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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코어가 필요했다.

그러니까, 아주 절실하게.

나를 위한 코어에, 타이니를 위한 코어, 실험을 위한 코어, 스킬 연습을 위한 코어, 나와 타이니를 위해 특별 코어로 융합하기 위한 코어들, 그리고 또 다른 일에 쓸 코어도 필요했다!

코어!

여태까지 몬스터 농장에서 얻은 코어는 총 한 개였다!

오늘 아침 타이니와 함께 공동에 들어가 보니 거대한 두꺼비 한 마리가 이미 대부분의 몬스터를 해치운 뒤였다.

타이니는 두꺼비를 보자 마자 신이 나서 달려가더니, 전기 주먹 한 방으로 놈을 터뜨려 버렸다.

다행히 코어까지 부수지는 않았다.

그래도, 사흘에 코어 하나로는 내가 필요한 만큼 코어를 얻을 수 없었다.

택도 없다고!

하지만 현재로서는 해결책이 없었다.

타이니와 나는 지금 둥지 안에서 휴식을 취하고 있었다.

최근 둥지는 일개미들이 (좋아하는) 일을 열심히 하느라 기분 좋게 부산스러운 소리로 가득했다.

아이들을 돌보고, 둥지를 확장하고, 식량을 운반하고···

이제 우리의 새로운 개미 언덕은 상당히 커져서, 꼭대기가 거의 주변의 나무와 맞먹을 만큼 높았다.

나는 일개미들에게 언덕을 더는 높이지 말라고 당부했다.

안 그러면 숲 밖에서도 보이게 될 테니까···

어쨌든 우리의 주 목적은 웨이브가 끝날 때까지 안전하게 숨어서 지내는 거였다.

인간이든 뭐든, 문제가 발생하는 건 원하지 않았다.

기쁘게도 이제 번데기들이 부화하고 시작했다.

수백 마리의 새로운 일꾼들이 둥지에 합류하는 것이다.

모든 번데기가 깨어나면 둥지의 개미 수는 마침내 천 마리에 도달한다!

이렇게 어린 둥지로서는 괄목할 만한 성과가 분명했다.

하지만 이건 아무 것도 아니었다.

농장을 조금 더 확장해서 바이오매스를 꾸준히 공급하면, 얼마 지나지 않아 개미의 수는 2천, 5천··· 1만 마리까지 늘어날 테니까!

다른 기쁜 소식도 있었다.

오랜 휴식을 취하던 여왕이 마침내 깨어난 것이다.

여왕은 일꾼들이 바치는 엄청난 양의 식량으로 배를 채운 뒤, 곧바로 알을 낳기 시작했다.

내 방에서 쉬고 있는 동안에도 일꾼들이 갓 태어난 알을 육아실로 옮기고, 깨끗이 닦고, 온도를 확인하는 소리가 들렸다.

그건 곧 내 계획들을 더 빨리 진행해야 한다는 의미였다.

하지만 그러려면···

코어가 필요했다!

짜증스럽게 턱을 딱딱거리고 있는데 갑자기 무슨 소리가 들렸다.

타이니의 코 고는 소리인가 하고 돌아봤지만 아니었다.

녀석은 두꺼운 팔을 베고, 털이 무성한 십대 청소년 같은 모습으로 조용히 잠들어 있었다.

소리를 낸 건 방 한 구석의 번데기였다.

안에 들어 있는 유충이 개미의 모습을 갖추면서, 번데기의 껍질은 이미 상당히 얇아진 상태였다.

아직 갑각이 굳지 않아 하얗고 투명한 꼬마 개미가 천천히 움직이며, 잔뜩 구부리고 있던 여섯 개의 다리를 처음으로 펼치고 있었다.

아무래도 내가 좀 도와줘야 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일개미들이 턱으로 번데기를 잘라서 안에 있는 개미가 나오도록 돕곤 했다.

둥지에서 처음 태어난 개미들의 경우에는 여왕 개미가 직접 그 일을 했다.

나 같은 경우는 혼자서 물어뜯고 나왔던 것 같기는 한데···

기억이 지나치게 희미했다.

내가 제대로 기억하는 건 번데기에서 나온 이후부터였다.

어쨌든···

나는 기쁜 마음으로 둥지의 새로운 가족이 태어나는 걸 도왔다.

턱으로 조심스럽게 번데기의 껍질을 깨물고, 조금씩 떼어내서 갓 부화한 개미가 나올 수 있는 길을 만들었다.

잠시 후 작은 머리 하나가 그 구멍 안쪽에 나타났다.

그리고 곧 새로운 일개미가 완전히 모습을 드러냈다.

···

작아!

얘는 왜 이렇게 작은 거지!?

다른 갓 부화한 개미들에 비해서도 몸 크기가 3분의 1 정도였다.

그러니까···

정말 작았다.

이상한 점은 그것 하나가 아니었다.

정확히 뭐라고 표현해야 할지 모르겠지만, 일개미 치고는 좀···

에너지가 넘치는데?

이제 갓 부화했을 뿐인데 거의 폴짝폴짝 뛰어다니고 있었다!

물론 이 녀석은 유충일 때에도 남달랐던 기억이 있지만···

그렇다고 해도 이상한 일이었다.

내가 속으로 그렇게 투덜거리고 있는데, 갓 부화한 일개미가 더듬이를 이리저리 흔들더니 내 쪽으로 시선을 고정했다.

그리고 나를 향해 달려오기 시작했다!

순식간에 내가 있는 곳까지 달려온 일개미는 내 등 위로 기어서 올라왔다.

그리고 내 머리 위에 자리를 잡더니, 자기 더듬이로 내 더듬이를 계속해서 두드렸다.

···

뭐야.

···

왜 이래 이 녀석!

왜 나한테 이렇게 달라붙는 거지?

왜 다른 개미들이랑 다르게 구는 거야?!

솔직히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 알 수 없었다.

이 꼬마 개미는 너무 이상했다.

나는 순수한 호기심에서 마나 감지 스킬을 활성화했다.

그러자 설마 했던 곳에서 집중된 마나가 느껴졌다.

바로 내 머리 위 말이다.

장난해, 시스템?

이 녀석은 처음부터 코어를 가지고 태어났다고?!

말도 안 되잖아!

내가 코어를 얻으려고 얼마나 고생했는데!

이제 와서 몬스터 개미가 처음부터 코어를 가지고 태어날 수도 있다는 거야?

아니라고 말해!

내가 그렇게 분노하는 걸 전혀 모르는 채로, 코어를 가지고 태어난 꼬마 개미는 좀처럼 내 머리 위에서 내려올 생각을 하지 않았다.

에휴.

이 녀석에 대해서는 나중에 따로 조사해 봐야겠군···

일단 나는 타이니를 깨워서 함께 둥지 밖으로 나갔다.

꼬마 개미는 여전히 내 머리 위에 딱 달라붙어 있었다.

나는 쓸 데 없는 일에 정신을 빼앗기지 않고, 당면한 가장 중요한 문제에 집중하기로 했다.

코어 말이다.

근데 내 머리 위의 이 꼬마는 어떻게 처음부터···

...아니, 집중하자 집중!

한밤의 정찰

내가 아는 바에 따르면, 몬스터는 충분한 마나를 섭취했을 때 코어를 형성할 수 있었다.

그리고 코어를 형성하려면 진화의 기회를 한 차례 포기해야 했다.

내 머리 위에 앉아 있는 꼬마 개미는 어떻게 태어나기도 전부터 진화를 위해 필요한 레벨과 에너지는 물론이고 마나까지 가지고 있었는지 모르겠지만···

이런 예외는 일단 제쳐 놓고 내가 아는 바에 집중할 필요가 있었다.

나 자신은 첫 번째 공동에 있던 호수의 물을 마셔서 마나를 축적했다.

그때 다른 몬스터들도 거의 중독처럼 보일 만큼 호수의 물을 마시는 일에 집착했던 걸 보면···

아마 몬스터들에게는 마나를 축적하려는 본능이 있는 거겠지.

그렇다면···

내가 몬스터 농장에 마나가 담긴 물을 공급하면, 코어를 가진 몬스터의 수가 늘어날까?

시도해볼 가치는 있었다.

마침 몬스터 농장이 마나 호수 바로 옆에 있으니까 말이다!

편리하게도···

그런 생각을 하면서 호수로 돌아가자, 나뭇가지들이 무리지어 서 있다가 재빨리 흩어져서 숨어버렸다.

좀 더 가까이 다가가니 못 보던 어린 나무 몇 그루가 호수 기슭에 자라고 있었다.

저 녀석들 어린 나뭇가지를 여기다 심은 건가?!

흠···

주위 환경을 훼손하지 않도록 조심해야겠군.

아무래도 저 나뭇가지들은 이 호수에 의지해서 살아가는 것처럼 보이니, 조심하는 편이 좋을 듯했다.

나는 우선 호수와 농장을 잇는 좁은 수로를 판 다음, 타이니에게 돌을 납작한 형태로 부숴서 바닥에 깔도록 시켰다.

그리고 농장 안으로 들어가 몬스터들을 모두 무력화시키고, 천장의 구멍 바로 아래에 작은 구덩이를 팠다.

이 방법이 통해야 할 텐데···

나는 타이니를 시켜서 댐 노릇을 할 커다란 바위를 수로 안에 가져다 놓게 했다.

그리고 일부러 파지 않고 남겨 놓았던 부분을 완성하자, 수로에 물이 들어차기 시작했다.

고개를 들어보니 나뭇가지 몇 마리가 나무에서 고개를 내밀고 우리가 하는 일을 지켜보고 있었다.

아마 우리가 호수를 망가뜨릴까봐 걱정이 되는 모양이었다.

나는 안심하라는 뜻으로 더듬이를 흔들어 보였지만 녀석들이 내 의도를 이해할 수 있을지는 의문이었다.

아무래도 우리가 해를 끼칠 의도가 없다는 걸 알려주려면 실제로 내 계획이 진행되는 모습을 보여주는 수밖에 없을 듯했다.

일개미들은 며칠 전부터 이 호수로 와서 마나가 담긴 물을 마시고 있었다.

몬스터 농장이 근처에 있다 보니 정찰병들이 호수를 발견한 것도 놀랄 일은 아니었다.

한 마리의 개미가 뭔가 좋은 걸 발견하면 나머지도 자연스럽게 그 사실을 알게 됐다.

나는 혹시나 충돌이 발생할까 신경이 쓰였지만, 개미들은 나뭇가지들과 마주쳐도 큰 관심을 보이지 않고 무시했다.

아마 먹을 수 있는 대상으로 보이지 않아서 그렇겠지···

어쨌든 잘된 일이었다.

호수의 물을 마셔서 더 많은 개미들이 코어를 가지게 되면, 한층 더 강력하게 진화할 수 있을 테니까 말이다.

모든 준비가 끝나자 타이니가 댐 노릇을 하던 바위를 들어올렸다.

그러자 마나가 담긴 물이 내가 판 수로를 따라 흐르더니 몬스터 농장 안에 미리 만들어 놓은 구덩이로 떨어졌다.

잠시 후 타이니는 다시 바위를 내려 놓아 물이 더 이상 흐르지 않게 막았다.

호수의 물이 빠져나가자 조금 경계하는 표정으로 지켜보던 나뭇가지들이 그제야 안심한 듯 원래 있던 나무로 돌아가더니, 이내 보이지 않게 되었다.

나는 곧장 농장 위쪽의 구멍으로 고개를 들이밀고 몬스터들이 어떻게 반응하는지 지켜봤다.

다행히 내 예상대로, 갓 스폰된 몬스터들은 즉시 웅덩이의 물에 이끌렸다.

하지만 여기에 평화 협정 같은 건 없었다.

몬스터들은 웅덩이 주변에서 격렬한 싸움을 벌였고, 기회가 나면 최대한 빠르게 물을 들이켰다.

거기까지 확인한 나는 농장을 내버려두고 물러났다.

내 생각이 통해서 나중에 일개미들이 바이오매스를 수확할 때 코어가 한두 개라도 나오면 좋겠군···

작업을 마친 나는 다시 새로 얻은 스킬로 관심을 돌렸다.

나는 마나 형성 스킬을 최대 레벨까지 올리고 나서 마나 변환 스킬을 얻었다.

내가 정말로 고대해 왔던 스킬이었다!

스킬을 구매한 즉시 내 머리 속에 쏟아져 들어온 엄청난 양의 지식들을 천천히 소화하자, 어떻게 마나를 변환해야 할지 본능적으로 이해할 수 있었다.

이제 나는 드디어 코어에 저장되어 있는 순수한 마나를 다양한 속성의 에너지로 바꿀 수 있게 됐다.

따로 변환을 위한 신체 기관의 도움을 받지 않더라도 말이다.

유일한 문제는···

마나를 특정한 속성으로 변환하는 일이 엄청나게 복잡하고 어렵다는 거였다.

아직 지식을 완전히 소화하지도 못했다.

마나 변환은 여태까지 내가 익힌 스킬 중에서 가장 방대한 양의 정보를 제공했다.

비유하자면, 마나를 특정한 속성으로 변환하는 스킬은 마치···

너무 구조가 복잡해서 두 손과 두 발 그리고 얼굴까지 동원해서 연주해야 하는 악기와도 같았다.

내가 지금까지 이해한 바로는, 마나를 변환하려면 동시에 여러 가지 차원에서 복잡한 패턴을 완성해야 했다.

여러 차원에서!

그걸로 끝도 아니었다.

말도 안되게 복잡한 그 과정을 무사히 마쳐서 마나를 어떤 속성으로 변환시켰다고 해도, 그렇게 변환한 마나를 가지고 패턴을 형성한 다음 주문을 활성화해야 했다.

하나의 속성만 해도 그 정도였다.

다른 속성으로 변환하려면 같은 과정을 처음부터 반복하되, 이번에는 전혀 다른 구조의 악기를 다뤄야 했다.

그러니까···

이를 테면 엉덩이와 턱으로 말이다.

일단 나는 불이나 물 같은 상대적으로 단순한 속성으로 마나를 변환하기 위한 지식부터 확인했다.

공간 마법을 사용하기 위한 마나 변환에 관련된 지식을 잠깐 떠올렸다가 그대로 의식을 잃어버릴 뻔했기 때문이다.

그러고 보면 중력 마법 기관을 선택한 건 정말 잘한 일이었다.

마나를 중력 속성으로 바꾸는 일이 엄청나게 어려울 뿐 아니라, 분비선이 있으면 꼭 복잡한 주문을 완성하지 않아도 그 힘을 써먹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아마 그래서 마법 기관들이 그렇게 비쌌던 모양이다.

그런 마법 기관을 공짜로 얻었다는 건, 특별 진화가 얼마나 대단한 기회인지 잘 보여줬다!

···

거기까지는 기뻤지만, 이제부터 해야 할 일을 생각하니 의기소침하지 않을 수 없었다.

내 생각에 내가 마나 변환 스킬을 통해 반드시 사용할 수 있게 돼야 하는 마법은···

정신 마법이었다.

나도 포르모, 그리고 소포스 족이 하는 것처럼 의사 소통을 할 수 있어야 했다.

그래야 어떤 상대와 마주치든 직접적인 정신 연결을 통해 제대로 내 의도를 전달할 수 있을 테니까 말이다.

유일한 문제는 정신 마법을 사용하기 위한 마나 변환이 미친듯이 어렵다는 점이었다.

불 같은 속성과 비교하면 적어도 두세 배는 더 어려웠다.

하지만 해내야 한다!

지금 내게는 중력 마법과 어느 정도 강력한 육체가 있으니, 적어도 한동안은 큰 위협이 없을 터였다.

일단 정신 마법부터 완성하고 나서 화력을 높이는 쪽으로 노력을 경주해도 되겠지.

내가 시간을 내서 해야 할 또다른 일은 코어들을 손에 넣은 다음 코어 공학 스킬의 레벨을 높이는 거였다.

···

어쩐지 개미가 되고 나서는 항상 엄청나게 바쁜 느낌이다.

그래도 솔직히 신이 났다.

레벨은 오르지 않지만 확실히 점점 더 강력해지고 있을 뿐 아니라, 전과 달리 중요한 스킬들을 연마하기 위해 시간을 쓸 수 있었기 때문이다.

사냥을 위해 타이니를 데리고 다시 던전으로 내려가야 할 때가 되면, 이런 준비들이 아주 큰 도움이 될 터였다.

나는 머리 위에 꼬마 개미를 태운 채 둥지로 돌아와서, 남아 있는 코어들을 조작하는 연습을 했다.

그리고 더 이상 조작할 수 없게 된 코어들을 타이니에게 넘겨서 흡수하게 했다.

타이니도 이제야 뭔가를 깨달았는지, 더 이상 내가 머리를 때리지 않아도 코어를 흡수할 수 있게 되었다.

장하다!

나는 다시 코어 하나를 조작한 끝에 정신적으로 지쳐서 늘어졌다.

그러자 내 머리 위에 타고 있던 꼬마 개미가 앞으로 폴짝 뛰어내렸다.

꼬마 개미는 더듬이를 내밀어 코어를 건드렸다.

그러자 번쩍 하는 빛과 함께 코어가 사라졌다!

···

야.

누가 그걸 흡수해도 된다고 했어?

나는 더듬이로 꼬마 개미의 머리를 가볍게 때렸지만, 녀석은 코어가 강화된 느낌에 신나서 폴짝대느라 신경도 쓰지 않는 듯했다.

잠시 후 꼬마 개미는 다시 내 머리 위로 올라가 앉았다.

···

뭐 그리 큰 일은 아니었다.

이 녀석은 처음부터 코어를 가지고 태어났기 때문에, 아마 흡수한 코어의 값어치를 할 만큼 강해질 터였다.

어쩌면 처음부터 곧바로 특별 진화를 할 수도 있지 않을까?

그건 나도 못한 일인데!

그야 그때 나는 아무 것도 몰랐으니까 어쩔 수 없었지만···

만약 내가 투자를 좀 한다면 이 꼬마 개미는 엄청나게 강해질지도 몰랐다.

하지만 그러려면 심지어 더 많은 코어가 필요했다.

젠장!

나는 타이니를 데리고 몬스터 농장으로 데려가서 공동 안에 있는 몬스터들을 모두 무력화시켰다.

놈들에게 몇 차례 중력 화살을 발사하면서, 마법 주문의 사용에 익숙해지려고 노력하는 일도 잊지 않았다.

이번에는 우리가 먹을 식량만 가지고 나가는 대신 더듬이로 머리 위에 타고 있는 꼬마 개미를 두드리며 페로몬 언어로 말했다.

"거기서 내려온 다음에 저기 있는 놈들 중 몇 마리를 마무리해봐."

일개미들이 스스로 말은 못해도 페로몬 언어의 뜻을 이해하는 걸 보면 이 녀석도 가능할 것 같았다.

과연 꼬마 개미는 내 머리 위에서 잠시 망설이더니, 폴짝 뛰어내려서 조그마한 턱으로 가장 가까이 있는 몬스터를 맹렬히 공격하기 시작했다.

상대가 거의 죽기 직전까지 부상을 입은 칼날 꼬리 쥐였는데도 불구하고, 꼬마 개미는 그 불쌍한 몬스터를 한참 물어뜯고 나서야 숨통을 끊을 수 있었다.

녀석은 칼날 꼬리 쥐의 시체 위에 올라가서 의기양양한 포즈를 취했다.

"그래, 그래, 잘했어. 이제 다음 몬스터."

결국 꼬마 개미는 세 마리의 몬스터를 마무리하고 나서 지쳐 떨어졌다.

처음에는 이 정도로 충분하겠지.

물기 스킬도 성장했을 테고···

이 정도 경험치면 레벨이 최소한 하나, 어쩌면 두 개가 올랐을지도 모른다.

마나 감지 스킬을 사용한 나는 공동 안의 몬스터들 중 두 마리나 코어를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발견하고 크게 기뻐했다.

두 마리나!

얼마 전과 비교하면 엄청난 발전이었다!

계속해서 하루에 두 개씩 코어를 얻을 수 있다면 기쁨의 춤을 출 텐데!

마나 웅덩이를 확인하니 양이 4분의 1 정도 줄어 있었다.

아마 며칠 내로 한 번 더 물을 보충해야 할 것 같았다.

그러다가 호수가 완전히 마르거나 하지는 않아야 할 텐데···

뭐 그건 그때 가서 생각하기로 하고, 지금은 코어 수확의 성공을 기뻐하자!

나는 그 두 마리의 몬스터를 죽인 뒤 시체를 뒤져 코어를 파냈다.

그런 다음 타이니, 꼬마 개미와 함께 지상으로 올라가서 식사를 즐겼다.

잠시 후 일개미 부대가 경험치와 바이오매스를 수확하기 위해 농장 안으로 들어갔다.

지난 며칠은 너무 평화롭고 생산적이라, 가능할 때 최대한 즐겨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이 세계에 와서 한 가지 배운 게 있다면···

좋은 날은 결코 오래 가지 않는다는 점이기 때문이다.

식사를 마치고 마나 변환 스킬까지 좀 연습하고 나서, 내 작은 무리는 낮잠에 빠져들었다.

그리고 몇 시간 뒤에 다시 눈을 떴다.

오후에 잠을 자기 시작한 터라, 깨어나 보니 주위가 어두워지고 있었다.

달빛을 받아 아름다운 숲의 풍경 속으로 몬스터 개미들이 여기저기 돌아다니고 있었다.

농장 안으로 들어가서 다시 한 번 몬스터들을 무력화하고 코어도 하나 더 건진 뒤, 나는 슬슬 마을이 어떤 상황인지 살펴봐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돌이켜 보면 우리가 다소 요란하게 지상으로 나온 건 사실이었다.

내가 의도치 않게 팔을 잘라버린 친구가 무사했으면 좋겠는데.

뭐, 팔이 하나라도 살 수 없는 건 아니잖아?

밤이라 마을 상황이 잘 보이지는 않겠지만, 그렇다고 낮에 숲을 나가면 인간들에게 발각될 위험이 너무 컸다.

또다시 오해로 말미암아 누구 팔을 자르지 않으려면 되도록 인간과는 마주치지 않는 편이 좋을 것 같았다.

나는 타이니 그리고 꼬마 개미와 함께 숲 속을 나아가는 도중에도 시간을 낭비하지 않고 중력 주문을 연습했다.

마나 형성 스킬의 레벨은 더 이상 오르지 않을지도 모르지만, 주문에 익숙해지는 일은 여전히 중요했다.

그리고 움직이면서 패턴을 형성하는 건 가만히 서서 할 때보다 훨씬 어렵다 보니 좋은 연습이 됐다.

하루하루 마법 실력이 늘어가고 있군!

마침내 숲 가장자리에 도달한 나는 타이니에게 여기서 기다리라고 명령했다.

녀석의 커다란 덩치로는 인간들 눈에 띄지 않게 밀밭을 통과할 수 없을 터였다.

나는 머리에 꼬마 개미를 얹은 채, 고급 은신 스킬을 사용해서 농장을 지나 멀리 보이는 건물들 쪽을 향했다.

우리가 마을 근처에 도착했을 때에는 어둠이 두꺼운 담요처럼 내려앉아 있었다.

하지만 마을에 더 가까이 접근하자, 놀랄 만큼 주위가 환했다.

사실 이상할 정도로 환했다.

그러니까···

저 거대한 불길은 대체 뭐지?!

추격전

교회 앞에 거대한 모닥불이 피워져 있고···

그 주위에 수많은 인간들이 모여 있었다.

인간들은 모두 손에 조잡한 무기를 들었고, 이렇게 멀리서 봐도 잔뜩 흥분한 상태였다.

나는 고급 은신에 의지해, 마을 외곽의 건물들로부터 30미터 정도 떨어진 거리까지 기어갔다.

그리고 은신의 지속 보너스를 극대화하기 위해 몸을 웅크리고 가만히 멈췄다.

이런 어둠 속에서 은신 스킬을 사용하는 내가 들킬 염려는 거의 없었다.

심지어 갑각도 검은색이니까···

설마 마을 사람들이 예전에 던전 입구에서 봤던 몬스터 감지 보석 같은 걸 가지고 있지는 않겠지.

손에는 저마다 쇠스랑이나 녹슨 창 따위를 든 채, 일렁이는 모닥불의 붉은빛이 얼굴에 드리운 마을 사람들의 모습은 좀···

악마 같아 보였다.

그때 확신과 열정으로 가득한 목소리가 귀에 들어왔다.

나는 교회 바로 앞에서 낯익은 사제를 발견했다.

거리가 멀어서 잘 보이지는 않지만, 내가 처음··· 만났을 때 입고 있던 피로 물든 로브를 여전히 걸치고 있는 것 같았다.

교회의 정문 앞에 선 사제가 멀쩡한 한쪽 팔을 휘두르며 목소리를 높이자 마을 사람들이 따라서 외치고 포효하며, 무기와 주먹을 흔들었다.

···

왜들 저러는 거지?!

그때 교회의 문이 열리더니, 한 무리의 남자들이 안에서 뭔가를 들고 나왔다.

그러자 마을 사람들이 갑자기 입을 다물고 물러나서 길을 내줬다.

교회 건물 안에서 나온 남자들은 들고 있던 점을 모닥불 위에 던졌다.

불길이 치솟자 다시 한 번 함성이 터져 나왔다.

···

저거 아무래도 몬스터 시체 같은데.

마을이 아직 무사할 뿐 아니라 여기 사람들이 알아서 스스로를 지킬 수 있다는 건 좋은 일이지만···

좀 너무 흥분한 거 아닌가?

지금으로서는 마을 사람들의 힘으로 충분히 몬스터를 막아낼 수 있을지 몰라도, 결국 감당하기 힘든 적이 나타날 때가 걱정이었다.

만약 핵파리 같은 놈이 기어 나온다면 농부와 마을 사람들이 막아낼 수 있을까?

사기가 높은 건 좋지만···

정말 저런 조잡한 무기로 진짜 던전 몬스터들을 상대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걸까?

인간들의 얼굴을 살펴보니 하나같이 투지와 열정으로 가득했다.

던전 몬스터를 막기 위해 모두 나섰다면 좋은 일이겠지···?

조금 뒤쪽에 다른 사람들만큼 흥분한 것 같지 않아 보이는 나이든 여자 하나가 보였다.

그 여자는 어쩐지 걱정과 불안이 뒤섞인 표정을 하고, 두 손으로 치맛자락을 꼭 움켜쥔 채 광기에 찬 군중을 바라보고 있었다.

아마 나와 마찬가지로 마을 사람들이 좀 너무 흥분한 것 같다는 우려를 하는 듯했다.

아니면 그냥 모닥불을 별로 좋아하지 않아서 그럴지도 모르고.

어느 쪽이든, 저렇게 흥분한 사람들에게 이보다 더 가까이 다가가는 건 현명한 일이 아니었다.

그만 후퇴할 때였다.

그렇게 돌아서려고 하는데 머리 위가 어쩐지 허전했다.

뭐랄까, 갑자기 대머리가 된 것처럼?

처음부터 머리에 털은 한 가닥도 없었지만 말이다.

···

이 꼬마 어디 갔어?!

나는 더듬이로 내 머리를 확인한 뒤, 주위의 밀밭을 살폈다.

이 녀석 대체 어디로 간 거야?

가슴이 철렁 내려앉는 기분이었다.

녀석은 전도 유망한 어린 개미였다!

대체 어디로 간 거지?!

그렇지, 코어!

나는 재빨리 마나 감지를 활성화한 다음 주위를 살폈다.

저기 있군!

밀밭 사이를 움직이는 작은 구슬 모양의 마나가 느껴졌다.

문제는 그 마나가 똑바로 모닥불 쪽을 향하고 있다는 점이었다.

무슨 나방이냐!?

무작정 불 쪽으로 달려들게?

나는 최대한 소리를 죽이며 밀밭 사이를 달려갔다.

나라면 인간들에게 들켜도 무사히 빠져나올 수 있겠지만···

꼬마 개미가 들킨다면 문제가 달랐다.

녀석은 어느새 마을 사람들로부터 10미터 거리까지 다가가 있었다.

내 심장이 쿵쿵대며 뛰기 시작했다.

녀석이 인간들 눈에 띄기라도 하면, 오늘 밤 심각한 문제가 발생할지도 몰랐다.

나야 철퇴에 머리를 맞아도 멀쩡했지만, 꼬마 개미는 아마 한 방에 목숨을 잃을 터였다.

그리고 정말로 그런 일이 벌어진다면···

솔직히 내가 무슨 짓을 저지를지 알 수 없었다.

그러니까 얼른 이리 돌아와 이 말썽쟁이야!

나는 계속해서 마나 감지 스킬로 꼬마 개미의 움직임을 확인했다.

그리고 거의 몇 년처럼 느껴지는 추격전 끝에 겨우 녀석을 따라잡아, 앞을 가로막고 턱을 크게 벌렸다.

잡았다 요놈!

내가 최대한 부드럽게 턱으로 꼬마 개미를 들어올리자, 녀석이 마구 꼬물대며 반항했다.

"가만히 있어 이 멍청아! 저 사람들은 널 보자 마자 죽이려 들 거라고!"

다행히 내가 페로몬 언어로 아무리 크게 외쳐도 소리가 나는 일은 없었다.

나는 재빨리 주위를 살폈다.

아무도 못 봤겠지?

이제 너무 가까이 접근한 나머지 더듬이를 내밀면 사람들의 등을 찌를 수 있을 정도였다.

누가 소리를 듣거나 하지 않았어야 할 텐데···!

꼬마 개미는 여전히 내 턱 안에서 꼬물거리며 발버둥쳤다.

당장이라도 빠져나가서 모닥불 쪽으로 가고 싶어하는 듯했다.

대체 왜 그러는데?!

바이오매스 때문이야?

저 사람들이 소중한 바이오매스를 먹지 않고 몬스터 시체를 그냥 태워버리는게 불만인 거야?

인간들은 몬스터 시체를 먹지 않아, 꼬마야!

종족마다 문화가 다른 거라고, 알겠어?

"그만 꼬물거려! 둥지로 돌아가면 먹을 걸 줄 테니까!"

먹을 걸 준다는 말을 듣자 꼬마 개미가 탈출 시도를 멈춰서 내 불안감을 조금이나마 누그러뜨렸다.

그리고 알겠다는 뜻으로 행복하게 턱을 부딪혀 *딱* 소리를 냈다.

···

내 불안감이 로켓처럼 치솟았다!

처음에는 아무 반응도 없었다.

하지만 잠시 후 사람들 사이에 서 있던 중년 남자가 천천히 몸을 돌렸다.

이마를 잔뜩 찌푸린 채 뒤를 돌아본 중년 남자는, 불과 몇 미터 떨어진 거리에 거대한 개미 한 마리가 더 작은 개미를 턱에 문 채 납작 엎드려 있는 모습을 보고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어···

안녕하세요!

나는 우호적으로 더듬이를 흔들어 보였지만, 그걸 본 남자는 오히려 더 공포에 질린 얼굴로 입을 크게 벌리고 소리 없는 비명을 질렀다.

남자가 떨리는 손으로 주위 사람들의 옷자락을 잡아당겼다.

처음에는 귀찮아 하던 사람들이 남자의 표정을 보고 긴장했다.

그리고 남자가 손을 덜덜 떨며 가리키는 방향으로 고개를 돌려···

내 멋진 뒤태를 발견했겠지.

난 이미 달아나고 있었으니까!

ㅌㅌㅌ!

뒤쪽에서 성난 고함 소리가 들리더니, 사제가 뭐라고 날카롭게 외쳤다.

그러자 인간들이 쫓아오는 발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슬쩍 뒤를 돌아보니 어느새 충격에서 벗어난 마을 사람들이 나를 추격하는 중이었다!

저마다 손에 조잡한 창이나 녹슨 검 따위를 든 채로 말이다!

이런 빌어먹을···

여기 사람들은 왜 이렇게 몬스터 사냥에 열심인 거야?

고함을 지르며 쫓아오는 인간들을 피해 열심히 달리는데, 꼬마 개미 녀석이 신난다는 듯 턱을 딱딱거렸다.

꼭 속도감을 즐기는 듯한 눈치였다.

지금 누구 때문에 이 사달이 났는데···

나는 뻔뻔한 녀석의 모습에 할 말을 잃었다.

활활 타오르는 횃불을 치켜들고 달려오는 군중의 모습은 마치 지옥에서 올라온 악마의 군대 같았다.

나를 쫓아오는 동안 어느새 인간들의 눈에서는 두려움이 사라져 있었다.

빌어먹을!

여기서 빠져나가기 위해 마을 사람들을 전부 죽이고 싶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저들을 둥지까지 데려갈 수도 없었다.

생각하자!

혹시 내 마법 실력을 살짝 보여주면 포기할지도···

나는 달리는 동시에 재빨리 중력 창의 패턴을 형성했다.

마나 형성에 정신이 팔린 나머지 계속 발을 헛디뎠고, 그래서 속도가 떨어진 나머지 인간들에게 거의 따라잡히고 있었다.

괜찮아, 주문만 실패하지 않으면 된다!

연습 덕분에 주문을 상대적으로 쉽게 완성할 수 있었다.

뭐랄까, 마치 어렵지만 자주 연주했던 음악처럼 말이다.

정말로 편하게 사용하려면 아직 연습이 더 필요하겠지만, 그래도 처음 시도했을 때와 비교하면 장족의 발전이었다.

10초 동안 필사적으로 패턴을 형성한 끝에 주문을 완성한 나는 중력 에너지를 끌어내기 시작했다.

하지만 다급한 나머지 에너지의 흐름을 세심하게 조절하지 못하고 너무 많은 양을 패턴에 불어넣고 말았다.

젠장!

그렇다고 한 번 더 주문을 만들 여유는 없었다.

그냥 쏘자!

고개를 뒤로 돌리자 나를 처음 목격한 중년 남자가 선두에 서서 달려오는 모습이 보였다.

더 이상 겁에 질린 표정이 아니라 광기에 찬 얼굴로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며 나를 쫓아왔다.

손에는 나무꾼들이 쓰는 것 같은 도끼가 들려 있었다.

미안, 아저씨.

그냥 재수가 없었다고 생각하라고!

내가 중력 창을 시전하자, 어두운 보라색의 복잡한 문양으로 이루어진 창이 허공에서 나타났다.

그리고 쏜살같이 날아가서 남자의 가슴에 명중했다.

남자가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무릎을 꿇고 쓰러져서 두 손으로 실체가 없는 창을 붙잡으려고 애쓰자, 그 뒤를 따르던 인간들 사이에서 비명과 고함 소리가 터져 나왔다.

잠시 후 번쩍 하고 빛의 고리가 주위로 퍼지자 인간들이 다시 한 번 비명을 질렀다.

그리고 중력의 힘이 작용하기 시작했다!

처음에 인간들은 눈치를 채지 못하는 것 같았지만, 중력이 점점 더 강해지자 하나 둘씩 끌려가기 시작했다.

인간들은 마치 태풍에 맞서는 것처럼 두 다리에 힘을 주거나 몸을 기울이며 버티려고 했지만, 결국 강력하게 당기는 힘을 이기지 못하고 여전히 가슴에 중력 창이 박힌 채 놀란 표정을 짓고 있는 중년 남자를 향해 '떨어졌다'.

심지어 나조차 주문의 위력에 놀라서 잠시 달아나는 걸 멈춘 채, 거의 쉰 명이나 되는 사람들이 한 덩어리로 뭉치는 장면을 넋을 잃고 바라봤다.

처음 중력 창을 맞았던 남자는 말그대로 사람들 속에 파묻혀서 아예 보이지도 않았다.

실로 장관이었다.

음하하하하하!

잘 있어라 바보들아!

나는 기쁘게 더듬이를 흔들며 돌아서서 어둠 속으로 달려갔다.

저 마을에서 무슨 일이 벌어진 건지 정확하게는 모르겠지만, 적어도 자기들의 안전을 진지하게 생각하는 것 같기는 했다.

하지만 그런 열성적인 태도에도 불구하고 걱정이 되지 않을 수 없는 것이···

결국에는 마을 사람들의 힘만으로 당해낼 수 없는 무시무시한 놈이 고개를 내밀 테고, 그럼 저 인간들은 모두 몬스터의 먹이가 될 터였다.

어쩌면 내 계획들 중 일부를 앞당겨야 할지도 모르겠군···

나는 서둘러 숲으로 돌아가서 타이니와 다시 합류했다.

그리고 꼬마 개미에게 머리에 올라가 있으라고 시킨 뒤, 어둠 속을 달려서 둥지로 향했다.

밤이 되니 숲 속을 돌아다니는 몬스터들의 레벨이 낮보다 조금 더 높았다.

첫날 그 사실을 눈치채지 못했던 건···

낮이나 밤이나 어차피 한심할 정도로 약한 놈들 뿐이었기 때문이다.

어쨌든 그 덕분에 아무런 문제없이 둥지로 돌아올 수 있었다.

우리는 한 번 더 농장에 들려서 배를 채우고, 나머지 몬스터들은 일개미들을 위해 불구 상태로 남겨놓았다.

그 과정에서 코어도 하나 더 얻을 수 있었다.

나는 둥지 안의 내 방으로 돌아와서 벽에 묻어 놓은 코어들을 꺼냈다.

꼬마 개미는 이제 원없이 설쳤는지 아니면 바이오매스를 소화시키기 위해서인지 구석으로 가서 잠에 빠져들었다.

나는 아직 조작한 적이 없는 코어들 그리고 핵파리의 코어를 한쪽으로 옮겼다.

이 코어들을 가지고 연습에 박차를 가해서 코어 공학의 레벨을 올릴 생각이었다.

이후로 몇 시간에 걸쳐, 나는 정신력을 총동원해서 코어들 안에 존재하는 에너지를 이리저리 조절했다.

모두 다섯 개의 코어들이 가지고 있는 설정을 최대한 변경하자, 코어 공학 스킬의 레벨이 성공적으로 2나 올랐다.

아우, 머리가 깨지는 줄 알았네···

코어 공학은 이상할 정도로 정신력에 무리가 갔다.

마치 생각만 가지고 무거운 바위를 들어올리는 기분이었다.

나는 십 분 정도 휴식을 취한 뒤 핵파리의 코어를 돌아봤다.

핵파리는 엄청나게 인상적인 적이었다.

다른 몬스터들조차 공포에 질리게 만드는 놈의 위용은 내가 여태까지 본 적 없는 것이었다.

심지어 내 생각에 놈은 한 차례의 진화만을 거쳤을 뿐이었다.

즉, 앞으로 훨씬 더 강해질 여지가 남아 있다는 의미였다.

그렇다.

나는 핵파리를 두 번째 펫으로 만들 생각이었다!

핵파리의 재구성

가능하다면 두 번째 펫을 재구성하는 일을 조금 더 미루고 싶었다.

코어 공학의 레벨을 더 올리고 나면 좀 더 내가 원하는 역할에 적합한 형태로 만들 수 있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여러 가지 사건들이 나를 압박했고, 농장에서 코어를 수확하는 속도는 예상보다 좀 더 느렸다.

한 달 정도 시간이 있다면 기다려 보겠지만···

이 세계에서는 모든 일이 항상 내가 원하는 것보다 더 빠르게 일어나는 듯했다.

게다가 몬스터를 재구성한 뒤에도 나와 마주쳤을 때처럼 전투에 적합한 형태까지 키우려면 상당한 시간이 걸릴 테니, 그 점까지 고려하면 서두를 수밖에 없었다.

시간이 넉넉했다면 레벨을 좀 더 올려서 포인트를 모은 다음 포르모가 보여줬던 것과 같은 스킬들을 배우고 싶었다.

소포스 족들이 고도의 기술을 이용해서 만들고 길러낸 펫들은 정말 강력해 보였으니까 말이다.

그런 강력한 펫들이 몇 마리만 있어도 내 걱정을 상당 부분 덜 수 있을 터였다.

나는 동시에 여러 장소에 있을 수도 없었고, 둥지를 지키는 동시에 내 능력을 기르기 위해 사냥에 나설 수도 없었다.

결국에는 고도로 진화한 개미들의 수가 늘어나고, 전체적인 규모도 성장해서 둥지 스스로가 어떤 적이든 막아낼 만큼 충분히 강해져야 했다.

하지만 그렇게 되기 전까지는 내가 장기간 둥지를 떠나 있더라도 안심할 수 있는 장치가 필요했다.

그런 면에서 핵파리는 아주 우수한 방어 수단이 될 수 있었다.

눈이 없기는 하지만, 둥지의 좁은 통로 안이라면 놈의 무시무시한 촉수와 엄청난 힘을 피해 숨을 곳이 없을 테니까.

적이 개미 언덕을 공격해서, 여왕을 잡기 위해 수직 통로로 병사들을 투입해도···

핵파리가 있다면 촉수의 벽이 놈들을 맞이해서 갈기갈기 찢어버린 다음 게걸스럽게 먹어 치울 터였다.

···그리 보기 좋지는 않겠지만, 분명 효과적일 것이다.

좋아!

나는 내 앞에 놓인 어두운 색의 코어에 더듬이를 가져다 대고 정신을 집중했다.

그러자 내 머리 속으로 수많은 정보들이 밀물처럼 쏟아져 들어왔다.

핵파리의 생물학적 특성, 신체 구조와 내부 장기, 촉수, 근육계, 능력치와 진화 경로 같은 정보들이 낱낱이 드러난 채 조작을 기다렸다.

내가 가장 놀란 건 능력치였다.

이 몬스터가 내 예상보다 훨씬 영리했기 때문이다.

그리 지성을 가진 것처럼 보이는 생물은 아니라서, 나는 타이니와 마찬가지로 사납지만 멍청한 펫을 한 마리 더 가지게 될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핵파리의 코어를 좀 더 자세히 들여다보자 조금 납득이 가기 시작했다.

감각 기관··· 그러니까 시각은 물론 미각, 후각, 청각이 전혀 없다 보니 핵파리의 뇌에는 엄청나게 많은··· 공간이··· 남았다.

말로 설명하기는 좀 어렵지만, 몬스터의 능력치를 결정하는 복잡한 요소들을 모두 파악하면 이해할 수 있는 일이었다.

그러니까 만약 몬스터의 뇌에 할당되는 에너지가 10이라고 하면···

일반적인 경우에는 뇌의 모든 측면을 발달시키기 위해 그 에너지가 고르게 분배된다.

물론 두뇌 연결의 속도와 호율성, 그러니까 지성에 가장 많은 에너지가 들어가기는 하지만···

그 밖에도 심장 박동과 같은 신체 기능을 무의식적으로 관리하는 부분, 기억을 관장하는 부분 등에도 적지 않은 에너지가 필요했다.

특히 감각 기관은 뇌의 상당히 복잡한 부분이라 그걸 제대로 관리하기 위해서도 많은 에너지가 필요했다.

하지만 감각 기관이 전혀 없는 핵파리의 경우에는 남는 에너지가 모두 순수한 지성과 기억에 할당되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저렴하게 높은 영리함 수치를 얻을 수 있었다.

흥미롭군!

육체적으로도 비슷해서, 핵파리는 뼈가 전혀 없었다.

그래서 골격에 투입할 에너지까지 모두 사용해서 강력한 근육을 만들 수 있었다.

물론 물 속도 아닌데 어떻게 골격도 없이 근육만으로 버틸 수 있는지는 아직 확실하지 않았다.

아무래도 그 점은 조금 더 연구가 필요할 것 같았다.

그렇게 깊이 파고들수록, 나는 핵파리라는 몬스터가 만들어진 방식에 감탄했다.

이 몬스터가 보여줬던 믿을 수 없는 강력함은 모두 다른 뭔가를 포기한 대가였다.

감각 기관이나 뼈부터 신경 체계, 내부 장기까지···

모두 내가 봤던 그 무시무시한 힘을 얻기 위해 아예 없앴거나 최소한만 갖추고 있었다.

하지만 아직 개선할 여지도 많았다.

핵파리가 예상보다 더 영리하다는 사실을 알게 되자, 그 장점을 더 강화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결국에는 지성이 가장 강력한 무기니까.

지구의 인류가 지성 하나로 지배종이 된 역사가 바로 그 증거였다!

게다가 핵파리는 이미 미친 듯이 강했다.

지금 코어를 조작하는 과정에서 깎이는 능력이 있더라도, 나중에 코어를 최대치까지 키운 다음 진화를 시키면 충분히 보완할 수 있었다.

나는 정신을 집중해서 내 의지대로 코어의 설정을 바꾼 다음, 변경 사항을 고정시키기 위해 있는 힘껏 붙들었다.

우선 촉수의 근력을 여기저기서 조금 감소시키고 얼굴의 근육계도 조절한 다음, 그렇게 확보한 에너지를 뇌에 할당했다.

추가로 투입한 에너지는 모두 순수한 지성에 투입해서 영리함 능력치를 조금씩 올렸다.

한참 애쓴 끝에 영리함 능력치가 4 정도 오르자 나는 작업을 멈췄다.

핵파리가 원래 가지고 있는 강점을 너무 많이 빼앗고 싶지는 않았다.

여기까지 하자 머리가 지끈거렸다.

코어 조작은 갈수록 어려워졌고, 얼마나 더 할 수 있을지 확신이 들지 않았다.

나는 스스로를 다잡으며 코어를 더 깊이 파고 들어, 현재 스킬 레벨로 파악 가능한 한계까지 살폈다.

아하!

몇 가지 수수께끼가 더 풀렸다.

핵파리의 육체가 뼈 없이도 움직일 수 있는 이유는 고무 같은 재질의 살에 계속해서 마나를 주입하기 때문이었다.

만약 내가 정보를 제대로 해석했다면, 핵파리는 지속적으로 마나를 공급받지 못하면 생존할 수 없었다.

게다가 이 몬스터는 온몸으로 직접 마나를 흡수했다!

미쳤군!

나는 핵파리에게 항상 충분한 마나를 공급해야 한다는 사실을 머리 속에 새겼다.

지상에서는 좀 어려운 일이겠지만 던전 안에서는 큰 문제가 아닐 터였다.

또 핵파리의 진화 경로도 확인할 수 있었다.

몇 가지 선택지가 있기는 하지만, 대부분 물리적인 능력의 향상에 집중하거나 전투 효율을 직접적으로 높일 수 있는 기관을 추가하는 식이었다.

하지만 내가 원하는 진화의 방향은 그것들과 조금 달랐다.

나는 기존의 선택지를 이것저것 조합해서 수동 진화 경로를 만들었고, 그 과정에서 새로운 보너스를 얻기도 했다.

이 정도 수준의 조작은 처음이라 엄청나게 어려웠다.

마침내 작업을 마쳤을 때에는 금방이라도 머리가 폭발하거나 의식을 잃어버릴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알았어, 여기까지!

이제 그만 할 테니까 고문을 멈춰!

내가 할 수 있는 건 모두 한 듯했다.

나는 회복을 위해 몇 분 정도 기다린 뒤, 다시 한 번 더듬이로 코어를 건드렸다.

[호환 가능한 몬스터 코어를 발견했습니다. 흡수하거나 몬스터를 재구성하겠습니까?]

재구성!

내가 마음 속으로 외치자 코어가 빛나기 시작했다.

코어는 점점 더 밝게 빛나다가, 흐물흐물해지는가 싶더니 새로운 몬스터로 변해갔다.

나는 눈부신 빛을 견디기 못하고 고개를 돌렸다.

정말이지 눈꺼풀이 있으면 좋을 텐데···

잠시 후 빛이 사라지자 나는 다시 고개를 돌려서 내 새로운 피조물을 확인했다!

그건···

공이었다.

내 바로 앞의 코어가 있던 자리에 테니스공 만한 크기의 작고 어두운 구체가 놓여 있었다.

···

가만히 지켜보고 있자, 공이 망설이며 작은 촉수들을 내밀더니 주위의 바닥을 조심스럽게 더듬었다.

핵파리는 완전히 장님이다 보니 그런 식으로 주위 환경을 파악하려고 애쓰는 듯했다.

나는 속으로 한숨을 내쉬었다.

이런 식일 거라고 예상하기는 했지만···

막상 재구성된 핵파리가 얼마나 작고 무력해 보이는지 눈으로 확인하자 앞으로 갈 길이 막막하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아니, 낙담하지 말자!

잘만 키우면 이 녀석은 금세 내가 기억하는 무시무시한 몬스터로 자라날 테니까!

[난 여기 있어.]

나는 펫 커뮤니케이션 스킬로 그렇게 말하며 다리 하나를 내밀어 꼬물거리는 핵파리의 촉수들 중 하나를 건드렸다.

핵파리는 내 목소리를 듣고 기쁜 듯이 꼬물거리더니, 여러 개의 촉수로 내 다리를 감쌌다.

그리고 잠시 버둥거린 끝에 내 등 위로 기어올라 한때 타이니가 차지했던 자리에 몸을 고정했다.

에효.

어쩐지 매번 작은 녀석들의 탈 것 노릇을 하는 기분인데···

개미가 아니라 조랑말이 된 기분이다.

코어가 재구성되는 빛 때문에 잠에서 깼는지, 꼬마 개미도 잠시 이쪽을 쳐다보더니 달려와서 내 머리 위로 올라갔다.

나는 뭔가 복잡한 기분을 느꼈다.

좋아.

지금은 둘 다 태워주겠지만 일단 커지고 나면 제대로 부려먹을 줄 알아!

나는 핵파리와 꼬마 개미, 타이니까지 데리고 농장으로 향했다.

요즘에는 때때로 일개미들끼리만 농장 안의 몬스터를 처리하게 하기도 했는데, 단지 경험치만이 아니라 실전 경험도 필요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수적으로 우위에 있는 이상, 일개미들은 빠르게 적을 제압하고 바이오매스로 분해했다.

하지만 수적으로 불리할 때에는 거꾸로 아직 약한 개미들이 당할 수도 있었다.

그래서 나는 입구에 충분히 많은 수의 일개미들이 모였을 때에만 농장 안으로 들여보냈다.

시간이 지날수록 둥지의 전력은 점점 더 강해지고 있었다.

내가 확인할 때마다 더 많은 개미들이 온갖 종류의 변이를 거쳤고, 마나 감지 스킬을 사용하자 그 중 상당수가 코어를 형성한 게 느껴졌다.

음하하하하!

우리는 강해지고 있다!

심지어 한 번은 둥지 안에서 처음으로 두 차례 진화한 개미와 마주치기도 했다.

커다란 덩치에 일개미보다 머리가 크고 척 보기에도 강력한 턱이 달린 개미였다.

아마 우리 둥지의 첫 번째 병정개미 같았다!

모든 일이 잘 풀리고 있었다.

타이니와 나는 농장의 공동으로 내려가서 몬스터들을 전부 반죽음 상태로 만들었다.

이제 등에 태우고 있는 두 녀석에게 밥을 먹일 차례였다.

나는 신이 나서 경험치를 얻으려고 달려가는 꼬마 개미를 붙들고 말했다.

"네가 이 말을 제대로 이해할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바이오매스로 페로몬 분비선부터 업그레이드해봐. +5까지 올리면 페로몬 언어로 나나 여왕님과 대화할 수 있게 될 테니까. 알았지?"

꼬마 개미는 한참 동안 나를 쳐다보더니 첫 번째 사냥감에게 달려들어 턱으로 물어뜯기 시작했다.

나는 더듬이로 등에 타고 있는 핵파리를 건드렸다.

[먹이가 있는 곳으로 데려다 줄 테니까 잡아.]

그러자 어린 몬스터가 촉수로 내 더듬이를 붙잡았다.

나는 더듬이로 핵파리를 들어올렸다.

아직 핵파리가 싸울 능력이 없을 거라는 생각이 들어서, 나는 턱으로 근처에 있는 몬스터의 숨통을 끊고 그 시체 위에 녀석을 내려놓았다.

작고 까만 테니스공처럼 생긴 핵파리는 잠시 촉수로 자기가 올라탄 바이오매스 덩어리를 더듬더니 곧 식사를 시작했다.

나는 다시 한 번 핵파리의 몸이 알 수 없는 방식으로 펼쳐지고, 날카로운 이로 가득한 입이 드러나는 무시무시한 장면을 목격했다!

다만 이번에는 그 모든 과정이 미니어처 스케일로 이루어졌다.

핵파리의 입은 사과 하나도 베어 물기 어려운 크기였다.

어쨌든 핵파리는 그 입으로 몬스터의 시체를 물어 뜯더니, 물리적으로 가능해 보이는 것보다 훨씬 더 많은 양을 삼켰다.

그렇게 열심히 시체를 파먹은 결과, 녀석의 몸집이 테니스공에서 거의 축구공 만한 크기로 커졌다.

···뭐랄까, 역겹지만 장하다!

다시 아래로

같은 종의 몬스터라고 해도 능력이 제각각이라는 사실은 이미 잘 알려져 있다.

몬스터들이 판게라의 지상에 처음으로 나타났던 대격변 당시부터, 어떤 몬스터들은 같은 종의 다른 개체들보다 훨씬 더 강력한 힘을 선보였다. 때로는 그 정도가 너무 심해서 단순히 레벨 차이로는 설명하기 어려웠다.

그 이후 수백 년 동안 지상의 모든 지적 종족들이 던전을 탐험하며 그 수수께끼를 풀고자 노력한 끝에, 어떤 몬스터들은 처음부터 더 강한 상태로 생성된다는 점이 밝혀졌다. 스폰 시점부터 더 빠르고, 더 강하고, 더 영리한, 그래서 더 위험한 개체들이 존재했다.

이런 개체가 성체로 자라나면 보통 같은 종족의 다른 몬스터들을 이끄는 우두머리 역할을 하게 된다. 그리고 그런 개체 주위에 모여든 몬스터들은 우두머리의 지도력과 도움으로 인해 더 빠르게 성장한다.

그런 사실을 알게 된 학자들은 이런 개체들을 해당 종족의 '대전사'로 따로 분류하기 시작했다. 한편 던전의 용병이나 자유 탐험가들은 이런 정예 몬스터들에 대한 두려움을 담아, 좀 더 노골적인 '대가리'라는 별명으로 불렀다.

그런 몬스터들이 왜, 그리고 어떻게 생겨나는지에 대해서는 알려진 바가 없다. 다만 평소에는 이런 개체들이 아주 드물게 나타나지만, 던전 안에서 커다란 싸움이나 변화가 일어날 경우 대전사의 출현 빈도가 급격히 높아진다는 사실이 수많은 연구를 통해 입증되었다.

어떤 사람들은 이런 대전사 개체가 심지어 종족이 다른 몬스터들까지 다스릴 만큼 강력해져서, 다양한 몬스터로 이루어진 군대를 이끌기도 한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그런 주장은 대부분 허황된 것으로 치부되는데, 여태까지 몇몇 신뢰할 수 없는 목격담을 제외하면 그런 존재에 대한 증거가 지상까지 전해진 적이 한 번도 없기 때문이다.

- 헤저 올드핑거의 저서 '던전의 괴물들' 제 4장 '던전의 대전사들'에서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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핵파리의 식사를 지켜보고 나서, 나도 몬스터의 시체로 배를 채웠다.

약한 몬스터들이기는 하지만 그동안 꾸준히 식사를 했더니 바이오매스가 어느 정도 모였다.

아무래도 곧 변이시킬 우선 순위를 결정해야 할 것 같았다.

일단 당장은 아이들을 데리고 농장 밖으로 나왔다.

둥지가 순조롭게 성장하고 있으니, 이제 내 자신의 능력을 발전시킬 때였다.

그리고 타이니도 좀 키우고 말이다.

이 덩치 큰 고릴라 녀석은 매일같이 더 의기소침해지고 있었다.

조만간 싸우게 해주지 않으면 가출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그래서 나는 마을까지 절반 정도 돌아간 뒤에, 새로운 굴을 파기 시작했다!

굴파기에 집중하는 일은 너무 쉬웠다.

턱으로 흙을 옮기는 과정은 내 내면에 존재하는 개미의 영혼을 충족시켰다.

시간이 얼마 지나지도 않아서, 나는 상당한 길이의 통로를 만들 수 있었다.

강력한 육체와 채굴 스킬의 조합 덕분이었다.

굴파기를 향한 내면의 열정은 물론이고 말이다!

내 목표는 인간들의 교회 아래까지 비밀 통로를 연결하는 거였다.

거기에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었다.

부분적으로는 던전의 더 깊은 곳으로부터 나오는 몬스터들에게서 인간을 보호하기 위해서기도 했고, 부분적으로는 인간들이 경험치만 얻고 바이오매스를 낭비하는 일을 막기 위해서기도 했고, 또 부분적으로는 기존의 탈출용 통로에 만들어 놓은 샛길로 더 깊이 들어가서 나와 타이니가 성장할 수 있을 만큼 강한 몬스터들과 싸우기 위해서기도 했다.

나는 항상 다음 진화의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있었다.

두뇌파 개미로 진화한 뒤 나는 엄청나게 강해졌고, 아직도 새로운 능력들을 익히고 있었다.

매번 진화할 때마다 엄청난 성장을 거듭하다 보니 한 번 더 코어를 최대치까지 키운 다음 진화하면 어떻게 될지 궁금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개미의 꿈이라고나 할까!

반나절 동안 맹렬한 기세로 땅을 판 뒤, 나는 타이니를 설득해서 나를 돕게 만들었다.

뭔가 싸울 만한 적을 찾기 위한 일이라고 말하자, 놀랍게도 타이니는 기꺼이 통로 안으로 들어와서 커다란 두 손으로 흙을 파기 시작했다.

녀석은 한 번씩 파낸 흙을 잔뜩 들고 나가서 숲 속에 버린 뒤, 곧바로 돌아와서 노련한 광부처럼 작업을 계속했다.

타이니가 다시 활기를 되찾은 모습을 보니 거의 눈물이 날 정도였다.

돌아온 걸 환영해, 타이니!

타이니가 굴을 파는 동안, 나는 빠르게 둥지로 돌아와서 일개미들이 농장에서 바이오매스를 수확하는 걸 도와준 뒤 여전히 내 위에 타고 있는 두 꼬마에게 밥을 먹였다.

잘 먹여야 빨리 커서 밥값을 하겠지···

많이 먹어라, 녀석들아.

거기까지 하고 나서 나는 빠르게 새로운 통로로 돌아와 지친 타이니와 교대했다.

우리는 낭비할 시간이 없었다.

어제부터 들기 시작한 불길한 예감은 점점 더 강해지기만 했다.

그래서 던전으로 돌아가 레벨업을 하고 싶은 욕구가 더욱 커졌다.

나는 터널 지도를 참고해서 우리가 나온 탈출용 통로와 만나는 방향으로 굴을 파고 들어갔다.

물론 교회에서 몬스터들과 싸우는 인간들에게는 아무런 소리도 들리지 않을 만큼 충분히 아래쪽으로 파는 것도 잊지 않았다.

그렇게 네 시간을 더 파자 마침내 통로가 이어졌다!

마지막 남아 있는 흙더미를 파내자 친숙한 던전의 푸른빛이 내 눈을 자극했다.

그리고 몬스터들의 비명 소리, 발톱이 살을 찢는 소리가 들려왔다.

벽을 타고 흐르는 마나 줄기에서 맥동하는 빛은 마치 이 행성 자체의 생명력처럼 느껴졌다.

내가 거의 그리워하던 느낌이었다.

완전히는 아니고··· 거의.

하지만 타이니는 정말로 그리웠던 모양이다.

이 고릴라의 귀에는 좁은 통로를 따라 들려오는 전투의 소음이 마치 음악처럼 들리는 듯했다.

타이니는 더 이상 자신을 억제하지 못하고, 피에 굶주린 포효를 지르며 나를 밀치고 던전으로 들어가려 했다.

타이니가 돌아왔다!

무거운 고릴라 녀석이 앞으로 나아가려고 내 위에 올라타는 바람에, 나는 바닥에 납작하게 눌렸다.

[내려와 임마!]

내가 외치는 소리를 못 들었는지, 아니면 듣고도 무시하기로 했는지 타이니는 아무런 대답 없이 던전 안으로 뛰어들었다.

그리고 두 주먹에 전기를 일으킨 뒤 지네, 개, 도마뱀과 토끼 몬스터를 닥치는대로 쳐 죽이기 시작했다.

숲 속의 호수 근처에 만든 농장에 비해서 그렇게 많이 깊지도 않았지만, 훨씬 더 강력한 몬스터들이 생성되고 있었다.

물론 여전히 낮은 레벨이기는 했지만 말이다.

그리고 이 정도의 작은 발전만 해도 타이니의 피를 다시 끓게 만들고 전투 본능을 깨우기에는 충분했다!

거대 원숭이가 날뛰기 시작하자, 통로 안에 득실거리던 몬스터들이 강력한 주먹을 감당하지 못하고 빠르게 쓰러졌다.

타이니의 주먹에 맞고 날아간 몬스터들은 벽에 부딪히거나 바닥에 쓰러진 뒤 다시는 일어나지 못했다.

기다려!

내 몫도 남겨줘!

타이니가 전부 해치우기 전에 나도 서둘러 싸움에 뛰어들었다.

10분 뒤, 우리는 통로 안에 가득하던 몬스터들을 모두 정리한 뒤 바이오매스로 배를 채우고 있었다.

[이제 좀 만족해, 타이니? 간만에 제대로 싸웠잖아.]

내가 묻자 타이니는 먹는 걸 멈추지 않으면서도 이마에 주름을 잡고 생각에 잠겼다.

[아니.]

마침내 타이니가 대답했다.

사실 그럴 거라고 짐작했다.

농장에 나오는 몬스터들보다야 좀 더 강했지만, 타이니를 만족시킬 만한 적들은 아니었다.

그래도 괜찮았다.

어차피 다시 레벨업을 할 수 있을 만큼 강한 놈들이 나올 때까지 더 깊이 내려갈 생각이니까.

레벨 이야기가 나왔으니 말인데, 방금 싸움으로 나는 1레벨이 올랐다!

이제 와서 가시 도마뱀을 죽이고 레벨이 오르다니 좀 놀라긴 했지만, 아마 그 동안 자잘한 경험치가 쌓인 결과 같았다.

꼬마 개미와 핵파리도 탈 것(나)에서 내려와 몬스터 시체를 뜯어먹기 시작했다.

둘 다 덩치에 비해 놀랄 만큼 대식가였다.

그나저나 이 녀석들 이름을 지어줘야 할 텐데.

계속 '꼬마 개미' 그리고 '핵파리'라고 부르기는 좀 그랬다.

이참에 한 번 생각해 볼까?

꼬마 개미는 일단 작고···

엄청나게 활동적이었다.

에너지가 넘쳐서 언제나 부산스럽게 움직였다.

그래서 그런 면을 반영하는 이름이 좋을 것 같았다.

나는 꼬마 개미를 바이브라고 부르기로 했다.

딱히 이유가 있다기보다, 그 이름이 문득 떠올랐다.

바이브라는 이름에 만족한 채로, 나는 작은 촉수를 흔들며 식사에 열중하고 있는 검은 공을 쳐다봤다.

지금까지 이 어린 핵파리는 계속 조용했다.

사실 펫 커뮤니케이션 스킬이 있다고 해도···

이 단계의 몬스터가 내 말에 대답할 수 있는지 잘 모르겠다.

어쨌든 그래서 딱히 떠오르는 단어가 없었다.

게다가···

바이브는 일개미니 암컷이라는 걸 알았지만, 이 녀석에게는 남자 이름을 붙여야 하나, 여자 이름을 붙여야 하나?

뭐, 타이니는 남녀 모두에게 어울리는 이름이니 이번에도 그런 걸로 정하면 되겠지.

하지만 무시무시한 촉수 괴물에게 무슨 이름이 어울릴까?

고민해 봐도 좀처럼 괜찮은 생각이 떠오르지 않았다.

어쩌면 그냥 발음이 어울리는 이름으로 하고 의미는 크게 신경 쓰지 않는 편이 나을지도.

···크리니스?

그 정도면 괜찮을 것 같은데?

대부분의 몬스터 종족명처럼 라틴어 같이 들리기도 하고 말이야.

크리니스로 하자.

나는 그렇게 두 꼬마에게 적당한 이름을 붙였다.

우리가 사냥한 몬스터 시체들에서 세 개의 코어가 나왔다.

그 중 두 개는 내가 챙기고, 하나는 타이니가 흡수하게 했다.

나는 타이니가 코어를 흡수할 때까지 무서운 눈으로 노려봤다.

빨리 흡수 안 하면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알지?!

번거롭기는 해도 마음만 먹는다면 이 코어들을 지상으로 가져가서 스킬 연습에 쓸 수도 있었다.

하지만 나는 그러는 대신 바로 흡수해서 내 코어를 강화하기로 했다.

다시 나 자신을 강화하는 길로 접어드니 기분이 좋군!

계속 지상으로 이동했던 탈출용 통로의 꼬리 부분을 돌아다니다가, 나는 뭔가를 발견했다.

마치 둥지의 개미들이 느슨하게 다져 놓은 흙으로는 던전의 마나 줄기가 몬스터를 생성하는 걸 막기에 충분하지 않았던 것처럼 보였다.

그래서 마나 줄기가 흙 속에서 뭔가 이상한 놈들을 스폰시켰거나···

아니면 뭔가가 뻗어 나가는 마나 줄기를 쫓아서 땅을 파고 나온 걸지도 몰랐다.

어쨌든 분명히 뭔가가 아래쪽에서 우리를 따라왔다.

탈출용 통로의 끝 부분에 예전 둥지 방향으로 작은 굴이 뚫려 있는 걸 보면 말이다.

···젠장.

내가 걱정했던 게 바로 이거다.

우리가 남겨 놓은 탈출용 통로에서 스폰되는 작고 약한 몬스터들만 교회 쪽으로 올라가는 게 아니라···

던전 전체가 인간의 마을과 연결되어 버릴 가능성 말이다!

[타이니! 크리니스! 움직이자. 더 아래로 내려가볼 거야.]

그 말을 듣자 타이니는 눈에 보이게 기뻐했지만, 작은 공은 별 반응이 없었다.

···아, 그게 자기 이름이라고 말해준 적이 없구나.

나는 크리니스에게 다가가서 다리로 녀석을 건드렸다.

[얼른 올라타. 지금부터 네 이름은 크리니스야. 팀에 합류한 걸 환영해!]

작은 공은 (내 생각에는) 기쁜 듯이 꼬물거리더니 촉수로 내 다리를 잡고 등까지 기어 올라갔다.

크리니스가 자리를 잡자 나는 꼬마 개미를 불렀다.

"지금부터 네 이름은 바이브야! 네가 변이로 페로몬 언어를 배우면 같이 대화를 할 수 있겠지. 가자!"

바이브는 나를 한참 쳐다보더니 이내 내 머리 위에 올라탔다.

그리고 우리는 던전 아래쪽을 향해 내려갔다.

난입!

우리는 좁은 통로를 비집고 들어가서 아래로 내려갔다.

나는 도중에 한 번씩 멈춰서 마나 감지 스킬을 사용했다.

내려가는 도중에 갑자기 생성되는 몬스터가 있을지 확인하기 위해서였다.

지상에 머무는 동안 조금씩 쌓인 바이오매스는 전혀 사용하지 않고 있었다.

확인해 보니 그 수가 스물 한 개나 됐다!

처음 이 세계에 태어났을 때 같으면 상상도 하지 못했을 양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스킬 레벨에 집중하느라 이만큼 쌓인 줄도 모르고 있었다.

이 정도 양이면 부위 하나를 +6, +7 혹은 +8까지도 변이시킬 수 있었다.

어떤 부위를 강화해야 할까?

최근 들어 중요성이 부각되는 중력 분비선?

아니면 예전부터 꾸준히 유용했던 주입 턱?

혹은 다시 눈의 성능을 향상시키기 시작해야 할까?

지금은 전투에 직접적으로 도움이 되는 부위부터 강화하는 편이 좋겠다고 판단한 나는 턱을 +8까지 업그레이드하기로 했다.

이 정도면 어지간해서는 내 턱으로 찢어버리지 못할 상대가 없을 터였다.

업그레이드한 턱이 물어 깨뜨리기 스킬과 결합하면 정말 강력하겠지!

[턱을 +8로 업그레이드하겠습니까? 21 바이오매스가 소모됩니다.]

가즈아!

···

으아앍!

내 얼굴!

이번에도 어째서인지 나는 변이의 고통을 까맣게 잊고 있었다.

그리고 미칠 듯한 간지러움이 밀려들자 그제서야 폭풍처럼 기억이 되살아났다.

얼굴에 불이 붙은 것 같아!

+4에서 +5로 업그레이드할 때 고통의 정도가 그 전보다 훨씬 심했다.

아마 고급 변이 때문일 거라고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었다!

···앞으로 모든 변이가 이렇게 괴로울 거라고 생각하자 좀 우울해졌다.

어쨌든 결국 고통이 끝나고 내 감각이 돌아왔다.

타이니는 내가 얼굴을 긁으며 몸부림치는 동안 뒤에 서서 조바심을 내며 기다리고 있었다.

그런 눈으로 보지 마 이 원숭이 자식아!

···그러고 보니 왜 타이니가 변이하느라 괴로워하는 모습을 본 적이 없지?

나는 다음 번에 타이니가 변이할 때는 놓치지 않고 지켜보기로 했다.

도와주려고?

천만의 말씀!

네가 괴로워할 때 나도 구경하면서 즐거워해 주마, 타이니!

계속 통로를 따라 내려가자 우리가 탈출용 통로를 기존의 던전과 이어서 식량을 구했던 샛길이 나왔다.

그리고 위쪽으로 올라온 흔적은 여기서 멈췄다.

우리가 막아 놓은 탈출용 통로를 다시 뚫고 나온 놈이 뭔지는 몰라도, 아마 예전 둥지가 아니라 여기서 출발한 모양이었다.

다행이로군!

둥지를 탈출할 때 소리만 듣고 보지만 못했던 그 무시무시한 괴물이 우리를 따라서 여기까지 올라왔다면 문제가 심각했을 터였다.

인간 마을이 초토화되는 사태도 피할 수 없었을 테고 말이다.

하지만 출발점이 여기라면 상황이 훨씬 더 나았다.

이번에는 타이니가 인내심을 잃고 나를 넘어가기 전에, 내가 먼저 던전 속으로 뛰어들었다.

그러자 우리가 처음 이 통로를 습격했을 때와 마찬가지로 통로 가득한 몬스터들이 보였다.

낮은 레벨의 던전 몬스터들이 두세 마리씩 뭉쳐서 격렬한 싸움을 벌이거나, 이미 쓰러진 몬스터의 시체를 놓고 다투는 중이었다.

[가자, 타이니!]

사실 이 통로는 타이니가 편하게 움직이기에는 너무 좁았다.

던전의 큰 구역이 아니라 내가 처음 태어났던 곁가지 통로에 더 가까웠다.

하지만 타이니는 좁은 통로 안에서도 민첩하게 움직였다.

녀석은 앞을 가로막는 몬스터들을 신나게 쳐부수며 통로를 따라 나아갔다.

나는 등에 바이브와 크리니스를 태우고 유유히 그 뒤를 따랐다.

그러다 뒤쪽에서 몬스터가 나타나 우리를 공격하려 들면, 꽁무니에서 산성 용액을 발사해 빠르게 해치웠다.

구속성 산성 용액을 뒤집어쓴 몬스터는 굳이 내가 신경 쓰지 않아도 주변의 다른 몬스터들에게 금방 목숨을 잃었다.

내 목표는 이 통로와 이어져 있는 좀 더 크고 넓은 동굴을 찾는 거였다.

그래야 내가 레벨을 올리기 위해 사냥할 만한 몬스터가 있을 테니까 말이다.

그런 동굴을 찾는다면 아마 코어도 제법 수확할 수 있을 터였다.

눈에 보이는 모든 몬스터를 닥치는 대로 때려눕히는 타이니를 앞세워 삼십 분 정도 구불구불한 통로를 나아가자, 마침내 내가 찾던 장소가 나타났다.

좁은 통로의 끝에서 이어진 훨씬 더 큰 동굴 안에서 몬스터들이 서로 싸우며 포효하는 소리가 우리를 반겼다.

완벽해.

우리 눈 앞에 득실거리는 몬스터들 중 상당수는 숲 속에서 이미 낯이 익은 놈들이었다.

폭군 곰, 사자 오우거, 늑대 드래곤 등등.

말 만한 크기에 두 개의 머리와 곤봉 같은 꼬리가 달린 갑옷 도마뱀이나 가시로 뒤덮인 몸뚱이에 뱀처럼 길다란 꼬리를 채찍처럼 휘두르는 거대한 괴물처럼 처음 보는 몬스터도 있었다.

타이니는 어째서인지 조용해져 있었다.

나는 앞으로 조금 나아가서 녀석의 얼굴을 살폈다.

[괜찮아, 타이니?]

타이니는 마치 갈증으로 죽어가다가 오아시스를 발견한 사람처럼 기쁜 표정으로 눈 앞에 펼쳐진 학살의 현장을 쳐다보고 있었다.

그 눈빛에 담긴 열정과 환희는···

마치 사랑에 빠진 고릴라 같았다!

그렇게까지 싸움에 목말라 있었던 거야?

정말로?

좋아!

계속 그렇게 멍하니 서 있으라고.

나는 먼저 가서 네 경험치까지 다 먹어버릴 테니까!

음하하하!

내가 마나를 끌어내 턱에 에너지를 주입하며 동굴 안으로 훌쩍 뛰어내리자, 두 꼬마들이 등에 단단히 매달렸다.

물어 깨뜨리기!

나는 반투명한 에너지의 턱으로 가장 가까이 있던 폭군 곰을 공격했다.

한 방에 쓰러지지 않는 적은 간만인데!

모처럼 전투의 흥분이 느껴지자, 온몸에 피가 돌기 시작했다.

드디어 제대로 싸우겠군!

오랜만에 몸 좀 풀겠어!

새로운 기술도 좀 시험해 보고 말이야.

나는 앞뒤로 몸을 움직이며 적을 위협했다.

그리고 이미 부상을 당한 폭군 곰이 나를 경계하기 위해 사납게 포효하며 앞발을 허공에 마구 휘두르는 사이, 정신을 집중해서 패턴을 형성했다.

어디 맛 좀 봐라···

중력 화살!

다행히 그동안 연습한 보람이 있었다.

나는 불과 몇 초만에 패턴을 완성한 다음, 중력 에너지를 불어넣어 언제든 발사할 수 있는 상태로 만들었다.

내가 일부러 몸을 틀어 빈틈을 드러내자, 폭군 곰은 회심의 일격을 가하기 위해 몸을 뒤로 젖혔다.

나는 바로 그 순간을 노려서 중력 화살을 발사했다.

폭군 곰이 미처 반응할 새도 없이, 놈의 옆구리에 중력 화살이 명중했다.

주문은 즉시 효과를 발휘해서 곰을 바닥으로 끌어당기기 시작했다.

흐흐흐.

하지만 과연 폭군 곰은 만만치 않았다.

내가 주문을 연습했던 농장의 약한 몬스터들은 중력 화살을 맞는 즉시 바닥에 납작하게 눌렸지만, 폭군 곰은 순수한 힘으로 버티고 서 있었다.

물론 그렇다고 아무런 영향이 없는 건 아니었다.

강한 중력에 맞서느라 놈의 다리가 부들부들 떨리고 있었다.

폭군 곰의 눈빛은 여전히 사나웠지만, 나와 마주한 이후 처음으로 일말의 두려움이 드러났다.

그런 상태로 나와 싸울 수 있겠어, 곰 아저씨?

어림없지!

나는 너무 방심하지 않으려고 애쓰면서, 먼저 주위에 다른 적이 없는지 확인한 뒤 곰의 옆쪽으로 돌아갔다.

폭군 곰의 말도 안 되게 두꺼운 가죽을 뚫기 위해서는 가까이 접근해서 실제 턱으로 찌를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곰은 이미 내 쪽으로 돌아서는 동작조차 힘겨워하는 상태라, 그리 어려운 일은 아니었다.

물어 깨뜨리기!

물어 깨뜨리기!

나는 턱에 마나를 더 많이 주입했다.

물어 깨뜨리기!

[레벨 8 대지 폭군 곰을 처치했습니다.]

[경험치를 얻었습니다.]

내 힘을 보라!

내가 승리감에 취해 있는데, 동굴 안에 날카로운 포효 소리가 울려 퍼졌다.

타이니였다!

귀청을 때리는 타이니의 포효는 시간이 지날수록 강해졌다.

날카로운 음파 공격이 내 귀를 타고 들어와 (두 개의) 뇌를 후려쳤다.

나는 높은 의지 능력치 덕분에 음파 공격의 효과를 금세 떨쳐낼 수 있었다.

그리고 동굴 안의 다른 몬스터들은 어떤지 살폈다.

멀쩡한 놈이 거의 없었다.

음파 공격에 수많은 몬스터들이 완전히 동작을 멈췄고, 몇몇 커다란 놈들만 겨우 저항에 성공한 것처럼 보였다.

그렇게 엄청난 존재감을 드러내 보인 타이니가 동굴 안으로 뛰어내리자, 바닥에 쩍 하고 금이 갔다.

타이니가 눈 앞의 몬스터들을 굶주린 눈으로 노려보는 동안, 온몸의 털이 서서히 일어나기 시작했다.

주위의 몬스터들은 갑자기 나타난 무시무시한 적 앞에서 움츠러들 뿐이었다.

아닌 밤중에 홍두깨처럼 나타난 괴물 고릴라와 맞서야 하는 몬스터들이 불쌍할 정도였다.

이제 타이니의 전신에서 전기가 번쩍였고, 손가락 끝에서는 파란 불똥이 튀었다.

크오오!

그때 동굴 저편에서 포효 소리가 들리더니, 커다란 갑옷 도마뱀이 타이니를 향해 돌진했다.

타이니는 박쥐 귀를 분노로 꿈틀거리며 마주 포효했다.

다시 한 번 음파 공격이 터져 나오자 두 거대한 괴물 사이에 있던 작은 몬스터들이 모조리 쓰러져 버렸다!

쿵! 쿵!

두 괴수가 서로를 향해 돌진하자 동굴 전체가 흔들리는 듯한 느낌이었다.

주위의 작은 몬스터들은 곧 벌어질 싸움에 말려들지 않기 위해 황급히 사방으로 흩어졌다.

그 몬스터들의 생각이 들리는 듯했다···

저 두 덩치가 서로 싸우고 싶어한다면 우리야 다행이지!

둘이 결판을 내는 동안 우리는 한쪽으로 비켜서 우리끼리 잡아먹고 있자!

한때 내가 등에 태우고 다니던 작은 원숭이가 어느새 저렇게 장성해서 마치 공룡처럼 거대한 도마뱀과 당당히 자웅을 겨루는 모습을 보니 뿌듯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게 아빠의 마음인가.

···

나는 잠시 몰래 중력 화살을 쏴서 타이니를 도와줄까 하다가 마음을 고쳐먹었다.

실수로 타이니를 맞출 위험도 있었을 뿐 아니라, 녀석이 그토록 오래 기다려 온 싸움을 망치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혹시라도 타이니가 위험해지면 그때 끼어들어도 늦지 않겠지.

두 몬스터가 서로를 향해 다가갈수록 분위기가 점점 더 달아올랐다.

먼저 공격한 쪽은 타이니였다.

타이니는 전기가 번쩍이는 두 팔을 머리 위로 높이 들어올린 뒤 적을 향해 점프했다.

그리고 착지와 동시에 두 주먹을 힘껏 내리쳤다!

하지만 도마뱀 쪽도 순순히 당하지는 않았다.

놈은 재빨리 앞으로 몸을 날려서, 타이니가 원래 노렸던 머리가 아니라 두꺼운 갑옷으로 뒤덮인 등으로 주먹을 받아냈다.

쾅!

타이니가 모든 체중을 실어서 두 주먹을 내리치자, 도마뱀의 발이 땅 속으로 족히 십 센티는 파고들었다.

하지만 정말 무서운 건 물리적인 타격이 아니었다.

타이니의 주먹에 실린 전기 에너지가 도마뱀의 갑옷을 타고 흐르며, 그 아래 숨겨진 부드러운 살을 튀기고 있었다.

와우!

내가 예전에 봤던 고릴라 번개 주먹이로군!

넋을 잃고 싸움을 구경하던 내 겹눈에 뭔가가 들어왔다.

또다른 커다란 갑옷 도마뱀 한 마리가 돌진을 준비하는 모습이었다.

신성한 1대1 결투에 끼어들려 하다니!

저런 비열한 놈 같으니!

나는 조용히 주문을 준비하기 시작했다.

미안하지만 타이니도 혼자가 아니라고···!

한편 타이니의 주먹을 얻어맞은 도마뱀은 전신을 부들부들 떨더니 커다란 몸을 빠르게 돌렸다.

그러자 끝에 곤봉이 달려 있는 듯한 모양의 꼬리가 눈으로는 쫓기 힘들 만큼 맹렬한 속도로 바람을 가르며 타이니를 향해 날아갔다.

[조심해, 타이니!]

승리!

내가 경고할 필요도 없이, 타이니는 이미 날아오는 꼬리를 지켜보고 있었다.

녀석은 몸을 틀며 깔끔한 라이트 훅으로 도마뱀의 단단한 꼬리를 쳐냈다.

타이니가 저렇게 민첩했나?

하지만 타이니에게 아무런 타격도 없는 건 아니었다.

주먹이 꼬리의 곤봉 같은 부분에 닿는 순간, 뭔가 부서지는 소리가 선명하게 울렸다.

적어도 손가락 한두 개는 부러졌을 것 같은데···

타이니가 주먹을 휘두르느라 자신에게 등을 보이자, 멀리서 호시탐탐 기회만 노리던 또다른 갑옷 도마뱀이 돌진을 시작했다.

놈은 사납게 포효하며 두꺼운 네 다리로 동굴 바닥을 쿵쿵거리며 달렸다.

도마뱀은 엄청난 체중과 단단한 갑옷으로 중간에 부딪히는 돌기둥이나 몬스터를 모두 날려버렸다.

하!

네놈이 그럴 줄 알았지!

나는 재빨리 달려가서 두 번째 도마뱀의 앞을 막아섰다.

도마뱀은 그대로 나를 짓밟고 타이니를 향해 돌진하려는 듯, 속도를 전혀 늦추지 않았다.

하지만 그렇게는 안될 거야, 덩치.

받아라!

리버스 중력 화살!

내가 속으로 사악하게 웃으며 미리 준비해 놓고 있던 강력한 에너지를 발사하자, 보랏빛 마법 화살이 바람을 가르며 날아갔다.

거대한 갑옷 도마뱀은 달려오던 관성 때문에 피하려는 시도조차 하지 못하고 내 주문에 정면으로 부딪힐 수밖에 없었다.

주문에 맞고도 아무런 통증도 느껴지지 않자, 놈이 놀라는 기색이 느껴질 정도였다.

단지 아프지 않을 뿐 아니라 몸이 한결 가볍게 느껴질 테니 말이다.

후후후후후.

그야 당연하지!

곧 자신이 바닥에서 떠오르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은 갑옷 도마뱀이 당황한 듯 으르렁거렸다.

놈은 원래 의도한 대로 나를 짓밟는 대신, 두둥실 내 머리 위로 떠올라 네 다리를 허공에서 버둥거리고 있었다.

달려오던 관성은 그대로 남아 있었기 때문에, 갑옷 도마뱀은 비스듬히 천장을 향해 솟구쳤다.

놈은 공중에서 원하는 방향으로 움직이기 위해 다리며 꼬리를 미친듯이 흔들고 있었다.

걱정 말라고, 친구!

생각보다 빨리 내려올 수 있을 테니까.

내가 다음 주문을 준비하는 사이, 타이니는 마주한 적을 향해 재차 주먹을 휘둘렀다.

주먹에 실린 힘이 어찌나 강력한지 거대한 도마뱀이 옆으로 1미터가량 밀려났고, 타이니는 또다시 전기 에너지를 발산했다.

살이 튀겨지는 매캐한 냄새가 사방으로 퍼지자, 도마뱀이 고통을 이기지 못하고 날카로운 비명을 질렀다.

그러더니 눈을 사납게 빛내며 내가 전혀 예상하지 못한 능력을 발휘했다.

타이니가 딛고 선 동굴 바닥이 갑자기 부드러워지는가 싶더니, 날카로운 창 모양으로 변해서 솟아오른 것이다!

아래쪽에서 솟구치는 공격을 전혀 예상하지 못하고 있던 타이니는 속수무책으로 옆구리를 찔리고 말았다.

타이니는 재빨리 뾰족한 돌기둥의 끝 부분을 손으로 잡아서 더 깊이 파고들지 못하게 막았다.

하지만 돌기둥은 계속 솟구치며 거대한 고릴라의 몸뚱이를 바닥에서 들어올렸다!

대지 마법!

마법을 쓰다니!

저렇게 강력한 마법을 사용하는 걸 보면 이 도마뱀들은 분명 두 차례 진화한 상태겠지?

나와 같은 정도로 진화한 적들을 처치하고 얻을 수 있는 경험치와 바이오매스를 생각하자 의욕이 불타올랐다.

타이니도 나와 비슷한 생각을 한 모양이다.

상처를 입었다고 당황하기는커녕 이글거리는 눈빛으로 송곳니를 드러내며 광기 어린 웃음을 짓는 걸 보면 말이다.

솔직히 조금 전보다 한층 더 무시무시해 보이는 모습이었다.

여전히 한 손으로는 돌로 만들어진 창의 끝부분을 잡은 채, 타이니는 으르렁거리며 다른 쪽 주먹을 얼굴 앞에 들어올렸다.

그러자 강렬한 푸른빛을 내는 전기가 온몸에서 일어내더니 그 주먹으로 모여들기 시작했다.

지난 번에 썼던 그거구나!

나는 타이니가 주먹을 뻗어 눈부신 번개를 쏘아내기 직전에 겨우 고개를 돌릴 수 있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번개가 한 차례에 그치지 않는 바람에, 공격이 끝난 줄 알고 다시 고개를 돌렸다가 눈이 멀 듯한 섬광을 그대로 보고 말았다.

타이니의 전신에서 일어난 전기 에너지가 계속해서 도마뱀을 향해 쏟아져 나오고 있었다.

온몸이 감전된 도마뱀이 마법에 대한 통제력을 잃었기 때문인지, 타이니의 옆구리를 찔렀던 창이 부서지며 평범한 돌 무더기로 변했다.

그러고 보니 이제 슬슬···

고개를 들어 천장 쪽을 보자 중력 화살의 지속 시간이 끝나가고 있었다.

공중에 떠 있던 도마뱀도 자신에게 작용하는 힘이 서서히 줄어드는 걸 느꼈는지, 만족스러운 포효를 질렀다.

땅에 내려와서 날 짓이길 생각을 하니 신나는 모양이었다.

그래, 내려오게 해주마.

중력 화살!

두 번째 중력 화살에 맞은 도마뱀이 잠깐 동안 공중에서 정지했다.

아직 남아 있는 리버스 중력 화살의 효과와, 이제 막 발동한 두 번째 중력 화살의 효과가 순간적으로 균형을 이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일시적인 힘의 균형은 곧 깨졌고···

리버스 중력 화살의 효과가 끝나는 동시에 두 번째 중력 화살로 인한 효과가 놈을 눈에 보이지 않을 만큼 빠른 속도로 떨어뜨렸다!

쾅!

거대한 도마뱀이 엄청난 기세로 추락하자, 사방에 돌과 먼지가 날리며 내 시야를 가렸다.

마치 동굴 안에 파편의 비가 내리는 듯했다.

맙소사!

이런 결과는 예상하지 못했는데···

뭐, 최소한 이 정도로 요란할 줄은 몰랐다.

나는 기회를 놓치지 않고 사냥감을 공격하기 위해, 더듬이를 흔들며 흙먼지 속을 부지런히 나아갔다.

그러다가 혹시 이미 지나쳤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걸음을 멈췄다.

어디쯤 떨어진 거지?

이 흙먼지가 가라앉기는 하는 거야?

내 등에 타고 있는 두 꼬마들도 나처럼 앞이 보이지 않는 상태일 테지만···

크리니스한테는 평소와 별 차이가 없겠지.

나는 문득 딛고 있는 바닥의 감촉이 아까와 조금 다르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리고 아래를 내려다보니···

나는 도마뱀의 등 바로 위에 서 있었다!

서서히 흙먼지가 가라앉자, 거대한 도마뱀이 동굴 바닥을 깊이 파고든 모습이 보였다.

그래서 내가 놈을 발견하지 못하고 그 위까지 걸어온 것이다.

낙하의 충격이 정말 엄청났나 보군···

놀랍게도 도마뱀은 아직 살아 있었다.

놈은 여전히 중력에 짓눌린 채 고통으로 신음하고 있었다.

미안해, 친구!

내가··· 어, 고통을 덜어주지.

깨물어 뚫기!

콰직!

와, 껍질이 정말 단단하군···

깨물어 뚫기!

콰직!

아직도···?

깨물기! 깨물기! 깨물기!

마침내 도마뱀의 갑옷을 뚫었을 때에는 얼굴 근육이 다 욱신거릴 지경이었다.

심지어 깨물어 뚫기 스킬의 레벨도 하나 올랐다!

타이니가 주먹으로 이 껍질을 깨뜨리지 못한 것도 놀랄 일이 아니었다.

관통 효과가 있는 내 스킬로도 거의 스무 번을 공격해야 했으니 말이다.

[레벨 12 오스 라케르티를 처치했습니다.]

[경험치를 얻었습니다.]

어떠냐 이 짝퉁 공룡 자식아!

음하하하하!

내가 일어서서 승리 포즈를 취하자, 머리 위에 타고 있던 바이브가 혼란스러운 듯 더듬이를 흔들었다.

그러더니 자기도 한 쪽 앞다리를 치켜들고 내 자세를 그대로 따라했다.

···

따라하지 마!

넌 아무 것도 안했잖아!

그리고 네가 그러니까 나까지 유치한 짓을 하는 것처럼 느껴진다고!

처음으로 마법 스킬을 제대로 사용해서 강력한 적을 이겼는데, 기분 좀 내게 내버려 두면 안되냐!

그사이 타이니도 싸움을 마무리한 모양이었다.

계속 전기 에너지를 쏟아내서 거대한 도마뱀을 거의 통구이로 만들어 버린 타이니는, 반신 불수가 된 적에게 다가가서 주먹으로 머리통을 부숴버렸다.

녀석은 나처럼 주위의 몬스터들에게 위엄을 과시하는 대신, 곧바로 바이오매스를 섭취하기 시작했다.

타이니는 맨손으로 거대 도마뱀의 살점을 죽죽 찢어서 입으로 가져갔다.

동굴 안에 있는 몬스터들의 반응을 보니 확실히 저러는 편이 위협이라는 측면에서는 더 효과적인 것 같지만···

그래도 멋이 없잖아!

실제로 주변의 다른 몬스터들은 타이니와 나로부터 멀찍이 떨어져서 자기들끼리 싸움을 계속했다.

심지어 평소에는 싸움에 미쳐 있는 몬스터들 중 몇몇이 아예 전장을 이탈해서 멀리 도망치는 모습도 보였다.

···

그냥 내 착각인가, 아니면 몬스터들 중에 더 영리한 놈들이 나오고 있는 걸까?

웨이브가 시작된 직후, 몬스터들은 스폰되자 마자 승산 따위는 생각도 하지 않고 서로를 향해 달려들었다.

그래서 나는 자발적으로 싸움을 포기하고 달아나는 몬스터가 있을 거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다.

놈들은 승산을 따져보고 판단을 내리기에는 너무 멍청했으니까!

하지만 이제 사정이 좀 달라진 것 같았다.

너무 위험하다 싶으면 싸움을 포기하고 후퇴하는 몬스터와, 상대가 얼마나 강하든 자살 공격을 감행하는 몬스터 중에서 어느 쪽이 더 위험할까?

당장은 막무가내로 달려드는 놈들이 좀 더 위험할 수도 있지만···

장기적으로는 약삭빠른 놈들이 훨씬 더 큰 위협이었다!

내가 아는 한, 이 세계에서 몬스터의 성장 가능성은 거의 무한하다고 볼 수 있었다.

단지 시간과 자원이 필요할 뿐이다.

몬스터가 살아서 계속 싸울 수만 있다면 얼마든지 강해질 수 있었다.

이런 변화에 대해서는 나중에 진지하게 생각해볼 필요가 있었다.

우선 지금은 내게 덤비기로 결정한 멍청한 몬스터들부터 잡아먹고 말이지!

식사를 마친 타이니가 탐욕스러운 눈빛으로 동굴 가장자리에서 싸움을 계속하고 있는 몬스터들을 돌아봤다.

한 놈도 놓치지 않겠다는 기세였다.

그래서 우리 둘은 다시 한 번 사냥을 시작했다.

전기 에너지를 거의 다 소모한 타이니는 이제 순수한 힘으로만 몬스터들을 공격했다.

하지만 내 쪽은 아직 중력 에너지가 잔뜩 남아 있었다.

다짜고짜 턱으로 몬스터들을 물어 죽이는 대신, 나는 몇 가지 새로운 전략을 시험했다.

방금 도마뱀에게 썼던 중력 화살 콤보는 수많은 전략들 중 하나일 뿐이었다.

다른 아이디어도 많이 있다고!

먼저 전투 상황에서 중력 창이 얼마나 쓸만한지 시험해 보자!

나는 몬스터들이 잔뜩 모여 있는 쪽으로 중력 창을 발사했다.

강력한 힘에 끌려와서 공처럼 뭉친 몬스터들은 그 상태로도 서로를 물어뜯고 할퀴며 탈출하려고 몸부림쳤다.

후후후.

광역 데미지를 시험해볼 차례다.

물어 깨뜨리기!

나는 마나를 잔뜩 동원해서 거대하고 반투명한 에너지의 턱을 만든 다음, 공처럼 뭉쳐 있는 몬스터들을 한꺼번에 물었다.

우직!

[···처치했습니다.]

[···처치했습니다.]

[···처치했습니다.]

···

너무 쉬워서 무슨 나쁜 짓이라도 한 것 같은 기분이 드는데···

이게 두뇌파 개미의 힘이다!

강력한 주문으로 적을 손쉽게 처리하는 거지!

내가 지금까지 그토록 많은 시간을 투자해서 마법 스킬을 연습하고 코어를 우선적으로 성장시켰던 것도, 힘과 강인함을 포기하고 마법 능력을 강화할 수 있는 진화 계열을 선택한 것도 모두 이 결과를 위해서였다.

전부 이 날을 위해서였다고!

그리고 그럴 만한 가치가 있었다!

나는 신이 나서 동굴 안을 돌아다니며 연신 중력 창을 발사하고, 공처럼 뭉친 몬스터들을 턱으로 학살하는 일을 반복했다.

체력과 마나를 아낌없이 쓰면서, 눈에 보이는 모든 몬스터를 처치할 때까지 멈추지 않았다.

너무 재미있었으니까!

심지어 레벨도 하나 올랐다!

오늘 던전 아래로 내려오기를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실전에서 마법을 능숙하게 사용할 수 있다는 사실을 확인하니 성취감이 장난 아니었다.

물론 이보다 더 빠르게 주문을 사용할 수도 있을 것 같지만···

그러려면 더 많은 연습이 필요하겠지.

그리고 내 힘을 너무 과신하지 않도록 조심할 필요도 있었다.

일종의 방패나 무효화 능력처럼···

마법 공격에 저항할 수 있는 몬스터들도 분명히 있을 테니까.

이 동굴 안에 나와 대적할 만한 몬스터가 없다고 해서 마냥 자만할 수는 없었다.

신중함을 잃지 말자!

동굴 안을 대충 정리한 우리는 서둘러 나머지 용무를 마쳤다.

나는 찾아낸 코어들을 타이니에게 맡긴 뒤 빠르게 바이오매스를 섭취했다.

내가 선택한 먹이는 당연히 이 동굴 안에서 싸웠던 몬스터들 중 가장 강력한 갑옷 도마뱀이었다.

[새로운 바이오매스의 원천을 섭취했습니다: 오스 라케르티. 1 바이오매스를 얻었습니다.]

[오스 라케르티의 기초 정보가 잠금 해제됩니다.]

[오스 라케르티: 뼈 도마뱀. 이 몬스터는 몸을 둘러싼 단단한 갑옷과 강력한 육체적인 힘, 그리고 곤봉 형태를 한 꼬리의 무시무시한 위력으로 유명합니다. 그리 강력한 주문은 아니지만, 간단한 대지 마법도 사용할 수 있으므로 조심해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