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반갑소. 근위 기사단의 티아스 트리컬 대령이오. 이번에 1군단으로 옮기게 됐소."
"정보국의 타일러 빈스 중령입니다."
"그쪽이 이번에 황제 폐하께 엠페러 프라임 훈장을 받는다고 들었소."
"네. 그렇게 됐습니다."
"부럽소."
티아스 대령은 정말 부러운 눈빛을 하고 있었다.
이 사람에 대해선 조금 전에 클린드 부국장에게 들었다.
이번에 룩급 오리지널 기간트를 배정받은 실력자로 대대로 근위 기사단에 기사를 배출한 수도의 명문가 출신이었다.
물론 황립 아카데미를 졸업했고.
그리고 근위 기사단 10년 만에 룩급 오리지널 기간트에 탈 정도로 실력도 매우 뛰어난 인재였다.
티아스 대령은 이번에 나보다 한 단계 아래의 훈장을 받을 예정이었다.
아마도 내가 없었다면 이 사람이 엠페러 프라임 훈장을 받았을 것이다.
누구라도 좋으니 제국엔 영웅이 필요했으니까.
그리고 훈장을 받을 다섯 명의 기사와 장교도 함께 퍼레이드 마차에 올랐다.
뺨빠라뺨! 빰빰빠빰빠밤!
나팔이 울리고, 북소리가 울려 퍼졌다.
그리고 거대한 황궁 후문이 열렸다.
군악대가 먼저 나오고, 화려한 복장의 황실 의장대가 뒤를 이었다.
그리고 여러 부대에서 뽑힌 병사들이 줄지어 이동했다.
기이잉! 쿵! 쿵! 쿵!
드디어 근위 기사단의 기간트들이 줄지어 성문 밖으로 나왔다.
"거리는 괜찮을까요?"
순수하게 걱정돼서 물었다.
티아스 대령은 피식 웃었다.
"괜찮을 리가 있겠소? 저 무거운 것들이 지나는데. 행사가 끝나면 바닥은 전부 교체해야 할 거요."
"아깝군요."
그렇다고 건국기념일 행사에 기간트를 빼놓을 순 없었다.
황제의 건재함과 제국의 위상을 국민에게 보이는 행사였기에 가장 강력한 기간트가 당연히 참석해야 했다.
그래도 다행인 것은 올해는 제국의 군단이 모두 외부에 있었기에 보통 8시간이 걸리는 퍼레이드 시간이 절반으로 줄어들었다.
"오오! 다라곤이다!"
"다라곤이 나온다!"
근위 기간트 맨 뒤로 13미터의 황금빛 오리지널 기간트가 모습을 드러냈다.
"저게 제국 유일한 킹급 기간트로군요."
어깨와 가슴, 각 관절의 보호 장갑까지 모두 황금빛으로 번쩍였다.
겉보기엔 키와 장갑이 모두 퀸급 기간트와 똑같았다.
왜 구분하는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처음 본 킹급 기간트는 그냥 보고만 있어도 압도되는 것 같았다.
마나를 보는 눈으로 내부를 살펴보고 싶었지만, 보는 사람이 많아 포기했다.
"나도 언젠가 저 다라곤에 탈 거요."
티아스 대령의 눈빛이 타오르고 있었다.
"지금은 누가 타고 있습니까?"
"당연히 발데스 기사단장님이시오."
아직 직접 만난 적은 없지만, 나도 많이 들어봤다.
제국 최고의 기사이자, 제국 제일검!
열두 살 때 이미 오리지널 폰급 기간트에 탔고, 성인이 돼서는 룩급 오리지널 기간트에 탔다.
그는 단 한 번도 양산형 기간트에 탄 적이 없다고 했다.
한 마디로 엘리트 중의 엘리트.
발데스 기사단장의 마나량이 엄청날 것이다.
룩급 오리지널 기간트에 타는 웨슬리만 해도 나보다 몇 배나 많은 마나량을 보유하고 있으니까.
발데스 기사단장의 킹급 기간트가 지나자, 그 뒤로 4개의 폰급 기간트가 커다란 단상처럼 생긴 판을 들고 나타났다.
그리고 그 위에는 황제와 황후가 앉아 있었다.
"케인 오르도 폐하 만세!"
"황제 폐하 만세!"
"와아아아!"
케인 오르도 황제는 자리에서 일어서 자신을 환호하는 사람들을 향해 손을 흔들었다.
'정말 정정하잖아!'
나이가 67세라고 알고 있었다.
그런데 겉보기엔 50대 초반이라고 해도 믿을 거 같았다.
황제가 저렇게 건강하니, 후계자들은 똥줄이 타겠구나.
자신들이 집권할 시기가 줄어드니까.
황제의 단상이 지나고, 황태자와 황태자비가 타고 있는 단상이 나왔다.
그리고 뒤를 이어 대신들과 높으신 분들의 마차가 줄지어 지나갔다.
그들의 마차도 퍼레이드 용으로 의자가 마차 지붕에 달려 있었다.
"자! 이제 우리 차례군."
4마리의 마차가 움직이고, 우리가 타고 있는 마차가 움직였다.
의자는 따로 없었고, 곳곳에 봉이 박혀 있어 그곳에 기대거나 손으로 잡고 있었다.
'동물원의 원숭이가 따로 없군.'
난 중앙에 잘 안 보이는 자리에 섰다.
하지만 티아스 대령과 기사들은 사람들을 향해 손을 흔들며 환호에 답하고 있었다.
"휴! 뭐 하는 짓인지 모르겠군요."
"응?"
내 옆에 선 것은 유일하게 기사가 아닌 소령 계급장을 단 장교였다.
"기술국의 로베르트 소령입니다. 타일러 중령님 이야기는 많이 들었습니다."
"아! 이번에 더 오래가는 마석 배터리를 개발했다는 분이시군요."
"말씀 편하게 하십시오. 같은 추밀원 소속이 아닙니까. 그리고 더 오래가는 마석 배터리가 아니고, 그동안 너무 과도하게 배터리가 소모된 것을 조금 줄인 겁니다."
그게 그거지 않나?
아무튼, 그는 추밀원 하부 기관인 기술국의 인재라고 알고 있었다.
기술국은 추밀원에서 가장 많은 금화와 인력을 지원을 받는 곳으로 기간트 관련한 모든 기술을 다룬다.
"의자라도 있었으면 좋았을 것을."
"제 말이 그 말입니다. 무려 4시간을 이렇게 서서 이동해야 한다니······."
로베르트 소령이 고개를 흔들었다.
그도 나처럼 이 건국기념일 퍼레이드 행사가 달갑지 않은 모양이었다.
"그런데 아까부터 왜 자꾸 건물 위를 보십니까?"
"오늘 새벽에 내가 호텔 옥상에서 암살자들을 처리했네."
"네? 암살자요?"
로베르트 소령이 기겁한 표정을 지었다.
"이, 이거 지금 위험한 거 아닙니까?"
"이미 경비대가 모든 건물을 수색했을 것이네."
"그런데 왜 살펴보십니까?"
"혹시나 빠트린 곳이 있을지도 모르니까. 옛말에 지키는 사람 열이 도둑 하나를 못 당한다는 말이 있지 않은가."
로베르트가 마른 침을 삼켰다.
잔뜩 긴장한 것이 괜히 말해 준 것 같았다.
다행히 퍼레이드는 별일 없이 끝났다.
기간트와 황제의 단상은 무사히 에르가드 대광장에 도착했다.
그리고 우리 마차도 광장으로 들어섰다.
콰앙! 콰콰쾅!
화아아아아!
멀지 않은 곳에 큰 폭발과 거대한 불꽃이 치솟았다.
"무슨 일이냐?"
[근위 기사들은 황제 폐하를 지켜라!]
발데스 기사단장의 명령에 일렬로 서 있던 기간트들이 방어 대형을 갖추기 시작했다.
퍼엉! 화르르르!
퍼퍼펑! 화아아아!
곳곳에서 연이어 화염이 치솟았다.
광장 근처는 아니지만, 연이은 폭발에 놀란 사람들이 사방으로 달리기 시작했다.
"황제를 죽여라!"
"케인 오르도를 죽여라!"
갑자기 광장에 숨어 있던 자들이 달려들기 시작했다.
하지만 황궁 수비대원들이 황제와 대신들의 앞을 겹겹이 막아섰다.
그리고 그 앞에는 기간트가 있었다.
"으악!"
"크악!"
모닥불을 향해 달려드는 불나방이 이럴까.
기간트가 움직일 필요도 없었다.
황궁 수비대원들이 검과 창으로 암살자들을 처리하고 있었다.
콰앙!
"기간트다!"
그때였다.
갑자기 광장 분수대 밑에서 비숍급 기간트 하나가 위로 올라왔다.
[황제를 죽여라!]
기이잉! 쿵쿵쿵!
비숍급 기간트가 황제를 향해 달렸고, 뚫린 구멍으로 다섯 대의 기간트가 연이어 나와 달렸다.
[황제 폐하! 아무래도 피신하시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기사단장의 말에 황제는 입술을 깨물었다.
이미 건국기념일 행사는 엉망이 된 상태였다.
"어떤 놈들인지 알아야겠다. 범인을 반드시 사로잡아라!"
[네! 폐하!]
황제를 태운 단상은 황궁 정문으로 향했다.
그리고 근위 기사단의 기간트들이 달려오는 기간트를 막았다.
쾅! 콰콰쾅!
"어리석은 놈들! 쓸데없이 기간트만 낭비하는구나."
티아스 대령이 고개를 흔들었다.
내가 옆에서 물었다.
"그러게나 말입니다. 제국의 기간트인 것을 보면, 아리칸 공국 짓이겠군요."
"그럴 거요. 덕분에 우리 사기만 올라가겠군. 암살에 실패하고 놈들이 제국의 수도를 공격했다는 사실만으로 제국의 병사들은 분투할 테니까!"
그런데 너무 쉽지 않나?
마르틴 대공이 벌인 짓이 맞는지 의심스러웠다.
이렇게 뻔히 보이는 암살 시도가 통할 거라고 보는 건가?
뭔가 찜찜했다.
"황궁의 하수도는 어떻습니까? 저기 광장 분수대처럼 지하로 기간트가 이동할 수 있을까요?"
"하수도? 황궁의 하수도는 너무 좁아서 기간트는 들어갈 수 없소."
"그럼 황궁은 안전하겠군요."
"물론이요. 일단 적 기간트가 나타났으니, 황궁의 모든 문은 닫힐 것이오. 그리고 황궁 안에 황제 폐하의 거처인 황성의 문도 닫힐 것이고. 그럼 기간트는 절대 안으로 들어갈 수 없소. 하늘을 날아서 들어가면 모를까."
"하늘이요?"
순간 불길한 생각이 들었다.
86. 비공정.
86. 비공정.
'설마, 아니겠지?'
그 설마가 비공정은 아닐 거야······.
이렇게 반역을 한다고?
에이! 실패했을 때 그 뒷감당을 어떻게 하려고.
아닐 거야.
그렇게 되뇌었다.
그런데도 불안했다.
그리고 지금까지 그 불안함은 언제나 현실이 됐다.
"성문이 닫히면 지금 밖에 있는 근위 기사단의 기간트도 황궁에 들어가지 못하는 겁니까?"
"하하! 내부에서 열어주면 당연히 들어갈 수 있소."
"만약 내부에서 열어주지 않으면요?"
"그럴 리가 있겠소?"
그럴 리도 있으니까 물어보는 거잖아!
"뭐, 황궁의 모든 문은 기간트를 막기 위해 괴수 부산물로 특수 제작되어 있소. 특히 외성문은 너무 두꺼워 기간트가 전력을 다해 도끼나 해머로 부순다 해도 꼬박 하루는 걸릴 거요."
그러니까 근위 기사단도 들어오지 못한다는 말이네.
내가 적이라면 어떻게 했을까?
내가 황제를 죽이려 했다면?
단순한 방법으로는 절대 황제를 죽일 수 없다.
하지만 나처럼 비공정을 가지고 있다고 가정한다면?
지금 제국의 근위 기사단은 퍼레이드 행사로 황궁 밖에 있다.
게다가 다른 군단의 기간트가 모두 외부에 있었기에 건국기념일 행사가 초라해지지 않도록 최소한의 기간트만 남기고 모두 끌고 나왔을 것이다.
그리고 지금 그 근위 기사단은 모두 외성 밖에 있고, 황제는 황궁 안으로 들어갔다.
만약 내부에서 성문을 여는 장치를 부순다면?
'젠장, 그럼 너무 쉽잖아!'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날이 흐리다.
구름 때문인지 비공정은 보이지 않았다.
그리고 내가 바이마르 대영지에서 봤던 비공정의 크기는 어마어마했다.
그 거대한 비공정이 아무에게도 걸리지 않고 이곳까지 올 확률은 낮아 보였다.
'괜히, 나 혼자 오바하는 건가?'
하지만 이미 누군가의 의도대로 흘러간 정황이 보인다.
암살자들이 외부에서 설쳤고, 근위 기사단은 외부에 있고, 황제는 황성 안으로 들어왔으니까.
티아스 대령을 쳐다봤다.
"대령님, 우리도 황제 폐하를 따라 황궁 안으로 들어가면 안 될까요?"
"뭐요?"
그가 날 이상한 눈으로 본다.
"테러가 곳곳에 났으니 이곳보단 황궁이 안전하지 않을까 해서요."
"그렇긴 하지만······."
"근위 기사단 소속이시라면서요? 이러다 암살자들이 이곳으로 올 수도 있습니다."
겁에 질린 로베르트 소령이 티아스 대령의 팔을 잡고 매달렸다.
그의 간절한 표정이 통했을까.
"뭐, 외성 안쪽까진 괜찮겠군. 날 따라오시오."
우린 티아스 대령을 따라 서둘러 성문으로 향했다.
황궁의 외성문은 4개.
그중에서 기간트가 출입할 수 있는 곳은 정문과 후문 단 2개 밖에 없었다.
황궁 정문 앞엔 나이트급 기간트 2대가 지키고 있었다.
그리고 이미 거대한 외성문이 천천히 내려가고 있었다.
드르르르르!
[정지!]
"괜찮아! 내 지인들이다."
[티아스 대장님이셨군요. 문이 닫힙니다. 어서 들어가십시오.]
우린 황궁 정문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곧 성문이 닫혔다.
드르르! 쿠웅!
일단 난 황궁 안으로 들어왔다.
황제는 벌써 내성 안으로 피신한 것 같았다.
'지금쯤 후문도 닫혔겠지?'
만약 내가 진짜 황제를 노렸다면 지금쯤 비공정을 타고 내려왔을 것이다.
곧 암살자들과 암살 기간트를 처리한 근위 기사단이 황궁으로 들어올 테니까.
다행히 아직까진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타일러 중령님, 왜 자꾸 하늘을 보십니까?"
로베르트 소령이 물었다.
"비가 올 것 같아서."
"비요?"
"이런 미친!"
"네? 왜 제게 욕을 하십니까?"
내 예상이 100% 맞진 않았다.
지금 눈앞에 보이는 것은 바이마르 대영지의 거대 비공정은 아니었다.
선체 길이 150미터 정도의 비공정 2대가 구름을 뚫고 빠르게 내려오고 있었다.
'그래, 큰 비공정을 만들 수 있다면, 작은 것도 얼마든지 만들 수 있다고 가정했어야 했어!'
역시 외성 밖에 암살자들과 기간트는 단지 미끼였을 뿐이었다.
"저건 뭡니까?"
난 일부러 하늘을 가리키며 큰소리로 외쳤다.
그러자 티아스 대령과 다른 기사들도 하늘을 올려다봤다.
"헉! 저, 저게 뭐야?"
"배가 하늘을 날아?"
"대령님! 수상한 놈들입니다! 성문을 열고 근위 기사단을 안으로 들여야 합니다."
"뭐요?"
티아스 대령이 눈을 깜빡였다.
"그대 말이 맞소! 성문을 열어라! 수상한 것들이 다가온다!"
"성문을 열어라!"
끼기기기기! 드르르!
닫혔던 성문이 열리기 시작했다.
하지만 너무 느렸다.
그에 반해 비공정이 하강하는 속도는 너무 빨랐다.
'날씨까지 저들을 도와주는구나!'
만약 맑은 날이었다면, 내가 조금 더 빨리 비공정을 발견했을 것이다.
순간 고민됐다.
인형의 집을 열어 마법인형을 꺼내서 저들을 막아야 할까?
하지만 그렇게 되면 내 능력이 제국, 아니 전 대륙에 알려질 것이다.
그건 아니 될 일이었다.
이건 최후의 보류였다.
일단 내 능력을 최대한 보이지 않는 상태에서 최선을 다해 황제를 구할 생각이었다.
아베르크 제국에 내 터전이 있기 때문이었다.
그때 기간트 한 대가 비공정 아래 쇠사슬에 매달려 있는 모습이 보였다.
"퀴, 퀸급 기간트다!"
오리지널 기간트 기사답게 티아스 대령은 바로 알아봤다.
'퀸급 기간트라면, 마르틴 대공이 직접 왔다는 건가?'
하긴 라디프 바이마르 공작이 직접 위험을 감수할 필요는 없지!
비공정이 있다는 것도, 비행석이 있다는 것도 아무도 모른다고 생각할 테니, 아리칸 공국과 모종의 거래를 했을 수도 있다.
자신은 비공정만 제공하면 나머진 마르틴 공작이 알아서 할 테니, 혹시나 실패해도 증거가 남지 않는다.
그리고 삼황자가 없는 이곳 황성에 마르틴 대공의 분노가 휩쓴다면······.
"헉! 아리칸 공국 깃발이다!"
비공정 위쪽에 아리칸 공국의 깃발이 휘날리고 선체 측면에 커다랗게 깃발이 그려져 있었다.
"당장 근위 기사단을 불러라! 발데스 기사단장님을 모셔와!"
티아스 대령이 열린 성문 밑으로 기사에게 명령했다.
기간트 한 대가 광장으로 이미 적들을 제압한 근위 기사단을 향해 달리기 시작했다.
하지만 이미 비공정은 지척에 도착했다.
"티아스 대령님, 혹시 근처에 기간트가 있습니까?"
"아! 근처 기사단 건물에 내 오리지널 기간트와 예비 기간트가 몇 대 남아 있소."
"당장 가시죠. 아무래도 밖에 있는 근위 기사단은 시간을 맞추지 못할 겁니다."
"알았소."
타아스 대령이 다른 기간트 기사에게 명령했다.
"무슨 일이 있더라도 성문 개폐 장치를 사수하라!"
[네!]
나이트급 기간트는 커다란 창을 넣곤, 기어서 성안으로 들어왔다.
우린 기사단 건물이 있는 북쪽을 향해 달렸다.
"젠장! 하늘을 나는 배라니!"
티아스 대령이 달리면서 이를 갈았다.
다른 네 명의 기사들도 마찬가지였다.
그들 역시 전선이나 대마경에서 활약해 이번에 황제에게 무공 훈장을 받기 위해 모인 베테랑 기사들이었다.
그러니 큰 도움이 될 것이다.
"아리칸 공국의 기술력이 상상을 초월하는군요. 대체 마석 배터리를 몇 개나 써야 하늘을 날 수 있을까요?"
로베르트 소령은 그저 비공정이 신기한 것 같았다.
위이이잉!
거친 엔진음이 들리며 비공정이 성문 위에 멈췄다.
그 순간 퀸급 기간트가 쇠사슬을 타고 내려왔다.
쿵! 쿵!
가슴에 선명한 십자 표식.
손에 들린 거대한 사신의 낫!
저건 마르틴 대공의 기간트 우가스였다.
[죽어!]
나이트급 기간트가 창을 찌르며 달려들었다.
휘릭! 촤아악!
쿠웅!
나이트급 기간트가 무릎을 꿇었다.
창을 찌르는 순간 사신의 낫이 휘둘리며 옆으로 스쳐 지나갔다.
기간트는 몸이 반으로 갈라져 하체는 앞으로 상체는 뒤로 떨어졌다.
'이건 아예 상대가 안 되잖아!'
13미터와 7미터의 체급 차이도 있었지만, 움직임이 너무나 차이 났다.
촤악! 촤악!
탱! 탱!
성문을 끌어 올리던 거대한 8개의 쇠사슬이 차례로 잘렸고, 마석 크레인 장치도 박살 났다.
드르르륵! 쿵!
성문이 힘을 이기지 못하고 닫혔다.
그때 거대한 우가스가 우리 쪽을 쳐다봤다.
순간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암 드로운이 이길 수 있을까?'
내 거신인형은 11미터로 우가스보다 2미터나 작았지만, 그는 기간트가 아니라 거신이었다.
그러니 이기긴 힘들더라도 질 것 같지는 않았다.
하지만 여기서 암 드로운을 꺼낼 순 없었다.
"서둘러라! 놈이 내성으로 간다!"
비공정이 내성으로 날아가기 시작했고, 우가스는 그 뒤를 따라 달리다가 점프해 쇠사슬을 잡았다.
그들은 빠르게 내성문으로 향했다.
우린 최선을 다해 달렸지만, 근위 기사단 기간트 격납고에 도착한 것은 10분이나 지난 후였다.
"당장 기간트 탑승을 준비하라!"
안에 있던 정비 장교와 엔지니어들은 영문 모를 표정을 지었다.
"무슨 일이십니까?"
"서둘러라! 적이 황궁을 공격했다!"
"네?"
티아스 대령의 호통에 작업자들은 기겁했다.
그리고 빠르게 격납고에 있는 기간트들을 준비하기 시작했다.
"제길!"
티아스 대령이 주먹을 쥐었다.
"비올란테, 출격 준비 끝!"
티아스 대령의 룩급 오리지널 기간트가 마석 배터리를 장착하고 출격 준비를 끝냈다.
[개자식들! 내가 간다!]
기이잉! 쿵! 쿵! 쿵!
격납고를 나서자마자, 비올란테가 검을 뽑았다.
그리고 룩급 기간트 2대가 뒤를 따랐고, 비숍급 기간트 2대가 마지막으로 출격했다.
"중령님과 소령님도 기간트가 필요하십니까?"
장교가 물었다.
아직 기간트가 더 남아 있었다.
"난 됐고, 저들에게 기간트를 주시오."
난 후드 깊게 쓴 자동인형 넷을 꺼냈다.
"저들은 누굽니까?"
"모두 정보국의 비밀 기간트 기사들이오. 룩급 2대와 비숍급 2대를 준비해주시오."
"아! 알겠습니다."
웨슬리와 자할리, 더그와 엘다크가 기간트에 탔다.
'자! 가자!'
기간트 넷이 움직였고, 난 뒤를 따랐다.
"타일러 중령님! 어딜 가십니까?"
로베르토 소령이 갑자기 날 붙잡았다.
"소령은 일단 정문으로 다시 가보게. 그리고 기간트가 성벽을 넘어올 방법을 연구하게."
"하지만 제가 어떻게?"
"무슨 방법이든 알아내게. 제국의 운명이 자네에게 달렸네."
"네?"
난 로베르토 소령을 뒤로하고 내 마법인형들이 탄 기간트와 내성문을 향해 달렸다.
***
[젠장! 문을 부숴라!]
쾅! 쾅! 쾅!
오리지널 기간트 비올란테가 검으로 내려치고, 룩급 기간트가 도끼로 내성문을 내리쳤다.
내성문은 외성문보다 절반 크기였지만, 역시나 괴수 부산물로 만들어져 있었기에 쉽게 부서지지 않았다.
기이잉! 쿵! 쿵!
우리가 다가가자, 비올란테와 기간트 기사들이 무기를 겨눴다.
"접니다!"
[뒤에 기간트는 뭐요?]
"모두 정보국 비밀 기간트 기사들입니다. 저를 돕기 위해 합류했습니다."
[오! 환영하오.]
아군 기간트 숫자가 아홉으로 늘었기에 조금은 기뻐하는 것 같았다.
내성 앞쪽엔 입구를 지키던 비숍급 기간트 1대와 나이트급 기간트 3대가 형편없이 부서져 있었다.
범인은 단 한 대의 짓이었다.
마르틴 공작.
게다가 내성문을 닫고, 장치를 부쉈기에 우린 내성으로 들어갈 수 없었다.
[큰일이오! 문이 닫히기 직전에 놈들의 배 앞으로 10대의 기간트가 있는 걸 봤소.]
"그럼 하늘을 나는 배가 2척이었으니, 최소 20대의 기간트가 내성으로 들어갔군요."
[게다가 배에서 내린 병력도 상당하오. 빨리 문을 열지 않으면 황제 폐하께서 위험하오.]
마르틴 공작이 정말 치밀하게 준비한 것 같았다.
87. 진짜 영웅.
87. 진짜 영웅.
"황성이 얼마나 버틸까요?"
[황성은 하나의 요새나 마찬가지요. 기간트라도 쉽게 뚫을 순 없소. 하지만 성문은 오래 버티지 못할 거요.]
시간이 얼마 없었다.
"지금 상태론 문을 부술 순 없습니다. 대신 이곳은 성벽 높이가 낮으니 다른 방법을 쓰죠."
외성벽은 처음부터 기간트 공성 방어용으로 만든 것이라 그 높이가 100미터나 됐고, 완전히 수직이라 기간트만으로 오르기는 거의 불가능했다.
하지만 내성벽은 높이가 50미터 정도였기에 기간트를 연결하면 가능할 수도 있었다.
"3대가 맨 밑을 받치고, 그 위로 2대, 그리고 1대씩 오르다 보면 아슬아슬하게 성벽 위로 올라갈 수 있을 겁니다."
[일단 해봅시다!]
다른 방법이 없었기에 내 말대로 해보기로 했다.
룩급 기간트 셋이 먼저 벽에 바짝 붙어 버티고, 그 어깨 위로 비숍급 기간트 2대가 올라 섰다.
그리고 그 위로 룩급 기간트 한 대가 올라섰고, 마지막으로 비숍급 기간트가 올라섰다.
이제 남은 것은 비숍급 기간트 한 대와 오리지널 룩급 기간트 한 대뿐이었다.
[오를 수 있겠소?]
[가능하오.]
내 자동인형 더그가 대답했다.
그는 프랭크 대령을 마법인형으로 만든 내 첫 번째 마나인형이었다.
"조심해!"
더그가 탄 비숍급 기간트는 천천히 올라갔고, 드디어 맨 위에 도착했다.
하지만 아직 성벽 위엔 닿지 않았다.
[이젠 내 차례군.]
티아스 대령의 비올란테가 성큼성큼 걷더니, 기간트들을 타고 올랐다.
높이가 50미터라 떨어져도 기간트는 버틸 수 있지만, 내부의 인간은 큰 충격을 받는다.
'그래도 실력은 있군.'
룩급 오리지널 기간트답게 올라가는 동작이 부드럽다.
그건 싱크로율이 높다는 뜻이었다.
정말 그가 더 성장하면 킹급 기간트에 탈 수 있을지도 모르겠네.
[성벽을 잡았소!]
비올란테가 성벽에 상체를 걸쳤다.
"거기서 움직이지 마십시오!"
난 밑에 있는 기간트 기사들에게 다가갔다.
"이제부터 한 명씩 기간트를 타고 성벽 위로 올라가는 겁니다. 맨 위에 올라가면 다른 기간트가 올라올 수 있도록 도와주십시오."
[알겠습니다.]
맨 밑에 있던 룩급 기간트가 하나씩 다른 기간트의 다리와 허리, 어깨 등을 잡고 위로 올라갔다.
드디어 한 기간트가 성벽 정상에 올라갔다.
그리고 다음 룩급 기간트가 동료 기간트의 몸을 잡고 위로 올라갔고, 세 번째 기간트가 힘겹게 올라가자, 이제 다른 기간트들은 서로의 다리를 잡고 허공에 매달린 상태였다.
그래도 위로 올라간 룩급 기간트들이 붙잡고 있었기에 떨어지진 않았다.
다음으로 중간에 비숍급 기간트 2대가 올라가고, 매달린 기간트가 하나씩 올라가자, 어느새 비올란테와 더그의 비숍급 기간트만 남았다.
이땐 올라간 기간트가 많았기에 두 대를 함께 끌어 올렸다.
그렇게 9대의 기간트가 성벽 위에 올라갔다.
인형의 집에 넣었다면 진작 넘어갔겠지만, 난 그렇게 하진 않았다.
더그가 밧줄을 내려주고 나도 성벽 위로 올라갔다.
그리고 우린 내성 안쪽으로 내려갔다.
"황제께서는 어디 계십니까?"
[당연히 황성에 계실 것이오.]
"황성은 어떤 곳입니까? 대략적인 구조를 말씀해 주셔야 작전을 세웁니다."
비올란테에 탄 티아스 대령이 잠시 머뭇거렸다.
하지만 방금 나 때문에 내성을 쉽게 넘었기에 내 말을 무시하진 않았다.
[그곳은 해자도 있고, 날카로운 첨탑이 많아 하늘에서 기간트나 병사들을 내릴 공간이 없소.]
"그건 그나마 다행이군요. 성벽은 튼튼합니까?"
[내성보단 약하지만, 쉽게 무너질 성벽은 아니오. 하지만 아까 말한 것처럼 성문은 오래 버틸 순 없을 거요.]
"그럼 놈들은 성문을 부수고 병사들을 안으로 들여보내겠군요."
[내 생각도 그렇소.]
"문제는 성문 주변에 저들의 기간트가 모두 포진되어 있을 겁니다. 그러니 그냥 무작정 달려들어선 승산이 없습니다."
[하지만 성문이 뚫리면 황제께서 위험하시오.]
난 고개를 흔들었다.
"잘 들으십시오. 티아스 대령님과 여기 있는 기사들이 죽으면 황제 폐하께서도 살 수 없습니다. 지원군이 언제 올지 모릅니다. 우리 말고는 병력이 없다고 생각해야 합니다. 그러니 한 번에 달려들지 말고, 저들의 병력을 유인해 상대해야 합니다."
[하지만······.]
"혹시 외부로 통하는 비밀통로 같은 건 없습니까?"
[그건 나도 잘 모르겠소.]
"제가 황성에 몰래 들어가 황제 폐하를 탈출시키겠습니다."
[그게 가능하시오?]
"가능하도록 만들어야죠. 그러니 외부에서 계속 저들의 시선을 끌고 숫자를 줄여야 합니다. 다른 방법은 없습니다."
망설이는 티아스 대령에게 말했다.
"제가 왜 엠페러 프라임 훈장을 받는지 아십니까? 그건 시안 황자 저하를 가디언 제국의 기지에서 구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절 믿으세요."
[젠장! 알았소. 최대한 저들의 시선을 돌리고, 숫자를 줄여 보겠소.]
난 내 자동인형들에게 적당히 전투에 참여하라고 했다.
그리고 절대 마르틴 공작의 우가스에게 달려들지 말라고 했다.
[아! 그리고 황제 폐하께서는 1층 로비 안쪽복도 끝에 있는 회의실에 계실 것이오.]
"알겠습니다. 행운을 빌겠습니다."
일단 티아스 대령과 기간트가 나타나면 마르틴 공작도 당황할 것이다.
외성문과 내성문을 모두 완벽히 차단했다고 생각했다가 9기나 되는 근위 기간트가 나타나면 혼란스럽겠지.
난 그 틈에 황성에 잠입할 생각이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지금 황제가 죽으면 제국은 혼란에 빠질 거고, 제국군은 사기가 떨어지고, 가디언 제국과 아리칸 공국의 협공에 제국 자체가 위태해질 것이다.
그럼 기껏 마련한 내 영지도 위태하고, 대수림에 난민 전진 기지도 위험하다.
그러니.
'내가 황제를 구한다!'
썩 내키지는 않지만, 지금은 이것이 최선 같았다.
***
난 황성 뒤편으로 이동했다.
이곳은 깊은 해자가 있었고, 문은 오로지 하나밖에 없었기에 적들은 성문에 몰려 있었다.
'비공정은?'
한 대는 황성 위에서 천천히 돌고, 한 대는 높은 곳에서 전체를 감시하고 있었다.
'젠장! 창문이 전부 닫혀 있네.'
창문이 모두 강철 문으로 단단히 잠겨 있었다.
누가 설계한 건지 어지간히 나쁜 짓을 많이 한 모양이었다.
하지만 내 운명의 실타래 범위 안이라면 상관없었다.
난 자동인형 셋을 창문 안으로 들여보냈다.
잠시 후 창문이 열리고 밧줄이 내려왔다.
난 해자를 건너고, 밧줄을 타고 올라갔다.
내 자동인형들을 인형의 집에 넣고는 먼저 계단을 따라 위쪽으로 올라갔다.
그리고 첨탑 위에 강철 창문을 열었다.
난 비공정의 위치를 가늠했다.
'정확히 한 번에 성공해야 해!'
지금 내가 가진 전력을 쏟아부으면 마르틴 공작과 크루세이더 기사들을 막을 수도 있었다.
하지만 내 전력을 여기서 모두 드러낼 순 없었다.
그러니 지원 병력을 불러야 했다.
'적을 제압하라!'
내 인형의 집에 있는 자동인형들을 적 비공정 갑판에 꺼냈다.
"주군을 위하여!"
"공격하라!"
자동인형은 여섯밖에 없지만, 그들은 모두 일당백의 기사들이었다.
지금 비공정의 병력은 대부분 황성을 공격하기 위해 지상에 있었으니 어렵지 않게 제압할 것이다.
'주군. 적을 모두 제압했습니다.'
'잘했다. 비공정을 움직일 수 있겠어?'
'방향타가 있어 움직이는 것은 문제가 없습니다.'
'그럼 당장 황성 정문으로 향하고 근처에 광장이 있으니 그곳에 비공정을 착륙시키고, 엔진을 부수고 탈출해.'
'네! 주군.'
세세한 것까지는 조작할 수 없었다.
일단 자기들끼리 싸우다 죽었고, 비공정 엔진이 부서져 추락했다는 시나리오를 밀어붙이기로 했다.
머리가 달린 사람이라면 기다란 선체를 이용해 외성벽을 넘겠지.
어차피 비공정의 존재는 이제 세상에 알려졌다.
그리고 아리칸 공국도 비행석의 비밀을 알고 있었다.
그러니 세상에 완전히 공개해 하늘을 대비하는 것이 나을 것이다.
어차피 이제 대비행 시대는 막을 수 없었다.
'치타는 돌아와!'
표범인형은 꼭두각시라 인형의 집으로 불러들였다.
이제 황제에게 가볼까!
난 아래층으로 내려갔다.
쾅! 쾅! 쩌억!
거대한 낫이 성문을 뚫고 들어왔다.
콰아앙!
성문이 부서졌다.
그리고 마르틴 공작의 퀸급 기간트 우가스가 얼굴을 내밀었다.
"으헉!"
"기간트다!"
병사들이 기겁했다.
그러자 기사들이 소리쳤다.
"이곳은 기간트가 들어오지 못한다!"
"방패를 들어라! 자리를 지켜라!"
"병사들의 진입을 막아라!"
입구의 크기는 3미터, 기간트는 들어오지 못한다.
그때였다!
우가스가 낫을 반대로 쥐더니, 안쪽을 향해 날카로운 창을 찔렀다.
우웅! 파악!
쾅! 콰콰콰쾅!
"으악!"
"크아!"
창을 찌르고 내부를 몇 번 휘젓자, 기사들과 방패를 들고 입구를 막고 있던 황궁 수비대원들이 처참하게 쓰러졌다.
퀸급 기간트의 공격에 인간은 개미 목숨이나 마찬가지였다.
[황제를 죽여라!]
"와아아!"
"죽여라!"
마르틴 공작의 명령에 아리칸 공국의 병사들이 황성 안쪽으로 밀고 들어갔다.
방금 일격으로 입구를 막던 이십여 명의 기사와 병사들이 죽었기에 황궁 수비대의 사기는 바닥이었다.
"황제를 죽여라!"
"한 놈도 살려두지 마라!"
옆에 기사가 내게 물었다.
"타일러요."
"난 케드윈이오."
짧은 통성명.
"우아아아!"
"죽여라!"
"밀어붙여!"
쾅! 콰콰쾅!
다시 몰려오는 적을 상대로 치열하게 싸웠다.
하지만 중과부적.
점점 뒤로 밀렸다.
쾅! 콰쾅!
그러다가 검을 휘두를 공간도 사라졌다.
적과 아군이 겹치고 계속 적들이 몸으로 밀자, 압사당하기 일보 직전이었다.
'윽! 이거 표범인형을 불러야 하나?'
이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 돌파구를 만들어야 했다.
그때였다!
쩌저쩍!
등을 기댄 문짝이 아예 떨어져 나갔다.
콰아앙!
우린 안쪽으로 밀려 쓰러졌다.
그때 상당히 거대한 내부가 보였다.
안쪽에는 창문도 아무것도 없었다.
그저 천장에 불빛만 반짝였다.
그리고 구석에 이십여 명의 사람이 보였다.
"문을 막아라!"
"황제 폐하를 지켜라!"
안쪽에 있던 십여 명의 호위 기사가 달려와 아리칸 병사들을 공격했다.
그래도 날카로운 기세의 호위 기사들이 나서며 검을 찌르고 휘두르자, 순식간에 안으로 밀려 들어온 적들을 처리했고, 입구에 있던 적을 밀어내기 시작했다.
그 틈에 난 케드윈과 일어서 호흡을 가다듬었다.
"자넨? 타일러 중령이 아닌가!"
고개를 돌리자, 익숙한 얼굴이 보였다.
보로스 추밀원장.
이 사람도 여기 있었네.
하긴 황제의 오른팔이니까.
"조금만 참으십시오. 밖에 티아스 대령과 기사들이 기간트를 끌고 왔습니다."
"그래?"
"오오! 다행이군."
벽에 바짝 붙어 있던 사람들이 탄성을 질렀다.
그곳엔 황제와 황후, 황태자 부부와 퍼레이드 행사에 참석한 고관대작들도 있었다.
그때 가장 안쪽에 있던 황제가 보였다.
풍채는 좋았지만, 그는 겁에 질려 있었다.
황제도 죽음은 두려운 모양이었다.
"적이 다시 밀려온다!"
"막아라!"
호위 기사들이 뒤로 밀리며 소리쳤다.
나와 케드윈은 병사들을 이끌고 다시 입구를 막아섰다.
"황제 폐하를 지켜라!"
난 스킬까지 써가며, 달려드는 아리칸 기사와 병사들을 마구 베어 넘겼다.
이왕 황제를 구하기로 했으니, 도와준 티는 제대로 내야지.
"허! 대단하군. 혼자서 적을 다 죽이고 있지 않은가! 대체 저 장교는 누군가?"
"정보국의 타일러 중령입니다. 이번에 폐하께 엠페러 프라임 훈장을 받기로 했습니다."
"아! 시안을 구했다는 그 젊은 장교로군."
등 뒤에서 황제와 사람들의 탄성이 들려왔다.
'이 정도면 진짜 영웅이 된 건가?'
그때 내 자동인형 웨슬리의 목소리가 들렸다.
[주군, 근위 기사단이 왔습니다.]
88. 어딜, 숟가락을 얹으려고.
88. 어딜, 숟가락을 얹으려고.
"황제 폐하를 시해하려는 놈들에게 자비는 없다!"
양손 내려찍기.
촤악!
몸이 반으로 갈라진 아리칸 병사가 좌우로 쓰러지자, 사방으로 피가 튀었다.
좀 잔인했지만, 다가오는 적에겐 두려움을!
그리고 뒤에서 날 지켜보는 자들에겐 강함을 각인시키기엔 충분했다.
"괴, 괴물이다!"
"사람을 반으로 갈랐어!"
아리칸 병사들이 기겁했다.
온몸에 피 칠갑을 하고, 닥치는 대로 자르고 베어 넘기니 이미 내 주변엔 시체가 가득 쌓였다.
"저들의 의지가 꺾였다! 병사들은 전진하라!"
내 명령은 받은 기사 케드윈이 소리쳤다.
"적을 물리쳐라! 전진하라!"
"가자! 와아아!"
겨우 기사 하나와 병사 십여 명에 불과했지만, 정말 앞으로 나가기 시작했다.
이미 밀려오는 숫자가 현저히 줄어들었고, 후미 통로엔 몸을 돌리는 병사들도 보였기에 내린 명령이었다.
근위 기사단의 기간트가 지척에 도착했으니, 도망치는 것이다.
"그럼 이제 다 끝난 건가?"
그때 보로스 추밀원장이 내 옆으로 슬쩍 다가왔다.
"뒤로 물러서십시오!"
"뭐, 뭐라?"
추밀원장은 당황한 표정을 지었다.
"아직 적이 남아 있을 수 있습니다. 호위 기사들은 입구를 철통같이 지켜라!"
"네!"
내 강력한 무위를 봤기에 호위 기사들까지 군말 없이 내 말을 따르고 있었다.
사실 내가 죽인 적들의 숫자가 상당했기에 그들의 목숨도 살린 것이다.
'어딜, 다 된 밥에 숟가락을 얹으려고!'
내 눈엔 추밀원장의 속셈이 훤히 보였다.
내게 명령을 내리며 자기의 공으로 몰아가겠지.
난 몸을 돌려 황제를 향해 걸었다.
온몸에 피 칠갑을 하고 있었기에 고관대작들과 황족들이 흠칫 놀란 표정까지 지었다.
난 검을 한쪽에 내려놓고, 황제가 있는 방향을 향해 한쪽 무릎을 꿇었다.
"황제 폐하! 안심하십시오. 암살자들이 물러간 것 같습니다."
"오! 그런가?"
맨 뒤에 숨어있던 황제가 조심스럽게 앞으로 나왔다.
"오늘 잘해주었다. 타일러 중령!"
황제는 나를 보며 한쪽 주먹을 쥐어 보이기까지 했다.
"남은 적들이 있을지 모르니, 불편하시겠지만 이곳에서 조금만 더 기다려 주십시오. 밖으로 나가 기사들과 병사들을 더 불러오겠습니다."
"알았네. 고생하게."
케인 오르도 황제는 고개를 끄덕였다.
난 자리에서 일어서 몸을 돌렸다.
그 순간 추밀원장이 날 언짢은 눈으로 보고 있었다.
난 추밀원장을 향해 살짝 고개를 숙이고 복도로 걸어 나갔다.
황제에게 내 활약은 확실히 각인시켰으니, 이젠 주변을 정리할 차례였다.
내 자동인형들이 아직 싸우고 있었다.
"타일러 중령, 적들이 물러갔습니다."
어느새 공손한 말투로 바뀐 기사 케드윈.
황성 1층 로비엔 적과 아군의 시체가 가득했다.
"고생하셨습니다. 이곳에서 조금만 더 대기해 주세요. 제가 밖으로 나가 보겠습니다."
"조심하십시오."
난 홀로 성문 밖으로 나갔다.
'주군, 놈들이 도망칩니다. 쫓을까요?'
웨슬리의 목소리가 들렸다.
황성 옆쪽으로 비공정이 착륙했고, 병사들이 타고 있었다. 그리고 마르틴 공작과 기간트들이 주변을 지키며 다음 차례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리고 티아스 대령과 기사들은 뒤처진 크루세이더 기간트들과 싸우고 있었다.
'아니다! 추격하지 마라!'
괜히 지금 달려들었다가 저 사신의 낫에 당할 뿐이었다.
콰앙!
[어딜 도망가느냐?]
'응?'
티아스 대령의 비올란테가 크루세이더 기간트 한 대를 파괴하고, 마르틴 공작을 향해 달렸다.
'이런! 웨슬리, 비올란테를 막아라!'
웨슬리의 룩급 기간트가 뒤늦게 달려갔지만, 비올란테는 이미 마르틴 공작의 우가스에게 향하고 있었다.
지금 티아스 대령의 실력으론 마르틴 공작을 이길 수 없었다.
그때 웨슬리의 룩급 기간트를 크루세이더 비숍급 기간트가 막아섰다.
그리고 이미 비올란테는 우가스에게 검을 휘두르고 있었다.
[죽어!]
휘익!
카앙! 카카캉! 캉!
거칠게 검을 휘두르며 공격하는 룩급 기간트 비올란테!
불꽃이 번쩍이고 기세가 제법 사나웠지만, 우가스는 여유롭게 막고 있었다.
'티아스 대령! 너무 흥분했잖아!'
상대가 마르틴 공작이란 걸 알아서인지, 티아스 대령은 너무 서두르고 있었다.
[이야!]
캉! 카캉! 캉!
티아스 대령은 자신이 계속 공격하자, 기선을 제압했다고 생각했나 보다.
동작이 커지고, 그러다 우가스가 찔러지는 검을 창대로 올려치는 척하더니, 기체를 옆으로 슬쩍 이동했다.
순간 허공을 찌른 비올란테의 검.
그 순간 우가스가 앞발로 비올란테의 옆구리를 걷어찼다.
콰앙! 쿠웅!
[크윽!]
비올란테는 중심을 잃고 옆으로 쓰러졌다.
그 순간 사신의 낫이 비올란테의 배를 향해 휘둘렸다.
부아앙!
티아스 대령은 놀라 비올란테의 검을 들었다.
하지만 너무 늦었다.
태애앵!
[응?]
비올란테의 배 한 뼘 위로 사신의 낫이 멈췄다.
웨슬리의 룩급 기간트가 검으로 막은 것이다.
그는 이미 다른 기간트를 쓰러트리고 온 것이다.
그때 룩급 기간트가 낫을 옆으로 밀며 우가스의 다리를 노리고 검을 휘둘렀다.
부웅!
우가스는 다리를 들어 뒤로 한 걸음 물러섰다.
그러자 웨슬리의 기간트가 수평으로 검을 휘둘렀다.
태앵!
우가스가 창대로 막으며 뒤로 한 걸음 더 물러섰다.
[허! 움직임이 좋구나!]
마르틴 공작의 입에서 칭찬의 목소리가 들렸다.
쿵쿵쿵!
갑자기 우가스가 몸을 돌리더니 앞으로 달렸다.
우가스는 공중으로 날아오르는 비공정의 쇠사슬을 잡았다.
그리고 몸을 돌려 웨슬리를 향해 말했다.
[애송이 다음에 전장에서 보자!]
우가스를 태운 비공정은 빠르게 고도를 높였다.
[네 이놈! 어딜 가느냐?]
뒤늦게 황성 앞에 도착한 것은 황금빛 기간트 다라곤이었다.
그리고 근위 기사단의 기간트들이 속속들이 도착했다.
'잘했어. 웨슬리!'
'주군! 저자와 나중에 꼭 싸워보고 싶습니다.'
'뭐?'
승부욕이 생긴 건가?
웨슬리 자동인형 역시 생전에 자신의 성격을 닮아 있었다.
이건 좋은 징조였다.
자동인형은 성장하는 마법인형, 자극을 받을수록 더 열심히 단련하니까.
'좋아! 그땐 너에게 맞는 최고의 기간트를 주지.'
'감사합니다. 주군.'
잠시였지만, 양산형 룩급 기간트로 마르틴 공작의 우가스를 밀어붙이다니 역시 웨슬리였다.
난 기간트에 타고 있던 자동인형들을 인형의 집에 넣었다.
그러자 기간트들이 자리에 멈췄다.
'응? 충격을 받았나?'
티아스 대령의 비올란테는 아직 일어서지 못했다.
하긴 방금 웨슬리가 아니었다면, 자신은 마르틴 공작에게 죽었을 것이다.
티아스 대령과 웨슬리의 나이가 비슷할 것 같은데?
어쩌면 서로 아는 사이일 수도 있었다.
[기간트는 황성을 보호하라!]
[병사들은 황제 폐하를 모셔라!]
근위 기간트가 황성 주변을 보호하고, 내성의 쪽문이 열리며 황궁 수비대 병사들이 우르르 몰려왔다.
아쉽지만 비공정과 마르틴 공작은 이미 도망친 후였다.
솔직히 내가 잡으려 한다면 비공정을 추락시킬 수도 있었다.
그러나 내 밑천을 다 드러내야 했기에 그냥 보내줬다.
그렇게 그날의 전투가 끝났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