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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 * *

범인(凡人)들이 일을 하고 있다.

목공 일을 하는 이도, 세공을 하는 이도, 대장장이를 하는 이도 있다.

농사를 짓는 이도 있었으며, 약초를 캐는 이들도 있었다.

진씨세가의 영지에서 일을 하는 범인들이었다.

그들은 하나같이 고되 보였지만, 특별히 학대를 받거나 고통스러운 일은 없어보였다.

하기사 수도가문의 영지에서 일한다면 영지 바깥의 국가들이 흉년을 입든 말든 상관없이 늘 꾸준하게 풍족하게 지낼 수 있으니.

그들에게도 나쁜 일은 아니었다.

물론 막리세가 같은 마도가문 밑에서 일하는 이들이라면 조금 사정이 다르겠지만.

나는 영지에 도착하고 나서, 영지 곳곳을 탐색할 수 없게 정해진 길로만 다닐 것을 통보받았으며.

의식에 약한 금제를 당하였다.

나는 김영훈과 진가 감시인의 안내를 받으며, 내가 아는 얼굴들을 찾기 시작했다.

"...다들, 많이 컸군."

몇년 전에 영지에 잠입했을 당시에는 수련생 신분의 소년소녀들이었지만.

지금은 하나같이 청년의 모습을 하고 있었다.

"청야는 의원직을 하고 있나보군."

지난 삶에서도 내 밑에서 암기술과 독술을 배우더니, 그런 쪽이 적성에 맞는 모양이었다.

"희아는 베를 짜고 있고... 하하, 안 그래도 고운 손이었는데 무기를 드는 것보다 낫구나."

"열오는 나무를 하나 보군. 훨씬 잘 어울리는구나."

"대현은 목수인가."

"그리고..."

나는 지난 삶의 제자들을 찾아다니며, 그들이 무얼 하는지를 살펴보았다.

다행히 그들 모두 건강히 살아있으며, 암살훈련 같은 고되고 적성에도 맞지 않던 일이 아닌.

각자 적성에 맞는 일을 하며 지내는 듯 했다.

내가 장성한 청년이 된 지난 삶의 제자들을 둘러볼 때였다.

감시역인 연기기 수도자가 나를 보며 물었다.

"지인의 자식들을 보러 왔다 하더니만... 아무에게도 말을 건진 않소?"

"그러게 말이다. 한번 말이라도 걸어보지 그러냐."

김영훈 역시 이런 내가 의아한지 물어왔고, 나는 작게 웃음을 지었다.

"...그럼 다음 사람에게는 말을 걸어 보지요."

다음에 찾아간 것은 녹현이었다.

처음으로 내게서 달아나 감히 제멋대로 황제를 죽이겠다고 했던 녀석.

그리고, 가장 먼저 죽었던 멍청한 제자.

"...저기가 녹현의 집인가."

나는 녹현의 집으로 가 그가 무얼 하는지 보았다.

현이의 집에서는 나무 냄새가 났으며, 그는 작은 공방 안에서 뭔가를 깎고 있었다.

'녹현도 목수인가 보군. 뭔갈 조각하고 있는 건가.'

내가 빼꼼 그의 공방 안을 들여다보자, 그가 무엇을 조각하고 있는지가 보였다.

녀석은 한 쌍의 가족들을 조각하고 있었다.

부모님과 형제자매가 행복하게 둘러앉은 조각상이었고, 그 가운데에는 녹현 자신이 조각되어 있었다.

막리세가에게 죽은 녀석의 부모와 형제자매인 것 같았다.

자세히 보니, 녀석의 공방에는 그 비슷한 가족의 조각들이 수도없이 많았다.

나는 소리없이 그 조각들을 둘러보았다.

그러던 중, 녹현이 공방에 드리운 내 그림자를 보았는지, 흠칫 놀라며 나를 쳐다보았다.

"...누구십니까?"

나는 수도자와 김영훈에게 눈짓을 보내 혼자 대화하게 해달라 하였고, 둘은 고개를 끄덕이더니 자리에서 멀어졌다.

"네... 아니. 자네의 가족인가..? 아니, 가족이오?"

"...? 맞습니다만."

"하고 있는 일은 적성에 잘 맞소?"

"그렇습니다만, 어디서 오신 누구신지..."

그는 내가 입은 고급스러운 청문세가의 칠흑색 장포를 보며 조심스레 물었다.

"...그냥, 지나가던 사람이오."

"아, 그러시군요."

물론 녹현의 눈빛은 전혀 납득하지 못한 듯.

경계심을 품은 기색이 보였다.

"그래서 어인 일로 오셨는지..?"

"...부모님을 그리워하는 모양이오."

"...그렇습니다. 아무래도... 제가 어릴 때에 돌아가셨으니까요. 사무치게 그리워 가끔 이러고 있습니다."

"부모님을 못 보게 된 것에, 가슴에 응어리진 것이 있소..?"

"응어리야 졌지요. 부모님은, 막리세가라는 이들의 손에 살해당했습니다. 제 눈 앞에서요. 가끔 그 기억이 떠오르고, 가끔은 치가 떨립니다."

"듣기로 자네는 부모님의 원수를 갚기 위해 암살훈련을 받았다 하는데. 혹 원수를 직접 갚지 못한 것에 대해 어떤 감정은 없소?"

내 말을 듣자, 그는 내가 수도가문 관련자라 생각했는지 더욱 더 공손한 태도로 대답하였다.

"...사실, 저희가 고된 훈련을 마친 다음날. 저희 훈련장에 저희의 원수라던 황제 막리정의 수급이 놓여있더군요. 당시에는 그게 누구의 목인지 몰랐지만, 알게되고 나니, 그래도 조금은, 응어리가 풀렸습니다. 물론 감정이 다 해결되지는 못했지만...

고통스러울 정도는 아닙니다."

"...그렇구려. 다행이오."

"한데 대인. 혹 누구신지 여쭤보아도 폐가 아닐런지요..."

"그냥, 진씨세가의 손님이오."

"아, 그렇군요. 죄송합니다. 자리가 이래서 마땅히 대접할 것이 없어..."

"됐소. 나는 가 보겠소."

나는 나를 대접하려는 녹현을 뒤로하고, 그의 집에서 나왔다.

'잘 지내는구나.'

다행이다.

그러나 동시에, 나는 가슴이 울렁거리는 듯 했다.

역시, 저 녀석은 내 제자가 아니었다.

내 제자들은, 이미 다른 시간선에 있었다.

"..."

퍽, 퍽!

나는 가슴을 두들겨 울렁이는 기분을 억지로 안쪽으로 집어넣었다.

그리고 나는 마지막 집을 보러 갔다.

제자들의 대표였던, 만호의 집이었다.

'오며가며, 만호에 대해선 재밌는 소문을 들었는데...'

만호의 집에 가까이 가자.

집 안쪽에서 한 여성이 뒤뚱거리며 걸어나왔다.

그녀의 배는 불룩 불러있으며, 그 안쪽에서 생명의 기운이 태동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녀의 얼굴은 내가 익히 아는 얼굴이었다.

'계화로군... 만호 녀석, 결국 성공했구나.'

그녀는 나와서 빨래를 장대에 널고 있었다.

그러던 중, 저 멀리서 만호가 달려와, 기척을 죽이고 있는 나를 지나쳐 그녀에게 달려갔다.

"여보오오! 내가 감 구해왔어! 감 먹고 싶다고 했지!"

"아이고, 시끄러 이 양반아! 애 놀라면 어쩌려 그래! 그리고 이게 뭐야, 옷 찢어졌잖아! 저번에 꿰매준건데 또 찢어먹어!"

"미, 미안 여보."

"어휴 내가 못 살아 정말..."

잠시 만호에게 잔소리를 하던 계화는 문득 배를 부여잡고 마루에 걸터앉았다.

"어머, 이것 봐. 애가 찬다."

"저, 정말?"

"그래, 들어봐."

오기조원에 든 내 감각에, 그녀의 뱃속에서 발을 걷어차는 생명의 소리가 똑똑히 들려왔다.

만호는 싱글벙글한 표정으로 계화의 배에 귀를 대고 웃었다.

문득, 나는 그 모습을 보며 내가 울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아, 그래.

너희에게도 이런 가능성이 있었구나.

고된 훈련을 하고, 전신을 피에 물들이며, 죽은 가족들의 귀곡성과 원한을 듣는 삶이 아닌.

그냥, 서로 하고자 하는 것을 하며.

새로운 삶을 살아갈, 그런 가능성이 있었구나.

"...끅, 끄윽..."

억지로 가슴 속에 집어넣은 감정이 결국 조금씩 터져나왔다.

너무나 기쁘다.

이 아이들이 커서, 이런 삶을 살 수가 있다는 것이.

동시에 너무나 슬프다.

이 아이들은, 내 제자가 아니라는 사실이. 나와는 이제 아무 관계도 아니라는 사실이.

나와 관계가 있던 아이들은, 이 아이들이 아닌.

내가 피와 죽음만을 가르쳤던, 그래야만 했던.

다른 시간선에 있는 아이들이란 사실이.

지난 삶과는 너무나도 달라진 이들의 모습에, 나는 기쁘면서도 역설적으로 다시는 그들을 볼 수는 없다는 것에 너무나도 고통스러웠다.

이것이 회귀의 실체이다.

나는 어떤 인연을 맺든, 그 모든 인연은 전부 사라지며 다른 시간선으로 가 없어져 버린다.

내가 똑같은 이들과 인연을 아무리 맺는다 한들, 매 회차의 모든 인물들은 사실 모두 생긴 것만 똑같은 전부 다른 인물일 뿐이었다.

1, 2회차의 김영훈을 '영훈 형님'이라고 불렀던 것과 달리.

다른 회차에서는 '김 형'으로 짧게 호칭하는 것 역시 이런 이유였다.

물론 완전히 같은 인물이기에, 완전히 호칭을 정리할 수는 없어 급박한 상황이나 의식하지 않을 때는 영훈 형님이라는 호칭도 튀어나왔지만.

그는 어찌되었든 지난 회차의 인물과는 명백히 다른 인물인 것이었다.

그리고, 그와 마찬가지로 제자들도 같았다.

인연을 정의하는 것은 인연 속에서 함께 보낸 시간이다.

이들은 나와 같은 시간을 보낸, 내 제자들이 아닌.

완전히 다른 사람이었다.

이번 삶의 첫날.

이미 지난 삶의 기억들은 가슴 속에 묻었다 생각했다.

하지만 어찌 인간의 감정이 단순히 묻어지겠는가.

이미, 이 아이들을 가르쳤던 기억과 감정은, 그 시간은 내 삶의 일부가 된 채였다.

"...미안하구나."

내 지난 삶의 제자들아. 이런 가능성을 꿈꾸지 못하게 해 주어, 너무나도 미안하다.

"그리고, 고맙다."

이번 삶의 아이들아.

이렇게 살아주어, 너무나도 고맙다.

감정이 격해짐에 따라, 자연스레 시전하던 월수궁무록이 어느새 풀렸는지.

문득 계화가 나를 발견하고 흠칫 놀랐다.

"...어머, 저 분은 누구셔?"

"어, 어? 그러게... 울고 계시네."

나는 눈물을 닦으며, 둘에게 웃음을 지어보였다.

"...죄송하오. 둘을 보니, 아는 사람들이 생각나서 그랬소. ...소중한 사람들이었는데, 이제 다시는 볼 수 없게 되었다오."

"저런... 사실 저희도 비슷한 아픔이 있습니다만. 혹 괜찮으시면 들어오셔 차라도 한 잔 하심이..."

"괜찮소. 가정이 화평한 모습이 어떤 차보다 향기롭구려. 부디 백년해로하시길 바라겠소."

나는 말을 마치고, 둘에게 인사를 한 후 월수궁무록을 사용했다.

둘은 내가 갑자기 허깨비처럼 사라지자 놀랐는지 주변을 둘러보다가, 이내 내가 어느 수도자라 생각했는지 납득하는 모습이었다.

"...다 만났느냐."

"...예. 만날 이들은 모두 만났습니다."

나는 그와 눈을 마주치지 않으며, 하늘을 바라보았다.

오늘로서, 내 결심은 더더욱 굳어졌다.

이 회귀에서 벗어날 것이다.

그리고 그러기 위하여, 더더욱 경지를 높여갈 것이다.

내 삶이 시간의 장난에 부정당하지 않기 위하여.

며칠 후.

진씨세가에 온 사절들이 돌아갈 때가 되었고.

나는 김영훈과 작별을 한 후, 청문세가로 돌아갔다.

그리고 청문세가의 가주를 뵈어 작게 인사를 한 후.

상당한 주요인력으로 배정이 되어, 청문세가 본가(本家)에서 머무르는 것이 허락되었다.

나는 이후 청문벽의 소개를 받아, 청문령이라는 축기기 장로의 제자로 들어가게 되었다.

그의 앞에서 제자의 예를 취하며, 나는 다짐했다.

이 온 몸이 부숴지는 한이 있더라도.

어떤 일이 있더라도, 반드시 더 높은 곳으로 향할 것이다!!!

연기기(練氣氣)(4)

"흠, 네가 그 오기조원의 무림인이라는 녀석이냐?"

청문령은, 나를 처음 만나고는 콧웃음을 쳤다.

"무림인들은 하나같이 다들 비슷비슷하지. 무식한 놈들이 대다수야. 네가 감히 내가 연구하는 진언과 법결들에 대한 이해를 따라올수나 있을지 모르겠다."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최선은 무슨. 사람은 죄다 타고난 주제란 게 있다. 네 주제를 잘 알고 적당히 처신해라. 난 딱히 제자 같은 건 필요 없다만, 네가 진씨세가에서 청문세가의 체면치레를 했다고 가주님께서 명하시니 어쩔 수 없이 받은 것 뿐이다."

그는 짜증스러운 표정으로 내게 책자를 한 권 던져주었다.

"연기기 1성. 칠십이지살의 단계에 있는 모양인데. 거기에 활성화한 영맥도 지괴영맥 하나밖에 없는 모양이고. 난 너 같은 모지리는 제대로 가르칠 생각 없으니, 거기 적힌 거나 보고 익혀라."

책자의 제목은 칠십이지살령언해(七十二地煞令言解)였다.

청문령(淸汶令)의 이름이 들어간 것으로 보아 그가 직접 작성한 칠십이지살진언의 깨달음들이 적혀있는 듯 했다.

책자를 던져준 청문령은 콧김을 내뿜으며 자신의 방으로 들어가 버렸고, 내게 경고를 주었다.

"참고로 말한다만, 네 녀석은 내가 방 안에 있을때는 절대 들어올 생각을 하지 말고, 밖에서 말하거라. 네놈의 얼굴을 보기도 귀찮으니!"

나는 짜증스럽게 경고하는 그에게 인사를 한 후 내 방으로 돌아가 책자를 읽었다.

비록 내 성취는 연기기 1성이었지만, 내 순수 전력은 연기기 14성 이상, 축기기 이하라는 사실이 알려진 터라.

내게 지원되는 수도자원들 역시 상당히 많아졌다.

한 달에 영석 30개를 지원받을 수 있었고, 청문세가 본가의 영맥을 활용할 수도 있다고 하였다.

동시에 청문세가 본가의 서고 중 하급서고(下級書庫)를 이용할 권한도 생겼다.

거기에 내가 해야 하는 필수임무 역시, 한 달의 네 번이 아닌 한 달에 한번으로 줄었다.

물론 그만큼 임무의 난이도가 높아졌지만, 충분히 감당할만한 것들이었다.

나는 임무를 수행하여 공적치와 시간을 번 후.

방에 틀어박혀, 청문령이 준 칠십이지살령언해를 끊임없이 들여다보았다.

동시에, 끊임없이 칠십이지살진언을 외고, 수결 맺는 연습을 하였다.

간혹 답답할 때는 연국으로 건너가 김영훈에게 연락을 넣어 그와 무의 깨달음을 겨뤘고,

끊임없이 진언을 외고, 수결을 맺으며, 공법을 수행했다.

그렇게 5년이 흘렀다.

* * *

'연기기 1성... 그 절반에 올랐다.'

칠십이지살진언 중 서른 여덟개를 깨치고, 서른 여덟 영맥을 활성화시켰다.

심지어 이조차 끊임없이 영석을 사용하며, 청문세가 본가의 용맥을 활용하며, 칠십이지살령언해를 보며 청문령에게 가르침을 받은 결과였다.

"...스승님. 지리성(地理星)의 진언이 뜻하는 바가 잘 이해되지 않습니다."

"이런 멍청한 놈! 칠십이지살령언해까지 줬건만, 아직도 그조차 못 깨닫는 거냐! 이 아둔하고 속 터지는 놈 같으니!"

내가 방문 바깥에서 청문령에게 가르침을 청하자, 청문령은 욕설을 한 바가지로 내뱉으며 한동안 내게 잔소리를 하였다.

그러나 잔소리가 끝난 후, 청문령은 결국 내게 진언의 뜻을 풀어서 설명해주고, 자신의 주석을 알려주었다.

처음 1년 동안에는 아예 내가 물어도 답조차 해주지 않았다.

하지만 내가 포기하지 않고, 아침부터 밤까지 그의 방문 앞에 앉아 가르침을 청하기를 일 년.

그는 결국 이를 부득부득 갈며, 나를 독한 놈이라 부르고는 욕설을 하면서도 내게 가르침을 주기 시작했다.

"...그러한 것이, 지리진언에 대한 내 해석이다. 이제 됐느냐? 이 아둔하고 독하기만 한 놈! 내 가주님의 명이 아니었다면 네놈을 진즉 일수에 쳐죽였을 것이야!"

"제자, 스승님의 가르침에 감사드립니다. 물러가겠습니다."

나는 방문 너머에서 욕을 내뱉는 청문령에게 읍을 한 후, 다시 내 방으로 돌아가 진언을 읊고, 연구했다.

다른 청문세가의 자제들이 벽라국을 관광다닐 때에도.

다른 이들이 잠자며 쉴 때에도.

다른 이들이 서로 교류하며 즐겁게 지낼 때에도.

나는 아침부터 밤까지 쉬지 않고 칠십이지살진언을 외고, 수결을 맺으며 깨달음을 갈구했다.

어느 날은 목이 말라 찻잔을 집었더니, 찻잔이 그대로 미끌어진 날도 있었다.

다행히 내 반응속도로 빠르게 다시 잡아 깨뜨리진 않았지만, 나는 왜 찻잔이 미끄러졌는지 알 수 있었다.

내 지문(指紋)이 지워진 것이었다.

수결(手結)을 매분, 매초, 매순간 쉬지않고 맺어댄 탓이었다.

밥 먹을 때조차 속으로 진언을 읊고 칠십이지살령언해를 볼 정도였으니.

물론 진언을 읊으면서도 나는 무공 역시 끊임없이 닦았다.

부웅, 붕, 붕!

검이 허공을 난다.

내가 잡고 휘두르는 것이 아닌, 그저 허공을 알아서 유영하며 날 뿐이었다.

월수월무록으로 이기어검을 사용하게 된 이후.

나는 끊임없이 월수월무록을 운용하며, 진언을 읊고 수결을 맺는 와중에도, 방 안에서 의식으로 검을 조종했다.

의식을 떼어내고, 의념으로 검에 행동을 입력하는 일도 익숙해지자, 이제 내 어검은 살아있는 것처럼 썩 자연스러워 졌다.

하지만, 아직도 오기조원은 넓고도 깊은 경지였으며.

나는 아직도 연기기 1성이었다.

* * *

하루는, 십주야간 연속으로 쉬지도 않고 이기어검과 칠십이지살진언, 그리고 수결을 맺어댄 탓인지.

손에서 피가 흘렀다.

말 그대로, 수결을 맺고, 맺고, 또 맺다 보니 살갗이 까진 것이었다.

그러나 나는 아랑곳하지 않고 피가 난채로 계속 수결을 맺고 진언을 읊었다.

그래, 어찌 보면 '이제야' 피가 난 것이었다.

검을 잡고 휘두를 당시.

얼마나 이 손에서 피가 많이 흘렀는가.

얼마나 많이 손이 까지고 찢어졌는가.

그런데, 수도의 길에서는 이제야 손이 찢어진 것이었다.

뚝, 뚝...

나는 피가 떨어지자, 이기어검을 사용하는 동시에, 배운 법술들을 응용해서 방에 떨어진 핏자국들을 지웠다.

내공을 운용하며 지혈을 하고, 그 상태에서 계속 수결을 맺자, 상처는 결국 하루 정도 후 딱지가 앉았다.

그러나 딱지가 앉은 후에도 수결을 미친 듯이 맺는 탓인지, 손에 딱지가 다시 떨어져 다시 피가 나기도 했다.

하지만 나는 멈추지 않았다.

멈출 시간이 없었으니까.

둔재에게는.

자질이 부족한 자에게는.

모든 시간이 천금(千金)보다도 소중한 것이었으니까.

그렇게, 다시 5년이 흘렀다.

척, 척, 척, 척, 척...

"웅얼웅얼..."

나는 칠십이지살진언을 처음부터 끝까지 읊고, 수결을 맺었다.

그리고, 마지막 진언.

지구성(地狗星)에 대응하는 진언을 외웠을 때였다.

'드디어, 칠십이지살진언의 모든 것을 이해했다!'

그리고, 마지막 영맥이 활성화되었다.

그와 함께 내가 사용할 수 있는 법력이 크게 늘어나며, 의식의 크기가 조금 더 커졌다.

"연기기(練氣期) 제이성(第二成)!!!"

드디어, 연기기 2성에 도달한 것이었다!

십 년에 걸려!

혀에 쥐가 날 정도로 진언을 읊고, 손가락에 피가 날 정도로 수결을 연습하며!

나는 기쁨에 차서 바로 청문령의 방 앞으로 달려가 말했다.

"스승님! 제자, 연기기 2성에 도달했습니다! 스승님의 가르침과 칠십이지살령언해를 통해, 칠십이지살진언을 전부 이해했습니다! 감사합니다. 스승님이 선각후통의 길을 열어주시지 않았으면 도달할 수 없었습니다. 감사, 또 감사할 따름입니다."

청문령의 방문 안쪽에서, 의념의 결이 조금 요동치는 것이 보였다.

잠시 후, 청문령이 짜증을 내며 말했다.

"...아니, 이런 병신 같은 놈을 보았나. 십년이나 걸려 이제 연기기 2성이 돼? 내, 도저히 안 되겠다. 이런 머저리 같은 놈이 내 제자라니. 이 빌어먹을 놈! 가주님께 말씀드려 네놈을 쫓아내고 말테다!"

"...어찌되었든, 스승님의 은혜에는 감사할 따름입니다. 제자는 들어가 보겠습니다."

그러나, 며칠이 지나도록 딱히 청문세가의 가주가 내게 무어라 하는 일은 없었고, 청문령 역시 방 안에서 딱히 나오는 일이 없었다.

그리고 나는 오월입도경, 지월입도결을 읽으며 연기기 2성을 탐독했다.

"칠십이지살(七十二地煞) 다음은 삼십육천강(三十六天罡)이라..."

이제 삼십육천강법결을 읊고, 그에 대한 수결을 익히고 깨달아.

서른 여섯 가지의 영성(靈性)을 영맥 곳곳에 응집시켜야 했다.

나는 우선 바깥으로 나가, 삼십육천강법결 중 첫번째.

천괴성(天魁星)에 대응하는 법결을 읊고 수결을 맺었다.

쿠구구-

그러자, 천괴진언의 법결에 따라 눈 앞의 흙들이 떠오르더니 내 눈높이까지 올라와 토구(土球)의 형태로 뭉쳤다.

아마 지월입도가 아닌 수월입도, 화월입도였다면 수구(水球)나 화구(火球)의 법술이 만들어졌을 터.

그러나 아직 천괴성에 대응하는 영성도 제대로 응집시키지 못한 채 법결로만 법술을 사용한 탓인지.

흙덩이는 이내 우수수 무너지며 흩어져 버렸다.

'지살진언과 천강진언의 차이는, 지살진언은 체내 영맥에서 뻗어나온 기운이 주가 된다면. 천강진언은 체내 영맥에서 뻗어나온 법력이 천지영력과 섞이며 법술이 발휘되는군.'

나는 지살진언과 천강진언의 차이를 가늠하며, 천강진언 서른 여섯가지 종류를 전부 펼친 후.

그 다음에 청문령에게로 찾아갔다.

"스승님, 제자가 미욱하여, 천강법결에 대하여서도 스승님의 가르침이 필요할 것 같습니다."

"흥! 이 빌어먹을 놈, 내가 가주님께 말씀드리기 전에 눈치껏 알아서 꺼질 것이지. 아직도 남아있었느냐. 아둔한 놈 같으니. 이걸 받아라."

청문령의 방문이 조금 열리더니, 문틈으로 한 권의 책자가 던져졌다.

책자의 제목은 삼십육천강령언해(三十六天罡令言解)로, 칠십이지살령언해와 마찬가지로 삼십육천강법결에 대한 청문령의 주석이 들어간 서적이었다.

나는 다시금 감사인사를 한 후.

다시금 삽십육천강법결을 공부하기 위해 방으로 들어가려 할 때였다.

"잠깐, 아둔한 놈아. 최근 소식을 아느냐?"

"예? 최근 소식이라니요..?"

"쯧쯧, 방에 틀어박힌 나도 아는데, 네놈은 아예 모르는구나. 아둔한 녀석. 최근들어 가주님과, 청문세가의 원로님들이 자리를 비우셨다."

"어인 일이시지요..?"

"흠, 듣자하니 벽라국 동쪽. 답천사막과 붙어있는 곳에 있는 부족들과, 벽라국의 도시 몇 개. 그리고 답천사막 쪽에 위치한 국가들. 그리고 답천사막 너머에 자리한 국가들의 도시.

그런 곳곳에 차마 눈 뜨고 볼 수 없을 정도로 참혹한 대학살(大虐殺)이 벌어졌다고 하더구나. 나도 자세한 이유는 모르지만, 청문세가의 가주님과 결단기 원로분들은 물론이고,

진씨세가, 막리세가, 공묘세가, 벽씨세가... 그리고 기타 등등 수도가문의 결단기 수도자들이 모두 답천사막 쪽으로 향하셨다. 아무래도 심각한 일인 듯 하니 앞으로 청문세가가 조금 혼란스러워 질 수도 있을 터. 행동에 조심하거라."

"걱정해주셔서 감사합니다. 가주님이 돌아오실 때까지 방 안에서 수행만 하겠나이다."

"돌아오실 때까지는 무슨. 네놈이야 매 날 그러고 있지 않으냐. 그리고 가주님이 돌아오시면 반드시 청원해서 네놈을 쫓아버릴 것이니 그리 알거라."

나는 청문령에게 인사를 하고, 방으로 돌아가 법결을 외우며 삼십육천강령언해를 읽었다.

* * *

청문세가의 가주가 돌아온 것은, 6개월이 지나서였다.

그 날, 본가(本家)에 거하는 모든 청문세가의 원로, 장로, 직계는 물론이고 방계와 주요 외부 구성원들까지 전부 가주의 앞으로 모여 긴급회의가 열렸다.

나 역시 주요 외부 구성원 자격으로 긴급회의에 참여할 수 있었다.

'어마어마한 전력이군...'

나는 청문세가의 대전을 꽉 채운 연기기, 축기기 수도자들과 그들이 내뿜는 영기의 압박.

그리고 의식의 크기를 보며 작게 탄성을 흘렸다.

이 정도라면 결단기 수도자를 빼더라도 능히 일국(一國)을 물리적으로 갈아버릴 수 있는 전력이었다.

그리고, 6개월만에 돌아온 청문세가 가주, 청문중진(淸汶仲珍)의 얼굴은 잔뜩 어두워져 있었다.

"본 가주와 원로회가 오늘 이리 긴급회의를 결정한 것은, 근 이백년 안에 커다란 전쟁이 있을 것 같다는 말을 하기 위해서이다."

'이, 이백년?'

나는 그 말도 안되는 시간 감각에 흠칫하며, 청문세가 가주의 말을 경청했다.

"자세한 사정은 밝히기 어렵지만, 오늘부로 청문세가는 이백년 후에 있을지도 모르는 대전쟁에 대비를 해야 할 것이다.

오늘부터 직계, 방계에 대한 차별보다는, 이전보다도 더욱 더 실력 위주로 가문을 운영할 것이니라. 몇 년에 한 번씩 열렸던 투선회(鬪仙會)는 이제 반 년에 한번씩 개최할 것이다.

또한 청문씨들이 아닌 외부 구성원들 역시 1년에 한번씩 그들을 위한 대회를 개최해줄 것이니. 하나같이 자신들의 실력을 키우는 데에 열중하도록.

이제 원로와 장로들만 남고 나머지는 나가보라."

우리는 청문중진에게 인사를 하고, 바깥으로 나왔다.

청문세가에서 친한 이들은 저들끼리 무슨 일인가 하며, 끼리끼리 모여 이야기를 나누었으나.

나는 방에서 수련만 하느라 아무도 친한 이들이 없었기에 혼자 고민할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그날 밤.

늦은 시간에서야 청문령이 처소로 돌아왔고, 나는 그에게 가 조심스레 물어보았다.

"스승님, 어인 일로 가주님께서 그런 예측을 하셨는지 알 수 있을지 묻고 싶습니다."

"...흥! 네가 뭘 그런 걸 궁금해 하느냐. 어차피 너나 나나 이백년 후까지 살아있지도 못할 텐데. 그냥 평소 하던대로 수련이나 하거라."

하긴, 그도 맞는 말이었다.

내 수명은 약 30, 40년 정도나 남은 정도였고.

그 정도를 살고 나면 죽을 터인데, 이백년 후를 결정해봤자 무슨 소용인가.

지금 할 수 있는 것이나 잘 하자.

"그나저나, 이 놈. 너 삼십육천강법결 중 몇 개나 깨쳤어? 지금 몇 개의 영성을 응집했느냐?"

"제자, 미욱하여 세 개의 영성만을 응집한 상황입니다."

"답답한 놈 같으니! 네놈 칠 주야 후까지 이 서책을 전부 읽어와라!"

드륵-

문 틈 너머로 또 한권의 서책이 떨어졌다.

책은 강명공록(罡明功錄)이라는 제목이었고, 삼십육천강법결에 대한 전반적인 주석을 담은 서책이었다.

삼십육천강령언해의 심화판인 듯 했다.

"감사합니다, 스승님."

나는 청문령에게 읍을 하고, 다시 방으로 들어가 서책을 읽었다.

* * *

세월은 빠르게 지나갔다.

12년.

나는 12년만에 삼십육천강법결을 전부 깨우치고, 서른 여섯 개의 영성(靈性)을 응집하는 데에 성공하였다.

칠십이지살영맥을 뼈대로, 삼십육천강영성이 붙어 전신세맥에 영성이 퍼트린다.

우우웅-

전신의 영맥과 영성을 통해, 천지영기가 빨려오며 법력이 더더욱 늘어난다.

동시에 영맥이 영성을 흡수하며 굵어지고, 튼튼해졌다.

22년에 걸쳐 연기기 2성(成)에 도달한 것이었다.

'휴, 쉽지 않군.'

나는 작게 한숨을 쉬며, 내 방에 비치된 동경(銅鏡)을 바라보았다.

구리거울 안쪽으론 수염이 잔뜩 자란 내가 보였다.

물론 오기조원에 이르며 환골탈태한 덕인지, 도무지 주름살은 없었다.

아마 당장 수염을 깎기만 해도 이십대 중반 나이로 보일 터.

하지만, 나는 초조해지고 있었다.

이미 이번 삶은 상당히 많이 지나가고 있다.

이대로면 죽기 전에 연기기 4성은 도달할 수 있을까.

이 속도조차 내가 청문세가의 영맥을 이용하고 과분한 수련자원을 지원받으며, 청문령의 가르침을 집중적으로 받았기에 도달한 것이었다.

아마 일반 산수로 살았다면 연기기 1성을 완성하기까지 30년은 걸렸을 터였다.

지난 12년간.

청문령은 내 진도가 느릿느릿하게 나가는 것이, 답답해 죽을 지경이었던지.

결국 방문 너머에서 가르치는 것을 포기하고, 결국 방문을 열고 구체적으로 조언을 해주기 시작했다.

물론 아직도 방 안으로 넘어가는 것은 금지됐지만, 그래도 얼굴을 마주보고 가르침을 받을 정도는 된 것이었다.

나는 서른 여섯개의 영맥이 응집된 것을 보며, 연기기 3성(成)으로 오를 수 있다는 것을 알아챘다.

나는 냉큼 청문령에게 달려가, 성취를 고하였다.

"스승님, 제자 연기기 3성에 드디어 올랐습니다! 감사합니다!"

"...감사는 무슨 개뿔. 내가 12년동안 가슴이 답답해 죽는 지경이었다. 멍청한 놈! 그리고 또 무슨 그딴 걸 자랑이라고 나한테 말하는 거냐!"

방문이 열리며, 꼬장꼬장한 염소수염을 기른 청문령이 눈쌀을 찌푸렸다.

"이 아둔한 놈! 일단 들어와라, 삼십육천강법결을 얼마나 이해한 건지 봐야겠다."

나는 흠칫하다가, 싱긋 웃으며 청문령의 방으로 들어갔다.

그의 방에는 온갖 서책들이 한가득 쌓여있었다.

청문령의 방은 좁지 않았으나, 서책들이 쌓여있는 탓에 발 디딜곳이 많지 않았다.

그는 서책의 산 한 가운데에 앉아 한 책을 넘기며 열심히 붓으로 무언가 주석을 남기는 중이었다.

"앉아라. 그리고, 네놈은 도대체 그 정신사나운 짓은 도대체 언제쯤 그만할 거냐?"

그는 내게 방석도 권하지 않고, 주석을 달며 나를 노려보았다.

나는 쓴웃음을 지었다.

현재, 방 바깥에서는 내 검이 내 의식과 강기에 따라 허공에서 단악검법을 펼치는 중이었다.

지난 22년간, 수도공법과 진언, 법술 등을 수련하며 한 번도 무공수련을 멈춘 적은 없었다.

이젠 자는 도중에도 이기어검을 펼칠 정도였으니.

그러나 청문령은 내가 하는 짓이 마음에 들지 않는지 혀를 차며 말했다.

"네놈 천성이 칼잽이라는 건 안다만. 네놈 같은 쓰레기같은 재능이라면 한 가지에 몰두해도 부족하다. 그런데 언제까지 저 정신사나운 짓을 수행과 병행할 게냐?"

"...송구합니다. 하나..."

"그래, 그래. 안다. 무는 네놈 삶이었지? 이젠 나도 그만 좀 듣고 싶다. 똑같은 말밖에 반복 못하는 멍청한 놈 같으니. 시끄럽고 법결들이나 읊어라."

나는 청문령의 앞에서 법결들을 읊고, 청문령이 법결들에 대한 내 이해도를 살피기 위해 하는 질문들에 답을 하였다.

얼마 후, 청문령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좋다. 법결의 이해도가 준수하군."

"감사합니다. 하면..."

"이제 연기기 3성(成)에 걸맞는 가르침을 내려야겠지. 자, 이걸 받거라."

그는 내게 십이지도설록(十二地導說錄)이라는 서책을 건냈다.

"십이지율(十二地律). 황종(黃鐘), 대려(大呂), 태주(太簇), 협종(夾鐘), 고선(姑洗), 중려(仲呂), 유빈(蕤賓), 임종(林鐘), 이칙(夷則), 남려(南呂), 무역(無射), 응종(應鐘). 열두가지 종류의 영력을 받아들일 수 있도록, 칠십이 영맥과 삼십육 영성을 진화시키는 작업이 연기기 3성의 핵심이다.

영력에는 다섯 속성이 있고, 다섯 속성이 열두 종으로 갈라지니. 60가지 변화가 또 다시 파생되는 것이지. 뭐, 그래도 십이지율에 해당하는 영력의 종류만 알아도 나머지 48개의 변화는 충분히 계산이 가능하다.

이 영력의 변화를 전부 깨닫고, 영력이 세상에 미치는 운행에 대하여 알아야 할 것이다."

"예, 새겨듣겠..."

"아니. 새겨듣지 말고. 여기서 읽어라."

"예...?"

"지금까지는 네놈이 내게 책을 받으면 네놈 방으로 가서 읽다가, 다시 모르는 게 있으면 물어보는 식이었다면. 이젠 내 속이 답답해서 못 살겠다!

그냥 여기서 읽고, 바로바로 모르는 건 물어봐라! 아니, 그냥 여기서 살아라!"

나는 잠시 당황했으나, 그에게 읍을 하며 감사를 표했다.

"스승님의 은혜에 감사드립니다."

"시끄럽다! 허례허식 차리지 말고 빨리 책이나 완독해라!"

청문령의 호령에, 나는 황급히 서책을 읽어갔다.

연기기 3성.

십이지율의 단계는 열두 영력의 종류를 파악하는 것으로 시작된다.

또한 수도자는 이 단계에서부터는 영력의 종류에 따라 수도자의 수도진법(修道陣法)을 펼치는 것이 가능했다.

본격적으로 영력을 통해 환영진, 혹은 기이한 기문진법을 펼치는 것이 가능해지는 것이었다.

또한 영력의 열두 가지 기질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직접 진법을 펼쳐보며 영력을 이해하는 과정이 필수였기에, 나는 청문령에게 가르침을 받은 후에는 항상 바깥으로 나가서 청문령이 조언해준대로 진도(陣圖)를 펼쳐보며 실습을 하였다.

다행히 나는 공간각은 뛰어났기에 진법을 펼치는 것에는 일가견이 있었고.

또한 먼 옛날, 김영훈의 아래에서 무림맹을 운영할 당시 기문둔갑과 기관장치에 대해서 배운 적이 있었기에 진법에 대해서는 어렵지 않게 익힐 수 있었다.

열두 개의 영력의 종류는 일종의 파(波)의 형상을 띄고 있다고 하였다.

파장의 진동수가 일정부터 일정 이하인 구간의 영력을 황종(黃鐘)의 영력.

그 너머의 파장을 가진 영력을 대려(大呂)의 영력이라고 부르는 듯 하였다.

나는 열두 종의 영력을 익히고, 깨닫기 위해 청문령의 바로 옆에서 답답하고 아둔하다는 둥.

온갖 욕설을 들어먹으며 깨닫는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약 6년이 흘렀다.

우우웅!

나는 내 전신의 영맥이 하나의 진도(陣圖)라 생각하며, 십이지율의 영력을 모두 받아들일 수 있도록 영맥을 진화시켰다.

영맥 하나 하나, 영성 하나하나에 십이지율 각각의 영력을 모두 각인시킨다.

그리고.

번쩍!

"하아아..."

나는 연기기 3성(成)을 완공(完功)하는 데에 성공하였다.

이제, 십이지율의 너머로 향하기만 하면 바로 연기기 4성이었다.

나는 눈을 떴다.

눈 앞에선 청문령이 두 눈을 부릅뜨고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성공했군. 답답한 놈 같으니. 이제야 십이지율을 깨치고 연기기 3성이야! 전력은 연기기 14성이라면서 왜 이리 깨닫는 게 늦어!"

"하하, 스승님. 제가 익힌 무공과 수도선술은 완전히 분야가 다르지 않지 않습니까."

"흥, 됐다. 이래서야 네놈 생전에 경지를 얼마나 더 나갈 수 있겠느냐! 답답해서 안 되겠구나. 따라와라! 내 속이 터져 죽기 전에 네놈을 조금이라도 더 빨리 가르쳐야지, 안 되겠군."

그는 몇 권의 서책을 싸들고, 나를 데리고선 바깥으로 나갔다.

"칠십이지살로 영맥을 깔고, 법술을 몸에서 뻗어낼 수 있게 되었으며.

삼십육청강으로 영성을 응집하고, 법술로 천지영력을 감응시키는 법도 깨달았다.

십이지율로 영력의 종류를 깨달아, 천지영력의 흐름을 모방하여 수도진을 펼칠 수 있게 되었지."

청문령의 주변으로 칠십이지살, 삼십육천강, 십이지율을 상징하는 고대문자들이 떠올랐다.

"그리고, 너는 앞으로 십천간도(十天干圖)에 입문하게 될 것이다. 수도자의 진법이 천지의 흐름을 모방한 것이라면, 십천간의 십천문(十天文)을 익혀 앞으로 진법의 힘을 제대로 끌어올릴 수 있게 해야 할 것이야.

십천문이란, 먼 옛 사람들이 하늘에 떠 있던 열 개의 이치를 모방해서 만든 문자로, 문자 하나하나에 하늘의 이치가 담겨있다.

갑(甲), 을(乙), 병(丙), 정(丁), 무(戊), 기(己), 경(庚), 신(辛), 임(壬), 계(癸)의 열 가지 이치를 알게 되면 연기기 4성을 완공(完功) 할 수 있다."

십천간도를 해당하는 십천문이 청문령의 의지에 따라 움직인다.

동시에 그의 주변으로 수목(樹木)의 기운이 일며, 수목의 진식(陣植)이 펼쳐졌다.

십이지율을 기초로 한 진식에, 십천문이 깃든다.

우우웅!

열 가지 변화가 열두 영종에 곱해지며, 수십 가지의 변화를 이룬다.

그 수십 가지의 변화의 중심에서, 청문령이 기운을 거두자 수십 가지의 변화가 전부 청문령의 안쪽으로 흡수되었다.

"자, 이게 네가 도달해야 할 경지니라. 이번에는 제발! 3년안에 4성을 완공해 보거라! 답답한 네놈에게 뭘 더 바라지도 않는다!"

그날부터, 나는 청문령의 지도 아래에서 십천문에 대해서 배우기 시작했다.

"갑(甲)은 대림목(大林木)으로 시작하여 계(癸)는 우로수(雨露水)로 끝난다. 각각 천문에는 음양과 오행의 이치 또한 깃들어 있으니..."

"열 가지 영력의 변화는 기본적으로 천지오행의 변화를 음양으로 나눈 것에서 시작된다. 음양오행이 세계를 이루는 열 가지의 이치라고 해석한 것이..."

"음양오행을 십이지율에 대입해 보아라. 십이지율에도 양률(陽律)과 음려(陰呂)로 하여금 음과 양의 해석이 들어있으니, 둘을 대입하면..."

나는 청문령에게서 십천문에 대해 배우며, 지월입도결과, 청문목이 준 지주원법(地住院法) 공법서 역시 익히며 지주원법에 수록된 신통 또한 익혔다.

"토주원(土住院)!"

수결을 맺고 진언을 외자, 내 주변의 흙들이 뭉치더니 진식을 형성한다.

나는 진식에 열두 가지 영력의 종류와 열 가지 영력의 변화를 부여하여 진식의 힘을 최대치로 끌어올렸다.

쿠웅!

육각형의 흙 방패가 여섯 개 생겨나며 내 주변을 둘러싼다.

지주원법에 수록된 방어신통이었다.

나는 영력을 인도하며, 흙 방패를 회전시켰다.

쿠구구구-

묵직한 소리를 내며, 흙 방패가 나를 중심으로 빙글빙글 회전한다.

흙방패는 한 개의 무게가 상당했고, 회전 속도도 썩 무시무시하여 인간이 맞으면 그대로 갈려나갈 위력을 자랑하였다.

강도 또한 무시할만한 것이 못 되는게, 흙방패는 법력을 잔뜩 머금고 있어 검기로도 자르는 것이 불가능한 정도였다.

'연기기 4성...'

이제, 연국 황제 막리정과 그 아들 막리현과는 비슷한 경지인 셈이었다.

'연기기 4성부터는 주변의 공간을 장악하고 싸운다.'

영력으로 진도(陣圖)를 깔고, 십천문으로 위력을 증대시켜 주변의 공간을 완전히 자신의 손아귀에 장악하는 것이었다.

나 역시 이제는 지난 삶, 연국 황태자 막리현이, 주변을 풍(風) 속성 영력으로 아예 장악한 것과 같이 내 주변 공간을 토(土) 속성으로 장악하고 싸우는 것이 가능했다.

"스승님, 이것 보십시오! 이제 진도(陣圖)의 구현화에 성공했습니다..!"

"...멍청한 놈 같으니. 이제서야 진도를 구현한 게 자랑이느냐! 시끄럽고 더욱 더..."

물론 청문령에게는 여전히 내가 답답해 죽을 지경인 듯 싶었지만 말이었다.

* * *

5년이 지났다.

청문령이 내 곁에 꼭 붙어서 노발대발하며 가르친 탓인지.

나는 5년에 걸쳐서 겨우 십천문의 변화를 전부 깨우치는 데에 성공했다.

우우웅-

법력이 펼쳐지며, 주변에 진도(陣圖)를 구현화한다.

열두가지 영종과, 열 가지 영변이 섞이며 60여가지의 변화를 구현하였다.

'이 60가지 영력의 변화를...'

내 경맥과 동화시킨다!

쿠구구구!

주변으로 흩어져 진도를 그렸던 토(土) 속성의 영력이 내게 돌아오며, 각각의 변화에 대응하는 영맥과 합쳐진다.

'동화!'

쿠구구구구구구-

영맥에 노도와 같은 기세로 무수한 변화가 생겨난다.

나는 십천문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영맥에 변화를 차근히 흡수시켰다.

영맥이 진화한다.

더욱 더 영맥이 넓어지고, 영맥이 수용할 수 있는 변화가 많아졌다.

그리고, 영맥이 모든 변화를 전부 수용하였을 때.

나는 드디어 고대하던 벽을 넘었음을 알 수 있었다.

'드디어...!'

연기기 4성 완공(完功)!

이제, 연기기 5성(成)이었다!!!

"드디어...!"

눈을 뜨자, 귀가 아플 정도로 큰 환호성이 들려왔다.

스승님이었다.

"드디어, 이 빌어쳐먹을 놈이 연기기 5성이구나! 흐하하하하!"

그는 환호성을 지으며 미친듯이 낄낄 웃었다.

"이 망할 둔재놈...! 내가 이겼다...! 네놈의 빌어먹을 자질을 가지고, 네놈을 연기기 5성까지 인도하는 데에 성공했어!!! 크하하하하!"

"감사합니다, 스승님..!"

"흐하하, 멍청한 제자놈..!"

우리는 서로 얼싸안고 감격의 환호성을 질렀다.

불허(不許)(1)

"흠흠, 이 망할 둔재놈 같으니. 오영질을 가르치는 것이 이렇게 힘들 줄 알았으면 진즉 쫓아낼 것을 그랬구나."

그는 헛기침을 하며 나를 팍 밀쳐내고는 수염을 쓰다듬으며 말했다.

"스승님이 안 쫓아내신 덕에 여기까지는 올 수 있었습니다."

나는 싱긋 웃으며 그에게 말했다.

연기기 1성을 오르는데에 10년.

2성을 오르는데에 12년.

3성을 오르는데에 6년.

4성을 오르는데에 5년.

도합 33년이 걸렸다.

환골탈태를 한 내 육신은 노화가 느린지 아직도 나는 60대의 나이에 30대 정도의 외모였으나, 서서히 수명의 끝이 다가온다는 것이 신경쓰였다.

'이번 생에는 환골탈태까지 했다. 그런데도 이번 생에는 내 수명대로 죽을까?'

모를 일이었다.

그러나 어쨌든 조금 초조해지는 것은 사실이었다.

"...스승님. 제자가 죄송합니다만. 혹 바로 다음 경지에 대한 가르침을 주실 수 있을지요..?"

"그래, 네가 네놈 주제를 아는구나. 아무렴, 재능 없는 놈은 하루빨리 다음 경지로 나가야지. 연기기 5성은 구궁(九宮)의 이치를 따른다.

네놈의 108가지 영성영맥과 60가지 영력의 변화를, 9점으로 귀일시켜야 하느니라.

태을(太乙), 섭제(攝提), 헌원(軒轅), 초요(招搖), 천부(天符), 청룡(靑龍), 함지(咸池), 태음(太陰), 천을(天乙)의 구성귀일(九性歸一)을 시도하여 네 몸 속에 흐르는 영맥의 통합(通合)을 시작하는 것이야."

나는 얌전히 앉아 그의 그의 말을 경청했다.

"구궁은 또한 팔괘의 이치와 이어지며, 다음 단계로 나아가는 디딤돌이 되는 경지이다. 거기에 구궁으로 하여금 진도(陣圖)를 장악하여, 진에 자유자재로 변화를 일으키는 것이 가능하다."

그가 내 앞에서 수목 속성의 진도를 펼쳤다.

십이지의 흐름으로 만들어진 진도에, 십천문이 붙어 위력을 극한으로 끌어올린다.

그리고 거기에 구궁의 변화가 일어나자, 진도가 변화하기 시작했다.

수목의 기운이 사방팔방으로 뻗치며, 스승님의 의지에 따라, 불균형스럽게도, 부조화스럽게도 마구 변화하였다.

"구궁(九宮)의 이치를 진도에 녹여내는 데에 성공하면, 이처럼 진을 완전히 한 손아귀에 틀어쥐고 자유 자재로 변화시키며, 진도 안에서 완전한 자유를 찾는 것이 가능하다."

그 말에, 내가 여태껏 싸워온 몇몇 연기기 5성 수도자들이 떠올랐다.

확실히, 연기기 5성 수준에서부턴 법술을 쓰는 것이 굉장히 자유로웠었다.

나는 그와 함께, 구성귀일의 아홉 점을 인지하는 법부터 시작하여. 어떻게 수많은 흐름을 아홉 갈래로 통합시키는지.

그리고 법술들을 통합하여 더욱 더 강력한 법술을 사용하는지 등에 대해서를 배웠다.

구궁에 대하여 익히며, 또 다시 손에서 피가 날 정도로 구궁의 수결을 익히고.

목이 쉴 정도로 관련 진언들을 외우기를 7년.

우우웅-

통합된다.

경맥을 흐르는 108가지 영성영맥이.

60가지 변화가.

모두 크게 아홉 갈래로 통합되며, 잡다했던 영맥이 정순하게 가라앉았다.

"연기기, 6성(成)!"

나는 희열에 차서 외쳤다.

체내를 흐르는 영맥의 영기들을 움직여 보았다.

순식간에 진도가 펼쳐지며, 진도 안에서 내가 원하는 의지에 따라 진의 변화가 바뀌며 바로 변화가 일어났다.

쿠그극!

지주원법의 공법을 사용하자 여섯 개의 육각 방패가 내 주변으로 응결된다.

그러나 내가 주먹을 쥐자, 흙방패들이 우그러지며 토창(土槍)으로 변화하였다.

이제는 진도를 내 의지대로 바꿀 수 있기에, 방어 전용이었던 공법 역시 어느 정도 공격으로 전환이 가능했다.

물론 여전히 방어력이 더 강하기는 했지만.

"흐음, 볼까.."

나는 먼 곳에서 알아서 휘둘러지고 있던 어검(馭劍)을 불러왔다.

파앗!

검이 허공을 유영하며 이쪽으로 쏘아져온다.

지난 40년간, 월수월무록을 한 시도 쉬지 않고 운용하였다.

이젠 단순히 행동을 입력하는 것이었지만, 굉장히 움직임이 자유로워졌다.

또한 의념을 보내는 요령 역시 생겨나서 훨씬 의념을 보내기도 편했다.

나는 어검을 내 앞으로 불러와 강기를 불어넣어 충전을 해준 후.

강기를 품은 어검을 멀리 날렸다가, 이쪽으로 다시 쏘아왔다.

파앙!

파공성이 들린다.

나는 지주원법의 진도를 변형시켜 만들어낸 토창을, 강기를 머금은 어검을 향해 날렸다.

콰앙!

토창과 어검이 부딪혔다.

동시에 광풍이 불어닥치며 폭음이 울렸고, 먼지구름이 잦아든 자리에는, 내 어검만이 남아있었다.

그러나 어검 역시 내가 조종하는 것이었기에, 나는 어검을 통해 느껴진 반탄력으로, 토창이 대략 어느 정도 위력을 가졌는지 알 수 있었다.

'삼화취정 무림인이 쓰는 강기(罡氣)급의 위력을 가졌다.'

연기기 수도자급의 방어법술은 우습게 박살낼 위력이었다.

"허허, 이 무식한 놈. 아침부터 신이 났나 보구나."

그리고, 먼지구름 너머로 스승님이 웃으며 걸어왔다.

"축하한다. 모지리 녀석. 얼마나 자질이 구더기 같으면 7년에 걸려서야 연기기 6성에 도달한 게냐."

"하하, 그래도... 6성은 최대한 빨리 완공해 보이겠습니다."

"그래야지! 6성, 팔괘완로(八卦完路)의 경지가 연기기에서 제일 쉬우니까! 이것도 못하면 정말 네 녀석을 일수에 쳐죽일 것이니라."

말은 그렇게 했지만, 스승님은 내가 5성의 관문을 벗어난 것이 내심 기분이 좋았는지 웃는 얼굴로 말하고 있었다.

의념의 색조 역시 기쁨을 뜻하는 황금빛으로 덮여있었다.

"걱정하지 마십시오. 그래도 6성에 대해서는 공부를 미리 해 두었습니다. 알아보니, 영맥을 팔괘의 이치에 따라 완결시키는 것이니. 제게는 조금 자신이 있는 분야입니다."

"흥, 경맥에는 자신이 있다 이거냐. 그래도 네놈 무림인들이 익히던 내공심법하고는 완전히 다를 것이야. 팔괘의 괘상(卦狀)에 대해 모르면 아무것도 할 수 없어!"

그는 내 앞으로 또 다시 서책을 한 아름 안겨주며 말했다.

"그걸 전부 읽어라. 내가 머저리같은 네놈을 위해 친히 주석을 달아놓은 책이니라. 안 그래도 자질이 떨어지는데 이해까지 어려우면 시간이 괜히 낭비될테니 말이다."

"늘 감사할 따름입니다."

"알면 제발 잘 하거라."

나는 팔괘(八卦)에 대한 점 역시 빠삭하게 파고들었다.

건(☰), 태(☱), 리(☲), 진(☳), 손(☴), 감(☵), 간(☶), 곤(☷)의 여덟 괘상을 완전히 장악해가며.

나는 지금껏 궁금했던 영질에 대한 의문 중 몇 가지를 풀 수 있었다.

예를 들어, 영질은 오행(五行)의 다섯 영질밖에 없는데.

막리세가는 풍(風), 음(陰) 등 어찌 오행 외 공법을 익히는가.

물론 몇몇 특수한 영질이나 영근들이 있다는 말은 들었지만.

그런 것은 전명훈이 가진 천상금뢰신체, 강민희 대리가 가진 귀도음화선근 같은, '진짜' 희소한 영근들이었고.

일반적으로는 어떤 수도자든지 오행영질에서 벗어날수는 없다고 하였다.

그리고, 나는 이번에 팔괘의 괘상에 대해 공부하며 오행 외 공법에 대해서도 이해할 수 있었다.

'오행(五行)이 팔괘(八卦)와 연동되는 것이었군.'

건(☰)과 태(☱)는 금(金).

리(☲)는 화(火).

감(☵)은 수(水).

진(☳)과 손(☴)은 목(木).

간(☶)과 곤(☷)은 토(土).

그런 식으로 오행(五行)에서 팔괘(八卦)의 괘상을 해석해내어, 목 속성을 가진 이는 풍(風)을 상징하는 손(☴)의 괘상을 이용한 공법을 이용해, 풍계 법술에 특화된 공법을 만드는 것이었다.

괘상에 대하여 공부하면 공부할수록, 나는 팔괘의 흐름과 진도의 흐름을 겹칠 수 있게 되었고, 또한 팔괘의 흐름을 영맥에 합치시키는 것은 지금까지 해왔던 수련 중 가장 쉬웠다.

어려운 것은 팔괘의 괘상이 의미하는 바를 전부 알아서 이해하는 과정이었고, 나는 그를 이해하는 것에 시간을 많이 썼다.

팔괘를 파고들기를 3년.

나는 3년안에, 팔괘의 괘상을 이용해 진도(陣圖)를 아예 완전히 장악하고, 완결(完結) 시키는 데에 성공하였다.

진도(陣圖)가 완결되자, 동시에 전신의 영맥이.

팔괘의 괘상에 따르는 모든 영맥이 전부 활성화되는 것이 느껴졌다.

전신 영맥이 모두 이어지며, 원(圓)을 그린다!

쿠구구구!

전신 영맥에서 흐르는 법력의 흐름이 무진장 자유로워지고, 그 유속(流速)이 가공하리만치 빨라진 것이 느껴졌다.

그리고, 나는 한없이 정순해지고 빨라진 영맥의 흐름 속에서 뭔가 이상한 것을 발견했다.

'뭔가 불순한 것이... 아, 이건. 용맥기공의 내력인가...'

수도공법의 법력에 비해 한참은 불순한 내공심법의 내력이, 영맥 속에서 불순하게 남아있었다.

'뭔가 거슬리는 기분이 드는데, 정확히 왜 그런지는 모르겠군...'

하지만 나는 용맥기공의 공력에 대해서는 별 생각을 하지 않고 그대로 넘기며, 다시 스승님에게 결과를 보고하였다.

"크하하하하하! 훌륭하구나! 역시 내 제자다!"

스승님은 매우 기뻐하며 내 어깨를 두들겨 주었다.

"이 멍청한 놈. 연기기 6성을 완공하고, 7성에 진입하는 데에 43년이나 걸리는 것이 맞는 말인게냐! 네놈은 참으로 천하의 둔재로다!"

말은 그렇게 했으나, 그는 매우 기뻐 보였다. 스승님은 문득, 나를 보더니 품에서 뭔가를 꺼냈다.

'저건...'

나는 스승님의 품에서 나온 것을 보며, 흠칫 몸을 떨었다.

"네 성취가 그래도 늘어가는 듯 하여. 내 마음이 편하구나. 그래도 답답한 네놈이 번 생에 조금이라도 성취가 있었으면 하여 주는 선물이니..."

그의 품에서 나온 것은, 작은 비단함이었다.

그 안에서는, 익숙한 향내가 풍기고 있었다.

스승님이 약함을 열자, 그 안에는 은은한 붉은빛을 풍기는 단약 세 알이 들어있었다.

"축허단. 범인이 먹으면 수명을 10년 늘려주고. 연기기 수도자가 먹으면 수명을 많게는 8년에서, 조금 내성이 생기면 6년 정도 늘려주는 영약이니라."

"...스승님."

"흠, 그래 네놈이 고마워할 것은 알고 있느니라. 이제 감사하단 말도 지긋지긋하니 그냥 먹기나..."

"...죄송합니다."

"하고 앞으로..으응...?"

그는 무슨 말을 들었냐는 듯이 눈쌀을 찌푸렸다.

"내가 잘못들은 게냐? 제대로 들은 것이 맞겠지?"

"...제대로 들으셨습니다. 스승님. 저는... 그 단약을 먹을 수 없습니다."

"...? 미친 거냐? 수명을 8년을 늘려주는 영약이다! 이게 얼마나 귀하고 가치있는 약인줄 모르는게야! 이 멍청한 놈이..."

"스승님께서는, 축허단의 재료를 아십니까?"

내 말에, 그는 무슨 해괴한 소리를 하느냐는 듯 나를 쳐다보았다.

"내가 그걸 어찌 아느냐! 250평생을 법결과 진언 공부에만 힘 쏟았는데, 연단 같은 타 분야에 대해 알 시간이 있었을 것 같으냐! 애초에 그런 지식은 전문적인 연단사가 아니라면 알기 힘든게 당연하지 않으냐!

저기 막리세가야 연단으로 유명한 가문인지라 가문의 방계들도 어지간한 연단술은 안다 하기야 하지만...

누누히 말하지 않느냐, 둔재는 한 분야만 파고들어도..."

그런가.

스승님은 물론이고, 많은 이들이 연단에 대해서는 모르고.

축기단, 축허단이 '무엇으로' 만들어졌는지도 모르는 건가.

말해주어야 할까?

"..."

나는 잠시 고민하다가, 눈을 질끈 감고 말했다.

"...죄송합니다. 하지만, 제자는 그 단약을 먹을 수 없는 이유가 있습니다. 부디 믿어주십시오..."

"...몹쓸 놈 같으니. 스승이 어렵사리 구해온 단약을 먹지 않겠다는 게야? 됐다. 이 단약은 어쨌든 네놈 줄 터이니 먹든 팔든 알아서 하거라. 난 가마!"

스승님은 짜증을 잔뜩 내며 내게 비단함을 건내주고는 가버렸다.

나는 잠시 멍한 표정으로 내 손에 들린 축허단들을 바라보았다.

아직도 막리현의 말이 귓가에서 떠나지 않았다.

인간으로 만든 영약.

내가, 과연 이것을 먹어야 할까.

꾸욱...

나는 입술을 짓씹었다.

아니, 아니다.

아무리 수명을 늘려준다고 할지라도.

아무리 내 시간을, 이 삶에서의 인연을 이어갈, 귀한 약이라 할지라도.

이 삶 속에서 인간이기를 포기하면, 그것은 죽도 밥도 되지 않는다.

나는 스승님께 속으로 사죄를 올린 후, 청문세가의 본가 인근 야산.

그곳에 땅을 파고 단약 세 알을 그곳에 묻어주었다.

그런 후 흙을 덮어 작은 봉분을 만든 후, 정식으로 배운 천도의 의식을 해 주며 제문을 읊었다.

물론 혼(魂)까지 이 찌꺼기 단약에 남아있지는 않았기에 아무 영혼도 천도되지는 않았으나.

나는 조금이라도 사후의 영혼들이 평안하기를 빌며, 약에 희생된 이들의 명복을 빌어주었다.

'...죄송합니다, 스승님.'

아무리 스승님이 준 것이라 할지라도.

인간을 벗어나는 것은 먹을 수 없다.

"...나도 뭘 하는건지."

사실 내 이득을 위해서라면 무조건 먹는 것이 맞았다.

내 수명이 얼마나 남았는지, 내가 어찌 안다는 말인가.

무조건 늘릴 수 있을 때에 늘리면 좋은 것이다.

연기기 7성에 막 다다렀고, 아직도 이 앞으로 가려면 뭘 얼마나 더 해야할지 감도 안 잡혔다.

무공의 오기조원의 경지 역시, 월수월무록을 익히며 많이 진도가 나가기는 했으나.

여전히 다음 경지는 까마득했다.

일생을 바쳐서 얻은 절정, 삼화취정, 오기조원과 달리.

등봉조극은 너무도 멀고도 아득하기만 하였다.

이번 생만으로는 절대 무리였고, 어쩌면 한 번의 생을 더 갈아넣어야 할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그런 만큼, 수명을 10여년이나 늘려주는 저 단약은 분명 내게 엄청난 기회이리라.

하지만...

'...역시, 엄청난 기회일지언정. 저것을 입에 댈 수는 없다.'

단순히 저 단약뿐이 아니었다.

삿된 방법으로 만든 약은, 절대 이 목으로 넘길 생각이 없었다.

나는 천천히 야산에서 내려와 다시 청문세가의 본가로 내려왔고.

스승님께 인사를 드리러 갔다.

"...왔느냐."

"예."

"...그래. 일단 연기기 7성에 대해 공부를 해 보자꾸나..."

스승님은 내가 자신의 선물을 거절한 것에 조금 상처를 받은 탓인지.

약간 우울한 표정으로 서책을 펼쳤다.

"7성은 칠성제의(七星祭儀)라 하여. 천지의 영성(靈性)을 관장하는 스물 여덟 별 중. 일곱 별에게 제의를 드리는 행위이다. 하늘의 별들 앞에서, 이제부터 네가 수선(修仙)의 길을 걷겠다고 고(告)하는 행위인 셈이지.

지금까지 칠십이지살, 삼십육천강, 십이지율, 십천간도, 구궁귀일, 팔괘완로를 통해 네 영맥을 완성하고. 네 진도(陣圖)를 완성시킨 것은, 어찌보면 이 칠성제의때에 쓰일 제단(祭壇)을 만들기 위함이라 볼 수 있다.

네 몸을, 네 진법을, 네 공법을 하나의 제단으로 삼아 천지의 영성과 통(通)하게 하는 것이야."

스승님의 설명이 이어졌다.

"사실, 그러므로 이 단계에서 네가 특별히 깨달아야 할 것은 없다. 칠성제의의 단계는 네 몸을 제단으로 삼고, 네 혼을 제사장으로 삼아 천지영성과 통하는 제의를 치루는 것이니까.

물론, 제의를 치루는 법과. 칠성(七星)이 네게 힘을 줄 가장 좋은 시운(時運)을 계산하는 방법. 천문(天文)을 읽는 법 등은 배워두어야겠지만..."

천문을 읽는 법은 나도 이전, 무림맹 책사 시절 배워둔 교양이었기에 그렇게 어렵지 않을 것 같았다.

실제로도, 수도자들이 사용하는 상징과, 내가 몰랐던 몇몇 별에 대한 내용.

그리고 별들에 얽힌 내용을 몇 가지 배운 것을 제외하면, 이전까지와는 달리 정말 배운 게 없다시피 할 정도였다.

'7성은 좀 쉬운 단계인건가...'

거기다가 칠성에게 제의를 치뤄, 하늘이 내려주는 영기를 받아, 하늘의 영기로 경맥을 한층 진화시키면 끝인 단계인지라 대부분의 수도자들은 7성의 단계는 굉장히 빨리 넘어가는 편이라 하였다.

'물론, 천영근자들은 7성의 단계에선 시운을 정확히 맞춰야 하기에 오히려 7성의 단계가 제일 늦는다 하지만...'

그거야 특이한 경우였으니 내게는 해당되지 않을 터였다.

나는 스승님의 가르침에 따라, 별자리를 읽고, 천문을 계산하여 그와 함께 내게 가장 좋을 시운을 계산하였다.

다행히도 내게 맞는 시운은 그리 멀지 않았고, 스승님은 나를 위해 청문세가 본가 인근.

용맥이 모이는 자리에 장로의 권한으로 작은 제단을 지어주었다.

"오늘 밤이 네게 맞는 시운이다."

"예."

"준비를 단단히 하거라. 제사를 치루는 법은 전부 숙지했느냐?"

"예, 당연합니다."

"그리고 너는 이번 별자리가 마음에 드느냐?"

천지영성을 대표하는 하늘의 스물여덟 별자리.

그 중에서 그 날의 시운에 가장 걸맞은 별자리를 골라 그 일곱 별의 영성을 받는것이, 칠성제의의 핵심이었다.

듣기로는, 연기기 7성에서 어떤 별자리에게 제(祭)를 지내는지에 따라 축기기의 어느 단계에서 도움을 받을 수 있는지가 정해진다고 하였다.

"예, 이번 별자리가 가장 마음에 듭니다. 스승님께서 골라주신 별자리니까요."

"흥! 아부는... 됐다. 곧있으면 해가 질 터다. 제의를 준비하거라."

"예!"

나는 제단의 앞에 도착하여, 공법을 운용하며 내 육신을 작은 제단으로 만드는 작업을 완료했다.

이제, 해가 지고 별들이 하늘을 뒤덮으면 제의를 시작할 계획이었다.

해가, 진다.

그리고, 별들이 떠오르기 시작했다.

"시작해라! 내가 보조해주마!"

"옛!"

나는 제단 주변에 펼쳐진 나의 진도(陣圖)를 움직이며, 천지영성에게 올리는 제의(祭儀)를 시작하였다.

그렇게 제의가 한창 진행될 때였다.

"그리하여, 하늘의 천신과 신장께오서 축원해주시오며..."

후우우-

바람이 분다.

'어...?'

그리고, 나와 스승님의 안색이 일그러지기 시작했다.

쿠릉, 쿠르릉...

맑은 하늘이었다.

방금 전까지만 해도 구름 한 점이 없었고, 스승님이 정확한 날씨까지 계산하여 이번 밤을 잡은 것이었다.

오늘 밤은 분명 맑을 예정이었다.

그런데, 하늘에 갑작스럽게 먹장구름이 끼고 있었다.

하늘이, 가려진다.

맑은 달빛과 별빛들이 구름 뒤로 몸을 숨겼다.

한창 별들과 소통을 준비하던 내 제단이, 소통의 대상을 잃고 무화되었다.

하늘에서 내려오던 영성이 뚝 끊겼다.

"...당황하지 마라. 예정에 없던 구름이야. 거기다 느껴보니 수기(水氣)도 느껴지지 않아. 비를 뿌릴 폭풍도 아니고, 그냥 잠시 지나가던 녀석이다. 바람도 많이 부니 곧 있으면 사라질 게야."

"...혹, 스승님께서 없애주실수는..."

"멍청한 놈! 내가 설명할 때 뭘 들어먹은게야! 난 네 의식을 보조만 할 수 있을뿐, 직접적인 개입은 불가능하다! 특히 하늘과 관련된 쪽에 관해서는 더더욱!

지금 내가 하늘에 끼어들어 구름을 날려버리면 즉시 네 제의는 실패로 돌아갈 게다!"

"...그렇다면 기다리겠습니다."

나는 잠시 의식을 중단하고, 하늘을 바라보았다.

구름이 사라지기를 기다리며.

그리고, 아침이 되었다.

별들이 사라지고 해가 뜨자, 그제야 구름은 거짓말이었다는 듯이 흩어져 버렸다.

마치, 그저 지난 밤 내 의식을 막는 것이 목적이었다는 듯이.

"이, 이게... 어찌된..."

나도 상당히 놀랐으나, 오히려 스승님이 더욱 더 망연자실해하며 하늘을 바라보고 있었다.

"하, 하늘이 수도자의 시운을 이렇게 방해한다고? 이, 이럴 수는 없다. 뭔가 착오가 있는게야. 그, 그래. 미안하다 제자야. 이 스승이 못나 시운을 잘못 계산하였나 보구나!"

"스승님..."

하지만 나는 어쩐지 불길한 기분을 느끼며 그에게 되물었다.

"시운이 잘못 계산되었다고, 저런 천기현상이 나타나는 것입니까..?"

"아, 아니. 물론 아니지. 저건 그냥, 이상현상일 뿐이다. 음, 그래. 시운이 아니라 내가 날씨를 좀 많이 잘못 계산한 것일 수도 있어. 제자야, 내가 근시일 내로 다시 알맞는 시운을 계산할테니, 그때 다시 제의를 치루자꾸나."

"알겠습니다."

나는 작게 한숨을 쉬며 제단에서 내려왔다.

하기사, 인생이 어찌 뜻대로만 되겠는가.

삶이 뜻대로 되지 않는다는 건 나만큼 잘 아는 이가 없었다.

나는 기다리기로 하였다.

여지껏 그랬던 것처럼.

* * *

우리는 또 다른 시운을 계산하여, 그 날짜에 다시 제단을 세우고 제의 준비를 하였다.

"이번에는 틀림없다! 틀림없이 천지영성의 영기를 받아들일 수 있을 거야! 이번에는 날씨까지 틀림없이 계산했어, 그러니..."

그러나.

밤이 되고, 하늘이 검게 물들었다.

하늘의 어둠이 아니었다.

먹장구름.

하늘을 가리는 커다란 장막이, 하늘 전체를 드리웠다.

그것도 예정에 없이 갑자기.

"무, 무슨! 말도 안되는! 내 계산이 틀릴 리 없거늘!"

스승님은 너무나 당황하여 외쳤다.

"이번에도! 이번에도라고! 이, 이 무슨..."

그렇게, 두 번째의 제의도 무화되었다.

"다시! 다시 다음 제의를 준비해 보자꾸나! 두 번쯤은 그런 악재가 겹칠 수 있는게야! 허허허! 이번에는 이 스승이 제대로 된 시운을 계산해 주마. 그리고 제단도 제대로 된 곳에 세워주마."

몇 달 후.

스승님은 또 다시 내게 맞는 시운을 계산하였고,

이번에는 벽라국의 동쪽으로 향하여, 영력은 많지 않지만.

구름은 절대 낄 일이 없는 답천사막의 한복판으로 향하였다.

"이곳은 답천사막의 풍리지역이라는 곳으로, 바람이 거세고 공기가 건조해 절대로! 절대로 구름이 낄 일이 없다!

또한 주변 몇십리가 바위사막이라 모래도 날릴 일이 없으니, 이번엔 제대로 제의를 완료할 수 있을 것이야!"

그렇게, 또 다시 해가 지고 별들이 떠올랐다.

나는 다시금 제의를 준비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번에는 제의 중반까지도 아무 탈이 없이 잘 흘러가는 듯 했다.

제의의 마지막 관문인, 별들에게 하늘의 영력을 내려받는 과정을 앞뒀을 때였다.

쿠릉, 쿠르르릉!

하늘에, 먹장구름이 몰려오기 시작했다.

먹장구름은 내가 제의 절차를 채 다 끝내기도 전.

건조한 사막의 하늘을 그대로 뒤덮어버렸다.

"안돼에에에에!"

스승님은 마치 자신의 제의가 중단된 듯이 울부짖었으나, 구름은 미동도 없이 하늘을 차단하고 하늘의 영력을 끊어내 버렸다.

"으아아! 내 제자가 왜 안 된다는 겁니까! 왜!"

쿠구구구!

스승님의 영력이 하늘로 솟구치며, 하늘에 걷힌 구름을 모조리 걷어내었다.

축기기 수도자의 가공할 법력이, 밤하늘을 밝히며 구름이 밀려난다.

하지만.

스승님이 하늘에 손을 쓴 탓인지, 제의를 보며 힘을 내려보내던 별들이 더 이상 힘을 내리지 않았다.

제의가 그렇게 끝난 것이었다.

"왜, 왜 이런 일이 벌어지는 것이지... 왜, 왜..."

그는 입술을 잘근잘근 씹으며 한참을 서성이고는, 한숨을 쉬었다.

"일단 내가 왜 이런 일이 생기는지를 알아보마. 가자, 제자야."

나는 스승님의 비행법기를 타고 다시 청문세가의 본가로 돌아왔으며.

그 이후 스승님은 청문세가의 서고를 들락거리며 온갖 고서(古書)들을 뒤적였다.

이전에도 책에 빠져 사는 분이었으나, 내 증상을 조사하기 위한 탓인지 훨씬 많은 책을 가져와서 마구 흝었다.

그리고, 약 한 달이 지난 시점.

스승님은 충혈된 눈으로 내게 찾아왔다.

"...네 증상을 찾았다."

"...! 어찌 이런 일인 것입니까..?"

"..."

잠시 머뭇거리는 듯 하던 스승님은, 입술을 짓씹으며 말했다.

그리고, 다음 순간 스승님의 입에서 나온 말을 들은 나는, 억장이 무너져 내리는 기분을 느낄 수 있었다.

"세계(世界)가, 너를 거부하는 것이야. 하늘이, 수선을 불허(不許)하는 자들에게서 내보이는 증상이라 한다더구나..."

"수선을... 불허...?"

"...너는, 수도자가 될 명(命)을 타고나지 않은 것이다. ...미안하다. 제자야. 이 스승이, 해 줄 수 있는 것이 없구나."

불허(不許)(2)

불허한다고?

나를?

내가, 수도자가 되는 것을?

"...스승님. 제자, 이해가 잘 가지 않아 여쭙습니다."

"...무어냐."

"명(命)이라는 것이, 실재한다는 말입니까?"

"그래... 실재한다. 우리 인간들이 운명(運命)이라고 부르는 것은, 분명 존재하고, 그것으로 인하여 삼라만상 억조창생의 생령들에게 영향을 미친다."

손끝이 떨리고 있었다.

"명(命)이라는 것이 실재한다면, 생령들의 자유 의지라는 것은, 없는 것이 아닙니까..?"

자유의지가 존재하지 않고, 모든 결과가 고정되어 있다면 이 모든 것은 무슨 의미란 말인가..?

"글쎄... 꼭 그런 것은 아닐 것이다. 하늘이 내린 영력, 하늘의 운행을 받은 일곱 별에게서 허락을 받은 수도자들은, 연기기 7성에서부터 어렴풋이 운명이라는 존재를 읽을 수가 있다.

너는 단순히 내게서 천문에 대한 지식을 배우고, 하늘의 별자리를 읽는 방법을 배웠겠지. 하지만, 하늘에게 허락을 받은 순간부터 수도자는 천기(天機)라는 것을 어렴풋이 보는 것이 허락된다."

스승님의 설명이 이어졌다.

"물론 인간이 감히 운명이라는 거대한 것을 직접 목도하는 것은 불가능하겠지. 하나... 아주 기본적인 것 정도는 읽는 것이 가능하단다.

연기기 7성의 수도자부터는 자신의 수명(壽命)을 읽어내어 자신의 삶이 얼마나 남았는지를 확인이 가능하지."

"수명..? 인간의 수명이란 것이, 정말로 정해져 있다는 말씀입니까?"

"그렇다."

"그렇다면... 수도자가 있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어째서 수도자는 수명이 정해져 있다는 것을 알고도 수행을 이어가는 것입니까..?"

"그것은... 수명이란 분명 정해져 있을지언정, 절대적인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수명이, 절대적인 것이 아니라고?

"예를 들어, 연기기 수도자는 기껏해야 범인과 똑같은 수명을 지니고 있다. 하지만 축기기 수도자부터는, 경지를 오를 때마다 하늘로부터 수명을 내려받지.

축기기는 300년의 수명을, 결단기는 600년의 수명을, 원영기는 1200여년의 수명을. 그리고 천인기는 2400여년의 수명을. 세세한 수명은 각자 다르지만, 수도자는 경지를 높여가면 하늘로부터 새로운 수명을 내려받는다.

그렇기 때문에 수도자는 그 존재 자체로 천기에 변화를 일으키며, 예로부터 수도자는 역천자(逆天者)라고도 불려온 것이지."

"...하면, 저 역시 수도자의 명을 새로 내려받을 수는 없습니까?"

"...그것이 꼭 그렇지는 않다. 인간이 주어진 명을 새로 내려받을 수 있다고는 하지만. 실제로 하늘이란, 오히려 처음부터 '수명을 넘어설 운명'을 부여해주기 때문이지."

그의 안색이 어두워졌다.

"타고난 자질로, 타고난 영맥으로, 타고난 오성으로. 그렇게 타고난 운명이, 수명을 바꿀 수 있는가 없는가에 대한 기준이 되는 것이야."

"...저는, 타고나기를 수도자가 될 수 없는 운명이라는 것입니까...? 타고나기를 운명을 벗어날 수 없는 운명을 타고났다는 말씀이십니까...?"

"...그런 듯 하구나."

나는 아연해지며 되물었다.

"그렇다면, 정말로 방법이 없는 것입니까...?"

"...내가 찾아본 바로는 없더구나. ...미안하다."

"하늘이 정해준 수명이라는 것이. 이해가 가지 않습니다. 하늘은 그저, 개념이 아닙니까? 하늘은 그저 푸른 대기를 하늘이라 칭하는 것이 아닙니까?"

"단순히 그런 것을 칭하는 것이 아니다. 이 세상을 흐르는 법칙... 거대하고 또 거대한 이치... 그런 것이 하늘인 셈이야..."

그렇다.

하늘이, 이 세계(世界)가 나를 허락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우리는 전부 하늘이 부여해준 운명을 가지고 이 세상에 태어나고, 자라고, 죽는다. 수도자들이 역천자라 하여 하늘을 거스른다고 말이야 하지만. 그것은 그저 천기에 변화를 일으킨다는 말을 돌려한 것이고.

실상은 어떤 수도자도 감히 자신을 낳아준 하늘의 은혜에서 벗어날 수 없어. 그렇기에, 수명을 극복은 할 수 있다고 하지만. 그 수명을 극복할 운명조차 실은 하늘이 부여한다는 것이다..."

스승님은 내 손을 잡으며 말했다.

"...나도, 그랬다. 너와는 비교할 수는 없지만."

그의 목소리가 떨리고 있었다.

"평생을 노력하고, 또 노력했다. 손가락에서 피가 날 정도로 수결을 맺고, 목소리가 쉴 정도로 진언을 읊었어. 그렇게 평생을 거쳐 겨우겨우 축기기에 올랐다...

하지만, 내 자질로는 축기기 초기가 한계라더구나..."

스승님은 삼영근자로.

진영근에 해당하는 영질이었지만, 지닌 바 영맥이 얇고, 태어날때부터 체내에 불순한 기운이 많아 축기기 초기에만 머물렀다.

"선각후통에 집착하며 법결과 진언 연구에만 평생을 바친 것 역시... 후학들이 조금이나마 내 주석과 깨달음들을 읽어, 부족한 자질로도 최대한 많이 경지를 올릴 수 있게 하기 위해서였다.

그리고, 너는 오영질자로, 비천한 범인에서부터 태어나 연기기 7성에 이르기까지... 내가 추구해온 가치를 훌륭하게 증명해주었다... 그러나, 사람에게는 역시... 주어진 주제가 있는가보구나."

그를 처음 만났던 날 들은 말.

그때의 주제는 나를 향한 말이었지만, 이번에 나온 말은 그 자신을 향한 말이었다.

"...이런 주제밖에 안 되는 스승이라 미안하구나. 이런 명을 지녀, 아무것도 해 주지 못해 미안하구나..."

"...아닙니다. 제자 역시... 이런 주제밖에 되지 않아, 죄송합니다..."

두 둔재는 이를 악물며 서로에게 미안하다고 하였다.

"...내가 네게 해 줄 수 있는 것은... 이제 없다. 하지만, 되지는 않겠지만... 나는 노력이라도 해 보마. 더욱 더 고서를 찾고 의식을 찾아, 수도자의 명을 타고나지 않은 이가, 하늘에게 어찌 허락받을 수 있는지를 찾아보마..."

"...감사합니다."

"하늘에게 버림받은 이가 할 수 있는게 무어가 있겠느냐... 하늘은 우리의 명을 정해주었지만, 우리가 그 명 안쪽에서 어떻게 살아갈지를 다 정하지는 않았어... 그러니, 할 수 있는데까지, 함께 발버둥쳐주마."

스승님의 눈이 나와 마주쳤다.

"고작 그게, 이 내가 스승으로서 네게 해줄 수 있는 최대한이구나."

"..."

나는 대답하지 않았다.

그저, 입술을 꾹 다물고 고개를 숙일 뿐이었다.

말은 없었지만, 서로의 마음을 알 수 있었다.

* * *

그날부로, 내 일상은 많이 바뀌었다.

손에서 피가 날 정도로 수결을 맺고, 공법을 운용하지 않았다.

대신, 스승님과 함께 청문세가의 서고를 들락거리며 온갖 고서와 의식서적.

천기서적에 대한 것을 찾았다.

'하늘이 허락하고 허락하지 않는 이들의 기준은 무엇인가.'

내 내공 때문인가?

아니면 원래부터 영근을 타고나지 않은 무림인이, 오기조원에 도달해 억지로 영근을 얻었기 때문에?

그도 아니면 내가 다른 세계에서 온 것 때문에?

아니면 내 회귀 때문에?

그도 아니면 그냥 내 운명이 그런 것인가?

그러나, 고서적 중에서도, 이런 식으로 하늘에게서 거부받는 인간에 대한 내용은 너무나도 희소한 내용이었기에.

도무지 찾기가 어려울 지경이었다.

그러나 나는 하늘과 천기, 운명에 관한 서적들을 찾아 읽으며.

운명이란 개념에 대해 조금 더 알게 되었다.

연기기 7성부터 수도자들은 자신의 명(命)을 읽게 된다고 하였다.

물론 자세한 명은 아니었고, 고작해야 자신의 수명이 대략 어느 정도인지를 아는 정도라 하였다.

그리고 경지가 올라갈수록 수명이 어느 정도 남았는지를 정확하게 알게 되고.

축기기 수도자가 되면 앞으로 자신에게 닥칠 일이 흉한지 길한지에 대해 아주 모호하게 알게된다 하였다.

결단기에 이르면 그 정도는 더욱 세심해져, 자신에게 닥칠 일에 대해 흉함과 길함을 조금 더 세세하게 알게된다 하였다.

원영기 이상은 어느 정도로 운명에 대한 감각을 지니는지 정보가 없었으나, 결단기 수도자들보다는 정확하다 하였다.

또한, 인간의 자유의지에 대한 연구 역시 기록된 서적도 찾을 수 있었다.

예를 들어, 하늘로부터 80년 정도의 수명을 부여받은 범인은 과연 무조건 80년을 사는가?

한 수도자가 나쁜 마음을 먹고 80년어치 수명을 가진 범인을 일수에 쳐죽이면, 그 범인은 어찌되는가?

이에 대한 답은, 하늘은 운명을 내릴 뿐, 존재가 그 운명을 얼마나 걸어가는지에 대해서는 상관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한 마디로.

인간에겐 운명이라는 이름의 길이 주어지지만.

외압으로 인해, 자신의 의지로 인해.

자신에게 주어진 운명의 길조차 전부 완수하지 못하는 이들도 있다 하였다.

'그런건가.'

나는 운명에 대한 서적을 읽으며 이전에 내게 있었던 일들을 생각해 보았다.

'최초의 삶과 건강 상태, 몸의 상태가 전부 달라졌음에도, 나는 수많은 삶 속에서 정확히 같은 날. 정확히 같은 시, 정확히 같은 때에 죽었다.'

그게 확률상 말이 되는 일일까?

심지어 건강 상태가 매 삶마다 달라졌음에도!

나는 그런 일 때문에 내게 주어진 운명이라는 것이 실존하며, 어쩌면 내게 자유의지가 없다고 생각한 적도 있었다.

그러나, 황태자 막리현의 목을 베던 당시.

그 때 나는 처음으로 내 수명 이전에 죽었었고, 꼭 수명이 정해진 것은 아니리라 생각하였다.

하지만...

'이 서적의 설명에 의하면. 하늘이 내게 내린 수명은 약 50여년. 그리고 내가 제대로 운명의 길을 걸어가면, 그 수명에 맞게 살 수 있지만.

외압으로 인해, 혹은 내 선택과 의지로 인해, 내게 주어진 운명의 길을 다 걷지 못하면 그보다는 일찍 죽는 것이라는 것이군.'

운명이 완벽하게 짜맞춰져 정해진 것이 아닌.

인간에게 부여된 길의 개념이라고 한다면, 인간에겐 자유의지가 있다는 것이, 이 서적에서 주장하는 것이었다.

물론 단지, 주어진 운명의 길 너머로는 갈 수 없다는 것이 문제겠지만.

서적에서는 운명에 대해서도 이와 비슷하게 설명하고 있었다.

하늘은 인간에게 운명을 선물했지만, 모든 인간이 자신에게 주어진 운명의 길을 걸을 수 있는 것은 아니라고 하였다.

어떤 이는 의지력의 문제로, 어떤 이는 외부 환경의 문제로.

운명의 길을 걷지 못할수도 있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운명의 길을 끝까지 걸어갔음에도 불구하고 그 너머에 하늘이 내린 길이 없다면.

그것이 그 존재의 한계라는 것이었다.

인간은 운명에 도달하기 전까지는 자유롭게 살 수 있을지언정.

그 너머로 도달하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것이었다.

하늘이 선물해준 삶이라는 시간 동안에 자유롭게 사는 것이, 모든 필멸자의 권리이자 덕목이니.

모든 존재는 주어진 삶 안에서 자유롭게 감사히 사는 것이 맞다는 말을 끝으로.

책의 내용은 끝이 났다.

'...이 책과 같은... 건가.'

나는 무언가 책에서 설명하는 운명이란 말이, 책 자체와 비슷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책의 저자는 책에 얼마나 많은 내용을 담고 싶었는지 모른다.

그러나 종이의 크기에는 한계가 있고, 책의 분량도 한계가 존재한다.

책의 저자는 정해진 분량 안에서 원하는 서사를 써내려가나, 책의 분량을 넘어설 수는 없는 것이다.

어떤 서사도 책 바깥을 넘어갈 수는 없다.

책을 덮으면, 모든 이야기는 끝이 나는 것이었다.

'이것이 운명에 대한 개념...'

그렇다면, 정말로 나는 여기서 끝이라는 말인가...?

정말로 나는...

'아니, 아니다.'

나는 이를 악물었다.

애초에 책을 덮으면 끝이라지만, 내 이야기는 끊임없이 처음으로 돌아간다.

그리고, 이러한 운명을 부여한 것은 분명 하늘이다.

하늘이 내게 이러한 운명을 부여하였다면, 그것은 이유가 있는 것일 터였다.

'계속해서 운명을 극복해왔다...'

최초의 삶에서, 나는 그저 비참하게 죽어갈 비렁뱅이의 운명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어떤가.

나는 검을 익히고 익혀.

천박한 재능을 가지고 무림의 전설로만 전해지는 오기조원에 도달했다.

영근을 타고나야만 익힐 수 있다는 수도선술을, 오기조원에 도달하여 억지로 획득해냈다.

운명이 나를 짓눌렀을지언정.

몇 번이고 운명을 넘어서 왔다!

"답이... 있을 것이다."

반드시, 답이 있을 것이야!

나는 미친 듯이 고서를 읽고 또 읽어갔다.

* * *

어느 날.

스승님이 한 권의 서책을 들고.

잔뜩 충혈된 눈으로 내게 왔다.

"가문의 상급서고에서, 한 권의 고서를 찾아냈다."

스승님이 가지고 온 서책은, 아무 제목도 없었고, 잔뜩 낡아 먼지가 되기 일보직전으로 보였다.

"한번 읽어보거라."

나는 책을 받아 읽어보았다.

책의 내용은 먼 고래적의 야사(野史)들의 모음이었다.

야사들에는 어머니와 청년이 살던 중. 한겨울에 어머니가 아프자 의원이 잉어를 먹여야만 낫는다고 했으나. 겨울이라 잉어를 구할 수 없자, 청년이 잉어를 구하기 위해 몸의 열기로 강의 얼음을 녹이던 중, 강이 절로 깨지며 잉어가 튀어나왔다는 이야기.

혹은 두 눈을 잃은 맹인이 하늘에게 빌고 또 빌자, 어느 날 시력을 되찾았다는 이야기.

죽을 날이 된 노인이, 하늘을 위하여 일천 번 제사를 지내자 노인의 수명이 늘어나며, 죽을 예정이었던 이가 수명을 추가로 얻었다는 이야기 등이 수록되어 있었다.

"비록 야사이고, 대다수가 범인들의 이야기이다. 하지만, 공통점이 있지 않으냐..?"

"...예. 불가능한 상황에서 말도 안 되는 기적이 일어났군요."

"맞다. 특히 야사집의 마지막, 노인이 제사를 일천 번 지내어 추가로 수명을 얻었다는 이야기는... 어쩌면..."

"몇 번이고 도전하고 또 도전하면, 된다는 겁니까?"

"그래... 이 야사집의 이야기들은, 대다수가 지성이면 감천이라는 교훈을 담고 있다. 범인들조차도 지성으로 힘을 다하면. 하늘이 감동한다는 것이야."

스승님의 목소리가 떨려왔다.

"...물론, 내가, 우리가 지금까지 죽어라 노력해온 것은 지성이 아니었다는 말도 되긴 하겠지만."

"..."

그렇다.

노력을 하지 않은 이가 어디 있겠는가.

하지만 노력을 할지라도, 하늘이 끝끝내 문을 열어주지 않는다.

어찌해야 한다는 말인가.

"...계속해서 의식을 시도해보자꾸나."

"..."

"하늘이 한 번 거부하면 열 번을. 열 번 거부하면 백 번을. 백 번 거부하면 천 번을 하늘에 빌어보자.. 몇 번이고 의식을 치루고 또 치뤄... 정녕 아니 되는지 끝없이 물어보자..."

스승님이 이를 악물며 말하였다.

"정녕 우리가 여기에서 끝나야 하는지 물어보자꾸나..!"

"...예. 스승님."

나 역시 그를 마주보며, 굳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날부로, 우리는 몇 번이고 방방곳곳을 돌아다니며 천문을 읽고, 제의를 시도했다.

물론, 제의를 시도할 때마다 매 번 구름이 끼고.

하늘과의 영력이 차단되기도 하였다.

한번은 연국 구월산이라는 곳까지 가 제의를 지낸 적도 있었다.

구월산의 봉우리는 구름 너머를 뚫고 솟아 있어, 그 위쪽에서 제의를 지내보면 구름이 덮을 수 없다는 것이 스승님의 의견이었다.

하지만 구름보다 높은 산봉우리 위에서도, 제의를 치루자 얼마 지나지 않아 더 높은 곳에 구름이 유령처럼 홀연히 나타나고는 했다.

마치 하늘이 물리법칙을 무시하는 한이 있더라도, 나만은 수도의 길에 들이지 아니하겠다는 듯이.

나와 스승님은 몇 번이고 명산과 대천, 혹은 강산을 찾아가며 스물 여덟 별 중 일곱 별을 골라.

끊임없이 제의를 지냈다.

제의를 지내면서도, 나는 틈틈이 스승님께 연기기 8성에 대한 지식을 배워두었다.

연기기 8성, 육합만로의 지식은 천지사방 육합을 의식에 적용하여, 법력으로 하여금 의식을 자극하는 단계엿다.

이 단계를 거치며 수도자들의 의식이 더욱 더 커지고, 법력이 전신 영맥에 가득 차며 훨씬 강력해진다고 하였다.

안타깝게도 7성의 경지를 완공하지 않는 이상 8성의 수련법은 소용이 없었으나.

나는 이론과 그 깨달음만이라도 꾸준히 소화하였다.

그리고 나는 그 와중에도 틈틈이 김영훈을 만나 그에게서 무학에 대한 설명을 들으며, 오기조원에 대한 깨달음을 체화하였다.

그리고, 시간이 지났다.

내 수명이 다할 날이 가까워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