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80화. 밤길을 재촉하다 (2)
한참 후, 고상경이 나지막하게 운을 뗐다.
“난 취미 공주에게 그런 마음을 전혀 느껴본 적이 없어요. 아마 내가 그 여인을 좋아하지 않아서겠죠. 전엔 한 번뿐인 인생, 마땅히 길이 남을 공훈을 세워 천년, 만년 기억되는 게 제일이라 생각했어요. 근데 오늘 천월 당신의 말을 들으니 갑자기 경 세자가 너무 부러워지네요. 연정이란 게 그리 아름다울 수도 있단 걸 오늘에야 알게 됐어요.”
천월은 고개를 갸웃거리다 장난스럽게 웃었다.
“설마 그 다음 할 말이 날 좋아한다는 말은 아니죠?”
고상경은 처음으로 천월을 돌아보곤 어이없다는 얼굴을 했다.
“이미 마음에 남은 틈도 없다는데 그런 여인을 좋아해서 뭐 해요?”
“그럼 됐어요. 난 누가 날 좋아할까봐 그게 제일 무서워.”
너스레를 떠는 천월을 보고, 고상경은 절레절레 고개를 저었다.
“이렇게 남의 속을 태우는 여인을 세상에 누가 감히 함부로 감당하겠어요. 남강에서 남량까지 오는 데 열흘 넘게 걸리는데, 지금쯤 경 세자는 당신을 걱정하다가 머리가 백발이 됐을 수도 있겠어요.”
“설마! 경 세자 머리가 백발이 되다니. 상상이 안 가네.”
천진난만한 천월의 모습에, 고상경도 더는 웃음을 참을 수 없었다.
그렇게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다 보니 어느새 서먹하고 어색한 마음은 다 사라졌고 두 사람은 한결 더 가까워졌다.
* * *
동이 틀 무렵, 두 사람은 드디어 200리 떨어진 마록산 막사에 다다랐다.
마록산은 산맥이 아주 길게 이어진 곳으로 논밭의 물도 산맥을 따라 굽이쳤다. 이곳에서 병사들은 싸움이 없을 땐 농사를 짓고 전쟁이 나면 갑옷을 입고 출전했다. 한 마디로 이곳은 병사들이 주둔하기 최적의 곳이었다.
이 마록산에 막사를 세우자고 한 건 바로 15년 전 남량 국사의 건의였다고 한다. 병사들은 전쟁이 없을 땐 농사에 전념하기에, 남량은 15년간 국력과 병력이 나날이 증강할 수 있었던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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