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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

***

"어서 서둘러라!"

[네! 주군!]

기간트들이 쉴 새 없이 땅을 파고 있었다.

진작 전투가 시작됐음을 알고 있었다.

그러니 서둘러야 했다.

그래도 역시 기간트로 땅을 파자, 벌써 상당히 깊이 파고 들어왔다.

[계속 내려쳐라!]

콰앙! 쩌쩌쩍!

거대 곡괭이가 내려 찍힐 때마다 1, 2미터씩 푹푹 땅을 뚫었고, 10여 미터나 되는 바위 역시 기간트들이 달려들어 망치를 내려치면 순식간에 박살 났다.

바위가 더 많아 다행이었다.

거대한 바위를 박살 내고, 그 파편을 나르는 것들이 흙을 퍼 나르는 것보다 나았으니까.

그렇게 40기의 기간트가 계속해서 땅을 파자, 우린 드디어 개미 알이 가득한 공간의 천장에 커다란 구멍을 뚫을 수 있었다.

난 기간트에 올라탔다.

[자! 지금부턴 우리가 나선다!]

기이잉! 쿵! 쿵!

영웅 기사들이 거대한 쇠사슬을 구멍 아래로 내렸다.

그리고 거신들이 무기를 점검했다.

[주군! 제가 먼저 가겠습니다.]

암 드로운이 나섰다.

[먼저 놈들의 다리부터 잘라!]

[네! 알고 있습니다.]

암 드로운이 쇠사슬을 잡고 구멍 아래로 뛰어들었다.

쿵! 쿵!

아래로 내려온 암 드로운.

입구를 지키고 있던 병정개미들이 이미 달려들고 있었다.

암 드로운은 앞으로 달리며 검을 휘둘렀다.

촤악! 촤악!

그가 노리는 것은 거대 병정개미의 다리였다.

앞다리가 잘린 병정개미가 휘청거렸다.

[우리도 간다!]

룩급 오리지널 기간트에 탄 라이너와 비숍급 오리지널 기간트에 탄 크리스티나가 아래로 내려와 암 드로운과 힘을 합쳤다.

네 명의 영웅 기사들이 암 드로운과 합을 맞추며 거대 병정개미의 다리를 사정없이 잘랐다.

그리고 나와 에테나의 기간트가 내려가 힘을 보탰다.

이윽고 입구를 지키던 10여 마리의 거대 병정개미의 다리를 모두 잘라 제압했다.

난 곧장 다리가 모두 잘려 버둥거리는 병정개미들을 향해 달렸다.

[운명의 실타래(lv.16)를 연결합니다.]

[운명의 실타래(lv.16)를 연결합니다.]

.

.

거대 병정개미에게 운명의 실타래를 연결했다.

[됐다! 모두 목을 내려쳐라!!]

[이야!]

쩍! 쩌쩍!

기사들이 일제히 병정개미의 얇은 목을 내려쳤다.

그 순간 차례로 운명의 실이 검게 물들었다.

[기사회생(lv.max) 스킬을 사용합니다.]

[기사회생(lv.max) 스킬을 사용합니다.]

.

.

10여 개 중에서 단 하나의 운명의 실이 보랏빛으로 물들었다.

[병정개미(lv.1) 허수아비 마법인형이 만들어졌습니다.]

[잘했어!]

얼마 전에 기사회생 스킬 레벨을 최대로 찍었다.

이제 95%의 확률로 허수아비를 만들 수 있었다.

그러나 그건 나와 같은 종인 인간에게 해당하는 것이었고, 괴수의 기사회생 성공확률은 아직도 극악이었다.

하지만 다수를 사냥하고, 한꺼번에 기사회생 스킬을 쓰면 성공확률이 더 올라가는 것 같았다.

지금도 10여 마리 중에서 한 마리를 성공했으니까.

난 병정개미 허수아비를 인형의 집에 넣고, 바닥에 떨어진 다리를 모아 킹콩인형을 통해 인형의 집에 넣었다.

앞으로 사냥할 병정개미와 일개미를 최대한 허수아비로 만들 계획이었다.

내 인형술사 레벨은 67.

'이제 얼마 남지 않았어!'

이제 4레벨만 더 올리면 난 한 번도 도달하지 못했던 경지인 SS급 헌터가 된다.

그땐 모르긴 몰라도 운명의 실타래 레벨도 다시 배 이상 늘어날 것이기에 상당한 숫자의 운명의 실이 생길 것이다.

그럼 자동인형들이 조종하는 기간트 군단과 더불어 괴수 군단을 만들 수 있었다.

그때를 대비해 극악의 확률이지만 부지런히 괴수 허수아비를 준비하고 있었다.

그리고 다리를 모두 자르면 제압하기 쉬운 개미 괴수들은 허수아비를 만들기 제격이었다. 잘린 다리를 챙겨 넣은 것은 나중에 붙여 놓으면 알아서 치유되기 때문이었다.

"으윽! 스승님! 이것 좀 보세요."

가장 늦게 내려온 릴리안이 내게 손짓했다.

가까이 다가가자 끔찍한 광경에 나도 모르게 인상을 찡그렸다.

일개미보다 작은 2미터 크기의 보육 개미 괴수들이 식량을 애벌레에게 연신 나르고 있었다.

그런데 그 식량이 바로 잘게 잘린 수인들의 사체였다.

사막의 오아시스를 초토화한 것은 아무래도 전갈 괴수가 아니라 이 개미 괴수들인 것 같았다.

이 방에는 수만 개의 알과 애벌레, 고치까지 다양하게 있었다.

이것들이 모두 부화한다면, 개미 군단은 더욱 강성해질 것이다.

난 괴수인형들을 이용해 인형의 집에서 기름을 꺼냈다.

그리고 사방에 뿌렸다.

보육 개미들은 우리를 신경 쓰지도 않았다.

그들은 계속해서 알을 닦고 먹이를 애벌레에게 먹이는 일을 반복할 뿐이었다.

[여기 입구를 막아!]

내 자동인형이 탄 기간트들이 개미 알이 가득한 입구를 주변 흙으로 막기 시작했다.

[릴리안! 화염 마법으로 마무리해!]

"네! 스승님!"

릴리안이 정신을 집중했다.

잠시 후!

"파이어 에로우!"

화르르르!

2미터 크기의 화염 화살이 이글거렸다.

휘익! 퍼엉!

화아아아!

기름 위로 화염이 폭발하더니, 삽시간에 사방으로 번지기 시작했다.

화염과 연기는 우리가 뚫은 구멍으로 솟구쳐오르기 시작했다.

우린 구멍을 막고 여왕의 방을 향해 전진했다.

이젠 우리에게 퇴로는 없었다.

비스듬한 길을 따라 내려가자, 병정개미들과 일개미 괴수들이 몰려왔다.

하지만 그 숫자는 생각보다 많지 않았다.

이미 상당한 숫자의 개미들이 광산 입구와 여왕개미가 들어왔던 통로를 향해 이동했기 때문이었다.

양동작전은 꽤 성공적이었다.

"개미 괴수의 다리를 잘라라!"

암 드로운과 기사들이 병정개미와 일개미들의 다리를 모두 자르면, 내가 운명의 실을 연결하고, 죽이기를 반복했다.

[일개미(lv.1) 허수아비 마법인형이 만들어졌습니다.]

[병정개미(lv.1) 허수아비 마법인형이 만들어졌습니다.]

[일개미(lv.1) 허수아비 마법인형이 만들어졌습니다.]

확률은 여전히 떨어졌지만, 꾸준히 사냥하자 하나둘 괴수 허수아비의 숫자가 늘어났다.

그리고 다른 차원의 괴수를 죽이자, 경험치가 몇 배로 많이 올랐다.

역시 레벨을 빠르게 올리려면 다른 차원의 괴수를 죽이는 것이 정답이었다.

'SS급 괴수를 죽이면 경험치가 얼마나 오를까?'

모르긴 몰라도 최소 2레벨은 오를 수 있겠지?

그럼 SS급 헌터에 한발 바짝 다가가는 것이었다.

SS급 헌터가 되면 스킬도 새로 생기겠지?

헌터 등급이 오를 때마다 매번 더 강력한 고유 스킬이 생겼으니까.

[정지하라!]

드디어 우린 여왕의 방에 도착했다.

난 눈으로 마나를 뿜어내며 여왕의 방을 살폈다.

그런데 먼저 도착한 그룹이 있었다.

'오! 역시 크루세이더 기사단이네!'

그들은 반대편 입구에서 병정개미들과 치열한 전투를 벌이고 있었다.

그리고 여왕개미는 여전히 한 자리에 머물며 지금도 알을 낳고 있었다.

우리가 공동 안으로 들어갈 때였다.

구석에 있던 여왕개미가 우리 쪽으로 고개를 획 돌렸다.

"끼이이이이이아!"

"윽!"

몸길이가 130미터나 되는 거대 여왕개미가 괴성을 내질렀다.

그 괴성에 거신들이 고통스러운 표정으로 귀를 막았다.

기간트 안에 있었음에도 나도 고막이 얼얼할 정도였다.

[허! 엄청나네요!]

[세상에! 우리가 저걸 잡아야 한단 말입니까?]

"저거 마법이 통하긴 할까요?"

"하아! 검이 박힐지······."

기사들과 거신들의 목소리에 두려움이 묻어 있었다.

하지만 난 다른 생각으로 꽉 차 있었다.

'저 거대한 놈을 내 마법인형으로 만들 수만 있다면!'

154. 물러설 수 없다!

154. 물러설 수 없다!

파드드드드드드득!

여왕이 두 더듬이를 떨자, 반대쪽 입구를 막고 있던 병정개미들이 명령에 호응하듯 더듬이를 흔들었다.

그러더니 절반은 그곳 입구에서 계속 침입자를 막고, 나머지 절반은 새로운 침입자를 향해 달리기 시작했다.

"끼리릭!"

"끄드득!"

끼기기기긱! 다다다닥!

괴이한 관절 꺾이는 소리를 내며 병정개미들이 우리에게 달려온다.

[지금부턴 개미들의 급소만 노린다! 인정사정 봐주지 마라!]

[네!]

마법인형을 만들기 위해 운명의 실을 붙일 여유는 없었다.

최대한 빨리 죽이고, 이젠 여왕을 잡아야 한다.

[라이너! 선봉에 서서 팀을 이끈다!]

[네! 영주님!]

기이잉! 쿵! 쿵!

라이너와 영웅 기사들이 앞을 막아섰다.

[웨슬리! 그림자 기사들을 이끌고 라이너의 뒤를 받쳐라!]

[네! 주군!]

쿵! 쿵! 쿵!

[개미 괴수를 잡아라!]

[가자!]

촤악! 서걱!

라이너와 오리지널 기간트 기사들이 병정개미들을 향해 검을 휘둘렀다.

그리고 웨슬리와 40기의 기간트가 뒤를 따르며 달려오는 병정개미들을 막아섰다.

거대 병정개미는 B등급 괴수지만, 오리지널 기간트를 압도할 순 없었다. 특히 룩급 오리지널 기간트는 A등급 괴수를 일대일로 상대할 수준이었기에 병정개미의 덩치가 커도 밀리지 않았다.

그리고 내 마법인형들의 기간트가 뒤에서 합세하자, 병정개미는 내가 있는 곳까지 다가오지 못했다.

[물러서지 말고 대형을 지켜라!]

[전진하라!]

기간트는 원래 괴수를 잡기 위한 거대 병기.

움직임에 거침이 없었다.

개미 괴수의 공격은 단순했다.

거대한 턱으로 상대를 물거나 여섯 개의 다리 힘으로 상대를 밀어붙이는 것이었다.

그러니 일단 기체가 물리지 않는 것이 제일 중요했다.

"끼드드득!"

병정개미가 입을 벌리고 달려들자, 라이너의 오리지널 기간트는 물러서지 않고, 오히려 방패를 밀며 병정개미의 턱 사이로 파고들었다.

병정개미가 턱을 오므릴 때, 그의 검이 병정개미의 대가리를 찔렀다.

푸욱! 푹!

[맛이 어떠냐!]

"끼이악!"

외골격이 단단한 개미 괴수였지만, 룩급 오리지널 기간트의 검은 A등급 이상의 괴수 부산물로 만들어져 있었기에 단단하고 날카로웠다.

기간트의 검이 개미의 외골격을 뚫고 뇌와 살을 갈랐다.

[밀리지 마라!]

개미들은 숫자가 많음에도 기간트의 일자 대형을 뚫지 못했다.

알리사가 의아한 표정으로 내게 물었다.

"왜 개미들이 뒤에서 기다리는 거죠? 숫자가 많으니 포위하면 될 텐데요?"

[우회 공격 개념이 없나 보지.]

실제로 우리를 공격하고 있는 병정개미는 100여 마리로 40여 기의 기간트를 압도할 수준이었다. 그러니 지금처럼 앞선 개미가 싸울 때, 뒤에 있는 개미가 차례를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우회하거나 더 길게 일자로 늘어서 포위하는 진형으로 바꾼다면, 훨씬 더 유리했을 것이다.

'개미들의 지능이 좀 낮은가?'

그때였다!

파드드드득!

여왕이 이쪽을 보며 더듬이를 흔들었다.

그러자 후미에서 차례를 기다리던 10여 마리의 병정개미가 떨어져 나가더니, 일자 대형 우측으로 우회해 내가 있는 곳으로 이동하기 시작했다.

'응? 내가 지휘관이라는 걸 알았나?'

여왕개미는 생각보다 머리가 좋은 것 같다.

게다가 인형술사가 마법인형을 조종하는 것처럼 거대 개미들을 더듬이로 조종하고 있었다.

그러고 보니 나와 비슷한 점이 많네.

[암 드로운! 우회하는 놈들을 막아!]

"네! 주군!"

몸이 근질거렸는지 암 드로운은 아까부터 검을 만지작거리고 있었다.

숫자는 부족했지만, 암 드로운은 일당백의 기사였기에 걱정이 없었다.

"주군의 명이다! 죽어라!"

암 드로운이 거대병정 개미의 더듬이를 자르고 몸을 옆으로 돌려 머리를 잘라버렸다.

[타일러 영주님, 저도 암 드로운 경을 도울까요?]

에테나는 오리지널 비숍급 기간트를 배정받았기에 싸우고 싶어 했다.

[아직 아니야! 기다려!]

그때였다.

여왕이 다시 더듬이를 파르르 떨자, 이번엔 후미에 있던 10여 기의 병정개미가 좌측 끝으로 이동해 나를 향해 달려왔다.

[에테나, 갈라그란트! 두 사람이 저것들을 맡아!]

[네!]

"네!"

에테나의 기간트와 갈라그란트가 좌측으로 오는 병정개미를 향해 달렸다.

"스승님! 저도 도와주면 안 될까요?"

[아니! 넌 병정개미를 상대하긴 부족해!]

"네······."

릴리안은 전투를 위해 데려온 것은 아니었다.

큰 전투를 경험해 보라는 뜻이었다.

그녀의 파이어 에로우는 나이트급 기간트까진 꽤 효과가 있었다.

그것도 기간트를 직접 부수는 것은 아니고 해치 부근에 화염 마법이 적중하면 뜨거운 열기로 안에 탄 기사에게 어느 정도 타격을 줄 수 있었다.

그리고 기간트의 머리를 공격해 화염과 연기로 시야를 차단하는 방법도 있었고.

물론 상대가 방패로 막거나 적중하기 전에 피해버리면 아무 소용없었다.

그러니 B등급 괴수를 죽이려면 큰 화염 마법을 써야 하는데, 한두 방 쓰면 마나가 바닥이 되기에 비상시를 대비해 마나를 아껴야 했다.

알리사 엘가가 내게 물었다.

"영주님, 그럼 전 뭘 하면 될까요?"

[힘을 아껴! 진짜 전투는 아직 멀었으니까.]

"네! 주군!"

여왕개미는 왜 움직이지 않는 거지?

가장 큰 전력인 알리사와 난 움직이지 않았다.

구석에 짱박혀 있는 여왕개미가 언제 어떻게 공격해 올지 몰랐기 때문이었다.

'우리 쪽은 밀리는 곳은 없고! 크루세이더 팀은?'

마나를 눈에 뿜어냈다.

그러자 어둠을 뚫고 반대편의 움직임이 보였다.

그쪽 역시 입구를 뚫고 나와 병정개미들을 압도하기 시작했다.

[서둘러라! 아리칸 기사들은 이미 개미들을 모두 처리했다.]

내 목소리에 기사들이 더욱 열심히 싸웠다.

[꼭두각시(lv.9)가 자아를 각성했습니다.]

[자동인형(lv.1)으로 업그레이드했습니다.]

내 마법인형도 대수림의 괴수를 잡을 때보다, 다른 차원의 괴수를 잡는 것이 훨씬 빨리 경험치가 올랐다.

지금처럼 자아도 빨리 각성하고!

[계속 몰아쳐라!]

우리에게 달려들던 병정개미를 거의 다 처리했을 때였다.

"으헉!"

쿵!

갈라그란트가 병정개미 한 마리에 밀려 넘어졌다.

놈이 턱을 벌려 갈라그란트의 검을 잡고 흔들었다.

갈라그란트는 검을 놓치지 않으려고 버티고 있었다.

그때 릴리안이 마나를 모으며 손을 뻗었다.

"파이어 에로우!"

휘익!

병정개미를 향해 릴리안의 화염 마법이 날아갔다.

퍼엉! 화르르르!

병정개미가 화염에 휩싸였다.

그런데 병정개미는 죽지 않고, 릴리안을 향해 달려오기 시작했다.

"어? 머, 머리를 맞혔는데!"

릴리안은 놀라서 다시 파이어 에로우를 사용하려고 마나를 집중했다.

하지만 시간이 부족했다.

알리사가 피식 웃으며 마법을 쓰려고 했다.

하지만 난 알리사의 손을 잡고 고개를 흔들었다.

제자를 믿어 보기로 했다.

다다다닥!

"끄드득!"

병정개미가 달려와 릴리안을 향해 커다란 입을 벌렸을 때였다.

"파, 파이어 에로우!"

화르륵! 퍼어엉!

병정개미의 입속으로 화살이 날아가 터졌다.

"끼이아!"

입속에서 연기를 뿜어내는 병정개미!

괴로운 듯 몸을 마구 비틀기 시작했다.

그리고 벌써 10여 마리의 병정개미를 다 죽인 암 드로운이 다가와 검을 찔러 마무리했다.

[릴리안, 방금 마법 캐스팅 속도는 꽤 괜찮았어.]

"헉! 저 방금 죽을 뻔했어요!"

[원래 실력은 전장에서 느는 거야.]

사실 마법을 발현하지 못했다면, 내 킹콩인형이 튀어나와 병정개미를 처리했을 것이다.

그리고 릴리안이 입은 갑옷은 나이트급 거신 갑옷이었다.

B등급 괴수라고 해도 어느 정도 방어가 가능했다.

하지만 찰나의 순간 마법이 먼저 적중했다.

제자는 강하게 키워야지.

나도 그렇게 컸으니까.

[병정개미를 모두 정리했습니다!]

웨슬리가 말했다.

[서둘러! 저쪽은 이미 여왕개미와 전투를 시작했다!]

이미 크루세이더 기사들은 병정개미를 죽이고 여왕개미 앞까지 전진한 상태였다.

[이동해라!]

쿠쿠쿠쿵!

기간트들이 먼저 앞으로 내달렸다.

난 뒤쪽에서 달려가면서 여왕개미와 크루세이더 기사들의 싸움을 자세히 살폈다.

적을 살피고, 파악해, 약점을 찾아내는 거.

이건 내가 가장 잘하는 거다!

특히 괴수와의 싸움이라면 날 따라갈 자가 없지.

S등급 괴수 드라우켄을 잡은 실력도 있었고.

'근데, 아예 접근을 못 하고 있네!'

거대한 두 개의 앞발로 다가오는 기간트를 공격하고 있었다.

발끝에는 톱날 같은 발톱이 달려 있는데, 발톱 길이가 룩급 기간트만 했다.

조금만 스쳐도 팔이 잘리고, 직통으로 맞으면 기간트도 구멍이 뚫리거나 아예 박살 난다.

벌써 접근하던 기간트 몇 대가 당했는지 바닥에 잔해가 보였다.

방금 마르틴의 우가스가 앞발을 피해 여왕개미 안쪽으로 들어갔다.

하지만 송곳 같은 가운데 다리가 날아오자, 어쩔 수 없이 뒤로 피해야 했다.

'근데 왜 움직이지 않는 거지?'

앞발을 주로 공격하고, 중간 다리도 가끔 움직였다.

그런데 맨 마지막 다리는 아예 땅에 붙이고, 일어날 생각을 하지 않는다.

그리고 배 아래 쪽엔 방금 낳은 수십 개의 알이 있었다.

'모성애인가?'

괴수도 모성애가 있는 건가?

어쩌면 나와 마법인형의 관계처럼, 여왕개미도 보이지 않는 끈으로 자기 새끼들과 연결되어 있을지도.

아니면 진짜 모성애던가.

왠지 저 알은 건들면 안 될 것 같았다.

저것 때문에 놈이 움직이지 않은 거니까.

게다가 지금도 계속해서 알을 낳고 있었다.

자신을 공격하는데, 알을 낳다니!

'알 낳는 기계인가?'

기이잉! 쿵! 쿵!

우리도 여왕개미 앞에 도착했다.

놈이 앞발을 휘두르면 사방 200미터까지 위험지역이었다.

그랬기에 크루세이더 기사단도 200미터 떨어진 뒤쪽 바위와 기둥 뒤쪽에서 여왕개미를 멍하니 바라보고 있었다.

[마르틴 전하, 꽤 고전하시네요.]

마르틴의 우가스가 날 향해 고개를 돌렸다.

[휴! 다행히 여왕이 앞으로 나오진 않는데, 워낙 앞발 공격이 빠르고 시야가 넓어 접근이 쉽지 않소. 벌써 기사가 여섯이나 당했소.]

나도 씁쓸했다.

크루세이더 기사단은 모두 안면이 있는 기사들이었다.

그들의 죽음이 안타까웠다.

[그리고 놈의 다리를 낫으로 공격했는데, 끄떡도 없소.]

그건 살짝 충격이었다.

퀸급 기간트 우가스가 들고 있는 낫은 S등급 괴수의 뼈로 만든 정말 희귀한 무기였다.

그런데 여왕개미의 외골격을 뚫을 수 없다니!

[어떻게 공격할 방법이 없겠소?]

[저라고 당장 뾰족한 방법이 나오는 건 아닙니다. 다만 약점은 알 것 같군요.]

우가스뿐만 아니라 주변에 있던 기간트들이 일제히 날 돌아봤다.

[그게 어디요?]

[여왕개미의 배죠. 정확히는 지금도 알을 낳는 알주머니가 있는 곳입니다.]

그곳이 마나가 가장 약한 부분이었다.

[하아! 역시 안으로 파고 들어야······.]

우가스가 고개를 흔들었다.

그곳이 가장 위험한 곳이었으니까.

그때였다!

파드드드득!

여왕이 더듬이를 미친 듯이 흔들고 있었다.

그리고 우리가 들어온 입구 쪽에서 불길한 소리가 들려왔다.

[젠장! 개미들을 다시 불러들이고 있습니다. 어서 여왕을 죽여야 합니다!]

더는 생각할 시간이 없었다.

[휴우! 한번 해봅시다!]

우가스가 커다란 낫을 들고 기사들을 쳐다봤다.

[모두 정렬하라! 한꺼번에 공격한다!]

[우리도 모두 공격 준비를 해라!]

"끼이이이아!"

"키드드드득!"

그때 공동 입구에서 10여 미터 크기의 개미들이 날개를 퍼덕거리며 모습을 드러냈다.

수개미였다.

그리고 그 뒤로 수백 마리의 개미 괴수가 몰려오고 있었다.

[비에르!]

[네! 전하!]

[크루세이더 기사단을 이끌고 저 개미들을 막아라! 나와 원탁의 기사들이 여왕을 맡겠다!]

[네! 전하!]

비에르 후작이 90기의 기간트를 이끌고 몰려오는 수개미와 개미를 막았다.

내가 소리쳤다.

[모두 넓게 퍼져 놈의 품 안으로 달려간다! 먼저 도착한 기사가 배를 집중적으로 공격한다!]

[가자!]

기이이이잉! 쿠쿠쿠쿵!

기간트들이 일제히 놈의 배를 향해 달려들었다.

[공격해라!]

내 자동인형과 꼭두각시가 탄 기간트부터 여왕의 배를 향해 달렸다.

이건 미끼였다.

휘익! 콰앙!

어둠 속에 거대한 발이 내려 찍힐 때마다 심장이 벌렁거린다.

휘익! 콰앙!

[꼭두각시(lv.9)와 연결이 끊겼습니다.]

'젠장! 피 같은 꼭두각시가!'

몇 달을 키운 꼭두각시가 날아갔다.

꼭두각시와 연결된 50개의 운명의 실이 한 번에 끊어져 인형의 집에 회수하지 못할 정도로 여왕개미의 공격은 무시무시했다.

휘익! 콰앙!

주변 땅이 흔들렸다.

기간트에 장착된 3개의 라이트로 주변을 밝히기는 부족했다. 특히 여왕개미의 높이는 100미터나 되기에 언제 어디서 거대한 발이 공격할지 정확히 보이지 않았다.

'차라리 마나로 보는 게 낫겠어!'

난 마나를 눈에 뿜어냈다.

그제야 여왕개미가 온통 푸른 빛의 실루엣으로 보였다.

바닥이 울퉁불퉁해 걸려 넘어질 수도 있지만, 저 거대한 앞발을 피하려면 이게 나았다.

[계속 전진해!]

마르틴 국왕의 목소리가 들렸다.

휘익! 쿠웅! 촤아아!

[크윽!]

아리칸 왕국의 오리지널 기간트의 팔과 다리가 동시에 날아갔다.

거대한 앞발이 내려 찍힐 땐 아슬아슬하게 피했지만, 놈의 발톱은 톱니처럼 되어 있어 잡아당길 때도 위협적이었다.

[게일, 탈출하라!]

마르틴의 목소리가 들렸다.

그러자 부서진 기간트에서 게일 대령이 겨우 몸을 빼내서 뒤로 물러섰다.

'조심해!'

휘잉! 콰앙!

내가 경고했지만, 자할리(lv.9) 자동인형이 몰던 룩급 기간트가 그대로 폭사했다.

'인형의 집으로!'

다행히 운명의 실이 모두 끊어지기 전에 인형의 집에 넣었다.

[계속 전진하라!]

난 지금 중앙으로 접근하고 있었고, 암 드로운은 좌측 끝에서 은밀히 접근하고 있었다.

휘잉!

쿠아앙!

[크악!]

꼭두각시가 몰던 비숍급 기간트 하나가 얼굴부터 몸통까지 찌그러지며 파괴됐다.

꼭두각시는 인형의 집에 넣었지만, 너무 크게 다쳐 레벨이 초기화됐다.

'젠장! 이렇게 강할 줄이야!'

하지만 이제 와서 물러설 수 없었다!

오로지 전진만 있을 뿐.

155. SS급 헌터.

155. SS급 헌터.

여왕의 앞발 공격 범위는 200미터, 중간 다리가 100미터.

다해서 겨우 300미터만 전진하면 뒤쪽 배에 다다를 수 있었다.

하지만 그 300미터가 지옥의 길이였다.

쿵! 촤아악!

[큭!]

마르틴 국왕의 신음이 들렸다.

그가 가장 앞서가고 있다가 공격을 받았다.

[마르틴 전하!]

[난 괜찮다! 계속 전진하라!]

마르틴 국왕의 기간트가 허리에 상처를 입었다.

휘잉! 콰앙!

그때 맨 앞에서 달리고 있던 내 자동인형이 탄 룩급 기간트가 놈의 발톱에 걸려 공중으로 떠올랐다.

휘이이잉! 쿠웅!

거꾸로 떨어진 기간트는 머리가 완전히 박살 났다.

인형의 집으로!

거대 여왕의 공격은 꼭 하늘에서 폭탄이 떨어지는 기분이었다.

휘이이잉! 쿠웅!

콰직!

'젠장! 꼭두각시가 또 당했어!'

인간에게 공격당하는 개미의 심정 이럴까?

거대한 손가락이 내려 찍히면 개미는 즉사한다.

그러니 필사적으로 빨리 달려야 했다.

그때 웨슬리가 거대한 앞발을 피해 안쪽으로 파고들었다.

'좋아! 잘하고 있어!'

앞발의 사정거리를 피했다.

그런데!

휘이잉! 휘익!

중간 다리 두 개가 날아갔다.

웨슬리의 기간트는 몸을 날렸다.

쾅! 콰아앙!

[크윽!]

하나는 피했는데, 두 번째 송곳 같은 발은 피하지 못했다.

웨슬리의 룩급 기간트의 두 다리가 잘려나갔다.

[주군! 죄송합니다.]

웨슬리도 인형의 집에 넣었다.

그사이 내 자동인형들의 기간트가 열심히 달려 200미터까지 전진했다.

'좋아! 이제 안으로 파고들어!'

중간 다리가 날아와 2대의 기간트가 파괴됐다.

하지만 다섯 대나 되는 내 자동인형의 기간트가 무사히 250미터까지 전진했다.

[죽어라!]

[가자!]

여왕개미가 갑자기 입을 벌렸다.

"끼이이아!"

순간 고막이 찢어질 듯 아팠다.

그리고 놈의 배에서 촉수 같은 것이 튀어 나왔다.

촤아아아아!

정체불명의 액체가 쏘아져 기간트들을 덮쳤다.

치이익! 치이익!

순식간에 기간트가 녹아내리기 시작했다.

'젠장! 인형의 집으로!'

액체에 닿은 기간트들은 형체를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녹았다.

다행히 마법인형들은 인형의 집에 넣었지만, 순간 어이가 없었다.

벌써 기간트 20여 기가 박살 났다.

SS등급의 괴수라 당연히 피해가 생길 줄은 알고 있었지만, 피해가 너무 컸다.

지금까진 우리의 완패였다.

'헛!'

그때 내 머리 위로 푸른빛의 다리가 내려 찍혔다.

난 몸을 옆으로 날렸다.

콰앙!

일어서서 다시 앞으로 전진하려 했지만, 뭔가 허전했다.

'젠장! 다리가 날아갔어?'

내가 반응하지 못할 정도의 속도라니!

휘익! 콰앙!

그사이 아리칸의 오리지널 비숍급 기간트 한 대가 날아가 기둥에 부딪혔다.

여왕은 쉬지 않고 공격했다.

4개의 다리를 모두 실시간으로 움직이는 것 같다.

난 기간트에 내렸다.

그리고 바닥에 엎드려 맨몸으로 접근했다.

놈에 앞발에 찍히면 그냥 죽을 것이다.

물론 안전장치는 해놨다.

토우인형을 기둥 앞쪽에 세워놨다.

위험하면 인형 바꿔치기 스킬을 쓰면된다.

'젠장! 뒤쪽도 치열하구나!'

크루세이더 기사들이 달려드는 수개미와 개미들을 필사적으로 막고 있었다.

난 다시 눈으로 마나를 뿜어내며 전진했다.

믿고 있는 구석은 있었다.

'내 작전의 희망!'

내 지시를 받은 암 드로운이 벽에 바짝 붙어서 여왕개미 100미터 안쪽까지 파고들었다.

그리고 그 뒤엔 알리사가 있었다.

'암 드로운 지금이야!'

'네! 주군!'

쿠쿠쿠쿵!

암 드로운이 앞으로 내달렸다.

뒤늦게 거신 기사를 확인한 여왕이 움직였다.

앞발은 이미 늦었다고 판단했는지 중간 다리가 2개가 찔러왔다.

쉐엑! 쉐엑!

"아이스 월!"

쩌쩌쩍! 촤아악!

암 드로운 앞으로 40미터나 되는 높은 얼음 장벽이 솟아올랐다.

쾅! 쾅!

여왕의 두 다리가 얼음에 막혔다.

방금은 알리사가 미리 준비한 마법을 사용한 것이다.

쩌쩍! 콰앙!

얼음 장벽은 날카로운 발톱에 박살 났지만, 암드로운은 이미 그곳에 없었다.

그는 얼음 장벽을 돌아서 안으로 달리고 있었다.

촤아아아!

그때 개미산이 뿜어졌다.

"얼음 방패!"

촤촤촤촤!

방패에 실시간으로 얼음이 얼더니 순식간에 3배 크기의 얼음 방패가 됐다.

치이이이익!

개미산에 닿은 얼음이 순식간에 녹았다.

하지만 암 드로운은 방패를 버리고 두 손으로 검을 잡고 달려들고 있었다.

"주군을 위하여!"

쿠쿠쿵! 촤악!

개미산을 뿌렸던 촉수를 잘라버렸다.

"끼이이익!"

여왕개미가 괴성을 질렀다.

암 드로운은 곧장 알주머니를 향해 달렸다.

그런데!

부아앙! 퍼억!

움직이지 않을 것 같던 뒷다리가 날아와 암 드로운을 공격했다.

쿵! 쿠쿠쿵!

암 드로운은 공중으로 날아가 떨어졌고, 바닥을 몇 바퀴나 굴러 겨우 멈췄다.

그리고 쓰러진 암 드로운에게 놈의 중간 다리 2개가 동시에 찔러졌다.

자신에게 상처입힌 놈을 가만둘 수 없다는 뜻이었다!

"프로즌 토네이도!"

휘이이이잉!

암 드로운 앞으로 수십 미터의 냉기 토네이도가 치솟았다.

쩍! 쩌쩌쩍!

찔러오던 두 다리가 실시간으로 얼어붙었다.

그리고 가까스로 암 드로운 앞에 멈춰 섰다.

[뒤로 피해요!]

기잉! 쿵쿵!

에테나의 비숍급 기간트가 달려와 암 드로운을 부축하며 뒤로 물러섰다.

냉기 토네이도가 사그라들자!

챙강!

두 다리를 감싸던 얼음이 깨지며, 속박이 풀렸다.

알리사 엘가의 가장 강한 얼음 마법도 멸망급 괴수에게는 통하지 않았다.

알리사와 에테나가 암 드로운을 부축해 물러섰지만, 그 둘을 노리는 것은 더 거대한 앞발이었다.

톱날 같은 앞발이 날아왔다.

"파이어 에로우!"

퍼엉!

불화살이 날아가 여왕의 얼굴 앞에서 터졌다.

화아아아!

화염이 퍼지며 여왕이 순간 고개를 돌렸다.

휘익! 콰앙!

"크윽!"

[악!]

덕분에 여왕의 앞발이 세 사람 앞에 꽂혔고, 셋은 뒤로 넘어졌다.

릴리안이 화염 마법을 쓰지 않았다면, 셋 다 위험했을 것이다.

여왕개미의 시선이 릴리안을 향했다.

타격은 전혀 없었지만, 화염 마법에 민감하게 반응했다.

[크하하! 걸렸구나!]

마르틴 국왕의 목소리가 여왕개미의 배 밑에서 들렸다.

'어? 저 양반은 언제 저기까지 갔데!'

바닥을 기어간 흔적!

기사들이 치열하게 싸울 때, 마르틴은 상처 난 기체로 아주 조끔씩 기어서 어느새 여왕의 배 밑까지 접근한 것이다.

[죽어!]

촤아아아아!

날카로운 낫이 여왕의 알주머니와 배를 갈랐다.

"끼아아아아아아!"

여왕개미가 고통스러운 비명을 내질렀다.

부아앙! 퍼억!

[크헉!]

쾅! 콰콰쾅! 쿠웅!

여왕의 뒷발에 맞은 우가스가 한쪽으로 날아가 벽에 처박혔다.

하지만 이번 공격은 꽤 치명적이었다.

놈의 갈라진 배 밑으로 위와 내장이 튀어나왔고, 피 같은 액체가 쏟아졌다.

'일제히 공격하라!'

이런 기회를 놓칠 수 없지.

남은 기간트가 일제히 달려들었다.

하지만!

끼이이익! 쿵! 쿵!

여왕개미가 거대한 몸을 완전히 일으켰다.

[운명의 실을 연결합니다.]

그리고 여왕은 도망치기 시작했다.

'기사들은 모두 인형의 집으로!'

난 지금 놈의 뒷다리 위쪽에 킹콩인형과 매달려 있었다.

나도 마르틴 국왕처럼 낮은 포복으로 놈의 배 밑까지 이동했다.

폼나거나 고상한 방법은 아니었지만, 어쨌거나 무사히 배 밑에 도착했고 놈의 다리에 매달릴 수 있었다.

쿵! 쿵! 쿵!

놈이 움직이자, 아무도 막을 수 없었다.

"끼이이이아!"

거대한 여왕개미는 자신이 들어왔던 구멍을 통해 밖으로 나갔다.

지금도 배를 통해 액체가 계속 흘러나오고 있었고, 내장이 바닥에 쓸리고 있었다.

그런데도 놈은 죽지 않았다.

촤아악! 촤아아악!

여왕개미가 거대한 날개를 펼쳤다.

그리고 하늘로 날아올랐다.

7미터의 킹콩인형이 다리에 매달려 있었지만, 여왕은 배를 뚫린 고통 때문인지, 아니면 무시해도 상관없다고 생각하고 있는 것인지 그냥 대수림 방향으로 날았다.

'꽉 잡아!'

킹콩인형이 죽을힘을 다해 매달렸고, 난 킹콩인형의 털을 잡고 매달렸다.

배를 집중공격해도 왠지 죽지 않을 것 같았다.

그러니 내가 마무리를 지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여왕개미가 얼마나 빨리 날아왔는지, 벌써 대수림이 보였다.

놈은 비틀거리면서도 추락이 아니라 대수림에 착륙했다.

쿵! 쿠쿠쿵!

바닥에 겨우 내려온 여왕이 머리를 세차게 흔들었다.

큰 충격에 정신을 차리지 못하는 것 같았다.

'전투는 이제 시작이지!'

진짜 싸움은 지금부터.

난 인형의 집에서 비밀 병기를 꺼냈다.

"쿠아아아!"

드라우켄이 여왕의 배 뒤에 나타나자마자, 이빨과 발톱으로 튀어나온 내장을 물고 공격했다.

콰직! 파파팟!

"끼이이아!"

놈의 내장 곳곳이 터지고, 아예 배 밖으로 쏟아졌다.

여왕이 고통스러운 비명을 내질렀다.

놈이 뒷발로 드라우켄을 공격했다.

부아아앙! 퍼억!

몸길이가 40미터나 되는 드라우켄이 공중을 날아 바닥에 떨어졌다.

쿠웅!

"끼이아!"

놈이 상체를 돌리더니 드라우켄에게 달려들었다.

'나와라! 괴조인형!'

콰직! 콱!

괴조 인형이 발톱으로 여왕의 내장을 집었다.

그리고 커다란 날개를 펄럭이며 뒤쪽으로 날아올랐다.

"끼이이이악!"

앞으로 달리던 여왕이 고통스러운 울음을 울고 멈췄다.

놈은 SS급 괴수!

정면 대결에선 승산이 없었다.

그러니 집요하게 약점을 노린다!

여왕이 고통스러운지 몸을 돌리더니, 이번엔 괴조인형을 향해 달렸다.

하지만 괴조 인형은 내장을 놓고 공중으로 날아올랐다.

그 사이 드라우켄이 정신을 차리고 거신목을 타고 올라가 여왕의 등을 향해 뛰어들었다.

휘익! 쿠웅!

"쿠아아아!"

촤악! 촤악!

날카로운 앞발로 여왕의 등을 사정없이 할퀴었다.

그러나 생채기만 생기는 수준이었다.

여왕이 드라우켄을 떨어트리려 발버둥을 쳤다.

하지만 드라우켄은 뒷다리로 여왕의 잘록한 허리를 감싸고 버티자 쉽게 떨쳐낼 수 없었다.

그 사이 다시 괴조인형이 내 명령으로 날아가 놈의 내장을 발톱으로 잡고 다시 잡아당겼다.

"끼아아아아!"

여왕이 고통스러운 괴성을 질렀다.

놈은 지금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하지만 생명력만큼은 정말 끈질겼다.

[자동인형 암 드로운이 분신인형으로 업그레이드했습니다.]

'응?'

[인형술사 레벨이 올랐습니다. (lv.67 -> lv.68)]

인형의 집을 열었다.

'죄송합니다. 주군!'

인형의 집에 있던 암 드로운이 겨우 정신을 차리고 일어섰다.

그런데 분신인형으로 업그레이드된 상태였다.

아마도 SS급 괴수와 싸우다가 경험치를 얻고 업그레이드한 것 같았다.

이제 난 병렬사고 스킬을 써서, 암 드로운이 어디 있던지 하루에 한 번은 그의 의식을 공유할 수 있었다.

'몸은? 괜찮아?'

'네, 주군! 괴수는 어찌 됐습니까?'

'지금 괴수인형과 싸우고 있어!'

암 드로운이 검을 들었다.

'주군! 절 다시 내보내 주십시오!'

'좋아! 대신 정면으로 부딪치지 말고 후미를 공격해!'

'네!'

암 드로운이 내가 탈 룩급 오리지널 기간트 노움을 들고 거대한 나무 뒤에 나왔다.

"간다!"

암 드로운은 검을 들고 다시 여왕의 뒤를 공격했다.

킹콩인형이 몸을 날려 여왕에게 벗어났고, 난 킹콩인형에서 내려와 노움에 탔다.

노움은 대지 마법진을 3개나 새겼기에 지은 이름이었다.

킹콩인형도 나무를 타고 몸을 날려 여왕을 공격했다.

내 마법인형들이 사방에서 여왕을 공격했다.

"쿠아아아!"

카카카칵!

드라우켄이 커다란 이빨로 여왕의 허리를 계속 공격했다.

빈틈을 벌리려는 것이다!

그리고 괴조가 계속 뒤에서 내장을 파고 있었고, 킹콩인형은 머리에 붙어 주먹으로 계속 눈과 더듬이를 가격하고 있었다.

'결정타를 날려야 하는데!'

그때였다.

촤악!

여왕의 허리 위쪽에 피가 솟구쳤다.

드라우켄이 기어이 외골격의 틈을 벌리고, 상처를 낸 것이다.

하지만.

"끼이악!"

휘익! 쿵! 쿵!

여왕이 몸을 뒤집고 발버둥 치자, 드라우켄이 충격을 받고 떨어졌다.

여왕이 다시 몸을 세워 드라우켄의 다리를 턱으로 물었다.

콰직!

그리고 두 앞발로 드라우켄의 몸통을 찔렀다.

푹! 푹!

"쿠아아아!"

드라우켄은 고통을 느끼지 못했지만, 여왕에게서 벗어나지 못하자 괴성을 질렀다.

"내가 간다!"

쿵! 쿵! 쿵!

암 드로운이 바닥에 끌린 여왕의 배 위로 올라가 방금 드라우켄이 상처를 낸 곳을 향해 달렸다.

그리고.

"주군을 위하여!"

자신의 검을 벌어진 허리 틈을 향해 찔렸다.

쉐에엑! 파아악!

"끼이이이이아!"

검이 완전히 박히며 피가 위로 분수처럼 솟구쳐올랐다.

여왕이 끔찍한 고통에 온몸을 발광하자, 암 드로운이 중심을 잃고 떨어졌다.

쿵!

'괴조!'

괴조인형이 날아와 내 기간트의 어깨를 잡고 공중으로 날아올랐다.

힘겹지만 괴조는 필사적으로 날개를 퍼덕였고, 난 괴수의 등 위까지 날아올랐다.

마무리는 내가 짓는다!

'내려놔!'

기이잉! 쿠쿵!

놈의 등에 내려서는 순간 난 또 다른 검을 놈의 벌어진 허리에 찔렀다.

쑤우욱! 파악!

그리고 한 손으로 검을 잡고 다른 손으로 가슴에 손바닥을 댔다.

[어스 웨이브!]

쩌엉!

땅에 강한 충격을 주어 전방에 너울거림을 만드는 스킬!

하지만 지금은 두 자루의 검이 박힌 놈의 허리에 대고 충격을 주었다.

쩌쩌쩌쩍!

놈의 허리 주변의 외골격이 지진이 난 것처럼 갈라졌다.

'젠장! 한 번 더!'

[어스 웨이브!]

마법진을 발동시키고 다시 한번 손바닥으로 강하게 내려쳤다.

쩌어엉!

'좀 죽어라!'

콰지지직!

파아아아아!

그 순간 놈의 허리가 끊어지며 난 아래로 추락했다.

쿵! 쿠쿠쿵!

'잡았다!'

그런데 아직 운명의 실타래가 검은색으로 변하지 않았다.

놈이 아직 살아 있음이다!

난 기체를 일으켜 놈의 머리를 향했다.

그때 여왕의 커다란 머리가 돌아가더니, 수천 개의 눈동자가 날 쳐다봤다.

나 같은 인간에게 죽는 것이 억울했을까?

여왕은 몸을 크게 부르르 떨더니 고개를 떨궜다.

운명의 실타래가 검은색으로 변했다.

[기사회생(lv.max) 스킬을 사용합니다.]

'제발 성공해라!'

죽은 여왕개미와 연결된 운명의 실타래를 뚫어지게 보고 있을 때였다.

[인형술사 레벨이 올랐습니다. (lv.68 -> lv.71)]

[헌터 등급이 올랐습니다. (S -> SS)]

[운명의 실타래 스킬 레벨이 대폭 올랐습니다.]

[영혼 이동 스킬 레벨이 대폭 올랐습니다.]

[병렬사고 스킬 레벨이 대폭 올랐습니다.]

[토우인형 제작 스킬 레벨이 대폭 올랐습니다.]

[그림자 투영 스킬이 대폭 올랐습니다.]

[복제인형 제작 스킬이 생겼습니다.]

[복제인형(lv.1)을 만들 수 있습니다.]

새로운 SS급 인형술사 스킬이 생겼다.

156. 복제인형.

156. 복제인형.

내가 SS급 헌터라니!

전생에도 몇 명 없었던 탑 클래스 헌터.

내가 그 최고 반열에 든 것이다.

물론 이곳엔 나 혼자 헌터라 자랑할 곳은 없지만······.

'전생에 내가 SS급 헌터였으면 상황이 바꿨을까?'

최악의 재앙, 초거수 카르마탄!!

그놈은 인류 최강이라는 천 명의 최상급 헌터 결사대로도 못 막았다.

거기엔 SS급 헌터도 포함되어 있었다.

'어림도 없겠지.'

나 혼자 답변했다.

게다가 난 인형술사.

S급이 될 때도, SS급 헌터가 됐어도 갑자기 강해지지 않는다.

강해질 기반이 생기는 거지.

내가 강해지는 길은 내 마법인형이 강해지는 것이다.

'근데, SS급 위에도 뭐가 더 있을까?'

갑자기 드는 의문이었다.

뭐가 있는진 아무도 몰랐다. 도달해본 사람이 없었으니까.

만약 SSS급이 있다면 내가 올라갈 수 있을까?

SSS급이라면 과연 카르마탄을 이길 수 있을까?

궁금증이 꼬리를 물었다.

고개를 흔들었다.

지금은 그런 쓸데없는 생각에 젖을 때가 아니었다.

'왜? 변화가 없지?'

죽은 여왕개미를 빤히 쳐다봤다.

이 녀석이 내 마법인형이 돼야 내가 진정한 SS급 헌터가 되는데······.

놈은 분명 죽었다.

그러니 내 경험치도 오르고, 등급도 올랐고.

근데 왜 운명의 실이 계속 검은색이지?

스킬이 성공하면 보랏빛이 되고, 실패하면 운명의 실이 끊어진다.

'이건 돼야 하는데······.'

아니면 손해가 너무 큰다.

거의 자동인형 급으로 키워 놓은 꼭두각시 셋은 아예 날아가 버렸고, 둘은 레벨이 초기화될 정도로 운명의 실이 많이 끊어진 상태였다.

이제 큰 전장이 아니면 마나인형을 늘릴 기회도 없었기에 마법인형 하나가 귀했다.

그리고 부서진 기간트가 매우 많았다.

동맹군엔 전사자도 있었고.

위이이이! 치이익!

해치를 열었다.

이 주변은 대수림은 이상하리만큼 고요하다.

SS급 괴수가 그 난리를 펼쳤으니, 주변 생명체들이 모두 도망쳤겠지.

쿵쿵!

암 드로운이 다가왔다.

"주군, 혹시 이 여왕 괴수도 부하가 되는 겁니까?"

"아직 잘 모르겠어. 되면 좋을 텐데······."

이렇게까지 오래 걸린 적이 없었다.

SS급 괴수라 그런 건가? 뭔가 운명이 장난을 치는 건가?

어찌 됐건 기다리는 것 말곤 방법이 없었다.

'아! 암 드로운이 분신인형이 됐지!'

몇 가지 확인해볼 것이 있었다.

[병렬사고(lv.7) 스킬을 사용합니다.]

[병렬사고(lv.7) - 하루에 한 번 105분간 분신인형의 생각과 의식을 공유한다. 의식이 병렬연결 되면 실시간으로 스킬을 전송할 수 있습니다.]

[현재 분신인형에 전송받을 수 있는 스킬은 총 6개입니다.]

[현재 분신인형에 전송할 수 있는 스킬은 총 6개입니다.]

[암 드로운(lv.1) 분신인형과 의식을 연결합니다.]

순식간에 공유된 암 드로운의 의식!

응? 갑자기 가슴이 답답해졌다.

지금 암 드로운은 자책하고 있었다.

광산에서 여왕개미와 싸웠을 때, 자신의 약함을 뼈저리게 느끼고 있었다.

이렇듯 의식이 연결되면 분신인형의 현재 감정도 일부 느낄 수 있게 된다.

그리고 난 암 드로운의 스킬을 빌려 쓸 수도 있고, 내 스킬을 암 드로운에게 빌려 줄 수도 있다.

말 그대로 분신인형이니까.

난 암 드로운의 스킬을 살폈다.

나중에 내가 쓸만한 스킬이 있는지 확인하는 것이다.

그러면서도 힐끔힐끔 운명의 실을 쳐다봤다.

그런데!!

운명의 실이 보랏빛으로 물들었다.

[여왕개미(lv.1) 허수아비 마법인형이 만들어졌습니다.]

"그래! 믿고 있었다고!"

나도 모르게 두 주먹을 불끈 쥐고 큰소리로 외쳤다.

정말 운명이 있는 건가?

이렇게 기쁠 수가 없었다.

그리고 긴장이 풀리며 안도의 한숨도 흘러나왔다.

기사회생에 성공하며 둘로 나뉘었던 여왕의 몸이 살짝 다시 붙었다.

혹시나 하나밖에 없는 운명의 실이 끊어질까, 곧바로 인형의 집에 넣었다.

다시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시간은 상당히 걸리겠지만, 여왕개미는 이제 스스로 치료될 것이다.

기쁨에 피식 웃음이 흘러나왔다.

'이 여왕개미를 꼭두각시로 만드는데 운명의 실이 얼마나 필요할까?'

엄청 많이 필요하겠지.

하지만 괜찮다.

SS급 헌터가 되면서 운명의 실타래 레벨도 대폭 올랐기에 현재 남는 운명의 실타래가 500개도 아니고 5,000개나 됐으니까.

한 가지 아쉬운 것은 여왕개미가 내 꼭두각시가 되더라도 생전 능력까진 오를 수 없었다.

꼭두각시는 스스로 생각하지 못하고 내가 내리는 명령에만 따르기 때문이었다.

그래도 오늘 드라우켄처럼 내가 잘 컨트롤만 한다면, 뛰어난 능력을 발휘할 순 있었다.

고개를 들자 벌써 해가 지고 있었다.

오늘은 아주 기쁜 날이기도 하지만, 너무 좋은 티를 내선 안 된다.

낮에 전투로 죽은 아리칸 기사들과 수인족이 많을 것이다.

"그만 돌아가자!"

암 드로운과 마법인형들을 넣고, 괴조인형에 올라탔다.

그리고 곧장 광산을 향해 날아갔다.

'아! 새로 생긴 SS급 스킬을 확인해야지.'

가장 중요한 것을 잊고 있었다.

상태창을 열었고, 스킬을 확인했다.

[복제인형 제작(SS등급) - 인형술사의 능력을 일부 복사해 복제 인형을 만들 수 있다.

모든 마법인형이 가능하고, 복제인형이 되면 기존 능력은 모두 초기화된다.

필요 운명의 실타래 – 2,000개]

난 눈을 깜빡였다.

복제인형?

내 능력을 복사해서 복제인형을 만든다는 말인가?

그리고 운명의 실타래가 2,000개라니!

현재 실타래 여유가 5,000개나 있었기에 부족한 것은 아니지만, 2,000개를 써서 그만큼의 효과를 낼 수 있을까?

여왕개미를 꼭두각시로 만드는 것도 2,000개까진 들지 않을 것 같은데······.

'게다가 내 어떤 능력이 복사되는지 알 길이 없고.'

처음 생긴 고유 스킬이라, 어떻게 써야 할지 고민이었다.

난 인형의 집을 열고, 내 마법인형들을 가만히 쳐다보았다.

당장 복제인형으로 만들 수 있는 마법인형들은 꽤 있었다.

S급 대군주 거인 괴수 허수아비도 있었고, 방금 잡은 십여 개의 병정개미와 일개미, SS급 여왕개미 허수아비도 있었다.

그리고 레벨이 초기화된 2개의 꼭두각시도 있었고.

그런데 내 어떤 능력이 복사될까?

그게 제일 중요할 것 같은데······.

다시 고개를 흔들었다.

'그냥 단순하게 생각하자!'

운명의 실타래를 무조건 2,000개나 써야 한다.

거인 괴수 허수아비를 꼭두각시로 만드는 데는 적어도 500개의 실타래가 필요할 것이다.

그리고 여왕개미는 적어도 그 2, 3배는 필요하겠지.

그럼 둘 중의 하나를 복제인형으로 만드는 게 효율적이다.

그리고 답은 나와 있었다.

[여왕개미(lv.1) 허수아비 마법인형을 복제인형으로 만드시겠습니까?]

'그래!'

SS급 스킬이 나쁜 거겠어? 분명 좋은 능력일 것이다.

그 순간 운명의 실타래 2,000개가 엄청난 빛을 뿜어내며 여왕개미와 이어졌다.

그 순간 여왕의 몸이 급속히 치유되고 있었고, 흘러나온 내장도 모두 안으로 들어갔다.

[여왕개미(lv.1) 복제인형이 만들어졌습니다.]

'벌써?'

여왕 복제인형이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이곳이 어디인지 파악하는 것 같았다.

난 여왕개미를 선택했다.

그 순간 여왕개미의 상태창이 떠올랐다.

'뭐야? 상태창도 있는 거야?'

아니면 내 상태창을 복사한 건가?

[여왕개미(lv.1)]

[클래스 – 초군체(F)]

[고유 스킬 – 초군체의 끈(lv.1), 군단 운용(lv.1), 페로몬 발산(lv.1)]

[특수 스킬 – 초진동 개미산(lv.1)]

[군단 보유 상황 - 0]

게다가 헌터처럼 클래스도 있고, 스킬도 있네!

고유 스킬을 하나 클릭해봤다.

[초군체의 끈(lv.1) - 자신이 낳은 알과 군체 종속의 끈을 부착한다. (0/300)]

순간 희열이 느껴졌다.

복제인형이 인형술사의 가장 중요한 스킬인 운명의 실타래를 복사해 자신에게 맞는 스킬로 변형했다.

다른 스킬을 열어봤더니, 그건 내 스킬을 복사한 것이 아니라 원래 여왕개미가 가지고 있던 것이었다.

그리고 여왕개미의 클래스인 초군체 레벨은 1이었지만, 몸은 SS급 몬스터였다.

그러니 나와 출발부터 다른 거다.

그리고 자신이 낳은 알에 초군체의 끈을 연결하니 나처럼 기사회생 스킬을 쓸 필요도 없었고.

'허! 대박이네!'

아니 이건 초대박이었다.

"끼릭?"

여왕개미가 날 향해 고개를 돌렸다.

그 순간 난 여왕개미와 의식이 연결됐다.

아무런 말을 하지 않아도 난 녀석의 생각을 읽을 수 있었다.

복제인형은 분신인형보다 더 강력한 유대가 느껴진다.

'그러니까 알을 낳고 레벨을 올릴 수 있게 대수림으로 보내 달라는 거야?'

여왕개미가 고개를 끄덕였다.

방금 스스로 생각해 내게 의견을 말한 것을 보면, 여왕은 상당히 독립적이었다.

그리고 녀석이 강해지고자 하는 강렬한 의지가 느껴졌다.

난 이미 녀석을 보내줘야 한다는 걸 알고 있었다.

'6마리의 병정개미와 7마리 일개미를 가져가 쓸 수 있나?'

아쉽게도 이 녀석들은 자신이 낳은 개체가 아니라 초군체의 끈을 연결할 수 없단다.

'근데, 혼자서 괜찮겠어?'

괜한 걱정을 한다고 타박이다.

자신이 SS급 몬스터인데, 누가 누굴 걱정하냐는 말이 돌아왔다.

난 괴조인형을 멈춰 세웠다.

그리고 방향을 돌려 다시 대수림으로 향했다.

여왕개미는 자신의 기억이 일부 남아 있다고 했다.

그리고 강한 수개미가 있는 곳을 알고 있다고 했다.

여왕은 레벨을 올리고, 군단을 만들 은밀하고 좋은 장소에 둥지를 만들 생각을 하고 있었다.

난 대수림 초입에 여왕개미를 내려줬다.

거대한 여왕개미가 나를 향해 고개를 끄덕였다.

"끼리리릭!"

"알았으니까, 너나 조심하고! 사람이나 수인들은 해치지 말고,"

끼릭! 척!

여왕개미가 앞다리를 하나 들더니, 더듬이 옆에 올리며 거수경례했다.

방금 내가 경례를 할 수 있을지 궁금해 의식으로 경례하는 상상을 흘려보내자, 그대로 따라 한 것이다.

괴이한 모습에 순간 피식 웃음이 흘렀다.

"어서 가!"

여왕개미가 몸을 돌려 대수림으로 향한다.

그런데 중간중간 몸을 돌려 나를 쳐다보며 더듬이를 흔들었다.

헤어짐이 아쉬운 거다.

난 녀석을 향해 손을 흔들어줬다.

지금 여왕은 내 의지를 잇고 있었다.

그리고 이곳 차원을 지키기 위해 힘이 필요하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러기 위해선 자신의 군단이 필요했다.

'쩝, 만나자마자 이별이네······.'

여왕개미가 괴수를 잡아 레벨을 올리고 알을 낳아 자신의 군단을 늘리면 늘릴수록 내 힘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난다.

게다가 내 운명의 실타래를 사용할 필요도 없었다.

여왕의 초군체의 끈이 있으니까.

다만 한 가지 단점은 성장할 시간이 좀 필요할 뿐이었다.

'어차피 꼭두각시로 만들어도 1년은 걸릴 거야.'

그것도 예전 능력은 펼칠 수 없었다.

말 그대로 꼭두각시니까.

하지만 내 복제인형은 날 닮았다.

다시 만났을 때는 엄청나게 성장해 있을 것이다.

그러니 조금만 참고 기다리자!

내가 6년이 걸려 SS급 헌터가 됐으니, 여왕개미는 그보다 훨씬 빨리 성장할 것이다.

난 기쁘면서도 씁쓸한 마음을 달래며 마석 광산으로 향했다.

한참을 날아갔지만, 사막은 생각보다 넓었다.

'그럼 꼭두각시를 추가해 볼까?'

다시 인형의 집을 열었다.

그리고 여왕의 공격에 레벨이 초기화된 두 꼭두각시의 몸에 떨어져 나간 운명의 실을 연결했다.

다시 걸음마부터 배워야 했지만, 그래도 완전히 끊어져 사라져 버린 세 꼭두각시보다는 나았다.

고개를 돌려 20미터 크기의 거대 병정개미 허수아비들을 쳐다보았다.

6마리 모두 다리가 전부 잘려 흉한 몰골이었다.

일단 동굴에서 챙긴 병정개미 다리를 허수아비들에게 붙여줬다.

가만히 놔둬도 치료가 되지만 그럼 시간이 너무 오래 걸린다.

일단 치료가 끝나면 이 녀석들을 꼭두각시로 만들 생각이다.

병정개미는 높이가 10미터나 되고 몸길이가 20미터였다.

그리고 힘이 좋아서 적당한 방어 장비를 만들어주면 전장에서 마석 배터리 보급이나 부서진 기간트, 부상자들을 옮기는 수송 임무를 맡겨도 좋을 것 같았다.

기간트가 위에 탈 수도 있을 것 같고.

다음으로 일개미 허수아비들도 잘린 다리를 일일이 연결해줬다.

한쪽에 가지런히 누워있는 거신 괴수인형도 보였다.

이놈은 엘프 차원에서 우리를 공격했던 대군주였다.

운명의 실타래를 연결하고, 오리지널 기간트 기사들과 힘을 합쳐 녀석을 죽이고, 허수아비 마법인형으로 만들었다.

난 먼저 이 녀석을 꼭두각시로 만들 것이다.

운명의 실을 500개나 연결했음에도 꼭두각시가 되지 않았다.

그래서 100개를 추가했고, 그제야!

[대군주(lv.1) 꼭두각시 마법인형이 완성됐습니다.]

이 녀석은 드라우켄과 같은 S급 괴수다.

고대 거신 영웅이 변이된 놈이었지만, 이젠 내 마법인형이다!

이 녀석의 꼭두각시 레벨이 오르면 내 전력이 대폭 증가한다.

157. 뭔가 터질 것 같은데.

157. 뭔가 터질 것 같은데.

다음 날 아침에서야 마석 광산에 도착했다.

광산 입구 근처에 내려서 암 드로운을 인형의 집에서 꺼내 함께 이동했다.

"영주님이 오셨다!"

"타일러 영주님!"

광산 입구에 있던 에테나와 기사들이 달려왔다.

"다들 괜찮아?"

먼저 기사들의 안부를 물었다.

마키아스 단장이 대답했다.

"후버 경과 브라운 경이 다쳤습니다. 지금 비공정의 치료실에서 치료 중입니다."

"많이 다쳤나?"

"목숨에 지장이 있는 수준은 아닙니다. 그래도 두세 달은 치료를 받고 푹 쉬어야 할 것 같습니다."

난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영웅 기사인 후버와 브라운은 나와 함께 여왕개미를 공격했기에 오리지널 기간트가 파괴됐다.

그들이 죽지 않은 것은 정말 다행이었다.

그건 여왕개미가 부서진 기간트를 다시 공격하지 않아서였다.

그랬기에 튼튼한 오리지널 기간트에 탄 기사가 다치긴 했어도 즉사하진 않았다.

옆에 있던 라이너가 물었다.

"그런데 대체 어디 있다가 오신 겁니까?"

기사들은 내가 여왕개미 뒷다리에 몰래 붙어서 따라간 것도 모르고 있었다.

"여왕 괴수는 잡으셨나요?"

그때 에테나가 내게 물었다.

"응? 어떻게 알았어? 내가 여왕을 잡으러 간 것을?"

"안 봐도 알죠. 영주님이 놈을 놓칠 리가 없으시죠. 그리고 이렇게 무사히 돌아오실 줄도 알았습니다."

에테나가 당연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때 크리스티나가 에테나를 보며 피식 웃었다.

"에이! 영주님이 다치면 어떻게 하나며 밤새 울었으면서!"

"누, 누가 울었다고 그래요?"

에테나의 얼굴이 빨개졌다.

"알리사님께 알려야지!"

에테나가 후다닥 커다란 천막을 향해 달려갔다.

얼굴이 빨개지는 모습이 귀엽단 말이야······.

난 마키아스 단장을 다시 쳐다봤다.

"다른 피해 상황은?"

"오리지널 기간트 5기, 룩급 기간트 8기, 비숍급 기간트 11기가 움직일 수 없을 정도로 파손됐습니다."

"피해가 제법 크군. 크루세이더 기사단은?"

"그쪽은 오리지널 기간트 4기, 룩급 기간트 5기, 비숍급 기간트 8기, 나이트급 기간트 3기가 크게 파손됐습니다."

"모두 수리하는데, 제법 걸리겠군."

"그리고 아리칸 기사가 7명 전사했습니다."

"휴우!"

마르틴 국왕이 가슴이 아플 것 같았다.

나도 그들과 함께 전장에서 싸운 인연이 있었다. 그런 내가 이 정도로 가슴이 아픈데, 마르틴은 수족 같은 기사를 7명이나 잃었으니, 상심이 클 것이다.

"마르틴 국왕은?"

마지막에 벽에 처박힌 우가스를 봤기에 걱정돼서 물었다.

"기간트가 그렇게 심하게 파손됐는데, 멍이 좀 생긴 것 말고는 멀쩡하답니다."

"허! 워낙 강골이시라 그렇군."

그때 라이진 수왕과 수인 지휘관들이 다가왔다.

"타일러 경, 마석 광산을 되찾아 주셔서 고맙습니다."

"고맙습니다!"

수인들이 일제히 고개를 숙였다.

인사를 받자고 한 일은 아니지만, 기분은 좋았다.

"수인들의 피해는 얼마나 됩니까?"

"저희의 피해는 크지 않습니다. 다만 이계 거신들이 타는 갑옷이 많이 부서지고, 전사하신 분들이 계셔서······."

라이진 수왕은 미안한 표정을 지었다.

얼굴은 무서운 사자지만 표정은 왠지 순수해 보였다.

"약속은 지키시는 겁니까?"

"물론입니다. 이곳 마석 광산 개발권은 앞으로 발레리온 영지에 있습니다."

"고맙습니다. 앞으로 물자도 날라야 하고 병장기도 만들어야 하니, 테오아칸에 저희 연락 사무실과 공방을 하나 만들겠습니다."

"무기와 도구를 공급해 주신다는 게, 여기서 직접 만들어주시는 겁니까?"

"그렇습니다. 그래서 기술자들을 데리고 왔습니다."

난 이번에 아리칸 동맹국 말고도 드워프들도 100명이나 데리고 왔다.

드워프 공방을 이곳 테오아칸에 만들기 위해서였다.

기간트 생산 공장은 아니고, 기간트 수리나 수인들의 무기를 만들 용도였다.

그리고 이곳 마석 광산에 드워프 광부를 배치할 생각이었다. 일꾼은 라이진 수왕이 수인들을 대거 붙여 주겠다고 했으니, 부족할 리가 없었다.

"알겠습니다. 제가 책임지고 도시 내에 적당한 위치를 제공해 드리겠습니다."

처음엔 여왕개미만 잡고, 마석만 챙겨서 갈까도 고민했지만, 역시 이곳을 괴수들에게 지키는 게 좋을 것 같았다.

그래서 이곳을 요새화하는 일도 병행할 생각이었다.

"그런데 지금 수인들이 뭘 나르는 겁니까?"

"우리가 잡은 개미 괴수들의 외골격을 쓸 수 있을 것 같다고 하시길래, 저희가 운반하려고 한곳에 모으고 있습니다."

"아! 그렇군요."

난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이번에 비공정에 함께 타고 온 드워프 대장장이 조모그를 찾았다.

"조모그여! 저 개미 괴수의 부산물을 쓸 수 있나?"

"그렇다! 타일러여! 저 부산물은 거대 비공정을 만들 때 쓸 수 있을 것 같아서 내가 에테나에게 모아 달라고 부탁했다. 그리고 에테나가 수인들에게 말을 전했고."

"아! 그렇군."

에테나는 이곳에 머문 기간도 짧은데, 벌써 수인들의 언어를 제법 능숙하게 하고 있었다.

그녀뿐만 아니라 엘프들의 언어 능력은 상당했기에 드워프, 오크, 인간들의 동시통역사로도 많이 쓰고 있었다.

"조모그여! 작은 개미 부산물은 내가 챙길 테니, 따로 모으고, 큰 개미 부산물은 이곳에서 수인들의 무기와 갑옷으로 제작해 주게."

"타일러여! 그렇게 하겠다!"

우린 이곳을 정리하고, 테오아칸으로 넘어갔다.

***

돌아가는 비공정엔 마르틴 국왕도 함께였다.

난 먼저 기사들의 죽음을 위로했다.

"그런데 정말 그 거대 여왕개미를 죽였소?"

"그렇습니다."

"허! 정말 대단하오! 타일러 경은 내가 모르는 힘이 아직도 많군."

마르틴은 놀라움에 고개를 흔들었다.

나는 살짝 미소지었다.

마르틴이 물었다.

"이제 우리 계약은 성사된 것이오?"

"물론입니다. 록체스터 대영지의 기간트 생산 공방은 이제 아리칸 왕국의 것입니다."

"하아! 지난 300년의 과업이 이제야 이루어지겠군."

마르틴 국왕의 눈가가 촉촉해졌다.

그 단단하던 사내도 감정이 복받칠 때가 있나 보다.

"내 기간트는 언제쯤 고칠 수 있겠소?"

"우가스는 파손이 커서 시간이 제법 걸릴 겁니다."

"다른 오리지널 기간트까지 수리하려면 몇 달은 걸리겠군."

"그래서 드리는 말인데요. 이곳에 좀 머물면 어떠시겠습니까?"

"······?"

"어차피 부서진 기간트를 우리 영지의 공방에 보내려면 시간이 꽤 필요하지 않습니까. 전 이곳에 기간트 수리 공방을 만들 생각입니다. 마석 배터리와 부산물도 제법 챙겨왔으니, 이곳에 계시면 한 달이면 수리가 들어갈 겁니다."

마르틴 국왕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기간트 공방을 만들 정도면, 이곳을 계속 지킬 생각이시오?"

"네."

"내가 듣기론 엘프 차원과 드워프, 오크들의 차원도 모두 이곳 차원에 나타난 괴수들에게 멸망했다고 들었소. 그런 녀석들을 막을 수 있겠소?"

"제가 막는 것은 아닙니다. 우리가 가는 테오아칸 왕국만 해도 수인이 수십만 명입니다. 전 그 수인들이 괴수를 막을 수 있게 도와줄 생각입니다. 물론 광산에서 마석을 얻는 이득은 계속 챙길 거고요."

마르틴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전하께서 쓰실 룩급 오리지널 기간트 한 기를 빌려드리겠습니다."

"응? 이거 나더러 이곳을 지켜달라는 거 같은데?"

"하하! 맞습니다. 잠시면 됩니다. 지금 당장 괴수들의 큰 공격은 없겠지만, 혹시나 해서요. 크루세이더 기사단이 테오아칸을 지켜 주시면, 그 사이에 제가 안심하고 일을 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무슨 일을 말이오?"

"가디언 제국 일입니다. 전에 말씀드렸다시피, 그들은 이미 이곳에서 수인들과 거래를 하고 있습니다. 그들의 속셈이 뭔지 계획이 뭔지 한번 알아볼 생각입니다."

"아! 하긴 가디언 제국은 늘 뒤로 수작을 부리는 놈들이지."

"그리고 제가 탈로스 왕국과 두 제국의 동향을 지속해서 파악해 알려드리겠습니다."

"알겠소. 기간트가 모두 수리될 때까지만 이곳에 주둔하지."

"감사합니다."

***

[오탈리마 왕국]

하늘에 서 본 오탈리마는 대부분 늪지대였다.

그 때문에 테오아칸처럼 사막에서 불어오는 모래바람을 막을 거대 성벽을 지을 필요는 없었다.

대신 이동을 편하게 하기 위해 사방에 커다란 나무로 길을 냈다.

'응? 비공정?'

내 뛰어난 시력에 비공정이 들어왔다.

3척의 비공정이 오탈리마 도시 상공에 떠 있었다.

'벌써, 대수림 안에도 비공정을 만들었군.'

그건 가디언 제국의 비공정이었다.

그들은 나처럼 인형의 집을 이용해 비공정을 장벽 밖으로 옮길 수 없었기에 장벽 너머 대수림에서 비공정을 새롭게 만들어야 했다.

그런데 벌써 이곳 차원까지 보낼 정도면 이미 상당한 숫자를 만들었을 것이다.

'역시 빨라.'

늘 나보다 한발 앞서는 안드레아스의 다음 속셈이 궁금했다.

그랬기에 그들과 거래한다던 오탈리마 왕국에 왔다.

난 괴조인형을 늪 사이에 착륙시켰고, 걸어서 오탈리마로 향했다.

오탈리마는 거대한 나무 목책이 도시를 두르고 있었고, 출입구는 여러 곳이었다.

기간트를 타고 들어가려고 했다가 그냥 걸어갔다.

이미 몇 달 전부터 가디언 제국과 거래하고 있으니, 인간이 어색하진 않겠지.

예상대로 날 본 입구의 도마뱀 수인이 고개를 살짝 숙였다.

안으로 들어가자, 생각보다 규모가 커 놀랐다.

주변은 온통 늪지대였지만, 이 안은 마른 땅이었다.

악어와 도마뱀, 하마 얼굴을 한 수인들이 대부분이었고, 가끔 등껍질을 달고 다니는 거북이 수인도 보였다.

그리고 머리 위에 3척의 비공정에서 뭔가 검은 그림자가 쉴 새 없이 움직이고 있었다.

'허! 수인들을 오크 해병대처럼 이용하려는 건가?'

악어와 도마뱀 수인들이 배와 배 사이를 밧줄을 타고 뛰어넘고 있었다.

가디언 제국은 이미 3미터 크기의 비공정 전용 기간트를 만들었다고 들었다.

그런데 왜 수인들까지 이용하려는 거지?

아! 하긴 한계가 있겠지.

소형 기간트는 만들 수 있겠지만, 그 안에 탈 기사는 마구 찍을 수 없었다.

하지만 오크 해병대는 훈련만 할 수 있다면 얼마든지 늘릴 수 있었다. 그러니 오크 해병대에 대항하기 위해 숫자가 많은 수인들을 이용하려는 것이다.

'역시, 안드레아스는 만만한 인물이 아니야.'

게다가 수인들을 훈련하고 있는 것이 다크 엘프였다.

가디언 제국을 돕는 다크 엘프들.

마지막 하이엘프인 시노우엘도 그들을 설득하지 못했다.

아베르크 제국이 가디언 제국을 상대하기 위해선 시간이 필요했다. 비공정도 부족했고, 기간트도 부족했으니까.

하지만 지금 상황을 보면, 시간은 오히려 가디언 제국의 편이었다.

그들에게 시간을 더 주면 가디언 제국은 어디까지 뻗어 나갈지 몰랐다.

차라리 빨리 싸우는 게 낫겠어.

그럼 세 황자가 힘을 합쳐 대항하지 않을까?

고개를 흔들었다.

'그럴 놈들이 아니지.'

게다가 황태자에겐 갚을 빚이 있었다.

난 그래도 암 드로운이 탈 25미터의 거대 기간트가 완성되고, 초거대 비공정이 완성된다면, 황제나 어떤 왕국도 무시하지 못할 힘을 갖게 된다.

거기에 여왕개미의 군단이 더해지면, 세계 정복이 가능할지도······.

물론 난 그냥 내 영지에서 평범하게 살고 싶지만.

'응? 마장기!'

도시 가운데 마장기가 보이자, 건물 뒤에 몸을 숨겼다.

그곳엔 11기의 마장기가 세워져 있었고, 그 옆엔 도시에서 가장 큰 4층짜리 왕궁 건물이 있었다.

왕궁 앞 광장엔 햇빛을 가리기 위한 그늘막 천막이 여러 개 처져 있었고, 한쪽엔 가디언 제국의 기사들이 더위를 피해 쉬고 있었다. 그리고 가장 큰 천막 안엔 한 인간과 악어 수인들이 대화하고 있었다.

'저자가 오탈리마의 수왕인 크로카일이군.'

다른 악어 수인보다 1미터나 크고 덩치가 압도적으로 좋았기에 단번에 수왕을 알아봤다.

그리고 그 앞에 앉아 있는 사람도 누군지 알아봤다.

패로운 준장이 여기에 있었군.

그는 루이스 황자의 최측근이었다.

가디언 제국과 오탈리마 왕국은 마석뿐만 아니라 병력까지 협력하는 수준이었다.

'뭐라고 하는지 들어볼까?'

최대한 가까이 다가갔다.

하지만 거리가 제법 있었고, 주변이 시끄러워 잘 들리지 않았다.

그때 그늘막 뒤쪽에 해치가 열려있는 마장기 한 기가 보였다.

저기가 좋겠다.

난 최대한 자연스럽게 광장을 돌아가서 열려있는 룩급 마장기에 몰래 올라탔다.

퀴퀴한 땀 냄새가 코를 찔렀다.

'방비가 형편없군.'

하긴 누가 여길 찾아오겠나?

비공정이 아니면 그 험한 늪지대를 건너야 했으니까.

난 조용히 귀를 기울였다.

"코린트 왕국이 너무 조용해 불안합니다. 대다수 수인은 거신들을 매우 두려워합니다. 그러니 그들이 내려올까 걱정하고 있습니다."

크로카일 수왕이 말했다.

그러자 통역을 맡은 다크 엘프가 패로운 준장에게 이야기를 전했다.

"수왕이시여! 원래 거신들은 수인들 일에는 상관하지 않는다고 하시지 않았습니까. 그리고 우리가 이렇게 지키고 있으니, 걱정하지 마십시오."

"그건 그렇지만, 마석과 부산물을 보내지 않은 지 벌써 4개월이 지났습니다."

"다른 왕국에서 보내고 있을 테니, 괜찮을 겁니다."

크로카일은 계속 불안하다는 말을 엘프에게 하고 있었고, 패로운은 계속 괜찮다는 대답을 하고 있었다.

'응?'

갑자기 광장 한쪽이 소란스러웠다.

그리고 주변의 수인들이 좌우로 갈라지며 일제히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쿵! 쿵! 쿵!

갑옷을 입은 거신!

태양을 상징하는 깃발을 든 기수를 앞세우고, 코린트 왕국의 거신 기사들이 왕궁을 향해 다가오고 있었다.

그리고 거신 기사들 뒤쪽에 거신 병사들의 보호를 받는 길고 흰 로브를 입은 거신 마법사 둘이 보였다.

'이거 뭔가 크게 터질 것 같은데!'

158. 백작은 너희에게 실망했다.

158. 백작은 너희에게 실망했다.

"거, 거신이다!"

가디언 제국의 기사들도 다가오는 거신들을 봤다.

그들은 놀란 표정으로 슬그머니 일어나 마장기에 올라타기 시작했다.

반응을 보니, 가디언 제국의 기사들도 코린트 왕국의 거신들을 오늘 처음 본 듯했다.

조금 전까지 주변에 있던 거신 용병들은 벌써 어디로 들어갔는지 감쪽같이 사라졌다.

그들은 거신 기사들을 두려워했다.

가디언 기사들이 다들 마장기에 탔지만, 크로카일 수왕 앞에 있던 패로운 준장은 미쳐 마장기에 타지 못했다.

이미 거신들이 천막 밖에 도착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내가 탄 기체가 패로운 준장의 기체였다.

"뭐, 뭐냐? 작은 인간이 정말 있다니!"

맨 앞에선 거신 기사가 인간 패로운 준장을 보더니, 놀란 표정을 지었다.

그들도 오늘 인간을 처음 본 듯했다.

알리사가 장벽과 대수림, 새로운 세상에 관해 이야기하고 도와달라고 했지만, 저들은 아예 확인할 생각도 하지 않은 것 같다.

그저 자신들의 왕국만을 보호하고 있었다.

[대장님을 보호해라!]

[어서 움직여!]

기이잉! 쿵! 쿵!

마장기들이 패로운 준장이 있는 천막으로 달려가기 시작했다.

나도 마장기 해치를 닫고, 그들을 따라 움직였다.

"멈춰라!"

패로운 준장이 달려오는 마장기를 향해 손을 뻗었다.

그러자 마장기들이 멈춰 섰다.

패로운 준장은 수왕이 있는 천막에서 나오더니, 천천히 마장기 옆으로 이동했다.

딱 보아하니, 코린트 왕국과 수인족 일에 끼어들고 싶지 않은 것 같았다.

거신 쪽도 놀라긴 마찬가지였다.

앞서던 거신 기사 셋이 일제히 검을 뽑았고, 거신 병사 열다섯 명이 창을 겨누며 앞으로 나섰다.

그리고 거신 마법사들도 놀란 표정으로 병사들 뒤쪽에 서 있었다.

거신 기사 하나는 9미터였고, 둘은 7미터였다.

병사들은 모두 5미터 이하였고, 마법사는 둘 다 7미터 크기였다.

"정말 인간이 거신 갑옷에 타다니!"

"러마크 마법사님, 어떻게 하지요?"

거신은 거신어로 이야기하고, 인간은 제국어로 이야기하고 있었다.

그러니 서로 무슨 말인지는 몰랐다.

지금 나만 이곳에 모든 언어를 알고 있었다.

하지만 방금 마장기들이 살짝 물러서는 느낌이 들자, 거신들의 대장으로 보이는 듯한 거신 마법사가 앞으로 나섰다.

"통역은 없느냐?"

거신 기사가 주변을 둘러봤다.

"추방자 놈들이 몇 명은 있을 줄 알았는데, 모두 눈치채고 도망친 것 같습니다."

"젠장!"

러마크 마법사가 수왕 앞에 섰다.

"왜 마석과 괴수 부산물을 가져오지 않느냐?"

러마크가 거신어로 말했지만, 수왕과 수인들은 거신어를 모르는 것 같았다.

어쩐지 릴리안과 갈라그란트도 수인들과 말할 땐 수인들의 언어를 사용했었다.

"너희가 이자들을 끌어들인 것이냐?"

수왕 크로카일은 연신 패로운과 마장기 기사들을 쳐다봤다.

도와달라는 뜻이었다.

인간과 수인족 통역을 담당하던 다크 엘프도 이미 사라지고 없었다.

[어떻게 하죠? 대장님?]

"일단 저들을 자극하지 말고, 가만히 대기해라!"

[하지만 거신들이 수인들을 공격하면요?]

"안드레아스 총사령관께서 명령하셨다. 절대 코린트 왕국의 거신들과는 싸우지 말라고."

[하지만 여기 수인들에게는 우리가 지켜준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그건 상황에 따라 바뀌는 것이다."

[네? 그럼 마석은?]

"이미 충분히 확보했다."

기사들은 갑자기 말을 바꾸는 대장을 보며 어리둥절했다.

안드레아스도 코린트 왕국의 병력 규모는 알고 있을 것이다.

거신 용병들에게 정보를 얻었겠지.

코린트 왕국은 12명의 원로 마법사와 그 밑에 수십 명의 마법사가 있었고, 기사가 100명, 병사가 1,500명이었다.

인구가 1만 명인데 병력이 15%가 넘는 셈이었다.

거신 병사는 폰급 마장기 크기에 마나를 거의 다루지 못했기에 일반 금속 갑옷을 입고 있었다.

그랬기에 큰 위협은 아니었다.

하지만 100명의 기사는 모두 괴수 부산물로 만든 갑옷을 입고 있었기에 오리지널 마장기가 100기나 있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게다가 마법사가 수십 명이니, 절대 싸우지 말라고 했겠지.

"하찮은 것들이 감히 우리를 배신하고 다른 세력을 끌어들여? 어서 대답하지 못할까!"

러마크 마법사가 호통을 쳤다.

수왕과 수인 지휘관들은 어찌할 바를 몰랐다.

오랜 세월 거신들의 지배를 받은 것과 마찬가지였기에 거신을 보고만 있어도 몸이 움츠러들었다.

"도, 도와주십시오!"

수왕이 패로운을 보며 말했다.

하지만 패로운은 무슨 말인지 못 알아듣겠다는 표정으로 아예 시선을 돌렸다.

그때 뒤에 있던 또 다른 거신 마법사가 앞으로 나왔다.

"러마크님, 어차피 무식한 놈들이라 알아듣지 못합니다. 그냥 옛날처럼 본보기로 몇 놈 태워버리시죠."

"하긴 짐승 같은 놈들에겐 본보기가 최고지."

가장 큰 호위 기사가 물었다.

"근데 저자들은 괜찮을까요?"

기사는 마장기를 쳐다보고 있었다.

두 마법사도 마장기를 쳐다봤다.

"저자들은 우리에게 도와달라고 도움을 청했다. 그런 놈들이 뭘 하겠느냐? 지금도 우리가 나타나자, 물러서지 않았느냐?"

"아! 알겠습니다."

기사가 고개를 숙이며 뒤로 물러섰다.

러마크 마법사가 수왕 옆에 있는 한 지휘관을 향해 손바닥을 뻗었다.

휘잉! 휘이이잉!

주변 기운이 휘몰아치며 손바닥 앞으로 모이기 시작했다.

"파이어 볼!"

화르르르!

손바닥 앞에 지름 1미터 크기의 커다란 불덩어리가 생겨났다.

수인 하나를 죽이기엔 파이어 에로우만 해도 충분할 텐데, 일부러 화력이 강한 마법으로 태워죽여 겁을 주려는 모양이었다.

불덩어리를 본 수인 지휘관은 눈동자가 배로 커졌다.

이제 내가 나설 차롄가!

[가디언의 기사들이여! 수인들을 보호해라!]

기이잉! 쿵! 쿵!

소리치고 내가 달렸다.

그러자 마장기들이 일제히 움직였다.

[수인들을 보호하라!]

[거신들을 죽여라!]

"뭐, 뭐야?"

놀란 거신은 불덩어리를 나를 향해 던졌다.

하지만 난 이미 몸을 옆으로 날리고 있었다.

휘이익! 퍼엉!

화르르르!

나이트급 마장기 하나가 거센 화염에 휩싸였다.

[으아아아!]

그리고 안에 탄 기사가 끔찍한 비명을 질렀다.

[이 개새끼들!]

[다 죽여버려!]

쿵쿵쿵!

내 룩급 마장기가 달려들자, 화염을 쏜 거신 마법사가 놀라 옆에 있는 마법사를 앞으로 밀었다.

"어?"

다닥! 푸욱!

"커헉!"

거신 마법사는 갑옷도 없었기에 너무 쉽게 배가 뚫렸다.

"러마크님을 보호하라!"

"놈들을 죽여라!"

거신 기사들도 마장기를 향해 달려들었다.

쾅! 콰쾅!

마장기와 거신의 전투가 벌어졌다.

난 룩급 마장기로 나이트급 거신 기사에게 달려들었다.

[으아아아!]

부아앙! 태앵!

역시 기사는 날렵하게 잘 막았다.

하지만 출력은 내 쪽이 조금 더 위였다.

그리고 스킬도.

[그림자 투영(lv.6) 스킬이 발동됐습니다.]

[선택된 마법인형 – 괴조(lv.10) 꼭두각시]

갑자기 상대 기사의 움직임이 느려졌다.

아니 세상이 느려졌다.

이 슬로비디오처럼 느려지는 느낌이 좋다.

지금 괴조인형의 시야와 동체 시력, 반응속도가 내게 투영됐다.

마장기를 조종할 때에는 이 능력이 제일 나았다.

"크으으으으으!"

눈앞에 기사가 힘이 부족함을 알았는지, 한쪽 무릎을 꿇으면서 검을 살짝 들고 내 검을 옆으로 흘리려 했다.

난 내려치는 팔과 어깨 힘을 빼곤, 그냥 냅다 앞발을 뻗었다.

부우우웅!

힘껏 찼지만, 역시나 내 발도 느리다.

퍼어어어억!

놈의 가슴에 내 앞발이 닿았다.

그 순간 놈이 충격을 받고 뒤로 날아가며 넘어졌다.

난 그냥 멈춰있진 않았다.

마장기 발이 땅에 닿자마자, 앞으로 달렸다.

그리고 검을 양손에 들었다.

그 순간 기사의 흔들리는 눈동자가 나를 쳐다봤다.

푸우우우욱!

내 검은 거신의 갑옷을 뚫지 않았다.

대신 목을 뚫었다.

"컥! 커헉!"

검을 뽑자 목에서 피가 튀었다.

그러자 기사는 고개를 옆으로 떨궜다.

그리고 난 내게 달려들기 시작한 두 거신 병사를 향해 달렸다.

세상에 느리게 흐르지만, 긴장을 풀진 않았다.

한쪽 팔은 검을 옆으로 늘이고, 다른 팔은 그냥 쫙 뻗었다.

그리고 찔러지는 창을 차례로 피하고, 두 팔을 안으로 모았다.

촤아아악! 퍼어어억!

날카로운 검은 거신 병사의 몸을 벴고, 팔은 거신 병사의 머리통을 때렸다.

쿠우웅! 쿠우웅!

쓰러진 병사에게 검을 찔러 마무리 했다.

그리곤 다음 상대를 찾는다.

그림자 투영 스킬 레벨이 대폭 오르며 스킬 사용시간이 600초로 늘었지만, 쿨타임이 3배로 늘어 300분이 있어야 재사용 가능했다.

그러니 600초 동안 최대한 적을 줄여야 했다.

그런데!!

"수인들이여! 무기를 들어라!"

오탈리마의 수왕 크로카일이 소리쳤다.

"거신을 공격하라!"

"와아아아!"

두려움을 이겨내고 수인들이 사방에서 거신들을 공격했다.

그러자 거신들은 싸움을 포기하고, 도망치기 시작했다.

마장기들과 수인들이 뒤를 쫓았지만, 비숍급 거신 기사가 러마크 마법사를 보호하며 오탈리마를 벗어났다.

[더는 쫓지 마라!]

내가 소리쳤다.

이미 다른 거신 기사는 모두 죽었고, 거신 병사도 4명밖에 도망치지 못했다.

"거신이 도망쳤다!"

"와아아아!"

수인들이 엄청난 함성을 내질렀다.

그리고 숨어 있던 거신 용병들도 경악한 표정으로 밖으로 나왔다.

마장기 기사들이 내게 다가왔다.

[와! 대장님! 대단하십니다.]

[맞습니다. 실력이 많이 느셨네요.]

가디언 제국의 기사들이 날 칭찬했다.

그때였다.

"너희들 지금 무슨 짓이냐? 가만히 있으란 내 명령을 듣지 못한 거냐!"

[어?]

[대, 대장?]

마장기 기사들이 패로운 준장과 내가 탄 마장기를 번갈아 보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럼, 여기에 탄 건 누구?]

[헉! 누구냐?]

마장기들이 일제히 내게 검을 겨눴다.

철컹! 치이이익!

난 해치를 열고 마장기 밖으로 나갔다.

"타, 타일러 백작님?"

패로운 준장이 날 바로 알아봤다.

"오랜만이군. 패로운 준장."

"대체 어떻게?"

난 패로운과 마장기 기사들을 보며 말했다.

"나 타일러 빈스는 가디언 제국의 백작으로 오늘 너희에게 실망했다."

"······?"

"기사가 어찌 약속을 지키지 않느냐? 수인들을 지켜 주겠다고 약속하고선, 그냥 도망을 치려 해?"

"하지만 그건 상부의 명령이었습니다."

"상부? 누구냐 그런 명령을 내린 것이? 루이스 황자 저하의 명이냐?"

"그, 그건······."

루이스의 오른팔인 패로운 준장이 곤란한 표정을 지었다.

"아무리 이곳이 우리가 사는 세상이 아니라곤 해도 저기 있는 수인들은 너희에게 협력했다. 그런데 너희는 한 입으로 두말을 해? 그러고도 너희가 기사냐? 루이스 황자 저하께서 너희에게 기사의 명예를 버리라고 하더냐?"

패로운 준장은 내 시선을 슬며시 피했다.

마장기 기사들도 명령에 따랐다곤 하지만 그들도 약속을 지키지 않은 건 마찬가지였기에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그때였다!

수왕 크로카일과 수천 명의 수인이 몰려왔다.

"가디언의 기사들이여! 고맙습니다!"

"이계 기사들이 거신들을 물리쳤다!"

"와아아아아!"

수인들이 마장기 기사들을 향해 손을 들고 환호했다.

"보아라! 지금 저 수인들은 너희가 약속을 지켰다고 고마워하고 있다. 내가 조금 전에 있었던 일을 저들에게 통역해 주면 어떻겠냐?"

"그만하십시오. 무슨 말씀을 하시는지 알아들었습니다."

패로운 준장이 말했다.

난 고개를 흔들었다.

"일단 안으로 들어가시죠."

난 패로운 준장과 가디언 제국 기사들의 숙소로 향했다.

***

가디언 제국의 기사들이 쓰는 숙소는 왕궁 옆에 있는 2층 건물이었다.

거신 용병들도 들어갈 수 있을 정도로 천장은 매우 높았지만, 의자와 침대는 인간들 크기에 맞춰져 있었다.

그리고 이곳에서 꽤 오랫동안 생활한 흔적이 보였다.

패로운 준장이 물었다.

"여긴 어떻게 오셨습니까?"

"정탐하러 왔네. 자네들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나서긴 했지만."

난 사실대로 말했다.

"혼자서 오신 겁니까?"

"물론이네. 왜? 내가 혼자라니까 죽일 수 있을 것 같은가?"

"그게 무슨 말씀입니까. 타일러 백작님은 아베르크 제국의 귀족이지만, 저희 가디언 제국의 귀족이기도 합니다. 그리고 루이스 저하께서 혹시나 타일러 백작님을 만나면 절대 공격하지 말고, 잘 설득해 데리고 오라고 하셨습니다."

난 피식 웃어줬다.

"하지만 안드레아스 원수는 날 보자마자 죽이라고 했겠지."

"네?"

패로운 준장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159. 헤어질 결심.

159. 헤어질 결심.

내가 가디언 제국의 입장이라면 나부터 암살하고 싶을 거다.

가장 불확실하고, 아베르크 제국에서 전력이 완전히 드러나 있지 않은 상대니까.

"솔직히 내가 마음만 먹는다면 자네와 밖에 있는 기사들을 죽이는 건 손바닥 뒤집기보다 쉬운 일이네. 하지만 루이스 저하와 옛정을 생각해서 참고 있는 거니까, 쓸데없는 생각은 하지 않는 게 좋아."

살짝 공기가 무거워졌다.

그때 문을 열고 한 기사가 차를 들고 들어왔다.

"드십시오. 이 차가 그래도 입맛에 맞으실 겁니다. 이곳 수인들의 차는 좀 떫거든요."

"좀 식으면 마시겠네."

기사가 나가고 김이 오르는 찻잔을 지그시 바라보며, 조금 전 상황을 정리했다.

내가 급발진을 하긴 했지.

여긴 나와 관련된 것이 하나도 없는 곳인데······.

하지만 화가 나서 가만히 있을 순 없었다.

거신 마법사가 수인을 공격하는 것에 화가 난 것은 맞다.

하지만 비겁하게 약속을 지키지 않고 물러선 기사들에게 더 화가 났다.

내가 아는 루이스는 그런 인간이 아니었다.

그리고 그의 측근인 패로운 역시, 루이스를 존경하고 닮기 위해 노력하는 기사였다.

하지만 지금 모습은 많이 변해 있었다.

그래도 오늘 내가 개입했으니, 코린트 왕국과 가디언 제국은 당분간 적대적일 것이다.

거신을 죽였으니, 수인들의 편에 설 수밖에 없겠지.

코린트 왕국의 거신들이 수인들을 도와 괴수의 침공을 함께 막으면 제일 좋겠지만, 오늘 그들의 행태를 보니 기대할 수 없었다. 아니 오히려 방해할까 걱정이다.

그러니 이곳 차원에서만은 가디언 제국이 수인들의 편을 드는 것이 내게는 이득이었다.

공동의 적이 생기는 것이니까.

찻잔에서 눈을 떼고, 패로운 준장을 쳐다봤다.

"가디언 제국의 다음 황제가 루이스 저하신가? 아니면 안드레아스 원수인가?"

"무슨 말씀입니까. 그야 당연히 루이스 저하십니다."

"그런데 왜 다들 안드레아스의 명을 듣는 거지?"

"그야. 안드레아스 원수께서 총사령관이시니까요."

"무슨 총사령관?"

패로운은 대답 대신 살짝 내 눈치를 봤다.

"아베르크 제국을 지도상에서 사라지게 할 총사령관?"

그의 침묵은 긍정이었다.

전부터 궁금한 점을 물었다.

"루이스 저하께서 왜 그런 결정을 하신 거지? 전쟁을 좋아하시는 분이 아니었는데?"

"지금도 전쟁은 좋아하시지 않습니다. 많은 사람이 죽을 테니까요."

"말이 앞뒤가 맞지 않는군. 전쟁을 좋아하지 않는데, 안드레아스 원수를 아베르크 제국을 점령하기 위한 총사령관으로 임명했다고? 그리고 지금도 한창 전쟁을 준비 중이고."

패로운 준장이 굳은 표정을 지었다.

"그건 맞습니다. 하지만 최종 목적은 다릅니다. 루이스 저하께서는 300년이나 지속한 두 제국의 전쟁을 완전히 종식하고자 합시다. 그래서 안드레아스 원수를 전폭적으로 밀어주고 계십니다."

"그러니까 전쟁을 없애는 방법으로 아베르크를 완전히 점령하겠다는 거야? 전쟁으로 전쟁을 없애려고?"

"그렇습니다. 대체 언제까지 두 제국의 기사들이 피를 흘려야 합니까. 루이스 저하는 이번이 마지막이 돼야 한다고 하셨습니다."

"허! 그보다 더 쉬운 방법이 있지 않은가? 루이스 저하가 황제가 되어 아베르크 제국에 투항하면 되겠네. 그럼 전쟁도 사라질 거고."

"그, 그건······."

고개를 흔들었다.

황제 자리는 유지하고 싶겠지.

그게 인간의 본성이니까.

결국, 루이스도 똑같은 인간이었구나!

안드레아스에 대한 분노와 루이스에 대한 호감이 조금씩 섞여 있었는데, 루이스의 목적을 듣자 이젠 한쪽으로 완전히 돌아섰다.

"그리고 두 제국의 전쟁이 그리 쉽게 끝날 리가 없잖은가. 지금은 가디언 제국의 전력이 더 높다고 해도, 아베르크는 지난 300년간 기간트 기술에서 앞서왔네. 그리고 최근에 오리지널 기간트를 다수 확보했다는 것도 알고 있을 테고. 전쟁에서 아무리 가디언 제국이 유리하게 진행된다고 해도 기껏해야 이베리아 평원과 동부 일부를 가져가고 끝날 거야. 기사들만 죽어 나가는 거지."

패로운이 자신감 넘치는 표정을 지었다.

"아닙니다! 이번엔 다를 겁니다."

"다르긴, 큰 그림을 보게. 제국의 땅은 매우 넓네. 전투에서 여러 번 승리했다고 해도 점령지도 안정해야 하고, 부서진 마장기도 수리해야 하네. 기사들과 병사들도 피로할 거고. 또 하늘에서 비공정이 언제 떨어질지도 모르는데, 마냥 전진할 수도 없을 거네. 그러니 적당히 아베르크의 땅을 차지하면 휴전할 것이네. 그리고 몇 년 후에 다시 싸우겠지. 뭐, 병력에서 2배 이상 압도하면 또 모를까."

앞선 300년간의 역사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그런데 방금 패로운 준장의 입꼬리가 아주 살짝 올라갔다.

'뭐지? 저 반응은?'

에테나가 있었다면 바로 알아챘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나도 왠지 알 것 같았다.

진짜 병력이 2배 이상이라고?

하지만 마장기와 기사가 갑자기 하늘에서 떨어질 리도 없고, 비공정을 자동화 공장에서 찍어낼 수도 있는 것도 아니었다. 비행석도 한계가 있을 테고.

추밀원의 정보국에서 파악한 두 제국의 전력 차는 1.3배 정도.

수치는 높지 않지만 이건 엄청난 전력 차다.

내 기간트가 1,000기라면 상대는 1,300기가 있는 거니까.

하지만 그 정도 병력 차로 압도할 순 없을 텐데······.

'대체 뭐지?'

순간 머리가 회전한다.

잠깐 전력이 배가 된다고?

그 순간 불길한 생각이 뇌리를 스쳤다.

우리 병력은 줄고 저들의 병력이 늘어난다면?

그리고 입안이 마르기 시작했다.

"설마, 호엘 삼황자인가?"

그 순간 패로운 준장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헉! 그 미친 것들이!"

"정확한 것은 삼황자와 바이마르 대영지입니다. 그들은 남쪽 베른 식민지 대륙과 아베르크 제국의 남쪽을 가져갈 겁니다."

"하아! 멍청하긴 토사구팽의 수순을 왜 몰라!"

"그리고 글론 왕국과 탈로스 왕국이 합세해 아리칸 왕국을 공격할 겁니다. 거기에 아베르크 남서쪽의 살루스 왕국과 남동쪽의 윈데르 왕국까지 연합군은 이미 결성됐고, 병력은 이미 각 전선으로 집결 중입니다."

그럼! 연합군의 병력이 2배가 아니고, 3배가 되는 건가?

어째서 아베르크 제국은 이 사실을 모르고 있었지?

머릿속에 의문이 떠오른다.

아! 그들은 지금 황제 자리를 놓고 서로 싸우기 바쁘지······.

제국 내 경쟁 세력의 움직임을 감시하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었다.

황제가 당장 내일 죽을 정도로 위독하지도 않은데 말이다.

일단 빨리 이 사실을 아베르크 제국에 알려서 수습을······.

기이잉! 쿵! 쿵!

묵직한 울림이 주변을 뒤덮었다.

마장기들이 이곳을 포위하는 것이 느껴졌다.

패로운 준장이 자리에서 일어나 문 쪽으로 향했다.

"지금 내게 이런 말을 다 해주는 이유가 날 죽여 입막음하려는 건가?"

"죄송합니다. 개인적인 악감정은 없습니다. 얌전히 따라가신다면, 제가 목숨은 보장하겠습니다."

"내가 싫다면?"

"그럼, 여기가 타일러 백작님의 무덤이 될 겁니다."

순간 어이가 없었다.

"안드레아스 원수가 날 조심하라고 하지 않았나?"

"물론 하셨습니다. 그래서 마장기를 동원하는 겁니다. 용서하십시오."

패로운 준장이 문을 열었다.

난 가만히 서서 한숨을 쉬었다.

가디언 제국은 내 진정한 힘을 모르고 있었다.

내가 기사와 병사 수십 명을 때려잡고, 오리지널 기간트에 타고 활약을 하고, 뛰어난 부하들이 있고, 대수림을 마음대로 오간다는 것은 이미 다 알고 있었다.

어쩌면 아공간 같은 능력이 있다는 것도 알고 있겠지.

하지만 괴수인형은?

인형술사의 능력은?

알고 있을까?

아니! 거기까진 모르고 있었다.

그러니 지금 이 같은 어리석은 행동을 하는 거지.

그동안 괴수인형을 모르는 사람들 앞에서 꺼내지 않은 이유가 이것이었다.

지금 당장 드라우켄을 꺼내면 저들을 한 방에 다 죽일 수 있었다. 하지만 그러진 않았다.

아무 죄 없는 수인들이 다칠 수도 있으니까.

콰앙!

"죽여라!"

문이 닫히자마자, 사방에서 마장기들이 달려들었다.

난 그 순간 인형 바꿔치기 스킬을 사용해 미리 준비해 둔 토우인형과 자리를 바꿨다.

기이잉! 쾅! 쾅!

콰직! 쿠웅!

건물과 건물 사이의 골목에서 방금 내가 있던 건물을 쳐다보았다.

여섯 기의 마장기가 달려들어 거대한 검과 창으로 건물을 마구 찔렀고, 나무로 된 건물은 순식간에 무너져 내렸다.

"쉬지 말고 계속 공격해!"

확인사살이라도 하려는 듯 무너진 건물을 향해 검과 창을 찔렀고, 다른 기간트가 다가와 도끼를 휘두르고, 육중한 몸으로 건물을 밟았다.

아예 건물과 나를 형체도 알아보지 못하게 으스러트리는 것이다.

주변에 있던 수인들은 놀란 표정으로 나처럼 그 광경을 쳐다보고 있었다.

'씁쓸하군.'

그동안 쌓아왔던 인간에 대한 신뢰감이 저 건물처럼 한순간에 무너졌다.

나와 그렇게 적이 되고 싶은 건가??

아베르크가 사실 망해도 난 상관없었다.

내 영지만 무사하면 되니까.

하지만 내 영지는 아베르크 제국 안에 있었다.

그러니 필연적으로 전쟁의 소용돌이에 휩싸일 것이다.

저들이 날 가만 놔둘 리도 없고.

'뭔가 터질 것 같더니, 그게 이거였나?'

이런 사실을 모르고 서로 싸우는 황실과 아베르크 제국도 하나같이 멍청한 것들만 모였다.

그런 것들을 위해 싸우고 싶진 않았다.

아무래도 마르틴 국왕처럼 나도 독립을 해야 할 것 같았다.

아베르크 제국은 이미 틀렸다.

헤어질 결심이 들자, 오히려 눈앞에 환해지는 느낌이다.

그리고 앞으로 할 일들이 계속 머릿속에 떠올랐다.

'시안 황자와 윌리엄 원수와 결판을 내야겠군.'

일단 이곳부터 마무리하고.

놈들은 건물 잔해에 기름을 뿌리고 불까지 붙였다.

순식간에 건물이 불타올랐고, 시뻘건 불꽃과 시커먼 연기가 뿜어졌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