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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

* * *

그 뒤부터는 평온한 나날이 이어졌다.

이 근방을 지배하고 있던 사막 리자드맨들은 죄다 죽었고, 모래 괴물도 처치했다.

평온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원래는 여기저기 옮겨 다닐 생각이었는데.'

같은 위치에만 계속 있으면 어떤 몬스터들이 공격해 올 가능성이 높다.

그래서 원래는 호수가 있는 동굴을 거점으로 삼고 터전을 옮길 생각이었다.

근데 그럴 필요가 없어졌다.

- 쿠아아아아아!

"인간, 저놈 너무 시끄럽느니라!"

"놔둬. 기분 좋나 봐."

"듣고 있는 내 기분이 안 좋구나!"

모래 괴물의 존재 덕분이었다.

영혼 동물의 효과로 놈을 부릴 수 있게 됐다. 굳이 소환하지 않을 이유가 없었다.

진현우는 놈을 소환해서 주변을 지키게끔 했고, 그동안 텐트 안에서 편히 쉬기로 했다.

"마력을 더럽게 많이 처먹기는 하는데, 그래도 괜찮네. 저놈이 다 처리해 주잖아."

"끄으으응...."

모래 괴물의 가성비는 최악이었다.

소환하는 순간 마력이 바닥나는 걸 느낄 정도였다. 진현우가 가진 마력량을 생각하면 흔치 않은 일이었다. 모래 괴물이 그만큼 마력을 많이 잡아먹는 놈이라는 증거였다.

'그래도 그럴 가치는 있었지.'

여기 머문 지 9일 정도 됐나.

진현우가 한자리에 오랫동안 머무르자 온갖 종류의 몬스터가 공격하러 왔다.

하지만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 쿠아아아아!

- 우아아악?!

모래 괴물이 놈들을 충실하게 막아 줬다.

근방의 모래에 파묻힌 채 지내던 모래 괴물은 다가오는 몬스터들을 남김없이 삼켰다.

놈은 가만히 앉아서 먹이를 먹을 수 있고, 진현우는 공격해 오는 놈들을 처리할 수 있다.

'일석이조군.'

서로에게 이득인 상황이었다.

진현우는 텐트와 동굴을 오가면서 여태껏 누리지 못했던 휴식을 즐겼다.

그렇게 얼마나 시간을 보냈을까.

"인간, 저기서 인간들이 오는구나."

"플레이어나 카오틱들이겠지."

인간들이 다가오기 시작했다.

13층과는 다르게 14층은 혼자서 공략하는 층이 아니다. 다른 플레이어나 카오틱들도 참가하기에 그들과 마주칠 일이 생긴다.

"저놈들은 겁만 주고 보내. 저기서 오는 놈들은 그냥 잡아먹어도 되니까 마음대로 해."

- 쿠아악!

진현우는 그중에서 플레이어들은 내쫓고, 카오틱들은 모래 괴물이 먹게끔 놔뒀다.

"으아아악?!"

"어, 어디서 이런 괴물이...!"

카오틱들을 굳이 살려 둘 이유는 없었다.

다가오는 몬스터들과 인간을 잡아먹거나 쫓아내는 일이 몇 번이고 반복되었다. 어느 순간부터는 누구도 일대에 다가오지 않았다.

하지만 상황은 점점 안 좋아졌다.

- 계약자, 점점 환경이 거칠어지는구나.

"음...."

사막에서 생존한 지 15일 정도 지났을까. 사막의 환경이 전보다 더욱 거칠어졌다.

해는 더욱 뜨거워졌고, 거센 모래 폭풍이 시도 때도 없이 일어나 사막을 휩쓸었다.

지진이 일어나는 때도 있었다.

"인간, 인간, 저것 봐라. 유령이다."

밤에는 온갖 몬스터들까지 나타났다.

이곳에서 30일까지 생존하지 못하게끔 막겠다는 누군가의 강한 의지가 느껴질 정도였다.

하지만 진현우에게 있어서는 귀찮기만 할 뿐, 그의 생존을 막기에는 부족했다.

"지낼 만하네."

진현우는 점점 거칠어지는 환경에 적응하면서 시간을 보냈고, 그렇게 30일이 지났다.

- 휘이이잉!

정확하게 30일이 된 순간, 종말이라도 온 것처럼 사납던 사막이 조용해졌다.

언제나 거칠던 하늘도 마찬가지였다.

진현우는 동굴을 나와 하늘을 바라봤다.

"맑은 하늘은 오랜만에 보는 것 같은데."

"으음, 정말로 오랜만에 보는구나."

하늘은 눈부시게 맑았다.

미호와 함께 맑은 하늘을 올려다보던 진현우의 눈앞에 메시지가 나타났다.

- 약속된 기간이 지났습니다.

- 30일 동안 생존한 걸 축하드립니다. 당신은 자신의 적응력과 생존 능력을 증명했습니다. 다음 층으로 나아갈 자격이 주어집니다.

- 15층으로 갈 수 있습니다.

14층을 공략했다는 메시지였다.

진현우는 상태창을 개방했다.

[진현우]

· 레벨: 200

· 클래스: 웨펀 마스터

· 칭호: 차원의 수호자

· 근력: 527 (+40) · 민첩: 445 (+40)

· 체력: 447 (+45) · 마력: 339 (+32)

· 마기: 300

레벨이 200에 도달한 게 보였다. 그리고 스킬 두 개의 숙련도가 5레벨에 달했다.

· 제1식: 유수 (A, Lv.5): 그 태세는 흐르는 강물과도 같이. 적의 공격을 부드럽게 흘려 내거나, 그대로 상대에게 되돌려 준다.

* Lv.5: 유수의 범위가 한층 더 넓어지며, 공격을 되돌릴 때 위력이 강화된다.

· 제2식: 해일 (S, Lv.5): 그 위력은 거센 해일과도 같이. 한계치까지 검기를 응축한 후, 검을 휘둘러 수많은 검기를 쏘아 낸다.

* Lv.5: 검기의 숫자와 위력이 증가한다. 제3식 침잠을 해일의 형태로 쓸 수 있다.

웨펀 마스터의 스킬들이었다.

그중에 하나, 인상적인 것이 있었다.

'침잠을 해일의 형태로 쓸 수 있다고?'

진현우는 곧바로 해일을 사용했다.

전방을 향해서 쏘아지는 수많은 검기. 그것들이 도중에 모습을 감추더니, 진현우가 노렸던 바위의 사각지대에서 다시금 쏘아졌다.

"이거였군."

간단한 얘기였다.

하나의 검기만 쏘아 낼 수 있었던 침잠이 해일처럼 수많은 검기를 쏘아 낼 수 있게 된 것.

스킬이 강해진 것이었으니 나쁘지 않다.

진현우는 검을 거두었다.

"인간, 인간, 이제 밖으로 나가는 거냐?"

"더 올라갈 수 있기는 한데...."

진현우의 레벨은 200.

15층에 충분히 갈 수 있는 레벨이었다.

"일단은 나가서 좀 쉬자. 할 것도 있으니."

"듣던 중 반가운 소식이로구나! 난 사막 생활에 질렸느니라. 집에서 푹 쉬어야겠구나."

미호가 반색했다.

진현우는 탑을 나가기로 했다.

* * *

탑을 나선 진현우는 네메시스 빌딩으로 향했다. 거기에 있는 노인을 만나기 위함이었다.

뚱한 표정의 노인이 진현우를 바라봤다.

"날 왜 찾아온 거냐?"

"명장을 뭐 하러 찾아왔겠습니까?"

"이 시건방진 놈...."

명장 강대훈이었다.

별다른 친분도 없는 강대훈을 찾아올 이유는 하나밖에 없다. 아이템 제작 의뢰.

그는 혀를 차며 진현우를 안으로 들였다.

"요즘 들어서 얻은 게 많아서요. 이번 기회에 장비를 좀 바꿔야겠다 싶더군요."

"그래서 날 찾아온 거냐? 바깥에 넘치는 게 대장장이거늘, 아무나 찾아갈 것이지."

"실력이 확실한 분이 좋잖습니까."

강대훈은 코웃음을 쳤다.

그는 재료를 내놓으라는 듯이 고개를 까닥거렸고, 진현우는 얻은 것들을 내놓았다.

수많은 아이템이 탁자 위에 놓였다.

"더럽게 많군. 얼마나 모은 거냐?"

"좀 됐습니다. 장비를 교체할 필요성을 못 느끼다 보니까 계속 모이기만 하더라고요."

"그러면 팔기라도 할 것이지. 아니, 너라면 어차피 돈은 썩어 날 테니 필요도 없겠군."

진현우는 탑의 최전선을 공략하는 데다가 차고 넘칠 만큼의 유명세도 가지고 있다.

돈은 필요하면 구할 수 있는 상황이었다.

"그래서, 뭘 만들어 줬으면 하지?"

"투구를 만들어 주셨으면 합니다. 재료가 여유가 있다면 장갑도 있었으면 좋겠고요."

"투구 그리고 장갑이라."

진현우에게는 건틀릿이 있다.

분쇄자. 유용하게 썼던 아이템이지만, 요즘 들어서는 잘 안 쓰고 있는 게 사실이었다.

조금 더 가벼운 장갑이 필요하다.

"한번 만들어 보지. 1주일 정도 걸리겠군."

"그때 다시 오겠습니다."

"그래. 돈은 많이 들고 와야 할 거다."

"카드 할부는 됩니까?"

돌아오는 대답은 없었다.

진현우는 네메시스 빌딩을 떠났다.

'윤서희는... 탑 공략 중이라고 했던가.'

샬럿이나 화련, 다른 이들도 마찬가지다.

각자 실력은 확실한 이들이니 별일은 없을 것이다. 다소 고생은 할 수도 있겠지만.

'플레이어 협회에서 불렀었지.'

집에 들렀을 때 우편이 도착했었다.

시간이 될 때 플레이어 협회를 들러 달라는 편지였다. 진현우는 바로 협회로 향했다.

그가 협회에 오자 데스크의 직원들이 분주해지더니 위층에 있던 누군가를 불렀다.

"왔군. 기다리고 있었네."

"부르셨다고 들었습니다."

"음, 일단 올라가지."

진현우를 찾은 건 플레이어 협회장이었다.

2대 협회장, 박종호. 그는 1층에서 직접 진현우를 반기더니 자신의 사무실로 이끌었다.

"바쁜 몸일 테니 바로 본론에 들어가지. 자네의 등급을 S등급으로 승급시키려고 하네."

"플레이어 등급 말입니까?"

"그렇네."

협회장이 진현우를 부른 건 플레이어 자격증의 등급을 승급시키기 위함이었다.

진현우의 표정은 무덤덤했다.

"무덤덤하군."

"기뻐하는 사람이 있었습니까?"

"음... 생각해 보니 거의 없었던 것 같군."

"그렇겠죠."

진현우 말고도 S등급이 된 사람은 여럿 있다. 하지만 기뻐하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이유는 지극히 간단했다.

'될 게 뻔한데, 뭐.'

S등급으로 올라갈 거라는 걸 이미 짐작하고 있으니 기뻐하고 뭐고 할 것도 없었다.

그리고 또 하나.

'S등급이 된다고 한들 혜택도....'

플레이어 등급이 올라가면 협회에서 여러 혜택을 제공한다. 하지만 그 어떤 혜택도 지금의 진현우에게는 큰 필요가 없었다.

다른 이들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그래도 거절할 이유는 없긴 하지.'

S등급은 사실상 최고 등급.

이 시대에는 EX등급도 없으니 S등급보다 높은 등급의 플레이어는 없는 셈이다.

이건 진현우의 말에 권위를 실어 줄 것이다.

"감사히 받겠습니다."

진현우는 승급 제안을 받아들였다.

214화

검은 열쇠

S등급의 플레이어가 됐다.

그렇다고 해서 크게 바뀌는 것은 없었다.

오랜만에 S등급의 플레이어가 나타난 것을 두고 여론이 이래저래 시끄럽기는 했지만.

"인터뷰 안 합니다."

진현우와는 무관한 일이었다.

집에 많은 이가 인터뷰를 요청하러 찾아왔지만, 진현우는 모든 인터뷰를 거절했다.

굳이 할 이유가 없었다.

'슬슬 장비나 찾으러 가 볼까.'

일주일 동안 충분한 휴식을 취했다.

강대훈에게 의뢰했던 아이템이 완성됐을 것이다. 진현우는 네메시스 빌딩으로 향했다.

"투구는 만들었다. 확인해라."

"예."

네메시스 빌딩의 지하.

강대훈은 무심한 표정으로 투구를 하나 건넸다. 진현우는 투구의 성능을 확인했다.

[모래 폭풍의 헬름 (전설)]

· 설명: 사막을 지배했던 모래 괴물의 부산물을 이용해서 만든 헬름이다. 강대한 사막의 힘이 그대로 깃들어 있다.

- 착용 제한: 근력 350, 체력 400.

- 효과: 모래 갑옷, 사막화, 강화.

- 스킬: 모래 폭풍.

* 모래 갑옷: 모래의 힘으로 장비한 모든 갑옷의 방어력과 내구도가 크게 상승한다.

* 사막화: 모든 방어 스킬의 강도가 크게 강화되며, 유지 시간이 한층 증가한다.

* 강화: 모든 능력치가 +25 상승한다.

* 모래 폭풍: 거센 모래 폭풍과 함께 주변 일대를 사막으로 바꾼다. 사막은 일정 시간 유지된 후 신기루처럼 흔적도 없이 사라진다.

말할 것도 없이 좋은 아이템이었다.

'방어 위주의 아이템이군.'

모래 갑옷, 사막화의 옵션이 그러했다.

아이템에 담긴 스킬은 모래 폭풍을 일으키는 것이었는데, 진현우가 최근에 얻은 칭호를 생각하면 굉장히 괜찮은 옵션이었다.

'내가 원할 때 신체를 강화할 수 있다.'

사막의 폭군 칭호의 효과였다.

진현우는 만족스레 헬름을 챙겼다.

하나 진현우가 의뢰한 건 이게 다가 아니었다. 같이 의뢰했던 장갑의 모습이 안 보였다.

"왜, 장갑을 찾고 있나?"

강대훈이 그리 말하더니 장갑을 꺼냈다.

근데 그게 다가 아니었다. 얇은 장갑과 함께 구슬 정도 되는 크기의 구체를 내보였다.

"그 장갑을 그냥 버리기에는 아깝지 않더냐? 그래서 활용할 방법을 나름 생각했지."

"그건 뭡니까?"

"장갑에 써 보면 알게 될 거다."

진현우는 먼저 장갑의 설명을 확인했다.

[변환의 장갑 (전설)]

- 설명: 진귀한 소재를 이용하여 만든 장갑이다. 놀라울 정도로 가볍다.

- 착용 제한: 레벨 190.

- 효과: 최적화, 귀환, 형태 변환, 가속.

* 최적화: 스킬의 대미지가 30% 증가하며 스킬의 자원 소모량이 40% 감소한다.

* 귀환: 한번 쥐었던 무기가 손에서 벗어났을 때 손아귀로 되돌아오게 할 수 있다.

* 형태 변환: 다른 장갑과 합칠 수 있으며, 해당 장갑으로 형태를 바꿀 수 있다.

* 가속: 공격 속도가 빨라진다.

옵션을 확인한 진현우의 눈동자가 커졌다.

재밌는 옵션이 있었다.

"옵션은 봤나? 바로 사용해 봐라."

강대훈이 독촉했다. 망설일 이유도 없었기에 진현우는 아이템 옵션을 사용했다.

바로 형태 변환을.

- 변환의 장갑 (전설)이 분쇄자 (영웅)에 반응합니다. 형태 변환 옵션이 발동합니다.

- 두 아이템이 하나로 합쳐졌습니다.

변환의 장갑과 분쇄자가 동시에 붕 뜨더니 맞부딪쳤다. 이내 강렬한 빛이 일어났다.

그 빛이 사그라들었을 때, 분쇄자는 사라지고 없었다. 남은 건 변환의 장갑뿐.

"...."

진현우는 변환의 장갑을 착용했다.

그리고 손바닥을 폈다가 주먹을 꽉 쥐자.

- 철컥!

변환의 장갑이 전개되더니 건틀릿, 분쇄자의 형태로 모습을 바꾸었다.

형태 변환 옵션의 효과였다.

"이런 건 어떻게 만드신 겁니까?"

"옛날부터 발상은 갖고 있었다. 네 건틀릿을 보고 있으니 어떻게 할지 떠오르더군."

만족스러운 아이템이었다.

그런데 한 가지 의아한 것이 있었다.

"이거, 제가 드린 재료들로는 못 만들 것 같은데요. 다른 재료를 더 쓰신 겁니까?"

"남는 재료가 있어서 좀 썼다."

강대훈은 대수롭지 않다는 듯이 말했지만, 귀중한 재료가 들어간 건 확실했다.

"제값은 다 받을 거다. 무료로 해 준다거나, 할인해 줄 거라는 생각은 하지도 마라."

"그럴 리가요."

진현우는 다가오는 강대훈의 제자를 통해 대금을 결제했다. 강대훈은 자신이 한 말대로 재료에 제작 비용까지 착실하게 받았다.

억으로만 두 자릿수. 거기에 골드까지.

'아이템들을 좀 처분해야겠군.'

아공간에서 썩어 가는 아이템들을 처분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진현우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어째, 탑 공략은 하고 계십니까?"

"이 늙은 몸으로 탑 공략을 어떻게 하겠나? 뒤처지지 않을 정도로만 하고 있다."

"산책한다 생각하고 하시면 되겠네요."

"산책은 무슨."

강대훈은 코웃음을 쳤다.

그리고 손을 내저으면서 나가라고 축객령을 내리려다가 불쑥 말을 꺼냈다.

"그러고 보니 그 소식 들었나? 제우스 길드가 15층 공략에 실패했다더군."

"유신이 말입니까? 흠...."

진현우는 15층의 기믹을 떠올렸다.

실패할 만도 하다. 그 층은 처음 공략하는 사람이면 빠질 수밖에 없는 함정이 있다.

"그래. 주변이 시끄럽더군. 네놈도 15층에 갈 거면 조심하거라. 내가 만들어 준 아이템을 가지고 가 놓고 죽으면 운수가 사나우니까."

- 특이한 늙은이로구나.

미호가 별난 생물을 보듯 강대훈을 봤다.

"알겠습니다."

진현우는 네메시스 빌딩을 떠났다.

조금 전 강대훈에게 들은 말이 떠올랐다.

'유신이 15층 공략에 실패했다.'

만약 제우스 길드와 유신이 타락한 자들의 도시에서 움직임을 보이면 처리하려 했다.

하지만 놈들은 움직이지 않았다.

오히려 탑을 공략하는 움직임을 보였지.

'처리하려면 처리할 수는 있다.'

유신이든, 제우스 길드든.

제대로 된 장소만 만들 수 있다면 놈들을 처리하는 건 어려운 일이 아니다.

하지만 생각이 조금 바뀌었다.

'유신은 멸망의 목도자와 내통하고 있다. 대적자는 가진 전력의 상당수를 잃은 상황.'

좋든 싫든 유신과 접촉할 터.

진현우가 대적자의 층으로 가려고 하면 유신이 어떤 식으로든 행동을 보일 것이다.

'그때 처리해야겠군.'

진현우는 걸음을 옮겼다.

이제 탑으로 갈 때가 됐다.

* * *

제우스 길드가 15층 공략에 실패했다.

사실 15층 공략에 실패한 건 제우스 길드만이 아니었다. 해외의 길드들도 15층 공략에 실패했고, 다시 공략법을 생각하는 중이었다.

유신 역시 마찬가지였다.

"...."

서울에 있는 펜트하우스.

유신은 찬란한 서울의 야경을 바라봤다. 그 눈빛은 무심했으나 짜증이 어려 있었다.

"하찮은 벌레 따위가...."

유신은 탑 공략을 포기하고 탑을 떠났다.

상당한 전력을 잃은 상황. 무리하게 공략한다고 한들 손해만 더 누적될 뿐이다.

지극히 합리적인 판단이었지만, 대중들은 그 판단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이지 않았다.

- 15층 공략에 실패했다고? 유신이?

- 길드원들 몇 명 제물로 바치고 도망쳤다던데, 그 잘난 제우스 길드가 참....

- 걔들은 진현우와 다른 랭커들이 카오틱들 본거지 공략하는 거 돕지도 않았잖아.

최근 제우스 길드에 대한 여론은 안 좋았다.

특히 유신이 그러했다. 카오틱과 마인과의 전투에서 그가 보여 준 게 없었기 때문이었다.

- 유신도 이제 저물어 가는 해 아닌가?

- 요즘에는 뭐, 진현우가....

대중의 여론이 기울고 있었다.

하지만 유신에게 그런 건 크게 중요하지 않았다. 애초에 여론은 신경도 쓰지 않았다.

기분이 불쾌한 건 그런 이유가 아니다.

"그놈이 S등급이 됐다고?"

이 소식 때문이었다.

지구로 돌아온 유신을 반긴 소식이었다.

진현우가 만장일치로 S급으로 승급했다고. 그 소식을 들은 유신의 표정이 차가워졌다.

'그래, 이상할 건 없지.'

하지만 어느 정도는 짐작하고 있었던 일.

최근에 진현우가 이루어 낸 것들을 생각한다면 S급으로 오르는 건 당연한 결과물이었다.

언제 오르느냐가 문제였지.

'그놈이 유명세를 얻는 건 상관없다. 문제는 그놈이 내 자리를 위협할 수 있다는 것....'

어떻게든 진현우를 처리해야 한다.

유신이 도시의 야경을 보면서 생각에 잠겼다. 그때, 갑자기 주변의 풍경이 어두워졌다.

짙은 어둠이 유신을 감쌌다.

"날 찾아왔나?"

갑작스러운 상황이었지만 유신은 당황하지 않았다. 익숙한 상황이었기 때문이었다.

어둠 속에서 목소리가 들렸다.

- 오랜만에 만나는 것 같군, 유신.

"...."

깊은 지하에서 울리는 듯한 목소리. 어둠 속에서 흐릿한 형상이 보였다.

대적자, 멸망의 목도자의 형상이었다.

"오랜만이겠지. 그쪽이 오랫동안 활동을 안 했으니. 저놈들에게 타락한 자들의 도시를 뺏길 때가지 뭘 했나? 구경만 한 건가?"

- 언행을 조심하는 게 좋을 것이다.

"큭!"

강력한 압박이 유신을 짓눌렀다.

유신의 무릎이 저절로 땅에 닿았다. 어둠 속에서 그를 지켜보던 대적자가 비웃었다.

- 너무 많은 인과를 거슬렀다. 네놈 따위가 알 수 없는 체계가 있음을 이해하라.

"알 수 없는 체계라...."

압박감이 사라졌다.

유신은 옷을 털면서 코웃음을 쳤다.

"그래서, 그 미천한 인간에게는 왜 찾아왔지? 바라는 게 있으니 찾아왔을 텐데."

- 경고하기 위함이다. 유신, 네가 그리 원하는 자리가 위험해지고 있다는 것을....

그 말에 유신의 얼굴이 차갑게 굳었다.

그가 원하는 자리. 그건 간단했다.

- 탑이 진현우를 주시하고 있다. 여기서 더 업적을 이룬다면, 그에게 접촉하겠지. '대적자'의 자리를 제안하기 위해서 말이다....

"나에게 주기로 한 게 아니었나?"

- 상황은 변하기 마련이지.

까드득, 유신은 이를 악물었다.

대적자. 탑 공략의 최전선에 서면서 수많은 활약을 했을 때, 눈앞의 대적자가 접근했다.

- 멸망할 세계에서 생존하고 싶지 않나?

대적자가 한 제안은 그것이었다.

- 탑이 너에게 제안했다. 제안을 받아들인다면, 세상이 멸망하더라도 너는 살 수 있을 것이다. 나와 같은 형태로 말이다....

멸망의 목도자와 같은 형태.

다시 말해서, 유신을 '대적자'로 삼겠다는 제안. 유신은 그 제안을 거절하지 않았다.

살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진현우, 그놈을 대적자로 삼겠다고?"

- 그놈이 받아들일지 어떨지는 모르겠다만, 널 향한 탑의 관심이 사라져 가는 건 맞다.

"...내게 뭘 바라는 거지?"

단순히 자신을 약 올리기 위해서 접근한 건 아닐 터. 무언가 제안할 것이 있을 것이다.

그 예상대로, 멸망의 목도자가 웃었다.

- 놈이 '통로'에 가까워지고 있다. 네가 그놈을 내가 말하는 곳으로 인도하거라.

"진현우를 인도하라고?"

- 그래, 이것이 있다면....

어둠 속에서 검은 열쇠가 나타났다.

[검은 열쇠 (신화)]

· 설명: 멸망한 세계, 프레웬으로 갈 수 있는 열쇠다. 특정 위치에서 사용할 경우, 프레웬으로 향하는 포탈을 열 수 있다.

* 숨겨진 설명: 하지만 그 포탈이 정말로 프레웬으로 향하는 것인지는 알 수 없다.

두 가지 설명을 가진 아이템이었다. 숨겨진 설명은 오직 유신에게만 보이는 설명이었다.

속이기 위한 아이템인 셈이었다.

- 탑에서 내가 발휘할 수 있는 힘은 한계가 있다. 하지만 그 열쇠로 놈들을 인도한다면, 내가 가진 힘을 온전히 쓸 수 있을 터.

어둠 속의 존재감이 옅어지는 게 느껴졌다.

멸망의 목도자가 물러나고 있는 것이다.

- 네 활약을 기대하겠다, 유신.

주변에 자욱하던 어둠이 완전히 사라졌다.

남은 것은 손아귀의 검은 열쇠뿐.

"...."

유신은 검은 열쇠를 바라봤다.

'돌이키기에는 이미 너무 늦었다.'

인간들이 아무리 발악한들 이 세상은 멸망한다. 대적자에게서 수많은 얘기를 들은 유신이었기에 멸망을 확신할 수 있었다.

그렇기에 제안을 받아들였다.

"대적자가 되려면, 반드시...."

유신은 열쇠를 꽉 움켜쥐었다.

215화

디펜스 게임 (1)

- 세계의 탑에 방문한 것을 환영합니다.

- 15층: 고대의 지하 왕국으로 향합니다.

- 입장 가능 레벨: Lv.190.

- '거대한 굴'로 향합니다.

진현우는 15층으로 향했다.

그 전에 먼저 같이 갈 이들을 구했다. 샬럿과 화련 그리고 아그니스 길드원들이었다.

일부 네메시스 길드원들도 있었다.

- 15층 공략법을 배우고 싶은데 가능할까요? 합당한 대가는 치르겠습니다.

윤서희의 부탁이 있어서였다.

진현우는 흔쾌히 허락했다. 대가로 강대훈에게 지급했던 대금을 대신 내 달라고 했다.

'딱히 거절할 이유가 없지.'

15층까지 올라올 정도로 성장한 플레이어들이 허망하게 죽는 건 진현우도 원치 않았다.

겸사겸사 많이 썼던 돈도 다시 채우고.

"어이, 설치지 말고 뒤에 쳐박혀 있어라."

"...."

물론 단점은 있었다.

네메시스와 아그니스는 사이가 좋지 않다. 두 길드가 서로 으르렁거리는 게 보였다.

'어차피 저것도 잠깐이지.'

15층 공략이 시작되면 저렇게 싸울 틈도 없을 것이다. 진현우는 고개를 돌렸다.

피로에 찌든 샬럿의 얼굴이 보였다.

"휴식, 나한테는 휴식이 필요해...."

"다음 생에 쉬어라."

"나더러 죽으라는 거니?"

샬럿은 진현우가 강대훈의 장비를 기다리는 동안 탑의 15층까지 등반했다.

당연하지만 쉬운 일은 아니었다.

"사막, 으으, 추워... 배고파...."

- 인간, 이 계집 맛이 갔느니라.

사막을 무난하게 극복하고 휴가를 즐겼던 진현우와는 달리 샬럿은 꽤 고생했다.

그녀가 사제였기에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총 30명이야. 이거면 되겠지?"

"어. 어차피 더 많이는 못 들어가잖아."

"네메시스 놈들이 있어서 좀 거슬리긴 하네? 우리 쪽 애들한테 자중하라고는 해 둘게."

딱히 말릴 의지는 없어 보였다.

진현우는 한숨을 내쉬며 주변을 돌아봤다.

- 더럽게 넓구나.

지금 그들이 있는 곳은 넓은 공동이었다. 수많은 사람이 지내도 될 정도의 크기였다.

특이한 점이 있다면 동서남북, 정확히 네 방향에 넓은 통로가 뚫려 있다는 점이었다.

그런데 특이한 점이 있었다.

"공동 구조가 좀 특이한데?"

"계단식… 인가?"

베트남 같은 곳에서 볼 수 있는 계단식 논밭처럼 공동은 계단식으로 되어 있었다.

그리고 층마다 뭔가를 설치할 수 있을 것처럼 인위적인 공간이 나 있는 게 보였다.

마지막으로 하나.

"저건 뭐야?"

"스크린... 같은 건가?"

공동의 한가운데에 거대한 화면이 있었다.

화면에는 어딘지 모를 통로 네 곳의 모습을 비추고 있었다. 다른 이는 모르는 눈치였지만, 진현우는 저 통로들이 어디인지 알았다.

'이 공동과 이어진 통로들.'

공동의 동서남북에 뚫린 통로들의 모습을 비추고 있는 화면이었다.

통로는 길면서도 넓었고, 곳곳에 일부러 비워 둔 듯한 인위적인 공간이 보였다.

화면을 보던 플레이어가 물었다.

"이 동굴을 탐사해야 하는 겁니까?"

"아니, 이 층의 기믹은 그게 아니야."

화련의 말에 화답하듯 메시지가 나타났다.

15층을 설명하는 메시지였다.

- 거대한 굴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 해당 층은 엄청난 크기의 지하 동굴입니다. 개미집처럼 사방에 크고 작은 동굴이 수없이 있으며, 수많은 몬스터가 서식 중입니다.

- 놈들이 공격해 올 것입니다. 생존하십시오.

15층의 기믹은 디펜스.

사방에서 밀려드는 몬스터들을 상대로 버티면서 끝까지 생존해야 하는 층이었다.

하지만 한 가지 특이한 점이 있다.

- 해당 층에는 '포인트'라는 재화가 제공됩니다. 해당 층에서 번 포인트를 이용해 장벽이나 방어 타워를 건설할 수 있습니다.

- 그것들을 최대한 이용하십시오.

디펜스를 도와주는 '타워'가 있다는 것.

지금은 설치할 수 없다. 몬스터들의 첫 공격을 막고 나면 설치할 수 있게 될 것이다.

그리고 또 하나.

- 포인트는 모두가 공유하는 재산입니다. 포인트를 관리하고, 방어 타워를 건설할 권한을 부여받을 대표자를 선출하십시오.

포인트를 관리하고, 장벽이나 방어 타워를 건설할 대표자를 선출하라.

공동에 잠깐 침묵이 흘렀다.

그리고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네가 하면 되겠네."

"너 말고 할 사람은 없지 않아?"

모두의 시선이 진현우에게로 쏠렸다.

화련과 샬럿의 말에 부정하는 이는 없었다.

"그럼 제가 하겠습니다."

진현우도 딱히 거절하지 않았다.

애초에 바라는 것이기도 했다. 경험이 있는 자신이 직접 설치하는 게 나을 테니까.

- '진현우'를 대표자로 선출합니다.

허공에 새하얀 빛이 나타나더니 진현우의 몸에 깃들었다. 그리고 메시지가 나타났다.

- 현재 보유 포인트: 0.

- 지금은 타워 건설이 불가능합니다.

예상하고 있었기에 당황하지는 않았다.

진현우는 고개를 들었다.

"그럼 이제 뭘 하면 됩니까?"

"이 공동을 몬스터들한테서 지키면 되나?"

"예. 그 전에...."

진현우의 감각이 날카로워졌다.

먼 곳에서 무언가가 다가오는 것이 느껴졌다. 그리고 잠시 후, 소리가 들렸다.

- 쿠르르르!

- 콰득, 콰지직!

"이 소리는...."

수많은 생물이 땅을 기는 소리. 그리고 무언가가 땅을 헤집으면서 다가오는 소리.

진현우는 검을 빼 들었다.

"뒤로 물러나!"

- 치이이익!

진현우가 외침과 동시에 플레이어들의 발밑에서 수많은 개미가 튀어나왔다.

온몸에 갑옷처럼 단단한 갑피가 붙었으며, 낫처럼 생긴 앞발을 가진 개미들이었다.

놀라운 것은 그 덩치였다.

"허, 무슨 덩치가...!"

"마법사, 궁수들은 뒤로! 빨리 움직여!"

- 치아아아악!

인간보다 더 큰 덩치를 가진 개미들.

놈들이 동시에 플레이어들을 덮쳤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누군가 통로를 가리켰다.

"저쪽! 저쪽에서도 뭐가 오고 있습니다!"

"저건 또 뭐야!"

넓은 공동에는 네 개의 통로가 있었다.

동서남북, 정확히 네 방향. 그 모든 방향에서 수많은 개미가 몰려들고 있었다.

"통로 막아!"

"진정 좀 해, 멍청이들아."

아그니스 길드원들이 다급히 외쳤다.

그 광경을 지켜보던 화련이 차갑게 쏘아붙이면서 타오르는 마력을 일으켰다.

거센 불길이 사방의 통로를 막았다.

- 키이이이....

- 치아아아아!

미친 듯이 달려들던 개미들이 주춤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입에서 체액 같은 걸 내뱉더니 타오르는 불길을 끄기 시작했다.

화련은 코웃음을 치며 손가락을 튕겼다.

- 화르르르륵!

불길에서부터 정령들이 나타나 불길을 꺼트리려고 하던 개미들을 공격했다.

사방의 통로는 화련이 잠깐이지만 막았다.

남은 건 내부로 침투한 놈들을 죽이는 것.

- 캬히... 쿠와악?!

거대한 개미가 낫을 휘두르며 포효했다.

그 순간 기척을 느낄 수도, 소리도 들을 수도 없는 공격이 놈의 머리를 꿰뚫었다.

개미의 머리를 꿰뚫고 나온 무형창이 분열하더니 사방에 있던 개미들을 일거에 덮쳤다.

"다 죽여!"

수많은 검기가 그 뒤를 이었다.

진현우가 뛰쳐나가 개미들의 이목을 끌었고, 샬럿이 그사이에 버프를 사용했다.

플레이어들에게 강한 버프가 부여됐다.

"안에 있는 새끼들부터 죽여!"

"화염 벽이 사라지기 전에 죽여야 한다!"

- 치아아악!

정령들이 화염 벽을 이용해 통로를 막는 사이, 플레이어들이 주변의 개미들을 죽였다.

개미들의 체액이 사방으로 튀었다.

- 시이이익!

"저 새끼들 체액이 산성이야!"

"체액을 뱉을 조짐이 보이면 바로 피해라!"

거대 개미들의 특징은 크게 두 가지였다.

하나, 놀라울 정도로 단단한 갑피. 게다가 낫처럼 생긴 앞발은 칼날보다도 더욱 날카로웠다.

또 하나는 산성이었다. 산성으로 된 놈들의 체액은 닿는 것들을 모조리 녹여 버렸다.

- 콰드득!

하지만 플레이어들도 능숙하게 대처했다.

15층까지 올라올 정도면 이미 충분히 많은 경험을 겪은 이들이다. 갑작스러운 기습에도 능히 대처할 수 있는 역량을 가졌다.

- 키아아악!

"좋아, 이게 마지막인가?"

"7명씩 나뉘어서 각 통로를 막는다. 가!"

플레이어들은 땅을 뚫고 나온 거대 개미들을 처리하고, 곧바로 통로를 막았다.

많은 숫자의 거대 개미가 통로를 밀고 들어왔으나 막는 데 큰 어려움은 없었다.

- 치이이이....

그렇게 마지막 거대 개미가 죽었다.

사방에서 지독한 탄내가 진동했다. 화련은 손 부채질을 하면서 진현우를 찾았다.

그는 눈앞에 나타난 메시지를 보고 있었다.

- 첫 번째 웨이브: 개미 군단의 습격을 극복했습니다. 보상으로 1,000P가 주어집니다.

- 방어 타워를 건설할 수 있습니다.

- 현재 건설 가능한 방어 타워 목록: 나무 장벽, 화살 타워, 대포 타워, 빙결 타워.

포인트를 얻었고, 타워를 건설할 수 있는 권한을 얻었음을 알리는 메시지였다.

지금 지을 수 있는 타워는 셋이었다.

화살 타워, 대포 타워, 빙결 타워.

'화살은 단일 타깃에게 큰 대미지를 입히는 타워고, 대포는 다수에게 대미지를. 빙결은... 적들에게 슬로우를 먹이는 타워인가.'

각자 확실한 특징이 있었다.

이게 다가 아니다. 타워는 웨이브가 지날수록 더 늘어나고, 더 강화하는 게 가능하다.

진현우는 메시지를 껐다.

'이 층의 구조는 간단하다.'

사방에서 거대한 곤충들이 계속해서 공격해 온다. 이 층에서는 그걸 웨이브라고 부른다.

쳐들어오는 몬스터들을 처리하면서 웨이브를 막으면 15층의 재화인 포인트를 준다.

그 포인트로 방어 타워를 지을 수 있다.

'디펜스 게임 같은 느낌이었던가.'

그런 게임이 있었을 것이다.

포인트를 써서 방어 타워를 지으면 그것들이 공격해 오는 몬스터들을 처리해 준다.

이 구조가 15층의 핵심이다.

'우리가 아무리 강하더라도 방어 타워 없이 혼자서는 몬스터들을 막을 수 없다.'

이유는 지극히 간단했다.

웨이브를 막을 때마다 공격해 오는 몬스터들의 숫자가 증가하기 때문이다.

첫 웨이브를 막으면 그다음 웨이브에서는 그 1.5배가, 그다음에는 2배가....

그런 식으로 계속해서 증가한다.

'거기에 공격해 오는 몬스터들도 강해진다.'

그에 맞춰서 방어 타워를 강화해야 한다.

그게 15층을 공략하는 구조였다. 제우스를 비롯한 여러 유명 길드가 공략에 실패한 게 이해가 가지 않을 정도로 간단한 구조였다.

하지만 여기에 하나, 함정이 있다.

'웨이브를 막는 걸로는 포인트가 부족해.'

단순히 웨이브를 막아서 버는 포인트로는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몬스터가 많다는 것.

다른 방식으로 포인트를 더 벌어야만 한다.

'휴식 시간을 이용해야겠지.'

웨이브와 웨이브 사이에는 간격, 다르게 말하자면 휴식 시간 같은 것이 있다.

그 시간 동안 거점 주변을 탐사해서 포인트가 될 만한 것들을 찾아내야만 한다.

그렇게 얻은 포인트로 방어 타워를 만들고, 더욱 강화해야지만 여기서 버틸 수 있다.

그리고 또 하나.

'탐색을 통해서 설계도를 얻을 수 있다.'

희귀한 타워의 설계도다.

그런 게 있어야 15층의 웨이브가 끝날 때 찾아오는 보스를 막을 수가 있다.

앞서 실패했던 길드들은 단순히 막기만 하면 되는 거라고 생각했기에 실패한 것이다.

"할 거면 한 번에 끝내야지."

진현우는 그렇게 실패할 생각이 없었다.

216화

디펜스 게임 (2)

플레이어들은 거대 개미들이 드롭한 아이템을 챙긴 후, 공동의 중앙에 모였다.

거대한 스크린이 있는 곳.

진현우는 모두에게 한 가지 제안을 했다.

"공동 주변을 탐색합시다."

"예? 이 주변을 탐색하자고요?"

"저번에 실패했던 사람 말로는 여기가 미궁이랍니다. 미궁을 탐사하는 건...."

주변을 탐색하자는 제안이었다.

당연하지만 반응은 썩 좋지 않았다. 어차피 15층의 기믹은 디펜스. 사방에서 밀려드는 몬스터들을 상대로 버티는 것이 주 임무다.

'굳이 탐사하러 나가야 하나?'

'그럴 시간에 여기 방비를 굳히는 게....'

'다음 웨이브가 언제 올지도 모르잖아.'

모두의 생각은 그러했다.

진현우 이전에 실패했던 길드 중에서도 주변을 탐사하려고 했던 이들이 있었다.

하지만 대부분 포기했다.

그 이유는 지극히 간단했다.

"정보 공유가 안 돼서 확실하지는 않은데, 전에 온 플레이어들 말로는 길이 복잡하답니다. 바깥으로 나가도 괜찮겠습니까?"

"나갔다가 괜히 길을 잃으면...."

"여기서 수비를 준비하는 게 나을 텐데요."

통로 바깥이 미로였기 때문이었다.

가뜩이나 인원수도 적은데 몬스터 웨이브까지 계속 공격해 오는 상황. 거기서 미로까지 탐사하는 건 리스크가 커도 너무 컸다.

다른 길드가 그러지 않은 이유가 있었다.

"왜 이렇게 말이 많니? S등급이 탐사하자고 하면 탐사하자는 이유가 있겠지. 안 그래?"

"길드장님, 그건...."

꺼리는 것은 아그니스의 길드원들이었다.

화련이 그들을 굉장히 아니꼽다는 눈빛으로 흘기더니 진현우의 제안을 거들었다.

길드원들이 침음성을 흘렸다.

'아니, 매번 볼 때마다 어색하네.'

'저 누님 왜 저래? 저럴 사람이 아닌데.'

평소였으면 화련 본인이 주도권을 잡고 싶어서 신경전을 벌여도 이상하지 않은데.

저 낯선 모습을 여러 번 보고 들었지만, 다시 봐도 눈을 의심케 하는 광경이었다.

진현우는 손을 내저었다.

"뭐, 다 탐색하러 가자는 건 아니고요. 절반은 여기 남고 나머지 절반은 저하고 같이 움직입시다. 화련, 너도 여기 남아."

"알았어."

진현우는 인원을 골랐다.

샬럿과 네메시스 길드원 그리고 아그니스는 모두 마법사 위주로 선별했다.

그리고 곧바로 북쪽으로 향했다.

"근데 현우야, 뭘 탐색하려는 거야?"

"주변에 뭐가 있는가 살펴봐야지."

"그게 의미가 있습니까?"

"해 보면 알겠죠."

진현우는 통로를 나아갔다.

공동 근처에 있던 통로를 벗어나자 넓지만 어두운 복도가 나타났다. 그는 불을 밝히면서 사냥꾼의 감각으로 바닥의 자국을 살폈다.

"뭐가 보이십니까?"

"특성이 하나 있어서요. 제가 앞장서죠. 샬럿, 헤이스트 같은 버프 있으면 걸어 줘."

"그 정도는 어렵지 않지."

샬럿이 기도를 올렸다.

일행에게 신성한 바람이 깃들었다. 신체를 가속하는 종류의 버프였다.

진현우는 자국을 확인하며 뛰기 시작했다.

플레이어들이 그 뒤를 가까스로 쫓았다.

"저쪽으로 가죠."

"헉, 허억! 예, 예!"

곤충 특유의 자국이 남아 있었다.

자국이 복도를 타고 계속 이어졌다. 진현우는 일행을 이끌고 뛰면서 자국을 쫓았다.

"이건, 완전히 미로군요."

"돌아가다가 길을 잃을 수도 있겠는데."

"일단 따로 표식은 남겨 두지."

모두 경험이 많은 플레이어들이었기에 어떻게 해야 하는지는 잘 알고 있었다.

왼쪽으로 그리고 직진. 다시 오른쪽으로, 일행은 미로를 재빠르게 나아갔다.

그렇게 얼마나 움직였을까.

"잠깐."

소리가 들렸다.

곤충이 기어다니는 듯한 소리. 그것도 한둘이 아니라 엄청난 숫자의 곤충이.

다른 플레이어들도 똑같이 들었다.

"...."

"...."

진현우와 플레이어들은 누가 먼저랄 것 없이 몸을 낮추고 은밀하게 움직였다.

소리의 근원지가 점점 가까워졌다.

골목을 지나자 벽에 커다란 구멍이 뚫린 게 보였다. 진현우는 조심히 내부를 살폈다.

- 치이익!

- 키이이이....

구멍 너머는 거대한 굴이었다.

굴 안에 있는 것들은 거대한 개미 그리고 마찬가지로 거대한 사마귀였다.

특이하게도 놈들은 종이 다름에도 불구하고 같은 종인 것처럼 잘 지내고 있었다.

또 하나.

"진현우 님, 저거 보이십니까?"

"예, 저도 보고 있습니다."

"알 맞지?"

놈들 너머에 수많은 알이 보였다.

평범한 알이 아니었다. 기이할 정도로 커다란 알들이었는데, 어디선가 흘러오는 검은 마력을 탐욕스럽게 흡수하고 있었다.

그리고 잠시 후.

- 카득, 카드득!

- 키아아아아!

몬스터들이 알을 깨며 태어났다.

거대한 개미와 사마귀들. 막 태어났음에도 불구하고 성체와 크기가 다를 게 없었다.

놈들은 곧바로 무리에 합류했다.

- 스으으윽!

"현우야, 알이... 또 생기고 있어."

몬스터들이 태어나면서 빈자리에 검은 마력이 모이더니 다시금 알이 생겼다.

진현우는 검은 마력의 원천을 쫓았다.

'저기 있군.'

굴의 가장 안쪽에 검은 방첨탑이 보였다.

방첨탑에서 흘러나오는 검은 마력이 알을 만들어 내고, 알을 빠르게 부화시키고 있었다.

저걸 파괴하면 된다.

그러면 이 굴은 무력화될 것이다.

"현우야, 숫자가 좀 많지 않아?"

"설마 저것들하고 싸우려는 건...."

"잘 아시네요. 마법 영창하세요, 화염으로."

진현우는 검을 천천히 놨다.

허공으로 떠오르는 검은 수십여 개의 환검이 되어 개미와 사마귀들을 기습했다.

"아니, 잠...!"

갑옷보다도 단단한 갑피가 단번에 꿰뚫리고, 놈들의 체액이 사방으로 튀었다.

수십의 몬스터가 단번에 죽었다.

하지만 놈들의 숫자는 아직도 많았다.

- 치익, 치이이이!

- 쉬이이익!

몬스터들이 진현우의 존재를 인지했다.

굴 내부에 있는 모든 개미와 사마귀들이 일제히 진현우와 플레이어들에게 돌진해 왔다.

땅이 울리는 것이 느껴졌다.

"샬럿, 버프!"

"너 진짜 제정신이 아니야!"

"으, 으아악! 저것들 몰려옵니다!"

몬스터들과의 거리가 순식간에 좁혀졌다.

진현우는 방패를 힘껏 내리찍었다.

- 쿠우웅!

신성한 방패가 적들의 앞을 가로막았다.

빛으로 이루어진 방패. 하지만 평소와 차이점이 있었다. 모래바람 같은 것이 방패 주변을 회오리치면서 맴돌고 있다는 것이었다.

- 휘이잉!

방어 스킬의 강도를 크게 강화하면서, 유지 시간을 한층 증가시키는 옵션의 효과였다.

개미와 사마귀들이 방패를 파괴하려고 했지만 그 시도는 모두 무위로 돌아갔다.

"다 태워 죽여!"

그사이에 영창을 끝마친 마법사들이 일제히 화염 마법을 쏘아 냈다.

굴이 순식간에 불길로 뒤덮였다.

- 화르르륵!

- 캬하아아악!

방패 앞에 가로막혀 있던 개미와 사마귀들이 일제히 불길에 휩싸였다.

고통에 찬 비명을 내지르는 몬스터들.

"다 죽여!"

진현우는 과부하를 쓰며 뛰쳐나갔다.

몬스터들 한복판으로 쏘아지는 검은 신형. 흑뢰가 사방으로 퍼지며 적들을 불태웠다.

그 뒤를 따르는 플레이어들.

"이게 뭐 하는 짓이야!"

"X발, 죽기 싫으면 저것들 다 죽여!"

- 치이이이익!

굴속에서 치열한 전투가 벌어졌다.

* * *

그리고 시간이 얼마나 지났을까.

"헉, 허억!"

"이, 이게 마지막인가?"

전투가 끝났다.

한 10분 남짓. 적들의 숫자가 100마리를 훌쩍 넘는 걸 생각하면 빨리 끝난 편이었다.

플레이어들은 주변을 돌아봤다.

"더럽게 많네...."

거대 개미, 사마귀들의 사체로 가득했다.

진현우와 플레이어들은 주변을 돌아다니면서 살아남은 적들을 확인 사살 했다.

마지막으로 남은 건 방첨탑과 알들이었다.

"저 알들, 되게 기분 나쁘게 생겼다."

"어떻게 할까요?"

"다 부숴야죠."

검은 알들이 맥동하고 있다.

진현우는 플레이어들에게 알을 파괴하라고 한 후, 자신은 검은 방첨탑 앞에 섰다.

- 흐으음, 강한 마력이 느껴지는구나. 뭔가 익숙하게 느껴지는 것 같기도 하고....

미호가 중얼거렸다.

진현우는 검을 크게 휘둘러 방첨탑을 베어 냈다. 그 순간, 메시지가 나타났다.

- 사마귀 굴을 공략했습니다.

- 500포인트를 획득했습니다. 하나의 대포 타워를 포인트 지불 없이 지을 수 있습니다.

- 웨이브의 군세가 약해집니다.

진현우가 기다리던 보상이었다.

모두의 눈앞에 똑같은 메시지가 나타났을 것이다. 메시지를 본 이들의 눈이 커졌다.

"이건...."

"뭐야, 이런 보상도 있었나?"

주변을 탐사해야 하는 이유였다.

타워 하나를 지을 수 있는 양의 포인트에, 대포 타워를 무료로 짓게 해 주는 보상까지.

그리고 무엇보다 중요한 보상이 있었다.

"웨이브의 군세가 약해진다고?"

공동을 공격하는 웨이브, 그에 소속된 몬스터들은 허공에서 뚝 떨어지는 게 아니다.

조금 전에서 봤던 것처럼 알에서 태어난다.

그것도 엄청난 속도로.

'굴을 파괴하면 군세를 약화시킬 수 있다.'

굴은 몬스터 생산 공장이라고 볼 수 있다.

고대의 지하 왕국, 이 거대한 굴에는 그런 몬스터 생산 공장이 수없이 많이 있다.

'할 수 있는 데까지 굴을 파괴해서 웨이브의 몬스터 숫자를 줄여야 한다.'

그게 15층의 공략법이었다.

공동에 틀어박힌 채 웨이브를 막기만 해서는 이 층을 공략할 수 없다. 수비만 하면 실패할 수밖에 없는 것이 15층이었다.

'공격과 수비를 같이 해야지만....'

이 층을 공략할 수 있다.

한정된 시간에 가능한 많은 굴을 공략해야지 층의 공략 난이도가 낮아질 것이다.

진현우는 깃발을 들었다.

- 쿠웅!

영역 선포가 죽은 개미와 사마귀들을 언데드로 만들고, 사자의 군대를 소환했다.

그렇게 부활한 언데드를 밖으로 내보냈다.

- 쿠르르르!

"어, 어어! 천장이 흔들리는데요!"

"이, 일단 나가! 빨리 나가라고!"

굴이 파괴될 걸 알고 있어서였다.

방첨탑이 파괴되자 굴이 뒤흔들렸다.

플레이어들이 바깥으로 나가자 굴의 천장이 무너지더니, 거대한 굴이 완전히 매몰됐다.

여기서 몬스터가 생산되지는 않을 것이다.

"...."

"...."

플레이어들은 무너진 굴을 멍하니 봤다.

그리고 진현우의 얼굴도.

"이래서 주변을 탐사하자고 한 겁니까?"

"아니, 이걸 어떻게 알고...."

지극히 당연한 의문이었다.

이런 굴이 있을 거라는 건 어떻게 알았고, 이런 보상을 줄 거라는 건 어떻게 알았을까.

하지만 돌아오는 대답은 없었다.

"너희 동족을 찾아라."

- 키, 이익....

진현우는 언데드들에게 명령을 내렸다.

개미와 사마귀들이 같은 방향으로 나아갔다. 동족이 있는 굴을 찾으러 가는 것이다.

'휴식 시간이 2시간 정도였던가.'

30분 정도 지났다.

시간이 그리 많지 않지는 않은 상황.

그 시간 동안 최대한 많은 굴을 공략해서 포인트와 타워 보상을 얻어야만 한다.

진현우는 샬럿을 독촉했다.

"뭐 해? 빨리 기도 안 하고."

"넌 내가 무슨 버프 주머니인 줄 아니?"

성녀인 샬럿의 버프는 일반 사제에 비하면 월등하다고 할 수 있을 정도로 뛰어나다.

그녀는 다시금 플레이어들에게 속도가 빨라지는 버프를 부여했다. 플레이어들은 그런 샬럿과 진현우를 넋을 놓은 채 보고 있었다.

"그만 쳐다보고 빨리 움직입시다."

진현우가 그들을 독촉했다.

여기서 멍하니 있을 시간이 없다.

"가죠. 할 일이 많으니."

217화

디펜스 게임 (3)

지독한 강행군이었다.

진현우와 함께 움직이던 아그니스의 길드원들은 하나도 빠짐없이 그렇게 생각했다.

그는 주어진 휴식 시간 동안 조금도 쉬지 않고 주변에 있는 굴들을 공략해 버렸다.

"그, 그만. 그마아안...."

"여, 여기서 좀, 휴식을...."

- 인간. 저 인간들, 다 죽어 가는구나.

마지막 굴을 공략했을 때 즈음에는 진현우를 제외한 모두가 곤죽이 된 상태였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워낙 강행군이었으니.

"잠깐만 쉽시다. 이제 다 끝났으니까."

"저, 정말입니까?"

"예. 빠르게 돌아가야 하니까 오래 쉬지는 못하겠지만, 일단 몇 분이라도 쉬죠."

플레이어들이 바닥에 널브러졌다.

남은 시간은 20분 정도. 아주 잠깐만 쉬고 바로 공동이 있는 곳으로 돌아가야 한다.

'일단 그전에.'

진현우는 받은 보상들을 확인했다.

- 현재 보유 포인트: 4,000.

- 현재 보유한 타워: 대포 타워 (3), 빙결 타워 (1), 나무 장벽 (4).

굴 5개를 공략한 보상이었다.

언데드와 정령, 영혼 동물들을 적극적으로 이용한 덕분에 이루어 낸 성과였다.

물론, 플레이어들의 노력도 있었다.

'그건 그거고.'

2분 정도 지났다.

진현우는 크게 박수를 쳤다. 늘어진 플레이어들이 멍한 눈으로 그를 바라봤다.

"슬슬 돌아갑시다. 움직이죠."

"어으어어...."

샬럿과 플레이어들은 지칠 대로 지친 몸을 억지로 움직였다. 여기 있다가 몬스터 웨이브가 시작되면 몸도 못 추스른다.

쉬더라도 공동에 가서 쉬는 게 맞다.

일행은 재빠르게 왔던 길을 돌아갔다.

"돌아왔네?"

"어. 별일 없었지?"

"몬스터 몇 마리가 흘러들어 오기는 했는데, 뭐, 크게 어려울 건 없었어. 처리했지."

진현우는 공동으로 귀환했다.

그런 그를 화련이 반겼다. 그녀는 다른 플레이어들과 함께 마법을 준비하고 있었다.

샬럿이 호기심을 드러냈다.

"화련 씨, 뭘 하고 계신 거예요?"

"보면 모르니? 마법진이잖아."

땅에 작은 마법진들이 그려진 게 보였다.

"귀찮으니까 네가 설명해."

"넵. 적이 가까이 오면 공격하는 마법이 담겼습니다. 통로까지 다 설치하기에는 시간이 없어서 이 근방에만 설치할 생각입니다."

"헤에...."

아그니스의 길드원이 황급히 대답했다.

적들이 공동 내부까지 침입했을 때를 대비한 마법진이었다. 도움이 될 것이다.

작업하던 마법진의 설치를 끝낸 화련은 뒤를 돌아보더니, 공동 한가운데를 가리켰다.

"그것보다 저거나 봐 봐. 너희가 가고 얼마 안 있어서 저런 게 나타났어."

모두의 시선이 공동 한가운데로 향했다.

거기에 뭔가가 솟구쳐 있었다. 진현우가 떠나기 전까지는 공동에 없었던 물건이었다.

당연하지만, 그가 아는 물건이기도 했다.

"응, 어디서 본 거 같은데?"

"굴에서 봤잖아."

"아! 맞다, 굴에서 봤었지."

샬럿이 손뼉을 쳤다.

계단식으로 된 공동. 그 꼭대기에는 굴에서 봤던 것과 비슷한 방첨탑이 설치되어 있었다.

차이가 있다면 저건 까맣지 않다는 것.

그리고 조금 더 크다는 것이었다.

- 적들의 공격으로부터 오벨리스크를 지켜야 합니다. 오벨리스크가 파괴되거나 모든 플레이어가 사망할 경우, 실패합니다.

"유신이 어떻게 도망쳤나 했더니."

화련이 비웃었다.

저 오벨리스크를 자기 손으로 파괴해서 실패하게끔 만들고 도망쳤을 것이다.

어찌 보면 안전장치라고도 볼 수 있다.

'위험하면 부수고 도망치면 되니까.'

다른 플레이어들도 눈치챘을 것이다.

그들의 표정에 안도감 같은 것이 살짝 감돌았다. 실패하더라도 도망칠 방법이 있다는 걸 알았으니 마음의 안정이 생길 수밖에.

"그래서, 소득은 좀 있으셨나?"

"당연하지."

진현우는 공동 한가운데로, 오벨리스크 옆에 있는 거대한 화면으로 걸어갔다.

이 공동과 이어진 통로 네 곳의 모습을 비추는 화면이었다. 길면서도 넓은 통로 곳곳에는 일부러 비운 듯한 공간이 남아 있었다.

'타워를 설치할 수 있는 공간이지.'

지금 가진 타워는 총 네 개.

설치하는 방법도 간단했다. 진현우가 화면에 손을 대자 눈앞에 메시지가 나타났다.

- 맵이 개방됩니다.

메시지가 넓은 맵으로 바뀌었다.

맵의 구조는 간단했다. 가운데에 지금 진현우가 있는 커다란 공동이 있었고, 동서남북 각 방향으로 길게 통로가 뻗어진 형태.

통로마다 작은 원이 다섯 개씩 있었다.

- 해당 위치에 타워를 설치할 수 있습니다.

- 현재 보유 포인트: 4,000.

- 현재 보유한 타워: 대포 타워 (3), 빙결 타워 (1), 나무 장벽 (4).

원이 타워를 설치할 수 있는 지점이었다.

진현우는 먼저 포인트를 쓰기로 했다.

- 나무 장벽: 100P.

- 화살 타워, 대포 타워: 500P.

- 빙결 타워: 500P.

타워와 장벽의 가격이었다.

진현우는 빙결 타워 셋을 구매한 다음, 나머지 돈으로 모두 대포 타워를 구매했다.

- 현재 보유한 타워: 빙결 타워 (4), 대포 타워 (8), 나무 장벽 (4).

통로에 설치하기 충분한 양이었다.

그리고 각 통로의 첫 번째 원에 빙결 타워를 설치하고 그 뒤에 대포 타워를 설치했다.

'빙결 타워로 먼저 슬로우를 먹인 다음에 대포 타워로 최대한 숫자를 줄인다.'

지극히 간단하고 효과적인 방법이었다.

진현우는 화면을 바라봤다. 각 통로에 대포 타워와 빙결 타워가 설치되는 모습이 보였다.

- 대포 타워와 빙결 타워를 설치합니다.

대포 타워는 작은 타워에 거대한 대포가 머리에 달린 형태였고, 빙결 타워 역시 작은 타워에 냉기로 가득한 오브가 달린 형태였다.

그리고 또 하나, 특징이 있었다.

- 통로에 설치된 타워는 적 몬스터들이 인지할 수 없습니다. 단, 공동에 설치된 타워는 인지할 수 있으며 파괴하려고 할 것입니다.

두 타워 모두 반투명했다.

적 몬스터들이 인지하지 못한다는 걸 시각적으로 확실하게 보여 주기 위함이었다.

'통로에서 최대한 몬스터들의 숫자를 줄여야 한다. 그리고 통로를 돌파하면서 약해진 놈들을 공동의 타워로 한 번에 처리하고.'

그게 15층의 정석적인 공략 구조다.

물론 그렇게 하려면 엄청난 양의 포인트가 필요할 것이다. 그 포인트를 벌어야만 한다.

- 쿠르르르르!

진현우가 그런 생각을 하고 있으려니, 갑자기 천장과 땅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잠시 후.

- 키아아아아아!

"이 소리는...."

공동을 뒤흔드는 포효가 들렸다.

진현우, 그리고 그와 함께 움직였던 플레이어들은 이미 여러 번 들어서 익숙한 소리.

- 그리 멀지 않은 곳에서 성난 곤충들의 포효가 들립니다....

- 두 번째 웨이브가 시작됐습니다.

몬스터들의 소리였다.

적들이 다가오고 있다.

* * *

진현우는 스크린을 바라봤다.

스크린에 보이는 것은 네 개의 통로.

각 통로에는 하나의 빙결 타워와 두 개의 대포 타워가 적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 샤아아아악!

"굴에서 봤던 사마귀군요."

그리고 몬스터들이 밀려들기 시작했다.

가장 선두에 전진하는 것은 거대한 사마귀였다. 그 뒤를 거대한 개미들이 뒤따랐다.

타워들이 놈들을 인지했다.

- 철컥! 쿠웅!

대포 타워가 장전되는 소리가 들렸다.

화살 타워와 달리 대포 타워는 데미지가 약하지만, 적들에게 범위 공격을 가할 수 있다.

하지만 웨이브 초반에 나오는 몬스터들은 숫자는 많아도 개개인은 그리 강하지 않다.

대포 타워의 데미지가 충분히 통할 터.

- 스으으으....

빙결 타워에 달린 오브에서부터 지독한 냉기가 뿜어져 나왔다. 냉기는 통로를 뒤덮었고, 그 위를 걷고 있던 개미들을 둔화시켰다.

놈들은 느린 속도로 걸음을 옮겼다.

그리고 일정 지점에 도달했을 때.

- 콰아앙!

장전을 마친 대포 타워가 불을 내뿜었다.

콰앙! 거대한 포탄이 선두에서 전진하던 사마귀의 복부를 강타했다. 그 충격을 버티지 못한 사마귀가 개미들 한복판까지 밀려났다.

그리고.

- 퍼어어엉!

귀를 찢는 듯한 굉음과 함께, 포탄 안에 모여 있던 마력이 폭주하면서 폭발했다.

포탄과 내부의 마력이 수많은 칼날이 되어 사방에 있던 개미와 사마귀들을 휩쓸었다.

- 키아아아악!

- 시이이....

그 뒤를 잇는 또 하나의 포탄.

두 개의 대포 타워가 쏘아 낸 포탄이 단번에 수십 마리의 몬스터들을 처리했다.

타워의 위력을 본 플레이어들이 놀랐다.

"이야, 위력이...."

"기믹부터가 타워를 쓰라는 거였으니까 강력하겠다 싶긴 했는데, 이 정도일 줄이야."

대포 타워가 놈들을 공격하고 있었다.

개미들이 고통에 찬 비명을 내지르며 폭발했다. 하지만 그중에서 대포 타워의 존재를 인지하고, 파괴하려고 하는 놈은 없었다.

"진짜로 몬스터들이 인지를 못 하네요."

몬스터들은 무식하게 통로를 나아갔고, 그런 놈들을 냉기가 끈질기게 방해했다.

느려진 놈들을 대포 타워가 공격했다.

- 콰아아앙!

개미의 갑피와 체액이 사방으로 튀었고, 사마귀가 자랑하던 앞발이 산산이 조각났다.

몬스터들이 비명을 지르며 죽어 갔다.

"몇 마리가 통과할 거 같긴 합니다."

"그래 봤자...."

모든 몬스터가 죽은 건 아니었다.

어떻게든 통로를 통과해서 공동까지 도달하는, 끈기를 가진 몬스터들도 존재했다.

하나 무의미한 발버둥이었다.

"어, 저기 왔다."

"쟤네들, 상태 영 안 좋은데?"

개미와 사마귀들이 공동에 도착했다.

하지만 그 숫자는 첫 웨이브에 비하면 너무도 적었고, 모두 큰 부상을 입은 상태였다.

당연하지만 처리하는 건 너무 쉬웠다.

- 치익....

마지막 사마귀가 목숨을 잃었다.

공동에 들어온 숫자라고 해 봤자 수십. 플레이어들은 금방 몬스터들을 처리했다.

그들의 얼굴에는 의아함이 가득했다.

"첫 번째 웨이브보다 숫자가 더 작은 것 같지 않습니까? 아무리 타워가 있어도...."

"그러니까. 아예 숫자가 적지 않냐?"

진현우와 다른 플레이어들이 굴을 공략하는 동안 이곳에 남아 있던 이들이 의아해했다.

굴을 공략한 보상을 모르기 때문이었다.

"굴을 공략하면 적들 숫자가 줄어든다고?"

"허...."

모두의 시선이 일제히 진현우에게 향했다.

주변을 탐사해야 한다고 주장했던 사람. 이런 보상이 있을 거라는 걸 알고 했던 걸까.

진현우는 눈앞에 나타난 보상을 확인했다.

- 두 번째 웨이브: 개미와 사마귀 군단의 습격을 극복했습니다. 보상으로 2,000P가 주어집니다.

고작 2,000P.

웨이브 보상이 짜도 너무 짜다.

'그러니까 다른 길드들이 실패하지.'

다른 길드들은 워낙 포인트가 부족하니 자체적으로 방어 시설을 지었다고 들었다.

하지만 그걸로는 한계가 있을 수밖에.

'각 통로에 포탑을 다 설치하면 한동안은 방어에 힘쓸 필요가 없을 것 같은데....'

몬스터 웨이브가 공격해 오는 시간에 굴을 탐사하는 것이 가능할 수도 있다.

어쨌든, 중요한 건 포인트를 버는 것.

"오, 뭐야. 제대로 득템인데?"

"통로도 돌아보면서 루팅부터 하죠."

플레이어들은 죽은 몬스터들을 돌아보면서 드롭한 아이템을 살피고 있었다.

진현우는 그런 그들을 말없이 바라봤다.

'쉴 틈이 없겠군.'

플레이어들은 까닭 모를 불길함을 느꼈다.

218화

중간 보스 (1)

2번째 웨이브를 막았다.

진현우는 주변의 굴을 탐색하러 가기 전에, 화련과 대화해서 마법을 하나 부여받았다.

"통신 마법이야. 너무 먼 곳까지 떨어지는 게 아니면 나와 통신할 수 있을 거야. 통신 가능한 범위면 그 보석이 빛날 거고."

통신 마법이었다.

만약의 사태를 대비해서, 이다음에 있을 일을 대비해서 받아 두기로 했다.

"그쪽에서 통신하는 것도 가능하지?"

"가능해. 왜?"

"여기서 대기하다가 주변이 울리거나, 어디서 괴성이 들리면 나한테 바로 통신해."

"어려울 것 없지. 알았어."

그리고 마지막으로 시험할 게 있었다.

"어디 가?"

"잠깐만."

진현우는 플레이어들을 놔두고 혼자서 통로로 향했다. 그리고 공동으로부터 일정 거리가 멀어진 다음, 시스템창을 열었다.

그러자 눈앞에 맵이 나타났다.

'역시.'

타워를 설치할 수 있게 해 주는 맵.

공동으로부터 멀리 떨어졌지만 자유롭게 열 수 있었고, 타워를 설치하는 것도 가능했다.

이게 의미하는 건 굉장히 컸다.

"뭘 하다가 온 거야?"

"잠깐 확인할 게 있어서. 그럼 움직입시다."

진현우는 플레이어들을 데리고 공동을 떠났고, 인근에 있는 굴을 공략하기 시작했다.

개미들을 이용해서 확인해 둔 지점들이 여럿 있었기에 이전보다 속도가 더욱 빨랐다.

"헥, 헤엑!"

"이, 이 짓을 계속해야 해?"

플레이어들은 실시간으로 갈려 가는 중이었지만 그런 걸 신경 쓸 여유가 없었다.

굴 하나를 공략하고, 다음은 셋, 놀라운 속도로 다섯 개의 굴을 공략하는 데 성공했다.

- 3,500포인트를 획득했습니다. 화살 타워 넷을 포인트 지불 없이 지을 수 있습니다.

- 웨이브의 군세가 약해집니다.

다섯 개의 굴을 공략한 시점에서 화련에게서 통신이 들어왔다. 다행히도 아직 범위 내였기에 통신을 받을 수 있었다.

- 주변이 흔들리네. 소리는 아직 안 들려.

"조금 있다가 웨이브가 시작될 거야. 있어 봐. 지금 바로 타워를 설치할 테니까."

타워는 원격에서 설치할 수 있었다.

진현우는 화련과 통신하면서, 굴을 공략하면서 얻은 보상들로 통로의 빈자리를 채웠다.

- 뭐야, 이번에는 안 돌아오는 거야?

"어. 몬스터들이 공격하러 가면 굴이 비거든. 그때를 노려서 굴을 한 번에 칠 거야."

- 뭐어, 상관은 없는데....

화련이 떨떠름한 목소리로 덧붙였다.

- 우리끼리 막을 수 있을 거라는 확신이 있으니까 안 돌아오겠다는 거겠지?

"맞아. 믿기 힘든가?"

- 나는 믿어. 다른 놈들은 모르지만.

여전히 복속의 말뚝으로 지배당하고 있는 화련이었기에 명령을 거부할 리가 없다.

문제는 다른 길드원들이었으나.

- 그쪽은 내가 알아서 할게.

"그래."

화련이 알아서 처리할 것이다.

원격에서 타워를 설치하는 걸 마친 진현우는 공략이 끝난 굴에 머무르기로 했다.

"조만간 웨이브가 시작될 겁니다. 웨이브가 시작될 때까지 여기에 숨도록 하죠."

"예, 예에...."

"나 죽을 것 같아...."

샬럿이든 플레이어든 지칠 대로 지친 상황이었기에 그 제안을 반갑게 여겼다.

플레이어들이 바닥에 널브러졌다.

진현우는 혹시 모를 상황에 대비해서 굴의 입구를 펜리스의 얼음벽으로 막았다.

"언제까지 쉴 수 있는 겁니까?"

"한 15분 정도. 조금 있으면...."

- 쉬이이이익!

진현우가 그렇게 말한 순간, 그리 멀지 않은 곳에서 날갯짓 소리가 들렸다.

벌레 특유의 날갯짓 소리.

그리고 수많은 기척이 느껴졌다.

"...저 몬스터들이 지나갈 겁니다. 전부 다 공동 쪽으로 향했을 때 움직이죠."

"혀, 현우야, 괜찮은 거 맞지?"

"괜찮아."

몬스터들은 오벨리스크를 노린다.

오벨리스크, 그리고 각 굴에 있던 방첨탑에는 놈들을 유인하는 요소가 있기 때문이다.

진현우와 플레이어들이 놈들의 앞을 가로막지만 않는다면 공격해 오지는 않을 것이다.

"...."

"...."

몬스터들이 앞을 지나가고 있다.

일행은 숨을 죽였다. 얼음벽 너머에서 벌레들의 괴성과 날갯짓 소리가 계속해서 들렸다.

'설마 공격하는 건 아니겠지?'

'여기서 적들하고 마주치면....'

끝장이다.

지금 플레이어들이 있는 곳은 굴. 도망칠 방법이 없다. 밀려드는 몬스터들을 상대로 죽을 때까지 싸우는 것 말고는 그러했다.

하지만 다행스럽게도.

"지, 지나갔나?"

"후우우...."

몬스터들은 그냥 지나갔다.

애초에 얼음벽에 관심도 없는 것 같았다. 놈들은 오직 공동으로만 향하고 있었다.

바로 오벨리스크가 있는 곳으로.

"바깥에도 없는 것 같고."

진현우는 얼음벽을 녹인 다음 바깥을 살폈다. 주변에 남은 몬스터들은 없었다.

"움직입시다. 지금이면 굴이 비었을 테니."

"예, 예."

"참, 무모하다고 해야 할지...."

진현우는 앞장서서 통로를 나아갔고, 플레이어들은 혀를 내두르며 그를 뒤따랐다.

정확하게 그의 말대로였다.

몬스터들은 공동으로 떠난 상태였고, 놈들이 머무르고 있던 굴은 텅텅 빈 상황이었다.

"여기 있는 놈들은 벌이군요."

"지금까지 만난 게 개미, 사마귀, 벌, 지네.... 벌레 박람회인가?"

"어쨌든 쉽게 처리할 수 있겠군."

소수의 몬스터가 남아 있기는 했으나, 처리하는 건 그리 어렵지 않은 일이었다.

진현우는 그런 식으로 주변의 굴들을 정리하면서, 공동의 맵을 꾸준히 확인했다.

'슬슬 웨이브가 도착할 때가 됐는데.'

지금 각 통로에는 빙결 타워 하나, 대포 타워가 셋, 화살 타워가 하나씩 설치되어 있다.

이 정도면 화력은 충분하다.

'공동에 오기 전에 막을 수 있는 화력.'

진현우는 각 통로의 타워를 보강한 뒤 3번째 웨이브가 언제 올지 기다렸다.

그리 오래 기다릴 필요는 없었다.

- 그리 멀지 않은 곳에서 성난 곤충들의 포효와 날갯짓 소리가 들립니다....

- 세 번째 웨이브가 시작됐습니다.

웨이브는 금방 시작됐으니까.

공동과 연결된 네 개의 통로의 모습이 보였다. 통로로 진입하는 몬스터들의 모습도.

- 위이이잉!

- 샤아아아아!

이번 웨이브의 구성은 킬러 비라는 이름의 벌. 그리고 2 웨이브에서 본 사마귀들이었다.

놈들이 통로에 진입했다.

- 콰아아앙!

이윽고 울리는 폭음.

진현우가 가진 것들을 모두 써서 설치한 대포 타워와 화살 타워가 적들을 공격했다.

그 화력은 놈들이 감당하지 못할 정도였다.

- 시이이익...!

- 치익!

날아오던 킬러 비들이 대포의 화력에 단번에 박살 났다. 그 뒤를 이어서 쏘아진 거대한 화살이 다가오던 사마귀들을 꿰뚫었다.

몬스터들이 통로에서 끝없이 죽어 갔다.

"현우야, 어떻게 될 거 같아?"

"글쎄...."

진현우의 곁에서 다른 이들도 웨이브가 어떻게 되는지 지켜보고 있었다.

화력은 충분하고, 웨이브 군세는 약해진 상황. 이 정도면 충분히 막을 만하다.

"통로에서 막을 수 있을 것 같은데."

진현우의 말대로였다.

이번에는 몬스터들이 아예 공동에 도달하지 못하고 통로에서 대부분 죽었다.

극소수의 만신창이가 된 몬스터들이 공동에 진입했고, 그것들도 금방 정리됐다.

- 세 번째 웨이브: 사마귀와 킬러 비 군단의 습격을 극복했습니다. 보상으로 3,000P가 주어지며, 장벽이 한 단계 강화됩니다.

- 나무 장벽이 철 장벽으로 강화됩니다.

이윽고 보상이 나타났다.

웨이브 보상은 포인트가 다가 아니다. 가끔씩 타워나 장벽을 업그레이드해 주고는 한다.

굴 공략 보상도 마찬가지였다.

- 진현우, 여기는 막았어. 보고 있었나?

"어. 한동안은 이런 식으로 가자."

진현우는 그런 식으로 굴들을 공략했다.

하지만 계속 이렇게 할 수는 없다. 6번째 웨이브가 찾아올 때는 공동으로 가야만 한다.

'그때는 중간 보스가 나오니까.'

15층의 웨이브는 10 웨이브까지 있다.

6층부터는 몬스터들이 크게 강화되면서 중간 보스 같은 강력한 놈들이 함께 나온다.

그리고 마지막 웨이브에는 15층의 지배자가 직접 나타나서 공동을 공격한다.

'그 전까지 얻을 건 다 얻어야지.'

6번째 웨이브가 오기 전까지 진현우는 온갖 굴을 돌아다니면서 보상을 끌어모았다.

- 다섯 번째 웨이브: 뒤틀린 지네, 맹독 어미, 송장 지네 군단의 습격을 극복했습니다. 보상으로 5,000P가 주어집니다.

그렇게 다섯 번째 웨이브가 끝났을 때, 진현우는 공동으로 돌아가야겠다고 생각했다.

필요한 보상을 다 챙겼기 때문이었다.

- 현재 보유 포인트: 6,000P.

남은 포인트는 그리 많지 않았다.

포인트가 들어오는 족족 타워를 짓는 데 썼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중요한 건 이게 아니었다.

- 현재 보유한 설계도: 쇠뇌 타워, 지옥불 타워, 서릿발 타워.

진현우가 기다리던 설계도였다.

웨이브 보상과 굴을 보상하면서 얻었던 설계도들. 화살, 대포, 냉기 타워 셋을 강화할 수 있게 해 주는 설계도들이었다.

"어, 돌아왔어? 오랜만에 보네."

진현우는 여섯 번째 웨이브가 시작되기 전에 플레이어들과 함께 공동으로 돌아갔다.

화련이 그를 반겼다.

"우리 애들이... 넋이 나갔네?"

"야, 너희들 괜찮냐? 전부 왜 이래?"

공동에 남은 플레이어들은 타워가 몬스터들을 정리해 주는 덕분에 한가로울 지경이었다.

반면, 진현우와 함께 갔던 플레이어들은 계속된 강행군으로 인해 넋을 잃은 상태였다.

샬럿도 마찬가지였다.

"웨이브가 오기 전까지 쉬게 놔둬."

"뭘 어떻게 했길래...."

진현우는 곧바로 맵을 펼쳤다.

지금까지 벌어 둔 포인트를 다 쓴 덕분에 각 통로에는 타워가 전부 설치된 상태였다.

공동도 절반 가까이는 타워를 채운 상황.

'이제 설계도를 써야겠군.'

기존의 타워를 강화해 주는 설계도.

이 아이템에는 한 가지 특징이 있다.

- 설계도를 사용할 경우, 현재 설치된 타워들이 무료로 설계도에 맞춰 강화됩니다.

바로 이것이었다.

화살, 대포, 냉기 타워들을 무료로 쇠뇌, 지옥불, 서릿발 타워로 강화할 수 있다는 것.

타워를 많이 설치하면 설치할수록 무료로 엄청난 이득을 볼 수 있는 셈이었다.

- 보유한 설계도를 모두 사용합니다.

진현우는 설계도를 사용했다.

그러자 설치된 타워들이 빛에 휘감겼고, 그 형상이 빠르게 변화하기 시작했다.

변화는 금방 끝났다.

- 화살 타워가 쇠뇌 타워로 강화됐습니다. 기존의 화살 타워보다 사거리가 길며, 더욱 강력한 관통력을 가지고 있는 타워입니다.

- 대포 타워가 지옥불 타워로 강화됐습니다. 폭발할 때 강력한 화염을 사방으로 내뿜으면서 인근에 있는 적들을 불태웁니다.

- 빙결 타워가 서릿발 타워로 강화됐습니다. 얼음 기둥을 세워 적의 진로를 차단하면서 기둥의 냉기로 적들을 빙결시킵니다.

설명이 눈앞에 나타났다.

타워들의 모습이 바뀐 것도 보였다. 타워가 바뀌는 걸 본 화련이 살짝 놀랐다.

"활이 쇠뇌로 바뀌었네?"

진현우는 남은 포인트를 이용해서 통로와 공동 곳곳에 철 장벽을 설치했다.

바로 그때, 괴성이 들렸다.

- 키아아아아악!

어디선가 들려오는 몬스터들의 괴성.

- 그리 멀지 않은 곳에서 성난 곤충들의 포효와 날갯짓 소리가 들립니다.... 무리를 이끄는 강대한 괴물이 다가오고 있습니다.

- 여섯 번째 웨이브가 시작됐습니다.

웨이브의 시작을 알리는 괴성이었다. 지금까지와는 달리, 중간 보스가 포함된 웨이브.

하지만 걱정은 없었다.

'이 정도면 충분히 막을 수 있다.'

이미 대비는 다 해 둔 상황이었으니까.

219화

중간 보스 (2)