牙婆: 인신매매를 업으로 하던 여자)를 데리고 묵죽원 안으로 들어왔다.

아파는 열댓 명의 여자 아이들을 데려왔다. 제일 나이가 많은 아이는 열너댓 살쯤 되어 보였고, 제일 어린 아이는 예닐곱 살쯤 되어 보였다.

넓은 마당에 열댓 명의 여자아이들이 한 줄로 들어와 섰다.

기대에 차 있거나, 딱딱하게 굳어 있거나, 안절부절못하는 등 다들 표정이 제각각이었다. 용모는 다들 괜찮은 편이었다. 최소한 참해 보였고, 중간 중간 눈에 띄는 미모를 가진 고운 아이도 있었다.

관례상 여종은 미모가 너무 특출해서는 안 되었다. 여종의 용모가 주인의 미모를 가리지 않아야 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남궁월은 그런 건 아무래도 상관없었다.

그녀는 이미 이전 생에서 궁중 안 다양한 미인들을 많이 보았었다. 얼굴은 예쁘지만 속은 텅 비거나, 고아하고 순결하거나, 독사 같은 마음을 가졌거나 등등 너무 많은 자들을 봤기에, 용모가 중요한 게 아님을 잘 알았다.

남궁월은 한번 그들을 쭉 살펴보더니, 바로 고르지 않고 의매의 귀에 뭐라고 한마디 속삭였다. 그러자 의매는 곧 그녀들에게 자기소개를 시켰다.

아파에게 끌려와 팔려올 정도니 대다수가 집안이 빈곤했다.

그래서 화아, 춘이, 제이 등 다들 이름도 별로였다. 또한 그녀들은 세상물정을 잘 몰랐다. 그 때문에 대부분 긴장하거나 너무 굳어 있었고, 대답도 더듬거리며 횡설수설해서 무슨 말인지 알아듣기가 어려웠다.

의매는 그중에서 발음이 또렷하고 말을 조리 있게 하며, 목소리도 큰 두세 명을 겨우 어렵게 골랐다. 남궁월과 임씨, 안 유모도 자연스레 그녀들에게 관심이 갔기에 조용히 고개를 끄덕거렸다.

남궁월이 눈여겨본 아이는 황화(黃花)라는 아이였다. 아이는 생김새가 단정했으며 양친을 다 잃은 상태였는데, 계모가 아파에게 팔았다고 했다.

황화라는 아이는 거치적거리는 것 없이 혈혈단신이라, 비교적 쉽게 다룰 수 있었다. 게다가 나이가 이제 겨우 여덟 살이니, 오랫동안 데리고 있는 것도 가능했다.

여기까지 생각을 마친 남궁월이 바로 입을 열었다.

“황화, 이리 가까이 와 보거라.”

황화는 자신은 외모도 별로인 데다 머리도 좋지 않으며, 말솜씨도 뛰어나지 않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런데 이 남궁부의 아가씨가 예상외로 자신을 선택하자 놀랍고도 기뻤고, 조금은 두려워서 조심조심 두 발짝 앞으로 나갔다.

남궁월이 조용히 그녀를 위아래로 훑어보았다. 황화의 눈은 작았지만 아주 맑아서 믿음직해 보였다.

두 눈썹은 새카맣게 짙었고, 피부는 햇볕에 그을려 건강해 보였다. 한편 손가락은 거칠고 투박했는데, 한눈에 보아도 평소 허드렛일을 하다가 그리 된 것으로 보였다. 너무 입어 하얗게 바랜 푸른 옷을 입고 있는 걸 보니, 맑은 정신도 가진 것 같았다.

남궁월이 꼼꼼히 자신의 몸을 훑어보자, 황화는 긴장했지만 침착하려 애쓰며 허리를 꼿꼿이 세우고 조용히 그 자리에 서 있었다.

남궁월이 갑자기 물었다.

“황화, 여기 내 거처가 어떤 것 같아? 계속 머물고 싶어?”

황화가 크게 숨을 들이마시고, 아파에게 배운 대로 예를 갖추며 인사를 드리고 크게 대답했다.

“아가씨, 이곳은 종령육수(*鐘靈毓秀: 좋은 환경에서 우수한 인물이 나옴)인 곳이라고 생각합니다. 소인은 여기에 남고 싶습니다.”

그 말을 들은 남궁월이 흥미롭다는 표정을 지었다.

“방금 종령육수(鐘靈毓秀)라 했지. 혹 글자를 알아?”

이번엔 황화가 생각할 필요도 없다는 듯 바로 입을 열었다.

“소인의 아버지는 생전에 수재(秀才)였습니다. 십수 년을 어렵게 공부하셨지만, 안타깝게도 잘 풀리지 않았지요. 아버지께선 소인이 일자무식으로 살길 원하지 않으셨기에, 생전에 제게 공부를 좀 가르쳐 주셨습니다.”

여기까지 듣자, 남궁월은 더욱 더 이 아이가 맘에 들었다. 요새는 여종을 구하기도 어려웠지만, 글을 아는 아이는 극히 적었다. 게다가 이 황화는 머리를 좀 쓸 줄도 알고, 제 분수를 알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