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전 9화. 소년의 속마음
다음 날.
태양이 산 뒤로 넘어갔을 때쯤, 정미는 공주를 치료한다는 핑계로 다시 숙비의 거처를 찾았다.
암실 안, 정미는 아혜와 마주 앉아 있었고 방 안은 쥐 죽은 듯 조용했다. 아혜의 손에 있는 영골만이 은은한 빛을 내뿜고 있었다.
빛은 아혜의 심장으로 들어갔다가 미간에서 다시 나오기를 반복했다. 공주의 눈은 점점 푸른색으로 변했다.
이윽고 미간에서의 빛이 옅은 푸른색의 꽃으로 변했을 때, 아혜가 갑자기 눈을 떴다.
아혜가 정미를 보며 작게 말했다.
“정미, 이제 갈게.”
“아혜―”
정미가 머뭇거리며 말을 잇지 못하자, 아혜는 정미의 손을 잡으며 미소 지었다.
“잘된 일이잖아? 나도 한번 도전해 보고 싶어. 다음 생엔 너처럼, 서로 진심으로 은애하는 사람을 만날 수 있는지.”
빛이 흩어졌고, 정미에게는 아혜의 마지막 말이 들려왔다.
“아무것도 모르는 상황에서 내 혈주를 풀 수 있으리라곤 생각도 못 했지. 그러니까, 너희가 나한테 사람에 대한 믿음을 심어준 거야……. 바보 같은 계집, 넌 정말 바보 같다니까…….”
잠시 후, 방에서 나온 정미가 숙비에게 말했다.
“공주가 정신을 되찾았습니다. 말을 할 수 있게 됐어요.”
“정말이냐?”
“예, 다 나았습니다.”
정미는 곧 새로운 삶을 살게 될 아혜가, 분명 잘 살아갈 것이라 생각했다.
* * *
모든 사람의 마음속엔 아주 소중한 사람이 하나씩 있기 마련이었다. 그 사람은 애인일 수도, 가족일 수도, 친우일 수도 있었다.
화서에겐 그 ‘소중한 사람’이 둘이나 있었다.
하나는 제 외조모인 단 노부인이었고, 하나는 사촌 누이인 정미였다.
아버지가 누군지도 모르는, 어머니가 모욕을 당해 낳은 자식인 화서였지만, 단 노부인은 단 한 번도 그 이유로 화서를 싫어하지 않았고 매년 생일과 명절 때마다 외조모의 사랑이 담긴 선물을 보내곤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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