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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

103화

60대인 다나카는 요즘 상황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후쿠오카에 에너지 판매 부스가 들어서며 수입은 나아졌지만, 그 여파로 스켈레톤이 도입될지도 모른다니 본능적으로 거부감을 느낀 다나카.

특히 다나카의 경우엔 한국에 반감까지 가지고 있어 그 거부감이 더욱 심했다.

"그런 시체들을 부리는 게 어디 말이나 돼. 쯧쯧."

다나카가 인상을 쓰며 말했다.

"그리고 뭐? 세론 대륙? 요즘 젊은 놈들이 그것에 또 미친다며? 하여튼 요즘 것들은."

물론 다나카 역시 젊어서 게임을 즐겼기에 RPG에 대한 향수가 남아 있기는 하지만, 거부감도 거부감이고, 무엇보다 몸이 따라 주지 않아 즐길 생각은 엄두도 못 내고 그저 세론의 꼬드김에 넘어간 정부와 젊은 사람들을 욕할 뿐이었다.

"한지혁 회장이야 좋은 사람인 건 맞는데, 어찌 되었든 스켈레톤이랑 세론 전부 한국 거잖아? 일본 사람이면 일본 걸 애용하고 일본 사람을 써야지. 저러다 일자리 전부 스켈레톤에게 빼앗기면 어쩌려고. 에잉."

그렇게 한숨만 나오는 요즘 상황을 한탄하며 티브이를 켠 다나카.

그때 티브이에서 한 광고가 흘러나온다.

-세론 대륙에서 열리는 환상의 퍼레이드로 여러분을 초대합니다!

세론 대륙의 광고에 다나카가 인상을 쓰며 말했다.

"설마 스켈레톤으로 퍼레이드라도 하려고? 세상 참 잘 돌아간다."

그렇게 무시하려던 그때.

세론 대륙 광고에서 무언가의 실루엣들이 살짝 비친다.

"···어?"

그리고 치열한 결투를 하기 시작한 실루엣들.

그저 검은색으로 가려진 실루엣에 불과하지만 그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다나카는 세상 그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가··· 간담?!"

그것은 바로 다나카가 젊은 시절 열광했던 거대 로봇 애니메이션 속 주인공의 기체와 라이벌 기체의 실루엣.

"간담 맞지? 간담?"

그때 그런 다나카의 생각에 확신을 주는 마지막 로고가 떠오른다.

바로 세론 로고와 함께 떠오른 간담 제작사의 로고.

다나카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며 말했다.

"가, 간담 맞구나! 그럼 간담 퍼레이드를 한다는 거야?! 스켈레톤으로!"

그간 거대 간담을 만드는 시도는 꾸준히 있어 왔다.

하지만 그건 말 그대로 크기만 키우고 간단한 동작만 가능하게 한 관상용 수준.

그런데 몬스터와도 일전이 가능한 스켈레톤으로 간담을 꾸며 퍼레이드를 한다면?

다나카의 동공이 거세게 흔들린다.

"서, 설마 크기도 재현하는 건가? 그 간담을?"

보고 싶다.

너무나도 보고 싶다.

그간 꿈에서나 그려 온 간담의 실제 모습을 볼 수 있을지도 모르는 기회.

비록 나이는 먹었지만 어린 시절 열광했던 그 열정은 여전히 다나카 마음 깊숙한 곳에 박혀 있었으니까.

하지만 세론의 로고가 마음에 걸린다.

"···결국 껍데기만 간담이고 스켈레톤이잖아. 거기에 세론은 한국 회사고. 일본인은··· 일본 걸 애용해야··· 하지만 간담은 일본 거니까 괜찮지 않을까?"

한국과 스켈레톤에 대한 거부감은 여전하다.

하지만 그렇다고 그냥 넘어가기엔 간담과 스켈레톤의 조화가 탐스러워도 너무 탐스럽다.

다나카가 방을 서성이며 말했다.

"가? 말아? 아아! 어떻게 해야 돼!"

*

결국 퍼레이드 당일 가족들과 함께 세론 대륙에 온 다나카.

그때 다나카의 아들이 손녀를 안은 채 눈치를 보며 말했다.

"아버지, 괜찮으세요?"

"뭐가."

"저희 식구들이야 계속 오고 싶어 했지만 아버지는 한국이랑 스켈레톤 싫어하시잖아요."

"···싫다고 무조건 거부할 수는 없는 거니까."

평소와는 달라도 너무 다른 다나카의 말에 아들이 놀란 표정으로 말했다.

"진심이세요?"

"시끄러!"

다나카가 손을 휘저으며 말했다.

"가서 그 이세계인지 뭔지 그거나 해. 그거 안전한 것 맞지?"

"예. 패밀리 모드도 있어서 아이랑도 같이 들어갈 수 있어요."

"그럼 나는 밖에 있을 테니까 놀고 나와."

"예? 밖에서 뭘 하시려··· 아!"

아들이 아차 하는 표정으로 말했다.

"그러고 보니 오늘이 첫 퍼레이드 날이었지? 설마 아버지, 그걸 보시려고 오신 거······."

"거, 조잘조잘 시끄럽네! 얼른 들어가!"

다나카의 역정에 결국 가족들을 데리고 돔 안으로 들어간 아들.

혼자 남은 다나카가 광장 주변을 살피며 말했다.

"여기서 한다 이거지?"

출입이 금지되어 있는 광장 중앙을 중심으로 사방에 몰려든 인파.

그들 중엔 젊은 사람도 있었지만, 다나카 같은 중장년층의 수도 결코 적지 않았다.

"제발 잘 구현해 줬으면 좋겠는데······. 젠장. 내가 세론 같은 한국 회사를 응원하는 날이 오다니."

그렇게 퍼레이드 시작 시간을 확인하며 기다리던 그때.

"어!?"

한 사람이 하늘을 가리키며 말했다.

"저, 저건 설마!"

그 말에 하늘을 올려다본 다나카의 입이 쩍 하고 벌어졌다.

"화이트 간담!"

하늘에서 이쪽을 향해 날아오는 화이트 간담.

"하늘을 나는 것까지 구현했다고!?"

그렇게 다나카를 비롯한 사람들이 그 모습에 경악하는 사이 화이트 간담이 하늘을 날아 출입 금지 구역에 쿵 하고 착지한다.

그리고 천천히 몸을 일으키는 화이트 간담.

18m에 달하는 거대 로봇이 자연스럽게 움직이는 것은 물론 하늘까지 날아다니니 다나카는 자신도 모르게 눈물이 핑 도는 기분이었다.

"내, 내가 살아생전 이런 걸 실물로 보게 될 줄이야."

그렇게 감격하여 어쩔 줄을 몰라 하던 그때.

"빠, 빨간색이다!"

이번엔 다른 쪽 하늘에서 빨간색 로봇이 이쪽을 향해 날아온다.

그 모습을 보고 다나카가 외쳤다.

"빨간색!"

주인공의 라이벌이자 빨간색이 트레이드마크인 거대 로봇의 등장.

그때 화이트 간담이 다시 하늘을 날아오르더니 총을 꺼내 들어 빨간색 로봇을 향해 발사하자 레이저 광선 같은 빔이 쭉 하고 뻗어 나간다.

그런데 그런 빔을 엄청난 속도로 회피하는 빨간색 로봇.

다나카가 주먹을 불끈 쥐며 말했다.

"역시 빨간색은 3배 더 빠르지!"

그리고 그 순간 시작된 두 로봇의 대결.

그때 살짝 밀리기 시작한 빨간색 로봇에서 음성이 튀어나왔다.

-이게 연방의 모비루슈츠?!

그 말에 간담 마니아인 다나카는 바로 눈치챌 수 있었다.

"화이트 간담 2화 첫 대결 신! 이번 퍼레이드는 그거였어!"

다나카는 결국 눈물을 흘리며 외쳤다.

"아아! 최고다! 이게 진짜 간담이지!"

*

스켈레톤을 이용한 거대 로봇 퍼레이드의 성공적인 안착은 일본인을 환호하게 만들었다.

덕분에 전국에서 후쿠오카의 세론 대륙으로 밀려드는 일본 관광객들.

당연히 이 모든 건 간담 제작사가 적극적으로 협조해 준 덕분도 있지만, 역시 가장 핵심적인 역할을 한 건 백상호를 비롯한 연구 센터 연구원들이었다.

"여기서 조금 더 이렇게 연출을 하면······."

"아니야! 내 Z간담은 이렇지 않아!"

원래도 오타쿠 기질이 있던 연구원들에게 있어서 이번 퍼레이드는 그야말로 자신들의 로망을 실현시킬 절호의 기회나 다름없었다.

당연히 모든 재능과 실력을 총동원하여 화려한 전투 장면을 현실에 재현했고, 그 결과물로 일본 사람들을 열광하게 한다.

그리고 그중에서도 가장 적극적인 사람은 역시나 센터장인 백상호.

백상호가 충혈된 눈으로 간담 애니메이션을 보며 말했다.

"우주세기에 질 수 없지. 언제적 우주세기야! 이제 대세는 신간담이라고! 보여 주지, 구시대의 유물과는 차원이 다른 게 신간담이라는 걸!"

우주세기니 신간담이니 영문 모를 소리를 하며 콘솔을 두들기는 백상호.

나는 그런 백상호에게 다가가 말했다.

"센터장님?"

하지만 그런 내 말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백상호는 계속해서 무어라 중얼거리기만 한다.

"일단 주연급 개체와 보급형 개체의 스펙을 조절해서 대규모 전쟁을 구현하려면 일단······."

완전히 정신 줄을 놓은 듯한 백상호의 모습에 나는 피식 웃으며 책상을 두드린다.

"센터장님!"

그러자 그제야 내 존재를 알아챈 백상호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며 말했다.

"회, 회장님! 언제 오셨습니까!?"

"방금요."

나는 애니메이션을 힐끔 보며 말했다.

"잘돼 갑니까?"

"물론입니다! 제가 세론에 입사한 이래 가장 최선을 다해서 업무에 임하고 있습니다!"

그때 백상호가 아차 하는 표정으로 말했다.

"아! 그렇다고 해서 평소에 일을 대충한다는 의미는 절대 아니······."

나는 손을 휘저어서 백상호의 말을 끊으며 말했다.

"알아요, 알아. 아무튼 문제없다는 거죠?"

"물론입니다. 이미 300여 개 정도의 퍼레이드 리스트를 모두 구상 완료 했습니다!"

일단 만들어만 놓으면 언제든 다시 불러올 수 있기에 나중에 퍼레이드 종류가 쌓이면 시간대별로 랜덤하게 진행할 거라 넉넉히 구상하라곤 했지만, 그걸 벌써 300여 개나 선정하다니.

"300개 전부 구현하려면 시간이 많이 걸리겠네요."

"자는 시간을 줄여서라도 반드시 만들어 내겠습니다!"

이런 걸 덕업일치라 하는 건가.

일을 하며 덕질도 할 수 있는 꿈의 직업.

본인이 즐거워서 하는 건데 굳이 말릴 필요는 없지.

나는 피식 웃으며 말했다.

"열심히 하세요."

"이런 기회를 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그나저나, 이제 사람들 반응도 달아올랐으니 본격적으로 스켈레톤 놀이 기구들을 만들 생각인데, 그쪽은 잘되어 갑니까?"

그러자 백상호가 자신만만한 표정으로 말했다.

"지금 당장이라도 만들 수 있습니다! 저희 센터에 놀이공원 덕후··· 아니 마니아가 제법 많아서 크게 어렵지 않았습니다!"

···뭔가 센터에 한국의 덕후들을 죄다 모아 놓은 것 같은데?

아무튼.

"잘 정리해 두세요, 조만간 세론 대륙으로 가서 놀이 기구 만들어야 하니까."

"알겠습니다! 아. 그런데 회장님."

백상호가 내 눈치를 보며 말했다.

"혹시 세론 대륙을 한국에 만드실 생각은 없으십니까?"

"한국?"

"예. 한국에도 일본만큼이나 로봇 마니아층이 잘 분포해 있어서 말입니다. 놀이 기구와 RPG도 마찬가지고요."

하긴.

한국과 일본이 서로 못 잡아먹어 안달인 건 사실이지만, 사회구조도 그렇고 여러모로 비슷한 점이 많기는 하지.

후쿠오카 세론 대륙의 방문객 중 상당수가 한국에서 찾아간 한국 관광객일 정도니까, 아마 한국에 만들어도 금방 대박이 날 거다.

"일본에서의 테스트가 끝난 다음 단점을 모두 보완해서 한국에 만들 겁니다."

그러자 백상호가 환하게 웃으며 말했다.

"그렇습니까?"

"예. 거기에 한국뿐만이 아니라 세계 이곳저곳에 만들어 글로벌 브랜드화 할 생각이라서요."

마우스 랜드처럼 세계 각지에 테마파크를 만들어 돈도 벌고 스켈레톤에 대한 거부감도 줄인다.

세론 대륙은 RPG 버전 귀신의 집이고, 그런 세론 대륙과 각종 놀이 기구와 퍼레이드를 모두 합친 테마파크의 정식 명칭은 세론 랜드.

"세상 모든 사람의 로망을 체워 주는 세론 랜드. 듣기만 해도 신나지 않습니까?"

내 말에 백상호가 주먹을 불끈 쥐며 말했다.

"그걸 빨리 실현하려면 저희 연구가 빨리 끝나야겠구요."

"정확합니다."

"지금 바로 업무에 들어가겠습니다! 맡겨만 주십시오!"

*

만드는 사람도 신나 하고 방문객들도 즐거워하니 세론 랜드는 빠른 속도로 완성되어 갔다.

"우와아아아아!"

거대 스켈레톤이 뼈로 된 바구니를 잡고 들어 올려 천천히 휘두르자 그 안에 타고 있던 사람들이 즐거운 비명을 지른다.

나는 그 모습을 보고 씨익 웃으며 말했다.

"그래. 이거지."

스켈레톤의 특성을 이용해 연구원들이 놀이 기구를 고안하고 그 놀이 기구를 내가 즉석에서 만들어 낸다.

그런 다음 사람들의 반응이 좋으면 약간의 보강을 거쳐 세론 랜드 놀이 기구로 정식 등록 하고 만약 반응이 별로다 싶으면 바로 해체.

놀이 기구 하나 들여오는 것도 신중에 신중을 거듭해야 하는 다른 테마파크는 엄두도 내지 못할 방법이었다.

덕분에 세론 랜드의 놀이 기구는 뭐 하나 빠지는 게 없을 만큼 하나하나가 모두 독특했다.

방금처럼 거대 스켈레톤이 휘두르는 바구니를 타는 것부터, 직접 스켈레톤을 조종하여 대결을 하는 등등, 그야말로 오직 이곳에서만 경험할 수 있는 놀이 기구들로 가득 찬 세론 랜드.

물론 처음부터 이 놀이 기구들이 환영받은 것은 아니었다.

여전히 스켈레톤에 대한 거부감은 남아 있고, 무엇보다 기존 소재와 전혀 다른 뼈로 놀이 기구를 만들었기에 안전을 염려하는 사람도 많았으니까.

하지만 퍼레이드와 세론 대륙 덕분에 점점 거부감이 희석되며 이제는 거침없이 스켈레톤 놀이 기구를 타는 사람들.

그렇게 세론 랜드는 점점 테마파크로서의 모습을 갖춰 나가고 있었다.

"다음엔 배치를 좀 더 신경 써야겠어."

아무튼 그렇게 직접 테마파크를 만들어 보니 고쳐야 할 부분이 계속해서 눈에 보인다.

처음부터 모든 계획을 잡고 만든 게 아니라 즉석에서 조금씩 늘리다 보니 동선도 비효율적이고 배치도 주먹구구식일 수밖에.

스켈레톤 놀이 기구는 언제든 바꿀 수 있지만, 화장실이나 각종 시설물은 한번 배치하면 옮기는 게 보통 일이 아니니까.

"다음번엔 입구 근처에 광장을 먼저 배치하고, 그다음 놀이 기구를 이렇게 분포해서······."

그렇게 배치에 대해 고민하고 있던 그때.

나를 수행하던 비서가 전화 통화를 하더니 굳은 표정으로 말했다.

"회장님."

"무슨 일입니까?"

"세론 랜드 놀이 기구 안전성 문제로 총무성에서 조사를 나온답니다."

*

급히 세론 랜드 사무실로 이동한 나는 비서에게 말했다.

"갑자기 안전성 문제라니 그게 무슨 말입니까? 전부 규정에 맞춰서 만든 건데."

즉석에서 만들기는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규정까지 어겨 가며 만든 것은 아니었다.

놀이 기구를 지탱하는 구조가 버틸 수 있는 하중부터 장력 등등, 일본 정부에서 정해 둔 기준을 모두 충족해서 만든 게 바로 내 스켈레톤 놀이 기구들이니까.

당연히 만들고 난 직후 총무성에서 안전 적합 검사까지 모두 받았는데 갑자기 안전성 검사를 한다고?

비서가 번역해 둔 일본의 놀이 기구 안전 규정집을 보여 주며 말했다.

"저희 놀이 기구는 모든 규정을 준수해서 만들었습니다. 안전 적합 검사도 통과했고요. 그런데 이 조항이 문제랍니다."

비서가 가리킨 규정은 바로 놀이 기구의 구성 강도에 대한 규정이었다.

"무슨 소립니까, 그게. 이 규정 지켜서 하중 압력이랑 기타 등등 다 맞춘 건데."

"그게 아니라 규정의 앞부분을 보시지요."

"앞부분?"

그렇게 규정의 앞부분을 읽기 시작한 나.

"금속, 나무, 플라스틱의 소재 종류와 상관없이 이용 인원수에 따른 적정 하중을 견뎌··· 어?"

설마.

"금속, 나무, 플라스틱. 이걸 말하는 겁니까?"

"예."

비서가 곤란하다는 표정으로 말했다.

"총무성에 신고가 들어왔는데, 이 규정상 놀이 기구 구성 소재에 뼈는 없다며······."

"이런 미친."

나는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말했다.

"이건 그냥 예시잖아요, 예시. 어떤 소재를 사용하든 적정 중량을 맞추라는 예시!"

"맞습니다. 문제는 이 예시에 뼈가 없다는 겁니다."

"총무성에서 문제없다고 확답까지 받았는데?"

"총무성에서도 이건 어디까지나 예시이고 뼈를 쓰면 안 된다는 규정도 없어 허가해 준 건데, 누군가가 이걸 걸고넘어져 신고를 한 거라 조사를 안 할 수도 없다며 곤란해하고 있습니다."

국가기관에 신고가 들어왔는데 신고를 무시할 수는 없으니 조사하는 시늉이라도 해야 한다는 말.

문제는 조사하는 기간 동안 놀이 기구를 운영할 수 없게 된다는 거다.

그것도 뼈로 만든 스켈레톤 놀이 기구 전부를.

"총무성에선 뭐랍니까?"

"최대한 빠르게 조사를 하겠다며, 아마 큰 문제 없이 넘어갈 테니 너무 걱정 말라고 하기는 했습니다. 이 해석대로라면 완전한 합법이라 보기엔 애매하지만, 그렇다고 불법인 것도 아니니까요."

일단은 다행이네.

하지만 이건 근본적인 해결책이 아니다.

불법은 아니라지만 누군가 또 이 조항을 걸고넘어지며 신고를 하면 국가기관은 다시 움직일 수밖에 없으니까.

"어이가 없네."

겨우 예시로 든 조항 가지고 태클을 걸다니.

"신고자가 누굽니까?"

"···개인 정보라 알려 줄 수는 없는데, 한두 명이 아니랍니다."

여전히 스켈레톤에 거부감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의 집단 신고.

그렇다면 총무성에서 좋게 좋게 넘어가도 결국 또 같은 일이 발생할 거다.

"이렇게 나온다 이거지? 지금 문제가 이게 합법과 불법을 가늠할 수 있는 기준이 명확하지 않다는 거죠?"

"맞습니다."

"그럼 간단하네. 이걸 합법으로 만들어 버리면 되지."

이미 확립된 조항을 수정하는 건 매우 어려운 일이다.

하지만 그 안에 단어 몇 개 추가하는 것 정도는 나 정도 힘을 가진 사람에겐 일도 아니지.

"후쿠오카가 연고지인 의원이 누가 있죠?"

"니기시 의원이 있습니다."

"연락해서 나 좀 보자고 해요."

나는 씨익 웃으며 말했다.

"관광도시 후쿠오카의 미래와 관련해 긴히 할 말이 있으니까."

104화

니기시 의원의 사무실에 방문한 나는 느긋한 표정으로 말했다.

"그런 이유로 저는 뼈를 그 조항의 일부로 삽입했으면 합니다."

내 말에 니기시 의원이 곤란하다는 표정으로 말하자 비서가 통역을 해 준다.

"규정의 수정은 그리 쉬운 일이 아니라고 합니다."

일반적으로 규정을 수정한다는 건 그 산업의 틀 자체를 바꾸는 일이니 난감해하는 것도 이해는 간다.

하지만 법안을 발의하는 것과는 비교조차 안 될 만큼 간단하며, 무엇보다 어차피 뼈를 이용한 테마파크는 오직 나만 만들 수 있단 말이지?

즉 뼈 하나 추가 한다고 해도 다른 산업들에는 아무런 영향이 없다는 말.

"쉬운 일은 아니죠. 하지만 어려운 일도 아니지 않습니까? 안전 규정 개정안만 발표해 주시면 그다음은 일사천리입니다."

내가 니기시 의원에게 원하는 것은 그저 총대를 메고 뼈를 규정에 포함시키자 주장을 한번 해 달라는 것뿐이다.

그럼 그다음은 논의를 거쳐 규정에 포함을 시킬지 안 시킬지를 결정하는 것뿐인데 세론과 나에 대한 호감도는 물론, 최근 급상승한 세론 랜드의 위상을 생각하면 통과는 불 보듯 뻔하다.

의회 입장에서도 이미 자리 잡아 사람들이 애용하고 있는 시설을 이렇게 합법도 불법도 아닌 애매한 경계선에 두는 건 분명 부담이니까.

"의원님, 관광업은 후쿠오카의 중추 산업 중 하나 아닙니까? 그리고 세론 랜드는 지금 그런 후쿠오카 관광업의 떠오르는 기대주고요. 참고로 이미 저번 달에만 세론 랜드 방문객이 40만에 달합니다. 하지만 저는 이걸로 만족할 생각이 없습니다."

나는 확신에 찬 표정으로 말했다.

"저는 세론 랜드를 최소한 도쿄 마우스 랜드급으로 키울 생각입니다. 당연히 그에 따른 투자도 동반될 거고요. 아시겠죠? 도쿄 마우스 랜드의 파급력은."

테마파크를 목표로 확정 지은 뒤, 일본 마우스 랜드에 대해 조사를 한 나는 그 규모와 고객 모집력을 보고 어떻게 놀이공원들만 운영해서 시총 10위에 오른 건지 바로 알 수 있었다.

운영사가 보유한 도쿄 마우스 랜드 하나만 해도 한 해 방문객 수가 2천만에 육박하는 수준으로, 한국에서 가장 유명한 테마파크 1년 방문객 수의 3배에 달했으니까.

심지어 면적은 한국의 테마파크 쪽이 3배나 더 크니, 도쿄 마우스 랜드는 동일 면적으로 따지면 한국의 유명 테마파크의 9배에 달하는 고객 모집력을 지니고 있는 셈이었다.

"아직 완성되지도 않은 세론 랜드의 한 달 고객이 40만인데 완성이 되면 얼마나 많은 사람이 몰리겠습니까. 당연히 그런 고객이 늘어날수록 주변 상권과 경제도 활성화되는 법이니 세론 랜드는 후쿠오카에 있어 중요한 랜드 마크가 될 겁니다. 그런 랜드 마크가 불법도 합법도 아닌 애매한 경계에 있다? 니기시 의원님께서 이걸 방관했다가 문제가 불거지면 오히려 곤란하지 않을까요."

사실 총리와도 안면을 텄고 총리는 일본 내에서 가장 큰 계파를 지닌 정치인이기에 총리에게 부탁하면 이것보다 훨씬 쉽게 처리가 가능하겠지만, 고작 이런 규정 하나 수정하자고 총리 찬스를 사용하는 건 너무 과하잖아?

닭 잡는 칼과 소 잡는 칼이 따로 있듯 인맥도 용처가 전부 따로 있는 법이니까.

내 말에 한참을 고민하던 니기시 의원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알겠다고 합니다. 의원님께서 직접 공론화시키겠다고 하십니다."

"오케이!"

나는 환하게 웃으며 말했다.

"잘 부탁드립니다, 의원님. 후쿠오카의 미래를 위해."

*

니기시 의원이 총대를 메고 뼈를 안전 규정의 일부로 삽입하자는 주장을 하자 내 예상대로 반응은 호의적이었다.

이미 일본 정부와 게이트 방위 조약까지 체결하며 우호적인 관계를 맺고 있는 나인 데다 세론 랜드에 대한 국민들의 여론도 긍정적이니 당연한 결과.

아무튼 그렇게 본격적으로 의회에서 논의가 이어지는 사이 총무성의 안전 점검으로 다시금 합격 판정을 받은 세론 랜드의 놀이 기구가 다시 작동되며 이제 규정만 수정되면 아무 문제 없겠다 생각하던 그때.

결국 이번엔 또 다른 훼방꾼이 나타났다.

그것도 그전처럼 신고만 하는 것이 아니라 직접 모습을 드러내서 말이다.

나는 세론 랜드 앞에 모인 사람들을 보며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말했다.

"시위?"

그것은 바로 시위였다.

대부분이 남자로 이루어진 시위대가 팻말을 들고 뭐라 뭐라 외친다.

"뭐라는 겁니까?"

"그··· 일자리 문제부터 안전성. 그리고 한국 기업에 특혜를 주어선 안 된다는 내용입니다. 거기에 에너지 매입의 위험성 등등 그야말로 오만 가지를 전부 주장하고 있습니다."

"또라이들인가? 저놈들 누굽니까?"

"규슈 애국 연합이라는 우익 단체입니다."

저 자식들이구나.

저놈들이 신고를 하고 계속해서 방해하던 거였어.

뉴스에서나 보던 우익 단체에게 직접 피해를 볼 줄이야.

"저거 영업 방해 죄로 신고 안 됩니까?"

"집회와 시위 장소에 대한 자유가 보장되어 있어서 정식으로 신고한 집회는 방법이 없습니다. 저놈들이 여기를 직접 쳐들어와 집기를 훼손하는 게 아닌 이상."

"골 때리는 놈들이네."

나는 비서를 돌아보며 말했다.

"손님들이 불편해하지는 않습니까?"

"딱히 신경 쓰는 거 같지는 않습니다. 실제로 한국 언론에서 목소리가 큰 우익 단체를 집중 조명해서 그렇지, 일본 내에서도 저런 극우 성향의 우익 단체는 경원시하는 분위기입니다."

그러니까 저건 극히 일부의 목소리라는 거잖아.

그럼 무시하면 그만이네.

어차피 규정이 정식으로 개정되면 세론 랜드는 법적으로 완전한 합법이되니 저들의 주장은 그저 헛소리로 남을 테니까.

하지만 영 성에 차질 않는다.

나를 건드린 놈들을 그냥 곱게 내버려 둔다는 게.

"확 쥐어박고 싶은데."

마음 같아선 저런 말도 안 되는 주장을 하는 놈들을 모조리 잡아다 재교육을 시키고 싶지만 그랬다간 오히려 다른 우익 단체까지 자극해서 상황이 더욱 복잡해질지도 모르니까.

그때 비서가 말했다.

"회장님, 그냥 무시하시는 게 답입니다. 어차피 일본인 중에서도 우익 단체의 말도 안 되는 주장을 진지하게 받아들이는 사람은 많이 없으니까요."

"진지하게 받아들이는 사람이 없다라······."

나는 잠시 고민하다 비서를 보며 말했다.

"일본인들 사이에서 우익 단체 이미지가 안 좋다 그랬죠?"

"그렇습니다."

내가 쥐어박는 건 부작용이 심할 거다.

하지만 내가 아니라 다른 사람들이 쥐어박을 수밖에 없도록 만들면 되는 거잖아?

나는 비서를 보며 말했다.

"RPG 게임 회사랑 미팅 잡으세요."

"게임 회사랑 말입니까?"

나는 여유로운 표정으로 말했다.

"RPG 게임을 현실판으로 만들어 주면 일본인들이 좋아할 거 아닙니까."

그간 뼈만 이용해서 언데드를 만들었지만 내가 마음만 먹는다면 까짓 거 게임 속 몬스터 몇 가지 구현하는 건 일도 아니지.

미트 골렘을 만들었던 때처럼 살들을 엮어 기본 틀을 만들고 그 위에 미술 팀을 동원해 분장을 시키면 사람들이 꿈에서나 그리던 진짜 살아 움직이는 듯한 몬스터를 만들 수 있을 거다.

아니면 게이트 몬스터 중에 비슷한 외형의 놈들을 데려다 그 상태 그대로 좀비화시킨 다음 분장만 시켜도 되고.

추가로 거기에 재생 능력을 부여해 고객이 사냥하는 과정에서 입은 상처들을 다시 회복할 수 있게 만든 다음 무한정 굴리면 현실판 RPG 끝.

"아!"

"그렇게 기대감 잔뜩 부풀려 놓은 다음에 저놈들 시끄러워서 못 해 먹겠다. 이러다 철수할 수도 있다고 살짝 흘리면 알아서 자기들끼리 싸울 거 아닙니까."

나는 히죽 웃으며 말했다.

"보자고요. 일본이 저놈들 편인지, 내 편인지."

*

일본의 국민 RPG 게임과 협업을 통해 새로운 세론 대륙을 선보인다는 소식이 흘러가자 일본인들은 열광했다.

무려 실물 몬스터를 직접 잡고 사냥해서 능력을 키우는 현실 RPG라니.

심지어 앞으로도 이처럼 다양한 IP를 가진 회사들과 협업하여 게임과 만화로까지 모든 영역을 넓힌다니 일본인들은 기대감에 부풀 수밖에.

그런데 그렇게 새로운 콘텐츠에 대해 기대를 하던 그때, 한 가지 소식이 그들을 강타했다.

그것은 바로 시위 단체로 인해 사업 타당성을 재고려한다는 소식.

어디까지나 비공식으로 흘러나온 말이었지만 이 정보는 일본인들을 분노케 하기 충분했다.

현실 RPG를 즐기기 위해 기다리던 게이머들과 코스프레를 즐기는 매니아들 그리고 세론 랜드 덕분에 상권이 활성화되고 경기가 살아난다며 좋아하던 일반 시민들까지 들고일어나 우익 단체를 비판한다.

물론 그런 비판에도 우익 단체는 굴하지 않았다.

에너지 매입으로 일본인의 정기를 갈취하고 스켈레톤으로 일본인의 생활을 무너트리는 것이 세론의 계획이라며 자신들은 반드시 그것을 저지할 거라 말하고 다닌거다.

결국 갈등은 커지다 못해 이제는 현실로까지 옮겨졌다.

"으아아!"

인터넷에서 우익 단체를 비판하던 사람들이 모여들어 우익 단체와 제대로 한번 붙었고 그렇게 싸움이 나자 경찰이 출동해 그들을 데려간다.

이미 세론의 맛을 본 사람들에게 있어서 자신의 생활에 별다른 도움이 안 되는 우익 단체의 과격 시위와 세론 중 어느 쪽이 더 필요한지는 자명하니까.

"군산 본사 앞을 보는 거 같네."

워낙 이미지 관리를 잘해 두어서 시위가 조금만 과격해져도 시민들이 나서서 처리하는 군산시와 비슷한 상황.

"역시 보이는 게 중요하다니까."

물론 우익 단체가 쉽게 포기하지는 않을 거다.

모르긴 몰라도 경찰에서 풀려나면 다시 몰려와 시위를 하겠지.

하지만 나 역시 비슷한 일을 반복하면 그만.

"이 정도면 훼방꾼들은 전부 처리한 거 같네요."

내 말에 비서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런 거 같습니다."

"더 문제되는 건 없죠?"

"예. 세론 랜드는 아무 문제 없··· 아, 그러고 보니 후쿠오카에 슬슬 인력난이 생기고 있다 합니다."

기다리고 기다리던 반가운 소식.

"에너지 매입으로 수익이 늘자 프리터들이 일을 줄여 인력 시장에 공백이 빠르게 생기는 거 같습니다."

오직 아르바이트로만 먹고사는 프리터들.

이들은 딱히 돈을 많이 벌려는 욕구도 없고 그저 생활비만 충족되면 그만인 사람들로 일본의 사회적 문제 중 하나였다.

그런데 이들이 에너지 판매로 추가 수입이 생기니 일을 줄이고 그 여파로 인력난이 심해진 후쿠오카.

"거기에 세론 랜드로 인해 관광객이 대거 늘면서 주변 상권이 활성화된 영향도 큽니다."

필요 인력은 늘어 가는 데 일할 인력은 오히려 줄어드는 스켈레톤이 진출하기 최상의 상황.

"좋습니다. 본격적으로 진출하죠. 알바 시스템 도입하고 포르미도 후쿠오카로 진출시키세요."

"알겠습니다."

한국에서 검증받은 시스템을 특구 중심으로 적용시켜 일본 시장을 먹어 치운다.

*

세론 랜드로 거부감을 줄인 뒤 인력난을 스켈레톤으로 매꾸며 성공적으로 진출한 세론 그룹.

그런 세론 그룹의 기세는 그야말로 거칠게 없었다.

이미 우익 단체 때도 그랬듯 세론에 대한 후쿠오카의 호감도는 최상이었으니까.

물론 여전히 반발하는 사람도 많기는 하지만, 그런 사람들은 내가 어떤 선물 보따리를 안겨 주든 귓등으로도 안 들을 사람들이다.

당장 스켈레톤이 보편화된 한국만 해도 스켈레톤과 에너지 판매에 부정적인 사람이 소수지만 여전히 존재하니까.

즉 나머지는 시간이 해결해 줄 일이라는 거.

"개정안도 조만간 통과될 거 같고··· 좋아."

일본 진출은 그야말로 순풍 일로.

그렇게 사업이 순조로우니 이젠 언데드 군단에도 신경을 쓸 차례다.

"슬슬 강력한 개체 하나 정도 만들어 볼까?"

SS급으로 만든 언데드는 분명 강력하다.

하지만 딱 원본 이상의 힘을 내지는 못하기에 정말 강력한 세론의 언데드 개체들을 상대론 부족하단 말이지.

"좋아. 더 위 급을 만들자. 내 아공간에 사체가 얼마나 있더라?"

SS급 몬스터 사체 4구와 S급 몬스터 36구.

그리고 그 외에 잡다한 몬스터까지 합치면 도합 3천 여구의 몬스터 사체가 내 아공간에 잠들어 있었다.

이 사체들의 사기를 모두 뽑아내 한 개체에 몰아주어 강력한 하나의 개체를 만드는 거다.

"이 정도면 친위대 간부급 정도는 만들수 있을 거 같은데."

SS급 각성자 3명을 홀로 상대할 수 있는 친위대 데스 나이트보다 더욱 강력한 간부급 데스 나이트.

이 정도는 되어야 쓸 만하지.

"한국 가서 바로 작업에 착수······."

그런데 그때 누군가에게 전화가 온다.

"음?"

그 사람은 바로 게이트 사태 때 백 인의 결사대와 함께 내 언데드 군단을 상대로 시간을 끌어 피해를 최소화시킨 나카무라였다.

나는 바로 전화를 받으며 말했다.

"오! 나카무라 씨!"

나카무라 덕분에 피해가 줄어 나 개인적으로도 참 고마운 사람이다.

그가 아니었으면 내 죄책감의 크기는 더욱 커졌을 테니까.

-잘 계셨습니까? 회장님.

어색하긴 하지만 나름 연습을 많이 했는지 제법 그럴싸하게 한국말을 하는 나카무라.

"저야 잘 있었죠. 그나저나 정신이 없어서 연락도 못 드렸네요. 봉합 수술이 잘됐다고 듣긴 했는데."

결사대를 이끌고 언데드 군단을 막다가 한쪽 눈과 다리를 잃은 나카무라.

당연히 일본 정부는 나카무라에게 최고의 의료진을 투입했고 눈이야 뭐, 현대 기술로도 어쩔 수 없다지만 다리는 다행히 봉합 수술을 받을 수 있었다.

-···봉합 수술.

그런데 나카무라의 목소리가 영 힘이 없다.

"무슨 일 있습니까?"

-썩습니다, 다리가.

썩는다고?

-회장님, 도와주십시오.

*

나는 사무실로 온 나카무라의 다리를 보고 혀를 차며 말했다.

"···심하네요."

잘 봉합되었다고 들었던 다리의 여기저기가 썩어 들어가며 괴사하고 있다.

안대를 낀 나카무라가 나를 보며 말했다.

"수술은 잘됐습니다. 그런데 이물질이 많았습니다. 그래서 썩습니다."

봉합 수술은 잘됐지만 사건 현장에서 찾아낸 나카무라의 다리는 현장을 뒹굴며 난장판이 되어 있던 상황.

그걸 가져다 최대한 깨끗하게 세척해서 봉합 수술을 했지만 눈에 보이지 않는 무언가까지 세척할 수는 없었겠지.

어쩌면 봉합 수술을 하기 전에 이미 내부가 감염되었을 수도 있고.

"도와주십시오."

"도와 달라고 해도···내가 뭘 어떻게 해 줍니까? 난 의사가 아닌데."

나카무라가 뭔가 결심한 표정으로 말했다.

"제 다리로 스켈레톤 가능합니까?"

"으엉?"

그러니까 설마 자기 다리를 스켈레톤화시켜서 의족처럼 쓰고 싶다는 거야?

나는 단호한 표정으로 말했다.

"저는 사람으로 스켈레톤을 만들지 않습니다. 이건 제 신념입니다."

물론 목격자가 없을 때 한정이긴 하지만 아무튼.

내 말에 나카무라가 축처진 얼굴로 말했다.

"이 다리가 없으면, 저는 은퇴입니다."

아오.

나카무라한테 마음의 빚이 있다 보니 그냥 무조건 거절하긴 너무 찝찝하다.

하지만 다른 것도 아니고 SS급이 자신의 능력을 자유자재로 다룰 수 있는 의족을 만들어야 한다니 이건 나도 해 본 적 없는 거라고.

애초에 세론엔 각성자 같은 게 있지도 않았고. 다리가 잘리면 그냥 그걸로 끝이지 봉합 같은 게 어딨어.

"부탁드립니다, 회장님."

"후우."

나는 눈을 감고 고민했다.

'해 주는 건 둘째 치고 가능은 한가?'

만약 가능만 하다면 스켈레톤 의족도 사업화시킬 수 있을텐데.

'일단 몸이랑 직접 연결은 불가능해.'

언데드가 괜히 언데드인가.

애초에 살아 있는 생명체와 반대되는 게 언데드다.

거기에 사기를 다루기에 작동 원리도 완전히 다르고.

하지만 스켈레톤과 로봇이 비슷한 작동 구조를 가졌다는 점에서 착안해 로봇과 스켈레톤을 적절히 조합해서 적용하면 되지 않을까?

여러모로 골치가 아프지만 나카무라의 부탁이기도 하고 나름 가능성도 있을 거 같으니 한번 시도는 해 보자.

나는 나카무라를 바라보며 말했다.

"해 봅시다. 물론 본인 다리로는 안 되겠지만."

그러자 나카무라가 환하게 웃으며 말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대신 무조건 성공한다는 보장은 없으니 너무 기대는 마시고요."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며 말했다.

"한국으로 갑시다. 가서 의족 테스트해 보죠."

105화

(작가의 말 : 104화 절단 부위에 마력이 흐르지 않는다는 내용은 삭제되고 다리가 괴사되어 간다는 내용만 남는걸로 수정되었습니다. 혼선을 드려 죄송합니다.)

나카무라와 함께 한국의 세론 연구 센터로 온 나는 나카무라에게 말했다.

"정리부터 한번 하고 갑시다. 전투에 지장이 없는 다리를 원하는 거죠?"

"맞습니다."

"그 다리는 도저히 가망이 없고?"

"계속 빨리 썩습니다."

괴사가 빠르게 진행되고 있다는 말이겠지.

"외형은?"

내 말에 나카무라가 단호한 표정으로 말했다.

"싸울 수만 있으면 됩니다."

외형은 상관없으니 성능 좋은 다리를 원한다라.

솔직히 성능 좋은 다리를 만드는 건 크게 어렵지 않다.

사람으로는 안 만든다 공언했으니 최대한 기존 다리와 비슷한 모양으로 스켈레톤 다리를 만든 다음, 다른 사체의 사기를 뽑아서 미친 듯이 쑤셔 넣으면 끝이니까.

문제는 그 다리를 어떻게 움직이냐는 거다.

"전투를 하려면 자연스럽게 다리를 움직일 수 있어야 하는데··· 하아, 이걸 어떻게 구현하지?"

복잡한 전투 환경에서, 심지어 순간 가속 능력을 지닌 나카무라인 만큼 다리를 자유자재로 움직일 수 있어야 된다.

"흐음."

그렇게 잠시 고민하는 사이 백상호가 수레를 끌고 안으로 들어오며 말했다.

"회장님, 모두 가져왔습니다."

백상호가 가져온 것은 다름 아닌 시중에서 파는 의족들.

의족에 대한 지식이 전무한 나이니 참고를 하기 위해서 구해 오라 지시한 것이었다.

"일단 나카무라 씨는 서울의 유명 병원에 제가 예약해 뒀으니까 다시 진료받아 보세요. 혹시 압니까? 다리를 살릴 수 있을지."

의족은 어디까지나 차선책이고 가장 좋은 건 역시 다리를 살리는 거니까.

내 말에 나카무라가 큰 기대 없다는 표정으로 말했다.

"치료될까요."

"해 보는 거죠, 안 되면 어쩔 수 없는 거고. 어차피 나도 연구할 시간은 필요하니까 속는 셈 치고 가서 진료받아 봐요."

결국 나카무라는 내키지 않는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알겠습니다."

"밖에 차 대기시켜 뒀으니 바로 타고 가시면 됩니다."

그렇게 나카무라가 밖으로 나가자 나는 백상호가 가져온 의족들을 꺼내 들며 말했다.

"자, 본격적으로 의족 연구 한번 해 볼까?"

*

시중에서 파는 보급형 의족부터 사람 개개인에 맞춘 최고급 의족까지 종류별로 모두 사들여 작동 원리를 분석한 나.

저렴한 의족은 무게 중심을 다리 아래쪽에 두어 다리를 들어 올리면 자동으로 축 처지는 정도 수준에 불과했지만, 가격만 수천만 원에 달하는 최고급 의족은 무려 로봇 AI로 작동이 되었다.

"AI와 센서를 통해 바닥과 착용자의 동작을 자동으로 인식하고 그에 맞춰 움직이는 방식이랍니다."

"그럼 만약에 평소와 다른 과격한 행동을 하면? 예를 들어 갑자기 몸을 돌린다든지."

"아무래도 의족은 어디까지나 의족이라서 그 정도 기능까지는······."

AI와 센서를 이용한 로봇 의족.

나쁘지는 않지만, 한계는 명확하다.

고작해야 걷는 걸 자연스럽게 보이도록 도와주는 정도니까.

"그런 건 없습니까? 뇌파나 신경을 읽어서 동작하는 의수나 의족."

"있기는 한데 아직 시험 단계에 불과하답니다."

"왜죠?"

"저도 자세한 건 모르는데, 뇌파를 읽을 수는 있지만 노이즈가 너무 많아 정확한 해석을 하기 어렵다고 합니다."

"흠."

나는 잠시 고민하다 말했다.

"더 좋은 건 없어요?"

"예, 일단 상용화되어 있는 것들은 이 정도입니다."

생각보다 의족의 수준이 형편없다.

"이거 골치 아프네."

로봇과의 조합으로 의족을 만들어 볼까 했는데 이 정도 수준이라면 전혀 도움이 안 된다.

"결국 사람의 의지를 읽어 내는 게 문제라는 건데."

사람의 의지를 읽어 내고 그 의지에 따라 작동하는 의족.

그때 한 가지 아이디어가 떠오른다.

'마력? 마력을 이용해 볼까?'

의지를 읽을 수만 있다면 그 매개체가 뇌파든 신경이든 무슨 상관인가.

'마력 감응 마법진을 의족에 새겨 넣고 마력의 움직임에 따라 똑같이 움직이게 만들면··· 이건 되지 않을까?'

SS급으로 마력을 자유자재로 다룰 수 있는 나카무라이기에 가장 현실성 있는 대안.

이거라면 가능할 거다.

하지만 아쉬운 마음이 든다.

"기왕이면 일반인도 사용할 수 있으면 좋을 텐데."

마력만을 의족의 통제 수단으로 삼으면 SS급들 말고는 사용할 수 없는 의족이 되어 버리지 않나.

기왕 할 거면 누구든 사용할 수 있게 만들어야지.

세론 랜드로 환상을 보여 주고, 스켈레톤으로 현실의 어려움을 부숴 주고 얼마나 좋나.

비록 이걸로 많은 돈을 벌지는 못하겠지만 이미지 하나만큼은 확실하게 챙길 수 있을 거다.

"흐음."

하지만 아무리 고민해도 마땅한 방법이 떠오르지 않는다.

"그냥 일단 부딪쳐 보자."

나는 백상호를 보며 말했다.

"다리 아픈 사람들을 대상으로 의족 테스트를 하려고 하니 지원자 좀 모집해 주세요."

*

의족 테스터를 모집하며 상당한 보상금과 테스트 성공 시 의족을 지원해 준다는 조건이 붙자 테스트 지원자가 물밀듯이 쏟아졌다.

그렇게 모집한 지원자들과 함께 본격적으로 연구에 들어간 나.

일단 가장 먼저 테스트한 건 스켈레톤의 주행 알고리즘을 역으로 이용한 의족이었다.

사람의 신체는 개별적으로 움직이는 게 아니라 전신이 조화롭게 움직인다.

이걸 이용해서 스켈레톤의 주행 알고리즘을 적용해 정상 다리가 움직이면 그 움직임에 최적화된 알고리즘으로 의족이 알아서 움직이는 방식.

그렇게 한 남자가 외골격처럼 양다리를 모두 감싸는 스켈레톤을 입고 정상 다리를 한 걸음 내디딘다.

그러자 그 정상 다리의 움직임을 감지해 의족 역시 그에 맞는 알고리즘으로 움직인다.

"오오!"

남자가 환하게 웃으며 말했다.

"이거 최고입니다! 걷는 데 이질감이 거의 없어요!"

아주 만족하는 듯한 남자의 말.

하지만 나는 전혀 아니었다.

"···이건 안 되겠네."

반대쪽 다리의 움직임에 맞춰 알고리즘대로 움직이는 방식인데 같은 동작을 반복할 때야 아무런 문제도 없다.

하지만 갑자기 멈춰 서거나 몸을 획 돌리는 등 특수한 행동을 하면 연속성이 깨지며 부자연스러운 자세가 나온다.

균형을 맞추는 알고리즘 덕분에 넘어지지는 않지만 내가 기대한 수준을 한참 밑도는 수준.

물론 이 정도만으로도 기존에 시중에 있던 의족만 사용해 본 남자는 만족해하지만 말이다.

"우하하. 계단을 이렇게 쉽게 오를 수 있다고?"

나는 그 모습을 보고 심드렁한 표정으로 말했다.

"일반인 대상으론 가능성은 있지만, 전투용으로는 택도 없겠어."

나는 백상호를 보며 말했다.

"두 번째 테스트 진행하세요."

두 번째 의족은 이빨에 마법진을 만들어서 윗니와 아랫니의 접촉면과 강도에 따라 의족을 직접 조종하는 일종의 변형 무인 조종 스켈레톤이였다.

그렇게 두 번째 의족을 착용한 남자가 작동 버튼을 누른 다음 이빨을 위아래 양옆으로 부비며 다리를 조종한다.

그러자 다리가 천천히 움직였지만 결국 한 걸음조차 내딛지 못하고 바로 쓰러진 남자.

숨 쉬듯 자연스럽게 조종하던 걸 이빨로 일일이 조종하려 하니 쉬울 리가 없지.

하지만 남자는 이번에도 만족했다.

"우하! 세상에. 원하는 대로 조종이 가능한 의족이라니!"

도대체 어떤 세상을 살아왔길래 저런 걸로도 그렇게 행복해하는 거야.

나는 남자를 보며 말했다.

"괜찮으십니까?"

"괜찮다마다요! 진짜 10년 가까이 왼쪽 다리 없이 살아왔지만 이런 의족들은 처음입니다!"

남자가 희망에 찬 얼굴로 말했다.

"이 의족들이라면··· 조금 더 편하게 살 수 있을 겁니다."

"그래요?"

솔직히 이번 것도 내 기준에선 실패다.

이빨을 이용한 조종에 숙달되면 훨씬 자연스럽게 걸을 수 있겠지만, 동작 하나하나를 일일이 조종하여 다리를 움직인다는 건 상당한 정신력 소모가 동반될 터.

'내가 너무 욕심을 부린 건가?'

일반인에겐 지금 만든 의족만으로도 이미 기존에 상용화된 의족보다 압도적으로 상위 호환

그러니 일반인용은 이 정도로 만족하고 SS급만 쓸 수 있든 어쩌든 그냥 마력으로 움직이는 의족을 만들어 나카무라에게 주는 것이 가장 현실성 있는 것 같은데.

'조금만 더 해 보자. 조금 더 해 보고 안 되면 그냥 기존 계획대로 간다.'

그렇게 반쯤 내려놓고 실험을 진행하려던 그때.

"윽!"

테스트를 받고 환하게 웃던 남자가 갑자기 몸을 바들바들 떨며 말했다.

"왼쪽, 왼쪽 뒤꿈치가 크윽!"

어?

의족을 벗어 왼쪽 다리가 휑하니 비어 있는데 남자가 그런 왼쪽 다리를 향해 손을 허우적거린다.

"뒤꿈치가 아파!"

이게 무슨 소리야.

무릎 아래로 왼쪽 다리 전부가 없는데 뒤꿈치가 아프다고?

없는 부위가 아프다는 당혹스러운 상황.

나는 다급히 테스트 지원을 온 의료진에게 말했다.

"왜 저러시는 겁니까? 없는 왼쪽 뒤꿈치가 아프다니요?"

그러자 의료진이 씁쓸한 표정으로 말했다.

"환상통입니다."

"환상통? 그게 뭡니까?"

"간단하게 설명하자면 뇌가 착각을 하는 겁니다."

의료진이 남자의 차트를 바라보며 말했다.

"모든 신경은 뇌로 이어져 있고 뇌에서 판단을 내립니다. 그런데 절단되면서 없어진 부위의 신경 전달이 끊기며 불량 신경이 된 겁니다. 그러면서 뇌가 그런 불량 신경을 통증이나 가려움 등으로 잘못 느끼는 거고요."

"치료 방법은 없습니까?"

"완치 방법은 없습니다. 그저 완화되길 기대하며 살아가는 수밖에. 하지만 이분은··· 벌써 10년째 환상통을 경험하고 계시는군요. 아. 다행히 완화하는 방법이 차트에 적혀 있습니다. 거울 가져와!"

그 말에 다른 의료진이 거울을 가져와 남자의 오른쪽 다리를 비추며 말했다.

"자, 상욱 씨. 이 다리는 상욱 씨의 왼쪽 다리입니다."

"후욱. 후욱."

"천천히 발가락을 움직여 보세요."

그러자 익숙한 듯 오른쪽 발가락을 천천히 움직이는 남자.

"왼쪽 발가락이 움직입니다."

저게 뭐 하는 거지?

오른쪽 다리를 비추면서 왼쪽 다리라 부른다고?

"이번엔 왼쪽 무릎을······."

그렇게 잠시 거울을 보며 오른쪽 다리를 움직이던 남자가 애써 웃으며 말했다.

"많이 좋아졌습니다. 감사합니다, 선생님."

"아닙니다."

그렇게 긴급 조치를 하고 돌아온 의료진.

"방금 거울로 오른쪽 다리 보여 준 거 아닙니까?"

"맞습니다. 거울 치료라고 하는 겁니다. 왼쪽 다리가 멀쩡하다는 걸 시각 정보로 뇌에게 전달하는 일종의 자기 암시죠. 우스워 보일 수 있지만 실제로 효과를 보는 사람들이 많은 치료 방법 중 하나입니다."

저 남자 스스로도 잘 알고 있다.

저 다리는 왼쪽 다리가 아니라 오른쪽 다리라는 걸.

하지만 그걸 시각 정보로 뇌에 전달하는 것만으로도 통증이 완화된다니.

"허."

그나저나 10년째 저런 고통을 겪고 있다고?

없는 부위에서 통증과 가려움이 느껴지면 어떻게 할 수도 없잖아.

기껏 치료 방법이라고 해 봐야 거울로 착시를 주는 게 전부라니.

세론에서 저런 부상자는 바로 후방에 버려지기 일쑤라 제대로 본 적이 없어 몰랐다.

"후우."

원래는 조금만 더 해 보고 말려 그랬는데 더 노력해봐야겠네.

"좋아, 그럼 다음 테스트를······ 응?"

그런데 잠깐만.

그저 착시를 주는 것만으로도 증상이 완화될 만큼, 뇌는 보이는 시각 정보에 약하다.

거기에 환상통이라고 했잖아?

없는 곳의 통증이라서 환상통이겠지?

나는 눈을 빛내며 말했다.

"만약에 거울 정도를 넘어서 진짜 환상 마법을 쓰면 어떻게 되는 거지?"

시신경에 교란을 줘서 내가 보여 주고 싶은 장면을 보여 주는 환상 마법.

만약 그 마법으로 진짜 다리가 생겨난 것처럼 보여 주면 뇌뿐만 아니라 환자 본인까지 속일 수 있을 거 아닌가.

"오호?"

그럼 당연히 뇌는 환상으로 보여 준 다리를 진짜로 인식하고 움직이려 하겠지?

나는 옆에서 대기하고 있던 백상호에게 말했다.

"뇌파가 어려운 게 노이즈가 심해서 그렇다고 했죠?"

"그렇습니다."

"누구한테 들은 겁니까?"

"뇌파를 연구하는 대학 연구팀에 자문한 겁니다."

"그래요?"

통각을 극도로 활성화해 상처 없는 고문이 가능한 것처럼 뇌파도 증폭시킬 수 있지 않을까?

"실력은 확실합니까?"

"한국에서는 최고라고 들었습니다."

"그럼 다시 한번 연락 좀 해 주세요. 제가 뭐 좀 물어보고 싶은 게 있어서."

*

뇌공학과 교수가 환하게 웃으며 나를 반긴다.

"어서오십시오, 한 회장님."

"반갑습니다, 우 교수님."

"저희 연구에 관심이 많으시다고요."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예, 맞습니다."

"하하. 그거 정말 좋은 소식이군요. 저희 연구 팀은 현재 뇌파를 이용해서 다양한 물체를 조종하는 연구를 진행 중인데, 상당한 진척이······."

그렇게 나를 만나자마자 연구 성과부터 늘어놓는 교수.

자주 봐 왔던 모습이다.

연구비 확보는 교수들의 제1 과제나 다름없으니까.

그렇게 잠시 교수의 말을 들어 주며 적당히 고개를 끄덕인 나는 교수의 말이 끝나자 본격적인 질문을 하기 시작했다.

"그래서 말인데, 뇌파를 이용한 의족 의수는 언제쯤 상용화가 가능할까요."

"···의족 의수."

"예."

"솔직히 말씀드릴까요?"

"말씀하세요."

"아직 멀었습니다."

교수가 담담한 표정으로 말했다.

"현재 뇌파 연구는 뇌파를 이용해 드론과 로봇을 조종하는 수준에 올랐습니다."

오?

그럼 상당히 진척된 거 아닌가?

"하지만 그건 앞뒤 이동 정도의 아주아주 간단한 뇌파를 읽는 수준에 불과합니다. 뇌파는 뇌 속 뉴런들의 다양한 정보가 혼재된 전파입니다. 당연히 뇌파는 이렇게 대화를 하는 짧은 순간에도 계속해서 변화하죠. 심지어 개개인마다 뇌파의 형질에 차이가 있으니 그 파동만으로 정확하게 신체 일부의 신경 반응만 완벽히 캐치하는 건 사실상 불가능 합니다."

흐음.

"결국 가장 확실한 방법은 사람으로 하여금 반복 동작을 하게 하여 그 행동 때마다 나오는 특정 뇌파를 찾는 것 뿐인데 이미 다리가 없어진 사람이 반복 동작을 할 수 있을 리가 없지 않습니까."

잠깐.

지금 문제가 이미 없어진 신체 부위 활용이 불가능해서 뇌파를 해석 할 수 없다는 말이잖아?

그럼 환상 마법으로 마치 신체 부위 활용이 가능한 것처럼 뇌와 환자를 속이면 되는 거 아닌가?

"게다가 보셨지요? 티비에서 뇌파 분석기에 앉아 있는 사람들. 그들은 머리 이곳저곳에 뇌파 측정기를 붙여 두고 뇌파를 측정합니다, 최대한 뇌 속 깊숙이 있는 뇌파를 측정하기 위해서. 하지만 결국 두피에서 머리 안에 있는 뇌파를 측정하는 것이기에 정확도는 떨어질 수밖에 없죠. 심지어 이렇게 해도 정확도가 떨어지는데, 의족을 상용화하려면 이걸 더욱 축소해야 합니다."

그거야 뇌파를 증폭시키면 그만이고.

교수는 단념하라는 듯 말을 하지만 들으면 들을수록 오히려 가능성이 보이는데?

나는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만약에 말입니다, 그 모든 걸 해결할 방법이 있다면 어떻습니까?"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지금 문제가 반복 행동을 하게 해서 그때마다 나오는 특정 뇌파를 찾아야하는건데 반복 동작을 할 부위가 없다는 거 잖아요? 개인마다 뇌파가 조금씩 달라서 다른 사람 뇌파를 분석하는 것 만으로는 의미가 없고."

"맞습니다."

"그럼 다리나 팔이 없는 사람에게 임시로 신체 부위를 만들어 주어 직접 움직여 보게 하고, 뇌파를 증폭시켜 측정하면 되는 거 아닙니까?"

그러자 교수가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말했다.

"뇌파 증폭은 그렇다 치고 임시로 신체 부위를 만들어 준다고요? 심지어 움직일 수 있게? 그게 가능하면 뭐 하러 의족 의수를 만듭니까."

"대충 그런 게 있습니다."

그때 교수가 갑자기 책상 아래 있던 자신의 다리를 꺼내더니 바지를 걷어 올린다.

그러자 보인 건 바로 의족.

"그런 게 있다면 제가 가장 먼저 달려가 해 보겠습니다."

교수 본인부터가 의족을 가장 필요로 하는 사람이었구나.

차라리 잘됐다.

본인 일이니 더욱 열정적으로 임할 테니까.

나는 교수를 바라보며 말했다.

"제 질문에 대답을 해 주신다면 제가 뭘 말하는지 확실히 보여 드리죠. 임시 신체 부위를 만든 다음 움직여 보게 해서 나오는 뇌파와 평소의 뇌파를 비교 분석하면 가능성 있습니까?"

"최소한 지금보다는 압도적으로 가능성이 높을 겁니다."

"오케이."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교수에게 다가가며 말했다.

"그 의족 잠깐 벗어 두세요. 반대쪽 바지도 걷어 올려 주시고."

그러자 교수가 반신반의하는 표정으로 의족을 벗는다.

'오른쪽 다리를 반대로 보이게 만들면 되겠지?'

나는 천천히 교수의 눈을 손으로 가린 다음 말했다.

"자, 지금부터 임시 다리 붙입니다."

그리고 마법진을 만들어 환상 마법을 시전한 나.

"이제 손 뗄 겁니다. 그럼 왼쪽 다리가 보일 거예요. 하지만 움직이면 안 됩니다. 아셨죠?"

"도대체 그게 무슨······."

"그냥 느끼세요. 자 뗍니다?"

그렇게 손을 떼자 교수가 황당하다는 표정으로 말했다.

"아무 느낌도 없었는데 느끼긴 뭘 느낀다는 겁니까?"

"왼쪽 다리 보세요."

그리고 교수가 자신의 왼쪽 다리로 눈을 돌리는 순간.

"어······?"

교수가 경악하며 말했다.

"내, 내 왼쪽 다리가!"

환상 마법으로 구현한 왼쪽 다리를 본 교수가 경악하며 자리에서 일어나려 하자 나는 교수를 제지하며 말했다.

"자자, 진정하세요. 움직이면 이 다리 다시 못 쓸지도 모릅니다."

내 엄포에 교수가 입을 꾹 다물고 가만히 있는다.

"지금부터 숫자 셋을 세면 왼쪽 엄지를 들어 올릴 겁니다. 하나, 둘, 셋."

그렇게 숫자 셋을 셈과 동시에 환상 마법으로 왼쪽 엄지를 들어 올리는 것처럼 보이게 만든다.

그러자 교수가 눈물이 그렁그렁한 얼굴로 말했다.

"우, 움직여. 내가 지금 발가락을 움직였어!"

역시 본인이 움직인 걸로 착각하는 교수.

"오케이, 여기까지."

내가 손가락을 튕기자 신기루처럼 사라진 교수의 다리.

교수가 당황한 표정으로 다리를 만지며 말했다.

"뭐, 뭐야? 내 다리! 내 다리 어디 갔어."

"방금 다리는 제 능력인 환상으로 보여 드린 겁니다. 즉, 진짜가 아니라는 거죠. 하지만 진짜 같죠?"

그 말에 정신을 차린 교수지만 여전히 넋이 나간 표정으로 말했다.

"그게 환상이었다고요? 정말로 엄지가 움직였는데?"

"정확히는 움직인 것처럼 보이게 만든 거죠."

나는 다시 의자로 돌아가 앉으며 말했다.

"이렇게 환상으로 실제 움직이는 것처럼 연출해서 착각하게 만든 다음, 거기서 나오는 뇌파를 측정해 원래 뇌파와 비교 분석하면 가능성이 있지 않을까? 하고 비전공자가 궁금해서 찾아온 겁니다. 어떤가요, 교수님."

나는 씨익 웃으며 말했다.

"이거라면 가능성 있을까요."

106화

이상욱은 10년 전 공장에서 사고로 인해 왼쪽 다리가 절단되었다.

다행히 산재가 인정되어 보험금을 받고 여러 지원을 받을 수 있었지만, 그렇다 해도 다리가 돌아오는 것도 아니고 치료비가 전액 나오는 것도 아니기에 절망했던 이상욱.

그나마 활발한 성격 덕에 어떻게든 살아가려 했지만 그때 이상욱을 엄습해 온 게 바로 환상통이었다.

있지도 않은 부위에서 격렬한 통증이 느껴지며 제대로 된 일상생활조차 하기 힘들어진 이상욱.

그런 이상욱에게 한지혁의 의족 테스트는 그야말로 마지막 희망이었다.

스켈레톤이라면 다르지 않을까?

한지혁이라면 뭔가 기발한 방법을 떠올리지 않을까?

그렇게 테스트를 시작한 이상욱은 기대한 것만큼은 아니지만 나름 만족할 수 있었다.

기존 의족과는 차원이 다른 스켈레톤 의족은 분명 뛰어났으니까.

그런데 얼마 전 갑자기 다른 실험을 한다며 며칠 동안 머리에 뇌파 측정기를 붙이더니 계속 뇌파를 측정하는 게 아닌가.

처음엔 이게 뭔가 싶었지만, 이상욱은 조용히 있었다.

새로운 실험이 뭔지는 모르겠지만 그 실험이 성공하여 자신의 새로운 다리가 탄생하기를 바라며.

"상욱 씨, 오늘은 어떤가요?"

의사의 말에 이상욱이 머리에 뇌파 측정기를 붙인 채 말했다.

"아주 좋네요."

"통증은요?"

"새벽에 잠깐 있었는데 견딜 만했습니다. 하하."

"다행입니다."

의사가 이상욱을 보며 말했다.

"오늘은 새로운 실험이 있을 겁니다."

"새로운 실험이요?"

"음··· 저도 자세하게는 모르겠지만 의족 부착 실험이라고 하네요."

"오오, 드디어 새로운 게 완성된 겁니까?"

"그렇겠죠? 아마 뇌파랑 연관이 있는 것 같은데. 아무튼 잠시 후에 시작할 테니 쉬고 계세요."

그렇게 의사가 나가고 얼마나 지났을까.

한지혁이 다리를 절뚝이는 중년 남자와 함께 이상욱의 방으로 들어온다.

"한 회장님."

한지혁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이상욱 씨, 이야기는 들으셨죠? 오늘 새로운 의족을 착용할 겁니다."

"하하. 기대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주의하실 점이 있습니다. 이 의족이 아주 예민한 놈이라, 함부로 움직이면 큰일 날 수 있어요. 아마 의족을 보면 많이 놀라실 텐데 절대 움직이시면 안 됩니다. 아셨죠?"

"알겠습니다. 제가 참을성 하나는 끝내주니 걱정 안 하셔도 됩니다."

"좋습니다."

중년 남자를 향해 고개를 돌린 한지혁이 말했다.

"측정은 모두 끝났죠?"

"끝났습니다. 이제 비교 분석만 하면 됩니다."

"그럼 시작할까요?"

그리곤 자신에게 안대를 씌운 한지혁.

그렇게 어두컴컴한 곳에서 멍하니 있던 그때.

'윽!'

갑자기 또다시 환상통이 찾아온다.

'이 멍청한 뇌야! 이미 그쪽 다리는 없다고! 제발 멈춰!'

종아리부터 시작해서 점점 발바닥으로 통증이 내려간다.

하지만 한지혁에게서 움직이면 안 된다는 이야기를 들은 이상욱은 필사적으로 눌러 참았다.

'예민하다잖아! 이번 의족! 참자! 무조건 참··· 으윽!'

그렇게 통증이 극에 달하던 그 순간.

"안대 벗습니다."

한지혁이 안대를 벗긴다.

그리고 이상욱은 보았다.

"···다리?"

자신의 왼쪽 다리가 멀쩡히 붙어 있는 것을.

"움직이시면 안 됩니다!"

한지혁의 움직이며 안 된다는 경고.

하지만 그 경고는 의미가 없었다.

이상욱은 이미 이 말도 안 되는 광경에 경악해 움직일 생각조차 못 하고 있었으니까.

"다리가··· 있어, 내 다리."

그리고 그 다리를 본 순간 미친 듯이 올라오던 환상통이 삽시간에 잠잠해진다.

멀쩡한 다리를 시각 정보로 확인한 뇌가 문제없음을 인지한 거다.

"자, 이상욱 씨. 지금부터 테스트 시작합니다. 앞에 빨간불 보이시죠?"

그 말에 정신을 차린 이상욱이 빨간불을 본다.

"저 빨간불이 파란불이 되면 엄지발가락만 아주 천천히 들어 올리시는 겁니다. 그리고 다시 빨간불이 되면 힘 빼시고."

"알겠습니다."

"시작."

그렇게 빨간불이 파란불로 바뀌자, 이상욱은 천천히 엄지발가락을 들어 올렸다.

"제발."

제발 움직이길 바라며.

그리고 그 순간.

왼쪽 엄지발가락이 천천히 올라가는 게 아닌가.

"천천히. 천천히."

사라졌던 자신의 엄지발가락이 천천히 움직이는 모습에 이상욱은 눈물이 또르르 흘러내렸다.

"움직여. 내 발가락이 움직이고 있어."

그때 파란불이 다시 빨간불로 변한다.

그걸 보고 힘을 풀자 다시 천천히 내려가는 엄지발가락.

"오케이. 됐습니다."

이상욱이 눈물을 뚝뚝 흘리며 말했다.

"이게 제 의족인가요?"

"테스트 중입니다."

"회장님, 설사 이 테스트가 실패하더라도 저는 원망하지 않겠습니다. 저······."

이상욱이 환하게 웃으며 말했다.

"10년 만에 처음으로 왼쪽 발가락 움직여 봤거든요. 이게 어떤 기분인지 아마 모르실 겁니다."

그러자 한지혁이 피식 웃으며 말했다.

"그런 생각 마시고 테스트에 더 집중하세요. 집중해야 성공률이 더 올라가니까. 혹시 압니까? 정말로 성공해서 제대로 된 의족이 생길지."

그 말에 이상욱이 눈물을 닦으며 말했다.

"알겠습니다. 집중하겠습니다."

"좋아요. 이번엔 검지 발가락 갑니다!"

*

뇌파를 증폭시킨 다음 환상으로 정말 움직이는 것처럼 착각하게 만들어 그 뇌파 변화를 분석하는 방법.

이 방법은 성공이었다.

"보시면 뇌파의 흐름이 평소와 확연하게 다릅니다."

교수가 나에게 뇌파 분석표를 보여 주며 말했다.

"여기 분포도를 보시면······."

나는 손사래를 치며 말했다.

"저한테 그런 거 보여 주시면 뭐 압니까? 그냥 작대기 쭉쭉 그어져 있는 걸로밖에 안 보이는데. 그냥 쉽게 설명해 주세요."

"하하, 알겠습니다. 간단하게 설명해서 뇌가 정말로 속아 버리며 진짜 움직일 때 나오는 뇌파의 파장을 찾아냈습니다. 이 파장이 나올 때 테스트 당시 했던 행동을 연동시키면 정말 생각만으로 자연스럽게 움직이는 의족을 만들 수 있을 겁니다."

"성공이란 이야기죠?"

"물론 여전히 갈 길은 멉니다. 몸의 움직임에 따라 뇌파도 계속해서 바뀌니 그 많은 뇌파를 전부 분석하려면 분명 오랜 시간이 걸릴 테니까요. 심지어 사람마다 뇌파 역시 다르기에 더욱더 그렇고요. 하지만."

교수가 자신감 넘치는 표정으로 말했다.

"그전과는 비교조차 안 되는 속도로 개발할 수 있습니다. 신체를 움직이는 척하는 뇌파와 진짜 움직이는 걸로 인지하는 뇌파는 비교조차 할 수 없는 데다, 심지어 증폭을 통해 더욱 자세하게 잡을 수 있으니까요. 그렇게 데이터가 계속 축적되면 AI로 더욱 완벽하게 뇌파를 읽어 낼 수 있을 겁니다."

좋다, 좋아.

"그렇게 데이터를 완전히 분석한 다음 한 회장님의 능력으로 증폭된 뇌파 측정기를 뒷덜미에 붙이고 그렇게 측정된 뇌파를 컴퓨터가 분석하여 시각화하는 겁니다. 그다음 스켈레톤이 그렇게 시각화된 동작을 똑같이 수행하면······."

교수가 흥분한 표정으로 말했다.

"정말 의지만으로 조종되는 스켈레톤 의족의 탄생입니다."

이거야말로 과학과 마법의 결합이지.

"그럼 본격적으로 제품 만들어 볼까요?"

그러자 당황한 교수가 말했다.

"예? 벌써 말입니까? "

"연구하면서 계속 수정하면 되죠. 지금만 해도 간단한 동작 정도는 가능하잖아요?"

아직 갈 길은 멀지만, 완벽보다는 보완을 통해 해결한다.

"그건 그렇지만··· 돈이 많이 들 겁니다. 계속해서 보완을 한다는 건 그들 모두를 관리해야 한다는 소리니까요. 차라리 완성품을 만든 다음 파는 게 확실할 텐데요."

"어차피 저 이걸로 돈 벌 생각 없습니다."

그보다는 스켈레톤에 대한 이미지 확보가 중요하지.

솔직히 절단 환자가 많아 봐야 얼마나 많겠어.

그들에게 한 명당 수천만 원씩 받고 의족 의수를 팔 바에야, 그냥 신발이나 주구장창 만들어서 파는 쪽이 훨씬 돈은 잘 벌릴걸?

"그러니 그냥 진행하시죠, 부족한 건 계속 보완해 나가면서. 기술의 발전도 중요하지만 일단 급한 불을 끄는 게 먼저 아니겠어요?"

그 말에 잠시 침묵하던 교수가 말했다.

"한 회장님, 정말 감사합니다. 저희 같은 사람들에게 있어서 한 회장님은 구원자나 다름없습니다."

"뭘 또 구원자씩이나. 그냥 나는 사업가이자 각성자,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닙니다. 속물이다 이 말이에요."

"설사 의도가 어찌 되었든, 결과가 선하면 그만 아니겠습니까."

그런가?

뭐, 그렇게 받아들여 주면 나야 감사하고.

교수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그럼 시제품 만들어 보겠습니다. 기대하시죠."

*

의족 연구를 하는 사이, 괴사를 막기는커녕 오히려 더 진행되어 결국 다리를 절단한 나카무라.

그런 나카무라 역시 환상 마법을 이용해 뇌파를 측정하였고 그렇게 뇌파를 이용해서 만든 스켈레톤 의족이 드디어 완성되었다.

뼈만 있으면 너무 볼품없을 것 같아 가짜 피부를 붙이려 했지만, 나카무라가 그냥 있는 그대로를 보여 주고 싶다기에 다리 굵기와 비슷하게 뼈 갑옷처럼 둘러서 만든 스켈레톤 의족.

나카무라가 스켈레톤 의족을 이리저리 움직이며 말했다.

"신기합니다."

"그렇죠?"

"내 의지대로 움직입니다."

연구가 진행 중이기에 완벽하지는 않지만 간단한 동작 정도는 수행할 수 있는 스켈레톤 의족.

"하지만 느립니다."

"반응이 느리다는 거죠? 한 박자씩?"

"맞습니다."

"아직 완성된 게 아니라 그런 겁니다. 하지만 계속 보완하면 언젠가 정말 진짜 다리처럼 움직일 수 있을 겁니다."

"하지만 이걸로는. 전투를 할 수 없습니다."

그 말에 나는 씨익 웃으며 말했다.

"왜 못 합니까. 할 수 있습니다."

"예?"

"그 의족, 제가 진짜 심혈을 기울여서 만든 거거든요?"

일반인용과 다르게 SS급인 나카무라의 움직임과 심지어 능력인 순간 가속을 사용해도 견딜 수 있도록 다른 사체의 사기를 뽑아다가 미친 듯이 쑤셔 넣은 게 바로 저 스켈레톤 의족이었다.

모르긴 몰라도 저 다리 한정으로는 나카무라를 이 지경으로 만든 친위대 데스나이트보다 강하고 튼튼할걸?

거기에다 저건 전투용과 일상용 모두를 염두에 두고 만들었단 말씀?

"머리에 뇌파 측정기 떼고 의족에 아우라 흘려보낸 다음 움직여 보세요. 아우라 움직임대로 의족이 움직일 겁니다."

그 말에 나카무라가 마력을 끌어 올리자 방금과는 비교조차 안 될 만큼 자유자재로 움직이는 나카무라의 스켈레톤 의족.

나카무라가 환하게 웃으며 말했다.

"이건··· 됩니다!"

"아까는 일상 모드, 이건 전투 모드입니다. 아우라를 이용해 다리를 움직이는 거죠. 물론 적응하는 데 시간이 좀 걸리긴 할 겁니다. 대신 적응만 된다면······."

나는 씨익 웃으며 말했다.

"나카무라 씨에게 엄청난 무기가 될 거고요."

내 말에 나카무라가 정중히 허리를 숙이며 말했다.

"감사합니다, 한 회장님. 이 은혜, 평생 갚겠습니다."

"하하. 별말씀을."

나카무라가 다리를 쓰다듬더니 말했다.

"다리가 생기니 욕심이 생깁니다. 눈 아쉽습니다."

나는 안대를 쓰고 있는 나카무라를 보며 말했다.

"흠. 솔직히 제가 시신경을 어떻게 해 드릴 수는 없거든요?"

시신경을 교란할 수는 있지만 이미 망가진 걸 복구하는 건 내 영역 밖이니까.

"대신 눈을 쓸모 있게 만들어 드릴까요?"

"쓸모 있게?"

"의안 줘 보세요."

기왕 서비스하는 김에 확실하게 해 주지, 뭐.

"평소 필요했던 능력 있습니까? 구현할 수 있는 거라면 구현해 드리죠."

*

"길드장!"

몇 달 가까이 한국에 가 있던 나카무라의 귀환.

당연히 영웅적 행보를 보였던 나카무라가 돌아오자 기자들이 몰려들었지만, 그들은 고위 각성자인 나카무라의 길드원들을 이겨 낼 수는 없었다.

그렇게 기자들을 헤치고 달려온 길드원들이 말했다.

"괜찮으십니까? 다리는요?"

그 말에 나카무라가 바지를 걷어 올린다.

그러자 그 안에 보이는 뼈로 만들어진 다리.

"아주 훌륭해. 재활 훈련 하는 데 고생을 좀 하기는 했지만 말이야."

"그래요? 그럼 다행이고요."

그런 길드원들의 반응에 나카무라가 씨익 웃으며 말했다.

"아마 너희도 보면 깜짝 놀랄 거다."

"그 정도인가요?"

"그래. 나도 놀랄 정도였어. 부탁을 하기는 했지만, 이 정도로까지 만들어 주실 줄은 몰랐으니까."

나카무라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한 회장님에게 목숨 빚을 진 걸로도 모자라 이제는 내 다리까지. 이 은혜는 평생 갚아도 모자랄 수준이야. 아! 한 가지 더 있지?"

나카무라가 안대를 쓰다듬으며 말했다.

"이제는 이 눈도 있으니까."

"예? 눈이요?"

"이건 나중에 직접 보여 줄게."

그렇게 위풍당당하게 길드원들과 함께 걸어 나가는 나카무라.

그런 나카무라를 향해 기자들이 외쳤다.

"한 회장님께서 의족을 만들어 주셨다는데 어떻습니까?"

"다시 활동하실 수 있는 건가요?"

기자들의 외침에 나카무라가 느긋한 목소리로 말했다.

"조만간 보여 드릴 기회가 있을 겁니다. 그때 자세히 말씀드리죠."

그렇게 기자들을 헤치며 나아가던 그때.

"어?"

길드원 하나가 핸드폰을 보더니 말했다.

"이 근방에 불안정 게이트가 나타났습니다."

"불안정 게이트? 하하."

나카무라가 환하게 웃으며 말했다.

"이거, 기회가 벌써 왔네."

나카무라가 목 뒤에 붙어 있던 뇌파 측정기를 떼 내고 자리에 웅크리며 말했다.

"자, 나 먼저 갈 테니 따라와."

"예?"

"흡!"

그 순간 나카무라가 엄청난 속도로 인파 위로 뛰어올라 불안정 게이트를 향해 달려간다.

그 모습을 본 길드원들이 경악하며 말했다.

"뭐, 뭐야 저거. 예전이랑 똑같잖아?"

"오히려 더 빨라진 거 아니야?"

그때 한 길드원이 외쳤다.

"지금 그런 소리 할 때야? 빨리 따라가야지!"

*

나카무라는 빠르게 달리며 공기의 저항을 온몸으로 느꼈다.

그리고 행복해했다.

이 감각을 다시 느낄 수 있다는 것에.

그렇게 얼마나 달렸을까.

"으아! 몬스터다!"

불안정 게이트에서 튀어나온 몬스터들로 인해 도주하는 사람들.

"D급이군."

이 정도면 나카무라 혼자서도 충분히 처리할 수 있는 수준.

하지만 그사이 사망자가 나올지도 몰랐다.

D급답게 몬스터의 수가 제법 많았으니까.

나카무라가 안대를 손으로 잡으며 말했다.

"이걸 쓸 타이밍인가."

나카무라가 하늘로 높이 뛰어오르며 말했다.

"지금부터 3초 후, 모두 눈을 감으세요!"

"나, 나카무라 길드장!"

"하나!"

사람들이 도주하며 말했다.

"삼 초 뒤에 눈 감으래!"

"눈? 눈을 왜!"

"둘!"

"몰라! 일단 시키는 대로 해! 나카무라 길드장이 설마 아무 생각 없이 말했겠어!?"

"알겠어!"

"셋."

그렇게 나카무라가 셋을 세는 순간 사람들이 눈을 감는다.

그 모습을 본 나카무라가 안대를 벗으며 외쳤다.

"플래시!"

그러자 나카무라의 의안에서 엄청난 밝기의 빛이 펑 하고 터져 나온다.

"키엑!"

나카무라의 목소리에 나카무라를 주목하던 몬스터들은 그들의 눈을 태울 것처럼 밝은 섬광이 터지자 눈을 감으며 괴로워한다.

"키에에!"

물론 그중엔 몬스터들만이 아니라 경고를 무시하거나 타이밍을 놓친 사람들도 있었다.

"으악! 내 눈!"

"이게 뭐야!"

그 모습을 본 나카무라가 착지하며 말했다.

"혹시 당하신 분은 얌전히 자리에 앉아 계시면 됩니다. 시간 지나면 괜찮아질 테니까요."

그렇게 몬스터를 일시적으로 무력화시킨 나카무라가 왼쪽 눈을 쓰다듬으며 말했다.

"이 눈이 있다면··· 저번과 같은 상황에서 더 많은 사람을 구할 수 있을 거야."

나카무라가 원한 능력은 바로 광범위하게 몬스터를 무력화시킬 수 있는 능력.

비록 저번 사태의 원흉인 언데드에게는 먹히지 않겠지만 게이트의 몬스터는 언데드만 있는 게 아니지 않나.

이 눈만 있다면 방금 같은 상황에서 사람들의 피해를 최소화하며 동시에 몬스터도 무력화시킬 수 있고 저번 같은 사태가 일어나도 이 눈의 능력을 활용해 더 길게 시간을 끌 수 있을 게 분명했다.

"그 굴욕감은 한 번으로 족해. 다시는 똑같은 일을 반복하지 않겠어."

그렇게 결심을 한 나카무라가 왼쪽 의족을 들어 올려 몬스터를 그대로 내리쳤다.

그러자 단 일격에 산산조각이 난 몬스터.

"역시 강해."

순간 가속 능력자답게 공격 능력은 약하다 평가받던 나카무라.

하지만 그런 나카무라에게 장착된 스켈레톤 의족은 그런 나카무라의 유일한 결점인 공격력을 보완하다 못해 한 단계 위로 더 끌어 올렸다.

다리에서 느껴지는 육중한 힘을 만끽하며 몬스터를 도륙해 나가기 시작한 나카무라.

처음엔 마력을 이용해 컨트롤하는 것이 영 어색했지만, 오랜 재활 훈련을 거치며 이제는 원래부터 그런 다리였던 것처럼 자유자재로 움직인다.

그때 뒤늦게 합류한 길드원들이 몬스터를 처리하며 말했다.

"방금 그 빛은 뭡니까?"

"내 새로운 능력. 한 회장님께서 주셨지."

"예?!"

"뭐, 간단하게 설명하자면 프로티지 제품의 능력 비슷한 걸 내 의안에 이식했다고 해야 하나?"

"무슨 사이버펑크 임플란트도 아니고 그게 뭡니까?"

"아무튼 뭐, 쓸모없던 눈에 쓸모가 생겼으니 그거면 된 거 아니겠어?"

나카무라가 씨익 웃으며 말했다.

"자, 나카무라의 부활이다. 화려한 복귀식으로 만들어 주지."

정식으로 부활을 선포한 나카무라.

그리고 그건 동시에 한지혁표 의족, 의수와 의안의 화려한 데뷔이기도 했다.

107화

나카무라와 함께 공개된 스켈레톤 의족과 의안은 순식간에 전 세계의 모든 뉴스에서 토픽으로 장식되었다.

수술 실패로 인해 은퇴를 앞뒀던 SS급 각성자를 다시 등판시키는 게 가능할 정도로 완벽한 의족은 모든 장애인들의 꿈과 희망이나 다름없었으니까.

거기에 새로운 능력이 부여된 의안까지 더해지자 그야말로 문의가 폭주한다.

"일단 일반용은 판매 가능 하다고 하세요."

나카무라에게 만들어 준 의족은 모두 마력 통제가 가능한 SS급만이 사용할 수 있는 물건이다.

플래시 마법을 더해 준 의안 역시 나카무라가 공급한 마력으로 작동되니 두 가지 모두 SS급이 아닌 다른 사람은 쓸 수 있는 물건이 아니란 말이지.

"뇌공학 연구 팀에게 환상 능력 사용 가능 한 무구 만들어 줬으니까 그쪽이랑 연결해 주면 알아서 뇌파 분석 해 줄 겁니다."

"알겠습니다. 그런데 회장님."

김덕배가 서류를 바라보며 말했다.

"혹시 테이론이란 브랜드 아십니까?"

"테이론?"

"미국의 유명 장비 제작업체입니다. 소재 강화 능력을 지닌 S급 각성자가 만든 브랜드인데 그 회사에서도 연락이 왔습니다."

전투 능력은 형편없지만 보조 능력의 가치를 인정받아 높은 등급을 받은 각성자들.

그런 비전투 각성자가 받는 최고 등급이 S급인 만큼 장비 강화 관련 능력자 중에서 최고의 실력을 지녔다는 뜻이었다.

"장비 회사가 왜요?"

"의안에 부여된 능력을 자사의 제품에도 적용하고 싶다고 합니다."

"흐음?"

하긴.

말이 좋아 의안이지, 사실상 프로티지 제품과 별반 다를 게 없는 게 바로 나카무라의 의안이니까.

단지 프로티지 제품은 인공 정수로 마력을 제공 받고 나카무라의 의안은 나카무라 본인의 마력으로 작동된다는 게 다를 뿐.

"장비라······. 일종의 각성자용 프로티지를 만들자는 거네요?"

"그렇습니다."

그간 프로티지의 명품 제품을 통해 팔려 나간 마법 무구들.

이것들은 모두 방어용 마법이 중심이 되었다.

괜히 공격용 마법을 팔았다가 문제가 되면 곤란하니까.

하지만 그렇지만 플래시 같은 보조 마법은 괜찮지 않을까?

아니면 뭐, 먼거리의 영상을 환상으로 보여 주는 정찰 마법도 나쁘지 않고.

예전에야 눈치를 보며 움직였지만, 이미 비공식 SSS급으로 언급되는 상황인데 그까짓 보조 마법 푸는 게 뭐 대수겠어.

"정수 소모량이 엄청나겠지? 괜찮네요."

게다가 이런 마법들은 비상시를 대비하는 프로티지와 다르게 수시로 사용해야 하는 만큼 인공 정수의 소모량도 엄청날 거다.

인공 정수 시장을 키워 안정적으로 정수를 공급 받으려는 나에게 있어서 딱 좋은 인공 정수 소비처.

"그럼 협업 한번 진행해 보세요."

"알겠습니다."

다른 사업은 어지간하면 전부 세론에서 직접 진행하지만, 장비 쪽은 소재 강화같이 좋은 장비를 만드는 데 필요한 능력을 지닌 각성자의 존재가 필수니까.

물론 나카무라에게 해 줬던 것처럼 사기를 때려 박아 무지막지한 스켈레톤 장비를 만들면 그만이긴 하지만, 그거야 나카무라에게 마음의 빚이 있어서 그런 거고, 언데드 군단 재건 하기도 바빠 죽겠는데 장비 하나하나까지 언제 신경 써.

"아무튼 투 트랙이 완성됐네요. 의족, 의수로 거부감을 줄이고 세론 랜드로 호감도를 키우고."

해외 진출 최대의 걸림돌인 스켈레톤에 대한 거부감을 줄일 수 있는 두 가지 아이템이 완성되었다.

이미 일본에서 나카무라가 의족을 사용하고 세론 랜드에 대한 호감도 나날이 커지며 효과가 입증되었으니 이제 적극적으로 이용할 차례.

"세론 랜드 늘립시다. 일단 한국에 하나 만들고 미국이랑 유럽에도 하나씩 더 만들면 되겠네."

세계에서 가장 거대한 내수 시장 Top 3인 아시아, 미국 그리고 유럽에 세론 랜드를 만들어 스켈레톤과 에너지 매입을 퍼트린다.

"바로 진행하겠습니다."

"부탁드릴게요."

세론 랜드야 어차피 일본에서 전부 기틀을 잡았으니 세론 랜드 부지 선정 등이야 김덕배가 알아서 할 테고, 의족, 의수 역시 연구 팀이 자체적으로 할 수 있도록 세팅해 두었으니 나는 나의 할 일을 할 차례.

지시를 받은 김덕배가 회장실을 나가자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며 말했다.

"좋아. 끝내주는 언데드 하나 만들어 볼까?"

*

새로운 세론 랜드 부지를 선정하여 기반 공사를 하고 사람들이 스켈레톤 의족, 의수로 새로운 삶을 찾는 사이 나는 내 집 지하에 만들어 둔 내 비밀 연구실에서 본격적인 고위급 언데드 제작에 들어갔다.

뽑아낸 사기를 SS급 몬스터 사체에 전부 올인하고 그간 계속해서 발전시켜 온 알고리즘을 탑재하는 등 그야말로 지구에서 얻은 모든 것을 때려 박은 최고위급 언데드.

나는 방에 한가득 쌓여 있는 인공 정수에서 마력을 뽑아 금으로 새겨 넣은 마법진에 마력을 쏟아 넣으며 말했다.

"이렇게 하면? 완성."

나는 뿌듯한 얼굴로 말했다.

"이 정도면 세론 언데드 군단 내에서도 5대 결전 병기 빼면 전부 상대할 만하겠지?"

마왕을 상대하기 위해 그야말로 세론 대륙의 모든 힘을 끌어모아 만들어 낸 5대 결전 병기에는 미치지 못하지만, 그 다섯을 제외하면 그 어떤 언데드와도 해볼 만한 지구의 첫 최고위급 언데드.

솔직히 전투력으로만 따지면 이런 놈이 세 개만 있어도 내가 전력을 다해야 할 만큼 강력한 언데드였다.

"든든하다, 든든해."

이런 놈으로 도배를 하면 세론 언데드 군단도 충분히 해볼 만할 거다.

물론 그만큼 어마어마한 돈이 들어가겠지만.

나는 완성된 첫 최고위급 언데드를 아공간에 넣으며 말했다.

"아공간에서 쉬고 있어. 나중에 필요하면 부를게."

그렇게 언데드를 완성하고 비밀 연구실에서 나가는데 갑자기 모르는 전화번호로 내 핸드폰에 전화가 걸려 온다.

"여보세요."

-한 회장님이십니까?

"맞는데요."

-중요한 정보가 있어서 연락드렸습니다.

"그 전에 본인이 누구인지 밝히는 게 우선 아닐까요."

내 말에 남자가 태연한 목소리로 말했다.

-CIA 한국 지부의 김영태 요원입니다.

*

갑자기 중요한 정보가 있다며 연락을 해 온 김영태와 직접 만난 나는 김영태의 이야기를 듣고 어이를 상실할 수밖에 없었다.

"테러?"

"그렇습니다."

김영태가 알려 준 정보는 바로 한 이슬람 테러 조직이 독일에 만들고 있는 세론 랜드를 대상으로 테러를 기획하고 있다는 것.

"이유가 뭡니까?"

"간단합니다."

김영태가 나를 바라보며 말했다.

"그들에게 있어서 스켈레톤은 죽음에서 일어난 부정한 존재니까요."

어디서 많이 들어 본 말인데.

"이런 미친 광신도 놈들이······."

신에게 심취하여 모든 걸 종교적으로만 받아들이는 광신도들.

세론에서 언데드 군단과 내가 혐오의 대상이 되었던 이유도 바로 종교 때문이었다.

세론은 태양교를 믿는 신자가 90퍼센트일 만큼 사실상 단일 종교 대륙이었고, 그런 태양교의 교주는 제국의 황제조차 어찌하지 못할 만큼 세론은 종교적 색채가 강한 곳.

그런 태양교에서 언데드를 부정한 존재라며 하루가 멀다 하고 비난한 탓에 사람들의 혐오가 더욱 강해질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또 웃긴 건 마왕군에게 성지나 중요한 종교 시설이 점령당할 것 같으면 가장 먼저 나에게 도움을 요청했었으니, 그야말로 아이러니의 끝판왕.

아무튼 그런 경험을 해 왔기에 나에게 있어서 광신도는 가장 혐오스러운 존재였다.

그런데 그런 광신도를 지구에서도 만나게 될 줄이야.

"저희가 파악한 바로는 세론 랜드 개장식에 맞춰 테러를 할 예정이라 합니다."

"더럽고 불결한 스켈레톤이 사람과 어울리는 꼴을 참지 못하시겠다? 그래서 오픈과 동시에 날려 버리겠다?"

"아마 그런 의도인 것 같습니다."

나는 굳은 표정으로 생각했다.

'이 자식들이 내 트라우마를 건드리네.'

나는 스켈레톤을 부려야 하고, 저들은 종교적으로 절대 받아들일 수 없는 광신도들.

저들과 나는 애초에 타협이 불가능한 관계다.

물론 한국에도 비슷한 사람들은 있다.

신의 섭리에 어긋난다며 시위를 하는 종교인들.

하지만 그 정도야 나도 이해할 수 있다.

비난은 누구에게나 주어진 공평한 권리니까.

그런데 그걸 폭력화해서 드러낸다?

그럼 이야기가 달라지지.

나는 폭력에 폭력으로 맞서며 살아온 네크로맨서니까.

"뭘 어떻게 테러를 하려 한다는 겁니까? 세론 랜드 보안은 아주 철저한데."

한국이나 일본과 다르게 미국과 유럽은 테러로 인한 피해가 자주 발생하기에 사설 보안업체와 계약해 건설 단계부터 무기와 폭탄 같은 것의 반입을 철저히 통제하는 상황.

"트럭 테러인 걸로 파악 중입니다. 트럭을 끌고 무작정 입구로 돌진하는 거죠. 그런 다음 쾅 하고 터트리는 겁니다."

"만약 개장을 늦추면?"

"개장을 늦추면 늦추는 것에 맞춰서 테러를 진행할 겁니다."

한마디로 세론 랜드를 철수하는 게 아닌 이상 저들과의 충돌은 확정된 미래나 다름없다는 말.

나는 피식 웃으며 말했다.

"그럼 더욱더 못 물러서지. 차라리 잘됐네. 이 기회에 스켈레톤이 얼마나 안전하고 사람을 잘 지켜 주는지 보여 줘야겠어."

트럭?

끌고 오라고 해.

그것보다 훨씬 거대하고 강력한 미트 골렘도 막아야 하는 판국에 그까짓 트럭쯤이야.

"그나저나 이런 정보를 어디서 얻은 겁니까?"

"저희 CIA는 테러 관련 정보라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조사하고 있으니까요. 그러다 얻게 된 정보입니다. 더 자세한 건 기밀 사항이라 말씀드릴 수 없군요."

"나한테 미리 알려 준 이유는?"

김영태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이 기회를 통해 한지혁 회장님과 좋은 관계를 맺고 싶어서라고 말씀드리면 설명이 될까요."

"그런 의도라면 성공하셨네. 내가 지금 많이 감동받았거든요."

적의 적은 아군인 법.

어차피 저 광신도 놈들과 나는 양립할 수 없으니 뛰어난 정보력을 지닌 CIA와 협력하는 건 나를 위해서도 좋은 선택이다.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며 말했다.

"정보에 대한 대가는 확실하게 치러 드리죠. 돈이면 돈, 아니면 무엇이든 간에. 아. 물론 그놈들도 대가를 치를 겁니다."

나는 입꼬리를 끌어 올리며 말했다.

"감히 날 건드린 대가를 말이죠."

*

테러범이 트럭 뒤에 실린 사제 폭탄을 점검하며 말했다.

"더러운 죽음의 존재들. 그런 존재는 이 세상에 남아 있으면 안 돼."

이미 죽은 존재를 되살려 부린다는 것은 알라가 만든 섭리를 거스르는 것.

당연히 독실한 이슬람 신자인 테러범에게 있어서 스켈레톤은 보는 것 만으로도 불쾌함이 올라오는 만악의 근원이나 다름없었다.

그런데 그런 스켈레톤이 세론 랜드라는 이름으로 놀이공원화되어 사람들을 대놓고 홀린다니, 그걸 어떻게 참겠는가.

그렇게 사제 폭탄을 확인한 테러범이 운전석에 오르며 말했다.

"가자."

그렇게 세론 랜드를 향해 트럭을 몰고 가기 시작한 테러범.

30분을 달려 도착한 세론 랜드 앞은 오픈일에 맞춰 방문한 방문객으로 인산인해를 이루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보고 테러범이 이를 갈며 말했다.

"이렇게 많다고? 저 부정한 존재를 놀잇감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테러범이 기어를 변속하며 말했다.

"그래. 차라리 전부 죽어라. 저런 부정한 존재를 아무렇지도 않게 받아들이는 놈들이 정상일 리 없으니까."

그렇게 악의에 찬 표정으로 입구를 향해 돌진하는 테러범.

테러범이 입구를 목표로 한 이유는 간단했다.

세론 랜드는 입구를 제외한 모든 곳이 콘크리트 벽으로 막혀 있기에 오직 입구만이 가장 깊숙히 들어갈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며, 동시에 많은 사람이 밀집해 더 큰 효과를 낼 수 있으니까.

"뭐, 뭐야!"

"피해!"

그렇게 입구 근처 차량 출입 금지 구역으로 테러범의 트럭이 들어서자 사람들이 경악하며 몸을 피한다.

"죽어! 알라 후 아크바르!"

그렇게 트럭을 타고 돌진하는 그때.

쾅!

갑자기 무언가에 걸린 듯 멈춰 서 버린 트럭.

"어······?"

그러곤 갑자기 트럭이 허공으로 떠오르는 게 아닌가.

"뭐, 뭐야!?"

당황한 테러범이 그제야 기폭 장치를 누르려 했지만 이미 하늘 높이 떠올라 폭발 반경 안에는 아무것도 없는 상황.

이 어이없는 상황에 죽음을 각오했던 테러범이 외쳤다.

"이게 뭔데! 도대체 뭐가 어떻게 된 거야!"

*

테러 시기와 테러 방법은 알았지만 누구인지는 특정할 수 없기에 아예 유럽은 물론이거니와 모든 세론 랜드 입구에 SS급 스켈레톤을 배치해 둔 나.

그런 다음 차량 출입 금지 구역에 차량이 진입하면 즉시 개입하도록 알고리즘을 짜 두었다.

거기에 더해 플라이 마법을 이용해 트럭이든 뭐든 폭발물을 하늘로 날려 2차 피해를 막을 수 있도록 세팅해 두었지.

추가로 놈들이 트럭이 아닌 다른 방법으로 테러를 저지를 수도 있기에 그 외에도 총기 테러나 폭탄 설치에 대해서도 대비를 해 두었는데, 다행히 놈이 원래 계획대로 트럭을 이용했기에 가볍게 저지하는 데 성공한 나.

물론 이렇게 쉽게 처리를 한 건 미리 경고를 해 준 CIA 덕분이었다.

비록 내가 무력은 강하지만 정보력은 사실상 없는 거나 다름없으니까.

"감사합니다. 덕분에 잘 넘겼습니다."

김영태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저희야 알려만 드렸을 뿐 직접 해결한 건 회장님 아니십니까."

"그게 중요하죠, 나에게 미리 알려 줬다는 것."

그나저나 테러 계획까지 알아낼 만큼 뛰어난 정보력을 가진 CIA가 나에 대해 어디까지 알고 있는지 문득 궁금해진다.

"혹시 CIA에서 저에 대해 얼마나 파악하고 있는지 알려 주실 수 있나요?"

"그것도 기밀 사항입니다만."

"제가 진짜 앞으로 CIA에 적극 협조 할 생각이거든요. 그럼 친구끼리 비밀이 있어서는 안 되죠. 제가 정보력은 약해도 무력은 진짜 아닙니까. 친구의 증표라 생각하고 한번 말해 줘 봐요."

내 말에 잠시 고민하던 김영태가 누군가와 문자를 주고받더니 말했다.

"좋습니다. 전부 말씀드릴 수는 없고, 이것 하나만 말씀드리죠."

김영태가 나를 바라보며 말했다.

"중국 가짜 게이트."

중국이 나를 처리하기 위해 꾸몄던 가짜 게이트 사건을 알고 있다는 암묵적인 표현.

나는 피식 웃으며 말했다.

"정보력 끝내주시네."

"이 정도는 해 줘야지 정보기관이죠."

"아무튼 오케이. 마음에 드네요. 그나저나 저 광신도 놈들 어떻게 할 겁니까?"

"일단은 계속 지켜보고 있습니다."

"왜 처리 안 하는 겁니까?"

"놈들의 전부를 파악하지 못한 데다, 설사 파악했다 해도 제압하는 과정에서 인명 피해가 나면 곤란하기에 함부로 손을 쓰지 못하고 있는 겁니다."

"인명 피해."

"미국은 자국민의 목숨을 아주 비싸게 생각하니까요."

나는 김영태를 바라보며 말했다.

"혹시 그래서 정보를 알려 준 겁니까? 비싼 목숨 대신 싼 목숨을 쓰려고?"

바로 전투용 스켈레톤을 제공 받아 자국민 대신 테러 조직 소탕에 쓰는 것.

내 말에 김영태가 웃으며 말했다.

"그 의도가 아예 없다고 하면 거짓말이겠죠. 이미 한국군이 군용 스켈레톤을 도입하고 있지 않습니까?"

"흐음."

"너무 복잡하게 생각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이번 정보 제공은 무언가 대가를 원해서 그런 게 아니라 말 그대로 생각지 못한 정보를 얻어 한 회장님과 친분을 다지기 위해 알려 드린 거니까요."

순수한 호의다?

정보기관이 순수해 봐야 얼마나 순수하겠냐먀는, 어찌 되었든 나에게 적의를 가진 건 아니고, 심지어 공동의 적을 두고 있는 상황.

그럼 그에 맞게 나도 선물을 풀어야지.

"전투용 말고 제압용 스켈레톤은 빌려드릴 수 있습니다."

내가 직접 나서지 않고 CIA의 손을 빌려 광신도 놈들을 처리할 수 있는 기회니까.

"제압용이요?"

"제압용을 놈들 근거지에 뿌려서 테러범들 제압하고 CIA가 마무리하는 그림이면 딱이죠. 소총탄이나 중화기에도 끄떡없는 놈들 빌려드리겠습니다. 대신 저는 빌려만 주는 거고, 딱히 어떻게 쓸지는 관여 안 하는 겁니다?

기껏 좋은 이미지 쌓았는데, 상대가 테러범이라지만 내가 직접 사람을 상대로 무력을 쓰는 건 영 보기 안 좋잖아?

그러니 스켈레톤이란 무기를 빌려주고 나는 한 걸음 물러서 있는 거다.

"추가로 장비도 만들어 드릴 수 있습니다. 그렇지 않아도 마침 미국의 테이론이랑 협력해서 장비를 만들고 있거든요? 이걸 CIA 장비로 제공해 드리죠. 구현 가능 한 수준에서 원하는 능력을 넣어 드리면 될 것 같은데."

직접적인 공격 마법 없이 보조 마법만 제공할 거지만, 그렇기에 오히려 첩보 요원이 쓰기에 딱 좋단 말이지.

김영태가 웃으며 말했다.

"이거, 저희가 좋은 친구를 사귄 것 같군요."

"저도 마찬가지입니다."

나는 씨익 웃으며 말했다.

"자. 그럼 구체적으로 어떤 선물을 원하는지 말씀해 보세요, 광신도 놈들 박멸을 위해서 적극 협조 할 테니까."

108화

테러 조직의 간부가 비밀 지부에 모인 부하들을 보며 말했다.

"반응이 어떻지?"

"특별한 반응은 없습니다."

간부는 바로 이번 세론 랜드 테러 사건을 주도한 인물.

간부는 테러에 실패했지만 자신들의 강경한 태도를 보여 주기 위해 인터넷에 이번 테러가 자신들의 소행임을 밝혔는데, 특별한 반응이 없다니.

"오히려 세론 랜드의 보안만 더욱 부각되었습니다. 공격으로부터 안전한 테마파크라며······."

"젠장."

당연하게도 그 이유는 테러가 실패로 끝났기 때문.

"다음 공격 다시 준비해. 이건 위대한 성전이다!"

"알겠습니다."

다시 한번 테러 준비를 지시하는 간부.

"이번엔 반드시 성공해야 된다. 그래야 우리 조직이 더욱 커질 수 있어."

물론 한 조직의 간부라는 사람이 스켈레톤에 대한 혐오만으로 일을 저지른 것은 아니었다.

중동과 아무런 연관이 없는 한지혁이 자신들을 찾지 못할 거라는 확신과 이번 테러로 이슬람 사람들 사이에서 부정한 스켈레톤을 몰아냈다는 수호자의 이미지를 얻어 조직을 더욱 성장시킬 수 있을 거란 계산이 깔려 있기에 일을 진행한 간부.

"지도자께 실망을 안겨 드린 건 한 번이면 족해. 무슨 말인지 알겠지?"

"물론입니다."

그렇게 조용히 회의를 이어 가던 그때.

"큰일 났습니다!"

부하가 사색이 된 얼굴로 들어와 말했다.

"스, 스켈레톤이 나타났습니다! 그것도 하늘에서 갑자기 뚝 하고!"

그러자 간부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며 말했다.

"뭐?! 스켈레톤? 어떻게 우리 위치를··· 아니지. 일단 도망치는 게 먼저다! 비밀 통로를 이용해서 전부 후퇴해!"

상대가 무려 최초의 SSS급일지도 모른다는 평가를 받는 그 괴물이기에 합리적인 판단.

하지만 그런 간부의 지시는 아무런 의미도 없었다.

"비밀 통로 쪽도 스켈레톤들이 장악했습니다! 완전히 포위당했단 말입니다!"

비밀 지부의 위치가 들통난 것도 어이가 없는데 비밀 통로까지 차단당했다니.

"완전히 포위당했다고?"

강력한 각성자지만 한국에서 거의 벗어나지 않는 한지혁이 이렇게 단기간에 자신들을 찾아낸 것도 모자라 비밀 통로까지 파악했다는 게 도저히 믿기지 않은 간부.

하지만 이미 벌어진 일에 의문을 가져 봐야 아무런 의미도 없었다.

일단 총을 든 채 부하들과 함께 회의실을 나선 간부.

"크아아아!"

그리고 간부는 보았다.

스켈레톤들이 부하들을 상대로 전기 충격기를 지지며 하나둘 제압하고 있는 광경을.

화가 머리 끝까지 난 간부가 스켈레톤을 향해 총을 난사했다.

"죽어!"

하지만 그 총질은 아무런 의미가 없었다.

사람과 다르게 뼈로만 이루어진 스켈레톤의 타격점은 그야말로 없는 수준이었으니까.

스켈레톤의 가슴뼈들 사이로 휭휭 지나가 버리는 총알들.

"이런 미친."

그들은 정식 군사훈련을 받은 사람들이 아니기에 일단 사람과 교전을 하면 맞히기 쉬운 몸통을 노리는 게 기본 교리인데, 그 몸통이 뼈밖에 없어서 맞히질 못한다.

"머리를 노려!"

결국 작은 머리를 향해 헤드 샷을 노리는 간부와 부하들.

당연하게도 형편없는 그들의 사격 실력 때문에 대부분이 빗나갔지만, 워낙 많은 총알을 갈겼기에 운 좋게 몇 방이 머리에 명중한다.

하지만.

-팅! 탱!

총알을 맞고도 끄떡없이 그들을 향해 다가오는 스켈레톤들.

간부와 부하들은 그제야 깨달았다.

스켈레톤은 맞히는 것도 어렵지만 맞혀 봤자 아무 의미가 없는, 그야말로 소화기를 지닌 보병의 천적이라는 걸.

"폭탄! 폭탄으로 날려 버······!"

그렇게 폭탄을 가져오라 지시한 순간.

간부는 순식간에 달려들어 자신의 몸에 스켈레톤이 전기 충격기를 비비는 걸 느끼며 그대로 정신을 잃고 말았다.

*

촥!

자신의 몸에 물이 끼얹어지는 걸 느끼며 정신을 차린 간부.

간부가 자신의 몸이 의자에 꽁꽁 묶여 있는 걸 확인하는 그때 한 남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바지리 맞지?"

자신의 이름을 부르는 남자를 본 간부는 그 남자가 백인임을 확인하고 이를 갈며 말했다.

"미국, 미국 놈들이구나! 설마 네놈들이······!"

"우리가 비밀 지부 위치를 얻어서 한지혁 회장에게 알려 준 건 사실이지. 물론 내가 미국인이 맞는지 아닌지는 말해 줄 수 없지만."

"젠장! 도대체 어떻게 우리 비밀 지부 위치를 안 거지? 설마 배신자?"

"그걸 내가 말해 줄 거라 생각하는 건 아니지? 아무 의미 없는 질문이야."

백인 남자가 환하게 웃으며 말했다.

"오히려 내가 묻고 싶네. 무함마드 어디 있지?"

무함마드는 바로 간부가 소속된 조직의 최고 지도자.

간부가 피식 웃으며 말했다.

"어차피 우리 지부가 공격받았다는 연락이 가는 순간 이미 몸을 피하셨을 테니 그 질문도 아무 의미가 없지."

"그건 우리가 판단할 문제고, 너는 대답만 하면 돼. 어디 있지?"

"모른다."

"역시 말로는 안 되는군."

간부가 기세등등한 표정으로 말했다.

"고문이라도 하시려고? 인권 국가인 미국이?"

"내가 미국인이 맞다고 한 적은 없는데? 그리고 고문? 요즘 그런 유치한 걸 누가 하나. 네 말마따나 나중에 알려지면 비난받기 딱 좋은데. 그래서 좋은 물건을 가져왔지."

그러면서 묘하게 생긴 상자와 줄로 연결된 판때기를 꺼내 든 남자.

"일단 강도 1로 시작하지."

그렇게 천천히 자신의 몸으로 다가오는 판때기를 보며 간부가 말했다.

"흥! 보아하니 전기 충격기인 것 같은데, 그런 걸로는 내 입을 열 수······."

하지만 그 판때기가 자신의 몸에 닿는 순간.

간부는 그 상태 그대로 눈만 휘둥그레 뜨며 입을 쩍 벌린다.

"억··· 어어어억······."

판때기와 접촉한 면에서 느껴지는 무지막지하며 처음 느껴 보는 고통에 비명조차 지르지 못하는 간부.

"오호. 고작 1단계인데 이 정도라고?"

"컥··· 컥!"

그리고 드디어 말문이 트인 간부가 비명을 내지른다.

"크아아아아!"

"많이 아픈가? 테스트해 본 요원 말로는 고문 훈련에서 받은 모든 고통을 합친 수준이라고 하던데."

"제, 제발! 제발!"

간부의 애원에 판때기를 회수한 남자.

그런데 판때기가 회수되자마자 방금까지 느껴지던 고통이 순식간에 사라진다.

"이, 이게 뭐야."

"뭐라더라? 통각 증폭기? 뭐 그런 거라고 하던데 원리는 나도 몰라. 그런데 이것 하나는 확실해."

남자가 판때기를 다시 들어 올리며 말했다.

"우리 같은 사람에게 딱 맞는 물건이라는 거. 흔적도 안 남고 죽을 염려도 없고, 얼마나 좋아. 물론 너한테는 안 좋은 소식이겠네."

남자가 느긋한 표정으로 말했다.

"대답하기 전까지 방금 같은 고통, 아니지, 이제 겨우 1단계니 그 이상의 고통을 계속해서 당할 거라는 뜻이니까. 자. 대답해. 대답하지 않으면 다시 한다?"

*

-알지라 마을 중앙 3층 건물이라고 합니다.

현장 요원의 말에 부국장이 놀란 표정으로 말했다.

"벌써 불었다고? 그놈들 보통 놈들이 아닌데?"

-통각 증폭기 이거 아주 물건입니다. 저놈 표현에 의하면 피부부터 오장육부까지 모두 비틀어 짜는 느낌이라네요. 그러다 다시 떼어 내면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혹시 거짓 정보 아니야?"

-그건 아닐 겁니다. 놈은 지금 겁에 질려서 이걸 가까이 대는 척만 해도 경기를 일으키는 수준이라서 말입니다.

"아무튼 알지라 마을이라 이거지? 좋아. 아마 도주했을 테니 드론을 띄워서 추격해야겠어."

그렇게 부국장이 손짓을 하자 대기하고 있던 부하 직원들이 곧바로 흩어져 현장 요원들에게 지시를 내리기 시작했다.

그사이 남자와 계속 이야기를 이어 나가는 부국장.

"스켈레톤은 어때."

-스켈레톤도 훌륭합니다. 작전을 하면서 이쪽은 사상자 제로에 적은 전원 생포 한 건 이번이 처음이니까요."

CIA가 작전을 하며 가장 신경 쓰는 부분은 인명 피해를 최소화하는 것.

하지만 상대가 테러 조직인 만큼 작전은 과격할 수밖에 없고, 당연히 그 과정에서 아군과 적군 모두 인명 피해는 불가피했다.

그런데 스켈레톤을 동원하니 이쪽 인명 피해도 없을뿐더러 테러 조직의 조직원들을 전원 생포 하는 데 성공한 상황.

부국장이 입맛을 다시며 말했다.

"한지혁이 한국인이라는 게 아쉽군."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아무튼 놈이 거짓 정보를 말했을 수도 있으니까 계속 심문해. 아. 그리고 흔적은 없다지만 너무 심한 고통을 주면 쇼크사 할지 모르니 주의하고."

-제가 그 정도 아마추어는 아니지 않습니까. 걱정 마십시오.

"그래."

그렇게 통화를 마친 부국장이 흥미롭다는 표정으로 말했다.

"재력과 무력, 거기에 이런 다양한 능력들까지. 정말 탐나는 인재야. 가장 좋은 건 미국인으로 만드는 건데··· 쉽지 않겠지."

한지혁은 CIA에서 한동안 투철한 애국심을 지닌 사람이 아닐까 의심 했을 정도로 한국을 대할 때와 외국을 대할 때의 태도가 완전히 달랐다.

하지만 유심히 분석한 결과 애국심과는 뭔가 미묘하게 다르고, 행동 기준 역시 어쩔 때는 적극적이고 어쩔 때는 신경도 안 쓰는 등 갈피를 잡을 수 없어 일단 한지혁 개인 성향에 대한 분석은 보류된 상황.

그럼에도 이것 하나만큼은 확실했다.

한지혁은 한국을 벗어날 생각이 전혀 없다는 것.

"일단 친분 관계를 계속 다져야겠군. 그럼 언젠가 기회가 올지도 모르니까.

*

"현재 최고 지도자의 행적을 발견해 쫓고 있으니 조만간 완전히 와해시킬 수 있을 겁니다."

김영태의 말에 나는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말했다.

"스켈레톤이랑 만들어 준 장비들은 쓸 만하던가요?"

"쓸 만한 정도가 아니었습니다. 솔직히 진작에 도입할걸이라며 후회될 정도였습니다."

CIA는 내 도움에 만족하고 나는 CIA 덕에 광신도 놈들을 박멸하는 가장 완벽한 그림이다.

"아무튼, 최고 지도자 옆에 테러 조직 소속으로 추정되는 고위급 각성자가 붙어 있기는 하지만, 그건 저희가 알아서 처리할 거니 한 회장님은 완전히 신경 끄셔도 좋습니다."

친하게 지내고 싶다는 게 거짓은 아닌가 보네.

그 명성 높은 CIA가 보고하듯 경과도 이야기해 주고, 서비스가 아주 좋아?

"다행이네요, 광신도 놈들이 전부 처리된다니까."

"하하. 그러게 말입니다."

그렇게 잠시 담소를 나누고 자리에서 일어나는 김영태.

"저는 이제 다음 임무가 있어서 이만 가 봐야 할 것 같습니다."

"예. 조심히 가세요."

그렇게 몸을 돌려 밖으로 나가는 김영태.

"딱 할 말만 전해 주고 간다라. 마음에 드는데?"

스켈레톤과 장비를 빌려주었지만 결국 모든 일을 처리한 건 CIA다.

그렇기에 자신들의 공적을 과시하며 무언가를 요구할지도 모른다 생각했고 실제로 어느 정도는 양보해 줄 생각이 있었는데, 그냥 이렇게 넘어가다니.

"그나저나 이놈들, 정보 조직은 정보 조직이네. 엄청 철저한데?"

나도 스켈레톤을 빌려주고 가만히 놀고만 있던 게 아니다.

김영태가 직접 와서 보고하듯 경과를 이야기해 주었지만 사실 나는 이미 그 전부터 빌려준 스켈레톤의 시야를 공유해 모든 상황을 파악하고 있었다.

심지어 지금 이 순간까지도 정보를 얻기 위해 스켈레톤과의 연결을 단 한 순간도 끊지 않았던 나.

호의적으로 접근했다지만 구린 일을 도맡아 하는 타국 정보기관의 말을 전부 곧이곧대로 믿기엔 내가 세론에서 너무 많은 일을 겪었단 말이지.

아무튼 그렇게 스켈레톤을 이용해 감시 아닌 감시를 하고 있었는데, 이놈들은 마치 그걸 예상이라도 한 듯 작전을 할 때만 스켈레톤을 꺼내고, 그 외엔 방음 처리까지 된 컨테이너에 넣어 스켈레톤을 이동시킨다.

나는 피식 웃으며 말했다.

"어쩌면 그걸 알고 일부러 작전 경과를 알려 준 걸지도 모르겠네."

내 감시는 의미가 없다는 걸 보여 주기 위해서.

나는 CIA에게 빌려준 스켈레톤의 시야 공유를 끊으며 말했다.

"뭐, 앞으로도 이렇게 선만 잘 지키면서 지내자고. 그럼 나도 잘해 줄 테니까."

은혜는 2배로, 원한은 10배로.

"그나저나 일단 이번 일을 저지른 놈들은 응징했는데··· 앞으로 또 이런 놈들이 나오지 않을 거란 보장이 없잖아."

이슬람교는 세계 4대 종교 중 하나이자 19억의 신도를 자랑하는 거대한 종교.

한국이 신기할 정도로 이슬람 비율이 극단적으로 낮은 거지, 해외에서 이슬람교는 흔하게 찾아볼 수 있는 종교였다.

물론 그 많은 이슬람도들이 전부 극단적인 광신도는 아니지만, 신도 수가 많을수록 광신도의 수도 많을 수밖에.

거기에 꼭 이슬람뿐만이 아니더라도 다른 종교에서 역시 스켈레톤을 곱지 않은 시선으로 바라보는 사람의 수가 적지 않으니 방법을 찾지 않으면 이번과 같은 사태가 언제 다시 또 나타날지 모른다.

"종교라. 종교가 가장 골치 아픈데."

애초에 죽음을 다루는 네크로맨서와 산 자들의 신앙인 종교는 양극단에 서 있는 것들이었으니까.

"방법이 없나?"

나는 잠시 고민하다 말했다.

"역지사지. 놈들의 입장에서 생각해 보자."

놈들이 왜 세론 랜드를 노렸을까.

그리고 왜 자신들이 했음을 대놓고 공표했을까.

"보여 주고 싶은 거야, 자신들의 테러를. 누구에게?"

바로 자신과 같은 종교를 가진 사람들에게.

테러범들에게 있어서 세론 랜드는 불경한 스켈레톤의 상징적인 장소고, 이곳을 테러함으로써 자신들이 종교를 위해 희생하고 있음을 보여 주려는 거다.

"아무리 테러 조직이라지만 총과 총알로만 조직을 운영할 수는 없잖아. 돈도 필요할 거고 조직원도 계속 늘려야 되니까. 그러니 테러로 종교 내에서 인지도를 쌓고 그 인지도로 돈과 조직원을 확충한다."

결국 광신도는 평범한 다른 신도들 사이에 숨어 있는 일종의 기생충이다.

그리고 다른 신도들을 꼬드겨 같은 기생충으로 만드는 암적인 존재.

"그럼 광신도가 아닌 일반 종교인들을 내 편으로 만들면 되는 것 아닌가?"

그때 나를 적대하는 게 오히려 일반 신도들에게 반감을 사는 일로 만들어 버리면 광신도들이 함부로 나를 노리지 못할 것 아닌가.

"어차피 지구는 세론만큼 종교적 색채가 강하지 않아. 광신도도 소수고."

그럼 어떻게 해야 일반 신도들을 내 편으로 만들 수 있을까.

"세론에서 태양교 놈들이 나를 비난하면서도 결국 내 힘을 필요로 했잖아. 그것처럼 내가 종교에 필수 불가결 한 요소가 되면 되는 것 아니야?"

종교와 세론의 공생 관계 구축.

나는 씨익 웃으며 말했다.

"종교와의 공생, 나쁘지 않네."

딱히 종교에 관심은 없지만, 스켈레톤에 대한 이미지를 끌어올리고 교단들이 나를 필요로 하게 만드는 거다.

"종교 친화적인 네크로맨서라니 뭔가 좀 웃기긴 하지만 까짓거 한 번 해보지 뭐."

109화

"기부금 감사합니다, 한 회장님."

거액의 기부금을 투척하고 만난 한국 추기경의 말에 나는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좋은 곳에 써 주시면 됩니다."

종교와의 공생을 결정하고 내가 가장 먼저 추기경을 찾아온 건 가톨릭이 가장 일원화되어 있는 조직이기 때문이었다.

다른 종교는 다양한 종파로 나뉘어 각양각색인 반면, 가톨릭은 교황을 정점으로 해서 아래로 내려가는 만큼 중요 인물들과 좋은 관계를 유지해 나와 관련된 호의적인 몇 마디만 얻어 내면 그만이니 가장 쉽다고 해야 할까.

"제가 최근 여러 일을 겪으며 그간 신앙에 대해 너무 간과했다는 생각이 들어서 말입니다. 게이트에서 몬스터가 나오고 사람이 죽는 이런 시대에 그런 사람들의 마음을 달래 주는 신앙은 분명 사람들을 지탱해 주는 중요한 축이니까요."

"그렇게 말씀해 주시니 감사합니다."

"하아. 하지만 그런 신앙을 잘못 해석하는 사람들이 종종 있어 곤란합니다. 교황 성하께서도 말씀하시지 않았습니까, 각성은 하느님께서 사람들을 지키기 위해 내려 주신 축복이라고."

가톨릭은 현재 각성이란 현상을 하느님의 축복이라 여기고 있었다.

몬스터는 뭐라더라?

악마의 하수인이라고 했던가?

아무튼.

"저와 스켈레톤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하느님께서 사람을 위해 쓰라고 내려 주신 축복이고 스켈레톤은 그 축복의 결과물이죠. 단지 외형이 좀 독특해서 그럴 뿐이지, 제가 무슨 진짜 마법사도 아니고, 몬스터의 영혼을 부활시켜 스켈레톤에 깃들게 만든 것도 아니지 않습니까. 스켈레톤은 그냥 소환수입니다. 영혼 따위는 없는 인형."

나 스스로 키운 힘이고 나는 진짜 마법사지만, 진실이 뭔지는 중요하지 않다.

어떻게 보이는지가 중요하지.

"저는 이 스켈레톤들을 이용해서 사람들을 이롭게 하는 게 이 힘을 주신 분의 뜻이라 생각합니다. 추기경님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애초에 스켈레톤은 몬스터로 만들지 않습니까? 몬스터는 하느님께서 만든 창조물이 아닌 만큼 문제될 건 없다고 생각합니다."

막대한 기부금의 효과 덕분인지 아니면 진짜 그렇게 생각하는지는 모르겠지만, 호의적으로 답하는 추기경.

"추기경님께서 그렇게 말씀해 주시니 안심입니다. 사실 저 스스로도 확신이 없었습니다, 지금 제가 하고 있는 일이 힘을 주신 그분의 뜻이 맞는지."

"모든 일은 하느님께서 결정하신 겁니다. 그 또한 하느님의 뜻이겠지요."

아무튼 괜찮다 이거지?

좋아, 좋아.

"그래서 말인데, 그걸 다른 일반 신도들에게도 말씀해 주실 수 있으십니까? 가끔 그런 하느님의 뜻을 곡해하고 저를 비난하는 사람들이 있어서 말입니다."

본론에 들어가자 추기경이 나를 바라보더니 말했다.

"공식 발표를 해 주었으면 하시는 겁니까?"

"아니 뭐, 공식 발표를 해 주시면 가장 좋겠지만, 꼭 그게 아니어도 가끔 연설하실 때 생각나시면 한번씩 말씀해 주셔도 되고요."

그렇게 두루뭉술하게 말하자 추기경이 웃으며 말했다.

"공식 발표까지는 과한 것 같고, 기부식 발표 때 확실히 언급하겠습니다."

그 정도만 해 줘도 땡큐지.

"하하. 감사합니다. 덕분에 많은 위안을 얻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교황청에도 기부금을 좀 전달하고 싶은데요."

어차피 전 세계로 뻗어 나갈 테니 미리미리 교황청과도 친분을 다져 놔야지.

내 말에 추기경이 환하게 웃으며 말했다.

"성하께서 기뻐하실 겁니다, 더 많은 불우한 이를 도울 수 있으니."

"하하. 그럼 다행이군요. 아. 벌써 시간이 이렇게 됐네. 이만 가 봐야 할 것 같습니다, 제가 다음 약속이 있어서."

"아. 그럼 가시기 전에, 이렇게 만난 것도 인연인데 세례를 받으시는 건 어떠십니까?"

"세례요?"

"예. 세례명을 받으시면 더 확실하게 인상을 남기실 수 있을 겁니다."

추기경의 말에 나는 환하게 웃으며 말했다.

"저 이미 세례명 있는데요, 페드로."

유명 아이돌 뮤직비디오 틀어 준다길래 가서 받았지.

훈련소에서.

거기에 기독교와 천주교는 물론이고, 불교 법명까지 받았단 말씀.

군대의 기억이 워낙 강렬해 세론에서 30년이나 보냈지만 잊히질 않는다.

"오오! 이미 세례를 받으셨단 말입니까? 축하드릴 일이군요."

"아. 네. 하하. 아무튼 앞으로 잘 부탁드립니다, 추기경님."

*

그렇게 추기경을 시작으로 기독교를 거쳐 불교까지 순례 방문 하며 기부금을 뿌리고 친분을 다진 나.

사실상 돈으로 친분을 산 거나 다름없지만, 뭐 어떤가.

누이 좋고 매부 좋으면 그만이지.

"해외 종파들에도 기부하세요. 특히 미국이랑 유럽. 거기에 이슬람 종파들 있죠?"

"예. 있습니다."

"거기에 돈 뿌리세요."

"거절하면 어떻게 할까요."

"거절할 수 없는 금액을 주면 되죠."

내 말에 김덕배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알겠습니다."

"일단 이 정도면 대충은 된 것 같은데··· 하. 중동이 문제네."

유럽의 이슬람 종파들은 이민자들을 중심으로 만들어진 만큼 현지화가 진행되어 그래도 말이 통하지만, 중동을 거점으로 하고 있는 진짜 이슬람의 핵심 종파들은 상당히 단호할 거란 말이지.

나는 잠시 고민하다 말했다.

"그 테러 조직 근거지가 어디라고 했죠? 시리아?"

"예. 맞습니다."

현재 시리아는 4개로 나뉘어 내전을 벌이고 있었다.

러시아의 지원을 받는 시리아 정부와 미국의 지원을 받는 반정부군.

거기에 IS와 튀르키예가 지원하는 시리아 임시정부까지.

이렇게 나라 꼴이 개판이니 더욱더 이번 테러 조직 같은 광신도들이 많이 나올 수밖에.

"가장 좋은 건 전부 밀어 버리고 평화롭게 만드는 거지만··· 괜히 저런 곳에 발 담그면 나만 골치 아파질 게 뻔하잖아."

저런 곳은 피하는 게 상책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가장 위험성이 큰 이슬람을 내버려 둘 수도 없는 일.

"구호 물품에 세론 마크 달아서 마구잡이로 뿌리세요. 식량이든 의약품이든 뭐든지 간에."

최대한 현실의 고통을 덜어 줘야 광신도로 빠질 확률도 줄어들 테니 이게 유일한 방법.

물론 효과야 미미하겠지만, 안 하는 것보다야 나을 것 아닌가.

"배고프고 아프면 결국 쓰겠죠. 그렇게 세론 구호 물품을 쓰는 사람이 많아지고 세론의 덕을 본 경험이 쌓이면 반감도 조금씩이나마 줄어들 것 아닙니까."

다른 건 몰라도 이슬람만큼은 시간이 해결책이다.

저긴 진짜 마굴이라 아무리 생각해도 답이 없단 말이지.

"알겠습니다. 그나저나 기부액이 엄청난데, 이럴 거면 그냥 재단을 하나 만들어서 통합 관리 하는 쪽이 낫지 않겠습니까?"

"재단을 만든다? 괜찮네요. 그런데 통합은 하지 말고, 각 종교별로 재단을 따로 만드세요."

"따로 말입니까?"

"예. 나한테 친화적으로 나오면 그 종교 재단 기부액 늘려 주고, 사고 치면 기부액 줄이고. 이렇게 조율합시다."

무작정 주기만 하면 그게 무슨 소용인가.

이렇게 차등을 둬야 돈 때문이라도 내 눈치를 보며 말조심하겠지.

그러다 누가 나를 거하게 치켜세워 주면 나도 그에 호응해서 기부액을 확 늘려 주는 거다.

김덕배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무슨 말씀인지 이해했습니다. 그럼 종교별로 재단을 만들어서 관리하겠습니다."

"오케이."

좋아.

이걸 이용해 지속적으로 종교계와 연을 맺으며 관계를 끌어 나간다.

*

종교계와 친분을 다지는 한편 세론 그룹은 공격적으로 해외 사업을 확장해 나갔다.

늘 그렇듯 에너지 매입 시장을 도입하여 인력난을 유발한 다음 그 빈틈을 스켈레톤으로 채우고.

물론 한국과 다르게 유럽의 일부 정치인들이 스켈레톤 의존도가 너무 커지는 것을 우려하며 관련 규제를 속속 내놓았지만, 나는 개의치 않았다.

그런 걸 하나하나 신경 쓰기엔 내가 해야 할 일이 너무 많으니까.

그래서 규제를 하든 말든 일단 진출해서 밀어붙이는 데 집중한 나.

그런데 그때 한 가지 기사가 내 눈에 들어왔다.

"베네수엘라 경제제재 완화?"

바로 미국이 베네수엘라에 가했던 경제제재를 일부 완화한다는 내용이었다.

"이번 결정은 국제 유가 급등에 따른 인플레이션 완화를 위해 베네수엘라산 원유를 수입하여 급한 불을 끄려는 미국의 의도로 보인다. 베네수엘라는 세계 최대 원유 매장량을 보유하고 있지만 황이 많이 포함된 초중질유이기에 저렴하게 매입할 수 있어 이를 정제하면 지금 같은 원유 부족 상황을 해소할 수 있을 거라 기대를 한다."

그렇게 기사를 모두 읽은 나는 심드렁한 표정으로 말했다.

"석유는 나랑 상관없잖아."

해저 채굴로 많은 원자재를 확보하며 한국을 원자재 수출국으로 만들었지만, 유이하게 자급자족에 실패한 것이 있으니 바로 석유와 천연가스였다.

이것들은 땅 깊숙한 곳에 매장되어 있고 스켈레톤으로 뽑아낼 만한 성질의 물건도 아니기에 애초에 시도할 생각조차 안 했지.

"그나저나 초중질유가 뭐길래 저렴하다는 거야?"

석유도 석유마다 가격이 다른 건가?

그렇게 별생각 없이 검색을 해 본 나.

"보자. 황의 함유량에 따라 경질유, 중질유, 초중질유로 나뉘며, 황이 적을수록 좋은 원유로 가격이 비싸다?"

그렇게 가격을 검색해 본 나는 초중질유의 가격을 보고 놀란 표정으로 말했다.

"이렇게 가격 차이가 많이 나?"

지금 경질유의 배럴당 가격은 100달러 수준으로, 이게 나 같은 일반인이 흔하게 알고 있는 원유 가격이었다.

반면 중질유는 30달러 그리고 초중질유는 15달러에 불과한 상황.

"15달러에 초중질유를 사다가 정제해서 판다라. 이게 돈이 되니까 하려는 거겠지?"

물론 뭐, 나랑은 상관없는 이야기니까.

그렇게 무시하고 넘어가려는 순간 무언가가 한 가지 떠오른다.

"잠깐. 석유가 아주 옛날에 공룡들이 죽어서 만들어진 거라고 하지 않았나?"

그래서 사람들 사이에서 한반도 공룡들은 다 어디 가서 죽었길래 석유 한 방울 안 나냐며 장난치듯 이야기하곤 하지 않나.

"죽어서 만들어져? 죽음? 그럼 부패돼서 석유가 됐다는 것 아닌가?"

죽음과 부패야말로 네크로맨서와 가장 가까운 단어.

왠지 모르게 흥미가 동한다.

"석유라, 석유. 한번 알아볼까?"

*

"정확히는 공룡만이 아니라 모든 유기물이 부패되어 만들어진 게 석유라고 보시면 됩니다. 나무부터 풀 그리고 곤충 등등 살아 있는 모든 생명체가 말이죠."

관심이 생겨서 초대한 대한석유협회 전무의 설명.

"그래요? 그럼 한국은 왜 석유가 없는 겁니까? 한국만 딱 골라서 아무 생명체도 안 살았던 건 아닐 텐데."

"석유가 만들어질 만한 환경이 갖추어지지 않아서 그렇습니다. 모든 생명체가 죽어서 부패했다고 석유가 되는 건 아니지 않습니까? 그것과 마찬가지입니다. 석유가 되려면 그에 맞는 환경이 조성되어야 하는데, 우선 죽은 유기물이 산화되지 않은 상태로 부패 과정을······."

전문가만 초빙하면 시작되는 설명 레이스.

"쉽게 부탁합니다."

"간단하게 설명하자면, 산소와 접촉하지 않은 상태로 오랜 기간 부패가 진행되어야 석유가 될 수 있다는 겁니다."

"그 환경이 먼 옛날 산유국은 조성이 되었고 한반도는 아니다?"

"대충 그렇게 설명할 수 있겠군요."

네크로맨서에겐 사체와 관련된 많은 마법이 있다.

그중엔 급속 부패와 사체에서 유독가스를 분출해 주변을 중독시키는 마법도 있지.

그럼 유기물을 모아서 진공상태에 둔 다음 마법으로 부패시키면 석유가 될 수도 있는 것 아니야?

나는 눈을 빛내며 말했다.

"그럼 만약에 진공상태에서 부패하도록 만들면 석유가 된다는 소립니까?"

"물론 거기에 추가로 압력도 가해야 하는 등등 여러 조건이 붙지만, 일단 기본 개념은 그렇습니다. 실제로 지금도 실험실에서 석유를 만드는 방법이 이미 알려져 있고요."

"그럼 왜 안 만드는 거죠?"

"당연히 돈이 안 되니까 그런 겁니다. 생각해 보시죠. 가장 흔하게 구할 수 있는 나무라 해도 석유 1L만큼의 양을 만들려면 얼마나 많은 나무가 필요하겠습니까?"

아.

그렇네.

부패가 되면 당연히 부피는 줄어드는 법.

그렇다면 1L보다 훨씬 많은 양을 부패시켜야 한다는 소린데, 가장 가격이 비싼 휘발류라 해도 1L면 고작 2천 원도 안 되는 수준.

나무를 구하는 것도 돈이요, 진공 상태를 만드는 것도 돈인 데다, 각종 부가 조건까지 충족시켜야 하니 이건 배보다 배꼽이 압도적으로 크다.

나는 입맛을 다시며 말했다.

"좋다 말았네."

마법으로 석유를 연성하는 상상을 했지만 역시 현실의 벽은 녹록지 않다.

"그런데 기사를 보니 베네수엘라에서 초중질유를 수입해다 정제해 쓴다는데, 그건 뭡니까?"

"초중질유에는 경질유보다 많은 황이 포함되어 있어 액체처럼 흐르는 경질유와 다르게 찐득합니다. 그 초중질유에 경질유를 섞어 황의 함량을 낮추는 겁니다."

엥?

그게 전부야?

"그냥 섞는 거라고요?"

"물론 복잡한 추가 공정이 있기는 하지만, 쉽게 설명해 달라시기에 그렇게 말씀드린 겁니다."

난 또 무슨 황만 따로 분리해 내는 기술이 있는 줄 알았네.

"근데 왜 황이 많이 포함된 겁니까?"

"음··· 이것도 복잡한 내용인데, 간단히 설명드리자면 부패가 덜 된 겁니다."

···어?

"잠깐만. 부패가 덜 된 거라고요?"

"정확히 말해서 유기물 자체는 전부 부패가 된 게 맞지만 혐기성균의 활동으로 충분히 황화수소를 배출해 내 원유 내 황 함유량이 줄었어야 되는데, 그게 덜 진행 된 거죠. 그래서 중질유도 시간이 흐르면 언젠가 경질유가 됩니다. 물론 그렇게 되기까진 어마어마한 세월이 걸리겠지만."

그럼 부패를 더 시키면 15달러짜리 초중질유가 100달러짜리 경질유가 된다는 소리잖아?

"그 황화수소라는 게 뭡니까?"

"부패하면서 나는 악취 있지 않습니까? 그 유독가스입니다."

나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며 말했다.

"악취라고요?! 유독가스?"

"예? 그, 그렇습니다."

나는 눈을 초롱초롱 빛내며 말했다.

"그럼 만약에 강제로 악취··· 아니, 황화수소를 뿜어낼 수만 있다면 초중질유를 경질유로 바꿀 수 있다는 말입니까?"

"···일단 이론상으론 그렇습니다만, 강제로 황화수소를 뿜어내게 할 방법이 없지 않습니까, 부패는 사람이 인위적으로 할 수 있는 일이 아닌데."

난 할 수 있다고!

오히려 내 주특기란 말이야!

"이거다!"

미쳤다.

부패와 악취 마법이 15달러짜리를 100달러짜리로 둔갑시킬 수 있는 마이더스의 마법이었다니.

'초중질유를 한국에 수입한 다음 부패시키고 유독가스를 뿜어내게 해서 황 함유량을 낮춰 경질유로 만들면? 산유국 아닌 산유국이 되는 거잖아.'

정유사들이 초중질유를 정제할 수 있다고는 하지만, 나와는 가성비 면에서 비교가 안 되지.

정유사들은 경질유를 섞어 황 함량을 낮춘 다음 각종 공정을 거치는 동안 비용이 올라갈 테니까.

초중질유의 가격이 고작 15달러라는 게 그 증거다.

정제 과정이 쉽고 저렴했으면 초중질유 가격이 그렇게 쌀 리가 없으니까.

'유독가스 처리 시설만 잘 만들어 두면 환경문제도 없고. 완벽하네?'

나는 씨익 웃으며 대한석유협회 전무에게 말했다.

"전무님, 초중질유랑 중질유 좀 구해 주실 수 있습니까? 제가 진짜 중요한 실험을 해야 돼서요."

110화

나는 드럼통 안에 들어 있는 초중질유를 고무장갑을 낀 채 주물럭거리며 말했다.

"엄청 끈적끈적하네."

색깔도 거무튀튀한 게, 마치 굴소스나 춘장 같은 느낌.

"이게 석유라고요?"

내 말에 대한석유협회 전무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예. 맞습니다. 황이 다량 함유된 초중질유이지요."

나는 이어서 다른 석유들을 확인하며 말했다.

"이건 좀 덜 끈적거리는 걸 보니 중질유. 그리고 이건······."

이제야 정말 액체저럼 주르륵 흘러내리는 석유가 나왔다.

"이게 경질유군요."

"맞습니다."

솔직히 이 테스트가 정말 성공할지는 잘 모르겠다.

나는 평소 사기를 추출할 용도로 적당히만 부패 마법을 쓴 다음 나머지는 태워서 없애 버렸지, 이렇게까지 과숙성을 해 본 적은 없으니까.

유독가스 마법 역시 적이 쓰러지면 그걸로 끝이지, 유독가스를 뽑아내는 것 자체가 목적인 것은 처음이라 마찬가지.

하지만 왠지 모르게 성공할 것만 같은 기분이 든다.

나는 히죽 웃으며 말했다.

"왠지 친숙하단 말이지."

뭐랄까.

석유에서 죽음의 향 같은 게 느껴진단 말이지?

물론 진짜 사기를 느꼈다는 게 아니다.

수없이 전장에서 구르며 느꼈던 그 묘한 감각.

그게 이 석유에서 느껴진다.

"아무튼 오케이. 실험해 봅시다. 그나저나······."

나는 내가 서 있는 공장 주변을 살펴보며 말했다.

"이게 전부 중질유 정제 공정에 필요한 시설들이라고요?"

유독가스는 말 그대로 유독가스다.

냄새를 맡는 순간 사람이 그대로 절명할 수 있는 치명적인 가스.

심지어 이 가스는 공기보다 무거워 바닥에 깔리니 잘못하면 인명 피해가 날 수 있어 처음부터 실험 장소를 유독가스 처리기가 설치된 공장으로 잡았지.

그 공장은 바로 한국의 유명 대기업이 운영하는 정유 공장.

이곳은 중질유 정제와 원유 가공을 모두 할 수 있는 종합 정유 공장으로, 지금 내가 있는 곳은 중질유 정제를 담당하는 곳이었다.

그러자 정유사 직원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맞습니다."

그리고 이곳의 시설을 본 나는 초중질유의 정제 비용이 왜 그렇게 비싼지 확실히 이해할 수 있었다.

사방에 연결된 파이프와 거대한 통이 줄줄이 나열되어 있는, 그야말로 어마어마한 규모의 공장.

"이 많은 공정을 거쳐야 정제가 가능하다 이거지?"

나는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말했다.

"좋아. 해 보자."

나는 미리 준비해 온 드럼통에 초중질유를 옮겨 담았다.

부패와 유독가스 마법진이 가득 그려져 있고 인공 정수까지 연결된 드럼통.

내가 매번 마력을 공급할 수 없으니 초중질유 정제에 마력이 얼마나 소모될지 계산하기 위해 만든 것이었다.

그렇게 마법 드럼통에 초중질유를 모두 옮겨 담고 유독가스 처리 장치와 연결된 부스 안에 넣은 뒤 문을 밀폐하고 손가락을 튕기자, 초중질유에서 유독가스가 빠른 속도로 뿜어져 나온다.

그러자 정유사 직원이 놀란 표정으로 말했다.

"어어? 유, 유독가스 분출량이 엄청납니다!"

그렇겠지.

사람들이 간혹 오해하는 게, 자연 부패 속도는 사실 어마어마하게 느리다.

그냥 지상에 사람 시체를 방치할 경우 썩어 문드러져 완전히 백골화되기까지 걸리는 시간은 보통 1년.

심지어 땅에 매장하면 7년까지도 걸릴 만큼 부패 속도가 느리기에 보통은 시체를 태워서 처리하지.

그런데 그런 부패를 마법으로 시간을 확 압축하니 방출량이 압도적일 수밖에.

물론 이 정도까지 극한으로 부패시켜 본 적은 없지만 말이다.

그렇게 얼마나 지났을까.

정유사 직원이 말했다.

"유독가스 방출량이 갑자기 낮아졌습니다!"

얼추 끝났구나.

"한번 볼까요?"

그렇게 마법과 유독가스 처리 장치를 모두 중단하고 다시 꺼내 온 마법 드럼통.

그리고 그 마법 드럼통 안에는······.

"성공이다."

황화수소가 엄청난 속도로 빠져나가며 황이 제거되어 방금 전 보았던 경질유와 비슷한 모습의 액체가 담겨 있었다.

전무가 넋이 나간 표정으로 방금 전까지 초중질유였던 석유를 휘저으며 말했다.

"이게 진짜 초중질유였다고?"

"어떻습니까?"

"이건 혁명입니다. 어떻게 초중질유를 이렇게 빠른 시간 안에 경질유로······."

성공이구나.

나는 인공 정수에 남은 마력을 체크하며 생각했다.

'이 정도 마력 소비량이면··· 후진국 에너지 매입가 기준으로는 2만 원 정도겠네. 그럼 달러로 대충 15달러.'

초중질유의 현재 시장가가 1배럴당 15달러니까 도합 30달러에 경질유를 만들어 낼 수 있다는 말이었다.

나는 환하게 웃으며 말했다.

"30달러를 들여서 100달러짜리 경질유를 만든다? 3배 장사네?"

물론 인건비와 설비 비용도 들겠지만, 3배 장사 앞에서 그까짓 푼돈은 아무런 의미도 없지.

"전무님."

여전히 넋이 나간 표정으로 석유를 보고 있던 전무가 답했다.

"예."

"일반적으로 초중질유 정제 비용이 얼마나 드나요?"

"···보통은 60달러 정도를 정제 비용으로 봅니다."

"그럼 초중질유 매입 비용까지 합치면 75달러?"

"그렇습니다."

"그래서 베네수엘라 경제제재를 완화해 준 거구나."

현재 경질유 가격이 100달러가 넘는 만큼 정제 비용과 매입 비용을 합쳐 75달러 수준인 초중질유도 충분히 가격경쟁력이 있으니까.

하지만 만약 석유 가격이 100달러가 아니라 50달러 수준으로 폭락하면 어떻게 될까.

"전무님, 그럼 만약에 석유 가격이 50달러 수준으로 떨어지면 어떻게 됩니까?"

"당연히 초중질유 거래는 사실상 중단됩니다. 정제해서 팔수록 손해가 나니까요."

50달러만 돼도 사실상 세계의 모든 초중질유는 내 것이나 다름없게 된다는 말이다.

오직 나만이 50달러 선에서도 오히려 이득을 보며 초중질유를 정제해 팔 수 있으니까.

게다가 어디 그뿐인가.

"그렇게 유가가 떨어지면 초중질유 가격도 싸지겠네요?"

"제가 알기로 한창 저유가 때 초중질유 가격이 5달러까지 떨어진 적도 있었습니다."

"크."

그럼 마법을 이용한 정제 비용 15달러를 더하면 20달러에 석유를 만들 수 있다는 소리잖아.

다른 정유사들은 정제 비용 문제로 초중질유를 거들떠도 안 볼 때 나는 고작 20달러로 정제를 해서 팔아먹을 수 있다니.

"이건 진짜 대박이네."

돈이 보인다.

돈이 보여.

"혹시 베네수엘라 말고도 초중질유 매장량이 많은 나라가 또 있나요?"

"캐나다가 대표적입니다. 캐나다도 원유 매장량 3위에 달하는 국가니까요."

"캐나다가 3위였어요?"

캐나다가 산유국인 것도 오늘 처음알았다.

"예. 거기도 베네수엘라보다는 좀 낫지만, 그래도 황이 다량 함유된 중질유라 시장성이 낮아서 사람들에게 잘 알려지지 않았을 뿐이지, 매장량 자체는 사우디를 제외한 그 어떤 중동 국가보다도 많습니다."

완벽하다.

베네수엘라와 캐나다에서 중질유를 사다가 원유로 정제해 비싸게 팔아먹는 거다.

그때 눈치를 보던 정유사 직원이 말했다.

"저··· 한 회장님? 혹시 앞으로 어떻게 할 생각이신지······."

아.

그러고 보니 정제 시설을 갖춘 정유사에겐 이게 악재겠구나.

하지만 다행히도 나는 공생을 좋아하는 사람이라고?

"당연히 직접 초중질유를 사다가 정제할 겁니다."

"아······."

"하지만 그건 원유잖아요? 결국 원유를 다시 또 정제해서 휘발유, 등유, 경유, 기타 등등으로 정유해야 하는데, 그건 제가 안 할 겁니다. 그건 기존에 잘해 오던 사람들이 해야죠."

나는 딱 원유까지만 만든다.

그리고 그 원유를 다시 정유하는 과정은 정유사들에게 넘겨야지.

해저 채굴에서 얻은 원석을 제련소에 넘기는 것처럼.

"물론."

나는 중질유 정제 장치를 손가락으로 툭툭 치며 말했다.

"이건 포기하셔야 되겠지만."

이것만 해도 어디야.

애초에 정유사들 매출에서 초중질유 정제가 차지하는 비중은 크지 않잖아?

그러니 이 정도는 양보하라고.

대신 내가 싸게 원유 제공 해 줄 테니까.

나는 씨익 웃으며 말했다.

"자. 그럼 본격적으로 움직여 볼까?"

*

김덕배에게 유독가스 처리 장치를 갖춘 대규모 공장 설립을 지시해 둔 나는 곧바로 CIA의 김영태와 접촉하여 이야기를 나눈 다음 그와 함께 베네수엘라로 향했다.

캐나다도 엄청난 중질유 매장량을 자랑한다지만 이미 시추하고 있는 물량은 전부 계약이 되어 있어 새롭게 계약하고 시추를 하는 데 시간이 걸리는 반면, 베네수엘라는 이제 막 제재가 완화된 백지 그 자체니까.

"현 대통령은 후안 파블로로, 반미 성향이었던 전 대통령이 경제난 때문에 사람들이 들고 일어나 퇴진된 후 당선된 인물입니다."

김영태의 말에 나는 잠시 침묵하다 말했다.

"혹시 거기도 관여했었습니까?"

"뭐··· 부정하진 않겠습니다. 애초에 미국은 처음부터 친미 성향의 현 대통령을 강하게 지지하고 있었으니까요."

고유가 시대에다가 마침 자신들이 밀던 친미 대통령이 당선되었기에 제재를 완화한 미국.

"그나저나 정말 제가 베네수엘라 석유 가져다 팔아먹어도 괜찮겠습니까? 미국이 가져다 팔려고 완화한 것 아니에요?"

"지금 급한 건 인플레이션입니다. 당장 급한 불을 끄기 위해서 제재를 완화한 거니 상관없습니다. 게다가 베네수엘라 석유를 수입한다 해도 그걸 처리할 만한 정제 시스템 역시 갖춰야 하는데, 그러기까지는 너무 많은 시간과 비용이 들죠. 반면 한 회장님은 다른 공정은 다 무시하고 유해가스 처리 시설만 있으면 되니 즉각적으로 시장에 석유가 공급될 것 아닙니까."

내가 사다 팔아도 상관없으니 유가 좀 낮춰서 인플레이션 좀 막아라?

나야 그럼 감사하지.

"그나저나 놀랐습니다."

김영태가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말했다.

"세상에 초중질유를 아무런 공정도 없이 경질유로 만들다니."

"아무런 공정도 없는 건 아니죠, 나름 심혈을 기울여서 만든 건데."

"다른 정유사들이 들으면 뒷목을 잡고 넘어갈 소리를 하시는군요. 하아. 대단하십니다. 그런 김에 농담 삼아 말씀드리는 건데, 혹시 미국으로 오실 생각 없으십니까? 진짜 잘해 드릴 자신 있는데."

농담을 가장했지만 반은 진심이겠지.

다른 것도 아니고 석유를 좌지우지할 수 있는 능력이 나타났으니 말이다.

사실 그래서 굳이 CIA와 협업하며 일을 진행하는 거기도 했다.

내가 이만큼 미국에 협조적이라는 걸 직접 보여 주기 위해서.

이번 사업은 미국이 베네수엘라의 제재를 풀어 줬기에 가능한 일이다.

만약 미국의 배알이 뒤틀려 베네수엘라에 다시 경제제재를 가하는 순간 저렴하게 초중질유를 공급 받아 떼돈을 번다는 내 계획에 차질이 올 수밖에 없으니까.

"저 영어 못하는데요."

"제가 옆에 붙어 평생 통역해 드리겠습니다."

"으하하. 재미있는 농담이네요. 아무튼 저는 아직 한국이 편합니다."

고향을 떠날 생각은 추호도 없지만, 일부러 여지를 남기기 위해 아직이라 말한 나.

"아직··· 이라."

김영태도 그걸 바로 캐치 하고는 잠시 눈을 빛내더니 이내 다시 원래 표정으로 돌아온다.

"아무튼 미국은 한 회장님께서 베네수엘라에 진출하는 걸 환영합니다. 다만··· 원유 가격 책정에 있어서 같이 논의를 했으면 합니다. 아시다시피 저희가 유가에 좀 민감하지 않습니까."

유가를 낮춰 인플레이션을 잡음과 동시에 유가의 통제권을 강화하고 싶다?

뭐. 미국 덕분에 사업을 할 수 있게 된거니 그 정도쯤은 해주지 뭐.

"그 정도는 해드려야죠. 저 친미라고요?"

"하하. 그거 아주 다행입니다."

그렇게 서로의 속내를 숨기고 대화를 이어 가는데, 승무원이 나에게 다가와 말했다.

"회장님, 곧 도착입니다."

지금 김영태와 타고 있는 비행기는 일본 사태 이후 어디든 바로 개입할 수 있도록 중고로 매입한 내 개인 전용기.

당연히 여기 있는 사람 중 김영태를 제외한 모든 사람들은 세론 그룹 소속 직원들이었다.

승무원의 말에 김영태가 나를 보며 말했다.

"저희 쪽 사람이 나와 있을 겁니다. 바로 대통령궁으로 모시겠습니다."

*

CIA 쪽 사람의 안내를 받아 도착한 대통령궁엔 이미 나에 대한 환영식 준비가 되어 있었다.

그렇게 잠시 베네수엘라 국내 정치 선전용 사진도 찍고 인터뷰까지 한 나는 후안 파블로 대통령과 만나 본격적인 이야기를 시작했다.

"단도직입적으로 말씀드리겠습니다. 다른 나라나 회사에 수출하는 거? 이해합니다. 마음 같아선 전부 제가 독점하고 싶지만, 아직 세론은 그만한 처리 능력을 갖추지 못했으니까. 하지만."

나는 씨익 웃으며 말했다.

"장기 계약은 되도록 안 하시는 게 좋을 겁니다. 그 회사들 전부 나가떨어질 예정이라서 말이죠."

그러자 후안 파블로가 흥미롭다는 표정으로 말했다.

"어떻게 그렇게 확신하냐 하십니다."

김영태의 통역에 나는 자신만만한 표정으로 말했다.

"저는 초중질유를 배럴당 15달러에 정제할 수 있는 방법이 있으니까요."

베네수엘라는 한때 어마어마한 부국이었다.

오일쇼크로 국제 유가가 끝없이 올라가며 초중질유조차 없어서 못 팔던 그 시기에 말이다.

하지만 그건 검은 저주나 다름없었다.

가만히 있어도 막대한 돈이 들어오니 다른 산업을 육성할 생각조차 못 하고 오직 당선되기 위해 복지 정책만 남발하던 정치권.

그런데 오일쇼크가 끝나고 저유가 시대에 돌입하자 상황이 완전히 달라졌다.

높은 정제 비용이 필요한 초중질유가 외면당하며 수출이 뚝 끊겼고, 그간 남발한 복지 정책이 베네수엘라의 목을 옥죄어 온 거다.

돈줄은 말랐는데 주머니에서 돈은 계속 새고 있고, 거기에 반미 정권으로 인한 미국의 제재까지.

그렇게 남미의 부국 베네수엘라는 일순간에 무너졌다.

당연히 그런 경험을 한 베네수엘라인 만큼 내가 말한 정제 비용 15달러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정도는 잘 알겠지.

"정말 15달러에 가능하냐고 묻습니다."

정제비가 15달러라는 건 유가가 반토막이 나도 다른 석유들과 충분히 경쟁할 만하다는 소리니까.

"가능합니다. 물론 기업 비밀이지만."

나는 경악한 표정의 후안 파블로에게 말했다.

"베네수엘라산 석유가 본격적으로 풀리면 석윳값은 떨어질 겁니다. 과연 그때도 정유사들이 베네수엘라산 초중질유를 사 줄까요? 절대 아니죠. 아마 70달러 선만 무너져도 바로 포기할 겁니다. 초중질유 정제 비용이 시중 판매가보다 비싸지니까. 하지만 세론은 다릅니다. 설사 유가가 30달러, 아니 그 이하로 추락해도 저희는 버틸 수 있으니까요."

현재 기준으로 생산 단가가 30달러지만, 유가가 거기까지 떨어지면 초중질유 가격도 지금의 15달러가 아닌 더 아래로 떨어질 터.

그러니 저유가 시대가 와도 세론은 충분히 버틸 수 있다.

마법을 이용한 정제는 그야말로 가성비의 끝판왕이니까.

나는 확신에 찬 표정으로 말했다.

"아시다시피 석유는 한번 시추를 시작하면 멈출 수 없습니다. 멈출 수 있는 방법은 해당 시추 시설을 폐쇄하고 다른 시추 시설을 만드는 것뿐이죠."

석유 시추 시설은 땅속 내부의 압력을 이용해 석유가 자동으로 뿜어져 나오게 만드는 방식이다.

피부에 구멍을 내면 몸속의 압력으로 인해 피가 흘러나오는 것처럼 말이다.

당연히 이걸 강제로 막을 방법이 없는 만큼 일단 한번 뿜어져 나오면 계속해서 석유를 팔아야 하는 구조.

그래서 산유국들이 함부로 생산량을 못 늘리는 거다.

일단 한번 빨대 꽂으면 계속 뽑아야 하는데, 갑자기 안 팔리면 곤란하니까.

여기서 베네수엘라의 고민이 나온다.

계속해서 팔아야 하는데, 고유가에만 생산성이 있는 초중질유는 가격 변동에 극히 민감하여 다른 산유국들과 달리 언제 또 저유가가 찾아올지 몰라 전전긍긍해야 하는 거다.

그런데 세론이 나서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그런 상황에서 단언컨대 석유 가격의 변동에도 변함없이 베네수엘라의 초중질유를 사 줄 수 있는 회사는 우리 세론뿐입니다. 그리고 다른 정제 회사들은 모두 나가떨어질 거고요. 우리와는 경쟁 자체가 안 되니까. 그러니 장기 계약은 하지 말고 기다려 보세요, 저희 생산 능력이 올라올 때까지."

내 말에 잠시 고민하던 후안 파블로가 말했다.

"듣기만 해도 정말 좋은 제안이라 합니다. 하지만 아무리 한 회장님이라 해도 어떻게 말만 듣고 일을 진행하냐 합니다."

나는 통역을 하던 김영태를 보며 말했다.

"이럴 때는 좀 나서 주시죠? CIA 보증이면 완벽할 것 같은데."

그러자 김영태가 피식 웃고는 후안 파블로와 한참 동안 이야기를 나누더니 나에게 말했다.

"실존하는 방법이고 저희도 확인했다 말했습니다. 대통령님도 긍정적으로 수긍하셨고요."

"오케이."

거의 다 넘어왔네.

여기에 양념만 조금 더 치자.

"그리고 지금 베네수엘라가 이제 막 경제제재가 풀려서 경제 상황이 안 좋죠? 가장 문제가 외화 부족 아닙니까."

석유를 판 돈으로 해외에서 소비재와 식량을 사 오던 베네수엘라이기에 경제제재로 외화가 끊기며 미친 인플레이션이 발생했고, 그게 지금까지 이어져 온 상황.

즉, 베네수엘라에게 가장 필요한 건 바로 달러였다.

석유를 팔려는 것도 석유를 팔아 달러를 확보해서 국내 물가를 안정시키기 위함이니까.

"에너지 판매, 즉각 도입하겠습니다. 그리고 에너지 매입 대금은 달러로 드리죠."

내 말을 전해 들은 후안 파블로의 눈이 흔들린다.

초중질유를 안정적으로 수입해 주는 것도 모자라 경제난으로 허덕이는 국민들에게 달러로 돈을 뿌려 준다니.

물론 나한테도 이득이다.

베네수엘라에서 저렴하게 마력을 매입해 그걸로 석유 사업을 하면 정제 단가도 더 내려갈 테니까.

"제 요구 조건은 단 하나입니다. 앞으로 세론 정유는 엄청난 속도로 정제량을 늘려 나갈 겁니다. 필요하다면 다른 정유사를 인수해서라도. 그리고 베네수엘라는 그런 세론 정유의 정제량에 맞춰 최우선적으로 초중질유를 공급해 달라는 것. 그렇게 세론 정유의 정제량이 베네수엘라 생산량 전부를 감당할 수 있게 성장하는 순간."

나는 자신감 넘치는 표정으로 말했다.

"베네수엘라는 국제 유가와 상관없이 수출 중단 없는 완벽한 수출 창구가 생기는 겁니다. 그리고 그 돈과 에너지 판매로 얻은 달러를 이용해 국가 발전에 이용하면 되죠."

안정적인 달러 공급이 필요한 베네수엘라와 안정적인 초중질유 공급이 필요한 세론 정유.

"저는 세론과 베네수엘라가 참 잘 어울리는 파트너라고 생각하는데. 어떻습니까, 대통령님?"

나는 대통령에게 손을 내밀며 말했다.

"저랑 손잡고 같이 가지 않으시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