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화. 풍파 (2)
도씨는 몸을 피하면서 크게 소리를 질렀다.
“여섯째와 일곱째 계집애들이 사람들 앞에서 실수하여 어머니를 창피하게 만든 것인데 왜 저한테 화를 내십니까? 이게 가만히 앉아서 넷째가 잘못했다고 단정 지으시고 아이한테 사과를 강요하는 게 아니면 뭐란 말입니까? 아이를 위해서라고요? 아이는 억울하게 당한 것이 분명한데 무엇이 아이를 위한 일이란 말입니까?”
“이 막돼먹은 계집! 내 혈압 올라 죽는 꼴이 보고 싶은 게냐!”
임 노부인은 며느리를 때리러 쫓아다녔다. 하지만 따라잡지 못해 힘들어하며 숨만 헐떡거렸고 화가 나서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그녀는 남들이 들으면 망신스러울까 봐 차마 더 크게 소란을 피우지는 못했다.
옆에서 조용히 보고 있던 임근음이 상황이 좋지 않자 갑자기 달려들어 임 노부인을 껴안고 그녀 앞에 무릎을 꿇으며 다급하게 말했다.
“할머니, 고정하세요! 어머니께서 고집이 세고 솔직하셔서 말을 예쁘게 못 하시잖아요. 하지만 일부러 할머니께 말대꾸하며 불효를 저지르려 한 건 아닐 거예요. 할머니, 어머니와 이러지 마시고 때리시려거든 손녀를 때리세요!
방금 그 일은 근주랑 근옥이가 무리하게 군 게 맞아요. 본 사람도 많아요. 하지만 할머니 말씀도 틀린 건 아니에요. 넷째가 언니로서 두 여동생들에게 더 양보하고 감쌌어야 해요. 동생이 아직 나이가 어리고 철도 없어서 늘 잘잘못을 가리고 싶어하니 어쩌겠어요. 제가 나중에 잘 타이를게요.”
임 노부인도 사실 허세를 부린 것에 불과했다. 대대로 문인 가문인 임씨 가문에서 지팡이로 며느리를 때리는 일은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그리고 그녀 역시 이 무지막지고 난폭해 뒷일을 전혀 생각 안 하는 셋째 며느리가 생각 없이 사람들 듣게 소리를 크게 지를까 봐 내심 걱정하고 있었다. 그러면 정말로 얼굴을 들기 힘들어질 것이다.
임 노부인은 지팡이를 내려놓고 노기 어린 목소리로 말했다.
“오늘이 내 생일이라 밖에 손님도 있고 체면도 생각해야 하니 너희 친정과 셋째 얼굴을 봐서 여기까지만 하마! 다음번에는 국물도 없을 줄 알아라!”
그러더니 노기등등하게 지팡이를 짚으며 밖으로 나가버렸다.
‘빌어먹을 것들, 어찌 사람을 이리 괴롭힌단 말인가! 이 임씨 일가는 늙은 것 어린 것 할 것 없이 좋은 인간이 하나도 없구나!’
도씨는 분노로 얼굴이 창백해졌고 온몸이 부들부들 떨렸다. 그녀는 책상을 붙잡고 씨근거리며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임근음이 깜짝 놀라 도씨를 부축하며 그녀의 가슴을 쓸어내렸다.
“어머니, 화내지 마세요. 그럴 가치도 없어요. 아시잖아요.”
도씨는 앞섶을 꽉 쥐고 필사적으로 입술을 깨물며 눈물을 참았다. 그녀는 한참 뒤에 작은 소리로 말했다.
“이 어미가 참으로 쓸모없지 않느냐? 너희들이 아무 잘못도 없이 이리 모욕을 당했는데 책임마저 지게 하다니.”
임근음은 절로 마음이 아팠다. 어머니의 격렬하고 충동적인 성격 때문에 그들 남매는 어릴 때부터 알게 모르게 억울한 일을 많이 당했다.
어렸을 때는 철이 없어서 이런 일들을 자주 어머니에게 일러바쳤다. 이로 인해 어머니가 한바탕 난리를 치고 나면 당시에는 복수를 한 것 같았지만 나중에 눈에 보이지 않는 말 못 할 손해를 보는 경우가 더 많았다.
그래서 조금 철이 든 후부터는 억울한 일이 있어도 더 큰 문제가 생길까 두려워 감히 어머니에게 말을 할 수가 없었다.
임근음은 어머니의 물음에 오히려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그녀의 어머니는 정말 온 힘을 다해 자식들을 보호하고 있었다. 도씨가 그러지 않았다면 그녀는 아마 육씨 가문의 장손인 육소(陆绍)에게 시집을 가게 되었을 것이다. 어릴 때부터 그녀에게 잘해줬던 도봉당과 그녀가 어찌 혼인을 약속 할 수 있었겠는가?
이런 생각을 하자 임근음은 목이 메었다.
“제가 쓸모가 없는 거지요. 이제 나이도 먹었으니 어머니의 걱정을 좀 덜어드렸어야 했는데 그러지 못했어요. 좀 전에 제가 넷째와 일곱째를 못 나가게 했으면 이런 일은 없었을 거예요.”
도씨가 살짝 고개를 저으며 침착하게 말했다.
“아니야, 너나 네 동생들 잘못이 아니란다. 다 이 어미랑 아비가 무력한 탓이지! 나도 큰 형님이나 작은 형님처럼 처신해야 한다는 걸 알고 있단다. 하지만 이 어미는 그렇게 참을 수도 이런 수모를 도저히 그냥 넘어갈 수도 없구나.
이 어미는 인생의 모든 기대를 너희들에게 걸고 있어. 너희 자매가 내 성격을 닮으면 앞으로 시집가서 고생할까 봐 유순하게 가르치려고 노력했단다……. 근음아, 너도 앞으로 도씨 가문에 시집갈 거잖니. 그분들이 다 네 친 외숙부, 친 외숙모이고 봉당이 그 아이도 충직하고 온화한 녀석이긴 하다만 너도 제멋대로 굴어서는 안 된단다!”
임근음은 눈물을 참으며 간신히 대답했다. 그런데 도씨가 갑자기 웃음을 터뜨렸다.
“이러나저러나 오늘 넷째가 일곱째를 위해 나섰다니 이 어미는 정말 기쁘구나. 너도 잘 봐두거라. 일곱째가 괴롭힘당하는 걸 보고도 아무것도 못 하고 가만히 있었으면 이 어미는 정말 실망했을 거야.
아까 깜짝 놀랐지? 근데 무서워할 것 없어. 난 네 할머니가 정말로 때리지는 못할 거라고 확신하고 있었단다. 그리 체면을 생각하시는 분이니 진짜로 날 때리면 동네방네 소문을 내서 더 체면을 상하게 만들어 주면 그만 아니냐! 너희 아비는 무력한 사람이지만 이 어미는 그런 겁쟁이가 아니야!”
게다가 그녀에게는 또 다른 부적이 하나 있었다. 그녀는 무의식적으로 아랫배를 쓰다듬었다.
정말로 상황이 불리해지면 그녀는 자신이 임신한 몸이라고 소리칠 생각이었다. 그럼 아무리 편애가 심한 노부인이라도 그녀를 감히 어찌 하겠는가?
도씨가 이렇게 장소를 불문하고 무지막지하게 구는 것도 다 남들에게 핍박을 받아서 그런 거라는 걸 사람들이 알기나 할까?
그게 아니면 어느 멀쩡한 대갓집 규수가 숙녀가 아니라 무지막지한 여자가 되길 자처하겠는가?
임근음은 한숨을 쉬며 걱정스러운 눈길로 창밖을 바라보았다.
‘맞아. 외숙모와 사촌 오라버니가 밖에서 손님들을 접대하고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할머니는 정말 어머니를 어떻게 하지는 못하셨을 거야.’
그러나 임근용은 이번에 정말 운이 없었다. 할머니는 분명 그 아이를 혼내 어머니의 기를 꺾으려 할 것이고, 차남가도 아마 기회를 봐서 괴롭히고 보복하려할 것이다.
하지만 어머니의 말도 옳았다. 임근용이 임신지를 위해 나선 건 정말 잘한 일이었다.
유순한 것은 좋지만, 그저 유순하기만 한 건 좋다고 할 수 없었다.
* * *
황 이낭은 대나무숲 바깥쪽에서 임근용 남매 두 사람을 만났다. 두 남매의 꼴을 보니 방금 춘아가 한 말이 전부 사실이라는 걸 알 수 있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뭘 어쩌겠는가? 그녀는 그저 임근용 남매를 좀 위로하고 임근음의 의견을 완곡하게 전달해 주는 수밖에 없었다.
“지금 손님이 많은데 여섯째와 일곱째 아가씨가 사람들 앞에서 소란을 피우는 바람에 노부인께서 벌써 체면이 많이 상하셨어요. 셋째 아가씨가 넷째 아가씨한테 일곱째 공자를 데리고 가서 좀 씻기는 게 좋겠다고 전하라 하시네요. 따로 부르지 않으면 올 필요 없다고 했어요.”
역시 예상대로 쌍둥이는 결코 그냥 넘어가지 않았다. 하지만 임근용도 이렇게 피해 가면 그만이었다. 나중에 또 은근히 괴롭힌다 하더라도 그녀 역시 쉽사리 당해주지는 않을 생각이었다.
그녀가 황 이낭를 향해 웃으며 말했다.
“알려줘서 고마워. 그럼 난 신지를 데리고 가 볼게.”
그리고 또 물었다.
“우리 어머니께서 화나신 건 아니겠지?”
황 이낭이 웃는 듯 마는 듯하며 말했다.
“도 부인과 셋째 아가씨가 보고 계시잖아요. 부인께서 불쾌해하시긴 하셨지만 그래도 일의 경중은 아는 분이시니까요. 더구나 노부인께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시는 게 바로 체면인걸요.”
임근용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녀는 황 이낭이 대나무 숲 쪽을 쳐다보는 것을 보고 말했다.
“역지 오라버니는 아버지를 뵈러 가서 안에 없어. 오라버니를 찾으려면 사람을 불러 아래층으로 내려가 봐.”
황 이낭이 웃으며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역지가 겁이 많은 데다 신분도 비천하니 아무래도…….”
그녀가 일부러 한 수 아래로 접으며 말한 이유는 임역지가 또 무슨 잘못을 했을까 염려되어 미리 사과하기 쉽게 포석을 깐 것이었다.
임근용이 그녀의 말을 끊었다.
“다섯째 오라버니는 괜찮아. 아버지께 이 사실을 알리러 갔어. 이낭은 편할 대로 해. 나도 이제 가볼게.”
황 이낭은 아들이 이런 일이 있을 때 삼노야를 찾아 처리를 맡겨야 한다는 걸 알고 있는 걸 보니 그리 멍청하지는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일의 결과가 어떻게 될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자기들 두 모자의 태도는 명확해서 앞으로 무슨 문제가 생긴다 해도 그것이 자신들의 잘못으로 돌아오지는 않을 것 같았다.
황 이낭은 싱글벙글하며 비파를 데리고 위층으로 올라가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잘못을 한 쌍둥이가 먼저 고자질을 했지만 그 이후의 상황은 그녀들이 의도한 대로 진행되지는 않았다.
임근용이 경험한 바에 따르면 노부인은 예쁜 짓을 할 줄도 모르고 남의 함정에 잘 걸려드는 도씨가 피해 보는 걸 당연하게 생각했다. 그리고 제멋대로 굴어도 교태를 부리는 라씨를 편애했기 때문에 이번에도 예외는 아닐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임근용은 자리에 서서 고개를 숙이고 임신지에게 물었다.
“들었니? 네 여섯째와 일곱째 누나가 우리가 육륜 공자와 합심해서 자기들을 괴롭혔다고 일러바쳤어. 육륜 오라버니는 호의로 우리를 도와주었지만 이것 때문에 아마 자기 어머니한테 벌을 받게 될 거야. 사람이라면 마땅히 의리를 지켜야 하고, 우리도 괜히 남을 억울하게 만들어서는 안 되지. 넌 어떻게 했으면 좋겠어?”
임신지가 손가락을 꼬며 말했다.
“넷째 누나는 어떻게 했으면 좋겠는데?”
임근용이 가볍게 몇 마디 했다.
임신지는 조금 두려운지 발끝으로 흙을 문질렀다.
“정말 그렇게 하면 돼? 난 할아버지랑 아버지가 무섭단 말이야.”
“넌 그분들의 적손이고 우리들 중에서 제일 막내야. 이렇게 말도 잘 듣고 지금껏 사고를 친 적도 없잖아. 그분들도 사실 널 좋아하셔. 너한테 말을 안 하실 뿐이지.”
임근용이 그를 격려하며 말했다.
“내가 밖에서 보고 있을게. 혹시라도 네가 벌을 받게 되면 내가 제일 먼저 나서서 널 구할 거야. 약속해.”
그녀가 좀 전에 자신을 보호했던 모습이 임신지의 머릿속에 깊이 각인되어 있었다. 그는 임근용의 약속을 받고 고개를 끄덕였다.
“응, 누나 말 들을게.”
임근용이 미소를 지으며 그의 머리를 쓰다듬고 여지에게 낮은 목소리로 지시했다.
“어서 가서 축하용 복숭아 한 접시만 가져와서 일곱째 공자한테 줘.”
여지는 임신지의 몸이 더러운 것을 보고 걱정스러워하며 말했다.
“이렇게 더러운데 괜찮을까요?”
임근용이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어쨌든 한 번 시도해 봐야지.”
기왕 하기로 마음먹은 이상 하지 않으면 나중에 분명 후회할 것 같았다.
게다가 임신지도 언제까지나 이렇게 순종적으로 남들 뒤에 숨어 어른들 앞에서 허리도 못 펴고 있으면 곤란했다.
남에게 괴롭힘을 당하면 반격하고 대책을 강구할 줄도 알아야 한다. 그녀 역시 지금 배우는 중이었고 임신지에게도 가르쳐주고 싶었다.
임신지의 작은 몸이 복숭아 한 접시를 들고 혼자 1층으로 들어가는 것을 보고 임근용은 가슴이 두근거려 손바닥과 발바닥에서 식은땀이 흘러 나왔다.
이 집안에서 임 노부인과 차남가에 대항할 수 있는 사람은 임 노태야 밖에 없었다.
그는 가족 중 가장 높은 지위에 있으면서 가족 내에서 항렬과 신분의 존비를 거스르는 것을 절대로 용납하지 않았다. 손녀 역시 감히 손자와 동등하게 논할 수 없을 정도로 아주 엄격하고 냉정한 고집불통이었다. 하지만 이럴 때는 그런 그가 가장 굳세고 든든한 방패가 되어 줄 수 있었다.
“네 생각도 나쁘진 않지만, 신지가 너무 어린데 도와줄 사람이 없다는 게 변수가 될 수도 있어.”
임근용 뒤에 서 있던 누군가가 갑자기 낮은 목소리로 한마디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