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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4화

# 34화

"끙······."

군산시의 시장 윤호창은 그때 일만 생각하면 아직도 억울해서 잠이 안 올 지경이었다.

그것은 바로 군산을 대표하던 자동차 기업인 KM 군산 공장의 폐업.

그로 인해 협력사들까지 줄줄이 문을 닫으며 군산시는 실업자들로 넘쳐 났고, 당연히 실업자가 늘어나는 만큼 상권과 부동산도 그야말로 순식간에 초토화되어 갔다.

"왜 하필 나 취임하고 난 직후에 폐업하냐고!"

문제는 그 폐업이 윤호창이 취임하고 난 바로 직후에 일어났다는 것.

그렇기에 어떻게든 수습하기 위해 KM의 군산 공장을 다른 회사가 인수하도록 하며 각종 지원을 쏟아부운 윤호창.

결국 최종적으로 간신히 군산 공장의 인수자를 찾아내는 데 성공했지만, 그건 전혀 해결책이 되지 않았다.

군산 공장을 인수한 회사는 중국 자동차 회사와의 합작을 통해 공장을 인수했는데, 군산 공장 부지의 10분의 1도 활용하지 못한 거다.

1년에만 30만 대에 이르는 자동차를 만들던 군산 공장이었건만 새로운 주인이 차지한 이후 1년에 고작해야 1~2만 대를 만드는 수준으로 전락하였으니, 당연히 경제적 효과는 말할 것도 없고 고용 창출 효과 역시 미비할 수밖에.

"젠장."

앞으로 1년 뒤면 임기가 끝나는데, 이러다간 KM 군산 공장 후폭풍을 수습하지 못한 무능한 인물로 낙인찍히고 조용히 정계에서 사라질지도 모른다는 공포감이 엄습해 온다.

그런데 그때 울리기 시작한 내선 전화.

"예."

-시, 시장님, 손님이 오셨는데요.

"손님? 오늘 약속 없다고 한 것 아니었습니까?"

-그게, 타당성을 조사하다 깜빡했다며 갑작스러운 방문에 죄송하다고 하십니다.

나름 한 도시를 대표하는 시장인데 약속도 잡지 않고 무작정 찾아와 만나겠다니.

시장은 오히려 이런 일 하나조차 알아서 쳐 내지 못한 비서에게 화가 날 지경이었다.

"그걸 말이라고 합니까? 누군지는 모르겠지만 이건 예의가······."

-그, 그게, 세론의 한지혁 대표님이신데 이번에 기사로 난 세론의 협력사 유치 관련 해서 이야기를 하고 싶으시다는데요.

"···어?"

KM의 폐업 공백을 메워 줄 새로운 투자 유치를 늘 간절히 바라 왔던 윤호창이기에 머릿속으로 기사에서 본 세론과 협력사의 투자 협업식 내용이 쭈욱 지나간다.

매출액 8천억 규모의 10개 협력사.

윤호창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며 말했다.

"들어오시라고 해요! 어서!"

그러자 잠시 후 비서의 안내를 받으며 여유로운 표정으로 시장실에 들어온 한지혁.

'A급 각성자. 그리고 사양산업을 일으키며 연 매출 수천억의 중견 기업을 만들어 낸 오너. 거기에 협력사를 통한 추가 투자 유치 가능성까지.'

시장 입장에서 무엇 하나 탐나지 않는 구석이 없는 사람의 등장.

물론 스켈레톤을 활용한 사업이기에 투자 금액과 매출액 대비 지역민에 대한 고용 효과가 매우 매우 떨어질 거라는 단점은 있지만, 회사 하나도 아쉬운 윤호창은 더운밥 찬밥 가릴 처지가 아니었다.

윤호창이 환하게 웃으며 말했다.

"어서오세요, 한 대표님! 이야기는 많이 들었습니다."

"하하. 그런가요?"

"자자. 이쪽으로."

그렇게 자리에 앉은 윤호창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협력사 유치 관련 해서 저를 찾아오셨다고요?"

"예. 협력사들이랑 아무래도 같은 장소에 있어야 일을 하기 수월할 것 같아서요."

저런 용건을 가지고 군산시장인 자신을 찾아오다니.

윤호창은 벅찬 마음을 달래며 말했다.

"그, 그럼 설마."

"예. 군산시를 유력 후보로 생각하고 있는데······."

한지혁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군산시에 들어오면 무슨 혜택이 있을까요? 그게 궁금해서 찾아왔습니다."

*

무슨 혜택을 받을 수 있냐란 내 질문에 윤호창이 이런저런 이야기를 떠벌떠벌 말하기 시작했다.

"우선 군산시는 산업 위기 대응 특별 지역으로 선정되어 있어 5년간 법인세와 지방세를 감면받을 수 있고, 또 신용, 기술보증기금을 통한 특별 보증을 지원합니다."

간단하게 말해서 세금 깎아 주고 투자금 부족하면 보증도 서 줄 테니 기업들한테 제발 들어와서 지역 경제 좀 살려 달라고 하는 게 바로 산업 위기 대응 특별 지역.

여기까진 나도 오면서 전부 조사해 온 내용이었다.

"거기에 고용 인원에 따른 추가 보조금은 물론, 그 외에도 각종 혜택 등이······."

그렇게 줄줄이 혜택을 나열하는 윤호창.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렇군요. 그런데 시장님?"

"예."

"그 혜택들은 다른 산업 위기 대응 특별 지역이라면 다 있는 혜택 아닙니까?"

내 말에 윤호창이 흠칫하며 말했다.

"그, 그건."

한국에서 산업 위기 지역으로 선정된 곳은 대략 5곳.

그리고 그 5곳의 공통점은 지역 세수를 지탱하던 대표 기업이 쓰러짐으로 인해 큰 타격을 받았다는 것이다.

그 대표적인 게 군산의 자동차 공장이나 경남에 있는 조선업체들.

"산업 위기 지역이 군산만 있는 건 아니지 않습니까."

그러자 윤호창이 다급한 목소리로 말했다.

"어차피 세금은 중앙정부 관할이라 다른 지역도 이 이상의 혜택은 줄 수 없을 겁니다!"

"물론 알죠. 하지만 꼭 혜택이 세금만 있는 건 아니지 않습니까."

애초에 그것까지는 기대도 안 했다.

시장은 거둬들인 세금을 어떻게 사용할지 판단하는 사람일 뿐이니까.

하지만 시장은 분명 내가 원하는 걸 들어줄 수 있는 힘이 있다.

"아시는지 모르겠지만 제가 제법 여러 개 공장을 운영하고 있는데, 이게 참 애로 사항이 많아서 말이죠."

"애로 사항 말입니까?"

"저희는 스켈레톤을 노동자로 활용합니다. 그래서 스켈레톤을 최대한 욱여넣어야 더욱더 매출을 끌어올릴 수 있는데, 용적률이라는 게 자꾸 발목을 잡네요."

땅을 샀다고 해서 그 땅에 자기 마음대로 건물을 지을 수 있는 게 아니다.

지역마다 용적률이란 게 있어 땅 면적 대비 이 정도 크기의 건물만 지을 수 있다 정해져 있는데, 당연하게도 이 용적률이 크면 클수록 같은 크기의 땅에서도 더 큰 크기의 공장을 만들어 낼 수 있다.

그런데 정부에서 신규 투자 유치를 위해 정해져 있던 용적률을 완화해 줌과 동시에 지자체별로 사정에 맞게 다양화할 수 있도록 해 주었단 말이지.

그제야 내 말을 이해한 윤호창이 굳은 표정으로 말했다.

"용적률을 최대치까지 올려 달라는 겁니까?"

"맞습니다."

"그건 다른 회사와의 형평성 문제도 있어서 쉽게 결정할 일이 아닌데요."

"저희는 상황이 좀 특별하지 않습니까. 그리고 무엇보다······."

나는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그래야 저희도 더 많은 직원을 뽑을 것 아닙니까."

그러자 윤호창이 흠칫 놀라며 말했다.

"직원 수가 늘어난다고요?"

"일이야 스켈레톤이 한다지만, 그 스켈레톤들을 조율하고 미비한 부분을 보완해 줄 사람은 반드시 필요합니다. 거기에 사무직 일까지 스켈레톤을 시킬 수는 없잖아요? 한마디로 스켈레톤이 많으면 많을수록 스켈레톤을 관리할 사람, 직원 수도 늘어난다는 겁니다."

그 말에 윤호창의 동공이 흔들린다.

"스켈레톤이 많을수록 직원도 많이 필요하다라······. 비율은 얼마나 됩니까."

"스켈레톤 대비 사람 비율이 생산직과 사무직을 포함해 6퍼센트 정도 됩니다."

노동집약형산업이기에 가능한 비율.

"6퍼센트? 잠깐만요. 지금 협력사와 체결한 스켈레톤 배치 총수가 얼마나 됩니까."

"3천 개 정도 되죠."

"그럼 200명도 안 된다는 겁니까?"

윤호창이 허탈하다는 표정으로 말했다.

"적을 거라고는 예상했지만, 이건······."

회사를 유치하려 지자체가 노력하는 건 세수 문제도 세수 문제지만, 무엇보다 지역 일자리 문제도 중요하기 때문이다.

일자리가 많아져야 사람들의 소비 심리가 살아나고, 소비 심리가 살아나야 상권도 살아나는 법이니까.

그런 점에서 볼 때 세론과 협력사들은 일자리 창출 문제에 있어선 다른 회사에 비해 효율이 극도로 떨어지는 것이 사실.

그전에 있던 KM은 직접 고용 인원만 2천 명에, 협력사를 더하면 1만에 달했으니까.

"그래서 용적률과 인허가가 중요한 겁니다. 스켈레톤을 최대한 다닥다닥 붙여야 그만큼 효율이 올라가고 그만큼 많은 관리 직원을 뽑을 수 있으니까요."

예상한 반응이기에 나는 미리 준비한 리스트를 꺼내 시장에게 내밀었다.

"한번 보시죠. 저희에게 제안해 온 해외 기업과 한국으로의 유턴을 희망하는 회사들입니다."

그렇게 리스트를 받아 든 윤호창의 동공이 흔들린다.

"이, 이렇게 많단 말입니까?"

"예. 지금 협약식을 한 10개 협력사는 그중 일부에 불과합니다."

나는 느긋한 표정으로 말했다.

"아무리 6퍼센트라지만 그 회사들이 10개가 아니라 100개 혹은 그 이상이 된다면? 그때도 적다 하실 겁니까? 그리고 그만큼 많은 회사들이 들어오면, 부지에도 한계가 있으니 최대한 용적률을 뽑아내야 더욱더 다닥다닥 스켈레톤을 배치하고 직원도 더 많이 뽑을 것 아닙니까."

사람 일자리를 늘리려면 그만큼 스켈레톤을 더 많이 밀어 넣어야 하는 상황.

"그리고 일자리만 생각하지 말고 군산시에 납부될 세금도 생각하셔야죠. 지금 10개 협력사만 해도 연 매출 8천억에, 공장 부지 건설 비용 등으로 들어갈 직접 투자금도 어마어마한 수준인데."

윤호창의 협력을 얻어 내기 위해 일부러 구구절절 설명하기는 했지만, 어차피 윤호창에게는 선택지가 없다.

대표 기업과 협력사들이 날아가며 군산 산업 단지는 현재 가동률이 절반에 가까운 수준이었으니까.

게다가 해외투자를 간절히 원하는 지자체를 상대로 투자하겠다며 접근해 단물만 쏙 빼먹고 도망치는 사기도 드물지 않은 게 사실.

그런데 세론과 내가 고른 10개 협력사는 이미 검증이 완료된 제대로 된 기업이란 말이지.

즉, 세금이면 세금, 일자리면 일자리, 단기간에 이만큼이라도 빈자리를 메꿔 줄 수 있는 믿을 만한 기업은 단언컨대 우리 세론 말고는 없다는 거다.

결국 한참을 고민하던 윤호창이 말했다.

"앞으로 새로운 협력사도 전부 군산 산업 단지에 입주할 거란 약속, 해 주실 수 있으십니까?"

나는 환하게 웃으며 말했다.

"시장님께서 선의를 베푸시면 저도 선의로 보답해야지요."

결국 윤호창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알겠습니다. 적극적으로 밀어드리죠."

*

"···유림 전자의 중국 공장은 연 매출 2천억 원이 넘는 건실한 공장이었습니다. 그리고 고국을 떠나 있던 그 유림 전자의 공장이 다시 한국으로 돌아왔습니다!"

첫 협력사인 유림 전자의 정식 입주를 축하하는 자리에 축하 겸 자신의 치적 홍보를 위해 참석한 윤호창 시장이 단상에 올라 지역 기자들을 향해 말했다.

"그것도 우리 군산 산업 단지에 말입니다! 그간 군산시는 많은 일이 있었습니다. 조선소가 폐업하고, 그것도 모자라 자동차 공장이 문을 닫기까지. 그 때문에 많은 실업자들이 생기고 시의 재정은 점점 더 악화되었습니다. 하지만 이제는 자신 있게 말할 수 있습니다! 그때가 우리의 바닥이었고 이제 우리는 올라갈 일만 남았다고!"

윤호창이 큰소리로 외쳤다.

"유림 전자의 한국 유턴은 시작일 뿐입니다! 제원 테크, 스마트 인터내셔널 등 이름 있는 기업들의 입주가 머지않았으며, 그중엔 한국 기업뿐만 아니라 미국과 일본의 기업도 있습니다! 무언가 떠오르지 않으십니까? 고도성장기 때 한국으로 물밀 듯 들어왔던 해외투자. 어쩌면 우리는 그 위대했던 발자취의 제2탄을 보고 있는 것 아닐까요? 그것도 우리 군산에서!"

홍보 잘하네.

"무너져 가던 제조 강국의 꿈. 그 꿈을 우리 군산에서 이뤄 내는 겁니다!"

그렇게 대략적인 축하 연설이 끝나자 기자들이 질문을 하기 시작했다.

"예고된 입주 기업이 얼마나 됩니까?"

그러자 윤호창 시장이 부드러운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며 말했다.

"그건 세론의 한지혁 대표님께서 대답해 주시는 게 좋을 것 같군요."

우리가 얼마나 친한지 보여 주라는 거지?

나는 기자들을 보며 말했다.

"일단 확정된 건 15개 회사고 이야기 중인 회사는 그 이상이라고만 말씀드리겠습니다. 당연히 이 회사들은 모두 군산 산업 단지에 입주할 예정이고요."

1기 협력사들이 군산에 뿌리내리기로 결정하고 공장 부지를 알아보는 사이 추가로 계약한 회사만 5곳에, 협약을 진행 중인 회사까지 더하면 그야말로 수십 개에 달하는 회사.

"추정 매출액은 확정된 회사만 1조 2천억에 달하니, 지역 경제에 큰 도움이 될 거라 자신합니다."

그리고 그 회사들 하나하나가 최소 연 매출 수백억의 강소기업들이니 그들의 매출만 합쳐도 그야말로 어마어마한 수준.

물론 그 매출이 전부 세론의 순이익으로 이어지지는 않지만, 이것만으로도 세론은 지금보다 몇 배에 달하는 덩치로 불어날 게 분명했다.

나는 윤호창 시장을 보며 말했다.

"아무튼 이 자리를 빌려 옆에서 많은 조언을 해 주신 윤호창 시장님께 다시 한번 감사드립니다."

그렇게 눈을 마주치고 살짝 웃으며 서로 묵례를 한 나와 윤호창.

그때 한 기자가 말했다.

"지역 경제 발전에 큰 도움이 될 건 분명하군요. 그런데 시민들 입장에서 가장 체감이 되는 건 일자리 아니겠습니까? 제가 알기로 세론과 협력사들은 스켈레톤 때문에 노동자 비율이 극단적으로 낮다 들었는데요."

나는 느긋한 표정으로 말했다.

"낮은 건 사실입니다. 하지만 낮다고 해서 없는 것은 아니지 않습니까? 아무려면 사무직 일까지 스켈레톤을 시킬 수는 없는 노릇이니까요. 대충 비율로 따지면 스켈레톤 대비 6퍼센트?"

그러자 기자가 당황한 표정으로 말했다.

"6퍼센트요? 그건 너무 낮지 않습니까?"

"낮지 않습니다."

나는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그 경제활동인구가 모두 고용될 만큼 스켈레톤이 늘어나면 그만이니까요. 제가 듣기로 자동차 공장 폐업으로 인해 실직한 노동자 수가 협력사 포함 약 1만 명이라고 들었습니다."

"직접적으로 실직한 노동자는 그렇지만, 그로 인해 영향을 받은 상권의 고용 인원 등등을 다 더하면······."

나는 기자의 말을 끊으며 말했다.

"그렇게 복잡한 이야기를 하려는 게 아닙니다. 간접적 영향을 받았다는 건 다시 말해 1만 명이 일터에 복귀하면 다 제자리로 돌아간다는 이야기 아닙니까."

"그건··· 그렇죠."

"1만 명을 전부 고용하려면 스켈레톤을 20만 개 정도 배치하면 되겠군요."

그러자 기자가 입을 쩍 벌리며 말했다.

"이, 이십만?"

상식을 초월하는 수를 언급하자 기자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들까지 동요한다.

나는 어깨를 으쓱하며 말했다.

"말이 그렇다는 겁니다, 말이. 할 수 있는 만큼 최대한 배치하겠다는 그런 의미죠."

그 말에 그러면 그렇지라는 표정을 짓는 기자와 사람들.

나중에 진짜로 20만씩 배치하면 표정 볼만하겠는데?

"아무튼 저는 이것이 한국과 세론의 상생이라 생각합니다. 스켈레톤은 사람들의 일자리를 빼앗는 게 아닙니다. 오히려 해외로 유출된 일자리를 되찾아오는 거지. 스켈레톤이 늘어나면 일자리도 늘어나고 동시에 매출도 늘어나니, 군산시의 재정은 물론 국가에 납부하는 법인세까지 늘어나죠."

틀린 말은 아니잖아?

실제로 그렇게 될 거고.

물론 그만큼 나는 더 많은 돈을 벌겠지만.

"그렇기에 세론은 앞으로도 더 많은 해외 기업을 군산에 유치해 대한민국과 군산의 경제에 이바지하도록 노력하겠다 약속드리겠습니다. 감사합니다."

그렇게 이야기를 마무리하자 다시 윤호창 시장에게 쏟아지는 질문들.

나는 그 모습을 보며 조용한 목소리로 말했다.

"한번 보라고, 나중에 세론이 없으면 큰일 난다는 소리 나오게 만들어 줄 테니까."

협력사를 무더기로 배치해서 군산의 경제를 세론이 이끌고 가면 군산의 그 누가 나한테 뭐라 할 수 있겠나.

그렇게 군산을 시작으로 점점 더 협력사를 늘리며 한국의 경제에서 세론이 차지하는 비중을 더욱더 높여 간다.

그렇게 영향력이 커지면 그 누구의 방해도 받지 않고 편하게 돈을 벌 수 있겠지.

동시에 모든 일을 마무리하고 은퇴한 후에도 역시나 내 비위를 거스르려 하는 사람도 없을 거고.

"협력사든 군산 시민이든 전부 다 말이야."

그리고 이건 협력사들 역시 마찬가지다.

갑과 을의 관계를 결정짓는 건 둘 중에 어느 쪽의 대체재가 많은지가 핵심이다.

일반적으로 기술과 제품을 가진 브랜드가 갑인 이유는 브랜드가 선택할 수 있는 공장이 무궁무진하고 그들 모두 선택받기를 바라기 때문.

하지만 세론은 그 경우가 완전히 다르다.

신발 메이커들이 어떻게든 조금이라도 더 많은 보장 물량을 쑤셔 넣어 생산량을 확보하려는 것처럼 스켈레톤의 초저가 인건비를 대체할 방법이 없으니까.

즉, 세론의 협력사는 을인 거다.

세론을 대신해 물건을 개발하고 마케팅을 해 주는 을.

그리고 그런 협력사들이 늘어나면 늘어날수록, 그리고 그 협력사들 중 업종이 겹치는 회사가 많아질수록 협력사는 더욱더 세론의 눈치를 볼 수밖에 없다.

세론과의 관계가 틀어져 스켈레톤이 회수되는 순간 그들은 스켈레톤을 제공받는 경쟁 업체와의 경쟁에서 밀려날 테니까.

돈도 벌고 은퇴 준비도 하는 완벽한 방법.

나는 히죽 웃으며 말했다.

"군산을 세론 시티로 만들어 주지."

35화

김용대는 한때 KM 자동차의 협력사에 다니던 직장인이었다.

하지만 갑작스러운 KM 자동차의 폐업 결정으로 하루아침에 공중에 분해된 협력사.

대표는 임금을 체불하다 야반도주했고, 때문에 김용대는 하루아침에 실직자가 되어 버렸다.

문제는 실직된 이후 제대로 된 직장을 구할 수가 없다는 것이었다.

"그때는 정말 죽는 줄 알았지."

김용대처럼 하루아침에 일자리를 잃은 1만 명의 실직자들.

문제는 그 실직자들로 인해 줄줄이 다른 업종들까지 무너져 갔다는 거다.

직장인들을 대상으로 장사를 하던 공단의 식당들도 무너졌고, 군산의 소비 심리가 위축되며 상권도 위축된다.

상권이 위축되자 아르바이트 자리마저 줄어드는 악순환의 연속.

그렇게 고난의 시간을 어떻게든 버티고 있던 그때 등장한 게 바로 세론과 세론의 협력사였다.

스켈레톤으로 노동자를 대신한다며 해외 공장의 군산 투자를 유도한 세론.

하지만 시민들은 떨떠름한 심정이었다.

투자 유치로 지역 경제가 활성화되고 세수도 늘어난다고는 하지만, 막상 시민에게 가장 필요한 일자리는 스켈레톤이 차지하고 있으니 별로 체감이 되지 않았던 거다.

하지만 그런 협력사가 10개를 넘어 20개 그리고 40개까지 늘어나자 점점 상황이 뒤바뀌어 갔다.

얼마 안 돼 보였던 사무직과 관리직 일자리가 몇 배로 늘어났고, 협력사의 항구 이용량이 증가하자 군산항 역시 직원을 추가 모집 하는 등 점점 긍정적인 시그널이 여기저기서 나오기 시작한 거다.

그것도 매우 빠른 속도로.

끝없던 악순환의 고리가 조금씩이지만 선순환으로 변해 가는 상황.

그때 김용대가 핸드폰을 바라보며 말했다.

"에이. 떨어졌네."

이번에 새로 입주한 협력사에 이력서를 집어넣었는데 탈락해 버린 김용대.

예전 같으면 절망하고 또 절망했을 거다.

희망이 없었으니까.

하지만 지금은 다르다.

"괜찮아, 괜찮아. 이번 달에만 입주 예정 회사가 5개잖아. 또 써 보지, 뭐."

탈락의 쓰라림은 어쩔 수 없으나 다음 기회가 여전히 남아 있으니까.

군산의 일자리 문제가 계속 나아질 거라는 믿음이 있기에 가능한 일.

그렇게 김용대를 비롯한 군산 시민들은 조금씩 조금씩 달라져 가는 일상을 느끼며 천천히 희망을 품어 나가기 시작했다.

*

기존의 세론 공장은 그대로 두고 아예 군산에 본사를 세워 버린 나.

덕분에 협력사를 포함해 군산에서 새롭게 생겨난 일자리는 800에 달했다.

물론 800여 개의 일자리 자체는 KM 자동차와 협력사가 무너지며 양산된 1만 실업자와 비교해 극히 일부에 불과하지만, 대신 그로 인한 파급력은 절대 작지 않았다.

일자리가 800개일 뿐인 거지 생산하는 양까지 800개 수준인 건 아니니까.

원자재와 수천에 달하는 스켈레톤들이 24시간 생산해서 쏟아 내는 물건들을 운반해 줄 트럭 기사들이 매일 공장을 들락거리며 돈을 소비하자, 상권이 조금이지만 활기를 띠고 군산항도 물류량이 대폭 증가하는 등 군산시 전체에 긍정적인 효과가 연쇄적으로 발생한 거다.

그리고 무엇보다 이 모든 것이 유림 전자가 처음 입주하고 고작 3달 만에 이뤄 낸 성과라는 점이 핵심.

세론의 협력사는 지금 이 순간에도 계속해서 늘어나고 있었으니 군산 시민들 입장에서 점점 상황이 나아지고 있다는 느낌을 받을 수밖에.

"여기 새로운 회사들 리스트입니다. 저희 기준에 부합하거나 살짝 모자라지만 가능성이 있어 보이는 회사만 추린 겁니다."

김덕배에게 서류를 건네받은 나는 리스트를 쭉 보면서 말했다.

"추리고 추렸는데도 이 정도라고요?"

"유림 전자 같은 1기 협력사들이 제법 재미를 보지 않았습니까. 그중 상당수는 저희 협력사의 경쟁업체들입니다."

1기 협력사 중 대다수는 한국 내수 시장 비율이 상당히 높은 회사들.

당연히 인건비와 물류비 모두 훨씬 저렴하니 가격경쟁력이 확 올라간 거다.

덕분에 1기 협력사들의 제품들은 중국산보다도 저렴한 한국산으로 시장의 점유율을 점점 더 끌어올리고 있는 상황.

상황이 이쯤 되자 관망하고 있던 경쟁업체들도 앞다퉈 제안을 보내온다.

"경쟁 업체니 뭐니 가리지 말고 다 받아 주세요."

건전한 경쟁이 발전을 불러일으키느니 뭐니 그런 허울 좋은 이야기는 부차적인 문제다.

애초에 인건비가 저렴한 해외에 진출했다고 해서 그 나라가 의리를 지킨답시고 다른 업종 진입을 거절하는 경우는 없지 않나.

이것도 마찬가지다.

협력사는 굳이 비유하자면 세론이란 나라에 현지 공장을 세우고 스켈레톤이란 일꾼을 고용한 꼴.

나는 그저 그들에게 해외보다 더 싼 노동력을 제공해 주고 돈만 챙기면 그만이라 이거야.

그리고 솔직히 내 도움에 내수 시장의 중국산 제품 점유율 자체를 빼앗아 오며 시장의 파이 자체가 커지고 있는 것은 물론 수출 경쟁력까지 생긴 상황.

그럼 경쟁업체에 벽을 칠 생각을 할 게 아니라 SR 전자처럼 중국이 점유하고 있는 해외 수출 시장 공략에 집중해야지.

"신발이야 우리가 직접 해외 시장을 삼키고 있으니 협회원들한테 벽 치고 내수만 보장해 준 거지만, 여기 회사들은 입장이 다르잖아요. 혹시라도 불만 이야기하면 해외 수출에 집중하라고 해요, 좁아터진 한국에서 우물 안 개구리처럼 굴지 말고."

열심히 나가서 팔 생각을 하라고.

"그나저나 일부에서 협력 업체 제품에도 경품 이벤트 적용을 해 주면 어떻겠냐는 말이 나오던데요."

경품을 협력 업체에도 적용해 달라?

"누가 그런 소리를 합니까?"

"저도 들은 이야기입니다. 아마 직접 이야기하기에는 그러니 슬쩍 소문을 흘린 것 같습니다."

"무시하세요. 너무 많이 사방에 뿌리면 희소성이 떨어져요. 그리고 애초에 SR 전자 제품이야 보급형이니까 사람들 주목 끌기 위해서 그런 거고, 우리 협력 업체들은 나름 기술력 있잖아요? 그 기술력에 가격경쟁력까지 갖췄으면 됐지, 뭘 또 경품이 어쩌고저쩌고······."

당연히 경품을 적용하면 엄청난 매출 신장이 뒤따를 거다.

하지만 SR 전자와 협력사는 포지션이 완전히 다르단 말이지.

애초에 협력사를 끌어들인 이유가 자체 기술력이 없는 SR 전자의 부족한 부분을 보완하기 위해서인데, 마찬가지로 경품에 의존하여 기술력 개발을 등한시하면 협력사를 둘 이유가 없지 않나.

"그건 못 들은 걸로 하고"

나는 리스트를 다시 돌려주며 말했다.

"나머지는 김 사장님이 괜찮다 싶으면 결정해 주세요."

언제까지 이런 서류 검토만 하고 있을 수는 없잖아?

이제 협력사가 한두 곳도 아닌데 말이야.

"알겠습니다."

상황은 매우 순조롭다.

직접 시장을 개척하는 세론 신발은 주문량에 맞춰 스켈레톤을 늘려야 하지만, 협력사는 기존 해외 공장의 물량을 그대로 가져오는 거기에 스켈레톤을 한 방에 왕창씩 때려 박을 수 있다.

한마디로 일단 입주만 하면 바로 그때부터 공장 풀가동이 가능하다는 말이고, 스켈레톤이 바쁘다는 건 그만큼 나한테 들어오는 돈도 많아진다는 소리니까.

거기에 심지어 협력을 원하는 회사들도 계속해서 늘고 있으니 군산 산업 단지 전체를 세론의 협력사로 덮어 버리는 건 시간문제나 다름없다.

그리고 그때쯤 되면 수만 개의 스켈레톤이 군산 산업 단지에서 일을 하게 될 거고, 그 정도면 사람의 일자리도 수천 개쯤은 생겨나겠지.

"계속 늘리자고요. 입주만 하면 돈이 떨어지는데 멈출 이유가 없잖아요?"

"알겠습니다."

그렇게 보고를 마무리한 그때.

"하, 한 대표님!"

군산에 본사를 세우며 새로 입사한 군산 출신 직원이 다급한 목소리로 대표이사실에 들어오며 말했다.

"소방서에서 협조 요청이 왔습니다!"

"소방서에서 협조 요청? 그게 무슨 말입니까?"

직원이 당황한 목소리로 말했다.

"인근 물류 창고에서 화재가 발생했답니다!"

*

직원의 말에 핸드폰 내비를 켜고 허공을 날아 도착한 군산시 외곽에 있는 물류 창고.

"와. 이게 뭔 난리야?"

창문에서는 불길이 치솟아 오르고 있고, 공장 위로는 새카만 연기가 자욱하다.

물류 창고의 크기가 크기인 만큼 어마어마한 규모의 화재.

나는 주위를 살핀 다음 소방관들이 몰려 있는 곳으로 날아가 지상에 착지했다.

그때 날 발견하고 다가오는 한 소방관.

"한 대표님!"

지휘관으로 보이는 소방관이 다급한 목소리로 말했다.

"갑작스레 협조 요청을 드려서 죄송합니다. 하지만 상황이 워낙 긴급한 데다 떠오르는 게 한 대표님밖에 없었습니다."

나는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괜찮습니다. 다른 일도 아니고 소방서 일인데, 도울 수 있는 건 도와야지요. 뭘 어떻게 도와드려야 되죠?"

그러자 소방관이 들고 있던 물류 창고 지도를 건네며 말했다.

"지금 이 안에 쌓여 있는 물건들로 인해 대형 화재가 발생했는데, 아직 안에 대피하지 못한 직원들이 5명이나 있습니다! 문제는 내부가 너무 복잡하고 화재가 워낙 커서 진입을 시도할 방법이 없다는 겁니다. 그때 생각난 게 스켈레톤이었습니다."

"스켈레톤을 내부에 진입시켜 사람들을 구해 오자는 말입니까?"

"예."

소방관이 간절한 목소리로 말했다.

"가능할까요?"

내가 아무리 30년을 전장에서 살며 감정이 많이 마모됐다지만, 눈앞에서 구할 수 있는 사람을 무시할 만큼의 냉혈한은 아니란 말이지.

게다가 이번 일을 잘 해결하면 나와 스켈레톤에 대한 평가가 더 좋아질 거라는 건 덤이고.

"물론 가능합니다."

스켈레톤과 운반형 스켈레톤에 실드를 씌워서 들여보내 내가 직접 컨트롤하며 직원들을 태워 오면 간단하지.

아니면 확실한 위치만 스켈레톤으로 확인한 다음, 실드를 걸어 준 다음 플라이로 부유시켜서 직접 꺼내 와도 되고.

이래 보여도 나름 대마법사라고?

네크로맨서기는 하지만.

"어디 있는지 알려 주세요."

그러자 소방관이 입술을 깨물며 말했다.

"그건··· 모릅니다."

엥?

"아니, 그럼 저 넓은 물류 창고 안에서 5명을 찾아내 구조까지 해야 한다고요?"

"맞습니다. 스켈레톤을 한 번에 수백 개씩 들여보내서 샅샅이 뒤지면 되지 않을까요?"

그게 말처럼 그리 쉬운 일인 줄 아나.

움직이는 거야 그렇다 쳐도, 나와 연결된 수백 개의 스켈레톤이 보내오는 시각 정보를 하나하나 개별 분석 하고 그때그때 적절한 행동을 판단한다는 게 보통 일인 줄 알아?

심지어 불길이랑 연기로 시야 확보도 어려운 상황에서?

이건 마력이 아니라 인간의 정신력과 의지력의 문제라고.

물론 하자면 못 할 건 없지만, 그렇게 정신이 분산되면 아무리 나라도 놓치는 부분이 생길 수 있다는 말이다.

"알고리즘을 건드려 볼까?"

그렇기에 대안으로 떠올린 것은 바로 스켈레톤의 알고리즘을 대충 손봐서 자동으로 구조하게 하게 만드는 것.

물류 창고보다 더 복잡하다고 할 수 있는 게이트 내부도 거침없이 돌아다녔던 게 내 스켈레톤들이기에 험지 주파 정도는 일도 아니니 기존 알고리즘에 사람으로 보이는 생명체를 자동으로 들어서 들고 나오도록 만드는 거지.

하지만 나는 이내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아니야. 이건 더 못 미더워."

사람들이 어느 방 혹은 물건에 숨어 있을 수도 있고, 심지어 정신이 있는지 없는지도 모르는 등 변수가 너무나도 많은 상황.

그런 만큼 문도 열어 보고 넘어진 구조물도 헤집으며 일말의 가능성도 놓치지 않고 샅샅이 뒤져야 하는데, 급조한 알고리즘에 그 정도 성능을 바라는 건 욕심이다.

"어······."

나는 잠시 고민하다 말했다.

"소방 호스를 스켈레톤에게 쥐여 주고 끄면서 들어가는 건 어때요?"

스켈레톤이 최전방에서 불을 끄고 그 뒤를 사람들이 들어가 수색하는 방법.

"워낙 불쏘시개들이 많아 쉽게 꺼질 불이 아닙니다. 거기에 물류 창고 자체도 철근 콘크리트 구조가 아니라 붕괴 위험이 있고요."

여차하면 대형 스켈레톤 만들어서 한 번에 쓱 훑어 낼까도 생각했는데 그럼 그것도 안 되는 거잖아.

툭 건드리면 박살 날지도 모른다는 소리니.

"후. 어쩔 수 없지."

내가 직접 컨트롤하는 수밖에.

"대출혈 서비스다."

알고리즘을 완성한 이후 언데드를 수백 개씩 동시에 컨트롤하는 건 오랜만이지만, 그래도 해야지 어쩌겠어.

그렇게 아공간을 열어 스켈레톤을 꺼내던 바로 그때.

"어?"

그때 한 가지 아이디어가 번뜩하고 내 머릿속을 스쳐 지나간다.

지금 문제는 급조한 구조 알고리즘의 판단력과 성능을 믿을 수 없으며, 그렇다고 내가 혼자 컨트롤하자니 정신력 분산으로 놓치는 부분이 있을 수 있다는 거잖아.

그럼 그 판단을 나 혼자가 아니라 여러 사람이 같이하면 되는 것 아닌가?

잠시 멍하니 있던 나는 다급히 외쳤다.

"다들 핸드폰 꺼내요! 나중에 고장 나면 물어 줄 테니까 소방관이든 여기 직원이든 아무나 전부!"

"예?"

"시간 없으니까 빨리 꺼내요! 꺼내서 CCTV 어플 깔아요!"

*

머리에 CCTV 역할을 할 핸드폰을 매달고 있는 스켈레톤이 실드에 보호받으며 줄줄이 물류 창고 안으로 들어간다.

그리고 그렇게 스켈레톤 머리에 매달린 핸드폰과 연결된 핸드폰으로 실시간 영상을 보는 소방관과 물류창고 직원들.

"14번! 앞의 문을 열어 봐야 합니다!"

그 말에 나는 곧바로 눈을 감고 알고리즘에 따라 그저 물류 창고 안을 배회하던 14번 스켈레톤의 통제권을 가져와 직접 조종하여 문을 열어 본다.

그렇게 14번 스켈레톤이 문을 열고 안을 확인하였지만, 방 안에는 활활 타오르는 불만 가득하였다.

비어 있음을 확인한 내가 다시 통제권을 알고리즘에 넘기자 다시 알고리즘에 따라 걸어가기 시작한 스켈레톤.

"56번! 앞이 가로막혔습니다! 이건 통로 확보를 위해서라도 치워야 합니다!"

"71번! 무언가가 깔려 있는 것 같습니다! 확인해야 합니다!"

알고리즘에 따라 스켈레톤이 물류 창고 내부를 활보하고, 밖의 사람들이 스켈레톤의 머리에 달린 핸드폰과 연결된 CCTV 어플로 그때그때 적절한 행동 판단을 담당한다.

그리고 그들이 판단해 주면 내가 통제권을 가져와 실행에 옮기는 분업 방식.

말 그대로 사람과 스켈레톤의 완벽한 합동작전이었다.

나는 히죽 웃으며 말했다.

"이렇게 하니까 얼마나 편해."

만약 나 혼자 했으면 여기 확인하랴 저기 컨트롤하랴 정신이 없었을 텐데, 사람들이 나를 대신해 판단을 해 주니 훨씬 완벽하다.

그렇게 얼마나 지났을까.

"사, 사람이다! 67번! 67번!"

나는 곧바로 67번 스켈레톤의 통제권을 가져와 상황을 확인하였다.

불길이 아직 덜 번진 곳에 쓰러져있는 한 중년 여성.

연기를 너무 많이 마셔 정신을 잃은 듯했지만, 다행히 살아는 있는 것 같았다.

"오케이!"

위치만 확인되면 그다음은 간단하지.

나는 곧바로 마력을 중년 여성에게 흘려보내 실드를 씌워 준 다음 플라이 마법을 시전해 내 쪽으로 끌어당겼다.

그리고 잠시 후 실드의 보호를 받으며 물류 창고 창문을 통해 밖으로 구조된 중년 여성.

"와아아아!"

"김씨 아주머니!"

그렇게 정신을 잃은 중년 여성이 바닥에 살포시 내려앉자 대기하던 구조대원들이 급하게 중년 여성을 들것에 실어 구급차로 옮긴다.

"한 명 구조 완료!"

나는 자신만만한 목소리로 말했다.

"나머지도 빨리 구합시다!"

*

스켈레톤과 사람의 합동 구조 작전.

그 결과는 아주 성공적이었다.

몇몇 사람이 큰 화상을 입기는 했지만, 생명에는 지장이 없었으니까.

그때 지휘관으로 보이는 소방관이 내 손을 부여잡으며 말했다.

"감사합니다! 한 대표님!"

"뭘요. 사람이면 당연히 도와야죠."

"만약 한 대표님이 아니었다면 더 큰 희생이 발생했을 겁니다. 한 대표님이 오시기 전에 저희끼리 누군가 위험을 무릅쓰고서라도 진입해야 하는 건 아닌가 의논하고 있었으니까요."

다행히 물류 창고가 끝까지 무너지지 않고 버티기는 했지만, 저런 불구덩이에 방화복 하나만 믿고 들어가려 했다니.

내가 진짜 다른 건 몰라도 소방관들 고생하는 건 인정이다.

그나저나 소방관이라······.

나는 잠시 고민하다 말했다.

"소방관님."

"예, 한 대표님."

"오늘 스켈레톤을 이용한 구조 작업 어떠셨나요?"

그러자 소방관이 환하게 웃으며 말했다.

"두말할 것 없이 최고였습니다! 안전하게 후방에서 사람을 구할 수 있었으니까요."

"그렇죠?"

스켈레톤의 진짜 가치는 사람을 대신해 위험한 일을 수행하는 것에 있다.

세론에서의 전장이나 지구의 이런 화재 현장처럼.

"소방관이 한국에 몇 명이나 있나요?"

"대충 5만 명쯤 됩니다."

오호?

제법 많은데?

"만약에 이번처럼 시야만 공유되는 게 아니라 스켈레톤을 직접 조종까지 할 수 있다면 어떨 것 같습니까?"

"직접 조종까지? 그럼 더 이상 바랄 게 없지요."

위험한 구조 작업을 대신할 일종의 원격 무인 조종 로봇 같은 스켈레톤.

이런 스켈레톤이라면 수요도 많고 일자리 침해도 안 할 거잖아.

이건 말 그대로 장비에 가까우니까.

소방관만 5만이면 최소 수천 개 정도는 팔아 치울 수 있지 않을까?

거기에 소방관 말고도 다른 3D 업종에도 적용 가능 하니 상업성은 충분하다.

위험한 일을 대신해 주어 사람의 목숨을 구할 수 있어 사람들로부터 좋은 이미지도 얻을 수 있고, 심지어 상업성까지 갖춘 무인 조종 스켈레톤.

'A/S 해 주는 대신 한국에는 저렴하게 대여해 주고, 대신 외국에는 비싸게 대여하면 돈도 제법 만질 수 있을 것 같은데.'

한국에 저렴한 가격으로 대여해 주어 성능을 인정받은 다음 해외에서 돈을 버는 거다.

물론 해외에서 가격 차이를 문제 삼겠지만, 나름 합리적인 이유도 있다고.

아무래도 나와의 거리가 멀어지면 멀어질수록 유지에 들어가는 마력이 좀 늘어나니까.

물론 많아 봤자 두세 배 정도라 수십만이 넘는 스켈레톤을 운용하던 나에게 있어서는 별로 티도 안 나는 수준이긴 하지만, 아무튼.

그렇게 생각을 정리한 나는 소방관을 보고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소방관님, 혹시나 쉬는 날 저 좀 도와줄 수 있으실까요? 어쩌면 5만 소방관의 미래가 달린 일일지도 모르겠는데."

36화

-군산의 한 물류 창고 화재 사건 당시 스켈레톤을 이용한 구조 작업이 성공적으로 마무리되며 소방관의 목숨과 안전을 지켜 줄 수 있는 스켈레톤 도입에 대한 목소리가······.

물류 창고에서의 인명 구조가 성공적으로 마무리되며 이 소식은 뉴스를 타고 전국으로 퍼져 나갔다.

핵심은 사람들을 전부 구조하는 데 성공했다는 것과 그 과정에 스켈레톤이 동원되었다는 것.

그 사실이 알려지자 일반 시민들 사이에서 스켈레톤을 다른 일선 소방서에도 비치하여 소방관들의 안전을 지켜야 한다는 여론이 생겨났다.

다른 건 몰라도 소방서와 소방관은 일반 시민들이 가장 지지하고 호감을 가지는 공무원 집단이며 동시에 유사시 자신의 목숨을 지켜 줄 존재이니 관심이 쏠린 거다.

하지만 그런 여론과는 다르게 현장의 소방관들의 반응은 비관적이었다.

"방화복 하나도 제대로 지급 안 해 주는데 스켈레톤? 말도 안 되는 소리지."

불길 속에서 소방관의 생명을 지켜 주는 방화복.

하지만 이런 방화복조차 제때 보급해 주지 못해 사비로 사서 쓰는 경우가 허다한 게 현실이었다.

"스켈레톤 엄청 좋지 않아요?"

"좋은 정도야? 솔직히 그때 스켈레톤 없고 우리가 진입했어야 했다면 우리 중 못 돌아온 놈 있을지도 모를 만큼 큰 화재였어."

평소라면 방화복을 입고 그 불길을 헤쳤을 소방관들.

방화복 내부는 후끈거리고 바람도 통하지 않아 땀범벅이 되었을 거다.

거기에 사방은 불길로 가득하니, 그들도 사람인 만큼 죽음의 공포를 느끼며 제대로 된 판단을 내리지 못하고 우왕좌왕하다 길을 잃고 사망했을지도 몰랐을 만큼 위험했던 상황.

그런데 스켈레톤이 투입되자 상황이 완전히 달라졌다.

죽음의 공포에서 벗어나고 몸이 편안하니 오롯이 사람 구조에만 집중할 수 있었던 거다.

"그래도 뉴스에서 저렇게 나오는데 진지하게 스켈레톤 도입 고민해 주지 않을까요?"

신입 소방관의 기대 어린 말에 고참 소방관이 콧방귀를 뀌며 말했다.

"장담하는데, 절대 그럴 일 없어. 예산 문제니 뭐니 하면서 차일피일 미룰 게 뻔하잖아. 거기에다 도입한다고 해도 아마 제대로 된 장비가 아니라며 검증에만 한세월일걸?"

그 말에 신입 소방관이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그럼 이것도 사용하려면 사비 써야 되는 거네요. 비싸겠다. 사령마가 몇억씩 하던데."

"그 정도는 안 되겠지만 그래도 비싸기는 하겠지."

그렇게 소방관들끼리 이런저런 대화를 나누던 그때 문이 열리며 들어오는 서장.

서장이 위풍당당하게 걸어 들어오며 말했다.

"자, 주목!"

그러자 소방관들이 서장을 바라본다.

"다들 고생 많았어. 그간 힘들었지?"

갑자기 뜬금없는 소리를 하는 서장의 말에 소방관들이 황당한 표정으로 말했다.

"휴가 갔다 오더니 그게 무슨 소립니까?"

"앞으로도 고생길이 훤하구만."

그러자 서장이 씨익 웃으며 말했다.

"내가 사실 휴가 기간 동안 한지혁 대표님이랑 작업을 좀 했거든."

한지혁이란 말에 소방관들이 귀를 쫑긋 세우며 수근거렸다.

"한지혁 대표님이랑 있었다고?"

"뭐지?"

그때 서장이 문을 바라보며 말했다.

"한 대표님! 들어오셔도 됩니다!"

*

서장의 말에 소방서 안으로 걸어 들어간 나.

그리고 그런 내 뒤로 온몸을 방염복으로 빈틈없이 두르고 머리 위에 카메라를 달고 있는 스켈레톤들이 줄지어 들어온다.

"어?"

놀란 표정의 소방관들.

"여러분, 그간 정말 고생 많으셨습니다. 사람들의 생명을 지키기 위해 최일선에서 노력하는 여러분의 노력을 이제야 알아차린 게 죄송할 정도로요."

나는 자신만만한 표정으로 스켈레톤들을 가리키며 말했다.

"하지만 이제 그 고생도 끝입니다. 소개해 드리죠. 그때 미숙했던 스켈레톤을 서장님 도움을 받아 대대적으로 손본 무인 조종 소방용 스켈레톤입니다!"

"소방용 스켈레톤?!"

나는 스켈레톤 위에 달려 있는 카메라를 가리키며 말했다.

"그때는 급하게 핸드폰 카메라를 이용했지만 이건 저희 협력사 도움을 받아 만든 방화용 고해상도 카메라입니다. 불 속에서도 문제없이 시야를 확보할 수 있죠."

나는 이어서 스켈레톤이 입고 있는 소방화와 방화복을 가리키며 말했다.

"그리고 이것들 모두 마찬가지죠. 소방화는 신발 협회원의 도움을 받아 만들었고, 이 방화복은··· 솔직히 시중에 있는 걸 사다가 개조한 거긴 한데, 앞으로 이 방화복도 저희가 직접 연구하여 생산할 예정입니다."

사람이 최대한 편안하게 움직일 수 있도록 고안되어 있는 시중의 방화복을 사다가 편의성을 전부 빼 버리고 오직 불을 막는 데만 초점을 둔 개조 방화복.

이 모든 건 내가 일일이 따라다니며 실드를 사용해 줄 수 없기에 화염으로부터 스켈레톤과 카메라 같은 장비를 보호하기 위한 조치였다.

추가로 스켈레톤의 뼈에 내연성 재료를 바르고, 그걸로도 모자라 방화 코팅까지 끼얹은, 말 그대로 소방 전용 스켈레톤.

"여기에 서장님의 도움을 받아 현장에서 필요한 각종 구조 방법과 노하우도 적용하였으니 저번보다 훨씬 수월하게 인명을 구조할 수 있을 겁니다. 아. 그리고 이제는 제가 없어도 조작이 가능하도록 편의 사양도 대폭 업그레이드했습니다."

나는 아공간에서 뼈로 만들어진 건틀릿과 소형 액정이 달린 뼈 가면 그리고 소형 콘솔을 꺼내 들었다.

"이 가면은 스켈레톤 머리와 연동되어 있습니다. 이 가면을 쓴 채 고개를 돌리면?"

내가 고개를 돌리자 옆에 있던 스켈레톤의 머리도 함께 돌아간다.

"스켈레톤의 머리가 돌아가며 카메라 방향도 돌릴 수 있죠. 스켈레톤을 조종하는 것도 어렵지 않습니다. 이 콘솔을 이용해 게임하듯 스켈레톤을 움직일 수 있으니까요."

콘솔로 지시하면 스켈레톤은 미리 입력되어 있는 험지 주파 알고리즘에 따라 장애물도 넘으며 지시된 방향으로 계속 움직이는 방식.

나는 콘솔에 달려 있는 조이스틱과 버튼을 이용해 스켈레톤을 조종하며 말했다.

"무릎을 꿇거나 허리를 숙이는 것도 가능하고, 그러다가 뭔가 직접 컨트롤이 필요하다? 그때 이 건틀릿을 사용하는 겁니다."

김한울 길드장의 갑옷과 연동되어 있는 스켈레톤처럼 조종자가 팔을 움직이면 똑같은 동작을 수행하도록 고안된 소방용 스켈레톤.

평소엔 이동만 지시하다 사람을 안아 올리거나 무언가 물체를 잡고 이동시켜야 할 때는 이 건틀릿을 이용해 조작하는 거다.

그때 내 옆에 있던 서장이 소방관들을 보고 환하게 웃으며 말했다.

"내가 직접 사용해 봤는데, 저번 스켈레톤과는 비교도 안 될 정도였어. 물론 건틀릿은 숙달에 시간이 걸리기는 하는데, 일단 숙달만 되면 앞으로 직접 불길에 들어갈 필요가 없다는 말이라고!"

그러자 멍한 표정으로 스켈레톤을 바라보던 소방관들이 말했다.

"와··· 대박이다."

"완전 무인 조종 로봇이네?"

그때 한 소방관이 씁쓸하다는 표정으로 말했다.

"정말 좋네요. 그림의 떡이라서 문제지만."

"왜 그렇게 생각하시죠?"

"청에서 쉽게 도입해 줄 리 없으니까요. 거기에 성능이 올라간 만큼 가격도 비쌀 테니 사비로는 엄두도 못 낼 거고."

그때 서장이 말했다.

"그건 걱정하지 마. 한 대표님께서 군산시 시민의 안전을 위해서 이것들을 기부해 주시기로 결정했으니까."

"기, 기부요?!"

소방관들이 환하게 웃으며 말했다.

"정말이십니까?"

현재 군산시에 있는 현장직 소방관의 수는 모두 합쳐 270명.

여기에 소방 호스를 다루는 사람이나 응급 구조 대원 등을 고려하면 적정한 스켈레톤의 수는 전체 소방관의 3분의 1 정도니까 고작해야 스켈레톤 90개다.

그 정도는 까짓것 그냥 줘 버려도 나한테 전혀 부담되지 않는 수준이란 말이지.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물론입니다. 모두 합쳐서 90개를 기부할 생각입니다. 거기에 평생 무상 A/S도 해 드리죠. 군산 시민을 지켜 주시는 여러분의 노고에 도움이 되고자 결정한 일입니다."

그렇기에 군산에서 세론과 나에 대한 호감도도 키울 겸 까다롭고 보수적인 공무원 사회의 검증도 통과할 겸 아예 기부를 결정한 나.

아무리 검증이 안 됐다지만 소방관들이 기증 받은 스켈레톤을 사용하는 것까지 막지는 못할 것 아닌가.

듣자 하니 사제 장비 사비로 사다 쓰는 게 흔하디흔한 일이라며?

이렇게 소방관들의 손을 빌려 검증을 완료하고 소방청은 물론 각종 3D 업종을 뚫어 내는 거다.

"오오!"

그러자 소방관들이 환호하며 말했다.

"정말 감사합니다! 한 대표님!"

"뭘요."

나는 환하게 웃으며 말했다.

"앞으로도 잘 부탁드립니다, 여러분."

홍보와 미담 제조용으로 말이야.

*

워낙 화제가 됐던 스켈레톤을 이용한 구조 작업이었기에 내가 90개의 소방용 무인 스켈레톤을 기부했단 소식은 순식간에 뉴스가 되어 흘러 나갔다.

당연하게도 상황이 그렇게 되자 소방 전문가들 사이에서 인명 구조 같은 중요한 작업에 검증되지 않은 스켈레톤을 투입해 믿고 맡기는 건 너무 리스크가 크다는 말이 흘러나왔지만 워낙 압도적인 여론 때문에 제대로 반론조차 못 했고, 순조롭게 스켈레톤 전달이 완료되며 본격적으로 현장에 투입되기 시작한 스켈레톤들.

그리고 그렇게 투입된 소방용 스켈레톤의 활약은 그야말로 눈부셨다.

화재가 나면 일단 바깥에서 최대한 불길을 잡고 내부 지형을 숙지하는 등 준비를 한 다음에 소방관이 내부로 진입하는 것이 기본인데, A/S가 보장된 스켈레톤이 나서자 안에 구조할 사람이 있다면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일단 들여보내는 식으로 대처가 가능해진 거다.

어디 그뿐인가.

사람보다 강한 힘을 가지도록 제법 마력을 투자한 소방용 스켈레톤답게 무거운 물체는 물론 사람 몇 명 정도는 혼자서도 가뿐하게 들어 올리니 더욱 손쉽게 사람을 구조할 수 있게 됐다.

그렇게 빠른 투입으로 골든 타임에 여유가 생기고 어지간한 장애물은 힘으로 치워 버리니 군산 소방서의 인명 구조 성공 확률이 비약적으로 올라간다.

그래서 이제 소방청이 직접 접촉해 오면 저렴한 가격에 대여해 줄 생각으로 기다리고 있었는데······.

내 예상보다 공무원 조직의 보수성은 강해도 너무 강했다.

시민들도 원하고 일선 소방관들도 반드시 필요한 장비라 목놓아 말하는데, 주저주저하며 아무런 연락도 없던 것이다.

그렇게 시간만 흘러가자 해외 공략을 먼저 해야 하나 고민하던 그때, 다른 3D 업종에서 무인 스켈레톤과 관련해 나에게 먼저 접촉해 온다.

그것은 바로 건설업.

"무인 스켈레톤을 사용하고 싶으시다고요?"

갑자기 만나고 싶다며 연락이 온 한 중견 건설사 대표.

"예."

"어떻게요?"

"조작성이 쉽고 사람보다 근력이 강하며 지치지도 않는 스켈레톤. 거기에 후방에서 조종이 가능하니 안전도 도모할 수 있죠. 그리고 그런 스켈레톤의 장점을 가장 필요로 하는 곳이 바로 건설업입니다."

대표가 나를 바라보며 말했다.

"물론 잘 압니다. 한지혁 대표님이 스켈레톤이 일자리 문제와 엮이는 것에 매우 민감하시다는 것쯤은요."

그동안 내가 무던히 노력해 온 보람이 있구나.

이제 처음 보는 사람들도 내가 얼마나 일자리 문제에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는지 알 정도라니.

"하지만 무인 스켈레톤은 사실상 무인 조종 로봇에 가깝지 않습니까? 즉 장비란 말이죠, 사람의 컨트롤이 필요한."

"그렇죠."

"그럼 이건 사람들의 일 효율을 늘려 주는 거지, 일자리를 빼앗는 게 아니지 않습니까."

대표가 내 쪽으로 몸을 숙이며 말했다.

"저희가 자체적으로 검토해 보았는데, 이 정도 힘과 속도면 사람의 몇 배에 달하는 효율을 낼 수 있습니다. 지치지도 않으니 사람들이 돌아가며 스켈레톤을 조종하면 밤낮없이 스켈레톤을 굴릴 수 있어 납기도 대폭 단축할 수 있고요. 물론 디테일 한 작업은 결국 사람의 손이 필요하겠지만, 자재 운반 같은 단순 작업은 충분히 가능하죠."

건설이라······.

난 또 스켈레톤에 건설 알고리즘을 적용해 인력을 전부 대체해야 한다고만 생각해 진출을 주저했던 건데, 너무 편협한 생각이었나 보다.

인부를 대체하는 게 아니라 인부의 장비가 되어 일하는 스켈레톤.

이거라면 사람과 공존이 가능하잖아.

하지만.

"그렇게 되면 그만큼 일자리가 줄어드는 꼴 아닙니까."

소방관이야 수익 사업이 아니기에 구조 확률을 극대화하는 걸로 끝이지만, 이런 수익 사업에서 효율이 올라간다는 건 필요한 사람의 수가 줄어든다는 의미나 다름없다.

운반형 스켈레톤처럼 말이다.

"그건 걱정 안 하셔도 됩니다. 지금 건설업계에서 외국인 노동자 비율이 얼마나 높은 줄 아십니까? 물론 외국인 노동자를 비하하는 건 아닙니다. 하지만 그들은 일거리가 없으면 언제든 고국으로 돌아가거나 다른 나라로 취업 비자를 신청하면 그만인 사람들입니다. 즉, 그들에겐 대안이 있다는 말이죠."

"외국인 노동자."

그들 역시 가족을 부양하기 위해 한국에서 일하는 걸 선택한 사람들이다.

그들 중 일탈을 하는 사람이 있어 인식이 안 좋은 것은 사실이나, 그들도 한국인과 같은 사람이라는 말.

하지만 한국인과 그들의 결정적인 차이는 대안이 있느냐 없느냐는 거다.

그들은 애초에 외국에서 돈을 벌기로 작정한 사람들인 만큼 한국이 아니라 어느 나라든 돈을 벌 수 있다면 상관없지만, 한국 노동자는 한국을 떠나야 하는 결심부터 해야 하니까.

물론 그 과정 역시 그들에게는 나름 고통이겠지만, 그런 것까지 전부 배려해 주면서 언제 돈을 벌고 언데드 군단을 재건하나.

거기에 이미 나는 해외 공장 수십 곳을 한국으로 유턴시키며 수많은 해외 실직자를 발생시켰단 말이지.

"좋습니다. 괜찮은 것 같네요."

그러자 대표가 환하게 웃으며 말했다.

"정말이십니까? 그럼 스켈레톤을 대여해 주시면······."

"하지만 그냥은 못 빌려드립니다."

건설업에서 가능성이 생긴 이상 하려면 제대로 해야지.

이제 내 선택지는 두 개다.

내가 직접 건설사를 차려서 기존 건설사들을 밀어낼지, 아니면 기존 사업들처럼 기존 건설사들을 앞세워 그들이 영업을 하면 내가 제작을 담당할지.

당연하게도 내 선택은 후자였다.

후자가 세론이 더욱 빠르게 성장할 수 있는 지름길이니까.

물론 세론이 건설사들을 밀어내고 직접 수주전을 펼치면 돈은 더 많이 벌 거다.

어쩌면 모든 건설사를 작살내고 세론 건설이 시장을 독점할 수 있을지도 모르고.

하지만 내가 건설업 하나에 올인하는 거라면 몰라도, 어지간한 대기업은 건설사 하나씩 다 가지고 있는 상황에서 독점하겠답시고 그들 모두와 적대하는 건 너무 비효율적이다.

어떻게든 그룹의 캐시 카우인 건설을 살리려 발악할 게 뻔한데, 보나 마나 그 과정에서 스켈레톤으로 인한 산업 파괴를 언급하며 언론 플레이를 하고 건설용 스켈레톤에 대한 규제를 통과시키려는 등 할 수 있는 모든 방법을 동원할 게 뻔하다.

당연히 그렇게 갈등이 길어지면 길어질수록 세론의 이미지는 이미지대로 깎여 나가고, 혹시나 규제가 통과되기라도 하면 건설용 스켈레톤의 시장 진입도 늦춰질 것 아닌가.

그렇다면 차라리 건설사들을 앞세우고 건설용 스켈레톤을 빌려주는 식으로 나가는 거다.

그럼 건설사들은 반대로 인건비를 절감할 수 있는 건설용 스켈레톤을 활용하기 위해 오히려 본인들이 나서서 건설용 스켈레톤 도입을 적극 찬성 하지 않을까?

모두를 적대하거나 아니면 모두를 아군으로 만들거나.

당연히 아군으로 만드는 쪽이 압도적으로 쉽고 빠르다.

나는 대표를 보며 말했다.

"건설업 구조 좀 알려 주세요."

"구조요?"

"제가 건설 쪽은 잘 몰라서. 그냥 간단하게 건물 하나 수주했을 때 어떤 식으로 돌아가는지만 말씀해 주시면 됩니다."

대표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알겠습니다. 일단 대형 건설사가 시공사로 선정되면 그 밑의 하청을 통해서······."

건설업의 일반적인 구조에 대해 설명하기 시작한 대표.

그렇게 조용히 이야기를 경청하던 나는 눈을 번뜩이며 말했다.

"잠깐. 방금 뭐라 그랬죠? 중장비 쪽 다시 말씀해 주세요."

"어··· 일단 자주 쓰는 장비는 건설사에서 직접 가지고 있는 경우도 있지만, 대부분은 중장비 회사에서 필요할 때마다 대여하는 방식으로 돌아간다고 말했습니다."

"중장비 기사는 건설사가 아니라 중장비 회사에서 채용한 직원이고요?"

"맞습니다."

직원과 함께 장비를 빌려주는 운반형 스켈레톤과 비슷한 구조의 회사.

이런 회사라면 스켈레톤 조종사를 직접 고용해 혹시라도 생길지 모를 스켈레톤을 이용한 불공정거래를 원천 차단 할 수 있다.

"중장비 회사 좋네요."

대표는 마치 스켈레톤이 도입되면 한국 노동자들이 아닌 외국인 노동자가 밀려날 것처럼 설명했지만··· 과연 그럴까?

외국인 노동자나 한국 노동자나 스켈레톤을 다룰 수 있는 건 똑같은데?

절대 그럴 리 없지.

이윤을 추구하는 기업 입장에서 외국인 노동자 임금이 싸다면 스켈레톤 조종을 외국인에게 맡겨 버려 오히려 한국인이 밀려날지도 모른다는 소리다.

그렇다면 아예 그 과정 자체를 내가 직접 통제하는 거다.

운반형 스켈레톤처럼 세론이 직접 한국인 직원을 고용해 스켈레톤 장비와 함께 세트로 빌려주면 그 모든 과정이 내 손아귀에 있으니까.

동시에 그렇게 스켈레톤과 인부를 독점하면 시장을 컨트롤하는 것도 결국 내 결정에 달린 셈.

공사를 수주받아도 세론과 사이가 틀어져 스켈레톤 인부를 빌려주지 않으면 비싸고 비효율적인 사람 인부를 써야 되니까.

게다가 이렇게 되면 만약 특정 건설사에 문제가 생겨서 휘청거려도 나는 내 스켈레톤을 다른 건설사에 빌려주면 그만이니, 내가 짊어지어야 할 리스크 자체가 극도로 적어 더욱 좋다.

큰돈도 좋지만 언데드 군단 재건과 은퇴를 위해선 안정적으로 돈을 버는 구조가 더욱 유리하니까.

그러니 건설업이 아니라 인력을 독점한다.

이른바 스켈레톤 대여 회사의 탈을 쓴 스켈레톤 인력 사무소.

나는 환하게 웃으며 말했다.

"조금만 기다리세요, 바로 회사 하나 차릴 테니까. 스켈레톤은 그때 빌려드리죠."

37화

김용대는 또다시 세론 협력사 취업에 실패했다.

물론 계속해서 새로운 협력사가 입주하고 있으니 기회야 얼마든지 있지만, 일자리 자체가 많은 건 아니라 경쟁이 상당히 치열한 상황.

그러자 세론 협력사의 연이은 입주로 희망을 가졌던 김용대도 슬슬 불만이 쌓여 간다.

"내 주변에만 벌써 몇 명이 취업했는데, 왜 나만 떨어지는 거야?"

상황이 이쯤 되자 슬슬 가족들의 생활비가 걱정된다.

"···노가다라도 뛰면서 이력서 내야 하나."

실직자가 되고 한참 힘들 때 인력 사무소를 통해 공사판 노가다를 하며 생계비를 마련했던 김용대.

하지만 그때는 군산시 자체가 침체된 상황이라 마땅한 일감이 없어 노가다를 하기 위해 다른 지역으로 한두 달씩 나가서 일을 해야 했지만, 지금은 세론의 협력사들 공장 건설이 줄지어 있으니 그나마 상황이 나은 게 위안이랄까.

그렇게 고민하던 김용대가 굳게 다짐한 표정으로 말했다.

"그래. 놀고만 있을 수는 없지. 노가다 뛰면서 준비하자."

그때 김용대의 핸드폰으로 날아오는 문자.

문자를 확인한 김용대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오! 취업 공고네?"

군산시에서 새로운 세론 협력사 취업 공고가 뜰 때마다 보내 주는 문자.

그런데 분명 이번 달 신규 협력사는 다섯 곳뿐이라 했고, 그 다섯 곳 모두 떨어졌는데 또 다른 취업 공고가 뜨다니.

새로운 기회에 김용대가 문자 내용을 확인하며 말했다.

"어디 회사지? 에이. 아무려면 뭐가 됐든 중견급은 되겠지."

중소기업은 배제하고 오직 규모 있는 회사만 협력사로 들여오는 세론.

그렇기에 군산 시민들 사이에서 세론 협력사는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들어가야 한다는 말이 나올 정도라 별생각 없이 취업 공고를 낸 회사 이름을 확인한 김종대.

그런데.

"어?"

회사명이 낯설지만 동시에 낯설지 않다.

그 이유는 당연했다.

"세론?!"

군산에 협력사를 유치하고, 큰 화재에서 사람들까지 구하며, 군산 소방서에 소방용 스켈레톤을 기부하는 등, 군산 시민에게 깊은 인상을 남긴 바로 그 세론이니까.

하지만 동시에 낯설다 느낀 이유는 간단했다.

"세론 렌탈?"

이미 중견 기업을 넘어 대기업 집단에 가까워져 가는 세론.

하지만 그 세론의 주력 사업은 전자 제품과 섬유 사업 이렇게 단 두 가지뿐이었다.

그런데 갑자기 렌탈이라니.

"뭘 렌탈한다는 거야? 설마 정수기는 아닐 거고."

그렇게 잠시 멍하니 있던 김용대가 눈을 빛내며 말했다.

"그나저나 이거 기회 아니야?"

무슨 사업인지는 모르겠지만 그간 스켈레톤을 앞세워 승승장구해 온 세론.

어쩌면 이제 막 시작하는 새로운 사업의 창립 멤버가 될 수 있을지도 모르는 일 아닌가.

그렇게 기대감에 부풀어 나머지 내용을 확인하던 김용대는 한 단어를 발견하고 바로 그 기대가 사그라들 수밖에 없었다.

"에이, 뭐야. 단기 채용?"

당연히 정규직 채용인 줄 알았더니, 비정규직도 아니고 고작해야 단기 채용이라니.

"게다가 월급도 아니고 일당이라니······. 무슨 노가다야?"

그렇게 잠시 실망했던 김용대.

하지만 이내 다시 마음을 다잡으며 말했다.

"그래. 어차피 노가다라도 할 생각이었잖아. 가 보지, 뭐."

무슨 일인지는 모르겠지만, 아무려면 인력 사무소에서 받는 노가다 일보다야 훨씬 나을 것 아닌가.

"보자. 위치랑 시간이······."

*

세론 렌탈 취업 공고를 보고 몰려든 사람들.

"군산에 일자리가 없기는 없나 봅니다. 군산시만 취업 공고를 뿌린 건데도 이렇게 많이 오네."

그러자 김덕배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럴 수밖에요. 워낙 단기간에 많은 실업자가 생겼으니."

"반응들은 어떻습니까?"

"긴가민가하고 있습니다."

그럴 테지.

비정규직도 아닌 단기 채용 공고에 렌탈이라는 애매모호한 회사명까지 달려 있으니까.

말 그대로 혹시나 하는 마음에 온 사람들이 대부분일 거다.

하지만 과연 내 설명을 듣고도 저런 반응일까?

"슬슬 올라갈까요?"

"알겠습니다."

그렇게 김덕배와 함께 단상에 올라간 나.

내가 등장하자 사람들의 시선이 전부 나에게로 쏠린다.

나는 느긋한 표정으로 말했다.

"반갑습니다, 여러분. 한지혁입니다."

내 말에 박수를 치는 사람들.

"아마 공고를 보고 많이들 실망하셨을 겁니다. 세론이 사람을 구하는데 정규직은 고사하고 비정규직도 아니라니. 안 그렇습니까?"

그러자 아무도 대답을 하지는 않았지만 무언의 긍정이 느껴진다.

"하지만 여러분, 너무 실망하지 마시고 잘 들어 보시길 추천드립니다, 어쩌면 이게 여러분의 평생 직장이 될 수도 있으니까."

그러자 솔깃한 표정으로 변한 사람들.

"세론 렌탈의 일은 솔직히 말해서 인력 사무소와 별다를 게 없습니다."

그러자 사람들이 황당하다는 표정으로 말했다.

"뭐야. 일당이라더니, 진짜 노가다야?"

"렌탈이 사람을 렌탈한다는 거였어?"

나는 그런 사람들을 보며 말했다.

"노동력이 필요한 곳에 공급해 준다. 그것이 소방이든 건설이든 뭐든 간에 말이죠. 렌탈은 그런 의미의 렌탈인 겁니다. 하지만 우리 세론 렌탈은 결정적인 차이가 있습니다."

내가 손짓을 하자 미리 스켈레톤 조종 연습을 해 둔 직원들이 가면과 콘솔 그리고 건틀릿을 착용한 채 스켈레톤을 조종하며 단상 위에 오른다.

"바로 우리는 인력을 스켈레톤과 함께 공급해 준다는 거지요. 그리고 여러분은 바로 저기, 조종 장비를 장착하고 있는 역할을 맡게 될 겁니다. 바로 사람과 스켈레톤의 공생이죠. 뭐, 말로만 해서는 감이 잘 안 오시죠? 그럼 직접 보여 드리겠습니다."

그러자 직원들이 스켈레톤을 조종하여 어디론가 이동시킨다.

그리고 잠시 후, 지게처럼 달린 등의 뼈 위에 벽돌 묶음과 시멘트 포대 등을 한가득 싣고 나타난 스켈레톤들이 바닥에 자재들을 내려놓는다.

그렇게 스켈레톤들이 계속해서 움직이자 순식간에 쌓여 가는 건축자재들.

"어떻습니까? 좀 감이 오시나요?"

그러자 멍하니 있던 한 남자가 말했다.

"잠깐만. 지금 스켈레톤 하나가 시멘트 포대 몇 개를 얹고 가는 거야? 저거 하나에 40kg 아니야?"

일반적인 사람이라면 1포대도 간신히 들고, 진짜 힘이 좋고 숙달된 사람이 되어야 간신히 두 포대를 들까 말까 한 게 시멘트다.

그런데 그걸 등에 달린 뼈 지게에 한가득 쌓아 올리고 움직이는 스켈레톤들.

"그럼 저걸 조종해서 노가다를 뛰라는 말이야?"

나는 그 말을 듣고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비슷합니다. 노가다 하면 흔하게들 하는 생각이 뭡니까. 돈은 되지만 몸이 힘들다, 위험하다, 오래하면 몸 상한다. 그렇죠? 하지만 여러분은 아닙니다. 왜냐고요?"

나는 스켈레톤을 두드리며 말했다.

"일은 스켈레톤이 하고 여러분은 그저 조종만 하면 되는 거니까요. 이거라면 여러분은 안전한 곳에서 편하게 일을 할 수 있는 셈이죠. 사실상 노가다꾼이라기보다는 일종의 무인 로봇 조종사가 되는 겁니다."

그때 한 남자가 손을 들며 말했다.

"그런데 그럴 거면 운반형 스켈레톤을 조종하는 게 더 낫지 않나요? 그게 실을 수 있는 양도 더 많은데."

남자의 질문에 대답하려던 그때 다른 사람들이 나보다 먼저 나서며 남자에게 핀잔을 준다.

"저저, 노가다 안 해 본 티 내네. 계단을 계속 오르락내리락해야 되는데 그 덩치 큰 운반형이 계단 코너를 어떻게 지나가? 거기에 문은 또 어떻게 하고. 그렇다고 계단이랑 문을 운반형에 맞춰서 넓힐 수는 없잖아."

"맞아, 맞아."

사람들의 핀잔에 조용히 손을 내린 남자.

대충 상황이 마무리되자 나는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마침 잘 말씀하셨습니다. 건설 현장에서 운반형 스켈레톤을 운용할 수는 없죠. 그런데 세론 랜탈과 운반형 스켈레톤 사업은 매우 흡사한 부분이 있습니다. 바로 운반형 스켈레톤의 조장들 역시 렌탈과 비슷한 조건으로 계약을 한다는 겁니다. 일한 만큼 가져가고 일이 없으면 돈을 못받고. 하지만 그것 아십니까?"

나는 입꼬리를 끌어 올리며 말했다.

"지금까지 운반형 스켈레톤의 조장 중 개인 사정을 이유로 자진해서 퇴사한 사람을 제외하면 일이 없어서 일을 못 하거나 회사의 사정으로 실직한 사람은 단 한 명도 없다는 것."

말이 단기 채용이지, 일이 넘쳐 나는 이상 본인이 일할 의지만 있다면 무한정 일할 수 있는 게 바로 운반형 스켈레톤이니까.

점점 흥미가 동한 사람들이 눈을 빛내며 내 말을 경청하기 시작했다.

"아무튼 여러분이 최종 취업이 되면 상황에 따라 3인 1조 혹은 2인 1조로 움직일 겁니다. 번갈아 가며 스켈레톤을 조종하는 거죠."

원래도 4~5배의 효율을 가진 건설용 스켈레톤을 여러 명이 교대로 조종하며 무한정 굴리는 방식.

"물론 적응하기는 쉽지 않을 겁니다. 아무래도 직접 눈으로 보고 자기 손으로 만지는 거랑은 느낌 자체가 다를 거니까요. AR 게임을 하는 느낌? 하지만 일단 적응만 되면 돈은 제가 보장해 드리죠."

나는 사람들을 바라보며 말했다.

"여러분이 일할 의지만 있다면 일감이 끊길 일은 절대 없을 테니까. 자! 그럼 취업을 희망하는 분들은 앞에 있는 직원들에게 이력서 제출 해 주세요!"

*

중견 건설사가 시공을 맡은 한 건설 현장.

납기가 촉박해 24시간 쉬지 않고 공사가 진행 중인 현장에 아침 교대를 하러 온 건설 노동자들이 당황한 표정으로 말했다.

"뭐야. 왜 이것밖에 없어?"

공사 현장에서 가장 먼저 하는 일이 바로 시멘트 포대와 벽돌 등을 나르는 것.

당연하게도 무게가 무게인 만큼 상당한 수의 인력이 동원되는 게 당연했다.

그런데 얼핏 봐도 오늘 모인 인원은 평소에 한참 못 미치는 수준.

그때 건설 노동자가 모여 있는 사람들의 면면을 보고 뭔가 떠오른 표정으로 말했다.

"어? 잠깐. 그러고 보니 잡부 일 할 사람이 하나도 없네?"

"뭐?"

"여기 있는 사람들 다 기공들이잖아."

오랫동안 건설업을 해 오며 기술과 노하우를 인정받은 기공만 있고 각종 잡일을 해 줄 노동자가 하나도 없는 상황.

"설마 우리보고 들고 나르면서 작업까지 하라는 거야?"

"미친. 설마."

"납기 촉박하다면서? 인원을 늘려도 모자랄 판국에 오히려 줄인다는 게 말이나 돼?"

그렇게 노동자들이 수군거리고 있을 때 현장 소장이 나타나 말했다.

"자, 여러분. 슬슬 작업 현장으로 출발합시다. 오늘도 안전을 최우선으로······."

그때 건설 노동자가 말했다.

"소장님, 설마 인원이 저희가 답니까? 잡부가 하나도 없는데요?"

그러자 소장이 태연한 표정으로 말했다.

"아. 그건 걱정 안 하셔도 됩니다. 새로운 인부들이 오기로 해서요."

"새로운 인부?"

"정확히는 장비라고 해야 하나? 중장비? 경장비? 적당한 호칭을 모르겠네."

"그게 도대체 무슨······?"

그때 공사장 문이 열리며 버스가 한 대 들어오더니 버스에서 이상한 뼈들을 장착한 사람들과 스켈레톤들이 무더기로 내린다.

"스켈레톤?"

"뭐야, 저거. 등의 저건 설마 지게인가?"

그때 무리를 이끌고 소장에게 다가온 남자가 소장과 손을 잡으며 말했다.

"안녕하십니까. 세론 렌탈에서 왔습니다. 요청하신 20개조입니다."

"20개 맞군요. 그런데 버스는 뭡니까?"

"저희 작업장입니다. 아무튼 바로 일하면 될까요?"

"아. 예."

"알겠습니다."

그러자 밖에 있는 스켈레톤만 놔두고 버스 안으로 우르르 들어가는 사람들.

그 모습을 보고 건설 노동자들이 멍하니 있던 사이.

가만히 있던 스켈레톤들이 갑자기 움직이기 시작한다.

그때 스켈레톤에 달려 있는 카메라에서 흘러나오는 목소리.

-시멘트는 어디로 옮기면 될까요?

그러자 당황한 건설 노동자가 말했다.

"시, 시멘트는 5층까지 날라야 합니다."

-5층, 알겠습니다.

그리고 스켈레톤이 시멘트 포대 앞에서 등을 돌리고 무릎을 꿇자 다른 스켈레톤이 지게로 보이는 뼈 위에 시멘트 포대를 한 번에 여러 개씩 연이어 쌓아 버린다.

"미친······."

그렇게 지게 위로 시멘트 포대를 잔뜩 쌓아 올리곤 성큼성큼 공사 중인 건물 안으로 들어가는 스켈레톤.

-벽돌 4층 갑니다.

-타일 3층 갑니다.

그리고 그 스켈레톤을 시작으로 다른 스켈레톤들도 줄줄이 짐을 나르기 시작한다.

그것도 인간이라면 깔려 죽을지도 모르는 수준의 자재들을 적재한 채.

"잠깐만. 설마 저 버스 안에서 조종하고 있는 거야? 버스 에어컨 쐬면서?"

그때 소장이 건설 노동자들에게 다가와 말했다.

"뭐 합니까, 자재 올라가기 시작했는데. 앞으로 모든 자재들은 세론 렌탈 스켈레톤들이 나를 겁니다. 여러분은 그냥 위에서 자재 받아 가지고 작업만 하면 돼요."

여기 있는 사람들은 모두 숙련된 기공들.

하지만 기공이어도 필요하다면 자재를 나르기 일쑤인데, 그 일에서 완전히 해방되었다는 뜻이었다.

분명 작업 환경이 좋아진 것은 사실.

하지만 노동자들은 전혀 만족스러운 얼굴이 아니었다.

"···위에서 주구장창 공구리만 치라고요?"

"예. 얼마나 좋습니까, 그냥 같은 작업만 반복하면 되는데. 몸도 덜 힘들 거고."

노동자가 버스를 가리키며 말했다.

"저기 세론 렌탈 사람들은 버스 에어컨 쐬면서 편하게 일하는데?"

"대신 여러분 일당이 훨씬 세지 않습니까. 저기 저분들은 잡부 일당이랑 똑같이 받고 일하는 겁니다. 물론 뭐, 스켈레톤 대여비가 상당히 비싸기는 하지만, 그래도 효율이 압도적으로 좋으니까."

그나마 불행 중 다행으로 기공들 일당이 훨씬 세다는 소장의 말.

하지만 그럼에도 표정이 쉽사리 풀리지 않는다.

뭐랄까.

굉장히 억울한 느낌?

분명 자신들이 기공이고 일당도 높은데, 잡부 역할을 하는 세론 렌탈 사람들이 너무나도 편해 보인다.

부러울 정도로.

"나 때는 몸 버려 가며 자재 나르고 기술 배웠는데, 저건 뭐······."

"편하겠다."

"저런 거라면 나 쉬는 날 없이 매일 일할 수 있을 것 같은데."

그때 한 건설 노동자가 소장에게 말했다.

"혹시 저희는 스켈레톤 못씁니까?"

"카메라 영상 보고 작업하는데 디테일 한 일을 어떻게 맡깁니까? 저건 말 그대로 잡부 일만 해주는 겁니다. 나머지는 여러분이 직접 손으로 해야죠. 건물 하자 나면 본인이 책임질 겁니까?"

결국 마감 작업 같은 디테일한 작업은 본인들이 직접 손으로 해야한다는 말.

그렇게 계속 노동자들이 일은 안 하고 이야기만 하고 있자 참다 못한 소장이 외쳤다.

"일 안 할 겁니까! 자재 쌓여 가는것 안 보여요!?"

그러자 건설 노동자들이 터덜터덜 건물로 걸어가며 말했다.

"아. 뭔가 너무 억울한데."

"누구는 버스에서 편하게 앉아 일하고 누구는 이 더위에 땀 뻘뻘 흘려 가며 공구리 치고······. 이거 뭔가 불공평하지 않아?"

"후우. 세론 렌탈이라고 했지? 한번 알아봐야겠다."

그렇게 세론 렌탈의 건설용 스켈레톤은 빠르게 건설업계 전반으로 퍼져 나가기 시작했다.

38화

운반형 스켈레톤과 비슷한 구조의 세론 렌탈이기에 이 업무를 강찬수 실장에게 맡겼는데, 그 선택은 그야말로 탁월했다.

알고 보니 강찬수는 짐꾼 일을 하면서 일이 부족하면 노가다도 뛰는등으로 이쪽 일에 대해 제법 잘 알고 있었던 거다.

그렇게 그간 전국에 흩뿌려진 운반형 스켈레톤을 관리해 오며 얻은 노하우와 노가다 경험을 토대로 순조롭게 세론 렌탈을 진두지휘하는 강찬수.

"대표님, 장운 건설이 서울의 아파트 공사 현장에 스켈레톤이 필요하답니다."

강찬수의 말에 나는 엄지를 들어 올리며 말했다.

"크. 장운 건설 나온 거면 끝났네요."

장운 건설이면 도급 순위 8위의 명실상부한 대기업 계열사.

그런 대기업조차 주저 없이 건설용 스켈레톤을 원할 정도니 시장 안착은 그야말로 시간문제다.

경공업이나 전자 제품보다도 인건비에 민감한 게 건설업이고, 또 내가 건설사 포지션이 아닌 인력 사무소 포지션을 잡았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만약 내가 직접 건설업에 뛰어들었다면 장운 건설은 우리를 협력 업체가 아닌 그저 경쟁자로 보았을 테니까.

강찬수도 흥이 나는지 웃음을 숨기지 못하며 말했다.

"게다가 장운 건설이 직접 저희에게 연락을 해 왔다는 것도 중요합니다."

"아! 맞다. 불법 재하청."

중견 건설 회사 대표에게 들은 바에 따르면 책임 회피와 공사비 절감을 위해 건설업계에선 하청에 하청을 주는 불법 재하청이 빈번하다고 했다.

사실상 대형 건설사는 사업을 수주하고 관리만 맡을 뿐, 진짜 건설 노동자를 고용하는 건 모두 하청업체들일 정도.

그런데 그런 대형 건설사인 장운 건설이 우리에게 직접 연락을 해 왔다는 게 무슨 소리겠나.

안전이 보장된 스켈레톤인 데다 인건비도 확 절감할 수 있으니, 굳이 불법적인 재하청을 해야 할 이유가 없다는 뜻.

"스켈레톤은 충분하니까 보내 주세요."

"알겠습니다. 아. 그런데······."

강찬수가 어색한 표정으로 말했다.

"스켈레톤은 충분하지만 인력이 부족합니다."

"예?"

"스켈레톤 하나에 적게는 한 명에서 많게는 3명이 한 개조로 구성되다 보니 인력이 제법 많이 필요한데, 기존 직원들이 모두 파견 나가서 지금 있는 사람들은 아직 조종에 미숙한 사람들입니다."

건설용 스켈레톤은 직접 두 눈으로 보고 조작하는 게 아니다 보니 미숙련자가 조종을 하면 카메라 특유의 원근감 부족과 손 감촉의 부재로 실수가 잦았다.

예를 들어, 시멘트 포대의 밑을 들어 올려야 되는데 실수로 시멘트 포대 옆구리를 찔러 들어 올리거나 허공에 손질을 하는 식으로 말이다.

물론 사고 방지를 위해 스켈레톤의 손에 일정 수준 이상의 반발력이 느껴질 경우 더 이상 힘을 주지 못하도록 알고리즘을 만들어 자재들이 망가지는 경우는 없었지만 돈 받고 일해주는 건데 그런 어설픈 상태로 무작정 내보낼 수는 없는 노릇 아닌가.

그래서 첫 렌탈 취업자들이 조종에 숙달되도록 교육을 하는 데 상당한 시간이 소요되었었지.

그래도 잘 교육해서 건설 현장에 파견 보냈는데, 건설용 스켈레톤 수요가 너무 확 늘어나니 숙련된 직원이 순식간에 모자라진다.

나는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말했다.

"사업하면서 인력이 부족한 건 또 처음이네요."

"그러게 말입니다."

"어쩔 수 없지."

나는 전국으로 파견 나간 공사 현장들이 그려진 지도를 보며 말했다.

"여기 대전 공사 현장은 숙련 직원만 있죠?"

"예."

"여기 직원들, 신입이랑 반반 섞어서 서울이랑 대전으로 나눠서 보내세요."

당장 인원이 부족하니 신입과 숙련을 반반 섞어 투입하는 거다.

"기존 직원들한테는 추가 수당 줄테니 시간 날 때 신입 직원 교육 좀 부탁한다 하고요."

"알겠습니다. 그렇게 처리하겠습니다."

일단 이걸로 임시방편은 되겠지만, 근본적인 해결책은 아니란 말이지.

세론 렌탈이 커 나갈수록 이런 숙련 직원 부족 현상은 더욱 심화될 테니까.

"교육기관이 필요할 것 같은데."

신입을 받아 현장에서 실수해 가며 일을 배우도록 하는 건 너무 비효율적.

그렇다면 역시 최선의 방책은 스켈레톤을 다루는 신입 직원에 대한 교육기관을 만들어 최소한의 교육을 이수시킨 뒤 현장에 내보내는 것이었다.

그때 내 말을 들은 강찬수가 말했다.

"교육기관이요? 신입 연수원 같은 걸 말씀하시는 겁니까?"

신입 직원들에 대한 기본 교육을 담당하는 신입 연수원.

하지만 뭔가 묘하게 마음에 들지 않는다.

"신입 연수원이면 고용한 다음 가르치는 기관이죠?"

"그런 걸로 알고 있습니다."

"흠."

원래부터 선채용 후교육 방식으로 진행되어 온 세론.

하지만 그 결과 개개인의 능력 차이가 너무나도 벌어지는 경우가 허다했다.

예를 들어 백상호는 엄청난 컨트롤 실력에 혼자서 두세 명 몫을 하는 수준.

반면 어떤 직원의 경우엔 1인분은 고사하고 0.5인분도 못 할 때가 많고.

이런 일이 발생한 이유는 간단했다.

시험이나 자격증을 통해 직원의 능력을 검증하는 일반 회사들과 다르게 세론에서 필요로 하는 능력은 일을 시켜보기 전까진 확인할 방법이 없으니까.

그래서 그동안 이력서는 대충 보고 백상호처럼 게임 같은 주특기가 있으면 뽑아 왔지만, 이건 변별력이 너무 떨어졌지.

나는 잠시 고민하다 말했다.

"신입 연수원 말고 교육 센터로 갑시다."

그렇다면 역시 지금 세론에게 가장 유리한 건 선교육 후채용이다.

"교육 센터요?"

"일종의 학원 같은 거죠. 수료를 완료하면 세론의 100퍼센트 취업 보장. 대신 수료 기준에 미달하면 퇴원. 어떻습니까?"

교육 센터를 통해 옥석을 가려 가며 받는 거다.

수료를 완료하면 무조건 취업 보장, 대신 기준에 미달하면 그냥 바이바이.

이 정도만 해도 실업자들이 물밀 듯이 몰려들 것 같은데?

신입 교육 문제도 해결하고 직원에 대한 변별력도 올려 주니 일석이조다.

기왕이면 일 잘하는 사람 뽑고 싶은 게 경영자 마음이잖아.

"좋은 방법인 것 같습니다. 그런데 교육비도 받는 겁니까?"

"안 받죠. 어휴, 그거 몇 푼 되지도 않는 돈 받았다가 무슨 소리를 들으려고. 퇴원당하면 백 퍼센트 교육비는 받아 챙겨 놓고 취업 안 시켜 준다며 난리 칠 텐데."

외국어 학원이면 원하는 성과가 나오지 않았어도 무엇이 됐든 남는 거라도 있지 않나.

하지만 세론이 만든 교육 센터에서 기준 미달로 퇴원되면 그렇게 배운 스켈레톤 조종법을 써먹을 곳이 전혀 없다.

당연히 그 상황에서 교육비까지 납부했으면 본전 생각이 나면서 억울해하겠지.

"어차피 우리 필요한 사람 뽑으려고 만드는 거니까 실습에 필요한 자재비 정도만 받는 걸로 하자고요. 어때요?"

그러자 강찬수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괜찮은 것 같습니다. 찬성입니다."

그렇지?

"오케이. 그럼 바로 추진하죠. 그럼 강사진을 누구로 해야 하지?"

그렇게 잠시 고민하던 그때 내 머릿속에 스쳐 지나가는 한 사람의 이름.

당연하게도 세론의 첫 프로그래머이자 최고 실력자인 백상호였다.

"백 팀장님 좀 불러 주세요."

*

"흠······."

팀장 자리에 오르고 최고참 대우를 받으면서 이제 대부분의 현장 일을 후배에게 넘겨도 되건만, 태생적으로 무언가 만지고 조작하는 걸 좋아하는 백상호는 여전히 최일선에서 스켈레톤을 조종하는 데 힘을 쏟고 있었다.

물론 약간 사적인 취향이 반영되기는 했지만.

일이 없어 대기 모드로 들어간 스켈레톤을 향해 이리저리 조작하던 백상호가 실행 버튼을 누르자, 갑자기 스켈레톤이 스텝을 밟더니 땅에 머리를 박고는 헤드 스핀을 돌기 시작한다.

"오오!"

"역시 백 팀장님!"

프로그래머들이 백상호의 컨트롤 실력에 감탄했지만, 백상호는 심드렁할 뿐이었다.

"아쉬워. 너무 아쉬워."

백상호에게 주어진 것은 그간 한지혁과 계속 업그레이드해 온 콘솔 단 하나뿐.

문제는 이 콘솔의 기능이 제한되어 있어 백상호가 가진 무궁무진한 상상력을 모두 실현하기엔 한참 모자라다는 것이었다.

다른 사람들은 백상호의 결과물을 보고 감탄하지만, 한지혁의 손짓 한번에 온갖 신기한 스켈레톤이 척척 만들어지던 걸 옆에서 봐 온 백상호이기에 더욱 만족할 수 없었다.

"하아. 뭔가 방법 없을까."

그렇게 한참을 고민하던 그때, 한 후배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백 팀장님! 대표님께서 찾으십니다! 본사로 오시라는데요."

"대표님이?"

백수 생활을 청산하고 이제는 경력을 인정받으며 고액의 연봉을 받고 있는 백상호.

그런 백상호에게 세론은 그야말로 모든 것이었다.

지금까지 백상호가 쌓아 온 노하우와 실력은 세론을 벗어나는 순간 아무것도 아니게 되니까.

그런 만큼 자신에게 이런 기회를 준 대표는 백상호에게 있어 은인 그 이상.

"알겠어. 바로 출발할게."

*

군산시에 위치한 본사 대표실에 들어온 백상호.

"백 팀장님, 이쪽에 앉으세요."

"예, 대표님."

그렇게 소파에 앉자 한지혁이 백상호를 바라보며 말했다.

"일하는 데 문제는 없죠?"

"없습니다. 이제 프로그래머들도 많아졌고, 모두 순조롭습니다."

"그래요? 신입들은?"

그러자 백상호가 최근 들어온 신입들을 떠올리고는 멈칫하며 말했다.

"어··· 그건··· 열심히 하고 있습니다."

"열심히는 당연히 해야 하는 거고, 일은 잘합니까?"

"솔직히 어설픈 건 사실입니다."

"그렇죠? 그래서 고민해 봤는데, 교육 센터를 만드는 건 어떨까 생각 중입니다."

"교육 센터요?"

"프로그래머반이랑 렌탈반을 개설해서 교육해 주는 거죠. 그렇게 수료를 마치면 세론의 취업을 보장해 주고."

그러자 프로그래밍 학원을 수료했지만 IT 대기업 취업에서 줄줄이 고배를 마셨던 과거가 떠오른 백상호.

"취업을 보장해 준다고요?"

"물론 수료 기준에 미달하면 퇴원되겠지만. 어떻게 생각합니까? 잘될까요?"

"무조건 잘됩니다, 무조건."

세론은 스켈레톤 덕에 인건비가 막대하게 절감되는 덕분에 연봉이 제법 높은 편이었다.

그렇기에 그냥 취업 공고만 올려도 사람들이 몰려드는데, 무려 수료만 완료되면 취업을 보장해 주는 교육 센터라니.

"아마 교육비로 수십만 원이 아니라 백만 원을 받아도 사람들이 몰려들 겁니다."

"에이. 안 받아요, 안 받아. 이걸로 돈 벌어 봐야 얼마나 번다고. 아무튼 괜찮다 이거죠?"

한지혁이 눈을 빛내며 말했다.

"그래서 말인데, 교육 센터를 백 팀장님이 맡아 주실 수는 없으십니까?"

"예?"

백상호가 당황한 표정으로 말했다.

"제가 교육 센터를요?"

"예. 지금 세론에서 가장 능력 좋은 사람이 백 팀장님 아닙니까."

그러자 늘 한지혁의 말이라면 죽는 시늉도 하던 백상호가 처음으로 주저하며 말했다.

"저는 현장에서 스켈레톤을 다루는 게 더 적성에 맞는데······."

"아예 영영 교육 센터에만 있으라는 말이 아닙니다. 적당히 강사진을 구성하여 기초 교육만 알아서 할 수 있도록 시스템을 만들라는 이야기예요."

"얼마나 말입니까?"

"글쎄요. 삼 개월? 반년?"

신입 직원 교육 하는 것도 귀찮은데, 그 짓을 그렇게 오래 반복해야 한다니.

하지만 다른 사람도 아니고 자신의 은인인 한지혁의 지시 아닌가.

"알겠습니다. 대표님 지시인데, 따라야지요."

그렇게 시무룩하게 대답을 하던 백상호의 머릿속에 무언가 번뜩 스쳐 지나간다.

"아! 그런데 교육 센터라면 실습용 스켈레톤도 많이 있겠네요?"

"물론이죠."

그러자 백상호가 눈을 빛내며 생각했다.

'소방용과 건설용은 작동 방식 자체가 일꾼이랑은 다르잖아. 이 둘을 잘 조합하면 한계를 넘을 수 있지 않을까?'

하지만 이내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아니야, 그것도 안 되겠네. 애초에 이 둘을 연동하는 건 대표님만 가능한 일이잖아.'

다른 것도 아니고, 자기 호기심을 충족하는 데 한지혁에게 도움을 요청하는 건 너무나도 염치가 없는 짓이다.

그렇게 한참을 침묵하던 그때.

"하고 싶은 말 있으면 해 봐요, 괜찮으니까."

"예?"

"보아하니 머릿속이 복잡한 것 같은데, 이야기해 보라고요, 혼자서 끙끙거리지 말고."

그 말에 눈치를 보던 백상호가 결국 입을 열었다.

"사실 제가 이런 상상을 하고 있었는데······."

*

갑자기 웃다 찡그리기를 반복하던 백상호.

뭔가 상상에 빠져든 것 같아 할 말 있으면 해 보라 말하니, 그간 자신이 상상해 온 각종 구상들을 줄줄이 나열하기 시작한다.

물론 그 구상들 대부분은 창의적이지만 쓸모가 없는, 말 그대로 몽상에 가까웠지만, 가끔씩은 그럴싸한 게 툭툭 튀어나온다.

"···거기에다 일꾼 스켈레톤 팔을 3개나 4개로 달면 지금보다 작업 효율이 더 올라갈 겁니다. 스켈레톤의 인식능력은 뛰어나니 한 손으로 잡고 나머지 손으로 동시 작업 하는 거죠."

이건 나쁘지 않네.

마개조 스켈레톤을 만드는 것도 아니고, 그저 팔 한두 개만 더 붙이는 거니까.

그때 백상호가 시무룩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그렇게 이런저런 상상을 해 봤는데 저는 콘솔이 가진 고유의 기능 이상은 활용할 수가 없지 않습니까. 그러다 교육 센터를 말씀하시기에 실습용 스켈레톤들을 잘 조합하면 좋은 결과가 있지 않을까 했는데, 생각해 보니 이것도 대표님만 가능한 일이라서요."

조종 콘솔의 한계로 상상력을 실현하지 못하는 백상호.

'어쩌면 이건 좋은 기회 아닌가?'

뛰어난 작품은 늘 수많은 상상력 속에서 나오는 법이지.

하지만 내 상상력은 이미 세론에서 고갈될 대로 고갈된 지 오래.

그렇다면 백상호처럼 아직 창의력이 넘쳐 나는 사람들로 하여금 자유롭게 상상력을 발현하도록 판을 깔아 주면 그중에서 무언가 건질 만한게 나오지 않을까?

'아예 알고리즘을 알려 줘 버려?'

알고리즘의 구조와 한계 등 알고리즘의 개념 자체를 알려 주는 거지.

그러면 백상호 같은 사람들이 그 개념을 이용해 상상력을 조합하여 새로운 무언가를 만들어 낼 것 아닌가.

골렘 게임에서 비행기를 만들어 냈던 것처럼 말이다.

어쩌면 이거야말로 백상호 같은 사람에게 가장 잘 어울리는 방식이 아닐까?

'그렇게 완전히 알고리즘 개념에 익숙해지면 나중 가서는 그냥 지시만 내리면 알아서 자기들끼리 조합을 짜 올 것 아니야.'

그렇게 알고리즘에 익숙해진 사람들을 양산해 두면 굳이 지금처럼 새로운 사업을 할 때마다 그에 맞는 알고리즘을 직접 구상할 것 없이, 이들에게 던져 주며 상상력을 최대한 발휘해라 이렇게 한마디만 지시하면 끝.

나 혼자 조합하고 끙끙거릴 것 없이 얼마나 편한가.

'그렇다면······."

나는 잠시 고민하다 말했다.

"그럼 이렇게 하는 건 어떻습니까. 교육 센터 겸 연구소, 줄여서 교육 연구 센터."

원래 대학에서 연구도 하고 학생도 가르치고 그러잖아.

세론 교육 센터이자 동시에 세론 연구소가 되는 거지.

신입 교육도 하고, 만들어 낸 새로운 조합을 원생들 대상으로 테스트도 해 보고.

"예?"

"제가 스켈레톤의 작동 방식. 그러니까 알고리즘의 구조에 대해 알려 드릴 테니, 백상호 씨가 강사진과 함께 그걸 자유자재로 조합해 보는 겁니다. 그럼 제가 일주일마다 한번 방문해서 그 조합을 구현해 드리죠."

알고리즘을 만들 때 가장 힘든 부분인 조합을 백상호 같은 사람들에게 떠넘기고 나는 구현만 해 주는 거다.

그러자 백상호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며 말했다.

"저, 정말이십니까? 제 마음대로 조합할 수 있게 해주신다고요?!"

"예."

어차피 알려 줘 봤자 이걸 적용하고 실행할 수 있는 건 나뿐이니까.

"그런 거라면 반년이 아니라 평생 교육 센터에만 있어도 만족할 수 있습니다!"

역시 백상호 같은 사람들에겐 이게 정답이다.

"그래도 기본은 신입 교육이라는 걸 잊으면 안 됩니다."

"물론입니다! 근무 시간엔 철저히 교육만 하고, 나머지 시간을 이용해서 연구에 매진하겠습니다!"

알아서 열정 페이를 하겠다는 거잖아?

아주 좋아.

"지원을 아끼지 않을 테니 열심히 해 보세요."

그래야 내가 더 편해질 테니까.

39화

군산시 외곽의 폐연수원을 단장하여 오픈한 세론 교육 연구 센터는 시작부터 수많은 사람들의 문의가 쏟아졌다.

자신이 사용할 자재비만 내면 사실상 교육비가 없다시피 한데, 일단 수료만 완료하면 무조건 취업 보장이니 당연하다면 당연한 이야기.

아무튼 그렇게 본격적으로 세론 교육 연구 센터에 사람들이 몰리며 기초 교육을 마친 직원들이 점점 더 양산되어 간다.

그렇게 부족한 숙련 직원이 충원되고 점점 더 규모를 키워 가자 다른 산업에서도 하나둘 연락이 오기 시작한 세론 렌탈.

"상하차, 이삿짐센터··· 많네요."

내 말에 강찬수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맞습니다. 모두 사람이 몸을 써야 하는 업종들입니다."

힘들고 어려우며 사람들이 기피하는 종류의 일들.

이런 일이야말로 무인 스켈레톤에게 딱 맞지.

하지만 이런 일들은 우선순위에서 밀릴 수밖에 없다.

"인력 남으면 보내고, 아니면 정중히 거절하세요."

건설의 경우엔 한 번에 왕창 때려 넣고 건설 기간 내내 돈을 뽑아 먹을 수 있는 반면, 이것들은 단기성 일이란 말이지.

건설 쪽 인력도 부족한 상황에 이런 단기성 일까지 챙기는 건 욕심이다.

"알겠습니다. 그렇게 처리하겠습니다. 아. 그리고 건설 쪽 기공들도 제안이 왔는데, 기공용 스켈레톤은 없냐고 합니다."

"기공용?"

"그러니까, 디테일 한 작업이 가능한 스켈레톤은 없냐는 말입니다."

나는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말했다.

"그걸 왜 우리한테 물어봐요? 본인들이 알아서 할 일이지."

일반 잡부들이 힘쓰는 일을 한다면 기공들은 디테일 한 작업을 전담하고 있다.

그리고 이 작업의 결과물에 따라서 건물의 하자가 발생하냐 안 하냐가 결정될 만큼 세밀함이 필요하단 말이지.

그렇다면 그들이 할 수 있는 일은 단 두 개다.

지금 있는 무인 스켈레톤의 조종에 숙달되어 원격 조종으로도 지금만큼 훌륭한 결과물을 만들어 낼 수 있는 조종 실력을 기르거나 아니면 그냥 하던 대로 직접 봐 가며 하는 것.

이게 아니라면 스켈레톤에 자동 작업 기능 알고리즘을 적용해야 한다는 말인데······.

"이 양반들이 하나는 알고 둘은 모르네. 만약 자동 작업 기능이 탑재되면 기공이 왜 필요합니까? 전부 다 스켈레톤한테 맡기고 말지."

하자면 못 할 건 없지만, 그런 기능이 적용되는 순간 기공의 존재 의미 자체가 사라지는 꼴이라는 거다.

아무나 데려다 조종시켜도 자동 기능이 알아서 척척 해결하면 누가 일당 비싼 기공을 쓰나.

게다가 단가도 문제다.

잡부 일이야 힘만 좋으면 효율이 팍팍 오르지만, 마감 작업 같은 건 동시에 스켈레톤을 여러 개 조종하는 것이 아닌 이상 스켈레톤을 쓰든 안 쓰든 거기서 거기 아닌가.

즉, 인건비 절감의 효과는 고사하고 오히려 스켈레톤 렌탈비만 올라간다는 거다.

"세론의 모토는 간단해요. 힘들고 단순한 작업은 스켈레톤이 하고, 사람은 디테일적인 부분을 보완한다. 아셨죠?"

"알겠습니다, 대표님. 그렇게 처리하겠습니다."

보고를 마친 강찬수가 나가자 나는 의자에 몸을 기대며 말했다.

"좋다, 좋아."

이제 세론의 사업은 크게 3개였다.

내 두 번째 사업이자 현재 가장 많은 돈을 벌어다 주고 있는 세론 신발.

그다음은 이제 60개까지 늘어난 협력사를 거느리고 빠르게 확장해 나가고 있는 SR 전자.

마지막이 운반형 스켈레톤과 통합되어 운영 중인 세론 렌탈.

그 외에 세론 교육 연구 센터와 사령마 사업이 있지만, 이 두 가지는 그저 다른 3가지 사업을 보조하는 수단에 불과하다.

아무튼 그렇게 세론이 진행하고 있는 모든 사업의 규모를 합칠 경우 한 달 매출액만 3천억을 돌파하는 상황.

"이 정도면 그룹 소리 들어도 되지 않나?"

캬.

세론 그룹 회장 한지혁.

멋있는데?

비록 언데드 군단 재건 때문에 여기까지 왔지만, 그래도 사업하는 사람이 회장 소리 한번 들어 봐야지.

SR 전자 협력사들 중에서 중견 기업임에도 회장 소리 듣는 사람이 있던데, 나라고 못 할 게 뭐 있어.

"교육 연구 센터도 생긴 김에 싹 정리 한번 하고 가자."

워낙 즉석으로 생각날 때마다 일을 벌였더니 각 회사들마다 시스템이고 뭐고 중구난방이란 말이지.

중견 그룹 덩치에 중소기업 시스템이 더해진 느낌?

그러니 이 기회에 그룹을 만들면서 계열사들이랑 관리 구조 등을 싹 개편하는 거다.

거기에 나름 그룹 이름을 달면 소속 직원들 충성심도 올라갈 것 아닌가.

"좋아. 세론 그룹으로 간다."

*

본격적으로 세론 그룹 발족을 준비하며 본사에는 활기가 돈다.

특히 세론 창립 멤버인 사람들일수록 자기들이 몸담은 회사가 급속도로 성장하여 이제는 그룹 반열에 오른다는 것에서 자부심을 느낄 정도이며, 다른 직원들 역시 계속 성장 중인 세론에서 기회를 잡을 수 있다는 생각에 들떠 한다.

그렇게 흥분된 분위기 속에서 차근차근 준비를 해 나가던 그때, 나는 어이없는 소식을 하나 듣게 되었다.

"사고?"

강찬수가 식은땀을 흘리며 말했다.

"예. 그게, 충남 쪽 건설 현장에서 생긴 일인데··· 건설용 스켈레톤이 넘어지면서 들고 있던 철근 뭉치를 휘두르는 바람에 반경에 있는 지지대가 무더기로 박살 나며 받치고 있던 건물 일부가 붕괴되었다고 합니다."

이게 뭔 개똥 같은 소리야.

나는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말했다.

"스켈레톤이 넘어지면서 실수로 철근 뭉치를 휘둘렀다고요?"

하나부터 열까지 전부 말이 안 되는 것투성이다.

애초에 무인 스켈레톤은 사람이 이동 방향을 지시해 주는 것뿐, 이동 자체는 내가 주입해 둔 알고리즘에 기반한다.

당연히 무언가 예상치 못한 일 때문에 중심이 살짝 무너질 수는 있으나, 금방 다시 중심을 잡고 가던 길로 계속 걸어가는 게 내 스켈레톤들이란 말이다.

게다가 철근 뭉치를 지지대를 모조리 박살 낼 만큼 휘둘렀다는 것도 말이 안 된다.

"스켈레톤이 무슨 사람도 아니고, 허우적거리면서 철근 뭉치를 휘둘러? 어이가 없네."

사람이야 당황하면 몸이 자기 멋대로 움직여 그럴 수 있고 마찬가지로 사람이 조종 중인 스켈레톤이라면 충분히 그럴 만하다 생각할 수도 있을지 모르지만, 스켈레톤의 알고리즘 구성 방식을 조금이라도 알고 있다면 저게 얼마나 말이 안 되는 소리인지 바로 알 수 있다.

"조종자가 지지대를 부수려 작정하고 철근 뭉치를 휘둘렀어도 지지대에 닿는 순간 스켈레톤 손에 반발력이 감지되며 더 이상 휘두르는 것 자체가 안 됐을 텐데, 넘어지면서 한번 휘두른 걸로 반경에 있는 모든 지지대를 박살 냈다고요?"

아무려면 사람의 몇 배에 달하는 힘을 가진 스켈레톤을 내놓으면서 그 정도 안전장치도 안 해 놨을까.

휘두르던 원심력에 의해 한 번에 멈춰 서지 못하고 지지대 한두 개 정도가 박살 났다면 그래도 좀 이해가 가는데, 반경에 있는 모든 지지대를 박살 낼 때까지 제동 알고리즘이 작동을 안 했다는 건 아무리 생각해도 말이 안 된다.

"조종하던 사람은 뭐라고 합니까."

"조종사도 뭔가에 걸려 넘어지며 철근 뭉치를 휘둘렀다고 했습니다."

이 새끼들 봐라?

아무리 봐도 지들끼리 짜고 입 맞춘 것 같은데.

하지만 여기서 나 혼자 말이 안 된다고 백날 이야기해 봤자 해결될 리가 없지 않나.

이러다 스켈레톤이 위험하다는 인식이 퍼질지도 모르니 빠르게 조치해야 한다.

"넘어졌다는 스켈레톤에 달린 카메라 바로 회수하고, 조종사도 불러 주세요."

*

그렇게 만나게 된 사고 스켈레톤 조종사 직원.

직원이 안절부절못하며 말했다.

"정말 죄송합니다!"

나는 직원의 개인 정보가 적힌 서류를 보며 말했다.

"한도윤 씨, 저랑 같은 한씨네요. 보자. 건설 쪽 경력 5년 차. 최근에 세론 교육 연구 센터 수료하셨고."

"마, 맞습니다."

어찌 된 영문인지 알아보기 위해 조종사를 호출하고 스켈레톤 머리에 달린 카메라 회수를 지시한 나.

그런데 여기서 또 어처구니가 없는 일이 발생했다.

"건물 붕괴 과정에서 무너져 내린 천장 때문에 스켈레톤 머리가 박살 나며 카메라도 같이 박살이 났다고요?"

한도윤이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

"마, 맞습니다."

이거 파면 팔수록 수상하네.

넘어지려야 넘어질 수 없는 스켈레톤이 넘어지고, 또 공교롭게 증거물인 카메라까지 박살이 났다?

"메모리 칩은 못 찾았습니까?"

"그게, 박살 난 자재들이랑 뒤엉켜서 찾지 못했습니다."

"현장에 다른 스켈레톤이나 목격자는 없었고요."

"예······."

목격자는 없는데 유일한 증거물인 영상도 없어진 상황.

이쯤 되니 확신이 선다.

조종사가 누군가와 짜고 스켈레톤에게 건물 붕괴의 책임을 떠넘기고 있다는 걸.

당연히 스켈레톤의 작동 알고리즘을 모르니 대충 어설프게 끼워 맞춘 거다.

스켈레톤의 힘이 사람의 몇 배에 달하니 그런 스켈레톤이 철근 뭉치를 휘두르면 지지대 박살 내는 건 일도 아니라는 생각으로.

제작자인 내 입장에선 어처구니없지만, 문제는 스켈레톤에 대한 이해도가 없는 일반인 입장에서는 이 일이 제법 그럴싸하게 들릴지도 모른다는 거였다.

"정말 넘어진 것 맞습니까?"

"맞습니다. 정말입니다."

"철근 뭉치도 휘둘렀고?"

"예."

시치미를 떼시겠다?

좋아. 한번 해 보자고.

나는 한도윤을 바라보다 말했다.

"이 일이 얼마나 심각한 일인지는 인지하고 계십니까?"

"그, 그게······."

"솔직히 말하죠. 만약 이로 인해 스켈레톤에 대한 신뢰도가 무너지면 세론 전체가 흔들릴지도 모릅니다. 세론의 기반은 스켈레톤이니까요."

스켈레톤에게 건물 붕괴의 책임을 떠넘기려는 수작인 건 확실한 것 같은데, 문제는 지금 증거가 없다는 거다.

그렇다면 유일한 방법은 눈앞의 이 조종사를 압박하여 실상을 실토하게 만드는 것뿐.

"그렇기에 만약 저는 누군가가 이 사건을 조작하려 한 거라면 제 모든 걸 걸고 박살 낼 겁니다. 그러니 다시 한번 묻죠. 정말 넘어진 게 맞습니까?"

A급 각성자이자 그룹 발족을 앞둔 나의 협박성 발언.

"그, 그게······."

그렇게 한참을 주저하던 한도윤이 말했다.

"저, 정말입니다. 정말 넘어졌습니다."

그렇게 나오시겠다?

나는 피식 웃으며 말했다.

"그래요? 그것참 이상하네요. 스켈레톤은 넘어지려야 절대 넘어질 수 없는데."

"···예?"

"인터넷 영상 보신 적 있으십니까? 로봇을 발로 찼는데도 중심 잡던 거. 스켈레톤의 중심 잡는 능력은 그것보다도 훨씬 우월합니다. 어쩌면 사람보다도 더."

전장이 되었든 일터가 되었든 결국 기본은 중심을 잡는 것에서 시작한다.

중심을 잡고 서 있어야 싸움을 하든 일을 하든 하니까.

그렇기에 스켈레톤의 균형 감각은 내가 가장 심혈을 기울여 만든 알고리즘.

나는 아공간에서 스켈레톤을 하나 꺼내며 말했다.

"넘어트려 보세요."

"그, 그게 무슨 소리신지······."

"넘어트려 보시라고요. 한번 느껴 봐야 알 것 아닙니까, 이게 얼마나 말도 안 되는 소린지.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말고 넘어트려 보세요, 도구를 사용해도 좋으니."

그러자 당황해하던 한도윤이 결국 스켈레톤을 밀쳐 보기 시작한다.

당연하게도 꿈쩍도 안 하는 스켈레톤.

그러자 슬슬 오기가 생기는지 각종 방법을 총동원하기 시작한 한도윤.

달려서 밀쳐도 보고 다리를 걸어도 보는 등 말 그대로 스켈레톤을 넘어트리기 위해 온갖 생쇼를 한다.

나는 헉헉거리는 한도윤을 향해 말했다.

"뭔가 느껴지는 것 없으십니까?"

"헉헉."

"장담하는데, 각성자가 힘으로 찍어 누르는 게 아닌 이상 스켈레톤은 쉽게 넘어지지 않아요. 그런데 고작해야 발밑의 돌멩이나 자재에 좀 걸리는 수준인 공사 현장에서 넘어졌다? 거기에 이상한 건 이것뿐만이 아닙니다."

나는 스켈레톤 조종 장치를 꺼내 들어 건틀릿으로 스켈레톤이 미리 준비해 둔 사과를 쥐게 한 다음 말했다.

"여기서 이 건틀릿을 꽉 쥐면?"

내 동작에 따라 사과를 움켜쥐는 스켈레톤.

그러자 사과를 파고 들어가는 스켈레톤의 손이었지만, 반발력이 느껴지자 그 이상 힘을 주지 않는다.

"보다시피 더 이상 손가락이 파고 들어가지 않죠. 솔직히 스켈레톤 정도 힘이면 이 따위 사과 하나 한 손으로 산산조각 내는 건 일도 아닌데. 이건 전부 스켈레톤에 안전 제한 기능을 달아서 가능한 일입니다, 이런 경우가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해서."

나는 식은땀을 흘리는 한도윤을 바라보며 말했다.

"그런데 이런 스켈레톤이 한두 개면 모를까, 철근 뭉치를 휘둘러 반경에 있는 모든 지지대를 박살 냈다고요? 저보고 이걸 믿으라는 겁니까?"

"하, 하지만 정말입니다."

나는 히죽 웃으며 말했다.

"끝까지 이렇게 나오시겠다 이거죠? 좋습니다. 한도윤 씨, 혹시 그것 압니까? 스켈레톤에는 360도 모두 볼 수 있는 블랙박스 기능이 내장되어 있다는 거. 정확히는 제 능력이지만."

"브, 블랙박스 능력?"

"예를 들어 이런 겁니다."

그렇게 말을 함과 동시에 나는 한도윤에게 환영 마법을 시전했다.

눈에 착란을 주어 환영을 보게 만드는 마법.

나는 환영 마법으로 스켈레톤 시점에서 한도윤이 스켈레톤을 넘어트리기 위해 발악하던 장면을 한도윤의 눈앞에 보이도록 시전했다.

"보이시죠? 한도윤 씨 모습."

그러자 허공에 나타난 자신의 영상 속 모습을 보고 한도윤의 동공이 지진이라도 난 것처럼 흔들린다.

"그, 그러니까··· 이건······."

"이렇게 사방을 다 볼 수 있거든요, 카메라는 그냥 조종자들 보라고 설치한 거고. 아무려면 이런 기능도 없이 그냥 스켈레톤을 빌려줬을까. 자. 이걸로 그 스켈레톤 모습 확인하면 당시 어떤 상황이었는지 전부 볼 수 있겠네요."

일부러 천천히 압박감을 주어 토설하도록 만들기 위해 시연은 물론 환영 마법까지 동원한 나.

"다만 문제가 있습니다. 이것도 스켈레톤 머리를 기준으로 시전이 가능한 능력이라 머리가 박살 난 지금 복구하는 데 시간이 걸린단 말이죠. 그리고 그렇게 복구에 시간을 허비하는 사이 스켈레톤의 인식은 더욱더 안 좋아질 거고. 그러니 한도윤 씨에게 한 번 더 기회를 주겠습니다."

내가 너 아니어도 다 알 수 있는데, 시간이 걸릴 것 같아 기회를 주는 거니 빨리 전부 불어.

물론 전부 뻥이지만.

"스켈레톤, 정말 넘어진 겁니까?"

그냥 빨리 말해.

말 안 하면 더 귀찮은 방법을 쓸 수밖에 없잖아.

"아직 한도윤 씨가 가진 정보에 가치가 있을 때 기회를 잡으세요. 제가 자력으로 모든 걸 알아냈을 땐 더 이상 이런 기회가 없을 테니까."

내 말에 안절부절못하는 한도윤.

"뭐, 싫으시면 일단 돌아가셔도 됩니다. 어차피 다 밝혀지면 검찰에서 조사를 해 주겠지, 뭐."

결국 초조함과 불안감에 안절부절못하던 한도윤이 말했다.

"소, 솔직히 말하면 선처해 주실 수 있으십니까?"

오케이!

낚였다!

"물론입니다."

"사, 사실은······."

결국 모든 걸 실토하고 만 한도윤

"그러니까, 스켈레톤은 아무것도 건드리지 않았는데 건물 일부가 그냥 갑자기 무너진 거다?"

"예··· 아마도 납기가 촉박해서 서두르다가 안전 설비를 대충 해 버리는 바람에 그렇게 된 것 같은데, 저도 정확한 건 모르겠습니다."

부실 공사 혹은 날림 공사는 건설사에게 있어서 최악의 악재 중 악재.

그래서 이걸 스켈레톤 탓으로 돌린 거다.

건물 시공의 문제가 아니라 사람보다 압도적으로 힘이 강한 스켈레톤의 오버 파워가 문제라는 식으로.

당연히 그걸 위해선 조종사이자 유일한 목격자인 한도윤을 매수하는 게 필수.

"얼마 받았다고요?"

"···8천 받았습니다."

고작 8천만 원에 회사 이미지를 팔아 치웠다라.

"스켈레톤 머리랑 카메라는 어떻게 한 겁니까?"

"현장에서 돌로 내리찍어서 박살 냈습니다."

이제야 모든 정황이 확실해졌다.

스켈레톤에게 모든 일을 덮어씌우기 위해 한도윤을 매수하여 스켈레톤의 실수로 위장하고, 증거인멸을 위해 스켈레톤의 머리와 카메라를 부숴 버린 거다.

"누가 그런 제안을 한 겁니까?"

"현장 소장이었습니다."

"그래요?"

정말 현장 소장 단독 결정이었을까?

아직은 모르겠다.

솔직히 지금 당장은 증거라 할 게 아무것도 없으니까.

'절대 그냥 못 넘어가지.'

내가 갖은 노력 끝에 쌓아 올린 스켈레톤의 신뢰도와 이미지를 훼손하다니.

관련되어 있는 모든 사람을 잡아서 모조리 작살낸다.

만약 건설사 전부가 연관되어 있으면 건설사 전체를 박살 내는 한이 있더라도.

그간 좋은 사람으로 보이기 위해 노력했지만, 이건 선을 넘어도 너무 많이 넘었단 말이지.

나는 잠시 고민하다 한도윤의 어깨를 두드리며 말했다.

"한도윤 씨, 어쩌다 보니 자기도 모르게 가담한 거죠?"

일단 이놈을 살살 달래서 정보를 캐내야지.

한도윤이 격하게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무, 물론입니다! 집에 부양해야 할 가족이 있다 보니 저도 모르게······."

나는 친절하게 웃으며 말했다.

"그럼 저 좀 도와주실 수 있으십니까. 한도윤 씨가 조금만 도와주면 일이 아주 수월하게 풀릴 것 같은데."

40화

한적한 카페 구석에 앉은 건설 소장이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젠장."

그때 사고만 생각하면 욕이 절로 나온다.

워낙 공사가 급해 작업을 서두르다 보니 미흡하게 설치했던 안전 설비.

그게 모든 문제의 발단이었다.

"그렇게 무너질 줄 알았냐고."

미흡한 안전 설비로 인해 건물의 일부가 붕괴되며 아수라장이 된 공사 현장.

다행히 인명 피해는 없었지만 불안전과 부실 공사는 건설사의 신뢰도에 어마어마한 타격이 가는 일이었다.

특히 조만간 큰 공사 수주를 앞두고 있는 상황이기에 더욱 그랬다.

"조만간 있을 큰 공사가 한두건이 아닌데 이것 하나 때문에 줄줄이 떨어지면··· 어휴."

그래서 생각해 낸 게 바로 붕괴 현장에 있던 스켈레톤에게 모든 죄를 뒤집어씌우는 것이었다.

그걸 위해 스켈레톤 조종사와 만나 8천만 원에 합의를 본 건설 소장.

분명 여기까지는 순조로웠다.

갑자기 그 스켈레톤 조종사로부터 급한 연락이 오기 전까진.

"뭔데 갑자기 보자는 거야? 자꾸 봐서 좋을 것 없는데."

그때 카페 문이 열리며 들어오는 한도윤.

한도윤이 주변을 살짝 살펴보고는 건설 소장 앞에 앉으며 말했다.

"안녕하십니까."

"예, 한도윤 씨. 무슨 일로 보자 하신 겁니까?"

그러자 한도윤이 어색하게 웃으며 말했다.

"그게, 사실 일이 잘 마무리되었나 궁금해서요."

"예?"

"걱정되더라고요, 혹시 걸리면 큰일이니까. 그 사고를 스켈레톤이 일으킨······."

그러자 소장이 검지를 입으로 가져다 대며 말했다.

"쉿. 뭐 하시는 겁니까. 정 말하고 싶으면 그 사건 정도로만 이야기하세요. 뭐 좋은 이야기라고."

"아. 저도 모르게."

소장이 조용한 목소리로 말했다.

"아무 문제 없이 처리될 겁니다. 애초에 증거가 없으니까."

"만약 증거가 있으면 어떡하죠?"

"뭐라고요?"

"혹시나 해서 하는 말입니다."

"그럴 일 없습니다. 현장에 CCTV 달려 있는 것도 아니고 목격자도 한도윤 씨 혼자니까요."

"그렇다면 다행인데, 혹시 모르는 일 아닙니까."

"말도 안 되는 소리 하지 말고, 용건은 그게 답니까? 앞으로 겨우 이런 용건이면 연락하지 마세요, 우리는 만나서 좋을 게 하나도 없으니까."

그렇게 소장이 자리에서 일어나려 하자 한도윤이 급하게 소장의 팔목을 잡으며 말했다.

"아니, 뭘 그렇게 급하게 가십니까. 이제 막 만났는데, 커피라도 마저 마시고 가시죠."

그러자 소장이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말했다.

"우리가 지금 여기서 느긋하게 커피나 마실 상황입니까?"

"아무튼 조금만 더 있다 가시죠."

한도윤의 말에 결국 자리에 앉은 소장.

그러자 침묵하던 한도윤이 말했다.

"그런데 스켈레톤이 없었으면 붕괴 사고를 어쩌실 생각이셨습니까?"

그 사건이라 부르라고 말한 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또다시 대놓고 그걸 언급하는 한도윤.

그런 한도윤을 바라보던 소장이 말했다.

"설마 8천이 부족해서 이러는 겁니까?"

"예? 아, 아닙니다, 그런 거."

"그런 게 아니면 왜 이렇게 갑자기 꼬치꼬치 캐묻는 겁니까?"

귀도 얇고 멍한 구석이 있어서 손쉽게 매수할 수 있었던 한도윤.

그런데 갑자기 자신을 부르고는 이상한 이야기를 자꾸 늘어놓으니 소장도 뭔가 점점 더 이상함을 느끼기 시작했다.

'뭐지. 뭔가 이상한데?'

그때 소장의 눈에 이상한 점이 한 가지 더 눈에 띄었다.

'그러고 보니 아까부터 자꾸 왜 왼쪽 가슴을 만지는 거야?'

말하는 내내 한번씩 자신의 왼쪽 가슴을 툭툭 건드리는 한도윤.

'잠깐만. 설마······.'

소장이 잠시 침묵하다 자리에서 일어나며 말했다.

"아무튼 한도윤 씨, 너무 걱정 마세요. 의심을 할 수는 있지만 증거가 없다면 아무 소용도 없으니까."

그렇게 몸을 일으키는 척하던 소장이 갑자기 한도윤의 멱살을 쥐더니 한도윤의 옷에 손을 집어넣는다.

"자, 잠깐!"

그리고 소장이 한도윤의 옷에서 손을 뺐을 때, 그의 손에는 녹음기가 들려 있었다.

소장이 녹음기를 흔들며 말했다.

"이거 뭡니까. 지금 대화 녹음한 거예요? 그래서 일부러 내 증언 유도한 거고?"

한도윤이 식은땀을 뻘뻘 흘리며 말했다.

"아, 아닙니다. 요즘 불안해 가지고 혹시 몰라서······."

"날 협박해서 돈 더 받아 내려고? 아니야. 한도윤 씨에게 그 정도 깜냥은 없단 말이지."

소장이 싸늘한 표정으로 말했다.

"누가 시킨 겁니까."

그러자 울상이 된 한도윤이 말했다.

"그, 그게, 그러니까."

"설마 세론?"

소장의 말에 식은땀만 뻘뻘 흘리는 한도윤.

"한도윤 씨, 우리에게 문제가 생기면 한도윤 씨도 절대 무사할 수 없습니다. 왜? 내가 억울해서 그냥 있지 않을 테니까. 반대로 우리가 살면 한도윤 씨도 사는 거고. 한마디로 우리는 공동 운명체라는 말입니다."

소장이 조용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러니 솔직히 말해 봐요. 정 부담스러우면 대충이라도. 도대체 뭐가 어떻게 된 겁니까? 뭔지를 알아야 대책을 세우지. 그러고보니 아까 증거 어쩌고저쩌고 하던데... 설마 증거가 있는 겁니까?"

증거라는 말에 흠칫하는 한도윤을 보고 더욱 확신한 소장.

'증거가 있다고? 하지만 정말 증거가 있다면 이런 법적 효력도 없는 녹음 파일 따위를 따오라고 했을 리가 없는데?'

잠시 고민하던 소장이 한결 느긋해진 표정으로 말했다.

"한도윤씨. 저는 한도윤씨 편입니다. 정말 증거가 있는 겁니까?"

"모. 모릅니다."

"한도윤씨. 자꾸 이렇게 비협조적으로 나오시면 우리 모두 공멸입니다. 차라리 솔직하게 말해주시죠. 정말 증거가 있다 해도 상관없으니까. 우리끼리 말만 잘 맞추면 빠져나갈 구멍 하나 못 만들겠습니까?"

소장의 말에 한도윤이 마른침을 삼키며 말했다.

"빠져나갈 구멍이요?"

소장이 녹음기를 한도윤에게 돌려주며 말했다.

"만약 나에게 말해 주고도 내가 별다른 대책을 못 세운다? 그럼 이거 가져가서 원래 계획대로 하세요. 대신 내가 세운 대책이 마음에 들면 나와 함께하고. 어떻습니까?"

소장의 딜에 한도윤이 더욱더 흔들린다.

"정말입니까?"

"정말입니다. 그러니 말해 보세요."

결국 소장의 설득에 입을 연 한도윤.

그러자 그 이야기를 모두 들은 소장이 굳은 표정으로 말했다.

"블랙박스 능력이 있다라······."

"예. 제가 제 눈으로 확인했습니다."

"그런데 이상하네요. 한지혁 대표는 손짓 한 번에 스켈레톤을 순식간에 만드는 사람 아닙니까? 그런데 복구에 시간이 걸린다? 이건 뭔가 이상한데. 증거를 직접 보지는 못했다고요?"

"직접 보지는 못했습니다."

소장이 씨익 웃으며 말했다.

"이건 아무리 봐도 한도윤 씨가 낚인 것 같은데요. 아마 능력이 되었든 몰래 카메라를 썼든 마치 블랙박스 능력이 있는 것처럼 연출한 것 아닐까요?"

"설마······."

"만약 정말 증거가 있다면 이렇게 한도윤 씨를 설득해서 불법 녹취 같은 법적 효력이 없는 증거를 따 오라 했을 리가 없죠. 확실합니다."

소장이 한도윤을 바라보며 말했다.

"저 한번 믿어 보시죠. 이래 봬도 산전수전 다 겪으며 여태까지 살아남은 놈입니다."

잠시 고민하던 한도윤이 말했다.

"그럼 어떻게 할까요?"

"일단 증거가 있을 경우와 없을 경우를 상정해서······."

*

한도윤과 소장이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카페 근처의 한 벤치.

그 벤치에 앉은 나는 청력 강화 마법을 이용해 콧노래를 부르며 그둘의 대화를 모두 듣고 있었다.

"역시 한 번 배신한 놈은 또 배신한다니까."

내가 한도윤에게 요구한 것은 바로 녹음기를 들고 가 그날 있었던 진상을 담아 오라는 것.

하지만 애초부터 나는 한도윤을 믿지 않았다.

내 협박 몇 번에 지레 겁먹고 술술 부는 놈의 어디를 보고 믿겠나.

그래서 아예 처음부터 한도윤이 소장을 만나러 간다는 말을 듣고 따라왔지.

물류 창고 화재 때처럼 불길이 넘실거리고 사람들이 의식을 잃어 특정이 힘든 상황이라면 몰라도, 이미 타깃팅이 완료된 사람 하나 멀리서 추적하는 것 정도는 일도 아니니까.

"그나저나 소장, 제법이야. 아예 게임이 안되는데?"

산전수전 다 겪었다는 게 거짓말은 아닌지 눈치가 백 단이다.

한도윤의 어색한 포인트를 집어내 녹음기를 찾아내는 것도 모자라 역으로 설득하여 다시 끌어들이다니.

하지만 그래 봤자 결국 독 안에 든 쥐다.

그때 내 귀에 둘의 대화가 들려온다.

-일단 오늘은 서로 말을 맞춰서 녹음 파일을 만든 다음 건네주어 시간을 끕시다. 음··· 한도윤 씨가 저에게 돈을 더 요구하는 것처럼 꾸미는 거죠. 아. 참고로 일이 잘 풀리면 정말로 더 드리고요.

-알겠습니다.

-지금 문제는 스켈레톤의 안전 제동이 작동하지 않은 것에 대해 한지혁 대표가 의문을 품은 것 아닙니까? 후. 그런 기능이 있는 줄은 몰랐는데. 이건 제가 좀 고민해 보겠습니다.

그렇게 둘이서 향후 대책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어 간다.

나는 피식 웃으며 말했다.

"백날 고민해 봐라, 이미 다 녹음 중인데."

청력 강화는 말 그대로 멀리 떨이진 곳의 음파 파동을 강화해 내 귀로 전달하는 거다.

당연히 이 음파 파동을 내 귀가 아닌 다른 곳에 전달하는 것도 가능하지.

그 대상은 당연하게도 옆에 놓여 있는 내 녹음기.

물론 이런 불법 녹취는 법적인 증거로 쓸 수는 없다.

하지만 언론 플레이와 내 행동의 정당성을 부여하는 용도로는 충분하지.

동시에 스켈레톤의 억울한 누명도 벗을 수 있고.

그때 소장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잠시 화장실 좀.

그러곤 갑자기 밖으로 나오더니 누군가와 통화를 하기 시작한다.

-김 전무님, 일이 복잡해졌습니다. 한지혁 대표가 눈치챘습니다.

역시 윗선도 개입해 있었구나.

나는 청력 강화 마법을 핸드폰 쪽에 더욱 강하게 적용하였다.

-이런 젠장! 눈치챘다고요?

-그러니까······.

소장의 설명을 들은 김 전무가 말했다.

-안전 제동? 그런 것 하나 확인 안 하고 뭐 한 겁니까!

그러자 소장이 어이없다는 목소리로 말했다.

-그 다급한 상황에서 그걸 확인할 여유가 어디 있습니까?

-그래도 미리미리 확인을 했어야 할 것 아닙니까!

-아니, 그걸 어떻게 미리··· 으음. 죄송합니다.

할 말이 많은 듯하지만 결국 조용히 죄송하다고 하고 참아 낸 소장.

-한도윤이 이미 전부 불었다고요?

-예. 하지만 증거는 없는 것 같습니다.

-증거는 없다라······. 그럼 그냥 모르는 척 밀어붙이세요.

그러자 잠시 침묵하던 소장이 말했다.

-차라리 지금이라도 한지혁 대표와 쇼부를 보는 건 어떻습니까. 아직 증거가 없으니 우리 실수였다 인정하고 조용히 넘어가도록 하는 겁니다.

이제 와서?

미안하지만 받아 줄 생각 없다.

녹취 파일이 이미 내 손에 들어왔거든.

너희가 지금 대화하는 내용까지도 전부.

-그건 안 됩니다. 지금 회장님께서 심혈을 기울이고 있는 공사 입찰이 조만간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내가 맡은 공사에서 사고가 난 걸 인정하면 내 꼴이 뭐가 됩니까? 절대 회장님이 아시면 안 됩니다.

오호?

회장은 모른단 소리네?

그렇다면 김 전무라는 저놈이 머리라는 소리구만.

-어떻게든 깔끔하게 해결하세요! 만약 이것만 잘 해결해 주면 소장님 미래는 제가 책임져 드리죠.

-후우. 알겠습니다.

그렇게 통화를 마치고 카페로 돌아간 소장.

그 후로도 소장과 한도윤이 이런저런 이야기를 이어 갔지만, 별다른 영양가는 없었다.

"이놈들을 어떻게 조지지?"

단순히 법적 절차를 밟는 것 정도로는 성이 안 찬다.

상대는 도급 순위 40위에, 한 해 수주액만 9천억에 달하는 건실한 중견 기업인 태유 토건.

거기다 사망자가 생긴 사고도 아니니, 보나 마나 벌금 좀 내고 소장 정도에서 꼬리를 끊고 말 게 뻔하지 않나.

저들이 스켈레톤에게 죄를 뒤집어씌운 건 법적 처벌이 두려워서가 아니라 부실 공사와 안전 태만으로 인해 다음 공사 입찰에 영향이 가는 걸 막기 위함일 뿐이니까.

나는 잠시 고민하다 말했다.

"조만간 세론 그룹 발족식이지."

세론 그룹을 만들어 정식으로 회장 자리에 오르는 그때.

이 녹음 파일로 화려한 축포를 터트리고 정식으로 놈들에게 선전포고 한 다음 확실하게 박살 낸다.

다시는 그 누구도 세론을 상대로 이딴 짓을 하지 못하도록.

나는 히죽 웃으며 말했다.

"그동안 내가 너무 착하게만 살았지? 보여 줄게, 뭐가 진짜 슈퍼 을인지."

*

스켈레톤 사고로 인해 뒤숭숭한 분위기에도 큰 차질 없이 준비된 세론 그룹 발족식.

그사이 지들끼리 이야기를 맞춘 한도윤이 어설프게 녹음된 파일을 들고 와서는 소장이 계속 주제를 피한다며 시간을 끌었지만, 뭐··· 크게 중요하지 않으니 무시하고 넘어갔지.

아무튼 그렇게 정식으로 시작된 발족식에는 이제 60에 육박하는 SR 전자 협력 업체 대표들과 스포츠 메이커 고위층 그리고 건설사 관계자 등 세론과 깊은 관련이 있는 회사 사람들이 빼곡하게 참석하고 있었다.

"우선 저희 세론은 운반형 스켈레톤을 시작으로······."

미리 준비해 둔 사회자가 짧디짧은 세론의 연혁을 최대한 길게 뽑아내며 발족식을 진행해 나간다.

그렇게 모든 사전 준비가 끝나고 드디어 단상에 오른 나.

나는 미리 준비한 끈을 세론의 고위급 직원들과 함께 가위로 자르며 말했다.

"자. 이제 세론 그룹이 정식으로 발족했습니다!"

내 말에 일어나 박수를 치는 참석자들.

나는 그들을 향해 살짝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그렇게 박수가 잦아들자 나는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여러분의 환대, 정말 감사합니다. 하지만 마냥 기뻐할 수만은 없군요. 아시겠지만 최근 스켈레톤으로 인한 사고가 발생하지 않았습니까?"

뭔가 심상치 않은 분위기를 느꼈는지 조용히 자리에 착석한 참석자들.

그때, 내가 손짓을 하자 문이 열리며 대기하던 기자들이 우르르 들어온다.

나는 그런 기자들을 보며 말했다.

"스켈레톤으로 인한 사고, 참 황망하더군요. 저는 그간 스켈레톤과 사람의 공존을 위해 무던히 노력해 왔습니다, 모두가 스켈레톤을 편리한 소환수라 생각하도록 하기 위해서. 그래서 스켈레톤엔 각종 안전장치가 달려 있고요. 그런데 사고가 터졌다는군요."

나를 향해 터지는 카메라 플래시들.

"도저히 믿기지 않았습니다. 물론 조금 있다가 여기 있는 모든 분들께 시현 기회를 드리겠지만, 스켈레톤은 비유하자면 온몸에 충돌 방지 센서가 덕지덕지 달려 있는 로봇이나 다름없습니다. 그런데 그런 스켈레톤이 사고를 내다니."

나는 잠시 침울한 척 연기한 다음 말했다.

"그래서 조사를 해 봤습니다, 도대체 뭐가 어떻게 된 건지. 제 소환수에 허점이 혹시 있었는지. 그런데 우연찮게, 정말 우연찮게 재미있는 것을 입수했습니다. 함께 들어 보시죠."

내 말이 끝나자 스피커에서 흘러나오는 한도윤과 소장의 목소리.

-혹시 걸리면 큰일이니까, 그 사고를 스켈레톤이 일으킨······.

-한도윤 씨, 우리에게 문제가 생기면 한도윤 씨도 절대 무사할 수 없습니다. 왜? 내가 억울해서 그냥 있지 않을 테니까. 반대로 우리가 살면 한도윤 씨도 사는 거고. 한마디로 우리는 공동 운명체라는 말입니다.

그렇게 사실상 모든 것을 실토하는 둘.

그러다 이번엔 소장과 김 전무의 대화로 이어진다.

-심혈을 기울이고 있는 공사 입찰이 조만간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내가 맡은 공사에서 사고가 난 걸 인정하면 내 꼴이 뭐가 됩니까?

-어떻게든 깔끔하게 해결하세요! 만약 이것만 잘 해결해 주면 소장님 미래는 제가 책임져 드리죠.

그렇게 모든 녹음 내용이 끝나자 침묵하는 사람들.

그리고 그런 참석자 중엔 이 모든 일의 발단인 태유 토건의 회장도 있었다.

태유 토건의 회장이 창백해진 표정으로 말했다.

"자, 잠깐만요, 한 대표님. 이건 뭔가 잘못······."

나는 그런 태유 토건 회장을 바라보며 말했다.

"한지혁 회장, 입니다."

"하, 한지혁 회장님, 뭔가 착오가 있던 게 아닐지······."

당황하는 것도 당연했다.

김 전무 말에 의하면 회장은 전혀 모르고 있던 일이니까.

하지만 그렇다고 본보기로 처벌하는 건데 그냥 김 전무만 쳐 내고 끝내기에는 좀 그렇잖아?

그래서 일부러 회장과 관련된 녹음 내용은 빼 버렸지.

확실하게 손을 봐 주어 다시는 이런 일이 발생하지 않게 하기 위해서.

나는 피식 웃으며 말했다.

"제가 설마 이런 중요한 자리에서 허위 사실이라도 유포하겠습니까? 아! 물론 이게 법적 효력 없는 건 압니다. 하지만 뭐, 검찰에 정식으로 수사를 의뢰하면 조사를 해서 결과가 나오겠죠? 하지만 저는 그걸로 만족 못 합니다. 제 스켈레톤의 가치와 그간 제가 쌓아 온 이미지를 훼손한 태유 토건을 블랙리스트에 올리고 모든 협력을 보이콧하겠습니다."

건설용 스켈레톤을 일절 빌려주지 않겠다는 말.

물론 이것만으로는 부족하다.

"그건 그렇고, 여기 보운 건설 관계자분 계십니까?"

그러자 흥미롭게 지금 상황을 바라보고 있던 한 남자가 손을 들어 올리며 말했다.

"제가 보운 건설 대표입니다만."

"잠시 이쪽으로 와 주실 수 있을까요?"

내 말에 의아한 표정으로 단상에 오른 보운 건설 대표.

나는 마이크의 음량을 끄고 조용한 목소리로 속삭였다.

"듣자 하니 태유 토건이랑 조만간 있을 경기도 재건축 공사를 두고 수주전을 펼치고 계신다던데, 맞습니까?"

"맞습니다."

"만약 제가 보운 건설이 필요로 하는 스켈레톤을 최우선적으로 배치해 드린다면··· 경기도 재건축 사업에서 태유 토건 제칠 수 있으실까요."

스켈레톤을 원하는 회사는 많지만 숙련 인력이 부족해 모든 수요를 채우지 못하는 상황.

이때 내가 태유 토건은 보이콧하고 경쟁업체에는 반대로 스켈레톤을 몰아주는 거다.

태유 토건이 아무것도 하지 못하도록.

내 말을 완전히 이해한 보운 건설 대표가 말했다.

"그렇게 밀어주시는데도 입찰을 따내지 못한다면 바보지요."

"좋습니다. 그럼 발족식 끝나고 더 이야기를 나눠 보죠. 아. 그리고 이건 우리 둘만의 비밀입니다?"

"물론입니다."

마음 같아선 대놓고 작살을 내고 싶으나, 그렇게 되면 공정거래 위반은 물론 사적 복수라며 내가 피해를 입을 수 있으니 조용하게, 하지만 확실하게 압박한다.

그렇게 보운 건설 대표가 희희낙락한 표정으로 단상을 내려간다.

그러자 경쟁업체 대표의 표정이 환해진 걸 보고 당황해하는 태유 토건 회장.

나는 그런 태유 토건 회장을 바라보며 말했다.

"앞으로 잘 부탁드립니다, 회장님."

기대하라고.

이건 시작에 불과하니까.

41화

태유 토건 회장이 김 전무에게 외쳤다.

"이 멍청한 새끼야! 도대체 일을 어떻게 처리하는 거야!"

그러자 김 전무가 땀을 뻘뻘 흘리며 말했다.

"죄, 죄송합니다."

"처리하려면 깔끔하게나 처리하지, 왜 사태를 이 지경까지 키우냐고!"

김 전무가 핑계를 대듯 말했다.

"이미 몇 번 사고가 있었지 않습니까. 이번에도 비슷한 사고가 또 발생하면 회사 신뢰도에 큰 피해가 올 거라 생각해서······."

"그때 사고 난 것도 전부 네가 담당한 공사들이잖아!"

성과를 내기 위해 공사를 무리하게 진행하며 그간 크고 작은 사고를 쳐 온 김 전무.

이번 붕괴 사고 역시 그런 성급한 일 처리의 연장선상이었다.

태유 토건 회장이 두 손으로 얼굴을 감싸 쥐며 말했다.

"도대체 왜··· 그냥 가만히 있어도 되는데 왜 자꾸 일을 벌이냐고."

"죄, 죄송합니다."

"한 회장 찾아가 보라고 한 건 어떻게 됐어."

이미 김 전무가 이 일과 연관되어 있다는 건 녹음 파일 공개로 인해 모두 밝혀진 상황.

그렇기에 태유 토건 회장은 김 전무에게 당장 한지혁을 찾아가 사죄하고 상황을 정상화하라 지시했다.

하지만.

김 전무가 땀을 뻘뻘 흘리며 말했다.

"그, 그게, 만나 주지 않았습니다."

"이런 젠장."

발족식에서 있던 한지혁의 태유 토건 보이콧 발언.

분명 건설용 스켈레톤의 압도적인 가성비를 생각하면 태유 토건에게 있어서 큰 악재인 건 사실이었다.

하지만 그보다는 앞으로 잘 부탁한다던 한지혁의 발언과 경쟁업체인 보운 건설 대표의 즐거워하던 표정이 더욱 걸리는 태유 토건 회장.

그렇기에 김 전무에게 사과를 지시했지만 만나 주지조차 않는다니.

"회장님, 세론 렌탈의 스켈레톤이 효율이 좋다지만, 어차피 공급이 부족해 모든 인력을 대체할 정도는 아니지 않습니까. 그러니 그 건방진 놈에게 휘둘릴 것 없이 그냥 당당하게 나가는 건 어떻습니까?"

그러자 태유 토건 회장이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말했다.

"뭐? 너, 지금 진심으로 말하는 거냐?"

"···예?"

건설용 스켈레톤이 본격적으로 건설업에 알려지면서 원하는 업체는 많지만 공급은 부족한 경우가 허다했다.

건설용 스켈레톤 10개조가 필요하면 1개조 배정 받기도 힘들 정도로 말이다.

당연히 단기적으로 보면 태유 토건에게 있어서 건설용 스켈레톤이 아쉽기는 하지만 절대적인 수준은 아니란 말.

하지만 장기적으로 보면 이야기가 완전히 달라졌다.

"이미 건설사들 대부분 건설용 스켈레톤을 써 보고 모두 만족하고 있어. 세론 렌탈도 그에 발맞춰 미친 듯한 속도로 스켈레톤을 늘리고 있고. 한마디로 대한민국에 있는 모든 잡부 일을 건설용 스켈레톤이 가져가는 건 시간문제란 말이야. 그럼 그때 가서도 같은 소리를 할 거야? 다들 건설용 스켈레톤을 써서 인건비를 절감하는데, 우리만 사람 써서 공사비가 비싸게 들면 그게 경쟁이 되겠어?"

태유 토건 회장이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한심해도 이렇게 한심할 수가. 멀리 내다볼 수 있는 안목을 기르라고 그렇게 말했는데··· 어떻게 나아지는 게 하나도 없지?"

툭하면 사고를 치고, 사고를 수습하겠다고 벌인 일로 오히려 세론 그룹과 척만 져 버린 걸로 모자라, 제대로 된 안목조차 가지지 못한 김 전무.

일반적인 임원이었다면 당장 모든 죄를 뒤집어씌운 다음 세론 그룹에게 보여 주기식으로 내쫓아 버렸을거다.

하지만 태유 토건 회장이 이런 수준 미달의 사람을 임원으로 계속 데리고 있는 이유는 간단했다.

바로 김 전무가 자신의 유일한 아들이기 때문.

"후우. 이미 지나간 일은 어쩔 수 없지. 일단 검찰 조사 받으면서 은폐 지시 한 건 인정해. 이미 녹음 파일이 나온 이상 그건 어쩔 수 없으니까. 대신 안전 조치에 대해선 철저히 부정해. 사고는 현장 소장의 부주의 때문이고, 너는 그냥 수습하다 보니 어쩔 수 없이 그렇게 된 걸로 몰고 가라고."

그러자 김 전무가 살짝 눈치를 보며 말했다.

"그런데 어차피 불법 녹음이라 효력이 없지 않나요? 굳이 제 입으로 인정할 필요가······."

그러자 태유 토건 회장이 외쳤다.

"아직도 상황 파악이 안 돼!? 증거 효력이 없는 건 재판에서나 의미 있지, 이미 네가 지시한 게 다 까발려졌는데 그게 무슨 소용이야?!"

"아, 알겠습니다."

"어차피 사망자도 없으니 벌금 정도로 끝낼 수 있어. 내가 최 변한테 연락해서 변호인단 꾸리라고 할 테니까 반성하는 척이라도 하고 있으란 말이야."

"예, 회장님."

"이게 진짜 마지막 기회다. 나한테 있어서 가족도 중요하지만, 태유 토건도 내가 평생을 바쳐 키워 온 내 자식이야. 알아들어?"

"알겠습니다."

"쯧."

그렇게 김 전무에게 행동 지침을 내리던 그때.

태유 토건 회장에게 내선 전화가 걸려 온다.

"왜."

-회, 회장님! 큰일 났습니다. 보운 건설에서 경기 재건축 조합이랑 접촉했는데··· 공사비를 15퍼센트 줄이겠다고 했답니다!

"뭐? 15퍼센트!?"

아파트 재건축 사업은 소수의 브랜드 건설사를 제외한 대부분 건설사의 경쟁력이 비슷비슷하기에 보운 건설이나 태유 토건이나 조합에게 제시할 수 있는 공사비는 비슷한 수준이었다.

그런데 갑자기 15퍼센트를 다운한다고?

그때 태유 토건 회장의 머릿속에 한지혁과 대화를 하더니 환한 모습으로 내려가던 보운 건설 대표와 잘 부탁한다던 한지혁의 말이 떠오른다.

태유 토건 회장이 창백한 표정으로 말했다.

"설마······."

그때 태유 토건 회장의 핸드폰이 울리기 시작했다.

전화를 건 사람은 유성 건설 회장.

"예, 회장님."

-김 회장, 잠깐 좀 볼 수 있을까?

*

유성 건설 회장의 연락을 받고 바로 달려간 김 회장.

김 회장이 도착하자 잠시 침묵하던 유성 건설 회장이 말했다.

"서울 재건축 컨소시엄 말이야."

큰 규모의 공사를 따내기 위해 여러 건설사가 힘을 합쳐 구성하는 컨소시엄.

서울 재건축 공사의 규모가 워낙 크기에 현재 유성 건설을 필두로 모두 4개의 회사가 컨소시엄을 구성한 상태였다.

그리고 그 컨소시엄을 구성한 4개의 회사 중 가장 큰 회사이자 주축이 바로 유성 건설.

"태유 토건이 빠져 줘야 될지도 모르겠어."

갑작스러운 말에 김 회장이 경악하며 말했다.

"그게 갑자기 무슨 말씀이십니까!"

보운 건설의 공사비 15퍼센트 충격이 채 가시지도 않았는데, 이제는 컨소시엄에서 빠지라는 소리에 김 회장은 황당하다 못해 기가 막힐 정도였다.

두 사업 모두 태유 토건이 사활을 걸고 추진해 온 핵심 사업인데 둘 모두 동시에 흔들리다니.

당연하게도 김 회장은 한 사람의 이름이 자동으로 떠오를 수밖에 없었다.

"한지혁입니까."

유성 건설 회장이 쓴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맞아."

"뭐라고 하던가요."

"정말 태유 토건이랑 함께하겠냐고 하더군. 후회 안 할 자신 있냐고. 그리고 보운 건설을 주목하라고 하고는 그걸로 끝이었어. 그런데 마침 보운 건설에서 공사비 15퍼센트 절감하겠다는 소식이 들려오길래 확실히 이해했지."

직접적인 언급은 없지만 한지혁이 하고자 하는 말은 간단했다.

블랙리스트인 태유 토건을 안고 가면 컨소시엄의 경쟁사 쪽에 보운 건설처럼 스켈레톤을 몰아주겠다는 말.

김 회장이 입술을 깨물며 말했다.

"어떻게 이렇게까지······."

태유 토건을 피 말리기 위해 경기도 재건축에 이어 컨소시엄에까지 손을 뻗은 한지혁.

방법은 간단했지만, 그 결과는 하나하나가 모두 태유 토건에게 있어서 치명적이었다.

"그러지 말고 한 회장이랑 잘 이야기해서 풀어 보는 건 어떤가?"

"아들놈을 보냈는데, 만나는 걸 거절당했답니다."

"아주 작정했나 보군. 일자리 관련해서 워낙 저자세길래 순한 사람인 줄 알았는데, 전혀 아니었어."

태유 토건 회장이 입술을 깨물며 말했다.

"이건 정말 아니지 않습니까? 이 많은 회사들이 세론 하나에 휘둘리다니."

"머리를 잘 쓴 거지. 만약 세론이 스켈레톤으로 건설사를 차리고 직접 수주전을 펼쳤다면 아마 지금이랑은 상황이 많이 달랐을 거야. 하지만 세론은 스켈레톤을 모두가 이용할 수 있도록 만들어 주었어. 우리 같은 건설사 입장에서는 대환영이지. 인건비가 줄어들고 납기도 줄이면 그만큼 돈을 더 벌 수 있으니까."

유성 건설 회장이 김 회장을 바라보며 말했다.

"당연히 모두가 스켈레톤을 원하고 있는 이상 자네 편을 들어 줄 사람은 많지 않을 거야. 아니, 어쩌면 오히려 반길지도 모르지, 태유 토건이 자기 회사랑 수주 경쟁을 해 주기를. 그럼 세론에서 스켈레톤을 밀어줄 테니까."

태유 토건과 경쟁하기를 희망하는 경쟁업체들이라니.

세상에 이렇게 끔찍한 일이 또 어디 있단 말인가.

이렇게 계속 세론이 태유 토건이 하는 일마다 전부 개입하고 방해를 하면 태유 토건이 살아남을 길은 없었다.

유성 건설 회장이 안타깝다는 표정으로 말했다.

"아무튼 이번 일은 미안하게 됐어. 15퍼센트가 적은 돈이 아닌 건 자네도 잘 알지? 그 돈이면 아파트 전체를 고급화해 프리미엄 단지로 꾸밀 수 있을 정도야. 이건 도저히 상대가 안 된다고."

그러자 김 회장이 다급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 그러지 마시고 일단 컨소시엄을 유지해 주시면 제가 방법을 찾아보겠습니다."

"그건 방법을 찾고 난 후의 이야기야. 나는 자네와의 인연을 생각해 어느 정도는 기다려 줄 생각이 있지만, 나머지 두 회사가 가만히 있을 리 없지 않나."

결국 김 회장이 입술을 깨물며 말했다.

"제가 직접 한지혁 회장과 만나 보겠습니다."

"그렇게 해서 잘 풀린다면 더할 나위 없지."

그렇게 김 회장이 자리에서 일어나자 침묵하던 유성 건설 회장이 말했다.

"충고 하나 해 줘도 될까."

"달게 받겠습니다."

"가족? 중요하지. 하지만 사업이 무너지면 가족도 무너지는 법이야. 정 버릴 수 없으면 버리는 시늉이라도 하라고. 무슨 말인지 이해하나?"

여차하면 아들을 버리는 척이라도 하라는 유성 건설 회장의 조언.

결국 태유 토건 회장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이해했습니다."

*

전방위로 압박을 가하며 태유 토건이 입질을 넣는 모든 곳에 방해질을 하자 얼마 지나지 않아 찾아온 태유 토건 회장.

"미안하게 됐습니다, 한 회장님."

나는 느긋한 표정으로 말했다.

"제가 뭘 했다고요. 그냥 마음에 드는 회사들에 스켈레톤들 몰아준 것뿐인데."

일부러 퉁명스럽게 받아쳤는데 태유 토건 회장은 별다른 반응 없이 말했다.

"저번 일은 저희 불찰입니다. 입이 두 개라도 할 말이 없습니다. 그러니 성실하게 검찰 조사에 응해서 모든 실상을 완전히 밝혀 관련자를 모두 문책하겠습니다."

제법 자존심을 내려놓고 왔구나.

이러면 좀 대화를 해 볼 만하지.

"참고로 저는 이번 일에 대해 전혀 모르고 있었습니다. 이 일은 김 전무, 그러니까 제 아들놈이 독단으로 저지른 짓입니다. 하지만 아들이라고 해서 예외로 두지는 않겠습니다. 법적 처벌이 필요하다면··· 항소 없이 죗값을 치르게 하겠습니다."

나는 히죽 웃으며 말했다.

"뭔가 착각하고 계시나 본데, 저는 검찰 조사에 애초부터 기대 자체가 없어요."

"절대 꼬리 자르려는 게 아니······."

나는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꼬리 문제가 아니라, 검찰에서 조사하는 것 정도로는 제 분이 안 풀린다는 말입니다."

사망 사고라면 아마 대대적인 조사를 통해 상당한 수위의 처벌이 나오겠지만, 이건 단순히 부실 공사와 안전 수칙 위반 말고는 법적으로 제재할 무언가가 없다.

물론 이것만으로도 태유 토건이 받는 이미지 타격은 상당할 테지만, 고작 그걸로 내 스켈레톤을 걸고넘어진 거랑 퉁칠 수는 없잖아.

"그럼 제가 어떻게 하면 되겠습니까."

나름 건실한 중견 기업이 세론 블랙리스트 한번 오른 것 때문에 휘청거리다 백기 투항 해 온 걸 많은 건설사들이 실시간으로 지켜본 상황.

본보기는 이 정도면 충분한 것 같고, 슬슬 족집게 수술로 들어가 볼까?

"정말 회장님은 모르셨다는 거죠?"

"만약 저였다면 스켈레톤을 걸고넘어지지 않았을 겁니다. 이 정도까지는 예상 못 했지만 그래도 세론과 척을 져서 좋을 건 없으니까요."

나는 태유 토건 회장을 뚫어져라 바라보다 말했다.

"오케이. 인정해 드리죠. 그럼 확실하게 보여 주세요. 김 전무를 비롯한 이번 일과 관련된 모든 사람을 회사에서 내쫓는 겁니다."

그 정도는 예상했는지 태유 토건 회장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알겠습니다. 그 정도는 얼마든지······."

"그런데 말이죠."

나는 느긋한 표정으로 말했다.

"제가 뉴스를 보니 사고 친 오너 자식들이 나중에 은근슬쩍 회사로 돌아가는 경우가 많더란 말이죠?"

"······."

침묵하는 태유 토건 회장.

아마 내가 말한 것과 비슷한 생각을 하고 있었겠지.

하지만 내가 그걸 두고 볼 리가 없잖아?

"그러니 이번엔 블랙리스트 대상으로 태유 토건 전체가 아니라 김 전무를 비롯한 관련자들을 올리겠습니다."

"설마······."

나는 히죽 웃으며 말했다.

"간단하게 설명해서, 세론 블랙리스트에 오른 사람들과 일을 하는 모든 사람이 우리 블랙리스트가 된다는 거죠."

컨소시엄이 태유 토건 때문에 한 패거리로 묶이는 걸 우려해 쫓아내려 한 것처럼 말이다.

만약 은근슬쩍 김 전무를 다시 회사로 복귀시키거나 아들을 위해 새로운 회사를 차려 준다?

그럼 그 회사는 전부 다 블랙리스트가 되는 거다.

즉, 이 바닥에서 세론과 척을 질 게 아닌 이상 절대 함께할 수 없는 왕따 같은 존재로 만들어 버린다는 말.

내 말을 이해한 태유 토건 회장이 마른침을 삼키며 말했다.

"언제까지 말입니까."

"평생."

운이 좋아서 인명 사고가 안 났을 뿐, 이번 사고는 사람이 죽었어도 전혀 이상할 게 없는 일이었다.

이런 일을 벌인 사람이 이쪽 업계에 남아 있도록 하는 건 좀 아니지 않아?

심지어 사고를 친 걸로도 모자라 수습한답시고 스켈레톤에게 죄를 뒤집어씌웠으니, 일말의 동정심도 없다.

"앞으로 평생 김 전무를 비롯한 관련자들과 관련되어 있는 회사는 보이콧 대상이 됩니다. 태유 토건이 아니라 그 어떤 회사라도."

그러자 태유 토건 회장이 입술을 깨물며 말했다.

"그건 너무 가혹하지 않습니까? 그 이야기대로라면 김 전무는 평생 이바닥에 발도 디디면 안 된단 소린데, 이건 사적 처벌이나 다름없습니다."

"그게 무슨 상관인데요. 그러는 아드님은 그렇게 배려심이 많아서 스켈레톤을 걸고넘어졌습니까? 세론에 있어서 스켈레톤은 알파이자 오메가인데?"

"한 회장님, 제가 부탁할 테니······,"

"아니면 뭐, 원래 하던 대로 할까요? 태유 토건 전체?"

이건 일종의 본보기다.

나를 건드리면 어떻게 되는지 확실하게 보여 주어 다시는 나를 상대로 이런 작업을 하지 못하도록 만들어야지.

태유 토건 살려 준 것만으로도 고마워하라고.

"제대로 처벌한다면서요, 회장님. 회사 생각 하셔야죠. 이대로 아들 하나 때문에 저랑 끝까지 해보시게요?"

어차피 여기서 일하나 저기서 일하나 내가 받는 돈은 똑같다.

단지 그 대상을 태유 토건 경쟁업체에 한정 지었을 뿐.

"저는 정말로 이 짓 평생 하라고 해도 할 수 있거든요. 감당이 되시겠어요?"

내 블랙리스트에 오른 사람과 관련이 있으면 무조건 보이콧.

그렇게 내 적을 완전히 고립시킨다.

"대신, 그래도 아들인데, 용돈 주고 먹고살게 해 주는 것까진 터치 안 할게요. 천륜을 끊을 수는 없으니까. 딱 공적인 일로 연관만 없으면 됩니다."

그러자 한참을 침묵하던 태유 토건 회장이 말했다.

"아들만 내보내면 되는 겁니까."

"아무려면 사람을 죽인 것도 아닌데 연좌제로 가족들까지 괴롭히지는 않죠."

결국 태유 토건 회장이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알겠습니다. 그렇게 조치하겠습니다."

나는 흐믓한 표정으로 말했다.

"그래요. 잘 생각했어요. 어차피 그런 망나니 아들한테 회사 맡겨 봐야 말아먹기밖에 더 하겠어요?"

"큭······."

"그럼 가서 처리해 주세요. 그럼 경기도 재건축 현장이야 이미 약속한 게 있으니 물릴 수는 없지만, 컨소시엄까지는 안 건드릴 테니까."

42화

태유 토건 회장의 조치는 즉각적이었다.

김 전무와 김 전무의 측근들은 물론이고 소장까지, 말 그대로 나에게 꼬투리가 잡힐 만한 모든 대상을 모조리 회사에서 쳐 내 버린 거다.

아무려면 아들 하나 지키려다 평생 키워 온 태유 토건이 박살 나게 생겼으니 당연하다면 당연한 이야기.

자고로 회사란 자금을 굴리고 또 굴려 이윤을 창출해야 하는데, 이 자금을 굴리는 방법 자체가 막혀 버리면 그 아무리 잘난 회사라 해도 버텨 낼 재간이 없지.

그렇게 회장이 아들을 쳐 내자 나는 약속대로 태유 토건을 내 블랙리스트에서 삭제해 주었다.

그리고 대신 김 전무와 그의 측근들 그리고 소장을 블랙리스트에 올린 나.

"아들내미는 뭐 하고 있답니까?"

"태유 토건 회장이 아예 강경하게 복귀는 없다 선언한 바람에 반발하며 측근들을 데리고 회사를 차렸다고 합니다. 그 건설 소장도 함께요."

건설 소장.

솔직히 나쁘지 않은 인재다.

눈치도 빠르고 머리도 팽팽 잘 굴러가고.

하지만 지금 나에게 필요한 건 김덕배나 강찬수처럼 우직하고 매사에 성실한 사람들이다.

어차피 세론의 사업 방식은 일단 한번 자리 잡으면 스켈레톤을 무한정 찍어 내는 것으로 끝이니까.

"확실하게 밟아 주세요."

태유 토건에게 했던 것처럼 똑같이 해 주라는 말.

"그렇게 하겠습니다."

태유 토건을 완전히 밟아 버릴 수 있음에도 하지 않은 건 다른 건설사들이 나에 대한 반감을 가질 수도 있기 때문이었다.

회장의 아들이라고는 하지만, 직원의 실수 때문에 태유 토건 전체가 박살 나면 다른 건설사들 역시 자신들도 언제 저런 입장이 될지 모른다는 걱정을 할 게 뻔하지 않나.

그렇기에 완전히 박살 내지 않고 족집게 수술을 한 거다.

퇴로가 있으면 도망치지만 퇴로가 없으면 죽기 살기로 덤비는 게 사람이니, 나한테 덤비지 않고 말만 잘 들으면 봐줄 수 있다는 메시지를 전달하기 위해서.

일종의 조련이라고 해야 할까?

그래야 앞으로 실수로든 뭐로든 세론과 트러블이 생겨도 죽기 살기로 싸우기보단 항복하는 쪽을 선택할 테니까.

그때 문자 알림이 울린 강찬수의 핸드폰.

강찬수가 핸드폰을 확인하더니 환하게 웃으며 말했다.

"대표님, 소방청에서 소방용 스켈레톤과 관련해서 이야기를 나누고 싶다 했답니다!"

"오!"

드디어 그 굼뜬 소방청이 움직이다니.

"바로 약속 잡으세요."

물론 소방청은 군대처럼 소비적인 집단이기에 예산이 한정되어 있어 아마 단번에 많은 양을 대여하지는 못할 거지만, 그래도 그런 보수적인 공무원 집단이 움직였다는 데서 큰 의미가 있었다.

"바로 만나 보겠습니다."

좋아.

이렇게 쭉쭉 나가자.

돈을 미친 듯이 벌어 주지.

*

사업들이 모두 자리를 잡으며 이제 나는 스켈레톤만 계속 늘려 주면 회사가 알아서 커지는 수준.

거기에 이제 교육 연구 센터까지 생기며 알고리즘 연구도 백상호와 강사진이 알아서 하고 있으니 더욱 편해졌다.

물론 뭐··· 아직은 워낙 미숙하기에 초창기 나를 보는 것처럼 내가 알려 준 알고리즘을 조합했다 버그가 나서 와장창하는 경우가 많았지만, 원래 그러면서 배우는 거니까.

그렇기에 나는 그들이 조합해 온 알고리즘을 보고 버그가 날 것을 알았음에도 일부러 그대로 구현해 주는 등 내 나름의 훈련을 해 주고 있었다.

아무튼 그렇게 사업이 탄탄대로를 달리자 시간이 난 내가 가장 먼저 하기 시작한 것은 바로 전투 알고리즘 작업.

S급 각성자인 김한울의 전투 데이터와 내가 그간 틈틈이 복구해 둔 전투 알고리즘을 조합한 스켈레톤이 내가 직접 조종하는 스켈레톤에 맞서 전투를 벌인다.

달그락. 달그락.

김한울 스켈레톤이 주먹을 내지르자 내가 조종 중인 스켈레톤이 옆으로 피한다.

그러자 바로 아래 다리를 걸어 버리는 김한울 스켈레톤.

그렇게 내가 조종 중인 스켈레톤이 넘어지자 그대로 그 위에 올라 주먹을 내지른다.

"오케이. 거기까지."

내 말에 모든 동작이 정지된 두 스켈레톤.

나는 노트에 방금 대련의 결과를 적어 넣으며 말했다.

"괜찮네."

30년간 쌓아 온 알고리즘 조합 노하우에 더해 김한울의 전투 데이터가 합쳐지니 빠르게 매크로가 완성되어 간다.

특히 대인 전투에 대해서는 정말로 봐 줄 만한 수준.

세론의 언데드 군단 대부분이 인간형 언데드이기에 대인 전투 위주로 내가 집중한 덕분이었다.

하지만 말 그대로 봐 줄 만하다 뿐이지, 내 예전 알고리즘을 생각하면 아직 미흡해도 한참 미흡하다.

내 예전 알고리즘은 말 그대로 거의 모든 상황에 대처가 가능한 만능 알고리즘이었으니까.

"역시 하루아침에 30년 세월을 따라잡는 건 쉬운 일이 아니지."

나는 입맛을 다시며 말했다.

"인공지능처럼 자기들끼리 싸우게 만들면서 학습하는 방식이면 참 편할 텐데."

그 뭐냐.

바둑으로 유명한 인공지능이 그렇게 실력을 쌓았다고 하지 않았나.

같은 인공지능끼리 붙여 승패 결과에 따라 경험을 누적하는 인공지능이 자동으로 학습하는 방법.

하지만 아쉽게도 스켈레톤은 반자율 작동일 뿐 인공지능은 아니란 말이지.

나는 잠시 고민하다 말했다.

"아닌가? 잘만 하면 이것도 되려나?"

결국 까고 보면 인공지능 역시 정해진 알고리즘에 의해 움직이는 건 똑같지 않나.

단지 그 알고리즘을 스스로 확장해 나가는 게 다를 뿐.

하지만 나는 이내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아니지, 아니지. 생각해 보니 안 되겠구나."

인공지능은 자기 스스로 명령어를 추가해 알고리즘을 확장할 수 있지만, 스켈레톤은 반드시 내가 직접 마력진을 만들어 넣어야 한단 말이지.

그냥 하던 대로나 하자.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며 말했다.

"아무튼 지금까진 나쁘지 않아."

아직 보완할 게 많기는 하지만, 맨손 격투와 대인 전투에 한해선 제법 쓸 만한 알고리즘이 만들어진 상황.

"데스 나이트 만들어 볼까?"

쓸 만한 알고리즘도 생겼으니 연습 삼아 만들어 보는 거다.

게다가, 내가 강하긴 하지만 결국 마법사란 말이지.

그리고 마법사는 전방에서 버텨 주는 전사가 있냐 없냐에 따라 능력 활용도가 달라지는 법이고.

"그래, 만들자."

그러니 테스트를 겸해서 내 안전을 지켜 줄 친위 데스 나이트를 만든다.

"사체는 뭘 쓰지?"

원판의 힘이 강하면 강할수록 더 강한 언데드가 만들어지는 법.

물론 적당한 뼈를 왕창 쌓아 올려 대형 언데드를 만드는 것도 방법은 방법이지만, 그런 대형 언데드는 용처가 완전히 다르니까.

"사람 시체를 쓸 수는 없고······. 역시 몬스터를 써야겠지?"

나는 핸드폰으로 몬스터 종류를 검색하고 하나씩 확인하기 시작했다.

"S급은 자주 나오는 게 아니라 구하기 힘드니 역시 가장 만만한 건 A급인데."

그렇게 눈에 띄는 몇 가지를 후보로 선정한 나.

"이것들로 한번 해 보자."

종류별로 사서 뭐가 제일 효율적인지 해 보지, 뭐.

나는 몬스터 사체를 전담으로 매입해 주는 박 사장에게 전화를 걸어 말했다.

"박 사장님, 접니다. 지금부터 제가 불러 주는 몬스터들, 종류별로 매입해서 가져다주세요."

*

여러 테스트 끝에 최종 선정 된 것은 바로 알파 오크.

덩치는 2m 50cm 정도로 적당한 데다, 워낙 맷집이 좋아 친위대로 쓰기엔 딱이었다.

그렇게 테스트를 겸해서 만든 10개의 데스 나이트들.

나는 뼈만 남아 있는 데스 나이트들을 보고 흡족스러운 얼굴로 말했다.

"오랜만이네, 친위대."

사실 데스 나이트와 스켈레톤은 둘 모두 뼈로 이루어져 있기에 외견상으론 큰 차이가 없었다.

그런 데스 나이트와 스켈레톤의 결정적인 차이는 제작을 통해서 살아생전의 강함을 얼마나 많이 끌어올렸느냐에 있다.

당장 내가 일꾼으로 부리는 스켈레톤들만 해도 한때는 모두 일반인은 상대조차 못 하는 몬스터들 아니었나.

하지만 약간의 마력을 집어넣어 일꾼용으로 만드니 완력이나 민첩 모두 일반인보다도 오히려 좀 떨어지는 수준.

반면 여기 있는 데스 나이트들은 마력은 물론이고 각종 금과 은으로 마력진을 박아 넣어 살아생전 전투력의 거의 대부분을 재현한 상태였다.

"뭔가 만들고 나니 든든한데?"

세론에 있을 때 데리고 다니던 친위대에 비하면 모자라도 한참 모자란 수준이지만, 그럼에도 뭔가 있고 없고의 차이가 확 느껴진다.

"마무리하자."

나는 데스 나이트들에 친위대 전용의 알고리즘을 기억나는 대로 주입하기 시작했다.

오직 전투가 주목적인 다른 언데드들과 다르게 친위대는 철저히 내 개인의 안전을 최우선으로 해야 하는 언데드.

그런 만큼 이들에게는 일반 언데드들과는 다른 알고리즘이 필요했다.

예를 들어 위급 상황 때 데스 나이트 한 기가 나를 데리고 안전한 장소로 도주하는 사이 나머지가 시간을 번다거나, 공격이 들어오면 자신의 몸을 바쳐서라도 막아서는 식으로 말이다.

그렇게 모든 마무리 작업을 완료한 끝에 드디어 한국에서 부활한 내 친위대들.

"좋아! 너희는 앞으로 친위대 1팀이다!"

이제 이 친위대 1팀을 시작으로 더더욱 많은 언데드를 만들어 언데드 군단을 재건한다.

그런데 그때.

"···음?"

뭔가 한 가지 생각이 머릿속을 스쳐 지나간다.

"잠깐만. 어차피 언데드 군단 만들어 봤자 이놈들이 돈을 벌어다 주는 건 아니잖아."

언데드 군단은 말 그대로 군대다.

그리고 군대는 생산 없이 오직 소비만 하는 집단이지.

하지만 내가 방금 친위대가 생김으로 인해서 든든함을 느꼈던 것처럼 이걸로도 돈벌이를 할 수 있지 않을까?

"오호?"

원래 내가 살던 지구에서 경호원은 매우 희소한 직종이었다.

애초에 치안 좋기로 유명한 대한민국에서 재벌이나 정치인 같은 소수의 상류층을 제외하면 경호원에 대한 수요가 있을 리 없었으니까.

하지만 여기는 몬스터가 있고 각성자가 있는 지구.

당연하게도 언제 어디서 불안정 게이트를 통해 몬스터가 튀어나올지 모르는 세상이라는 거다.

뿐만 아니라 각성자 중에서도 범죄에 물들어 사람을 죽이는 자들도 있었으니, 당연하게도 경호에 대한 수요는 높을 수밖에.

하지만 그런 높은 수요에 비해 공급은 형편없는 수준이었다.

범죄자인 각성자나 몬스터를 상대하려면 결국 각성자를 경호원으로 고용해야 하는데, 그건 다시 말해 경호원 각성자로 하여금 게이트로 들어가 성장할 가능성을 포기하라는 뜻이나 다름없다.

당연히 더 높은 경지에 올라 강해지는 걸 꿈꾸는 대다수의 각성자는 경호원을 가장 최악의 직업으로 꼽을 정도.

그렇게 수요는 많지만 공급은 적으니 몸값은 천정부지로 올라가고, 그렇게 몸값을 지불해도 막상 진짜 원하는 수준의 각성자를 고용할 수는 없으니 돈 많은 부자들 입장에서 애가 탈 수밖에.

물론 그런 상황에서조차도 막대한 돈을 이용해 제대로 된 각성자 경호원을 구하거나 아예 길드 자체를 후원하며 옆에 두는 재벌들도 있기는 했지만, 그런 사람이 대한민국에 몇 명이나 있겠나.

"언데드 군단 재건을 위해 만든 데스 나이트들을 경호원으로 취직시키면······. 이거 최곤데?"

생산성이 없는 소비 집단에서 생산성을 지닌 생산 집단이 되는 거다.

그렇게 경호원 언데드를 사방에 뿌린 다음 정말 위태로운 상황이 왔을 때 소집해서 군대로 부리면 완벽하지 않나.

동시에 내 언데드 경호를 받는 유력 인사들은 더욱 나에게 호감을 느낄 거다.

나 덕분에 안전을 보장받을 수 있으니까.

"진짜 꿩 먹고 알 먹고인데?"

사고를 대비해 공격 알고리즘만 비활성화해 두고 오직 방어와 경호에만 집중하도록 만드는 거지.

동시에 언데드를 각성자 급수에 맞춰 레벨을 나누어 두면 경호가 필요한 사람들이 알아서 돈이 허락하는 만큼 고용할 거고.

"어차피 이미 A급 각성자 소리 듣고 있는 판국에, 전투 언데드도 아닌 경호원 언데드 만드는 게 뭐가 문제야."

그전에야 전투형 만들기도 귀찮고 스켈레톤에 대한 호감도 때문에 최대한 기피했지만, 이제는 스켈레톤이 한국 전역에 알게 모르게 이미 파고든 상황이니 경호원 언데드 정도는 상관없지 않을까?

물론 각성자의 공격을 막아 주는 경호원 언데드가 등장하면 내가 공격형 언데드를 만들 수 있다는 것쯤은 모두 유추할 수 있겠지만, 어차피 언데드 군단을 막으려면 늦든 빠르든 알려지게 될 내용이니 상관없고.

"좋아. 경호원 언데드 좋다."

언데드 군단의 경호원 취직.

사람 목숨도 지키고 돈도 버니 안 할 이유가 없다.

나는 핸드폰을 들어 곧장 누군가에게 전화를 걸었다.

-대표님! 오랜만입니다!

그 사람은 바로 내가 목숨을 구해 주었던 긴급 대응 팀의 팀장이었다.

"팀장님, 좀 도와주실 수 있나요? 중요한 일인데."

-새로운 사령마 디자인 때문이십니까? 그렇지 않아도 제가 구상해 둔 게 있는데!

"아니아니, 그건 아니고요. 그것보다 더 중요한 일입니다. 어··· 국민의 안전을 위한 일이라고 해야 할까?"

-국민의 안전이요?

틀린 말은 아니잖아?

지켜 주는 건 지켜 주는 거니까.

단지 공짜가 아닐 뿐.

"예."

-뭔지는 감도 안 오지만··· 알겠습니다. 바로 가겠습니다.

나는 환하게 웃으며 말했다.

"빨리 부탁드립니다, 할 일이 아주 많아서."

43화

은인인 한지혁의 도움 요청에 바로 달려온 팀장.

그런 팀장을 기다린 건 건장한 체구의 각종 스켈레톤들이었다.

그리고······.

"합!"

한지혁의 요청에 따라 검으로 스켈레톤을 공격하는 팀장.

그런데 스켈레톤이 팔에 차고 있는 방어용 토시로 팀장의 공격을 옆으로 흘려 버린다.

그러곤 뒤로 한 발짝 물러서며 다시 방어 자세를 취하는 스켈레톤.

"미친······."

뭐랄까.

마치 양손 격투에 능숙한 진짜 실력자와 싸우는 듯한 기분이 든다.

"계속 공격해요!"

"아, 알겠습니다!"

"다양한 방법으로. 비겁한 방법도 좋으니까!"

"비겁한 방법이요?"

그러자 잠시 스켈레톤을 노려보던 팀장이 품 안에 숨겨 두었던 단검 두 자루를 던지며 동시에 스켈레톤의 다리 부분을 노리며 달려든다.

달그락. 달그락.

하지만 그런 공격조차 양손으로 두 단검을 모두 쳐 내곤 뒤로 점프하여 가볍게 피해 버린 스켈레톤.

"와······."

그간 보아 온 일꾼 스켈레톤과는 차원이 다른 몸놀림.

"한 회장님, 이건 도대체 뭡니까?"

"뭐긴요, 소환수지."

"이제 진짜 전투용 만드시는 겁니까?"

그러자 한지혁이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아니요? 이놈 경호용인데."

"겨, 경호?"

"공격 안 하던 것 못 느꼈어요?"

"어? 그러고 보니······?"

방어와 회피만 할 뿐 공격 행위를 일절 하지 않던 스켈레톤.

한지혁이 기분 좋은 듯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경호용 만들어서 경호원으로 취직시키려고요. 이놈은 D급 경호 데스 나이··· 귀찮으니 그냥 스켈레톤이라고 부릅시다, 겉으로 봐선 똑같으니까."

하다 하다 이제는 경호용 스켈레톤을 만들다니.

"각성자를 충분히 막아 낼 수 있는 수준의 경호 스켈레톤. 이 정도면 누구나 원하지 않을까요? 여기에 등급별로 다양하게 출시할 예정인데."

팀장은 사업을 하는 사람이 아니지만 본능적으로 느꼈다.

이건 돈이 안 되려야 안 될 수 없는 사업이라고.

"···정말 부러운 능력이네요."

"별말씀을."

"그런데 이 정도면 공격 능력을 일부러 탑재하지 않은 것 아닙니까?"

"솔직히 맞아요. 공격 기능 일부러 뺀 겁니다."

"왜 그런 건지 물어봐도 되겠습니까? 공격 능력도 갖춘다면 게이트로 보내서 몬스터를 사냥하게 해도 될 텐데."

그러자 한지혁이 손가락 두 개를 펼친 다음 하나를 접으며 말했다.

"첫째, 일자리 문제. 스켈레톤을 왕창 풀어서 몬스터 잡으면 각성자들이 와! 신기하다, 하고 가만히 있을까요?"

그러자 바로 알아들은 팀장이 쓴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난리 나겠죠, 고위 각성자가 하급 몬스터 싹쓸이한다고."

고위 각성자가 하급 게이트로 들어가 몬스터를 무더기로 잡는 걸 비공식 용어로 싹쓸이라 부른다.

당연히 이건 A급 각성자인 한지혁이 소환수를 사방팔방에 풀어 싹쓸이를 하는 꼴.

심지어 본인은 밖에서 사업으로 돈을 쓸어 담고 있는데, 소환수만 보내서 하급 몬스터의 씨를 말리면 그 어떤 각성자 입에서 좋은 소리가 나오겠나.

그때 한지혁이 두 번째 손가락을 접으며 말했다.

"두번째, 돈. 각성자 경호원 몸값 비싼 건 알죠? 사냥을 포기해야 하니까. 그러니 같은 수준이면 이쪽이 더 돈이 된다는 말이죠."

완전히 이해한 팀장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이해했습니다."

"거기에 추가로 공격 능력 달아 놨다가 소환수가 사고라도 치면 골치 아프잖아요. 일종의 안전장치? 그래서 아예 빼 버렸죠."

"그렇군요."

그때 팀장의 머릿속에 한 가지 아이디어가 떠올랐다.

"아! 그러고 보니 경호용이라면 긴급 대응 팀에도 필요하겠네요."

"긴급 대응 팀?"

"어차피 긴급 대응 팀은 불안정 게이트가 뜨면 몬스터를 막는 역할 아닙니까. 경호용 스켈레톤을 이용하면 더 수월하게 몬스터들을 틀어막을 수 있으니 딱인데요."

"오! 그거 나이스 아이디어네! 내가 이래서 팀장님을 좋아하는 거예요."

한지혁이 눈을 빛내며 혼자 무어라 무어라 중얼거리기 시작한다.

"몬스터 상대 알고리즘을 보강하긴 해야 하는데, 어차피 해야 할 일이니까 경호원 먼저 뿌리면서 천천히 패치하면······. 괜찮은데?"

그때 한지혁이 팀장을 바라보며 말했다.

"그런데 그러다 긴급 대응 팀 일자리 잃는 것 아닙니까?"

그러자 팀장이 피식 웃으며 말했다.

"그럴 리가요, 긴급 대응 팀은 인력난이 일상인데. 게다가 스켈레톤이 있으면 저번처럼 목숨이 위험한 순간에 스켈레톤을 전면에 보내고 뒤로 빠질 수 있으니 오히려 환영일 겁니다."

"굿굿. 그럼 그것도 고려해 보죠."

불안정 게이트가 뜨면 일단 경호용 스켈레톤을 보내 막도록 하고, 그사이 전력 측정을 완료한 다음 적절한 긴급 대응 팀을 보내는 방식.

이런 식이면 사고 확률도 확 줄일 수 있고 긴급 대응 팀에 가해지는 업무 역시 대폭 줄일 수 있을 게 분명했다.

"아! 그러고 보니 아까 등급별로 출시할 예정이라 하셨는데, 어느 정도 등급까지 가능하십니까?"

"B급이요."

그러자 잠시 침묵하던 팀장이 말했다.

"솔직히 아무리 봐도 A급 각성자는 아니신 것 같은데."

만이 넘는 스켈레톤을 소환하고 B급 각성자와 비견할 만한 소환수를 만들 수 있는 게 어딜 봐서 A급인가.

그러자 한지혁이 어깨를 으쓱하며 말했다.

"마음대로 생각하세요. 아무튼 실험 계속해 봅시다. 아. 혹시 비번인 부하들 있으면 도와 달라 요청해 주실 수 있나요? F급, E급 실험도 해 봐야 하고, 상위 등급 경호용 스켈레톤이 하위 각성자 몇 명을 감당할 수 있는지 등등 아직 실험할 것투성이라서요."

*

그 누가 언제 각성할지 모르는 세상.

당연히 범죄자라고 해서 예외는 아니기에 사람들은 강한 무력을 지닌 각성자에 대해 은연중 두려움을 느끼고 있었다.

특히 돈이 많은 사람이면 많은 사람일수록 그랬다.

잊을 만하면 튀어나오는 게 각성자로 인한 납치 협박이었으니까.

그중에서도 재계 23위 여령 그룹의 회장 여운구는 안전에 집착하기로 유명한 사람이었다.

그도 그럴 게, 그는 아직 후계자였던 시절 악의를 가진 각성자에 의해 납치당해 모진 일을 당했던 경험이 있기 때문이었다.

다행히 당시 회장이었던 아버지가 후원하던 길드가 직접 나서 여운구를 구해 줬지만, 그때 겪었던 트라우마는 여운구가 안전에 과할 만큼 집착하게 만들었다.

그런 그가 당연히 자신의 안전을 위해 가장 신경 쓰는 것은 각성자로 이루어진 경호 팀.

그런데 그 경호 팀의 주축이 갑자기 흔들거리기 시작했다.

"회장님, 그간 회장님과의 인연 때문에 참아 왔지만, 이제는 안 될 것 같습니다."

A급 각성자이자 여운구가 가장 신뢰하는 경호실장이 퇴사를 통보해 온 거다.

"박 실장, 혹시 월급이 적어서 그래?"

"아닙니다. 오히려 과할 만큼 많이 받았다고 생각합니다."

"이러지 마, 박 실장. 내가 박 실장을 얼마나 믿는지 몰라서 그래?"

그러자 박 실장이 씁쓸한 표정으로 말했다.

"압니다. 그래서 더욱 이야기를 꺼내기 힘들었죠. 하지만 저도 더 이상은 안 되겠습니다. 이제 저도 내일모레면 40인데, 더 늦기 전에 한 단계 더 위로 도전해 보려 합니다."

몬스터를 사냥하여 강해지는 각성자의 특성상 경호원 각성자는 사실상 성장을 포기하는 거나 다름없었다.

여운구가 다급히 말했다.

"그, 그럼 일단 퇴사는 보류하고, 휴가를 줄 테니까 여유롭게 다녀오는 건 어때?"

박 실장이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도전도 도전이지만, 사실 정신적으로 너무 지쳤습니다."

누군가를 옆에서 매일매일 지키고 수행한다는 것 자체도 보통 일이 아니건만, 심지어 여운구는 박 실장이 조금만 자기 곁을 벗어나도 불안해하는 사람.

당연히 그런 생활을 너무 오래 겪어 온 박 실장은 이제 지칠 대로 지쳐 버렸다.

"저 아니어도 다른 경호원들이 있으니 너무 염려 마시지요."

그러자 여운구가 축 처진 표정으로 말했다.

"박 실장 빠지면 B급 2명에, 나머지는 전부 하급 각성자잖아. 만약 A급이 날 노리고 달려들면 박 실장 없는 경호 팀만으로 대응이 될 리가 있겠어?"

A급 각성자의 수는 한국 전체를 통틀어 천 명 정도.

당연히 그런 고위 각성자가 한 개인의 전담 경호원을 하는 경우는 극히 드물기에, A급인 박 실장은 경호원으로서 그야말로 최고의 인재이자 여운구가 안심하고 회사 운영을 하게 해 준 일등 공신이었다.

그런 박 실장이 퇴사해 버리면 여운구는 불안에 시달릴 수밖에.

그런 여운구의 사정을 알고 있는 박 실장이기에 더욱 마음이 무거워진다.

"···후. 그럼 후임을 구할 때까지만 조금 더 버텨 보겠습니다."

여운구가 환하게 웃으며 말했다.

"저, 정말이야? 고마워, 박 실장! 정말 고마워!"

"대신 딱 한 달입니다. 그때부터는 저도 제 가족과 저 스스로를 위해 살 겁니다."

"그래, 그래. 내가 그사이에 어떻게든 구해 볼게. 고마워, 박 실장!"

*

"···거절당했습니다."

박 실장을 대체할 새로운 경호원 영입을 지시받은 임원의 말에 여운구가 인상을 쓰며 말했다.

"돈은 충분히 제안했습니까?"

"했습니다. 게이트에서 버는 수입의 3배를 제안했지만··· 거절당했습니다."

"이유가 뭡니까?"

"자기 생활이 제한되는 게 싫다고 합니다."

이미 돈을 충분히 잘 벌고 있는 각성자 입장에서 성장도 포기해야 하고 하루 종일 신경을 곤두세워야하는 경호 업무는 그야말로 각성자 업계의 3D 업종.

여운구가 길게 탄식하며 말했다.

"박 실장이 얼마나 소중한 사람이었는지 더 와닿는구나."

그간 박 실장이 얼마나 자신을 위해 헌신해 왔는지 그리고 그게 얼마나 각성자에게 있어서 힘든 일이었는지 깨달은 여운구.

"C급과 D급 각성자 몇 명은 긍정적으로 생각하긴 하던데··· 5배를 요구하고 있습니다."

그나마 제안을 받아들이는 사람은 대부분 사실상 성장을 포기한 각성자들.

그러다 보니 아예 돈이라도 왕창 벌 생각으로 큰돈을 요구하는 경우가 많았다.

하지만 그런 각성자들조차 없어서 못 구하는 게 이 각성자 경호원 바닥.

"후. 어쩔 수 없지, 질이 부족하면 양으로라도 채우는 수밖에. 알았다고 하세요."

"예, 회장님. 그럼 그렇게 처리······."

그때 회장의 내선 전화로 전화가 걸려 온다.

"예. 무슨 일입니까."

그러자 비서가 말했다.

-회장님, 세론 그룹의 한지혁 회장님에게서 연락이 왔습니다.

"세론 그룹?"

최근 무서운 속도로 사업을 확장하며 조만간 대기업 반열에 들 것이 확실시되는 세론 그룹.

-경호원을 구하고 있는 것 같던데 관심 있으시면 연락 달라십니다.

그러자 여운구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며 말했다.

"정말입니까?"

다른 사람도 아니고 A급 각성자인 한지혁이 경호원과 관련해서 자신에게 연락을 하다니.

여운구가 큰소리로 외쳤다.

"지금 당장 연락해서 약속을··· 아니, 전화번호 나한테 주세요! 내가 직접 연락하겠습니다!"

*

"어서 오세요."

약속한 장소로 박 실장과 함께 경호 팀을 이끌고 온 여운구.

여운구가 나와 악수를 하며 말했다.

"반갑습니다, 한 회장. 이렇게 직접 보는 건 처음이군요."

"하하. 그렇죠. 여령 그룹은 저희랑 사업이 겹치는 게 하나도 없으니까요."

그때 여운구가 주변을 살피며 말했다.

"그나저나, 경호원을 말씀하셨는데 혹시 어디 있는지······."

듣던 대로 안전에 집착하는 게 첫 만남부터 느껴진다.

나는 창고를 가리키며 말했다.

"이쪽입니다. 들어오시죠."

그렇게 내 안내를 받아 창고 안으로 들어간 여운구.

그러자 여운구가 창고 안에 도열해 있는 스켈레톤들을 보고 놀란 표정으로 말했다.

"스켈레톤?"

이미 스켈레톤이 전국 방방곡곡을 돌아다녀 놀랄 만한 것도 없지만, 이 스켈레톤들은 달랐다.

왜냐하면 이들은 뼈만 있는 스켈레톤과 다르게 단단한 갑옷으로 무장하고 있는 상태였으니까.

"소개해 드리죠. 경호용 스켈레톤입니다."

그러자 여운구가 황당하다는 표정으로 말했다.

"말씀하신 경호원이 스켈레톤이었습니까?"

"예."

"스켈레톤은 전투력이 없는 걸로 알고 있는데, 그걸 경호원으로 쓴다고요?"

"정확히 말해서, 없는 게 아니라 제가 안 만든 거죠. 굳이 만들 필요성을 못 느껴서. 그런데 최근 안전에 대한 사람들의 수요가 많아지길래 이번에 각 잡고 만들었죠."

그러자 잠시 망설이던 여운구가 말했다.

"제가 원하는 경호원은 각성자를 상대할 정도의 수준입니다만."

"역시 길게 말하는 것보다는 보여 드리는 게 더 빠르겠죠? 혹시 F급 계신가요."

그러자 한 경호원이 손을 들어 올린다.

"제가 F급입니다."

"오케이."

내가 손가락을 튕기자 F급 경호용 스켈레톤이 나에게 다가와 내 옆에 선다.

"저는 이제부터 한 걸음도 안 움직일 겁니다. 만약 이 스켈레톤의 방어를 뚫고 저를 공격하는 데 성공하신다면 두둑이 보상해 드리죠."

내 말에 경호원이 여운구를 힐끔 바라보고, 여운구가 고개를 끄덕이자 눈치를 보더니 순식간에 달려든다.

그러자 내 앞을 막아선 스켈레톤.

그때부터 스켈레톤과 경호원의 공방이 시작되었다.

정확히 말하면 경호원의 일방적인 공격과 그걸 계속 막는 스켈레톤.

계속 공격이 막히자 자존심이 상했는지 갑자기 몸을 돌려 페이크를 주고는 나를 향해 달려들며 손을 뻣는 경호원.

그때 스켈레톤이 내 앞을 감싸며 경호원의 주먹을 몸으로 방어한다.

"오오오!"

그 모습을 보고 감탄한 여운구가 말했다.

"이거··· 상상 이상인데?"

나는 어안이 벙벙한 표정으로 서 있는 경호원에게 말했다.

"고생하셨습니다. 물론 공격은 실패니까 두둑한 보상은 없지만요."

나는 여운구에게 걸어가며 말했다.

"보다시피 경호용 스켈레톤은 철저히 경호에 초점을 맞춘 스켈레톤입니다. 자신의 몸보다 경호 대상의 안전을 최우선시하죠. 경호 대상을 지키기 위해서라면 목숨조차 아끼··· 아, 물론 목숨은 없지만, 아무튼. 거기에 더해 이놈들은 먹지도 자지도 않으니 말 그대로 24시간 밀착 경호를 받을 수 있습니다."

여운구가 입을 쩍 벌리며 말했다.

"24시간··· 밀착 경호?"

그래.

얼마나 안전해?

잘 때도 옆에서 지켜 준다고.

아. 그러고 보니 자다 깨서 스켈레톤 얼굴 보면 놀라 기절할지도 모르겠네.

이건 좀 보완이 필요하겠어.

투구라도 씌울까?

그때 여운구가 눈을 빛내며 말했다.

"각성자를 상대하는 24시간 밀착 경호용 스켈레톤······."

"심지어 배신의 염려도 없죠. 왜? 이 스켈레톤의 주인은 나니까. 세상에 저보다 신분이 확실한 각성자가 또 있나요?"

세론 그룹의 회장이자 군산을 대표하는 기업인이 바로 나 아닌가.

최소한 돈 욕심 가지고 헛짓거리를 할 이유가 없다는 뜻이다.

여운구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아주 만족스럽습니다."

"그렇죠?"

"다만, 딱 하나 아쉬운 게 있다면 실력이겠군요. 저는 지금 박 실장의 빈자리를 채워 줄 경호원을 찾고 있던 건데."

그 말에 나는 어깨를 으쓱하며 말했다.

"그런 거라면 염려 놓으셔도 됩니다. 방금 이 스켈레톤이 걸어온 저쪽 끝이 F급 스켈레톤이고, 그다음은 E급, D급, 그리고 마지막이 B급 경호용 스켈레톤이라서요."

내 말에 급수가 의미하는 것이 무엇인지 단숨에 알아차린 여운구와 경호원들.

"B, B급이라고요!?"

나는 경악하는 그들을 향해 말했다.

"어떠십니까? 이런 경호원 스켈레톤, 원하시는 수준에 맞춰서 대여해 드릴 수 있는데. 궁금하시면 실험해 보셔도 좋고요."

44화

F급 각성자의 공격을 성공적으로 막아 낸 F급 스켈레톤.

그런데 B급 스켈레톤도 있다고?

조용히 여운구 회장을 수행하던 박 실장이 굳은 표정으로 말했다.

"설마 B급 스켈레톤이면······."

한지혁이 어깨를 으쓱하며 말했다.

"상상하시는 그것 맞습니다."

즉, B급 각성자를 상대할 수 있는 경호용 스켈레톤이라는 말.

그때 여운구가 환하게 웃으며 말했다.

"정말입니까? B급 경호용 스켈레톤이 있다고요?"

"물론이죠."

"그럼 B급 여러 개를 데리고 다니면··· A급도 막을 수 있다는 말입니까?"

"상황에 따라 다르기는 하지만, 불가능한 이야기는 아니죠."

그때 박 실장이 한지혁을 보며 말했다.

"혹시 B급이 몇 개나 있는지 알 수 있을까요?"

"5개 있습니다."

B급 5개.

각성자들은 워낙 다양한 종류의 능력을 지녔기에 일반화해서 계산할 수는 없지만, 보통은 상위 각성자가 바로 아래급 각성자 5명 정도의 몫을 한다고 알려져 있다.

그런 계산으로 볼 때 B급 5개면 A급 1명 몫을 할 수 있다는 말.

'지금 보이는 스켈레톤만 해도 100이 넘는데, 심지어 그중 5개는 B급 각성자를 상대할 수 있다고? 이건 절대 A급 각성자가 할 수 있는 수준의 일이 아니야.'

이미 세론에서 일하는 스켈레톤의 수가 만을 넘었을 때부터 한지혁이 절대 A급이 아니라는 의견이 나오긴 했지만, 이건 그 수준을 넘어섰다.

그때 한지혁이 아차 하는 표정으로 말했다.

"아! 참고로 이놈들 공격 능력은 없습니다. 오직 경호와 방어에만 집중해서 만들어진 놈들이라서요. 대신 잡아서 움직임을 제한하는 제압 정도는 가능합니다."

공격 능력이 없다는 한지혁의 설명.

하지만 그 사실은 전혀 중요하지 않았다.

한지혁의 마개조 능력을 생각하면 공격 능력을 넣을 수 없어서 안 넣은 게 아닐 테니까.

'저 100개가 전부일까? 아니. 그럴 리 없겠지.'

그간 한지혁이 보여 준 행보를 생각하면 저 100개의 경호용 스켈레톤은 그저 맛보기일 확률이 높았다.

만약 저런 스켈레톤이 100개를 넘어 1,000개 혹은 그 이상이라면?

그때 박 실장의 자리를 스켈레톤이 대신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사실에 도취된 여운구가 흥분한 목소리로 말했다.

"B급 각성자를 막아 줄 수 있는 스켈레톤이 5개나? 박 실장."

"예, 회장님."

"5개면 A급 각성자를 막을 수 있을까?"

이건 박 실장 자신도 궁금한 내용.

"저도 정확히는 모르겠습니다."

그때 한지혁이 말했다.

"테스트해 보실래요? 저도 A급 각성자 테스트는 안 해 봐서 궁금한데."

그러자 박 실장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좋습니다."

"오케이."

한지혁이 손가락을 튕기자 가장 끝에 있던 B급 스켈레톤 5개가 한지혁의 뒤에 도열한다.

박 실장이 자세를 잡으며 말했다.

"어느 수준까지 해 볼까요."

"음··· 이런 테스트 기회가 흔치는 않으니 진지하게 한번 해 보죠. 박살 나도 뭐라 안 할 테니 마음껏 해 보세요."

그러자 옆에 있던 여운구가 다급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러다 전부 박살 나면 제가 데려갈 스켈레톤이 부족해지는 것 아닙니까. 박 실장 실력이 보통이 아닌데."

"걱정 마세요, 고장 나도 다시 만들면 그만이니까."

가벼운 어투로 답하는 한지혁이지만, 그 대답에 박 실장은 더욱 소름이 돋았다.

박살을 내도 언제든 다시 만들 수 있는 소환수라니.

이건 절대로 인간이 흉내 낼 수 있는 영역의 일이 아니었다.

박 실장이 진지한 표정으로 한지혁을 바라보며 말했다.

"그럼 사양 않고 가겠습니다."

"오세요."

말이 끝나는 한지혁에게 달려들며 빨간 광채로 휩싸인 주먹을 내지른 박 실장.

그런데 그때.

달그락!

뒤에 있던 스켈레톤 중 하나가 엄청난 속도로 한지혁을 감싸 안으며 몸으로 방어한다.

그렇게 한지혁이 아닌 스켈레톤의 몸통을 가격한 박 실장의 주먹.

펑!

그 순간 주먹을 감싸고 있던 빨간 광채가 폭발음을 내고, 그대로 스켈레톤의 몸통 일부가 박살 난다.

바로 박 실장의 능력인 폭발이었다.

"역시 박 실장님이야!"

A급 각성자인 박 실장의 공격에 몸의 일부를 잃은 B급 스켈레톤.

하지만 그런 경호원들의 환호에도 박 실장의 표정은 굳어 있었다.

'여전히 막고 있어.'

사람이었다면 바로 즉사했을지도 모를 만큼 큰 피해를 입었지만 여전히 스켈레톤은 몸을 비틀어서라도 한지혁을 지키고 있다.

어디 그뿐인가.

스켈레톤이 몸을 희생하며 지키던 사이 남은 4개의 스켈레톤 중 2개가 박 실장의 옆으로 다가와 제압을 시도하고 남은 2개는 한지혁을 뒤로 잡아끈다.

그야말로 경호의 정석이나 다름없었다.

'이게 스켈레톤이라고?'

말 그대로 경호에 모든 것을 바친 듯한 스켈레톤들의 협동.

박 실장이 입술을 깨물며 말했다.

"제대로 보여 드리죠."

그렇게 본격적으로 실력을 발휘하기 시작한 박 실장.

그런 박 실장의 공격에 제압을 시도한 스켈레톤들이 얼마 버티지 못하고 둘 모두 반파되어 버린다.

그런데 그때.

한 개의 스켈레톤이 한지혁을 안아 들더니 그대로 냅다 뒤로 도주하고, 반파된 스켈레톤들이 전부 달려들어 박 실장의 손발에 달라붙는다.

"윽!"

갑자기 달라붙은 스켈레톤들 때문에 제대로 움직이지 못하게 된 박 실장.

박 실장이 다급히 스켈레톤들을 쳐 내는 사이 이미 멀리 도주한 스켈레톤 쪽에서 한지혁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여기까지."

그러자 순식간에 동작을 멈춘 스켈레톤들.

한지혁이 스켈레톤에서 내리며 감탄한 목소리로 말했다.

"이야. 대단하시네요. 도주 모드가 발동되다니."

"도주 모드?"

"상대가 안 되는 적이 나타났을 때 한 개를 제외한 나머지가 모두 희생해서 시간을 끌고 남은 하나가 경호 대상을 도주시키는 마지막 방법이죠."

그때 여운구가 으쓱해하며 말했다.

"우리 박 실장 실력은 대단하니까요."

"그러게 말입니다. 5개면 A급 한 명은 충분히 막을 수 있을 줄 알았는데. 아무래도 능력별로 대응 방안을 고려해야 겠네요. 그나저나 박 실장님, 어떻습니까, 이놈들?"

그말에 잠시 고민하던 박 실장이 말했다.

"뛰어난 경호원입니다. 이런 스켈레톤 5개면 S급 각성자가 노리는 게 아닌 이상 그 어떤 상황에서도 최소 한 번은 회장님의 목숨을 구해 줄 겁니다."

"그렇죠?"

한지혁이 여운구에게 말했다.

"어떠신가요, 경호용 스켈레톤. 5개는 조금 불안한 듯하니 2개 더해서 7개면 나쁘지 않을 것 같은데."

"좋습니다. 사겠습니다."

"사는 게 아니고 대여. 공격 능력이 없으니 가격은 같은 급 각성자 경호원의 절반만 받죠. 대신 24시간 지켜 드리니 나쁘지 않을 것 같은데."

"괜찮군요."

그렇게 한지혁과 여운구가 가격과 대여 수에 대해 이야기를 하는 사이 박 실장은 반파된 스켈레톤들을 바라보며 생각했다.

'언제든 복구가 가능한 각성자급 스켈레톤들. 거기에 만이 넘는 일반 스켈레톤들까지.'

한지혁은 이미 세론으로 한국에 상당한 변화의 바람을 몰고 오고 있었다.

그런데 이제는 공격 능력만 없을 뿐 사실상 전투용 스켈레톤까지 만들고 있는 상황.

박 실장은 여운구와 신나게 대화하며 웃고 있는 한지혁을 바라보며 생각했다.

'홀로 모든 것을 할 수 있는 사람.'

1인 공장이자, 동시에 1인 군단.

무력과 재력을 모두 갖춘 괴물이 바로 한지혁이었다.

하지만 그렇기에 오히려 안심이 된다.

처음엔 이런 수준의 스켈레톤이 많다는 점에서 소름이 돋았지만, 애초에 한지혁을 A급이 아닌 S급 이상의 각성자라 생각하면 쉽게 받아들일 만하니까.

그리고 그런 강자의 소환수가 여운구를 지켜 준다면 자신도 마음 놓고 일상으로 돌아갈 수 있겠지.

"잘 부탁드립니다, 한 대표님."

박 실장의 말에 한지혁이 환하게 웃으며 말했다.

"염려 놓으세요. 고객의 안전이 최우선 아닙니까? 그래야 다들 안심하고 경호 스켈레톤을 더 고용하지. 안 그래요?"

박 실장이 피식 웃으며 말했다.

"맞는 말씀입니다. 아무튼 회장님의 안전을 잘 부탁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