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난 수많은 괴수를 막은 성벽 위에 섰다.
거신병들과 수인들이 전사한 수인들을 먼저 아래로 옮기고 있었다.
그리고 기간트들은 거대한 괴수 시체를 치우기 시작했다.
승리는 했지만, 수인들의 피해가 커 보였다.
그래도 오늘 거대한 산을 하나 넘은 느낌이었다.
이데아 제국의 위대한 열두 기사 중에서 죽은 초거수의 포자를 마셔 변이한 거신 괴수는 모두 여섯.
그중에 하나를 죽였다.
남은 것은 다섯이지만, 멸망급 거신 괴수 넷은 이제 충분히 상대할 수 있었다.
문제는 SSS급 괴수인 레기우스와 불카누스였다.
'그놈들만 처리하면 더는 괴수의 위협에 시달리지 않아도 되겠지.'
물론 가장 최상의 조건은 그놈들과 만나지 않는 것이지만...
189. 파밍은 즐거워.
189. 파밍은 즐거워.
그런데!
그 초거수의 새끼는 어떻게 됐을까?
거신들의 신화와 알리사의 말을 들어 보면, 거신들이 초거수를 죽였을 때, 새끼가 태어났다고 했다.
말이 새끼지 태어날 때부터 크기가 수백 미터나 됐다고 했다.
그때 거신들이 초거수의 새끼를 죽였다면 지금 이런 고민을 할 필요가 없었겠지만, 포자 때문에 도망칠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엘프와 오크, 드워프, 그리고 수인족 차원에서도 그런 괴수를 본 적이 없다고 했다.
그렇다면 대수림 어딘 가에 있는 건가?
생각하기도 싫지만, 놈이 대수림에 살아 있어서 장벽으로 오면 어떻게 하지?
내 생각에 고대 거신들이 자신들의 모든 능력과 마지막 힘을 쏟아 장벽을 만든 이유는 그 초거수 새끼가 두려워서였을 것이다. 놈이 살아 있다면 이미 어미만큼 커져 있을 것이다.
'헬다임 장벽이 그 초거수를 막을 수 있을까?'
아직 일어나지 않은 일이지만, 생각만 해도 살 떨리는 일이었다.
그런데 그 초거수는 대체 어디서 왔을까?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있었다.
"타일러 경, 뭘 그리 깊이 생각하고 계시오."
마르틴 국왕이 다가왔다.
"오셨습니까."
"휴! 겨우 한숨을 돌렸소. 경이 무사해서 다행이오."
"저야 승산 없는 작전엔 잘 나서지 않지요. 그보다 이곳의 피해는 어떻습니까?"
"기간트는 큰 피해가 없지만, 수인들이 꽤 많이 전사했소."
"그랬을 겁니다. 괴수들의 숫자가 워낙 많았으니까요."
마르틴이 안타까운 표정을 지었다.
"근데, 멸망급 괴수가 둘이라고 하던데, 어떻게 잡은 것이오."
난 대충 전투 상황을 설명했다.
그러자 마르틴 국왕이 고개를 흔들었다.
"와! 그런 무시무시한 괴수를 둘이나 잡다니 대단하오."
"모두 힘을 합쳤기에 가능했습니다."
"그건 그렇고, 앞으로 어떻게 할 것이오?"
"마르틴 전하께서 우릴 도와주셨으니, 비행석을 구하러 가야지요."
"오! 이제 엘프 차원 간단 말이오."
"네."
난 주변을 둘러보며 작게 말했다.
"사실 오늘 이곳 테오아칸 왕국을 공격한 괴수들은 모두 엘프 차원에 있던 것들입니다."
"그럼 괴수가 엘프 차원에서 이쪽으로 넘어왔단 말이오?"
"그런 것 같습니다. 일단 사막에 있는 괴수들을 토벌하고, 저놈들이 들어온 차원 균열을 찾아서 들어가 보면 바로 알 수 있을 겁니다. 만약 저들이 엘프 차원에서 온 것들이라면, 지금 엘프 차원엔 괴수가 거의 없을 겁니다."
"오! 그럼 우리도 비행석을 캘 수 있다는 뜻이군."
"그렇습니다."
마르틴 국왕이 미소를 지었다.
"비행석을 구하면 가장 먼저 강습 기간트부터 만들어야겠소."
"그게 좋겠지요."
강습 기간트가 없는 아리칸 왕국은 이제 공중전이 가장 취약했다.
하지만 기간트 공방이 생겼기에 비행석만 조달한다면 강습 기간트를 만들 수 있었다.
지금 두 제국과 주변 왕국들은 매우 조용했다.
평화가 찾아온 것이 아니라, 더 강력한 비공정을 연구하고 강습 기간트를 만들고 있었다.
그리고 공중전에서 드워프 대포에 대항할 무기를 만들기 위해 혈안이 되어 있었다.
이미 만들었을 수도 있고.
그리고 벌써 아베르크 제국은 마석 무전기를 만들었다는 소식이 들어와 있었다.
내가 제국을 공격할 것도 아닌데, 그들은 나에 대항할 무기를 만든다고 바빴다.
물론 나도 더 강력한 무기를 만들고 있지만.
"전 당분간 일이 있어서 이곳을 비울 것 같습니다. 마르틴 대공께서 사막의 괴수를 마무리해 주십시오."
"알겠소. 오래 걸리는 일이오?"
"아닙니다. 파밍 좀 하고 오겠습니다."
"파밍?"
"그런 게 있습니다."
난 펠릭스 기사단장과 하얀 악마 기사단, 발루아 기사단을 영지로 돌려보냈다.
너무 영지를 오래 비워둘 순 없었다.
암 드로운과 알리사, 마키아스에게 마르틴 국왕을 도와 사막의 괴수를 정리하라고 명령했다.
지휘관이 없어도 아직 괴수의 숫자는 엄청나게 많았기에 시간이 제법 걸릴 것이다.
그리고 에테나와 비공정을 타고 차원 균열 밖으로 나왔다.
***
[카야킨 전진 기지]
"오랜만에 뵙습니다. 타일러 대공 저하."
"전진 기지의 사령관이 된 것을 축하하네. 파이컬 대령."
"벌써, 1년이 지났는데요······."
"아!"
시간이 참 빠르다.
한때 이곳의 사령관이었던 커널 사령관은 이제 장벽 사령관이 됐고, 시안 황자의 측근이었던 5군단의 기사가 카야킨 전진 기지의 사령관이 됐다.
"이데아 발굴 작업은 어떻게 됐지?"
"작업은 모두 중지된 상태입니다. 아시다시피, 가디언 제국과 전쟁이 벌어지고, 대수림 전진 기지의 병력도 대거 제국으로 돌아가지 않았습니까. 그 병력이 아직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지금은 발굴지 입구만 기간트가 지키고 있습니다."
"하긴 새로 얻은 제국의 동부를 안정시키고 지켜야 할 병력이 필요하겠지."
파이컬 사령관이 물었다.
"그런데 여긴 무슨 일이십니까?"
"발굴지로 가는 길에 잠시 들린 것이네. 대수림 정보대 지부장도 좀 만나고."
"네? 발굴지로 가신다고요?"
파이컬 사령관은 발굴지란 말에 표정이 확 변했다.
"왜 내가 발굴지로 들어가면 안 되는가?"
"사실, 커널 장벽 사령관께서 발굴지 안엔 아무도 들어가지 못하게 하라는 명령을 내리셨습니다."
"그래? 내가 거신 갑옷을 찾아서 빼돌릴까 걱정돼서 그러는 건가?"
대답은 하지 않았지만, 그런 것 같았다.
난 이제 거신 갑옷을 발굴할 필요가 없었다.
거신 갑옷을 만드는 거신 대장장이가 있으니까.
하지만 커널 사령관은 그걸 모르니, 이런 명령을 내린 것 같았다.
"지금 발굴지 책임자가 누구지?"
"로제 중령입니다."
"잘됐군. 그럼 로제 중령과 함께 발굴지로 들어가면 되지 않겠나? 내가 빼돌리는 물건이 없는지 감시자로 말이네."
"그러면 되겠네요."
파이컬 사령관이 어색한 웃음을 지었다.
날 막자니 보복이 무섭고, 그렇다고 막지 말자니 커널 사령관의 명령이 있고.
그래도 내가 절충안을 마련해줬기에 살짝 안도하는 것 같았다.
난 사령관실을 나와 대수림 정보대 사무실로 향했다.
똑똑.
사무실 안으로 들어가자, 다섯 명의 장교가 앉아 있었다.
"사무실이 넓어졌군."
"누구시죠?"
젊은 장교들이 날 알아보지 못했다.
"알베르토는 어디 있지?"
"방에 계십니다만."
그때 문을 열고 알베르토가 나왔다.
"여! 알베르토 잘 있었나?"
알베르토가 깜짝 놀랐다.
"타일러 대공께서 여긴 무슨 일이십니까?"
"왜 내가 못 올 곳에 왔나?"
"그, 그건 아닙니다."
그때 알베르토의 계급장이 보였다.
"뭐야? 자네 중령이 됐군. 하긴 지부장 계급이 중령은 돼야지."
알베르토는 초특급 승진을 했다.
물론 내 입김이 크게 작용하긴 했지만.
"진급한 진 얼마 되지 않았습니다."
"그래 일은 좀 할 만한가?"
"보다시피 인력은 늘었는데, 너무 한가합니다."
내가 대수림의 정보를 제공해 주지 않았기에 대수림 정보대에 들어오는 정보의 양은 매우 적었다.
"잠시 나 좀 보지."
난 알베르토와 밖으로 나섰다.
"긴말은 하지 않겠네. 우리 발레리온 공국으로 오게."
"네?"
"의무 복무기간도 끝났을 거 아닌가."
"그건 그렇습니다만······."
"우리도 정보국을 만들었네. 지금 클린드 외부대신이 맡고 있는데, 인재가 너무 부족하다고 하도 떠들어서, 자네가 생각나 일부러 들렸네."
"아! 감사합니다."
그런데 알베르토는 곤란한 표정을 지었다.
"왜? 싫은가?"
"그건 아닙니다."
"그럼?"
"사실, 오래전에 상부에서 공문이 왔습니다."
"공문?"
"작년에 황립 사관학교 졸업생들이 대부분 발레리온 공국으로 지원한 건 아십니까?"
"그건 나도 들었네. 그 때문에 기사 숫자가 꽤 많이 늘었다고 하더군."
"그래서 아베르크 제국에서 황립 사관학교 생도들에게 발레리온 공국으로 가지 못하게 서약서을 받았다고 합니다. 아니면 바로 퇴학 조치를 한다고 하더군요. 그리고 군대도 마찬가지입니다. 저도 공문을 받고, 서약서를 정보국으로 보냈습니다."
"그랬군."
난 고개를 끄덕였다.
아베르크의 황실과 윌리엄 원수가 선 긋기를 하고 있었다.
아베르크 제국의 인재들이 우리 발레리온 공국으로 너무 많이 빠져나가자, 조처를 한 것이다.
아무래도 자체적으로 사관학교를 만들어야겠다.
"서약서 때문에 우리 공국으로 오지 못한다는 건가?"
"그것이 제국 내 재산을 몰수한다는 내용이 있어서요."
"재산까지?"
저건 우리를 완전히 타국으로 여긴다는 뜻이었다.
그럼 이제 공국이 아니라 독립 왕국이나 마찬가지네.
아직 엄청난 세금을 보내고 있는데······.
아무래도 케인 황제와 윌리엄 원수에게 독립을 요구할 때가 된 것 같았다.
"함께 할 수 없다니, 아쉽군."
"아닙니다. 가겠습니다."
"응?"
"재산이야 다시 모으면 됩니다. 사실 얼마 되지도 않고요."
난 피식 웃었다.
"그럼 환영하지."
"그런데 제가 무슨 일을 하는 겁니까?"
"일은 지금 하는 일과 비슷하네. 대신 대수림이 아니라 장소가 다르지만."
"어디로 가는 겁니까?"
"가장 최근에 생긴 차원 균열을 알지?"
"네."
"그곳에 수인족 왕국과 거신 왕국이 있는데, 그곳에 상주하면서 발레리온과 연락하고, 소통할 수 있는 사람이 필요해."
"그런 중책을 제가 잘할 수 있을까요?"
난 고개를 끄덕였다.
알베르토라면 충분히 할 수 있었다.
"그리고 거신들과 수인들이 잘 도와줄 거야. 통역을 담당하는 엘프도 있고."
"알겠습니다. 당장 짐을 정리해 출발하겠습니다."
"내가 타고 온 비공정을 타고 가면 된다. 사직서는 잘 제출하고."
"네!"
에테나에게 함께 비공정에 타고 가서, 알베르토가 수인족 차원에 자리를 잡게 도와달라고 말했다.
그리고 난 괴조 인형을 타고 홀로 발굴지로 향했다.
***
[이데아 제국 발굴지 입구.]
30여 기의 기간트와 300여 명의 병력이 작은 요새를 만들어 놓고, 상주하고 있었다.
난 괴조 인형을 타고 요새 중심부에 내렸다.
그러자 기간트들이 다가왔다.
위이잉! 철컥!
로제 중령의 오리지널 기간트 해치가 열었다.
"어서 오십시오. 타일러 대공 저하."
"오랜만이군. 로제 중령."
난 로제 중령에게 발굴지 안으로 같이 들어가자고 제안했다.
하지만 로제 중령은 고개를 흔들었다.
"굳이 그러시지 않아도 됩니다. 어차피 타일러 대공께서 들어가시고자 한다면, 누가 막겠습니까. 그냥 편히 들어갔다가 오십시오."
"그래도 되겠나?"
"네, 제가 책임지겠습니다."
"알겠네. 금방 다녀오지."
"네. 다녀오십시오."
로제 중령은 배웅까지 해줬다.
***
난 표범 괴수인형을 타고 하수도를 달렸고, 이데아 제국의 황궁 발굴지로 이동했다.
'뭐, 거의 발굴은 끝났네.'
사방이 너무 어두웠기에 룩급 오리지널 기간트에 타서 라이트를 전부 켰다.
황궁 건물들의 지붕 쪽은 대부분 천장에 막혀 있었지만, 내부 건물의 3/4 정도는 건물 형체가 드러난 상태였다.
'모두 나와!'
웨슬리와 자동인형을 모두 인형의 집에서 꺼내고, 기간트에 태웠다.
[지금부터 황궁의 건물들을 싹 다 뒤져라! 특히 지하에 공간을 발견하면 바로 내게 알려!]
[네! 주군!]
40기의 기간트가 사방으로 흩어졌다.
내가 이곳에 온 가장 큰 이유는 거신 광부들이 사용했던 폭발물을 챙기는 것이다.
거신들도 폭발물의 위험성 때문에 황궁에 따로 보관하고 관리할 정도라고 했으니, 분명 수인들이 사용한 것보다 위력이 더 강할 것이다.
그러니 거신 폭발물을 찾아 새로운 포탄을 만든다면, 포병대의 위력이 더 커질 것이다.
그리고 비공정 함포에 사용할 작고 강력한 포탄을 만들기 위해서라도 거신 폭약을 찾아야 했다.
혹시나 거신 갑옷을 발견하면 그것도 좋고!
나도 마나를 보는 눈으로 아직 발굴이 끝나지 않은 곳 위주로 다니며 지하를 살폈다.
이곳은 자동인형들이 찾기 힘든 곳이었다.
알리사가 말하길 폭발물 같은 위험한 물건은 마법진으로 쌓인 지하 창고에 있을 거라고 했다.
혹시나 폭발할 수도 있었고, 폭발물에 이물질이 섞일 수도 있기에 여러 가지 마법진이 설치되어 있을 것이다.
그러니 내 마나를 보는 눈에 뭔가······.
'오! 뭔가 있다!'
마법진이 많고 마석이 다량 함의되어 푸른 빛이 번쩍이는 지하 창고가 보였다.
달려가 라이트를 위로 비춰보았다.
그런데 건물이 아직 발굴되지 않았고, 흙더미에 덮여 있었다.
100여 미터를 더 파내고, 내부에 흙까지 파내야 지하로 들어갈 수 있었다.
'모두 나와라!'
드라우켄과 괴수인형들을 모두 꺼냈다.
'흙을 파내!'
거대 괴수들의 힘이 합치자 순식간에 건물 입구까지 파고 들어갔다.
건물은 튼튼했고, 문도 두꺼운 강철로 되어 있었다.
하지만 괴수인형들이 힘을 합쳐 밀자, 문이 열렸다.
다행히 내부엔 흙이 없었다.
워낙 단단하고 두꺼운 건물이었고, 창문도 모두 강철로 되어 있었기에 내부로 흙이 들어오지 않은 것 같았다.
'뭘 보관한 장소였을까?'
꽤 중요한 물건을 보관하지 않았을까?
이리 방비가 좋은 걸 보면.
서둘러 주변을 살폈다.
1층은 그냥 빈 곳이었고, 위층을 먼저 뒤졌다.
2, 3층은 대부분 기사 숙소 같았다.
꽤 넓은 방에 침대와 책상, 옷장이 있었고, 거신 기사의 갑옷과 무기도 몇 개 발견해 챙겼다.
그리고 가장 넓은 방바닥에서 열쇠 꾸러미를 발견했다.
'이게 지하실 열쇠인가?'
화산이 터지고 화산재가 덮이자, 도망가는 길에 떨어트린 것 같았다.
열쇠 꾸러미를 가지고 지하로 내려갔다.
한참을 내려가자 계단 끝에 거대한 철문이 있었다.
열쇠 꾸러미를 들었다.
1번부터 9번까지 적혀 있는 열쇠 중에서 1번을 열쇠 구멍에 넣고 돌렸다.
철컹! 끼이이이!
정말 두꺼운 철문이 너무 쉽게 열렸다.
게다가 마법진이 문에 몇 개나 새겨져 있었다.
이걸 힘으로 열려고 했다면, 내 드라우켄이나 괴수인형들도 시간이 한참 걸렸을 것 같았다.
열쇠를 먼저 찾길 다행이야.
'여긴 뭐지?'
지하는 길고 넓은 복도와 8개의 방이 있었다.
대체 뭘 보관한 거야?
문과 방마다 마법진이 몇 겹이나 새겨져 있었다.
첫 번째 방문을 열자, 책들이 책장 가득 꽂혀 있었다.
무슨 책이지?
책 제목을 하나 읽었다.
[다크 컨퓨즈]
'어? 이거 암흑 마법서?'
차원 이동 마법진을 만들었다는 암흑 마법사들의 마법서를 찾았다.
190. 암흑 마나.
190. 암흑 마나.
암흑 마법사들!
너무 위험한 마법으로 고대 거신 제국에서 배척당한 자들.
'왜 그자들의 암흑 마법서가 여기 있는 거지?'
책장 가득 들어있는 수백 권의 책이 모두 암흑 마법에 관한 것이었다.
폐기가 아니라 따로 보관해 둔 건가?
일단 왜 이 건물에 각종 마법진이 설치되어 있고, 경비가 삼엄했던 것인진 알 것 같았다.
암흑 마법서를 지키기 위해서겠지.
아마도 고대 거신 황제는 암흑 마법도 자신들의 재산이라고 생각했던 것 같았다.
'일단 챙기자!'
좋든 나쁘든 일단 거신 마법서는 다 중요한 자료였다.
괴수인형들을 불러 책장까지 통째로 인형의 집에 넣었다.
인형의 집 공간도 넓으니, 부담은 없었다.
'근데 암흑 마법을 내가 배울 수 있을까?'
많이도 필요 없었다.
제일 쉬운 거로 하나만 배우면 좋겠는데······.
안드레아스가 말했던 가디언 제국이 발굴하다가 발견한 지하 신전.
그곳은 아무래도 암흑 마법사들의 비밀 아지트 같았다.
그럼 그곳에 뭔가 좋은 아이템이라던지, 좋은 장비가 있을 수도 있었다.
문제는 그곳에 들어가기 위해선 암흑 마법이 필요할 거라고 알리사가 조언해주었다.
근데 배우려고 해도 암흑 마법이란 이름부터가 왠지 좀 꺼려진다.
[응? 근데 차원 이동 마법진은 없네.]
인형의 집에 넣은 암흑 마법서 제목을 쭉 살펴봤지만, 그런 비슷한 제목은 없었다.
다른 건 배우고 싶은 생각이 없는데, 차원 이동 마법진은 배우고 싶었다.
엘프 차원으로 가는 마법진을 만든다면, 애써 대수림을 건너지 않고 한 번에 갈 수 있지 않은가.
물론 속성 마석들이 필요하지만, 지금이라면 어렵지 않게 만들 수 있을 것 같았다.
하지만 이곳에 있는 마법서들은 기본적인 개념이나 하급 마법서들만 있는 것 같았다.
[암흑 마나의 기원]
눈에 띄는 제목의 암흑 마법서 하나를 펼쳐보았다.
몇 장을 넘기자 눈살이 찌푸려졌다.
초급 단계 암흑 마나를 익히기 위해선 죽은 거신의 시체에 손을 넣어 흡수하란 말이 적혀 있었다.
이러니 배척당할 만하네.
아무리 신전 내부를 보고 싶고 아이템 파밍이 중요하다지만, 시체에 손을 넣어 암흑 마나를 흡수하는 짓은 절대 하고 싶지 않았다.
게다가 손이 시독에 노출되어 시커멓게 변하는 부작용이 있다고 적혀 있었다.
'다른 방법은 없나?'
몇 장을 더 넘기자, 다른 방법이 있었다.
암흑 마나를 가진 대상의 피를 마셔 흡수하는 방법이 있었다.
이건 더 끔찍했다.
물론 암흑 마나를 품고 있는 대상도 없지만.
계속 넘기자, 점점 더 괴기한 내용만 나온다.
가장 효과가 좋은 것은 암흑 마나가 가득한 차원으로 들어가 암흑 마나를 축적하는 것이었다.
문제는 몸속에 다른 마나가 없어야 했다.
나는 땡이네.
'그런데 그런 차원이 있나?'
엘프나, 드워프, 오크, 수인족 차원까지 전부 가봤지만, 암흑 마나가 있는 차원은 없었다.
아니면 내가 가지 못한 또 다른 차원이 있을 수도······.
일단 암흑 마나를 배우는 건 보류다.
'어? 잠깐! 혹시, 암흑 마나가 이건가?'
난 대군주(lv.12) 꼭두각시를 쳐다봤다.
대군주의 몸에서 검은 기운이 뿜어졌다.
일반 마석과 마나는 푸른빛이고, 화염 속성 마나는 붉은빛, 대지 속성 마나는 황금색이었다.
그런데 마나를 보는 눈으로 대군주를 쳐다보면, 검은색 물질이 이글거렸다. 처음엔 그냥 투과를 못 해서 검은색으로 보이는 건가 싶었지만, 어쩌면 저게 암흑 마나일 수도 있었다.
그럼!
'굳이 내가 암흑 마법을 배우지 않아도 되잖아!'
내 꼭두각시가 배우면 되지.
아니다!
암흑 마법이 아니라 암흑 마나를 흘려보내도 신전의 문이 열릴 것 같았다.
암흑 마나를 가지고 있는 것은 암흑 마법사들뿐이니까. 굳이 마법을 펼칠 필요는 없었다.
'이곳까지 온 김에 한 번 시도해 봐야겠어!'
가디언 제국의 발굴지는 여기서 멀지 않다.
그리고 굳이 내가 위험한 곳에 들어가지 않아도 된다. 영혼 이동 스킬을 사용하면 되니까.
사실 진정한 파밍은 암흑 마법사들의 신전이었다.
이곳은 그저 거신 광부들이 썼던 강력한 폭발물을 찾으러 왔으니까.
'일단! 다 챙겼으면 이 방에서 나가자.'
괴수인형들과 밖으로 나갔다.
거의 반나절은 암흑 마법서를 챙기는 데 썼기에 시간이 상당히 흘렀다.
기이잉! 쿵! 쿵!
다음 방문 앞에 섰다.
열쇠로 3번 방을 열었다.
철컹! 끼이이익!
'뭐지? 여긴 텅 비었는데?'
그때 책상 위에 작은 씨앗이 하나 보였다.
이거 어디서 봤던 건데?
'어? 세계수의 씨앗!'
이건 엘프 차원의 세계수 열매를 먹고 나서 봤던, 그 세계수의 씨앗이었다.
이게 왜 여기에 있는 거지?
거신들이 엘프 차원에 이미 방문한 건가?
그러니까 이게 여기 있지.
아니면 암흑 마법사들이 엘프 차원으로 이동해서 챙겨온 것을 압수했을 수도 있었다.
'일단 챙기자!'
수인족 차원에 심으면 그곳에서도 세계수가 자리고, 정령 차원과 연결되어 엘프들이 정령 마법을 쓸 수 있었다.
지금 내 난민 전진 기지의 거신목엔 세계수가 잘 자라고 있었다.
시노우엘의 말에 따르면 앞으로 3, 4년 후면 세계수가 첫 열매를 맺고, 정령 차원과 연결될 거라고 했다.
그럼 현재 나와 함께 있는 엘프들이 모두 정령 마법을 쓸 수 있다는 말이었다.
밖으로 나왔다.
그리고 이제 맞은편 복도 첫 번째 방으로 이동했다.
철컹!
'응? 이건 뭐지?'
15미터 높이의 동물 그림이 잔뜩 그려진 토템 기둥이 수십 개나 들어있었다.
어? 이건 오크 조각상이네!
토템 중에서 오크가 조각된 것도 있었다.
'뭐야, 그럼 거신들이 오크 차원에도 갔었다는 말이네.'
이건 알리사에게도 듣지 못한 말이었다.
고대 거신들이 아주 오래전에 이계 난민들의 차원에 다녀갔고, 그곳 차원의 물건을 가지고 왔다고밖에 설명할 수 없었다.
일단 토템들을 다 챙겼다.
다음 방으로 가자 비로소 확신했다.
드워프들의 망치와 대장장이 도구들이 있었고, 방안 가득 검과 창, 방패, 갑옷 같은 장비들이 쌓여 있었다.
모두 드워프의 체형에 맞는 것들이었고, 상당히 잘 만들어진 것들이었다.
'이런 건 왜 챙겼을까? 기념품인가?'
일단 인형의 집에 다 챙겨 넣었다.
다음 방문을 열었다.
이곳은 텅 비어 있었다.
그다음 방도 텅 비었다.
나머지 모든 방문을 다 열었는데, 역시나 텅텅 비어 있었다.
물건은 챙긴 것은 엘프, 오크, 드워프 차원뿐이었다.
'다른 차원 물건은 왜 없는 거지? 최소한 수인족 차원의 물건은 있어야 하지 않나? 그곳으로 통하는 차원 마법진이 이데아 제국 내에 있었으니까.'
잘은 모르겠지만, 물건을 챙기지 않았을 수도 있고, 챙기기 전에 이데아 제국이 망했을 수도 있다.
일단 암흑 마법서를 챙겼으니, 꽤 성공적인 파밍이었다.
난 괴수인형들과 지하 창고를 탈탈 털고 건물 밖으로 나갔다.
치직!
[주군! 엘다크가 뭔가 발견한 것 같습니다.]
[그래, 내가 그쪽으로 가지.]
난 웨슬리 분신인형과 만나 또 다른 건물을 향해 이동했다.
엘다크가 기다린 곳은 성벽에서 가까운 단층 짜리 건물이었다.
마나를 보는 눈으로 지하를 보자, 정말 마법진이 새겨진 커다란 방이 있었다.
그리고 그곳 지하에서 드디어 폭발물 같은 물건을 발견했다.
거대한 통 수십 개가 놓여 있었고, 통을 하나 살짝 들자, 안에 가루가 가득 들어있었다. 그리고 도화선 같은 선들도 상당히 많이 있었다.
이걸 어떻게 실험해 보지?
고민하다가 고개를 흔들었다.
이런 건 전문가인 드워프에게 맡기는 게 좋을 것 같았다.
일단 폭발물은 확실해 보였기에 거대한 통과 도화선은 모두 인형의 집에 넣었고, 밖으로 나왔다.
이제 소기의 목적은 달성했다.
[웨슬리, 그만 돌아가자. 다들 불러와라.]
[네. 주군!]
웨슬리가 기간트에 설치된 무전기로 자동인형들을 불러 모았다.
자동인형들이 모이는 사이에 난 마나를 뿜어내며 마지막으로 주변을 살폈다.
그런데!
'어? 이건!'
무너진 성벽 안쪽에 인간 형태의 푸른빛이 번쩍였다.
거신 갑옷이다!
'어떻게 성벽 안에 파묻힌 거지?'
성벽이 무너지면서 떨어졌고, 그 위로 화산재가 덮친 것 같았다.
'다들 모여봐!'
난 기간트와 괴수인형을 동원해 다시 성벽 안을 팠다.
그리고 곧 거신 갑옷을 꺼냈다.
그런데!
'오 퀸급 갑옷이다!'
귀한 갑옷을 발굴했다.
이건 조금만 수리해서 암 드로운에게 줘도 될 것 같았다.
만드는 것보다 수리하는 게 낫겠지.
13미터의 거신이라면, 최소 영웅급 기사일 테니까, 갑옷 재료도 좋은 걸 썼을 거다.
역시 파밍은 항상 옳다.
난 성공적인 파밍을 하고 밖으로 나왔다.
***
[아베르크 제국 황궁 비밀 회의실]
'대체 나까지 부르신 이유가 뭐지?'
제국의 공군 원수이자, 동부의 왕으로 불리는 시안 오르도는 걱정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지금 이곳엔 제국군 총사령관인 윌리엄 원수와 찰스 그레빌 추밀원장, 다니엘 정보국장, 대신들, 북부군, 서부군, 동부군의 수장들, 그리고 5개 군단의 군단장들이 다 모여 있었기 때문이었다.
시안 원수가 윌리엄 총사령관을 쳐다봤다.
눈으로 무슨 일인지 물었지만, 윌리엄은 고개를 살짝 흔들었다.
그도 모른다는 뜻이었다.
"케인 오르도 황제 폐하 납시오!"
회의실 안에 있던 사람들이 일제히 자리에서 일어섰다.
케인 황제가 자리에 앉았다.
"다들 앉지."
시안과 윌리엄은 왠지 가시방석에 앉은 기분이었다.
전군의 수장이 모일 이유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가디언 제국은 약속대로 전쟁 복구비용을 지급하고 있었고, 반란자들은 모두 숙청했으며, 전쟁에 가담한 살루스 왕국과 윈데르 왕국에도 상당한 피해 보상금을 받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다들 여기 왜 모인 것인지 아는가?"
케인 황제가 입을 열었다.
윌리엄이 말했다.
"저희에게 분부할 것이 있으십니까?"
"이제 우리 제국이 안정됐으니, 할 일을 해야 하지 않겠는가?"
케인 황제가 말했지만, 모두 잘 모르는 눈치였다.
그러자 케인이 알아듣게 말했다.
"제국의 주변 왕국들 말이네. 정리할 때가 되지 않았나?"
"어느 왕국을 말씀하시는 겁니까?"
"일단 살루스와 윈데르 왕국부터 하지. 둘 다 건방지게 가디언 제국과 반란자들을 도와 제국을 공격하지 않았는가."
윌리엄 사령관이 조심히 말했다.
"살루스 왕국은 국토 대부분이 사막이라 이득이 거의 없습니다. 그리고 윈데르 왕국은 트와이트 대마경과 완전히 붙어 있어 점령해도 지킬 곳이 너무 많아 역시 큰 이득이 없습니다."
"윌리엄 사령관, 내가 그것을 모르는 것 같은가?"
"아닙니다. 폐하."
"그놈들은 아베르크 제국을 공격했다. 나를 공격했단 말이다!"
좀처럼 큰 목소리를 내지 않던 케인 황제가 목에 핏대까지 세우며 소리쳤다.
"점령할 필요도 없다! 비공정을 타고 가 반란에 조금이라도 관련 있는 놈들은 모조리 죽여라. 그러고 나서 적당한 놈을 공왕으로 세워 조공을 바치게 하면 된다."
모여 있는 사람들이 서로의 눈치를 봤다.
지금 황제의 말은 왕가와 두 왕국의 귀족을 모두 다 죽이라는 말과 같았기 때문이었다.
쾅!
"왜 대답이 없나?"
"황제 폐하의 명을 받습니다!"
"다들 언제 어떻게 적을 공격할지, 확실히 결정하기 전엔 황궁에서 나가지 말게. 곧 돌아오지."
케인 황제가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리고 윌리엄 총사령관과 찰스 추밀원장을 번갈아 쳐다봤다.
"둘은 날 따라오게."
"네."
두 사람이 케인 황제를 따라 집무실로 향했다.
"두 왕국을 정리하는데, 얼마나 걸리겠나?"
"점령이 아니라, 정리라면 두 달이면 충분합니다."
윌리엄 사령관이 대답했다.
황제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찰스 추밀원장에게 물었다.
"지금 아리칸 왕국의 병력 수준은 어느 정도지?"
찰스 추밀원장이 마른침을 삼켰다.
"비공정은 50척 정도 되고, 기간트는 600기 정도라고 알고 있습니다."
"그새 병력이 늘었군."
윌리엄이 물었다.
"지금 아리칸 왕국을 도모하시려는 겁니까?"
"그럼 나를 죽이려 한 놈을 내가 가만히 둘 줄 알았나?"
윌리엄은 순간 고민에 휩싸였다.
"아리칸 왕국을 도모하는 것은 지금 상황에선 좋지 않습니다."
"뭐라?"
"아시다시피 아리칸 왕국은 발레리온 공국과 동맹이 아닙니까. 아리칸을 공격한다는 것은 발레리온과 전쟁을 뜻합니다."
"무슨 말인가? 발레리온은 우리 아베르크 제국 소속인데!"
"그건 맞지만, 마르틴 국왕과 타일러 공왕의 사이가 매우 좋습니다. 아리칸을 공격하면, 발레리온이 도울 확률이 높습니다."
"흠. 그렇단 말이지."
케인 황제가 턱을 쓰다듬으며 잠시 생각에 잠겼다.
그도 타일러 공왕의 능력을 어느 정도 알고 있었기에 발레리온 공국과 절대 싸워선 안 된다는 것쯤은 알고 있었다.
케인이 찰스 그레빌 추밀원장을 쳐다봤다.
"전에 내가 아리엘 황녀와 타일러 공왕의 혼사를 추진하라는 것은 어떻게 됐나?"
"그것이 타일러 공왕이 영지를 비운 지가 1년이 넘었습니다. 당사자가 없으니, 사신을 보내도 만날 수가 없습니다."
"그럼 아리엘을 발레리온으로 보내라."
"네?"
"그곳에서 타일러 공왕이 올 때까지 기다리라고 해. 아니다! 타일러 공왕이 있는 곳으로 직접 찾아가라고 해. 그것이 대수림이든 차원 균열 너머든 상관없다. 남녀 관계는 어쨌든 얼굴을 봐야 정도 들고, 애정이 생기는 법이지."
"네. 알겠습니다."
찰스 추밀원장은 대답은 했지만, 고심하는 표정이었다.
"그리고 발레리온에서 들어오는 세금을 경감해 주고, 살루스와 윈데르 왕국의 공격이 끝나면, 발레리온 공국을 왕국으로 승격시키고, 타일러 공왕을 국왕으로 임명하는 사신을 보내라."
윌리엄 사령관이 살짝 놀란 표정을 지었다.
191. 미래를 준비하는 방법.
191. 미래를 준비하는 방법.
"폐하, 발레리온 공국을 독립시키시려는 것입니까?"
"어차피 정해진 수순이 아니더냐? 여기서 누가 타일러 공왕의 독립을 막을 수 있지? 차라리 미리 당근을 주고, 우리와 더 친밀해지게 만드는 것이 좋다. 그리고 사돈 관계가 되면, 자연스레 아리칸 왕국과 멀어질 것이다. 최소한 발레리온이 전쟁에 간섭하지 못하게 해야 한다."
케인 황제의 지략은 뛰어나지 못할지언정, 정치엔 상당히 조예가 깊었다.
"그리고 타일러 공왕만 없으면, 발레리온 왕국은 언제든 우리가 다시 가져올 수 있지 않겠나?"
"그건 그렇습니다만······."
"사람 일은 모르는 법이다. 그는 항상 대수림을 오가며 괴수 사냥도 하고, 위험한 일에 직접 뛰어든다고 들었다. 그러니 사고가 생길 수도 있고, 병이 들 수도 있지."
윌리엄이 고개를 끄덕였다.
황제의 말이 맞았다.
자신과 황제가 죽더라도 제국은 이어지고, 타일러 공왕도 영원히 살 순 없는 법이었다.
수인 차원에 가서 수많은 괴수와 싸운다는 정보도 들어온 상태였다.
정말 불의의 사고가 생길 수도 있었다.
케인 황제가 다시 말했다.
"그럼, 아리칸 왕국의 문제는 시간이 걸릴 것 같으니, 우선 탈로스 왕국부터 진행하는 것이 좋겠군."
"탈로스 왕국이요?"
갑작스러운 황제의 말에 찰스 추밀원장이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그때 윌리엄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좋은 생각이십니다. 탈로스와 글론 왕국이 아리칸 왕국을 공격했지만, 그건 우리 아베르크와 가디언 제국의 전쟁에서 아리칸이 우리를 돕지 못하게 하려는 수작이었습니다. 그건 곧 우리 제국을 공격한 것이나 다름없습니다. 그러니 그들을 공격하는 대의는 우리에게 있습니다. 그리고 지금 탈로스 왕국은 타이탄 공방이 부서지고, 아리칸 왕국의 공격으로 수도가 초토화되어 있습니다. 지금 공격한다면, 어렵지 않게 장악할 수 있습니다."
"하하! 윌리엄 경도 생각하고 있었구려."
케인 황제가 기분 좋은 표정을 지었다.
사실 윌리엄 총사령관도 잔뜩 만든 비공정과 병력을 사용할 곳이 필요했다.
그리고 탈로스 왕국의 해군력이 아직은 막강했기에 항구를 장악하고, 나아가 식민지 대륙까지 장악한다면, 아베르크 제국의 경제 발전 속도는 가디언 제국이나 발레리온 공국의 발전 속도보다 훨씬 빨라질 것이다.
경제력이 강해지면, 군사력도 따라서 강력해지고. 지금 개발하고 있는 비공정 함포나 고속 비공정 개발도 더 빨리질 것이다.
윌리엄은 다가올 미래를 준비하고 있었다.
***
기이잉! 쿵쿵쿵!
[놈들을 계속 한쪽으로 몰아라!]
[어서 달려! 뒤처지지 마라!]
괴수들이 기간트에 쫓겨 한쪽으로 달리고 있었다.
지휘관이 없는 괴수는 그저 사냥당하기 쉬운 목표물이었다.
천여 마리의 괴수가 백여 기의 기간트에 쫓겨 도망쳤다.
그러다.
"끼이아?"
"끼릭?"
괴수들 앞으로 또다시 백여 기의 기간트가 기다리고 있었다.
[놈들을 포위하라!]
[서둘러라! 빈 구멍을 막아!]
300여 기의 기간트가 괴수들이 포위됐다.
"지금이다! 마법병단의 힘을 보여라!"
휘잉! 휘이이잉!
펑! 퍼펑!
기간트 뒤쪽에 있던 알리사와 거신 마법사들이 일제히 화염 마법을 포위된 괴수들에게 쏘았다.
쾅! 화르르! 화아아아!
"끼이아!"
"쿠엑!"
중앙에 있던 수백 마리의 괴수들이 화염에 휩싸여 죽었다.
그리고 살아남은 괴수들은 놀라 자신을 포위한 기간트를 향해 달려들었다.
[괴수들이 온다! 모두 공격하라!]
[공격!]
기이잉! 쾅! 콰콰쾅!
순식간에 천 마리가 넘는 괴수가 기간트와 마법사의 합동 공격으로 처리됐다.
[모두 고생했다. 오늘은 여기까지 한다! 베이스캠프로 돌아간다.]
오늘로 괴수 사냥 보름째였다.
그리고 마르틴 국왕과 크루세이더 기사단은 사막에서 괴수 퇴치에 열을 올리고 있었다.
[오아시스에 마련된 베이스캠프]
아리칸의 기사들이 불만 가득한 표정으로 마르틴 국왕의 천막을 찾았다.
"무슨 일이지?"
"마르틴 전하, 언제까지 이곳에서 괴수 사냥을 하실 겁니까?"
"뭐?"
"저희는 용병이 아닙니다. 아리칸을 수호하는 크루세이더 기사단입니다. 언제까지 남의 전쟁에 참여하실 생각이십니까."
마르틴이 고개를 끄덕였다.
기사들의 불만이 생긴 것도 이해한다.
벌써 1년이 넘도록 집에 가지고도 못하고, 타국도 아닌 다른 차원에서 수인들을 지키기 위해 괴수와 싸우고 있으니, 불만이 생길 수밖에.
"무슨 말인지 알겠네. 일단 오늘도 힘들게 사냥했는데, 다들 자리에 앉게."
마르틴의 불같은 성격이 나올 것을 예상한 기사들은 순간 서로를 쳐다보았다.
기사들이 앉자, 마르틴도 마주 앉았다.
"원래 집 떠나면 고생이고, 괴수와 전투는 심적으로 육체적으로 매우 힘든 법이지. 나도 힘든데, 자네들이야 오죽하겠나."
마르틴이 미소까지 지었다.
"평소에 이런 자리를 마련해야 했는데, 요즘 나도 정신이 없었네."
너무 부드러운 국왕의 모습에 기사들은 오히려 더 긴장했다.
"다들 지금 상황을 가만히 생각해 보게. 과거에 전투라면 우리 병력이 아무리 적어도 그냥 적들이 오는 길목을 막고 버티면서 싸울 수 있었네. 하지만 지금은 어떤가? 아베르크의 수도인 에드가르에서 우리 파트리아 수도까지 비공정을 타면 단 며칠이네. 적들이 공격했다는 것을 알아차리기도 전에 우리 머리 위에 적이 있을 수 있지."
"그러니 더욱 우리가 왕국을 수호해야 하는 것이 아닙니까?"
한 기사가 말했다.
"정보에 따르면 아베르크의 비공정은 지금 200척이 넘어가네. 그 안에 기간트를 가득 태울 수도 있지. 만약 우리가 지금 아베르크 제국과 싸운다면, 우리 병력으로 이길 수 있겠나?"
"하지만 우린 가디언 제국과 전쟁에서 아베르크를 도왔습니다. 설마 자신들을 도운 우리를 공격하겠습니까?"
마르틴 국왕이 피식 웃었다.
"그 전에 우리가 아베르크의 황궁을 공격한 것을 잊었는가? 그리고 아베르크가 우리와 약속을 지키지 않은 적이 어디 한두 번인가? 지금은 잠시 숨을 고르고 있지만, 아베르크의 케인 황제는 자신을 죽이려 한 일을 잊지 않고 있을 거네."
기사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아리칸과 아베르크의 관계는 필요에 의한 동맹이었다.
아리칸은 서쪽 대륙의 탈로스 왕국과 글론 왕국의 확장을 막는 역할을 했기에 아베르크에서 계속 기간트를 지원해줬다.
물론 금화를 왕창 받아갔지만.
하지만 이젠 하늘길이 열렸기에 국경은 소용없었다.
두 왕국이 아베르크를 공격하거나 아베르크가 반대로 두 왕국을 공격하는 것도 가능했다.
그러니 아리칸의 역할은 필요 없었다.
"언젠가 우리를 공격하겠군요."
"아베르크 제국의 가장 무서운 점은 현재 군사력이 아니네. 이제 가디언 제국의 서부까지 차지했으니, 인구도 더 늘었고 그곳엔 광물 자원도 많네. 그리고 아베르크는 기간트 개발의 원조국이 아닌가. 점점 더 강한 기간트를 만들 것이고, 비공정 역시 계속 개발 중이네. 그리고 타일러 공왕의 말로는 드워프 대포를 대항할 무기를 만들고 있을 거라고 했네. 하지만 우리는 어떤가?"
기사들이 심각한 표정을 지었다.
"타일러 공왕이 아니었다면, 우린 지금도 기간트 공방이 없을 것이네. 아베르크는 약속을 지키지 않았을 거고, 시간만 질질 끌었겠지."
마르틴 국왕이 씁쓸한 표정을 지었다.
"우리의 현실을 제대로 봐야 하네. 우린 기간트 기술도 부족하고, 비행석도 없네. 그리고 이번에 우리가 타일러 공왕을 도운 이유는 비행석을 얻기 위함인 것을 다들 알 것이네."
"맞습니다."
"그리고 난 앞으로도 더욱 타일러 공왕과 가까이 지낼 것이네. 우리가 비행석을 얻었다고 해도 당장 비공정을 만들 수 있겠나?"
기사들이 벙어리가 된 것처럼 입을 열지 못했다.
"어떻게 흉내를 낸다고 해도, 지금 만들어진 비공정보단 더 좋은 비공정은 못 만들겠지. 하지만 그땐 이미 아베르크나 가디언 제국은 우리보다 더 크고 빠르고, 함포까지 장착한 비공정을 만들었을 것이네."
마르틴 국왕이 기사들을 쳐다봤다.
"그러니 우리가 기댈 곳이 어디인가?"
"발레리온 공국밖에 없겠군요."
"그렇지. 다행히 타일러 공왕은 우리가 수인들을 함께 지켜준 것을 큰 은혜라고 생각하네. 그리고 그는 은혜를 가벼이 여기는 사람이 아니지. 그러니 비행석을 얻은 다음에 비공정을 만드는 것도 배우고, 또 아베르크가 언제 우리를 노릴지 모르는 상황에서 타일러 공왕이라는 든든한 동맹이 있다면, 그들은 감히 수작을 부리지 못할 거야."
"아! 저희 생각이 짧았습니다."
"전하께서 거기까지 생각하신 것을 미처 몰랐습니다. 죄송합니다."
기사들은 고개를 숙였다.
"고개를 들게. 자네들은 진정한 용사들이고, 아리칸 왕국 최고의 기사들이네. 난 자네들이 자랑스럽네."
"감사합니다. 전하."
기사들은 마르틴 국왕의 말에 감동하고 있었다.
그렇게 아리칸 왕국과 발레리온 공국의 결속력은 더 강해지고 있었고, 마르틴 국왕은 왕국의 미래를 타일러 공왕에게 걸었다.
***
[가디언 제국 이데아 발굴지]
가디언 제국은 발굴작업에 완전히 손을 놓고 있었다.
그랬기에 유유히 발굴지 안으로 들어가 신전이 있다는 장소를 찾아 나섰다.
한참을 이동하고, 번화가로 보이는 지역에 들어설 때였다.
메인 도로에 있는 4층짜리 건물에 구멍이 뻥 뚫려 있었다.
'저긴가?'
가까이 다가가 보니, 인위적으로 뚫어 놓은 구멍이었다.
아마도 내부에 쉽게 들어가 작업하기 위해 구멍을 넓힌 것 같았다.
기간트를 타고 안으로 들어가자, 지하로 내려가는 계단이 보였다.
계단을 따라 내려가자 지하 창고 같은 공간이 있었다.
그리고 구석에.
'또 아래로 내려가는 통로가 있네.'
원래 이곳을 막아 외부에서 보이지 않게 했을 것 같았다.
시내 번화가에 이런 이중 지하 통로가 있을 줄은 거신들도 몰랐을 것 같았다.
난 계속 계단을 따라 아래로 내려갔다.
계단이 얼마나 깊이까지 이어졌는지, 끝도 없었다.
아마 내 마나를 보는 눈으로도 특이점을 찾을 수 없을 것 같다.
한참을 내려가 드디어 바닥에 도착했다.
그리곤 통로를 따라서 안으로 깊숙이 들어갔다.
팟!
눈앞에 환해지며, 신전 입구가 보였다.
'왜 신전이라고 했는지 알겠네.'
십여 개의 기둥에서 밝은 빛이 뿜어져 나오고 있었고, 그 위에는 화려한 삼각 지붕이 얹혀 있었다.
이 입구 자체가 하나의 예술 작품 같았다.
그리고 기둥 안쪽에 거대한 문이 있었고, 문은 괴이한 모양이 조각되어 있었고, 열쇠 구멍이나 손잡이도 없었다.
'일단 안전제일이지.'
700미터 계단 위쪽에 토우인형을 하나 올려놓았다.
만에 하나 도망칠 때를 대비한 것이다.
그리고 드라우켄(lv.13)과 대군주(lv.12) 꼭두각시를 꺼냈다.
대군주는 영혼 이동과 신전 문을 열기 위함이었고, 드라우켄은 내 본체를 지키기 위함이었다.
알리사의 말로는 함정이 있을 수도 있었고, 잘못하면 신전이 통째로 무너질 수도 있다고 경고했다.
그랬기에 편법은 쓰지 않을 생각이었다.
'잠깐! 대군주가 직접 마나를 뿜어내도 되잖아.'
생각해 보니 대군주로 굳이 영혼 이동을 하지 않아도 될 것 같았다.
어차피 암흑 마법이 필요하면, 대군주도 열지 못한다.
그것이 아니면 암흑 마나를 뿜어내도 문은 열릴 것이다.
그리고 영혼 이동을 통해 신전 안으로 들여보내는 것은 대군주보다 사마귀 꼭두각시 같은 작은 괴수인형이 좋아 보였다.
'일단 대군주로 시도해 보자.'
대군주 꼭두각시를 앞으로 이동시켰다.
그리고 손을 신전 문에 댔다.
'마나를 뿜어 내봐!'
괴수인형 중에서 마나를 뿜어내는 괴수는 없었다.
하지만 대군주는 원래 거신 영웅이었다가 초거수의 포자를 마셔 변이한 괴수였다. 그리고 그때 그의 몸에 있던 마나도 암흑 마나로 변한 것 같았다.
그러니 암흑 마나를 뿜어낼 수도 있을 것이다.
'정 안 되면 내가 해야지······.'
사실 대군주로 영혼 이동을 하기가 좀 꺼려졌다.
내 마법인형이긴 하지만, 대군주가 품고 있는 암흑 마나란 것이 혹시나 내 정신에 영향을 끼칠 수도 있을 것 같아서였다.
"끄어어어!"
대군주 꼭두각시가 팔을 밀면서 몸속에 암흑 마나를 뿜어내려고 노력했다.
하지만 문은 꼼짝도 하지 않았다.
역시 내가 해야 하나······.
쿵!
'······?'
신전 문에서 소리가 들렸다.
끼기기기기기!
거대하고 두꺼운 문이 위로 올라갔다.
쿵! 철컹!
성공했다!
문이 열렸다.
그런데 내부 공간이 보이지 않았다.
대신 검은 구름 같은 것이 안쪽에서 일렁이며 회전하고 있었다.
"이건 차원 균열이네!"
신전 문이 아니라 차원 게이트였어!
지금까지 남아 있는 것이 신기했다.
어디 차원으로 통하는 것일까?
기존에 내가 가봤던 차원인가? 아니면 새로운 차원?
안으로 들어갔는데, 괴수가 가득 있는 거 아닌가?
혹여 코린트 왕국의 거신들처럼 암흑 마법사들의 후손이 지금까지 살고 있진 않을까?
여러 가지 생각이 머리에 맴돌았다.
난 지금까지 차원 균열에 들어가 큰 이득을 봤다.
엘프와 비행석, 드워프, 오크, 수인족, 코린트 왕국의 거신까지.
모든 이계 종족들은 괴수의 공격을 받았고, 내 도움을 받아 위기를 넘길 수 있었고, 나에게 협력해 지금의 큰 세력을 이루었다.
만약 이곳 차원 균열 너머에 또 다른 종족이 있다면 그들을 도와줄 생각이었다.
그럼, 가까운 미래에 새로운 힘을 얻을 수 있을 거고, 그건 괴수 군단을 막는 데 큰 힘이 될 것이다.
지금 내 인형의 집엔 비공정이 10척이나 있었다.
조종은 내 자동인형들이 할 수 있었으니, 언제든 이계 난민을 구출할 수도 있었고, 무슨 일을 하든 만만의 준비는 되어 있었다.
혹시나 모르니, 오리지널 기간트를 넣고, 괴조인형을 꺼냈다.
난 괴조인형에 올라탔다.
'가자!'
난 내 마법인형들과 차원 균열 안으로 들어갔다.
192. 암흑 차원.
192. 암흑 차원.
순간 숨이 턱 막혔다.
갑자기 온몸을 옥죄어 오는 기운에 가슴이 답답해졌다.
왠지 날갯짓하는 괴조인형도 답답함을 느끼는 것 같다.
고개를 들자, 주변에 거대한 나무와 숲이 빽빽하다.
대수림?
아니다!
여긴 대수림보다 더 어둡고 음침하며, 습하고 세포 하나하나까지 알 수 없는 불쾌감이 느껴졌다.
'이게 암흑 마나인가?'
마나를 눈으로 뿜어내자, 주변이 온통 회색빛이다.
이건 공기 중에 암흑 마나가 분포되어 있다는 뜻이다.
'아! 여기가 암흑 마나의 기원이란 책에서 본 그 암흑 차원이구나!'
책엔 암흑 마나가 가득한 차원이 있다고 적혀 있었다.
그리고 그곳에서 암흑 마나를 축적하는 것이 가장 효과가 좋다고 했다.
암흑 마법사들이 이곳에 있으면 호흡하는 것만으로도 암흑 마나가 축적되는 것이다.
'암흑 마법사들에겐 정말 최고의 신전이나 마찬가지네.'
호흡이 조금 힘들긴 하지만, 숨을 쉴 순 있었다.
주변을 돌아보기 전에 내가 들어온 차원 균열을 쳐다보았다.
'어? 없네!'
분명 차원 균열로 들어왔는데, 이곳엔 입구가 없었다.
양방향이 아니라 한 방향으로만 연결되는 차원 균열도 있구나!
새로운 사실을 알았다.
돌아가는 길이 사라졌지만, 당황하진 않았다.
내겐 수인족 차원으로 가는 마법진을 똑같이 그린 종이가 있었다. 그리고 마법진을 그릴 최고급 마석도 있었고, 여섯 개의 속성 마석도 있었기에 어디서든 차원 마법진을 그려 수인족 차원으로 돌아갈 수 있었다.
이미 난 다른 차원에 들어갈 만반의 준비는 되어 있었다.
'일단 들어왔으니, 이곳에 뭐가 있나 알아보자.'
일단 킹콩인형을 이용해 룩급 오리지널 기간트를 꺼냈다.
아무래도 대수림이라, 언제 어디서 괴수가 튀어나올 수도 있었으니까.
그리고 괴조인형과 드라우켄, 킹콩인형은 다시 인형의 집에 넣었고, 대군주(lv.12) 꼭두각시만 데리고 이동했다.
기분 탓인지, 대군주 꼭두각시가 기운이 넘치는 것 같다.
'이 안으로 들어온 암흑 마법사들은 아직도 살아 있을까?'
코린트 왕국의 거신들도 살아남았으니, 그들도 살아 있을 가능성이 컸다.
일단 한쪽으로 계속 이동했다.
한참을 이동했지만, 암흑의 대수림은 계속 이어져 있었다.
"끼릭?"
그때 눈앞에 괴수 한 마리가 풀숲에서 모습을 드러냈다.
크기는 3미터, 생긴 건 도사견처럼 생겼고, 기형적인 입은 두 배나 컸다.
"께에에엑!"
놈이 커다란 입을 벌리며 달려들었다.
순간 어이가 없었다.
11미터의 룩급 오리지널 기간트에 달려들다니, 체격 차이도 모르는 멍청한 괴수인가.
검을 뽑을 필요도 없었다.
그냥 주먹을 뻗었다.
부웅! 콰직!
"케깽!"
주먹에 맞은 놈이 한쪽으로 날아가 거목에 부딪혀 즉사했다.
'뭐야? 용기만 가상한 놈이네.'
3미터짜리가 11미터 기간트에 덤비는 것 자체가 어림도 없는 일이었다.
그런데!
"끼릭!"
"끼리릭!"
갑자기 도사견 괴수들이 풀숲에서 일어나기 시작했다.
처음엔 십여 마리더니, 나중엔 백여 마리까지 늘었다.
그리고 순식간에 수백 마리까지 개떼처럼 몰려나와 나를 포위했다.
'뭐야? 숫자로 승부를 보는 놈들이었냐?'
어쩐지 작은놈이 겁대가리 없이 덤비더라니······.
괴수들이 나와 대군주 꼭두각시를 갸웃거리며 쳐다보고 있었다. 먹이를 보는 눈이었다.
위이잉! 치익
난 기간트 해치를 열곤, 밖으로 나왔다.
"께에엑!"
그때 한 마리가 괴성을 질렀다.
그러자 수백 마리가 내게 달려왔다.
별로 싸우고 싶은 마음은 없었다.
'나와라! 괴조!'
"끼이이이이아!"
난 괴조를 타고 공중으로 날아올랐고, 대군주가 내 오리지널 기간트를 들자 인형의 집에 넣었다.
순간 표적을 잃은 괴수들이 날 멍한 표정으로 올려다봤다.
'수백 마리씩 몰려다니는 놈들도 있네.'
저쪽 대수림에선 흔하지 않은 일이다.
늑대형 괴수들이 수십 마리씩 몰려다니는 것은 봤지만, 수백 마리라니······.
사실 무섭다기보단 저 괴수를 일일이 잡는 게 귀찮을 뿐이었다.
보니까 등급도 낮아 경험치도 많이 줄 것 같지 않았고.
'차라리 비공정을 이용하자.'
난 인형의 집에서 내가 가지고 있는 10척의 비공정 중에서 작지만 가장 빠른 비공정을 꺼냈다.
그리고 웨슬리와 자동인형 다섯을 배치했고, 모두 강습용 기간트에 태웠다.
혹여 공격받을지도 모르니까.
그리고 괴조인형은 인형의 집에 넣었다.
'고도를 높여도 끝이 안 보이네.'
어쩌면 대수림보다 더 넓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돌아갈까?'
그래도 여기까지 왔으니 조금만 더 살펴보기로 하고, 한쪽으로 빠르게 이동했다.
***
"쿠아아아아!"
거대한 그림자가 암흑 대수림 위로 날아간다.
우린 대수림의 그림자 밑에 숨었다.
"휴! 큰일 날 뻔했네."
"조금만 늦었어도 비공정이 박살 날 뻔했습니다."
웨슬리도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지금 하늘에서 우릴 찾고 있는 괴수는 몸길이가 40미터에 날개 길이가 200미터는 되어 보이는 거대 비행 거수.
딱 봐도 S급 괴수다!
땅에서 싸운다면 그래도 드라우켄도 있고, 대군주도 있기에 싸워볼 만하겠지만 하늘에서 저놈과 싸울만한 전력은 아니었다.
괴조인형도 단숨에 잡아 먹힐 것이고, 비공정도 얼마 버티지 못할 거다.
'저런 놈이 몇 마리만 장벽 너머에 나타나면 완전 패닉이겠어······'
현재 우리 비공정으로 저 거대한 놈을 상대하기란 거의 불가능하다.
내가 만들고 있는 초거대 비공정이면 모를까.
그럼 부서질 염려도 적고 비공정 위에 기간트와 마법인형을 배치하면 충분히 잡을 순 있을 것 같았다.
역시 초거대 비공정이 필요해.
"주군, 이제 어떻게 할까요?"
"일단 대수림 아래쪽으로 천천히 움직여."
"네!"
속도는 느리겠지만, 안전제일이다.
우린 거대한 나무 사이로 이동했다.
조금 이동하다 또다시 강한 괴수를 봤다.
몸길이가 70미터는 되는 S급 괴수!
다리가 긴 악어처럼 생긴 놈이 우릴 슬쩍 올려다봤다.
다행히 놈은 나무를 타고 올라오거나 점프력이 좋은 건 아니었기에 천천히 지나갔다.
"키이아?"
갑자기 악어 괴수가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왜 저러는 거지?
쩍! 쩌쩌쩌쩍!
땅이 갈리지더니 악어 괴수가 딛고 있는 땅이 푹 꺼졌다.
"쿠아아아!"
그러더니 거대한 입이 위로 솟구쳐 올랐다.
콰직!
악어 괴수의 몸 삼 분의 이가 단숨에 거대한 입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키이이악!"
악어 괴수가 괴성을 지르며 땅속으로 순식간에 사라졌다.
'방금 내가 뭘 본 거야?'
옆에 있던 웨슬리도 입을 떡 벌렸다.
우린 서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대수림은 여기에 비하면 천국이네!
대체 어떻게 된 세상이길래 S급 괴수가 먹이가 되어 한입에 사라지다니······.
'돌아갈까?'
다시 한번 고민했다.
아무래도 방향을 잘못 잡은 것 같았다.
점점 더 강하고 무서운 놈들이 나오니까.
난 다시 처음에 들어왔던 곳을 향해 움직였다.
반대쪽으로 이동해보고 그곳도 이곳과 비슷하다면, 그냥 돌아갈 생각이었다.
여긴 괴수들만 사는 세상일 테니까.
***
반대 방향으로 며칠을 이동했지만, 여전히 암흑 대수림이었다.
그래도 강한 괴수는 훨씬 덜 보였다.
보통 한 시간에 A등급 이상의 괴수가 한두 마리씩은 보였는데, 이곳은 두세 시간에 한 마리 정도였다.
아마도 내가 간 방향이 여기 암흑 대수림에서도 더 깊숙한 곳이었나 보다.
한참을 더 살폈지만, 아무것도 없었다.
이제 더는 살펴볼 게 없다고 생각했을 때였다.
"정지!"
비공정을 멈춰 세웠다.
내 눈에 뭔가 발견됐다.
고도를 천천히 낮추자, 커다란 바위 위에 강철 덩어리가 눈에 들어왔다.
'미친! 저건 탱크잖아!'
대수림 한가운데 반파된 탱크가 있었다.
비공정 고도를 더 낮춰 가까이 다가갔다.
녹도 많이 슬고, 상당히 오래 방치되어 있었던 것 같았다.
그리고 탱크는 어떤 괴수의 발톱에 당한 흔적이 있었다.
그런데 이건 전생에 봤던 현대 문명의 탱크가 분명했다.
"왜 지구의 전차가 여기 있는 거지?"
순간 정신이 멍해지며, 이해가 가지 않았다.
암흑 마나를 너무 많이 마셨나?
가만히 생각을 정리했다.
지구의 탱크가 맞는다면, 여기가 지구인가?
고개를 돌려 주변을 다시 한번 자세히 살폈다.
아무리 봐도 지구는 아니었다.
태양도 더 크고 불그스름하고.
그때 한가지 가능성이 떠올랐다.
'설마, 여기 차원 게이트 안쪽인가?'
전생에 지구는 차원 게이트에서 나온 괴수 때문에 멸망했다.
아니 멸망했을 것이다.
갑자기 지구 곳곳에 차원 게이트가 생기고, 괴수가 튀어 나왔다.
괴수는 너무 강했고, 인간은 계속 밀렸다.
하지만 헌터가 생겨나고 상황은 반전됐다.
게이트에서 나오는 괴수를 헌터들과 군인들이 처리했고, 지구는 평화를 찾는 듯했다.
그리고 자신감을 얻은 각 나라는 차원 게이트를 없애기 위해 헌터들과 군대를 게이트 안쪽으로 파견했다.
하지만 누구도 살아서 돌아오지 못했다.
몇 번 더 시도는 했지만, 결과는 비슷했고 그다음부터는 인간은 차원 게이트로 들어가지 않고, 밖으로 나오는 괴수만을 상대했다.
'그때 차원 게이트로 들어간 군대의 탱크라면 설명은 된다.'
탱크나 장갑차, 험비, 전투 헬기는 기본이고, 포병대와 대 괴수 소총으로 무장한 군인도 수만 명이나 진입했었다.
물론 난 그때 쪼렙 헌터였기에 들어가지 못했고.
군대와 헌터 공략대가 실패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차원 게이트에서 점점 더 강력한 괴수가 나오기 시작했다.
그리고 헌터와 인간들은 필사적으로 싸웠고, 겨우겨우 버티고 있었다.
하지만 맨 마지막에 나왔던 초거수 카르마탄은 도저히 이길 수 없는 상대였다.
그때 인류 최강의 헌터 결사대 천 명도 모두 전사했다.
'만약 이곳이 그 차원 게이트 안이라면, 지구로 연결된 차원 게이트도 있겠네?'
지구가 어떻게 됐을지 궁금하긴 했다.
그렇게 다시 주변을 살피며 한참을 이동하자, 암흑 대수림의 끝에 도달했다.
그런데 눈 앞에 펼쳐진 것은 끝없는 불모지였다.
바위나 자갈이 가득하고, 나무와 풀은 거의 찾아볼 수 없는 폐허의 땅이었다.
이 주변에 거대 비행 괴수는 보이지 않았기에 조심스럽게 비공정의 고도를 높이고, 주변에 게이트가 있는지 찾아봤다.
다시 한참을 살필 때였다.
웨슬리가 뭔가를 발견했다.
"주군 저길 보십시오. 거대한 성벽이 있습니다."
난 망원경으로 살폈다.
뾰족한 산과 산 사이에 거대한 성벽이 보였다.
성벽 안쪽에서 연기도 피어오르고, 성벽 위에 움직임도 보였다.
분명 누군가 사는 거대 성벽 도시였다.
"웨슬리, 지상에 착륙해!"
비공정과 마법인형을 모두 인형의 집에 넣었다.
그리고 강습 기간트를 타고 홀로 성벽을 향해 움직였다.
'저기가 암흑 마법사들이 사는 곳일까?'
수인족 차원의 코린트 거신들처럼 그들도 살아남았다면, 저런 거대한 성벽도 이해가 된다.
그들도 거신이니까.
성벽 가까이 다가가자, 상대적으로 작은 성문 앞에 5미터 크기의 거신 병사들이 지키고 있었다.
역시 거신들은 살아 있었어!
어쩌면 이들도 화산이 터지고, 건물 지하로 숨어들었다가 암흑 마법사와 함께 이곳 차원에 넘어왔을 수도 있었다.
'뭐라고 하지?'
날 보자마자 공격할 수도 있었기에 괴수인형을 언제든 꺼낼 수 있게 잔뜩 긴장하며 다가갔다.
"응? 이봐! 인간이 혼자 밖으로 다니면 위험해."
"······?"
경비가 날 인간이라고 했다.
강습 기간트는 일반 기간트와 달리, 얼굴이 보였기에 내가 인간인 것을 알아봤다.
그런데 인간이 이곳에 있는 건가?
한 거신 병사가 말했다.
"그런데 인간치고는 좀 크지 않아?"
"그러게. 2미터가 넘는 인간은 처음이네. 아무튼, 들어가라! 곧 해가 진다."
해가 진다고?
내가 이곳 암흑 차원을 살핀 지 보름은 된 것 같았다.
그런데 해가 진 적은 한 번도 없었다.
그러고 보니 평소보다 어두워지긴 했어.
"이리 들어가라!"
거신 병사가 성문 옆에 쪽문을 열어줬다.
난 안으로 들어갔다.
내부는 역시 커다란 도시였다.
다만 높은 건물은 없었고, 천막이나 대충 지은 것 같은 목조 건물이 대부분이었다.
버려진 건가?
길을 다니는 거신들의 모습이 왠지 초췌해 보였다. 그리고 거신 병사들의 무장도 그리 좋아 보이지 않았고.
밤을 맞을 준비를 하는지, 거신들이 집 안과 천막 안쪽에 모닥불을 피우고 있었다.
그런데 빛이 외부로 새어나갈까 상당히 신경 쓰는 모습이었다.
'어 정말 인간이 있네?'
안으로 들어온 지 10분 만에 수염이 덥수룩한 인간 사내가 걸어가는 모습이 보였다.
193. 거신 성채 도시.
193. 거신 성채 도시.
인간을 보자 순간 반가운 마음이 들었다.
난 강습 기간트를 벗고, 그 인간을 따라갔다.
그리고 그가 곧 커다란 동굴 안으로 들어가는 것을 봤다.
나도 따라 들어갔다.
동굴 내부는 횃불로 밝혀 있었고, 곳곳에 테이블이 놓여 있었다.
'뭐야? 사람이 많네!'
이곳은 술집이었다.
거신 바텐더가 술을 따르고, 방금 들어간 수염 사내는 남녀 인간이 앉아 있는 작은 테이블에 앉았다.
그리고 또 다른 작은 테이블에도 인간 넷이 앉아서 술을 마시고 있었고, 한쪽 테이블엔 두 사람이 엎어져 자고 있었다.
특이한 것은 인간들은 작은 테이블에 거신들은 큰 테이블에 앉은 것이다. 인간용 테이블이 따로 있는 것을 보면, 이곳에 인간은 거신들에게 배척당하거나 그런 건 아니었다.
난 분위기를 살피기 위해 인간 셋이 모인 테이블 근처에 빈 테이블에 앉았다.
그러자 5미터나 되는 거신 종업원이 내게 다가왔다.
그는 내가 주문도 하지 않았는데, 술과 먹을 것을 가져왔다.
척!
"우리 집에 인간이 먹을 만한 것은 이것밖에 없소."
"고맙소."
"뭘, 돈 받고 하는 건데."
거신 종업원이 다른 곳으로 갔다.
술을 마시는 척하며 귀를 기울이자, 인간들의 말이 들렸다.
그들은 거신어로 떠들고 있었다.
"빌어먹을! 알아보니까 저번 달에 칼리파 지역의 성채까지 괴수들에게 쓸렸데. 머지않아 여기까지 올 거야."
"젠장, 왜 괴수들이 갑자기 불모지로 오는 거지?"
"난들 아나!"
"어떻게 하지? 다른 곳으로 도망쳐야 하나?"
"어디로 가게? 우리 같은 헌터 용병들을 받아주는 곳은 대수림 근처에 성채뿐이라고."
헌터 용병들이라고?
어째서 헌터가 이곳에 있는 거지?
"제길! 지구로 다시 돌아갈 수도 없고."
"거긴 이미 끝장이야. 그리고 게이트까지 갈 자신 있어?"
"하긴, 대수림으로 가다가 죽겠군."
지구와 헌터 이야기에 난 술잔과 음식이 담긴 접시를 들고, 그들 테이블로 이동했다.
저들은 지구에서 온 헌터들이었기에 묻고 싶은 것이 많았다.
"합석해도 되겠소?"
헌터 용병들은 날 쳐다봤다.
"응? 이 지역에서 못 보던 헌터로군."
"오늘 도착했소."
"그래?"
여자 헌터가 말했다.
"그쪽으로 앉지. 말은 편하게 하고, 어차피 다들 길잃은 헌터들이니까."
"그러지."
"난 카타리나, 이 팀에 리더다. 이쪽은 베릭, 이쪽은 에이단이야."
"난 타일러다."
헌터 용병들과 가벼운 통성명을 했다.
그리고 미리 밑밥을 깔았다.
"난 지구에서 넘어오진 얼마 되지 않아서 이곳 실정을 잘 모른다."
"응?"
세 사람은 동시에 놀란 표정을 지었다.
"혼자 왔나?"
"그래."
그러자 다들 눈을 똥그랗게 떴다.
"오! A급 헌터?"
난 살짝 고개를 끄덕였다.
"이야! A급 헌터는 정말 오랜만이네."
"실례가 안 된다면 클래스를 물어도 되겠나?"
순간 뭐라고 대답해야 할지 고민이었다.
그래서.
"네크로맨서."
"오! 희귀 클래스로군."
"어쩐지 혼자서 게이트를 넘어왔다고 하더니, 언데드를 부리는 헌터였네."
"그런데 다들 여긴 어떻게 넘어오게 된 거지?"
이번엔 내가 물었다.
카타리나가 대답했다.
"뭐, 당신과 똑같지. 괴수의 공격이 더 거세지니, 차라리 차원 게이트 안쪽이 더 안전할 것 같아서 도망친 거지."
"이쪽으로 넘어온 헌터들이 많나?"
"초기엔 좀 많았지. 하지만 등급이 낮은 헌터들은 대부분 대수림에서 죽었고, 우리처럼 C등급 이상의 헌터들만 운 좋게 대수림을 벗어나 이런 거신들의 성채에 머물며 사는 거지. 또 이곳에서 먹고 살려니 대수림에 가서 괴수를 잡다가 죽은 헌터들도 많고."
차원 게이트 넘어 이곳의 삶도 힘들긴 매일반이었다.
그때 수염이 덥수룩한 베릭이 물었다.
"그런데 지구는 지금 어때?"
"휴!"
난 깊은 한숨을 쉬었다.
그러자 카타리나가 베릭을 나무랐다.
"알면서 뭘 물어! 우리가 건너왔을 때도 끔찍했는데······."
이들과 대화를 나누다 보니, 지금 상황을 어느 정도 알 것 같았다.
지금 시점은 내가 죽은 지 8년 정도 지난 시점이었다.
초거수 카르마탄이 A등급 이상의 헌터 결사대 천 명을 전멸시키고, 전 세계를 야금야금 집어삼키고 있었고, 강한 헌터들이 일시에 사라지자, 이곳 암흑 대수림에 살던 괴수들이 차원 게이트를 넘어가 지구를 휩쓸고 있었다.
이들은 3년 전에 이곳 차원으로 넘어온 헌터들로 그때 이미 지구는 거의 초토화된 상태라고 했다.
'그러니까 대충 계산해 보면, 내가 죽고 곧바로 다른 차원에 있는 타일러의 몸에 빙의한 거네.'
아주 오랜 기간 무의식의 바다를 헤맨 것 같았지만, 실상은 죽자마자 곧바로 빙의한 것 같았다.
"그런데 이곳은 대체 어디지?"
"하긴, 넘어온 지 얼마 되지 않았으니, 잘 모르겠군. 이곳은 롱퍼드 왕국으로 거신이라고 불리는 자들이 다스리는 왕국이야. 이곳 차원에서 유일하게 이성을 가진 존재들이지. 안으로 들어오면서 봤지? 그 큰 거인들 말이야."
카타리나의 말에 난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는 세 사람 중에서 유일한 B등급 헌터였다.
"혹시 롱퍼드 왕국의 수도가 어디 있는지 알아?"
"여기서 해가 뜨는 북쪽으로 한참을 가야 해. 하지만 가지 않는 게 좋아. 그곳의 거신들은 인간들을 별로 좋아하지 않아."
"북쪽이라 고맙군."
"아! 그리고 곧 밤이 된다. 그땐 성채 밖으로 나가면 절대 안 돼! 괴수들이 대수림에서 나와 불모지를 돌아다니는 기간이야."
"응? 그럼 낮엔 불모지에 괴수가 없다는 거야?"
"그래! 이곳 태양엔 괴수들의 피부를 녹이는 무슨 성분이 있어. 그래서 낮엔 대수림을 벗어나지 않지."
난 고개를 갸웃거렸다.
"오면서 하늘을 나는 괴수도 봤는데?"
"그 괴수도 먹이가 보일 때만 짧게 비행하는 거야. 햇빛에 오래 노출되면 역시 날개가 녹아 추락하지. 대수림에서 사냥하다가 위험에 빠지면 무조건 해가 많이 비추는 곳으로 도망치는 것도 팁이지. 하지만 밤이 되면 이 넓은 불모지에 대수림의 괴수가 몰려들지. 강한 놈도 있고, 약한 놈도 있는데, 중요한 것은 그놈들은 밤을 낮처럼 볼 수 있는 것들이다. 잘못해 큰 무리라도 마주치면 A등급이 아니라, S등급 헌터라도 살아남지 못해."
"그렇군. 이곳의 밤이 긴가?"
"지구 시간으로 대충 계산하면 20일은 낮이고 10일은 밤이야."
"정보 고맙군."
그때 카타리나가 의미심장한 표정을 지었다.
"그러지 말고, 이곳에서 우리와 함께 있는 게 어때? 우리가 헌터 등급은 좀 낮지만, 이곳의 정보는 훨씬 많이 알고 있지. 그리고 이곳 차원으로 온 지 얼마 되지 않았으니, 돈도 없을 거 아냐?"
"돈? 이곳에 화폐는 뭐지? 금화인가?"
"거봐! 아무것도 모르잖아. 이곳에선 암흑 마석이 화폐나 마찬가지야. 괴수 부산물도 괜찮지만, 부피가 워낙 커서 성채에서 교환하는 것이 낫지."
카타리나가 품에서 주머니를 꺼내더니, 작은 암흑 마석을 하나 테이블에 올려놓았다.
"이게 그 암흑 마석이야. 이런 거 없지?"
난 고개를 끄덕였다.
"우리 동료가 되면 암흑 마석을 분배할 때, 우리 2배를 주지. A등급 헌터라 특별히 제안하는 거야."
나 SS급 헌터인데······.
사실을 말하면 믿으려나?
"그럼 내가 너희를 고용하지. 그건 어때?"
"고용?"
"길잡이로 고용할 테니까, 밤이 지나면 나와 함께 롱퍼드 왕국의 수도로 가지."
"거긴 왜 가려는 거야? 인간들을 반기지 않는다니까."
"그곳의 왕에게 뭐 좀 물어보려고. 그리고 내 길잡이가 되면 특별한 선물을 하지."
"선물?"
난 카타리나는 쳐다봤다.
"클래스가 전사지?"
"당연하지."
그녀의 떡 벌어진 어깨와 근육질 몸매를 보면 누구나 알 것 같았다.
"무기는 B등급이겠군. 내가 그것보다 더 좋은 도끼를 주지."
"뭐? A등급 무기를 준다는 건가?"
A등급 괴수 부산물로 만든 무기가 제법 많았다.
물론 S등급 무기도 있고.
"너희는 클래스가 뭐지?"
다른 두 사람을 쳐다봤다.
"나도 전사긴 한데 탱커다. 좋은 방패나 갑옷이라도 있어?"
베릭이 물었다.
"물론이야. 아주 좋은 게 있지."
"난 암살자 클래스인데, 내가 쓸 만한 것도 있나?"
"물론 있다. 검도 있고, 단검도 있고, 투척용 도끼도 있지."
"오!"
에이단이 고개를 끄덕였다.
헌터들의 장비는 곧 목숨과 같았다.
더 좋은 무기를 가지고 있으면, 더 강한 괴수도 잡을 수 있었고, 그만큼 생존 확률도 올라간다.
"여기선 확인하기 힘드니, 너희 숙소로 가서 보여주지."
"좋다!"
세 용병이 고개를 끄덕였다.
우린 자리에서 일어섰다.
"아! 내가 먹은 것도 계산해 주게."
"쩝. 알았다."
그렇게 난 이들이 묵는 숙소로 이동했다.
***
지난 며칠 동안 헌터 용병들에게 이곳 지역과 롱퍼드 왕국의 거신 정보를 얻었다.
암흑 마법사들의 존재를 전혀 모르는 것을 보면, 이곳을 지키는 거신들은 암흑 마법사들은 아닌 것 같았다.
아무래도 암흑 마법사들이 저쪽 차원의 거신들을 납치하거나 화산이 터지면서, 데려온 것 같았다.
그리고 거신 병사가 아닌 일반인 거신도 상당히 많았다.
'그런데 정말 암흑이네.'
창밖을 쳐다보자, 정말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마치 온 세상이 암흑에 휩싸인 듯.
달이나 별이라도 보여야 길을 찾을 것이 아닌가.
이런 어둠이라면 방향도 전혀 읽을 수 없었다.
내일이면 낮이 시작되니, 롱퍼드 왕국으로 갈 수 있었다.
가서 암흑 마법사들을 찾아볼 생각이었다.
그리고 어떻게 이곳에 차원 게이트를 만들었는지 물어볼 생각이었다. 차원 마법진이야 마석이 있다면 그릴 수 있었고, 속성 마석이 있다면 이동할 수 있었다.
하지만 차원 게이트는 항상 열려 있었기에 완전 성격이 다른 것이었다.
'혹시, 그 암흑 마법사들 때문에 지구나 다른 차원에 게이트가 열린 거 아닌가?'
그리고 암흑 대수림의 괴수들이 공격했을 수도 있었다.
왠지 암흑 마법사를 만나면, 그 답을 알 것 같았다.
쿠아아앙! 쿠웅!
'뭐지?'
강렬한 충격음에 숙소 밖으로 나갔다.
쿵! 쿠웅!
그때 카타리나와 헌터 용병들이 횃불을 들고 달려왔다.
"젠장! 20미터나 되는 거대 괴수야!"
"뭐?"
"강해 보이는 괴수가 성문을 부수고 있어! 후문으로 도망쳐야 해!"
"밤인데 어디로 도망쳐?"
"몇 시간만 버티면 낮이 된다. 저런 놈하고 싸우는 것보다 차라리 어둠 속에서 도망치는 게 나아!"
대체 어떤 놈이길래 이렇게 겁을 먹은 거야?
쩍! 쩌쩍!
콰아아앙!
성문이 부서졌다.
그리고 20미터 크기의 대군주가 모습을 드러냈다.
"끼이이아!"
"끼아악!"
안으로 3미터 크기의 도사견 괴수가 쏟아져 들어오고 있었다.
"괴수를 막아라!"
성채에 있던 거신 병사들이 횃불과 무기를 들고 달려들었다.
이곳에 거신들은 대부분 5, 7미터의 작은 거신들이었고 마나는 전혀 없었지만, 3미터의 괴수를 상대론 꽤 강력한 모습을 보였다.
문제는 20미터의 대군주였다.
대군주가 안으로 들어와 검을 휘두르자, 괴수를 막고 있는 거신병들이 힘없이 쓰러졌다.
"타일러, 어서 피하자!"
"우리가 이대로 물러가면 여기 거신들은 다 죽을 거야."
"우리도 어쩔 수 없어! 저건 S급 괴수야!"
"내가 처리하지."
"뭐?"
난 인형의 집을 열었다.
드라우켄과 괴조인형을 꺼냈다.
그리고 드라우켄과 괴조인형이 12기의 기간트를 들고 나왔다.
"크아아아!"
드라우켄이 포효하고 대군주를 노려봤다.
"드라우켄 놈을 죽여라!"
드라우켄이 대군주에게 달려들었다.
"모두 기간트에 탑승하라!"
"네! 주군!"
웨슬리와 10명의 자동인형이 기간트에 올라탔다.
나도 오리지널 룩급 기간트에 올라탔다.
그리고 헌터 용병들을 쳐다봤다.
[너희도 작은 괴수 정도는 잡을 수 있겠지?]
"그, 그렇지······."
그들은 꼭 괴물을 본 얼굴이었다.
난 기간트의 검을 높이 들었다.
[모두 놈들을 공격하라!]
[가자!]
기이이잉! 쿠쿠쿵!
드라우켄과 괴조인형, 나는 대군주를 상대하고, 웨슬리와 자동인형들은 성안으로 밀고 들어오는 괴수를 죽이며 입구로 전진했다.
드라우켄이 성벽을 타고 대군주의 검을 피하고 있었고, 괴조 인형이 머리 위에서 공격했다.
대군주가 정신없는 사이에 뒤에서 내가 다가가 대군주의 등에 검을 찔렀다.
쾅! 푸욱!
[운명의 실타래를 연결합니다.]
"끄어어어억!"
대군주가 고통스러운 괴성을 질렀다.
놈이 나를 향해 몸을 돌리자, 난 뒤로 한발 물러섰고, 이번엔 드라우켄이 커다란 덩치로 대군주를 뒤에서 덮쳤다.
쿠우웅!
놈이 쓰러지자, 달려가 목을 향해 검을 내려쳤다.
부웅! 쩌억! 쩌억!
세 번을 연거푸 찍자, 놈의 머리가 잘렸다.
[기사회생(lv.max) 스킬을 사용합니다.]
[대군주(lv.1) 허수아비를 만들었습니다.]
'이거 허수아비만 잔뜩 늘어나네!'
S급 대군주를 마법인형으로 만들었지만, 큰 감흥은 없었다.
지금 내 인형의 집엔 SS급 지네 괴수도 있었으니까.
대군주가 사라지자, 놈을 따르던 괴수들이 발광했다.
[괴수를 죽여라!]
하지만 내 기간트들이 괴수를 성문 입구까지 밀어냈다.
가끔 큰 괴수도 들어왔지만, 기간트들의 상대는 아니었다.
그렇게 한동안 입구를 막아선 전투가 벌어졌고, 태양이 떠오르자 괴수들은 다시 대수림을 향해 도망쳤다.
[휴! 다들 고생했다.]
전투가 끝나자, 거신 병사들과 거신 주민 수백 명이 우르르 몰려나왔다.
그들은 나와 기간트 주변을 둘러싸더니 함성과 환호성을 지르기 시작했다.
'이거 또 내가 거신들을 구했군.'
이곳 거신들도 수인족 차원으로 옮길 수 있다면, 내 전력이 되겠군.
194. 롱퍼드 왕국.
194. 롱퍼드 왕국.
"다, 당신 뭐야?"
"미친! 당신 A급 헌터가 아니잖아!"
카타리나와 두 헌터는 경악했다.
얼마나 놀랐는지 손을 부들부들 떨고 있었다.
"당신 S급 헌터인가?"
"아니야! S급 헌터가 어떻게 S등급 괴수를 5분 만에 죽여!"
"그럼 SS급? 헉!"
"헐!"
헌터들의 반응은 이해한다.
내가 죽기 전에도 SS급은 헌터는 한 손가락 안에 드는 탑 클래스 헌터였으니까.
"근데 어떻게 살아남았지? 카르마탄과 전투에서 최상위 헌터들은 모두 죽었다고 들었는데? 게다가 방금 저건 언데드가 아니잖아!"
카타리나는 내 기간트를 가리키며 말했다.
"솔직히 말하지. 난 너희가 생각하는 헌터가 아니다."
"뭐?"
"난 다른 차원에서 온 인간이다."
카타리나와 헌터들이 영문 모를 표정을 짓는다.
"다른 차원? 인간이 사는 다른 차원이 있다고?"
"정확히 말하면 저기 있는 거신의 후손이라고 할 수 있지. 그리고 난 저 거신들이 원래 살던 차원에서 왔다."
난 헌터들에게 내가 다른 차원에서 왔고, 저쪽 차원에 대해서 간략히 말해줬다.
"그러니까 저쪽 차원엔 저런 기간트가 있어서 괴수를 막고 있다는 건가?"
"그렇다."
"허! 기간트라니, 근데 저건 완전 로봇이잖아! 저쪽 차원의 인간은 모두 당신처럼 능력자인가?"
"아니, 기간트에 탈 수 있는 기사는 꽤 많지만, 방금 본 능력은 나만 가지고 있다."
헌터였다가 죽어서 빙의했다고 말하는 것보단 이게 나을 것 같았다.
설명도 훨씬 짧고.
그리고 내가 왜 이곳에 왔는지도 천천히 설명해줬다.
"아! 머리가 아프군."
카타리나는 리더답게 차분했지만, 한 번에 너무 많은 설명을 들었는지, 머리에 쥐가 난다는 표정을 지었다.
"한 번에 다 이해하려면 힘들 거야. 내 설명도 부족하고, 롱퍼드 왕국에 가는 길에 차분히 설명해주지."
"휴! 그게 좋겠군. 일단 저 기간트는 확실히 알겠어."
그야 눈앞에 있으니까.
카타리나가 갑자기 조심스럽게 물었다.
"근데 우리도 저 기간트에 탈 수 있는 겁니까?"
카타리나는 내가 SS급 헌터와 같은 실력이 있으니, 그냥 말을 놓기 부담스럽다며, 높임말을 썼다.
그리고 리더가 존댓말을 하자, 두 헌터들도 말을 높였다.
"미안하지만, 저 기간트는 거신 차원에 있는 마나를 가지고 있어야 탈 수 있다."
"그건 좀 아쉽군요. 어렸을 때 꿈이 저런 로봇에 타는 거였는데······."
카타리나는 정말 아쉬워했다.
그녀의 나이는 40대 초반. 그녀가 어렸을 적엔 게이트도 없었고, 헌터도 없는 시절이었다.
난 괴수인형을 넣으면서 기간트도 함께 넣었다.
그리고 비공정을 꺼냈다.
이곳에 사는 거신들은 그 모습을 보고 날 마법사라고 불렀다.
헌터들에겐 아공간이 있다고 말해주자, 바로 알아들었고.
그들도 인벤토리는 가지고 있었으니까.
"자! 서두르지."
"근데 이게 정말 하늘을 나는 겁니까?"
"지금도 공중에 살짝 떠 있잖아. 일단 타면 안다."
난 헌터들과 비공정에 탔다.
그리고 웨슬리와 5명의 자동인형에게 조종을 맡겼다.
이곳의 거신들에겐 성문을 수리하고 괴수의 공격에 대비하라고 시켰다.
***
비공정은 북쪽으로 향하고, 헌터들에게 지난 며칠간 저쪽 차원에 대해서 말해줬다.
카타리나의 얼굴이 붉어졌다.
"그러니까 타일러 대공님 생각엔 암흑 마법사들이 차원 게이트를 만들었을 수도 있다는 겁니까? 우리 지구를 침략한 게이트를요?"
"그건 아직 확실하지 않아. 그걸 알아보려고 롱퍼드 왕국으로 가는 거고."
"만약 사실이면 정말 쳐죽일 놈들이네요. 지금 저희 차원은 실시간으로 초거수에게 삼켜지고 있습니다!"
카타리나와 두 헌터가 분노에 이를 악물었다.
"내 두 딸도 죽었고요!"
특히 자식을 잃은 엄마는 지금 눈앞에 암흑 마법사가 있다면 때려죽였을 것 같은 살기를 내뿜었다.
"일단 진정하게. 나도 아직은 가정일뿐이니까."
"하아! 알겠습니다."
카타리나는 심호흡했다.
"롱퍼드 왕국에 그대들과 같은 헌터 용병이 많은가?"
"많지는 않습니다. 주로 대수림과 가까운 성채에서 활동하고, 대략 300여 명 정도 있을 겁니다."
생각보다 많진 않았다.
게다가 대부분 C등급과 B등급 헌터였으니, 폰급 기간트 수준 정도였다.
그래도 그 정도면 나쁘지 않다.
기간트 없이 괴수를 잡을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되겠나.
개개인의 능력은 서리 오크들보다 오히려 더 높을 것이다.
게다가 스킬을 쓰면 더 강력한 힘을 쓸 수도 있고.
헌터들을 차원으로 데려가면, 강습 기간트 정도는 씹어 먹을 것이다.
"자네들은 계속 이곳 차원에 살 건가?"
"네?"
"내가 사는 차원으로 가고 싶다면, 데려가 줄 수도 있네."
"정말입니까? 그곳이 타일러 대공님 말처럼 좋은 곳이라면 당장 가고 싶습니다. 사실 이곳에선 죽지 못해 사는 겁니다."
"다른 헌터들도 그럴까?"
"물론입니다. 사방을 둘러보십시오. 온통 불모지밖에 없습니다. 지구보다 안전하다곤 하지만, 사람이 살 수 있는 환경은 아닙니다. 그리고 며칠 전엔 안전하다고 생각한 성채까지 공격받았고요."
"좋아! 그럼 그대들에게 부탁 하나 하지. 롱퍼드 거신 왕국에 볼일이 끝나면, 성채에 다니며 헌터들을 설득해 주게. 그들도 함께 데려가고 싶네."
"근데 왜 우리 헌터들을 도와주시는 겁니까?"
난 고개를 흔들었다.
"도와주는 것이 아니라, 그대들 힘이 필요해서 그러는 거야. 내가 사는 차원도 괴수가 있고, 전쟁이 있는 곳이네. 그러니 내가 사는 세상을 지키기 위해서도 힘이 필요하네."
카타리나가 고개를 끄덕였다.
"헌터들의 힘이 얼마나 도움이 될진 모르지만, 삼시 세끼 잘 먹고, 사람답게 살 수만 있다면 그들도 가고 싶어 할 겁니다."
"저희도 힘을 모으겠습니다."
다른 두 헌터들도 내 뜻을 이해했다.
"그런데 지구에도 헌터나 인간이 남아 있을까?"
카타리나는 잠시 고민하더니 입을 열었다.
"확실하진 않지만, 꽤 있을 겁니다. 저희가 게이트로 들어왔을 때도 끝까지 남아서 싸우는 헌터들도 있었으니까요."
"그들을 데려올 수 있을까?"
"차원 게이트까지 가는 것도 문제지만, 헌터들도 눈 깜짝할 새 죽어 나가는 곳이 대수림입니다. 쉽진 않을 겁니다."
"알았네."
단순한 이동수단으로는 그들을 피난시킬 수 없었다.
특히 대수림에 S급 비행 괴수 때문에 비공정으로 이동도 힘들었고. 그건 나중에 더 고민해 봐야겠다.
"셋 다 체력과 근력 수치는 괜찮지?"
"에이단이 암살자 클래스라 근력이 조금 떨어지긴 하지만, 체력은 몸 쓰는 헌터들의 기본이라 다들 꽤 올렸습니다."
난 인형의 집에서 오크들이 쓰는 3미터짜리 강습 갑옷 3개를 꺼냈다.
"방어력은 웬만한 방패나 갑옷보다 좋을 거야."
"이 둔해 보이는 걸 입으란 말입니까?"
"그래, 기간트와 같은 재료로 만든 갑옷이야."
"네? 그럼 괴수 부산물로 만든 거군요."
세 헌터는 기간트가 괴수와 싸우는 모습을 지켜봤다.
3미터짜리 괴수의 발톱에도 생채기만 나는 수준이었다.
이걸 입는다면 자신들도 왠지 더 강해질 수 있을 것 같았다.
세 헌터가 강습 갑옷을 입었다.
하지만 곧 볼멘소리가 튀어나왔다.
"허! 이걸 입고 전투를 하란 말입니까?"
"너무 무거워, 움직이기도 힘든데요."
"헌터들이 엄살은."
난 강습 갑옷에 있는 강습 낙하 장치 사용법을 알려주었다.
신형 강습 갑옷은 강습 기간트처럼 기체를 가볍게 하는 단계를 4단계로 만들었다.
가장 가벼운 4단계는 하늘에서 뛰어내려도 매우 천천히 하강해 거의 다치지 않을 정도였고, 1단계는 50kg의 무게로 입고 다니는 것으로 자연스레 신체 단련도 되고, 익숙해지면 더 강한 무게로 적을 공격할 수 있었다.
내 설명을 듣고 직접 실험을 한 헌터들은 보물을 얻은 표정을 지었다.
"오오! 마치 깃털 같은데요!"
"우주 유영을 하는 기분이야."
헌터들은 아이처럼 좋아했다.
"평소엔 1단계로 다녀. 만약 그러지 않으면 다시 뺏을 테니까."
"알겠습니다."
헌터들을 잘 구슬려 내 차원으로 데려간다면, 또 다른 강력한 전력이 될 것이다.
특히 기간트를 제외하곤 헌터들의 능력이 제일 강했다.
***
[롱퍼드 왕국]
비공정을 타고 5일을 날아왔다.
왜 이곳에 롱퍼드 왕국이자 성벽 도시를 건설했는지 알 것 같았다.
일단 계속 험한 불모지만 보이다가 드디어 푸른 들이 나왔고, 아주 멀리 흰 눈이 뒤덮인 높은 산맥이 보였다. 그리고 작은 산과 숲이 가까운 곳에 있었다.
"허! 여기엔 숲이 있군요."
"왜 왕국 가까이 못 오게 했는지, 이제 알겠네."
헌터들도 여기까지 와 보진 않았다.
길도 험하고, 절벽과 바위산도 많았기에 많은 길을 돌아가야 했다.
내가 가진 가장 빠른 비공정을 탔기에 5일밖에 안 걸렸지, 걸어서 이동했다면, 적어도 두세 달은 걸렸을 것이다.
중간에 성채 도시들이 있었기에 물이나 식량은 보급받을 수 있었지만, 그들은 외부인이 롱퍼드 왕국 깊숙이 가는 걸 허락진 않았다.
"그런데 저길 어떻게 들어가지요?"
"그냥 들어가면 되지."
"위험하지 않을까요?"
"자네들은 비공정에 남아 있어. 안으로 들어가는 건 나 혼자면 충분해."
"조심하십시오."
말을 하곤 카타리나가 어색한 웃음을 지었다.
SS급 헌터에게 조심하라는 말이 좀 이상했나 보다.
비공정 고도를 낮추자, 거리에 거신들이 우리를 향해 올려다봤다.
'코린트 왕국 수준은 되겠어.'
전체적인 도시 규모는 비슷했지만, 거리를 오가는 거신들 숫자는 훨씬 많아 보였다.
롱퍼드는 거대한 성채로 도시 전체가 높은 성벽이 둘러 있었고, 중앙에 왕궁으로 보이는 성이 있었다.
우린 성을 향해 곧장 날아갔다.
그리고 안쪽 넓은 공터에 착륙했다.
"침입자다! 포위하라!"
갑옷을 입은 수백 명의 거신이 우리 비공정을 포위했다.
난 강습 기간트만 입고 비공정에서 내렸다.
그러자 기사단장으로 보이는 거신이 다가왔다.
"네놈들은 누구냐?"
"난 거신들의 차원에서 온 타일러 빈스라 하오."
"뭐라? 거신들의 차원?"
기사단장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이데아 제국이 있던 거신들의 세상에서 왔소. 롱퍼드의 왕을 만나고 싶소. 말을 전해주시오."
기사단장은 어이없는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우릴 바로 공격하진 않았다.
하늘에서 비공정을 타고 내려왔기 때문이었다.
이곳의 기술론 불가능하고 헌터들도 불가능하기 때문이었다.
특히 대수림의 비행 괴수를 뚫고 왔다는 뜻이었기에 잔뜩 긴장하고 있었다.
기사단장은 내성으로 기사를 보냈다.
잠시 후.
왕궁으로 보낸 거신 기사가 달려왔다.
그리고 기사단장에게 뭐라고 귓속말을 했다.
"알았네."
기사단장이 내게 다가왔다.
"아하르 국왕 폐하께서 만나겠다고 하신다. 당신 혼자만 따라와라."
"알겠소."
난 기사단장과 20여 명의 호위 기사와 함께 이동했다.
그들은 날 잔뜩 경계하고 있었다.
거대한 알현실로 들어갔다.
그리고 맞은 편 단상 위에 13미터의 거신이 앉아 있었다.
그가 아하르 국왕이었다.
"국왕 폐하를 뵈옵니다."
고개를 숙였다.
그는 나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다른 차원에서 왔다고?"
"그렇습니다."
"정말인가? 이곳으로 이동하는 차원 균열이나 마법진은 없을 텐데?"
아하르 국왕은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195. 차원 이동 마법진.
195. 차원 이동 마법진.
"하나 있습니다. 이데아 제국의 수도 지하에 있는 게이트 말입니다."
"아! 어떤 걸 말하는지 알겠군."
아하르 국왕은 날 흥미롭게 쳐다봤다.
"몸을 살펴보니, 차원 마나를 품고 있지 않은데, 어떻게 차원의 문을 열 수 있었지?"
"차원 마나요?"
"멸망한 이데아 제국에선 암흑 마나로 불리지."
"아! 아는 동료가 암흑 마나를 가지고 있습니다."
"신기하군. 엄청난 세월이 흘렀는데, 아직도 차원 마나를 가진 거신이 저쪽 세상에 남아 있다니."
"그런데 왜 차원 마나라고 부르는 겁니까?"
"차원 마나는 생명의 탄생과 죽음을 통해서 얻을 수 있네. 그러나 우리가 생명의 탄생에 관여할 순 없지. 하지만 죽은 자의 몸에서 소량의 차원 마나를 흡수하는 건 어렵지 않네. 그 모습을 보고 다른 거신들이 우릴 암흑 마법사니, 암흑 마나니 그런 이름을 붙인 것뿐이다."
"그런데 제가 이데아 제국의 발굴지에서 암흑 마법서를 찾았습니다."
"그건 우리가 만든 것이 아니네. 다른 마법사들이 우리의 마법을 기록한 거지. 물론 차원 이동 마법진 같은 중요한 마법서는 없었을 거네. 차원 이동 마법은 위험하기에 직계 제자나 자식에게만 전수하거든."
아하르 국왕은 내가 묻는 말에 친절하게 설명을 해 주었다.
생각보다 나쁜 사람은 아닌 듯.
"그리고 이데아 제국의 마법사들이 암흑이니, 죽음이니 그런 이름을 붙인 것은 미지의 힘에 대한 두려움 때문이다."
아하르 국왕은 차원 마나에 대해 몇 가지 예를 들면서까지 설명해주었다.
예를 들어 가장 기본적인 적의 시야를 차단하는 마법은 대상의 정신을 공격해 눈을 가리는 것이 아니라, 어둠이 가득한 차원의 공간을 일시적으로 연결해 보여줌으로 적이 시야를 차단당했다고 믿게 하는 것이다.
이해는 잘 가지 않지만, 그가 하려는 말의 의미는 알고 있었다.
차원 마나나 차원 마법은 사악한 것이 아니라는 것을 설명하고 싶은가 보다.
"그런데 아주 오래전 고대의 일을 잘 알고 계시네요?"
아하르 국왕이 피식 웃었다.
"우리가 이곳 차원으로 온 이후로 왕들은 대대로 선조들의 의식을 이어받았다. 그래서 중요한 일은 기억하고 있다."
상대의 의식을 들여다보는 마법.
이미 암 드로운과 알리사 엘가가 내게 의식 연결 마법을 사용했기에 어떤 것인지 알고 있었다.
알리사는 이 마법은 매우 위험한 마법이라고 했다.
자신이 상대의 강렬한 의식을 들여다보기도 하지만 상대도 자신의 의식을 들여다볼 수 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잘못하면 상대의 의식에 조종당할 수 있었기에 대부분 마법사는 죽기 직전에만 사용한다고 들었다.
아하르 국왕이 몸을 앞으로 기울였다.
"이번엔 내가 묻지. 왜 이곳 차원에 왔나?"
"제가 사는 차원과 다른 차원이 괴수들에게 공격을 받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것들은 차원 균열을 통해 들어오고 있습니다. 그 이유를 찾다 보니 이곳까지 오게 됐습니다."
"하아!"
아하르 국왕이 깊은 한숨을 쉬고 있었다.
역시 그는 뭔가를 알고 있는 듯했다.
아하르가 자리에서 일어서더니, 단상 아래로 내려왔다.
"나와 함께 갈 곳이 있네. 따라서 오게."
그는 기사단장과 호위 기사도 물리고, 나와 단둘이 지하로 이동했다.
그리고 지하실 입구에 도착하자, 아하르 국왕이 문에 손을 가져다 댔다.
쿵! 기기기기기긱!
입구의 철문이 위로 올라가며 열렸다.
아마도 차원 마나에만 열리는 문인 것 같았다.
"들어가지."
우린 안으로 들어갔다.
안으로 들어가자, 벽과 천장에서 불이 켜졌다.
내부는 상당히 넓었고, 한쪽 벽에 책장이 보였다.
그 책장 안쪽엔 수천 권의 책들이 꽂혀 있었다.
"이곳은 롱퍼드 왕국의 역사를 기록한 곳이지."
아하르는 한쪽 벽으로 이동했다.
그곳엔 여러 장의 그림이 그려져 있었다.
"어? 이건 차원 이동 마법진이네요."
수인족 차원으로 이동하는 마법진이 있었기에 단번에 알아봤다.
아하르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자기 선조들에 관해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너무 오랜 세월이 흘렀기에 나도 정확히는 모르지만, 선조들이 말하길 맨 처음 차원 마법사들은 새로운 마법과 마법진을 연구하는 엘리트 마법사들이었다고 하더군."
"그래요?"
"그러다 차원 마나를 발견했고, 자신들도 모르게 차원 이동 마법진을 만들어 낸 거지. 모든 일은 그때부터 시작됐다고 들었네."
아하르가 짧은 한숨과 함께 고개를 흔들었다.
"나도 이유는 모르겠지만, 그들은 자신들이 사는 세상과 비슷한 차원을 찾아 이동했네. 그러다 죽음을 맞기도 하고 돌아오지 못한 마법사들도 있다고 들었네. 여기 벽에 있는 여섯 개의 마법진은 숨을 쉴 수 있고, 거신들이 살아갈 환경이 어느 정도 조성된 곳이라고 들었네."
하나가 수인족 차원이니, 다른 건 엘프, 드워프, 오크, 그리고 이곳으로 연결된 차원 마법진일 것이다.
나머지 하나는 지구일 거고.
"그런데 차원 이동 마법진을 사용하다가 가지 말아야 할 곳에 갔다고 하네. 어떤 곳인지는 기록도 남아 있지 않지만, 대대로 이어져 온 이야기에 따르면 거대한 악마가 사는 차원이라고 하더군."
"설마? 거신들의 세상을 멸망시키려던 그 초거수가 그곳에서 온 겁니까?"
"솔직히 나도 정확히는 모르네. 그러지 않을까 짐작만 할 뿐이지. 그리고 선조들도 그 초거수가 어떻게 이곳 차원을 알고 넘어왔는지는 모르는 것 같았네."
그러니까 정리해 보면, 차원 이동 마법진으로 여기저기 쑤시고 다니다가 거대 악마가 사는 차원에 갔고, 그 악마가 역으로 거신 세상에 왔다는 말이었다.
너무 오랜 세월이 흘렀기에 확인할 길은 없었지만, 가능성은 충분히 있어 보였다.
"그럼 차원 균열은 어떻게 생기는 겁니까?"
"그건 나도 모르네. 막대한 차원 마나가 필요하다는 것밖에 모르네."
"하지만 이데아 제국의 수도 지하에 차원 게이트를 만들어 놓지 않았습니까. 제가 그곳을 통해 넘어왔고요."
"선조들은 차원 이동의 위험성을 알고, 사용을 금지했기에 그 방법은 나도 모르네. 차원 이동 마법진도 여기 있는 여섯 개밖에 남아 있지 않고. 그리고 차원 마나를 흡수하는 방법도 대대로 왕가에만 전해지기에 차원 마나를 품고 있는 거신도 거의 없네."
어쩐지 이곳 거신들의 몸에는 차원 마나가 없었다.
차원 마나가 대기 중에 있다고 해도 일반 마나처럼 자연스럽게 몸에 스며드는 것은 아닌 것 같았다.
"그리고 우리는 이제 이곳 차원에 살면서 외부와 단절하고, 다른 차원에서 생기는 일엔 전혀 관여하지 않고 있네."
"그럼 지금 차원 균열을 만드는 것은 누굽니까?"
"헌터들이 말하는 지구 차원을 공격한 카르마탄이라는 그 초거수가 아닐까 하네. 그리고 카르마탄은 거신 차원을 공격했던 그 초거수의 새끼일 가능성이 크고."
아하르 국왕의 말을 듣고, 종합해 한 가지 가설을 세웠다.
고대 거신 세상에 초거수가 차원을 뚫고, 넘어왔다.
놈은 너무 강력했고, 세상을 먹어치우기 시작했다.
큰 위협을 느낀 거신들이 힘을 모아 초거수를 죽였다.
하지만 초거수의 몸에서 나온 포자 때문에 위대한 열두 기사 일부와 거신 영웅들이 괴수로 변이했다.
그리고 초거수를 죽였지만, 기록엔 초거수의 새끼가 살아 있다고 했다. 그 새끼가 지구를 공격한 카르마탄이고.
고대 거신들은 포자 때문에 초거수의 새끼를 죽이지 못했고, 대수림으로 도망쳤다고 했다.
그리고 변이한 거신 괴수들이 거신 제국을 공격했고, 가장 강성했던 이데아 제국이 레기우스와 불카누스에게 멸망했다.
살아남은 거신들은 모든 역량을 모아 장벽을 세우고 자신들의 세상과 대수림을 단절시켰다.
대충 여기까진 맞아떨어진 것 같다.
'그다음이 문제인데······.'
내가 생각에 잠기자, 아하르 국왕은 조용히 고대 서적을 뒤지고 있었다.
초거수의 새끼가 오랜 세월 동안 살아남았다면 거대해졌을 것이고, 지금의 카르마탄이 됐다고 가정해봤다.
그럼 왜 다른 차원을 공격한 것이지?
그것도 괴수 군단까지 만들어서.
아니면 괴수 군단은 변이한 거신 괴수가 만들었을 수도 있었다. 포자를 흡입하며 초거수의 능력을 일부 흡수했고, 괴수를 조종하는 힘을 얻었을 수도 있다.
그리고 거신 괴수들을 조종하는 것은 카르마탄이고.
대략 그렇게 가정해봤다.
카르마탄이 초거수의 새끼고, 지능이 있다면 어미의 복수를 하려고 하지 않을까?
만약 그렇다면 거신들의 세상을 멸망시키고 싶을 수도 있었다.
하지만 헬다임 장벽이 가로막혀 있었고, 카르마탄도 장벽을 뚫을 순 없었다.
그렇다면 장벽 너머로 가는 방법은 이제 하나밖에 없었다.
장벽 너머에 차원 균열을 만드는 것.
왠지 몇 번 시도했을 것 같았다.
하지만 장벽 너머에 차원 균열을 만들지 못했고, 차원 마나가 부족했기에 우선 차원 마나를 모으기 위해 다른 차원으로 가는 게이트를 열어 공격했고, 그곳에서 차원 마나를 모아 또다시 대수림에 차원 균열을 만들었다.
그 차원 균열이 지금 대수림에 있는 엘프나 다른 차원의 균열일지도 몰랐다.
그리고 카르마탄이 차원을 이동할 수 있는 곳은 고대 차원 마법사들이 차원 이동 마법진을 이용해 다른 차원으로 넘어갔던 곳만 가능한 것 같았다.
'차원을 이동할 때, 길이나 흔적 같은 게 생기는 건가?'
대수림에 생긴 차원 균열이 여기 있는 차원 이동 마법진으로 갈 수 있는 곳밖에 없었기에 그렇게 예상해 봤다.
뭔가 억지로 끼어맞춘 느낌이지만, 당장 내 머리론 그 이상을 상상할 순 없었다.
만약 내 가정이 어느 정도 맞는다면, 대수림의 차원 균열이 점점 장벽과 가까워지고 있고, 이다음은 왠지 장벽 너머에 차원 균열이 생길 것 같았고, 그리고 그 차원 균열은 지구와 연결될 것 같았다.
'그럼 거신 괴수 군단과 카르마탄이 장벽 너머로 온다는 말이잖아!'
순간 온몸에 식은땀이 흘러내렸다.
솔직히 레기우스나 불카누스도 상대하긴 싫지만, 카르마탄은 도저히 엄두가 나지 않았다.
내 가정이 다 틀리더라도 왠지 오래지 않아 장벽 너머에 차원 균열이 생길 것 같은 불길한 느낌이 들었다.
그리고 지금까지 불길한 느낌은 모두 현실이 됐고.
'그 카르마탄을 어떻게 죽이지?'
지구 멸망을 가속한 수백 개의 핵폭탄도.
인류 최강의 헌터 천 명도 못 한 일이잖아!
게다가 SSS급 괴수인 레기우스와 불카누스도 있고, 다른 거신 괴수와 대군주, 수백만 괴수 군단도 있었다.
그놈들이 한꺼번에 차원 균열에서 쏟아져 나온다면, 저쪽 세상도 끝장이었다.
내 표정을 읽었을까?
아하르 국왕이 미안한 표정을 지었다.
그의 잘못은 아니었다.
호기심 많은 선조들이 다른 차원으로 가는 마법진을 만들었을 뿐이었다. 그리고 운 나쁘게 차원 이동을 할 수 있는 초거수가 있는 차원과 연결됐을 뿐이고.
"일단 이 마법진 좀 그려가겠습니다."
"기다려 보게."
그는 책장에서 책 하나를 꺼내 건넸다.
"이 책을 가져가게. 여섯 개의 차원 이동 마법진이 그려 있네."
일단 아하르가 준 책을 챙겼다.
난 앞으로 우리에게 닥칠 일을 아하르 국왕에게 말해줬다.
"허! 이제 어떻게 할 생각인가?"
"죽을 때 죽더라도, 발악은 해봐야죠."
다시 얻은 두 번째 인생이었다.
이유는 모르겠지만, 헌터였을 때 능력도 생겼고, 내 왕국도 생겼고, 이제 나름 세계 최강자의 반열에도 올랐다.
이 모든 걸 포기할 순 없었다.
그리고 절망만 하기엔 내가 책임지는 이들이 너무 많다.
차분히 생각을 정리했다.
그러자 몇 가지 방법이 머릿속에 떠올랐다.
내가 아무리 강해지고 많은 군단을 모아도 단번에 그 많은 괴수를 전부 상대할 순 없었다.
시간이 얼마나 남았는지는 모르겠지만, 장벽 너머에 차원 균열이 생기기 전에 괴수들의 병력을 최대한 줄일 생각이었다.
우선 카르마탄 다음으로 제일 강력한 레기우스와 불카누스!
그리고 불의 괴수 군단을 먼저 처리할 생각이었다.
몸길이가 3km나 되고 입에서 불을 뿜는 불카누스는 평범한 방법으론 죽일 수 없다.
알리사의 말로는 빙결의 오브 다섯 개로 거의 성공할 뻔했다고 했다.
그러니 지금 가장 먼저 할 것은 더 많은 빙결의 오브를 만들기 위해 재료부터 구해야 했다.
"이곳 차원으로 이동하는 마법진이 어디로 연결되어 있습니까? 대수림입니까?"
"대수림은 아니네. 불모지로 이동될 거네. 차원 마법진을 자세히 살피면 아주 조금 다른 것이 있을 거네."
난 내가 가진 수인족 차원 이동 마법진을 꺼냈다.
"정말 조금 다르군요."
"응? 조금이 아니라 이 정도면 많이 다른 거네. 아! 이건 속성 마석을 이용하는 마법진이군."
"네?"
"내가 준 책에 있는 마법진은 차원 마나로 이동하는 마법진이야."
"그럼 이 책에 있는 마법진을 그리고 차원 마나를 뿜어내면 곧바로 그쪽 차원으로 이동할 수 있는 겁니까?"
"물론이네."
아하르 국왕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다면 굳이 속성 마석을 이용한 마법진을 쓸 필요가 없었다.
내 대군주 꼭두각시의 몸엔 차원 마나가 가득했으니까.
'그럼 이미 기동력은 갖춘 거네!'
이제 차원 이동 마법진만 그리면, 6개의 차원에 언제든 이동할 수 있다는 말이었다.
196. 와이번 괴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