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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

잠입 인원은 총 다섯 명.

어두운 밤이라 울타리를 넘는 건 어렵지 않았다.

다들 곧 생산될 오리지널 기간트를 배정받을 만큼 뛰어난 기사들이라 그런지 몸이 아주 가볍다.

물론 가장 가벼운 것은 엘프인 에테나였지만.

다다닥! 탁!

내 손을 밟고 에테나가 울타리 위로 올라갔다.

다들 올라가고 내가 마지막이었다.

'도약!'

팟! 척!

나 혼자 울타리 위로 올라가자, 파이컬 중령과 기사들의 눈이 커졌다.

좀 놀랐을 거다.

스킬을 쓰면 점프력이 장난 아니거든.

"에테나! 시작해!"

"네!"

에테나를 앞으로 보내고, 나와 수색팀이 뒤를 따랐다.

엘프는 야간 시력도 좋았지만, 귀도 밝았고, 반향정위의 능력까지 있었기에 잠입에 능했다.

이러니 엘프 한 명을 잡기 위해선 병사 100명은 필요할 것이다.

우린 어둠을 틈타 울타리 밑이나 구석으로 이동하고, 적당한 엄폐물을 찾아 숨었다.

그렇게 20여 분을 은밀히 이동하자, 동굴 입구까지 올 수 있었다.

"소령, 저긴 어떻게 들어가지?"

파이컬 중령이 물었다.

문제는 입구에 경비가 삼엄하다는 거다.

마장기도 있고.

"그냥 들어가면 될 겁니다. 최대한 자연스럽게 행동하세요. 우린 지금 가디언 제국의 병사니까!"

"뭐?"

그때 마장기 3대가 동굴로 향하는 것이 보였다.

비숍급 마장기 1대와 나이트급 마장기 2대가 나란히 오고 있었다.

"지금입니다. 가죠."

나와 일행은 마장기 맨 뒤에 붙어서 따라갔다.

기이잉! 쿵! 쿵!

선두 마장기가 입구에 도착하자, 입구를 지키는 마장기 기사와 몇 마디를 하더니 동굴 안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우린 그 뒤를 따라 천천히 걸어갔다.

3번째 마장기가 들어가고, 이제 우리 차례.

내가 맨 앞이었기에 심장이 두근거렸다.

그때 입구를 지키는 장교와 눈이 마주쳤다.

척!

난 장교를 향해 경례했다.

장교는 고개를 살짝 끄덕였다.

동굴 안으로 들어오자마자, 우린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허!"

"와씨! 오줌 쌀 뻔했네!"

바오트 대위가 호들갑을 떨었다.

사실 나도 장교와 눈이 마주쳤을 때, 지릴 뻔했다.

물론 걸린다고 내가 잡히거나 죽거나 하진 않겠지만, 작전은 실패하고 쫓기는 신세가 됐을 테니까.

"서두르죠."

다시 에테나를 선두로 동굴 깊숙한 곳으로 들어갔다.

동굴 곳곳에 횃불이나 발광석이 박혀 있었기에 이동은 큰 문제가 없었다.

그리고 동굴은 비스듬한 경사로 아래로 이어지고 있었다.

"정지!"

에테나가 정지 신호를 보냈다.

"왜?"

"누가 이쪽으로 오고 있어요."

"몇 명?"

"열세 명입니다."

주변을 둘러봤다.

이곳은 몸을 숨길 장소도 샛길도 없었다.

난 일행들에게 말해 혹시나 모를 상황에 대비시켰다.

"그냥 입구에서처럼 자연스럽게 지나가는 겁니다."

"휴우!"

다들 긴장을 유지하고, 통로를 이동했다.

척척척!

하사관 하나와 병사 열두 명이 마주 오고 있었다.

그냥 지나가면 좋으련만.

"거기 정지!"

역시, 인생사 쉽게 가는 법이 없다.

하사관이 다가와 물었다.

"이 시각에 어디 가는 거야?"

"심부름하러 가는 중입니다."

"심부름? 넌 처음 보는 얼굴인데? 어디 소속이야?"

"그게······."

내가 뒤쪽으로 손짓하자 다들 알아서 전투를 준비했다.

"아베르크 제국 정보국 소속입니다."

"어?"

부웅! 퍼억!

들고 있던 창으로 머리를 후려쳤다.

그것을 신호로 파이컬 중령과 로제 소령, 바오트 대위가 병사들을 향해 달려들었다.

"뭐, 뭐야?"

푸푹! 쩌억!

"크악!"

"으악!"

병사들의 비명이 동굴을 울렸다.

다행히 지금은 새벽 시간이라 순찰병을 제외하고 이동이 거의 없는 상태였기에 들키지 않았다.

"도망쳐!"

순식간에 일곱이 죽자, 남은 다섯이 도망치기 시작했다.

"어딜!"

촤악! 촤악!

로제 소령이 달려가 둘이나 되는 병사를 쓰러트렸다.

그녀의 검술 실력이 상당했다.

피슉! 피슉!

"커헉!"

"크윽!"

에테나의 화살에 병사 둘이 더 쓰러졌다.

하지만 한 명은 이미 입구 쪽으로 상당히 달아난 상태였다.

"저놈은 내가 가서 처리하지."

파이컬 중령이 달렸다.

"잠시만요."

"뭐?"

"저쪽엔 제 정보원이 있습니다."

"정보원?"

알리만을 인형의 집에서 꺼내 100미터 뒤쪽에 배치했다.

"으악!"

곧 병사의 비명이 들렸다.

"처리됐군요."

"허!"

파이컬 중령이 탄식과 비슷한 탄성을 질렀다.

"혹시, 그 정보원인가? 변신을 자유자재로 한다는?"

"네."

"어서 시체를 정리하고 가지."

"그냥 놔두고 빨리 이동하는 것이 나을 것 같습니다. 어차피 이들이 반대편 통로에 도착하지 않으면 수색대를 보낼 겁니다. 그러니 차라리 빠르게 이동하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알았네. 소령 말대로 하지."

파이컬 중령도 이제 내 명령에 토를 달지 않는다.

역시 능력을 보여줘야 내 말을 믿는다니까.

우린 다시 서둘러 이동했다.

상황이 매우 급하게 돌아갔지만, 난 오히려 웃고 있었다.

아무것도 없는 통로까지 병사와 기간트까지 순찰할 정도로 삼엄한 경비라면, 내 예상보다 더 귀한 물건이 있을 테니까.

우린 한참을 달렸다.

그리고 10여 분 만에 통로 끝에 도착했다.

"세상에! 이게 다 뭐야?"

"광산인가?"

"혹시, 마석이 산처럼 묻혀 있는 거 아냐?"

"어? 별이 보이네요."

내가 말하자, 기사들이 고개를 들어 위를 보았다.

이곳은 한쪽 폭이 300미터쯤 되고, 높이는 400미터쯤 되는 상당히 넓고 깊은 싱크홀이었다.

아래쪽에선 작업용 마장기가 흙을 쉴새 없이 나르고, 위쪽엔 거대한 기중기들이 그 흙을 계속해서 위로 퍼 올리고 있었다.

"역시 마석 광산인가!"

흙을 퍼 나르는 이유는 땅을 파기 위해서고, 그건 이곳이 마석 광산일 가능성이 컸다.

"이 정도면 증거로 충분해. 돌아가지."

파이컬 중령이 말했다.

중간에 병사들을 해치웠으니, 언제 들킬지 몰라 걱정하는 것이었다.

"아닙니다. 저쪽 안쪽까지 보고 가죠."

"알았네."

정확히 그들이 캐는 것이 마석인지 확인이 필요했다.

싱크홀 벽을 따라 이동했다.

한쪽엔 허벅지 깊이까지 오는 시커먼 물이 흐르고 있었다.

자세히는 몰라도 지하수가 이곳을 흘러 화산재 같은 퇴적물이 붕괴하여 거대한 싱크홀이 생긴 것 같았다.

그리고 조금 더 안으로 들어가자, 뭔가가 보였······.

"억?"

"어어?"

"이, 이게 대체!"

우린 단체로 경악했다.

바로 눈앞에 거대한 성문과 성벽이 보였기 때문이었다.

바오트 대위가 말했다.

"거신들의 도시?"

"아니! 이건 이데아 제국의 수도야!"

내가 대답했다.

"뭐, 이데아 제국? 이곳이 하루아침에 멸망했다는 거신 제국의 수도라고?"

중령의 눈이 3배로 커졌다.

내가 어떻게 알았냐고?

난 거신의 언어를 읽을 수 있었으니까.

성문 위쪽에 적혀 있었다.

여긴 이데아 제국의 수도로 들어가는 11번째 초소 성문이었다.

그리고 이데아 제국은 내 거신인형인 암 드로운의 모국이었다.

비록 잠깐의 의식 연결이었지만, 거신들은 이데아 제국의 기사로 자긍심이 강했다.

하지만 내가 의식을 연결했을 땐, 이미 이데아 제국은 멸망했고, 살아남은 거신들은 남쪽으로 도망쳐 급하게 헬다임 장벽을 만들고 있을 때였다.

"아! 그럼 화산이 터져 거신 제국이 망한 건가요?"

비오트 대위가 물었다.

"그럴 수도 있겠지. 화산이 곳곳에서 터지고, 화산재가 도시를 덮쳤고, 그 위에 대수림이 자리 잡아 그동안 찾지 못했을 거야. 아무튼, 이데아 제국은 거신들의 역사상 가장 위대했던 문명이라고 들었네."

"허! 그럼 가디언 새끼들이 그 문명의 유산을 혼자 꿀꺽하려고 했네요. 그것도 우리 블랙힐 전진 기지가 더 가까운 구역에서!"

기사들이 놀라고 떠들 때, 난 내부를 살폈다.

아까 안으로 들어왔던 마장기 3대가 입구 쪽에 나란히 세워져 있었고, 성문 안쪽에서 밖으로 철로를 설치해 작업용 마장기들이 계속해서 밖으로 흙을 퍼 나르고 있었다.

가디언 제국은 지금 계속해서 안쪽으로 구멍을 파서 발굴 작업을 하고 있었다.

아마도 제국의 중심인 황성을 찾아 길을 만들려는 것 같았다.

문제라면 인간 제국도 아니고, 거신의 제국이다.

그리고 이곳은 그저 도시로 들어가는 외곽 경계 초소 같은 곳이었다.

거신들의 키는 5미터에서 15미터까지 매우 거대했다.

그냥 일반 1층 가정집 높이도 30미터가 넘고, 조금 큰 건물은 인간이 만든 성만 할 것이다.

그럼 골목길의 폭이 수십 미터고, 광장은 적어도 수 킬로미터는 되지 않을까?

그러니 이걸 언제 다 파낼 것이며, 언제 발굴할 것인가!

파이컬 중령이 고개를 끄덕였다.

"아! 이제야 모든 것을 알겠군. 왜 저들이 우리의 이동을 막고, 눈을 가리기 위해서 병력을 집결했는지······."

"이제 다 알았으니, 빨리 이곳을 빠져나가죠."

로제 소령이 말했다.

"그래야겠네. 이 사실을 어서 군단장님께 알려야 해!"

우린 들어왔던 통로 입구로 이동했다.

에테나가 통로 입구에서 우리를 멈춰 세웠다.

"타일러님, 1km 전방에 마장기와 병사들이 이쪽으로 오고 있어요!"

걸렸군.

난 일행을 멈춰 세웠다.

나와 에테나는 거신인형과 기간트에 탈 수 있는 꼭두각시가 다섯이나 있었기에 어떻게든 뚫고 나갈 수 있었다.

하지만 뒤에 세 사람은?

아직 같은 편이란 확신도 없는데, 내 능력을 보일 순 없었다.

이건 엄청난 사건이자, 엄청난 발견이었다.

그리고 가디언 제국을 견제하려면 많은 병력이 필요했고, 장기적인 계획과 작전이 필요한 일이었다.

'이들의 증언이 필요한데······.'

나 혼자의 증언으론 한계가 있을 것이다.

이걸 다시 확인한다고 시간이 너무 지체되면, 가디언 제국이 이데아 제국의 황성을 먼저 발견할 수도 있었다.

그리고 아베르크 제국과 가디언 제국이 싸우게 된다면, 중간에서 내가 챙길 것이 더 많아진다.

난 움직이는 경항공모함이니까!

그러니까 두 제국이 경쟁하는 것이 내겐 더 이익이었고, 내가 속한 아베르크 제국도 큰 이득이었다.

이곳에서 정말 귀한 물건이나 거신의 갑옷 같은 것이 무더기로 나온다면, 현재 팽팽한 두 제국의 군사력이 가디언 제국 쪽으로 확 기울어질 수 있었으니까.

그걸 막은 내가 애국자지!

이러다 또 진급하는 거 아냐?

그때 다 함께 탈출할 좋은 방법이 떠올랐다.

"탈출로를 변경해야겠습니다. 가디언 놈들에게 들켰네요."

"뭐? 큰일 났군! 통로는 이거 하나뿐인데 어떻게 변경한다는 건가?"

파이컬 중령이 물었다.

"저거 타고 올라가죠."

난 거대한 기중기와 쇠사슬을 가리켰다.

"뭐?"

"저 위는 바로 대수림이니까, 기간트가 있는 곳으로 달리면 되겠네요."

56. 고급 정보.

56. 고급 정보.

쏴아아아!

흙무더기에 파묻힌 바오트 대위를 꺼냈다.

"푸하! 죽을 뻔했네."

"쉿! 조용히 뒤를 따라와!"

우린 흙을 위로 퍼 올리는 기중기 때문에 무사히 싱크홀 위로 올라왔다.

하지만 위쪽도 안전지대는 아니었다.

곳곳에 마장기와 병사들이 지키고 있었기에 최대한 은밀히 이동해야 했다.

에테나가 앞서고 우린 한참을 달렸다.

그리고 커다란 나무 뒤에서 잠시 쉬었다.

"휴! 이쯤에서 헤어지죠."

가쁜 호흡을 내 쉬는 파이컬 중령이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헤어지다니? 그게 무슨 말인가?"

"저는 이곳에 남아서 저들의 정보를 좀 더 알아보겠습니다."

"뭐?"

파이컬 중령이 놀란 표정을 지었다.

"이제 이곳의 경비는 두 배, 아니 몇 배로 강화될 거네."

"맞습니다. 타일러 소령님, 위험합니다."

바오트 대위도 나를 말렸다.

그리고 로제 소령은 무슨 결심을 했는지 갑자기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기간트도 없이 대수림에 있는 것은 자살 행위입니다. 게다가 이제 적들의 경계도 강화될 거고요. 그러니 제가 함께 남겠습니다."

"응?"

"네?"

얘는 또 왜 남겠데?

파이컬 중령이 심각한 표정을 지었다.

"저도 위험하다는 것은 압니다. 하지만 도움은 필요 없습니다. 여러분들도 제 실력을 아실 겁니다. 그리고 제가 정보를 최대한 알아내야 시안 군단장님께 도움이 될 것이 아닙니까."

일부러 마지막에 시안 군단장의 이름을 넣어 강조했다.

굳이 높은 사람과 척을 질 필요는 없으니까.

혹시 아는가? 그가 황제가 될지도 모르고.

그리고 어차피 중요한 정보는 내가 가지고 시안 군단장이나 아베르크 제국엔 꼭 필요한 정보만 제공하면 되니까.

내 말을 들은 파이컬 중령이 미안한 표정을 지었다.

"내가 소령을 오해했었네."

"아닙니다."

"그리고 소령의 능력을 믿지 못한 것도 미안했네. 시안 황자님께는 내가 잘 말씀드리지."

"그래 주시면 감사합니다."

로제 소령과 바오트 대위도 날 향해 존경의 눈빛을 보였다.

"제가 함께 남겠습니다. 그래도 기간트 한 대는 있어야 안전합니다."

로제 소령이 다시 나섰다.

"오히려 기간트가 있으면 발각당하기 쉽습니다. 전 여기 엘프 하사관과 숨어 있으면 됩니다."

"그래도 위험······."

"이건 명령입니다! 제가 기간트와 합류하기 전까진 지휘관입니다. 그러니 명령대로 하세요."

"하아! 네, 알겠습니다."

로제 소령도 단념했다.

다행히 모두 내 의도대로 흘러갔다.

"아! 파이컬 중령님, 블랙힐 기지로 가지 마시고, 카야킨 전진 기지로 가셔야 합니다."

"응? 블랙힐로 가서 빨리 소식을 전하고 시안 군단장님을 기다리는 것이 낫지 않겠나?"

난 고개를 흔들었다.

"블랙힐 기지에 있는 록체스터 가문의 솔버리 백작과 기사들은 욕심이 많은 자들입니다. 이곳에 이데아 제국의 수도가 있다는 걸 알게 되면 독단적으로 움직일 수 있습니다."

"하긴 그러고도 남을 사람들이긴 하지."

"그러니 곧장 카야킨으로 가서 5군단을 이곳으로 데려와야 합니다. 그리고 헬다임 장벽에도 이 사실을 알려야 하고요."

"맞네. 이 정도 규모면 5군단 가지곤 어림도 없지. 다른 군단과 병력도 더 필요할 거야."

파이컬 중령이 내 말을 잘 알아들었다.

"다행히 거신의 수도는 그 규모나 크기가 엄청날 겁니다. 저들이 수백 대의 작업용 기간트와 굴착 장비를 쓰고 있지만, 발굴하려면 얼마나 걸릴지 모릅니다."

"최소 몇 년은 걸리겠지."

"어쩌면 10년 이상 걸릴 수도 있습니다. 그러니 최대한 병력을 많이 이끌고 오셔야 합니다. 그래야 싸움이 됩니다."

"알았네. 내 최대한 빨리 다녀오지. 그러니 자네도 조심하게."

"걱정하지 마십시오. 다들 제 실력을 잘 아시지 않습니까."

세 사람이 고개를 끄덕였다.

파이컬 중령 팀은 곧장 기간트가 있는 곳으로 출발했다.

이제 난 시간을 벌었다.

카야킨까지 왕복하려면 최소 5개월.

그리고 병참을 챙기는 것도 1개월은 걸릴 것이다.

그럼 총 반년의 시간을 벌었다.

그러니 이제 이곳을 좀 더 조사해 봐야겠다.

***

난 에테나와 가디언 제국의 작업장으로 다시 향했다.

"괜찮을까요? 우리가 병사들을 죽였으니, 경비가 삼엄해졌을 겁니다."

"경비는 조금 삼엄해졌겠지만, 우리 때문은 아니야."

"네?"

에테나가 영문모를 표정을 지었다.

난 마법인형을 이용해 우리가 죽인 병사의 시체를 모두 치워 인형의 집에 넣었다.

그리고 표범인형의 발톱 자국과 핏자국을 사방에 남겼다.

저들은 괴수 한 마리가 들어와 수색하던 병사들을 모두 잡아먹은 것으로 알고 있을 것이다.

지금쯤 동굴과 싱크홀을 샅샅이 뒤지고 있을 것이다.

그리고 곧 괴수가 발견되지 않으면 밖으로 나간 줄 알겠지.

난 싱크홀 주변 나무 위에서 저들의 경계가 누그러질 때까지 며칠간 기다렸다.

아름다운 미녀 엘프와 함께 있으니 외롭지도 않았다.

그리고 지난 며칠 동안 작업장과 동굴 입구를 자세히 스케치했고, 저들의 마장기 배치와 병력 규모를 상세히 기록했다.

"성문 안쪽 구조는 알아보기 힘들지?"

"네. 구멍 깊이가 깊고, 안쪽으로 깊게 꺾여 있어 제 소리가 거기까지 닿지 않아요."

"역시 들어가 봐야 하나?"

"위험하지 않을까요?"

"그래도 고급 정보를 획득하려면 저들이 얼마나 작업했는지 확인해 봐야지."

난 정보국 장교다.

정보국의 힘은 정보다.

그리고 진급 역시 얼마나 많은 고급 정보를 독점으로 가지고 있느냐에 따라 결정된다.

물론 내 인형의 집에 고급 정보야 넘쳐나지만, 그걸 활용하는 건 끝까지 비밀로 해야 했다. 아니면 내가 정보국을 털어간 범인이란 걸 시인하는 꼴이 되니까.

그리고 그건 독점적인 정보는 아닐 것이다.

그걸 알아낸 정보원이 있을 테고, 어딘가에 사본이 있을 수도 있다.

하지만 대수림의 정보는 완전히 다르다.

여기서 생겨나고 알아낸 모든 정보는 완전 독점이다.

그러니 이참에 이곳의 정보를 더 얻어야 했다.

특히 성문 안쪽에 이데아 제국의 발굴 정보라면 중령 진급은 떼 놓은 당상이었다.

'무조건 대령 위치까진 올라가야 해!'

정보국이나 장벽 사령부, 혹은 5군단에 들어가더라도 최소 대령까진 올라가야 했다.

영지를 가질 수 있는 건, 귀족밖에 없었으니까.

그리고 대령부터는 기간트 기사가 아니라도 제국의 명예 훈작 작위를 받을 수 있었다.

사실 아베르크 제국에서 귀족이 되기는 쉽지 않았다.

전쟁에서 큰 공을 세우거나 귀족의 자식이 영지나 작위를 물려줬을 때만 가능했다.

물론 작위를 사는 대상인도 있었다.

하지만 그건 라인이 필요했고, 뇌물을 엄청나게 먹여야 했다.

대수림에 어둠이 깔렸다.

"그럼 슬슬 가볼까."

"제발 조심하세요."

"왜? 내가 죽으면 시노우엘을 찾지 못할까 봐?"

"그, 그게 아니라······."

에테나는 답답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나도 안다.

날 걱정하는 걸.

난 에테나의 머리를 살짝 쓰다듬었다.

"괴수 조심하고, 잘 숨어 있어."

"네······."

난 가디언 제국의 하사관 제복을 입었다.

일전에 동굴에서 내가 처리한 1등 하사관이 입던 것이었다.

에테나가 함께 가면 좋겠지만, 내가 가진 모든 능력을 드러내지 못하니, 오히려 운신의 폭이 줄어든다.

그녀는 믿지만, 엘프는 아직 계약관계일 뿐이니까.

싱크홀에 내려올 때도 기중기 쇠사슬을 이용했다.

그리고 사마귀 꼭두각시를 이용해 전방을 살피며 성문 쪽으로 이동했다.

'역시 경비병과 마장기가 더 늘었네!'

수십 명의 병사가 성문 좌우에서 지키고 있었고, 그들 뒤에는 마장기 5대가 놓여 있었다.

마장기 기사들은 그 앞에서 모닥불을 쬐며, 커피를 마시고 담배를 피우고 있었다.

이곳이 적에게 들켰는지도 모르고, 아주 여유롭다.

덕분에 내가 이렇게 쉽게 들어올 수 있지만.

'밧줄을 잡아당겨!'

밧줄과 함께 표범인형을 성벽 위에 올려보냈고, 난 편하게 성벽 위로 올라갔다.

거신의 성벽이라 그런지, 높이도 높고 폭도 100미터는 되는 것 같았다.

성벽 위에서 아래를 내려다봤다.

그러자 놀라운 장면이 펼쳐졌다.

'와! 가디언 제국이 이곳에 사활을 걸었구나!'

이미 거대한 이데아 제국 수도의 풍모가 엿보였다.

성문 입구에서 깔짝대며 본 것과는 완전히 다른 모습이었다.

벌써 성문 주변으로 반경 2km 정도는 발굴이 끝났다.

물론 아직 도시 입구에서 깔짝댄 수준이지만.

저기가 중심 도로네.

길 너비가 200미터는 되는 것 같았다.

그리고 그 길이 안쪽으로 쭉 이어져 있었다.

'가디언 제국도 바보는 아니네.'

도시 이곳저곳을 발굴하는 건 바보짓이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이데아 제국의 황성.

그곳을 찾기 위해서 지금 가장 큰 대로로 길을 내고, 대로 주변 건물만 발굴하고 있었다.

그건 현명한 선택이었다.

그리고 메인 스트리트 주변에 중요한 건물이 있는 건 당연했다.

난 성벽 반대편으로 내려가 안쪽으로 더 들어갔다.

저들의 전진 상황을 살펴보기 위함이었다.

한참을 들어갔지만, 아직도 끝은 아니었다.

내가 보기에 발굴 작업은 2단계로 이루어지고 있었다.

거대한 마석 굴착기로 구멍을 뚫어 길을 내고, 그곳에서 나온 흙을 대수림에 버리는 작업.

그리고 작업용 마장기들이 대로 주변의 건물을 발굴하는 작업이었다.

지금 대로 양쪽에 커다란 건물들이 보였고, 무너진 건물도 상당수 있었다.

그리고 안으로 들어갈수록 그 높이와 규모가 점점 커지고 있었으니까.

'지금 수준으로 이걸 다 발굴하려면 몇 년, 몇십 년이 아니라 백 년도 더 걸리겠어!'

점점 공기가 탁해지고, 희박해지는 것이 느껴졌다.

그래서인지 대로 중간중간 천장에 구멍을 뚫어 지름 2미터 두께의 커다란 원형 파이프를 박아놓은 것이 보였다.

아마도 대수림 지상까지 연결되어 있는 것 같았다.

한 시간 가량을 더 들어오자, 드디어 끝이 보였다.

굉음 내고 땅을 파는 거대 굴착기와 그 굴착기를 조종하는 작업용 마장기도 보였다.

가디언 제국은 벌써 상당히 파고 들어왔다.

난 주변을 살피고, 굴착기 너머를 향해 마나 탐색을 시작했다.

이데아 제국의 황성이라면 그곳을 지키던 기사들이나 마석 보관 창고, 기간트 공방 같은 중요한 건물이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내 눈엔 아직 마나로 된 물질이 보이지 않았다.

그건 아직 황궁과 멀었다는 방증.

혹시나 몰라 조금 떨어진 건물 뒤쪽에 암 드로운을 꺼냈다.

"주군, 여긴 대체 어딥니까?"

암 드로운은 이곳이 자기가 충성을 바친 제국인 것을 모르고 있었다.

때론 모르는 것이 약이지······.

"설명하면 길어. 일단 저쪽 방향으로 혹시 마나가 보이는지 확인해 봐!"

"네! 마나 탐지 명을 받았습니다."

거신인형의 마나 탐지 능력은 무려 1km나 된다.

암 드로운이 눈을 가리고 있던 고글을 위로 올리더니, 푸른 안광을 뿜어냈다.

저 고글은 케네스 영감이 만들어 준 것이었다.

낮엔 투구 안으로 거신의 눈동자가 선명하게 보였고, 밤에 야간 시야를 할 때는 눈에서 자줏빛 안광이 비췄다.

이건 누가 봐도 기간트가 아니라 살아있는 생명체였기에 그걸 가리기 위해 내가 주문했고, 케네스가 반투명한 선글라스 겸 고글을 만들어 준 것이다.

거신인형이 마나 탐지를 마치고 날 돌아봤다.

"전방엔 아무것도 보이지 않습니다."

역시, 이데아 제국의 황성은 아직 멀었다.

이제 이곳에서 살펴볼 건 다 봤다.

"그만 돌아가자."

"그런데 저쪽에 푸른빛이 보입니다."

"뭐?"

난 거신인형이 바라보는 방향을 쳐다봤다.

메인 대로에 있는 건물이 아니라 그 뒤쪽으로 기둥 2개의 밑단만 살짝 튀어나와 있는 건물이었다.

난 암 드로운과 그곳으로 이동했다.

그리고 기둥 앞에서 마나 탐지를 했다.

"오! 뭔가 있다!"

멀지 않은 곳에 커다란 푸른빛의 물건이 하나 보였다.

그런데 내가 있는 위치보다 한참 아래쪽에도 푸른빛이 보였다.

지하 창고인가?

당장 살펴보고 싶었지만, 문제는 여길 어떻게 들어가는 가였다.

"주군 제게 맡겨 주십시오."

팍! 파팍! 팍!

암 드로운이 자신의 검과 방패로 기둥 사이를 파기 시작했다.

나와 마법인형들은 망을 봤다.

잠시 후에 여섯 개의 기둥이 보였고, 거대한 입구가 드러났다.

암 드로운의 키가 11미터였는데, 입구 크기는 그 3배는 되는 것 같았다.

귀족 집인가?

암 드로운이 문을 두드려봤다.

텅! 텅!

"주군, 속이 비어 있는 것 같습니다."

"그래? 문을 열어봐."

암 드로운이 어깨로 문을 밀었다.

쿵! 끼이이이익! 휘이이이잉!

주변의 공기가 안으로 휘몰아치며 빨려 들어가는 것이 느껴졌다.

암 드로운의 다리를 잡지 않았다면 나도 빨려 들어갈 뻔했다.

이건 희소식이었다.

안에 공간이 있다는 뜻이니까.

조금씩 틈이 나면서 암 드로운이 몸을 넣을 정도까지 벌어졌다.

"잠깐!"

난 사마귀 꼭두각시를 먼저 들여보냈다.

사마귀가 온 사방을 날아다니는 것이 느껴졌다.

"좋아! 안전해. 들어가자!"

화산재가 덮쳤는데 용케도 건물이 무너지거나 안으로 화산재가 들어오지 않았다.

아마도 엄청나게 튼튼하게 지어진 건물 같았다.

"허! 여기 분명 귀족 저택일 거야!"

엄청나게 넓은 홀이 우릴 맞이했다.

창문은 모두 두꺼운 철문으로 닫혀 있었고, 거대한 기둥들이 원형으로 박혀 있었다. 그리고 이 층으로 오르는 두 개의 계단이 용처럼 양쪽 벽을 휘감고 올라가 있었다.

그 웅장함이 보통 귀족은 아닌 것 같았다.

"어! 찾았다!"

대박!

계단 사이에 11미터 크기의 갑옷이 떡하니 세워져 있었다.

밖에서 봤던 푸른빛은 이것이었다.

순간 룩급 오리지널 기간트에 타고 있는 내 모습이 연상됐다.

아니지! 배에 구멍 난 갑옷을 입고 있는 암 드로운에게 먼저 주는 게 훨씬 효율적이지.

[이데아 제국의 열두 기사 - 롤랑 귀네스 백작]

이 저택과 갑옷의 주인 이름이 적혀 있었다.

그는 이 근처에서 죽었겠지?

갑옷을 챙기지도 못할 만큼 급박한 순간이었을 것이다.

잠시 롤랑 귀네스를 향해 묵념했다.

그리고 거대 토우인형과 내 오리지널 마장기를 꺼냈다.

아무리 지하가 궁금해도 이건 무조건 챙겨야 했다.

10분 후 토우인형이 롤랑의 갑옷을 챙겨 인형의 집으로 들어갔다.

난 오리지널 마장기에 타고, 암 드로운과 지하 계단으로 향했다.

계단을 한참 내려가자 곧 계단 끝에 도착했다.

문을 활짝 열었다.

"오오! 이거 일이 이렇게 잘 풀려도 되나?"

57. 어째 일이 술술 잘 풀리네.

57. 어째 일이 술술 잘 풀리네.

번쩍거리는 거대한 클레이모어.

보기만 해도 베일 것 같은 날카로운 소도.

창날이 반을 차지하는 언월도.

시커멓고 묵직한 철퇴.

기간트의 머리도 반으로 쪼개버릴 것 같은 거대한 할버드까지.

이곳은 롤랑 백작의 거대한 지하 훈련장이었고, 벽마다 거대한 무기가 걸려 있었다.

모두 하나같이 마석이 다량 함유돼있었고, 지금까지 잘 보존된 것이 거신 장인의 솜씨로 만든 무기가 분명했다.

하지만 정말 대박인 것은 거신의 명품 무기가 아니었다.

벽 한쪽에 있는 거대한 유리 진열장.

그곳에 내 키보다 큰 책이 한 권 있었다.

[마나 수련법 – 롤랑 귀네스 백작 지음.]

롤랑 귀네스 백작은 위대한 이데아 제국의 열두 기사라 불릴 정도의 최고의 전사이자 마나 능력자였다.

그런 기사가 만든 마나 수련법이라면!!

'이게 진짜 대박이지!'

제국의 근위 기사단인 아란노드 기사단의 후손인 타냐 블랙과 트라스의 개 용병대의 기사들을 얼마 전에 내 부하로 삼았다.

하지만 그들의 부족한 마나가 너무 아쉬웠었다.

타냐 블랙은 나이트급 기간트, 월터와 3명은 폰급 기간트, 나머지 4명은 작업용 기간트밖에 타지 못했으니까.

그래서 효과적인 마나 수련법이 없을까를 고민했다.

그리고 정보국에서 찾은 기간트 생산 공장을 가진 대영지의 가문 정보에서 한번 찾아보려 했다.

하지만 이젠 그럴 필요가 없었다.

그들의 마나 수련법이 아무리 좋아도 거신의 마나 수련법보다 좋을 리가 없으니까.

이건 정말 신이 도왔다고 할 만큼 일이 잘 풀린 것이다!

난 유리 진열장을 열려다가 멈췄다.

'혹시 이거 열었다가 책이 부스러지는 거 아냐?'

얼마나 오래된 책인지 가늠하기도 힘들 정도였다.

화산재가 덮이면서 진공 상태가 되어 지금까지 형태를 보존할 수 있었지만, 갑자기 공기가 통하거나 내가 만지면 완전히 바스러질 수도 있었다.

그러니 일단 아주 조심히 열어야 했다.

드르르르! 휘이잉!

천천히 유리 진열장을 열었다.

다행히 책은 그대로 있었다.

조심히 책 표지를 넘겼다.

"휴! 괜찮네."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마나를 보는 눈으로 살피자, 이 책이 아니라 이 유리 진열장에 마석이 함유되어 있었다.

아마도 진열장에 무슨 마법이 걸려 있었던 것 같았다.

그랬으니, 책이 이렇게 멀쩡하지.

난 천천히 책장을 넘겼다.

이건 마나 수련 교본 같은 것은 아니었다.

롤랑 귀네스 백작의 마나 수행 일기를 날짜별로 옮겨다 적은 것이었다.

첫 머리말을 읽었다.

'롤랑도 쉬운 인생을 산 건 아니었네······.'

보통 이데아 제국의 기사는 4, 5살 때 마나를 느끼고, 12살에 기사의 종자로 발탁 받아 본격적인 기사의 길을 가기 시작한다.

하지만 롤랑은 마나를 19살에 처음 느꼈다고 했다.

남들은 이미 기사가 됐을 나이에 시작했으니, 얼마나 답답했을까?

그가 적은 머리말에서 고스란히 고뇌가 느껴졌다.

하지만 자신은 남들과 다른 혹독한 마나 수련법으로 결국, 기사들을 따라잡고, 제국의 최고 기사라 칭하는 열두 기사가 되었다고 적혀 있었다.

몇 장을 넘기며 읽어봤다.

나도 모르게 살짝 치를 떨었다.

'이거 인간이 할 수 있는 수련법인가?'

혹독한 신체 단련이라고 적혀 있었지만, 이건 혹독한 신체 고문이나 다름없어 보였다.

뭐, 상관없겠지.

내가 수련할 것은 아니니까.

난 전에 암 드로운이 꼭두각시일 때, 영혼 이동을 통해 거신의 마나 호흡법을 자연스레 몸에 익혔다.

그랬기에 시간이 흐를수록 마나량은 자연스레 늘어났다.

물론 싱크로율도 최고였고.

'타냐와 기사들이 고생 좀 하겠지.'

내 기사가 됐으니, 당연히 수준을 올려야지!

오리지널 기간트를 준다고 하면 기사들은 환장하니까, 충분한 당근이 될 수 있을 것 같았다.

어서 빨리 그들을 훈련시키고 싶었다.

'일단 책과 무기부터 챙기자!'

암 드로운과 토우인형, 표범인형을 이용해 롤랑의 무기를 모두 챙겨서 인형의 집으로 옮겼다. 그리고 마나 수련법은 유리 진열장까지 통째로 옮겨 버렸다.

이제 난 오리지널 기간트의 무기를 다수 보유하게 되었다.

그리고 롤랑의 마나 수련법도.

쿵! 쩌저적!

헉 갑자기 벽이 갈라졌다.

'지, 지진?'

기이잉! 쿵! 쿵!

난 곧장 지상으로 향하는 문을 향해 달렸다.

잘못하면 생매장당한다.

쩌억! 우르르르! 콰앙!

'어?'

다행히 더 이상의 흔들림은 없었다.

천천히 고개를 돌리 보자, 한쪽 벽이 무너진 것이 보였다.

그리고 뿌연 먼지 사이로 큰 공간도 보였다.

저기에 왜? 공간이 있지?

조심스럽게 다가가 무너진 벽 너머로 고개를 내밀었다.

"세상에! 하수도가 멀쩡하다니!"

바로 아래쪽은 거대한 지하 수로였다.

이데아 제국의 수도 밑엔 거대한 하수도가 있었다.

거신들의 도시답게 하수도의 위치가 지하 100미터 아래에 있었다.

그러니 가디언 제국이 아직 찾아내지 못한 것 같았다.

그 오랜 세월이 지났음에도 무너지지 않은 곳이 있다니 신기했다.

대체 이 하수도가 어디까지 이어질까?

한쪽은 무너져 막혀 있었고, 한쪽은 시야가 닿는 곳까지 뻥 뚫려 있었다.

확인해 보자.

난 오리지널 마장기에 타고, 한참을 하수도를 걸었다.

"아! 완전히 다 뚫린 건 아니네."

2km쯤 이동했을 때, 앞이 막혀 있었다.

괜찮다.

이 정도 거리를 그냥 이동할 수 있었다면, 이건 아주 좋은 소식이자 고급 정보였다.

이 하수도는 수도 구석구석까지 이어져 있을 것이고, 분명 황성도 예외는 아닐 것이다.

그러니 가디언 제국처럼 무식하게 대로를 뚫고 황성까지 가는 것보다, 이곳처럼 곳곳에 뻥 뚫린 곳이 많을 테니 하수도를 뚫고 황성으로 가는 것이 훨씬 빠르고 힘도 덜 들 것이다.

만약 아베르크 제국과 가디언 제국이 서로 싸우지 않고, 거신의 유산을 각자 찾기로 협상을 맺을 수 있다면, 내 정보를 이용해 우리 아베르크 제국이 이데아 제국의 황성을 먼저 찾을 가능성이 훨씬 컸다.

그 과정에서 난 롤랑의 갑옷과 무기들을 찾은 것처럼 마나를 뿜어내는 눈을 이용해 하수도를 다니면서 귀족 저택을 찾아내 지속해서 파밍 할 수 있었다.

그러니까 오늘 같은 일이 일회성이 아니라, 가끔 벌어질 수 있다는 말!

특히 기사의 갑옷을 더 찾을 수만 있다면, 난 오리지널 기간트가 주력인 군단을 만들 수도 있었다. 물론 기술력을 지금보다 몇 배는 더 늘려야겠지만.

그리고 이건 나도 좋지만, 아베르크 제국에게도 당연히 좋은 일이었다.

아무래도 황성에 진귀한 물건도 많을 거고, 기사들도 많이 묻혀 있을 테니, 기사의 갑옷도 많이 챙길 것이다.

만약 가디언 제국이 먼저 황성을 찾고 내부를 턴다면, 군사력이 비슷한 두 제국의 힘이 가디언 제국으로 확 기울어질 것이다.

반대로 아베르크 제국이 먼저 황성을 찾아낸다면!

한 마디로 누이 좋고 매부 좋고, 꿩먹고알먹고.

그리고.

'이거 잘만 하면 중령이 아니라 대령으로 진급하는 거 아냐?'

아! 정보국은 대령이 없다고 했지.

그럼 바로 별을 다는 건가?

아! 그것도 아니다. 정보국은 대령이 없는 대신 실무 책임자인 중령에서 아주 오랫동안 머물러야 한다고 들었다.

그랬기에 정보국에 소위 다음으로 가장 많은 장교 계급이 중령이기도 했다.

내 직속 상사인 헬다임 지부장인 프레디 준장은 무려 8년을 중령으로 보냈다고 들었다.

그러니 중령 진급은 가능하겠지만, 장군은 아직 먼 이야기였다.

아무튼, 이건 엄청난 고급 정보였고, 써먹을 곳이 많았다.

'그만 돌아가자.'

오늘은 너무 일이 잘 풀려 살짝 불안하다.

저택 밖으로 나와서 거대한 문을 닫고, 거신인형과 기간트를 이용해 입구에 다시 흙을 덮고 단단히 다졌다.

이번엔 전에 보였던 기둥 밑단까지 완전히 덮어버렸다.

이제 이곳의 정보는 당분간 나만 알고 있었다.

내 마법인형들과 기간트를 모두 넣고, 암 드로운과 둘이서 대로 옆길을 이용해 성문으로 이동했다.

사람의 욕심이란 것이 끝이 없는지, 성문으로 향하는 중에도 마나 탐지를 계속했지만, 아쉽게도 아무것도 발견하지 못했다.

성문에 도착하자, 지금도 작업용 마장기들이 쉴새 없이 철로를 이용해 흙을 나르고 있었다.

'참! 열심히들 산다.'

덕분에 마나 호흡법과 롤랑의 갑옷과 다수의 무기를 얻었으니, 고마운 마음도 살짝 있었다.

난 내 마장기와 거신인형을 인형의 집에 넣었고, 표범인형을 이용해 성벽 위에 올라갔다.

그리고 반대편으로 넘어가려 했을 때였다.

조금 떨어진 야영장에 비숍급 마장기 2대와 나이트급 마장기 2대, 폰급 마장기 1대가 해치를 연 상태로 세워져 있었다.

이건 마치······.

'나더러 가져가라는 말인가?'

솔직히 난 기간트나 마장기나 둘 다 상관없었다.

작동방식이 다른 것도 아니고, 유일하게 걸리는 것이 마석 배터리의 크기와 모양이 다른 것이었다.

하지만 지금 내 인형의 집엔 마장기용 배터리도 잔뜩 있었다.

케네스 영감이 내 오리지널 마장기에 쓸 수 있도록 충전해 준 것이다.

'마장기 기사들은?'

몇 명은 모닥불 앞에 앉아서 고기를 굽고 술을 마시고 있었고, 두 명은 체스를 두고 있었다.

그리고 이곳 야영지 주변은 병사들이 순찰하고 있었다.

다 차려진 밥상을 외면하는 건 도리가 아니고.

'그래 챙기자!'

어차피 이곳에서 더 얻을 정보도 없었다.

준비를 끝내고, 난 성벽 위에서 작전을 지휘한다.

이번 작전의 생명은 신속함과 은밀함이다.

'가라! 치타!'

크아앙!

다다닥!

체스를 두던 기사 한 명이 고개를 돌렸다.

"뭐, 뭐야?"

퍼억!

콰직!

"으악!"

표범인형이 앞발로 기사 한 명의 머리를 후려쳤고, 곧바로 앞에 앉은 다른 기사의 목을 물어버렸다.

술을 마시던 기사들이 마장기로 달리기 시작하지만 이미 늦었다.

인간이 표범인형보다 빠를 순 없으니까!

표범인형이 기사들을 앞질러 앞발을 휘둘렀다.

촤악! 촤악!

무기도 들지 않은 기사들은 표범 괴수의 상대가 아니었다.

순식간에 둘이 더 쓰러졌고, 마지막 남은 기사는 자신의 마장기가 아니라 반대편으로 달렸다.

순찰하던 병사들은 괴수를 보자, 이미 혼비백산해 사방으로 물러섰고.

"지금이다!"

거신인형과 거대 토우인형을 마장기 뒤쪽에 배치했다.

하지만 인형의 집에 넣기 위해선 10분을 기다려야 했다.

일단 기사가 마장기에 타는 것을 막았으니, 이미 작전은 90% 정도 성공한 셈이었다.

잠시 후.

흙을 나르던 작업용 마장기들이 우르르 몰려오기 시작했다.

'치타! 가만히 있지 말고, 움직이며 저들을 유인해!'

작업용 마장기도 마장기!

한두 대라면 어떻게 해보겠지만, 순식간에 수십 대의 작업용 마장기가 달려들었기에 표범인형도 피해야 했다.

경비가 전보단 강화됐기에 통로 입구 쪽에도 마장기가 있었기에 저들이 오기 전에 마장기를 챙겨야 했다.

그럼 가디언 제국은 누구 소행인지도 모를 거다!

기이잉! 쿵쿵쿵!

입구 쪽에 있던 마장기가 멀리서 다가오는 모습이 보였다.

표범인형으로 최대한 시선을 끌었다.

'좋아! 시간 됐다! 암 드로운 마장기 챙겨!'

[네! 주군!]

거신인형이 양 옆구리에 비숍급 마장기를 끼워 들었다.

내가 토우인형을 조종해 나이트급 마장기 하나를 거신인형의 어깨에 올렸다.

지금 암 드로운은 3대의 마장기를 몸에 걸친 것이다.

마지막으로 토우인형으로 2대의 마장기를 들었다.

'인형의 집으로!'

쓰윽!

거신인형과 토우인형이 다섯 대의 마장기를 들고 사라졌다.

작전은 대성공.

이제 남은 건 탈출뿐이었다.

미리 매달아 놓은 밧줄을 타고 성벽 아래로 내려갔다.

너무 높았기에 떨어지면 그냥 사망이었기에 최대한 천천히 내려갔다.

사마귀 밧줄 잘라!

사마귀가 자른 밧줄을 한곳으로 치워 증거를 없애고, 기중기를 향해 달렸다.

사마귀 꼭두각시도 인형의 집에 넣었고.

마지막으로.

'치타도 인형의 집으로!'

슈욱!

표범인형도 챙겼다.

그렇게 난 싱크홀을 탈출했다.

'하아! 참 보람찬 하루였어.'

시간을 따지면, 거의 이틀에 가까운 하루였다.

그래도 마지막에 멀쩡한 마장기를 5대나 추가로 챙겼으니 대박이었다.

지금 내 인형의 집에 있는 기간트 대부분은 부서지거나 해치가 망가졌기에 상당한 수리가 필요했다.

당장 마나인형이 탈 수 있는 기간트는 있었지만, 한 대라도 더 부서지면 꼭두각시 한 명이 놀아야 했다.

하지만 가뭄의 단비처럼 마장기 다섯 대를 챙겼으니, 당분간 마법인형이 놀 일은 없었다.

'근데 얘는 어디 갔지?'

만나기로 약속한 장소에 왔는데, 에테나가 보이지 않았다.

순간 불안한 생각이 들었다.

납치? 감금? 아니면 괴수의 습격을 받았나?

그때 수풀이 부스럭거렸다.

"무사하셨네요."

"휴! 왜 빨리 나오지 않았어?"

"여기서 가까운 곳에 기간트와 마장기가 대치 중입니다."

"뭐?"

"그곳을 지켜보고 있다가 타일러님이 나오시는 걸 보고, 달려오느라고 늦었네요."

기간트라니? 파이컬 중령팀은 모두 카야킨 기지로 갔을 텐데?

"에테나! 서둘러 가보자."

***

작은 공터에서 10대의 기간트, 11대의 마장기가 서로를 향해 으르렁거렸다.

[여긴 우리 아베르크 제국의 관할 구역이다!]

[대수림에 관할 구역이 어디 있느냐?]

[우리 블랙힐 전진 기지가 근처에 있으니, 우리 구역이다!]

[우리 보르자 기지도 멀지 않은 곳에 있다!]

[웃기지 마라! 블랙힐 전진 기지가 더 가까우니까 우리 구역이다!]

[그렇게 따지면 우리 보르자 기지가 2배 더 크니까 관할 구역을 2배 더 크게 잡아야지!]

키보드 워리어처럼 두 제국군이 무기를 겨누며 주둥이로만 떠들고 있었다.

하지만 둘 다 물러서지 않는 것이 언제 전투가 벌어져도 이상하지 않을 상황이었다.

난 기간트의 검은색 보호 장갑을 보자마자 정체를 알았다.

그들은 록체스터 가문의 기사들이었다.

'하여간 귀족 놈들은 정치인들과 똑같다!'

더럽게 말을 안 들어 처먹어.

시안 군단장이 블랙힐 기지를 지키라고 했으니, 그냥 지키면 되는 것이다.

하지만 솔버리 백작도 내 보고를 함께 들었으니, 화산 지대에서 가디언 제국이 뭔가 찾고 있는 걸 알고 있었다.

그러니 뭔가 챙길 수 있는 것이 있을까 해서 수색팀을 보낸 것이다.

문제는.

'이대로 전투가 벌어지면 협상은 완전 나가린데······.'

두 제국이 전쟁을 벌이는 것보다, 서로 황성을 찾기 위해 힘을 쏟아야 중간에서 내가 챙길 게 많아진다.

'젠장! 이젠 싸움을 말려야 한다니!'

하아! 하루가 다 끝난 게 아니었어.

이렇게 고군분투하는 것을 누가 알아줄까?

그때 에테나가 날 보고 미소를 지었다.

그래, 네가 알아주는구나!

이제 내가 나설 차례였다.

58. 북부군 사령관.

58. 북부군 사령관.

그런데 21대나 되는 저 거대 병기를 어떻게 말리지?

힘으로 찍어 누를 수도 없고.

숫자는 가디언 제국의 마장기가 한 대 더 많았다.

룩급 기간트는 서로 한 대씩 있었지만, 비숍급 마장기가 가디언 제국군이 2대 더 많았다.

그러니 양이나 질적으로도 록체스터 가문이 불리했······.

[니 애미는 창녀냐!]

[뭐? 창녀? 이 미친 새끼가! 그럼 넌 괴수 밑에서 나온 놈이냐!]

[뭐라? 괴수 밑?]

어? 어째 갑자기 분위기가 더 험악해진다.

[으아! 이 개새끼, 죽인다!]

기이이잉! 쿵! 쿵!

[조져!]

끼이잉! 쿵! 쿵!

[쳐라!]

[젠장! 죽여라!]

누가 먼저라고 할 것 없이 기간트와 마장기가 동시에 달려들었다.

이건 내가 어떻게 말릴 시간이 없었다.

이미 엄마 욕을 할 때부터 선을 넘었다.

용병들이 욕하는 것을 봤다면 이런 건 아무것도 아닌데······.

쾅! 콰콰쾅! 쿵!

육중한 진동과 굉음이 대수림을 울렸다.

대수림 공터에서 20여 대의 거대 병기가 싸우는 모습은 장관이었다.

'인생사 좀 쉽게 가는 일이 없네.'

고개를 흔들었다.

지금도 벌여놓은 일이 너무 많아서 이제 하나씩 정리도 좀 하고, 이곳 발굴 현장에 가끔 와서 파밍이나 하면서 천천히 전력을 보강하고 내가 구매할 영지나 살펴볼 생각이었다.

그런데 이것들이 죽자고 싸우네······.

"타일러님, 누가 이길까요?"

"서로 숫자가 비슷하니, 지휘관의 역량에 따라 달라지겠지. 유리한 건 가디언 제국일 거야."

"그래요? 오오!"

에테나는 거대 병기가 싸우는 모습이 신기한 듯했다.

하긴 전에 난민 기지에서 아리칸 공국의 기간트와 싸울 때도 엘프들은 밖에 있었으니, 이런 싸움은 본 적이 없었을 것이다.

'응? 그래도 록체스터 가문의 지휘관이 뛰어난 편이네.'

맨 오른쪽에 기량과 실력이 뛰어난 비숍급 기간트를 배치해서 방금 마장기 한 대를 잡았다. 그리고 그 옆에 기간트와 힘을 합쳐 마장기를 공격하며 뱀의 꼬리를 잡아먹듯이 밀고 올라가는 전략을 쓰고 있었다.

'저런 전술도 가능하구나!'

기간트끼리 힘 싸움이나 제대로 된 전투는 직접 본 적이 없었기에 이 전투는 내게 새로운 전술을 깨우쳐 주고 있었다.

'어? 가디언 제국의 지휘관도 같은 전략을 쓰네."

난 눈을 똥그랗게 뜨고 전투를 지켜봤다.

적의 지휘관도 상대의 전략을 보자 대응하지 않고, 같은 전략을 쓰고 있었다.

일종의 맞불 작전.

이건 가디언 제국의 지휘관도 실력이 만만치 않다는 뜻이었다.

중앙엔 룩급 기간트와 마장기가 서로 힘을 겨루고, 양 끝에선 서로의 꼬리를 먹고 먹히는 치열한 전투가 벌어졌다.

지금까진 막상막하! 박빙의 싸움이었다.

"와! 신기한 싸움이네요."

에테나의 눈이 반짝였다.

"저도 기간트에 타고 싶네요."

"응?"

에테나의 눈에서 욕심이라고 할까? 아니면 열망? 그런 간절한 감정들을 처음으로 느꼈다.

하긴 엘프도 기간트나 마장기에 타기만 한다면, 자신들의 운명을 인간들에게 맡길 필요도 없겠지.

그건 오크나 드워프도 마찬가지일 테고.

다들 얼마나 기간트에 타고 싶을까?

그 열망은 나도 어느 정도는 알고 있었다.

타일러 빈스 역시 마나를 느끼지 못해, 아버지에게 버림받아 가문에서 쫓겨났고, 살기 위해 정보국에 들어간 거니까.

하지만 이건 내가 도와줄 수 없는 문제였다.

나처럼 거신인형에게 영혼 이동을 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혹시, 롤랑의 마나 수련법에 뭔가 있지 않을까?'

인형의 집을 열어 암 드로운에게 책을 펼치게 했다.

마나를 잘 느끼게 하는 방법이 없나?

이계 난민들도 이곳 대수림에서 산지 벌써 10여 년이 됐다고 들었다. 대수림은 상황이 열악하지만, 마나가 풍부해 가끔 기사들도 능력을 키우기 위해 오기도 한다고 들었다.

그러니 엘프나 이계 난민들도 이 세계의 마나를 한번 느끼기만 하면, 롤랑의 마나 수련법으로 어떻게든 마나를 키워 기간트에 태울 수도 있어 보였다.

'문제는 마나를 느끼게 할 방법이 없네······.'

롤랑의 책을 이십여 장이나 빠르게 넘겨봤지만, 마나 훈련 방법이나 혹독한 수련법 말고는 다른 내용은 없었다.

그래도 이데아 제국의 수도를 뒤지다 보면, 다른 마나 수련법이나 거신 마법사들이 남긴 책을 찾을 수도 있었고, 마나를 느끼는 법이 있을지도 몰랐다.

'아! 혹시 나는 원래 아무런 마나가 없었기에 대수림에 와서 마나를 느낄 수 있었지만, 엘프나 오크, 드워프는 원래 자신들이 살던 세상의 마나를 몸속에 품고 있으니, 이곳 세상의 마나를 느끼지 못하는 게 아닐까?'

불현듯 그런 생각이 들었다.

그러니까 마나를 느끼기보다, 몸에 있는 마나를 비우는 것이 먼저일 것 같았다.

이 문제는 나중에 고민해 봐야겠다.

방법을 못 찾아도 본전이지만, 찾으면 초대박이니까.

만약 이계 난민이 이 세계 마나를 익히는 방법만 알아낸다면, 굳이 내 기사들을 제국의 귀족이나 기사로 채우지 않아도 될 테니까!

"타일러님, 무슨 생각을 그렇게 하세요?"

"응?"

"전투가 끝나가네요."

"아!"

전투를 보다가 딴생각을 했다.

사실 일부러 끝날 때까지 놔둔 거지만.

그래서 결과는?

'역시 지휘 역량이 비슷하다면 숫자가 많고, 급수가 더 높은 기간트나 마장기가 많은 쪽이 이길 가능성이 컸지.'

[죽어!]

콰직!

한쪽 팔을 잃은 룩급 마장기가 룩급 기간트의 해치를 검으로 찔러 마무리했다.

룩급 마장기가 비록 팔 하나를 잃었지만, 비숍급 마장기 2대가 살아남았기에 결국 가디언 제국이 승리를 거둘 수 있었다.

좋은 전투 전략과 박빙의 실력을 보여준 기간트와 마장기 기사들이었다.

그랬기에 가디언 제국군이 승리했지만, 크게 환호하진 않았다.

아니, 격렬한 전투 후유증으로 마장기들이 바닥에 주저앉았다.

'이제 내가 나설 차례로군.'

싸움을 말리는 것은 실패했지만, 이 싸움이 외부로 전해지는 것만 막으면 싸움을 말리는 것과 같은 효과가 있었다.

이곳은 대수림!

강한 괴수를 만나면, 사냥팀이 실종될 수도 있는 곳이니까.

거신인형이 알리만(lv.8) 꼭두각시와 네자드(lv.7) 꼭두각시가 탈 마장기 2대를 근처에 꺼내 놓았다.

암 드로운은 내가 숨어 있는 거대한 나무 뒤로 이동했고, 알리만과 네자드는 비숍급 마장기와 나이트급 마장기를 타고, 전투가 벌어진 장소로 이동시켰다.

내가 굳이 오리지널 마장기를 타고 나설 필요도 없었다.

기이잉! 쿵! 쿵!

아군 마장기의 등장에 승리한 마장기 기사들은 아무런 의심도 못 하고, 격렬한 전투 후에 찾아온 달콤한 승리감에 도취 되어 있었다.

두 마장기가 가까이 다가오자, 록급 마장기가 자리에서 일어나며 말했다.

[너희는 어서 기지에 알려라! 그리고 여기 부서진 마장기와 기간트가 많으니까, 처리팀도 좀 부르고.]

쿵! 쿵! 쿵!

[응? 내 말이 안 들리나?]

촤악! 콰앙!

[뭐야?]

알리만과 네자드가 탄 마장기가 앉아서 쉬고 있던 마장기들의 해치를 찔렀다.

너무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라 그들은 제대로 싸워보지도 못하고 당했다.

그때 한쪽 팔을 잃은 룩급 기간트가 반대쪽으로 달리기 시작했다. 그는 눈치를 채고 도망치고 있었다.

하지만 난 이미 암 드로운을 나무 뒤에 배치해 놓았다.

부웅! 쩍!

롤랑의 지하 훈련장에서 챙긴, 명품 대도의 성능이 좋긴 좋았다.

일격에 반대쪽 팔과 해치까지 부숴버렸다.

이제 이번 전투에서 살아남은 사람도 목격자도 모두 사라졌다.

그러니 두 제국군이 싸웠다는 증거도 없었다.

굳이 말리지 않았어도 결과는 같았다.

아니지, 부서진 기간트와 마장기를 얻었다. 그리고 비상용으로 가지고 다니던 마석 배터리도 챙겼고.

'좋아! 주변을 전부 정리하고, 이쪽으로 모아!'

두 꼭두각시가 마장기를 타고 움직였고, 암 드로운이 한 번 더 기간트를 꺼냈고, 라구즈와 아리칸 공국 출신 꼭두각시를 꺼내 정리를 도왔다.

그러자 1시간 만에 주변 정리가 끝났다.

내 인형의 집엔 또다시 10대의 부서진 기간트와 11대의 부서진 마장기가 추가됐다.

'이거 점점 카야킨 전진 기지의 보물섬처럼 되는 거 아냐?'

멀쩡한 기간트나 마장기는 얼마 되지 않았고, 죄다 부서진 것들만 모으고 있었다.

드워프들이 이걸 빨리 수리할 수 있도록 케네스 영감에게 기술을 잘 배워야 할 텐데······.

기술을 전수해 주기로 한 케네스 영감이 치매라 살짝 걱정됐다.

그렇게 아주 긴 하루가 끝났다.

***

[블랙힐 기지]

쾅!

"뭐라? 2군단이 왔다고?"

시안 오드로 5군단장은 책상을 주먹으로 내려치고, 인상을 찡그렸다.

"대체 폐하께서는 무슨 생각이시지? 내가 여기 있는데, 형님을 보내시다니!"

그는 지금 화가 많이 나 있었다.

길버트 대령이 말했다.

"아무래도 사안이 크다 보니······."

"뭐라? 내가 이 정도 일을 못 맡을 거라 보는가?"

"그, 그것이 아니라······."

길버트 대령은 위로한다고 한 말이었지만, 7황자의 심기를 거슬렀다.

그때 5군단의 참모이자 보병대 지휘관인 부르크 중령이 나섰다.

"진정하십시오. 아직 정식 명령이 내려온 것이 아니지 않습니까."

"하지만 그건 당연하지 않은가. 호엘 형님은 나이도 많고, 전쟁 경험도 풍부하니까. 총책임자를 맡겠지."

똑똑똑!

하사관이 안으로 들어왔다.

"충! 지금 기지 입구 야영지에서 회의한다고 합니다. 지휘관과 장교들은 모두 집결하라는 명령입니다."

"뭐라? 뻥 뚫려 있는 입구에서 전체 회의를? 벌써 제멋대로군!"

"아마도 이곳은 5군단이 먼저 와서 자리를 잡고 있으니, 불편하다는 것이겠지요. 그리고 자리를 비우라는 뜻도 있을 겁니다."

부르크 중령이 말했다.

"서두르시죠. 늦으면 괜히 꼬투리만 잡힐 겁니다."

"젠장, 가자!"

5군단의 지휘관들과 장교들이 회의실을 나섰다.

***

중앙에 여러 개의 의자가 놓여 있었고, 상석으로 보이는 큰 의자가 하나 있었다.

그리고 중앙을 중심으로 외곽에 기사들과 장교들이 앉아 있었다.

"와! 이게 다 기간트 기사들과 장교들이라고?"

"왜? 이 정도 규모는 처음인가?"

"네!"

"사실 나도 처음이야!"

지휘관과 기사들, 장교들이 웅성거리고 있었다.

제국의 2개 군단이 모인 것도 흔한 일이 아닌데, 대수림의 각 전진 기지에서 파견된 영지군의 기간트에 제국의 대영지인 록체스터 가문과 헤이스팅 가문에서 보내온 기간트까지 모였다.

게다가 헬다임 장벽 사령부의 기간트와 병사들까지 모였기에 기지 내부가 좁아서, 지금 기지 입구 쪽에 대수림을 베어내고 거대한 야영지를 만들고 있었다.

"저기 봐! 록체스터 가문의 솔버리 백작과 헤이스팅 가문의 월로프 백작이야!"

살짝 배 나온 솔버리 백작과 키가 큰 월로프 백작이 먼저 나와 중앙에 마련된 의자에 앉았다.

이곳엔 전진 기지에서 온 각 영지의 귀족들도 많았지만, 그들은 끗발이 낮았기에 이곳에 앉지 못했다.

"오! 케니스 영지의 웨슬리 슈나이더 백작이다!"

"그래 저 사람이라면 저기 앉을 만하지!"

거구의 웨슬리가 성큼성큼 다가오더니 빈자리에 앉았다.

다른 두 대영지의 백작은 그런 웨슬리를 못마땅한 표정으로 바라봤지만, 룩급 오리지널 기간트에 타는 웨슬리 백작을 무시할 순 없었다.

그때 검은 제복을 입은 호리호리한 사내가 걸어 나왔다.

"저 사람은 누구야?"

"정보국 제복인데? 별이 3개야!"

"정보국장 찰스 그레빌 중장이다!"

누군가 정보국장을 알아봤다.

"세상에! 저런 거물이 여기 있다니!"

평소라면 감히 얼굴조차 마주치지 못할 사람이었다.

정보국장도 중앙으로 다가가 빈자리에 앉았다.

다들 서로 고개를 숙이며 인사를 했다.

"어? 시안 5군단장님이다."

입구에 있던 몇몇 장교가 황족을 보고 벌떡 일어섰다.

시안은 손바닥을 아래로 까딱거리며 앉으라는 신호를 보냈다.

지금 그는 황자 신분이 아니라 군단장 신분이었으니까.

시안 군단장 역시 견장에 금색 별 3개가 달려 있었다.

시안이 중앙에 마련된 의자에 앉았다.

이미 앉아 있는 사람들은 일어서진 않았지만, 고개를 숙이며 예를 표했다.

"오오! 호엘 2군단장님이다!"

"저기 삼황자님 풍채 좀 봐!"

사자의 어깨에 표범 같은 허리, 갑옷을 입지 않아 온몸의 각진 근육이 그대로 드러나 있었다.

호엘 2군단장은 중앙으로 가지 않았다. 대신 2군단 기사들과 장교들이 앉아 있는 앞으로 가더니, 주먹을 번쩍 들어 올렸다.

"호엘 삼황자님 멋있다!"

"호엘 군단장이 최고다!"

"와아아!"

그 모습을 지켜보던 기사들과 장교들은 그들의 단합력에 고개를 끄덕였다.

역시 후계자 서열 2위의 삼황자 다운 쇼맨십이었다.

호엘 삼황자는 흡족한 표정을 짓더니, 중앙으로 성큼성큼 다가갔다.

그리곤 앉아 있는 사람들에게 다가갔다.

삼황자가 다가가자, 정보국장이 어쩔 수 없이 자리에서 일어섰다.

"오랜만이오. 찰스 정보국장."

서로 악수를 하고, 삼황자는 다음 사람인 웨슬리 백작에게 향했다.

그렇게 다른 사람들과 일일이 악수를 하고, 시안 5군단장 앞에 섰다.

시안 오르도는 어쩔 수 없이 일어섰지만, 호엘 오르도는 그를 무시하고 빈자리에 앉았다.

'뭐지? 상석에 앉지 않는다고?'

시안 오르도는 자신을 무시한 것보다 왜 그가 상석에 앉지 않는 것인지 그것이 궁금했다.

"모두 기립하시오! 북부군 총사령관께서 나오십니다."

모여 있는 모든 사람이 자리에서 일어섰다.

자리에서 일어선 시안은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북부군이라고?'

제국 북부는 장벽과 대수림밖에 없었기에 동부군이나 남부군 서부군과 달리 북부군이란 부대나 명칭 자체가 없었다.

그때 야영지 쪽에서 두 사람이 걸어 나왔다.

시안은 두 눈을 똥그랗게 떴다.

"어?"

어깨에 4개의 별을 달고 있는 윌리엄 호세스 장벽 사령관과 그 뒤에는 이번에 진급한 호위기사 엠버 대령이었다.

윌리엄 호세스 대장은 상석에 앉았고, 엠버 대령은 그 뒤에 기립해 서 있었다.

"다들 앉으시오."

중앙에 지휘관들이 앉자, 외곽에 기사들과 장교들도 자리에 앉았다.

"내가 이번에 새로 창설된 북부군 사령관과 헬다임 장벽 사령관을 겸하게 됐소이다."

시안 5군단장의 입꼬리가 살짝 올라갔다.

북부군 사령관이 자기 둘째 부인의 외삼촌이었으니까.

모든 자리가 채워지고, 모두가 지켜보는 상황에 회의가 시작했다.

그런데!

꽤에에에엑!

"괴, 괴수다!"

"으헉!"

갑자기 야영지 쪽이 시끄러웠다.

"워워! 진정해!"

타일러 소령과 엘프가 4미터 크기의 커다란 괴조를 타고, 야영지로 들어왔기 때문이었다.

타일러와 엘프가 괴조에서 내렸다.

괴조의 입에는 재갈이 물려 있었고, 등엔 세 사람은 탈 수 있는 안장이 놓여 있었다.

하사관들과 병사들은 어쩔 줄 몰라 했다.

"괜찮아! 내가 길들인 놈이니까!"

타일러는 에테나에게 괴조의 고삐를 맡기고, 장교들이 모여 있는 끝쪽 구석 빈자리에 앉았다.

그런데 그 모습을 지휘관들과 모두가 멍하니 지켜보고 있었다.

"푸하하하!"

그때 윌리엄 호세스 대장이 크게 웃으며 고개를 흔들었다.

그리곤 엠버 대령을 쳐다봤다.

"의자 하나 더 가져오게!"

"네!"

엠버 대령이 하사관을 불렀다.

윌리엄 대장은 타일러를 향해 손짓했다.

"타일러 소령! 이리 오게!"

59. 특별고문.

59. 특별고문.

"대체 저 사람이 누구야?"

"뭐야? 정보국 장교네."

"소령인데 엄청 젊어 보이는데?"

내가 중앙으로 다가갈수록 주변에서 수군거리는 말소리가 점점 커졌다.

"어? 저기, 하사관이 의자를 가져오는데?"

"설마, 저기 앉는 건 아니겠지?"

"에이! 중령, 대령도 다 이쪽에 앉아 있는데, 설마."

"아! 맞다. 우리 부군단장님은 준장이잖아. 장군도 우리처럼 외곽에 앉았는데, 소령이 설마!"

나도 설마, 윌리엄 사령관이 옆에 앉힐까 봐 조금 불안하다.

그냥 조용히 등장할걸.

하지만 내가 새로 발견한 정보를 홍보하기 위해선 이런 극적인 등장이 필요했다.

돈 벌 기회를 놓칠 순 없지 않은가!

"충! 타일러 빈스 소령. 사령관님의 부르심을 받고 왔습니다!"

"하하하! 자네 관종인가?"

윌리엄 사령관이 할아버지 같은 웃음을 지으며 물었다.

"네? 아닙니다."

"그럼, 저기 타고 온 건 뭔가?"

윌리엄 사령관은 내가 타고 온 괴조를 향해 턱짓했다.

"아! 전체 장교 회의가 있다고 해서 급하게 오다 보니, 어쩔 수 없이 타고 왔습니다."

"그러니까 저게 뭐냐고?"

"이 주변에 육식이 아니라 채식하는 괴수를 찾아냈습니다. 이름은 안당고낙이라고 지었습니다."

"채식? 괴수가? 허! 특이하군. 그런데 안당고낙이라는 이름의 뜻은 뭔가?"

"뜻은 없습니다. 그냥 생각나는 대로 지었습니다."

사실 이름은 그냥 상태창에 나온 이름으로 불렀다.

"계속해 보게."

"저기 저놈은 7개월 된 새끼로 보통 1년이 되면 성체가 되고, 최장 25년까지 살 수 있습니다. 아직 다 자란 것도 아닌데, 보다시피 체격이 말보다 2배는 크고, 힘이 좋아 단 한 마리로 룩급 기간트를 실은 마차 하나를 끌 수 있습니다. 그리고 한 번에 세 사람이 등에 타고 달릴 수도 있고, 말처럼 건초를 따로 싣고 다닐 필요도 없습니다. 이놈들은 대수림의 풀이라면 어떤 것이든 환장하고 잘 먹거든요."

윌리엄 사령관의 눈빛이 반짝였다.

"공격성은?"

"물론 괴수답게 상당히 공격적입니다. 자신보다 큰 괴수도 겁내지 않고 달려들고, 부리로 쪼면 폰급 기간트 장갑도 뚫립니다. 발톱이 상당히 길고 날카로워 사람은 그냥 반으로!"

휘익!

손으로 발톱 모양을 만들어 허공을 긋자, 윌리엄 사령관과 지휘관들이 흠칫 놀란 표정을 지었다.

"그런데 자넨 어떻게 저걸 길들였나?"

"그게 제 노하우라서 말씀드리기 좀 곤란합니다."

"어허! 지금 이 자리가 어떤 자리인지 모르나? 자네가 먼저 발견했고, 자네가 길들일 방법을 알아냈다면, 북부군 사령관의 이름으로 여기 있는 기사들과 장교들 앞에서 내가 보증하지. 앞으로 누구도 자네 노하우를 넘보지 못하게 하겠네! 됐나? 어서 말해보게!"

윌리엄 사령관이 크게 호통을 치며 말했다.

내가 윌리엄 사령관을 좋아하는 이유가 이것이었다.

겉으론 소리치지만, 이것은 내게 공식적으로 괴수를 길들인 특허권을 챙겨주는 것과 같았다.

"죄송합니다. 제 생각이 짧았습니다. 일단 성체를 잡아서는 도저히 방법이 없습니다. 먼저 안당고낙의 알을 배양해, 갓 태어난 새끼 때부터 키운다면 공격성을 현저히 줄일 수 있습니다. 그리고 새끼 한 마리당 사육사 한 명을 붙여 어미와 새끼 관계를 처음부터 만들어야 합니다. 놈들은 생후 2주쯤에 눈을 뜨는데, 이때 처음 본 생명체를 어미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어미의 습성을 그대로 따라 하기에 그걸 이용해 훈련한다면, 말처럼 타고 다니거나 마차를 끌게 할 수 있습니다. 만약 대수림에서 안당고낙을 말 대신에 쓸 수 있다면 우리 군에 막대한 이득을 줄 수 있을 거라 자신합니다."

윌리엄 사령관은 흐뭇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또 한 가지 더 말씀드리자면, 이 녀석은 다리 길이가 길어 대수림 이동에 적합하고 지구력이 좋아서 기존 대수림 이동시간을 1/2에서 1/3까지 획기적으로 줄일 수 있습니다. 그리고 달리는 속도도 빨라 정찰이나 수색, 괴수 유인 같은 임무에도 활용할 수 있습니다."

"오! 훌륭하군! 인간이 대수림에 들어온 지 300년이 지났네. 그 오랜 세월 동안 우린 이런 정보를 얻지 못했네. 아니 노력도 하지 않았지. 그런데 이제 대수림 2년 차인 정보국 장교가 이런 귀환 정보를 알아내다니, 정말 대단하네."

"과찬이십니다."

윌리엄 사령관이 지휘관들을 향해 말했다.

"다들 보셨소? 이런 능동적인 인재가 많아야 우리 아베르크 제국이 대륙의 패권을 가져올 수 있는 거요."

윌리엄은 슬쩍 시안 군단장 쪽을 보며 말했다.

그런데 반응은 호엘 군단장이 했다.

"제가 보기에도 이건 아주 훌륭한 발견입니다. 특히 대수림의 이동시간을 2, 3배나 단축한다는 것은 혁명이나 마찬가지입니다. 저 안당고낙이라는 괴수를 대량으로 길들일 수만 있다면, 대수림뿐만 아니라 다른 전선에서도 쓸 수 있을 겁니다."

호엘 군단장이 날 칭찬하고, 정보국장을 쳐다봤다.

"아주 뛰어난 부하를 두셨습니다. 찰스 경."

"감사합니다. 2군단장님."

찰스 정보국장은 삼황자의 칭찬을 살짝 고개를 끄덕이며 받았다.

정보국장은 참 말수가 적은 사람이었다.

분위기가 좋았다.

그럼 쐐기를 박자!

"윌리엄 사령관님, 가능하다면 안당고낙 사육을 제가 맡고 싶습니다."

"응? 가능하겠나?"

"이계 난민 기지에 사육 환경을 조성할 생각입니다. 그리고 일단 안전을 위해 인간이 아닌 오크들에게 사육을 맡길 생각입니다."

"음! 하긴 인간이 하기엔 조금 위험해 보기긴 하네."

그때 케니스 영지의 웨슬리 슈나이더 백작이 손을 들었다.

"웨슬리 경, 무슨 할 말이 있소?"

"안당고낙의 첫 번째 구매와 테스트가 필요하다면 저희 케니스 전진 기지가 하고 싶습니다."

"그래요?"

"저희 기지는 사냥용 기간트는 많은데, 작업용 기간트 숫자가 많이 부족합니다. 타일러 소령이 말한 능력의 절반 수준이라고 해도 작업용 기간트보다 괴수 부산물을 더 많이 수송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첫 주문으로 20마리를 살 수 있게 해주십시오."

"이런 벌써 구매처까지 생겼네. 이러니 허락을 안 할 수 없군."

윌리엄 사령관이 고개를 끄덕이며 날 쳐다봤다.

"타일러 소령, 허락하지. 예산이나 물자가 필요하면 카야킨 기지에 청구하게."

"충! 감사합니다."

왠지 짜고 치는 고스톱 같지만, 이건 나도 좋고 우리 아베르크 제국에도 좋고, 북부군 사령관도 좋은 일이었다.

그리고 방금 내게 도움을 준 웨슬리 백작을 향해 살짝 고개를 끄덕여 감사를 전했다.

한 마리는 서비스로 줘야겠어.

"타일러 소령, 이리와 내 옆자리에 앉게."

말이 끝나기 무섭게 솔버리 백작이 손을 들고 말했다.

"그럴 순 없습니다."

"솔버리 경, 무슨 말씀이시오?"

"이 젊은 장교의 능력이 좋다는 건 잘 알겠습니다. 하지만 여기 모여 있는 분들이 누굽니까. 군단장님들과 백작 이상의 귀족들, 그리고 정보국장님입니다. 이런 자리에 소령이 함께하다니요."

헤이스팅 가문의 월로프 백작이 손을 들었다.

"저도 솔버리 경과 같은 생각입니다. 이 자리엔 격이 맞지 않습니다."

그는 이곳에 70기의 기간트를 끌고 왔다.

"전 타일러 소령이 그만한 능력이 된다고 봅니다. 이 회의에 큰 도움이 될 겁니다."

그래도 웨슬리 백작이 내 편을 들었다.

짧은 동행이었지만, 그와 한 달여를 이동하며 많은 대화를 나눴다. 그는 나더러 군에서 제대하면 무조건 케니스 대영지로 오라는 제안도 했다.

어떻게든 오리지널 기간트를 구해준다고도 했고.

찰스 그레빌 정보국장은 내 상사였기에 뭐라 말하지 못했고, 방금 날 칭찬하던 호엘 군단장은 가만히 있었고, 시안 군단장 역시 조용했다.

침묵은 긍정의 뜻이겠지.

4대1로 여기 앉으면 안 될 것 같았다.

"전 그럼 뒤로 가서 앉겠습니다."

"잠깐 기다리게."

윌리엄 사령관이 두 백작을 쳐다봤다.

그리곤 다른 군단장들을 쓱 쳐다보며 말했다.

"타일러 소령이 내가 헬다임 장벽 사령관에 부임할 때, 내 목숨을 구한 일은 따로 말하진 않겠소."

이미 다 말해 놓고, 말하지 않겠다니······.

얼굴이 다 후끈거린다.

"하지만 대수림에서 거신 갑옷 4개를 찾아온 것은 말해야겠소. 그리고 저 간악한 살루스 왕국 놈들이 우리 영지의 사냥팀을 공격하고 죽인 것을 알아냈고, 또 그들을 퇴치하는데 큰 공을 세웠소. 여기 대수림에서 타일러 소령보다 더 활약한 분이 계시오? 아니면 그보다 더 대수림 전문가가 있소?"

다들 대답을 하지 못하자, 윌리엄 사령관은 그럴 줄 알았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러니 대수림 전문가가 한 명 정도는 회의에 참여해도 되겠지요?"

강압적으로 무조건 명령했다면 다른 지휘관들이 반감을 품을 수도 있지만, 윌리엄 대장은 총사령관이면서도 또박또박 이유를 설명해 주고 있었다.

이게 원래 윌리엄 사령관의 스타일이지.

하지만 두 백작은 여전히 똥 씹은 얼굴이었다.

그러자 윌리엄 사령관이 살짝 입술을 내밀며 무언가 결심한 표정을 지었다.

"좋소! 그럼 타일러 소령을 내 대수림 특별고문으로 임명하지."

"예? 특별고문이요?"

다들 놀란 표정을 지었다.

특별고문이란 황제에게 자문하는 추밀원과 같은 것이었다.

대수림에서 윌리엄 대장에게 자문을 해주는 공식적인 자리에 날 앉힌 것이다.

이것은 어쩌면 참모보다 나를 더 우대해 준다는 뜻이었다.

순간 코끝이 찡했다.

'날 이렇게까지 챙겨준다고?'

윌리엄 사령관이 두 백작을 쳐다봤다.

"이래도 부족하시오?"

"아, 아닙니다."

"특별고문이라면, 이 자리에 충분히 앉아도 되지요."

두 백작이 꼬리를 내렸고, 두 군단장은 별말이 없었다.

그럼 긍정의 뜻이었다.

"타일러 특별고문. 이리 앉게."

"충! 감사합니다."

얼떨결에 특별고문이 되어 북부군 총사령관 옆자리에 앉았다.

순간 불안한 생각이 들었다.

'이거 날 이렇게 띄워주고 얼마나 부려 먹으려고······.'

왠지 가시방석에 앉은 느낌이다.

"자! 회의를 시작하지."

***

윌리엄 호세스 사령관은 자유롭게 자기 의견을 말하도록 놔두었다.

시안 5군단장과 록체스터 가문, 헤이스팅 가문은 당장 가디언 제국군을 공격하자는 말을 했다.

발굴지 위치가 이곳 블랙힐 기지와 가까우니 당연히 우리 제국의 소관이고, 저들은 우리 제국의 영토를 침범했다는 의미였다.

그리고 호엘 2군단장과 웨슬리 백작은 전쟁보다는 먼저 협상을 하자고 제안했다.

평소 호전적인 성격으로 알려진 호엘 군단장이 오히려 평화를 원했다. 그리고 웨슬리 백작은 대수림에 대해 잘 알고 있었고, 일단 전쟁이 시작되면 두 제국의 세력이 서로 비슷하니 많은 기사와 병사가 죽거나 다칠 수 있다며, 전쟁을 최대한 피하자는 뜻에서 협상하자고 했다.

'시안은 전쟁으로 변수가 생기길 바라고, 호엘은 지금 상태를 유지하고 싶은 거구나!'

시안 7황자는 후계 서열 3위까지 올라갔지만, 황태자나 삼황자와 격차가 상당히 벌어져 있었기에 이대로라면 그는 황제가 되기 힘들었다.

그러니 뭔가 새로운 돌파구가 필요했을 것이다.

그는 이곳에서 전쟁이 일어나 승리해서 윌리엄 호세스 대장의 명성이 더 올라가 제국 수비군 전체를 총괄하는 원수 자리에 앉길 바라고 있을 것이다.

그가 자신을 밀고 있으니, 그의 성공이 곧 자신의 성공이고, 이는 단숨에 후계 구도를 3파전으로 끌고 갈 수도 있음이다.

반면에 호엘 삼황자는 지금 상황을 유지하고 싶은 것 같았다.

현재 세력이 황태자와 엇비슷했고, 황궁에서 가만히 앉아 있는 황태자보다 여러 전선을 다니며 이름을 날리고, 기간트 기사들의 압도적인 지지를 바탕으로 황위를 노린다는 계산이 깔려 있었다.

'그런데 저 양반 생각은 모르겠네······.'

조용히 이야기를 듣고만 있는 찰스 정보국장.

그는 양측의 이야기를 들으면서도 표정 변화가 거의 없었다.

아니면 아무 생각도 없는 건가?

에테나가 옆에 있어도 저 사람의 표정을 읽어 내기가 힘들 것 같았다.

"당장! 놈들을 우리 땅에서 몰아내야 합니다!"

솔버리 백작이 말했다.

그는 몇 달 전에 록체스터 수색팀이 통째로 사라진 것을 가디언 제국의 소행이라고 여기고 있었고, 복수해야 한다며 혈압을 높이고 있었다.

"대수림에서 영토를 주장하는 건 괴리가 있습니다. 그리고 일단 시작하면 한쪽이 완전히 무너질 때까지 전쟁은 끝나지 않을 겁니다. 그 뒷감당을 생각하셔야지요."

웨슬리 백작이 반론했다.

이번엔 시안 5군단장이 말했다.

"그것도 생각해야 합니다. 저들이 거신의 수도에서 거신 갑옷을 대량으로 발견한다면, 팽팽한 두 제국의 군사력이 저들 쪽으로 확 기울어질 수도 있습니다. 그러니 하루빨리 놈들을 제압해야 합니다."

"그렇다고 무작정 전쟁을 시작하게 되면 양측 다 상당한 피해를 볼 것이다! 이길 수 있을지도 의문이고."

호엘 2군단장이 말했다.

"그리고 싸우더라도 일단 저쪽과 협상을 하고 그 후에 해도 늦지 않아."

"시간이 늦어질수록 저들이 방어 태세는 굳건해 질 겁니다. 그럼 공격하는 우리 군의 피해가 더 커질 겁니다."

"뻥 뚫려 있는 대수림에서 방어 태세가 무슨 소용인가? 기간트를 우회해서 공격하면 되니, 그건 상관없다."

"그러다 매복을 당할 수도 있습니다."

"어허! 전투 경험도 없으면서 지금, 이 형님을 가르치려 드는 것이냐!"

어느새 시안과 호엘, 두 사람만 큰 소리로 떠들고 있었다.

"그만!"

그때 윌리엄 사령관이 단번에 두 사람을 조용히 시켰다.

"두 군단장의 이야기는 잘 들었소. 그런데 우리가 협상을 하자고 해도 저들이 받아줄지는 의문이오."

윌리엄은 시안 군단장의 편을 드는 것 같았다.

사령관이 나를 쳐다봤다.

"타일러 소령, 자네 생각은 어떤가?"

"네? 저요?"

모두의 시선이 내게 향했다.

"자넨 내 특별고문이니, 생각난 것이 있으면 말해보게."

난 정보국장을 한번 쳐다봤다.

찰스 국장도 내 이야기가 궁금한지 상체를 앞으로 내밀었다.

"전 전쟁을 하고 안 하고의 문제를 이 자리에서 결정하기보단, 우리의 목적이나 목표를 먼저 확고하게 정해야 한다고 봅니다."

"응?"

"어떤 전쟁이나 전투든, 분명한 목적이 있습니다. 저기 작물이 잘 자라는 비옥한 땅을 우리가 차지해야겠다. 아니면 여기 고지를 점령하면 우리가 방어하는 데 매우 유리하겠다. 하다못해 동네 불량배도 저놈이 재수 없이 생겼으니 때려야겠다라는 웃지 못할 이유가 있습니다. 그런데 우린 지금 급하게 여러 군이 모여 어수선한 상황이고, 어떠한 큰 목적이나 목표를 정하지도 않고, 먼저 전쟁을 논하고 있습니다. 이건 뭔가 앞뒤가 안 맞는 것 같습니다."

윌리엄 사령관이 고개를 끄덕였다.

"사실 새벽에 자다 일어나 갑자기 북부군 사령관에 임명됐고, 저들의 병력이 이미 집결했다고 들었네. 난 이곳까지 급하게 달려오면서 별생각이 다 들더군. 이렇게 엄청난 돈을 들여서 기간트와 병력을 잔뜩 모았는데, 빈손으로 돌아가면 어떻게 하지? 전쟁이 벌어지면 우리가 이길 수 있을까? 저들의 병력이 더 많으면 어떻게 하지? 그리고 우리 제국의 젊은 기사들과 병사들이 내가 결정을 잘못 내려서 죽으면, 그 책임을 어떻게 질까? 전쟁하지 않고, 해결할 방법은 없을까? 어떤 것이 최선이지?"

그의 말에서 총사령관의 고뇌가 느껴졌다.

윌리엄 사령관이 심각한 표정을 지으며 지휘관들을 쳐다봤다.

그리고 윌리엄은 두 군단장을 향해 말했다.

"지휘관이나 명령을 내리는 자의 자세는 그런 것이네. 내 이익보다 제국의 이익을, 그리고 내 목숨보다 기사들과 병사들의 목숨을 먼저 생각해야 하네. 그리고 타일러 소령이 말한 것처럼 먼저 확고한 목표를 세워야 그것에 맞춰 계획을 짜고, 작전과 전략을 세울 수 있네. 이건 기본 중의 기본이야."

윌리엄 사령관이 솔비스 백작과 월로프 백작을 쳐다봤다.

"어떠시오? 내 특별고문의 의견이?"

"조, 좋은 의견 같습니다."

"저도 목표를 먼저 세우는 게 좋다고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이 양반 뒤끝 있네.

"자! 이제부터 회의 주제를 바꾸도록 하지. 우리 북부군의 최종 목표부터 정한다."

윌리엄 사령관의 말에 분위기가 단숨에 바뀌었다.

그리고 회의의 주제와 분위기를 한 번에 바꾼 나를 향한 기사들과 장교들의 눈길이 느껴졌다.

이거 너무 주목받으면 안 되는데······.

하지만 북부군 총사령관의 특별고문이 됐으니, 이미 주목받고 있었다.

60. 타일러 중령.

60. 타일러 중령.

당장 실행 가능한 목표.

실행은 불가능해 보이지만, 달성하고 싶은 목표.

그 사이의 접점을 찾는 것이 어쩌면 이상적인 목표가 아닐까?

"놈들을 이데아 발굴지에서 완전히 몰아내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 아베르크 제국이 발굴 작업을 독점해야 합니다."

"솔비스 백작의 말이 맞습니다. 제국의 영지군과 가용할 수 있는 군단과 병력을 총동원하여 작업 구역을 나누고, 이데아 수도 발굴에 우리 제국의 모든 역량을 쏟아야 합니다. 이것은 역사적인 발굴이기도 하지만 거신들의 기술을 알아낼 더없이 좋은 기회이기도 합니다."

윌리엄 사령관이 고개를 끄덕였다.

"일단 이데아 제국의 수도를 우리가 독점 발굴해야 한다는 목표가 맞소?"

"그렇습니다."

"네. 맞습니다."

두 백작은 이데아 수도 발굴 작업을 아베르크 제국이 독점하자는 목표를 말했다.

그래야 자신들에게 떨어지는 것이 많을 테니까.

호엘 2군단장이 입을 열었다.

"하지만 현실적인 문제를 생각해야 합니다. 발굴지를 독점하기 위해선 먼저 지금 이곳에 집결한 가디언 제국군을 섬멸해야 합니다. 잠깐, 저들의 병력이 얼마나 되지?"

호엘은 고개를 옆으로 돌려 시안 5군단장에게 물었다.

만약 제대로 대답하지 못한다면, 블랙힐 기지에 몇 달이나 먼저 왔으면서 놀고 있었다는 뜻이 되기에 한순간에 능력 없고 게으른 놈으로 낙인찍힐 수도 있었다.

"혹시 모르는 건가?"

시안 군단장은 웃으며 대답했다.

"발굴지와 보르자 전진 기지를 합하면 900기 정도의 마장기가 있고, 병력은 대략 4천 정도 있습니다. 근거 자료와 저들의 움직임을 기록한 일지를 보여드릴까요?"

시안 군단장이 제대로 대답하자, 호엘 군단장은 정색하며 앞을 보고 설명을 이었다.

"우리 2군단의 기간트가 160기에 5군단이 90기, 장벽 사령부의 기간트가 200기, 두 대영지군이 110기, 대수림 전진 기지에서 모인 영지군의 기간트가 대략 250기 정도니······."

"총 810기입니다."

내가 대답했다.

"그래, 810기. 고맙네."

호엘 군단장이 다시 말을 이었다.

"우리 기간트의 숫자가 저들보다 거의 100기나 부족합니다. 물론 이 정도 숫자라면 지휘관과 기사들의 능력으로 충분히 극복은 가능합니다. 하지만 저들의 레이킨 전진 기지에도 기간트가 많으니, 그 병력까지 상대하려면, 전투에서 승리도 해야 하고 병력도 많이 남겨야 합니다."

"우리 카야킨 전진 기지에도 기간트가 있으니, 불러오면 되지 않습니까?"

솔비스 백작이 끼어들었다.

"그러다가 레이킨 전진 기지의 병력이 이쪽으로 오지 않고, 우리 카야킨 전진 기지를 공격해 점령하면요? 보급로가 막혀 블랙힐 기지가 아사할 수도 있습니다. 카야킨은 우리 전진 기지들의 중심입니다. 그리고 그곳은 지키기는 쉽지만, 다시 뺏기는 어려운 곳으로 무조건 기간트를 남겨야 합니다."

호엘 군단장은 호전적이라 알려졌지만, 지금 보니 꽤 냉철하고 계산적이었다.

역시 사람은 직접 겪어 봐야 안다.

시안 5군단장이 나섰다.

"그렇다고 저들이 발굴 작업을 계속하게 둘 순 없습니다. 그러다 거신 갑옷을 다수 발견해 모두 오리지널 마장기를 만든다면, 지금의 전력이나 기간트 숫자는 큰 의미가 없습니다."

윌리엄 사령관이 듣고 있다가 시안 군단장에게 물었다.

"5군단장은 거신 갑옷을 우선으로 발굴해야 한다는 목표를 말한 것이오?"

"그렇습니다. 다른 것보단 거신 갑옷을 우리가 최대한 많이 확보해야 한다는 것이 제 목표입니다."

윌리엄 사령관이 호엘 군단장을 쳐다봤다.

"호엘 군단장은 어떻게 생각하시오?"

"저도 거신 갑옷을 확보하는 것엔 동의합니다. 하지만 그것 때문에 전면전을 벌이는 것은 배보다 배꼽이······."

"일단 목표부터 정하겠소, 아니면 이 회의는 언제 끝날지 모르니까."

"그럼 저도 거신 갑옷을 최대한 확보하는 걸 목표로 하겠습니다."

윌리엄 사령관이 교통정리를 했다.

"찰스 정보국장, 듣지만 말고 이제 경도 의견을 내 보시오. 그대가 내 임명장을 가져왔으니, 황제 폐하의 의중을 가장 잘 알고 있지 않소."

황제의 의중이란 말에 모든 시선이 찰스 국장을 향했다.

"폐하께선 그저 윌리엄 북부군 사령관님을 최대한 지원하라고만 하셨습니다."

"그래요?"

"다만 지금은 휴전 중이긴 하지만, 동부 전선도 가디언 제국과 대치 중이고, 해외 식민지에서도 계속 병력을 요청하고 있고, 최근엔 아리칸 공국의 움직임도 심상치 않다고 하시며, 최대한 전쟁은 자제했으면 하십니다. 하지만 가디언 제국이 커지는 것을 절대 용납하진 말라고도 하셨고요."

윌리엄 사령관은 입맛을 다셨다.

최대한 지원만 한다고 하더니, 일종의 가이드 라인까지 말한 것이다.

케니스 대영지의 웨슬리 백작이 손을 들었다.

"저도 전쟁은 반대하지만, 저들이 오리지널 마장기가 늘어나는 것은 두고 볼 수 없습니다. 그들은 분명 우리 제국을 공격할 테니까요."

"그렇다면, 웨슬리 경도 거신 갑옷을 최대한 확보하는 것이 목표로군요."

"그렇습니다."

"그래도 점점 목표가 하나로 모이고 있군."

윌리엄 사령관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곤 바로 날 쳐다봤다.

"내 특별고문은 우리 북부군의 목표를 뭐로 자문해 주실 건가?"

그 순간 다시 주변의 시선이 일제히 내게 모였다.

부담스럽게······.

"저도 거신의 갑옷을 최대한 확보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싶습니다."

"그렇군."

다들 그럴 줄 알았다는 표정이었다.

"그리고······."

"그리고?"

"좀 더 상세한 목표를 하나 더 잡고 싶습니다."

"상세한 목표?"

다시 시선이 내게 모였다.

"전 5군단의 기사들과 함께 직접 발굴 현장을 가봤습니다."

"그래?"

윌리엄은 처음 듣는다는 표정이었다.

"바로 근처에서 화산이 터져 모든 것을 집어삼켰을 겁니다. 도시도, 거신도, 모든 생명체도요. 안에 살던 거신들은 탈출도 못 하고, 그 자리에서 죽은 거로 보입니다."

"그렇겠지. 안타까운 일이군."

"그럼 거신의 갑옷이 어디에 가장 많이 있을까요?"

갑작스러운 내 질문에 윌리엄 사령관이 잠시 생각에 잠겼다.

"그거야 황궁 아니겠나? 그곳엔 기사들이 많이 지키고 있을 테니까."

"맞습니다. 전 우리의 목표를 이데아 제국 수도 발굴이 아니라, 이데아 황궁 발굴로 잡고 싶습니다."

"황궁 발굴이라······."

"아마도 수도 전체에서 발견할 갑옷보다, 황궁에서 발견할 거신 갑옷 숫자가 훨씬 많을 겁니다. 그리고 지금 가디언 제국 역시 황궁 발굴을 목표로 움직이고 있습니다."

"뭐라?"

다들 깜짝 놀란 표정을 지었다.

이건 나만 알고 있는 정보였으니 놀랄 만도 하지.

"확실한가?"

"제 두 눈으로 똑똑히 보고 왔습니다. 그리고 최대한 비슷하게 지도와 현장을 그려왔습니다."

"허! 어서 가져오게."

난 에테나를 향해 손짓했다.

그러자 에테나가 안당고낙의 고삐를 끌고 다가왔다.

모여 있는 지휘관들이 살짝 긴장한 표정을 지었다.

"저 괴조는 정말 괜찮은 건가?"

"부리로 쪼거나 할퀴는 건 아니지?"

다들 불안해하기에 내가 일어나 에테나에게 다가가 서류를 건네받았다.

에테나가 한쪽으로 걸어가자, 주변 기사들과 장교들의 시선이 그쪽으로 쏠렸다.

에테나를 보는 건지, 안당고낙을 보는 건지 나도 잘 모르겠다.

남자 놈들이란······.

"모두 똑같은 자료입니다."

그리고 자료를 사령관과 지휘관들에게 나눠주었다.

"오! 이게 이데아 제국의 수도라는 건가!"

"정말 정교하군."

"놀라긴 이릅니다. 이건 겨우 수도로 들어가는 11번째 외부 출입문과 반경 2km의 도시 초입일 뿐이니까요."

"와! 도시를 이렇게 정확한 구역으로 맞춰 지으려면 엄청난 건축 기술이 필요할 텐데! 과연 거신들의 도시답네."

솔직히 내가 처음에 그린 건 너무 허접했다.

그래서 에테나에게 설명하면서 다시 그랬더니, 순식간에 지금의 지도로 바뀌었고, 내가 직접 본 광경과 매우 흡사했다.

그때 시안 군단장이 손을 들었다.

"다섯 번째 페이지에 이 작은 원과 선은 뭐지?"

"그 작은 원이 앞장에서 보셨던 외부 출입문과 발굴지 초입이고, 그 선은 현재 저들의 발굴 방향과 끝 지점입니다."

"뭐? 벌써 이렇게나 많이 전진했다고?"

다들 경악했다.

작은 원이 2km인데 새끼손톱만 했다.

그런데 선의 길이는 한 뼘은 됐으니까.

"너무 놀라실 필요는 없습니다. 이곳이 어딘지 잊으셨습니까? 거신들의 수도입니다. 지금 가디언 제국이 파고 들어간 수준은 우리 수도와 황성의 거리로 따지면 1/5도 되지 않습니다. 그러니까 1년 동안 겨우 그 정도 전진했다는 말입니다."

"아! 아직 멀었군."

"대체 이런 정보는 어디서 얻은 거지?"

그때 호엘 군단장이 호기심 어린 표정으로 물었다.

"아까 말씀드렸다시피 발로 뛰었지요."

"그 말이 사실이라고? 그럼 정말 저들의 발굴지 깊숙이 들어갔다는 말인가?"

"그렇습니다."

호엘 군단장이 눈을 깜빡이며 경악했다.

그리고 정보국장을 쳐다봤다.

"허! 정보국이 대수림에 지부를 만들었다는 소문은 들었습니다. 이제 보니 이유가 다 있었군요. 찰스 경의 혜안에 감탄했습니다."

"제가 한 일은 없습니다. 다 타일러 지부장이 한 일입니다."

"지부장이요? 타일러 소령, 아니 특별고문이 정보국 지부장이란 말입니까?"

"네."

호엘 군단장이 날 빤히 쳐다봤다.

난 그의 뜨거운 시선을 피하며 말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우리가 저들보다 먼저 황궁에 도착할 방법이 있다는 겁니다."

"뭐라? 타일러 특별고문, 그게 정말인가?"

윌리엄 사령관이 기대에 찬 표정을 지었다.

"네! 일단 자료를 먼저 보여드리겠습니다."

내가 손을 뻗자, 어느새 내 뒤로 다가온 에테나와 안당고낙.

"히익!"

"으헉!"

바로 뒤에 4미터 크기의 괴조가 서 있자, 앉아 있던 지휘관들이 화들짝 놀라 일어섰다.

"걱정하지 마십시오. 이놈은 아주 훈련이 잘된 놈이라 공격하진 않습니다."

"휴! 알았네."

난 에테나가 건넨 서류를 다시 사람들에게 건넸다.

이렇게 두 번 고생하는 이유는 사람들에게 안당고낙이 위험하지 않다는 인식을 한 번 더 심어주기 위해서였다.

아무리 길들었다 해도 괴수와 함께 다니는 것은 누구나 꺼려지기 때문이었다.

서류를 본 지휘관들이 다시 경악했다.

"하수도라고!"

"지하에 하수도가 멀쩡하다니!"

이번엔 윌리엄 사령관도 놀라는 표정을 지었다.

"제가 직접 확인한 하수도는 2km 정도 되는 길이었습니다. 끝이 막히긴 했지만, 그 길이를 아무 제약도 없이 그냥 이동했습니다. 그리고 이 하수도는 분명 황궁까지 이어져 있을 겁니다."

"이 하수도를 이용해 발굴 작업을 진행한다면 저들보다 먼저 황궁에 도달할 수 있다는 말이군."

"그렇습니다. 참고로 저들이 2km를 전진하려면 보통 보름 정도 걸립니다."

윌리엄 사령관이 고개를 흔들며 웃고 있었다.

내 정보가 아주 마음에 든다는 뜻이었다.

"아! 물론 우리가 새로운 발굴지 입구와 하수도를 빨리 찾아야 합니다."

호엘 군단장이 물었다.

"세상에! 이런 엄청난 정보를 혼자서 알아 온 건가?"

"제가 조사할 때는 저들의 경계가 심하지 않을 때라, 운이 좋았습니다."

"잘했네. 타일러 소령."

갑자기 시안 군단장이 끼어들었다.

"내 기사들과 이데아 발굴지를 살핀 임무에 무사히 성공했으니, 곧 큰 포상을 내리겠네."

언제는 위험하다며 가지 말라더니, 금방 말이 바뀌네.

은근슬쩍 내가 자기 라인이라고 광고하는 것 같았다.

윌리엄 사령관이 바로 끼어들었다.

"발굴지 입구를 찾는 건 어렵지 않을 거네. 그 북쪽 일대가 전부 거신의 수도일 테니까. 그런데 차라리 위에서 구멍을 여러 개 뚫어 점진적으로 황궁을 찾는 방법도 있지 않겠나?"

"저도 그 방법을 생각해봤습니다. 그런데 지도가 있다면 모르지만, 거신의 수도라 그 도시가 얼마나 클지, 그리고 우리가 뚫은 구멍이 어디쯤인지 도저히 찾을 길이 없다는 겁니다."

대수림에 위성이 있는 것도 아니고, 공중을 나는 괴수는 대수림의 땅에 사는 괴수보다 더 위험했다.

그리고 대수림의 땅은 매우 딱딱해 땅을 파는 것도 쉬운 일은 아니었다.

"그리고 대수림의 거신목을 베고 길을 내는 시간보다 땅을 파는 게 더 빠를 겁니다. 제 생각에는 일단 큰 구멍을 하나 뚫고, 가장 큰 메인 하수도를 따라가다 보면 황성이 나올 가능성이 클 겁니다."

"무슨 말인지 알겠네. 자네 말대로 하수도는 충분히 해볼 만한 계획이야."

"문제는 가디언 제국이 그냥 보고만 있진 않을 겁니다."

"그렇겠지."

"만약 우리가 가디언 제국과 협상을 해서 전쟁 없이 따로 발굴 작업을 하자고 설득한다면, 가능하지 않을까요?"

"하지만 저들이 협상에 응할까?"

"응하지 않을까요?"

"왜 그렇게 생각하지?"

"저들도 지금 발굴 작업을 방해받고 싶어 하지 않을 겁니다. 그리고 자신들이 훨씬 빠르다고 생각할 테니까요."

물론 내가 지난 몇 개월간 지독하게 괴롭힌 것도 있고.

덕분에 부서진 마장기도 좀 챙겼고.

***

우리 북부군의 목표는 황궁 발굴과 그곳에 있는 거신 갑옷을 최대한 확보하는 것으로 정해졌다.

하지만 가디언 제국과 협상하자는 내 의견을 두고, 방법과 조건을 두고 또 회의하고 있었다.

회의 지옥인가?

무슨 말들이 저리 많은지 모르겠다.

난 도저히 버티지 못하고 화장실을 핑계로 자리를 잠시 벗어났다.

"타일러 중령, 어디 가는가?"

"충!"

정보국장에게 경례했다.

그는 경례를 받더니, 오늘 처음으로 미소를 지었다.

"국장님, 지금 절 부르신 겁니까?"

"그렇네. 타일러 중령."

뭐야? 중령?

나 또 진급한 거야?

61. 동아줄.

61. 동아줄.

"오늘 자네의 활약을 보니, 그동안 올라온 보고서는 자네 능력의 십 분의 일도 제대로 담고 있지 않더군."

"과찬이십니다."

"내 앞에선 겸손 떨 필요 없네. 정보국은 좀 거만한 것이 오히려 자신감 넘쳐 보이고, 좋아."

"아! 조언 감사합니다."

갑자기 찰스 정보국장이 바지 주머니를 뒤지기 시작했다.

"응? 내가 어디에다가 뒀더라? 분명 챙겼는데?"

"상의 주머니를 보십시오."

찰스 국장이 제복 안쪽 주머니에서 작은 상자를 꺼냈다.

"이게 뭔지 아나?"

"중령 계급장 아닙니까?"

찰스 국장은 피식 웃었다.

"눈치도 빠르군."

방금 중령이라고 불렀잖아!

찰스 국장은 내게 상자를 건넸다.

"축하하네. 타일러 중령."

"충! 감사합니다."

국장이라고 계급장을 달아주지도 않는 건가?

소령 진급 후 거의 1년 만이었다.

남들은 최소 5년은 돼야 진급한다는데······.

사실 별 감흥은 없었다.

이젠 계급장보단 내 영지를 갖고 싶었으니까.

"그다지 기쁘지 않은 표정이네만?"

"아닙니다. 뛸 뜻이 기쁩니다."

찰스 국장은 고개를 흔들었다.

"자네가 헬다임 지부로 보낸 가디언 제국의 병력 배치와 주변 상황 정보 말이네. 덕분에 우리 정보국의 체면을 살렸네. 윌리엄 사령관께서도 꽤 칭찬하셨고."

"제 할 일을 한 겁니다."

"사실 이곳에 오기 전까지만 해도, 자네가 보낸 정보가 그렇게 중요한 정보라고 생각진 못했네. 그래서 자네에게 중령 계급장이면 충분할 거로 생각했지······."

"······?"

"하지만 오늘 자네 활약을 보니, 얼마 지내지 않아 내 자리까지 넘보겠더군."

"에이! 그럴 리가 있겠습니까. 전 이제 중령인데요."

"아무튼, 이번에 북부군이 잡은 목표 말이야. 잘 완수하도록 최선을 다해 윌리엄 사령관님을 돕게. 그럼 이번 임무가 끝난 다음 자네 계급장은 별이 반짝일 테니까."

"정보국은 중령에서 오랫동안 머물러야 한다고 들었는데요?"

"그거야 보통 사람들 이야기지. 자넨 이미 사령관님의 특별고문이 아닌가."

"충! 열심히 하겠습니다."

별을 준다는 말에 나도 모르게 목소리가 커졌다.

찰스 국장은 피식 웃으며 고개를 흔들었다.

"아! 왜 윌리엄 사령관께서 자네만 보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드는지 알겠어."

"네?"

"어딘가 모르게 좀 부족한 것도 같고, 또 어떨 때 보면 치밀한 여우고, 막 챙겨주고 싶다가도 어딘가 밉상인 것도 같고, 또 능력은 뛰어나니, 안 챙겨줄 수도 없고. 그리고 오늘처럼 갑자기 큰 문제의 해결책을 떡하니 내주니, 시원하게 등을 긁어 주기도 하고. 도대체 자네 정체가 뭔가?"

뭐지?

회의하는 동안에 나만 감시한 건가?

그냥 슬쩍 넘기자.

"클린드 부국장께서는 제가 운이 좋아서 맘에 든다고 하셨습니다."

"한 번이면 운이라고 할 수 있지. 하지만 그 운이 계속 겹치면 그거 실력이야. 앞으로도 자네의 운이 쭉 좋았으면 좋겠군. 나도 자네 덕분에 끝까지 올라갈 수 있게."

"감사합니다. 열심히 하겠습니다."

끝까지라면 다음 추밀원장 자리를 노리나?

"나중에 나도 저 괴조에 타볼 수 있을까?"

"네? 타보고 싶으십니까? 언제든지 가능합니다. 제가 있을 때 말씀하십시오."

"알았네."

찰스 국장은 안당고낙을 한번 쳐다보더니, 회의가 한창인 곳을 향해 걸었다.

그러다 무언가 생각난 듯 몸을 돌려 다가왔다.

"아! 자네 부친 말이네."

"네?"

"왜, 정보국으로 자넬 찾아달라는 의뢰가 왔지?"

"글쎄요. 전 가문에서 이미 내놓은 몸이라 연락을 안 한 지 꽤 됩니다."

"어허! 가문에서 내놓았다고, 그 핏줄이 어디 가는가. 아무튼, 우린 정보국은 보안을 중시하니, 알려줄 수 없다고 했네."

"감사합니다."

"그리고 자네 약혼녀도 찾는다고 하던데."

"약혼녀요?"

"무려 1년 반 전에 가문에서 도망쳤다고 들었네. 할데가르를 지나 헬다임으로 간 것까진 확인이 되는데, 그 뒤론 도무지 찾을 길이 없네."

"저도 그건 잘 모르겠습니다."

샤를린, 그녀는 카야킨 전진 기지에 있을 텐데······.

난 그녀가 어디 있는지 알고 있었지만, 찾아보진 않았다.

괜히 아픈 옛 기억을 끄집어낼 필요는 없으니까.

내 표정을 보던 찰스 국장이 또다시 머리를 흔들었다.

"자네 소문은 이미 남쪽 영지에도 퍼졌을 거야. 그냥 시간 날 때, 집에 편지나 한 장 쓰게."

"먼저 가십시오. 전 잠시 머리 좀 식히고 오겠습니다."

"멀리 가진 말게. 자넨 윌리엄 사령관님의 특별고문이 아닌가."

"네······."

***

오랜만에 간이침대에 허리를 쭉 펴고 누웠다.

'역시 인간은 땅에 살아야 해.'

그동안 딱딱한 나무 위에서 잔다고, 등이 배겨 힘들었다.

'이제 곧 결정이 나겠지.'

이미 판은 벌어졌다.

아베르크 제국과 가디언 제국이 치고받고 싸우든지, 아니면 협상을 잘 맺어 서로 사이좋게 발굴 작업을 하든지 하겠지.

그리고 내가 그동안 가디언 제국군을 잘 괴롭혀 줬으니, 어느 정도 도움도 줬고.

맞은편 침대에 앉아 있는 에테나가 물었다.

"회의에 돌아가셔야 하는 거 아니에요?"

"이미 내 정보는 다 풀었어. 난 자문하는 사람이지 결정하는 건 저 사람들이 알아서 할 거야."

머리 아픈 회의는 그만이다.

전쟁을 벌인다면, 그 사이에서 최대한 챙기면 되고, 협상을 벌여 서로 발굴을 하겠다면, 내 계산대로 하수도 가까운 곳을 마나 탐색으로 검색해 귀족 저택만 골라 안전하게 파밍 하면서 오리지널 기간트 숫자를 늘리면 된다.

그리고 가끔 괴수 마법인형도 만들고.

인형의 집을 열었다.

기이잉! 쿵! 쿵!

대형과 진형 훈련을 하고 있던 기간트 넷이 나를 향해 무릎을 꿇었다.

[주군을 뵈옵니다!]

[주군을 뵈옵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암 드로운이 내게 무릎을 꿇었다.

"주군을 뵈옵니다!"

'암 드로운, 매번 그렇게 인사 안 해도 된다니까.'

"신하 된 자, 어찌 예를 소홀히 할 수 있겠습니까. 하루에 천 번, 만 번이라도 할 수 있습니다."

암 드로운은 역시 기사단장이었다.

그가 저렇게까지 하니까 다른 자동인형들 역시 진짜 내 기사들처럼 깍듯했다.

그리고 암 드로운이 훈련한 꼭두각시들은 모두 자동인형으로 업그레이드했다.

지금 내 인형의 집에 있는 자동인형은 거신인형을 빼고 모두 일곱.

룩급 기사 2명, 비숍급 기사 3명, 나이크급 1명, 폰급 1명으로 웬만한 대수림 사냥팀보다 전력이 높았다.

그리고 난민 기지에 자할리(룩급)와 더그(비숍급), 엘다크(비숍급) 자동인형까지 있었기에 기간트에 탈 수 있는 마나인형이 총 10개였다.

게다가 룩급 오리지널 기간트보다 강력한 거신인형까지 있으니, 기간트만 충분하다면 정말 마법인형 군단이라 부를 만했다.

'참! 나도 이제 나이트급 오리지널 마장기에 완벽히 적응했고.'

그리고 이 주변에서 괴수를 사냥하면서 기사회생(lv.5) 스킬 레벨도 올렸고, 최근에 괴수 꼭두각시 마법인형 하나를 더 늘렸다.

쿵! 쿠쿵! 쿵!

지금 인형의 집에서 두 다리와 바닥까지 내려온 긴 팔로 뛰어다니는 괴수의 이름은 콩!

내가 지은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이놈은 킹콩처럼 생겼다.

키 7미터에 B등급 괴수로 특이한 것은 날다람쥐처럼 팔과 옆구리 쪽에 넓고 긴 날개 가죽이 있어 거신목과 거신목 사이를 비행하듯 뛰어다닐 수 있다는 것이었다.

'하아! 이놈을 꼭두각시로 만들기 위해 석 달을 고생한 걸 생각하면······.'

정말 치가 떨릴 정도다.

킹콩 괴수를 꼭두각시로 만들기 위해 같은 괴수를 이십여 마리나 사냥했고, 석 달 내내 잠복과 사냥을 반복해 겨우 한 마리 성공했다.

그 과정에서 내 기간트와 마장기가 일곱 대나 부서졌다.

그래서 지금 멀쩡한 기간트는 비숍급 2대와 나이트급 마장기 2대뿐이었다.

하지만 후회는 하지 않았다.

"끄어어어어!"

쿵쿵쿵쿵!

콩이 가슴을 치고 포효한다.

내가 영혼 이동 스킬을 사용하면서 가르친 동작인데, 이젠 꽤 자연스럽다.

콩(lv.4)은 한 번에 기간트를 2대나 들고 인형의 집에 들어갈 수 있었기에 일부러 마법인형으로 만든 것이고, B등급 괴수의 능력을 제대로 깨우친다면 비숍급 기간트와 맞먹는 힘을 낼 수 있었다.

이제 인형의 집에서 한 번에 6대의 기간트를 넣고, 뺄 수 있어 전력 운용에 큰 도움이 됐다.

그리고 콩의 스킬도 하나 배웠다.

[양손 내려찍기(lv.1) – 양손을 모으거나 양손으로 무기를 잡고 내려찍기를 할 때, 힘이 배가 된다.]

킹콩 괴수가 나무 위에서 점프하면서 양손을 모아 내 기간트 머리통을 부수는 모습을 보고, 같은 동작을 흉내 내다가 배운 스킬이었다.

어디에 써먹을 수 있을지는 아직 잘 모르겠다.

"타일러님, 누가 이쪽으로 옵니다."

"젠장, 휴식 시간도 끝이군. 에테나 가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