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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30

22. 던전 공략(2)

시간은 빠르게 흘러갔다.

"조심히 갔다 와라. 다치지 말고."

"아직도 오라버니를 못 믿냐?"

"..."

"이번에는 그냥 소풍 가는 정도로 가볍게 가는 거니까 걱정할 거 없어."

"알겠어. 돈 많이 벌어오고."

아현의 배웅을 뒤로하고 강현은 집을 나섰다.

"중고차라도 하나 장만해야겠어."

가는 길은 지하철을 이용하면 되지만 오는 길이 걱정이다.

던전을 공략하고 꼬질꼬질한 모습으로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것은 민폐였다.

"안유성 그 자식이랑 같이 다니면 이동 걱정은 안 해도 될 텐데."

잠시 능력자 교육 학교에서 만난 미치광이가 떠올랐지만 이내 고개를 저었다.

"걔랑 같이 다니면 내가 먼저 돌아버릴게 뻔해."

이런저런 생각을 이어가다 보니 어느새 내려야 할 역에 도착했다.

던전은 역에서 도보로 30분 거리. 조금 먼 거리었지만 시간이 충분했기 때문에 걸어가기로 했다.

"저긴가 보네."

마침내 약속 장소에 도착한 강현은 한눈에 공략대가 어디 있는지 알 수 있었다.

멀리서 봐도 제법 거대한 던전의 입구는 눈에 띄기 마련이다.

그러나 그보다 더 인상적인 것은 각양각색의 차림을 하고 있는 사람들이었다.

"다들 복장이 쇼킹하네."

건설 현장에서나 쓰일 법한 철판을 덧대 입은 남자, 거대한 창을 든 여자까지 남녀를 불문하고 다양한 모습의 사람들이 던전 앞을 서성거리고 있었다.

'인벤토리에 담아서 온 다음 여기서 갈아입은 거겠지?'

저런 복장을 하고 시내를 돌아다니면 온갖 이목을 끌을 것이 뻔했다.

-철컥

그때 옆에서 들려오는 소리에 강현의 고개가 돌아갔다.

동시에 자동차에서 내리는 남자를 보며 강현은 자신의 생각이 틀렸음을 알 수 있었다.

'저건 영화를 너무 많이 본 것 같은데.'

남자는 온몸에 아주 굵은 쇠사슬을 칭칭 감고 있었다.

'움직일 수는 있나?'

강현은 오늘 해골 기사에게서 얻은 갑옷을 착용할 예정이었다.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들은 아직 제대로 된 아이템을 파밍한 적이 없기 때문에 갑옷을 직접 제작하거나 의뢰를 맡겼다.

그렇게 만들어진 장비들은 아이템으로 취급되지 않아 인벤토리에 담을 수가 없어 모두 착용하고 온 것이었다.

"출발까지 30분 남았습니다. 빠진 것은 없는지 한 번 더 점검 부탁드립니다!"

며칠 전 전화로 들은 익숙한 중년 남성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강현은 목소리가 들리는 곳을 향해 걸었다.

"저 아저씨가 김안성인가."

마침내 근처까지 도착하자 강현을 발견한 남자가 다가왔다.

"공략대 참가하시는 분입니까?"

"예. 강현입니다."

"강현, 강현 씨... 아! 탱커 포지션의?"

말을 하며 김안성이 강현을 위아래로 훑어봤다.

"죄송하지만 장비는 별도로 없으십니까?"

"인벤토리에 있습니다. 지금 입죠."

강현이 배낭을 내려놓고는 인벤토리에서 해골 기사의 갑옷과 검을 꺼내 들었다.

해골 기사의 갑옷은 보통 F등급으로 나왔지만 가끔 E등급의 장비가 드랍될 때면 항상 인벤토리에 챙겨 두었었다.

"와, 저건 뭐야?"

"아이템인가."

"E등급 던전을 도는 전문 공략대나 입는 갑옷 같은데."

해골 기사의 갑옷은 모두 무광의 검은색이다.

그것을 착용한 강현은 한눈에 보기에도 눈에 띄었다.

마치 만화나 영화에서나 나올법한 차림새라 제법 멋이 났다.

"이런 건 어디서 구하신 거예요?"

"혹시 남는 것 있으면 저한테 파시겠습니까?"

순식간에 강현에게 모여든 사람들이 질문을 던져댔다.

"남는 건 있는데 그냥 E등급 무기와 방어구입니다. 별로 대단한 건 아니에요."

"제가 이백에 사겠습니다. 어떠십니까?"

"고작 이백이 뭡니까? 제가 오백에 사죠!"

"오백 오십!"

갑자기 사람들 사이에서 강현의 장비를 두고 경매가 벌어졌다.

'이 사람들 왜이래...?'

던전에 들어오는 사람들은 가난하고 가정 형편이 어려워 한탕을 노리고 오는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그러나 몇몇 예외적인 경우가 있었는데 그중 하나가 40대, 50대 중년 남성이었다.

직장에서 잘리고 퇴직금과 모아둔 돈은 있었지만 요즘 같은 세상에 섣불리 다른 사업을 벌이지는 못한다.

결국 작은 돈벌이라도 이어가기 위해 던전에 들어오는 것이었다.

"팔백!"

그러한 사람들이 강현의 아이템을 사기 위해 퇴직금을 털어 넣고 있었다.

"에휴... 저건 안 돼."

마침내 머리가 시원하게 드러난 남자가 팔백을 외치자 다른 남자들이 고개를 저었다.

"하하! 끝났네요. 저한테 팔백에 파시겠습니까?"

"예, 뭐. 입금만 확인되면 바로 드리겠습니다."

갑자기 큰돈을 벌게 된 강현은 잇몸이 만개하려는 것을 겨우 참으며 대답했다.

"확인하시죠."

"잘 들어왔네요. 여기 갑옷이랑 검입니다."

"감사합니다!"

강현에게 장비를 건네받은 남자는 뛸 듯이 기뻐하였다.

잠시 후. 남자가 갑옷을 착용하자 주위에서 부러움과 질투의 눈빛이 모여들었다.

"이야! 좋습니다!"

해골 기사의 갑옷은 플레이트 아머로 20kg이 조금 넘는다. 남자에게는 버거운 무게였지만 주위의 시선에 한껏 고양된 그는 신경 쓰지 않았다.

'이럴 줄 알았으면 F급까지 죄다 챙기는 건데.'

강현은 튜토리얼에 두고 온 수십 벌의 갑옷이 아까웠지만 이미 지나간 일이었다.

"주목해 주세요!"

때마침 20명의 공략대가 모두 모인 것을 확인한 김안성이 사람들을 주목시켰다.

"이제 던전에 입장하겠습니다. 제 뒤를 따라 미리 정해진 포지션대로 입장하시면 됩니다."

"예!"

"그럼, 출발!"

"우오!"

김안성의 힘찬 외침에 몇몇 사람들이 동조하며 기합을 넣었다.

'정말 어디 소풍이라도 가는 것 같네.'

본인들은 조금이라도 긴장감을 풀기 위해 한 행동이지만, 강현이 보기에는 조금 우스꽝스러운 모습이었다.

-화악!

거대한 공동.

오랜만에 느껴지는 감각과 함께 눈을 뜬 강현 앞에 기괴한 공간이 펼쳐졌다.

직경 1km는 넘을 듯한 거대한 공동에 수십 개의 동굴들이 나 있었다.

강현은 땅속의 개미굴을 수백 배로 확대한다면 이런 모습이 아닐까 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 동굴이 코어까지 도달하는 가장 빠른 코스입니다."

그중 한 동굴 앞에 선 김안성이 말했다.

"사전에 약속된 포지션대로 자리해 주시기 바랍니다."

대형을 갖춘 사람들이 김안성의 뒤를 따라 천천히 이동했다.

"키에엑, 키엑!"

"전방에 새끼 타란크 다섯 마리. 옵니다!"

김안성의 외침에 가장 앞쪽에 있던 사람들이 저마다 방어 자세를 취했다.

"산성액을 맞으면 위험하니 서로 거리를 벌려주시고, 전열에 방패를 드신 분들은 피하지 말고 잘 막아 주세요! 버프 있으신 분들은 지금 바로 넣으세요!"

김안성은 타란크의 부화장을 처음 도전하는 것이 아닌지 제법 능숙하게 지휘를 했다.

[근력이 1 상승합니다]

[순발력이 3 상승합니다]

몇 가지 버프가 중첩되자 순식간에 스텟의 총합이 10 정도 껑충 뛰었다.

'확실히 버프가 좋긴 좋단 말이지.'

이미 버프 맛을 본 적이 있는 강현은 감각이 날카로워지는 것을 느끼며 격돌에 대비했다.

-쾅!

"키에엑!"

달려오던 타란크들이 방패와 부딪히며 나는 소리가 동굴을 울리고, 곧장 뒤에 있던 사람들이 무기를 찔러 넣었다.

"다들 안전을 최우선으로 침착하게 처치하세요!"

새끼 타란크는 애초에 그리 강한 몬스터가 아니었다.

그런 몬스터 5마리를 20명에서 공격했기에 전투는 5분도 지나지 않아 시시하게 끝이 났다.

사상자는 아무도 없었다.

"시작이 좋습니다. 차차 나타나는 몬스터들의 숫자가 늘어나겠지만 지금처럼만 하면 충분합니다."

"예!"

"이대로만 아무도 다치지 않고 코어까지 밀고 갑시다!"

"우오!"

"던전도 별거 없네. 학교에서 할 때보다 더 쉬운데?"

전투가 아무런 피해 없이 끝나고 김안성의 연설까지 더해지자 사람들의 사기가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았다.

'저 김안성이라는 남자 꽤 능력이 있네.'

사실 강현은 너무 시시하게 끝나는 상황이 아쉬웠지만, 이번에는 어디까지나 경험 차원에서 온 것이기 때문에 만족하기로 했다.

"여기 있습니다."

"아, 감사합니다!"

"저도 아직 안 받았어요."

잠깐 동안 몬스터의 사체에서 꺼낸 마정석을 순번에 따라 나누는 시간을 가지고, 공략대가 계속해서 나아갔다.

**

며칠 후, 매번 늘어나던 타란크의 숫자는 이제 30마리에 이르렀다.

"부상자는 바로 뒤로 빠져서 치료하세요!"

하지만 전투를 거듭하며 이틀간 300마리가 넘는 타란크를 처치한 공략대는 능숙하게 적들을 막아섰다.

"죽어!"

"여기 뚫리겠어요. 도와줘요!"

"끄아아아!"

그때 한 남자가 비명을 지르며 바닥에 나뒹굴었다. 타란크의 산성액을 얼굴에 뒤집어쓴 것이었다.

남자는 서둘러 뒤로 빠져 치유를 받았지만 원래의 얼굴을 되찾기는 힘들어 보였다.

"조심해!"

그 모습에 사람들은 더욱 신중하게 움직이며 타란크를 밀어붙였다.

"이제 조금만 더 가면 코어가 나올 것 같습니다. 모두 힘냅시다!"

잠시 후 모든 적들이 쓰러졌다.

그러나 처음 나온 중상자에 공략대의 사기는 제법 떨어졌다.

"괜찮으세요?"

"저는 신경 쓰지 않으셔도 됩니다. 남자가 이 정도 상처는 있어야죠."

얼굴 한쪽이 녹아내린 남자는 의외로 덤덤했다.

주위 사람들의 걱정에도 남자는 손사래를 치며 별일 아니라고 웃을 뿐이었다.

'멘탈은 좋은 것 같은데 안타깝게 됐네.'

강현을 포함한 몇몇은 그가 애써 괜찮은 척하는 것임을 눈치챘지만, 굳이 나서지 않았다.

"드디어!"

그 후로 몇 번의 전투가 더 치러지고 마침내 공략대가 코어까지 도달했다.

"여러분 이제 마지막입니다! 저놈들만 처리하고 집으로 돌아갑시다!"

"예에!"

고지가 눈앞에 보이자 지쳐있던 사람들이 마지막 힘을 쥐어짰다.

"공동으로 나아가지 않고 입구가 좁은 이곳으로 유인해서 조금씩 처리하겠습니다. 모두 자리를 지켜주세요!"

코어가 있는 곳은 동굴을 벗어나 제법 넓은 공동으로 나가야 했다. 그곳에는 한눈에 봐도 엄청난 수의 타란크들이 있었기에 김안성은 적들을 유인해 처치하기로 결정했다.

"옵니다. 준비!"

사람들이 내는 소리에 반응한 타란크들이 달려오고, 곧바로 인간과 몬스터가 격돌했다.

-콰앙!

"크윽, 왜 이렇게 많은 거야?!"

예상보다 너무 많은 타란크의 숫자에 몇몇 사람들이 신음성을 내뱉었다.

"침착하게 하던 대로 하세요. 입구가 좁아서 한 번에 공격하는 놈들은 일부입니다!"

김안성의 능숙한 지휘에 공략대가 안정을 찾으려던 찰나였다.

"성체 타란크다!"

"뭐야?! 저건 보스룸에만 있는 거 아니었어?"

어디서 나타난 것인지 성체 타란크 두 마리가 빠른 속도로 달려오고 있었다.

지금까지 상대한 새끼 타란크는 기껏해야 허리춤에도 오지 않는 중형견 정도의 크기다.

그러나 성체 타란크는 그보다 몇 배나 큰 거대 맹수 정도의 크기.

예상치 못한 거대 괴수의 모습에 몇몇이 패닉에 빠졌다.

"저건 막을 수 없어!"

"할 수 있습니다. 자리를 지키세요!"

"저걸 어떻게 막아서란 거야? 죽을 거라고!"

아직 성체 타란크가 완전히 다가오지도 않았지만 전열이 무너지기 시작했다.

"키에엑."

"으아아악!"

마침내 공략대의 근처까지 온 성체 타란크가 멀리서 산성액을 쏟아냈다.

사람들은 완전히 패닉에 빠졌다.

"도망쳐야 해!"

"살려줘!!"

순식간에 전열이 박살나고 사람들이 뒤돌아 도망치기 시작했다.

"안 돼, 같이 가!"

강현에게 갑옷을 산 남자는 탱커 포지션으로 가장 앞에 위치해 있었다.

거기에다 갑옷의 무게 때문에 빠르게 달리지 못해 점차 뒤처졌다.

"얼른 도망쳐요!"

그때 얼굴에 산성액을 뒤집어쓴 남자가 앞을 막아섰다.

"젠장..!"

남자의 두 다리가 거침없이 떨려왔다.

'내가 왜 이러지? 그냥 도망이나 칠걸!'

자기도 모르게 남을 구하겠다고 움직여버렸다. 그런 그가 후회하는 동안 도착한 성체 타란크. 놈은 한치의 망설임도 없이 다리를 뻗어왔다.

'죽는다...!'

-촤악!

죽음을 직감한 순간.

그에게 날아오던 다리가 단숨에 잘려나갔다.

"어서 도망가요!"

검을 휘두른 것은 바로 강현이었다.

"야아아!"

[분노의 사자후가 발동됩니다]

[모든 적들의 사기와 능력치가 감소했습니다]

강현이 분노의 사자후를 사용했다.

스킬의 사용으로 적들의 움직임이 약간 둔해졌지만 그뿐. 분노의 사자후는 어그로를 끄는 스킬이 아니었다.

"내가 처리할 테니까 다들 방어에 집중해!"

거인의 힘까지 사용한 강현이 어그로를 끌기 위해 적들의 한가운데로 뛰어 들어갔다.

"키엑!"

"어디서 하악질이야!"

-퍼걱!

강현은 달려드는 새끼 타란크의 머리를 마치 축구공을 걷어차듯이 날렸다.

그 충격에 놈의 머리가 폭발하듯 터져나갔다.

"일도양단!"

스킬을 사용한 강현이 전력으로 검을 휘둘렀다.

단번에 성체 타란크의 다리가 잘려나갔다.

머리를 공격하다간 몸통 위쪽에 위치한 독주머니를 건들 수도 있었기에 우선 다리를 공략한 것이었다.

-쿵!

한쪽 다리가 잘린 타란크가 넘어지자 지체 없이 머리에 검을 박아 넣은 강현이 본격적으로 날뛰었다.

-콰직! 스걱!

사방에서 공격이 날아든다.

모두 피할 수는 없다.

강현은 갑옷의 방어력과 자신의 재생능력을 믿고 정면 돌파를 강행했다.

"뒤로 빠지지 말고 방어해! 퉤!"

강현이 말을 하는 도중 입으로 들어온 타란크의 체액을 뱉어냈다.

산성액이 조금 섞인 것인지 입 안이 불에 타는 듯한 느낌이었다.

"도망치면 피해가 늘어납니다! 모두 막아서요!"

강현의 활약상을 본 김안성이 사람들을 이끌자 점차 전열이 안정을 되찾기 시작했다.

"할 수 있습니다! 조금만 버티세요!"

"흐아압!"

하나둘 정신을 차린 사람들이 자리로 돌아왔다.

전열은 금세 안정되고, 이제 사람들은 차분하게 적들을 막아서게 되었다.

"저 남자는 정체가 뭐야..?"

완전히 자리를 잡아 여유가 생긴 사람들이 강현이 싸우는 모습을 멍하니 지켜봤다.

"키에엑!"

-쾅!

검이 한번 휘둘러질 때마다, 발길질이 뻗어나갈 때마다 타란크 하나가 죽어나갔다.

-콰직

"후우..."

마침내 마지막 남은 타란크의 머리에 검을 박아 넣은 강현이 숨을 토해냈다.

23화 죽음의 위기(1)

23. 죽음의 위기(1)

"정말 감사했습니다. 강현 씨가 아니었으면 어떻게 됐을지..."

고개를 숙여 인사를 전하는 김안성의 모습에 강현이 웃었다.

"아닙니다. 제가 좀 더 빠르게 움직였어야 하는 건데."

전투가 끝나고, 공략대는 마정석을 수거한 뒤 코어로 모였다.

"이게 코어인가?"

"후아... 끝이다!"

마치 심장처럼 박동하는 코어.

가볍게 검으로 연결부를 제거하자 곧장 움직임이 멈추었다. 동시에 밖으로 향하는 푸른 포탈이 열렸다.

-화아악!

마침내 공략대는 4일 만에 던전을 벗어났다.

대부분은 살았다는 안도감에 환호했지만 몇몇 사람들은 강현을 흘깃거렸다.

"이봐요."

"...?"

"그런 힘이 있었으면 진작 앞에 나섰어야 하는 거 아닙니까?!"

"예?"

한 남자가 말하자 다른 사람들이 동조하기 시작했다.

"맞아요. 당신이 처음부터 나섰으면 던전을 이렇게 고생하지 않아도 됐잖아요."

"그리고 사고가 일어나지도 않았을 거야."

이야기를 듣는 강현의 표정이 점차 일그러졌다.

"이것들이 지금 장난하나..."

"뭐? 이것들?!"

"거기 당신."

"뭡니까?"

강현이 처음 자신에게 잘못했다며 외친 사람을 바라봤다.

"나이를 처먹었으면 나잇값을 해야 할 거 아냐."

"뭐...?"

"내가 당신 보모야? 왜 내가 나서서 던전을 깨 줘야 하는 건데?"

강현의 인내심은 빠르게 무너졌다.

"지들 살자고 튈 때는 언제고, 이제 살만하니까 도와준 사람을 해코지 해? 시벌. 어이가 없네."

"다들 그만하시죠."

보다 못한 김안성이 나섰다.

"강현 씨는 실제로 우리들을 위해서 몬스터 무리에 뛰어든 분이십니다."

"그래도 처음부터 앞에…."

"게다가! 여러분들이 모두 도망칠 때. 혼자서 그놈들을 막아섰습니다."

"..."

"강현 씨가 없었으면 우리가 이렇게 던전 밖으로 살아 나올 수 있었을 것 같습니까?"

계속되는 김안성의 말에 사람들이 수그러들었다.

"강현 씨도 화를 참으시고, 이쯤 하시는 게 어떻습니까?"

강현은 김안성의 말에 왠지 모르게 차분해지는 것이 기분이었다.

"예. 뭐..."

"감사합니다. 하하."

"저기 김안성 씨."

"예?"

"혹시 사람들을 진정시키는 스킬 같은걸 가지고 계신가요?"

강현의 말에 김안성이 놀란 표정을 지었다.

"그건 왜 물으시는지..."

"던전 안에서나, 방금 싸울 때나 감안성 시 말 한마디에 사람들이 금세 안정을 찾아서요."

강현의 말에 김안성이 멋쩍게 웃었다.

"사실 제 고유 능력이 사람들을 대하는 것과 관련이 있어서요. 별 대단한 건 아닙니다. 하하."

그 말에 납득을 한 강현이 고개를 끄덕였다.

"괜찮으시면 다음에 또 같이 던전에 갈 수 있을까요?"

"예."

연락처를 건네며 김안성이 말하자 강현이 마지못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수고하셨습니다."

떠나는 강현에게 김안성이 마지막까지 예의 바르게 인사를 했다.

"하아, 아저씨. 미안하게 됐어요."

연락처를 받기는 했지만 강현은 앞으로 누군가와 같이 던전을 돌 생각이 없었다.

"사실, 도움은커녕 짐 덩어리들이야. 차라리 혼자 돌았으면 이틀 만에 다 깨고 돈도 훨씬 많이 벌었겠다."

갑옷을 인벤토리에 넣은 강현이 고개를 저었다.

"일단, 보상은 확인해야지."

▫이름 : 강현

▫칭호 : 튜토리얼 졸업자 외 1개

▫레벨 : 29 → 30 new!

▫상세 능력치 :

·근력 21 (+2.5)

·순발력 20 (+2.5)

·체력 20 (+2.5)

·마력 20 (+2.5)

·추가 스텟 : 0 → 1 new!

▫고유 능력 : 부활

▫능력 : 중급 검술(D), 하급 방패술(E), 최하급 석궁술(F)

▫스킬 : 분노의 사자후(C), 중급 육체 재생(B), 일도양단(E), 거인의 힘(B)

상태창을 확인한 강현이 추가 스텟을 체력에 투자했다.

"흐흐... 드디어 30레벨인가."

스텟 또한 많은 성장이 있었다.

스텟 총합 82.

칭호로 얻는 추가 스텟 10.

총 92에 육박하는 엄청난 수치였다.

"처음이랑 비교하면 정말 어마어마하게 올랐네."

강현이 흐뭇한 웃음을 짓는 사이 택시가 도착했다.

"어서 오세요."

"예. 근처 마정석 교환소로 가주세요."

**

"얼마라고요?"

"2,760만원입니다."

직원의 말에 강현의 턱이 바닥까지 닿을 정도로 벌어졌다.

'뭐가 이렇게 많아?'

마정석 교환소에 온 여태껏 인벤토리에 모아두었던 마정석을 모두 현금화했다.

그 금액이 무려 2,760만 원.

예상보다 너무 많은 금액에 강현은 어안이 벙벙했다.

"예. 바꿔 주세요."

"대금은 오늘 안으로 계좌에 입금될 겁니다. 여기 영수증입니다."

"예."

영수증을 받은 강현이 인사를 건네고는 돌아섰다.

"수고하세요."

"안녕히 가세요."

마정석 교환소를 나서고 택시를 잡은 강현이 멍하니 하늘을 바라봤다.

손에 2,760만 원이 적힌 영수증이 들려 있었지만 강현은 전혀 실감이 나지 않았다.

"합이 3,500만 원이 넘네..."

중년의 남자에게 팔아넘긴 해골 기사의 장비 값 800만 원까지 합쳐서 사흘간 번 돈이 3,500만 원이 넘는다.

대부분의 돈은 강현이 튜토리얼에서 얻은 것들로 번 돈이었지만.

"매일 꾸준하게 던전을 돌면 하루에 백만 원씩 버는 것도 꿈이 아니겠어."

강현은 이번 던전 공략으로 확실히 깨달았다. 다른 사람들과 함께하는 것은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

수준 차이가 너무 극명했다.

간혹 김이현과 안유성 같은 특출한 자들이 존재하긴 하지만 말 그대로 극소수.

강현은 자신이 한국에서 유일하게 튜토리얼을 통과한 셋 중 하나라는 것을 실감하기 시작했다.

"이제 돈 걱정은 다했다!"

앞에 앉은 택시기사가 힐끔거리는 것이 느껴졌지만 아무렴 어떨까 싶었다.

**

집에 도착한 강현이 힘차게 현관문을 열어젖혔다.

"내가 왔다!"

"왔냐. 윽, 냄새."

문을 열자마자 강현과 함께 들어오는 지린내에 아현이 코를 막았다.

"미안, 3일을 못 씻어서. 이것 때문에 택시 기사한테 따따블로 줬다니까."

던전을 클리어하고 챙겨둔 새 옷으로 갈아입었지만, 삼일이나 씻지 못한 냄새를 숨길 순 없었다.

"오라버니 씻고 계실 동안 먹고 싶은 것 생각해 놔라."

"뭐야. 돈 좀 벌었나 보네?"

"크크. 깜짝 놀랄 거다."

잠시 후, 샤워를 하고 나온 강현이 자신의 통장 잔액을 보여줬다.

"에? 사, 삼천오백만 원?!"

"이 오라버니에 대한 존경심이 무럭무럭 샘솟나?"

"진짜 네가 번 거야? 고작 사흘 만에?"

"어허, 말이 짧다."

"어찌 이리 많은 돈을 버셨사옵니까?"

아현이 바닥에 넙죽 엎드리며 사극에 나오는 말투를 따라 했다.

"에헴. 다 내가 뛰어난 덕분이지. 어서 쇼핑 갈 준비를 하도록 하여라!"

"예이~"

아현이 서둘러 방으로 뛰어가 옷을 갈아입기 시작했다.

"그런데 진짜 네가 번거 맞아? 인터넷에 후기 같은 거 봐도 며칠 만에 이렇게 버는 사람은 못 봤는데."

"그만큼 내가 대단하다는 거지. 얼른 가자!"

"오케이!"

계속해서 자랑질을 하는 강현이 마음에 들지 않았지만 아현은 분위기를 맞춰주었다.

'뭐부터 사달라고 하지?'

**

강현은 평생 돈이라고는 모르고 산 인간이었다.

아현 또한 마찬가지.

그런 남매에게 막상 거금이 주어지니 어떻게 써야 할지 조차 막막했다.

"어서 오세요."

결국 고민 끝에 도착한 곳은 인근의 한 백화점.

강현의 기준에서 사치의 끝이라고 할 수 있는 명품관에 들어섰다.

"야.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너무 무리하는 거 아냐?"

"너도 뭐 좋은 백 같은 거 하나 메고 싶을 거 아냐. 마음 변하기 전에 골라."

"진짜지? 딴말하기 없기다."

순간 강현은 한도를 정할까 고민했지만 이내 고개를 저었다.

'남자가 자존심이 있지.'

아현이 정신없이 물건들을 둘러보는 동안 강현은 진열된 상품들의 가격표를 확인했다.

'뭔 놈에 가방이 이렇게 비싸?!'

강현의 손바닥보다 조금 더 큰 가방의 가격은 시작이 100만 원이었다. 조금 더 둘러보자 200만 원이 넘는 가방들도 심심찮게 보였다.

"으음. 괜찮겠지..?"

평생 이런 곳은 구경조차 해보지 못한 강현이었기에 생각보다 훨씬 비싼 제품들의 가격에 절로 침이 넘어갔다.

"찾으시는 상품 있으신가요?"

"아, 그냥 둘러보는 거예요."

강현의 대답에 친절한 표정을 짓던 직원의 얼굴이 구겨졌다.

직원은 언짢은 표정으로 강현을 위아래로 훑어보더니 뒤돌아 다른 고객을 찾아갔다.

'뭐지? 나 무시당한 건가?'

사실 이곳에 있는 사람들 중 남매만큼 허름한 옷을 입고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대부분이 걸치고 있는 옷의 가격들을 합치면 소형차 한 대 정도는 우습게 뽑을 정도.

'시발... 다른 곳으로 갈까.'

기분이 상한 강현이 다른 매장을 찾아갈까 고민하던 찰나 아현이 다가왔다.

"이거 괜찮겠어?"

아현이 고른 가방은 정말 손바닥만큼 작았다. 강현이 가격표를 확인하자 75만 원이 적혀 있었다.

"이거면 돼?"

"어."

순간 강현의 눈이 아까 그 직원과 마주쳤다. 직원은 명백한 비웃음을 머금고 있었다.

'저 썅년이...'

열이 오른 강현이 거칠게 머리를 쓸어 넘겼다.

"하아..."

"왜 그래? 좀 비싼가..?"

"야. 다른 거 골라. 더 비싼 걸로."

"이걸로 한다니까?"

강현은 아현을 붙잡고는 조금 전 봤던 가방들 중 가장 비싼 것을 집어 들었다.

"이거 어때? 괜찮아 보이는데."

"이쁘기는 한데 너무 비싸잖아."

"이왕 살 거면 좋은걸 사야지 이거 마음에는 들어?"

"응... 좋기는 한데..."

"그럼 이걸로 사. 저기요."

강현이 직원을 부르자 강현을 무시했던 그 직원이 헐레벌떡 다가왔다.

"뭐 필요한 거 있으세요?"

"이거 사려구요."

"네. 그러시면…."

"그런데 당신 말고 다른 직원 불러줘요."

"예?"

강현의 말에 직원이 멍청한 표정을 지었다.

"당신한테는 안 살 거니까 다른 직원 불러 달라고요."

**

백화점에서 쇼핑을 끝내고 늦은 저녁 식사를 한 남매가 집으로 돌아왔다.

"너 오늘 너무 무리한 거 아냐?"

"괜찮다니까. 정 그러면 지금이라도 반품하고 오던지."

"으흠!"

아현이 서둘러 가방을 방 안으로 가져갔다.

"고마워. 내가 평생 소중하게 메고 다닐게. 그런데 아까 그 직원한테는 왜 그런 거야?"

아현의 말에 강현이 백화점에서 있었던 일을 설명해 주었다.

"뭐 그런 개같은 년이 다 있데?!"

"그지?"

"아주 잘했어. 나한테 걸렸으면 제대로 혼내줬을 텐데!"

주먹을 불끈 쥐며 외치는 아현의 모습에 강현은 웃음이 나왔다.

"어쨌든 앞으로는 내가 돈 많이 벌어올 테니까 너도 좀 꾸미고 남자도 만나고 해."

"잘 나가다가 남자 이야기가 왜 나와?"

아현은 그동안 집과 회사밖에 모를 정도로 미련하게 노력해왔다.

객관적으로 봐도 어디 가서 빠지지 않는 미모였지만, 워낙 살림이 어렵다 보니 다른 일을 생각할 여유조차 없었기 때문이다.

"너나 잘해. 지는 5년 넘게 솔로인 주제."

"나는 못 만나는 게 아니라 안 만나는 거지."

강현은 수백만 솔로부대의 단골 핑계 멘트를 날려주었다.

"하아, 이제 좀 쉬어야지. 오늘 수고했어."

"어."

방으로 들어온 강현이 스마트폰을 들었다.

"차도 한 대 사야 하는데..."

오늘 예상보다 큰 지출이 있었지만 자동차를 사지 않을 수는 없었다.

강현이 스마트폰을 꺼내 중고 자동차를 검색했다.

"뭔 놈에 중고들이 이렇게 비싸?"

당장 첫 번째 화면에 나오는 차들의 평균 가격이 1,000만 원이 넘었다.

점차 계속해서 스크롤을 내리며 싼 가격의 차를 찾던 강현의 눈에 마침내 마음에 드는 삼품이 보였다.

"500만 원이라..."

제법 연식이 오래된 중형 세단.

길을 걸으면 어디서든 찾아볼 수 있는 흔한 국민 자동차였다.

"어차피 던전이나 왔다 갔다 할 건데 이 정도면 충분하지."

사이트에 적힌 번호에 신청을 완료한 강현이 만족스럽게 웃었다.

"이름은 번틀리로 지어야겠다."

100배에 달하는 가격 차이가 있었지만 애칭을 뭐라 부르든 강현의 마음이었다.

24화 죽음의 위기(2)

24. 죽음의 위기(2)

그 날 이후.

강현은 홀로 던전을 돌았다.

처음에는 제법 힘들었지만 코어까지 가지 않고, 던전 초입만 돌다 보니 금세 여유가 생겼다.

"167만 원입니다."

"예. 수고하세요."

그리고 오늘.

처음으로 당일치기가 아닌 2박 3일을 계획하고 무사히 던전을 빠져나왔다.

그 덕에 당일치기를 하며 번 돈의 약 4배 정도를 돈을 벌 수 있었다.

예상보다 많은 금액을 벌은 강현이 만족스럽게 웃었다.

"이대로 가면 월 이천, 삼천도 금방이겠어."

1년 넘게 인턴으로 다니며 한 달에 200만 원도 벌지 못했던 것을 생각하면 정말 장족의 발전이었다.

"그나저나 레벨이 안 올라서 문제네."

벌써 강현이 튜토리얼을 졸업한 지 한 달이 흘렀다. 하지만 강현의 레벨은 겨우 3이 올라 31에 머물러 있었다. 게다가 스킬레벨은 전혀 오르지 않은 상태였다.

"뭐, 돈만 잘 벌면 됐지."

당장 5년 후에 지구가 어떻게 된다는 것은 강현에게 그다지 동기부여를 하지 못했다.

관리자의 말대로 수십억 명이 능력자가 되었고, 강해지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거기에 자신 하나가 좀 설렁설렁한다고 해서 지구의 운명이 바뀌리라 생각하진 않는다.

"그리고 나 정도면 충분히 강해."

주위를 둘러봐도 자신보다 강한 사람. 아니, 비슷한 수준의 사람조차 찾을 수 없었다.

그들이 자신의 수준에 도달하려면 아마 한참은 걸릴 것이다.

"내가 계속 놀고먹겠다는 것도 아니고 말이야. 세 달 넘게 죽어라 고생했는데 잠깐 천천히 가는 것 정도는 괜찮잖아?"

강현이 고개를 끄덕이며 완전히 합리화를 끝마쳤다.

"부재중 전화가 많네?"

던전에 있는 동안은 모든 전자기기가 먹통이 된다.

때문에 꺼두었던 스마트폰을 다시 켜자 부재중 전화가 백통이 넘게 와있었다.

"뭔 일이래."

그중 대부분이 동생 강아현이 걸은 전화였다.

"여보세요?"

-너 어디야?!

"이제 막 던전에서 나왔는데."

-빨리 와! 지금 난리 났다고!

"뭔 일인데 그래?"

-엄마 아빠가 있는 곳에 던전 터졌데!

**

- … 항래 군에서 벌어진 대규모 던전 웨이브 사태에 깊은 유감을 표했습니다. 이번 사태는 그제 저녁 갑작스러운 D등 급 불완전 던전이 생성되며 시작된 것으로 …

뉴스 앵커가 전달하는 말을 강현이 멍하니 서서 들었다.

"그래서 요점이 뭐야..?"

"지금 항래 군 전면 폐쇄됐고 차차 안으로 들어가서 몬스터 정리할 예정이래."

던전을 제때 클리어하지 못하는 사건은 심심찮게 일어난다. 거의 매일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

하지만 이렇게 대규모로 던전이 개방되어 도시를 전면 폐쇄하는 것은 처음 있는 일이었다.

"처음에는 구조작업을 같이 진행했는데..."

"했는데?"

"몬스터로 인한 피해가 커서 지금은 아무도 들어가지 않는 중이야."

"아직 엄마 아빠가 저 안에 있다고?"

"응..."

아현의 말에 강현은 씻지도 않고 다시 짐을 싸기 시작했다.

"뭐해? 어쩌려고?"

"들어가야지. 가서, 구할 거야."

지금 막 던전에서 나온 상태였기 때문에 식량만 다시 채워 넣는 정도로 준비는 충분했다.

"그럼 나도 데려가."

"억지 부리지 마. 짐밖에 안 되는 거 알잖아. 그리고 나는 죽어도 다시 살아나지만 너는 그걸로 끝이야."

"그럼 나보고 어떡하라고! 계속 여기 박혀서 구경만 해?!"

아현이 발을 동동 구르며 소리쳤다. 강현은 그 모습을 보며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어. 구경만 해. 귀찮게 하지 마라. 간다."

짐을 싼 강현이 집을 나와 차에 올라탔다. 집에 들어온 지 5분도 지나지 않은 시점이었다.

-똑똑

유리창을 두드리는 소리에 강현의 고개가 돌아갔다.

"왜."

"할 수 있지?"

아현이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물었다.

"당연한 거 아니냐?"

강현은 애써 미소 지었다.

"믿는다."

"그래."

짧게 대답한 강현이 곧장 시동을 걸고 출발했다.

강현이 떠나가는 모습을 보는 아현의 눈에 눈물이 고였다.

**

세 시간을 달린 끝에 강현은 자신의 고향 항래 군의 입구에 도착할 수 있었다.

"이 앞으로는 들어가실 수 없습니다."

도시 경계에서 도로를 점유한 군인들이 강현을 막아섰다.

"능력자입니다."

강현이 능력자 등록증을 내밀었다.

"야. 능력자는 어떻게 하란 지침 내려왔냐?"

"일단 적당히 말려보고 안되면 그냥 통과시키랍니다."

"무슨 지침이 그래? 어휴."

"그냥 통과시키란 말 같습니다."

"나도 알아. 인마."

중위 계급장을 단 남자가 고개를 저으며 강현을 불렀다.

"꼭 들어 가셔야겠습니까?"

"예."

"알겠습니다. 야! 바리케이드 올려."

이곳에서 집까지는 30km 정도.

아직은 거리가 많이 남았기에 강현은 더 깊은 곳까지 차를 이용기로 했다.

-끼이익

그러나 차단선을 지나고 얼마 가지 않아 강현이 브레이크를 밟았다.

처음 보는 거대한 몬스터가 도로를 막아서고 있었기 때문이다.

"멧돼지... 인가..?"

[보일더]

일반적인 멧돼지는 아무리 크다 해도 그 높이가 사람보다 클 일이 없었다.

하지만 눈앞에 멧돼지를 닮은 생명체는 대충 봐도 그 높이가 2m는 되어 보였다.

쉽게 말해 강현이 타고 있는 승용차보다 훨씬 더 컸다.

"푸르크! 프륵."

삐져나와 있는 어금니는 코끼리의 그것이 아닌가 싶을 정도로 거대했다.

그런 놈이 뭐가 마음에 들지 않는 것인지 투레질을 시작했다.

-다그닥! 다그닥!

"아, 조졌네."

놈이 달릴 때마다 땅이 울렸다.

강현은 재빠르게 문을 열고 자동차 밖으로 뛰쳐나왔다.

-쾅!

놈이 들이박은 자동차가 십여 미터를 날아가 도로에 처박혔다.

"이런 돼지새끼가! 감히 내 번틀리를..!"

성난 강현이 빌게인의 장검을 꺼내 들었다.

"갑옷을 입었지만 저기에 맞는 순간 끝이야."

강현은 튜토리얼 7단계를 완료하고 받은 로날드의 갑옷(B) 세트를 착용 중이다.

높은 등급답게 튼튼한 갑옷이지만 자동차까지 날려버리는 공격에서도 자신을 지켜 줄 수 있을 것 같진 않았다.

"덤벼!"

[분노의 사자후가 발동됩니다]

[대상이 저항합니다]

[모든 적들의 능력치가 일부 감소했습니다]

스킬을 사용했음에도 놈은 전혀 위축된 모습이 아니었다.

"푸륵!"

다시 한번 투레질을 한 놈이 달리기 시작했다.

-다다다다

'피하면서 놈의 돌진력을 그대로 이용한다.'

엄청난 속도로 달려오는 보일더.

강현은 놈을 끝까지 주시했다.

'지금!'

마침내 놈이 코앞까지 다가온 순간 옆으로 몸을 굴렸다.

"일도양단!"

동시에 사용되는 스킬.

-푸슈슈슉!

"으아아아!"

'거인의 힘'과 '일도양단'을 함께 사용했음에도 놈의 가죽을 베는 손아귀가 찢어질 것 같았다.

-파앗!

마침내 칼날이 놈의 옆구리를 가르고 밖으로 나왔다.

검붉은 피가 사방에 흩날렸다.

"푸라아악!"

"씨발, 얕아!"

예상보다 놈의 가죽이 너무 두꺼웠다. 검에 걸리는 감각으로 그 사실을 알아차린 강현이 재빠르게 뒤로 빠졌다.

-콰앙!

강현이 있던 자리에 거대한 무언가 떨어지고, 아스팔트 바닥이 박살 났다.

보일더가 사람의 얼굴만 한 앞발을 들어 바닥을 내려친 것이었다.

"저건 맞는 순간 끝이야. 무조건 피한다."

놈은 그 신체적인 한계로 공격 수단이 한정되어 있다. 침착하게만 대응한다면 충분히 모든 공격을 피할 수 있을 것이다.

-푸슉, 스걱!

"푸라악!"

강현이 놈의 주위를 돌며 계속해서 검을 휘둘렀다. 점차 놈의 몸에 자잘한 상처들이 늘어나기 시작했다.

'조금만 더!'

놈을 거의 해치웠다 생각한 순간이었다.

어디선가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케륵, 케륵."

"케라라아웃!"

"이건 설마..."

소리가 난 곳을 바라보자 수십 마리의 고블린이 달려오는 것이 보였다.

[고블린 돌격병]

[고블린 돌격대장]

독특한 이름처럼 도로를 달리는 놈들의 기세는 엄청났다.

"저게 고블린이라고?"

강현은 고블린에 대해 제법 잘 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지금 달려오는 고블린은 강현이 알던 고블린과 전혀 달랐다.

잘 갖춰진 갑옷에 무기 또한 날카롭게 손질되어 있는 상태.

게다가 근육질이기까지 한 놈들이 정말 미친 듯이 달려오고 있었다.

-피슉!

그와 동시에 강현의 옆에 화살이 스쳐 지나갔다.

[고블린 궁병]

"무슨 군대냐?!"

달려오는 놈들 뒤쪽으로 이십여 마리의 활을 든 고블린들이 보였다.

"이런, 시벌!"

저놈들은 여태까지의 고블린들과 다르다.

여기서 더 이상 시간을 지체할 수 없었던 강현은 재빠르게 차로 돌아가 배낭을 챙겨 들고뛰었다.

"푸라아아!"

뒤쪽에서 보일더가 외치는 소리가 들려왔다.

"케륵!"

돌아보니 수십 마리의 고블린들이 보일더를 포위한 채 검을 찔러 넣고 있었다.

전신에 검과 화살이 꽂힌 보일더는 흡사 고슴도치처럼 보였다.

"케에엑!"

보일더에게 맞을 때마다 고블린은 피투성이가 돼서 허공을 날았다.

하지만 놈들은 전혀 겁먹지 않고 보일더를 압박했다.

-쿠웅

결국 강현과의 싸움으로 지쳐있던 보일더가 견디지 못하고 쓰러졌다.

"케엑!"

보일더가 쓰러진 것을 확인한 고블린들이 곧바로 목표를 강현으로 바꾸었다.

-피슉, 피슉

-팅!

날카로운 화살이 강현의 옆을 스쳐갔다. 간혹 몸에 적중하는 화살은 단단한 갑옷에 튕겨나갔다.

"그냥 좀 꺼져!"

자신의 목적은 부모님을 구하는 것이다.

여기서 고블린들과 노닥거릴 시간이 없었다.

강현은 뒤도 돌아보지 않고 전력으로 산을 향해 뛰었다.

30분쯤 달리자 놈들도 포기한 것인지 더 이상 쫓아오는 기척이 없었다.

"허억, 허억..."

드디어 숨을 돌린 강현이 자리에 주저앉았다.

"멧돼지 같은 놈은 그렇다 쳐도 고블린은 뭐야?"

처음 튜토리얼에서 잡은 고블린은 민병대원. 이번에는 돌격병과 궁수. 돌격대장까지 있었다.

이 기세면 나중에 고블린 근위병이나 고블린 황제가 나와도 이상하지 않을 것 같았다.

"으으..."

잘 무장하고 훈련된 고블린 수백수천 마리가 달려든다 생각하자 강현은 상상만으로도 온몸에 소름이 끼쳤다.

**

스마트폰을 켠 강현이 gps로 현재 위치를 확인했다.

"아직 멀었네."

남은 거리는 대략 20km.

평지라면 순식간에 도착할 수 있겠지만 산길을 따라 이동 중이니 얼마나 더 걸릴지 몰랐다.

게다가 언제 어디서 나올지 모르는 몬스터까지 주의해야 했다.

"저게 뭐야?"

한창 길을 걷던 때였다.

강현은 저 멀리 던전이 있는 것을 발견했다.

"여기에도 던전이 있…."

말을 하던 강현이 재빠르게 바닥에 엎드렸다.

'뭐야?! 왜 문이 열려있어?'

던전 문이 개방되었다면 분명 몬스터들이 밖으로 나왔을 것이다. 하지만 여기까지 오는 동안 살아있는 몬스터는 한 번도 마주하지 못했다.

'이미 죽은 놈들이라면 몇 마리 보긴 했는데...'

열려있는 던전의 문.

종류에 관계없이 찢긴 채로 죽어있는 사체들.

강현은 무언가 불길한 기분이 들었다.

"거인의 힘."

강현은 스킬을 사용하고 전력으로 달리기 시작했다.

"크와아!"

"아우!"

"내 이럴 줄 알았다!"

동시에 어디서 나타난 것인지 수십 마리의 적들이 사방에서 날아들었다.

[디스루핀]

놈들의 머리 위에는 처음 보는 이름이 떠있었다.

"비켜!"

"깨갱!"

강현은 점프해서 자신에게 달려드는 놈을 주먹으로 후려쳤다. 머리를 맞은 놈은 단번에 수 미터를 날아가 나무에 처박혔다.

'숫자가 너무 많아!'

늑대와 비슷한 모습을 한 놈들은 그 숫자가 얼마나 되는지 가늠하지 못할 정도로 빼곡했다.

'저렇게 덩치도 커다란 놈들이 여태껏 어디 숨어있었던 거야?'

강현의 의문은 금세 풀렸다.

"크아!"

강현의 바로 앞. 허공에서 갑자기 적이 나타나며 이빨을 드러낸 것이다.

-쾅!

고개를 젖힌 강현이 달려드는 놈을 투구로 들이박아 버렸다.

"괴물 주제에 무슨 카모플라쥬(위장)야?"

놈들은 마치 카멜레온처럼 주위의 환경과 동화되어 있었다.

"일단 튀자!"

강현은 우선 도망치기로 결정했다.

경사가 급한 비탈길이 앞에 있었지만 강현은 거침없이 내달렸다.

-파스슥

수풀을 헤칠 때마다 나뭇가지들이 부서지고, 날카로운 가시들이 드러난 피부를 베었다.

"크윽..!"

현재 강현은 입고 있는 갑옷의 무게만 해도 10kg이 넘는다.

게다가 등에는 20kg 정도의 배낭까지 멘 상태.

무거운 짐을 지고 비탈길을 달리니 금방이라도 쓰러질 것 같았다.

"으억!"

결국 돌부리에 걸린 강현이 꼴사납게 넘어지며 아래로 굴러 떨어졌다.

-퍽, 퍽! 쿵!

한참을 구르던 강현은 거대한 나무둥치에 부딪히고 나서야 멈출 수 있었다.

"으으..."

전신이 울리는 듯한 충격에 절로 곡소리가 났다.

'분명 갑옷이 없었으면 어디 한 군데 부러졌을 거야.'

전신이 부서질 것 같은 고통이 느껴졌지만, 다행히 실제로 뼈가 부러진 곳은 없는 것 같았다.

"후아... 이렇게는 안 되겠어."

자리에서 일어난 강현이 먼지를 털어냈다.

벌써 바짝 쫓아온 놈들이 산비탈을 미끄러지듯이 내려오는 모습이 보였다.

"아우우!"

놈들이 하울링 하는 소리를 들으며, 강현은 가방이 쓸려 내려가지 않게 나무에 묶어 두었다.

"이럴 줄 알았으면 처음부터 그냥 싸울걸 그랬어."

생각해보니 애초에 산에서 네발 달린 짐승을 상대로 도망친다는 것 자체가 어불성설이었다.

"다 왔냐?"

마침내 모여든 디스루핀들이 강현을 포위했다.

"크르르..."

"뭘 봐."

"크르륵!"

"들어와, 이 개새끼들아!"

[분노의 사자후가 발동됩니다]

어쩌면 강현은 처음으로 튜토리얼 밖에서 죽음을 맞이할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했다.

25화 약자의 교만(1) 20.01.29

25. 약자의 교만(1)

"허억, 허억!"

강현이 거칠게 숨을 토해냈다.

주변에는 디스루핀의 사체 수십 구가 널려 있었다.

'아직 버틸 만하다.'

사방에서 공격이 들어왔지만, 갑옷은 B등급의 값을 톡톡히 해주었다.

여기저기 부서지고 우그러진 모양새였지만, 여전히 형체를 유지하며 든든하게 강현을 지켜주었다.

"또 들어와 봐! 개새끼들아!"

아직 강현이 베어 넘긴 것보다 더 많은 적이 남아 있었다.

그러나 놈들은 함부로 달려들지 못하고 강현의 주위를 맴돌았다.

"크르르..."

강현이 근처에서 으르렁거리던 놈에게 검을 찔러 넣었다.

-파가각!

검은 순식간에 놈의 아가리로 들어가며 손잡이 부위까지 박혔다.

"크륵, 크르륵..."

검에 꼬챙이처럼 꿰뚫린 놈이 부르르 떨다가 이내 피를 토하며 쓰러졌다.

"아우우!"

"컹! 컹!"

그것이 마지막이었다.

동료의 죽음을 지켜보던 놈들이 결국 포기하고 하울링과 함께 등을 돌려 달아났다.

"흐아아..."

강현이 털썩 자리에 주저앉은 채로 배낭에서 물을 꺼냈다.

"프후흡!"

머리에 물을 붓고 피부를 벅벅 문댔다.

온몸에 끈적하게 눌어붙은 핏자국이 가셔지자 조금은 살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벌써 해가 지네."

산등성이 너머로 해가 기울고 있었다.

강현이 시간을 확인했다.

[18:03]

"시간을 너무 지체했어."

한시가 급한 상황.

강현은 조금 더 서두르기로 했다.

이 장소에서 계속 있으면 더 위험해질지도 몰랐다기 때문이다.

"여기 더 있으면 다른 놈들이 몰려올 수도 있으니까."

싸움의 끝에 남은 시체를 차지하기 위해 굶주린 놈들이 몰릴지도 모르는 일.

"후우... 가자."

배낭을 들쳐 멘 강현이 무거운 다리를 움직였다.

**

저녁 8시.

주변은 앞을 분간하기 힘들 정도로 어두웠다.

"안 되겠어."

랜턴이 있었지만 불빛을 보고 몬스터가 몰려올 수도 있었다.

강현은 더 이상 이동하는 것이 무리라 판단하고 멈춰 섰다.

"나무 위로 올라가서 자야 하나?"

강현은 여태껏 필드형 던전에서 혼자 야영을 한 경험이 없었다.

그나마 폐쇄형 던전은 간단한 장치로 알람을 만들어 혼자서 잠을 청할 수 있었다.

하지만 이렇게 개방된 곳에서는 어떻게 대비를 해야 할지 알 수 없었다.

"나무 위에서 쉬는 수밖에 없겠네."

강현이 갑옷을 입은 채로 근처에서 가장 거대한 나무 위로 올라갔다.

"흐으으..."

나무에 몸을 뉘자 절로 앓는 소리가 나왔다.

오늘 오전.

던전에서 나오자마자 차를 타고 달려왔다.

그리고 해가 질 때까지 산을 오르고 전투를 반복했다.

게다가 몸에 무리를 주는 '거인의 힘' 또한 쉴 새 없이 사용하며 전신이 성한 곳이 없을 정도로 다쳤다.

"마력도 바닥났네."

강현은 본능적으로 마력이 얼마 남지 않았음을 느꼈다.

상처를 회복하느라 전부 소진된 것 같았다.

이 정도로 힘들게 전투를 한 것은 튜토리얼이 끝나고 처음 있는 일이었다.

"연락이 왔으려나..."

핸드폰을 열자 메시지가 잔뜩 쌓여 있었다.

행여나 강현에게 방해가 될까, 전화조차 하지 못한 아현이 메시저를 보낸 것이었다.

-잘 가고 있으니까 걱정하지 마.

메시지를 보낸 지 10초도 지나지 않아 답장이 날아왔다.

-집에 도착했어?

-거의 다 왔어. 내일 아침에 도착할 거야.

-너는 괜찮은 거야?

-당연하지. 걱정하지 말고 자. 나도 좀 쉴게.

아현에게 답장을 보내고 강현이 부모님에게 보낸 문자를 확인했다.

아직 답장이 오지 않았다.

당장 전화를 걸고 싶었지만 혹시라도 자신의 전화로 인해 잘못될까 싶어 그럴 수도 없었다.

'조금만 기다려요.'

애써 불안감을 떨쳐내며 강현이 눈을 감았다.

**

햇살이 나뭇잎 사이를 파고들어 강현의 눈꺼풀을 비추었다.

"으으..."

온몸이 쑤시는 듯한 감각에 강현이 신음성을 내뱉으며 천천히 일어났다.

[06:11]

아직 이른 시간이다.

시간을 확인한 강현이 배낭을 열었다.

배낭 한편을 차지한 에너지바를 꺼내어 비닐을 벗겨냈다.

-우걱, 우걱

당분이 들어가자 힘이 나는 것을 느끼며 강현이 다시 길을 걸었다.

그 후로 강현은 몬스터를 만나는 일 없이 산을 벗어날 수 있었다.

산을 벗어나고 조금 더 걷자 마침내 집이 위치한 시가지가 눈에 들어왔다.

"으음..."

도시의 전경을 바라보며 강현이 낮게 신음했다.

전쟁터가 떠오를 만한 참혹한 광경.

곳곳에 건물이 불에 타고 있었고 외벽이 완전히 허물어진 집도 있었다.

"키에엑!"

"크아아아!"

도시 내에는 정체를 알 수 없는 온갖 종류의 몬스터들이 돌아다녔다.

곳곳에서 몬스터끼리 서로 다투는 모습도 보였다.

"완전히 세력을 갖췄다."

언뜻 보기에는 무분별하게 흩어져 있는 것 같았지만, 놈들은 이미 자신들의 영역을 구축하고 있었다.

"으아아악!"

그때 어디선가 비명이 들려왔다.

소리가 들려온 곳을 유심히 살피자 한 남자를 찾을 수 있었다.

남자는 건물 옥상에서 몬스터들과 대치 중이었다.

"오, 오지마!"

남자가 야구 배트를 들고 정신없이 휘둘렀다.

몬스터들은 그런 남자를 비웃듯이 천천히 압박했다.

"으아아!"

결국, 공포를 이기지 못한 남자가 옥상에서 뛰어내리고,

-퍽!

남자의 시체를 사방에서 모여든 포식자들이 먹어치웠다.

"아직 건물 안에는 생존자가 있다."

남자에게는 미안하지만, 남자의 죽음으로 강현은 부모님이 살아있을지도 모른다는 희망을 품었다.

저 남자가 도시의 마지막 생존자가 아니길 빌며 강현이 조심스럽게 움직였다.

**

"키에엑!"

"조용히 하라고 했잖아!"

-퍼억!

괴성을 내지르는 몬스터의 주둥이에 강현의 발차기가 작렬했다.

"켁!"

강현은 쓰러져서 부들대는 놈의 목에 검을 내려찍었다.

"후우, 도착했다."

도시로 숨어든 강현은 최대한 몸을 숨기며 집으로 향했다.

그럼에도 불가피하게 만나는 적은 신속하게 처리했다.

그렇게 한참을 이동한 끝에, 마침내 자신의 집 앞에 도착할 수 있었다.

"후우..."

침을 꿀꺽 삼킨 강현이 천천히 문손잡이를 돌렸다.

-철컥, 철컥

문은 안에서 잠겨 열리지 않았다.

열쇠가 없었던 강현이 조심스럽게 문을 두드렸지만 아무런 인기척이 느껴지지 않았다.

"저 강현이예요. 아빠? 안에 없어요?"

강현은 문틈으로 조심스럽게 말을 걸었다.

그제야 안쪽에서 인기척이 들려왔다.

"여보. 방금 현이 목소리 들리지 않았어요?"

"엄마, 저 맞아요. 문 좀 열어봐요."

"현아!"

-철컥

문이 열리자 눈물을 흘리고 있는 어머니의 모습이 보였다.

"네가 여긴 어떻게... 현아...!"

"일단 안으로 들어가서 이야기해요."

자신을 끌어안으려는 어머니를 달래며 강현이 집 안으로 들어섰다.

"여긴 왜 온 거냐. 게다가 그 꼴은..."

마치 전쟁터를 뚫고 온 것 같은 더러운 강현의 모습에 아버지가 놀란 표정을 지었다.

"사정이 조금 있었어요. 하하..."

"그래. 정말 고생했다. 고생했어."

"엄마도 무사해서 다행이에요."

잠시 후.

해후의 기쁨을 나눈 강현이 본격적인 이야기를 꺼내 들었다.

강현의 말을 들으며 대략적인 상황을 파악한 아버지가 입을 열었다.

"그래서, 지금 도시를 벗어나자고?"

"예."

"강현아 안 돼. 밖에 괴물들이 얼마나 많은데!"

집을 나가자는 강현의 말에 어머니가 질겁했다.

"오는 길에 본 놈들은 본격적으로 집을 뒤지고 있었어요. 얼마 지나지 않아 이곳까지 들이닥칠 거예요."

강현은 여기까지 오며 집 안에 숨어있던 사람들이 몬스터들에게 발각되어 죽는 모습을 몇 번이나 봤다.

다행히 아직은 그 마수가 이곳까지 미치지는 못했지만, 언제 놈들이 들이닥칠지 모르는 일이다.

"차라리 지금이라도 도시 밖에 산으로 가는 게…."

"나간다면 확실히 놈들에게 걸리지 않고 도망칠 수 있는 거냐."

아버지의 말에 강현이 입을 다물었다.

집에 오는 길에도 몇 번의 전투가 있었다.

부모님까지 함께 이동한다면 절대 아무 일 없이 도시 밖으로 나가지는 못할 것이다.

"그럴 수는 없을 거예요. 하지만 제가 보호해 드릴 수 있어요."

"네가 아무리 싸움을 잘한다고 해도 밖에서 우리를 지키면서 이동하긴 힘들 거다. 내 말이 틀리냐?"

"..."

"차라리 여기서 군대가 올 때까지 기다리자."

아버지의 말을 들은 강현이 생각에 잠겼다.

'확실히 밖으로 나가는 게 더 위험할 수도 있어.'

혹시라도 눈먼 칼에 부모님이 다칠 수도 있는 일이다.

-쿵, 쿵!

한창 강현이 고민하던 그때, 집 밖이 소란스러워지기 시작했다.

"퀴엑!"

"오크 놈들인가..."

오는 길에 이 근방을 서성이던 오크를 본 것이 떠올랐다.

놈들이 강현의 예상보다 빠르게 이곳에 도착한 것 같았다.

"두 분 여기서 가만히 계세요."

"강현아, 뭐 어쩌려고..!"

강현은 해골 기사의 갑옷과 롱소드를 인벤토리에서 꺼냈다.

"여기 이거 받으세요. 없는 것보단 나을 거예요."

"..."

"그리고, 밖에서 무슨 소리가 들려도 절대! 절대로 나오시면 안 돼요."

"알겠다..."

굳은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이는 아버지를 뒤로한 채로 강현이 현관문을 박차고 뛰쳐나왔다.

"이쪽이다 새끼들아!"

강현의 외침에 놈들의 시선이 모였다.

[오크 전사]

익숙한 외형에 익숙한 이름.

소설이나 영화에서 지겹도록 본 놈들이다.

다만 놈들의 키가 2m가 훌쩍 넘어가는 데다 엄청난 체구를 지니고 있다는 것이 조금 달랐다.

"퀴엑!"

강현에게 달려오는 놈들은 가죽 갑옷을 차려입고 있었다,

갑옷 사이로 보디빌더와 견줄만한 튼실한 근육이 보였다.

"나는 근육 돼지가 제일 싫어!"

"퀴에에!"

놈들은 손에는 드는 것조차 버거워 보이는 흉악한 대검과 도끼를 강현에게 휘둘렀다.

-챙!

강현은 날아오는 대검을 옆으로 쳐냈다.

예상보다 수월하게 날릴 수 있었다.

체중에서 차이가 났지만 스킬을 사용하면 근력 자체는 강현이 조금 더 우세한 듯했다.

"하압!"

세 마리의 오크와 맞서 강현은 한 치의 물러섬도 없었다.

'뒤를 뚫려선 안 돼!'

오크들은 보기와는 달리 지능적이고 합격술에 능했다.

하나의 검을 피하면 어느새 그 자리로 거대한 도끼가 날아들었다.

"크윽..!"

강현은 양손으로 받아냈음에도 도끼에 실린 거력에 당장이라도 검을 놓칠 것 같았다.

-콰직!

순간 사각에서 날아오는 대검이 강현의 몸에 작렬했다.

강현은 순식간에 수 미터를 날아가 담벼락에 처박혔다.

"쿨럭..."

입에서 핏물이 흘러나왔다.

뼈에도 금이 간 것 같았다.

아마 갑옷이 없었다면 산채로 이등분됐을 것이다.

"뭔 놈에 오크가 이렇게 세? 퉤!"

강현이 목구멍에서 올라오는 핏물을 피와 함께 내뱉었다.

'소란을 일으키는 건 좋지 않아. 최대한 빨리 처치한다.'

판단을 마친 강현이 놈들을 바라봤다.

'우선 도끼를 든 놈부터 죽여야 해.'

강현은 유난히 거대한 근육을 자랑하는 도끼를 든 오크를 노려봤다.

놈은 덩치가 큰 대신 다른 오크들보다 조금 둔했다.

"하아압!"

빠른 속도로 달려나간 강현이 날아오는 대검을 피했다.

그리고 뒤따라 날아오는 다른 대검을 가볍게 흘려냈다.

흘려낸 대검이 뒤에 있던 놈에게 날아가며 놈들의 동선이 얽혔다.

'기회다!'

뒤에서 저들끼리 엉킨 놈들을 내버려 두고 강현은 곧장 도끼를 든 놈에게 달려갔다.

"퀴익!?"

예상치 못한 강현의 공격에 당황한 놈의 눈이 크게 떠졌다.

순식간에 내질러진 검.

강현의 검이 오크의 복부를 완전히 꿰뚫었다.

"퀘... 퀘엑..!"

강현은 검이 꽂힌 채로 부들거리는 놈을 발로 밀어내며 검을 뽑았다.

'마무리를 해야 돼!'

쓰러진 오크의 목에 검을 내려치려는 찰나,

-부웅!

다가오는 거대한 대검을 보고 강현이 몸을 던졌다.

오크가 휘두른 대검이 강현을 아슬아슬하게 스치며 바닥을 쳤다.

-쾅!

검이 바닥을 때림과 동시에 불똥이 튀며 아스팔트가 부서졌다.

"퀴에엑!"

"뭐야? 벌써 일어나!?"

방금 복부가 뚫린 놈이 독기 서린 표정으로 자리에서 일어나고 있었다.

마무리를 못 했다고 해도 한동안 전투 불능에 빠지리라 생각했는데, 보기 좋게 예상이 빗나가 버렸다.

'그래도 온전한 상태는 아니야.'

놈은 분노로 이성을 잃은 채로 강현에게 달려들었다.

강현은 공격을 피하는 대신 자세를 낮춰 오히려 놈의 품으로 파고들었다.

"퀴엑?!"

그리고 놈이 달리는 힘을 이용해 놈을 그대로 집어 던졌다.

-쿠웅!

거대한 오크가 허공을 날아 바닥에 부딪히자 땅이 울리는 듯했다.

"퀴에엑!"

그 틈을 타고 두 자루의 대검이 동시에 날아들었다.

둘 다 피할 수는 없었다.

'정면 돌파한다!'

강현은 살을 주고 뼈를 취하기로 결심했다.

26화 약자의 교만(2)

26. 약자의 교만(2)

동시에 날아오는 두 개의 대검.

둘 다 피할 수는 없다.

'한 대는 맞을 수밖에 없어. 대신 확실하게 다른 놈의 목숨을 끊어야 해.'

강현은 날아오는 대검을 피하지 않고 그대로 검을 찔러 넣었다.

갑옷의 방어력과 자신의 회복능력. 그리고 부활에 대한 믿음이 깔려 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퀴이익..."

순식간에 목을 꿰뚫린 오크가 핏물을 울컥 뱉어냈다.

-콰직!

"커헉!"

동시에 강현의 등에서 묵직한 충격이 느껴졌다.

강현의 입에서 신음성과 함께 피가 터져 나왔다.

"크윽, 내가 몸뚱아리 빼면 시체야. 새꺄!"

최근 뜸해진 것은 사실이지만, 던전 사태 이후 강현은 늘 고통을 달고 살아왔다.

등이 부서지는 것 같은 감각 따위, 실제로 등이 부서지는 것에 비하면 별거 아니었다.

"흐아아압!"

"퀴엑?!"

방심으로 인한 짧은 틈.

공격을 성공시킨 자들은 아주 짧은 틈을 드러낸다.

일반적으로는 공격을 받는 입장에서 고통을 무시하고 그 틈을 이용하기란 불가능하지만,

강현은 그것이 가능했다.

-스걱

등에서 느껴지는 고통을 무시하고 강현이 오크의 목에서 검을 뽑아냈다.

그리고 곧장 다른 놈의 얼굴을 향해 휘둘렀다.

공격을 파악한 놈은 빠르게 고개를 뒤로 젖혔지만, 결국 한쪽 눈을 베이고 말았다.

"퀴에! 퀴에엑!"

오크가 눈을 부여잡고 비명을 지르며 물러났다.

강현이 놈을 마무리하려는 찰나였다.

"퀘엑!"

"무슨 생존력이 바퀴벌레냐?!"

조금 전 강현이 집어던졌던 오크. 배가 뚫리고, 온몸에 상처투성이인 도끼를 든 오크가 어느새 강현에게 바짝 다가와 있었다.

-부웅!

놈이 사선으로 크게 휘두른 도끼가 아슬아슬하게 강현의 머리를 스치고 지나갔다.

-푸슉!

슬라이딩으로 그 공격을 피한 강현이 재빨리 일어서며 놈의 턱 아래에 검을 찔러 넣었다.

"퀴, 퀴익..!"

강현은 놈의 단말마의 비명을 무시하고 검을 뽑아냈다.

놈의 목에서 뿜어져 나온 피가 사방으로 비산 했다.

"하아, 하아. 이제 너만 남았다."

전신에 피를 뒤집어쓴 강현이 마지막 오크를 노려봤다.

놈의 동료는 모두 죽었고 자신 또한 한쪽 눈을 잃은 상황이다.

분명 두려움을 느껴야 정상이다.

그러나 놈은 하나 남은 눈을 치켜뜨며 강현을 노려봤다.

그 눈은 완전한 전의로 불타오르고 있었다.

"퀴엑, 퀙!"

오크가 대검을 강현에게 겨누며 무언가를 말했다.

강현도 마주 검을 들어 오크를 겨누었다.

"곧 뒤질 새끼가 폼은."

강현의 말을 대단한 결의로 착각한 오크가 비장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퀴에에엑!"

"돼지 멱따는 소리 좀 안 들리게 해라아!"

오크와 강현이 괴성을 내지르며 마주 달려갔다.

'눈을 다쳐 시야가 제한적인 곳을 노린다.'

판단과 움직임은 동시에 이뤄졌다.

오크의 검이 강현을 아슬아슬하게 스쳐가고,

"일도양단!"

-스걱!

강현의 검이 놈의 목을 깔끔하게 지나쳤다.

"퀴익..?"

목이 완벽하게 잘려나가는 순간.

그 순간에도 놈의 눈은 믿을 수 없다는 듯이 부릅떠진 채로 정면을 응시하고 있었다.

-터벅, 터벅...

놈은 머리가 떨어진 채로 몇 발자국 더 걸었다.

그리고 쓰러졌다.

"독한새끼들... 후우."

손에 꼽을 정도로 힘겨운 전투였다.

강현은 바닥에 주저앉은 채로 천천히 숨을 골랐다.

[레벨업!]

곧이어 들리는 소리에 강현이 미소를 지었다.

"타이밍 좋네."

레벨업과 동시에 모든 상처와 피로가 회복되자 날아갈 것만 같았다.

"얼마 만에 레벨업이냐."

그때였다.

"응..?"

"퀵! 퀴엑!"

"퀙! 퀙!"

근처에서 다른 오크들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방금 처리한 오크의 동료들인 것 같았다.

'시벌. 좀 쉬나 했더니...'

강현의 표정이 심각하게 굳었다.

'잠시만, 이거 한두 마리가 아닌데?'

고작 세 마리를 처치하는 것에도 목숨을 걸었다.

그런데 이번에는 대충 듣기에도 불쾌한 퀵퀵 소리가 굉장히 소란스러웠다.

'최소 열 마리 이상이다.'

마주치는 순간 죽는 것이나 다름없다.

강현은 재빨리 몸을 숨겼다.

"퀴에에엑!"

곧이어 강현이 있는 곳에 도착한 오크들이 쓰러진 동료의 사체를 보고 난동을 부렸다.

놈들이 눈이 시뻘게진 채로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그 시선은 금세 부모님이 계신 아파트에 고정됐다.

'저긴 안 돼!'

다급해진 강현이 재빨리 밖으로 나와 소리를 질렀다.

"돼지새끼들아. 여기다!"

[분노의 사자후가 발동됩니다]

[모든 적들의 사기와 능력치가 감소했습니다]

강현의 외침이 온 도시를 쩌렁쩌렁 울렸다.

"퀴에에에에에엒!"

동시에 강현을 발견한 오크들 또한 마주 괴성을 내질렀다.

[오크 대전사]

[오크 전사]

그냥 전사 3마리로도 목숨을 걸었다.

그런데 전사 수십 마리에 대전사라는 흉악한 놈도 하나 끼어있다.

"하아, 조졌네..."

한숨을 내쉰 강현이 머리를 거칠게 쓸어 넘겼다.

**

"크허억!"

거대한 대검의 검면으로 얻어맞은 강현이 피를 쏟아내며 물러났다.

'이것들이... 완전히 나를 가지고 놀고 있어.'

놈들은 철저히 강현을 농락했다.

강현의 주위를 포위해 간이 결투장을 만든 뒤, 대전사 혼자 나서서 강현과 싸움을 벌인 것이다.

-쾅!

대전사의 검에 맞아 날아간 강현을 한 오크가 받아 들었다. 그리고 곧장 강현을 밀쳐 다시 원 안으로 밀어 넣었다.

"퀴엑퀵퀵!"

'가망이 없다.'

최고의 컨디션에서 대전사란 놈 하나도 어찌할 수가 없었다.

거기에 더해 수십 마리의 오크들이 덤빈다면, 그 순간 끝날 것이 분명했다.

'괜찮아. 나는 어차피 죽어도 부활하겠지.'

아직 밖에서 죽어본 경험은 없지만 강현은 확신했다.

지금 자신이 죽고 놈들이 이대로 돌아간다면 그것만으로 다행이다.

'부모님만 무사하다면….'

"강현아, 안 돼!"

"퀴익!"

순간 위쪽에서 들려오는 어머니의 목소리에 강현이 눈이 커졌다.

부모님이 있는 곳을 눈치챈 놈들이 아파트로 달려갔다.

"거긴 안 돼! 개새끼들아!"

이렇게 된 이상 앞뒤 볼 것 없었다.

"그래. 끝을 보자."

[광전사를 사용합니다]

[5분간 근력과 체력이 1.5배로 상승합니다]

빌게인의 검에 깃들어있는 스킬 광전사.

사용 도중에는 정상적인 판단이 힘들어지고 5분 후에는 완전한 탈진상태가 되어 아무것도 할 수 없게 된다.

때문에 강현도 정말 목숨을 버릴 각오를 하지 않으면 쓰지 않는 스킬이다.

"으아아아!"

강현의 두 눈이 붉게 물들며 전신의 근육이 흉악하게 부풀어 올랐다.

-콰앙!

강현이 내지른 검과 대전사의 검이 격돌했다.

순간 힘에서 밀린 대전사의 팔이 뒤로 젖혀지고, 무방비한 놈의 정면을 강현이 난도질했다.

"크아아아!"

대전사가 고통에 찬 비명을 질렀다. 동시에 주위의 모든 오크들이 강현에게 달려들었다.

-콰직, 쾅!

-스걱!

강현은 완전히 무아지경에 빠져 검을 휘둘렀다.

자신이 검에 베이든, 도끼에 찢기든 신경 쓰지 않았다.

오직 적을 죽인다는 목적.

그것 하나만을 위해 움직일 뿐이었다.

"퀴에에엑!"

오크들이 비명이 난무한다.

사지가 잘려나간 놈들이 내지르는 처절한 비명이었다.

"으아아아!"

피칠갑을 한 강현.

갑옷은 걸레짝이 된 지 오래다.

육체는 더 이상 움직이는 것이 불가능할 정도로 찢겨 있었다.

'이렇게 해서라도 시간을 번다면….'

그것만으로 다행이다.

-콰직!

강현의 생각은 거기까지였다.

엄청난 힘으로 휘둘러진 대검이 강현의 옆구리를 강타했다.

-콰아앙!

수십 미터를 날아간 강현이 건물 외벽에 부딪히며 바닥에 쓰러졌다.

"쿨럭!"

바닥에 누운 강현이 고개를 들어 자신의 몸을 바라봤다.

허리가 반쯤 잘려있는 것이 눈에 들어왔다.

갑옷 사이로 흘러나오는 내장을 보고 강현이 완전히 바닥에 드러누웠다.

"씨이벌..."

자신이 죽는 것은 상관없다.

어차피 죽으면 부활할 테니까.

하지만 부모님을 지키지 못했다는 죄책감은 영원히 그를 따라다닐 것이다.

"결국 이렇게 되는 건가..."

강현의 숨통이 끊어지기 직전,

"오크다!"

어디선가 나타난 사람들이 오크를 향해 달려갔다.

-챙! 챙!

"막아!"

"퀴이익!"

그들은 모두 총이 아닌 갑옷과 냉병기를 착용한 능력자였다.

'누구지..?'

갑자기 등장한 이들은 단숨에 오크들을 밀어붙였다.

그중에서도 긴 장발을 흩날리며 오크 사이를 휘젓는 여성은 단연 눈에 띄었다.

"하압!"

"퀴엑!"

오크의 검을 피해낸 여성이 단번에 급소에 검을 박아 넣었다.

그리고 재빠르게 몸을 피했다.

-콰앙!

그 자리에 대전사의 검이 내려쳐지고, 어느새 대전사의 뒤로 이동한 여성이 검이 놈의 가슴을 꿰뚫는다.

일련의 동장들은 어디 하나 막힘없이 물 흐르듯 자연스러웠다.

모든 움직임이 철저한 계산 아래 최고의 효율을 따랐다.

강현은 마침내 저 여성이 누군지 알 수 있었다.

'한세연.'

누구인지 모를 수가 없었다.

바로 공식적으로 대한민국에 단 두 명뿐인 튜토리얼 졸업자 중 하나니까.

'잘 싸우네...'

그녀의 모습을 보며 강현은 언젠가 강아현이 했던 말이 떠올랐다.

-지랄. 1주일 만에 튜토리얼 졸업한 엘리트랑 3개월이 넘게 거린 부진아랑 같냐?

그 말을 떠올리며 강현이 헛웃음을 삼켰다.

'부진아. 부진아라... 정말이었네. 크큭.'

솔직히 이 정도까지 차이가 심할 줄은 몰랐다.

사실 1대1로 싸운다면 자신이 이기지 않을 까라는 생각도 했다.

그 생각은 던전을 돌며 더 강해졌다.

자신이라면 단칼에 처치할 수 있는 몬스터에게도 우왕좌왕하는 사람들을 보며 속으로 비웃었었다.

-다들 왜 이렇게 허접해? 나는 사실 재능충이었던 건가?

지난 몇 달간의 일들이 주마등처럼 지나갔다.

그저 돈을 번다는 것이 신났다.

남들보다 조금 강하다는 사실에 고삐 풀린 망아지처럼 날뛰었다.

-이놈들은 그렇게 상대하시면 안 돼요. 여기를 이렇게!

-우와!

어쭙잖은 실력으로 사람들 앞에서 자랑하고 나섰다고 생각하니 어이가 없었다.

"씨발, 재능충은 무슨..."

강아현의 말대로 자신은 부진아가 맞았다.

그저 남들보다 경험이 더 많아서, 어쩔 수 없이 겪은 극한의 상황들로 인해 약간 앞서 나갔을 뿐이었다.

"조금만 더 노력했더라면..."

튜토리얼은 졸업하고 설렁설렁 보낸 시간들이 안타까웠다.

튜토리얼 때처럼 계속 열심히 했더라면 적어도 이렇게 무기력하게 당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엄마, 아빠는 무사할까?'

몸을 일으켜 확인하고 싶었지만 손가락 하나 까딱할 수가 없었다.

점차 의식이 흐릿해진다.

꽤나 오랜만에 느끼는 감각이지만 경현은 이 느낌을 잘 알고 있다.

죽음이 온 것이다.

'살아만 있어요. 다음에는 반드시 지켜줄….'

말을 끝맺지 못하고 강현의 의식이 끊어졌다.

**

"길드장님 끝났습니다."

"수고했어요."

"여기에도 민간인 생존자가 있습니다."

"군인들이 도착하면 잘 넘겨주세요."

"예!"

지시를 내린 후, 한세연이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어디 있지?"

분명 이곳에 도착했을 당시 조금 떨어진 곳에 한 남자가 쓰러져 있었다.

정황상 그 남자가 오크와 전투를 벌인 것이 분명했다.

"꽤나 실력자 같았는데..."

처음 전장을 본 한세연은 굉장히 놀랐었다.

무려 열구가 훨씬 넘는 오크의 시체가 처참하게 널려 있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대전사 또한 부상을 입고 비틀거리고 있었다.

'분명 다른 길드와 다툰 거라 생각했지...'

도저히 능력자 혼자서 해낼 수준이 아니었다.

그러나 어디를 둘러봐도 오크와 싸운 자는 그 남자 혼자뿐이었다.

그는 이미 숨이 끊어진 듯했으나 굉장한 실력자가 분명했다.

"시신이라도 수습해 주려 했더니."

그 사이에 시체를 노린 다른 몬스터가 채간 것 같았다.

"어쩔 수 없지. 그렇게 죽을 운명이었던 거야."

죽어 시체조차 남기지 못했다면 그것이 그 남자의 운명일 것이다.

"그래. 운명이지."

자신이 멸망으로부터 지구를 구원해야 하는 사명을 떠안았듯이.

27화 유명 인사(1)

27. 유명 인사(1)

"또 던전 가는 거야?"

"어."

로날드의 갑옷을 입은 강현이 배낭을 챙겨 들었다.

"너 하루도 안 쉬었잖아..."

"괜찮아."

아현이 걱정스럽게 말했지만 강현은 돌아보지도 않고 무심하게 대답했다.

"네 탓 아니라고! 왜 그렇게 혼자서…."

-쾅!

더 이상 듣고 싶지 않았다.

강현은 현관문을 거세게 밀치고 밖으로 나갔다.

**

-단군 길드가 D등급 던전 '하이지의 평원'의 보스 사냥에 나섰습니다. 길드장 한세연 씨는…

-능력자 연합의 회장직을 맡게 된 최동우 씨는 앞으로 평화와…

-새롭게 등장한 C등급 던전. 던전의 난이도는 어디까지…

어딜 가든 던전과 능력자에 대한 이야기가 들려왔다.

그만큼 지난 두 달 동안 많은 변화가 있었다.

-안무석 회장이 공식으로 던전 산업에 뛰어들겠다고 공표했습니다. 이에 각종…

던전은 이제 완전히 하나의 산업으로 자리 잡았다.

몬스터들은 더 이상 위협을 가하는 존재가 아닌, 황금알을 낳는 거위가 되었다.

동시에 단군 길드를 창설한 한세연을 필두로 수많은 길드들이 우후죽순 생겨났다.

그들은 하나같이 평화를 외치며 일어났지만, 사실은 오직 '돈'만 바라본다는 것은 모두가 아는 사실이었다.

"상태창."

이러한 상황에서도 가장 큰 변화는 바로 강현에게 있었다.

▫이름 : 강현

▫칭호 : 튜토리얼 졸업자 외 1개

▫레벨 : 47

▫상세 능력치 :

·근력 26 (+2.5)(+2)

·순발력 24 (+2.5)

·체력 25 (+2.5)(+2)

·마력 26 (+2.5)(+2)

·추가 스텟 : -

▫고유 능력 : 부활

▫능력 : 중급 검술(D), 하급 방패술(E), 최하급 석궁술(F), 하급 체술(E)

▫스킬 : 분노의 사자후(C), 상급 육체 재생(A), 일도양단(E), 거인의 힘(B), 마력폭발(E), 웨인의 비기(E)

눈에 띄게 성장한 스텟과 스킬들.

거기에 근력 반지, 체력 반지, 마력 반지까지.

총 3개를 착용 중이었다.

각각의 반지는 스텟을 2 증가시켰다.

전과 비교하면 정말 눈부신 발전이었지만 강현의 눈에는 여전히 부족했다.

'더, 더 강해져야 한다.'

그날 이후 강현은 던전에 살다시피 했다.

눈을 뜸과 동시에 시작된 싸움은 잠에 들 때까지 이어졌다.

겁 없이 혼자서 보스를 사냥하다가 죽은 적도 무려 다섯 번.

그러는 동안 통장 잔고는 5억을 넘겼지만 그다지 기쁘지 않았다.

'다시는 후회하는 일이 없도록...'

그날 아버지는 한쪽 팔이 잘렸고 어머니는 식물인간이 되었다.

만약 자신이 조금만 더 노력했더라면 일어나지 않았을 일이다.

"야. 저기 저 사람 그 사람 아냐?"

"누구?"

"왜 있잖아 혼자서 던전 보스 박살내고 다닌다던..."

"그거 도시괴담 같은 거 아니었어?"

던전 입구 앞에서 차를 세우자 몇몇 사람들이 자신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이 들려왔다.

예전이라면 제법 우쭐할 상황이었지만, 더 이상 그럴 일은 없었다.

**

"좋아! 레벨업이다!"

무려 열흘 만에 오른 레벨이다.

이로서 최태식은 33레벨을 달성했다.

이 정도 레벨만 되어도 어떤 길드든 쌍수를 들고 반겨줄 것이다.

그러나 그의 야망은 고작 그 정도가 아니었다.

상위 0.1%들이 모였다고 하는 한국 최초이자 최고의 길드.

'단군'이 바로 그의 목표다.

그리고 이번 달에 단군의 가입 조건이 바로 35레벨이다.

'조금만 더 노력하면 다음 달에는 도전해 볼 수 있겠어.'

"와! 레벨업 한 거야? 축하해."

"야. 축하단다."

주변 동료들의 축하에 최태식이 멋쩍게 웃었다.

'흥. 너희 같은 루저들이랑 어울릴 날도 얼마 남지 않았다.'

자신은 튜토리얼을 무려 5단계까지 통과한 인재다. 겨우 3,4 단계에서 죽은 이들과는 태생이 다른 것이다.

아직은 필요에 의해 같이 다니지만 단군 길드에 들어가는 순간, 더 이상 이들과 마주할 일은 없을 것이다.

"너희들도 노력하면 금방 오를 수 있을 거야."

최태식이 마음에도 없는 가식을 내뱉었다.

"저게 뭐지?"

"사람인데..?"

그때였다.

갑작스러운 파티원들의 말에 자연스레 최태식의 고개가 돌아갔다.

누군가 던전 입구 쪽에서 엄청난 속도로 달려오는 것이 보였다.

"이봐!"

순식간에 코앞까지 다가온 남자를 최태식이 불렀지만, 남자는 들은 체도 하지 않고 그들을 지나쳤다.

"그 앞은 위험해!"

이 앞은 코어가 있는 방이다.

때문에 엄청난 수의 몬스터들이 모여 있어 혼자서 들어간다면 반드시 죽는다.

"어쩌지?"

"젠장! 따라가자. 죽게 내버려 둘 수는 없잖아."

최태식과 동료들이 서둘러 짐을 챙기고 남자의 뒤를 따랐다.

-쾅!

무시무시한 속도로 달리던 남자는 이미 코어가 있는 곳에 도착했는지 벌써 전투의 소음이 들려오기 시작했다.

"캬악!"

동시에 엔트리아의 괴성이 들려오자 최태식이 멈칫했다.

'이 인원으로 코어가 있는 방을 돌파하는 건 무리인데...'

자칫하다가 남자를 구하기는커녕 자신들까지 몰살될지도 몰랐다.

"태식아 안가?"

"어. 가자."

'혹시라도 상황이 나빠지면 혼자라도 빠져나와야겠어.'

동료를 버릴 생각으로 최태식은 일행과 함께 나아갔다.

-콰앙, 쾅!

"도착이다!"

얼마 지나지 않아 일행은 코어룸에 도착할 수 있었다.

"뭐야..?"

그러나 그곳에선 최태식의 예상과는 전혀 다른 일이 벌어지고 있었다.

-콰앙!

"캬아아악!"

남자는 거대한 엔트리아 사이에서 미친 듯이 날뛰고 있었다.

단단한 외피를 지닌 엔트리아들이 남자의 손에 걸릴 때마다 가차 없이 터져나갔다.

-펑!

스킬을 사용한 것인지 충격이 울리며 엔트리아 한 마리가 날아와 옆의 최태식의 옆에 처박혔다.

"크에에..."

몸통에 자신의 얼굴만 한 구멍이 뚫린 놈은 처연한 비명을 내지르다 그대로 죽었다.

"이게 무슨..."

**

E등급 던전 엔트리아의 굴.

아무리 강한 능력자라도 혼자서 E등급 보스를 공략한다면 미쳤다는 말을 들을 것이다.

그러나 강현은 지난번에 얻은 스킬이면 충분히 가능하리라 생각했다.

웨인의 비기(E)

능력 : 활성화 시 마력을 제외한 모든 스텟 40% 증가. 시간이 지날수록 육체가 붕괴된다.

설명 : 오직 전투만을 위해 살아오며, 전투에 목숨까지 바친 미치광이 웨인. 평생 동안 더욱 격렬한 전투를 추구하던 웨인은 마침내 자신의 육체마저 파괴하며 극한의 힘을 끌어내는 것에 성공했다.

스킬을 얻은 강현은 마력이 바닥날 때까지 항상 스킬을 활성화했다.

스킬을 사용하면 모든 능력이 상승하며, 전신이 찢겨나가는 고통이 올라온다.

원래는 30분 안으로 온몸의 핏줄과 근육이 터지는 스킬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강현은 그것을 무마시킬 스킬을 가지고 있었다.

상급 육체 재생(A)

능력 : 신체에 가해진 손상을 마력을 이용해 재생, 빠르게 복구한다.

설명 : 목이 잘리거나 뇌 혹은 심장이 파괴되지 않는 이상 죽지 않고 회복한다.

그렇게 매일 '웨인의 비기'를 사용한 강현은 결국 두 스킬 모두 등급을 상승시킬 수 있었다.

-콰직!

강현의 주먹에 맞은 엔트리아의 머리가 잘 익은 수박처럼 박살 났다.

"캬아아!"

거대한 개미의 모습을 한 엔트리아 수십 마리가 달려들었지만 강현은 당황하지 않았다.

'아직 마력은 충분해.'

피할 수 있으면 피하고 피하지 못하면 맞아준다.

웨인의 비기를 사용한 강현의 체력은 거의 40에 달한다.

이 상태에서는 어지간한 검조차도 강현의 살갗을 파고들지도 못했다.

때문에 강현은 오직 적을 죽이는 것에 모든 정신을 쏟았다.

마치 생전의 웨인이 그러했듯.

-퍽!

"후우..."

바닥에서 꿈틀거리는 마지막 엔트리아의 머리를 밟아 박살 낸 강현이 숨을 골랐다.

'마력이 많이 떨어졌어.'

계속 스킬을 유지했다간 앞으로의 전투에 지장이 있을 것이다.

강현은 어쩔 수 없이 '웨인의 비기'를 취소했다.

"저기요."

옆에서 들려오는 목소리.

엔트리아의 시체 위에 걸터앉아 있던 강현이 고개를 돌렸다.

"뭡니까."

"저기... 괜찮아요?"

"예."

말을 건 남자는 막상 강현이 대답하자 우물쭈물하며 어쩔 줄 몰라했다.

"용건이 뭐예요?"

"혹시 단군 길드 소속이십니까?"

"아닙니다."

남자의 말에 시큰둥하게 대답한 강현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어어, 그냥 가는 겁니까?

아직 전투가 끝난 지 10분도 지나지 않았다. 남자는 당황하며 떠나려는 강현을 붙잡았다.

"저한테 볼일 있어요?"

"그건 아닌데, 여기 마정석이랑 코어도 그대로고..."

남자의 말을 들은 강현이 코어에 다가갔다.

-스걱!

강현은 칼질 한 번에 떨어져 나온 코어를 인벤토리에 넣었다.

2,000만 원.

손쉽게 가져갈 수 있는데 굳이 버리기는 아까운 돈이다.

"나머지는 가져요."

"예..?"

"마음대로 하시라고요."

"정말 가져도 됩니까?"

이곳에 쓰러진 엔트리아의 사체만 해도 수십 구. 이들이 하루 종일 사냥해야지 죽일 수 있는 숫자였다.

"예. 필요 없으니까 챙기든 말든 알아서 하세요."

강현의 말에 남자가 얼빠진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

"아까 그 남자 뭐였을까?"

파티원 박하연의 말에 최태식의 인상이 구겨졌다.

"뭐긴 뭐야. 미친놈이지."

"왜 인상을 쓰고 그러냐. 덕분에 우린 떼돈 벌었는데."

강현이 두고 간 마정석에 지금까지 일행이 사냥한 마정석을 합치면 3,000만 원은 넘길 것이다.

5명이서 나눠도 600만 원이 넘는 돈이다.

하루 일당 120만 원.

평범한 사람이었던 이들에게는 꿈만 같던 이야기가 현실이 되었다.

"그나저나 혼자서 보스룸까지 가려는 걸까?"

"알게 뭐야..."

퉁명스럽게 대답하는 최태식.

사실 그의 머릿속은 사실 혼란 그 자체였다.

'도대체 정체가 뭐야?'

최동우나 한세연은 아니다.

그렇다고 단군 길드 소속도 아니다.

이름도 알려지지도 않은 남자가 혼자서 수십 마리가 넘는 엔트리아를 완전히 학살해 버렸다.

"요즘 혼자서 던전을 클리어하고 다니는 남자가 있다는 소문을 들었는데, 저 사람 아닐까?"

그 소문이라면 최태식도 들은 적이 있었다.

한 남자가 단신으로 F등급 던전 보스들을 학살하고 다닌다는 허무맹랑한 이야기였다.

최태식도 지금까지는 단순히 헛소문으로 치부했었다.

"혹시 그렇다고 해도 여긴 E등급 던전이야. F등급이랑은 차원이 다르다고."

혹여나 그가 소문의 남자라고 할지라도 F등급과 클리어와 E등급 클리어는 완전히 다른 이야기다.

[던전의 중심 핵이 제거되었습니다]

[외부로 향하는 포탈이 열립니다]

[던전이 붕괴될 예정이니 모두 밖으로 나가주시기 바랍니다]

갑작스레 떠오르는 메시지.

자신의 앞에 열리는 포탈의 본 최태식이 멍한 표정을 지었다.

"아직 하루도 지나지 않았는데..?"

**

여왕 엔트리아의 머리에 칼을 박아 넣은 강현이 쓰러지듯 주저앉았다.

"허억, 허억."

강현은 사투 끝에 보스를 잡을 수 있었다. 도중에 마력이 떨어져 위기가 찾아왔지만 필사적으로 버틴 끝에 쟁취한 승리다.

[엔트리의 외피]

여왕이 죽자 떨어진 드롭아이템을 강현이 살펴봤다.

엔트리아의 외피(F)

능력 : 활성화 시 피부를 단단하게 만든다.

설명 : 예로부터 단단한 외피로 유명했던 엔트리아의 외피를 마력을 이용해 구현한다.

스킬, 능력과 관련된 책은 아무리 쓸모없어 보일지라도 그 가격이 1,000만 원을 넘긴다.

이 정도 스킬이면 못해도 5,000만 원은 받을 것이다.

어쩌면 1억이 넘을지도 몰랐다.

"내가 쓰기 힘들 것 같긴 한데."

현재 강현의 마력은 대부분 '웨인의 비기'와 '상급 육체 재생'을 유지하는데 이용된다.

때문에 다양한 스킬을 배울 필요가 없었다.

전투 도중 잡다한 공격 스킬의 사용을 최대한 자제하는 것도 그 이유에서였다.

[스킬 엔트리아의 외피를 배우시겠습니까?]

"그래도 이 정도면 익혀 둬서 나쁠 건 없겠지."

어차피 돈은 지금도 충분히 벌고 있다.

팔기보다는 익히는 것이 도움이 되리라 생각한 강현이 스킬북을 사용했다.

"으음."

자신의 몸에 다른 무언가가 들어오는 듯한 이 감각은 몇 번을 반복해도 익숙해지지 않았다.

"이제 가볼까."

스킬의 습득이 끝나고, 여왕 엔트리아의 마정석을 채취한 강현이 던전의 메인 코어 앞에 섰다.

-두근, 두근

지름 20cm 정도의 구슬 모습을 한 메인 코어가 박동했다.

마치 코어를 받치고 있는 기둥에서 나온 혈관들이 코어의 마력을 빨아들이고 있는 것 같았다.

-스걱

기둥을 잘라내자 사방에 마력이 흩어지고 동시에 강현의 앞에 외부로 향하는 포탈이 열렸다.

코어를 챙겨 든 강현이 포탈로 들어갔다.

-화악!

눈앞이 점멸함과 동시에 익숙한 부유감이 느껴지고, 다시 눈을 뜨자 던전 밖이었다.

"뭐야?"

그곳에는 자신을 기다리고 있는 수십 명의 사람들이 있었다.

28화 유명 인사(2)

28. 유명 인사(2)

"저 사람이다!"

"KCT에서 나왔습니다. 최근 F등급 던전을 혼자 클리어하고 다닌다는 남자가 본인 맞으십니까?"

"혹시 아직 길드에 드시지 않았다면 저희 길드에…."

"얼굴 한 번만 보여 주시죠."

그들은 방송국 기자들과 길드 매니저들이었다.

최근 던전을 혼자서 클리어하고 다니는 남자에 대한 이슈가 점점 커지던 도중, 소문의 남자로 추정되는 사람이 나타났다는 제보를 받고 모두가 모여 있었던 것이었다.

"본인 아니고, 관심 없어요."

유명해지는 것은 강해지는데 아무런 도움도 되지 않는다.

괜한 시간을 뺏기기 싫었던 강현이 앞을 막아선 사람들을 헤치며 빠져나왔다.

"어어, 이거 왜이래!"

"지금 쳤어요?!"

강현은 그저 걸어갈 뿐이었지만, 둘러싼 사람들이 허수아비처럼 밀려났다.

'귀찮게 됐네.'

지금은 조금이라도 더 많은 던전을 돌며 강해질 시간도 빠듯하다.

만약 앞으로도 이런 일이 계속된다면 그것도 문제였다.

-삐삐

강현이 던전과 조금 떨어진 곳에 주차해둔 번틀리 2호의 문을 열었다.

"강현 씨."

갑작스레 들려오는 목소리에 강현이 돌아섰다.

"누구시죠?"

생전 처음 보는 남자가 자신을 알아보고 이름까지 불렀다.

강현이 경계의 눈빛을 띄었다.

"그렇게 경계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저는 강현 씨를 도와주기 위해 온 것이니까요."

말을 하며 남자가 자신의 명함을 건넸다.

"능력자 연합 소속... 선연호?"

"저희는 전부터 강현 씨를 눈여겨봐 왔습니다. 만약 저희에게 오신다면 강현 씨의 성장을 위해 필요한 모든 지원을 해드릴 것을 약속합니다."

선연호는 사람 좋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으흠..."

"지금 당장 대답을 하실 필요는 없습니다. 언제든 원하실 때 연락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그럼 이만."

말을 마친 선연호는 정말 볼일이 끝났다는 듯 돌아갔다.

'능력자 연합이라...'

능력자 연합은 이익을 좇는 길드와는 조금 성격이 다른 곳이다.

정부와 긴밀한 관계를 가지고 능력자의 권리 신장을 위해 힘쓰는, 공익을 추구하는 단체에 가깝다.

당연히 가입, 탈퇴 또한 자유로웠는데 직접 이렇게 사람을 영입하기 위해 뛰어다닌다는 것은 들어보지 못했다.

"뭐 당장 연락을 달라 한 것도 아니니까."

명함을 한쪽 구석으로 치운 강현이 시동을 걸었다.

**

집에 도착한 강현은 곧장 샤워를 했다.

-촤아아아

떨어지는 물줄기에 몸을 씻으며 고민에 잠긴 강현.

'어떻게 마력을 더 상승시킬까...'

현재 강현의 마력은 '웨인의 비기'로 파괴되는 육체를 재생하는 것에 대부분 소모된다.

때문에 좋은 공격 스킬이 있음에도 정말 필요한 순간이 아니면 사용할 수가 없었다.

"거기에 엔트리아의 외피까지 생겨버렸으니."

'엔트리아의 외피'는 신체를 단단하게 해주는 유용한 스킬이다.

하지만 지금 사용한다면 웨인의 비기를 얼마 유지하지 못하고 금세 마력이 바닥날 것이 분명했다.

"아이템. 마력 아이템을 구해야겠어."

마력과 관련된 장비나 장신구를 착용한다면 조금이나마 여유가 생길 것이다.

-우우웅

샤워를 마친 강현이 물품을 알아보기 위해 컴퓨터를 켰다. 그리고 '레이더'에 접속해서 원하는 정보를 찾기 위해 돌아다녔다.

"경매란이... 여기 있네."

레이더는 주로 던전의 정보를 찾거나 공략대를 구하는 것에 이용하지만, 능력자들끼리 필요한 아이템을 사고파는 것 또한 주선하고 있었다.

"딱히 쓸 만한 게 안 보이네."

마력을 올려주는 장비라고 해봐야 고작 1~2를 올려주는 것이 전부.

액세서리는 종류에 관계없이 착용할 수 있는 것이 4개로 한정되어 있다.

사이트에 올라와 있는 수준의 아이템은 강현도 이미 갖추고 있었기에 더 이상 볼 필요가 없었다.

"이건 뭐지?"

경매장을 나와 마력 관련된 정보를 찾던 도중 한 제목이 눈에 들어왔다.

-마력 증가 반지 떨구는 던전 정보 푼다

강현이 곧장 게시글을 눌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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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남 시에 E등급 던전 '고블린 부락'이라는 곳이 있다.

거기서 나오는 주술사들을 잡으면 꽤 높은 확률로 마력 1, 2 스텟 증가하는 반지를 떨굼.

간혹 가다가 무려 4 스텟 반지도 떨군다.

던전 보스는 고블린 대주술사인데 잡으면 아마 더 성능 좋은 반지 떨구지 않을까 싶다.

거기는 원래 아는 사람들만 모여서 조용히 파밍하고 돈 벌던 노다지였음.

그런데 최근 어떤 놈들이 무단으로 점거해서 지들 땅이라 우기고 못 들어오게 한다.

정부는 던전이 터지지만 않으면 관계없으니 신경도 안쓰고 시발.

그냥 이 글보고 대형 길드 같은 곳에서 나서서 클리어 해줬으면 좋겠다.

아무도 돈 못 벌게. 개새끼들.

위치 첨부하니 참고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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꽤나 장문의 글이었는데 요약하자면 내가 못 먹게 되었으니 너희들도 못 먹게 하겠다는 심보의 글이었다.

강현이 스크롤을 내려 댓글을 확인했다.

-걔네들이 바로 그 대형 길드다 인마ㅋㅋㅋ

-이미 그런 던전 한두 군데가 아님. 지들끼리 금싸라기 차지해서 아이템 물량 조절하고 시세까지 맞춘다.

-깔끔하게 포기하는 게 좋을 듯. 나도 거기 소문 들어봤는데 걔네들 완전 악질이라더라. 던전 안에선 뭔일이 벌어져도 모르니 사람까지 슥삭 한다는 소문도 있음.

-ㄷㄷ 이제 돈 때문에 대놓고 사람도 죽이는 구나...

찬찬히 글을 읽어보던 강현이 고개를 끄덕였다.

"여기로 가면 되겠네."

깔끔하게 다음 목적지가 정해졌다.

**

"엄마는 좀 어때요?"

"괜찮으니까 걱정마라."

아버지의 대답에 강현이 한숨을 내쉬었다.

"하아..."

강현의 어머니는 오크에게 공격을 받아 혼수상태에 빠졌다.

처음에는 금세 깨어날 거라 여겼지만, 그렇게 어머니가 병실에 누운 지 벌써 2개월이 지났다.

"아빠는 좀 괜찮아요?"

"안 괜찮으면 어쩌겠냐. 이렇게 살아남은 것도 기적인 것을"

아버지가 잘려나간 한쪽 팔을 들어 올리며 웃었다.

"의수 기술도 많이 발전하고 있다니까 좀 기다려 봐요."

"됐다. 나는 그런 거 필요 없어. 아직 멀쩡한 팔이 있는데, 굳이 그런 기계장치 달고 싶지 않다."

"어휴. 알겠어요. 엄마 잘 지켜줘요. 병원비나 생활비 같은 건 신경 쓰지 마시고.

"..."

"정말이에요. 저 이제 돈 잘 벌어요."

"그래... 알았다."

대답을 하는 아버지의 얼굴은 어딘가 많이 씁쓸해 보였다.

"엄마. 깨어나면 평생 놀고먹으면서 하고 싶은 거 다 하게 해 줄게. 그러니까 꼭 일어나."

잠시 기도하듯 고개를 숙인 채로 중얼거린 강현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가는 거냐."

"예. 뭐 필요한 건 없어요?"

"괜찮다. 아현이나 잘 돌봐줘라."

"알겠어요. 엄마도 푹 쉬고 있어. 다녀올게."

**

하남시에 위치한 검단산.

"완전 산골짜기네."

지도를 보고 대충 짐작은 했지만 막상 와보니 예상보다 더 외진 곳이었다.

강현은 산책로를 벗어나서 길이 없는 곳을 무려 30분 정도 헤쳐나간 끝에 던전을 발견할 수 있었다.

"아무도 없는 건가?"

입구부터 누군가가 지키고 있으리란 예상과는 달리 던전은 앞에는 아무도 서있지 않았다.

"뭐 없으면 없는 대로 가는 거지."

강현은 별다른 고민을 하지 않고 던전으로 들어갔다.

-화악!

몸이 떠오르는 감각과 동시에 던전에 들어서자 울창한 밀림이 강현을 반겨주었다.

"아직도 들어오는 놈이 있네."

동시에 근처에 앉아있던 남자 넷과 여자 하나가 보였다.

"지가 무슨 기사야? 뭔 장비를 저렇게 꽁꽁 싸맸어?"

"그래도 때깔 나는데?"

"야. 이거 보너스 두둑하게 챙기는 거 아니냐? 크큭."

"내가 어제 돼지꿈을 꿨다고 했지? 이거 때문이었나 보네."

저들끼리 대화를 주고받으며 시시덕거리던 무리. 그중 한 놈이 자리에서 일어나더니 강현에게 다가왔다.

"이봐 소문도 못 들었어? 여긴 우리 베이트 길드 소유야."

"그래서?"

강현의 말에 남자가 해맑게 웃었다.

"남의 땅에 멋대로 왔으니 대가를 치러야지. 가지고 있는 것 전부 꺼내."

"..."

"그럼 살려는 드릴게."

놈들은 사람들을 단순히 쫓아내는 것뿐만 아니라 장비까지 강탈하는 것 같았다.

'예상보다 더 쓰레기네.'

속으로 웃음을 삼킨 채 강현이 입을 열었다.

"싫다면?"

"아저씨 여기서 허세 부리다가 뒤져요. 여기 던전 안입니다. 예?"

20살쯤 되어 보이는 앳된 외모를 가진 놈이다.

머리는 파랗게 염색하고 껌을 쩝쩝 씹고 있었다.

건들거리며 말하는 폼이, 자신이 불량스럽다고 격하게 표현하고 싶어 하는 것 같았다.

"뻗댈 자리를 보고 뻗대야지. 그러다가 골로 간 놈들 한둘 아니니까..."

"아니니까?"

"좋게 말할 때 장비 벗고 꺼져."

남자의 말에 강현이 빙그레 웃음을 지었다.

"한번 뺏어봐."

"뭐?"

"뺏을 수 있으면 뺏어보라고. 푸흐흡."

강현이 실소를 흘리자 놈들의 얼굴이 순식간에 일그러졌다.

"이 허세충 새끼가!"

욕지거리를 내뱉은 파란 머리가 다짜고짜 장검을 휘둘렀다.

"그냥 죽어!"

전력으로 휘두른 장검.

그 검은 허무하게 강현의 손에 붙잡혔다.

-파사삭

강현이 손에 힘을 주자 검날이 순식간에 수십 조각으로 나눠져 바닥으로 흩어졌다.

"에..?"

그 모습에 파란이의 눈이 튀어나올 듯이 커졌다.

"젠장. 한 번에 조져!"

그때 뒤쪽에서 여성의 외침이 터져 나왔다.

그러자 사방에서 검과 마법이 날아들었다.

-퍼벙! 펑!

-콰앙!

강현 주변의 땅이 파이며 흙먼지가 날아올랐다.

"후우... 끝났나?"

"닥쳐!"

파란이의 말에 대장이라 불린 여성이 날카롭게 소리쳤다.

"왜 그래요. 대ㅈㅏ..."

-콰직!

말을 하던 파란이의 이빨에 강현의 주먹이 작렬했다.

그 충격에 놈의 이빨이 옥수수처럼 우수수 흩날리고, 수 미터를 날아간 놈은 풀밭에 처박혔다.

"이건 뭐, 검을 꺼낼 가치도 없네."

"마력 폭발!"

그사이 다른 놈이 스킬을 사용해 강현을 공격했다.

마력 폭발.

폭발력을 지닌 마력 구체를 날리는 스킬로 강현도 애용하고 있는 스킬이다.

-펑!

자신에게 날아온 마력구를 강현이 손을 휘둘러 가볍게 쳐냈다.

"손으로 쳐냈어..?"

"뭐야? 나랑 같은 스킬이네?"

"..."

"나는 그렇게 쓰는 것보다 이게 훨씬 좋더라고."

허무하게 날아간 스킬을 보며 멍청하게 서있던 남자. 그에게 다가간 강현이 팔을 붙잡았다.

"마력 폭발."

-펑!

팔을 붙잡은 손안에 마력 폭발을 사용하자 순식간에 남자의 팔이 터져나갔다.

"끄아아아아!"

"이게 나한테도 피해가 오는 게 단점이긴 한데... 효과는 훨씬 좋아. 기억해둬."

"끄, 끄아아악!"

강현의 말에 대답하지 못하고 남자는 미친 듯이 비명을 내질렀다.

"뭐, 쓸 수 있을 진 모르겠지만."

터져나간 팔을 부여잡고 울부짖는 남자를 뒤로하고 강현이 걸어갔다.

"이... 이익, 죽어!"

옆에 서있던 남자가 거대한 메이스를 휘둘렀다. 메이스에 마력이 서린 것이 위력을 증가시키는 스킬을 사용한 것 같았다.

-부웅

가볍게 몸을 돌려 공격을 피한 강현이 남자의 손을 움켜쥐었다.

-우지끈

현재 강현의 근력은 웨인의 비기와 거인의 힘까지 사용해 무려 50을 넘어간다.

그런 상태로 손에 힘을 주자 순식간에 남자의 손뼈가 박살나며 우그러졌다.

"으아아아!"

그 모습에 뒤에 서있던 여성이 뒤도 돌아보지 않고 내달렸다.

"안 돼. 어디가 대장! 크헉!"

마지막으로 남은 남자는 대장이 도망치자 어쩔 줄 몰라했다.

"걱정하지 마."

고민을 덜어주기 위해 강현이 그의 인중에 주먹을 박아 넣었다.

"허억, 허억..."

**

'도대체 어디서 저런 놈이 나온 거야!?'

처음 강현이 나타났을 때만 해도 그녀는 오랜만의 부수입이라며 들떠있었다.

그저 아이템을 뺏은 뒤, 발가벗긴 채로 조금 가지고 놀다가 평소처럼 죽여서 입막음을 할 생각이었다.

-파사삭

그 생각은 강현의 손 안에서 박살나는 검을 보는 순간 무너졌다.

그녀의 직감했다.

저놈은 지금까지 죽여 왔던 능력자와는 차원이 다르다!

일개 팀의 대장인 자신이 상대할 만한 존재가 절대로 아니었다.

"허억, 허억!"

도망친 대장은 정신없이 숲을 헤치고 달려갔다.

두려움에 빠진 그녀가 고개를 흔들었다.

"괜찮아. 아무리 괴물 같은 새끼라지만, 나는 이 숲에 이주 동안 머물렀다고."

"거 듣는 사람 기분 나쁘게 괴물 새끼가 뭐야?"

"꺄아아아!"

어느새 대장의 바로 옆에 도착한 강현이 말을 걸어왔다.

"너... 정체가 뭐야? 이러고도 무사할 줄 알아?"

대장의 말에 강현이 실소하며 투구를 벗었다.

"무슨 쌍팔년도 삼류 악당도 아니고, 대사 수준이 왜 그래?"

강현이 자신 있게 얼굴을 드러내자 대장이 불안감에 휩싸였다.

'이 자식 나를 죽일 생각인 거야!'

그것이 아니면 굳이 얼굴을 드러낼 이유가 없었다.

목숨에 위협을 느낀 대장은 곧장 무릎을 꿇었다.

"제발. 목숨만 살려줘. 나도 하고 싶어서 한 행동이 아니었어."

"그래? 갑자기 내가 좋아하는 영화 대사가 떠오르네."

그 모습에 강현이 악동처럼 미소를 지었다.

"너는 그래도 여자잖아. 그렇지?"

"어..."

"그럼 너도 네 친구들처럼 병신을 만들면 차별일까? 아니면 너만 멀쩡하게 두는 게 차별일까?"

"..."

"재미없었어? 크크큭..."

정말 재미있는 이야기라는 듯이 강현이 낄낄거렸다.

'씨발! 제대로 미친 새끼한테 걸려버렸어.'

미쳐도 단단히 미친 게 분명했다.

속으로 어떻게 이 상황을 타파할지 고민하던 대장이 입을 열었다.

"하하하... 나도 저놈들이랑 같은 죄를 지었으니까... 똑같은 처벌을 받아야겠지?"

"으음, 고민하던 중이었는데. 의견 고마워."

강현이 대답과 동시에 발을 들어 대장의 무릎을 내려찍었다.

"끄아아아!"

순식간에 무릎뼈가 박살난 그녀의 비명이 던전에 울렸다.

**

"흐으음~"

콧노래를 부르며 강현이 던전을 걸었다.

"그나저나 필드형 던전이라 어디로 가야 할지 모르겠네."

점차 나타나는 고블린의 숫자가 늘어나는 것이 제대로 가고 있는 것 같긴 했지만 확실하지 않았다.

"아! 한 놈은 길잡이로 끌고 왔어야 하는 건데."

자신의 어리석음을 탓하며 강현이 고개를 저었다.

"넌 뭐야?"

그때 강현에게 한 무리가 다가왔다.

"모르는 놈 같은데 입구는 어떻게 지나친 거야? 걔네들 또 농땡이 피운 것 같은데?"

"하여간 말단인 새끼들은 이유가 있어요."

남자들의 말을 들은 강현이 미소를 지었다.

"빙고."

29화 베이트 길드(1)

29. 베이트 길드(3)

"그러니까. 나는 보스 위치를 알려줄 놈. 하나만 있으면 되거든?"

강현의 말에 남자들이 발작하듯이 손을 들었다.

"제가! 제가 이 팀에 대장입니다. 저보다 더 잘 아는 놈은 없을 겁니다!"

"저 새끼는 말만 대장이지 하는 것도 없는 놈입니다. 제가 여기 길잡이 포지션입니다!"

"뭐? 너 미쳤어?!"

무리에 있던 남자들은 총 여덟.

그중 넷은 이미 반죽음 상태로 기절해 있었다.

'전부 다 기절해버리면 길잡이가 없잖아.'

강현은 조금 전에 배운 경험을 토대로 잘 실천하는 중이었다.

"좋아. 너희들의 뜻이 그렇다면 어쩔 수 없네."

"...?"

"지금부터 오디션을 시작하지."

목숨을 담보로 한 오디션이 진행됐다.

발탁되면 길잡이.

떨어지면 죽음이다.

참가자들의 열정은 그 어느 오디션보다 뛰어났다.

"자자. 싸우지들 말고. 내가 바쁜 사람이니까 바로 최후 발언으로 넘어가자고."

강현이 말을 하며 스트레칭을 하고 있을 때였다.

"꺼져 이 개새끼야아!!!"

기회를 엿보던 한 남자가 재빨리 일어나며 검을 휘둘렀다.

"뭐야?"

강현은 달려오던 남자를 힘껏 손바닥으로 후려쳤다.

-짜악!

그대로 건틀릿에 안면이 적중된 남자가 일어설 때보다 배는 빠른 속도로 바닥에 처박혔다.

단번에 기절한 남자의 얼굴은 건틀릿 모양으로 함몰되어 있었다.

"최후 발언 잘 들었고요. 다음."

강현이 아무 일도 없다는 듯이 고개를 까딱거렸다.

"..."

**

"야. 제대로 가고 있는 거 맞아?"

강현의 말에 자신을 길잡이라 소개한 김성우가 세차게 고개를 끄덕였다.

"예. 이 길이 부락까지 가는 최단 코스입니다."

"그런데 벌써 해가 졌잖아."

김성우를 따라 길을 걸은 지 한나절. 그동안 고블린들만 튀어나올 뿐, 목표인 보스가 있는 부락은 나오지 않았다.

"원래 보스가 있는 곳까지는 작은 부락들을 거쳐 며칠은 가야 합니다. 하지만 이 길로 가면 빠르면 이틀 안에 바로 메인 코어에 도착할 수 있습니다."

김성우의 말에 강현이 고개를 끄덕였다.

"오늘 안에는 글렀다는 거네. 그럼 여기서 쉬자."

애초에 김성우는 강현에게 당한 구타로 몸이 온전치 않았다.

그런 상태에서 하루 종일 이어진 강행군에 그는 완전히 지친 모습이었다.

환자를 끌고 가기 싫었던 강현이 휴식을 선언했다.

"저기... 불은 안 피우십니까?"

밤이 되자 제법 날씨가 쌀쌀해져 김성우가 몸을 떨었다.

"대충 침낭에 들어가서 자면 되는데 뭐 하러. 그거 보고 고블린들이 몰려오면 네가 잡을 거야?"

"아닙니다. 죄송합니다."

김성우가 고개를 숙이며 대답했다.

'야영 장비도 다 두고 왔는데...'

결국 나무 아래에 쪼그려 앉은 김성우가 양팔로 몸을 싸매며 처연하게 떨었다.

"이거라도 덮어라."

그 모습을 본 강현이 배낭에서 모포를 꺼내 던졌다.

"감사합니다!"

얇은 모포였지만 한결 추위가 가시는 느낌에 김성우가 안도했다.

"몇 살이야?"

"스물다섯입니다."

김성우가 갓 들어온 신병처럼 빠릿하게 대답했다.

"군대는?"

"전역했습니다."

"원래 그럼 대학생이었어?

"예."

김성우의 말에 강현이 인상을 찌푸렸다.

"대학이나 잘 다니지. 뭐 하러 이딴 데 들어와서 쓸데없는 짓을 하냐?"

"돈이 궁했습니다. 학자금 대출은 쌓여만 가고, 답이 없다고 생각해서 던전에 뛰어들었습니다."

"..."

"그러다가 아는 형의 권유로 베이트 길드에 들어간 겁니다."

전형적인 이야기에 강현이 고개를 저었다.

"여기 나가면 길드 탈퇴하고 사람답게 살아 인마."

"저도 그러고 싶은데 이제 늦었습니다."

"왜?"

길드에서 나갈 수 없다는 말에 강현이 고개를 갸웃했다.

"길드에 들어오는 것은 자유지만 나가는 건 아니랍니다. 도중에 길드를 탈퇴하겠다고 나갔던 형들도 지금은 다 연락이 끊어졌습니다."

"쯧쯧. 요즘 세상에 어디 조폭 영화도 아니고."

혀를 찬 강현이 침낭 속으로 파고들었다.

"알겠으니까 자라. 환자 데리고 다니기 싫으니까."

"예."

두 시간 뒤.

웅크린 채로 잠든 것처럼 보이던 김성우가 눈을 떴다.

'지금이다.'

진작부터 도망칠 기회가 있었지만 김성우는 안전에 안전을 기했다.

이미 한참 전에 강현이 잠들었지만 움직이지 않고 한 시간을 넘게 참은 것이다.

-스윽

마침내 조용히 자리에서 일어난 김성우가 모포를 내려두고 천천히 움직였다.

"어디 가냐."

"...!"

그 순간 누워있던 강현이 돌아보지도 않은 채로 말했다.

"소변이 마려워서 하하..."

"여기서 싸."

"예."

김성우가 눈물을 훔치며 벨트를 풀어헤쳤다.

"도망가다 걸리면 뒤진다."

"예."

"그냥 하는 말이 아니라 정말로 뒤진다."

"예..."

억지로 볼일을 본 김성우가 얌전히 자리로 돌아왔다.

"흑흑..."

혹시라도 강현이 해코지는 하지 않을까 두려웠던 김성우가 모포를 뒤집어쓰고 조용히 흐느꼈다.

**

다음날.

"여기야?"

"예. 저기 보이는 부락에 보스가 있습니다."

언제부터인가 강현은 마력을 느낄 수 있게 되었다. 그런 강현의 감각에 제법 강한 마력이 걸려들었다.

"따라와."

"예?"

"따라오라고. 너 없으면 돌아가는데 또 한참 걸릴 거 아냐."

"예..."

힘없이 대답한 김성우가 강현의 뒤를 졸졸 따라갔다.

"케에엑!"

당당하게 부락의 입구에 멈춰선 강현. 그를 발견한 고블린들이 소리치며 사방으로 뛰어다녔다.

-땡, 땡!

그리고 위험을 알리는 다급한 종소리가 부락에 울려 퍼졌다.

"키륵, 케륵!"

"허어..."

그러자 엄청난 수의 고블린들이 물밀듯 쏟아져 나오기 시작했다.

[고블린 전사]

[고블린 주술사]

놈들은 꽤나 체계를 갖춘 것 같았다. 게다가 짐승의 가죽으로 만든 방어구와 잘 벼려진 무기까지 지닌 모습.

"야아아아!"

[분노의 사자후가 발동됩니다]

[모든 적들의 사기와 능력치가 감소했습니다]

기합을 넣은 강현이 힘껏 달렸다.

"키엑!"

그동안은 이곳이 다른 E등급 던전에 비해 수준이 너무 낮은 것이 아닌가 하는 의문이 있었다.

하지만 이제는 왜 '고블린의 부락'이 E등급 던전인지 알 수 있었다.

압도적인 물량.

이미 수백 마리의 고블린을 쏟아낸 부락이 지치지도 않고 끊임없이 고블린을 뱉어냈다.

-스걱!

강현의 검이 휘둘러질 때마다 두세 마리의 고블린들이 죽어나갔지만 티도 나지 않았다.

"케에엑!"

그때였다.

뒤쪽에 지팡이를 든 채로 대기하던 주술사들. 놈들이 무언가를 외치자 땅속에서 나무들이 자라나 강현의 몸을 휘감기 시작했다.

"이건 뭐야?"

-우지끈

나무줄기는 강현이 힘을 주자 허무하게 뜯겨나갔다. 그러나 금세 또 다른 줄기가 올라와 강현을 휘감았다.

'주술사부터 처리해야겠네.'

판단을 마친 강현이 정신없이 검을 휘두르며 길을 뚫었다.

"캬악!"

"케르륵!"

엄청난 속도로 휘둘러지는 검에 피보라가 일어나고, 순식간에 수십 미터를 달려온 강현이 일도양단을 사용했다.

-스걱!

단번에 다섯 마리의 고블린 주술사가 뼈째로 잘려나가며 몸이 분리되었다.

"케륵! 케륵!"

채 십 분도 지나지 않아 백에 가까운 고블린들이 나가떨어졌지만, 놈들의 눈은 여전히 형형하게 빛나고 있었다.

**

"후우..."

장장 두 시간이 넘게 이어진 사투. 마침내 강현은 한숨을 돌릴 수 있었다.

주변에는 고블린들의 사체로 발 디딜 틈조차 없을 정도였다.

"케륵, 케륵!"

동료 수백이 죽었음에도 강현에게 별다른 타격을 주지 못하자, 고블린들이 겁을 집어먹으며 뒷걸음질 쳤다.

"케에에에엑!"

그때 안쪽에서 거대한 덩치의 고블린이 나타났다.

"이제야 등장하는 거냐?"

"케륵!"

고블린 주제에 2m가 넘어가는 체구를 지닌 대주술사가 외쳤다.

그러자 거대한 바위들이 허공에 떠오르며 강현에게 날아들었다.

"이딴 잡기술!"

강현이 가볍게 몸을 놀려 피하고 곧장 놈에게 달려들었다.

"케에엑!"

대주술사의 지시에 남아있던 고블린들이 일제히 강현에게 달려들었다.

'웨인의 비기'

싸움이 얼마 남지 않았음을 직감한 강현이 웨인의 비기을 사용 했다.

전신에서 끓어 넘치는 힘에 강현이 만족스럽게 웃었다.

"으아아!"

강현이 달려드는 고블린을 붙잡아 전방으로 집어던졌다.

그 충격에 단번에 수십 마리의 고블린들이 도미노가 쓰러지듯 무너졌다.

-탓

쓰러진 고블린들을 디딤돌 삼아 점프한 강현이 허공으로 날아올랐다.

"마력폭발, 마력폭발, 마력폭발!"

공중에서 연거푸 마력구를 생성한 강현이 자신의 발바닥 아래쪽에서 마력구를 터뜨렸다.

-펑, 펑, 펑!

강현이 그 폭발력을 이용해 공중을 내달리기 시작했다.

"야아아아!"

[스킬 마력 폭발의 등급이 상승합니다]

시야 한편에 메시지가 떠올랐지만 기뻐할 때가 아니었다.

"케엑?!"

폭발력에 힘입어 미사일처럼 날아간 강현이 순식간에 대주술사 앞에 도달했다.

"죽어!"

강현이 전력으로 검을 휘두르고, 놈은 자신의 앞에 흙벽을 생성했다.

-콰앙!

강현의 검과 흙벽이 격돌했다.

사방에 흙먼지가 비산해 일시적으로 시야가 가려졌다.

"마력 폭발!"

강현이 스킬을 사용하자 먼지가 폭발력으로 인해 흩어졌다.

"거기냐!"

놈은 조금 떨어진 곳에 있었다.

강현은 곧장 빌게인의 장검을 집어던졌다.

-후웅!

동시에 땅을 박차며 내달렸다.

"케에엑!"

예상치 못하게 날아온 검은 놈의 어깨를 꿰뚫었다.

놈이 고통에 비명을 내지르는 사이 강현이 놈에게 도착했다.

"케, 켁!"

"흐읍!"

강현이 양 손으로 놈의 얼굴을 붙잡았다.

"마력폭발!"

-콰앙!

손 안쪽에서 엄청난 압력이 터져 나오고,

-털썩.

머리의 절반이 날아간 대주술사가 허무하게 무릎을 꿇었다.

"새끼가 귀찮게 하고 있어."

마력 폭발의 영향으로 자신의 손발이 걸레짝처럼 너덜거렸지만 강현은 개의치 않았다.

'어차피 금방 회복되겠지.'

아직 마력에는 여유가 있었다.

"케륵, 케륵!"

대주술사가 쓰러지자 겁을 집어먹은 고블린들이 사방으로 흩어졌다.

"김성우! 어딨냐?"

"저 여기 있습니다."

강현의 말에 고블린의 움막에 숨어있던 김성우가 기어 나왔다.

"어째 안 도망치고 숨어있었네."

"예."

'네가 도망치면 뒤진다면서요...'

뒷말을 삼킨 김성우가 얌전히 고개를 끄덕였다.

"여기 있는 마정석은 네가 원하는 대로 챙겨가라. 난 필요 없으니까."

"예?! 감사합니다!"

예상치 못한 보너스에 신이 난 김성우가 고블린들의 사체를 뒤적거렸다.

"나는 이거면 됐지."

[고블린 대주술사의 마정석]

[고블린 대주술사의 반지]

돈벌이는 코어 값으로 충분하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은 역시 이 반지다.

이름 : 고블린 대주술사의 반지

등급 : D+

내구도 : 50/50

설명 : 고블린 대주술사 카르케가 사용하던 반지. 마력 상승에 도움을 준다.

능력 : 마력 4 스텟 증가, 마력 회복속도 10% 증가

"오, 뭐야? +등급이란 게 있어?"

반지를 본 강현이 밝게 웃었다.

"어차피 E등급 던전이라 큰 기대는 안 했는데, 좋네."

강현이 기존에 끼고 있던 마력 2 스텟 증가 반지를 빼고 대주술사의 반지를 착용했다.

▫이름 : 강현

▫칭호 : 튜토리얼 졸업자 외 1개

▫레벨 : 47

▫상세 능력치 :

·근력 26 (+2.5)(+2)

·순발력 24 (+2.5)

·체력 25 (+2.5)(+2)

·마력 26 (+2.5)(+4)

·추가 스텟 : -

▫고유 능력 : 부활

▫능력 : 중급 검술(D), 하급 방패술(E), 최하급 석궁술(F)

▫스킬 : 분노의 사자후(C), 상급 육체 재생(A), 일도양단(E), 거인의 힘(B), 마력폭발(D), 웨인의 비기(E), 엔트리아의 외피(F)

"이제 마력 걱정은 좀 덜었네."

이로서 마력이 32.5가 되어 가장 높은 스텟이 되었다.

"마력 폭발 등급도 올랐구나. 어쩐지 손이 많이 아프더라니."

대주술사를 마무리한 것은 강현이 자주 애용하던 방식이었는데, 평소와 달리 충격이 강해 건틀릿이 심각하게 부서졌다.

"앞으로도 자동수리 기능이 없는 장비는 쓰면 안 되겠어."

강현이 워낙 과격한 방식으로 전투를 진행했기에 매번 갑옷이 박살 났다.

자동수리 기능이 없는 갑옷을 착용했다면, 아마 매 전투마다 새로운 갑옷을 구입해야 할지도 몰랐다.

"이제 나가볼까."

전리품을 정리한 강현이 던전의 메인코어 앞에 섰다.

"야. 너도 일로와."

"예, 예!"

강현의 말에 정신없이 마정석을 채취하던 김성우가 헐레벌떡 달려왔다.

"생각해보니 메인 코어를 날리면 자동으로 포탈 생기잖아? 너는 필요 없었네?"

"아... 그, 그래도 여기까지 오는데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지 않았습니까?"

갑작스럽게 자신의 쓸모가 사라지자 김성우가 당황했다.

"해코지 안 하니까 쫄지마. 인마. 그럼 간다."

기대 이상의 보상으로 기분이 좋았던 강현이 웃어주며 메인 코어를 받치는 기둥을 잘라냈다.

[던전의 메인 핵이 제거되었습니다]

[외부로 향하는 포탈이 열립니다]

메시지와 함께 눈앞에 떠오른 포탈에 강현과 김성우가 들어갔다.

-화악!

"이건 또 뭐야?"

밖을 나오자마자 강현의 눈에 보이는 건 백 명은 되어 보이는 무장한 사람들이었다.

"나왔다. 길드장님께 연락해."

그중 한 남자가 뒤쪽에 있던 부하에게 지시를 내리고 강현에게 다가왔다.

"저는 베이트 길드의 부길드장 김현우입니다. 만나서 반갑습니다."

김현우가 정중하게 인사를 하며 손을 내밀었다.

강현이 그 손을 마주 잡으며 입을 열었다.

"몇 놈 가지고 안 되니까 전부 끌고 온 건가? 단체로 다구리라도 쳐볼라고?"

"아닙니다. 그저 길드장님께서 대화를 원하시는 것뿐이니 잠시만 기다려주시면 됩니다."

"내가 왜 그래야 되는지 모르겠네."

마주 잡은 강현의 손에 점점 힘이 들어갔다.

'손이 부서질 것 같아. 뭔 놈에 힘이..!'

일반적인 상식을 뛰어넘는 강현의 힘에 김현우가 점차 무너지기 시작했다.

"으윽.."

자존심 하나로 버티던 김현우의 입에서 신음성이 터져 나오던 그때, 누군가 말을 걸어 다가왔다.

"그쯤 하시죠."

30화 베이트 길드(2)

30. 베이트 길드(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